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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19. 8. 24. 21:4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국제무역 보다 정확히 말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자국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고전적인 논쟁 주제[각주:1]입니다


▶ 개발도상국 -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


제조업은 산업화의 상징이며 저숙련 근로자에게 비교적 안정적인 임금을 제공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 특히 이제 막 경제발전을 시작하려는 개발도상국들은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 · 육성 · 발전 시키려 했습니다. 이때 가장 큰 걸림돌은 '성숙한 외국 제조업과의 경쟁' 입니다. "자국 제조업 수준이 걸음마 단계인 상황에서 시장을 개방하면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생각[각주:2]은 자연스런 우려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사상[각주:3]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4]이 나온 이래로,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자국의 비교열위 산업인 제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걱정했습니다. 특히나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토지의 수확체감성에서 벗어나 산업자본가의 이윤을 높이려는 19세기 영국의 경제상황[각주:5] 속에서 등장한 이론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고 인식했습니다. 


개발도상국들 중 일부[각주:6]는 수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여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려 하였고, 또 다른 일부[각주:7]는 아예 교역량을 줄이는 수입대체 산업화를 선택했습니다. 대외지향적 무역체제에 힘입어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한민국[각주:8] 조차도 기존의 비교우위에서 벗어나 제철소건설 등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했습니다. 


▶ 현대 경제학자 - "제조업 보호와 육성을 위한 정부지원이 정당화 되려면 특수한 조건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항하여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사상과 비교우위론을 정교화[각주:9] 하였습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개발도상국을 향해 던진 물음은 "당장의 경쟁에서는 밀리더라도 미래에는 승산이 있다는 걸 아는 사업가라면, 정부의 인위적인 보호조치가 없더라도 자연스레 제조업에 뛰어들지 않겠느냐" 입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래에는 외국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업가라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제조업 분야에 투자를 했을 겁니다. 


미래를 내다본 사업가에 의해 국가경제의 생산성 · 부존자원 등이 시간이 흐른 후 바뀐다면, 비교우위도 자연스레 변화하는 '동태적 비교우위'(dynamic comparative advantage) 양상을 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유치산업 보호는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 주류 경제학자들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정부지원이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특수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때 특수한 조건이란 '기술적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y)과 '금융시장 불완전성'(capital market imperfection) 입니다. 


더 나은 생산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가가 직면하는 문제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정보를 거리낌없이 쓸 가능성, 즉 기술적 외부성 이며, 이로인해 개별 사업가가 지식 획득을 위한 투자를 꺼리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업은 기술개발 및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 받아야 하는데, 금융시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자금조달이 어려워집니다[각주:10].


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이 특수한 조건이 존재한다면 정부의 제조업 지원이 정당화 될 수 있으며, 단 이때 지원의 형태는 무차별적인 보호 관세가 아니라 직접적인 보조금 이라고 강조합니다. 다르게 말해, 제조업 육성을 위한 보호무역정책을 구사할 생각보다는 '외부성 및 불완전성 등 구체적인 시장실패를 직접 해결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과거 개발도상국이 직면했던 문제는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

: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가 타당한가


이처럼 국제무역과 제조업에 관한 논쟁은 경제발전을 추구했던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벌어져왔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이 타당한가?"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경제학자들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유치산업보호론을 인정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며 주의[각주:11]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폐쇄경제로 돌아선 중남미[각주:12]와 대외지향을 꾸준히 추진한 대한민국[각주:13] 간 대비되는 성과는 자유무역을 향해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알려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국제무역논쟁은 자유무역사상과 비교우위론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화 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 1970~80년대 미국 - "외국과의 경쟁증대 때문에 미국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인 미국에서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졌습니다.


본 블로그의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14]를 통해 알 수 있었듯이, 1970~80년대 미국인들은 '미국의 지위 하락과 경쟁력 상실'을 두려워 했습니다. 전세계 GDP 중 미국의 비중은 1968년 26.2%에 달했으나 점점 줄어들어 1982년 23.0%를 기록합니다. 또한 무역적자가 심화되면서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이 1980년 0.7%,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거시경제적 문제와 함께 다수의 미국 근로자와 기업들이 걱정했던 것은 바로 '제조업의 비중 축소와 일자리 감소' 였습니다. 2차대전 이후 폐허가 됐던 서유럽과 일본이 경제부흥에 성공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미국 제조기업들은 1970~80년대 들어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신발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제조업 뿐 아니라 자동차 · 철강 등 중후장대 제조업도 외국기업에게 미국시장을 내주었습니다.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은 저숙련 근로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대표적인 제조업 중 하나이며, 경제발전 단계를 밟는 국가들이 크게 의존하는 업종입니다. 과거 미국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1970년대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에 종사하는 미국 근로자 수는 약 300만명에 달했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후발산업국가들이 생산 및 수출 물량을 늘려나가자 선진국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윗 그래프에 나오듯이, 1960년-1988년 사이 미국인들의 신발 · 의류 · 섬유 품목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결국 선진국과 개도국들은 1974년 다자간섬유협정(MFA)을 체결하였고, 물량쿼터제를 통해 수출물량을 통제하였습니다. 1981년 부임한 레이건대통령은 대선캠페인 과정에서 다자간섬유협정을 갱신하겠다고 약속하였고, 개발도상국이 만든 섬유와 의복의 연간 수입증가율을 기존 6%에서 2%로 낮추었습니다.


그럼에도 신발 · 의류 · 섬유의 수입침투(import penetration)는 계속되었습니다. 쿼터할당량을 다 채운 외국 생산자들은 몇몇 공정을 쿼터가 남아있는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회피하였고, 공정변화를 통해 품목을 변경하여 규제를 벗어났습니다. 


미국의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은 펜실베니아 · 남부 · 남캐롤라니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 지역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2000년 이들 산업의 근로자 수는 약 100만명으로 줄었고, 2019년 현재는 약 30만명에 불과합니다.


  • 1960~90년, 미국 차량등록대수 중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 변화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75쪽


자동차 산업도 1970년대부터 외국과의 경쟁증대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산업 입니다. 


1960년대 미국시장 내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7%대로 안정적이었으며 주로 독일차가 차지했습니다. GM · 포드 ·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는 수익성이 높은 중대형 차량에 집중하였고, 외산차는 주로 소형차를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소비자들은 연비가 좋은 소형차를 찾기 시작했고 일본자동차 업계가 이 지점을 공략했습니다. 그 결과, 1975~80년 사이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2배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 2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미국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은 더욱 훼손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부도위기에 몰렸고,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실업률은 상승했습니다. 


결국 미국 자동차 노조는 수입제한과 일본기업이 미국 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도록 요구했고, 레이건행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자발적 수출제한을 얻어냅니다.


  • 1950~90년, 철강 미국 내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38쪽


철강 또한 수입경쟁에 노출된 업종 중 하나입니다. 미국 내 소비 중 수입철강의 비중은 1979년 15%에서 1984년 26%로 상승했습니다. 


미국 철강업계는 외국에 대항하여 반덤핑규제와 상계관세 부과를 요구했으며, 그 타겟은 주로 유럽(EEC) 이었습니다. 레이건행정부는 자동차 산업에서처럼 자발적제한 협약을 외국과 맺으려 하였고, 전체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15개국을 대상으로 물량쿼터제를 내용으로 하는 협약을 1985년 8월 체결하였습니다.


▶ 1990년대 미국 - "저숙련 · 저임금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미국 제조업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1970~80년대 미국 제조업이 직면한 경쟁상대가 주로 서유럽과 일본이었다면, 1990년대 미국 제조업 근로자들에게 위기감을 안겨다준 상대방은 멕시코 였습니다. 


위의 표에 나오듯이, 1994년 당시 멕시코 자동차산업 근로자의 시간당 실질 인건비는 미국의 1/8에 불과했고, 미국 기업들은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할 유인이 충분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숙련 · 저임금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으면 미국 제조업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라는 우려가 팽배했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1992년 미국 대선의 주요 의제로 부각되었습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지지자 그리고 노조는 NAFTA 체결을 격렬히 반대하였습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스 페로(Ross Perot)는 제조업 일자리가 남쪽 멕시코로 대거 이동할 것이라며 NAFTA를 '남쪽으로 일자리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굉음'(giant sucking sound going south)'으로 칭했습니다. 양당제인 미국 정치구도에서 무소속 후보가 무려 18.9%나 득표[각주:15]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시 미국인들이 NAFTA에 대해 가졌던 우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난 이후 당 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NAFTA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단, 여러 우려를 반영하여 노동부문 부속협약(labor side agreement) 및 원산지 규정(rule of origin)을 협정에 새로 집어넣었습니다. 여기에는 멕시코의 저임금을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근로자 권리 보호, 그리고 미국-멕시코-캐나다 역내에서 생산된 부품이 완성차 부가가치의 62.5%를 차지해야 한다는 역내가치비율(Regional Value Content) 조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시장개방'(Income Distribution)

: 제조업 및 저임금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자유무역의 충격을 어떻게 완화해야 하는가


  • 1966~2000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1980~9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의 그래프는 1966년~2000년 미국 내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프상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를 나타냅니다. 제조업 일자리는 경기변동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불황기에 일자리가 줄었다가 회복기에 다시 늘어나는 패턴을 보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경기회복기에 불황 이전 수준만큼 일자리가 늘어났으나, 1980년대 들어서는 제조업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적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9년 최대 1,950만명에 달했던 제조업 근로자는 1980-90년대 평균적으로 1,700만명대를 기록하며 10%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경기변동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많은 미국인들이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원인을 국제무역에서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미국 주요 산업지역

  • 자동차 산업의 러스트벨트(Rust Belt), 석탄 산업의 Coal Belt. 섬유 산업의 Textile Belt

  • 츨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96


이러한 제조업 위축은 사회 · 정치적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제조업은 저숙련 근로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제조업의 위축은 임금불균등 증대(rise of wage inequality)로 연결될 위험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석탄, 섬유 산업 등은 미국 내 특정 지역에 몰려있었기 때문에, 상하원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제조업 위축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따라서 1970~9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은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제조업 고용 및 임금이 감소하고 그 결과 임금불균등이 확대되는 것 아닐까?"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경제발전기 개발도상국들이 던진 물음에 대해 현대 경제학자들은 정교화된 자유무역사상과 비교우위론을 답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1970~9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던진 물음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요? 




※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① 미국 제조업 비중 감소는 생산성향상과 수요변화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답은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였습니다[각주:16]


앞서 내용을 통해, 신발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제조업 뿐 아니라 자동차 · 철강 등 중후장대 제조업도 외국기업에게 미국시장을 내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미국의 공장들은 당연히 저임금의 멕시코로 이전할텐데, 왜 경제학자들은 일반의 상식과는 다른 분석을 내놓은 것일까요? 


  •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

  • 1983년 발표 논문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일시적인 순환>


국제무역과 제조업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있는 학자 중 한 명이 바로 로버트 Z. 로런스(Robert Lawrence) 입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이를 연구해오며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임금불균등 심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83년 로버트 Z. 로런스는 잭슨홀미팅에서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일시적인 순환>(Changes in U.S. Industrial Structure: The Role of Global Forces, Secular Trends and Transitory Cycles> 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로런스는 논문을 통해, "1970년대 미국은 절대적인 탈산업화(absolute deindustrialization)를 경험하지 않았다. (...) 다시 성장이 재개되면 제조업의 일자리와 투자가 촉진될 것이고, 자동적으로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가 발생할 것이다. (...) 대외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 산업 및 무역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각주:17]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로런스의 주장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 미국 탈산업화 - 절대적 생산 감소와 상대적 비중 감소를 구분해야 한다


탈산업화(혹은 탈공업화, deindustrialization)란 광업 · 제조업 · 건설업 등 2차산업 활동이 위축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1970-8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은 신발 · 의류 · 섬유 · 자동차 · 철강 등의 위축을 보며 "미국의 경쟁력 감소로 인해 탈산업화가 발생했다"고 느꼈습니다.


이에 대해 로버트 Z. 로런스는 우선 탈산업화 현상이 무엇인지 정교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조업 생산량의 절대적 감소(absolute decline in the volume of output)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제조업 생산량 증가율의 상대적 감소(relative decline in the growth of outputs)를 의미하는가?[각주:18]" 


어떤 산업이든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감소한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큰 문제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은 생산의 증가[각주:19]를 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절대적인 생산량은 증가하고 있으나 다른 산업의 빠른 생산 증가율 때문에 '생산량의 상대적인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면, 이를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할 겁니다. 


  • 1966~97년, 미국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

  •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1966년 26.1%, 1997년 16.1%로 추세적 하락을 경험하였다

  • 서비스업 부가가치 비중은 1966년 50.0%, 1997년 64.2%로 추세적 상승 하였다.

  • 출처 : 미 경제분석국(BEA)


로버트 Z. 로런스는 "미국 제조업의 경제활동인구, 자본스톡, 생산량을 살펴보니 1980년까지 절대적(absolute) 탈산업화를 경험하지 않았다"[각주:20]고 주장합니다. 미국 제조업 부가가치의 절대액수는 1965년 2,370억 달러에서 1980년 3,510억 달러로 증가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옳습니다.


문제는 제조업 비중(share)의 감소에 있었습니다. 위의 그래프에 나오듯이, 전체 미국경제에서 제조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6년 26.1%, 1980년 20.5%, 1990년 17.3%, 1997년 16.1%로 추세적으로 하락(secular decline)하고 있습니다. 


▶ 미국 제조업 비중 감소를 초래하는 영속적인 추세변화 - 생산성향상과 수요변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감소이든 상대적 감소이든 상관없이, 외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미국 제조업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런스는 "국제교역은 산업구조 변화의 유일한 원인도 아니며 중요한 원인도 아니다. 무역은 수요와 기술변화의 영향을 단지 강화할 뿐이다.[각주:21] (...) 제조업 고용비중의 감소는 제조업의 급격한 노동생산성 향상과 느린 수요 증가로 인한 예측가능한 결과이다."[각주:22]라고 말합니다.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은 수요 요인과 결합하여 제조업 생산과 고용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생산비용을 낮추는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은 품질 개선과 가격 하락을 동반합니다. 이에따라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 중 제조업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집니다. 그리고 생활수준이 개선된 미국인들이 의료 · 여행 ·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 지출을 늘림에 따라 상품지출 비중은 더 줄어듭니다.


이렇게 상품수요가 탄력적으로 늘어나지 않으면서, 생산성향상은 역설적으로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산업의 생산성향상은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지만,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을때 생산량을 크게 늘리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수요가 늘어나지 않고 생산성 향상만 이루어진다면 더 적은 수의 근로자로 똑같은 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은 제조업 일자리를 감소시킵니다.


로런스는 기술혁신의 결과물로 얻게되는 생산성 향상, 그리고 생활수준 향상 및 서비스 경제화가 야기하는 상품수요 감소 요인은 영속적인 추세(Secular Trends)라고 평가했습니다. 추세가 달라지면서 미국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역할이 변하였고 이로 인해 제조업 생산 및 고용 비중이 감소한 것이지 국제무역은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논리 입니다. 


▶ 미국 국제경쟁력의 열등함? - 일시적 경기순환과 영속적인 비교우위 변화


  • 란선 :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 지수 (1973=100)

  • 란선 : 미국 GDP 대비 무역수지 적자 비중 (축반전)

  • 1980년을 기점으로 달러가치가 상승하자, 시차를 두고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


그렇다고해서 로런스가 국제무역이 단 하나의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


제2차 오일쇼크와 볼커 연준의장의 통화긴축 정책으로 인해 1980년대 초반 미국 달러가치는 급상승했고 무역적자는 심화되었습니다. 1980~82년 사이 미국 제조업 상품 수출 물량은 -17.5%를 기록했으며, 수입 물량은 +8.3% 였습니다. 로런스는 수출 감소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약 50만개 줄어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로런스가 강조하는 것은 달러가치 상승이라는 일시적 순환요인(Transitory Cycles) 때문에 제조업 수출이 감소한 것이지 "미국의 국제경쟁력이 갑자기 훼손된 결과물이 아니다"[각주:23]는 점입니다. 따라서, 산업정책 및 무역정책으로 제조업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향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미국은 저숙련 제조업 분야의 비교우위를 상실한 대신 하이테크 분야의 비교우위를 발전시켰다고 로런스는 평가합니다. 향후 하이테크 산업이 더 발전하게 되면 제조업 일자리 상실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일시적인 순환


이처럼 로버트 Z. 로런스가 1983년 논문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일시적인 순환>(Changes in U.S. Industrial Structure: The Role of Global Forces, Secular Trends and Transitory Cycles> 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제목 그대로 입니다.


미국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의 상대적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이는 국제경쟁력 훼손 등 글로벌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 및 소비자 수요변화의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달러가치 상승의 일시적인 순환이 작용한 결과 입니다. 


따라서, 탈산업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비숙련) 제조업을 위한 보호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을 구사하면 미국경제의 잠재성장을 훼손시킨다고 로런스는 경고합니다.




※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② 미국 임금불균등 증가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 때문이다


1980년대 로버트 로런스 등 몇몇 경제학자들이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무역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1990년대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1980년대 사람들이 제조업 비중 축소 및 일자리 감소에 주목했다면, 1990년대 관심주제는 임금불균등(wage inequality) 이었고 그 배후에 국제무역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미국의 1973년 시간당 실질소득은 8.55 달러였으나 1992년 7.43 달러로 하락하였습니다. 특히 숙련근로자의 상대소득이 크게 증가하며 임금불균등이 확대되었죠. 


임금증가율 정체와 불균등이 확대되던 시기, 국제경제관계도 변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의 1인당 생산량은 유럽의 2배, 일본의 6배 였으나 1990년대 차이가 많이 줄어드는 수렴(convergence)이 이루어졌고 임금격차도 좁혀졌습니다. 또한, 1970~90년 사이 미국의 GNP 대비 수출입은 12.7%에서 24.9%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199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임금불균등 증대 원인에 국제무역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자연스런 사고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부시행정부와 클린턴행정부는 저임금 국가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려 했으니, 국제무역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헥셔-올린 모형, 미국 내 임금불균등 현상을 예측한듯 하다 


국제무역이론도 미국인들의 우려가 논리적으로 타당함을 뒷받침 해주었습니다. 바로, 헥셔-올린 무역모형(Heckscher-Ohlin Trade Model)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각주:24] 입니다.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르면, '시장개방 이후 숙련노동 풍부국은 숙련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올라가서 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비숙련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올라가서 비숙련노동자의 실질소득이 상승' 합니다. 


쉽게 말해, 국제무역은 국가의 풍부한 생산요소에게 이익을 주며 희소한 생산요소에게 불이익을 줍니다. 자급자족 상황에서 풍부한 생산요소는 과다공급으로 인한 낮은 가격 때문에 저평가받다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니 과다공급 해소로 가격이 올라 이익을 본다는 논리입니다. 반대로 자급자족 상황에서 희소한 생산요소는 과소공급 때문에 높게 평가받다가, 무역개방으로 외국의 생산요소가 들어오니 희소성의 이득을 박탈 당합니다.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를 미국과 개발도상국의 상황에 대입해봅시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숙련근로자가 풍부하며, 멕시코 등 개발도상국은 비숙련근로자가 풍부합니다. 따라서, 양국간 교역확대는 미국 숙련근로자 임금과 개발도상국 비숙련근로자 임금을 상대적으로 증가시킵니다. 다시 말해, 헥셔-올린 모형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이 나타나고 개발도상국에서는 임금수렴이 나타납니다



  • 1955~90년, 생산근로자 대비 비생산근로자의 임금 비율
  • 출처 : Lawrence & Slaughter. 1993.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임금>


헥셔-올린 무역이론의 예측은 실제 미국의 모습과 동일하였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55년~90년 생산근로자 대비 비생산근로자의 임금 비율(ratio of nonproduction to production wages)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생산근로자는 제조업 생산직, 비생산근로자는 관리·감독·사무직을 의미하며, 단순히 전자를 비숙련근로자 후자를 숙련근로자로 구분지을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확대되며 1990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은 비숙련 근로자 대비 1.65배를 기록합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요인을 가져올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국제무역 때문에 임금불균등이 확대된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 헥셔-올린 모형은 미국 내 임금불균등 심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 로버트 Z. 로런스와 매튜 J. 슬로터의 1993년 보고서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인 임금: 거대한 굉음 혹은 작은 딸꾹질?>


정작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이와 달랐습니다. 


앞서 봤던 로버트 Z. 로런스(Robert Z. Lawrence)는 매튜 J. 슬로터와 함께 1993년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제목은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인 임금: 거대한 굉음 혹은 작은 딸꾹질?>(International Trade and American Wages in the 1980s: Giant Sucking Sound or Small Hiccup?>[각주:25] 입니다.


우선 로런스와 슬로터는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미국 내 현실에 부합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 증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숙련근로집약적 상품가격이 상승해야' 합니다. 단순히 임금불균등이 확대된 결과만을 보고 무역이론이 현실을 설명하구나 라고 단정지으면 안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수행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기 때문'[각주:26] 입니다.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값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수출을 통해 더 높은 값을 받고 외국에 판매합니다. 반대로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비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통해 더 싸게 (간접)생산합니다. 


그리고 무역을 하게 되면 자급자족 가격이 아닌 세계시장 가격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품가격이 변합니다. 즉, 무역 개방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것은 ‘상품의 상대가격’ 입니다. 수입 상품은 자급자족에서 보다 무역 실시 이후 더 싸지고, 수출상품은 더 비싸집니다


따라서, “달라진 상품 상대가격이 생산요소의 실질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를 살펴봄으로써, 무역개방과 소득분배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무역이론이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각주:27]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련근로자의 상품가격이 상승하지 않은채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만 증가했다면, 이는 무역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 입니다.


  • 왼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입가격 변화율(Y축)

  • 오른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출가격 변화율(Y축)


위의 그래프는 1980년대 숙련근로집약 정도에 따른 수출입 가격 변화를 보여줍니다. 숙련근로집약도가 높아지는 상품일수록 수입가격은 다소 하락하고 수출가격은 크게 하락하는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로버트 Z. 로런스와 매튜 J. 슬로터는 1980년대 숙련근로집약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기는 커녕 하락했음을 지적합니다. 이들은 "데이터는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무역이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회귀분석을 할 필요조차 없다."[각주:28] 라고 말합니다.


▶ 미국 임금불균등 증가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로 인한 숙련노동 수요 증대 때문이다

 

  • 1955~90년, 생산근로자 대비 비생산근로자의 고용 비율

  • 출처 : Lawrence & Slaughter. 1993.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임금>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요인 때문에 미국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올라간 것일까요? 로런스와 슬로터는 '노동 공급과 수요'라는 국내요인에서 찾았습니다. 


만약 비숙련근로자 노동공급이 숙련근로자 노동공급보다 많이 증가한다면, 비숙련근로자 임금은 하락하고 숙련근로자 임금은 상승합니다. 한 연구는 이민자 증가로 인해 비숙련근로자의 상대공급이 증가했음을 보였습니다.


로런스와 슬로터가 더 주목했던 것은 노동수요 측면(labor-demand story) 입니다. 


왜냐하면 숙련근로자들의 상대공급이 증가했음에도 숙련-비숙련 간 임금격차가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1980년대 들어서 비생산근로자가 급증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1983년 미국 내 화이트칼라 직업은 전체 고용 중 67.2% 였으나 1990년 90%로 늘어납니다. 또한, 관리직무는 1983년 24%에서 1990년 45.7%로 증가합니다. 


이렇게 숙련근로자가 늘어났음에도 임금이 올랐다면 이는 숙련근로자들을 향한 노동수요 증대가 더 큰 역할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로런스와 슬로터는 "1980년대 미국 제조업 내 비생산근로자의 상대임금과 상대고용이 모두 상승하였다. 이러한 조합은 노동수요가 비생산근로자로 이동했음을 알려준다"[각주:29]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왜 숙련근로자를 향한 노동수요가 증대되었나?" 입니다. 로런스와 슬로터는 "기술변화가 비생산 근로자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편향되게 이루어졌다."[각주:30]고 대답합니다. 


당시 로런스와 슬로터 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이 기술변화로 인한 노동수요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각주:31]. 버만, 바운드, 그릴리키스는 1993년 논문을 통해 "비생산근로자를 향한 수요변화는 기술변화 때문이다"고 주장하였고[각주:32], 앨런 크루거도 1993년 논문에서 "컴퓨터 사용이 확산됨에 따라 교육프리미엄이 증대되었다. 즉, 편향적인 기술변화가 발생했다"고 말하였습니다[각주:33]


경제학자들은 숙련근로자의 수요를 증대시키도록 일어난 기술변화를 '숙련편향적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SBTC)라고 명명하였고,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경제학계 논의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임금불균등 심화의 원인을 숙련편향적 기술진보에서 찾았으며,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컨센서스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폴 크루그먼, 국제무역과 임금 간 관계를 14년 만에 다시 생각하다



2000년대 들어서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임금불균등 현상의 원인을 국제무역이 아닌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로 꼽았습니다[각주:34]


1990년대 중반 이후 거시경제 상황 변화가 국제무역에서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미국경제는 다시 호황을 기록하면서 국제경쟁력 상실을 둘러싼 우려가 사라졌습니다. 이와중에 1995년 이후 컴퓨터 ·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통신산업(IT)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역시 임금불균등 원인은 기술변화에 있구나" 라는 확신은 더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2008년 폴 크루그먼은 보고서 하나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제목은 <무역과 임금, 다시 생각해보기>(<Trade and Wages, Reconsidered>) 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0년대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35]을 통해 국제무역이론의 흐름을 변화시킨 인물이었고, 당시 국제무역논쟁[각주:36]한복판[각주:37]에 있었습니다. 또한 폴 크루그먼은 앞서 살펴본 로버트 Z. 로런스와 함께 1994년 논문 <무역, 일자리, 그리고 임금>(<Trade, Jobs and Wages>)을 발간하면서 의견을 같이 했었습니다. 그는 1990년대 NAFTA를 둘러싼 사회적논쟁 속에서 "국제무역은 제조업 위축 및 저숙련 근로자 임금 둔화와 관계가 없다"를 주장했습니다.


그랬던 크루그먼이 국제무역과 임금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 보고서를 14년 이후인 2008년에 내놓은 겁니다. 그의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 저임금 개발도상국, 특히 대중국 수입비중이 큰 폭으로 늘었다


  • 위 : 1989~2006년, 미국 GDP 대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한 제조업 상품 비중
  • 아래 : 개발도상국들의 세부 국가로 다시 분리해서 살펴봄. 중국 · 멕시코 · 기타 · 동아시아 4마리 호랑이(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 개발도상국 수입상품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며 2004년 이후로는 선진국 수입상품을 넘어섰다
  •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하였다
  • 출처 : Krugman. 2008. <무역과 임금, 다시 생각해보기>

국제무역이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폴 크루그먼은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이 2배 가까이 늘어나자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1990년대 실증연구는 국제무역이 그다지 대단치 않은 영향만 주었음을 발견했었다. 극도로 낮은 임금을 가진 국가들로부터 수입이 급증했음을 고려할 때, 10년 동안 상황이 변했나?"[각주:38]

크루그먼은 단순히 '개발도상국'과의 교역이 확대된 것이 아니라 '극도로 낮은 임금을 가진 국가들'(very low wage countries)과의 교역량이 늘어왔음에 주목했습니다. 그 대상은 주로 '중국'(China) 이었습니다. 

1990년대 저임금 국가인 멕시코와의 NAFTA 체결도 큰 논란을 불러왔는데, 2000년대 초중반 중국의 임금수준은 멕시코 보다도 현저히 낮았습니다. 2005년 기준 중국 제조업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미국의 3%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의 15%에 불과한 멕시코도 저임금 국가 소리는 듣는 와중에 중국의 임금수준은 더 낮았던 겁니다. 게다가 중국은 수출량을 빠르게 늘려왔고, 미국과 중국 간 교역량은 크게 증가했습니다.

보통 저임금 개발도상국은 신발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상품에 특화하여 수출합니다. 따라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게되면, 미국 저숙련 노동집약산업은 비교열위가 되어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저숙련 근로자들은 임금이 하락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2000년대 중국과의 교역확대는 이전 시대와 달리 미국 내 임금불균등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 그런데.. 대중국 수입상품이 저숙련 노동집약 상품이 아니라 정교한 상품?


  • 1989~2006년,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수입 중 제조업 상품 품목별 비중 증가율
  • 수입이 가장 많이 늘어난 품목은 의외로(?) 컴퓨터 및 전자상품
  • 출처 : Krugman. 2008. <무역과 임금, 다시 생각해보기>

그런데 막상 데이터를 보니 많은 이들의 직관과 달리 저숙련 노동집약상품 수입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89~2006년, 미국의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수입 중 제조업 상품 품목별 비중 증가율을 보여줍니다. 수입이 가장 많이 늘어난 품목은 가죽 · 섬유 · 목재 등이 아니라 컴퓨터 및 전자상품(Computer and electronic products)과 자동차(Transportation equipment) 였으며, 이들 품목은 숙련노동집약 상품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근거로 "2000년대 개발도상국과의 교역 증대도 미국 내 임금불균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라 임금불균등이 확대되려면 저숙련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하는 국가와 교역을 해야하는데, 2000년대 미국은 숙련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하는 개발도상국과 무역을 늘려왔습니다. 무역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이론을 적용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 달라진 국제무역 구조인 '수직적 특화'를 집계데이터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폴 크루그먼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요소부존에 기반을 둔 분석은 데이터의 분해 수준(disaggregation)에 제약을 받게 된다.[각주:39]


당시 학자들은 산업을 더 세부적으로 분류한 데이터를 쓸 수 없었습니다. 컴퓨터 및 전자상품 산업에 속해있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숙련노동집약적인 것일까요? 컴퓨터에 들어가는 CPU 등을 설계하는 것과 여러 부품들을 단순 조립하여 컴퓨터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숙련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달라진 국제무역 구조는 이러한 집계데이터의 문제를 심화시켰습니다. 1990년대 들어 세계화가 확산됨에 따라 국제무역 구조는 '수직적 특화'(Vertical Specialization)를 띄게 되었습니다. 수직적 특화란 상품생산 과정이 개별 단계로 쪼개져서 여러 국가에 분포하는 현상(the break up of the production process into geographically separate stages)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은 중국에서 조립되어 수출되기 때문에 집계데이터상 전자품목으로 잡힙니다. 그런데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는 주로 한국과 대만에서 만든 것이고 디자인 · 설계는 미국이 한 겁니다. 중국 내에서 수행한 활동은 단순한 조립일 뿐이며 부가가치 기여도는 적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숙련노동집약적인 전자상품을 수출했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요?


따라서 폴 크루그먼은 "집계데이터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잠정결론 내릴 수 있다. 왜 더 세분화된 데이터를 쓰지 않는가? 그 이유는 현재 데이터의 한계로 인해 할 수 있는 것이 적기 때문이다"[각주:40] 라고 지적합니다.


폴 크루그먼은 데이터의 한계를 재차 지적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데이터의 문제를 보여준다. 개발도상국의 급증하는 수출, 특히 중국의 수출은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각주:41]. (...) 개발도상국이 정교한 상품을 수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개 통계적 착시(statistical illusion)이다.[각주:42]"


▶ 2008년 폴 크루그먼

- "개발도상국은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비숙련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의 한계를 고려하면 실제 중국이 수출하는 것은 비숙련노동집약 상품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있는 일은 개발도상국이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비숙련노동집약 부분을 가져가는 밸류체인의 분해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스톨퍼-새뮤얼슨 효과와 유사한 결론을 가져다줄 것이다"[각주:43] 라고 주장합니다. 


크루그먼의 지적이 타당하다면, 집계데이터를 이용해 헥셔올린 모형을 적용한 기존 연구들은 전부 잘못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미국 저숙련 근로자에 미친 영향은 기존 추정치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과의 무역 확대가 미치는 진정한 영향이 얼마인지는 당시 크루그먼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무역이 임금에 미치는 실제 효과를 수량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현재 주어진 데이터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1990년대 초반 이래 급증한 무역이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뿐이다. 영향을 숫자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정교화 되어가는 국제적 특화와 무역을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라며 한계점을 드러냅니다.




※ 왜 당시 경제학자들은 국제무역의 영향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보았을까?


그런데 크루그먼은 데이터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것을 떠나서 당시 경제학자들의 사고를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당시 경제학자들은 국제무역의 영향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보았을까요? 정말 실증분석의 결과만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요? 혹시 '답정너'일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 비교우위에 입각한 산업간 무역이 초래하는 분배적 영향을 과소평가


발도상국과의 교역확대가 미국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은 비교우위 무역모형에 기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비교우위 무역모형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저숙련 제조업에 특화를 선진국은 고숙련 제조업에 특화를 합니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은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 즉 산업간 무역(inter-industry trade)을 실시하여 '상품의 값싼 이용'이라는 무역의 이익(gains from trade)을 얻게 됩니다. 


이때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우려했던 것은 '무역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는가'를 둘러싼 분배적 영향(distributional effects) 였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특화를 한 이후,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경제학자들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면 된다." 국제무역이론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정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현실에서도 이것이 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비교우위는 이익을 비교열위는 손해를 보겠지만, 경제 전체의 총이익은 양(+)의 값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됐든 국제무역은 전체적인 이익을 안겨다주기 때문에 교역을 제한해서는 안되며, 분배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개인적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다들 공유하고 있었으며, 고전 경제학 시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18세기 애덤 스미스[각주:44]는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19세기 데이비드 리카도[각주:45]는 자유무역이 계층별로 서로 다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지주와 근로자가 아닌 자본가의 이익을 높여야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46]헥셔-올린의 비교우위론[각주:47] 모두 "산업간 무역 때문에 비교열위 산업이 손해를 보게되지만, 생산요소는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할 것이며 경제 전체적으로는 양(+)의 이익을 준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특히 헥셔-올린 무역모형은 시장개방이 숙련근로자와 비숙련근로자에게 상이한 영향을 주는 분배적 측면에 주목하긴 했으나, 결국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여서 완전고용을 유지한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산업간 무역이 초래하는 분배적 영향을 과소평가 하는 경향을 띄게 되었습니다.


▶ 경제학자들의 노파심,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무역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중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커질 가능성에 대한 노파심 입니다.


이번글에서 소개한 로버트 Z. 로런스의 논문은 잭슨홀미팅에서 발표되었는데, 1983년 당시 잭슨홀미팅의 주제는 <산업변화와 공공정책>(<Industrial Change and Public Policy>) 이었습니다. 


이 주제가 가지는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초반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48]를 통해 소개했듯이, 1980년대 미국은 일본과의 경쟁이 증대되면서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일본기업들이 이득[각주:49]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미국인들은 미국정부를 향해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을 요구하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정책이 실제로 시행될 가능성을 우려스럽게 바라보았고, 1983년 잭슨홀미팅을 통해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의 폐단을 집중적으로 비판합니다. 


로버트 Z. 로런스가 "절대적인 탈산업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제조업의 상대적 비중감소는 국제무역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탈산업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비숙련) 제조업을 위한 보호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을 구사하면 미국경제의 잠재성장을 훼손시킨다"[각주:50] 라고 주장한 시대적 맥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 또한 다른 글에서 소개하였듯이 보호무역정책이 가지는 문제를 집중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각주:51]했으며, 이번글에서 소개한 2008년 보고서에서도 "이건 분명히 하자. 증가하는 교역이 실제로 분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수입보호를 정당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 분배에 악영향을 미칠 때 최선의 대응은 교역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각주:52] 라면서 노파심을 가득 드러냈습니다.


▶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


제학자들이 무역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애써 외면하면서, 대중과 정치권은 경제학계와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국제무역 확대가 경제전체적으로 양(+)의 이득을 줄지라도 당장 나에게 피해가 돌아가는데 자유무역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보호무역정책이 실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애써 피해를 축소하려는 모습은 꼴불견 그 자체 였습니다.


이러한 경제학계의 전반적인 모습에 대해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로드릭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대중논쟁장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가로채질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학자들은 국제무역에 있어 한 가지 방향만 말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유무역이 종종 자국의 분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논쟁 장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 그들은 또한 무역의 옹호자로 나설 기회도 잃고 만다." 라며 경제학자들의 노파심이 외면을 불러왔다고 지적[각주:53]합니다. 




※ 국제무역이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상세히 분석하자


다행히도 경제학자들은 2010년대 들어 국제무역이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보다 상세한 분석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보다 상세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폴 크루그먼이 2008년 보고서에서 안타까워했던 '데이터의 한계' 및 '달라진 무역구조에 대한 이해' 등의 문제를 극복한 덕분입니다.


▶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중국발 쇼크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다


2010년대 경제학자들은 중국과의 교역확대가 다른 개발도상국과의 교역과는 완전히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자들은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 라고 명명하며, 대중국 수입증대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 나갔습니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근로자가 다른 산업 및 지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면서, 국제무역이 분배 및 일자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침을 알려주었습니다.


경제학계 내에서 이러한 연구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MIT 대학의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입니다. 앞으로 다른 글을 통해 그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 수직적 특화 · 오프쇼어링 · 글로벌 밸류체인 등 달라진 세계화


  • 21세기 세계경제 구조를 이해하려면 상품(product)의 생산단계(stage), 다양한 직무(occupation)을 세부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 출처 : 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개발도상국과의 교역확대가 미국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존의 분석은 비교우위 무역모형에 기반해서 이루어졌으나, 오늘날 세계경제 구조는 복잡해졌습니다. 


21세기 세계경제 구조는 '비교우위 상품을 수출 · 비교열위 상품을 수입하는 단순한 무역구조'에서 '상품생산 과정이 개별 단계로 쪼개져서 여러 국가에 분포하는 수직적 특화 · 오프쇼어링 · 글로벌 밸류체인의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숙련집약산업과 비숙련집약산업으로 양분하여 산업간 무역 효과를 분석하는 건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제 동일 산업 내에서 생산과정(production process)과 업무단계(task stage)를 세부적으로 분리하여 살펴야 합니다. 


이것 또한 앞으로 글을 통해 소개할 계획입니다.


▶ 기업 및 사업체 단위 등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



중국발쇼크와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기업(firm) 및 사업체(plant) 단위 등 마이크로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고, 경제학자들은 보다 상세한 실증분석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미국 제조업 고용변화를 기업(frim) 및 사업체(plant) 단위에서 살펴본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제조업을 뭉뚱그려 바라보지 않고, '기존 기업 내 신규 사업체의 진출과 퇴출', '기업 자체의 진출과 퇴출' 등을 세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 중국의 경제발전과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 

→ 200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200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 현상은 중국의 경제발전과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할 필요성을 높였습니다. 

앞서 1980~90년대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하였는데, 2000년 이후 감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는 1979년 최대 1,950만명 · 1980~90년대 평균 1,700만명대를 기록하였으나, 2007년 1,400만명 · 2019년 현재 1,300만명을 기록하며 25%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중국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어왔으며 세계경제 구조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1.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s://joohyeon.com/271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s://joohyeon.com/266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s://joohyeon.com/268 [본문으로]
  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s://joohyeon.com/272 [본문으로]
  10.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신규산업에 진입하는 기업은 자금을 조달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국내에서 이 산업에 대해 아는 투자자가 없다는 겁니다. 신규 진입기업은 스스로 시장조사를 하여 투자자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줄 유인을 갖게 됩니다. 이때, 시장조사를 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하는 데 반하여 이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기업도 새로운 산업에 먼저 진입하지 않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유익한 산업이 수립되지 않는 경우가 초래되고 맙니다.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s://joohyeon.com/272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1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15. 선거인단 득표는 0 [본문으로]
  16. 모든 경제학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동일한 의견을 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의 컨센서스는 이러했습니다. [본문으로]
  17. Nonetheless, the U.S. did not experience absolute deindustrialization in the 1970s. (...) If growth is resumed, job creation and investment in manufacturing will be stimulated, and reindustrialization will occur automatically. (...) The evidence does not support the contention that major shifts in U.S. industrial and trade policies are required to maintain external equilibrium. [본문으로]
  18. And third, does "deindustrialization" refer to an absolute decline in the volume of output from (or inputs to) manufacturing, or simply a relative decline in the growth of manufacturing outputs or inputs as compared to outputs or inputs in the rest of the economy? [본문으로]
  19.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 https://joohyeon.com/233 [본문으로]
  20. Measured by the size of its manufacturing labor force, capital stock and output growth, the U. S. has not experienced absolute deindustrialization over either 1950-73 or 1973-80. [본문으로]
  21. international trade is neither the only nor the most important source of structural change. And, as I will demonstrate, in many cases trade has simply reinforced the effects of demand and technological change. [본문으로]
  22. Nonetheless, as these data make clear, there has not been an erosion in the U.S. industrial base. The decline in employment shares have been the predictable result of slow demand and relatively more rapid labor productivity growth in manufacturing because of an acceleration in capital formation. [본문으로]
  23. The decline in the manufactured goods trade balance over the past two years is not the result of a sudden erosion in U.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brought about by foreign industrial and trade policies. [본문으로]
  24.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25. 앞에서 이야기했던 'Giant Sucking Sound' [본문으로]
  2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27.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28. Thus, the data suggest that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did not have much influence on American relative wages in the 1980s. In fact, because the relative price of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fell slightly,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actually nudged relative wages toward greater equality. No regression analysis is needed to reach this conclusion. Determining that the relative international prices of U.S.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actually fell during the 1980s is sufficient. [본문으로]
  29. Thus both the relative wages and the relative employment of nonproduction workers rose in American manufacturing in the 1980s. This combination indicates that the labor-demand mix must have shifted toward nonproduction labor. [본문으로]
  30. One possible explanation for this relative employment shift is that technological change was "biased" toward the use of nonproduction labor. [본문으로]
  31. (사족 : 숙련편향적 기술진보와 임금불균등에 관해서는 로런스&슬로터의 연구도 참고할만 하지만, 대표적인 논문은 따로 있습니다.) [본문으로]
  32. Berman, Bound, Griiches. 1993. Changes in the Demand for Skilled Labor within U.S. Manufacturing: Evidence from the Annual Survey of Manufacturers. QJE [본문으로]
  33. Alan Krueger. 1993. How Computers Have Changed the Wage Structure: Evidence from Microdata, 1984-1989. QJE [본문으로]
  34. 물론 '모든' 경제학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 일레로 1990년대 후반 로버트 핀스트라(Robert Feenstra)는 아웃소싱과 오프쇼어링의 출현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죠. 핀스트라의 논리는 추후 다른 글을 통해 살펴볼 계획입니다. [본문으로]
  35.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s://joohyeon.com/219 [본문으로]
  3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s://joohyeon.com/275 [본문으로]
  3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38. Standard economic analysis predicts that increased U.S. trade with unskilled labor–abundant countries should reduce the relative wages of U.S. unskilled labor, but empirical studies in the 1990s found only a modest effect. Has the situation changed in this decade, given the surge in imports from very low wage countries? [본문으로]
  39. (factor content analyses are limited by the level of disaggregation of the input-output table,) [본문으로]
  40. It seems a foregone conclusion that aggregation is a serious problem here; why not use more disaggregated data? The answer is that within the limits of current data, there is little that can be done. [본문으로]
  41. All these examples suggest a data problem: numbers showing a rapid rise in developing country exports, and Chinese exports in particular, within sectors that are skill intensive in the United States need to be taken with large doses of salt. [본문으로]
  42. The broad picture, then, is that the apparent sophistication of imports from developing countries is in large part a statistical illusion. [본문으로]
  43. Instead what seems to be happening is a breakup of the value chain that allows developing countries to take over unskilled labor–intensive portions of skilled labor–intensive industries. And this process can have consequences that closely resemble the Stolper-Samuelson effect. [본문으로]
  4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4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46.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s://joohyeon.com/216 [본문으로]
  47.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4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49.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s://joohyeon.com/275 [본문으로]
  50. if changes in such policies are adopted, they should be made on the grounds that they improve productivity and stimulate economic growth. They should not be undertaken on the basis of fears, based largely upon confusion about the sources of economic change, that policies which appear inadvisable on domestic grounds are required for the purposes of competing internationally. [본문으로]
  5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52. Just to be clear: even if growing trade has in fact had significant distributional effects, that is a long way from saying that calls for import protection are justified. First of all, although supporting the real wages of less educated U.S. workers should be a goal of policy, it is not the goal: for example, sustaining a world trading system that permits development by very poor countries is also an important policy consideration. Second, as generations of economists have argued, the first-best response to the adverse distributional effects of trade is to compensate the losers, rather than to restrict trade. Yet whether trade is, in fact, having significant distributional effects, rather than being an all-round good thing, clearly matters. [본문으로]
  53.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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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Posted at 2019. 1. 13. 23:26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이 기울어진 경기장을 만들었다


지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1]를 통해 누차 살펴봐왔듯이, 1980년대 미국은 대내적으로는 경기침체 · 대외적으로는 세계경제적 지위 감소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거시적 환경은 미국 내에서 보호주의 압력을 증대시켰습니다. 그리고 타겟은 '일본' 이었습니다.


'닫혀있는 일본시장(closed Japanese market)'[각주:2]은 미국 기업들의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낮은 관세율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일본정부의 지도 아래 시행되는 차별적 규제 · 일본기업들 간 폐쇄적 경영 등은 미국기업이 일본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GDP 대비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은 수십년이 지나도록 낮은 수준을 기록한 반면, 미국으로의 수출은 계속 늘려왔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기업들의 불만에 불을 부은 것은 '정부의 보호와 지원에 힘입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성장' 입니다. 


위에 첨부된 1985년 및 1990년 세계 반도체 회사 매출액별 순위를 보시면 NEC · Hitachi · Toshiba 등 일본 기업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반도체 세계시장에서 미국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였던 반면 일본기업은 30% 미만 이었습니다. 그러나 1985년 두 국가는 45%씩 동률이 되었고 때때로 일본이 우위를 점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D램 분야에서 일본의 성장이 돋보였습니다. 미국기업 점유율은 1978년 70%에서 1986년 20%로 하락했고, 일본기업은 30%에서 75%로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일본 반도체 기업의 성장에는 일본정부, 특히 통상산업성(MITI, Min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과 재무성(MOF, Ministry of Finance)의 보호와 지원이 있었습니다. 통산성과 재무성은 외국 기업의 일본시장 접근을 차단한 채, 선택받은 일본 기업들에게 금융 · R&D 지원을 대규모로 단행하였습니다. 또한, 외국기업이 기술이전을 하지 않으면 일본시장에 진입할 수 없게끔 막았습니다.


덕분에 일본 기업들은 미국 반도체 기업의 선진기술을 빌려오거나 무단으로 모방할 수 있었고, 대규모 투자를 위험을 줄인채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덤핑을 통해 해외시장에 아주 값싼 가격에 물건을 팔아 점유율을 늘려나갔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덤핑'(dumping) · '시장 접근'(market access) · '반도체 설계 특허권'(chip design patent) 이슈를 두고 불만을 품을 수 밖에 없었고, 일본정부로 인해 '기울어진 경기장 위에서 불공정한 경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공정무역'(fair trade)을 강조하는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이 1985년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주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첫번째 글에서 첫번째로 나온 문단) 


"국제적인 무역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이 규칙(rules)을 준수하고 개방된 시장(open market)을 보장하도록 애써야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자유무역(free trade)은 말그대로 공정무역(fair trade)이 된다."[각주:3]


"다른 나라의 국내시장이 닫혀있다면(closed)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it is no longer free trade). 다른 나라 정부가 자국의 제조업 및 농업에게 보조금(subsidies)을 준다면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우리 상품을 베끼도록 놔둔다면(copying) 이는 우리의 미래를 뺏는 것이고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하고(violate international laws) 그들의 수출업자를 지원한다면 경기장은 평등하지 않은 셈(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이 되며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산업 보조금을 집행하여 경쟁국에게 불공정한 부담을 안긴다면(placing an unfair burden)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각주:4]


"우리는 GATT 체제와 국내법 하에서 국제통상에 관련한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우리와 맺은 무역협정과 의무를 준수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만약 무역이 모두에게 불공정하다면, 자유무역은 이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ing practices)으로 인해 우리의 기업인들이 실패(fail)하는 것을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서(do not play by the rules) 우리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마는 사태(lose jobs)를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각주:5]


- Douglas Iriwn, 2017Clashing Over Commerce: A History of US Trade Policy, 606쪽 재인용


이제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목표는 '평평한 경기장'(level playing field)을 만들어서 국가 간에 '공정한 무역'(fair trade)을 하는 것이 되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 중 하나가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 왼쪽 : 1980년대,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로라 D. 타이슨 

  • 오른쪽 : 전략적 무역 정책 이론을 만들었으나, 현실 속 적용은 반대했던 폴 크루그먼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은 자유무역 체제의 한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1980년대 미국 내 무역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그녀는 반도체 · 전자 · 의약 등 고부가가치 최첨단산업(High Value-added, High-Tech)은 다른 산업보다 경제 전체에 더 이로움을 주기 때문에, 미국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전략적 무역 정책 이론을 만들어낸[각주:6]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정작 현실 속 적용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산업정책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대부분의 기준은 형편없으며 비생산적인 정책을 낳을 것이다. 경제이론상 정교한 기준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론적모형이 실제 정책처방으로 적절한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라며 산업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1980년대 미국-일본 간에 벌어진 '반도체 무역분쟁'을 살펴보면서 당시에 발생한 국제무역논쟁을 더 자세히 이해하도록 합시다. 




