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⑪] China Shock Ⅲ - 글로벌 소싱 기회를 활용하여 서비스기업으로 변모한 미국 제조기업들 4 2020.01.10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⑩] China Shock Ⅱ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 2020.01.05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3 2020.01.03
  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2 2019.12.30
  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3 2019.12.22
  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5 2019.12.15
  7.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12 2019.09.22
  8.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3 2019.09.04
  9.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2 2019.08.24
  1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6 2019.07.21
  1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 13 2019.07.11
  1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8 2019.07.08
  1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12 2019.01.13
  1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2 2019.01.10
  15.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1 2019.01.06
  1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3 2019.01.02
  1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2 2018.12.31
  1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12 2018.12.29
  1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5 2018.12.07
  20.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4 2018.12.0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⑪] China Shock Ⅲ - 글로벌 소싱 기회를 활용하여 서비스기업으로 변모한 미국 제조기업들[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⑪] China Shock Ⅲ - 글로벌 소싱 기회를 활용하여 서비스기업으로 변모한 미국 제조기업들

Posted at 2020. 1. 10. 14:3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수혜를 본 계층 · 산업 · 지역은 어디인가?


▶ 중국산 상품 수입침투로 인한 미국 제조업 일자리 상실은 최소 150만개 


  • 1966년~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중국발 무역 충격'(the China Trade Shock)을 실증분석으로 보여준 연구들이 나오면서, 기술변화가 아니라 국제무역이 미국 제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2013년 연구[각주:1]를 통해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상정하는 핵심 가정이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으며,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아세모글루 · 피어스와 함께 추가연구를 2016년[각주:2]에 내놓았고, '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효과' 및 '지역 내 총수요 효과'로 인해 중국발 무역 충격의 크기는 2013년 연구에서 결론지은 것보다 크다고 말했습니다.


2013년 · 2016년 연구는 근 20년간 중국산 상품의 수입침투로 인한 제조업 일자리 상실분이 최소 150만개 그리고 전체 산업 일자리 감소의 하한선이 308만개 라고 주장합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의 악영향은 남부 · 중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등 초래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 미주리 · 아칸소 · 테네시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 노스 캐롤라이나 등 남부 대서양 지역과 위스콘신 ·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 등 중서부 지역(이른바 러스트벨트)에 집중

  • 출처 : The China Trade Shock


오토어 · 돈 · 한슨 등이 '중국발 무역 충격' 연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속 조정기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음에 따라 무역의 분배적 결과가 극명히 나타났다"(the distributional consequences of trade) 입니다. 


위의 그림에 나타나듯이,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주리 · 아칸소 · 테네시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 노스 캐롤라이나 등 남부 대서양 지역과 위스콘신 ·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 등 중서부 지역(이른바 러스트벨트)에 몰려있습니다.


중국이 저숙련 노동집약 상품을 주로 수출했고 미국의 남부 · 중서부 지역이 가구 · 의류 · 섬유 산업 등에 주로 특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격을 흡수하는 교과서 속 조정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발 무역 충격이 남부(South) · 중서부(Midwest) 지역에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등을 초래한 건 당연한 결과 입니다.


▶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수혜를 본 계층 · 기업 · 지역은 어디인가?


여기서 우리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내 분배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국제무역이 미국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우리는 무역의 조정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분배적 결과에 초점을 맞췄을 뿐, 무역이 가져다주는 총이익이 음수(-)라는 것은 아니다" 라는 식의 주장 여타 논문 등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중국발 무역 충격으로 피해를 본 계층(저숙련 제조업 근로자) · 산업(노동집약형 제조업) · 지역(남부 및 중서부)이 있다면, 반대로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수혜를 본 계층 · 산업 · 지역도 있습니다


만약 수혜를 본 집단은 생각치 않채 '중국발 무역 충격의 악영향'을 말하는 연구만 접한다면, 마치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인해서 미국경제와 제조업 전체가 큰 위기에 빠진 것으로 잘못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수혜 집단은 바로 '수출기업'(Exporting Firms)입니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전세계로의 수출액을 2배 이상 늘려왔으며, 대중국 수출액은 7배 늘어났습니다. 수입경쟁에 처하게 된 기업이 고용을 줄인 것과 달리 이들은 고용을 늘리며 무역 충격을 다소간 흡수하였습니다. 


또 다른 집단 그리고 주목해야 하는 집단은 '오프쇼어링을 통해 서비스업으로의 재조직에 성공한 제조기업'(Reorganization toward Services) 입니다. 이들은 단순 제조업무를 외국으로 보내고 난 후, 고숙련 제조업 및 R&D · 디자인 · 설계 등 고급 서비스업에 집중하며 생산성을 개선시켰습니다.


  • 미국 통근지역을 고인적자본 지역(High HC)과 저인적자본 지역(Low HC)으로 구분한 것

  • 인적자본 분류 기준은 지역 내 대학 졸업자 비중을 이용

  • 출처 : Bloom, Handley, Kurman, Luck (2019 Working Paper)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서비스화 덕분에 수혜를 본 계층은 '고숙련 근로자'(High-Skilled Workers)이며, 이들은 미국 서부 해안가(West Coasts)와 동부 뉴잉글랜드(New England)에 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지역 내 대학졸업자 비중을 기준으로 미국 통근지역을 고인적자본 지역(High HC)과 저인적자본 지역(Low HC)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또 다른 그림(중국발 무역 충격의 지역 노동시장 영향)과는 완전히 반대된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인적자본 수준이 낮은 미국 남부와 중서부는 중국발 무역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으나, 인적자본 수준이 높은 미국 서부 해안과 동부 뉴잉글랜드는 오히려 중국과의 교역 확대가 선사해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 글로벌 소싱 기회를 활용하여 서비스기업으로 변모한 미국 제조기업들


미국 수출 기업이 교역 확대의 수혜를 누렸다는 사실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프쇼어링을 통해 서비스업으로의 재조직에 성공한 제조기업' 이라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오늘날 미국경제는 서비스업의 팽창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비스업 팽창을 불러온 요인 중 하나는 미국 제조업의 서비스화(servicification)이며 그 뒤에는 글로벌 밸류체인(GVC) · 오프쇼어링(Offshoring)으로 표현되는 '국제무역'이 있습니다.


'미국경제의 서비스업이 얼마나 팽창'했으며, '미국 제조업의 서비스화'는 무슨 의미이고, '그 뒤에 국제무역이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말까요? 


먼저 '오늘날 미국경제 구조'에 대해서 알아본 다음, 중국과의 교역 확대가 서비스화된 제조기업 · 고숙련 근로자 · 서부 해안가와 동부 뉴잉글랜드에 어떤 방식으로 수혜를 주었는지 살펴봅시다.




※ 오늘날 미국경제구조 현황 ①

- 자본집약형 제조업 · 서비스업의 팽창


▶ 미국 고용은 '서비스업 일자리 확대'에 기인하여 총 일자리 꾸준히 증가


  • 1966년~2019년, 미국 서비스업(빨간선) 및 제조업(파란선)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의 그림은 1966년~2019년, 미국 서비스업(빨간선) 및 제조업(파란선) 근로자 수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비스업과 제조업 고용 추이를 함께 살펴보니, 어마어마해 보였던 제조업 일자리 감소가 상대적으로 미미해 보입니다. 2000년~2019년 사이 제조업 일자리가 약 450만개 줄어드는 와중에 서비스업 일자리는 2,100만개 증가했습니다. 서비스업 고용 팽창에 따라 미국 경제 전체의 고용도 2001년 닷컴버블 · 2008년 금융위기 등 경기불황기를 제외하고는 줄곧 상승추세에 있습니다.


  • 2005년~2019년, 미국 GDP 대비 상품 및 서비스 산업 부가가치 비중

  • 빨간선 : 상품생산 산업 (Y축 좌축)

  • 파란선 : 서비스생산 산업 (Y축 우축)


위의 그림은 2005년~2019년 미국 GDP 대비 상품 및 서비스 산업 부가가치 비중을 보여줍니다. 상품부문은 Y축 좌축(17.5%), 서비스부문은 Y축 우축(70.2%) 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본래 선진국일수록 서비스업 비중이 높긴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의 서비스업 비중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5년 서비스부문의 비중은 66.2% 였으나 2019년에는 70.2%로 증가합니다. 반면 제조업의 비중은 20.6%에서 17.5%로 위축되었습니다. 

▶ 노동집약 제조업과 달리 '자본집약 제조업'은 부가가치 및 생산지수 증가


  • 2000년~2007년, 제조업 세부산업별 부가가치 · 고용 · 수입침투 변화

  • 출처 : Fort, Pierce, Schott (2018)[각주:3]


"미국경제에서 서비스업 비중이 늘어난다는 말은 결국 제조업이 망했다는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 세부산업별 부가가치 변화를 살펴보면 미국 제조업 전체가 정말 위기에 처해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위의 그래프는 2000년~2007년, 제조업 세부산업별 부가가치 · 고용 · 수입침투 변화를 보여줍니다. 의복(Apparel) · 가죽(Leather) · 섬유(Textile) · 전기장비(Electrical equip) 등 전형적인 노동집약 산업은 고용과 부가가치 모두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및 전자(Computer/Electronic) · 운송(Transportation) 등 자본집약 산업은 고용은 줄었으나 부가가치는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생산성 개선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 왼쪽 : 1972년-2019년 섬유산업 생산지수

  • 오른쪽 : 1972년-2019년 컴퓨터 및 전자산업 생산지수


노동집약 산업과 자본집약 산업 간 차이는 생산지수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72년-2019년 섬유산업(왼쪽) · 컴퓨터 및 전자산업(오른쪽) 생산지수를 보여줍니다. 노동집약형인 섬유산업 생산지수는 2000년대 이후 급감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본집약형인 컴퓨터 및 전자산업 생산지수는 매년 고점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 오늘날 미국경제구조 현황 ②

- 미국 제조기업들, 비제조업 활동을 확장하다


▶ 미국경제 서비스업 팽창의 힘 - 제조업 기업의 비제조사업체 증가  


정리하자면, ① 2000년대 들어서 미국경제 고용 · 생산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나날이 커져왔으며, ② 전체 제조업 중에서 노동집약형 제조업은 위축되고 자본집약형 제조업은 생산성을 개선시켜 왔습니다. 


전혀 별개로 보이는 두 가지 현상은 '제조업 기업의 비제조사업체 증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족 : 물론.. 서비스업 팽창의 가장 큰 요인은 의료 · 문화 · 레저 서비스의 성장이긴 하지만..)


  • 하나 이상의 제조사업체를 보유한 기업을 제조업 기업으로 분류

  • 1977년~2012년 제조업 기업(Manufacturing Firms)의 고용 추이를 제조기업 내 제조사업체(Manufacturing plants)와 비제조사업체(Non-manufacturing plants)로 구분한 것

  • 2000년대 들어서 제조업 기업의 고용이 줄어들었는데, 이는 대부분 제조사업체의 고용감소에서 기인한다.

  • 비제조사업체의 고용증가는 제조사업체의 고용감소를 일정부분 상쇄시켰다

  • 출처 : Fort, Pierce, Schott (2018)[각주:4]


위의 그래프는 1977년~2012년 제조업 기업(Manufacturing Firms)의 고용 추이를 제조기업 내 제조사업체(Manufacturing plants)와 비제조사업체(Non-manufacturing plants)로 구분한 것 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제조업 기업의 고용 감소는 대부분 제조사업체의 고용 감소에서 기인(Manufacturing plants ↓)했으며, 비제조사업체의 고용증가는 제조사업체의 고용감소를 일정부분 상쇄(Non-manufacturing plants ↑)시켰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위해 용어의 의미를 알아봅시다. 


'기업'(Firms)이란 상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하는 경영단위를 의미합니다. 삼성전자 · 애플 등등 우리가 아는 수많은 기업이죠. 


그리고 '사업체'(Plants or Establishments)는 일정한 물리적 장소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본사는 수원에서 경영지원을 하며, 삼성전자 평택공장은 평택에서 반도체를 만들고, 삼성전자 디지털플라자는 전국 각지에서 제품을 판매합니다. 삼성전자 본사 · 평택공장 · 디지털플라자 각 지점은 모두 개별적인 사업체이며, 여러 사업체가 기업 삼성전자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의 '기업'은 하나 이상의 '사업체'가 모여서 이루어져 있으며, 개별 '사업체'가 수행하는 경제활동은 제조업일 수도 있고 서비스업일 수도 있습니다. 경영지원을 하는 삼성전자 본사와 제품을 판매하는 디지털플라자 지점은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지만, 삼성전자 공장은 제조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식입니다.


이제 위의 그래프가 알려주는 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 이상의 제조사업체를 보유한 기업을 제조업 기업으로 분류했을 때, 제조업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업체들 중에서 제조사업체의 고용은 줄어들고 비제조사업체의 고용은 증가했습니다. 이를 직관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면 '제조업 기업의 서비스업 활동이 증대되었다' 입니다. 


미국 제조업 부문의 고용변화를 기업조정 마진별로 분해


  • 미국 제조업 부문의 고용변화를 기업조정 마진별로 분해

  • 미국 제조업 고용변화(빨간선) = 기업 자체의 탄생 및 소멸(Net firm birth/death) + 존속기업의 제조사업체 탄생 및 소멸(Net plant birth/death within firms) + 존속기업의 존속사업체(Within continuing firm-plants) 

  • 출처 : Fort, Pierce, Schott (2018)[각주:5]


'기업'(Firms) · '사업체'(Plants or Establishments)의 개념을 알고, '기업 내부에서 제조사업체와 비제조사업체가 공존할 수 있다는 점'(Manufacturing & Non-manufacturing plants within firm)을 알고 나면, 미국 제조업 고용 변화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77년-2012년 미국 제조업 부문의 고용변화를 기업조정 마진별로 분해한 겁니다. 


제조업의 고용변화는 크게 3가지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 첫째, 기업 자체의 탄생과 소멸로 인해 제조사업체도 탄생하고 소멸하며 나타나는 고용변화 입니다(Net firm birth/death & Net plant birth/death)


▶ 둘째, 존속하는 기업 내에서 제조사업체가 탄생 및 소멸하며 나타나는 고용변화 입니다(Net plant birth/death within firms). 


▶ 셋째, 존속하는 기업 & 사업체에서 나타나는 고용변화 입니다(Within continuing firm-plants).


러한 3가지 마진 중에서 첫번째 요인인 '제조업 기업 자체의 탄생과 소멸'(Net firm birth/death)은 아마 노동집약형인 의복 · 가죽 · 섬유 · 전기장비 부문에서 집중되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두번째와 세번째 요인 입니다. 


'존속기업의 제조사업체 탄생 및 소멸'(Net plant birth/death within firms) 제조업 고용을 감소시키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제조업 기업들은 제조사업체를 더 이상 개설하지 않았고, 기존에 존재해왔던 제조사업체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럼에도 기업활동을 계속 영위한다는 것은 제조사업체의 문을 닫고 비제조사업체에 더 집중했을 가능성을 제시해줍니다.


또한 '존속하는 기업 & 사업체'(Within continuing firm-plants)도 2000년보다 고용자수가 약간 감소했습니다. 만약 사업체는 그대로 유지한채 그 역할만 제조활동에서 서비스활동으로 전환하였다면, 제조업 고용 감소와 서비스업 고용 증가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2000년대 들어서 미국 기업은 상품생산 업무를 수행하는 제조사업체를 폐쇄시키고 비제조사업체를 늘리거나, 기존 제조사업체를 비제조사업체로 전환시켰고,  과정에서 제조업 고용 감소와 서비스업 고용 증가가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미국 기업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단순 제조업무를 포기하고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급 서비스활동에 집중하면서 생산성을 향상시켰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 애플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플은 미국 내 제조공장을 폐쇄하거나 규모를 줄인채, R&D · 설계 · 디자인 업무를 맞는 본사역량을 강화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애플스토어를 미 전역에 개점했습니다. 그 결과 애플이 창출한 일자리는 주로 서비스업 부문이며, 제조업 일자리를 두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말을 듣기[각주:6]까지 했습니다.




※ GVC와 오프쇼어링의 확대 - 미국 제조기업의 서비스화 배경을 제공하다


이러한 미국 제조기업의 서비스화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글로벌 밸류체인(GVC) · 오프쇼어링(Offshoring)으로 표현되는 '국제무역' 입니다. 


▶ 글로벌 밸류체인(GVC)과 아시아 공장(Factory Asia)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으로 달라진 세계경제'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를 통해 두 차례나 다룬 바 있습니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정보통신기술 발전(ICT ↑)으로 의사소통 비용이 하락(Communication Costs ↓)하면서 선진국 본사에 있는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서로 간 지식과 아이디어(knowledge & ideas)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한 선진국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역할을 배분합니다. 과거 선진국에 위치했던 제조공장은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했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창출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미국 제조업 기업의 직접 수입(Direct imports)


  • 1977년~2012년 제조업 기업 중 직접수입을 하는 기업의 비중(녹색선, Firms importing) · 대중국 직접수입을 하는 기업의 비중(연한 녹색선, Firms importing from China) · 미국으로의 수입침투율(진한 빨간선, US import penetration) · 미국으로의 대중국 수입침투율(연한 빨간선, US import penetration from China)에 주목

  • 출처 : Fort, Pierce, Schott (2018)[각주:7]


경제학 이론상으로 설명가능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역할분담과 애플이 대표하는 한 가지 사례 이외에, 현실 속 전반적인 미국 제조업에서 글로벌 밸류체인(GVC) ·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위의 그래프는 1977년-2012년 미국 제조업 부문의 기술채택과 수입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대 특히 2000년대 들어 미국 제조업 사업체 중 컴퓨터를 구매한 사업체의 비중이 대폭 증가(Plants buying computers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2000년대 들어서 미국 제조업 기업들 중 직접 수입을 하는 기업의 비중도 크게 증가(Firms importing )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총국내소비 중 제조업 수입품의 비중을 의미하는 수입침투율도 상승(US import penetration ↑)했죠.


(사족 : 따라서 '직접 수입'과 '수입침투율'의 값은 서로 측정하는 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두 지표를 나란히 놓은 후 높고 낮음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음)


오프쇼어링 · 기업조직 등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각주:8]'국내 제조업 기업의 직접 수입'(Direct Import / Firm Importing)과 '수입산 제조업 상품의 침투'(Import Penetration)를 구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수입산 제조업 상품의 침투'(Import penetration)는 제조업 상품 국내 총소비 중 수입산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국내 제조업 기업이 외국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수입하는 경우 · 도소매 업체가 상품 판매를 위해 수입하는 경우 · 외국 기업이 본국에서 만든 상품을 수입하는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 수입이 늘어났다'고 말할 때, 수입침투율 상승을 의미합니다.


'국내 제조업 기업의 직접 수입'(Direct Import / Firm Importing)은 국내 제조업 기업이 외국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직접 수입하여 판매하는 경우만을 의미합니다. 만약 국내 기업이 본국에서는 고품질 상품을 생산하고 외국에서는 저품질 상품을 생산하는 식으로 차별화 하였다면, 이러한 오프쇼어링의 결과로 국내 기업의 직접 수입이 증가(Direct Import / Firm Importing ↑)하게 됩니다. 따라서, 직접 수입 지표는 오프쇼어링 확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됩니다.


2007년 기준 최소한 하나 이상의 제조업 사업체를 보유한 미국 기업들은 전체 기업들 중 5%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전체 고용의 23% · 매출의 38% · 비원자재 상품 수입의 6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 

- 미국 제조업 기업의 조직을 변화시켜, 

- 서부 ·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고숙련 근로자에게 이익을 주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으로 인한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 오프쇼어링 기회 확대가 미국 제조업 기업의 서비스화를 가능케한 배경을 제공해주었다면,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국 제조업 기업들의 조직을 서비스 활동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경제학자 니콜라스 블룸(Nicholas Bloom) · 카일 핸들리(Kyle Handley) · 안드레 커만(Andre Kurman) · 필립 럭(Phillip Luck) 등은 2019년 7월 작업중인 논문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 고용에 미친 영향: 좋은 것, 나쁜 것, 그리고 논쟁거리>(<The Impact of Chinese Trade on U.S. Employment: The Good, The Bad, and The Debatable>)을 주목해야 합니다. 


블룸 등은 논문을 통해, 중국의 수입침투율 증가가 미국 제조업 사업체의 폐쇄(exit) 혹은 서비스업으로의 전환(switch)을 야기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국 제조업의 전환이 서부 해안지역과 동부 뉴잉글랜드에 위치한 고숙련 근로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음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미국 제조업 기업의 조직 전환 (reorganization)


  • 중국의 수입침투 증가가 미국 제조업(패널 A) 및 서비스(패널 B) 부문 고용에 미친 영향

  • 존속 사업체 / 신규 사업체 진입 / 기존 사업체 퇴출 으로 구분


위의 표는 1992년~2012년 중국의 수입침투 증가가 미국 제조업 및 서비스업 고용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블룸 등은 고용변화를 기업조정 마진별로 살펴보기 위해서, '존속 사업체'(Continuing Establishments) · '신규 사업체 진입 (존속기업 내 혹은 신규기업의 탄생)(Entry of Establishments)· '기존 사업체 퇴출(존속기업 내 혹은 신규기업의 탄생)(Exit of Establishments)' 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제조업의 고용감소는 대부분 존속 사업체의 서비스업으로의 전환(Net Switching)과 기존 사업체의 퇴출(Exit of Establishment)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기업 자체가 퇴출되면서 사업체가 없어진 게 아니라 기업은 그대로 존속하는데 제조업 사업체만 사라졌습니다(by Firm Continuers).


이러한 결과는 미국 제조업 기업들이 중국발 무역 충격의 영향으로 제조업 사업체를 축소시키고 서비스업 활동을 팽창시켰음을 보여줍니다. 서비스업 활동으로 사업체을 변경한 제조업 기업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업서비스 · 관리서비스 등으로 업종을 바꾸었는데 이는 제조업 기업이 개발 · 연구 · 관리 등에 더욱 집중함을 알려줍니다.


▶ 미국 경제활동 중심은 서부 및 동부 해안지역으로 이동 (regional inequality)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에 미친 영향을 '고인적자본 지역'(HHC)과 '저인적자본 지역'(LHC)로 분류


제조업 기업들이 전환한 관리 · R&D · 설계 · 디자인 · 마케팅 등의 업무는 매우 숙련집약적 입니다. 따라서, 중국발 무역 충격은 인적자본 정도에 따라 지역에 상이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위의 표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에 미친 영향을 '고인적자본 지역'(HHC)과 '저인적자본 지역'(LHC)로 분류하여 분석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고인적자본 지역과 저인적자본 지역 모두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 고용에 악영향을 주었습니다만 양상은 상이합니다.


고인적자본 지역 근로자들은 서비스업으로 전환한 사업체에 계속 속해있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고인적자본에서 제조업 고용은 감소한 것으로 나오지만 서비스업 고용 증가 덕분에 전체 고용의 감소폭은 어느정도 상쇄되었습니다. 


반면에 저인적자본 지역 근로자들은 서비스업으로 전환한 사업체로 이동하지 못하였고 혹은 저인적자본에 위치한 제조업 기업은 서비스업으로 전환을 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저인적자본 지역은 중국발 무역 충격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미국 내에서 인적자본 정도가 높은 지역은 서부 및 동부 해안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미국 경제활동의 중심은 남부 · 중서부 지역에서 서부 · 동부 해안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중국발 무역 충격이 야기한 '지역간 불균등'(regional inequality)을 두 개의 그림으로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미국 내 분배적 결과를 야기한 중국발 무역 충격


본 블로그 China Shock 시리즈 글 3개를 통해 확인한 연구들의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 중국의 수입침투는 미국 저숙련 · 노동집약형 제조업 고용을 감소시켰다


▶ 중국 제조업과의 수입경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 제조업 기업들은 서비스업 활동으로 전환하였다


▶ 저숙련 근로자는 피해를, 고숙련 근로자는 이익을 얻었다


▶ 저숙련 제조업에 특화된 남부 · 중서부 지역은 타격을 받았으나, 인적자본 수준이 높은 서부 · 동부 해안지역은 수혜를 누렸


▶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국 내 분배적 결과를 야기하였다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https://joohyeon.com/288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⑩] China Shock Ⅱ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 https://joohyeon.com/289 [본문으로]
  3. New Perspectives on the Decline of US Manufacturing Employment [본문으로]
  4. New Perspectives on the Decline of US Manufacturing Employment [본문으로]
  5. New Perspectives on the Decline of US Manufacturing Employment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7. New Perspectives on the Decline of US Manufacturing Employment [본문으로]
  8. Pol Antras, Teresa Fort 등등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⑩] China Shock Ⅱ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⑩] China Shock Ⅱ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

Posted at 2020. 1. 5. 22:48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The China Trade Shock 

- Autor, Dorn, Hanson (2013)의 연구를 잇는 후속연구들


▶ Autor, Dorn, Hanson의 2013년 연구


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에서 소개한 오토어(Autor) · 돈(Dorn) · 한슨(Hanson)의 2013년 연구 <중국 신드롬: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The China Syndrome: Local Labor Market Effects of Import Competition in the United States>) 경제학계와 미국 내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막연하게 "아... 대중국 무역적자 심화가 미국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거 같은데.."라고 느끼던 사람들은 대중국 수입증대가 미국 제조업과 지역 노동시장에 어떤 형태로 충격을 주고 있는지를 오토어 · 돈 · 한슨의 실증분석을 통해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무역론을 세상에 내놓은 애덤 스미스[각주:1]는 『국부론』에서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라고 말했고, 현대 국제무역론 교과서는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하던 근로자는 무역개방 이후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여 전체 고용은 유지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 이론과 현실은 다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근로자들의 숙련도에 따라 재취업 여부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열위 산업에서 퇴출된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란 교과서가 말하는 것보다 힘듭니다. 게다가 기존에 살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 있는 기업에 재취업 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만약 현실 미국에서 제조업 근로자들이 비제조업으로 쉽게 이동하거나, 쇠락하고 있는 본거지를 떠나서 충격을 적게 받은 다른 통근 구역의 기업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면, 지역 노동시장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은 크게 나빠지지 않으며 제조업 집약도가 다른 지역들 간에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해, 미국 지역 노동시장들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에 유의미한 악화가 발생했거나 지역 간 차이가 드러났다는 사실 그 자체는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말한 충격 조정 기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극명히 드러냅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 출처 : The China Trade Shock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가정하는 '무역 충격의 조정기제'(adjustment mechanism)가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데,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입니다.


한 눈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주리 · 아칸소 · 테네시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 노스 캐롤라이나 등 남부 대서양 지역과 위스콘신 ·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 등 중서부 지역(이른바 러스트벨트)에 몰려있습니다.


남부 대서양 지역은 가구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 산업에 특화 · 중서부 지역은 저숙련 조립 제조업에 특화되어 있고, 충격을 흡수하는 교과서 속 조정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발 무역 충격이 남부(South) · 중서부(Midwest) 지역에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등(regional inequality)을 초래한 건 당연한 결과 입니다.


이처럼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무역의 분배적 영향'(the distributional consequences of trade)과 '무역 충격 조정과 관련한 중기 효율성 손실'(medium-run efficiency losses associated with adjustment to trade shocks)을 일깨워 주었고, 이후로도 후속연구를 이어갑니다.


▶ Acemoglu, Autor, Dorn, Hanson, Pierce의 2016년 연구


  • 위 :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데이비드 돈(David Dorn), 고든 한슨(Gordon Hanson)

  • 가운데 :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브렌던 피어스(Brendan Pierce)

  • 아래 : 이들의 2016년 논문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오토어 · 돈 · 한슨은 동료 경제학자 아세모글루 · 피어스와 함께 2016년 논문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Import Competition and the Great US Employment Sag of the 2000s>)을 발표합니다. 


이들은 2016년 논문을 통해 2013년 연구가 고려하지 않았던 무역 충격 경로를 탐구하였고, 1991년-2011년 사이 중국 수입경쟁으로 인한 미국의 총 일자리 손실의 하한선은 260만개 라고 말합니다. 

(주 : 2013년 연구는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으로 인한 제조업 일자리 손실이 154만개 라고 추정)


그렇다면 '2013년 연구가 고려하지 않았던 무역 충격 경로'는 무엇이며, '교역산업인 제조업 뿐 아니라 비교역산업인 비제조업이 어떻게 무역 충격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번글을 통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을 증폭시킨 요인들

- 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 지역 내 총수요 승수효과


▶ 1991년~2011년, 중국의 수입침투 증가 (Chinese Import Penetration)


  • 1991년~2011년 미국 내 중국의 수입침투율(Chinese Import Penetration Ratio)

  • 미국의 대중국 수입 및 대중국 수출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는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각주:2]가 살펴본 시계열(1991년~2007년)을 2011년까지 확장하여 중국발 무역 충격의 크기를 추정했습니다.


이때, 2016년 연구가 정의한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국 내 총소비 중 대중국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 '입니다. 2013년 연구가 사용한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 변화'와는 다릅니다.


2016년 연구는 지역 단위 뿐 아니라 전국 단위 분석도 실시하였고, '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효과' 및 '지역 내 총수요 효과'로 인해 중국발 무역 충격이 2013년 연구에서 결론지은 것보다 크다고 말합니다.


▶ 전국의 산업간 투입-산출 연결 관계 (Industry Input-Output Linkages)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미국 지역 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수입경쟁 증대로 지역 내 제조기업이 타격을 받고 이곳에 종사하던 근로자의 고용과 임금이 악화되는 경로를 살펴봤습니다.


기서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제조업 기업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점 입니다. 이른바 '산업의 투입-산출 연결관계'(Industry Input-Output Linkages) 입니다.


기업이 완성형 제품을 생산(output)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부품(input)을 조달해야 합니다. 역으로 중간재 및 부품(input)을 생산하는 기업은 제품 생산(output)을 위해 이를 필요로하는 기업에 판매합니다. 이때 기업들은 지역 내에서만 부품을 조달하거나 판매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위치한 기업과도 거래를 합니다.


게다가 기업들은 직접 연결을 넘어서 간접적으로도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연결은 산업을 뛰어넘습니다.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도 다른 곳에서 필요한 원자재를 조달하여 부품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기업들은 몇 단계를 거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조기업이 만든 최종 상품은 유통 · 물류 · 도소매 판매 서비스 등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됩니다. 


즉, 개별 기업들은 지역과 산업을 뛰어넘은 투입-산출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결된 기업의 경영상태 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 및 기업 간 투입-산출 연결관계는 고려치 않고, 수입경쟁이 지역 내 제조기업에게만 전달한 영향만 살펴본 2013년 연구는 실제 중국발 무역 충격을 과소평가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는 지역 단위가 아닌 전국 단위에서 연결된 제조업이 받은 영향(Sectoral Linkage at National Level)을 살펴봅니다.


저자들은 기업들간 연결관계가 미치는 영향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다운스트림 영향(Downstream Effect) 입니다. 이는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무역 충격을 받았을 때, 이곳에서 부품을 조달해온 기업이 받는 직접 영향과 다음 단계로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기업들이 받는 간접 영향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업스트림 영향(Upstream Effect) 입니다. 이는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이 무역 충격을 받았을 때, 이곳에 부품을 공급해온 기업이 받는 직간접 영향을 의미합니다.


저자들은 계량분석을 실시하기 이전에 직관적인 논리를 통해 그 영향을 추론했습니다.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수입경쟁으로 인해 상황이 나빠진다면,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은 다른 회사 혹은 다른 나라에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가 무너지면 삼성전자는 다른 곳에서 부품을 조달하면 그만입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무역충격으로 인한 '다운스트림 영향'은 크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이와는 달리, 부품을 조달해온 기업이 수입경쟁으로 상황이 나빠지면, 이곳에 부품을 공급하던 기업은 대체 판매처를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영상황이 악화되면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휘청거릴 겁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무역충격으로 인한 '업스트림 영향'(Upstream Effect)이 매우 크게 부정적일 거라고 예상합니다.


▶ 지역 내 재배치 효과 및 총수요 효과 (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Effect)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는 전국단위 분석 뿐 아니라 지역 노동시장 분석도 수행하였습니다. 이때, 2013년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두 가지 경로를 탐색합니다. 바로, 지역노동시장 내 '산업간 재배치 효과'(Reallocation Effect)와 '총수요 승수효과'(Aggregate Demand Effect) 입니다.


2013년 연구는 '중국발 수입경쟁이 지역 내 제조업 고용에 미친 영향'을 추정하였고, '지역 제조업 고용감소가 비제조업 고용 증가 · 실업률 증가 · 노동시장 이탈 등 셋 중 하나로 연결'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분석 결과 제조업 고용감소는 비제조업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산업간 생산요소의 재배치 효과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서비스업으로 재배치 되지 않은 이유로 노동시장 마찰을 꼽았고, 교과서 속 무역충격의 조정기제가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는 한발 더 나아가서, '산업간 재배치 효과'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로 '지역 내 총수요 승수효과'가 반대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수입경쟁으로 제조업 고용이 감소한 지역은 경기둔화의 여파로 총수요가 줄어들어 비교역재인 서비스업 고용증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만약 전국 단위에서 총수요 효과가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중국발 무역 충격은 경쟁부문인 제조업에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걸 넘어서서 미국경제 전체에 광범위한 충격을 주었을 겁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지역 내에서 추정한 총수요 승수효과는 미국 전역에 영향을 준 총수요 효과의 하한선이라고 판단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를 알아봅시다.




※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 ①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전체 산업에 미친 영향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는 우선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의 고용에 끼친 영향'(aggregate, industry-level)을 회귀분석을 통해 추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관계나 지역 내 총수요 효과 등은 고려치 않은 기본 분석 입니다.


  •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 산업의 고용에 끼친 영향


위의 표는 회귀분석 결과를 보여줍니다. 분석 결과, 1991년~2011년 중국의 수입침투율 1%p 증가는 미국 제조업 고용 1.3%p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저자들은 실제 제조업 고용 변화량을 토대로 중국발 무역 충격의 영향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미국 제조업 근로자수는 1991년~1999년 560만명 · 1999년~2011년 580만명 감소했습니다. 이 중 대중국 수입침투 증가가 유발한 제조업 고용 변화는 1991년~1999년 27.6만명 · 1999년~2011년 56만명으로 1991년~2011년 총 83.7만명 입니다. 


즉,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감소 현상에서 중국발 무역 충격의 영향은 14.9%를 차지합니다.


