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해당되는 글 17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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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⑩] China Shock Ⅱ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 2020.01.05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3 2020.01.03
  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2 2019.12.30
  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3 2019.12.22
  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5 2019.12.15
  7.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12 2019.09.22
  8.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3 2019.09.04
  9.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2 2019.08.24
  1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6 201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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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⑪] China Shock Ⅲ - 글로벌 소싱 기회를 활용하여 서비스기업으로 변모한 미국 제조기업들[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⑪] China Shock Ⅲ - 글로벌 소싱 기회를 활용하여 서비스기업으로 변모한 미국 제조기업들

Posted at 2020. 1. 10. 14:3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수혜를 본 계층 · 산업 · 지역은 어디인가?


▶ 중국산 상품 수입침투로 인한 미국 제조업 일자리 상실은 최소 150만개 


  • 1966년~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중국발 무역 충격'(the China Trade Shock)을 실증분석으로 보여준 연구들이 나오면서, 기술변화가 아니라 국제무역이 미국 제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2013년 연구[각주:1]를 통해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상정하는 핵심 가정이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으며,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아세모글루 · 피어스와 함께 추가연구를 2016년[각주:2]에 내놓았고, '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효과' 및 '지역 내 총수요 효과'로 인해 중국발 무역 충격의 크기는 2013년 연구에서 결론지은 것보다 크다고 말했습니다.


2013년 · 2016년 연구는 근 20년간 중국산 상품의 수입침투로 인한 제조업 일자리 상실분이 최소 150만개 그리고 전체 산업 일자리 감소의 하한선이 308만개 라고 주장합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의 악영향은 남부 · 중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등 초래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 미주리 · 아칸소 · 테네시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 노스 캐롤라이나 등 남부 대서양 지역과 위스콘신 ·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 등 중서부 지역(이른바 러스트벨트)에 집중

  • 출처 : The China Trade Shock


오토어 · 돈 · 한슨 등이 '중국발 무역 충격' 연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속 조정기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음에 따라 무역의 분배적 결과가 극명히 나타났다"(the distributional consequences of trade) 입니다. 


위의 그림에 나타나듯이,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주리 · 아칸소 · 테네시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 노스 캐롤라이나 등 남부 대서양 지역과 위스콘신 ·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 등 중서부 지역(이른바 러스트벨트)에 몰려있습니다.


중국이 저숙련 노동집약 상품을 주로 수출했고 미국의 남부 · 중서부 지역이 가구 · 의류 · 섬유 산업 등에 주로 특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격을 흡수하는 교과서 속 조정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발 무역 충격이 남부(South) · 중서부(Midwest) 지역에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등을 초래한 건 당연한 결과 입니다.


▶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수혜를 본 계층 · 기업 · 지역은 어디인가?


여기서 우리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내 분배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국제무역이 미국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우리는 무역의 조정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분배적 결과에 초점을 맞췄을 뿐, 무역이 가져다주는 총이익이 음수(-)라는 것은 아니다" 라는 식의 주장 여타 논문 등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중국발 무역 충격으로 피해를 본 계층(저숙련 제조업 근로자) · 산업(노동집약형 제조업) · 지역(남부 및 중서부)이 있다면, 반대로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수혜를 본 계층 · 산업 · 지역도 있습니다


만약 수혜를 본 집단은 생각치 않채 '중국발 무역 충격의 악영향'을 말하는 연구만 접한다면, 마치 중국과의 교역 확대로 인해서 미국경제와 제조업 전체가 큰 위기에 빠진 것으로 잘못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수혜 집단은 바로 '수출기업'(Exporting Firms)입니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전세계로의 수출액을 2배 이상 늘려왔으며, 대중국 수출액은 7배 늘어났습니다. 수입경쟁에 처하게 된 기업이 고용을 줄인 것과 달리 이들은 고용을 늘리며 무역 충격을 다소간 흡수하였습니다. 


또 다른 집단 그리고 주목해야 하는 집단은 '오프쇼어링을 통해 서비스업으로의 재조직에 성공한 제조기업'(Reorganization toward Services) 입니다. 이들은 단순 제조업무를 외국으로 보내고 난 후, 고숙련 제조업 및 R&D · 디자인 · 설계 등 고급 서비스업에 집중하며 생산성을 개선시켰습니다.


  • 미국 통근지역을 고인적자본 지역(High HC)과 저인적자본 지역(Low HC)으로 구분한 것

  • 인적자본 분류 기준은 지역 내 대학 졸업자 비중을 이용

  • 출처 : Bloom, Handley, Kurman, Luck (2019 Working Paper)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서비스화 덕분에 수혜를 본 계층은 '고숙련 근로자'(High-Skilled Workers)이며, 이들은 미국 서부 해안가(West Coasts)와 동부 뉴잉글랜드(New England)에 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지역 내 대학졸업자 비중을 기준으로 미국 통근지역을 고인적자본 지역(High HC)과 저인적자본 지역(Low HC)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또 다른 그림(중국발 무역 충격의 지역 노동시장 영향)과는 완전히 반대된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인적자본 수준이 낮은 미국 남부와 중서부는 중국발 무역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으나, 인적자본 수준이 높은 미국 서부 해안과 동부 뉴잉글랜드는 오히려 중국과의 교역 확대가 선사해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 글로벌 소싱 기회를 활용하여 서비스기업으로 변모한 미국 제조기업들


미국 수출 기업이 교역 확대의 수혜를 누렸다는 사실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프쇼어링을 통해 서비스업으로의 재조직에 성공한 제조기업' 이라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오늘날 미국경제는 서비스업의 팽창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비스업 팽창을 불러온 요인 중 하나는 미국 제조업의 서비스화(servicification)이며 그 뒤에는 글로벌 밸류체인(GVC) · 오프쇼어링(Offshoring)으로 표현되는 '국제무역'이 있습니다.


'미국경제의 서비스업이 얼마나 팽창'했으며, '미국 제조업의 서비스화'는 무슨 의미이고, '그 뒤에 국제무역이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말까요? 


먼저 '오늘날 미국경제 구조'에 대해서 알아본 다음, 중국과의 교역 확대가 서비스화된 제조기업 · 고숙련 근로자 · 서부 해안가와 동부 뉴잉글랜드에 어떤 방식으로 수혜를 주었는지 살펴봅시다.




※ 오늘날 미국경제구조 현황 ①

- 자본집약형 제조업 · 서비스업의 팽창


▶ 미국 고용은 '서비스업 일자리 확대'에 기인하여 총 일자리 꾸준히 증가


  • 1966년~2019년, 미국 서비스업(빨간선) 및 제조업(파란선)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의 그림은 1966년~2019년, 미국 서비스업(빨간선) 및 제조업(파란선) 근로자 수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비스업과 제조업 고용 추이를 함께 살펴보니, 어마어마해 보였던 제조업 일자리 감소가 상대적으로 미미해 보입니다. 2000년~2019년 사이 제조업 일자리가 약 450만개 줄어드는 와중에 서비스업 일자리는 2,100만개 증가했습니다. 서비스업 고용 팽창에 따라 미국 경제 전체의 고용도 2001년 닷컴버블 · 2008년 금융위기 등 경기불황기를 제외하고는 줄곧 상승추세에 있습니다.


  • 2005년~2019년, 미국 GDP 대비 상품 및 서비스 산업 부가가치 비중

  • 빨간선 : 상품생산 산업 (Y축 좌축)

  • 파란선 : 서비스생산 산업 (Y축 우축)


위의 그림은 2005년~2019년 미국 GDP 대비 상품 및 서비스 산업 부가가치 비중을 보여줍니다. 상품부문은 Y축 좌축(17.5%), 서비스부문은 Y축 우축(70.2%) 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본래 선진국일수록 서비스업 비중이 높긴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의 서비스업 비중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5년 서비스부문의 비중은 66.2% 였으나 2019년에는 70.2%로 증가합니다. 반면 제조업의 비중은 20.6%에서 17.5%로 위축되었습니다. 

▶ 노동집약 제조업과 달리 '자본집약 제조업'은 부가가치 및 생산지수 증가


  • 2000년~2007년, 제조업 세부산업별 부가가치 · 고용 · 수입침투 변화

  • 출처 : Fort, Pierce, Schott (2018)[각주:3]


"미국경제에서 서비스업 비중이 늘어난다는 말은 결국 제조업이 망했다는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 세부산업별 부가가치 변화를 살펴보면 미국 제조업 전체가 정말 위기에 처해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위의 그래프는 2000년~2007년, 제조업 세부산업별 부가가치 · 고용 · 수입침투 변화를 보여줍니다. 의복(Apparel) · 가죽(Leather) · 섬유(Textile) · 전기장비(Electrical equip) 등 전형적인 노동집약 산업은 고용과 부가가치 모두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및 전자(Computer/Electronic) · 운송(Transportation) 등 자본집약 산업은 고용은 줄었으나 부가가치는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생산성 개선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 왼쪽 : 1972년-2019년 섬유산업 생산지수

  • 오른쪽 : 1972년-2019년 컴퓨터 및 전자산업 생산지수


노동집약 산업과 자본집약 산업 간 차이는 생산지수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72년-2019년 섬유산업(왼쪽) · 컴퓨터 및 전자산업(오른쪽) 생산지수를 보여줍니다. 노동집약형인 섬유산업 생산지수는 2000년대 이후 급감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본집약형인 컴퓨터 및 전자산업 생산지수는 매년 고점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 오늘날 미국경제구조 현황 ②

- 미국 제조기업들, 비제조업 활동을 확장하다


▶ 미국경제 서비스업 팽창의 힘 - 제조업 기업의 비제조사업체 증가  


정리하자면, ① 2000년대 들어서 미국경제 고용 · 생산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나날이 커져왔으며, ② 전체 제조업 중에서 노동집약형 제조업은 위축되고 자본집약형 제조업은 생산성을 개선시켜 왔습니다. 


전혀 별개로 보이는 두 가지 현상은 '제조업 기업의 비제조사업체 증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족 : 물론.. 서비스업 팽창의 가장 큰 요인은 의료 · 문화 · 레저 서비스의 성장이긴 하지만..)


  • 하나 이상의 제조사업체를 보유한 기업을 제조업 기업으로 분류

  • 1977년~2012년 제조업 기업(Manufacturing Firms)의 고용 추이를 제조기업 내 제조사업체(Manufacturing plants)와 비제조사업체(Non-manufacturing plants)로 구분한 것

  • 2000년대 들어서 제조업 기업의 고용이 줄어들었는데, 이는 대부분 제조사업체의 고용감소에서 기인한다.

  • 비제조사업체의 고용증가는 제조사업체의 고용감소를 일정부분 상쇄시켰다

  • 출처 : Fort, Pierce, Schott (2018)[각주:4]


위의 그래프는 1977년~2012년 제조업 기업(Manufacturing Firms)의 고용 추이를 제조기업 내 제조사업체(Manufacturing plants)와 비제조사업체(Non-manufacturing plants)로 구분한 것 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제조업 기업의 고용 감소는 대부분 제조사업체의 고용 감소에서 기인(Manufacturing plants ↓)했으며, 비제조사업체의 고용증가는 제조사업체의 고용감소를 일정부분 상쇄(Non-manufacturing plants ↑)시켰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위해 용어의 의미를 알아봅시다. 


'기업'(Firms)이란 상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하는 경영단위를 의미합니다. 삼성전자 · 애플 등등 우리가 아는 수많은 기업이죠. 


그리고 '사업체'(Plants or Establishments)는 일정한 물리적 장소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본사는 수원에서 경영지원을 하며, 삼성전자 평택공장은 평택에서 반도체를 만들고, 삼성전자 디지털플라자는 전국 각지에서 제품을 판매합니다. 삼성전자 본사 · 평택공장 · 디지털플라자 각 지점은 모두 개별적인 사업체이며, 여러 사업체가 기업 삼성전자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의 '기업'은 하나 이상의 '사업체'가 모여서 이루어져 있으며, 개별 '사업체'가 수행하는 경제활동은 제조업일 수도 있고 서비스업일 수도 있습니다. 경영지원을 하는 삼성전자 본사와 제품을 판매하는 디지털플라자 지점은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지만, 삼성전자 공장은 제조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식입니다.


이제 위의 그래프가 알려주는 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 이상의 제조사업체를 보유한 기업을 제조업 기업으로 분류했을 때, 제조업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업체들 중에서 제조사업체의 고용은 줄어들고 비제조사업체의 고용은 증가했습니다. 이를 직관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면 '제조업 기업의 서비스업 활동이 증대되었다' 입니다. 


미국 제조업 부문의 고용변화를 기업조정 마진별로 분해


  • 미국 제조업 부문의 고용변화를 기업조정 마진별로 분해

  • 미국 제조업 고용변화(빨간선) = 기업 자체의 탄생 및 소멸(Net firm birth/death) + 존속기업의 제조사업체 탄생 및 소멸(Net plant birth/death within firms) + 존속기업의 존속사업체(Within continuing firm-plants) 

  • 출처 : Fort, Pierce, Schott (2018)[각주:5]


'기업'(Firms) · '사업체'(Plants or Establishments)의 개념을 알고, '기업 내부에서 제조사업체와 비제조사업체가 공존할 수 있다는 점'(Manufacturing & Non-manufacturing plants within firm)을 알고 나면, 미국 제조업 고용 변화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77년-2012년 미국 제조업 부문의 고용변화를 기업조정 마진별로 분해한 겁니다. 


제조업의 고용변화는 크게 3가지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 첫째, 기업 자체의 탄생과 소멸로 인해 제조사업체도 탄생하고 소멸하며 나타나는 고용변화 입니다(Net firm birth/death & Net plant birth/death)


▶ 둘째, 존속하는 기업 내에서 제조사업체가 탄생 및 소멸하며 나타나는 고용변화 입니다(Net plant birth/death within firms). 


▶ 셋째, 존속하는 기업 & 사업체에서 나타나는 고용변화 입니다(Within continuing firm-plants).


러한 3가지 마진 중에서 첫번째 요인인 '제조업 기업 자체의 탄생과 소멸'(Net firm birth/death)은 아마 노동집약형인 의복 · 가죽 · 섬유 · 전기장비 부문에서 집중되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두번째와 세번째 요인 입니다. 


'존속기업의 제조사업체 탄생 및 소멸'(Net plant birth/death within firms) 제조업 고용을 감소시키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제조업 기업들은 제조사업체를 더 이상 개설하지 않았고, 기존에 존재해왔던 제조사업체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럼에도 기업활동을 계속 영위한다는 것은 제조사업체의 문을 닫고 비제조사업체에 더 집중했을 가능성을 제시해줍니다.


또한 '존속하는 기업 & 사업체'(Within continuing firm-plants)도 2000년보다 고용자수가 약간 감소했습니다. 만약 사업체는 그대로 유지한채 그 역할만 제조활동에서 서비스활동으로 전환하였다면, 제조업 고용 감소와 서비스업 고용 증가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2000년대 들어서 미국 기업은 상품생산 업무를 수행하는 제조사업체를 폐쇄시키고 비제조사업체를 늘리거나, 기존 제조사업체를 비제조사업체로 전환시켰고,  과정에서 제조업 고용 감소와 서비스업 고용 증가가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미국 기업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단순 제조업무를 포기하고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급 서비스활동에 집중하면서 생산성을 향상시켰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 애플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플은 미국 내 제조공장을 폐쇄하거나 규모를 줄인채, R&D · 설계 · 디자인 업무를 맞는 본사역량을 강화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애플스토어를 미 전역에 개점했습니다. 그 결과 애플이 창출한 일자리는 주로 서비스업 부문이며, 제조업 일자리를 두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말을 듣기[각주:6]까지 했습니다.




※ GVC와 오프쇼어링의 확대 - 미국 제조기업의 서비스화 배경을 제공하다


이러한 미국 제조기업의 서비스화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글로벌 밸류체인(GVC) · 오프쇼어링(Offshoring)으로 표현되는 '국제무역' 입니다. 


▶ 글로벌 밸류체인(GVC)과 아시아 공장(Factory Asia)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으로 달라진 세계경제'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를 통해 두 차례나 다룬 바 있습니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정보통신기술 발전(ICT ↑)으로 의사소통 비용이 하락(Communication Costs ↓)하면서 선진국 본사에 있는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서로 간 지식과 아이디어(knowledge & ideas)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한 선진국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역할을 배분합니다. 과거 선진국에 위치했던 제조공장은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했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창출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미국 제조업 기업의 직접 수입(Direct imports)


  • 1977년~2012년 제조업 기업 중 직접수입을 하는 기업의 비중(녹색선, Firms importing) · 대중국 직접수입을 하는 기업의 비중(연한 녹색선, Firms importing from China) · 미국으로의 수입침투율(진한 빨간선, US import penetration) · 미국으로의 대중국 수입침투율(연한 빨간선, US import penetration from China)에 주목

  • 출처 : Fort, Pierce, Schott (2018)[각주:7]


경제학 이론상으로 설명가능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역할분담과 애플이 대표하는 한 가지 사례 이외에, 현실 속 전반적인 미국 제조업에서 글로벌 밸류체인(GVC) ·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위의 그래프는 1977년-2012년 미국 제조업 부문의 기술채택과 수입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대 특히 2000년대 들어 미국 제조업 사업체 중 컴퓨터를 구매한 사업체의 비중이 대폭 증가(Plants buying computers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2000년대 들어서 미국 제조업 기업들 중 직접 수입을 하는 기업의 비중도 크게 증가(Firms importing )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총국내소비 중 제조업 수입품의 비중을 의미하는 수입침투율도 상승(US import penetration ↑)했죠.


(사족 : 따라서 '직접 수입'과 '수입침투율'의 값은 서로 측정하는 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두 지표를 나란히 놓은 후 높고 낮음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음)


오프쇼어링 · 기업조직 등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각주:8]'국내 제조업 기업의 직접 수입'(Direct Import / Firm Importing)과 '수입산 제조업 상품의 침투'(Import Penetration)를 구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수입산 제조업 상품의 침투'(Import penetration)는 제조업 상품 국내 총소비 중 수입산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국내 제조업 기업이 외국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수입하는 경우 · 도소매 업체가 상품 판매를 위해 수입하는 경우 · 외국 기업이 본국에서 만든 상품을 수입하는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 수입이 늘어났다'고 말할 때, 수입침투율 상승을 의미합니다.


'국내 제조업 기업의 직접 수입'(Direct Import / Firm Importing)은 국내 제조업 기업이 외국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직접 수입하여 판매하는 경우만을 의미합니다. 만약 국내 기업이 본국에서는 고품질 상품을 생산하고 외국에서는 저품질 상품을 생산하는 식으로 차별화 하였다면, 이러한 오프쇼어링의 결과로 국내 기업의 직접 수입이 증가(Direct Import / Firm Importing ↑)하게 됩니다. 따라서, 직접 수입 지표는 오프쇼어링 확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됩니다.


2007년 기준 최소한 하나 이상의 제조업 사업체를 보유한 미국 기업들은 전체 기업들 중 5%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전체 고용의 23% · 매출의 38% · 비원자재 상품 수입의 6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 

- 미국 제조업 기업의 조직을 변화시켜, 

- 서부 ·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고숙련 근로자에게 이익을 주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으로 인한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 오프쇼어링 기회 확대가 미국 제조업 기업의 서비스화를 가능케한 배경을 제공해주었다면,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국 제조업 기업들의 조직을 서비스 활동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경제학자 니콜라스 블룸(Nicholas Bloom) · 카일 핸들리(Kyle Handley) · 안드레 커만(Andre Kurman) · 필립 럭(Phillip Luck) 등은 2019년 7월 작업중인 논문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 고용에 미친 영향: 좋은 것, 나쁜 것, 그리고 논쟁거리>(<The Impact of Chinese Trade on U.S. Employment: The Good, The Bad, and The Debatable>)을 주목해야 합니다. 


블룸 등은 논문을 통해, 중국의 수입침투율 증가가 미국 제조업 사업체의 폐쇄(exit) 혹은 서비스업으로의 전환(switch)을 야기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국 제조업의 전환이 서부 해안지역과 동부 뉴잉글랜드에 위치한 고숙련 근로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음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미국 제조업 기업의 조직 전환 (reorganization)


  • 중국의 수입침투 증가가 미국 제조업(패널 A) 및 서비스(패널 B) 부문 고용에 미친 영향

  • 존속 사업체 / 신규 사업체 진입 / 기존 사업체 퇴출 으로 구분


위의 표는 1992년~2012년 중국의 수입침투 증가가 미국 제조업 및 서비스업 고용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블룸 등은 고용변화를 기업조정 마진별로 살펴보기 위해서, '존속 사업체'(Continuing Establishments) · '신규 사업체 진입 (존속기업 내 혹은 신규기업의 탄생)(Entry of Establishments)· '기존 사업체 퇴출(존속기업 내 혹은 신규기업의 탄생)(Exit of Establishments)' 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제조업의 고용감소는 대부분 존속 사업체의 서비스업으로의 전환(Net Switching)과 기존 사업체의 퇴출(Exit of Establishment)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기업 자체가 퇴출되면서 사업체가 없어진 게 아니라 기업은 그대로 존속하는데 제조업 사업체만 사라졌습니다(by Firm Continuers).


이러한 결과는 미국 제조업 기업들이 중국발 무역 충격의 영향으로 제조업 사업체를 축소시키고 서비스업 활동을 팽창시켰음을 보여줍니다. 서비스업 활동으로 사업체을 변경한 제조업 기업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업서비스 · 관리서비스 등으로 업종을 바꾸었는데 이는 제조업 기업이 개발 · 연구 · 관리 등에 더욱 집중함을 알려줍니다.


▶ 미국 경제활동 중심은 서부 및 동부 해안지역으로 이동 (regional inequality)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에 미친 영향을 '고인적자본 지역'(HHC)과 '저인적자본 지역'(LHC)로 분류


제조업 기업들이 전환한 관리 · R&D · 설계 · 디자인 · 마케팅 등의 업무는 매우 숙련집약적 입니다. 따라서, 중국발 무역 충격은 인적자본 정도에 따라 지역에 상이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위의 표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에 미친 영향을 '고인적자본 지역'(HHC)과 '저인적자본 지역'(LHC)로 분류하여 분석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고인적자본 지역과 저인적자본 지역 모두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 고용에 악영향을 주었습니다만 양상은 상이합니다.


고인적자본 지역 근로자들은 서비스업으로 전환한 사업체에 계속 속해있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고인적자본에서 제조업 고용은 감소한 것으로 나오지만 서비스업 고용 증가 덕분에 전체 고용의 감소폭은 어느정도 상쇄되었습니다. 


반면에 저인적자본 지역 근로자들은 서비스업으로 전환한 사업체로 이동하지 못하였고 혹은 저인적자본에 위치한 제조업 기업은 서비스업으로 전환을 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저인적자본 지역은 중국발 무역 충격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미국 내에서 인적자본 정도가 높은 지역은 서부 및 동부 해안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미국 경제활동의 중심은 남부 · 중서부 지역에서 서부 · 동부 해안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중국발 무역 충격이 야기한 '지역간 불균등'(regional inequality)을 두 개의 그림으로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미국 내 분배적 결과를 야기한 중국발 무역 충격


본 블로그 China Shock 시리즈 글 3개를 통해 확인한 연구들의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 중국의 수입침투는 미국 저숙련 · 노동집약형 제조업 고용을 감소시켰다


▶ 중국 제조업과의 수입경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 제조업 기업들은 서비스업 활동으로 전환하였다


▶ 저숙련 근로자는 피해를, 고숙련 근로자는 이익을 얻었다


▶ 저숙련 제조업에 특화된 남부 · 중서부 지역은 타격을 받았으나, 인적자본 수준이 높은 서부 · 동부 해안지역은 수혜를 누렸


▶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국 내 분배적 결과를 야기하였다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https://joohyeon.com/288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⑩] China Shock Ⅱ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 https://joohyeon.com/289 [본문으로]
  3. New Perspectives on the Decline of US Manufacturing Employment [본문으로]
  4. New Perspectives on the Decline of US Manufacturing Employment [본문으로]
  5. New Perspectives on the Decline of US Manufacturing Employment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7. New Perspectives on the Decline of US Manufacturing Employment [본문으로]
  8. Pol Antras, Teresa Fort 등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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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⑩] China Shock Ⅱ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⑩] China Shock Ⅱ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

Posted at 2020. 1. 5. 22:48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The China Trade Shock 

- Autor, Dorn, Hanson (2013)의 연구를 잇는 후속연구들


▶ Autor, Dorn, Hanson의 2013년 연구


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에서 소개한 오토어(Autor) · 돈(Dorn) · 한슨(Hanson)의 2013년 연구 <중국 신드롬: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The China Syndrome: Local Labor Market Effects of Import Competition in the United States>) 경제학계와 미국 내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막연하게 "아... 대중국 무역적자 심화가 미국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거 같은데.."라고 느끼던 사람들은 대중국 수입증대가 미국 제조업과 지역 노동시장에 어떤 형태로 충격을 주고 있는지를 오토어 · 돈 · 한슨의 실증분석을 통해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무역론을 세상에 내놓은 애덤 스미스[각주:1]는 『국부론』에서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라고 말했고, 현대 국제무역론 교과서는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하던 근로자는 무역개방 이후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여 전체 고용은 유지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 이론과 현실은 다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근로자들의 숙련도에 따라 재취업 여부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열위 산업에서 퇴출된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란 교과서가 말하는 것보다 힘듭니다. 게다가 기존에 살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 있는 기업에 재취업 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만약 현실 미국에서 제조업 근로자들이 비제조업으로 쉽게 이동하거나, 쇠락하고 있는 본거지를 떠나서 충격을 적게 받은 다른 통근 구역의 기업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면, 지역 노동시장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은 크게 나빠지지 않으며 제조업 집약도가 다른 지역들 간에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해, 미국 지역 노동시장들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에 유의미한 악화가 발생했거나 지역 간 차이가 드러났다는 사실 그 자체는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말한 충격 조정 기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극명히 드러냅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 출처 : The China Trade Shock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가정하는 '무역 충격의 조정기제'(adjustment mechanism)가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데,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입니다.


한 눈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주리 · 아칸소 · 테네시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 노스 캐롤라이나 등 남부 대서양 지역과 위스콘신 ·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 등 중서부 지역(이른바 러스트벨트)에 몰려있습니다.


남부 대서양 지역은 가구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 산업에 특화 · 중서부 지역은 저숙련 조립 제조업에 특화되어 있고, 충격을 흡수하는 교과서 속 조정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발 무역 충격이 남부(South) · 중서부(Midwest) 지역에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등(regional inequality)을 초래한 건 당연한 결과 입니다.


이처럼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무역의 분배적 영향'(the distributional consequences of trade)과 '무역 충격 조정과 관련한 중기 효율성 손실'(medium-run efficiency losses associated with adjustment to trade shocks)을 일깨워 주었고, 이후로도 후속연구를 이어갑니다.


▶ Acemoglu, Autor, Dorn, Hanson, Pierce의 2016년 연구


  • 위 :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데이비드 돈(David Dorn), 고든 한슨(Gordon Hanson)

  • 가운데 :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브렌던 피어스(Brendan Pierce)

  • 아래 : 이들의 2016년 논문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오토어 · 돈 · 한슨은 동료 경제학자 아세모글루 · 피어스와 함께 2016년 논문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Import Competition and the Great US Employment Sag of the 2000s>)을 발표합니다. 


이들은 2016년 논문을 통해 2013년 연구가 고려하지 않았던 무역 충격 경로를 탐구하였고, 1991년-2011년 사이 중국 수입경쟁으로 인한 미국의 총 일자리 손실의 하한선은 260만개 라고 말합니다. 

(주 : 2013년 연구는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으로 인한 제조업 일자리 손실이 154만개 라고 추정)


그렇다면 '2013년 연구가 고려하지 않았던 무역 충격 경로'는 무엇이며, '교역산업인 제조업 뿐 아니라 비교역산업인 비제조업이 어떻게 무역 충격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번글을 통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을 증폭시킨 요인들

- 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 지역 내 총수요 승수효과


▶ 1991년~2011년, 중국의 수입침투 증가 (Chinese Import Penetration)


  • 1991년~2011년 미국 내 중국의 수입침투율(Chinese Import Penetration Ratio)

  • 미국의 대중국 수입 및 대중국 수출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는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각주:2]가 살펴본 시계열(1991년~2007년)을 2011년까지 확장하여 중국발 무역 충격의 크기를 추정했습니다.


이때, 2016년 연구가 정의한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국 내 총소비 중 대중국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 '입니다. 2013년 연구가 사용한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 변화'와는 다릅니다.


2016년 연구는 지역 단위 뿐 아니라 전국 단위 분석도 실시하였고, '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효과' 및 '지역 내 총수요 효과'로 인해 중국발 무역 충격이 2013년 연구에서 결론지은 것보다 크다고 말합니다.


▶ 전국의 산업간 투입-산출 연결 관계 (Industry Input-Output Linkages)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미국 지역 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수입경쟁 증대로 지역 내 제조기업이 타격을 받고 이곳에 종사하던 근로자의 고용과 임금이 악화되는 경로를 살펴봤습니다.


기서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제조업 기업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점 입니다. 이른바 '산업의 투입-산출 연결관계'(Industry Input-Output Linkages) 입니다.


기업이 완성형 제품을 생산(output)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부품(input)을 조달해야 합니다. 역으로 중간재 및 부품(input)을 생산하는 기업은 제품 생산(output)을 위해 이를 필요로하는 기업에 판매합니다. 이때 기업들은 지역 내에서만 부품을 조달하거나 판매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위치한 기업과도 거래를 합니다.


게다가 기업들은 직접 연결을 넘어서 간접적으로도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연결은 산업을 뛰어넘습니다.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도 다른 곳에서 필요한 원자재를 조달하여 부품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기업들은 몇 단계를 거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조기업이 만든 최종 상품은 유통 · 물류 · 도소매 판매 서비스 등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됩니다. 


즉, 개별 기업들은 지역과 산업을 뛰어넘은 투입-산출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결된 기업의 경영상태 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 및 기업 간 투입-산출 연결관계는 고려치 않고, 수입경쟁이 지역 내 제조기업에게만 전달한 영향만 살펴본 2013년 연구는 실제 중국발 무역 충격을 과소평가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는 지역 단위가 아닌 전국 단위에서 연결된 제조업이 받은 영향(Sectoral Linkage at National Level)을 살펴봅니다.


저자들은 기업들간 연결관계가 미치는 영향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다운스트림 영향(Downstream Effect) 입니다. 이는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무역 충격을 받았을 때, 이곳에서 부품을 조달해온 기업이 받는 직접 영향과 다음 단계로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기업들이 받는 간접 영향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업스트림 영향(Upstream Effect) 입니다. 이는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이 무역 충격을 받았을 때, 이곳에 부품을 공급해온 기업이 받는 직간접 영향을 의미합니다.


저자들은 계량분석을 실시하기 이전에 직관적인 논리를 통해 그 영향을 추론했습니다.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수입경쟁으로 인해 상황이 나빠진다면,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은 다른 회사 혹은 다른 나라에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가 무너지면 삼성전자는 다른 곳에서 부품을 조달하면 그만입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무역충격으로 인한 '다운스트림 영향'은 크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이와는 달리, 부품을 조달해온 기업이 수입경쟁으로 상황이 나빠지면, 이곳에 부품을 공급하던 기업은 대체 판매처를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영상황이 악화되면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휘청거릴 겁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무역충격으로 인한 '업스트림 영향'(Upstream Effect)이 매우 크게 부정적일 거라고 예상합니다.


▶ 지역 내 재배치 효과 및 총수요 효과 (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Effect)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는 전국단위 분석 뿐 아니라 지역 노동시장 분석도 수행하였습니다. 이때, 2013년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두 가지 경로를 탐색합니다. 바로, 지역노동시장 내 '산업간 재배치 효과'(Reallocation Effect)와 '총수요 승수효과'(Aggregate Demand Effect) 입니다.


2013년 연구는 '중국발 수입경쟁이 지역 내 제조업 고용에 미친 영향'을 추정하였고, '지역 제조업 고용감소가 비제조업 고용 증가 · 실업률 증가 · 노동시장 이탈 등 셋 중 하나로 연결'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분석 결과 제조업 고용감소는 비제조업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산업간 생산요소의 재배치 효과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서비스업으로 재배치 되지 않은 이유로 노동시장 마찰을 꼽았고, 교과서 속 무역충격의 조정기제가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는 한발 더 나아가서, '산업간 재배치 효과'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로 '지역 내 총수요 승수효과'가 반대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수입경쟁으로 제조업 고용이 감소한 지역은 경기둔화의 여파로 총수요가 줄어들어 비교역재인 서비스업 고용증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만약 전국 단위에서 총수요 효과가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중국발 무역 충격은 경쟁부문인 제조업에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걸 넘어서서 미국경제 전체에 광범위한 충격을 주었을 겁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지역 내에서 추정한 총수요 승수효과는 미국 전역에 영향을 준 총수요 효과의 하한선이라고 판단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를 알아봅시다.




※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 ①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전체 산업에 미친 영향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는 우선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의 고용에 끼친 영향'(aggregate, industry-level)을 회귀분석을 통해 추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관계나 지역 내 총수요 효과 등은 고려치 않은 기본 분석 입니다.


  •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 산업의 고용에 끼친 영향


위의 표는 회귀분석 결과를 보여줍니다. 분석 결과, 1991년~2011년 중국의 수입침투율 1%p 증가는 미국 제조업 고용 1.3%p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저자들은 실제 제조업 고용 변화량을 토대로 중국발 무역 충격의 영향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미국 제조업 근로자수는 1991년~1999년 560만명 · 1999년~2011년 580만명 감소했습니다. 이 중 대중국 수입침투 증가가 유발한 제조업 고용 변화는 1991년~1999년 27.6만명 · 1999년~2011년 56만명으로 1991년~2011년 총 83.7만명 입니다. 


즉,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감소 현상에서 중국발 무역 충격의 영향은 14.9%를 차지합니다.


(사족 : 2013년 연구와 2016년 연구는 '중국발 무역 충격'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제조업 고용 감소에 미친 크기가 상이함)




※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 ② 전국 단위 산업의 투입-산출 연결관계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는 이어서 '중국발 무역 충격이 산업 간 투입-산출 연결관계를 통해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고용에 미친 영향'(manufacturing & non-manufacturing through input-output linkages)을 살펴봅니다.


  •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산업간 연결을 통해 제조업과 비제조업 고용에 미친 영향

  • 상단 A 패널 : 직접 연결 / 하단 B 패널 : 간접 연결


위의 표는 회귀분석 결과를 보여줍니다. 상단 A 패널은 직접 연결만, 하단 B 패널은 간접 연결을 포함한 영향을 나타냅니다.


저자들의 추론처럼,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무역 충격을 받았을 때, 이곳에서 부품을 조달해온 기업이 받는 '다운스트림 영향'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이 미국기업이 아닌 해외기업을 통해 부품을 계속 조달받음으로써 부정적 영향을 피해갔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이 무역 충격을 받았을 때, 이곳에 부품을 공급해온 기업이 받는 '업스트림 영향'은 유의미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업스트림의 부정적 영향은 비제조업 산업에서도 크게 나타났는데, 제조업을 지원하는 서비스업 고용도 큰 타격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직접 연결만 고려했을 때(First-Order Input-Output Linkages), 1991년~2011년간 중국발 무역 충격은 제조업 고용을 133만명 · 비제조업 고용은 80.5만명 감소시켜 미국 전산업 일자리 214만개를 감소(직접 연결)시켰습니다. 


간접 연결을 포함하여 모든 연결을 고려했을 때(Full Input-Output Linkage), 1991년~2011년간 중국발 무역 충격은 제조업 고용을 141만명 · 비제조업 고용은 122만명 감소시켜 미국 전산업 일자리 262만개를 감소(직간접 연결)시켰습니다.


앞서 제조업이 충격을 직접 받은 경우만 고려했을 때 나타난 일자리 수 83.7만개 감소와 비교하면, 직간접 연결은 중국발 무역 충격의 부정적 영향을 3배 가까이 증폭 시켰습니다. 




※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 ③ 지역 내 재배치 효과 ↔ 총수요 승수효과


이처럼 산업간 직간접 연결은 중국발 무역 충격의 부정적 영향을 크게 증폭시켰으나, 이것 또한 모든 경로를 다 반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줄어든 고용이 미국 전역의 총수요를 감소시켜 추가적인 부정적 영향을 초래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전국 단위에서 발생한 부정적 총수요 효과를 탐색하고 싶었으나 측정이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였고, 대안으로 지역 내에서 발생한 총수요 효과(aggregate demand effect in CZ)를 살펴봤습니다.


저자들은 '수입증대에 노출되지 않은 산업의 고용변화'(non-exposed sector)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총수요 효과를 추정합니다. 만약 수입경쟁과 관련이 없는 산업에서 고용이 늘어나지 않았다면, 이는 재배치 효과를 상쇄시키는 부정적인 총수요 효과가 지역 내에서 작용한 결과(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in CZ)라는 논리 입니다.


여기서 '수입증대 노출' 여부는 1991년~2011년간 수입노출도가 최소한 2%p 상승한 모든 제조업 세부산업과 지역 내 직간접 연결을 고려한 수입노출도가 최소 4%p 상승한 제조업 및 비제조업 산업 세부산업으로 판단하였습니다. 


  •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수입경쟁에 노출된 산업(exposed-sector)과 노출되지 않은 산업(non-exposed sector)의 고용에 미친 영향


위의 표는 1991년~2011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수입경쟁에 노출된 산업과 노출되지 않은 산업의 고용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분석 결과, 대중국 수입증대는 비노출 산업의 고용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며, 추정된 계수 값 자체도 0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산업간 재배치로 인한 고용 증가 대부분이 부정적인 총수요 효과에 의해 상쇄됨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지역 단위 분석을 통해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대중국 수입에 노출된 지역 내 산업은 1991년~2011년간 일자리가 308만개 감소했습니다. 이 수치는 대중국 수입의 직접 충격 + 지역 내 산업간 직간접 연결을 통한 충격 + 지역 내 부정적 총수요 효과를 모두 감안한 값입니다.


이때, 미국 전역에 작용하는 총수요 효과가 지역 내에서만 작동하는 총수요 효과보다 클 거라는 점 그리고 지역을 뛰어넘은 산업간 연결을 통한 부정적 효과의 전달 등을 생각하면1991년~2011년간 일자리가 308만개 감소는 미국 전역에 영향을 미친 실제 중국발 무역 충격 크기의 하한선 입니다.




※ 수입경쟁과 2000년대 미국 고용의 대악화

- 분석단위별 고용 변화 비교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논문을 통해 제시한 분석 단위를 다시 한번 정리해봅시다.


첫번째는 수입증대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제조업 산업의 고용 변화 입니다. 여기에는 산업간 연결 및 총수요 효과 등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는 직접 노출 + 전국 단위 직(간)접 연결을 통해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입니다. 여기에는 전국 단위로 작용하는 산업간 연결을 고려하였고, 전국 단위의 재배치 효과와 총수요 효과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National Industry Linkages O, National 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X)


세번째는 지역 내 직접 노출 + 직간접 노출 + 비노출된 산업들의 고용 변화이며, 여기에는 지역 내 재배치 · 총수요 · 산업간 연결만 고려했지 전국 단위에서 이들 영향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Local 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O, Local Industry Linkages O, National Reallocation & Aggregate Demand X, National Industry Linkages X)


  • 분석단위별 고용 변화 비교 (단위 : 천 명)
  • 1행 : 수입증대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제조업 산업의 고용 변화
  • 2,3행 : 직접 노출 + 전국 단위 직(간)접 연결을 통해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 4행 : 지역 내 직접 노출 + 직간접 노출 + 비노출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그리고 위의 표는 분석단위별 고용 변화를 보기 쉽게 정리한 겁니다.


▶ 수입증대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제조업 산업의 고용 변화 (1991년~2011년)

:  제조업 고용 83.7만명 감소


▶ 직접 노출 + 전국 단위 직접 연결을 통해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1991년~2011년)

: 제조업 고용 133만명 감소

: 비제조업 고용 80.5만명 감소

: 전산업 고용 214만명 감소


▶ 직접 노출 + 전국 단위 직간접 연결을 통해 연결된 제조업 · 비제조업 산업들의 고용 변화 (1991년~2011년)

: 제조업 고용 141만명 감소

: 비제조업 고용 122만명 감소

: 전산업 고용 262만명 감소


▶ 지역 내 직접 노출 + 직간접 노출 + 비노출된 산업들의 고용 변화 (1991년~2011년)

: 노출 산업 308만명 감소

: 비노출 산업 2.4만명 감소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고용에 미친 악영향은 이전 추정치보다 크다

- 그런데... 대중국 교역이 가져다 준 이익은 고려하지 않나?


이와 같이 아세모글루 · 오토어 · 돈 · 한슨 · 피어스의 2016년 연구는 '2013년 연구가 고려하지 않았던 무역 충격 경로'(전국 단위 산업간 연결 / 지역 단위 총수요 · 재배치와 산업간 연결)를 살펴봄으로써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제조업 · 비제조업 고용을 최소한 308만개 감소시켰고 이것은 2013년 추정치보다 훨씬 큼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국발 무역 충격을 다룬 연구는 이외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오토어 · 돈 · 한슨과 아세모글루 · 피어스 등은 다른 동료 학자들과 함께 'THE CHINA TRADE SHOCK' 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중국의 부상이 미국 근로자, 기업,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중국과의 교역 확대는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만 가져다준 것일까요?


지난글[각주:3]과 이번글에서 소개한 연구들은 애시당초 '무역 충격을 흡수하는 조정기제의 부재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탐구하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국 교역이 가져다 준 이익은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대중국 무역 충격을 받은 지역만 말할 뿐, 글로벌 밸류체인(GVC) 형성으로 이득을 본 지역과 산업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 이외에 다른 경제학자들은 "대중국 교역 확대가 미국 경제 전체로는 순이익을 가져다주었다"(net aggregate gain), "대중국 교역 확대는 기업구조를 서비스업으로 재조직하였다"(reorganization) 등의 논문을 발행하여 논의의 폭과 깊이를 넓혀주었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중국의 부상이 미국 경제에 미친 영향'을 보다 폭넓은 관점으로 알아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https://joohyeon.com/288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https://joohyeon.com/28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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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Posted at 2020. 1. 3. 17:40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The China Trade Shock


  • 1999년 11월, 미국과의 양자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WTO 가입에 다가선 중국 (링크)
  • 2010년 2월, 중국과의 문제에 직면한 미국 (링크)
  • 2019년 5월, 새로운 종류의 냉전 (링크)


오늘날 미국의 주적은 중국 입니다.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주주의 · 시장경제 전파에 둔 클린턴행정부의 포용[각주:1] 덕분에 중국은 1999년 11월 미국과 양자무역협정을 체결하고 2001년 12월 WTO에 가입했는데...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세계경제와 미국경제에 미친 영향력[각주:2]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 2000년대 전세계 교역 · 상품가격 호황과 국가간 불균등 감소


  • 위 : 1980년~2017년, 전세계 수출·수입 액수 추이 (출처 : IMF DOT)

  • 아래 : 1990년~2012년, 전세계 제조업 부가가치 및 수출 중 중국의 비중 (출처 : Autor, Dorn, Hanson 2016)


제조업 가공무역에 기반을 둔 중국경제의 특성은 전세계 제조업 생산 및 수출 통계에서도 돋보입니다. 

전세계 교역액은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1990년대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로는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또한, 전세계 제조업 생산 및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은 1990년대부터 서서히 늘어나다가 2000년대 들어서 압도적인 크기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 왼쪽 : 1992년~2019년 원자재 가격지수 (2016년 100기준)
  • 오른쪽 : 1992년~2019년, 한국 수출액 추이

중국의 경제발전은 여러나라 특히 신흥국에게 이익을 안겨다주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은 제품생산을 위해 원자재를 대규모로 수입하였고 이로 인해 석유 · 철강 · 구리 등 상품가격이 폭등하여 원자재 수출국의 호황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또한, 중국은 아시아 내 글로벌 밸류체인(GVC)의 중심을 맡아 Factory Asia를 형성[각주:3]하였고, 한국 ·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며 교역액을 대폭 늘렸습니다.

  • 1988년~2008년 사이, 글로벌 소득계층별 소득증가율을 보여주는 '코끼리 그래프'(Elephant Graph)
  • 왼쪽 출처 : 밀라노비치, 랑커 2014년 연구보고서
  • 오른쪽 출처 : 피터슨 국제연구소

이러한 중국 · 아시아 · 신흥국의 성장은 '국가간 불균등'을 감소[각주:4]시켰고 글로벌 소득분포를 가운데로 이동시켰습니다. 

1988년~2008년 동안 글로벌 소득분포 내 75분위~90분위에 위치한 계층의 소득 증가율 10%가 채 안되며 매우 낮았음을 윗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소득이 가장 크게 증가한 계층은 중간에 위치한 40분위~70분위와 최상위 100분위이며 6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미국 · 서유럽 내 상위층은 전세계에서도 상위층이기 때문에 100분위에 속합니다. 그리고 선진국 중하위층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행운 덕분에' 글로벌 소득분포상에서는 상위권인 75분위~90분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 인도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대부분 30분위~70분위에 위치해 있죠. 

즉, 20년간 선진국 중하위층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었고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소득증가율은 가팔랐습니다.


▶ 2000년대 미국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대중 무역적자 확대

문제는 '20년간 선진국 중하위층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세계화와 중국의 경제발전은 수십억명을 빈곤의 덫에서 구해주었으나, 선진국 중하위층 특히 제조업에 종사하던 저숙련 근로자들은 상당한 충을 받았습니다. 말그대로 '중국발 무역충격'(The China Trade Shock) 입니다.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의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는 1979년 최대 1,950만명 · 1980~90년대 평균 1,700만명대를 기록하였으나, 2007년 1,400만명 · 2011년 1,100만명 · 2019년 현재 1,300만명을 기록하며 최근 30년간 400만명(-25%) 감소했습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을 기준으로 하면 30년간 600만명(-35%)이나 줄어들었습니다. (사족 : 노동 통계 종류에 따라 제조업 근로자 수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

그런데 제조업 근로자 수가 줄어든 건 중국발 무역충격 때문이 아니라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2001 닷컴버블 붕괴 · 2008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근로자 수가 급감했기 때문에 거시경제 이벤트 및 경기순환적 요인이 작용했다 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 소비자들의 선호가 제품(goods)에서 서비스(services)로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술변화가 반복작업을 수행하는 제조업 근로자를 대체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1990년대-2000년대 당시 경제학자들이 주목했던 건 기술변화[각주:5] 였습니다. 노동경제학자들이 발전시킨 '업무기반 분석체계'(task-based framework)와 '반복편향적 기술변화'(RBTC, Routine-Based Technological Change)는 2000년대 미국 및 선진국 노동시장의 특징인 '일자리 양극화'와 '중하위층 간 불균등 정체' 현상을 완벽히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기술변화 이외의 다른 요인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 1987년~2019년 미국 무역적자 추이
  • 1980년대-1990년대 초반 미국 무역적자의 상당부분은 일본에게서 왔다(40% 이상)
  • 1990년대 들어서 대중국 무역적자가 커지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 급증하였다(40% 이상)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2000년대부터 대중국 무역적자는 심화되어 왔음에도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87년~2019년 미국 무역적자 추이를 주요 교역상대국별 비중과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 대중국 무역적자가 커지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 급증합니다. 2019년 현재 미국 무역적자 중 대중국 적자 비중은 40%~50%에 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3년 당시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이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각주:6]라고 말한 것럼, 2005년 당시 연준 이사였던 벤 버냉키는 "글로벌 과잉저축이 미국 경상수지 적자를 유발하고 있다"[각주:7]고 진단했습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 한 교역, 특히 저임금 노동집약적 제조업에 특화한 13억 인구를 가진 국가를 상대로 이렇게 많은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데,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중국의 부상'(China's Rise)을 인지하게 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의 진단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배경과 맥락 속에서 2013년 한 노동경제학자는 동료 두 명과 함께 논문 하나를 발표합니다. 



※ The China Syndrome: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 왼쪽 : 데이비드 오토어 (David Autor)

  • 가운데 : 데이비드 돈 (David Dorn)

  • 오른쪽 : 고든 한슨 (Gordon Hanson)

  • 이들의 2013년 논문 <중국 신드롬: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ivd Autor)는 동료 학자 데이비드 돈(Daivd Dorn) · 고든 한슨(Gordon Hanson)과 함께 2013년 논문 <중국 신드롬: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The China Syndrome: Local Labor Market Effects of Import Competition in the United States>)을 발표합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2013년 논문을 통해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상정하는 핵심 가정이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으며,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논문 제목에 나오는 '수입경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지역 노동시장'을 분석하는지 등을 이해하며 차근차근 논문의 내용을 알아봅시다.


▶ '지역 노동시장'(Local Labor Market)이란 무엇인가?



오토어 · 돈 · 한슨이 선정한 분석대상은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 근로자의 고용 및 임금 변화'(Employment · Wage Changes in Local Labor Market)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 노동시장' 이란 단순히 미국 개별 주(States) 안에 있는 행정구역 카운티(Counties)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강한 통근 연결도'로 묶인 카운티들의 '통근 구역'(Commuting Zones)을 뜻합니다. 


한국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만약 대중국 수입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려면 '지역'을 정의해야 합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강남구 · 서초구 · 마포구 · 성남시 분당구 · 고양시 일산동서구 등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이용하는 겁니다. 이들 행정구역 내의 고용변화를 토대로 무역이 특정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초구 삼성타운에 위치해있는 삼성 계열사 한 곳이 망하면 단순히 행정구역 서초구의 고용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른 행정구역에 거주하면서 서초구로 통근하는 취업자 수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역 노동시장'은 단순히 주어진 행정구역을 이용해서는 안되며, '통근 강도'를 기반으로 재정의한 '통근 구역'(CZ)을 사용해야 합니다. 미국 센서스는 관련 있는 카운티들을 묶은 741개의 통근 구역을 정의해놓고 있으며, 본 논문은 이 중 미국 본토에 위치한 722개 통근구역을 사용했습니다.


▶ 왜 '지역 노동시장'(CZ)을 분석하나?


그렇다면 오토어 · 돈 · 한슨은 왜 지역 노동시장(CZ)을 분석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본 논문이 경제학계 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한 핵심 물음 입니다.


지역 노동시장을 분석 단위로 삼은 첫번째 이유는 '차이'(variation)을 포착하기 위해서 입니다. 


단순히 미국 내 제조업 근로자 수가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중국과의 교역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거시경제 이벤트 때문일 수도 있고, 소비자 선호 변화 때문일 수도 있고, 기술변화 때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변수 하나가 연구대상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른 조건은 동일하지만 독립변수가 영향을 줄 수 있는 한 가지 조건만 차이가 나는 두 대상'을 비교해야 합니다. 기존 연구들에서 고숙련 근로자 vs 저숙련 근로자 혹은 자본집약 산업 vs 노동집약 산업 등 차이가 있는 두 대상을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미국 내 지역 노동시장들 사이에서 '제조업 고용비중 & 제조업 세부산업 중 수입집약산업 특화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 남부는 의복 · 목재 · 인형 등 노동집약 상품을 중서부는 자동차 등 자본집약 상품을 주로 생산하며, 중부는 농업 서부는 IT에 특화되어 있죠. 


이들 지역 노동시장들은 거시경제 이벤트 · 소비자 선호 변화 · 기술변화의 영향을 동일하게 받지만, 제조업에 의존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고 제조업 중에서도 노동집약도가 다르기 때문에 중국발 무역충격 강도의 차이가 납니다(variation). 


따라서,  제조업 고용비중 & 제조업 세부산업 중 수입집약산업 특화 정도가 다른 두 지역 간 고용변화를 비교하면 중국발 무역충격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지역 노동시장을 분석 단위로 삼은 두번째이자 핵심 이유는 자유무역이론의 핵심가정인 '근로자의 이동성'(mobility)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입니다.


비교우위에 기반한 자유무역론은 '자유무역 이후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하던 근로자는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여 전체 고용은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자유무역의 이로움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드러나 있으며[각주:8], 오늘날 국제무역론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에도 근로자 이동의 마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자유무역을 회복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통상의 일터와 통상의 생계수단을 일시에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그들이 고용 또는 생계를 박탈당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우리가 병사의 습관과 제조공의 습관을 비교해 볼 때, 병사가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보다 제조공이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조공은 언제나 자기 노동에 의해 생계를 얻는 데 익숙 (...)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68쪽


하지만 교과서 이론과 현실은 다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근로자들의 숙련도에 따라 재취업 여부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열위 산업에서 퇴출된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란 교과서가 말하는 것보다 힘듭니다. 게다가 기존에 살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 있는 기업에 재취업 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만약 현실 미국에서 제조업 근로자들이 비제조업으로 쉽게 이동하거나, 쇠락하고 있는 본거지를 떠나서 충격을 적게 받은 다른 통근 구역의 기업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면, 지역 노동시장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은 크게 나빠지지 않으며 제조업 집약도가 다른 지역들 간에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해, 미국 지역 노동시장들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에 유의미한 악화가 발생했거나 지역 간 차이가 드러났다는 사실 그 자체는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말한 충격 조정 기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극명히 드러냅니


근로자 이동성에 마찰이 존재한다면 무역 충격의 피해자인 제조업 근로자는 서비스업 근로자와 비교해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에 처하게 되어 경제적 불균등(economic inequality)이 확대될 겁니다. 또한, 중국발 충격을 많이 받은 지역일수록 고용지표가 더 악화되기 때문에 이는 미국 내 지역간 불균등(regional inequality)을 초래합니다.


▶ '대중국 수입노출'(import exposure from China)의 직접효과 · 순효과


오토어 · 돈 · 한슨은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 변화'(the change in Chinese import exposure per worker in a region)를 중국발 무역 충격으로 증대된 수입경쟁으로 정의하였고, 이것이 고용과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합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지역별 산업구조와 특화에 따라 지역 근로자가 중국발 충격에 노출되는 강도에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때 중국발 충격은 크게 2가지 경로로 지역 근로자에 영향을 미칩니다. 첫번째는 수입경쟁 산업에종사하는 근로자가 받는 직접효과[각주:9]. 두번째는 지리적 영역의 고용 · 소득 · 경제활동참가율 · 지리적 이동 · 공공부조 등에 미치는 순효과[각주:10] 입니다.


중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제조업에 근무하던 미국 근로자는 당연히 중국발 무역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기 때문에, 만약 중국발 무역 충격이 실재한다면 고용과 임금 상황이 악화됩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대중국 교역이 제조업과 지역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고용과 임금은 변화하지 않을 겁니다.


즉, 직접효과인 지역 내 미국 제조업의 고용비중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중국발 무역 충격의 존재 여부와 강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실재하는 중국발 무역 충격으로 인해 지역경제가 타격을 받아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는 타격을 받지 않은 혹은 덜 받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근로자 이동성에 마찰이 존재한다면 근로자는 본래 지역에 머무를 겁니다. 이 경우 지역 내 제조업 고용 감소는 비제조업 고용 증가 · 실업률 증가 · 노동시장 이탈 등 셋 중 하나로 연결됩니다. 


또 이때 근로자가 쉽게 다른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제조업 고용 상실 크기 만큼 지역 내 비제조업 고용이 증가할텐데, 이동에 마찰이 존재하면 비제조업 고용은 증가하지 않고 지역 내 실업률 증가와 경제활동참가율 감소가 나타날 겁니다.


따라서, 무역 충격 이후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순효과를 통해 '무역충격을 흡수하고 조정하는 기제가 교과서처럼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중국발 무역충격이 지역 내 제조업 고용에 미친 직접효과


이제 본격적으로 '중국발 무역충격이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에 미친 직접효과'를 살펴봅시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지역 노동시장 내 제조업 고용률에 미친 영향

  • 도구변수를 이용하여 2SLS 추정


위의 표는 1990-2007년 간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 변화가 지역 내 제조업 고용률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빨간색 네모 안의 -0.596 값은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수입노출 1,000달러 증가가 제조업 고용률을 0.596%p 감소시킴'을 의미합니다. 실제 1인당 중국 수입액 증가 크기는 1990년~2000년간 1,140달러, 2000년~2007년간 1,839달러 이기 때문에, 두 기간동안 중국 수입이 감소시킨 제조업 고용률은 각각 0.68%p, 1.10%p 입니다. 


그리고 두 기간 실제 제조업 고용률은 각각 2.07%p, 2.00%p 줄어들었기 때문에, 미국 제조업 고용 감소에 있어 중국발 무역 충격의 책임은 1990년~2000년 33% · 2000년~2007년 55% 그리고 전체 기간인 1990년~2007년 44%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이 증가한 이유는 중국의 경제발전(공급증가) 때문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중국산 제품 수요가 늘어나서 일 수도 있습니다. 논문 저자들은 미국인들의 수요요인을 배제하고 중국의 경제발전(공급증가)의 영향만 순수히 고려했을 때, 중국발 무역 충격의 보수적인 책임은 1990년~2000년 16% · 2000년~2007년 26% 그리고 전체 기간인 1990년~2007년 21% 라고 말합니다.


이를 종합하여, 오토어 · 돈 · 한슨은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를 1990년~2000년 54만 8천명, 2000년~2007년 98만 2천명 감소시켰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순효과


앞서 설명하였듯이,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근로자가 다른 산업에서 쉽게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거나 충격을 비교적 덜 받은 다른 지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면, 미국 지역 노동시장 내 임금 · 실업률 · 경제활동참가율 등에 유의미한 악화가 발생하지 않으며 제조업 집약도가 서로 다른 지역 간에도 뚜렷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교과서 속 자유무역이론이 말하는 충격 조정 기제(adjustment mechanism)이 현실에서 작동하는지 살펴봅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통근구역 내 인구 변화에 미친 영향
  • 교육수준별 및 연령별


위의 표는 1990년-2007년 간 지역 내 근로자 1인당 대중국 수입액 변화가 인구 변화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인구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은 근로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다는 의미(reallocation of workers across CZs)이며, 유의미한 인구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근로자의 이동성에 마찰이 있음(friction of labor mobility)을 보여줍니다.


계량분석 결과는 대중국 수입액이 늘어났더라도 유의미한 인구 변화는 없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연령별 · 성별로 자세히 살펴봐도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이동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충격이 발생했음에도 인구 조정이 부진했다"(population adjustment to local economic shocks are sluggish because mobility is costly)라고 주장합니다.


  •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 고용 · 비제조업 고용 · 실업률 · 경제활동 비참가율에 미친 영향


만약 무역 충격을 받은 제조업 근로자가 본래 통근 구역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역 제조업 고용 감소는 비제조업 고용 증가 · 실업률 증가 · 노동시장 이탈 등 셋 중 하나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위의 표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제조업 고용 · 비제조업 고용 · 실업률 · 경제활동 비참가율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대중국 수입액 1,000달러가 증가할 때 제조업 고용률은 0.596%p 줄어드는데, 비제조업 고용률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실업률은 0.22%p 올라가고 경제활동 비참가율도 0.55%p 증가합니다. 


특히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제조업 근로자는 대졸 근로자에 비하여 실업과 노동시장 이탈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즉, 대중국 무역 충격으로 인한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그만큼 실업률 상승과 노동시장 이탈로 이어지며 교과서 속 조정기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 중국 신드롬: 미국 내 수입경쟁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 출처 : The China Trade Shock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위의 이미지 한 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데, 빨간색일수록 더 많은 충격을 받은 지역 입니다.


한 눈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중국발 무역 충격은 미주리 · 아칸소 · 테네시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 노스 캐롤라이나 등 남부 대서양 지역과 위스콘신 · 일리노이 · 인디애나 · 오하이오 등 중서부 지역(이른바 러스트벨트)에 몰려있습니다.


  • 1991년~2007년, 제조업 내 세부산업별 수입침투 증가율(X축)과 1991년 기준 생산근로자 비중(Y축)의 관계
  • Autor, Dorn, Hanson, Song (2014)


중국발 무역 충격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이유는 중국의 수입품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91년~2007년, 제조업 내 세부산업별 수입침투 증가율(X축)과 1991년 당시 해당 산업의 생산근로자 비중(Y축)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구체적으로 산업별 수입침투율을 살펴보면, 인형 · 스포츠장비 · 기타 32.6% 증가, 의복 · 가죽 · 섬유 16.7% 증가, 가구 · 나무목재 16.7% 증가, 기계 · 전자 15.2% 증가 입니다. 그리고 이들 산업은 1991년 기준으로 생산근로자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그래프 상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즉, 1991년~2007년간 수입노출이 가장 크게 증가한 부문은 주로 저숙련 노동집약 산업 입니다. 그리고 중국이 풍부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단순조립 가공무역을 통해 전자제품을 수출[각주:11]해왔음을 감안한다면, 미국이 피해받은 전자 기업도 저숙련 노동 집약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남부 대서양 지역은 가구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 산업에 특화 · 중서부 지역은 저숙련 조립 제조업에 특화되어 있고, 충격을 흡수하는 교과서 속 조정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발 무역 충격이 남부 · 중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지역간 불균등을 초래한 건 당연한 결과 입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은 연구를 통해 "자유무역이 나쁘다" 혹은 "중국과의 교역을 줄여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들은 자유무역이론과 국제경제학자들이 당연시 했던 '무역충격의 조정기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파 했습니다. 


따라서, 오토어 · 돈 · 한슨의 연구는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놓치고 있었던 '무역의 분배적 영향'(the distributional consequences of trade)과 '무역 충격 조정과 관련한 중기 효율성 손실'(medium-run efficiency losses associated with adjustment to trade shocks)을 일깨워 줍니다.




※ Autor · Dorn · Hanson의 2013년 연구가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 이전에도 '무역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던 연구는 계속해서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이들의 2013년 연구가 세계 경제학계와 미국 정치권 · 대중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은 것일까요?


①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기반했던 과거 연구들 


국제무역을 연구해온 학자들이 '무역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의존했던 이론은 '헥셔-올린 모형' 및 '스톨퍼-새뮤얼슨 정리' 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무역 개방 이후 상품가격 변화가 생산요소 가격을 일대일로 변화시킨다는 이론에 기반하여, 무역이 숙련 근로자와 비숙련 근로자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한 학자[각주:12]는 "무역자유화 이후 상품가격 자체가 변화하지 않았으므로 헥셔-올린 모형을 살펴볼 필요조차 없다"고 말했으며, 다른 학자[각주:13]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게 숙련집약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에, 헥셔-올린 모형이 말하는 것처럼 무역이 불균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학자[각주:14]가 지적한 것처럼 헥셔-올린 기반 연구는 "개발도상국이 정교한 상품을 수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통계적 착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헥셔-올린 모형도 결국 무역 충격을 흡수하는 조정기제가 완벽히 작동하는 비교우위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론이 상정하는 핵심 가정이 현실과 다른데, 이 이론을 기반으로 연구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② 마이크로데이터를 이용한 실증분석을 통해 자유무역이론의 핵심 가정을 건드렸다


오토어 · 돈 · 한슨의 연구는 통근 구역 등 마이크로데이터를 이용하여, 자유무역이론이 상정하는 핵심 가정이 현실 속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이번글에서 살펴봤듯이, 일자리를 잃은 미국 제조업 근로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쉽게 이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무역 충격을 받지 않은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를 구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산업구조가 다른 미국 지역들은 점차 경제환경이 벌어지는 '지역간 불균등'이 유발되었습니다.


미국 정치권 · 언론 · 대중들은 막연하게나마 "아... 대중국 무역적자 심화가 미국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거 같은데.."라고 느끼던 상황에서, 그리고 다른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은 사회 전체적으로 순이익을 가져다준다"라는 교과서 속 이야기만 읊어대던 답답한 상황에서, 오토어 · 돈 · 한슨의 연구는 '무역의 분배적 영향'이 단기가 아니라 '중기적으로 영향을 미침'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 (노파심) 자유무역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 그럼에도 중국발 무역 충격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동료 학자들의 노파심이 대중들의 경제학 외면을 불러왔다[각주:15]고 주장합니다. 자유무역이론의 문제점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그것이 바로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목소리로 이어질 노파심 때문에, 정작 경제학자들이 분배 문제 우려를 축소하고 무역이 가져다주는 순이익만 말해왔다는 겁니다.

오토어 · 돈 · 한슨도 약간의 노파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글을 통해 "무역의 총이익이 음(-)이라는 건 아니다" 라고 강조합니다. 다만, "무역이 가져다주는 분배적 악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논문이 발표된 이후, 오토어 · 돈 · 한슨과 다른 경제학자들은 '중국발 무역 충격'(The China Trade Shock)과 '무역이 초래하는 분배적 영향'(Distributional Effect)에 대해 더 자세히 연구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오토어 · 돈 · 한슨의 2013년 연구는 '대중국 수입액이 지역 내 제조업의 고용에 미친 영향'에만 주목했으나, 여러 제조업들이 거래관계를 통해 전국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중국발 무역 충격은 더 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중국의 경제발전 덕분에 미국기업들에게 수출시장이 열렸다는 점과 중국의 값싼 중간재를 이용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발 무역은 충격이 아니라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The China Trade Shock를 다룬 연구들을 더 알아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https://joohyeon.com/287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s://joohyeon.com/274 [본문으로]
  7.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https://joohyeon.com/195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9. the direct effect of trade shocks on employment and earnings at import-competing employers [본문으로]
  10. net effects on employment, earnings, labor force participation, geographic mobility, and take-up of public transfer benefits in the surrounding geographic area.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https://joohyeon.com/287 [본문으로]
  1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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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Posted at 2019. 12. 30. 15:13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와 국가내 불균등의 확대


①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 -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의 경제발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자유주의 무역시스템 WTO 출범[각주:1] 정보통신기술의 확산(ICT)[각주:2]이 만들어낸 세계화[각주:3]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각주:4]GVC 참여[각주:5]에 이은 경제발전 덕분에 '국가간 불균등은 크게 감소'[각주:6](Between Inequality ↓) 하였습니다. 


( 지난글[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


  • 1990년-2030년(예상) 동안 절대적 빈곤 수치 변화

  • 남아시아(연한 빨강), 동아시아 및 태평양(진한 빨강),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파랑)
  • 출처 : Our World in Data - Global Extreme Poverty


1990년 절대적 빈곤자 수는 19억명이었고 이는 전세계 인구의 36%에 달했습니다. 대부분이 중국 ·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거주했는데, 이들 국가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2015년 절대적 빈곤자수는 7억 3천명 · 전세계 인구의 9.9%로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 1988년과 2011년의 글로벌 소득분포 모양의 변화 :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으로 인해 글로벌 중산층이 두터워짐

  • 자세한 내용은 지난글[각주:7] 참고


글로벌 소득분포는 쌍봉 모양에서 중간이 두터워진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1988년에는 상위층과 하위층으로 양분된 쌍봉모양을 볼 수 있으며, 개발도상국 인구가 수십억명에 달했기 때문에 하위층이 더 두꺼운 모양입니다. 2011년에는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경제발전과 소득증가로 인해 글로벌 중산층이 두터워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 -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내 상위 10% 소득비중 증가


이처럼 자유무역과 정보통신기술은 '국가간 불균등'(Between Inequality)을 줄임으로써 '글로벌 차원의 불균등'(Global Inequality) 해소에 크게 기여했는데..... 


같은 시기 '국가내 불균등'(Within Inequality)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 1980년~2016년 사이, 미국-캐나다 · 유럽 · 러시아 · 중국 · 인도 내 상위 10% 소득 비중

  • 모든 국가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늘어났다

  • 출처 : World Inequality Report 2018


위의 그래프는 1980년~2016년 사이 미국-캐나다 · 유럽 · 러시아 · 중국 · 인도 내 상위 10% 소득 비중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가릴것 없이, 대부분 국가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늘어났습니다. 


  • 1963년~2005년, 미국 내 대졸/고졸 임금 격차 추이 (경력 0~6년차 및 20~29년차별 비교)

  • 출처 : Autor, Katz, Kearney (2008)


소득 상위 계층으로의 쏠림은 학력별 임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63년~2005년 미국의 대졸/고졸 임금 격차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 대졸 프리미엄(college premium)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그 추세는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1970~1980년대에 무슨 일이 발생했나? - 국제경쟁심화와 컴퓨터의 등장


국가내 불균등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1970~1980년대에 주목합니다. 국가간 불균등 감소의 시작이 1990년대[각주:8]라면 국가내 불균등은 1970년대부터 확대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던 걸까요?


① 미국의 무역적자 확대와 국제경쟁력 훼손


  • 왼쪽 : 1960~88년, 신발(Footwear) · 의류(Apparel) · 섬유(Textiles) 미국 내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오른쪽 : 1960~90년, 미국 차량등록대수 중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 변화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글[각주:9] 참고


첫번째는 '국제경쟁심화' 입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봐왔듯이, 1970~1980년대 속 미국인들은 '국가경쟁력 악화'를 크게 우려[각주:10]했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높아지는 실업률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확대 등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무역적자폭 확대를 '세계 상품시장에서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악화됨(deterioration of competitiveness)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인식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신발 · 의류 · 섬유 품목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하였는데, 미국의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은 펜실베니아 · 남부 · 남캐롤라니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 지역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자동차 산업도 외국과의 경쟁증대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산업 입니다. 1975~80년 사이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2배 증가하였고, 자동차 산업이 몰려있던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실업률은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원인을 국제무역에서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제조업 위축은 또 다른 경제적 문제로 연결됩니다. 제조업은 저숙련 근로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제조업의 위축은 임금불균등 증대(rise of wage inequality)로 연결될 위험이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1970~8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은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제조업 고용 및 임금이 감소하고 그 결과 임금불균등이 확대되는 것 아닐까?"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② 업무에 도입되기 시작한 컴퓨터


  • 왼쪽 : 1984년 4월호 TIME지 표지를 장식한 빌 게이츠

  • 오른쪽 : 1984년 매킨토시를 출시한 스티브 잡스


두번째는 '컴퓨터 혁명' 입니다.


오늘날에 과거를 돌아보면 정보통신기술(ICT) 투자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시기는 1995년 입니다. 이 시기에 윈도우95가 출시됐고 개인용 PC가 각 가정에 대규모로 보급됐습니다. 그리고 전화모뎀을 이용한 PC통신으로 멀리 떨어진 개인간 의사소통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업무에 도입되어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입니다. 1984년 애플 매킨토시와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1.0이 출시되면서 기업들은 업무에 PC를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PC를 보유한 사업체는 1984년 10% 미만이었으나 1989년에는 35% 이상으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업무에 PC를 사용하는 근로자의 비중은 1984년 24.6%에서 1989년 37.4%로 50% 이상 증가했습니다.


컴퓨터는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근로자의 생산성을 개선시켰습니다. PC를 이용한 주요 업무는 문서 작성 · 엑셀 계산 · 이메일 · 설계 · 판매 정리 등이었고, 오랜 시간이 걸리던 단순반복 업무는 빠른 시간에 끝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컴퓨터가 가져다준 생산성 개선의 혜택이 '대학을 졸업한 사무직 화이트칼라'(college-white collar)에 집중되었다는 점입니다. 1989년 기준 대졸 이상 근로자의 58.2%가 컴퓨터를 업무에 사용했으나, 고졸은 29.3%, 고졸 미만은 7.8%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직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48.4%가 컴퓨터를 이용했으나, 생산직 블루칼라 근로자는 11.6%에 불과했습니다.


그 결과,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컴퓨터를 이용할 능력을 갖춘 대학 졸업 근로자와 갖추지 못한 고등학교 졸업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확대되기 시작(college premium)합니다. 고졸 대비 대졸의 임금 비율은 1979년 1.34에서 1991년 1.56으로 증가합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숙련된 기술을 갖춘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기술변화가 미국의 임금구조를 변화시켰다"고 진단했습니다.


③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Trade vs. Technology)


정치인과 대중들이 문제로 삼았던 건 국제무역,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불공정 무역'(Unfair Trade with Japan) 이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킬 수 있는 무역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각주:11]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덤핑(dumping)과 시장접근(market access) 등 일본의 불공적 무역을 정치적으로 이슈화하였고 '공정무역'(fair trade)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각주:12]를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일본을 타겟으로 한 무역정책이 보호무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 노동시장 내 불균등 확대의 원인은 국제무역이 아니라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당시의 국제무역이론으로는 불균등 확대를 설명할 수 없으며, 실제 데이터도 기존 무역모형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경제적 불균등 확대의 주요 원인이 기술변화에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런 생각은 200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왜 경제학자들은 국가내 불균등 심화의 원인을 '기술변화'에서 찾았을까요?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 이러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 연유가 무엇일까요? 이번글에서 이를 알아봅시다.




※ (이론적)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의 예측과 실패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무역은 임금구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이를 간략하게 복습해봅시다.


▶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의 예측 (Predictions of Hecksher-Ohlin Model)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Hecksher-Ohlin Model)[각주:13]은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국제무역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① 숙련풍부국은 값싼 숙련집약 상품을 수출, 비숙련풍부국은 값싼 비숙련집약 상품을 수출


국제무역이론을 설명하면서 누차 말했다시피, 국제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각주:14]은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different relative price) 입니다. 


수출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할 때보다 외국에 판매할 때 더 높은 상대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higher relative price) 이고, 수입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구입할 때보다 외국에서 구입할 때 더 낮은 상대가격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lower relative price) 입니다.


여기서 헥셔-올린 국제무역이론은 '국가간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게 된 이유는 부존자원에 따른 상대적 생산량의 차이(resource endowment)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어떤 국가는 숙련노동에 비해 비숙련노동이 풍부하고, 또 다른 국가는 비숙련노동에 비해 숙련노동이 풍부합니다. 숙련노동 풍부국은 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될테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비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됩니다. 따라서, 숙련노동 풍부국은 숙련노동 집약상품을 싸게 생산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비숙련노동 집약상품을 싸게 생산합니다. 


따라서, '숙련노동 풍부국은 값싸게 만든 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더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값싸게 만든 비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더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숙련노동 풍부국은 외국의 값싼 비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수입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외국의 값싼 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수입합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 = 숙련노동 풍부, 개발도상국 = 비숙련노동 풍부'이기 때문에, '선진국 = 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출 & 비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입, 개발도상국 = 비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출 & 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입' 입니다.


② 국제무역으로 상품가격이 달라지며 각자 비교우위를 가진 부문이 이익을 봄


국제무역은 개별 국가가 비교우위를 지닌 상품의 가격을 인상시키며 비교우위 부문이 이익을 보게 만들어 줍니다. 


선진국에서 혜택을 보는 부문은 비교우위인 '숙련집약 산업', 불이익을 보는 부문은 '비숙련집약 산업' 입니다. 선진국의 숙련집약 상품은 국제무역의 결과 더 비싼 가격을 받고 팔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동안 무역장벽 보호 아래 비싼 값을 받았던 비숙련집약 상품은 이제 개발도상국의 값싼 가격에 밀려나고 맙니다.


개발도상국에서 혜택을 보는 부문은 비교우위인 '비숙련집약 산업', 불이익을 보는 부문은 '숙련집약 산업' 입니다. 개발도상국의 비숙련집약 상품이 국제무역의 결과로 자급자족 상태에 비해 더 비싼 가격을 받고 선진국에 팔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개발도상국의 숙련집약 상품시장개방으로 선진국의 숙련집약 상품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게 되었으니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③ 선진국은 불균등 증가 & 개발도상국은 불균등 감소


헥셔올린 모형은 '비교우위 산업 이익 & 비교열위 산업 불이익'에서 더 나아가서,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임금변화도 예측합니다.


스톨퍼-새뮤얼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각주:15]는 '투입요소의 가격은 상품가격 움직임에 맞추어 변화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숙련노동 풍부국 → 숙련노동집약 상품가격 ↑ → 숙련근로자 실질임금 ↑', '비숙련노동 풍부국 → 비숙련노동상품가격 ↑ → 비숙련노동자 실질소득 ↑'라고 예측합니다.


보통 자급자족 상태에서 개별 국가의 '숙련노동 근로자 실질임금 > 비숙련노동 근로자 실질임금' 이기 때문에, 국제무역의 결과 '선진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확대 ↑', '개발도상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감소 ↓' 나타납니다.


따라서, 헥셔-올린 모형은 1970-80년대 미국 내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 확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의 실패 (Failures of Hecksher-Ohlin Model)


경제학자들은 "헥셔올린 무역모형이 예측한 결과대로 미국 내 임금불균등은 확대되었으나, 작용경로는 무역모형이 예측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여겼습니다. 


① 미국 내 숙련집약 상품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다


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매뮤얼슨 정리는 '달라진 상품 상대가격이 생산요소의 실질가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무역개방과 소득분배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이론'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련근로자의 상품가격이 상승하지 않은채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만 증가했다면, 이는 무역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 입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에서 설명하였듯이,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와 매튜 J. 슬로터는 1980년대 미국 내 숙련근로집약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기는 커녕 하락했음을 지적합니다. 


  • 왼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입가격 변화율(Y축)

  • 오른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출가격 변화율(Y축)

  • 출처 : Lawrence and Slaughter(1993)


위의 그래프는 1980년대 숙련근로집약 정도에 따른 수출입 가격 변화를 보여줍니다. 숙련근로집약도가 높아지는 상품일수록 수입가격은 다소 하락하고 수출가격은 크게 하락하는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로런스와 슬로터는 "수출입 가격 데이터는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무역이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회귀분석을 할 필요조차 없다."[각주:16] 라고 말합니다.


② 동일한 산업 내에서도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이 확대되었다


또한, 비교우위에 기반한 핵셔올린 무역모형의 예측대로라면 미국 내에서 '숙련집약 산업 팽창 → 숙련근로자 이익. 비숙련집약 산업 위축 → 비숙련근로자 불이익'의 형태로 '산업간 숙련-비숙련 근로자 임금 격차 확대'(between industry)가 나타나야 합니다.


하지만 1970-80년대 미국에서는 동일한 산업 내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의 임금 불균등이 확대되었습니다(within industry).


  • 1963년~1987년, 동일한 산업-성별-교육 집단 내 임금 불균둥 추이

  • Katz and Murphy (1992)


위의 그래프는 1963년~1987년, 동일한 산업-성별-교육 집단 내 임금 불균등 추이를 보여줍니다. 1970년대부터 동일집단 내 임금 불균등이 심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교우위 및 비교열위 산업간 효과'(between effect)에만 주목하는 기존의 무역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③ 비숙련노동 풍부국인 개발도상국에서도 임금 불균등이 확대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터-새뮤얼슨 정리가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예측과는 달리 개발도상국 내에서도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이 확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역 모형은 '선진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 확대 ↑', '개발도상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감소 ↓'를 예측하였으나, 실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확대 ↑' 였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국제무역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을 심화시켰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습니다. 


국제무역이 원인이 아니라면 남아있는 요인은 하나 뿐이었습니다. 바로,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 입니다.




컴퓨터의 등장 → 숙련근로자에 우호적인 상대수요 변화


국제무역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 '상품가격 변화 → 생산요소 가격의 변화'에 주목했다면, 노동경제학자들은 '간단한 공급-수요 체계'(simple supply and demand framework)로 현상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노동경제학자들에게 대학 졸업자로 대표되는 숙련 근로자의 임금이 고졸 비숙련 근로자에 비해 오르게 된 연유는 간단합니다. '기술변화로 인해 숙련 근로자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상대수요가 증가'(SBTC,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했기 때문입니다. 


▶ Katz and Murphy(1992), "대졸자의 상대공급 변동과 숙련근로자 우호적인 상대수요의 결합"


노동경제학자 로런스 F. 카츠(Lawrence F. Katz)와 케빈 M. 머피(Kevin M. Murphy)는 1992년 논문 <상대임금의 변화, 1963-1987 : 공급과 수요 요인>(<Changes in Relative Wages, 1963-1987: Supply and Demand Factors>)를 통해, 1963년~1987년 미국 임금구조의 변화를 공급-수요 체계로 설명했습니다.


  • 1963년~2008년 대졸/고졸 상대임금 비율 추이

  • 출처 : Acemoglu, Autor (2011)[각주:17]


위의 이미지는 1963년~2008년 미국 대졸/고졸 상대임금 비율 추이를 보여줍니다. (사족 : 카츠와 머피의 1992년 논문 이미지 품질이 좋지 않아서... 다른 논문에 실린 이미지로 대체) 


이를 통해 미국의 대졸 프리미엄(college premium)의 추세 2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1970년대 대졸 프리미엄의 감소. 둘째, 1980년대 이후 대졸 프리미엄 급격히 증가 입니다. 


왜 1980년대부터 추세의 반전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추세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걸까요?


  • 1963년~2008년, 성별 대졸/고졸 상대공급 증가율 추이

  • 출처 : Acemoglu, Autor (2011)


로런스 F. 카츠와 케빈 M. 머피는 고졸 대비 대졸자의 상대공급 변화(College/High-school relative supply)에 우선 주목합니다. 1976년까지는 대졸자의 상대공급이 가파르게 증가했으나, 이후부터는 증가율이 둔화됩니다. 


이를 통해 카츠와 머피는 "대학생 졸업자 공급이 가장 크게 증가했던 1970년대에는 대졸 프리미엄이 감소하였으며, 가장 적게 증가한 1980년대에는 대졸 프리미엄이 증가하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졸 상대공급의 속도 변화만으로는 대졸 프리미엄 변동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980년대 이후 대졸 상대공급 증가율은 둔화되었으나 어찌됐든 꾸준히 대학 졸업자를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전체 근로시간 중 대졸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3년 13%에서 1987년 26.3%로 증가하였습니다. 


이처럼 대학 졸업생은 꾸준히 사회에 진입했음에도 대졸 프리미엄은 나날이 증가하였습니다.  따라서, 카츠와 머피는 "대학 졸업자의 상대공급이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에, 대졸 프리미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대수요 변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 Krueger(1993), "컴퓨터가 임금구조를 변화시켰다"


또 다른 노동경제학자 앨런 B. 크루거(Alan B. Krueger) 1993년 논문 <어떻게 컴퓨터는 임금구조를 변화시켰나>(<How Computers have Changes the Wage Structure: Evidence from Microdata 1984-1989>)를 통해, 상대수요 변화의 원인을 '컴퓨터'에서 찾았습니다.


  • 1984년과 1989년, 범주별 컴퓨터를 업무에 직접 사용하는 근로자의 비중

  • 출처 : Krueger(1993)


1984~1989년 사이 업무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근로자의 비중은 24.6%에서 37.4%로 50% 증가 했습니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은 근로자일수록 컴퓨터를 업무에 더 많이 적용하며(1989년 기준 고졸 29.3%, 대졸 58.2%), 사무직 화이트칼라 근로자가 생산직 블루칼라보다 컴퓨터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1989년 기준 사무직 화이트칼라 48.4%, 생산직 블루칼라 11.6%).


이어서 앨런 B. 크루거는 '컴퓨터를 업무에 사용하는 근로자가 그렇지 않은 근로자 보다 더 높은 소득을 얻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고숙련 → 컴퓨터 사용 → 더 높은 임금' 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대학생 졸업자가 꾸준히 늘어났음을 감안하면, 컴퓨터 사용이 가져다주는 높은 임금의 프리미엄은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해야 합니다.


그러나 크루거의 회귀분석 결과에 따르면, 컴퓨터 사용이 가져다주는 임금 프리미엄은 1984년 1.32배에서 1989년 1.38배로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따라서, 크루거는 "시간이 지나도 컴퓨터 사용 프리미엄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더 빠르게 늘어났음을 의미한다"고 판단합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별다른 고급기술이 아니지만, 1980년대 당시에는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하는 기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 당시 컴퓨터는 이를 다룰 수 있는 숙련도를 갖춘 대졸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기술변화 였습니다. 




※ 반복업무를 대체한 기술변화 → 일자리 · 임금 양극화


1980년대 업무에 도입된 컴퓨터가 대졸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임금 불균등을 초래했다는 논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로도 그 영향이 지속되었을까 라는 것은 의문이 듭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별다른 고급기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앨런 B. 크루거도 1993년 논문의 말미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근로자 수요가 과거 10년처럼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 이를 고려하면, 컴퓨터 사용 프리미엄은 미래에 줄어들 것이다" 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렇다면 2000년대 들어서도 임금 불균등이 지속된 건 무엇 때문일까요? 


▶ Autor, Levy, Murnane (2003), "컴퓨터화는 반복업무의 노동투입을 줄였다"


동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가 일자리 및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석의 틀을 발전시켰습니다. 


1990년대 나온 연구들은 '숙련vs비숙련, 대졸vs고졸, 화이트칼라vs블루칼라, 비생산직vs생산직' 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임금 격차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졸이 다 같은 대졸이 아니고,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다 같은 사무직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결정적으로 컴퓨터는 단순히 숙련 근로자와 대졸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보완하고 비숙련 근로자와 고졸 블루칼라 일자리를 대체하는 식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숙련도를 요하는 업무를 대체하는 경우도 있으며, 숙련도가 필요치 않은 업무를 대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직 업무 중에서도 컴퓨터가 대체하는 것이 있고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생산 업무도 마찬가지로 컴퓨터와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게 있고 대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프랭크 레비(Frank Levy) · 리차드 머네인(Richard Murnane) 이른바 ALM은 2003년 논문 <최근 기술변화의 숙련도 - 실증적 탐구>(<The Skill Content of Recent Technological Change: an Empirical Exploration>)을 통해, '업무'(task) 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업무(task)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근로활동을 의미합니다. 근로자는 자신이 보유한 숙련기술(skill)을 다양한 업무(task)에 적용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습니다.  


  • 업무(task)의 종류를 반복적이냐 비반복적(Routine vs. Nonroutine)이냐, 분석적이냐 수동적이냐(Analytics vs. Manual)로 구분한 것

  • ALM (2003)


ALM은 업무(task)의 종류를 '반복적이냐 비반복적이냐'(routine vs. non-routine), '분석 및 인지능력을 요구하냐 직접 손으로 해야하냐'(analytic & cognitive vs. manual)로 크게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계산 · 뱅크텔러와 같은 고객응대 · 기록 기입 등을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인지적 능력(cognitive skill)이 필요하지만 단순 반복적인 특성(routine tasks)을 지니고 있으므로 컴퓨터가 쉽게 대체가능 합니다. 또한 제품 나르기 · 조립은 근로자가 손(manual skill)으로 작업을 해왔으나 이또한 반복적인 업무(routine tasks)이기 때문에 기계 자동화로 대체 가능 합니다.


반면, 통계 가설 설정 · 의료진단 · 법적 문서 기입 · 관리 등의 업무는 근로자의 분석적 능력(analytic skill)을 요구하면서 반복할 수 없기 때문에(non-routine tasks)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트럭운전 및 청소는 사람이 손으로 해야하는 업무(manual tasks)이며 이또한 비반복적인 일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단순 제품 나르기 · 조립과 트럭운전 · 청소는 모두 비숙련작업(unskilled works)이지만 전자는 반복적이기 때문에 대체가능하며 후자는 비반복적이기 때문에 대체불가능 합니다. 또한, 계산 · 기록기입과 의료진단 · 법적 문서 기입은 모두 인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숙련작업(skilled works)이지만 전자는 반복적이기 때문에 대체할 수 있으며 후자는 비반족이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즉, ALM은 '컴퓨터 자동화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지 여부는 업무가 반복적이냐 비반복적이냐에 달려있다'(routine vs. non-routine)고 바라봅니다. 단순히 '숙련vs비숙련, 대졸vs고졸, 화이트칼라vs블루칼라, 비생산직vs생산직'로 구분했던 과거의 구도로는 실제로 컴퓨터 자동화가 대체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어서 ALM은 "컴퓨터 자본은 제한적으로 정의된 인지적 및 수동적 활동 즉 명시적인 규칙에 기반을 둔 반복적인 업무를 대체한다[각주:18]. 반면, 컴퓨터 자본은 문제해결과 복잡한 의사소통을 요구하는 비반복적인 업무를 보완한다[각주:19]"고 말합니다. 


따라서, ALM은 "컴퓨터화는 반복적인 인지 업무와 수동 업무의 노동투입을 줄였고(routine cognitive & manual tasks ↓), 비반복적인 인지 업무의 노동투입을 증가시켰다(non-routine cognitive tasks ↑)"고 결론 내립니다.


▶ 일자리 · 임금 양극화 (Job · Wage Polarization)


ALM이 도입한 '업무기반 분석체계'(task-based framework)는 2000년대 들어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새로운 일자리 · 임금 구조 변화를 설명해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바로, 일자리 · 임금 양극화 (Job · Wage Polarization) 입니다. 


