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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장이냐 분배냐'는 무의미한 논쟁 14 2014.01.28
  2. 법인세를 둘러싼 논점들 4 2014.01.15
  3. 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 2 2014.01.09
  4. 정부지출, 재정적자와 관련하여 고려해야할 요인들 2 2014.01.01
  5.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 논란 - 세금들 많이 내십니까? 2013.12.31
  6. 65세 이상 어르신 무임승차제도 논란에 관하여 2013.12.02
  7.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이전과는 다를것이다 2013.12.01
  8.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 2013.11.30
  9. [외환위기 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2013.11.26
  10. 은행과 고객 간 '긴밀한 친밀관계'의 중요성 - 금융시스템 내 정보비대칭성 2 2013.11.17
  11. [외환위기 ④]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2013.11.11
  12. [외환위기 ③]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2013.11.09
  13. [외환위기 ②]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7 2013.10.27
  14.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2013.10.25
  15. [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6 2013.10.23
  16.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 2013.10.18
  17. 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2013.10.13
  18. 복지제도와 유인왜곡 - "어떻게" 복지제도를 설계할 것이냐의 문제 3 2013.10.04
  19.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2 2013.09.14
  20. <경향신문> "노동소득분배율" 기사의 문제점 17 2013.09.09

'성장이냐 분배냐'는 무의미한 논쟁'성장이냐 분배냐'는 무의미한 논쟁

Posted at 2014. 1. 28. 10:09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경제와 관련된 첨예한 논쟁 중 하나가 바로 "성장이냐 분배냐" 이다. 보수성향 사람들은 성장을 중시하고, 진보성향 사람들은 분배를 중시한다. 이러한 의견이 극단적으로 대립한다면, "분배주의자는 북한이나 가라 /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은 착취이다. 탈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라는 과격한 발언이 나오게된다. 


성장과 분배를 둘러싸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사이에서만 갈등이 발생할까?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이를 둘러싼 대립이 많다. 특히나 노무현정부 시절,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Liberal 성향의 인사들과 Progressive 성향의 인사들 간의 충돌이 빈번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던 강봉균은


강 전 장관은 22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 중간쯤부터 선거에서 계속 졌다”며 “민주당 일부 강경 세력들이 이념논쟁, 진영논리에 빠져 당내에서 변화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경파들의 입지 확보를 위한 장외투쟁 같은 것에 반대를 했지만, 민주당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며 “민주당을 변화시키는 데 결국 실패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강 전 장관은 민주당의 실패 원인으로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임에도 이를 정치의 핵심으로 만들지 못한 것을 꼽았다. 


강 전 장관은 “경제전문가로서,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부터 풀어나가고 상대 당과도 해결이 가능한 것은 해결하려고 했다”면서 “하지만 (강경파들은) 상대 당이면 무조건 안된다는 식이었고, 경제와 타협을 강조하면 ‘왜 여기 있느냐. 차라리 한나라당으로 가라’고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을 해도 민주당이 스스로 변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민주당이 뭐 그렇게 달라지겠느냐는 생각들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봉균 “민주, 강경파 진영논리로 망가져”. <문화일보>. 2014.01.22


라고 말하면서 강경파(대개 시민단체/활동가 출신들로 유추된다)들이 경제정책에서 보여줬던 이념논쟁, 진영논리를 비판한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변양균 또한 성장을 폄하하는 목소리를 비판한다.


"그분(문재인 국회의원)만큼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작년 대선 때 문제가 있었어요. 저는 당시 건강이 안 좋아 사이드에서 조언만 했는데, 이정우 교수(문재인 캠프 좌장)와 다툰 적이 있어요. 제가 내놓은 정책을 전해들었는지 '후보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며 발끈하더군요. 선거가 뭡니까. 51대49 아닌가요? 문재인이 학잡니까? 정체성 운운하게?" (...)


"1998년부터 우리나라는 성장만 가지곤 살아갈 수 없는 수준의 국가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장에 반대하는 것은 바보들이죠. 1000년, 2000년 된 나무도 성장을 해야 살 수 있습니다. 사람도 성장을 멈추면 죽음을 향해 가잖아요. 성장은 국가에 필요조건입니다. 충분조건은 아니지만요."


변양균. '불륜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변양균 前 청와대 정책실장'. <조선일보>. 2014.01.11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경제성장은 거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준다" 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임금도 상승한다. 근로자들의 후생이 증가하게 된다. 또한 경제가 성장하면 정부의 세입기반도 확충되고 정부지출의 여력도 증가한다. 이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갖출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은 거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준다" 라는 명제 자체에 납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조선시대, 1950년대의 한국 그리고 2014년 현재의 한국을 비교해보자. 2014년 한국인들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고 있다. 절대적인 생활수준 자체가 크게 개선되었다. 장기적인 경제성장은 경제주체가 누리는 후생 그 자체를 대폭 상승시켜준다. 


경제학자 David Romer는 


"장기 성장이 후생에 끼치는 영향은 거시경제학이 전통적으로 초점을 맞추어 온 단기적 경기변동의 모든 가능한 효과를 삼켜 버린다" 


Howard R. Vane, Brian Snowdon. 2009. 『현대거시경제학-기원, 전개 그리고 현재』. 51쪽에서 재인용  


라고 말한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Robert Lucas 또한 


"이런 문제(장기적인 경제성장)가 인간의 후생에 갖는 결과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기만 하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에서 멀어져 버린다" 


"더 나은 장기 공급우선 정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잠재적 후생의 이득은 단기적 수요관리의 개선에서 얻어질 잠재적 이득을 훨씬 상회한다" 


Howard R. Vane, Brian Snowdon. 2009. 『현대거시경제학-기원, 전개 그리고 현재』. 51쪽에서 재인용  


라고 말한다.




그런데 두 경제학자의 발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장기(↔단기)'와 '공급우선(↔수요관리)' 이라는 용어이다. "경제성장은 거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준다" 이것은 절대명제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이 내가 살아가는 동안 달성되지 않는다면 어떻게될까? 조선시대 사람에게 (경제성장을 달성한) 2014년 한국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John Maynard Keynes의 유명한 발언이 여기서 등장할 수 있다.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따라서, 지금 이 시점을 살아가는 경제주체들에게 중요한 건 '경기변동의 관리'와 '단기적인 경제성장' 이다. 기변동의 진폭을 축소하고 경제를 안정화 시킴으로써 단기적인 경제성장을 달하는 것, 그리고 경제의 단기균형을 장기균형 수준으로 수렴케 하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총수요관리 정책' 이다. 총수요관리 정책이란 소비 증가, 정부지출 증가 등을 통해 경제의 단기균형을 장기균형으로 수렴케하여 경기불황에서 벗어나는 정책을 뜻한다.





장기총공급곡선(LRAS)이 만들어내는 Y bar는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달성가능한 산출량을 의미한다. 현재 이 그래프는 단기총공급곡선(SRAS1)와 총수요곡선(AD1)이 만들어내는 '단기균형 A점, 산출량 Y1'이 '장기균형 Y bar'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즉, 경기불황(Recession) 상태이다.


이때, 경기불황 수준에 있는 단기균형이 장기균형으로 수렴하는 법은 2가지.


1.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의 힘으로 단기총공급곡선(SRAS1)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경기가 불황이면 경제주체들의 기대물가수준이 하락하는데, 이것의 영향으로 단기총공급곡선(SRAS1)이 오른쪽으로 하향이동(SRAS2)한다. 그 결과 단기균형 A점은 C점으로 옮겨지고, 단기균형과 장기균형이 일치하게 된다.


2. 

정부의 '총수요관리 정책'에 의하여 총수요곡선(AD1)을 상향이동 시키는 방안도 있다 .경기불황 상태를 타개하고자 정부는 재정정책 · 통화정책을 통하여 총수요를 증가시키는데, 그 결과 AD1 곡선이 상향이동(AD2)다. 따라서 단기균형 A점은 B점으로 옮겨지고, 단기균형과 장기균형이 일치하게 된다.




장기적인 경제성장은 '생산의 증가'를 뜻한다. 노동, 자본의 투입량을 늘리고 생산성을 개선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장기적인 경제성장. 이는 '공급중심 성장(Supply-Side Growth)'을 의미[각주:1]하기도 한다.


'공급중심 성장(Supply-Side Growth)'은 시장의 '자동조절 기능'을 믿는다. 경기불황 상태인 단기균형(A점)이 빠른 시간내에 장기균형(C점)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총수요관리 정책은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단기균형에 신경쓰기보다 장기적인 경제성장, 즉 장기총공급 곡선(LRAS)를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Y bar를 우측이동 시키는 것을 중점에 둔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산요소(자본, 노동) 투입 증가와 생산성 향상이다. 즉, 공급측면의 성장을 달성하려면, '기업의 자본투입'이 증가해야 한다. 기업이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력을 늘리는 행위가 발생해야 한다.


단기적인 경제성장(단기균형의 장기균형으로의 수렴)은 '유효수요의 증가'를 뜻한다. 소비를 늘리고, 정부지출을 늘림으로써 수요를 증가케 하는 것. 그 결과 경기불황에서 벗어나 경기변동의 진폭을 축소케 하는 것. 이는 '수요중심 성장(Demand-Side Growth)'을 의미[각주:2]한다. 


'수요중심 성장(Demand-Side Growth)'은 소비증가, 정부지출 증가 등 '총수요증가'를 통해 경기불황 상태인 경제를 성장시킨다. (정부지출 증가는 이자율과 환율에 미치는 구축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렇지만 경제가 불황상태, 즉 단기균형이 장기균형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지출의 승수는 1보다 크다[각주:3].) 구체적으로, 경제주체의 소비를 늘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실업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높여야 한다. 정부지출 또한 증가해야 한다.




여기에서 "성장이냐 분배냐" 라는 논의가 의미가 있을까? 실제 경제학계의 논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다. 바로 "공급중심 성장(Supply-Side Growth)이냐, 수요중심 성장(Demand-Side Growth)이냐"[각주:4] 이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의는 마치 성장과 분배는 별개라는 것처럼 여기게한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주장 속에는 "성장은 기업에 좋고, 분배는 근로자에게 좋다" 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과연 그런가? 수요중심 성장(Demand-Side Growth)의 방법(경제주체의 가처분소득 증가)에서 알 수 있듯이, 분배는 성장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의는 경제성장을 터부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부 진보진영에서 가지고 있는 이러한 목가적인 인식은 정치적으로도 불리하다. 먹고 살기 힘든 이때에 "돈은 중요한 게 아니다. 성장은 중요치 않다. 마음이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게 정치적으로 호소력 있는 행위일까? 


문재인 국회의원 또한 성장을 터부시하는 진보진영의 이러한 근본주의가 대선패배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왜 선거에서 지는 것일까요? 왜 국민들이 더 많이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요? (...) 저-문재인-는 제 자신도 포함해서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일종의 근본주의에서 해답을 찾고 싶습니다. (...)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던 민주화운동 시절 우리가 지켰던 원칙이나 순결주의 같은 것이 우리 내부에서 우리를 유연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


국민들에게 무엇보다 큰 관심사가 경제성장입니다. 분배도 복지도 일자리도 경제성장에서 비롯되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성장에 대한 담론도 부족했습니다. 경제성장 방안이나 국가경쟁력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성장은 보수 쪽의 영역이고,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분배와 복지라고 생각하는 듯한 경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포용적 성장, 창조적 성장, 생태적 성장, 협력적 성장이란 4대 성장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진보적 매체는 "또 성장 타령이냐?" 고 힐날하는 칼럼을 싣기도 했습니다. 성장을 바라보는 진보 진영의 근본주의 같은 것을 보여 주는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장과 안보에 관한 담론 부족은 확실히 우리의 큰 약점이었습니다. (...) 보수 진영의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 성장론을 따라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전략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우리의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확장을 가로막았던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더 유연한 진보, 더 유능한 진보,더 실력 있는 진보가 돼야 합니다. (...)


지속 가능하면서 더 정의롭고 더 따뜻한 성장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저는 지난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그 방안으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경제성장에 기여한 많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경제성장의 혜택을 일부가 독점하는 배제적 성장은 더 이상 성장을 지속시킬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체에 골고루 분배되고 경제성장에 기여한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혜택을 누리도록 하자는 성장 전략이 포용적 성장입니다. 그래야만 사회 전체의 소비능력이 늘고 내수가 진작돼,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가능해집니다. (...)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하는 '소득주도 성장(Wage-led growth)'이 대안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일자리를 확충하고 고용의 질을 개선해서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능력을 높이는 것을 주된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입니다. 


문재인. 2013. 『1219 끝이 시작이다』. 285-309 


누차 말하지만 "경제성장은 거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준다." 중요한 건 어떻게 성장 하느냐이다.


장기적인 경제성장 달성에 중점을 두고 공급측면을 강화할 것이냐 (기업의 자본투입 증가)

단기적인 경기변동 관리에 중점을 두고 수요측면을 강화할 것이냐 (경제주체의 구매력 증가)




  1. 2008 금융위기 이후, Fed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단순한 유동성 증가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 개발, 제3차 산업혁명, 정보기술의 발전 등을 통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내는 정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라는 주장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본문으로]
  2. 2008 금융위기 이후, Fed의 양적완화 정책은 유동성 증가를 통해 실질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소비를 늘리케 하려는 '총수요관리 정책' 이다. [본문으로]
  3. '정부지출, 재정적자와 관련하여 고려해야할 요인들'. 2014.01.01 http://joohyeon.com/183 [본문으로]
  4. 여기에는 경제가 빠른 시간 내에 자동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느냐가 주요 논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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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를 둘러싼 논점들법인세를 둘러싼 논점들

Posted at 2014. 1. 15. 13:22 | Posted in 경제학/일반


법인세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글 2편 소개. 경제학자들이 법인세를 문제로 지적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


1. (법인세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실제적 부담자가 누군지 모호하다.


2. 법인세는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자본스톡을 감소시킨다. 이는 노동생산성을 감소시키고, 실질임금을 저하시킨다.

(경제의 '장기총생산량'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요소의 '투입'과 '생산성'인 만큼, '투입'과 '생산성'이 줄어든다면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Laurence J. Kotlikoff. 'It’s time to eliminate the US corporate income tax'. 2014.01.14


① 많은 사람들은 '재산세'를 누진적인(progressive) 세금으로, '부가가치세(일반소비세)'를 역진적인(regressive) 세금으로 인식한다.


②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부가가치세'는 누진적인 세금이다. 부가가치세의 세율을 높이는 것은 재산세의 세율을 높이는 것과 같다.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구매력을 하락' 시키기 때문이다.


③ 부가가치세는 재산에 대해 한번 과세하는 것과 소득에 대해 평생 과세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이다. 

(It’s easy to show mathematically that consumption taxation is equivalent to taxing wealth on a one time basis, and wages on an ongoing basis. The only difference between the two is in the choice of words used to describe their equivalent effects.)


④ 법인세의 문제는 '누가' 세금을 부담하느냐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많은 진보성향 사람들은 법인세를 '부유한 주주들(rich corporate shareholders)'이 부담한다고 인식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⑤ 거기다가 법인세는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빌미를 초래한다.


⑥ 법인세를 폐지하고 부가가치세(일반소비세)의 부담을 높이는 것은 (기업투자 증가와 함께) 장기적인 후생증가에 기여한다.


⑦ 법인세를 폐지하면 약 23%~37% 가량의 자본스톡이 증가하고, 이는 노동생산성 증가에도 기여한다. 노동생산성 증가는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증가를 만들어낸다.




Richmond Fed. 'Taxing the Behemoths' . 2013


Richmond Fed 에서 작성한 이 보고서는 '법인세의 조세귀착 문제(Who Pays?)'와 '법인세가 초래하는 비용(At What Costs?)'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① 법인세가 부과되었을 때, 과연 누가 이것을 부담하느냐는 분명하지 않다.


② 기업의 주주들이 부담할 수도 있고, 낮아진 임금의 형태로 근로자가 부담할 수도 있다. 혹은 물건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이 부담할 수도 있다. 


③ 자본이동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에는, 법인세 부담은 대개 자본(capital, 생산수단을 의미)을 가진 사람들이 부담했다.


④ 그러나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진 현대에는 그렇지 않다. 


법인세 부담을 피해 자본이 해외로 이전한다면, (원래 자본이 있었던 국가의) 자본스톡이 감소하게되고 이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생산성 저하는 임금의 감소를 불러온다.


⑤ 물론, 이 또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다르긴하다.


⑥ 법인세를 누가 부담하느냐는 모호하긴 하지만, 법인세는 비효율성을 유발한다.


⑦ 기업들은 법인세 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주식시장을 통해 자본금을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차입을 통해 자본금을 확충한다.


⑧ 그 결과, 기업들은 차입경영을 선호하게 된다. (Debt financing ends up being much preferred.) 이것은 기업의 부채비율을 높이게 되고, 파산위험을 높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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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

Posted at 2014. 1. 9. 13:03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한국경제 성장과정에 대해 공부하면서 남는 궁극적인 의문은 "후발산업국가 중에 왜 유독 한국만이 독보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라틴아메리카나 대다수 후발산업국가의 경우, 특정 지배세력이 국가의 자원을 독점함으로써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게해서 '특정 지배세력의 자원 독점'을 막을 수 있었을까? 


경제학적 접근을 통해서는 경제성장 '방식'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왜 유독 한국만이" 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학, 정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여러 논문, 단행본 등을 읽으면서 주목하는 것은 "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 




※ 박정희정권의 역할


류상영은 '군사쿠데타라는 위로부터의 정치권력 변동'이 '국가재정으로 부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려는 수입대체 선호적인 자본가 및 지배연합'을 해체시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박정희정권의 '위로부터의 강한 정치권력과 리더십'이 '수입대체적 지배연합을 해체하고 새로운 발전지향적 지배연합을 탄생' 시킴으로써, 국가가 '국내 자본에 의해 포획당할 가능성'을 줄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입대체적 지배연합'이 무엇인지는 모호하지만,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지주계급 세력'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험에서 보여지듯이, 한국에서도 이승만정권 이래로 수입대체전략을 지속시킴으로써 국가재정으로 부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려는 수입대체 선호적인 자본가 및 지배연합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와는 달리 한국내 수입대체 선호의 분배형 지배연합이 군사쿠데타라는 위로부터의 정치권력 변동에 의해 확실히 단절되어 버림으로써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잃게 되었고, 정부의 재정적자를 담보로 한 이들의 지대추구활동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박정희정권의 제도형성이 갖는 중요한 정치경제적 의미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수입대체적 지배연합을 해체하고 새로운 발전지향적 지배연합을 탄생시키는 법적, 제도적, 물질적 기초를 구축하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박정희는 위로부터의 강한 정치권력과 리더십에 의해 이 과업을 단시일에 효과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나 이승만정권에서 처럼 정희정권의 정치권력이 국내 자본에 의해 포획당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류상영. 1996. 박정희정권의 산업화 전략선택과 국제정치경제적 맥락. 8




※ 토지개혁과 한국전쟁 - 지주계급의 몰락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전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토지개혁'과 '한국전쟁' 이다. 김일영은 "농지(토지)개혁과 한국전쟁이 한국 사회의 전통적 지배계급인 지주의 몰락을 가져왔다" 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발전국가의 등장요건의 일부, 특히 국가가 사회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초적 조건은 1950년대에 마련되었다. 농지개혁의 단행과 그에 뒤이어 벌어진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의 전통적 지배계급인 지주의 몰락을 가져왔다. 새로운 자본가 계급이 생겨났지만, 아직 그 규모가 작았고 자기재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했었다."


- 김일영. 1999. 1960년대 한국 발전국가의 형성과정 - 수출지향형 지배연합과 발전국가의 물적 기초의 형성을 중심으로. 3




토지개혁의 성공 → 국가의 자율성확보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토지개혁과 한국전쟁이 어떻게해서 지주계급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교 국제대학원 유종성 교수는 "토지개혁 성공으로 인해, 경제개발 초기에 지주계급에 의한 포획이나 Clientalism이 발생할 여지를 최소화시키고 국가 자율성(State Autonomy)이 발휘될 가능성을 열어줬다"  라고 말한다. 

첨부한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토지개혁(Land Reform)이 실패한다면, 기존 지배계급에 국가가 포획(State capture by the landed elite) 되어, 지배계급의 지대추구 행위를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경로를 밟게 된다. (필리핀의 경우) 그러나 토지개혁이 성공한다면, 국가는 기존 지배계급으로부터 자율성(State Autonomy)를 획득하게 된다. 이때, 자율성을 획득한 국가는 특정 지배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경제성장 달성 이후에는 한국의 경우처럼 '재벌중심(Chaebol-centered)' 경로를 밟음으로써 새로운 지배세력인 '재벌에 국가가 포획(Capture by chaebol)' 되는 경우,'중소기업 중심(Small and Medium Enterprises-Centered)'의 경로를 밟음으로써 국가가 계속해서 자율성을 유지하게 되는 경우로 나뉘게 된다.)



※ 
한국전쟁, 점령 → 피난 → 학살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기존 지배계급의 붕괴에 있어 '한국전쟁'의 역할을 강조한다. 박태균은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전쟁 뒤) 폐허 위에서 새로운 경제 체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전쟁 기간을 통해서 남북한에 지주계급이 사라졌다. 이미 남북한에서는 1946년과 1950년에 토지개혁과 농지개혁으로 지주의 토지를 빈농 및 소작인들에게 분배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그러나 개혁이 단시간에 이루어지기란 불가능했다. 특히 남한에서는 농지개혁이 유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땅값을 분할 상환하는 과정에서 지주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농지개혁법으로 농지소유의 상한을 설정하여 지주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였지만, 6장 2절에서 말했듯이 현물세와 지가 납부로 절량농가가 된 농민들은 싼값에 땅을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지주들은 한국전쟁 기간을 통해 몰락했다. 대부분의 지주들은 농지 몰수의 대가로 받은 지가증권의 가치가 하락해 재기하기 어려웠다. 인민재판에서 학살된 지주들도 적지 않았으며, 학살을 피하기 위해 피난을 떠나는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한반도에서 수백 년동안 지배신분으로서 특권을 누렸던 지주계급은 한국전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조건 위에서 남북한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한의 경우 미국간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자본주의적 질서를 만들기 위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북한에서는 노동력의 고갈로 자연스럽게 집단농장이 형성되었고, 이것은 사회주의 체제로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박태균. 2005. 『한국전쟁』. 359-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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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출, 재정적자와 관련하여 고려해야할 요인들정부지출, 재정적자와 관련하여 고려해야할 요인들

Posted at 2014. 1. 1. 12:40 | Posted in 경제학/일반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해야하는 일(?)은 비전공자들을 빡치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꿔가며, 이전에 말했던 것과 상반된 주장을 함으로써 비전공자들을 빡치게 하는 것. "그때는 이랬어야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해야해."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이렇게 해야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이렇게 해야해."


정부지출과 재정정책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하자면, 얼마전 나는 노인무임승차를 주제로 "노인들한테 요금을 받지 않는 편이 낫다" 라고 주장[각주:1]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공기업 부채가 문제이니 민영화도 생각해봐야 한다" 라고 주장[각주:2]한다.


뭐하자는걸까? 그리고 재작년에 나는 "미국, 유럽경제에는 지금시점에 긴축정책이 필요하지 않다.[각주:3] 우리나라 또한 균형재정에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각주:4]" 라고 주장했지만, 최근의 나는 "국가부채 문제를 신경써야한다." 라고 주장한다. 왜 말이 바뀌는걸까?




일단 정부의 재정적자와 과도한 국가부채가 문제인 이유를 살펴보자. 현대화폐는 fiat money 이기 때문에 생산력이 뒷받침되는 범위에서 국가가 돈을 찍어낼 수 있다. 정부가 재정적자와 부채 그 자체를 문제시할 이유는 없다.

(참고자료 : 균형재정에 대한 잘못된 강박관념


그런데 왜 재정적자와 과도한 국가부채가 문제일까?


경상수지 적자와 자본유입


정부지출 증가로 인한 총저축의 감소는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한다. 경상수지 적자는 자본유입을 불러오고, 자본이동의 급격한 변동 가능성은 경제내부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디레버리징 충격


과도한 국가부채를 축소하기 위하여 국가차원에서 디레버리징이 시작되면, 경제전체의 '총수요 축소'로 인하여 침체에 빠지게 된다. 이때, 디레버리징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경기변동의 진폭(경기침체의 크기)는 더욱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교과서에 나오는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교과서를 통해 경제학을 공부하면 '재정적자 → GDP 축소' 라는 경로를 알게된다. 그런데 실제로도 재정적자 혹은 과도한 국가부채가 경제침체를 가지고 오는 것일까?



1. GDP 대비 국가부채가 높아서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것일까?, 경제가 침체에 빠져서 GDP 대비 국가부채가 높은 것일까? 


- 현실에서 정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재정적자와 과도한 국가부채는 경제의 불안정성을 키우게 됨으로써 경제침체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경제침체로 인하여 (경기회복을 위한) 정부지출 증가가 발생하였을 수도 있고, GDP 상승률이 저하됨으로써 GDP 대비 국가부채가 증가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방향의 인과관계가 맞는지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어왔다.

(참고자료 :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2. 재정적자를 축소하면 경제가 되살아나나?


일단, 재정적자와 과도한 정부부채가 경제침체를 불러온다 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경제침체를 불러온 재정적자와 과도한 정부부채를 제거하면 경제가 되살아날까? 이러한 주장을 '확장적 긴축정책(Expansionary Austerity)' 라고 한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줄이는 '긴축정책'이 결국에는 '경제의 확장'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지출을 축소하는 긴축정책은 단기적으로 '총수요 감소'를 불러온다. 그렇게 된다면 GDP는 감소하고, 오히려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긴축정책'은 확장적이 아니라 '축소적'이라는 말이다. 

(참고자료 :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3. 정부지출을 축소하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줄어들까?


좋다. 재정적자와 과도한 부채를 축소하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어떻게 재정적자와 과도한 부채를 축소해야 할까? 정부지출을 줄이고 소비를 줄이는, 쉽게 말해 허리띠를 졸라매면 부채가 줄어들까? 최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그런 결과가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


재정적자가 줄어들려면 정부지출도 감소해야 할테지만 세입도 증가해야 한다. 세입증가를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또한, GDP 대비 부채비율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부채 그 자체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GDP를 성장시킴으로써 GDP 대비 부채비율을 축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증가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축소시킬때 필요한 방안일 수도 있다. IMF는 2012년에 발표한 <World Economic Outlook>을 통해, "재정건전화 달성을 위해서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 동반 되어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

(참고자료 :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4. 정부지출을 무조건 늘려야 하나?


"긴축정책이 아니라 확장정책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축소시키는 방법이다" 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정부지출을 무조건 늘려야할까? 그것도 아니다. 


거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듯이, 정부지출을 증가하면 이자율상승과 환율하락이 발생하고, 이는 투자와 순수출을 감소시킴으로써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발생한다. 쉽게 말해, 정부지출의 승수(multipliers)가 0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또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있다. 항상 정부지출의 승수가 0에 가까울까? 


경제가 침체에 빠져 금리를 인하하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썼다 라고 가정하자. 금리가 0%에 가까운 zero lower bound에 도달하면 중앙은행은 더 이상의 금리를 내릴 수 없다. 통화정책의 효과가 한계를 맞게 된 것이다. 금리가 zero lower bound에 근접하여 통화정책의 무력화되는 경우를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각주:5]' 이라고 하는데, 이때에는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확장적 재정정책의 승수가 매우 커져 1~1.5에 가까워진다. 


(참고자료 : <Measuring the Output Responses to Fisical Policy>(2010))



5. 경기역행적이냐, 경기순응적이냐


그러니까 정부지출을 증가시킬때 고려해야 하는 것은 경기변동(Business Cycle)의 상황이다. 현재 경제가 호황일때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경기순응적인 재정정책(Pro-Cyclical Fiscal Policy)'은 이자율과 환율에 미치는 구축효과로 인해 총수요 증가에 거의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때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경기역행적인 재정정책(Counter-Cyclical Fiscal Policy)'은 총수요 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구사하려고 할때에는 현재 경제가 어떤 상황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6. 일시적이냐, 항구적이냐


자, 이제 그렇다면 '경기순응적인 재정정책'과 '경기역행적인 재정정책'을 경기변동의 때에 맞게 구사하면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일까? 아니다.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 정부지출을 증가시켰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이때 증가한 정부지출이 '비가역적(Irreversible)' 이라면, 경제가 호황으로 돌아서더라도 증가된 정부지출을 줄일 수 없다. 경기변동에 상관없이 정부지출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지출을 증가시킬 때에는, 증가시킬 정부지출의 성격이 '일시적(temporary)'인지 '항구적(permanent)'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경제침체로 인해 실업자가 증가하여 정부가 임시 공공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일시적인 확장적 재정정책 이다.  그렇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현상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연령대 이상 모두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은 '항구적인 확장적 재정정책' 이다. '항구적인' 정부지출 증가는 재정수지와 국가부채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것이다.



7. 개별 정부지출의 편익/비용


그리고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이 '개별 정부지출의 편익과 비용' 이다. 토목사업-가령, 4대강-을 벌이는 형식으로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것과  경제활동참가를 촉진[각주:6]시키기 위해-가령 여성일자리 지원정책[각주:7]-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의 '편익/비용' 이 같을까?


'재정정책의 승수'를 따지는 것은 거시적인 분석이라고 한다면, 개별 정부지출의 '편익/비용'을 따지는 것은 미시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지출을 증가시킬 때에는 '경기변동 상황에 따른 승수' 뿐 아니라, 개별정책이 가져다주는 '편익/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인 무임승차제도의 편익/비용이 1을 넘는다고 본 것이고, 현재와 같은 공기업 지원의 편익/비용은 1을 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8. 정부정책에 따른 경제주체들의 유인왜곡 발생 가능성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정부정책에 따른 경제주체들의 유인왜곡(Incentive Distortion) 발생 가능성' 이다. 가령, 정부가 실업자에게 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실업지원금 수령의 조건으로  '실업자 본인이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지원금을 받게될) 실업자가 앞으로 구직활동을 열심히 할 것을 증명해야 한다' 라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미묘한 차이 같지만, 이러한 차이가 '경제주체들의 유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이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첫번째 방식은 실업자 본인이 계속해서 '일을 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재참가에 대한 유인을 떨어뜨린다. 두번째 방식은 앞으로 실업지원금을 수령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동시장 재참가의 의욕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실업에서 탈출할 유인을 증가시킨다. 

(참고자료 : 복지제도와 유인왜곡 - "어떻게" 복지제도를 설계할 것이냐의 문제)





그러니까 단순히 '정부지출을 증가' 시키는 결정을 할때에도, 앞서 제시된 8가지 상황을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8가지 상황은 아주아주 기초적인 조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이 조금만 변하더라도'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은 변화된 상황에 맞춰 이전과는 다른 주장을 해야하는 것이다.



  1. '65세 이상 어르신 무임승차제도 논란에 관하여'. 2013.12.02 http://joohyeon.com/180 [본문으로]
  2.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 논란 - 세금들 많이 내십니까?'. 2013.12.31. http://joohyeon.com/182 [본문으로]
  3.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2012.10.21 http://joohyeon.com/115 [본문으로]
  4. '균형재정에 대한 잘못된 강박관념'. http://joohyeon.com/131 2013.01.05 [본문으로]
  5. '美 FRB의 QE3 - 유동성함정 & 하이퍼인플레이션'. 2012.09.14 http://joohyeon.com/101 [본문으로]
  6. '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 2013.06.07 http://joohyeon.com/151 [본문으로]
  7. '고용률 70% 로드맵'. 2013.06.06 http://joohyeon.com/1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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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 논란 - 세금들 많이 내십니까?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 논란 - 세금들 많이 내십니까?

Posted at 2013. 12. 31. 12:08 | Posted in 경제학/일반


※ 민영화의 목적 - 정부의 재정건전성 확보


민영화로 인해 정부가 얻을 수 있는 이점 중 하나는 바로 정부의 재정건전성 확보국영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면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첨부한 그래프는 1988년-1999년 사이 국영기업 매각으로 여러나라 정부가 얻은 수입총액을 나타낸다. 



William Megginson과 Jeffry Netter가 쓴 <From State to Market: A Survey of Empirical Studies on Privatization>(2000)에 따르면, "민영화는 정부 재정상태의 개선을 통해 (시장) 효율성을 달성하게 해준다(Privatization can impact efficiency through its effect on government fiscal conditions.)(11) 정부는 국영기업(SOEs, State-Owned Enterprises)을 민간에 매각함으로써 수입을 얻을 수 있는데, 이러한 매각은 재정적자를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 문제는 결국 '재정'과 '세금'의 문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12월 11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 부채비율을 2017년까지 200%로 줄이겠다"[각주:1]고 했다. 그리고 12월 24일 "민간기업은 위기가 닥치면 값을 따지지 않고 알짜 자산부터 팔아치운다고 한다. 지금은 핵심우량자산부터 팔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각주:2] 라고 발언하면서, 공공기관 개혁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왜 갑자기 공공기관 부채 이야기가 나올까? 그 배경을 살펴보면, 2012년 4월 신용평가회사들이 '국가와 공기업의 신용을 분리평가' 하겠다고 나선[각주:3]데에 있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국가와 공기업의 신용을 분리 평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국가 신용 등급과 개별 기업의 등급이 과거에는 연동됐지만 이제 자동 연동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개별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도 이같은 맥락, 즉 '재정'과 '세금'에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2012년 4월 이전부터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 계획이 추진되긴 하였지만, 큰 맥락은 결국 '재정'과 '세금'의 문제이다.




※ 철도산업의 사회적 한계편익 감소


경제개발 단계에서 철도의 건설과 확장은 사회적 한계편익이 매우 크다. 문제는 경제가 성숙해져 갈수록, 철도건설과 운영에 따른 사회적 한계편익이 체감한다는 데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철도는 ‘70년대까지 국가 중추교통수단으로 핵심역할 수행.
경부고속도로 개통(’70) 등 자동차 시대로 재편되면서 교통시장내에서 분담율이 감소하고, ‘76년 이후 적자경영 고착화"


국토교통부 <철도산업 발전방안>. 2013.06.26


라고 나오는데, 철도의 여객분담률은 1961년 51% 수준에서 2010년 8.2%로 감소하였다. 게다가 철도건설에 대한 투자는 지속되는 가운데, 한계편익이 감소함에 따라 비효율이 유발됐다. "(철도건설) 운영부실로 투자확대가 부채누적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다.


<조선일보> 송희영 논설주간 또한 경제성숙에 따른 철도산업의 사회적 한계편익 감소 문제를 이야기한다. 


"국산 열차가 달리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KTX 승객도 늘고 있다. 시멘트 같은 상품의 물류 라인도 철도망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50년, 100년 단위로 보면 철도가 국가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하는 전성기는 끝났다." (...)


"진짜 피해자는 코레일이 넘어지지 않도록 세금을 보태주면서도 제시간에 기차를 타지 못하는 국민이다. 납세자들이 앞으로 50년, 100년 철도 적자를 메워줘야 할 팔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과연 언제까지 꼬박꼬박 세금을 내줄지 알 수 없다."


송희영. '철도 파업의 진짜 피해자는 누구인가'. <조선일보>. 2013.12.28




※ 민영화, 그 자체가 문제일까?


민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진보진영은 항상 영국철도 · 볼리비아 물산업을 민영화가 가져다준 폐해의 사례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Megginson, Nash, Netter, Poulsen의 논문 <The Choice of Private versus Public Capital Markets : Evidence from Privatizations>(2004)에 따르면, 1977년-2000년 사이 전세계적으로 2,457건의 민영화가 이루어졌다. (37쪽)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동유럽 등을 중심으로 민영화가 이루어진 케이스도 많긴 하지만, 서유럽에서도 많은 수의 민영화가 발생했다. 그런데 민영화 반대론자들이 들먹이는 케이스는 매번 영국철도, 볼리비아 물 뿐이다. 민영화 그 자체가 문제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거기다가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민영화 발생을 막을 수 있을까? 경제성장은 정체되고 증세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렇다면 우리는 논점을 바꿔야한다. "민영화는 나쁘다" 라는 것을 절대명제로 삼는다면 논의가 불가능하다. 왜 민영화가 발생할까? 왜 공기업 구조조정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누차 반복하지만, 결국은 '재정과 세금' 문제이다.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건을 '민영화'로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결국 요금인상은 발생할 것이다. 요금인상은 민영화 때문이 아니라, '재정과 세금'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의 핵심 중 하나는 '공기업 부채비율(부채/자본) 200% 이내 유지' 이다. 공기업은 국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서비스요금을 받는데다가 부채에 대응되는 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기업의 부채관리 방법은 사기업과 유사하다.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에서 제시된 '부채비율(부채/자본) 200%'는 외환위기 이후 사기업에 부과된 부채규모의 threshold.


공기업의 부채는 본래 국가부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①에서 언급했듯이 부채에 대응되는 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야하는 순간이 오지 않는 이상, 공기업의 부채는 국가가 부담을 지는 것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미확정' 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30%대. 다른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0%에 근접해 있음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국가부채 관리는 양호하다. 그런데 왜 공기업 부채를 관리하려고 하는 것일까? 국가부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데다가, 현재 한국의 국가부채는 양호한 수준인데?


일단 경제가 예전처럼 성장하지 않는다거기다가 빠른 속도로 고령화 현상이 진행됨에 따라 '사회보장성 지출'의 필요성은 증가한다. 쉽게 말하면 향후 세입은 계속 줄어들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지출의 필요성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수지가 악화될 것이다.


게다가 고령화 현상이 지속된다면 국민연금 등의 '사회보장성 기금'이 현재처럼 흑자를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국가가 부담해야할 '미확정채무'가 '확정채무'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상승할 것이다. (경제성장 둔화로 인해 GDP 증가가 제한될 경우에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상승한다)


보통 경기침체에 빠졌을 때 증가된 정부지출(경기역행적인 정부지출)의 승수는 1~1.5 사이이고, 경기호황 시기 발생하는 정부지출(경기순응적인 정부지출)의 승수는 이자율과 환율에 미치는 구축효과로 인해서 0에 가깝다.[각주:4]


그런데 고령화 현상에 따른 정부지출 증가는 일종의 '비가역적irreversible' 지출이다. 경기변동에 따라 정부가 쉽게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지출이 아니다. 거기다가 고령화 현상에 따른 정부지출이 총생산량에 미치는 승수는 얼마나 될까? 1보다 작을 가능성이 크다재정수지도 악화되고,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상승할텐데, 정부지출은 비가역적 인데다가 승수는 0에 가깝다.


게다가 공기업의 부채비율(부채/자본)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야 할 경우, 공기업의 부채는 일종의 '우발채무'가 현실화 됨으로서 국가부채 통계에 잡히게 된다


또한, 현재 코레일 등 공기업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한계편익'이 얼마나 될까? 얼마전 언급했듯이, 철도의 여객분담률은 1961년 51% 수준에서 2010년 8.2%로 감소했다. 경제가 성숙해져감에 따라, 철도건설 투자와 운영이 가져다주는 한계편익이 감소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막연한 '공공성'을 이유로 정부지출을 늘릴 수 있을까?


결국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와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던져야 하는 물음은 "안녕들 하십니까?"가 아니라 "세금들 많이 내십니까?" 이다.


  1. '현오석 "공공기관, 심각한 상태인데도 저항만 한다"(종합)'. 연합뉴스. 2013.12.11 [본문으로]
  2. "공공기관 핵심우량자산부터 팔아야". 연합인포맥스. 2013.12.24 [본문으로]
  3. "무디스, 국가-공기업 신용등급 분리 평가". 뉴시스. 2012.04.30 [본문으로]
  4. Alan Auerbach, Yuriy Gorodnichenko. 2010.. 'Measuring the Output Responses to Fiscal Policy'. http://emlab.berkeley.edu/~ygorodni/AG_fiscal_multiplier.pdf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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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어르신 무임승차제도 논란에 관하여65세 이상 어르신 무임승차제도 논란에 관하여

Posted at 2013. 12. 2. 15:41 | Posted in 경제학/일반


65세 이상 어르신 지하철 무임승차 관련하여 의문점. 


1. 지하철 운행비용은 "고정비용". 사람이 타든 안타든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다. 

2. 노인들의 무임승차는 "가변비용". 그러나 "가변비용"의 크기가 "고정비용"에 비해 얼마나 될까? 상당히 작을것이다. 


사람이 한명 더 탄다고해서, 지하철운행에 필요한 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건 아니다물론, 무게증가로 인한 전기비용 지출이 추가될수 있겠지만, 그 크기가 얼마나 될까?


3. 노인들의 무임승차를 일종의 "기회비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그 노인들이 돈을 지불하고 탔더라면 발생할 수 있는 코레일/서울도시철도공사의 수익. 


그러나 여기서 2가지 문제가 생긴다. 

- 기회비용은 회계상 기록되지 않는다

- 만약 무임승차가 없었더라면, 그 노인들은 아예 지하철을 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기회비용이 과대평가" 됐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65세 이상 어르신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와 관련하여 구분해야 하는 것은 "회계적비용(명시적비용)과 경제적비용(명시적, 암묵적비용)" 이다. 명시적비용은 말그대로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비용", 암묵적비용은 "기회비용"과 "부정적 외부효과"가 초래하는 비용.


우선, 무임승차제도가 초래하는 명시적비용.

- 어르신들이 주로 이용하는 평일 점심시간 배차간격 단축 → 지하철 운행비용 증가


무임승차제도가 초래하는 암묵적비용.

- 무임승차제도로 인한 어르신들의 유인왜곡 → 지하철 이용 증가 → 객내 혼잡도 증가 (부정적 외부효과로 인한 비용발생)

- 지하철 운영주체의 기대수입감소 (기회비용 발생)


"경제적비용"은 명시적비용 뿐 아니라 '암묵적비용'도 포함하는데, 어떠한 정책의 '편익/비용' 을 계산할 때 사용된다. 중요한 사실은 "회계적비용"을 따질때는 '명시적비용' 만을 고려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의구심을 품는건 "지하철공사 적자발생의 주범이 무임승차제도" 라는 주장이다. 무임승차제도가 지하철공사의 적자재정을 초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르신들이 돈을 내고 타면 적자폭이 메꾸어 질 수 있는 것일까? 


무임승차제도가 지하철공사의 적자재정에 기여(?)하는 것은 '평일 점심시간 배차간격 단축으로 인한 운행비용 증가' 이다. 혼잡도 증가(부정적 외부효과)나 기대수입감소(기회비용)은 지하철공사의 재무제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것은 '무임승차제도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큰 차이를 낳는다.


▶ 어르신들 때문에 지하철공사가 적자다 

◀ 지하철공사가 적자인데, 어르신들이 돈을 내고 타면 적자를 메꿀 수 있다


전자의 주장은 어르신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감정적인 논의로, 후자의 주장은 '세수부족 시대에 고통분담'을 강조하는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무임승차제도를 유지하면서 '지하철공사의 적자폭을 유지'하는 방안을 선택한다면 하나의 "복지정책"으로 볼 수 있다. 지하철공사의 적자폭 유지가 일종의 "정부지출 증가를 통한 복지서비스 제공"이 되는 것이다. 65세 이상 어르신 지하철 무임승차제도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보다 "회계적" 비용이 작다면, 이보다 재정부담이 적으면서 최대의 효용을 낳는 복지정책도 없다.


경제적비용을 고려해 편익/비용을 계산해도 마찬가지. 어르신들이 혼잡도를 증가시키는 시간대는 주로 "평일점심시간대"와 "주말시간대의 경춘선". 젊은 사람들이 혼잡도를 느끼는 "출퇴근시간대"와 무임승차제도가 큰 관련이 있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교통이용 등 요금제도 연구>(2005) 를 보면 재밌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5대 대도시의 6개 지하철공사의 재정상태는 모두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음. 이는 초기 건설비용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경상운영비도 적자를 보이고 있다는 점임. 따라서 지하철공사들은 운영비의 적자요인으로 노인의 무임승차를 문제점으로 들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음.


그러나 아래의 공사별 재정상태에서 알 수 있듯이 지하철 공사는 단순히 무임승차에 의하여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초기시설투자비에 대한 원리금 상환, 운영수지상의 만성적인 적자구조에 의하여 재정적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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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통화정책은 이전과는 다를것이다앞으로의 통화정책은 이전과는 다를것이다

Posted at 2013. 12. 1. 15:23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Olivier Blanchard의 글,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이전과는 다를것이다 Monetary Policy Will Never Be the Same>. 


현재 미국경제의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과 장기불황Secular Stagnation에 관해 논한 부문도 좋지만, 일단 나는 "신흥국의 자본이동관리 the management of capital flows"에 주목한다. 


신흥국에 급격한 자본변동volatile capital flows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환율변동"이 자본이동의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다. (letting the exchange rate absorb most—but not necessarily all—of the adjustment.)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하면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는데, 하락하는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하면 투기적공격Speculative Attack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결국에는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는 외환위기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신흥국의 통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문제를 초래한다. 무엇일까? 신흥국은 특성상 "외화로 표기된 부채 debt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외화로 표기된 부채"의 가치가 상승함으로써 부채부담이 증가한다. 신흥국의 대차대조표가 손상 deterioration of balance sheet 되는 것이다. 증가한 부채부담은 소비/투자의 감소로 이어지고 경제불황에 빠지게 된다. (the depreciation has adverse effects on balance sheets)


1997년 동아시아 국가들이 겪었던 외환위기[각주:1]가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다. 

급격한 자본유출 → 고정환율제 붕괴위험 → 통화가치 급격한 하락 → 신흥국 대차대조표 손상, 외환보유고 고갈 → 외환위기.




그러나 Olivier Blanchard는 "2013년은 1997년과는 다르다" 라고 말한다. 바로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발전[각주:2] 덕분 Thanks to macroprudential measures".


자본유출로 발생하는 충격을 환율변동이 흡수하더라도, 거시건전성 감독정책 덕분에 "급격한 통화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충격"은 1997년과 달리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foreign exchange exposure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is much more limited than it was in previous crises.)


그리고 급격한 자본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금리정책 + 외환시장개입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 + 자본통제"가 함께 사용되면 '급격한 환율변동을 제한' 할 수 있다.  (the joint use of the policy rate, foreign exchange intervention, macroprudential measures, and capital controls. (...) Foreign exchange intervention, capital controls, and macro prudential tools can, at least in principle, limit movements in exchange rates)


1997년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리정책 the policy rate"으로만 "급격한 자본이동"을 제어하려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자본이동으로 경기가 과열되자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리인상으로 대응했다. 그런데 금리인상 이후, 높아진 금리를 노리고 더욱 더 많은 자본유입이 발생한 것이다. 금리정책의 한계이다. 그러나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외환시장개입+자본통제가 함께 사용된다면, 금리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2013년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리정책과 함께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외환시장개입+자본통제'를 공동으로 펼치면서 급격한 자본이동에 대한 대응이 되어있다. Olivier Blanchard는 "이러한 정책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가 앞으로 다가올(그리고 두려운) 과제" 라고 말한다. (Looking forward, the clear (and quite formidable) challenge is to understand how best to combine them.)


