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못하는 학생,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공부를 못하는 학생,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

Posted at 2013. 5. 2. 00:33 | Posted in 경제학/일반


공부를 못하는 학생과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왜 이 학생을 공부를 못하고, 왜 이 국가는 경제성장에 실패하는지", 다르게 말하면 "이 학생은 어떻게 했길래 공부를 잘하고, 이 국가는 어떻게 했길래 경제성장에 성공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비교하고 난 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공부를 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있을까?


학생들을 살펴보면 애초에 학습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어떻게하면 공부를 잘하니?" 라고 물어보면, 그 학생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냥 수업 듣고, 따로 공부하고 그러는데요." 이런식의 대답이 다수일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공부방법을 다른 학생에게 적용하더라도, 똑같은 시험성적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타고난 지능의 차이 때문일까? 그런데 형제(자매, 남매) 간에도 성적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첫째는 공부를 잘하는데, 둘째는 공부를 못한다는 식으로. 땨라서, 대부분의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주로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긴다.




국가의 경제성장도 마찬가지다. 왜 어떤 나라는 경제성장에 성공하였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못하는지 명확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서유럽, 미국 등은 일찍이 산업화에 진입하였고, 한국 등은 산업화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경제성장에 성공한 한국의 방식을 다른 나라에 적용한다면, 그 나라는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보다 한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명확한 이유부터 찾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하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는지, 이 나라는 어떻게해서 경제성장에 성공했는지 명학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장에 실패한 국가 혹은 경제위기를 겪는 국가를 향해 "그 나라의 게으른 국민성"을 문제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나라의 국민은 근면한데, 저 나라의 국민은 게으르다" 식으로 낙인을 찍음으로서 쉬운 해법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과 "게으른 국민성"으로 원인을 진단하면 제시될 수 있는 해법도 정해져있다.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에게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것"과 게으른 국민들에게 "부지런히 일을 하게끔 강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법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① 구조적 원인을 무시


-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차이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지능과 노력여부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보다 가정환경, 주위환경, 부모의 직업, 부모의 관심사 등등 주변환경 혹은 사회경제적 계층의 문제에서 찾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일례로, 집에서 TV만 보는 부모가 있는 가정과 집에서 책을 읽는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학생은 서로 다를 것이다.


- 국가의 경제성장도 마찬가지다. 크게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냐 공산주의 경제체제냐에따라 국가 간 경제성장이 달라질 것이고, 그 국가의 지정학적 환경, 지나온 역사 등등 여러요인이 작용할 것이다. 쉽게 생각해, 미국의 원조 없이 한국 홀로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② 강요된 개혁이 가져오는 폐해


- 어느날 갑자기, 공부습관이 잡혀있지 않은 학생에게 "오늘부터 너는 하루 10시간 공부를 해야해" 라면서 일정한 공부시간을 강요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당연히 10시간 이라는 공부시간을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10시간 동안 억지로 책상에 앉아 있느라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집생각만 계속 나고, 오히려 집중력만 더 흐트러질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공부방법을 억지로 적용"해도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공부방법이 있는데, 아무런 부작용 없이 하루아침에 공부방법을 바꿀 수 있을까? 


- 이같은 현상은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경제성장을 해야한다는 명분으로 "오늘부터 노동시간을 늘려야해" 라면서 일정한 노동시간을 강요하면 부작용만 생길 것이다.


또한, 저성장 국가의 낙후된 제도를 "경제성장에 성공한 국가의 제도"로 하루아침에 바꾸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이같은 일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벌어졌다. 당시 서구사회는 동아시아의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유를 "아시아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 라는 식으로 접근하였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좀 더 구체화 하자면,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들-산업별 중복투자, 부정확한 회계처리, 투명하지 않은 경영정보, 오너일가의 횡포, 연공서열, 경직된 노동시장- 등등. 이 같은 문제점을 고쳐준다는 명분으로 하루아침에 "유연한 노동시장을 위한 구조조정", "자본시장 개방" "연공서열 철폐" 등의 개혁이 단행됐다.


그런데 당시 한국이 이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건, 한국만의 역사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의 전통적인 윗사람 우대 문화와 변변찮은 노후복지 시스템이 결합하여, 근무년수가 오래될수록 더 많은 연봉을 주는 것이 합리적인 '문화'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공서열 문화로 인해, 늦은 나이에 다른 회사로 재취업 하기가 힘든 '문화'가 존재하는 게 한국이었다.


그런데 한 국가만의 특정한 맥락을 무시하고 다른 나라의 제도를 급격히 이식한 결과,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였는지 우리는 지금 잘 알고 있다.




이 이야기를 왜하냐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 강요됐던 긴축정책과 현재 남유럽에게 강요되고 있는 긴축정책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를 향해 긴축정책을 강요하는 이유는 과도한 부채가 가져오는 경제적인 문제-인플레이션 발생, 채권금리 상승, 기대심리confidence 훼손-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위기에 빠진 "그 나라 자체가 근본문제" 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경제위기를 다룰 때,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내용은 "그리스 국민의 게으름" 이었다. 독일 국민은 부지런히 일하는데, 그리스 국민은 게으르다는 식의 보도. 그런데 그리스인의 노동시간은 유럽 내에서도 상위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리스인의 잘못된 국민성으로 인해 낮은 노동생산성이 생겨났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주장의 맹점은 유럽경제위기가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단일통화가 가져다주는 폐해-"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 통일 이후, 독일은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독일병'이라는 말도 생겨났는데,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게 된다. 


2000년대 단행된 독일의 개혁-유연한 노동시장, 임금상승 억제-을 근거로 남유럽의 경직된 노동시장을 탓하고, 독일과 같은 경제구조를 남유럽에 이식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다시피, 국가간의 특정한 상황을 무시하고 어떤 제도만이 옳다는 식으로 급격한 개혁을 강요하면 문제만 생긴다. 경제위기로 인해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유연한 노동시장과 부채축소를 강요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이 "지금 당장은" 확장정책을 통한 실업문제 해소에 주력하고, "장기적으로" 남유럽의 경제구조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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