(사족 : 2013년 연구와 2016년 연구는 '중국발 무역 충격'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제조업 고용 감소에 미친 크기가 상이함)




※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 ② 전국 단위 산업의 투입-산출 연결관계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는 이어서 '중국발 무역 충격이 산업 간 투입-산출 연결관계를 통해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고용에 미친 영향'(manufacturing & non-manufacturing through input-output linkages)을 살펴봅니다.


  •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산업간 연결을 통해 제조업과 비제조업 고용에 미친 영향

  • 상단 A 패널 : 직접 연결 / 하단 B 패널 : 간접 연결


위의 표는 회귀분석 결과를 보여줍니다. 상단 A 패널은 직접 연결만, 하단 B 패널은 간접 연결을 포함한 영향을 나타냅니다.


저자들의 추론처럼,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무역 충격을 받았을 때, 이곳에서 부품을 조달해온 기업이 받는 '다운스트림 영향'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이 미국기업이 아닌 해외기업을 통해 부품을 계속 조달받음으로써 부정적 영향을 피해갔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이 무역 충격을 받았을 때, 이곳에 부품을 공급해온 기업이 받는 '업스트림 영향'은 유의미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업스트림의 부정적 영향은 비제조업 산업에서도 크게 나타났는데, 제조업을 지원하는 서비스업 고용도 큰 타격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직접 연결만 고려했을 때(First-Order Input-Output Linkages), 1991년~2011년간 중국발 무역 충격은 제조업 고용을 133만명 · 비제조업 고용은 80.5만명 감소시켜 미국 전산업 일자리 214만개를 감소(직접 연결)시켰습니다. 


간접 연결을 포함하여 모든 연결을 고려했을 때(Full Input-Output Linkage), 1991년~2011년간 중국발 무역 충격은 제조업 고용을 141만명 · 비제조업 고용은 122만명 감소시켜 미국 전산업 일자리 262만개를 감소(직간접 연결)시켰습니다.


앞서 제조업이 충격을 직접 받은 경우만 고려했을 때 나타난 일자리 수 83.7만개 감소와 비교하면, 직간접 연결은 중국발 무역 충격의 부정적 영향을 3배 가까이 증폭 시켰습니다. 




※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 ③ 지역 내 재배치 효과 ↔ 총수요 승수효과


이처럼 산업간 직간접 연결은 중국발 무역 충격의 부정적 영향을 크게 증폭시켰으나, 이것 또한 모든 경로를 다 반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줄어든 고용이 미국 전역의 총수요를 감소시켜 추가적인 부정적 영향을 초래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전국 단위에서 발생한 부정적 총수요 효과를 탐색하고 싶었으나 측정이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였고, 대안으로 지역 내에서 발생한 총수요 효과(aggregate demand effect in CZ)를 살펴봤습니다.


저자들은 '수입증대에 노출되지 않은 산업의 고용변화'(non-exposed sector)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총수요 효과를 추정합니다. 만약 수입경쟁과 관련이 없는 산업에서 고용이 늘어나지 않았다면, 이는 재배치 효과를 상쇄시키는 부정적인 총수요 효과가 지역 내에서 작용한 결과(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in CZ)라는 논리 입니다.


여기서 '수입증대 노출' 여부는 1991년~2011년간 수입노출도가 최소한 2%p 상승한 모든 제조업 세부산업과 지역 내 직간접 연결을 고려한 수입노출도가 최소 4%p 상승한 제조업 및 비제조업 산업 세부산업으로 판단하였습니다. 


  •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수입경쟁에 노출된 산업(exposed-sector)과 노출되지 않은 산업(non-exposed sector)의 고용에 미친 영향


위의 표는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수입경쟁에 노출된 산업과 노출되지 않은 산업의 고용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분석 결과, 대중국 수입증대는 비노출 산업의 고용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며, 추정된 계수 값 자체도 0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산업간 재배치로 인한 고용 증가 대부분이 부정적인 총수요 효과에 의해 상쇄됨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지역 단위 분석을 통해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대중국 수입에 노출된 지역 내 산업은 1991년~2011년간 일자리가 308만개 감소했습니다. 이 수치는 대중국 수입의 직접 충격 + 지역 내 산업간 직간접 연결을 통한 충격 + 지역 내 부정적 총수요 효과를 모두 감안한 값입니다.


이때, 미국 전역에 작용하는 총수요 효과가 지역 내에서만 작동하는 총수요 효과보다 클 거라는 점 그리고 지역을 뛰어넘은 산업간 연결을 통한 부정적 효과의 전달 등을 생각하면1991년~2011년간 일자리가 308만개 감소는 미국 전역에 영향을 미친 실제 중국발 무역 충격 크기의 하한선 입니다.




※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 분석단위별 고용 변화 비교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논문을 통해 제시한 분석 단위를 다시 한번 정리해봅시다.


첫번째는 수입증대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제조업 산업의 고용 변화 입니다. 여기에는 산업간 연결 및 총수요 효과 등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는 직접 노출 + 전국 단위 직(간)접 연결을 통해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입니다. 여기에는 전국 단위로 작용하는 산업간 연결을 고려하였고, 전국 단위의 재배치 효과와 총수요 효과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National Industry Linkages O, National 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X)


세번째는 지역 내 직접 노출 + 직간접 노출 + 비노출된 산업들의 고용 변화이며, 여기에는 지역 내 재배치 · 총수요 · 산업간 연결만 고려했지 전국 단위에서 이들 영향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Local 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O, Local Industry Linkages O, National 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X, National Industry Linkages X)


  • 분석단위별 고용 변화 비교 (단위 : 천 명)
  • 1행 : 수입증대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제조업 산업의 고용 변화
  • 2,3행 : 직접 노출 + 전국 단위 직(간)접 연결을 통해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 4행 : 지역 내 직접 노출 + 직간접 노출 + 비노출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그리고 위의 표는 분석단위별 고용 변화를 보기 쉽게 정리한 겁니다.


▶ 수입증대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제조업 산업의 고용 변화 (1991년~2011년)

:  제조업 고용 83.7만명 감소


▶ 직접 노출 + 전국 단위 직접 연결을 통해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1991년~2011년)

: 제조업 고용 133만명 감소

: 비제조업 고용 80.5만명 감소

: 전산업 고용 214만명 감소


▶ 직접 노출 + 전국 단위 직간접 연결을 통해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1991년~2011년)

: 제조업 고용 141만명 감소

: 비제조업 고용 122만명 감소

: 전산업 고용 262만명 감소


▶ 지역 내 직접 노출 + 직간접 노출 + 비노출된 산업들의 고용 변화 (1991년~2011년)

: 노출 산업 308만명 감소

: 비노출 산업 2.4만명 감소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고용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

- 그런데... 대중국 교역이 가져다 준 이익은 고려하지 않나?


이와 같이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는 '2013년 연구가 고려하지 않았던 무역 충격 경로'(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 지역 단위 총수요 · 재배치와 산업간 연결)를 살펴봄으로써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제조업 · 비제조업 고용을 최소한 308만개 감소시켰고 이것은 2013년 추정치보다 훨씬 큼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국발 무역 충격을 다룬 연구는 이외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오토어 · 돈 · 한슨과 아세모글루 · 피어스 등은 다른 동료 학자들과 함께 'THE CHINA TRADE SHOCK' 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중국의 부상이 미국 근로자, 기업,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중국과의 교역 확대는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만 가져다준 것일까요?


지난글[각주:3]과 이번글에서 소개한 연구들은 애시당초 '무역 충격을 흡수하는 조정기제의 부재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탐구하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국 교역이 가져다 준 이익은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대중국 무역 충격을 받은 지역만 말할 뿐, 글로벌 밸류체인(GVC) 형성으로 이득을 본 지역과 산업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 이외에 다른 경제학자들은 "대중국 교역 확대가 미국 경제 전체로는 순이익을 가져다주었다"(net aggregate gain), "대중국 교역 확대는 기업구조를 서비스업으로 재조직하였다"(reorganization) 등의 논문을 발행하여 논의의 폭과 깊이를 넓혀주었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중국의 부상이 미국 경제에 미친 영향'을 보다 폭넓은 관점으로 알아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https://joohyeon.com/288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https://joohyeon.com/288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Posted at 2020. 1. 3. 17:40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The China Trade Shock


  • 1999년 11월, 미국과의 양자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WTO 가입에 다가선 중국 (링크)
  • 2010년 2월, 중국과의 문제에 직면한 미국 (링크)
  • 2019년 5월, 새로운 종류의 냉전 (링크)


오늘날 미국의 주적은 중국 입니다.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주주의 · 시장경제 전파에 둔 클린턴행정부의 포용[각주:1] 덕분에 중국은 1999년 11월 미국과 양자무역협정을 체결하고 2001년 12월 WTO에 가입했는데...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세계경제와 미국경제에 미친 영향력[각주:2]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 2000년대 전세계 교역 · 상품가격 호황과 국가간 불균등 감소


  • 위 : 1980년~2017년, 전세계 수출·수입 액수 추이 (출처 : IMF DOT)

  • 아래 : 1990년~2012년, 전세계 제조업 부가가치 및 수출 중 중국의 비중 (출처 : Autor, Dorn, Hanson 2016)


제조업 가공무역에 기반을 둔 중국경제의 특성은 전세계 제조업 생산 및 수출 통계에서도 돋보입니다. 

전세계 교역액은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1990년대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로는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또한, 전세계 제조업 생산 및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은 1990년대부터 서서히 늘어나다가 2000년대 들어서 압도적인 크기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 왼쪽 : 1992년~2019년 원자재 가격지수 (2016년 100기준)
  • 오른쪽 : 1992년~2019년, 한국 수출액 추이

중국의 경제발전은 여러나라 특히 신흥국에게 이익을 안겨다주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은 제품생산을 위해 원자재를 대규모로 수입하였고 이로 인해 석유 · 철강 · 구리 등 상품가격이 폭등하여 원자재 수출국의 호황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또한, 중국은 아시아 내 글로벌 밸류체인(GVC)의 중심을 맡아 Factory Asia를 형성[각주:3]하였고, 한국 ·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며 교역액을 대폭 늘렸습니다.

  • 1988년~2008년 사이, 글로벌 소득계층별 소득증가율을 보여주는 '코끼리 그래프'(Elephant Graph)
  • 왼쪽 출처 : 밀라노비치, 랑커 2014년 연구보고서
  • 오른쪽 출처 : 피터슨 국제연구소

이러한 중국 · 아시아 · 신흥국의 성장은 '국가간 불균등'을 감소[각주:4]시켰고 글로벌 소득분포를 가운데로 이동시켰습니다. 

1988년~2008년 동안 글로벌 소득분포 내 75분위~90분위에 위치한 계층의 소득 증가율 10%가 채 안되며 매우 낮았음을 윗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소득이 가장 크게 증가한 계층은 중간에 위치한 40분위~70분위와 최상위 100분위이며 6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미국 · 서유럽 내 상위층은 전세계에서도 상위층이기 때문에 100분위에 속합니다. 그리고 선진국 중하위층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행운 덕분에' 글로벌 소득분포상에서는 상위권인 75분위~90분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 인도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대부분 30분위~70분위에 위치해 있죠. 

즉, 20년간 선진국 중하위층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었고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소득증가율은 가팔랐습니다.


▶ 2000년대 미국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대중 무역적자 확대

문제는 '20년간 선진국 중하위층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세계화와 중국의 경제발전은 수십억명을 빈곤의 덫에서 구해주었으나, 선진국 중하위층 특히 제조업에 종사하던 저숙련 근로자들은 상당한 충을 받았습니다. 말그대로 '중국발 무역충격'(The China Trade Shock) 입니다.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의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는 1979년 최대 1,950만명 · 1980~90년대 평균 1,700만명대를 기록하였으나, 2007년 1,400만명 · 2011년 1,100만명 · 2019년 현재 1,300만명을 기록하며 최근 30년간 400만명(-25%) 감소했습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을 기준으로 하면 30년간 600만명(-35%)이나 줄어들었습니다. (사족 : 노동 통계 종류에 따라 제조업 근로자 수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

그런데 제조업 근로자 수가 줄어든 건 중국발 무역충격 때문이 아니라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2001 닷컴버블 붕괴 · 2008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근로자 수가 급감했기 때문에 거시경제 이벤트 및 경기순환적 요인이 작용했다 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 소비자들의 선호가 제품(goods)에서 서비스(services)로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술변화가 반복작업을 수행하는 제조업 근로자를 대체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1990년대-2000년대 당시 경제학자들이 주목했던 건 기술변화[각주:5] 였습니다. 노동경제학자들이 발전시킨 '업무기반 분석체계'(task-based framework)와 '반복편향적 기술변화'(RBTC, Routine-Based Technological Change)는 2000년대 미국 및 선진국 노동시장의 특징인 '일자리 양극화'와 '중하위층 간 불균등 정체' 현상을 완벽히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기술변화 이외의 다른 요인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 1987년~2019년 미국 무역적자 추이
  • 1980년대-1990년대 초반 미국 무역적자의 상당부분은 일본에게서 왔다(40% 이상)
  • 1990년대 들어서 대중국 무역적자가 커지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 급증하였다(40% 이상)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2000년대부터 대중국 무역적자는 심화되어 왔음에도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87년~2019년 미국 무역적자 추이를 주요 교역상대국별 비중과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 대중국 무역적자가 커지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 급증합니다. 2019년 현재 미국 무역적자 중 대중국 적자 비중은 40%~50%에 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3년 당시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이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각주:6]라고 말한 것럼, 2005년 당시 연준 이사였던 벤 버냉키는 "글로벌 과잉저축이 미국 경상수지 적자를 유발하고 있다"[각주:7]고 진단했습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 한 교역, 특히 저임금 노동집약적 제조업에 특화한 13억 인구를 가진 국가를 상대로 이렇게 많은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데,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중국의 부상'(China's Rise)을 인지하게 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의 진단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배경과 맥락 속에서 2013년 한 노동경제학자는 동료 두 명과 함께 논문 하나를 발표합니다. 



※ The China Syndrome: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 왼쪽 : 데이비드 오토어 (David Autor)

  • 가운데 : 데이비드 돈 (David Dorn)

  • 오른쪽 : 고든 한슨 (Gordon Hanson)

  • 이들의 2013년 논문 <중국 신드롬: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ivd Autor)는 동료 학자 데이비드 돈(Daivd Dorn) · 고든 한슨(Gordon Hanson)과 함께 2013년 논문 <중국 신드롬: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The China Syndrome: Local Labor Market Effects of Import Competition in the United States>)을 발표합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2013년 논문을 통해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상정하는 핵심 가정이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으며,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논문 제목에 나오는 '수입경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지역 노동시장'을 분석하는지 등을 이해하며 차근차근 논문의 내용을 알아봅시다.


▶ '지역 노동시장'(Local Labor Market)이란 무엇인가?



오토어 · 돈 · 한슨이 선정한 분석대상은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 근로자의 고용 및 임금 변화'(Employment · Wage Changes in Local Labor Market)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 노동시장' 이란 단순히 미국 개별 주(States) 안에 있는 행정구역 카운티(Counties)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강한 통근 연결도'로 묶인 카운티들의 '통근 구역'(Commuting Zones)을 뜻합니다. 


한국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만약 대중국 수입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려면 '지역'을 정의해야 합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강남구 · 서초구 · 마포구 · 성남시 분당구 · 고양시 일산동서구 등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이용하는 겁니다. 이들 행정구역 내의 고용변화를 토대로 무역이 특정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초구 삼성타운에 위치해있는 삼성 계열사 한 곳이 망하면 단순히 행정구역 서초구의 고용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른 행정구역에 거주하면서 서초구로 통근하는 취업자 수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역 노동시장'은 단순히 주어진 행정구역을 이용해서는 안되며, '통근 강도'를 기반으로 재정의한 '통근 구역'(CZ)을 사용해야 합니다. 미국 센서스는 관련 있는 카운티들을 묶은 741개의 통근 구역을 정의해놓고 있으며, 본 논문은 이 중 미국 본토에 위치한 722개 통근구역을 사용했습니다.


▶ 왜 '지역 노동시장'(CZ)을 분석하나?


그렇다면 오토어 · 돈 · 한슨은 왜 지역 노동시장(CZ)을 분석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본 논문이 경제학계 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한 핵심 물음 입니다.


지역 노동시장을 분석 단위로 삼은 첫번째 이유는 '차이'(variation)을 포착하기 위해서 입니다. 


단순히 미국 내 제조업 근로자 수가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중국과의 교역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거시경제 이벤트 때문일 수도 있고, 소비자 선호 변화 때문일 수도 있고, 기술변화 때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변수 하나가 연구대상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조건은 동일하지만 독립변수가 영향을 줄 수 있는 한 가지 조건만 차이가 나는 두 대상'을 비교해야 합니다. 기존 연구들에서 고숙련 근로자 vs 저숙련 근로자 혹은 자본집약 산업 vs 노동집약 산업 등 차이가 있는 두 대상을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미국 내 지역 노동시장들 사이에서 '제조업 고용비중 & 제조업 세부산업 중 수입집약산업 특화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남부는 의복 · 목재 · 인형 등 노동집약 상품을 중서부는 자동차 등 자본집약 상품을 주로 생산하며, 중부는 농업 서부는 IT에 특화되어 있죠. 


이들 지역 노동시장들은 거시경제 이벤트 · 소비자 선호 변화 · 기술변화의 영향을 동일하게 받지만, 제조업에 의존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고 제조업 중에서도 노동집약도가 다르기 때문에 중국발 무역충격 강도의 차이가 납니다(variation). 


따라서,  제조업 고용비중 & 제조업 세부산업 중 수입집약산업 특화 정도가 다른 두 지역 간 고용변화를 비교하면 중국발 무역충격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지역 노동시장을 분석 단위로 삼은 두번째이자 핵심 이유는 자유무역이론의 핵심가정인 '근로자의 이동성'(mobility)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입니다.


비교우위에 기반한 자유무역론은 '자유무역 이후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하던 근로자는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여 전체 고용은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자유무역의 이로움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드러나 있으며[각주:8], 오늘날 국제무역론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에도 근로자 이동의 마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자유무역을 회복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통상의 일터와 통상의 생계수단을 일시에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그들이 고용 또는 생계를 박탈당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우리가 병사의 습관과 제조공의 습관을 비교해 볼 때, 병사가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보다 제조공이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조공은 언제나 자기 노동에 의해 생계를 얻는 데 익숙 (...)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68쪽


하지만 교과서 이론과 현실은 다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근로자들의 숙련도에 따라 재취업 여부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열위 산업에서 퇴출된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란 교과서가 말하는 것보다 힘듭니다. 게다가 기존에 살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 있는 기업에 재취업 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만약 현실 미국에서 제조업 근로자들이 비제조업으로 쉽게 이동하거나, 쇠락하고 있는 본거지를 떠나서 충격을 적게 받은 다른 통근 구역의 기업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면, 지역 노동시장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은 크게 나빠지지 않으며 제조업 집약도가 다른 지역들 간에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해, 미국 지역 노동시장들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에 유의미한 악화가 발생했거나 지역 간 차이가 드러났다는 사실 그 자체는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말한 충격 조정 기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극명히 드러냅니


근로자 이동성에 마찰이 존재한다면 무역 충격의 피해자인 제조업 근로자는 서비스업 근로자와 비교해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에 처하게 되어 경제적 불균등(economic inequality)이 확대될 겁니다. 또한, 중국발 충격을 많이 받은 지역일수록 고용지표가 더 악화되기 때문에 이는 미국 내 지역간 불균등(regional inequality)을 초래합니다.


▶ '대중국 수입노출'(import exposure from China)의 직접효과 · 순효과


오토어 · 돈 · 한슨은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 변화'(the change in Chinese import exposure per worker in a region)를 중국발 무역 충격으로 증대된 수입경쟁으로 정의하였고, 이것이 고용과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합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지역별 산업구조와 특화에 따라 지역 근로자가 중국발 충격에 노출되는 강도에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때 중국발 충격은 크게 2가지 경로로 지역 근로자에 영향을 미칩니다. 첫번째는 수입경쟁 산업에종사하는 근로자가 받는 직접효과[각주:9]. 두번째는 지리적 영역의 고용 · 소득 · 경제활동참가율 · 지리적 이동 · 공공부조 등에 미치는 순효과[각주:10] 입니다.


중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제조업에 근무하던 미국 근로자는 당연히 중국발 무역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만약 중국발 무역 충격이 실재한다면 고용과 임금 상황이 악화됩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대중국 교역이 제조업과 지역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고용과 임금은 변화하지 않을 겁니다.


즉, 직접효과인 지역 내 미국 제조업의 고용비중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중국발 무역 충격의 존재 여부와 강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실재하는 중국발 무역 충격으로 인해 지역경제가 타격을 받아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는 타격을 받지 않은 혹은 덜 받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근로자 이동성에 마찰이 존재한다면 근로자는 본래 지역에 머무를 겁니다. 이 경우 지역 내 제조업 고용 감소는 비제조업 고용 증가 · 실업률 증가 · 노동시장 이탈 등 셋 중 하나로 연결됩니다. 


또 이때 근로자가 쉽게 다른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제조업 고용 상실 크기 만큼 지역 내 비제조업 고용이 증가할텐데, 이동에 마찰이 존재하면 비제조업 고용은 증가하지 않고 지역 내 실업률 증가와 경제활동참가율 감소가 나타날 겁니다.


따라서, 무역 충격 이후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순효과를 통해 '무역충격을 흡수하고 조정하는 기제가 교과서처럼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중국발 무역충격이 지역 내 제조업 고용에 미친 직접효과


이제 본격적으로 '중국발 무역충격이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에 미친 직접효과'를 살펴봅시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 고용률에 미친 영향

  • 도구변수를 이용하여 2SLS 추정


위의 표는 1990-2007년 간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 변화가 지역 내 제조업 고용률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빨간색 네모 안의 -0.596 값은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수입노출 1,000달러 증가가 제조업 고용률을 0.596%p 감소시킴'을 의미합니다. 실제 1인당 중국 수입액 증가 크기는 1990년~2000년간 1,140달러, 2000년~2007년간 1,839달러 이기 때문에, 두 기간동안 중국 수입이 감소시킨 제조업 고용률은 각각 0.68%p, 1.10%p 입니다. 


그리고 두 기간 실제 제조업 고용률은 각각 2.07%p, 2.00%p 줄어들었기 때문에, 미국 제조업 고용 감소에 있어 중국발 무역 충격의 책임은 1990년~2000년 33% · 2000년~2007년 55% 그리고 전체 기간인 1990년~2007년 44%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이 증가한 이유는 중국의 경제발전(공급증가) 때문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중국산 제품 수요가 늘어나서 일 수도 있습니다. 논문 저자들은 미국인들의 수요요인을 배제하고 중국의 경제발전(공급증가)의 영향만 순수히 고려했을 때, 중국발 무역 충격의 보수적인 책임은 1990년~2000년 16% · 2000년~2007년 26% 그리고 전체 기간인 1990년~2007년 21% 라고 말합니다.


이를 종합하여, 오토어 · 돈 · 한슨은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를 1990년~2000년 54만 8천명, 2000년~2007년 98만 2천명 감소시켰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순효과


앞서 설명하였듯이,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근로자가 다른 산업에서 쉽게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거나 충격을 비교적 덜 받은 다른 지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면, 미국 지역 노동시장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에 유의미한 악화가 발생하지 않으며 제조업 집약도가 서로 다른 지역 간에도 뚜렷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말하는 충격 조정 기제(adjustment mechanism)이 현실에서 작동하는지 살펴봅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통근구역 내 인구 변화에 미친 영향
  • 교육수준별 및 연령별


위의 표는 1990년-2007년 간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 변화가 인구 변화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인구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은 근로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다는 의미(reallocation of workers across CZs)이며, 유의미한 인구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근로자의 이동성에 마찰이 있음(friction of labor mobility)을 보여줍니다.


계량분석 결과는 대중국 수입액이 늘어났더라도 유의미한 인구 변화는 없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연령별 · 성별로 자세히 살펴봐도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이동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충격이 발생했음에도 인구 조정이 부진했다"(population adjustment to local economic shocks are sluggish because mobility is costly)라고 주장합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 고용 · 비제조업 고용 · 실업률 · 경제활동 비참가율에 미친 영향


만약 무역 충격을 받은 제조업 근로자가 본래 통근 구역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역 제조업 고용 감소는 비제조업 고용 증가 · 실업률 증가 · 노동시장 이탈 등 셋 중 하나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위의 표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 고용 · 비제조업 고용 · 실업률 · 경제활동 비참가율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대중국 수입액 1,000달러가 증가할 때 제조업 고용률은 0.596%p 줄어드는데, 비제조업 고용률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실업률은 0.22%p 올라가고 경제활동 비참가율도 0.55%p 증가합니다. 


특히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제조업 근로자는 대졸 근로자에 비하여 실업과 노동시장 이탈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즉, 대중국 무역 충격으로 인한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그만큼 실업률 상승과 노동시장 이탈로 이어지며 교과서 속 조정기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 중국 신드롬: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 출처 : The China Trade Shock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위의 이미지 한 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데,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입니다.


한 눈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주리 · 아칸소 · 테네시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 노스 캐롤라이나 등 남부 대서양 지역과 위스콘신 ·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 등 중서부 지역(이른바 러스트벨트)에 몰려있습니다.


  • 1991년~2007년, 제조업 내 세부산업별 수입침투 증가율(X축)과 1991년 기준 생산근로자 비중(Y축)의 관계
  • Autor, Dorn, Hanson, Song (2014)


중국발 무역 충격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이유는 중국의 수입품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91년~2007년, 제조업 내 세부산업별 수입침투 증가율(X축)과 1991년 당시 해당 산업의 생산근로자 비중(Y축)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구체적으로 산업별 수입침투율을 살펴보면, 인형 · 스포츠장비 · 기타 32.6% 증가, 의복 · 가죽 · 섬유 16.7% 증가, 가구 · 나무목재 16.7% 증가, 기계 · 전자 15.2% 증가 입니다. 그리고 이들 산업은 1991년 기준으로 생산근로자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그래프 상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즉, 1991년~2007년간 수입노출이 가장 크게 증가한 부문은 주로 저숙련 노동집약 산업 입니다. 그리고 중국이 풍부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단순조립 가공무역을 통해 전자제품을 수출[각주:11]해왔음을 감안한다면, 미국이 피해받은 전자 기업도 저숙련 노동 집약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남부 대서양 지역은 가구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 산업에 특화 · 중서부 지역은 저숙련 조립 제조업에 특화되어 있고, 충격을 흡수하는 교과서 속 조정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발 무역 충격이 남부 · 중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등을 초래한 건 당연한 결과 입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연구를 통해 "자유무역이 나쁘다" 혹은 "중국과의 교역을 줄여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들은 자유무역이론과 국제경제학자들이 당연시 했던 '무역충격의 조정기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파 했습니다. 


따라서, 오토어 · 돈 · 한슨의 연구는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놓치고 있었던 '무역의 분배적 영향'(the distributional consequences of trade)과 '무역 충격 조정과 관련한 중기 효율성 손실'(medium-run efficiency losses associated with adjustment to trade shocks)을 일깨워 줍니다.




※ Autor · Dorn · Hanson의 2013년 연구가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 이전에도 '무역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던 연구는 계속해서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이들의 2013년 연구가 세계 경제학계와 미국 정치권 · 대중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은 것일까요?


①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기반했던 과거 연구들 


국제무역을 연구해온 학자들이 '무역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의존했던 이론은 '헥셔-올린 모형' 및 '스톨퍼-새뮤얼슨 정리' 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무역 개방 이후 상품가격 변화가 생산요소 가격을 일대일로 변화시킨다는 이론에 기반하여, 무역이 숙련 근로자와 비숙련 근로자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한 학자[각주:12]는 "무역자유화 이후 상품가격 자체가 변화하지 않았으므로 헥셔-올린 모형을 살펴볼 필요조차 없다"고 말했으며, 다른 학자[각주:13]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게 숙련집약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에, 헥셔-올린 모형이 말하는 것처럼 무역이 불균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학자[각주:14]가 지적한 것처럼 헥셔-올린 기반 연구는 "개발도상국이 정교한 상품을 수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통계적 착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헥셔-올린 모형도 결국 무역 충격을 흡수하는 조정기제가 완벽히 작동하는 비교우위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론이 상정하는 핵심 가정이 현실과 다른데, 이 이론을 기반으로 연구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② 마이크로데이터를 이용한 실증분석을 통해 자유무역이론의 핵심 가정을 건드렸다


오토어 · 돈 · 한슨의 연구는 통근 구역 등 마이크로데이터를 이용하여, 자유무역이론이 상정하는 핵심 가정이 현실 속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이번글에서 살펴봤듯이, 일자리를 잃은 미국 제조업 근로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쉽게 이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무역 충격을 받지 않은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산업구조가 다른 미국 지역들은 점차 경제환경이 벌어지는 '지역간 불균등'이 유발되었습니다.


미국 정치권 · 언론 · 대중들은 막연하게나마 "아... 대중국 무역적자 심화가 미국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거 같은데.."라고 느끼던 상황에서, 그리고 다른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은 사회 전체적으로 순이익을 가져다준다"라는 교과서 속 이야기만 읊어대던 답답한 상황에서, 오토어 · 돈 · 한슨의 연구는 '무역의 분배적 영향'이 단기가 아니라 '중기적으로 영향을 미침'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 (노파심) 자유무역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 그럼에도 중국발 무역 충격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동료 학자들의 노파심이 대중들의 경제학 외면을 불러왔다[각주:15]고 주장합니다. 자유무역이론의 문제점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그것이 바로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목소리로 이어질 노파심 때문에, 정작 경제학자들이 분배 문제 우려를 축소하고 무역이 가져다주는 순이익만 말해왔다는 겁니다.

오토어 · 돈 · 한슨도 약간의 노파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글을 통해 "무역의 총이익이 음(-)이라는 건 아니다" 라고 강조합니다. 다만, "무역이 가져다주는 분배적 악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논문이 발표된 이후, 오토어 · 돈 · 한슨과 다른 경제학자들은 '중국발 무역 충격'(The China Trade Shock)과 '무역이 초래하는 분배적 영향'(Distributional Effect)에 대해 더 자세히 연구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대중국 수입액이 지역 내 제조업의 고용에 미친 영향'에만 주목했으나, 여러 제조업들이 거래관계를 통해 전국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중국발 무역 충격은 더 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중국의 경제발전 덕분에 미국기업들에게 수출시장이 열렸다는 점과 중국의 값싼 중간재를 이용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발 무역은 충격이 아니라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The China Trade Shock를 다룬 연구들을 더 알아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https://joohyeon.com/287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s://joohyeon.com/274 [본문으로]
  7.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https://joohyeon.com/195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9. the direct effect of trade shocks on employment and earnings at import-competing employers [본문으로]
  10. net effects on employment, earnings, labor force participation, geographic mobility, and take-up of public transfer benefits in the surrounding geographic area.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https://joohyeon.com/287 [본문으로]
  1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Posted at 2019. 12. 30. 15:13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와 국가내 불균등의 확대


①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 -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의 경제발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자유주의 무역시스템 WTO 출범[각주:1] 정보통신기술의 확산(ICT)[각주:2]이 만들어낸 세계화[각주:3]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각주:4]GVC 참여[각주:5]에 이은 경제발전 덕분에 '국가간 불균등은 크게 감소'[각주:6](Between Inequality ↓) 하였습니다. 


( 지난글[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


  • 1990년-2030년(예상) 동안 절대적 빈곤 수치 변화

  • 남아시아(연한 빨강), 동아시아 및 태평양(진한 빨강),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파랑)
  • 출처 : Our World in Data - Global Extreme Poverty


1990년 절대적 빈곤자 수는 19억명이었고 이는 전세계 인구의 36%에 달했습니다. 대부분이 중국 ·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거주했는데, 이들 국가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2015년 절대적 빈곤자수는 7억 3천명 · 전세계 인구의 9.9%로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 1988년과 2011년의 글로벌 소득분포 모양의 변화 :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으로 인해 글로벌 중산층이 두터워짐

  • 자세한 내용은 지난글[각주:7] 참고


글로벌 소득분포는 쌍봉 모양에서 중간이 두터워진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1988년에는 상위층과 하위층으로 양분된 쌍봉모양을 볼 수 있으며, 개발도상국 인구가 수십억명에 달했기 때문에 하위층이 더 두꺼운 모양입니다. 2011년에는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경제발전과 소득증가로 인해 글로벌 중산층이 두터워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 -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내 상위 10% 소득비중 증가


이처럼 자유무역과 정보통신기술은 '국가간 불균등'(Between Inequality)을 줄임으로써 '글로벌 차원의 불균등'(Global Inequality) 해소에 크게 기여했는데..... 


같은 시기 '국가내 불균등'(Within Inequality)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 1980년~2016년 사이, 미국-캐나다 · 유럽 · 러시아 · 중국 · 인도 내 상위 10% 소득 비중

  • 모든 국가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늘어났다

  • 출처 : World Inequality Report 2018


위의 그래프는 1980년~2016년 사이 미국-캐나다 · 유럽 · 러시아 · 중국 · 인도 내 상위 10% 소득 비중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가릴것 없이, 대부분 국가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늘어났습니다. 


  • 1963년~2005년, 미국 내 대졸/고졸 임금 격차 추이 (경력 0~6년차 및 20~29년차별 비교)

  • 출처 : Autor, Katz, Kearney (2008)


소득 상위 계층으로의 쏠림은 학력별 임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63년~2005년 미국의 대졸/고졸 임금 격차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 대졸 프리미엄(college premium)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그 추세는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1970~1980년대에 무슨 일이 발생했나? - 국제경쟁심화와 컴퓨터의 등장


국가내 불균등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1970~1980년대에 주목합니다. 국가간 불균등 감소의 시작이 1990년대[각주:8]라면 국가내 불균등은 1970년대부터 확대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던 걸까요?