1997년 이후 경제학계는 급격한 자본이동이 초래하는 문제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이전과는 다를것이다 " 라고 Olivier Blanchard가 확신하는 이유이다. (Monetary Policy Will Never Be the Same)



  1.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본문으로]
  2.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http://joohyeon.com/16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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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

Posted at 2013. 11. 30. 21:27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를 통해 제3세대 금융위기 모델을 다루었다. 제3세대 금융위기 모델은 자본유입의 갑작스런 중단(Sudden Stops)에 이은 급격한 자본유출(Disruptive Capital Outflows)이 금융위기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한다. 


이때, 고정환율제도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는 금융위기를 심화시킨다. 고정환율제도는 통화가치 하락을 노리는 투기적공격을 초래하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는 중앙은행이 자본유출에 대해 금리정책으로 대응할 수 없게 만들 뿐더러 최종대부자(a lender of last resort) 역할 수행을 제한시킨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제3세대 금융위기 모델. 그런데 제3세대 금융위기 모델이 현재의 유럽경제위기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2013년 11월 7일에 개최된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발표했다. Paul Krugman은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라는 제목의 발표자료에서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와 자유변동환율제를 택한 국가에서 그리스 경제위기 같은 정부의 지급불능이 발생할 수 있을까?"


"Are Greek-type crises likely or even possible for countries that, unlike Greece and other European debtors, retain their own currencies, borrow in those currencies, and let their exchange rates float?"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4 (pdf 파일 기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게 무슨 말일까? 




※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 


몇몇 경제학자들은 현재 유럽경제위기를 '재정위기'로 부르고 있다. 유로존 내 몇몇 국가들, 특히나 그리스의 과도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로 인해 유럽경제가 침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부채지급능력 신뢰부족에 대한 공포'(fear of triggering a Greek-style crisis of confidence in government solvency)를 없애기 위해서 국가부채를 축소하는 긴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 단기간의 긴축정책이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확장을 불러온다는 'Expansionary Austerity'의 논리이다[각주:1].     


그러나 Paul Krugman은 "현재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이고, 위기타개를 위해서는 긴축정책이 필요하다" 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각주:2]. Paul Krugman은 "현재 유럽경제위기는 국가부채위기(a sovereign debt crisis)가 아니라 (국제수지표상 자본계정의 갑작스런 증감이 초래하는) 국제수지위기(a balance of payments crisis) 이고,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갑작스런 신뢰상실(sudden loss of confidence)로 인해 발생했다. 이러한 신뢰의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겪었던 급작스런 자본유입의 중단(sudden stop)과 유사[각주:3]하다." 라고 말한다.


First, the crisis in the European periphery – which remains the sole locus of current debt crises – is arguably best viewed largely as a balance of payments crisis rather than a sovereign debt crisis. (...)


Second, whatever the source of sudden loss of confidence in the European periphery, this speculative

attack drove up private as well as public borrowing costs. (...)


These two observations, taken together, suggest that we can, albeit with some caution, apply the insights from the currency crisis literature to recent crises in Europe and the potential for similar crises elsewhere, by at least provisionally thinking of the confidence problem as involving the risk of an Asian-style sudden stop. (...) the mother of all sudden stops.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11-12 (pdf 파일 기준)


Paul Krugman의 주장처럼 현재 유럽은 1997년 동아시아[각주:4]와 상황이 유사하다. 1997년 당시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었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과다하게 지고 있었다. 2013년 유럽 또한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로 인해 고정환율제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유로존의 특성상, 유럽 개별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에 맞게 화폐를 발권할 수 없다.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이 가진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는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나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유로존에 속한 국가, 특히나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을 향한 자본유입이 갑작스레 중단된다면 자산가격 하락으로 인해 금융시스템 내 불안정성이 커지게된다. 거기다가 채권금리를 치솟고 부채상환에 대한 요구는 커지게 되는데,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진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지급불능의 상태에 빠지고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로 인해서 채권자들이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지급능력에 대해 신뢰를 거두었다(a loss of confidence)는 점이다.  




※ 통화체제(Currency Regimes)에 따른, 부채와 채권금리의 상관관계


Paul Krugman은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통계 1 :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관계. X축은 GDP 대비 부채비율, Y축은 10년 만기 채권금리>[각주:5]


<통계1>을 살펴보면 대개 GDP 대비 부채비율이 높을수록 채권금리도 높은 상관관계를 보임을 알 수 있다[각주:6]. 만약 이게 옳다면, "과도한 재정적자와 부채로 인해 유럽경제위기가 발생했다" 라는 주장이 옳은 것 아닐까? 그런데 밑에 있는 <통계2>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통계 2 : 통화체제에 따른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관계. X축은 GDP 대비 부채비율, Y축은 10년 만기 채권금리. (●, Noneuro)는 독립된 통화체제를 가진 국가, (◇, Euro)는 통화체제의 독립성을 상실한 유로존 소속 국가>[각주:7]


<통계2>는 유로존 소속 국가냐 아니냐, 즉 독립된 통화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를 분류했다. 그러자 어떤 통화체제(Currency Regimes)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상관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독립된 통화체제(●, Noneuro)를 가진 국가들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하더라도 채권금리가 상승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화체제의 독립성을 상실한 유로존 국가(◇, Euro)들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할수록 채권금리도 같이 상승한다. 통화체제(Currency Regime)가 큰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Suddenly the picture looks quite different. There is indeed a strong relationship between debt and borrowing costs – but only for countries on the euro, with little sign of any such relationship for advanced nations that have retained their own currencies.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6 (pdf 파일 기준)




※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느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통화체제가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a lender of last resort)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느냐 이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에서도 살펴봤듯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니고 있다면 자본유출에 대해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으로 대응할 수 없다. 자본유출을 막기위해 금리를 상승시키면 경제활동에 타격을 주고 이는 경제의 기초여건(Fundamental)에 대한 신뢰상실(a loss of confidence)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자본유출을 방치하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의 가치가 커져서 은행과 기업의 대차대조표를 손상시키고 이 또한 신뢰상실(a loss of confidence)로 이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나라의 중앙은행은 다른나라의 화폐를 찍어낼 수 없다. 금융시스템 마비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a lender of last resort) 임무수행 그 자체가 원천봉쇄된 것이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지급보증을 설 수 없다 라는 사실은 유동성위기 발생시 신뢰상실(a loss of confidence)을 채권자들 사이에서 불러오고 만다. 


이러한 최종대부자 역할의 중요성은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Mario Draghi의 2012년 선언[각주:8]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7월 26일, Mario Draghi 총재는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Within our mandate, the ECB is ready to do whatever it takes to preserve the euro. And believe me, it will be enough.)" 라고 선언하였다. 



<통계 3 : 스페인 · 이탈리아 채권의 독일채권 대비 금리격차(Spreads)>


Mario Draghi 총재의 "do whatever it takes" 발언이 있은 직후, 스페인 · 이탈리아의 채권금리는 <통계3>에서 보듯이 가파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Mario Draghi 총재의 발언에는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 라는 의미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First, evidence of the importance of the lender of last resort issue comes from the dramatic effect on spreads every time the ECB has signaled increased willingness to take on at least some of that role.


Figure 3 shows Italian and Spanish spreads against German 10-year bonds – useful indicators of the overall state of the euro crisis – since 2010. You can clearly see the two episodes of widespread speculation against peripheral nations, indeed near panic, in late 2011 and again in the summer of 2012. You can also see the dramatic reduction in spreads following ECB action. (...)


The second near-meltdown was contained when Mario Draghi declared that the ECB was willing to do “whatever it takes” to save the eurofollowed by an official declaration that the central bank would be willing, if necessary, to engage in Outright Monetary Transactions, i.e., direct purchases of sovereign debt.


The point here is that neither of these ECB interventions should have had a large impact if the

problem of peripheral European debtors was one of solvency pure and simple. The fact that they did

have so much impact is prima facie evidence that a substantial part of the interest premium in debtor

nations reflected fear of self-fulfilling liquidity crises.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8 (pdf 파일 기준)


<통계 4 : 덴마크 · 핀란드 채권의 독일채권 대비 금리격차>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 나설 수 있느냐의 중요성은 덴마크와 핀란드 사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덴마크는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아 독립적인 통화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핀란드는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경제규모가 작은 덴마크의 경우, 환율리스크를 반영하여 약간은 높은 채권금리를 유지(a small premium reflecting residual currency risk)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럽경제위기가 특히나 극심했던 2011년 말, 핀란드 채권금리는 상승하는 와중에 덴마크 채권금리는 하락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더군다나 덴마크 채권금리는 때때로 독일보다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유로존에 가입한 유럽국가들과 달리, 덴마크는 필요한 경우 독자적으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사실을 통해 "최종대부자의 부재는 채권자들 사이에서 유동성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확산" 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aul Krugman은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여 "국가들이 부채로 인한 신뢰의 위기(crises of confidence)에 직면할 가능성을 결정할 때, 통화체제(the currency regime)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고 주장한다.  


What might cause this divergence? A natural answer, again, is to suggest that times of stress were times when investors feared liquidity crises due to the absence of euro lenders of last resort, and that Denmark benefited even though it was pegged to the euro because, unlike euro nations, it retained a central bank able to print money if necessary.


To sum up, then, evidence on interest rates – both from cross-section comparisons and from behavior over time – strongly suggests that the currency regime matters a great deal in determining the likelihood that nations will face crises of confidence over their debt.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8-9 (pdf 파일 기준)




※ 유럽경제위기는 국제수지위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와 자유변동환율제를 택한 국가에서 그리스 경제위기 같은 정부의 지급불능이 발생할 수 있을까?"


"Are Greek-type crises likely or even possible for countries that, unlike Greece and other European debtors, retain their own currencies, borrow in those currencies, and let their exchange rates float?"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4 (pdf 파일 기준)


Paul Krugman은 "아니다" 라고 말한다. 발표자료의 제목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처럼 어떠한 통화체제(Currency Regimes)를 가지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Paul Krugman은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빌린(borrows in its own currency) 국가의 경우, 자본유입이 급작스레 중단되더라도 정부의 지급불능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 라고 재차 강조한다.  


The question we need to ask here is why, exactly, we should believe that a sudden stop leads to a banking crisis.


The argument seems to be that banks would take large losses on their holdings of government bonds. But why, exactly? A country that borrows in its own currency can’t be forced into default, and we’ve just seen that it can’t even be forced to raise interest rates. So there is no reason the domestic-currency value of the country’s bonds should plunge.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25 (pdf 파일 기준)

     

현재의 유럽경제위기가 '재정위기'가 아니라 '국제수지위기'(a balance of payment crisis) 라면 정책의 대응방향은 달라진다. 과도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축소하는 긴축정책이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이 최종대부자(a 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수행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즉, 유럽중앙은행(ECB)가 유로존 내에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채권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Paul Krugman이 누차 주장[각주:9]해왔던 '확장적 재정 · 통화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1. 유럽에서 시행된 긴축정책을 뒷받침한 대표적인 논문이 바로 Kenneth Rogoff, Carmen Reinhart의 'Growth In a Time of Debt' 이다. 그런데 2013년 4월 15일, 유럽긴축정책의 논거를 제공한 이 논문이 오류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계 경제학계가 술렁거렸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http://joohyeon.com/145 참고 [본문으로]
  2. 그동안 Paul Krugman은 "현재 유럽경제위기 타개를 위해서는 확장정책이 필요하다" 라고 누차 주장해왔다. 이에대해서는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http://joohyeon.com/115 참고 [본문으로]
  3. '유사하다' 라는 번역은 의역이다;; 실제 원문을 보시면 의미파악을 더 자세히 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이에 대해서는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http://joohyeon.com/170 ②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http://joohyeon.com/172 ③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http://joohyeon.com/173 ④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http://joohyeon.com/174 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5.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5-6 (pdf 파일 기준) [본문으로]
  6. <통계1>을 살펴보면, GDP 대비 부채비율이 200%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채권금리가 낮은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일본이다. Paul Krugman은 일본을 일종의 아웃라이어(an outlier)로 본다. [본문으로]
  7.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6-7 (pdf 파일 기준) [본문으로]
  8. Mario Draghi - "More Europe". http://joohyeon.com/85 2012.07.31. [본문으로]
  9.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http://joohyeon.com/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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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외환위기 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Posted at 2013. 11. 26. 15:35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1편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2편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2013.10.27

3편 -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2013.11.09

4편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2013.11.11


1997 외환위기에 대해 쓴 4편의 글을 통해, 당시 외환위기의 원인 · 발생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4편의 글은 주로 한국의 위기에 초점을 맞췄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뿐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등-이 외환위기를 겪게된 원인에 대해서 다룬다. 또한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이 경제학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 1997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자본계정의 위기' - 제3세대 모델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김대중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이규성의 주장이다. 이규성은 당시 아시아의 위기를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 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위기 당사국들은 자본자유화 확대 → 대규모 자본수지 흑자 → 환율의 고평가 속에 고성장 추구 →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과정을 거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과거 많은 나라들이 재정적자 확대 → 경상수지 적자 확대 → 자본수지 흑자 확대라는 경로를 걷다가 외환위기에 직면한 양상과는 현저히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시아의 위기는 경상수지의 중요성이 도외시된 채 진행된 자본자유화 과정에서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86-89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 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1997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위기 발생의 이론적모델[각주:1]은 두 가지였다. 바로,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문제가 있어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1세대 모델[각주:2]과 경제의 기초여건에 상관없이 경제주체들 사이의 자기실현적예언 Self-Fulfilling Effect 로 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2세대 모델[각주:3]이었다. 


1세대 모델은 1970-80년대 중남미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과도한 재정적자에 이은 높은 인플레이션율로 인해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이 손상된 상태였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를 부추겼다. 해당국가들 경제의 기초여건을 의심한 경제주체들은 통화가치 하락을 우려하여 자본을 급격히 회수하면서, 중남미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더더욱 하락했고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만다. 


2세대 모델은 1990년대 초반에 발생한 유럽 외환위기(EMS Crisis)를 설명하는 모델이다. 당시 유럽 몇몇 국가들은 유럽통화시스템(EMS, European Monetary System)[각주:4]을 만들어 유럽공동체 통화의 안정을 추구했다. 이런 와중에, 경제력이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통화가치 고평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경제사정 악화로 인해 기준금리를 내리는 확장적 통화정책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확장적 통화정책 시행가능성은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기대심리를 부추겼고, 투기세력들은 고평가된 유럽 각 통화들의 평가절하를 예상하고 투기적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에 상관없이, 통화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Effect 이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것이다.


그런데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1세대 · 2세대 모델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높았고 인플레이션 또한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한국 또한 199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8.8% · 8.9% · 7.2% 등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재정적자 또한 문제될 여지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고정환율제도 · 만기불일치 · 통화불일치'의 문제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발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자유화 Financial Liberalization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 1990년대 들어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자본유입이 급격히 증가 Surges of Capital Inflows 했다.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에서 살펴봤듯이, 한국 또한 금융자유화 시행 이후 막대한 양의 자본유입이 발생하면서 원화가치가 고평가되고 은행과 기업의 해외차입이 증가했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자유화 시행 이후에도 상당수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미국 달러화에 연계된 peg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한국 또한 환율변동폭이 상하 2.25%로 제한된 시장평균환율제도 crawling peg 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융자유화 이후 발생한 자본유입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손쉽게 해외차입을 늘릴 수 있었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해외차입금이 단기일 뿐더러 외국통화로 표기되었다는 점이다. 단기로 조달해온 자금을 장기로 운용하는 만기 불일치 Maturity Mismatch 와 자국통화 부채가 아닌 통화 불일치 Currency Mismatch 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자본유입이 갑자기 멈추고 Sudden Stops 자본흐름의 반전 Reversals of Capital Inflows 가 발생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급격한 자본유출 Disruptive Capital Outflows 이 일어나면서 통화가치는 하락하고 Currency Collapse, 외환보유고는 고갈되고 Reserve Depletion,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면서 Systemic Financial Crisis, 실물경제의 생산능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Output Losses.              


그렇다면 1997년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왜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왜 단기차입금을 들여왔으며, 왜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질 수 밖에 없었을까? 또한 자본유출이 발생하였을 때 그것을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1997 외환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한계-고정환율제도의 문제점, 만기 불일치 · 통화불일치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 동아시아 국가들의 태생적 한계 - ① 고정환율제도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보았듯이, 한국은 요소투입의 증가 increases in inputs 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국가가 금융자원을 통제하여 control over finance 특정산업에 자원을 몰아줌으로써 생산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뒤늦게 경제성장에 착수한 개발도상국들 또한 정책금융을 policy loans 통한 투입의 증가, 다르게 말해 투자 investment 를 통해 생산능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통화가 과도히 공급되어 만성적인 고인플레이션 high and variable inflation 이 발생하고 만다. 개발도상국들로서는 경제개발 단계에서 인플레이션 관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달성 그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관리에도 소홀히 하게 된다. 더군다나 중앙은행 등 통화기관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능력조차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손쉬운 해결책은 바로 고정환율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고정환율제도는 3가지 경로를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 


첫째로는 일종의 규율효과 discipline argument 이다. 인플레이션이 낮은 국가의 통화에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를 연동peg 한다면, 정부의 재정적자 · 민간의 임금과 가격결정이 유발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할 수 있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한 상황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쓴다면, 인하된 금리가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초래하여 고정환율제도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고정환율제도는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쓰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고정환율제도가 일종의 지켜야 할 규약 commitment 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The second major rationale for fixed rates is a belief that pegging to a low-inflation currency will help to restrain domestic inflation pressures, whether these originate in excessive government budget deficits or in the wage- and price-setting decisions of the private sector. This "discipline" argument comes in many forms, but the basic idea is simple: an announced policy of pegging the exchange rate may serve as a commitment technology allowing the government to resist and even forestall subsequent temptations to follow excessively expansionary macroeconomic policies.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4        

 

둘째로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하락이다. 고정환율제도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원래 인플레이션율이 낮았던) 기준국가 anchor country 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개발도상국에 이전됨으로써, 개발도상국 또한 낮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유지할 수 있다.


셋째로는 기준국가와의 통화정책 연동이다. 고정환율제도가 신뢰성 있게 유지되려면 기준국가와 개발도상국의 금리가 동등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개발도상국이 금리를 낮추기 위해 통화량을 증가시킨다면 (낮아진 금리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외환보유고는 감소한다. 이러한 과정은 국내통화공급의 연속적인 축소를 초래[각주:5]하고 금리와 통화공급량은 정상수준으로 돌아온다[각주:6].        


Fixing the value of an emerging-market's currency to that of a sounder currency, which is exactly what an exchange-rate peg involves, provides a nominal anchor for the economy that has several important benefits. 


First, the nominal anchor of an exchange-rate peg fixes the inflation rate for internationally traded goods, and thus directly contributes to keeping inflation under control. 


Second, if the exchange-rate peg is credible, it anchors inflation expectations in the emerging-market country to the inflation rate in the anchor country to whose currency it is pegged. The lower inflation expectations that then result bring the emerging-market country's inflation rate in line with that of the low-inflation, anchor country relatively quickly.


Another way to think of how the nominal anchor of an exchange- rate peg works to lower inflation expectations and actual inflation is to recognize that if there are no restrictions on capital movements, then a serious commitment to an exchange-rate peg means that the emerging-market country has in effect adopted the monetary policy of the anchor country. 


As long as the commitment to the peg is credible, the interest rate in the emerging-market country will be equal to that in the anchor country. Expansion of the money supply to obtain lower interest rates in the emerging-market country relative to that of the low-inflation country will only result in a capital outflow and loss of international reserves that will cause a subsequent contraction in the money supply, leaving both the money supply and interest rates at their original levels


Thus, another way of seeing why the nominal anchor of an exchange-rate peg lowers inflation expectations and thus keeps inflation under control in an emerging-market country is that the exchange-rate peg helps the emerging-market country inherit the credibility of the low-inflation, anchor country's monetary policy.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4


거기에 더하여, 고정환율제도는 개발도상국에게 또 다른 이점을 가져다준다. 바로 환율변동의 불확실성 제거이다. 고정환율제도로 인해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됨으로써 자본유입을 이끌게되고, 이는 생산적인 투자로 이어져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Another potential advantage of an exchange-rate peg is that by providing a more stable value of the currency, it might lower risk for foreign investors and thus encourage capital inflows which could stimulate growth.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5


(...)


The unpredictable volatility of a floating exchange rate, both from a short-term perspective and a long-term one, can inflict damage. Although the associated costs have not been quantified rigorously, many economists believe that exchange-rate uncertainty reduces international trade, discourages investment, and compounds the problems people face in insuring their human capital in incomplete asset markets. Furthermore, workers and firms hurt by protracted exchange-rate swings often demand import protection from their governments.


Much of the enthusiasm for monetary unification within the European Union (EU) stems from the belief that locked exchange rates maximize the gains from a unified market and that exchange-rate-induced shifts in competitiveness within the EU can undermine the political consensus for free intra-EU trade.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4        


고정환율제도가 가져다주는 이러한 이점들을 생각해봤을때, 상당수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었다.




※ 동아시아 국가들의 태생적 한계 - ②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단계에서 발생하는 만성적인 고인플레이션은 또다른 조건을 만들어낸다. 바로 개발도상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만기가 짧고 a debt structure of very short duration, 외국통화로 표기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각주:7] 된다는 점이다. 만성적인 고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가 심한 변동을 겪는 상황에서, 장기채권과 개발도상국 통화로 표기된 채권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아무도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발도상국은 만기가 짧고, (통화가치가 안정된) 외국통화로 표기된 채권을 발행할 수 밖에 없었다.  


In contrast to the industrialized countries, many emerging-market countries have experienced very high and variable inflation rates, with the result that debt contracts are of very short duration. (12) (...)


There are two major institutional differences in the financial markets of industrialized countries versus emerging-market countries that imply different propagation mechanisms for financial instability. As mentioned earlier, in industrialized countries where inflation typically has been low and not very variable, many debt contracts are of long duration. Furthermore, because these industrialized countries typically retain a strong currency, most debt contracts are denominated in the domestic currency. 


In contrast, many emerging-market countries have had high and variable inflation rates in the past and so, long-term debt contracts are too riskyThe result has been a debt structure of very short duration. Given poor inflation performance, these countries also have domestic currencies that undergo substantial fluctuations in value and are thus very risky. To avoid this risk, many debt contracts in these countries are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18)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12-18


경제학자 Barry Eichengreen은 이러한 현상을 "신흥국의 원죄 The Original Sin" 이라 칭했다.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에서도 보았듯이, 1993년-1998년 기간 사이에 개발도상국이 보유한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denominated by its own currency 의 비중은 2.03% 불과했다.  


1998년 이후에도 신흥국의 원죄는 계속된다. 1999년-2001년 사이 발행된 5.8조 달러 규모의 채권 중, 5.6조 달러가 미 달러·유로화·엔화·파운드·스위스 프랑화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미국·유럽·일본·영국·스위스는 4.5조 달러 규모의 부채만 짊어졌다. 즉, 나머지 1.1조 달러의 부채는 다른 국가들이 (자국통화가 아닌) 외환 형태로 보유하게 된 것이다.   


Of the nearly $5.8 trillion in outstanding securities placed in international markets in the period 1999-2001, $5.6 trillion was issued in 5 major currencies: the US dollar, the euro, the yen, the pound sterling and Swiss franc. To be sure, the residents of the countries issuing these currencies (in the case of Euroland, of the group of countries) constitute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world economy and hence form a significant part of global debt issuance. 


But while residents of these countries issued $4.5 trillion dollars of debt over this period, the remaining $1.1 trillion of debt denominated in their currencies was issued by residents of other countries and by international organizations. Since these other countries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issued a total of $1.3 trillion dollars of debt, it follows that they issued the vast majority of it in foreign currency. 


The measurement and consequences of this concentration of debt denomination in few currencies is the focus of this paper.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4


  • 출처 :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28
  • 1993년-1998년 사이,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ies이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보유한 비중은 전체부채 중 2.3%에 불과하다.
  • 반면, 같은 기간에 미국·일본·영국·스위스는 전체부채 중 52.6%를 자국의 통화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 유로화가 도입된 1999년 이후,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화 형태로 보유한 부채비율은 23.2%에서 56.8%로 증가하였다.


채권 발행국과 통화형태별 누적부채를 살펴보자.


  • 출처 :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29
  • 전세계 부채 중 미국이 부담하는 부채비율은 약 32%이지만, 미 달러 형태로 표기된 부채비율은 약 52%에 이른다.
  • 미국·유로존·일본은 전세계 부채 중 71%를 부담하지만, 미 달러·유로·엔화로 표기된 부채는 약 87%에 달한다.

Figure 1 plots the cumulative share of total debt instruments issued in the main currencies (the solid line) and the cumulative share of debt instruments issued by the largest issuers (the dotted line). The gap between the two lines is striking. While 87 percent of debt instruments are issued in the 3 main currencies (the US dollar, the euro and the yen), residents of these three countries issue only 71 percent of total debt instruments. The corresponding figures for the top five currencies, 97 and 83 percent, respectively, tell the same story.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6-7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 · 발생과정 


앞서 논의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하자면, 1990년대 금융자유화 정책 시행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만기가 짧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자본이 급격히 유입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1997년이 되자 자본흐름의 반전 Reversals of Capital Inflows 이 발생하면서 자본유입이 갑작스레 중단되고 Sudden Stops, 급격한 자본유출 Disruptive Capital Outflows 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하락압력을 받게 되고 이는 투기적공격 Speculative Attack 의 유인을 증가시켰다. 더군다나 동아시아 국가들이 차입했던 해외부채는 만기가 짧았기 때문에, 급작스런 자본유출은 유동성위기 Liquidity Crisis를 초래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도와 자국 통화가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 foreign exchange intervention 함으로써 자국 통화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락하는 자국 통화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국통화를 외환시장에 공급하고 자국통화를 사들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의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다른 방안으로는 금리를 올림 the policy rate 으로써 급격한 자본유출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금리인상 또한 문제를 초래한다. 금리인상은 투자와 소비를 저하시켜 경제를 불황에 빠뜨리고, 이를 통해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에 의심을 품은 외국투자자들은 자본유출을 가속화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하고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용인해야 할까?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수출이 증가하면 자본계정 Capital Account 의 손상을 경상계정 Current Account 으로 메꿀 수 있으니? 그러나 자국 통화가치 하락은 큰 문제를 야기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은행과 기업들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국 통화가치 하락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가치의 상승을 뜻했다. 다시 말해, 개발도상국 은행과 기업들의 채무부담이 증가한 것이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불황의 경제학』(2009) 을 통해,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발생과정을 쉽게 설명한다.     


외국으로부터의 차입이 둔화되자 중앙은행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엔화와 달러의 유입이 줄자 외환시장에서 바트화에 대한 수요도 줄어든 것이다. 반면 수입 대금 결제를 위한 외환 수요는 줄지 않았다. 바트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태국은행은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을때와 정반대의 조치를 취했다. 시장에 개입해 달러와 엔화를 주고 바트화를 사들여 자국의 통화를 지지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통화 가치를 낮추려는 것과 높이려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태국은행은 원하는 만큼 바트화를 공급할 수 있다. 그저 찍어내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달러는 찍을 수 없다. 따라서 바트화의 가치를 방어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외환보유고는 얼마 안 가 바닥을 드러냈다.


통화가치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바트화 유통량을 줄이고 이자율을 올림으로써 투자자들이 달러를 빌려 바트화에 재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칼이었다. 당시 투자 붐이 일단락되면서 태국의 경제 성장은 이미 둔화되고 있었고, 건설 경기 또한 좋지 못했다. 이것은 일자리 축소를 의미했고, 일자리 축소는 낮은 소득을, 낮은 소득은 경제 다른 부문에서의 해고를 의미했다. 완전한 의미의 경기후퇴는 아니었지만 태국 경제가 더 이상 과거 방식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은 확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율 상승은 투자를 막는 일일뿐더러 경제를 확실한 불황에 빠뜨리는 길이었다. 


대안은 정부의 통화 개입 포기였다. 바트화 매입을 중단하고 바트화 가치 하락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곤란한 일이었다. 평가절하가 정부 신인도에 흠집을 낼 것이라는 게 한 가지 이유였다. 또한 너무나 많은 은행과 금융회사, 기업들이 달러 채무를 갖고 있었다. 바트화 대비 달러의 가치가 오른다면 그들 다수가 파산할 것이 뻔했다.


진퇴양난의 답답한 상황이었다. 태국 정부는 바트화 하락을 용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외환보유고 손실을 막기 위해 혹독한 대내적 조치를 취할 생각도 없었다. 대신 관망하는 쪽을 택했다. 어떤 전환점이 생겨나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뻔한 결말로 흘러갔다. 통화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폴 크루그먼. 2009. 『불황의 경제학』. 112-113




※ 고정환율제도의 문제점 - 투기적공격에 취약


이러한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 · 발생과정을 경제학계에서는 경제학이론을 사용하여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중요한 것은 개발도상국 특성상 고정환율제도를 택할 수 밖에 없었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질 수 밖에 없었다 라는 점이다. 


개발도상국의 한계를 염두에 두고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고정환율제도가 초래하는 문제점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개발도상국들은 인플레이션 관리를 위해 고정환율제도를 도입한 상황이었다. 고정환율제도는 환율변동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자본유입을 증대시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일조를 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체계가 발달되지 못했던 개발도상국의 특성상[각주:8], 갑작스런 자본유입 증대는 과잉대출 excessive lending & lending boom 로 이어지고 대출의 상당수는 부실처리 substantial loan losses 된다. 그 결과 부실대출을 떠안게 된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크게 손상 a deterioration of bank balance sheets 되고 만다.   


Another potential danger from an exchange-rate peg is that by providing a more stable value of the currency, it might lower risk for foreign investors and thus encourage capital inflows.


Although these capital inflows might be channeled into productive investments and thus stimulate growth, they might promote excessive lending, manifested by a lending boom, because domestic financial intermediaries such as banks play a key role in intermediating these capital inflows.


Indeed, Folkerts-Landau, et. al (1995) found that emerging market countries in the Asian-Pacific region with the large net private capital inflows also experienced large increases in their banking sectors. Furthermore, if the bank supervisory process is weak, as it often 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so that the government safety net for banking institutions creates incentives for them to take on risk, the likelihood that a capital inflow will produce a lending boom is that much greater. 


With inadequate bank supervision, the likely outcome of a lending boom is substantial loan losses and a deterioration of bank balance sheets.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13-14


이러던 와중에, 자본유출이 발생하여 동아시아 통화가치에 대한 하락압력이 거세졌다. 그런데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이 금리를 인상하면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 높아진 금리로 인해 은행의 부채부담은 증가하게 되고,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더더욱 손상된다. 따라서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으로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한 경제주체들은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이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하지 못할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투기적공격은 더더욱 심해진다.   


the deterioration in bank balance sheets can promote a currency crisis because it becomes very difficult for the central bank to defend its currency against a speculative attack. Any rise in interest rates to keep the domestic currency from depreciating has the additional effect of weakening the banking system further because the rise in interest rates hurts banks’ balance sheets.


This negative effect of a rise in interest rates on banks’ balance sheets occurs because of their maturity mismatch and their exposure to increased credit risk when the economy deteriorates.


Thus, when a speculative attack on the currency occur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f the central bank raises interest rates sufficiently to defend the currency, the banking system may collapse. Once investors recognize that a country’s weak banking system makes it less likely that the central bank will take the steps to defend the domestic currency successfully,


they have even greater incentives to attack the currency because expected profits from selling the currency have now risen. Thus, with a weakened banking sector,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is likely to materialize and can be triggered by any of many factors, a large current account deficit being just one of them. In this view, the deterioration in the banking sector is the key fundamental that causes the currency crisis to occur.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4


더군다나 금융자유화 정책 시행 이후 자본유입의 양이 더욱 더 증가하면서 개발도상국 통화가치의 고평가 현상이 생겨났다. 변동환율제도를 택했더라면 자본유입으로 인한 통화가치 상승압력을 환율조정 Exchange-Rate Adjustment 을 통해 흡수할 수 있었지만, 고정환율제도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고평가된 통화가치를 지켜본 경제주체들은 "언젠가는 통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투기적공격 Speculative Attack 을 통해 환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고정환율제도가 투기적공격에 대한 유인을 증가시킨 것이다.


물론 변동환율제도에서도 투기적공격이 발생하여 통화가치가 하락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정환율제도 하에서 투기적공격이 발생하면, 변동환율제도 하에 비해 더 가파른 폭의 통화가치 하락이 발생한다. 고정환율제도 자체가 불안정성을 키운 것이다. 


Under a pegged exchange-rate regime, when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occurs, the decline in the value of the domestic currency is usually much larger, more rapid and more unanticipated than when a depreciation occurs under a floating exchange-rate regime.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13


경제학자 Maurice Obstfeld와 Kenneth Rogoff는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한 금리인상 정책은 투자, 실업, 정부부채, 소득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을 감수하면서까지 통화가치 하락을 막아내겠다' 라는 정부의 공언은 믿을 수 없다. 즉, 정부가 통화가치를 방어할 것이라는 신빙성을 경제주체들에게 주지 못한다면 Lack of credibility, 고정환율제도는 투기적공격에 더욱 더 취약해진다." 라고 지적한다.   


If central banks virtually always have the resources to crush speculators, why do they suffer periodic humiliation by foreign exchange markets? The problem, of course, is that very few central banks will cling to an exchange-rate target without regard to what is happening in the rest of the economy. Domestic political realities simply will not allow it, even when agreements with foreign governments are at stake.


As we have seen, to fend off a major speculative attack, the monetary authorities typically must be prepared to allow sharp increase in domestic interest rates, especially short-term rates. Such sharp spikes in interest rates, if sustained for any length of time, can wreak havoc with the banking system, which typically borrows short and lends long. 


Over the longer term, these unanticipated interest rate rises can also have profound negative effects on investment, unemployment, the government budget deficit and the domestic distribution of income. A government pledge that it will ignore such side effects indefinitely to defend the exchange rate is not likely to be credible. Lack of credibility, in turn, makes a fixed exchange rate more vulnerable to speculative attack.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7-8    


그리고 Maurice Obstfeld와 Kenneth Rogoff는 "보통 정부는 투기적공격을 한번 방어하고 나면 고정환율제도가 가져다주는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이전에 투기적공격을 초래했던 요인은 다음번 투기적공격을 유발하는 씨앗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이 쓴 논문의 제목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처럼 고정환율제도는 망상 Mirage 에 불과한 것이다.


Government often feel that if they could pull off a sudden realignment "just once" and thereby put fundamentals right, they would thereafter enjoy the fruits of a credibly fixed rate, including exchange-rate certainty and domestic price discipline. They are wrong. 


The factors that led to the last realignment remain and contain the seeds of the next one. No one can say for sure when it will occur, but its likelihood reintroduces both exchange-rate uncertainty and inflationary pressures-the very evils a fixed rate was supposed to guard against.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9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의 문제점 - 대차대조표 위기 초래


고정환율제도가 초래하는 문제들을 정리하면, "고정환율제도 → 환율변동의 불확실성 제거 → 금융자유화 정책 → 동아시아 국가로의 자본유입 증가 → 과잉대출로 인한 은행권 대차대조표 손상 →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반전과 자본유출 →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 → 은행권 대차대조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통화가치 방어를 위한 금리인상 정책 할 수 없음 → 통화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투기적공격 유인이 더더욱 증가" 라는 경로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은행권 대차대조표 손상을 막기 위하여,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용인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통화가치 하락 용인은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한다. 바로, 개발도상국 은행과 기업들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 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하자,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던 은행과 기업들의 부채부담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은행과 기업들의 대차대조표가 손상되기 시작한 것이다. 민간부문의 대차대조표 손상은 동아시아 경제의 신뢰성 상실 the loss of confidence 로 이어졌고 추가적인 통화가치 하락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통화가치 하락을 막아야할까?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한 금리인상 정책은 경제의 산출물을 떨어뜨리기 a decline in output 때문에, 이것 또한 신뢰성 상실을 초래한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대차대조표 위기 Balance Sheets Crisis" 라고 칭한다.

 

Balance sheet problems: 


Finally, descriptive accounts both of the problems of the crisis countries and of the policy discussions that led the crisis to be handled in the way it was place extensive emphasis on the problems of firms’ balance sheets. On one side, the deterioration of these balance sheets played a key role in the crisis itself—notably, the explosion in the domestic currency value of dollar debt had a disastrous effect on Indonesian firms, and fear of corresponding balance sheet effects was a main reason why the IMF was concerned to avoid massive depreciation of its clients’ currencies. (...)


instead of creating losses via the premature liquidation of physical assets, a loss of confidence leads to a transfer problem. That is, in order to achieve the required reversal of its current account, the country must experience a large real depreciation; this depreciation, in turn, worsens the balance sheets of domestic firms, validating the loss of confidence. policy that attempts to limit the real depreciation implies a decline in output instead—and this, too, can validate the collapse of confidence.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6


경제학자 Frederic Mishkin 또한 "1997 외환위기가 금융위기로 커진 원인에는 짧은 만기구조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질 수 밖에 없는 신흥국의 한계에 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은 기업들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켰고, 기업들은 대차대조표를 복구하기 위해 위험성이 큰 사업을 벌였다. 즉, 통화가치 하락이 대차대조표에 준 충격이 동아시아 경제를 위축시켰다 " 라고 말하며, 대차대조표 손상 문제를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진단한다. 


A currency crisis and the subsequent devaluation then helps trigger a full-fledged financial cris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because of two key features of debt contract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debt contracts both have very short duration and are often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These features of debt contracts generate three mechanisms through which a currency crisi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ncreases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in credit markets, thereby causing a financial crisis to occur.


The first mechanism involves the direct effect of currency devaluation on the balance sheets of firms. With debt contracts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 when there is a devaluation of the domestic currency, the debt burden of domestic firms increases. On the other hand, since assets are typically denominated in domestic currency, there is no simultaneous increase in the value of firms’ assets.


The result is a that a devaluation leads to a substantial deterioration in firms’ balance sheets and a decline in net worth, which, in turn, worsens the adverse selection problem because effective collateral has shrunk, thereby providing less protection to lenders. Furthermore, the decline in net worth increases moral hazard incentives for firms to take on greater risk because they have less to lose if the loans go sour. Because lenders are now subject to much higher risks of losses, there is now a decline in lending and hence a decline in investment and economic activity.


The damage to balance sheets from devaluation in the aftermath of the foreign exchange crisis has been a major source of the contraction of the economies in East Asia, as it was in Mexico in 1995. This mechanism was particularly strong in Indonesia, which saw the value of its currency decline by over 75%, thus increasing the rupiah value of foreign-denominated debts by a factor of four. Even a healthy firm initially with a strong balance sheet is likely to be driven into insolvency by such a shock if it has a significant amount of foreign-denominated debt.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4-5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교훈 - 2013년 현재는?


경제개발 단계에서 고정환율제도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 발생한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게 된다.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가져다 준 교훈은 '① 고정환율제도의 포기 ② 만기불일치 Maturity Mismatch 해소 ③ 통화불일치 Currency Mismatch 해소 ④ 외환보유고 확충' 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경제학계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Capital Flows Volatility 초래하는 위험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남미 금융위기 이후에는 국가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1990년대 초반 유럽 금융위기 이후에는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Effect 방지에, 그리고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에는 자본흐름의 변동 Capital Flows Volatility 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에서 살펴봤듯이, 자본이동을 감독하는 거시건전성 감독정책 Macroprudential Supervision 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2013년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과 신흥국은 자본흐름의 변동에 대한 대비를 잘 하고 있을까? 미국 Fed의 양적완화 정책 축소 Tapering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급작스런 자본유출에 대한 위험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룰 것이다.




<참고자료>


1편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2편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2013.10.27


3편 -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2013.11.09


4편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2013.11.11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2013년 6월자 Fed의 FOMC - Tapering 실시?. 2013.06.26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2013.09.14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폴 크루그먼. 2009. 『불황의 경제학』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국제금융센터. 'Ⅲ. 외환위기 주요 사례 분석 -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2. 1세대 모델을 다룬 대표적인 논문은, Paul Krugman. 1979. 'A Model of Balance-Payment Crises'. Robert Flood & Peter Garber. 1984. 'Collapsing Exchange Rate Regime: Some Linear Examples'. [본문으로]
  3. 2세대 모델을 다룬 대표적인 논문은, Maurice Obsfeld. 1994. 'The Logic of Currency Crises'. [본문으로]
  4. EMS는 역내 통화의 변동폭에 한도를 정한 일종의 고정환율제도로서 환율변동폭은 기준환율 중심으로 상하 2.25%로 제한됐었다. [본문으로]
  5. 외환보유고가 감소했다는 사실은 외환시장에서 국내통화를 사들이고 외국통화를 공급했다는 것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자본유출과정에서 외국통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 가격이 상승했다면, 개발도상국은 시장에 개입하여 외국통화를 공급함으로써 외국통화가격을 다시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외국통화를 시장에 팔고 받은 국내통화는 중앙은행 계정에 흡수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통화공급량이 축소된 것이다. [본문으로]
  6. (뒤에서 고정환율정책의 문제점에서도 다룰 것이지만) 이것을 어떻게보면, 고정환율정책이 개발도상국의 통화정책을 제한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Frederic Mishkin은 "개발도상국은 통화정책을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정환율제도로 인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This criticism of exchange-rate pegging may be less relevant for emerging market countries than it is for developed countries. Because many emerging market countries have not developed the political or monetary institutions which result in the ability to use discretionary monetary policy successfully, they may have little to gain from an independent monetary policy but a lot to lose.) (7) 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Frederic Mishkin의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고정환율제도로 인해 제약된 신흥국의 통화정책은 1997 외환위기 확산의 원인이 되고 마는데... [본문으로]
  7. 한국의 단기외채 증가에 대해서는,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http://joohyeon.com/174 참고. [본문으로]
  8. 1997년 당시 한국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http://joohyeon.com/173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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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고객 간 '긴밀한 친밀관계'의 중요성 - 금융시스템 내 정보비대칭성은행과 고객 간 '긴밀한 친밀관계'의 중요성 - 금융시스템 내 정보비대칭성

Posted at 2013. 11. 17. 21:03 | Posted in 경제학/일반


※ 금융시스템 내 정보비대칭성

-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해이(Moral Hazard)


현대자본주의에서 금융시스템(Financial System)[각주:1]은 필요한 자원을 배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돈은 있으나 이를 생산적으로 사용할 기회를 찾지 못한 주체(저축자, lenders)에게서, 기회는 있으나 돈이 없는 주체(차입자, borrowers)에게로 사용권을 넘겨줌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동태적 효율성이 배가[각주:2]"되는 것이다. 금융의 도움을 받는 대표적인 경제주체인 기업은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뒤 투자를 함으로써 생산력을 증가시킨다. 


기업은 크게 2가지 경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첫째는 증권 · 회사채 · 기업어음 형식의 직접금융시장(Direct Financial Market)을 통해서, 둘째는 은행대출 형식의 간접금융시장(Indirect Financial Market)을 통해서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주로 은행(Banking Institutions) 등의 금융중개기관(Financial Intermediaries)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한다.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기업은 은행 등의 금융중개기관을 통해 자금을 간접적으로 조달할까? 물론, 은행중심 금융제도(Bank-Based Financial System)를 가진 국가도 있고 시장중심 금융제도(Market-Based Financial System)이 발달한 국가[각주:3]도 있다. 그렇지만 은행중심 금융제도에서나 시장중심 금융제도에서나 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건 변함없다.       


금융시스템 내에서 은행 등의 금융중개기관이 큰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는 바로 정보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 때문이다. 금융시스템 내의 돈을 빌려주는 쪽(lenders)은 차입자(borrowers)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차입자의 신용 · 차입자가 투자하려는 사업의 기대수익 · 대출손실 가능성 등등, 차입자 본인은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으나 돈을 빌려주는 쪽은 그렇지 않다. 바로,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사이의 정보비대칭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금융시스템 내의 정보비대칭성은 2가지 문제를 초래한다. 바로 역선택(Adverse Selection) 도덕적해이(Moral Hazard) 이다.  그리고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해이(Moral Hazard)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Financial Instability)을 초래한다. 


한 명의 사업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사업가는 위험성이 큰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사업이 실패할 가능성도 높지만, 반대로 사업이 성공한다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이 사업가는 사업성공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사업실패시 채무불이행 부담액보다 크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돈을 빌려주는 쪽의 대출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따라서, 다른 차입자들보다 돈을 빌려주는 쪽의 대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돈을 빌려주는 쪽의 선택을 받을 확률도 높아진다.


그렇지만 위험성이 큰 사업은 대개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위험성이 큰 사업을 벌이려 했던 사업가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회수를 하지 못한 경험이 쌓인 돈을 빌려주는 쪽 이제 대출자체를 줄이기 시작한다. 건전한 차입자를 선택해 대출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대출자체를 하지 않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발생한 것이다. 어떤 차입자가 위험성이 큰 사업을 벌이려는지 위험성이 작은 사업을 벌이려는지, 돈을 빌려주는 쪽이 알지 못하는 이른바 정보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Adverse selection is an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 that occurs before the transaction occurs when potential bad credit risks are the ones who most actively seek out a loan. Thus, the parties who are the most likely to produce an undesirable (adverse) outcome are most likely to be selected. For example, those who want to take on big risks are likely to be the most eager to take out a loan because they know that they are unlikely to pay it back. 


Since adverse selection makes it more likely that loans might be made to bad credit risks, lenders may decide not to make any loans even though there are good credit risks in the marketplace. This outcome is a feature of the classic “lemons problem” analysis first described by Akerlof(1970). Clearly, minimizing the adverse selection problem requires that lenders must screen out good from bad credit risks.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2


그리고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간의 정보비대칭성은 도덕적해이(Moral Hazard)도 초래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돈을 빌려주는 쪽은 사업가가 벌이려는 사업이 어느정도 위험한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이 이루어지고 사업이 성공하면 차입자는 큰 수익을 거두게 되지만 사업이 실패하면 돈을 빌려주는 쪽은 돈을 회수하지 못한다. 사업성공의 혜택은 차입자가 사업실패의 부담은 돈을 빌려주는 쪽이 지게 되는 것이다. 


차입자는 이러한 정보비대칭 상황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차입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돈을 빌려주는 쪽에게서 대출을 받아 무리한 사업을 벌이거나 사적으로 유용하는 도덕적해이(Moral Hazard)가 일어나는 것이다.  도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간의 이러한 이해관계 충돌은 돈을 빌려주는 쪽이 아예 대출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끔 만든다.


Moral hazard occurs after the transaction takes place because the lender is subjected to the hazard that the borrower has incentives to engage in activities that are undesirable (immoral) from the lender’s point of view—that is, activities that make it less likely that the loan will be paid back. Moral hazard occurs because a borrower has incentives to invest in projects with high risk in which the borrower does well if the project succeeds but the lender bears most of the loss if the project fails.