※ 1970년대 말, 보호 · 통제 · 미국기술 모방으로 급성장한 일본 반도체 산업


1960-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기관은 통상산업성(MITI)과 재무성(MOF) 입니다. 이들 기관은 기업들에게 자원을 인위적으로 할당하고 경영방향도 제시하는 '지도'(administrative guidance)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통산성(MITI)과 재무성(MOF)의 역할은 '일본 반도체 산업 발전과정'에서 더욱 돋보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일본 반도체 산업 뒷면에는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통산성은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연구개발을 위해 Fujitsu, Hitachi, Mitsubishi, NEC, Toshiba 등 선택받은 일본기업들에게 1976-79년동안 약 2억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통산성은 '외국기업의 시장접근 통제'와 '일본기업간 공동 R&D 지원' 정책을 통해 선진 미국 기술을 일본으로 옮겨왔고 일본 기업간 불필요한 경쟁을 억제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반도체산업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 통제된 접근 (Controlled Access)


통산성과 재무성은 일종의 '도어맨'(doorman) 역할을 하였습니다. 외국기업이 일본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재무성은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규제했고, 통산성은 특허 · 라이센스 형태의 기술수입(technology imports)을 통제했습니다. 


즉, 통산성은 외국기업의 시장진입 조건으로 '기술이전'(transfer of technology)을 강요했는데,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의 사례가 이를 보여줍니다.


1968년 TI는 일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SONY와 합작투자 협약을 맺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설립하려고 했었으나 일본정부가 허가하지 않아서 합작투자로 선회한 겁니다.  


이과정에서도 반도체 부품 중 핵심기능을 맡는 집적회로(IC) 설계 특허를 일본기업에게 라이센스 해주느냐를 놓고 줄다리기가 오고갔습니다. 일본정부는 TI가 가진 특허권 효력을 일시정지 시키면서 협상에 응하기를 압박했습니다. 결국 협상의 결론은 'TI와 SONY의 5:5 합작투자 및 TI의 일본시장내 점유율 최대 10%로 제한'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보러스(Michael Borrus) · 제임스 밀스타인(James Millstein) · 존 지즈먼(John Zysman) 등은 <미국-일본 간 반도체 산업 경쟁>(<U.S.-Japanese Competition in the Semiconductor Industry>)을 통해, "TI의 사례가 보여주는 기술확산 및 제한된 시장접근 전략은 일본기업이 미국의 기술수준을 모방할 수 있게 해주었다"[각주:7]고 말합니다.


▶ 일본 기업간 R&D 협력 (Collaborative R&D)


일본 통산성은 이렇게 들여온 미국 선진기술을 사용하는 방식마저 통제하였습니다. 정부는 일본기업들 간에 범용기술이 확산되도록 독려하였고, 특정 상품에만 사용되는 기술은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지원을 꺼렸습니다.


그리고 일본 기업간 (쓸데없는) 경쟁이 초래할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통제하였고, 기업들에게 각각의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 보호와 통제 그리고 미국으로부터의 기술이전으로 급성장한 일본 반도체 산업


1980년대가 되자 미국 반도체 기업의 일본시장 접근이 겉보기에는 보다 쉬워졌습니다. 미국산 반도체 상품 관세가 지속적으로 인하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시장은 여전히 폐쇄성을 띄고 있었습니다.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다른 전자상품도 생산했기 때문에 반도체 구매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미국산 반도체의 구매량과 종류를 통제하였고, 케이레츠(keiretsu)를 구성하고 있는 계열회사에게도 이를 강제했습니다. 


이런 보호 속에서 일본정부의 R&D 투자 금융지원은 확대되었고, 미국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수준을 재빠르게 끌어올렸습니다. 그 결과, 1984년 세계 RAM 생산에서 일본 기업들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제품 종류별로 60~90%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본 반도체 산업 발전은 '정부가 비교우위를 창출'(Creating Advantage)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글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비교우위'[각주:8]를 통해 일본 경제발전의 이론적 함의를 배웠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 <The Narrow Moving Band, The Dutch Disease, and The Competitive Consequences of Mrs.Thatcher - Notes on Trade in the Presence of Dynamic Scale Economies>를 통해, 과거부터 많은 양을 생산하여 지식을 많이 축적한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기업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생산에 착수하고 관세라는 보호막에 힘입어 자국 내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보호 기간 중에 쌓은 지식과 노하우로 언젠가는 상대적 생산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보호가 비교우위를 영구히 바꿔놓은 겁니다.


크루그먼은 일본정부의 산업정책을 사례로 논문을 썼던 것이고, 제목 중 'The Narrow Moving Band'는 한 산업을 발전시킨 뒤에 다른 산업으로 정책이 옮겨가는 모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1981년, 정치적행동을 시작한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IA)


이렇게 정부의 보호와 지원 아래 성장한 일본 반도체 업계가 1970년대 후반부터 세계시장을 점유해감에 따라, 미국 반도체 업계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고 정치적행동을 개시합니다. 이들은 1977년 반도체산업협회(SIA,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를 창립합니다.


SIA가 미국정부에 요구한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미국기업 보호와 지원. 둘째는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 입니다.


SIA는 반도체 칩 설계 특허권 보호, R&D 세제지원 등을 미국 정부에 요구하였고, 덤핑(dumping)과 시장접근(market access) 등 일본의 불공적 무역을 정치적으로 이슈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이목을 끌기 위하여 '공정무역'(fair trade)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를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는데, 이 단어들은 1980년대 미국-일본 간 무역분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 미국정부는 우리 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라!



당시 미일 반도체 분쟁은 메모리칩을 중심으로 발생했습니다. 1985년 기준 전체 반도체 상품 중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8%였고, 특히 DRAM 하나가 7%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특징은, ①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R&D 고정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며(large fixed costs), ② 제품 출시 사이클이 매우 짧으며(rapid product cycles) ③ 기업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모리 반도체 세대 전환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unprepared transition) 입니다. 


① 앞서 말했듯이, 일본정부는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개발에 4년간 2억달러를 투자했으며, 전체 반도체 산업에 들어간 직접적 · 비집적적 금융지원은 1976-82년간 약 5억~2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②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DRAM 메모리는 짧은 주기로 고성능 상품이 출시되는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 1K 램이 등장한 이래 1973년 4K, 1976년 16K, 1979년 64K, 1982년 256K, 1985년 1M, 1989년 4M, 1991년 16M 램이 개발되었죠. 


③ 이때 제품의 상용화는 개발이 완료되었을 때가 아니라 생산비용이 이전세대에 인접한 수준으로 떨어졌을 때 이루어지는데, 기업은 이 시점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1976년 개발된 16K 상품은 생산비용이 4K와 유사한 수준까지 하락한 1978년이 되어서야 상용화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은 '반도체 업계 R&D 투자는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드러내줍니다.


본 블로그의 다른글 '창조적파괴를 통한 경제성장 모형'[각주:9]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성공한 기업이 누리고 있는 독점이윤은 오직 다음 혁신이 발생할 때까지만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혁신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혁신에 성공했을 때 기쁨을 누리는 기간이 짧아짐을 의미합니다.


즉, ① 대규모 R&D 투자를 단행해야 적어도 뒤처지지는 않는데 ② 짧은 제품 출시주기는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도 짧게 만들며 ③ 정확히 언제 수익을 실현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현재 상품이 구세대로 전락할지 정확한 예측은 힘듭니다. 


여기서 미국기업이 가진 불만은 "일본기업은 정부의 보호 아래 투자위험성을 줄이고 있는데, 미국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고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공동 R&D 투자를 통해 위험을 줄이고 싶었는데 反독점법은 이를 규제하고 있었으며, 미국정부는 일본기업의 특허권 침해도 수수방관 하고 있었습니다.


SIA가 반도체 칩 설계 특허권 보호, R&D 세제지원 등을 미국 정부에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미국정부는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게끔 압박하라!



SIA가 더욱 중점을 둔 것은 '일본의 불공적 무역관행 시정' 이었습니다. 아무리 미국정부가 기업들을 도운다 하더라도, 일본기업의 덤핑과 일본시장 접근 제한이 계속된다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반도체 업계의 불만은 반도체 산업 침체기에 더욱 높아졌는데, 특히 1981년 DRAM 가격 하락으로 인한 침체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일본기업의 덤핑 → 가격 하락 → 치킨 게임 → 미국 반도체 기업 침체 및 퇴출'이 발생하면서, 미국 기업들은 일본정부를 상대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상무부 부차관보을 역임했던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Clyde V. Prestowitz)는 다음과 같이 회고 합니다. "시작은 1981년 가을이었다. 미국 반도체 업계를 대변하는 사람이 워싱턴에 빈번하게 출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일본 덤핑의 종료 · 일본이 미국에서 물건을 파는 것과 동일한 기회를 일본시장에서 갖기 · 반도체 설계 특허 침해 방지 등을 요구하였다."[각주:10]




※ 최첨단산업의 중요성 및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왜 유독 '반도체 산업'을 둘러싸고 미국-일본 간 무역분쟁이 크게 벌어진 것일까요? 물론 당시 전자 · 자동차 · 철강 · 섬유의복 등등 다양한 산업들도 일본 및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따른 경쟁심화에 불만을 가졌으나, 대중들의 주목을 유독 끈 것은 반도체 였습니다.


미국 대중들은 반도체 산업을 '최첨단산업'(High-Tech Industry)으로 인식하였고, 일본기업에게 최첨단산업 주도권을 내준다면 미국의 미래도 빼앗길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 로라 D. 타이슨과 그의 1984년 저서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최첨단 산업 내 무역분쟁』


최첨단산업의 중요성 · 국가경쟁력 상실 · 정부개입의 필요성 등의 인식이 확산되게끔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 입니다. 그녀는 1984년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최첨단 산업 내 무역분쟁』(『Who's Bashing Whom? - Trade Conflict in High-Technology Industries』)과 여러 논문·보고서를 통해, '일본정부의 불공정 무역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미국 최첨단 산업의 현실'을 묘사했고, '미국정부가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왜 이러한 주장을 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합시다.


▶ 반도체 · 컴퓨터 등 최첨단 산업이 다른 산업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이유


타이슨은 반도체 · 컴퓨터 등의 '최첨단산업'(high-tech)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미국정부가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최첨단산업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격이 전체 경제에 이로움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성격은 '초과이윤'(excess profits) 및 '고부가가치'(high value-added) 입니다. 반도체 등 최첨단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막대한 고정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진입장벽이 존재합니다. 만약 진입을 한다고해도 고정비용을 회수할만큼의 이윤을 거두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됩니다. 결국 이미 자리를 잡은 한 개 혹은 소수의 기업만이 시장에 존재하여 양(+)의 이윤을 누리게 됩니다.


두번째 성격은 'R&D 활동의 파급영향'(spillovers from R&D activities) 입니다. 반도체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R&D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기술 및 축적된 신지식이 다른 산업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지식의 외부성[각주:11] · R&D 그 자체의 중요성[각주:12] 등을 강조한 신성장이론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도 최첨단산업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세번째 성격은 '연계가 가져다주는 외부성'(Linkage Externality) 입니다. CPU와 RAM 등 반도체 부품은 여러 제품에 투입요소(input)로 들어갑니다. 이때, 반도체 산업은 기술이 발전하고 경험이 축적될수록 생산성이 향상되어 비용이 감소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 발전은 다른 제품 생산비용을 감소시키는 긍정적 영향을 가져다줍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통해 미국 기업을 보호·지원 해야하는 이유


이렇게 가치 있는 최첨단산업을 보호하고 키우기 위해서 자유무역 원리에 위배되는 무역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을까요? 특정 산업이 가치가 있다는 것과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 한다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최첨단 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생산자 간 전략적 고려가 행해지는 과점시장'(strategic behavior in oligopoly market) 이라는 점 입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을 소개한 지난글[각주:13]에서 이야기 했듯이, 과점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의 선택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리는 전략적 행위를 합니다. 이로인해 상대방 이윤이 늘어날 때 자신의 이윤은 감소하는 '전략적 대체관계'가 나타납니다. 이는 정부의 개입으로 초과이윤을 만들어내는 산업에서 외국기업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increase a country's share of rent in a way that raises national income at other countries' expense)는 함의를 안겨다 줍니다. 


로라 D. 타이슨은 "미국 최첨단기업의 세계시장 속 경쟁 지위가 약화됨에 따라, 보호와 지원을 바라는 요구가 증대되었다"[각주:14]고 말합니다. 그리고 "최첨단산업의 특별한 특징-규모의 경제와 가파른 학습곡선-을 고려하면, 기업의 전략적 무역 접근 요구가 증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외국시장 접근 여부와 외국 기업 및 정부의 행위는 국내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은 개방되어 있고 외국 시장은 닫혀있다면, 외국 경쟁자는 자국내 생산량 증대 덕분에 효율성과 생산의 학습효과을 누리게 되는 반면, 국내 경쟁자는 쪼그라든다."[각주:15]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개입하여 외국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내 기업으로 이전시키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의 필요성이 부각됩니다.


타이슨이 생각하는 전략적 무역 정책은 ① '국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을 정립하고(internationally accepted rules of the game for competition), 이를 외국에게 강제하고 압박하기 위하여 ② 달성해야할 부문별 성과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specifying sectoral outcomes) 입니다.


이전글에서 살펴본 루디 돈부쉬[각주:16]가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은 다음 10년간 연간 15%씩 증가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를 말한 것과 타이슨의 주장은 약간 다릅니다. 돈부쉬는 경제 전체 혹은 대분류 산업을 타겟으로 결과를 달성하기를 원했다면, 타이슨은 구체적인 산업을 타겟으로 규칙을 먼저 정립하는 방식을 선호하였습니다. 결과를 추구하는 건 어디까지나 외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 현행 GATT 체제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타이슨은 당시 국제무역 체계였던 GATT 하에서는 전략적 무역 정책이 추진될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약 120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GATT 시스템상 빠르게 진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GATT는 관세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보조금 · 덤핑 등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s)이나 지적재산권 침해로 인한 피해(intellectual property)를 규제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타이슨은 반도체 부문을 대상으로 미국-일본 간 양자협상(bilateral agreement)을 통해 공정한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 이것은  '공정한 게임'(fair play)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무조건적인 보호무역정책(unconditional protectionism)보다 전략적 무역 접근(strategic trade approach)이 미국정부에게 우호적일 수 있다고 바라봤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전략적 무역 정책은 일본에게 '공정한 게임'(fair play)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보호주의가 아니라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여 평평한 경기장을 만드는 것(level playing field) 입니다. 


둘째, 협정을 통한 규칙 제정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수많은 외국정부들이 최첨단산업이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자국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늘어만 갔습니다. 결국 국가간 협정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 정부가 해야할 선택은 자유화와 개입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


로라 D. 타이슨은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였으나, 국제무역이론이 상정하는 세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녀는 "현실 속 국제무역 세계는 자유무역 세계가 아니며,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무역을 관리한다(manage)"[각주:17]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무역론자들이 만든 GATT의 규제 또한 정부간 협상의 결과물 입니다.


그녀는 "일반론인 자유무역 이론을 현실에서 말해서는 안되며(no general theoretical principles), 정책결정권자가 해야하는 선택은 순수한 자유무역 vs 순수한 보호무역이 아니라, 자유화와 개입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다(choices about the appropriate combination of liberalization and government intervention). 이것이 국민후생을 증대시키고 더 개방된 국제무역 시스템을 지속하게끔 만든다."[각주:18]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다른 선진 산업국가와 최첨단산업 규칙(rules)을 둘러싼 관리무역협정(managed trade agreement)을 맺는 것이 현명하며, 이를 통해 '특정 산업에서 협력과 표준을 달성할 수 있다'[각주:19]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 1986년, 미국-일본 반도체 협정 체결 


1980년대 초중반은 이처럼 미국 내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요구하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있었고, 반도체 업계의 요구에 회의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처마다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기업계와 노동계를 대표하는 상무부와 노동부는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기를 원했으나, 냉전기 동맹 · 안보를 중요시했던 국무부 등은 동맹국인 일본을 압박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1985년 이었습니다. 


반도체 업계는 가격 하락으로 인한 또 다른 불황이 시작을 겪게 되었고 특히 메모리 칩 시장에 집중되었습니다. 반도체 판매는 20% 감소했고 DRAM은 60%나 줄었습니다. SIA는 다시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였고, 1985년 6월 14일 일본 반도체 기업을 '1974년 통상법 제301조' 위배혐의로 미 무역대표부(USTR)에 제소합니다. 


'1974년 통상법 제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란 'unreasonable, unjustifiable, discriminatory'한 외국의 무역행위를 USTR이 조사한 이후 대통령의 제재조치가 실시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법안입니다. 1984년, unreasonable 정의에 '공정하고 동등한 시장 기회를 부정하는 어떠한 법안, 정책, 관행'(any act, policy, or practice which denies fair and equitable market opportunities)을 추가함으로써, 일본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일방적 보복을 할 수 있는 법률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재선에 성공하고 1985년 출범한 레이건 행정부 2기는 이전과 달리 일본의 불공정 행위를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달러가치는 최고수준을 기록하며 무역적자가 계속 심화된 경제 환경도 정책방향을 선회하게 만들었습니다.


1985년 9월, 레이건 대통령의 'fair trade' 연설이 나오게 되었고,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일본 반도체 업계의 행태를 크게 문제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86년 초, 미국 반도체산업 협회(SIA) · 무역대표부(USTR)와 일본 전자산업 협회(EIAJ) · 통상산업성(MITI) 간 시장진입(market access) · 덤핑(dumping)을 주제로 한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EIAJ는 301조 보복을 종료시키고, 시장접근과 덤핑 이슈에 대해 구체적인 보장을 하지 않은채 협상을 끝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SIA는 덤핑을 확실히 방지하고, 실제적인 시장접근('real' market access) 보장을 얻어내지 않는 한 협상을 마무리 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일본에서 판매할 기회를 얻는 게 아니라 실제 판매의 증가(actual realization of sales)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1986년 미국-일본 반도체 협정'(1986 U.S.-Japan Semiconductor Trade Agreement)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협정과정에서 '향후 5년내 일본시장에서 외국산 반도체 상품 점유율 20%를 기록한다'는 구체적인 성과를 강요하는 내용이 다루어졌고, 1991년 반도체 협정 개정에서 공식적으로 문구가 삽입되었습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둘러싼 비판, 경제학자들의 노파심 때문일까?


1980년대 자유무역에서 전략적 무역으로의 미국 무역정책 전환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낳았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일본에게 공정한 게임을 요구했고, 반도체 협정을 통해 성과를 이루어냈으니 된 거 아니냐?" 라고 하기에는 더 생각해봐야 할 논점들이 존재했습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이론화 하였으나 실제 적용에는 회의적이었던 폴 크루그먼

  • 1983년 잭슨홀미팅에서 '산업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다

  • 크루그먼의 발표 보고서 <Targeted Industrial Policies: Theory and Evidence>


결국 전략적 무역 정책의 현실 적용을 둘러싸고 경제학자들 간에 논쟁이 거세게 붙게 됩니다. 1983년 <산업변화와 공공정책>(<Industrial Change and Public Policy>)을 주제로 한 잭슨홀미팅이 논쟁이 벌어진 장소였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Targeted Industrial Policies: Theory and Evidence> 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주목을 끌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신무역이론[각주:20]생산의 학습효과[각주:21] · 전략적 무역 정책[각주:22] 이론화를 이끌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크루그먼은 "향후 10년간 산업을 targeting 하는 정책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산업이 targeted 되어야 하는가? 결국 중심 이슈는 선택의 기준(criteria for selection)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크루그먼은 "산업정책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대부분의 기준은 형편없으며 비생산적인 정책을 낳을 것이다. 경제이론상 정교한 기준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론적모형이 실제 정책처방으로 적절한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각주:23]라며 산업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전략적 무역 이론의 개발자가 왜 실제 정책 처방에 회의적인지, 그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이해해 봅시다.


▶ 대중적인 기준(Popular Criteria)이 가진 문제점


로라 D. 타이슨은 최첨단산업을 타겟으로 한 산업·무역정책이 실시되어야 하는 근거로 고부가가치 · 연계가 가져다주는 외부성 · 미래 경쟁력 등을 들었는데, 크루그먼은 이러한 기준들이 다 타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① 1인당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 (High value-added worker)


: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택하여 육성하자는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중이 높아질수록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크루그먼은 "왜 산업별로 근로자 1인당 부가가치가 다르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특정 산업이 1인당 부가가치가 높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자본이 많이 투입되었을 뿐이라는 게 크루그먼의 설명입니다. 


따라서, 이들 산업의 자본/노동 비율은 매우 높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한다면 주어진 투자 수준에서 더 적은 사람이 고용될 것이고 실업률은 올라갑니다. 또한, 한계생산체감에 의해서 경제성장률은 점점 떨어집니다. 결국 고부가가치 부문 투자를 독려하는 산업정책은 실업률 상승과 느린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이 크루그먼의 주장입니다.


② 연계된 외부성을 가져오는 산업 (Linkage)


: 앞서 타이슨은 반도체 등은 다른 산업의 투입요소(input)로 쓰이기 때문에, 이들 산업이 발전하면 타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습니다. 당시 다른 학자들 또한, 일본의 경제발전 성공요인을 철강 · 전자 · 반도체 등 투입요소의 성격을 지닌 산업을 육성했다는 점에서 찾곤 했습니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시장을 왜곡시키는 요인이 없다면, 시장은 알아서 연계산업에 필요한 적절한 양의 투자를 집행했을 것"[각주:24]이라고 말하며, 시장원리를 강조합니다. 물론, 연계산업 진흥을 방해하는 시장실패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산업의 투입요소로 작용한다는 기준만으로 산업정책을 시행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합니다[각주:25]


③ 미래 경쟁력 (Future Competitiveness)


: 반도체와 같은 최첨단산업은 말그대로 최첨단이기 때문에, 미래 경쟁력을 위해 육성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궁극적 경쟁력은 산업정책 대상을 선정할 때 유용한 기준이 아니다. 이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게 될지 아닐지 알더라도, 이것은 그 산업이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각주:26]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유치산업보호론 논쟁[각주:27]을 통해서 이미 살펴본 바 있습니다. 유치산업 정책은 '특정한 경우'에만 타당하며, 특정한 경우란 외부성 등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때를 의미합니다. 즉, 단순히 잠재적 성장 가능성 등만으로 산업정책을 시행해서는 안된다는 게 크루그먼의 주장입니다.


▶ 더 정교한 기준(More Sophisticated Criteria)이 가진 문제점


전략적 무역 정책은 '규모의 경제 · 외부성 · 과점 등 불완전경쟁'을 기반[각주:28]으로 하고 있습니다. 불완전경쟁 시장구조는 자유무역 정책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통찰은 제공하였지만, 항상 전략적 무역 정책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지난글에서 짚었듯이, 꾸르노 모형 · 스타겔버그 모형 등등을 사용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의 논리를 그럴싸하게 설명 하였으나, 정부는 개별 기업의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혹시 어떤 행위를 선택할지는 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어느 정도의 보조금을 지원해야 외국기업의 행동을 자국기업에게 유리하게 변경시킬지는 알지 못합니다. 


즉, 전략적 무역 정책은 모형의 파라미터 값의 변화나 기본 전제가 변하면 결론도 크게 달라지며, 크루그먼은 이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 보호주의 정책이 자유무역 정책을 대체할 가능성에 노파심을 갖는 경제학자들 

 

전략적 무역 정책을 만든 경제학자가 현실 속 실행을 반대한다는 건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에게 이는 매우 자연스럽고 권장할만한 행위 입니다. 왜냐하면 경제학 이론과 학자들의 주장은 '특정한 조건이 주어져있을때'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것을 고려치않고 남용할 경우 해로운 결과를 사회에 안겨다준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레이건 행정부 시기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마틴 펠드스타인은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가 무역적자의 원인이다."[각주:29]라고 말하며 정부의 감세정책을 비판했으나, 레이건 정부 인사들이 감세정책을 고안해낸 건 그의 연구 덕분이었습니다. 펠드스타인은 "조세가 경제주체의 행위를 왜곡시킨다"는 논문을 출판했었는데, 보수 정치인들은 이를 "그러므로 세금을 없애야한다"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건 펠드스타인이 의도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은 정책입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을 만든 폴 크루그먼 ·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도 이 점을 우려하여 논문 말미에 "이건 이론적 논의일 뿐이다"며 주의를 주었으나, 타이슨 및 기타 인사들은 "자유무역 정책은 오늘날에 맞지 않다. 그러므로 정부의 개입이 꼭 필요하다."로 선전했습니다. 이것은 신중한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행태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기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자유무역 주장을 고수하는 아이러니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1980년대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하며 옹호했던 경제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자유무역 원리가 가진 한계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 문제로 인식하는 건, 그들의 주장이 보호주의자들의 선전으로 가로채질 가능성 입니다. 


우리는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첫번째 글[각주:30]에서 '노파심을 가지고 자유무역 원리를 계속 설파해야 하느냐 vs. 자유무역의 문제점을 대중들에게 신중히 설명해야 하느냐'의 논점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2018년 출판된 『Straight Talk On Trade』 서문을 통해,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중한 분석이 보호주의자들에게 남용되어 '야만인들의 탄약'(ammunition for the barbarians)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에 노파심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노파심이 오히려 대중들의 외면을 부른다고 지적합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대중논쟁장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가로채질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학자들은 국제무역에 있어 한 가지 방향만 말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논쟁 장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 그들은 또한 무역의 옹호자로 나설 기회도 잃고 만다."


우리는 앞으로 살펴볼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 시리즈, 즉 오늘날 중국 제조업의 발전과 교역확대가 초래하는 무역논쟁을 볼 때에도, 노파심으로 인해 자유무역 원리만을 고수하는 경제학자들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공격적 일방주의 및 GATT 한계가 가지는 의미는?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IA)가 일본 반도체기업을 제소할 수 있었던 근거는 '1974년 통상법 제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공정 무역 관행 여부를 판단한 것은 당시 국제무역 시스템이었던 GATT가 아닌 미국정부 였습니다. 미국정부가 자국의 무역이익 침해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고 일본을 상대로 보복조치를 취한 겁니다.


GATT는 말그대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을 의미하는데, 1980년대 벌어진 무역분쟁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GATT는 주로 관세를 규제하는데, ① 시 국가들은 관세가 아닌 보조금 · 덤핑 등 비관세장벽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보호했습니다. 또한, ② 국가간 무역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③ GATT는 서비스산업 · 지적재산권 등 당시 미국이 우위를 가지고 있는 부문을 다루지 못했고, 이는 미국의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일본 등 다른나라들이 자국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데 GATT 체제 속에서 대응을 하지 못하였으며, 서비스산업 무역자유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자국의 법률인 1974년 통상법 제301조를 근거로 일방적 보복을 행사하였고, 이후 1988년 종합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 속 '슈퍼301조'(Super 301 Article)를 제정하여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 행보를 강화해 나갑니다.


이처럼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자국의 이익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GATT 체제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격적 일방주의 행보'를 보였다는 점 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글에서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본 이후,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으로 넘어가 오늘날 미국-중국 간 무역분쟁을 이해합시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joohyeon.com/277 [본문으로]
  3. to make the international trading system work, all must abide by the rules. All must work to guarantee open markets. Above all else, free trade is, by definition, fair trade. [본문으로]
  4. When domestic markets are closed to the exports of other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their manufacturers and farmers so that they can dump goods in other market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permit counterfeiting or copying of American products, it is stealing our future, and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assist their exporters in ways that violate international laws, then 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 and there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industries for commercial advantage and underwrite costs, placing an unfair burden on competitors, that is not free trade. [본문으로]
  5. we will take all the action that is necessary to pursue our rights and interests in international commerce under our laws and the GATT to see that other nations live up to their obligations and their trade agreements with us. I believe that if trade is not fair for all, then trade is free in name only.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businesses fail because of unfair trading practices abroad.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workers lose their jobs because other nations do not play by the rules.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7. ''the strategy of technological diffusion and limited market access, implied in the TI story . . . enabled Japanese firms roughly to mimic technological developments in the United States.'' 폴 크루그먼이 편집한 '전략적 무역 정책과 신국제경제학'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9.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9 [본문으로]
  10. It was at this juncture in the fall of 1981 that representatives of the U.S. semiconductor industry began making regular trips to Washington. They asked not for protection but for an end to the Japanese dumping, for the same opportunity to sell in Japan as the Japanese had in the United States, and for an end to Japanese copying of new chip designs.- 출처 : Irwin, 1996 재인용 [본문으로]
  11.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12.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14. demands for protection and support by high technology producers have intensified as their competitive position in world markets has weakened. [본문으로]
  15. The special features of high-technology producers make their growing demands for strategic trade approaches understandable. 32 As just noted, such producers are often characterized by large economies of scale and steep learning curves. Under these circumstances, access to foreign markets and the behavior of foreign firms and governments can directly affect the profitability of domestic producers. In industries in which the U.S. market is open and large foreign markets are closed, foreign competitors may be able to achieve more efficient scale and learning advantages as a result of increased volume in domestic and overseas markets, while domestic competitors are squeezed into a portion of the domestic market. [본문으로]
  1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joohyeon.com/277 [본문으로]
  17. In reality, the world of inter national trade is not a world of free trade. Governments control or manage trade in various ways. [본문으로]
  18. For informed policy making, the real choices are not choices between pure free trade and protection-which most economists incorrectly equate with managed trade-but choices about the appropriate combination of liberalization and government intervention that will improve national economic welfare and sustain a more open, international trading system over time. [본문으로]
  19. greater coordination and standardization of behavior in specific industries [본문으로]
  20.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2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23. The answers I will suggest are not encouraging. Most criteria for targeting suggested by the advocates of industrial policy are poorly thought out and would lead to counterproductive policies. While there are more sophisticated criteria suggested by economic theory, we do not know enough to turn the theoretical models into policy prescriptions. [본문으로]
  24. What does formal economic theory have to say? In textbook economic models, the fact that some industries are inputs into other industries is not in and of itself a source of market failure. In the absence of other distorting factors, the market will in theory produce exactly the appropriate amount of investment in linkage industries. [본문으로]
  25. The fact that an industry provides inputs into other industries does not in and of itself mean that markets underinvest in that industry. There may be market failures which do make it desirable to promote a linkage industry, but the fact that an industry provides inputs to the rest of the economy gives us no help in deciding whether or not it should be targeted. [본문으로]
  26. Unfortunately, knowing that an industry will or might become competitive tells us nothing about whether it should be promoted.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29.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0.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joohyeon.com/2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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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Posted at 2019. 1. 6. 23:1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달라진 시장구조에서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 정책은 타당한가


1980년대 초중반,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논쟁은 "오늘날 시장구조에서 자유무역이 최선의 정책일까?"에 대한 물음과 답변의 연속입니다. 


당시 미국이 직면했던 거시경제 환경[각주:1], 세계 GDP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 감소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심화 그리고 일본의 부상은 보호주의 압력을 키웠습니다.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전통 경제학의 설명을 따랐습니다.[각주:2] 재정적자로 인한 총저축 감소가 실질 금리를 인상시켜 자본유입 · 강달러 · 무역적자를 차례로 초래했다는 논리 입니다. 그리고 무역적자를 국가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무역수지는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하는 기초적인 회계등식의 결과물일 뿐인데다가, 통화가치 및 임금 하락을 통해 본래의 비교우위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 기업 경영자들이 보기엔 경제학자들의 설명은 현실을 모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각주:3]에 불과했습니다.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뺏기면 다시 되찾기 힘든데,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설명은 책에서만 타당합니다. 경영자가 직면한 국제무역 환경은 비교우위가 아닌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지배하는 곳 입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경영가의 관점을 수용[각주:4]하여 '한번 획득한 비교우위가 자체 강화되는 모형'을 제시하였습니다.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가 존재할 경우,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 즉 생산을 통해 축적해온 경험과 지식이 현재의 생산성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한번 시장을 내준다면 차이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 독점 및 과점의 불완전경쟁 시장(imperfect competitive market)

▶ 동일한상품이 서로 교환되는 산업내무역(intra-industry trade or two-way trade)


그럼에도 여전히 기존 국제무역이론은 변화한 시장구조와 무역패턴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리카도[각주:5] 및 헥셔-올린[각주:6]의 비교우위론은 무수히 많은 생산자가 존재하는 완전경쟁시장(perfect competitive market)을 기반으로, 개별 국가들이 서로 다른 산업에 특화한 후 상품을 교환하는 산업간무역(inter-industry trade)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1970-80년대 시장구조와 무역패턴은 전통적인 국제무역이론이 만들어진 시기의 것과는 달랐습니다.


규모의 경제와 외부성이 초래한 불완전 경쟁시장 ,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제시장에 소수의 기업만 존재하는 독점 혹은 과점 (monopoly or oligopoly) 형태를 띄는 산업이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개별 국가들이 동일한 상품을 서로 교환하는 산업내무역이 활발해 졌습니다.


미국과 일본 간 무역분쟁을 낳은 산업은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이었습니다. 이들 산업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고정투자가 필요하며, 생산량이 많은 기업만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결국 개별 국가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 형태로 기업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소수의 기업만이 존재합니다.


과거에는 '선진국은 제조업 · 개발도상국은 1차 산업'에 각각 특화하여 산업간무역 패턴을 보였던 것과 달리, 1970-80년대에는 개별 국가들이 동일한 제조업에 특화한 후 서로의 상품을 교환하는 산업내무역 패턴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미국은 반도체를 일본에 수출하는 동시에 일본도 미국에 반도체를 수출합니다.


이때 독과점 시장구조와 산업내무역 증대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시장개방 이전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이 개방되자 기업들은 생각합니다. "외국에도 물건을 팔면 이익이 늘어나지 않을까?". 외국 수출을 통한 시장확대는 생산량 증가를 통해 규모의 이익을 키웁니다. 그리고 이미 포화상태인 자국을 벗어나 외국에 상품을 파는 건 한계수입이 더 큽니다. 


따라서, 개별 국가 내의 독과점 기업들은 이윤 증대를 위해 외국 시장으로 침투하고(business stealing), 그 결과 국적이 다른 기업이 만든 동일한 상품이 국경을 넘어 교환되는 산업내무역 패턴이 형성되게 됩니다. 


(사족 : 산업내무역 발생 이유로 상품다양성 이익를 꼽는 폴 크루그먼의 설명[각주:7]과는 다른 원인)


▶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변경시키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이렇게 달라진 시장구조와 무역패턴은 '정부가 개입하여 자국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적극적 무역정책'의 정당성을 키웠습니다. 


특히 세계시장에 소수의 기업만 존재하는 과점경쟁 구도(oligopoly)에서 '무역정책으로 자국·외국 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변경시킴으로써(alter a strategic choice), 자국기업의 초과이윤(rent)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주 : 여기서 전략이란 '상호의존성에 기반을 둔 선택'을 의미합니다. 생산자가 이윤극대화를 위한 결정을 할 때, 다른 생산자의 결정도 고려한다는 의미 입니다.)


이른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 첫번째, 두번째 : 제임스 브랜더 (James A. Brander), 바바라 스펜서 (Barbara Spencer)

  • 세번째, 네번째 :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엘하난 헬프만 (Elhanan Helpman)

  • 아래 왼쪽 : 크루그먼이 편집한 1986년 단행본 <전략적 무역정책과 신국제경제학>

  • 아래 오른쪽 : 헬프만과 크루그먼이 편집한 1989년 단행본 <무역정책과 시장구조>


1980년대 초중반, 전략적 무역 정책 발전을 이끈 주요 경제학자는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 · 폴 크루그먼 · 엘하난 헬프만 등이었습니다. 


특히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는 1981년 논문 <잠재적 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Tariffs and the Extraction of Foreign Monopoly Rents under Potential Entry>),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International R&D Rivalry and Industrial Strategy>),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Export Subsidies and International Market Share Rivalry>) 등을 통해 전략적 무역 정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과점시장 속 전략적 무역정책은 자국 및 외국 기업의 행위를 변경시켜 이로운 결과를 불러옵니다. 그 경로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 보호와 자국시장 효과(Protection and Home Market Effects) 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독과점 수확체증 산업(increasing return)이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산량이 필수적 입니다. 자국 정부의 보호 아래 국내시장에서 생산량을 증가시키면, 이를 발판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무역정책 성공의 관건은 '자국기업이 국내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외국기업의 행위를 변경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하면 동종산업 외국기업의 전략을 변경시킬 수 있고, 그 결과 수입보호는 수출진흥의 효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러한 효과를 알고, 과거 일본과 같은 개발도상국은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 규모의 경제를 가지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했습니다. 


둘째, 이윤을 자국기업으로 이동시키는 보조금(Profit-Shifting Subsidies) 입니다. 


장기적으로 이윤이 0이 되는 완전경쟁시장과는 달리 완전경쟁인 독과점 시장에서는 초과이윤(rent)이 생깁니다. 이때 보조금을 통해 자국기업을 지원하면 외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자국기업에게 이동시키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무역정책 성공은 간건은 '자국기업의 변경된 행위가 외국기업에게 신빙성 있는 위협이 되느냐'(credible threat)에 달려있습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하면 자국기업의 변경된 전략이 외국기업에게 신빙성 있게 인식하게끔 만들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미국 등 선진국은 자국기업의 R&D 투자를 정부가 보조함으로써 신빙성 있는 위협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논리는 자국기업을 단순히 보호 · 지원하는 전통적인 무역정책의 틀을 벗어나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의 전략적 행동을 변경함으로써, 외국기업의 생산량과 초과이윤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의 생산량과 초과이윤을 늘리는 특징(increase a country's share of rent in a way that raises national income at other countries' expense)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독점 및 과점 등 불완전경쟁 시장 하에서의 전략적 무역정책이 어떻게 외국기업의 행위를 변경시켜 자국기업을 돕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이론) 완전경쟁 시장과 불완전경쟁 시장은 어떻게 다른가?


전략적 무역 정책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과점 시장구조에 관한 기본적인 경제학이론이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본격적인 내용 파악에 앞서 이론 학습을 먼저 합시다. 첨부한 수식이 이해가 어려우신 분들은 글만 읽어 내려가시면 됩니다 !!!


▶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불완전경쟁 시장 (excess return / rent)


완전경쟁(perfect competitive)이란 다수의 생산자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독점 · 과점 등 불완전경쟁(imperfect competitive)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의 생산자만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완전경쟁 시장과 불완전경쟁 시장에서 주목해야 하는 차이는 '초과이윤이 존재하느냐(excess return)' 입니다[각주:8]. 완전경쟁 시장 속 생산자는 장기적으로 0의 이윤을 가지는 반면, 독과점 생산자는 양(+)의 이윤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생산자들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완전경쟁 시장은 생산자들의 진입 · 퇴출이 자유롭습니다.


현재 주어진 시장 가격이 장기 평균한계비용보다 높다면(P>LMC), 양(+)의 이윤을 기대하는 생산자들이 신규 진입하게 되고, 이로 인해 늘어난 생산량이 다시 가격을 하락시켜 장기적으로 0의 이윤(P=LMC)이 됩니다. 반대로 현재 주어진 시장 가격이 장기 평균한계비용보다 낮다면(P<LMC), 음(-)의 이윤을 기록하고 있는 생산자들이 차례대로 퇴출되고, 이로 인해 줄어든 생산량이 다시 가격을 상승시켜 장기적으로 0의 이윤(P=LMC)이 됩니다.


즉, 자유로운 시장 진입과 퇴출의 과정을 통해, 완전경쟁시장의 장기균형은 0의 이윤이 됩니다.


반면, 불완전경쟁 시장에서는 생산자들의 진입 · 퇴출, 정확히 말하면 진입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대규모 고정비용 · 네트워크 효과와 같은 외부성 등으로 인해 아무나 진입하지 못합니다. 만약 진입을 한다고 해도 일정 수준의 생산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음(-)의 이윤을 기록하기 때문에 곧바로 퇴출됩니다. 결국 이미 자리를 잡은 한 개 혹은 소수의 기업만이 시장에 존재하여 양(+)의 이윤을 누리게 됩니다.


즉, 자유로운 진입이 불가능한 독점 · 과점 시장에서 기존 생산자들은 초과이윤(excess return) 다르게 말해 지대(rent)를 누립니다.


▶ 전략적 행위가 필요한 과점시장 (strategic behavior under oligopoly)


이때 시장에 한 개의 기업만 존재하는 독점과 두 개 이상 소수의 기업만 있는 과점은 또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전략적 행위의 필요성' 입니다.


독점 생산자는 말그대로 시장 안에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생산자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독점가격과 생산량을 결정하면 됩니다. 


이와 달리, 과점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의 선택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리는 전략적 행위(strategic behavior)가 필요합니다. 


왜 그래야만 하냐면, 상대방의 선택을 고려치 않고 결정을 하면 이윤극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과점 시장에서 시장 전체 총생산량 증가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생산량을 고려하지 않고 독점 생산자처럼 자신의 생산량을 결정하면, 상품의 시장가격이 크게 하락하여 이윤이 극대화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수 생산자 간에 상호 의존성이 존재하는 과점시장에서는 서로의 행동을 고려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수 사항입니다.


▶ 두 생산자가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 모형 (cournot competition)


과점시장 속 두 생산자는 전략적 고려를 통해 자신의 최적 생산량을 동시에 결정(simultaneous) 합니다. 동시결정은 '상대방의 선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결정을 해야함'을 의미합니다.


두 생산자가 동시에 산출량을 결정하는 과점 모형, 이른바 꾸르노 경쟁(Cournot Competiton)에서 생산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이해하려면 말보다는 수식을 통한 설명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를 살펴봅시다.


  • 두 생산자가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 모형 (cournot competition)


두 생산자의 목적은 이윤극대화 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생산자가 선택한 산출량의 합(q1+q2)이 시장 전체 산출량(Q)이 되고 시장 가격(P)을 결정합니다. 즉, 시장가격은 시장 전체 산출량에 관한 함수 P(Q)=P(q1+q2) 입니다. 이로 인해, 각 생산자들은 자신 이외에 다른 생산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고려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각 생산자의 산출량 결정은 다른 생산자의 산출량에 영향을 받는데, 임의의 상대방 산출량에 대하여 나에게 이윤극대화를 안겨다주는 산출량을 최적대응함수(Best Response Function)라 하며 'BR(상대방 산출량)'로 표기합니다. 상대방이 선택할 정확한 산출량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말그대로 상대방 산출량 어떤 값에 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나의 산출량을 전략으로 고려하는 겁니다.


생산자 1의 최적대응은 BR1(q2) 이며 생산자 2의 산출량 q2에 따라 달라지는데, 변수 q2는 음(-)의 계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생산자 2의 산출량이 증가할 때 생산자 1의 최적대응은 본인의 산출량을 줄이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생산자 2의 최적대응은 BR2(q1)이며, 마찬가지로 생산자 1의 산출량이 증가하면 생산자 2의 산출량은 감소해야 합니다.


이렇게 상대방 산출량이 늘어날 때 자신의 산출량이 감소해야 하는 관계를 '전략적 대체관계'(Strategic Substitute)라고 합니다. 이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시장 안에서 두 생산자가 점유율을 나눠야 하니까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 두 생산자의 최적대응함수가 교차하는 점이 각각의 이윤극대화 생산량 이다


각 생산자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본인 또한 상대방의 선택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결과적으로, 각 생산자는 서로의 최적대응을 염두에 둔 이윤극대화 산출량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 값은 두 생산자의 최적대응함수를 연립방정식으로 푼 해이며 최적대응 그래프의 교점 입니다.


생산자 1과 2의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각각 q1* q2* 로 표기합니다. 


q1*는 본인의 한계비용 c1과는 음(-)의 관계이며 상대의 한계비용 c2와는 양(+)의 관계 입니다. q2* 또한 본인의 한계비용 c2와는 음(-)의 관계이며 상대의 한계비용 c1과는 양(+)의 관계 입니다.


다르게 말해, q1*는 생산자 1의 한계비용 c1이 감소하면 늘어나는 반면, 생산자 2의 c2가 감소하면 줄어듭니다. q2*는 생산자 2의 한계비용 c2가 감소하면 늘어나고, 생산자 1의 한계비용 c1이 감소하면 줄어듭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자국기업의 생산성 향상(=자신의 한계비용 감소)은 외국기업의 산출량을 줄이면서 자국기업의 산출량을 증가시킵니다. 반대로 외국기업의 생산성 향상(=자신의 한계비용 감소)은 자국기업의 산출량을 위축시키면서 외국기업의 산출량을 늘립니다.


이는 꾸르노 과점 모형에서 생산자 1 · 2가 전략적 대체 관계에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론 입니다. 


  • 생산자 1의 생산성이 향상되어 한계비용(c1)이 감소하면, 생산자 1은 더 많은 양을 생산하지만 생산자 2는 더 적은 양을 생산


위의 그래프는 생산자 1의 생산성이 개선되어 한계비용 크기가 c1'로 줄어들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생산자 1의 새로운 이윤극대화 산출량 q1*는 이전보다 증가하였고, 생산자 2의 새로운 이윤극대화 산출량 q2*는 이전보다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꾸르노 경쟁모형은 과점 시장에서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자국기업이 외국기업보다 생산량을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한계비용 감소가 필요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 아래 생산성을 향상시켜 한계비용을 감소시키면, 외국기업의 몫을 빼앗아 자국기업의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함의로 이어집니다. 


▶ 자국기업이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스타겔버그 경쟁 모형 

(stackelberg competiton)


자국기업의 최적 생산량을 더 많이 가져가는 또 다른 방법은 '선도자'(leader)가 되어 외국기업 보다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꾸르노 모형은 두 생산자가 '상대방이 나의 영향을 받아 이런 선택을 할 것이다'라는 걸 인지하면서동시에(simultaneous)에 산출량을 결정했습니다. 반면, 스타겔버그 모형은 선도자(leader)와 추종자(follower)가 구분되고, 선도자가 먼저 산출량을 결정하는 순차적 형태(sequence)를 띄고 있습니다.


그럼 꾸르노 모형과 스타겔버그 모형은 어떤점 때문에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정보'의 차이 입니다.


꾸르노 모형에서 생산자들은 상대방의 산출량을 정확히 알지 못한채 자신의 최적대응을 세웠으나, 스타겔버그 모형에서 선도자는 '추종자가 선택한 산출량을 확실히 알고'있으며, '추종자가 선택할 산출량은 선도자의 전략에 의존'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수식을 통해 명료하게 알아봅시다.


  • 선도자 생산자 1이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스타겔버그 경쟁 모형


추종자인 생산2는 생산자 1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알지 못하며, 생산자 1이 선택할 임의의 산출량에 대한 최적대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산자 2의 최적대응함수 BR2(q1)은 이전의 꾸르노 모형과 동일합니다.


반면, 선도자인 생산자 1은 자신이 먼저 임의의 생산량 q1을 선택하면, 생산자 2가 최적대응함수 BR2(q1)에 따라 행동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생산자 1의 손바닥 위에 생산자 2가 있는 꼴입니다. 그리하여 생산자 1이 고려하는 생산자 2의 산출량은 단순히 q2가 아닌 BR2(q1)으로 구체화 됩니다. 위의 선도자 생산자 1의 이윤함수에서 임의의 q2 대신 BR2(q1)이 들어간 이유입니다.


그 결과, 선도자 생산자 1은 추종자 생산자 2의 산출량과 이윤을 낮추면서 자신의 산출량과 이윤은 높이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스타겔버그 모형 결과는 꾸르노 모형의 결과와 비교하면 더 명확히 파악됩니다. 추종자 생산자 2의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감소하였고 이윤 또한 줄었습니다. 반면 선도자 생산자 1의 산출량은 증가하였고 이윤 또한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자국기업을 선도자(leader)가 되게끔 지원하거나 정부 자체가 선도자(first player)로 행위한다면, 외국기업의 생산량과 이윤을 희생시킴과 동시에 자국기업의 생산량과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함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를 실행시킬 수 있는지는 이번글을 계속 읽어나가면 알 수 있습니다.