① 미국의 무역적자 확대와 국제경쟁력 훼손


  • 왼쪽 : 1960~88년, 신발(Footwear) · 의류(Apparel) · 섬유(Textiles) 미국 내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오른쪽 : 1960~90년, 미국 차량등록대수 중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 변화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글[각주:9] 참고


첫번째는 '국제경쟁심화' 입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봐왔듯이, 1970~1980년대 속 미국인들은 '국가경쟁력 악화'를 크게 우려[각주:10]했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높아지는 실업률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확대 등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무역적자폭 확대를 '세계 상품시장에서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악화됨(deterioration of competitiveness)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인식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신발 · 의류 · 섬유 품목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하였는데, 미국의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은 펜실베니아 · 남부 · 남캐롤라니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 지역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자동차 산업도 외국과의 경쟁증대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산업 입니다. 1975~80년 사이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2배 증가하였고, 자동차 산업이 몰려있던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실업률은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원인을 국제무역에서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제조업 위축은 또 다른 경제적 문제로 연결됩니다. 제조업은 저숙련 근로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제조업의 위축은 임금불균등 증대(rise of wage inequality)로 연결될 위험이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1970~8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은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제조업 고용 및 임금이 감소하고 그 결과 임금불균등이 확대되는 것 아닐까?"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② 업무에 도입되기 시작한 컴퓨터


  • 왼쪽 : 1984년 4월호 TIME지 표지를 장식한 빌 게이츠

  • 오른쪽 : 1984년 매킨토시를 출시한 스티브 잡스


두번째는 '컴퓨터 혁명' 입니다.


오늘날에 과거를 돌아보면 정보통신기술(ICT) 투자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시기는 1995년 입니다. 이 시기에 윈도우95가 출시됐고 개인용 PC가 각 가정에 대규모로 보급됐습니다. 그리고 전화모뎀을 이용한 PC통신으로 멀리 떨어진 개인간 의사소통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업무에 도입되어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입니다. 1984년 애플 매킨토시와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1.0이 출시되면서 기업들은 업무에 PC를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PC를 보유한 사업체는 1984년 10% 미만이었으나 1989년에는 35% 이상으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업무에 PC를 사용하는 근로자의 비중은 1984년 24.6%에서 1989년 37.4%로 50% 이상 증가했습니다.


컴퓨터는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근로자의 생산성을 개선시켰습니다. PC를 이용한 주요 업무는 문서 작성 · 엑셀 계산 · 이메일 · 설계 · 판매 정리 등이었고, 오랜 시간이 걸리던 단순반복 업무는 빠른 시간에 끝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컴퓨터가 가져다준 생산성 개선의 혜택이 '대학을 졸업한 사무직 화이트칼라'(college-white collar)에 집중되었다는 점입니다. 1989년 기준 대졸 이상 근로자의 58.2%가 컴퓨터를 업무에 사용했으나, 고졸은 29.3%, 고졸 미만은 7.8%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직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48.4%가 컴퓨터를 이용했으나, 생산직 블루칼라 근로자는 11.6%에 불과했습니다.


그 결과,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컴퓨터를 이용할 능력을 갖춘 대학 졸업 근로자와 갖추지 못한 고등학교 졸업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확대되기 시작(college premium)합니다. 고졸 대비 대졸의 임금 비율은 1979년 1.34에서 1991년 1.56으로 증가합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숙련된 기술을 갖춘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기술변화가 미국의 임금구조를 변화시켰다"고 진단했습니다.


③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Trade vs. Technology)


정치인과 대중들이 문제로 삼았던 건 국제무역,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불공정 무역'(Unfair Trade with Japan) 이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킬 수 있는 무역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각주:11]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덤핑(dumping)과 시장접근(market access) 등 일본의 불공적 무역을 정치적으로 이슈화하였고 '공정무역'(fair trade)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각주:12]를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일본을 타겟으로 한 무역정책이 보호무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 노동시장 내 불균등 확대의 원인은 국제무역이 아니라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당시의 국제무역이론으로는 불균등 확대를 설명할 수 없으며, 실제 데이터도 기존 무역모형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경제적 불균등 확대의 주요 원인이 기술변화에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런 생각은 200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왜 경제학자들은 국가내 불균등 심화의 원인을 '기술변화'에서 찾았을까요?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 이러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 연유가 무엇일까요? 이번글에서 이를 알아봅시다.




※ (이론적)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의 예측과 실패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무역은 임금구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이를 간략하게 복습해봅시다.


▶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의 예측 (Predictions of Hecksher-Ohlin Model)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Hecksher-Ohlin Model)[각주:13]은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국제무역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① 숙련풍부국은 값싼 숙련집약 상품을 수출, 비숙련풍부국은 값싼 비숙련집약 상품을 수출


국제무역이론을 설명하면서 누차 말했다시피, 국제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각주:14]은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different relative price) 입니다. 


수출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할 때보다 외국에 판매할 때 더 높은 상대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higher relative price) 이고, 수입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구입할 때보다 외국에서 구입할 때 더 낮은 상대가격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lower relative price) 입니다.


여기서 헥셔-올린 국제무역이론은 '국가간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게 된 이유는 부존자원에 따른 상대적 생산량의 차이(resource endowment)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어떤 국가는 숙련노동에 비해 비숙련노동이 풍부하고, 또 다른 국가는 비숙련노동에 비해 숙련노동이 풍부합니다. 숙련노동 풍부국은 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될테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비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됩니다. 따라서, 숙련노동 풍부국은 숙련노동 집약상품을 싸게 생산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비숙련노동 집약상품을 싸게 생산합니다. 


따라서, '숙련노동 풍부국은 값싸게 만든 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더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값싸게 만든 비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더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숙련노동 풍부국은 외국의 값싼 비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수입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외국의 값싼 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수입합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 = 숙련노동 풍부, 개발도상국 = 비숙련노동 풍부'이기 때문에, '선진국 = 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출 & 비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입, 개발도상국 = 비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출 & 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입' 입니다.


② 국제무역으로 상품가격이 달라지며 각자 비교우위를 가진 부문이 이익을 봄


국제무역은 개별 국가가 비교우위를 지닌 상품의 가격을 인상시키며 비교우위 부문이 이익을 보게 만들어 줍니다. 


선진국에서 혜택을 보는 부문은 비교우위인 '숙련집약 산업', 불이익을 보는 부문은 '비숙련집약 산업' 입니다. 선진국의 숙련집약 상품은 국제무역의 결과 더 비싼 가격을 받고 팔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동안 무역장벽 보호 아래 비싼 값을 받았던 비숙련집약 상품은 이제 개발도상국의 값싼 가격에 밀려나고 맙니다.


개발도상국에서 혜택을 보는 부문은 비교우위인 '비숙련집약 산업', 불이익을 보는 부문은 '숙련집약 산업' 입니다. 개발도상국의 비숙련집약 상품이 국제무역의 결과로 자급자족 상태에 비해 더 비싼 가격을 받고 선진국에 팔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개발도상국의 숙련집약 상품시장개방으로 선진국의 숙련집약 상품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게 되었으니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③ 선진국은 불균등 증가 & 개발도상국은 불균등 감소


헥셔올린 모형은 '비교우위 산업 이익 & 비교열위 산업 불이익'에서 더 나아가서,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임금변화도 예측합니다.


스톨퍼-새뮤얼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각주:15]는 '투입요소의 가격은 상품가격 움직임에 맞추어 변화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숙련노동 풍부국 → 숙련노동집약 상품가격 ↑ → 숙련근로자 실질임금 ↑', '비숙련노동 풍부국 → 비숙련노동상품가격 ↑ → 비숙련노동자 실질소득 ↑'라고 예측합니다.


보통 자급자족 상태에서 개별 국가의 '숙련노동 근로자 실질임금 > 비숙련노동 근로자 실질임금' 이기 때문에, 국제무역의 결과 '선진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확대 ↑', '개발도상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감소 ↓' 나타납니다.


따라서, 헥셔-올린 모형은 1970-80년대 미국 내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 확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의 실패 (Failures of Hecksher-Ohlin Model)


경제학자들은 "헥셔올린 무역모형이 예측한 결과대로 미국 내 임금불균등은 확대되었으나, 작용경로는 무역모형이 예측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여겼습니다. 


① 미국 내 숙련집약 상품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다


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매뮤얼슨 정리는 '달라진 상품 상대가격이 생산요소의 실질가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무역개방과 소득분배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이론'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련근로자의 상품가격이 상승하지 않은채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만 증가했다면, 이는 무역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 입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에서 설명하였듯이,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와 매튜 J. 슬로터는 1980년대 미국 내 숙련근로집약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기는 커녕 하락했음을 지적합니다. 


  • 왼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입가격 변화율(Y축)

  • 오른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출가격 변화율(Y축)

  • 출처 : Lawrence and Slaughter(1993)


위의 그래프는 1980년대 숙련근로집약 정도에 따른 수출입 가격 변화를 보여줍니다. 숙련근로집약도가 높아지는 상품일수록 수입가격은 다소 하락하고 수출가격은 크게 하락하는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로런스와 슬로터는 "수출입 가격 데이터는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무역이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회귀분석을 할 필요조차 없다."[각주:16] 라고 말합니다.


② 동일한 산업 내에서도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이 확대되었다


또한, 비교우위에 기반한 핵셔올린 무역모형의 예측대로라면 미국 내에서 '숙련집약 산업 팽창 → 숙련근로자 이익. 비숙련집약 산업 위축 → 비숙련근로자 불이익'의 형태로 '산업간 숙련-비숙련 근로자 임금 격차 확대'(between industry)가 나타나야 합니다.


하지만 1970-80년대 미국에서는 동일한 산업 내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의 임금 불균등이 확대되었습니다(within industry).


  • 1963년~1987년, 동일한 산업-성별-교육 집단 내 임금 불균둥 추이

  • Katz and Murphy (1992)


위의 그래프는 1963년~1987년, 동일한 산업-성별-교육 집단 내 임금 불균등 추이를 보여줍니다. 1970년대부터 동일집단 내 임금 불균등이 심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교우위 및 비교열위 산업간 효과'(between effect)에만 주목하는 기존의 무역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③ 비숙련노동 풍부국인 개발도상국에서도 임금 불균등이 확대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터-새뮤얼슨 정리가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예측과는 달리 개발도상국 내에서도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이 확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역 모형은 '선진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 확대 ↑', '개발도상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감소 ↓'를 예측하였으나, 실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확대 ↑' 였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국제무역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을 심화시켰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습니다. 


국제무역이 원인이 아니라면 남아있는 요인은 하나 뿐이었습니다. 바로,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 입니다.




컴퓨터의 등장 → 숙련근로자에 우호적인 상대수요 변화


국제무역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 '상품가격 변화 → 생산요소 가격의 변화'에 주목했다면, 노동경제학자들은 '간단한 공급-수요 체계'(simple supply and demand framework)로 현상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노동경제학자들에게 대학 졸업자로 대표되는 숙련 근로자의 임금이 고졸 비숙련 근로자에 비해 오르게 된 연유는 간단합니다. '기술변화로 인해 숙련 근로자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상대수요가 증가'(SBTC,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했기 때문입니다. 


▶ Katz and Murphy(1992), "대졸자의 상대공급 변동과 숙련근로자 우호적인 상대수요의 결합"


노동경제학자 로런스 F. 카츠(Lawrence F. Katz)와 케빈 M. 머피(Kevin M. Murphy)는 1992년 논문 <상대임금의 변화, 1963-1987 : 공급과 수요 요인>(<Changes in Relative Wages, 1963-1987: Supply and Demand Factors>)를 통해, 1963년~1987년 미국 임금구조의 변화를 공급-수요 체계로 설명했습니다.


  • 1963년~2008년 대졸/고졸 상대임금 비율 추이

  • 출처 : Acemoglu, Autor (2011)[각주:17]


위의 이미지는 1963년~2008년 미국 대졸/고졸 상대임금 비율 추이를 보여줍니다. (사족 : 카츠와 머피의 1992년 논문 이미지 품질이 좋지 않아서... 다른 논문에 실린 이미지로 대체) 


이를 통해 미국의 대졸 프리미엄(college premium)의 추세 2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1970년대 대졸 프리미엄의 감소. 둘째, 1980년대 이후 대졸 프리미엄 급격히 증가 입니다. 


왜 1980년대부터 추세의 반전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추세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걸까요?


  • 1963년~2008년, 성별 대졸/고졸 상대공급 증가율 추이

  • 출처 : Acemoglu, Autor (2011)


로런스 F. 카츠와 케빈 M. 머피는 고졸 대비 대졸자의 상대공급 변화(College/High-school relative supply)에 우선 주목합니다. 1976년까지는 대졸자의 상대공급이 가파르게 증가했으나, 이후부터는 증가율이 둔화됩니다. 


이를 통해 카츠와 머피는 "대학생 졸업자 공급이 가장 크게 증가했던 1970년대에는 대졸 프리미엄이 감소하였으며, 가장 적게 증가한 1980년대에는 대졸 프리미엄이 증가하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졸 상대공급의 속도 변화만으로는 대졸 프리미엄 변동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980년대 이후 대졸 상대공급 증가율은 둔화되었으나 어찌됐든 꾸준히 대학 졸업자를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전체 근로시간 중 대졸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3년 13%에서 1987년 26.3%로 증가하였습니다. 


이처럼 대학 졸업생은 꾸준히 사회에 진입했음에도 대졸 프리미엄은 나날이 증가하였습니다.  따라서, 카츠와 머피는 "대학 졸업자의 상대공급이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에, 대졸 프리미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대수요 변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 Krueger(1993), "컴퓨터가 임금구조를 변화시켰다"


또 다른 노동경제학자 앨런 B. 크루거(Alan B. Krueger) 1993년 논문 <어떻게 컴퓨터는 임금구조를 변화시켰나>(<How Computers have Changes the Wage Structure: Evidence from Microdata 1984-1989>)를 통해, 상대수요 변화의 원인을 '컴퓨터'에서 찾았습니다.


  • 1984년과 1989년, 범주별 컴퓨터를 업무에 직접 사용하는 근로자의 비중

  • 출처 : Krueger(1993)


1984~1989년 사이 업무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근로자의 비중은 24.6%에서 37.4%로 50% 증가 했습니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은 근로자일수록 컴퓨터를 업무에 더 많이 적용하며(1989년 기준 고졸 29.3%, 대졸 58.2%), 사무직 화이트칼라 근로자가 생산직 블루칼라보다 컴퓨터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1989년 기준 사무직 화이트칼라 48.4%, 생산직 블루칼라 11.6%).


이어서 앨런 B. 크루거는 '컴퓨터를 업무에 사용하는 근로자가 그렇지 않은 근로자 보다 더 높은 소득을 얻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고숙련 → 컴퓨터 사용 → 더 높은 임금' 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대학생 졸업자가 꾸준히 늘어났음을 감안하면, 컴퓨터 사용이 가져다주는 높은 임금의 프리미엄은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해야 합니다.


그러나 크루거의 회귀분석 결과에 따르면, 컴퓨터 사용이 가져다주는 임금 프리미엄은 1984년 1.32배에서 1989년 1.38배로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따라서, 크루거는 "시간이 지나도 컴퓨터 사용 프리미엄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더 빠르게 늘어났음을 의미한다"고 판단합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별다른 고급기술이 아니지만, 1980년대 당시에는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하는 기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 당시 컴퓨터는 이를 다룰 수 있는 숙련도를 갖춘 대졸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기술변화 였습니다. 




※ 반복업무를 대체한 기술변화 → 일자리 · 임금 양극화


1980년대 업무에 도입된 컴퓨터가 대졸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임금 불균등을 초래했다는 논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로도 그 영향이 지속되었을까 라는 것은 의문이 듭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별다른 고급기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앨런 B. 크루거도 1993년 논문의 말미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근로자 수요가 과거 10년처럼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 이를 고려하면, 컴퓨터 사용 프리미엄은 미래에 줄어들 것이다" 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렇다면 2000년대 들어서도 임금 불균등이 지속된 건 무엇 때문일까요? 


▶ Autor, Levy, Murnane (2003), "컴퓨터화는 반복업무의 노동투입을 줄였다"


동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가 일자리 및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석의 틀을 발전시켰습니다. 


1990년대 나온 연구들은 '숙련vs비숙련, 대졸vs고졸, 화이트칼라vs블루칼라, 비생산직vs생산직' 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임금 격차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졸이 다 같은 대졸이 아니고,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다 같은 사무직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결정적으로 컴퓨터는 단순히 숙련 근로자와 대졸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보완하고 비숙련 근로자와 고졸 블루칼라 일자리를 대체하는 식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숙련도를 요하는 업무를 대체하는 경우도 있으며, 숙련도가 필요치 않은 업무를 대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직 업무 중에서도 컴퓨터가 대체하는 것이 있고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생산 업무도 마찬가지로 컴퓨터와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게 있고 대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프랭크 레비(Frank Levy) · 리차드 머네인(Richard Murnane) 이른바 ALM은 2003년 논문 <최근 기술변화의 숙련도 - 실증적 탐구>(<The Skill Content of Recent Technological Change: an Empirical Exploration>)을 통해, '업무'(task) 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업무(task)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근로활동을 의미합니다. 근로자는 자신이 보유한 숙련기술(skill)을 다양한 업무(task)에 적용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습니다.  


  • 업무(task)의 종류를 반복적이냐 비반복적(Routine vs. Nonroutine)이냐, 분석적이냐 수동적이냐(Analytics vs. Manual)로 구분한 것

  • ALM (2003)


ALM은 업무(task)의 종류를 '반복적이냐 비반복적이냐'(routine vs. non-routine), '분석 및 인지능력을 요구하냐 직접 손으로 해야하냐'(analytic & cognitive vs. manual)로 크게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계산 · 뱅크텔러와 같은 고객응대 · 기록 기입 등을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인지적 능력(cognitive skill)이 필요하지만 단순 반복적인 특성(routine tasks)을 지니고 있으므로 컴퓨터가 쉽게 대체가능 합니다. 또한 제품 나르기 · 조립은 근로자가 손(manual skill)으로 작업을 해왔으나 이또한 반복적인 업무(routine tasks)이기 때문에 기계 자동화로 대체 가능 합니다.


반면, 통계 가설 설정 · 의료진단 · 법적 문서 기입 · 관리 등의 업무는 근로자의 분석적 능력(analytic skill)을 요구하면서 반복할 수 없기 때문에(non-routine tasks)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트럭운전 및 청소는 사람이 손으로 해야하는 업무(manual tasks)이며 이또한 비반복적인 일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단순 제품 나르기 · 조립과 트럭운전 · 청소는 모두 비숙련작업(unskilled works)이지만 전자는 반복적이기 때문에 대체가능하며 후자는 비반복적이기 때문에 대체불가능 합니다. 또한, 계산 · 기록기입과 의료진단 · 법적 문서 기입은 모두 인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숙련작업(skilled works)이지만 전자는 반복적이기 때문에 대체할 수 있으며 후자는 비반족이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즉, ALM은 '컴퓨터 자동화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지 여부는 업무가 반복적이냐 비반복적이냐에 달려있다'(routine vs. non-routine)고 바라봅니다. 단순히 '숙련vs비숙련, 대졸vs고졸, 화이트칼라vs블루칼라, 비생산직vs생산직'로 구분했던 과거의 구도로는 실제로 컴퓨터 자동화가 대체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어서 ALM은 "컴퓨터 자본은 제한적으로 정의된 인지적 및 수동적 활동 즉 명시적인 규칙에 기반을 둔 반복적인 업무를 대체한다[각주:18]. 반면, 컴퓨터 자본은 문제해결과 복잡한 의사소통을 요구하는 비반복적인 업무를 보완한다[각주:19]"고 말합니다. 


따라서, ALM은 "컴퓨터화는 반복적인 인지 업무와 수동 업무의 노동투입을 줄였고(routine cognitive & manual tasks ↓), 비반복적인 인지 업무의 노동투입을 증가시켰다(non-routine cognitive tasks ↑)"고 결론 내립니다.


▶ 일자리 · 임금 양극화 (Job · Wage Polarization)


ALM이 도입한 '업무기반 분석체계'(task-based framework)는 2000년대 들어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새로운 일자리 · 임금 구조 변화를 설명해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바로, 일자리 · 임금 양극화 (Job · Wage Polarization) 입니다. 


일자리 · 임금 양극화 (Job · Wage Polarization)란 '고숙련 · 저숙련 일자리(임금)가 증가하고 중숙련 일자리(임금)가 감소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 왼쪽 : 1980년~2005년 숙련수준 분위별 고용 변화율

  • 오른쪽 : 1980년~2005년 숙련수준 분위별 임금 변화율 

  • X축 : 직업의 숙련수준 분위 - 왼쪽일수록 저숙련 오른쪽일수록 고숙련

  • 고숙련 일자리만 증가하고 저숙련 일자리는 감소했던 1980년대와 달리, 오늘날 시대에는 고숙련 일자리와 저숙련 일자리가 모두 증가하고 중숙련 일자리가 감소하는 '양극화'가 발생


위의 그래프는 고숙련 일자리만 증가하고 저숙련 일자리는 감소했던 1980년대와 달리, 오늘날 시대에는 고숙련 일자리(임금)와 저숙련 일자리(임금)가 모두 증가하고 중숙련 일자리(임금)가 감소하는 '양극화'가 발생했음을 보여줍니다.


'숙련vs비숙련, 대졸vs고졸, 화이트칼라vs블루칼라, 비생산직vs생산직'의 분석구도는 고숙련 일자리가 증가하는 현상은 쉽게 설명해낼 수 있습니다. 기술변화가 고숙련 대졸 화이트칼라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 가설은 중숙련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저숙련 일자리는 증가하는 현상은 설명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일자리 양극화는 미스테리 입니다.


하지만 '업무기반 분석'은 일자리 양극화를 훌륭히 설명해냅니다. 2000년대 노동경제학자들은 업무기반 분석을 이용하여 노동시장 양극화를 설명하는 논문을 쏟아냈습니다. 


마르텡 구스(Maarten Goos) · 앨런 매닝(Alan Manning)의 2007년 논문 <형편없는 그리고 사랑스런 일자리: 영국 내 일자리 양극화 증대>(<Lousy and Lovely Jobs: The Rising Polarization of Work in Britain>),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로런스 카츠(Lawrence Katz) · 멜리사 키어니(Melissa Kearney)의 2006년 논문 <미국 노동시장의 양극화>(<The Polarization of the U.S. Labor Market>) 등이 대표적인 논문입니다.


이들은 업무를 3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비반복적 인지 업무(non-routine cognitive task), 둘째는 반복적 인지 및 수동 업무(routine cognitive & manual tasks), 셋째는 비반복적 수동 업무(non-routine manual task) 입니다.


여기애서 중요한 점은 '반복적인 업무가 임금분포상에서 균일하게 분포되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중숙련을 요하는 반복적인 업무는 임금분포의 중간에 집중(routine cognitive & manual tasks → middling jobs)되어 있고, 고숙련인 비반복적 인지 업무는 임금분포 상단(non-routine cognitive task → well-paid skilled jobs)저숙련인 비반복적 수동 업무는 임금분포 하단(non-routine manual task → low-paid least-skilled jobs)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현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추상적 능력과 인지 능력이 필요한 업무는 연봉이 높으며, 트럭 운전과 청소 등 사람이 직접 그때그때 대응해야 하는 업무는 연봉이 낮습니다. 그리고 단순 사무지원 화이트칼라 업종과 제조업 블루칼라 업종은 중간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컴퓨터 자동화가 반복적인 업무를 대체한 결과 임금분포의 중간에 위치한 중숙련 일자리는 감소(middle-skilled jobs ↓)하게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뛰어난 근로자는 단순반복 업무를 자동화 한 뒤 생산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고숙련 일자리는 이익(high-skilled jobs ↑)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반복적 수동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저숙련 일자리는 왜 증가한 것일까요? 학자들은 기술변화와 소비자선호가 함께 작용한 결과물로 바라봅니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비반복적 수동업무는 주로 '서비스업 직업'(service occupation) 입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제조상품 보다는 서비스를 향유하며 효용을 누리기 때문에 서비스업에 대한 수요는 과거에 비해 증가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컴퓨터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게 된 중임금 근로자들이 숙련 수준이 낮은 서비스업으로 대거 재배치(low-skilled jobs ↑) 됩니다. 그 결과, 저숙련 일자리는 갯수와 임금이 모두 증가합니다.


이러한 일자리 양극화 현상은 숙련수준별 고용변화가 아니라 구체적인 직업별 고용변화를 살펴봐도 확인되며, 미국 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관찰됩니다.


  • 1979년-2012년, 직업종류별 고용 변화율

  • 왼쪽 3개 : 비반복 수동업무를 맡는 저숙련 서비스 직업 (개인의료, 음식 및 청소, 보안)

  • 가운데 4개 : 반복 업무를 맡는 중숙련 직업 (관리, 생산, 사무, 판매)

  • 오른쪽 3개 : 비반복 인지업무를 맡는 고숙련 직업 (매니저, 사업서비스, 기술)


위의 그래프는 1979-2012년 동안 직업종류별 고용 변화율을 시기별로 나누어서 보여줍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관리 · 생산 · 사무 · 판매 직업이 반복 업무를 맡는 중숙련 직업인데, 오늘날에 가까울수록 일자리가 많이 없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1993년-2010년, EU 16개 국가의 임금수준별 고용비중 변화

  • 저임금 일자리(연한색), 중임금 일자리(검은색), 고임금 일자리(회색)


또한, 위의 그래프는 1993년-2010년, EU 16개 국가의 임금수준별 고용 변화를 보여줍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고임금 · 저임금 일자리의 고용비중은 3%~10% 정도 증가한 반면 중임금 일자리 비중은 10% 감소하는 '일자리 양극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상위층-중위층 간 불균등은 확대, 중위층-하위층 간 불균등은 정체


일자리 · 임금 양극화는 소득수준별 임금 불균등의 모습도 변화시켰습니다. 


  • 1963년~2005년 미국

  • 왼쪽 : 소득 90분위/50분위 임금 불균등 추이 (소득 상위 10%와 50%의 임금 불균등)

  • 오른쪽 : 소득 50분위/10분위 임금 불균등 추이 (소득 상위 50%와 하위 10%의 임금 불균등)


기술변화는 고임금 일자리에게 이익, 중임금 일자리에게 손해로 작용했기 때문에, 소득 상위 10%와 50% 간 임금 불균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었습니다(왼쪽 그래프). 이건 그닥 놀라운 모습이 아닙니다. 


놀라운 건 소득 상위 50%와 하위 10% 간 임금 불균등이 안정화된 것입니다. 위의 오른쪽 그래프를 보면, 소득 50분위/10분위 임금 불균등 추이가 더 심화되지 않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일자리 · 임금 양극화 현상을 알고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복업무를 대체하는 기술변화로 인해 중숙련 & 중임금 일자리가 위축된 대신 저숙련 & 저임금 일자리가 팽창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노동경제학자들이 발전시킨 '업무기반 분석체계'(task-based framework)와 '반복편향적 기술변화'(RBTC, Routine-Based Technological Change)는 2000년대 미국 및 선진국 노동시장의 특징인 '일자리 양극화'와 '중하위층 간 불균등 정체' 현상을 완벽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프쇼어링 때문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이 확대된다


2000년대 미국 노동시장 분석에 '국제무역 요인'이 끼어들 틈은 없었습니다. 국제무역을 전공하는 경제학자들이 "외국으로의 오프쇼어링이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는 거 같은데?" 라고 의구심을 품고 연구를 내놓았으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기술변화'에 쏠려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학자들은 꿋꿋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의 오프쇼어링이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offshoring)을 탐구했습니다.


대표적인 국제경제학자가 바로 로버트 F. 핀스트라(Robert F. Feenstra) 입니다. 핀스트라의 연구는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을 다룬 지난글[각주:20]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하면서 세계시장 통합을 이끌고있다"고 분석하며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에 관한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핀스트라는 한발 더 나아가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글로벌 생산공유가 양국 임금 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합니다. 


그는 1996년 논문 <세계화, 아웃소싱 그리고 임금 불균등>(<Globalization, Outsourcing, and Wage Inequality>), 1997년 논문 <외국인 직접투자와 상대임금: 멕시코의 사례>(<Foreign Direct Investment and Relative Wages: Evidence from Mexico's Maquiladoras>), 2003년 논문 <글로벌 생산 공유와 불균등 증가 - 무역과 임금 서베이>(<Global Production Sharing and Rising Inequality - a Survey of Trade and Wage>) 등 여러 논문을 통해 연구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 오프쇼어링은 동일한 산업 내에서 숙련-비숙련 노동수요를 변화시킨다 (Within Industry)


이번글의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국제무역이 임금 불균등을 초래한 원인이 아니라고 여겨진 이유 중 하나는 '동일한 산업 내에서 근로자 간 불균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교우위에 기반한 무역모형의 예측대로라면 '숙련집약 산업 팽창 → 숙련근로자 이익. 비숙련집약 산업 위축 → 비숙련근로자 불이익'의 형태로 '산업간 숙련-비숙련 근로자 임금 격차 확대'(between industry)가 나타나야 합니다. 


로버트 F. 핀스트라는 상품 교환 무역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공유하는 오프쇼어링을 고려하면 무역이 산업 내 불균등 심화에 영향을 미친다(offshoring → within industry inequality)고 주장합니다.


핀스트라는 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3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비숙련노동 집약적 부품 생산(production of an unskilled-labor intensive input), 둘째는 숙련노동 집약적 부품 생산(production of an skilled-labor intensive input), 셋째는 두 부품을 결합하여 최종재 상품으로 만드는 것(bundling together of these two goods into finished product).


선진국 기업은 개발도상국 대비 자국의 비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높다고 판단하면, 비숙련노동 집약적 부품 생산 활동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시킵니다. 이러한 결정은 선진국에서 비숙련 근로자의 상대수요를 감소시키고 임금에 하방압력을 가합니다. 


즉, 오프쇼어링 혹은 아웃소싱은 기술변화가 비숙련 근로자를 대체하듯이 동일한 산업 내에서 비숙련 근로자의 상대수요를 감소시킵니다.


▶ 오프쇼어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을 초래한다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선진국 임금 불균등 증가 & 개발도상국 임금 불균등 감소'로 예측했으나 '현실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이 증가'하면서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핀스트라는 '숙련활동' '비숙련활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한 생산활동은 선진국의 관점에서는 비숙련노동 집약적인 활동 입니다. 그러나 자본축적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는 자국으로 들어온 것이 숙련노동 집약적인 활동 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한국 제조업과 동남아 공장을 예시로 생각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동남아로 이전한 공장은 본래 한국의 비숙련 근로자가 주로 근무했던 곳이지만, 동남아에서는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계층이 자국기업 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일을 합니다.


따라서, 비숙련 활동을 외국으로 보내버린 선진국은 평균 숙련집약도가 상승하며, 선진국의 생산과정을 받아들인 개발도상국에서도 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합니다. 그 결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이 심화됩니다.


▶ 기술변화를 무역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있나?


로버트 F. 핀스트라를 포함한 일부 경제학자들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기술변화를 무역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있나?"


기업의 아웃소싱 그 자체는 국제무역의 영향 이지만, 글로벌 밸류체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 덕분[각주:21]입니다. 역으로 기술변화는 국제무역 때문에 촉진될 수 있습니다. 시장개방으로 인해 치열해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아웃소싱으로 보다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기술 업그레이드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의를 거치면서 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 및 국제무역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 경제학자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꾸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 중국의 부상과 충격 (China's Rise & Shock)


  • 1999년 11월 미국-중국 양자무역협정 체결 - "중국 문을 열다"
  • 2010년 11월 '세계를 사들이는 중국'

  • 2010년 2월, 중국과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미국 오바마 대통령

미국인들은 2008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중국의 부상'(China's Rise)을 인식하게 됩니다. 

중국은 1999년 미국과의 양자 무역협정 체결 · 2001년 12월 WTO 가입[각주:22] 이후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경제발전은 글로벌 소득분포의 모양을 바꾸어 놓을 정도였[각주:23], 중국이 국제무역에 참여하자 전세계 수출입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중국과의 교역이 주는 충격(China Shock)이 멕시코 · 중남미 등 다른 개발도상국과의 교역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중국발 쇼크가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동안 '반복업무를 대체하는 기술변화가 노동시장에 주는 충격'을 연구했던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대중국 수입증대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논문을 2013년에 발표하면서 '중국발 쇼크'(the China Trade Shock)를 이슈로 만듭니다.

이제 다음글에서 '중국발 쇼크'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7.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s://joohyeon.com/277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13.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1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15.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16. Thus, the data suggest that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did not have much influence on American relative wages in the 1980s. In fact, because the relative price of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fell slightly,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actually nudged relative wages toward greater equality. No regression analysis is needed to reach this conclusion. Determining that the relative international prices of U.S.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actually fell during the 1980s is sufficient. [본문으로]
  17. Acemoglu,Autor.2011.Skills, Tasks and Technologies- Implications for Employment and Earnings [본문으로]
  18. that computer capital substitutes for workers in carrying out a limited and well-defined set of cognitive and manual activities, those that can be accomplished by following explicit rules (what we term “routine tasks”); [본문으로]
  19. computer capital complements workers in carrying out problem-solving and complex communication activities (“nonroutine” tasks). [본문으로]
  2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https://joohyeon.com/284 [본문으로]
  2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Posted at 2019. 12. 22. 21:04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세계화를 향한 이상과 反세계화 시위가 공존했던 1990년대


▶ '세계화'(Globalization)를 향한 희망과 이상이 존재했던 1990년대


  • 1990년대 '세계화'를 상징하는 이미지
  • 1990년 1월, 러시아에 1호점을 개설한 맥도날드
  • 빌 클린턴 · 빌 게이츠 · 마이클 조던
  • 1995년 창설된 세계무역기구(WTO)


1990년대는 '세계화'(Globalization)를 향한 희망과 이상이 존재했던 시기였습니다. 


미국 맥도날드사는 공산주의권에 흘러들어간 개혁 · 개방 바람을 타고 1990년 1월 러시아에 1호점을 오픈했습니다. 1991년 12월에는 소련이 붕괴되었고 이제 전세계가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충돌 없이 평화 · 자유 · 안정을 누릴거라는 기대가 가득찼습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 창설(WTO) 및 정보통신기술 혁명(ICT Revolution)은 세계화를 향한 기대를 더욱 높였습니다. 전세계인들은 교역을 통해 서로의 상품을 거래하고,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다가올 21세기에 대한 꿈도 키웠습니다.


1980년대 보호주의 무역정책으로 외도했었던 미국[각주:1]은 1990년대가 되자 다시 자유주의 무역정책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은 GATT를 대체할 새로운 다자주의 자유무역 시스템인 WTO 창설에 앞장[각주:2]섰고, 클린턴행정부는 '관여와 확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민주주의 · 시장경제 전파를 대외정책 우선순위[각주:3]로 두었습니다. 


위성방송은 'NBA 세계화'를 이끌었습니다. NBA 총재 데이비드 스턴은 글로벌 마케팅을 전략으로 내세웠고, 전세계인들은 시카고 불스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보며 마이클 조던에게 빠져들었습니다. 