Also the borrower has incentives to misallocate funds for her own personal use, to shirk and just not work very hard, or to undertake investment in unprofitable projects that increase her power or stature. The conflict of interest between the borrower and lender stemming from moral hazard (the agency problem) implies that many lenders will decide that they would rather not make loans, so that lending and investment will be at suboptimal levels. In order to minimize the moral hazard problem, lenders must impose restrictions (restrictive covenants) on borrowers so that borrowers do not engage in behavior that makes it less likely that they can pay back the loan; then lenders must monitor the borrowers’ activities and enforce the restrictive covenants if the borrower violates them.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2-3




※ 은행과 고객 간 '긴밀한 친밀관계' 

- 금융시스템 내 정보비대칭성을 해결


앞서 살펴봤듯이 금융시스템 내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간의 정보비대칭성은 금융불안정성을 키우게 된다. 그렇다면 돈을 빌려주는 쪽이 차입자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정보비대칭 상황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바로 여기서 은행(Banking Institutions)과 금융중개기관(Financial Intermediaries)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나 은행의 경우 지점을 통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long-term customer relationships)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차입자가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 돈을 제때에 갚을 수 있는지, 성품은 어떤지 등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고객의 잔고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출상환 가능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차입자가 대출금액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위험성이 큰 사업에 투자하려 한다면, "다음부터는 대출을 삭감하겠다" 라는 엄포를 함으로써 도덕적해이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쪽을 대신하여 차입자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금융시스템 내의 정보비대칭 상황을 제거하게 된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사이에 은행이 개입함으로써 정보비대칭 현상이 해결된 결과 금융시스템은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One important feature of financial systems is the prominent role played by banking institutions and other financial intermediaries that make private loans. These financial intermediaries play such an important role because they are so well-suited to reducing adverse selection and moral hazard problems in financial markets. (...)


Banks have particular advantages over other financial intermediaries in solving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For example, banks’ advantages in information collection activities are enhanced by their ability to engage in long-term customer relationships and issue loans using lines of credit arrangements. In addition their ability to scrutinize the checking account balances of their borrowers provides banks with an additional advantage in monitoring the borrowers’ behavior.


Banks also have advantages in reducing moral hazard because, as demonstrated by Diamond (1984), they can engage in lower-cost monitoring than individuals, and because, as pointed out by Stiglitz and Weiss (1983), they have advantages in preventing risk taking by borrowers since they can use the threat of cutting off lending in the future to improve a borrower’s behavior.


Banks’ natural advantages in collecting information and reducing moral hazard explain why banks have such an important role in financial markets throughout the world. Furthermore, the greater difficulty of acquiring information on private firm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makes banks even more important in the financial systems of these countries.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4-5




※ 일회성 비관계자간 거래 

- 오늘날 은행과 고객의 관계

- 대출의 질을 떨어뜨리고 금융시스템 내의 불안정성을 키우다


그런데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사이에 은행이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비대칭 상황이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까? 정보비대칭 상황을 없애려면 은행이 '지점을 통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차입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획득해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은행지점에서 '긴밀한 친밀관계'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오늘날 은행과 고객의 관계는 최종 고객과 장기간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일회성 비관계자 간 거래관계'가 대부분이다. 대출심사는 은행직원이 고객을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대신한다. 연봉, 직장 등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대출자격을 판단한다. "당장의 신용은 괜찮아 보여도 앞으로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평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現 인도중앙은행 총재인 Raghuram Rajan은 2008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은행과 고객 간의 일회성 비관계자 간 거래관계'를 든다. 2008 금융위기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Sub-primers) 주택담보대출(Mortgage)이 급증한 결과 채무불이행이 발생(서브프라임 사태, Sub-prime Mortgage Crisis)하여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도산한 사건이었다. 이때, 택담보대출 업체들은 차입자들의 신용의 질에 대해서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


보통 은행 대출 담당자는 "대출 신청자의 태도에서 그 사람이 과연 믿을 만하고 직장 생활을 잘할 만한 사람인지 등 다양한 면을 함께 평가" 해왔다. 그러나 대출상품이 증권화를 거쳐 다른 금융기관에 팔리게 되자 "대출 신청자에 대한 판단 기준은 하락했고, 따라서 신용 평가의 중요성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금융기관들은 "컴퓨터에 나와 있는 숫자만으로 그리고 주택 가격 대비 대출액만으로 신용을 평가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용 평가 기준은 컴퓨터에 입력된 사항뿐이었다".     


게다가 만약 은행 등 금융중개기관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해 왔다면, 은행 직원들은 고객의 장래를 염려하여 과도한 대출을 장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비관계자 간 거래의 특성상 브로커는 고객의 입장을 생각할 필요도, 고객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대출 신청자 신용 평가 기준에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뉴센추리 파이낸셜을 승승장구 했다. (...) 그렇다면 그들은 법원에 파산 신청서를 제출하기 직전가지 왜 그토록 위험한 모기지 대출을 계속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뉴 센추리 파이낸셜이 자기가 판매한 모기지 대출 상품을 계속 보유하지 않고 그것을 투자은행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뉴 센추리 파이낸셜로부터 모기지 대출 상품을 구입한 투자은행들은 그것을 패키지로 묶어 증권화한 다음 페니와 프레디 그리고 전 세계의 펜션 펀드, 보험 회사, 그리고 은행에 팔았다.


그렇다면 대출, 즉 신용의 질에 대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단 말인가? 투자 은행은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 구입한 모기지 대출 상품을 증권화해서 판매하려면 사실 그 상품의 질이 건전한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에 주택 담보 대출을 제공할 때, 은행은 훗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출 신청자에 대한 신용조사를 엄격하게 진행했다. 은행 담당자는 대출 신청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으며, 직업과 수입 관련 서류도 까다롭게 심사하고, 그 신청자에게 대출금을 상환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도 확인했다.


대출 심사는 서류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은행 담당자는 대출 신청자의 태도에서 그 사람이 과연 믿을 만하고 직장 생활을 잘할 만한 사람인지 등 다양한 면을 함께 평가했다. 심지어는 대출 신청자가 악수를 할 때 손을 꽉 잡는지, 질문에 대답할 때 담당자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지 등까지도 고려했다. 물론 신청자의 인종도 대출 평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엄격한 심사를 했기 때문에 은행 대출 담당자가 신청자로 하여금 무리한 대출을 받도록 해 나중에 두고두고 양심에 걸리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투자 은행이 모기지 대출 상품을 대거 사들인 후 증권화해서 판매하기 시작하자 대출 신청자에 대한 판단 기준은 하락했고, 따라서 신용 평가의 중요성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신용 평가는 주로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컴퓨터는 대출 신청자가 과연 직장 생활을 오래한 사람인지 아닌지 같은 것을 읽어낼 수 없었다. 만약 모기지 대출 회사가 구체적인 사실이 아니라 개인적인 평가에 따라 심사를 하고, 그래서 대출을 거부했다면 아마도 차별을 한 것이라며 바로 고소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투자 은행과 신용 평가 기관은 컴퓨터에 나와 있는 숫자만으로 그리고 주택 가격 대비 대출액만으로 신용을 평가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용 평가 기준은 컴퓨터에 입력된 사항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대출을 주선한 브로커의 행동에 제동을 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모기지 시장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에는 아예 대출자의 직장이나 수입과 관련한 정보의 사실 여부는 더 이상 확인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파트타임 정원사로 일하는 사람의 직업이 수목 외과 수술 전문가로 둔갑하고 연봉도 수십만 달러라는 식으로 허위 작성되었다.


대출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출 담당자의 개인적 평가가 전반적인 신용 평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적 평가가 사라지자 모기지 대출 심사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물론 대출자의 서류만 보면 모든 것이 양호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과거처럼 담당자가 대출 신청자를 직접 만났다면 그 사람의 무례한 태도, 머리를 굴리는 모습, 단정하지 못한 복장 등 모든 것이 다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태도를 통해 당장의 신용은 괜찮아 보여도 앞으로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쉽게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기지 브로커나 뉴 센추리 파이낸셜이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오직 어떻게 하면 대출 상품을 많이 팔아 돈을 더 벌까뿐이었다. 그들은 이제 어떤 숫자를 강조하면 모기지 상품을 더 쉽게 판매할 수 있는지 요령까지 터득했다. 그리하여 브로커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대출 신청자의 서류에서 신용 평가상 문제가 될 만한 과거 사실을 조작해주고, 주택 각격 상승에 맞추어 무리하게 대출 상품을 변경하도록 권해도 아무 저항 없이 따르는 대출자를 주로 겨냥하기 시작했다. 브로커도 뉴 센추리 파이낸셜 관계자도 더 많은 계약을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이랄도 할 수 있는 인간들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뉴 센추리 파이낸셜의 대출 담당 부서는 '더 많은 계약 성사 대학(Close More University)' 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


브로커는 과도한 부채 부담에 시달리는 고객에게 소비를 줄이고 신용카드 빚을 먼저 갚고, 당장이라도 능력에 맞는 더 작은 집으로 옮기라는 조언을 했어야 옳은 것 아닌가? 그 고객을 다시 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브로커 중 일부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주선해 판매한 모기지 대출 상품은 이미 패키지로 묶여 투자 은행에 모두 팔렸고, 중개 수수료를 받은 브로커는 더 이상 그 대출 상품과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그 보상으로 수수료를 챙긴 것이다. 자기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비관계자 간 거래의 특성상 브로커는 고객의 입장을 생각할 필요도, 고객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라구람 라잔. 2011.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될 때'. 『폴트라인』. 258-263




※ 스웨덴 은행 '한델스방켄(Handelsbanken)' 

- 지점을 통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하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점을 통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하는 은행이 있다. 바로 스웨덴의 '한델스방켄(Handelsbanken)' 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122호 기사에 나온바에 따르면, 한델스방켄은 오늘날에도 '지점이 곧 은행이다(The Branch Is the Bank)'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곳곳의 지점을 통해 고객과 유대감을 형성 · 유지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지점 즉원들의 사진 · 전화번호를 공개함으로써 객과 직원의 관계를 돈과 돈의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 이웃 대 이웃으로 설정하였다.


스웨덴 2위 은행이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으로 꼽히는 한델스방켄(Handelsbanken)은 경쟁 은행들로부터 ‘탈레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대의 시골마을들에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게릴라 군사조직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다른 은행들이 수익성 때문에 가지 않는 작은 마을에까지 지점을 낸다는 의미다. 또한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은행업의 ‘근본’인 직원과 고객과의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있다. (...)


(한델스방켄은) 지점 위주, 고객 위주의 경영을 표방한다. 객 가까이에 가기 위해 어느 정도 수익성의 하락은 감내한다. 스웨덴 내 400여 개 지점 중에 다른 은행은 수익성이 떨어져 들어오지 않은 작은 마을에 있는 지점이 50여 개나 된다. 또, 전 세계 모든 지점 직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어 고객들이 언제든지 담당직원과 통화할 수 있다. 상당수 지점은 토요일에도 문을 연다. (...)


한델스방켄도 1871년에 창립하고 나서 처음 100년간은 다른 은행들처럼 평범했다. 그런데 1970년 얀 발란더(Jan Wallander)라는 사람이 CEO로 부임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발란더는 젊은 시절 스웨덴 상공회의소에서 거시경제 애널리스트로 일했는데 그때 그는 은행의 단기 수익성은 중앙은행의 금리정책 같은 외부환경에 따라 크게 좌우되며 따라서 단기수익과 장기성장은 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스웨덴 북부 지방의 작은 은행 CEO로 일하기도 했다. 이 경험에서은행의 핵심업무는 본사가 아니라 고객과의 접점인 지점(branch office)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


한델스방켄의 모든 지점들은 각자의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은행들이라면 고객이 어제 만났던 은행원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그 사람과 통화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델스방켄에서는 가능하다. 해당 지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 지점의 직원들 연락처를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한델스방켄에 처음 방문하는 영국 고객들은 “옛날식 은행으로 돌아왔구나(back to the old banking)”라며 좋아한다. 예전에는 영국 은행에서도 지점 직원들과 고객들은 서로 친구처럼,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가까운 관계였다. 오늘 뭔가가 잘못됐으면 내일 다시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한델스방켄은 이런 친밀한 관계를 고객들에게 다시 찾아줬다. 



조진서. '은행계의 '탈레반' 한델스방켄: 분권화된 점조직으로 40년 신뢰를 잇다'. <동아비즈니스리뷰> 122호. 2013.02.01. 91-93


이 기사를 쓴 <동아비즈니스리뷰>의 조진서 기자는 개인블로그를 통해 '은행업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조진서 기자에 따르면, 은행업의 본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이 남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은행업의 역할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람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또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신용은 달라진다" 라는 것이다. 조진서 기자가 예를 든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나와 친한사람'의 돈을 더 빨리 갚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컴퓨터는 그저 연봉 등등 단순한 수치를 이용하여 기계적으로 신용을 판단할 것이다.   


한델스방켄의 '지점 중시, 인간적 관계 맺기' 모델이 성공한 이유가 또 있다. 이것은 은행업의 본질에 관련된 것이다.

 

은행업이란 무엇인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대출), 돈이 남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예금저축)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이 남는 사람을 연결해준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사람 중개업' 혹은 '정보 중개업'이라 볼 수 있다. (...)


신용이 좋은 사람은 싼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고 신용이 나쁜 사람은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반대로, 신용이 좋은 우량 은행은 이자를 조금만 줘도 사람들이 저축을 하고, 신용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제2, 제3 금융권은 높은 이자를 줘야지만 사람들이 돈을 맡긴다. 현대 은행업에서는 이 신용을 거의 기계적으로 평가한다. 기업이나 국가의 경우, 3대 신용평가사라고 불리는 무디스, 피치, S&P에서 매기는 신용등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과연 어떤 기업의, 어떤 국가의, 어떤 사람의 신용등급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의문이 생긴다. 사람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또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신용은 달라지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내가 친구 최장우에게 10만 원을 빌렸을 때와 친구 빌 게이츠에게 10만 원을 빌렸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두 친구에 대해서 나는 그 돈을 갚으려는 의지에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나는 최장우에게 10만 원이 빌 게이츠에게 10만 원보다 훨씬 중요한 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나는 최장우를 빌 게이츠보다 훨씬 자주 본다. 


마지막으로, 나는 절친인 최장우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가끔 보는 친구인 빌 게이츠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보다 맘이 훨씬 더 불편하다. 이상의 세 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기왕이면 빌 게이츠보다는 최장우에게 돈을 빨리 갚을 것이다.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최장우에게 돈을 갚아야 할 인센티브가 더 크다. (...)


헌데 현실의 은행업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내가 특별하게 오래 거래해온 주거래 은행이 아니라면, A은행에 가든 B은행에 가든 내 신용등급은 동일하게 평가될 것이고 나에게 매겨지는 이자율도 거의 비슷할 거다.  


조진서. '한델스방켄 - 금융업의 본질은 '관계''. 2013.02.17


물론, 스웨덴의 한델스방켄의 사례가 모든 은행에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은행 지점 직원들이 고객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할 뿐더러, 오늘날 사회에서 '직원과 고객이 정말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이번글을 통해 '금융불안정성을 유발하는 정보비대칭 상황을 해소'하려면 '은행 등 금융중개기관의 역할이 중요'할 뿐더러, 기계적으로 고객의 신용을 평가하는 '일회성 비관계자간 거래'가 아니라 '은행과 고객 간 긴밀한 친밀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라구람 라잔. 2011.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될 때'. 『폴트라인』. 


조진서. '은행계의 '탈레반' 한델스방켄: 분권화된 점조직으로 40년 신뢰를 잇다'. <동아비즈니스리뷰> 122호. 2013.02.01.


조진서. '한델스방켄 - 금융업의 본질은 '관계''. 2013.02.17



  1. 여기서 말하는 '금융시스템 혹은 금융제도란 Financial System'이란, ①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 금융시장Financial Market, ② 금융거래를 중개하는 금융기관Financial Institutions, ③ 금융거래를 지원하고 감시하는 금융하부구조 Financial Infrastructure 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본문으로]
  2. 이 문구는 김상조. 2005. 『종횡무진 한국경제』. 271 에서 그대로 인용하였다. [본문으로]
  3. 은행중심 금융제도와 시장중심 금융제도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을 통해 구체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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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④]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외환위기 ④]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Posted at 2013. 11. 11. 02:48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1997년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의 회고록 중 일부.


● 97년 7월 8일 : 태국, 금융위기에 몰리다


- 모든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던 7월 초, 난데없이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을 거듭하고 (...) 신문 지면은 우리나라도 당장 그 금융태풍에 휘말릴 것처럼 온통 우려의 목소리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나-강경식 경제부총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태국과 우리나라는 여러가지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97년 7월 27일 : 태국 위기 남의 일 아니다


-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대외신인도를 예의 주시하면서 대책 강구가 필요했다. 특히 신용도가 괜찮은 은행들이 해외로 나가 달러를 많이 빌려 외환보유고를 많이 쌓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 97년 9월 8일 : 태국과 한국은 다르다


- 나-강경식 경제부총리-는 태국과 한국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우선 경제의 기초여건이 달랐다. (...) 무엇보다 태국은 역외 금융시장을 육성한다는 명분 하에 금융시장이 완전개방되어 있어 헤지 펀드 등 단기 투기성 자금의 유입이 용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증권시장 일부만 개방되었을 뿐,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견해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식이었다.


● 97년 9월 20일 :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이 현지에서 빌려쓴 돈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앞의 대문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뒤에 있는 쪽문으로 나가서 저지른 일이 집안 전체를 뒤흔들게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 97년 10월 17일


- 동남아 통화위기가 10월 중순에 들면서 북상하기 시작했다. 


● 97년 10월 23일


- 홍콩 증시 폭락 사태로 또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세계 증시가 모두 출렁이는 것이어서 우리도 그런 충격파 속에 함께 놓여진 것으로 생각했지,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로 치닫는 길에 들어섰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279-287


1997년 7월~10월 사이 강경식은 '무관심 → 당혹 → 자신감 → 당혹 → 위기감 → 패닉' 의 심경변화를 보여준다. 7월 태국 외환위기가 발생했을때 우리나라와는 상관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다가 '은행 해외지점들의 외환차입금' 통계를 알고난 뒤 당혹스러워한다. 하지만 9월 들어 다시 한국경제의 기초여건에 자신감을 가지게되고 '금융시장의 낮은 개방도' 를 이유로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이 현지에서 빌려쓴 돈'이 심각한 문제임을 9월 20일에 인지하게 되고, 10월 중순 들어서 대만 · 홍콩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우리나라 통화가치 하락이 가속화되자 패닉에 빠져든다.


1997년 동아시아경제와 한국경제에 구체적으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은행 해외지점들의 외환차입금'과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이 현지에서 빌려쓴 돈'은 또 무엇일까? '금융시장의 낮은 개방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이번 포스팅을 통해 국내은행위기( Banking Crisis)가 외채위기(Debt Crisis) · 외환위기(Currency Crisis) ·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로 발전한 원인에 대해서 살펴보자.




※ 외환거래 자유화정책으로 인한 단기외채 유입증가

- 기업 : 무역신용성 외환거래 → 단기외채 비중 증가

- 은행 : 해외지점을 통한 단기외화 차입  

- 종금사 : 단기로 조달해온 외화를 장기로 운용 → 만기구조 불일치 발생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에서 살펴봤다시피, 1990년대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 · 금리자유화 등의 금융자유화 정책 financial liberalization 을 시행했다. 금융자유화 정책의 또다른 내용은 '외환거래 자유화정책' 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정부는 금융기관 및 기업의 외환거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에서도 다루었던 '잘못된 금융자유화 순서'로 인한 '비대칭적 규제'가 외환거래 자유화정책에서도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당시 한국경제는 외환거래 자유화정책을 추진하면서 단기자본의 도입보다 장기자본에 대한 도입에 더 많은 규제를 남겨두었다. 이러한 '잘못된 금융자유화 순서'와 '비대칭적 규제'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차입금리가 낮은 단기외화를 위주로 차입하도록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두열의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1998) 에 따르면, 1990년대 들어 우리나라 단기외채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1996년 58%에 이르렀다[각주:1]. 만기구조가 짧은 단기외채는 여신회수가 즉각적이라는 점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웠다.



종금사의 부실문제와 더불어 경제에 있어 ‘약한 고리’를 형성한 것으로서 대외부채의 단기화이다. 이는 1990년대에 있어 세계화 추진 및 OECD 가입을 위한 조급한 자본자유화의 과정에서 미숙한 정책으로 인하여 제도적으로 단기자본의 도입보다 장기자본에 대한 도입에 더 많은 규제가 남아 있게 된 데서 기인한다.


구체적으로 외국환관리규정에 단기외화차입에 대해서는 규제가 없는 반면 장기외화차입에 있어서는 재경부 장관에 대한 신고 및 사전보고 의무가 존재함에 따라 금융기관들이 규제가 없고 차입금리가 낮은 단기외화를 위주로 차입하도록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표 5-38>에서 우리 나라의 외채구조 변화를 보게 되면 1992년까지 우리 나라 전체외채 428억 달러 중 단기외채는 185억 달러로서 전체의 43% 수준에 머무르던 것이 1994년을 계기로 53%, 57%,58%로 계속 상승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209-210


구체적으로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단기외채를 늘렸을까? 기업부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기업의 무역신용성 외환거래 자유화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신인석의 <90년대 환율정책과 외환거래 자유화정책 분석: 외환위기의 정책적 원인과 교훈>(1998) 에 따르면, 당시 기업들은 무역신용을 경로로 하여 단기외채를 조달해왔다.




외환정책당국은 기업의 외환거래의 경우 우선적으로 실물거래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무역신용성 외환거래를 자유화한다는 방침에 따라 1990년대중 지속적으로 세부정책조치를 단행하였다. (...) 외환정책당국은 1990년대중 매년 계속하여 기업의 연지급수입기간 및 수출선수금의 영수한도를 증가시키며 무역관련 외환거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왔다.


<표 10>은 기업의 무역신용성 외채추이를 정리한 것이다. <표 10>을 보면 우선 기업의 무역신용성 외채는 1992년의 61억달러에서 1996년에는 220억달러로 급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외환거래규제상 기업은 무역신용성 외채 이외에는 단기외채를 보유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이러한 역신용성 외채의 증가는 그대로 기업의 전체 단기외채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표 10>이 보여주는 무역신용성 외채의 급증은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 무역신용성 외채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또는 바꿔 말한다면, 이는 정상적인 무역거래에 따른 무역신용규모의 증가를 반영한 것이었는가? 만일 이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인 것이라면 이 외채의 증가는 외환유동성 위험의 상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서 문제시할 현상이 못된다.


그러나 곧 밝혀지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무역신용성 외채가 급증한데에는 정상적인 무역거래에 따른 무역신용규모의 확대를 반영한 것도 있겠으나 일정 부분은 기업이 무역신용을 경로로 하여 기타 용도의 자금조달원으로 이용한 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신인석. 1998. '90년대 환율정책과 외환거래 자유화정책 분석: 외환위기의 정책적 원인과 교훈'. 『한국개발연구원』. 44-46 


1990년대에 들어서 은행들의 단기외채 the short-term external borrowing 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소속 Wang Yunjong의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2001)의 Table 3를 보면, 1990년대 한국으로의 자본유입 Capital Inflows 중 상당수가 은행을 통해 발생 Foreign Credits to Bank 했다. Table 4를 보면 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다. 1996년 중 대외부채 External Debt 의 66.7%가 금융부문 Financial Sector 의 부담이었고, 단기외채의 비중은 61.0%에 달했다.  


< 출처 :  Wang YunJong.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16-17 >


은행들은 주로 해외지점 overseas branches 을 통해 단기외채를 들여왔는데, 그 비중이 국내지점에 맞먹었다. 금융자유화 정책의 영향으로 은행들은 해외지점을 늘렸는데, 금융시장 개방과 자율화에 상응하는 준비태세와 대응전략이 제대로 수립되지 못한 채 무분별한 영업확대 및 해외진출 확대를 한 것이다. 


< 출처 : 재정경제원. 1998.01.30. '1997 경제위기의 원인 · 대응 · 결과'. -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부록 571쪽에서 재인용 > 


< 출처 :  Wang Yunjong.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17 >


As also found in Table 3, the major portion of the increase in foreign capital inflows was the short-term external borrowing by the banking sectorConsequently, the short-term external debt grew much faster than long-term debt throughout the years, and the financial sector became the major holder of external debts. Out of the total increase in external debt during the three years (1994-96), the banking sector explains about 70 percent. The remaining 30 percent reflect growth of the corporate sector's external debt, mainly related with trade credits.


In fact, short-term foreign currency liabilities of the Korean banks were much larger than reflected in capital inflows. As part of the liberalization measures, banks were allowed to open and expand operations of overseas branches. By exploiting the foreign capital channeled through overseas branches, banks actively operated foreign currency denominated business through domestic branches. This resulted in large foreign currency liabilities of overseas branches comparable to those of domestic branches as vividly shown in Table 5.


Wang Yunjong.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16-17


기업 · 은행과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종금사의 외화차입증가 이다. 외환업무에 경험이 없었던 종금사들은 단지 금리가 싸다는 이유로 닥치는 대로 단기외화를 들여와서 장기로 운용하였다. 1997년 10월 기준 종금사들의 총외화차입금은 약 200억 달러에 달했는데 그 중 1년 미만 단기차입이 64.4%인 13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종금사들은 단기로 조달해온 외화차입금 대다수를 수익성이 높은 장기대출로 운용했는데, 1년 이상 장기대출 비율은 83.7%인 168억 달러에 달해 엄청난 자금만기구조의 불일치 maturity mismatch 가 발생했다. 


이러한 만기불일치는 외화유동성 부족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동남아 외환위기의 여파가 한국으로 다가올 때, 종금사들의 자금난은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은행들의 단기차입마저 끊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다.    



<표 5-41>을 보면 1997년 10월 말 현재 종금사들은 단기로 129억 달러, 장기로 71억 달러를 조달하였는데 이 중 단기로 운용한 것은 32억 달러에 불과하고 나머지 167억 달러는 장기로 운용하여 심각한 차입대출의 기간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종금사들의 자산과 부채간 기간 불일치는 외화유동성 부족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215


1982년 금융자율화 조치의 일환으로 32개까지 늘어난 단기금융회사는 1992년에 선발 8개 단자회사가 은행과 증권회사로 전환했고, 1994년 9개 지방 단자회사와 1995년 나머지 15개 단자회사가 무더기로 종합금융회사로 전환하여 우리나라는 30개나 되는 종합금융회사 천지가 되었다.


외환업무에 경험이 없었던 24개 전환 종합금융회사들은 장기 외화차입보다 단기 외화차입이 금리가 싸고 차입이 쉬웠기 때문에 단기 차입금의 리스크도 제대로 모르고 닥치는 대로 차입하여 수익성이 높은 장기대출을 하였다. (...)


1997년 10월에는 종합금융회사의 총외화 차입금이 200억 달러까지 되었는데 그 중 1년 미만 단기차입이 64.4%인 120억 달러나 되었다. 위험한 단기차입금으로 1년 이상 장기대출을 83.7%인 168억 달러나 했으니 엄청난 자금만기구조의 불일치(maturity mismatch)가 생겼다. 한보철강 부도로 대외신인도가 떨어져 신규차입이 중단되자 7일 이내의 초단기 차입으로 하루하루를 넘기다가 기아자동차 사태가 터지고는 일일자금(over-night)으로 허덕이게 되었다. 홍콩의 금융시장에서 종합금융회사들은 "금리, 금액, 기간을 불구하고 돈을 빌리려고 홍콩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떼거지" 라는 얘기까지 듣게 되었다.  (...)


종합금융회사는 Merchant Bank 이지만 bank라는 이름을 달고 다닌 종합금융회사의 행태와 자금난은 우리나라 모든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를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은행의 단기차입마저 끊기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결국에 가서는 IMF사태를 몰고 오는 도화선이 되었다. 종합금융회사가 도화선이 되어 동남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11월에 우리나라에도 상륙하게 되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428-431




※ 1997년 7월 동남아 외환위기 발생과 기아자동차 부도유예 처리


앞서 살펴본 것처럼, 1997년 한국경제는 금융자유화 이후 기업 · 은행 · 종금사의 단기 외화차입금을 증가하여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에서도 살펴봤듯이, 1994년-1996년 간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와 고평가된 원화가치, 대기업들의 과도한 부채와 한보철강 등의 부도로 인해 1997년 당시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기초여건이 취약한 상황이었다.


이와중에 1997년 7월 태국을 시작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해 인도네시아 · 필리핀 · 말레이시아 등으로 퍼져나갔다. 동남아 외환위기의 확산을 본 외국투자자들은 한국경제의 기초여건에도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특히나 7월에 발생한 기아자동차가 사실상 부도처리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1월에 한보그룹(10위)[각주:2] · 4월에 삼미그룹(26위), 진로그룹(19위) · 5월에 대농그룹(44위), 한신공영그룹(58위)에 이어 7월 기아그룹(8위)마저 무너지면서, 곧바로 신용평가기관들은 기아자동차에 대한 대출규모가 큰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 하였다.


7월 2일 태국 바트화 평가절하를 계기로 동남아 외환위기가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주의가 환기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7월 15일 기아자동차가 사실상 부도나 다름이 없는 부도방지협약을 신청하였다. 곧바로 신용평가기관들은 기아자동차에 대한 대출규모가 큰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 하였으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치러야 할 재정비용이 국내총생산의 20%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이와 같은 전망으로 인해 7월 30일 Moody's는 정부출자기관인 한국산업은행의 신용등급을 하락시켰으며, 같은 이유로 8월 6일 S&P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부터 '부정적'으로 바꾸었다. 국가신용등급 전망의 하향조정으로 말미암아 민간기업과 금융기관의 해외자금조달은 점차 어려워졌으며 차입조건도 악화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7-8월중 산업은행 채권의 스프레드와 선물환율이 급등한 점에서도 볼 수 있다.



박대근, 이창용. 1998 '한국의 외환위기: 전개과정과 교훈'. 『한국경제학회』. 23  


김대중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외환위기를 수습했던 이규성의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2006) 을 통해서도, 동남아 외환위기 발생하고 기아그룹이 부도유예 처리된 1997년 7월 이후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의 국내금융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금리에 있어서는 7월 15일 기아그룹의 부도유예협약이 적용된 후 콜금리와 회사채 수익률이 상승하였으며 7월 중 평균으로 각각 11.41%와 11.86%를 나타냈다. 8월에는 동남아 위기의 영향 우리 금융기관의 부실 우려 등에 따른 해외 차입여건의 악화로 콜금리와 회사채 수익률은 각각 12.39%와 12.11%로 큰 폭 상승하였다. 9월에도 종합금융회사의 자금사정 악화와 기아의 화의신청 등에 영향을 받아 콜금리와 회사채 수익률은 각각 13.17%와 12.36%로 상승폭이 더욱 확대되었다. (...)


금융기관의 해외차입 여건 역시 금융기관들의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인하여 장단기 자금차입 모두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었다. 은행들의 단기외채에 대한 만기연장 비율이 하락하는 동시에 가산금리는 대폭 상승하였다. 8월 12일에 일부 은행은 외화결제자금 부족으로 한국은행으로부터 7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또한 은행들의 장기차입여건도 악화되었다. (...)


종금사들도 급속한 대외신인도 하락에 따라 자체신용에 의한 외화차입이 어려워지면서 1997년 6월 이후 부족한 외화유동성은 주로 국내은행으로부터 조달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7월부터는 국내은행의 외화자금 사정도 악화되자 초단기 차입에 주로 의존하였다. 특히 지방소재 종금사의 경우 외화조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중에는 원화자금으로 외화를 매입하기에 이르렀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25-26


1997년 7월 이후 경제상황이 계속해서 악화되자, 8월에 한국정부는 금융기관 부채의 지급보증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지급보증 선언은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켰다. 한국정부는 외채에 대한 지급보증을 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해왔는데, 과거에는 통했던 방식이 1997년에는 통하지 않았을 뿐더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 한국경제 성장과정 - 정부의 지급보증을 통한 해외자본 도입


한 국가가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물적자본 physical capital 이 필요하고, 물적자본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각주:3]하다. 박정희정권은 1962년 『외자도입촉진법』(the Foreign Capital Inducement Act) 을 제정함으로써 '정부의 지급보증 하에 외국자본 도입' 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돈이 없던 한국이 정부의 지급 보증하에 해외자본을 들여와 생산활동에 투입[각주:4]하였고 경제성장 달성에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윤제, 김준경의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1997) 에 따르면, 1962년-1966년 사이 한국경제 총투자의 53 퍼센트가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은 외국자본에 의해 동원되었다. 그리고 1975년 당시 국내은행 상업대출의 88 퍼센트가 정부의 지급보증 하에 동원된 외국자본 이었다. 


The Allocation of Foreign Loans


Foreign Capital - especially foreign loans - played a large role in Korea's financial sector policy. As with domestic credit, the government also tightly controlled allocation of foreign credit. From 1962 to 1991, the ratio of total investment to GNP was 27.4 percent annually. Six percent was financed by foreign capital, primarily loans. Hence, approximately 22 percent of total investment during this period was financed by foreign capital. Between 1962 and 1966 (when the Korean economy began to surge), 53 percent of the total investment was financed with foreign capital. (Table 11).


Korean firms that wished to borrow abroad were required to obtain the approval of the EPB. The Board also determined the total amount of required loans according to investment priorities for projects and enterprises specified by the five-year economic plans. MOF closely monitored all approved foreign borrowings and their repayment. In addition, the government guaranteed virtually all foreign loans. In 1966 the government revised the Foreign Capital Inducement Act to allow banks to provide guarantees without approval from the National Assembly.       


KEB (one of the specialized banks in Korea) and commercial banks could issue repayment guarantees for private foreign loans without authorization from the National Assembly. Since the government held the majority of shares in commercial banks, the KDB and the KEB, the government in effect provided their repayment guarantees. As such, the government could use the allocation of foreign loans as a policy tool for industrial financing, without political intervention. As of 1975, for example, domestic banks provided repayment guarantees for 88 percent of the total commercial loans (Table 12).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85-86       

      

외화부채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은 1990년대에 들어서도 관행처럼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에서도 살펴봤듯이, 한국 은행권은 외화부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출에 있어서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는 상황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1997년이 되자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던 방식이 이제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되고 말았다




※ 금융기관 부채에 대한 지급보증을 선언한 한국정부 

- 민간금융기관의 부도가 국가부도로 인식이 전환


1997년 8월 25일, 한국정부는 민간부문의 해외차입이 어려워지자 '금융기관 부채의 지급보증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종금사들이 자력으로 외화결제를 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면서 8월 18일 한국은행이 보유고에서 5억 달러를 긴급 지원하게 된다[각주:5] 


97년 8월 25일(2) 대외신인도 대책


8월 25일 발표한 대책은 특융 등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대책보다는 대외신인도 제고 쪽에 더 역점을 두었었다. 여기에는 외신인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정부가 금융기관의 대외 채무에 대해 '정부 신용으로 보장'하고, 특정 금융기관의 대외 지급 불능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필요시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조치'를 취할 의사가 있다는 파격적인 내용이 들어있었다. (...)


핵심은 정부의 지급 보증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를 했다. (...) 7월 기아사태 이후 해외 금융시장에서는 우리 정부의 '구조적 문제 해결 의지'와 정책의 실천력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차입금리도 올라가는 추세였고 외화 확보도 어려워지고 있었다. 특히 국제신용평가기관에서는 국내 은행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단의 조치'가 절실히 필요하고, 정부 보증 정도의 강력한 의지표명이 있어야 금융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더 이상 나의 생각을 고집할 수 없었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264


그리고 10월 22일, 정부는 부도상태에 처한 기아그룹을 산업은행 출자를 통해 구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것이 큰 문제를 일으킨다. 기아자동차에 대한 산업은행 융자의 '출자전환'은 'debt equity swap'로 번역해야 마땅한데, 일부 외신에서는 이를 'nationalization(국유화)'로 보도한 것이다. 기아의 부담을 국가가 떠맡는 것으로 해외에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한국경제 자체의 대외신인도가 하락한 것이다. 때가 바로 민간금융기관의 부도가 국가부도로 인식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각주:6].


97년 10월 22일 기아 처리, 국내에선 대환영 해외에선 비판적


11시에 기아에 대한 법정관리 방침을 발표하자, 주가지수는 34.5포인트, 6.08%나 폭등했고 일거에 지수 600선을 회복했다. 이제 기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금융개혁법안 통과[각주:7]에만 힘을 기울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문제를 처리한 날이 공교롭게도 홍콩 증시가 요동치기 시작한 바로 그 날이었다. 연속 폭락장세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증시가 모처럼 상승세로 돌아 한시름 놓는가 했는데, 그 기대는 간단히 무너지고 말았다. 바로 다음날인 23일에는 33.2포인트나 빠지는 폭락장세로 반전했다. 좀더 빨랐거나 오히려 며칠 더 늦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쨌든 홍콩 증시가 폭락하는 날과 겹친 것은 '최악의 택일(?)'이었다.


게다가 기아 처리에 대한 해외 논평은 매우 냉담했고 비판적이었다. 가장 유력한 경제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3일자 신문에서 "변화와 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던 강경식은 기아 처리에 있어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다. 기아를 '국유화'한 것은 한국이 미래에 번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개혁과정에 있어서 엄청난 후퇴이다"로 시작하는 글에서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이러한 비판 중에는 사실도 있었지만, 내용을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상당히 있었다. 그 하나는 산업은행 융자의 '출자전환'은 'debt equity swap'으로 번역해야 마땅한데, 일부 외신에서는 이를 'nationalization(국유화)'으로 보도한 것이 그것이다.


취임 초부터 발표문은 항상 영문과 함께 작성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있다. 해외에 대한 서비스 차원뿐 아니라, 이번처럼 발표 내용이 잘못 전달되는 불상사에 대비하려는 뜻도 있었다. 그러나 서둘러 발표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보니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고 만 것이다. 산업은행 융자의 출자전환은 대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기아문제를 처리해갈 주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한 조치였다. 그러나 기아의 부담을 국가가 떠맡는 것으로 해외에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낭패를 보고 말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아를 '공기업 형태로 운영'한다는 발표문에도 문제가 있었다. 협력업체에 대한 원활한 자금 공급과, 불필요하게 '제3자 인수설'에 휘말리려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국내용'이었는데, 해외에서는 기아를 '공기업화해서 살린다'라는 뜻, 즉 '국유화'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제3자 인수 방침은 추후에 밝혀도 된다고 생각하고, 발표 당시에 이를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은 나의 실책이었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291-293


1997년 1월 한보그룹 부도에 이어 10월 기아그룹 부도마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국제금융계는 한국경제의 기초여건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한국이 1997년 말 외환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지만, 한국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국제 금융계에서 '신용'을 잃어버린 데 있다. 한보사태 이후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내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의 어느 금융기관이 선뜻 한국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겠는가. 더욱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국을 시작으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들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차가워졌다. (...)


우리가 '태국과 다르다'는 것을 강변하면 할수록 국제 금융가에서 자라나고 있는 한국 경제에 대한 의혹의 싹은 커져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특히 한국정부가 한보나 기아사태와 같은 당면현안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질질 끌면서 '기초체력'만 강조하자 해외에서는 "한국 정부의 통제력에 이상이 생겼다."는 지적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31-33


금융기관 부실을 지켜본 외국채권자들이 "한국의 금융기관이 부실처리 되면 지급보증을 했던 한국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변제능력이 있는가?"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즉,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서 채무국 자체의 변제능력을 의심하게 된 외국 채권자들이 일순간 투자자금을 회수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부족한 투자재원을 전략산업에 집중투자하기 위해 정부가 금융기관의 운영을 시장기능에 맡기지 않고 직접 주도하여 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민간금융기관들도 공기업처럼 인식되어 왔고, 법적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금융기관의 부채는 관행적으로 정부가 보증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관행은 한편으로는 안정된 금융시장을 형성해 전례 없이 빠른 성장을 가능케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효율적인 과잉투자를 조장하는 문제점을 낳게 된다[각주:8]. (...)


이러한 과잉투자문제는 경제발전과 자본자유화가 진척되면서 더욱 심각해지는데,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부의 금융기관 대출을 일일이 감시할 능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은 자본자유화에 따라 저리의 해외자금을 차입하여 마구 기업을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관행적인 정부보증을 믿었기에 외국 채권자들도 사업평가 한 번 하지 않고 선뜻 국내 금융기관에 자금을 빌려 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가 실패로 끝나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서 채무국 자체의 변제능력을 의심하게 된 외국 채권자들이 일순간 투자자금을 회수해감으로써 외환위기가 야기되었다는 것이 아시아 외환위기에 관한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박대근, 이창용. 1998 '한국의 외환위기: 전개과정과 교훈'. 『한국경제학회』. 9-10




※ 1997년 10월 23일, 동남아 외환위기가 동북아로 북상하다


정부의 지급보증선언 · 기아자동차 공기업화 논란과 더불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동남아 외환위기의 북상이다. 공교롭게도 기아자동차 공기업화 논란 다음날인 10월 23일, 홍콩증시가 폭락하면서 동남아 외환위기가 동북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1997년 10월 17일, 대만이 외환시장방어 포기를 선언했고 ,10월 23일 홍콩증시가 폭락하면서 동남아 외환위기는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커지고 말았다. 


10월 22일, 3개월 간의 실랑이 끝에 정부는 부도상태에 처한 기아그룹을 산업은행 출자를 통해 구제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가 바로 민간금융기관 부도가 국가부도로 인식이 전환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날인 10월 23일 홍콩의 주가가 폭락하였고, 이에 따라 외국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던 아시아경제에 대한 신뢰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다.


10월 24일 S&P는 한국의 국가신용을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AA-로부터 A+로 하향조정하였고, 장기신용전망도 '부정적'으로 바꾸었다. S&P는 기아자동차의 공기업화에 대해 "이번 구제조치가 단기적인 압력을 완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임이 너무나도 자명하다" 라고 혹독히 비난하였다. 산업은행의 국채가격은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자자들은 세계 11위 규모의 한국 경제가 멕시코와 같은 경제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걱정하였다. 기아자동차의 공기업화 발표전에 128bp 였던 산업은행 채권 스프레드는 불과 열흘만에 269bp로 넓어졌다.


박대근, 이창용. 1998 '한국의 외환위기: 전개과정과 교훈'. 『한국경제학회』. 24

   

1997년 10월 23일을 기점으로 외국 투자자들의 투자자금 회수로 인해 한국 외환시장도 출렁이기 시작했다. 1997년 들어서 원화가치가 조금씩 하락하고 있긴 하였으나, 10월 23일을 기점으로 원화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10월 22일 1달러당 915.10원이었던 환율은 23일 921.00원 · 24일 929.50원 · 27일 939.90원 · 28일 957.60원 · 29일 964.00원 · 11월 6일 975.00원 · 11월 10일 999.00원 · 11월 17일 1,008.60원 · 11월 25일 1,122.00원 · 12월 23일 1,962원까지 대미달러 환율이 치솟는다. 


< 출처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1997년 10월을 기점으로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래에 첨부한 외환보유액 그래프에 따르면 1997년 10월 말,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약 300억 달러로 나온다. 그렇지만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의 실제 외환보유고가 150억 달러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150억 달러는 약 5주일분의 수입액 도는 단기외채의 5분의 1에 불과한 금액이었다.  


< 출처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 1997 한국의 외환위기의 원인 

- 원화가치하락을 노린 투기적공격이 아니라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 


앞서 논의됐던 내용을 종합하자면, 1990년대 금융자유화 이후 기업 · 은행 · 종금사들은 막대한 양의 단기 외화차입금을 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1997년 7월 동남아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기아자동차는 부도유예처리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인한 논란이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려서 외국투자자들의 급격한 자금회수를 불러왔고 이는 원화가치 하락과 외환보유고 고갈로 이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전 포스팅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 원화가치 하락을 노린 헤지펀드 · 핫머니의 투기적공격이 1997 외환위기의 원인일까?'를 통해,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발발한 "1997년 11월달 외환보유고 감소의 주된 요인은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이 아니라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 이었다." 라고 밝힌바 있다. '<표 7> 외환보유고 수요요인(1997)'를 보면 11월 중 외환보유고 수요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7>에서 환율요인에 따른 외환수요의 증가분을 가장 넓은 기준의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의 지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에는 경상수지적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과 포함된 것의 두 가지 투기적 공격지표를 계산하여 놓았다. 두 지표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11월중 투기적 공격은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의 14~20%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상수지적자까지 감안한 광의의 투기적 공격 지표에 의거하면 9~11월중의 환율에 따른 외환수요요인은 1~3월에도 미달하는 규모였다. 


두 기간의  차이와 11월 외환위기를 낳은 것은 환위험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고 따라서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볼 수 없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의 존재여부[각주:9] 였음은 <표 7>에서 명백하다.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26-27


그리고 1997년 11월달 외환보유고 감소의 주된 요인이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인지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인지 여부는 외환시장에서 외환에 대한 수요 및 공급요인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표 6> 외환시장 수급요인 월별추이(1997)'을 살펴보면, 1997년 11월 들어 '외채감소액'이 증가[각주:10]하고'해외지점 예치금 증가액'이 증가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국내은행) 해외지점에 대한 한국은행의 예치금 증가액'이 늘어났음을 뜻한다. 해외지점에 대한 국제채권은행의 채무상환요구가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에 의해 충족된 것이다. 


 < 출처 : 신인석. 1998. '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25 >  


그렇다면 국내은행 해외지점에 대한 한국은행의 예치금 증가액이 늘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또한,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는 어떤 경로를 통해 발생했을까?




※ 국내금융기관 해외지점의 단기 대외지불부담액 

-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 고갈의 주요원인


앞서 "해외지점 overseas branches 을 통해 단기외채를 조달한 은행들" · "종금사의 외화차입증가를 이야기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내은행 해외지점에 대한 한국은행의 예치금 증가액'이 늘어난 이유를 알 수 있다. 앞서 설명한대로 1990년대 금융자유화 이후 은행들과 종금사는 해외지점을 통해 단기외채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외채통계에는 한국의 막대한 해외 현지금융이 제외되기 때문에 외채규모가 과소평가 된다. 


박대근, 이창용은 <한국의 외환위기: 전개과정과 교훈>(1998) 을 통해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 그리고 이들의 현지법인이 차입한 역외금융차입까지를 포함시킬 경우 한국의 단기외채 지불부담은 1,000억 달러로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단기외채 수치의 두 배에 달한다"(26) 라고 지적한다.