일자리 · 임금 양극화 (Job · Wage Polarization)란 '고숙련 · 저숙련 일자리(임금)가 증가하고 중숙련 일자리(임금)가 감소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 왼쪽 : 1980년~2005년 숙련수준 분위별 고용 변화율

  • 오른쪽 : 1980년~2005년 숙련수준 분위별 임금 변화율 

  • X축 : 직업의 숙련수준 분위 - 왼쪽일수록 저숙련 오른쪽일수록 고숙련

  • 고숙련 일자리만 증가하고 저숙련 일자리는 감소했던 1980년대와 달리, 오늘날 시대에는 고숙련 일자리와 저숙련 일자리가 모두 증가하고 중숙련 일자리가 감소하는 '양극화'가 발생


위의 그래프는 고숙련 일자리만 증가하고 저숙련 일자리는 감소했던 1980년대와 달리, 오늘날 시대에는 고숙련 일자리(임금)와 저숙련 일자리(임금)가 모두 증가하고 중숙련 일자리(임금)가 감소하는 '양극화'가 발생했음을 보여줍니다.


'숙련vs비숙련, 대졸vs고졸, 화이트칼라vs블루칼라, 비생산직vs생산직'의 분석구도는 고숙련 일자리가 증가하는 현상은 쉽게 설명해낼 수 있습니다. 기술변화가 고숙련 대졸 화이트칼라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 가설은 중숙련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저숙련 일자리는 증가하는 현상은 설명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일자리 양극화는 미스테리 입니다.


하지만 '업무기반 분석'은 일자리 양극화를 훌륭히 설명해냅니다. 2000년대 노동경제학자들은 업무기반 분석을 이용하여 노동시장 양극화를 설명하는 논문을 쏟아냈습니다. 


마르텡 구스(Maarten Goos) · 앨런 매닝(Alan Manning)의 2007년 논문 <형편없는 그리고 사랑스런 일자리: 영국 내 일자리 양극화 증대>(<Lousy and Lovely Jobs: The Rising Polarization of Work in Britain>),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로런스 카츠(Lawrence Katz) · 멜리사 키어니(Melissa Kearney)의 2006년 논문 <미국 노동시장의 양극화>(<The Polarization of the U.S. Labor Market>) 등이 대표적인 논문입니다.


이들은 업무를 3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비반복적 인지 업무(non-routine cognitive task), 둘째는 반복적 인지 및 수동 업무(routine cognitive & manual tasks), 셋째는 비반복적 수동 업무(non-routine manual task) 입니다.


여기애서 중요한 점은 '반복적인 업무가 임금분포상에서 균일하게 분포되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중숙련을 요하는 반복적인 업무는 임금분포의 중간에 집중(routine cognitive & manual tasks → middling jobs)되어 있고, 고숙련인 비반복적 인지 업무는 임금분포 상단(non-routine cognitive task → well-paid skilled jobs)저숙련인 비반복적 수동 업무는 임금분포 하단(non-routine manual task → low-paid least-skilled jobs)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현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추상적 능력과 인지 능력이 필요한 업무는 연봉이 높으며, 트럭 운전과 청소 등 사람이 직접 그때그때 대응해야 하는 업무는 연봉이 낮습니다. 그리고 단순 사무지원 화이트칼라 업종과 제조업 블루칼라 업종은 중간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컴퓨터 자동화가 반복적인 업무를 대체한 결과 임금분포의 중간에 위치한 중숙련 일자리는 감소(middle-skilled jobs ↓)하게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뛰어난 근로자는 단순반복 업무를 자동화 한 뒤 생산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고숙련 일자리는 이익(high-skilled jobs ↑)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반복적 수동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저숙련 일자리는 왜 증가한 것일까요? 학자들은 기술변화와 소비자선호가 함께 작용한 결과물로 바라봅니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비반복적 수동업무는 주로 '서비스업 직업'(service occupation) 입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제조상품 보다는 서비스를 향유하며 효용을 누리기 때문에 서비스업에 대한 수요는 과거에 비해 증가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컴퓨터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게 된 중임금 근로자들이 숙련 수준이 낮은 서비스업으로 대거 재배치(low-skilled jobs ↑) 됩니다. 그 결과, 저숙련 일자리는 갯수와 임금이 모두 증가합니다.


이러한 일자리 양극화 현상은 숙련수준별 고용변화가 아니라 구체적인 직업별 고용변화를 살펴봐도 확인되며, 미국 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관찰됩니다.


  • 1979년-2012년, 직업종류별 고용 변화율

  • 왼쪽 3개 : 비반복 수동업무를 맡는 저숙련 서비스 직업 (개인의료, 음식 및 청소, 보안)

  • 가운데 4개 : 반복 업무를 맡는 중숙련 직업 (관리, 생산, 사무, 판매)

  • 오른쪽 3개 : 비반복 인지업무를 맡는 고숙련 직업 (매니저, 사업서비스, 기술)


위의 그래프는 1979-2012년 동안 직업종류별 고용 변화율을 시기별로 나누어서 보여줍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관리 · 생산 · 사무 · 판매 직업이 반복 업무를 맡는 중숙련 직업인데, 오늘날에 가까울수록 일자리가 많이 없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1993년-2010년, EU 16개 국가의 임금수준별 고용비중 변화

  • 저임금 일자리(연한색), 중임금 일자리(검은색), 고임금 일자리(회색)


또한, 위의 그래프는 1993년-2010년, EU 16개 국가의 임금수준별 고용 변화를 보여줍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고임금 · 저임금 일자리의 고용비중은 3%~10% 정도 증가한 반면 중임금 일자리 비중은 10% 감소하는 '일자리 양극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상위층-중위층 간 불균등은 확대, 중위층-하위층 간 불균등은 정체


일자리 · 임금 양극화는 소득수준별 임금 불균등의 모습도 변화시켰습니다. 


  • 1963년~2005년 미국

  • 왼쪽 : 소득 90분위/50분위 임금 불균등 추이 (소득 상위 10%와 50%의 임금 불균등)

  • 오른쪽 : 소득 50분위/10분위 임금 불균등 추이 (소득 상위 50%와 하위 10%의 임금 불균등)


기술변화는 고임금 일자리에게 이익, 중임금 일자리에게 손해로 작용했기 때문에, 소득 상위 10%와 50% 간 임금 불균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었습니다(왼쪽 그래프). 이건 그닥 놀라운 모습이 아닙니다. 


놀라운 건 소득 상위 50%와 하위 10% 간 임금 불균등이 안정화된 것입니다. 위의 오른쪽 그래프를 보면, 소득 50분위/10분위 임금 불균등 추이가 더 심화되지 않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일자리 · 임금 양극화 현상을 알고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복업무를 대체하는 기술변화로 인해 중숙련 & 중임금 일자리가 위축된 대신 저숙련 & 저임금 일자리가 팽창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노동경제학자들이 발전시킨 '업무기반 분석체계'(task-based framework)와 '반복편향적 기술변화'(RBTC, Routine-Based Technological Change)는 2000년대 미국 및 선진국 노동시장의 특징인 '일자리 양극화'와 '중하위층 간 불균등 정체' 현상을 완벽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프쇼어링 때문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이 확대된다


2000년대 미국 노동시장 분석에 '국제무역 요인'이 끼어들 틈은 없었습니다. 국제무역을 전공하는 경제학자들이 "외국으로의 오프쇼어링이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는 거 같은데?" 라고 의구심을 품고 연구를 내놓았으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기술변화'에 쏠려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학자들은 꿋꿋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의 오프쇼어링이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offshoring)을 탐구했습니다.


대표적인 국제경제학자가 바로 로버트 F. 핀스트라(Robert F. Feenstra) 입니다. 핀스트라의 연구는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을 다룬 지난글[각주:20]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하면서 세계시장 통합을 이끌고있다"고 분석하며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에 관한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핀스트라는 한발 더 나아가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글로벌 생산공유가 양국 임금 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합니다. 


그는 1996년 논문 <세계화, 아웃소싱 그리고 임금 불균등>(<Globalization, Outsourcing, and Wage Inequality>), 1997년 논문 <외국인 직접투자와 상대임금: 멕시코의 사례>(<Foreign Direct Investment and Relative Wages: Evidence from Mexico's Maquiladoras>), 2003년 논문 <글로벌 생산 공유와 불균등 증가 - 무역과 임금 서베이>(<Global Production Sharing and Rising Inequality - a Survey of Trade and Wage>) 등 여러 논문을 통해 연구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 오프쇼어링은 동일한 산업 내에서 숙련-비숙련 노동수요를 변화시킨다 (Within Industry)


이번글의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국제무역이 임금 불균등을 초래한 원인이 아니라고 여겨진 이유 중 하나는 '동일한 산업 내에서 근로자 간 불균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교우위에 기반한 무역모형의 예측대로라면 '숙련집약 산업 팽창 → 숙련근로자 이익. 비숙련집약 산업 위축 → 비숙련근로자 불이익'의 형태로 '산업간 숙련-비숙련 근로자 임금 격차 확대'(between industry)가 나타나야 합니다. 


로버트 F. 핀스트라는 상품 교환 무역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공유하는 오프쇼어링을 고려하면 무역이 산업 내 불균등 심화에 영향을 미친다(offshoring → within industry inequality)고 주장합니다.


핀스트라는 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3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비숙련노동 집약적 부품 생산(production of an unskilled-labor intensive input), 둘째는 숙련노동 집약적 부품 생산(production of an skilled-labor intensive input), 셋째는 두 부품을 결합하여 최종재 상품으로 만드는 것(bundling together of these two goods into finished product).


선진국 기업은 개발도상국 대비 자국의 비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높다고 판단하면, 비숙련노동 집약적 부품 생산 활동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시킵니다. 이러한 결정은 선진국에서 비숙련 근로자의 상대수요를 감소시키고 임금에 하방압력을 가합니다. 


즉, 오프쇼어링 혹은 아웃소싱은 기술변화가 비숙련 근로자를 대체하듯이 동일한 산업 내에서 비숙련 근로자의 상대수요를 감소시킵니다.


▶ 오프쇼어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을 초래한다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선진국 임금 불균등 증가 & 개발도상국 임금 불균등 감소'로 예측했으나 '현실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이 증가'하면서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핀스트라는 '숙련활동' '비숙련활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한 생산활동은 선진국의 관점에서는 비숙련노동 집약적인 활동 입니다. 그러나 자본축적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는 자국으로 들어온 것이 숙련노동 집약적인 활동 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한국 제조업과 동남아 공장을 예시로 생각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동남아로 이전한 공장은 본래 한국의 비숙련 근로자가 주로 근무했던 곳이지만, 동남아에서는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계층이 자국기업 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일을 합니다.


따라서, 비숙련 활동을 외국으로 보내버린 선진국은 평균 숙련집약도가 상승하며, 선진국의 생산과정을 받아들인 개발도상국에서도 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합니다. 그 결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이 심화됩니다.


▶ 기술변화를 무역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있나?


로버트 F. 핀스트라를 포함한 일부 경제학자들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기술변화를 무역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있나?"


기업의 아웃소싱 그 자체는 국제무역의 영향 이지만, 글로벌 밸류체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 덕분[각주:21]입니다. 역으로 기술변화는 국제무역 때문에 촉진될 수 있습니다. 시장개방으로 인해 치열해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아웃소싱으로 보다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기술 업그레이드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의를 거치면서 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 및 국제무역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 경제학자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꾸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 중국의 부상과 충격 (China's Rise & Shock)


  • 1999년 11월 미국-중국 양자무역협정 체결 - "중국 문을 열다"
  • 2010년 11월 '세계를 사들이는 중국'

  • 2010년 2월, 중국과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미국 오바마 대통령

미국인들은 2008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중국의 부상'(China's Rise)을 인식하게 됩니다. 

중국은 1999년 미국과의 양자 무역협정 체결 · 2001년 12월 WTO 가입[각주:22] 이후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경제발전은 글로벌 소득분포의 모양을 바꾸어 놓을 정도였[각주:23], 중국이 국제무역에 참여하자 전세계 수출입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중국과의 교역이 주는 충격(China Shock)이 멕시코 · 중남미 등 다른 개발도상국과의 교역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중국발 쇼크가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동안 '반복업무를 대체하는 기술변화가 노동시장에 주는 충격'을 연구했던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대중국 수입증대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논문을 2013년에 발표하면서 '중국발 쇼크'(the China Trade Shock)를 이슈로 만듭니다.

이제 다음글에서 '중국발 쇼크'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7.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s://joohyeon.com/277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13.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1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15.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16. Thus, the data suggest that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did not have much influence on American relative wages in the 1980s. In fact, because the relative price of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fell slightly,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actually nudged relative wages toward greater equality. No regression analysis is needed to reach this conclusion. Determining that the relative international prices of U.S.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actually fell during the 1980s is sufficient. [본문으로]
  17. Acemoglu,Autor.2011.Skills, Tasks and Technologies- Implications for Employment and Earnings [본문으로]
  18. that computer capital substitutes for workers in carrying out a limited and well-defined set of cognitive and manual activities, those that can be accomplished by following explicit rules (what we term “routine tasks”); [본문으로]
  19. computer capital complements workers in carrying out problem-solving and complex communication activities (“nonroutine” tasks). [본문으로]
  2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https://joohyeon.com/284 [본문으로]
  2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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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Posted at 2019. 12. 22. 21:04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세계화를 향한 이상과 反세계화 시위가 공존했던 1990년대


▶ '세계화'(Globalization)를 향한 희망과 이상이 존재했던 1990년대


  • 1990년대 '세계화'를 상징하는 이미지
  • 1990년 1월, 러시아에 1호점을 개설한 맥도날드
  • 빌 클린턴 · 빌 게이츠 · 마이클 조던
  • 1995년 창설된 세계무역기구(WTO)


1990년대는 '세계화'(Globalization)를 향한 희망과 이상이 존재했던 시기였습니다. 


미국 맥도날드사는 공산주의권에 흘러들어간 개혁 · 개방 바람을 타고 1990년 1월 러시아에 1호점을 오픈했습니다. 1991년 12월에는 소련이 붕괴되었고 이제 전세계가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충돌 없이 평화 · 자유 · 안정을 누릴거라는 기대가 가득찼습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 창설(WTO) 및 정보통신기술 혁명(ICT Revolution)은 세계화를 향한 기대를 더욱 높였습니다. 전세계인들은 교역을 통해 서로의 상품을 거래하고,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다가올 21세기에 대한 꿈도 키웠습니다.


1980년대 보호주의 무역정책으로 외도했었던 미국[각주:1]은 1990년대가 되자 다시 자유주의 무역정책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은 GATT를 대체할 새로운 다자주의 자유무역 시스템인 WTO 창설에 앞장[각주:2]섰고, 클린턴행정부는 '관여와 확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민주주의 · 시장경제 전파를 대외정책 우선순위[각주:3]로 두었습니다. 


위성방송은 'NBA 세계화'를 이끌었습니다. NBA 총재 데이비드 스턴은 글로벌 마케팅을 전략으로 내세웠고, 전세계인들은 시카고 불스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보며 마이클 조던에게 빠져들었습니다. 


또한 1995년 8월에 출시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95 운영체제는 PC 보급을 촉진했고, 직관적인 UI와 간편성 덕분에 사람들은 손쉽게 PC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국적이 다른 사람들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끔 만들면서 '지구촌'을 현실화 시켰습니다.


달라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서적도 쏟아졌습니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2년작 『역사의 종말』을 통해 자유주의 진영의 승리를 주장하였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1999년작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는 세계화를 이야기했습니다. 


'反세계화'(Anti-Globalization)를 외치는 NGO들의 시위가 극심했던 1990년대


  • 1999년 11월 30일-12월 1일, WTO에 반대하는 글로벌 NGO들의 시위


다른 한편, 1990년대는 '反세계화'(Anti-Globalization)를 외치는 글로벌 NGO들의 시위가 극심했던 시기였기도 합니다.


미국 제조업 근로자와 중하층 사람들은 "저숙련 · 저임금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으면 미국 제조업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라는 우려를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1992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스 페로 후보는 제조업 일자리가 남쪽 멕시코로 대거 이동할 것이라며 NAFTA를 '남쪽으로 일자리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굉음'(giant sucking sound going south)'으로 칭했습니다. 양당제인 미국 정치구도에서 무소속 후보가 무려 18.9%나 득표[각주:4]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시 미국인들이 NAFTA에 대해 가졌던 우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글로벌 NGO들은 "자유무역은 지역간 · 계층간 불평등을 조장하며, WTO는 미국 및 다국적기업의 이익만을 반영한다"고 외치며 급진적인 시위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유무역과 WTO가 개발도상국을 희생시키고 미국과 다국적기업의 배만 불린다고 여겼습니다.


反자본 · 反美 · 노동단체 · 환경단체 등으로 구성된 여러 글로벌 NGO들은 자유주의 무역시스템인 WTO를 반대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했고, 결국 1999년 11월 30일-12월 1일, WTO 각료회의가 개최된 미국 시애틀에서 시위대 5만명이 경찰과 충돌하는 '시애틀 전투'(Battle of Seattle)가 발생하고 맙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기사를 살펴봅시다. 


▶ 1999년 12월 2일, '다국적기업 건물에 집중공격 시애틀 표정', <한겨레>


30일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린 미국 시애틀 도심은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비정부기구(NGO) 회원 수만명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이 충돌하면서 최루탄가스와 화염이 가득찬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 사태로 주방위군 동원령과 통금령, 비상사태가 선포됐으나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은 밤 늦도록 계속됐다.


시애틀 도심의 상가는 거의 철시했고 불안한 표정을 한 시민들은 귀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 시위대의 물건 투척과 스프레이 낙서로 각국 주요 대표단이 머무는 셰러턴호텔과 회의장 주변에 있는 건물상가 유리창과 벽 등이 손상돼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특히 시위대는 나이키, 스타벅스, 플래닛할리우드, 맥도널드 등 회의장 주변에 있는 다국적 기업 건물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경찰은 시위대 군중을 향해 간간이 최루탄을 발사했으며 일부 시위대는 경찰과 난투극을 벌이기도 하는 등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60여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 1999년 12월 2일, '자본의 인간지배 WTO가 첨병역할', <한겨레>


"거북이들도 세계무역기구가 싫다고 한다", "세계무역기구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망치고 있다". 요 며칠 시애틀 거리에서는 안전모를 쓴 미국 철강노동자들과 어깨띠를 두른 바다거북 보호운동가들이 엇갈리며 외치는 구호가 도시를 울렸다.


시애틀에 모인 반세계무역기구 세력의 색깔은 이 기구가 다루는 주제만큼이나 다채롭다. 시위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표출된 비정부기구와 이익단체들의 목소리는 노동·환경·인권에서부터 반전·에이즈·동물권리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특정한 문제를 파고들다보면 이들 주장 가운데는 단체간에 이해가 상충하는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느슨하게나마 묶어 제법 반향을 이끌어내게 한 공감대는 세계무역기구가 주도하는 자유무역이 노동과 인권·환경 등에 끼치는 역기능에 대한 인식이다. 즉 90년대의 특징인 자유무역주의의 확산이 국제적으로 지역간, 계층간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환경침해를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 같은 단체는 자유무역이 모든 사람의 부를 증진시킬 것이란 약속과 달리 남아메리카에서는 90년대의 구조조정 결과 실업자가 더 늘었고, 아프리카에서는 새로 직장을 얻는 사람의 90%가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자본의 국경이동이 한층 자유로워지며 최근의 외환위기에서 보듯 일순간에 한 나라의 국부가 증발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 단체의 사무총장인 후안 소마비아는 "세계무역기구가 이런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자유무역은 열린 경제 및 열린 사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이들 단체는 자유무역 지상주의가 자본과 상품의 이동에 대한 걸림돌을 제거해 자기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초국적 기업의 이데올로기라고 믿는다. 세계무역기구가 앞장서 이들을 위해 세계의 정치, 경제적 규칙들을 뜯어고치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운동가인 마리안 도브는 "인류는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고 건강한 연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지만 세계무역기구의 관심은 오로지 다국적기업을 지원하는 데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1990년대 사람들이 외쳤던 '세계화'와 '反세계화',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나


2019년 현재를 사는 우리는 1990년대 사람들이 꿈꾸었던 그리고 우려했던 것들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아닌지 알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향한 희망과 이상은 현실화 되었습니다. 2000년대 인터넷의 확산 · 2010년대 스마트폰의 보급은 전세계인들을 더욱 밀접히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트위터 ·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나라에 위치한 사람과 일상을 공유하고, 유투브를 통해 K-POP 문화를 전파합니다. 미국 NBA 뿐 아니라 영국 프리미어리그 · 유럽 챔피언스리그 경기도 생중계로 보면서 날강두 리오넬 메시의 플레이에 감탄합니다.


'反세계화'를 외쳤던 자들의 우려도 부분적으로 옳았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중하위층 근로자의 임금상승은 둔화되었습니다. 세계인들은 아이폰 덕택에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지만, 아이폰 일자리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각주:5]


그러나 '反세계화'를 외친 글로벌 NGO들이 명백히 틀린 것도 있습니다. 바로, '세계화가 미국 · 다국적기업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며 개발도상국을 착취한다는 우려'입니다. 


세계화는 분명 미국의 다국적기업에게 큰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 · 구글 · 페이스북 · 아마존 등 거대 IT 서비스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기업 입니다. 이들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서비스를 제공하며 넓어진 시장에서 이점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플 · 나이키 · 자동차기업 등 상품을 제조하는 다국적기업은 주로 중국 ·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내에 일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중국은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하며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2001년 WTO 가입 이후 교역량을 폭발적으로 늘려나갔습니다[각주:6].  



위의 그래프는 1945년-2014년 동안 1인당 실질 GDP의 연간 증가율(X축)과 GDP 대비 상품수출 비중의 연간 증가율(Y축) 간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과 상품수출 비중 증가율은 정(+)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기존 선진국 외에 아시아(빨간원) 지역이 눈에 띕니다.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자유주의 무역시스템인 WTO에 참여하여 교역량을 늘려나갔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습니다. 


  • 1990년-2030년(예상) 동안 절대적 빈곤 수치 변화
  • 남아시아(연한 빨강), 동아시아 및 태평양(진한 빨강),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파랑)
  • 출처 : Our World in Data - Global Extreme Poverty


아시아 국가들이 자유무역 시스템에 참여하고 경제성장을 달성한 결과, 오랜기간 가난에 찌들었던 수십억명이 빈곤에서 벗어났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90년-2030년(예상) 동안 절대적 빈곤 수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하루동안 $1.90로 생활하는 것을 절대적 빈곤(extreme poverty)으로 정의하였는데, 1990년 절대적 빈곤자 수는 19억명이었고 이는 전세계 인구의 36%에 달했습니다. 대부분이 중국 ·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거주했는데, 이들 국가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2015년 절대적 빈곤자수는 7억 3천명 · 전세계 인구의 9.9%로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층


이렇게 1990년대부터 진행된 '세계화'(Globalization)는 승자와 패자를 낳았습니다. 


승자는 선진국 상위 1% 계층과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등 경제발전에 성공한 신흥국 중상위층 입니다. 세계시장을 상대로 우월한 지위를 행사하게 된 '슈퍼스타 기업'(Superstar Firms)들과 '초부자'(Ultra-Rich)들은 막대한 자산과 소득을 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글로벌 밸류체인(GVC) 참여에 성공한 신흥국은 제조업 발전과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발전[각주:7]을 이루었습니다. 신흥국 국민들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났고, 신흥국 상위층은 선진국 못지않은 소득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패자는 선진국 중하위층과 제조업 근로자 입니다. 오프쇼어링으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긴 이들은 소득증가율이 정체되었고, 낮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다른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들에게 세계화는 꿈과 이상이 아니라 악몽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선진국 내에서 '세계화 역풍'(Globalization Backlash)이 발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즉, 1990년대 反세계화 시위는 주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착취한다'는 우려에서 발생하였으나, 오늘날 보호무역정책은 '세계화로 인해 신흥국만 혜택을 보고있다'는 분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이번글을 통해 세계화가 선진국과 신흥국에 얼마나 다른 영향을 주었으며, 이것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 글로벌 불균등 = 국가간 불균등(Between) + 국가내 불균등(Within)


'불균등 혹은 불평등'(Inequality)은 경제학자와 대중의 오랜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성장보다 불균등 해소를 최우선순위로 두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언제나 정치·사회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건 '국가내 불균등'(Within-Country Inequality) 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내에서의 상대적 위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글로벌 차원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이 느끼는 박탈감은 국내 대기업의 연봉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에서 오는 것이지, 애플 · 페이스북이 얼마를 주는지 도쿄 주택가격이 얼마나 변하는지는 감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이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 할 때 "그래도 북한 주민보다는 절대적 생활수준이 낫지 않냐"고 위로(?)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반면, 경제발전빈곤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국가간 불균등'(Between-Country Inequality)에 관심을 가집니다. 들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제력 격차를 축소시킬 방안을 고심합니다.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간 경제력 격차는 매우 큽니다. 미국 · 서유럽 등 선진산업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곳에서 하위층일지라도 후진국 국민보다 더 나은 생활수준을 누렸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인은 그 누구라도 조선사람 혹은 한국사람보다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인은 웬만한 북한주민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죠.


그리고 경제학자들 중 일부는 2가지를 결합하여 '글로벌 차원의 불균등'(Global Inequality)을 연구합니다. 글로벌 불균등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전세계를 하나의 국가로 상정하고 70억 인구의 소득 혹은 자산 분포가 얼마나 불균등한지를 보는 겁니다. 


'글로벌 불균등'을 구성하는 요인은 '국가내 불균등'과 '국가간 불균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글로벌 소득분포 상에서 상위권(중하위권)에 위치해 있다면 그 이유는 첫째, 그 사람이 선진국(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거나 둘째, 그 사람이 고국 내에서 상위층(중하위층)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2013년 기준 개별국가 내 소득분위(X축)에 따른 글로벌 내 소득분위(Y축)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까지 글로벌 불균등을 초래한 주된 요인이 '국가간 불균등'(Between Inequality)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USA)과 중국 도시지역(China Urban)을 비교해보죠. 미국 내 하위 1%에 위치한 사람은 글로벌 소득분포에서 50%에 위치해 있습니다. 반면, 중국 도시지역 내 하위 1%의 글로벌 위치는 하위 25%이며, 중국 도시지역 내 하위 30%의 글로벌 위치는 50%입니다. 따라서, 미국 내 하위 1%와 동일한 소득을 누리려면 중국 내에서 하위 30%에 속해야 합니다


미국(USA)과 중국 농촌지역(China Rural) · 인도(India) 간 격차는 더욱 큽니다. 미국 내 하위 1%는 중국 농촌지역 상위 30%, 인도 상위 10%와 동등한 소득을 받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 중국 농촌지역과 인도의 상위층은 미국 최하위층과 동일한 생활수준으로 살고 있습니다.


비록 어느 국가든 최상위층(100%)는 동일한 생활수준이지만, 대부분의 중국 · 브라질 · 인도 사람들은 미국 하위 20%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불균등에서 '국가내 불균등'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며, 글로벌 소득분포상의 위치를 결정짓는 요인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진행된 세계화가 글로벌 불균등의 모습을 바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 '코끼리 그래프' (Elephant Graph) 


  • 왼쪽 : 브랑코 밀라노비치와 크리스포트 랑커의 2013년 12월 세계은행 연구보고서 <글로벌 소득분포 : 베를린장벽 붕괴에서부터 2008 금융위기까지>

  • 오른쪽 :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2016년 단행본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접근법>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크리스포트 랑커(Christoph Lanker)는 2013년 12월 세계은행 연구보고서 <글로벌 소득분포 : 베를린장벽 붕괴에서부터 2008 금융위기까지>(<Global Income Distribution : From the Fall of Berlin Wall to the Great Recession>)을 통해, 1988년-2008년 사이 글로벌 소득분포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 연구보고서는 100여개 이상의 국가의 가계동향조사(household survey) 자료를 이용하여 글로벌 소득분포와 글로벌 불균등의 변화를 사실상 처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연구의 결과는 더욱 놀랍습니다.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했던 "중국의 경제발전이 선진국 중하위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듯 한데.."를 구체적인 데이터와 그래프를 통해 보여주며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 1988년~2008년 사이, 글로벌 소득계층별 소득증가율을 보여주는 '코끼리 그래프'(Elephant Graph)

  • 왼쪽 출처 : 밀라노비치, 랑커 2014년 연구보고서

  • 오른쪽 출처 : 피터슨 국제연구소


위의 그래프는 일명 '코끼리 그래프'(Elephant Graph) 입니다. 말그대로 그래프 모양이 코끼리 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코끼리 그래프는 전세계인들을 국적에 상관없이 소득분위로 나눈 뒤 1988년~2008년 간 소득증가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빨간선은 전체 소득계층의 평균 증가율). 


이 시기동안 글로벌 소득분포 내 75분위~90분위에 위치한 계층의 소득 증가율 10%가 채 안되며 매우 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득이 가장 크게 증가한 계층은 중간에 위치한 40분위~70분위와 최상위 100분위이며 6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미국 · 서유럽 내 상위층은 전세계에서도 상위층이기 때문에 100분위에 속합니다. 그리고 선진국 중하위층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행운 덕분에' 글로벌 소득분포상에서는 상위권인 75분위~90분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 인도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대부분 30분위~70분위에 위치해 있죠. 


즉, 20년간 선진국 중하위층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었고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소득증가율은 가팔랐습니다.


  • 코끼리 그래프 데이터 시계열을 2011년까지 확장

  • 출처 : 브랑코 밀라노비치, 2016,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2016년 출판한 단행본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각주:8](<Global Inequality :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을 통해, 시계열을 2008년에서 2011년으로 확장하였습니다.


2011년까지 확장된 그래프를 통해, 2008 금융위기가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 간 구분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3년간 글로벌 소득분포상 중간에 위치한 계층의 누적 소득증가율은 비교적 더 크게 상승했습니다. 


즉, 코끼리 그래프를 통해 1990년대부터 진행된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가 누군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밀라노비치와 랑커는 "승자는 1988년 글로벌 소득분포상 중위층에 있었던 국가의 국민이며 이들 중 90%는 아시아에서 왔다. 패자는 1988년 글로벌 소득분포상 85분위층에 있었던 국가의 국민이며 이들 중 90%는 선진국[각주:9]에서 왔다."[각주:10]고 말합니다. 


  • 승자인 중국 · 인도 · 기타 아시아 지역과 패자인 선진국 내 소득계층별 1988년~2008년간 누적 소득증가율

  • 출처 : 밀라노비치, 랑커 2014년 연구보고서


그럼 세계화의 승자인 아시아가 어디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위의 그래프는 승자인 중국 · 인도 · 기타 아시아 지역과 패자인 선진국 내 소득계층별 1988년~2008년간 누적 소득증가율을 보여줍니다. 


중국의 전계층은 1988년~2008년 20년간 그야말로 독보적인 소득증가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내 최하위 계층의 소득도 100% 가깝게 증가했으며, 중국 내 중산층(50분위-80분위)의 소득은 200%~250% 증가했습니다. 최상위 계층의 누적 소득증가율은 350%에 달합니다. 기타 아시아 국가와 인도 국민들도 선진국(Mature)보다 높은 소득증가를 달성했습니다.


  • 1988년~2011년 사이 연도별 미국 하위 20% 계층과 중국 도시지역 상위 20% 계층의 1인당 세후소득

  • 출처 : 브랑코 밀라노비치, 2016,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


위의 그래프는 1988년~2011년 사이 연도별 미국 하위 20% 계층과 중국 도시지역 상위 20% 계층의 1인당 세후소득을 보여줍니다. 


1988년 당시 중국 도시지역 상위 20% 계층의 1인당 세후소득은 미국 하위 20%의 1/10에 불과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어디 나라에서 태어났느냐'의 영향력은 매우 강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경제발전이 이루어나가자 그 격차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1년 국가간 불균등의 영향력은 이전과 비교해 크게 감소했습니다.


'세계화'(Globalization)가 모든 개발도상국에 동등하게 수혜로 작용한 건 분명 아닙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여전히 빈곤률이 높으며, 중남미 국가들은 천연자원 가격변동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크게 좌우됩니다. 


세계화로 이익을 본 신흥국은 GVC 참여에 성공한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등 일부[각주:11]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시아 개발도상국, 특히 중국의 인구가 13억명에 달하며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오랫동안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 1988년과 2011년의 글로벌 소득분포 모양

  • 출처 : 브랑코 밀라노비치, 2016, <글로벌 불균등 : 세계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


위의 그래프는 1988년과 2011년의 글로벌 소득분포 모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8년에는 상위층과 하위층으로 양분된 쌍봉모양을 볼 수 있으며, 개발도상국 인구가 수십억명에 달했기 때문에 하위층이 더 두꺼운 모양입니다. 2011년에는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경제발전과 소득증가로 인해 글로벌 중산층이 두터워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수십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가 경제발전을 달성한 결과, 글로벌 소득분포가 쌍봉 모양에서 중간이 두터워진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 위 : 1990년, 글로벌 소득계층을 국가별로 분류

  • 아래 : 2016년, 글로벌 소득계층을 국가별로 분류

  • 중국(빨간색)에 주목

  • 출처 : <World Inequality Report 2018>


위의 그래프는 글로벌 소득분포 내에서 국가별 위치의 변화를 좀 더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 글로벌 소득분포상 하위층인 10분위~50분위에는 주로 중국이 위치해 있으며, 상위층에는 미국 · 캐나다 · 유럽 등이 꿰차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6년 중국은 하위층에서 벗어나서 중상위층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세계화는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국민 수십억명을 빈곤상태에서 탈출하도록 도왔고 중산층을 대거 양성하여 글로벌 소득분포 자체를 변화시켰습니다.




※ '코끼리 그래프'가 보여주는 세계화의 결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렇게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낸 세계화는 글로벌 불균등의 구성 변화(Global Inequality Dynamics)시켰습니다. 


전세계 소득순위 1위부터 70억위까지 줄을 세웠을 때, 과거에 격차를 만들어낸 요인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즉 '국가간 불균등'(Between-Country Inequality) 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행운을 누리게 된 자는 그곳에서 중하위층에 속해있더라도 아시아 · 아프리카 상위층 보다 높은 소득을 누렸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흥국의 성장으로 인해 '국가간 불균등'의 영향은 줄어들었습니다(Between-Country Inequality ↓). 세계화는 신흥국 중상층의 소득을 크게 증가시켰고, 이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덜해졌습니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자가 여전히 우위를 누리고는 있긴 하지만, 중국에서 태어난 중상위층이 선진국 하위층보다 더 높은 소득을 이룰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국가간 불균등이 줄어들어서 글로벌 차원의 불균등이 해소되는 건 좋은 일입니다. 이제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기존 선진국 못지않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의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들은 국가간 불균등이 해소되는 걸 우호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신흥국이 성장해서 국가간 불균등이 줄어드는 건 선진국 중하위층에게 아무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되려 신흥국 중상위층의 소득증가는 선진국 중하위층의 몫을 뺏어온 결과물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계화로 인해 '국가내 불균등'은 증가했습니다(Within-Country Inequlity ↑). 선진국 중하위층은 일자리를 신흥국에 빼앗겼지만, 선진국 상위계층은 넓어진 시장 속에서 더 많은 소득을 얻어왔습니다. 그리고 숙련된 교육을 받은 선진국 상위계층은 R&D · 디자인 · 설계 · 마케팅 등 고급 서비스업 직무를 맡으면서 임금이 크게 증가[각주:12]했습니다. 코끼리 그래프에서도 글로벌 소득분포 상위 1%에 위치한 자들의 높은 소득증가율을 확인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화로 인한 국가간 불균등의 해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단순하게만 바라보기에는 역사 깊은(?) 관점의 대립이 있습니다.


▶ 세계시민주의 관점(Cosmopolitan View) 

-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전세계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가능케한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각주:13]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14]'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실시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세계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개별 국가들이 각자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특화한 뒤 서로 교환을 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효율적 생산이 가능합니다. 이는 사실상 '국제적 차원의 노동분업론'(international divison of labor)과 마찬가지이며,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세계시민주의 관점'으로 국제무역과 세상을 바라봅니다. 국제무역을 통한 세계화는 개발도상국에도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였고 그 결과 경제발전과 국가간 불균등 해소를 불러왔다면 나쁜 일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에 국가간 불균등이 컸다는 것은 선진국 중하위층이 운좋게 선진국에서 태어나서 누릴 수 있었던 '위치 및 공간 프리미엄'(locational & place premium)이 만들어낸 비효율적인 상태를 보여준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세계시민주의 관점에서 볼 때, 국제무역을 통한 세계화는 장려해야 하는 것이며 국가간 불균등은 더욱 줄어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국가간 불균등을 더욱 줄이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 국민이 선진국 노동시장으로 이동하는 '이민'(immigration)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민족주의(Nationalism) · 국내평등주의적 관점(National-Egalitarian View) 

- 전세계가 아니라 민족 · 국가를 우선시해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알렉산더 해밀턴과 프리드리히 리스트[각주:15]'민족 · 국가'(Nationalism)를 우선시하여 자유무역론을 비판하고 유치산업보호론을 주장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모든 국가와 민족은 각자 처한 발전정도와 상황이 다르며, 진정한 무역자유가 이루어지려면 후진적인 민족과 앞선 민족이 대등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즉, 유치산업보호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민족경제적 관점(national economy)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은 민족경제를 다루어야 하며, 어떤 국가가 각자의 특성한 상황에 맞추어 가장 강력하고 부유하고 완벽한 국가가 되기 위해 어떻게 권력과 부를 증대시켜야 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세계화 현상에 대해서도 '민족주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가 경제발전에 성공하여 범지구적인 불균등이 줄어드는 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현재 내가 속한 국가와 사회 내에서 발생한 문제가 시급합니다. 


또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기회를 누려야한다는 '만민평등주의'는 허울 좋은 이상일 뿐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건 '국내평등주의'(National-Egalitarianism)입니다. 상품무역 세계화와 개발도상국 근로자들의 이민유입은 국내 중하위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국가내 불균등만 키우는 문제만 일으킬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2가지 관점 중에서 어떠한 시각으로 세계화를 바라봐야 할까요? 아래 파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 ① 세계시민주의 관점

- 선진국 시민들은 위치 및 공간 프리미엄을 누려왔다


▶ 불균등, 이민, 그리고 위선 (Inequality, Immigration, and Hypocrisy)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수만명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이들은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이주하려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유럽인들은 난민 유입을 꺼려했습니다. 경제 · 문화 등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을 환영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5월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한 칼럼을 기고 했습니다.


● 불균등, 이민, 그리고 위선 (Inequality, Immigration, and Hypocrisy)


유럽의 이민위기는 현재 진행중인 경제적 불균등 논의 과정 속에서 근본적인 결함을 노출시켰다. "진정한 진보 지지자라면 단지 운좋게 부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상 모든 사람의 평등한 기회를 지지해야 하지 않을까?"


선진국의 많은 리더들은 자격의식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자격은 국경에서 멈춘다. 그들은 더 강한 분배를 절대적으로 해야하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배제되어 있다. 만약 불균등에 관한 최근의 우려가 온전히 정치적 용어라면, 내부에만 집중하는 건 이해할만 하다. 결국 빈국의 시민들은 부국에 투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국 내에서 논의중인 불균등 레토릭은 윤리적 자격을 배신하였다. 이들은 빈국의 수십억명을 가볍게 무시하고 있다.


부국의 중산층은 글로벌 관점에서 상위층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전세계 인구의 15%만이 선진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은 전세계 소비와 자원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자산에 부과되는 높은 세율이 국가내 불균등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개발도상국의 심각한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서구에서 태어난 자가 많은 이점을 누리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도덕적 우위에 호소하지 않을 것이다. 맞다. 건전한 정치 및 사회 인프라는 지속적 경제성장의 필수요소이다. 이는 성공적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유럽의 오랜 식민지 역사는 유럽이 지배를 하지 않고 무역만 했다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제도가 어떠한 길을 걸을지 추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국내 불균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글로벌 불균등을 무시하는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정책이슈가 왜곡된다. 국내불균등이 증가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실패할 거라는 피케티의 주장은 결점이 있다. 세계 모든 시민들을 동등하게 가중치 한다면 상황은 다르게 보인다. 특히 부국의 중산층 임금을 정체하는 데 기여한 세계화의 힘은 다른 곳에서 수억명의 사람을 빈곤에서 구제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된 글로벌 불균등은 지난 30년간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자본주의가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단지 거기서 태어난 이점을 누린 선진국 근로자의 지대를 훼손했다. 그리고 아시아와 신흥국의 진정한 중산층 근로자를 도왔다.


국경을 넘어서 사람을 자유롭게 이동시키는 것은 무역보다 더 빠르게 공평한 기회를 준다. 그러나 저항은 격렬하다. 반이민정책은 프랑스, 영국 등 국가에서 강한 힘을 얻었다. (...) 경제적 압력은 이민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빈국의 근로자는 기회를 찾기 위해 선진국으로 온다. 비록 낮은 임금일지라도. 불행히도 오늘날 부국의 논의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사람들을 쫓아내는데에 맞춰져있다. 이는 실용적이지만 윤리적으로 옹호할 수 없다. (...)


세계가 점점 더 부유해질수록, 불균등은 빈곤보다 더 큰 이슈가 되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감스럽게도 불균등 논의는 국내 불균등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있고, 더 큰 이슈인 글로벌 불균등은 무시되고 있다. 이는 유감이다. (...)


- 케네스 로고프, 2015년 5월 8일, '불균등, 이민, 그리고 위선'[각주:16]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불균등, 이민, 그리고 위선> 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서구 진보주의자들의 정곡을 찌릅니다. 


서구 진보주의자들의 전통적인 의제는 '불균등 해소'였으나, 논의의 중심은 '자본주의가 초래한 국내 불균등'에만 맞춰져 왔습니다. 이에 대해, 케네스 로고프는 "국내 불균등(domestic inequality)에만 초점을 맞추고 글로벌 불균등(global inequality)을 무시하는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정책이슈가 왜곡된다. 세계화의 힘은 수억명의 사람을 빈곤에서 구제했다"고 비판합니다. 


더 나아가서 케네스 로고프는 "진정한 진보 지지자라면 단지 운좋게 부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상 모든 사람의 평등한 기회를 지지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로고프가 보기엔 선진국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단지 운좋게 부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고'(lucky enough to have been born and raised in rich countries), 그동안 '단지 거기서 태어난 이점을 누리면서 지대를 획득한 사람들'(rents that workers in advanced countries enjoy by virtue of where they were born) 입니다.


언뜻 보면 로고프의 인식은 너무 극단적인 것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게으르게 생활할 때 선진국 국민은 열심히 일을 했는데 이를 두고 '행운' · '지대'라고 표현하다니. 하지만 다른 경제학자들도 로고프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 글로벌 기회의 불균등 : 당신이 어디에 사느냐가 소득의 대부분을 결정한다


'코끼리 그래프'를 이야기했던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2015년 논문 <글로벌 기회의 불균등 : 어디에 사느냐가 당신의 소득을 얼마만큼 결정할까?>(<Global Inequality of Opportunity: How Much of Our Income Is Determined By Where We Live?>)을 통해, 부국에서 태어난 선진국 시민의 '위치 프리미엄'(Locational Premium)을 이야기 합니다.


밀라노비치는 "개인의 소득이 노력이나 행운과는 관련이 없는 거주하는 국가에 의해 얼마나 결정될까? 글로벌 소득분포상 개인의 소득분위를 어디에 사느냐가 얼마나 크게 결정할까?"(How much of this person’s income will be determined by country of residence, unrelated to individual effort or luck? Is one’s position in global income distribution largely decided by country where one lives?)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그가 '거주하는 국가'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전세계 인구의 97%가 태어난 나라에 운명처럼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3%만이 이민을 단행하며 대부분은 자연적으로 할당된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랍니다(assignment to country). 따라서 전세계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과 관련없이 태어난 국가의 특성에 의해 소득이 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밀라노비치는 거주하는 국가의 특성으로 2가지를 꼽습니다. 첫째는 국가의 평균소득(average income of the country), 둘째는 소득분포의 불균등 정도(inequality of income distribution) 입니다. 


평균소득이 높은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당연히 높은 소득을 누릴 겁니다. 그리고 소득불균등 정도가 심한 곳에서 상위계층으로 태어났다면 소득은 더욱 높아지겠죠. 반대로 평균소득이 낮은 곳 혹은 소득불균등이 극심한데 하위계층으로 태어난 사람은 낮은 소득을 얻을 겁니다. 직관적인 생각이 실제 데이터와 부합하는지 살펴봅시다.


  • 개인의 1인당 GDP에 국가의 평균소득과 지니계수가 미치는 영향

  • 출처 : 밀라노비치(2015)


위의 회귀분석표는 "내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거나 현재 살고 있다면 어떨까?"라는 물음에 답을 제시해 줍니다. 


국가의 평균소득이 한 단위 증가할수록 가계의 1인당 GDP는 0.868 단위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니계수가 1%p 올라갈수록 가계의 1인당 GDP는 1.5% 감소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평균소득이 높은 부국에서 태어날수록', 그리고 '공평한 사회에서 태어날수록' 개인의 소득이 증가함을 알려줍니다. 특히 밀라노비치는 국가의 평균소득이 미치는 영향력을 '위치 프리미엄'(locational premium) 이라고 칭합니다. 


  • 국가의 평균소득과 소득분포의 불균등 정도가 계층별로 얼마나 영향을 주나

  • 출처 : 밀라노비치(2015)


위의 회귀분석표는 국가의 평균소득과 소득분포의 불균등 정도가 계층별로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줍니다. 


소득 계층 1분위부터 10분위까지 모두 국가의 평균소득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하위계층보다 중상위 계층이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0.769 → 0.886). 그리고 지니계수 증가는 하위계층 소득을 크게 떨어뜨리지만 중상위 계층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최상위 계층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0.058 → -0.0001 → 0.029).


밀라노비치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① 모든 계층이 높은 평균소득의 이익을 누리지만, 이득은 상위계층에 불균형적으로 쏠려있다. ② 소득분포 변화는 가난한 자와 부자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방향은 서로 다르다. ③ 중산층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내 소득분포가 아니라 나라가 부유하냐 가난하냐 이다 라고 결론 내립니다. 


밀라노비치는 "개인의 노력과 행운이 개별 케이스에서 차이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글로벌 관점에서 노력과 행운은 역할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소득편차의 상당부분을 설명하는 건 태어난채로 주어진 조건들이기 때문이다"[각주:17](circumstances given at birth) 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밀라노비치는 "개인은 그가 속한 국가가 잘되기를 희망해야 한다. 국가가 경제발전을 한다면 전체 국민의 지위도 따라서 올라간다. 만약 개인의 노력이 국가의 경제발전과 결합한다면 글로벌 소득분포에서 그의 지위는 상당히 올라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 남은 마지막 가능성은 가난한 국가에서 부유한 국가로 이동하는 것이다. 새로운 부유한 국가에서 상위계층에 속하지 않더라도 그는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각주:18] 고 말합니다.


▶ 공간 프리미엄 : 이민장벽이 만들어낸 공간 프리미엄은 얼마나 될까


밀라노비치의 연구는 직관적이지만 찜찜함도 남습니다. "국가의 평균소득이 높을수록 개인의 1인당 GDP도 높은 건 당연한거 아닌가?". 밀라노비치는 그 당연한 사실을 통해 '어디에서 태었느냐의 중요성'을 주장하지만, 이런 회귀분석 방법이 적절한지에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해주는 다른 연구가 존재합니다. 경제학자 클레멘스 · 몬테네그로 · 프릿쳇은 2019년 논문 <공간 프리미엄 : 이민장벽의 가격>(<The Place Premium : Bounding the Price Equivalent of Migration Barriers>)를 통해, 인위적인 이민 장벽이 만들어낸 임금격차 이른바 '공간 프리미엄'(Place Premium)이 얼마인지 계산하였습니다.


클레멘스 · 몬테네그로 · 프릿쳇의 공간 프리미엄 추정은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고국의 근로자 간 임금 격차'(wage gaps between immigrants in the United States and their observably equivalent national counterparts in the 42 home labor markets)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비슷한 특성을 지닌 두 사람을 대상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갈 경우와 고국에 머무를 경우 받게 되는 임금의 차이를 비교한 겁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특성은 비슷하기 때문에, 임금격차는 노동시장이 미국이냐 아니냐가 온전히 결정짓습니다.


연구 저자들은 교육수준 등 눈에 보이는 특성과 성격 등 눈에보이지 않은 특성이 서로 동일한 이민자와 고국민의 실질임금 비율의 평균값은 5.65이며 절대액수로는 연간 PPP $13,710로 추정했습니다. 즉, 고국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은 단지 속해있는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PPP기준 $13,710달러를 더 벌어들입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현재 선진국 시민이 그곳에서 태어난 행운 덕분에 개발도상국 국민이 누리지 못하는 프리미엄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수치로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는 경제학자가 보기엔 '효율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만약 근로자의 이동에 장벽이 존재하지 않고 전세계 노동시장이 단일하게 존재한다면, 선진국 근로자가 누리는 프리미엄 혹은 지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기업이 선진국 근로자와 동등한 능력을 가진 개발도상국 근로자를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다면, 선진국 노동시장의 임금은 공간 프리미엄을 없애는 수준까지 낮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의 저자인 클레멘스는 2011년 논문 <경제학 그리고 이민 : 길바닥에 떨어진 수조달러?>(<Economics and Emigration: Trillion-Dollar Bills on the Sidewalk?">)를 통해, "인위적인 이민장벽이 만들어낸 노동시장 비효율성으로 인해 매년 수조달러의 후생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면, '국가간 불균등을 줄이는 세계화'를 나쁘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계화는 '진정한 글로벌 평등'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죠.




※ ② 국내평등주의 관점 

- 선진국 시민과 트럼프, "누가 글로벌 소득분포상 위치에 신경쓰나"


본인의 글로벌 소득순위를 잘못 인식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독일인들


선진국 시민들이 공간 및 위치 프리미엄을 누려왔다는 사실을 반박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선진국 시민은 운좋게 선진국에서 태어난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 시민이 누리고 있는 프리미엄을 제거한다면 글로벌 차원의 효율성이 달성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체의 후생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자들은 인위적인 이민장벽은 제거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아 내가 우리나라에서는 중하위층이지만 글로벌 소득분포에서는 상위층이니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 좀 더 양보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에게 글로벌 소득분포 이야기를 하는 건 와닿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누리는 것'에서 오는 것이지 다른 나라에 위치한 사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경제학자 페흐르 · 몰스트롬 · 트루굴리아는 2019년 12월 작업중인 논문 <세계에서 당신의 공간 : 국가와 글로벌 재분배 요구>(<Your Place in the World: The Demand for National and Global Redistribution>)를 통해, 선진국 독일인이 느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일인들이 자신의 독일 내 소득순위(National Rank)와 글로벌 내 소득순위(Global Rank)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과 실제의 차이

  • 왼쪽 : 독일 내 소득순위 인식(회색)과 실제(빨강)

  • 오른쪽 : 글로벌 내 소득순위 인식(회색)과 실제(빨강)

  • 출처 : 페흐르, 몰스트롬, 트루굴리아(2019.12)


위의 그래프는 독일인들이 자신의 독일 내 소득순위(National Rank)와 글로벌 내 소득순위(Global Rank)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과 실제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왼쪽은 독일 내 소득순위 오른쪽은 글로벌 소득순위에 대한 것이며, 회색 막대는 독일인이 느끼고 있는 소득순위 빨간색 막대는 실제 소득순위 입니다.


독일 내 소득순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독일인들의 '중산층 인식 편향'이 드러납니다. 독일 하위계층은 자신들이 실제보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독일 상위계층은 실제보다 못 살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하위계층의 과대평가와 상위계층의 과소평가를 종합하면, 평균적으로 독일인의 인식은 실제와 다르지 않은 셈이라고 연구자들은 판단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소득순위에 대한 인식에서 독일인들은 눈에 띄게 자신의 위치를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상위층이든 하위층이든 독일인들은 실제 글로벌 소득순위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으나, 이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 잘못된 인식 분포도

  • X축 : 인식하고 있는 순위에서 실제 순위를 차감한 값(Prior Belief - Reality), 자신의 소득순위를 실제 순위보다 과소평가할 경우 음(-)의 값

  • 독일 내 소득순위(회색)와 글로벌 소득순위(빨강)

  • 출처 : 페흐르, 몰스트롬, 트루굴리아(2019.12)


독일인들의 잘못된 인식(Misperceptions)은 분포도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분포도의 X축은 인식하고 있는 순위에서 실제 순위를 차감한 값(Prior Belief - Reality) 입니다. 자신의 소득순위를 실제 순위보다 과소평가할 경우 음(-)의 값이 나타납니다.


독일 내 소득순위에 관한 잘못된 인식은 0을 중심으로 안정된 모양을 띄고 있으나, 글로벌 내 소득순위에 관하 잘못된 인식은 음(-)의 값으로 치우처져 있습니다. 즉, 자신의 글로벌 소득순위를 과소평가하는 독일인들의 인식이 분포상에 보여집니다.


  • 소득순위 인식이 재분배 요구와 어떤 관련이 있나

  • 독립변수 :  독일 내 소득순위 인식(National Rank)와 글로벌 소득순위 인식(Global Rank)

  • 종속변수 : 재분배 정책이 독일 내에서만 시행되는 것(Nat.)과 글로벌 단위로 시행되는 것(Glob.)

  • *** : 1% 수준에서 유의, ** : 5% 수준에서 유의, * :10% 수준에서 유의

  • 출처 : 페흐르, 몰스트롬, 트루굴리아(2019.12)


연구자들은 소득순위 인식이 재분배 요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득순위가 낮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재분배 정책을 강하게 요구하고, 소득순위 높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재분배 정책을 꺼려합니다. 연구자들은 독일 내 소득순위 인식과 글로벌 소득순위 인식이 일반적인 경우처럼 작용하는지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위의 회귀분석표에 나오는 독립변수는 독일 내 소득순위 인식(National Rank)와 글로벌 소득순위 인식(Global Rank) 입니다. 그리고 종속변수인 재분배 정책은 독일 내에서만 시행되는 것(Nat.)과 글로벌 단위로 시행되는 것(Glob.)로 구분하였습니다.


회귀분석 결과를 통해 유의미하게 나온 결과는 '독일 내 소득순위가 높다고(낮다고)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독일 내 재분배 정책을 꺼려한다(선호한다)' 뿐 입니다. 독일 내 소득순위와 글로벌 재분배 정책 요구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없었습니다.


또한, 글로벌 소득순위 인식은 국내외 재분배 정책 요구와는 유의미한 관계를 띄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통계적 유의성을 떠나서 계수값이 양수(+)로 나오면서 "글로벌 소득순위가 높다고(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국내외 재분배 정책을 선호한다(꺼려한다)"는 직관에 반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연구자들은 글로벌 소득순위가 독립변수로 기능을 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로 "독일인들은 다른 독일인과 비교할 때만 자신의 상대소득에 신경을 쓰지, 다른 국적의 사람과 비교할때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각주:19]로 추측했습니다. 즉, 보통의 사람들에게 글로벌 소득분포 이야기는 와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래는 국제주의자가 아니라 애국자에게 달려있다"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 '세계를 다시 위대하게'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출마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강조[각주:20]해오고 있습니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를 통해 소개해왔듯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전파를 위해 다자주의 자유무역을 추구해야한다'는 논리는 트럼프에게 말도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트럼프에게 NAFTA와 WTO는 미국 내 제조업 근로자를 희생시켜 외국의 배만 불려주는 것들[각주:21] 입니다. 


트럼프가 타당하게 여기는 논리는 '공정한(fair) · 균형잡힌(balanced) · 상호적인(reciprocal) 무역을 통해 미국인의 이익을 최우선한다(America First)' 뿐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 시민이 누리는 프리미엄을 제거하여 글로벌 효율성을 이루자'는 국제주의자들의 세계시민주의 관점은 당연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 캘리포니아주에 설치중인 멕시코 국경장벽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 출처 : USA Today


게다가 '선진국의 이민 장벽을 제거하여 전세계적 후생을 증대시키자'는 주장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는 멕시코인들의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대규모 장벽을 설치한다는 공약을 후보시절부터 내세웠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국경장벽 건설을 명령[각주:22]함으로써 공약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9월 25일 UN총회 연설을 통해 "미래는 국제주의자가 아니라 애국자에게 있다"(The future does not belong to globalists. The future belongs to patriots.)고 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표현했습니다.


● 트럼프 대통령 74회 UN총회 연설, 2019년 9월 25일


나의 사랑스런 조국처럼, UN총회에 참석한 개별 국가들은 수호하고 찬양해야 할 역사,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통해 잠재성과 힘을 얻고 있습니다.


자유 세계는 국가적 기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지우려거나 대체하려고 시도해서는 안됩니다. 넓은 세계를 둘러보시면 진실은 명백합니다. 만약 당신이 자유를 원한다면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만약 당신이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주권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만약 당신이 평화를 원한다면 조국을 사랑하십시오. 현명한 지도자는 언제나 자신의 국민과 국가를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


미래는 국제주의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미래는 애국자에게 있습니다. 미래는 자신의 시민을 보호하고, 이웃을 존중하고, 개별 국가의 특수성과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차이를 명예롭게 여기는 주권을 가진 독립적인 국가에 달려있습니다. (The future does not belong to globalists.  The future belongs to patriots. The future belongs to sovereign and independent nations who protect their citizens, respect their neighbors, and honor the differences that make each country special and unique.) (...)


미국을 새롭게하는 구상의 중심에는 국제무역을 개혁하는 야심찬 캠페인이 있습니다. 수십년간 국제무역 시스템은 잘못된 믿음으로 행동하는 국가들에 의해 쉽게 착취되어 왔습니다. 일자리는 외국으로 이전함에 따라, 소수의 부자들이 중산층 일자리를 없앴습니다. 그 결과, 미국 내에서 420만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없어졌고 지난 25년간 150조 달러의 무역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제 미국은 경제적 불공정을 끝내기 위해서 단호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서로에게 공정하며 호혜적인 균형잡힌 무역을 원합니다. (...)

여기 있는 서구와 함깨 우리는 전세계의 안정과 기회를 위해 함께하고 있습니다. 목표달성을 위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불법이민 입니다. 불법이민은 번영을 훼손하고, 사회를 갈라놓고, 무분별한 범죄조직의 힘을 키웁니다불법이민은 모두에게 불공정하며 안전하지 않으며 지속불가능 합니다. (...) 

오늘 나는 여기서 사회정의를 앞세우며 국경을 개방하자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메세지를 보냅니다. 당신의 정책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당신의 정책은 무자비하며 사악합니다.(Today, I have a message for those open border activists who cloak themselves in the rhetoric of social justice: Your policies are not just.  Your policies are cruel and evil.) (...)

오늘날 여기있는 많은 국가들은 통제되지 않은 이민이 가져다주는 위협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개별 국가들은 국경과 조국을 보호할 절대적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74회 UN총회 연설[각주:23], 2019년 9월 25일




국가내 불균등과 국가간 불균등의 긴장관계


이번글을 통해 확인하였듯이, 1990년대부터 진행된 세계화는 '국가간 불균등을 감소'(Between Inequality ↓) 시켰으나, 그 과정에서 '국가내 불균등이 확대'(Within Inequality ↑)되어 선진국 내에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불균등을 초래한 가장 큰 요인인 국가간 불균등을 줄였으니 전세계적 차원에서 나빠진 건 없는 것 아니냐"라고 간단히 말하기에는 '서구에서의 포퓰리스트 국가주의 부상'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국가간 불균등과 국가내 불균등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자유무역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를 위해서는 '국가내 불균등이 확대된 원인'에 대해서 명확히 알아야 할겁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미국 내 불균등 확대 현상과 제조업 일자리 감소 원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4. 선거인단 득표는 0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7.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8. 한국어 출판명은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 30년 세계화가 남긴 빛과 그림자' [본문으로]
  9. 저자는 Mature Economy에 속한 국가로 미국, EU27개국, 일본, 캐나다, 스위스,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을 선정하였다. [본문으로]
  10. The “winners” were country-deciles that in 1988 were around the median of the global income distribution, 90 percent of whom in terms of population are from Asia. The “losers” were the country-deciles that in 1988 were around the 85th percentile of the global income distribution, almost 90 percent of whom in terms of population are from mature economies.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1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1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s://joohyeon.com/271 [본문으로]
  16. Europe’s migration crisis exposes a fundamental flaw, if not towering hypocrisy, in the ongoing debate about economic inequality. Wouldn’t a true progressive support equal opportunity for all people on the planet, rather than just for those of us lucky enough to have been born and raised in rich countries? Many thought leaders in advanced economies advocate an entitlement mentality. But the entitlement stops at the border: though they regard greater redistribution within individual countries as an absolute imperative, people who live in emerging markets or developing countries are left out. If current concerns about inequality were cast entirely in political terms, this inward-looking focus would be understandable; after all, citizens of poor countries cannot vote in rich ones. But the rhetoric of the inequality debate in rich countries betrays a moral certitude that conveniently ignores the billions of people elsewhere who are far worse off. One must not forget that even after a period of stagnation, the middle class in rich countries remains an upper class from a global perspective. Only about 15% of the world’s population lives in developed economies. Yet advanced countries still account for more than 40% of global consumption and resource depletion. Yes, higher taxes on the wealthy make sense as a way to alleviate inequality within a country. But that will not solve the problem of deep poverty in the developing world. Nor will it do to appeal to moral superiority to justify why someone born in the West enjoys so many advantages. Yes, sound political and social institutions are the bedrock of sustained economic growth; indeed, they are the sine qua non of all cases of successful development. But Europe’s long history of exploitative colonialism makes it hard to guess how Asian and African institutions would have evolved in a parallel universe where Europeans came only to trade, not to conquer. Many broad policy issues are distorted when viewed through a lens that focuses only on domestic inequality and ignores global inequality. Thomas Piketty’s Marxian claim that capitalism is failing because domestic inequality is rising has it exactly backwards. When one weights all of the world’s citizens equally, things look very different. In particular, the same forces of globalization that have contributed to stagnant middle-class wages in rich countries have lifted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out of poverty elsewhere. By many measures, global inequality has been reduced significantly over the past three decades, implying that capitalism has succeeded spectacularly. Capitalism has perhaps eroded rents that workers in advanced countries enjoy by virtue of where they were born. But it has done even more to help the world’s true middle income workers in Asia and emerging markets. Allowing freer flows of people across borders would equalize opportunities even faster than trade, but resistance is fierce. Anti-immigration political parties have made large inroads in countries like France and the United Kingdom, and are a major force in many other countries as well. Of course, millions of desperate people who live in war zones and failed states have little choice but to seek asylum in rich countries, whatever the risk. Wars in Syria, Eritrea, Libya, and Mali have been a huge factor in driving the current surge of refugees seeking to reach Europe. Even if these countries were to stabilize, instability in other regions would most likely take their place. Economic pressures are another potent force for migration. Workers from poor countries welcome the opportunity to work in advanced countries, even at what seem like rock-bottom wages. Unfortunately, most of the debate in rich countries today, on both the left and the right, centers on how to keep other people out. That may be practical, but it certainly is not morally defensible. And migration pressure will increase markedly if global warming unfolds according to climatologists’ baseline predictions. As equatorial regions become too hot and arid to sustain agriculture, rising temperatures in the north will make agriculture more productive. Shifting weather patterns could then fuel migration to richer countries at levels that make today’s immigration crisis seem trivial, particularly given that poor countries and emerging markets typically are closer to the equator and in more vulnerable climates. With most rich countries’ capacity and tolerance for immigration already limited, it is hard to see how a new equilibrium for global population distribution will be reached peacefully. Resentment against the advanced economies, which account for a vastly disproportionate share of global pollution and commodity consumption, could boil over. As the world becomes richer, inequality inevitably will loom as a much larger issue relative to poverty, a point I first argued more than a decade ago. Regrettably, however, the inequality debate has focused so intensely on domestic inequality that the far larger issue of global inequality has been overshadowed. That is a pity, because there are many ways rich countries can make a difference. They can provide free online medical and education support, more development aid, debt write-downs, market access, and greater contributions to global security. The arrival of desperate boat people on Europe’s shores is a symptom of their failure to do so. [본문으로]
  17. Effort or luck may push her up the national plaque. But while effort or luck can make a difference in individual cases, they cannot, from a global perspective, play a very large role because more than half of variability in income globally is explained by circumstances given at birth. [본문으로]
  18. She can hope that her country will do well: the country’s plaque will then move up along the global pole, carrying, as it were, the entire population with it. If she is lucky enough so that her effort (movement higher up along the plaque) is combined with an upward movement of the plaque itself (increase in national mean income), she may perhaps substantially climb up in the global income distribution. Or, as a last possibility, she might try to move from a lower plaque (poorer country) to a higher one (richer country). Even if she does not end up at the high end of the new country’s income distribution, she might still gain significantly. Thus, own efforts, hope that one’s country does well, and migration are three ways in which people can improve their global income position. [본문으로]
  19. Germans may care about their relative income when compared to other Germans but not when compared to others around the globe. [본문으로]
  2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 https://joohyeon.com/280 [본문으로]
  2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22. Executive Order: Border Security and Immigration Enforcement Improvements. 2017.01.25 [본문으로]
  23. Remarks by President Trump to the 74th Session of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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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Posted at 2019. 12. 15. 15:20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애플사(Apple Inc.)는 오늘날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상징하는 기업 입니다.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애플이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놓을때마다 전세계 소비자들은 열광하며, 부품을 공급하는 전세계 IT 기업들은 실적향상과 주가상승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 정치인 · 경제학자 · 정책담당자들은 애플에게 아쉬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애플이 미국 내에서 창출하는 일자리가 얼마 안되기 때문입니다. 2011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라는 말을 건넸으나, 잡스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그 일자리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아래의 기사를 살펴봅시다.


● 2012년 1월 21일, 뉴욕타임스 기사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2011년 2월, 오바마 대통령이 실리콘밸리 저녁만찬에 참석했을 때, 참석자들은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말하려 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물음을 던졌다.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what would it take to make iPhones in the United States?)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애플은 자사 제품을 주로 미국에서 생산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2011년에 판매된 아이폰 7천만대, 아이패드 3천만대, 기타 제품 6천만대 제품이 해외에서 제조되었다. 


왜 이것들을 미국 내에서 만들 수 없나? 오바마 대통령의 물음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대답은 명료했다. "그 일자리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Those jobs aren’t coming back”)


오바마 대통령의 물음은 애플이 갖고 있는 확신을 건드린 것이다. (애플이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생산하는 이유는) 단지 해외 근로자가 더 값싸기 때문만이 아니다. 애플 경영진은 해외 근로자의 유순함, 근면성, 산업기술 뿐 아니라 해외 공장의 광대한 규모가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Made in U.S.A.는 더 이상 선택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


애플은 글로벌경영을 통해 가장 유명한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2011년 애플의 근로자당 수익은 골드만삭스, 엑손모빌, 구글보다도 많았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뿐 아니라 경제학자와 정책담당자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애플이 -그리고 많은 하이테크 기업들이- 다른 유명한 기업들만큼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만드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애플은 미국 내에서 4만 3천명 해외에서 2만명을 고용 중인데, 이는 1950년대 GM이 고용한 미국 근로자 40만명과 1980년대 GE가 고용한 미국 근로자 수십만명에 한참 모자라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애플과 계약관계에 있는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70만명의 사람들이 아이폰 및 아이패드를 조립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미국 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그들은 아시아, 유럽 등에 위치한 해외 기업과 공장에서 일을 한다. 


2011년까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을 맡았던 자레드 번스타인은 "오늘날 미국에서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애플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Apple’s an example of why it’s so hard to create middle-class jobs in the U.S. now.


- 뉴욕타임스. 2012.01.21.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 기사에 나온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의 발언 "오늘날 미국에서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애플이 보여주고 있다"는 애플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플 일자리 문제는 단순한 더 많은 일자리 숫자가 아니라 '중산층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국 중산층 근로자 대부분은 주로 공장과 사무실에서 '반복적인 업무'(routine-task)를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된 IT 기술진보와 오프쇼어링은 반복업무를 없애거나 해외로 이동시켰습니다. 그 결과 중산층 근로자의 일자리는 대폭 줄어들었고 임금상승률은 둔화되었습니다. 


한국 · 대만에서 전자부품을 조달한 뒤 중국에서 조립되는 아이폰은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로 인한 미국 중산층 일자리 위축' 현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위의 뉴욕타임스 기사 부제목이 '애플, 미국 그리고 위축된 중산층'(Apple, America, and a Squeezed Middle Class)인 이유입니다.


  • 2011년 2월, 테크기업 리더들과 만남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

  • 왼쪽 스티브 잡스, 오른쪽 마크 저커버그


미국 중산층 일자리 및 제조업 부활을 위해서, 과거 오바마 대통령과 현재 트럼프 대통령 모두 애플의 일자리를 미국으로 돌아오게끔 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2011년 잡스에게 직접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라고 물었던 오바마는 2013년 연두교서[각주:1]에서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미국을 새로운 일자리와 제조업을 위한 곳으로 만드는 겁니다. (...) 올해 애플은 맥을 다시 미국에서 생산할 겁니다."[각주:2] 라고 발언했습니다.


트럼프는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출마선언과 취임연설에서 부터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미국인들을 고용한다.(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각주:3]를 외쳐온 트럼프. 


트럼프행정부는 미국기업들의 자국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기 위하여, 해외유보 소득의 환류에 법인세율 보다 낮은 세율을 부과하고 최소 5년간 자본 투자에 대해서 전액 비용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긴 세제개편안을 내놓았고,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은 이를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지속적으로 "애플이 대중국 수입관세 부과를 피하려면 미국에서 상품을 만들어라!"[각주:4]는 의견을 표출해왔습니다. 이에 대한 회답으로 애플은 맥 프로 차세대 버전을 텍사스 오스틴에서 만든다고 발표[각주:5] 했습니다.



하지만 애플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여전히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 Assembled in China'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맥 프로는 2013년부터 이미 미국 내에서 만들어져왔기 때문에, 애플의 일자리가 미국으로 귀환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왜 애플은 각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해외생산을 고수하는 걸까요? 앞서 인용한 기사에 잠깐 나오듯이[각주:7], 해외의 값싼 인건비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사를 좀 더 읽으면서 미국이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는지 알아봅시다.


● 2012년 1월 21일, 뉴욕타임스 기사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2007년 아이폰이 출시가 한달이 채 남지 않았을 때, 스티브 잡스가 부하들을 사무실로 호출했다. 잡스는 지난 몇주동안 아이폰 시험버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화가 난 잡스는 플라스틱 스크린에 찍힌 수많은 스크래치를 문제삼았다. 그는 청바지에서 차량 열쇠를 꺼냈다. 사람들은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열쇠도 주머니에 있다. 잡스는 "이렇게 손상된 제품은 팔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유일한 해결책은 손상되지 않는 유리를 이용하는 거였다. "나는 유리 스크린을 원합니다. 그리고 6주 내에 완벽해지기를 원합니다"


미팅이 끝난 후 한 경영진은 중국 선전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만약 잡스가 완벽한 것을 원한다면, 중국 선전 말고는 가야할 곳이 없었다.


지난 2년간 애플은 동일한 물음을 던지며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어떻게 휴대폰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고품질로 상품을 만들어내면서 수백만대를 빠르게 제조하고 수익성도 유지할 수 있을까? 


해답은 거의 매번 미국 바깥에 있었다. 


모든 아이폰은 수백개의 부품을 담고 있는데, 이 중 90%가 해외에서 제조되었다. 차세대 반도체는 독일과 대만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과 일본에서, 디스플레이 패널과 회로는 한국과 대만에서, 칩셋은 유럽에서, 원자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조달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중국에서 조립되었다.[각주:8] (...)


중숙련 근로자를 값싸게 고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는 매혹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애플을 아시아로 끌어들인 건 아니다. 기술기업에게 부품 · 공급망관리 등에 비해 노동비용은 매우 적은 부분만을 차지한다. (...) 아시아 공장들은 규모를 빠르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 그 결과, 미국은 아시아 공장들과 경쟁할 수 없다. 


아시아 공장의 이러한 이점들은 2007년 잡스가 유리 스크린을 요구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과거 수년간,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가공의 어려움 때문에 유리 스크린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애플은 강화유리 제조를 위해 미국 코닝사와 접촉해왔다. 그러나 이를 테스트 하기 위해서는 조립공장과 중숙련의 엔지니어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준비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때 중국 공장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애플 직원이 방문했을 때, 중국 공장 오너는 이미 새로운 건물을 건설중 이었다. 그들은 "애플과 계약을 체결할 것을 대비해서 짓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수많은 산업의 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있었고, 이 회사의 유리가공 공장도 수혜를 받고 있었다. 중국 공장은 결국 기회를 얻었다. 


전 애플 고위층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전체 공급망은 중국에 있습니다. 수천개의 가죽 패킹이 필요하다고요? 바로 옆에 있는 공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수백만개의 나사가 필요하다고요?  그 공장은 한 블럭 옆에 있습니다. 모양이 조금 다른 나사가 필요하다고요? 3시간 내에 얻을 수 있습니다."[각주:9]


- 뉴욕타임스. 2012.01.21.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애플이 아이폰 생산을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공급망'(Supply Chain) 때문입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주요 전자부품은 중국에 인접한 한국 · 대만 · 일본 등에서 조달할 수 있으며, 중국 내에서는 수많은 부품을 빠른 시간에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 노동자의 값싼 임금 · 24시간 근로체계 등 기업에 유리한 노동기준과 미국 내 숙련 제조업 근로자의 부족 등도 애플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테지만, 핵심은 공급망에 있습니다. 


  • 2000년과 2017년, ICT 산업의 전통적인 교역 · 단순 GVC 교역 · 복잡 GVC 교역 네트워크

  • 17년 사이 중국 ·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비중이 커졌다

  • 출처 : WTO. 2019. Global Value Chain Development Report Ch.01 Recent patterns of global production and GVC participation


위의 이미지는 2007년과 2017년 사이 정보통신산업(ICT) 내 글로벌 밸류체인 네트워크(Global Value Chain) 혹은 글로벌 공급망 교역(Global Supply Chain)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국 내 소비를 목적으로 외국산 최종재 상품을 수입하는 경우를 전통적인 교역(Traditional Trade)[각주:10]이라 합니다.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최종재 상품 다르게 말해 완성품은 다른나라 국민들이 소비를 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전달됩니다.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하는 경우를 글로벌 밸류체인 교역(GVC Trade)[각주:11]이라 하는데, 생산과정에서 부품이 국경을 한번 넘느냐 두번 넘느냐에 따라 단순 GVC 교역(Simple GVC)과 복잡 GVC 교역(Complex GVC)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산 중간재 수입품을 이용하여 만든 최종재를 자국 내에서 소비한다면 단순 GVC 교역이며, 외국산 중간재 수입품을 이용하여 만든 최종재를 제3국으로 수출한다면 복잡 GVC 교역입니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듯이, 지난 10여년 사이 글로벌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습니다. 특히 중국은 한국 · 일본 · 대만 등으로부터 중간재 부품을 조달한 후 아이폰과 같은 최종재를 만들고 이를 미국에 수출하는 GVC 구조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중 세번째 그림에서 중국이 제3국 수출을 목적으로 한국(KOR) · 일본(JPN) · 대만(TAP)으로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를 조달하는 복잡 GVC 교역 모습, 그리고 첫번째 그림에서 완성된 최종재인 아이폰을 미국(USA)으로 수출하는 전통적인 교역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국 간 다르게 말해 미국과 서유럽끼리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지 않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그 중에서도 선진국과 동아시아 간 글로벌 밸류체인이 발전한 것일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에서 살펴봤듯이,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떠한 힘이 작용하여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역할 분담을 이끌어냈고, 오늘날 세계경제 및 교역 구조를 이전과는 다르게 만들어낸 것일까요?




※ 상품운송비용 및 의사소통비용의 감소로 인해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


우선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에서 다루었던 '과거와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복습하겠습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포인트가 지난글의 그것과 다소 다르긴 하지만, 내용을 숙지하고 계신 분은 다음 파트로 넘어가셔도 됩니다.


▶ '상품 운송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선진국으로의 생산 집중



서로 멀리 떨어진 국가간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를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농식물을 재배 · 수확하면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자급자족 생활을 했습니다. 5일장 등 시장에서 다른 마을 사람들과 먹을거리를 교환하고 보따리상이 먼 지역의 농식물을 가져와 팔기도 하였으나, 상거래의 지역적 범위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즉, 국가간 교역이 활성화 되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에는 '생산과 소비가 한 공간'(bundling)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0세기 중반 컨테이너선 발명은 국가간 교역규모를 대폭 늘렸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이 만든 자동차 · 전자제품 등 제조업 상품과 중동이 채굴한 석유 및 중남미가 생산한 농산품 · 원자재 등 1차상품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소비되었습니다. 


이처럼 상품 운송비용이 하락함(goods trade costs↓)에 따라 국가간 교역은 활성화 되었고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가 이루어졌습니다(1st unbundling)


이제 개별 국가들은 자국이 생산한 상품을 전부 다 소비하지 않으며, 자국이 소비하는 상품 모두를 스스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제조업 상품은 북반부(North)에 위치한 미국 · 서유럽에서 집중 생산되며, 원자재는 남반구(South)에 위치한 중동 · 중남미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그리고 무역을 통해 서로 간 상품을 교환한 뒤 소비하는 'made-here-sold-there' 경제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족 : 여러번 강조[각주:12]했듯이, 국제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기 때문이며 이러한 서로 다른 가격이 국내에서 초과공급(=수출) 및 초과수요(=수입)을 만들어냅니다. 한 국가 내에서 초과공급 및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이를 무역을 통해 해결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협력


  • 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생산하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을 만들어 냄
  • 출처 : 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한국어 번역본 『그레이트 컨버전스』)

1990년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함에 따라 세계경제 구조와 교역방식이 또 다시 획기적으로 변했습니다. 


과거 철도 · 컨테이너선이 물적상품의 운송비용을 낮췄다(goods trade costs ↓), 정보통신기술은 서로 다른 국가에 위치한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비용을 절감시켰습니다(communication costs ↓). 이제 선진국 본사에 있는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서로 간 지식과 아이디어(knowledge & ideas)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한 선진국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역할을 배분합니다. 과거 선진국에 위치했던 제조공장은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했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창출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도 여러 국가가 참여합니다. 제품에 들어가는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여러 국가가 만든 뒤 조립을 담당하는 국가로 수출하고, 마지막 제조공정을 맡은 국가가 이를 이용해 완성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제조 과정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원활한 중간재 교역을 위해 지리적으로 밀집해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여러 국가가 생산에 참여하는 '글로벌 생산공유'(global production sharing) ·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등과 각자 역할을 맡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선진국(North)에 위치했던 제조업은 동아시아 등 후발산업국가(South, Factory Asia)로 이동했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간재 부품 교역을 통해 함께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글로벌 경제구조는 이렇게 여러 국가가 함께 만든 상품을 전세계가 소비하는 'made-everywhere-sold-there'로 진화했습니다.




※ 상품 운송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

※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


이와 같이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보고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왜 상품 운송비용 하락은 선진국으로 제조업 생산을 집중시켰고, 이와 정반대로 왜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은 개발도상국 특히 동아시아로 제조업 생산을 이동시켰을까?" 입니다.  


이는 앞서 던졌던 물음  "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국 다르게 말해 미국과 서유럽끼리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지 않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그 중에서도 선진국과 동아시아 간 글로벌 밸류체인이 발전한 것일까?"과 동일한 겁니다.


그리고 과거 선진국으로의 제조업 생산 집중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경제력 격차 이른바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를 만들어냈고, 오늘날 개발도상국으로의 제조업 생산 이전은 격차를 축소시키는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왜 상품 운송비용 하락은 '대분기'를 초래하였고(goods trade cost ↓ → the Great Divergence), 왜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은 '대수렴'을 이끌어내고 있는가?(communication cost ↓ → the Great Convergence)" 라는 물음도 던질 수 있습니다.


  • 리차드 발드윈의 단행본 <The Great Convergence>(2016) / 한국어 출판명 <그레이트 컨버전스>(2019)


경제학자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은 2000년 논문 <핵심-주변부 모형과 내생적 성장>(<the Core-Periphery Model and Endogenous Growth>) · 2001년 논문 <글로벌 소득 대분기, 무역 그리고 산업화 - 성장 출발의 지리학>(<Global Income Divergence, Trade and Industrialization - the Geography of Growth Take-Offs>) · 2006년 논문 <세계화 - 대분리>(<Globalization - the Great Unbundlings>) 등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설명해왔습니다. 


그리고 리차드 발드윈은 2013년 단행본 <대수렴 - 정보기술과 신세계화>[각주:13](<The Great Convergence -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을 통해, 학문적 내용을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했습니다.


리처드 발드윈은 폴 크루그먼의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각주:14]과 폴 로머의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각주:15]에 기반을 두고 '대분기'와 '대수렴' 현상을 설명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앞선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살펴봅시다.


▶ 신경제지리학, "운송비용이 하락하면서 대분기 → 대수렴이 발생한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1995년 논문 <세계화와 국가간 불균등>(<Globalization and the Inequality of Nations>)을 통해,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에 있으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불균등이 유발되다가, 임계점을 넘는 수준까지 하락하면 두 지역을 수렴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크루그먼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만들어낸 신무역이론(1979)과 신경제지리학(1991)을 우선 알아야 합니다.


신무역이론[각주:16] - 국제무역을 통해 인구가 적은 소국도 인구대국 만큼 상품다양성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 기업이 서로 다른 차별화된 상품을 생산하는 경우, 존재하는 기업의 수가 많을수록 상품 다양성은 증가하고 소비자들의 후생도 커집니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하나의 시장에서 무한대의 기업이 존재하는 건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상품 생산에 고정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업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개별 기업의 생산량은 줄어들고 이에따라 부담하는 생산비용도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정된 시장크기 하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규모가 작은 국가에 사는 소비자들은 상품다양성 이익을 대국 소비자들에 비해 누리지 못합니다.


이때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것은 국제무역 입니다. 이제 국내 사람들은 외국 기업이 생산한 상품도 이용함으로써 상품다양성 이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즉, 국제무역은 국내 인구 증가와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게 되고, 시장크기가 작은 소국 국민도 대국만큼의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신경제지리학[각주:17] - 소국 국민들은 삶의 수준이 더 높은 대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 '핵심-주변부'(Core-Periphery) 형태가 만들어진다


: 국제무역은 소국 국민도 상품다양성 이익을 누리게 해주지만, 높은 수준의 운송비용이 존재한다면 소국 국민이 이용하는 상품의 종류는 대국에 비해 적을 겁니다. 


결국 소국 국민들은 삶의 수준이 더 높은 대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가지게 되고, 초기에 인구가 더 많았던 대국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핵심-주변부'(Core-Periphery) 형태가 만들어 집니다. 


아래의 사고실험을 통해 이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1지역과 2지역은 모두 농업과 제조업을 가지고 있으며, 제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합니다. 그리고 제조업 상품이 두 지역을 오가려면 운송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말인즉슨 1지역 사람들은 2지역에 생산된 제조업 상품을 이용하는데 제약이 있고, 반대로 2지역 사람들은 1지역 제조업 상품을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이유에서건 초기에 1지역의 인구가 2지역 보다 더 많다고 가정해봅시다. 1지역의 시장크기가 더 크기 때문에 소비자 관점에서 1지역 사람들은 보다 다양한 제조업 상품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1지역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임금도 더 많이 받습니다. 


이를 알게 된 2지역 제조업 근로자는 높은 임금을 받고 더 다양한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 1지역으로 이동할 유인을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1지역 시장크기는 점점 더 커지게 되고, 선순환이 작용하여 사람들은 1지역으로 더더욱 몰려들게 됩니다. 


제조업 근로자(소비자) 뿐 아니라 제조업 기업들도 1지역으로 몰려듭니다. 제조업 기업은 상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전달하기 위해 운송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소비자가 많은 곳(시장크기가 큰 곳)에 기업이 위치해야 운송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제조업 기업들은 제조업 상품수요가 많은 곳에 위치하려 합니다(backward linkage). 근로자들은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제조업 상품이 다양하게 생산되는 곳에 모여듭니다(forward linkage). 결국 제조업 근로자들의 거주지 결정과 제조업 기업들의 입지결정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1지역으로의 집중은 심화 됩니다.



하지만 모든 제조기업이 1지역으로 쏠리지 않고 주변부인 2지역에도 여전히 제조기업은 존재하게 됩니다. 


핵심부에 모든 제조업 근로자 · 모든 제조업 기업이 모이게 되는 균형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제조업 기업이 1지역에 몰릴수록 내부경쟁은 심화되기 때문에 2지역으로 이탈할 유인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에 있다면 2지역에 위치한 제조업 기업은 1지역 상품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차라리 인구가 적은 2지역에 머무르며 조그마한 수요라도 독차지 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1지역은 '산업화된 핵심부'(industrialized core)가 되고, 주변부인 2지역은 농업'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도 어느정도 존재하는 '농업위주의 주변부'(agricultural periphery)가 됩니다.


● 세계화와 국가간 불균등 -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에 있다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불균등이 유발되다가 임계점을 넘는 수준까지 하락하면 두 지역을 수렴시킨다


폴 크루그먼은 신무역이론 · 신경제지리학을 북반구에 위치한 선진국과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North-South)에 적용하여 국가간 불균등을 설명합니다. 


산업화된 핵심부인 1지역은 선진국 · 농업위주의 주변부인 2지역은 개발도상국 이라 한다면, 국가간 핵심-주변부 패턴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제조업은 계속해서 핵심부인 선진국으로 집중되고 개발도상국은 농업 위주의 주변부에 머무르게 됩니다.  따라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수준은 벌어지게 됩니다(divergence).


  • 왼쪽 : G7 선진국의 제조업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오른쪽 : 중국의 제조업 비중 증가

  • 출처 : 리차드 발드윈 2019년 논문 <GVC journeys -Industrialization and Deindustrialization in the age of Second Unbundling>


이때 운송비용이 임계점을 넘는 수준까지 내려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시장크기가 작은 개발도상국 국민도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제조업 상품을 상당히 낮은 운송비용을 지불하며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품다양성을 이유로 이주할 유인은 없어집니다. 


그리고 상당히 낮은 운송비용은 제조업 기업들의 위치선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제 제조업 기업은 굳이 시장규모가 크고 제조업 수요가 많은 선진국에 위치하지 않아도 됩니다게다가 주변부인 개발도상국의 낮은 임금수준은 제조업 기업들에게 선진국 시장과 멀리 떨어지는 불리함을 상쇄시켜 줍니다. 


이제 운송비용이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는 제조업 기업은 핵심부인 선진국에서 주변부인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할 유인이 생기게 되고,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이 발전하여 선진국과 경제수준이 수렴하게 됩니다(convergence).


▶ 신성장이론, "선진국 지식이 개발도상국으로 전파되면서 대수렴이 일어난다"


임계점 밑으로 하락한 운송비용에 더하여 '아이디어(idea)와 지식(knowledge)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의 하락(communication cost ↓)'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수준 수렴을 가속화 시킵니다.


'지식' · '아이디어'가 경제성장에 얼마나 중요[각주:18]한지, 그리고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어떻게 추격성장을 할 수 있는지[각주:19]는 본 블로그의 지난글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는 1990년 논문 <내생적 기술변화>(<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는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를 만들어내 끝없는 경제성장을 이끈다"(variety-based growth)고 말하며 신성장이론을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이어서 폴 로머는 1993년 두 개의 논문 <경제발전에서 아이디어 격차와 물적 격차>(Idea Gaps and Object Gaps in Economic Development), <경제발전의 두 가지 전략: 아이디어 이용하기와 생산하기>(Two Strategies for Economic Development: Using Ideas and Producing Ideas)을 통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보유한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함의를 강조했습니다.


공장설비 및 기계 등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은 특정한 공간에 매여 있습니다. 한 공간에서 이미 사용중 이라면, 다른 곳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즉, 물적자본은 '경합적'(rival)이며 '배제가능성'(excludable)을 띈 사유재(private good) 입니다.


반면, 아이디어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롭고 다른 종류의 생산방식 등은 한 공장에서만 쓰여지는 게 아니라 기업이 소유한 여러 공장에서 동시에 사용됩니다. '비경합성'을 띈다는 점에서는 공공재와 유사합니다. 즉, 아이디어는 '비경합성'(non-rival)을 가진채 '공공재'(public goods) 특징을 일부 띄는 독특한 재화입니다.


따라서, 연구부문의 R&D를 통해 창출된 아이디어는 시대가 지나도 끝없이 축적되며,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전파된 지식과 아이디어는 두 그룹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왼쪽 : 미국 · 일본 · 독일 등 선진국의 지적재산권 수출 추이

  • 오른쪽 : 중국 · 한국 · 대만 · 멕시코 등 제조업 신흥국의 지적재산권 수입 추이

  • 출처 : 리차드 발드윈 2019년 논문 <GVC journeys -Industrialization and Deindustrialization in the age of Second Unbundling>


1990년대부터 진행된 '정보통신기술 혁명'(ICT Revolution)은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낮추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지식과 아이디어가 전파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firms)은 지식과 아아디어 전파 역할을 맡았습니다. 