또한 1995년 8월에 출시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95 운영체제는 PC 보급을 촉진했고, 직관적인 UI와 간편성 덕분에 사람들은 손쉽게 PC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국적이 다른 사람들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끔 만들면서 '지구촌'을 현실화 시켰습니다.


달라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서적도 쏟아졌습니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2년작 『역사의 종말』을 통해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를 주장하였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1999년작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는 세계화를 이야기했습니다. 


'反세계화'(Anti-Globalization)를 외치는 NGO들의 시위가 극심했던 1990년대


  • 1999년 11월 30일-12월 1일, WTO에 반대하는 글로벌 NGO들의 시위


다른 한편, 1990년대는 '反세계화'(Anti-Globalization)를 외치는 글로벌 NGO들의 시위가 극심했던 시기였기도 합니다.


미국 제조업 근로자와 중하층 사람들은 "저숙련 · 저임금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으면 미국 제조업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라는 우려를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1992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스 페로 후보는 제조업 일자리가 남쪽 멕시코로 대거 이동할 것이라며 NAFTA를 '남쪽으로 일자리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굉음'(giant sucking sound going south)'으로 칭했습니다. 양당제인 미국 정치구도에서 무소속 후보가 무려 18.9%나 득표[각주:4]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시 미국인들이 NAFTA에 대해 가졌던 우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글로벌 NGO들은 "자유무역은 지역간 · 계층간 불평등을 조장하며, WTO는 미국 및 다국적기업의 이익만을 반영한다"고 외치며 급진적인 시위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유무역과 WTO가 개발도상국을 희생시키고 미국과 다국적기업의 배만 불린다고 여겼습니다.


反자본 · 反美 · 노동단체 · 환경단체 등으로 구성된 여러 글로벌 NGO들은 자유주의 무역시스템인 WTO를 반대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했고, 결국 1999년 11월 30일-12월 1일, WTO 각료회의가 개최된 미국 시애틀에서 시위대 5만명이 경찰과 충돌하는 '시애틀 전투'(Battle of Seattle)가 발생하고 맙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기사를 살펴봅시다. 


▶ 1999년 12월 2일, '다국적기업 건물에 집중공격 시애틀 표정', <한겨레>


30일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린 미국 시애틀 도심은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비정부기구(NGO) 회원 수만명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이 충돌하면서 최루탄가스와 화염이 가득찬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 사태로 주방위군 동원령과 통금령, 비상사태가 선포됐으나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은 밤 늦도록 계속됐다.


시애틀 도심의 상가는 거의 철시했고 불안한 표정을 한 시민들은 귀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 시위대의 물건 투척과 스프레이 낙서로 각국 주요 대표단이 머무는 셰러턴호텔과 회의장 주변에 있는 건물상가 유리창과 벽 등이 손상돼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특히 시위대는 나이키, 스타벅스, 플래닛할리우드, 맥도널드 등 회의장 주변에 있는 다국적 기업 건물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경찰은 시위대 군중을 향해 간간이 최루탄을 발사했으며 일부 시위대는 경찰과 난투극을 벌이기도 하는 등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60여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 1999년 12월 2일, '자본의 인간지배 WTO가 첨병역할', <한겨레>


"거북이들도 세계무역기구가 싫다고 한다", "세계무역기구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망치고 있다". 요 며칠 시애틀 거리에서는 안전모를 쓴 미국 철강노동자들과 어깨띠를 두른 바다거북 보호운동가들이 엇갈리며 외치는 구호가 도시를 울렸다.


시애틀에 모인 반세계무역기구 세력의 색깔은 이 기구가 다루는 주제만큼이나 다채롭다. 시위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표출된 비정부기구와 이익단체들의 목소리는 노동·환경·인권에서부터 반전·에이즈·동물권리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특정한 문제를 파고들다보면 이들 주장 가운데는 단체간에 이해가 상충하는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느슨하게나마 묶어 제법 반향을 이끌어내게 한 공감대는 세계무역기구가 주도하는 자유무역이 노동과 인권·환경 등에 끼치는 역기능에 대한 인식이다. 즉 90년대의 특징인 자유무역주의의 확산이 국제적으로 지역간, 계층간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환경침해를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 같은 단체는 자유무역이 모든 사람의 부를 증진시킬 것이란 약속과 달리 남아메리카에서는 90년대의 구조조정 결과 실업자가 더 늘었고, 아프리카에서는 새로 직장을 얻는 사람의 90%가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자본의 국경이동이 한층 자유로워지며 최근의 외환위기에서 보듯 일순간에 한 나라의 국부가 증발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 단체의 사무총장인 후안 소마비아는 "세계무역기구가 이런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자유무역은 열린 경제 및 열린 사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이들 단체는 자유무역 지상주의가 자본과 상품의 이동에 대한 걸림돌을 제거해 자기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초국적 기업의 이데올로기라고 믿는다. 세계무역기구가 앞장서 이들을 위해 세계의 정치, 경제적 규칙들을 뜯어고치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운동가인 마리안 도브는 "인류는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고 건강한 연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지만 세계무역기구의 관심은 오로지 다국적기업을 지원하는 데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1990년대 사람들이 외쳤던 '세계화'와 '反세계화',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나


2019년 현재를 사는 우리는 1990년대 사람들이 꿈꾸었던 그리고 우려했던 것들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아닌지 알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향한 희망과 이상은 현실화 되었습니다. 2000년대 인터넷의 확산 · 2010년대 스마트폰의 보급은 전세계인들을 더욱 밀접히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트위터 ·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나라에 위치한 사람과 일상을 공유하고, 유투브를 통해 K-POP 문화를 전파합니다. 미국 NBA 뿐 아니라 영국 프리미어리그 · 유럽 챔피언스리그 경기도 생중계로 보면서 날강두 리오넬 메시의 플레이에 감탄합니다.


'反세계화'를 외쳤던 자들의 우려도 부분적으로 옳았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중하위층 근로자의 임금상승은 둔화되었습니다. 세계인들은 아이폰 덕택에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지만, 아이폰 일자리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각주:5]


그러나 '反세계화'를 외친 글로벌 NGO들이 명백히 틀린 것도 있습니다. 바로, '세계화가 미국 · 다국적기업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며 개발도상국을 착취한다는 우려'입니다. 


세계화는 분명 미국의 다국적기업에게 큰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 · 구글 · 페이스북 · 아마존 등 거대 IT 서비스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기업 입니다. 이들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서비스를 제공하며 넓어진 시장에서 이점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플 · 나이키 · 자동차기업 등 상품을 제조하는 다국적기업은 주로 중국 ·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내에 일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중국은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하며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2001년 WTO 가입 이후 교역량을 폭발적으로 늘려나갔습니다[각주:6].  



위의 그래프는 1945년-2014년 동안 1인당 실질 GDP의 연간 증가율(X축)과 GDP 대비 상품수출 비중의 연간 증가율(Y축) 간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과 상품수출 비중 증가율은 정(+)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기존 선진국 외에 아시아(빨간원) 지역이 눈에 띕니다.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자유주의 무역시스템인 WTO에 참여하여 교역량을 늘려나갔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습니다. 


  • 1990년-2030년(예상) 동안 절대적 빈곤 수치 변화
  • 남아시아(연한 빨강), 동아시아 및 태평양(진한 빨강),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파랑)
  • 출처 : Our World in Data - Global Extreme Poverty


아시아 국가들이 자유무역 시스템에 참여하고 경제성장을 달성한 결과, 오랜기간 가난에 찌들었던 수십억명이 빈곤에서 벗어났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90년-2030년(예상) 동안 절대적 빈곤 수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하루동안 $1.90로 생활하는 것을 절대적 빈곤(extreme poverty)으로 정의하였는데, 1990년 절대적 빈곤자 수는 19억명이었고 이는 전세계 인구의 36%에 달했습니다. 대부분이 중국 ·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거주했는데, 이들 국가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2015년 절대적 빈곤자수는 7억 3천명 · 전세계 인구의 9.9%로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층


이렇게 1990년대부터 진행된 '세계화'(Globalization)는 승자와 패자를 낳았습니다. 


승자는 선진국 상위 1% 계층과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등 경제발전에 성공한 신흥국 중상위층 입니다. 세계시장을 상대로 우월한 지위를 행사하게 된 '슈퍼스타 기업'(Superstar Firms)들과 '초부자'(Ultra-Rich)들은 막대한 자산과 소득을 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글로벌 밸류체인(GVC) 참여에 성공한 신흥국은 제조업 발전과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발전[각주:7]을 이루었습니다. 신흥국 국민들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났고, 신흥국 상위층은 선진국 못지않은 소득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패자는 선진국 중하위층과 제조업 근로자 입니다. 오프쇼어링으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긴 이들은 소득증가율이 정체되었고, 낮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다른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들에게 세계화는 꿈과 이상이 아니라 악몽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선진국 내에서 '세계화 역풍'(Globalization Backlash)이 발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즉, 1990년대 反세계화 시위는 주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착취한다'는 우려에서 발생하였으나, 오늘날 보호무역정책은 '세계화로 인해 신흥국만 혜택을 보고있다'는 분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이번글을 통해 세계화가 선진국과 신흥국에 얼마나 다른 영향을 주었으며, 이것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 글로벌 불균등 = 국가간 불균등(Between) + 국가내 불균등(Within)


'불균등 혹은 불평등'(Inequality)은 경제학자와 대중의 오랜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성장보다 불균등 해소를 최우선순위로 두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언제나 정치·사회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건 '국가내 불균등'(Within-Country Inequality) 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내에서의 상대적 위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글로벌 차원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이 느끼는 박탈감은 국내 대기업의 연봉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에서 오는 것이지, 애플 · 페이스북이 얼마를 주는지 도쿄 주택가격이 얼마나 변하는지는 감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이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 할 때 "그래도 북한 주민보다는 절대적 생활수준이 낫지 않냐"고 위로(?)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반면, 경제발전빈곤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국가간 불균등'(Between-Country Inequality)에 관심을 가집니다. 들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제력 격차를 축소시킬 방안을 고심합니다.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간 경제력 격차는 매우 큽니다. 미국 · 서유럽 등 선진산업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곳에서 하위층일지라도 후진국 국민보다 더 나은 생활수준을 누렸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인은 그 누구라도 조선사람 혹은 한국사람보다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인은 웬만한 북한주민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죠.


그리고 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2가지를 결합하여 '글로벌 차원의 불균등'(Global Inequality)을 연구합니다. 글로벌 불균등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전세계를 하나의 국가로 상정하고 70억 인구의 소득 혹은 자산 분포가 얼마나 불균등한지를 보는 겁니다. 


'글로벌 불균등'을 구성하는 요인은 '국가내 불균등'과 '국가간 불균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글로벌 소득분포 상에서 상위권(중하위권)에 위치해 있다면 그 이유는 첫째, 그 사람이 선진국(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거나 둘째, 그 사람이 고국 내에서 상위층(중하위층)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2013년 기준 개별국가 내 소득분위(X축)에 따른 글로벌 내 소득분위(Y축)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까지 글로벌 불균등을 초래한 주된 요인이 '국가간 불균등'(Between Inequality)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USA)과 중국 도시지역(China Urban)을 비교해보죠. 미국 내 하위 1%에 위치한 사람은 글로벌 소득분포에서 50%에 위치해 있습니다. 반면, 중국 도시지역 내 하위 1%의 글로벌 위치는 하위 25%이며, 중국 도시지역 내 하위 30%의 글로벌 위치는 50%입니다. 따라서, 미국 내 하위 1%와 동일한 소득을 누리려면 중국 내에서 하위 30%에 속해야 합니다


미국(USA)과 중국 농촌지역(China Rural) · 인도(India) 간 격차는 더욱 큽니다. 미국 내 하위 1%는 중국 농촌지역 상위 30%, 인도 상위 10%와 동등한 소득을 받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 중국 농촌지역과 인도의 상위층은 미국 최하위층과 동일한 생활수준으로 살고 있습니다.


비록 어느 국가든 최상위층(100%)는 동일한 생활수준이지만, 대부분의 중국 · 브라질 · 인도 사람들은 미국 하위 20%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불균등에서 '국가내 불균등'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며, 글로벌 소득분포상의 위치를 결정짓는 요인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진행된 세계화가 글로벌 불균등의 모습을 바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 '코끼리 그래프' (Elephant Graph) 


  • 왼쪽 : 브랑코 밀라노비치와 크리스포트 랑커의 2013년 12월 세계은행 연구보고서 <글로벌 소득분포 : 베를린장벽 붕괴에서부터 2008 금융위기까지>

  • 오른쪽 :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2016년 단행본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접근법>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크리스포트 랑커(Christoph Lanker)는 2013년 12월 세계은행 연구보고서 <글로벌 소득분포 : 베를린장벽 붕괴에서부터 2008 금융위기까지>(<Global Income Distribution : From the Fall of Berlin Wall to the Great Recession>)을 통해, 1988년-2008년 사이 글로벌 소득분포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 연구보고서는 100여개 이상의 국가의 가계동향조사(household survey) 자료를 이용하여 글로벌 소득분포와 글로벌 불균등의 변화를 사실상 처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연구의 결과는 더욱 놀랍습니다.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했던 "중국의 경제발전이 선진국 중하위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듯 한데.."를 구체적인 데이터와 그래프를 통해 보여주며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 1988년~2008년 사이, 글로벌 소득계층별 소득증가율을 보여주는 '코끼리 그래프'(Elephant Graph)

  • 왼쪽 출처 : 밀라노비치, 랑커 2014년 연구보고서

  • 오른쪽 출처 : 피터슨 국제연구소


위의 그래프는 일명 '코끼리 그래프'(Elephant Graph) 입니다. 말그대로 그래프 모양이 코끼리 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코끼리 그래프는 전세계인들을 국적에 상관없이 소득분위로 나눈 뒤 1988년~2008년 간 소득증가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빨간선은 전체 소득계층의 평균 증가율). 


이 시기동안 글로벌 소득분포 내 75분위~90분위에 위치한 계층의 소득 증가율 10%가 채 안되며 매우 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득이 가장 크게 증가한 계층은 중간에 위치한 40분위~70분위와 최상위 100분위이며 6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미국 · 서유럽 내 상위층은 전세계에서도 상위층이기 때문에 100분위에 속합니다. 그리고 선진국 중하위층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행운 덕분에' 글로벌 소득분포상에서는 상위권인 75분위~90분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 인도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대부분 30분위~70분위에 위치해 있죠. 


즉, 20년간 선진국 중하위층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었고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소득증가율은 가팔랐습니다.


  • 코끼리 그래프 데이터 시계열을 2011년까지 확장

  • 출처 : 브랑코 밀라노비치, 2016,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2016년 출판한 단행본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각주:8](<Global Inequality :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을 통해, 시계열을 2008년에서 2011년으로 확장하였습니다.


2011년까지 확장된 그래프를 통해, 2008 금융위기가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 간 구분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3년간 글로벌 소득분포상 중간에 위치한 계층의 누적 소득증가율은 비교적 더 크게 상승했습니다. 


즉, 코끼리 그래프를 통해 1990년대부터 진행된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가 누군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밀라노비치와 랑커는 "승자는 1988년 글로벌 소득분포상 중위층에 있었던 국가의 국민이며 이들 중 90%는 아시아에서 왔다. 패자는 1988년 글로벌 소득분포상 85분위층에 있었던 국가의 국민이며 이들 중 90%는 선진국[각주:9]에서 왔다."[각주:10]고 말합니다. 


  • 승자인 중국 · 인도 · 기타 아시아 지역과 패자인 선진국 내 소득계층별 1988년~2008년간 누적 소득증가율

  • 출처 : 밀라노비치, 랑커 2014년 연구보고서


그럼 세계화의 승자인 아시아가 어디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위의 그래프는 승자인 중국 · 인도 · 기타 아시아 지역과 패자인 선진국 내 소득계층별 1988년~2008년간 누적 소득증가율을 보여줍니다. 


중국의 전계층은 1988년~2008년 20년간 그야말로 독보적인 소득증가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내 최하위 계층의 소득도 100% 가깝게 증가했으며, 중국 내 중산층(50분위-80분위)의 소득은 200%~250% 증가했습니다. 최상위 계층의 누적 소득증가율은 350%에 달합니다. 기타 아시아 국가와 인도 국민들도 선진국(Mature)보다 높은 소득증가를 달성했습니다.


  • 1988년~2011년 사이 연도별 미국 하위 20% 계층과 중국 도시지역 상위 20% 계층의 1인당 세후소득

  • 출처 : 브랑코 밀라노비치, 2016,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


위의 그래프는 1988년~2011년 사이 연도별 미국 하위 20% 계층과 중국 도시지역 상위 20% 계층의 1인당 세후소득을 보여줍니다. 


1988년 당시 중국 도시지역 상위 20% 계층의 1인당 세후소득은 미국 하위 20%의 1/10에 불과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어디 나라에서 태어났느냐'의 영향력은 매우 강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경제발전이 이루어나가자 그 격차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1년 국가간 불균등의 영향력은 이전과 비교해 크게 감소했습니다.


'세계화'(Globalization)가 모든 개발도상국에 동등하게 수혜로 작용한 건 분명 아닙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여전히 빈곤률이 높으며, 중남미 국가들은 천연자원 가격변동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크게 좌우됩니다. 


세계화로 이익을 본 신흥국은 GVC 참여에 성공한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등 일부[각주:11]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시아 개발도상국, 특히 중국의 인구가 13억명에 달하며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오랫동안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 1988년과 2011년의 글로벌 소득분포 모양

  • 출처 : 브랑코 밀라노비치, 2016,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


위의 그래프는 1988년과 2011년의 글로벌 소득분포 모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8년에는 상위층과 하위층으로 양분된 쌍봉모양을 볼 수 있으며, 개발도상국 인구가 수십억명에 달했기 때문에 하위층이 더 두꺼운 모양입니다. 2011년에는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경제발전과 소득증가로 인해 글로벌 중산층이 두터워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수십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가 경제발전을 달성한 결과, 글로벌 소득분포가 쌍봉 모양에서 중간이 두터워진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 위 : 1990년, 글로벌 소득계층을 국가별로 분류

  • 아래 : 2016년, 글로벌 소득계층을 국가별로 분류

  • 중국(빨간색)에 주목

  • 출처 : <World Inequality Report 2018>


위의 그래프는 글로벌 소득분포 내에서 국가별 위치의 변화를 좀 더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 글로벌 소득분포상 하위층인 10분위~50분위에는 주로 중국이 위치해 있으며, 상위층에는 미국 · 캐나다 · 유럽 등이 꿰차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6년 중국은 하위층에서 벗어나서 중상위층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세계화는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국민 수십억명을 빈곤상태에서 탈출하도록 도왔고 중산층을 대거 양성하여 글로벌 소득분포 자체를 변화시켰습니다.




※ '코끼리 그래프'가 보여주는 세계화의 결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렇게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낸 세계화는 글로벌 불균등의 구성 변화(Global Inequality Dynamics)시켰습니다. 


전세계 소득순위 1위부터 70억위까지 줄을 세웠을 때, 과거에 격차를 만들어낸 요인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즉 '국가간 불균등'(Between-Country Inequality) 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행운을 누리게 된 자는 그곳에서 중하위층에 속해있더라도 아시아 · 아프리카 상위층 보다 높은 소득을 누렸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흥국의 성장으로 인해 '국가간 불균등'의 영향은 줄어들었습니다(Between-Country Inequality ↓). 세계화는 신흥국 중상층의 소득을 크게 증가시켰고, 이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덜해졌습니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자가 여전히 우위를 누리고는 있긴 하지만, 중국에서 태어난 중상위층이 선진국 하위층보다 더 높은 소득을 이룰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국가간 불균등이 줄어들어서 글로벌 차원의 불균등이 해소되는 건 좋은 일입니다. 이제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기존 선진국 못지않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의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들은 국가간 불균등이 해소되는 걸 우호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신흥국이 성장해서 국가간 불균등이 줄어드는 건 선진국 중하위층에게 아무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되려 신흥국 중상위층의 소득증가는 선진국 중하위층의 몫을 뺏어온 결과물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계화로 인해 '국가내 불균등'은 증가했습니다(Within-Country Inequlity ↑). 선진국 중하위층은 일자리를 신흥국에 빼앗겼지만, 선진국 상위계층은 넓어진 시장 속에서 더 많은 소득을 얻어왔습니다. 그리고 숙련된 교육을 받은 선진국 상위계층은 R&D · 디자인 · 설계 · 마케팅 등 고급 서비스업 직무를 맡으면서 임금이 크게 증가[각주:12]했습니다. 코끼리 그래프에서도 글로벌 소득분포 상위 1%에 위치한 자들의 높은 소득증가율을 확인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화로 인한 국가간 불균등의 해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단순하게만 바라보기에는 역사 깊은(?) 관점의 대립이 있습니다.


▶ 세계시민주의 관점(Cosmopolitan View) 

-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전세계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가능케한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각주:13]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14]'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실시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세계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개별 국가들이 각자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특화한 뒤 서로 교환을 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효율적 생산이 가능합니다. 이는 사실상 '국제적 차원의 노동분업론'(international divison of labor)과 마찬가지이며,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세계시민주의 관점'으로 국제무역과 세상을 바라봅니다. 국제무역을 통한 세계화는 개발도상국에도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였고 그 결과 경제발전과 국가간 불균등 해소를 불러왔다면 나쁜 일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에 국가간 불균등이 컸다는 것은 선진국 중하위층이 운좋게 선진국에서 태어나서 누릴 수 있었던 '위치 및 공간 프리미엄'(locational & place premium)이 만들어낸 비효율적인 상태를 보여준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세계시민주의 관점에서 볼 때, 국제무역을 통한 세계화는 장려해야 하는 것이며 국가간 불균등은 더욱 줄어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국가간 불균등을 더욱 줄이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 국민이 선진국 노동시장으로 이동하는 '이민'(immigration)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민족주의(Nationalism) · 국내평등주의적 관점(National-Egalitarian View) 

- 전세계가 아니라 민족 · 국가를 우선시해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알렉산더 해밀턴과 프리드리히 리스트[각주:15]'민족 · 국가'(Nationalism)를 우선시하여 자유무역론을 비판하고 유치산업보호론을 주장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모든 국가와 민족은 각자 처한 발전정도와 상황이 다르며, 진정한 무역자유가 이루어지려면 후진적인 민족과 앞선 민족이 대등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즉, 유치산업보호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민족경제적 관점(national economy)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은 민족경제를 다루어야 하며, 어떤 국가가 각자의 특성한 상황에 맞추어 가장 강력하고 부유하고 완벽한 국가가 되기 위해 어떻게 권력과 부를 증대시켜야 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세계화 현상에 대해서도 '민족주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가 경제발전에 성공하여 범지구적인 불균등이 줄어드는 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현재 내가 속한 국가와 사회 내에서 발생한 문제가 시급합니다. 


또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기회를 누려야한다는 '만민평등주의'는 허울 좋은 이상일 뿐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건 '국내평등주의'(National-Egalitarianism)입니다. 상품무역 세계화와 개발도상국 근로자들의 이민유입은 국내 중하위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국가내 불균등만 키우는 문제만 일으킬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2가지 관점 중에서 어떠한 시각으로 세계화를 바라봐야 할까요? 아래 파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 ① 세계시민주의 관점

- 선진국 시민들은 위치 및 공간 프리미엄을 누려왔다


▶ 불균등, 이민, 그리고 위선 (Inequality, Immigration, and Hypocrisy)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수만명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이들은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이주하려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유럽인들은 난민 유입을 꺼려했습니다. 경제 · 문화 등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을 환영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5월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한 칼럼을 기고 했습니다.


● 불균등, 이민, 그리고 위선 (Inequality, Immigration, and Hypocrisy)


유럽의 이민위기는 현재 진행중인 경제적 불균등 논의 과정 속에서 근본적인 결함을 노출시켰다. "진정한 진보 지지자라면 단지 운좋게 부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상 모든 사람의 평등한 기회를 지지해야 하지 않을까?"


선진국의 많은 리더들은 자격의식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자격은 국경에서 멈춘다. 그들은 더 강한 분배를 절대적으로 해야하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배제되어 있다. 만약 불균등에 관한 최근의 우려가 온전히 정치적 용어라면, 내부에만 집중하는 건 이해할만 하다. 결국 빈국의 시민들은 부국에 투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국 내에서 논의중인 불균등 레토릭은 윤리적 자격을 배신하였다. 이들은 빈국의 수십억명을 가볍게 무시하고 있다.


부국의 중산층은 글로벌 관점에서 상위층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전세계 인구의 15%만이 선진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은 전세계 소비와 자원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자산에 부과되는 높은 세율이 국가내 불균등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개발도상국의 심각한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서구에서 태어난 자가 많은 이점을 누리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도덕적 우위에 호소하지 않을 것이다. 맞다. 건전한 정치 및 사회 인프라는 지속적 경제성장의 필수요소이다. 이는 성공적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유럽의 오랜 식민지 역사는 유럽이 지배를 하지 않고 무역만 했다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제도가 어떠한 길을 걸을지 추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국내 불균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글로벌 불균등을 무시하는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정책이슈가 왜곡된다. 국내불균등이 증가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실패할 거라는 피케티의 주장은 결점이 있다. 세계 모든 시민들을 동등하게 가중치 한다면 상황은 다르게 보인다. 특히 부국의 중산층 임금을 정체하는 데 기여한 세계화의 힘은 다른 곳에서 수억명의 사람을 빈곤에서 구제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된 글로벌 불균등은 지난 30년간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자본주의가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단지 거기서 태어난 이점을 누린 선진국 근로자의 지대를 훼손했다. 그리고 아시아와 신흥국의 진정한 중산층 근로자를 도왔다.


국경을 넘어서 사람을 자유롭게 이동시키는 것은 무역보다 더 빠르게 공평한 기회를 준다. 그러나 저항은 격렬하다. 반이민정책은 프랑스, 영국 등 국가에서 강한 힘을 얻었다. (...) 경제적 압력은 이민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빈국의 근로자는 기회를 찾기 위해 선진국으로 온다. 비록 낮은 임금일지라도. 불행히도 오늘날 부국의 논의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사람들을 쫓아내는데에 맞춰져있다. 이는 실용적이지만 윤리적으로 옹호할 수 없다. (...)


세계가 점점 더 부유해질수록, 불균등은 빈곤보다 더 큰 이슈가 되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감스럽게도 불균등 논의는 국내 불균등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있고, 더 큰 이슈인 글로벌 불균등은 무시되고 있다. 이는 유감이다. (...)


- 케네스 로고프, 2015년 5월 8일, '불균등, 이민, 그리고 위선'[각주:16]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불균등, 이민, 그리고 위선> 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서구 진보주의자들의 정곡을 찌릅니다. 


서구 진보주의자들의 전통적인 의제는 '불균등 해소'였으나, 논의의 중심은 '자본주의가 초래한 국내 불균등'에만 맞춰져 왔습니다. 이에 대해, 케네스 로고프는 "국내 불균등(domestic inequality)에만 초점을 맞추고 글로벌 불균등(global inequality)을 무시하는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정책이슈가 왜곡된다. 세계화의 힘은 수억명의 사람을 빈곤에서 구제했다"고 비판합니다. 


더 나아가서 케네스 로고프는 "진정한 진보 지지자라면 단지 운좋게 부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상 모든 사람의 평등한 기회를 지지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로고프가 보기엔 선진국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단지 운좋게 부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고'(lucky enough to have been born and raised in rich countries), 그동안 '단지 거기서 태어난 이점을 누리면서 지대를 획득한 사람들'(rents that workers in advanced countries enjoy by virtue of where they were born) 입니다.


언뜻 보면 로고프의 인식은 너무 극단적인 것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게으르게 생활할 때 선진국 국민은 열심히 일을 했는데 이를 두고 '행운' · '지대'라고 표현하다니. 하지만 다른 경제학자들도 로고프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 글로벌 기회의 불균등 : 당신이 어디에 사느냐가 소득의 대부분을 결정한다


'코끼리 그래프'를 이야기했던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2015년 논문 <글로벌 기회의 불균등 : 어디에 사느냐가 당신의 소득을 얼마만큼 결정할까?>(<Global Inequality of Opportunity: How Much of Our Income Is Determined By Where We Live?>)을 통해, 부국에서 태어난 선진국 시민의 '위치 프리미엄'(Locational Premium)을 이야기 합니다.


밀라노비치는 "개인의 소득이 노력이나 행운과는 관련이 없는 거주하는 국가에 의해 얼마나 결정될까? 글로벌 소득분포상 개인의 소득분위를 어디에 사느냐가 얼마나 크게 결정할까?"(How much of this person’s income will be determined by country of residence, unrelated to individual effort or luck? Is one’s position in global income distribution largely decided by country where one lives?)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그가 '거주하는 국가'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전세계 인구의 97%가 태어난 나라에 운명처럼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3%만이 이민을 단행하며 대부분은 자연적으로 할당된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랍니다(assignment to country). 따라서 전세계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과 관련없이 태어난 국가의 특성에 의해 소득이 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밀라노비치는 거주하는 국가의 특성으로 2가지를 꼽습니다. 첫째는 국가의 평균소득(average income of the country), 둘째는 소득분포의 불균등 정도(inequality of income distribution) 입니다. 


평균소득이 높은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당연히 높은 소득을 누릴 겁니다. 그리고 소득불균등 정도가 심한 곳에서 상위계층으로 태어났다면 소득은 더욱 높아지겠죠. 반대로 평균소득이 낮은 곳 혹은 소득불균등이 극심한데 하위계층으로 태어난 사람은 낮은 소득을 얻을 겁니다. 직관적인 생각이 실제 데이터와 부합하는지 살펴봅시다.


  • 개인의 1인당 GDP에 국가의 평균소득과 지니계수가 미치는 영향

  • 출처 : 밀라노비치(2015)


위의 회귀분석표는 "내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거나 현재 살고 있다면 어떨까?"라는 물음에 답을 제시해 줍니다. 


국가의 평균소득이 한 단위 증가할수록 가계의 1인당 GDP는 0.868 단위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니계수가 1%p 올라갈수록 가계의 1인당 GDP는 1.5% 감소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평균소득이 높은 부국에서 태어날수록', 그리고 '공평한 사회에서 태어날수록' 개인의 소득이 증가함을 알려줍니다. 특히 밀라노비치는 국가의 평균소득이 미치는 영향력을 '위치 프리미엄'(locational premium) 이라고 칭합니다. 


  • 국가의 평균소득과 소득분포의 불균등 정도가 계층별로 얼마나 영향을 주나

  • 출처 : 밀라노비치(2015)


위의 회귀분석표는 국가의 평균소득과 소득분포의 불균등 정도가 계층별로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줍니다. 


소득 계층 1분위부터 10분위까지 모두 국가의 평균소득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하위계층보다 중상위 계층이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0.769 → 0.886). 그리고 지니계수 증가는 하위계층 소득을 크게 떨어뜨리지만 중상위 계층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최상위 계층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0.058 → -0.0001 → 0.029).


밀라노비치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① 모든 계층이 높은 평균소득의 이익을 누리지만, 이득은 상위계층에 불균형적으로 쏠려있다. ② 소득분포 변화는 가난한 자와 부자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방향은 서로 다르다. ③ 중산층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내 소득분포가 아니라 나라가 부유하냐 가난하냐 이다 라고 결론 내립니다. 


밀라노비치는 "개인의 노력과 행운이 개별 케이스에서 차이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글로벌 관점에서 노력과 행운은 역할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소득편차의 상당부분을 설명하는 건 태어난채로 주어진 조건들이기 때문이다"[각주:17](circumstances given at birth) 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밀라노비치는 "개인은 그가 속한 국가가 잘되기를 희망해야 한다. 국가가 경제발전을 한다면 전체 국민의 지위도 따라서 올라간다. 만약 개인의 노력이 국가의 경제발전과 결합한다면 글로벌 소득분포에서 그의 지위는 상당히 올라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 남은 마지막 가능성은 가난한 국가에서 부유한 국가로 이동하는 것이다. 새로운 부유한 국가에서 상위계층에 속하지 않더라도 그는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각주:18] 고 말합니다.


▶ 공간 프리미엄 : 이민장벽이 만들어낸 공간 프리미엄은 얼마나 될까


밀라노비치의 연구는 직관적이지만 찜찜함도 남습니다. "국가의 평균소득이 높을수록 개인의 1인당 GDP도 높은 건 당연한거 아닌가?". 밀라노비치는 그 당연한 사실을 통해 '어디에서 태었느냐의 중요성'을 주장하지만, 이런 회귀분석 방법이 적절한지에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해주는 다른 연구가 존재합니다. 경제학자 클레멘스 · 몬테네그로 · 프릿쳇은 2019년 논문 <공간 프리미엄 : 이민장벽의 가격>(<The Place Premium : Bounding the Price Equivalent of Migration Barriers>)를 통해, 인위적인 이민 장벽이 만들어낸 임금격차 이른바 '공간 프리미엄'(Place Premium)이 얼마인지 계산하였습니다.


클레멘스 · 몬테네그로 · 프릿쳇의 공간 프리미엄 추정은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고국의 근로자 간 임금 격차'(wage gaps between immigrants in the United States and their observably equivalent national counterparts in the 42 home labor markets)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비슷한 특성을 지닌 두 사람을 대상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갈 경우와 고국에 머무를 경우 받게 되는 임금의 차이를 비교한 겁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특성은 비슷하기 때문에, 임금격차는 노동시장이 미국이냐 아니냐가 온전히 결정짓습니다.


연구 저자들은 교육수준 등 눈에 보이는 특성과 성격 등 눈에보이지 않은 특성이 서로 동일한 이민자와 고국민의 실질임금 비율의 평균값은 5.65이며 절대액수로는 연간 PPP $13,710로 추정했습니다. 즉, 고국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은 단지 속해있는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PPP기준 $13,710달러를 더 벌어들입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현재 선진국 시민이 그곳에서 태어난 행운 덕분에 개발도상국 국민이 누리지 못하는 프리미엄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수치로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는 경제학자가 보기엔 '효율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만약 근로자의 이동에 장벽이 존재하지 않고 전세계 노동시장이 단일하게 존재한다면, 선진국 근로자가 누리는 프리미엄 혹은 지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기업이 선진국 근로자와 동등한 능력을 가진 개발도상국 근로자를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다면, 선진국 노동시장의 임금은 공간 프리미엄을 없애는 수준까지 낮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의 저자인 클레멘스는 2011년 논문 <경제학 그리고 이민 : 길바닥에 떨어진 수조달러?>(<Economics and Emigration: Trillion-Dollar Bills on the Sidewalk?">)를 통해, "인위적인 이민장벽이 만들어낸 노동시장 비효율성으로 인해 매년 수조달러의 후생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면, '국가간 불균등을 줄이는 세계화'를 나쁘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계화는 '진정한 글로벌 평등'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죠.