이규성 또한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2006) 를 통해 "1994~1996년간의 총대외지불부담금 및 순외채의 전년대비 증가율은 미달러화 표시 경상 GDP 성장률을 크게 상회하고 있었다" 라고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전 우리나라의 외채통계는 세계은행(IBRD) 기준에 의거하여 작성되었으며, 세계은행 기준 외채는 공공부문, 민간부문 및 금융부문 등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이 국내로 도입한 외채총액 중에서 아직 상환되지 않은 잔액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해외채권자들로부터 우리의 외채통계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었다. 즉, 한국의 막대한 해외 현지금융도 외채통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IMF와의 협의를 거쳐 현지금융 가운데서 금융기관의 해외점포가 차입한 금액과 국내금융기관의 역외계정차입금을 외채통계에 포함시키기로 하였으며, 이와 같이 정의된 광의의 외채를 총대외지불부담으로 명칭을 붙였다. 이러한 외채통계 작성 기준에 입각하여 추산된 우리나라 외채규모의 변화추이는 [표 2-4]에 제시되어 있다. 


추산된 외채규모를 전제로 우리나라의 외채상환 능력을 분석해 보면, [표 2-5]에 제시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세계은행에 적용하고 있는 외채상환능력 평가기준의 어느항목에 비추어 보더라도 경채무국 또는 외채상환능력에 문제가 없는 국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를 보다 엄밀하게 살펴보면 1994~96년간의 총대외지불부담 및 순외채의 전년대비 증가율은 미달러화 표시 경상 GDP 성장률을 크게 상회하고 있었다. 또한 1996년의 경우에는 경상 GDP 성장률이 해외차입 금리수준을 하회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외환위기 직전의 우리 경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외채상환능력이 저하되는 시기에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59-60


다르게 말하면, 해외지점의 대외지불부담액을 포함할 경우 한국경제의 외환유동성 부족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인석의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1998)에 나오는 '<표 8> 외환유동성 추이'를 보면, 막대한 양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1996년 들어서부터, '국내금융기관 해외지점 단기대외지불부담'이 포함된 지표B가 크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 한국경제는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 상태였다" 라고 말한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 경제에 '잠재적 외환유동성 부족' 문제가 존재하였는가? 또한 존재하였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겠는가?  이들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표 8>을 작성하였다. <표 8>은 한국경제의 외환유동성 추이를 두 가지 지표로 제시한 것이다. 하나는 세계은행기준 단기외채(유동부채)에서 유동성이 높은 대외자산을 제한 '지표 A'이고, 둘째는 IMF기준 대외지불부담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여 계산한 '지표 B'이다.


<표 8>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과연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96년말 현재 지표 A,B 모두 양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어 이 시점부터 잠재적으로 외환유동성이 부족할 수 있는 영역에 진힙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야기되기까지는 거시충격과 이에 대한 정책대응상의 오류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표가 보이듯이 단기외채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로의 자본유입이 증가한 것은 94년부터였으며 같은 시기 외환유동성은 점차 악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급격한 악화가 진행된 것은 지표 A에 의거할 때 명백히 96년이었고, 이는 물론 96년에 기록한 대폭의 경상수지 적자[각주:11]에 기인한 변화였다. 그리고 96년의 경상수지적자는 교역조건 충격으로 요구되었던 환율절하를 정책당국이 지연시킨 결과[각주:12]였다고 평가되므로, 그만큼의 외환유동성 악화는 거시정책대응 미숙에 원인이 있었다고 하겠다.    


셋째, 그러나 한국경제가 지니고 있던 잠재적 외환유동성 부족의 크기는 해외지점의 대외지불부담 증가를 고려하지 않는 한 과소평가되기 쉬웠다는 점이다. 잠재적 외환유동성 부족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96년 말에 있어서도 지표A에 의거하는 한 문제의 심각성은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인석. 1998. '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31-32


당시 은행들과 종금사들은 대기업부실[각주:13] · 7월 동남아 외환위기 · 정부의 지급보증 논란 등으로 외국투자자들이 급격한 자금회수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외화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7대 시중은행의 차환율[각주:14]은 10월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하고 있었다. 


< 출처 : 신인석. 1998. '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37 >


은행들의 외환유동성 사정이 어렵게 되자 그 동안 은행에 의존해 오던 종금사들의 외환유동성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제 금융기관들은 해외지점이 보유한 단기대외지불부담금 결제를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1월 중 한국은행이 국내 금융기관에 당일 결제자금으로 외환을 지원한 현황은 아래 첨부한 [표 1-18]과 같다. 해외지점의 부족한 결제용 외환을 충당하기 위하여 한국은행은 11월 상반월에는 8.4억 달러, 하반월에는 80.9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해외에 예치하여 지원하였다. 이에 따라 환보유고에서 국내 은행의 해외지점에 예치한 금액이 11월 말에는 169.4억 달러로 대폭 증가하였다[각주:15]


그 결과 한국은행의 가용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내 50억 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의 해외지점에 예금한 외화인 해외예치금은 평상시라면 회수하여 외환보유고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외환위기가 시작되어 해외지점이 외환부족상황에 처함에 따라 사실상 사용불가능한 외환보유고가 되어버렸다.


< 출처 :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42 >


< 출처 : 신인석. 1998. '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39 >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신인석은 "국내금융기관이 한국은행에 의존하게 되는 시점을 인출사태의 발생시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표 11>과 [그림 5]에 의하면 인출사태는 11월 17일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라고 말한다.


<인출사태의 발생시점>


11월 국내금융기관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한국은행은 이들 금융기관에 외환을 공급하였고, 그 결과 (가용)외환보유고가 고갈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자발적 자금공급자가 없어져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인출사태로 정의할 때, 따라서 국내금융기관이 한국은행에 의존하게 되는 시점을 인출사태의 발생시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행이 사용한 구체적인 지원방법은 피지원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외화예금을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이 외화예금은 국내본점에 대한 수탁금은 '외화예탁금'으로, 국외지점에 대한 수탁금은 '해외지점 예치금' 으로 한국은행 계정상 분류되었는데, 따라서 외화예탁금과 해외지점 예치금의 합계치(이하 '예치금 합계치'로 약칭)는 11월 중 한국계 은행에 요구된 채권상환액에 대한 추정치를 제공해준다. 또한 그러므로 예치금 합계치의 일별추이를 관찰하면 인출사태의 발생시점을 가늠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같은 추론에 근거하여 예치금 합계치의 10~11월중 추이를 보인 것이 <표 11>과 [그림 5]이다. 이들 자료에 의하면 인출사태는 11월 17일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1월 14일까지 큰 변동이 없던 예치금 합계치는 토요일과 일요일이었던 15, 16일을 지낸 뒤 뚜렷한 상승세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신인석. 1998. '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38-39




※ 정부당국의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정책? or 외환시장 미발전의 구조적문제?


앞서 살펴본대로, 1997년 11월 국내금융기관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한국은행은 이들 금융기관에 외환을 공급하였고 그 결과 (가용)외환보유고가 고갈되었다. 게다가 원화가치하락을 막기위한 정부당국의 개입은 외환보유고 고갈을 가속화시켰다. 박대근, 이창용은 <한국의 외환위기: 전개과정과 교훈>(1998) 을 통해 "정부당국의 무리한 외환시장 개입정책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라고 비판한다. 


1997년 당시의 외환보유고의 동향과 외환시장 개입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래 '<표 8>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을 살펴보면 1997년 4월~6월 들어 한보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외화유입이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7월 동남아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고는 다시 감소하기 시작하고 11월부터는 감소폭이 커진다. 


박대근, 이창용은 "10월 말 이후의 외환보유고 감소는 환율관리를 위한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외환시장이 외환수급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함에 따라 기업과 금융기관이 외화부도의 위기에 빠지자 통화당국이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달러를 공급"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율의 평가절하를 시장기능에 맡겼으면 외환보유고 감소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외환보유고의 증감은 통화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표 8>은 1997년 한 해 동안 한국은행의 현물 및 선물시장 개입규모와 외환보유고 및 외화예탁금 증감액의 월별 변화를 보여준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1997년 1사분기에 정부는 원화의 절하를 막기 위해 달러를 매도하였다. (...)


통화당국의 달러화 매도개입은 4월에 들어서면서 매수개입으로 바뀌고 이에따라 6월까지는 외환보유고가 증가한다. 4-6월은 한보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외화유입이 다시 재개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정부는 달러를 매수함으로써 원화의 절상을 막아 경상수지 적자폭을 줄이면서 1사분기에 감소한 외환보유고를 재충전하였다. 그러나 7월 이후 동남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자본유출이 시작되자 환율의 급등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시 달러화 매도개입을 재개하였고 그 규모는 9월 이후 급격히 증가한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0월 말 이후의 외환보유고 감소는 환율관리를 위한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도 하락으로 해외신규차입이 어려워짐에 따라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외채 원리금 상환에 필요한 외화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 외환시장에서 외환을 구매하고자 하였다. 반면에 원화절하에 대한 기대로 달러의 공급은 자취를 감추었고, 이에 따라 외환시장 개장과 함께 환율은 일일변동제한폭의 상한까지 상승하고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외환시장이 외환수급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함에 따라 기업과 금융기관이 외화부도의 위기에 빠지자 통화당국이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달러를 공급하였다.   


이와 같은 외환시장 개입은 외환보유고를 감소시켰고, 그 결과 대외신인도가 추락하여 자본유출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결과적으로 외환위기가 명확해진 시점에서도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시장평균환율제도를 유지하려고 함으로써 귀중한 외환보유고를 낭비한 셈이다. 사후적으로 볼 때 환율방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진 시점이었기에 당연히 환율의 평가절하를 시장기능에 맡겨 놓았어야만 했다. 1996년과 1997년 상반기까지의 외환시장 개입은 옳든 그르든 그 나름대로의 정책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10월 이후 이루어진 외환시장 개입은 상황을 오판한 정책실패로서 외환위기를 악화시켰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대근, 이창용. 1998 '한국의 외환위기: 전개과정과 교훈'. 『한국경제학회』. 29-31


그러나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은 "IMF 이후 환율변동제한을 없앤 다음에도 외채상환을 위한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대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보유고가 그렇게 급감하게 되었던 것" 이라고 항변한다. 일반적인 외환시장은 가격(환율)이 변화할 때 외화 공급과 수요가 늘거나 줄어들면서 균형을 맞추지만, 당시 한국의 외환시장은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시장 기능이 작동하는 '외환시장'이 아직 없다는 것이 재경원 실무자들의 생각이었다. 시장이 되려면 가격(환율)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탄력적으로 늘기도 줄기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원화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IMF 이후 채권시장, 부동산시장 등이 많이 개방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환율이 올라간다고 해서 달러를 들여와 원화로 바꾸어도 주식투자 이외에는 운용할 데가 없고, 환율이 아무리 올라가도 외채 상환을 위해서는 달러를 사지 않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IMF 이후 환율변동제한을 없앤 다음에도 외채상환을 위한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대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보유고가 그렇게 급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환율만'으로 외환 수급의 균형을 이룰 수는 없었다. 환율상승에 대한 제한을 완전히 없앤 97년 12월에도 환율안정을 위해 보유 외환을 시장에 공급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다. (...)


우리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데 시장에만 맡겨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97년 11월 당시, 상승압력은 흡수하면서 정부의 환율안정에 대한 정책의지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래서 상승압력을 흡수해야 한다고 생각될 때에는 한국은행에, 안정을 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재경원이 시장 관리를 주도하도록 하면서 환율제한폭을 없애는 방향의 정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2.25%의 제한폭이 당시의 상황에서는 너무 변동폭이 작았던 것이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314-315


1997년 당시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 국장을 맡았던 정덕구는 "(서울 외환시장 특성상, 정부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없다면) 기업들은 수출입 결제자금마저 구할 수 없는 상황"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외환의 규모가 너무 작다 보니[각주:16] [각주:17] 달러가 한꺼번에 몰려들어와도 문제가 생기고, 반대로 일정 규모 이상으로 빠져나가도 문제가 생겼던 것" 이라고 덧붙인다.


서울 외환시장은 원래 기업의 수출입 결제자금, 즉 순수한 실수요 자금만 거래되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국내 은행과 종금사들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국내 외환시장에 달려들어 무조건 달러를 사들였다. 그 바람에 기업들은 수출입 결제자금마저 구할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한국은행은 11월 18일에도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 한국의 금융기관과 기업이 외화를 조달할 수 있는 길은 이제 완전히 막혀버렸다. (45) (...)


시장의 실패이다. 시장감시 시스템이 붕괴됐더라도 시장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시장의 자생력이 살아 있다면 감독이 다소 느슨해지더라도 위기국면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시 서울 외환시장은 그 규모가 너무 작았다. 시장이 자생력을 가지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가 있어야 하는데 장에서 거래되는 외환의 규모가 너무 작다 보니 달러가 한꺼번에 몰려들어와도 문제가 생기고, 반대로 일정 규모 이상으로 빠져나가도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어느 정도 자본 유출입은 시장이 스스로 감내해내야 하는데 서울 외환시장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외국인투자자들의 시장지배력이 커진 것도 문제였다. (111)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45, 111




※ 대한민국 정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

- 급격한 자본유입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알지 못했



1997년 11월 21일,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낸 한국정부는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된다.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에서 다루었던 국내은행위기(Banking Crisis)가 외채위기(Debt Crisis)[각주:18] · 외환위기(Currency Crisis)[각주:19] ·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각주:20]로 발전[각주:21]하게 된 결과, IMF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번 포스팅에서 살펴봤듯이, 1997년 당시 대기업부실[각주:22]과 이로 인한 금융권부실[각주:23]이 국내은행위기로 끝나지 않고 외채위기(Debt Crisis) · 외환위기(Currency Crisis) ·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로 발전하게 된 원인은 기업 · 은행 · 종금사들의 과도한 단기외채 조달 때문이었다. 국내경제위기는 대외신인도 하락을 가져왔고 이는 외국투자자들의 자금회수로 이어졌다. 단기로 조달한 외채를 갚지 못하게 된 기업 · 은행 · 종금사들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정부당국은 외화결제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소진했다. 그 결과, 한국의 외환보유고 소진을 본 외국투자자들은 자본회수를 서두르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당시 한국과 아시아국가들은 1990년대 자본자유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급격한 자본유입이 가져오는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각주:24]였다.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의 해외차입 증가가 초래할 문제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1997년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연쇄적으로 발생한 외환위기에 대해, 이규성은 "아시아의 위기는 경상수지의 중요성이 도외시된채 진행된 자본자유화 과정에서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 라고 말한다.


자본거래가 자유화되면 한편으로는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져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간 자금흐름이 갑작스럽게 반전되기도 하고 환율의 투기 등이 발생함으로써 국제금융시장의 가변성이 증폭되고 때로는 외환위기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거래의 자유화를 대폭 확대하는 경우에는 그 위험에 대한 제도적, 정책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각주:25]. 이하에서는 자본자유화 과정에 있어서 경상수지의 중요성, 위험성을 고려한 외채관리의 중요성과 환율정책의 중요성을 외환위기측면에서 검토하기로 한다. (...)


자본자유화의 폭이 확대됨에 따라 우리의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해외자본 도입 및 해외진출이 매우 용이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은 환율은 크게 변동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금리가 높은 국내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보다는 금리가 낮은 해외차입을 선호[각주:26]하였다. (...)


이러한 상황의 변화 속에서 세계화 시대에는 국제수지의 의미가 달라진다며 국제수지를 걱정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비웃는 당국자도 있었다. (...) 그런데 앞의 제 Ⅱ 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상수지 적자가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되더라도 국제금융시장의 심리가 변하여 자본수지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유지하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 


오늘날과 같이 환율과 금리의 변동성이 매우 큰 금융환경 속에서 조그만 충격에도 급격히 자산구성을 변경하는 투자가들의 행동양식을 생각할 때 지속적이로 안정적인 자본수지의 흑자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자본수지의 흑자가 발생하더라도 유입된 해외자본을 과잉투자하거나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 투자[각주:27]에 활용하거나 지나친 소비를 보전하는 데 사용한다면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확대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1993년 이후 자본자유화에 따른 해외자본 조달의 용이성에 안주하면서 고성장정책을 추진하였다. 우리는 변동성이 심한 국제금융환경 속에서 국제투자가들은 언제든지 쉽게 표변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외면하였다. 이번 위기를 통하여 비록 자본거래가 자유화된 상황에서 해외자본의 조달이 용이해졌다 하더라도 경상수지 적자가 갖는 의미를 결코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하겠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위기 당사국들은 자본자유화 확대 → 대규모 자본수지 흑자 → 환율의 고평가 속에 고성장 추구 →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과정[각주:28]을 거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과거 많은 나라들이 재정적자 확대 → 경상수지 적자 확대 → 자본수지 흑자 확대라는 경로를 걷다가 외환위기에 직면한 양상과는 현저히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시아의 위기는 경상수지의 중요성이 도외시된 채 진행된 자본자유화 과정에서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86-89




< 4편 참고자료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최두열. 2002. '비대칭적 기업금융 규제와 외환위기'. 『한국경제연구원』


신인석. 1998. '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박대근, 이창용. 1998 '한국의 외환위기: 전개과정과 교훈'. 『한국경제학회』

Wang Yunjong.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재정경제원. 1998.01.30.  '1997 경제위기의 원인 · 대응 · 결과'


이제민. 2007. "한국의 외환위기: 원인, 해결과정과 결과". 『경제발전연구 제13권 제2호』.


  1. 1997년에는 단기외채비율이 42%로 하락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국제금융기관의 자금회수로 인하여 생긴 결과이다. 1997 한국 거시경제에 의문을 품은 국제금융기관은 차입금회수에 서두르게 되는데, 급격한 자금회수 과정에서 다수의 한국 기업들과 은행들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고만다. [본문으로]
  2. 대기업 군의 서열은 1996년도 금융, 보험업을 제외한 기업집단의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출처는 최두열. 2002. "비대칭적 기업금융 규제와 외환위기". 한국경제연구원. 88 [본문으로]
  3. 경제학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단순한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물적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함을 뜻한다. 한 국가의 부wealth를 단순한 '돈의 총량'으로 계산할 수 있다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면 그만이다. 화폐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법정통화 fiat money 일 뿐이다. [본문으로]
  4. 이것의 경제학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http://joohyeon.com/169 참조 [본문으로]
  5.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26-27 [본문으로]
  6. 서울대학교 이제민은 '한국의 외환위기: 원인, 해결과정과 결과'(2007)을 통해 "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한 많은 문헌이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은 것은 한국 정부가 1997년 8월 민간부문의 외채에 대한 지급 보증을 했다는 사실과 그것이 갖는 의미다. 국내 구조가 외환위기의 원인이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보다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한 후로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 여부가 아니라, 정부가 민간의 외채를 대신 갚아 줄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외환위기가 일어나는지를 결정하는 요인이었다. 물론 한국정부가 그럴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일어난 것이다." "한국 정부의 문제는 재정의 불건전성이 아니라 지급보증을 한 민간의 단기외채에 비해 정부(한국은행)가 가진 외화준비금이 너무 적었다는 점이다. (...) 한국 정부의 문제는 결제능력부족(insolvency)이 아니라 유동성부족(illiquidity)이었다" 라고 주장한다. 1997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냐, 아니면 단순한 유동성위기냐'의 논쟁은 추후에 다룰 계획이다. [본문으로]
  7. 이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의 '※ 취약한 금융감독기능 - 대기업 연쇄도산이 금융기관 부실화로 이어지는 현상 방치' http://joohyeon.com/173 참조 [본문으로]
  8. 이에 대해서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http://joohyeon.com/169 참조 [본문으로]
  9.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이 보고서의 논평을 맡은 이영섭은 "<표7>의 해석에 대해서 논평자도 기본적으로 저자의 입장을 같이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이 반대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제시한 1997년 11월중의 대규모의 인출은 외환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투기적 공격 때문에 발생된 위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제채권단의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표7>을 보면 투기적 공격은 그 이전부터 발생하지만 채권인출은 11월에만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는 10월말 및 11월 초에 발생하기 시작한 위기에 대한 대응처럼 보일 수도 있다. <표7>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외환위기의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만일 외환위기의 시작을 11월 중하순(예를 들어, IMF 구제금융 신청일인 11월 21일)으로 잡으면 저자의 해석에 대해 반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작을 10월 하순(예를 들어, 기아사태처리 발표 및 홍콩증시 폭락이 발생한 10월 22~23일)으로 잡으면 이상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저자와 대립되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라고 지적한다. 본인도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점을 10월 하순으로 잡더라도, 이는 헤지펀드 등의 투기적공격이 아니라 1997년 동안 높았던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본문으로]
  10. 다시말해 외채가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11. 이에 대해서는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http://joohyeon.com/170 참조 [본문으로]
  12. 이에 대해서는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의 '※ 원화가치 고평가와 1994-1996년의 경상수지 적자를 막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http://joohyeon.com/170 참조 [본문으로]
  13.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http://joohyeon.com/172 [본문으로]
  14. = 만기연장비율 [본문으로]
  15.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41-42 [본문으로]
  16. (포스팅 서두에 나오듯) 1997년 9월 당시 강경식은 "우리나라는 증권시장 일부만 개방되었을 뿐,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 라며 "한국 자본시장의 낮은 개방도"를 장점으로 생각햇지만 오히려 발목을 잡고 만 것이다. [본문으로]
  17. 당시 IMF 또한 "한국의 시장개방 정도가 작아서 문제" 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더 큰 폭의 자본시장 개방'을 제시한다. 당시 IMF의 이러한 처방이 옳았는지의 여부는 추후에 포스팅할 계획이다. [본문으로]
  18. 특정국이 공공부문 혹은 민간부문의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채무불이행 상태 [본문으로]
  19. 특정 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여 해당국 정부가 대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사용하거나 금리 인상 등을 통해 환율을 방어하는 상태 [본문으로]
  20. 외환위기 · 은행위기보다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데 "금융시장이 심각한 붕괴에 있는 상태 · 위기의 확산으로 금융시장의 효율적인 중개기능이 손상되어 실물경제에 대규모 부정적 효과 파급"하는 상태 [본문으로]
  21. 은행위기 · 외채위기 · 외환위기 · 체계적 금융위기의 정의에 대해서는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 외환위기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170 참조 [본문으로]
  22.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http://joohyeon.com/172 [본문으로]
  23.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http://joohyeon.com/173 [본문으로]
  24. 이에 대해서는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의 '※ 원화가치 고평가와 1994-1996년의 경상수지 적자를 막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http://joohyeon.com/170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25. 1997년 당시 한국경제는 '자본거래의 자유화'가 가져오는 위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7년의 교훈을 배운 2013년 한국은 현재 '자본거래의 급격한 변동이 가져오는 위험'을 가장 잘 대비하고 있는 국가로 꼽힌다. │ 이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http://joohyeon.com/164 참조 [본문으로]
  26. 이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의 '※ 국내은행 대출고객 비중에서 5~30대 재벌 & 비재벌기업 비중 증가 → 국내금융기관의 자산구성위험도 상승' http://joohyeon.com/173 참조 [본문으로]
  27. 이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의 '※ 신흥국 금융시장의 거품을 초래하는 미국 Fed의 통화정책' http://joohyeon.com/164 참조 [본문으로]
  28. 이에 대해서는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http://joohyeon.com/170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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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③]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외환위기 ③]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Posted at 2013. 11. 9. 15:03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지난 포스팅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에서는 1997 한국 외환위기의 핵심원인이었던 '대기업들의 연쇄적인 부도'를  다루었다. 당시 무분별한 차입경영에 둔감했던 한국 기업들은 원화가치 고평가로 인해 현금수입이 감소한 반면 과잉투자로 인해 현금지출은 증가해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제2금융권을 통해 기업어음(CP) 등을 발행하여 단기자금 조달을 늘려갔는데, 기업어음에 의한 자금조달의 문제는 만기구조가 단기일 뿐만 아니라 여신회수가 즉각적이라는 점에서 대기업군의 연쇄적 도산을 초래하였다. 


그렇다면 당시 대기업들이 '제2금융권' (혹은 비은행금융권) 을 통해서 '단기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제2금융권을 통한 단기자금 조달 증가로 금융시스템 내 불안정성이 커지는 가운데, 금융감독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번 포스팅을 통해 '경제성장과정에서 비은행금융권이 발달한 한국 금융시장' · '잘못 적용된 금융자유화 순서' ·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제2금융권을 통한 단기자금 조달의 증가' · '금융감독 시스템의 미흡' 등등 1997년 당시 한국 금융시스템이 가졌던 구조적문제에 대해 알아보자.




※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비은행금융권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한국 금융시장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에서 살펴봤듯이, 한국경제는 정부가 금리를 통제하는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통해 성장해왔다. 정부는 인위적으로 낮게 형성된 금리를 통해 특정집단에 금융자원을 몰아주었다. 반면, 정부의 선택을 받지 못한 기업들은 장외시장 curb market 을 통해 시장균형금리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르게 말하면, 정부의 선택을 받지 못한 대다수의 기업들은 제도금융권 밖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두열은 <비대칭적 기업금융 규제와 외환위기>(2002) 보고서를 통해 "제도금융권에 대한 장기간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의 산물로 막대한 규모의 사금융권이 형성되었다" 라고 지적한다. 


한국에 있어서 비은행권의 형성배경을 보면 정책당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동원을 극대화하고 전략 산업부문을 지원하기 위하여 당시 은행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던 제도금융권에 대해 장기간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을 실시하였다. 당시 정책당국의 금융억압 내용을 보면 정부가 은행의 여수신 금리를 결정하고 은행의 대출부문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등 자금의 가격과 수급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장기간에 걸친 금융억압의 산물로 제도금융권 밖에서 막대한 규모의 사금융권이 형성되어 금융산업에 있어서 은행을 중심으로 한 제도금융권과 사금융권의 2중구조가 심화되었다. 사금융권의 규모가 막대해짐에 따라 단기 고금리 사채가 성행하고 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정책당국은 1972년에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사채를 일정기간 저금리로 동결하고 상환을 유예하는 등사채 동결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8.3조치[각주:1]를 실시하게 되었다. 


동시에 정책당국은 채 동결의 부작용을 완화하고 사금융권을 제도금융권으로 흡수하기 위하여 1972년부터 단기금융회사법, 상호신용금고법, 신용협동조합법 등을 제정하였는데 이에 따라 단기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등 비은행금융기관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최두열. 2002. '비대칭적 기업금융 규제와 외환위기'. 『한국경제연구원』. 77   


여기서 또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도 다루었듯이, 그동안 한국경제는 기업부실이 발생하였을때 정부가 직접 금융시장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것이다. 보통 기업부실이 발생하면 주요 채권자인 은행이 나서서 부실채권을 정리하지만, 한국경제에서 은행은 단순히 국가의 지시를 받는 대리인 역할에 머물렀다. 


은행들은 "은행 자산과 부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보다 정부의 지시를 따르는 게 경영평가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행들은 본연의 임무인 신용평가 · 리스크 관리는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신용금고·단자회사 등 비은행금융권이 커지고 만다.     


Korea relied on credit interventions too heavily and for too long as an industrial policy instrument. The banking system bore the brunt of this strategy. The government used the banking system as a treasury unit to finance development projects and to manage risk sharing in the economy.


Bankers were treated as civil servants. Their performance was evaluated according to whether they complied with government guidance, rather than whether they managed their assets and liabilities efficiently. Commercial banks in Korea were involved so heavily in directed credit progrmas that they almost functioned as development banks. In the process, they incurred large nonperforming loans (NPLs) (Table 19), which again had to be covered with government support. 


Consequently, banks lagged behind the development of the real sector and could not effectively meet its demand for financial servies; the banks thus lost market share to other financial institutions, such as Non-Banking Financial Instutions(NBFIs), which could operate more feely and thus prolifereatd.  


  • 한국경제에서 은행부문은 신용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비은행부문이 한국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 < 출처 :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

당시 경제관료들은 이러한 '한국 금융산업의 낙후성과 비은행금융권의 비정상적인 발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금융개혁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1970~80년대에 추진된 몇차례의 금융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김대중정부 초대 재정경제부장관으로 1997 외환위기를 수습했던 이규성은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를 통해서 금융개혁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고 있다.   

금융산업의 낙후성은 앞으로의 경제발전에 큰 장애가 될 것이라는 인식하에 추진된 금융개혁의 기본방향은 창의와 능률에 바탕을 둔 금융의 자율성과 상업성을 제고하여 금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고 경쟁과 시장원리를 확충함으로써 금융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여 금융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

이러한 70~80년대에 추진된 기업 · 금융개혁정책의 결과 기업부문에 있어서 기업공개가 확대되었으며, 대기업에 대한 여신이 통제되고 부동산취득이 어렵게 되었다. 금융부문에 있어서도 금융상품이 다양화되고 새로운 금융기법이 도입되었다. (...) (그러나) 은행은 민영화되었지만 은행장은 여전히 정부에서 사실상 선임하였으며 금융기관의 경영은 자율화되었지만 관치금융의 폐습이 근절되지 않고 부실채권은 여전히 늘어갔다.[각주:2] 기업과 금융의 취약한 구조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

금융자유화가 추진되지 못한 이유도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금융기관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은 민영화되고 이들이 공급하는 정책금융은 축소되었지만 이들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는 인식보다 여전히 기업을 지원하는 공공적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고성장의 신화가 풍미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각주:3]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어렵게 하였다.

둘째로 정부는 금융자율화가 정착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노력에 소홀하였다. 정부는 은행을 민영화하면서도 누적된 부실채권을 충실히 정리하지 못함으로써 민영화 이후의 은행 책임경영체제를 제대로 확립할 수 없었다. 민영화된 은행은 분산된 소유구조로 인하여 경영주체를 확립하지 못하고 은행장은 여전히 정부가 선임하였다. 또한 정책금융을 과감하게 재정으로 이관하지 못하여 정부의 관여와 보호의 관행이 지속되었다.

셋째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차입경영이 지속[각주:4]됨으로써 신용평가에 의한 여신이 이루어지기 어려워 담보와 대마불사의 기준에 의한 신용공여가 시정되지 못하였다.

끝으로 금융자율화에 따라 건전성 감독이 강화되어야 하는데도 감독체계는 여전히 미흡하였으며 신용평가기관과 예금보험기구도 미비된 상태[각주:5]였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영리기관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부의 보호를 기대하면서 점포나 수신고 늘리기와 같은 외형성장을 추구하고 대기업 위주의 신용공여에 안주하고 있었다.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제도금융권은 단순한 금융자원동원 역할을 맡았을 뿐이었다. 게다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비은행금융권'의 영향력은 1990년대 초반에 시행된 금융자유화로 인해 더욱 더 커졌다.  



※ 잘못된 금융자유화 순서로 인한 비은행금융권의 팽창



1990년대 시행된 금융자유화의 중점은 금리자유화 이었다. 그동안 한국경제는 금융억압 Financial Reression 정책의 일환[각주:6]으로 금리를 인위적으로 통제했었으나, 1991년 11월' 제 1단계 금리자유화'를 시작으로 금리자유화가 단계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문제는 금리자유화 과정에서 비은행권 금리가 은행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유화 되었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의 규제정도가 균등하지 않고 특정부문에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이른바 비대칭적 규제 Unbalanced Regulation[각주:7]가 적용된 결과, 비은행권의 수신비중은 은행의 수신비중을 2배 이상 능가할 정도로까지 비대화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비은행금융권이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상태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잘못 적용된 금융자유화 순서[각주:8]가 비은행권 비중을 더욱 더 키우고 만것이다.


한국 종금사의 성장은 외환위기 발생 전에 은행권과 비은행권인 종금사간에 업무영역, 금리, 경영 등에 대한 규제에 있어서 과도한 차별이 지속되었음에 많이 기인한다. 지속된 은행권과 비은행권간비대칭적인 규제종금사를 비롯한 비은행권(여기에서는 제2금융권을 의미함)의 이상 비대화를 가져왔다.


비대칭적인 규제의 내용을 보게 되면 첫째, 업무영역에 있어서 비은행권에 대해서는 은행수신 상품과 유사한 상품의 취급이 허용되어 온 반면 은행권에 대해서는 제2금융권 상품의 특성을 반영한 금융상품의 취급이 엄격히 규제되었다. 둘째, 금리에 있어서는 1990년대 들어 추진된 금리자유화 과정에서 비은행권의 금리가 은행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유화되어 은행의 수신금리 자유화비율이 비은행권에 비해 낮은 추이를 지속하였다. 셋째, 자금운용에 있어서도 은행이 정책금융, 지시금융, 구제금융 등을 주도적으로 담당해야 했던 반면 비은행권은 은행에 부과되고 있던 지급준비 의무도 부과되지 않았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규제에 따라 비은행권이 비대화되어 1980년대 중반에는 제2금융권의 수신 및 여신 비중이 은행을 상회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추세는 지속되어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 1996년에는 비은행권의 수신비중이 은행의 수신비중을 2배 이상 능가할 정도로까지 비대화하게 되었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85-186


비은행권의 빠른 팽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0년부터 1996년까지 7년간 은행권의 자산규모는 185조원에서 451
조원으로 244% 증가하였음에 비하여 비은행금융권의 자산규모는 216조원에서 761조원으로 352% 증가하였다.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에서도 살펴봤듯이, 이러한 비은행금융권의 여신은 단기일 뿐만 아니라 담보에 바탕을 두지 않기 때문에 기업에 이상 징후가 발생하였을 경우 갑작스런 여신회수에 돌입하므로 기업부도급증의 원인이 되었다. 더군다나 기업의 부도가 증가할수록 비은행금융권의 부실여신도 늘어나 자본잠식에 빠진 비은행금융권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국내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기업의 수익성 악화 → 비은행금융권의 갑작스런 여신회수 → 기업부도 → 부실여신 증가 → 자본잠식에 빠진 비은행금융권 증가 → 자본보충위해 여신회수노력 증가 → 기업부도 → (...)  국내금융시장 혼란' 이라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1997. 9월 말 현재 종합금융회사의 총부실여신은 [표 1-9]에서 보는바와 같이 5조 4,862억 원이었으며, 이는 자기자본대비 135.6%에 달하는 규모였다. 특히 기존의 6개 종합금융회사를 제외한 전환종금사(단기금융업무의 비중이 높은 종전의 단자회사에서 종합금융회사로 전환한 회사)의 부실여신 비율이 높았다. 그 중 대한 · 제일 · 신한 · 나라 · 한화 · 한솔 · 경남 · 대구 · 쌍용 · 청솔 · 울산 · 신세계 · 경일 등 14개 종금사는 자기자본대비 부실여신비율이 200%를 초과하여 사실상 자본이 완전 잠식된 상태였다.

이와 같은 사태의 진전은 국내 금융시장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무디스와 S&P는 각각 7.26일과 8.6일에 5개 시중은행을 감시대상으로, 국가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였다.




※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팽창한 기업어음(CP)시장

게다가 '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에서도 살펴봤듯이, 잘못된 금융자유화 순서로 인한 비대칭적규제단기금융상품인 기업어음(CP, Commercial Paper) 시장의 팽창을 불러왔다. 은행수신의 경우. 장기수신금리가 먼저 자유화되고 신탁계정의 금리자유화 폭이 컸었다. 그 결과 자금조달비용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발행이 까다롭고 장기금융인 회사채시장에 대한 규제는 지속되고 기업이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는 단기금융인 기업어음 시장에 대한 규제는 철폐되었다. 

따라서, 은행은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고수익자산 중심으로 운용을 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회사채, 국채 등 비교적 안전한 자산보다는 기업어음 등 위험자산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다시말해,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위험도가 큰 기업어음(CP)시장으로 자원배분이 집중된 것이다.   

은행의 경우 장기수신금리가 자유화됨에 따라 장기수신비중이 늘었으며, 상대적으로 금리자유화 폭이 큰 CD 및 신탁계정으로 자금조달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같은 시중금리수준에 비해 평균자금조달비용이 상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자산운영도 금리가 규제된 대출보다는 금리가 자유화된 고수익자산 중심으로 운용하려 하게 되었다. 


  • 1990년 이후, 상대적으로 금리자유화 폭이 컸던 CD·금전신탁 계정으로 은행수신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은행의 자금조달비용은 증가하게 되었다.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7-8

회사채금리의 경우도 비록 자유화되어 있었기는 했으나, 당국의 물량규제로 실질적으로 금리를 규제해왔다. 반면, 기업어음(CP)의 경우 1993년 만기 및 최저금액제한이 완화되었고, 이와 더불어 금리에 대한 행정지도도 완전철폐하였으며, 물량규제도 전혀 없어 실질적으로 거의 완전히 자유화된 금리가 되었다.


따라서 단기여신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어음이 거의 완전자유화된 반면 장기금융인 은행의 대출과 회사채금리에 대해서는 행정규제가 지속됨에 따라 개인과 금융기관의 자금운용이 CP 등 고수익단기금융자산에 크게 몰리고 대출과 회사채보유 등은 상응한 증가를 보이지 않았다. (<표2> 참조).


기업의 자금조달원도 이러한 단기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실제로 이들 기업부문의 자금조달의 flow측면에서 보았을때의 변화는 <표3>과 같다. 


(...)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은행의 신탁자산운용에 대한 규제완화는 (1993년 10월) 신탁자산의 유가증권 보유를 크게 늘어나게 하였다. 은행의 경우 전반적으로 실질적인 금리자유화폭이 큰 신탁계정이 은행계정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였으며, 신탁계정의 자산운용측면에서도 신탁대출보다 유가증권 보유비중이 더 크게 늘어났다. 유가증권 보유에 있어서도 국채와 같은 무위험자산이 줄고, 주식이나 회사채 같은 장기금융보다 기업어음 등 단기채권 보유가 크게 늘어났다.



  • 1991년 이후, 은행들의 고위험 고수익 추구에 따라, 기업들도 회사채·은행대출·기업신용 보다는 기업어음(CP)에 의존해 많은 자금을 조달했다. 기업어음(CP)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을 <표2>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1990년, 기업들의 자금조달 중 기업어음(CP)가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6년, 기업어음(CP)이 차지하는 비중은 17.5%로 증가하였다. 기업어음(CP)에 비해 안전자산인 회사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1.5%에서 17.9%로 감소했다.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4-8

 



※ 국내은행 대출고객 비중에서 5~30대 재벌 & 비재벌기업 비중 증가 

→ 국내금융기관의 자산구성위험도 상승


기업어음(CP)은 만기구조가 짧기 때문에 기업들의 위험도를 키우고 은행대출에 비해 금리가 높기 때문에 기업들의 자금조달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보통의 기업들은 되도록이면 기업어음(CP)에 의한 자금조달을 꺼리기 마련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금융자유화에 따른 자본시장 개방[각주:9]' 이다. 

1990년 초반 자본거래 규제가 완화됨에 따라 해외신용도가 높은 5대 재벌은 국내은행대출 혹은 기업어음(CP)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대신에 금리가 싼 해외차입을 크게 늘리기 시작[각주:10]하였다. 이에 따라 국내은행대출 수요는 줄어들게 되었는데, 그 공백은 5대재벌 이외의 기업들이 메우게 됐다. 국내은행 대출고객 구성에 있어 (5대 재벌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6~30대 재벌과 비재벌기업 비중이 증가한 것이다. 그 결과, 탄탄한 수익구조를 가진 5대 재벌이 아닌 비교적 수익성이 낮고 위험도가 큰 나머지 기업들을 주고객으로 삼게된 국내금융기관의 자산구성위험도가 상승했다. 

  • 1990년대 자본시장 개방 이후, 해외신용도가 높은 5대 재벌들은 국내금융이 아닌 해외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을 늘리기 시작한다. 

  • 그 결과, 1990년대 들어 5대 재벌의 국내부채비율은 줄어들고 해외부채비율은 증가한다. 
  • 줄어든 국내금융 수요는 6~30대 재벌과 비재벌기업들이 메꾸었다. 1990년대 들어 6~30대 재벌과 비재벌기업들의 국내부채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은행의 부채와 자산구조로 보았을 때 부채구조는 다소 장기화된 반면 자산구조는 오히려 단기화하여 은행의 원래기능인 단기부채를 장기자산으로 전환하는 기능이 감소하였으며, 자금조달비용은 상승하고 자산구성 역시 수익성이 큰 자산으로 옮기게 됨에 따라 은행고객의 경우 평균차입비용상승, 조달자금의 단기화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또한 은행의 대출고객 구성에 있어서도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자본거래 규제완화와 더불어 해외신용도가 높은 5대 재벌의 경우 1994년부터 해외차입을 크게 늘이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자본자유화는 상업차관이나 국내회사채 시장개방보다는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직접금융시장에서의 주식 및 사채발행을 우선적으로 자유화함으로써 해외에 지명도가 높은 5대 재벌이 주로 자본자유화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이들의 자금수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여기서 생긴 국내금융의 여유를 보다 수익성이 낮고 위험도가 높은  6~30대 재벌과 비재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확대로 메우게 된다. 그 결과 국내금융기관들의 자산구성위험도는 증가하게 되었다. 

둘째, 여신에 있어서도 고수익자산에 대한 금융기관 간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가계대출 및 중소기업대출 등 고금리대출의 비중이 늘어나게 되었고, 또한 30대 기업의 여신관리에 따라 우대금리의 적용을 받는 대기업들의 은행대출기회는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이들의 단기금융시장에서의 차입확대를 촉진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8-11

비교적 금리가 낮은 해외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한 5대 재벌은 부채부담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아래 첨부한 '<그림 12> 부채의 평균비용'을 보면, 5대 재벌이 부담하는 부채의 평균비용이 크게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6~30대 재벌과 비재벌기업들의 부채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5대 재벌과 달리 국내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이들은) 기업어음(CP) 등 고금리 단기상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자유화에 따른 자본시장 개방 &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커진 기업어음(CP) 시장,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하여 금융의 부실화와 기업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5대 재벌의 경우에는 1992년 이후 부채의 평균비용이 하락하였는데 이는 금리가 싼 해외차입비중이 늘어난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6~30대 재벌의 경우는 부채의 평균비용이 1993년 이후 완만하게 상승하였는데, 이는 전체 시장금리수준의 변동과 더불어 금융시장 구성이 비교적 6~30대 재벌이 많이 의존한 업어음 등 고금리 단기상품쪽의 비중이 크게 발전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

기업의 재무구조측면에서 볼 때, 이미 해외에 널리 알려진 5대 기업과 포철, 한전과 같은 공기업들이 주로 해외자금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해외에 나가 기채할 수 있을만큼 지명도가 알려지지 않은 5재 재벌 이하의 민간기업들에게는 이러한 자본개방은 재무구조 개선에 별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


5대 재벌이 자본거래의 부분적인 자유화로 자금조달원을 해외로 돌리게 되자 국내금융시장에서의 여유가 생기게 되고, 때마침 자율화가 가속화된 국내금융시장이 경쟁심화[각주:11]와 더불어 6~30대 재벌과 여타 비재벌기업들이 국내금융시장에서의 자금조달기회가 확대되었다. 이 규모가 작은 재벌들은 5대 재벌에 비해 그 당시 재무구조가 취약했을 뿐 아니라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내금융기관 자산portfolio의 위험도는 높아지게 되었다. (15-16) (...)



당시 국내금융시장에서의 불균형된 금리자율화는 단기금융시장 특히 기업어음시장의 급속한 성장을 조장하여 전반적으로 기업의 자금조달을 단기화시켰다. (...) 1995년 하반기 이후의 국내경기침체, 교역조건의 악화는 결국 6~30대 재벌의 매출수익과 현금흐름을 더욱 악화[각주:12]시켰으며, 이자지급과 원금상환능력을 크게 떨어뜨려 1997년부터 일련의 부도사태를 야기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금융위기는 지난 약 10년간의 실질임금의 과도한 인상, 기업들의 방만한 투자행태[각주:13]를 조장한 경쟁질서 및 산업정책에 보다 큰 근본적인 원인이 있겠으나, 1993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금융자유화가 기업의 재무구조를 더욱 취약하게 하여 결국은 기업의 부실화, 금융부실화를 재촉한 면도 없지 않았다고 보인다. (17-18)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15-18





※ 취약한 금융감독기능 

- 대기업 연쇄도산이 금융기관 부실화로 이어지는 현상 방치


앞서 살펴본것처럼 1997년 한국 금융시장은 1990년에 시행된 금융자유화로 인해 비은행금융권과 기업어음시장(CP)의 규모가 팽창해 금융시스템 내의 불안정성이 증가되고 있었다. 그리고 국내은행 대출고객구성에서 비교적 수익성이 낮은 5대 재벌미만 기업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금융기관의 자산구성위험도가 상승하는 상황이었다. 


금융경제학 권위자인 Frederic Mishkin은 "금융자유화 financial liberalization 는 대출규모의 급격한 증가 the lending boom 를 불러오고 그 결과 은행들은 고위험성 대출 excessive risk-taking lending 을 늘리게 된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금융자유화 이후 은행들의 고위험성 대출이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Frederic Mishkin은 "① 은행들의 리스크관리 능력부족 ② 금융감독기능의 부재" 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the story starts with financial liberalization that resulted in the lending boom which was fed by capital inflows. Once restrictions were lifted on both interest-rate ceilings and the type of lending allowed, lending increased dramatically. As documented in Corsetti et al. (1998); Goldstein (1998); World Bank (1998); Kamin (1999), credit extensions in the Asian crisis countries grew at far higher rates than GDP. The problem with the resulting lending boom was not that lending expanded, but that it expanded so rapidly that excessive risk-taking was the result, with large losses on loans in the future.


There are two reasons why excessive risk-taking occurred after the financial liberalization in East Asia. The first is that managers of banking institutions often lacked the expertise to manage risk appropriately when new lending opportunities opened up after financial liberalization. In addition, with rapid growth of lending, banking institutions could not add the necessary managerial capital (well-trained loan officers, risk-assessment systems, etc.) fast enough to enable these institutions to screen and monitor these new loans appropriately.


The second reason why excessive risk-taking occurred was the inadequacy of the regulatory/supervisory system. Even if there was no explicit government safety net for the banking system, there clearly was an implicit safety net that created a moral hazard problem. Depositors and foreign lenders to the banks in East Asia, knew that there were likely to be government bailouts to protect them. Thus they were provided with little incentive to monitor banks, with the result that these institutions had an incentive to take on excessive risk by aggressively seeking out new loan business.


Emerging market countries, and particularly those in East Asia, are notorious for weak financial regulation and supervision. When financial liberalization yielded new opportunities to take on risk, these weak regulatory/supervisory systems could not limit the moral hazard created by the government safety net and excessive risk-taking was the result. This problem was made even more severe by the rapid credit growth in a lending boom which stretched the resources of the bank supervisors. Bank supervisory agencies were also unable to add to their supervisory capital (well-trained examiners and information systems) fast enough to enable them to keep up with their increased responsibilities both because they had to monitor new activities of the banks, but also because these activities were expanding at a rapid pace.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2-3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에서 살펴봤듯이, 경제개발단계에서 단순히 국가의 금고 역할을 담당하고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국가의 지시에 의해 부담만 떠안았던 한국의 은행들[각주:14]은 기업신용과 대출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을 잃은 상태였다. 연세대 경제학과 함준호는 "위기이전 우리 금융시스템은 정부의 직간접적인 위험보증 등을 통해 위험을 조절해왔으나, 금융자율화 이후 정부개입 철회의 공백을 대체할 시장규율이 미처 정립되지 못하여 금융시스템 내의 위험조절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라고 말한다. 