▶ 최적대응함수에 따라 선택한다는 보장이 있나? - 맹약의 개념(commitment) 


여기까지 읽어오신 분들은 "생산자들이 최적대응함수에 따라 선택한다는 보장이 있나?" 라는 물음을 던지실 수도 있습니다. 생산자 1이나 2의 최종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두 최적대응함수를 연립방정식의 해로 풀어낸 결과물인데, 생산자들이 최적대응함수를 벗어나는 결정을 한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적대응함수는 말그대로 이윤극대화를 위한 최적대응(Best Response)을 나타내고 있으며, 생산자가 이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또한 상대방이 나에게 이로운 결정을 하지 않으면, 나는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대응할거라는 협박은 '신빙성 없는 협박'(non-credible threat) 입니다. 합리적인 생산자라면 언제나 최적대응함수에 따라 선택을 할 것이 확실하며, 이는 '맹약'(commitment)이 작동한다고 보면 됩니다.


기본적인 이론을 습득하였으니, 이제 다음 파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략적 무역 정책의 논리와 효과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 보호와 자국시장 효과 (Protection and Home Market Effect)


우리는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유치산업보호론([각주:9] · [각주:10])의 논리를 알아본 바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수입보호정책을 선택한 전통적인 논리는 '이미 앞서있는 선진국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을 일시적으로 피하자' 입니다.


전략적 무역정책은 '신유치산업보호론'으로 불리우며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보호효과가 나타나는 경로는 조금 다릅니다. 단순히 자국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국과 외국기업의 행위를 변경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자국시장 보호를 통해 과점시장 속 자국 · 외국 기업의 전략적 행위를 변경시켜 자국기업을 돕는 경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보호관세를 통해 외국기업의 초과이윤 탈취하고 자국기업 진입을 유도


  • 브랜더 & 스펜서, 1981, <잠재적 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


기존 무역이론은 보호관세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물을 가져오는 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관세부과는 교역조건을 개선시키지만, 시장을 왜곡시켜 후생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는  1981년 논문 <잠재적 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Tariffs and the Extraction of Foreign Monopoly Rents under Potential Entry>)를 통해, "보호관세를 통해 외국기업의 독점이윤을 탈취하고 자국기업 진입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관세를 통한 독점이윤 탈취'(the argument for using a tariff to extract rent) 이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내 생산자가 잠재적으로 진입할 가능성'(potential entry) 입니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발도상국 내에는 아직 경쟁력 있는 자국기업이 없기 때문에 외국기업 수입상품이 국내시장을 장악하여 독점이윤을 누리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정부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일입니다. 이렇다할 자국기업이 없다는 점도 속 터지고, 외국기업이 초과이윤(rent)을 가져가는 것도 울분 터지게 만듭니다. 


이런 꼴을 보고 있는 개발도상국 정부로서는 '불완전경쟁이 만들어 낸 초과이윤을 관세를 통해 뺏어가고픈 유인'(under imperfect competition a country has an incentive to extract rent from foreign exporters by using tariffs)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수입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자니, 수입양이 줄어들고 가격이 올라 소비자후생이 악화될 경우가 우려스럽습니다. 관세는 생산비용 증가를 유발하기 때문에, 독점 생산자는 생산량 감축을 통해 더 높은 상품가격을 설정하는 식으 맞대응 합니다. 정부는 세금을 통해 수입을 증가시키지만 소비자후생은 악화됩니다.


이때, '자국 생산자가 잠재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불완전경쟁 하에서 관세정책 사용을 쉽게 만들어 줍니다(potential entry has an implications for tariff policy in the presence of imperfect competition).


자국기업은 국내시장에 진입하면 시장구조는 독점에서 과점으로 변합니다. 이때 자국기업은 추종자이기 때문에, 선도자인 외국기업이 결정해놓은 생산량을 고려하여서 자신의 생산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외국 생산자는 자국 생산자의 시장진입을 억제하는 생산량(limit output)을 설정해놓은 상황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불완전경쟁 시장에서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산량이 필요한데, 자국기업이 최소한의 생산량을 결정할 수 없게끔, 선도자인 외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해버린 겁니다. [선도자의 이익]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관세정책을 자국에게 이롭게 만들어 줍니다.  외국기업은 차라리 개발도상국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는 편이 자국기업이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정부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자국기업의 잠재적 진입을 막아야하는 외국기업으로서는 생산량을 감축할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후생 저하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관세정책은 부작용 없이 외국기업의 독점이윤을 그대로 뺏어올 수 있습니다.


관세율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어느 순간이 되면, 외국기업이 독점일 때 얻고 있는 이윤이 자국기업이 진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과점 이윤보다 적어지게 됩니다. 외국 기업은 진입억제 전략을 포기하고 맙니다. 즉, 관세정책은 자국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게끔 유도하는 것까지 성공합니다(entry-inducing tariff). 이제 시장에 진입한 자국기업은 과점 이윤을 외국기업과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외국기업만이 누리던 독점이윤을 ① 정부의 세금부과로 탈취 했으며 ② 자국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유도하여 뺏어오게 되었습니다. (Protective tariffs insure that domestic firms can enter and survive, and these firms earn rent from foreign operations.)


② 수출진흥을 만들어내는 수입보호 정책


개발도상국 정부는 수입보호 정책을 통해 자국기업의 시장진입 유도를 넘어서서 이미 진입해있는 자국기업의 수출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수출진흥으로서 수입보호 : 과점과 규모의 경제 하에서 국제적 경쟁>(<Import Protection As Export Promotion: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the Presence of Oligopoly and Economics of Scale>)을 통해, 수입보호 정책이 수출진흥 정책의 역할을 함을 보여줍니다.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국기업과 외국기업, 총 2개의 기업만이 존재하는 과점 상황이며 이들은 양국에서 모두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이 속해있는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은 기업일수록 소요되는 한계비용이 적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무작정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는 없고, 상대방의 생산량에 따라 자신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합니다. [꾸르노 경쟁 모형]


  • 생산자 1의 생산성이 향상되어 한계비용(c1)이 감소하면, 생산자 1은 더 많은 양을 생산하지만 생산자 2는 더 적은 양을 생산


이때 자국정부가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막는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요?


보호 속에서 자국기업은 국내에서 생산량을 늘리게 되고, 이에 따라 한계비용도 감소합니다. 앞서 꾸르노경쟁 모형 설명에서 배웠듯이, 줄어든 한계비용은 자국기업의 최적대응곡선을 바깥쪽으로 이동시키고,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이전에 비해 증가합니다. 반면, 외국기업의 산출량은 감소합니다. 


이렇게 늘어난 산출량은 다시 한계비용을 감소시키고, 한계비용 감소는 다시 산출량을 늘립니다. 보호무역 정책이 자국기업의 생산량 증가 → 한계비용 감소 → 생산량 증가가 이어지는 선순환 인과관계를 만들어 낸겁니다(circular causation from output to marginal cost to output). 반대로 외국기업의 경우 악순환에 빠지고 맙니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수입보호 정책 덕분에 자국기업의 생산량이 국내시장 뿐 아니라 외국시장에서도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논문 제목처럼 수출진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수입보호 (import protection as export promotion) 입니다.


전통적인 국제무역이론이 보기엔 "국내시장 보호가 자국기업에게 성공적 수출을 위한 기반을 제공해준다"는 논리는 이단적 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완전경쟁모형과 규모보수불변의 가정에서 벗어난 과점경쟁모형과 규모의 경제 작동 이라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폴 크루그먼의 연구는 이를 잘 수행하였습니다.




※ 이윤을 자국기업으로 이동시키는 보조금(Profit-Shifting Subsidies)


이번 파트에서 소개할 전략적 무역 정책은 198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논리 입니다. 


일본이 보호체제에 힘입어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의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에 진입하는데 성공하고 수출을 증진시키자, 미국정부가 대응을 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특히 R&D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연구[각주:11]가 많아지면서, R&D 투자비중이 높은 최첨단산업(high-tech)을 지원 · 육성하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행정부가 어떻게 자국기업을 도울 수 있을까요?


  •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의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

  •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의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는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International R&D Rivalry and Industrial Strategy>),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Export Subsidies and International Market Share Rivalry>)를 통해, 부의 R&D 보조금 지원으로 자국기업 R&D 투자수준이 증가하여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는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부의 R&D 보조금 지원으로 자국기업의 R&D 투자가 증가하여 더 많은 이윤 획득


  •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이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 모형

  • 주어진 R&D 투자 수준이 높은 기업일수록 한계비용이 낮아져, 상대기업에 비해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


세계시장은 자국기업과 외국기업 2개만 존재하는 과점 상황이며, 이들은 주어진 R&D 수준에서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R&D 투자는 기업의 한계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즉, R&D는 비용절감 혁신(cost-reducing)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R&D 투자 수준이 높은 기업일수록 다른 기업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위의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R&D 투자 수준이 높아진 기업은 생산량 결정 단계에서 최적대응함수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양을 생산하게 됩니다. 상대방 기업의 생산량은 위축됩니다.


결국 문제는 각 기업의 R&D 투자수준이 어떤 크기로 결정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각 기업은 제품 생산에 앞서 R&D 투자수준을 동시에 결정합니다. 이때 기업들은 여기서 결정되는 R&D 투자수준이 추후 산출량을 결정함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산출량 결정 단계에서 나타나게 될 결과를 염두에 두고, 이윤을 극대화 시켜줄 R&D 투자수준을 동시에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은 서로 R&D 부문에 많은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이들 기업은 비용 극소화를 위해 필요한 R&D 수준 보다는 조금 더 많은 양을 투자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업이 R&D 부문에 무한정 많은 투자를 할 수는 없습니다. R&D 투자를 통해 얻게 될 이윤증대 크기가 투자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적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R&D 투자수준은 결국 나중에 결정되는 산출량 및 이윤 크기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으며, 현재 R&D 투자수준은 이윤을 극대화 시켜주는 크기 입니다.


  •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이 산출량 결정에 앞서 R&D 투자수준을 동시에 결정하는 상황

  • 정부의 R&D 투자 보조금 지원은 자국기업의 R&D 투자수준을 증가시키게 돕는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싶은 자국기업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업 자체적인 R&D 투자 확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현재 R&D 투자수준은 이윤극대화를 달성케해주는 크기이며, 이를 넘어선 투자는 오히려 이윤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국기업이 R&D 투자수준을 높일 거라는 발표만 한다면, 이를 듣게 된 외국기업이 대응하기 위해 R&D 투자수준을 변경하게 되고, 이것이 자국기업에게 R&D 투자를 늘릴 여지를 안겨다주지 않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기업은 현재의 상황이 서로에게 최적의 투자수준임을 알고 있으며, 자국기업의 R&D 투자 확대 발표는 신빙성 없는 위협(non-credible threat) 이라고 여깁니다.


바로 여기서 정부의 R&D 보조금 지원이 자국기업의 R&D 투자를 신빙성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선제적 맹약'(pre-commit) 입니다.


정부가 세액감면 혹은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 정책을 시행하면, 자국기업은 R&D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부담을 덜게 됩니다. 그럼 오직 생산량 증대가 가져오는 이윤증가 만을 고려하여 R&D 투자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균형 산출량도 증가하여 실제로 이윤과 점유율이 상승합니다.


브랜더와 스펜서는 '정부의 R&D 보조금 지원 정책은 기업 간 꾸르노 경쟁을 (자국이 선도자인) 스타겔버그 경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자국정부는 기업간 게임에 참여하여 선도자(first-player)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음 단계에 결정될 외국기업의 산출량 · R&D 투자수준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여 R&D 보조금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겔버그 경쟁 모형에서 선도자가 더 많은 산출량 · 이윤을 가져가는 것과 같이, 정부의 개입은 초과이윤을 만들어내는 산업에서 외국기업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from obtaining a larger domestic share of internationally profitable industries.)




※ 교과서 버전으로 살펴보는 전략적 무역 정책의 원리와 문제점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가 창안한 전략적 무역 정책은 꾸르노 · 스타겔버그 등등 어려워 보일 수 있는 개념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학부 국제무역론 교과서는 이를 단순한 내쉬균형 개념을 이용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면 전략적 무역 정책이 가진 단점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디선가 보았을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간의 내쉬균형 입니다.


▶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중 어느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생존할까


  •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할 때, 미국 보잉의 최적대응은 생산하지 않는 것

  • 미국 보잉이 생산할 때, 유럽 에어버스의 최적대응은 생산하지 않는 것

  • 누가 먼저 세계시장에 진입해 있느냐가 균형을 결정 (파란색 칸)


항공산업은 생산에 막대한 고정비용과 R&D 투자가 수반되며 수요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소수의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과점 시장 입니다. 


이때 미국과 유럽이 항공산업 진입결정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위의 표는 상대방의 행동에 따른 나의 행동이 가져올 보수를 보여줍니다. 


미국 보잉의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유럽 에어버스가 먼저 생산을 하고 있을 때, 미국 보잉이 진입하면 -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미국 보잉은 진입을 하지 않습니다.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면, 미국 보잉이 진입하면 100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미국 보잉은 진입을 합니다.


유럽 에어버스의 행동도 이와 동일합니다. 만약 미국 보잉이 먼저 생산을 하고 있을 때, 유럽 에어버스가 진입하면 -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유럽 에어버스는 진입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 보잉이 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면, 유럽 에어버스가 진입하면 100 · 진입하지 않고 있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유럽 에어버스는 진입을 합니다.


결국 항공산업에서 어떤 기업이 생산하느냐는 '누가 먼저 진입해 있었는가 라는 역사적 우연성'이 결정합니다. 


▶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 미국정부가 보잉에 25의 보조금 지원
  •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미국 보잉은 생산하는 게 이익
  • 이를 아는 유럽 에어버스는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고, 미국 보잉이 독점이윤 125 획득 (균형은 파란색 칸)

이런 애매한 상황을 타개하고 확실한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미국정부는 자국 항공사가 시장에 진입하면 25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합니다. 

앞서와 달리,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미국 보잉은 생산하는 게 무조건 이익 입니다. 왜냐하면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고 있을 때 진입을 하면 20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생산하지 않고 있을 때 진입을 하면 12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어느경우든 진입하는 게 더 큰 보수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유럽 에어버스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미국 보잉이 진입을 할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국 보잉이 생산할 때, 유럽 에어버스가 진입을 하면 -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유럽 에어버스는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그 결과, 미국 보잉은 생산을 하고 유럽 에어버스는 생산을 하지 않는 균형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 보잉은 독점이윤 125를 획득 합니다.

즉, 이번글에서 살펴보았다시피, 미국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유럽 에어버스의 전략적 선택을 변경시킴으로써 미국 보잉의 독점이윤을 발생시켰습니다


▶ 이를 본 유럽연합이 보조금 지원으로 보복을 한다면? (retaliation)


  • 미국정부의 정책에 맞서 유럽연합도 보조금 25 지원

  • 그 결과,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모두 20의 이윤을 거두나, 이는 보조금 25보다 적다


전략적 무역 정책은 근본적으로 외국기업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을 돕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입니다. 그리고 이는 외국의 보복(retaliation)을 초래하게 됩니다. 


보다 못한 유럽연합이 보조금 25 지원으로 맞불을 놓습니다. 그 결과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모두 시장에 진입하여 생산을 하고 각각 20의 이윤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는 정부가 지원한 보조금 25보다 적기 때문에, 사회 전체 이윤은 -5나 마찬가지 입니다. 즉, 미국의 전략적 무역정책은 유럽연합의 보복을 초래하여 사회적으로 더 나쁜 결과(socially worsen off)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사례는 현실에서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할 때 맞딱드리게 될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 정부는 자국 · 외국기업의 보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전략적 무역 정책의 본질적인 문제는 '자국기업 및 외국기업의 행동이 가져올 보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에서 기업들이 얻게 될 이익이 표에 채워놓은 숫자일지 아닐지 알 수 없습니다. 표에 채워놓은 숫자를 조금만 바꾸면 전략적 무역 정책의 효과를 사라집니다. 


하나의 사례로서, 만약 정부가 자국기업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외국기업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경우, 보조금 지원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 이런 보수구조에서 균형은 유럽 에어버스 만이 시장에서 생산하여 독점이윤 획득

  • 그런데 미국정부는 미국 보잉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유럽 에어버스의 능력을 과소평가 


위와 같은 보수구조는 유럽 에어버스만이 시장에서 생산하는 균형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미국정부는 미국 보잉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유럽 에어버스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앞서의 경우처럼, 미국 보잉이 생산할 때 얻는 이윤이 -5 혹은 100으로 생각하며,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할 때 얻는 이윤도 -5 혹은 100 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정부는 현재 유럽 에어버스만이 시장에서 생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유럽 에어버스가 먼저 시장에 진입한 역사적 우연성 덕분에 초과이윤을 누리고 있구나" 라고 오판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보잉에 보조금을 지원하면 유리한 균형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미국정부가 보잉에 25의 보조금을 지원

  • 그러나 균형은 여전히 유럽 에어버스만 시장에 생존하여 독점이윤 150 획득


미국정부는 호기롭게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하고 있을 때 미국 보잉이 진입하면 -5의 보수를, 생산하지 않고 있을 때 진입하면 100의 보수를 얻습니다. 유럽 에어버스는 미국 보잉이 생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언제나 생산을 하는 게 이득입니다. 그런데 미국보잉은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고 있으면 진입하지 않는 게 이득입니다.


그 결과, 균형은 여전히 유럽 에어버스만 시장에 생존하여 독점이윤 150을 획득하게 것이 됩니다. 미국정부의 전략적 무역 정책은 균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이번글에서 소개한 전략적 무역 정책 논리 또한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꾸르노 모형 · 스타겔버그 모형 등등을 사용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의 논리를 그럴싸하게 설명 하였으나, 정부는 개별 기업의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혹시 어떤 행위를 선택할지는 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어느 정도의 보조금을 지원해야 외국기업의 행동을 자국기업에게 유리하게 변경시킬지는 알지 못합니다


결국 전략적 무역 정책은 책 속 이론에서만 타당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둘러싼 논쟁


1970-80년대 들어 일반화된 '독과점을 통해 초과이윤을 얻는 산업'이 존재할 때의 무역정책의 효과를 설명해주는 전략적 무역 정책은 당시 '미국정부가 어떠한 무역정책을 선택해야 하느냐'를 두고 펼쳐진 논쟁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의 효과를 믿었던 사람들은 일본의 보호체제를 무너뜨리는 방식 · R&D에 의존하는 미국 최첨단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높이려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보호체제는 미국기업을 희생시키는 문제를 초래하니 어서 빨리 대응해야했고, 미국 최첨단기업 지원은 일본기업을 희생시켜 미국에 독점이윤을 가져다 줄 수 있으니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전략적 무역 정책의 현실적 한계를 집중적으로 비판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략적 무역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 · 폴 크루그먼 모두 실제 효과에 회의적이었다는 점 입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왜 미국은 '일본의 무역체제'를 문제 삼았으며, '전략적 무역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8. 두 시장 간 본질적인 차이는 가격을 '주어진 것'(given)으로 받아들이느냐에 있지만, 여기에서는 '초과이윤 존재여부'에 주목합시다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joohyeon.com/271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11.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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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Posted at 2019. 1. 2. 12:56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가경쟁력' 위기에 직면한 1980년대 초중반 미국

- 기업가와 경제학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 왼쪽 : 1968-1990년, 미국/일본 GDP 배율 추이
  • 오른쪽 : 1970-1990, 미국(노란선)과 일본(파란선)의 노동생산성 증가율 추이
  • 일본의 급속한 성장은 미국민들에게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시작[각주:1]에서 말했듯이,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은 '국가경쟁력 악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일본은 급속한 성장을 기록하는데 반해 미국은 노동생산성 둔화를 겪었고, 1968년 일본에 비해 2.8배나 컸던 미국 GDP 규모는 1982년 2.0배로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국인 입장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 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증가해온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1980년대 들어서 더 확대되었고, 1985년 GDP 대비 1.15% 수준으로까지 심화되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추월함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하락하여 세계시장에서 미국산 상품을 팔지 못한다는 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 절망과 공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포심은 미국 내에서 보호무역 정책을 구사하라는 압력을 키웠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일본'(Japan) ·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 '하이테크 산업'(High-Tech Industry) · '보호주의'(Protectionism) ·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등 이었습니다.


▶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비교우위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서, 1980년대 초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마틴 펠드스타인은 경쟁력 상실이 아닌 재정적자로 인한 총저축 감소가 무역적자를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각주:2] 


"최근 10년동안 무역수지 흑자에서 무역수지 적자로의 전환은 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잘못 해석 되곤 한다. 사실, 미국 국제수지 구조 변화는 느린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총저축과 총투자가 변화한 결과물이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의 두려움이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일본의 급속한 성장에 대비되는 미국 노동생산성 둔화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의 주장을 읽어봅시다.


장기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비록 최근의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긴 했으나,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각주:3] (...) 


생산성 향상 둔화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 상쇄되지 않을 때에만 국제적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다.[각주:4]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이 미국의 국가경쟁력(competitiveness)이 영구히 손상된 것은 아니다 · 생산성 둔화와 국제시장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없다 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비교우위 원리'(comparative advantage)를 믿기 때문입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각주:5]이 작동할 수 있게끔 하는 원천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6] 입니다. 수입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낮’기 때문이며, 수출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높' 때문입니다.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높아 기회비용이 낮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의미하고,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낮아 기회비용이 높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높은 품목'을 뜻합니다.


따라서 (생산성 변동과 상관없이)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상품 가격이 비싸지면 일시적으로 비교우위를 상실할 수도 있으나, 무역수지 적자가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자기조정기제에 의해서 시간이 흐르면 비교우위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절대생산성 수준이 뒤처지더라도 여전히 다른 국가와의 교역을 할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은 절대우위가 아닌 상대생산성에 따른 비교우위에 따라 이루어지며, 더군다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는 낮은 임금을 통해 상대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펠드스타인이 느린 생산성 향상 속도가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서 상쇄된다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거라고 판단한 이유 입니다.


(주 : 비교우위와 임금의 관계에 대해서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참고)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마틴 펠드스타인은 국가경제 · 거시경제 차원에서 국제무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 잃더라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며,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그에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임금으로 절대생산성 열위에 대응하면 여전히 비교우위는 성립하고 무역을 이루어질테니, 이것 또한 그에게 걱정 사항이 아닙니다.  


그럼 기업가와 근로자도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처럼 국제무역을 바라볼까요?


▶ 기업가 · 근로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75 · 595쪽

  • 왼쪽 :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

  • 오른쪽 : 무역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 수


위의 왼쪽 그래프는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연비가 좋은 일본산 자동차의 수요를 증대시켰고, 1970년대 후반부터 수입자동차 점유율이 대폭 늘어납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수입산 자동차의 미국시장 침투로 인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행정부에 수입제한 등 대책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오른쪽 표는 1990년 기준, 무역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와 비중을 나타냅니다. 수입에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수는 약 130만 명이며, 대부분 중서부(Mid-West)와 남부(South) 등에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러스트벨트 등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은 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습니다(do something).


미국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대책을 요구한 이유는 한번 경쟁에서 뒤처지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영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현장은 국가들의 대리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며 생존을 위해 경쟁력(competitiveness)이 필요한 곳 입니다.  


통화가치 하락 · 임금 하락 등 거시경제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비교우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경제학자의 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실제 현장에서는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번 1등으로 올라선 외국기업은 계속해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에,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책에서만 타당합니다. 


또한, 기업가와 근로자에게 "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나마 잃더라도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국제무역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논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경영하는 · 내가 종사해있는 산업이 비교우위에서 열위로 바뀌어서 피해를 보고 있는데, 다른 산업을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비교열위로 바뀌게 된 산업에 계속 종사하지 말고,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라"고 충고할 수 있지만, 무역의 충격을 받은 기업가와 근로자가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 입니다.


▶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이처럼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는 역할과 일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상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학자가 보기엔 기업가와 근로자는 이동을 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며, 기업가와 근로자가 보기엔 경제학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좋은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신무역이론 및 신경제지리학을 만든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 수상

  • 크루그먼의 1994년 기고문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A Dangerous Obsession>)


1980년대 미국 내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입니다. 그는 1979년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7] · 1991년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각주:8]을 창안한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크루그먼은 미국이 자유무역정책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리적인 주장을 제기하였고, 비경제학자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 그는 현실 속 경쟁에 직면해있는 기업가들이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부 수용하였고,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는 동태적 비교우위 패턴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가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에 의해 결정됐을 수 있으며, 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비교우위를 새로 창출(created)하고 국내기업에게 초과이윤을 안겨다줄 수 있다는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폴 크루그먼이 전통적인 관점에서 국제무역과 비교우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기업가의 관점을 수용하여 만든 새로운 무역이론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경쟁력 : 위험한 강박관념 (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


폴 크루그먼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와 1991년 사이언스지(Science)에 기고한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Myths and Realities of U.S. Competitiveness>)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의 주장과 논리를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사족 : '국제무역을 둘러싼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기 위해 그가 여러 곳에 기고한 글들은 『Pop Internationalism』 라는 제목으로 묶어서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이라는 제목으로 변역 되었습니다.)


잘못된 가설 (The Hypothesis is Wrong)


1993 년 6월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가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공동체 (EC) 회원국 지도지들 모임에서 점증하는 유럽의 실업문제를 주제로 특별 연설을 했다. 유럽 상황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EC위원회의 의장인 들로르가 무슨 말을 할지 상당히 궁금해 했다. (…)


어떻게 말했을까. 들로르는 복지국가나 EMS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유럽 실업의 근본 이유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쟁력 부족(a lack of competitiveness)이며, 그 해결책은 사회간접자본과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계획(investment in high technology)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들로르의 말은 실망스런 책임 회피였지만 놀라운 발언은 아니었다. 사실 경쟁력이라는 용어(the rhetoric of competitiveness)는 전세계 여론지도자들 사이에 유행어가 되었다. -클린턴에 따르면 “국가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들과 같다’ 라는 견해-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정통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 현대 국가라도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 누군가가 이 명제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대체로 들로르가 유럽의 문제에 대해 내린 것과 같은 식으로 미국의 경제 문제를 진단한 이런 사람들 중 대다수가 지금 미국의 경제 및 무역정책을 수립하는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들로르가 사용한 용어는 자신과 대서양 양안의 많은 청중들에게 편리할 뿐 아니라 편안한 것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진단은 유럽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매우 잘못된 것이었고 미국에서의 유사한 진단 역시 오진이었다.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의 경험적 문제로 보아도 이 가설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that hypothesis is flatly wrong).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크루그먼은 글의 시작부터 정치인 · 언론인 · 대중적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비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생각하였고 첨단기술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무역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크루그먼은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의 논리를 좀 더 들어보죠.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competitiveness)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생각 없이 그 말을 쓴다. 그들은 국가와 기업을 비슷하게 보는 것을 분명히 합리적 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 GM)사가 북미 미니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는지 묻는 것과 원칙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국가경제의 손익을 그 국가의 무역수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즉 경쟁력을, 해외에서 사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팔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무역흑자가 국가의 취약함을 나타내고 적자가 오히려 국가의 힘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


국가들은 기업처럼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코카콜라와 펩시는 거의 완벽한 경쟁자다. 코카콜라 매출의 극히 일부만이 펩시 노동자틀에게 판매되고, 코카콜라 노동자들이 구입하는 상품 중 극히 일부만이 펩시의 제품이다. 그 부분은 무시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펩시가 성공적이면 그것은 대체로 코카콜라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주요 산업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는 상품을 팔기도 하지만, 서로의 주요 수출시장이 되기도 하며 서로 유익한 수입품의 공급자이기도 하다. 만약 유럽 경제가 호황이라 해도 반드시 미국의 희생으로 그렇게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유럽 경제가 성공적이면 미국경제의 시장을 확대시켜 주고 우수한 제품을 낮은 값에 팔아줌으로써 미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그래서 국제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International trade, then, is not a zero-sum game)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 크루그먼은 '경상수지 흑자가 국가의 부를 나타내는 게 아니다'[각주:9]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상호이익(mutual gain)을 안겨다준다'[각주:10]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본 블로그를 통해 누차 말해왔듯이, 그리고 이전글에서 마틴 펠드스타인이 주장[각주:11]했듯이, 경상(무역)수지는 거시경제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지은 결과물일 뿐입니다. 총저축이 총투자보다 많으면 무역수지 흑자, 적으면 적자가 나타납니다. 여기에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중요한 요인이 아닙니다.


게다가, 무역수지 적자는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며 역설적으로 국가의 강함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는 금융·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과 동의어이며 이는 대외로부터 계속 돈을 빌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약한 국가라면 다른 국가에게 계속해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된다는 것(sustained)은 그 국가의 힘을 드러내줍니다.[각주:12]


(참고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또한, 비교우위는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상관없이 모든 국가에게 '값싼 수입품의 이용'이라는 상호이익을 안겨다줍니다. 또한, 교역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서로의 수출국이며 동시에 수입국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경제호황은 수출시장 확대를 가져다 줍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비교되는 상대국의 가파른 성장은 무언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끔 만듭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 경쟁력의 신화 (Myth of Competition)


먼저 전세계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과 외국이 모두 연간 1 %씩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생활수준과 실질임금 등이 어느 곳에서나 연간 약 1%씩 상승한다는 생각은 합리적인 듯하다.


그러면 미국의 생산성은 계속 연간 1%씩 증가하는 데 반해 다른 나라들의 생산성 증가는 빨라져서 예컨대 연간 4%씩 높아졌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미국국민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미국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경쟁자보다 생산성이 뒤지는 회사는 시장을 잃고,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문을 닫을 것이다. 이와 똑같은 일이 국가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사업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에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작용한다. 이 힘은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라도-비록 그 생산성과 기술 · 제품의 질이 다른 나라에 뒤진다고 하더라도-일정 범위의 상품을 계속해서 세계시장에 팔 수 있게 하고, 또 장기적으로는 무역수지의 균형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역 상대국들보다 생산성이 현저히 뒤지는 나라일지라도 일반적으로 국제무역에 의해 형편이 더 나아지지, 나빠지지는 않는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6장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


→ 크루그먼은 '미국의 생산성이 연간 1%씩 증가하는데 반해 다른 나라가 연간 4%씩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교역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번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1980년대 초중반 미국민들의 큰 우려는 '미국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일본 그리고 대일무역수지 적자 심화' 였습니다. 그러나 크루그먼 주장은 생산성 둔화와 무역수지 적자가 인과관계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 이유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00여년 전 금본위제 시대에 살았던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나라는 금과 은화의 지속적인 유출로 인해 물가와 임금이 하락하고 그 결과 적자 국가에서는 상품과 노동력의 가격이 저렴해져서 무역적자가 바로잡힌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가격-정화 흐름 기제'(Price–specie flow mechanism) 입니다.


오늘날 조정과정은 임금과 물가의 직접적인 변화 대신 환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무역적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수출을 늘리고, 무역흑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수입이 늘어납니다. 따라서, 어느 나라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다 하더라도, 환율 조정(혹은 임금 조정)을 통해 상대생산성 우위와 비교우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도 여전히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원리에 따라 수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생산성이 연간 4%씩 성장할 때 자국인 미국도 4% 아니 그 이상 성장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이 다시 말합니다.


●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 상실) 문제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대부분의 저자들은 경쟁력을 긍정적인 무역실적과 다른 요인의 복합적인 것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특히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경쟁력의 정의는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로라 D. 타이슨의 저서 『누가 누구를 때려부수는가?』(『Who's Bashing Whom?』)에서 제시한 노선을 따른다.


경쟁력은 "우리 시민들이 향상되고 있으며, 또 지속 가능한 생활수준을 누리면서 국제경쟁의 시련에 견디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능력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생각하고 현실에 적용해 본다면 이 정의가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타이슨의 정의에 기초한 '경쟁력'이 거의 전적으로 국내 요인, 주로 생산성 증가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즉 다른 나라에 대한 상대적 생산성 증가가 아니라 국내 생산성 증가가 바로 문제인 것이다(That's domestic productivity growth, not productivity growth relative to other countries)


환언하면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경쟁력'으로 '생산성'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며 국제경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


물론 위상과 세력에 관한 경쟁은 언제나 존재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 상승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러나 일본의 성장이 미국의 위상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미국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린다고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경쟁력 이라는 용어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후자다.


물론 단어의 의미를 자신의 마음에 맞게 정하는 입장을 취할 수는 있다. 원한다면 ‘경쟁력’ 이라는 용어를 생산성을 의미하는 시적 표현방법으로 시용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국제경쟁이 경쟁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실제로 밝혀야 한다. 그러나 경쟁력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 치고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생활수준(standard of living)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성장이론이 솔로우모형[각주:13]부터 P.로머의 R&D모형[각주:14]으로 발전할때까지, 모든 경제학자들이 부정하지 않는 진리 입니다. 


그러나 크루그먼이 지적한 것처럼,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어 생활수준 향상이 더뎌지고 있다"와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타국보다 느려서 국가경쟁력이 훼손되고 세계시장 속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완전히 다릅니다. 


1980년대 미국의 생산성 둔화는 그 자체로 미국인의 생활수준 향상을 더디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지, 일본의 생산성 증가율에 비해 낮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미국이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이지,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걱정해야 할 건 '타국과의 경쟁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미국 생산성 자체의 둔화'(productivity slowdown) 입니다. 이 둘의 구별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미국이 당면한 문제가 전자라고 판단한다면 각종 보호무역 조치로 일본제품의 수입을 막거나 국내 생산자에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시행될 수 있지만, 후자라고 판단하면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국내생산성 향상을 위한 R&D 지원 및 창조적파괴를 위한 시장경쟁체제 조성이 나오게 됩니다.  


▶ 신성장이론이 말하는 '생산성 향상' 방법 두 가지


: 첫째,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 둘째,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보호주의 압력을 경계하는 경제학자들 그런데...


당시 마틴 펠드스타인 · 폴 크루그먼 같은 일류 경제학자들이 무역수지 결정과정 · 경쟁력에 대한 개념 · 생산성 향상의 방법 등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한 이유는, 미국의 경기침체와 일본의 경제성장이 보호주의 무역정책에 대한 요구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상황 인식으로 미 행정부가 보호무역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을 경제학자들은 크게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무역수지' · '국가경쟁력' 등을 주제로 한 경제학자들의 설명이 와닿으시나요?


머리로는 "그래 중요한 건 일본의 성장이 아니라 우리의 생산성 향상이지"라고 다짐해도, 상대적 위상이 하락하고 있는 걸 보는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무역수지 적자는 경쟁 패배의 산물이 아닌 총저축과 총투자의 결과물이지"라고 받아들여도, 수입경쟁부문(import-competing sector)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경영자에게는 하나마나한 소리 입니다.  


게다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R&D가 중요하다면 정부가 첨단산업(high-tech)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쓰면 안되냐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논리로 로라 D. 타이슨은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을 주장했고,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유발시킵니다. (주 :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살펴볼 계획 입니다.)


결정적으로, 세계시장에서 상대기업 보다 더 많은 양의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기업가에게 '비교우위 · 열위에 따른 특화'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왜 기업가들은 전통적인 경제학이론과는 다르게 무역현장을 바라볼 수 밖에 없을까요? 역설적이게도 이에 대한 답을 폴 크루그먼이 제시해 줍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 - 한번 성립되고 나면 자체적으로 강화되는 비교우위


기업가들이 국제무역현장을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중요한 곳으로 인식한 이유는, 한번 외국기업에게 경쟁에 밀려 점유율을 내주면 다시 되찾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통화가치 하락 및 임금인하로 비교우위를 다시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 속 기업가들은 '잘못된 선택이나 불운이 영구적인 시장점유율 손실로 이어진다'(a wrong decision or a piece of bad luck may result in a permanent loss of market share)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한번 잃어버린 시장점유율 혹은 비교우위를 다시 획득하기가 힘든 것일까요? 


  • 폴 크루그먼의 1987년 논문. 

  •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학습효과에 의해 자체강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 <The Narrow Moving Band, The Dutch Disease, and The Competitive Consequences of Mrs.Thatcher - Notes on Trade in the Presence of Dynamic Scale Economies>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리카도헥셔-올린의 비교우위론은 '한 국가의 특화 패턴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대생산성 혹은 부존자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상대생산성 우위에 있는 자국 상품 및 풍부한 부존자원이 집약된 자국 상품은 외국에 비해 더 싸기 때문에 특화와 수출을 합니다. 만약 일시적으로 비교우위 패턴에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통화가치와 임금 하락이라는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폴 크루그먼은 일시적 충격 이후에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바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의 존재 때문입니다. 


생산의 학습효과란 말그대로 '생산을 통해 학습한다'는 의미 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현재의 생산성은 과거 생산을 통해 학습한 지식이 만든 결과물이며, 미래의 생산성은 현재 생산과정을 통해 획득하게 된 노하우가 만들어낼 결과가 됩니다.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최신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낼 수 있는 이유는 30년 전부터 축적한 경험이 있은 덕분이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이유는 현재 독보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계속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루그먼은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이 현재의 생산성을 결정하 동태적 규모의 경제' (dynamic economies of scale in which cumulative past output determines current productivity) 형태로 생산의 학습효과를 경제모형에 도입하였습니다. 


일반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규모'가 현재 생산량 크기를 의미했다면, 여기서 '규모'는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 크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생산량이 많은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부터 많은 양을 생산하여 지식을 많이 축적한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학습효과로 인하여 한번 고착된 특화 패턴은 자체적으로 강화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기존에 만들지도 않았던 상품을 뚝딱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노하우도 없기 때문입니다. 생산 가능한 상품은 예전부터 만들어와서 공정과정에 대한 학습이 되어있는 것들 입니다. 따라서 생산자는 예전부터 만들어오던 것을 생산하게 됩니다.  


즉, 폴 크루그먼은 학습효과로 인하여 "일단 한번 만들어진 특화는 그 패턴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상대적 생산성 변화를 유도한다"(a pattern of specialization, once established, will induce relative productivity changes which strengthen the forces preserving that pattern.) 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기업들이 외국 라이벌 기업에게 한번이라도 시장을 내주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외국 기업은 독보적 지위를 바탕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은 경험을 쌓을테니, 시장을 다시 되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 외국 기업은 기존에 1위였던 미국 기업의 시장을 어떻게 탈취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외국 정부의 보호정책 덕분입니다. 


만약 외국 기업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생산에 착수하고 관세라는 보호막에 힘입어 자국 내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보호 기간 중에 쌓은 지식과 노하우로 언젠가는 상대적 생산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폴 크루그먼은 일본기업의 성공 요인을 일본정부의 보호정책에서 찾습니다. "일본의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정부의 산업정책,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 사용이 꼽혀진다. (...) 나의 모형은 이를 설명해준다. 일시적인 보호가 비교우위를 영구히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It is possible in this model - within limits- for temporary protection to permanently shift comparative advantage.)


미국 기업이 직면해 있는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것이다"라거나 "미국은 자유무역 정책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 라는 학자들의 주장은 기업가가 보기엔 세상물정 모르는 태평한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비교우위가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이 끼친 영향들


'생산의 학습효과로 인해, 일단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은 또 다른 통찰을 낳았고, 보호무역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첫째, 현재의 특화패턴은 '역사적 우연성'에 의해 임의로 성립된 것일 수도 있다


리카도 및 헥셔-올린의 전통적인 비교우위론은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특성(underlying characteristics of countries)으로 인해 자연적인 특화패턴(natural pattern of specialization)이 성립되었다고 말합니다. 특정 상품 생산에 필요한 기술수준을 갖춘 국가는 이를 특화하고, 특정 상품에 생산에 투입되는 부존자원을 많이 보유한 국가는 이를 특화합니다.


그런데 생산의 학습효과가 비교우위 및 특화패턴을 자체 강화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국가들의 비교우위와 특화는 단지 과거부터 많이 생산해온 덕분에 가진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그럼 과거부터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 연유는 무엇이냐 따지면,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본질적으로 어떤 국가가 현재 그 상품에 우위를 가지고 있을 이유는 하나도 없고, 단지 과거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여 많이 만들어왔다는 이유 뿐입니다.


실 폴 크루그먼의 통찰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유치산업보호론을 소개한 글을 통해,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했다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통찰[각주:15]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를 통하여,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라고 말하며 '학습곡선'(learning curve) 개념을 추상적으로나마 도입하였고, '단지 먼저 시작한 덕분에 경험을 많이 축적'했다고 지적하며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으로 현재의 비교우위가 형성 됐을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아직 시작을 하지 않은 국가가 시도와 경험을 축적하면, 단지 먼저 시작했을 뿐인 국가보다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만약 잠재적 능력을 갖춘 생산자가 외부성으로 인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인 유치산업보호 정책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폴 크루그먼이 강조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도 유사한 함의와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의 정당성 입니다.


둘째, 미국정부는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을 통해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국제무역 패턴이 국가의 본질적 특성이 아닌 역사적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정부가 일시적으로 개입하여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정부가 영구히 개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단 환경만 조성해주고 빠져도 무방합니다. 환경이 한번 조성되고 나면, 기업이 생산을 통해 얻게 된 지식으로 계속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가경쟁력 쇠퇴'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매혹적인 논리였습니다.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할 때 항상 제기되었던 반박은 "인위적인 정부 개입은 시장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였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처음에만 조금 도움을 주면, 그 후에는 경쟁력을 회복한 미국기업이 알아서 할 것이다"라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생산을 통해 얻게 되는 '학습'(learning) · '지식'(knowledge)의 중요성은 전자 · 반도체 등 최첨단산업(high-tech industry)을 집중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할 필요를 정당화 해주었습니다. 


최첨단산업은 대규모 R&D 투자가 수반되고, 그 결과로 얻게 될 노하우는 다른 산업에까지 파급영향(spillover)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생산성 향상을 위한 R&D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에 더하여, 따라서 최첨단산업을 지원했을 때 돌아올 이익은 매우 크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로라 D. 타이슨은 미국 최첨단산업을 보호 · 지원하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주장했고,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한층 더 격화되었습니다.


셋쩨, 일본 첨단산업의 부상을 막기 위해서 '공세적인 무역정책'이 요구된다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이 "미국정부가 미국기업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이라면, "미국정부는 일본기업이 자국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는 논리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크루그먼이 짚어주었듯이, 일본정부는 자국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하여 비교우위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 비교우위를 창출(created) 했습니다. 통상산업성(MITI, 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으로 대표되는 일본 관료조직은 수입시장을 닫은 채 자국 자동차 · 철강 · 전자 ·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했습니다. 


이는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 것일뿐더러 일본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위였기 때문에, 미국기업들은 자국행정부를 대상으로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unfair trade practice)을 방관하지 마라"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목표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를 통해 '평평한 경기장'(level playing field)을 만들어서 국가 간에 '공정한 무역'(fair trade)을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 폴 크루그먼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과 기타 다른 연구를 통해 전략적 무역이론의 토대를 만들었으나, 전통적인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는 전략적 무역정책 · 산업정책 · 유치산업보호 정책 · 보호무역을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1987년 논문 말미에서 "약탈적 무역 및 산업정책이 가능할 수 있으나 (...) 바람직한 정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노파심을 표현했습니다. 정부의 일시적인 지원으로 비교우위가 창출되고 영구히 변화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이로운지 해로운지 여부는 소비자후생도 같이 고려하여 평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적 우연성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미래 기대(expectation) 영향이 더 클 경우 과거부터 걸어온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날 수도 있음을 짚어주었습니다. 


크루그먼은 단지 기업가가 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수용하여 '영원히 시장을 뺏기게 될 이론적 가능성'을 이야기 하였을 뿐인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전통적인 자유무역정책에 반하는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실행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개입주의 무역정책의 근거가 된 또 다른 논리는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이 글에서 몇번이나 언급했던, 전략적 무역정책은 "시장을 보호하면 국내 생산자가 학습을 할 것이다"는 소극적(?) 주장을 넘어서서 "관세나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의 초과이윤을 뺏어와 국내 기업에게 줄 수 있다"는 적극적인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전략적 무역정책'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This wider approach reveals that much of the concern about long-run competitiveness is based on misperceptions. Although the recent appreciation of the dollar has created a temporary loss of competitiveness, the United States has not experienced a persistent loss of ability to sell its products on international markets; [본문으로]
  4. there is no necessary relation between productivity and competition in international markets. Slow growth in productivity only hampers a country'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if it is not offset by correspondingly slow growth in real wages.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9.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1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12. 물론, 대부분 금융 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은 지속불가능 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본문으로]
  13.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14.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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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Posted at 2017. 6. 29. 08:26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솔로우 모형 복습

'솔로우 모형'을 다룬 지난글[각주:1]을 통해, 국가별로 '생활수준 차이'(=level의 문제), '성장속도 차이'(=growth의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성장'(=engine of growth의 문제)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살펴보았죠. 

이번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솔로우 모형을 잠깐 복습해 봅시다.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것은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 이었습니다.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다른 나라는 못 사는 이유는 '자본축적 수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1인당 생산량이 커서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죠.   

국가별로 경제성장률이 다른 이유는 그 국가의 경제상태가 '전이경로에 있느냐, 정상상태에 있는가'(transitional dynamics)가 구분지었습니다. 자본이 많이 축적될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줄어드는 체감현상(diminishing)이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낸 근본원인 입니다.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을 해와서 이미 정상상태(steady state)에 다다른 국가는 성장률이 전보다 낮은 값을 기록하게 됐으며,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한 국가는 체감현상의 영향을 덜 받는 전이경로에 놓여있어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때, 체감현상은 "지속적인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을 달성하려면 자본축적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정상상태에 다다를수록 성장률이 하락하고 결국 0%가 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 '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의 성공과 좌절


솔로우 모형의 핵심을 복습했으니, 이제 이번글에서 다룰 내용에 대해 생각 해봅시다. 



'자본축적'을 강조하는 솔로우 모형은 현실을 설명하는가? 

-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 수학적으로 정교화된 이론[각주:2]일지라도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솔로우 모형은 '미국경제'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미국 이외의 나라에도 적용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글에서는 한국 · 싱가포르 ·대만 · 홍콩, 즉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의 경제성장 과정을 통해, '자본축적의 힘'을 알아볼 겁니다. 



자본축적과 기술진보, 무엇이 중요할까? 

- 기술진보 없는 자본축적, 결국...


:  생활수준(level)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growth)을 위해서는 '기술진보'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에 중요성을 더 부여하고 있습니다. 기술진보에 대해서는 그저 '외생적으로 전세계에 똑같은 값이 주어졌다'고 가정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술진보 없는 경제성장은 결국 멈추게 될 것 이라고 말하고도 있습니다.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로도 기술진보 없는 자본축적은 경제성장률 하락을 불러올까요? 

이번글에서는 1990년대 당시 경제학자들이 동아시아를 바라보면서 가졌던 불안함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장회계식을 통해 솔로우 모형 이해하기


이번글 논의를 소개하기에 앞서, 내용이해를 위한 기본개념을 먼저 알아봅시다. 상당히 지루할 수 있지만.... 알면 좋습니다.


솔로우 모형이 말하는 아래 두 가지 문장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나타날까요?


● "자본축적을 늘릴수록 경제가 성장한다"

●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이 지속적인 성장을 만들어낸다" 


일반적으로 수식 사용은 경제학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이해를 쉽게 도와줄 겁니다.

 

 

 

솔로우 모형이 전달하고 하는 바는 "1인당 생산량 증가(=경제성장)는 1인당 자본축적과 기술진보로 구성되어 있다"로 바꿔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때, 자본축적이란 '자본이라는 요소를 생산과정에 투입한 것'(capital input) 입니다. 그리고 기술진보란 '주어진 요소를 가지고 좀 더 많이 생산케 하는 것, 즉 생산성 증가'(productivity gain) 입니다. 


따라서, '생산량 변화율 = 자본투입 증가율 + 생산성 증가율' 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위에 나타난 수식이 이를 보여줍니다.


(주 1 : 솔로우 모형은 '1인당'(per capita)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여기서의 생산량 및 자본투입량은 1인당 기준입니다.)


(주 2 : 자본투입 증가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전체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capital share)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자본투입 증가분에다 자본비중(α)을 가중평균 하는 형식으로 생산량 변화를 산출할 수 있습니다.)

 

 

1인당 생산량이 아닌 경제 전체의 생산량을 살펴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솔로우 모형은 '1인당'이 기준이었기 때문에 인구증가율이 높을수록 1인당 자본량 · 1인당 생산량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경제 전체 '총'(gross) 자본량 및 생산량은 인구가 많을수록 증가합니다. 쉽게 말해, 더 많은 사람이 있을수록 일을 하는 양도 많아지고, 결과적으로 생산량도 늘어나기 때문이죠.