※ ② 국내평등주의 관점 

- 선진국 시민과 트럼프, "누가 글로벌 소득분포상 위치에 신경쓰나"


본인의 글로벌 소득순위를 잘못 인식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독일인들


선진국 시민들이 공간 및 위치 프리미엄을 누려왔다는 사실을 반박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선진국 시민은 운좋게 선진국에서 태어난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 시민이 누리고 있는 프리미엄을 제거한다면 글로벌 차원의 효율성이 달성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체의 후생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자들은 인위적인 이민장벽은 제거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아 내가 우리나라에서는 중하위층이지만 글로벌 소득분포에서는 상위층이니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 좀 더 양보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에게 글로벌 소득분포 이야기를 하는 건 와닿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누리는 것'에서 오는 것이지 다른 나라에 위치한 사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경제학자 페흐르 · 몰스트롬 · 트루굴리아는 2019년 12월 작업중인 논문 <세계에서 당신의 공간 : 국가와 글로벌 재분배 요구>(<Your Place in the World: The Demand for National and Global Redistribution>)를 통해, 선진국 독일인이 느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일인들이 자신의 독일 내 소득순위(National Rank)와 글로벌 내 소득순위(Global Rank)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과 실제의 차이

  • 왼쪽 : 독일 내 소득순위 인식(회색)과 실제(빨강)

  • 오른쪽 : 글로벌 내 소득순위 인식(회색)과 실제(빨강)

  • 출처 : 페흐르, 몰스트롬, 트루굴리아(2019.12)


위의 그래프는 독일인들이 자신의 독일 내 소득순위(National Rank)와 글로벌 내 소득순위(Global Rank)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과 실제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왼쪽은 독일 내 소득순위 오른쪽은 글로벌 소득순위에 대한 것이며, 회색 막대는 독일인이 느끼고 있는 소득순위 빨간색 막대는 실제 소득순위 입니다.


독일 내 소득순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독일인들의 '중산층 인식 편향'이 드러납니다. 독일 하위계층은 자신들이 실제보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독일 상위계층은 실제보다 못 살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하위계층의 과대평가와 상위계층의 과소평가를 종합하면, 평균적으로 독일인의 인식은 실제와 다르지 않은 셈이라고 연구자들은 판단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소득순위에 대한 인식에서 독일인들은 눈에 띄게 자신의 위치를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상위층이든 하위층이든 독일인들은 실제 글로벌 소득순위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으나, 이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 잘못된 인식 분포도

  • X축 : 인식하고 있는 순위에서 실제 순위를 차감한 값(Prior Belief - Reality), 자신의 소득순위를 실제 순위보다 과소평가할 경우 음(-)의 값

  • 독일 내 소득순위(회색)와 글로벌 소득순위(빨강)

  • 출처 : 페흐르, 몰스트롬, 트루굴리아(2019.12)


독일인들의 잘못된 인식(Misperceptions)은 분포도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분포도의 X축은 인식하고 있는 순위에서 실제 순위를 차감한 값(Prior Belief - Reality) 입니다. 자신의 소득순위를 실제 순위보다 과소평가할 경우 음(-)의 값이 나타납니다.


독일 내 소득순위에 관한 잘못된 인식은 0을 중심으로 안정된 모양을 띄고 있으나, 글로벌 내 소득순위에 관하 잘못된 인식은 음(-)의 값으로 치우처져 있습니다. 즉, 자신의 글로벌 소득순위를 과소평가하는 독일인들의 인식이 분포상에 보여집니다.


  • 소득순위 인식이 재분배 요구와 어떤 관련이 있나

  • 독립변수 :  독일 내 소득순위 인식(National Rank)와 글로벌 소득순위 인식(Global Rank)

  • 종속변수 : 재분배 정책이 독일 내에서만 시행되는 것(Nat.)과 글로벌 단위로 시행되는 것(Glob.)

  • *** : 1% 수준에서 유의, ** : 5% 수준에서 유의, * :10% 수준에서 유의

  • 출처 : 페흐르, 몰스트롬, 트루굴리아(2019.12)


연구자들은 소득순위 인식이 재분배 요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득순위가 낮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재분배 정책을 강하게 요구하고, 소득순위 높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재분배 정책을 꺼려합니다. 연구자들은 독일 내 소득순위 인식과 글로벌 소득순위 인식이 일반적인 경우처럼 작용하는지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위의 회귀분석표에 나오는 독립변수는 독일 내 소득순위 인식(National Rank)와 글로벌 소득순위 인식(Global Rank) 입니다. 그리고 종속변수인 재분배 정책은 독일 내에서만 시행되는 것(Nat.)과 글로벌 단위로 시행되는 것(Glob.)로 구분하였습니다.


회귀분석 결과를 통해 유의미하게 나온 결과는 '독일 내 소득순위가 높다고(낮다고)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독일 내 재분배 정책을 꺼려한다(선호한다)' 뿐 입니다. 독일 내 소득순위와 글로벌 재분배 정책 요구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없었습니다.


또한, 글로벌 소득순위 인식은 국내외 재분배 정책 요구와는 유의미한 관계를 띄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통계적 유의성을 떠나서 계수값이 양수(+)로 나오면서 "글로벌 소득순위가 높다고(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국내외 재분배 정책을 선호한다(꺼려한다)"는 직관에 반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연구자들은 글로벌 소득순위가 독립변수로 기능을 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로 "독일인들은 다른 독일인과 비교할 때만 자신의 상대소득에 신경을 쓰지, 다른 국적의 사람과 비교할때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각주:19]로 추측했습니다. 즉, 보통의 사람들에게 글로벌 소득분포 이야기는 와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래는 국제주의자가 아니라 애국자에게 달려있다"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 '세계를 다시 위대하게'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출마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강조[각주:20]해오고 있습니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를 통해 소개해왔듯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전파를 위해 다자주의 자유무역을 추구해야한다'는 논리는 트럼프에게 말도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트럼프에게 NAFTA와 WTO는 미국 내 제조업 근로자를 희생시켜 외국의 배만 불려주는 것들[각주:21] 입니다. 


트럼프가 타당하게 여기는 논리는 '공정한(fair) · 균형잡힌(balanced) · 상호적인(reciprocal) 무역을 통해 미국인의 이익을 최우선한다(America First)' 뿐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 시민이 누리는 프리미엄을 제거하여 글로벌 효율성을 이루자'는 국제주의자들의 세계시민주의 관점은 당연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 캘리포니아주에 설치중인 멕시코 국경장벽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 출처 : USA Today


게다가 '선진국의 이민 장벽을 제거하여 전세계적 후생을 증대시키자'는 주장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는 멕시코인들의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대규모 장벽을 설치한다는 공약을 후보시절부터 내세웠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국경장벽 건설을 명령[각주:22]함으로써 공약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9월 25일 UN총회 연설을 통해 "미래는 국제주의자가 아니라 애국자에게 있다"(The future does not belong to globalists. The future belongs to patriots.)고 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표현했습니다.


● 트럼프 대통령 74회 UN총회 연설, 2019년 9월 25일


나의 사랑스런 조국처럼, UN총회에 참석한 개별 국가들은 수호하고 찬양해야 할 역사,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통해 잠재성과 힘을 얻고 있습니다.


자유 세계는 국가적 기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지우려거나 대체하려고 시도해서는 안됩니다. 넓은 세계를 둘러보시면 진실은 명백합니다. 만약 당신이 자유를 원한다면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만약 당신이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주권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만약 당신이 평화를 원한다면 조국을 사랑하십시오. 현명한 지도자는 언제나 자신의 국민과 국가를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


미래는 국제주의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미래는 애국자에게 있습니다. 미래는 자신의 시민을 보호하고, 이웃을 존중하고, 개별 국가의 특수성과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차이를 명예롭게 여기는 주권을 가진 독립적인 국가에 달려있습니다. (The future does not belong to globalists.  The future belongs to patriots. The future belongs to sovereign and independent nations who protect their citizens, respect their neighbors, and honor the differences that make each country special and unique.) (...)


미국을 새롭게하는 구상의 중심에는 국제무역을 개혁하는 야심찬 캠페인이 있습니다. 수십년간 국제무역 시스템은 잘못된 믿음으로 행동하는 국가들에 의해 쉽게 착취되어 왔습니다. 일자리는 외국으로 이전함에 따라, 소수의 부자들이 중산층 일자리를 없앴습니다. 그 결과, 미국 내에서 420만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없어졌고 지난 25년간 150조 달러의 무역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제 미국은 경제적 불공정을 끝내기 위해서 단호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서로에게 공정하며 호혜적인 균형잡힌 무역을 원합니다. (...)

여기 있는 서구와 함깨 우리는 전세계의 안정과 기회를 위해 함께하고 있습니다. 목표달성을 위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불법이민 입니다. 불법이민은 번영을 훼손하고, 사회를 갈라놓고, 무분별한 범죄조직의 힘을 키웁니다불법이민은 모두에게 불공정하며 안전하지 않으며 지속불가능 합니다. (...) 

오늘 나는 여기서 사회정의를 앞세우며 국경을 개방하자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메세지를 보냅니다. 당신의 정책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당신의 정책은 무자비하며 사악합니다.(Today, I have a message for those open border activists who cloak themselves in the rhetoric of social justice: Your policies are not just.  Your policies are cruel and evil.) (...)

오늘날 여기있는 많은 국가들은 통제되지 않은 이민이 가져다주는 위협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개별 국가들은 국경과 조국을 보호할 절대적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74회 UN총회 연설[각주:23], 2019년 9월 25일




국가내 불균등과 국가간 불균등의 긴장관계


이번글을 통해 확인하였듯이, 1990년대부터 진행된 세계화는 '국가간 불균등을 감소'(Between Inequality ↓) 시켰으나, 그 과정에서 '국가내 불균등이 확대'(Within Inequality ↑)되어 선진국 내에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불균등을 초래한 가장 큰 요인인 국가간 불균등을 줄였으니 전세계적 차원에서 나빠진 건 없는 것 아니냐"라고 간단히 말하기에는 '서구에서의 포퓰리스트 국가주의 부상'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국가간 불균등과 국가내 불균등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자유무역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를 위해서는 '국가내 불균등이 확대된 원인'에 대해서 명확히 알아야 할겁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미국 내 불균등 확대 현상과 제조업 일자리 감소 원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4. 선거인단 득표는 0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7.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8. 한국어 출판명은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 30년 세계화가 남긴 빛과 그림자' [본문으로]
  9. 저자는 Mature Economy에 속한 국가로 미국, EU27개국, 일본, 캐나다, 스위스,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을 선정하였다. [본문으로]
  10. The “winners” were country-deciles that in 1988 were around the median of the global income distribution, 90 percent of whom in terms of population are from Asia. The “losers” were the country-deciles that in 1988 were around the 85th percentile of the global income distribution, almost 90 percent of whom in terms of population are from mature economies.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1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1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s://joohyeon.com/271 [본문으로]
  16. Europe’s migration crisis exposes a fundamental flaw, if not towering hypocrisy, in the ongoing debate about economic inequality. Wouldn’t a true progressive support equal opportunity for all people on the planet, rather than just for those of us lucky enough to have been born and raised in rich countries? Many thought leaders in advanced economies advocate an entitlement mentality. But the entitlement stops at the border: though they regard greater redistribution within individual countries as an absolute imperative, people who live in emerging markets or developing countries are left out. If current concerns about inequality were cast entirely in political terms, this inward-looking focus would be understandable; after all, citizens of poor countries cannot vote in rich ones. But the rhetoric of the inequality debate in rich countries betrays a moral certitude that conveniently ignores the billions of people elsewhere who are far worse off. One must not forget that even after a period of stagnation, the middle class in rich countries remains an upper class from a global perspective. Only about 15% of the world’s population lives in developed economies. Yet advanced countries still account for more than 40% of global consumption and resource depletion. Yes, higher taxes on the wealthy make sense as a way to alleviate inequality within a country. But that will not solve the problem of deep poverty in the developing world. Nor will it do to appeal to moral superiority to justify why someone born in the West enjoys so many advantages. Yes, sound political and social institutions are the bedrock of sustained economic growth; indeed, they are the sine qua non of all cases of successful development. But Europe’s long history of exploitative colonialism makes it hard to guess how Asian and African institutions would have evolved in a parallel universe where Europeans came only to trade, not to conquer. Many broad policy issues are distorted when viewed through a lens that focuses only on domestic inequality and ignores global inequality. Thomas Piketty’s Marxian claim that capitalism is failing because domestic inequality is rising has it exactly backwards. When one weights all of the world’s citizens equally, things look very different. In particular, the same forces of globalization that have contributed to stagnant middle-class wages in rich countries have lifted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out of poverty elsewhere. By many measures, global inequality has been reduced significantly over the past three decades, implying that capitalism has succeeded spectacularly. Capitalism has perhaps eroded rents that workers in advanced countries enjoy by virtue of where they were born. But it has done even more to help the world’s true middle income workers in Asia and emerging markets. Allowing freer flows of people across borders would equalize opportunities even faster than trade, but resistance is fierce. Anti-immigration political parties have made large inroads in countries like France and the United Kingdom, and are a major force in many other countries as well. Of course, millions of desperate people who live in war zones and failed states have little choice but to seek asylum in rich countries, whatever the risk. Wars in Syria, Eritrea, Libya, and Mali have been a huge factor in driving the current surge of refugees seeking to reach Europe. Even if these countries were to stabilize, instability in other regions would most likely take their place. Economic pressures are another potent force for migration. Workers from poor countries welcome the opportunity to work in advanced countries, even at what seem like rock-bottom wages. Unfortunately, most of the debate in rich countries today, on both the left and the right, centers on how to keep other people out. That may be practical, but it certainly is not morally defensible. And migration pressure will increase markedly if global warming unfolds according to climatologists’ baseline predictions. As equatorial regions become too hot and arid to sustain agriculture, rising temperatures in the north will make agriculture more productive. Shifting weather patterns could then fuel migration to richer countries at levels that make today’s immigration crisis seem trivial, particularly given that poor countries and emerging markets typically are closer to the equator and in more vulnerable climates. With most rich countries’ capacity and tolerance for immigration already limited, it is hard to see how a new equilibrium for global population distribution will be reached peacefully. Resentment against the advanced economies, which account for a vastly disproportionate share of global pollution and commodity consumption, could boil over. As the world becomes richer, inequality inevitably will loom as a much larger issue relative to poverty, a point I first argued more than a decade ago. Regrettably, however, the inequality debate has focused so intensely on domestic inequality that the far larger issue of global inequality has been overshadowed. That is a pity, because there are many ways rich countries can make a difference. They can provide free online medical and education support, more development aid, debt write-downs, market access, and greater contributions to global security. The arrival of desperate boat people on Europe’s shores is a symptom of their failure to do so. [본문으로]
  17. Effort or luck may push her up the national plaque. But while effort or luck can make a difference in individual cases, they cannot, from a global perspective, play a very large role because more than half of variability in income globally is explained by circumstances given at birth. [본문으로]
  18. She can hope that her country will do well: the country’s plaque will then move up along the global pole, carrying, as it were, the entire population with it. If she is lucky enough so that her effort (movement higher up along the plaque) is combined with an upward movement of the plaque itself (increase in national mean income), she may perhaps substantially climb up in the global income distribution. Or, as a last possibility, she might try to move from a lower plaque (poorer country) to a higher one (richer country). Even if she does not end up at the high end of the new country’s income distribution, she might still gain significantly. Thus, own efforts, hope that one’s country does well, and migration are three ways in which people can improve their global income position. [본문으로]
  19. Germans may care about their relative income when compared to other Germans but not when compared to others around the globe. [본문으로]
  2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 https://joohyeon.com/280 [본문으로]
  2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22. Executive Order: Border Security and Immigration Enforcement Improvements. 2017.01.25 [본문으로]
  23. Remarks by President Trump to the 74th Session of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Posted at 2019. 12. 15. 15:20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애플사(Apple Inc.)는 오늘날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상징하는 기업 입니다.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애플이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놓을때마다 전세계 소비자들은 열광하며, 부품을 공급하는 전세계 IT 기업들은 실적향상과 주가상승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 정치인 · 경제학자 · 정책담당자들은 애플에게 아쉬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애플이 미국 내에서 창출하는 일자리가 얼마 안되기 때문입니다. 2011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라는 말을 건넸으나, 잡스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그 일자리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아래의 기사를 살펴봅시다.


● 2012년 1월 21일, 뉴욕타임스 기사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2011년 2월, 오바마 대통령이 실리콘밸리 저녁만찬에 참석했을 때, 참석자들은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말하려 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물음을 던졌다.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what would it take to make iPhones in the United States?)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애플은 자사 제품을 주로 미국에서 생산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2011년에 판매된 아이폰 7천만대, 아이패드 3천만대, 기타 제품 6천만대 제품이 해외에서 제조되었다. 


왜 이것들을 미국 내에서 만들 수 없나? 오바마 대통령의 물음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대답은 명료했다. "그 일자리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Those jobs aren’t coming back”)


오바마 대통령의 물음은 애플이 갖고 있는 확신을 건드린 것이다. (애플이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생산하는 이유는) 단지 해외 근로자가 더 값싸기 때문만이 아니다. 애플 경영진은 해외 근로자의 유순함, 근면성, 산업기술 뿐 아니라 해외 공장의 광대한 규모가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Made in U.S.A.는 더 이상 선택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


애플은 글로벌경영을 통해 가장 유명한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2011년 애플의 근로자당 수익은 골드만삭스, 엑손모빌, 구글보다도 많았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뿐 아니라 경제학자와 정책담당자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애플이 -그리고 많은 하이테크 기업들이- 다른 유명한 기업들만큼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만드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애플은 미국 내에서 4만 3천명 해외에서 2만명을 고용 중인데, 이는 1950년대 GM이 고용한 미국 근로자 40만명과 1980년대 GE가 고용한 미국 근로자 수십만명에 한참 모자라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애플과 계약관계에 있는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70만명의 사람들이 아이폰 및 아이패드를 조립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미국 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그들은 아시아, 유럽 등에 위치한 해외 기업과 공장에서 일을 한다. 


2011년까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을 맡았던 자레드 번스타인은 "오늘날 미국에서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애플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Apple’s an example of why it’s so hard to create middle-class jobs in the U.S. now.


- 뉴욕타임스. 2012.01.21.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 기사에 나온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의 발언 "오늘날 미국에서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애플이 보여주고 있다"는 애플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플 일자리 문제는 단순한 더 많은 일자리 숫자가 아니라 '중산층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국 중산층 근로자 대부분은 주로 공장과 사무실에서 '반복적인 업무'(routine-task)를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된 IT 기술진보와 오프쇼어링은 반복업무를 없애거나 해외로 이동시켰습니다. 그 결과 중산층 근로자의 일자리는 대폭 줄어들었고 임금상승률은 둔화되었습니다. 


한국 · 대만에서 전자부품을 조달한 뒤 중국에서 조립되는 아이폰은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로 인한 미국 중산층 일자리 위축' 현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위의 뉴욕타임스 기사 부제목이 '애플, 미국 그리고 위축된 중산층'(Apple, America, and a Squeezed Middle Class)인 이유입니다.


  • 2011년 2월, 테크기업 리더들과 만남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

  • 왼쪽 스티브 잡스, 오른쪽 마크 저커버그


미국 중산층 일자리 및 제조업 부활을 위해서, 과거 오바마 대통령과 현재 트럼프 대통령 모두 애플의 일자리를 미국으로 돌아오게끔 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2011년 잡스에게 직접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라고 물었던 오바마는 2013년 연두교서[각주:1]에서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미국을 새로운 일자리와 제조업을 위한 곳으로 만드는 겁니다. (...) 올해 애플은 맥을 다시 미국에서 생산할 겁니다."[각주:2] 라고 발언했습니다.


트럼프는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출마선언과 취임연설에서 부터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미국인들을 고용한다.(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각주:3]를 외쳐온 트럼프. 


트럼프행정부는 미국기업들의 자국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기 위하여, 해외유보 소득의 환류에 법인세율 보다 낮은 세율을 부과하고 최소 5년간 자본 투자에 대해서 전액 비용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긴 세제개편안을 내놓았고,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은 이를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지속적으로 "애플이 대중국 수입관세 부과를 피하려면 미국에서 상품을 만들어라!"[각주:4]는 의견을 표출해왔습니다. 이에 대한 회답으로 애플은 맥 프로 차세대 버전을 텍사스 오스틴에서 만든다고 발표[각주:5] 했습니다.



하지만 애플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여전히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 Assembled in China'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맥 프로는 2013년부터 이미 미국 내에서 만들어져왔기 때문에, 애플의 일자리가 미국으로 귀환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왜 애플은 각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해외생산을 고수하는 걸까요? 앞서 인용한 기사에 잠깐 나오듯이[각주:7], 해외의 값싼 인건비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사를 좀 더 읽으면서 미국이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는지 알아봅시다.


● 2012년 1월 21일, 뉴욕타임스 기사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2007년 아이폰이 출시가 한달이 채 남지 않았을 때, 스티브 잡스가 부하들을 사무실로 호출했다. 잡스는 지난 몇주동안 아이폰 시험버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화가 난 잡스는 플라스틱 스크린에 찍힌 수많은 스크래치를 문제삼았다. 그는 청바지에서 차량 열쇠를 꺼냈다. 사람들은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열쇠도 주머니에 있다. 잡스는 "이렇게 손상된 제품은 팔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유일한 해결책은 손상되지 않는 유리를 이용하는 거였다. "나는 유리 스크린을 원합니다. 그리고 6주 내에 완벽해지기를 원합니다"


미팅이 끝난 후 한 경영진은 중국 선전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만약 잡스가 완벽한 것을 원한다면, 중국 선전 말고는 가야할 곳이 없었다.


지난 2년간 애플은 동일한 물음을 던지며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어떻게 휴대폰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고품질로 상품을 만들어내면서 수백만대를 빠르게 제조하고 수익성도 유지할 수 있을까? 


해답은 거의 매번 미국 바깥에 있었다. 


모든 아이폰은 수백개의 부품을 담고 있는데, 이 중 90%가 해외에서 제조되었다. 차세대 반도체는 독일과 대만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과 일본에서, 디스플레이 패널과 회로는 한국과 대만에서, 칩셋은 유럽에서, 원자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조달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중국에서 조립되었다.[각주:8] (...)


중숙련 근로자를 값싸게 고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는 매혹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애플을 아시아로 끌어들인 건 아니다. 기술기업에게 부품 · 공급망관리 등에 비해 노동비용은 매우 적은 부분만을 차지한다. (...) 아시아 공장들은 규모를 빠르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 그 결과, 미국은 아시아 공장들과 경쟁할 수 없다. 


아시아 공장의 이러한 이점들은 2007년 잡스가 유리 스크린을 요구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과거 수년간,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가공의 어려움 때문에 유리 스크린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애플은 강화유리 제조를 위해 미국 코닝사와 접촉해왔다. 그러나 이를 테스트 하기 위해서는 조립공장과 중숙련의 엔지니어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준비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때 중국 공장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애플 직원이 방문했을 때, 중국 공장 오너는 이미 새로운 건물을 건설중 이었다. 그들은 "애플과 계약을 체결할 것을 대비해서 짓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수많은 산업의 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있었고, 이 회사의 유리가공 공장도 수혜를 받고 있었다. 중국 공장은 결국 기회를 얻었다. 


전 애플 고위층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전체 공급망은 중국에 있습니다. 수천개의 가죽 패킹이 필요하다고요? 바로 옆에 있는 공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수백만개의 나사가 필요하다고요?  그 공장은 한 블럭 옆에 있습니다. 모양이 조금 다른 나사가 필요하다고요? 3시간 내에 얻을 수 있습니다."[각주:9]


- 뉴욕타임스. 2012.01.21.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애플이 아이폰 생산을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공급망'(Supply Chain) 때문입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주요 전자부품은 중국에 인접한 한국 · 대만 · 일본 등에서 조달할 수 있으며, 중국 내에서는 수많은 부품을 빠른 시간에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 노동자의 값싼 임금 · 24시간 근로체계 등 기업에 유리한 노동기준과 미국 내 숙련 제조업 근로자의 부족 등도 애플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테지만, 핵심은 공급망에 있습니다. 


  • 2000년과 2017년, ICT 산업의 전통적인 교역 · 단순 GVC 교역 · 복잡 GVC 교역 네트워크

  • 17년 사이 중국 ·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비중이 커졌다

  • 출처 : WTO. 2019. Global Value Chain Development Report Ch.01 Recent patterns of global production and GVC participation


위의 이미지는 2007년과 2017년 사이 정보통신산업(ICT) 내 글로벌 밸류체인 네트워크(Global Value Chain) 혹은 글로벌 공급망 교역(Global Supply Chain)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국 내 소비를 목적으로 외국산 최종재 상품을 수입하는 경우를 전통적인 교역(Traditional Trade)[각주:10]이라 합니다.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최종재 상품 다르게 말해 완성품은 다른나라 국민들이 소비를 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전달됩니다.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하는 경우를 글로벌 밸류체인 교역(GVC Trade)[각주:11]이라 하는데, 생산과정에서 부품이 국경을 한번 넘느냐 두번 넘느냐에 따라 단순 GVC 교역(Simple GVC)과 복잡 GVC 교역(Complex GVC)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산 중간재 수입품을 이용하여 만든 최종재를 자국 내에서 소비한다면 단순 GVC 교역이며, 외국산 중간재 수입품을 이용하여 만든 최종재를 제3국으로 수출한다면 복잡 GVC 교역입니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듯이, 지난 10여년 사이 글로벌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습니다. 특히 중국은 한국 · 일본 · 대만 등으로부터 중간재 부품을 조달한 후 아이폰과 같은 최종재를 만들고 이를 미국에 수출하는 GVC 구조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중 세번째 그림에서 중국이 제3국 수출을 목적으로 한국(KOR) · 일본(JPN) · 대만(TAP)으로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를 조달하는 복잡 GVC 교역 모습, 그리고 첫번째 그림에서 완성된 최종재인 아이폰을 미국(USA)으로 수출하는 전통적인 교역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국 간 다르게 말해 미국과 서유럽끼리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지 않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그 중에서도 선진국과 동아시아 간 글로벌 밸류체인이 발전한 것일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에서 살펴봤듯이,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떠한 힘이 작용하여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역할 분담을 이끌어냈고, 오늘날 세계경제 및 교역 구조를 이전과는 다르게 만들어낸 것일까요?




※ 상품운송비용 및 의사소통비용의 감소로 인해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


우선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에서 다루었던 '과거와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복습하겠습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포인트가 지난글의 그것과 다소 다르긴 하지만, 내용을 숙지하고 계신 분은 다음 파트로 넘어가셔도 됩니다.


▶ '상품 운송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선진국으로의 생산 집중



서로 멀리 떨어진 국가간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를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농식물을 재배 · 수확하면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자급자족 생활을 했습니다. 5일장 등 시장에서 다른 마을 사람들과 먹을거리를 교환하고 보따리상이 먼 지역의 농식물을 가져와 팔기도 하였으나, 상거래의 지역적 범위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즉, 국가간 교역이 활성화 되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에는 '생산과 소비가 한 공간'(bundling)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0세기 중반 컨테이너선 발명은 국가간 교역규모를 대폭 늘렸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이 만든 자동차 · 전자제품 등 제조업 상품과 중동이 채굴한 석유 및 중남미가 생산한 농산품 · 원자재 등 1차상품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소비되었습니다. 


이처럼 상품 운송비용이 하락함(goods trade costs↓)에 따라 국가간 교역은 활성화 되었고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가 이루어졌습니다(1st unbundling)


이제 개별 국가들은 자국이 생산한 상품을 전부 다 소비하지 않으며, 자국이 소비하는 상품 모두를 스스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제조업 상품은 북반부(North)에 위치한 미국 · 서유럽에서 집중 생산되며, 원자재는 남반구(South)에 위치한 중동 · 중남미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그리고 무역을 통해 서로 간 상품을 교환한 뒤 소비하는 'made-here-sold-there' 경제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족 : 여러번 강조[각주:12]했듯이, 국제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기 때문이며 이러한 서로 다른 가격이 국내에서 초과공급(=수출) 및 초과수요(=수입)을 만들어냅니다. 한 국가 내에서 초과공급 및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이를 무역을 통해 해결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협력


  • 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생산하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을 만들어 냄
  • 출처 : 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한국어 번역본 『그레이트 컨버전스』)

1990년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함에 따라 세계경제 구조와 교역방식이 또 다시 획기적으로 변했습니다. 


과거 철도 · 컨테이너선이 물적상품의 운송비용을 낮췄다(goods trade costs ↓), 정보통신기술은 서로 다른 국가에 위치한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비용을 절감시켰습니다(communication costs ↓). 이제 선진국 본사에 있는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서로 간 지식과 아이디어(knowledge & ideas)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한 선진국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역할을 배분합니다. 과거 선진국에 위치했던 제조공장은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했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창출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도 여러 국가가 참여합니다. 제품에 들어가는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여러 국가가 만든 뒤 조립을 담당하는 국가로 수출하고, 마지막 제조공정을 맡은 국가가 이를 이용해 완성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제조 과정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원활한 중간재 교역을 위해 지리적으로 밀집해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여러 국가가 생산에 참여하는 '글로벌 생산공유'(global production sharing) ·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등과 각자 역할을 맡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선진국(North)에 위치했던 제조업은 동아시아 등 후발산업국가(South, Factory Asia)로 이동했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간재 부품 교역을 통해 함께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글로벌 경제구조는 이렇게 여러 국가가 함께 만든 상품을 전세계가 소비하는 'made-everywhere-sold-there'로 진화했습니다.




※ 상품 운송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

※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


이와 같이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보고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왜 상품 운송비용 하락은 선진국으로 제조업 생산을 집중시켰고, 이와 정반대로 왜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은 개발도상국 특히 동아시아로 제조업 생산을 이동시켰을까?" 입니다.  


이는 앞서 던졌던 물음  "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국 다르게 말해 미국과 서유럽끼리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지 않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그 중에서도 선진국과 동아시아 간 글로벌 밸류체인이 발전한 것일까?"과 동일한 겁니다.


그리고 과거 선진국으로의 제조업 생산 집중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경제력 격차 이른바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를 만들어냈고, 오늘날 개발도상국으로의 제조업 생산 이전은 격차를 축소시키는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왜 상품 운송비용 하락은 '대분기'를 초래하였고(goods trade cost ↓ → the Great Divergence), 왜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은 '대수렴'을 이끌어내고 있는가?(communication cost ↓ → the Great Convergence)" 라는 물음도 던질 수 있습니다.


  • 리차드 발드윈의 단행본 <The Great Convergence>(2016) / 한국어 출판명 <그레이트 컨버전스>(2019)


경제학자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은 2000년 논문 <핵심-주변부 모형과 내생적 성장>(<the Core-Periphery Model and Endogenous Growth>) · 2001년 논문 <글로벌 소득 대분기, 무역 그리고 산업화 - 성장 출발의 지리학>(<Global Income Divergence, Trade and Industrialization - the Geography of Growth Take-Offs>) · 2006년 논문 <세계화 - 대분리>(<Globalization - the Great Unbundlings>) 등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설명해왔습니다. 


그리고 리차드 발드윈은 2013년 단행본 <대수렴 - 정보기술과 신세계화>[각주:13](<The Great Convergence -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을 통해, 학문적 내용을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했습니다.


리처드 발드윈은 폴 크루그먼의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각주:14]과 폴 로머의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각주:15]에 기반을 두고 '대분기'와 '대수렴' 현상을 설명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앞선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살펴봅시다.


▶ 신경제지리학, "운송비용이 하락하면서 대분기 → 대수렴이 발생한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1995년 논문 <세계화와 국가간 불균등>(<Globalization and the Inequality of Nations>)을 통해,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에 있으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불균등이 유발되다가, 임계점을 넘는 수준까지 하락하면 두 지역을 수렴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크루그먼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만들어낸 신무역이론(1979)과 신경제지리학(1991)을 우선 알아야 합니다.


신무역이론[각주:16] - 국제무역을 통해 인구가 적은 소국도 인구대국 만큼 상품다양성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 기업이 서로 다른 차별화된 상품을 생산하는 경우, 존재하는 기업의 수가 많을수록 상품 다양성은 증가하고 소비자들의 후생도 커집니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하나의 시장에서 무한대의 기업이 존재하는 건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상품 생산에 고정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업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개별 기업의 생산량은 줄어들고 이에따라 부담하는 생산비용도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정된 시장크기 하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규모가 작은 국가에 사는 소비자들은 상품다양성 이익을 대국 소비자들에 비해 누리지 못합니다.


이때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것은 국제무역 입니다. 이제 국내 사람들은 외국 기업이 생산한 상품도 이용함으로써 상품다양성 이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즉, 국제무역은 국내 인구 증가와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게 되고, 시장크기가 작은 소국 국민도 대국만큼의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신경제지리학[각주:17] - 소국 국민들은 삶의 수준이 더 높은 대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 '핵심-주변부'(Core-Periphery) 형태가 만들어진다


: 국제무역은 소국 국민도 상품다양성 이익을 누리게 해주지만, 높은 수준의 운송비용이 존재한다면 소국 국민이 이용하는 상품의 종류는 대국에 비해 적을 겁니다. 


결국 소국 국민들은 삶의 수준이 더 높은 대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가지게 되고, 초기에 인구가 더 많았던 대국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핵심-주변부'(Core-Periphery) 형태가 만들어 집니다. 


아래의 사고실험을 통해 이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1지역과 2지역은 모두 농업과 제조업을 가지고 있으며, 제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합니다. 그리고 제조업 상품이 두 지역을 오가려면 운송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말인즉슨 1지역 사람들은 2지역에 생산된 제조업 상품을 이용하는데 제약이 있고, 반대로 2지역 사람들은 1지역 제조업 상품을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이유에서건 초기에 1지역의 인구가 2지역 보다 더 많다고 가정해봅시다. 1지역의 시장크기가 더 크기 때문에 소비자 관점에서 1지역 사람들은 보다 다양한 제조업 상품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1지역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임금도 더 많이 받습니다. 