위기이전 우리 금융시스템은 상업적 원리에 따른 자본배분보다는 금융저축의 결집과 투자재원의 확보에 보다 주력했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적 중개 위주의 금융기능은 비교적 투자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적었던 60, 70년대의 성장단계에서는 매우 중요시되는 기능이었다. 즉 개발성장 시기에 있어 자본배분기능과 위험조절기능은 금융부문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직간접적인 위험보증 등을 통해 그 기능이 제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 후반부터 90년대에 걸쳐 정부가 점진적이나마 지속적인 금융자율화를 추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원분배기능과 위험조절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던 점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 것인가? (...)


과거 정부개입에 수반하여 제공되었던 광범위한 암묵적 정부보증이 80년대말 이후 90년대에 걸쳐 금융자율화 추진과 함께 비은행부문으로부터 점차 축소 · 철회되기 시작하였으나, 정부개입 철회의 공백을 대체할 시장규율을 미처 정립되지 못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위험조절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가운데 금융저축이 비은행부문을 통해 대기업투자로 중개되었다.


함준호. 2007. '외환위기 10년: 금융시스템의 변화와 평가'. 『한국경제학회』. 5-6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조윤제의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의 '<표 7> 신용평가의 엄격성 비교: 국내신용평가회사와 S&P'를 보면, 1997년 당시 국내은행들과 신용평가사들의 신용평가가 얼마나 느슨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건전성을 감독하는 통합기구의 부재였다. 2013년 현재는 금융감독원이 은행 · 증권 · 보험 등의 건전성감독을 맡고 있다. 그러나 1997년 당시에는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감독하는 기구가 은행감독원 · 증권감독원 · 보험감독원 · 신용관리기금 으로 분산되어 있어 통합감독기구가 부재한 상황이었다.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은 "한보그룹이 거래한 금융기관 수는 70개가 넘었기 때문에, 감독기구의 분산은 한보그룹 부실의 전모를 파악하기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라고 말한다.       


97년 5월 18일 권한은 책임과 함께 주어져야


김인호 경제수석과 윤증현 금융정책실장과 점심을 하면서 6월 임시국회와 관련하여 금융개혁 관련 쟁점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금융감독기구들을 통합하는 쪽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감독기구를 총리실 산하에 두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즉 금융거래 질서유지를 위한 감독기능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명학히 하기 위해서도 관련 기구들은 완전히 통합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보의 경우에 거래한 금융기관 수는 70개가 넘는다. 물론 은행뿐 아니라 종금사, 보험회사 등 모든 금융기관을 상대로 거래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감독을 여러 기관에서 나누어 하게 되면 전모를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자연히 전체를 보면서 '건전하게 운영하는지를 감독' 하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다. 더욱이 금융기관간의 업무 영역의 장벽이 무너지는 추세여서 앞으로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래서 감독기능을 한 지붕 밑에 통합해서 운영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152-153


당시 통상산업부 차관이었던 강만수 또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감독이 부재한 상태" 였다고 밝한다.


당시에 종합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업무가 종합금융회사의 개벌업무에 따라 은행법, 증권거래법, 증권투자신탁업법, 종합금융회사에관한법률, 단기금융업법, 시설대여업법, 외국환관리법, 외자도입법 등에 따라 자금시장과, 산업금융과, 증권업무과, 국제금융과 등에 흩어져 있었고 검사업무도 재정경제원 감사관실,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에 분산되어 있었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감독은 부재한 상태였다. 금융자율화를 위해 규제를 풀었으면 감독은 더 철저해야 하는데 감독마저 풀어버렸다. IMF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규제(regulation)와 감독(supervision)을 혼동하여 모두 다 풀어버렸다고 충고를 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430


1997년 당시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 국장을 맡았던 정덕구는 "1997년 당시 한국의 금융시장은 감독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었고, 한보철강 부도를 시작으로 대기업들의 연쇄도산이 벌어지자 정부는 뒤늦게 금융감독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각주:15]" 라고 말한다.


시스템의 실패다. 풀어 말하면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와 개방이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장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시장의 룰'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시장에서 룰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그 시장은 죽은 시장이나 다름없다. 


축구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축구 경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룰을 잘 지켜야 한다. "반드시 발과 머리, 몸만 사용한다."는 것이 그 룰 가운데 하나이다. 골키퍼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공을 손으로 잡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심판이 경기감독을 느슨하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감독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수들이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 이런저런 반칙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1997년 당시 한국의 금융시장이 그랬다. 시장참여자들이 '시장의 룰'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데도 감독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업들이 국내외 금융기관에서 자기 능력 이상으로 돈을 끌어다 써서 부실대출이 늘어났다. 또 일부 종금사들은 해외에 나가서 달러를 빌려 투기등급의 채권 등에 투자하는 등 리스크를 키워가고 있었따. 그런데 정부는 규제완화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고 감독강화보다는 규제를 푸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한보철강이 부도난 것을 시작으로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 위기에 몰리자 정부는 뒤늦게 금융감독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금융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금융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데다 시작한 시기도 너무 늦고 말았다. 더욱이 기아사태가 터진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의 금융당국을 불신하게 된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110-111


정부는 금융감독시스템 보완 필요성을 뒤늦게나마 깨달았지만 이미 대차대조표 손상[각주:16] 기업부실채권으로 인해 대기업의 연쇄도산이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연결된 상황이었다.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에서 다루었던 대기업군의 연쇄적인 도산이 국내은행위기 Banking Crisis 를 초래한 것이다.


The outcome of the lending boom arising after financial liberalization was huge loan losses and subsequent deterioration of banks’ balance sheets. In the case of the East-Asian crisis countries, the share of non-performing loans to total loans rose to between 15 and 35% (see Goldstein, 1998). The deterioration in bank balance sheets was the key fundamental that drove these countries into their financial crises.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3


97년 7월 22일 특융 대신 국채를 현물 출자하자


한보, 기아 등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부실기업' 문제가 '부실금융기관'의 문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제일은행의 부실채권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255


위기의 그림자는 1997년 초부터 드리웠다. 나는 그림자가 번져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내게는 우울한 한 해였다. 그림자는 짙었고, 나는 무력했다. (...) 

"요즘 은행 대출 부실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닙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전문위원 최범수가 내게 자료를 보여줬다. 은행 대출의 15%가 6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이라는 통계였다. 이 통계가 한 경제신문에 흘러 나가는 바람에 정부는 발칵 뒤집힌다. 정부는 이후 부실채권 관련 통계를 아예 발표하지 못하게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또 다른 위원은 "잠재적 부실까지 따지면 부실채권이 30% 안팎일 것" 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35-36)

(...)

외환은행의 부실이 그렇게 심각할 줄, 그래서 결국 감자까지 해야 할 상황이 오리라곤 짐작도 못했다. 외환은행은 당시 국내 외환거래의 90퍼센트 이상을 맡고 있었다. 환거래를 위해 계약을 체결해놓은 코레스망도 세게적이었다. 기업 금융에 강했고, 인력 수준도 뛰어났다. 그만큼 외화 조달 능력도 뛰어났다. 그런데…….


상황을 제대로 알게 된 건 한 달 뒤인 6월 말, 은행 경영평가 뚜껑을 열고 나서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외환은행의 부실여신은 10조 7,923억 원. 한 달 이상 연체돼 떼일 우려가 큰 돈이 그만큼이다. 평가를 받은 12개 은행 평균(3조 6,470억원)의 세 배. 외환은행 전체 여신의 28.6%나 됐다. 요즘 은행의 연체율이 1퍼센트 미만인 것과 비교하면 말이 안되는 수치였다. 하기야 그럴 만했다. 기업 금융을 많이 했던 게 원인이었다. 당시 국내 기업의 주거래은행은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에 집중돼 있었다. 외환위기로 기업이 흔들리자 두 은행도 덩달아 부실이 커진 것이다. (140)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35-36, 140




※ 국내은행위기( Banking Crisis)가 외채위기(Debt Crisis) · 외환위기(Currency Crisis) ·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로 발전한 원인은?


이번 포스팅에서 확인한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비은행금융권' · '비은행금융권을 팽창시킨 잘못된 금융자유화 순서와 비대칭적 규제' · '6~30대 재벌과 비재벌기업들의 대출증가로 인한 금융기관 자산구성위험도 증가' · '은행들의 고위험성 대출을 막지못한 취약한 금융감독 기능' 등을 통해서,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가졌던 구조적 문제 · 대기업군의 연쇄적인 도산이 국내은행위기(Banking Crisis)를 초래한 원인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1997년 당시의 경제위기를 '1997 외환위기' 라고 부른다.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 외환위기란 무엇인가?' 에서도 언급했듯이, 외환위기(Currency Crisis)란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여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대되는 현상을 뜻한다. 그렇다면 1997년 당시의 경제위기를 '1997 외환위기' 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음 포스팅에서는 국내은행위기( Banking Crisis)가 외채위기(Debt Crisis) · 외환위기(Currency Crisis) ·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로 발전한 원인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최두열. 2002. '비대칭적 기업금융 규제와 외환위기'. 『한국경제연구원』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1.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에 대해서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http://joohyeon.com/169 참조. [본문으로]
  2. 이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http://joohyeon.com/171 참조. [본문으로]
  3. 1997년 들어 문제를 초래하기 시작한 한국경제 특유의 성장방식 (기업들의 차입경영, 금융자원 동원) 은 '고성장' 이라는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에, 경제성장 과정에서 문제삼기 어려웠다. '고성장의 신화'에 가려 감춰져 있던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특히나 '차입경영을 통한 대기업들의 외형확장'은 1997년 대기업 연쇄부도의 주요원인이 됐었다. 이에 대해서는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 대마불사에 익숙해있던 경제주체들 - 한보그룹이 부도처리 됐다고?' http://joohyeon.com/172 참조. 게다가 '금융시스템 낙후' 라는 또 다른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대기업부실'과 연결되어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본문으로]
  4. 이에 대해서는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http://joohyeon.com/172 참조. [본문으로]
  5. 이에 대해서는 밑의 파트 '※ 취약한 금융감독기능 - 대기업 연쇄도산이 금융기관 부실화로 이어지는 현상 방치' 에서 자세히 다룬다. [본문으로]
  6.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http://joohyeon.com/157 [본문으로]
  7. '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http://joohyeon.com/168 [본문으로]
  8. 1997 외환위기 원인을 탐구하는데 있어 경제학계에서는 "금융자유화 순서가 잘못" 이라는 관점과 "금융자유화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시 금융감독체계 전반적인 문제" 라는 관점이 대립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세히 다룰 계획이다. [본문으로]
  9. 이에 대해서는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http://joohyeon.com/170 참조 [본문으로]
  10. 5대 재벌의 해외차입 증가는 국내은행위기가 외환위기로 발전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 참조 [본문으로]
  11.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이 작동하던 시절 국가의 금융자원배분에 따라 (상대적으로 편하게) 영업하던 금융기관이, "금리자유화와 영업자유화"를 맞게 된다면 고위험 고수익 영업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두열은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1998)을 통해, "금리의 자유화는 금융기관들간의 금리경쟁을 격화시켜 예대마진을 축소시켰다. 한편 업무의 자유화는 금융기관의 업무별 영역을 제거함에 따라 그 동안 진입제한에 따라 독점적 지대Rent를 보장해 주었던 금융기관의 영업기반을 취약하게 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에 따라 금융기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성이 악화되게 되었다." 라고 말한다. │ 참고 : '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http://joohyeon.com/168 [본문으로]
  12. 이에 대해서는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http://joohyeon.com/170 참조 [본문으로]
  13. 이에 대해서는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http://joohyeon.com/170 참조 [본문으로]
  14. 이종화, 이영수는 <한국기업의 부채구조-재벌과 비재벌 기업의 비교>(1999) 에서 "한국에서 금융과 기업 간의 관계는 일본, 독일과 마찬가지로 매우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의 메인뱅크제도(main banking system)가 기업지배(corporate governance)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반면, 한국의 금융기관은 이러한 기능이 상실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한국기업의 높은 부채비율은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의 관치금융, 비통화금융기관의 재벌소유, 느슨한 금융감독에 따른 '사금고화' 등의 문제에 더욱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라고 지적한다. 은행과 기업의 관계에 대해서는 추후 포스팅할 계획이다. [본문으로]
  15. 1997년 당시 정부는 ① 중앙은행의 위상 재정립 ② 금융감독기관의 통합 등 금융감독 시스템을 개혁 ③ 예금보험 체계 정비 ④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 방안 ⑤ 은행의 지배구조 개선책 등의 내용이 담긴 '금융개혁법안'을 입안하려 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독립성 여부, 한국은행 소속이었던 은행감독원의 분리여부' 등을 둘러싸고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이 갈등을 빚으면서 1997년 11월 '금융개혁법안' 통과는 무산되고 만다. [본문으로]
  16. 은행 대차대조표상의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현상을 '대차대조표 손상 deterioration of banks' balance sheets' 라고 한다. 신흥국 은행들의 대차대조표 손상은 단순한 은행위기banking crisis와 외환위기currency crisis를 금융시장 전체가 마비된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로 키우게된다. 은행들이 대차대조표 복구를 위해 대출자금을 급격히 회수하기 시작하면 기업들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게다가 국내경제의 건전성에 의심을 품은 해외자본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외환위기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해 금리를 올릴 경우 은행의 부채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자본유출을 막기위한 금리인상을 주저할 수 밖에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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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②]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외환위기 ②]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Posted at 2013. 10. 27. 20:14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1편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앞선 포스팅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1997년 한국경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경제는 '고평가된 원화가치 ·  1996년 -229억 달러, GDP 대비 -4.75%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거시경제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1997년 11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가 발생하고 한국경제는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어떠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를 촉발시켰는지를 살펴보자.


1997 한국의 외환위기의 시작일자는 태국 외환위기가 시작된 7월 · 원화가치가 급락하기 시작한 10월말 · 대규모 국제채권인출 사태가 벌어진 11월 ·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11월 21일 등으로 각각 잡을 수 있다. 그렇지만 주목해야 하는 건 1997년 1월 23일에 발생한 "한보그룹의 부도사태"이다. 동남아 외환위기가 7월에 일어났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경제위기는 그보다 앞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초반부터 연쇄도산한 대기업군을 살펴보면, 1월에 한보그룹(10위)[각주:1] · 4월에 삼미그룹(26위), 진로그룹(19위) · 5월에 대농그룹(44위), 한신공영그룹(58위) · 7월 기아그룹(8위) · 10월 쌍방울그룹(55위), 태영정밀그룹(81위) · 11월 해태그룹(24위), 뉴코아그룹(27위) · 12월 한라그룹(13위) 등이다. 


따라서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한 원인분석은 1997년 초부터 대기업들의 연쇄적인 부도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다. 그렇다면 1997년초 대기업들의 연쇄도산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당시 대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주요원인으로는 원화가치 고평가로 인한 기업 현금흐름의 이상 · 과잉투자로 인한 현금지출 증가 그리고 기업의 차입경영 이라는 한국경제 구조적문제 · 과도한 부채와 높은 금리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 · 단기어음을 통한 자금조달 등을 꼽을 수 있다. 




※ 1996년부터 악화된 수익률 - 원화가치 고평가와 과잉투자가 초래한 문제


수출주도형 제조업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경제 특성상, 원화가치 고평가는 기업의 현금수입을 감소시킨다. 문제는 수출감소로 인하여 기업의 현금수입의 흐름이 감소되고 있는 반면, 기업의 현금지출 요인은 설비투자의 증가로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이다. 현금수입은 줄어드는데 현금지출을 증가하니 기업들의 재무구조는 당연히 악화되었다.  


<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96 >


위에 첨부한 '<표 5-28> 제조업 현금흐름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수출둔화로 인한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23.0% 감소한 반면, 투자활동 현금유출 증가(16% 증가)로 인해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11.5% 감소했다. 그 결과, 1996년 제조업의 현금은 전년도에 비해 -75.1%나 감소했다. 그렇다면 이제 1996 당시 얼마만큼의 과잉투자가 발생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92 >    


1996년 당시 기업의 현금지출을 증대시킨건 기업의 과잉투자였다. 위에 첨부한 '<표 5-26 한국의 설비투자 및 생산능력 관련지표'를 살펴보면, 제조업의 설비투자는 1980년대 후반 GDP 대비 12%~13% 수준에서 19960년대 전반기 15%~16%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1996년도에 16.78%로서 정점에 달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설비투자가 증가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그 동안 과점상태에서 진입이 허용되지 않아던 많은 업종에서 규제완화와 함께 새로운 진입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산업으로는 자동차, 반도체, 철강, 항공, 석유화학 등의 분야였는데 새로 진입한 기업들에 의한 신규투자 외에 신규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기존업체들의 증설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과도한 설비투자가 이루어졌다.[각주:2] [각주:3] [각주:4]


<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93 >    


특히나 철강산업의 경우 1993년~1996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과잉투자가 발생했는데, 1997년 1월 부도처리된 한보철강의 경우 3년 사이 7,440억원의 투자비용이 지출되었다. 당시 한보그룹의 자산규모가 약 5조원 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짧은 기간동안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진 것이다.


<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94 >    


그 결과, '<표 5-27> 제조업 경영분석'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제조업은 1996년 수익성과 재무구조 측면에서 지난 9년간 최악의 성과를 거두었다. 1996년 매출액 증가율은 10.3%로 1995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6.5%를 기록하였다.




※ 문어발식 확장과 차입경영을 통한 재벌들의 몸집불리기 행태 - 한국경제의 구조적문제


무엇보다 당시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분별한 차입경영 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에서도 살펴봤듯이, 한국은 "기업이 독재정권에 정치자금을 대주고 독재정권은 대출을 통해 기업을 밀어주는 과정" 이라는 정경유착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정치권에 계속 접촉하기 위해서는 '기업규모 Firm Size'가 커야한다. 기업들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라도, '규모 늘리기'에 열중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규모늘리기의 결과는 높은 부채비율로 나타난다.


< 출처 : 이상학, 정기웅. 2010. The Political Economy of Financial Structure of Korean Firms. 4-5 >


또한,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에서도 보았듯이, 기업이 부실에 빠지더라도 국가는 사채동결 · 공적자금 투입 등을 통해 기업들을 구제해줌으로써 대마불사의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대마불사의 환경속에서 기업들은 주로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 왔기 때문에, 부동산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한 위험이라고는 거의 없는 risk-free 경제가 한국경제의 모습이었다.     


박종규, 조윤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 위기 이전과 이후>(2002) 논문을 통해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다.


한편 우리 기업의 경영행태는, 특히 재벌기업들이 그러하였지만, 수익 극대화보다는 외형확대에 치중해왔다. 대마불사의 환경에서 기업의 자금조달은 담보대출에 많이 의존하였으므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식 및 채권시장 등 자본시장의 미발달로 자본시장이 기업의 수익증대를 독려할 인센티브가 없었으며, 기업회계의 불투명성과 기업정리, 인수·합병 관련 제도의 미비 등으로 인하여 회사가 어려워도 외부에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진다 해도 주가하락으로 인한 경영상의 위험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결국 과거의 우리경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한, 위험이라고는 거의 없는 risk-free 경제였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은 회사채 보유를 국채보유보다 선호해 왔다. 이는 금융기관들이 국제금리가 다른 채권금리에 비해 너무 낮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은행보증 회사채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가증권이 국채와 다름없이 안전하다고 여겼으므로 구태여 국채라는 안전자산을 따로 보유해야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회사채는, 그것을 발행한 기업의 자산규모가 충분히 크다면, 대부분 안전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자산규모가 얼마나 큰가 하는 점이 기업의 순위를 결정짓는 기준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산규모에 따라 기업들이 "계층화" 또는 "신분화"되어 대규모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시중 자금은 물론 우수 인력과 기술을 거의 독점 할 수 있었다. 신분에 따른 사회적 계층화가 그 사회의 궁극적인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았듯이 자산규모에 따른 기업의 계층화로 인하여 우리경제의 활력도 점차로 상실되었다.


박종규, 조윤제. 2002.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 위기 이전과 이후". 『한국금융연구원』. 14-15


<출처 : David C. Kang. 2002.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18-25 > 


< 출처 : 이종화, 이영수 1999. "한국기업의 부채구조 - 재벌과 비재벌 기업의 비교". 5 >


실제로 한국기업들의 부채비율을 살펴보면, 1997년 말 현재 국내기업의 부채규모는 911조 원으로 GDP대비 1.9배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제조업의 부채/자본비율은 396.3%로서 다른 선진국이나 경쟁국인 대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 4대 재벌의 평균부채비율 295%도 엄청난 규모지만 11위-30위 재벌들의 평균부채비율은 503.85%에 육박한다.


또한, 위에 첨부한 '<그림1 부채-자산비율(Leverage)과 총자산이익률(ROA)>'을 보면, 1989년을 기점으로 한국기업들의 전체부채비율(debt/asset)[각주:5] [각주:6]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게다가 앞서 논의했듯이, 기업들의 수익성악화로 인해 총자산이익률(ROA)는 계속 하락하는데 1996년에는 -0.2%를 기록하였다.   


본 논문 <한국기업의 부채구조 - 재벌과 비재벌 기업의 비교>(1999)를 쓴 이종화, 이영수는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500%가 넘는 30대 재벌의 부채/자본비율에서 나타나듯이 재벌의 문어발식 규모확장 및 과도한 차입으로 부채비율이 높아졌으며, 중복투자로 투자수익률이 계속 하락하였다는 점이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가 외환위기 및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이러한 위기를 겪게 된 배경이 무엇 때문인가에 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연구들은 한국경제에서 고도성장을 위한 관치금융, 그리고 이에 따른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가 기업의 과잉투자 및 금융부실을 가져왔으며, 이것이 현재 위기의 근본원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부실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구제관행이 재벌그룹에게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믿음을 갖게 하였으며, 이것이 투자사업의 위험과 수익률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차입에 의존한 규모확장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재벌그룹의 부채비율을 높이는 동시에 취약한 재무구조를 갖게된 배경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1997년 말 현재 국내기업의 부채규모는 911조 원으로 GDP대비 1.9배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제조업의 부채/자본비율은 396.3%로서 다른 선진국이나 경쟁국인 대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자본축적이 미미하고, 고도성장을 추진하고 있는 경제에서 기업의 부채비율으 높을 수 있으며, 또 금융과 기업 간의 관계가 밀접한 한국경제에서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당연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500%가 넘는 30대 재벌의 부채/자본비율에서 나타나듯이 재벌의 문어발식 규모확장 및 과도한 차입으로 부채비율이 높아졌으며, 중복투자로 투자수익률이 계속 하락하였다는 점이다.


방만한 차입경영에 따른 높은 부채비율은 한국경제가 외생적 충격에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구조를 갖게되었음을 최근의 금융위기가 입증하고 있다. 우선 해외부채(foreign debt)가 많은 기업은 급격한 환율상으로 큰 손실[각주:7]을 입게 되었고, 이것은 기업도산과 금융부실을 초래하였다. 


또한,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은 경기침체 및 금융경색가 같은 경제여건 악화에 대해 쉽게 대처하지 못한 것 역시 현재의 어려움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한 급격한 이자율상승은 기업 자본조달비용의 급상승을 가져와 많은 기업이 도산하게 되는 유동성 위기(liquidity crisis)[각주:8]를 겪게 되었다.


이종화, 이영수 1999. "한국기업의 부채구조 - 재벌과 비재벌 기업의 비교". 2


1997 외환위기 발생 이후, 경제위기를 수습하고 한국경제 구조개혁을 담당했던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기업들의 과도한 차입경영을 방지하기 위해 '부채비율 200% 미만' 유지를 기업들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기업들은 일제히 "부채비율 200%는 못 맞추겠다" 라고 아우성 이었다. 그 동안 경제성장을 달성해오면서 무분별한 차입경영에 둔감해진 기업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부채비율 200퍼센트[각주:9]는) 1998년 4월,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취임하며 던진 기업 구조조정의 가이드라인이었다. "내년 말까지 부채비율이 200퍼센트를 넘는 기업은 도태될 겁니다.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나는 재벌 개혁을 두고 '야생마 길들이기' 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야생마를 길들이겠다고 처음부터 올라타면 다친다. 울타리를 쳐놓고 조금씩 좁혀가며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 부채비율 200퍼센트는 재벌을 옭아매는 담 중 하나였다.


200퍼센트, 사실 정교한 계산을 통해 나온 기준은 아니었다. 해외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을 검토해 정했다. 당시미국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100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다. 일본이 150~200퍼센트 사이였다. 200퍼센트,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들린다. 이미 시장의 법칙이 돼서 그렇다. 지금 부채비율이 300퍼센트쯤 되는 기업이 있다 치자. 모두 '불량 기업' 이라고 인식한다. 주가가 떨어지고 추가 대출이 막힌다. 이것이 시장의 감시다.


그땐 아니었다. 30대 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이 518퍼센트였다. 1000퍼센트를 넘나드는 회사도 있었다. 그걸 확 끌어내리라니 자연히 반발이 심했다. 대기업들이 대놓고 "우린 못 한다"고 나왔다. 4~5년 말미를 주면 몰라도 2년 안에는 절대 200퍼센트를 못 맞추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에게 직접 말하진 못했다. 금감위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다. 나는 아예 기업인들은 만나질 않았다.


그러니 은행에 호소했다. 금감위가 각 그룹에 "5월 초까지 주거래 은행에 제출하라"고 지시한 재무약정 자료, 15대 그룹은 일제히 "부채비율 200퍼센트는 못 맞추겠다"는 자료를 냈다. 어떤 그룹은 "건설·중장비 회사 특성상" 또 다른 그룹은 "막 인수한 회사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라며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플레이도 잇따랐다.


나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부채비율이 높은 계열사를 팔거나, (그 회사를 살리고 싶으면) 다른 계열사를 팔면 됩니다." 나는 공개 석상에서 재벌을 압박했다. 왜 위기가 왔는가. 원칙도 두려움도 없이 성장만 쳐다보고 달려서다. 이제 그 원칙을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과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 장관은 "실속있는 기업 몇 개를 팔아서라도 부채비율을 맞추라"고 기업을 다그쳤다. 강 수석은 "계열사별 비율은 조정하더라도 그룹 전체가 200퍼센트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270-272    




※ 부동산가격 상승과 차입경영에 의해 지탱되던 한국경제 

- 부동산가격 하락과 높은 대출금리로 인한 금융비용의 증가


앞서 살펴봤듯이, 1996년 한국경제는 무분별한 차입경영에 둔감한 기업들이 원화가치 고평가로 인해 현금수입이 감소하고 과잉투자로 인해 현금지출은 증가해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황이었다. 또한 과잉투자는 단순한 현금지출증가 뿐 아니라 투자효율성을 낮추어 엄청난 규모의 부실 자산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더해 기업의 담보가치를 제공해주던 부동산 가격하락이 지속되어 기업의 재무구조는 더더욱 악화되어 갔다. 기업의 수익성은 떨어져가고 담보가치를 제공해주던 부동산가격도 하락한다? 이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 달성에 큰 도움을 주었던 '기업들의 차입경영'이 문제를 초래하기 시작한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과도한 부채'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박종규, 조윤제는 "기업의 담보가치는 더 이상 상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손실을 자산가치의 상승을 통해 상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라고 지적한다.  




수익성 여부에 개의치 않는 외형확대를 위한 투자를 장기간 지속하다보니 투자 효율성은 낮아진[각주:10] 반면 자금과 인력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확대됨으로써 경제전체적으로 항상 인력과 자금이 모자라게 되어 자본수익률을 넘는 고금리, 노동생산성을 넘는 고임금이 지속되었다. 기업들은 고임금, 고금리, 고임대료에 의해 영업활동에서 손해가 났으나 공장이나 건물 등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자산가치를 증식하고 이를 담보로 더 많은 대출을 받아 다시 공장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자산 수익율은 더 떨어져 경제의 불균형 상태는 더욱 심화되어 갔다. 투자를 확대하면 할수록 실제 영업손실은 더 깊어지는 상황이 오래 지속된 결과가 바로 위기 이전 우리경제가 안고 있던 엄청난 규모의 부실 자산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제개발 이후 계속되던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1991년 하반기 들어 소폭이나마 하락세로 반전되기 시작하였다.(<그림8>, <그림9> 참조) 즉 1991년 하반기부터는 그동안 한국경제의 성장방식을 유지해온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이던 '부동산버블'이 더 이상 커지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담보가치는 더 이상 상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손실을 자산가치의 상승을 통해 상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과거의 관행을 관성적으로 유지하여 왔으며 자금과 인력에 대한 높은 수요도 줄어들지 않음으로써 고임금과 고금리, 고임대료 등 왜곡된 상대가격 체계도 별다른 조정을 받지 않은 채 1997년말 외환 및 금융위기가 도래하기까지 지속되었다. (...)


되돌아보면, 대략 이 시점, 즉 1990년대 초부터 한국경제는 새로운 방식의 성장패턴을 추구해 나가기 시작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대략 이 시점부터 해외투자자들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이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1991년부터 해외자본의 유입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우리 스스로의 구조개혁을 모색했어야 했던 시점에서 정책당국이나 일반 국민들은 한국경제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over-confidence)과 함께 경제의 흐름에 대한 착시현상을 가지게 되어 스스로의 개혁보다는 오히려 '개방화시대에 대규모 해외자본유입을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가', '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하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류가 되기 위해 어떤 투자를 늘이고 어떻게 경쟁의 우위를 선점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 관심을 집중하였었다. 


박종규, 조윤제. 2002.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 위기 이전과 이후". 『한국금융연구원』. 14-17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에서 살펴봤듯이 한국경제는 '요소투입의 증가'에서 논의했듯이 한국경제는 '요소투입의 증가', 즉 투자investment 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해왔다. 투자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니,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 금융시장은 만성적인 자금수요가 존재했고 따라서 높은 금리수준을 유지했다. 기업의 수익성이 양호하고 부동산가격 상승이 지속됐을때는 '과도한 부채 · 높은 금리로 인한 금융비용' 이 문제시 되지 않았지만,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부동산가격 상승이 멈추자 '금융비용 증가'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금융비용의 증가는 기업의 경상이익률[각주:11] 하락을 초래했다. 1996년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은 1.0% 로서 1996년 중 금융비용 부담의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 출처 :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4 >

  • <[표 1-1] 국가별 금리 · 임금 · 지가 및 물류비 비교>를 보면, 한국의 실질금리가 미국·일본·대만에 비해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94 >  


박종규, 조윤제는 "대출금리 수준 자체가 높을 뿐 아니라 대출규모도 막대하였기 때문에 금융비용의 부담이 매우 높았다" 라고 지적한다.    


국제금리가 5~7%일 때 국내금리는 우리기업들의 투자수익률보다 높은 수준을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예를 들어 제조업의 평균 대출금리는 1990년대 들어 11~13%, 회사채 수익률은 12~18%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이렇게 대출금리 수준 자체가 높을 뿐 아니라 대출규모도 막대하였기 때문에 금융비용의 부담이 매우 높았다. 그 결과 금융비용의 매출액 대비 비중도 1990년대 제조업의 경우 6%에 가까워 기업의 총자산 영업이익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지만 금융비용등을 차감한 총자산 경상이익률은 영업이익률에 비해 대폭 줄어들고 있었다


박종규, 조윤제. 2002.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 위기 이전과 이후". 『한국금융연구원』. 30-31




※ 제2금융권을 통한 단기자금조달의 증가 

- 대기업 연쇄도산의 파장이 커지게 된 원인


위에 논의했던 것을 종합하여 1996년 한국경제를 이해하자면, 차입경영을 통해 몸집불리기로 성장해왔던 한국기업들이 원화가치 고평가와 과잉투자로 인해 현금흐름이 나빠진 상황에서, 부동산가격 하락과 금융비용 부담증가로 인해 재무구조가 더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은 필요하다. 기업들은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통해 단기자금조달을 늘리기 시작한다. 


<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96 >  


'<표 5-28> 제조업 현금흐름표'를 살펴보면, 1996년 단기차입금은 전년대비 43.9%나 증가했고, 회사채를 통한 현금유입도 전년대비 43.8%나 증가했다. 즉, 1996년 중에 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어 영업활동에 필요한 현금이 부족해진 데다가 투자활동에 소요되는 현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주로 단기차입금 및 회사채 발행에 의하여 현금을 유입하였기 때문이다. 


<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200 >      


'<표 5-33> 기업의 자금조달 내역 추이'를 보면 기업 자금조달 구조의 악화를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1996년 기업의 자금조달에서 은행 등을 통한 간접금융이 아니라, 기업어음 · 회사채 발행을 통한 간접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였다. 설비투자 증가로 인한 현금유출의 증가와 원화 고평가 및 시장개방 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기업 자금조달 구조의 악화로 나타난 것이다. 


기업어음 · 회사채 등은 은행대출보다 금리가 높기 때문에 기업들에 있어 높은 금리부담의 문제가 발생한다. 즉, 기업의 자금조달 구조 중 기업어음에 의한 조달비중이 상승하였다는 것은 조달자금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것으로서 1997년 초반부터 대기업군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각주:12]


<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204 >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이 대다수 자금을 종금사 등의 제2금융권을 통해 조달하였다는 것이다. 위에 첨부된 '<표 5-34> 금융권별 10대 부실기업 여신현황'을 살펴보면 1997년 부도처리된 10대 기업들의 여신 상당수가 종금사 등의 제2금융권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최두열. 2002. '비대칭적 기업금융 규제와 외환위기'. 『한국경제연구원』. 93-94 > 


이들 제2금융권의 무담보 기업어음에 의한 여신은 단기일 뿐만 아니라 담보에 바탕을 두지 않기 때문에 기업에 이상 징후가 발생하였을 경우 갑작스런 여신회수에 돌입하므로 부도가 급증하게 된다. 위에 첨부한 '<표 19> 부도 대기업규모군의 차입금 현황'을 보면, 1996년에 비해 1997년 어음차입금 규모가 급락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부실대기업군에 대해 제2금융권이 갑작스런 여신회수를 시행했음을 나타낸다. 기업어음에 의한 자금조달의 문제 만기구조가 단기일 뿐만 아니라 여신회수가 즉각적이라는 점이 1997년 초반부터 발생한 대기업군의 연쇄적 도산에 대한 중요한 설명이 될 수 있다.[각주:13]




※ 대마불사에 익숙해있던 경제주체들 

- 한보그룹이 부도처리 됐다고?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과 위에서도 논의했듯이, 그동안 한국경제는 기업의 부실이 생겼을때 부채를 탕감해주거나 공적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왔다. 대기업이 부도처리 되는 것에 익숙치 않았던 상황이다.


그런데 1997년 초반, 수익성 악화 · 과잉투자 · 차입경영 · 제2금융권을 통해 조달한 단기차입금이 문제가 되어 한보그룹이 부도처리 되었다. 당시 한보그룹의 자산은 약 5조원인 반면 총부채는 6.6조에 달하였다. 이와 같이 막대한 부실규모는 우리 경제 전체에 큰 부담이 되었고 1997 외환위기의 시발점이 됐다. 


더 큰 문제는 해외자본들에게도 한국 대기업의 부실처리가 익숙치 않았던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기업의 부실이 발생할 경우 정부주도로 처리가 됐었기 때문에 해외자본들은 손실을 전혀 부담해 오지 않았었다. 해외 자본들은 비단 한보그룹과 연관된 금융기관 · 기업들 뿐 아니라 한국경제 전체의 건전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김대중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인) 이규성은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한보의 부도는 해외자본에도 큰 충격이었다. 이에 더하여 은행도 부도 처리될 수 있다고 청와대 당국자의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자 충격은 더욱 증폭되었다. 당시까지 한국은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부실이 발생할 경우 시장에 의하여 부도처리되기보다는 정부주도로 정리해왔으며, 이 때 해외자본들은 손실을 전혀 부담하지 않았다.


이러한 보도가 있은 후 일본에서는 몇몇 한국계 은행의 현지지점들이 일본계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단기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수습에 나선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는 2월 초에 한국계 은행의 해외지점에 대한 지불능력을 책임지겠다고 언론에 발표[각주:14]하기도 하였다.


해외 자본들은 비단 한보에 대출한 금융기관이나 한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 전반에 걸쳐 건전성에 대하여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1997. 2월 초에는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가 한국의 경제 위기감 고조라는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헤럴드 트리뷴(Herald Tribune) 등 외국 신문들이 한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무디스(Moody's)는 1997. 2. 20일 한보에 대한 거액대출로 금융부실이 가시화된 조홍· 제일 · 외환은행의 장기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하향조정하였다.


이와 같은 사태의 진전은 국내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였다. 이제 한보그룹의 협력업체 뿐만 아니라 일반 중소기업들까지 자금조달을 어렵게 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금융기관들은 부실을 우려하여 기업대출에 소극적이고 경직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이에 더하여 3. 19일에 발생한 삼미그룹의 부도는 국내외 금융기관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7-8


이규성은 뒤늦게나마 "왜 한국경제가 차입경영 · 대마불사 등의 구조적문제를 개혁하지 못했는지"를 돌아본다. 차입경영과 대마불사는 한국경제의 고성장을 이끈 방식이기도 했는데, 바로 이러한 '고성장의 혜택'에 가려 문제를 개혁하지 못했다[각주:15]고 반성한다.


놀랍게도 1970~80년대에 추진하였던 기업 및 금융개혁정책을 보면 1997년의 경제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과 내용이 거의 같은 것들이었다. 정부가 이처럼 일찍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혁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그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경제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여기에는 첫째로 당시의 우리 사회가 고성장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 1970~80년대의 정권들은 정권창출 과정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상징적인 좋은 치적이 필요하였으며 고성장은 가시적 성과를 나타낼 수 있는 좋은 표적이었다.


재벌들의 입장에서는 파산의 위험만 정경유착을 통하여 해결하면 차입에 의한 외형확장은 더 없는 부의 축적방법이었다. 근로자들에게는 고성장에 의한 일자리 마련이 가장 중요한 복지정책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기업구조개혁의 당위성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데 실패하고 고성장의 신화속에 매몰되었다. 결국 기업구조 개혁은 기업의 부실이 사회적으로 큰 과제로 떠오를 때마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정책으로 전락하였다. (...)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가 고성장을 선호하고 시장제도의 미확립으로 인하여 재벌 중심의 경제시스템이 성장추구에 효율성을 갖는 상황에서는 기업구조개혁이 제대로 추진될 수 없었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79-81




※ 제2금융권을 통한 단기자금 조달이 용이해진 배경은 무엇일까?


이 글을 읽고난 뒤 몇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대기업들의 차입경영과 대마불사 신화는 그동안 한국경제 성장과정의 산물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대기업들이 제2금융권을 통해 단기자금 조달을 늘리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한국경제 특유의 성장과정이 금융시스템의 미발전과 제2금융권 발달이라는 문제도 낳긴 했지만, 적어도 1990년대 들어서는 금융시장 건전성 감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제2금융권을 통한 자금조달이 용이해진 배경은 무엇일까? ② 기업어음(CP) 등을 이용한 단기자금 조달이 용이해진 배경은 무엇일까? ③ 제2금융권을 통한 단기자금 조달 증가로 금융시스템 내 불안정성이 커지는 가운데, 금융감독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다음 포스팅에서는 '경제성장과정에서 비은행금융권이 발달한 한국 금융시장' · '잘못 적용된 금융자유화 순서' ·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제2금융권을 통한 단기자금 조달의 증가' · '금융감독 시스템의 미흡' 등등 1997년 당시 한국 금융시스템이 가졌던 구조적문제에 대해 다루겠다.



 

<2편 참고자료>


1편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2013.08.18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2013.10.25


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2013.10.13


이상학, 정기웅. 2010. 'The Political Economy of Financial Structure of Korean Firms'


David C. Kang. 2002.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최두열. 2002. '비대칭적 기업금융 규제와 외환위기'. 『한국경제연구원』


박종규, 조윤제. 2002.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 위기 이전과 이후'


이종화, 이영수 1999. '한국기업의 부채구조 - 재벌과 비재벌 기업의 비교'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1. 대기업 군의 서열은 1996년도 금융, 보험업을 제외한 기업집단의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출처는 최두열. 2002. "비대칭적 기업금융 규제와 외환위기". 한국경제연구원. 88 [본문으로]
  2.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93 [본문으로]
  3. 자동차산업의 경우는 기존의 현대, 대우, 기아 외에 삼성자동차의 진입이 1994년 말 허용되어 1995년부터 설비투자에 들어갔다. 석유화학의 경우 1990년 이후 투자가 전면 자유화됨에 따라 기존의 업체들뿐만 아니라 신규업체들도 대규모 신․증설 투자를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부품목의 공급과잉과 업체간 과당경쟁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억제하기 위하여 1992년 3월「석유화학공업 수습 안정대책」을 수립하여 다시금 시설과잉 부문에 대한 신규투자 억제를 실시하였다. 항공산업의 경우는 1993년 7월 신경제 5개년계획에 중형항공기 개발계획이 반영된 이후 설비투자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철강의 경우도 한보철강을 비롯한 각사가 설비의 증설투자에 들어갔다.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93 주석 108 [본문으로]
  4. 이러한 중복과잉투자는 김대중정부가 '빅딜'정책을 시행하는 배경이 되었다. [본문으로]
  5. 저자인 이종화, 이영수는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은 총부채/총자기자본으로 정의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부채비율을 총부채/총자산의 개념을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이러헥 총부채/총자산의 비율로 부채비율을 정의하여 사용한 이유는 총부채/총자기자본으로 정의하여 사용하는 경우 '자본잠식' 기업의 경우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본잠식' 기업은 전체분석기업 중 3%에 해당하나, 이 중에는 총부채/총자기자본이 -40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도 포함되어 있어 평균값을 구하거나 회귀분석을 하는 경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잠식' 기업 역시 분석자료에 포함시키기 위해 총부채/총자산을 부채비율로 정의하여 사용하였다." 라고 덧붙인다. │이종화, 이영수 1999. "한국기업의 부채구조 - 재벌과 비재벌 기업의 비교". 5쪽 각주 7 [본문으로]
  6. 부채비율을 산출하는 일반적인 기준인 부채/자본 비율에 비해 부채/자산 비율은 수치 자체가 절대적으로 낮은값을 기록하게 된다. 이 점을 유의하고 살펴봐야한다. [본문으로]
  7.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은행부채의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로 되어있을 때,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여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키는 것'을 '신흥국 대차대조표 위기 Balance Sheet Crisis'라 불렀다. │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본문으로]
  8. 이러한 현상은 신흥국의 외환위기를 체계적 금융위기로 심화시킨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보통 금리를 올림으로써 통화가치를 상승케 하는데, 금리를 인상할 경우 은행의 부채부담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 그러나 신흥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가치는 더욱 커지게 되고 기업과 은행의 부채부담을 증가시킨다. 그 결과, 은행은 고객들의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하게 되고 금융시스템 자체가 마비된다. 금융경제학 권위자인 Frederic Mishkin은 논문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1999)를 통해 "A currency crisis and the subsequent devaluation then helps trigger a full-fledged financial cris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because of two key features of debt contract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debt contracts both have very short duration and are often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These features of debt contracts generate three mechanisms through which a currency crisi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ncreases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in credit markets, thereby causing a financial crisis to occur." 라고 말한다. │ 이에 대해서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9. 여기서 말하는 부채비율은 '총부채/총자기자본'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10. 이에 대해서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의 '※ 요소투입증가, 즉 과잉투자가 초래하는 경제적 문제들' 참조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11. 경상이익=영업이익-이자비용 [본문으로]
  12. 2013년 현재에도 한국경제는 '기업어음(CP)을 통한 자금조달'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http://joohyeon.com/168 참조 [본문으로]
  13. 출처 :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200-201 [본문으로]
  14. 이러한 정부 혹은 한국은행의 지불보증은 1997년 11월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포스팅. [본문으로]
  15. 이런 인식은 1997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방식에 큰 차이를 낳는다. 1997 외환위기가 발생한 주요원인은 '한국경제 구조적 문제' 라고 주장하는 측은 "강도높은 개혁을 주장"하고, '단순한 유동성 위기' 라고 주장하는 측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외화자금을 확보하면 됐을 뿐" 라며 반박한다. '1997 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한 입장'과 'IMF가 내건 구제금융 조건들- 긴축정책과 자본시장 개방-이 타당했느냐'에 대해서는 추후에 포스팅할 계획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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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Posted at 2013. 10. 25. 00:05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대한민국 주식회사 Korea, Inc. - 경제발전을 위해 나아가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살펴봤듯이, 한국경제는 국가가 금융자원을 동원 control over finance 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 


경제개발 단계에서 한국정부가 금융자원을 동원한 이유[각주:1] 중 하나기업가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한국경제는 수출지향 산업화전략 export-oriented strategy 을 통해 경제발전을 꾀했었다. '수출지향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 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정부는 수출기업들에게 더 많은 금융자원을 배분함으로써 수출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였다. 당연히 기업가들은 이에 반응하여 수출규모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즉, 은행국유화를 통해 금융자원을 장악한 정부는 정책금융 policy loans 을 이용하여 기업가들이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 national interests 을 위해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 한국경제 개발시기, 수출기업들은 내수기업 보다 좀 더 쉽게 금융자원이용에 접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정부는 기업가 뿐만 아니라 은행에 대한 통제도 시행하였다. 수출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은행장을 호출하거나, 기업부문에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경우에는 수출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도록 지시한다. 금융의 본래 목적인 자원재분배 re-distributional 보다는 경제발전 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온 힘을 쓰게 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경제개발단계의 한국은 '대한민국 주식회사 Korea, Inc.' 나 마찬가지였다. 은행은 재무부서, 산업부문은 생산·마케팅부서, 정부는 총괄기획부서 였던 것이다. 


As they shaped their initial concept of industrialization, their immediate thought was how the government could be used to mobilize funds and support industrial investment. They wanted to control the behavior of industrialists in an effort to make their economic activities conform to national interests. Consequently, they needed governance control tools; "control over finance" became the major policy instrument for effecting the decision-makers' concept of industrialization. (...) (14)


Credit policy is formulated as part of development strategy; as such, its effectiveness is determined within the overall structure of industrial and macroeconomic policy. Korea's credit policies were well coordinated with its industrial policies. Korea wanted to pursue industrialization, and it realized that, given its small domestic market but relatively well-trained human resources, it could do so only by adopting an export-oriented strategy.


Credit, industrial, and macroeconomic policies were all geared toward this goal. Compared with many other developing countries whose credit policies are oriented primarily toward re-distributional purposes (or which lack a clear focus, so that almost all sectors are targeted, which is tantamount to targeting none), Korean credit policies were sharply focused on promoting exports and provided the support necessary to enable industry to pursue this goal. (...) (15-16)


In the early 1960s, the government adopted several measures to strengthen state control over financing. In particular, it nationalized commercial banks. (...) Chaired by the president, monthly export promotion meetings and monthly briefings on economic trends constituted a forum for ministries and the private sector to monitor the progress of economic policy and to build consensus on ways to address emerging problems. (17)


This style of economic management resembled the operational mode of a corporation - in this case, Korea, Inc. Within this management partnership, banks served as the treasury unit, the industrial sector as the production and marketing units, and the government as the central planning and control unit. (18)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14-18 (PDF 파일 기준)


It is not easy to define policy-based loans in Korea. Because all major banks were owned by the government, which also set the interest rates for bank loans substantially lower than the market rate, all bank loans could be considered policy loans. (...) (76)


These loans were usually made according to the government's assessment of the progress of specific key projects and the constraints facing specific firms or industries. The decisions were usually made in consultation between the government and business sectors, and after close monitoring of progress by the government. 