이때, 인구가 많아지는 것을 '노동이라는 요소를 생산과정에 투입한 것'(labor input) 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총 생산량 변화율 = 노동투입 증가율 + 자본투입 증가율 + 생산성 증가율'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위의 수식이 이를 보여줍니다. 


(주 : 앞서 자본투입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동투입 증가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전체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labor share)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노동투입 · 자본투입 증가분에 각각의 비중을 가중평균 하는 형식으로 생산량 변화를 산출합니다.) 

 

이때, 투입된 자본량 · 노동량은 비교적 쉽게 수치를 구할 수 있습니다. 자본량은 '투자'라는 형식으로 GDP 산출 과정에서 얻어지고, 노동량은 '인구증가율'을 보면 됩니다. 


그런데 기술진보율, 즉 생산성 증가율은 산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산량을 투입된 자본량(노동량)으로 나누면 단순한 자본생산성(노동생산성)만 도출될 뿐입니다. 


자본생산성은 자본을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노동생산성도 근로자가 얼마나 많은 자본을 가졌는지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확한 생산성 측정을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의 영향을 함께 고려한' 값을 구해야 합니다. 이를 '총요소 생산성'(TFP, Total Factor Productivity) 혹은 '다요소 생산성'(MFP, Multi Factor Productivity) 라고 합니다.   


총요소 생산성을 산출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는 1인당 생산량(per capita ouput)과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 output)을 비교하여 대략적인 생산성 정도를 살펴보는 법 입니다.


말이 헷갈리기 쉬운데요... 


1인당(per capita)은 국민 전체를 모수로 산출한 값입니다. 보통 우리가 '1인당 GDP', '1인당 국민소득' 라고 말할 때 사용합니다. 이는 '국민 전체의 생활수준'(standards of living)을 보여줍니다.


근로자 1인당(per worker)은 실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근로자만을 모수로 산출한 값입니다. 생산과정에 참여한 사람이 만들어낸 생산량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는 '생산성'(productivity) 정도를 보여줍니다.


이미 오래전 경제성장을 달성하여 근로자 투입 증가분이 적은 선진국은 다른 국가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높은 값을 보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요소투입 보다는 생산성 증가의 힘이 더 큰 상황이죠.


반면,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하여 근로자 투입이 늘어나고 있는 개발국가는 다른 국가에 비하여 (모수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낮은 값을 보입니다. 다르게 말해, 이들 국가는 현재 생산성 증가 보다는 요소투입에 의해 성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국가는


● '1인당 생산량'과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 간의 격차가 비교적 크다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이미 요소투입을 끝낸 국가에 비하여) 비교적 느리다


이렇게 대략적인 비교를 통해 (정확한 값은 아니지만) 생산성 정도를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총생산량 변화분에서 자본 · 노동 투입 증가분을 제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총요소 생산성을 도출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값을 얻어내는 방식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총생산량 변화분은 '노동투입 증가분 + 자본투입 증가분 + 생산성 증가분'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비교적 구하기 쉬운 '노동투입 증가분 + 자본투입 증가분'을 총생산량 변화분에서 차감하고 나면 '생산성 증가분'이 구해집니다.


총요소 생산성의 정확한 값을 도출할 때는 두번째 방법을 많이 씁니다. 




※ 현실을 설명해낸 솔로우 모형 

- 1980~1990년대, 동아시아 성장기적은 요소축적 덕분



자, 지루한 과정을 모두 거쳤으니 이제 본 내용을 알아봅시다.


1980~90년대 경제성장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대한민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 동아시아에 위치한 네 나라 였습니다. 


이들 국가는 1970~80년대를 기점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나가며 '신흥산업국'(NICs, Newly Industrializing Countries)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라고 불렀고, 경제성장 성공담은 '성장기적'(growth miracle)이 되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동아시아의 네 나라는 어떻게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 


학자들이 처음 주목한 것은 이들이 가진 공통점, '대외지향적 수출정책'(outward-oriented policies) 및 '제조업 중심 정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이건 우리 한국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 조선소 · 자동차 · 철강 등 제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였고,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왔습니다. 나머지 세 국가 역시 수출제조업을 키우면서 성장해 나갔죠.  


따라서, 기존 학자들은 "대외지향적 정책에 힘입은 생산성 개선, 특히 제조업 생산성 향상이 성장기적을 만들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시장을 외국에 개방하면서 경쟁력을 얻고 산업수준을 업그레이드 했다는 생각이었죠.


  • 알윈 영(Alwyn Young, 現 런던정경대, 前 MIT)


하지만 한 학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자  영(Alwyn Young)은 1994년 논문 <동아시아 NICs의 교훈: 통념에 반하는 시각>(<Lessons from the East Asian NICS: A contrarian view>), 1995년 논문 <숫자의 횡포: 동아시아 성장 경험의 현실을 통계로 직시하기>(The Tyranny of Numbers: Confronting the Statistical Realities of the East Asian Growth Experience) 을 통해 당시 학자들 사이에 퍼져있던 통념을 반박합니다. 


그는 "동아시아 성장기적은 대외지향적 정책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 증가 덕분이다"(factor accumulation)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네 나라의 제조업 성장 원인도 생산성 증가 보다는 '제조업으로의 자원 재배치'(sectoral reallocation of resources)에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1인당 생산량'(per capita output)과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 output)의 차이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자는 전체 국민의 생활수준을, 후자는 경제의 생산성을 보여줍니다.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가파르게 증가할수록(=요소투입이 급증할수록), '근로자 1인당 생산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값을 기록합니다.


  • Young(1994)


분명, '1인당 생산량'(per capita) 증가율을 살펴보면 동아시아 네 나라는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높은 값을 기록했습니다. 1960~1985년 사이 연간증가율은 대만(6.2%) · 홍콩(5.9%) · 싱가포르(5.9%) · 한국(5.7%)로 전세계 주요국 가운데 2~5위를 차지했습니다. 


제일 낮은 값을 기록한 한국을 기준으로, ±2% 내에 드는 국가는 15개에 불과했습니다.


  • Young(1994)


하지만 생산성을 나타내는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을 보면 사뭇 다릅니다. 대만(5.5%, 4위) ·한국(5.0%, 7위) · 홍콩(4.7%, 8위) · 싱가포르(4.3%, 14위) 입니다. 분명 높은 순위이긴 하지만, 앞서의 순위보다는 하락했습니다. 


게다가, 제일 낮은 값을 기록한 싱가포르를 기준으로 ±2% 내에 드는 국가는 19개로 늘었고, 앞서와 달리 나머지 국가들과 두드러진 격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Young(1994), X축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율, Y축 1인당 생산량 증가율
  • 경제활동 참가율이 1% 증가할수록 1인당 생산량 0.85% 증가


알윈 영은 이를 근거로 "(생산성 향상이 아닌) 네 국가에서 발생한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 즉 노동투입 증가가 성장기적의 요인" 이라고 진단합니다. 통계분석을 통해, "1%의 경제활동 참가율 상승이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을 0.85% 올린다."는 결과도 제시했습니다. 


네 국가는 전후 베이비붐 등의 영향으로 인구가 크게 늘었으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덕분에 생산과정에 투입된 사람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홍콩의 경우, 1960년 경제활동 참가율은 39%에 불과했으나 1985년에는 53%를 기록했죠. 


  • Young(1994), 한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의 1960~1985년간 GDP 대비 투자 비중 변화


그런데 이것은 '노동투입'(labor input) 만을 고려한 것입니다. '자본투입'(capital input)도 살펴보면 요소투입의 영향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1960~1985년 사이, GDP 대비 투자 비중은 대만 2배 · 한국 3배 · 싱가포르 4배나 증가했습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수치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 Young(1994)


자, 이제 '노동투입' · '자본투입' 등 요소투입 영향력을 모두 제거한 생산성의 변화, 즉 총요소 생산성의 연간 증가율을 살펴봅시다. 


홍콩(2.5%, 6위) · 대만(1.5%, 21위) · 한국(1.4%, 24위) · 싱가포르(0.1%, 63위)로 크게 하락합니다. 대만과 한국을 기준으로 81개의 국가가 ±2% 내에 들어 있습니다. 


즉, 총요소 생산성은 1인당 생산량 증가에 비해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 Young(1994)


마지막으로 기존 학자들이 주목했던 '제조업'을 살펴봅시다. 1970~1990년 사이, 네 나라의 근로자 1인당 제조업 생산량 증가율은 한국(7.3%) · 대만(4.1%) · 싱가포르(2.8%)를 나타냈습니다. 나머지 국가들의 평균 증가율이 3.2% 인점을 감안하면, 한국을 제외한 세 나라는 제조업 생산성이 높은 수준도 아니었습니다


반면, 제조업 고용인구 증가율은 한국(5.5%) · 싱가포르(5.7%) · 대만(5.6%) 등 대략 6%의 연간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나머지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1% 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아시아 네 나라의 제조업 성장 원천은 '생산성 향상이 아닌 노동투입 증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알윈 영은 "자본 · 노동 등 요소투입의 급격한 증가가 동아시아 성장기적의 대부분을 설명한다"(rapid factor accumulation, of both capital and labour, explains the lion's share of the East Asian growth miracle.) 라고 결론 내립니다. 


즉, 동아시아 네 나라의 성장은 솔로우 모형이 말하는 "'자본축적'(혹은 '요소축적')이 경제성장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현실에서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 생산성 향상 없이 진행된 요소축적... 지속가능 할까?

- 아시아 기적의 근거없는 믿음


우리가 이전글을 통해 솔로우 모형을 공부[각주:3]했다는 사실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자본축적'(요소축적)이 미국이 아닌 동아시아 경제성장도 설명할 수 있었으니깐요. 이론은 현실을 설명해 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찝찝한 마음도 감출 수 없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축적 이외에 기술진보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생산성 혁신 없이 자본축적에 의존하는 성장은 결국 0%의 성장률로 귀결될 겁니다.


2017년인 지금은 과거의 동아시아를 단순한 호기심으로 바라볼 순 있지만, 1990년대 당시를 보냈던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알윈 영의 주장처럼 동아시아 성장기적이 요소축적에 의한 것이라면, 언젠가 이들의 성장세가 멈추지 않을까요? 



1994년 11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각주:5])은 의미심장한 글을 내놓았습니다. <Foreign Affairs>에 기고한 <아시아 기적의 근거없는 믿음>(The Myth of Asia's Miracle)을 통해 동아시아 경제를 향한 우려를 표현했습니다.


(주 : 이 글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라는 단행본 중 한 챕터로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아시아 붐에 대한 일반인들의 열기에는 찬물을 약간 끼얹어야 마땅하다. 아시아의 급성장은 많은 저술가들의 주장처럼 서구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성장의 미래 전망은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제한적이다." (...)


"성장회계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경제성장의 과정에 관해 아주 중요한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한 나라의 1인당 소득의 지속적인 성장은 투입단위당 생산이 증가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입 생산요소의 이용효율은 높이지 않고 단순히 투입량만을 늘리는 것은 결국 수익률 감소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즉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은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1950년대의 소련처럼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들이 급성장을 이룩한 것은 주로 놀랄만한 자원의 동원 덕분이었다. 이들 국가의 성장에서, 급증한 투입이 발휘한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더 이상 말할 거리가 별로 남지 않는다. 


높은 성장기에 보여준 소련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성장도 효율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이례적인 투입 증가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성장이 주로 투입증가에 의한 것이고, 그 곳의 축적된 자본이 벌써 수익체감의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완전히 이치에 부합되는 행동이다. (...) 최근 몇 년 간의 속도로 아시아의 성장이 지속될 수는 없다."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229-244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솔로우 모형을 배운 사람들에게, 그리고 알윈 영(Alwyn Young)의 논문을 본 사람들에게, 폴 크루그먼의 이 글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놀랄만한 사실이 없습니다.


하지만 1994년 당시 동아시아 성장기적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컸던 상황에서 이런 글이 나왔다는 점, 그리고 3년 후인 1997년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각주:6]했다는 사실이 이 글의 주목도를 키웠습니다.  


물론, 폴 크루그먼은 3년 후에 다가올 위기(crisis)[각주:7]를 예측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이나 사람들은 이 글을 "3년 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글" 이라고 말하는데, 크루그먼은 단지 솔로우 모형이 이야기하는 성장률 저하(=수렴현상)를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그는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1998년에 쓴 글[각주:8]에서 "우리는 단지 장기적으로 성장률 둔화가 점진적으로 발생할 것 이라고 예측했을 뿐이다."[각주:9] 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이 글은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것과 맞물려서 큰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은 '아시아의 기적'을 칭송하는 대신 "그럼 이제 아시아의 성장세는 멈추는 걸까?" 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죠. 


(사족 :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요소투입'의 역할을 보려면,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각주:10] 참고)




※ 생산성! 생산성! 생산성!


[경제성장이론 시리즈] 두번째 글도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번글을 통해서, "솔로우 모형이 실제 현실 설명에도 적용 가능" 하며, "1970~1990년대 동아시아 성장은 생산성 증가가 아닌 요소축적에 의해 달성된 것", 그리고 "생산성 증가 없는 성장을 기록해온 동아시아는 결국 솔로우 모형이 말한 바와 같이 성장률 저하를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분명 솔로우 모형이 강조한 '자본축적'은 경제성장 달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 동아시아 네 국가는 요소축적 힘만으로도 높은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죠. 그러나 결국 생산성 혁신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 하다는 한계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또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요소투입'에 의존하여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있을까? 

- 중국경제는 '중진국 함정'에 빠졌을까


: 만약 오늘날에도 생산성 증가 없는 요소투입에 의존하는 국가가 있다면, 이 나라는 향후 몇년 내에 점차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혹은 걱정) 할 수 있습니다. 


2017년 오늘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우려를 키우고 있는 국가 중 대표는 바로 '중국' 입니다. 


1990년 이래로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고도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은 성장방법도 유사합니다. 중국은 '많은 투자'를 통해 집중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있으며, 기존에 산업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생산에 투입되어 생산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중국이 '요소투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많은 걱정을 하게 만듭니다. 만약 중국이 생산성 혁신을 하지 못하여 성장률이 점차 하락한다면, 세계경제는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죠. 실제로 10% 넘었던 경제성장률은 최근 7%~8% 부근까지 하락했습니다. 


생산성 혁신을 하지 못하여 낮은 성장률에 빠지는 경우를 경제학자들은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 이라고 부릅니다. 더 이상 1인당 소득을 늘리지 못하여 중진국에 머무르게 된다는 말이죠.


과연 중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일까요? 혹은 빠지게 될까요?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이를 알아봅시다.



1997 외환위기 이후 생산성을 끌어올려온 한국


  •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 2012.06.20


: 1997 외환위기 이전 한국은 분명 요소투입에 의존하는 문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한국경제 자체가 과잉투자에 의존한 채 성장[각주:11]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1997년 이후 한국경제는 과거와 다릅니다. 한국의 총요소 생산성 기여율은 극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1981~1990년 사이 생산성이 성장에 기여하는 크기는 19.6%에 불과 했으나, 2006~2010년에는 47.3%까지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생산성 혁신'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 주제도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공부해봅시다.



생산성 둔화 현상


: 한국의 생산성은 많이 개선되었으나,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미국의 고민은 '생산성 둔화 현상'(Productivity Slowdown) 입니다. 


1990년대 IT붐의 힘으로 높은 생산성 증가율을 기록해온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증가율이 둔화 되었고, 2008 금융위기 이후에는 더 낮은 값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 세상은 이전보다 더 발전되고 진보한 것처럼 보입니다. 인터넷, 스마트폰, 각종 전자기기, AI 등등 그동안 IT 산업의 발전은 눈 부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생산성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이것도 다른글을 통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봅시다.

 


생산성은 어떻게 증가시킬 수 있는가?


: 이전글 솔로우 모형[각주:12]을 공부하고 난 뒤에 느꼈던 찝찝함이 이번글을 읽은 후에도 남아있습니다. 이전글 마지막 부분에 제가 제기한 물음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기술진보가 '외생적'으로 발생하나?"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가 외생적(exogenous)으로 발생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그럼 어떻게 하면 기술진보율, 즉 생산성을 끌어올리느냐?" 라는 물음에 답을 해주지 못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전글 마지막에도 밝혔듯이, 불만족을 느낀 다른 여러 경제학자들은 '기술진보가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모형'을 통해, 현실경제에 대한 설명력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내생적성장 모형'(endogenous growth model)을 살펴봅시다. 



국가간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내는 요인은 무엇일까? 

- 자본축적이냐 기술진보냐


: 이번글의 맨 첫부분, 솔로우 모형 복습에서도 살펴봤듯이, 국가간 성장률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ics)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막 자본축적을 시작한 국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죠. 


따라서, 1980~90년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자본축적량을 빠르게 늘리면서(=요소투입을 빠르게 늘리면서) 고도성장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자본축적(=요소투입)만이 국가간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내는 요인일까요? 


국가간 기술진보 정도, 즉 생산성이 달라도 성장률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높은 생산성을 가진 국가는 더 빠르게, 낮은 생산성을 가진 국가는 더 늦게 성장할 겁니다. 이때 기술진보가 불러오는 성장은 정상상태 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상태에 다다르기 이전에도 기술진보율이 높은 국가(=생산성이 높은 국가)는 더 빠르게 성장 가능합니다.


따라서 '기술혁신이 빠르게 발생하며 유출을 원천 차단한 선진국' / '시장개방 정도가 더 높고 기술흡수 잠재력이 높은 개발국' 등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율이 외생적으로 주어졌으며 전세계 동일하다고 가정합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은 전세계 어디로나 확산(diffusion) 되는 공공재(public good)이기 때문에, 국가간 생산성 차이가 성장률 격차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죠. 


이번글에서는 우선, "빠른 성장을 불러오는 요인은 자본축적 이다" 라고 주장하며 솔로우 모형을 옹호하는 학자만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추후 [경제성장이론 시리즈]의 다른글들을 통해,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기술 격차(technology gap) 혹은 아이디어 격차(idea gap)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경제학자를 알아볼 계획입니다. 


'자본축적 vs 기술진보' (요소투입 vs 생산성혁신) 라는 쟁점, 다르게 말해 '기술을 공공재로 바라보느냐 아니냐'가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계속 머릿속에 넣어둔채로 천천히 알아봅시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제 블로그에서 '수식'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많은 경제학이론이 그렇듯이 솔로우 모형 또한 수리적으로 엄밀하게 도출되었습니다.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4. [1997년-2005년]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 2016.01.22. http://joohyeon.com/243 [본문으로]
  5. 폴 크루그먼은 '국제무역이론을 수립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본 블로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6.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2015.12.29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7. 경제학용어인 '위기'(Crisis)는 단순한 성장률 저하를 뜻하지 않습니다. 경제위기란 현재 생산량이나 증가율에 오랜기간 타격을 주는 현상을 뜻합니다. '위기'의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는 http://joohyeon.com/248 참고 [본문으로]
  8. "아시아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What Happened to Asia?). 1998.01. http://web.mit.edu/krugman/www/DISINTER.html [본문으로]
  9. "we expected the longer-term slowdown in growth to emrge only gradually." [본문으로]
  10.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11.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12.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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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Posted at 2015. 7. 30. 20:26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범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



[유럽경제위기 시리즈]를 통해 누차 말했듯이,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Optimum Currency Area Criteria)[각주:1]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발하였다. "일단 유로존이 출범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립조건을 충족시켜 나갈 것이다"라고 믿었던 최적통화지역 내생성(Endogeneity of OCA)은 현실화 되지 않았다. 



유로존 출범 이후 누적되어온 독일 등 핵심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와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 즉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각주:2]은 최적통화지역 이론에 위배된채 출범한 '유로존의 근본적 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로존을 범위로 하였을때 유로화 그 자체는 변동환율이 적용되지만, 유로존에 속한 개별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에만 맞추어 유로화 통화가치를 조정할 수 없다. 이는 곧 별국가에서 대외불균형이 발생했을때 환율변동을 통한 균형조정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로존 소속 개별국가들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상실'하였다. 만약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보유했더라면, 외환시장 개입을 통하여 환율을 인위적으로나마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로존 전체를 관할하는 유럽중앙은행(ECB)만을 보유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한 환율개입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고정환율제 · 독자적인 중앙은행 상실이라는 결함을 유로존이 가지고 있더라도, 개별국가들이 경기변동 동조화를 보이거나 상품가격·임금 신축성 등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켰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유럽 핵심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흑자를 혹은 주변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 혹은 경상수지 적자를 공통적으로 기록했다고 가정해보자. 유로존 소속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상승하고, 모두가 경상수지 적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하락한다. 유로존은 유로화 환율 변동을 통해 대외균형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상품가격·임금 신축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경상수지 적자 발생시 상품가격·임금 하락을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하여 경상수지 균형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리를 하면, 유로존이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경기변동이 동조화' ·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상품가격 · 임금 신축성 보유' 등의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만족시켰어야 했다.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이 교정되지 않고 지속되어왔다는 사실은 '최적통화지역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는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드러내고 있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은 경제위기 진행와중에도 문제를 일으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전체를 관할하는 중앙은행이다. 만약 유로존 전체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면 적극적으로 확장적 통화정책을 구사했을테지만, 유로존 일부지역에서만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지 몰라서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확장적 통화정책은 위기 발생 지역에는 이점을 가져다주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는 인플레이션만 불러오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계속해서 논쟁이 펼쳐질 수 밖에 없었다[각주:3]. 독일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기보다, 주변부 국가들이 재정지출을 줄여서 부채를 상환하기를 원했다.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의 이러한 요구에 반발했고 그와중에 유럽경제위기는 더욱 더 심화되었다.



여기에더해, 나머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인 'region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 '재정통합'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 또한 유럽경제위기가 커지는데 일조를 했다. 


유럽경제위기는 '경상수지 불균'이 누적된 상황에서, 미국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유럽은행이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타격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자산손실을 입은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주변부 국가들은 구제금융을 금융부문에 투입하였다. 그 결과, 유럽 주변부 국가들에서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하였다. 유럽의 은행위기(Banking Crisis)가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가 된 것[각주:4]이다.


만약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인 'region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 '재정통합'을 유로존이 충족시켰더라면, 유럽은행위기는 재정위기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번글에서는 이러한 2가지 조건을 중심으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original flawed design of the euro)인 '재정동맹(fiscal union)  은행동맹(banking union) · 자유로운 노동이동(free labor mobility) 없이 출범한 유로존'을 살펴볼 것이다.



  

※ 자유로운 노동이동과 재정동맹 · 은행동맹의 중요성

- 미국과 유로존의 유사점과 차이점


'재정동맹'(fiscal union)이란 간단히 말해 '같은 통화를 공유하는 국가간에 재정이전(fiscal transfer)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상태는 다시 여러 층위로 구분할 수 있다. 한 국가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했을때 다른 국가들이 단순히 '채무공동보증'(joint guarantee)을 서주는 경우 · 여러 국가들이 안정화기금 등을 평소에 공동으로 적립하고 위기가 발생했을때 이를 사용하는 경우(stabilization fund) · 한 국가에서 세입이 부족한 다른 국가로 직접적인 재정이전을 해주는 경우(fiscal equalization) · 아예 연방정부를 만들어 연방재정을 운용하는 경우(fiscal federalism) 등이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니 쉽게 생각하자. '재정동맹'(fiscal union)은 현재 미국을 생각하면 된다. 여러 주들로 구성된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세금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한다. 하지만 유로존은 연방정부가 존재하지 않고 각 국가들이 재정을 관리한다. 



미국과 유로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더 알아보자. 


미국은 여러 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각 주들의 GDP는 중소국가의 GDP에 맞먹고 독자적인 주 헌법도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주들은 '달러화'를 같이 공유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을 '독립적인 각 주들이 통화동맹을 구성한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점에서 미국과 유로존은 유사하다. 유로존의 독일 ·  프랑스 · 그리스 · 스페인 등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 텍사스쿠 · 펜실베니아주 · 마이애미주로 대응해서 생각하면 된다.  


미국과 유로존 간에는 이러한 유사점과 함께 차이점도 존재한다. 


첫번째 차이점은 '미국은 각 주들간의 노동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유로존은 소속 국가들간의 노동이동이 비교적 힘들다'는 점이다. 미국인은 캘리포니아주를 떠나 뉴욕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세금을 거두고 이를 각 주에 배분한다. 하지만 유로존 소속 국민들은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가 비교적 어렵다. 정치구조, 문화 등이 완전히 다른나라로 이민을 가는 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미국은 연방재정이 존재하고 유로존은 개별국가들이 재정을 독자적으로 운용한다'라는 것이다. 미국은 각 주들이 독자적인 재정도 운용하지만, 연방정부가 각 주에서 세금을 거두고 배분한다. 미국의 주들은 같은 나라 국민들끼리 재정을 공유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이에반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통화를 공유하지만 재정만큼은 국가단위에서 운용하고 있다. 세금의 수입·지출 관리는 국가의 주권(sovereignty)과 관련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은행안정을 담당하지만, 유로존은 개별국가가 은행을 관리한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은행감독을 실시하고 있으며, 한 주에 위치한 은행이 파산위험에 처한다면 연방정부 차원에서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한다. 그러나 유로존은 개별국가에 위치한 은행감독 책임을 해당국가에 물리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에 위치한 은행 감독은 유로존 차원에서 담당하는게 아니라 그리스정부가 맡고있다. 또한, 개별국가 은행이 파산할 경우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 자금 투입은 금지되고 있다.(no bail-out clause)  


정리하면, 미국은 통화동맹을 이룸과 동시에 재정동맹 · 은행동맹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노동이동도 자유롭다. 하지만 유로존은 통화동맹은 이루었으나 재정동맹 · 은행동맹이 없고 노동이동이 비교적 어렵다.   


미국과 유로존의 이러한 차이점은 경제위기 발생 이후 대응에서 큰 차이를 초래한다. 


첫째, 미국은 한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노동이동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는 경기상황이 비교적 좋은 다른 주로 이동하여 실업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로존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유로존내 특정국가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때 해당국가 국민은 경제상황이 비교적 좋은 다른나라로 쉽사리 이동하지 못한다. 말그대로 다른나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침체가 발생한 국가의 실업문제는 심화된다.  


둘째, 미국의 한 주에서 은행위기가 발생한다면 연방정부 차원에서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하여 위기를 조기에 진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평소 연방정부 차원에서 미국내 은행들의 거래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위기 자체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내 한 국가에서 은행위기가 발생한다면 그건 그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여기에더해, 유로존 차원의 은행감독 부재는 은행위기를 예방하지도 못한다. 유로존 성립 이후 금융통합이 심화되어 유럽은행들은 유로존내 국경을 뛰어넘는 거래(cross-border transaction)를 많이 하고있지만, 유로존 차원의 은행감독은 부재하고 개별국가의 감독책임만 있다. 결국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자신들 나라에 위치한 은행이 다른나라 은행과 어떠한 거래를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은행위기를 예방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셋째, 미국은 한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때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만약 경기침체가 발생한 주의 재정상태가 좋지않더라도, 연방정부의 재정이 집행되기 때문에 안정화정책이 용이하게 실시될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은 특정국가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그 국가가 재정정책의 부담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해당국가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면, 경기침체에 대응한 재정지출 증가는 재정상태를 더욱 더 악화시킨다. 


더욱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각주:5]하자.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쓸 수 있는 안정화정책은 재정정책 뿐이다. 경제위기 발생 이전부터 재정정책이 모든 부담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재정상태가 좋지않더라도,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재정정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경기침체를 겪은 국가가 재정지출 증가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상황' + '안정화정책 수단으로서 재정정책만이 남은 상황'으로 인해 경제위기가 지나간 후 남은건 '재정적자 심화'와 '국가부채 증가'이다.           


미국은 '성공한 통화동맹' 이다. 특정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때 '노동이동'과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연방 차원의 은행감독'을 통해 은행위기를 예방할 수도 있다.


반면 유로존은 (현재로서는) '실패한 통화동맹'이다. 특정 국가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을때 '노동이동의 경직성'은 실업문제 해소를 어렵게 만든다. '개별국가가 재정정책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위기 이후 남은건 급증한 국가부채이다. 또한, '은행감독 책임이 개별국가에' 있기 때문에, 은행위기 예방도 불가능하다. 


유로존 결성 이전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예상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미국과 유럽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며,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예상했다. 



   

※ '노동이동 경직성'이 존재하고 '재정이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통화동맹을 구성한다?


유로존 결성 이전부터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지적해온 대표적인 경제학자는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 등이다. 이번글에서 Paul Krugman의 논문을 통해 '노동이동' · '재정이전'의 중요성을 알아보자.


Paul Krugman은 1993년 논문 <Lessons of Massachusetts for EMU>(<유럽통화동맹을 위한 매사추세츠 주의 교훈>)을 통해, "유로존이 통화동맹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노동이동과 연방재정(Federal Budget)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한다. Paul Krugman의 논리를 따라가보자.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유로존 결성 이전, 그리스에 상품을 판매하려는 기업은 그리스에 위치해야 했다. 상품의 운송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존 도입 이후 국가간 무역거래비용은 감소(reduction of transaction cost)되고, 이제 기업은 그리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상품을 생산한 뒤 운송을 해도 이윤이 남는다. 


이제 기업들의 입지결정이 달라졌다. 굳이 여러 국가에 생산공장을 둘 필요가 없다. 유로존 도입 이후 기업들은 '외부규모의 경제 효과'를 보기위해 특정국가 한 곳에 모여서 제품을 생산[각주:6]하기 시작했다. 어떤 국가에는 A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또 다른 국가에는 B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몰려든다. 그 결과, 유로존 도입 이후 국가별 특화(regional specialization)가 심화되고 유로존 소속 국가내 산업다양화는 줄어들것이다(being less diversified).     


국가별특화 심화와 산업다양화 감소는 경제위기 발생시 비대칭적 충격을 심화시킨다. 만약 A산업 공장이 여러 국가에 골고루 위치해 있을때 A산업 수요가 줄어든다면 여러 국가가 동시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A산업 공장이 한 국가에만 집중되어 있을때 수요가 감소한다면 그 한 국가에만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즉, 유로존 결성 이후에는 '특정국가에 집중된 위기가 발생할 위험'(a greater risk of severe region-specific recessions.)이 높아진다.


'경기변동에 대한 대칭적충격'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 중 하나[각주:7]임을 기억하자. 결국 유럽통화동맹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다른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인 '자유로운 노동이동'이 만족된다면 경제위기는 해결될 수도 있다. 경기침체가 발생한 국가의 국민이 다른 국가로 이동하면 실업은 해결된다. 


문제는 '자유로운 노동이동을 통한 실업감소가 상당히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과 '국민이 다른국가로 이동하면, 경제위기 이후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발생 이후 노동이동이 즉각적으로 발생하면 실업은 단시간에 해결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이동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기(not instantaneous)때문에, 경제위기 발생 이후 몇년간 실업은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이 경우 해당국가가 재정정책을 집행하여 실업문제를 빨리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는 재정정책을 집행할 유인이 없다. 왜일까? 


실업상황에 빠진 국민들은 느리게나마 다른 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나간 후 해당국가의 경제활동인구(labor force)는 크게 감소할 것이다.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생각하자. 경기침체가 해결된 이후 생산량의 침체갭(recessionary gap)은 없어질테지만 잠재성장(potential growth) 자체는 하락하고 만다. 어차피 잠재성장이 줄어들텐데 재정지출을 늘려서 실업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지출 증가는 단지 국가부채 증가만을 초래할텐데 말이다.


Paul Krugman은 '자유로운 노동이동은 생산량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쳐서 재정정책 사용을 방해한다."(in an environment of high factor mobility such shocks will tend to have permanent effects on output, which will tend to immobilize fiscal policy as well.) 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이처럼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는 재정정책을 쓸 유인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연방차원에서 재정정책을 구사해주어야 한다" 라고 말한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역할을 해주고 있고, 유로존에도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시스템'(a highly federalized fiscal system)가 필요할 것이다. 


(주 : 한 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전형적인 케인즈주의자(old-Keynesian) 라는 점이다. 그는 "실업과 경기침체는 빨리 해소되어야 한다."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노동이동을 통한 실업감소가 느리게 이루어질 동안 연방정부가 재정정책을 구사해야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재빠른 경기침체 감소'를 중요하게 생각치 않는 경제학자라면 이러한 주장을 펼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자 John Cochrane은 전형적인 케인즈주의자들이 펼치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각주:8].)


유로존이 결성되기 한참 이전인 1993년에 이러한 논문이 나왔으나, 모두 알다시피 2015년 현재에도 유로존은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시스템'이 부재하다. 


유럽재정위기로 시끄러웠던 2012년, Paul Krugman은 새로운 논문을 통해 '1993년에 했던 이야기'를 되짚는다. 2012년 논문 제목은 <Revenge of the Optimum Currency Area>(<최적통화지역의 역습>). 제목부터 심상치않다;



  • 플로리다 주와 연방정부 간의 관계

  • Revenue paid to DC : 플로리다 주가 워싱턴DC, 즉 연방정부에 낸 세금

  • Special unemployment benefits : 플로리다 주가 연방정부에게서 받은 실업보험 액수

  • Food stamps : 플로리다 주가 연방정부에게서 받은 일종의 사회안전망 액수


Paul Krugman은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사례를 통해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보여준다. 2008 금융위기의 여파로 플로리다 주 부동산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플로리다 주가 경기침체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로리다 주는 미국 연방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자동안정화장치가 작동하였고, 플로리다 주는 연방정부에 세금을 덜 바쳤다. 2007년 연방정부에 납부한 플로디다 주의 세금은 136 Billion(약 136조원)이었으나, 2010년 액수는 111 Billion(약 111조원)에 불과했다. 무려 25 Billion(약 25조원)이나 감소하였고, 감소분만큼 플로리다 주에 쓰일 수 있었다.


플로리다 주가 받은 더 큰 도움은 연방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재정이전(fiscal transfer)을 받은 것이다. 실업보험 · 푸드스탬프 등 사회안전망 프로그램 차원에서, 플로리다 주가 경기침체 발생 이후 연방정부로부터 받은 액수는 무려 7.9 Billion(약 8조원)에 달했다. 이는 경제위기 이전과 비교하여 6.6 Billion(약 6.6조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실증사례를 통해, Paul Krugman은 '통합재정'(fiscal integration)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통화동맹이 '최적통화지역'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통합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처음부터 '재정동맹'을 성립조건 중 하나로 요구해왔고, 이를 무시한채 출범한 유로존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최적통화지역에 관해 말해왔던 모든 것을 무시한채 유로존이 만들어졌습니다. 단일통화 사용 그 자체가 초래하는 문제를 약하게 말한 것만 빼면, 불행하게도 최적통화지역은 절대적으로 옳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최적통화지역 이론이 반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The creation of the euro involved, in effect, a decision to ignore everything economists had said about optimum currency areas. Unfortunately, it turned out that optimum currency area theory was essentially right, erring only in understating the problems with a shared currency. And now that theory is taking its revenge.)


Paul Krugman. 2012. <Revenge of Optimum Currency Area>. 447  



  

※ 위험감소냐, 위험분담이냐

-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 · 구제금융 방지 조항


그렇다면 유로존 출범 당시, 왜 유럽 정치인과 관료들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말해온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던 것일까? 유럽 관계자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채 유로존을 출범시킨 것은 아니다. 그들은 멍청하지 않다. 다만, 경제학자들과 다른 접근법을 취했을 뿐이다.


Paul Krugman을 포함하여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가 발생할때'를 상정해놓고 '재정통합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는 경제위기가 발생할시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럽 관계자, 특히 독일은 위험분담 보다는 애초에 위험을 감소(risk reduction)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유로존 소속 국가가 평상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한다면 위기발생 가능성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유로존은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소속 국가들에게 일정한 기준(convergence criteria)을 유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나 강조되는 기준은 안정성장협약(the Stability and Growth Pact)으로 체결된, '재정적자 3% 이내' ·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60% 미만' 등의 '엄격한 재정규율준수'(fiscal discipline) '경기침체 발생 국가에 대한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 금지'(no bail-out clause)이다.


이러한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fiscal discipline)와 '구제금융 금지'(no bail-out clause)는 '위험을 감소'(risk reduction)시키는 것 외에 또 다른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유럽중앙은행(ECB)의 인플레이션 발생 욕구 억제이다. 만약 유로존 소속 한 국가가 재정적자를 운용한 결과 경제위기에 처할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은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위기발생 국가 채권을 매입해줄 압력을 받게된다(inflationary debt bail-out). 이럴 경우 유로존 전체의 인플레이션 안정이 깨지게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재정건전성 유지가 중요하다.  


둘째, 유로존 국가간 채권금리 인상 파급효과(cross-border interest rate spillover) 방지이다. 만약 한 국가가 재정을 방탕하게 운용하여 채권금리가 상승할 경우, 그 국가의 채권금리 인상은 여러 파급경로를 통해 다른 국가의 채권금리도 상승시키게 된다. 그 결과, 유로존 전체의 채권금리가 상승하게 되고 이는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개별 국가들이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여 다른 국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유로존 국가간 정책 공동화(policy coordination) 추구이다. 누차 말했다시피,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 모든 국가가 단일한 통화정책을 영향을 받는 가운데, 재정정책은 각기 다른방향으로 유지될 경우 통화정책과의 공조가 깨지게된다. 또한, 유로존 소속 국가들간의 공조도 흐트러진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위해 개별국가에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를 요구하였다. 


넷째, 정을 방탕하게 운영하는 국가의 무임승차(free-ride)와 도덕적해이(moral hazard) 방지이다. 만약 재정적자를 기록해서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를 유로존이 도와줄 경우, 재정을 건실하게 유지해온 국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 또한, 구제금융을 상설화할 경우 굳이 재정규칙을 엄격하게 지킬 유인이 사라진다. 무임승차와 도덕적해이를 막기위해서는 구제금융 금지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위험감소 정책은 평상시 유로존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유로존은 경제위기 대응책 보다는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역사적경험으로 인해 '재정적자' · '정부부채' ·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싫어하는 독일[각주:9]은 이러한 조건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문제는 경제위기가 발생할 시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가 오히려 위기를 키운다는 점이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말했다시피, (애초부터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문제였던 그리스를 제외하고) 유럽경제위기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로부터 시작되었다. '구제금융 금지'로 인해 유로존 주변 국가들은 자국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모두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증가하였는데 '재정규율'을 지키기 위해서 긴축정책(austerity)을 시행하라는 요구[각주:10]가 들어왔다. 경기침체시 재정정책의 승수는 매우 크기 때문에[각주:11], 재정규율을 준수하기 위한 긴축정책은 위기를 심화시켰다.


분명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fiscal discipline)와 '구제금융 방지'(no bail-out clause)는 경제위기 발생 위험을 줄이기(risk reduction) 위해 꼭 필요한 조항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유로존 차원에서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것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였다. 


만약 미국처럼 유로존 차원의 '연방재정'(federalized fiscal system)이 존재했더라면 위기에 대응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유로존차원에서 각국 은행들의 대외거래(cross-border transactions)를 감독할 수 있었더라면 은행위기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이동이 자유로웠더라면 주변부 국가들의 실업문제는 비교적 빨리 해결됐을 수도 있다. 



  

※ 유로존 - 서로 다른 나라들끼리 뭉쳐진 통화동맹


유로존은 경제위기를 겪은 이후 '유로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는다. 


비교적 손쉽게 이루어지는 개혁은 '은행동맹 결성'(banking union) 이었다. 은행들에 대한 감독과 감시를 개별국가에 맡기는게 아니라, 유로존 차원의 감독을 통해 금융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개혁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재정동맹'(fiscal union)과 '자유로운 노동이동'(free labor mobility)이다. 이제 경제위기를 겪고 난 뒤의 교훈으로 유로존 차원의 연방재정을 만들어야 할까? 그리고 경기침체를 겪은 국가를 다른 국가들이 도와줘야 할까? 마지막으로,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다른 나라 국민들이 이주해온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까?


최적통화지역 이론상으로는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미국과는 달리 유로존은 '서로 다른 나라들끼리' 뭉쳐진 통화동맹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유럽'을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진행된 유로존은 역설적으로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통합' 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국가에 바친 세금을 다른나라 국민을 위해서 쓴다?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나라의 예를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바친 세금을 일본이나 중국을 위해 쓴다? 이것을 받아들일 한국인은 얼마 없을 것이다. 재정은 나라의 주권(sovereignty)과 관련된 사항이다. 노동이동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정치 · 문화 · 생활방식을 가진 다른나라 국민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이민(immigration)은 언제나 민감한 주제 중 하나였다. 


이러한 갈등은 2015년 현재 '그리스 경제위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독일인들은 빌린 돈을 갚지 않는 그리스인을 비난[각주:12]한다. 반대로 그리스인들은 구제금융 조건으로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독일인들을 비난[각주:13]한다.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 등 유럽 중심부 국가가 옳으냐, 부채탕감과 재정이전을 요구하는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유럽 주변부 국가가 옳으냐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는 위기를 심화시키지만, 그것이 없다면 무임승차와 도덕적해이 문제가 발생한다. 경기침체기의 긴축정책은 경제성장을 훼손시키지만,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부채를 감축해야 한다. 


단지 "유럽인들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서로 다른 나라끼리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보여준다."라는 해석만 할 수 있을 뿐이다.



  1.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2.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3.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28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4.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2015.07.27 http://joohyeon.com/226 [본문으로]
  5.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28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2015.07.30 http://joohyeon.com/218 [본문으로]
  7.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30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8. 'Mankiw and Conventional Wisdom on Europe'. 2015.07.28 http://johnhcochrane.blogspot.kr/2015/07/mankiw-and-conventional-wisdom-on-europe.html [본문으로]
  9. 'Germany's hyperinflation-phobia'. 2015.11.15 The Economist [본문으로]
  10. '[긴축vs성장 ③]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2013.04.19 http://joohyeon.com/145 [본문으로]
  11. '[긴축vs성장 ①]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2012.10.20 http://joohyeon.com/114 [본문으로]
  12. 'Germany’s Destructive Anger'. NYT. 2015.07.15 [본문으로]
  13. 'Greece’s Alexis Tsipras faces Syriza rebellion over ‘humiliation’. FT. 2015.07.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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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Posted at 2015. 7. 30. 20:25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유로존의 근본적 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


지난 [유럽경제위기 시리즈]를 통해, '유로존 결성 이전' · '유로존 결성 이후부터 2008 금융위기 이전까지' · '2008 금융위기 이후 유럽재정위기 발생까지'를 살펴보았다. 


유럽은 '하나의 유럽' 이라는 정치적목적을 달성하기에 앞서 경제통합을 우선 진행하였다.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이 "유럽은 단일통화를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라고 지적하였으나, 유럽통합은 경제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정치적 프로젝트 였다. 경제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은 결성되었다.



본래 여러 국가가 단일통화를 공유하려면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Optimum Currency Area Criteria)를 만족시켰어야 했다[각주:1].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은 ① 통화를 공유하는 국가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② 상품가격과 임금의 신축적인 조정 가능 ③ 통화를 공유하는 국가간 재정이전 가능 ③ 경기변동 충격이 통화지역 소속 국가간에 대칭적으로 발생 등이 있다.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하지 못한채 출범이 되었고 결국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은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에서 자라고 있었다[각주:2]. 유로존 출범 이후, 독일 · 프랑스 등 유로존 핵심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온 반면에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유로존 내 불균형'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도입된 '유로존의 근본적 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3가지 지점을 통해 보여주었다.


첫째,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로존을 범위로 하였을때 유로화 그 자체는 변동환율이 적용되지만, 유로존에 속한 개별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에만 맞추어 유로화 통화가치를 조정할 수 없다. 이는 곧 개별국가에서 대외불균형이 발생했을때 환율변동을 통한 균형조정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변동환율을 채택한 국가는 경상수지 흑자 발생시 통화가치 상승, 경상수지 적자 발생시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대외균형을 맞춰나간다. 하지만 유로존에 속한 개별국가들은 자동조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 혹은 경상수지 적자는 계속해서 누적된다.       


둘째, 유로존 소속 개별국가들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상실'하였다. 만약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보유했더라면, 외환시장 개입을 통하여 환율을 인위적으로나마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로존 전체를 관할하는 유럽중앙은행(ECB)만을 보유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한 환율개입은 발생하지 않았다.


독자적인 중앙은행의 부재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했다. 바로, 최종대부자의 부재이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 등에서 많은 자본을 끌어왔다. 주변부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일 또한 유로화를 쓴다. 즉, 이는 주변부 국가들이 자국통화인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변부 국가들은 화폐발행을 통하여 부채를 상환하는 방법(monetization)을 쓸 수 없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들만의 중앙은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주변부 국가들이 지고 있던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는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나 마찬가지였다.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각주:3]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보증해 줄 수 있는 기관은 없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의 대외불균형은 더욱 더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셋째, 유로존에서는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에 위배되는 '경기변동에 대한 비대칭적 충격'이 발생하고 있었다. 변동환율 ·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획득한 여러 국가들이 최적통화지역을 운용해나가기 위해서는 경제위기 발생시 대칭적충격이 발생해야 한다. 


만약 유럽 핵심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흑자를 혹은 주변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 혹은 경상수지 적자를 공통적으로 기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럴경우, 단일통화 사용이 가져온 '고정환율제', '독자적인 중앙은행의 상실'의 단점을 느끼지 못한다. 


유로존 소속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상승하고, 모두가 경상수지 적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전체를 위하여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고,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해 최종대부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아무리 고정환율제 · 독자적인 중앙은행 상실이라는 근본적 결함을 유로존이 가지고 있더라도, 개별국가들이 경기변동 동조화를 보여서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켰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유로존내에서 경상수지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최적통화지역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는 유로존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리하면, 유로존은 설립 이전부터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고,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을 주장한 일부 학자들의 바람[각주:4]과는 달리, 유로존 설립 이후에도 최적통화지역을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도입한 행위는 (당연하다는듯이) 문제를 가져왔다. 경제위기의 씨앗인 경상수지 불균형이 자라나게 했으며, 경제위기 진행과정에서도 위기를 키워나갔다. 


이번글에서는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도입한 행위', 즉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이 유럽경제위기 진행과정에서 유로존 개별국가들에 끼친 악영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본 글은 2013년 11월 30일에 작성하였던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에서 다수 재인용 하였습니다.)




※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가격 Mispricing과 Overestimated-Risk



지난글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와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많이 봤던 그림이다.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 도입 이후, 독일 · 프랑스 등 유럽 중심부 국가들과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정부채권금리가 수렴(yield convergence)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투자자들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을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하나의 시장(One Market, One Money)'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로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Crisis)가 발생하자, 유럽 핵심부 국가들과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 격차는 유로존 결서 이전처럼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럽재정위기의 충격은 경상수지 적자 · 과도한 신용증가를 기록하고 있던 주변부 국가들에게 집중되었고, 이들 국가의 디폴트 위험이 증가한 결과 채권금리 또한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건 '채권금리'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의 상관관계이다. 


2008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채권금리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뚜렷한 관계를 띄지 않았다(Figure4). 그러나 2008 금융위기 이후, 채권금리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간의 뚜렷한 양(+)의 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Figure5).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의 채권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윗 그래프는 2008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클 때, 높은 채권금리가 발생한 시기는 2010년-2011년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Crisis)가 심화되던 시기[각주:5]이다.


경제학자 Paul De Grauwe, Yuemei Ji는 2012년 논문 <Mispricing of Sovereign Risk and Multiple Equilibria in the Eurozone>을 통해, "2008 금융위기 이후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과 채권금리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채권금리가 시간에 의존(time-dependency)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



더욱 흥미로운건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 소속 국가와 자국통화를 쓰는 국가(stand-alone countries)를 비교했을때 발견되는 사실이다.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발행한 국가(파란점)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하여도 채권금리가 상승하지 않는다. 특히나 일본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150%를 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채권금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게 유지되고 있다. 반면,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 소속 국가(빨간점)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채권금리가 크게 상승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채권금리가 ① 경제위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에 의존(time-dependency)한다는 것과 ②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발행하는 국가와는 차이를 보인다는 2가지 사실로부터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논문을 쓴 Paul De Grauwe, Yuemei Ji는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금융위기 이전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는 mispricing된 상태였다. 둘째, 그렇다면 금융위기 이후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는 정부부채 크기에 맞추어 정상수준(?)으로 돌아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는 국가와 비교한다면, 금융위기 이후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 위험도는 과대평가(overestimated risks) 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유럽 주변부 국가들 채권금리의 위험이 과대평가되는 이유를 '자기실현적 유동성위기'(self-fulfilling liquidity crises)에서 찾는다. 은행위기 발생 → 은행 구제금융을 위해 정부 재정지출 증가 → 정부 디폴트 위험 증가 → 채권금리 상승 → 높아진 금리는 부채부담을 가중시킴 → 정부 디폴트 위험 증가 → 채권금리 상승… 으로 이어지는 자기실현적 위기이다.      