다국적기업은 직접투자 · 합작기업 설립 · 마케팅 및 라이센스 협약 등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선진국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 근로자는 즉각적인 의사소통을 하며 제품을 제조해 나갔습니다.


지식을 전파하는 다국적기업의 중요성은 중국의 경제발전 과정[각주:20]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선진국 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상품을 제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992년 이후 중국 수출입에서 외자기업이 행하는 비중은 최대 60%까지 증가하였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만약 선진 외국기업들이 제품 설계 · 품질 기준 등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전파하지 않았다면, 중국 제조업 기업이 맨땅에서 현재 수준까지 발전하기에는 더욱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게 분명합니다. 


정리하자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하락한 덕분에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지식 및 아이디어가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며, 두 그룹 간 경제수준이 수렴하게 되었습니다(convergence).


▶ 왜 제조업은 동아시아에 집중되었나


아이디어와 지식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하락한 덕분에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게 되었으나, 모든 개발도상국이 혜택을 본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의 제조업 공장은 대부분 동아시아로 이동했고,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여전히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은 2016년 출판한 단행본 <대수렴 - 정보기술과 신세계화>[각주:21](<The Great Convergence -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을 통해, 제조업 기적이 몇몇의 개발도상국에서만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발드윈은 "상품 운송비용 및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크게 하락했으나, 사람을 이동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여전히 비싸다(cost of moving people ↑)"는 점에 주목합니다. 


선진국 다국적기업은 본사 관리직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개발도상국에 진출합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발령을 내려면 이에 합당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겠죠. 연봉도 기존보다 더 많이 주어야하고, 체류비, 가족교육 지원비 등도 주어야 합니다. 만약 현지 영업판매망을 구축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수많은 본사 직원을 파견할 필요는 없겠지만,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고 수천~수만명의 제조 근로자들을 감독·관리 하려면 큰 규모의 인력이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선진국 다국적기업은 '이미 어느정도 제조업 기반이 갖추어진 개발도상국' · '직원 이동비용을 상쇄할만큼 편익을 제공해주는 개발도상국' 등을 특정하여 오프쇼어링을 단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신흥국은 '과거 수입대체산업화로 인해 제조업을 발전시키지 못한 중남미 등'[각주:22]이 아니라 '대외지향적 무역정책을 통해 제조업 기반을 조성한 한국 · 대만 등'[각주:23] 혹은 '특별경제구역을 조성하여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잠재력 있는 내수시장을 지닌 중국'[각주:24] 등 동아시아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결과, 동아시아 지역은 전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Factory Asia)이 되었습니다.




※ 신흥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 → 대수렴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


한국 · 중국 · 대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제조업 공장의 발전은 원자재 수요를 폭증시켜 브라질 · 호주 · 칠레 · 러시아 · 중동 등 자원 수출국의 경제도 성장시켰습니다. 20세기 경제성장과 산업화에서 소외되었던 국가들이 일어서기 시작한 겁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세계는 선진국-개발도상국 간 경제력 격차가 큰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 시대를 지나서 선진국-신흥국 간 경제력 격차가 줄어드는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세계경제 및 대수렴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는 '글로벌 밸류체인'(GVC) · '동아시아 제조업'(Factory Asia) · '글로벌 상품 호황'(Global Commodity Boom) · '신흥국'(Emerging Market) 그리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BRICS) 입니다.


이러한 대수렴 시대에 눈에 띄는 것은 '글로벌 불균등의 양상 변화'(Global Inequality) 입니다. 


전세계 70억 인구를 소득수준별로 줄을 세워봅시다. 


20세기에는 '국적'이 소득 상위층과 중하위층을 갈라놓는 주요 변수였습니다. 미국 · 서유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내부에서는 중하위층일지라도 전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상위층에 속했습니다. 국가별 소득수준 차이가 심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가 글로벌 소득순위에서 중요했습니다. 다르게 말해, 20세기 글로벌 불균등 분포를 결정지었던 것은 '국가간 불균등'(Between Inequality) 였습니다.


  • 1998년~2008년 사이 전세계 계층별 소득증가율

  • 전세계 소득분포 중 90분위~80분위에 위치한 미국 중하위 계층은 1%~6%의 소득증가율만 기록한 반면, 전세계 소득분포에서 70분위~40분위에 위치한 신흥국 중상위 계층은 60%가 넘는 소득증가율을 기록

  • 출처 : Two-Track Future Imperils Global Growth'. <WSJ>. 2014.01.21


반면, 21세기에는 '국적'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 서유럽의 중하위층 보다 신흥국 상위층의 소득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 · 서유럽의 중하위층은 전세계적 관점에서 여전히 중상위층에 속하긴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이들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었고, 신흥국 상위층의 소득증가율은 높았습니다.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뿐 아니라 '국가 내 소득분포에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도 중요해졌습니다. 즉, 21세기 대수렴의 시대에 '국가간 불균등'은 줄어들었고(Between Inequality ↓), '국가내 불균등'의 중요성(Within Inequality ↑)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국가간 불균등이 얼마나 감소하였는지 그리고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다음글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 선진국 제조업의 몰락과 서비스화 → 선진국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


미국은 아이폰을 제조하는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미국의 아이폰' 뿐 아니라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 자체가 크게 줄었습니다. 대신 선진국에서 증가한 일자리는 'R&D · 디자인 · 설계 · 마케팅' 등 서비스 관련 직무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만들어낸 자연스런 변화 입니다.


  • 공정단계별 부가가치 창출 크기 - 일명, 스마일 커브(Smile Curve)

  • 1990년대 이후로는 R&D · 설계 · 디자인 등 제조 이전 서비스(Pre-fab services)와 마케팅 · 판매 등 제조 이후 서비스(Post-fab services)의 부가가치 창출액이 제조(Fabrication) 단계 부가가치 창출액 보다 크다


부가가치 창출 관점에서 선진국의 서비스화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러 부품을 단순 조립하여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제조업 직무보다는 제품을 초기부터 디자인 · 설계하고 완성품을 마케팅하여 판매하는 서비스 직무의 부가가치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아이폰 제조 일자리를 잃었지만 여전히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조업 일자리에 종사해왔던 선진국 근로자'에 있습니다. ICT 기술진보로 인해 세계경제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이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제조업 근로자를 재교육시켜 서비스 직무로 이동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힘듭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혁신의 패배자'가 된 이들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 2012년 1월 21일, 뉴욕타임스 기사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지다


에릭 사라고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 제조공장에 처음 입사했을 때, 그는 엔지니어링 원더랜드에 입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1995년 그 공장은 1,5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했었다. 엔지니어인 사라고사는 빠르게 승진했고 그의 연봉은 5만 달러로 올랐다. (...)


하지만 전자산업은 변화하고 있었고, 애플은 변화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애플의 초점은 제조공정은 개선시키는 것이었다. 사라고사가 입사한 지 몇년 후, 그의 보스는 캘리포니아 공장이 해외 공장에 비해 얼마나 뒤쳐지는지 설명했다. 1,500 달러 컴퓨터를 만드는 데에 캘리포니아 공장에서는 22달러가 들었지만 싱가포르는 6달러 대만은 4.85 달러에 불과했다. 임금은 주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재고비용 및 근로자가 업무를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이 차이가 났다. (...)


지난 20년간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중임금 일자리는 사라지기 시작했다(Midwage jobs started disappearing).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오늘날 신규 일자리는 중산층에게 적은 기회만을 제공하는 서비스 직무에 쏠려있다.


대학 학위를 가진 사라고사 조차도 이러한 변화에 취약했다. 우선 캘리포니아 공장의 반복적인 업무가 해외로 이전되었다(routine tasks were sent overseas). 사라고사는 개의치 않았다. 그 후 로봇이 나왔고 경영진은 근로자를 기계로 대체하였다(replace workers with machines). 진단 엔지니어링 업무를 맡는 몇몇이 싱가포르로 보내졌다. 컴퓨터와 함께 소수의 사람만 필요해졌기 때문에, 공장의 재고를 감독하는 중간 관리자는 갑자기 해고되었다.


비숙련 업무를 하기에는 사라고사의 몸값은 너무 비쌌다. 또한 그는 상위 관리직을 맡기에는 아직 자격이 부족했다. 2002년 밤늦게 호출된 그는 해고되었고 공장을 떠났다. 그는 잠깐동안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술분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애플은 캘리포니아 공장을 콜센터로 바꾸어 놓았고,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는 시간당 12달러만 받는다.


구인활동을 시작한 지 몇개월 후, 사라고사는 절망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에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검수한 후 다시 소비자에게 보내는 임시직을 맡았다. 매일매일 사라고사는 한때 엔지니어로 일했던 건물로 출근하였는데, 이제는 시간당 10달러 임금과 함께 수천개의 유리 스크린을 닦고 오디오 포트를 테스트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 뉴욕타임스. 2012.01.21.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미국내 공장의 반복직무는 해외로 이전하였고 중간관리자와 근로자는 기계로 대체되었습니다. 한때 엔지니어로 높은 몸값을 받았던 사라고사는 이제 임시직을 맡으며 시간당 10달러의 임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미국 내에서 반복직무를 맡는 중산층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졌고, '콜센터 · 장비검수 등 아직 사람의 손이 필요한 저숙련 직무'와 '설계 · 디자인 · 마케팅 등 고숙련 직무'로 양극화 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내 임금불균등의 증가(Within Wage Inequality ↑)가 경제적 문제로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신흥국으로의 오프쇼어링 및 기술진보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이들은 '화가 난 미국인'(Angry American)이 되었고,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미국의 중산층 제조업 일자리 감소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기에 이들의 분노가 커졌던 것일까요? 앞으로 다음글을 통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감소'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 제조업 중산층 일자리를 없앤 건 '기술변화'일까? '무역'일까? 


이번글에서 살펴본 뉴욕타임스 기사는 미국이 애플 아이폰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주요 원인으로 '중국으로의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에서 확인했다시피,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무역이 아니라 기술변화가 중산층 일자리를 없앴다" 라고 생각합니다. 비숙련 근로자를 대체하고 숙련 근로자의 몸값을 높이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로 인해 임금 불균등이 커졌다는 논리 입니다.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를 문제로 지적하는 경제학자와 중국의 부상 및 오프쇼어링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대중들 간 감정적 격차는 계속해서 커져왔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대중국 무역전쟁을 요구하는 대중 · 정치인들의 요구에 대항하여, 경제학자들은 "비록 제조업 일자리는 줄었으나 서비스업 일자리가 증가하여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는 식으로 반박했습니다.


(제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누차 지적[각주:25]해왔듯이) 경제학자들의 이런식의 대응은 대중과 정치권의 외면만 불러왔습니다. 다행히도 몇몇 경제학자들은 대중과 정치권의 목소리를 이해하는 동시에 문제의 원인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중산층 일자리 상실을 깊이 연구한 경제학자들은 '기술 vs 무역'(technology vs. trade)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기술과 무역이 상호연관을 맺고 있다'(technology ↔ trade)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기업의 아웃소싱 그 자체는 국제무역의 영향 입니다. 그러나 글로벌 밸류체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ICT revolution)으로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하락(communication cost ↓)한 덕분입니다. 


즉, 오프쇼어링을 통한 무역의 영향과 ICT 발전으로 인한 기술의 영향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 입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기술 vs 무역'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기술과 무역이 어떻게 상호연관적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볼 겁니다.




※ 신흥국 경제성장으로 인한 '대수렴의 시대' → 글로벌 불균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앞으로도 살펴봐야 할 주제들이 많은 가운데, 우선 바로 다음글을 통해 "신흥국 경제성장으로 인한 '대수렴의 시대' → 글로벌 불균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1. Remarks by the President in the State of the Union Address. 2013.02.12 [본문으로]
  2. Our first priority is making America a magnet for new jobs and manufacturing. After shedding jobs for more than 10 years, our manufacturers have added about 500,000 jobs over the past three. Caterpillar is bringing jobs back from Japan. Ford is bringing jobs back from Mexico. And this year, Apple will start making Macs in America again. (Applause.)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 https://joohyeon.com/280 [본문으로]
  4. Apple will not be given Tariff waiver, or relief, for Mac Pro parts that are made in China. Make them in the USA, no Tariffs!. 2019.07.27 [본문으로]
  5. Apple’s new Mac Pro to be made in Texas. 2019.09.23 [본문으로]
  6. A Tiny Screw Shows Why iPhones Won’t Be ‘Assembled in U.S.A.’. 2019.01.28 [본문으로]
  7. "오바마 대통령의 물음은 애플이 갖고 있는 확신을 건드린 것이다. (애플이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생산하는 이유는) 단지 해외 근로자가 더 값싸기 때문이 아니다. 애플 경영진은 해외 근로자의 유순함, 근면성, 산업기술 뿐 아니라 해외 공장의 광대한 규모가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Made in U.S.A.는 더 이상 선택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The president’s question touched upon a central conviction at Apple. It isn’t just that workers are cheaper abroad. Rather, Apple’s executives believe the vast scale of overseas factories as well as the flexibility, diligence and industrial skills of foreign workers have so outpaced their American counterparts that “Made in the U.S.A.” is no longer a viable option for most Apple products." [본문으로]
  8. The answers, almost every time, were found outside the United States. Though components differ between versions, all iPhones contain hundreds of parts, an estimated 90 percent of which are manufactured abroad. Advanced semiconductors have come from Germany and Taiwan, memory from Korea and Japan, display panels and circuitry from Korea and Taiwan, chipsets from Europe and rare metals from Africa and Asia. And all of it is put together in China. [본문으로]
  9. “The entire supply chain is in China now,” said another former high-ranking Apple executive. “You need a thousand rubber gaskets? That’s the factory next door. You need a million screws? That factory is a block away. You need that screw made a little bit different? It will take three hours.”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https://joohyeon.com/284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https://joohyeon.com/284 [본문으로]
  1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13. 한국어 출판명은 '그레이트 컨버전스' [본문으로]
  14.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s://joohyeon.com/220 [본문으로]
  15.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s://joohyeon.com/258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https://joohyeon.com/219 [본문으로]
  17.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s://joohyeon.com/220 [본문으로]
  18.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s://joohyeon.com/258 [본문으로]
  19.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https://joohyeon.com/260 [본문으로]
  2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1. 한국어 출판명은 '그레이트 컨버전스' [본문으로]
  2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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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Posted at 2019. 9. 22. 19:32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보여주는 장면 3가지


▶ 장면 #1 -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Made in China' 제품을 쏟아내다



중국은 1990년대 개혁개방 정책 및 2001년 WTO 가입으로 '세계의 공장'(the World's Factory)[각주:1]이 되었습니다. 전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8%에서 2018년 25%로 확대되었고, 미국 · 일본 · 독일 · 영국 등 기존 선진공업국의 비중은 축소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게 된 이유 입니다. 그 이유는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인형 · 신발 · 의복 등의 노동집약적 상품을 전세계에 대규모로 공급했다는 점에만 있지 않습니다.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외국인 투자자[각주:2]들은 13억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하여 앞다투어 중국으로 진출했고, 선진국 기업들의 제품 다수가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 많은 제조업 상품들이 브랜드만 선진국 기업일 뿐 실상은 'Made in China' 입니다


말그대로 중국은 전세계 기업들의 제품을 만들어주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전세계인들은 중국에서 제조된 물건을 이용하고 있으며, 값싼 중국산 상품 덕분에 전세계 물가상승률이 낮아졌다는 연구[각주:3]는 더이상 새로운 주제가 아닙니다. 


▶ 장면 #2 -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될 '애플' 



'세계의 공장' 으로서 중국경제를 상징하는 제품이 바로 미국 애플사의 아이폰(iPhone) 입니다. 아이폰은 캘리포니아 애플 본사에서 디자인 · 설계 +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 조립되어 완성됩니다. 아이폰 뒷면에 나오듯이 말그대로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 · 중국에서 조립된 아이폰'(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 입니다.


이로 인하여, 대중국 수입품 전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으로 미국 애플의 상품이 뜬금없이(?) 피해를 보게 생겼습니다


트럼프행정부는 2018년부터 대중국 수입품 일부에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2019년 9월 1일부터 애플 왓치와 에어팟 등에, 12월 15일에는 애플 아이폰 등에 관세부과를 예고[각주:4]한 상황입니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애플 상품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지적이 연일 제기되었고, 애플 CEO 팀 쿡 또한 "(중국 외에서 만들어지는) 라이벌 삼성 제품은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애플에게 해를 끼친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각주:5]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중국에 부과한 관세로 인해 애플 가격이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세금을 내지 않는 쉬운 해결책이 있다. 애플 상품을 중국 대신 미국 내에서 만들어라. 지금 새로운 공장 건설을 시작하라."라고 말하며 지적을 일축했고, 2019년에는 팀 쿡에게 "애플의 사정을 고려하겠다"고 말은 했으나 추가조치는 없는 상황입니다.


▶ 장면 #3 - '한국vs일본' 무역분쟁에 우려를 표하는 '미국' 전자업계


  • 한국-일본 수출통제를 둘러싼 여러 협회의 최종 서한 


오늘날 세계경제 모습 '기업의 제품이 자국이 아닌 외국에서 만들어지고, 자국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부과되는 관세로 인해 자국기업이 피해를 보는 상황'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의아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한국vs일본' 무역분쟁에 우려를 표하는 '미국' 전자업계 입니다.


일본정부는 한국 사법부의 강제징용 판결을 문제삼으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 불화수소 · 포토 레지스트 등 반도체 소재 3가지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조치를 7월 4일부터 시행하였습니다. 삼성전자 · SK하이닉스와 한국 정부 일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소재를 조달하거나 국산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오랜 시일이 걸리는만큼 지금 당장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될 거라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컴퓨터기술산업협회(CompTIA) · 소비자기술협회(CTA) · 정보기술산업위원회(ITI) · 전미제조업자협회(NAM) · 반도체장비재료산업협회(SEMI) · 반도체협회(SIA) 등 미국에 근거지를 둔 6개 단체가 분쟁해결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글로벌 정보통신산업 및 제조업은 부품 등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서로 엮여있는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interwoven and complex global supply chains)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s)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수출규제정책의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변화는 공급망파괴와 배송지연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세계 기업과 근로자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글로벌 정보통신산업 및 제조업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우리는 한일 양국에 분쟁격화를 일으킬 행동을 자제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촉구한다."[각주:6] 라고 말했습니다.




※ 오늘날 경제구조와 교역방식은 과거와는 무엇이 다른가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사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앞선 3가지 장면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을 겁니다. 


"Made in China는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 아닌가? 중국이 물건 많이 찍어내는 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대중국 수입상품 관세부과로 미국기업 애플이 피해를 본다니, 역시 트럼프가 멍청한 짓을 하는구나!", "한국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없으면 당연히 다른나라 기업들도 손해를 보니까 저런 성명을 낸거겠지" 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 오늘날의 경제구조와 교역방식을 차근차근 비교해보면 간과해서는 안될 함의가 3가지 장면 속에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 과거 경제구조와 교역방식 : 소비를 목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교환


서로 멀리 떨어진 국가간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를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농식물을 재배 · 수확하면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자급자족 생활을 했습니다. 5일장 등 시장에서 다른 마을 사람들과 먹을거리를 교환하고 보따리상이 먼 지역의 농식물을 가져와 팔기도 하였으나, 상거래의 지역적 범위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즉, 국가간 교역이 활성화 되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에는 '생산과 소비가 한 공간'(bundling)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 제국주의와 증기기관 · 철도의 발명은 국제무역 시대를 열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에서 생산된 귀금속 · 향신료 · 원자재 등을 수입하여 소비하였고, 영국과 유럽대륙 국가들은 비교우위 품목에 특화하여 생산한 뒤 다른나라의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교환했습니다. 비교우위 개념을 세상에 내놓은 데이비드 리카도가 들었던 예시 '직물을 수출하는 영국과 포도주를 수출하는 포르투갈'(Cloth for Wine)[각주:7]에서 당시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컨테이너선 발명은 국가간 교역규모를 대폭 늘렸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이 만든 자동차 · 전자제품 등 제조업 상품과 중동이 채굴한 석유 및 중남미가 생산한 농산품 · 원자재 등 1차상품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소비되었습니다. 



이처럼 운송비용이 하락함에 따라 국가간 교역은 활성화 되었고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가 이루어졌습니다(1st unbundling)


이제 개별 국가들은 자국이 생산한 상품을 전부 다 소비하지 않으며, 자국이 소비하는 상품 모두를 스스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제조업 상품은 북반부(North)에 위치한 미국 · 서유럽에서 집중 생산되며, 원자재 상품은 남반구(South)에 위치한 중동 · 중남미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그리고 무역을 통해 서로 간 상품을 교환한 뒤 소비하는 'made-here-sold-there' 경제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족 : 여러번 강조[각주:8]했듯이, 국제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기 때문이며 이러한 서로 다른 가격이 국내에서 초과공급(=수출) 및 초과수요(=수입)을 만들어냅니다. 한 국가 내에서 초과공급 및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이를 무역을 통해 해결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교역 목적 및 품목은 '소비를 목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교환(final goods & cross borders for consumption)' 하는 것입니다.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최종재 상품 다르게 말해 완성품은 다른나라 국민들이 소비를 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전달됩니다. 


▶ 오늘날 경제구조와 교역방식 :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 


"소비를 목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교환하는 것을 '과거'의 경제라고 할 수 있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오늘날에도 이러한 형태의 무역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교역형태를 '과거'의 것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새로운 경제구조와 교역방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오늘날에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함에 따라 세계경제 구조와 교역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했습니다. 


과거 철도 · 컨테이너선이 물적상품의 운송비용을 낮췄다(trade costs ↓), 정보통신기술은 서로 다른 국가에 위치한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비용을 절감시켰습니다(communication costs ↓). 이제 선진국 본사에 있는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서로 간 지식과 아이디어(knowledge & ideas)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한 선진국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역할을 배분합니다. 과거 선진국에 위치했던 제조공장은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했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창출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도 여러 국가가 참여합니다. 제품에 들어가는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여러 국가가 만든 뒤 조립을 담당하는 국가로 수출하고, 마지막 제조공정을 맡은 국가가 이를 이용해 완성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제조 과정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원활한 중간재 교역을 위해 지리적으로 밀집해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생산하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을 만들어 냄

  • 출처 : 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한국어 번역본 『그레이트 컨버전스』)


이처럼 정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여러 국가가 생산에 참여하는 '글로벌 생산공유'(global production sharing) ·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등과 각자 역할을 맡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선진국(North)에 위치했던 제조업은 동아시아 등 후발산업국가(South, Factory Asia)로 이동했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간재 부품 교역을 통해 함께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글로벌 경제구조는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전세계가 소비하는 'made-everywhere-sold-there'로 진화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역 목적 및 품목은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조달(intermediate inputs & cross borders for production)' 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역의 주목적은 소비가 아니라 글로벌 생산과정 참여가 되었고, 제품 생산에 투입되는 중간재 부품이 국경을 여러번 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오늘날 경제구조와 교역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앞서 보았던 장면이 어떤 함의를 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 장면 #1 -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Made in China' 제품을 쏟아내다

→ 글로벌 생산공유에서 중국이 맡고 있는 역할이 '상품 제조'


: '많은 제조업 상품들이 브랜드만 선진국 기업일 뿐 실상은 Made in China인 모습'은 글로벌 생산공유에서 중국이 맡고 있는 역할이 '상품 제조'(Manufactures)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에서 살펴봤듯이, 1990년대 이후 중국은 가공무역(process trade)을 통해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수입해온 뒤 이를 단순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든 후 다시 수출'(imports of capital · intermediate good → assemble → re-export)하고 있습니다. 특히 컴퓨터 및 전자상품 생산과정에서 중국이 하는 일은 그저 단순조립일 뿐입니다.


만약 정보통신기술 발전이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fragmentation of production)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Made in China 제품을 쏟아내는 세계의 공장 중국은 없었을 겁니다. 


▶ 장면 #2 -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될 '애플' 

→ 선진국의 서비스화 및 달라진 무역정책의 파급영향


: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구조'는 무역정책의 파급영향을 과거와 다르게(trade policy in the era of GVC) 만들었습니다.


과거 경제구조에서는 무역정책의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구분되었습니다. 자유무역정책은 비교우위산업과 수출업자에게 이득을 주었고 보호무역정책은 비교열위 산업과 수입업자를 유리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싼 대립구도는 '비교우위 부문 vs 비교열위 부분' 혹은 '수출업자vs수입업자' 였습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대립구도는 '자국 vs 외국' 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시장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은 자기이익보호를 위해 폐쇄경제를 고집[각주:9]하거나 수입경쟁에 노출된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정책을 실시[각주:10]하는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자국의 강점을 믿고 자유무역을 주장[각주:11]하거나 자국 수출업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국 뿐 아니라 외국의 무역장벽도 낮추는 호혜적 무역자유화 방식[각주:12]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무역 및 자유무역 정책 실시배경에는 모두 "외국보다 우리나라에 유리하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무역정책의 승자와 패자를 쉽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자유무역정책이 수출업자에게 이득을 주고 보호무역정책이 수입업자에게 이득을 줄까요? 중국에서 수입되는 스마트폰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내 스마트폰 제조사를 경쟁에서 보호하는 것인가요? 중국에서 조달하는 중간재 부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이를 활용해 최종재를 만드는 미국 수출업자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보다 근본적으로 여러 국가가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글로벌 밸류체인 시대에 '자국 vs 외국'으로 양분하는 게 타당할까요? 대중국 수입품 전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으로 미국 애플의 상품이 뜬금없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은 오늘날 글로벌 경제 및 무역 구조 속에서 무역정책의 파급영향이 과거와는 다름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세금을 내지 않는 쉬운 해결책이 있다. 애플 상품을 중국 대신 미국 내에서 만들어라. 지금 새로운 공장 건설을 시작하라!" 라고 대꾸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세계화가 오프쇼어링을 유발하여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줄였다고 믿는 트럼프 대통령다운 반응[각주:13]이지만, 달라진 세계화 형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경제학자 Emily J. Blanchard는 "아이러니한건, 일자리 귀환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행정부는 관세부과를 수입중간재에 집중하였다. 이는 기업들이 미국으로 공장을 이동하기 꺼리게 만들며 대신 Factory ASIA나 Factory Europe 으로 이동케한다"[각주:14]지적[각주:15]합니다. 이제 한 국가가 제품의 모든 것을 생산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중간재와 자본재 등을 조달하여 같이 만드는 시대에, 수입중간재에 관세를 부과할수록 생산은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구조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해졌고, 이에 얽혀있는 이해관계도 딱 잘라서 구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면 #3 - '한국vs일본' 무역분쟁에 우려를 표하는 '미국' 전자업계

→ 양국 간 무역분쟁은 글로벌 밸류체인을 통해 전세계로 퍼진다


글로벌 밸류체인 시대에 여러 국가가 과거보다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한국vs일본' 무역분쟁에 우려를 표하는 '미국' 전자업계 입니다. 


양국 간 무역분쟁 혹은 보호무역정책이 다른 국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1930년대에 이미 경험했습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각 국가들은 각자도생을 꾀하며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하였고 평균 50%가 넘는 관세를 부과했고, 대공황 충격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심화되었습니다.


1930년대 보호무역주의가 수출시장 축소를 통해 전세계에 악영향을 전파했다면, 오늘날 무역분쟁은 글로벌 밸류체인으로 서로 간에 긴밀히 연결된 고리를 끊음으로써 기업의 생산에 직접적인 충격을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애플사가 생산하는 아이폰은 중국 내에 위치한 대만 폭스콘사가 제조하는데, 아이폰에 들어가는 카메라센서 · 메모리 반도체 등 중간재 부품은 한국 전자기업들이 공급합니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는 전세계 D램 및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73% · 4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서버 · 스마트폰 등 IT상품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부품이기 때문에,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위축된다면 전세계 IT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됩니다. 


즉, 일본의 반도체소재 수출규제로 한국이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미국 기업 뿐 아니라 전세계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단순히 시장규모가 축소되는 문제가 아니라 아예 전세계 전자제품 생산이 정지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한일 간 갈등격화에 미국 전자업계가 서한을 보내면서까지 깊은 우려를 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달라진 글로벌 경제구조와 교역형태를 염두에 두면서, 서한 내용 중 일부를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글로벌 정보통신산업 및 제조업은 부품 등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서로 엮여있는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interwoven and complex global supply chains)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s)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수출규제정책의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변화는 공급망파괴와 배송지연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세계 기업과 근로자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글로벌 정보통신산업 및 제조업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우리는 한일 양국에 분쟁격화를 일으킬 행동을 자제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촉구한다."[각주:16]


▶ 달라진 경제구조와 교역방식 : 기존 데이터 측정방식으로는 변화를 포착할 수 없다


1990년대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경제 및 무역 구조가 예전과는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글로벌 생산공유 · 글로벌 밸류체인 · 글로벌 공금망 · 아웃소싱 등이 학자들의 연구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깊은 연구를 위한 장벽은 '기존 데이터의 측정방식'(measurement problem)에 있었습니다기존 무역데이터는 최종재 상품이 국경을 넘어서 수출입 될 때의 금액과 양을 주로 측정했기 때문에, 중간재 부품이 여러 국가 간 국경을 얼마나 넘나드는지 · 글로벌 생산공유 과정에서 개별 국가의 기여도가 어느정도 되는지 등을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짧은 설명으로는 기존 데이터의 한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지금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합시다.




※ 달라진 경제구조와 교역방식 -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Integration of Trade and Disintegration of Production)


  • 경제학자 로버트 C. 핀스트라(Robert C. Feenstra)

  • 1998년 논문 '세계경제 속 무역의 통합과 생산의 분해'(Integration of Trade and Disintegration of Production in the Global Economy)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달라진 세계경제를 주제로 많은 논문을 썼던 학자 중 한 명이 바로 로버트 C. 핀스트라(Robert C. Feenstra) 입니다. 핀스트라는 현재까지도 경제학계 유수의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고 있으며, 그가 집필한 국제무역론 교과서는 전세계 대학원에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로버트 C. 핀스트라는 1998년 논문 <세계경제 속 무역의 통합과 생산의 분해>(Integration of Trade and Disintegration of Production in the Global Economy)을 통해 글로벌 경제 및 무역 구조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논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핀스트라는 최근의 세계경제 변화에 대해 "세계시장 통합증대는 생산과정의 분해와 함께 이루어졌다."(The rising integration of world markets has brought with it a disintegration of the production process) 라고 말합니다. 


통합(integration)과 분해(disintegration) 라는 대조되는 단어를 이용하여 핵심을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적 입니다. 그는 몇 가지 데이터를 통해 생산과정의 분해가 교역증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드러나게 됩니다.


▶ 세계경제는 통합되고 있나?


  • 1890년~1990년, 국가별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 추이

  • 출처 : Feenstra(1998)


세계경제 통합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전세계가 무역을 통해 서로 긴밀히 연결된 모습을 통합 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상품의 수출 · 수입 규모를 살펴보면 세계화가 진행된 정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핀스트라는 국가별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ratio of Merchandise Trade to GDP)이 1910년대에 비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위의 표는 대표적인 선발공업국가인 미국 · 영국 · 독일 · 일본의 비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 독일은 1913년 6.1% · 19.9%에서 1990년 8.0% · 24.0%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영국 · 일본의 경우 과거 29.8% · 12.5%에서 20.6% · 8.4%로 되려 감소했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별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의 절대값 자체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교역 규모가 커져왔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1990년 주요 선진국의 상품교역 비중은 30%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계치는 과거보다 현대에 와서 세계경제가 더 통합되었다는 직관에 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직관이 잘못되었거나 통계치가 제대로 된 측정방식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핀스트라는 통계 측정방식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위의 통계치는 'GDP 대비 비중'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분모인 GDP가 세계경제 통합 정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 비중은 왜곡되어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핀스트라는 "위의 표 대다수가 선진국인데, 이들은 오늘날 제조업 상품교역보다는 서비스 부문에 더 많이 종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이 낮게 나타난다"[각주:17]고 설명합니다. 


선진국의 서비스업 발전으로 인한 제조업의 비중 축소(not 절대규모 축소)[각주:18]는 이전글에서 다른 경제학자도 논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상품교역의 절대규모가 증가했음에도 분모인 GDP가 다른 요인으로 더 크게 증가했다면, 상품교역 비중은 낮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생산과정의 분해가 교역증대를 만들어냈다 


  • 1890년~1990년, 국가별 상품 부가가치 대비 상품교역 비중 추이

  • 출처 : Feenstra(1998)


이 점을 고려하여 핀스트라는 상품부문과 서비스부문의 부가가치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GDP 대신 상품 부가가치만을 따로 떼어내어서 분모로 사용합니다. 위의 표는 1890년~1990년, 국가별 상품 부가가치 대비 상품교역 비중(ratio of Merchandise Trade to Merchandise Value-Added)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수치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GDP 대비 상품교역 비중은 30%도 채 기록하지 못했으나, 상품 부가가치 대비 상품교역 비중은 국가별로 최대 85.9%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990년 미국 · 영국 · 독일 · 일본은 각각 35.8% · 62.8% · 57.8% · 18.9%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 프랑스 · 스웨덴의 경우 70년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운송비용 하락과 여러 국가의 무역자유화 정책이 세계화를 진행시켰다'는 우리의 직관이 타당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핀스트라가 본 논문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생산과정의 분해로 인해 중간재 부품이 몇번씩이나 국경을 넘나들었고, 이는 더블카운팅을 유발하여 교역 통계치를 상향시켰다"[각주:19] 입니다. 


'소비를 목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교환'했던 전통적인 무역구조에서는 완성된 제조품이 한번 국경을 넘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출발지인 국가는 수출을 기록하고 도착지인 국가는 수입을 기록합니다. 수출입 규모를 늘리는 것은 얼마나 많은 상품을 판매하느냐 입니다.


반면,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하는 오늘날 무역구조에서는 중간재 부품이 여러번 국경을 넘게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스마트폰을 디자인하고 설계한 뒤 제작하려 합니다. 상품 생산과정을 살펴보면, 일본이 수출한 기초소재는 한국에 들어와 반도체공정에 쓰이고, 반도체에 첨가되어 중국으로 향한 후 스마트폰에 실려 미국으로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디자인과 설계는 국경을 4번 넘게됩니다. 일본산 기초소재는 3번, 한국의 반도체는 2번, 중국의 스마트폰은 1번 넘습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스마트폰에 담겨져있는 미국의 디자인과 설계만을 따로 빼내어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각 생산단계별 부가가치를 디자인 및 설계(10) · 기초소재(30) · 반도체(60) · 스마트폰(100)이라고 합시다. 미국은 부가가치가 10인 디자인과 설계를 수출한 뒤 100인 스마트폰을 수입했기 때문에 총 수출입액수는 110이 됩니다. 만약 미국이 비교열위인 기초소재만을 수입한 뒤 국내에서 나머지 생산과정을 수행했다면, 수입 30만 기록됐을 겁니다. 혹은 온전히 중국이 만든 스마트폰만 수입했더라면 수입 100만 기록됐겠죠.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생산과정 중간에 위치한 한국은 수입 30과 수출 60을 기록하게 됩니다. 또한 한국이 스마트폰을 수입했다면 수입 130과 수출 60으로 교역규모가 더 커집니다. 만약 미국으로부터 디자인 및 설계를 받고 일본으로부터 기초소재를 수입한 뒤에 국내에서 생산하여 소비했다면 수입 40만 기록됐을 겁니다. 


즉,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일수록 자연스레  총무역규모(gross trade)가 크게 측정되는 '더블카운팅'(double counting) 이슈가 발생합니다.  글로벌 밸류체인 · 글로벌 생산공유 등 생산과정을 분해하는 새로운 무역구조가 확산될수록 교역규모는 늘어나고 각 국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통합됩니다.


핀스트라가 "세계시장 통합증대는 생산과정의 분해와 함께 이루어졌다."(The rising integration of world markets has brought with it a disintegration of the production process) 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미국기업은 상품 가공활동을 더 이상 미국 내에서 하지 않는다 


  • 1925년-1995년, 미국 수출입 중 품목별 비중

  • 출처 : Feenstra(1998)


핀스트라는 미국이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고 있다는 근거로 '미국 수출입 중 품목별 비중'을 제시합니다. 위의 표는 1925년-1995년 미국 수출입 중 음식료 · 산업용 원자재(Industrail supplies and materials) · 자본재(Capital goods) · 소비재 · 차량 및 부품 등의 비중 변화를 보여줍니다.


과거 미국 수입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품목은 산업용 원자재 였습니다. 1925년 68.2% · 1950년 62.4% · 1965년 53.3%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본재 비중은 1965년까지 10%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면, 과거 미국은 비교열위 품목인 원자재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제조상품을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부터 수입품목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산업용 원자재의 비중이 1980년 31.3% · 1995년 18.2%로 급락한 반면, 자본재의 비중은 1980년 19.0% · 1995년 33.6%로 급증합니다. 그리고 완성품인 소비재의 비중도 1980년 21.5% · 1995년 24.3%로 증가합니다.


핀스트라는 수입품목 중 자본재와 완성품인 소비재의 비중이 확대되는 것을 근거로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은 공정과정이 상당히 진행되어있다. 이는 미국기업이 공정활동을 자국에서 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각주:20]라고 주장합니다. 


이제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미국이 맡은 역할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이고, 상품 제조는 개발도상국인 중국 등에서 맡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계치에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핀스트라는 "외국에서 이루어진 제조업 혹은 서비스 활동이 자국에서의 활동과 결합하고 있다. 기업은 생산과정 아웃소싱을 늘리는 것이 이윤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제 생산은 국내혹은 외국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미국 제조업이 건설해온 수직통합적 생산방식(the vertically-integrated mode of production) 일명 포디즘이 몰락함을 보여주고 있다"[각주:21] 라고 말하며, 세계경제 변화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합니다.




※ 미국의 수직통합적 생산방식 몰락, 그러나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 증가


  • 위 : 왼쪽부터, 데이비드 후멜스(David Hummels) · 준 이시히(Jun Ishii) · 케이-무 이(Kei-Mu Yi)

  • 아래 : 이들의 2001년 논문 <세계무역 속 수직적 특화의 본질과 성장>(<The Nature and growth of vertical specialization in world trade>)


로버트 C. 핀스트라의 주장대로 1990년대 들어 미국 내 수직통합적 생산방식은 해체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미국 내에서 행해지던 상품제조 활동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세계적 차원의 수직적 특화 구조'(Vertical Specialization)가 만들어졌습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후멜스(David Hummels) · 준 이시히(Jun Ishii) · 케이-무 이(Kei-Mu Yi) 3명은 2001년 논문 <세계무역 속 수직적 특화의 본질과 성장>(<The Nature and growth of vertical specialization in world trade>)을 통해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를 측정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합니다. 

핀스트라의 1998년 논문은 "세계경제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지만 이와 함께 연구자들이 넘어야 할 과제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개별 국가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정도를 어떻게 측정해야 하나?" 입니다. 

글로벌 생산과정 분해는 중간재 부품이 여러번 국경을 넘는 상황을 만들었고, 더블카운팅 때문에 기존의 측정방식인 총수출 및 총수입 (gross export & import)이 과대평가 되는 문제를 시정해야 했습니다.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일수록 자연스레 총무역규모가 커지니, 그냥 총무역규모로 판단하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 국가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여 통계치가 큰 건지 아니면 그냥 최종재 거래를 많이하여서 그런 것인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글로벌 밸류체인 참여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글로벌 밸류체인 다르게 말해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 구조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하며, 전통적 무역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합니다. 

과거와 오늘날 무역이 어떻게 다른지 앞서 계속 살펴봐왔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 수직적 특화란 무엇인가

● 전통적 무역 (Traditional Trade)

일반적으로 최종재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① 원자재를 이용해 중간재 생산 → ② 중간재와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를 이용하여 최종재 상품 제조  ③ 완성된 최종재를 국내에 판매하거나 수출 하는 단계를 거칩니다. 

전통적인 무역 구조 하에서는 첫째, 자국 내에서 원자재 채굴 → 중간재 생산 → 최종재 생산 → 국내 판매 혹은 수출. 둘째, 원자재 혹은 중간재 수입 → 최종재 생산 → 국내 판매만 이루어졌습니다. 

상품이 국경을 넘는 경우는 온전히 국내에서 생산과정을 거친 최종재가 수출되거나 아니면 국내 생산 및 소비를 위해 원자재 및 중간재가 수입될 때만 발생하였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무역 구조에서 국경을 넘는 경우는 최대 1번 이었습니다.

● 수직적 특화 (Vertical Specialization)

a. 상품이 2단계 이상의 연속 단계를 통해 생산된다[각주:22]

b. 상품 생산과정에서 2개 이상의 국가가 부가가치를 제공한다[각주:23] 

c. 상품 생산과정에서 최소한 1개의 국가가 수입 중간재를 반드시 사용해야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산출물은 반드시 수출되어야 한다[각주:24]

3인방이 정의한 수직적 특화 구조는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합니다. 

전통적 무역은 a와 b는 해당되지만, c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국에서 만든 중간재를 이용하여 만든 최종재를 수출하거나, 수입 중간재를 이용해 만든 최종재를 국내에서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수직적 특화는 '원자재 혹은 중간재 수입 → 국내에서 최종재 생산 → 다시 외국으로 수출하는 생산과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수직적 특화에서 중간재 혹은 최종재는 최소 2번이나 국경을 넘게 됩니다.

수직적 특화 구조를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아래 그림을 살펴봅시다.

  • 수직적 특화 개념도
  • 출처 : Hummels, Ishii, Yi (2001)

위의 그림에서 수직적 특화는 국가 1로부터 중간재를 수입(A)한 뒤, 국가 2가 최종재를 만들고 이를 국가 3으로 수출(E)하는 A → E 경로를 의미합니다. 수입 중간재를 이용하여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하거나(A → D), 국내 중간재로 만든 최종재를 수출(B&C → E)하는 경우는 수직적 특화가 아닙니다.


▶ 수직적 특화에 참여하는 방식 및 정도


따라서, 개별 국가들이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에 참여하는 방식은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수입 중간재를 이용하여 국내에서 최종재를 생산한 뒤 외국으로 수출. 위의 그림에서는 국가 2가 해당되며, 현실에서는 한국에서 반도체를 수입해서 스마트폰을 제조하고 이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중국을 생각하면 됩니다.

둘째, 제3국으로 수출될 최종재 생산에 투입되는 중간재를 수출. 말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위의 그림에서 국가 1과 현실 속 한국을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은 제3국으로 수출될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중국으로 중간재 부품인 반도체를 수출합니다. 

3인방은 개별 국가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정도를 이러한 2가지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VS는 수입 중간재를 이용하여 국내에서 최종재를 생산한 뒤 외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을 측정한 값이며, VSI는 제3국으로 수출될 최종재 생산에 투입되는 중간재를 수출하는 방식을 측정한 값입니다. 


  • 1972년-1990년, 미국 총수출 중 VS 방식 수출이 차지한 비중 추이
  • 동그라미가 있는 선은 석유품목을 제외한 것
  • 출처 : Hummels, Ishii, Yi (2001)

위의 그래프는 1972년-1990년 미국 총수출 중 VS 방식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VS Share)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이 세계경제 속 수직적 특화 구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2년 VS 비중은 6%에 불과했지만 1990년 11%로 증가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 미국기업의 아웃소싱이 더 활발히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오늘날 값은 더 클겁니다.




※ 글로벌 밸류체인 교역에서 각국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는 어느정도일까?


이렇게 경제학계 내에서 새로운 경제구조 및 교역방식을 이해하는 정도는 깊어져 갔습니다. 기존 수출입 데이터가 놓치고 있던 변화 양상을 포착해내었고,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도 개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에게는 답해야 할 물음이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글로벌 밸류체인 교역에서 각국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는 어느정도일까?"(value-added) 입니다.


전통적인 무역 구조에서는 수출액은 대부분 국내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를 반영하고 있었고 반대로 수입액은 외국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수지가 우리 재보의 준칙이다" 라고 말하는 중상주의가 유행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밸류체인 무역 구조에서는 단순히 총수출 및 총수입 (gross exports & imports) 수치만 가지고 무역득실과 규모를 판단하면 심각한 오류가 발생합니다.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가일수록 몇번씩이나 국경을 오가는 중간재 부품으로 인해 더블카운팅 문제가 발생하여 총수출입 규모는 커지는데, 총수출입 통계치에서 자국과 외국에서 창출된 부가가치가 각각 어느정도 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총수출입 교역과 부가가치 교역 간 차이로 인해 왜곡되는 양자 무역수지


경제학자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하비에르 로페즈-곤잘레스(Javier Lopez-Gonzalez)는 2015년 논문 <공급망 무역 : 글로벌 패턴의 모습과 몇가지 검증할 수 있는 가설들>(<Supply-chain Trade: A Portrait of Global Patterns and Several Testable Hypotheses>)을 통해, 기존 측정치인 총수출입과 부가가치 교역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멕시코가 10달러짜리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이 경우 멕시코는 무역흑자 10달러를 기록하고, 미국은 무역적자 10달러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런데 멕시코가 생산한 자동차의 부가가치를 분해해보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자 무역수지를 기록하는 게 문제(distortion of bilateral trade balance)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글로벌 밸류체인 교역에서 국내외 부가가치를 분해

  • 출처 : Baldwin, Lopez-Gonzalez (2015)


멕시코가 만든 10달러짜리 자동차에는 외국에서 수입한 중간재 3달러 + 국내에서 만든 중간재 2.5달러 + 그리고 완성품이 창출한 순부가가치 4.5달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맨 왼쪽 그림)


여기에서 수입산 중간재 철강을 또 분해해보니, 여기에는 호주 부가가치 1달러 + 멕시코 부가가치 1달러 + 미국 부가가치 1달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호주산 철광석과 멕시코산 기초소재를 이용하여 철강재를 만들고 다시 멕시코로 수출했음을 의미합니다. (가운데 그림의 윗부분)


또한, 멕시코가 만든 중간재 가죽 및 플라스틱을 분해해보니, 여기에는 멕시코 부가가치 2달러 + 미국 부가가치 0.5달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수입한 원재료로 멕시코가 가죽과 플라스틱을 만들었음을 의미합니다. (가운데 그림의 중간부분)


중간재 부가가치를 국가별로 재분류해보니, 외국에서 조달한 중간재 부가가치는 호주 철광석 1달러 + 미국 철강재 1달러 + 미국 가죽 및 플라스틱 원재료 0.5달러로 총 2.5달러 입니다. 멕시코 내에서 만들어진 중간재 부가가치는 3달러 입니다. (맨 오른쪽 그림)


처음에는 멕시코가 만든 10달러짜리 자동차에 외국에서 수입한 중간재 3달러 + 국내에서 만든 중간재 2.5달러가 들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좀 더 세부적으로 분해해보니 외국에서 수입한 중간재 2.5달러와 국내에서 만든 중간재 3달러가 있었습니다. 이는 글로벌 밸류체인을 세부적으로 쪼갤수록 우리가 아는 수치와 값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왼쪽 : 명시적으로 관측되는 전통적인 무역 흐름

  • 오른쪽 : 숨겨져있는 부가가치 무역 흐름

  • 출처 : Baldwin, Lopez-Gonzalez (2015)


이제 전통적인 무역에 따른 수출입 규모와 부가가치 무역에 따른 수출입 규모를 비교해 봅시다.


멕시코가 10달러짜리 자동차를 미국으로 수출했으니, 전통적인 총수출입(gross exports & imports) 측정방식으로는 멕시코 무역흑자 10달러와 미국 무역적자 10달러가 기록됩니다. 


그런데 자동차에 들어간 중간재와 부품이 어디에서 왔는지 세부적으로 따져보니, 멕시코 내에서 창출된 부가가치가 미국으로 수출된 액수는 7.5달러(멕시코산 중간재 3달러 + 자동차 완성품 순부가가치 4.5달러)에 불과합니다. 미국산 부품 1.5달러는 멕시코의 수출액과 미국의 수입액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호주산 철광석 1달러도 제외되어야하죠.


따라서, 부가가치 교역 기준으로 멕시코 무역흑자 7.5달러와 호주 무역흑자 1달러를 기록하고, 미국은 무역적자 8.5달러가 됩니다. 멕시코와 미국 간 양자 무역수지를 부가가치로 따진다면, 미국의 대멕시코 무역적자는 10달러에서 7.5달러로 줄어듭니다. 미국의 대멕시코 수입액(gross imports) 10달러 중 2.5달러는 미국 내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이며 1달러는 멕시코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겁니다.


▶ 총수출입 교역과 부가가치 교역 간 차이로 파악하는 글로벌 밸류체인 참여도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밸류체인이 확산됨에 따라 기존의 총수출입 교역(gross trade)과 새롭게 주목해야 할 부가가치 교역(value-added trade) 간 괴리가 심해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양자간 무역수지 왜곡 뿐 아니라 전세계 교역규모를 측정함에 있어서도 중간재 부품 교역의 더블카운팅이 야기하는 뻥튀기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밸류체인을 통해 전세계 교역규모가 과대평가 되는 이유를 단순하게 나타내면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상품이 세 나라를 오가면서 전세계 교역규모는 210을 기록하지만, 실제 부가가치 교역규모는 110에 불과합니다. B국가는 A국가로부터 수입한 부가가치 100인 중간재에 10을 더했을 뿐인데, C국가로 완성품을 수출하면서 10이 아닌 110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글로벌 밸류체인에 속해있는 국가들끼리 중간재 교역이 많이 오갈수록 더블카운팅은 누적되고 실제 부가가치 창출액에 비해 전세계 교역규모는 더더욱 커집니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하면 "기존의 총수출입 교역규모(gross trade)보다 새롭게 주목해야 할 부가가치 교역규모(value-added trade)가 작은 국가 및 산업일수록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C. 존슨(Robert C. Johnson)과 길레르모 노구에라(Guillermo Noguera)는 2014년 논문 <부가가치 수출에 관한 5가지 사실과 거시경제 및 국제무역 연구에 미치는 함의>(<Five Facts about Value-Added Exports and Implications for Macroeconomics and Trade Research>)을 통해, 국가별 · 산업별 총수출입 교역 수치와 부가가치 교역 수치 간 괴리를 보여줍니다.


  • 2008년 전세계 산업별 총수출(Gross exports)과 부가가치 수출(Value-added exports)의 차이

  • 출처 : Johnson(2014)


위의 그래프는 2008년 기준 전세계 산업별 총수출(Gross exports)과 부가가치 수출(Value-added exports)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서비스업 보다는 제조업이 글로벌 밸류체인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거라 직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제조업은 총수출 보다 부가가치 수출이 적게 나옵니다.  

  • 2008년 중국의 산업별 총수출(Gross exports)과 부가가치 수출(Value-added exports)의 차이
  • 출처 : Johnson(2014)

위의 그래프는 2008년 중국의 산업별 총수출(Gross exports)과 부가가치 수출(Value-added exports)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전자 및 광학장비(Electrical and Optical Equipment) 산업에서 괴리가 심한데, 이러한 모습은 중국 전자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고 있음을 또 다시 증명[각주:25]해주고 있습니다. 

▶ 글로벌 밸류체인 파악을 위한 전세계 경제학자들의 공헌


멕시코 자동차 수출에서도 잠깐 느끼셨을 수 있지만, 여러 국가를 오가는 상품의 부가가치를 국적별로 분해하는 건 매우 힘든 작업입니다.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와 교역방식을 올바로 측정하고자 했던 경제학자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정확한 수치와 현황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 부가가치 교역을 측정하는 데이터베이스와 관련 연구들

  • 출처 : Johnson (2014)


2000년대 들어서 전세계 경제학자들은 부가가치를 분해할 수 있는 글로벌 단위의 산업연관표(Global Input-Output Table)을 보완하거나 새로 만들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WTO-OECD TiVA Database · World Input-Output Database 등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관련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로는  로버트 C. 존슨(Robert C. Johnson) · 길레르모 노구에라(Guillermo Noguera) ·  로버트 쿠프먼(Robert Koopman) · 찌 왕(Zhi Wang) · 샹-진 웨이(Shang-Jin Wei) · 마르첼 P. 티머(Marcel P. Timmer) ·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각주:26]




※ 글로벌 밸류체인 확산이 거시경제 · 국제무역 · 고용에 미친 영향


'글로벌 밸류체인'(GVC)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계 경제 및 무역 구조는 거시경제 · 국제무역 · 고용 등에 과거와는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 왜곡된 양자 무역수지, 글로벌 무역시스템을 불안정하게 하다


미국은 2017년 기준 중국으로부터 약 6,000억 달러를 수입하고 중국으로 약 2,000억 달러를 수출하기 때문에, 4,000억 달러 수준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비판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총수출입으로 측정한 무역수지 균형(gross balance)을 근거로 무역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 이유는 1980년대 마틴 펠드스타인이 말했던 '저축과 투자의 균형'[각주:27]과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멕시코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부가가치 교역으로 측정한 균형(value-added balance)으로는 무역적자 규모가 더 적게 측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미국의 대중국 및 대일본/대한국 무역수지 균형을 기존의 총무역글로벌 밸류체인에 부합하는 부가가치를 이용해 나타내었다

  • 부가가치로 측정했을 때,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줄어들고 대일본/대한국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확대된다

  • 출처 : Johnson(2014)


위의 그래프는 미국의 대중국 및 대일본/대한국 무역수지 균형을 기존의 총무역(gross balance)과 글로벌 밸류체인에 부합하는 부가가치(value-added balance)를 이용해 나타낸 것입니다. 


2009년 기준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총무역 측정치 2,000억 달러 수준에서 부가가치 측정치 1,500억 달러 수준으로 무려 20%나 줄어듭니다. 반면, 대일본/대한국 무역수지 적자는 250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이번글에서 누차 설명해왔던 일본 → 한국 → 중국 →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 안에는 한국과 일본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가가치 기준으로도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큰 거 아니냐" 라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지만,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점은 "상황을 왜곡하는 기존의 무역수지 균형 데이터가 양국 간 교역관계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09년-2013년 4년동안 WTO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파스칼 라미(Pascal Lamy)는 2011년 1월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칼럼[각주:28]을 통해 이 점을 지적합니다. 


파스칼 라미 총장은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아이폰 액수는 매년 19억 달러이고 이것이 무역적자에 기여한다. 그러나 만약 부가가치 기준으로 측정한다면 규모는 0.73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현재 총무역액(gross value)로 측정되고 있는 국제무역 데이터는 상황을 잘못 전달할 수 있으며, 이미 보호주의 압력이 거센 상황에서 미중 양자관게가 더 악화될 있다(A distorted trade picture can inflame bilateral relations)"고 지적합니다. 


▶ 미국기업의 아웃소싱이 미국 내 임금불균등을 심화시킨다. 그런데...


아까 살펴본 로버트 C. 핀스트라의 연구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려 봅시다. 


핀스트라는 미국 수입 중 자본재 품목 비중이 증가했다는 것을 근거로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은 공정과정이 상당히 진행되어있다. 이는 미국기업이 공정활동을 자국에서 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미국이 맡은 역할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이고, 상품 제조는 개발도상국인 중국 등에서 맡고 있습니다.


이때, 핀스트라가 논문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주제는 '기업들의 아웃소싱이 미국 내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이었습니다. 제조업 직무는 비숙련 근로자가 주로 종사해왔으며,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직무는 상대적으로 숙련 근로자가 일하는 분야입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서비스 일자리가 늘어나는 변화는 '숙련 근로자와 비숙련 근로자 간의 임금불균등을 확대시키도록 작용'(wage inequality ↑)하게 됩니다. 


여기서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기업의 아웃소싱으로 인해 임금불균등이 확대될 때, 근본원인을 기술발전에서 찾아야 하느냐 무역에서 찾아야 하느냐'(technology vs. trade) 입니다. 기업의 아웃소싱 그 자체는 국제무역의 영향 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밸류체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 덕분입니다. 


1990년대-2000년대 경제학자들은 임금불균등의 원인이 기술변화에 있느냐 무역에 있느냐를 두고 첨예하게 논쟁[각주:29]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보호무역 정책이 실시될 가능성을 염려하며 애써 무역이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을 외면해 왔습니다. 


이때 핀스트라는 아웃소싱을 통해 국제무역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또한 아웃소싱 증대는 통신기술의 발전 덕분이라는 점을 말했습니다. 그는 "수입경쟁 부문의 고용 및 임금 변화를 설명할 때, 아웃소싱을 통한 무역과 ICT 발전을 통한 기술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다"[각주:30] 라고 말하며 논의의 폭을 넓히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미국 제조업 고용 감소 현상에 대해서는 다른글에서 더 깊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 '기술발전'이 만들어낸 글로벌 밸류체인, 왜 '동아시아'에 집중되었을까?


로버트 C. 핀스트라의 설명처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이 없었다면 여러 국가가 생산에 참여하는 '글로벌 생산공유'(global production sharing) ·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등은 불가능 했을 겁니다.


달라진 세계경제 속에서 우리는 '한국 · 미국 · 중국이 함께 만든 아이폰'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아이폰은 없거나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하고 있을 겁니다.   


  • 2000년과 2017년, Simple GVC 교역 네트워크 및 Complex GVC 교역 네트워크

  • 17년 사이 중국과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 출처 : WTO. 2019. Global Value Chain Development Report Ch.01 Recent patterns of global production and GVC participation


그런데... 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국끼리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지 않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그 중에서도 선진국과 동아시아 간 글로벌 밸류체인이 발전한 것일까요? 막연히 '13억에 달하는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이유로 들기에는 무언가 다른 요인도 작용했을 것 같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정보통신기술이 어떻게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도록 도왔는지 그리고 왜 선진국의 제조업이 동아시아로 이동한 이유를 신경제지리학신성장이론을 이용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개방정책을 시작한 1979년 8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1992년 110억 달러 · 2002년 527억 달러 · 2018년 1,390억 달러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참고 :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3. 이 주제에 관한 연구는 수없이 많지만... 최근(?)에 가까운 연구 하나를 링크. Feenstra et al. 2018. How Did China's WTO Entry Affect U.S. Prices? [본문으로]
  4. Apple iPhones Get Tariff Reprieve, But Other Tech Gear Still Hit. 2019.08.14 [본문으로]
  5. Apple CEO warns Trump about China tariffs, Samsung competition. 2019.08.19 [본문으로]
  6. Dear Minister Sekō and Minister Yoo: Our trade associations represent leading companies in the global information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 and broader manufacturing industries that generate trillions of dollars in revenue annually and fuel economic growth and innovation around the world. We write to express our concern regarding recently announced export restrictions on certai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materials, and request efforts for swift resolution of this issue to reduce harm to the global economy due to regulatory uncertainty, potential supply chain disruptions, and delays in shipments that may result from this ongoing dispute. Global ICT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rely on interwoven and complex global supply chains and justin-time inventory to efficiently source components, chemicals, materials, and technology that has led to substantial innovation and growth. Japan and South Korea are important players in these global value chains. Non-transparent and unilateral changes in export control policies can cause supply chain disruptions, delays in shipments, and ultimately long-term harm to the companies that operate within and beyond your borders and the workers they employ. We therefore urge both countries to expeditiously seek resolution of this issue and refrain from actions that could escalate the situation further in order to avoid potentially long-term damage to the global ICT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More broadly, we also urge all countries to rely on multilateral approaches to ensure that changes to export control policies are based on national security concerns and implemented in a transparent, objective, and predictable manner. Thank you for your consideration of this matter. Signed, Computing Technology Industry Association (CompTIA) 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 (CTA) Information Technology Industry Council (ITI) 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 (NAM) SEMI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IA)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s://joohyeon.com/266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1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https://joohyeon.com/279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14. A noteworthy irony, given President Trump’s stated goal to bring jobs back to US shores, is that the administration has imposed new tariffs disproportionately on imported intermediate goods (Bown and Zhang 2019)— the very inputs that are necessary for US manufacturers to produce and sell their products competitively in the US and global markets. If the intent is to induce US manufacturers to ‘re-shore’ production to the US (or to dissuade US firms from moving final assembly/downstream production overseas), lower tariffs on imported intermediate goods would be in order. Higher tariffs on intermediate goods – together with increased uncertainty over the future of US tariff policy more generally– run the risk of inducing firms to shift their current production patterns away from the US and into ‘factory Asia’ or ‘factory Europe’. [본문으로]
  15. Emily J. Blanchard. 2019. Trade Wars in the GVC area [본문으로]
  16. Dear Minister Sekō and Minister Yoo: Our trade associations represent leading companies in the global information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 and broader manufacturing industries that generate trillions of dollars in revenue annually and fuel economic growth and innovation around the world. We write to express our concern regarding recently announced export restrictions on certai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materials, and request efforts for swift resolution of this issue to reduce harm to the global economy due to regulatory uncertainty, potential supply chain disruptions, and delays in shipments that may result from this ongoing dispute. Global ICT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rely on interwoven and complex global supply chains and justin-time inventory to efficiently source components, chemicals, materials, and technology that has led to substantial innovation and growth. Japan and South Korea are important players in these global value chains. Non-transparent and unilateral changes in export control policies can cause supply chain disruptions, delays in shipments, and ultimately long-term harm to the companies that operate within and beyond your borders and the workers they employ. We therefore urge both countries to expeditiously seek resolution of this issue and refrain from actions that could escalate the situation further in order to avoid potentially long-term damage to the global ICT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More broadly, we also urge all countries to rely on multilateral approaches to ensure that changes to export control policies are based on national security concerns and implemented in a transparent, objective, and predictable manner. Thank you for your consideration of this matter. Signed, Computing Technology Industry Association (CompTIA) 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 (CTA) Information Technology Industry Council (ITI) 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 (NAM) SEMI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IA) [본문으로]
  17. But the figures in Table 1 do not tell the whole story. The comparisons there are for industrial countries, which have had increasing shares of their economies devoted to services rather than ‘‘merchandise’’ trade like manufacturing, mining and agriculture. (...) For all these reasons, the merchandise component of GDP is shrinking, so that merchandise trade relative to GDP is pulled down for this reason. [본문으로]
  18.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19. A final explanation, of particular relevance to this paper, is that the disintegration of production itself leads to more trade, as intermediate inputs cross borders several times during the manufacturing process. This leads to an upward bias in the ratios reported in Table 2, because while the denominator is value-added, the numerator is not, and will ‘‘double-count’’ trade in components and the finished product (for example, automobile parts and finished autos are both included in trade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This is surely an important factor in the great surge in exports from the Asian newly-industrialized countries. [본문으로]
  20. The data presented in Table 3 indicate that products are being imported into the United States at increasingly advanced stages of processing, which suggests that U.S. firms may have been substituting away from these processing activities at home. [본문으로]
  21. The rising integration of world markets has brought with it a disintegration of the production process, in which manufacturing or services activities done abroad are combined with those performed at home. Companies are now finding it profitable to outsource increasing amounts of the production process, a process which can happen either domestically or abroad. This represents a breakdown in the vertically-integrated mode of production—the so-called ‘‘Fordist’’ production, exemplified by the automobile industry—on which American manufacturing was built. [본문으로]
  22. a good is produced in two or more sequential stages [본문으로]
  23. two or more countries provide value-added during the production of the good, [본문으로]
  24. at least one country must use imported inputs in its stage of the production process, and some of the resulting output must be exported.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6. Baldwin, Richard, and Javier Lopez-Gonzalez. “Supply-Chain Trade: A Portrait of Global Patterns and Several Testable Hypotheses.” NBER Working Paper 18957.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Washington, DC, 2013 ////////// Hummels, David, Jun Ishii, and Kei-Mu Yi. “The Nature and Growth of Vertical Specialization in World Trade.”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 2001, 54:75–96. ////////// Hummels D, Ishii J, Yi K M. The Nature and Growth of Vertical Specialization in World Trade.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 2001, 54(1): 75-96. ////////// Johnson R C, Noguera G. Accounting for Intermediates: Production Sharing and Trade in Value Added.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 2012, 86(2): 224-236. ////////// Koopman R B, Wang Z, Wei S J. Estimating Domestic Content in Exports When Processing Trade is Pervasive.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2012, 99(1): 178-189. ////////// Koopman R B, Wang Z, Wei S J. Tracing Value-Added and Double Counting in Gross Exports.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2014, 104(2): 459-494. ////////// Leontief, W. “Quantitative Input and Output Relations in the Economic System of the United States.”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1936, 18: 105–125. ////////// Miller, R. E., and P. D. Blair. Input–output Analysis: Foundations and Extensio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 Miller R E, Temurshoev U, Output Upstreamness and Input Downstreamness of Industries/Countries in World Production. International Regional Science Review, November 5, 2015 0160017615608095 ////////// Timmer, M., A. A. Erumban, J. Francois, A. Genty, R. Gouma, B. Los, F. Neuwahl, O. Pindyuk, J. Poeschl, J.M. Rueda-Cantuche, R. Stehrer, G. Streicher, U. Temurshoev, A. Villanueva, G.J. de Vries. “The World Input-Output Database (WIOD): Contents, Sources and Methods.” 2012. WIOD Background document available at www.wiod.org. ////////// Timmer, M. P., Los, B., Stehrer, R. and de Vries, G. J. (2016), "An Anatomy of the Global Trade Slowdown based on the WIOD 2016 Release", GGDC research memorandum number 162. ////////// Wang Z, Wei S J, Zhu K. Quantifying International Production Sharing at the Bilateral and Sector Level. NBER Working Paper Series, 2013.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s://joohyeon.com/274 [본문으로]
  28. ‘Made in China’ tells us little about global trade. 2011.01.25 [본문으로]
  29.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30. In fact, the whole distinction between ‘‘trade’’ versus ‘‘technology’’ becomes suspect when we think of corporations shifting activities overseas. The increase in outsourcing activity during the 1980s was in part related to improvements in communication technology and the speed with which product quality and design can be monitored, which was in turn related to the use of computers. A good example of this is the ‘‘retailing revolution’’ that has occurred during the 1980s, as with the development of large-scale discount stores such as Walmart and Target in the United States. The ability of these stores to offer lower prices has depended on an extensive system of outsourcing to low-wage countries, with new inventory methods and rapid communication allowing for design changes that are frequently needed in apparel. This illustrates that trade (through outsourcing) and technology (through computerized communication and inventories) are complementary rather than competing explanations for the changes in employment and wages in the import-competitive sector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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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Posted at 2019. 9. 4. 22:4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 1992년 1월 18일 - 2월 21일, 덩샤오핑 남순강화(南巡講話, Southern Tour)


- 사진 출처 : 동아일보


덩샤오핑 남순강화 발언 : 


"중국이 사회주의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고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어떤 길을 가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동요하지 말고 계속 발전하고 인민의 생활을 계속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민들이 믿고 지지할 것입니다."


- 덩샤오핑 발언 출처 : '미국의 소리'


→ 덩샤오핑은 1979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론'을 제시하며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중국은 선전 · 주하이 · 산터우 · 하문 · 하이난 등 5개 지역에 경제특구(SEZ, Special Economic Zones)를 설치하여 외국인직접투자를 유치하였고, 연해지역을 중심으로한 경제발전계획을 세웁니다. 또한, 1986년 당시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 이었던 GATT에 재가입 의사[각주:1]를 내비치며 세계경제로 진출할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1989년 6월 천안문항쟁이 벌어지며 GATT 가입 논의는 중단되었고 중국은 다시 폐쇄시장의 길로 돌아서려 했습니다. 미국 등 서구는 중국의 정치 및 인권탄압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가입 논의를 일시중단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 1989년-1991년 동안 소련 · 동독 등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중국 내에서도 개혁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당원으로 돌아가있던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 Southern Tour)를 통해 개혁개방의 불씨를 다시 키웁니다. 덩샤오핑은 두 달에 걸쳐 주하이 · 선전 · 상하이 등 남부지방을 시찰하며 "중국이 사회주의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고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어떤 길을 가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라고 발언했습니다.


중국 장쩌민 주석은 덩샤오핑의 뜻을 이어 받아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시하였습니다. 장쩌민 주석은 1992년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수립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임기동안 경제특구신설 · 외국인투자 유치 · 무역관리체제 개혁 · 환율제도 개혁 · 관세율 인하 등 광범위한 경제개혁을 해나갑니다. 40%가 넘던 중국의 평균 관세율은 1992년과 1993년 두 차례의 관세인하를 통해 35.9%가 되었습니다. 


특히 1992년부터 미국과 중국 간 GATT 가입 협상이 급진전됨으로써 중국의 GATT 가입 지위 · 가입조건 · 의정서 초안 내용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중국은 1994년 12월까지 GATT 가입을 마무리하여, 1995년 1월에 출범하는 WTO에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 지적재산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며 WTO 가입은 미루어졌습니다. 


● 1995년 11월 19일, APEC 오사카 회담 : 장쩌민 주석, 대규모 관세 인하 계획 발표


장쩌민 주석 연설 :


"세계 인구 대다수가 살고 있는 개발도상국은 엄청난 발전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점점 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세계경제의 국제화 트렌드와 국내개혁에 힘입어서 발전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공을 위한 유일한 방식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기는 이러한 트렌드가 더 강해질 겁니다."[각주:2] (...) 


"개발도상국이 빈곤에서 벗어난 수십억 인구와 함께 번영하게 될 때, 전세계에 교역과 투자의 어마어마한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새로운 기술 및 산업을 위한 더 많은 시장이 앞으로 있을 겁니다. 또한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발전단계에 올려놓을 겁니다."[각주:3] (...)


"(1994년 인도네시아 보르고에서 열린 APEC 회담에서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목표로 제시한) 보르고 선언의 장기과제를 현실화 하기 위해서는 21세기까지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거대 협력 프로젝트는 세계경제 트렌드와 부합합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 필요에 도움이 됩니다. 보고르 회담 이후 우리 중국은 개혁을 심화하는 중요한 조치들을 시행해왔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중국이 1996년부터 전반적인 관세율 수준을 30% 정도 급격히 인하할 것임을 발표합니다. 이는 지역협력과 무역 및 투자 자유화 달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겁니다."[각주:4] 


- 장쩌민 연설 출처 : 중국 외교부


→ 1995년 11월 오사카에 열린 APEC 회담에서 중국의 WTO 가입논의가 다시 불붙게 되었습니다. 장쩌민 주석은 "나는 여기에서 중국이 1996년부터 전반적인 관세율 수준을 30% 정도 급격히 인하할 것임을 발표합니다" 라고 발언하며, WTO 가입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중국은 1996년 4월 1일부로 4,900여개 품목에 대해 관세율을 30% 정도 인하하였고, 그 결과 전품목 평균 관세율은 기존 35.9%에서 23%로 낮춰졌습니다. 1997년 10월 1일에도 추가 관세인하를 단행하였고 평균 관세율은 17%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장쩌민 주석은 1997년 11월 APEC 벤쿠버 회담에서 "2005년까지 공산품 수입 관세율을 10% 수준으로 인하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합니다.


이러한 개혁 덕분에 중국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WTO 가입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WTO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국들과 양자 무역협정을 맺은 뒤, 회원국들 중 2/3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따라서, WTO 가입 이전부터 시장개방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어야 했고, 특히 자유시장체제와 거리가 멀었던 중국에게 이는 더더욱 필요했습니다.


중국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WTO에 가입하려고 했을까요?


중국은 GATT · WTO 등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가입함으로써 단순히 교역량을 늘리는 것 이상을 얻고자 했습니다. 바로, 국내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맹약의 수단(commitment device) 입니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와 장쩌민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채택 이후 중국은 국내 경제개혁을 지속해왔으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 내부의 반발에 의해 언제든지 반전될 수 있었습니다. 장쩌민 주석 · 주룽지 총리 등 개혁파들은 개혁개방 흐름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 1997년 10월 27일 - 11월 3일, 클린턴 대통령 - 장쩌민 주석, 워싱턴 정상회담


- 사진 출처 :  'China.org.cn'


클린턴 대통령 발언 :


"중국과 미국 모두에게 무역은 성장을 위한 중요한 촉매제 입니다.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 판매에 있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내일 미국 보잉사는 중국과 역사에 남을 계약을 체결할 겁니다. 30억 달러에 달하는 제트기 50대 입니다. 이 계약은 수만개의 일자리를 미국에 만들 것이고 최신 여객기를 중국에게 제공할 겁니다."[각주:5]


"많은 미국 상품과 서비스는 여전히 중국 시장 접근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도 중국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은 중국이 WTO 체제에 들어가는 것에 가능한 모든 것을 할 겁니다."[각주:6]


장쩌민 주석 발언 :


"나는 클린턴 대통령과 중미 관계에 대한 심도 깊은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건설적이었으며 성과가 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과 나는 21세기를 지향하는 중미 관계의 발전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양측은 목표를 현실화 시키기 위한 노력이 양국의 이익과 세계 평화와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각주:7]


- 정상회담 기자회견 출처 : 미국 국무부 아카이브


● 1998년 6월 11일, 클린턴 대통령, 중국 방문 2주 전 성명발표


클린턴 대통령 발언 : 


"모두가 알듯이, 저는 2주 후에 중국으로 향합니다. 이는 최근 10년 내 미국 대통령의 첫번째 국빈방문이 될 겁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미국을 위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중국으로 갑니다."[각주:8] (...)


"어떤 미국인들은 우리가 중국을 고립하고 봉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비민주적 체제와 인권위배 그리고 향후 미국의 적이 될 중국의 능력을 저해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미국인들은 중국과의 상업거래 증대로 인해 필연적으로 중국이 더 개방적이고 더 민주적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각주:9] (...)


"중국을 고립시키는 선택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세계 속 우리의 친구와 동맹 조차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 (...) 더 중요한 점은, 관여 대신 고립을 선택하는 건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는 더 위험하게 만들 겁니다. 이는 아시아의 안정을 육성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시키기보다 훼손할 겁니다."[각주:10] (...)


"미국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개방된 글로벌 무역시스템에서 분명히 혜택을 얻고 있습니다. (...) 전세계 인구 1/4이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은 과거 20년 간 평균 10%의 성장을 해왔습니다. 향후 20년 동안,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보다 3배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므로 경제번영의 혜택을 얻고 책임을 공유하기 위하여, 중국을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통합되도록 하는 것은 명백히 미국의 이익에 부합합니다."[각주:11] (...)


"우리 미국은 인권과 자유에 관해 중국 지도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미국인이 답해야 하는 물음은 미국이 중국 내 인권을 지지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중국을 국제 커뮤니티와 글로벌 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자유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각주:12] (...)


"시간이 흘러, 나는 중국 지도자들이 자유를 받아들일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이 자유를 얻어야지만, 중국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화 시대에 국부는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창조하고 소통하고 혁신을 할 수 있는 능력. 중국인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발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오직 그래야만 중국은 성장과 위대함의 잠재력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각주:13]


"중국은 그들의 운명을 선택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 미국은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함으로써 중국의 선택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지 않고 국제 커뮤니티에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양국의 이익과 양국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이 안정, 개방, 비위협의 길을 따르도록 독려하는 최선의 방안이며, 자유시장과 정치적 다극화 그리고 법치주의를 포용토록 최선의 방안이며, 자유로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안정된 국제질서를 건설하는 최선의 방안입니다."[각주:14]


"이러한 모습의 중국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합니다. 이러한 모습의 중국이 21세기를 더 평화롭고 번영되게 만들겁니다"[각주:15]


- 클린턴 대통령 성명문 출처 : 미국 국무부 아카이브


→ 미국 클린턴행정부는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 중국을 환영했습니다. WTO 가입 논의 과정에서 여러 사안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하였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세계무역 시스템에 통합시킴으로써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각주:16]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중국 장쩌민 주석은 1997년과 1998년 양국을 오가며 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21세기를 지향하는 미중관계'를 추구하기로 합의합니다. 미국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중국에 전파할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거대한 중국시장이 미국기업들에게 큰 기회가 되며, 언젠가 중국 지도부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고, 중국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미국이 도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의 발언을 다시 보시죠. "중국경제를 개방함으로써 이번 협정은 미국 농민들과 근로자 그리고 기업들에게 전례없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겁니다", "중국을 국제 커뮤니티와 글로벌 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자유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 미국은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함으로써 중국의 선택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지 않고 국제 커뮤니티에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양국의 이익과 양국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 1999년 4월 8일, 주룽지 총리, 미국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과 만남




주룽지 총리 발언 :


"클린턴 대통령이 WTO에 관해 말한 것에 응답하기 위해 여기 미국에 왔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이 WTO에 가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미국인의 이익에 맞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비록 중국이 큰 양보를 할지라도, WTO에 가입하는 것이 중국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각주:17]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를 원하고 국제 커뮤니티에 통합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중국은 게임의 규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중국은 양보 없이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양보는 중국 국영기업과 중국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다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우리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달성해온 것들 덕분에 중국은 이러한 충격에 맞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WTO 가입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충격이 가져다주는 경쟁은 중국경제를 더 급속하고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촉진할 겁니다."[각주:18]


- 주룽지 총리 기자회견문 출처 : 미국 백악관 아카이브


● 1999년 11월 15일, 미국-중국 양자 무역협정 체결


- "중국이 개방하다"(China opens up)

- 사진 출처 : <The Economist> 1999년 11월 20일 표지


클린턴 대통령 발언 :


"우리 미국과 중국은 지난 밤과 오늘 아침 11시간에 걸친 협상을 했습니다. 중국의 WTO 가입을 위한 협상을 미국과 중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음을 말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번 협정은 중국을 WTO에 가입토록 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발걸음이며, 미국과 중국 간 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발걸음 입니다."[각주:19] (...)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에게 좋으며 중국에게도 좋고 세계경제에도 좋습니다. 오늘 중국은 자국경제 개혁과 규칙을 위한 경제개방, 혁신, 경쟁 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 총리는 중국의 시장개방 의지와 공정무역 규칙 준수 의지를 진실성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중국경제를 개방함으로써 이번 협정은 미국 농민들과 근로자 그리고 기업들에게 전례없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겁니다."[각주:20]


- 클린턴 대통령 기자회견 출처 : 미국 국무부 아카이브 


→ 1999년 4월 미국에 방문한 주룽지 총리는 "경쟁은 중국경제를 더 급속하고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촉진할 겁니다" 라고 발언함으로써 국내개혁을 위한 맹약 수단으로 WTO에 가입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국과 중국은 1999년 11월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중국의 WTO 가입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중국 보수파들은 WTO 가입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비판하였지만, 주룽지 총리는 "비록 중국이 큰 양보를 할지라도, WTO에 가입하는 것이 중국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WTO 가입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에게 좋으며 중국에게도 좋고 세계경제에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큰 환영을 표시했습니다.


● 2001년 11월 11일, WTO 각료회의 : 중국의 가입을 공식적으로 승인

● 2001년 12월 11일, WTO 정식 회원국이 된 중국



2001년 11월 11일, WTO 회의에서 기존 회원국들은 중국의 가입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고, 한달 뒤인 2001년 12월 11일부로 중국은 WTO 정식멤버가 되었습니다. 1986년 GATT 재가입을 신청한지 16년만에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으로 들어온 겁니다.


중국은 WTO 가입 이후에 경제개혁과 시장개방을 계속해서 이어나갔습니다.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장쩌민 주석은 ‘대개방을 통해 대개혁을 촉진한다(以大开放促大改革)’는 기본 원칙을 소개하였고, WTO 가입 약속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철폐를 단행해 나갑니다.

1947년 GATT에서부터 2001년 12월 WTO 가입까지 중국의 여정을 표를 통해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글로벌 무역시스템과 통합된 중국경제,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일으키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고도성장을 기록해나갔고 더 이상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중국이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통합되자 전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이 발생했습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경제가 세계와 통합된 이후, 중국경제와 세계경제 모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띄게 되었습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중국의 놀라운 경제발전과 이것이 전세계에 미친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그래프를 통해 알아봅시다.


◆ 2000년대 이후 중국의 놀라운 경제발전


▶ 중국의 고도성장과 빈곤 감소



1992년-2001년간  평균 10.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중국은 2002년-2007년에도 11.2%을 기록하며 고도성장을 이어갑니다. 2008 금융위기 이후로도 평균 8.1%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덕분에 중국의 1인당 GDP는 1992년 1,845 달러에서 2018년 16,097달러로 8배 증가했고, 전체 인구 중 하루 1.90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인구 비율은 1993년 56.6%에서 2015년 0.7%로 급감했습니다.


▶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 ① -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FDI Inflows)


  • 1979년~2018년, 중국의 연간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 (FDI Inflows)

  •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개방정책을 시작한 1979년 8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1992년 110억 달러 · 2002년 527억 달러 ·  2018년 1,390억 달러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 출처 : UNCTAD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에는 적극적인 외국인 자금유치가 있습니다. 덩샤오핑은 1979년 선전 · 주하이 · 산터우 · 하문 · 하이난 등 5개 지역을 경제특구(SEZ)로 지정하였고, 이후 연안지역에 특수목적 경제지구를 추가로 선정하면서 외국인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이들 지역에 자리잡은 외국기업에게는 외자지분 100% 허용과 소득세 면제 등을 제공하였고, 일부 품목 수입관세를 면제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특히 1992년 남순강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 목표를 수립한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FDI Inflows)이 크게 증가하였고,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다시 한번 급증 하였습니다. 위의 그래프에 나오듯이,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덩샤오핑이 개방정책을 시작한 1979년 8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1992년 110억 달러 · 2002년 527억 달러 ·  2018년 1,39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 ②  - 투자를 통한 자본축적



중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 자금은 주로 경제발전을 위한 물적자본 축적에 쓰였습니다. 경제성장은 공장설비 · 기계 등 물적자본(physical capital) 축적을 의미[각주:21]하며, 자본축적을 위해서는 저축과 투자가 필요[각주:22]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국내저축을 통해 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하였고, GDP 대비 투자 비중은 2000년 34.9%에서 2011년 48.0%로 급증합니다. 특히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크게 늘어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족 :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과잉투자 였는데, 당시 한국의 GDP 대비 투자 비중은 약 38% 수준이었습니다. 미국은 약 15%~20% 수준입니다. 이를 비교하면 중국이 얼마나 많은 투자를 단행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 ③ - 교역증대



이렇게 자본을 축적해나간 중국은 엄청난 양의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를 전세계에 공급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수출입 액수는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1992년 중국의 연간 수출액은 856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02년 3,258억 달러 · 2008년 1조 4,288억 달러 · 2017년 2조 2,80억 달러로 급증하였습니다. 


◆ 중국의 경제발전이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


▶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의 변화


  • 2001년과 2018년, 전세계 GDP에서 미국과 중국 등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왼쪽 : 2001년 미국(31%) · 중국(4%)

  • 오른쪽 : 2018년 미국(24%) · 중국(16%)

  • 출처 :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WTO에 가입한 이후 중국은 세계경제를 이끄는 축으로 올라섰습니다. 전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4%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16%로 크게 늘어나며, 세계경제에서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였던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우며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 세계를 위한 소비시장이 된 중국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자 거대한 시장이 되었습니다. 2018년 중국 전체 1인당 GDP는 16,097달러로써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지만, 베이징 · 상하이 · 광저우 · 선전 등 1선 도시는 30,000~40,000 달러에 달하며 이곳의 인구수는 약 7,000만명 입니다. 이들 도시의 광역권과 새로 1선 도시에 편입된 곳을 고려할 때, 중국의 시장규모는 단순히 전체 1인당 GDP로 추산할 수 없습니다.


중국 시장 확대를 보여주는 사례가 유럽의 자동차 수출 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유럽산 자동차의 수출액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유럽산 자동차의 대중국 수출액이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2010년대 들어서는 미국보다 중국에 수출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 세계 상품교역 규모의 증가



중국경제가 전세계 생산공장과 소비시장 역할을 맡게 된 결과, 2000년대 들어 세계 상품교역 규모는 크게 늘어났습니다. 전세계 수출액은 2001년 약 6조 달러에서 2017년 약 17조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글로벌 교역붐 속에서 한국의 조선 · 기계장비 등 중공업은 큰 수혜를 누렸습니다.


▶ 글로벌 원자재 호황과 신흥국의 성장



2000년대 중국은 전세계 원자재를 흡수하였습니다. 막대한 투자를 통해 물적자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원자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수요로 인해 석유 · 철강 · 금속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크게 올라갔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2000년대 글로벌 상품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 시기를 '글로벌 상품 호황'(Global Commodity Boom) 이라 부릅니다. 


상품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원자재를 주로 수출하는 개발도상국 경제도 호황을 누렸습니다. 브라질 · 러시아 · 호주 · 중동 경제는 좋은 시기를 보냈고, '신흥국의 부상'(Emerging Economies)은 2000년대의 화두였습니다.


◆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 그 자체 그리고 ...


지금까지 여러 그래프를 보면서 느끼셨다시피, 산업생산 · 투자 · 교역 · 상품가격 모두 2000년대 들어서 가파르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세계경제 호황 이유에는 연준의 저금리 정책과 부동산 호황에 힘입은 미국경제도 있지만, 중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제발전이 전세계 교역 증대와 상품가격 인상에 끼친 영향은 독보적 이었습니다. 


이렇게 중국의 경제발전과 WTO 가입 그 자체는 세계경제에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가져왔습니다. 




※ 가공무역을 통해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그렇다면 왜 유독 '중국'의 경제발전과 WTO 가입이 세계경제에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가져와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로까지 불리우게 된걸까요?


개발도상국이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달성하는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1960~70년대 한국[각주:23]과 대만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한국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향해가는 동시에 유치산업보호를 통해 제조업을 육성했습니다. 한국은 스스로 제조업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수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무역자유화를 통해 교역량을 늘려나가는 것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1950~70년대 중남미의 참담한 실패[각주:24]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무역자유화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전달해주었고, 많은 나라들은 자유무역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1990년대 멕시코는 NAFTA[각주:25]를 체결하며 시장을 개방하였고,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APEC · 동남아국가들은 ASEAN 등 지역 무역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때, 중국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다른 개발도상국들과는 달랐습니다.


첫째, 중국은 13억의 인구를 가진데다가 중국인의 임금수준은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았습니다13억의 인구를 보유한채 잠들어 있던 개발도상국이 깨어나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 건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 이들의 임금수준은 동시대 멕시코의 3%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의 15%에 불과한 멕시코도 저임금 국가 소리는 듣는 와중에 중국의 임금수준은 더 낮았던 겁니다.


둘째, 중국의 독특한 경제발전 · 상품교역 방식 입니다. 바로, 외국에서 중간재와 자본재 부품을 수입해온 뒤 이를 단순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들고 수출하는 '가공무역'(Processing Trade) 입니다. 


가공무역으로 인해 중국은 '세계의 공장'(World's Factory)이 되었고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는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무역 및 경제 구조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1990년대 중국의 가공무역,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를 상징


'가공무역'(Processing Trade)의 뜻을 다시 반복하면,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수입해온 뒤 이를 단순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든 후 다시 수출하는 교역방식을 의미합니다. 


"어떻게보면 모든 무역은 가공무역 아니냐?"라고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한 국가가 모든 종류의 원자재와 부품을 소유할 수는 없기 때문에,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한 뒤 완성품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가공무역은 다시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습니다. 바로,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fragmentation of production)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 영국 등 선진국은 제조업 상품을 수출하고 원자재 상품을 수입했습니다. 반대로 중남미 · 중동 등 개발도상국은 원자재 상품을 수출하고 제조업 상품을 수입했습니다. 즉, 20세기 초중반 교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North-South)에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Inter-Industry Trade)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수출품목과 수입품목은 국가의 기술수준과 보유자원에 따라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러한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이론이 리카도[각주:26]와 헥셔올린[각주:27]의 비교우위론 입니다.


이후 1970년대 말 서유럽과 일본이 전후 재건에 성공하면서 무역의 양상은 달라졌습니다. 미국 · 영국과 서유럽 · 일본은 모두 자동차 · 전자 등 제조업 상품을 수출하고 수입했습니다. 즉, 1970-80년대 전세계 교역의 상당수를 선진국과 선진국 간(North-North) 거래가 차지하였고 또 이들은 서로 동일한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Intra-Industry Trade)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국제경제학계를 지배(?)했던 것은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 입니다. 비교우위론이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면, 신무역이론은 '서로 비슷한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신무역이론은 서로 비슷한 국가들이라 할지라도 '동종 산업 내 다양한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 무역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비교우위론의 특화 개념보다는 신무역이론의 '차별화된 상품' 개념이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신무역이론이 비교우위론을 대체한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중국의 경제발전은 비교우위론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중국의 경제발전과 이에 따른 원자재 수요 폭증으로 신흥국들의 경제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 간(North-South)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Inter-Industry Trade)하는 무역비중이 증가하였습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인 중국 간 교역 입니다. 