For example, when the government assessed the progress of plant constructions for the chemical industry complex and found that they were well behind schedule because the lending banks were providing insufficient support, it summoned the bank presidents and asked them for greater cooperation in supporting the project. 


Moreover, when exporters reported in the monthly export promotion meetings that the international market was slow and that they had begun accumulating inventory, the government urged bankers to extend greater working capital credit to exports. In many cases, the establishment of new credit programs was also the product of this close consultation between government and business. (77) (...)


Control over finance confers some explicit governance rights to the government over the borrowers for the entire period of loans. Credit policies allow the government to allocate subsidies flexibly, according to the performance of supported firms or industries. In turn, such control extends to refinancing decisions - whether or not existing debt should be rolled over or new debt extended, and, if so, at what conditions. 


Well-measured refinancing decisions provide incentives? : good performance can be rewarded with continued or expanded support ; or a inappropriate use of funds is punished with a reduction in or even termination of support a threat that may make the survival of firms untenable. This carrot and stick policy underlying credit programs makes them an effective tool of government industrial policy - more effective than fiscal incentives, which stem from legislative initiation and are subject to rigidity of the implementation process. (106)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76-106  (PDF 파일 기준)




※ 정부의 지급보증 덕분에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이 고양된 기업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control over finance' 이 가지고 온 또다른 효과이다.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자본투입 증가에 따른 경제성장은 부채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당시 한국기업들도 경제성장과정에서 과도한 부채를 지니게 되었었다. 일반적인 경제라면 과도한 부채를 지닌 기업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파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는 금융자원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의 대출상환촉구에 따른 기업부도는 일어나지 않았었다. 오히려 정부의 지급보증 덕분에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를 지더라도 정부가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파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위험성이 risk 큰 사업에 과감하게 뛰어들게 된다.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이 고양된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더이상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장기적인 관점 a long-term business perspective 에서 사업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지금 당장의 수익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산규모 극대화와 (장기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일종의 리스크 파트너 a risk partner of industrialists 역할을 맡으면서 실패에 대한 위험성 risk of failure 를 줄이는 정부-기업-은행의 공동보험체제 a government-industry-bank co-insurance scheme 가 성립된 것이다.  


The impact of credit policies on economic growth is not limited to their impact on the cost of and access to credit. In an economy such as Korea's, in which the expansion of investment was financed by bank credit and foreign loans, the financial structure of firms was highly leveraged. By controlling finance, the government could become an effective risk partner of industrialists and could motivate their risk venture and entrepreneurship. 


It could induce the industrialists to take a long-term business perspective, while a competitive financial market may have prompted firms to take a shorter-term view. In other words, by controlling financing, the government established a government-industry-bank co-insurance scheme to protect industrial firms from shocks. This indirect impact of government credit policy may also have been an important determinant of the rapid industrialization of Korea. (105) (...)


But credit policies carry their own risk - the "risk of government failure." In Korea, the government's continuous communication with business leaders and close monitoring of firms through various channels (such as monthly export promotion meetings) helped reduce its risk of failure. Moreover, by controlling the banks, the government created incentives for firms to maximize their assets and growthrather than to strive for immediate profitability. (106)-(107)


As far as they satisfied the government by expanding exports and successfully completing plants, firms ensured their continual credit support and survival. As such, the government mitigated its risk of failure by adopting a sounder, more stable investment environment. (107)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105-107  (PDF 파일 기준)




※ 경제성장으로 이어진 경제주체들의 리스크분담 risk-sharing


그러나 정부가 금융자원을 통제하여 기업들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만다. 과도한 부채를 보유하게 된 기업들은 내부 · 외부충격에 취약한 상태 vulnerable to internal and external shocks 였는데, 자본투입 성장 정책의 부작용[각주:2]세계경기 둔화를 맞아 기업들이 무더기로 부실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장규는 저서 『대통령의 경제학』에서 당시 한국경제 상황을 전하고 있다.


 해방 이후 막대한 원조를 통해 '대한민국 만들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국은 한국이 원조시대를 끝내고 차관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오히려 인색한 나라가 됐다. (...) 이런 마당에 박정희가 1962년 기업들의 상업차관 도입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는 정책을 결정한 것은 합리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사업은 기업이 벌여라. 책임은 정부가 진다'는 식이었다. (...)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무리한 정책추진의 부작용이 왜 없었겠는가. 외국자본이 들어와도 공장이 지어지고 수출이 늘면서 경제가 눈에 띄게 달라져 갔다. 그러나 세계경기가 불황이 되면서 차관기업들은 무더기로 부실사태를 빚었다. 환율과 금리 부담 속에 기업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기업의 부실은 이들한테 물린 은행들까지 연쇄도산 위기로 몰고 갔고, 결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상황으로 번져나갔다.


1969년 재무부는 83개 차관업체 중에서 45%가 부실기업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결국 청와대에 부실기업정리반이 조직돼 30개 기업을 도산시켜야 했다. 한국 수출 산업의 선구자로 존경받던 전택보의 천우사도 이때 문을 닫았다. 


이장규. 2012. 대통령의 경제학』. 144-147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결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상황" 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1997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정부는 4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1969년~1970년 · 1972년 · 1979년~1981년 · 1984년~1988년)을 시행하였다.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정부는 이장규가 쓴 문구처럼 "정부가 구제금융 · 사채동결 등의 방식으로 직접 금융시장에 개입함으로써 the government made these bailouts by intervening in credit markets" 기업부실문제를 해결해왔다.


이러한 기업 구조조정에서의 직접적인 정부개입은 경제주체들이 경제전체의 리스크를 분담 risk-sharing 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직접 기업의 부채를 탕감해준 8·3 사채동결조치는 기업의 부담을 채권자인 은행에게 전가시킨 정책이다. 은행의 부담은 고스란히 예금자인 국민에게 이어진다. 그렇지만 부채탕감의 혜택을 입은 기업들이 수익을 다시 내기 시작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민들은 경제성장 · 일자리 · 임금인상 이라는 혜택을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해, 경제주체들의 리스크분담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Industrial investment in Korea was financed largely by debt, especially during the period of rapid economic growth. Fiscal incentives and low interest rates allowed some firms to accumulate retained earnings, but, in the absence of well-functioning domestic equity market, huge investment requirements for rapid industrial expansion had to be financed largely with bank loans and foreign debt. During 1963~71, the debt ratio of the Korean manufacturing sector increased by more than four times, from 92 percent to 394 percent (Box 2, Table C). (107)


Even in the 1990s, Korean firms remain highly leveraged, although their debt ratio in the second half of 1980s declined somewhat with the expansion of the stock market. Consequently, Korean firms became more vulnerable to internal and external shocks. In fact, Korea could have undergone several financial crises had the government not actively become involved in risk management through credit intervention.


The government undertook major corporate bail-out exercises in 1969~70, 1972, 1979~81, and 1984~88 to ride out recessions and avoid major financial crises. In a credit-based economy, the government made these bailouts by intervening in credit markets. The government's involvement in restructuring firms and industries, and in redistributing losses make risk-sharing among the members of the economy possible. Depositors usually took the lion's share of this cost, but they were rewarded subsequently with steady economic growth, increased job opportunities and as wage earners. (...) (108)


In a credit-based economy, creditors and borrowers should share some risk, otherwise, financial crises recur with economic downturns. In Korea, the government was directly involved in risk sharing by intervening in credit markets, as such, bank credit constitutes the primary source of risk capital through government involvement. (114)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107-114  (PDF 파일 기준)




※ 재벌들의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의 지급보증과 리스크 분담


앞서 살펴본것을 정리하자면, 금융자원을 통제하고 기업운영의 보증을 선 정부는 기업의 리스크를 줄임으로써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을 고양시켰고 기업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도록 도왔다. 또한 기업구조조정에 적극개입한 정부는 기업부실로 인해 생긴 리스크를 경제주체들이 분담케 함으로써 경제성장의 동력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금융자원을 통제하고 기업운영의 보증을 선 정부'가 한국경제의 좋은 영향만 끼쳤을까?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언급했다시피, 정부의 지급보증은 은행과 기업들의 도덕적해이와 대마불사(大馬不死, too big to fail) 문제를 초래한다.


경제개발단계에서 단순히 국가의 금고 역할을 담당하고,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국가의 지시에 의해 부담만 떠안았던 한국의 은행들[각주:3]은 기업의 경영상태를 평가하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 기업의 경영상태를 평가하지 못하는 은행은 무차별적인 대출을 할 수 밖에 없다. 1997 외환위기 이후, 은행을 통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회고록 『위기를 쏘다』 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1998년 2월 9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실에 들어서자 좌중의 눈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 내가 이날 전한 메시지는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번 주말까지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해 주십시오. 그 계획대로 구조조정을 실천해 주십시오. 결과는 시장이 평가할 것입니다."


바로, '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다. DJ 정권의 재벌 다루기가 첫 단추를 끼우는 자리였다. 구조조정 계획을 받기만 하면 된다. 내용은 상관없다. 기업 스스로 구조조정을 만들게 하는 것, 그래서 주거래 은행이 그 계획을 점검하게 하는 것, 이게 핵심이었다. 그 순간 기업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은행에 맡기게 된다. 은행을 우습게 알던 때였다. 웬만한 은행장이 대기업의 자금 담당 이사를 만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63-64) (...)


이미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시절부터 '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을 약속한 터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각 은행에 "각자의 판단에 따라 퇴출 기업을 골라내라"고 주문했다. 국내 은행들은 그때까지 기업의 금고나 다름 없었다. 기업 신용을 평가하는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참에 그걸 배우라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부실기업 판정. 은행들은 버거워했다. 우선 부실기업 퇴출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퇴출된 기업에 빌려준 돈은 모두 부실 채권이 된다. 고스란히 은행 부담이 되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는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계열사라도 뒤에는 대마불사의 본사가 버티고 있다. 괜히 건드렸다가 거래가 끊길까, 본사가 부실해질까 겁을 냈다. (267)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63-64, 267     


더욱 더 심각한 것은 기업들, 특히나 재벌들의 대마불사이다. 경영상태가 부실해졌을때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준 것을 기억하는 재벌들은 계속해서 차입경영을 하였고 그 결과 취약한 재무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재벌들의 대마불사는 1997 외환위기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1997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규성은 저서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를 통해, 재벌들의 차입경영과 취약한 재무구조가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국내외적으로 지혜를 동원하여 개발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우선순위 사업을 정하고 이들 사업을 시행할 사업자를 직접 선정하여 이들에게 장기 저리융자와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고 외자도입도 주선해 주는 등 자원도 우선적으로 배분해 주었다. 


정부와 민간이 합심하여 한국주식회사를 만들어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은 단순한 캐치업 단계에서는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한국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개도국 경제개발의 모델이 되었다. (...) 이와 같이 한국 경제의 큰 얼개는 선진국에 근접하고 있지만 내실면에서는 여러 가지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내실면에서 취약성의 하나는 기업 · 금융의 재무구조가 건실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


우리 기업의 재무구조가 취약한 것은 그 동안 정부주도형 개발전략의 추진과정에서 기업의 차입경영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 기업의 성장은 곧 부채의 누적이었다. (...)

차입경영에 따른 재무구조의 취약성은 경기가 좋을 때에는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매출이 부진해지는 등 경영여건이 악화될 때에는 차입경영은 한계에 직면하고 부실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업들의 부실이 크게 늘어나면 이는 곧 금융부실을 초래하여 자칫 경제시스템 전체의 불안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며, 특히 거액의 부채를 지고 있는 대기업들의 다수가 부실화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과정에서도 대규모의 기업부실이 간단없이 발생하였다. 이 때 정부는 기업의 퇴출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직접 정리해 나갔다. (...) 정부주도의 부실기업 정리는 대체로 구제금융을 제공해 주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시키는 방식이었다. (...)


한편 금융운용의 실상을 보면 경제개발 과정에서 금융은 정부의 개발계획상의 사업을 차질 없이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금융기관은 금융의 본래기능인 사업성 심사를 통한 효율적인 자원배분기능을 수행하여 수익을 올리는 영리 기관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에 따라 자금을 공급하는 신용배급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


기업의 차입경영에 따라 자금수요는 항상 넘치게 되었으며 이는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공급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금융기관은 채권확보에 중점을 두고 신용배분을 하게 되었으며, 그 기준은 담보와 대기업 여부였다. 대기업들은 부동산 담보 외에도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각주:4]에 의하여 차입능력이 강화되었다. 


금융기관들이 파산할 경우 경제 전체의 불안정을 초래하기 때문에 금융감독 당국은 부실이 크게 발생한 경우에도 퇴출시키지 않고 한국은행 특별융자를 제공하여 살아남을 수 있게 하였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에 은행이 파산한 사례는 전혀 없었다.


이와 같이 정부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실패위험을 전적으로 안아주는 보험자 역할이 지속되자 대기업 불사(too big to fail) 및 은행불패(不敗)라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이 우리 사회에 보편화되었다. 이제 금융기관들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정부가 구제해 줄 것이라는 은행불패의 믿음 아래 대기업에 대한 대출에 대해서는 위험성이 높은 경우에도 주저 없이 자금을 공급해 주었다. 


대기업들은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대기업 불사의 기대 아래 잘 되면 크게 벌고 안 되면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면서 고수익 · 고위험 사업을 거침 없이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이는 바로 정경유착의 심화로 연결되었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64-67  

      

은행의 은행불패 믿음과 기업의 대마불사 믿음이 어떻게 1997 외환위기를 유발시켰는지는 다음 포스팅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참고자료>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2013.08.18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이장규. 2012. 대통령의 경제학』.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1. 당시 한국정부가 금융자원을 동원한 궁극적인 목적은 '자본투입의 증가'를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서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2. 이에 대해서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의 '※ 요소투입증가, 즉 과잉투자가 초래하는 경제적 문제들' 참고.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3. 이종화, 이영수는 <한국기업의 부채구조-재벌과 비재벌 기업의 비교>(1999) 에서 "한국에서 금융과 기업 간의 관계는 일본, 독일과 마찬가지로 매우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의 메인뱅크제도(main banking system)가 기업지배(corporate governance)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반면, 한국의 금융기관은 이러한 기능이 상실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한국기업의 높은 부채비율은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의 관치금융, 비통화금융기관의 재벌소유, 느슨한 금융감독에 따른 '사금고화' 등의 문제에 더욱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라고 지적한다. 은행과 기업의 관계에 대해서는 추후 포스팅할 계획이다. [본문으로]
  4.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외환위기의 수습을 맡은 이헌재는 '기업구조조정 원칙'으로 '①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② 상호지급보증 해소 ③ 재무구조의 회기적 개선 ④ 핵심역량 강화' 를 내세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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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Posted at 2013. 10. 23. 21:15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전 포스팅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를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생긴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 원인으로 이어졌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이전에, 외환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1997년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이 어떠했는지, 어떤 요인이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였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 외환위기란 무엇인가?


국제금융센터가 발간<Ⅱ. 외환위기의 개념 및 이론적 모델>에 따르면, 외환위기(Currency Crisis)란 "특정 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여 해당국 정부가 대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사용하거나 금리 인상 등을 통해 환율을 방어하는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가 전년도보다 10% 이상 하락하고 당해 연도에 25% 이상 급락한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외채위기(Debt Crisis)란 "특정국이 공공부문 혹은 민간부문의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채무불이행 상태"를 뜻한다.


또한, 은행위기(Banking Crisis)란 "실제적 혹은 잠재적 은행 파산으로 은행들이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해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대규모로 개입하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대규모 부실채권 · 뱅크런 등으로 인해 은행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다.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는 외환위기 · 은행위기보다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데 "금융시장이 심각한 붕괴에 있는 상태 · 위기의 확산으로 금융시장의 효율적인 중개기능이 손상되어 실물경제에 대규모 부정적 효과 파급"하는 상태를 뜻한다. 


외환위기(Currency Crisis)와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는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고 선후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당국의 금융시스템이 마비되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시에 자본을 회수할 경우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여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경우 · 은행부채의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로 되어있는 경우[각주:1], 해당국 통화가치 급락하면 은행 경영사태가 급속히 악화[각주:2] [각주:3]되는데 이에 따라 금융위기로 커지는 경우.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 · 외채위기 · 은행위기 · 체계적 금융위기 모든 것을 겪었다.

1997년 한국경제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1997년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 - 고평가된 통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시장 개방이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경제에서 금융은 자원배분을 위한 통제의 대상이었다.게다가 외국인에게는 증권시장 투자한도가 제한되어 있었고 외국은행의 국내지점 설립에도 규제가 있었다. 한국은 1990년 2월부터 열린 한·미 금융정책회의(FPT, Financial Policy Talking)을 통해 금융시장 개방에 나선다.



  • 출처 :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30
  • 이 표는 자본시장개방 협상대비를 위하여 재정경제원 국제금융국이 만든 계획표(Blue Print) 이다. 
  • 실제 3단계 장기계획은 1993년 6월에 확정되었고, 첨부된 계획표와는 조금의 차이가 존재한다.


1990년 2월부터 열린 ·미 금융정책회의(FPT, Financial Policy Talking)는 한국의 환율과 금융시장의 개방을 협상하는 회의였다. (...) 1990년 두 번 열린 ·미 금융정책회의는 환율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금융자율화, 증권시장 개방, 외국은행 국내지점 규제철폐 등이 주요의제였고 콜 시장의 개방, 금리의 완전 자율화, 정책금융의 폐지 등으로 확대되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25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1995년 이후 엔화의 절하이다. 일본의 엔화는 엔고가 절정에 달하였던 1995년 4월 83.6엔/$에서부터 1996년 말에는 113.7엔/$ 까지 절하되어 약 36% 절하되었다. 


  • 1995년 4월~1996년 12월 간의 엔/달러 환율변동 추이. 1995년 5월을 기점으로 일본 엔화는 달러화대비 약 36% 평가절하 된다. 


이러한 자본시장개방일본 엔화의 평가절하원화가치를 적정수준보다 고평가 시켰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두열은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1998)을 통해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원화가치 고평가 현상을 지적한다.


원화의 고평가 문제는 한국의 '거시경제 전체에 대한 긴장도를 높인 가장 근본적인 요인' 이라고 할 수 있다. 대외부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격변수가 고평가됨에 따라 임금이 상승되고 임금상승에 대처하기 위한 시설재 투자가 증가하였으며 비교역재 부문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등 많은 거시변수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1995년과 1996년에 기업의 현금흐름을 대폭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수출부진이었고 (...) 수출물량이 증가하지 못한 주된 단기적인 원인은 당시 원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원화의 고평가는 1990년대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하여 1994년 이후 자본유입이 많아지게 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


명목환율 수준으로 계산하여 보면 원화가 가장 고평가된 시점인 1996년 5월 적정환율 수준은 982원/$ 이었으나 실제환율 수준은 780원/$ 수준으로 원화가 202원/$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원화의 고평가는 세계화 추진과 OECD 가입을 위하여 자본자유화를 조속히 추진해 나감에 따라 자본유입이 확대된 결과이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203-205


  • 1994년 1월~1997년 12월 간의 자본수지 계정. 1994년 이후 자본수지가 양(+)의 값을 갖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외환위기의 본격적인 발발시기인 1997년 10월 말 이전까지 원화가치의 고평가현상은 지속되었다. (1997년 10월 말부터 원화가치가 급락함에 따라 고평가현상이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달러화에 페그된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엔화가치가 절하됨에 따라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동반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최두열은 동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지적한다. 


"달러화에 대한 페그에 따른 문제점으로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게 되면 자국통화도 달러화와 함께 동반강세를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95년 5월 이후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절상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달러화의 엔화에 대한 강세에 따라 사실상 달러화에 페그된 동아시아 각국의 통화가 동반강세를 보이게 되어 엔화에 대해 고평가 되었으며, 이것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 하나의 요인"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60


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한국은 자유변동환율제도가 아닌 일일환율변동폭이 제한된 시장평균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 원화 또한 (완전히 달러화에 페그된 것은 아니었지만) 엔화 절하의 영향으로 1997년 이전까지 고평가된 통화가치를 유지하게 된다. 


  • 원/엔 환율추이. 일본 엔화의 절하에 따라, 한국 원화는 일본 엔화대비 고평가된다. 1994년 4월 100엔당 900원 수준이던 원화는 1996년 12월 100엔당 728원 수준까지 통화가치가 상승하였다. 


자본시장 개방과 일본 엔화의 절하로 인한 한국 원화가치의 고평가 현상. 그 결과는 1994년-1996년 3년간의 경상수지 적자, 특히나 1996년 -229억 달러 · GDP 대비 -4.75%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 원화가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가 초래하는 문제들


원화가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는 어떠한 문제를 초래할까? 먼저, 고평가된 통화가치의 문제, 특히나 정환율제도를 택한 상태에서 통화가치 고평가가 초래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앞서 살펴본것 처럼 한국 원화가치는 자본시장 개방과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로 인해 적정수준을 넘어서서 고평가 되어있다. 이것을 본 시장참가자들이 "적정수준을 넘어선 원화의 고평가는 지속불가능하다" 라고 생각을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다시 말해, 시장참가자들이 "곧 원화의 평가절하가 발생하게 될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시장참가자들간에 급격한 환율상승에 대한 예상이 우세하게 되는 그 순간, 자기실현적 투기공격(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각주:4]이 발생하게 되어 실제로 원화가치가 급락하게 된다. 


고평가된 통화가치가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1997년 당시 김만제 포항제철 회장은 강경식 경제부총리와의 만남에서 "환율이 고평가되고 있어, 환율상승을 예상한 투기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51)"[각주:5] 라는 우려를 전했다. 


최창규는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1998) 를 통해 기초적인 게임이론을 이용하여 '자기실현적 투기공격(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이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제2세대 투기적공격모형은 외환보유액의 부족 등으로 인해 기초경제여건이 ‘위기범위(crisis zone)’에 속하게 되는 경우 실제 외환위기의 발생여부는 앞으로의 환율에 대한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참가자들간에 급격한 환율상승에 대한 예상이 우세하면 실제로 환율급등이 초래되지만 환율이 계속 안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한 경우에는 환율상승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형에서는 외환위기가 자기실현적 투기공격의 양상을 띠게 되며9) 복수균형(multiple equilibria)이 가능하게 된다. 복수균형이라 함은 기초경제여건이 위기범위에 속하는 경우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에 따라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고 외환위기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두가지 가능성을 가리킨 것이다. (...)


이 모형에서는 외환당국과 거래자 A, B 등 세 경제주체가 있다고 가정한다.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에 쓸 수 있도록 일정한 외환(R)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두명의 거래자 A, B는 1회의 비협조적 게임(non-cooperative game)을 한다고 가정한다. 두명의 거래자는 각각 6만큼의 국내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외환당국의 보유외환을 사기 위하여 국내통화를 ‘매도’하거나 계속 ‘보유’하는 두가지의 전략을 펼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외환을 사거나 파는 데 따르는 거래비용은 1이라고 하자.


첫번째 게임에서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수준인 20이라고 가정되고 있다 (R=20). 이 경우에는 거래자 A와 B가 모두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보유외환을 사더라도 외환당국은 여전히 8만큼의 외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거래자 중 1인이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다른 1인은 매도하지 않을 경우 매도를 한 거래자는 1만큼의 비용이 들고 매도를 하지 않은 거래자는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 나쉬균형(Nash Equilibrium)은 거래자가 모두 매도를 하지 않는이다.


두번째 게임에서는 외환보유액이 매우 낮은 수준인 6이라고 가정되고 있다(R=6). 여기서는 거래자 2인중 어느 한 사람이 외환을 사기 위해 국내통화를 매도하는 경우에도 외환보유액은 모두 소진된다. 따라서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거나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외환당국이 보유외환으로 고정환율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50% 평가절하를 하게 된다고 가정하자. 거래자 2인중 어느 한사람만이라도 보유 국내통화를 모두 매각하여 외환을 사는 경우 중앙은행은 고정환율을 포기하고 50% 평가절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거래자는 국내통화기준으로 3만큼의 자본이득을 보고 거래비용 1을 지급하게 되므로 2만큼의 순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한편 거래자 2인이 동시에 각각 3만큼의 국내통화를 매도하여 외환을 매입하는 경우 두사람은 모두 각각 3/2만큼의 자본이득을 보게 되고 거래비용으로 1을 지급하게 되므로 1/2[=(3/2)-1]만큼의 순이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유일한 나쉬균형은 양거래자가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외환을 매입함으로써 고정환율이 붕괴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세번째 경우가 가장 흥미로운 경우이다. 여기서는 외환보유액이 중간정도 수준인 10이라고 가정되고 있다(R=10). 이 경우에는 어느 거래자 일방이 외환당국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전부 살 수는 없지만 거래자 2인이 모두 국내통화를 매도하는 경우에는 외환당국이 평가절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수익(pay-off)을 계산해보면 아래와 같다. 


어느 거래자 일방이 공격을 하고 상대방이 공격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외환당국이 보유외환으로 충분히 공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평가절하가 일어나지 않는다.격을 감행한 거래자는 1만큼의 비용만 지급하게 된다. 두 거래자가 동시에 공격을 하게 되면 전체 보유외환 10을 각각 5만큼씩 나눠서 사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50%만큼의 평가절하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두 사람은 국내통화기준으로 각각 5/2만큼씩 얻게 되는 반면 거래비용은 1이 되어 각각 3/2[=(5/2)-1]만큼의 이득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 게임에서는 2개의 나쉬균형이 생기게 된다. 하나의 균형은 양거래자가 모두 공격을 하는 경우에 생긴다. 이때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의 균형은 어느 거래자도 상대방이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경우에 생긴다. 이 때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투기적공격이 일어나면 고정환율이 붕괴되고 그렇지 않으면 고정환율이 유지된다는 의미에서 이들 균형에는 자기실현적 요소가 있게 된다.




최창규. 1998.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한국은행 조사부 「경제분석」 제4권 제2호 (1998. Ⅱ). 7-10 


그리고 금융경제학계의 권위자 Frederic Mishkin은 "고정환율제도가 문제를 심화시킨다" 라고 지적한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한 국가의 통화가치는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통화가치 고평가가 지속될수록 평가절하 압력을 계속해서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기적 공격으로 인해 통화가치가 한번 하락하기 시작하면 변동폭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Under a pegged exchange-rate regime, when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occurs, the decline in the value of the domestic currency is usually much larger, more rapid and more unanticipated than when a depreciation occurs under a floating exchange-rate regime.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또한, 원화가치 고평가에 이은 경상수지 적자도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한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될수록 외국 투자자들은 국가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각주:6] 에 의심을 품게 된다. 김인준·이영섭은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1998)에서 '경상수지 적자 →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된 외국 투자자 → 자본유출 → 통화가치 급락' 현상을 이야기한다.  


국가간 금리 격차가 존재할 경우 자본자유화는 양국간 금리격차를 줄이는 데 공헌할 것이다. 그렇지만 양국간 발전단계가 다르다면 자본이동에 따라 금리격차가 줄어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편의상 자본자유화는 이루어졌지만 금리는 원래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자유화가 이루어지면 자본은 이자율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 결과 이자율이 높은 국가의 경우 자본시장개방에 따라 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하락하고 경제가 활성화된다. (...)


이자율이 높은 나라로의 자본유입은 이 나라의 환율을 하락시키고 그 결과 가격경쟁력이 악화되어 경상수지가 적자로 될 것이다. 또한 자본유입에 따른 경기활성화도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한 요인이 될 것이다. 물론 어느 기간까지는 경상수지 적자가 자본유입으로 보전되기 때문에 이 나라 통화의 고평가 현상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환율의 고평가로 경상수지 적자가 상당기간 누적되면 외국 투자가들이 이 나라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 되고 자본을 회수해 나가려 할 것이다. 이때부터 고금리는 더 이상 자본유입의 유인이 되지 못하고 따라서 환율에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가 환율에 주로 영향을 끼치게 되고 경상수지 악화로 인해 환율은 상승할 것이다. 한편 환율상승에 따른 투자수익률 하락을 우려하여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려 함에 따라 환율은 더욱 더 상승할 뿐만 아니라 경기침체도 가속화될 것이다.


김인준·이영섭. 1998.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 . 『金融學會誌 Vol.3 No.2』 7-9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소속인 왕윤종 또한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2001)에서 '경상수지 적자 →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된 외국 투자자 → 자본유출 → 통화가치 급락' 현상을 말한다.


Over the period 1995-97, however, there was a series of adverse external shocks – particularly a trade-weighted appreciation of the region's currencies vis-à-vis the U.S. dollar, to which they were de facto pegged, rose against the Japanese yen, and a fall in the terms of trade for electronic-goods exporters. 


These shocks brought into question the sustainability of the currency pegs to the U.S. dollar, undermining the confidence of international investors in the region's prospects, and leading to a sudden withdrawal of their funds. 


As the currency pegs collapsed, the large stock of unhedged foreign currency denominated borrowings, undoubtedly fueled investors' new-found pessimism and the sense of market panic, making the crisis much more severe than it would otherwise have been.


왕윤종.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7


게다가 1996년에 기록한 '-229억 달러 · GDP 대비 -4.75%' 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외환유동성 자체를 크게 악화시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신인석은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를 통해 "환율절하 지연에 이은 96년에 기록된 대폭의 경상수지 적자가 잠재적인 외환유동성을 악화시켰다" 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외환유동성 악화는 1997년 12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인출사태(banking panic)'을 촉발시켜 외환보유고를 고갈시켰다.   




<표 8>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야기되기까지는 거시충격과 이에 대한 정책대응상의 오류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표가 보이듯이 단기외채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로의 자본유입이 증가한 것은 94년부터였으며 같은 시기 외환유동성은 점차 악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급격한 악화가 진행된 것은 지표 A에 의거할 때 명백히 96년이었고, 이는 물론 96년에 기록된 대폭의 경상수지적자에 기인한 변화였다. 그리고 96년의 경상수지적자는 교역조건 충격으로 요구되었던 환율절하를 정책당국이 지연시킨 결과였다고 평가되므로, 그만큼의 외환유동성 악화는 거시정책대응 미숙에 원인이 있었다고 하겠다.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31-32




※ 원화가치 고평가와 1994-1996년의 경상수지 적자를 막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신인석의 주장 중 눈여겨볼 대목은 "외환유동성 악화는 거시정책대응 미숙에 원인" 이다. 왜 당시 정책당국자들은 금융시장개방의 위험성을 간과했고, 원화가치의 절하를 지연시켰을까? 한국경제연구원의 허찬국은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2009) 보고서를 통해 "1990년대 당시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이 가져오는 파급효과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라고 비판한다. 


당시의 환율제도가 정책당국의 높은 결정력을 보장하는 약한 형태의 페그제(adjustable peg regime)였다고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외균형의 3년 연속 악화를 방치한 것은 의아한 일이라 하겠다. 지속되는 경상수지 적자 악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원화가치 절하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없었다.


한 가지 설명은 자본시장 개방 이후 해외자금의 유입이 가속화되는 그때까지 익숙하지 않았던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고도 성장기부터 대외교역 경험을 통해 환율이 수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자본시장 개방과 그에 따른 큰 규모의 국제적 자금이동에 따른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식이 낮았다고 보인다.


허찬국. 2009.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 『한국경제연구원』


1997년 당시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 국장을 맡았던 정덕구도 회고록 『외환위기 징비록』을 통해 "시장개방의 후유증을 간과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아쉬운 점은 시장 개방의 후유증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란 가치를 내걸고 적극적인 시장 개방에 나섰다. 그러나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비용이 뒤따른다. 시장 개방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은 구조조정 외에는 없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금융이나 기업 구조조정[각주:7]에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말았다. 재경원에서 끊임없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정책으로 추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성공하지 못했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96


정덕구는 연이어 원화가치 고평가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정부 정책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게 되면 정부는 또 다른 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정책이 남발되는 것이다. 환율정책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정부는 1996년 말 경상수지적자가 자꾸 늘어가자 한승수 부총리와 박영철 금융연구원장 등이 모여 원화가치 하락(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 상승)을 용인할 것인지를 깊이 논의했다.


그러나 원화가치를 하락시키는 일은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물가상승 우려와 함께 국내 금융기관의 외채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눌려온 것은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다.


원화가치가 고평가된 상태로 계속 가게 되면 시장참여자들은 "언젠가는 원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며 불안해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계기가 생길 경우 환율은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게 되는 것이다. 방안에 가스가 꽉 차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성냥불을 켜대면 폭발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111


김영삼정부 시절 관세청장 · 통상산업부 차관 · 재정경제원 차관을 역임한 강만수는 "원화가치 절하를 하지 못한 것이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라며 원화가치 고평가의 책임을 한국은행과 정치권에 돌린다[각주:8] [각주:9].


8% 단일관세율과 고평가된 환율이라는 최악의 정책조합(the worst policy mix)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수출을 포기해야 할 환율 수준에서 추진된 '뼈를 깎는' 노력은 경상수지 적자를 예상보다 4배나 많은 사상 최대인 237억 달러에 달하게 하여 우리경제의 뼈를 실제로 깎았다. 이러한 방향착오를 한 다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


1996년의 성장률은 내수증가가 기여했고 물가는 환율의 고평가와 수입증가가 기여한 것이었다. 1994년부터 3년간 경상수지는 물가와 성장률에 희생된 것이다. 대내균형을 위해 대외균형이 파괴된 것이다. 1996년은 물가를 희생해서라도 환율을 크게 올려 수출을 늘이고 수입을 억제했어야 했다. 


10%가 넘는 임금상승에서 가격경쟁력 상실을 보전할 수 있는 수단도 사실상 환율 뿐이었다. 매년 5% 정도의 절하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고임금으로 가격경쟁력이 상실되어가고 있는데 환율까지 평가절상 되었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


상반기에 경상수지가 연간목표를 넘어섰는데도 "원화가치의 가파른 하락으로 인해 외환시장이 출렁거리지는 않도록 하겠다"는 한국은행의 헛소리는 끊임없이 평가절상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중앙은행의 속성상 이해가 된다. 평가절상을 하는 만큼 다른 부분에서 통화를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이 중앙은행에는 있다. (...)


대내균형을 나타내는 물가안정은 중앙은행의 임무이고 표를 의식하는 것은 정치권의 속성이다. 정부는 대외균형을 유지할 의무가 있고 대내와 대외 균형이 상충할 때는 비난을 무릅쓰고 대외균형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경상수지가 감내하기 힘든 수준으로 악화될 때는 그렇다. (...)


최악의 두 정책이 동시에 조합됨으로써 1994년부터 국제수지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1996년 상반기에 벌써 연간 전망 적자를 넘어선 위기상황 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 경제가 위기로 치달아가는데 환율은 버려두고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호기를 부린 사람들은 우리를 슬프게 했고, 환율을 안정시킨다고 노력한 사람들의 빗나간 정책들은 우리를 절망케 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72-379




※ 원화가치 하락을 노린 헤지펀드 · 핫머니의 투기적공격이 1997 외환위기의 원인일까?


앞서 논의했던 것을 종합해보자. 금융시장개방과 일본 엔화의 절하는 원화가치의 고평가를 초래했고 이는 1994년-1996년, 특히나 1996년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만들어냈다. 적정수준을 넘어서 고평가된 원화가치를 본 시장참가자들은 "원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이는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을 유도했다. 경상수지 적자 또한 시장참가자들에게 "한국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의심을 품게해서 자본유출을 초래했다. 게다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한국경제의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야기되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이다.


여기서 구별해야 하는 건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투기적공격'이란 말을 들으면 통화가치 하락 그 자체에 대해 베팅한 뒤 환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을 떠올리기 쉽상이다[각주:10] [각주:11]. 그러나 1997년 당시,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 ·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외환보유고가 감소하긴 했지만,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이 원화가치 하락에 베팅한 뒤 환차익을 챙기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1997년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은 9월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 이라며 한국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에 대해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97년 7월 8일 태국, 금융위기에 몰리다


나-강경식-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태국과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외국인이 우리 원화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주식시장이 고작인데, 그나마 한도액이 정해져 있어서 원화의 대량 매매는 있을 수 없고 그 외에 외국인이 원화를 사용할 일은 전혀 없다. 심지어 채권조차 살 수 없다. 


세계적으로 하루에 거래되는 달러의 양은 1조 6천억 달러로 무역 등 실물거래 규모는 500억 달러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투기성 자금인 것이다. 세계 중앙은행 보유고 총액이 1조 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만큼은 이런 투기자금이 전혀 들락거리지 못한다. 전부 실제 거래되는 달러뿐이다. 금융 또한 해외에 개방이 안 되어 있어서 외국의 동향에 휘말릴 걱정이 없다. (...)


97년 9월 8일 태국과 한국은 다르다


무엇보다 태국은 역외 금융시장을 육성한다는 명분 하에 금융시장이 완전개방되어 있어 헤지 펀드(hedge fund) 등 단기 투기성 자금의 유입이 용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증권시장 일부만 개방되었을 뿐,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견해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식이었다. 이날 토론에서도 한국과 태국이 다르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279-281     


강경식의 판단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신인석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발발한 "1997년 11월달 외환보유고 감소의 주된 요인은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이 아니라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 이었다.




<표 7>에서 환율요인에 따른 외환수요의 증가분을 가장 넓은 기준의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의 지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에는 경상수지적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과 포함된 것의 두 가지 투기적 공격지표를 계산하여 놓았다. 두 지표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11월중 투기적 공격은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의 14~20%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상수지적자까지 감안한 광의의 투기적 공격 지표에 의거하면 9~11월중의 환율에 따른 외환수요요인은 1~3월에도 미달하는 규모였다. 


두 기간의  차이와 11월 외환위기를 낳은 것은 환위험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고 따라서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볼 수 없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의 존재여부[각주:12] 였음은 <표 7>에서 명백하다.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26-27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지만, 고평가된 원화가치 그 자체에 대한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의 투기적 공격은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 그렇다면 과연 어떤 요인이 한국경제에 외환위기를 가져온 것일까? 신인석이 주장하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이야기했던 것을 다시 가져와보자. 


이전 포스팅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를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생긴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 원인으로 이어졌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이야기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란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 저해 · 제2금융권 팽창 · 은행과 기업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 잠재적 부실채권 증가 · 재벌에 경제력 집중 · 재벌의 과다차입' 를 뜻한다.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요인이 어떻게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를 촉발시켰는지, 다음 포스팅에서 그 경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1편 참고자료 >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국제금융센터 <Ⅱ. 외환위기의 개념 및 이론적 모델>.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2012.10.19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최창규. 1998.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한국은행 조사부 「경제분석」 제4권 제2호 (1998. Ⅱ).


김인준·이영섭. 1998.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 . 『金融學會誌 Vol.3 No.2』


Wang Yunjong.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허찬국. 2009.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 『한국경제연구원』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1. 신흥국은 특성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경제학자 Barry Eichengreen은 이를 '신흥국의 원죄 Original Sin'로 표현했다.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http://joohyeon.com/113 [본문으로]
  2.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은행부채의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로 되어있을 때,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여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키는 것'을 '신흥국 대차대조표 위기 Balance Sheet Crisis'라 불렀다. │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 이에 대해서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3. 이러한 현상은 신흥국의 외환위기를 체계적 금융위기로 심화시킨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보통 금리를 올림으로써 통화가치를 상승케 하는데, 금리를 인상할 경우 은행의 부채부담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 그러나 신흥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가치는 더욱 커지게 되고 기업과 은행의 부채부담을 증가시킨다. 그 결과, 은행은 고객들의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하게 되고 금융시스템 자체가 마비된다. 금융경제학 권위자인 Frederic Mishkin은 논문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1999)를 통해 "A currency crisis and the subsequent devaluation then helps trigger a full-fledged financial cris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because of two key features of debt contract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debt contracts both have very short duration and are often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These features of debt contracts generate three mechanisms through which a currency crisi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ncreases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in credit markets, thereby causing a financial crisis to occur." 라고 말한다. │ 이에 대해서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4. 경제학에서는 금융위기 원인의 2세대 모델로서 '자기실현적 투기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을 다루고 있다.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5.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51 [본문으로]
  6. 경제학계에서는 금융위기 원인의 1세대 모델로서,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악화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통화가치가 급락' 을 다루고 있다.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7. 여기서 말하는 금융, 기업구조조정은 단순히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감독기능 강화, 대출시 엄격한 신용평가, 기업의 과다차입 방지 등등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태어난 구조적인 문제를 고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룬다. [본문으로]
  8. 김영상정부 시절 경제부처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그가 이러한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강만수, 강경식 등 경제고위관료들은 회고록 등을 통해 1997 외환위기의 책임을 "한국은행"에 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은 "금융개혁법안"과 "환율관리"를 놓고 치열한 갈등관계 였기 때문인데, 그렇다고해서 고위경제관료들이 외환위기의 책임을 한국은행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본문으로]
  9.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인해 일본의 엔화가치가 강제로 절상된 것을 지켜봤던 강만수는 "환율관리는 주권행사"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환율 정책만이 경제를 유지시킨다고 생각했는데, 이명박정부 집권 이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고환율 정책을 밀어부친다. 당시 강만수의 고환율정책은 물가인상 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
  10.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 파운드화 가치하락에 베팅한 George Soros를 들 수 있다. [본문으로]
  11. 물론, 금융위기 2세대 모델인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은 단순히 '헤지펀드, 핫머니 등이 통화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투기적 공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세대 모델이 강조하는건 '시장참가자들의 자기실현적 예측으로 인해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현상' 이다. 다만, 경제학 비전공자가 '투기적공격' 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헤지펀드, 핫머니 등만을 연상할 것 같은 노파심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본문으로]
  12.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이 보고서의 논평을 맡은 이영섭은 "<표7>의 해석에 대해서 논평자도 기본적으로 저자의 입장을 같이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이 반대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제시한 1997년 11월중의 대규모의 인출은 외환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투기적 공격 때문에 발생된 위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제채권단의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표7>을 보면 투기적 공격은 그 이전부터 발생하지만 채권인출은 11월에만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는 10월말 및 11월 초에 발생하기 시작한 위기에 대한 대응처럼 보일 수도 있다. <표7>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외환위기의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만일 외환위기의 시작을 11월 중하순(예를 들어, IMF 구제금융 신청일인 11월 21일)으로 잡으면 저자의 해석에 대해 반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작을 10월 하순(예를 들어, 기아사태처리 발표 및 홍콩증시 폭락이 발생한 10월 22~23일)으로 잡으면 이상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저자와 대립되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라고 지적한다. 본인도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점을 10월 하순으로 잡더라도, 이는 헤지펀드 등의 투기적공격이 아니라 1997년 동안 높았던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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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Posted at 2013. 10. 18. 15:51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금융자원 동원 control over finance 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한 한국경제


이전 포스팅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을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을 다루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를 찾을 수 있다. 바로  "한국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금융자원 동원 control over finance 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이다.


박정희정권은 "1961년 재벌소유 시중은행 주식이 정부로 귀속되고, 민간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함으로써 "일반상업은행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각주:1] 그리고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을 통해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소수의 기업들에 금융자원을 몰아주었다. 이러한 정책금융 policy loans 의 혜택을 받은 기업들은 세계시장에 진출했고, 그 결과 한국경제는 수출주도형 성장 export-led growth 을 달성[각주:2]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국가가 금융자원을 동원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바로, "자본투입의 증가 growth in the supply of capital" 이다. 국가경제의 장기총생산 the long-run aggregate production 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한 건, "노동투입의 증가 · 자본투입의 증가 · 노동생산성 향상 · 자본생산성 향상" 이다. 



< 출처 :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조장옥 교수, 거시경제학 수업자료 >  


위에 첨부한 그래프는 경제 내의 장기총생산이 결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 에서도 다루었다.)


1번 그래프는 노동시장 Labor Market 에서 노동공급자 (P*MRS=물가수준*한계대체율)와 노동수요자 (P*MPL=물가수준*한계노동생산)가 만나 균형노동량를 달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기업의 인력수요와 노동자의 구직의사가 만나 일정한 수의 노동자가 취직에 성공하는 모습을 뜻한다.


2번 그래프는 경제체제 내의 생산성 Productivity 정도를 나타내는 생산함수 Production Function 이다. 노동 · 자본 생산성이 증가할수록 생산함수이 상향이동 하고, 1번 그래프의 노동시장에서 결정된 균형노동량가 장기 총생산량를 이끌어낸다. 이러한를 45도 직선 그래프에 대응하면, 4번 그래프 모양인 장기 총생산량를 가진 장기 총공급곡선 Long-run Aggregate Supply Curve 이 도출된다. 


(1번 그래프 노동시장을 자본시장 Capital Market 으로 바꾸고, 2번 그래프 생산함수를 자본를 변수로 하게 바꾸어도 된다.)  


즉, 이 그래프는 1번에서의 노동투입의 증가 혹은 자본투입의 증가 · 2번에서의 노동생산성 향상 혹은 자본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도시화를 통해 노동투입을 증가시켰고, 금융자원을 동원함으로써 자본투입 증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은 이러한 경제학적 원리를 글로 쉽게 풀어냈다. 


성장의 두 가지 원인이 합쳐져서 경제확대가 이룩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투입의 증가 increases in inputs 다. 고용의 증가, 노동자들의 교육수준 향상, 그리고 물리적인 자본축적의 증가(기계·건물·도로 등)가 그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원인은 투입단위당 생산의 증가 increases in the output per unit of input 다. 관리 개선이나 경제정책의 개선으로 이런 증가가 이룩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주로 지식의 향상으로 이루어진다.


성장회계의 기본 개념은 이 두가지의 크기를 명백하게 계산함으로써 이 공식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 회계는 그래서 각 투입요소별(예컨대 노동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자본의) 성장 기여도를 산정하고, 또 효율증가에 따른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


노동 생산성을 이야기할 경우 우리는 사실 그 때마다 원시적인 형태의 성장회계를 셈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은연중에 우리는 전반적인 국가 성장 가운데 노동공급의 증가에 기인한 부분 the growth in the supply of labor 과 일반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의 가치 증가에 기인한 부분 an increase in the value of goods produced by the average worker 을 구분한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의 증가가 항상 노동자의 효율향상 때문에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관리 개선이 있었거나 더 많은 기술지식을 지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더 좋은 기계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산이 증가할 수 있다. 더 빨리 도랑을 팔 수 있지만, 효율성이 더 높은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더 많은 자본을 갖고 일할 따름 more capital to work with 이다. 성장회계의 목적은 측정 가능한 모든 투입요소를 종합하는 지표를 산출하고, 그 지표의 비율로 국민소득 성장률을 측정하는 것이다. 즉 '총요소 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을 추산하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227-229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 요소투입량 증대를 통해 성장한 한국경제


그렇다면 노동투입의 증가 · 자본투입의 증가 뿐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 · 자본생산성 향상은 한국경제 성장에 얼마만큼 기여했을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Paul Krugman 은 이에 대해 비관적이다. 그는 "한국 등 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생산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이레적인 투입 증가 덕분" 이라고 주장[각주:3]한다.