그렇다면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처한 '자기실현적 위기'를 끊어내고 채권금리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자국통화를 표기한 부채를 지고 있는 국가들과는 달리,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채권금리가 정부부채와 큰 상관관계를 띄는 원인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바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의 부재'이다.




※ 유럽경제위기는 '국제수지위기'(Balance of Payment Crisis)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2013년 11월 7일에 개최된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제목은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Paul Krugman은 이 논문을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와 유럽 주변부 국가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빌렸고 ·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그리스 경제위기 타입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Are Greek-type crises likely or even possible for countries that, unlike Greece and other European debtors, retain their own currencies, borrow in those currencies, and let their exchange rates float?") 


'그리스 경제위기 타입의 위기'란 무엇일까? 바로, 투자자들의 신뢰상실(loss of confidence)이 불러오는 국제수지 위기(balance of payment crisis)이다.


국제수지위기란 '대외불균형(external imbalance)으로 인한 외국자본의 과다유입(capital inflows) → 갑작스런 유입중단(sudden stops) → 자본흐름의 반전(reversal of capital flows) → 급격한 자본유출(capital outflow)'이 불러오는 위기이다. 상당한 양의 자본유입은 부동산시장 등 자산시장 거품을 키우고, 갑작스런 자본유출은 자산시장 가격을 폭락시킨다. 


이 과정에서 해당국가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만약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its own currency)를 지고 있더라면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이용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자본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해당국가가 부채에 대한 보증(guarantee)를 서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일종의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를 초래한다.


고정환율제가 할 수 있는 역할 또한 없다. 변동환율제도 였다면 환율조정을 통해 대외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의 결과 자본유입이 발생한다면,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경상수지 균형이 회복될 것이다. 고정환율제도는 이러한 조정이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리스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통화와 중앙은행'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들만의 중앙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은 화폐발행을 통하여 부채를 상환하는 방법(monetization)을 쓸 수 없다. 


결국, 주변부 국가들이 지고 있던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는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나 마찬가지이고,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유럽재정위기는 국제수지위기이다.


(주 : 이러한 형태의 위기는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각주:6]에서도 보았으며, 유럽경제위기를 설명한 지난글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 Figure 2 : 통화체제에 따른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관계. X축은 GDP 대비 부채비율, Y축은 10년 만기 채권금리. (●, Noneuro)는 독립된 통화체제를 가진 국가, (◇, Euro)는 통화체제의 독립성을 상실한 유로존 소속 국가


Paul Krugman은 유럽 주변부 국가와는 달리, "독자적인 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빌렸고 ·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신뢰상실에 이은 국제수지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한다.


▶ 독자적인 통화

: 그림2는 유로존 소속 국가냐 아니냐, 즉 독립된 통화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를 분류했다. 그러자 어떤 통화체제(Currency Regimes)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상관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독립된 통화체제(●, Noneuro)를 가진 국가들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하더라도 채권금리가 상승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화체제의 독립성을 상실한 유로존 국가(◇, Euro)들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할수록 채권금리도 같이 상승한다. 통화체제(Currency Regime)가 큰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 독자적인 중앙은행

: 그렇다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의 존재가 국제수지위기 발발을 막는 역할을 수행한다" 라는 주장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럽재정위기 와중에 '최종대부자' 역할을 200% 이행한 적이 있었다. 2012년 7월 26일, Mario Draghi 총재[각주:7]는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Within our mandate, the ECB is ready to do whatever it takes to preserve the euro. And believe me, it will be enough.)" 라며 강력히 발언하였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 파트)

 


Mario Draghi 총재의 "do whatever it takes" 발언이 있은 직후, 스페인 · 이탈리아의 채권금리는 Figure 3에서 보듯이 가파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Mario Draghi 총재의 발언에는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 라는 의미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 Figure 4 : 덴마크 · 핀란드 채권의 독일채권 대비 금리격차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 나설 수 있느냐의 중요성은 덴마크와 핀란드 사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덴마크는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아 독립적인 통화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핀란드는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경제규모가 작은 덴마크의 경우, 환율리스크를 반영하여 약간은 높은 채권금리를 유지(a small premium reflecting residual currency risk)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럽경제위기가 특히나 극심했던 2011년 말, 핀란드 채권금리는 상승하는 와중에 덴마크 채권금리는 하락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더군다나 덴마크 채권금리는 때때로 독일보다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유로존에 가입한 유럽국가들과 달리, 덴마크는 필요한 경우 독자적으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사실을 통해 '최종대부자의 부재는 채권자들 사이에서 유동성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확산' 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aul Krugman은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여 "국가가 부채로 인한 신뢰의 위기(crises of confidence)에 직면할 가능성을 결정할 때, 통화체제(the currency regime)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고 주장한다.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자.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처한 '자기실현적 위기'를 끊어내고 채권금리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De Grauwe, Yuemei Jin과 Paul Krugman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more active liquidity policies by the ECB that aim at preventing a liquidity crisis from leading to a self-fulfilling solvency crisis.) 유럽중앙은행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주변부 국가들의 유로화 표기 부채에 대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 높은 인플레이션율 - 내적평가절하을 용이하게 만든다


유럽중앙은행(ECB)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구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적평가절하의 용이함'이다. '내적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란 상품가격과 임금하락을 통해 무역시장에서의 경쟁력(competitiveness)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확장적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데, 내적평가절하는 상품가격과 임금을 하락시켜야 한다. 서로 모순되는 정책 아닐까? 그렇지 않다. 유로존 전체에서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면, 주변부 국가들의 상품가격과 임금하락은 더욱 더 쉬워진다. 


우선, 주변부 국가들이 왜 상품가격과 임금을 하락시켜야 하는지부터 살펴보자. 유럽경제위기는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각주:8]에서 자라났다. 유로존 출범 이후 독일 등 중심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누적해왔고,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등은 경상수지 적자를 쌓아왔다. 따라서, 유럽경제위기를 해결하고 추후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경상수지 불균형을 교정해야 한다.


변동환율제도 하에서 경상수지 불균형은 자동적으로 조정된다. 또한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여 불균형을 시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차 말했다시피 유로존 소속 개별국가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변부 국가들은 환율조정이 아닌 상품가격·임금 하락을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하는 경쟁력회복 방법[각주:9]을 통해 경상수지 흑자를 늘려나가야 한다'[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유로존 결성 이후 주변부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상승과 단위노동비용을 기록해왔기 때문에, 내적평가절하는 더욱 더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내적평가절하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이고 실현가능성이 낮다임금에는 하방경직성(downward rigidity)이 존재한다. 한번 올라간 근로자의 임금을 다시 내리는 행위는 반발을 초래한다. 또한 근로자 임금하락은 생활수준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고통스럽다. 물가를 내리는 행위도 디플레이션을 유발하여 경기침체를 키울 수 있다. 


만약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의 상품가격과 임금이 신축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면 내적평가절하는 쉬울 수도 있지만, 유로존은 상품가격·임금 경직성을 가진채 출범한 상태였다.

(주 : 상품가격 · 임금 신축성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 중 하나였으나, 누차 말했다시피 유로존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범[각주:10]하였다.)  


  • 'Internal devaluations only'는 명목통화가치 하락없이 물가수준만 하락하는 방식으로 내적평가절하를 한 것을 뜻한다.
  • 'All devaluations'는 명목통화가치 하락과 함께 물가수준이 하락하여 내적평가절하를 달성할 경우를 뜻한다.
  • 이러한 2가지 경우를 비교해 봤을때, 명목통화가치 하락이 동반되지 않고 물가수준만 하락하는 방식으로 내적평가절하를 달성한 경우는 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위의 표는 임금·물가만 내리는 방식의 내적평가절하가 실현된 경우가 극히 적다는 것을 보여준다. 'Internal devaluations only'는 명목통화가치 하락없이 물가수준만 하락하는 방식으로 내적평가절하를 한 것을 뜻한다. 'All devaluations'는 명목통화가치 하락과 함께 물가수준이 하락하여 내적평가절하를 달성할 경우를 뜻한다. 


이러한 2가지 경우를 비교해 봤을때, 명목통화가치 하락이 동반되지 않고 물가수준만 하락하는 방식으로 내적평가절하를 달성한 경우는 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 내적평가절하가 필요하다. 그러나 환율조정도 하지 못하고 상품가격·임금 경직성도 가진 상황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내적평가절하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을까? 


한가지 방법은 유로존 전체의 물가수준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만약 유로존 전체의 물가수준이 10% 상승한다면, 주변부 국가들은 5%의 물가상승 만으로도 사실상 물가하락을 유도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위의 표를 다시보자. 1990년대 이후 'Internal devaluations only'가 성공한 경우는 극히 적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이후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율을 컨트롤 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세계 경제 전체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각주:11]했다. 이는 다르게 말해, '경제 전체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높다면 환율조정 동반 없는 내적평가절하가 비교적 용이하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前 Fed 의장 Ben Bernanke는 "유로존 경상수지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유럽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한 물가상승''독일의 임금상승'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본 블로그는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통해 그의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Ben Bernanke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와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유로존 내에서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는 불균형적 성장뿐 아니라 금융불균형(financial imbalances)도 초래하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내 주변부 국가들의 상대임금이 하락하여 생산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올려야 합니다.

(Persistent imbalances within the euro zone are also unhealthy, as they lead to financial imbalances as well as to unbalanced growth. Ideally, declines in wages in other euro-zone countries, relative to German wages, would reduce relative production costs and increase competitiveness.) (...)


(하지만 '인위적인 임금하락'은 유로존 내 많은 근로자들을 희생시킵니다.) 유럽 주변부 국가의 근로자들을 희생시키지 않음과 동시에 독일인들이 득을 보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Germany has little control over the value of the common currency, but it has several policy tools at its disposal to reduce its surplus—tools that, rather than involving sacrifice, would make most Germans better off. Here are three examples.)  (...)


바로, 독일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죠. 독일 근로자의 임금은 크게 상승할 여력이 합니다. 독일 근로자의 높은 임금은 생산비용을 증가시키고 국내소비를 늘릴 수 있습니다. 이것들 모두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줄일 수 있죠. 

(Raising the wages of Geman workers. German workers deserve a substantial raise, and the cooperation of the government, employers, and unions could give them one. Higher German wages would both speed the adjustment of relative production costs and increase domestic income and consumption. Both would tend to reduce the trade surplus.) 


국제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독일이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을 지지해야 합니다. 물론,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한 유로화 가치의 하락은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키울 수도 있죠. 그러나 확장적 통화정책은 2가지 경로를 통해 이를 상쇄시킵니다.


첫번째, 유로존 전체의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주변부 국가들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상대임금 조정을 더욱 더 용이하게 만듭니다. 두번째, 확장적 통화정책은 유로존 전체의 경제활동을 증가킵니다. 

(Seeking a better balance of trade should not prevent Germany from supporting the European Central Bank’s efforts to hit its inflation target, for example, through its recently begun quantitative easing program. It’s true that easier monetary policy will weaken the euro, which by itself would tend to increase rather than reduce Germany’s trade surplus. 

But more accommodative monetary policy has two offsetting advantages: First, higher inflation throughout the euro zone makes the adjustment in relative wages needed to restore competitiveness easier to achieve, since the adjustment can occur through slower growth rather than actual declines in nominal wages; and, second, supportive monetary policies should increase economic activity throughout the euro zone, including in Germany.)


Ben Bernanke. 'Germany's trade surplus is a problem'. 2015.04.03





※ 경기변동에 대한 비대칭적 충격 - 통화정책 운용의 폭을 좁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 하락 · 내적평가절하 달성을 위해서는 유럽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럽경제위기가 초기에 진행됐을 때, 유럽중앙은행은 소극적으로 대응[각주:12]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미국 Fed는 채권매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채권금리를 낮췄다. 이에따라 미국 Fed 대차대조표상 자산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에반해 유럽중앙은행은 한창 유럽경제위기가 진행중이던 2010년-2011년에도 소극적인 대응에 머물렀다.     


유럽중앙은행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유럽경제위기의 충격이 주변부 국가들에게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즉, '경기변동에 대한 충격이 핵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 사이에 비대칭적으로 발생'했다는 말이다. 


주변부 국가들을 위해서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하였으나, 이는 중심부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유로존에서 목소리가 제일 큰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물가안정을 유지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게 중요[각주:13]하다.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계속해서 논쟁이 펼쳐질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기보다, 주변부 국가들이 재정지출을 줄여서 부채를 상환하기를 원했다[각주:14].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의 이러한 요구에 반발했고 그와중에 유럽경제위기는 더욱 더 심화되었다.

(주 : 2013년 이후, 유럽중앙은행은 양적완화 정책을 구사하였고 이후 스페인 · 포르투갈 등의 채권금리는 진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 유로존의 근본적결함 (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



결국 유럽경제위기는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범한 유로존 그 자체가 문제'였다. 


최적통화지역은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과 '경기변동에 대한 대칭적 충격'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유로존은 출범 이전부터 경직적인 상품가격·임금을 가졌었고, 출범 이후에는 경상수지 불균형이 확대되어 경기변동에 대한 비대칭적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져나갔다. 


이러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은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폭을 제한시켜 유럽경제위기를 심화시켰다. 그리고 경상수지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 필요한 주변부 국가들의 내적평가절하 달성도 어렵게 만들었다.  


1990년대 당시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 등 미국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은 성립 불가능하다. 유로존은 나쁜 아이디어이다. 유로존은 지속 불가능하다."(the Euro-It can't happen, It's a bad idea, It won't last.) 라는 반응을 보였다. 


2009년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은 보고서를 통해 출범 이전부터 유로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던 미국 경제학자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현재 유럽경제위기는 그들이 옳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1.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2.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2015.07.27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3.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2013.11.26 http://joohyeon.com/176 [본문으로]
  4.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5.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2015.07.27 http://joohyeon.com/226 [본문으로]
  6.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2013.11.26 http://joohyeon.com/176 [본문으로]
  7. Speech by Mario Draghi, President of the European Central Bank at the Global Investment Conference in London 26 July 2012 [본문으로]
  8.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9.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2015.05.19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10.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11.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Olivier Blanchard 퇴임 - '경제위기와 맞선' 그의 공헌들'. 2015.05.16 http://joohyeon.com/222 [본문으로]
  12.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2015.07.27 http://joohyeon.com/226 [본문으로]
  13. 'Germany's hyperinflation-phobia'. 2013.11.15 The Economist [본문으로]
  14. '[긴축vs성장 ③]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2013.04.19 http://joohyeon.com/14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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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Posted at 2015. 7. 27. 15:22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하나의 유럽'을 이루어서 물리적충돌을 방지하겠다는 구상을 하게된다.(제가 국제정치학 전공자가 아닌 관계로.. 더 자세한 내용은...유럽내 경제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생각에서 먼저 진행된 것은 '경제통합' 이었다.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 유럽경제공동체 등을 거쳐 통화가치를 일정수준 고정시키는 유럽통화연맹(EMU)이 1999년에 만들어졌고, 유로화가 2002년에 도입되어 유로존(Eurozone)이 탄생하였다.




유로존에 가입한 유럽국가들 사이에는 관세가 면제되었고 금융거래 장벽도 낮춰졌다. 각 국가들이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지 않고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사용함에 따라 환율리스크가 제거되어 상품거래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유로존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러개의 시장이 통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으니 당연히 좋을 것[각주:1]이다. 


1990년 유럽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는 <One Market, One Money>(<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 보고서를 통해, 유럽경제통합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주장하며 통합논의를 이끌어나갔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래. 여러 국가의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 거대한 시장이 탄생하니 좋을수도 있지. 그런데 여러 국가가 하나의 통화(common currency)를 사용해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단일통화가 환율리스크를 제거해준다면, 왜 전세계는 단일통화를 사용하지 않고 각자의 통화를 쓰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처럼, 단일통화가 이점을 가져다준다면 왜 전세계 국가들은 서로 다른 통화를 쓰는 것일까? 단일통화의 이점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서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여 단일통화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전세계가 하나의 통화를 만들어서 사용한다면 '세계 경제공동체'가 탄생할텐데 말이다. 전세계가 하나의 통화를 사용하지 않고 각자의 통화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일통화 사용시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①'단일통화 사용이 초래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②'어떠한 경우에 이러한 문제를 피할 수 있는지'

③'과연 유럽이 단일통화를 사용해도 괜찮을 것인지'를 살펴보자.




※ 최적통화지역 이론 (Optimum Currency Area Theory)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각자의 통화'를 쓰면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 원화, 일본은 엔화, 미국은 달러화를 사용하면서 변동환율제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대다수 국가들은 '서로 똑같은 통화'(단일통화)를 쓰거나 '각자의 통화 + 고정환율제'를 쓰지 않고, 왜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쓰는 것일까?    


그리고 국가단위의 생각에서 벗어나보자. 통화사용 area를 national이 아니라 region[각주:2]으로 생각한다면 획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등 서로 다른 국가들은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내 경기도와 충청도는 서로 다른 region임에도 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무언가 이상하다. 국가단위에서 생각했을때는 당연했던 것이 region 단위로 생각하니 찜찜함이 나타났다. 이처럼 경상도와 충청도는 서로 다른 region임에도 같은 통화를 사용하지만,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region인 한국과 일본은 같은 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자 Robert Mundell은 1961년 논문 <Theory of Optimum Currency Areas>(<최적통화지역 이론>)을 통해, 왜 세계 다수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쓰는지, 그리고 '어떠한 지역들이 통화를 같이 써도 좋은지' 등을 잘 설명해주었다. 그 유명한 '최적통화지역 이론'이다. 



▶ 우선 왜 세계 다수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쓰는지부터 알아보자.  


▷ 세계 여러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

먼저,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제 한국, 미국, 일본, 유럽은 모두 똑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세계 소비자들의 선호가 변하여서 한국상품보다 일본상품의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한국은 상품판매 적자(deficit)를 일본은 상품판매 흑자(surplus)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실업이 일본에서는 물가상승이 발생한다.  


만약 일본이 물가상승을 받아들인다면 일본 상품가격이 상승하여 교역조건(terms of trade)이 악화되고 증가했던 판매량은 다시 감소한다. 따라서 상품판매 흑자를 기록하던 일본은 다시 균형(balance)지점으로 돌아가게 되고, 한국은 적자에서 탈피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일본이 물가상승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물가상승을 막기위해 일본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한다면, 일본의 교역조건은 악화되지 않고 판매량 또한 증가된 수준에서 유지된다. 이 경우, 한국은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하기 때문에 실업은 해소되지 않는다. 


일본이 물가상승을 받아들이지 않을때, 한국이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상품가격 하락과 임금감소이다. 한국 상품가격이 하락한다면 이는 일본 상품가격이 상승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내게되고, 한국 상품 판매량이 증가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한국 근로자들이 임금감소를 받아들인다면 기업의 채용여력이 증가하여 실업자들을 다시 뽑을 수 있다. 


자, 우리는 이제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를 알게 되었다. 바로, 특정국가의 상품수요가 증가하여 어떤 국가는 흑자를 또 어떤 국가는 적자를 기록했을 때, 균형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흑자국이든 적자국이든 한 국가는 무조건 피해를 보게된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한국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물가상승을 용인해주어야 한다. 반대로 일본이 물가상승을 막기위해서는 한국이 실업을 감수해주어야 한다. 


또한, 일본이 물가상승을 용인해주지 않을때 한국이 쓸 수 있는 방법은 상품가격과 임금의 하락이다. 이는 디플레이션을 낳고 근로자들의 후생수준을 하락시킨다. 반대로 한국이 실업을 감수해주지 않을때 일본이 쓸 수 있는 방법은 인위적인 가격통제이다. 인위적인 가격통제는 시장을 교란시켜 부작용을 초래한다. 


한국과 일본 양 국가가 균형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한 국가가 무조건 피해를 봐야하는데, 이 상황은 '최적상태'(optimum)가 아니다.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를 쓰지만 고정환율제를 사용하는 경우

: 이제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를 쓰지만 고정환율제를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런데 모든 국가들의 통화 사이에서 가치의 변동이 발생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통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를 수 없다. 즉, 든 국가의 통화가 고정환율로 묶여 있다면, 이는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정리를 하면, '전세계가 하나의 통화를 사용'해도 그리고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를 쓰지만 고정환율제를 사용'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반복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문제란 '균형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한 국가는 무조건 피해를 봐야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최적상황(optimum)이 아니다.  


▷ 균형조정 과정에서 '변동환율제'의 역할

: 그 결과, 세계 여러 국가들에게 남은 선택권은 '전세계가 각자의 통화를 사용'하지만 '서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는 경우이다. 여기서 변동환율제(flexible exchange rate)는 균형조정 과정에서 '최적상황'(optimum)을 만들어준다.     


자, 앞선 예시처럼 일본의 상품수요가 증가하여 일본은 흑자를 한국은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일본에서는 물가상승 압력이, 한국에서는 실업이 발생한다. 이때, '환율이 조정'된다면 최적상태(optimum)에서 균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일본은 통화가치를 상승시켜서 일본내 상품가격은 올리지 않으면서 국제시장에는 비싸게 팔 수 있다. 예를 들어, 1엔=1원 이라고 가정하자. 일본은 100엔짜리 상품을 한국시장에 100원에 팔고 있다. 이때 통화가치가 1엔=2원으로 상승한다면, 100엔짜리 상품을 한국시장에서는 200원에 팔게된다. 통화가치 상승으로 인한 일본 상품가격 상승은 교역조건 악화를 가져오고 증가했던 판매량은 감소한다. 일본은 흑자에서 균형으로 돌아간다. 


중요한 것은 일본내 상품가격은 상승하지 않았고, 통화가치 상승을 통해 다른나라 시장에서의 가격만 올라갔다는 점이다. 이제 일본은 물가를 인위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한국이 실업을 감수해주지 않아도 자체적인 힘만으로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한국은 상품판매 감소로 인해 적자와 실업이 발생하였다. 이 경우 한국은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국내 상품가격과 임금이 감소하지 않아도 된다.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시켜 상품판매량을 증가시키고 균형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이 물가상승을 용인해주느냐에 상관없이 자체적인 힘만으로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쓰고 있을때 만들어지는 균형은 최적상태(optimum)이다. 양 국가 모두 어떠한 피해도 없이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 어떠한 지역들이 서로 같은 통화를 써도 괜찮을까


자, 그러면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최적상태(optimum)를 달성할 수 있을까? 간단치 않은 문제가 남아있다. 바로, '국가내 region'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과 일본 등 서로 다른 국가들은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내 경기도와 충청도는 서로 다른 region임에도 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와 충청도를 국가단위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마치 '서로 다른 국가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하는 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국가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했을때 발생하는 문제가 똑같이 나타난다.


만약 경기도 상품의 수요가 증가한다면, 경기도는 흑자와 물가상승 압력이 충청도는 적자와 실업이 나타난다. 경기도의 물가상승 압력을 제거하기 위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쓴다면 충청도의 실업문제는 심화된다. 충청도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확장적 통화정책을 쓴다면 경기도의 물가상승 압력은 더욱 더 심해진다.


이처럼 충청도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기도가 물가상승을 용인해주어야 한다. 반대로 경기도가 물가상승을 막기위해서는 충청도가 실업을 감수해주어야 한다. 특정 region은 피해를 봐야 하기 때문에 최적상태(optimum) 도달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내 여러 도(道)들은 서로 같은 통화를 쓰면 안된다.  


일본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도쿄와 오사카는 서로 다른 region임에도 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도쿄 상품 수요가 증가한다면, 도쿄내 물가상승을 막기위해서는 오사카가 실업을 감수해주어야한다. 오사카가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쿄가 물가상승을 용인해주어야 한다. 일본의 서로 다른 도시들은 같은 통화를 쓰면 안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의 경기도와 충청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가 서로 다른 상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 region이 같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소비자 선호 변화에 따른 수요충격도 똑같이 겪을 수 있다.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상품만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충청도 상품도 수요증가를 경험한다. 두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발생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시행하여도 실업문제가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양 region의 수요가 같이 하락한다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시행하여도 물가상승 문제는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일본의 도쿄, 오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한국의 경기도와 충청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는 서로 다른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경기도와 일본의 도쿄, 한국의 충청도와 일본의 오사카가 서로 같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앞선 논리에 따르면 경기도·충청도, 도쿄·오사카가 같은 통화를 사용하기보다 경기도·도쿄, 충청도·오사카가 같은 통화를 사용해야 최적상태(optimum) 달성이 가능하다. 


즉,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은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져서 경제위기 충격이 대칭적(symmetric shock)으로 발생하는 region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할때 달성가능하다. 바로 아랫그림처럼.






   

※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형태로 통화지역을 구성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쨌든 같은 통화를 쓰는 통화지역을 국가단위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단위의 통화지역이 최적상태(optimum)가 되게끔' 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서로 다른 국가끼리는 각자의 통화를 사용하면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균형조정 과정에서 최적(optimum)상태 달성하다. 변동환율이 조정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국가내 region끼리는 환율조정을 통한 최적(optimum) 상태 도달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변동환율' 이외의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 지역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Robert Mundell이 제시하는 대안은 '지역간 자유로운 노동이동'(free labor mobility) 이다. 


자, 경기도 상품수요가 증가하여 경기도는 흑자 충청도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자. 경기도는 상품가격 상승 압력을 받고 있고 충청도는 실업이 발생하고 있다. 이때, 충청도에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경기도로 이동한다면 어떨까? 충청도는 실업문제가 해결되었다. 경기도는 노동공급 증가로 인해 임금하락이 발생하여 상품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된다. 


즉, 여러 region이 뭉쳐서 단일통화를 사용하고 있을때 region간 노동이동이 자유롭다면, 어느 한 region이 피해를 보지 않고도 균형달성이 가능하다. 그 결과,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여러 region들은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이 된다. 


▶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


또 다른 대안은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price·wage flexibility)이다. 우리는 앞선 예를 통해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봤었다.  


"먼저,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제 한국, 미국, 일본, 유럽은 모두 똑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세계 소비자들의 선호가 변하여서 한국상품보다 일본상품의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한국은 상품판매 적자(deficit)를 일본은 상품판매 흑자(surplus)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실업이 일본에서는 물가상승이 발생한다. (...)  


일본이 물가상승을 받아들이지 않을때, 한국이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상품가격 하락과 임금감소이다. 한국 상품가격이 하락한다면 이는 일본 상품가격이 상승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내게되고, 한국 상품 판매량이 증가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한국 근로자들이 임금감소를 받아들인다면 기업의 채용여력이 증가하여 실업자들을 다시 뽑을 수 있다."


적자와 실업이 발생했을때 상품가격 · 임금 하락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내적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이라 부른다. 물론, 이 방법은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도 있고 근로자들의 후생수준을 낮출 수 있다.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은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이지만, 어쨌든 적자지역의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상품가격과 임금이 신축적으로 변하는 region들끼리 뭉친다면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달성이 가능하다. 


▶ 통합재정의 존재


경기도 상품수요가 증가하여 경기도는 흑자, 충청도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충청도는 지자체의 재정정책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gion-specific fiscal policy). 그렇지만 지자체 재정지출의 증가는 미래 세금인상을 기대케하여 오히려 소비수준을 낮출 수도 있다(리카도의 동등성정리, Ricardian Equivalence). 


실업이 발생한 region이 재정지출을 모두 부담하는 것은 되려 악영향을 초래한다. 따라서, 같은 통화를 쓰는 또 다른 region이 재정이전을 통해 충격이 발생한 region을 도울 수 있다. 이럴경우, 미래 세금인상 부담을 두 region이 나누어 가지기 때문에, 현시점 소비에 미치는 악영향이 줄어든다.


이처럼 같은 통화를 쓰는 region끼리는 통합재정(fiscal union)을 운영하여 세입·지출을 공유해야,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달성이 가능하다.  


▶ 대칭적충격 


경기도 상품 수요가 증가하여 경기도는 흑자, 충청도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도쿄 상품 수요가 증가하여 도쿄는 흑자, 오사카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의 경기도와 충청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가 서로 다른 상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 region이 같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소비자 선호 변화에 따른 수요충격도 똑같이 겪을 수 있다.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상품만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충청도 상품도 수요증가를 경험한다. 두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발생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시행하여도 실업문제가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양 region의 수요가 같이 하락한다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시행하여도 물가상승 문제는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일본의 도쿄, 오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 선호 변화에 따른 수요충격을 똑같은 겪는다'는 사실이다. 


만약 같은 통화를 쓰는 region들 간에 경기변동 충격이 비대칭적으로 발생한다면, region들간에 똑같은 통화정책 · 재정정책을 적용할 수 없다. 확장정책은 적자와 실업이 발생한 지역을 도울 수 있지만, 흑자가 발생한 지역의 물가상승 압력을 심화시킨다. 긴축정책은 흑자가 발생한 지역의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지만, 실업이 발생한 지역을 더더욱 나락으로 빠뜨린다. 


이와달리 만약 같은 통화를 쓰는 region들 간에 경기변동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한다면, region들에 똑같은 통화정책 · 재정정책을 적용할 수 있다. 같은 통화를 쓰는 모든 region들에서 실업이 발생했기 때문에 확장정책은 모든 region의 실업을 감소시킨다. 같은 통화를 쓰는 모든 region들에서 물가상승이 발생했기 때문에 긴축정책은 모든 region의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시킨다. 


이처럼 은 통화를 쓰는 region들 사이에서 경기변동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symmetric shocks)해야,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달성이 가능하다.





※ 유럽은 최적통화지역인가?


앞선 글을 통해, ①'단일통화 사용이 초래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②'어떠한 경우에 이러한 문제를 피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① 단일통화 사용이 초래하는 문제

: 서로 다른 region들이 단일통화를 사용한다면, 어느 한 region이 피해를 봐야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 비슷한 특징을 가진 region들끼리 뭉쳐서 통화지역을 구성한다면 문제를 피할 수 있으나, 현실에서 이러한 방법은 불가능하다.


②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

: 단일통화 사용이 초래하는 문제를 피하려면, 노동이동이 자유로운 region · 상품가격과 임금이 신축적인 region · 재정을 공유하는 region · 경기변동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하는 region들기리 통화지역을 구성해야 한다. 이럴경우 '최적상태'(Optimum) 달성이 가능하다.


경기도와 충청도가 같은 통화를 공유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이동이 자유롭고 재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도쿄와 오사카가 같은 통화를 쓸 수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이 같은 통화를 쓰지 않는 이유는 노동이동이 제한적이고 재정을 공유하지 않는데다가 서로 다른 경제수준으로 인해 경기변동의 충격이 비대칭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같은 통화를 공유한다면 최적통화지역 달성이 불가능하다. 


  • 왼쪽 : Martin Fedlstein
  • 가운데 : Barry Eichengreen
  • 오른쪽 : Paul Krugman


그렇다면 유로존내 독일  프랑스 · 그리스 · 포르투갈 · 스페인 · 아일랜드 등은 같은 통화를 공유해도 괜찮은 것일까? 이들 국가들은 노동이동이 자유롭고, 상품가격과 임금이 신축적이고, 통합재정을 운용하고, 경기변동의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할까? 


그렇지 않다. 유로존을 구성하는 국가들은 노동이동이 제한적이고, 경직적인 상품가격과 임금을 가졌다. 또한 개별 국가들은 각자의 재정을 운용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경제수준으로 인해 경기변동 충격이 비대칭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을 달성할 수 없다.


"유럽은 최적통화지역을 이룰 수 없다."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 · 2002년 유로화 도입 이전부터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지적해왔다. 경제학자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 등이 논의를 이끌었고, 이들은 주로 '유럽내 노동이동 장벽 · 재정통합의 부재'를 지적해왔다.


Martin Feldstein은 1997년 논문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European Economic and Monetary Union: Political Sources of an Economic Liability>을 통해, "유럽통합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없지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라고 말한다. 


Barry Eichengreen은 1991년 논문 <Is Europe an Optimum Currency Area?>을 통해,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판단하는 지수(index)를 제시한다. 그는 이를 통해 "유럽은 이상적인 최적통화지역과는 거리가 멀다." 라고 말한다.  


Paul Krugman은 1993년 논문 <Lessons of Maassachuesttes for EMU>을 통해, "유럽은 노동이동이 제한적이고 재정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고 말한다. 




※ 최적통화지역 내생성


  • 왼쪽 : Jeffrey Frankel
  • 오른쪽 : Andrew Rose


그러나 "일단 유럽통합이 진행되면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켜 나갈 수 있다." 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경제학자 Jeffrey FrankelAndrew Rose'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Endogeneity of the Optimum Currency Area)를 주장하였다.


기존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자유로운 노동이동 · 상품가격과 임금의 신축성 · 재정통합 · 경기변동시 region간 대칭적 충격이 외생적(exogeneous)으로 주어진 상태에서 단일통화를 써야만 최적상태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적통화지역 내생성'은 일단 단일통화를 쓴다면 무역거래가 증가하고 경기변동 동조성이 발생하기 때문에,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이 내생적(endogeneous)으로 충족된다 라고 말한다.


Andrew Rose는 1999년 논문 <One Money, One Market- Estimating the Effect of Common Currencies on Trade>을 통해, 유로존 도입 이후 유로존내 무역거래량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Jeffery Frankel은 Andrew Rose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유로존 결성 이후 무역거래량 증가는 경기변동 동조화를 낳는다." 라고 말한다. 무역거래로 여러 국가가 연결된다면 경기변동 충격이 서로에게 전이되기 때문에, 유로존 국가들끼리 비슷한 경기변동을 겪는다는 논리이다. 이럴 경우, 경기변동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이들의 공동연구, 1997년 논문 <Is EMU more justifiable ex post than ex ante?>, 1999년 논문 <The Endogeneity of the Optimum Currency Area Criteria>은 '1990년대 당시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유럽 국가들이 단일통화를 써도 괜찮다'는 이론적근거를 제공해주었다. 논문제목처럼 유럽통화동맹(EMU)은 사후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다.(That is, a country is more likely to satisfy the criteria for entry into a currency union ex post than ex ante.) 




※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정치적 프로젝트로한 기획된 유로존


우리는 이번글을 통해 2가지 사항을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 이것들은 '유럽경제위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첫째, 유로존은 '하나의 유럽'이라는 유럽인들의 정치적 꿈을 이루기 위해 기획되었다. 

둘째,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이전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단일시장과 단일통화는 경제적이익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유로존의 본래 목적은 '유럽통합'이라는 정치적목적 이었다. 그리고 Jeffrey Frankel과 Andrew Rose는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을 주장하긴 했으나, 어쨌든 유로화 도입 이전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20세기 최고 경제학자 중 한명인 Milton Friedman은 유로존이 본격 출범하기 전인 2000년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긴다.


"학문적 관점에서 유로화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은 기적입니다. 매우 놀라운 기적이죠. 저는 유로화가 계속해서 성공해 나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렇지만 유로화가 어떻게 작동해나갈지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되겠죠."


(“From the scientific point of view, the euro is the most interesting thing. I think it will be a miracle -well a miracle is a little strong. I think it's highly unlikely that it's going to be a great success. … But it's going to be very interesting to see how it works”.)

: Milton Friedman in an interview in May 2000.


"An interview with Milton Friedman. Interviewed by John B. Taylor, May 2000", chapter 6 in P. Samuelson and W. Barnett, eds., Inside the Economist's Mind. Conversations with Eminent Economists, Blackwell, Oxford.


유럽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 1999년 유럽통화동맹(EMU) · 2002년 유로화 도입 이후 유로존은 일부 우려와는 달리 잘 작동해 나가고 있었다. 


유럽위원회는 2009년 보고서 <the Euro-It can't happen, It's a bad idea, It won't last.-US economists on EMU,1989-2002>를 통해, 유로존 결성 이전부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미국 경제학자들을 비판한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이 (경제적이익이 아닌) 정치적목적으로 기획되었다는 점과 최적통화지역 이론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유럽통화동맹은 최적통화지역을 발판으로 설립된 것이 아닙니다. 최적통화지역을 내세우는 학자들은 유럽통합의 정치적, 역사적 요소를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The OCA paradigm gave a negative bias to the evaluations of the single currency by stressing a number of costs of unification, while ignoring dynamic, political and institutional aspects of monetary integration.)


"최적통화지역을 내세워서 유로존을 비판하는 시각은 통화동맹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을 편향적 시각으로 바라보죠. 일단 유로존이 설립되면, 유로존은 궁극적으로 정상상태로 갈텐데 말이죠."

(The OCA paradigm inspired a static view, overlooking the time-consuming nature of the process of monetary unification. ,,, In short, by adopting the OCA-theory as their main engine of analysis, US academic economists became biased against the euro. ... Perhaps we should take this as a positive sign for the future of the euro: once established, it eventually will turn into the normal state of monetary affairs?)


European Commission.2009.<the Euro-It can't happen, It's a bad idea, It won't last.-US economists on EMU,1989-2002>


2009년까지만 하더라도 의기양양하던 유럽. 그러나 이후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정치적 프로젝트로 기획된 유로존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1.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2015.05.26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2. region을 '지역'으로 표기시 최적통화'지역'(area)와 혼동될 여지가 있어서, 영어표현 region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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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Posted at 2015. 7. 3. 13:43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출처 : 페이스북 지리사랑방 그룹 >


이 그림은 한국의 지역별 인구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알다시피 다수의 한국인은 서울 및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로 대전 · 대구 · 광주 · 부산 · 울산 등 지방 광역시에 퍼져있다. 수도권과 지방 광역시에 살지 않고 일반소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대도시(metropolitan) 집중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서 사는 세계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2050년에는 인류의 2/3이 도시에서 생활할 것으로 예측고 있다. 또한 도시 중에서도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증가[각주:1]하고 있다. 


사람들이 대도시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현상은 눈에 띄는 지리적패턴을 만들어냈다. 바로, '핵심부'(core)와 '주변부'(periphery) 패턴이다. 위에 첨부한 그림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한국에서 서울 및 수도권과 지방 광역시들은 핵심부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핵심부를 중심으로 소도시 및 농촌이 분포되어 주변부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농촌이 아니라 도시, 그 중에서도 대도시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것일까? 그리고 거대 '핵심부'를 중심으로 작은 '주변부'들이 분포하는 지리적패턴이 만들어진 원인은 무엇일까?     


[국제무역이론] 시리즈의 이전글을 보신 분이라면 "집적의 이익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본 블로그는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를 통해,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때 똑같은 산업에 속하는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이면 집적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논리를 소개하였고, 이를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전통적인 경제지리학은 오늘날 '핵심부-주변부 패턴'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전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똑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이면 집적의 이익을 누릴 수 있지만, 대체 '어느곳'에 모여야할까? 이는 역사적경로(historical path)와 우연적사건(accidental event)이 결정짓는다고 전통적인 경제지리학은 말한다. 단지 예전부터 똑같은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특정한 지역에 모여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집중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런식의 설명은 논리적이지 않다. 집중현상이 발생하는 지점을 우연에서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적인 경제지리학은 특정지역에서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는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지, '핵심부-주변부 패턴'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특정지역에 집중해 있으면 집적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데, 왜 그곳에서 이탈하여 주변부에 머무르는 기업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새로운 이론을 알기에 앞서, "내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때 시장크기(인구수)가 제한되어 있다면, 소비자들은 상품다양성을 누릴 수 없다. 이때 국제무역을 하게 된다면 시장크기 확대로 인해 소비자들은 상품다양성을 누릴 수 있다. 즉, 국제무역 효과는 시장크기 확대(인구증가) 효과와 동일하다." 라고 말한 '신국제무역이론'(New Trade Theory)를 다시 한번 복습해보자.




※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소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국 사람들에 비해 삶의 수준이 낮은 상태

- 소국 국민들은 대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가지게된다  


이전글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에서 살펴봤듯이, 내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때 국제무역은 상품다양성을 늘릴 수 있다. 상품다양성이 인구수에 의존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국제무역 효과와 인구증가 효과는 동일하다. 즉, 국제무역은 마치 나라의 크기가 커진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고, 국민들의 후생을 증가시킨다. (주 : 이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으신 분은 이전글을 꼭 읽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국제무역을 할 수 없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다시 반복하지만 국제무역은 '다른나라 국민들이 우리나라로 이민을 와서 인구가 증가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국제무역을 할 수 없다면 인구가 적은 소국은 '이민을 통해 인구가 증가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없다. 


따라서 소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국 사람들에 비해 삶의 수준이 낮은 상태 (다양성이익 X, 규모의 경제 실현 X)에 있게되고, 소국 국민들은 삶의 수준이 더 높은 대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논리는 '핵심부-주변부 패턴'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만약 한 지역의 인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조금이나마 많다고 생각해보자. 인구수가 아주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인구수가 많은 지역의 삶의 질이 더 높다. 따라서 인구수가 적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삶의 수준 향상을 위해 사람이 많은 곳으로 이주하게 되고, 인구수가 많은 지역의 인구는 더더욱 증가하게 된다. 


이제 두 지역간의 인구수 격차는 크게 벌어지게 되고, 인구수가 많은 지역은 '거대 핵심부'가 되어버린다. 규모가 조금이나마 컸던 도시에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어서 대도시(핵심부)로 발전하고, 소도시나 농촌은 여전히 주변부로 머무르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1979년 논문 <Increasing returns, monopolistic competition, and international trade>을 통해 '신무역이론'을 소개한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당시 논문에서 '핵심부-주변부 패턴'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이렇게 남겼다. 그 후 12년 뒤, Paul Krugman은 1991년 논문 <Increasing Returns and Economic Geography>을 통해,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을 세상에 소개한다.   





※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몰려드는 제조업 근로자들


Paul Krugman이 주목하는 오늘날의 지리적패턴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산업화된 핵심부와 농업 위주인 주변부'(industrialized 'core' and agricultural 'periphery') 이다. 사람이 많이 모여사는 핵심부는 제조업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이 별로 없는 주변부는 농업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모습은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직관적으로 '서울과 경기외곽의 소도시' 혹은 '지방광역시와 근방의 소도시' 등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리적패턴을 보고 2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제조업 기업이 몰려있는 곳에 거주하는가?""제조업 기업들은 왜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에 집중되어 있는가?" 이다. Paul Krugman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간단한 모델을 만들었다.  



◆ 사람들이 제조업 기업이 몰려있는 곳에 거주하는 이유


Paul Krugman이 만든 간단한 모델은 두 지역이 등장한다. 이들 지역에서는 각각 똑같은 인구가 살고 있으며 농업과 제조업의 비중이 5:5로 동등하다. 이때, 1지역(2지역) 사람들이 2지역(1지역)의 제조업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운송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각 지역의 농업 종사자들은 지역간 이동이 불가능 하지만, 제조업 종사자들은 지역간 이동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농업은 내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지만 제조업은 내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이때, 2지역에 살고 있는 제조업 종사자가 1지역으로 이주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만약 1지역으로 이주한 근로자가 어떠한 이익도 거두지 못한다면, 그것을 본 2지역 내 다른 근로자들은 굳이 1지역으로의 이주를 생각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1지역으로 이주한 근로자가 이익을 거둘 수 있다면, 이를 본 2지역 내 다른 근로자들은 똑같이 1지역으로 이주를 할 것이다. 


여기서 근로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임금상승을 뜻한다. 즉, 2지역 근로자가 1지역으로 이주했을 때 임금이 상승한다면, 2지역 근로자들은 모두 1지역으로 이주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2지역의 근로자가 1지역으로 이주했을때 임금이 상승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 1지역 인구증가에 따른 1지역 제조업 상품다양성 증가 → 1지역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증가 → 1지역 제조업 근로자 임금상승으로 이어지다

: 2지역에 살고 있는 제조업 근로자가 1지역으로 이주함에 따라, 이제 2지역의 인구보다 1지역의 인구가 더 많다따라서, (신무역이론에 의해) 1지역내 제조업 기업 숫자는 증가하게 되고 상품다양성 또한 증가한다. 이제 2지역에서 판매되는 제조업 상품종류 보다 1지역에서 판매되는 제조업 상품종류가 많아졌다. 


이에따라 양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제조업 근로자+농업 종사자)이 제조업 상품을 구매할때 1지역 제조업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게 된다. 쉽게 말해, 사람들은 이제 상품종류가 다양한 1지역 제조업 상품에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된것이다. 상품판매 증가는 근로자의 임금상승을 불러오기 때문에, 1지역 제조업 근로자의 임금이 상승하게 된다.


▶ 기술발전으로 인해 낮아지는 운송비용 → 2지역 제조업 상품을 보다 싸게 구입 가능 → 1지역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이 증가 → 1지역 제조업 근로자 실질임금 증가로 이어지다 

: 2지역에서 1지역으로 이주한 근로자는 이제 본래 있던 2지역의 제조업 상품을 구입하기가 어려워진다. 2지역의 제조업 상품을 1지역에서 구입하기 위해서는 운송비용을 추가적으로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송비용이 낮다면 2지역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크기를 줄일 수 있고, 1지역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을 보다 더 늘릴 수 있다. 1지역 제조업 상품 판매증가는 1지역 제조업 근로자의 임금상승으로 이어진다.    


1지역 인구 증가에 따른 내부 규모의 경제 작동 → 1지역 제조업 상품가격이 낮아지고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높아지다

: 1지역의 인구증가는 내뷰 규모의 경제를 작동시켜 1지역 제조업 근로자의 실질임금 상승도 가져온다. 신무역이론에서 살펴봤듯이, 내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인구크기(시장크기)이다. 만약 인구가 적다면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비용이 높아진다. 반대로 인구가 많다면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생산비용으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산비용의 감소는 상품가격의 감소로 이어진다. 따라서 1지역 근로자들은 보다 낮은 가격에 제조업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실질임금이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3가지 요인으로 인해, 2지역 근로자가 1지역으로 이주했을때 임금이 상승하게 된다. 이것을 본 다른 2지역 근로자들은 임금상승 혜택을 얻기 위해 먼저 이주한 사람을 따라서 1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 결과, 양지역의 제조업 근로자들은 모두 1지역으로 모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2지역 근로자가 1지역으로 이주했을때 임금 상승을 유발하는 3가지 요인'은 결국 '1지역의 인구가 많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1지역의 인구가 많은 이유는 2지역의 근로자 1명이 1지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즉, 조그마한 인구증가가 연쇄작용을 일으켜서 1지역으로의 제조업 근로자 집중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은 "'상대적으로 많은 도시 인구수'(relatively large non-rural population) 라는 초기조건이 큰 영향을 끼쳐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을 만들어낸다"(sensitively on initial condition)고 설명한다.        





※ 제조업 상품수요가 많은 곳에 위치하려는 제조업 기업들 


◆ 제조업 기업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에 집중하는 이유


앞서 살펴봤듯이, 높은 임금을 바라는 제조업 근로자들은 인구수가 조금이나마 많은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이제 모든 제조업 근로자들이 1지역에 집중되었다. 


렇다면 제조업 기업들은 1지역 · 2지역 둘 중에 어느 곳에 위치해야 할까? 제조업 기업 또한 인구수가 많은 지역 근처에 위치할 때 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신무역이론에서 살펴봤듯이 내부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켜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운송비용 최소화'를 위해서라도 1지역에 위치하는 것이 유리하다. Paul Krugman은 신무역이론을 도입한 1979년 논문에서는 '제조업 기업이 부담하는 운송비용'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1980년 논문 <Scale Economies, Product Differentiation, and the Pattern of Trade>에서 '운송비용'(transport costs)을 신무역이론에 추가하였다. 


제조업 기업은 상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전달하기 위해 운송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소비자가 많은 곳(시장크기가 큰 곳)에 기업이 위치해야 운송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다이를 'Home Market Effect' 라고 한다.


Paul Krugman은 '운송비용'과 '제조업 기업의 최적 생산위치' 개념, 즉 'Home Market Effect'를 신경제지리학에도 도입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높은 임금을 바라는 제조업 근로자들은 인구수가 조금이나마 많은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모든 제조업 근로자들이 1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1지역의 인구가 더 많기 때문에, 이제 제조업 상품의 수요는 1지역에서 더 많이 있다. '운송비용 최소화'를 바라는 제조업 기업들은 수요가 더 많은 곳에 위치하려 하고, 1지역은 제조업 근로자 뿐만 아니라 제조업 기업 또한 집중되게 된다. 