개방 초기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여 신발 · 의류 · 섬유 등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해온 중국은 1990년대 중반 들어서 컴퓨터 · 전자 상품 수출을 증가시킵니다. 이를 보고 "선진국도 제조업 수출, 개발도상국인 중국도 제조업 수출이면 동종 산업내 교역 아니냐?" 라고 물을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은 제조업 내 다양한 상품을 생산한 반면에 중국은 좁은 범위의 노동집약 상품만을 주로 생산했으며, 컴퓨터 · 전자 상품 생산과정에서 수입해온 선진국의 중간재(intermediate goods)를 단순조립(assemble) 하여 다시 수출(re-export)하는 역할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선진국의 이러한 교역 형태는 전통적인 비교우위론 및 신무역이론이 말하는 바와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엔 선진국과 동종 산업 상품을 교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상품생산에 기여하는 부분은 단순조립 뿐입니다. 그리고 비교열위 부품을 수입해온 뒤 조립하여 다시 재수출 하는 건 매우 독특한 교역형태 입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인 특화 개념 및 차별화된 상품 개념 대신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fragmentation of production) 개념을 고안했습니다. 이제 한 가지 상품을 생산하면서 어떤 국가는 설계와 디자인을 하고, 또 어떤 국가는 부품을 만들고, 또 다른 국가는 부품을 단순조립 하는 식으로 생산과정이 분절화 되었습니다. 


사족 :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는 '글로벌 밸류체인 쪼개기'(Slicing Global Value Chain) · '오프쇼어링'(Offshoring) · '중간재 교역'(Intermediate-Trade)로 부를 수 있습니다.


▶ 중국 무역의 상당부분을 가공무역 그리고 외자기업의 역할


어느 나라나 가공무역과 생산과정의 분절화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가공무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중국의 가공무역이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준 이유는 규모에 있습니다. 애시당초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무역 규모는 거대할 수 밖에 없을텐데, 여기에 더하여 중국 무역의 상당부분을 가공무역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1981년-2005년, 중국 일반 수입(Ordinary Imports)과 가공무역용 수입(Processing Imports) 규모와 총수입에서 가공무역이 차지하는 비중(Ratio of Processing Imports)

  • 출처 : Yu(2014)


위의 그래프는 1981년-2005년 중국 일반 수입(Ordinary Imports)과 가공무역용 수입(Processing Imports) 규모와 총수입에서 가공무역이 차지하는 비중(Ratio of Processing Imports)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일반 수입보다 가공무역용 수입이 더 많은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었고, 총수입에서 가공무역용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60%에 달합니다. 


  • 1992년~2005년, 중국 총수출 중 가공무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 출처 : Amiti, Freund(2010)


가용무역 용도로 수입을 했으니 완제품을 조립하여 다시 수출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중국의 총수출 중 가공무역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위의 표는 1992년~2005년, 중국 총수출 중 가공무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 55%나 차지함을 알 수 있습니다. 


  • 1992년~2019년, 중국 수출입 중 외자기업의 비중 추이

  • 출처 : 중국 관세청


이렇게 중국 무역에서 가공무역 비중이 상당한 건 정부의 정책 덕분입니다. 앞서 봤듯이, 중국정부는 경제특구를 지정하고 외국인 자금을 유치했습니다. 경제특구에는 외자기업(Foreign-Invested Firms) 설립을 허용되었고 '가공무역용 중간재 · 자본 부품 수입'에 대해 수입관세를 면제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외국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상품을 단순조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992년 이후 중국 수출입에서 외자기업이 행하는 비중은 최대 60%까지 증가하였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World's Factory) 되었습니다.


▶ 가공무역을 통해 수출품목을 정교화 시켜온 중국


  • 1992년 · 2005년 · 2007년, 중국 수출품목의 변화

  • 출처 : 중국 관세청


위의 그래프는 1992년 · 2005년 · 2007년 중국 수출품목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1992년 중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만든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적 상품 이었습니다. 이후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확대하면서 통신장비 · 전자상품 등 고숙련노동집약 및 자본집약적 상품을 주로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즉, 중국 수출품목은 시간이 흘러 정교화(sophistication) 되었습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의 생산성과 기술수준이 수출품목 변화와 동일하게 향상된 것은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계속 반복하지만, 국은 단순반복 조립(assemble) 업무에 치중하였고, 좋은 품질의 상품이 만들어진 건 미국 · 일본 · 한국 등 선진국에서 수입해온 중간재 덕분입니다. 중국에서 수출된 상품 중 중국 내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는 36%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지난글에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통계 측정의 문제'를 제기한 이유[각주:28]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중국의 수출품목은 정교화 되어 갔으나, 실제 일어나고 있는 있는 일은 개발도상국이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비숙련노동집약 부분을 가져가는 밸류체인의 분해 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중국의 경제발전 및 교역 방식이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중국으로 이동한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생산과정을 분절화 시켰다.




※ 세계화는 민주주의 · 시장경제의 승리??? The China Shock !!!


  • 왼쪽 :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더 이상 충돌 없이 사회의 평화와 자유와 안정이 계속 유지된다고 주장한 『역사의 종말』 (1992년作)

  • 오른쪽 : 성공하기 위해 렉서스를 만들고 있는 국가들과 올리브 나무를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고 있는 국가들을 비교하며 세계화로 나아갈 필요를 주장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1999년作)


1990년대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적이 바로 『역사의 종말』(1992년作)[각주:29]과 『렉서스와 올리브나무』(1999년) 입니다. 


『역사의 종말』은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더 이상 충돌 없이 사회의 평화와 자유와 안정이 계속 유지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성공하기 위해 렉서스를 만들고 있는 국가들과 올리브 나무를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고 있는 국가들을 비교하며 세계화로 나아갈 필요를 설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은 세계경제가 하나로 통합됨을 상징하였습니다. 특히 미국인이 설계하고 디자인한 상품을 중국인이 생산한 뒤 전세계인이 소비하는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 이런 모습의 세계화(Globalization)는 1990년대 사람들에게 다가올 21세기를 상징하는 꿈과 이상 이었습니다.


이번글에서 보았듯이, 중국 장쩌민 주석과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세계화의 꿈과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장쩌민 주석은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통해 개혁개방 기조를 이어가려 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중국이 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이상은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 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국가가 되었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국가가 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주도경제 시스템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시민 감시를 강화하고 영구집권 토대를 공고히 하고 있고, 미국산 등 외국이 만든 상품은 중국 시장 내에서 불공정하게 대우 받고 있습니다.


  • 왼쪽 : 1990년대 미국 클린턴 대통령 - 중국 장쩌민 주석

  • 오른쪽 : 2010년대 미국 트럼프 대통령 - 중국 시진핑 주석


그 결과, 미국이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중국이 언젠가 자유의 가치를 받아들이겠지" 라는 막연한 낙관은 사라졌습니다.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과 2010년대 트럼프행정부의 보고서 문구에는 이러한 변화가 드러나 있습니다.


● 1998년 6월 11일, 클린턴 대통령 중국 방문 2주 전 성명


"우리 미국은 인권과 자유에 관해 중국 지도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미국인이 답해야 하는 물음은 미국이 중국 내 인권을 지지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중국을 국제 커뮤니티와 글로벌 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자유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각주:30] (...)


"간이 흘러, 나는 중국 지도자들이 자유를 받아들일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이 자유를 얻어야지만, 중국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화 시대에 국부는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창조하고 소통하고 혁신을 할 수 있는 능력. 중국인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발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오직 그래야만 중국은 성장과 위대함의 잠재력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각주:31]



● 2017년 12월, 트럼프행정부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지난 70년동안 미국의 상호주의, 자유시장,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세계경제시스템을 주도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라는 믿음을 가져왔습니다. (...) 미국은 자유주의 경제 무역시스템을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로까지 확장해왔습니다. 이들 국가들이 정치 · 경제적으로 자유화되고 미국에게 이득을 안겨줄 거라고 희망했기 때문입니다.[각주:32]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은 이들 국가들이 경제와 정치 개혁을 하지 않았고, 주요한 경제기관을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유무역을 말하지만, 오직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규칙과 협정만 지킬 뿐입니다.[각주:33]


우리는 공정(fairness), 상호(reciprocity) 그리고 규칙을 준수하는(faithful adherence to the rules) 모든 경제적 관계를 환영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위반, 속임수, 위협에 눈감지 않을 겁니다.[각주:34]



오늘날 트럼프행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Trade War)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근간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중국이 있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의 산업정책 보조금 · 국유기업 지원 · 외국기업 차별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의 대중 무역전쟁에 대해 더 깊게 알아볼겁니다.


▶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미친 영향


1990년대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을 바라보며 희망했던 미래는 2010년대 선진국에게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로 돌아왔습니다


'13억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해 온 중국경제 그리고 '중국으로 이동한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생산과정을 분절화' 시키는 중국경제로 인해 미국 등 선진국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의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는 1979년 최대 1,950만명 · 1980~90년대 평균 1,700만명대를 기록하였으나, 2007년 1,400만명 · 2019년 현재 1,300만명을 기록하며 25% 이상 감소했습니다.


누차 말했다시피 중국의 임금수준은 미국 아니 멕시코 보다도 현저히 낮습니다. 2000년대 들어 신발 · 의류 · 섬유 등 비숙련 노동집약 상품 수출 비중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인 규모는 여전히 거대합니다. 중국산 상품의 수입침투는 미국 노동집약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직접적인 충격을 안겨다줄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제조업 상품을 단순조립 하는 업무는 선진국의 비숙련 근로자가 해오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동차 · 전자 공장에서 근무하며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업무가 중국으로 이동하였고 미국 내에서는 사라졌습니다. 다르게 말해, 글로벌 생산과정이 분절화 되고 오프쇼어링이 활발해지자 미국 제조업 및 저숙련 근로자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The China Shock'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겁니다.


▶ 중국의 교역확대가 전세계에 미친 긍정적 영향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이 전세계에 부정적 영향만을 준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경제발전 덕분에 원자재를 수출하는 개발도상국들은 신흥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또한,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게 중간재 · 자본재를 수출하는 동아시아 국가들-특히 한국-은 큰 수혜를 얻었습니다. 


  • 왼쪽 : 1992년-2019년, 상품가격지수(2016년 100 기준)

  • 오른쪽 : 1992년-2019년, 한국 수출액 추이


왼쪽은 앞서 살펴본 상품가격지수, 오른쪽은 한국 수출액 추이 입니다. 두 자료는 모두 1992년-2019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이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 · GDP 대비 투자 비중 · 수출입액 그리고 전세게 수출입액 · 상품가격지수, 한국의 수출액 그래프는 모두 동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 중국 경제발전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 경제는 선진국의 저숙련 일자리를 없애어 '국가 내 불균등'(Within-Inequality)는 키웠으나, 신흥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국가 간 불균등'(Between-Inequality)은 줄였습니다그 결과, 과거 개발도상국이 반대했던 세계화는 이제 선진국 내에서 반발이 커졌습니다.




※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가 만들어낸 선진국과 신흥국의 엇갈린 상황


이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착취하기 위해 세계화를 진행한다!"는 식의 비판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습니다. 2019년 현재 세계화의 역풍(Globalization Backlash)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단순히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 으로만 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으로 이동한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생산과정을 분절화 시킨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는 왜 1990년대에 들어서야 나타났을까요?


오늘날 '세계화를 둘러싼 갈등'을 파악하려면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 즉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 및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제 다음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에서 이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1. 1947년 GATT 설립 당시 중국 국민당정권이 설립멤버로 참여. 이후 공산당이 권력을 잡으면서 국민당정권(대만)은 1950년 GATT 탈퇴. 중국은 이를 승계할 기회가 있었으나 당시 국내정치 상황상 이를 살펴보기 어려웠음. [본문으로]
  2. The developing countries, where the majority of world's population call home, hold out tremendous potential for development. Their current backwardness and poverty are caused mainly by the past colonial rule and the present unfair and irrational international economic system. More and more developing countries, going along with the trend of internationalization of the world economy and proceeding from their own national conditions, have embarked or are beginning to embark on a road of development with their own characteristics. Facts have proved that this is the only way to success. The coming century will see this trend grow even stronger. In my view, if the political resurgence of the developing countries is viewed as a major feature of the international evolution in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then their economic revitalization will be a key hallmark of the new world pattern in the 21st century. [본문으로]
  3. hen developing countries become prosperous with billions of people lifted from poverty, it will provide enormous opportunities for trade and investment for all countries. There will be more markets for new technologies and industries. It also helps to instill vitality into the global economy, propelling it onto a new development stage. Meanwhile, the revitalization of the developing countries will bring about a sound underpinning for the world pattern of multipolarization, provide conditions favorable to the establishment of a fair and rational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and offer stronger safeguards to lasting world peace. In short, the growing economic prosperity of the developing countries will contribute significantly to the advancement of the human society. [본문으로]
  4. The realization of the long-term goals as set forth in the Bogor Declaration requires our persistent efforts into the 21st century. This gigantic project of cooperation tallies with the trend of the world economy. It also serves the need of our reform, opening-up and economic development. After the meeting in Bogor, we have adopted a series of important measures aimed at deepening the reform. I wish to announce here that China will, effective from 1996, drastically reduce its overall tariff level by a margin of no less than 30%. This certainly will have a positive impact on regional cooperation and the achievement of trade and investment liberalization. [본문으로]
  5. In both China and the United States, trade has been a critical catalyst for growth. China is the fastest-growing market in the world for our goods and services. Tomorrow, Boeing will sign a contract for the largest sale of airplanes to China in history: 50 jets valued at $3 billion. This contract will support tens of thousands of American jobs and provide China with a modern fleet of passenger planes. [본문으로]
  6. Still, access to China's market remains restricted for many American goods and services. Just as China can compete freely and fairly in America, so our goods and services should be able to compete freely and fairly in China. The United States will do everything possible to bring China into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as soon as possible, provided China improves access to its market. . . . [본문으로]
  7. MR. JIANG: Ladies and gentlemen, a while ago I had an in-depth exchange of views with President Clinton on China-U.S. relations and of international and regional issues of mutual interest. The meeting was constructive and fruitful. President Clinton and I have agreed on identifying the goals for the development of a China-U.S. relationship oriented toward the 21st century. The two sides believe that efforts to realize this goal will promote the fundamental interests of the two peoples and the noble cause of world peace and development. We both agree that our two countries share extensive common interests in important matters bearing on the survival and development of mankind, such as peace and development, economic cooperation and trade, the prevention of the proliferation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and environment protection. Both sides are of the view that it is imperative to handle China-U.S. relations and properly address our differences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s of mutual respect, noninterference in each other's internal affairs, equality and mutual benefit; and seeking common ground, while putting aside differences. . . . [본문으로]
  8. As all of you know, I will go to China in two weeks time. It will be the first state visit by an American President this decade. I'm going because I think it's the right thing to do for our country. Today I want to talk with you about our relationship with China and how it fits into our broader concerns for the world of the 21st century and our concerns, in particular, for developments in Asia. That relationship will in large measure help to determine whether the new century is one of security, peace, and prosperity for the American people. [본문으로]
  9. Some Americans believe we should try to isolate and contain China because of its undemocratic system and human rights violation, and in order to retard its capacity to become America's next great enemy. Some believe increased commercial dealings alone will inevitably lead to a more open, more democratic China. [본문으로]
  10. We have chosen a different course that I believe to be both principled and pragmatic: expanding our areas of cooperation with China while dealing forthrightly with our differences. This policy is supported by our key democratic allies in Asia, Japan, South Korea, Australia, Thailand, the Philippines. It has recently been publicly endorsed by a number of distinguished religious leaders, including Reverend Billy Graham and the Dalai Lama. My trip has been recently supported by political opponents of the current Chinese government, including most recently, Wang Dan. There is a reason for this. Seeking to isolate China is clearly unworkable. Even our friends and allies around the world do not support us -- or would not support us in that. We would succeed instead in isolating ourselves and our own policy. Most important, choosing isolation over engagement would not make the world safer. It would make it more dangerous. It would undermine rather than strengthen our efforts to foster stability in Asia. It would eliminate, not facilitate cooperation on issues relating to mass destruction. It would hinder, not help the cause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China. It would set back, not step up worldwide efforts to protect the environment. It would cut off, not open up one of the world's most important markets. It would encourage the Chinese to turn inward and to act in opposition to our interests and values. [본문으로]
  11. Fifth, America clearly benefits from an increasingly free, fair and open global trading system. Over the past six years, trade has generated more than one-third of the remarkable economic growth we have enjoyed. If we are to continue generating 20 percent of the world's wealth with just four percent of its population, we must continue to trade with the other 96 percent of the people with whom we share this small planet. One in every four people is Chinese. And China boasts a growth rate that has averaged 10 percent for the past 20 years. Over the next 20 years, it is projected that the developing economies will grow at three times the rate of the already developed economies. It is manifestly, therefore, in our interest to bring the Chinese people more and more fully into the global trading system to get the benefits and share the responsibilities of emerging economic prosperity. Already China is one of the fastest-growing markets for our goods and services. As we look into the next century, it will clearly support hundreds of thousands of jobs all across our country. But access to China's markets also remains restricted for many of our companies and products. What is the best way to level the playing field? We could erect trade barriers. We could deny China the normal trading status we give to so many other countries with whom we have significant disagreements. But that would only penalize our consumers, invite retaliation from China on $13 billion in United States exports, and create a self-defeating cycle of protectionism that the world has seen before. Or we can continue to press China to open its markets -- its goods markets, its services markets, its agricultural markets -- as it engages in sweeping economic reform. We can work toward China's admission to the WTO on commercially meaningful terms, where it will be subject to international rules of free and fair trade. And we can renew normal trade treatment for China, as every President has done since 1980, strengthening instead of undermining our economic relationship. In each of these crucial areas, working with China is the best way to advance our interests. But we also know that how China evolves inside its borders will influence how it acts beyond them. We, therefore, have a profound interest in encouraging China to embrace the ideals upon which our nation was founded and which have now been universally embraced -- the right to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to debate, dissent, associate and worship without state interference. These ideas are now the birthright of people everywhere, a part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They are part of the fabric of all truly free societies. [본문으로]
  12. We have a fundamental difference with China's leadership over this. The question we Americans must answer is not whether we support human rights in China -- surely, all of us do -- but, rather, what is the best way to advance them. By integrating China into the community of nations and the global economy, helping its leadership understand that greater freedom profoundly serves China's interests, and standing up for our principles, we can most effectively serve the cause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within China. [본문으로]
  13. Over time, the more we bring China into the world the more the world will bring freedom to China. China's remarkable economic growth is making China more and more dependent on other nations for investment, for markets, for energy, for ideas. These ties increase the need for the stronger rule of law, openness, and accountability. And they carry with them powerful agents of change -- fax machines and photocopiers, computers and the Internet. Over the past decade the number of mobile phones has jumped from 50,000 to more than 13 million in China, and China is heading from about 400,000 Internet accounts last year to more than 20 million early in the next century. Already, one in five residents in Beijing has access to satellite transmissions. Some of the American satellites China sends into space beam CNN and other independent sources of news and ideas into China. The licensing of American commercial satellite launches on Chinese rockets was approved by President Reagan, begun by President Bush, continued under my administration, for the simple reason that the demand for American satellites far outstrips America's launch capacity, and because others, including Russian and European nations, can do this job at much less cost. It is important for every American to understand that there are strict safeguards, including a Department of Defense plan for each launch, to prevent any assistance to China's missile programs. Licensing these launches allows us to meet the demand for American satellites and helps people on every continent share ideas, information, and images, through television, cell phones, and pagers. In the case of China, the policy also furthers our efforts to stop the spread of missile technology by providing China incentives to observe nonproliferation agreements. This policy clearly has served our national interests. Over time, I believe China's leaders must accept freedom's progress because China can only reach its full potential if its people are free to reach theirs. In the Information Age, the wealth of any nation, including China, lies in its people -- in their capacity to create, to communicate, to innovate. The Chinese people must have the freedom to speak, to publish, to associate, to worship without fear of reprisal. Only then will China reach its full potential for growth and greatness. [본문으로]
  14. China will choose its own destiny, but we can influence that choice by making the right choice ourselves -- working with China where we can, dealing directly with our differences where we must. Bringing China into the community of nations rather than trying to shut it out is plainly the best way to advance both our interests and our values. It is the best way to encourage China to follow the path of stability, openness, nonaggression; to embrace free markets, political pluralism, the rule of law; to join us in building a stable international order where free people can make the most of their lives and give vent to their children's dreams. [본문으로]
  15. That kind of China, rather than one turned inward and confrontational, is profoundly in our interests. That kind of China can help to shape a 21st century that is the most peaceful and prosperous era the world has ever known. [본문으로]
  1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17. I'd like here to respond to what President Clinton said on WTO. He said that to allow China in the WTO will be in the best interest of the American people. And I want to say that although China has made the biggest concessions, that will also be in the interest of the Chinese people. [본문으로]
  18. Because if China wants to join the WTO, wants to be integrated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n China must play by the rules of the game. China cannot do that without making concessions. Of course, such concessions might bring about a very huge impact on China's national impact on some state-owned enterprises, and also on China's market. But I have every assurance to say here, thanks to the achievements made in our reform and opening up process, we will be able to stand such impact. And the competition arising from such impact will also promote a more rapid and more healthy development of China's national economy. [본문으로]
  19. THE PRESIDENT: Thank you very much. Good morning. Ambassador Parris, it's hard for me to say -- you may know, Mark worked for us in the White House for a long time and, you know, it's difficult for me to be sufficiently respectful of him now that he's here with this vast array of support. (Laughter.) I do want to thank you, Mark, and all of you for the wonderful job you've done under particularly adverse circumstances. And I thank Ambassador Albright for her representation of the United States here in Turkey, after the terrible first earthquake. I think I should give you an explanation for why we're running a little late this morning. We have been up late last night and early this morning, following the 11th hour negoti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And I am pleased to say that the United States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have now successfully concluded a strong accession agreement for China to enter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Applause.) This agreement is a major step forward in bringing China into the WTO, and a profoundly important step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 somebody apparently doesn't like it very much. (Laughter.) Have we put too much strain on the lights? (Laughter.) Yea. (Applause.) What do you say? Can you guys pick this up with this light, if I go on? Okay. [본문으로]
  20. The China-WTO agreement is good for the United States, it's good for China, it's good for the world economy. Today, China embraces principles of economic openness, innovation and competition that will bolster China's economic reforms and advance the rule of law. President Jiang Zemin and Premiere Zhu Rongji have shown genuine leadership in committing China to open its markets and abide by global rules of fair trade. In opening the economy of China, the agreement will create unprecedented opportunities for American farmers, workers and companies to compete successfully in China's market, while bringing increased prosperity to the people of China. [본문으로]
  2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https://joohyeon.com/251 [본문으로]
  22.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 https://joohyeon.com/236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26.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s://joohyeon.com/216 [본문으로]
  27.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29. 논문은 1989년 [본문으로]
  30. We have a fundamental difference with China's leadership over this. The question we Americans must answer is not whether we support human rights in China -- surely, all of us do -- but, rather, what is the best way to advance them. By integrating China into the community of nations and the global economy, helping its leadership understand that greater freedom profoundly serves China's interests, and standing up for our principles, we can most effectively serve the cause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within China. [본문으로]
  31. Over time, the more we bring China into the world the more the world will bring freedom to China. China's remarkable economic growth is making China more and more dependent on other nations for investment, for markets, for energy, for ideas. These ties increase the need for the stronger rule of law, openness, and accountability. And they carry with them powerful agents of change -- fax machines and photocopiers, computers and the Internet. Over the past decade the number of mobile phones has jumped from 50,000 to more than 13 million in China, and China is heading from about 400,000 Internet accounts last year to more than 20 million early in the next century. Already, one in five residents in Beijing has access to satellite transmissions. Some of the American satellites China sends into space beam CNN and other independent sources of news and ideas into China. The licensing of American commercial satellite launches on Chinese rockets was approved by President Reagan, begun by President Bush, continued under my administration, for the simple reason that the demand for American satellites far outstrips America's launch capacity, and because others, including Russian and European nations, can do this job at much less cost. It is important for every American to understand that there are strict safeguards, including a Department of Defense plan for each launch, to prevent any assistance to China's missile programs. Licensing these launches allows us to meet the demand for American satellites and helps people on every continent share ideas, information, and images, through television, cell phones, and pagers. In the case of China, the policy also furthers our efforts to stop the spread of missile technology by providing China incentives to observe nonproliferation agreements. This policy clearly has served our national interests. Over time, I believe China's leaders must accept freedom's progress because China can only reach its full potential if its people are free to reach theirs. In the Information Age, the wealth of any nation, including China, lies in its people -- in their capacity to create, to communicate, to innovate. The Chinese people must have the freedom to speak, to publish, to associate, to worship without fear of reprisal. Only then will China reach its full potential for growth and greatness. [본문으로]
  32. For 70 years, the United States has embraced a strategy premised on the belief that leadership of a stable international economic system rooted in American principles of reciprocity, free markets, and free trade served our economic and security interests. (...) The United States helped expand the liberal economic trading system to countries that did not share our values, in the hopes that these states would liberalize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practices and provide commensurate benefits to the United States. [본문으로]
  33. Experience shows that these countries distorted and undermined key economic institutions without undertaking significant reform of their economies or politics. They espouse free trade rhetoric and exploit its benefits, but only adhere selectively to the rules and agreements. [본문으로]
  34. We welcome all economic relationships rooted in fairness, reciprocity, and faithful adherence to the rules. Those who join this pursuit will be our closest economic partners. But the United States will no longer turn a blind eye to violations, cheating, or economic aggression.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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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Posted at 2019. 8. 24. 21:4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국제무역 보다 정확히 말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자국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고전적인 논쟁 주제[각주:1]입니다


▶ 개발도상국 -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


제조업은 산업화의 상징이며 저숙련 근로자에게 비교적 안정적인 임금을 제공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 특히 이제 막 경제발전을 시작하려는 개발도상국들은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 · 육성 · 발전 시키려 했습니다. 이때 가장 큰 걸림돌은 '성숙한 외국 제조업과의 경쟁' 입니다. "자국 제조업 수준이 걸음마 단계인 상황에서 시장을 개방하면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생각[각주:2]은 자연스런 우려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사상[각주:3]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4]이 나온 이래로,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자국의 비교열위 산업인 제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걱정했습니다. 특히나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토지의 수확체감성에서 벗어나 산업자본가의 이윤을 높이려는 19세기 영국의 경제상황[각주:5] 속에서 등장한 이론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고 인식했습니다. 


개발도상국들 중 일부[각주:6]는 수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여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려 하였고, 또 다른 일부[각주:7]는 아예 교역량을 줄이는 수입대체 산업화를 선택했습니다. 대외지향적 무역체제에 힘입어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한민국[각주:8] 조차도 기존의 비교우위에서 벗어나 제철소건설 등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했습니다. 


▶ 현대 경제학자 - "제조업 보호와 육성을 위한 정부지원이 정당화 되려면 특수한 조건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항하여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사상과 비교우위론을 정교화[각주:9] 하였습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개발도상국을 향해 던진 물음은 "당장의 경쟁에서는 밀리더라도 미래에는 승산이 있다는 걸 아는 사업가라면, 정부의 인위적인 보호조치가 없더라도 자연스레 제조업에 뛰어들지 않겠느냐" 입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래에는 외국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업가라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제조업 분야에 투자를 했을 겁니다. 


미래를 내다본 사업가에 의해 국가경제의 생산성 · 부존자원 등이 시간이 흐른 후 바뀐다면, 비교우위도 자연스레 변화하는 '동태적 비교우위'(dynamic comparative advantage) 양상을 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유치산업 보호는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 주류 경제학자들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정부지원이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특수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때 특수한 조건이란 '기술적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y)과 '금융시장 불완전성'(capital market imperfection) 입니다. 


더 나은 생산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가가 직면하는 문제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정보를 거리낌없이 쓸 가능성, 즉 기술적 외부성 이며, 이로인해 개별 사업가가 지식 획득을 위한 투자를 꺼리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업은 기술개발 및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 받아야 하는데, 금융시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자금조달이 어려워집니다[각주:10].


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이 특수한 조건이 존재한다면 정부의 제조업 지원이 정당화 될 수 있으며, 단 이때 지원의 형태는 무차별적인 보호 관세가 아니라 직접적인 보조금 이라고 강조합니다. 다르게 말해, 제조업 육성을 위한 보호무역정책을 구사할 생각보다는 '외부성 및 불완전성 등 구체적인 시장실패를 직접 해결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과거 개발도상국이 직면했던 문제는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

: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가 타당한가


이처럼 국제무역과 제조업에 관한 논쟁은 경제발전을 추구했던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벌어져왔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이 타당한가?"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경제학자들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유치산업보호론을 인정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며 주의[각주:11]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폐쇄경제로 돌아선 중남미[각주:12]와 대외지향을 꾸준히 추진한 대한민국[각주:13] 간 대비되는 성과는 자유무역을 향해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알려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국제무역논쟁은 자유무역사상과 비교우위론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화 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 1970~80년대 미국 - "외국과의 경쟁증대 때문에 미국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인 미국에서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졌습니다.


본 블로그의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14]를 통해 알 수 있었듯이, 1970~80년대 미국인들은 '미국의 지위 하락과 경쟁력 상실'을 두려워 했습니다. 전세계 GDP 중 미국의 비중은 1968년 26.2%에 달했으나 점점 줄어들어 1982년 23.0%를 기록합니다. 또한 무역적자가 심화되면서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이 1980년 0.7%,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거시경제적 문제와 함께 다수의 미국 근로자와 기업들이 걱정했던 것은 바로 '제조업의 비중 축소와 일자리 감소' 였습니다. 2차대전 이후 폐허가 됐던 서유럽과 일본이 경제부흥에 성공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미국 제조기업들은 1970~80년대 들어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신발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제조업 뿐 아니라 자동차 · 철강 등 중후장대 제조업도 외국기업에게 미국시장을 내주었습니다.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은 저숙련 근로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대표적인 제조업 중 하나이며, 경제발전 단계를 밟는 국가들이 크게 의존하는 업종입니다. 과거 미국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1970년대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에 종사하는 미국 근로자 수는 약 300만명에 달했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후발산업국가들이 생산 및 수출 물량을 늘려나가자 선진국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윗 그래프에 나오듯이, 1960년-1988년 사이 미국인들의 신발 · 의류 · 섬유 품목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결국 선진국과 개도국들은 1974년 다자간섬유협정(MFA)을 체결하였고, 물량쿼터제를 통해 수출물량을 통제하였습니다. 1981년 부임한 레이건대통령은 대선캠페인 과정에서 다자간섬유협정을 갱신하겠다고 약속하였고, 개발도상국이 만든 섬유와 의복의 연간 수입증가율을 기존 6%에서 2%로 낮추었습니다.


그럼에도 신발 · 의류 · 섬유의 수입침투(import penetration)는 계속되었습니다. 쿼터할당량을 다 채운 외국 생산자들은 몇몇 공정을 쿼터가 남아있는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회피하였고, 공정변화를 통해 품목을 변경하여 규제를 벗어났습니다. 


미국의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은 펜실베니아 · 남부 · 남캐롤라니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 지역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2000년 이들 산업의 근로자 수는 약 100만명으로 줄었고, 2019년 현재는 약 30만명에 불과합니다.


  • 1960~90년, 미국 차량등록대수 중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 변화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75쪽


자동차 산업도 1970년대부터 외국과의 경쟁증대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산업 입니다. 


1960년대 미국시장 내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7%대로 안정적이었으며 주로 독일차가 차지했습니다. GM · 포드 ·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는 수익성이 높은 중대형 차량에 집중하였고, 외산차는 주로 소형차를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소비자들은 연비가 좋은 소형차를 찾기 시작했고 일본자동차 업계가 이 지점을 공략했습니다. 그 결과, 1975~80년 사이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2배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 2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미국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은 더욱 훼손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부도위기에 몰렸고,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실업률은 상승했습니다. 


결국 미국 자동차 노조는 수입제한과 일본기업이 미국 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도록 요구했고, 레이건행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자발적 수출제한을 얻어냅니다.


  • 1950~90년, 철강 미국 내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38쪽


철강 또한 수입경쟁에 노출된 업종 중 하나입니다. 미국 내 소비 중 수입철강의 비중은 1979년 15%에서 1984년 26%로 상승했습니다. 


미국 철강업계는 외국에 대항하여 반덤핑규제와 상계관세 부과를 요구했으며, 그 타겟은 주로 유럽(EEC) 이었습니다. 레이건행정부는 자동차 산업에서처럼 자발적제한 협약을 외국과 맺으려 하였고, 전체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15개국을 대상으로 물량쿼터제를 내용으로 하는 협약을 1985년 8월 체결하였습니다.


▶ 1990년대 미국 - "저숙련 · 저임금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미국 제조업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1970~80년대 미국 제조업이 직면한 경쟁상대가 주로 서유럽과 일본이었다면, 1990년대 미국 제조업 근로자들에게 위기감을 안겨다준 상대방은 멕시코 였습니다. 


위의 표에 나오듯이, 1994년 당시 멕시코 자동차산업 근로자의 시간당 실질 인건비는 미국의 1/8에 불과했고, 미국 기업들은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할 유인이 충분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숙련 · 저임금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으면 미국 제조업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라는 우려가 팽배했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1992년 미국 대선의 주요 의제로 부각되었습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지지자 그리고 노조는 NAFTA 체결을 격렬히 반대하였습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스 페로(Ross Perot)는 제조업 일자리가 남쪽 멕시코로 대거 이동할 것이라며 NAFTA를 '남쪽으로 일자리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굉음'(giant sucking sound going south)'으로 칭했습니다. 양당제인 미국 정치구도에서 무소속 후보가 무려 18.9%나 득표[각주:15]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시 미국인들이 NAFTA에 대해 가졌던 우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난 이후 당 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NAFTA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단, 여러 우려를 반영하여 노동부문 부속협약(labor side agreement) 및 원산지 규정(rule of origin)을 협정에 새로 집어넣었습니다. 여기에는 멕시코의 저임금을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근로자 권리 보호, 그리고 미국-멕시코-캐나다 역내에서 생산된 부품이 완성차 부가가치의 62.5%를 차지해야 한다는 역내가치비율(Regional Value Content) 조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시장개방'(Income Distribution)

: 제조업 및 저임금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자유무역의 충격을 어떻게 완화해야 하는가


  • 1966~2000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1980~9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의 그래프는 1966년~2000년 미국 내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프상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를 나타냅니다. 제조업 일자리는 경기변동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불황기에 일자리가 줄었다가 회복기에 다시 늘어나는 패턴을 보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경기회복기에 불황 이전 수준만큼 일자리가 늘어났으나, 1980년대 들어서는 제조업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적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9년 최대 1,950만명에 달했던 제조업 근로자는 1980-90년대 평균적으로 1,700만명대를 기록하며 10%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경기변동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많은 미국인들이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원인을 국제무역에서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미국 주요 산업지역

  • 자동차 산업의 러스트벨트(Rust Belt), 석탄 산업의 Coal Belt. 섬유 산업의 Textile Belt

  • 츨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96


이러한 제조업 위축은 사회 · 정치적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제조업은 저숙련 근로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제조업의 위축은 임금불균등 증대(rise of wage inequality)로 연결될 위험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석탄, 섬유 산업 등은 미국 내 특정 지역에 몰려있었기 때문에, 상하원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제조업 위축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따라서 1970~9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은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제조업 고용 및 임금이 감소하고 그 결과 임금불균등이 확대되는 것 아닐까?"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경제발전기 개발도상국들이 던진 물음에 대해 현대 경제학자들은 정교화된 자유무역사상과 비교우위론을 답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1970~9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던진 물음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요? 




※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① 미국 제조업 비중 감소는 생산성향상과 수요변화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답은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였습니다[각주:16]


앞서 내용을 통해, 신발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제조업 뿐 아니라 자동차 · 철강 등 중후장대 제조업도 외국기업에게 미국시장을 내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미국의 공장들은 당연히 저임금의 멕시코로 이전할텐데, 왜 경제학자들은 일반의 상식과는 다른 분석을 내놓은 것일까요? 


  •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

  • 1983년 발표 논문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일시적인 순환>


국제무역과 제조업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있는 학자 중 한 명이 바로 로버트 Z. 로런스(Robert Lawrence) 입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이를 연구해오며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임금불균등 심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83년 로버트 Z. 로런스는 잭슨홀미팅에서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일시적인 순환>(Changes in U.S. Industrial Structure: The Role of Global Forces, Secular Trends and Transitory Cycles> 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로런스는 논문을 통해, "1970년대 미국은 절대적인 탈산업화(absolute deindustrialization)를 경험하지 않았다. (...) 다시 성장이 재개되면 제조업의 일자리와 투자가 촉진될 것이고, 자동적으로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가 발생할 것이다. (...) 대외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 산업 및 무역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각주:17]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로런스의 주장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 미국 탈산업화 - 절대적 생산 감소와 상대적 비중 감소를 구분해야 한다


탈산업화(혹은 탈공업화, deindustrialization)란 광업 · 제조업 · 건설업 등 2차산업 활동이 위축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1970-8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은 신발 · 의류 · 섬유 · 자동차 · 철강 등의 위축을 보며 "미국의 경쟁력 감소로 인해 탈산업화가 발생했다"고 느꼈습니다.


이에 대해 로버트 Z. 로런스는 우선 탈산업화 현상이 무엇인지 정교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조업 생산량의 절대적 감소(absolute decline in the volume of output)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제조업 생산량 증가율의 상대적 감소(relative decline in the growth of outputs)를 의미하는가?[각주:18]" 


어떤 산업이든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감소한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큰 문제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은 생산의 증가[각주:19]를 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절대적인 생산량은 증가하고 있으나 다른 산업의 빠른 생산 증가율 때문에 '생산량의 상대적인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면, 이를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할 겁니다. 


  • 1966~97년, 미국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

  •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1966년 26.1%, 1997년 16.1%로 추세적 하락을 경험하였다

  • 서비스업 부가가치 비중은 1966년 50.0%, 1997년 64.2%로 추세적 상승 하였다.

  • 출처 : 미 경제분석국(BEA)


로버트 Z. 로런스는 "미국 제조업의 경제활동인구, 자본스톡, 생산량을 살펴보니 1980년까지 절대적(absolute) 탈산업화를 경험하지 않았다"[각주:20]고 주장합니다. 미국 제조업 부가가치의 절대액수는 1965년 2,370억 달러에서 1980년 3,510억 달러로 증가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옳습니다.


문제는 제조업 비중(share)의 감소에 있었습니다. 위의 그래프에 나오듯이, 전체 미국경제에서 제조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6년 26.1%, 1980년 20.5%, 1990년 17.3%, 1997년 16.1%로 추세적으로 하락(secular decline)하고 있습니다. 


▶ 미국 제조업 비중 감소를 초래하는 영속적인 추세변화 - 생산성향상과 수요변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감소이든 상대적 감소이든 상관없이, 외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미국 제조업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런스는 "국제교역은 산업구조 변화의 유일한 원인도 아니며 중요한 원인도 아니다. 무역은 수요와 기술변화의 영향을 단지 강화할 뿐이다.[각주:21] (...) 제조업 고용비중의 감소는 제조업의 급격한 노동생산성 향상과 느린 수요 증가로 인한 예측가능한 결과이다."[각주:22]라고 말합니다.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은 수요 요인과 결합하여 제조업 생산과 고용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생산비용을 낮추는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은 품질 개선과 가격 하락을 동반합니다. 이에따라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 중 제조업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집니다. 그리고 생활수준이 개선된 미국인들이 의료 · 여행 ·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 지출을 늘림에 따라 상품지출 비중은 더 줄어듭니다.


이렇게 상품수요가 탄력적으로 늘어나지 않으면서, 생산성향상은 역설적으로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산업의 생산성향상은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지만,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을때 생산량을 크게 늘리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수요가 늘어나지 않고 생산성 향상만 이루어진다면 더 적은 수의 근로자로 똑같은 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은 제조업 일자리를 감소시킵니다.


로런스는 기술혁신의 결과물로 얻게되는 생산성 향상, 그리고 생활수준 향상 및 서비스 경제화가 야기하는 상품수요 감소 요인은 영속적인 추세(Secular Trends)라고 평가했습니다. 추세가 달라지면서 미국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역할이 변하였고 이로 인해 제조업 생산 및 고용 비중이 감소한 것이지 국제무역은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논리 입니다. 


▶ 미국 국제경쟁력의 열등함? - 일시적 경기순환과 영속적인 비교우위 변화


  • 란선 :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 지수 (1973=100)

  • 란선 : 미국 GDP 대비 무역수지 적자 비중 (축반전)

  • 1980년을 기점으로 달러가치가 상승하자, 시차를 두고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


그렇다고해서 로런스가 국제무역이 단 하나의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


제2차 오일쇼크와 볼커 연준의장의 통화긴축 정책으로 인해 1980년대 초반 미국 달러가치는 급상승했고 무역적자는 심화되었습니다. 1980~82년 사이 미국 제조업 상품 수출 물량은 -17.5%를 기록했으며, 수입 물량은 +8.3% 였습니다. 로런스는 수출 감소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약 50만개 줄어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로런스가 강조하는 것은 달러가치 상승이라는 일시적 순환요인(Transitory Cycles) 때문에 제조업 수출이 감소한 것이지 "미국의 국제경쟁력이 갑자기 훼손된 결과물이 아니다"[각주:23]는 점입니다. 따라서, 산업정책 및 무역정책으로 제조업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향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미국은 저숙련 제조업 분야의 비교우위를 상실한 대신 하이테크 분야의 비교우위를 발전시켰다고 로런스는 평가합니다. 향후 하이테크 산업이 더 발전하게 되면 제조업 일자리 상실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일시적인 순환


이처럼 로버트 Z. 로런스가 1983년 논문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일시적인 순환>(Changes in U.S. Industrial Structure: The Role of Global Forces, Secular Trends and Transitory Cycles> 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제목 그대로 입니다.


미국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의 상대적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이는 국제경쟁력 훼손 등 글로벌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 및 소비자 수요변화의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달러가치 상승의 일시적인 순환이 작용한 결과 입니다. 


따라서, 탈산업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비숙련) 제조업을 위한 보호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을 구사하면 미국경제의 잠재성장을 훼손시킨다고 로런스는 경고합니다.




※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② 미국 임금불균등 증가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 때문이다


1980년대 로버트 로런스 등 몇몇 경제학자들이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무역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1990년대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1980년대 사람들이 제조업 비중 축소 및 일자리 감소에 주목했다면, 1990년대 관심주제는 임금불균등(wage inequality) 이었고 그 배후에 국제무역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미국의 1973년 시간당 실질소득은 8.55 달러였으나 1992년 7.43 달러로 하락하였습니다. 특히 숙련근로자의 상대소득이 크게 증가하며 임금불균등이 확대되었죠. 


임금증가율 정체와 불균등이 확대되던 시기, 국제경제관계도 변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의 1인당 생산량은 유럽의 2배, 일본의 6배 였으나 1990년대 차이가 많이 줄어드는 수렴(convergence)이 이루어졌고 임금격차도 좁혀졌습니다. 또한, 1970~90년 사이 미국의 GNP 대비 수출입은 12.7%에서 24.9%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199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임금불균등 증대 원인에 국제무역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자연스런 사고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부시행정부와 클린턴행정부는 저임금 국가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려 했으니, 국제무역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헥셔-올린 모형, 미국 내 임금불균등 현상을 예측한듯 하다 


국제무역이론도 미국인들의 우려가 논리적으로 타당함을 뒷받침 해주었습니다. 바로, 헥셔-올린 무역모형(Heckscher-Ohlin Trade Model)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각주:24] 입니다.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르면, '시장개방 이후 숙련노동 풍부국은 숙련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올라가서 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비숙련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올라가서 비숙련노동자의 실질소득이 상승' 합니다. 


쉽게 말해, 국제무역은 국가의 풍부한 생산요소에게 이익을 주며 희소한 생산요소에게 불이익을 줍니다. 자급자족 상황에서 풍부한 생산요소는 과다공급으로 인한 낮은 가격 때문에 저평가받다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니 과다공급 해소로 가격이 올라 이익을 본다는 논리입니다. 반대로 자급자족 상황에서 희소한 생산요소는 과소공급 때문에 높게 평가받다가, 무역개방으로 외국의 생산요소가 들어오니 희소성의 이득을 박탈 당합니다.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를 미국과 개발도상국의 상황에 대입해봅시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숙련근로자가 풍부하며, 멕시코 등 개발도상국은 비숙련근로자가 풍부합니다. 따라서, 양국간 교역확대는 미국 숙련근로자 임금과 개발도상국 비숙련근로자 임금을 상대적으로 증가시킵니다. 다시 말해, 헥셔-올린 모형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이 나타나고 개발도상국에서는 임금수렴이 나타납니다



  • 1955~90년, 생산근로자 대비 비생산근로자의 임금 비율
  • 출처 : Lawrence & Slaughter. 1993.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임금>


헥셔-올린 무역이론의 예측은 실제 미국의 모습과 동일하였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55년~90년 생산근로자 대비 비생산근로자의 임금 비율(ratio of nonproduction to production wages)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생산근로자는 제조업 생산직, 비생산근로자는 관리·감독·사무직을 의미하며, 단순히 전자를 비숙련근로자 후자를 숙련근로자로 구분지을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확대되며 1990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은 비숙련 근로자 대비 1.65배를 기록합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요인을 가져올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국제무역 때문에 임금불균등이 확대된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 헥셔-올린 모형은 미국 내 임금불균등 심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 로버트 Z. 로런스와 매튜 J. 슬로터의 1993년 보고서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인 임금: 거대한 굉음 혹은 작은 딸꾹질?>


정작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이와 달랐습니다. 


앞서 봤던 로버트 Z. 로런스(Robert Z. Lawrence)는 매튜 J. 슬로터와 함께 1993년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제목은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인 임금: 거대한 굉음 혹은 작은 딸꾹질?>(International Trade and American Wages in the 1980s: Giant Sucking Sound or Small Hiccup?>[각주:25] 입니다.


우선 로런스와 슬로터는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미국 내 현실에 부합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 증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숙련근로집약적 상품가격이 상승해야' 합니다. 단순히 임금불균등이 확대된 결과만을 보고 무역이론이 현실을 설명하구나 라고 단정지으면 안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수행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기 때문'[각주:26] 입니다.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값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수출을 통해 더 높은 값을 받고 외국에 판매합니다. 반대로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비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통해 더 싸게 (간접)생산합니다. 


그리고 무역을 하게 되면 자급자족 가격이 아닌 세계시장 가격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품가격이 변합니다. 즉, 무역 개방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것은 ‘상품의 상대가격’ 입니다. 수입 상품은 자급자족에서 보다 무역 실시 이후 더 싸지고, 수출상품은 더 비싸집니다


따라서, “달라진 상품 상대가격이 생산요소의 실질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를 살펴봄으로써, 무역개방과 소득분배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무역이론이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각주:27]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련근로자의 상품가격이 상승하지 않은채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만 증가했다면, 이는 무역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 입니다.


  • 왼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입가격 변화율(Y축)

  • 오른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출가격 변화율(Y축)


위의 그래프는 1980년대 숙련근로집약 정도에 따른 수출입 가격 변화를 보여줍니다. 숙련근로집약도가 높아지는 상품일수록 수입가격은 다소 하락하고 수출가격은 크게 하락하는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로버트 Z. 로런스와 매튜 J. 슬로터는 1980년대 숙련근로집약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기는 커녕 하락했음을 지적합니다. 이들은 "데이터는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무역이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회귀분석을 할 필요조차 없다."[각주:28] 라고 말합니다.


▶ 미국 임금불균등 증가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로 인한 숙련노동 수요 증대 때문이다

 

  • 1955~90년, 생산근로자 대비 비생산근로자의 고용 비율

  • 출처 : Lawrence & Slaughter. 1993.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임금>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요인 때문에 미국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올라간 것일까요? 로런스와 슬로터는 '노동 공급과 수요'라는 국내요인에서 찾았습니다. 


만약 비숙련근로자 노동공급이 숙련근로자 노동공급보다 많이 증가한다면, 비숙련근로자 임금은 하락하고 숙련근로자 임금은 상승합니다. 한 연구는 이민자 증가로 인해 비숙련근로자의 상대공급이 증가했음을 보였습니다.


로런스와 슬로터가 더 주목했던 것은 노동수요 측면(labor-demand story) 입니다. 


왜냐하면 숙련근로자들의 상대공급이 증가했음에도 숙련-비숙련 간 임금격차가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1980년대 들어서 비생산근로자가 급증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1983년 미국 내 화이트칼라 직업은 전체 고용 중 67.2% 였으나 1990년 90%로 늘어납니다. 또한, 관리직무는 1983년 24%에서 1990년 45.7%로 증가합니다. 


이렇게 숙련근로자가 늘어났음에도 임금이 올랐다면 이는 숙련근로자들을 향한 노동수요 증대가 더 큰 역할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로런스와 슬로터는 "1980년대 미국 제조업 내 비생산근로자의 상대임금과 상대고용이 모두 상승하였다. 이러한 조합은 노동수요가 비생산근로자로 이동했음을 알려준다"[각주:29]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왜 숙련근로자를 향한 노동수요가 증대되었나?" 입니다. 로런스와 슬로터는 "기술변화가 비생산 근로자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편향되게 이루어졌다."[각주:30]고 대답합니다. 


당시 로런스와 슬로터 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이 기술변화로 인한 노동수요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각주:31]. 버만, 바운드, 그릴리키스는 1993년 논문을 통해 "비생산근로자를 향한 수요변화는 기술변화 때문이다"고 주장하였고[각주:32], 앨런 크루거도 1993년 논문에서 "컴퓨터 사용이 확산됨에 따라 교육프리미엄이 증대되었다. 즉, 편향적인 기술변화가 발생했다"고 말하였습니다[각주:33]


경제학자들은 숙련근로자의 수요를 증대시키도록 일어난 기술변화를 '숙련편향적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SBTC)라고 명명하였고,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경제학계 논의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임금불균등 심화의 원인을 숙련편향적 기술진보에서 찾았으며,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컨센서스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폴 크루그먼, 국제무역과 임금 간 관계를 14년 만에 다시 생각하다



2000년대 들어서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임금불균등 현상의 원인을 국제무역이 아닌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로 꼽았습니다[각주:34]


1990년대 중반 이후 거시경제 상황 변화가 국제무역에서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미국경제는 다시 호황을 기록하면서 국제경쟁력 상실을 둘러싼 우려가 사라졌습니다. 이와중에 1995년 이후 컴퓨터 ·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통신산업(IT)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역시 임금불균등 원인은 기술변화에 있구나" 라는 확신은 더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2008년 폴 크루그먼은 보고서 하나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제목은 <무역과 임금, 다시 생각해보기>(<Trade and Wages, Reconsidered>) 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0년대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35]을 통해 국제무역이론의 흐름을 변화시킨 인물이었고, 당시 국제무역논쟁[각주:36]한복판[각주:37]에 있었습니다. 또한 폴 크루그먼은 앞서 살펴본 로버트 Z. 로런스와 함께 1994년 논문 <무역, 일자리, 그리고 임금>(<Trade, Jobs and Wages>)을 발간하면서 의견을 같이 했었습니다. 그는 1990년대 NAFTA를 둘러싼 사회적논쟁 속에서 "국제무역은 제조업 위축 및 저숙련 근로자 임금 둔화와 관계가 없다"를 주장했습니다.


그랬던 크루그먼이 국제무역과 임금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 보고서를 14년 이후인 2008년에 내놓은 겁니다. 그의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 저임금 개발도상국, 특히 대중국 수입비중이 큰 폭으로 늘었다


  • 위 : 1989~2006년, 미국 GDP 대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한 제조업 상품 비중
  • 아래 : 개발도상국들의 세부 국가로 다시 분리해서 살펴봄. 중국 · 멕시코 · 기타 · 동아시아 4마리 호랑이(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 개발도상국 수입상품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며 2004년 이후로는 선진국 수입상품을 넘어섰다
  •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하였다
  • 출처 : Krugman. 2008. <무역과 임금, 다시 생각해보기>

국제무역이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폴 크루그먼은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이 2배 가까이 늘어나자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1990년대 실증연구는 국제무역이 그다지 대단치 않은 영향만 주었음을 발견했었다. 극도로 낮은 임금을 가진 국가들로부터 수입이 급증했음을 고려할 때, 10년 동안 상황이 변했나?"[각주:38]

크루그먼은 단순히 '개발도상국'과의 교역이 확대된 것이 아니라 '극도로 낮은 임금을 가진 국가들'(very low wage countries)과의 교역량이 늘어왔음에 주목했습니다. 그 대상은 주로 '중국'(China) 이었습니다. 

1990년대 저임금 국가인 멕시코와의 NAFTA 체결도 큰 논란을 불러왔는데, 2000년대 초중반 중국의 임금수준은 멕시코 보다도 현저히 낮았습니다. 2005년 기준 중국 제조업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미국의 3%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의 15%에 불과한 멕시코도 저임금 국가 소리는 듣는 와중에 중국의 임금수준은 더 낮았던 겁니다. 게다가 중국은 수출량을 빠르게 늘려왔고, 미국과 중국 간 교역량은 크게 증가했습니다.

보통 저임금 개발도상국은 신발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상품에 특화하여 수출합니다. 따라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게되면, 미국 저숙련 노동집약산업은 비교열위가 되어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저숙련 근로자들은 임금이 하락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2000년대 중국과의 교역확대는 이전 시대와 달리 미국 내 임금불균등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 그런데.. 대중국 수입상품이 저숙련 노동집약 상품이 아니라 정교한 상품?


  • 1989~2006년,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수입 중 제조업 상품 품목별 비중 증가율
  • 수입이 가장 많이 늘어난 품목은 의외로(?) 컴퓨터 및 전자상품
  • 출처 : Krugman. 2008. <무역과 임금, 다시 생각해보기>

그런데 막상 데이터를 보니 많은 이들의 직관과 달리 저숙련 노동집약상품 수입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89~2006년, 미국의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수입 중 제조업 상품 품목별 비중 증가율을 보여줍니다. 수입이 가장 많이 늘어난 품목은 가죽 · 섬유 · 목재 등이 아니라 컴퓨터 및 전자상품(Computer and electronic products)과 자동차(Transportation equipment) 였으며, 이들 품목은 숙련노동집약 상품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근거로 "2000년대 개발도상국과의 교역 증대도 미국 내 임금불균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라 임금불균등이 확대되려면 저숙련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하는 국가와 교역을 해야하는데, 2000년대 미국은 숙련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하는 개발도상국과 무역을 늘려왔습니다. 무역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이론을 적용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 달라진 국제무역 구조인 '수직적 특화'를 집계데이터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폴 크루그먼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요소부존에 기반을 둔 분석은 데이터의 분해 수준(disaggregation)에 제약을 받게 된다.[각주:39]


당시 학자들은 산업을 더 세부적으로 분류한 데이터를 쓸 수 없었습니다. 컴퓨터 및 전자상품 산업에 속해있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숙련노동집약적인 것일까요? 컴퓨터에 들어가는 CPU 등을 설계하는 것과 여러 부품들을 단순 조립하여 컴퓨터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숙련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달라진 국제무역 구조는 이러한 집계데이터의 문제를 심화시켰습니다. 1990년대 들어 세계화가 확산됨에 따라 국제무역 구조는 '수직적 특화'(Vertical Specialization)를 띄게 되었습니다. 수직적 특화란 상품생산 과정이 개별 단계로 쪼개져서 여러 국가에 분포하는 현상(the break up of the production process into geographically separate stages)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은 중국에서 조립되어 수출되기 때문에 집계데이터상 전자품목으로 잡힙니다. 그런데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는 주로 한국과 대만에서 만든 것이고 디자인 · 설계는 미국이 한 겁니다. 중국 내에서 수행한 활동은 단순한 조립일 뿐이며 부가가치 기여도는 적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숙련노동집약적인 전자상품을 수출했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요?


따라서 폴 크루그먼은 "집계데이터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잠정결론 내릴 수 있다. 왜 더 세분화된 데이터를 쓰지 않는가? 그 이유는 현재 데이터의 한계로 인해 할 수 있는 것이 적기 때문이다"[각주:40] 라고 지적합니다.


폴 크루그먼은 데이터의 한계를 재차 지적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데이터의 문제를 보여준다. 개발도상국의 급증하는 수출, 특히 중국의 수출은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각주:41]. (...) 개발도상국이 정교한 상품을 수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개 통계적 착시(statistical illusion)이다.[각주:42]"


▶ 2008년 폴 크루그먼

- "개발도상국은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비숙련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의 한계를 고려하면 실제 중국이 수출하는 것은 비숙련노동집약 상품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있는 일은 개발도상국이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비숙련노동집약 부분을 가져가는 밸류체인의 분해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스톨퍼-새뮤얼슨 효과와 유사한 결론을 가져다줄 것이다"[각주:43] 라고 주장합니다. 


크루그먼의 지적이 타당하다면, 집계데이터를 이용해 헥셔올린 모형을 적용한 기존 연구들은 전부 잘못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미국 저숙련 근로자에 미친 영향은 기존 추정치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과의 무역 확대가 미치는 진정한 영향이 얼마인지는 당시 크루그먼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무역이 임금에 미치는 실제 효과를 수량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현재 주어진 데이터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1990년대 초반 이래 급증한 무역이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뿐이다. 영향을 숫자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정교화 되어가는 국제적 특화와 무역을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라며 한계점을 드러냅니다.




※ 왜 당시 경제학자들은 국제무역의 영향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보았을까?


그런데 크루그먼은 데이터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것을 떠나서 당시 경제학자들의 사고를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당시 경제학자들은 국제무역의 영향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보았을까요? 정말 실증분석의 결과만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요? 혹시 '답정너'일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 비교우위에 입각한 산업간 무역이 초래하는 분배적 영향을 과소평가


발도상국과의 교역확대가 미국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은 비교우위 무역모형에 기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비교우위 무역모형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저숙련 제조업에 특화를 선진국은 고숙련 제조업에 특화를 합니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은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 즉 산업간 무역(inter-industry trade)을 실시하여 '상품의 값싼 이용'이라는 무역의 이익(gains from trade)을 얻게 됩니다. 


이때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우려했던 것은 '무역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는가'를 둘러싼 분배적 영향(distributional effects) 였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특화를 한 이후,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경제학자들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면 된다." 국제무역이론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정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현실에서도 이것이 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비교우위는 이익을 비교열위는 손해를 보겠지만, 경제 전체의 총이익은 양(+)의 값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됐든 국제무역은 전체적인 이익을 안겨다주기 때문에 교역을 제한해서는 안되며, 분배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개인적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다들 공유하고 있었으며, 고전 경제학 시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18세기 애덤 스미스[각주:44]는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19세기 데이비드 리카도[각주:45]는 자유무역이 계층별로 서로 다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지주와 근로자가 아닌 자본가의 이익을 높여야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46]헥셔-올린의 비교우위론[각주:47] 모두 "산업간 무역 때문에 비교열위 산업이 손해를 보게되지만, 생산요소는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할 것이며 경제 전체적으로는 양(+)의 이익을 준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특히 헥셔-올린 무역모형은 시장개방이 숙련근로자와 비숙련근로자에게 상이한 영향을 주는 분배적 측면에 주목하긴 했으나, 결국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여서 완전고용을 유지한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산업간 무역이 초래하는 분배적 영향을 과소평가 하는 경향을 띄게 되었습니다.


▶ 경제학자들의 노파심,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무역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중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커질 가능성에 대한 노파심 입니다.


이번글에서 소개한 로버트 Z. 로런스의 논문은 잭슨홀미팅에서 발표되었는데, 1983년 당시 잭슨홀미팅의 주제는 <산업변화와 공공정책>(<Industrial Change and Public Policy>) 이었습니다. 


이 주제가 가지는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초반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48]를 통해 소개했듯이, 1980년대 미국은 일본과의 경쟁이 증대되면서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일본기업들이 이득[각주:49]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미국인들은 미국정부를 향해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을 요구하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정책이 실제로 시행될 가능성을 우려스럽게 바라보았고, 1983년 잭슨홀미팅을 통해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의 폐단을 집중적으로 비판합니다. 


로버트 Z. 로런스가 "절대적인 탈산업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제조업의 상대적 비중감소는 국제무역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탈산업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비숙련) 제조업을 위한 보호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을 구사하면 미국경제의 잠재성장을 훼손시킨다"[각주:50] 라고 주장한 시대적 맥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 또한 다른 글에서 소개하였듯이 보호무역정책이 가지는 문제를 집중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각주:51]했으며, 이번글에서 소개한 2008년 보고서에서도 "이건 분명히 하자. 증가하는 교역이 실제로 분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수입보호를 정당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 분배에 악영향을 미칠 때 최선의 대응은 교역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각주:52] 라면서 노파심을 가득 드러냈습니다.


▶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


제학자들이 무역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애써 외면하면서, 대중과 정치권은 경제학계와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국제무역 확대가 경제전체적으로 양(+)의 이득을 줄지라도 당장 나에게 피해가 돌아가는데 자유무역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보호무역정책이 실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애써 피해를 축소하려는 모습은 꼴불견 그 자체 였습니다.


이러한 경제학계의 전반적인 모습에 대해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로드릭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대중논쟁장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가로채질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학자들은 국제무역에 있어 한 가지 방향만 말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유무역이 종종 자국의 분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논쟁 장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 그들은 또한 무역의 옹호자로 나설 기회도 잃고 만다." 라며 경제학자들의 노파심이 외면을 불러왔다고 지적[각주:53]합니다. 




※ 국제무역이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상세히 분석하자


다행히도 경제학자들은 2010년대 들어 국제무역이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보다 상세한 분석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보다 상세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폴 크루그먼이 2008년 보고서에서 안타까워했던 '데이터의 한계' 및 '달라진 무역구조에 대한 이해' 등의 문제를 극복한 덕분입니다.


▶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중국발 쇼크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다


2010년대 경제학자들은 중국과의 교역확대가 다른 개발도상국과의 교역과는 완전히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자들은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 라고 명명하며, 대중국 수입증대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 나갔습니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근로자가 다른 산업 및 지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면서, 국제무역이 분배 및 일자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침을 알려주었습니다.


경제학계 내에서 이러한 연구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MIT 대학의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입니다. 앞으로 다른 글을 통해 그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 수직적 특화 · 오프쇼어링 · 글로벌 밸류체인 등 달라진 세계화


  • 21세기 세계경제 구조를 이해하려면 상품(product)의 생산단계(stage), 다양한 직무(occupation)을 세부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 출처 : 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개발도상국과의 교역확대가 미국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존의 분석은 비교우위 무역모형에 기반해서 이루어졌으나, 오늘날 세계경제 구조는 복잡해졌습니다. 


21세기 세계경제 구조는 '비교우위 상품을 수출 · 비교열위 상품을 수입하는 단순한 무역구조'에서 '상품생산 과정이 개별 단계로 쪼개져서 여러 국가에 분포하는 수직적 특화 · 오프쇼어링 · 글로벌 밸류체인의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숙련집약산업과 비숙련집약산업으로 양분하여 산업간 무역 효과를 분석하는 건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제 동일 산업 내에서 생산과정(production process)과 업무단계(task stage)를 세부적으로 분리하여 살펴야 합니다. 


이것 또한 앞으로 글을 통해 소개할 계획입니다.


▶ 기업 및 사업체 단위 등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



중국발쇼크와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기업(firm) 및 사업체(plant) 단위 등 마이크로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고, 경제학자들은 보다 상세한 실증분석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미국 제조업 고용변화를 기업(frim) 및 사업체(plant) 단위에서 살펴본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제조업을 뭉뚱그려 바라보지 않고, '기존 기업 내 신규 사업체의 진출과 퇴출', '기업 자체의 진출과 퇴출' 등을 세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 중국의 경제발전과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 

→ 200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200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 현상은 중국의 경제발전과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할 필요성을 높였습니다. 

앞서 1980~90년대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하였는데, 2000년 이후 감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는 1979년 최대 1,950만명 · 1980~90년대 평균 1,700만명대를 기록하였으나, 2007년 1,400만명 · 2019년 현재 1,300만명을 기록하며 25%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중국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어왔으며 세계경제 구조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1.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s://joohyeon.com/271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s://joohyeon.com/266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s://joohyeon.com/268 [본문으로]
  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s://joohyeon.com/272 [본문으로]
  10.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신규산업에 진입하는 기업은 자금을 조달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국내에서 이 산업에 대해 아는 투자자가 없다는 겁니다. 신규 진입기업은 스스로 시장조사를 하여 투자자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줄 유인을 갖게 됩니다. 이때, 시장조사를 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하는 데 반하여 이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기업도 새로운 산업에 먼저 진입하지 않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유익한 산업이 수립되지 않는 경우가 초래되고 맙니다.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s://joohyeon.com/272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1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15. 선거인단 득표는 0 [본문으로]
  16. 모든 경제학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동일한 의견을 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의 컨센서스는 이러했습니다. [본문으로]
  17. Nonetheless, the U.S. did not experience absolute deindustrialization in the 1970s. (...) If growth is resumed, job creation and investment in manufacturing will be stimulated, and reindustrialization will occur automatically. (...) The evidence does not support the contention that major shifts in U.S. industrial and trade policies are required to maintain external equilibrium. [본문으로]
  18. And third, does "deindustrialization" refer to an absolute decline in the volume of output from (or inputs to) manufacturing, or simply a relative decline in the growth of manufacturing outputs or inputs as compared to outputs or inputs in the rest of the economy? [본문으로]
  19.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 https://joohyeon.com/233 [본문으로]
  20. Measured by the size of its manufacturing labor force, capital stock and output growth, the U. S. has not experienced absolute deindustrialization over either 1950-73 or 1973-80. [본문으로]
  21. international trade is neither the only nor the most important source of structural change. And, as I will demonstrate, in many cases trade has simply reinforced the effects of demand and technological change. [본문으로]
  22. Nonetheless, as these data make clear, there has not been an erosion in the U.S. industrial base. The decline in employment shares have been the predictable result of slow demand and relatively more rapid labor productivity growth in manufacturing because of an acceleration in capital formation. [본문으로]
  23. The decline in the manufactured goods trade balance over the past two years is not the result of a sudden erosion in U.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brought about by foreign industrial and trade policies. [본문으로]
  24.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25. 앞에서 이야기했던 'Giant Sucking Sound' [본문으로]
  2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27.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28. Thus, the data suggest that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did not have much influence on American relative wages in the 1980s. In fact, because the relative price of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fell slightly,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actually nudged relative wages toward greater equality. No regression analysis is needed to reach this conclusion. Determining that the relative international prices of U.S.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actually fell during the 1980s is sufficient. [본문으로]
  29. Thus both the relative wages and the relative employment of nonproduction workers rose in American manufacturing in the 1980s. This combination indicates that the labor-demand mix must have shifted toward nonproduction labor. [본문으로]
  30. One possible explanation for this relative employment shift is that technological change was "biased" toward the use of nonproduction labor. [본문으로]
  31. (사족 : 숙련편향적 기술진보와 임금불균등에 관해서는 로런스&슬로터의 연구도 참고할만 하지만, 대표적인 논문은 따로 있습니다.) [본문으로]
  32. Berman, Bound, Griiches. 1993. Changes in the Demand for Skilled Labor within U.S. Manufacturing: Evidence from the Annual Survey of Manufacturers. QJE [본문으로]
  33. Alan Krueger. 1993. How Computers Have Changed the Wage Structure: Evidence from Microdata, 1984-1989. QJE [본문으로]
  34. 물론 '모든' 경제학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 일레로 1990년대 후반 로버트 핀스트라(Robert Feenstra)는 아웃소싱과 오프쇼어링의 출현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죠. 핀스트라의 논리는 추후 다른 글을 통해 살펴볼 계획입니다. [본문으로]
  35.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s://joohyeon.com/219 [본문으로]
  3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s://joohyeon.com/275 [본문으로]
  3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38. Standard economic analysis predicts that increased U.S. trade with unskilled labor–abundant countries should reduce the relative wages of U.S. unskilled labor, but empirical studies in the 1990s found only a modest effect. Has the situation changed in this decade, given the surge in imports from very low wage countries? [본문으로]
  39. (factor content analyses are limited by the level of disaggregation of the input-output table,) [본문으로]
  40. It seems a foregone conclusion that aggregation is a serious problem here; why not use more disaggregated data? The answer is that within the limits of current data, there is little that can be done. [본문으로]
  41. All these examples suggest a data problem: numbers showing a rapid rise in developing country exports, and Chinese exports in particular, within sectors that are skill intensive in the United States need to be taken with large doses of salt. [본문으로]
  42. The broad picture, then, is that the apparent sophistication of imports from developing countries is in large part a statistical illusion. [본문으로]
  43. Instead what seems to be happening is a breakup of the value chain that allows developing countries to take over unskilled labor–intensive portions of skilled labor–intensive industries. And this process can have consequences that closely resemble the Stolper-Samuelson effect. [본문으로]
  4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4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46.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s://joohyeon.com/216 [본문으로]
  47.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4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49.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s://joohyeon.com/275 [본문으로]
  50. if changes in such policies are adopted, they should be made on the grounds that they improve productivity and stimulate economic growth. They should not be undertaken on the basis of fears, based largely upon confusion about the sources of economic change, that policies which appear inadvisable on domestic grounds are required for the purposes of competing internationally. [본문으로]
  5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52. Just to be clear: even if growing trade has in fact had significant distributional effects, that is a long way from saying that calls for import protection are justified. First of all, although supporting the real wages of less educated U.S. workers should be a goal of policy, it is not the goal: for example, sustaining a world trading system that permits development by very poor countries is also an important policy consideration. Second, as generations of economists have argued, the first-best response to the adverse distributional effects of trade is to compensate the losers, rather than to restrict trade. Yet whether trade is, in fact, having significant distributional effects, rather than being an all-round good thing, clearly matters. [본문으로]
  53.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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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Posted at 2019. 7. 21. 10:46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TPP 탈퇴와 NAFTA 재협상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의 첫번째 글인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에서 살펴보았듯이, 트럼프행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 하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하여 1974년 무역법 301조 등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상징하는 것은 '미국vs중국 무역분쟁' 입니다. 대통령 트럼프는 집권 7개월째였던 2017년 8월 14일,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와 기술이전 강요로 미국기업이 불합리 혹은 차별적 대우를 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하라는 명령[각주:1]을 내렸습니다. 


1년 후인 2018년 3월 22일, 301조 침해 여부를 조사한 결과가 발표[각주:2]되었고, 트럼프는 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부과를 지시합니다.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은 관세와 보복관세를 주고받으며 무역분쟁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에만 집중하면 트럼프행정부 무역정책의 큰 방향을 읽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중국 무역전쟁은 현재 미국 무역정책의 핵심이며 미래 패권을 두고 벌이는 중요한 대결이긴 하나,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180도 돌려놓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외교 · 무역 정책의 방향 : '민주주의 · 시장경제 전파 vs 미국 우선주의'


◆ 전세계 무역체제의 방향 : '다자주의 · 지역주의 vs 공격적 일방주의'


과거부터 트럼프 이전까지, 미국 무역정책은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세계로 퍼뜨리는 대외정책(foreign policy)의 일환이였습니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GATT를 통해 세계에 자유무역 질서를 세웠습니다. 1990년대 냉전이 종결되자, (아버지)부시행정부와 클린턴행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남미로 확산시키기 위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였고, 중국 · 러시아 등 공산주의 경제 국가의 WTO 가입을 지원하였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도 부시 ·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의 가치를 퍼뜨리는 수단으로 무역협정을 이용했고, 양자 자유무역협정(FTA)과 대규모 지역협정인 환태평양 경제공동체(TPP)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상을 추구했던 과거의 무역정책이 미국에게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았다고 비판합니다. 


트럼프행정부는 2017년 집권 이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무역정책 아젠다를 통해, "미국은 자유주의 경제 무역시스템을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로까지 확장해왔다. 이들 국가들이 정치 · 경제적으로 자유화되고 미국에게 이득을 안겨줄 거라고 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은 이들 국가들이 경제와 정치 개혁을 하지 않았고, 주요한 경제기관을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자유무역을 말하지만, 오직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규칙과 협정만 지킬 뿐이다.", "우리의 국가안보전략은 미국을 최우선으로 둘 것이다(This National Security Strategy puts America First)" 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가치를 전세계에 전파시키기 위해 GATT · WTO 다자주의 무역시스템(Multilateral Global Trading System)과 NAFTA · TPP 등 지역협정(Regional Agreements)을 활용했던 과거와 달리, 트럼프는 개별 국가와의 양자협정(Bilateral Agreements)을 통해 1:1로 상대하며 미국의 이익을 관철시킬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2017년 1월 20일 부임한 대통령 트럼프가 가장 먼저 내린 명령 중 하나는 'TPP 탈퇴' 였습니다. 그리고 5월 18일에는 'NAFTA 재협상'을 명령합니다. 트럼프는 "TPP를 선호하지 않으며, 양자협정이 미국 근로자에게 더 낫다", "미국은 멕시코를 상대로 600억 달러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NAFTA는 시작부터 한쪽만 유리했던 협정이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WTO 체제가 중국에게만 유리하고 미국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계속 강조해 왔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 = 대중국 무역전쟁' 으로만 바라보면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전파'를 중시했던 전통적인 외교 · 무역 정책의 방향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전환시켰고, '다자주의'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두었던 기존 무역체제를 비판하며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를 구사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과거 행정부들이 이루어 왔던 것을 되돌려 놓으려고 할까요? 이번글을 통해, 클린턴 · 부시 · 오바마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살펴보고, 트럼프가 왜 이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1990년대 클린턴행정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확산시키자

- NAFTA 체결 · WTO 창설 · 중국의 WTO 가입 지원


중국 제조업 발전 · 기술진보와 자동화 확산 · 2008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미국 중산층이 무너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를 회복시키려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나왔듯이, 클린턴행정부 무역정책 방향은 1993년~2000년 집권기의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냉전의 종식'과 '미국경제의 부활' 입니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과거 공산주의 체제로까지 확산시키고 싶어했습니다. 또한, 강렬한 반미감정을 가지고 있던 중남미와 경제적협력을 공고히하여 지정학적 안정을 달성코자 했습니다.


국제정치 변화와 더불어 1990년대 들어 미국경제가 부활하며 1980년대 미국 내에 가득했던 보호주의 압력[각주:3]도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과 플라자합의 덕분에(?) 대일 무역수지 적자 폭은 크게 줄어들었고, 미국은 1991년 4월을 시작으로 10년동안 경기호황을 이어가면서 다시 자유무역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클린턴행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세계에 퍼뜨리는 '관여와 확장'(Engagement and Enlargement)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안보 강화'(Enhancing Our Security) · '번영 제고'(Promoting Prosperity at Home) · '민주주의 확산'(Promoting Democracy)을 대외정책의 주요목표로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 1994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미국인 · 미국의 영토 · 미국의 삶의 방식 등 우리의 국가안보를 보호하는 것은 나의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이며 헌법 의무 입니다. 냉전의 종결은 미국의 안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안보를 위협했던 공산주의 팽창은 사라졌습니다. (..)


우리는 미국을 더 안전하고 번영하게 만들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진정한 글로벌 경제를 가지게 되었으며, 미국 일자리와 투자의 범위를 확장시켜 줄 겁니다. 민주주의 국가간 커뮤니티는 증진하고 있으며, 정치적안정 · 분쟁의 평화적 해결 · 인간존엄성 등이 증진될 겁니다.  (...)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의 중점목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 준비된 군사력으로 안보 보호

▷ 미국경제 부활 촉진 

▷ 해외로 민주주의 촉진시키기


우리는 안보 보호 · 미국경제 부활 · 민주주의 촉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안보가 강한 국가는 자유무역을 지지하며 민주주의 구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며 무역관계로 강하게 연결된 국가는 안정감을 느끼며 자유를 향해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는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가능성이 적으며 미국과 협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나의 행정부가 시작된 이래로, 우리는 이러한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을 취해왔습니다. NATO, NAFTA, APEC, GATT 우루과이 라운드, 동구권 민주주의 지원. (...) 우리의 국가안보전략은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인간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의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만약 우리가 세계적 문제에 능동적으로 관여한다면(engaged), 미국은 새로운 시대의 위험과 기회를 다룰 수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센 힘을 가지고 있으며, 전세계적 책임감 뿐 아니라 이익도 가지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배운 교훈은 고립주의로는 미국의 안보를 지킬 수 없다는 것과 보호무역으로는 번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더 안전하게 느끼며 기회를 가지려면, 새로운 위협을 억제하고, 외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민주주의를 해외로 확산시키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독려하며,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추구해야 합니다. (...)

냉전은 끝났으나, 미국 리더십의 필요성은 해외에서 그 어느때보다 강합니다. 나는 해외로의 적극적인 관여를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컨센서스를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이 보고서는 그 노력의 일부입니다.

- 대통령 빌 클린턴


이처럼 클린턴행정부는 안보 · 자국경제 부흥 등은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 국가들간 커뮤니티가 확장됨(enlarging the community of democratic and free market nations)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NAFTA 체결과 WTO 창설 그리고 중국의 WTO 가입 지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확산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 시장친화적 개혁을 원한 멕시코와 민주주의·시장경제를 전파하고 싶은 미국의 만남


  • 왼쪽 : 미국-멕시코-캐나다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A)을 상징하는 로고

  • 오른쪽 : 1988년~1994년, 멕시코 대통령 살리나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에서 살펴봤다시피,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시장경제와 자유무역 원리를 멀리하고 국가의 개입 · 민족자립을 우선시하는 경제체제를 가진채 미국을 향해 적대적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시장원리와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선택은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고 1980년대 외채위기를 겪게 됩니다.


결국 멕시코는 1985년 자유무역 체제인 GATT 가입을 선언하였고 1987년 제조업 상품 교역을 자유화 합니다. 그리고 1988년 집권한 대통령 살리나스(Salinas)는 생산성향상을 이끄는 국내개혁을 통해 멕시코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법률 및 정책을 통해 개혁을 시작하더라도 국내 이익집단이 강하게 반발하면 수포로 돌아가기 쉬웠고, 이를 수차례 지켜봤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멕시코를 신뢰하지 않았었습니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살리나스 대통령은 시장친화적 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맹약의 수단(commitment device)으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합니다. 


미국 (아버지)부시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은 멕시코의 제안을 역사적 기회로 바라보았습니다. 미국은 NAFTA를 통해 경제적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멕시코의 반미감정을 해소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멕시코를 시작으로 중남미 전역과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중남미의 정치경제적 안정 → 미국의 안보 강화'(a starting point for dealing with the common challenges of the Americans)[각주:4]를 노렸습니다.


1990년 6월, 미국 부시 대통령과 멕시코 살리나스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만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논의하였고, 1991년 2월 미국-멕시코-캐나다 3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의사를 발표합니다. 미국은 이미 1988년에 캐나다와 양자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자간 협정에 멕시코가 추가되는 모습을 띄게 되었습니다. 1991년 6월 공식적으로 시작된 NAFTA 협상은 1992년 8월 결론 지어졌습니다.


미국 민주당과 노조 등이 NAFTA를 극렬히 반대하면서 1992년 대선의 의제로 떠올랐으나,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도 전임 행정부가 추진한 NAFTA를 이어나갔습니다. 클린턴행정부는 "중남미 지역 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전례없는 성취는 평화와 안정 및 경제성장과 교역 촉진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NAFTA 비준은 우리의 중요한 대외정책 성취 중 하나이다. NAFTA는 미국 근로자와 기업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중남미 민주주의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중요한 걸음이 된다."[각주:5]라는 관점으로 NAFTA를 평가했습니다.


클린턴행정부는 노동과 환경 부문을 사이드협약으로 추가하는 방식으로 반대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결국 1994년 1월 1일부로 NAFTA가 발효 되었습니다. 


▶ 세계무역기구(WTO) 창설과 중국의 WTO 가입 독려

-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국에까지 확산시키자


1990년대 미국은 NAFTA와 같은 지역무역협정(regional trade agreement) 뿐 아니라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multilateral world trading system) 창설에도 힘을 썼습니다. 바로, GATT를 대체하는 세계무역기구 WTO 입니다.


이전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각주:6]을 통해, 우리는 '301조 등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사용하는 미국과 이런 미국을 제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새로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구상하는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내심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싶어했던 미국은 자신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부문 개방(GATS)과 지적재산권 보호(TRIPS) 그리고 분쟁해결기구 설립(DSB)이 포함된 새로운 무역시스템을 꿈꾸었고, 세계 각국은 1986년~1994년 간 진행된 GATT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WTO 창설을 결의합니다. 그 결과, 1995년 1월 1일부로 WTO가 출범했습니다.


특히 당시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클린턴행정부는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나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거대한 중국시장은 미국 기업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희망은 아래에 소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그대로 나옵니다.


● 1997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 새로운 세기를 위하여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개방된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우리는 중국이 시장 기반 세계경제 시스템에 통합되도록 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역장벽을 낮추고 경제활동을 왜곡하는 제약을 없앰으로써 중국의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각주:7]


● 1998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 새로운 세기를 위하여


"중국을 세계무역시스템에 통합하는 것은 명백히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중국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이다. 다음 세기를 생각한다면, 미국의 대중국 수출은 수백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중국과 정상무역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각주:8] (...) 


1997년과 1998년 정상회담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은 미국-중국 간 무역 및 경제 관계를 강화시키는 조치들에 합의하였다. 우리는 경제개혁에 관여함으로써 중국의 시장개방을 밀어붙일 것이다.[각주:9] 


중국이 WTO 회원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 그러나 중국의 가입이 상업적 기초 위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중국은 제거되어야 할 장벽들을 유지하고 있으며, WTO 가입 이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한다. 1997년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중국의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참여가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에 합의하였다.[각주:10]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중국 장쩌민 주석은 1997년 10월 워싱턴 · 1998년 6월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지며 국제부문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중국은 관세 인하와 시장개방 그리고 시장친화적 개혁을 약속하였고, 1999년 4월 주룽지 총리는 미국에 방문하여 '중국의 WTO 가입이 경제개혁 전략의 핵심' 이라고 발언했습니다. 


1999년 11월 미국과 중국은 WTO 가입을 위한 양자협상을 마무리 하였고, 시애틀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 중국의 가입을 지지했습니다. 마침내 2001년 12월 11일부로 중국은 WTO에 가입하게 됩니다. 




※ 2000년대 부시행정부, '경쟁적 자유화'를 통해 미국의 제도를 확산시키자

- 교역상대방과 양자 FTA 체결 추진

- TPP와 TTIP로 발전


2001년 집권한 공화당 부시행정부는 다른 형태로 미국의 가치 · 법률 · 제도를 확산시키고자 했습니다. 바로, 교역상대방과 1:1로 양자 자유무역협정 FTA를 체결하는 방식이며, 이러한 부시행정부의 무역정책을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라 불렀습니다.


경쟁적 자유화란 말그대로 '여러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무역자유화를 실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역자유화를 경쟁적으로 실시한다??? 이것은 과거의 무역자유화 방식과 크게 다릅니다. 전통적인 무역자유화 방식은 일방주의 혹은 상호주의[각주:11] 입니다. 다른 나라가 어떻게하든 상관없이 자국의 무역장벽을 낮추거나, 교역상대방과 협상을 통해 서로의 무역장벽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방식 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국가보다 무역장벽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낮추는 경쟁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 미국의 '경쟁적 자유화' 무역정책과 FTA 체결 확산

- 국내개혁을 원한 신흥국과 시장친화적 법률 및 규제정책을 확산하려한 미국의 만남


그런데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가 되자 경쟁의 필요성이 증대되었습니다. 자국에서 만든 상품을 외국으로 수출하고 외국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수입하던 과거의 교역형태와 달리, IT발전으로 통신비용이 하락하자 제조공장이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과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firms)이 등장하는 세계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국가의 무역정책 성공은 단순히 관세 인하를 통해 무역장벽 낮추는 게 아니라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글로벌 생산 분업 체계에 합류하는 것'(compete aggressively for the footloose international investment that goes far to determine the distribution of global production)[각주:12]이 되었습니다. 이때,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시장규제 정책 · 반독점법 · 지적재산권 보호 등 국가의 규제와 법률을 기업친화적으로 변경시키고 선진국 수준에 맞도록 탈바꿈 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흥국과 미국은 FTA 체결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신흥국은 미국과의 FTA 체결을 통해 글로벌 분업체계 참여와 미국시장 진출 뿐 아니라 국내 법률과 제도의 개혁을 이끌어내고 싶어했습니다. 미국은 자국시장 접근을 보다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대가로 미국 스타일의 시장친화적 법률과 규제정책을 외국에 확산시키면서 파트너십을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0년대 신흥국과 미국에게 FTA 체결은 단순한 무역정책이 아니라 국내 경제개혁 정책 및 대외정책 이었습니다.


(사족 : 노무현대통령은 한미FTA 추진의 이유를 '외부충격을 통한 서비스업 개혁'으로 꼽았었습니다. 즉, 당시 한국이 미국과의 FTA를 추진한 목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2001년~2005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 2005년~2006년 미 국무부 차관을 역임한 로버트 졸릭(Robert Zoellick)

  • 로버트 졸릭은 미 무역대표부 대표를 역임하며 부시행정부의 '경쟁적 자유화' 무역정책을 주도하였다.


여기서 부시행정부의 '경쟁적 자유화' 무역정책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로버트 졸릭'(Robert Zoellick) 입니다. 로버트 졸릭은 2001년~2005년 동안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역임하면서 FTA 체결을 늘려왔습니다. 2001년 부시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미국은 이스라엘 자유무역협정 · NAFTA 등 단 2개의 특혜무역협정(PTAs)만 체결하고 있었는데, 이후 싱가포르 · 칠레 · 한국 등 10여개 국가와 FTA를 체결했습니다. 


졸릭은 연설 · 언론기고 등을 통해 부시행정부 무역정책 방향을 수차례 밝혀왔습니다.


글로벌 무역시스템을 미국의 가치와 나란히 놓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권을 존중하면서 개방적이며 효율적인 시장을 독려할 수 있다. 우리는 보호주의에 빠지지 않고 핵심 노동기준, 환경보호, 건강 등을 독려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 법률준수 등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구해야 한다.[각주:13]


부시행정부가 3년전 미국 무역정책 아젠다를 새로 내놓았을 때, 우리는 계획을 분명히 그리고 공개적으로 제시했었다. 우리는 전세계 · 지역 · 양자 협정의 방식으로 자유무역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경쟁적 자유화'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다양한 방식을 동시에 사용하여 앞으로 나아갈 것이며, 장애물을 극복하거나 우회할 것이고, 개방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대의 레버리지를 활용할 것이며, 경제 및 정치 개혁의 맹약수단이 필요한 개발도상국을 타겟으로 하며,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낼 것이며, 세계경제 내 모든 지역에서 미국의 유대관계를 강화할 것이며, 자유무역을 선봉에 세울 것이다.[각주:14]


 - Evenett and Meier. 2008. An Interim Assessment of the US Trade Policy of 'Competitive Liberalization'에서 재인용


로버트 졸릭은 교역상대방들에게 미국과의 FTA에 참여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개혁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신흥국들이 가지는 것이 바로 '경쟁적 자유화'의 핵심 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FTA 체결을 더 원했던 쪽은 미국이 아니라 신흥국 이었습니다. 신흥국은 가만히 있으면 미국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 외국인 투자 유치 경쟁 · 글로벌 생산 분업 체계 참여 경쟁 등에서 다른 신흥국들에게 밀려난다는 두려움에 더 절박했습니다. 


미국은 거대한 자국시장을 지렛대로 삼아 신흥국에게 원하는 것을 비교적 손쉽게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렇게 체결한 FTA를 후속 무역협정의 모델로 삼고자 했습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100여개 이상의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WTO 라는 다자주의 무역기구(multilateral) 보다 신흥국과 1:1로 상대하는 양자 자유무역협정(bilateral)이 더 편리했습니다. 미국은 FTA를 통해 지적재산권 · 외국인투자협정 등을 자국에게 유리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TPP) 및 범대서양 무역 투자 동반자 협정 (TTIP)

'높은 수준의 21세기적 기준(high quality, twenty first century standard)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시작된 FTA는 이후 대규모 지역별 협정(Mega Regional Agreement)로 확대됩니다. 부시행정부는 애초부터 양자간 FTA를 '순차적 무역 자유화'(sequential trade liberalization)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개별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서 범위를 넓힌 다음에 범지역적 경제블록을 형성하려고 하였죠. 


바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와 범대서양 무역 투자 동반자 협정(TTIP) 입니다.



2009년부터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행정부는 부시행정부의 구상을 이어받았고, 미국 · 뉴질랜드 · 싱가포르 · 칠레 · 일본 · 캐나다 · 멕시코 · 호주 및 기타 등등 12개국이 참여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은 EU와의 대규모 지역협정을 추진하였고, 범대서양 무역 투자 동반자 협정 (TTIP)을 위한 협상을 개시합니다.