성장회계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경제성장의 과정에 관해 아주 중요한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한 나라의 1인당 소득의 지속적인 성장은 투입단위당 생산이 증가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입 생산요소의 이용효율은 높이지 않고 단순히 투입량만을 늘리는 것(기계와 사회간접자본의 증가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수익률 감소에 부딪히게 되었다. 즉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은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최근 몇 년 간의 (joohyeon: 이 글이 1994년에 쓰였다는 것을 주의하자) 아시아 국가 성공사레와 30년 전의 소련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사실 싱가포르를 방문한 여행객이 그 도시의 화려한 호텔에 투숙해서 바퀴벌레가 들끓는 모스크바의 호텔과 어떤 유사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멋진 활기가 넘치는 아시아의 호경기와 소련의 무시무시한 산업화 운동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 1950년대의 소련처럼 아시아의 신흥 산업국들이 급성장을 이룩한 것은 주로 놀랄만한 자원의 동원 덕분이었다. 이들 국가의 성장에서, 급증한 투입이 발휘한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더 이상 말할 거리가 별로 남지 않는다. 높은 성장기에 보여준 소련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성장도 효율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이례적인 투입 증가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


동아시아 성장이 주로 투입증가에 의한 것이고, 그 곳의 축적된 자본이 벌써 수익체감의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완전히 이치에 부합되는 행동이다. (...) 최근 몇 년 간의 속도로 아시아의 성장이 지속될 수는 없다. 2010년의 시각에서 보면, 최근의 추세를 그대로 연장해서 아시아가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지금의 전망은 브레즈네프 시대의 시각에서 소련의 산업지배를 내다본 1950년대 식 전망만큼이나 어리석게 보일 것이 틀림없다. (joohyeon: 2013년의 시각에서 돌아봤을때, 폴 크루그먼의 주장은 옳았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성장의 실체는 우리에게 통속적인 교훈 중 몇 가지는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우리 경제정책의 전통적인 자유방임 방법이 잘못됐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들 경제권의 성공은 복잡한 산업정책과 선별적인 보호주의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일반화되어 있다.(joohyeon: 가령, 장하준 등등) (...)


그러나 어쨌든 만일 아시아의 성공이 전략적인 무역 및 산업정책의 결과 때문이라면, 그 결과는 이례적이고 감동적인 경제 효율성의 증가로 확실하게 입증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례적인 효율성의 증가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환태평양권의 신흥 산업국들은 그들의 이례적인 자원동원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은 것이며, 이런 대가는 아주 진부한 통속적 경제이론에 기초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아시아 성장에 어떤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행복을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이득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229-244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실제로 한국은행 보고서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우리나라의 실질소득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 했다. 이 보고서는 1980년 이후를 다루고 있지만, 1960년~1980년 사이의 경제개발 시기에도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실질총소득은 연평균 6.2% 증가하였는데 이는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높은 것이며 우리경제가 급속히 성장 하였다는 점과 일치하는 결과이다. 요소투입의 변화는 실질총소득을 5.2%p 증가시켰으며 소득증가의 83.0%를 설명하였다. 요소투입 중에서 자본투입의 기여도는 3.3%p로 전체 총소득증가의 52.3%를, 노동투입은 1.9%p로 30.6%를 설명 하였다. 생산성 증가는 실질총소득을 1.4%p를 증가시켰으며 22.9%의 기여율을 기록하였다.  (...)


실증분석 결과, 지난 30년 동안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우리나라의 실질소득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생산성 증가가 중요한 요소였다.[각주:4]


조태형, 김정훈, Paul Schrever.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 <한국은행 이슈노트>. 2012.06.30. 4-7




※ 요소투입증가, 즉 과잉투자가 초래하는 경제적 문제들


그런데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의 주장 중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단순히 투입량만을 늘리는 것은 결국 수익률 감소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라는 부분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한 국가 내의 인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투입의 증가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투입증가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본투입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융자원을 동원하여 기계설비 · 인프라 등의 자본량을 늘리는 투자 investment 를 뜻한다. 이른바 투자중심 성장 investment-driven growth 이다. 


이러한 투자중심 성장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① 입량의 과도한 증가에 따른 비효율성이 유발된다 라는 점과 ② 기업이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금융자원은 부채 는 점이다. 경제학자 마이클 페티스 Michael Pettis는 저서 The Great Rebalancing』을 통해 투자중심 성장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변변찮은 도로가 없었던 경제개발 초기에는 도로를 하나 건설하는 것만으로 큰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 근로자의 이동이 수월해지고, 물류를 운반하는 시간도 단축된다. 그러나 도로가 이미 많이 깔려진 뒤에 점점 더 많은 도로가 생겨날수록, 신규 도로건설에 따른 부가가치는 줄어든다. 거기다가 (국가의 금융지원을 통해 손쉽게 돈을 빌린) 기업들은 투자비용 대비 창출해낸 경제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저 투자를 위한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가가 기업들에 지원해준 금융자원은 고스란히 부채로 남게된다. 


as the history of every investment-driven growth miracle, including that of Brazil, shows, high levels of state-directed subsidized investment run an increasing risk of being misallocated, and the longer this goes on the more wealth is likely to be destroyed even as the economy posts high GDP growth rates. The difference between posted GDP growth rates and real increases in wealth shows up as excess debt. Eventually the imbalances this misallocation creates have to be resolved, and the wealth destruction has to be recognized as debt levels are paid down. 


With such heavy distortions imposed and maintained by the central government, there was no easy way for the economy to adjust on its own. Growth was not capable of being sustained except by rising debt. (...)


every other case of an investment-driven growth miracle, suggests that the model cannot be sustained because there are at least two constraints. The first has to do with the constraint on debt-financed investment and the second with the constraint on the external account, and one or both constraints have always eventually derailed the growth model.


To address the first constraint, in the early stages for most countries that have followed the investment-driven growth model, when investment is low, the diversion of household wealth into investment in capacity and infrastructure is likely to be economically productive. After all, when capital stock per person is almost nonexistent, almost any increase in capital stock is likely to drive worker productivity higher. When you have no roads, even a simple dirt road will sharply increase the value of local labor.


The longer heavily subsidized investment continues, however, the more likely that cheap capital and socialized credit risk will fund economically wasteful projects. Dirt roads quickly become paved roads. Paved roads become highways. And highways become superhighways with eight lanes in either direction. The decision to upgrade is politically easy to make because each new venture generates local employment, rapid economic growth in the short term, and opportunities for fraud and what economists politely call rent-seeking behavior, while the costs are spread through the entire country through the banking system and over the many years during which the debt is repaid (and most debt is rolled over continuously). (...)


Of course because risk is socialized— that is, all borrowing is implicitly or explicitly guaranteed by the state— no one needs to ask whether or not the locals can use the highway and whether the economic wealth created is enough to repay the cost. The system creates an acute form of what is sometimes called the “commonwealth” problem. The benefits of investment accrue over the immediate future and within the jurisdiction of the local leader who makes the investment decision. (...)


The problem of over-investment is not just an infrastructure problem. It occurs just as easily in manufacturing. When manufacturers can borrow money at such a low rate that they effectively force most of the borrowing cost onto household depositors, they don’t need to create economic value equal to or greater than the cost of the investment. Even factories that systematically destroy value can show high profits, and there is substantial evidence to suggest that the state-owned sector in the aggregate has probably been a massive value destroyer for most if not all the past decade, but is nonetheless profitable thanks to household subsidies.


Michael Pettis. 2013. 『The Great Rebalancing』.  80-91

 

한국도 경제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부작용을 경험했을까? 『대통령의 경제학』의 저자인 이장규는 박정희정권의 경제정책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라고 말한다. 이전 포스팅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에서도, "국가의 금융억압 정책이 기업의 규모늘리기를 유도했고, 자산대비 높은 부채비율을 초래했다" 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책금융, 관치금융의 대표선수가 수출금융이었다. 수출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대출도 자동적으로 얻어 쓸 수 있고, 시중 금리가 30%인데 수출 금리는 3분의 1 수준으로 해줬다. 은행들은 수출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운영됐고, 그 이면에서는 금융제도의 심각한 왜곡 현상을 빚어냈었다. 한국의 은행들은 수출 지원을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폐단도 많았다. 출금융의 싼 금리를 악용해서 실제 수출은 뒷전이고, 그 돈을 빼돌려서 돈놀이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수출은 한국경제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돌파구였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집값 폭등 등 심각한 부작용들의 생산 공장이기도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1960년대의 기업지원은 결국 탈이 나게 돼 있었다. 차관은 많을수록 좋다는 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였고, 수출을 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정부가 지원해줬으며 기업들은 저마다 확장투자에 경쟁적이었다. 앞서의 언급처럼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부실 차관업체를 무더기로 정리했음에도 기업들은 연리 40~50%의 고리사채에 목이 졸려가고 있었다.


이장규. 2012. "수출 지상주의, 8·3 사채동결조치". 『대통령의 경제학』. 162-164




※ 과잉투자 문제해결 위해,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에서 내수주도형 성장모델로 전환?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투입의 증가는 비효율성 · 과도한 부채 · 수익률 감소 ·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부터 알아야한다. 한국정부가 금융자원을 소수의 기업들에 몰아준 것은, 투자를 통해 생산기반을 닦은 뒤 세계시장에 나가 수출을 하라는 의도[각주:5]였다. 그렇다면 왜 한국경제는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채택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요소가 필요하다. 거기에 한 가지 또 다른 요소가 더 필요하다. 바로 조직자본 Organizational Capital 이다. 조직자본이란 노동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대규모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후발 산업국가들은 특정 소수의 기업에 자원을 몰아줌으로써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규모를 키운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미숙한 국가는 내수시장이 발전되어 있지 않고 기업간 경쟁이 없는 상태이다. 국가의 전략적 지원을 받는 기업을 이런 상태에 놔둔다면, 경쟁을 통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효율성 제거를 위해 국내 대기업에게 수출을 장려하고,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추가적인 조직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각주:6]은 저서 『폴트라인』을 통해 조직자본 개념과 후발 산업국가가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채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도국의 경우, 성장 초기에 투입되는 대규모 물적 자본을 효율적으로 분배 · 활용하는데 필요한 조직적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고속 최첨단 기계를 구입한 후, 똑똑한 직원을 뽑아 그것을 작동하도록 하면 그것으로 다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 기계를 정말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계 작동 전문 근로자 등을 위시해 그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만들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기계를 구입했다면, 그 기계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의 원료를 대줄 확실한 공급처를 확보해야 하고, 그 기계로 생산된 제품의 판매처도 확보해야 하며, 그 기계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제품 종류도 결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계 관리와 수리에 필요한 하자 보수팀, 공급 업체를 관리하는 구매팀, 바이어를 상대하는 마케팅팀, 야간에 시설을 감시할 경비팀 등 기계를 구입해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도요타 자동차와 소규모 정비 업체와의 조직적 차이 또는 변두리에 위치한 개인 병원과 대규모 메이요 클리닉과의 조직적 차이는 말 그대로 엄청나다. 그런데 바로 그 조직적 차이가 대규모 첨단 기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결정한다. (...)


문제는 조직 자본이었다. 후발 경제 개발국들은 중소기업 수준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신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들 후발 경제 개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이들 국가에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졌다. 국영 기업체를 설립해 경제 활동을 이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든가, 아니면 시장 경제를 조성하되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소수 대기업에만 특혜를 주는 방법으로 산업 경쟁력을 살리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후발 경제 개발국이 어떠한 선택을 했던 간에 국가 전체의 저축은 정부의 입김대로 움직이는 대형 금융기관을 통해 소수 대기업으로 들어갔다.  (...)


국영 기업체를 통한 경제 성장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상당수 국가의 정부는 조직 자본을 민간 분야에서 형성하되 국내 최고 기업을 선정해 이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부 특혜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국가는 신규 업체의 시장 진출 억제, 기업체에 대한 세제 햬택 등 다양한 특혜를 제공해 소수 민간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도록 돕고, 그렇게 창출한 수익을 산업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금융권과 소수 특혜 기업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 은행 자금이 집중적으로 (그리고 저렴하게) 이 특혜 기업으로 가도록 만든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국가는 일부 부담을 정부가 지면서까지 민간 업체에 저가로 원료를 공급하고, 외국 기업들로부터 국내 업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고관세를 부과한다. 이처럼 정부로부터 물질적 보조와 법적 보호를 받은 극소수 특혜 대기업은 급속한 성장을 하며 수익을 증대시키고 기술, 부, 조직 자본 그리고 안정성 모두를 확보하게 된다. (...)


그러나 정부가 소수 기업에게만 특혜를 부여하는 성장 전략은 상당한 문제를 유발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부패한 정부 하에서는 기업의 능력에 따라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정부 관계자의 친척이나 친구의 회사에 특혜를 부여하기 쉽다는 것이다. (...) 두번째 문제는 가계 소비를 정부가 별로 중시하지 않고, 그 결과 내수 소비 수준이 극도로 낮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비효율적인 국내 기업을 길들이면서 동시에 상품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국내 대기업에게 수출을 장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국내 기업은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어서 좋고, 동시에 더 넓은 세계 시장에서 활동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서 좋다. (...) 이러한 직간접적인 각종 혜택을 통해 개도국 기업의 효율성은 마침내 향상된다.


라구람 라잔. 2011. "경제성장을 위한 수출". 『폴트라인』. 106-123    


조직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이 부작용을 초래하니, 단순히 내수주도형 성장모델로 전환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위에서 살펴봤듯이, 투자중심 성장을 비판한 마이클 페티스 Michael Pettis 교수의 저서 제목은 『The Great Rebalancing』 이다. 말그대로 "(수출지향적인) 투자중심 성장에서 (내수지향적인) 소비중심 성장 Consumption-driven Growth로 균형을 재조정 Rebalancing 해야한다"는 것이다.[각주:7] [각주:8] [각주:9]  


그렇지만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은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을 채택했던 국가가 내수주도형 경제모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라고 말한다.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수출 지향적 성장 전략을 통해 부국이 된 국가들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국내 시장 성장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갔지만 결국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수출에 매달리는 동안 국내 최종 소비 증진에 필요한 물길이 모두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은행은 국내 시장을 외국 경쟁 업체로부터 보호하고, 소수 특혜 수출 업체들만 지원하는 관행에 익숙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정부가 은행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대출 과정을 자유화하는 조처를 취해도 은행은 현실에 적응을 제대로 못했고, 정부 기대에도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


소비자도 변화에 익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본 소비자들은 오랫동안 지출에 신중을 기해왔다. 그런 만큼 소매 금융이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미국의 가계와 달리 일본 가계는 무엇인가를 구입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다. 특히 노인 세대는 전쟁 후 굶주리고 불안했던 기억과 저축이야말로 애국의 길이라고 배웠던 과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라구람 라잔. 2011. "경제성장을 위한 수출". 『폴트라인』. 132-134




※ 8·3 사채동결조치를 통해 과잉투자의 문제를 해결한 한국경제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 의 주장처럼,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에서 내수주도형 경제모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자본투입의 증가-다르게 말해 과도한 투자 over-investment-가 초래하는 부작용을 어떻게 개선했을까? 1972년 한국정부는 '기업들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 이다. 8·3 사채동결조치는 '부채상환 동결 또는 탕감 · 대출 이자율 인하 · 만기구조 재조정' 을 담은 정책이었다. 


명색이 시장경제를 하겠다는 나라에서 기업 부채를 동결 또는 탕감 해준다는 것은 생각조차 어려운 극약처방이었다. 전경련 김용완 회장은 여러 차례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기업들의 빚더미 현실을 토로하고 특단의 구제조치를 요청했다. 자금 지원이나 부채상환 연기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빚더미에 깔려 있는 기업들의 사채를 아예 동결시켜달라는 것이었다. (...)


대통령은 고심 끝에 사채동결로 결심했다. 재계 총수 김용완의 요청으로 비롯된 것이었고, 여러 의견을 청취한 끝에 내린 박정희의 최종 결정이었다. 1971년 9월 김용환(외자관리비서관)을 팀장으로 하는 실무반이 편성됐고, 이듬해 8월 3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사채동결조치를 발표하게 된다. 통화개혁 못지않은 철통 보안 속에 꼬박 1년 동안 사전준비 작업을 거쳤다. 


1주일 동안 신고받은 사채규모는 3천5백억 원 수준이었다. 이것을 금리 월 1.35%에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하는 것이 8·3조치의 기본골간이다.


이장규. 2012. "8·3 사채동결조치". 『대통령의 경제학』. 164-165


당시 경제상황을 드러내주는 구체적인 자료는 조윤제, 김준경의 보고서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에서 찾을 수 있다. (Table B)의 대출이자율 Nominal interest rates on general loan 을 살펴보면, 1960년대 동안 20%가 넘는 높은 이자율이 지속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당시 기업들은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과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으로 인해) 자산대비 부채비율 Debt/equity ratio 이 높았던 상황이다. (Table C)를 통해서 1960년대 동안 기업의 부채비율이 증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도한 부채를 지니고 있는데 이자율마저 높다? 당연히 기업의 비용부담이 커지게 된다. (Table C)를 살펴보면 이 기간동안 기업들의 매출대비 이익비율 Net profit/net sales ratio 이 하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업들은 부채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수익성마저 악화되는 상황이다. 은행이 (국가의 지시를 받아) 기업에게 해준 대출은 고스란히 부실채권 NPL, Non-Performing Loans 이 된다. 1972년, 보다못한 정부가 8·3 사채동결조치를 통해 대출이자율을 낮추고 기업들의 부채를 탕감해준다. 


위에 첨부된 (Table B)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1972년을 기점으로 대출이자율이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Table C)에 나오듯이, 1972년을 기점으로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하락하고, 수익성도 개선되었다. 그 결과, 부실채권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Table D)를 보면, 1972년을 기점으로 전체 대출 중 부실채권의 비율 Share of NPLs 이 급속도로 줄어들어든 모습이 보인다.    



high interest rates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1960s squeezed corporate profitability and retained earnings. (...) Continuing high domestic interest rates, devaluation, and tight credit control hit domestic firms hard, especially those that borrowed from abroad. The world economic recession made things worse. The net profit ratio of the manufacturing sector as a whole fell sharply (Table C). Nonperforming loans in the bank started to pile up. (...)


By 1971, the number of bankrupt enterprises that had received foreign loans climbed to 200; Korea faced the first debt crisis. (...) After consultation with leading businessmen, the government concluded that some extraordinary measures were necessary to cushion the financial burden of the debt-ridden firms, and started to prepare the measure in complete secrecy.


The government issued its Economic Emergency Decree in August 1972 to bail out the debt-ridden corporate sector. It included an immediate moratorium on the payment of all corporate debt to the curb lenders and extensive rescheduling of bank loans at a reduced interest rate.  (...)


These measures had considerable repercussions throughout the economy, shifting the crushing burden of the corporate sector's foreign debt service payment to domestic curb lenders and bank depositors. The interest burden on business firms was lightened significantly. The ratio of interest expenses to sales volume for manufacturing firms dropped sharply from 9.9 percent in 1971 to 7.1 percent in 1972, and then to 4.6 percent in 1973 (Table C).


As the financial situation of the corporate sector improved, so did the nonperforming loan problem of the banks. The share of nonperforming loans in commercial banks fell from 2.5 percent in 1971 to 0.92 percent in 1973, and to 0.6 percent in 1974 (Table D).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108-113 (PDF 파일 기준)




※ 8·3 사채동결조치가 낳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 1997 외환위기의 원인


8·3 사채동결조치는 기업들의 부담을 대출자와 예금자에게 떠넘긴 정책이었다. 게다가 기업들과 금융기관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를 유발하는 정책이다. 정부의 사채동결조치를 경험한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를 지더라도 정부가 빚을 탕감해줄 것" 이라고 생각해 또다시 과잉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은행들도 "아무에게나 대출을 해서 부실채권이 되더라도 정부가 해결해 줄 것" 이라고 생각해, 대출과정에서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하지 않을 것이다.  


These measures had considerable repercussions throughout the economy, shifting the crushing burden of the corporate sector's foreign debt service payment to domestic curb lenders and bank depositors. (...)


this drastic measure aggravated the moral hazard issue for corporate firms and banks. The government's risk partnership with highly leveraged firms that motivated the 1972 measure encouraged firms to depend on the government for support, without paying sufficient attention to their project selection. The efficiency of the banking system was also hampered, because once rescued by the government, it had little incentive for serious credit evaluation and monitoring.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113 (PDF 파일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8·3 사채동결조치를 통해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했다.  이장규는 "경제원칙은 크게 훼손시켰으나 비싼 대가로 경제위기를 넘긴 셈" 이라고 말한다.


1주일 동안 신고받은 사채규모는 3천5백억 원 수준이었다. 이것을 금리 월 1.35%에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하는 것이 8·3조치의 기본골간이다. 해당기업에는 엄청난 혜택이요, 반면에 사채를 빌려준 쪽에서는 청천벽력이었다. 그 결과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1971년 394%에서 1972년 288.8%로 크게 떨어졌다. 성장률은 1972년의 6.5%에서 1973년은 14.8%로 껑충 뛰었다. 경제원칙은 크게 훼손시켰으나 비싼 대가로 경제는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이장규. 2012. "8·3 사채동결조치". 『대통령의 경제학』. 165


그러나 8·3 사채동결조치는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했을 뿐이었다.  8·3 사채동결조치가 낳은 은행과 기업들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로 인해 한국경제는 1997년에 큰 문제를 겪게 된다.


안그래도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과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으로 인해 은행들은 단지 한국주식회사의 재무파트일 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나서서 기업들의 부실채권마저 없애줬다. 이제 은행들은 "은행 자산과 부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보다 정부의 지시를 따르는 게 경영평가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행 본연의 임무인 신용평가 · 리스크 관리는 중요치 않다. 은행의 느슨한 대출로 인해 부실채권은 또다시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하는 은행들은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용금고·단자회사 등 비은행금융권이 커지고 만다. 비은행금융권은 만기구조가 짧고 금리가 높기 때문에 경제전체의 불안정성을 키우게 된다.   


Korea relied on credit interventions too heavily and for too long as an industrial policy instrument. The banking system bore the brunt of this strategy. The government used the banking system as a treasury unit to finance development projects and to manage risk sharing in the economy.


Bankers were treated as civil servants. Their performance was evaluated according to whether they complied with government guidance, rather than whether they managed their assets and liabilities efficiently. Commercial banks in Korea were involved so heavily in directed credit progrmas that they almost functioned as development banks. In the process, they incurred large nonperforming loans (NPLs) (Table 19), which again had to be covered with government support. 


Consequently, banks lagged behind the development of the real sector and could not effectively meet its demand for financial servies; the banks thus lost market share to other financial institutions, such as Non-Banking Financial Instutions(NBFIs), which could operate more feely and thus prolifereatd. (Box 3).  (...)


But their expansion also ecreated problems. Because they are relatively small institutions and provide mostly short-term financing, their growth shortened the average maturities of loans, and the thwarted banks from assuming a "corporate governance" role - which many recognize is the strength of relationship banking, such as the Japanese "main banking systme."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115-119 (PDF 파일 기준)


  • 1971~75년 동안 부실채권 비중은 1.3%에 불과했지만, 그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한국경제에서 은행부문은 신용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비은행부문이 한국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한국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를 한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 ·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 8·3 사채동결조치는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 저해 · 제2금융권 팽창 · 은행과 기업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조장 · 잠재적 부실채권 증가 · 재벌에 경제력 집중 · 재벌의 과다차입 이라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낳았다. 이 문제는 1997 외환위기의 원인과도 이어진다. 1997년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과 재정경제원 차관 강만수는 "8·3 사채동결조치는 도덕적 해이를 낳았고, 이는 1997 외환위기의 원인" 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빚을 겁내지 않게 만든 정책이 72년의 이른바 '8·3조치'로 불린 대통령 긴급명령이었다.


60년대 후반에 경쟁적으로 무분별하게 도입한 차관 자금으로 건설한 공장들이 70년대 초의 세계적인 불경기로 일시에 부실기업 덩어리로 변하게 되어, 당시 경제가 좌초 위기에 몰려 있었다. 당시 기업들은 사채를 많이 얻어쓰고 있었다. 이를 구제하기 위해 72년 8월 3일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서 기업에 대한 사채 금리를 낮추고 원리금 상환 기간을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국가가 개인간의 대차 관계를 획일적으로 조정해서 기업의 부담을 경감해준 것이다.


빚에 짓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기업들로서는 절망의 나락에서 일거에 벗어날 수 있었다. 더욱이 8·3조치 직후 1차 석유파동으로 석유값을 비롯해서 모든 물가가 뛰어 전세계적인 인플레로 엄청난 이익을 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앉은자리에서 빚 부담은 가벼워지고 설비 가치는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다. 빚이 많을수록 혜택 또한 컸기 때문에, 빚을 겁내지 않는 풍조가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8·3조치는 '대마불사의 신화'라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게 한 결정적인 정책이 되었던 것이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180-181


1972년 '8·3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기업의 이자부담이 대폭 줄어듦으로써 경쟁력은 급속히 회복되어 경상수지 적자는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8·3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우리기업은 부채를 겁낼 줄 모르고 몸집을 불리는 '차입경영'과 '그룹경영'으로 치달았고 자본을 충실히 하고 자기 사업에만 집중하던 우량기업들이 오히려 시장경쟁에서 밀려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경제는 구조조정에 의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사채동결이라는 편법에 의존함으로써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87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




<참고자료>


박병영. 2003. 1980년대 한국의 개발국가의 변화와 지속 - 산업정책 전략과 조직을 중심으로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2013.08.18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조장옥 교수, 거시경제학 수업자료


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 2013.06.07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조태형, 김정훈, Paul Schrever.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 <한국은행 이슈노트>. 2012.06.30


Michael Pettis. 2013. 『The Great Rebalancing』


Paul Krugman. "Hitting China's Wall". <New York Times> . 2013.07.18 


이종화. "Asia's Rebalancing Act". <Project Syndicate>. 2013.09.23


이장규. 2012. 『대통령의 경제학』


라구람 라잔. 2011.『폴트라인』.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1. 박병영.2003."1980년대 한국의 개발국가의 변화와 지속 - 산업정책 전략과 조직을 중심으로" [본문으로]
  2. '특정 기업에 금융자원을 몰아주고, 그 기업은 세계시장에 진출해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는 것은 마치 '국가 간 경쟁'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신흥국이 '수출주도형 성장'을 경제발전전략으로 채택하는 이유는 경제운용에 필요한 조직자본Oraganizational Capital을 획득하기 위해서이지, '다른나라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본문으로]
  3. 폴 크루그먼은 1994년 에 기고한 "The Myth of Asia's Miracle" 을 통해 동아시아 경제성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혹자는 이에 대해 "크루그먼이 3년 뒤에 있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 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크루그먼은 단지 '경제성장의 방법적 측면'에서 동아시아의 성장방식을 비판하는 것일뿐,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은 아니다. 크루그먼 본인 또한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은 아니다" 라고 밝히고 있다. 크루그먼은 1998년에 쓴 "What Happened to Asia"에서 "we expected the longer-term slowdown in growth to emrge only gradually" 라고 말했다. [본문으로]
  4. 보고서는 최근 5년 동안에는 생산성 향상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다고 덧붙인다. "요소투입과 생산성 간의 상대적 중요성의 역전이 발생하여 최근 5년-2006년~2010년-동안에는 생산성 증가가 소득성장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최근 들어 우리나라 경제가 요소투입형 성장에서 생산성주도형 성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7쪽-10쪽) [본문으로]
  5. '저축-투자=순수출' 이라는 개념을 아는 분들은 "수출을 해야하는데 왜 투자를 장려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가는 수출주도형 성장을 위해 금융자원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은행저축 이외의 다른 금융서비스 이용도 규제한다. 게다가 무역수지 흑자달성이 아니더라도, 무역규모가 증가하는 것 자체가 경제성장을 드러내준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무역은 다른나라와의 경쟁이 아니다. 따라서 '무역수지 흑자' 자체를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 라고 생각해 무역수지 흑자 그 자체에 연연하면 안된다. [본문으로]
  6. 前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現 인도중앙은행 총재. [본문으로]
  7. 마이클 페티스 Michael Pettis 교수는 "현재 중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소비중심 성장으로의 재조정 Rebalancing" 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자 Paul Krugman과 이종화 또한 중국경제의 Rebalncing을 주장하고 있다. [본문으로]
  8. Paul Krugman. "Hitting China's Wall". . 2013.07.18 http://www.nytimes.com/2013/07/19/opinion/krugman-hitting-chinas-wall.html [본문으로]
  9. 이종화. "Asia's Rebalancing Act". . 2013.09.23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the-risks-for-asian-growth-from-china-s-slowdown-by-lee-jong-wh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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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Posted at 2013. 10. 13. 02:11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비대칭적 규제 - 규제가 작은 부문으로 자원배분이 집중


보통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금융자유화가 진전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 이다. 금융시장이 발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시장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급격한 자본유출입 등이 발생해 시장전체의 불안정성을 키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이 개방될수록 이에 걸맞는 "건전성 감독" 정책이 따라줘야 하는데, 1990년대 한국은 금융시장은 개방했지만 제대로 된 건전성 감독정책은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경제연구원> 최두열은 "비대칭적인 규제 Unbalanced Regulation"을 1997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한다. 금융시장의 규제정도가 균등하지 않고 특정부문에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상황에서, 규제가 작은 부문으로 자원배분이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금융산업 부문간의 비대칭적인 규제라 함은 금융산업의 자금조달, 운용 및 건전성에 대한 감독에 있어서 금융산업 부문간에 규제의 정도가 균등하지 않고 일부 금융산업 부문의 특정활동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규제의 정도가 약하거나 방치되어 있는 상태" (174)


"비대칭적인 규제가 생겨나 시행되면 가격과 규제에 대한 조정속도가 빠른 금융자산의 속성상 단기간 내에 상대적으로 규제가 작은 부문으로 자원배분이 집중되어 이 부문이 비대화" (175)


"아시아 국가들은 경쟁제한적인 규제를 완화Deregulate하는 과정에서 은행과 비은행권Non Bank의 금융산업 부문간에 자금의 조달과 운용에 있어서 규제의 불균형이 존재하여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비은행권 부문이 외환위기 발생 이전에 비정상적으로 비대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비은행권의 비정상적인 비대화에 대해서 건전성 감독을 위한 재규제Prudential Regulation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에 따라 비은행권의 부실화를 방지하지 못하였다. 비정상적으로 비대화된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부실화함에 따라 금융시스템 전체가 불안정하게 되고 이것이 외환위기 발생의 촉매를 형성하였다" (175)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74-175


그리고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이 작동하던 시절[각주:1] 국가의 금융자원배분에 따라 (상대적으로 편하게) 영업하던 금융기관이, "금리자유화와 영업자유화"를 맞게 된다면 고위험 고수익 영업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 또한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아시아 각국의 금융자유화의 내용은 주로 경쟁제한적인 규제의 완화로서 크게 금리의 자유화와 업무의 자유화로 요약된다. 금리의 자유화는 금융기관들간의 금리경쟁을 격화시켜 예대마진을 축소시켰다. 한편 업무의 자유화는 금융기관의 업무별 영역을 제거함에 따라 그 동안 진입제한에 따라 독점적 지대Rent를 보장해 주었던 금융기관의 영업기반을 취약하게 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에 따라 금융기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성이 악화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경쟁제한적 규제완화를 통한 금융자유화와 동반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이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불안현상이다. 이는 그 동안 경쟁제한으로 인하여 독점적인 지대를 보장받던 기존 금융기관들이 과당경쟁으로 인하여 수익성이 악화되고, 신규 업무영역에 진입한 금융기관들이 시장점유율 제고를 위한 위험부담적인 영업High Risk and High Return과 경험축적 부족에 따라 부실화되고, 이에 따라 전체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해지기때문이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72-173




※ 1997년의 한국 -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비대화된 기업어음(CP) 시장


1997년 당시, 비대칭적 규제가 적용되고 금융기관들의 고위험 고수익 영업이 이루어졌던 금융부문이 기업어음(CP, Commercial Paper)이다. 서강대 국제대학원 조윤제는 1990년대 한국의 잘못된 금융자유화 순서가 기업어음 시장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은행수신의 경우. 장기수신금리가 먼저 자유화되고 신탁계정의 금리자유화 폭이 컸었다. 그 결과 자금조달비용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발행이 까다롭고 장기금융인 회사채시장에 대한 규제는 지속되고 기업이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는 단기금융인 기업어음 시장에 대한 규제는 철폐되었다. 따라서, 은행은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고수익자산 중심으로 운용을 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회사채, 국채 등 비교적 안전한 자산보다는 기업어음 등 위험자산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즉,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위험도가 큰 기업어음(CP)시장으로 자원배분이 집중된 것이다.  


은행의 경우 장기수신금리가 자유화됨에 따라 장기수신비중이 늘었으며, 상대적으로 금리자유화 폭이 큰 CD 및 신탁계정으로 자금조달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같은 시중금리수준에 비해 평균자금조달비용이 상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자산운영도 금리가 규제된 대출보다는 금리가 자유화된 고수익자산 중심으로 운용하려 하게 되었다. 


  • 1990년 이후, 상대적으로 금리자유화 폭이 컸던 CD·금전신탁 계정으로 은행수신이 크게 증가하였다.
  • 이에 따라, 은행의 자금조달비용은 증가하게 되었다.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7-8


회사채금리의 경우도 비록 자유화되어 있었기는 했으나, 당국의 물량규제로 실질적으로 금리를 규제해왔다. 반면, 기업어음(CP)의 경우 1993년 만기 및 최저금액제한이 완화되었고, 이와 더불어 금리에 대한 행정지도도 완전철폐하였으며, 물량규제도 전혀 없어 실질적으로 거의 완전히 자유화된 금리가 되었다.


따라서 단기여신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어음이 거의 완전자유화된 반면 장기금융인 은행의 대출과 회사채금리에 대해서는 행정규제가 지속됨에 따라 개인과 금융기관의 자금운용이 CP 등 고수익단기금융자산에 크게 몰리고 대출과 회사채보유 등은 상응한 증가를 보이지 않았다. (<표2> 참조).


기업의 자금조달원도 이러한 단기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실제로 이들 기업부문의 자금조달의 flow측면에서 보았을때의 변화는 <표3>과 같다. 


(...)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은행의 신탁자산운용에 대한 규제완화는 (1993년 10월) 신탁자산의 유가증권 보유를 크게 늘어나게 하였다. 은행의 경우 전반적으로 실질적인 금리자유화폭이 큰 신탁계정이 은행계정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였으며, 신탁계정의 자산운용측면에서도 신탁대출보다 유가증권 보유비중이 더 크게 늘어났다. 유가증권 보유에 있어서도 국채와 같은 무위험자산이 줄고, 주식이나 회사채 같은 장기금융보다 기업어음 등 단기채권 보유가 크게 늘어났다.



  • 1991년 이후, 은행들의 고위험 고수익 추구에 따라, 기업들도 회사채·은행대출·기업신용 보다는 기업어음(CP)에 의존해 많은 자금을 조달했다.
  • 기업어음(CP)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을 <표2>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1990년, 기업들의 자금조달 중 기업어음(CP)가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불과했다.
  • 그러나 1996년, 기업어음(CP)이 차지하는 비중은 17.5%로 증가하였다.
  • 기업어음(CP)에 비해 안전자산인 회사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1.5%에서 17.9%로 감소했다.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4-8

 



※ 취약한 금융감독 기능 - 기업들의 단기차입증대로 인한 채무불이행을 막지 못하다


은행들은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기업어음(CP)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고, 기업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기업어음(CP)을 이용해 (편리하게) 자금을 조달하였다. 그러나 1997년 이후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기업어음(CP)은 금리가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부담하는 평균차입비용이 높았다. 게다가 기업어음(CP)은 회사채에 비해 만기기간이 짧기 때문에,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빠른기간에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을 결제하지 못하고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키운 또 다른 요인은 취약한 금융감독 기능이다. 조윤제는 "직접금융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기능의 신뢰성과 이를 위해 필요한 시장하부구조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기금융시장을 급속히 자유화하여 자금흐름의 왜곡을 증가시켰다(21)" 라고 지적한다.




감독 및 신용평가기능 등 시장의 하부구조(financial market infrastructure)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았던 단기금융시장이 먼저 자유화되었다. 단기금융시장, 특히 기업어음시장은 때마침 많은 설립인가가 이루어진 종합금융회사들 간의 경쟁격화로 무분별한 할인이 확대되었으며, 이들의 이면보증에 의한 은행신탁계정 인수가 늘어남으로써 결과적으로 은행의 장기예금(엄격하게는 은행의 금전신탁)이 단기기업 어음할인에 쓰이게 되었으며, 은행의 직접적인 신용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험이 보다 일천한 종합금융회사의 신용평가와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 나라는 은행의 기능이 충분히 성숙되기도 전에 제2금융권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이에 따른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기업감독기능의 취약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


직접금융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기능의 신뢰성과 이를 위해 필요한 시장하부구조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기금융시장을 급속히 자유화하여 자금흐름의 왜곡을 증가시켰다. 자금시장의 하부구조인 재벌기업들의 결합재무제표작성, 회계의 투명성, 공시제도 등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단기금융시장이 급속히 자유화 되었고, 반면 장기금융은 직간접적으로 규제되어 있어 많은 재벌기업들이 이시기에 확대한 중화학공업투자 등 장기투자를 결과적으로 2~3개월짜리 기업어음 등, 단기부채로 조달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부도위험성을 높이게 되었다. 


또한 기업에 대한 금융자금 공급채널에 있어서 제1금융권으로부터 종합금융회사 등 제2금융권으로의 비중과 역할이 커지게 됨으로써 전반적인 금융감독기능이 크게 악화되었고, 또한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와 기업감독기능이 전반적으로 악화되어 재벌기업들의 투자에 대한 사전심사기능과 사후감독기능이 취약해지고 그 결과 금융시장이 이들의 단기차입증대에 의한 경쟁적 투자확대를 적절히 감시하고 제어하는 기능이 약해졌다.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19-22

 



※ 비대칭적 규제와 금융감독 기능 부재 - 금융회사의 사금고화 & 불완전판매 


금융자유화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시장의 비대칭적 규제와 금융감독기능 부재는 기업어음(CP)시장 확대에 따른 기업들의 부채구조 단기화와 채무불이행 · 부도위험성 증가를 낳았다. 이것들 이외에 또 다른 문제는 없었을까? 바로, 금융회사의 사금고화불완전판매 문제이다. (이것은 2013년 현재 동양사태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포스팅에서도 살펴봤듯이, 한국경제는 경제관료와 재벌의 유착으로 성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금융산업은 단순히 자원배분기능을 하는 도구역할을 맡게되면서, 재벌로 대표되는 실물경제에 종속되는 모습을 띄었다. 1990년 이후,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금융자유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금융산업은 여전히 재벌에 종속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나 1997년 당시, 신동아그룹 계열사였던 대한생명은 "7개 계열사와 국내외 위장 계열사에 빌려준 돈이 2조 1,000억 원, 최순영 회장이 빼돌린 돈이 1,800억 원"에 이르렀다. 보험회사인 대한생명이 한 재벌총수-최순영 회장-의 사금고 역할을 한 것이다. 1997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원 부위원장보를 맡았던 김기홍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Q. 1999년 3월 발표된 금융감독위원회의 대한생명 특별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자산보다 부채가 2조 9,000억 원 많았습니다. 신동아 그룹 7개 계열사와 국내외 위장 계열사에게 빌려준 돈이 2조 1,000억 원, 최순영 회장이 빼돌린 돈도 1,800 억원이 넘었지요. 당시를 돌아보며 "썩었다는 말 외엔 표현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하셨는데요. 처음 부실을 눈치 챈 건 언제였나요.


A. "내가 금감위 합류하기 전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자 유치를 하러 다닌다기에 '외자를 도입하면 계열사 지원 절차가 번거로워질 텐데, 그래도 유치할 정도로 어려운가 싶었죠. 1999년 1월 부원장보가 되고 얼마 안 돼 메트라이프 측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순자산이 3조 4,000억 원이 모자란다'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Q. 왜 그렇게 자산을 까먹은 건가요?


A. "보험 영업으로 까먹은 돈은 없었어요. 부실 계열사에 빌려준 돈이 2조 원이 넘었지요.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빼돌린 돈도 상당 수준이었고, 대한생명은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화된 대표적인 케이스에요."


Q. 정부가 시간을 벌어줬다면 대한생명이 살아났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A. 자산이 15조 원도 안 되는 회사에 3조 가까이 구멍났는데 어떻게 살 수 있나. 결국 그 부실을 메꾸느라 3조 원 넘게 국민 세금이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부실 금융기관이 어디 있겠어요.


이헌재. 2012. "잠깐 인터뷰". 『위기를 쏘다』. 200쪽


그리고 증권사와 투신사들은 개인고객에게 금융상품에 대한 기본구조와 원금 손실가능성 등의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상품을 판매했다. 이른바 불완전판매 이다. 1997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던 이헌재는 금융사들의 불완전판매 행태를 문제삼고, 개인고객에게 원금을 보장하라는 책임을 부담시켰다.


부담을 고스란히 금융회사에 지우기로 한 것은 맞다. 대우 채권이 섞인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가 80 퍼센트, 이를 굴린 투신사가 20퍼센트를 떠안케 했다. 


"개인투자자에게도 책임을 지워야지요." 강봉균 당시 재경부 장관도 서별관 회의에서 들고 나온 논리다. 원칙대로 하자. 말은 쉽다.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으랴. 그러나 당시 상황은 달랐다. 증권사 창구에선 "예금과 마찬가지"라며 수익증권을 팔았다. 금융당국도 그렇게 하도록 방치했다.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은 은행 예금 들듯 수익증권을 샀다. 그런 개인에 책임을 묻는다?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그뿐인가. 시장이 나빠지자 투신사들은 수익증권을 제멋대로 주물럭거렸다. 큰 기관이 가입한 펀드에서 불량 회사채를 빼서 일반인들이 많이 투자한 펀드에 집어넣었다. "대우 회사채는 없다고 해서 투자했는데 왜 대우채가 들어 있느냐"라고 항의하는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불법 편·출입, 이건 일종의 사기요 범죄다. 증권·투신사에 '원금보장'의 책임을 지운 건 그래서다.


이헌재. "투신시장의 안정(3)". 위기를 쏘다』. 217-218쪽

 



※ 2013년의 한국 - 1997년의 교훈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한국경제는 1997년의 교훈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최근의 동양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비대칭적 금융규제로 인해 자원배분이 특정부문에 집중되는 문제 

 금융감독 기능의 부실 

 금융기관의 사금고화 

 불완전판매 


문제는 여전하다. 


<조선일보>는 "CP의 최장 만기 제한이 폐지되면서, 기업들이 (규제가 있는) 회사채 대신 사실상 규제가 없는 CP로 몰리기 시작했다" 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비대칭적 금융규제의 문제로 인해 2013년 현재에도 위험도가 큰 기업어음(CP) 시장이 커져다는 것이다.


"우선 부실 금융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른 CP에 대한 통합 데이터베이스(DB)가 없다는 것이다. CP는 기본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금융이다. 이사회를 거쳐 공시해야 하는 회사채보다 느슨해서, 기업 입장에서는 대표가 결정해 공시할 필요도 없이 발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CP들이 얼마나 발행돼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는지 어떤 금융 당국도 확인할 DB가 없다는 것이다.


(...)


CP가 널리 확산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CP의 최장 만기 제한(1년)을 폐지하면서부터다. 기업들은 공시 의무, 이사회 의결 같은 규제가 있는 회사채 대신 사실상 규제 없이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CP로 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2010년 말 73조원에 불과했던 CP 발행액이 지난 5월엔 150조원으로 급증한 데는 이런 요인이 있다."


"동양 부실 CP, 中 경제 흔들었던 '그림자 금융(엄격한 감독·규제 안 받는 금융 행위)' 판박이". <조선일보>. 201310.08


실제로 동양그룹은 지난 2년 9개월간 1조 5,000억원 정도의 계열사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돌려막기' 해왔다.


지난달 30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사의 CP와 회사채가 동양증권 창구를 통해 판매된 금액은 2011년 말(잔액 기준) 1조5500억원, 2012년 말 1조7100억원, 2013년 9월 29일 현재 1조3300억원이다. 지난 2년 9개월간 1조5000억원 정도의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돌려 막기'했다는 뜻이다.




"東洋 부실채권 年 1조 넘게 팔았는데… 금감원, 검사하고도 "문제없다"". <조선일보>. 2013.10.02


거기다가 금융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원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기업어음(CP) 시장이 커지는 것을 막지 못했을 뿐더러, 금융회사가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의 시행을 뒤로 미루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금감원은 지난 3년간 동양증권을 4차례 검사하면서 매번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양증권이라는 회사의 건전성만 점검하고, 이 회사가 팔고 있는 막대한 물량의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가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이라는 것은 감지하지 못한 셈이다.


늑장 대응도 문제다. 금융 당국은 동양그룹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던 지난 4월 금융회사가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마련했다. 하지만 6개월의 유예 기간을 주면서 오는 26일부터 시행되도록 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동양증권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규제라 '동양증권법'이라고 불렸지만, 시행되기도 전에 동양그룹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투자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


금융 당국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문제다. 위험도가 높은 동양그룹 CP와 회사채를 산 개인 투자자들의 책임도 있지만, 애당초 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금감원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회사채는 증권신고서를 사전에 내고 공시해야 하는 등의 규제 절차가 있지만, CP는 기업이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어 당국이 어쩔 수 없다"면서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자본잠식 상태인 것은 전부 공시가 돼 있는데도 투자를 한 개인 투자자들이 이제 와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금융회사 등 기관투자자들에게는 "투기 등급의 CP를 아예 보유할 수 없다"는 내용의 내규를 만들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하지 못하게 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위험하다'는 신호조차 제대로 보내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금감원이 동양증권 관련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양증권은 지난 2001년 동양현대종금과 합병해서 만들어졌고, 지난 2011년 11월 종금사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이후 원금이 보장되는 '종금형 CMA(자산관리계좌)'를 판매할 수 없게 됐다. 동양증권은 "종금사 영업이 끝났으니 투자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고지를 기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금감원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東洋 부실채권 年 1조 넘게 팔았는데… 금감원, 검사하고도 "문제없다"". <조선일보>. 2013.10.02


신용평가사들 또한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 계열사에도 채무 상환 능력이 인정되는 B등급을 주고 있었는가 하면, 줄곧 우량 등급을 주다가 법정관리 한 달 전부터 무려 5단계를 초스피드로 떨어뜨렸다."