이를 알게 된 2지역 제조업 근로자는 높은 임금을 받고 더 다양한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 1지역으로 이동할 유인을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1지역 시장크기는 점점 더 커지게 되고, 선순환이 작용하여 사람들은 1지역으로 더더욱 몰려들게 됩니다. 


제조업 근로자(소비자) 뿐 아니라 제조업 기업들도 1지역으로 몰려듭니다. 제조업 기업은 상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전달하기 위해 운송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소비자가 많은 곳(시장크기가 큰 곳)에 기업이 위치해야 운송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제조업 기업들은 제조업 상품수요가 많은 곳에 위치하려 합니다(backward linkage). 근로자들은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제조업 상품이 다양하게 생산되는 곳에 모여듭니다(forward linkage). 결국 제조업 근로자들의 거주지 결정과 제조업 기업들의 입지결정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1지역으로의 집중은 심화 됩니다.



하지만 모든 제조기업이 1지역으로 쏠리지 않고 주변부인 2지역에도 여전히 제조기업은 존재하게 됩니다. 


핵심부에 모든 제조업 근로자 · 모든 제조업 기업이 모이게 되는 균형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제조업 기업이 1지역에 몰릴수록 내부경쟁은 심화되기 때문에 2지역으로 이탈할 유인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에 있다면 2지역에 위치한 제조업 기업은 1지역 상품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차라리 인구가 적은 2지역에 머무르며 조그마한 수요라도 독차지 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1지역은 '산업화된 핵심부'(industrialized core)가 되고, 주변부인 2지역은 농업'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도 어느정도 존재하는 '농업위주의 주변부'(agricultural periphery)가 됩니다.


● 세계화와 국가간 불균등 -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에 있다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불균등이 유발되다가 임계점을 넘는 수준까지 하락하면 두 지역을 수렴시킨다


폴 크루그먼은 신무역이론 · 신경제지리학을 북반구에 위치한 선진국과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North-South)에 적용하여 국가간 불균등을 설명합니다. 


산업화된 핵심부인 1지역은 선진국 · 농업위주의 주변부인 2지역은 개발도상국 이라 한다면, 국가간 핵심-주변부 패턴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제조업은 계속해서 핵심부인 선진국으로 집중되고 개발도상국은 농업 위주의 주변부에 머무르게 됩니다.  따라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수준은 벌어지게 됩니다(divergence).


  • 왼쪽 : G7 선진국의 제조업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오른쪽 : 중국의 제조업 비중 증가

  • 출처 : 리차드 발드윈 2019년 논문 <GVC journeys -Industrialization and Deindustrialization in the age of Second Unbundling>


이때 운송비용이 임계점을 넘는 수준까지 내려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시장크기가 작은 개발도상국 국민도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제조업 상품을 상당히 낮은 운송비용을 지불하며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품다양성을 이유로 이주할 유인은 없어집니다. 


그리고 상당히 낮은 운송비용은 제조업 기업들의 위치선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제 제조업 기업은 굳이 시장규모가 크고 제조업 수요가 많은 선진국에 위치하지 않아도 됩니다게다가 주변부인 개발도상국의 낮은 임금수준은 제조업 기업들에게 선진국 시장과 멀리 떨어지는 불리함을 상쇄시켜 줍니다. 


이제 운송비용이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는 제조업 기업은 핵심부인 선진국에서 주변부인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할 유인이 생기게 되고,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이 발전하여 선진국과 경제수준이 수렴하게 됩니다(convergence).


▶ 신성장이론, "선진국 지식이 개발도상국으로 전파되면서 대수렴이 일어난다"


임계점 밑으로 하락한 운송비용에 더하여 '아이디어(idea)와 지식(knowledge)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의 하락(communication cost ↓)'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수준 수렴을 가속화 시킵니다.


'지식' · '아이디어'가 경제성장에 얼마나 중요[각주:18]한지, 그리고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어떻게 추격성장을 할 수 있는지[각주:19]는 본 블로그의 지난글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는 1990년 논문 <내생적 기술변화>(<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는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를 만들어내 끝없는 경제성장을 이끈다"(variety-based growth)고 말하며 신성장이론을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이어서 폴 로머는 1993년 두 개의 논문 <경제발전에서 아이디어 격차와 물적 격차>(Idea Gaps and Object Gaps in Economic Development), <경제발전의 두 가지 전략: 아이디어 이용하기와 생산하기>(Two Strategies for Economic Development: Using Ideas and Producing Ideas)을 통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보유한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함의를 강조했습니다.


공장설비 및 기계 등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은 특정한 공간에 매여 있습니다. 한 공간에서 이미 사용중 이라면, 다른 곳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즉, 물적자본은 '경합적'(rival)이며 '배제가능성'(excludable)을 띈 사유재(private good) 입니다.


반면, 아이디어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롭고 다른 종류의 생산방식 등은 한 공장에서만 쓰여지는 게 아니라 기업이 소유한 여러 공장에서 동시에 사용됩니다. '비경합성'을 띈다는 점에서는 공공재와 유사합니다. 즉, 아이디어는 '비경합성'(non-rival)을 가진채 '공공재'(public goods) 특징을 일부 띄는 독특한 재화입니다.


따라서, 연구부문의 R&D를 통해 창출된 아이디어는 시대가 지나도 끝없이 축적되며,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전파된 지식과 아이디어는 두 그룹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왼쪽 : 미국 · 일본 · 독일 등 선진국의 지적재산권 수출 추이

  • 오른쪽 : 중국 · 한국 · 대만 · 멕시코 등 제조업 신흥국의 지적재산권 수입 추이

  • 출처 : 리차드 발드윈 2019년 논문 <GVC journeys -Industrialization and Deindustrialization in the age of Second Unbundling>


1990년대부터 진행된 '정보통신기술 혁명'(ICT Revolution)은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낮추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지식과 아이디어가 전파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firms)은 지식과 아아디어 전파 역할을 맡았습니다. 


다국적기업은 직접투자 · 합작기업 설립 · 마케팅 및 라이센스 협약 등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선진국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 근로자는 즉각적인 의사소통을 하며 제품을 제조해 나갔습니다.


지식을 전파하는 다국적기업의 중요성은 중국의 경제발전 과정[각주:20]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선진국 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상품을 제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992년 이후 중국 수출입에서 외자기업이 행하는 비중은 최대 60%까지 증가하였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만약 선진 외국기업들이 제품 설계 · 품질 기준 등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전파하지 않았다면, 중국 제조업 기업이 맨땅에서 현재 수준까지 발전하기에는 더욱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게 분명합니다. 


정리하자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하락한 덕분에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지식 및 아이디어가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며, 두 그룹 간 경제수준이 수렴하게 되었습니다(convergence).


▶ 왜 제조업은 동아시아에 집중되었나


아이디어와 지식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하락한 덕분에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게 되었으나, 모든 개발도상국이 혜택을 본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의 제조업 공장은 대부분 동아시아로 이동했고,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여전히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은 2016년 출판한 단행본 <대수렴 - 정보기술과 신세계화>[각주:21](<The Great Convergence -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을 통해, 제조업 기적이 몇몇의 개발도상국에서만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발드윈은 "상품 운송비용 및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크게 하락했으나, 사람을 이동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여전히 비싸다(cost of moving people ↑)"는 점에 주목합니다. 


선진국 다국적기업은 본사 관리직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개발도상국에 진출합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발령을 내려면 이에 합당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겠죠. 연봉도 기존보다 더 많이 주어야하고, 체류비, 가족교육 지원비 등도 주어야 합니다. 만약 현지 영업판매망을 구축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수많은 본사 직원을 파견할 필요는 없겠지만,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고 수천~수만명의 제조 근로자들을 감독·관리 하려면 큰 규모의 인력이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선진국 다국적기업은 '이미 어느정도 제조업 기반이 갖추어진 개발도상국' · '직원 이동비용을 상쇄할만큼 편익을 제공해주는 개발도상국' 등을 특정하여 오프쇼어링을 단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신흥국은 '과거 수입대체산업화로 인해 제조업을 발전시키지 못한 중남미 등'[각주:22]이 아니라 '대외지향적 무역정책을 통해 제조업 기반을 조성한 한국 · 대만 등'[각주:23] 혹은 '특별경제구역을 조성하여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잠재력 있는 내수시장을 지닌 중국'[각주:24] 등 동아시아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결과, 동아시아 지역은 전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Factory Asia)이 되었습니다.




※ 신흥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 → 대수렴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


한국 · 중국 · 대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제조업 공장의 발전은 원자재 수요를 폭증시켜 브라질 · 호주 · 칠레 · 러시아 · 중동 등 자원 수출국의 경제도 성장시켰습니다. 20세기 경제성장과 산업화에서 소외되었던 국가들이 일어서기 시작한 겁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세계는 선진국-개발도상국 간 경제력 격차가 큰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 시대를 지나서 선진국-신흥국 간 경제력 격차가 줄어드는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세계경제 및 대수렴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는 '글로벌 밸류체인'(GVC) · '동아시아 제조업'(Factory Asia) · '글로벌 상품 호황'(Global Commodity Boom) · '신흥국'(Emerging Market) 그리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BRICS) 입니다.


이러한 대수렴 시대에 눈에 띄는 것은 '글로벌 불균등의 양상 변화'(Global Inequality) 입니다. 


전세계 70억 인구를 소득수준별로 줄을 세워봅시다. 


20세기에는 '국적'이 소득 상위층과 중하위층을 갈라놓는 주요 변수였습니다. 미국 · 서유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내부에서는 중하위층일지라도 전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상위층에 속했습니다. 국가별 소득수준 차이가 심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가 글로벌 소득순위에서 중요했습니다. 다르게 말해, 20세기 글로벌 불균등 분포를 결정지었던 것은 '국가간 불균등'(Between Inequality) 였습니다.


  • 1998년~2008년 사이 전세계 계층별 소득증가율

  • 전세계 소득분포 중 90분위~80분위에 위치한 미국 중하위 계층은 1%~6%의 소득증가율만 기록한 반면, 전세계 소득분포에서 70분위~40분위에 위치한 신흥국 중상위 계층은 60%가 넘는 소득증가율을 기록

  • 출처 : Two-Track Future Imperils Global Growth'. <WSJ>. 2014.01.21


반면, 21세기에는 '국적'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 서유럽의 중하위층 보다 신흥국 상위층의 소득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 · 서유럽의 중하위층은 전세계적 관점에서 여전히 중상위층에 속하긴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이들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었고, 신흥국 상위층의 소득증가율은 높았습니다.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뿐 아니라 '국가 내 소득분포에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도 중요해졌습니다. 즉, 21세기 대수렴의 시대에 '국가간 불균등'은 줄어들었고(Between Inequality ↓), '국가내 불균등'의 중요성(Within Inequality ↑)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국가간 불균등이 얼마나 감소하였는지 그리고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다음글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 선진국 제조업의 몰락과 서비스화 → 선진국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


미국은 아이폰을 제조하는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미국의 아이폰' 뿐 아니라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 자체가 크게 줄었습니다. 대신 선진국에서 증가한 일자리는 'R&D · 디자인 · 설계 · 마케팅' 등 서비스 관련 직무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만들어낸 자연스런 변화 입니다.


  • 공정단계별 부가가치 창출 크기 - 일명, 스마일 커브(Smile Curve)

  • 1990년대 이후로는 R&D · 설계 · 디자인 등 제조 이전 서비스(Pre-fab services)와 마케팅 · 판매 등 제조 이후 서비스(Post-fab services)의 부가가치 창출액이 제조(Fabrication) 단계 부가가치 창출액 보다 크다


부가가치 창출 관점에서 선진국의 서비스화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러 부품을 단순 조립하여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제조업 직무보다는 제품을 초기부터 디자인 · 설계하고 완성품을 마케팅하여 판매하는 서비스 직무의 부가가치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아이폰 제조 일자리를 잃었지만 여전히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조업 일자리에 종사해왔던 선진국 근로자'에 있습니다. ICT 기술진보로 인해 세계경제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이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제조업 근로자를 재교육시켜 서비스 직무로 이동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힘듭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혁신의 패배자'가 된 이들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 2012년 1월 21일, 뉴욕타임스 기사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지다


에릭 사라고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 제조공장에 처음 입사했을 때, 그는 엔지니어링 원더랜드에 입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1995년 그 공장은 1,5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했었다. 엔지니어인 사라고사는 빠르게 승진했고 그의 연봉은 5만 달러로 올랐다. (...)


하지만 전자산업은 변화하고 있었고, 애플은 변화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애플의 초점은 제조공정은 개선시키는 것이었다. 사라고사가 입사한 지 몇년 후, 그의 보스는 캘리포니아 공장이 해외 공장에 비해 얼마나 뒤쳐지는지 설명했다. 1,500 달러 컴퓨터를 만드는 데에 캘리포니아 공장에서는 22달러가 들었지만 싱가포르는 6달러 대만은 4.85 달러에 불과했다. 임금은 주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재고비용 및 근로자가 업무를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이 차이가 났다. (...)


지난 20년간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중임금 일자리는 사라지기 시작했다(Midwage jobs started disappearing).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오늘날 신규 일자리는 중산층에게 적은 기회만을 제공하는 서비스 직무에 쏠려있다.


대학 학위를 가진 사라고사 조차도 이러한 변화에 취약했다. 우선 캘리포니아 공장의 반복적인 업무가 해외로 이전되었다(routine tasks were sent overseas). 사라고사는 개의치 않았다. 그 후 로봇이 나왔고 경영진은 근로자를 기계로 대체하였다(replace workers with machines). 진단 엔지니어링 업무를 맡는 몇몇이 싱가포르로 보내졌다. 컴퓨터와 함께 소수의 사람만 필요해졌기 때문에, 공장의 재고를 감독하는 중간 관리자는 갑자기 해고되었다.


비숙련 업무를 하기에는 사라고사의 몸값은 너무 비쌌다. 또한 그는 상위 관리직을 맡기에는 아직 자격이 부족했다. 2002년 밤늦게 호출된 그는 해고되었고 공장을 떠났다. 그는 잠깐동안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술분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애플은 캘리포니아 공장을 콜센터로 바꾸어 놓았고,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는 시간당 12달러만 받는다.


구인활동을 시작한 지 몇개월 후, 사라고사는 절망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에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검수한 후 다시 소비자에게 보내는 임시직을 맡았다. 매일매일 사라고사는 한때 엔지니어로 일했던 건물로 출근하였는데, 이제는 시간당 10달러 임금과 함께 수천개의 유리 스크린을 닦고 오디오 포트를 테스트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 뉴욕타임스. 2012.01.21.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미국내 공장의 반복직무는 해외로 이전하였고 중간관리자와 근로자는 기계로 대체되었습니다. 한때 엔지니어로 높은 몸값을 받았던 사라고사는 이제 임시직을 맡으며 시간당 10달러의 임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미국 내에서 반복직무를 맡는 중산층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졌고, '콜센터 · 장비검수 등 아직 사람의 손이 필요한 저숙련 직무'와 '설계 · 디자인 · 마케팅 등 고숙련 직무'로 양극화 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내 임금불균등의 증가(Within Wage Inequality ↑)가 경제적 문제로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신흥국으로의 오프쇼어링 및 기술진보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이들은 '화가 난 미국인'(Angry American)이 되었고,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미국의 중산층 제조업 일자리 감소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기에 이들의 분노가 커졌던 것일까요? 앞으로 다음글을 통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감소'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 제조업 중산층 일자리를 없앤 건 '기술변화'일까? '무역'일까? 


이번글에서 살펴본 뉴욕타임스 기사는 미국이 애플 아이폰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주요 원인으로 '중국으로의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에서 확인했다시피,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무역이 아니라 기술변화가 중산층 일자리를 없앴다" 라고 생각합니다. 비숙련 근로자를 대체하고 숙련 근로자의 몸값을 높이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로 인해 임금 불균등이 커졌다는 논리 입니다.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를 문제로 지적하는 경제학자와 중국의 부상 및 오프쇼어링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대중들 간 감정적 격차는 계속해서 커져왔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대중국 무역전쟁을 요구하는 대중 · 정치인들의 요구에 대항하여, 경제학자들은 "비록 제조업 일자리는 줄었으나 서비스업 일자리가 증가하여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는 식으로 반박했습니다.


(제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누차 지적[각주:25]해왔듯이) 경제학자들의 이런식의 대응은 대중과 정치권의 외면만 불러왔습니다. 다행히도 몇몇 경제학자들은 대중과 정치권의 목소리를 이해하는 동시에 문제의 원인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중산층 일자리 상실을 깊이 연구한 경제학자들은 '기술 vs 무역'(technology vs. trade)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기술과 무역이 상호연관을 맺고 있다'(technology ↔ trade)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기업의 아웃소싱 그 자체는 국제무역의 영향 입니다. 그러나 글로벌 밸류체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ICT revolution)으로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하락(communication cost ↓)한 덕분입니다. 


즉, 오프쇼어링을 통한 무역의 영향과 ICT 발전으로 인한 기술의 영향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 입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기술 vs 무역'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기술과 무역이 어떻게 상호연관적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볼 겁니다.




※ 신흥국 경제성장으로 인한 '대수렴의 시대' → 글로벌 불균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앞으로도 살펴봐야 할 주제들이 많은 가운데, 우선 바로 다음글을 통해 "신흥국 경제성장으로 인한 '대수렴의 시대' → 글로벌 불균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1. Remarks by the President in the State of the Union Address. 2013.02.12 [본문으로]
  2. Our first priority is making America a magnet for new jobs and manufacturing. After shedding jobs for more than 10 years, our manufacturers have added about 500,000 jobs over the past three. Caterpillar is bringing jobs back from Japan. Ford is bringing jobs back from Mexico. And this year, Apple will start making Macs in America again. (Applause.)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 https://joohyeon.com/280 [본문으로]
  4. Apple will not be given Tariff waiver, or relief, for Mac Pro parts that are made in China. Make them in the USA, no Tariffs!. 2019.07.27 [본문으로]
  5. Apple’s new Mac Pro to be made in Texas. 2019.09.23 [본문으로]
  6. A Tiny Screw Shows Why iPhones Won’t Be ‘Assembled in U.S.A.’. 2019.01.28 [본문으로]
  7. "오바마 대통령의 물음은 애플이 갖고 있는 확신을 건드린 것이다. (애플이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생산하는 이유는) 단지 해외 근로자가 더 값싸기 때문이 아니다. 애플 경영진은 해외 근로자의 유순함, 근면성, 산업기술 뿐 아니라 해외 공장의 광대한 규모가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Made in U.S.A.는 더 이상 선택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The president’s question touched upon a central conviction at Apple. It isn’t just that workers are cheaper abroad. Rather, Apple’s executives believe the vast scale of overseas factories as well as the flexibility, diligence and industrial skills of foreign workers have so outpaced their American counterparts that “Made in the U.S.A.” is no longer a viable option for most Apple products." [본문으로]
  8. The answers, almost every time, were found outside the United States. Though components differ between versions, all iPhones contain hundreds of parts, an estimated 90 percent of which are manufactured abroad. Advanced semiconductors have come from Germany and Taiwan, memory from Korea and Japan, display panels and circuitry from Korea and Taiwan, chipsets from Europe and rare metals from Africa and Asia. And all of it is put together in China. [본문으로]
  9. “The entire supply chain is in China now,” said another former high-ranking Apple executive. “You need a thousand rubber gaskets? That’s the factory next door. You need a million screws? That factory is a block away. You need that screw made a little bit different? It will take three hours.”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https://joohyeon.com/284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https://joohyeon.com/284 [본문으로]
  1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13. 한국어 출판명은 '그레이트 컨버전스' [본문으로]
  14.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s://joohyeon.com/220 [본문으로]
  15.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s://joohyeon.com/258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https://joohyeon.com/219 [본문으로]
  17.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s://joohyeon.com/220 [본문으로]
  18.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s://joohyeon.com/258 [본문으로]
  19.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https://joohyeon.com/260 [본문으로]
  2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1. 한국어 출판명은 '그레이트 컨버전스' [본문으로]
  2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Posted at 2019. 9. 22. 19:32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보여주는 장면 3가지


▶ 장면 #1 -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Made in China' 제품을 쏟아내다



중국은 1990년대 개혁개방 정책 및 2001년 WTO 가입으로 '세계의 공장'(the World's Factory)[각주:1]이 되었습니다. 전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8%에서 2018년 25%로 확대되었고, 미국 · 일본 · 독일 · 영국 등 기존 선진공업국의 비중은 축소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게 된 이유 입니다. 그 이유는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인형 · 신발 · 의복 등의 노동집약적 상품을 전세계에 대규모로 공급했다는 점에만 있지 않습니다.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외국인 투자자[각주:2]들은 13억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하여 앞다투어 중국으로 진출했고, 선진국 기업들의 제품 다수가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 많은 제조업 상품들이 브랜드만 선진국 기업일 뿐 실상은 'Made in China' 입니다


말그대로 중국은 전세계 기업들의 제품을 만들어주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전세계인들은 중국에서 제조된 물건을 이용하고 있으며, 값싼 중국산 상품 덕분에 전세계 물가상승률이 낮아졌다는 연구[각주:3]는 더이상 새로운 주제가 아닙니다. 


▶ 장면 #2 -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될 '애플' 



'세계의 공장' 으로서 중국경제를 상징하는 제품이 바로 미국 애플사의 아이폰(iPhone) 입니다. 아이폰은 캘리포니아 애플 본사에서 디자인 · 설계 +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 조립되어 완성됩니다. 아이폰 뒷면에 나오듯이 말그대로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 · 중국에서 조립된 아이폰'(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 입니다.


이로 인하여, 대중국 수입품 전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으로 미국 애플의 상품이 뜬금없이(?) 피해를 보게 생겼습니다


트럼프행정부는 2018년부터 대중국 수입품 일부에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2019년 9월 1일부터 애플 왓치와 에어팟 등에, 12월 15일에는 애플 아이폰 등에 관세부과를 예고[각주:4]한 상황입니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애플 상품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지적이 연일 제기되었고, 애플 CEO 팀 쿡 또한 "(중국 외에서 만들어지는) 라이벌 삼성 제품은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애플에게 해를 끼친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각주:5]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중국에 부과한 관세로 인해 애플 가격이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세금을 내지 않는 쉬운 해결책이 있다. 애플 상품을 중국 대신 미국 내에서 만들어라. 지금 새로운 공장 건설을 시작하라."라고 말하며 지적을 일축했고, 2019년에는 팀 쿡에게 "애플의 사정을 고려하겠다"고 말은 했으나 추가조치는 없는 상황입니다.


▶ 장면 #3 - '한국vs일본' 무역분쟁에 우려를 표하는 '미국' 전자업계


  • 한국-일본 수출통제를 둘러싼 여러 협회의 최종 서한 


오늘날 세계경제 모습 '기업의 제품이 자국이 아닌 외국에서 만들어지고, 자국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부과되는 관세로 인해 자국기업이 피해를 보는 상황'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의아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한국vs일본' 무역분쟁에 우려를 표하는 '미국' 전자업계 입니다.


일본정부는 한국 사법부의 강제징용 판결을 문제삼으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 불화수소 · 포토 레지스트 등 반도체 소재 3가지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조치를 7월 4일부터 시행하였습니다. 삼성전자 · SK하이닉스와 한국 정부 일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소재를 조달하거나 국산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오랜 시일이 걸리는만큼 지금 당장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될 거라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컴퓨터기술산업협회(CompTIA) · 소비자기술협회(CTA) · 정보기술산업위원회(ITI) · 전미제조업자협회(NAM) · 반도체장비재료산업협회(SEMI) · 반도체협회(SIA) 등 미국에 근거지를 둔 6개 단체가 분쟁해결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글로벌 정보통신산업 및 제조업은 부품 등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서로 엮여있는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interwoven and complex global supply chains)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s)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수출규제정책의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변화는 공급망파괴와 배송지연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세계 기업과 근로자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글로벌 정보통신산업 및 제조업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우리는 한일 양국에 분쟁격화를 일으킬 행동을 자제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촉구한다."[각주:6] 라고 말했습니다.




※ 오늘날 경제구조와 교역방식은 과거와는 무엇이 다른가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사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앞선 3가지 장면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을 겁니다. 


"Made in China는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 아닌가? 중국이 물건 많이 찍어내는 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대중국 수입상품 관세부과로 미국기업 애플이 피해를 본다니, 역시 트럼프가 멍청한 짓을 하는구나!", "한국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없으면 당연히 다른나라 기업들도 손해를 보니까 저런 성명을 낸거겠지" 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 오늘날의 경제구조와 교역방식을 차근차근 비교해보면 간과해서는 안될 함의가 3가지 장면 속에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 과거 경제구조와 교역방식 : 소비를 목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교환


서로 멀리 떨어진 국가간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를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농식물을 재배 · 수확하면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자급자족 생활을 했습니다. 5일장 등 시장에서 다른 마을 사람들과 먹을거리를 교환하고 보따리상이 먼 지역의 농식물을 가져와 팔기도 하였으나, 상거래의 지역적 범위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즉, 국가간 교역이 활성화 되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에는 '생산과 소비가 한 공간'(bundling)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 제국주의와 증기기관 · 철도의 발명은 국제무역 시대를 열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에서 생산된 귀금속 · 향신료 · 원자재 등을 수입하여 소비하였고, 영국과 유럽대륙 국가들은 비교우위 품목에 특화하여 생산한 뒤 다른나라의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교환했습니다. 비교우위 개념을 세상에 내놓은 데이비드 리카도가 들었던 예시 '직물을 수출하는 영국과 포도주를 수출하는 포르투갈'(Cloth for Wine)[각주:7]에서 당시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컨테이너선 발명은 국가간 교역규모를 대폭 늘렸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이 만든 자동차 · 전자제품 등 제조업 상품과 중동이 채굴한 석유 및 중남미가 생산한 농산품 · 원자재 등 1차상품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소비되었습니다. 



이처럼 운송비용이 하락함에 따라 국가간 교역은 활성화 되었고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가 이루어졌습니다(1st unbundling)


이제 개별 국가들은 자국이 생산한 상품을 전부 다 소비하지 않으며, 자국이 소비하는 상품 모두를 스스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제조업 상품은 북반부(North)에 위치한 미국 · 서유럽에서 집중 생산되며, 원자재 상품은 남반구(South)에 위치한 중동 · 중남미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그리고 무역을 통해 서로 간 상품을 교환한 뒤 소비하는 'made-here-sold-there' 경제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족 : 여러번 강조[각주:8]했듯이, 국제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기 때문이며 이러한 서로 다른 가격이 국내에서 초과공급(=수출) 및 초과수요(=수입)을 만들어냅니다. 한 국가 내에서 초과공급 및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이를 무역을 통해 해결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교역 목적 및 품목은 '소비를 목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교환(final goods & cross borders for consumption)' 하는 것입니다.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최종재 상품 다르게 말해 완성품은 다른나라 국민들이 소비를 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전달됩니다. 


▶ 오늘날 경제구조와 교역방식 :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 


"소비를 목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교환하는 것을 '과거'의 경제라고 할 수 있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오늘날에도 이러한 형태의 무역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교역형태를 '과거'의 것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새로운 경제구조와 교역방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오늘날에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함에 따라 세계경제 구조와 교역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했습니다. 


과거 철도 · 컨테이너선이 물적상품의 운송비용을 낮췄다(trade costs ↓), 정보통신기술은 서로 다른 국가에 위치한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비용을 절감시켰습니다(communication costs ↓). 이제 선진국 본사에 있는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서로 간 지식과 아이디어(knowledge & ideas)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한 선진국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역할을 배분합니다. 과거 선진국에 위치했던 제조공장은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했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창출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도 여러 국가가 참여합니다. 제품에 들어가는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여러 국가가 만든 뒤 조립을 담당하는 국가로 수출하고, 마지막 제조공정을 맡은 국가가 이를 이용해 완성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제조 과정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원활한 중간재 교역을 위해 지리적으로 밀집해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생산하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을 만들어 냄

  • 출처 : 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한국어 번역본 『그레이트 컨버전스』)


이처럼 정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여러 국가가 생산에 참여하는 '글로벌 생산공유'(global production sharing) ·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등과 각자 역할을 맡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선진국(North)에 위치했던 제조업은 동아시아 등 후발산업국가(South, Factory Asia)로 이동했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간재 부품 교역을 통해 함께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글로벌 경제구조는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전세계가 소비하는 'made-everywhere-sold-there'로 진화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역 목적 및 품목은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조달(intermediate inputs & cross borders for production)' 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역의 주목적은 소비가 아니라 글로벌 생산과정 참여가 되었고, 제품 생산에 투입되는 중간재 부품이 국경을 여러번 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오늘날 경제구조와 교역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앞서 보았던 장면이 어떤 함의를 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 장면 #1 -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Made in China' 제품을 쏟아내다

→ 글로벌 생산공유에서 중국이 맡고 있는 역할이 '상품 제조'


: '많은 제조업 상품들이 브랜드만 선진국 기업일 뿐 실상은 Made in China인 모습'은 글로벌 생산공유에서 중국이 맡고 있는 역할이 '상품 제조'(Manufactures)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에서 살펴봤듯이, 1990년대 이후 중국은 가공무역(process trade)을 통해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수입해온 뒤 이를 단순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든 후 다시 수출'(imports of capital · intermediate good → assemble → re-export)하고 있습니다. 특히 컴퓨터 및 전자상품 생산과정에서 중국이 하는 일은 그저 단순조립일 뿐입니다.


만약 정보통신기술 발전이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fragmentation of production)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Made in China 제품을 쏟아내는 세계의 공장 중국은 없었을 겁니다. 


▶ 장면 #2 -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될 '애플' 

→ 선진국의 서비스화 및 달라진 무역정책의 파급영향


: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구조'는 무역정책의 파급영향을 과거와 다르게(trade policy in the era of GVC) 만들었습니다.


과거 경제구조에서는 무역정책의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구분되었습니다. 자유무역정책은 비교우위산업과 수출업자에게 이득을 주었고 보호무역정책은 비교열위 산업과 수입업자를 유리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싼 대립구도는 '비교우위 부문 vs 비교열위 부분' 혹은 '수출업자vs수입업자' 였습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대립구도는 '자국 vs 외국' 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시장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은 자기이익보호를 위해 폐쇄경제를 고집[각주:9]하거나 수입경쟁에 노출된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정책을 실시[각주:10]하는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자국의 강점을 믿고 자유무역을 주장[각주:11]하거나 자국 수출업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국 뿐 아니라 외국의 무역장벽도 낮추는 호혜적 무역자유화 방식[각주:12]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무역 및 자유무역 정책 실시배경에는 모두 "외국보다 우리나라에 유리하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무역정책의 승자와 패자를 쉽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자유무역정책이 수출업자에게 이득을 주고 보호무역정책이 수입업자에게 이득을 줄까요? 중국에서 수입되는 스마트폰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내 스마트폰 제조사를 경쟁에서 보호하는 것인가요? 중국에서 조달하는 중간재 부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이를 활용해 최종재를 만드는 미국 수출업자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보다 근본적으로 여러 국가가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글로벌 밸류체인 시대에 '자국 vs 외국'으로 양분하는 게 타당할까요? 대중국 수입품 전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으로 미국 애플의 상품이 뜬금없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은 오늘날 글로벌 경제 및 무역 구조 속에서 무역정책의 파급영향이 과거와는 다름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세금을 내지 않는 쉬운 해결책이 있다. 애플 상품을 중국 대신 미국 내에서 만들어라. 지금 새로운 공장 건설을 시작하라!" 라고 대꾸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세계화가 오프쇼어링을 유발하여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줄였다고 믿는 트럼프 대통령다운 반응[각주:13]이지만, 달라진 세계화 형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경제학자 Emily J. Blanchard는 "아이러니한건, 일자리 귀환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행정부는 관세부과를 수입중간재에 집중하였다. 이는 기업들이 미국으로 공장을 이동하기 꺼리게 만들며 대신 Factory ASIA나 Factory Europe 으로 이동케한다"[각주:14]지적[각주:15]합니다. 이제 한 국가가 제품의 모든 것을 생산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중간재와 자본재 등을 조달하여 같이 만드는 시대에, 수입중간재에 관세를 부과할수록 생산은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구조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해졌고, 이에 얽혀있는 이해관계도 딱 잘라서 구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면 #3 - '한국vs일본' 무역분쟁에 우려를 표하는 '미국' 전자업계

→ 양국 간 무역분쟁은 글로벌 밸류체인을 통해 전세계로 퍼진다


글로벌 밸류체인 시대에 여러 국가가 과거보다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한국vs일본' 무역분쟁에 우려를 표하는 '미국' 전자업계 입니다. 


양국 간 무역분쟁 혹은 보호무역정책이 다른 국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1930년대에 이미 경험했습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각 국가들은 각자도생을 꾀하며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하였고 평균 50%가 넘는 관세를 부과했고, 대공황 충격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심화되었습니다.


1930년대 보호무역주의가 수출시장 축소를 통해 전세계에 악영향을 전파했다면, 오늘날 무역분쟁은 글로벌 밸류체인으로 서로 간에 긴밀히 연결된 고리를 끊음으로써 기업의 생산에 직접적인 충격을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애플사가 생산하는 아이폰은 중국 내에 위치한 대만 폭스콘사가 제조하는데, 아이폰에 들어가는 카메라센서 · 메모리 반도체 등 중간재 부품은 한국 전자기업들이 공급합니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는 전세계 D램 및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73% · 4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서버 · 스마트폰 등 IT상품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부품이기 때문에,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위축된다면 전세계 IT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됩니다. 


즉, 일본의 반도체소재 수출규제로 한국이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미국 기업 뿐 아니라 전세계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단순히 시장규모가 축소되는 문제가 아니라 아예 전세계 전자제품 생산이 정지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한일 간 갈등격화에 미국 전자업계가 서한을 보내면서까지 깊은 우려를 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달라진 글로벌 경제구조와 교역형태를 염두에 두면서, 서한 내용 중 일부를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글로벌 정보통신산업 및 제조업은 부품 등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서로 엮여있는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interwoven and complex global supply chains)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s)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수출규제정책의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변화는 공급망파괴와 배송지연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세계 기업과 근로자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글로벌 정보통신산업 및 제조업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우리는 한일 양국에 분쟁격화를 일으킬 행동을 자제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촉구한다."[각주:16]


▶ 달라진 경제구조와 교역방식 : 기존 데이터 측정방식으로는 변화를 포착할 수 없다


1990년대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경제 및 무역 구조가 예전과는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글로벌 생산공유 · 글로벌 밸류체인 · 글로벌 공금망 · 아웃소싱 등이 학자들의 연구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깊은 연구를 위한 장벽은 '기존 데이터의 측정방식'(measurement problem)에 있었습니다기존 무역데이터는 최종재 상품이 국경을 넘어서 수출입 될 때의 금액과 양을 주로 측정했기 때문에, 중간재 부품이 여러 국가 간 국경을 얼마나 넘나드는지 · 글로벌 생산공유 과정에서 개별 국가의 기여도가 어느정도 되는지 등을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짧은 설명으로는 기존 데이터의 한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지금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합시다.