오바마행정부는 TPP를 통해 '높은 수준의 21세기적 기준(high quality, twenty first century standard)'을 관철시키고자 했습니다. TPP는 단순히 상품 관세 인하를 위한 무역협정이 아니라 금융 및 서비스부문 개방 · 경쟁정책 · 지적재산권 · 글로벌 생산 분업을 위한 원산지 규정 · 투자 · 외환 등 새로운 경제환경에 필요한 것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협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바마행정부에게 TPP는 외교정책의 일환으로도 중요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원하였고,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이라는 대외정책을 공표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로 군사력과 외교력을 재배치하였고, TPP는 중국을 제외한 경제동맹 건설을 의미했습니다.




※ WTO를 놔두고... 왜 NAFTA · 양자 FTA를 체결하고 있나 !!!

NAFTA · FTA · TPP를 비판하는 경제학자의 논리


무역협정을 이용하여 민주주의 · 시장경제 그리고 미국의 제도를 확산시키려 했던 미국 전임행정부들의 모습은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와 비교하면 딱히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아니 문제 삼는 게 이상해 보입니다. 미국만 우선시 하며 교역상대방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전세계를 생각하면서 자유무역을 전파하는 정책은 이상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 경제학자는 1990년대 · 200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을 우려스럽게 바라봤습니다. 바로,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입니다.


  •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바그와티는 이전글에서도 몇 차례 등장한 바 있습니다. 바그와티는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인 '공격적 일방주의'를 비판하며, 미국의 전통적인 호혜주의가 언제든지 상호주의와 보호주의로 돌변할 수 있으며, 80년대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훼손하는 현실을 걱정했습니다.


여기서 걱정의 핵심은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훼손' 입니다. 바그와티는 'GATT · WTO 등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Multilateral World Trading System)을 통해 전세계로 자유무역을 확산시키는 것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NAFTA 및 TPP와 같은 지역무역협정(regional trade agreement) 혹은 개별 FTA와 같은 양자 무역협정(bilateral trade agreement) 등도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자주의를 선호하는 바그와티의 논리를 살펴보기에 앞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질문을 먼저 던져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GATT와 WTO가 있었는데, 왜 일부 국가들끼리만 또 다른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그렇다면 GATT · WTO와 NAFTA · FTA · TPP 등은 무엇이 다르지?" 입니다.


▶ WTO 창설 논의 중에 이스라엘 · 캐나다와의 FTA 그리고 NAFTA를 추진한 미국 


1970년대-80년대 초반, 미국은 당시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이었던 GATT에 상당한 불만[각주:15]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GATT는 개발도상국의 비관세장벽(보조금·덤핑)과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해 유의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으며, 폐쇄적인 일본시장을 개방시키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보다 못해 GATT를 개혁하기 위해 나섰으나, 유럽은 자신들의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는데 집중하였고 개발도상국은 당연히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GATT 체제의 한계는 미국이 외국 시장을 강제로 개방시키는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GATT를 우회하여 개별 국가들과 1:1로 양자 무역협정을 맺을 수 있음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은 1986년 이스라엘 · 1988년 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함으로써, 'GATT를 개혁하지 않으면 양자 무역협정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과 양자 FTA 체결을 목격한 유럽 · 일본 등은 미국을 통제하고 회유하기 위하여 새로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창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1986년 GATT 우루과이 라운드가 개최되면서 WTO 창설 구상에 들어가게 됩니다.


즉, 1980년대 후반 미국이 맺은 2개의 양자 FTA (bilateral FTA)는 '새로운 다자주의 체제 설립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 비교적 강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다자주의 시스템인 WTO가 창설 논의 중인 와중에도 미국은 다자주의를 우회하는 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했습니다. 바로, 미국-멕시코-캐나다의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입니다. 이번글에서 살펴봤듯이, 미국은 중남미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고 싶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유럽의 경제공동체에 대항하는 북미 경제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NAFTA를 통해 '다자주의에서 합의하지 못한 사항'을 멕시코에게 강제할 수 있었습니다. '다자주의에서 합의하지 못한 사항을 강제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자주의 시스템인 GATT · WTO와 양자 FTA · 지역무역협정 NAFTA는 무엇이 다른지를 우선 알아야 합니다.

 

▶ 다자주의 시스템인 GATT · WTO와 양자 FTA · 지역협정 NAFTA는 무엇이 다른가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인 GATT · WTO는 말그대로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다자주의'(multilateral) 입니다. 1947년 23개국이 참여했던 GATT는 이후 100개 이상의 국가가 참여하였고, 오늘날 WTO에는 164개국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GATT · WTO를 지탱하는 핵심원리는 '비차별주의'(non-discrimination)와 '협상을 통한 상호양보'(mutual, reciprocal concession) 입니다.


다자주의에 참여한 국가는 교역상대국들 간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특정한 교역상대국에게만 더 낮은 관세율을 제공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하더라도, GATT · WTO 규정인 '무조건적 최혜국대우'(unconditional MFN)가 발동하여 다른 교역상대국들이 적용받는 관세율도 낮아집니다. 


그리고 GATT · WTO의 규칙 및 시장개방 대상 품목 등은 다자주의에 참여한 국가들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됩니다. 미국은 유럽과 개발도상국의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고 싶어하더라도, 다수의 국가들이 반대한다면 이를 얻을 수 없습니다. 국가들은 반대급부로 무언가를 내주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이처럼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은 '상호주의'(reciprocity)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때, GATT와 WTO는 핵심원리를 회피할 수 있는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GATT 24조에 따르면, 관세동맹 혹은 양자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지역 무역협정 등은 무조건적 최혜국대우가 적용 되지 않으며 이를 특혜무역협정(PTA, Preferential Trade Agreement)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NAFTA를 체결함으로써 멕시코 및 캐나다에게 더 낮은 관세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GATT와 WTO의 최혜국대우를 위반한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EU를 결성한 유럽은 역내 국가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PTA는 협정에 참여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차별적으로 대우할 수 있습니다.  


1947년 GATT가 만들어졌을 때 PTA를 허용했던 이유는 다자주의 자유무역을 더 완벽히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동시에 무역장벽을 허물어뜨리고 자유무역을 받아들이는 건 이를 반대하는 국내 정치적 여론이 강했기 때문에, 우선 서로 친밀한 국가들끼리 별도의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다자주의의 구멍을 메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다자주의를 완벽히 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던 PTA는 1980년대 후반이 지나자 다자주의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됩니다.


▶ 전세계가 참여하는 다자주의 세계무역 시스템, 원하는 것을 관철할 수 없다


다자주의는 말그대로 수많은 국가들이 참여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느릴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GATT는 상품시장 관세장벽 철폐를 목적으로 1947년 출범하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 덤핑 등 비관세장벽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를 철폐하기 위한 합의에 이르는데 6년이나 걸렸습니다. 또한, 농산물시장 · 서비스부문 · 지적재산권 · 분쟁해결절차를 다루는 우루과이 라운드는 무려 8년이 필요했습니다. 다수의 국가들이 의제에 찬성해야 규칙으로 제정할 수 있는 다자주의 구조에서 각국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오랜 시일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건 · 환경이슈 · 외국인투자 · 오프쇼어링 등 현대 무역협정에 필요한 다른 이슈들을 다자주의 체제에서 다룰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2001년 시작한 WTO 도하라운드는 현재까지 답보 상태에 있습니다.


결국 개별 국가들은 원하는 내용을 빠른 시일 내에 관철시키기 위하여, 다자주의 체제를 우회하여 지역무역협정 · 양자 FTA 등 특혜무역협정 PTA 체결을 늘려나갔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와 부시행정부가 추진한 양자 FTA의 내용을 살펴보면 PTA의 이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 미국 내에서는 NAFTA 체결을 둘러싼 찬반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문제는 개발도상국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NAFTA는 미국이 개발도상국과 처음 맺는 주요한 무역협정이었으며, 멕시코의 낮은 임금 때문에 미국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습니다. 위의 표에 나오듯이, 1994년 멕시코 자동차산업 근로자의 시간당 실질 인건비는 미국의 1/8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상품에 더 낮은 관세를 부과하면, 제3국 → 멕시코 → 미국의 경로로 다른나라의 상품이 우회수출 될 가능성을 염려했습니다. 특히 미국 자동차기업들은 멕시코로 생산공장을 이동시켜 저임금 근로자를 활용할 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일본 및 유럽 자동차가 멕시코를 통해 우회수출 된다면,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NAFTA를 통해 얻는 이득은 줄어듭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여 NAFTA에는 노동부문 부속협약(labor side agreement) 및 원산지 규정(rule of origin)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멕시코의 저임금을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근로자 권리 보호, 그리고 미국-멕시코-캐나다 역내에서 생산된 부품이 완성차 부가가치의 62.5%를 차지해야 한다는 역내가치비율(Regional Value Content) 조건이 요구되었습니다.


2000년대 미국이 주도한 양자 FTA와 TPP에는 노동 · 원산지규정은 물론이고, 앞서 살펴봤듯이 규제정책 · 법률 등을 개혁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미국은 FTA를 통해서 미국의 제도와 법률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동 · 원산지규정 · 외국인투자 · 지적재산권 · 제도와 법률 등을 다자주의 체제에서 관철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며 가능하다 하더라도 오랜 시일이 걸립니다. 하지만 지역무역협정 · 양자 FTA 등 특혜무역협정 PTA를 이용하면 다자주의를 우회하여 '다자주의에서 합의하지 못한 사항'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 PTA가 확산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자그디쉬 바그와티 "특혜무역협정은 자유무역이 아니다"



각국은 다자주의를 회피하기 위하여 1990년대 들어서 특혜무역협정 PTA 체결을 폭발적으로 늘려 나갑니다. 1950년~2010년, PTA 누적 건수를 보여주는 위의 그래프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 자그디쉬 바그와티는 이러한 세계 무역의 흐름 변화를 우려스럽게 바라봤습니다. 바그와티는 PTA 확산이 처음의 목적대로 자유무역 체제를 더 공고히하는 것(building blocks)이 아니라 자유무역 체제를 쓰러뜨리는 것(stumbling blocks) 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바그와티는 1990년 논문 <다자주의에서 이탈 : 지역주의와 공격적 일방주의>, 1993년 <지역주의와 다자주의 : 개괄>, 1994년 논문 <세계 무역시스템에 대한 위협 : 소득분배와 이기적 헤게모니>, 2008년 단행본 <무역시스템 내 흰개미 : 어떻게 특혜협정은 자유무역을 훼손하는가>, 2016년 단행본 <세계 무역시스템 : 트렌드와 도전> 등을 통해 특혜무역협정(PTA)과 지역주의(regionalism)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습니다.


바그와티가 비판에 사용한 논거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 특혜무역협정은 제3국을 차별하는 것이며 그 결과 무역창출(trade creation)보다 무역전환(trade diversion) 효과가 더 크다


특혜무역협정은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협정에 참여한 교역상대국에게 특혜를 줍니다. 제3국이 대접받는 최혜국대우 보다 더 낮은 관세율을 제공받을 수 있으며, 다자주의가 규정하지 않는 부문의 시장을 개방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러한 특혜 덕분에 협정 참가국 간에 더 많은 교역이 발생한다면, PTA는 무역을 창출하는 효과를 내게 됩니다. 말그대로 무역창출(trade creation) 입니다.


하지만 협정에 참여하지 않은 제3국을 차별한다는 관점에서 PTA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소비자들은 동일한 관세였다면 유럽 · 일본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를 구매했을텐데, NAFTA의 차별적 관세 영향으로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유럽 · 일본산 자동차가 더 큰 후생을 줄 수 있다면, NAFTA는 비효율적인 선택을 유발한 꼴이 됩니다. 이처럼 PTA로 인하여 자원이 더 효율적인 생산자에서 비효율적인 생산자로 이동하는 현상을 무역전환(trade diversion) 이라 합니다.


바그와티가 보기엔 지역무역협정 · 양자 자유무역협정 등의 PTA는 무역창출 보다 무역전환 효과가 더 컸습니다. 그는 "PTA 멤버들 간 교역 중 상당수가 협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교역 중 16% 만이 PTA로 인한 추가 관세 인하를 혜택을 보고 있다."[각주:16]는 근거로 무역창출 효과가 적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둘째, 강대국은 다자주의를 회피하여 이기적 헤게모니(selfish hegemon)를 휘두르고 있다.


다자주의에서 합의하지 못한 사항과 미국식 제도 · 법률을 PTA를 통해 관철시킨 미국의 행동과 의도성은 바그와티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다자주의 회피를 위해 PTA를 사용하였으나, 바그와티는 "헤게모니가 센 강대국이 비헤게모니 그룹과의 순차적 협상을 통해 더 많은 보수를 챙긴다"고 바라봤습니다.


1980년대 미국이 GATT 체제에서 벗어나 일본과 직접 반도체협정[각주:17]을 맺었듯이, 기본적으로 힘이 센 국가는 소수의 국가를 상대로 협상을 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양자 FTA는 말할 것도 없고 NAFTA · TPP 등 소수가 참여한 지역무역협정에서 우위에 있는 건 강대국 입니다. 


힘을 이용하여 외국의 시장을 개방시키는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이 '처벌전략'(punishment strategy) 라면 PTA는 '유인전략'(incentive strategy)이고, 이 둘은 형태만 다를 뿐 사실상 마찬가지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그와티는 'PTA는 제3국을 차별하는 보호무역 협정이나 마찬가지이며, NAFTA 등 지역주의는 세계 자유무역 체제를 더 공고히 하는 게 아니라 훼손시키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바그와티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PTA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자주의 세계 무역시스템인 WTO로 돌아가야 한다" 고 주장했습니다.


▶ 오프쇼어링 및 글로벌 밸류 체인 교역을 다루는 새로운 무역협정 필요성 증대



국제무역이론을 전공한 경제학자들이 기본적으로 다자주의 체제를 이상적으로 바라보긴 하지만, 모든 학자들이 바그와티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경제학자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은 '21세기 변화된 경제구조에서 깊은 수준의 지역무역협정(deep RTAs)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발드윈은 '글로벌 밸류 체인 형성'(GVC)과 '오프쇼어링 확대'(offshoring)을 중심으로 세계무역패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에 위치해있는 기업들이 공정단계에 참여하면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글로벌 밸류체인'(GVC, Global Value Chain) 이라 합니다. 전세계 여러 국가들을 잇는 글로벌 밸류체인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확산된 것이 '선진국 기업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입니다.


20세기 운송비용 하락으로 시작되었던 세계화는 '한 국가에서 만든 상품을 다른 국가에 판매하는 형태'(made-here-sold-there)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통신비용 하락한 덕분에 오늘날 세계화는 선진국의 지식(knowledge)과 개발도상국의 노동(labor)이 결합하여 '여러 곳에서 만든 상품을 다른 국가에 판매하는 형태'(made-everywhere-sold-there)로 진화했습니다.


따라서, 21세기 무역협정은 단순한 관세 인하가 아니라 생산의 분업화 · 외국인투자 · 사람과 아이디어의 이동 · 지적재산권 등을 다루어야하는데, 이를 할 수 있는 것은 다자주의 WTO가 아니라 TPP 등 '깊은 수준의 지역무역협정'(deep RTAs)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족 : 리차드 발드윈이 바라보는 '21세기 변화된 경제구조'는 향후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의 다른 글을 통해 더 자세히 다룰 계획입니다.)


▶ 행복했던 학문적 논의...


'사실상 보호주의인 PTA 대신 다자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해야한다 vs 21세기 변화된 경제구조에 맞추어 지역무역협정 등 PTA를 확대해야 되느냐' 라는 경제학자들 간 논쟁은 화해할 수 없는 토론으로 보였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자그디쉬 바그와티는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과 PTA가 형태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일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다자주의 체제 이외에 타협의 여지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학문적 논쟁은 지금 돌아보면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논의였습니다. 그 이유는 진짜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 NAFTA · TPP 등의 지역무역협정도 싫고 다자주의 체제인 WTO도 싫다 

- 트럼프 .... Make America Great Again !!!



바그와티는 다자주의와 지역무역협정을 서로 다른 것으로 평가했지만, 트럼프에게 다자주의 체제인 WTO나 지역무역협정 NAFTA · TPP는 여러 국가가 참여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입니다. 100개 이상의 국가가 참여하는 것과 3~10개 가량의 국가가 참여하는 협정 간 차이는 없습니다. 2017년 1월 20일에 부임한 대통령 트럼프는 3일만에 TPP 탈퇴 명령[각주:19]을 내렸고, 5월 18일에는 NAFTA 재협상을 명령[각주:20]합니다. 


그리고 트위터 · 연설 · 인터뷰 등을 통해 "WTO가 미국에게 불공정하다" 라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미국은 WTO 분쟁해결기구로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1974 무역법 301조를 이용하여 중국에 보복조치[각주:21]를 취했습니다. 또한, WTO의 핵심원리인 무차별적 최혜국대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를 보완하는 법안을 발의[각주:22]했습니다.


트럼프는 오직 1:1로 상대하는 양자 무역협정(bilateral trade agreement)만이 효율적이며 미국 근로자에게 이익이라고 말합니다. 양자 협상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겠다는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의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NAFTA · TPP · WTO를 싫어하는 것일까요? 트럼프행정부는 2017년[각주:23] · 2018년[각주:24] · 2019[각주:25] 무역정책 아젠다 보고서를 통해 그 이유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번 파트에서 이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 NAFTA로 인해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멕시코로 이동하였다 → USMCA로 재탄생



앞서 짤막하게 언급했듯이, 1990년대 초반 NAFTA 체결을 둘러싸고 찬반 갈등이 극심했던 이유는 '개발도상국인 멕시코'와 맺는 무역협정 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미국은 다자주의 이외에 개발도상국과 주요한 무역협정을 맺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미국 저임금 근로자들과 진보적 성향을 띄는 민주당 의원들은 기업들이 낮은 임금을 활용하려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할 것이고 이에 따라 미국 내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공장이전 가능성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4년 당시 멕시코 자동차산업 근로자의 시간당 실질 인건비는 미국의 1/8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여 NAFTA에 노동부문 부속협약(labor side agreement) 및 원산지 규정(rule of origin)을 추가했습니다.멕시코의 저임금을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근로자 권리 보호, 그리고 미국-멕시코-캐나다 역내에서 생산된 부품이 완성차 부가가치의 62.5%를 차지해야 한다는 역내가치비율(Regional Value Content) 조건이 요구되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NAFTA가 미국 근로자와 기업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NAFTA 체결 이후 25년 동안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만 갔고,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은 다른 산업에 비해 정체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2008 금융위기는 포드 · GM 등 미국 자동차 산업에 큰 충격을 주었고 러스트벨트 지역은 쇠락해 갔습니다.


트럼프대통령과 측근들은 책임 중 일부를 NAFTA에서 찾았습니다. 트럼프행정부는 2018년 및 2019년 무역정책 아젠다에 "NAFTA는 제조업 부문 일자리를 줄였고, 공장을 미국 도시에서 국경을 넘어로 이동시켰다."[각주:26]고 밝힙니다. 


트럼프행정부가 특히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멕시코로의 아웃소싱' 입니다. "NAFTA는 수천개의 미국 기업들에게 멕시코의 저임금을 활용할 기회를 제공했다. (...) NAFTA는 기업들에게 생산을 아웃소싱할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인들에게 손해를 주는 조항을 담고 있다."[각주:27]고 진단했습니다.


결국 트럼프행정부는 기존 NAFTA를 대폭 개정함으로써 미국인들을 보호하기로 합니다. 바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입니다. NAFTA를 대체할 USMCA의 주요 목표는 '아웃소싱을 독려하는 조항 피하기'(avoid provisions that will encourage outsourcing)로 설정되었습니다.



  • 1994년과 2012년, 미국 · 멕시코 · 캐나다 자동차산업 근로자 시간당 실질 인건비

  • 오늘날에도 멕시코 자동차산업 근로자의 인건비는 미국에 비해 굉장히 낮다

  • 출처 : Peterson Institute. 'NAFTA at 20 : Misleading Charges and Positive Achivements'


아웃소싱을 억누르기 위해 강화된 것 중 첫번째가 노동부문 협약 입니다. 


분명 클린턴행정부는 멕시코로의 공장이전 가능성을 우려하여 노동부문을 NAFTA에 추가했습니다. NAFTA 노동부문 협약은 멕시코 근로자의 권리 보호 · 노조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멕시코 근로자의 권리는 향상되지 않았으며, 1994년 이후 25년이 지나도록 멕시코 자동차산업 임금도 크게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오늘날에도 멕시코 자동차산업 근로자의 임금은 여전히 미국에 비해 굉장히 낮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미국 기업들은 저임금을 활용하기 위해 멕시코로 이동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트럼프행정부는 기존 NAFTA에 부속협약(side agreement)으로 있던 노동부문 조항을 USMCA에서는 본 협약으로 격상시켰고, 멕시코 근로자의 집단교섭권 강화 · 국제노동기구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멕시코 노동법 개정 등을 담아냈습니다.


이렇게 트럼프행정부는 전세계를 향해 메세지를 보냅니다. "USMCA는 교역상대국들에게 극적인 신호를 보낸다. 미국인 근로자를 이용하기 위해 혹은 미국 일자리를 빼앗는 볼공정한 노동관행을 사용하기 위해 무역협정을 이용하는 시대는 끝났다."[각주:28] 


USMCA에서 강화되고 추가된 두번째 사항은 원산지 규정(rules of origin)과 노동가치비율(labor value content) 입니다. 


기존 NAFTA에는 제3국 → 멕시코 → 미국으로의 우회수출을 방지하기 위한 원산지 규정이 들어있습니다. 미국-멕시코-캐나다 역내에서 생산된 부품이 완성차 부가가치의 62.5%를 차지해야 한다는 역내가치비율(regional value content) 조건입니다.


트럼프행정부는 이 비율이 작다고 판단하여 85%로 상향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난색을 표했고, 협상 끝에 USMCA에서는 역내 가치비율이 75%로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 유럽의 자동차 기업들이 북미 내에서 직접 생산을 더욱 늘리게끔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화된 원산지 규정은 제3국의 우회수출을 더 엄격히 규제함으로써 전세계 자동차 기업들의 북미 내 직접투자를 유도하지만, 그 북미가 미국이 아니라 멕시코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USMCA에는 '자동차 부품의 40~45%를 시간당 16달러 이상의 근로자가 생산해야 한다'는 노동가치비율(labor value content)을 추가했습니다. 멕시코의 어떤 공장도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미국으로의 리쇼어링(reshoring)을 강제하고 있는 셈입니다.


트럼프행정부는 USMCA 노동부문 및 원산지규정 강화 그리고 노동가치비율 조항 신설을 두고, "이러한 조항들은 미국 무역정책이 극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지난 수십년간 미국은 '더 낮은 임금을 이용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생산기지를 이동하는 것을 독려하는 무역협상'에 합의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접근을 채택하고 있다."[각주:29] 라고 말합니다.


▶ TPP로 혜택을 보는 곳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 TPP 탈퇴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인들은 '세계화'(Globalization)를 장밋빛 미래를 불러오는 변화로 바라봤습니다.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인들과 소통하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구 공산주의권으로까지 확산되는 시대. 


인터넷이 등장하고 이에 기반을 둔 세계화가 확산되던 1990년대에 대통령을 역임한 클린턴은 교역확대를 통해 전세계 통합을 진전시키면 미국인들도 번영을 누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NAFTA를 체결하고 WTO를 창설하고 중국의 WTO 가입을 지원했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와 비교하여 줄어들었고,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중국 입니다. 트럼프는 중국의 부상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과거 행정부의 잘못된 무역협상이 이를 만들어냈다고 진단했습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부임 3일만에 TPP 탈퇴 명령을 내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TPP 탈퇴를 의아하게 바라봤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TPP를 형성하려고 했던 목적이 중국에 대한 견제 였기 때문입니다. 부시행정부는 미국의 제도와 법률을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TPP를 구상하였고, 오바마행정부는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이라는 대외정책 목표 하에 환태평양 국가들의 TPP 가입을 이끌었습니다.


트럼프행정부가 우려한 점은 TPP의 '약한 원산지 규정'(weak rules of origin) 입니다. 일례로 TPP의 자동차 원산지 규정에서 요구하는 역내가치비율은 45%인데, 이는 기존 NAFTA와 새 USMCA와 비교하여 낮은 수준입니다. 이로 인해 TPP 미가입국도 자동차 부품 55%를 제공하면서 미국시장에 이전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만약 TPP 미가입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임금이 낮고 근로자 보호가 취약하다면 문제는 악화됩니다. 전세계 기업은 저임금 TPP 미가입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TPP 국가들과 밸류체인을 형성함으로써 관세혜택에 편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행정부는 TPP의 약한 원산지 규정을 이용하여 아웃소싱과 우회수출을 꾀할 국가로 중국을 지목합니다. 


"혹자는 미국이 TPP에 가입함으로써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다룰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TPP 가입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음을 정확히 인지하였다. 일례로, 미국 근로자가 겪는 주요한 문제는 기업들의 아웃소싱 이다. TPP의 원산지 규정 하에서, 자동차 생산의 55%를 담당하는 중국과 45%를 담당하는 베트남이 미국시장에 관세 없이 들어올 수 있다. TPP의 노동, 환경, 지적재산권, 통화 조항 등은 미국의 우려를 다루기에 부적합하다. 요약하면, TPP는 아웃소싱을 더욱 초래하며 미국 근로자를 더욱 불리하게 만든다"[각주:30]


▶ WTO 무조건적 최혜국대우는 외국의 높은 관세율을 허용한다 → 2019 상호교역법 


트럼프행정부는 NAFTA · TPP 등 지역무역협정을 비판하지만 (바그와티 처럼) 다자주의 기구인 WTO를 선호하지도 않습니다. 트럼프행정부는 '다자주의 무역시스템 개혁하기'(Reforming the Multilateral Trading System)을 2018년 무역정책의 5대 목표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트럼프행정부가 WTO에 대해 문제 삼는 부분은 크게 2가지이며, 첫째는 무조건적 최혜국대우(unconditional MFN)이고 둘째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다루지 못하는 분쟁해결기구 입니다. 이번글에서는 왜 미국이 WTO의 무조건적 최혜국대우를 문제 삼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글 앞부분에서 설명하였듯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인 GATT · WTO를 지탱하는 핵심원리는 '비차별주의'(non-discrimination) 입니다. 다자주의에 참여한 국가는 교역상대국들 간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특정한 교역상대국에게만 더 낮은 관세율을 제공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하더라도, GATT · WTO 규정인 '무조건적 최혜국대우'가 발동하여 다른 교역상대국들이 적용받는 관세율도 낮아집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WTO의 최혜국대우 적용이 '무조건적'(unconditional) 이라는 점입니다. 


최혜국대우는 여러 교역상대국들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나의 교역상대국들 간에 차별을 두지 말라는 의미이지, 상대방이 나에게 대우하는 만큼 나도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상호주의적 의미가 아닙니다(non-reciprocal tariff). 


예를 들어, A국가가 B, C, D 국가의 수입품들에 동등하게 10%의 관세율을 부과하고 B국가는 A, C, D 국가에 동등하게 3%의 관세율을 부과하고 있다면, A와 B 국가는 서로 다른 관세율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A와 B국가는 각자의 교역상대국들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점에서 최혜국대우를 준수한 겁니다. 


만약 최혜국대우가 '조건적'(conditional) 이라고 한다면, B국가는 A국가를 향해 "너도 나에게 3%의 관세율을 부과해야만 최혜국대우 적용을 해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만 10%의 관세율을 부과하겠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호동등한 관세를 조건부로 최혜국대우를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WTO가 요구하는 최혜국대우는 '무조건적'(unconditional) 이기 때문에, WTO 가입국들은 '상호동등하지 않은 관세'(non-reciprocal tariff)를 주고받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번글의 위에서 언급했듯이, WTO는 상호주의(reciprocity)를 기본원리로 하나 시장개방을 두고 서로 간에 협상과 양보를 한다는 의미일 뿐, 상호동등한 관세율을 주고받음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사족 : 상호주의reciprocity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이전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참고)


미국은 바로 이 점이 불만입니다. 



백악관 무역 및 제조업정책 위원회는 2019년 5월 발간한 보고서 <미국 상호교역법 : 일자리와 무역적자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현재 미국이 얼마나 불공정한 교역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은 중국 · EU · 브라질 등 교역상대방의 자동차 수입품에 2.5%의 관세율을 동일하게 부과하며 최혜국대우를 준수하고 있으나, 상대국들은 미국산 자동차에 각각 15% · 10% · 35%의 관세율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산 뿐 아니라 다른나라에서 생산된 자동차에 대해서도 동등한 관세율을 부과하여 최혜국대우를 준수할테지만, 어찌됐든 미국 입장에서는 상호동등하지 않은 교역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동차 뿐 아니라 다른 상품에도 이러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백악관 무역 및 제조업정책 위원회는 "2018년 미국 무역적자는 6,220억 달러를 기록하며 10년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무역대표부가 말하듯이, 국제교역장에서 지속되는 불공정하고 비상호적인 교역관행(unfair and nonreciprocal trading practices)이 미국 무역적자를 초래하고 있다. 비상호적인 교역이 발생하는 원천은 WTO하의 최혜국대우 규칙이다."[각주:31] 라고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를 교정하기 위하여 2019년 1월 24일 하원의원 숀 더피(Sean Duffy)의 주도로 '2019년 상호교역법'(US Reciprocal Trade Act 2019)을 발의했습니다. 


2019년 상호교역법의 내용은 '만약 외국이 부과하는 관세율이 높거나 비관세장벽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대통령은 이를 낮추거나 제거할 협상 권한을 갖게 된다. 만약 외국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대통령은 외국의 보호주의를 제거할 상호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역장벽 철폐를 위해 대통령에게 무역협상 권한을 위임했던 '1934년 호혜통상법'(RTAA, 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은 호혜주의 로부터 나왔으, '2019년 상호교역법'은 상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글에서 강조한 reciprocity의 2가지 다른 의미-호혜주의vs상호주의-[각주:32]의 차이가 명백히 보여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연두교서에서 "미국 상호교역법은 외국을 협상 테이블로 데려와서 관세를 낮출 수 있는 놀라운 도구가 될 것이다"[각주:33]라고 발언하며, 양원 의회에서의 법안 통과를 주문했습니다.




※ 무역법 집행과 양자 재협상을 통한 미국 우선주의 실현


이처럼 트럼프행정부가 보기엔 NAFTA · TPP · WTO 등은 미국의 이익을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통해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려는 건 이상이었을 뿐, 미국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지역무역협정이냐 다자주의냐는 것은 경제학자들에게나 중요한 구분일 뿐, 이제부터 해야할 일은 외국의 불공정 무역과 오프쇼어링으로부터 미국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 외교 · 무역 정책의 방향 : '민주주의 · 시장경제 전파 vs 미국 우선주의'


◆ 전세계 무역체제의 방향 : '다자주의 · 지역주의 vs 공격적 일방주의'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 방향은 명확합니다. 미국인들의 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1974 무역법 301조 등을 사용하여 외국의 불공정 및 비상호적인 무역관행을 시정케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를 구사하겠다 입니다.


대통령 트럼프는 후보시절부터 공정한(fair) · 균형잡힌(balanced) · 상호적인(reciprocal) 무역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해왔고, 집권 이후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실제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2017년[각주:34] · 2018년[각주:35] · 2019[각주:36] 무역정책 아젠다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행정부가 내놓은 무역정책 목표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 미국을 최우선으로 두며, 미국인을 위해 불균형한 협정을 바로잡는다

- 2018년 무역정책 아젠다 : Putting America First

- 2019년 무역정책 아젠다 : Rebalancing Trade to Benefit Americans


▶ 미국 무역법의 강력한 집행

- 2017년 무역정책 우선순위 4가지 중 : Strictly Enforcing U.S. Trade Laws

- 2018년 무역정책 우선순위 5가지 중 : Aggressive Enforcement of U.S. Trade Laws

- 2019년 무역정책 우선순위 3가지 중 : Strictly Enforcement of U.S. Trade Laws


▶ 새롭고 더 나은 무역협상 추진

- 2017년 무역정책 우선순위 4가지 중 : Negotiating New and Better Trade Deals

- 2018년 무역정책 우선순위 5가지 중 : Negotiating Better Trade Deals

- 2019년 무역정책 우선순위 3가지 중 : Pursuing New Trade Deals


▶ 다자주의 무역시스템 개혁

- 2018년 무역정책 우선순위 5가지 중 : Reforming the Multilateral Trading System

- 2019년 무역정책 : Defending U.S. Interests at the WTO




※ 국제무역은 정말로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없애고 임금을 낮추었을까?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국제무역은 정말로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없애고 임금을 낮추었을까요?" 다르게 말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없애고 저임금 근로자 삶이 힘들어진 원인이 국제무역에 있을까요?"


경제학자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와 200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이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2010년대 들어 동의하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국제무역이 특정 산업 근로자에게 피해를 주었으나, 전반적인 미국경제와 소비자들에게는 이익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국제무역이 일자리 · 근로자 임금 · 기업 이윤 · 소비자 후생 등에 미친 영향'은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제 다음글과 앞으로 계속 연재될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를 통해, 국제무역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참고자료>


▶ 미국 공식 보고서


클린턴행정부 1994 · 1995 · 1996 · 1997 · 1998 · 2000 · 2001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부시행정부 2002 · 2006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오바마행정부 2010 · 2015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트럼프행정부 2017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미 무역대표부 2017 · 2018 · 2019 미 무역정책 아젠다 및 연간 보고서


백악관 무역 및 제조업정책 위원회 2019년 5월 <미국 상호교역법 : 일자리와 무역적자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 미국 무역정책 개괄


백창재. 2015. 미국 무역정책 연구


Irwin, D. 2017. Clashing over Commerce: A History of US Trade Policy


▶ NAFTA


Krugman. 1993. The Uncomfortable Truth about NAFTA_ It's Foreign Policy, Stupid


Tornell, Esquivel. 1995. The Political Economy of Mexico's Entry to NAFTA


Peterson Institute. 2014. NAFTA 20 YEARS LATER


▶ 경쟁적 자유화


Bergsten. 1996. Competitive Liberalization and Global Free Trade


Feinberg. 2003. The Political Economy of United States’ Free Trade Arrangements


Evenett, Meier. 2008. an Interim Assessment of the US Trade Policy of 'Competitive Liberalization'


▶ 지역주의와 다자주의


Bhagwati. 1990. Departures from Multilateralism- Regionalism and Aggressive Unilateralism


Bhagwati. 1993. Regionalism and Multilateralism: an overview


Bhagwati. 1994. Threats to the World Trading System- Income Distribution and the Selfish Hegemon


Bhagwati. 2008. Termites in the Trading System- How Preferential Agreements Undermine Free Trade


Bhagwati, Krishna, Panagariya. 2016. The World Trade System- Trends and Challenges


Bhagwati, Panagariya. 1996. Preferential Trading Areas and Multilateralism - Stranges, Friends or Foes


Baldwin. 2014. Multilateralizing 21st Century Regionalism


  1. Presidential Memorandum for the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2017.08.14 [본문으로]
  2. USTR Press Release. 2018.03.22 - President Trump Announces Strong Actions to Address China’s Unfair Trade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4. 클린턴행정부 고어 부통령이 평가한 NAFTA - 1994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본문으로]
  5. The unprecedented triumph of democracy and market economies throughout the region offers an unparalleled opportunity to secure the benefits of peace and stability, and to promote economic growth and trade. Ratification of NAFTA is one of our most important foreign policy achievements, because it advances all three of our central objectives: not only does it mean new jobs and new opportunities for American workers and business, but it also represents an important step in solidifying the hemispheric community of democracies. - 1994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https://joohyeon.com/279 [본문으로]
  7. China: The emergence of a politically stable, economically open and secure China is in America's interest. Our focus will be on integrating China into the market-based world economic system. An important part of this process will be opening China's highly protected market through lower border barriers and removal of distorting restraints on economic activity. We have negotiated landmark agreements to combat piracy and advance the interests of our creative industries. We have also negotiated and vigorously enforced agreements on textile trade. [본문으로]
  8. Bringing the PRC more fully into the global trading system is manifestly in our national interest. China is one of the fastest growing markets for our goods and services. As we look into the next century, our exports to China will support hundreds of thousands of jobs across our country. For this reason, we must continue our normal trade treatment for China, as every President has done since 1980, strengthening instead of undermining our economic relationship. [본문으로]
  9. At their 1997 and 1998 summits, President Clinton and President Jiang agreed to take a number of positive measures to expand U.S.-China trade and economic ties. We will continue to press China to open its markets (in goods, services and agriculture) as it engages in sweeping economic reform. [본문으로]
  10. It is in our interest that China become a member of the WTO; however, we have been steadfast in leading the effort to ensure that China’s accession to the WTO occurs on a commercial basis. China maintains many barriers that must be eliminated, and we need to ensure that necessary reforms are agreed to before accession occurs. At the 1997 summit, the two leaders agreed that China’s full participation in the multilateral trading system is in their mutual interest.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https://joohyeon.com/279 [본문으로]
  12. Bergsten. 1996. Competitive Liberalization and Global Free Trade [본문으로]
  13. [W]e need to align the global trading system with our values. We can encourage open and efficient markets while respecting national sovereignty. We can encourage respect for core labor standards, environmental protection, and good health without slipping into fear-based campaigns and protectionism. And we must always seek to strengthen freedom,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본문으로]
  14. When the Bush Administration set out to revitalize America’s trade agenda almost three years ago, we outlined our plans clearly and openly: We would pursue a strategy of ‘competitive liberalization’ to advance free trade globally, regionally, and bilaterally. By moving forward simultaneously on multiple fronts the United States can: overcome or bypass obstacles; exert maximum leverage for openness, target the needs of developing countries, especially the most committed to economic and political reforms; establish models of success, especially in cuttingedge areas; strengthen America’s ties with all regions within a global economy; and create a fresh political dynamic by putting free trade on the offensive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s://joohyeon.com/277 [본문으로]
  16. 바그와티는 여러 논문, 단행본을 통해 동일한 주장을 제기. [본문으로]
  1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1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s://joohyeon.com/272 [본문으로]
  19. Presidential Memorandum Regarding Withdrawal of the United States from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Negotiations and Agreement - 2017년 1월 23일 [본문으로]
  20. USTR: Trump Administration Announces Intent to Renegotiate 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 2017년 5월 18일 [본문으로]
  21. Presidential Memorandum for the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 2017년 8월 14일 [본문으로]
  22. White House Office of Trade and Manufacturing Policy. 'The United States Reciprocal Trade Act: Estimated Job & Trade Deficit Effects'. 2019년 5월 [본문으로]
  23. USTR. 2017 Trade Policy Agenda and 2016 Annual Report [본문으로]
  24. USTR. 2018 Trade Policy Agenda and 2017 Annual Report [본문으로]
  25. USTR. 2019 Trade Policy Agenda and 2018 Annual Report [본문으로]
  26. USTR. 2018 Trade Policy Agenda and 2017 Annual Report. For these Americans, NAFTA has meant job losses, especially in the manufacturing sector, and the closing down and relocation of factories from American towns and cities across both borders. [본문으로]
  27. USTR. 2018 Trade Policy Agenda and 2017 Annual Report. First, NAFTA provided thousands of American companies with the opportunity to pay far lower wages to workers in Mexico. (...) Further, NAFTA contained terms that fell short for the American people by incentivizing – intentionally or not – companies across America to outsource production, especially to Mexico. [본문으로]
  28. USTR. 2019 Trade Policy Agenda and 2018 Annual Report. In short, the USMCA sends a dramatic signal to our trading partners: the time for using trade deals to take advantage of American workers, or to use unfair labor practices to steal U.S. jobs, is over. [본문으로]
  29. USTR. 2019 Trade Policy Agenda and 2018 Annual Report. These provisions represent a dramatic change in U.S. trade policy. For decades, the United States signed trade deals that often encouraged companies to shift production from this country into other countries with much lower labor costs. Now, we are taking a different approach [본문으로]
  30. USTR. 2019 Trade Policy and 2018 Annual Report. Some have suggested that the United States could have addressed these difficulties by joining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TPP), a proposed free trade deal with 11 other countries in North America, South America, and the Pacific Region. President Trump correctly recognized, however, that joining the TPP would have made the situation worse. For example, one major problem for U.S. workers is that the rules of trade encouraged companies to outsource production to countries with weaker labor and environmental rules than the United States. Under the rules of origin contained in the TPP, an automobile with 55 percent of its production in China – and 45 percent of the production in Vietnam – would have entered the U.S. market duty free. TPP provisions on labor, the environment, intellectual property, and currency were all insufficient to address longstanding U.S. concerns. In short, the TPP would have spurred further outsourcing, and put U.S. workers at even more of an unfair disadvantage. [본문으로]
  31. Meanwhile, the overall US trade deficit, including goods and services, reached a 10-year high of $622 billion in 20188 while the US trade deficit in goods hit a record level of $891 billion.9 As the USTR has extensively documented, unfair and nonreciprocal trading practices continue to dominate the competitive landscape of international trade10 and contribute significantly to this deficit. One key source of nonreciprocal trade is a principle under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WTO) known as the “most favored nation” rule. [본문으로]
  3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https://joohyeon.com/279 [본문으로]
  33. The US Reciprocal Trade Act will be an incredible tool to bring foreign countries to the negotiating table and to get them to lower their tariffs. [본문으로]
  34. USTR. 2017 Trade Policy Agenda and 2016 Annual Report [본문으로]
  35. USTR. 2018 Trade Policy Agenda and 2017 Annual Report [본문으로]
  36. USTR. 2019 Trade Policy Agenda and 2018 Annual Report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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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

Posted at 2019. 7. 11. 21:44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미국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 (AMERICA FIRST !!!)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 (MAKE AMERICA GREAT AGAIN !!!)



● 2015년 6월 16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 


우리가 승리하는 걸 본 때가 언제인가요? 말해봅시다. 중국과의 무역협상? 중국은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꺽었을 때가 언제인가요? 일본은 매년 수백만대의 차량을 수출합니다. 우리는 뭐하나요? 도쿄에서 쉐보레 자동차를 본 때가 언제인가요? 그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국경에서 멕시코를 눌렀을때가 언제인가요? 멕시코는 우리의 멍청함을 비웃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멕시코는 경제적으로 우리를 해치고 있습니다.


미국은 다른 모든 국가들의 문제가 쏟아지는 쓰레기 투기장이 되었습니다. (...)


미국의 진짜 실업률은 18%~20% 입니다. 5.6%를 믿지 마세요. 많은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자리를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죠. 중국과 멕시코가 우리의 일자리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든 일자리를 가져갔습니다. (...)


(기존 정치인들은) 일자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중국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언제인가요? 중국은 우리가 믿을 수 없을 수준까지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우리 미국 기업들은 경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중국은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


오늘날 우리 미국은 정말로 위대한 리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진정 위대한 리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거래의 기술』을 써냈던 리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일자리와 제조업을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


나는 중국, 멕시코, 일본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들로부터 일자리를 다시 가지고 올 겁니다. 나는 우리의 일자리와 우리의 돈을 가지고 올 겁니다. (...)


슬프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더 크고 더 낫고 더 강하게 되돌려 놓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겁니다(We Will Make America Great Again).


- 2016 대통령선거 출마선언식 영상[각주:1] / 텍스트[각주:2]


● 2017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 연설


오늘 내가 하는 맹세는 모든 미국인들을 향한 것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미국산업을 희생시켜 외국산업을 키웠습니다. 우리 군대가 슬프고 비통함에 빠져 있는 동안 외국의 군대를 보조했습니다. 우리 국경을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 국경을 방어했습니다. 다른 나라에 수조달러를 쓰는 동안 미국의 인프라는 낙후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 · 강함 · 신뢰가 사라지는 동안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씩 공장들은 문을 닫으며 떠났고, 수백만명의 미국인 근로자가 남겨졌습니다. 우리 중산층의 부는 미국 내에서 사라졌고 전세계로 배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과거의 일입니다. 지금부터 미래를 바라봅시다. 오늘부터 새로운 비전이 미국에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미국이 최우선시 될 겁니다(it's going to be America First).


무역, 조세, 이민, 외교 등 모든 결정이 미국 근로자와 미국 가족들에게 이익을 주도록 할겁니다. 우리의 상품을 만들고, 우리의 기업을 빼앗고, 우리의 일자리를 파괴하는 외국으로부터 우리의 국경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보호는 번영과 강함을 가져다 줄 겁니다. 


나는 미국인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싸울 겁니다. 나는 미국인들이 쓰러지도록 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은 다시 승리할 겁니다. 우리는 일자리를 가져올 겁니다. 우리는 국경을 가져올 겁니다. 우리는 부를 가져올 겁니다. 우리는 꿈을 가져올 겁니다. (...)


우리는 두 가지 단순한 규칙을 따를 겁니다 :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미국인들을 고용한다.(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


우리는 전세계의 국가들과 친선과 우호를 다질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익이 최우선 이라는 점을 항상 생각할 겁니다. (...)


우리는 미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겁니다. 우리는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겁니다. 우리는 미국을 다시 자랑스럽게 만들겁니다. 우리는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 만들겁니다. 그리고, 네, 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겁니다(We Will Make America Great Again). 감사합니다.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미국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 2017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 연설 영상[각주:3] / 텍스트[각주:4]




※ 2017년 8월 14일 - 미국,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개시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 !!!)를 선거구호로 내세우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를 표방해온 도널드 트럼프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승리를 거두며 2017년 1월 20일부로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부임합니다. 


선거 당시부터 '무역적자' · '일자리 상실'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왔던 트럼프는 부임 7개월 후인 2017년 8월 14일 행정명령을 내립니다. 그 대상은 바로 '중국'(China) 입니다.



미국의 헌법과 법률이 대통령인 나에게 부여한 권한으로,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린다. (...)


● Section 1. 정책


이것은 무역관계가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미국의 무역수지를 우호적으로 만들고, 미국 상품과 투자의 상호대우를 촉진하고, 미국의 제조업 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한 정책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R&D 집약 고기술 부문을 가지고 있다. 지적재산권 위반과 불공정한 기술이전은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한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자국 기업에게 이전할 것을 요구하고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법률, 정책, 관행을 시행해오고 있다이러한 법률 · 정책 · 관행 등은 미국의 수출을 가로막고, 미국인들이 받아야 할 혁신의 정당한 보수를 빼앗고, 미국의 일자리를 중국으로 이동시키고,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를 키우고, 미국의 제조업 · 서비스 · 혁신을 훼손한다.


● Section 2. 조사를 시행할지 여부를 결정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1974년 무역법 302조에 따라 조사여부를 곧 결정할 것인데, 중국의 법률 · 정책 · 관행 · 행위가 불합리한지(unreasonable) 혹은 차별적인지(discriminatory) 그리하여 미국의 지적재산권과 혁신, 기술발전을 훼손하는지가 조사 대상이다.


- 2017년 8월 14일, 대통령 메모


위의 행정명령에도 드러나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intellectual property theft)와 기술이전 강요(forced technology transfer)를 문제삼고 있습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자국시장 진입을 허가해주는 조건으로 중국기업과의 합작회사 설립 · 기술이전 등을 강요해 왔습니다. 또한, 중국 당국은 외국기업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며 자국기업만 우대했고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를 방조해 왔습니다. 이렇게 중국은 미국의 기술을 무단도용하며 전자산업을 육성시켰고, 단순가공 위주인 제조업을 최첨단 혁신 주도로 전환하기 위한 'Made in China 2025' 프로젝트를 출범시켰습니다.


트럼프와 대중 강경파 인사들은 중국의 도둑질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를 좌시하면 미국의 현재이익이 침해됨은 물론이고, 향후 5G · AI 등 미래 기술부문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1974년 무역법 301조를 카드로 꺼냈습니다. 행정명령에는 302조를 언급했으나, 302조는 301조를 시행하는 절차를 담은 조항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미 무역대표부(USTR)를 향해, 중국의 법률 · 정책 · 관행 · 행위가 불합리한지(unreasonable) 혹은 차별적인지(discriminatory)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같은 날 미 무역대표부(USTR) 라이트하이저(Lighthizer) 대표는 "우리는 조사를 시행할 것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미국 산업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이다"[각주:5] 라는 성명문을 내놓으며 조사에 착수했습니다[각주:6]


그리고 1년 후인 2018년 3월 22일, 301조 침해 여부를 조사한 결과가 발표[각주:7]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부과를 지시합니다.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은 관세와 보복관세를 주고받으며 무역분쟁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의 데자뷔??? 공통점과 차이점


  • 중국은 과거 일본처럼 될 것인가? 

  • 출처 : WSJ[각주:8]


▶ 공통점 - ① 무역수지 적자 ② 첨단산업 주도권 경쟁 ③ 공격적 일방주의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은 여러모로 1980년대의 무역정책을 연상케 합니다분쟁 상대국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변화되었을 뿐, 당시 분쟁의 논점과 미국인들이 느꼈던 감정 그리고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활용한 수단 등이 오늘날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① 1980년대 : 대일 무역수지 적자 = 2010년대 : 대중 무역수지 적자


  • 아래 : 1987년~2017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중 일본과 중국의 비중 추이 

  • 출처 : WSJ[각주:9]


지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10]를 통해 살펴봐왔듯이, 1980년대 미국 정치인과 국민들은 대일 무역수지 적자 확대를 우려스럽게 바라봤습니다. 당시 미국의 전체 무역수지 적자액 중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달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그 역할을 대신 하고 있습니다. 1999년 미-중 양자 무역협정 체결한 이후,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해마다 늘어왔습니다. 위에 첨부한 그래프는 지난 30년 사이 일본과 중국의 바뀐 역할(Trading Places)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② 1980년대 : D램 등 첨단 하이테크 산업 = 2010년대 : 5G · AI 등 4차산업 주도권 경쟁


  • 1980년대 : 전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일본기업이 차지했던 위상

  • 2010년대 : 5G 네트워크 분야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화웨이


1980년대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가득찬 건 '하이테크 산업'(High-Tech Industry) ·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이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D램 · 가전 등 첨단 전자산업에서 "일본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각주:11]라고 생각했고, 미국 정부가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기업을 돕는 전략적 무역정책'[각주:12]을 구사하기를 바랐습니다.


더 나아가서, 미국인과 기업들'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이 극히 적은 폐쇄적인 일본시장을 개방시키기'[각주:13]를 원하였습니다. 공정무역(fair trade) 및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 라는 구호 아래, 미국은 일본에게 '향후 5년내 일본시장에서 외국산 반도체 상품 점유율 20%를 기록한다'는 내용이 담긴 반도체 협정[각주:14]과 엔화가치를 절상시키는 플라자합의를 관철시켰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5G · AI 등 4차산업 주도권을 중국에게 내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서유럽 등 전통 우방국을 향해 "5G 네트워크 인프라 건립에서 중국 화웨이 장비를 제외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으며,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가 미국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제 리스트에 등재[각주:15]했습니다. 또한,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와 기술도용을 문제 삼으며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4차산업 주도권 경쟁을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③ 다자주의 체제를 무시한 채, 1974년 무역법 301조를 이용하여 공격적 일방주의 구사



1980년대 미국 레이건행정부는 대일 무역수지 적자 · 폐쇄적인 일본시장 · 일본정부의 보조금 지원 등을 시정하기 위하여 1974년 무역법 301조를 이용한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각주:17]을 구사했습니다. 당시 GATT 라는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이 존재하였으나, 미국은 GATT로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017년 집권한 미국 트럼프행정부 역시 현재의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인 WTO 내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자국의 법률인 1974년 무역법 301조에 따라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조사하고 보복 조치[각주:18]를 가했습니다.


1980년대 폭주하던 미국의 행보를 제어하기 위하여 새로운 다자주의 체제인 WTO가 만들어졌으나, 30년 만에 다시 미국에서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각주:19]


▶ 차이점 - ① 선진국↔개발도상국 간 교역 ②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 ③ 미국 우선주의


그런데 1980년대와 현재는 또 많은 면에서 다릅니다. 2차대전 이전부터 선진국이었던 일본과의 무역이 미국인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개발도상국 중국과의 교역 확대가 가져오는 충격은 다릅니다. 또한, IT 발전과 세계화 확산에 따라 글로벌 경제구조가 달라졌습니다. 게다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중화사상을 고수하는 중국은 미국이 보기엔 완전히 다른 상대방 입니다. 


① 1980년대 : 선진국 ↔ 선진국 간 교역 ≠ 2010년대 : 선진국 ↔ 개발도상국 간 교역


1980년대 미국과 일본의 교역은 기본적으로 선진국 ↔ 선진국 간 교역 입니다. 이른바 '북-북 교역'(North-North)[각주:20] 입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미국과 중국의 교역은 선진국 ↔ 개발도상국 간 교역, 이른바 '북-남 교역'(North-South) 입니다. 


북-북 교역과 북-남 교역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확연히 다릅니다. 


선진국끼리는 경제구조나 생산하는 품목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주로 산업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이 행해지며 상품다양성의 이익[각주:21]을 누리게 됩니다. 따라서, 수입증가에 따른 비교열위 산업 퇴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경제구조와 생산하는 품목이 완전히 다릅니다. 선진국은 지식집약적인 상품을 주로 생산하고, 개발도상국은 노동집약적인 상품을 만듭니다. 이때 양국간 교역이 활발해지면 선진국으로 개발도상국의 노동집약 상품이 들어오게 되고, 선진국 저임금 · 저숙련 근로자가 만들던 상품은 비교열위가 되어 시장에서 퇴출됩니다. 즉, 수입경쟁 산업의 퇴출과 근로자 실업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각주:22]  


  • 대중국 수입 확대로 인한 피해 정도를 지리적 분포에 따라 보여주고 있음

  • 개발도상국인 중국과의 교역 증가는 미국 내 가구, 목재, 인형, 면화 등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들 일자리는 주로 테네시스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등 남동부에 집중되어 있다

  • 또한, 전통 제조업이 위치한 오하이오 · 인디애나 · 미시간 등 러스트벨트 지역도 큰 피해를 입었다

  • 출처 : The China Trade Shock


이런 이유로, 2000년대 이후 미국이 맞딱드린 주요한 문제 중 하나는 '중국발 무역 쇼크'(the China Trade Shock) 입니다. 13억명에 달하는 저임금 · 저숙련 근로자를 이용한 중국산 단순가공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자, 미국 저임금 · 저숙련 근로자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위에 첨부한 그래픽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발 무역쇼크를 연구해 온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인 중국과의 교역 증가는 미국 내 가구, 목재, 인형, 면화 등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들 일자리는 주로 테네시스 · 미시시피 · 앨라배마 · 조지아 등 남동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한, 전통 제조업이 위치한 오하이오 · 인디애나 · 미시간 등 러스트벨트 지역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② 글로벌 밸류체인(GVC) · 오프쇼어링(offshoring) 등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는 애플의 아이폰(iPhone)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폰은 캘리포니아 애플 본사에서 디자인 · 설계 +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 조립되어 완성됩니다. 아이폰 뒷면에 나오듯이 말그대로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 · 중국에서 조립된 아이폰'(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 입니다. 이뿐 아니라, 아이폰 생산에는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한국의 삼성전자도 참여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국가에 위치해있는 기업들이 공정단계에 참여하면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글로벌 밸류체인'(GVC, Global Value Chain) 이라 합니다. 


20세기 운송비용 하락으로 시작되었던 세계화는 '한 국가에서 만든 상품을 다른 국가에 판매하는 형태'(made-here-sold-there)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통신비용 하락한 덕분에 오늘날 세계화는 선진국의 지식(knowledge)과 개발도상국의 노동(labor)이 결합하여 '여러 곳에서 만든 상품을 다른 국가에 판매하는 형태'(made-everywhere-sold-there)로 진화했습니다.


전세계 여러 국가들을 잇는 글로벌 밸류체인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확산된 현상이 '선진국 기업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입니다. 선진국 기업은 저임금 · 저숙련 일자리를 개발도상국으로 이동시켰고, 그 결과 선진국 내에서 제조업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1980년 미국 전체 근로자 대비 제조업 근로자 비중은 약 23% 였으나, 2019년 현재는 약 8.5%에 불과합니다. 


물론, 1980년대에도 제조업 비중이 줄어들고 서비스업 비중이 늘어나는 탈공업화 현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었으나, 오늘날에는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며 일자리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가 가고 있습니다. 이번글의 서문에 나오듯이, 트럼프 대통령이 "일자리를 가지고 올 것이다"(bring back our jobs) 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③ 민주주의 · 시장경제 확산을 위해 노력했던 미국 → 이제는 미국 우선주의 !!!


  •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1980년대 미국이 비록 자국의 이익증진을 위해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사용하긴 하였으나, 언제나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를 수호하는 것에 힘을 쏟았습니다. 레이건행정부는 새로운 다자주의 무역시스템 건설을 논의하는 우루과이 라운드에 힘을 밀어주었고, 1993년 집권한 클린턴행정부는 '관여와 확장'(Engagement & Enlargement) 이라는 이름 아래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다른 나라를 위해 힘을 쏟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바라보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st)를 트럼프행정부의 외교 · 무역 정책의 기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번글의 맨 앞에 나오는 '대선 출정식 연설' · '대통령 취임 연설' 뿐만 아니라 집권 후 내놓은 국가안보전략 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와 무역정책 아젠다(Trade Policy Agenda)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에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기 위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다자주의 국제기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미국의 이익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트럼프행정부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만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NAFTA 재협상 · TPP 탈퇴 · 한미FTA 재협상 · EU와 일본의 자동차산업 조사 등 거의 모든 나라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1980년대 · 1990년대 · 2000년대에 뿌려진 씨앗

-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전쟁'을 초래한 요인들


이처럼 오늘날 트럼프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은 1980년대의 그것과 다른 점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과거와 현재를 다르게 만들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건들은 모두 1980년대~2000년대에 씨앗이 뿌려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 입니다. 


▶ 1980년대에 뿌려진 씨앗

-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사용

- 이를 제어하기 위해 새로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WTO 창설


  • 1995년 1월 1일부로 공식적으로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 1986년~1994년 GATT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설립이 확정되었다

  • 기존 1947 GATT를 수정한 1994 GATT + 서비스부문(GATS) + 지적재산권(TRIPS) + 분쟁해결기구(DSB)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각주:24]을 통해, 우리는 '301조 등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사용하는 미국과 이런 미국을 제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새로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구상하는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내심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싶어했던 미국은 자신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부문 개방(GATS)과 지적재산권 보호(TRIPS) 그리고 분쟁해결기구 설립(DSB)이 포함된 새로운 무역시스템을 꿈꾸었고, 세계 각국은 1986년~1994년 간 진행된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WTO 창설을 결의합니다.


▶ 1990년대에 뿌려진 씨앗 ① 

- 민주주의 · 시장경제를 중국에 전파하고 싶어했던 클린턴행정부

- 중국의 WTO 가입을 추진하다


● 1997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 새로운 세기를 위하여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개방된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우리는 중국이 시장 기반 세계경제 시스템에 통합되도록 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역장벽을 낮추고 경제활동을 왜곡하는 제약을 없앰으로써 중국의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각주:25]


● 1998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 새로운 세기를 위하여


"중국을 세계무역시스템에 통합하는 것은 명백히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중국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이다. 다음 세기를 생각한다면, 미국의 대중국 수출은 수백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중국과 정상무역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각주:26] (...) 


1997년과 1998년 정상회담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은 미국-중국 간 무역 및 경제 관계를 강화시키는 조치들에 합의하였다. 우리는 경제개혁에 관여함으로써 중국의 시장개방을 밀어붙일 것이다.[각주:27] 


중국이 WTO 회원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 그러나 중국의 가입이 상업적 기초 위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중국은 제거되어야 할 장벽들을 유지하고 있으며, WTO 가입 이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한다. 1997년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중국의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참여가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에 합의하였다.[각주:28] 


1995년 1월 WTO가 출범하였고, 클린턴행정부는 '관여와 확장'이라는 이름 아래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고 싶어했습니다. 클린턴행정부는 "경제가 성장하며 무역으로 연결된 국가들은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이고, 민주주의 국가들은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지 않고 협력할 것이다"[각주:29]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클린턴행정부는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나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거대한 중국시장은 미국 기업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희망은 위에 소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그대로 나옵니다.


1990년대에 뿌려진 씨앗 ②

- WTO 창설이 지지해부진 사이, NAFTA 등 지역 무역협정을 체결한 미국

- 다자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지역주의의 확산


  • 1994년 1월 1일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그런데 WTO 창설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유럽은 미국을 제어하기 위해 WTO 창설을 구상하였으나, 1986년~1994년 논의가 벌어지는 동안 자신들의 경제공동체(EU)를 만드는 것에 더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미국은 유럽에 대항하는 지역공동체 창설 + WTO 설립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 + 중남미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려는 목적 등을 가지고, 캐나다 및 멕시코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1994년에 체결합니다.


NAFTA 등의 지역 무역협정을 통해 우리는 3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려는 클린턴행정부의 대외정책. WTO 창설 및 중국의 WTO 가입 촉구 목적 등과 마찬가지로, 클린턴행정부는 NAFTA를 통해 중남미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려고 하였습니다. 


둘째,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 무역협정. 미국의 301조 등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만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위협한 것이 아닙니다. NAFTA와 같은 지역주의 무역정책은 협정에 참여한 국가들에게 차별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비차별주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훼손합니다. 


다자주의를 선호하는 경제학자들은 지역주의를 조직화하려는 국가들의 움직임을 비판하였으나, 이미 대세는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100여개 이상의 국가가 참여하는 다자주의에 비해 소수의 국가들이 참여하는 지역주의는 이해관계 조율이 쉬웠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들어 EU · NAFTA · APEC 등 여러 지역주의가 형성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FTA · TPP와 같은 형태로 진화합니다.


셋째, 미국의 일자리가 멕시코와 다른 국가들로 이동해 갔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관세가 없고 임금이 싼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이전하였습니다. 자동차 공장은 멕시코로 갔고, 전자 산업은 동아시아로 갔습니다


▶ 1990년대에 뿌려진 씨앗 ③

- IT 혁명이 발생하다



1990년대에 뿌려진 또 다른 씨앗은 'IT 혁명' 입니다. PC가 보급되고 인터넷망이 설치되면서 사람들 간에 소통하는 비용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전세계인들은 '세계화 · 인터넷 · 21세기'를 외치며 새로운 세기를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이 꿈꾸었던 것처럼 IT는 세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세계 어디에서든 손쉽게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서로 다른 국가에 위치한 기업들끼리도 업무논의를 이전보다 용이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말그대로 '다국적기업'이 등장했고, 기업들은 선진국에서는 R&D, 디자인 등 고부가가치 부문에 집중하면서 단순제조 업무는 개발도상국으로 이전시켰습니다. 


▶ 2000년대에 뿌려진 씨앗 ①

- 중국의 경제발전

- 선진국-개발도상국 간 대수렴(Great Convergence)



  • 1994년~2018년, 전세계 GDP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1999년 미국-중국 양자 무역협정 체결 및 2002년 1월 WTO 회원국이 된 중국은 이후 연평균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기록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1994년 전세계 GDP 비중이 3%에 불과했던 중국경제는 2018년 13%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동시기 미국은 24%에서 21%로 비중이 감소하였습니다. 미국이 주춤해있던 사이 중국이 일어선 겁니다.


▶ 2000년대에 뿌려진 씨앗 ②

- 2008 금융위기, 미국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삶을 무너뜨리다



2008 금융위기[각주:30]는 미국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2007년 초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시작된 사건은 2008년 9월 15일 세계 2위 투자은행 이었던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이어졌습니다[당시 상황을 정리한 글][각주:31]. 미국경제는 -4.0%의 성장률과 10%가 넘는 실업률을 기록했고, 손쉽게 대출을 받아 생활하던 중산층 이하의 삶은 무너졌습니다.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가 가지고 있던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저임금 · 저숙련 근로자가 가질 수 있는 단순가공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져 있었고, 사용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Made In China 였습니다. 


경제생활이 악화된 미국인들은 모든 문제를 초래한 범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들이 지목한 범인은 중국이었고, 이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말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앞에 있었습니다.




※ 미국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 (AMERICA FIRST !!!)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 (MAKE AMERICA GREAT AGAIN !!!)



2019년 5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은 진행되어오던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중국산 수입품 2,000억 달러 어치에 25% 관세부과를 예고합니다. 관세부과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대꾸합니다. "관세를 피할 쉬운 길? 상품과 제품을 미국에서 만들어라. 매우 간단하다!"


◆ 외교 · 무역 정책의 방향 : '민주주의 · 시장경제 전파 vs 미국 우선주의'


◆ 전세계 무역체제의 방향 : '다자주의 · 지역주의 vs 공격적 일방주의'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미국인들의 이익' 입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기 위한 미국의 역할? 그런건 중요치 않습니다. 오직 미국의 이익이 우선할 뿐입니다(America First)


클린턴행정부는 중국이 WTO를 통해 세계경제에 편입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가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중국은 독재와 억압을 강화해 왔으며 민간기업이 아닌 국영기업이 경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NAFTA를 통해 멕시코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퍼뜨리겠다는 이상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멕시코는 미국의 자동차 공장 일자리를 빼앗았고, 불법이민자들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부시행정부와 오바마행정부는 FTA 확산 · TPP 체결 등을 통해 전세계에 미국의 가치를 퍼뜨리고 중국을 포위하려 했으나, 이러한 무역협정은 미국내 일자리만 해외로 옮길 뿐입니다.


트럼프는 세계적 차원의 이상만 말하며 정작 미국인들의 삶을 챙기지 않는 정치인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NAFTA · FTA · TPP 등은 재협상 하거나 폐기하여 미국으로 일자리를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수입품을 줄이고, 중국시장을 개방시켜야 합니다. 더 나아가 여전히 보조금 지급 · 기술이전 강요 등 공산당과 정부가 개입하는 중국의 경제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합니다. 


현재 다자주의 국제무역 시스템인 WTO에서는 미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WTO는 세계 각국이 목소리를 높일 뿐더러, 의사결정 자체도 느립니다. WTO의 분쟁해결기구는 미국에 반하는 결정만 내려왔습니다.


결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1974년 무역법 301조와 같은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aggressive unilateralism) 입니다. 그리고 다자주의가 아닌 개별 국가와의 양자협정(bilateral agreement)을 통해 1:1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트럼프는 '대선 출정식 - 대통령 취임식 -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 무역정책 아젠다'를 통해 일관되게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를 실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 2017년 12월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 서문


존경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미국인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기 위해 저를 뽑았습니다. 나는 나의 행정부가 우리 미국시민들의 안전, 이익, 생활을 최우선에 둘 것임을 약속합니다(our citizens first). 나의 첫 임기동안, 여러분은 나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대외정책이 실행되는 것을 목격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 시민들의 이익을 우선시했고, 우리의 주권을 보호했습니다. (...) 


우리의 국가안보전략은 미국을 최우선으로 둘 겁니다(This National Security Strategy puts America First).


- 미국의 번영 촉진하기


지난 수십년간, 미국의 공장, 기업, 일자리는 해외로 이동했습니다. (...)


지난 70년동안 미국의 상호주의, 자유시장,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세계경제시스템을 주도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라는 믿음을 가져왔습니다. (...) 미국은 자유주의 경제 무역시스템을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로까지 확장해왔습니다. 이들 국가들이 정치 · 경제적으로 자유화되고 미국에게 이득을 안겨줄 거라고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은 이들 국가들이 경제와 정치 개혁을 하지 않았고, 주요한 경제기관을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유무역을 말하지만, 오직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규칙과 협정만 지킬 뿐입니다.


우리는 공정(fairness), 상호(reciprocity) 그리고 규칙을 준수하는(faithful adherence to the rules) 모든 경제적 관계를 환영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위반, 속임수, 위협에 눈감지 않을 겁니다. (...) 


미국은 국내경제를 회복시키고, 미국근로자에게 이익을 주고, 미국 제조업기반을 부활시키고,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고, 혁신을 장려하고, 기술진보를 보존하는 경제적 전략을 추구할 것입니다.


- 자유롭고 공정하고 호혜로운 경제적 관계 촉진하기


지난 수십년간, 미국은 불공정한 무역관행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다른 국가들은 덤핑, 차별적 비관세장벽, 기술이전 강요, 산업보조금, 기타 정부와 국영기업 지원 등을 사용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도전에 대처해야 합니다. (...) 미국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원리를 따르는 국가들과의 경쟁과 이를 따르지 않는 국가들과의 경쟁을 구분할 겁니다. 


● 2017년 3월, 2017 무역정책 아젠다


- 트럼프행정부 무역정책의 주요 원리 및 목표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모두 미국 무역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미국인들은 국제무역협정으로부터 이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좌절해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해왔고, 트럼프행정부는 이 약속을 지킬 겁니다.


우리의 무역정책 목표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자유롭고 공정한 방향(freer and fairer for all Americans)으로 무역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무역과 관련한 모든 행위가 우리의 경제성장 증대, 미국내 일자리 창출 촉진, 외국과 상호성 촉진, 우리의 제조업 기반 강화 등을 위해 계획되고 사용될 겁니다. 


이러한 목표는 다자협정 보다는 양자협정에 집중함으로써, 그리고 기존 협정을 재협상하거나 수정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these goals can be best accomplished by focusing on bilateral negotiations rather than multilateral negotiations - and by renegotiating and revising trade agreements).


- 주요 우선순위


위에 제시한 목표 달성을 위해, 트럼프행정부는 4가지 우선사항을 분류했습니다. (1) 미국의 주권 보호 (2) 미국 무역법 엄격히 집행 (3) 외국시장 개방과 미국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모든 가능한 수단 동원 (4) 새롭고 더 나은 무역협정 추진 (...)


트럼프행정부는 (1974년 무역법 301조와 같은) 미국 무역법을 엄격히 집행하는 게 미국과 전세계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트럼프행정부는 미국 근로자, 농부, 서비스 종사자, 다른 기업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불공정 무역관행을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트럼프행정부는 이러한 것을 억제하고 진정한 시장경쟁을 독려하기 위하여 공격적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


지난 수년간, 미국인들은 WTO 시스템이 경제성장을 불러오고 미국 근로자와 기업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거라고 희망해왔습니다. (...) 불행하게도 중국의 WTO 가입 이전인 2000년과 비교해보면 경제성장률은 둔화되었고, 고용증가율은 약해졌고, 미국 내 제조업 고용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2008 금융위기나 자동화의 영향도 있었으나, 무역 영향이 컸습니다. (...)


현재의 세계무역시스템은 중국에게 이롭게 작용해왔지만 미국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 우리는 양자협상에 집중할 겁니다. 우리는 상대국에 대해 공정성 기준을 높일 것이고, 불공정 행위를 지속하는 상대국에 대해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다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 1980년대 · 1990년대 · 2000년대에 뿌려진 씨앗을 자세히...


이제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를 통해, '1990년대 · 2000년대에 뿌려진 씨앗'을 보다 자세히 알아봅시다.


WTO · NAFTA ·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 · IT혁명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 등장 그리고 미국이 겪고 있는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 까지, 하나하나 상세히 알아가 봅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1. Donald Trump Presidential Campaign Announcement - 출처 : C-SPAN [본문으로]
  2. Full text: Donald Trump announces a presidential bid - 출처 : 워싱턴포스트 [본문으로]
  3. President Donald Trump's Inaugural Address (Full Speech) | NBC News [본문으로]
  4. WhiteHouse. 2017.01.20 The Inaugural Address [본문으로]
  5. "Washington, DC - U.S. Trade Representative Robert Lighthizer today issued the following statement in response to President Trump's directive for USTR to determine whether to initiate an investigation of China regarding intellectual property, innovation, and technology: The United States has for many years been facing a very serious problem. China's industrial policies and other practices reportedly have forced the transfer of vital U.S. technology to Chinese companies. We will engage in a thorough investigation and, if needed, take action to preserve the future of U.S. industry. Potentially millions of jobs are at stake for the current and future generations. This will be one of USTR's highest priorities, and we will report back to the President as soon as possible." [본문으로]
  6. USTR. Press Release. 2017.08.14 - USTR Robert Lighthizer Statement on the Presidential Memo on China [본문으로]
  7. USTR Press Release. 2018.03.22 - President Trump Announces Strong Actions to Address China’s Unfair Trade [본문으로]
  8. China’s Market Meddling Will End Like Japan’s. 2018.12.26 [본문으로]
  9. The Old U.S. Trade War With Japan Looms Over Today’s Dispute With China. 2018.12.13. WSJ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s://joohyeon.com/275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s://joohyeon.com/276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s://joohyeon.com/277 [본문으로]
  1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15. US Commerce Press Release. 2019.05.14 Department of Commerce Announces the Addition of Huawei Technologies Co. Ltd. to the Entity List [본문으로]
  16. USTR Press Release. 2018.03.22 - President Trump Announces Strong Actions to Address China’s Unfair Trade [본문으로]
  1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https://joohyeon.com/279 [본문으로]
  18. USTR Press Release. 2018.03.22 - President Trump Announces Strong Actions to Address China’s Unfair Trade [본문으로]
  19. 물론,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간간히 1974 무역법 301조와 1988 종합무역법 슈퍼301조를 이용한 정책이 구사됐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처럼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었습니다. [본문으로]
  20. 미국, 일본, 서유럽 등 선진국이 주로 위치한 북반부(North)와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이 주로 위치한 남반구(South)를 의미 [본문으로]
  21.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s://joohyeon.com/219 [본문으로]
  2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s://joohyeon.com/266 [본문으로]
  23. A Tiny Screw Shows Why iPhones Won’t Be ‘Assembled in U.S.A.’. 2019.01.28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https://joohyeon.com/279 [본문으로]
  25. China: The emergence of a politically stable, economically open and secure China is in America's interest. Our focus will be on integrating China into the market-based world economic system. An important part of this process will be opening China's highly protected market through lower border barriers and removal of distorting restraints on economic activity. We have negotiated landmark agreements to combat piracy and advance the interests of our creative industries. We have also negotiated and vigorously enforced agreements on textile trade. [본문으로]
  26. Bringing the PRC more fully into the global trading system is manifestly in our national interest. China is one of the fastest growing markets for our goods and services. As we look into the next century, our exports to China will support hundreds of thousands of jobs across our country. For this reason, we must continue our normal trade treatment for China, as every President has done since 1980, strengthening instead of undermining our economic relationship. [본문으로]
  27. At their 1997 and 1998 summits, President Clinton and President Jiang agreed to take a number of positive measures to expand U.S.-China trade and economic ties. We will continue to press China to open its markets (in goods, services and agriculture) as it engages in sweeping economic reform. [본문으로]
  28. It is in our interest that China become a member of the WTO; however, we have been steadfast in leading the effort to ensure that China’s accession to the WTO occurs on a commercial basis. China maintains many barriers that must be eliminated, and we need to ensure that necessary reforms are agreed to before accession occurs. At the 1997 summit, the two leaders agreed that China’s full participation in the multilateral trading system is in their mutual interest. [본문으로]
  29. Nations with growing economies and strong trade ties are more likely to feel secure and to work toward freedom. And democratic states are less likely to threaten our interests and more likely to cooperate with the U.S. to meet security threats and promote sustainable development.- 출처 : 1994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본문으로]
  30.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2014.03.25 https://joohyeon.com/189 [본문으로]
  31. [2007년-2009년]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② - 2008 금융위기 발생 https://joohyeon.com/24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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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Posted at 2019. 7. 8. 16:3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80년대 미국 내 보호주의 압력,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으로 이어지다


  • 왼쪽 : 전세계 GDP에서 미국 GDP가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오른쪽 : 미국, GDP 대비 대일본 무역수지 비중의 변화


지금까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읽어왔으면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을 상징하는 단어는 '공정무역'(fair trade)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 였습니다. 


미국 경제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려왔으나, 1970-80년대 서유럽이 전후 재건을 완료하고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을 시작하면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습니다[왼쪽 그래프]. 


더욱이 1970년대 들어서 고도성장을 기록해나간 일본은 미국인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일본 GDP 대비 미국 GDP는 1968년 2.6배 였으나 1982년 2.0배로 축소되었고, 미국 GDP 대비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액은 1985년 1.15% 수준까지 심화되었습니다[오른쪽 그래프].  


미국 정치인과 대중들은 "외국 특히 일본의 불공정무역 관행으로 인해 미국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5년 연설[각주:1]을 통해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ing practices)으로 인해 우리의 기업인들이 실패하는 것을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공정무역(fair trade)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할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미국은 주요 타겟을 일본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여러 기업이 모여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케이레츠 · 일본기업간 오랜 기간에 걸친 협력과 거래 · 종합상사회사가 중심이 된 유통시스템 등의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외국산 상품 판매를 가로 막고 있었고, 이로 인해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각주:2]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을 체결하여, '향후 5년간 외국산 반도체 시장점유율 20% 달성'이라는 구체적인 성과를 강요하는 결과지향적 무역정책(Results rather than Rules)[각주:3]을 일본에게 관철시켰고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냈습니다.


이때 미국이 일본의 무역 규칙 · 정책 · 관행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자국의 법률 이었습니다.  그 법률은 1974년 무역법 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 였으며, 1988년 종합무역법(the Omnibus Foreign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의 슈퍼 301조(Super 301) 및 스폐셜 301조(Special 301)로 강화됩니다.


이렇게 자국법을 근거로 특정 국가에게 시장개방을 강요하는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세계무역 시스템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일명 GATT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100개 이상의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던 GATT는 최혜국대우 · 관세 · 비관세장벽 등의 규칙(rules)을 명시하고 협정 당사국은 이를 준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국제협정인 GATT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자국에서 제정한 국내법(domestic laws)과 국제정치적 힘(powers)을 이용하여 외국의 시장을 개방시킴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켰습니다.


이러한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은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로 불립니다. GATT 체제는 여러 국가들이 협상(bargaining)을 통해 상호양보(mutual, reciprocal concession)를 함으로써 무역자유화를 이루어 나갑니다. 반면,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는 특정 무역상대국을 위협(threat)하여 상대방의 일방적인 양보를 이끌어(unilateral concession by others)냅니다. 


여기서... 과거 80년대 미국의 모습이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오늘날 미국 트럼프행정부는 중국, 멕시코, EU, 일본, 한국 등 거의 모든 무역상대국을 위협하여 자국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무역협정을 개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이 외국의 무역행위를 판단하는 근거는 현재의 세계무역시스템인 WTO가 아니라 자국의 법률인 1974년 무역법 301조와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 301조, 스폐셜 301조 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80년대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이 만들어진 배경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왜 미국만' 공격적 일방주의를 사용하며 '언제' 이를 꺼내드는지, 그리고 'GATT 및 WTO 등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vs 국내법과 힘에 기반한 공격적 일방주의'의 대립구도를 알아야 합니다.


이번글과 앞으로 나올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에서 다루게 될 주요 논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 왜 유독 미국만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이용할까? 


왜 유독 미국만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단순한 대답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powers)을 가진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19세기 영국의 무역정책 형성과정과 20세기 초반 미국 무역정책의 방향이 형성된 시기를 비교봄으로써, 좀 더 근원적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은 1846년 곡물법을 폐지하며 보호무역체제에서 벗어나 자유무역체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본 블로그의 지난글을 통해, 곡물법 폐지를 주장한 데이비드 리카도의 논리[각주:4]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때, 영국은 다른 나라들이 보호무역을 유지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이에 상관없이 수입산 곡물에 부과된 관세를 철페하며 나홀로 자유무역체제로 나아갔습니다. 이를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Unilateral Liberalization of Trade / Going Alone / Unilateralism)로 부릅니다.


반면, 20세기 초반 미국은 다른나라와의 협상을 통해 서로서로 무역장벽을 낮춰가는 방식으로 무역자유화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서로의 이익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이를 '호혜주의'(Reciprocity)라 부릅니다. 


그런데 호혜주의에 기반한 무역자유화를 다르게보면, 상대방이 무역장벽을 낮추지 않을 경우 나의 무역장벽을 낮출 이유도 없습니다. 즉, 상대방이 형평에 어긋난 이익을 취하려 할 경우 나는 상대방에 이익이 되는 조치를 철회하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이를 '상호주의'(Reciprocity)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긴 용어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호주의에 기반한 무역자유화는 언제든지 보호주의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일방주의에 기반을 둔 영국과 상호주의에 기반을 두었던 미국은 서로 다른 역사적 과정을 거쳐 무역자유화를 이루었으며, 미국의 상호주의는 언제든지 보호주의 및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 언제 미국은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꺼내들까?


이제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언제 미국의 상호주의는 보호주의 및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하는가?" 입니다. 평상시 미국은 자유무역을 추구하며 전세계에 이를 전파하지만, 국제정치적 상황의 변화(foreign policy) · 비교우위 변화(shifts) · 경기침체(shocks)가 발생하면 보호주의 정책을 꺼내듭니다.


1947년 GATT 체제가 수립된 이유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전세계로 보후주의 무역정책이 확산되며 공황이 심화되고 세계대전을 치렀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이후, 미국과 영국은 자유무역의 가치를 지키고 퍼뜨리기 위하여 GATT 체제를 창안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서유럽 및 일본의 재건과 부흥이 필요하였고, 상대적으로 높았던 이들의 관세율을 종전 직후에는 그대로 묵인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서유럽과 일본 경제가 다시 성장하고 자동차 · 철강 · 섬유 등의 업종에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또한, 1970년대 말 오일쇼크와 긴축 통화정책으로 경기침체에 빠지고 실업률이 높아지자, 정치권을 향해 보호주의를 요구하는 기업인 · 근로자의 목소리도 커져갔습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서유럽과 일본의 높은 관세율을 용인할 수 없게 되었고, 선거 당선이 필요한 상원 · 하원 의원들은 미국 기업인과 근로자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각종 보호주의 법안을 입안했습니다. 특히 외국의 제조업 발전 때문에 심한 경쟁에 노출된 미국 러스트벨트(rust belt)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GATT, WTO) vs 공격적 일방주의(301조)


결국 미국은 국내법을 근거로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이는 규칙에 기반을 둔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GATT의 원리와 충돌하게 됩니다. 


1947년 체결된 GATT는 규칙에 기반을 둔 다자주의 세계무역 시스템(Rule-Based Multilateral World Trade System) 입니다. 이에 참여한 국가들은 1947 GATT에 명시된 규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다른 나라들을 모두 평등하게 대한다는 무조건적 최혜국대우(Unconditional MFN)이며 비차별주의(Non-Discrimination)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은 GATT의 규칙이 아닌 자국의 국내법(domestic laws)을 근거로 외국의 행위를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GATT의 분쟁해결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일방적인 보복(Unilateral Retaliation)을 행사했습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 하는 보복과 보호무역 조치는 다른 나라와 차별을 초래하며, 이는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이 지키려하는 무조건적 최혜국대우와 비차별주의를 위반하고 맙니다.


이를 보다 못한 EU와 일본은 1995년 WTO라는 새로운 세계무역시스템을 만들어서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를 제어하려 했습니다. WTO에는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각국간 무역분쟁은 WTO가 다룰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미국은 기존 1947 GATT 규칙을 수정한 1994 GATT에 더하여,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서비스부문(GATs) · 지적재산권(TRIPs) 부문 개방을 얻어내는 대가로 WTO에 참여하게 됩니다. 


즉, 세계무역시스템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보호주의 확산' →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자유무역을 전파하는 1947 GATT 체제 성립' → '1980년대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 '이를 통제하기 위하여 새로운 다자주의 무역시스템인 1995년 WTO 기구 창설' 등의 역사적 변천을 거쳐왔습니다.


따라서, 80년대와 오늘날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은 단순히 "미국이 보호주의를 구사한다"는 평을 넘어서서, "무조건적 최혜국대우와 비차별주의를 기본 원리로 하는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미국이 훼손하고 있다"는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트럼프행정부가 공격적 일방주의를 다시 꺼내들면서 WTO 체제를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WTO를 대체할 새로운 다자주의 세게무역시스템이 만들어질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미국이 영국과 달리 상호주의(reciprocity)에 바탕을 둔 연유가 무엇인지,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를 대표하는 1974년 무역법 301조와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 301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vs 공격적 일방주의'의 대립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 무역자유화를 달성하는 4가지 방식


앞서 서문에서 '공격적 일방주의', '일방주의', '호혜주의(상호주의)'라는 개념어가 등장하면서 내용 이해에 혼란이 오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번글의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무역자유화를 달성하는 4가지 방식과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무역자유화(trade liberalization)란 말그대로 수입관세 인하, 무역장벽 철폐를 통하여 자유무역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무역자유화는 4가지 방식으로 실시할 수 있습니다.


▶ 첫째,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 

(unilateral liberalization of trade / going alone / unilateralism)


: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란 다른 나라의 무역정책에 상관없이 자국의 수입관세를 낮추거나 무역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나라가 여전히 보호무역 정책을 쓰고 있더라도 이에 개의치 않고 자유무역 정책을 실시한다면, 이는 말그대로 일방향적인 무역자유화의 형태를 띄게 됩니다. 1846년 곡물법 폐지를 통해 자유무역을 나홀로 실시한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 입니다.


▶ 둘째, GATT 등 다자주의 체제 속에서 호혜적 무역자유화

(reciprocal liberalization of trade-reciprocity-in a multilateral framework such as GATT)


다자주의 체제 속에서 호혜적 무역자유화란 GATT, WTO 등 다자주의 무역시스템 안에서 여러 국가들이 협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무역자유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초기 GATT 체제에서 각 국가들은 수입 공산품을 대상으로 관세율을 점점 인하하면서 무역장벽을 제거해나갔습니다. 이후 농업부문 개방과 보조금, 덤핑 등 비관세장벽 제거 여부도 협상의제로 삼았고, WTO 체제에 들어서는 서비스부문, 지적재산권 개방으로 범위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 셋째, 양자협상을 통한 호혜적 무역자유화

(reciprocal liberalization of trade under bilateral)


: 양자협상을 통한 호혜적 무역자유화란 두 국가가 협상을 통해 무역자유화를 실시함을 의미합니다. 무조건적 최혜국대우를 기본원리로 하는 GATT와 WTO 체제는 모든 무역상대방을 공평하게 대우해야함을 요구하지만, 특혜무역협정(PTAs) · 관세동맹(Custom Uniton) 등 일부 예외를 통해 특정 국가에만 더 낮은 관세율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들은 마음에 맞는 상대방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양자협상을 통해 한차원 높은 무역자유화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 넷째, 위협을 통해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기, 일명 공격적 일방주의

(unilateral reduction of others' trade barriers under the threat of sanction-aggressive unilateralism)


: 위협을 통해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기는 일명 공격적 일방주의 입니다. 앞서 언급한 일방주의가 자국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는 것을 의미했다면(unilateral concession by oneself), 공격적 일방주의란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인 위협을 통해 낮추는 것(unilateral concession by others)을 뜻합니다. 전자는 국제무역이론을 전공한 학자들이 선호하는 '순수한 자유무역'이며, 후자는 자유무역 시스템을 위협하는 '보호주의의 극단'이라는 점에서 극과 극을 이룹니다. 서문에서 언급한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과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이 공격적 일방주의의 대표 사례 입니다. 




※ 19세기 영국 - '일방적 무역자유화'를 통해 자유무역의 길로 나아가다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는 언뜻 생각하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가 무역장벽을 높이 세운 상황에서 왜 우리나라만 무역장벽을 낮춰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1846년 영국은 곡물법을 폐지하여 나홀로 자유무역의 길로 나아갔으며, 국제무역이론을 전공한 경제학자들 중 몇몇은 일방주의를 최선의 방식으로 여깁니다. 이번 파트를 통해 이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일방적 무역자유화를 통해 실제로 이득을 보고 있는 우리 영국의 사례를 믿자. 곧 멀지 않은 시기에 우리의 사례가 다른 나라들도 자유무역을 채택하도록 만들 것이다."[각주:5] 


- 1846년 곡물법 폐지를 만들어낸 영국 수상 로버트 필(Robert Peel)

- 바그와티 & 어윈. 1987.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서 상호주의자들의 귀환'에서 재인용[각주:6]


19세기 초반 영국은 곡물법(the Corn Laws)을 통해 수입산 곡물에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여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818년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각주:7]"작지만 비옥한 나라는, 특히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논리를 제시하며 곡물법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곡물법은 곡물 가격을 상승시키고 근로자 임금을 높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본가의 이윤을 훼손시킨다는 것이 주요 논거였습니다.