이를 정리하면, 제조업 기업들은 제조업 상품수요가 많은 곳에 위치하려 한다(backward linkage). 여기서 제조업 상품 수요 크기는 제조업 상품 생산 크기가 결정한다. 근로자들은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제조업 상품이 다양하게 생산되는 곳에 모여들기 때문이다(forward linkage)


따라서 제조업 근로자들의 거주지 결정과 제조업 기업들의 입지결정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 제조업 기업들과 근로자들이 핵심부를 벗어나 주변부로 이탈하는 이유는?


높은 임금을 바라는 제조업 근로자들과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 운송비용 최소화를 노리는 제조업 기업들은 모두 1지역에 모여있다. 1지역은 '산업화된 핵심부'가 되었고, 2지역은 '농업만 남아있는 주변부'가 되었다. 그런데 현실에서 '농업만 남아있는 주변부'를 발견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주변부 지역은 농업 뿐만 아니라 제조업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주변부 지역에도 여전히 제조업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핵심부에 모든 제조업 근로자 · 모든 제조업 기업이 모이게 되는 균형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없다. 만약 제조업 기업 한 곳이 주변부로 이동한다면, 그 기업은 주변부의 제조업 상품 수요를 모두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핵심부에 모여있는 제조업 기업들 중 일부는 주변부로 다시 이동할 유인을 가지고 있다. 


이때, 얼마만큼의 제조업 기업이 주변부로 다시 이동할까? 주변부로 이탈할 기업의 수를 결정해주는 요인이 몇 가지 있다.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이 적을수록 그리고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을수록 주변부로 이탈하는 기업이 증가

: 사람들이 제조업 상품에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면 근로자들은 핵심부에 머무르는 게 이득이다. 제조업 상품 종류가 더 다양한 핵심부의 상품은 주변부의 상품에 비해 많이 팔리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제조업 상품에 많은 지출을 하면 할수록 핵심부의 상품 판매량은 상대적으로 더욱 더 증가한다. 이에따라 핵심부에 있는 근로자들 또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주변부로 이동할 이유가 없다. 근로자가 이동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고용해야 하는 기업 또한 이동할 수 없다. 


따라서 주변부로 이탈할 기업의 수를 결정하는 요인은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정도' 이다. 사람들이 제조업 상품에 지출을 적게 하고 농업 상품에 대한 지출을 늘릴수록, 기업들은 주변부로 이동하기가 쉬워진다. 또 다른 요인은 '임금 지불능력'이다. 핵심부에 있는 근로자들은 높은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주변부로 유인하려면 제조업 기업은 더 높은 임금을 제공해야 한다. 즉, 더 높은 임금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만 핵심부를 이탈하여 주변부로 재이동할 수 있다.   


운송비용이 클수록 주변부로 이탈하는 기업이 증가

: 또 하나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운송비용이다. 운송비용이 낮다면 주변부에 사는 사람들은 싼 가격에 핵심부의 제조업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핵심부를 이탈하여 주변부로 이동할 이유가 없어진다. 기업은 주변부의 상품 수요를 모두 차지 하기위해 핵심부를 이탈한 것인데, 정작 주변부에 사는 사람들이 핵심부의 상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으면 주변부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판매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송비용이 높을수록 주변부로 재이동하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다.


내부 규모의 경제가 적게 작동할수록 주변부로 이탈하는 기업이 증가

: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내부 규모의 경제이다. 만약 제조업이 내부 규모의 경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상황이라면, 제조업 기업들은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는 핵심부에 머무르는 게 유리하다. 그렇지만 내부 규모의 경제가 약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기업들이 인구가 적은 주변부로 이탈하여도 비교적 괜찮다.   


이를 정리한다면, 제조업 근로자들이 핵심부(1지역)로 모이게 만든 3가지 요인은 반대로 제조업 기업들이 주변부(2지역)로 이탈하게끔 만들 수 있다. 


●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정도

→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이 많을수록 핵심부로의 집중 심화

→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이 적을수록 주변부로의 이탈 발생


● 운송비용 크기

→ 운송비용이 적을수록 핵심부로의 집중 심화

→ 운송비용이 클수록 주변부로의 이탈 발생


● 내부 규모의 경제 작동정도

→ 내부 규모의 경제가 강하게 작동할수록 핵심부로의 집중 심화

→ 내부 규모의 경제가 약하게 작동할수록 주변부로의 이탈 발생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정도' · '운송비용 크기' · '내부 규모의 경제 작동정도' 이러한 3가지 요인이 각각 어느정도 크기를 가지느냐에 따라, 핵심부에 남아있는 제조업 기업(근로자)의 수와 주변부로 이탈하는 제조업 기업(근로자)의 수가 결정된다. 


3가지 요인이 주변부로의 이탈을 막을수록 핵심부의 크기는 커지게되고(divergence), 반대로 3가지 요인이 주변부로의 이탈을 유발할수록 핵심부와 주변부의 크기는 비슷해진다(convergence). 



그리고 이제 핵심부는 '산업화된 핵심부'(industrialized core) 모습을 띄게되고 주변부는 농업'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도 어느정도 존재하는 '농업위주의 주변부'(agricultural periphery)가 된다. 현대사회는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이 많고 · 기술발전으로 인해 운송비용이 감소하고 있으며 · 내부 규모의 경제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대도시(metropolitan)'를 중심으로 한 '거대 핵심부'가 만들어지고 있다.  




※ 신경제지리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 도시의 승리 (Triumph of the City)

: 이제 우리는 왜 사람들이 도시, 그것도 대도시(metropolitan)에 몰려사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인구가 몰려있는 대도시는 다양한 상품종류와 높은 임금을 제공해준다. 기업들 또한 대도시 근처에 위치해야 내부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운송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의 도시경제학자 Edward Glaeser는 단행본 『도시의 승리』(원제 : 『Triumph of the City』)를 통해, 도시의 이점을 이야기한다.


■ 지역균형발전

: 한국의 정부는 수도권 과밀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채택해왔다. 공기업 등을 여러 지방으로 강제로 분산이전시켜서 지방소도시의 발전을 꾀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글을 읽었다면 인위적인 분산정책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제지리학은 "'상대적으로 많은 도시 인구수'(relatively large non-rural population) 라는 초기조건이 큰 영향을 끼쳐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을 만들어낸다"(sensitively on initial condition)고 설명한다. 즉, 조금이라도 규모가 큰 도시에 위치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근로자와 기업들은 큰 도시로 이동하게 되고, 핵심부의 크기는 더더욱 커지고 주변부의 크기는 더더욱 작아진다. 따라서 공기업 등을 소규모로 쪼개서 지방으로 이전시킨다 하더라도, 결국 주변의 큰 핵심부에 사람과 자본을 뺏길 것이다. 차라리 공기업 등을 한꺼번에 특정 지방 광역시로 이전시키는 방법이 지역균형발전에 효과적일 것이다.                    


■ 세계화와 '슈퍼스타'의 등장

"'상대적으로 많은 도시 인구수'(relatively large non-rural population) 라는 초기조건이 큰 영향을 끼쳐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을 만들어낸다"(sensitively on initial condition)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핵심부의 크기는 더더욱 커지고 주변부의 크기는 더더욱 작아진다. 이러한 논리를 지리학이 아닌 '소득격차 심화'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등의 기술발전과 운송비용의 감소는 세계적인 스타와 기업이 다른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손쉽게 미국의 연예스타들을 접할 수 있으며, 유럽 챔피언스리그 · 메이저리그와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대회를 시청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기업이 만들어낸 상품, 서비스뿐만 아니라 애플 아이폰 · 구글과 같은 해외 기업들의 상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에따라 '한국내 1위'(주변부)라는 지위는 힘을 잃고 '세계 1위'(핵심부)의 영향력은 더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싸이월드가 아니라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K리그가 아니라 유럽축구를 시청한다. 그 결과, 세계적인 스타 · 기업(핵심부)들은 더더욱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오바마행정부 경제자문회의장을 맡았던 경제학자 Alan Krueger는 "세계화와 인터넷 등의 기술발전은 '슈퍼스타'의 영향력을 증대시켰고, 상위 0.1% 계층의 소득은 더더욱 증가하였다."[각주:2] 라고 설명한다.  


■ 한국시장은 중국시장에 흡수될까?

: '핵심부의 크기는 더더욱 커지고 주변부의 크기는 더더욱 작아진다'는 논리는 한국인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바로 한국 옆에 존재하는 중국의 존재 때문이다.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시장은 상품다양성과 내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한국시장보다 우월하다. 그렇다면 일종의 주변부인 한국시장은 핵심부인 중국시장에 흡수될 수도 있지 않을까? 프로축구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K리그 선수들은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중국리그로 대거 이적하고 있으며, 최용수 감독은 연봉 20억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프로축구 뿐만 아니라 일반 상품시장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1. 'A new global order of cities'. Financial Times. 2015.05.26 http://www.ft.com/intl/cms/s/2/a5230756-0395-11e5-a70f-00144feabdc0.html#axzz3e81c3Sn0 [본문으로]
  2. Alan Krueger. "Land of Hope and Dreams: Rock and Roll, Economics and Rebuilding the Middle Class". 2013.06.12 https://www.whitehouse.gov/sites/default/files/docs/hope_and_dreams_-_final.pdf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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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Posted at 2015. 5. 26. 21:03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2세대 국제무역이론의 등장


국제무역이론의 주요 관심사는 '무역을 왜 하는가?' · '무역의 이익은 무엇인가?' · '무역은 소득분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다.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에서 우리는 1세대 국제무역이론을 알아보았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헥셔-올린의 무역이론 등 1세대 국제무역이론은 '각 국가들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무역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리카도는 '노동생산성의 차이'(기술수준의 차이)에 주목하고, 헥셔-올린은 '보유자원의 차이'를 말한다. 이들 이론에서는 국가들의 기술수준 · 보유자원 등이 같거나 유사할때 무역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1세대 국제무역이론에서는 '한 국가에서 특화상품은 수출만 되고, 특화하지 않은 상품은 수입만 된다. 똑같은 산업에 속한 상품들이 교환되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이론에서는 '비교우위 산업의 상품을 수출하고, 비교열위 산업의 상품은 수입한다'. 헥셔-올린 이론에서는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을 수출하고,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입한다.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하고 자본집약적 상품을 수입한다.' 똑같은 산업에 속한 상품들은 교환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산업 간에 무역이 발생하게 된다(Inter-Industry Trade).


따라서, 1세대 국제무역이론이 말하는 '무역의 이익'은 '해당 국가가 가지지 못한-혹은 비교적 덜 가지고 있는- 상품을 간접생산' 하는 것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서는 무역을 통해 비교열위 상품을 간접생산하고, 헥셔-올린 이론에서는 희소한 자원(scarce resource)이 집약된 상품을 간접생산 한다. 



1세대 국제무역이론은 과거 20세기 초반의 무역패턴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 국가들은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상품을 수입하기 위해 힘을 썼다. 가령, 유럽 국가들이 인도에만 있는 향료를 수입하려 했던 식이다. 굳이 자신들과 비슷한 국가들과 무역을 할 유인은 없었다


위의 그래프는 이러한 과거 무역패턴을 보여준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1910년대 영국은 자신들이 가진 제조업상품을 주로 수출하고 비제조업상품을 주로 수입했다. 특화된 제조업상품은 수출만 되고 특화하지 않은 비제조업상품은 수입만 되는 양상이다. 제조업상품의 수입 혹은 비제조업 상품의 수출도 조금은 보이지만 그 비중은 매우 작다. '서로 다른 산업간 무역'(Inter-Industry Trade)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무역패턴은 과거와는 다르다. 위 그래프는 1990년대 영국의 무역패턴을 보여준다. 한 눈에 보이듯이 우선 제조업 상품의 무역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중요한 것은 제조업 상품의 수출 · 수입이 비슷한 비중으로 동시에 발생하면서 똑같은 산업 내부에서 무역이 이루어지고(Intra-Industry Trade) 있다. 이는 제조업 상품(특화상품)이 주로 수출만 되었고, 비제조업상품(비특화상품)은 수입만 되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또한, 1910년대 영국은 주로 비유럽 국가들과 무역을 했으나, 오늘날 영국의 무역비중에서 유럽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오늘날 세계의 무역패턴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진 미국 · 유럽 · 일본 · 중국과 주로 무역을 한다. 또한 전자산업 상품을 수출함과 동시에 수입하기도 한다. 갤럭시폰을 수출하지만 아이폰을 수입하는 꼴이다. 같은 산업내에서 무역이 발생하는 비중이 높다(Intra-Industry Trade). 이때 갤럭시폰과 아이폰은 '스마트폰'이라는 범주에 속하지만, 차별화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무역패턴의 특징은 

'서로 비슷한 국가끼리 무역'(similarity) · 

 '서로 같은 산업내 무역'(Intra-Industry Trade) · 

 '(같은 산업에 속해있지만) 차별화된 상품을 수출입'(differentiated products) 


등이다. 1세대 국제무역이론이 말하지 않는 이러한 무역패턴을 설명하기 위해, 1970년대 후반부터 '신국제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1] 혹은 '2세대 국제무역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무역이론 개발을 이끈 대표적인 경제학자는 바로 Paul Krugman(폴 크루그먼) 이다. 그는 1979년 논문 <Increasing returns, monopolistic competition, and international trade>을 통해 '신무역이론'을 세상에 내놓았다. (주 : 폴 크루그먼은 '신무역이론'과 '신경제지리학'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Elhanan Helpman(엘하난 헬프먼) · Gene Grossman(진 그로스먼) 또한 여러 연구를 통해 2세대 국제무역이론을 만들었다. 이번글에서는 폴 크루그먼의 1979년 논문을 중심으로 '신무역이론'에 대해 알아보자.




※ 독점적 경쟁시장(Monopolistic Competition Market) 

- 차별화된 재화를 생산


우선 오늘날 무역패턴 중 '(같은 산업에 속해있지만) 차별화된 상품을 수출입'(differentiated products)을 주목해보자. 


1세대 국제무역이론에서 '자본(노동)집약적 상품'들은 그저 똑같은 특성을 지닌 상품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노동)집약적 상품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자동차 · 스마트폰 등은 모두 자본집약적 이지만 서로 다른 상품이다. 게다가 스마트폰 내에서도 갤럭시와 아이폰은 서로 차별화된 재화이다. 이처럼 오늘날 상품은 서로 '차별화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차별화된 상품을 생산하는 시장'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경제학에서 주로 등장하는 '완전경쟁시장'(perfect competition market)은 동질한 재화를 생산하는 시장이다. 따라서 다른 형태의 시장모델이 필요하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독점적 경쟁시장'(monopolistic competition market) 이다. 

(주 : 경제학자 Edward Chamberlin은 1962년 출판한 <The Theory of Monopolistic Competition: A Reorientation of the Theory of Value>를 통해 '독점적 경쟁시장 모델'의 특성을 이야기한다. 경제학자 Avinash DixitJoseph Stiglitz 또한 1977년 논문 <Monopolistic Competition and Optimum Product Diversity>을 통해, 독점적 경쟁시장 모델을 이야기했다.)  


독점적 경쟁시장 모델은 다수의 생산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그렇다면 이를 왜 '독점적' 이라고 하는 것일까? 바로 '차별화된 상품'(differentiated products)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만들어내는 상품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품의 가격을 다른 상품보다 높게 올리더라도 수요가 없어지지 않는다. 일종의 '독점력'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여러 생산자가 차별화된 상품을 생산한다면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으로 인한 효용을 누릴 수 있다. 옴니아폰만 쓰는 게 아니라 아이폰도 쓸 수 있으니 우리의 효용이 증가하게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독점적 경쟁시장 모델'과 '국제무역'이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을까? 



 

※ 내부 규모의 경제 (Internal economies of scale, Increasing return)

- 내부 규모의 경제와 상품다양성 욕구의 충돌  


하나의 시장안에 여러 개의 기업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은 서로 '차별화' 되어있다. 따라서, 존재하는 기업의 수가 많을수록 상품 다양성은 증가하고 소비자들의 후생도 커진다. 그런데 기업의 수가 무한히 많아질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소비자들은 무한대의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하나의 시장에서 무한대의 기업이 존재하는 건 불가능하다. 바로, '고정비용'(fixed cost)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정비용이란 상품을 생산하지 않아도 지출해야 하는 비용 혹은 쉽게 말해 초기투자비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소프트웨어 윈도우즈는 상품을 판매할 때 드는 비용이 매우 적다. CD를 찍어내는 비용 혹은 인터넷 다운로드가 유발하는 비용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윈도우즈 투자비용이 적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상품을 판매하기 이전까지 들어가는 개발비용 등은 매우 많다. 


이러한 '고정비용' 혹은 '초기투자비용'이 만들어내은 특징은 '많은 양을 판매해야만 평균비용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만약 윈도우즈를 만들어놓고 하나만 판매한다면 평균비용은 초기투자비용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많은 양을 판매한다면 평균비용은 비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주 : '상품의 판매량이 증가할때마다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모습을 우리는 이전글에서 본적이 있다.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에서는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이를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이라 했다.


하지만 이번글에서 다루는 '상품의 판매량이 증가할때마다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모습은 이와는 다르다. (여러 기업이 한 곳에뭉치지 않아도) '하나의 기업에서만 생산량이 증가해도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모습을 상정한다. 바로, '내부 규모의 경제'(internal economies of scale or increasing return) 이다.)


'내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량을 늘려야먄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런데 무한대의 기업이 시장에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무한대의 기업이 각자 원하는 생산량을 모두 생산할 수는 없다. 시장크기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크기가 제한된 시장 안에서 기업의 수가 증가 할때마다 기업 한곳이 생산할 수 있는 생산량은 감소한다. 그리고 생산량 감소에 따라 기업들의 평균생산비용은 증가한다. 평균생산비용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상품다양성은 줄어든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소비자들은 차별화된 상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성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고정비용과 내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고 시장크기가 작은 경우,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다양성의 이익'은 제한된다. '내부 규모의 경제'와 '비자들의 상품다양성 욕구'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 X축은 기업의 수(다양한 상품의 수), Y축은 비용 혹은 가격을 나타낸다.
  • 빨간선 CC는 시장내 기업의 평균비용곡선, 파란선 PP는 시장내 기업의 가격곡선을 나타낸다.
  • 시장 안에서 기업의 수가 증가 할때마다 기업 한곳이 생산할 수 있는 생산량은 감소한다. 그리고 생산량 감소에 따라 기업들의 평균생산비용은 증가한다. (빨간선 CC가 우상향하는 이유)
  • 시장 안에서 기업의 수가 증가한다면, 각 기업들의 독점력은 약해진다. 따라서, 각 기업들이 책정하는 상품가격은 하락한다. (파란선 PP가 하향하는 이유) 


윗 그래프는 '내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독점적 경쟁시장 모델'에서의 균형을 보여준다. X축은 기업의 수(다양한 상품의 수), Y축은 비용 혹은 가격을 나타낸다. 빨간선 CC는 시장내 기업의 평균비용곡선, 파란선 PP는 시장내 기업의 가격곡선을 나타낸다. 


이때, 시장 안에서 기업의 수가 증가 할때마다 기업 한곳이 생산할 수 있는 생산량은 감소한다. 그리고 생산량 감소에 따라 기업들의 평균생산비용은 증가한다(빨간선 CC가 우상향하는 이유). 그리고 시장 안에서 기업의 수가 증가한다면, 각 기업들의 독점력은 약해진다. 따라서, 각 기업들이 책정하는 상품가격은 하락한다(파란선 PP가 하향하는 이유).


앞서 말한것처럼, 소비자들의 상품다양성 욕구와 규모의 경제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균형 기업의 수는 n2에서 결정된다. n2보다 더 많은 기업이 존재한다면 상품가격은 낮은데 평균 생산비용은 높은 상황이 만들어진다.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나갈 것이다. 반대로 n2보다 적은 기업이 존재한다면 상품가격은 높은데 평균 생산비용은 낮다. 이를 본 다른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여 결국 균형기업의 수는 n2가 된다. 




※ '상품다양성 이익'과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을 가져오는 국제무역


다시 반복하자면, 소비자들은 차별화된 상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성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고정비용'과 '내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고 시장크기가 작은 경우,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다양성의 이익'은 제한된다. '내부 규모의 경제'와 '소비자들의 상품다양성 욕구'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고정비용'과 '내부 규모의 경제'다. 이것 때문에 소비자들의 상품다양성 욕구는 제한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나서 상품다양성을 늘릴 수 있을까?


경제학자 Paul Krugman(폴 크루그먼)1979년에 발표한 논문 <내부 규모의 경제, 독점적 경쟁 그리고 국제무역>(<Increasing returns, monopolistic competition, and international trade>)을 통해, 이러한 상황에서 상품다양성을 늘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첫번째는 '국내 전체 인구증가'(Labor Force Growth), 두번째는 국제무역'(International Trade)이다. 


국내에서 인구가 증가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인구가 증가했다는 말은 제한되어 있던 시장크기가 커졌다는 말과 같다. 각 기업은 이전보다 더욱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은 감소한다. 평균 생산비용이 이전에 비해 감소함에 따라 (이전에는 평균생산비용이 높아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한다. 따라서, 인구증가는 상품다양성 증가를 가져온


그렇지만 국내인구를 인위적으로 갑자기 증가시킬 수는 없다. 인구증가로 상품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무의미하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국제무역'이다.


국제무역을 통해 다른 나라와 거래를 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국제무역은 '시장확대'(extending the market)를 가져온다. 이제 국내 사람들은 무역을 통해 외국 기업이 생산한 상품도 이용함에 따라 상품다양성이 증가하게된다. 국제무역으로 인해 '상품다양성 증가'(variety gain)를 누릴 수 있게된 것이다. 


또한 국제무역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각 기업들은 제한되어 있는 시장크기로 인해 '내부 규모의 경제' 효과를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국제무역이 이루어지면 시장크기가 커져서 기업들은 생산량을 늘릴 수 있고 평균생산비용은 감소한다. 즉, 국제무역은 '내부 규모의 경제 효과'를 증대(scale effect)시킨 역할을 수행했다.    


'내부 규모의 경제 효과'가 증대됨에 따라 국제무역 이후 상품가격은 하락하고 국민들의 실질임금은 증가한다. 국제무역 덕택에 국민들은 '상품가격 하락과 실질임금 상승 효과'를 누리게 된다.



  • 노란색선(CC1)은 인구증가 이전 · 무역발생 이전의 평균 생산비용을 나타낸다.
  • 빨간색선(CC2)은 인구증가 이후 · 무역발생 이후의 평균 생산비용을 나타난대.
  • 파란색선(PP)은 시장내 기업의 가격곡선 이다.
  • 인구가 증가하고 무역이 이루어진 결과, 소비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상품의 수(혹은 기업의 수)는 n1에서 n2로 증가한다.
  • 게다가 상품가격 또한 P1에서 P2로 하락한다.


이제 그래프를 통해, '인구증가의 효과'와 '무역의 효과'를 이해해보자. 노란색선(CC1)은 인구증가 이전 · 무역발생 이전의 평균 생산비용을 나타낸다. 빨간색선(CC2)은 인구증가 이후 · 무역발생 이후의 평균 생산비용을 나타난대. 파란색선(PP)은 시장내 기업의 가격곡선 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무역이 이루어진 결과, 소비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상품의 수(혹은 기업의 수)는 n1에서 n2로 증가한다. 게다가 상품가격 또한 P1에서 P2로 하락한다. '다양성의 이익'(variety gain)과 '상품가격 하락 효과'(scale effect)가 나타남을 그래프를 통해 볼 수 있다.




※ 신무역이론의 특징


이러한 사실 등을 통해 신무역이론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첫째로, 국제무역을 하는 이유는 '내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상품다양성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1세대에서의 국제무역 목적은 내가 가지지 못한 상품을 얻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1세대에서의 무역 상대방은 노동생산성이 다르거나(기술수준이 다르거나) 다른 자원을 가졌었다. 그러나 신무역이론에서의 무역 상대방은 나와 동일한 특징을 지닌 국가여도 괜찮다. 국제무역을 통해 싼 가격에 여러 상품을 소비하는게 중요할 뿐이다. 즉, 비슷한 국가들 사이에서도 국제무역은 발생(similarity)한다.


둘째로, 신무역이론에서는 비슷한 산업끼리도 무역을 통해 상품을 교환한다. 1세대에서의 무역은 내가 가지지 못한 혹은 부족한 상품을 수입하기 위해서 행해졌다. 하지만 신무역이론에서의 무역은 똑같은 산업에 속해있는 상품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같은 산업에 속해 있다하더라도 서로 '차별화된 상품'이기 때문에, 무역을 통해 '상품다양성의 이익' 얻는 것이 신무역이론의 목적이다. 따라서, 1세대 무역은 '산업간 무역'(Inter-Industry Trade)만을 이야기하지만, 신무역이론은 '산업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을 설명할 수 있다


셋째로, 국제무역을 유발케하는 것은 '고정비용'(fixed costs)과 '내부 규모의 경제'(internal economies of scale or increasing returns)이다. 만약 이것들이 없었더라면 국내 소비자는 다양성의 이익을 무한대로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고정비용'과 '내부 규모의 경제'로 인해 시장내 상품 다양성의 제약이 생기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제무역을 해야할 유인을 제공해준다. 


넷째로, 국제무역의 효과는 국내인구 증가의 효과와 동일하다. 인구가 적은 소국도 국제무역을 통해 인구대국 만큼의 상품다양성의 이익을 향유하고 내부 규모의 경제를 실현 할 수 있다. 신무역이론은 "국제무역은 마치 나라의 크기가 커진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라고 말한다.

  

다섯째로, 만약 국제무역을 할 수 없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앞서,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에서 '무역을 통한 상품의 이동은 생산요소가 직접 이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신무역이론에서도 이러한 효과는 나타난다. 국제무역은 '다른나라 국민들이 우리나라로 이민을 와서 인구가 증가'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국제무역을 할 수 없다면 인구가 적은 소국은 '이민을 통한 인구증가' 효과를 누릴 수 없다. 따라서 소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국 사람들에 비해 삶의 수준이 낮은 상태 (다양성이익 X, 규모의 경제 실현 X)에 있게되고, 소국 국민들은 대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가지게 된다

(이 사실은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다!) 




※ 어떤 국가가 특정상품을 더 많이 수출할까?


이처럼 2세대 국제무역이론 혹은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은 내부 규모의 경제로 인해 소비자들의 상품다양성 추구가 제한되는 와중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제무역이 등장한다고 말한다. 즉, 무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차별화된 상품을 소비하는 다양성의 이익(variety gain)이다. 



과거 전통적인 국제무역이론은 비교열위(우위) 산업 혹은 희소한(풍부한) 자원을 이용하는 산업이 만들어낸 상품을 수입(수출)만 한다고 이야기했다. 따라서 전통적인 국제무역이론이 설명한건 '산업간 무역'(Inter-Industry Trade) 이었다. 



하지만 신무역이론은 같은 산업내에 속해있는 상품이라 하더라도 차별화된 특성을 지니고 있기때문에, 상품 다양성의 이익을 얻기위해 같은 산업 내부에서 수출· 수입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즉, 신무역이론은 오늘날 주된 무역패턴인 '산업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이 이루어질때, 같은 산업 내에서 각 국가가 수출하는 상품량이 똑같을까? 예를 들어, A국과 B국 사이에 자동차 산업내 무역이 발생한다고 생각해보자. 양 국가는 차별화된 자동차를 생산함으로써, 자국의 자동차 상품을 수출한다. 이때 A국이 수출하는 자동차 상품량과 B국이 수출하는 자동차 상품량이 똑같을까? 앞서 살펴본, Paul Krugman(폴 크루그먼)1979년 논문 <Increasing returns, monopolistic competition, and international trade>은 이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때, 경제학자 Elhannan Helpman(엘하난 헬프먼)1981년 논문 <International trade in the presence of product differentiation, economies of scale and monopolistic competition : A Chamberlin-Heckscher-Ohlin approach>은 '어느 국가가 어떤 상품을 더 많이 수출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엘하난 헬프먼은 '신무역이론'에 전통적인 무역이론인 '헥셔-올린 모형'을 결합하였다. '헥셔-올린 모형'은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만을 수출하고,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만을 수출한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무역이론'은 "각 국가는 상품다양성을 얻기위해 같은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한다." 라고 말한다. 이들을 결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바로, "자본(노동)풍부국은 상품다양성을 얻기위해 자본(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함과 동시에 수입하지만,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한다. 즉, 자본(노동)풍부국은 자본(노동)집약적 상품을 순수출(net export) 한다."       

    




※ 신무역이론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실은?

'무역자유화의 이점'(benefits of Trade Liberalization)


이번글을 통해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 혹은 '2세대 국제무역이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계속 반복하지만, 신무역이론은 내부 규모의 경제로 인해 소비자들의 상품다양성 추구가 제한되는 와중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제무역이 등장한다고 말한다. 이때 무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차별화된 상품을 소비하는 다양성의 이익(variety gain)'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이끌어낼 수 있다. 바로 '무역자유화의 이점'(benefits of Trade Liberalization)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하에서 무역개방은 비교열위 산업의 고용을 축소시킨다. 또한 '헥셔-올린 모형' 하에서 무역개방은 희소한자원을 이용하는 산업의 임금을 하락시킨다. 무역개방이 경제 전체의 총고용에는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각주:2], 무역자유화로 인해 피해가 보는 산업이 생기게된다. 이는 무역개방이 '우리와는 특성이 다른 국가와 산업간 무역을 증가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무역이론'에서는 무역개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산업이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산업이 '다양성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역개방이 '산업구조가 비슷한 국가와의 무역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산업내 무역을 증가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면 무역자유화의 이점은 극대화된다. 국제무역은 전세계 국가에 win-win을 안겨다 줄 수 있다..    


폴 크루그먼은 1981년 논문 <Intraindustry Specialization and the Gains from Trade>을 통해, "규모의 경제가 작거나 보유자원이 다른 국가들 사이에 국제무역이 이루어진다면 피해를 보는 산업이 생기게된다. 하지만 산업내 무역의 효과가 크다면 모든 사람이 무역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각주:3]" 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주 :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더 자세히 다룰 계획이다.)




 신무역이론 이용하여 사회현상 바라보기


이론을 배우기만 하고 현실에 적용할 줄 모른다면 이론공부를 한 의미가 없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알게된 '신무역이론' 지식을 이용하여 사회현상을 바라보도록 하자. 


2014년 8월, 영화계의 화제는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였다. "영화 <명량>을 제작한 CJ가 영화흥행을 위하여 자사극장 CJ CGV 스크린을 독점했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본인은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하여' 글을 통해 몇가지 반론을 제기했었다. 


반론의 핵심은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은 단순히 대기업 CJ의 탐욕 때문이 아니다. 이는 '고정비용'이 존재하고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영화산업의 특징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시장의 크기가 작은 곳에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상품에 대한 욕구'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 간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이었다.


본인은 그것보다는 <명량>의 제작비에 관심이 간다. <명량>의 제작비는 180억원인데 한국영화시장에서 '제작비 180억'은 엄청난 금액이다. 그리고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한 손익분기점 관객수는 550만이나 된다. 다르게 말해, <명량>은 엄청난 '고정비용'이 투자된 상품이고, 관객수가 늘면 늘수록 평균비용이 떨어지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시장의 크기' 이다. 시장의 크기가 클수록 생산량이 증가하여 평균비용을 하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고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 나온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원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 나오고 판매량이 분산된다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은 생산비용이 급증하게 된다. 즉, 시장의 크기가 제약되어 있고, 다양한 상품으로 인해 판매량이 분산된다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은 심각한 적자를 보게 된다. 그 결과, 시장의 크기가 작은 곳에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상품에 대한 욕구'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 간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충돌을 완화시켜주는 것은 '국제무역' 이다. 각 나라와 산업들은 국제무역을 통해 시장크기를 넓힘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원활히 작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획득할 수 있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독점적 경쟁시장'과 '시장크기'에 관한 국제무역이론을 수립하고 지리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명량>은 국제무역을 통해 시장을 확대할 수 없다. 이순신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일본에 수출할 수 있나? 한국의 영웅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미국 사람이 볼까? 제작비 500억이 투입된 <설국열차>의 경우 세계각지에 수출함으로써 '한국 시장크기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명량>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투자비용 회수를 위해 한국영화시장 안에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스크린 수를 대폭 늘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한국 대작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물론, 그 영화가 흥행하지 않는다면 독과점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자연스럽게 상영관수가 줄어들겠지만...) 이것을 고려한다면 단순하게 배급사와 상영사의 독점을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의 원인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규모의 경제'와 '시장크기'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신국제무역이론'(New Trade Theory)은 197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2015년 현재에는 이를 보완하는 새로운 국제무역이론이 등장한 상태이다. 따라서, 오늘날 '신국제무역이론'(New Trade Theory)은 '구 신국제무역이론'(Old New Trade Theory)'라 불리운다. [본문으로]
  2. '무역개방이 경제내 실업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른글에서 자세히 다룰 게획이다. [본문으로]
  3. In the southeastern part of the square-labeled "conflict of interest"-either scale economies are unimportant or countries are very different in factor endowments, and scarce factors lose from trade. In other region-"mutual benefit"-the gains from intraindustry specialization outweigh the conventional distributional effects, and everyone gains from trad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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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④] 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쟁 - Fed & Krugman vs BIS & Rajan[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④] 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쟁 - Fed & Krugman vs BIS & Rajan

Posted at 2015. 1. 13. 00:36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 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쟁 - Fed & Krugman  vs  BIS & Rajan


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5년 현재까지 반복되어온 논쟁의 핵심은 'Fed의 공격적인 통화정책이 경기침체 탈출에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금융시장 리스크를 키우고 거품을 만드는 것 아닌가' 이다.


우선,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 이후 시행되었던 Fed의 통화정책이 적절했느냐'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오갔었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테일러준칙'Taylor Rule을 만든) 경제학자 John Taylor는 "2000년대 Fed의 저금리정책으로 인해 부동산시장 거품이 생겨났다."라고 말하며 당시 Fed의 통화정책을 비판한다. 또한 現 인도중앙은행 총재이자 前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Raghuram Rajan은 "금융위기 이전 Fed의 초저금리 정책이 금융시장 리스크를 키우는데 일조했다."[각주:1]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 前 Fed 의장 Ben Bernanke는 "2000년대 초반 미국 부동산시장 거품은 Fed의 저금리정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각주:2] 라고 반박하면서, "글로벌 과잉저축(the Global Saving Glut)으로 인해 부동산시장 거품이 생겨난 것이다."[각주:3] 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2008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Fed의 초저금리 정책이 문제를 초래하지 않을까?' 라는 모습으로, 2015년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은 "현재 Fed의 통화정책은 리스크추구 행위를 유발하고 있으며[각주:4], 자산시장 거품을 만들 수 있으므로 확장적 통화정책이 초래하는 비용을 면밀하게 평가해야 한다.[각주:5]" 라고 말한다. 그러나 Fed는 "통화정책은 전체 거시경제를 위한 것이고, 현재와 같은 통화정책이 없었다면 금융불안정은 더욱 더 커졌을 것" 이라고 반박한다.


논점을 명확히 하여 어떤 주장이 오고가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오늘날 '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의 요점은 크게 3가지이다. 


  • 통화정책 · 재정정책 무용론
  • 미국 Fed 통화정책이 신흥국에 미치는 악영향
  • 금융안정에 있어 통화정책과 중앙은행의 역할 


前 Fed 의장 Ben Bernanke, 現 Fed 의장 Janet Yellen과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Fed의 통화정책을 긍정'하고 있다. 그러나 BIS소속 Claudio Borio, 신현송과 인도중앙은행 총재 Raghuram Rajan은 'Fed의 통화정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치 'Fed vs BIS' 처럼 보이는 논쟁구도이다. 이번글에서는 양쪽의 입장을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 Fed의 통화정책은 문제가 없다 - Fed & Paul Krugman


  • 왼쪽 : 前 Fed 의장 Ben Bernanke (2006-2014)
  • 가운데 : 現 Fed 의장 Janet Yellen (2014-       )
  • 오른쪽 : 경제학자 Paul Krugman



● Fed의 통화정책은 금융불안정을 초래한다 - BIS & Raghuram Rajan


  • 왼쪽 : BIS 통화결제국장 Claudia Borio
  • 가운데 : BIS 조사국장 신현송
  • 오른쪽 : 인도중앙은행 총재 Raghuram Rajan




※ 통화정책 무용론

- 구조개혁 vs 통화정책



● BIS : 경제위기 탈출에 통화정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구조개혁을 해야한다


  • 출처 : BIS. <84th BIS Annual Report, 2013/2014>. 44 
  • 왼쪽 그림 : 세계 각국의 2014년 1분기 실질GDP를 나타낸다. 
  • 오른쪽 그림 : 세계 각국의 2014년 1분기 노동생산성을 나타낸다.
  •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황색 점으로 표시된 '금융위기 이전 추세선과 현재의 차이'(Versus pre-crisis trend) 이다.
  • 2014년 1분기 실질GDP · 노동생산성 모두 '금융위기 이전 추세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글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③] Fed의 초저금리 정책은 자산시장 거품(boom)을 만들고 있을까?'를 통해, Fed의 통화정책을 비판하는 BIS 주장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BIS는 '통화정책 무용론' (① Fed의 초저금리 정책은 경제위기 탈출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을 이야기한다. 


근거가 무엇일까? BIS는 "2008 금융위기 이후 확장적 통화정책을 6년이나 시행했음에도 경제회복 속도가 느릴 뿐더러, '위기 이전 경제성장 추세선'(pre-crisis trend)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 위에 첨부한 그래프를 살펴보면, 2014년 1분기 실질GDP · 노동생산성 모두 '금융위기 이전 추세선'(주황색 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 이전 경제성장 추세선'과 '현재 경제성장 추세선' 비교를 위해, 좀 더 한 눈에 보이는 그래프를 살펴보자.  



  • 출처 :  BIS. <84th BIS Annual Report, 2013/2014>. 48
  • 왼쪽 그림 : 금융위기를 맞아 추락했던 GDP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전부터 있어왔던 추세선(Trend)으로 복귀한다.
  • 오른쪽 그림 : 금융위기를 맞아 추락한 GDP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전부터 있어왔던 추세선(Trend)으로 복귀하지 못한다. 대신, 새로운 추세선(Trend after crisis)을 만들어 내는데, 새로운 추세선은 이전 추세선에 비해 낮은 GDP를 기록한다.(a new trend is permanently lower than the pre-crisis  trend.)
  • 쉽게 말해, 오른쪽 그림은 '금융위기의 충격이 경제성장을 영구히 손상시킨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 BIS는 현재 경제상황이 오른쪽 그림과 같다고 주장한다. 


왼쪽 그림에서, 금융위기를 맞아 추락했던 GDP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전부터 있어왔던 추세선(Trend)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오른쪽 그림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추세선(Trend)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새로운 추세선(Trend after crisis)을 만들어내고 있는 GDP 추이를 보여준다. 이때, 새로운 추세선은 금융위기 이전의 추세선보다 낮은 값을 가지는데, 이는 '금융위기 충격이 경제성장을 영구히 손상시킨 모습'(a new trend is permanently lower than the pre-crisis  trend.)을 보여준다. BIS는 현재 경제상황이 오른쪽 그림과 같다고 주장한다.[각주:6]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BIS는 크게 2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번째는 '과다한 공공부채가 초래하는 악영향'(adverse effects of high public debt)과다한 공공부채는 조세구조의 왜곡 · 낮은 정부지출 생산성을 뜻한다. 또한, 공공부채 증가는 리스크-프리미엄을 증가시키는데 이는 차입비용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투자지출이 감소하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축시킨다.[각주:7] 


두번째는 '부실금융부문이 초래하는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증가'(increase in resource misallocation)장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면, 부실기업이 퇴출되지 않고 시장에 잔존하게 된다. 따라서,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이 하락한다. 이때, 금융시장 내 부실(the malfunctioning of the banking sector)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더욱 더 커진다.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으려는 부실 금융기관은 부실기업에게까지 대출을 해주어서 이윤을 획득하려 한다. 따라서, 금융시장 내 자원은 비효율적으로 배분된다. BIS는 '1990년대 일본'을 이러한 사례로 든다. "당시 일본이 부실금융부문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결과 부실기업이 시장에 잔존하게 되었고, 이는 경제성장 추세선 하락을 초래했다"는 것이다.[각주:8]   


이러한 2가지 요인들로 인해 '이전 추세선에 비해 영구히 손상된 새로운 추세선'이 만들어졌다면, 정책당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BIS는 '이전 추세선에 비해 영구히 손상된 새로운 추세선'이 정책시행에 주는 2가지 함의를 말한다.


  1. 금융위기는 잠재GDP 수준을 영구히 손상시켰다. 따라서, '금융위기 이전 경제성장률'을 정책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된다.(it would be a mistake to extrapolate pre-crisis average growth rates to estimate the amount of slack in the economy.)(47)
  2. 통화정책이 경제안정화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root causes)를 다루어야한다. (즉, 구조개혁을 해야한다는 의미) (While expansionary macro policies were instrumental in stabilising the global economy, the recovery path of individual countries also depended on their ability to tackle the root causes of the balance sheet recession.) (46)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잠재GDP와 경제성장 추세선은 영구히 변했다. 그럼에도 금융위기 이전 경제성장률을 기준으로 삼고, 그 수준으로 돌아가려고 계속해서 확장정책을 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BIS는 통화 · 재정정책의 완화정도가 커진다(loose)고 지적한다. 그리고 정말로 금융위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공공부채 · 부실금융부문 등을 타겟으로 하는 구조개혁(structural reform)이 필요하다.     


'통화정책 무용론'을 말하는 BIS 주장을 다시 정리한다면,


  1. 지난 6년간 확장정책을 썼음에도 '위기 이전 경제성장 추세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통화정책 효과가 없음을 보여준다.
  2.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 추세선은 영구히 변했다.
  3. 따라서, 통화정책으로 추세선을 다시 되돌리는건 애시당초 불가능했을 뿐더러, 위기 이전 추세선을 기준으로 삼고 통화 · 재정정책을 계속해서 쓴다면 문제가 생긴다.  
  4.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 추세선이 영구히 변한 이유는 과다한 공공부채 · 부실금융부문으로 인한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때문이다.
  5. 따라서, 이러한 근본원인을 해결하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 Paul Krugman : 통화정책이 무용하다? 우리는 단지 '유동성함정'에 빠진 것일뿐


'통화정책 무용론'과 '구조개혁 필요성'을 말하는 BIS 주장에 대해, Paul Krugman은 "나는 그동안 '명목금리를 0 밑으로 내릴 수 없는 상황'(Zero Lower Bound)에서의 통화정책에 대해 이야기 해왔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내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주장은 1998년 논문에 기초해 있는데, 내가 그 논문을 가져다주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읽지 않을 것이다."[각주:9] 라고 말한다.[각주:10]  


Paul Krugman이 말하는 '1998년 논문'은 바로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을 이야기하는 <It's Baaack: Japan's Slump and the Return of the Liquidity Trap>을 뜻한다. 지난 6년동안 Fed가 확장적 통화정책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회복이 더딘 이유가 무엇일까? Paul Krugman은 '통화정책이란게 본래 효과가 없는 정책인 것이 아니라, 단지 유동성함정에 상황에 빠진 것일뿐' 이라고 말한다.  

(주 : 유동성함정 개념은 이전글 '세계경제는 유동성함정에 빠졌는가? - 커지는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자세히 다룬적이 있습니다. Paul Krugman의 주장을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이전글을 읽기 바랍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0에 가까운 아주 낮은 값이라면, 더 이상 하락할 곳이 없기 때문에 금리인하 경로를 통해 투자와 소비를 증가시키는 건 한계가 있다. 


또한 만약 금리가 0에 가까워진다면, 은행들은 (초과)지급준비금을 보유하는 것과 대출에 나서는 것이 무차별하다. '물가안정' 목표에 충실한(responsible) 중앙은행이 앞으로 금리를 올릴지도 모르는데, 지금 현재 낮은 금리수준에서 대출을 해주기보다 (초과)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는 게 향후 이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가 0에 가까워진다면 (초과) 지급준비금과 현금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따라 통화승수(multiplier)는 감소하게 된다. 그 결과, 본원통화(Monetary Base)가 아무리 증가하여도 감소한 통화승수로 인해 통화공급(Money Supply)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무용화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어떻게 해야할까? BIS 주장처럼 '통화정책은 무용하니 더이상의 정책을 쓰지 말아야' 할까? 아니다. Paul Krugman은 오히려 더욱 더 공격적인 확장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중앙은행이 심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유동성함정이 발생하게된 근본원인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credibility) 때문이다. 보통 중앙은행의 신뢰가 문제시 되는 경우는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시킬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할 때이다.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조정능력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유동성함정 하에서 중앙은행의 신뢰 문제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물가안정을 추구하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넘쳐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경제주체들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확고하기 때문에, 현재 통화량을 늘리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일시적(transitory)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물가안정을 위해 존재하는 중앙은행이 향후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은 현재 채권보유나 대출을 늘리기보다 화폐(지급준비금)보유를 증대시키는 행위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동성함정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것이라는 믿음'을 경제주체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Paul Krugman은 이를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무책임 해질 것을 신뢰성 있게 공언하는 것'(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 이라 표현했다.     



  • 파란선은 본원통화(Moneytary Base), 빨간선은 화폐 M2 양(Money Supply)을 나타낸다.
  • X축은 2007년 1월 1일부터 2014년 10월까지의 기간. Y축은 본원통화와 통화공급량의 % 변화.
  • 2008년 이후, 본원통화 공급을 늘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통화공급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또한, 1998년 논문에서 Paul Krugman은 "1990년대 일본의 상황은 부실금융부문의 대출중개기능 손상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유동성함정' 상황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 이라고 주장했었다.[각주:11] 그리고 현재에도 문제는 은행부문 부실이 아니라 단지 '유동성함정' 상황일 뿐이다. 


만약 은행부문의 부실이 존재한다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은행은 이윤획득을 위해 위험도가 큰 대출도 서슴없이 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 내 대출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excessive lending).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15년 현재 세계경제는 본원통화 공급을 늘렸음에도 통화공급량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


Paul Krugman은 1998년 논문에서 "은행이 과도한 대출을 해준다는 논리와 현재의 신용경색이 어떻게 같이 존재할 수 있느냐?"(How can the logic of excessive lending by banks be reconciled with tales of credit crunch?)(1998년 논문 - 176) 라고 말한다. 지금 현재에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따라서, BIS의 주장처럼 부실금융기관이 비효율적 자원배분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유동성함정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Paul Krugman은 '과다한 공공부채 · 부실금융부문 개혁 등 '구조개혁'을 말하는 BIS 주장'도 비판한다. Paul Krugman은 그동안 "과다한 공공부채가 문제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긴축(austerity)은 경제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킨다." 라고 누차 주장해왔다. 

(관련글 :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 '정부부채와 경제성장의 관계 - a Magic Threshold는 존재하는가' )  

  


마지막으로,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 추세선은 영구히 변했다. 따라서, 통화정책으로 추세선을 다시 되돌리는건 애시당초 불가능했을 뿐더러, 위기 이전 추세선을 기준으로 삼고 통화 · 재정정책을 계속해서 쓴다면 문제가 생긴다." 라는 BIS 주장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이는 다음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미국 Fed 통화정책이 신흥국에 미치는 악영향


2005년 당시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로서 Fed의 통화정책을 우려스럽게 바라봤던 Raghuram Rajan[각주:12]은 현재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맡고 있다. 그는 Fed의 통화정책이 인도 그리고 신흥국에 미치는 파급영향(spillover)을 매우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2014년 4월 10일자 그의 연설 <Competitive Monetary Easing: Is it yesterday once more?>을 살펴보자. (관련기사 [각주:13], [각주:14], [각주:15])   


안녕하세요 여러분. 2008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걱정해야할 필요가 있는 주제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바로, '글로벌 시대의 통화정책 수행'(the conduct of monetary policy in this integrated world) 입니다. 


현재 세계경제 상황은 '비전통적 정책을 통한 극단적인 통화완화정책'(extreme monetary easing through unconventional policies)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과다한 부채 · 구조개혁 필요성 등이 세계 각국의 국내수요를 제약하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정책은 국경을 넘어서 파급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때때로 통화가치를 하락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나죠.


더욱 더 우려스러운 점은, (Fed의 이러한 정책이) 반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경쟁적인 통화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여기에 뛰어들고 있죠. 전세계 총수요는 더 줄어들었고 더 왜곡됐습니다. 그리고 금융시장 리스크는 증가했죠.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국제적인 규칙을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걱정스러운 사이클에 다시 올라타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I fear we are about to embark on the next leg of a wearisome cycle.)  (...)