※ 달라진 경제구조와 교역방식 -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Integration of Trade and Disintegration of Production)


  • 경제학자 로버트 C. 핀스트라(Robert C. Feenstra)

  • 1998년 논문 '세계경제 속 무역의 통합과 생산의 분해'(Integration of Trade and Disintegration of Production in the Global Economy)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달라진 세계경제를 주제로 많은 논문을 썼던 학자 중 한 명이 바로 로버트 C. 핀스트라(Robert C. Feenstra) 입니다. 핀스트라는 현재까지도 경제학계 유수의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고 있으며, 그가 집필한 국제무역론 교과서는 전세계 대학원에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로버트 C. 핀스트라는 1998년 논문 <세계경제 속 무역의 통합과 생산의 분해>(Integration of Trade and Disintegration of Production in the Global Economy)을 통해 글로벌 경제 및 무역 구조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논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핀스트라는 최근의 세계경제 변화에 대해 "세계시장 통합증대는 생산과정의 분해와 함께 이루어졌다."(The rising integration of world markets has brought with it a disintegration of the production process) 라고 말합니다. 


통합(integration)과 분해(disintegration) 라는 대조되는 단어를 이용하여 핵심을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적 입니다. 그는 몇 가지 데이터를 통해 생산과정의 분해가 교역증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드러나게 됩니다.


▶ 세계경제는 통합되고 있나?


  • 1890년~1990년, 국가별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 추이

  • 출처 : Feenstra(1998)


세계경제 통합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전세계가 무역을 통해 서로 긴밀히 연결된 모습을 통합 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상품의 수출 · 수입 규모를 살펴보면 세계화가 진행된 정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핀스트라는 국가별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ratio of Merchandise Trade to GDP)이 1910년대에 비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위의 표는 대표적인 선발공업국가인 미국 · 영국 · 독일 · 일본의 비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 독일은 1913년 6.1% · 19.9%에서 1990년 8.0% · 24.0%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영국 · 일본의 경우 과거 29.8% · 12.5%에서 20.6% · 8.4%로 되려 감소했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별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의 절대값 자체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교역 규모가 커져왔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1990년 주요 선진국의 상품교역 비중은 30%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계치는 과거보다 현대에 와서 세계경제가 더 통합되었다는 직관에 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직관이 잘못되었거나 통계치가 제대로 된 측정방식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핀스트라는 통계 측정방식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위의 통계치는 'GDP 대비 비중'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분모인 GDP가 세계경제 통합 정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 비중은 왜곡되어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핀스트라는 "위의 표 대다수가 선진국인데, 이들은 오늘날 제조업 상품교역보다는 서비스 부문에 더 많이 종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이 낮게 나타난다"[각주:17]고 설명합니다. 


선진국의 서비스업 발전으로 인한 제조업의 비중 축소(not 절대규모 축소)[각주:18]는 이전글에서 다른 경제학자도 논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상품교역의 절대규모가 증가했음에도 분모인 GDP가 다른 요인으로 더 크게 증가했다면, 상품교역 비중은 낮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생산과정의 분해가 교역증대를 만들어냈다 


  • 1890년~1990년, 국가별 상품 부가가치 대비 상품교역 비중 추이

  • 출처 : Feenstra(1998)


이 점을 고려하여 핀스트라는 상품부문과 서비스부문의 부가가치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GDP 대신 상품 부가가치만을 따로 떼어내어서 분모로 사용합니다. 위의 표는 1890년~1990년, 국가별 상품 부가가치 대비 상품교역 비중(ratio of Merchandise Trade to Merchandise Value-Added)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수치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은 30%도 채 기록하지 못했으나, 상품 부가가치 대비 상품교역 비중은 국가별로 최대 85.9%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990년 미국 · 영국 · 독일 · 일본은 각각 35.8% · 62.8% · 57.8% · 18.9%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 프랑스 · 스웨덴의 경우 70년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운송비용 하락과 여러 국가의 무역자유화 정책이 세계화를 진행시켰다'는 우리의 직관이 타당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핀스트라가 본 논문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생산과정의 분해로 인해 중간재 부품이 몇번씩이나 국경을 넘나들었고, 이는 더블카운팅을 유발하여 교역 통계치를 상향시켰다"[각주:19] 입니다. 


'소비를 목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교환'했던 전통적인 무역구조에서는 완성된 제조품이 한번 국경을 넘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출발지인 국가는 수출을 기록하고 도착지인 국가는 수입을 기록합니다. 수출입 규모를 늘리는 것은 얼마나 많은 상품을 판매하느냐 입니다.


반면,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하는 오늘날 무역구조에서는 중간재 부품이 여러번 국경을 넘게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스마트폰을 디자인하고 설계한 뒤 제작하려 합니다. 상품 생산과정을 살펴보면, 일본이 수출한 기초소재는 한국에 들어와 반도체공정에 쓰이고, 반도체에 첨가되어 중국으로 향한 후 스마트폰에 실려 미국으로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디자인과 설계는 국경을 4번 넘게됩니다. 일본산 기초소재는 3번, 한국의 반도체는 2번, 중국의 스마트폰은 1번 넘습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스마트폰에 담겨져있는 미국의 디자인과 설계만을 따로 빼내어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각 생산단계별 부가가치를 디자인 및 설계(10) · 기초소재(30) · 반도체(60) · 스마트폰(100)이라고 합시다. 미국은 부가가치가 10인 디자인과 설계를 수출한 뒤 100인 스마트폰을 수입했기 때문에 총 수출입액수는 110이 됩니다. 만약 미국이 비교열위인 기초소재만을 수입한 뒤 국내에서 나머지 생산과정을 수행했다면, 수입 30만 기록됐을 겁니다. 혹은 온전히 중국이 만든 스마트폰만 수입했더라면 수입 100만 기록됐겠죠.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생산과정 중간에 위치한 한국은 수입 30과 수출 60을 기록하게 됩니다. 또한 한국이 스마트폰을 수입했다면 수입 130과 수출 60으로 교역규모가 더 커집니다. 만약 미국으로부터 디자인 및 설계를 받고 일본으로부터 기초소재를 수입한 뒤에 국내에서 생산하여 소비했다면 수입 40만 기록됐을 겁니다. 


즉,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일수록 자연스레  총무역규모(gross trade)가 크게 측정되는 '더블카운팅'(double counting) 이슈가 발생합니다.  글로벌 밸류체인 · 글로벌 생산공유 등 생산과정을 분해하는 새로운 무역구조가 확산될수록 교역규모는 늘어나고 각 국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통합됩니다.


핀스트라가 "세계시장 통합증대는 생산과정의 분해와 함께 이루어졌다."(The rising integration of world markets has brought with it a disintegration of the production process) 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미국기업은 상품 가공활동을 더 이상 미국 내에서 하지 않는다 


  • 1925년-1995년, 미국 수출입 중 품목별 비중

  • 출처 : Feenstra(1998)


핀스트라는 미국이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고 있다는 근거로 '미국 수출입 중 품목별 비중'을 제시합니다. 위의 표는 1925년-1995년 미국 수출입 중 음식료 · 산업용 원자재(Industrail supplies and materials) · 자본재(Capital goods) · 소비재 · 차량 및 부품 등의 비중 변화를 보여줍니다.


과거 미국 수입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품목은 산업용 원자재 였습니다. 1925년 68.2% · 1950년 62.4% · 1965년 53.3%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본재 비중은 1965년까지 10%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면, 과거 미국은 비교열위 품목인 원자재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제조상품을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부터 수입품목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산업용 원자재의 비중이 1980년 31.3% · 1995년 18.2%로 급락한 반면, 자본재의 비중은 1980년 19.0% · 1995년 33.6%로 급증합니다. 그리고 완성품인 소비재의 비중도 1980년 21.5% · 1995년 24.3%로 증가합니다.


핀스트라는 수입품목 중 자본재와 완성품인 소비재의 비중이 확대되는 것을 근거로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은 공정과정이 상당히 진행되어있다. 이는 미국기업이 공정활동을 자국에서 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각주:20]라고 주장합니다. 


이제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미국이 맡은 역할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이고, 상품 제조는 개발도상국인 중국 등에서 맡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계치에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핀스트라는 "외국에서 이루어진 제조업 혹은 서비스 활동이 자국에서의 활동과 결합하고 있다. 기업은 생산과정 아웃소싱을 늘리는 것이 이윤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제 생산은 국내혹은 외국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미국 제조업이 건설해온 수직통합적 생산방식(the vertically-integrated mode of production) 일명 포디즘이 몰락함을 보여주고 있다"[각주:21] 라고 말하며, 세계경제 변화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합니다.




※ 미국의 수직통합적 생산방식 몰락, 그러나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 증가


  • 위 : 왼쪽부터, 데이비드 후멜스(David Hummels) · 준 이시히(Jun Ishii) · 케이-무 이(Kei-Mu Yi)

  • 아래 : 이들의 2001년 논문 <세계무역 속 수직적 특화의 본질과 성장>(<The Nature and growth of vertical specialization in world trade>)


로버트 C. 핀스트라의 주장대로 1990년대 들어 미국 내 수직통합적 생산방식은 해체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미국 내에서 행해지던 상품제조 활동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세계적 차원의 수직적 특화 구조'(Vertical Specialization)가 만들어졌습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후멜스(David Hummels) · 준 이시히(Jun Ishii) · 케이-무 이(Kei-Mu Yi) 3명은 2001년 논문 <세계무역 속 수직적 특화의 본질과 성장>(<The Nature and growth of vertical specialization in world trade>)을 통해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를 측정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합니다. 

핀스트라의 1998년 논문은 "세계경제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지만 이와 함께 연구자들이 넘어야 할 과제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개별 국가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정도를 어떻게 측정해야 하나?" 입니다. 

글로벌 생산과정 분해는 중간재 부품이 여러번 국경을 넘는 상황을 만들었고, 더블카운팅 때문에 기존의 측정방식인 총수출 및 총수입 (gross export & import)이 과대평가 되는 문제를 시정해야 했습니다.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일수록 자연스레 총무역규모가 커지니, 그냥 총무역규모로 판단하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 국가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여 통계치가 큰 건지 아니면 그냥 최종재 거래를 많이하여서 그런 것인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글로벌 밸류체인 참여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글로벌 밸류체인 다르게 말해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 구조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하며, 전통적 무역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합니다. 

과거와 오늘날 무역이 어떻게 다른지 앞서 계속 살펴봐왔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 수직적 특화란 무엇인가

● 전통적 무역 (Traditional Trade)

일반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① 원자재를 이용해 중간재 생산 → ② 중간재와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를 이용하여 최종재 상품 제조  ③ 완성된 최종재를 국내에 판매하거나 수출 하는 단계를 거칩니다. 

전통적인 무역 구조 하에서는 첫째, 자국 내에서 원자재 채굴 → 중간재 생산 → 최종재 생산 → 국내 판매 혹은 수출. 둘째, 원자재 혹은 중간재 수입 → 최종재 생산 → 국내 판매만 이루어졌습니다. 

상품이 국경을 넘는 경우는 온전히 국내에서 생산과정을 거친 최종재가 수출되거나 아니면 국내 생산 및 소비를 위해 원자재 및 중간재가 수입될 때만 발생하였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무역 구조에서 국경을 넘는 경우는 최대 1번 이었습니다.

● 수직적 특화 (Vertical Specialization)

a. 상품이 2단계 이상의 연속 단계를 통해 생산된다[각주:22]

b. 상품 생산과정에서 2개 이상의 국가가 부가가치를 제공한다[각주:23] 

c. 상품 생산과정에서 최소한 1개의 국가가 수입 중간재를 반드시 사용해야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산출물은 반드시 수출되어야 한다[각주:24]

3인방이 정의한 수직적 특화 구조는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합니다. 

전통적 무역은 a와 b는 해당되지만, c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국에서 만든 중간재를 이용하여 만든 최종재를 수출하거나, 수입 중간재를 이용해 만든 최종재를 국내에서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수직적 특화는 '원자재 혹은 중간재 수입 → 국내에서 최종재 생산 → 다시 외국으로 수출하는 생산과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수직적 특화에서 중간재 혹은 최종재는 최소 2번이나 국경을 넘게 됩니다.

수직적 특화 구조를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아래 그림을 살펴봅시다.

  • 수직적 특화 개념도
  • 출처 : Hummels, Ishii, Yi (2001)

위의 그림에서 수직적 특화는 국가 1로부터 중간재를 수입(A)한 뒤, 국가 2가 최종재를 만들고 이를 국가 3으로 수출(E)하는 A → E 경로를 의미합니다. 수입 중간재를 이용하여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하거나(A → D), 국내 중간재로 만든 최종재를 수출(B&C → E)하는 경우는 수직적 특화가 아닙니다.


▶ 수직적 특화에 참여하는 방식 및 정도


따라서, 개별 국가들이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에 참여하는 방식은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수입 중간재를 이용하여 국내에서 최종재를 생산한 뒤 외국으로 수출. 위의 그림에서는 국가 2가 해당되며, 현실에서는 한국에서 반도체를 수입해서 스마트폰을 제조하고 이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중국을 생각하면 됩니다.

둘째, 제3국으로 수출될 최종재 생산에 투입되는 중간재를 수출. 말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위의 그림에서 국가 1과 현실 속 한국을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은 제3국으로 수출될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중국으로 중간재 부품인 반도체를 수출합니다. 

3인방은 개별 국가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정도를 이러한 2가지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VS는 수입 중간재를 이용하여 국내에서 최종재를 생산한 뒤 외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을 측정한 값이며, VSI는 제3국으로 수출될 최종재 생산에 투입되는 중간재를 수출하는 방식을 측정한 값입니다. 


  • 1972년-1990년, 미국 총수출 중 VS 방식 수출이 차지한 비중 추이
  • 동그라미가 있는 선은 석유품목을 제외한 것
  • 출처 : Hummels, Ishii, Yi (2001)

위의 그래프는 1972년-1990년 미국 총수출 중 VS 방식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VS Share)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이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 구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2년 VS 비중은 6%에 불과했지만 1990년 11%로 증가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 미국기업의 아웃소싱이 더 활발히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오늘날 값은 더 클겁니다.




※ 글로벌 밸류체인 교역에서 각국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는 어느정도일까?


이렇게 경제학계 내에서 새로운 경제구조 및 교역방식을 이해하는 정도는 깊어져 갔습니다. 기존 수출입 데이터가 놓치고 있던 변화 양상을 포착해내었고,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도 개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에게는 답해야 할 물음이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글로벌 밸류체인 교역에서 각국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는 어느정도일까?"(value-added) 입니다.


전통적인 무역 구조에서는 수출액은 대부분 국내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를 반영하고 있었고 반대로 수입액은 외국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수지가 우리 재보의 준칙이다" 라고 말하는 중상주의가 유행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밸류체인 무역 구조에서는 단순히 총수출 및 총수입 (gross exports & imports) 수치만 가지고 무역득실과 규모를 판단하면 심각한 오류가 발생합니다.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가일수록 몇번씩이나 국경을 오가는 중간재 부품으로 인해 더블카운팅 문제가 발생하여 총수출입 규모는 커지는데, 총수출입 통계치에서 자국과 외국에서 창출된 부가가치가 각각 어느정도 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총수출입 교역과 부가가치 교역 간 차이로 인해 왜곡되는 양자 무역수지


경제학자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하비에르 로페즈-곤잘레스(Javier Lopez-Gonzalez)는 2015년 논문 <공급망 무역 : 글로벌 패턴의 모습과 몇가지 검증할 수 있는 가설들>(<Supply-chain Trade: A Portrait of Global Patterns and Several Testable Hypotheses>)을 통해, 기존 측정치인 총수출입과 부가가치 교역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멕시코가 10달러짜리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이 경우 멕시코는 무역흑자 10달러를 기록하고, 미국은 무역적자 10달러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런데 멕시코가 생산한 자동차의 부가가치를 분해해보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자 무역수지를 기록하는 게 문제(distortion of bilateral trade balance)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글로벌 밸류체인 교역에서 국내외 부가가치를 분해

  • 출처 : Baldwin, Lopez-Gonzalez (2015)


멕시코가 만든 10달러짜리 자동차에는 외국에서 수입한 중간재 3달러 + 국내에서 만든 중간재 2.5달러 + 그리고 완성품이 창출한 순부가가치 4.5달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맨 왼쪽 그림)


여기에서 수입산 중간재 철강을 또 분해해보니, 여기에는 호주 부가가치 1달러 + 멕시코 부가가치 1달러 + 미국 부가가치 1달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호주산 철광석과 멕시코산 기초소재를 이용하여 철강재를 만들고 다시 멕시코로 수출했음을 의미합니다. (가운데 그림의 윗부분)


또한, 멕시코가 만든 중간재 가죽 및 플라스틱을 분해해보니, 여기에는 멕시코 부가가치 2달러 + 미국 부가가치 0.5달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수입한 원재료로 멕시코가 가죽과 플라스틱을 만들었음을 의미합니다. (가운데 그림의 중간부분)


중간재 부가가치를 국가별로 재분류해보니, 외국에서 조달한 중간재 부가가치는 호주 철광석 1달러 + 미국 철강재 1달러 + 미국 가죽 및 플라스틱 원재료 0.5달러로 총 2.5달러 입니다. 멕시코 내에서 만들어진 중간재 부가가치는 3달러 입니다. (맨 오른쪽 그림)


처음에는 멕시코가 만든 10달러짜리 자동차에 외국에서 수입한 중간재 3달러 + 국내에서 만든 중간재 2.5달러가 들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좀 더 세부적으로 분해해보니 외국에서 수입한 중간재 2.5달러와 국내에서 만든 중간재 3달러가 있었습니다. 이는 글로벌 밸류체인을 세부적으로 쪼갤수록 우리가 아는 수치와 값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왼쪽 : 명시적으로 관측되는 전통적인 무역 흐름

  • 오른쪽 : 숨겨져있는 부가가치 무역 흐름

  • 출처 : Baldwin, Lopez-Gonzalez (2015)


이제 전통적인 무역에 따른 수출입 규모와 부가가치 무역에 따른 수출입 규모를 비교해 봅시다.


멕시코가 10달러짜리 자동차를 미국으로 수출했으니, 전통적인 총수출입(gross exports & imports) 측정방식으로는 멕시코 무역흑자 10달러와 미국 무역적자 10달러가 기록됩니다. 


그런데 자동차에 들어간 중간재와 부품이 어디에서 왔는지 세부적으로 따져보니, 멕시코 내에서 창출된 부가가치가 미국으로 수출된 액수는 7.5달러(멕시코산 중간재 3달러 + 자동차 완성품 순부가가치 4.5달러)에 불과합니다. 미국산 부품 1.5달러는 멕시코의 수출액과 미국의 수입액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호주산 철광석 1달러도 제외되어야하죠.


따라서, 부가가치 교역 기준으로 멕시코 무역흑자 7.5달러와 호주 무역흑자 1달러를 기록하고, 미국은 무역적자 8.5달러가 됩니다. 멕시코와 미국 간 양자 무역수지를 부가가치로 따진다면, 미국의 대멕시코 무역적자는 10달러에서 7.5달러로 줄어듭니다. 미국의 대멕시코 수입액(gross imports) 10달러 중 2.5달러는 미국 내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이며 1달러는 멕시코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겁니다.


▶ 총수출입 교역과 부가가치 교역 간 차이로 파악하는 글로벌 밸류체인 참여도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밸류체인이 확산됨에 따라 기존의 총수출입 교역(gross trade)과 새롭게 주목해야 할 부가가치 교역(value-added trade) 간 괴리가 심해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양자간 무역수지 왜곡 뿐 아니라 전세계 교역규모를 측정함에 있어서도 중간재 부품 교역의 더블카운팅이 야기하는 뻥튀기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밸류체인을 통해 전세계 교역규모가 과대평가 되는 이유를 단순하게 나타내면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상품이 세 나라를 오가면서 전세계 교역규모는 210을 기록하지만, 실제 부가가치 교역규모는 110에 불과합니다. B국가는 A국가로부터 수입한 부가가치 100인 중간재에 10을 더했을 뿐인데, C국가로 완성품을 수출하면서 10이 아닌 110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글로벌 밸류체인에 속해있는 국가들끼리 중간재 교역이 많이 오갈수록 더블카운팅은 누적되고 실제 부가가치 창출액에 비해 전세계 교역규모는 더더욱 커집니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하면 "기존의 총수출입 교역규모(gross trade)보다 새롭게 주목해야 할 부가가치 교역규모(value-added trade)가 작은 국가 및 산업일수록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C. 존슨(Robert C. Johnson)과 길레르모 노구에라(Guillermo Noguera)는 2014년 논문 <부가가치 수출에 관한 5가지 사실과 거시경제 및 국제무역 연구에 미치는 함의>(<Five Facts about Value-Added Exports and Implications for Macroeconomics and Trade Research>)을 통해, 국가별 · 산업별 총수출입 교역 수치와 부가가치 교역 수치 간 괴리를 보여줍니다.


  • 2008년 전세계 산업별 총수출(Gross exports)과 부가가치 수출(Value-added exports)의 차이

  • 출처 : Johnson(2014)


위의 그래프는 2008년 기준 전세계 산업별 총수출(Gross exports)과 부가가치 수출(Value-added exports)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서비스업 보다는 제조업이 글로벌 밸류체인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거라 직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제조업은 총수출 보다 부가가치 수출이 적게 나옵니다.  

  • 2008년 중국의 산업별 총수출(Gross exports)과 부가가치 수출(Value-added exports)의 차이
  • 출처 : Johnson(2014)

위의 그래프는 2008년 중국의 산업별 총수출(Gross exports)과 부가가치 수출(Value-added exports)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전자 및 광학장비(Electrical and Optical Equipment) 산업에서 괴리가 심한데, 이러한 모습은 중국 전자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고 있음을 또 다시 증명[각주:25]해주고 있습니다. 

▶ 글로벌 밸류체인 파악을 위한 전세계 경제학자들의 공헌


멕시코 자동차 수출에서도 잠깐 느끼셨을 수 있지만, 여러 국가를 오가는 상품의 부가가치를 국적별로 분해하는 건 매우 힘든 작업입니다.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와 교역방식을 올바로 측정하고자 했던 경제학자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정확한 수치와 현황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 부가가치 교역을 측정하는 데이터베이스와 관련 연구들

  • 출처 : Johnson (2014)


2000년대 들어서 전세계 경제학자들은 부가가치를 분해할 수 있는 글로벌 단위의 산업연관표(Global Input-Output Table)을 보완하거나 새로 만들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WTO-OECD TiVA Database · World Input-Output Database 등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관련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로는  로버트 C. 존슨(Robert C. Johnson) · 길레르모 노구에라(Guillermo Noguera) ·  로버트 쿠프먼(Robert Koopman) · 찌 왕(Zhi Wang) · 샹-진 웨이(Shang-Jin Wei) · 마르첼 P. 티머(Marcel P. Timmer) ·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각주:26]




※ 글로벌 밸류체인 확산이 거시경제 · 국제무역 · 고용에 미친 영향


'글로벌 밸류체인'(GVC)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계 경제 및 무역 구조는 거시경제 · 국제무역 · 고용 등에 과거와는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 왜곡된 양자 무역수지, 글로벌 무역시스템을 불안정하게 하다


미국은 2017년 기준 중국으로부터 약 6,000억 달러를 수입하고 중국으로 약 2,000억 달러를 수출하기 때문에, 4,000억 달러 수준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비판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총수출입으로 측정한 무역수지 균형(gross balance)을 근거로 무역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 이유는 1980년대 마틴 펠드스타인이 말했던 '저축과 투자의 균형'[각주:27]과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멕시코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부가가치 교역으로 측정한 균형(value-added balance)으로는 무역적자 규모가 더 적게 측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미국의 대중국 및 대일본/대한국 무역수지 균형을 기존의 총무역글로벌 밸류체인에 부합하는 부가가치를 이용해 나타내었다

  • 부가가치로 측정했을 때,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줄어들고 대일본/대한국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확대된다

  • 출처 : Johnson(2014)


위의 그래프는 미국의 대중국 및 대일본/대한국 무역수지 균형을 기존의 총무역(gross balance)과 글로벌 밸류체인에 부합하는 부가가치(value-added balance)를 이용해 나타낸 것입니다. 


2009년 기준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총무역 측정치 2,000억 달러 수준에서 부가가치 측정치 1,500억 달러 수준으로 무려 20%나 줄어듭니다. 반면, 대일본/대한국 무역수지 적자는 250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이번글에서 누차 설명해왔던 일본 → 한국 → 중국 →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 안에는 한국과 일본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가가치 기준으로도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큰 거 아니냐" 라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지만,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점은 "상황을 왜곡하는 기존의 무역수지 균형 데이터가 양국 간 교역관계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09년-2013년 4년동안 WTO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파스칼 라미(Pascal Lamy)는 2011년 1월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칼럼[각주:28]을 통해 이 점을 지적합니다. 


파스칼 라미 총장은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아이폰 액수는 매년 19억 달러이고 이것이 무역적자에 기여한다. 그러나 만약 부가가치 기준으로 측정한다면 규모는 0.73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현재 총무역액(gross value)로 측정되고 있는 국제무역 데이터는 상황을 잘못 전달할 수 있으며, 이미 보호주의 압력이 거센 상황에서 미중 양자관게가 더 악화될 있다(A distorted trade picture can inflame bilateral relations)"고 지적합니다. 


▶ 미국기업의 아웃소싱이 미국 내 임금불균등을 심화시킨다. 그런데...


아까 살펴본 로버트 C. 핀스트라의 연구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려 봅시다. 


핀스트라는 미국 수입 중 자본재 품목 비중이 증가했다는 것을 근거로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은 공정과정이 상당히 진행되어있다. 이는 미국기업이 공정활동을 자국에서 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미국이 맡은 역할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이고, 상품 제조는 개발도상국인 중국 등에서 맡고 있습니다.


이때, 핀스트라가 논문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주제는 '기업들의 아웃소싱이 미국 내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이었습니다. 제조업 직무는 비숙련 근로자가 주로 종사해왔으며,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직무는 상대적으로 숙련 근로자가 일하는 분야입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서비스 일자리가 늘어나는 변화는 '숙련 근로자와 비숙련 근로자 간의 임금불균등을 확대시키도록 작용'(wage inequality ↑)하게 됩니다. 


여기서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기업의 아웃소싱으로 인해 임금불균등이 확대될 때, 근본원인을 기술발전에서 찾아야 하느냐 무역에서 찾아야 하느냐'(technology vs. trade) 입니다. 기업의 아웃소싱 그 자체는 국제무역의 영향 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밸류체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 덕분입니다. 


1990년대-2000년대 경제학자들은 임금불균등의 원인이 기술변화에 있느냐 무역에 있느냐를 두고 첨예하게 논쟁[각주:29]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보호무역 정책이 실시될 가능성을 염려하며 애써 무역이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을 외면해 왔습니다. 


이때 핀스트라는 아웃소싱을 통해 국제무역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또한 아웃소싱 증대는 통신기술의 발전 덕분이라는 점을 말했습니다. 그는 "수입경쟁 부문의 고용 및 임금 변화를 설명할 때, 아웃소싱을 통한 무역과 ICT 발전을 통한 기술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다"[각주:30] 라고 말하며 논의의 폭을 넓히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미국 제조업 고용 감소 현상에 대해서는 다른글에서 더 깊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 '기술발전'이 만들어낸 글로벌 밸류체인, 왜 '동아시아'에 집중되었을까?


로버트 C. 핀스트라의 설명처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이 없었다면 여러 국가가 생산에 참여하는 '글로벌 생산공유'(global production sharing) ·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등은 불가능 했을 겁니다.


달라진 세계경제 속에서 우리는 '한국 · 미국 · 중국이 함께 만든 아이폰'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아이폰은 없거나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하고 있을 겁니다.   


  • 2000년과 2017년, Simple GVC 교역 네트워크 및 Complex GVC 교역 네트워크

  • 17년 사이 중국과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 출처 : WTO. 2019. Global Value Chain Development Report Ch.01 Recent patterns of global production and GVC participation


그런데... 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국끼리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지 않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그 중에서도 선진국과 동아시아 간 글로벌 밸류체인이 발전한 것일까요? 막연히 '13억에 달하는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이유로 들기에는 무언가 다른 요인도 작용했을 것 같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정보통신기술이 어떻게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도록 도왔는지 그리고 왜 선진국의 제조업이 동아시아로 이동한 이유를 신경제지리학신성장이론을 이용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개방정책을 시작한 1979년 8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1992년 110억 달러 · 2002년 527억 달러 · 2018년 1,390억 달러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참고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3. 이 주제에 관한 연구는 수없이 많지만... 최근(?)에 가까운 연구 하나를 링크. Feenstra et al. 2018. How Did China's WTO Entry Affect U.S. Prices? [본문으로]
  4. Apple iPhones Get Tariff Reprieve, But Other Tech Gear Still Hit. 2019.08.14 [본문으로]
  5. Apple CEO warns Trump about China tariffs, Samsung competition. 2019.08.19 [본문으로]
  6. Dear Minister Sekō and Minister Yoo: Our trade associations represent leading companies in the global information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 and broader manufacturing industries that generate trillions of dollars in revenue annually and fuel economic growth and innovation around the world. We write to express our concern regarding recently announced export restrictions on certai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materials, and request efforts for swift resolution of this issue to reduce harm to the global economy due to regulatory uncertainty, potential supply chain disruptions, and delays in shipments that may result from this ongoing dispute. Global ICT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rely on interwoven and complex global supply chains and justin-time inventory to efficiently source components, chemicals, materials, and technology that has led to substantial innovation and growth. Japan and South Korea are important players in these global value chains. Non-transparent and unilateral changes in export control policies can cause supply chain disruptions, delays in shipments, and ultimately long-term harm to the companies that operate within and beyond your borders and the workers they employ. We therefore urge both countries to expeditiously seek resolution of this issue and refrain from actions that could escalate the situation further in order to avoid potentially long-term damage to the global ICT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More broadly, we also urge all countries to rely on multilateral approaches to ensure that changes to export control policies are based on national security concerns and implemented in a transparent, objective, and predictable manner. Thank you for your consideration of this matter. Signed, Computing Technology Industry Association (CompTIA) 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 (CTA) Information Technology Industry Council (ITI) 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 (NAM) SEMI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IA)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s://joohyeon.com/266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1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https://joohyeon.com/279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14. A noteworthy irony, given President Trump’s stated goal to bring jobs back to US shores, is that the administration has imposed new tariffs disproportionately on imported intermediate goods (Bown and Zhang 2019)— the very inputs that are necessary for US manufacturers to produce and sell their products competitively in the US and global markets. If the intent is to induce US manufacturers to ‘re-shore’ production to the US (or to dissuade US firms from moving final assembly/downstream production overseas), lower tariffs on imported intermediate goods would be in order. Higher tariffs on intermediate goods – together with increased uncertainty over the future of US tariff policy more generally– run the risk of inducing firms to shift their current production patterns away from the US and into ‘factory Asia’ or ‘factory Europe’. [본문으로]
  15. Emily J. Blanchard. 2019. Trade Wars in the GVC area [본문으로]
  16. Dear Minister Sekō and Minister Yoo: Our trade associations represent leading companies in the global information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 and broader manufacturing industries that generate trillions of dollars in revenue annually and fuel economic growth and innovation around the world. We write to express our concern regarding recently announced export restrictions on certai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materials, and request efforts for swift resolution of this issue to reduce harm to the global economy due to regulatory uncertainty, potential supply chain disruptions, and delays in shipments that may result from this ongoing dispute. Global ICT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rely on interwoven and complex global supply chains and justin-time inventory to efficiently source components, chemicals, materials, and technology that has led to substantial innovation and growth. Japan and South Korea are important players in these global value chains. Non-transparent and unilateral changes in export control policies can cause supply chain disruptions, delays in shipments, and ultimately long-term harm to the companies that operate within and beyond your borders and the workers they employ. We therefore urge both countries to expeditiously seek resolution of this issue and refrain from actions that could escalate the situation further in order to avoid potentially long-term damage to the global ICT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More broadly, we also urge all countries to rely on multilateral approaches to ensure that changes to export control policies are based on national security concerns and implemented in a transparent, objective, and predictable manner. Thank you for your consideration of this matter. Signed, Computing Technology Industry Association (CompTIA) 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 (CTA) Information Technology Industry Council (ITI) 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 (NAM) SEMI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IA) [본문으로]
  17. But the figures in Table 1 do not tell the whole story. The comparisons there are for industrial countries, which have had increasing shares of their economies devoted to services rather than ‘‘merchandise’’ trade like manufacturing, mining and agriculture. (...) For all these reasons, the merchandise component of GDP is shrinking, so that merchandise trade relative to GDP is pulled down for this reason. [본문으로]
  18.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19. A final explanation, of particular relevance to this paper, is that the disintegration of production itself leads to more trade, as intermediate inputs cross borders several times during the manufacturing process. This leads to an upward bias in the ratios reported in Table 2, because while the denominator is value-added, the numerator is not, and will ‘‘double-count’’ trade in components and the finished product (for example, automobile parts and finished autos are both included in trade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This is surely an important factor in the great surge in exports from the Asian newly-industrialized countries. [본문으로]
  20. The data presented in Table 3 indicate that products are being imported into the United States at increasingly advanced stages of processing, which suggests that U.S. firms may have been substituting away from these processing activities at home. [본문으로]
  21. The rising integration of world markets has brought with it a disintegration of the production process, in which manufacturing or services activities done abroad are combined with those performed at home. Companies are now finding it profitable to outsource increasing amounts of the production process, a process which can happen either domestically or abroad. This represents a breakdown in the vertically-integrated mode of production—the so-called ‘‘Fordist’’ production, exemplified by the automobile industry—on which American manufacturing was built. [본문으로]
  22. a good is produced in two or more sequential stages [본문으로]
  23. two or more countries provide value-added during the production of the good, [본문으로]
  24. at least one country must use imported inputs in its stage of the production process, and some of the resulting output must be exported.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6. Baldwin, Richard, and Javier Lopez-Gonzalez. “Supply-Chain Trade: A Portrait of Global Patterns and Several Testable Hypotheses.” NBER Working Paper 18957.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Washington, DC, 2013 ////////// Hummels, David, Jun Ishii, and Kei-Mu Yi. “The Nature and Growth of Vertical Specialization in World Trade.”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 2001, 54:75–96. ////////// Hummels D, Ishii J, Yi K M. The Nature and Growth of Vertical Specialization in World Trade.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 2001, 54(1): 75-96. ////////// Johnson R C, Noguera G. Accounting for Intermediates: Production Sharing and Trade in Value Added.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 2012, 86(2): 224-236. ////////// Koopman R B, Wang Z, Wei S J. Estimating Domestic Content in Exports When Processing Trade is Pervasive.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2012, 99(1): 178-189. ////////// Koopman R B, Wang Z, Wei S J. Tracing Value-Added and Double Counting in Gross Exports.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2014, 104(2): 459-494. ////////// Leontief, W. “Quantitative Input and Output Relations in the Economic System of the United States.”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1936, 18: 105–125. ////////// Miller, R. E., and P. D. Blair. Input–output Analysis: Foundations and Extensio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 Miller R E, Temurshoev U, Output Upstreamness and Input Downstreamness of Industries/Countries in World Production. International Regional Science Review, November 5, 2015 0160017615608095 ////////// Timmer, M., A. A. Erumban, J. Francois, A. Genty, R. Gouma, B. Los, F. Neuwahl, O. Pindyuk, J. Poeschl, J.M. Rueda-Cantuche, R. Stehrer, G. Streicher, U. Temurshoev, A. Villanueva, G.J. de Vries. “The World Input-Output Database (WIOD): Contents, Sources and Methods.” 2012. WIOD Background document available at www.wiod.org. ////////// Timmer, M. P., Los, B., Stehrer, R. and de Vries, G. J. (2016), "An Anatomy of the Global Trade Slowdown based on the WIOD 2016 Release", GGDC research memorandum number 162. ////////// Wang Z, Wei S J, Zhu K. Quantifying International Production Sharing at the Bilateral and Sector Level. NBER Working Paper Series, 2013.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s://joohyeon.com/274 [본문으로]
  28. ‘Made in China’ tells us little about global trade. 2011.01.25 [본문으로]
  29.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30. In fact, the whole distinction between ‘‘trade’’ versus ‘‘technology’’ becomes suspect when we think of corporations shifting activities overseas. The increase in outsourcing activity during the 1980s was in part related to improvements in communication technology and the speed with which product quality and design can be monitored, which was in turn related to the use of computers. A good example of this is the ‘‘retailing revolution’’ that has occurred during the 1980s, as with the development of large-scale discount stores such as Walmart and Target in the United States. The ability of these stores to offer lower prices has depended on an extensive system of outsourcing to low-wage countries, with new inventory methods and rapid communication allowing for design changes that are frequently needed in apparel. This illustrates that trade (through outsourcing) and technology (through computerized communication and inventories) are complementary rather than competing explanations for the changes in employment and wages in the import-competitive sectors.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Posted at 2019. 9. 4. 22:4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 1992년 1월 18일 - 2월 21일, 덩샤오핑 남순강화(南巡講話, Southern Tour)


- 사진 출처 : 동아일보


덩샤오핑 남순강화 발언 : 


"중국이 사회주의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고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어떤 길을 가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동요하지 말고 계속 발전하고 인민의 생활을 계속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민들이 믿고 지지할 것입니다."