결국 1846년 영국 수상 로버트 필(Robert Peel)은 곡물법 폐지를 단행하며 일방적 무역자유화를 실시합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나홀로 실시한 무역자유화를 통해 자본축적 이라는 이득을 보고 있으며, 이를 목격한 다른나라들이 보호무역에서 벗어나 수입장벽을 낮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영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관세 인하도 적극적으로 유도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反곡물법 연맹'을 창안하며 적극적으로 곡물법 폐지 운동을 펼친 리차드 콥든(Richard Cobden)은 "외국에게 호혜적 관세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외국의 자유무역론자들을 더 힘들게 만들 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구는 마치 자유무역이 영국의 이익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국이 자유무역 원리를 채택하도록 촉구를 덜 하는 것이 더 낫다."[각주:8]라고 설명합니다. 수입관세 인하를 제시받은 외국은 '영국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할테고 이로 인해 오히려 보호무역 조치를 더 강화할 수 가능성을 염려했습니다.


현대 경제학자가 보기에도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타당합니다. 자유무역이 이로움을 주는 이유는 '외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을 값싸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각주:9]입니다. 외국의 보호무역에 대응하여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수입을 하는 미련한 행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즉, 다른 나라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서 우리도 관세를 높이는 행위는 "다른 나라가 암석 해안(rocky coasts)을 가졌으니 우리의 항구에 돌을 가져다 놓자(drop rocks into our harbors)"[각주:10]는 말과 같습니다. 


이처럼 19세기 영국은 '양국이 협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무역장벽을 낮추는 호혜주의 혹은 상호주의(reciprocity)'가 아니라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채택하였고, 데이비드 리카도의 예측대로 제조업 발전과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게 됩니다.




※ 20세기 초반 미국 - '호혜통상법'을 통해 유치산업보호론에서 벗어나다


반면 20세기 초반 미국이 놓여있던 역사적 · 경제적 상황은 19세기 영국과는 달랐습니다. 


앞서 살펴본 리차드 콥든의 걱정과 유사하게, 영국인 데이비드 리카도가 내놓은 곡물법 폐지론과 비교우위론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의문 때문에 외국에서 한동안 배척받았습니다. 1920-30년대 호주[각주:11] · 1950~70년대 중남미[각주:12]는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던 19세기 영국과 달리, 우리는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보호무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18~19세기 미국 또한 제조업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미리 발전한 외국 특히 영국과의 자유경쟁이 벌어지는 상황 하에서는 제조업을 키우는 게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8세기 미국 초대 재무부장관 알렉산더 해밀턴과 19세기 초중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며 '제조업 육성을 위한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각주:13]했습니다. 


미국의 보호주의적 무역정책은 계속 되었고, 1929년 대공황 직후인 1930년에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그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미국 정치인들은 외국산 상품 가격을 높게 설정하여 미국산 상품 판매량을 늘리면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따라 미국은 2만여 수입품에 대해 평균 50%가 넘는 관세율을 부과하였습니다.


하지만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대공황의 여파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1932년 대선 이후 집권한 루즈벨트행정부는 무역정책 방향을 정반대로 돌리기로 합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국무부장관 코델 헐(Cordell Hull) 입니다. 


  • 코델 헐 (Cordell Hull)

  • 1931년 3월~1933년 3월, 테네시스 주 상원의원

  • 1933년 3월~1944년 11월, 루즈벨트행정부 국무부장관


본래 코델 헐은 테네시스 주 상원이었으며, 테네시스 주는 농산물 생산을 주로 하는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조업 중심인 북부는 보호주의를 농업 중심인 남부는 낮은 관세율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코델 헐은 남부 민주당의 전형적인 저관세 정책을 대표했습니다. 


그리고 코델 헐은 과도한 수입관세가 수출을 억제시키고, 생계비를 상승시켜 소비자와 근로자에 해를 끼치고, 독점을 촉진하고, 남부의 가난한 농부로부터 북부의 부유한 산업가로 부를 재분배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코델 헐은 그의 정치적 힘을 무역장벽 철폐에 집중하였고, 1934년 제정된 호혜통상법(RTAA, 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은 미국 무역정책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1934 호혜통상법의 주요 내용은 '무역협상의 권한을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이전하고, 대통령은 외국과의 양자 호혜협정을 통해 기존 관세율을 최대 50%까지 인하할 수 있다. 이때 새롭게 설정된 관세율은 무조건적 최혜국대우를 통해 다른 나라의 수입품에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지역구에 기반을 둔 의원들은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북부 의원은 보호무역을 남부 의원은 자유무역을 선호하는 게 당연했으며, 수입확대로 경쟁이 심화되면 피해를 입는 기업인 및 근로자들은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려 로비를 일삼았습니다. 


반면, 미국 전역에 기반을 둔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보호주의 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무역자유화로 특정 주 시민들의 피해가 늘어나더라도 다른 주 시민들의 이익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더하여,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출확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양자 협상을 통해 외국의 관세율을 인하시켜 미국 수출을 확대하려 했고, 미국의 관세율 인하를 외국의 수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협상의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루즈벨트 대통령은 호혜통상법안을 제안하면서 "이것은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긴급 프로그램의 일부이다. 국내 경제의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회복은 국제교역의 부활과 강화에 달려있다. 미국 수출업자들의 수출은 이에 상응하는 수입의 확대 없이는 증가할 수 없다."[각주:14]고 발언했습니다. 또한, 무역협상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전례없는 경제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미국 의원들은 호혜통상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우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외국과 무역협상을 개시하는 이유를 고지 / 협상 과정에서 미국 이해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할 것 / 대통령의 무역협상 권한은 3년 후 만료되며 이후 의회 승인 하에 갱신을 받아야 함'의 조건을 추가하여 1934년 6월에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이렇게 미국은 수입장벽을 낮추는 자유무역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34년 호혜통상법(RTAA) 제정 이후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드라마틱하게 하락했습니다. 윗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여파로 50%가 넘었던 평균 관세율은 1934년 이후 크게 하락해나갔고, 2차대전 이후 GATT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시스템이 건설되면서 오늘날까지 한 자릿수의 관세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1930년대 미국이 처한 상황은 19세기 영국이 선택한 일방적 무역자유화가 아닌 호혜주의에 입각한 무역자유화를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1934 호혜통상법(1934 RTAA)는 법안 제목처럼 '호혜주의'(reciprocity)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은 외국의 관세율을 인하시키기 위하여 자국의 관세율 인하를 협상의 대가로 제시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아직 보호주의자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대공황 이후 다른 나라들의 수입장벽이 높은 현실에서 나홀로 관세율을 인하한다면 수출은 증대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관료들 사이에서 존재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 상황상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정치적으로 불가능 했으며, 자국이 아닌 외국의 무역장벽을 낮출 필요가 더 컸습니다.


미국이 선택한 호혜주의를 통한 무역자유화 방식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방적 무역자유화 보다 더 큰 이득을 안겨다줄 수 있었습니다.


경제학자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호혜주의를 통한 양보(mutual, reciprocity concession)가 일방주의 무역자유화 보다 4가지 측면에서 이점을 불러온다고 설명합니다.


▶ 내가 무역자유화를 할 때 상대방도 자유화를 한다면, 나는 두 배의 이익을 얻는다[각주:15]


: 나의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수입상품을 더 싸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을 줍니다. 이때 상대방도 무역자유화를 통해 비교우위 상품을 특화생산 한다면, 내가 수입하는 상품 가격이 더 싸지기 때문에 일방적 무역자유화 보다 두 배의 이익을 얻게 됩니다.


▶ 너와 내가 모두 자유화를 한다면, 단기 무역수지 불균형의 문제를 피할 수 있다[각주:16]


: 나의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수입상품 가격을 낮춰서 이익을 줄 수 있으나, 만약 수출 증대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국제수지 불균형 문제가 단기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때 상대방이 수입장벽을 낮춘다면 나의 수출도 증가하여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 너와 나의 동시 양보는 국내정치적으로 무역자유화를 받아들이기 쉽게 만든다[각주:17]


: 나의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다른 나라가 무역장벽을 높이 세운 상황에서 왜 우리나라만 무역장벽을 낮춰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방도 무역자유화를 실시한다면, 자국의 수입장벽을 낮추는 행위가 명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우리 수출업자를 위한 외국의 양보 덕분에, 무역자유화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만들어진다[각주:18]


: 무역자유화를 실시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보호주의 속에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완강히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상대방이 무역자유화를 실시하여 나의 수출이 증대된다면, 수출확대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 집단은 이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새로운 이해관계자가 됩니다.


이번 파트에서 보았듯이, 영국과는 다른 정치적 · 경제적 상황에 놓여있던 미국은 호혜주의에 입각한 무역자유화의 경로를 밟아나갔습니다. 호혜주의가 일방주의에 비해 열등한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호혜주의 방식의 이점을 말했던 자그디쉬 바그와티는 호혜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더 주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호혜주의가 언제든지 상호주의와 보호주의 그리고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 입니다. 




※ 호혜주의 → 상호주의 → 공격적 일방주의,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다


  •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 (Jagdish Bhagwati)

  •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하는 '일방주의'를 주장했다


국제무역이론의 대가인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호혜주의가 가져오는 이점 보다는 문제점에 더 주목했습니다. 그는 호혜주의가 언제든지 상호주의와 보호주의 그리고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할 수 있으며, 80년대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훼손하는 현실을 걱정했습니다.


바그와티는 1987년 논문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서 상호주의자들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U.S.Trade Policy Today>), 1988년 단행본 <보호주의>(<Protectionism>), 1989년 논문 <교차로에 놓여있는 미국 무역정책>(<United States Trade Policy at the Crossroads>), 1990년 단행본 <공격적 일방주의 - 미국의 301조 무역정책과 세계무역시스템>(<Aggressive Unilateralism - America's 301 Trade Policy and the World Trading System>)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했습니다. 


▶ 일방적 무역자유화가 아닌 상호주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둔 미국


Reciprocity는 '다른나라와의 협상을 통해 서로서로 무역장벽을 낮춰가면서 이익을 증대시킨다'(mutual, reciprocal concession)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호혜주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무역장벽을 낮추지 않을 경우 나의 무역장벽을 낮출 이유가 없어지며, '시장개방을 통한 상호 동등한 접근을 요구'(reciprocity of access / level playing field)한다는 의미에서 '상호주의'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각주:19] 


상호주의 하에서 상대방이 형평에 어긋난 이익을 취하려 할 경우 나는 상대방에 이익이 되는 조치를 철회하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더 나아가 받은대로 돌려주겠다(tit-for-tat)고 위협하면서 시장개방을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호주의에 기반한 무역자유화는 언제든지 보호주의와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그와티가 보기엔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는 "영국과는 달리 후발산업국가로서 미국은 한번도 일방적 무역자유화의 이데올로기를 품은 적이 없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 이래로 보호주의는 미국 무역정책의 핵심 이었다."[각주:20]는 점 입니다. 미국은 상호주의(reciprocity)를 무역자유화의 유일한 수단으로 간주했으며, 미국 내 지식인들은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 정치 ·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등장


1970-80년대 미국의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서유럽 · 일본의 재건을 도울 필요가 적어지자, 호혜주의는 상호주의로 그리고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번글의 서문과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에서 살펴보았듯이, 70-80년대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의 하락'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심화' · '강달러' · '실업률 증가' 등 대내외적 경제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그와티는 당시 미국 경제상황을 '왜소해지는 거인'(Diminished Giant)으로 묘사했고, "왜소해지는 거인 신드롬과 강달러 현상이 상호주의 사상과 결합하게 되었고, 그 결과 '무역의 공정성'(fairness in trade)에 대한 요구가 미국 정치에서 강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각주:21]고 말합니다.


1981년에 집권한 레이건행정부는 처음에는 자유무역을 강조하다가, 1985년 2기 집권 이후부터는 점점 '상호 동등한 시장접근'과 '공정무역'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공화당 의원들 또한 외국의 시장을 개방시키는 상호주의의 공격적 측면(aggressive stance of reciprocity)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 1974년 무역법 301조와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 301조 및 스페셜 301조


1970-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법안이 1974년 무역법 301조 1988년 종합무역법의 슈퍼 301조 및 스폐셜 301조 입니다. 


◆ 1974년 무역법 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


1974년 무역법 301조는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의 원조 입니다. 


이 법안 조항에 따르면, 외국의 상거래가 GATT 및 양자협정의 권리에 반한다고 판단되면 미국 대통령은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GATT가 명시한 권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GATT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GATT가 특정 국가에게 보복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GATT에 위배되는 법안 입니다.


특히 1974년 무역법 301조의 '공격적 일방주의' 특징은 외국의 무역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GATT 가 규정한 범위 밖이라는 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법안은 미 무역대표부(USTR)의 조사에 의해, 외국의 무역 법률 · 정책 · 관행 등이 무역협정을 위반(violate) · 정당화할 수 없음(unjustifiable) · 비합리적(unreasonable) · 차별적(discriminatory) 이라는 점이 드러난다면, 대통령은 의무적 혹은 재량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외국이 무역협정을 '위반' 한다면 당연히 잘못 입니다. '정당화 할 수 없음'은 협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당연히 잘못 입니다. '차별적'은 GATT의 기본원리인 최혜국대우(MFN)를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잘못 입니다. 


그런데 '비합리적'(unreasonable)은 '협정에 명시된 사항을 위반하지 않았으나 불공정(unfair)하거나 불공평(inequitable)한 행위'를 의미하며, 이는 미국이 외국의 무역행위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국은 노동자 권리 보호 수준 혹은 반경쟁정책 등을 근거로 외국의 행위가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여 일방적인 보복을 가했습니다.


이처럼 1974년 무역법 301조는 (미국이 자의적으로 판단한)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제거하고 시장을 개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미국은 위협을 통해 외국의 일방적 양보(unrequited concession)를 이끌어 내었고, 이로써 301조를 제정한 목적을 이루어나갔습니다. 


 1988년 종합무역법(the Omnibus Foreign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

- 슈퍼 301조(Super 301) 및 스폐셜 301조(Special 301)


1988년 종합무역법은 기존의 301조를 더 강화시켰습니다. 


기존의 301조는 대통령에게 대폭적인 재량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보복조치가 반드시 실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80년대 일본과의 무역분쟁으로 한층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미국 의원들은 이를 고치고 싶어했습니다.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은 미 무역대표부(USTR)가 <무역장벽 연차보고서>를 매년 의회에 제출하며 '우선 협상국'(priority countries)과 '우선 협상항목'(priority practices)를 반드시 지정토록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미 무역대표부는 '우선 협상국'에 대해 반드시 301조 조사와 협상을 실시하도록 의무화 하였고, 제제 권한은 대통령에서 미 무역대표부로 이전 되었습니다. 


이렇게 강화된 301조 제제를 일명 '슈퍼 301조'(Super 301)로 부르며, 지적재산권에 관한 사항은 '스폐셜 301조'(Special 301)로 부릅니다.


▶ 공격적 일방주의는 '수출 보호주의'(export protectionism)


자그디쉬 바그와티가 보기엔 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은 자유무역의 적(enemy of free trade) 이었습니다. 공정무역 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에서 외국의 시장개방을 강요하고, GATT와 같은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 채 국내의 법률로 외국의 무역행위를 판단하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공격적 일방주의 정책은 '시장개방' · '공정무역'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외국의 무역장벽을 낮추는 자유무역 정책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미국의 수출을 확대하고 수출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수출 보호주의'(export protectionism)나 마찬가지라고 바그와티는 평가했습니다.




※ 미국을 제어하기 위하여 WTO가 만들어지다


  • 1995년 1월 1일부로 공식적으로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 1986년~1994년 GATT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설립이 확정되었다

  • 기존 1947 GATT를 수정한 1994 GATT + 서비스부문(GATS) + 지적재산권(TRIPS) + 분쟁해결기구(DSB)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은 EU, 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들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안에서 각국은 규칙(rules)에 따라 행동하면 되지만, 미국은 이를 무시한채 힘(powers)을 앞세워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켰기 때문이죠. 견디다 못한 EU와 일본 등 세계 각국은 새로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미국의 행보를 통제하고 싶어했습니다


미국 또한 GATT를 대체할 새로운 무역시스템이 만들어지기를 바라왔습니다. 기존 GATT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고, 시장개방 논의도 상품시장에만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분쟁해결기구(DSB)를 통해 공식적으로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제제하기를 원하였고, 미국이 강점을 가진 서비스(GATS) 부문의 시장개방과 지적재산권(TRIPS) 보호를 얻어내고 싶어했습니다.


1986년~1994년 동안 개최된 GATT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세계 각국은 의견을 개진하였고, 1995년 1월 1일부로 새로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인 WTO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들면서 경제력을 회복한 미국은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사용을 자제하였고,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WTO를 통해 자유무역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다시 '자유무역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 트럼프행정부 무역정책에서 1980년대 미국의 모습이 보이다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돌아간 줄 알았던 미국은 오늘날 다시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꺼내들었습니다. 2017년에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면서, 기존에 맺었던 무역협정을 비판하고 재협상에 나섰습니다.


① 80년대 타겟은 일본, 10년대 타겟은 중국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8월 14일 아래와 같은 메모를 남기며 미중 무역전쟁을 개시합니다.


"미국은 수년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산업정책은 미국의 기술을 중국기업에게 이전하도록 계속해서 강요해왔다. 우리는 전면적인 조사를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미래 미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이다"


'USTR Robert Lighthizer Statement on the Presidential Memo on China'


이후 8월 18일, 미국은 1974년 무역법 301조와 302조에 근거하여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조사하였고, 다음해인 2018년 3월 22일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관세부과, WTO 제소 등의 대응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미국과 중국은 관세부과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② 트럼프행정부는 중국하고만 무역전쟁을 벌이나? →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비판


그런데... 더 생각해봐야 할게 있습니다. "트럼프행정부가 중국하고만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나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내린 첫 결정 중 하나는 바로 'TPP 탈퇴' 였습니다.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은 말그대로 일본,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싱가포르 등 태평양 인근의 11개 국가가 참여한 대규모 지역 무역협정이며, 부시행정부-오바마행정부를 이어가며 체결되었습니다. 특히 오바마행정부는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라는 외교목표 아래 TPP를 추진해 나갔고, 중국을 봉쇄하는 경제지구를 만드는 것이 암묵적인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하고 무역전쟁을 벌이는 트럼프는 정작 TPP 폐기를 가장 먼저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EU, 일본과도 자동차, 철강 등을 두고 재협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트럼프행정부는 WTO와 같은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Multilateral Global Trade System)이나 TPP 등의 다자주의 협정을 비판하며, 개별 국가와 하나하나 무역협상을 하는 양자주의(Bilateralism), 개별 국가를 위협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즉,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미중 패권경쟁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 vs 공격적 일방주의'의 관점으로 현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③ 1970-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 미국의 일방주의를 억누르기 위해 만들어진 WTO,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전파의 중심이 되다


동시대 냉전 종식은 미국이 적극적으로 WTO를 활용하게끔 만들었습니다. 클린턴행정부는 '관여와 확장'(engagement and enlargement) 라는 외교정책 하에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고 싶어했고, 그 중심역할을 WTO가 맡았습니다.


▶ 미국 우선주의의 귀환 (America First)


개도국 등은 WTO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향유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WTO 가입 이후 글로벌 시장경제 시스템에 편입됨으로써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애초 미국은 WTO 가입한 중국이 시장경제 국가로 전환할 것을 바라왔기 때문에, 중국의 경제발전은 어찌보면 흐뭇한 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시장경제 국가로 전환하지 않았습니다. 개도국은 (미국이 보기엔)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의 이익만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0년대 중국의 WTO 가입과 동시기에 벌어진 IT 혁명은 전세계 무역패턴도 이전과 다르게 변모시켰습니다. 이제 선진국-선진국 간 교역보다는 선진국-개도국 간 교역이 활발해졌고(North-South), 개도국으로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및 세계 각국에 위치한 공장끼리 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글로벌 밸류체인 무역형태(Global Value Chain)이 확산되며,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소득층 소득은 감소해왔습니다.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위해 미국인들의 삶이 망가지는 걸 지켜본다? 트럼프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IT 혁명 등으로 세계화의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고 진단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중요할 뿐입니다.


트럼프행정부는 집권 후 내놓은 국가안보전략보고서(Natiaonal Security Strategy Report)를 통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주요 목표로 내세웠고,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의존하기 보다 양자무역협정(Bilateral Agreement)을 통해 미국에 유리하게끔 무역협정을 다시 체결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힙니다.


즉,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전쟁은 단순히(?) '미중 패권경쟁'이 아니라 아래와 같은 대립구도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 전세계 무역체제의 방향 : '다자주의 vs 공격적 일방주의'


◆ 외교 · 무역 정책의 방향 : '민주주의 · 시장경제 전파 vs 미국 우선주의'


이제 다음부터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를 통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왜 전세계와 무역분쟁을 벌이는지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




※ 참고자료


백창재. 2015. 미국 무역정책 연구


Bhagwati J. 1988. Protectionism


Bhagwati, J. 1989. United States Trade Policy at the Crossroads


Bhagwati, J. 1990. Aggressive Unilateralism


Bhagwati, J. 2002. Going Alone: The Case for Relaxed Reciprocity in Freeing Trade


Bhagwati, J and Irwin, D. 1987. 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U.S.Trade Policy Today


Irwin, D. 1989. Political Economy and Peel's Repeal of the Corn Laws


Irwin, D. 2017. Clashing over Commerce: A History of US Trade Policy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s://joohyeon.com/277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5. Let us trust to the influence of public opinion in other countries - let us trust that our example, with the proof of practical benefits we derive from it, will at no remote period insure the adoption of the principles on which we have acted. [본문으로]
  6. Jagdish Bhagwati, Douglas Irwin. 1987. 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 US Trade Policy Today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8. insisting on reciprocal tariff reductions abroad would only serve to make the task of free trades abroad more difficult by implying that free trade was really in British interest rather than their own. .. the less we attempted to persuade foreigners to adopt our trade principles, the better. [본문으로]
  9.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s://joohyeon.com/216 [본문으로]
  10. Joan Robinson, 1947, Essays in the Theory of Employment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s://joohyeon.com/268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s://joohyeon.com/271 [본문으로]
  14. it is part of an emergency program necessitated by the economic crisis through which we are passing. a full and permanent domestic recovery depends in part upon a revived and strengthened international trade, and ... American exports cannot be permanently increased without a corresponding increase in import. 더글라스 어윈. 2017. Clashing over Commerce 425쪽 재인용 [본문으로]
  15. (If I can get you to also liberalize while I liberalize myself, I gain twice over) [본문으로]
  16. (If there are second-best macroeconomic consideration such as short-run balance of payments difficulties from trade liberalization, the mutuality of liberalization should generally diminish them) [본문으로]
  17. (mutuality of concessions suggests fairness and makes adjustment to trade liberalization politically more acceptable by the domestic losers from the change) [본문으로]
  18. (foreign concessions to one's exporters creates new interests that can counterbalance the interests that oppose one's own trade liberalization) [본문으로]
  19. 이처럼 자그디쉬 바그와티는 Reciprocity의 종류를 first-difference reciprocity와 full reciprocity로 구분 지었습니다. 전자는 호혜주의를 의미하며, 후자는 상호주의 즉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를 뜻합니다. [본문으로]
  20. By contrast, the United States, a latecomer to industrialization, had never embraced the ideology of unilateral free trade. Protection had, without shame, long been part of American trade policy and commmanded intellectual respectability ever since Alexander Hamilton's Report on Manufactures of 1791.출처 : - 바그와티 & 어윈. 1987.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서 상호주의자들의 귀환' [본문으로]
  21. The 'diminished giant' syndrome and the 'over-valued' dollar, combined with the historical appeal of reciprocitarian ideas, have made fairness in trade a politically potent force on the American scene.출처 : - 바그와티 & 어윈. 1987.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서 상호주의자들의 귀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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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Posted at 2019. 1. 13. 23:26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이 기울어진 경기장을 만들었다


지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1]를 통해 누차 살펴봐왔듯이, 1980년대 미국은 대내적으로는 경기침체 · 대외적으로는 세계경제적 지위 감소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거시적 환경은 미국 내에서 보호주의 압력을 증대시켰습니다. 그리고 타겟은 '일본' 이었습니다.


'닫혀있는 일본시장(closed Japanese market)'[각주:2]은 미국 기업들의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낮은 관세율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일본정부의 지도 아래 시행되는 차별적 규제 · 일본기업들 간 폐쇄적 경영 등은 미국기업이 일본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GDP 대비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은 수십년이 지나도록 낮은 수준을 기록한 반면, 미국으로의 수출은 계속 늘려왔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기업들의 불만에 불을 부은 것은 '정부의 보호와 지원에 힘입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성장' 입니다. 


위에 첨부된 1985년 및 1990년 세계 반도체 회사 매출액별 순위를 보시면 NEC · Hitachi · Toshiba 등 일본 기업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반도체 세계시장에서 미국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였던 반면 일본기업은 30% 미만 이었습니다. 그러나 1985년 두 국가는 45%씩 동률이 되었고 때때로 일본이 우위를 점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D램 분야에서 일본의 성장이 돋보였습니다. 미국기업 점유율은 1978년 70%에서 1986년 20%로 하락했고, 일본기업은 30%에서 75%로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일본 반도체 기업의 성장에는 일본정부, 특히 통상산업성(MITI, Min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과 재무성(MOF, Ministry of Finance)의 보호와 지원이 있었습니다. 통산성과 재무성은 외국 기업의 일본시장 접근을 차단한 채, 선택받은 일본 기업들에게 금융 · R&D 지원을 대규모로 단행하였습니다. 또한, 외국기업이 기술이전을 하지 않으면 일본시장에 진입할 수 없게끔 막았습니다.


덕분에 일본 기업들은 미국 반도체 기업의 선진기술을 빌려오거나 무단으로 모방할 수 있었고, 대규모 투자를 위험을 줄인채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덤핑을 통해 해외시장에 아주 값싼 가격에 물건을 팔아 점유율을 늘려나갔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덤핑'(dumping) · '시장 접근'(market access) · '반도체 설계 특허권'(chip design patent) 이슈를 두고 불만을 품을 수 밖에 없었고, 일본정부로 인해 '기울어진 경기장 위에서 불공정한 경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공정무역'(fair trade)을 강조하는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이 1985년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주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첫번째 글에서 첫번째로 나온 문단) 


"국제적인 무역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이 규칙(rules)을 준수하고 개방된 시장(open market)을 보장하도록 애써야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자유무역(free trade)은 말그대로 공정무역(fair trade)이 된다."[각주:3]


"다른 나라의 국내시장이 닫혀있다면(closed)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it is no longer free trade). 다른 나라 정부가 자국의 제조업 및 농업에게 보조금(subsidies)을 준다면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우리 상품을 베끼도록 놔둔다면(copying) 이는 우리의 미래를 뺏는 것이고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하고(violate international laws) 그들의 수출업자를 지원한다면 경기장은 평등하지 않은 셈(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이 되며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산업 보조금을 집행하여 경쟁국에게 불공정한 부담을 안긴다면(placing an unfair burden)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각주:4]


"우리는 GATT 체제와 국내법 하에서 국제통상에 관련한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우리와 맺은 무역협정과 의무를 준수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만약 무역이 모두에게 불공정하다면, 자유무역은 이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ing practices)으로 인해 우리의 기업인들이 실패(fail)하는 것을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서(do not play by the rules) 우리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마는 사태(lose jobs)를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각주:5]


- Douglas Iriwn, 2017Clashing Over Commerce: A History of US Trade Policy, 606쪽 재인용


이제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목표는 '평평한 경기장'(level playing field)을 만들어서 국가 간에 '공정한 무역'(fair trade)을 하는 것이 되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 중 하나가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 왼쪽 : 1980년대,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로라 D. 타이슨 

  • 오른쪽 : 전략적 무역 정책 이론을 만들었으나, 현실 속 적용은 반대했던 폴 크루그먼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은 자유무역 체제의 한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1980년대 미국 내 무역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그녀는 반도체 · 전자 · 의약 등 고부가가치 최첨단산업(High Value-added, High-Tech)은 다른 산업보다 경제 전체에 더 이로움을 주기 때문에, 미국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전략적 무역 정책 이론을 만들어낸[각주:6]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정작 현실 속 적용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산업정책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대부분의 기준은 형편없으며 비생산적인 정책을 낳을 것이다. 경제이론상 정교한 기준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론적모형이 실제 정책처방으로 적절한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라며 산업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1980년대 미국-일본 간에 벌어진 '반도체 무역분쟁'을 살펴보면서 당시에 발생한 국제무역논쟁을 더 자세히 이해하도록 합시다. 




※ 1970년대 말, 보호 · 통제 · 미국기술 모방으로 급성장한 일본 반도체 산업


1960-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기관은 통상산업성(MITI)과 재무성(MOF) 입니다. 이들 기관은 기업들에게 자원을 인위적으로 할당하고 경영방향도 제시하는 '지도'(administrative guidance)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통산성(MITI)과 재무성(MOF)의 역할은 '일본 반도체 산업 발전과정'에서 더욱 돋보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일본 반도체 산업 뒷면에는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통산성은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연구개발을 위해 Fujitsu, Hitachi, Mitsubishi, NEC, Toshiba 등 선택받은 일본기업들에게 1976-79년동안 약 2억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통산성은 '외국기업의 시장접근 통제'와 '일본기업간 공동 R&D 지원' 정책을 통해 선진 미국 기술을 일본으로 옮겨왔고 일본 기업간 불필요한 경쟁을 억제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반도체산업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 통제된 접근 (Controlled Access)


통산성과 재무성은 일종의 '도어맨'(doorman) 역할을 하였습니다. 외국기업이 일본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재무성은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규제했고, 통산성은 특허 · 라이센스 형태의 기술수입(technology imports)을 통제했습니다. 


즉, 통산성은 외국기업의 시장진입 조건으로 '기술이전'(transfer of technology)을 강요했는데,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의 사례가 이를 보여줍니다.


1968년 TI는 일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SONY와 합작투자 협약을 맺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설립하려고 했었으나 일본정부가 허가하지 않아서 합작투자로 선회한 겁니다.  


이과정에서도 반도체 부품 중 핵심기능을 맡는 집적회로(IC) 설계 특허를 일본기업에게 라이센스 해주느냐를 놓고 줄다리기가 오고갔습니다. 일본정부는 TI가 가진 특허권 효력을 일시정지 시키면서 협상에 응하기를 압박했습니다. 결국 협상의 결론은 'TI와 SONY의 5:5 합작투자 및 TI의 일본시장내 점유율 최대 10%로 제한'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보러스(Michael Borrus) · 제임스 밀스타인(James Millstein) · 존 지즈먼(John Zysman) 등은 <미국-일본 간 반도체 산업 경쟁>(<U.S.-Japanese Competition in the Semiconductor Industry>)을 통해, "TI의 사례가 보여주는 기술확산 및 제한된 시장접근 전략은 일본기업이 미국의 기술수준을 모방할 수 있게 해주었다"[각주:7]고 말합니다.


▶ 일본 기업간 R&D 협력 (Collaborative R&D)


일본 통산성은 이렇게 들여온 미국 선진기술을 사용하는 방식마저 통제하였습니다. 정부는 일본기업들 간에 범용기술이 확산되도록 독려하였고, 특정 상품에만 사용되는 기술은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지원을 꺼렸습니다.


그리고 일본 기업간 (쓸데없는) 경쟁이 초래할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통제하였고, 기업들에게 각각의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 보호와 통제 그리고 미국으로부터의 기술이전으로 급성장한 일본 반도체 산업


1980년대가 되자 미국 반도체 기업의 일본시장 접근이 겉보기에는 보다 쉬워졌습니다. 미국산 반도체 상품 관세가 지속적으로 인하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시장은 여전히 폐쇄성을 띄고 있었습니다.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다른 전자상품도 생산했기 때문에 반도체 구매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미국산 반도체의 구매량과 종류를 통제하였고, 케이레츠(keiretsu)를 구성하고 있는 계열회사에게도 이를 강제했습니다. 


이런 보호 속에서 일본정부의 R&D 투자 금융지원은 확대되었고, 미국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수준을 재빠르게 끌어올렸습니다. 그 결과, 1984년 세계 RAM 생산에서 일본 기업들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제품 종류별로 60~90%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본 반도체 산업 발전은 '정부가 비교우위를 창출'(Creating Advantage)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글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비교우위'[각주:8]를 통해 일본 경제발전의 이론적 함의를 배웠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 <The Narrow Moving Band, The Dutch Disease, and The Competitive Consequences of Mrs.Thatcher - Notes on Trade in the Presence of Dynamic Scale Economies>를 통해, 과거부터 많은 양을 생산하여 지식을 많이 축적한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기업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생산에 착수하고 관세라는 보호막에 힘입어 자국 내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보호 기간 중에 쌓은 지식과 노하우로 언젠가는 상대적 생산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보호가 비교우위를 영구히 바꿔놓은 겁니다.


크루그먼은 일본정부의 산업정책을 사례로 논문을 썼던 것이고, 제목 중 'The Narrow Moving Band'는 한 산업을 발전시킨 뒤에 다른 산업으로 정책이 옮겨가는 모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1981년, 정치적행동을 시작한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IA)


이렇게 정부의 보호와 지원 아래 성장한 일본 반도체 업계가 1970년대 후반부터 세계시장을 점유해감에 따라, 미국 반도체 업계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고 정치적행동을 개시합니다. 이들은 1977년 반도체산업협회(SIA,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를 창립합니다.


SIA가 미국정부에 요구한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미국기업 보호와 지원. 둘째는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 입니다.


SIA는 반도체 칩 설계 특허권 보호, R&D 세제지원 등을 미국 정부에 요구하였고, 덤핑(dumping)과 시장접근(market access) 등 일본의 불공적 무역을 정치적으로 이슈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이목을 끌기 위하여 '공정무역'(fair trade)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를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는데, 이 단어들은 1980년대 미국-일본 간 무역분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 미국정부는 우리 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라!



당시 미일 반도체 분쟁은 메모리칩을 중심으로 발생했습니다. 1985년 기준 전체 반도체 상품 중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8%였고, 특히 DRAM 하나가 7%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특징은, ①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R&D 고정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며(large fixed costs), ② 제품 출시 사이클이 매우 짧으며(rapid product cycles) ③ 기업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모리 반도체 세대 전환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unprepared transition) 입니다. 


① 앞서 말했듯이, 일본정부는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개발에 4년간 2억달러를 투자했으며, 전체 반도체 산업에 들어간 직접적 · 비집적적 금융지원은 1976-82년간 약 5억~2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②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DRAM 메모리는 짧은 주기로 고성능 상품이 출시되는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 1K 램이 등장한 이래 1973년 4K, 1976년 16K, 1979년 64K, 1982년 256K, 1985년 1M, 1989년 4M, 1991년 16M 램이 개발되었죠. 


③ 이때 제품의 상용화는 개발이 완료되었을 때가 아니라 생산비용이 이전세대에 인접한 수준으로 떨어졌을 때 이루어지는데, 기업은 이 시점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1976년 개발된 16K 상품은 생산비용이 4K와 유사한 수준까지 하락한 1978년이 되어서야 상용화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은 '반도체 업계 R&D 투자는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드러내줍니다.


본 블로그의 다른글 '창조적파괴를 통한 경제성장 모형'[각주:9]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성공한 기업이 누리고 있는 독점이윤은 오직 다음 혁신이 발생할 때까지만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혁신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혁신에 성공했을 때 기쁨을 누리는 기간이 짧아짐을 의미합니다.


즉, ① 대규모 R&D 투자를 단행해야 적어도 뒤처지지는 않는데 ② 짧은 제품 출시주기는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도 짧게 만들며 ③ 정확히 언제 수익을 실현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현재 상품이 구세대로 전락할지 정확한 예측은 힘듭니다. 


여기서 미국기업이 가진 불만은 "일본기업은 정부의 보호 아래 투자위험성을 줄이고 있는데, 미국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고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공동 R&D 투자를 통해 위험을 줄이고 싶었는데 反독점법은 이를 규제하고 있었으며, 미국정부는 일본기업의 특허권 침해도 수수방관 하고 있었습니다.


SIA가 반도체 칩 설계 특허권 보호, R&D 세제지원 등을 미국 정부에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미국정부는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게끔 압박하라!



SIA가 더욱 중점을 둔 것은 '일본의 불공적 무역관행 시정' 이었습니다. 아무리 미국정부가 기업들을 도운다 하더라도, 일본기업의 덤핑과 일본시장 접근 제한이 계속된다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반도체 업계의 불만은 반도체 산업 침체기에 더욱 높아졌는데, 특히 1981년 DRAM 가격 하락으로 인한 침체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일본기업의 덤핑 → 가격 하락 → 치킨 게임 → 미국 반도체 기업 침체 및 퇴출'이 발생하면서, 미국 기업들은 일본정부를 상대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상무부 부차관보을 역임했던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Clyde V. Prestowitz)는 다음과 같이 회고 합니다. "시작은 1981년 가을이었다. 미국 반도체 업계를 대변하는 사람이 워싱턴에 빈번하게 출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일본 덤핑의 종료 · 일본이 미국에서 물건을 파는 것과 동일한 기회를 일본시장에서 갖기 · 반도체 설계 특허 침해 방지 등을 요구하였다."[각주:10]




※ 최첨단산업의 중요성 및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왜 유독 '반도체 산업'을 둘러싸고 미국-일본 간 무역분쟁이 크게 벌어진 것일까요? 물론 당시 전자 · 자동차 · 철강 · 섬유의복 등등 다양한 산업들도 일본 및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따른 경쟁심화에 불만을 가졌으나, 대중들의 주목을 유독 끈 것은 반도체 였습니다.


미국 대중들은 반도체 산업을 '최첨단산업'(High-Tech Industry)으로 인식하였고, 일본기업에게 최첨단산업 주도권을 내준다면 미국의 미래도 빼앗길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 로라 D. 타이슨과 그의 1984년 저서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최첨단 산업 내 무역분쟁』


최첨단산업의 중요성 · 국가경쟁력 상실 · 정부개입의 필요성 등의 인식이 확산되게끔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 입니다. 그녀는 1984년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최첨단 산업 내 무역분쟁』(『Who's Bashing Whom? - Trade Conflict in High-Technology Industries』)과 여러 논문·보고서를 통해, '일본정부의 불공정 무역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미국 최첨단 산업의 현실'을 묘사했고, '미국정부가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왜 이러한 주장을 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합시다.


▶ 반도체 · 컴퓨터 등 최첨단 산업이 다른 산업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이유


타이슨은 반도체 · 컴퓨터 등의 '최첨단산업'(high-tech)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미국정부가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최첨단산업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격이 전체 경제에 이로움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성격은 '초과이윤'(excess profits) 및 '고부가가치'(high value-added) 입니다. 반도체 등 최첨단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막대한 고정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진입장벽이 존재합니다. 만약 진입을 한다고해도 고정비용을 회수할만큼의 이윤을 거두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됩니다. 결국 이미 자리를 잡은 한 개 혹은 소수의 기업만이 시장에 존재하여 양(+)의 이윤을 누리게 됩니다.


두번째 성격은 'R&D 활동의 파급영향'(spillovers from R&D activities) 입니다. 반도체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R&D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기술 및 축적된 신지식이 다른 산업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지식의 외부성[각주:11] · R&D 그 자체의 중요성[각주:12] 등을 강조한 신성장이론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도 최첨단산업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세번째 성격은 '연계가 가져다주는 외부성'(Linkage Externality) 입니다. CPU와 RAM 등 반도체 부품은 여러 제품에 투입요소(input)로 들어갑니다. 이때, 반도체 산업은 기술이 발전하고 경험이 축적될수록 생산성이 향상되어 비용이 감소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 발전은 다른 제품 생산비용을 감소시키는 긍정적 영향을 가져다줍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통해 미국 기업을 보호·지원 해야하는 이유


이렇게 가치 있는 최첨단산업을 보호하고 키우기 위해서 자유무역 원리에 위배되는 무역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을까요? 특정 산업이 가치가 있다는 것과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 한다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최첨단 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생산자 간 전략적 고려가 행해지는 과점시장'(strategic behavior in oligopoly market) 이라는 점 입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을 소개한 지난글[각주:13]에서 이야기 했듯이, 과점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의 선택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리는 전략적 행위를 합니다. 이로인해 상대방 이윤이 늘어날 때 자신의 이윤은 감소하는 '전략적 대체관계'가 나타납니다. 이는 정부의 개입으로 초과이윤을 만들어내는 산업에서 외국기업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increase a country's share of rent in a way that raises national income at other countries' expense)는 함의를 안겨다 줍니다. 


로라 D. 타이슨은 "미국 최첨단기업의 세계시장 속 경쟁 지위가 약화됨에 따라, 보호와 지원을 바라는 요구가 증대되었다"[각주:14]고 말합니다. 그리고 "최첨단산업의 특별한 특징-규모의 경제와 가파른 학습곡선-을 고려하면, 기업의 전략적 무역 접근 요구가 증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외국시장 접근 여부와 외국 기업 및 정부의 행위는 국내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은 개방되어 있고 외국 시장은 닫혀있다면, 외국 경쟁자는 자국내 생산량 증대 덕분에 효율성과 생산의 학습효과을 누리게 되는 반면, 국내 경쟁자는 쪼그라든다."[각주:15]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개입하여 외국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내 기업으로 이전시키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의 필요성이 부각됩니다.


타이슨이 생각하는 전략적 무역 정책은 ① '국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을 정립하고(internationally accepted rules of the game for competition), 이를 외국에게 강제하고 압박하기 위하여 ② 달성해야할 부문별 성과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specifying sectoral outcomes) 입니다.


이전글에서 살펴본 루디 돈부쉬[각주:16]가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은 다음 10년간 연간 15%씩 증가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를 말한 것과 타이슨의 주장은 약간 다릅니다. 돈부쉬는 경제 전체 혹은 대분류 산업을 타겟으로 결과를 달성하기를 원했다면, 타이슨은 구체적인 산업을 타겟으로 규칙을 먼저 정립하는 방식을 선호하였습니다. 결과를 추구하는 건 어디까지나 외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 현행 GATT 체제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타이슨은 당시 국제무역 체계였던 GATT 하에서는 전략적 무역 정책이 추진될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약 120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GATT 시스템상 빠르게 진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GATT는 관세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보조금 · 덤핑 등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s)이나 지적재산권 침해로 인한 피해(intellectual property)를 규제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타이슨은 반도체 부문을 대상으로 미국-일본 간 양자협상(bilateral agreement)을 통해 공정한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 이것은  '공정한 게임'(fair play)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무조건적인 보호무역정책(unconditional protectionism)보다 전략적 무역 접근(strategic trade approach)이 미국정부에게 우호적일 수 있다고 바라봤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전략적 무역 정책은 일본에게 '공정한 게임'(fair play)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보호주의가 아니라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여 평평한 경기장을 만드는 것(level playing field) 입니다. 


둘째, 협정을 통한 규칙 제정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수많은 외국정부들이 최첨단산업이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자국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늘어만 갔습니다. 결국 국가간 협정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 정부가 해야할 선택은 자유화와 개입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


로라 D. 타이슨은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였으나, 국제무역이론이 상정하는 세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녀는 "현실 속 국제무역 세계는 자유무역 세계가 아니며,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무역을 관리한다(manage)"[각주:17]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무역론자들이 만든 GATT의 규제 또한 정부간 협상의 결과물 입니다.


그녀는 "일반론인 자유무역 이론을 현실에서 말해서는 안되며(no general theoretical principles), 정책결정권자가 해야하는 선택은 순수한 자유무역 vs 순수한 보호무역이 아니라, 자유화와 개입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다(choices about the appropriate combination of liberalization and government intervention). 이것이 국민후생을 증대시키고 더 개방된 국제무역 시스템을 지속하게끔 만든다."[각주:18]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다른 선진 산업국가와 최첨단산업 규칙(rules)을 둘러싼 관리무역협정(managed trade agreement)을 맺는 것이 현명하며, 이를 통해 '특정 산업에서 협력과 표준을 달성할 수 있다'[각주:19]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 1986년, 미국-일본 반도체 협정 체결 


1980년대 초중반은 이처럼 미국 내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요구하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있었고, 반도체 업계의 요구에 회의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처마다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기업계와 노동계를 대표하는 상무부와 노동부는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기를 원했으나, 냉전기 동맹 · 안보를 중요시했던 국무부 등은 동맹국인 일본을 압박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1985년 이었습니다. 


반도체 업계는 가격 하락으로 인한 또 다른 불황이 시작을 겪게 되었고 특히 메모리 칩 시장에 집중되었습니다. 반도체 판매는 20% 감소했고 DRAM은 60%나 줄었습니다. SIA는 다시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였고, 1985년 6월 14일 일본 반도체 기업을 '1974년 통상법 제301조' 위배혐의로 미 무역대표부(USTR)에 제소합니다. 


'1974년 통상법 제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란 'unreasonable, unjustifiable, discriminatory'한 외국의 무역행위를 USTR이 조사한 이후 대통령의 제재조치가 실시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법안입니다. 1984년, unreasonable 정의에 '공정하고 동등한 시장 기회를 부정하는 어떠한 법안, 정책, 관행'(any act, policy, or practice which denies fair and equitable market opportunities)을 추가함으로써, 일본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일방적 보복을 할 수 있는 법률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재선에 성공하고 1985년 출범한 레이건 행정부 2기는 이전과 달리 일본의 불공정 행위를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달러가치는 최고수준을 기록하며 무역적자가 계속 심화된 경제 환경도 정책방향을 선회하게 만들었습니다.


1985년 9월, 레이건 대통령의 'fair trade' 연설이 나오게 되었고,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일본 반도체 업계의 행태를 크게 문제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86년 초, 미국 반도체산업 협회(SIA) · 무역대표부(USTR)와 일본 전자산업 협회(EIAJ) · 통상산업성(MITI) 간 시장진입(market access) · 덤핑(dumping)을 주제로 한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EIAJ는 301조 보복을 종료시키고, 시장접근과 덤핑 이슈에 대해 구체적인 보장을 하지 않은채 협상을 끝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SIA는 덤핑을 확실히 방지하고, 실제적인 시장접근('real' market access) 보장을 얻어내지 않는 한 협상을 마무리 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일본에서 판매할 기회를 얻는 게 아니라 실제 판매의 증가(actual realization of sales)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1986년 미국-일본 반도체 협정'(1986 U.S.-Japan Semiconductor Trade Agreement)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협정과정에서 '향후 5년내 일본시장에서 외국산 반도체 상품 점유율 20%를 기록한다'는 구체적인 성과를 강요하는 내용이 다루어졌고, 1991년 반도체 협정 개정에서 공식적으로 문구가 삽입되었습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둘러싼 비판, 경제학자들의 노파심 때문일까?


1980년대 자유무역에서 전략적 무역으로의 미국 무역정책 전환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낳았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일본에게 공정한 게임을 요구했고, 반도체 협정을 통해 성과를 이루어냈으니 된 거 아니냐?" 라고 하기에는 더 생각해봐야 할 논점들이 존재했습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이론화 하였으나 실제 적용에는 회의적이었던 폴 크루그먼

  • 1983년 잭슨홀미팅에서 '산업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다

  • 크루그먼의 발표 보고서 <Targeted Industrial Policies: Theory and Evidence>


결국 전략적 무역 정책의 현실 적용을 둘러싸고 경제학자들 간에 논쟁이 거세게 붙게 됩니다. 1983년 <산업변화와 공공정책>(<Industrial Change and Public Policy>)을 주제로 한 잭슨홀미팅이 논쟁이 벌어진 장소였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Targeted Industrial Policies: Theory and Evidence> 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주목을 끌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신무역이론[각주:20]생산의 학습효과[각주:21] · 전략적 무역 정책[각주:22] 이론화를 이끌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크루그먼은 "향후 10년간 산업을 targeting 하는 정책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산업이 targeted 되어야 하는가? 결국 중심 이슈는 선택의 기준(criteria for selection)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크루그먼은 "산업정책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대부분의 기준은 형편없으며 비생산적인 정책을 낳을 것이다. 경제이론상 정교한 기준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론적모형이 실제 정책처방으로 적절한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각주:23]라며 산업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전략적 무역 이론의 개발자가 왜 실제 정책 처방에 회의적인지, 그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이해해 봅시다.


▶ 대중적인 기준(Popular Criteria)이 가진 문제점


로라 D. 타이슨은 최첨단산업을 타겟으로 한 산업·무역정책이 실시되어야 하는 근거로 고부가가치 · 연계가 가져다주는 외부성 · 미래 경쟁력 등을 들었는데, 크루그먼은 이러한 기준들이 다 타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① 1인당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 (High value-added worker)


: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택하여 육성하자는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중이 높아질수록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크루그먼은 "왜 산업별로 근로자 1인당 부가가치가 다르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특정 산업이 1인당 부가가치가 높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자본이 많이 투입되었을 뿐이라는 게 크루그먼의 설명입니다. 


따라서, 이들 산업의 자본/노동 비율은 매우 높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한다면 주어진 투자 수준에서 더 적은 사람이 고용될 것이고 실업률은 올라갑니다. 또한, 한계생산체감에 의해서 경제성장률은 점점 떨어집니다. 결국 고부가가치 부문 투자를 독려하는 산업정책은 실업률 상승과 느린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이 크루그먼의 주장입니다.


② 연계된 외부성을 가져오는 산업 (Linkage)


: 앞서 타이슨은 반도체 등은 다른 산업의 투입요소(input)로 쓰이기 때문에, 이들 산업이 발전하면 타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습니다. 당시 다른 학자들 또한, 일본의 경제발전 성공요인을 철강 · 전자 · 반도체 등 투입요소의 성격을 지닌 산업을 육성했다는 점에서 찾곤 했습니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시장을 왜곡시키는 요인이 없다면, 시장은 알아서 연계산업에 필요한 적절한 양의 투자를 집행했을 것"[각주:24]이라고 말하며, 시장원리를 강조합니다. 물론, 연계산업 진흥을 방해하는 시장실패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산업의 투입요소로 작용한다는 기준만으로 산업정책을 시행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합니다[각주:25]


③ 미래 경쟁력 (Future Competitiveness)


: 반도체와 같은 최첨단산업은 말그대로 최첨단이기 때문에, 미래 경쟁력을 위해 육성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궁극적 경쟁력은 산업정책 대상을 선정할 때 유용한 기준이 아니다. 이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게 될지 아닐지 알더라도, 이것은 그 산업이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각주:26]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유치산업보호론 논쟁[각주:27]을 통해서 이미 살펴본 바 있습니다. 유치산업 정책은 '특정한 경우'에만 타당하며, 특정한 경우란 외부성 등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때를 의미합니다. 즉, 단순히 잠재적 성장 가능성 등만으로 산업정책을 시행해서는 안된다는 게 크루그먼의 주장입니다.


▶ 더 정교한 기준(More Sophisticated Criteria)이 가진 문제점


전략적 무역 정책은 '규모의 경제 · 외부성 · 과점 등 불완전경쟁'을 기반[각주:28]으로 하고 있습니다. 불완전경쟁 시장구조는 자유무역 정책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통찰은 제공하였지만, 항상 전략적 무역 정책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지난글에서 짚었듯이, 꾸르노 모형 · 스타겔버그 모형 등등을 사용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의 논리를 그럴싸하게 설명 하였으나, 정부는 개별 기업의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혹시 어떤 행위를 선택할지는 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어느 정도의 보조금을 지원해야 외국기업의 행동을 자국기업에게 유리하게 변경시킬지는 알지 못합니다. 


즉, 전략적 무역 정책은 모형의 파라미터 값의 변화나 기본 전제가 변하면 결론도 크게 달라지며, 크루그먼은 이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 보호주의 정책이 자유무역 정책을 대체할 가능성에 노파심을 갖는 경제학자들 

 

전략적 무역 정책을 만든 경제학자가 현실 속 실행을 반대한다는 건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에게 이는 매우 자연스럽고 권장할만한 행위 입니다. 왜냐하면 경제학 이론과 학자들의 주장은 '특정한 조건이 주어져있을때'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것을 고려치않고 남용할 경우 해로운 결과를 사회에 안겨다준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레이건 행정부 시기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마틴 펠드스타인은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가 무역적자의 원인이다."[각주:29]라고 말하며 정부의 감세정책을 비판했으나, 레이건 정부 인사들이 감세정책을 고안해낸 건 그의 연구 덕분이었습니다. 펠드스타인은 "조세가 경제주체의 행위를 왜곡시킨다"는 논문을 출판했었는데, 보수 정치인들은 이를 "그러므로 세금을 없애야한다"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건 펠드스타인이 의도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은 정책입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을 만든 폴 크루그먼 ·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도 이 점을 우려하여 논문 말미에 "이건 이론적 논의일 뿐이다"며 주의를 주었으나, 타이슨 및 기타 인사들은 "자유무역 정책은 오늘날에 맞지 않다. 그러므로 정부의 개입이 꼭 필요하다."로 선전했습니다. 이것은 신중한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행태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기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자유무역 주장을 고수하는 아이러니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1980년대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하며 옹호했던 경제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자유무역 원리가 가진 한계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 문제로 인식하는 건, 그들의 주장이 보호주의자들의 선전으로 가로채질 가능성 입니다. 


우리는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첫번째 글[각주:30]에서 '노파심을 가지고 자유무역 원리를 계속 설파해야 하느냐 vs. 자유무역의 문제점을 대중들에게 신중히 설명해야 하느냐'의 논점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2018년 출판된 『Straight Talk On Trade』 서문을 통해,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중한 분석이 보호주의자들에게 남용되어 '야만인들의 탄약'(ammunition for the barbarians)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에 노파심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노파심이 오히려 대중들의 외면을 부른다고 지적합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대중논쟁장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가로채질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학자들은 국제무역에 있어 한 가지 방향만 말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논쟁 장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 그들은 또한 무역의 옹호자로 나설 기회도 잃고 만다."


우리는 앞으로 살펴볼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 시리즈, 즉 오늘날 중국 제조업의 발전과 교역확대가 초래하는 무역논쟁을 볼 때에도, 노파심으로 인해 자유무역 원리만을 고수하는 경제학자들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공격적 일방주의 및 GATT 한계가 가지는 의미는?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IA)가 일본 반도체기업을 제소할 수 있었던 근거는 '1974년 통상법 제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공정 무역 관행 여부를 판단한 것은 당시 국제무역 시스템이었던 GATT가 아닌 미국정부 였습니다. 미국정부가 자국의 무역이익 침해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고 일본을 상대로 보복조치를 취한 겁니다.


GATT는 말그대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을 의미하는데, 1980년대 벌어진 무역분쟁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GATT는 주로 관세를 규제하는데, ① 시 국가들은 관세가 아닌 보조금 · 덤핑 등 비관세장벽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보호했습니다. 또한, ② 국가간 무역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③ GATT는 서비스산업 · 지적재산권 등 당시 미국이 우위를 가지고 있는 부문을 다루지 못했고, 이는 미국의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일본 등 다른나라들이 자국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데 GATT 체제 속에서 대응을 하지 못하였으며, 서비스산업 무역자유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자국의 법률인 1974년 통상법 제301조를 근거로 일방적 보복을 행사하였고, 이후 1988년 종합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 속 '슈퍼301조'(Super 301 Article)를 제정하여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 행보를 강화해 나갑니다.


이처럼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자국의 이익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GATT 체제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격적 일방주의 행보'를 보였다는 점 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글에서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본 이후,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으로 넘어가 오늘날 미국-중국 간 무역분쟁을 이해합시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joohyeon.com/277 [본문으로]
  3. to make the international trading system work, all must abide by the rules. All must work to guarantee open markets. Above all else, free trade is, by definition, fair trade. [본문으로]
  4. When domestic markets are closed to the exports of other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their manufacturers and farmers so that they can dump goods in other market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permit counterfeiting or copying of American products, it is stealing our future, and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assist their exporters in ways that violate international laws, then 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 and there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industries for commercial advantage and underwrite costs, placing an unfair burden on competitors, that is not free trade. [본문으로]
  5. we will take all the action that is necessary to pursue our rights and interests in international commerce under our laws and the GATT to see that other nations live up to their obligations and their trade agreements with us. I believe that if trade is not fair for all, then trade is free in name only.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businesses fail because of unfair trading practices abroad.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workers lose their jobs because other nations do not play by the rules.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7. ''the strategy of technological diffusion and limited market access, implied in the TI story . . . enabled Japanese firms roughly to mimic technological developments in the United States.'' 폴 크루그먼이 편집한 '전략적 무역 정책과 신국제경제학'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9.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9 [본문으로]
  10. It was at this juncture in the fall of 1981 that representatives of the U.S. semiconductor industry began making regular trips to Washington. They asked not for protection but for an end to the Japanese dumping, for the same opportunity to sell in Japan as the Japanese had in the United States, and for an end to Japanese copying of new chip designs.- 출처 : Irwin, 1996 재인용 [본문으로]
  11.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12.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14. demands for protection and support by high technology producers have intensified as their competitive position in world markets has weakened. [본문으로]
  15. The special features of high-technology producers make their growing demands for strategic trade approaches understandable. 32 As just noted, such producers are often characterized by large economies of scale and steep learning curves. Under these circumstances, access to foreign markets and the behavior of foreign firms and governments can directly affect the profitability of domestic producers. In industries in which the U.S. market is open and large foreign markets are closed, foreign competitors may be able to achieve more efficient scale and learning advantages as a result of increased volume in domestic and overseas markets, while domestic competitors are squeezed into a portion of the domestic market. [본문으로]
  1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joohyeon.com/277 [본문으로]
  17. In reality, the world of inter national trade is not a world of free trade. Governments control or manage trade in various ways. [본문으로]
  18. For informed policy making, the real choices are not choices between pure free trade and protection-which most economists incorrectly equate with managed trade-but choices about the appropriate combination of liberalization and government intervention that will improve national economic welfare and sustain a more open, international trading system over time. [본문으로]
  19. greater coordination and standardization of behavior in specific industries [본문으로]
  20.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2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23. The answers I will suggest are not encouraging. Most criteria for targeting suggested by the advocates of industrial policy are poorly thought out and would lead to counterproductive policies. While there are more sophisticated criteria suggested by economic theory, we do not know enough to turn the theoretical models into policy prescriptions. [본문으로]
  24. What does formal economic theory have to say? In textbook economic models, the fact that some industries are inputs into other industries is not in and of itself a source of market failure. In the absence of other distorting factors, the market will in theory produce exactly the appropriate amount of investment in linkage industries. [본문으로]
  25. The fact that an industry provides inputs into other industries does not in and of itself mean that markets underinvest in that industry. There may be market failures which do make it desirable to promote a linkage industry, but the fact that an industry provides inputs to the rest of the economy gives us no help in deciding whether or not it should be targeted. [본문으로]
  26. Unfortunately, knowing that an industry will or might become competitive tells us nothing about whether it should be promoted.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29.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0.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joohyeon.com/2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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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Posted at 2019. 1. 10. 00:0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문제는 일본시장의 폐쇄성(closed market)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심화 등 거시경제 환경 악화[각주:1] 미국민들에게 국가경쟁력 상실의 우려를 안겨주었습니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마틴 펠드스타인 등 경제학자들 "무역적자는 경쟁력 상실이 아닌 자본흐름 변화 때문이다.[각주:2] 또한 절대적 생산성이 둔화되더라도 여전히 비교우위에 의한 교역은 가능하다" 라고 말하였으나, 미국 기업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시장 속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기업들은 "외국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각주:3]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은 대규모 고정투자가 필요하며, 생산량이 많은 기업만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결국 개별 국가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 형태로 기업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소수의 기업만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과거와 달라진 시장구조는 "외국정부의 자국기업 보호지원 정책이 미국기업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안겨다 줄 수 있다"[각주:4] 라는 새로운 통찰을 탄생시켰고, "외국의 불공정무역 관행을 시정케하거나 미국정부도 자국기업을 돕는 산업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보호주의 무역정책 요구가 미국 내에서 커졌습니다 



미국기업이 문제 삼았던 외국은 바로 '일본'(Japan) 이었고, 이들의 '닫혀있는 시장'(Closed Market)이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198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0.7% 였으나,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하였는데, 이 중에서 대일본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가까이에 달했습니다.  


특히 대일본 무역적자의 상당수를 제조업 상품(Manufactured Goods) 교역이 초래하였고, 미국기업들은 일본의 공식적 · 비공식적 무역장벽들로 인해 일본시장에서 낮은 점유율을 기록할 수 밖에 없다고 인식했습니다. 실제로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은 1967-1990년동안 전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intangible barriers) 입니다. 


분명 일본은 일찍부터 GATT에 가입한 상태였고 관세도 차츰차츰 인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재무성(MOF) 및 통상산업성(MITI)의 지도 아래 시행되는 여러 차별적 규제들(administrative guidance) · 여러 기업이 뭉쳐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계열체제(Keiretsu) 등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은 외국상품 판매를 가로막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80년대 미국 내에서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킬 수 있는 무역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단순히 관세인하 등 무역 규칙(rules)을 변경하는 것으로는 비공식적 장벽을 허물 수 없기 때문에,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른바,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 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 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하는 학자들은 이런 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근본적으로 일본 시장은 닫혀있지 않다는 인식도 존재했습니다. 다른 한편, 일본시장 폐쇄성이 문제이긴 하지만 전체 무역수지 등 총집계지표(aggregate)를 대상으로 하는 건 부적절 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성과(outcome)를 내는 무역정책을 찬성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정말 일본시장이 폐쇄적인지 · 일본시장 개방을 위해 필요한 무역정책을 두고 어떠한 논쟁이 펼쳐졌는지를 알아봅시다.




※ 일본시장은 정말 폐쇄적인가? 


  • Robert Z. Lawrence, 1987, <일본 내 수입: 닫혀있는 시장 혹은 닫혀있는 마음?>(<Imports in Japan: Closed Markets or Minds?>) 
  • 비슷한 무역흑자국인 독일과 비교해봤을 때, 일본의 제조업 상품 수입은 현저히 적다


일본시장의 폐쇄성을 논할 때 주로 이용되는 근거는 '극도로 낮은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 입니다. 


1986년 기준, 일본과 독일 모두 제조업 상품 수출로 GDP 대비 10% 가량의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독일은 수입비중이 14%를 기록하며 비교적 수입 또한 많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수출비중(10.4%)에 비해 수입비중(2.2%)이 현저히 낮았고, 독일의 수입비중과 비교해보아도 극도로 낮은 값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선진산업국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의 지리적 위치상 수입이 적을 수 밖에 없다 라거나 일본의 부존자원 특징상 1차상품 교역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조업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일본시장이 폐쇄적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경제학자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며, 일본시장이 실제로 외국기업에 배타적임을 보였습니다. 바로, 로버트 Z. 로런스 입니다.


  •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

  • 1987년 연구보고서 <일본 내 수입: 닫혀있는 시장 혹은 닫혀있는 마음?>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여러 기업이 모여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케이레츠 (Keiretsu) · 일본기업간 오랜 기간에 걸친 협력과 거래 (long-term relationships) · 종합상사회사가 중심이 된 유통시스템 (general trading companies) 등의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외국산 상품 판매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로런스가 말하는 논리를 하나하나 따라가 봅시다.


▶ 일본의 기업내 무역 패턴 (Intra-Firm Trade Patterns)


로버트 Z. 로런스가 주목하는 것은 '기업내 무역 패턴'(Intra-Firm Trade Patterns) 입니다. 


기업이 상품을 수출(수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수출대상국에 위치한 외국기업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것(수입대상국에 위치한 외국기업으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는 것), 둘째는 자국에 위치한 모회사가 수출대상국에 설립된 자회사에 물건을 넘긴 이후 판매하는 것(수입대상국에 설립된 자회사가 물건을 구매하여 자국에 위치한 모회사에 넘기는 것) 입니다.


기업이 외국에 자회사를 설립하여 다국적기업 형태를 갖추는 주된 이유는 해외에 판매망을 직접 설치하여 상품 정보를 직접 전달하고 소비자로부터 피드백을 즉각 받기 위함 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외국 딜러에게 물건을 건넬 수도 있지만, 미국 및 유럽 등에 직접 판매점을 설치함으로써 소비자와 직접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 다국적기업은 자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해외에는 판매 전문 자회사를 설치하는 downstream 구조를 보입니다. 


이러한 다국적기업 형태가 많아질 경우 독특한 무역패턴이 나타납니다. 당연히 동일한 기업내 교역 비중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기업의 국적은 대부분 수출을 행하는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을 한다고 했을 때, 한국의 모회사로부터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로 물건을 수출하는 교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을테지, 미국기업이 한국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부터 미국 모회사로 물건을 옮기는 비중은 비교적 적을겁니다. 완성품 수출은 한국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국적기업이 upstream 형태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upstream이란 해외에서 원자재 등을 가져와 자국에서 생산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기업들은 중동에 설립한 자회사로부터 석유 등을 수입해온 뒤, 한국에서 이를 정제한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이 경우 앞서와는 다른 무역패턴이 나타납니다. 동일한 기업내 교역비중이 증가하는 건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이때 기업이 국적은 대부분 수출을 행하는 나라가 아닌 수입을 행하는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이 한국으로 석유를 수출하는 것이지만, 이는 다르게 보면 한국이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해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모회사가 중동에 설립한 자회사로부터 석유를 들여오는 비중이 높을테지, 중동 모회사가 한국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 석유를 건네는 비중은 적을 겁니다. 원자재 수입은 한국 기업들이 하는 것입니다. 



  • 1986년 기업내 교역 비중 (%)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로버트 Z. 로런스는 "미국의 교역을 살펴보면, 일본과의 거래에서 유독 기업내 거래 비중이 높으며, 미국이 수출을 할 때(=일본이 수입을 할 때) 일본기업 내 거래가 더 많다"고 말합니다. 


이는 위의 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유럽 수출(=유럽의 대미국 수입)에서 기업내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48%, 미국의 대유럽 수입(=유럽의 대미국 수출)은 42% 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일본 수출(=일본의 대미국 수입)은 72%, 미국의 대일본 수입(=일본의 대미국 수출)은 75%에 달합니다.


또한,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할 때 다르게 말해 일본이 미국으로 수출을 할 때, 일본 모회사가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로 물건을 건네는 비중이 전체 기업내 교역 중 66.1%에 달합니다. 미국기업이 일본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부터 본국에 위치한 모회사로 물건을 건네받는 비중은 8.9%에 불과합니다. 이는 일본기업이 자국에서 상품을 생산한 뒤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 판매망에 넘기는 downstream 형태임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을 할 때에 있습니다.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을 만드는 미국 제조업체가 일본으로 상품을 판매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기업 내 거래가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수치를 살펴보면, 미국기업 내 거래는 13.6%에 불과하고, 일본기업 내 거래가 58.4%에 달합니다


혹자는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을 한다는 건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해온다는 것이고, 일본 기업이 미국으로부터 원자재 등을 많이 수입해오기 때문에(=upstream) 일본 국적 기업의 거래가 많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버트 Z. 로런스는 제조업 상품만을 놓고 봤을 때도 일본 기업내 거래가 많고 말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일본 특유의 유통시스템' 입니다.


일본의 수입 상당수는 종합상사회사(General Trading Company)가 수행합니다. 이들은 해외에서 원자재 뿐 아니라 다양한 제조업 상품을 구매한 뒤 일본에 위치한 모회사 혹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long-term relationship)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단순한 중개회사 역할을 맡는 게 아니라 서비스 ·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 · 금융 · 유통 등 다양한 행위를 합니다.


게다가 일본 종합상사회사들은 일본 내 유통시스템에 깊숙히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내 유통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상품을 효율적으로 배분케 합니다. 또한, 동일한 집단에 속해있는 기업들 즉 케이레츠(Keiretsu)들과 밀접한 거래관계를 맺으면서 상품을 유통시킵니다.


이러한 종합상사 및 케이레츠들의 행동은 일본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키웠습니다. 종합상사와 거래관계가 없거나 케이레츠에 끼어들지 못한 외국기업들은 일본에 물건을 판매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분명 일본은 관세를 점차 인하하여 눈에 보이는 무역장벽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미국 기업의 일본시장 진출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일본 수출에서 미국기업내 거래가 아닌 일본기업내 거래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 일본내 높은 수입 제조상품 가격


일본시장 폐쇄성은 '가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본시장이 미국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열려있다면, 일본 내 상품 가격과 미국 내 상품 가격은 거래비용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 할겁니다. 반대로 일본시장이 닫혀있다면, 일본 기업들은 보호 속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겁니다.


로버트 Z. 로런스는 "일본 내 상품가격이 다른 국가보다 매우 높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PPP를 이용한 상품가격 비교시, 일본의 소비재 · 생산재 가격은 미국보다 25% 유럽보다 42% 비싸다고 지적합니다. 


  • 일본과 다른 국가들의 제조업 이익률 및 자기자본이익률 비교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또한, 일본 제조업자들은 상당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익률은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더군다나 일본으로 수입된 상품에 대해서는 일본기업 상품보다 높은 가격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로런스는 "만약 일본 수입업자들이 시장지배력을 통해 초과이윤을 누리고 있다면, 일본의 유통시스템은 마치 '사적으로 설정된 관세'(privately administered set of tariff)처럼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라고 지적합니다.


    ▶ 관세 인하 요구로 일본시장을 개방할 수 없다


    이 시기 자유무역은 '관세장벽 철폐'(removing tariff barriers)를 의미했습니다. 당시 세계무역시스템 이었던 GATT는 말그대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펴본 일본의 무역장벽은 관세인하 요구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관세율은 매우 낮더라도,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사실상 수입상품 가격을 높이거나 아예 시장진입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단순히 "자유무역 규칙(rules)을 준수하라"는 식의 요구를 하기보다,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른바,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 입니다. 




    ※ 결과지향적 관리무역의 필요성


    • MIT 대학 경제학자 Rudiger Dornbusch (1942-2002)


    경제학자 루디 돈부쉬(Rudiger Dornbusch)는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 입니다. 그의 주장은 1990년 출판된 『미국의 무역 전략: 1990년대를 위한 옵션』(『An American Trade Strategy: Options for 1990s』) 중 한 챕터로 실렸습니다.


    돈부쉬는 "GATT 체제는 상당한 보호를 받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문을 여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각주:5] 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GATT 체제의 대표적인 실패는 여전한 일본시장의 페쇄성이다"[각주:6]라고 말합니다. 앞서 소개한 로런스의 주장처럼, "(관세를 줄여나갔음에도) 일본은 서로 다른 종류의 여러막의 보호막이 감싸고 있는 양파와 같다"[각주:7]는 것이었죠.


    그렇다면 돈부쉬는 일본시장의 개방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한다고 주장했을까요?


    돈부쉬는 미국정부가 일본을 향해 공세적인 요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을 타겟으로 맞춰야 한다"[각주:8]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증가율 수치를 제시하는데,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은 다음 10년간 연간 15%씩 증가해야 한다"[각주:9]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일본정부에게 이를 강제할 수단도 제시합니다. 만약 일본이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일본의 미국시장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돈부쉬의 주장은 '결과지향적 조치(results-oriented)를 추구하는 관리무역'(managed trade)'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관리무역이란 정부가 교역에 직·간접적으로 간섭하고 관리하는 무역체제를 의미하는데, 특히나 그의 주장은 단순한 규칙(rules) 준수를 일본에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확한 결과(results)를 내놓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었습니다.




    ※ 일본에게 구체적인 결과를 강제하는 무역정책이 타당한가


    일본에게 구체적인 성과를 강제하자는 주장에 대해 경제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기본적인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하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현재 일본과의 무역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 일본의 무역개방도를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일종의 수출보호주의 (export protectionism)


    •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 (Jagdish Bhagwati)

    •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하는 '일방주의'를 주장했다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더글라스 어윈과 공저한 1987년 논문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 상호주의자들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U.S Trade Policy Today>)를 통해, "일본의 무역개방도를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일종의 수출보호주의(export protectionism)이다" 라고 비판합니다. 


    바그와티가 보기엔 돈부쉬의 요구는 일본에게 '자발적 수입팽창'(VIE, Voluntary Import Expansion)을 요구하는 꼴이었으며, 진정 일본의 무역체제를 자유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제3국을 배제시켜 미국의 수출을 촉진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 바그와티는 '무역상대국이 장벽을 낮춰야만 우리도 자유무역을 하겠다는 상호주의적 발상(reciprocity)'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을 실시하는 게 옳다는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믿었으며, 상호주의가 언제든지 보호무역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바그와티의 믿음과 바람과는 달리,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은 다른 형태의 일방주의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제재 위협을 통해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 이었고,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301조가 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마지막 글을 통해, 일방주의 · 상호주의 · 공격적 일방주의를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 양자적 혹은 일방적 해결방식이 타당한가 → 다자주의 틀 안에서 해결해야


    로버트 Z. 로런스는 현재 GATT체제에 문제가 있으며, 일본시장이 닫혀있다는 문제인식은 돈부쉬와 공유하였으나, 구체적인 해결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로런스는, 일본이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증가율 20% 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상산업성(MITI)과 같은 일본 관료체계가 일본기업들에게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을 강제해야 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시장개방이 아니라 일본 관료가 이끄는 '일본 주식회사'(Japan, Inc)를 더 확대하는 꼴이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경우, 수입물량은 증가하겠지만, 일본경제의 폐쇄적인 시스템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미국이 일본에 강제하는 형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원치 않았습니다. 로런스는 GATT 체제가 문제점은 있으나, 미국-일본 쌍방 간이 아닌 다자주의 무역시스템(multilateral trade system) 틀 안에서 무역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GATT의 문제점을 인지하면서 여전히 다자주의 무역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여긴 사람들의 힘으로 GATT는 1995년 WTO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WTO는 GATT가 다루지 못한 비관세장벽 · 서비스부문 · 지적재산권 등도 포괄적으로 다루었고, 무역분쟁해결절차를 마련하여 공격적 일방주의가 발생하지 않게끔 주의를 했습니다. 


    이것 또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마지막 글을 통해 살펴볼 겁니다.


    ▶ 전반적인 제조업 상품을 타겟으로 삼는 게 타당한가 → 부문별 세심한 접근 필요


    • 1980년대,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로라 D. 타이슨 (Laura D. Tyson)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은 자유무역 체제의 한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1980년대 미국 내 무역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녀는 일본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e practices)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믿은 면에서 돈부쉬와 닮았으나, 전반적인 제조업 상품을 타겟으로 삼는 해결책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타이슨은 최첨단산업(High-Tech) 내 일본의 무역행태를 문제 삼았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 전자 · 의약품 등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산업별 접근(sectoral approach)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정부에 의한 개입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rules)을 수립하는 게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부쉬가 요구한 수량적 타겟은 지양해야 하며, 필요하더라도 후순위로 밀려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 단순한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논쟁이 아니다


    이처럼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순수한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했던 학자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들은 100% 자유무역을 믿은 게 아니라 자칫 시대 분위기에 휩쓸려 미국이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채택할 것을 염려한 노파심이 더 컸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이 처한 무역환경에 대해 문제로 인식하는 정도도 학자들마다 달랐으며, 동일한 문제인식을 공유했더라도 해결방법에 있어서는 또 서로 다른 의견을 보였습니다. 이번글에 나온 로런스와 돈부쉬가 이를 보여주며, 또 돈부쉬와 타이슨 간 서로 다른 해결책도 이를 보여줍니다. 


    1980년대 국제무역논쟁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사례는, 로라 D. 타이슨의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 주장에 대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각주:10]을 이론으로 창안해 낸 경제학자들이 극렬하게 반대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5. The GATT also does little to open up heavily protected developing countries. ... The liberal system has not only failed to check marginal protectionismand to open up LDCs, it has also failed in one of its chief assignments: avoidance of discrimination in international trade [본문으로]
    6. Perhaps the most striking failure of the GATT system is the continuing closedness of the Japanese market [본문으로]
    7. Japan seems to be somewhat of an onion with multiple layers of protection of one kind or another. [본문으로]
    8. A target should be set for growth rates of Japanese imports of U.S. manufactures [본문으로]
    9. Japanese manufactures imports from the United States should grow at an average (inflation-adjusted) rate of 15 percent a year during the next decade.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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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Posted at 2019. 1. 6. 23:1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달라진 시장구조에서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 정책은 타당한가


    1980년대 초중반,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논쟁은 "오늘날 시장구조에서 자유무역이 최선의 정책일까?"에 대한 물음과 답변의 연속입니다. 


    당시 미국이 직면했던 거시경제 환경[각주:1], 세계 GDP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 감소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심화 그리고 일본의 부상은 보호주의 압력을 키웠습니다.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전통 경제학의 설명을 따랐습니다.[각주:2] 재정적자로 인한 총저축 감소가 실질 금리를 인상시켜 자본유입 · 강달러 · 무역적자를 차례로 초래했다는 논리 입니다. 그리고 무역적자를 국가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무역수지는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하는 기초적인 회계등식의 결과물일 뿐인데다가, 통화가치 및 임금 하락을 통해 본래의 비교우위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 기업 경영자들이 보기엔 경제학자들의 설명은 현실을 모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각주:3]에 불과했습니다.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뺏기면 다시 되찾기 힘든데,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설명은 책에서만 타당합니다. 경영자가 직면한 국제무역 환경은 비교우위가 아닌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지배하는 곳 입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경영가의 관점을 수용[각주:4]하여 '한번 획득한 비교우위가 자체 강화되는 모형'을 제시하였습니다.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가 존재할 경우,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 즉 생산을 통해 축적해온 경험과 지식이 현재의 생산성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한번 시장을 내준다면 차이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 독점 및 과점의 불완전경쟁 시장(imperfect competitive market)

    ▶ 동일한상품이 서로 교환되는 산업내무역(intra-industry trade or two-way trade)


    그럼에도 여전히 기존 국제무역이론은 변화한 시장구조와 무역패턴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리카도[각주:5] 및 헥셔-올린[각주:6]의 비교우위론은 무수히 많은 생산자가 존재하는 완전경쟁시장(perfect competitive market)을 기반으로, 개별 국가들이 서로 다른 산업에 특화한 후 상품을 교환하는 산업간무역(inter-industry trade)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1970-80년대 시장구조와 무역패턴은 전통적인 국제무역이론이 만들어진 시기의 것과는 달랐습니다.


    규모의 경제와 외부성이 초래한 불완전 경쟁시장 ,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제시장에 소수의 기업만 존재하는 독점 혹은 과점 (monopoly or oligopoly) 형태를 띄는 산업이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개별 국가들이 동일한 상품을 서로 교환하는 산업내무역이 활발해 졌습니다.


    미국과 일본 간 무역분쟁을 낳은 산업은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이었습니다. 이들 산업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고정투자가 필요하며, 생산량이 많은 기업만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결국 개별 국가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 형태로 기업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소수의 기업만이 존재합니다.


    과거에는 '선진국은 제조업 · 개발도상국은 1차 산업'에 각각 특화하여 산업간무역 패턴을 보였던 것과 달리, 1970-80년대에는 개별 국가들이 동일한 제조업에 특화한 후 서로의 상품을 교환하는 산업내무역 패턴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미국은 반도체를 일본에 수출하는 동시에 일본도 미국에 반도체를 수출합니다.


    이때 독과점 시장구조와 산업내무역 증대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시장개방 이전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이 개방되자 기업들은 생각합니다. "외국에도 물건을 팔면 이익이 늘어나지 않을까?". 외국 수출을 통한 시장확대는 생산량 증가를 통해 규모의 이익을 키웁니다. 그리고 이미 포화상태인 자국을 벗어나 외국에 상품을 파는 건 한계수입이 더 큽니다. 


    따라서, 개별 국가 내의 독과점 기업들은 이윤 증대를 위해 외국 시장으로 침투하고(business stealing), 그 결과 국적이 다른 기업이 만든 동일한 상품이 국경을 넘어 교환되는 산업내무역 패턴이 형성되게 됩니다. 


    (사족 : 산업내무역 발생 이유로 상품다양성 이익를 꼽는 폴 크루그먼의 설명[각주:7]과는 다른 원인)


    ▶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변경시키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이렇게 달라진 시장구조와 무역패턴은 '정부가 개입하여 자국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적극적 무역정책'의 정당성을 키웠습니다. 


    특히 세계시장에 소수의 기업만 존재하는 과점경쟁 구도(oligopoly)에서 '무역정책으로 자국·외국 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변경시킴으로써(alter a strategic choice), 자국기업의 초과이윤(rent)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주 : 여기서 전략이란 '상호의존성에 기반을 둔 선택'을 의미합니다. 생산자가 이윤극대화를 위한 결정을 할 때, 다른 생산자의 결정도 고려한다는 의미 입니다.)


    이른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 첫번째, 두번째 : 제임스 브랜더 (James A. Brander), 바바라 스펜서 (Barbara Spencer)

    • 세번째, 네번째 :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엘하난 헬프만 (Elhanan Helpman)

    • 아래 왼쪽 : 크루그먼이 편집한 1986년 단행본 <전략적 무역정책과 신국제경제학>

    • 아래 오른쪽 : 헬프만과 크루그먼이 편집한 1989년 단행본 <무역정책과 시장구조>


    1980년대 초중반, 전략적 무역 정책 발전을 이끈 주요 경제학자는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 · 폴 크루그먼 · 엘하난 헬프만 등이었습니다. 


    특히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는 1981년 논문 <잠재적 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Tariffs and the Extraction of Foreign Monopoly Rents under Potential Entry>),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International R&D Rivalry and Industrial Strategy>),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Export Subsidies and International Market Share Rivalry>) 등을 통해 전략적 무역 정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과점시장 속 전략적 무역정책은 자국 및 외국 기업의 행위를 변경시켜 이로운 결과를 불러옵니다. 그 경로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 보호와 자국시장 효과(Protection and Home Market Effects) 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독과점 수확체증 산업(increasing return)이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산량이 필수적 입니다. 자국 정부의 보호 아래 국내시장에서 생산량을 증가시키면, 이를 발판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무역정책 성공의 관건은 '자국기업이 국내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외국기업의 행위를 변경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하면 동종산업 외국기업의 전략을 변경시킬 수 있고, 그 결과 수입보호는 수출진흥의 효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러한 효과를 알고, 과거 일본과 같은 개발도상국은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 규모의 경제를 가지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했습니다. 


    둘째, 이윤을 자국기업으로 이동시키는 보조금(Profit-Shifting Subsidies) 입니다. 


    장기적으로 이윤이 0이 되는 완전경쟁시장과는 달리 완전경쟁인 독과점 시장에서는 초과이윤(rent)이 생깁니다. 이때 보조금을 통해 자국기업을 지원하면 외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자국기업에게 이동시키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무역정책 성공은 간건은 '자국기업의 변경된 행위가 외국기업에게 신빙성 있는 위협이 되느냐'(credible threat)에 달려있습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하면 자국기업의 변경된 전략이 외국기업에게 신빙성 있게 인식하게끔 만들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미국 등 선진국은 자국기업의 R&D 투자를 정부가 보조함으로써 신빙성 있는 위협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논리는 자국기업을 단순히 보호 · 지원하는 전통적인 무역정책의 틀을 벗어나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의 전략적 행동을 변경함으로써, 외국기업의 생산량과 초과이윤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의 생산량과 초과이윤을 늘리는 특징(increase a country's share of rent in a way that raises national income at other countries' expense)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독점 및 과점 등 불완전경쟁 시장 하에서의 전략적 무역정책이 어떻게 외국기업의 행위를 변경시켜 자국기업을 돕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이론) 완전경쟁 시장과 불완전경쟁 시장은 어떻게 다른가?


    전략적 무역 정책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과점 시장구조에 관한 기본적인 경제학이론이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본격적인 내용 파악에 앞서 이론 학습을 먼저 합시다. 첨부한 수식이 이해가 어려우신 분들은 글만 읽어 내려가시면 됩니다 !!!


    ▶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불완전경쟁 시장 (excess return / rent)


    완전경쟁(perfect competitive)이란 다수의 생산자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독점 · 과점 등 불완전경쟁(imperfect competitive)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의 생산자만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완전경쟁 시장과 불완전경쟁 시장에서 주목해야 하는 차이는 '초과이윤이 존재하느냐(excess return)' 입니다[각주:8]. 완전경쟁 시장 속 생산자는 장기적으로 0의 이윤을 가지는 반면, 독과점 생산자는 양(+)의 이윤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생산자들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완전경쟁 시장은 생산자들의 진입 · 퇴출이 자유롭습니다.


    현재 주어진 시장 가격이 장기 평균한계비용보다 높다면(P>LMC), 양(+)의 이윤을 기대하는 생산자들이 신규 진입하게 되고, 이로 인해 늘어난 생산량이 다시 가격을 하락시켜 장기적으로 0의 이윤(P=LMC)이 됩니다. 반대로 현재 주어진 시장 가격이 장기 평균한계비용보다 낮다면(P<LMC), 음(-)의 이윤을 기록하고 있는 생산자들이 차례대로 퇴출되고, 이로 인해 줄어든 생산량이 다시 가격을 상승시켜 장기적으로 0의 이윤(P=LMC)이 됩니다.


    즉, 자유로운 시장 진입과 퇴출의 과정을 통해, 완전경쟁시장의 장기균형은 0의 이윤이 됩니다.


    반면, 불완전경쟁 시장에서는 생산자들의 진입 · 퇴출, 정확히 말하면 진입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대규모 고정비용 · 네트워크 효과와 같은 외부성 등으로 인해 아무나 진입하지 못합니다. 만약 진입을 한다고 해도 일정 수준의 생산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음(-)의 이윤을 기록하기 때문에 곧바로 퇴출됩니다. 결국 이미 자리를 잡은 한 개 혹은 소수의 기업만이 시장에 존재하여 양(+)의 이윤을 누리게 됩니다.


    즉, 자유로운 진입이 불가능한 독점 · 과점 시장에서 기존 생산자들은 초과이윤(excess return) 다르게 말해 지대(rent)를 누립니다.


    ▶ 전략적 행위가 필요한 과점시장 (strategic behavior under oligopoly)


    이때 시장에 한 개의 기업만 존재하는 독점과 두 개 이상 소수의 기업만 있는 과점은 또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전략적 행위의 필요성' 입니다.


    독점 생산자는 말그대로 시장 안에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생산자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독점가격과 생산량을 결정하면 됩니다. 


    이와 달리, 과점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의 선택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리는 전략적 행위(strategic behavior)가 필요합니다. 


    왜 그래야만 하냐면, 상대방의 선택을 고려치 않고 결정을 하면 이윤극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과점 시장에서 시장 전체 총생산량 증가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생산량을 고려하지 않고 독점 생산자처럼 자신의 생산량을 결정하면, 상품의 시장가격이 크게 하락하여 이윤이 극대화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수 생산자 간에 상호 의존성이 존재하는 과점시장에서는 서로의 행동을 고려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수 사항입니다.


    ▶ 두 생산자가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 모형 (cournot competition)


    과점시장 속 두 생산자는 전략적 고려를 통해 자신의 최적 생산량을 동시에 결정(simultaneous) 합니다. 동시결정은 '상대방의 선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결정을 해야함'을 의미합니다.


    두 생산자가 동시에 산출량을 결정하는 과점 모형, 이른바 꾸르노 경쟁(Cournot Competiton)에서 생산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이해하려면 말보다는 수식을 통한 설명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를 살펴봅시다.


    • 두 생산자가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 모형 (cournot competition)


    두 생산자의 목적은 이윤극대화 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생산자가 선택한 산출량의 합(q1+q2)이 시장 전체 산출량(Q)이 되고 시장 가격(P)을 결정합니다. 즉, 시장가격은 시장 전체 산출량에 관한 함수 P(Q)=P(q1+q2) 입니다. 이로 인해, 각 생산자들은 자신 이외에 다른 생산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고려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각 생산자의 산출량 결정은 다른 생산자의 산출량에 영향을 받는데, 임의의 상대방 산출량에 대하여 나에게 이윤극대화를 안겨다주는 산출량을 최적대응함수(Best Response Function)라 하며 'BR(상대방 산출량)'로 표기합니다. 상대방이 선택할 정확한 산출량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말그대로 상대방 산출량 어떤 값에 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나의 산출량을 전략으로 고려하는 겁니다.


    생산자 1의 최적대응은 BR1(q2) 이며 생산자 2의 산출량 q2에 따라 달라지는데, 변수 q2는 음(-)의 계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생산자 2의 산출량이 증가할 때 생산자 1의 최적대응은 본인의 산출량을 줄이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생산자 2의 최적대응은 BR2(q1)이며, 마찬가지로 생산자 1의 산출량이 증가하면 생산자 2의 산출량은 감소해야 합니다.


    이렇게 상대방 산출량이 늘어날 때 자신의 산출량이 감소해야 하는 관계를 '전략적 대체관계'(Strategic Substitute)라고 합니다. 이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시장 안에서 두 생산자가 점유율을 나눠야 하니까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 두 생산자의 최적대응함수가 교차하는 점이 각각의 이윤극대화 생산량 이다


    각 생산자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본인 또한 상대방의 선택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결과적으로, 각 생산자는 서로의 최적대응을 염두에 둔 이윤극대화 산출량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 값은 두 생산자의 최적대응함수를 연립방정식으로 푼 해이며 최적대응 그래프의 교점 입니다.