중요한 것은 '(양적완화 등과 같은 유동성공급 정책이)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입니다. 이러한 정책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불명확 합니다. 저의 4가지 우려는 이것입니다.


1. 금융위기의 긴박한 순간을 넘긴 지금, 이러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올바른 도구일까요? 이러한 정책이 경제주체들의 행위를 왜곡시키고 경제회복을 방해하는 것 아닐까요? (2000년대 초반 Fed의)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인해 생긴 경제위기를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나요?


2. 이러한 정책이 시간을 벌었나요? 혹은 중앙은행이 책임 질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더 적절한 정책이 시행되는 걸 막지 않았을까요? (주 : 최종대부자 역할을 뜻함)   


3. 비전통적 통화정책에서 빠져나오는 건 쉬울까요?


4. 이러한 정책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파급영향은 무엇일까요?[각주:16]



Raghuram Rajan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前 Fed 의장 Ben Bernanke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미국경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모두에게 이익이다.[각주:17]" (...) "미국이 신흥국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미국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해왔고, 이에 대해 항상 논의해왔다,[각주:18]" 라고 말한다.[각주:19] 


('Fed의 통화정책이 신흥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BIS 주장은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②] 2008년 이후의 통화정책, 리스크추구 행위를 유발하다' 글의 '※ 신흥국경제에 파급영향를 미치는 Fed의 통화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더 깊게 다룰 계획이다.)




※ 금융안정에 있어 통화정책과 중앙은행의 역할


'금융안정'(Financial Stability)이란 '금융회사들이 정상적인 자금중개기능을 수행하고,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신뢰가 유지되는 가운데, 금융인프라가 잘 구비되어 있어, 금융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는 상태'[각주:20]를 뜻한다. 말그대로 금융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금융불안정'(Financial Instability)은 이와는 반대로 리스크 증가 · 거품붕괴 등으로 금융시스템이 마비된 상태를 뜻한다.  


금융불안정이 생기는걸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세계 각국의 정책당국자들은 금융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거시건전성 정책(macroprudential policy)을 시행[각주:21]하고 있다. 거시건전성 정책이란 '자산 대비 부채비율 제한'(LTV, Loan to Value) · '소득 대비 부채비율 제한'(DTI, Debt to Income) ·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 규제 등등 과도한 차입과 대출을 제한하는 것을 뜻한다. 



● BIS : '금융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이 역할을 해야한다


그러나 BIS는 "거시건전성 정책은 금융시스템의 복원력(resilience)을 증가시키는데에는 도움이 되긴하지만, (부채증가 · 자산가격의 가파른 상승 등) 금융불균형을 억제하는 데에는 부분적인 효과를 낼 뿐이다. (...) 거시건전성 정책에만 의존하는 것은 충분치 않기 때문에, 통화정책이 역할을 해야한다."[각주:22] 라고 말한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 결정되는 기준금리는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차입규모 · 대출규모도 통화정책의 영향 아래 놓여있다. 


만약 "2008년 이후 Fed의 통화정책은 금융시장 리스크를 키우고 있으며[각주:23], 자산시장 거품을 만들고 있다.[각주:24]" 라는 BIS 주장이 옳다면, 현재 Fed는 금융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BIS는 금융안정 달성을 위해 거시건전성 정책에만 의존하지 말고, '통화정책'이 직접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문한다.



● Fed : 통화정책의 주목적은 '물가안정 · 완전고용달성' - 거시경제안정(Macroeconomic Stability)


現 Fed 의장 Janet Yellen은 이러한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Fed의 통화정책을 비판하는 BIS 보고서 <84th BIS Annual Report, 2013/2014>가 나온 4일 뒤(2014년 7월 2일), Janet Yellen은 <Monetary Policy and Financial Stability> 제목의 연설을 통해,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간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Janet Yellen은 "통화정책 당국자들은 금융안정 추구에 있어 거시건전성 접근법과 통화정책 접근법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 "금융안정에 대한 우려를 다루기 위해, 통화정책이 본래의 목적-물가안정 · 완전고용 달성-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를 저는 느끼지 못합니다." 라고 말하며, 금융안정 추구는 통화정책의 주역할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이제 아랫글을 통해 Janet Yellen이 어떤 주장을 했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살펴보자.

(주 : 내용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과 내용편집이 다수 행해졌습니다.)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Monetary Policy and Financial Stability>)

by Janet Yellen. 2014.07.02


(물가안정 · 완전고용 달성을 목표로하는) '거시경제안정'과 '금융안정'의 연관성은 라틴아메리카 부채위기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08 금융위기 · 최근의 유럽경제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융불안정이 고용 · 경제활동 · 물가안정에 미치는 악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최근의 위기들은 세계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금융안정에 초점을 맞추게 했습니다. Fed 또한 금융안정 모니터링에 큰 힘을 쏟고 있으며, 금융시장 내 시스템적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 · 감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앙은행이 구사하는 통화정책의 목표와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고하라는 요구마저 있습니다.


통화정책 당국자들은 금융안정 추구에 있어 거시건전성 접근법과 통화정책 접근법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저는 오늘 연설을 통해 금융안정을 추구하는 도구로서, 통화정책은 몇가지 제약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려 합니다.

(monetary policy faces significant limitations as a tool to promote financial stability.)


과도한 차입 등의 금융취약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규제·감독 접근법(a regulatory or supervisory approach) 만한 것이 없습니다.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금융안정을 달성하려 한다면 (통화정책의 본래 목적인) 물가·고용이 불안정 해질것 입니다. 따라서, 저는 제·감독을 통한 거시건전성 접근법이 금융안정 달성에 있어 최우선 역할을 해야한다고 믿습니다. (As a result, I believe a macroprudential approach to supervision and regulation needs to play the primary role.)  


저는 물론 초저금리 정책이 가져올 잠재적인 위험-금융시장 리스크추구 행위 유발-과 거시건전성 정책의 한계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 Janet Yellen은 연설의 서두에서 "금융안정을 추구하는 도구로서, 통화정책은 몇가지 제약이 있다." (...) "규제·감독을 통한 거시건전성 접근법이 금융안정 달성에 있어 최우선 역할을 해야한다고 믿는다." 라고 말하며, 통화정책을 통한 금융안정 달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다



● 금융안정과 물가안정의 균형 맞추기: 최근 과거에서 얻는 교훈 

(Balancing Financial Stability with Price Stability: Lessons from the Recent Past) (2쪽)


금융안정 · 물가안정 · 완전고용 달성 사이의 연관성을 이야기할 때, 많은 논의들은 이들 목표 사이의 충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그렇지만 금융안정 추구가 물가안정 · 완전고용 달성에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저축·투자의 효율적인 배분을 만들어내고 이는 경제성장 촉진과 고용증가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고용이 증가한다면 가계와 기업의 살림을 향상시키고, 이는 금융안정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물가안정은 실물경제의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도울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서 불확실성을 감소시켜 금융안정을 만듭니다.    


이러한 보완관계에도 불구하고, 통화정책은 위험추구행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monetary policy has powerful effects on risk taking.) 실제로, 최근 몇년간의 확장적 통화정책은 가계·기업의 위험추구 유인을 증가시켜서 생산적인 투자에 달려들게 했습니다. (위험추구 유인증가가 이처럼 긍정적인 모습도 있지만) 위험추구행위가 너무 커지게 된다면, 통화정책은 취약한 금융시스템을 초래하겠죠.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으로 인해 통화정책이 주목적인 물가안정 · 완전고용 달성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통화정책의 주목적에서 이탈할 때 발생하는 비용은 상당히 큽니다. 저는 이러한 비용을 강조함과 동시에 거시건전성 정책 접근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This possibility does not obviate the need for monetary policy to focus primarily on price stability and full employment--the costs to society in terms of deviations from price stability and full employment that would arise would likely be significant. I will highlight these potential costs and the clear need for a macroprudential policy approach by looking back at the vulnerabilities in the U.S. economy before the crisis.)


→ Janet Yellen은 최근 몇년간의 확장적 통화정책이 금융시장 리스크를 증가시켜 금융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통화정책이 본래의 목적-물가안정·완전고용-을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다음부분에서 살펴보자.



● 2000년대 중반 되돌아보기 

(Looking Back at the Mid-2000s) (4쪽)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하였으나,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금융시장 리스크는 위험수준까지 상승했었습니다. 그 시기에 저를 포함한 정책결정권자들은 주택가격이 과대평가 되었고 곧 하락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하락이 얼마나 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그리고 주택가격 하락에서 오는 충격이 금융부문과 거시경제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도 잘 몰랐습니다. 


정책결정권자들은 주택가격 거품 반전이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반전이 금융시장 내 취약부문 · 정부규제 취약성과 상호작용했기 때문이죠.


당시 민간부문에서 가장 큰 취약점은 과도한 차입 등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공부문에서 취약점은 금융기관 대마불사(SIFIs[각주:25])를 허용한 규제구조(the regulatory structure) · 전반적인 감독에서 벗어난 시장(markets to escape comprehensive supervision) 등에 있었습니다.


만약 2000년대 중반 Fed가 긴축적 통화정책을 썼더라면 2008 금융위기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주장은 흔히 들을 수 잇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긴축적 통화정책은 그때에 존재했던 여러 취약점을 다루는데에 불충분 했습니다. 

(At the very least, however, such an approach would have been insufficient to address the full range of critical vulnerabilities.)

  

긴축적 통화정책은 금융기관 대마불사를 허용한 규제구조와 전반적인 감독에서 벗어난 시장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A tighter monetary policy would not have closed the gaps in the regulatory structure that allowed some SIFIs and markets to escape comprehensive supervision.)

(...)


그리고 높은 금리를 통해 커지고 있는 금융시장 취약성을 완화시켰다면, 높은 실업률 이라는 큰 역효과가 생겼을 겁니다

(Substantially mitigating the emerging financial vulnerabilities through higher interest rates would have had sizable adverse effects in terms of higher unemployment.) 


여러 연구들은 2000년대 중반 긴축적 통화정책이 시행됐었다면 주택가격 상승세를 늦출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가격상승세를 막더라도 그 효과는 매우 작습니다. 따라서, 주택가격 거품을 막으려면 더욱 더 강도높은 긴축적 통화정책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데 높은 금리는 실업과 이자부담 증가를 초래하고,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가계의 능력은 더욱 더 취약해졌을 겁니다. 

(a very significant tightening, with large increases in unemployment, would have been necessary to halt the housing bubble. ... But the job losses and higher interest payments associated with higher interest rates would have directly weakened households’ ability to repay previous debts, suggesting that a sizable tightening may have mitigated vulnerabilities in household balance sheets only modestly.)

(...)


게다가, 과도한 차입과 짧은 만기의 상품으로 인해 초래된 금융시장 취약성은 2007년 중반부터 급격히 커졌었습니다. 이때 Fed의 통화정책은 이미 긴축적이었죠. 

(Furthermore, vulnerabilities from excessive leverage and reliance on short-term funding in the financial sector grew rapidly through the middle of 2007, well after monetary policy had already tightened significantly relative to the accommodative policy stance of 2003 and early 2004.)


따라서, 저는 차입비율 제한 등의 거시건전성 정책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평가합니다.


→ Janet Yellen은 '금융안정을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3가지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 


  1. 2008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를 허용한 규제구조(the regulatory structure) · 전반적인 감독에서 벗어난 시장(markets to escape comprehensive supervision) 에서 비롯된 위기였다. 통화정책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다.
  2. 2000년대 초중반 주택시장 거품을 잡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썼더라면 실업률이 크게 증가했을 것이다. 이는 가계의 재무상태를 더욱 더 악화시킨다. 
  3. 금융시장 취약성은 2007년부터 급속히 커졌는데, 이때 Fed의 통화정책은 2000년대 초반과는 달리 이미 긴축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통화정책이 금융안정에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고 '거시건전성 정책이 효과적'일 수 밖에 없다.



● 최근의 국제적 경험 

(Recent International Experience) (7쪽)


미국 밖에서 벌어지는 최근의 사건들을 이야기한다면, 많은 국가들에서 부동산가격의 가파른 상승 · 높은 실업률 · 인플레이션율의 하락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 사이의 최적균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죠. (...)


저는 통화정책과 관련한 논의에 있어, 증가하고 있는 금융시장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시경제 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잠재적 비용은 매우매우 크기 때문에, 통화정책 논의에 있어 금융시장 리스크를 중심에 둘 수 없습니다. 금융안정 이슈에 있어 통화정책이 중심에 없다면, 그 역할은 거시건전성 정책에 의존해야 합니다.


(A more balanced assessment, in my view, would be that increased focus on financial stability risks is appropriate in monetary policy discussions, but the potential cost, in terms of diminished macroeconomic performance, is likely to be too great to give financial stability risks a central role in monetary policy decisions, at least most of the time.

If monetary policy is not to play a central role in addressing financial stability issues, this task must rely on macroprudential policies.) 



→ 금융시장 리스크를 줄여 금융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쓴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실업 등의 비용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이다.. 즉, 통화정책은 본래 목적인 물가안정· 완전고용 달성의 거시경제 안정(macroeconomic stability)에 쓰여야 하고, 금융안정은 거시건전성 정책이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 Implications for Monetary Policy, Now and in the future

(통화정책의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의 함의) (13쪽)


저는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의 상호관계에 있어 중요한 3가지 원리를 말하려고 합니다. 


첫째, 규제당국자는 금융시스템 내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거시건전성 정책을 모든 노력을 다해 이행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통화정책이 본래 목적인 물가안정 · 완전고용 달성이 아니라 금융안정에 신경쓰게 될 가능성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First, it is critical for regulators to complete their efforts at implementing a macroprudential approach to enhance resilience within the financial system, which will minimize the likelihood that monetary policy will need to focus on financial stability issues rather than on price stability and full employment.)


둘째, 정책결정권자들은 금융시스템 내에서 생겨나는 리스크를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시건전성 정책의 한계도 현실적으로 인지해야 합니다. 규제 외의 영역으로 리스크가 퍼졌을 경우, 그리고 리스크 발생을 알지 못했을 경우 등의 상황에서 거시건전성 정책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통화정책을 통해 리스크를 제한하여 금융안정을 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Given such limitations, adjustments in monetary policy may, at times, be needed to curb risks to financial stability.)


마지막으로, 저는 현재 미국 내 금융안정 상황과 통화정책의 위치를 말할 것입니다. 최근 몇년간의 확장적 통화정책은 저금리 · 장기금리 하락 · 금융상태 개선 · 노동시장 개선 등에 기여했습니다. 그 결과, 가계의 재무구조는 개선되었고 전체경제 내 금융부문은 강해졌죠. 더욱이 거시건전성 정책에 힘입어 더욱 안전해진 금융부문과, 가계·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함께 발생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것들을 모두 고려한다면, 금융안정에 대한 우려를 다루기 위해, 통화정책이 본래의 목적-물가안정 · 완전고용 달성-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를 저는 느끼지 못합니다. 이말인즉슨, 금융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커졌을때 필요한 것은 더욱 더 강건한 거시건전성 접근법 이라는 뜻입니다.

(I do not presently see a need for monetary policy to deviate from a primary focus on attaining price stability and maximum employment, in order to address financial stability concerns.)


→ Janet Yellen은 "금융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은 통화정책이 아니라 거시건전성 정책" 이라는 주장을 재차 반복한다. "거시건전성 정책이 한계를 맞았을 때에만, 금융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이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주 : 이러한 주장은 前 Fed 의장 Ben Bernanke도 한 적이 있다.[각주:26] 그는 "2000년대 초반의 Fed의 통화정책이 금융불안정을 초래했다," 라는 비판에 대해, "통화정책은 거시경제 전체의 안정(macroeconomic stability)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고, 금융안정은 거시건전성 정책 · 금융규제와 감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번글을 통해 현재 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 "Fed의 통화정책은 문제없다. 금융안정은 통화정책이 아니라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달성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Ben Bernanke · Janet Yellen · Paul Krugman
  • "Fed의 통화정책은 금융시장 리스크를 키우고, 신흥국에 부정적인 파급영향을 끼친다." 라고 말하는 Claudio Borio · 신현송 · Raghuram Rajan.


어느쪽의 주장이 옳을까? 그 답은 앞으로 몇년 뒤 세계경제에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에 달려있다. 



  1.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①] 금융발전이 전세계적으로 리스크를 키우지 않았을까?'. 2014.12.27 [본문으로]
  2.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이 미국 부동산거품을 만들었는가?'. 2014.03.27 [본문으로]
  3.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2014.07.11 [본문으로]
  4.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②] 2008년 이후의 통화정책, 리스크추구 행위를 유발하다'. 2015.01.06 [본문으로]
  5.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③] Fed의 초저금리 정책은 자산시장 거품(boom)을 만들고 있을까?'. 2015.01.09 [본문으로]
  6. Not only are balance sheet recessions followed by slower recoveries than standard business cycle recessions (Box III.A), but they also involve significant output losses. Such losses have in many cases been found to be permanent – that is, output rarely returns to its pre-crisis path. Graph III.B provides an illustration. It shows two examples of how GDP may evolve after a recession associated with a financial crisis, or balance sheet recession. In both examples, point A indicates the peak reached just before the start of the crisis; point B marks the trough; and point C shows the point at which the path of GDP regains its pre-crisis trend growth rate.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is that, in example 1, output gradually returns to the path or trend that it followed before the crisis (at point D). This means that output grows at higher rates than the pre-crisis average for several years (between points C and D). In example 2, output recovers, but not sufficiently to return to the pre-crisis trend path. Instead, GDP settles on a new trend (the dashed red line) in which the growth rate of output is the same as before the crisis, but the level is permanently lower than the pre-crisis trend (the continuous red line). The distance between the two trends (indicated by δ) is a measure of the permanent output loss. In this case, if one were to estimate potential output by extrapolating pre-crisis trends, then the output gap would be overestimated by the amount δ. (48) [본문으로]
  7. Unlike permanent losses in the level of output, there is scant evidence that a financial crisis directly causes a permanent reduction in the trend growth rate. There is, however, some evidence of indirect effects which may work through at least two channels. The first is through the adverse effects of high public debt. Public debt increases substantially after a financial crisis – by around 85% in nominal terms on average according to Reinhardt and Rogoff (2009). High public debt can be a drag on long-term average GDP growth for at least three reasons. First, as debt rises, so do interest payments. And higher debt service means higher distortionary taxes and lower productive government expenditure. Second, as debt rises, so at some point do sovereign risk premia. Economics and politics both put limits on how high tax rates can go. Thus, when rates beyond this maximum are required for debt sustainability, a country will be forced to default, either explicitly or through inflation. The probability of hitting such limits increases with the level of debt. And with higher sovereign risk premia come higher borrowing costs, lower private investment and lower long-term growth. Third, as debt rises, authorities lose the flexibility to employ countercyclical policies. This results in higher volatility, greater uncertainty and, again, lower growth. Cecchetti et al (2011) as well as a number of studies which look at advanced economies in the post-World War II period find a negative effect of public debt levels on trend growth after controlling for the typical determinants of economic growth. (48-49) [본문으로]
  8. The second channel is an increase in resource misallocation. Market forces should normally induce less efficient firms to restructure their operations or quit the market, making more resources available to the most efficient firms. But the functioning of market forces is restricted, to an extent that varies from country to country, by labour and product market regulations, bankruptcy laws, the tax code and public subsidies as well as by inefficient credit allocation. As a result, an excessive number of less efficient firms may remain in the market, leading to lower aggregate productivity growth (and hence lower trend GDP growth) than would be possible otherwise. A financial boom generally worsens resource misallocation (as noted in Box III.A). But it is the failure to tackle the malfunctioning of the banking sector as well as to remove barriers to resource reallocation that could make the problem chronic. In the aftermath of a financial crisis, managers in troubled banks have an incentive to continue lending to troubled and usually less efficient firms (evergreening or debt forbearance). They may also cut credit to more efficient firms anticipating that they would in any case survive, yet depriving these firms of the resources needed to expand. Policymakers might tolerate these practices to avoid unpopular large bailouts and possibly large rises in unemployment from corporate restructuring. A few recent studies suggest that debt forbearance has been at play in the most recent post-crisis experience, at least in some countries. There is, in addition, considerable evidence of forbearance in Japan after the bursting of its bubble in the early 1990s. Capital and labour mobility diminished compared with the pre-crisis period. And strikingly, not only were inefficient firms kept afloat, but their market share also seems to have increased at the expense of that of more efficient firms. This shift is likely to have contributed to the decline in trend growth observed in Japan in the early 1990s. (49) [본문으로]
  9. I’ve been having a back-and-forth over monetary policy at the zero lower bound, some of it in public and some in private correspondence, which is basically a continuation of a conversation that reaches back many years. And it occurred to me that even many of the economists I’m talking to don’t know about an analytical approach that, it seems to me, lets you cut through most of the confusion here. It’s the basis of my old 1998 model, but I don’t think people are reading that piece even when I direct them to it. So let me lay out the core insight that changed my own mind about monetary policy in a liquidity trap (and is useful for fiscal policy too.). 'The Simple Analytics of Monetary Impotence (Wonkish)'. 2014.12.19 [본문으로]
  10. 'The Simple Analytics of Monetary Impotence (Wonkish)'. 2014.12.19 [본문으로]
  11. The implications of this thought experiment should be obvious. If an economy is truly in a liquidity trap, failure of broad monetary aggregates to expand is not a sign of insufficiently expansionary monetary policy: the central bank may simply be unable to achieve such an expansion because additional base is either added to bank reserves or held by the public in place of bank deposits. However, this inability to expand broad money does not mean that the essential problem lies in the banking system; it is to be expected even if the banks are in perfectly fine shape. The point is important and bears repeating: under liquidity trap conditions, the normal expectation is that an increase in high-powered money will have little effect on broad aggregates, and may even lead to a decline in bank deposits and a larger decline in bank credit. This seemingly perverse result is part of the looking-glass logic of the situation, irrespective of the problems of the banks, per se. (1998년 논문 - 158) I would highlight two conclusions in particular. First, one must be careful about making inferences from divergences between the growth of monetary base and of broad monetary aggregates. The failure of aggregates to grow need not indicate dereliction on the part of the central bank; in a liquidity trap economy the central bank in principle cannot move broad monetary aggregates. Likewise, the observation that although the central bank has slashed interest rates and pumped up monetary base, the broader money supply has not grown, does not necessarily imply that the fault lies in the banking system; it is just what one would expect in a liquidity trap economy. Second, whatever the specifics of the situation, a liquidity trap is always the product of a credibility problem: the public believes that current monetary expansion will not be sustained. Structural factors can explain why an economy needs expected inflation; they can never imply that credibly sustained monetary expansion is ineffective. (1998년 논문 - 166) [본문으로]
  12.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①] 금융발전이 전세계적으로 리스크를 키우지 않았을까?'. 2014.12.27 [본문으로]
  13. 'India Central Bank Gov. Rajan Criticizes Fed Officials'. WSJ. 2014.04.10 [본문으로]
  14. 'Hilsenrath’s Take: Raghu vs. the World, Act II'. WSJ. 2014.04.12 [본문으로]
  15. 'Grand Central: Raghu vs. the World, Act II'. WSJ. 2014.04.11 [본문으로]
  16. The key question is what happens when these policies are prolonged long beyond repairing markets – and there the benefits are much less clear. Let me list 4 concerns: 1. Is 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 the right tool once the immediate crisis is over? Does it distort behavior and activity so as to stand in the way of recovery? Is accommodative monetary policy the way to fix a crisis that was partly caused by excessively lax policy? 2. Do such policies buy time or does the belief that the central bank is taking responsibility prevent other, more appropriate, policies from being implemented? Put differently, when central bankers say, however reluctantly, that they are the only game in town, do they become the only game in town? 3. Will exit from unconventional policies be easy? 4. What are the spillovers from such policies to other countries? [본문으로]
  17. “An 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 was necessary to keep the U.S. economy growing and effective. In that respect, it’s in everyone’s interest to have the U.S. economy growing faster.” [본문으로]
  18. “There’s the perception the U.S. doesn’t pay attention to emerging economies. Nothing could be further from the truth,” he said. “We’ve always recognized that what happens elsewhere affects the U.S. so it feeds into the discussion.” [본문으로]
  19. 'Rebuttal for Rajan: Bernanke Defends U.S. Policy in Visit to Mumbai'. WSJ. 2014.04.15 [본문으로]
  20. 정운찬. 화폐와 금융시장. 688 [본문으로]
  21.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2013.09.14 [본문으로]
  22. A key reason is that, as in the case of capital flow management measures, macroprudential tools are vulnerable to regulatory arbitrage. The implication is that relying exclusively on macroprudential measures is not sufficient and monetary policy must generally play a complementary role. In contrast to macroprudential tools, the policy rate is an economy-wide determinant of the price of leverage in a given currency, so its impact is more pervasive and less easily evaded. (BIS 84th Annual Report - 95) [본문으로]
  23.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②] 2008년 이후의 통화정책, 리스크추구 행위를 유발하다'. 2015.01.06 [본문으로]
  24.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③] Fed의 초저금리 정책은 자산시장 거품(boom)을 만들고 있을까?'. 2015.01.09 [본문으로]
  25. SIFIs :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s)을 의미한다. 말그대로 '금융시스템에서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부실에 빠져도 함부로 파산처리 할 수 없었고, 이것을 아는 금융기관은 도덕적해이에 빠져 과도한 대출을 해주었다. [본문으로]
  26.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이 미국 부동산거품을 만들었는가?'. 2014.03.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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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을 탈출하자 - 아베노믹스의 목적디플레이션을 탈출하자 - 아베노믹스의 목적

Posted at 2014. 11. 20. 02:03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 일본중앙은행, 연간 통화공급량 약 800조원으로 확대


지난 2014년 10월 31일, 일본중앙은행의 갑작스런 통화공급확대 정책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날 일본중앙은행은 양적완화 정책 시행과 더불어 자산 매입규모를 확대를 통해, 약 600조원 수준이던 연간 통화공급량을 약 800조원 수준까지 늘릴 것[각주:1]이라고 발표했다.


일본은행은 이날까지 이틀간 열린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 연간 60조~70조엔의 본원통화(자금 공급량)를 80조엔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중장기 국채 매입 규모도 현재 연간 50조엔에서 80조엔으로 30조엔 늘리고 일본은행이 매입하는 채권 평균 만기는 현 7년에서 최장 10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日 '디플레 공포'에 양적완화 전격 확대…엔·달러 환율 111엔 돌파. <조선일보>. 2014.10.31


일본의 이러한 확장적 통화정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2년 11월 이후, 일본중앙은행은 자산매입을 통해 통화공급을 늘려왔다. 그 결과 일본중앙은행 대차대조표상 자산은 (확장적 통화정책을 비슷한 시기에 시행한) 미국 · 유럽 중앙은행에 비교해 봤을때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 출처 : 'Japan’s economy - Big bazookas'. The Economist. 2014.11.08 >


그럼에도 일본중앙은행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확장적 통화정책 시행을 발표한 것이다. 도대체 왜 일본중앙은행은 얼핏보면 무모해보이는 통화공급 확대정책을 계속 시도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지난 20년 동안 지속되어온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 디플레이션 파이터, 일본중앙은행 총재 구로다



  • 지난 20년간 일본의 인플레이션율 추이
  • 1990년 경제불황에 빠진 이래로 인플레이션율은 낮은 수준 혹은 음(-)의 값을 기록하며 디플레이션을 기록했다.
  • 그러나 2012년 무제한적인 통화공급을 내건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20년에 비해 비교적) 크게 상승했다.

1990년 경제불황에 빠진 일본은 지난 20년동안 디플레이션 상황에 놓여있었다[각주:2]. 낮은 인플레이션율이 아니라 실제로 물가상승률이 음(-)의 값을 기록하는 디플레이션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경제성장은 둔화되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높은 인플레이션율이 문제였을 때,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공급 축소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앙은행이 통화공급량을 늘리면 되지 않을가?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에 비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통화공급량 축소'와 더불어, '준칙에 따른 정책시행을 통해 물가안정목표를 꼭 지킬 것이라는 신뢰'를 중앙은행이 쌓으면 된다. 이와는 반대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화공급량을 증가시켜도 유동성함정[각주:3]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오랜기간 대중들 사이에 쌓여온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바뀌기 어렵다[각주:4].     


지난 20년간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경제는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건 아주 힘들구나. 경기침체 이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겠다.[각주:5]" 라는 교훈만 세계를 향해 전달했을 뿐이다.


그저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줄 알았던 2012년 11월, 일본중앙은행 총재 구로다 하루히코(Haruhiko Kuroda)는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칼을 빼들고 나섰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와 함께 당시 신임총리 아베 신조(Shinzo Abe)는 통화공급 확대 · 재정지출 확대 · 일본경제 구조개혁 이라는 '3개의 화살'(Three Arrows)이 담긴 아베노믹스(Abenomics)를 내놓는다. 3개의 화살 중에서 크게 강조된 것은 '무제한적 통화공급 확대' 였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그저그런 치료는 증상을 악화시키기만 한다."(A half-baked medical treatment will only worsen the symptoms.) 라고 말하며, 무제한적인 통화공급 확대를 공언한다. 총리 아베 신조 또한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겠다." 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하며 공격적인 정책시행을 공언했다.




※ 아베노믹스? 

   구조개혁과 과도한 정부부채 문제를 우선시해야 한다!



< 출처 : 'Japan Falls Into Recession'. WSJ. 2014.11.17 >


그런데 이처럼 대담하면서도 극단적으로 보이는 아베노믹스는 제대로 효과를 내고 있을까? 아베노믹스 시행 2년 뒤 그리고 일본중앙은행이 추가적인 확장정책을 발표한지 17일이 지난 뒤, 일본경제 GDP가 발표되자 전세계가 술렁거렸다. 일본 3분기 GDP가 전년도에 비해 -1.6%를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난 2분기에 이어 연속적으로 GDP가 음(-)의 값을 기록한 것이다.


GDP 수치가 발표되자 아베노믹스를 향한 비판이 다시금 쏟아져 나왔고, 일본의 추가적인 확장적 통화정책 발표 이후 제기됐던 비판들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베노믹스를 향한 비판은 크게 2가지이다[각주:6]. 첫번째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한 단기적인 수요확대 보다는 고령화 · 산업구조 개편 등 구조적인 문제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GDP의 2배가 넘는 정부부채 문제를 개선하여 '재정의 지속가능성'(fiscal sustainability)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 출처 : 한국은행 국제경제부. '일본 소비세율 인상의 필요성 및 파급 영향'. 2013.08.29 >


여기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일본의 과도한 정부부채와 재정적자 문제이다. 일본은 고령화로 인한 사회지출 증가와 낮은 경제성장률로 인해 정부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2년 자료 기준 일본의 정부부채는 GDP 대비 250%에 달한다. 과도한 정부부채는 일본정부의 상환능력에 의심을 키워 채권금리를 높이고 부채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일본경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재정적자 감축 · 정부부채 축소 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아베 내각이 시행하려던 것이 '소비세 인상'(consumption tax hike) 이었다. 세금인상을 통해 정부재정을 안정화 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아베노믹스를 향한 이러한 비판들과 '소비세 인상' 정책을 보고 몇가지 의문점이 든다. 첫째는 "통화정책 확대를 통한 단기적 수요관리보다 구조개혁에 힘쓰라고?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왜 통화공급량을 늘리는 지 모르는 것인가?" 이고, 둘째는 "재정안정화를 위한 소비세 인상이라니. 그럴거면 아베노믹스를 왜 하는거지?" 이다.




※ 지난 20년간 지속되어온 디플레이션을 탈출하자 !!!


유동성함정을 다루었던 글 '세계경제는 유동성함정에 빠졌는가? - 커지는 디플레이션 우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유동성함정, 즉 확장적 통화정책이 무력화되고, 낮은 금리수준에도 경제주체들이 소비 · 투자를 증가시키지 않는 주된 이유는 바로 '중앙은행의 신뢰성(credibility)'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능력없는 존재라 경제주체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문제? 아니다. 정반대로 '물가안정을 추구하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넘쳐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경제주체들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확고하기 때문에, 현재 통화량을 늘리는 확장적 통화정책은 일시적(transitory) 일 것이고, 높은 인플레이션율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경제주체들은 '미래의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비해 현재의 소비 · 투자를 늘리는 행위를 하지 않게'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It's Baaack: Japan's Slump and the Return of the Liquidity Trap>(1998)를 통해, "유동성함정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것이라는 믿음'을 경제주체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즉,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무책임 해질 것을 신뢰성 있게 공언하는 것'(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 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한다[각주:7].


자, 이제 2012년 11월부터 시작된 아베노믹스의 목적과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겠다." 라는 극단적인 발언이 나온 이유를 알 수 있다. 바로, 디플레이션과 유동성함정에서 벗어나고자, 공격적인 통화정책과 함께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무책임 해질 것을 신뢰성 있게 공언하는 것(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을 실행한 것이다. 


애초에 아베노믹스, 즉 확장적 통화정책의 목적이 디플레이션과 유동성함정 탈출이었기 때문에 "단기적 수요관리 정책보다 구조개혁이 필요"라는 주장은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 지난 20년간 지속되어온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기대 인플레이션을 증가시켜, 현재의 소비 · 투자를 늘리는 것이 아베노믹스의 주요 목표이다[각주:8].




※ 재정건전화를 위해 소비세를 인상한다고? 

   일본의 과도한 정부부채가 문제일까?


현재 일본경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재정적자 감축 · 정부부채 축소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도한 정부부채로 인해 일본정부의 신뢰가 사라지고 그 결과 국채금리가 치솟을 가능성'을 염려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 어디서 많이 봤다. 현재 일본의 경우 뿐 아니라, 2008년 이후 미국 · 유럽의 경제위기 회복방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긴축 vs 성장' 논쟁이다.


( 본인은 블로그를 통해 '긴축 vs 성장' 논쟁의 주장을 여러차례 소개해왔다.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정부부채와 경제성장의 관계 - a Magic Threshold는 존재하는가' )


특히, 일본의 정부부채 논쟁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일본의 과도한 정부부채가 정말로 문제를 초래할까?" 라는 것이다. 과도한 재정적자 · 정부부채를 문제삼는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정부의 신뢰가 사라져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해 국채금리가 치솟고, 그 결과 부채부담이 증가해 국가파산에 이를 가능성. 다른 하나는 정부는 과도한 부채를 통화발행으로 해결(monetization)하려 하는데, 이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가능성 이다.


이에 대해 Paul Krugman은 "일본처럼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its own currency)를 보유한 국가는 신뢰상실로 인해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 그리고 재정적자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면 좋은 것 아니냐?" 라고 주장한다.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의 중요성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현재 유럽경제위기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에서 살펴봤듯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진 국가는 부채상환 요구가 밀려올 때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외국투자자들은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는 국가에 대한 신뢰를 거두게 되고(loss of confidence),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자본유출이 발생해 자국 통화가치 하락한다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의 가치가 급등하여 부채부담이 더욱 증가하고 만다. 이처럼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닌 국가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에서 살펴봤듯이,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진 국가는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자국통화를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뢰의 위기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또한 만약 자본유출이 발생하여 통화가치가 하락한다면, 부채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일이다. 


게다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베노믹스의 근본목적은 '지난 20년간 지속되어온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기대 인플레이션을 증가시켜, 현재의 소비 ·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과도한 재정적자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가능성을 염려하는게 타당할까?  


'세계경제는 유동성함정에 빠졌는가? - 커지는 디플레이션 우려'와 바로 앞 부분에서 논의했듯이, 유동성함정 상황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려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무책임 해질 것을 신뢰성 있게 공언하는 것'(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이 필요하다. '재정의 지속가능성'(fiscal sustainability)을 신경쓰면서 정부의 신뢰성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를 잃어버리려는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일본의 과도한 정부부채는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일본정부가 재정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소비세를 인상한다면 소비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안된 아베노믹스는 본래 목적을 상실한다.   




※ 걱정해야 하는 것은 

   '디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기세를 잃어버리는 것'


일본은 지난 20년간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느냐 못하느냐'이지,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아니다." 라는 것이 Paul Krugman의 주요 주장이다. 


일본중앙은행이 대규모 통화공급 정책 확대시행을 발표한 10월 말 이후, Paul Krugman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확장적 통화공급 정책의 필요성'과 '디플레이션 탈출의 중요성'을 강하게 설파했다. 그의 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요약해 소개하겠다.

(원문을 편견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돕기위해, 글씨 색상 변경을 통한 강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용이해를 돕기 위해 중간중간에 해설을 첨부했습니다.)



※ 일본에 대한 생각


아베노믹스? 소비세 인상을 강행하려는 결정은 아베노믹스의 기세에 큰 타격을 입혔다.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일본 경제는 약간씩 회복해왔다. 



그런데 정책의 기세를 잃는 것은 정말로 좋지 않다. (losing momentum is a really bad thing.) 왜냐하면 (정책성공에) 중요한 것은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없애버리고 대신 완만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지속가능한 기대(self-sustaining expectations of moderate inflation)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살펴보자. 나는 여전히 일본경제가 '소심함의 함정'(timidity trap)에 빠진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주 : 과감한 확장적 통화정책이 계속해서 시행되어야 한다는 의미)


소비세를 인상하려는 행동은 일본경제를 다수의 사람들이 이전부터 주장해오던 곳으로 끌고갔다[각주:9]. 단기의 수요진작 정책은 중기의 재정안정화 정책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주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실제로는 재앙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디플레이션 압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역효과를 초래한다. 그동안 일본에서 발생했던 것처럼. (...)


물론, 지속가능성 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초점을 흐리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일본은 정말로 정말로 지속가능성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it’s hard to argue against sustainability, but under current conditions it means taking your eye off the ball, and Japan really, really can’t afford to do that.)


Paul Krugman. 'Notes on Japan'. 2014.10.28 



※ 벼랑 끝에 선 일본


지금 현재, 일본은 디플레이션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민간부문을 향해 "물가는 앞으로 올라갈 것이고, (소비 ·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 위에 깔고 앉아 있는 건 어리석은 것이고, 부채는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주 : 그러니 돈을 빌려서 소비 · 투자를 하라는 뜻)" 라고 확신시키는 것이 절박하게 필요하다. (...)


소비세 인상에 찬성하는 측은 "일본이 소비세 인상을 하지 못한다면, 재정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것이고 이는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야." 라고 우려한다. 나는 왜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가?


나는 (일본의 과도한 정부부채가) 신뢰의 위기(crisis of confidence)를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지난해에 IMF에서 강연한 내용에 들어있다.(주 :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 참고 ) 


어떤 국가가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its own currency)를 빌렸거나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해 있지 않다면, 그리스 스타일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주 : 그리스 스타일 위기 =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 참고 )  


단기이자율은 일본중앙은행의 통제 아래 놓여있고, 장기이자율은 이러한 예상 단기이자율을 반영한다. 아 물론, (자본유출이 발생해) 엔화가치가 하락할 수도 있따. 그러나 이것은 일본에게는 좋은 일이다. (주 :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통화가치 하락이 발생하면 부채부담이 감소된다.)


경제학자 Adam Posen은 주가하락 가능성을 말하지만, 이자율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고, 엔화가치 하락 덕분에 일본기업들이 경쟁력을 획득한다면 그런 일이 발생할까?


일본의 과도한 정부부채가 문제를 일으킬 경로를 나에게 말해달라. 일본 정부가 화폐발행으로 부채상환을 대신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주 : 이것을 monetization 이라 하는데, 이 경우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 재정에 대한 신뢰상실(a loss in fiscal confidence)이 발생했을때, 이것이 어떻게해서 나쁘다는 것인지 나에게 말해달라.


나에게 있어, 일본이 매우매우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디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기세를 잃는 것이다. (Meanwhile, it seems to me that Japan should be very, very afraid of losing momentum in the fight against deflation.)


소비세 인상이 실질GDP 감소로 이어진다면, 지금까지의 싸움이 기세를 잃을 것이다. 일본중앙은행 총재가 앞으로 나와서 "우리를 믿어달라." 라고 말했을 때 이것을 믿을 수 있을까? (주 : 소비세 인상으로 인한 실질 GDP 감소가 마치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르는 아베노믹스 때문인 것처럼 오인될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


지금 현재 아베노믹스의 기세를 중단시키는 것은 디플레이션과의 싸움에 있어 치명적인 신뢰손상을 초래할 것이다. (stalling the current drive would cause a fatal loss of credibility on the deflation front.)   (...) 


"(아베노믹스가) 디플레이션을 없앨 거야" 라는 신뢰를 상실하는 것은 재정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각주:10]. (Right now, the risk of losing anti-deflation credibility looks much worse than the risk of losing fiscal credibility.) 그러니 제발 소비세 좀 올리지 마!


Paul Krugman,. 'Japan on the Brink'. 2014.11.04 



※ 거울을 통해서 일본을 봐라 (Japan Through the Looking Glass)


많은 사람들은 '아베노믹스'와 '소비세 인상' 사이의 선택을 '경제회복이냐 재정 건전성이냐' 사이의 딜레마로 표현하는데 이는 잘못됐다. (주 : Paul Krguman은 아베노믹스 성공이 일본정부의 재정 건전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고있다.)


첫째로, 디플레이션과 이로 인해 인위적으로 높게 설정된 실질이자율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일본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획득하기란 쉽지 않다. (주 : 실질이자율은 명목이자율 - 인플레이션율의 관계식을 가지고 있다. 즉, 인플레이션율이 낮으면 실질이자율은 증가한다.)  아베노믹스의 성공은 재정 측면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둘째로, 대다수는 소비세 인상 연기가 일본 정부부채에 미미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주 :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더라도 일본 정부부채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의미) 그런데 왜 소비세 인상 연기를 우려하는가? 추측컨대, 일본정부가 과도한 부채로 인해 신뢰를 상실할까봐 그러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정부가 신뢰를 상실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게다가 일본정부가 신뢰를 상실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일본정부가 바라던 것이다. (But even if it were true, this is credibility Japan wants to lose.)


투자자들이 "일본은 부채를 갚을만큼의 세금인상을 절대 하지 못할거야." 라고 결론 내린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일본정부의 디폴트선언? 그럴 일 없다. 일본은 대다수 부채가 자국통화로 표기(denominated in its own currency) 되어 있기 때문에 디폴트 선언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부채를 상환할 엔화를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은 미래 인플레이션 기대를 높일 것이다. 

(주 : 그 다음 문장에서, '일본의 과도한 부채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다.' 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라는... Krugman 특유의 비꼼이 나오지만.... 의미전달을 못하겠네요;;;)


오래전부터 나는 일본에게 필요한 것은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무책임 해질 것을 신뢰성 있게 공언하는 것(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 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정부부채를 화폐발행으로 갚는 것은 이것이 일어나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유동성함정 상황은 당신을 거울 앞에 서게 만든다. (주 : 그동안 통용되던 논리를 거꾸로 생각하라는 의미)

선한 행동이 나쁘고, 검약이 어리석은 짓이다. 중앙은행 독립성은 나쁘다.(주 : 중앙은행 본래목적인 물가안정에 신경쓰지 말고 무제한적 화폐공급을 하라는 의미) 화폐발행으로 부채를 갚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환영할 일이다.

(the liquidity trap puts you on the other side of the looking glass; virtue is vice, prudence is folly, central bank independence is a bad thing and the threat of monetized deficits is to be welcomed, not feared.)


Paul Krugman. 'Japan Through the Looking Glass'. 2014.11.16





(사족)


제 블로그를 통해 경제학자 Paul Krugman의 주장을 많이 소개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Paul Krugman의 주장이 진리 라서가 아니라, 현재 세계경제 상황설명에 있어 경제학적으로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Paul Krugman이 원체 키보드 워리어라, 소개하기 좋은 컨텐츠를 다수 생산한다는 점도....)


Paul Krugman의 주장은 전통적인 케인즈주의, 즉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확장적 정책이 필요하다." 라는 것에 논리적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따라서, "긴축보다는 확장정책", "인플레이션 걱정보다는 디플레이션 탈출이 우선" 등등의 주장이 전개되는 것이죠.


이 글을 통해 소개한 일본경제에 대한 Paul Krugman의 주장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아베노믹스의 효과 혹은 소비세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니다. 가령, 본인 경제학자 오바타 세키는 아베노믹스에 대해[각주:11] "그동안 일본 국민의 마음은 꽉 막혀 있었습니다. 모든 걱정을 단번에 날려 줄 가미카제(神風)라도 불어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지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꿈을 꾸고 싶다는 겁니다." 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소개하지 않은 수많은 경제학자들 또한 각자의 논리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주장이 옳은지는 제가 감히 판단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소개한 Paul Krugman의 주장 역시 "아 아베노믹스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라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족2)


사실 Paul Krugman은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확장적 통화정책의 중요성'의 측면에서 일본경제를 주로 다루어왔고, 정작 일본경제에 대해 깊이있는 연구를 진행해온 경제학자는 시카고대 Anil K Kashyap 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Anil K Kashyap의 일본경제에 관한 연구를 소개할 계획입니다.  




  1. 'Japan’s economy-Big bazookas'. The Economist. 2014.11.08 [본문으로]
  2. '디플레이션이 초래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http://joohyeon.com/199 참고 [본문으로]
  3. '세계경제는 유동성함정에 빠졌는가? - 커지는 디플레이션 우려. 2014.10.28 http://joohyeon.com/199 [본문으로]
  4. 이에 대해서는 다른글 '중앙은행의 신뢰'에서 자세히 다룰 계획이다. [본문으로]
  5. 이러한 '일본의 장기간 디플레이션'은 2001년 IT버블 붕괴 이후, 미국 Fed가 초저금리 정책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인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2000년대 초반 Fed의 초저금리 정책에 대해서는 '2000년대 미국 부동산시장 거품은 Fed의 저금리 정책 때문이다?'. 2014.11.05 참고 http://joohyeon.com/203 [본문으로]
  6. 물론, 일본중앙은행의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더욱 더 깊이있게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글을 통해 자세히 다룰 계획이다. [본문으로]
  7. 자세한 논리가 궁금하신 분은 '세계경제는 유동성함정에 빠졌는가? - 커지는 디플레이션 우려'. 2014.10.28 http://joohyeon.com/199 참고 [본문으로]
  8. 물론, 그렇다고해서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구조개혁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본문으로]
  9. .... 의역입니다.. 원문은 "The whole business with the consumption tax drives home a point a number of people have made." 입니다. [본문으로]
  10. 번역이 쉽지 않네요;;;; 의미이해를 위해 원문을 읽어보세요. 쿨럭 [본문으로]
  11. 아베는 列島가 그리워하던 가미카제… "단언컨대, 아베노믹스는 실패합니다". 조선일보. 2013.08.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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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는 유동성함정에 빠졌는가? - 커지는 디플레이션 우려세계경제는 유동성함정에 빠졌는가? - 커지는 디플레이션 우려

Posted at 2014. 10. 28. 20:03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 미국 재무부 장기채권 금리 하락 & 기대인플레이션 하락


  

지난 10월 16일(목), 미국 재무부 장기채권 금리가 2% 밑으로 급락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그 날 채권시장 마감에 이르자 2% 대를 회복했지만, 올해 들어 미국 재무부 10년 만기 채권 금리는 계속해서 하락추세에 있었다.  


 < 출처 : Neil Irwin. 'The Depressing Signals the Markets Are Sending About the Global Economy'. <NYT-Upshot>. 2014.10.15 >


장기채권 금리가 하락한다는 것은 장기채권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이니 좋은 일 아닐까? 중요한 것은 '왜 미국 재무부 장기채권 금리가 하락'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살펴봐야 하는 건, '시장참가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expected inflation) 변화' 이다.     


향후 인플레이션율이 낮다고 예상될 경우 채권의 실질수익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시장참가자들은 채권수요를 늘린다. 그렇게되면 채권가격은 상승하고 채권금리는 하락하게 된다. 쉽게 말해, '장기채권 금리가 낮다'라는 것은 시장참가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낮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래 그림(Inflation Expectations Have Plummeted Since Summer)를 살펴보면, 올해 6월 이후 기대 인플레이션은 계속해서 하락중이다.


 < 출처 : Neil Irwin. 'The Depressing Signals the Markets Are Sending About the Global Economy'. <NYT-Upshot>. 2014.10.15 >


10월 16일(목), 미국 재무부 장기채권 금리의 갑작스런 하락에 대해 <NYT>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번 일에서 얻을 수 있는 사실은, 세계경제는 2008년 이후 여전히 침체에서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정책결정권자들은 경제회복과 디플레이션 방지, 상품가격 하락 방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던져왔습니다. 그런데 시장참가자들은 새로운 경기침체(a new slide into recession)를 정책결정권자들이 막을 수 있는지 믿지 못하는 상태이죠[각주:1].