- 덩샤오핑 발언 출처 : '미국의 소리'


→ 덩샤오핑은 1979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론'을 제시하며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중국은 선전 · 주하이 · 산터우 · 하문 · 하이난 등 5개 지역에 경제특구(SEZ, Special Economic Zones)를 설치하여 외국인직접투자를 유치하였고, 연해지역을 중심으로한 경제발전계획을 세웁니다. 또한, 1986년 당시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 이었던 GATT에 재가입 의사[각주:1]를 내비치며 세계경제로 진출할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1989년 6월 천안문항쟁이 벌어지며 GATT 가입 논의는 중단되었고 중국은 다시 폐쇄시장의 길로 돌아서려 했습니다. 미국 등 서구는 중국의 정치 및 인권탄압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가입 논의를 일시중단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 1989년-1991년 동안 소련 · 동독 등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중국 내에서도 개혁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당원으로 돌아가있던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 Southern Tour)를 통해 개혁개방의 불씨를 다시 키웁니다. 덩샤오핑은 두 달에 걸쳐 주하이 · 선전 · 상하이 등 남부지방을 시찰하며 "중국이 사회주의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고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어떤 길을 가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라고 발언했습니다.


중국 장쩌민 주석은 덩샤오핑의 뜻을 이어 받아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시하였습니다. 장쩌민 주석은 1992년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수립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임기동안 경제특구신설 · 외국인투자 유치 · 무역관리체제 개혁 · 환율제도 개혁 · 관세율 인하 등 광범위한 경제개혁을 해나갑니다. 40%가 넘던 중국의 평균 관세율은 1992년과 1993년 두 차례의 관세인하를 통해 35.9%가 되었습니다. 


특히 1992년부터 미국과 중국 간 GATT 가입 협상이 급진전됨으로써 중국의 GATT 가입 지위 · 가입조건 · 의정서 초안 내용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중국은 1994년 12월까지 GATT 가입을 마무리하여, 1995년 1월에 출범하는 WTO에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 지적재산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며 WTO 가입은 미루어졌습니다. 


● 1995년 11월 19일, APEC 오사카 회담 : 장쩌민 주석, 대규모 관세 인하 계획 발표


장쩌민 주석 연설 :


"세계 인구 대다수가 살고 있는 개발도상국은 엄청난 발전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점점 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세계경제의 국제화 트렌드와 국내개혁에 힘입어서 발전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공을 위한 유일한 방식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기는 이러한 트렌드가 더 강해질 겁니다."[각주:2] (...) 


"개발도상국이 빈곤에서 벗어난 수십억 인구와 함께 번영하게 될 때, 전세계에 교역과 투자의 어마어마한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새로운 기술 및 산업을 위한 더 많은 시장이 앞으로 있을 겁니다. 또한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발전단계에 올려놓을 겁니다."[각주:3] (...)


"(1994년 인도네시아 보르고에서 열린 APEC 회담에서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목표로 제시한) 보르고 선언의 장기과제를 현실화 하기 위해서는 21세기까지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거대 협력 프로젝트는 세계경제 트렌드와 부합합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 필요에 도움이 됩니다. 보고르 회담 이후 우리 중국은 개혁을 심화하는 중요한 조치들을 시행해왔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중국이 1996년부터 전반적인 관세율 수준을 30% 정도 급격히 인하할 것임을 발표합니다. 이는 지역협력과 무역 및 투자 자유화 달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겁니다."[각주:4] 


- 장쩌민 연설 출처 : 중국 외교부


→ 1995년 11월 오사카에 열린 APEC 회담에서 중국의 WTO 가입논의가 다시 불붙게 되었습니다. 장쩌민 주석은 "나는 여기에서 중국이 1996년부터 전반적인 관세율 수준을 30% 정도 급격히 인하할 것임을 발표합니다" 라고 발언하며, WTO 가입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중국은 1996년 4월 1일부로 4,900여개 품목에 대해 관세율을 30% 정도 인하하였고, 그 결과 전품목 평균 관세율은 기존 35.9%에서 23%로 낮춰졌습니다. 1997년 10월 1일에도 추가 관세인하를 단행하였고 평균 관세율은 17%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장쩌민 주석은 1997년 11월 APEC 벤쿠버 회담에서 "2005년까지 공산품 수입 관세율을 10% 수준으로 인하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합니다.


이러한 개혁 덕분에 중국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WTO 가입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WTO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국들과 양자 무역협정을 맺은 뒤, 회원국들 중 2/3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따라서, WTO 가입 이전부터 시장개방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어야 했고, 특히 자유시장체제와 거리가 멀었던 중국에게 이는 더더욱 필요했습니다.


중국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WTO에 가입하려고 했을까요?


중국은 GATT · WTO 등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가입함으로써 단순히 교역량을 늘리는 것 이상을 얻고자 했습니다. 바로, 국내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맹약의 수단(commitment device) 입니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와 장쩌민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채택 이후 중국은 국내 경제개혁을 지속해왔으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 내부의 반발에 의해 언제든지 반전될 수 있었습니다. 장쩌민 주석 · 주룽지 총리 등 개혁파들은 개혁개방 흐름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 1997년 10월 27일 - 11월 3일, 클린턴 대통령 - 장쩌민 주석, 워싱턴 정상회담


- 사진 출처 :  'China.org.cn'


클린턴 대통령 발언 :


"중국과 미국 모두에게 무역은 성장을 위한 중요한 촉매제 입니다.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 판매에 있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내일 미국 보잉사는 중국과 역사에 남을 계약을 체결할 겁니다. 30억 달러에 달하는 제트기 50대 입니다. 이 계약은 수만개의 일자리를 미국에 만들 것이고 최신 여객기를 중국에게 제공할 겁니다."[각주:5]


"많은 미국 상품과 서비스는 여전히 중국 시장 접근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도 중국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은 중국이 WTO 체제에 들어가는 것에 가능한 모든 것을 할 겁니다."[각주:6]


장쩌민 주석 발언 :


"나는 클린턴 대통령과 중미 관계에 대한 심도 깊은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건설적이었으며 성과가 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과 나는 21세기를 지향하는 중미 관계의 발전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양측은 목표를 현실화 시키기 위한 노력이 양국의 이익과 세계 평화와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각주:7]


- 정상회담 기자회견 출처 : 미국 국무부 아카이브


● 1998년 6월 11일, 클린턴 대통령, 중국 방문 2주 전 성명발표


클린턴 대통령 발언 : 


"모두가 알듯이, 저는 2주 후에 중국으로 향합니다. 이는 최근 10년 내 미국 대통령의 첫번째 국빈방문이 될 겁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미국을 위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중국으로 갑니다."[각주:8] (...)


"어떤 미국인들은 우리가 중국을 고립하고 봉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비민주적 체제와 인권위배 그리고 향후 미국의 적이 될 중국의 능력을 저해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미국인들은 중국과의 상업거래 증대로 인해 필연적으로 중국이 더 개방적이고 더 민주적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각주:9] (...)


"중국을 고립시키는 선택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세계 속 우리의 친구와 동맹 조차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 (...) 더 중요한 점은, 관여 대신 고립을 선택하는 건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는 더 위험하게 만들 겁니다. 이는 아시아의 안정을 육성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시키기보다 훼손할 겁니다."[각주:10] (...)


"미국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개방된 글로벌 무역시스템에서 분명히 혜택을 얻고 있습니다. (...) 전세계 인구 1/4이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은 과거 20년 간 평균 10%의 성장을 해왔습니다. 향후 20년 동안,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보다 3배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므로 경제번영의 혜택을 얻고 책임을 공유하기 위하여, 중국을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통합되도록 하는 것은 명백히 미국의 이익에 부합합니다."[각주:11] (...)


"우리 미국은 인권과 자유에 관해 중국 지도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미국인이 답해야 하는 물음은 미국이 중국 내 인권을 지지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중국을 국제 커뮤니티와 글로벌 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자유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각주:12] (...)


"시간이 흘러, 나는 중국 지도자들이 자유를 받아들일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이 자유를 얻어야지만, 중국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화 시대에 국부는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창조하고 소통하고 혁신을 할 수 있는 능력. 중국인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발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오직 그래야만 중국은 성장과 위대함의 잠재력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각주:13]


"중국은 그들의 운명을 선택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 미국은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함으로써 중국의 선택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지 않고 국제 커뮤니티에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양국의 이익과 양국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이 안정, 개방, 비위협의 길을 따르도록 독려하는 최선의 방안이며, 자유시장과 정치적 다극화 그리고 법치주의를 포용토록 최선의 방안이며, 자유로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안정된 국제질서를 건설하는 최선의 방안입니다."[각주:14]


"이러한 모습의 중국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합니다. 이러한 모습의 중국이 21세기를 더 평화롭고 번영되게 만들겁니다"[각주:15]


- 클린턴 대통령 성명문 출처 : 미국 국무부 아카이브


→ 미국 클린턴행정부는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 중국을 환영했습니다. WTO 가입 논의 과정에서 여러 사안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하였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세계무역 시스템에 통합시킴으로써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각주:16]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중국 장쩌민 주석은 1997년과 1998년 양국을 오가며 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21세기를 지향하는 미중관계'를 추구하기로 합의합니다. 미국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중국에 전파할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거대한 중국시장이 미국기업들에게 큰 기회가 되며, 언젠가 중국 지도부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고, 중국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미국이 도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의 발언을 다시 보시죠. "중국경제를 개방함으로써 이번 협정은 미국 농민들과 근로자 그리고 기업들에게 전례없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겁니다", "중국을 국제 커뮤니티와 글로벌 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자유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 미국은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함으로써 중국의 선택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지 않고 국제 커뮤니티에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양국의 이익과 양국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 1999년 4월 8일, 주룽지 총리, 미국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과 만남




주룽지 총리 발언 :


"클린턴 대통령이 WTO에 관해 말한 것에 응답하기 위해 여기 미국에 왔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이 WTO에 가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미국인의 이익에 맞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비록 중국이 큰 양보를 할지라도, WTO에 가입하는 것이 중국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각주:17]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를 원하고 국제 커뮤니티에 통합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중국은 게임의 규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중국은 양보 없이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양보는 중국 국영기업과 중국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다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우리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달성해온 것들 덕분에 중국은 이러한 충격에 맞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WTO 가입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충격이 가져다주는 경쟁은 중국경제를 더 급속하고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촉진할 겁니다."[각주:18]


- 주룽지 총리 기자회견문 출처 : 미국 백악관 아카이브


● 1999년 11월 15일, 미국-중국 양자 무역협정 체결


- "중국이 개방하다"(China opens up)

- 사진 출처 : <The Economist> 1999년 11월 20일 표지


클린턴 대통령 발언 :


"우리 미국과 중국은 지난 밤과 오늘 아침 11시간에 걸친 협상을 했습니다. 중국의 WTO 가입을 위한 협상을 미국과 중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음을 말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번 협정은 중국을 WTO에 가입토록 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발걸음이며, 미국과 중국 간 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발걸음 입니다."[각주:19] (...)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에게 좋으며 중국에게도 좋고 세계경제에도 좋습니다. 오늘 중국은 자국경제 개혁과 규칙을 위한 경제개방, 혁신, 경쟁 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 총리는 중국의 시장개방 의지와 공정무역 규칙 준수 의지를 진실성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중국경제를 개방함으로써 이번 협정은 미국 농민들과 근로자 그리고 기업들에게 전례없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겁니다."[각주:20]


- 클린턴 대통령 기자회견 출처 : 미국 국무부 아카이브 


→ 1999년 4월 미국에 방문한 주룽지 총리는 "경쟁은 중국경제를 더 급속하고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촉진할 겁니다" 라고 발언함으로써 국내개혁을 위한 맹약 수단으로 WTO에 가입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국과 중국은 1999년 11월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중국의 WTO 가입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중국 보수파들은 WTO 가입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비판하였지만, 주룽지 총리는 "비록 중국이 큰 양보를 할지라도, WTO에 가입하는 것이 중국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WTO 가입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에게 좋으며 중국에게도 좋고 세계경제에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큰 환영을 표시했습니다.


● 2001년 11월 11일, WTO 각료회의 : 중국의 가입을 공식적으로 승인

● 2001년 12월 11일, WTO 정식 회원국이 된 중국



2001년 11월 11일, WTO 회의에서 기존 회원국들은 중국의 가입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고, 한달 뒤인 2001년 12월 11일부로 중국은 WTO 정식멤버가 되었습니다. 1986년 GATT 재가입을 신청한지 16년만에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으로 들어온 겁니다.


중국은 WTO 가입 이후에 경제개혁과 시장개방을 계속해서 이어나갔습니다.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장쩌민 주석은 ‘대개방을 통해 대개혁을 촉진한다(以大开放促大改革)’는 기본 원칙을 소개하였고, WTO 가입 약속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철폐를 단행해 나갑니다.

1947년 GATT에서부터 2001년 12월 WTO 가입까지 중국의 여정을 표를 통해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글로벌 무역시스템과 통합된 중국경제,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일으키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고도성장을 기록해나갔고 더 이상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중국이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통합되자 전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이 발생했습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경제가 세계와 통합된 이후, 중국경제와 세계경제 모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띄게 되었습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중국의 놀라운 경제발전과 이것이 전세계에 미친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그래프를 통해 알아봅시다.


◆ 2000년대 이후 중국의 놀라운 경제발전


▶ 중국의 고도성장과 빈곤 감소



1992년-2001년간  평균 10.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중국은 2002년-2007년에도 11.2%을 기록하며 고도성장을 이어갑니다. 2008 금융위기 이후로도 평균 8.1%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덕분에 중국의 1인당 GDP는 1992년 1,845 달러에서 2018년 16,097달러로 8배 증가했고, 전체 인구 중 하루 1.90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인구 비율은 1993년 56.6%에서 2015년 0.7%로 급감했습니다.


▶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 ① -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FDI Inflows)


  • 1979년~2018년, 중국의 연간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 (FDI Inflows)

  •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개방정책을 시작한 1979년 8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1992년 110억 달러 · 2002년 527억 달러 ·  2018년 1,390억 달러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 출처 : UNCTAD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에는 적극적인 외국인 자금유치가 있습니다. 덩샤오핑은 1979년 선전 · 주하이 · 산터우 · 하문 · 하이난 등 5개 지역을 경제특구(SEZ)로 지정하였고, 이후 연안지역에 특수목적 경제지구를 추가로 선정하면서 외국인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이들 지역에 자리잡은 외국기업에게는 외자지분 100% 허용과 소득세 면제 등을 제공하였고, 일부 품목 수입관세를 면제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특히 1992년 남순강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 목표를 수립한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FDI Inflows)이 크게 증가하였고,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다시 한번 급증 하였습니다. 위의 그래프에 나오듯이,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덩샤오핑이 개방정책을 시작한 1979년 8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1992년 110억 달러 · 2002년 527억 달러 ·  2018년 1,39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 ②  - 투자를 통한 자본축적



중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 자금은 주로 경제발전을 위한 물적자본 축적에 쓰였습니다. 경제성장은 공장설비 · 기계 등 물적자본(physical capital) 축적을 의미[각주:21]하며, 자본축적을 위해서는 저축과 투자가 필요[각주:22]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국내저축을 통해 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하였고, GDP 대비 투자 비중은 2000년 34.9%에서 2011년 48.0%로 급증합니다. 특히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크게 늘어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족 :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과잉투자 였는데, 당시 한국의 GDP 대비 투자 비중은 약 38% 수준이었습니다. 미국은 약 15%~20% 수준입니다. 이를 비교하면 중국이 얼마나 많은 투자를 단행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 ③ - 교역증대



이렇게 자본을 축적해나간 중국은 엄청난 양의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를 전세계에 공급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수출입 액수는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1992년 중국의 연간 수출액은 856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02년 3,258억 달러 · 2008년 1조 4,288억 달러 · 2017년 2조 2,80억 달러로 급증하였습니다. 


◆ 중국의 경제발전이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


▶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의 변화


  • 2001년과 2018년, 전세계 GDP에서 미국과 중국 등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왼쪽 : 2001년 미국(31%) · 중국(4%)

  • 오른쪽 : 2018년 미국(24%) · 중국(16%)

  • 출처 :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WTO에 가입한 이후 중국은 세계경제를 이끄는 축으로 올라섰습니다. 전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4%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16%로 크게 늘어나며, 세계경제에서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였던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우며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 세계를 위한 소비시장이 된 중국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자 거대한 시장이 되었습니다. 2018년 중국 전체 1인당 GDP는 16,097달러로써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지만, 베이징 · 상하이 · 광저우 · 선전 등 1선 도시는 30,000~40,000 달러에 달하며 이곳의 인구수는 약 7,000만명 입니다. 이들 도시의 광역권과 새로 1선 도시에 편입된 곳을 고려할 때, 중국의 시장규모는 단순히 전체 1인당 GDP로 추산할 수 없습니다.


중국 시장 확대를 보여주는 사례가 유럽의 자동차 수출 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유럽산 자동차의 수출액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유럽산 자동차의 대중국 수출액이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2010년대 들어서는 미국보다 중국에 수출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 세계 상품교역 규모의 증가



중국경제가 전세계 생산공장과 소비시장 역할을 맡게 된 결과, 2000년대 들어 세계 상품교역 규모는 크게 늘어났습니다. 전세계 수출액은 2001년 약 6조 달러에서 2017년 약 17조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글로벌 교역붐 속에서 한국의 조선 · 기계장비 등 중공업은 큰 수혜를 누렸습니다.


▶ 글로벌 원자재 호황과 신흥국의 성장



2000년대 중국은 전세계 원자재를 흡수하였습니다. 막대한 투자를 통해 물적자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원자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수요로 인해 석유 · 철강 · 금속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크게 올라갔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2000년대 글로벌 상품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 시기를 '글로벌 상품 호황'(Global Commodity Boom) 이라 부릅니다. 


상품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원자재를 주로 수출하는 개발도상국 경제도 호황을 누렸습니다. 브라질 · 러시아 · 호주 · 중동 경제는 좋은 시기를 보냈고, '신흥국의 부상'(Emerging Economies)은 2000년대의 화두였습니다.


◆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 그 자체 그리고 ...


지금까지 여러 그래프를 보면서 느끼셨다시피, 산업생산 · 투자 · 교역 · 상품가격 모두 2000년대 들어서 가파르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세계경제 호황 이유에는 연준의 저금리 정책과 부동산 호황에 힘입은 미국경제도 있지만, 중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제발전이 전세계 교역 증대와 상품가격 인상에 끼친 영향은 독보적 이었습니다. 


이렇게 중국의 경제발전과 WTO 가입 그 자체는 세계경제에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가져왔습니다. 




※ 가공무역을 통해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그렇다면 왜 유독 '중국'의 경제발전과 WTO 가입이 세계경제에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가져와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로까지 불리우게 된걸까요?


개발도상국이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달성하는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1960~70년대 한국[각주:23]과 대만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한국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향해가는 동시에 유치산업보호를 통해 제조업을 육성했습니다. 한국은 스스로 제조업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수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무역자유화를 통해 교역량을 늘려나가는 것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1950~70년대 중남미의 참담한 실패[각주:24]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무역자유화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전달해주었고, 많은 나라들은 자유무역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1990년대 멕시코는 NAFTA[각주:25]를 체결하며 시장을 개방하였고,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APEC · 동남아국가들은 ASEAN 등 지역 무역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때, 중국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다른 개발도상국들과는 달랐습니다.


첫째, 중국은 13억의 인구를 가진데다가 중국인의 임금수준은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았습니다13억의 인구를 보유한채 잠들어 있던 개발도상국이 깨어나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 건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 이들의 임금수준은 동시대 멕시코의 3%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의 15%에 불과한 멕시코도 저임금 국가 소리는 듣는 와중에 중국의 임금수준은 더 낮았던 겁니다.


둘째, 중국의 독특한 경제발전 · 상품교역 방식 입니다. 바로, 외국에서 중간재와 자본재 부품을 수입해온 뒤 이를 단순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들고 수출하는 '가공무역'(Processing Trade) 입니다. 


가공무역으로 인해 중국은 '세계의 공장'(World's Factory)이 되었고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는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무역 및 경제 구조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1990년대 중국의 가공무역,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를 상징


'가공무역'(Processing Trade)의 뜻을 다시 반복하면,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수입해온 뒤 이를 단순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든 후 다시 수출하는 교역방식을 의미합니다. 


"어떻게보면 모든 무역은 가공무역 아니냐?"라고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한 국가가 모든 종류의 원자재와 부품을 소유할 수는 없기 때문에,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한 뒤 완성품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가공무역은 다시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습니다. 바로,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fragmentation of production)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 영국 등 선진국은 제조업 상품을 수출하고 원자재 상품을 수입했습니다. 반대로 중남미 · 중동 등 개발도상국은 원자재 상품을 수출하고 제조업 상품을 수입했습니다. 즉, 20세기 초중반 교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North-South)에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Inter-Industry Trade)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수출품목과 수입품목은 국가의 기술수준과 보유자원에 따라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러한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이론이 리카도[각주:26]와 헥셔올린[각주:27]의 비교우위론 입니다.


이후 1970년대 말 서유럽과 일본이 전후 재건에 성공하면서 무역의 양상은 달라졌습니다. 미국 · 영국과 서유럽 · 일본은 모두 자동차 · 전자 등 제조업 상품을 수출하고 수입했습니다. 즉, 1970-80년대 전세계 교역의 상당수를 선진국과 선진국 간(North-North) 거래가 차지하였고 또 이들은 서로 동일한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Intra-Industry Trade)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국제경제학계를 지배(?)했던 것은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 입니다. 비교우위론이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면, 신무역이론은 '서로 비슷한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신무역이론은 서로 비슷한 국가들이라 할지라도 '동종 산업 내 다양한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 무역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비교우위론의 특화 개념보다는 신무역이론의 '차별화된 상품' 개념이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신무역이론이 비교우위론을 대체한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중국의 경제발전은 비교우위론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중국의 경제발전과 이에 따른 원자재 수요 폭증으로 신흥국들의 경제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 간(North-South)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Inter-Industry Trade)하는 무역비중이 증가하였습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인 중국 간 교역 입니다. 


개방 초기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여 신발 · 의류 · 섬유 등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해온 중국은 1990년대 중반 들어서 컴퓨터 · 전자 상품 수출을 증가시킵니다. 이를 보고 "선진국도 제조업 수출, 개발도상국인 중국도 제조업 수출이면 동종 산업내 교역 아니냐?" 라고 물을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은 제조업 내 다양한 상품을 생산한 반면에 중국은 좁은 범위의 노동집약 상품만을 주로 생산했으며, 컴퓨터 · 전자 상품 생산과정에서 수입해온 선진국의 중간재(intermediate goods)를 단순조립(assemble) 하여 다시 수출(re-export)하는 역할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선진국의 이러한 교역 형태는 전통적인 비교우위론 및 신무역이론이 말하는 바와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엔 선진국과 동종 산업 상품을 교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상품생산에 기여하는 부분은 단순조립 뿐입니다. 그리고 비교열위 부품을 수입해온 뒤 조립하여 다시 재수출 하는 건 매우 독특한 교역형태 입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인 특화 개념 및 차별화된 상품 개념 대신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fragmentation of production) 개념을 고안했습니다. 이제 한 가지 상품을 생산하면서 어떤 국가는 설계와 디자인을 하고, 또 어떤 국가는 부품을 만들고, 또 다른 국가는 부품을 단순조립 하는 식으로 생산과정이 분절화 되었습니다. 


사족 :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는 '글로벌 밸류체인 쪼개기'(Slicing Global Value Chain) · '오프쇼어링'(Offshoring) · '중간재 교역'(Intermediate-Trade)로 부를 수 있습니다.


▶ 중국 무역의 상당부분을 가공무역 그리고 외자기업의 역할


어느 나라나 가공무역과 생산과정의 분절화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가공무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중국의 가공무역이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준 이유는 규모에 있습니다. 애시당초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무역 규모는 거대할 수 밖에 없을텐데, 여기에 더하여 중국 무역의 상당부분을 가공무역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1981년-2005년, 중국 일반 수입(Ordinary Imports)과 가공무역용 수입(Processing Imports) 규모와 총수입에서 가공무역이 차지하는 비중(Ratio of Processing Imports)

  • 출처 : Yu(2014)


위의 그래프는 1981년-2005년 중국 일반 수입(Ordinary Imports)과 가공무역용 수입(Processing Imports) 규모와 총수입에서 가공무역이 차지하는 비중(Ratio of Processing Imports)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일반 수입보다 가공무역용 수입이 더 많은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었고, 총수입에서 가공무역용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60%에 달합니다. 


  • 1992년~2005년, 중국 총수출 중 가공무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 출처 : Amiti, Freund(2010)


가용무역 용도로 수입을 했으니 완제품을 조립하여 다시 수출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중국의 총수출 중 가공무역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위의 표는 1992년~2005년, 중국 총수출 중 가공무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 55%나 차지함을 알 수 있습니다. 


  • 1992년~2019년, 중국 수출입 중 외자기업의 비중 추이

  • 출처 : 중국 관세청


이렇게 중국 무역에서 가공무역 비중이 상당한 건 정부의 정책 덕분입니다. 앞서 봤듯이, 중국정부는 경제특구를 지정하고 외국인 자금을 유치했습니다. 경제특구에는 외자기업(Foreign-Invested Firms) 설립을 허용되었고 '가공무역용 중간재 · 자본 부품 수입'에 대해 수입관세를 면제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외국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상품을 단순조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992년 이후 중국 수출입에서 외자기업이 행하는 비중은 최대 60%까지 증가하였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World's Factory) 되었습니다.


▶ 가공무역을 통해 수출품목을 정교화 시켜온 중국


  • 1992년 · 2005년 · 2007년, 중국 수출품목의 변화

  • 출처 : 중국 관세청


위의 그래프는 1992년 · 2005년 · 2007년 중국 수출품목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1992년 중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만든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적 상품 이었습니다. 이후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확대하면서 통신장비 · 전자상품 등 고숙련노동집약 및 자본집약적 상품을 주로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즉, 중국 수출품목은 시간이 흘러 정교화(sophistication) 되었습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의 생산성과 기술수준이 수출품목 변화와 동일하게 향상된 것은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계속 반복하지만, 국은 단순반복 조립(assemble) 업무에 치중하였고, 좋은 품질의 상품이 만들어진 건 미국 · 일본 · 한국 등 선진국에서 수입해온 중간재 덕분입니다. 중국에서 수출된 상품 중 중국 내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는 36%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지난글에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통계 측정의 문제'를 제기한 이유[각주:28]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중국의 수출품목은 정교화 되어 갔으나, 실제 일어나고 있는 있는 일은 개발도상국이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비숙련노동집약 부분을 가져가는 밸류체인의 분해 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중국의 경제발전 및 교역 방식이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중국으로 이동한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생산과정을 분절화 시켰다.




※ 세계화는 민주주의 · 시장경제의 승리??? The China Shock !!!


  • 왼쪽 :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더 이상 충돌 없이 사회의 평화와 자유와 안정이 계속 유지된다고 주장한 『역사의 종말』 (1992년作)

  • 오른쪽 : 성공하기 위해 렉서스를 만들고 있는 국가들과 올리브 나무를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고 있는 국가들을 비교하며 세계화로 나아갈 필요를 주장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1999년作)


1990년대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적이 바로 『역사의 종말』(1992년作)[각주:29]과 『렉서스와 올리브나무』(1999년) 입니다. 


『역사의 종말』은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더 이상 충돌 없이 사회의 평화와 자유와 안정이 계속 유지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성공하기 위해 렉서스를 만들고 있는 국가들과 올리브 나무를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고 있는 국가들을 비교하며 세계화로 나아갈 필요를 설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은 세계경제가 하나로 통합됨을 상징하였습니다. 특히 미국인이 설계하고 디자인한 상품을 중국인이 생산한 뒤 전세계인이 소비하는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 이런 모습의 세계화(Globalization)는 1990년대 사람들에게 다가올 21세기를 상징하는 꿈과 이상 이었습니다.


이번글에서 보았듯이, 중국 장쩌민 주석과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세계화의 꿈과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장쩌민 주석은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통해 개혁개방 기조를 이어가려 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중국이 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이상은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 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국가가 되었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국가가 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주도경제 시스템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시민 감시를 강화하고 영구집권 토대를 공고히 하고 있고, 미국산 등 외국이 만든 상품은 중국 시장 내에서 불공정하게 대우 받고 있습니다.


  • 왼쪽 : 1990년대 미국 클린턴 대통령 - 중국 장쩌민 주석

  • 오른쪽 : 2010년대 미국 트럼프 대통령 - 중국 시진핑 주석


그 결과, 미국이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중국이 언젠가 자유의 가치를 받아들이겠지" 라는 막연한 낙관은 사라졌습니다.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과 2010년대 트럼프행정부의 보고서 문구에는 이러한 변화가 드러나 있습니다.


● 1998년 6월 11일, 클린턴 대통령 중국 방문 2주 전 성명


"우리 미국은 인권과 자유에 관해 중국 지도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미국인이 답해야 하는 물음은 미국이 중국 내 인권을 지지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중국을 국제 커뮤니티와 글로벌 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자유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각주:30] (...)


"간이 흘러, 나는 중국 지도자들이 자유를 받아들일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이 자유를 얻어야지만, 중국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화 시대에 국부는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창조하고 소통하고 혁신을 할 수 있는 능력. 중국인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발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오직 그래야만 중국은 성장과 위대함의 잠재력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각주:31]



● 2017년 12월, 트럼프행정부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지난 70년동안 미국의 상호주의, 자유시장,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세계경제시스템을 주도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라는 믿음을 가져왔습니다. (...) 미국은 자유주의 경제 무역시스템을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로까지 확장해왔습니다. 이들 국가들이 정치 · 경제적으로 자유화되고 미국에게 이득을 안겨줄 거라고 희망했기 때문입니다.[각주:32]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은 이들 국가들이 경제와 정치 개혁을 하지 않았고, 주요한 경제기관을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유무역을 말하지만, 오직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규칙과 협정만 지킬 뿐입니다.[각주:33]


우리는 공정(fairness), 상호(reciprocity) 그리고 규칙을 준수하는(faithful adherence to the rules) 모든 경제적 관계를 환영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위반, 속임수, 위협에 눈감지 않을 겁니다.[각주:34]



오늘날 트럼프행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Trade War)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근간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중국이 있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의 산업정책 보조금 · 국유기업 지원 · 외국기업 차별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의 대중 무역전쟁에 대해 더 깊게 알아볼겁니다.


▶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미친 영향


1990년대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을 바라보며 희망했던 미래는 2010년대 선진국에게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로 돌아왔습니다


'13억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해 온 중국경제 그리고 '중국으로 이동한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생산과정을 분절화' 시키는 중국경제로 인해 미국 등 선진국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