1999년 대우그룹의 회사채 파동 이후 최대 규모인 4만여명의 기업어음(CP) 피해자를 쏟아낸 '동양 부실 CP 쇼크'의 배후엔 부실한 신용평가 기능이 한몫을 하고 있다. 신용평가만 제대로 했더라도 부실 CP 발행이 불가능했고, 그랬다면 피해자도 그만큼 줄었을 것이란 얘기다.


이번 '동양그룹 사태'에서 신용평가사들은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 계열사에도 채무 상환 능력이 인정되는 B등급을 주고 있었는가 하면, 줄곧 우량 등급을 주다가 법정관리 한 달 전부터 무려 5단계를 초스피드로 떨어뜨렸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뒷북도 이런 뒷북이 있나' 하는 탄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A3(상환능력 양호 등급·2012년 1월)→A3-(2013년 1~8월)→B+(상환능력 인정 등급·2013년 8월 29일)→B-(2013년 9월 27일)→D(채무불이행 등급·2013년 10월 1일)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2개 신용평가기관이 지난 1일 법정관리 신청을 한 동양시멘트에 대해 최근 2년간 내려온 신용등급의 변화 추이다.


'믿고 투자해도 좋다'는 등급(A)이 법정관리 신청 불과 한 달 전인 8월 29일부터 무려 5등급이나 초스피드로 급락해 D(채무불이행)등급으로 떨어졌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신평사인 한국신용평가는 동양 계열사에 대해 평가를 중단했거나 하지 않아왔다.


현재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동양시멘트 CP 발행 금액만도 358억원. 대부분 '휴지 조각'이 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법정관리 돌입 석 달여 전부터 (주)동양이 집중적으로 1500억원대 이상 발행한 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는 동양시멘트의 '건전성'을 담보로 발행된 것이다. 에프엔 자산평가의 최원석 대표는 "'엉터리 뒷북 신용평가'만 없었더라도 동양 계열사들이 부실 CP를 마음대로 발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社들, 동양시멘트 우량등급 주다 법정관리 신청 직전 5단계 내려". <조선일보>. 2013.10.07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위험도가 큰 기업어음(CP) 시장이 팽창하고 금융감독 당국과 신용평가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동양그룹의 금융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와 동양자산운용은 사금고로 악용되었다. ""㈜동양이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레저 등에 직접 돈을 빌려주면 곧바로 '배임'에 해당할 수 있어, 중간에 동양파이낸셜대부를 집어넣어 계열사 간 돈을 돌린 것" 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CP 외에도 대여금, 일반대출 등의 형식으로 동양파워,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티와이머니대부, 동양생명 등 계열사로부터 1조4999억원의 자금이 동양파이낸셜대부로 들어갔다가 1조5443억원이 계열사들로 다시 빠져나갔다." 


그리고 "동양자산운용은 지난 2010년 1~3월 계열사인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발행한 회사채와 CP를 법정 한도(자기자본 대비 계열사 투자 비율)보다 31억원이나 초과해서 사들였다." "다른 자산운용사들이 기피하는 투기등급의 동양 계열사에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도의 투자를 한 것이다." 



'동양그룹 부실 기업어음(CP) 쇼크' 사태는 금융 계열사를 사(私)금고화해 계열 부실기업 자금줄로 이용하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너 일가가 그룹을 살리기 위해 고객이 금융사에 맡긴 돈을 맘대로 이용하는 바람에 막대한 개인 피해자를 양산했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동양그룹은 동양증권뿐만 아니라 계열 대부 회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도 부실 계열사 지원에 동원했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지난 9월 ㈜동양과 동양시멘트에 CP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각각 350억, 100억원을 빌렸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이 돈을 포함해 각각 420억원, 290억원을 같은 달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에 빌려줬다. 당시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다. 시중에서는 도저히 돈을 빌리기 어려운 부실 회사들이 계열 금융회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를 통해 재무 상태를 고려했을 때 상상하기 어려운 연 6.5~9.3%대의 저리로 대출을 받아낸 것이다.


(...)


◇부실 계열사 지원에 금융 계열사 총동원


동양자산운용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동양자산운용은 지난 2010년 1~3월 계열사인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발행한 회사채와 CP를 법정 한도(자기자본 대비 계열사 투자 비율)보다 31억원이나 초과해서 사들였다가 금감원으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그 뒤로 동양자산운용의 40여개 펀드는 법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법에서 허용하는 한도인 462억원어치까지 꽉 채워서 지난 3월까지 보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자산운용사들이 기피하는 투기등급의 동양 계열사에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도의 투자를 한 것이다.


"동양, 대부업체(동양파이낸셜대부) 동원해 부실 계열사 지원… 私금고 된 대기업 금융사". <조선일보>. 2013.10.09




동양그룹 계열 대부업체인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사흘에 한 번꼴로 CP를 발행해 계열사 자금 지원 통로를 하면서 정작 서민대출은 모두 합쳐 수십억원에 불과해 본말이 전도된 영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업체가 진입 요건도 느슨하고 관리감독도 소홀하다는 점을 이용해 '대부업' 간판만 걸어둔 채 대기업의 'CP 공장' 역할을 한 것이다.


탁결제원에 따르면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지난해 4월부터 올 9월까지 1년 6개월간 사흘에 한 번꼴로 총 5058억원어치의 CP를 발행했다. CP를 하루에 7번 발행한 날도 있었고, 만기 5~7일짜리 초단기 CP도 상당수 있었다.


금액도 최소 1억원에서 최대 80억원까지 다양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파이낸셜대부가 발행한 CP는 시중으로는 유통되지 않고 전량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계열사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 등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CP 외에도 대여금, 일반대출 등의 형식으로 동양파워,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티와이머니대부, 동양생명 등 계열사로부터 1조4999억원의 자금이 동양파이낸셜대부로 들어갔다가 1조5443억원이 계열사들로 다시 빠져나갔다. 올 들어서도 2분기까지 동양파이낸셜대부는 동양인터내셔널과 동양레저에 각각 1300억원, 1800억원을 빌려줬다.

"東洋대부(동양파이낸셜대부), 부실 계열사엔 1兆(2012년 4월부터) 서민엔 수십억 대출". <조선일보>. 2013.10.10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사는 동양증권을 통해 1조 3,311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판매했는데, 이 중 99% 이상인 1조 2,294억원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판매되었다. 문제는 동양증권이 이렇게 발행된 동양그룹의 기업어음(CP)을 개인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도 알리지 않고 판매하였다는 것이다.[각주:2] 



이날 법정관리 신청을 한 3개사가 발행한 회사채와 CP는 총 1조9334억원어치(예탁결제원 기준)이다. 대략 4만여명 이상의 개인에게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3개사가 회생하지 못하면 모두 손실처리될 수 있다. 재계서열 47위(공기업 포함)인 동양그룹 법정 관리가 큰 파장을 낳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금융권 차입금보다 회사채와 CP 발행을 통해 시장에서 조달한 금액이 더 큰 만큼, 피해의 상당 부분이 개인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대우 회사채 파동 이후 가장 대규모의 회사채 파동이란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실제 이날 금감원 발표에서도 이런 우려는 확인되고 있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3개 계열사의 회사채와 CP 중 동양증권이 판매한 규모만도 4만1231명에게, 1조 3311억원어치다. 이 중 개인에게 팔린 것은 4만937명에게, 1조2294억원어치다. 99% 이상이 개미 투자자들에게 팔린 것이다. 이처럼 개인에게 집중된 이유가 있다. 회사채와 CP를 발행할 당시 동양그룹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 등급인 'BB'급이었다. 기관투자가는 동양그룹의 채권을 사실상 살 수 없었다. 또 동양증권은 부실 징후가 보이는 계열사가 발행한 CP와 회사채를 7~8% 후반대의 고금리를 내세워 상대적으로 정보에 어둡고 고수익을 노리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동양 채권(동양증권이 판매한 회사채·기업어음)에 개인투자자 4만명 물려… 大宇사태(1999년) 후 최대". <조선일보>. 2013.10.01


㈜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CP·회사채 불완전 판매 문제가 또 불거지고 있다. 불완전 판매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비롯해 LIG그룹과 웅진그룹, STX그룹 등 각종 부실 금융 사태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다. 불완전 판매란 금융회사가 상품의 기본 구조와 원금 손실 가능성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이다.


지난 7월 동양그룹 CP에 6000만원을 투자한 김모(48)씨는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권유 전화를 받고 '창구에 갈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가입 신청서를 우편으로 보내왔다"며 "신청서에 사인할 5곳이 형광펜으로 표시돼 있었다"고 했다.


본인과 부인·아들 명의로 2억3000만원어치 CP·회사채에 가입한 윤모(66)씨는 "8월 만기 연장 때 불안해서 물어봤더니 직원이 '그룹이 동양매직 매각을 추진 중인데 사려는 기업이 많다. 동양시멘트의 발전소 부지를 팔면 그룹이 정상화된다'고 해서 그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3만8661건이었던 금융권 민원은 올 상반기 4만2582건으로 10.1% 늘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 및 부당 권유 관련 민원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권회사 중에서는 동양증권이 지난해와 올 상반기 모두 민원 건수 1위를 차지했다. 금감원 소비자보호처는 "동양증권은 회사채와 신탁 상품 판매 시 위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민원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CP위험 제대로 설명 않고 "사도 된다"… 동양증권, 금융 민원 1위(지난해~올 상반기)". <조선일보>. 2013.10.13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무엇이 다를까? 1997 외환위기 이후 은행·증권·보험 시장을 종합적으로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이 설립되고 기업의 회계공시 제도도 자리잡았지만, 최근의 동양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1997년의 교훈은 잊은 듯하다.  





  1.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http://joohyeon.com/157 [본문으로]
  2. 물론, 아무런 금융지식이 없는 개인투자자가 위험도가 큰 기업어음(CP)에 거액의 돈을 투자한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개인투자자 90%가 자신이 가입한 펀드의 이름도 모른다고 한다.;;; "개미 투자자 10명 중 9명, 가입한 펀드 이름도 모른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0/07/2013100704011.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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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제도와 유인왜곡 - "어떻게" 복지제도를 설계할 것이냐의 문제복지제도와 유인왜곡 - "어떻게" 복지제도를 설계할 것이냐의 문제

Posted at 2013. 10. 4. 19:32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미국 Fed는 Tapering의 기준으로 "실업률 7%"를 제시[각주:1]했으나 "과연 실업률 지표가 현재의 노동시장 상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그 이유는 "하락하는 경제활동참가율" 때문이다. 고령화와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를 원하지만 구직활동을 중단하는 사람이 증가하기 때문에 실업률이 하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자리를 원하지만 구직활동을 중단한 자, full-time 일자리를 원하지만 part-time 일자리에 종사하는 자 등등을 실업률에 반영한 것이 U-6 Unemployment Rate 이다. 2007년 이후 미국의 U-6 실업률은 공식실업률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07-2012년 사이 미국(US)의 U-6 실업률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경제활동참가율은 하락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그런데 최근 2년간 U-6 실업률을 살펴보면 큰 폭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것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한"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드러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원하지도, 일자리를 찾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The big question is whether such workers will start looking for work again in time. The signs are worrying. If you look at U-6 unemployment over just the past two years, rather than the past five, it has fallen faster than official unemployment. That suggests many of the people on the periphery of the labour force have now left it entirely.


"The missing millions". <The Economist>. 2013.09.28


이유가 무엇일까? <The Economist>는 그 이유로 "상해보험제도 disability insurance (DI)"를 든다. 일반적인 실업보험은 "노동자가 구직활동을 계속할 때"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나 상해보험은 이와 정반대로 "노동자가 자신이 일을 할 수 없음을 증명해야" 혜택을 제공한다. 쉽게 말해, 노동자가 실업보험 혜택을 받고 싶으면 "구직활동을 하는 모습"을 정부에 보여야만 하지만, 상해보험 혜택을 받고 싶으면 "내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태" 라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5년간 상해보험 혜택을 받으려는 미국의 노동자는 약 260만명 증가했다. <The Economist>는 이러한 현상이 "하락하는 경제활동참가율"을 설명한다고 이야기한다. 복지제도의 "방식 변화"가 경제주체들의 "유인을 왜곡"시킨 것이다. 과거에는 "일을 하게끔" 하는 유인이 크게 작용했다면, 지금은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 유인이 크게 작용한다.


More generous unemployment benefits tend to elevate participation rates since workers must be looking for work to qualify. With disability insurance (DI), however, the opposite applies: to qualify applicants must generally demonstrate that they cannot work. (...)


Between 2007 and 2012 the number of applicants for DI shot up from 11.2 per 1,000 working-age people to 14. Unpublished research by Mary Daly of the San Francisco Fed, Richard Burkhauser of Cornell University and Brian Lucking, a graduate student, estimates that this rise in applications equates to 2.6m people. Depending on how many of those applicants are eventually awarded benefits, this could explain between 31% and 59% of the decline in participation among 16-to-64-year-olds.


"The missing millions". <The Economist>. 2013.09.28




한국에서도 복지제도 방식변화가 경제주체들의 유인을 왜곡시킨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0~5세 아이의 보육비를 지원하는 "무상보육 제도" 이다. 무상보육제도 도입 이후,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던" 가구들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 시작" 했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했지만, 국가가 보육비를 지원해주기 시작하자 가구들의 "비용부담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굳이 집에서 아이를 키울 이유가 없어졌다.


즉, 아이를 키우는 가구들의 유인이 변한 것이다. 아이를 "집에서 돌보는" 유인에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유인으로. 유인변화는 "수요폭발"을 불러왔다. <중앙일보>는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폭발로 인해, 어린이집 지원예산이 증가했고, 보육예산을 빼먹는 어린이집도 늘어났다고 지적한다.


아이를 집에서 키우던 엄마들이 어린이집으로 애를 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7만 명 이상의 영아들이 어린이집으로 쏟아져나오면서 그해만 5600억원이 낭비됐다. 또 무상보육 바람을 타고 어린이집이 폭증하면서 보육예산을 빼먹는 어린이집도 크게 증가했다.


"복지예산 새고 있다 <상> 낭비 부르는 무차별 무상보육". <중앙일보>. 2013.09.25




자, 두 사례를 통해 "복지제도 방식 변화가 경제주체들의 유인왜곡을 불러와서 역효과가 생겨났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복지병"을 부르는 무상보육 제도를 없애야할까? 그렇지 않다. 무상보육제도의 의의와 긍정적 영향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최근 전세계 경제학계의 화두 중 하나가 "여성일자리[각주:2]" 이다. 고령화 등으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때에 여성일자리 증가를 통해서라도 노동투입인구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 A보다 생산성이 더 높은 여성 B가 여러 장벽으로 인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전체에 비효율적이다. 그리고 여성일자리 증가는 선순환을 일으킨다. 바로, "여자 어린이들이 (장벽없이)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을 롤모델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IMF는 <Women, Work, and the Economy: Macroeconomic Gains from Gender Equity> 보고서를 통해 "(직장에서)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 여자 어린이에 대한 교육투자가 증가하고, 여자 어린이들이 (직장에서 성공한) 여성들을 롤모델로 삼으면서 선순환이 발생한다" 라고 말한다.


Better opportunities for women to earn and control income could contribute to broader economic development in developing economies, for instance through higher levels of school enrollment for girls. (...) 


Accordingly, higher Female Labor Force Participation and greater earnings by women could result in higher expenditure on school enrollment for children, including girls, potentially triggering a virtuous cycle, when educated women become female role models. (5)


IMF. <Women, Work, and the Economy: Macroeconomic Gains from Gender Equity> 2013.09


이게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사회학 수업을 들었을때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고학력 전업주부를 엄마로 둔 딸들은 자신들의 꿈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능력을 키워봤자 전업주부가 될 것' 이라고 엄마를 보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이 수업을 들은 여자사람친구는 이 말에 격한 동감을 표했다. IMF 보고서의 주장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여성일자리 증가와 유리천장 제거를 통해 자신의 위치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증가할수록, 여자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고 꿈을 펼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일자리 지원정책을 통해 여자 어린이들의 "유인"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을 제한하려는 유인에서 능력을 발휘케하는 유인으로. 


무상보육제도는 직장맘들의 부담을 덜게하는 정책이다. 그럼으로써 직장에서 능력을 펼칠 기회를 증가시키고, (IMF가 주장하는) 선순환이 세대를 이어 발생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중요한건 무상보육제도를 "어떻게 설계" 하느냐의 문제이다. 미국의 상해보험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실업자에 대한 지원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업자들을 돕느냐의 문제이다. 미국 상해보험과 한국 무상보육제도의 부작용을 본 뒤, 단순히 "복지제도는 나태와 도덕적해이를 불러온다. 복지병을 유발할 뿐이다" 라고 진단한다면 올바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위에 언급한 3가지 사례를 통해, "유인변화"가 경제주체에 끼치는 긍적적 & 부정적 효과를 알 수 있었다. 복지제도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건 "어떤 방향의 유인변화를 일으킬 것이냐" 이다. 경제주체들의 유인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면 되는 것이다.



  1. "2013년 6월자 Fed의 FOMC - Tapering 실시?". 2013.06.26 [본문으로]
  2. "고용률 70% 로드맵". 2013.06.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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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Posted at 2013. 9. 14. 15:47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2013년 6월자 Fed의 FOMC - Tapering 실시?' 라는 글을 통해 Fed의 자산매입프로그램 규모축소(Tapering) 에 대한 시장참가자들의 불안을 언급한바 있다. 2008 금융위기 이후 Fed는 초저금리 정책과 3차례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 약 4조 달러규모의 유동성을 세계금융시장에 공급했다. Fed가 공급한 유동성은 주로 신흥국(Emerging Markets)으로 흘러들어 갔는데, Tapering과 실질적인 출구Exit가 시행된다면 급격한 자본유출이 신흥국에서 발생하게 될 것이다. 급격한 자본유출은 신흥국 통화가치의 하락과 자산가격 붕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참가자들은 Fed의 Tapering 실시여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신흥국에서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한다면, 신흥국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을 단행함으로써 급격한 자본유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2008년 이후 실시된 Fed의 확장적 통화정책(loose monetary policy)이 드러낸 사실은 국제금융시장의 자유로운 자본이동(free capital mobility)이 신흥국의 독립적인 통화정책(independent monetary policy)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학계는 고정환율제도(fixed exchange rates) · 독립적인 통화정책(independent monetary policy) · 자유로운 자본이동(free capital mobility)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3각 딜레마(Trilemma)[각주:1][각주:2] 라고 여겼다. 고정환율제도는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불가능하게 하며,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할 경우 통화가치의 절하압박이 심해져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그나마 폐해가 적은 자유변동환율(floating exchange rates)을 선택해서 독립적인 통화정책 ·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신흥국들은 3각 딜레마(Trilemma)가 아닌 Dilemma 상황에 처해있는데, 독립적인 통화정책과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 Helene Rey는 <Dilemma not Trilemma: The global financial cycle and monetary policy independence> 논문을 통해 신흥국이 처한 딜레마를 설명한다. 


<출처 : Helene Rey. <Dilemma not Trilemma: The global financial cycle and monetary policy independence>. 2013.08.31 >


이 그래프는 VIX 지수와 자본유입(capital inflows) 간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프 상의 VIX 지수는 거꾸로-inverted scale-나타나 있다.) VIX 지수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uncertainty)과 위험회피성향(risk-aversion)을 나타내는데, VIX 지수가 낮을수록 금융시장의 불확실성과 위험회피성향이 낮다. 쉽게 말해, VIX 지수가 낮을수록 시장참가자들이 좀 더 공격적인(risk-taking) 투자를 하고 그 결과 자본유입-신용(Credit), 부채(DebT), 외국인직접투자(FDI), 자산가격(Equity)-이 증가하게 된다.


<출처 : "Horns of a trilemma". <The Economist>. 2013.08.31 >


또 다른 그래프를 보면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전까지 VIX 지수가 하락하고 그 결과 신흥국으로 많은 양의 자본유입이 발생한 것을 알 수 있다.


Helene Rey는 VIX 지수가 하락하고 자본유입이 급증하는 원인으로 미국의 통화정책을 지목한다. 미국 Fed가 자국의 경기회복 탈출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하면, 미국에서 나온 자본이 신흥국으로 이동해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Fed는 2000년대 초반에 발생한 IT버블붕괴를 수습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했고, 그 결과 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자본이 증가하게 되었다.


 There are interrelations among the monetary conditions of the US, capital flows and the leverage of the financial sector in many parts of the international financial system. The global financial cycle can be related to monetary conditions in the US and to changes in risk aversion and uncertainty. (...)


A VAR analysis suggests that one of the determinants of the global financial cycle is monetary policy in the US, which affects leverage of global banks, capital flows and credit growth in the international financial system.

 

<출처 : Helene Rey. <Dilemma not Trilemma: The global financial cycle and monetary policy independence>. 2013.08.31 >             




※ 신흥국 금융시장의 거품을 초래하는 미국 Fed의 통화정책


미국 Fed의 저금리정책의 결과로 발생한 신흥국으로의 자본유입 급증이 신흥국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을까? 크게는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신흥국 금융시장의 거품(Bubble)을 만들어 불안정성을 증대시켰다는 것이다.


신흥국의 은행들은 외국에서 자본을 조달한 뒤 국내에서 운용하는 '외화자금을 중개하는 역할(intermediation of capital inflows)'을 담당한다. 문제는 금융부문의 과도한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은행의 해외자본 유입경로와 만났을 때이다. <한국은행> 채경래, 안시온은 <신흥시장국의 금융안정과 은행부문 외채와의 관계> 보고서를 통해 이 점을 경고한다.


금융부문의 경기순응성이 과다한 경우 경기 활황기에 금융기관의 신용공여가 과도하게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대출자산의 부실화가 수반되는데, 이렇게 장기간 계속 누적된 취약성은 결국 대내외 금융 · 경제여건 악화시 일시에 표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5) (...)


금융부문의 경기순응성이 해외자본 유입경로를 통해 초래되고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 자국 은행들의 주요 외화자금 조달경로인 해외은행으로부터의 차입(cross-border borrowing)은 짧은 만기와 기한연장(roll-over) 방식의 운용으로 인하여 유출입 변동성이 다른 자금들에 비해 매우 높다. 따라서, 신흥시장국의 경우, 은행부문의 국내민간대출보다는 해외은행으로부터의 차입이 경기와 보다 밀접한 관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6)


채경래, 안시온 <신흥시장국의 금융안정과 은행부문 외채와의 관계>. 2013.08.01



실제 <그림 2>를 보면 경제성장률과 은행부문의 해외차입이 동조하는 경기순응적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들여온 해외차입금은 <그림 3>에 나오듯이 국내 민간대출로 이어진다. 



<출처 : 채경래, 안시온 <신흥시장국의 금융안정과 은행부문 외채와의 관계>. 2013.08.01. 6-7페이지 >


그 결과, <그림 3>에서 처럼, 증가한 민간대출은 금융시스템 안정을 해치게 되고, 경제여건이 변화했을시 경기침체를 더욱 더 심화시킨다. 채경래, 안시온은 "과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및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신흥시장국의 금융불안정이 실물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효과는 은행부문 외채가 높을 때 더 크게 나타났다.(7)" 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미국 Fed의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증가한 유동성은 신흥국으로 향하였고 전세계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나라 또한 2000년대 이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Helene Rey는 "미국 Fed의 저금리 정책의 결과로 생긴 전세계적인 금융사이클(the global cycle)이 경기변동의 진폭을 키워서 거품형성(Boom)과 거품붕괴(Bust)를 초래한다. 또한, 과도한 신용증가는 경제위기의 징조이다." 라고 말한다.


Credit flows are the more volatile and procyclical component of all flows, with a particularly dramatic surge in the run up to the crisis and an equally dramatic collapse during the crisis. (...)


As credit cycles and capital flows obey global factors, they may be inappropriate for the cyclical conditions of many economies. For some countries, the global cycle can lead to excessive credit growth in boom times and excessive retrenchment in bad times. As the recent literature has confirmed, excessive credit growth is one of the best predictors of crisis (Gourinchas and Obstfeld 2012, Schularick and Taylor 2012). Global financial cycles are associated with surges and retrenchments in capital flows, booms and busts in asset prices and crises.


<출처 : Helene Rey. <Dilemma not Trilemma: The global financial cycle and monetary policy independence>. 2013.08.31 >


경제학자 Hyman Minsky가 지적했듯이, 금융·자산시장은 일반적인 상품시장과는 다르다. 상품시장에서는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는 줄어든다. 그러나 자산시장에서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도 같이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투자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희소가치가 지닌 자산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가격상승은 공급의 부족을 드러내고, 그에 따라 추가적인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반대로 가격하락은 공급과잉을 나타냄으로써 수요감소로 이어진다. 즉, 금융·자산시장은 가격의 상승과 유동성 증가로 인해 경기변동의 진폭이 커지기 때문에, 한번 혼란에 빠진 자산 및 금융 시장은 안정적인 균형상태 없이 무한대로 팽창하고 수축하는 과정을 겪는 경향을 띄게 된다.


정리하자면, 미국 Fed의 통화정책이 국제금융시장의 유동성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신흥국 은행들의 해외차입이 증가하게 된다. 은행들은 해외차입금을 민간대출로 전환시키고, 증가한 대출액은 자산시장으로 향하여 거품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미국 Fed가 이제껏 공급해왔던 유동성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자산가격이 폭락하고 신흥국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 자유로운 자본이동, 신흥국의 통화정책을 제한하다


미국 Fed의 저금리정책의 결과로 발생한 신흥국으로의 자본유입 급증이 신흥국 경제에 끼친 두번째 악영향은 신흥국의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무력화 시킨 것이다. 맨처음 언급했듯이 독립적인 통화정책과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각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상황에 맞추어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자국의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때는 금리를 내리고, 경제가 호황이거나 자산가격의 거품 조짐이 보일때 금리를 올림으로써 경기변동의 진폭을 축소시킨다. 그러나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미국의 통화정책이 신흥국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신흥국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국의 저금리 정책이 신흥국 자산시장의 가격상승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A VAR analysis suggests that one of the determinants of the global financial cycle is monetary policy in the US, which affects leverage of global banks, capital flows and credit growth in the international financial system. Whenever capital is freely mobile, the global financial cycle constrains national monetary policies regardless of the exchange-rate regime.


The global financial cycle thus transforms the trilemma into a 'dilemma' or an 'irreconcilable duo'. Independent monetary policies are possible if and only if the capital account is managed, directly or indirectly.


<출처 : Helene Rey. <Dilemma not Trilemma: The global financial cycle and monetary policy independence>. 2013.08.31 >


A new paper by Hélène Rey, of London Business School, goes further. Ms Rey reckons the trilemma itself has been rendered obsolete by financial globalisation. Governments instead face a dilemma, or an “irreconcilable duo”: free capital flows may inevitably mean a loss of monetary-policy independence.


Ms Rey points out that prices of risky assets, such as equities and corporate bonds, move in lockstep across the global economy, regardless of what exchange-rate regime is in place. She links these moves to swings in the VIX—an index of market volatility derived from S&P 500 stock-options prices—which is also correlated with capital flows and credit growth. Ms Rey reckons that these movements are indicators of a global financial cycle. The worldwide correlation of price and capital-flow movements suggests that central bankers sitting in one corner of the world cannot easily lean against a barrage of investment coming from another corner.


Exactly as emerging-market finance ministers complain, this global financial cycle is influenced by rich-world monetary policy. Ms Rey reckons changes in the Federal Reserve’s benchmark interest rate can fuel the cycle. A drop in the rate increases the appetite for market risk as captured in the VIX. That, in turn, encourages credit creation, bank leverage and capital flows into risky assets. The boom feeds on itself as credit growth lifts asset prices, further whetting risk appetites. But a flip in monetary policy that raises interest rates can send the dynamic into reverse.


<출처 : "Horns of a trilemma". <The Economist>. 2013.08.31 >

   

게다가 미국 Fed의 자산매입 프로그램 축소(Tapering) 조짐으로 인해, 신흥국에서 자본이탈이 일어나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신흥국은 섣불리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없다. 프린스턴대 신현송 교수는 "위기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금융기관 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자본이 더 빠져 나가"기 때문에 섣부른 금리인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신흥국의 통화정책은 오로지 미국의 통화정책-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축소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성태윤=일각에서는 금리 인상으로 투자자금 이탈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한다.


▶신현송=그렇지 않다. 호황 때는 투자자들이 ‘위험 추구’를 하기 때문에 금리를 올리면 자본이 들어오지만, 위기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금융기관 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자본이 더 빠져나간다. 


투자자들의 위험추구채널이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가 있어서 자금이 빠져나갈 때 금리를 올리면 자산가격이 떨어지고, 부채가 커지기 때문에 금융경색이 심화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


"출구전략기엔 금리 올리면 안 돼 … 한국, 시장에 자금 충분히 공급해야". <중앙일보>. 2013.07.02


그렇기 때문에, 신현송 교수는 2012년 6월 미국 Fed의 저금리 정책[각주:3]에 맞추어서 한국 또한 금리를 인하할 때라고 주장한바 있다. 당시 한국은 가계부채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한국의 금융시장이 국제금융시장과 동조해있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금리인상은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았다. 


신 교수는 한국이 금리를 인하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2011년 한은이 금리를 인상하자 시장금리는 오히려 하락하는 등 유동성이 유입됐다”며 “자본유입이 개방된 상태에서 미국 등 선진국은 제로 금리, 유럽은 확장하는데 금리 인상은 유동성 유입을 부풀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지금은 금리 올릴 때 아니다”. <경향신문>. 2012.06.14


<The Economist> 또한 미국 Fed의 출구전략 암시를 신흥국이 잘못 해석해 금리인상을 단행할 경우, 신흥국 경제가 오히려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Yet emerging economies may end up fighting this transition, due to worries about the knock-on effects of sinking currencies, by raising interest rates (or failing to reduce them when a weakening economic situation might otherwise call for rate cuts). And that could produce a much broader demand shortfall across the emerging world.


"The emerging-market squeeze". <The Economist>. 2013.08.20




※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자본이동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라


미국 Fed의 통화정책이 신흥국의 통화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자산시장 거품을 키운다고 해서, 미국 Fed를 향해 "신흥국을 고려해서 통화정책을 써달라" 라고 주문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미국 Fed는 자국 경제상황을 감안해서 중앙은행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정을 고려해 달라고 주문할 수가 없다. 게다가 신흥국 경제는 미국의 소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Fed의 확장적 통화정책의 도움으로 미국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라고 있다. 

 

implementing effective international cooperation among the main central banks to internalise the spillovers of their monetary policies on the rest of the world seems out of reach. And there are some reasons for that; international cooperation on monetary spillovers may conflict with the domestic mandates of central banks. Furthermore, the management of aggregate demand in systemically important economies has important consequences for economic activity in the rest of the world. The rest of the world cannot at the same time complain of excessive capital inflows due to loose monetary policy in the centre countries and wish for a higher level of economic activity and demand stimulus in the same countries.


<출처 : Helene Rey. <Dilemma not Trilemma: The global financial cycle and monetary policy independence>. 2013.08.31 >


그렇다면 미국의 통화정책으로 인해 신흥국에 끼치는 악영향을 축소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Helene Rey는 신흥국으로 향하는 자본이동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거시건전성 정책(Macroprudential Policy)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 sensible policy option is to monitor directly credit growth and leverage. The arsenal of macro prudential tools has several layers: e.g. countercyclical capital cushions, loan-to-value ratios and debt-to-income ratios. (...)


Hence, the most appropriate policies to deal with the “dilemma” are those aiming directly at the main source of concern (excessive leverage and credit growth). This requires a convex combination of macroprudential policies guided by aggressive stress‐testing and tougher leverage ratios. Depending on the source of financial instability and institutional settings, the use of capital controls as a partial substitute for macroprudential measures should not be discarded.


출처 : Helene Rey. <Dilemma not Trilemma: The global financial cycle and monetary policy independence>. 2013.08.31 >


Helene Rey는 자본이동 통제 방법의 하나로 LTV(Loan-To-Value) 정책과 DTI(Debt-To-Income) 정책을 제시한다. LTV와 DTI는 말그대로 자산가격 대비 부채 비율과 소득수준 대비 부채 비율을 통제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러한 정책은 이미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각주:4] 


한국은행은 부동산가격 상승을 막기위해 2002년 9월 LTV 정책을, 2005년 8월 DTI 정책을 도입했다. 비록 부동산가격의 상승세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거시건전성 감독정책 도입으로 인해 부동산가격 상승추세를 일시적으로나마 억제할 수 있었고, 부동산담보대출의 질도 유지할 수 있었다.


<출처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Macroprudential Policies: Korea's Experiences". IMF Conference. 2013.04.16-17 >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건 2010년에 도입된 거시건전성 3종 세트- 선물환포지션 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 - 이다. 프린스턴대 신현송 교수는 2010년 청와대 경제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급격한 자본유출입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방지하기 위해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도입하였다.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었던 이유 중 하나가 높은 단기외환차입 비중이었다. 당시 한국의 은행들은 해외에서 낮은금리로 단기자금을 빌려와 국내 기업들에게 장기로 대출을 해주었는데, 이러한 만기구조 불일치 문제와 높은 단기외화차입비중으로 인해 유동성부족 상태에 빠지게 됐었다. 신현송 교수가 만들어낸 거시건전성 3종 세트 중 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는 단기외환 차입시 부담금을 지불케 함으로써 단기외환차입 비중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시카고대학의 John Cochrane 교수는 "은행부문의 부채를 규제하자" 라고 주장한다. 은행부문의 부채란 고객들의 예금을 뜻하는데, 뱅크런이 발생하는 이유는 은행에 입금한 단기예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고객들이 생각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단기예금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지불준비금이나 단기정부채권 형태로 보유한다면 은행위기(Banking Crisis)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To stop future crises, the financial system needs to be reformed so that it is not prone to runs. (...)


Runs are a pathology of financial contracts, such as bank deposits, that promise investors a fixed amount of money and the right to withdraw that amount at any time. A run also requires that the issuing institution can't raise cash by selling assets, borrowing or issuing equity. If I see you taking your money out, then I have an incentive to take my money out too. When a run at one institution causes people to question the finances of others, the run becomes "systemic," which is practically the definition of a crisis. (...)


Clearly, overnight debt is the problem. The solution is just as clear: Don't let financial institutions issue run-prone liabilities. Run-prone contracts generate an externality, like pollution, and merit severe regulation on that basis. 

 

Institutions that want to take deposits, borrow overnight, issue fixed-value money-market shares or any similar runnable contract must back those liabilities 100% by short-term Treasurys or reserves at the Fed. Institutions that want to invest in risky or illiquid assets, like loans or mortgage-backed securities, have to fund those investments with equity and long-term debt. Then they can invest as they please, as their problems cannot start a crisis. 

  

John Cochrane. "Stopping Bank Crises Before They Start". <WSJ>. 2013.06.23



  1.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의 '※ 모든 국가가 단일통화를 사용한다면? - Robert Mundell의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이론 - 이에 대한 Paul Krugman의 비판' 참고 http://joohyeon.com/113 [본문으로]
  2. 현재 유럽경제위기는 이러한 3각 딜레마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유럽은 유로(Euro) 라는 단일통화를 도입하여 환율을 통일시켰는데, 이로 인해 유로존 국가들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수 없다. 경제침체에 빠진 남유럽은 확장적 통화정책을 원하지만, 반대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독일은 긴축적 통화정책을 원하고 있다. [본문으로]
  3. 이 당시는 Fed의 3차 QE 실시 이전이다. [본문으로]
  4. Helene Rey는 논문에서 한국의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을 주요예시로 사용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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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동소득분배율" 기사의 문제점<경향신문> "노동소득분배율" 기사의 문제점

Posted at 2013. 9. 9. 18:4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2013년 9월 9일 오늘, <경향신문>이 "노동소득분배율"을 주제로 기획기사를 발행했다. <경향신문>은 1면, 3면-4면에 걸쳐 기사를 실었다. 





1면 20대 기업 ‘노동소득분배율’ 50% 못 미쳐 


2면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분석]‘노동자의 몫’ 기업 규모 클수록 적어… MB 정부 때 ‘노동 홀대’ 심화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분석]30대그룹 중 노동소득분배율 평균 이상은 9곳 불과 


3면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분석]100대 기업 중 9곳만 성장·분배 ‘균형’… 기업·노동자 동반성장 ‘먼 길’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분석]1인당 영업이익 1위 고려아연, 인건비 지출은 ‘가장 인색’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분석]백화점·대형할인점 노동 의존 높아도 분배율 낮아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분석]어떻게 조사했나… ‘영업이익률 4.8%·노동소득분배율 59.7%’ 기준 삼아 




<경향신문>은 기사를 통해 ① "한국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OECD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② 게다가 "상위500대 기업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한국 전체의 노동소득 분배율 보다 낮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결론으로 ③ "500대 기업에서 절반 수준인 노동소득분배율을 보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인건비를 더 부담할 여력이 있다는 뜻" 라고 말한다.


<경향신문>의 이 기사, 무엇이 문제일까?


① (한국은행이 집계한) 한국의 노동소득 분배율이 OECD 국가들에 비해 낮은 이유는 "자영업자 소득" 때문이다. 자영업자 소득은 자본소득으로 간주[각주:1]기 때문에, 노동소득/(자본소득+노동소득) 으로 집계되는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자영업자 소득을 노동소득으로 간주할 경우, 한국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OECD 평균과 유사[각주:2]하다.


② 그리고 "상위 500대 기업의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으므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인건비를 더 부담할 여력이 있다" 라는 결론이 제일 큰 문제이다. 이러한 결론은 마치 대기업이 부당하게 초과이익을 차지하고 있고,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지 않는다 라는 것처럼 들린다. 


내가 <경향>의 결론을 곡해해서 받아들인 걸까? 결정적으로, <경향>은 기사 내에서 "기업이 번 돈 중에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게 절반이 안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기사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포털에서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단순히 "대기업을 비난"하는 걸로 나타난다.[각주:3]



그런데 정말 <경향신문> 기사에서 나타나는 늬앙스처럼 대기업이 부당하게 초과이익을 차지했기 때문에, "기업이 번 돈 중에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게 절반이 안되는 것" 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1. 

<경향신문>은 기사내에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근로자들이 가져간 이익이 총부가가치액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삼성전자의 이익을 책임지는 건 스마트폰인 "갤럭시 시리즈" 이다.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는 스마트폰 라인업 중에서도 High-End 제품이다. 안드로이드 OS 라인업에서 High-End 스마트폰은 삼성 갤럭시 시리즈 뿐이다. 그 덕분에 삼성은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고 그 결과 높은 이윤을 거둘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High-End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건 "대량의 저숙련 인력 Low-Skilled Workers"이 아니다. OS, 디자인, 마케팅, 프로그래밍 작업 등등을 할 수 있는 "고숙련 인력 High-Skilled Workers"이 필요하고, Low-End 제품에 비해 많은 수의 근로자가 필요하지 않다. 게다가 "세계화 Globalization"의 영향으로 세계 여러나라 인력들과 협업을 하면서 제품이 만들어 지게 된다.


삼성전자가 "나빠서"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은게 아니라는 것이다.


2. 

그리고 <경향신문>은 ". S-OIL(23.3%), 한국가스공사(17.3%), LG화학(32.7%) 같은 업종별 대표 기업들도 10~30%대의 낮은 노동소득분배율을 기록했다." 라고 말한다. 장난하나?  이런 산업은 애초에 "장치산업" 으로서 대량의 근로자가 필요하지 않다. 노동소득 분배율이 당연히 낮을 수 밖에 없다.




경제학계가 "증가하는 경제적 불균등 Economic Inequality" 을 다루면서 주목하는 원인은 "기술발전 Technological Changes" 과 "세계화 Globalization" 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증가했고 일자리 수는 늘어났다. 문제는 일자리 내부의 양극화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고숙련 일자리 High-Skilled Jobs 와 저숙련 일자리 Low-Skilled Jobs 로 나뉘게 되었다.


게다가 "숙련편향적 기술발전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s"가 아닌 "자본편향적 기술발전 Capital-Biased Technological Changes[각주:4]"가 일어나면서 문제는 심각해졌다. 과거의 기술발전은 "교육"을 통해 "고숙련 근로자"를 배출하면서 대처가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술발전은 단순한 "숙련정도"로 대처할 수가 없다. 과거에는 사람이 생산라인에 투입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기계 Robots 가 생산라인에 투입된다. "생산수단 Capital" 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경제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화 Globalization"은 불균등현상을 악화시킨다. 저숙련 일자리 Low-Skilled Jobs는 개발도상국으로 향하고, 선진국에 남는건 고숙련 High-Skilled Jobs 일자리 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저숙련 노동자가 해외이민을 쉽게 가지는 못하지 않는가?




<출처 : Yukon Huang. "Understanding China’s unbalanced growth". <Financial Times>. 2013.09.04 >


"대기업의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은 이유는 근로자를 착취해서가 아니라 자본편향적 기술발전 Capital-Biased Technological Changes 또는 세계화 때문" 이라는 주장이 실제로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인포그래픽을 통해 살펴보자.


왼쪽 Farmer와 오른쪽 Factory Worker 를 비교하면, 농부는 10,000 가치의 쌀을 생산하고 그 중 9,000을 자기소득으로 가진다. 다들 알다시피, 전자산업에 비해 농업은 고도로 발전된 생산수단 Capital 과 기술 Technology 이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농부가 가져가는 소득비중이 크다. 따라서, 농업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90% 이다.


Apple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60,000 가치의 제품을 생산한다. 그 중, 근로자가 가져가는 임금은 30,000 이다. 전자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 Capital 과 기술 Technology 이 필요하기 때문에, 근로자가 가져가는 임금비중이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공장 근로자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50% 이다.


농업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90%, 공장 근로자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50%. 농업=중소기업, 공장 근로자=대기업 으로 나타내보자. 중소기업의 노동소득 분배율이 더 높다는 것만 보고서, "대기업이 근로자를 착취한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9,000 이고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30,000 인데?


<경향신문>이 비판한 삼성전자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경향신문>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근로자들이 가져간 이익이 총부가가치액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앞서 말했던대로


①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중 상당수는 High-End 제품인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에서 나온다.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유일한 High-End 제품인 갤럭시 시리즈는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삼성전자 근로자가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클 뿐더러


② 스마트폰은 대량의 저숙련 근로자 Low-Skilled Workers가 아니라 고숙련 근로자 High-Skilled Workers가 필요하다.  투입되는 근로자의 비중이 작다.


③ 따라서, 당연히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을 수 밖에 없다.


④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농부와 공장 근로자의 사례- 공장 근로자의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지만, 임금은 더 높다-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성전자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대한민국 상위 수준이다.


단순히 노동소득 분배율 하나만 가지고, 기업이 근로자를 착취한다는 식의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자본편향적 기술발전 Capital-Biased Technological Changes은 대기업을 닥달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진영에 아쉬운건, 어떤 문제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고, "책임자"를 찾아 "비난"만 하는 것이다. 어떤 현상이 발생했을때 중요한건 "왜 그런 일이 생겨났을까?" 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대기업의 노동소득 분배율이 다른나라에 비해 낮은 것을 봤다면 그 뒤에 해야하는건, "왜 우리나라 대기업은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큰 수고를 우리나라의 기업별 노동소득 분배율 데이터를 구했다. 무려 7개의 관련기사를 작성해서 세 면을 꽉 채웠다. 하지만 "왜"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경향신문>의 논리는 단순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노동소득 분배율을 구해보니까 다른나라에 비해 낮네? → 대기업 이놈들 영업이익도 많으면서 근로자에게는 임금도 많이 안주네? → 영업이익을 임금으로 지불하면 몇십만명을 더 고용할 수 있을텐데 !!!"


7개 기사가 전부 이런식이다. 그저 "대기업을 비판하는 게 목적"인 기사들이다. "왜 우리나라 대기업은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을까?" 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경향t신문>이 기사를 발행한 날과 정확히 같은 날 !!! <New York Times>가 운영하는 경제블로그 <Economix>에 같은 주제를 논하는 글이 올라왔다. 경제학자 Jared Bernstein은 "Why Labor’s Share of Income Is Falling" 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경향신문>과 달리, <Economix>에서는 "왜"를 다룬다. 노동소득 분배율이 하락하는 "원인"을 이야기한다. Jared Bernstein은 다른 사람이 쓴 기사, 블로그 포스팅, 보고서 등을 인용하면서 "노동소득 분배율이 하락하는 원인"을 탐구한다.


① Robert Samuelson은 금융업의 발달로 인해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하네?


② 그러나 Timothy Taylor의 주장을 살펴보면, 노동소득 분배율 하락은 전세계적인 현상인데? 자본집약적 Capital-Intensiveness 이지 않은 국가들도 노동소득 분배율이 하락하네? 그렇다면 금융업의 발전을 원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


③ 그러고보니 Lawrence Mishel의 보고서가 생각난다. Mishel의 보고서는 생산성 성장에 비해 임금의 인상 크기가 적다고 지적한다. Mishel은 그 이유로 임금노동자 간의 경제적 불균등 확대라고 말하는데..


④ 그러나 Mishel의 보고서에서 중요한건, 노동시장이 완전고용을 달성했던 1990년대 후반에는 노동소득 분배율 상승폭이 생산성 향상 크기를 따라갔다는 사실이다.


⑤ 그러니까 중요한건 "완전고용 달성" 아닐까? 현재 노동시장이 침체상태이기 때문에 노동소득 분배율이 하락하는 것이고?


⑥ 경기적 실업률 (현재 실업률-자연 실업률) 상승이 노동소득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보자. 데이터를 구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경기적 실업률이 상승하면 노동소득 분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


⑦ 그러니까 노동소득 분배율 회복에 중요한건 완전고용 달성 (자연 실업률 수준의 실업률) 이다!!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에 글을 쓰겠다 !!




<경향신문>과 <Economix>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경향신문>은 "노동소득 분배율 하락" 이라는 주제를 단순히 대기업 비판 용도로 사용했다. "왜" 하락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대기업을 비판하면 끝이다. 그러나 <Economix>는 "왜" 하락하는지를 탐구했다. 물론, Jared Bernstein의 가정과 결론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문제의 원인"을 연구했다는 그 자체이다.


지금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는 진보진영. 다 좋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고치고 세상을 바꿀 것 아닌가. 어떤 사회경제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물론,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어렵다. 그래도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이라도 해야한다.


"왜 가계소득은 계속해서 둔화될가?"

"왜 경제성장률은 높은데 삶은 힘들어지는 것일까?"

"왜 무역수지는 흑자인데 삶의 질은 하락하는 것일까?" 등등.


단순히 대기업을 비난하고 신자유주의 운운한다면 문제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각주:5].



  1. "'사상 최악' 노동소득 분배율, 한국은행 자료엔 없는 이유". <프레시안>. 2010.09.14 [본문으로]
  2. "언론사가 '주가지수 상승을 경제성장의 지표'로 나타내는 게 타당할까?". 2013.03.18 [본문으로]
  3. 물론, 포털 댓글의 수준이란게 애초에 낮긴 하지만. [본문으로]
  4. Paul Krugman. "Rise of Robots". 2012.12.08 [본문으로]
  5. "가계소득 둔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2013.0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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