    생산자 1과 2의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각각 q1* q2* 로 표기합니다. 


    q1*는 본인의 한계비용 c1과는 음(-)의 관계이며 상대의 한계비용 c2와는 양(+)의 관계 입니다. q2* 또한 본인의 한계비용 c2와는 음(-)의 관계이며 상대의 한계비용 c1과는 양(+)의 관계 입니다.


    다르게 말해, q1*는 생산자 1의 한계비용 c1이 감소하면 늘어나는 반면, 생산자 2의 c2가 감소하면 줄어듭니다. q2*는 생산자 2의 한계비용 c2가 감소하면 늘어나고, 생산자 1의 한계비용 c1이 감소하면 줄어듭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자국기업의 생산성 향상(=자신의 한계비용 감소)은 외국기업의 산출량을 줄이면서 자국기업의 산출량을 증가시킵니다. 반대로 외국기업의 생산성 향상(=자신의 한계비용 감소)은 자국기업의 산출량을 위축시키면서 외국기업의 산출량을 늘립니다.


    이는 꾸르노 과점 모형에서 생산자 1 · 2가 전략적 대체 관계에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론 입니다. 


    • 생산자 1의 생산성이 향상되어 한계비용(c1)이 감소하면, 생산자 1은 더 많은 양을 생산하지만 생산자 2는 더 적은 양을 생산


    위의 그래프는 생산자 1의 생산성이 개선되어 한계비용 크기가 c1'로 줄어들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생산자 1의 새로운 이윤극대화 산출량 q1*는 이전보다 증가하였고, 생산자 2의 새로운 이윤극대화 산출량 q2*는 이전보다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꾸르노 경쟁모형은 과점 시장에서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자국기업이 외국기업보다 생산량을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한계비용 감소가 필요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 아래 생산성을 향상시켜 한계비용을 감소시키면, 외국기업의 몫을 빼앗아 자국기업의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함의로 이어집니다. 


    ▶ 자국기업이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스타겔버그 경쟁 모형 

    (stackelberg competiton)


    자국기업의 최적 생산량을 더 많이 가져가는 또 다른 방법은 '선도자'(leader)가 되어 외국기업 보다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꾸르노 모형은 두 생산자가 '상대방이 나의 영향을 받아 이런 선택을 할 것이다'라는 걸 인지하면서동시에(simultaneous)에 산출량을 결정했습니다. 반면, 스타겔버그 모형은 선도자(leader)와 추종자(follower)가 구분되고, 선도자가 먼저 산출량을 결정하는 순차적 형태(sequence)를 띄고 있습니다.


    그럼 꾸르노 모형과 스타겔버그 모형은 어떤점 때문에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정보'의 차이 입니다.


    꾸르노 모형에서 생산자들은 상대방의 산출량을 정확히 알지 못한채 자신의 최적대응을 세웠으나, 스타겔버그 모형에서 선도자는 '추종자가 선택한 산출량을 확실히 알고'있으며, '추종자가 선택할 산출량은 선도자의 전략에 의존'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수식을 통해 명료하게 알아봅시다.


    • 선도자 생산자 1이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스타겔버그 경쟁 모형


    추종자인 생산2는 생산자 1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알지 못하며, 생산자 1이 선택할 임의의 산출량에 대한 최적대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산자 2의 최적대응함수 BR2(q1)은 이전의 꾸르노 모형과 동일합니다.


    반면, 선도자인 생산자 1은 자신이 먼저 임의의 생산량 q1을 선택하면, 생산자 2가 최적대응함수 BR2(q1)에 따라 행동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생산자 1의 손바닥 위에 생산자 2가 있는 꼴입니다. 그리하여 생산자 1이 고려하는 생산자 2의 산출량은 단순히 q2가 아닌 BR2(q1)으로 구체화 됩니다. 위의 선도자 생산자 1의 이윤함수에서 임의의 q2 대신 BR2(q1)이 들어간 이유입니다.


    그 결과, 선도자 생산자 1은 추종자 생산자 2의 산출량과 이윤을 낮추면서 자신의 산출량과 이윤은 높이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스타겔버그 모형 결과는 꾸르노 모형의 결과와 비교하면 더 명확히 파악됩니다. 추종자 생산자 2의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감소하였고 이윤 또한 줄었습니다. 반면 선도자 생산자 1의 산출량은 증가하였고 이윤 또한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자국기업을 선도자(leader)가 되게끔 지원하거나 정부 자체가 선도자(first player)로 행위한다면, 외국기업의 생산량과 이윤을 희생시킴과 동시에 자국기업의 생산량과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함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를 실행시킬 수 있는지는 이번글을 계속 읽어나가면 알 수 있습니다.


    ▶ 최적대응함수에 따라 선택한다는 보장이 있나? - 맹약의 개념(commitment) 


    여기까지 읽어오신 분들은 "생산자들이 최적대응함수에 따라 선택한다는 보장이 있나?" 라는 물음을 던지실 수도 있습니다. 생산자 1이나 2의 최종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두 최적대응함수를 연립방정식의 해로 풀어낸 결과물인데, 생산자들이 최적대응함수를 벗어나는 결정을 한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적대응함수는 말그대로 이윤극대화를 위한 최적대응(Best Response)을 나타내고 있으며, 생산자가 이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또한 상대방이 나에게 이로운 결정을 하지 않으면, 나는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대응할거라는 협박은 '신빙성 없는 협박'(non-credible threat) 입니다. 합리적인 생산자라면 언제나 최적대응함수에 따라 선택을 할 것이 확실하며, 이는 '맹약'(commitment)이 작동한다고 보면 됩니다.


    기본적인 이론을 습득하였으니, 이제 다음 파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략적 무역 정책의 논리와 효과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 보호와 자국시장 효과 (Protection and Home Market Effect)


    우리는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유치산업보호론([각주:9] · [각주:10])의 논리를 알아본 바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수입보호정책을 선택한 전통적인 논리는 '이미 앞서있는 선진국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을 일시적으로 피하자' 입니다.


    전략적 무역정책은 '신유치산업보호론'으로 불리우며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보호효과가 나타나는 경로는 조금 다릅니다. 단순히 자국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국과 외국기업의 행위를 변경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자국시장 보호를 통해 과점시장 속 자국 · 외국 기업의 전략적 행위를 변경시켜 자국기업을 돕는 경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보호관세를 통해 외국기업의 초과이윤 탈취하고 자국기업 진입을 유도


    • 브랜더 & 스펜서, 1981, <잠재적 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


    기존 무역이론은 보호관세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물을 가져오는 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관세부과는 교역조건을 개선시키지만, 시장을 왜곡시켜 후생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는  1981년 논문 <잠재적 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Tariffs and the Extraction of Foreign Monopoly Rents under Potential Entry>)를 통해, "보호관세를 통해 외국기업의 독점이윤을 탈취하고 자국기업 진입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관세를 통한 독점이윤 탈취'(the argument for using a tariff to extract rent) 이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내 생산자가 잠재적으로 진입할 가능성'(potential entry) 입니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발도상국 내에는 아직 경쟁력 있는 자국기업이 없기 때문에 외국기업 수입상품이 국내시장을 장악하여 독점이윤을 누리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정부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일입니다. 이렇다할 자국기업이 없다는 점도 속 터지고, 외국기업이 초과이윤(rent)을 가져가는 것도 울분 터지게 만듭니다. 


    이런 꼴을 보고 있는 개발도상국 정부로서는 '불완전경쟁이 만들어 낸 초과이윤을 관세를 통해 뺏어가고픈 유인'(under imperfect competition a country has an incentive to extract rent from foreign exporters by using tariffs)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수입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자니, 수입양이 줄어들고 가격이 올라 소비자후생이 악화될 경우가 우려스럽습니다. 관세는 생산비용 증가를 유발하기 때문에, 독점 생산자는 생산량 감축을 통해 더 높은 상품가격을 설정하는 식으 맞대응 합니다. 정부는 세금을 통해 수입을 증가시키지만 소비자후생은 악화됩니다.


    이때, '자국 생산자가 잠재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불완전경쟁 하에서 관세정책 사용을 쉽게 만들어 줍니다(potential entry has an implications for tariff policy in the presence of imperfect competition).


    자국기업은 국내시장에 진입하면 시장구조는 독점에서 과점으로 변합니다. 이때 자국기업은 추종자이기 때문에, 선도자인 외국기업이 결정해놓은 생산량을 고려하여서 자신의 생산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외국 생산자는 자국 생산자의 시장진입을 억제하는 생산량(limit output)을 설정해놓은 상황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불완전경쟁 시장에서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산량이 필요한데, 자국기업이 최소한의 생산량을 결정할 수 없게끔, 선도자인 외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해버린 겁니다. [선도자의 이익]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관세정책을 자국에게 이롭게 만들어 줍니다.  외국기업은 차라리 개발도상국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는 편이 자국기업이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정부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자국기업의 잠재적 진입을 막아야하는 외국기업으로서는 생산량을 감축할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후생 저하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관세정책은 부작용 없이 외국기업의 독점이윤을 그대로 뺏어올 수 있습니다.


    관세율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어느 순간이 되면, 외국기업이 독점일 때 얻고 있는 이윤이 자국기업이 진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과점 이윤보다 적어지게 됩니다. 외국 기업은 진입억제 전략을 포기하고 맙니다. 즉, 관세정책은 자국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게끔 유도하는 것까지 성공합니다(entry-inducing tariff). 이제 시장에 진입한 자국기업은 과점 이윤을 외국기업과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외국기업만이 누리던 독점이윤을 ① 정부의 세금부과로 탈취 했으며 ② 자국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유도하여 뺏어오게 되었습니다. (Protective tariffs insure that domestic firms can enter and survive, and these firms earn rent from foreign operations.)


    ② 수출진흥을 만들어내는 수입보호 정책


    개발도상국 정부는 수입보호 정책을 통해 자국기업의 시장진입 유도를 넘어서서 이미 진입해있는 자국기업의 수출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수출진흥으로서 수입보호 : 과점과 규모의 경제 하에서 국제적 경쟁>(<Import Protection As Export Promotion: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the Presence of Oligopoly and Economics of Scale>)을 통해, 수입보호 정책이 수출진흥 정책의 역할을 함을 보여줍니다.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국기업과 외국기업, 총 2개의 기업만이 존재하는 과점 상황이며 이들은 양국에서 모두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이 속해있는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은 기업일수록 소요되는 한계비용이 적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무작정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는 없고, 상대방의 생산량에 따라 자신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합니다. [꾸르노 경쟁 모형]


    • 생산자 1의 생산성이 향상되어 한계비용(c1)이 감소하면, 생산자 1은 더 많은 양을 생산하지만 생산자 2는 더 적은 양을 생산


    이때 자국정부가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막는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요?


    보호 속에서 자국기업은 국내에서 생산량을 늘리게 되고, 이에 따라 한계비용도 감소합니다. 앞서 꾸르노경쟁 모형 설명에서 배웠듯이, 줄어든 한계비용은 자국기업의 최적대응곡선을 바깥쪽으로 이동시키고,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이전에 비해 증가합니다. 반면, 외국기업의 산출량은 감소합니다. 


    이렇게 늘어난 산출량은 다시 한계비용을 감소시키고, 한계비용 감소는 다시 산출량을 늘립니다. 보호무역 정책이 자국기업의 생산량 증가 → 한계비용 감소 → 생산량 증가가 이어지는 선순환 인과관계를 만들어 낸겁니다(circular causation from output to marginal cost to output). 반대로 외국기업의 경우 악순환에 빠지고 맙니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수입보호 정책 덕분에 자국기업의 생산량이 국내시장 뿐 아니라 외국시장에서도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논문 제목처럼 수출진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수입보호 (import protection as export promotion) 입니다.


    전통적인 국제무역이론이 보기엔 "국내시장 보호가 자국기업에게 성공적 수출을 위한 기반을 제공해준다"는 논리는 이단적 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완전경쟁모형과 규모보수불변의 가정에서 벗어난 과점경쟁모형과 규모의 경제 작동 이라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폴 크루그먼의 연구는 이를 잘 수행하였습니다.




    ※ 이윤을 자국기업으로 이동시키는 보조금(Profit-Shifting Subsidies)


    이번 파트에서 소개할 전략적 무역 정책은 198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논리 입니다. 


    일본이 보호체제에 힘입어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의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에 진입하는데 성공하고 수출을 증진시키자, 미국정부가 대응을 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특히 R&D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연구[각주:11]가 많아지면서, R&D 투자비중이 높은 최첨단산업(high-tech)을 지원 · 육성하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행정부가 어떻게 자국기업을 도울 수 있을까요?


    •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의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

    •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의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는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International R&D Rivalry and Industrial Strategy>),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Export Subsidies and International Market Share Rivalry>)를 통해, 부의 R&D 보조금 지원으로 자국기업 R&D 투자수준이 증가하여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는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부의 R&D 보조금 지원으로 자국기업의 R&D 투자가 증가하여 더 많은 이윤 획득


    •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이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 모형

    • 주어진 R&D 투자 수준이 높은 기업일수록 한계비용이 낮아져, 상대기업에 비해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


    세계시장은 자국기업과 외국기업 2개만 존재하는 과점 상황이며, 이들은 주어진 R&D 수준에서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R&D 투자는 기업의 한계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즉, R&D는 비용절감 혁신(cost-reducing)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R&D 투자 수준이 높은 기업일수록 다른 기업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위의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R&D 투자 수준이 높아진 기업은 생산량 결정 단계에서 최적대응함수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양을 생산하게 됩니다. 상대방 기업의 생산량은 위축됩니다.


    결국 문제는 각 기업의 R&D 투자수준이 어떤 크기로 결정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각 기업은 제품 생산에 앞서 R&D 투자수준을 동시에 결정합니다. 이때 기업들은 여기서 결정되는 R&D 투자수준이 추후 산출량을 결정함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산출량 결정 단계에서 나타나게 될 결과를 염두에 두고, 이윤을 극대화 시켜줄 R&D 투자수준을 동시에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은 서로 R&D 부문에 많은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이들 기업은 비용 극소화를 위해 필요한 R&D 수준 보다는 조금 더 많은 양을 투자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업이 R&D 부문에 무한정 많은 투자를 할 수는 없습니다. R&D 투자를 통해 얻게 될 이윤증대 크기가 투자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적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R&D 투자수준은 결국 나중에 결정되는 산출량 및 이윤 크기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으며, 현재 R&D 투자수준은 이윤을 극대화 시켜주는 크기 입니다.


    •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이 산출량 결정에 앞서 R&D 투자수준을 동시에 결정하는 상황

    • 정부의 R&D 투자 보조금 지원은 자국기업의 R&D 투자수준을 증가시키게 돕는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싶은 자국기업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업 자체적인 R&D 투자 확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현재 R&D 투자수준은 이윤극대화를 달성케해주는 크기이며, 이를 넘어선 투자는 오히려 이윤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국기업이 R&D 투자수준을 높일 거라는 발표만 한다면, 이를 듣게 된 외국기업이 대응하기 위해 R&D 투자수준을 변경하게 되고, 이것이 자국기업에게 R&D 투자를 늘릴 여지를 안겨다주지 않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기업은 현재의 상황이 서로에게 최적의 투자수준임을 알고 있으며, 자국기업의 R&D 투자 확대 발표는 신빙성 없는 위협(non-credible threat) 이라고 여깁니다.


    바로 여기서 정부의 R&D 보조금 지원이 자국기업의 R&D 투자를 신빙성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선제적 맹약'(pre-commit) 입니다.


    정부가 세액감면 혹은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 정책을 시행하면, 자국기업은 R&D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부담을 덜게 됩니다. 그럼 오직 생산량 증대가 가져오는 이윤증가 만을 고려하여 R&D 투자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균형 산출량도 증가하여 실제로 이윤과 점유율이 상승합니다.


    브랜더와 스펜서는 '정부의 R&D 보조금 지원 정책은 기업 간 꾸르노 경쟁을 (자국이 선도자인) 스타겔버그 경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자국정부는 기업간 게임에 참여하여 선도자(first-player)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음 단계에 결정될 외국기업의 산출량 · R&D 투자수준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여 R&D 보조금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겔버그 경쟁 모형에서 선도자가 더 많은 산출량 · 이윤을 가져가는 것과 같이, 정부의 개입은 초과이윤을 만들어내는 산업에서 외국기업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from obtaining a larger domestic share of internationally profitable industries.)




    ※ 교과서 버전으로 살펴보는 전략적 무역 정책의 원리와 문제점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가 창안한 전략적 무역 정책은 꾸르노 · 스타겔버그 등등 어려워 보일 수 있는 개념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학부 국제무역론 교과서는 이를 단순한 내쉬균형 개념을 이용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면 전략적 무역 정책이 가진 단점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디선가 보았을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간의 내쉬균형 입니다.


    ▶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중 어느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생존할까


    •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할 때, 미국 보잉의 최적대응은 생산하지 않는 것

    • 미국 보잉이 생산할 때, 유럽 에어버스의 최적대응은 생산하지 않는 것

    • 누가 먼저 세계시장에 진입해 있느냐가 균형을 결정 (파란색 칸)


    항공산업은 생산에 막대한 고정비용과 R&D 투자가 수반되며 수요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소수의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과점 시장 입니다. 


    이때 미국과 유럽이 항공산업 진입결정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위의 표는 상대방의 행동에 따른 나의 행동이 가져올 보수를 보여줍니다. 


    미국 보잉의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유럽 에어버스가 먼저 생산을 하고 있을 때, 미국 보잉이 진입하면 -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미국 보잉은 진입을 하지 않습니다.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면, 미국 보잉이 진입하면 100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미국 보잉은 진입을 합니다.


    유럽 에어버스의 행동도 이와 동일합니다. 만약 미국 보잉이 먼저 생산을 하고 있을 때, 유럽 에어버스가 진입하면 -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유럽 에어버스는 진입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 보잉이 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면, 유럽 에어버스가 진입하면 100 · 진입하지 않고 있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유럽 에어버스는 진입을 합니다.


    결국 항공산업에서 어떤 기업이 생산하느냐는 '누가 먼저 진입해 있었는가 라는 역사적 우연성'이 결정합니다. 


    ▶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 미국정부가 보잉에 25의 보조금 지원
    •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미국 보잉은 생산하는 게 이익
    • 이를 아는 유럽 에어버스는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고, 미국 보잉이 독점이윤 125 획득 (균형은 파란색 칸)

    이런 애매한 상황을 타개하고 확실한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미국정부는 자국 항공사가 시장에 진입하면 25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합니다. 

    앞서와 달리,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미국 보잉은 생산하는 게 무조건 이익 입니다. 왜냐하면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고 있을 때 진입을 하면 20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생산하지 않고 있을 때 진입을 하면 12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어느경우든 진입하는 게 더 큰 보수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유럽 에어버스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미국 보잉이 진입을 할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국 보잉이 생산할 때, 유럽 에어버스가 진입을 하면 -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유럽 에어버스는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그 결과, 미국 보잉은 생산을 하고 유럽 에어버스는 생산을 하지 않는 균형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 보잉은 독점이윤 125를 획득 합니다.

    즉, 이번글에서 살펴보았다시피, 미국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유럽 에어버스의 전략적 선택을 변경시킴으로써 미국 보잉의 독점이윤을 발생시켰습니다


    ▶ 이를 본 유럽연합이 보조금 지원으로 보복을 한다면? (retaliation)


    • 미국정부의 정책에 맞서 유럽연합도 보조금 25 지원

    • 그 결과,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모두 20의 이윤을 거두나, 이는 보조금 25보다 적다


    전략적 무역 정책은 근본적으로 외국기업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을 돕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입니다. 그리고 이는 외국의 보복(retaliation)을 초래하게 됩니다. 


    보다 못한 유럽연합이 보조금 25 지원으로 맞불을 놓습니다. 그 결과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모두 시장에 진입하여 생산을 하고 각각 20의 이윤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는 정부가 지원한 보조금 25보다 적기 때문에, 사회 전체 이윤은 -5나 마찬가지 입니다. 즉, 미국의 전략적 무역정책은 유럽연합의 보복을 초래하여 사회적으로 더 나쁜 결과(socially worsen off)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사례는 현실에서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할 때 맞딱드리게 될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 정부는 자국 · 외국기업의 보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전략적 무역 정책의 본질적인 문제는 '자국기업 및 외국기업의 행동이 가져올 보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에서 기업들이 얻게 될 이익이 표에 채워놓은 숫자일지 아닐지 알 수 없습니다. 표에 채워놓은 숫자를 조금만 바꾸면 전략적 무역 정책의 효과를 사라집니다. 


    하나의 사례로서, 만약 정부가 자국기업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외국기업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경우, 보조금 지원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 이런 보수구조에서 균형은 유럽 에어버스 만이 시장에서 생산하여 독점이윤 획득

    • 그런데 미국정부는 미국 보잉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유럽 에어버스의 능력을 과소평가 


    위와 같은 보수구조는 유럽 에어버스만이 시장에서 생산하는 균형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미국정부는 미국 보잉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유럽 에어버스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앞서의 경우처럼, 미국 보잉이 생산할 때 얻는 이윤이 -5 혹은 100으로 생각하며,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할 때 얻는 이윤도 -5 혹은 100 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정부는 현재 유럽 에어버스만이 시장에서 생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유럽 에어버스가 먼저 시장에 진입한 역사적 우연성 덕분에 초과이윤을 누리고 있구나" 라고 오판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보잉에 보조금을 지원하면 유리한 균형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미국정부가 보잉에 25의 보조금을 지원

    • 그러나 균형은 여전히 유럽 에어버스만 시장에 생존하여 독점이윤 150 획득


    미국정부는 호기롭게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하고 있을 때 미국 보잉이 진입하면 -5의 보수를, 생산하지 않고 있을 때 진입하면 100의 보수를 얻습니다. 유럽 에어버스는 미국 보잉이 생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언제나 생산을 하는 게 이득입니다. 그런데 미국보잉은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고 있으면 진입하지 않는 게 이득입니다.


    그 결과, 균형은 여전히 유럽 에어버스만 시장에 생존하여 독점이윤 150을 획득하게 것이 됩니다. 미국정부의 전략적 무역 정책은 균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이번글에서 소개한 전략적 무역 정책 논리 또한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꾸르노 모형 · 스타겔버그 모형 등등을 사용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의 논리를 그럴싸하게 설명 하였으나, 정부는 개별 기업의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혹시 어떤 행위를 선택할지는 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어느 정도의 보조금을 지원해야 외국기업의 행동을 자국기업에게 유리하게 변경시킬지는 알지 못합니다


    결국 전략적 무역 정책은 책 속 이론에서만 타당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둘러싼 논쟁


    1970-80년대 들어 일반화된 '독과점을 통해 초과이윤을 얻는 산업'이 존재할 때의 무역정책의 효과를 설명해주는 전략적 무역 정책은 당시 '미국정부가 어떠한 무역정책을 선택해야 하느냐'를 두고 펼쳐진 논쟁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의 효과를 믿었던 사람들은 일본의 보호체제를 무너뜨리는 방식 · R&D에 의존하는 미국 최첨단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높이려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보호체제는 미국기업을 희생시키는 문제를 초래하니 어서 빨리 대응해야했고, 미국 최첨단기업 지원은 일본기업을 희생시켜 미국에 독점이윤을 가져다 줄 수 있으니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전략적 무역 정책의 현실적 한계를 집중적으로 비판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략적 무역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 · 폴 크루그먼 모두 실제 효과에 회의적이었다는 점 입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왜 미국은 '일본의 무역체제'를 문제 삼았으며, '전략적 무역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8. 두 시장 간 본질적인 차이는 가격을 '주어진 것'(given)으로 받아들이느냐에 있지만, 여기에서는 '초과이윤 존재여부'에 주목합시다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joohyeon.com/271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11.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Posted at 2019. 1. 2. 12:56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가경쟁력' 위기에 직면한 1980년대 초중반 미국

    - 기업가와 경제학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 왼쪽 : 1968-1990년, 미국/일본 GDP 배율 추이
    • 오른쪽 : 1970-1990, 미국(노란선)과 일본(파란선)의 노동생산성 증가율 추이
    • 일본의 급속한 성장은 미국민들에게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시작[각주:1]에서 말했듯이,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은 '국가경쟁력 악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일본은 급속한 성장을 기록하는데 반해 미국은 노동생산성 둔화를 겪었고, 1968년 일본에 비해 2.8배나 컸던 미국 GDP 규모는 1982년 2.0배로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국인 입장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 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증가해온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1980년대 들어서 더 확대되었고, 1985년 GDP 대비 1.15% 수준으로까지 심화되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추월함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하락하여 세계시장에서 미국산 상품을 팔지 못한다는 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 절망과 공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포심은 미국 내에서 보호무역 정책을 구사하라는 압력을 키웠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일본'(Japan) ·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 '하이테크 산업'(High-Tech Industry) · '보호주의'(Protectionism) ·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등 이었습니다.


    ▶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비교우위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서, 1980년대 초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마틴 펠드스타인은 경쟁력 상실이 아닌 재정적자로 인한 총저축 감소가 무역적자를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각주:2] 


    "최근 10년동안 무역수지 흑자에서 무역수지 적자로의 전환은 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잘못 해석 되곤 한다. 사실, 미국 국제수지 구조 변화는 느린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총저축과 총투자가 변화한 결과물이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의 두려움이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일본의 급속한 성장에 대비되는 미국 노동생산성 둔화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의 주장을 읽어봅시다.


    장기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비록 최근의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긴 했으나,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각주:3] (...) 


    생산성 향상 둔화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 상쇄되지 않을 때에만 국제적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다.[각주:4]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이 미국의 국가경쟁력(competitiveness)이 영구히 손상된 것은 아니다 · 생산성 둔화와 국제시장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없다 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비교우위 원리'(comparative advantage)를 믿기 때문입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각주:5]이 작동할 수 있게끔 하는 원천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6] 입니다. 수입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낮’기 때문이며, 수출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높' 때문입니다.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높아 기회비용이 낮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의미하고,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낮아 기회비용이 높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높은 품목'을 뜻합니다.


    따라서 (생산성 변동과 상관없이)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상품 가격이 비싸지면 일시적으로 비교우위를 상실할 수도 있으나, 무역수지 적자가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자기조정기제에 의해서 시간이 흐르면 비교우위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절대생산성 수준이 뒤처지더라도 여전히 다른 국가와의 교역을 할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은 절대우위가 아닌 상대생산성에 따른 비교우위에 따라 이루어지며, 더군다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는 낮은 임금을 통해 상대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펠드스타인이 느린 생산성 향상 속도가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서 상쇄된다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거라고 판단한 이유 입니다.


    (주 : 비교우위와 임금의 관계에 대해서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참고)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마틴 펠드스타인은 국가경제 · 거시경제 차원에서 국제무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 잃더라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며,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그에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임금으로 절대생산성 열위에 대응하면 여전히 비교우위는 성립하고 무역을 이루어질테니, 이것 또한 그에게 걱정 사항이 아닙니다.  


    그럼 기업가와 근로자도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처럼 국제무역을 바라볼까요?


    ▶ 기업가 · 근로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75 · 595쪽

    • 왼쪽 :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

    • 오른쪽 : 무역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 수


    위의 왼쪽 그래프는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연비가 좋은 일본산 자동차의 수요를 증대시켰고, 1970년대 후반부터 수입자동차 점유율이 대폭 늘어납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수입산 자동차의 미국시장 침투로 인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행정부에 수입제한 등 대책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오른쪽 표는 1990년 기준, 무역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와 비중을 나타냅니다. 수입에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수는 약 130만 명이며, 대부분 중서부(Mid-West)와 남부(South) 등에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러스트벨트 등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은 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습니다(do something).


    미국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대책을 요구한 이유는 한번 경쟁에서 뒤처지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영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현장은 국가들의 대리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며 생존을 위해 경쟁력(competitiveness)이 필요한 곳 입니다.  


    통화가치 하락 · 임금 하락 등 거시경제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비교우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경제학자의 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실제 현장에서는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번 1등으로 올라선 외국기업은 계속해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에,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책에서만 타당합니다. 


    또한, 기업가와 근로자에게 "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나마 잃더라도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국제무역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논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경영하는 · 내가 종사해있는 산업이 비교우위에서 열위로 바뀌어서 피해를 보고 있는데, 다른 산업을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비교열위로 바뀌게 된 산업에 계속 종사하지 말고,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라"고 충고할 수 있지만, 무역의 충격을 받은 기업가와 근로자가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 입니다.


    ▶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이처럼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는 역할과 일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상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학자가 보기엔 기업가와 근로자는 이동을 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며, 기업가와 근로자가 보기엔 경제학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좋은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신무역이론 및 신경제지리학을 만든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 수상

    • 크루그먼의 1994년 기고문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A Dangerous Obsession>)


    1980년대 미국 내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입니다. 그는 1979년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7] · 1991년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각주:8]을 창안한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크루그먼은 미국이 자유무역정책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리적인 주장을 제기하였고, 비경제학자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 그는 현실 속 경쟁에 직면해있는 기업가들이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부 수용하였고,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는 동태적 비교우위 패턴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가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에 의해 결정됐을 수 있으며, 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비교우위를 새로 창출(created)하고 국내기업에게 초과이윤을 안겨다줄 수 있다는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폴 크루그먼이 전통적인 관점에서 국제무역과 비교우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기업가의 관점을 수용하여 만든 새로운 무역이론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경쟁력 : 위험한 강박관념 (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


    폴 크루그먼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와 1991년 사이언스지(Science)에 기고한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Myths and Realities of U.S. Competitiveness>)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의 주장과 논리를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사족 : '국제무역을 둘러싼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기 위해 그가 여러 곳에 기고한 글들은 『Pop Internationalism』 라는 제목으로 묶어서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이라는 제목으로 변역 되었습니다.)


    잘못된 가설 (The Hypothesis is Wrong)


    1993 년 6월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가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공동체 (EC) 회원국 지도지들 모임에서 점증하는 유럽의 실업문제를 주제로 특별 연설을 했다. 유럽 상황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EC위원회의 의장인 들로르가 무슨 말을 할지 상당히 궁금해 했다. (…)


    어떻게 말했을까. 들로르는 복지국가나 EMS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유럽 실업의 근본 이유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쟁력 부족(a lack of competitiveness)이며, 그 해결책은 사회간접자본과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계획(investment in high technology)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들로르의 말은 실망스런 책임 회피였지만 놀라운 발언은 아니었다. 사실 경쟁력이라는 용어(the rhetoric of competitiveness)는 전세계 여론지도자들 사이에 유행어가 되었다. -클린턴에 따르면 “국가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들과 같다’ 라는 견해-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정통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 현대 국가라도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 누군가가 이 명제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대체로 들로르가 유럽의 문제에 대해 내린 것과 같은 식으로 미국의 경제 문제를 진단한 이런 사람들 중 대다수가 지금 미국의 경제 및 무역정책을 수립하는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들로르가 사용한 용어는 자신과 대서양 양안의 많은 청중들에게 편리할 뿐 아니라 편안한 것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진단은 유럽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매우 잘못된 것이었고 미국에서의 유사한 진단 역시 오진이었다.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의 경험적 문제로 보아도 이 가설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that hypothesis is flatly wrong).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크루그먼은 글의 시작부터 정치인 · 언론인 · 대중적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비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생각하였고 첨단기술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무역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크루그먼은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의 논리를 좀 더 들어보죠.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competitiveness)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생각 없이 그 말을 쓴다. 그들은 국가와 기업을 비슷하게 보는 것을 분명히 합리적 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 GM)사가 북미 미니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는지 묻는 것과 원칙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국가경제의 손익을 그 국가의 무역수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즉 경쟁력을, 해외에서 사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팔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무역흑자가 국가의 취약함을 나타내고 적자가 오히려 국가의 힘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


    국가들은 기업처럼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코카콜라와 펩시는 거의 완벽한 경쟁자다. 코카콜라 매출의 극히 일부만이 펩시 노동자틀에게 판매되고, 코카콜라 노동자들이 구입하는 상품 중 극히 일부만이 펩시의 제품이다. 그 부분은 무시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펩시가 성공적이면 그것은 대체로 코카콜라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주요 산업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는 상품을 팔기도 하지만, 서로의 주요 수출시장이 되기도 하며 서로 유익한 수입품의 공급자이기도 하다. 만약 유럽 경제가 호황이라 해도 반드시 미국의 희생으로 그렇게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유럽 경제가 성공적이면 미국경제의 시장을 확대시켜 주고 우수한 제품을 낮은 값에 팔아줌으로써 미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그래서 국제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International trade, then, is not a zero-sum game)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 크루그먼은 '경상수지 흑자가 국가의 부를 나타내는 게 아니다'[각주:9]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상호이익(mutual gain)을 안겨다준다'[각주:10]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본 블로그를 통해 누차 말해왔듯이, 그리고 이전글에서 마틴 펠드스타인이 주장[각주:11]했듯이, 경상(무역)수지는 거시경제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지은 결과물일 뿐입니다. 총저축이 총투자보다 많으면 무역수지 흑자, 적으면 적자가 나타납니다. 여기에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중요한 요인이 아닙니다.


    게다가, 무역수지 적자는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며 역설적으로 국가의 강함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는 금융·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과 동의어이며 이는 대외로부터 계속 돈을 빌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약한 국가라면 다른 국가에게 계속해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된다는 것(sustained)은 그 국가의 힘을 드러내줍니다.[각주:12]


    (참고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또한, 비교우위는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상관없이 모든 국가에게 '값싼 수입품의 이용'이라는 상호이익을 안겨다줍니다. 또한, 교역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서로의 수출국이며 동시에 수입국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경제호황은 수출시장 확대를 가져다 줍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비교되는 상대국의 가파른 성장은 무언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끔 만듭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 경쟁력의 신화 (Myth of Competition)


    먼저 전세계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과 외국이 모두 연간 1 %씩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생활수준과 실질임금 등이 어느 곳에서나 연간 약 1%씩 상승한다는 생각은 합리적인 듯하다.


    그러면 미국의 생산성은 계속 연간 1%씩 증가하는 데 반해 다른 나라들의 생산성 증가는 빨라져서 예컨대 연간 4%씩 높아졌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미국국민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미국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경쟁자보다 생산성이 뒤지는 회사는 시장을 잃고,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문을 닫을 것이다. 이와 똑같은 일이 국가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사업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에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작용한다. 이 힘은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라도-비록 그 생산성과 기술 · 제품의 질이 다른 나라에 뒤진다고 하더라도-일정 범위의 상품을 계속해서 세계시장에 팔 수 있게 하고, 또 장기적으로는 무역수지의 균형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역 상대국들보다 생산성이 현저히 뒤지는 나라일지라도 일반적으로 국제무역에 의해 형편이 더 나아지지, 나빠지지는 않는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6장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


    → 크루그먼은 '미국의 생산성이 연간 1%씩 증가하는데 반해 다른 나라가 연간 4%씩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교역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번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1980년대 초중반 미국민들의 큰 우려는 '미국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일본 그리고 대일무역수지 적자 심화' 였습니다. 그러나 크루그먼 주장은 생산성 둔화와 무역수지 적자가 인과관계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 이유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00여년 전 금본위제 시대에 살았던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나라는 금과 은화의 지속적인 유출로 인해 물가와 임금이 하락하고 그 결과 적자 국가에서는 상품과 노동력의 가격이 저렴해져서 무역적자가 바로잡힌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가격-정화 흐름 기제'(Price–specie flow mechanism) 입니다.


    오늘날 조정과정은 임금과 물가의 직접적인 변화 대신 환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무역적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수출을 늘리고, 무역흑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수입이 늘어납니다. 따라서, 어느 나라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다 하더라도, 환율 조정(혹은 임금 조정)을 통해 상대생산성 우위와 비교우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도 여전히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원리에 따라 수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생산성이 연간 4%씩 성장할 때 자국인 미국도 4% 아니 그 이상 성장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이 다시 말합니다.


    ●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 상실) 문제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대부분의 저자들은 경쟁력을 긍정적인 무역실적과 다른 요인의 복합적인 것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특히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경쟁력의 정의는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로라 D. 타이슨의 저서 『누가 누구를 때려부수는가?』(『Who's Bashing Whom?』)에서 제시한 노선을 따른다.


    경쟁력은 "우리 시민들이 향상되고 있으며, 또 지속 가능한 생활수준을 누리면서 국제경쟁의 시련에 견디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능력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생각하고 현실에 적용해 본다면 이 정의가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타이슨의 정의에 기초한 '경쟁력'이 거의 전적으로 국내 요인, 주로 생산성 증가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즉 다른 나라에 대한 상대적 생산성 증가가 아니라 국내 생산성 증가가 바로 문제인 것이다(That's domestic productivity growth, not productivity growth relative to other countries)


    환언하면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경쟁력'으로 '생산성'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며 국제경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


    물론 위상과 세력에 관한 경쟁은 언제나 존재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 상승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러나 일본의 성장이 미국의 위상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미국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린다고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경쟁력 이라는 용어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후자다.


    물론 단어의 의미를 자신의 마음에 맞게 정하는 입장을 취할 수는 있다. 원한다면 ‘경쟁력’ 이라는 용어를 생산성을 의미하는 시적 표현방법으로 시용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국제경쟁이 경쟁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실제로 밝혀야 한다. 그러나 경쟁력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 치고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생활수준(standard of living)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성장이론이 솔로우모형[각주:13]부터 P.로머의 R&D모형[각주:14]으로 발전할때까지, 모든 경제학자들이 부정하지 않는 진리 입니다. 


    그러나 크루그먼이 지적한 것처럼,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어 생활수준 향상이 더뎌지고 있다"와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타국보다 느려서 국가경쟁력이 훼손되고 세계시장 속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완전히 다릅니다. 


    1980년대 미국의 생산성 둔화는 그 자체로 미국인의 생활수준 향상을 더디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지, 일본의 생산성 증가율에 비해 낮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미국이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이지,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걱정해야 할 건 '타국과의 경쟁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미국 생산성 자체의 둔화'(productivity slowdown) 입니다. 이 둘의 구별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미국이 당면한 문제가 전자라고 판단한다면 각종 보호무역 조치로 일본제품의 수입을 막거나 국내 생산자에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시행될 수 있지만, 후자라고 판단하면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국내생산성 향상을 위한 R&D 지원 및 창조적파괴를 위한 시장경쟁체제 조성이 나오게 됩니다.  


    ▶ 신성장이론이 말하는 '생산성 향상' 방법 두 가지


    : 첫째,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 둘째,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보호주의 압력을 경계하는 경제학자들 그런데...


    당시 마틴 펠드스타인 · 폴 크루그먼 같은 일류 경제학자들이 무역수지 결정과정 · 경쟁력에 대한 개념 · 생산성 향상의 방법 등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한 이유는, 미국의 경기침체와 일본의 경제성장이 보호주의 무역정책에 대한 요구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상황 인식으로 미 행정부가 보호무역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을 경제학자들은 크게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무역수지' · '국가경쟁력' 등을 주제로 한 경제학자들의 설명이 와닿으시나요?


    머리로는 "그래 중요한 건 일본의 성장이 아니라 우리의 생산성 향상이지"라고 다짐해도, 상대적 위상이 하락하고 있는 걸 보는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무역수지 적자는 경쟁 패배의 산물이 아닌 총저축과 총투자의 결과물이지"라고 받아들여도, 수입경쟁부문(import-competing sector)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경영자에게는 하나마나한 소리 입니다.  


    게다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R&D가 중요하다면 정부가 첨단산업(high-tech)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쓰면 안되냐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논리로 로라 D. 타이슨은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을 주장했고,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유발시킵니다. (주 :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살펴볼 계획 입니다.)


    결정적으로, 세계시장에서 상대기업 보다 더 많은 양의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기업가에게 '비교우위 · 열위에 따른 특화'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왜 기업가들은 전통적인 경제학이론과는 다르게 무역현장을 바라볼 수 밖에 없을까요? 역설적이게도 이에 대한 답을 폴 크루그먼이 제시해 줍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 - 한번 성립되고 나면 자체적으로 강화되는 비교우위


    기업가들이 국제무역현장을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중요한 곳으로 인식한 이유는, 한번 외국기업에게 경쟁에 밀려 점유율을 내주면 다시 되찾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통화가치 하락 및 임금인하로 비교우위를 다시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 속 기업가들은 '잘못된 선택이나 불운이 영구적인 시장점유율 손실로 이어진다'(a wrong decision or a piece of bad luck may result in a permanent loss of market share)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한번 잃어버린 시장점유율 혹은 비교우위를 다시 획득하기가 힘든 것일까요? 


    • 폴 크루그먼의 1987년 논문. 

    •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학습효과에 의해 자체강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 <The Narrow Moving Band, The Dutch Disease, and The Competitive Consequences of Mrs.Thatcher - Notes on Trade in the Presence of Dynamic Scale Economies>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리카도헥셔-올린의 비교우위론은 '한 국가의 특화 패턴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대생산성 혹은 부존자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상대생산성 우위에 있는 자국 상품 및 풍부한 부존자원이 집약된 자국 상품은 외국에 비해 더 싸기 때문에 특화와 수출을 합니다. 만약 일시적으로 비교우위 패턴에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통화가치와 임금 하락이라는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폴 크루그먼은 일시적 충격 이후에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바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의 존재 때문입니다. 


    생산의 학습효과란 말그대로 '생산을 통해 학습한다'는 의미 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현재의 생산성은 과거 생산을 통해 학습한 지식이 만든 결과물이며, 미래의 생산성은 현재 생산과정을 통해 획득하게 된 노하우가 만들어낼 결과가 됩니다.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최신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낼 수 있는 이유는 30년 전부터 축적한 경험이 있은 덕분이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이유는 현재 독보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계속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루그먼은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이 현재의 생산성을 결정하 동태적 규모의 경제' (dynamic economies of scale in which cumulative past output determines current productivity) 형태로 생산의 학습효과를 경제모형에 도입하였습니다. 


    일반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규모'가 현재 생산량 크기를 의미했다면, 여기서 '규모'는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 크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생산량이 많은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부터 많은 양을 생산하여 지식을 많이 축적한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학습효과로 인하여 한번 고착된 특화 패턴은 자체적으로 강화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기존에 만들지도 않았던 상품을 뚝딱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노하우도 없기 때문입니다. 생산 가능한 상품은 예전부터 만들어와서 공정과정에 대한 학습이 되어있는 것들 입니다. 따라서 생산자는 예전부터 만들어오던 것을 생산하게 됩니다.  


    즉, 폴 크루그먼은 학습효과로 인하여 "일단 한번 만들어진 특화는 그 패턴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상대적 생산성 변화를 유도한다"(a pattern of specialization, once established, will induce relative productivity changes which strengthen the forces preserving that pattern.) 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기업들이 외국 라이벌 기업에게 한번이라도 시장을 내주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외국 기업은 독보적 지위를 바탕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은 경험을 쌓을테니, 시장을 다시 되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 외국 기업은 기존에 1위였던 미국 기업의 시장을 어떻게 탈취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외국 정부의 보호정책 덕분입니다. 


    만약 외국 기업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생산에 착수하고 관세라는 보호막에 힘입어 자국 내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보호 기간 중에 쌓은 지식과 노하우로 언젠가는 상대적 생산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폴 크루그먼은 일본기업의 성공 요인을 일본정부의 보호정책에서 찾습니다. "일본의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정부의 산업정책,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 사용이 꼽혀진다. (...) 나의 모형은 이를 설명해준다. 일시적인 보호가 비교우위를 영구히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It is possible in this model - within limits- for temporary protection to permanently shift comparative advantage.)


    미국 기업이 직면해 있는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것이다"라거나 "미국은 자유무역 정책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 라는 학자들의 주장은 기업가가 보기엔 세상물정 모르는 태평한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비교우위가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이 끼친 영향들


    '생산의 학습효과로 인해, 일단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은 또 다른 통찰을 낳았고, 보호무역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첫째, 현재의 특화패턴은 '역사적 우연성'에 의해 임의로 성립된 것일 수도 있다


    리카도 및 헥셔-올린의 전통적인 비교우위론은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특성(underlying characteristics of countries)으로 인해 자연적인 특화패턴(natural pattern of specialization)이 성립되었다고 말합니다. 특정 상품 생산에 필요한 기술수준을 갖춘 국가는 이를 특화하고, 특정 상품에 생산에 투입되는 부존자원을 많이 보유한 국가는 이를 특화합니다.


    그런데 생산의 학습효과가 비교우위 및 특화패턴을 자체 강화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국가들의 비교우위와 특화는 단지 과거부터 많이 생산해온 덕분에 가진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그럼 과거부터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 연유는 무엇이냐 따지면,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본질적으로 어떤 국가가 현재 그 상품에 우위를 가지고 있을 이유는 하나도 없고, 단지 과거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여 많이 만들어왔다는 이유 뿐입니다.


    실 폴 크루그먼의 통찰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유치산업보호론을 소개한 글을 통해,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했다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통찰[각주:15]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를 통하여,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라고 말하며 '학습곡선'(learning curve) 개념을 추상적으로나마 도입하였고, '단지 먼저 시작한 덕분에 경험을 많이 축적'했다고 지적하며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으로 현재의 비교우위가 형성 됐을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아직 시작을 하지 않은 국가가 시도와 경험을 축적하면, 단지 먼저 시작했을 뿐인 국가보다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만약 잠재적 능력을 갖춘 생산자가 외부성으로 인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인 유치산업보호 정책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폴 크루그먼이 강조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도 유사한 함의와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의 정당성 입니다.


    둘째, 미국정부는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을 통해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국제무역 패턴이 국가의 본질적 특성이 아닌 역사적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정부가 일시적으로 개입하여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정부가 영구히 개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단 환경만 조성해주고 빠져도 무방합니다. 환경이 한번 조성되고 나면, 기업이 생산을 통해 얻게 된 지식으로 계속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가경쟁력 쇠퇴'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매혹적인 논리였습니다.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할 때 항상 제기되었던 반박은 "인위적인 정부 개입은 시장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였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처음에만 조금 도움을 주면, 그 후에는 경쟁력을 회복한 미국기업이 알아서 할 것이다"라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생산을 통해 얻게 되는 '학습'(learning) · '지식'(knowledge)의 중요성은 전자 · 반도체 등 최첨단산업(high-tech industry)을 집중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할 필요를 정당화 해주었습니다. 


    최첨단산업은 대규모 R&D 투자가 수반되고, 그 결과로 얻게 될 노하우는 다른 산업에까지 파급영향(spillover)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생산성 향상을 위한 R&D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에 더하여, 따라서 최첨단산업을 지원했을 때 돌아올 이익은 매우 크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로라 D. 타이슨은 미국 최첨단산업을 보호 · 지원하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주장했고,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한층 더 격화되었습니다.


    셋쩨, 일본 첨단산업의 부상을 막기 위해서 '공세적인 무역정책'이 요구된다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이 "미국정부가 미국기업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이라면, "미국정부는 일본기업이 자국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는 논리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크루그먼이 짚어주었듯이, 일본정부는 자국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하여 비교우위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 비교우위를 창출(created) 했습니다. 통상산업성(MITI, 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으로 대표되는 일본 관료조직은 수입시장을 닫은 채 자국 자동차 · 철강 · 전자 ·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했습니다. 


    이는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 것일뿐더러 일본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위였기 때문에, 미국기업들은 자국행정부를 대상으로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unfair trade practice)을 방관하지 마라"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목표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를 통해 '평평한 경기장'(level playing field)을 만들어서 국가 간에 '공정한 무역'(fair trade)을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 폴 크루그먼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과 기타 다른 연구를 통해 전략적 무역이론의 토대를 만들었으나, 전통적인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는 전략적 무역정책 · 산업정책 · 유치산업보호 정책 · 보호무역을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1987년 논문 말미에서 "약탈적 무역 및 산업정책이 가능할 수 있으나 (...) 바람직한 정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노파심을 표현했습니다. 정부의 일시적인 지원으로 비교우위가 창출되고 영구히 변화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이로운지 해로운지 여부는 소비자후생도 같이 고려하여 평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적 우연성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미래 기대(expectation) 영향이 더 클 경우 과거부터 걸어온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날 수도 있음을 짚어주었습니다. 


    크루그먼은 단지 기업가가 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수용하여 '영원히 시장을 뺏기게 될 이론적 가능성'을 이야기 하였을 뿐인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전통적인 자유무역정책에 반하는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실행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개입주의 무역정책의 근거가 된 또 다른 논리는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이 글에서 몇번이나 언급했던, 전략적 무역정책은 "시장을 보호하면 국내 생산자가 학습을 할 것이다"는 소극적(?) 주장을 넘어서서 "관세나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의 초과이윤을 뺏어와 국내 기업에게 줄 수 있다"는 적극적인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전략적 무역정책'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This wider approach reveals that much of the concern about long-run competitiveness is based on misperceptions. Although the recent appreciation of the dollar has created a temporary loss of competitiveness, the United States has not experienced a persistent loss of ability to sell its products on international markets; [본문으로]
    4. there is no necessary relation between productivity and competition in international markets. Slow growth in productivity only hampers a country'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if it is not offset by correspondingly slow growth in real wages.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9.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1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12. 물론, 대부분 금융 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은 지속불가능 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본문으로]
    13.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14.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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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Posted at 2018. 12. 31. 19:30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무역수지 적자는 재정적자 때문이다 ?


    • 1960~1990년, 미국 GDP 대비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비중 추이
    • 1970~80년대 중반까지 급격히 악화되다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반등하는 모습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은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누리고 있던 지위가 하락하고 있음을 우려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에서 보았듯이, 당시 미국경제는 세계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감소 · 생산성 향상 둔화 · 실업률 폭등 등의 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이때 미국인들의 우려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 였습니다. 198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0.7% 였으나,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하였는데, 이 중에서 대일본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가까이에 달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무역적자폭 확대를 '세계 상품시장에서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악화됨(deterioration of competitiveness)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인식했으며, 특히 전자 · 반도체 등 하이테크 산업(high-tech) 및 제조업(manufacturing)에서 미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고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보호주의(protectionism)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치인 · 관료 · 대중들에게 영향력 있는 학자들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이처럼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보호주의 압력이 증대되었고 자유무역 사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1982년 10월 ~ 1984년 7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 역임

    • 1983년 대통령 경제 보고서 Ch3 - 재정적자가 강달러 및 무역적자를 초래한다는 지적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보호주의 요구가 커지는 것을 우려한 경제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입니다. 


    레이건행정부 시기였던 1982년 10월~1984년 7월 동안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Chair of the Council of Economic Advisers)을 역임한 그는, 1983년 대통령 경제 보고서(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치 못했던 무역적자의 원인를 지적합니다. 바로, '재정적자'(Budget Deficit) 입니다.


    그의 주장과 논리를 먼저 읽어보도록 합시다.




    ※ 1983년 2월 대통령 경제 보고서 요약문


    ● 미국 경쟁력의 장기적 추세 : 인식과 현실[각주:1]


    미국의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 미국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주장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형편없는 실적의 원인으로는 미국 기업들의 경영실패와 자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외국 기업 등이 지목되고 있다. 미국의 경쟁력이 쇠락하고 있다는 인식은 제조업 상품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됨에 따라 더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이 주요 우려 대상이다.[각주:2] (...)


    하지만 장기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비록 최근의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긴 했으나,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각주:3] (...)


    생산성 향상 둔화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 상쇄되지 않을 때에만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다.[각주:4] (...)


    최근 10년동안 무역수지 흑자에서 무역수지 적자로의 전환은 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잘못 해석 되곤 한다. 사실, 미국 국제수지 구조 변화는 느린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총저축과 총투자가 변화한 결과물이다(U.S. saving and investment position).[각주:5] 


    - 미국 무역수지 구조의 변화[각주:6] 


    1950~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무역흑자를 유지했으며 다른 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였다. 그러나 1973년 이후, 미국은 무역적자로 전환되었으며 외국인의 미국내 투자가 미국인의 대외투자 규모를 넘어섰다. 이처럼 미국 무역수지 변화는 투자흐름 변화(shift in investment flow)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각주:7] (...) 미국 무역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바뀐 것은 자본수지 계정에 의해 상쇄된다. (...) 


    1970년대가 되자 다른 산업국가들은 더 이상 새로운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동시기에, 미국 내 저축공급은 낮은 국민저축률(low national saving rate)에 의해 제약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본수출국이 아니라 자본유입국이 되었다.[각주:8]


    -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83, 51-55쪽



    ● 환율과 국제수지[각주:9]  


    1982년 달러가치는 주요국 통화에 비해 1973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각주:10] (...) 강달러는 미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훼손시켜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각주:11] (...) 


    - 달러가치 강세의 원인[각주:12]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상품 수요가 아니라 미국 자산 수요를 반영하는 게 분명하다. 미국 내 투자 선호가 달러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외국인이 미국 자산을 사기 위해서는 달러를 획득해야 한다. 달러 수요 증가는 달러 가치를 상승시킨다.[각주:13] 


    미국 자산 수요를 증가시킨 중요한 요인은 미국의 높은 실질 금리이다. 실질 금리는 명목금리-기대 인플레이션율로 측정할 수 있다.[각주:14] (...) 최근 몇년동안 미국의 실질 금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각주:15] (...) 


    - 강달러가 미국 무역에 미치는 영향[각주:16]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기업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킨다. 1980년 3분기-1982년 2분기 동안, 미국 제조업의 단위노동비용은 다른 산업국가에 비해 32%나 증가하였다. 상대적 비용 증가는 일시적으로나마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시킨다.[각주:17] (..) 강달러의 영향이 미국 무역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면, 무역적자는 더 심화될 것이다.[각주:18] (...)


    무역 및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지 여부는 미국 거시경제정책, 특히 재정부문(fiscal side)에 달려있다. 만약 대규모 재정적자가 지속되어 미국 국민저축률을 억누른다면, 실질 금리는 다시 상승할 것이고, 달러가치는 계속해서 올라갈 것이다. 이 경우, 무역수지 적자는 향후 수년간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다.[각주:19] (...)


    외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세계무역 구성을 왜곡시키고 경제적 효율성을 감소시키긴 하였으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외국의 불공정 경쟁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기업가·노동단체는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거시경제 특히 대규모 재정적자가 초래한 결과이다.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원천은 파리나 도쿄가 아니라 워싱턴에서 찾아야 한다.[각주:20] (...)


    - 강달러에 대한 반응[각주:21]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환율에 영향을 줄 수는 없으나, 통화 및 재정정책은 간접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달러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한 정책은 느슨한 통화정책과 긴축 재정정책 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나마 실질 금리를 낮추어 미국으로의 자산유입을 줄이고 달러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다.[각주:22] (...)


    고정환율제 하에서, 재정적자는 국내투자를 구축시킨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재정적자는 (통화가치 상승을 통해) 수출부문을 구축시킨다. 따라서, 재정적자 감축은 국내투자 뿐 아니라 무역수지 개선을 불러올 것이다.[각주:23]  


    달러가치 상승은 자유무역을 고수하려는 미국의 결심에 압박을 준다.[각주:24] (...) 미국이 잘못된 국제무역 정책을 선택한다면, 다른 주요 교역국들의 연쇄적인 보복을 일으킬 것이다.[각주:25] (...)


    미국 기업의 경쟁력과 국제수지는 거시경제적 현상이다. 미시적개입은 거시경제 문제를 치유하지 못한다. 미국이 추구할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재정적자와 실질 금리를 통제하에 두는 것이다(budget deficits and real interest rates under control).[각주:26]  


    -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83, 61-69쪽


    1980년대 초반,  일본의 경제성장과 비교되는 미국의 생산성 둔화 및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각주:27]를 목격한 많은 미국인들이 보호주의 · 산업정책 · 외환시장 개입 등을 요구하고 있을 때, 마틴 펠드스타인은 이렇게 뜬금없이(?) 재정적자 감축을 이야기 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미국인들은 펠드스타인이 적은 문장 하나하나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쉽게 이해했을 테지만, 다수의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에게는 뚱딴지 같은 소리였습니다. 


    이번글을 통해 마틴 펠드스타인이 무역적자 확대의 원인으로 왜 재정적자를 문제 삼았는지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합시다.




    ※ 1980년부터 미국으로 자본유입 증대 → 달러가치 상승 → 무역적자


    • 파란선 :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 지수 (1973=100)

    • 노란선 : 미국 GDP 대비 무역수지 적자 비중 (축반전)

    • 1980년을 기점으로 달러가치가 상승하자, 시차를 두고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


    1980년대 초중반, 미국 무역수지 적자 심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은 1980년부터 시작된 '달러가치 상승'(dollar's strength) 이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달러가치 상승이 본격화되고 2년 후부터 무역수지 적자폭도 확대되었습니다.


    주요국 통화가치 대비 달러가치는 1980-1985년 동안 무려 40%나 상승했습니다. 마틴 펠드스타인이 보고서를 작성한 시점(1982-83년 2월)에도 달러가치는 1973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었죠. 


    미국 무역수지 적자는 시차를 두고 심화되었습니다. 강달러는 초기에는 수입비용을 낮추는 이로움을 주다가 점점 수출경쟁력을 훼손시켰고, GDP 대비 무역수지 적자 비중은 1982년 -1.3%에서 1986년 -3.7%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달러가치가 이토록 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본래 수출이 줄고 수입이 증가하면 자기조정기제에 의해서 통화가치가 하락하여야 하는 게 정상적임에도, 인위적으로 달러가치를 하향시킨 플라자합의 이전까지 계속해서 상승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틴 펠드스타인은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상품 수요가 아니라 미국 자산 수요를 반영하는 게 분명" 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말의 함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1년 이후 달라진 세계경제를 알아야 합니다.


    ▶ 닉슨 쇼크 -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전세계적 자본이동 자유화


    1971년은 세계경제에 큰 변화를 안긴 사건이 일어났던 해 입니다. 바로, 닉슨 쇼크(Nixon Shock), 외국이 가져온 금 1온스를 35달러로 교환해주던 금태환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은 고정환율제도에서 벗어나 1973년부터 변동환율제도로 이행[각주:28]하였고, 국가간 자본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졌습니다. 


    1971년 이전까지 외환시장은 주로 무역거래(trade transaction)를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후부터는 자본거래(capital transaction)가 외환시장을 지배하였고 통화가치도 자산의 수요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외국인이 미국 내 자산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달러화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달러화 자산 수요의 증가(increase in the demand for dollar assets), 다르게 말해 미국으로의 자본유입(capital inflow)은 달러가치를 상승시킵니다. 반대로 미국인이 외국의 자산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달러화를 팔고 외국의 통화를 구매해야 합니다. 따라서 외국 자산 수요의 증가 및 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출은 달러가치를 하락시킵니다.


    ▶ 일본의 외환거래 자유화 & 미국 실질금리 상승 - 미국으로의 자본유입 증대


    그렇다면 1980년부터 시작된 달러가치 상승은 동시기 미국 달러화 자산 수요가 증대된 결과물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미국으로의 자본유입이 증대되었습니다. 첫째는 본의 외환통제 자유화(liberalization of foreign exchange controls). 둘째는 미국의 높은 실질금리(higher real interest rates) 입니다.


    • 출처 : Fukoa, 1990, <일본 외환통제 자유화와 국제수지 구조변화>[각주:29], BOJ 통화·경제 연구

    • 1980년 12월 자본유출 자유화가 실시된 이후, 일본 기관투자자들의 외국증권투자 잔액이 대폭 증가


    일본은 1973년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이후에도 엄격한 외환통제를 실시했습니다. 외환시장은 통화당국에 의해 지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고정환율제나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1980년 12월, 새로운 외환거래법이 시행 되었습니다. 이전의 법들과는 달리 새로운 법은 특정 경우를 제외하고 어떠한 외환거래도 허용토록 했습니다(freedom of transactions with exceptions). 생명보험사 · 신탁은행 등의 기관투자자들의 외국증권투자 제한도 없어졌습니다. 그 결과, 위에 첨부한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에서 막대한 자본유출(capital outflow)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자본이 주로 향한 곳은 바로 미국 이었습니다.


    • 출처 :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83, 64쪽

    • 미국 실질금리와 주요 산업국 실질금리 간 차이


    1981년 당시 미국 실질금리는 주요 산업국가에 비해서 약 4%p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이동이 자유롭게 된 외국투자자들이 미국 달러화 자산에 투자하는 건 자연스런 행동이였습니다. 그리고 달러화 자산 수요 증가로 인해 달러가치가 상승하는 것도 자연스런 인과관계 였죠.


    ▶ 자본·금융수지와 경상수지(무역수지) 간 관계


    자본유입 증대는 달러가치 상승을 유발하여 수출경쟁력 및 무역수지 악화를 초래할 수도 있고, 자본유입 그 자체가 무역수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바로, 자본·금융수지[각주:30]와 경상수지(무역수지)[각주:31] 간 관계를 통해서 입니다.


    • 1970~1990년, 미국 경상계정(current account) · 금융계정(financial account) 추이

    • 경상계정 적자는 상품·서비스 순수입을 의미하며, 금융계정 적자는 순자본유입을 의미


    [경제학원론 거시편] 시리즈의 글[각주:32]을 통해 소개하였듯이, '경상수지 흑자(순수출) = 자본·금융수지 흑자[각주:33](순자본유출)'이며, '경상수지 적자(순수입) = 자본·금융수지 적자(순자본유입)' 입니다. 


    마틴 펠드스타인이 보고서를 통해 "미국 무역수지 변화는 투자흐름 변화(shift in investment flow)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보고서 내용 다시 읽어보기


    이번 파트에서 살펴본 내용을 염두에 두고, 1983년 대통령 경제보고서에 담긴 관련 내용을 다시 읽어봅시다.


    ● 환율과 국제수지  


    1982년 달러가치는 주요국 통화에 비해 1973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 강달러는 미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훼손시켜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 


    - 달러가치 강세의 원인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상품 수요가 아니라 미국 자산 수요를 반영하는 게 분명하다. 미국 내 투자 선호가 달러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외국인이 미국 자산을 사기 위해서는 달러를 획득해야 한다. 달러 수요 증가는 달러 가치를 상승시킨다. 


    미국 자산 수요를 증가시킨 중요한 요인은 미국의 높은 실질 금리이다. 실질 금리는 명목금리-기대 인플레이션율로 측정할 수 있다. (...) 최근 몇년동안 미국의 실질 금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 


    ● 미국 경쟁력의 장기적 추세 : 인식과 현실


    - 미국 무역수지 구조의 변화 


    1950~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무역흑자를 유지했으며 다른 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였다. 그러나 1973년 이후, 미국은 무역적자로 전환되었으며 외국인의 미국내 투자가 미국인의 대외투자 규모를 넘어섰다. 이처럼 미국 무역수지 변화는 투자흐름 변화(shift in investment flow)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미국 무역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바뀐 것은 자본수지 계정에 의해 상쇄된다. (...) 


    1970년대가 되자 다른 산업국가들은 더 이상 새로운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동시기에, 미국 내 저축공급은 낮은 국민저축률(low national saving rate)에 의해 제약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본수출국이 아니라 자본유입국이 되었다.


    ▶ 왜 미국에서 실질금리가 높았을까? · 왜 미국은 자본유입국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왜 미국에서 실질금리가 높았을까?" "왜 미국은 자본유입국이 되었을까?" 입니다. 만약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실질금리가 더 높았다면 미국으로의 자본유입은 없었을 것이고, 강달러 현상과 무역수지 적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 해답은 펠드스타인이 말한 "동시기에, 미국 내 저축공급은 낮은 국민저축률(low national saving rate)에 의해 제약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본수출국이 아니라 자본유입국이 되었다."에 들어있습니다.


    해답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인 '1979년-1982년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과 거시경제 상황'을 먼저 파악해 봅시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 1979-1982년, 볼커 연준 의장의 反인플레이션 정책 성공


    1970년대 미국 소비자들이 직면한 (생산성둔화 · 무역적자 이외에)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높은 물가상승률' 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발생한 두 번의 오일쇼크는 10%가 넘는 인플레이션율을 초래했습니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의 역관계를 나타내는 (단기) 필립스곡선을 생각하면,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낮은 실업률 및 높은 생산량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일쇼크와 같은 공급충격에 의한 물가상승은 높은 실업률과 낮은 생산량을 동반시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한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자연실업률과 잠재생산량은 공급측면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율에 따라 변동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높은 물가수준만 가지게 된다"[각주:34]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장기적 비용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대중들은 강력한 反인플레이션 정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소를 위한 긴축정책은 단기적으로 높은 실업률을 불러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동일한 자연실업률 · 잠재생산량일 때 이전보다 낮은 물가수준을 가져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 1979년 8월 - 1987년 8월, 미 연준 의장을 역임한 폴 볼커(Paul Volcker)

    • 볼커 의장은 1979년 부임 이후 강력한 反인플레이션 정책을 구사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79년 8월 연준 의장으로 부임한 폴 볼커(Paul Volcker)는 인플레이션율을 줄이기 위한 강력한 약속(strong commitment)을 다짐하며, 인플레이션율이 충분한 수준으로 하락하고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질 때까지 긴축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볼커의 연준은 통화공급 증가율을 감소시켜 단기 금리 상승을 용인[각주:35]했으며, 1980년 4월 연방기금금리는 17.61%까지 오릅니다. 1980년 대선을 앞두고 잠시 금리를 내린 연준은 대선이 끝나자 다시 대폭의 통화긴축을 단행합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1982년 전반기까지 계속된 긴축 통화정책은 1970년대 10%가 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983년 2%대까지 내리는 데 성공시킵니다. 이후로도 오늘날까지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경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볼커의 연준은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신뢰성을 획득하였고,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연준이 긴축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경제주체들 사이에 공고화되자 실제 인플레이션율 또한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적인 연준의 反인플레이션 정책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했습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레이건 행정부의 재정정책 

    - 레이건행정부 감세와 국방비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적자 심화


    • 1960~1990년, 미국 GDP 대비 연방정부 재정수지 비중 추이

    • 1981년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정적자가 심화되었다


    1979년-1982년 연준이 긴축 통화정책을 실시하던 시기에, 1981년 임기를 시작한 레이건행정부는 대폭적인 감세(tax cut)와 국방비지출 증가(defense spending rise)를 실시하여 재정적자(budget deficit)를 초래했습니다. 


    GDP 대비 정부수입은 1981년 18.7%에서 1985년 16.9%까지 하락했습니다. 반면 국방비지출 비중은 5.6%에서 6.9%로 증가했고, 순이자지출 비중도 1.8%에서 3.0%까지 늘어났습니다.


    그 결과 초래된 것이 재정적자(budget deficit) 및 정부부채 증가(government debt) 입니다. 위의 그래프에 나와있듯이, 1981년 -2.5%였던 재정적자 비중은 1985년 -4.9%로 심화 되었습니다.


    레이건행정부는 '작은 정부'를 추구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감세와 정부지출 감소를 동시에 추구하였는데, 세금인하 폭은 예상했던 것보다 컸던 반면 정부지출 감소액은 기대했던 것보다 적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이란 미대사관 억류 사태 · 소련과의 냉전 심화 등이 벌어진 상황에서, 국가적 분위기는 국방비 지출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982년 10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이 된 마틴 펠드스타인에게 재정적자는 심각한 우려사항 이었습니다. 그는 행정부 동료들에게 재정적자 감축의 필요성을 설득했고, 언론기고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레이건행정부 인사들과 대중들에게 재정적자는 큰 문제가 아닌듯 보였습니다. 정치사상으로 '작은 정부'를 추구한 행정부 인사들에게 펠드스타인의 세금 인상 주장은 가당치도 않은 요구였습니다. 감세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면 향후 세금 수입이 저절로 증대될거라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대중들에게 높은 실업률 · 높은 인플레이션율 문제에 비해 재정적자는 별다른 고민거리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방비지출 감소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정적자가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에는 앞서 살펴본 연준의 성공적인 정책도 기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각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만회하고 정부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통화량 발행을 늘리는데,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연준의 긴축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율이 낮았으며, 향후 높은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거라는 기대도 사라진 상황 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틴 펠드스타인이 재정적자를 우려한 두 가지 이유와 논리를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펠드스타인은 재정적자가 장기적으로 투자 위축을 통한 자본형성 및 경제성장 둔화 · 단기적으로 저축 위축을 통한 무역적자 심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는데, 사람들이 듣기엔 뚱딴지 같은 소리였습니다. 


    이제 다음 파트에서 펠드스타인의 뚱딴지 같은 소리가 왜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인지 알아봅시다.




    ※ 재정적자가 무역적자를 초래하는 이유

    : 총저축 감소실질금리 상승자본유입 증대 및 강달러무역적자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한번 더 짚어봅시다. 미국 무역수지 적자를 초래한 직접적인 요인은 '자본유입'과 '강달러' 입니다. 자본유입은 그 자체로 경상계정 적자(금융계정 적자)를 초래하기도 하고, 달러가치를 상승을 불러와 수출경쟁력 감소 및 무역적자 확대를 만들어 냅니다. 


    결국 무역적자의 근본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왜 1980년대 초중반 미국 실질금리가 높아서 자본유입을 초래하였나"에 대한 해답을 알아야 하는데, 마틴 펠드스타인은 '재정적자'(budget deficit)를 답으로 꼽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 거시경제 총저축과 총투자에 의해서 균형 실질 금리 r*가 결정된다

    • 총저축이 외생적으로 줄어들면 균형 실질 금리는 상승


    재정적자는 거시경제 총저축을 외생적으로 감소시킴으로써 실질금리를 상승시킵니다.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아주 단순한 경제원리 입니다. 거시경제 실질 금리 r*는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하는데, 총저축이 외생적으로 줄어들면 균형 실질 금리는 상승합니다. 위의 그래프가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  : 대부자금시장에서 거시경제 실질 금리가 결정되는 원리는 본 블로그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를 통해서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 1970~1990년, 미국 순 국민저축률 · 개인저축률 · 정부저축률 추이

    • 1980년대 초반, 재정적자로 인해 순정부저축률이 줄어들면서 순국민저축률도 크게 감소


    1980년대 초반, 재정적자로 인해 총저축이 감소한 모습을 위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시경제 총저축은 이른바 국민저축(national saving)으로 불리우며, 개인저축(private saving) + 정부저축(government saving)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81년 레이건행정부 감세 및 국방비지출 증가로 재정적자가 증가하면서 순정부저축률이 감소하였고, 그 결과 순국민저축률이 급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출처 :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83, 64쪽

    • 미국 실질금리와 주요 산업국 실질금리 간 차이


    이로 인해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실질금리가 다른 주요 산업국가에 비해 높은 수준을 기록하게 되었고, 자본유입 증대 및 달러가치 강세에 이은 무역수지 적자가 초래된 것입니다.


    • 국민계정식(National Accounting)을 이용해 살펴본, 국민저축 · 투자 · 순수출의 관계


    '재정적자 → 총저축 감소 → 실질 금리 상승 → 자본유입 증대 → 달러가치 상승 → 무역적자 발생' 경로가 이해하기 힘들다면, 국민계정식을 통해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본 블로그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를 통해 설명한 바 있듯이, 순수출(NX) 크기는 국민저축(S)과 투자(I)가 결정 짓습니다. 기본적인 회계등식 관계일 뿐입니다. 따라서, 정부지출이 증가하여(G↑) 국민저축이 감소한다면(S↓), 당연히 순수출 크기도 줄어듭니다(NX↓)


    국민계정식을 다르게 바라보면, 무역적자가 발생했던 동시기에 자본유입이 증가하여 금융계정이 적자를 기록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증가한 정부지출로 국민저축이 줄어들면 이를 보충하는 방법은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즉, 국민저축이 감소하면 외국으로부터 자본이 유입되고, 금융계정은 적자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순수출과 순자본유입은 동일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으며, 마틴 펠드스타인이 "미국 무역수지 변화는 투자흐름 변화(shift in investment flow)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무역수지 적자의 근본원인은 재정적자에 있다는 마틴 펠드스타인의 주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분석을 다시 읽어보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겁니다.


    ● 미국 경쟁력의 장기적 추세 : 인식과 현실


    미국의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 미국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주장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형편없는 실적의 원인으로는 미국 기업들의 경영실패와 자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외국 기업 등이 지목되고 있다. 미국의 경쟁력이 쇠락하고 있다는 인식은 제조업 상품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됨에 따라 더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이 주요 우려 대상이다. (...)


    하지만 장기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비록 최근의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긴 했으나,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 (...)


    생산성 향상 둔화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 상쇄되지 않을 때에만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다. (...)


    최근 10년동안 무역수지 흑자에서 무역수지 적자로의 전환은 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잘못 해석 되곤 한다. 사실, 미국 국제수지 구조 변화는 느린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총저축과 총투자가 변화한 결과물이다(U.S. saving and investment position).


    ● 환율과 국제수지


    - 강달러가 미국 무역에 미치는 영향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기업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킨다. 1980년 3분기-1982년 2분기 동안, 미국 제조업의 단위노동비용은 다른 산업국가에 비해 32%나 증가하였다. 상대적 비용 증가는 일시적으로나마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시킨다. (..) 강달러의 영향이 미국 무역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면, 무역적자는 더 심화될 것이다. (...)


    무역 및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지 여부는 미국 거시경제정책, 특히 재정부문(fiscal side)에 달려있다. 만약 대규모 재정적자가 지속되어 미국 국민저축률을 억누른다면, 실질 금리는 다시 상승할 것이고, 달러가치는 계속해서 올라갈 것이다. 이 경우, 무역수지 적자는 향후 수년간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다. (...)


    외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세계무역 구성을 왜곡시키고 경제적 효율성을 감소시키긴 하였으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외국의 불공정 경쟁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기업가·노동단체는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거시경제 특히 대규모 재정적자가 초래한 결과이다.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원천은 파리나 도쿄가 아니라 워싱턴에서 찾아야 한다. (...)


    - 강달러에 대한 반응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환율에 영향을 줄 수는 없으나, 통화 및 재정정책은 간접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달러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한 정책은 느슨한 통화정책과 긴축 재정정책 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나마 실질 금리를 낮추어 미국으로의 자산유입을 줄이고 달러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다. (...)


    고정환율제 하에서, 재정적자는 국내투자를 구축시킨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재정적자는 (통화가치 상승을 통해) 수출부문을 구축시킨다. 따라서, 재정적자 감축은 국내투자 뿐 아니라 무역수지 개선을 불러올 것이다.


    달러가치 상승은 자유무역을 고수하려는 미국의 결심에 압박을 준다. (...) 미국이 잘못된 국제무역 정책을 선택한다면, 다른 주요 교역국들의 연쇄적인 보복을 일으킬 것이다. (...)


    미국 기업의 경쟁력과 국제수지는 거시경제적 현상이다. 미시적개입은 거시경제 문제를 치유하지 못한다. 미국이 추구할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재정적자와 실질 금리를 통제하에 두는 것이다(budget deficits and real interest rates under control).




    ※ 이해하기 어려운 마틴 펠드스타인의 주장


    이번글을 통해, 마틴 펠드스타인이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라고 주장한 이유와 논리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경제학원론 수준의 지식을 이용해서 차근차근 살펴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으나, 경제학을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직관적이지 않은 주장 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미국 제조업이 일본 제조업과의 '전쟁과 같은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거 같은데, 갑자기 재정적자와 총저축을 이야기하니 당혹스럽습니다. '작은 정부'를 신봉하던 레이건행정부 인사들은 더더욱 황당할 뿐입니다. 감세를 통해 기업을 도우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믿는데, 신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이 세금을 인상해야 무역적자가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마틴 펠드스타인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논문을 통해 그때의 일을 이야기 합니다.


    ● 1980년대 달러와 무역적자에 관한 개인적 평가


    - 국민저축과 쌍둥이적자 (무역+재정 적자)


    경제학자들은 재정적자와 실질 금리 · 달러가치, 최종적으로 무역적자 간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있으나, 비경제학자들은 이 논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chair of CEA)을 역임했을 때, 내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연결고리를 설명할 때마다 수많은 회의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달러가치는 (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이 아니라) 통화정책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통화주의자들도 있었고, 재정적자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공급주의자들도 있었다.  (...)


    재정적자와 실질 금리 · 달러 가치 · 무역수지 간 관계를 비경제학자들에게 설득하는 건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보다 직접적인 설명을 강조했다. 한 나라의 무역수지는 저축과 투자의 차이와 같다. 국가가 저축을 투자보다 많이 한다면 순수출을 하고, 저축이 투자보다 적다면 순수입이 발생한다.  


    대규모 재정적자는 국민저축을 낮춤으로써 무역적자를 일으킨다. 1980년대 전반기, GDP 대비 순개인저축은 감소한 반면 순개인투자는 다소 증가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러한 설명은 경제이론도 아니고 실증분석도 아니라 기초적인 회계등식일 뿐이다. (...)


    그러나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1984년 초반, 재무부장관 돈 레이건은 상원예산위원 청문회에 나가서, 나의 보고서가 틀렸으며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 Martin Feldstein, 1993, The Dollar and the Trade Deficit in the 1980s: A Personal View


    ● 1980년대 정부지출과 재정적자에 관한 개인적 평가


    1982년 중반-1984년 중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하던 2년간 재정적자는 나에게 주요한 문제였고, 레이건 행정부 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 나는, 우리가 세금인상을 하거나 다른 지출을 줄여야 국방비지출 증대를 감당할 수 있음을 말해왔다. 높은 세금인상이 없다면 행정부의 국방비지출 증액 요구를 의회가 삭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실업률 및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문제와는 달리, 재정적자가 초래하는 문제는 대중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 나는 나의 중요한 책무를 행정부 동료 뿐만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재정적자의 장기적 악영향을 설명하는 것으로 여겼다. (...) 


    만약 그들이 재정적자가 초래할 장기적 악영향을 이해하기만 하면, 그들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단기비용을 감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1980년대를 돌아보면,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너무나 적은 노력이 행해졌다. 재정적자를 줄였을 때 발생할 정치적 비용은 명확했다. (...)


    1982년 가을, 나는 상당한 시간을 행정부 내부나 대중들에게 최근의 적자 급증은 경기적 요인이긴 하지만,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여전히 구조적 적자에 직면할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구조적 적자가 지속된다면 필연코 투자를 줄여서 미래 소득을 줄일거라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투자 구축현상은 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으로 상쇄되거나 달러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출하락으로 상쇄되지만, 자본유입은 일시적이며 결국 재정적자는 국내저축을 줄여서 투자를 위축시킬것이라고 주장했다. (주 : 일명 Feldstein-Horioka Puzzle)


    재무부내 "공급중시론자"들은 일단 경기회복이 시작되고 나면, 세금인하에도 세금수입이 커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추가적인 세금변경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적자가 지속되더라도, 세금인상 보다는 적자가 지속되도록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세금인상은 유인을 훼손시키는 반면, 재정적자가 문제를 초래한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 이들은 재정적자가 실질금리를 인상시킨다는 논리를 부정했다. (...)

     

    재정적자가 초래할 장기적 악영향을 강조한 것, 대통령에게 세금인상 필요성을 요구한 것, 정부지출감소 등의 강조는 백악관 내에서 나를 인기없게 만들었다. 


    - Martin Feldstein, 1993, Government Spending and Budget Deficits in the 1980s: A Personal View 




    ※ 책상 위 경제학자와 경쟁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경영자 간 사고방식 차이


    처럼 경제학적 사고방식은 직관적이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하며, 동시대에 벌어진 거시경제적 사건들(닉슨쇼크 및 브레튼우즈체제 붕괴 · 일본의 외환거래 자유화 · 볼커 연준의 긴축 통화정책 · 레이건행정부의 감세정책)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정치권 · 기업가 · 일반 대중들과 항상 충돌하며 논쟁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번글을 통해 제가 전하고 싶은 것은 "경제학자들은 국제무역을 이렇게 바라보기도 한다."이지, "경제학자들의 사고방식이 진리다"가 아닙니다.


    마틴 펠드스타인의 설명은 거시경제적 현상인 무역적자를 설명할 때는 타당하나, 미시적 세계에서 외국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경영자가 보기엔 매우 부족합니다. 지금 당장 일본 제조업 기업과의 경쟁때문에 힘든 미국 제조업 경영자에게 "재정적자를 줄여라"는 충고와 조언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경제학자와 기업경영자들이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토록 다를 수 밖에 없을까요? 이러한 사고방식의 차이는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큰 논쟁을 유발시켰습니다. 


    바로 다음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에서 이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1. Long-Run Trends in U.S. Competitiveness: Perceptions and Realities [본문으로]
    2. Concern over the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of the United States is as high as it has ever been. It is argued with increasing frequency that U.S. business has steadily lost ground in the international marketplace. This alleged poor performance is often attributed both to failures of management in the United States and to the support given to foreign businesses by their home governments. Feeding the perception of declining competitiveness is the persistent U.S. deficit in merchandise trade, especially the imbalance in trade with Japan. [본문으로]
    3. This wider approach reveals that much of the concern about long-run competitiveness is based on misperceptions. Although the recent appreciation of the dollar has created a temporary loss of competitiveness, the United States has not experienced a persistent loss of ability to sell its products on international markets; [본문으로]
    4. But there is no necessary relation between productivity and competition in international markets. Slow growth in productivity only hampers a country'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if it is not offset by correspondingly slow growth in real wages. [본문으로]
    5. The overall performance of the United States, then, does not suggest a long-term problem of competitiveness. The shift from persistent trade surplus to persistent deficit which occurred over the last decade is, however, often misinterpreted as a sign of an inability to compete. In fact, changes in the structure of the U.S. balance of payments are more the result of changes in the U.S. saving and investment position than of slow productivity growth. [본문으로]
    6. The Changing Structure of the U.S. Balance of Payments [본문으로]
    7. In the 1950s and early 1960s the United States normally had a trade surplus and invested heavily in other countries. In the years after 1973, however, the United States normally had a trade deficit, and annual investment by foreigners in the United States began to approach annual U.S. investment abroad. The shift in the U.S. trade balance was closely connected with the shift in investment flows. [본문으로]
    8. By the 1970s the other industrial countries had narrowed or eliminated these differences in capital and labor costs. The result was that the demand for new capital abroad was no longer a great deal larger than it was in the United States. At the same time, the supply of savings in the United States was restricted by a low national saving rate (the lowest among the major industrial countries). Thus the United States ceased to be a major net exporter of capital, [본문으로]
    9. Exchange Rates and the Balance of Payments [본문으로]
    10. During 1982 the dollar rose against other major currencies to its highest level since the beginning of floating exchange rates in 1973. [본문으로]
    11. the strong dollar caused severe problems by decreasing the cost competitiveness of exported U.S. goods. [본문으로]
    12. Causes of the Dollar's Strength [본문으로]
    13. What the rise of the dollar seems clearly to reflect is a rise not in the demand for U.S. goods, but in the demand for U.S. assets. The reasons for the increased attractiveness of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are somewhat controversial, but the effects are not. In order to buy U.S. assets, foreigners must first acquire dollars. The increased demand for dollars drives up the exchange rate. [본문으로]
    14. One important factor in the increased demand for U.S. assets was that real interest rates in the United States were high relative to real interest rates elsewhere. Real interest rates are not directly measurable, since they equal the nominal rate minus expected inflation. [본문으로]
    15. real interest rate in the United States was substantially higher than foreign rates in recent years. [본문으로]
    16. Effects of a Strong Dollar on U.S. Trade [본문으로]
    17. The rise of the dollar was associated with a large rise in the production costs of U.S. firms relative to those of foreign competitors. To take one measure, unit labor costs in U.S. manufacturing rose 32 percent relative to those of a weighted average of other industrial countries from their low point in the third quarter of 1980 to the second quarter of 1982. This rise in relative costs has at least temporarily reduced the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of U.S. industry dramatically. Other U.S. exporting and import-competing sectors, especially agriculture, have also been squeezed. [본문으로]
    18. As the effects of the strong dollar are increasingly reflected in U.S. trade, the trade deficit will widen. [본문으로]
    19. Whether the trade and current account deficits persist will largely depend on U.S. macroeconomic policies, particularly on the fiscal side. If large budget deficits are allowed to continue to depress the U.S. national saving rate, real interest rates may rise again, sustaining or even increasing the high real exchange rate of the dollar. In this case the trade deficit could remain high for several years. [본문으로]
    20. Should this occur, government, business, and labor officials must bear in mind that even though protectionist foreign trade practices distort the composition of world trade and reduce economic efficiency both in the United States and abroad, large trade deficits are not the result of unfair foreign competition. Large projected U.S. trade deficits are a result of macroeconomic forces, particularly large budget deficits. The main sources of the U.S. trade deficit are to be found not in Paris or in Tokyo, but in Washington. [본문으로]
    21. Responses to the Strong Dollar [본문으로]
    22. Although the government cannot significantly affect exchange rates through direct intervention, monetary and fiscal policies do indirectly affect the exchange rate. A feasible strategy for bringing the dollar down would involve looser monetary policies and tighter fiscal policies. Both of these changes would tend to lower real interest rates (at least in the short run), making capital movement into the United States less attractive and thus driving down the value of the dollar. [본문으로]
    23. Under fixed exchange rates, budget deficits crowded out domestic investment. With a floating exchange rate they crowd out exporting and import-competing products as well. A reduction in deficits would lead—with some lag—to an improvement in the trade balance as well as higher investment. [본문으로]
    24. The strength of the dollar has put considerable strain on the resolve of the United States to remain committed to free trade. [본문으로]
    25. If there is special reason for concern about the international side, it is because of the danger that mistakes in U.S. policy could set off a spiral of retaliation among all the major trading nations. [본문으로]
    26. The competitiveness of U.S. business as a whole—as opposed to that of particular sectors—and the balance of payments are macroeconomic phenomena. Microeconomic interventions cannot cure macroeconomic problems; they can only make one sector better off by hurting other sectors even more. The most effective strategy the United States can pursue for its exporting and import-competing sectors is to get its overall economic house in order—above all, by bringing budget deficits and real interest rates under control.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8. 달러지수 데이터가 1973년 100을 기준으로 오늘날까지 제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으로]
    29. Liberalizatoin of Japan's Foreign Exchange Controls and Structural Changes in the Balance of Payments [본문으로]
    30. 요즘은 자본금융 수지라 하지 않고, 자본금융 계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만... [본문으로]
    31. 경상수지는 상품 및 서비스 무역수지 이외에 본원소득 및 이전소득 수지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지만, 후자의 크기는 전자에 비해 작기 때문에, 경상수지를 무역지로 받아들여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본문으로]
    32.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33. 2015년 12월 이전까지, 한국은행은 순자본유출을 자본금융수지에 음(-)의 값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혼동을 준다고 하여 2015년 12월부터 순자본유출이 자본금융수지에 양(+)의 값으로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으로]
    34.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자연실업률 - 단기와 장기 · 기대의 변화 · 총수요와 총공급 http://joohyeon.com/210 [본문으로]
    35.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연방기금금리를 직접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겟인 총통화량 조절을 위해 금리를 조정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Posted at 2018. 12. 29. 19:35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2018년이 아니라... 1985년?


    "국제적인 무역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이 규칙(rules)을 준수하고 개방된 시장(open market)을 보장하도록 애써야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자유무역(free trade)은 말그대로 공정무역(fair trade)이 된다."[각주:1]


    "다른 나라의 국내시장이 닫혀있다면(closed)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it is no longer free trade). 다른 나라 정부가 자국의 제조업 및 농업에게 보조금(subsidies)을 준다면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우리 상품을 베끼도록 놔둔다면(copying) 이는 우리의 미래를 뺏는 것이고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하고(violate international laws) 그들의 수출업자를 지원한다면 경기장은 평등하지 않은 셈(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이 되며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산업 보조금을 집행하여 경쟁국에게 불공정한 부담을 안긴다면(placing an unfair burden)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각주:2]


    "우리는 GATT 체제와 국내법 하에서 국제통상에 관련한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우리와 맺은 무역협정과 의무를 준수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만약 무역이 모두에게 불공정하다면, 자유무역은 이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ing practices)으로 인해 우리의 기업인들이 실패(fail)하는 것을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서(do not play by the rules) 우리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마는 사태(lose jobs)를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각주:3]


    - Douglas Iriw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A History of US Trade Policy, 606쪽 재인용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화자는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으로 인해 자국의 이익이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국제통상 규칙을 준수하고 개방된 시장을 유지한다면 자유무역이 상호이득을 안겨다줄텐데, 다른 국가들은 보조금 등을 집행함으로써 타국 생산자를 희생시켜 자국 생산자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자신의 기업인과 근로자를 지키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첫번째 글[각주:4]에 나타난 '화가 난 도널드 트럼프'가 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2018년 오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말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한 발언일까요?


    • 왼쪽 :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1981~1989)

    • 오른쪽 : 1985년 플라자합의에 이루어낸 G5 재무장관들


    윗 발언을 한 인물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고, 시기는 플라자합의가 발표된 바로 다음날인 1985년 9월 23일 입니다[각주:5].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통화가치를 높이고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특히 '일본'과의 무역에 있어 보다 강경한 자세(a more aggressive stance)를 취할 것임을 위에 나오듯 공개적으로 천명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2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첫째,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다


    금까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논리를 비판해온 나라는 주로 개발도상국 이었습니다. 


    중상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자유무역 사상을 퍼뜨린 애덤 스미스[각주:6]와 이윤율 저하를 막기 위해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고 비교우위 논리를 세상에 내놓은 데이비드 리카도[각주:7] 모두 제조업이 발달되어 있던 영국의 국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이 줄곧 제기되어 왔습니다.


    1920-30년대 호주[각주:8]는 제조업이 아닌 1차 산업이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라고 판단했습니다. 1950-70년대 중남미[각주:9]는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자본재를 스스로 생산하는 민족자립경제를 달성하기 위하여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중남미의 참담한 실패와 한국의 경제발전 성공[각주:10]은 폐쇄적인 무역체제가 아닌 대외지향적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주었으나, 특정 산업이 성장할 때까지 보호[각주:11]하는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음도 보여주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비교우위론과 자유무역 사상은 보다 정교화 되었습니다.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가 기술수준[각주:12] 혹은 부존자원[각주:13] 차이에 의해서 결정된다고는 하나, 단지 먼저 시작했다[각주:14]는 이유 즉 역사적 우연성 만으로도 비교우위를 가질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늦게 시작한 까닭으로 현재는 경쟁력이 없으나, 시간이 흐르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하는 정책이 정당화 될 수도 있음을, 서구의 주류 경제학자들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1980년대가 되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내에서 자유무역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보호주의 압력이 증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레이건 대통령의 발언은 마치 자유무역의 수호자 처럼 보입니다. 규칙을 어기는 외국에 대항하여 자유무역 체제를 지킬 것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달랐습니다. 세계경제 내 미국의 위상이 줄어들고 일본 및 제3세계 국가들과의 경쟁이 심화되자, 미국 내에서는 보호주의 압력이 증대되었습니다. 외국상품 수입을 제한하고, 미국 기업을 지원하는 산업정책을 요구하고, 일본의 무역장벽을 위협을 통해 제거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타난 결과물이 바로 1985년 플라자합의1988년 종합무역법의 슈퍼301조 조항 입니다.


    ▶ 둘째, 오늘날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는 장면이 1980년대에 나타나다


    1980년대 미국의 모습은 오늘날에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는 장면이 1980년대에 나타났던 이유, 다르게 말해 1980년대와 유사한 대결 및 갈등이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때와 지금을 둘러싼 여러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일본 무역적자가 문제였다면 현재는 대중국 무역적자가 보호무역 압력을 증대시키며, 일본 · 중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 증가도 논쟁을 일으킵니다. 또한, 미국 제조업은 80년대 일본 하이테크 산업의 발전 · 00년대 중국 저임금 일자리의 증가로 인해 극심한 경쟁에 노출되며, 제조업 쇠락 및 탈산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낳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일본 특유의 경제체제와 사고방식을 미국은 이해하기 힘들어했고 오늘날 중국 특유의 정치 · 경제체제 및 사고방식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일본의 부상에 두려움을 느꼈던 미국인들은 오늘날 마찬가지로 완전히 다른 중국의 성장에 위협을 느낍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각 시기에 활동하는 경제학자들은 일본 · 중국과의 무역이 미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유무역 사상에 반하는 새로운 무역이론 혹은 실증분석 결과를 제시하며 논쟁을 유발시킵니다.


    따라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1980년대 미국 내에서 벌어진 국제무역논쟁을 살펴보고 나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1980년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큰 그림을 파악해야 합니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미국의 지위 하락과 경기침체 그리고 무역적자의 '거시경제적 위기'. 둘째, 전자 · 반도체 등 첨단산업 경쟁 심화가 보여주는 '일본의 부상'. 셋째, 자유무역 정책이 최상의 정책이 아닐수도 있다는 함의를 전해주는 '경제학계의 변화' 입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① 거시경제적 위기 : 미국의 지위 하락과 생산성 둔화 그리고 무역적자


    • 1968~1990년, 전세계 GDP에서 미국 GDP가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1970년대 일본 및 제3세계 경제가 고성장을 기록하며,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지위가 하락


    미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려왔습니다. 서유럽이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었고, 제3세계는 저발전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지위는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유럽이 다시 부흥하였고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도성장을 기록하며 경제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전세계 GDP에서 미국 GDP가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미국은 1968년 전세계 GDP 중 26.2%를 차지했으나, 점점 감소하여 1982년 23.0%를 기록합니다.  


    • 1960~1990년, 미국 실업률 추이

    • 1970년대 오일쇼크, 1980-82년 경기침체로 인해 실업률이 급등


    1982년은 미국경제가 바닥을 찍었던 해 입니다. 1970년대 중동발 오일쇼크 · 1980-82년 미 연준의 긴축 통화정책 때문에 미국 경기는 저점을 찍고 실업률은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값을 보였습니다. 1969년 3.5%였던 실업률은 1982년 9.7%까지 급등합니다. 


    • 1950~1990년, 미국 총요소생산성 지수 추이 (2009년 100 기준)

    • 197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 생산성 향상 속도가 둔화


    미국인들에게 더 큰 우려를 안겨준 것은 생산성 둔화 였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중반까지 총요소생산성 향상 속도가 둔화되자, 미국경제가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닌 구조적 저성장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 1960~199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

    • 1970년대 오일쇼크, 1980년대 강달러 · 제조업 상품 경쟁력 약화로 인해 무역적자폭 심화


    여러가지 안 좋았던 경제상황 속에서, 미국인들 우려에 결정타를 안긴 것은 무역적자 확대 였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무역흑자에서 무역적자로 전환된 미국경제는 이후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1982년부터 무역적자폭이 심화되었습니다. 198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0.7% 였으나,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높아지는 실업률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확대 등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미국경제가 둔화된 원인에 관한 논리적인 경제학적 분석 등은 미국인들에게 중요치 않았습니다. '미국의 지위가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인들에게 우려와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저서 <보호주의>(<Protectionism>)와 여러 논문을 통하여, 당시 미국이 처하게 된 상황을 두 가지 단어로 설명합니다. 바로, '이중의 압박'(Double Squeeze)과 '왜소해지는 거인'(Diminished Giant) 입니다.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미국기업들의 경쟁을 증대시켰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비교우위를 획득하였고, 비교열위가 된 미국기업들은 시장퇴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서유럽의 부흥과 일본의 추격은 자본집약적 · 기술집약적 산업 내 미국기업들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미국기업들은 최첨단 산업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노동집약 산업은 동아시아 개발도상국, 자본·기술집약 산업은 서유럽 · 일본으로부터의 압박에 이중으로 노출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초래된 지위의 하락 · 경쟁력 상실 · 실업의 증가 · 생산성 둔화 등은 미국이라는 거인이 왜소해짐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무역적자폭 확대를 '세계 상품시장에서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악화됨(deterioration of competitiveness)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인식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추월함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하락하여 세계시장에서 미국산 상품을 팔지 못한다는 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 절망과 공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980년대 초중반 당시 미국인들은 어느 나라가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인식했었을까요? 그 대상은 바로 '일본'(Japan) 입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② 일본의 부상 : 일본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미국


    늘날 미국인들이 중국의 부상에 경계심을 가지듯이, 1980년대 미국인들은 일본의 부흥을 두려워했습니다. 


    • 1968~1990년, 미국 GDP / 일본 GDP 배율 추이

    • 일본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미국의 상대적 지위가 하락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중반까지, 일본의 급속한 성장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1968년 미국 GDP는 일본 GDP와 비교했을 때 2.6배나 컸으나, 1977년 2.3배 · 1982년 2.0배를 기록하며 상대적인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 1960~1990년, 미국 GDP 대비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비중 추이

    • 1970~80년대 중반까지 급격히 악화되다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반등하는 모습


    미국인 입장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 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증가해온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1980년대 들어서 더 확대되었고, 1985년 GDP 대비 1.15% 수준으로까지 심화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의 총 무역수지 적자 비중이 GDP 대비 약 1.5%~3.0% 수준 이었음을 감안하면, 일본이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절반 가까이를 초래한 셈입니다.

    • 첫번째 : Laura Tyson, 1984년,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하이테크 산업 내 무역분쟁』
    • 두번째 : Clyde V. Prestowitz, 1988년, 『무역현장 - 어떻게 우리가 일본에게 미래를 내주었으며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 세번째 : Ezra Vogel, 1979년, 『세계최고의 일본 - 미국을 위한 교훈』
    • 네번째 : Chalmers Johnson, 1982년,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 - 1925-1975 산업정책』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맞추어, 일본을 경계 · 분석 & 학습하는 책이 쏟아졌습니다. 첫번째 부류의 책은 일본이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고, 그 결과 미국의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들이며, 두번째 부류의 책은 일본의 성장 노하우를 배우고 미국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들 입니다. 이러한 양상은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거나 이를 통해 교훈을 얻자는 도서가 오늘날에 많이 나오는 것과 똑같습니다

    위에 첨부한 사진 중, 첫번째 책은 로우라 타이슨(Laura Tyson)의 1984년작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하이테크 산업 내 무역분쟁』(『Who's Bashing Whom? - Trade Conflict in High-Technology Industries』) 입니다. 타이슨은 이 책을 통해, 전자 ·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일본기업의 성장과 이로 인한 미국기업들의 몰락 가능성을 주장하며, 미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자국 첨단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번째 책은 클라이드 V. 프레스토위츠(Clyde V. Prestowitz)의 1988년작 『위치 바꾸기 - 어떻게 우리가 일본에게 미래를 내주었으며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Trading Places - How We Are Giving Our Future to Japan and How to Reclaim It』) 입니다. 그는 미국의 경쟁력 악화가 세계시장에서의 패배를 불러왔으며, 국가경쟁력을 회복하는데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번째 책은 에즈라 보겔(Ezra Vogel)의 1979년작 『세계최고의 일본 - 미국을 위한 교훈』(『Japan as Number One - Lessons for America) 입니다.  네번째 책은 찰머 존슨의 1982년작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 - 1925-1975 산업정책』(『MITI and the Japanese Miracle - the Growth of Industrial Policy, 1925-1975) 입니다. 이들은 일본의 성공을 관료주도의 산업정책 덕분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미국 정부가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일본'(Japan) ·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 '하이테크 산업'(High-Tech Industry) · '보호주의'(Protectionism) ·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등이었습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③ 경제학계의 변화 : 보호주의 논리를 뒷받침해준 새로운 이론들


    "일본은 정부의 보호 속에 하이테크 산업 부문의 국가경쟁력을 키워왔으며,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미국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보호주의 및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미국 대중들에게 상당히 매혹적인 주장으로 들리지만, 전통적인 이론을 습득한 경제학자들은 동의를 하지 않는 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기본적으로 한 국가의 생활수준은 자체적인 생산성 향상(productivity)에 달려있습니다. 일본이 미국에 비해 빠르게 성장했더라도, 미국의 생활수준은 일본의 성장속도가 아닌 미국의 생산성 향상에 의존할 뿐입니다. 일본이 5% 성장하는 것과 상관없이, 미국이 3%로 성장했다면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은 -2%가 아니라 3% 향상된 것입니다. 경제성장을 달리기 경주처럼 생각하여, 다른 국가가 더 빠르게 성장하면 우리의 삶의 수준이 악화된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사고방식 입니다.   


    그리고 자유무역은 '국가경쟁력'(competitiveness)이 아니라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만약 일본기업의 절대적 생산성 수준이 미국기업보다 높아졌다고 가정하더라도, 다르게말해 미국기업의 국가경쟁력이 일본에게 뒤쳐져 있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일본과 교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교우위 원리에 따라, 상대적 생산성 우위를 가진 품목을 수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역수지 적자(trade deficit)를 세계시장에서의 패배의 결과물로 대중들이 인식하는 것을, 경제학자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무역수지는 거시경제 저축과 투자가 결정하는 항등식의 결과물이지, 국가경쟁의 산물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보호무역체제를 운영한다고 해서 미국 또한 보호주의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자유무역이 이로움을 주는 이유는 '외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을 값싸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보호무역에 대응하여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수입을 하는 미련한 행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나라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서 우리도 관세를 높이는 행위는 "다른 나라가 암석 해안(rocky coasts)을 가졌으니 우리의 항구에 돌을 가져다 놓자(drop rocks into our harbors)"[각주:15]는 말과 같습니다.  곡물법 폐지를 통해 자유무역을 처음 실시한 영국은, 외국의 무역체제에 상관없이 스스로 무역장벽을 낮추었습니다. 이렇게 외국이 자유무역을 하든 보호무역을 하든 상관없이, 나의 수입장벽을 철폐하는 것이 이롭기 때문에, 자유무역 원리는 일방주의(unilateralism)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자 전통적인 무역이론을 보완하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였고,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어느정도 타당할 수 있다는 함의를 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경제학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제 블로그를 통해 살펴본적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를 알아봅시다.

    ▶ 불완전경쟁시장 가정의 도입 (imperfect competitive market)

    가장 큰 변화는 '완전경쟁시장'(perfect competitive market) 가정에서 탈피한 '불완전경쟁시장'(imperfect competitive market)의 도입 입니다. 

    완전경쟁시장 하에서는 상품가격이 한계비용과 일치한 'P=MC'가 성립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자는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만약 초과이윤이 일시적으로 존재한다면, 새로운 시장참가자가 진입하게 되고 공급증가로 가격은 하락하여 다시 P=MC가 됩니다.

    이때 상품생산에 고정비용(fixed costs)이나 초기 연구투자비용(R&D costs)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미 시장에 진입해있는 생산자가 한계비용보다 높은 가격을 설정하더라도(P>MC), 잠재적 생산자는 재빨리 시장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고정비용 혹은 초기 연구투자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규 진입으로 인해 가격이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면, 초기에 지불해야 하는 고정비용 등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아예 시장진입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로써 상품가격이 한계비용보다 높게 유지되고, 기존 생산자는 초과이윤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기존 경제학이론과 시장구조 및 R&D의 결합 (market structure)

     

    시장구조가 불완전경쟁시장 이라는 점이 경제학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국제무역이론에 불완전경쟁시장 가정이 도입된 이후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16]이 탄생했으며, 경제성장이론에서는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각주:17]이 등장했습니다. 


    신무역이론은 "고정비용의 존재로 인해 국내시장 진입자의 숫자가 제한되고 그 결과 상품다양성에도 제약이 생긴다. 이때 국제무역을 한다면 외국의 다양한 상품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역은 다양성의 이익(variety gain)을 안겨준다."는 함의를 전해줍니다. 국제무역은 고정비용의 제약에서 벗어나 시장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신성장이론은 아예 시장진입자의 독점이윤을 특허권 등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독점이윤을 얻을 수 없다면, 아무도 R&D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는 생산성 감소와 경제성장 저하 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국제무역 이론가들은 '시장구조'(market structure)가 무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달았고, 경제성장 연구로부터 'R&D'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장구조와 R&D는 무역이론을 또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 시장구조가 과점인 상황에서 초과이윤 획득하기 (oligopoly & rent) 

    ▶ R&D 외부효과를 낳는 첨단산업 육성하기 (R&D spillover and high-tech industry)


    고정비용이 존재하는 불완전경쟁 시장 하에서는 신규 생산자의 진입이 제한되기 때문에, 기존 생산자는 초과이윤(rent)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를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면, "외국 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저지한다면 국내 생산자의 초과이윤을 더 증가시킬 수 있다" "국내와 외국에서 각각 생산자 하나씩만 존재하는 과점(oligopoly) 상황에서, 보호를 통해 국내 생산자의 생산량을 좀 더 증가시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외국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R&D 투자의 중요성은 "R&D 연구를 통하여 최첨단 기술을 만들어내고 지식학습으로 외부성을 가져오는 첨단산업(high-tech)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 맨 위 : Brander, Spencer의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

    • 아래 왼쪽 : Krugman이 편집한 1986년 단행본 <전략적 무역정책과 신국제경제학>

    • 아래 오른쪽 : Helpman과 Krugman이 편집한 1989년 단행본 <무역정책과 시장구조>


    이렇게 1980년대에 등장한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은 기존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논리에서 탈피하여, 국내 최첨단 산업을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보호할 '이론적' 필요성 및 정당성을 전해주었습니다. 

    전략적 무역이론을 주도한 경제학자는 제임스 브랜더(James Brander)바바라 스펜서(Barbara Spencer) 였습니다. 맨 위에 나오는 사진은 이들의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International R&D Rivalry and Industrial Strategy>)이며, 이외에도 1981년 논문 <잠재적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Tariffs and the Extraction of Foreign Monopoly Rents under Potential Entry>),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Export Subsidies and International Market Share Rivalry>) 등을 통해 무역정책의 전략적 함의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 엘하난 헬프먼(Eelhanan Helpman) · 진 그로스먼(Gene Grossman) 등도 무역이론과 산업조직론 · 시장구조 등을 결합하여, 비교우위에 입각한 전통 무역이론이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설명했습니다.

    ▶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싼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전략적 무역이론을 만들어나간 경제학자들이 보호주의를 옹호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시장구조가 과점인 경우 혹은 불완전경쟁시장인 경우에 외국 생산자의 이윤을 희생시켜 국내 생산자의 이윤을 높일 수 있다는 '이론적 가능성(theoretical possibility)을 설명했을 뿐이지, 전략적 무역이론을 정책으로 구현할 때에는 현실 속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거나 소비자후생도 평가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언론 · 정치인 · 정책기획가 그리고 몇몇 경제학자들은 전략적 무역이론을 보호주의 및 산업정책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이용했습니다. 새로운 이론을 인용하여 "하이테크 산업에서 미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나갔고, 이에 따라 보호주의 압력과 산업정책 입안 요구가 증대되었습니다.

     전략적 무역이론을 발전시킨 경제학자들은 보호주의 및 광범위한 산업정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주류 경제학자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 내 국제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만들어낸 결과물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 '1985년 플라자합의' ·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301조 조항' · '1995년 WTO 창설' 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결과물은 1980년대 미국이 처한 무역환경과 처방을 둘러싼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1980년대 초중반 무역정책을 두고 어떠한 논쟁이 오고 갔으며, 어떻게 플라자합의 · 슈퍼301조 · WTO 창설 등으로 이어졌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1. to make the international trading system work, all must abide by the rules. All must work to guarantee open markets. Above all else, free trade is, by definition, fair trade. [본문으로]
    2. When domestic markets are closed to the exports of other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their manufacturers and farmers so that they can dump goods in other market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permit counterfeiting or copying of American products, it is stealing our future, and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assist their exporters in ways that violate international laws, then 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 and there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industries for commercial advantage and underwrite costs, placing an unfair burden on competitors, that is not free trade. [본문으로]
    3. we will take all the action that is necessary to pursue our rights and interests in international commerce under our laws and the GATT to see that other nations live up to their obligations and their trade agreements with us. I believe that if trade is not fair for all, then trade is free in name only.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businesses fail because of unfair trading practices abroad.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workers lose their jobs because other nations do not play by the rules.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joohyeon.com/263 [본문으로]
    5. 원출처, Public Papers of the President 1985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joohyeon.com/270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12.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13.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1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15. Joan Robinson, 1947, Essays in the Theory of Employment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17.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http://joohyeon.com/25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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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Posted at 2018. 12. 7. 17:28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유치산업보호의 타당성을 '역사적 발전단계'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을 통해,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및 자유무역 사상을 반박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사상'(liberalism)[각주:1]은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사고방식 입니다. 국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며, 이익을 쫓는 개인의 행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의 이익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각주:2]은 여러 국가가 서로의 상품을 자유롭게 교환하여 전세계적인 후생을 극대화하는 '자유무역'(free trade)을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론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리카도가 살았던 시대상황[각주:3] · 보호무역을 추구했던 1920-30년대 호주[각주:4] ·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한 1950-70년대 중남미[각주:5]에서 누차 짚었듯이...)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똑같은 물음을 던지며, "제조업 육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유치산업을 보호하자(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는 주장으로 애덤 스미스를 정면 공격했습니다. 


    스미스는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각자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은데 반하여, 리스트는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제조업 육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농업 발전에 성공한 국가는 다음 단계인 제조업 발전을 위해 보호체제가 이로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리스트의 보호론은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에 따른 일시적인 조치(temporary)이며, 궁극적으로 제조업 발전 이후에는 자유무역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보호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하에서만 정당화(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대외 경쟁을 완전히 배제하면 나태와 무감각이 조장되어 민족에 해만 끼치게 됩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 ·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유치산업보호론의 정당성을 주장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들의 논쟁을 살펴보면 "자유무역이 옳다! vs. 보호무역이 옳다!"와 같은 1차원적 접근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물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그렇다면 '언제'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언제'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하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접근 방식은 무역정책을 집행할 '상황'(circumstances)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리스트는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를 상황의 구분으로 제시했으나, 거대한 단계의 구분보다는 좀 더 타당한 상황 구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제조업 발전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더라도 항상 올바른 결과를 달성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숙된 농업을 가진채 제조업 단계로 넘어가는 상황은 유치산업보호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리스트는 영국 · 프랑스 등의 역사적 사례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여러 국가들을 살펴보니, 성숙된 농업과 함께 "제조업 역량을 배양하고 이를 통해 최고도의 문명과 교양, 물질적 복지와 정치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특성과 수단을 보유"[각주:6]한 민족이 단지 "이미 더 선진화된 해외 제조업 역량의 경쟁에 의해 진보가 정체"[각주:7]되어 있을 때,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사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리스트의 접근방식은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있으며,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이 불가능 합니다. 


    쉽게 말해, 리스트는 제조업 육성에 성공한 국가들이 채택했던 정책을 되돌아 봤을 뿐이지, 비슷한 조건에 있는 다른 국가들이 유치산업 정책을 채택했을 때 똑같은 성공을 안겨다줄 수 있는지는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만약 영국 · 프랑스 등이 다른 정책을 채택했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지도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유치산업보호가 아닌 자유무역을 했더라도 제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면, "유치산업보호가 제조업 육성을 가져왔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현재를 희생하여 제조업을 육성하면 미래의 이익을 얻는다는 걸 아는 국가 · 민족 · 사업가라면, 보호조치가 없더라도 자연스레 이를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스트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미 앞선 외국 제조업과의 경쟁을 견딜 수 없고, 따라서 "'자연스런 사물의 흐름'(the natural course of things)에 따라 국내 제조업이 육성되는 건 전혀 불가능하며 어리석다"[각주:8]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말한 바와 같이 "각 개인은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각주:9]합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래에는 외국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업가라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제조업 분야에 투자를 했을 겁니다. 


    리스트는 비교우위론을 정태적(static)으로만 받아들여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는 평생토록 변화하지 않는다"라고 간주했고, 유치산업보호 없이는 평생토록 농업 생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본 사업가에 의해 국가경제의 생산성 · 부존자원 등이 시간이 흐른 후 바뀐다면, 비교우위도 자연스레 변화하는 '동태적 비교우위'(Dynamic Comparative Advantage) 양상을 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유치산업 보호는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리스트의 주장에 대응하는 자유주의의 반격으로 볼 수 있으며, 유치산업보호론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황 및 조건이 필요함을 알려줍니다.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나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대립은 이처럼 학자들 간의 논쟁을 통해 이전보다 정교화된 논점을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과거 만연해있던 중상주의 사상에 대항하기 위해 제시된 자유무역사상은, 시간이 흘러 유치산업보호론의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후 다시 자유주의 논리로 유치산업보호론의 허점을 찌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00% 자유무역이 옳다" 라거나 "100% 보호무역이 옳다" 라는 극단적인 생각은 배제되고, 어떤 상황에서 자유무역 혹은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해야 하며 평상시에는 어떠한 정책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느냐 라는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관점으로 유치산업보호론을 평가하면, 특수한 상황 및 조건(specific condition)을 필요로 하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평상시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는 때때로 정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럼 도대체 유치산업보호론이 타당할 수 있는 특수한 상황 및 조건이 무엇일까요?


    ▶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의 등장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이를 처음 제시해준 학자가 바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입니다. 『자유론』(『On Liberty』) · 『공리주의』(『Utilitarianism』)로 유명한 그 철학자 입니다. 밀은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뛰어난 통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


    ● 제10장 잘못된 이론에 근거한 정부개입

    (Of Interferences of Government grounded on Erroneous Theories)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각주:10]


    생산의 한 분야에서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습득된 기술과 경험이 현재 우월하다는 점 말고는 한쪽이 유리할 것도 다른 쪽이 불리할 것도 본원적으로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각주:11] 


    아울러 레이(Rae)가 적확하게 지적하였듯이 어떤 분야의 생산이든 새로운 여건 아래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그렇지만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하기 위해서 한 나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 가운데 불편을 가장 줄이는 방법이 때로는 될 수도 있다.[각주:12]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필수적이다. 또한 국내 생산자들에게는 자기들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정한 기회에 필요한 기간 이상으로까지 관세가 지속되리라고 기대할 여지를 남겨주면 안될 것이다.[각주:13]


    (...)


    생산비는 언제나 처음에 가장 크기 때문에 실지로는 국내생산이 가장 유리한 경우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금전적으로 손실을 겪는 후가 아니면 이익으로 나타나지 못할 수가 있다.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각주:14]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와 같은 일시적 보호는 일종의 특허와 본질이 같을 것이므로 비슷한 조건 아래서 시행되어야 한다.[각주:15] 


    - 존 스튜어트 밀, 박동천 옮김, 『정치경제학 원리 4』, 제5편 제10장, 339-341쪽

    - 영어 원문은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존 스튜어트 밀이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제시한 논리는 유치산업보호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새로 정립시켰습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유치산업보호를 주제로 한 경제학 논문들이 오늘날에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밀은 두 쪽 가량의 짧은 문단을 통해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The only case in which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을 논리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①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영국 민족이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기술 · 기질 · 지리적위치 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제조업 생산에 유리해서 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처럼 (부존자원이 아닌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는) 비교우위는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이 먼저 시작하게끔 만들어주어서 획득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럼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 비교우위 결정에 있어 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일까요?


    ②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공부를 많이 하기 이며 다른 왕도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생산기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경험 축적 입니다. 상품을 처음 제조할때는 미숙한 점이 많아 불량도 생기고 시간도 오래걸리지만, 점점 경험을 축적해나가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즉, 밀의 발언처럼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을 거치면서 생산 경험을 쌓아가면(cumulative learning experience) 더 낮은 비용으로 상품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국가·민족이 비교우위 결정에 유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고, 그 결과 낮은 비용으로 값싼 상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되어 비교우위를 획득하게 된겁니다.


    (주 : 무역을 만들어내는 것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16]이며, 비교우위란 높은 기술수준[각주:17] · 풍부한 부존자원[각주:18] 덕분에 '상대적으로 값싼 상품을 생산하는 능력'을 뜻한다는 것을 기억)


    존 스튜어트 밀은 '단지 먼저 시작하여 경험을 축적'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교우위가 형성될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하며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습니다. 


    ③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떠한 나라가 '역사적 우연성' 덕분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고 이후 '학습과 경험'을 통해 비교우위를 가지게 되는 원리는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가 먼저 생산을 시작했더라면, 현시점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보다 더 우월한 생산능력을 가진채 더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잠재적인 비교우위는 뒤늦게 생산한 국가 혹은 아직 생산을 시작하지 못한 국가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보여지고 있는 비교우위 및 무역패턴은 가장 효율적인 결과물이 아닐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잠재적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가 국내 산업 · 기업 등을 지원하여서 앞선 외국을 따라잡거나 혹은 생산을 시작하게끔 만들면, 보다 효율적인 무역패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뒤처진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다면, 미래의 이익 달성을 바라보고 현재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생산에 착수하지 않을까?" 입니다. 이번글 서두에서 말한바와 같이, 미래 이익을 쫓는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여 행위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보호조치는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또 다른 통찰이 후대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무엇인지 한번 살펴봅시다.


    ④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들이 장기 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을 포착했습니다. 자유시장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 판단하여 생산에 착수할 겁니다. 문제는 자유시장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을 때 벌어집니다.


    만약 장기이익을 바라본 사업가가 단기 손실을 감수해가며 생산경험을 축적하였는데, 이때 획득한 경험이 같은 나라의 다른 사업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럴 경우, 후발 사업가는 단기 손실을 보지 않고 바로 이익을 챙길 수 있으며, 단기 손실을 부담한 선발 사업가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줄어듭니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면,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으려 할테고, 결과적으로 그 국가 내에서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밀의 표현처럼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이를 현대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외부성의 존재'입니다. (외부성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하여 비효율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참고 : 외부성 및 생산의 학습효과가 만들어내는 비교우위 패턴, 그리고 그 결과 초래될지도 모르는 잠재적 비효율성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참고)


    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여 국내 기업 · 산업을 지원하는 유치산업보호론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정부가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개별 기업들은 경쟁에 대한 부담을 덜고 단기 손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겁니다. 또한 관세부과로 외국 상품가격이 오르게 되면 국내 생산자도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출 및 이윤의 증가를 불러와 단기 손실 크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하였고,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도 밝힙니다. 


    ⑥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 (...)

    일시적 보호관세는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런데 위의 논리를 다르게 보면, 장기 이익이 단기 손실을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성의 존재로 인해 개인이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 할때에만, 일시적인 보호조치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가 때때로 타당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이 마치 무조건적인 보호무역 · 영구적인 보호체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염려하여, 밀은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치산업에 대한 일시적 보호'(Temporary Protection) 라는 점을 재차 강조합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현재 비교열위에 있는 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지원하는 정책도 아닙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없으냐 정부가 일시적인 지원을 하면 향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산업'을 보호 · 육성하는 정책입니다. 


    결론 :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자, 이제 존 스튜어트 밀이 남긴 첫 문장이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완벽하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 보호주의 정책은 옳지 않으며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그 경우란 단지 외국 산업에 비해 늦게 시작한 까닭으로 현재 경쟁력이 없으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는' 산업이어서 시간이 흐르면 학습된 경험 축적 덕분에 비교우위를 찾을 수 있는 때 입니다. 오직 이때에만 '토착화되는 동안 일시적으로 보호관세를 부과'하는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은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수행했던 역사적 사례분석에 의존하지 않은채 유치산업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명확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유주의 이념을 가진 당시 경제학자들도 '특정한 경우에는 자유무역 원리에서 이탈하여 수입관세를 이용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무차별적 관세보호 보다는 직접적인 지원이 낫다"


    시간이 흘러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에 의문을 품는 다른 학자가 등장했습니다. 이 학자는 "외부성 존재는 효율적 생산을 위해 정부가 개입할 필요를 제기해주지만, 과연 관세 보호 의도했던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What I will question is the effectiveness of tariffs in accomplishing this result.)라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Robert E. Baldwin), 1924~2011

    • 1969년 논문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그 인물이 바로 로버트 발드윈(Robert Baldwin)이며, 해당 주장이 실린 논문은 1969년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the Case Against Infant-Industry Tariff Protection>) 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어깨 위에 올라선 로버트 발드윈은 외부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자원 이용이 불가능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정부개입의 수단(means of government intervention) 이었습니다. 


    발드윈이 보기에 산업 내 전체 기업들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보호관세는 외부성 제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성 문제를 겪고 있는 개별 기업만 선별적으로 직접적인 지원을 해야 할 필요(much more direct and selective policy measure than non-discriminatory import duties)가 있었습니.


    발드윈은 크게 2가지 경우를 제시하며 각각의 사례에서 보호관세의 무용성(ineffectiveness of protective duty) 및 직접적인 지원(direct subsidy)의 필요성을 설파합니다. 이번 파트를 통해 그의 주장과 논리를 알아봅시다.


    ●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첫번째는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은 "단순히 초기 생산비용이 외국보다 높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기업을 보호해서는 안되며, 유치산업보호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학습 프로세스와 연결된 기술적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ies frequently associated with the learning process)이 존재해야 한다." 라고 진단합니다.


    왜냐하면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미래에 외국기업보다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걸 국내 생산자가 알고 있더라도 기술적 외부성이 존재하면 아예 시장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생산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가가 직면하는 문제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정보를 거리낌없이 쓸 가능성", 즉 기술적 외부성 이며, 이로인해 "개별 사업가가 지식 획득을 위한 투자를 꺼리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아무도 기술진보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 결과 그 나라의 지식수준은 사회적 최적 수준에 미달하게 됩니다. 


    이는 앞서 소개한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밀은 보호 관세 부과로 외부성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만약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지식획득에 수반되는 초기 비용투자 부담이 덜어지게 되어 단기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입관세 부과 이후 올라간 상품가격으로 이윤증대를 누리면서 단기 손실을 메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발드윈이 보기엔 국내 전체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인 관세(non-discriminatory import duty)는 외부성으로부터 초래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내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나의 지식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가 수입관세 부과 이후로도 교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드윈은 기술을 무단으로 차용하는 국내 잠재적 경쟁자가 상품가격 인상 덕분에 더 높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하면, 선도적인 기업의 이윤은 국내 경쟁 증대로 인해 줄어들고 결국 지식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심한 경우 기술개발에 투자한 기업들은 모두 퇴출되고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기업만 생존할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발드윈이 진단한 사회적 비효율성이 초래되는 근본원인은 '지식투자로 인한 단기 손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기업이 전유할 수 없는 지식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과 사적 비용의 차이'(knowledge is not appropriable by individual firm) 였습니다. 


    단기 손실을 보전해주려는 보호관세는 지식에 투자한 기업의 단기 손실도 줄어주지만, 지식에 투자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의 이윤도 증가시켜 줍니다. 따라서, 발드윈은 든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 보호관세가 아니라 지식을 발견한 기업에게만 주어지는 보조금(a subsidy to the initial entrants into the industry for discovering better productive techniques)이 필요하다 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두번째는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입니다.


    국내에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으로 국내 기업 한 곳이 신규진입 하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이 기업은 기술개발 및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borrow funds from investors)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 산업에 대해 아는 투자자가 없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은 기업가치를 올바르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진입기업은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스스로 시장조사(market study)를 하여 투자자에게 상세한 정보(detailed market analysis)를 제공해줄 유인이 있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경우와 유사한 문제가 초래됩니다. 


    만약 시장조사를 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하는 데 반하여, 이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기업도 새로운 산업에 먼저 진입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먼저 진입하여 시장조사를 하기만을 바라겠죠. 그것을 못 견디고 먼저 진입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지불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아예 빌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유익한 산업이 수립되지 않는 경우가 초래되고 맙니다.(under these circumstances the firm will not finance the cost of the study, and a socially beneficial industry will not be established.)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무차별적인 보호 관세가 아니라 지식획득을 지원하는 직접적인 보조금(direct subsidies to pay for the costs of knowledge acquisition) 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 로버트 발드윈이 기여한 것


    번 파트에서 소개한 로버트 발드윈의 1969년 논문은 "유치산업보호를 위해 수입관세 부과 등으로 보호장벽을 높여야 한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대표적인 참고문헌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첫번째 공헌은 '현재에는 생산비용이 높지만 학습효과에 의해 잠재적 비교우위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항상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현대 경제학 프레임 내에서 논리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지식획득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성이 없다면, 기업은 단기 손실과 장기 이익을 스스로 비교 평가하여 시장에 진입할 겁니다. 또한 금융시장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면, 투자자들은 장기 이익을 내다보고 자금을 빌려줄 것이고, 기업은 단기 손실이 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지식획득이 초래하는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y)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capital market imperfection) 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두번째 공헌은 '비록 지식획득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산업을 보유하지 못하더라도, 수입장벽을 높이는 보호조치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입니다.


    수입관세 부과는 외부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채, 지식투자에 기여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들의 시장진입만 되려 부추길 수 있습니다. 또한 금융시장 정보 부재로 인한 문제는 무역보호 조치로 해소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보호를 위한 무역정책을 구사할 생각보다는 구체적인 시장실패를 직접 해결하려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를 기반으로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특정한 경우에 자유무역이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수입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초래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시정하는 구체적인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보호무역 정책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책(Second-Best)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을 통해 보다 정교화된 자유무역 사상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을 통해 세상에 나온 '자유무역 사상'은 이렇게 여러 학자들 간의 논쟁,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을 거치면서 보다 정교화 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와 이번글을 통해 알아본 '자유무역 사상의 진화과정'을 짧게나마 한번 정리해봅시다.


    '무역수지 흑자'를 중요시 했던 중상주의 시대[각주:19]

    - 토마스 먼,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 1664년


    "우호적인 무역수지가 필요하다"


    '값싼 외국 상품 수입' 높게 평가하는 자유무역 사상의 등장[각주:20]

    - 애덤 스미스,  『국부론』, 1776년 


    -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금은을 살 수단[예: 포도주]을 가진 나라는 결코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을 것이다.",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는 우리 상품을 유통시키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할 금은을 언제나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 "나는 이익이나 이득이라는 것은 금은량의 증가가 아니라 그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생산물의 교환가치 증가나 주민들의 연간소득 증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 나라가 이러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한, 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전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만들어낸다'는 비교우위론의 등장[각주:21]원리[각주:22]

    - 데이비드 리카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1817년


    -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 "한 나라에서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규칙이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 "포르투갈이 수입하는 상품이 잉글랜드에서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적은 노동으로 생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환은 일어날 것이다. (...) 왜냐하면 포르투갈은, 그 자본의 일부를 포도 재배에서 직물 제조로 전환시켜서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직물을, 잉글랜드에서 획득하게 해주는 포도주 생산에 그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 "직물이 포르투갈에 수입되려면, 그것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치르는 값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많은 금을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포도주가 [포르투갈에서] 잉글랜드로 수입되려면, 그것이 포르투갈에서 치르는 값보다 잉글랜드에서 더 많이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비교우위론은 수확체증에 특화하는 영국에게만 이롭다'반박이 등장[각주:23]

    - 제임스 브릭던, <호주 관세와 생활수준>, 1925년 논문


    - "경제이론은 합리적추론의 기반이지만 일반적인 지침의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엄밀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결과물은 항상 시간 및 공간의 상황에 달려있다. 고전 국제무역이론은 영국의 상황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개발도상국을 선진국에 종속시킨다'주장이 등장[각주:24]

    - 라울 프레비쉬,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발전과 주요 문제들』, 1950년


    - "종속은 특정한 국가집단이 다른 경제의 발전과 확산에 의해 제약받는 경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 "제조업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한 지배국가는 팽창하고 스스로의 발전에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반면, 1차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종속국가는 이러한 팽창의 반사로써밖에 발전할 수 없을 때 종속의 형태"


    -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면, 기술진보의 혜택은 중심부-주변부 간에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대외지향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한국의 경제발전[각주:25]


    - "정부는 증산과 더불어 수출을 대지표로 삼았읍니다. 공업원료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은 경제의 생명입니다. 2차대전직후, 영국의 「처어칠」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이란 호소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 "80년대에 가서 우리가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 공업의 육성 등등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 ... 정부는 지금부터 철강,조선,기계,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서 이 분야의 제품 수출을 목적으로 강화하려고 추진하고 있읍니다."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인위적인 제조업 육성이 필요하다'유치산업보호론 등장[각주:26]

    -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1841년


    - "필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애덤 스미스 이론의 근본 원리를 의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오늘도 이 글을 가지고 나설 용기를 준 것은 주로 독일의 이익이다."


    - "투박한 농사에서는 정신적 활력 · 신체적 둔함, 옛 개념 ·관습, ·습관 · 행위 방식에 대한 고수, 교양 · 복지 · 그리고 자유의 부족이 지배한다. 반면에 정신적, 물질적 재화의 끊임없는 증식을 향한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은 제조업 국가 및 상업 국가의 특징이 된다."


    - "상공업 패권을 쥔 (영국의) 공장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생 혹은 반밖에 장성하지 못한 공장들보다 앞서는 천 가지 장점을 가진다. (…) 그러한 세력에 맞서 자유경쟁을 하면서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 "부와 생산 역량의 최고도에 도달한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경쟁의 원리로 점진적으로 회귀하여, 농부들 제조업자들 상인들을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하고 이들이 달성한 우위를 유지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자유주의[각주:27]

    -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 원리』, 1848년


    -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필요하다'현대경제학의 반격[각주:28]

    - 로버트 발드윈,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1969년 논문


    - "생산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시장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관세부과를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수입관세 부과를 통한 일시적 보호조치는 효율적 생산을 달성케 할 수 없다.", "수입관세는 외부성의 문제를 교정할 수 없다."


    - "필요한 것은 지식획득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유치산업이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보호관세가 아니라 보다 직접적이고 선별적인 정책이다."




    ※ 한국에서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이제 우리는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 육성하고 싶은 국내산업 중 아무거나 보호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② 현재 비교열위에 처한 이유는 단지 외국에 비해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며,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를 통해 향후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생산할 잠재적 비교우위가 있으며, 

     장기 이익을 내다보는 국내 생산자가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 때문에 생산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고, 

     시장실패를 직접적으로 교정하는 정책 대신 보호무역 조치가 더 확실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때, 

    ⑥ 유치산업보호 정책은 정당화되고 또 의도했던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위의 조건들이 충족됐던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소개했듯이, 한국정부는 기계 · 조선 · 철강 · 화학 · 전자 등의 중화학 업종 육성하기 위하여, 수입장벽을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보조금을 통한 직접 지원도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중화학 공업화로 가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당시 한국정부가 제철소 · 조선소 등을 건립하려고 했을 때, 외국 정부 및 학자들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산업을 왜 키우려고 하느냐. 현재의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 충실해라" 라는 충고를 했습니다.


    (지난글에서도 소개했던) 아래의 기사가 당시 정부가 마주했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번 다시 읽어봅시다.


    <AID가 본 한국공업건설 (上 제철소의 경우)>

    (주 : AID란 원조를 지원해주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의미한다)


    경제5개년계획을 특징지으고 있는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러기에 기자는 워싱턴에 닿자마자 AID가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타진해보기 위하여 AID의 문을 두드렸다. (...)


    기자가 AID 당국자들과 만나서 얻은 결론은 제철소는 사무적으로는 절대로 무망한 것으로 느껴졌으나 정치적으로 배려를 한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비료공장은 AID가 주장하는 바 과인산질소 배합비료 공장을 세우는 데 한국측이 동의한다고 하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거부하교 요소 25만톤 용량을 만든다는 종래의 주장을 견지한다면 이 역시 AID에서 돈을 꾸지 못할 것이라 것이다.


    AID는 대체로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① 한국은 철광석과 코크스 탄 6천 칼로리 이상나는 역청회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0% 이상의 철분을 가지고 있는 철광석의 매장량은 지난번 탐광에 의해서도 겨우 5백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이 나왔으니, 그처럼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해서 연간 25만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이다. (...)


    ② 그러니까 한국서 제철을 하자면 외국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사오지 않을 수 없는데 철광석을 100만톤, 석탄을 150만톤을 사오자면 적어도 3,500만불의 외화를 매년 지출하여야만 할 것이니 4,200만불의 수출실적 밖에는 못 가지 한국의 외화사정 아래서는 이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물론 철광석과 석탄도 연불 등 상업차관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기도 하나 AID 규정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차관을 받는다는지 원조를 받는다는 것은 허용하지 않기로 되어있으므로 상업차관에 의한 원료 공급도 안된다는 것이다. (...)


    ③ 설령 한국에 제철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철의 시장경쟁은 지금도 치열하지만 장차 더욱 더 백열전을 전개할 것이니 과연 한국이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경쟁에서나마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는데는 의문이 짙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록 철광석도 석탄도 사다가 쇠를 녹이고 있다고 하나 경영기술에 있어서나 작업기술에 있어서나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일본과 같은 생산비로서 제철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


    ⑤ 그러니까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제철소를 만들려면 적어도 1억 5천만불을 들여야 할터이니 그 돈을 다른 산업들 한국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을 세우는데 쓰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고 결론 짓고 있는 것 같다. 


    - 이동욱, 1962년 10월 20일, 동아일보 칼럼/논단

    - 네이버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서 발췌


    현재의 포항 제철소는 1965년 한일협정의 산물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되어 1973년 가동을 시작 하였는데,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당시부터 종합제철소 건립을 꿈꾸었습니다. 


    꿈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라는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이들의 주된 논거는 '한국의 제철소 건설 시도가 비교우위 원리에 벗어난다' 입니다. 


    ① 제철소는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등을 제련하여서 철판을 만드는 곳인데, 한국은 원자재를 풍부하게 가진 국가가 아닙니다. 헥셔-올린의 무역이론[각주:29]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relative abundant resource)을 가진 국가가 그 자원이 집약된 산업(resource-intensive)에 비교우위를 가지는데,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② 또한 어찌어지 철판을 생산한다고 해도 과연 일본에 비해 우위를 가질 수 있겠냐는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일본은 70년전부터 제철소를 운영하며 획득한 기술수준으로 낮은 생산비를 유지하는데, 이를 한국이 수년내에 따라잡기 힘들거라는 전망이죠.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날 한국은 세계 1위 제철소로 평가받는 POSCO(구 포항제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외국 기관 · 학자들이 충고했던 자유무역 논리를 그대로 따랐더라면 오늘날 한국에 제철소는 없었을 겁니다.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한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했던 미국제개발처의 발언에서 역설적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사를 통해 드러나듯이, 미국제개발처(USAID)는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보유한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에 의문을 품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철강산업 우위는 '역사적 우연성'에 의한 것일지도...


    1960년대 당시 일본이 한국에 비해서 철강산업에 경쟁력을 가지게 된 연유는 선천적으로 제철기술이 뛰어나거나 철광석 등 부존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일본이 한국보다 70년 일찍 철강업을 시작한 역사적 배경 덕분(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반대로 한국이 일본보다 일찍 제철소를 건립했더라면 1960년대 당시의 비교우위는 한국이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철강산업을 보호하면서 육성하면서 70년이라는 시간을 따라잡으면, 장기적으로는 일본보다 경쟁력 있는 제철소를 보유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을 따라잡는 동안에 한국 제철소는 큰 손실을 보겠지만, 정부보조를 받아서 버틴다면 언젠가는 우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지금 제철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향후 제철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느냐"(Dynamic Comparative Advantage)라는 물음을 던져야 마땅합니다. 한국정부는 후자의 물음을 던진 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외부 규모의 경제


    제철 · 조선 · 자동차 · 전자 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공장 하나를 짓고 기계설비만 도입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철광석 · 기계부품 등을 외국에서 조달해오기 위한 판로가 필요하고, 여러 하청 업체들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 산업에 맞는 기술을 가진 근로자 집단도 존재해야 합니다. 


    이처럼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 · 근로자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scale of economy)라 부릅니다. 이들은 노하우공유, 부품 공동구매, 근로자 채용의 용이함 등 덕분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외부 규모의 경제 또한 외부성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만약 제철 산업을 하고 싶은 산업가 한 명이 혼자 공장을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산업에 진입하지 않는한 생산과정이 매끄럽게 돌아갈리가 없고, 그 결과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정부가 국영기업을 설립하여 직접 사업에 착수하거나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진입하도록 강제(?)하는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미발달된 금융시장


    미발달된 금융시장 또한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줍니다. 만약 사업가가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 받을 수 있다면, 단기 손실에 대한 부담이 덜어집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금융시장이 미발달한 상태였고 형성된 자본 크기도 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국내자본과 차관 형태로 들여온 외국자본을 선별된 기업에 몰아주는 금융지원 정책[각주:30]을 구사했습니다. 


    이처럼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제철 · 조선 산업의 특징, 부족했던 자본, 금융시장의 미발달 등은 일시적 무역보호체제와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 (보론) 장하준이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첫번째 : 장하준, 2004, 『사다리 걷어차기』
    • 두번째 : 장하준, 2007, 『나쁜 사마리아인들』
    • 세번째 : 서강대 교수진, 2012,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
    • 네번째 :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 2012 번역, 『공격받는 자유무역』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유치산업보호론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내세우는 성공 스토리 입니다.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는 단골 메뉴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정부주도 산업정책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한국인들은 유치산업보호 논리에 친숙하며, 특히 대중적으로 유명한 한 학자로 인해 '문제가 있는 자유무역과 이득을 불러오는 보호무역'을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학자는 바로 장하준 입니다.


    장하준은 2004년 『사다리 걷어차기』 · 2007년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선진국의 경제발전은 보호무역 덕분이며,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다'는 식의 논지를 반복해서 주장해왔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수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비판해오고 있습니다. 국제무역 정책 및 역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은 서평을 통해 장하준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각주:31]하였고, 한국 학자들도 단행본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장하준을 비판하였습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된 비판 요지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 편향적 표본선택 및 반사실적 검정의 부재


    이는 이번글 서두에서 이야기한, 리스트가 학자들에게 비판받은 지점과 동일합니다. 


    장하준은 오늘날 선진국인 미국 · 독일 등의 역사적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과거에 이들이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했고 이것이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이들과 같은 조건에 있었던 국가들이 보호무역을 구사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미국 · 독일 등이 보호무역이 아닌 정책을 구사했더라면 오늘날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장하준은 이들이 과거에 보호무역을 실시하였다고 보는데) 만약 이들이 과거에 자유무역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더 높은 경제수준을 누릴 수 있었더라면, 되려 과거의 보호무역은 악영향만 끼친 꼴이 됩니다.


    둘째,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 vs.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 구분의 부재

     

    자유무역론을 믿는 주류 경제학자라고 해서 100% 자유무역 정책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글에서 누차 설명했듯이, 특정한 경우에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정당화 되고, 더 나아가 유치산업을 위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할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유무역 이며, 보호는 특정한 경우에 일시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뿐입니다.


    하지만 장하준은 시대적 상황 · 국가의 경제수준에 상관없이 어느때든 보호주의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한국에서 유치산업 보호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해서, 오늘날 한국에도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 믿을 수는 없는데 말이죠


    앞으로 쓰고 싶은 [실증분석을 위한 계량] 시리즈를 통해 장하준 주장이 가지는 문제를 좀 더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1980년대 미국,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봐왔듯이, 유치산업보호론 혹은 보호무역주의는 주로 개발도상국 내에서 자유무역론에 대항하여 제기된 사상 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미국 내에서, 외국과의 경쟁에서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외국은 주로 '일본'을 의미했으며, 보호하기 위한 국내산업은 주로 철강 · 자동차 등 '제조업'과 반도체 · 전자 등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을 뜻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트럼프행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제조업 및 IT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보호주의를 채택하려는 것과 똑같은 양상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는 것일까요?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과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을 통해, 미국 및 선진국 내의 무역논쟁을 알아봅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6.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7.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8.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412-413쪽 [본문으로]
    9.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4편 제2장, 548쪽 [본문으로]
    10.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본문으로]
    11. (The superiority of one country over another in a branch of production, often arises only from having begun it sooner. There may be no inherent advantage on one part, or disadvantage on the other, but only a present superiority of acquired skill and experience. A country which has this skill and experience yet to acquire, may in other respects be better adapted to the production than those which were earlier in the field:) [본문으로]
    12. (and besides, it is a just remark of Mr. Rae, that nothing has a greater tendency to promote improvements in any branch of production, than its trial under a new set of conditions. But it cannot be expected that individuals should, at their own risk, or rather to their certain loss, introduce a new manufacture, and bear the burthen of carrying it on until the producers have been educated up to the level of those with whom the processes are traditional. A protecting duty, continued for a reasonable time, might sometimes be the least inconvenient mode in which the nation can tax itself for the support of such an experiment.) [본문으로]
    13. (But it is essential that the protection should be confined to cases in which there is good ground of assurance that the industry which it fosters will after a time be able to dispense with it; nor should the domestic producers ever be allowed to expect that it will be continued to them beyond the time necessary for a fair trial of what they are capable of accomplishing.) [본문으로]
    14. (The expenses of production being always greatest at first, it may happen that the home production, though really the most advantageous, may not become so until after a certain duration of pecuniary loss, which it is not to be expected that private speculators should incur in order that their successors may be benefited by their ruin.) [본문으로]
    15. (I have therefore conceded that in a new country a temporary protecting duty may sometimes be economically defensible; on condition, however, that it be strictly limited in point of time, and provision be made that during the latter part of its existence it be on a gradually decreasing scale. Such temporary protection is of the same nature as a patent, and should be governed by similar conditions.)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17.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18.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19.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joohyeon.com/270 [본문으로]
    2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joohyeon.com/271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9.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30.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http://joohyeon.com/157 [본문으로]
    31. 세계경제사학회(Economic History Association), 2004.04. Book Review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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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Posted at 2018. 12. 5. 01:2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한국 경제발전은 자유무역 덕분? 보호무역 덕분?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outward-trade regime)를 선택한 덕분에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1961년 쿠데타 이후 대내지향적 자립경제를 추구했던 박정희정권은 1964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보완하여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965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영국 처칠 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 발언을 인용하였고, 각종 수출 지원 정책이라는 당근과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통한 수출책임제 점검 이라는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973년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1980년 수출액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한 중화학 공업화'를 목표로 내걸었고, 수출액 100억 달러를 3년이나 앞당긴 1977년에 이루었습니다.


    만약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내포적 공업화 전략(수입대체 산업화)을 계속 고수했더라면, 중남미 국가들처럼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룰 뻔[각주:1] 했는데, 참으로 다행스런 방향전환 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발전을 통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지향해왔다'는 사실 뿐입니다.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한 한국 경제발전 성공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인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인지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논쟁사항 입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 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 해주는 근거가 바로 기계 · 조선 · 철강 · 화학 · 전자 등의 중화학 업종 육성 입니다. 이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수입장벽을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보조금을 통해 지원하였습니다.



    즉, 한국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에 따라서 경제발전 경로를 밟아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이란 말그대로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인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여(temporary protection) 육성시키자'라는 논리 입니다.

    만약 당시 한국이 비교우위론을 철저히 따라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 1차산업이나 단순 공산품 생산에만 집중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의 중화학 공업화 성공은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과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후자의 정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한국의 경제발전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떤 논리로 말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유치산업보호론이 100% 보호무역체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입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말그대로 어린아이 수준인 산업(infant industry)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자(temporary protection)는 논리 입니다. 평생토록 무역장벽을 높여서 살자는 이론이 아닙니다.


    성숙한(mature) 산업을 보유한 오늘날 한국은 개방적인 무역체제를 지향하고 있으며, 경제발전 당시에도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부는 특정 기업을 선정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만약 보호와 동시에 국내에 안주하게끔 하였다면, 기업의 생산성 정도가 아닌 정권과의 결탁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했을겁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는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경쟁'과 '해외진출을 통한 시장크기 확대' 등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살려야 합니다. 


    제가 전달하고 싶은 생각은 "애시당초 100% 보호무역체제나 100% 자유무역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고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이 둘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현실 속 논의과정에서 큰 차를 불러옵니다. 


    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국가주도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우선적으로 주장합니다. 과거 개도국이었던 한국과 오늘날 선진국인 한국의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필요한 개도국과 경제강대국인 미국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산업 · 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경우를 우선 진단합니다. 과도한 국가개입은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나라가 국가주도 정책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도 똑같은 성공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남미와 한국의 사례에서 처럼 말이죠.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지느냐는 결국 사상과 철학의 문제입니다. 경제사상 변천은, 정치사상이 그러하듯이, 위대한 학자들의 논의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앞으로 2편의 글을 통해 위대한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며, 주류 경제학계 내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과 '유치산업보호론' 그리고 '보호무역론'을 둘러싼 대립과 논쟁이 어떻게 변화 · 발전 되어왔는지를 알아봅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보다 정교화 할 수 있을겁니다.




    ※ '자유주의 사상을 토대로 한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


    •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에서 살펴본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을 되돌아 봅시다. 그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시대적 배경을 우선 파악해야 합니다. 『국부론』이 출판된 1776년은 아직 중상주의(mercantilism)가 영향력을 가졌던 시대였고,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했습니다.  


    국가가 무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금은보화 등 재화를 축적하려고 했던 중상주의 시기.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자연적자유(natural liberty)에 따라 행동한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한다고 생각했으며, 국가보다 개인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better knowledge)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무역을 규제하기 보다는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부론』의 상당부분에 이러한 주장을 할애하였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을 높은 관세나 절대적 금지에 의해 제한함으로써 이 재화를 생산하는 국내산업은 국내시장에서 다소간 독점권을 보장받는다. (...) 국내시장의 이와 같은 독점권은 그런 권리를 누리는 특정 산업을 종종 크게 장려할 뿐만 아니라, 독점이 없었을 경우 그것으로 향했을 것보다 더 큰 노동·자본을 그 산업으로 향하게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독점권이 사회의 총노동을 증가시키거나 그것을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가는 결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각 개인은 그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


    자기의 자본을 국내산업의 어느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 그리고 어느 산업분야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8~553쪽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manufacturing)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비판적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자본과 노동을 자연적 흐름에 거슬러 인위적으로 특정 부문에 배치하는 것은 효율적 생산을 가로막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현재 제조업이 없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사실 이러한 규제에 의해 특정제조업이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 빨리 확립될 수도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외국과 같이 싸거나 더 싸게 국내에서 생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노동이, 비록 이처럼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욱 빨리 특정분야에 유리하게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노동이나 사회의 수입 총액이 이와 같은 규제에 의해 증대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사회의 노동은 자본이 증가하는 비율에 따라 증가할 수 있을 뿐인데, 자본은 수입 중에서 점차 절약되어 저축되는 것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제의 직접적인 효과는 그 사회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고, 그리고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빨리, 사회자본을 증가시킬 수는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없음으로써 사회가 문제의 제조업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는 그 때문에 어느 한 기간 내에 필연적으로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발전의 어느 한 시기에 사회의 모든 자본과 노동은, 비록 다른 대상에 대해서이긴 하지만, 당시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각 시기마다 그 사회의 수입은 그 사회의 자본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수입이며, 자본과 소득은 모두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이처럼 (절대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세상에 내놓았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사고방식은 개인의 이익추구가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며, 개인의 행위가 올바른 결과를 낳는다는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자혜로운 신의 설계와 간섭 덕분"(design and intervention of a benevolent God)이라고 믿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조화처럼 느껴지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하여 결국 자연은 조화를 이루어 작동하기 때문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간의 선입견과는 달리) 교조적인 자유방임주의(lassez-faire)를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사적이익과 공공이익 간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 경우 정부개입이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정부의 기능을 국방 · 사법 · 공공기구 등 3가지에만 국한하였는데, 그 이유는 정부가 민간부문에 개입하여 공공의 후생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더 나은 지식'(better knowledge)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미스가 살던 18세기 후반 영국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했었기 때문에 정부개입을 꺼려했습니다.


    따라서, 자유주의 사상과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덤 스미스는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하였습니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뒤이어, 비교우위론을 소개한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의 『원리』가 출판되며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이론적 기반을 확고히 다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동시기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반박하는 주장들도 제기되었습니다. 


    스미스와 리카도는 모두 영국인 입니다. 18세기 말~19세기 초반 영국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세상에 내놓은 배경은 '경제성장을 위해서 수확체감 성질을 가진 산업을 포기하고(=외국으로부터의 수입으로 대신하고) 제조업 같은 수확체증산업(increasing return)에 특화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을 주장한 이들과는 달리, 리카도는 오히려 제조업을 위해서 자유무역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 부문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참고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비판의 선봉자가 바로 미국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독일인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 입니다.


    초대 워싱턴정부 재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1791년 <제조업에 관한 보고>(<Report on Manufactures>)을 통해 제조업 육성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미국시민권을 획득한) 독일인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1827년 <미국정치경제론>(<Outlines of American Political System>) 및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The National System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스미스와 리카도가 제시한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며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제조업 육성'(manufacturing)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미리 발전한 외국(특히 영국)과의 자유경쟁이 벌어지는 상황 하에서는 제조업을 키우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해밀턴과 리스트가 스미스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근원을 탐구하는 건, 자유무역론 · 유치산업보호론 · 보호무역론을 둘러싼 논쟁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번글에서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적 근원을 스미스의 것과 비교해 봅시다.




    ※ 애덤 스미스를 비판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번 파트에서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애덤 스미스를 비판한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국내의 특정 산업을 외국 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자'는 유치산업보호론의 논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타당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국내 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temporary protection)하는 것이니, 문을 닫고 폐쇄적으로 살자는 논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유무역론과 대비되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이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를 대표하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과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 사상이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구성되어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 vs 민족주의(nationalism)


    ▶ 애덤 스미스 : 세계시민주의 사상 (사해동포주의 사상)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특화한 뒤 서로 교환을 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효율적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설명 1[각주:2]2[각주:3])


    이는 사실상 '국제적 차원의 노동분업론'(international divison of labor)과 마찬가지이며,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전인류(mankind)의 후생을 평가하는 세계시민주의(혹은 사해동포주의, cosmopolitanism)의 관점을 가지고 세계경제를 바라봅니다(doctrine of universal economy). 


    ▶ 프리드리히 리스트 : 민족주의 사상


    유치산업보호론은, 이에 반하여, "모든 국가와 민족은 각자 처한 발전정도와 상황이 다르며, 진정한 무역자유가 이루어지려면 후진적인 민족과 앞선 민족이 대등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이를 믿는 사람들은 민족경제적 관점(national economy)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은 민족경제를 다루어야 하며, 어떤 국가가 각자의 특성한 상황에 맞추어 가장 강력하고 부유하고 완벽한 국가가 되기 위해 어떻게 권력과 부를 증대시켜야 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모든 민족이 '동등한 상태'에 있을 때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이지, '훨씬 뒤처진 민족'에게 자유경쟁은 경제발전에 해만 끼칩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주장을 직접 읽어봅시다.


    ● 서론


    필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애덤 스미스 이론의 근본 원리를 의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가 이때 이후로 여러 익명의 기사에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실명으로 쓴 더 긴 논문으로 그 이론에 반대되는 견해들을 전개할 수 있게 한 것은 조국의 사정이었다. 오늘도 이 글을 가지고 나설 용기를 준 것은 주로 독일의 이익이다. (...) 


    단 한 민족의 압도적인 정치력이나 압도적인 부에서 나오는, 그래서 다른 민족들의 예속과 종속에 기초를 둔 만국연맹은 모든 민족적 고유성과 민족들의 일체의 경쟁심이 몰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민족 정체성의 개념과 본성에 출발하여 어느 한 민족이 현재의 세계 정세와 특수한 민족 상황에서 자신의 경제적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정치경제학 및 민족경제학(national economy)과,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단 하나의 영원한 평화 위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이룬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혹은 세계 경제학(cosmopolitical economy)을 구분해야 한다. 


    그 학파(prevailing school[각주:4])가 소망하듯이 모든 민족의 보편적 연맹 혹은 연합을 영원한 평화의 보장책으로 전제한다면, 국제적 무역 자유의 원칙은 완전히 정당화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목표의 추구에서 제한을 덜 받을수록, 그와 자유 교류 관계에 있는 자들의 수와 부가 클수록, 그의 개인적 활동이 뻗어 갈 수 있는 공간이 클수록, 그에게 본성상 주어진 특성들, 획득된 지식과 숙련 그리고 그에게 제공되는 행복을 증진할 자연적 역량을 활용하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


    그 학파는 민족 정체성의 본성과 그 특수한 이익과 상태를 고려하여 이를 보편적 연맹과 영원한 평화의 관념과 조화시키기를 게을리했다. 그 학파는 이루어져야 할 상태를 현실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 학파는 보편적 연맹과 영원한 평화의 존재를 전제하고 이로부터 무역 자유의 큰 이익을 도출한다. 이런 식으로 그 학파는 효과와 원인을 혼동한다. (...)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줄 예들은 모두가 정치 통합이 선행하고 무역 통합이 뒤따른 예들이다. 역사는 무역 통합이 선행하고 정치 통합이 그로부터 자라난 예를 하나도 알지 못한다. (...)  


    무역 자유가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려면 후진적인 민족들은 인위적 조치에 의해 영국 민족이 인위적으로 올려진 것과 같은 단계의 성숙에 올려져야 했을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머리말-192쪽


    그렇다면 올바른 자유무역을 위한 선행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후진적인 민족을 동등한 수준으로 발전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경제발전 혹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요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관점 차이가 드러납니다.


    둘째, 국부의 원천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노동 분업(division of labour) vs.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


    ▶ 애덤 스미스 : 노동 분업을 통한 생산성 증대의 중요성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한 나라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노동생산력(productive powers of labour)을 최대로 개선 · 증진시키는 것은 분업(division of labour)의 결과"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국부는 재화의 축적(accumulation)"으로 바라봤던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고 '분업을 통한 생산'(production)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물질적 상황 뿐 아니라 정신적 역량도 중요


    프리드리히 리스트도 노동을 통한 생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리스트는 좀 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노동의 원인은 무엇인가?"


    리스트는 "인간의 머리와 팔, 손이 생산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들에게 생기를 주는 정신, 그들의 활동에 결실을 맺어주는 사회질서, 그들에게 제공되는 자연력" 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애덤 스미스는 분업을 통해 물질적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리스트는 노동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주는 정신 · 사회질서 · 법률 등의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원문을 길더라도 읽어봅시다.


    ●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The Theory of the Powers of Production and the Theory of Values)


    부의 원인은 부 자체와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한 개인은 부, 즉 교환가치를 소유할 수 있더라도 그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 힘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가난해진다. 한 개인은 가난할 수 있더라도 그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큰 액수의 가치 있는 물건들을 만들 힘을 소유한다면 부유하게 된다.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힘은 이에 따라 부 자체보다 무한히 더 중대하다. 그것은 획득물의 소유와 증대를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상실한 것의 보상도 보장해 준다. 이는 사인들보다 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민족 전체에게 훨씬 더 해당된다. (...)


    명백히 스미스는 중농주의자들의 사해동포주의 관념인 '무역의 보편적 자유'(universal freedom of trade)의 관념에, 그리고 그 자신의 위대한 발견인 '노동 분업'(the division of labour)에 너무 많이 지배를 받아서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의 관념을 추구할 수가 없었다. (...)


    노동이 부의 원인이고 무위도식이 빈곤의 원인이라는 판단에 대해 언제나 다음과 같이 더 많은 질문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의 원인은 무엇이며, 무위도식의 원인은 무엇인가? (...)


    이 모든 관계에서 가장 많은 것이 그 개인이 성장하고 움직이는 사회의 상태에, 과학과 예술이 융성하느냐에, 공공 제도와 법률이 종교성 · 도덕성 · 지력 · 인신과 재산의 안전 · 자유와 권리를 낳느냐에, 민족 안에 물적 복지의 모든 요인들, 농업 ·제조업 · 상업이 고르고 조화롭게 성숙했느냐에, 민족의 세력이 개인들에게 복지 상태와 교양에서의 진보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 가며 보장해 주고 국내적 자연력을 그 전체 범위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해 줄 뿐 아니라 대외 무역과 식민지 보유를 통해 외국들의 자연력도 가져다 쓸 수 있게 할 만큼 충분히 크냐에 달려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런 힘들의 본성을 전체적으로 별로 인정하지 않아서, 권리와 질서를 관리하며 수업과 종교성, 과학과 예술 등을 돌보는 이들의 정신 노동의 생산성(productive character to the mental labours)을 한번도 시인하지 않았다. 그의 탐구는 물적 가치를 창출하는 인간 활동에 국한된다. (...)


    곧바로 그의 학설은 물질주의, 분권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점 더 깊이 침몰한다. 그가 '가치', '교환가치'의 관념에 지배를 받는 일 없이 '생산 역량'(productive power) 관념을 추구했더라면,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가치 이론 옆에 독립적인 생산 역량 이론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통찰에 도달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 상황(material circumstances)을 가지고 정신적 역량(mental forces)을 설명하는 잘못된 길로 빠졌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01-209


    그럼 리스트가 강조하는 정신 · 사회질서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로 여기에서 스미스와 달리, 리스트가 '제조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는 제조업이 발달할수록 노력 · 경쟁심 · 자유의 정신이 고양된다고 믿었습니다.


    셋째, 제조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다 vs. 제조업은 정신적 역량을 키워준다


    ▶ 애덤 스미스 :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애덤 스미스는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제조업은 정신적 역량을 키워준다


    이에 반해, 리스트는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7장-제26장에 걸쳐 제조업의 이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농사에서는 신체적 둔함, 옛 관습, 교양과 자유의 부족이 지배"하나, 제조업 국가에서는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이 존재한다고 비교합니다.


    제조업이 이러한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는 '제조업자들은 본질적으로 사회 안에서 활발히 교류를 하며 사업을 영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농업과는 달리 제조업은 다양한 능력과 숙련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제조업 국가에서 정신적 자질이 더 높게 평가됩니다.


    리스트는 제조업의 중요성을 간과한 애덤 스미스를 향해 "미활용된 자연력이 오직 제조업에 의해서만 소생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라고 비판합니다.


    아래의 원문을 읽어보도록 하죠.


    ● 제17장 제조업 역량과 인적 · 사회적 · 정치적 · 민족적 생산 역량


    투박한 농사에서는 정신적 활력 · 신체적 둔함, 옛 개념 ·관습, ·습관 · 행위 방식에 대한 고수, 교양 · 복지 · 그리고 자유의 부족이 지배한다. 반면에 정신적, 물질적 재화의 끊임없는 증식을 향한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은 제조업 국가 및 상업 국가의 특징이 된다. (...)


    농사를 영위하는 인구는 그 나라 전체에 흩어져 살며, 정신적 ∙ 물질적 교류에 관련해서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 그의 일이 그를 인간과의 교류에서 멀리 떼어 놓듯이, 그것은 또한 그 자체로 관습적인 운영에서도 조금의 정신 집중, 조금의 신체적 숙련만 요구한다. (..) 재산과 빈곤은 소박한 농업에서는 대대로 상속되며, 거의 모든 경쟁심에서 생겨나는 분발의 힘은 죽어 있다. (...)


    제조업자의 본성은 농업인의 본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제조업자들은 사업 운영에 의해 서로에게 이끌려서 사회 안에서, 그리고 사회를 통해서만, 교류 안에서, 그리고 교류를 통해서만 살아간다. (...) 그의 생존과 번영은 촌사람에게처럼 자연의 호의와 관습적 활동이 보장해 주지 않으며, 이 둘은 완전히 그의 통찰력과 활동에 달려 있다. (...) 그는 언제나 사고팔고 교환하고 거래해야 한다. 어디서나 그는 인간들, 변동 가능한 상황, 법령과 제조들과 관계해야 한다.


    제조업의 노동은 그 전체로 본다면, 첫눈에 밝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농업보다 비교도 안 되게 더 다채롭고 더 수준 높은 정신적 특성과 숙련을 성숙시키고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


    명백히 농업에 의해서는 같은 종류의 인성들만이, 오직 투박한 수작업의 실행에 신체적 힘과 끈기를 약간의 질서를 위한 감각과 결합하는 그런 인성들만이 소용되는 반면에, 제조업은 천 가지의 다양한 정신적 능력, 숙련 그리고 연습을 요한다. (...) 제조업 국가에서 정신적 자질은 농업국에서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높이 평가되는데, 농업국에서는 보통 인간들의 능력을 단지 그의 신체적 힘에 따라서만 측정한다. (...)


    사업 운영의 분업과 생산 역량의 연합 법칙은 반대로 저항할 수 없는힘을 가지고 다양한 제조업자들을 서로 모이게 한다. 마찰이 자연의 불꽃처럼 정신의 불꽃을 일으킨다. 그러나 정신적 마찰은 밀접한 공생이 있고, 빈번한 사업적, 과학적, 사회적, 시민적, 정치적 접촉이 있고 물자와 관념의 교류가 많은 곳에서만 있다. 


    인간이 동일한 장소에 더 많이 모여 살수록, 이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사업에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협력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사업이 이 개인들 각 사람의 지식, 안목, 교양을 많이 요구할수록, 자의성, 무법성, 억압과 불법적 월권행위가 이 모든 개인의 활동 및 행복의 목적과 덜 조화될수록 시민적 제도들은 더욱 완전하고, 자유의 정도는 더욱 높고, 스스로 교양을 쌓거나 타인의 교양에 협력할 기회는 더욱 많다. 그래서 어디서나 어느 시대나 자유와 문명을 도시들에서 출발한다, (...)


    그런 시대에는 제조업의 가치는 어느때보다도 더 정치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애덤 스미스는 민족 전체의, 그 민족의 물적 자본 총액을 늘리는 능력이 주로 미활용된 자연력들을 물적 자본으로, 가치 있는 도구이자 소득을 가져다주는 도구로 전환시킬 능력에 있다는 것, 그리고 농업 민족에게서 다량의 자연력이 놀면서 아니면 죽어서 누워 있어서, 오직 제조업에 의해서만 소생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는 제조업이 국내외 무역에, 그 민족의 문명과 세력에, 그리고 자주와 독립의 유지에, 그로부터 솟아나는 물적 재화를 취득할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82-320




    ※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그렇다면 이제 (애덤 스미스와 대비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생각하는 '제조업을 육성하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넷째, 무역보호로 제조업을 육성해야 하느냐(할 수 있느냐)를 둘러싼 관점의 차이 

    - 자유주의(liberalism) vs 국가개입주의(government intervention)


    ▶ 애덤 스미스 : 자유주의 사상


    앞서 말했듯이,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가난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며 당시 사회의 총자본이 효율적인 다른 곳에 쓰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스미스는 "외국상품의 수입 자유로 인해 국내 특정 제조업을 위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덜 심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나라로 수출되고 있는 국내 제조상품은 여전히 해외에서 팔릴 겁니다. 또한, 자유무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대다수 제조업은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각주:5].


    이처럼 애덤 스미스는 철저한 자유주의자 · 자유무역론자 였습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국가개입주의 사상


    프레드리히 리스트는, 애덤 스미스와는 달리, "정부는 개인 산업을 통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의 국부와 권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의무 또한 가지고 있다.[각주:6]"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유방임의 원칙은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데, 현실 속에서 그럴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국가권력이 그 자체로 무해한 교역을 민족의 최선이 되게 제한하고 규제하는 것은 정당화될 뿐 아니라 그럴 의무를 진다.[각주:7]"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보호관세(protective duty)를 통해 외국산 제조상품의 수입을 막고 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필요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관세부과로 수입상품의 가격이 올라 소비자(민족)의 부담이 커질 수 있으나, "미래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원문을 읽어보도록 하죠.


    ●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민족은 정신적 혹은 사회적 역량을 취득하기 위해 물적재화를 희생하고 여의어야 하며, 미래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


    보호관세가 초기에는 제조 상품을 등귀시킨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진실이고 아예 그 학파가 인정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온전한 제조업 역량의 향상을 이룰 능력을 부여받은 민족이 제조 상품을 외국에서 도입할 수 있는 것보다 국내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호관세에 의해 가치의 희생이 초래된다면, 이는 그 민족에게 비단 미래를 위해 무한히 더 큰 물적 재화의 총액만이 아니라 전쟁의 경우에 대비한 산업적 독립성도 확보해 주는 생산 역량의 취득에 의해 보상된다. 산업적 독립성 그리고 이로부터 자라나는 내부적 번영을 통해 민족은 대외 무역, 해운업의 확장 수단을 손에 넣으며, 문명을 증진하고, 국내의 제도들을 완성하고, 세력을 대외적으로 강화된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16쪽


    이때 "자유무역을 추진하면서 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수는 없느냐?" 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리스트는 부정적 입니다. 그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데 대한 이유와 동일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외국에게 자유경쟁으로 맞서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말그대로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과거로부터 축적된 생산과 자본의 축적 등의) 뒷받침을 받는 이 민족들이 나머지 모든 나라의 제조업에 말살의 전쟁을 선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른 민족들에서는 농업 진보에 따라 애덤 스미스가 표현하는 바와 같은 "자연스런 사물의 경과에서"(the natural course of things) 거대한 제조업과 공장들이 생겨난다거나, 혹은 전쟁에 의해 유발된 무역 중단에 따라" 자연스런 사물의 경과에서"(the natural course of things) 생겨난 그런 것들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데 대한 이유와 동일한 것이다. 


    상공업 패권을 쥔 (영국의) 공장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생 혹은 반밖에 장성하지 못한 공장들보다 앞서는 천 가지 장점을 가진다. (…)


    그러한 세력에 맞서 자유경쟁을 하면서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the natural course of things)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한 민족들은, 영국의 제조업 패권 밑에 영원히 굴복하는 상태에 있기로 결심하고 영국이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거나 다른 어디에서 들여오지 못하는 것만을 영국에서 조달하는 데 만족하려고 해도 헛수고일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412-413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애덤 스미스 간 관점 · 사상 · 철학의 극명한 대비


    •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금까지 살펴본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생각을 다시 되짚어 봅시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전인류의 후생을 총체적으로 평가했던 애덤 스미스와 달리, 개별 민족 경제(national economy)의 번영을 우선시 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이 각자 처한 상황 하에서 어떻게 부와 권력을 증대시켜야 하는지를 고민했죠.


    이때, 리스트가 보기에 국부의 원천은 단순한 분업을 통한 노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게 만드는 원인'인 정신적 역량 · 사회질서 등 이었습니다. 과학과 예술, 공공제도와 법률, 개인의 교양 등의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이 부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 역량을 키우게끔 만드는 산업이 바로 '제조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스미스는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며 사회의 총 자본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해만 불러온다고 여겼지만, 리스트는 제조업은 미활용된 자연력을 소생시키게 해주며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단호한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따라서 리스트는 보호관세를 통해 유치산업을 보호(infant industry protection)해야 하며, 외국과의 자유경쟁 속에서 국내 제조업이 발전할 수 없는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애덤 스미스와의 관점과 사상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를 통해 스미스를 비판해온 리스트는 '그 학파의 세 가지 주된 결함'(the system of the school suffers from three main defects)라고 언급하며 다시 한번 차이를 부각시킵니다.


    ●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그 학파의 체계는 앞의 장들에서 보여 주었듯이 세 가지 주된 결함으로 시달린다.


    첫째, 민족 정체성의 본성도 인정하지 않고 민족의 이익 충족도 고려하지 않는, 토대 없는 사해동포주의다.


    둘째로는 어디서나 주로 물건들의 교환가치를 염두에 두고, 민족의 정신적 ∙ 정치적 이익, 현재 ∙ 미래의 이익과 생산 역량은 고려하지 않는 죽은 유물론이다.


    셋째로는 조직 해체를 시키는 분파주의와 개인주의로서 이는 사회적 노동의 본성, 그리고 그 상위 결과들에서 역량들의 결합의 영향을 무시하여 근본적으로 오직 사적 산업만을, 그것이 특수한 민족 사회들로 분리되지 않았을 경우에 어떻게 사회와, 즉 전체 인류와 자유교역을 발달시키는지만을 묘사한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55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자유무역론을 완전히 거부했을까?


    , 이렇게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Free Trade)과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는 극과 극의 사상적 대립으로 보여집니다. 지금 이렇게 보면 꼭 둘 중 옳은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번글의 서두에서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냥 자유무역vs보호무역을 하면 될텐데 말이죠.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보호무역이 초래할 수 있는 폐해를 알고 있었습니다. 리스트는 "대외 경쟁을 완전히 배제하는 너무 높은 수입 관세는 이를 통해 제조업자들과 외국과의 경쟁이 배제되고, 무감각이 조장되므로 이를 부과하는 민족 자체에 해롭다."[각주:8]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게다가 리스트는 궁극적 목표로서 자유무역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모국인 독일이 영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나면 자유무역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과거 그 시점에 리스트가 자유무역을 비판했던 이유는 독일의 경제력이 자유무역을 시행할 '단계'(stages)가 아니었기 때문이며,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이 개별 민족국가들이 처한 산업발전 단계(stage of industrial development)를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유무역의 전제조건은 "후진적 민족들이 인위적 조치에 의해 영국 민족이 인위적으로 올려진 것과 같은 단계의 성숙에 올려"[각주:9]지는 것이며, 보호무역은 "다른 민족들보다 시간상으로 앞설 뿐인 민족과 대등하게 해 줄 유일한 수단인 한"[각주:10]에서만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보호체제는 여러 민족을 최대한 동일한 단계(equally well developed)에 올려놓은 뒤 궁극적으로 달성할 "진정한 무역 자유의 가장 중대한 촉진수단"[각주:11]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 간의 관점 · 사상 · 철학의 차이가 초래된 근본 원인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무역론과 유치산업보호론은 두 학자 간의 사상과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고, 사상과 철학의 차이는 '이미 발달된 제조업을 보유한채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인이 중요시한 것''영국에 뒤처진 후발산업국가로서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독일인이 중요시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독일인 리스트'에게는 개별 국가와 민족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는 민족경제학이 필요했으며, 경제발전을 위한 생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제조업을 육성해야 했고, 영국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당시로서는 자유경쟁이 아닌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타당했으며, 훗날 영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나면 다시 자유무역으로 돌아갈 구상을 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곳곳에 '산업발전 단계'(stage of industrial development)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경제적인 면에서 민족들이 5단계의 산업발전을 거친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원초적 야만시대. 둘째, 목축 시대. 셋째, 농업시대. 넷째, 농업·제조업 시대. 다섯째, 농업·제조업·상업 시대.


    그리고 산업발전 단계마다 필요한 무역정책은 다릅니다


    Ⅰ. 아직 농업이 발달하지 않아 제조업 육성에 신경쓸 필요가 없을 때에는 자유무역을 통해 농산물을 수출하고 제조 상품을 수입해야 합니다. 


    Ⅱ. 이제 농업이 많이 발달하여 제조업 육성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자유무역을 통한 외국 제조 상품 수입의 이점은 줄어듭니다. 이 단계에서는 보호무역을 통해 국내 유치 제조업을 보호해야 합니다. 


    Ⅲ. 그리고 제조업이 고도로 발달한다면 보호정책은 정당화 되지 않으며 자유무역으로 돌아가 무역의 이점을 살려야 합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유치산업보호 및 보호체제는 오직 두번째 단계에 있는 민족들에게만 정당화 된다는 의견을 명확히 밝힙니다. 


    만약 제조업 발달 이후에도 보호체제를 지속한다면 "해외 경쟁을 완전히 그리고 일거에 배제하고 보호해야할 민족을 타 민족들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한다면, 사해동포주의 경제학의 원칙에 충동할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주의해야 할 이익에도 충돌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보호 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에서만 정당화 될 뿐입니다. 외국 경제학자들이 유치산업보호론을 소개할 때 영문명을 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 즉 '유치산업을 위한 일시적 보호'로 주로 작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머릿속을 직접 읽어봅시다.


    ●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경제적인 면에서 민족들은 다음의 발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원초적 야만 시대, 목축 시대, 농업시대, 농업 ∙ 제조업 시대, 농업 ∙ 제조업 ∙ 상업 시대. (...) 


    농업이 덜 성숙했을수록, 그리고 대외 무역이 국내 농산물과 원재료를 타국의 제조 상품과 교환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거기서 그 민족이 아직 야만 상태에 빠져 있어 절대군주제 정부 형태와 입법을 더 많이 필요로 할수록, 자유무역은 즉 농산물 수출과 제조 상품 수입은 그 민족의 복지와 문명을 더욱더 촉진할 것이다. (...)


    반대로 한 민족의 농업, 산업 및 사회적, 정치적, 시민적 상태가 전반적으로 많이 발달해 있을수록, 그 민족은 국내 농산물과 원재료를 외국의 제조 상품과 교환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사회적 상태 개선을 위해 이익을 그만큼 덜 볼 것이며, 그 민족보다 우월한 외국의 제조업 역량의 성공적 경쟁에 의해 더욱더 큰 손해를 감수하게 될 것이다. (...)


    오직 후자의 민족들, 즉 제조업 역량을 배양하고 이를 통해 최고도의 문명과 교양, 물질적 복지와 정치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특성과 수단을 보유하는, 그러나 이미 더 선진화된 해외 제조업 역량의 경쟁에 의해 진보가 정체된 민족들에서만, 제조업 역량의 배양과 보호 목적을 위한 무역 규제는 정당화되며, 


    또한 그런 민족들에서 제조업 역량이 해외 경쟁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강화될 때까지만 정당화되며 그때부터는 국내 제조업 역량의 뿌리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정당화된다. (...)


    보호 체제는 해외 경쟁을 완전히 그리고 일거에 배제하고 보호해야할 민족을 타 민족들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한다면, 사해동포주의 경제학의 원칙에 충동할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주의해야 할 이익에도 충돌할 것이다. (...)


    천연산물과 원재료에 대한 자유무역의 제한이 제한을 가하는 민족에게도 크나큰 폐해를 가져온다는 것, 그리고 보호 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에서만 정당화된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모든 민족, 온 인류의 복지와 진보에 펼쳐지는 거대한 유익을 일으킬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59-271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리스트가 보기에 개별 국가들이 처한 단계(stages)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유무역의 이점만을 설파하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리스트는 "그 학파는 고도의 경제적 성숙에 도달한 민족들과 낮은 단계에 있는 민족들을 구별할 줄 모른다.[각주:12]"(The school recognises no distinction between nations which have attained a higher degree of economical development, and those which occupy a lower stage.) 라고 반복해서 비판을 가합니다. 


    이번 파트에서 계속 강조하지만, 리스트에 중요한 것은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industrial development)입니다. 그는 교조적인 보호무역주의자 혹은 유치산업보호론자가 아니었습니다. 되려 궁극적으로 자유무역을 추구했던 자입니다[각주:13].


    리스트는 역사로부터 배울 것(the Teachings of History)은 발전 단계에 따라 체제를 변경할 수 있고 또 변경해야 한다는 사실(may and must modify their systems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ir own progress) 이라고 재차 주장합니다. 


    ● 제 10장 역사의 가르침(the Teachings of History)

    (주 : 한국어판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서, 영어 원문[각주:14]을 본 후 제 방식대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끝으로, 역사는 최고도의 부와 생산 역량 달성에 필요한 자연적 자원을 갖춘 국가들이 그들의 발전단계에 따라 체제를 변경할 수 있고 또 변경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첫번째 단계에서,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고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더 앞선 민족과 자유무역을 채택해야 한다. 


    두번째 단계에서, 상업제한을 통해 제조업자, 어업, 해운업, 대외무역을 발전시켜야 한다. 


    세번째 단계에서, 부와 생산 역량의 최고도에 도달한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경쟁의 원리로 점진적으로 회귀하여, 농부들 제조업자들 상인들을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하고 이들이 달성한 우위를 유지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각주:15]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179




    ※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논쟁, 깊이있는 이해를 위한 물음


    이번글을 통해 살펴본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사상 · 철학 논쟁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자유무역이 옳다! vs. 보호무역이 옳다!"와 같은 1차원적 접근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지게끔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언제'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언제'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하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접근 방식은 무역정책을 집행할 '상황'(circumstances)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어떤 때에는 자유무역 정책이 옳으며, 또 다른 때에는 보호무역 정책이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리스트는 산업발전 단계를 상황의 구분으로 제시했고 이를 오늘날 개발도상국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거대한 단계의 구분보다는 좀 더 타당한 상황 구분이 필요합니다.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나


    자유무역 및 보호무역 정책을 상황에 따라 달리 구사할 수 있다면, '평상시'(normal)에 어떠한 정책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냐는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리스트의 주장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보호무역 · 선진국은 자유무역을 중심으로 하면 될 것 같지만, 앞서 말했듯이 리스트의 구분은 너무 거대합니다. 그의 구분을 그대로 따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내에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일이 없었을 겁니다.


    ▶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의 등장 ...


    새로운 물음에 논리적인 답을 말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생각을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좀 더 확장시켜주는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을 다음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4. 애덤 스미스를 주축으로 한 고전파 혹은 cosmopolitical economy를 의미 [본문으로]
    5.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4편 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제한, 570쪽, 비봉출판사 [본문으로]
    6. 프레드리히 리스트. 미국정치경제론, 경상대학교출판부, 33-34쪽, [본문으로]
    7.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4장 사경제학과 민족경제학(Private Economy and National Economy), 지만지, 245쪽 [본문으로]
    8.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서론, 21쪽 [본문으로]
    9.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9쪽 [본문으로]
    10.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3쪽 [본문으로]
    11.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3쪽 [본문으로]
    12.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4장 사경제학과 민족경제학, 251쪽 [본문으로]
    13. 이러한 평가는 Graham, 1923, Some Aspects of Protection Further Considered, QJE [본문으로]
    14. 진정한 원문은 독일어; [본문으로]
    15. Finally, history teaches us how nations which have been endowed by Nature with all resources which are requisite for the attainment of the highest grade of wealth and power, may and must—without on that account forfeiting the end in view—modify their systems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ir own progress: in the first stage, adopting free trade with more advanced nations as a means of raising themselves from a state of barbarism, and of making advances in agriculture; in the second stage, promoting the growth of manufactures, fisheries, navigation, and foreign trade by means of commercial restrictions; and in the last stage, after reaching the highest degree of wealth and power, by gradually reverting to the principle of free trade and of unrestricted competition in the home as well as in foreign markets, that so their agriculturists, manufacturers, and merchants may be preserved from indolence, and stimulated to retain the supremacy which they have acquire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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