시장참가자들은 그동안 전례가 없던 '전세계적 디플레이션 압력'(global deflationary forces)을 중앙은행과 정책결정권자들이 다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진국 국민들은 '낮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인플레이션율'(global growth and inflation both stay below)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 수도 있습니다. 


Neil Irwin. 'The Depressing Signals the Markets Are Sending About the Global Economy'. <NYT-Upshot>. 2014.10.15 




※ 전세계적 디플레이션 압력


이 기사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전세계적 디플레이션 압력'(global deflationary forces) 가능성이다. 디플레이션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 Fed는 기준금리를 0.25%까지 내리면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5년째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더해 3번의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어디 미국 뿐이랴? 유럽중앙은행(ECB) 또한 낮은 금리를 몇년째 유지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푸는 정책'을 시행하는 가운데,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로 통계를 살펴보면, 2008년 이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대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4년 10월 발표된 세계 각국의 인플레이션율은 디플레이션 우려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인플레이션율 : 미국 1.5%, 영국 1.2%, 중국 1.6%, 일본 1.1%, 유로존 0.3%. (인플레이션(π)이 죽었다...[각주:2])  




이렇게 낮은 인플레이션율(lowflation)은 몇 가지 문제를 초래한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2010년 블로그 포스트 <Why Is Deflation Bad?>[각주:3]를 통해, '디플레이션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① 디플레이션 기대가 초래하는 '디플레이션 함'(deflationary trap)


앞으로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기대한다면, 사람들은 소비를 뒤로 미루고 차입도 줄일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앞으로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가격이 높아지기 이전에 지금 당장 소비나 차입을 늘릴 것이다. 가격이 하락하면 현금을 가지고만 있어도 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입을 통한 투자를 하려는 사람들은 미래에 갚아야할 금액이 늘어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즉, 사람들이 디플레이션을 기대한다면 경제는 침체상태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가 침체상태에 있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은 지속될 것이다. '디플레이션 기대'가 초래하는 일종의 '디플레이션 함정'(deflationary trap) 이 만들어진 것이다.


②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채무자 부담 증가 -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부채의 실질부담이 높아지기 때문에 채무자 부담은 증가한다. 그럼 반대로 채권자의 가치는 커져서, 경제 전체적으로 제로섬 아닐까? 아니다. 경제학자 Irving Fisher(1867-1947)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부채부담이 증가하면 채무자들은 그들의 소비를 줄인다. 그러나 채권자들은 (채무자들이 줄인 소비의 양만큼) 소비를 늘리지 않는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은 채무자의 부채부담을 키우면서 경제전체의 소비를 줄인다. 그리고 경제는 침체에 빠져들고, 그 결과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부채부담을 더더욱 키우게 된다. 악순환이 만들어진 것이다. Irving Fisher가 지적한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현상이다.


③ 명목임금의 하방경직성(downward nominal wage rigidity)


만약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어 디플레이션 상태라면, 낮아진 물가에 맞추어 명목임금도 하락해야 한다.  그렇지만 명목임금을 줄이기란 상당히 어렵다. 바로 '명목임금의 하방경직성'(downward nominal wage rigidity) 이다. 그 결과, 전체경제는 명목임금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대량실업'(mass unemployment)을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임금을 조정하게 된다. 


Paul Krugman은 "이러한 문제들은 (인플레이션율이 음(-)의 값을 기록하는) 디플레이션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율이 양(+)이지만, 아주 낮은 수준인 '낮은 인플레이션율'(lowflation)에도 적용된다." 라고 말하며, 디플레이션과 낮은 인플레이션의 위험[각주:4]을 주장한다.




※ 초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율이 낮다?


디플레이션과 낮은 인플레이션이 이러한 문제점을 일으킨다면, 세계경제의 주요과제는 '디플레이션 방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 이라고 말한 경제학자 Milton Friedman의 발언을 떠올린다면, 디플레이션 방지책으로 생각나는건 중앙은행의 화폐공급 증가이다.


그런데 앞서 본인이 적었던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 Fed는 기준금리를 0.25%까지 내리면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5년째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더해 3번의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어디 미국 뿐이랴? 유럽중앙은행(ECB) 또한 낮은 금리를 몇년째 유지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푸는 정책'을 시행하는 가운데,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2008 금융위기 발발 이후,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계속해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유지해왔다. 그런데도 2014년 현재 세계경제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2008년 이후 지난 6년간 중앙은행이 초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율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건 Paul Krugman의 1998년 논문 <It's Baaack: Japan's Slump and the Return of the Liquidity Trap> 이다. Paul Krugman은 이 논문을 통해, 그동안 경제학계 내에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 개념을 다시 등장시켰다. 


(Krugman은 '유동성함정' 개념을 통해 '1990년대 일본의 경제불황'을 설명하는데 이와는 별개로) 본인은 이 논문에서 오늘날 세계경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동성함정' 개념을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논문전개 중 온전히 이해가 되지않는 부분은 스킵할 것입니다. 아마 저의 공부량이 더 쌓이고나면 이해가 될것 같네요. 그러니 원문을 직접 읽어보시는 걸 권합니다.) 




※ 유동성함정 (Liquidity Trap)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 이란 '목이자율이 0에 도달할 경우,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각주:5]'과 '중앙은행이 본원통화(Monetary Base) 공급을 늘려도 경제전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황[각주:6]'을 뜻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낮아진 금리' 경로를 통해 작동한다. 중앙은행이 공개시장매입을 통해 시장에 존재하는 채권을 매입하면, (중앙은행으로부터 촉발된) 채권수요 증가는 채권가격을 높이고 채권금리를 낮춘다. 기업 · 가계 등 경제주체들은 낮아진 채권금리를 이용해 차입을 늘리거나 소비를 증가시켜 경제내 총수요를 증가시킨다.


또한,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의 본원통화(Monetary Base) 공급' 경로를 통해 작동된다. 본원통화란 경제내 유통되는 현금성통화(Currency)와 은행의 지급준비금(Reserve)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공개시장매입을 통해 은행의 채권을 매입하면, 은행의 지급준비금은 증가한다. 은행은 필요지급준비금 이상의 금액을 고객들에게 대출해주고, 그 결과 경제전체 내 통화공급(Money Supply)과 신용(Credit)이 증대된다[각주:7].

   

그러나 '유동성함정'은 위에 언급한 전통적인 통화정책 경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뜻한다. 



① <명목이자율이 0에 도달할 경우,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계속해서 늘리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통화공급을 무한대로 증가시키면 금리(명목이자율)가 음(-)의 값을 기록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 명목이자율은 음(-)의 값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통화공급을 아무리 증가시켜도 기준금리는 0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0의 기준금리값이 일종의 하한선'(Zero Lower Bound) 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0에 가까운 아주 낮은 값이라면, 더 이상 하락할 곳이 없기 때문에 금리인하 경로를 통해 투자와 소비를 증가시키는 건 한계가 있다.


게다가 0에 근접한 수준으로 낮아진 금리는 화폐와 채권을 무차별하게 만든다. 원래 금리는 화폐보유의 기회비용이다. 예를 들어, 금리가 10%일때 화폐 100만원을 보유한다는 것과 채권 100만원을 보유하는 것을 비교해보자. 채권을 보유한다면 이자비용 10%를 얻을 수 있으나 화폐는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금리가 높을수록 화폐수요가 감소하고, 금리가 낮을수록 화폐수요가 증가하는 관계를 보인다. 


그런데 만약 금리가 0%에 근접한다면, 화폐와 채권은 완전대체재 관계가 되어버린다. 금리가 0%이기 때문에 채권을 보유해도 이자수익을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채권수요는 감소하여 채권가격 하락, 다르게 말해 채권금리 상승을 가져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차별해진 화폐와 채권 사이에서 사람들이 화폐를 더 많이 보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다. 금리가 0%에 근접해서 화폐와 채권이 무차별해 진다면, 채권을 더 많이 보유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 '0에 근접한 수준으로 낮아진 금리'는 경제주체들의 화폐수요를 무한대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중앙은행의 임무'를 잘 알기 때문에 발생한다. 모든 사람들은 중앙은행의 임무가 '물가안정'(price stability)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고, 또 그 임무를 지금껏 책임감을 가지고(responsible) 잘 수행해왔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도 있는 통화공급 증대를 중앙은행이 계속해서 수행할까?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위해 곧 기준금리를 올리고, 채권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회수할거야." 라고 생각할 것이다. 중앙은행이 가까운 미래에 기준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회수한다면, 채권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따라서 경제주체들은 "현재 0에 가까운 금리수준에서 채권을 매입한다면 향후 채권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볼 것이다." 라고 예측하고, 0의 금리수준에서 채권 대신 화폐보유를 무한대로 늘린다. 


이렇게 된다면 추가적인 통화공급이 발생하여도 채권수요가 증가하지 않게되어, '통화공급 → 증가한 통화로 채권 구매 → 채권 수요 증가 → 채권 금리 하락 → 낮아진 채권 금리로 차입증가 → 투자와 소비증가 → 생산량와 물가수준 상승 → 인플레이션 기대증가로 인한 현재 소비와 투자 증가 → 생산량과 물가수준 상승 → ...' 의 선순환 경로가 깨지게 된다'책임있는(responsible)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credibility)'가 경제를 유동성함정에 빠뜨린 것이다[각주:8].


< 출처 : Wikipedia, 'Liquidity Trap' - 명목이자율 수준이 아주 낮은 상황에서는 화폐수요가 무한대로 발생한다. 따라서, 화폐시장균형을 나타내는 LM 곡선이 특정이자율 수준에서 무한대의 탄력성을 가지게 되고, 통화공급을 증가시켜서 LM곡선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도 산출량(Y)은 변하지 않는다[각주:9]. >

   


② <중앙은행이 본원통화(Monetary Base) 공급을 늘려도 경제전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황>


- 글읽기의 편의를 위해 다시 가져온 문단


또한,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의 본원통화(Monetary Base) 공급' 경로를 통해 작동된다. 본원통화란 경제내 유통되는 현금성통화와 은행의 지급준비금(Reserve)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공개시장매입을 통해 은행의 채권을 매입하면, 은행의 지급준비금은 증가한다. 은행은 필요지급준비금 이상의 금액을 고객들에게 대출해주고, 그 결과 경제전체 내 통화공급(Money Supply)과 신용(Credit)이 증대된다


중앙은행은 현금성통화와 은행의 지급준비금으로 이루어진 '본원통화'(Monetary Base)를 통제하면서 경제 전체의 통화량(Money Supply)을 조절한다. 통화공급은 본원통화의 승수배(multiplier)로 커지기 때문에, 본원통화가 증가하면 그 증가량에 맞추어 통화공급량도 증가해야 한다[각주:10]



     




그런데 '본원통화(Monetary Base)와 통화공급(Money Supply) 관계'가 깨질수도 있을까? 쉽게 말해, 본원통화가 증가하여도 통화공급이 증가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까?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면, 본원통화와 통화공급 사이의 관계가 깨진 모습을 쉽게 알 수 있다. 2008년 이후 Fed는 초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를 통해 막대한 양의 채권을 매입하여 지급준비금을 증가시켜왔다. 자연스레 본원통화도 크게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통화공급량은 이와 비례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 파란선은 본원통화(Moneytary Base), 빨간선은 화폐 M2 양(Money Supply)을 나타낸다.
  • X축은 2007년 1월 1일부터 2014년 10월까지의 기간. Y축은 본원통화와 통화공급량의 % 변화.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고, 이것이 나타내는 바는 무엇일까? 


앞서 "금리가 0%에 근접한다면 화폐와 채권은 완전대체재 관계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금리가 0에 근접한 수준이라면, 경제주체들은 화폐보유를 무한대로 늘린다." 라는 논리와 유사하다. 개인들에게 '화폐와 채권'이 대체재 관계라면, 은행들에게는 '지급준비금과 대출'이 대체재 관계이다. 


만약 금리수준이 높다면, 은행들은 (초과)지급준비금을 보유하지 않고 대출에 나서는 것이 이익이다. 보유하고 있는 지급준비금은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지만[각주:11], 이것을 다른 이들에게 대출해준다면 대출이자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가 높아질수록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금리가 낮아질수록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  


만약 금리가 0에 가까워진다면, 은행들은 (초과)지급준비금을 보유하는 것과 대출에 나서는 것이 무차별하다[각주:12]. '물가안정' 목표에 충실한(responsible) 중앙은행이 앞으로 금리를 올릴지도 모르는데, 지금 현재 낮은 금리수준에서 대출을 해주기보다 (초과)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는 게 향후 이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가 0에 가까워진다면 (초과) 지급준비금과 현금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따라 통화승수(multiplier)는 감소하게 된다. 그 결과, 본원통화(Monetary Base)가 아무리 증가하여도 감소한 통화승수로 인해 통화공급(Money Supply)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각주:13].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무용화된 것이다.   


게다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물가수준에 미치는 영향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아무리 공개시장매입을 통해 본원통화를 증가시켜도, 통화공급량이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물가수준이 상승하지 않는다. 돈을 풀어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중앙은행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제수단을 잃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원통화 공급을 증가시켜도 통화공급량이 증가하지 않는 현상'이 단지 '유동성함정 상황이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이 충분하지 않았다거나, 은행의 대출중개 기능이 부실해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게 아니다[각주:14] [각주:15]. 다시 말하지만, '유동성함정 상황이기 때문에' 본원통화와 통화공급 사이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고, 유동성함정 하에서는 본원통화의 증가는 통화공급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각주:16].



③ <화폐보유 증가로 인한 화폐유통속도 감소>


앞서 나온 <명목이자율이 0에 도달할 경우,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 · <중앙은행이 본원통화(Monetary Base) 공급을 늘려도 경제전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사항은 '0에 가까운 금리상황에서 개인과 은행들이 화폐(지급준비금)보유를 늘리는 것' 이다. 





경제주체들이 소비 · 투자 · 대출 등을 하지 않고 화폐를 계속 보유하는 행위는 화폐유통속도(the velocity at which money circulates)를 감소시킨다. 그리고 화페유통속도(V) 감소는 화폐공급(M)이 물가수준(P)과 실질 총생산량(Y)에 미치는 영향을 상쇄시킨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해 본원통화를 급격히 증가시키더라도, 물가상승과 실질 총생산량 증가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각주:17]. 일종의 '유동성함정' 상황인 것이다.


아래 그래프를 살펴보면 2007년 이후 미국내 화폐유통속도가 계속해서 감소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St.Louis Fed[각주:18]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유지해온 기간동안, 화폐유통속도 감소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초래되었다." 라고 말한다.  






※ 유동성함정에 벗어나기 - 기대 인플레이션을 상승시켜라!


다시 정리하자면, 유동성함정 상황 하에서는 통화정책이 무력화 된다. 0에 근접한 금리수준에서 더 이상 명목금리를 낮출 수 없고, 채권매입증가를 통한 금리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중앙은행이 본원통화 매입을 증가시키더라도 통화공급량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뿐더러, 화폐유통속도 감소로 인해 통화공급량 증가가 물가수준과 실질 총생산량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다. 어떻게하면 유동성함정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유동성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유동성함정이 생기게 된 원인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글 읽기의 편의를 위해 위에 작성한 내용을 다시 가져와보자.  


① 명목이자율이 0에 도달할 경우,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


'0에 근접한 수준으로 낮아진 금리'는 경제주체들의 화폐수요를 무한대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중앙은행의 임무'를 잘 알기 때문에 발생한다. 모든 사람들은 중앙은행의 임무가 '물가안정'(price stability)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고, 또 그 임무를 지금껏 책임감을 가지고(responsible) 잘 수행해왔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도 있는 통화공급 증대를 중앙은행이 계속해서 수행할까?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위해 곧 기준금리를 올리고, 채권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회수할거야." 라고 생각할 것이다. 중앙은행이 가까운 미래에 기준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회수한다면, 채권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따라서 경제주체들은 "현재 0에 가까운 금리수준에서 채권을 매입한다면 향후 채권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볼 것이다." 라고 예측하고, 0의 금리수준에서 채권 대신 화폐보유를 무한대로 늘린다


② <중앙은행이 본원통화(Monetary Base) 공급을 늘려도 경제전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황>


만약 금리가 0에 가까워진다면, 은행들은 (초과)지급준비금을 보유하는 것과 대출에 나서는 것이 무차별하다. '물가안정' 목표에 충실한(responsible) 중앙은행이 앞으로 금리를 올릴지도 모르는데, 지금 현재 낮은 금리수준에서 대출을 해주기보다 (초과)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는 게 향후 이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가 0에 가까워진다면 (초과) 지급준비금과 현금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따라 통화승수(multiplier)는 감소하게 된다. 그 결과, 본원통화(Monetary Base)가 아무리 증가하여도 감소한 통화승수로 인해 통화공급(Money Supply)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무용화된 것이다.   


③  <화폐보유 증가로 인한 화폐유통속도 감소> 


경제주체들이 소비 · 투자 · 대출 등을 하지 않고 화폐를 계속 보유하는 행위는 화폐유통속도(the velocity at which money circulates)를 감소시킨다. 그리고 화페유통속도(V) 감소는 화폐공급(M)이 물가수준(P)과 실질 총생산량(Y)에 미치는 영향을 상쇄시킨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해 본원통화를 급격히 증가시키더라도, 물가상승과 실질 총생산량 증가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일종의 '유동성함정' 상황인 것이다.


유동성함정이 발생하게된 근본원인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credibility) 때문이다. 보통 중앙은행의 신뢰가 문제시 되는 경우는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시킬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할 때이다.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조정능력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유동성함정 하에서 중앙은행의 신뢰 문제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물가안정을 추구하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넘쳐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경제주체들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확고하기 때문에, 현재 통화량을 늘리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일시적(transitory)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물가안정을 위해 존재하는 중앙은행이 향후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은 현재 채권보유나 대출을 늘리기보다 화폐(지급준비금)보유를 증대시키는 행위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동성함정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것이라는 믿음'을 경제주체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Paul Krugman은 이를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무책임 해질 것을 신뢰성 있게 공언하는 것'(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 이라 표현했다. 


'중앙은행의 신뢰'(credibility) 문제에 대해서는 원문내용을 블로그 글에 직접 나타내겠습니다.


The central new conclusion of this analysis is that a liquidity trap fundamentally involves a credibility problem-but it is the inverse of the usual one, in which central bankers have difficulty convincing private agents of their commitment to price stability. 


In a liquidity trap, the problem is that the markets believe that the central bank will target price stability, given the chance, and hence that any current monetary expansion is merely transitory. The traditional view that monetary policy is ineffective in a liquidity trap, and that fiscal expansion is the only way out, must therefore be qualified: monetary policy will in fact be effective if the central bank can 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to seek a higher future price level. (139)


A liquidity trap involves a kind of credibility problem. A monetary expansion that the market expects to be sustained (that is, matched by equiproportional expansions in all future periods) will always work, whatever structural problems the economy might have: if monetary expansion does not work - if there is a liquidity trap - it must be because the public does not expect it to be sustained. (142)


only temporary monetary expansions are ineffectual. If a monetary expansion is perceived to be permanent, it will raise prices (in a full-employment model) or output (if current prices are predetermined). (161)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무책임해질 것을 신뢰성 있게 공언하는 것'(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을 통해 기대 인플레이션이 증가하게 된다면, 경제주체들은 화폐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소비를 늘릴 것이다. 그렇게되면 생산량과 물가수준이 증가하게 되고 경제는 불황과 유동성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다.





또한, 기대 인플레이션 증가는 실질금리를 음(-)의 값으로 만든다. 음(-)의 실질금리는 명목이자율을 0 밑으로 내릴 수 없는 문제(Zero Lower Bound)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줄 뿐더러, (앞서 언급한) 디플레이션 함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만든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세계경제에 필요한 것은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무책임해질 것을 신뢰성 있게 공언(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 함으로써, 기대 인플레이션을 증가시키고 실제 인플레이션을 유발케 하는 것이다.




※ 이번글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기사 완벽히 이해하기


10월 23일(목), <조선일보>에 좋은 경제 기획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의 [돈이 잠잔다] 기획기사는 '유동성함정에 빠진 세계경제와 커지는 디플레이션 압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1. [돈이 잠잔다] [1] 돈 틀어쥔 국내 기업… 정부서 싸게 빌려 利子놀이까지
  2. [돈이 잠잔다] [1] 美, 대공황 때보다 돈 안돌아… 유럽 '일본式 디플레(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공포
  3. [돈이 잠잔다] [1] "물가 年4%대로 상승시켜야 돈 제대로 돌 것"
  4. [돈이 잠잔다] [1] "경기 전망 어두워" 기업, 공장 안 짓고 가계는 지갑 닫고
  5. [돈이 잠잔다] [1] 예금 늘고 물가 안 오르고… '5가지 돈의 지표' 90년대 日과 닮아



연준이 양적완화를 통해 3조4000억달러를 찍어 뿌렸지만, 이 돈 중 상당액은 시중은행들의 지급준비금 형태로 연준 '창고'에 그냥 쌓여 있다. 현재 미 연준에 쌓여 있는 시중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은 2조700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매월 경신 중이다.


연준이 푼 돈이 제대로 돌지 못하면서 돈이 얼마나 잘 도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돈의 유통속도는 대공황기(1920~1930년대) 때보다도 낮아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미국 돈의 유통속도는 1.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2.0보다 25% 줄어든 수치다.


'돈의 정체(停滯)'는 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8월 마이너스 0.2%를 기록하는 등 지난 29개월 동안 연준의 목표치인 2.0%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 


유럽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달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유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유럽 경제에 돈이 돈다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15일 발표된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3% 상승하는 데 그쳤다. 



ECB 드라기 총재는 지난달 "만약 물가상승률이 계속 낮게 머문다면 다른 수단을 동원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미국 스타일의 양적완화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순한 돈 풀기가 제대로 된 돈의 유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돈이 잠 잔다] [1] 美, 대공황 때보다 돈 안돌아… 유럽 '일본式 디플레(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공포'. <조선일보>. 2014.10.23


미국 · 유로존 · 일본의 화폐유통속도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화폐를 계속해서 보유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무책임해질 것을 신뢰성 있게 공언(credibly promise to be irresponsible)' 함으로써, 기대 인플레이션을 증가시키고 실제 인플레이션을 유발케 해야한다. 경제학자 Barry Eichengreen <조선일보>와의 인터뷰[각주:19]를 통해, "주요 국가들이 최대 연 4%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유발해 돈이 돌게 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자료>


Paul Krugman. 1998. 'It's Baaack: Japan's Slump and the  Return of the Liquidity Trap'.


Paul Krugman, 'Macro policy in a liquidity trap (wonkish)'. 2008.11.15


St. Louis Fed. 'The Liquidity Trap: An Alternative Explanation for Today's Low Inflation'. 2014.04


St. Louis Fed. 'What Does Money Velocity Tell Us about Low Inflation in the U.S.?'. 2014.09.01


Paul Krugman. 'Why Is Deflation Bad?' 2010.08.02 


IMF. 'Euro Area — “Deflation” Versus “Lowflation”'. 2014.03.04


David Wessel. '5 Reasons to Worry About Deflation'. <WSJ>. 2014.10.16


Neil Irwin. 'The Depressing Signals the Markets Are Sending About the Global Economy'. <NYT>. 2014.10.15


[돈이 잠잔다] [1] 돈 틀어쥔 국내 기업… 정부서 싸게 빌려 利子놀이까지. <조선일보>. 2014.10.23


[돈이 잠잔다] [1] 美, 대공황 때보다 돈 안돌아… 유럽 '일본式 디플레(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공포<조선일보>. 2014.10.23


[돈이 잠잔다] [1] "물가 年4%대로 상승시켜야 돈 제대로 돌 것". <조선일보>. 2014.10.23


[돈이 잠잔다] [1] "경기 전망 어두워" 기업, 공장 안 짓고 가계는 지갑 닫<조선일보>. 2014.10.23


[돈이 잠잔다] [1] 예금 늘고 물가 안 오르고… '5가지 돈의 지표' 90년대 日과 닮아<조선일보>. 2014.10.23



  1. (The world economy still hasn’t recovered from the last recession. Moreover, investors lack confidence that policy makers have the tools they would need to avert a new slide into recession after years of throwing everything they have at it to try to encourage recovery and prevent deflation, or falling prices.) [본문으로]
  2. 경제학자 Justin Wolfers의 트윗. [본문으로]
  3. http://krugman.blogs.nytimes.com/2010/08/02/why-is-deflation-bad/ Paul Krugman. 'Why Is Deflation Bad?'. 2010.08.02 [본문으로]
  4. http://blog-imfdirect.imf.org/2014/03/04/euro-area-deflation-versus-lowflation/ IMF. 'Euro Area — “Deflation” Versus “Lowflation”'. 2014.03.04 [본문으로]
  5. A liquidity trap may be defined as a situation in which conventional monetary policies have become impotent, because nominal interest rates are at or near zero: (141- 논문 원본 쪽수 기준) [본문으로]
  6. injecting monetary base into the economy has no effect, because base and bonds are viewed by the private sector as perfect substitutes. (141) [본문으로]
  7. 이 개념은 경제학 비전공자들에게는 약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해가 어려우신 분들은 댓글 남겨주시면, 친절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글 본문에 '통화공급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면 논점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서 적지 않았습니다. [본문으로]
  8. A liquidity trap involves a kind of credibility problem. A monetary expansion that the market expects to be sustained (that is, matched by equiproportional expansions in all future periods) will always work, whatever structural problems the economy might have: if monetary expansion does not work - if there is a liquidity trap - it must be because the public does not expect it to be sustained. (142) [본문으로]
  9. 이것도 경제학 비전공자 분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IS-LM 모델이 나오지 않는 Stephen Williamson의 『Macroeconomics』 교과서로 공부하신 분들도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10. '통화승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신 분들은 내용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면 친절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본문으로]
  11. 실제로는 Fed가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수익'을 지급하고 있다. 이것은 논외로 하자;; [본문으로]
  12. if the nominal interest rate is driven to zero, consumers and banks will become indifferent between holding monetary base and bonds - and consumers will also be indifferent between both of these and bank deposits. (157) [본문으로]
  13. an increase in monetary base will lead to substitution in all three directions. This means that under liquidity trap conditions, such a base expansion will (1) expand a broad aggregate slightly, but only because the public holds more currency; (2) actually reduce deposits, because some of that currency substitutes for deposits;, and (3) reduce bank credit even more, because will add to reserves. (157) [본문으로]
  14. Milton Friedman과 Anna Schwartz는 1929년 대공황 당시 통화공급량이 증가하지 않은 모습을 두고, "대공황의 원인은 Fed가 통화량을 충분히 늘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Ben Bernanke와 Russell Cooper 등은 "1929년 대공황 당시 통화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은 것은, 은행부실로 인해 금융중개기능 역할이 손상되었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Paul Krugman은 이와 같은 주장을 반박하며, "단지 유동성함정 상황이기 때문에, 본원통화와 통화공급의 괴리(divergence)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으로]
  15. I would highlight two conclusions in particular. First, one must be careful about making inferences from divergences between the growth of monetary base and of broad monetary aggregates. The failure of aggregates to grow need not indicate dereliction on the part of the central bank; in a liquidity trap economy the central bank in principle cannot move broad monetary aggregates. Likewise, the observation that although the central bank has slashed interest rates and pumped up monetary base, the broader money supply has not grown, does not necessarily imply that the fault lies in the banking system; it is just what one would expect in a liquidity trap economy. Second, whatever the specifics of the situation, a liquidity trap is always the product of a credibility problem: the public believes that current monetary expansion will not be sustained. Structural factors can explain why an economy needs expected inflation; they can never imply that credibly sustained monetary expansion is ineffective. (166) [본문으로]
  16. The implications of this thought experiment should be obvious. If an economy is truly in a liquidity trap, failure of broad monetary aggregates to expand is not a sign of insufficiently expansionary monetary policy: the central bank may simply be unable to achieve such an expansion because additional base is either added to bank reserves or held by the public in place of bank deposits. However, this inability to expand broad money does not mean that the essential problem lies in the banking system; it is to be expected even if the banks are in perfectly fine shape. The point is important and bears repeating: under liquidity trap conditions, the normal expectation is that an increase in high-powered money will have little effect on broad aggregates, and may even lead to a decline in bank deposits and a larger decline in bank credit. This seemingly perverse result is part of the looking-glass logic of the situation, irrespective of the problems of the banks, per se. (158) [본문으로]
  17. If for some reason the money velocity declines rapidly during an expansionary monetary policy period, it can offset the increase in money supply and even lead to deflation instead of inflation. (...) So why did the monetary base increase not cause a proportionate increase in either the general price level or GDP? The answer lies in the private sector’s dramatic increase in their willingness to hoard money instead of spend it. Such an unprecedented increase in money demand has slowed down the velocity of money, as the figure below shows. [본문으로]
  18. St.Louis Fed. 'What Does Money Velocity Tell Us about Low Inflation in the U.S.?' 2014.09.01 http://www.stlouisfed.org/on-the-economy/what-does-money-velocity-tell-us-about-low-inflation-in-the-u-s/ [본문으로]
  19. [돈이 잠 잔다] [1] "물가 年4%대로 상승시켜야 돈 제대로 돌 것". 조선일보. 2014.10.2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23/2014102300456.html?related_al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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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하여[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하여

Posted at 2014. 8. 11. 18:59 | Posted in 경제학/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2014년 7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명량>은 12일만에 1,000만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돌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대상은 관심 못지 않게 비판도 있기 마련. 영화 <명량>에 대한 비판은 주로 '스크린 독점'에 맞춰져있다. "<명량>의 배급사인 CJ가 흥행을 위하여 자사극장 CJ CGV 스크린을 독점했다" 라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고 있고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량>을 봐야하는 상황이다. 대기업은 영화산업내 문화다양성을 해치고 있다." 라는 식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에 대한 이와 같은 지적은 타당한 것일까? 이번글에서는 이와 같은 비판이 지닌 문제점과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경제학적 시각을 이용하여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합의사항이 필요하다. 과연 대기업의 영화산업투자가 영화시장을 교란시켰을까?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발생할때마다 "대기업으로 인해 문화다양성이 훼손됐다" 라는 손쉬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명량>의 경우에도 "제작-배급-상영을 담당하는 CJ로 인해 다른 영화들이 설 자리가 없다." 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애시당초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투자하기 이전, 그리고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이전에 문화다양성 이란건 존재하지 않았다. 한 극장에서 하나의 영화만 상영하던 시절, 게다가 극장 자체도 적었던 시절에 문화다양성 이란 게 있었을까? 아예 영화산업 · 영화시장 이란게 존재하지 않았다. 우선 이러한 점을 인지해야 뒤이은 논의를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시장 · 산업의 형성]     

자 이제, '하나의 영화가 멀티플렉스 내 스크린을 독점하는 행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살펴자.



※ 이윤추구행위를 하는 기업의 동태적 의사결정


Q : 상영관을 <명량>이 독점하면서 억지로 <명량>을 봐야한다. <명량>의 1,000만 관객수 돌파는 스크린 독점 때문이다.


- 보기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다.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인 원리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현재 <명량>의 좌석점유율은 60%~80%를 기록중이다. 이러한 수치는 평소에 영화관에 자주 오지 않던 사람들까지 영화관에 불러모을때 달성가능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명량>의 흥행을 스크린 독점으로 인해 관객의 선택권이 제약된 상황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물론, 작품성 떨어지는 영화가 순전히 스크린을 독점하는 배급사의 힘으로 일정수준 이상의 관객수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 <명량>의 관객수를 단순히 스크린 독점 덕분이라고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소비자가 선택한 것] 



Q : 보기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라니, 이런 무책임한 발언이 어디있나


이 말이 함축하는 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상품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라는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시장 안에서 기업은 이윤획득을 위하여 소비자에게 팔릴만한 상품을 내놓는 노력을 한다. 만일 소비자가 그 상품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기업은 알아서 그 상품을 퇴출시킨다.


마찬가지로 많은 관객이 <명량> 관람을 선택하니까 영화관에서 스크린수를 늘리는 것이다. 관객에게 선택받지 못한 영화는 자동적으로 스크린수가 줄어들게 되어 있다가령, 영화 <군도>의 경우 관객이 늘지 않자 개봉 일주일만에 스크린수가 급속히 축소되었다. [기업의 이윤추구와 시장퇴출] 



Q :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영화는 자동적으로 상영관수가 줄어든다' 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 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상품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일까? 로운 경쟁시장에서 기은 '이윤획득'을 위해 '장기적'이고 '동태적(dynamic)'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아주 중요한 원리이기 때문에 기업행위를 고려할때 이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아무리 배급사에서 영화를 밀어준다 하더라도, 많은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을 것 같고 돈을 벌지 못할 것 같으면 극장은 영화를 걸지 않을 것이다반대로 말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의 영화-가령 <26년>, <변호인>-라 하더라도, 많은 관객이 찾아오고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으면 극장측은 스크린을 확대해서 개봉한다. [자유로운 경쟁시장에서의 차별철폐] [기업의 이윤추구와 동태적 의사결정]


Q : '제작-배급-상영'의 독점체계가 강화된다면 소비자들은 그저그런 영화만 보게 되지 않을까?

-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아무리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상품만 시장에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약되어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유로운 경쟁시장에서 기업은 '장기적'이고 '동태적(dynamic)'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계속해서 그저그런 영화만 상영된다면 영화산업 관객수는 줄어들 것이고, 그렇다면 CJ 등의 영화산업 내 기업들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쪽으로 행위를 바꿔나갈 것이 분명하다. 또는 좋은 영화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고 인지한 신생 투자자와 감독이 영화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고? 돈을 벌어야 하니깐. [기업의 이윤추구와 동태적 의사결정 그리고 시장진입]


Q : '제작-배급-상영'의 독점체계에서 기업의 동태적인 행위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떡하냐?

- 예를 들어, 한 기업이 독점체계에 안주해서 계속해서 그저그런 영화만 내놓는다면? 그리고 소비자들은 그저그런 영화가 가장 좋은 것인줄 알고, 수준낮은 영화를 계속해서 받아들인다면? 그 결과, 기업의 동태적 의사결정이 발생하지 않게 되어 산업 전체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산업이 바로 언론산업이다. 한국 언론사의 홈페이지는 클릭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게다가 지금이 2014년임에도 불구하고 하이퍼링크 기능을 통한 관련기사 링크 대신 '~~면 참조' 라는 종이신문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언론산업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외부의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WSJ> <The Economist> 같은 수준높은 외국언론사들은 한국시장에 맞추어 수많은 기사를 재빨리 번역해서 내놓기 힘들다. (물론, <WSJ> 한국어판이 있긴 하지만 기사의 수 자체가 적다.) 따라서 한국 내 소비자들은 한국언론사를 선택할 수 밖에 없고, 외부와의 경쟁에서 보호받고 있는 한국언론사들은 발전을 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산업은 이와는 다르다. 언론사 기사는 하루에도 수백개씩 쏟아지고, 시간에 맞추어 재빨리 번역해서 내놓아야 하지만, 영화산업은 이와는 달리 시간을 두고 자막을 붙여 상영할 수 있다. 다시말해, '외부의 진입장벽'이 낮은 것이다. 따라서 미국 영화산업에서 좋은영화가 계속해서 수입해 들어오는한, 한국 영화기업들은 관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동태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외부 진입장벽과 시장경쟁]


Q : 넷플릭스 등의 온라인 스트리밍 산업의 영향은?

- 게다가 한국에 위치한 소비자는 세계각국에서 제작된 퀄리티 높은 영상 콘텐츠를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다(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서비스 하지 않지만) 대다수 한국 소비자들은 합법적인 혹은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미국영화, 미국드라마, 다른 외국드라마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그런 영화만 한국 극장에서 상영된다? 그럼 소비자들은 그냥 집에서 퀄리티 높은 영상콘텐츠를 관람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다. 이처럼 영상 콘텐츠에 대한 '외부의 진입장벽'이 낮은 상황에서 한국 영화산업 기업들이 독점에 안주하는 행위를 보일까? [대체재 존재와 시장경쟁]


Q : 헐리우드 영화, 미국 드라마가 퀄리티 높은 영상 콘텐츠냐! 독립영화는? 대작영화의 상영관 독점으로 인해 독립영화는 멀티플렉스에 걸리지도 못한다!

- 대기업의 영화산업 투자와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이전에도 독립영화는 대중극장에 많이 걸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독립/예술 영화를 많이 찾지를 않는다.

대중상업영화랑 독립/예술영화는 목표로 하는 시장 자체가 다르다CJ CGV, 롯데시네마 등이 대중상업영화 시장을 담당한다면 KT&G 상상마당, 이대 아트하우스모모, 씨네코드 선재 등이 독립/예술영화를 담당한다. 

그리고 독립/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지역적으로 소규모로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에 위치한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상영하더라도 이윤을 거두지 못한다. 따라서, 홍대, 이대, 광화문 등에 위치한 몇몇 극장에서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가 이들 지역에 모이는 것이 집적의 이익이다. [분리된 시장] [집적의 이익]



※ 규모의 경제와 시장크기 그리고 상품다양성

위의 논의에서 살펴봤다시피, 영화 <명량>의 스크린수는 소비자선택의 결과이다. 그런데 영화 <명량> 스크린 수를 비판하는 사람은 대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상영관 축소와 비교를 한다. "개봉 9일 밖에 안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상영시간이 조조 아니면 심야 뿐이다! 이게 말이 되느냐!"

<명량>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같은 날 개봉을 하였는데, 일단 개봉 당시 스크린 수부터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그런데 <명량>이 인기가 없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흥행하였더라면, 이윤을 추구하는 극장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크린 수를 늘리는 동태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까?

영화진흥위원회 좌석점유율 추이를 살펴보면, 영화 <명량>의 좌석점유율은 60% 이상을 줄곧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좌석점유율은 대개 40% 수준이다기본적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흥행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봉 당시부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상영관 수가 너무나도 적었다는 점과 (<명량>에 비해 낮다고 하더라도) 40% 라는 좌석점유율을 기록중이었는데 현재 상영관수가 너무나도 줄었다는 점을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명량>의 스크린 독점 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위에서 논의했다시피 이것을 단순히 "배급-상영 독점체계를 가진 CJ가 문제다. 영화 <명량> 배급을 담당한 CJ가 이익을 위하여 자사가 가지고 있는 CJ CGV의 스크린을 독점했다." 라고 비판하는건 몇가지 허점이 있다.

  1. <명량>의 좌석점유율이 높다. 즉, 소비자들이 <명량>을 선택했다.
  2. <명량>이 흥행하지 않았더라면, CJ는 당연히 <명량>의 스크린 수를 축소하고 다른 영화의 스크린 수를 늘렸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흥행하는 모든 영화가 상영관을 독점하지는 않는다. 영화 <변호인> 흥행 당시, 비록 상영관수가 많기는 하였지만 <명량>만큼 많은건 아니었다. "영화가 흥행한다 → 이윤추구를 위해 극장이 상영관수를 대폭 늘린다 → 상영관 독점이 발생한다" 라는 논리구조가 항상 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CJ의 배급-상영 독점체계가 문제인 것일까?

본인은 그것보다는 <명량>의 제작비에 관심이 간다. <명량>의 제작비는 180억원인데 한국영화시장에서 '제작비 180억'은 엄청난 금액이다. 그리고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한 손익분기점 관객수는 550만이나 된다. 다르게 말해, <명량>은 엄청난 '고정비용'이 투자된 상품이고, 관객수가 늘면 늘수록 평균비용이 떨어지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시장의 크기' 이다. 시장의 크기가 클수록 생산량이 증가하여 평균비용을 하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시장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고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 나온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원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 나오고 판매량이 분산된다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은 생산비용이 급증하게 된다. 즉, 시장의 크기가 제약되어 판매량이 분산되는 곳이라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은 심각한 적자를 보게 된다. 그 결과, 시장의 크기가 작은 곳에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상품에 대한 욕구'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 간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충돌을 완화시켜주는 것은 '국제무역' 이다. 각 나라와 산업들은 국제무역을 통해 시장크기를 넓힘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원활히 작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획득할 수 있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독점적 경쟁시장'과 '시장크기'에 관한 국제무역이론을 수립하고 지리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명량>은 국제무역을 통해 시장을 확대할 수 없다. 이순신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일본에 수출할 수 있나? 한국의 영웅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미국 사람이 볼까? 제작비 500억이 투입된 <설국열차>의 경우 세계각지에 수출함으로써 '한국 시장크기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명량>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투자비용 회수를 위해 한국영화시장 안에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스크린 수를 대폭 늘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한국 대작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물론, 그 영화가 흥행하지 않는다면 독과점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자연스럽게 상영관수가 줄어들겠지만...) 이것을 고려한다면 단순하게 배급사와 상영사의 독점을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의 원인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규모의 경제'와 '시장크기'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 영화 <명량>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학의 논점들


이번글에서는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하여 경제학의 시각으로 살펴보았다. 얼핏보면 그저 경제학 용어를 사용한 단순한 글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경제학의 논점들이 담겨져 있다. 


[시장 · 산업의 형성] ·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소비자가 선택한 것] ·  [기업의 이윤추구와 시장퇴출] · [자유로운 경쟁시장에서의 차별철폐] · [기업의 이윤추구와 동태적 의사결정] · [기업의 이윤추구와 동태적 의사결정 그리고 시장진입] ·  [외부 진입장벽과 시장경쟁] · [대체재 존재와 시장경쟁] · [분리된 시장] · [집적의 이익] · [규모의 경제와 시장크기 그리고 상품다양성. 이를 해결해주는 국제무역]


이것들 중에서 이 글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경제학 논점은 3가지이다.


  •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행위가 가져오는 동태적 최적화 (Dynamic Optimization)
  •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불러오는 차별의 감소와 소비자후생 증가
  • 시장크기가 제약된 곳에서 규모의 경제와 상품다양성 간의 충돌발생. 이를 해결해주는 국제무역

① 
만약 경제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따르지 않는다면 경제시스템 내 균형은 일시적(one-period)이고 정태적(stable)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혹은 편익을 추구하는 경제주체는 동태적으로 행위한다. 따라서 어떠한 경제현상을 바라볼때는 다기간 모형(multi-period model)과 동태적 최적화(dynamic optimization)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또한,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펼쳐지는 곳에서 경제주체의 1차 목표는 시장에서의 생존이다. 따라서 영화시장 내에서 기업들은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관객이 많이 들 것 같은 영화'를 상영하려고 한다. 여기서 정치적 성향 · 인종 · 성별 등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관객이 많이 들 것 같은'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위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화-<26년>, <변호인>-라도 극장은 상영관 수를 확대했다는 예시를 들었다. 

일반적인 상품시장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발생한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곳에서 기업이 생존을 하려면 정치적 성향 · 인종 · 성별 등을 차별하기보다 능력 위주로 직원을 선발해야 한다. 경제학자 Gary Becker는 "차별을 감소시키는건 ('선한 의지'가 아니라) 자유로운 경쟁이다." 라고 말했다.    

게다가 자유로운 시장경쟁은 차별을 감소시킬 뿐더러 소비자후생도 증대시킨다.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하여 시장경쟁이 성립하지 않는 곳에서는 기업의 동태적 행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도 있었을 소비자들의 후생이 감소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규모의 경제를 가진 산업과 상품 다양성을 바라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시장크기 제약으로 인해 충돌하는 현상은 국제무역이 일어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각 국가들은 국제무역을 통해 시장크기를 확대하였다. 그 결과 규모의 경제를 가진 산업이 원활히 활동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다음글들에서는 '동태적 최적화· '자유로운 경쟁의 이점들· '국제무역이론 - 1세대, 2세대, 3세대' 등에 대하여 자세하고 깊게 살펴볼 것이다. (올해가 다 가기전에 글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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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

Posted at 2013. 11. 30. 21:27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를 통해 제3세대 금융위기 모델을 다루었다. 제3세대 금융위기 모델은 자본유입의 갑작스런 중단(Sudden Stops)에 이은 급격한 자본유출(Disruptive Capital Outflows)이 금융위기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한다. 


이때, 고정환율제도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는 금융위기를 심화시킨다. 고정환율제도는 통화가치 하락을 노리는 투기적공격을 초래하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는 중앙은행이 자본유출에 대해 금리정책으로 대응할 수 없게 만들 뿐더러 최종대부자(a lender of last resort) 역할 수행을 제한시킨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제3세대 금융위기 모델. 그런데 제3세대 금융위기 모델이 현재의 유럽경제위기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2013년 11월 7일에 개최된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발표했다. Paul Krugman은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라는 제목의 발표자료에서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와 자유변동환율제를 택한 국가에서 그리스 경제위기 같은 정부의 지급불능이 발생할 수 있을까?"


"Are Greek-type crises likely or even possible for countries that, unlike Greece and other European debtors, retain their own currencies, borrow in those currencies, and let their exchange rates float?"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4 (pdf 파일 기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게 무슨 말일까? 




※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 


몇몇 경제학자들은 현재 유럽경제위기를 '재정위기'로 부르고 있다. 유로존 내 몇몇 국가들, 특히나 그리스의 과도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로 인해 유럽경제가 침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부채지급능력 신뢰부족에 대한 공포'(fear of triggering a Greek-style crisis of confidence in government solvency)를 없애기 위해서 국가부채를 축소하는 긴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 단기간의 긴축정책이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확장을 불러온다는 'Expansionary Austerity'의 논리이다[각주:1].     


그러나 Paul Krugman은 "현재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이고, 위기타개를 위해서는 긴축정책이 필요하다" 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각주:2]. Paul Krugman은 "현재 유럽경제위기는 국가부채위기(a sovereign debt crisis)가 아니라 (국제수지표상 자본계정의 갑작스런 증감이 초래하는) 국제수지위기(a balance of payments crisis) 이고,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갑작스런 신뢰상실(sudden loss of confidence)로 인해 발생했다. 이러한 신뢰의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겪었던 급작스런 자본유입의 중단(sudden stop)과 유사[각주:3]하다." 라고 말한다.


First, the crisis in the European periphery – which remains the sole locus of current debt crises – is arguably best viewed largely as a balance of payments crisis rather than a sovereign debt crisis. (...)


Second, whatever the source of sudden loss of confidence in the European periphery, this speculative

attack drove up private as well as public borrowing costs. (...)


These two observations, taken together, suggest that we can, albeit with some caution, apply the insights from the currency crisis literature to recent crises in Europe and the potential for similar crises elsewhere, by at least provisionally thinking of the confidence problem as involving the risk of an Asian-style sudden stop. (...) the mother of all sudden stops.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11-12 (pdf 파일 기준)


Paul Krugman의 주장처럼 현재 유럽은 1997년 동아시아[각주:4]와 상황이 유사하다. 1997년 당시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었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과다하게 지고 있었다. 2013년 유럽 또한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로 인해 고정환율제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유로존의 특성상, 유럽 개별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에 맞게 화폐를 발권할 수 없다.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이 가진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는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나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유로존에 속한 국가, 특히나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을 향한 자본유입이 갑작스레 중단된다면 자산가격 하락으로 인해 금융시스템 내 불안정성이 커지게된다. 거기다가 채권금리를 치솟고 부채상환에 대한 요구는 커지게 되는데,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진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지급불능의 상태에 빠지고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로 인해서 채권자들이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지급능력에 대해 신뢰를 거두었다(a loss of confidence)는 점이다.  




※ 통화체제(Currency Regimes)에 따른, 부채와 채권금리의 상관관계


Paul Krugman은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통계 1 :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관계. X축은 GDP 대비 부채비율, Y축은 10년 만기 채권금리>[각주:5]


<통계1>을 살펴보면 대개 GDP 대비 부채비율이 높을수록 채권금리도 높은 상관관계를 보임을 알 수 있다[각주:6]. 만약 이게 옳다면, "과도한 재정적자와 부채로 인해 유럽경제위기가 발생했다" 라는 주장이 옳은 것 아닐까? 그런데 밑에 있는 <통계2>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통계 2 : 통화체제에 따른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관계. X축은 GDP 대비 부채비율, Y축은 10년 만기 채권금리. (●, Noneuro)는 독립된 통화체제를 가진 국가, (◇, Euro)는 통화체제의 독립성을 상실한 유로존 소속 국가>[각주:7]


<통계2>는 유로존 소속 국가냐 아니냐, 즉 독립된 통화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를 분류했다. 그러자 어떤 통화체제(Currency Regimes)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상관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독립된 통화체제(●, Noneuro)를 가진 국가들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하더라도 채권금리가 상승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화체제의 독립성을 상실한 유로존 국가(◇, Euro)들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할수록 채권금리도 같이 상승한다. 통화체제(Currency Regime)가 큰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Suddenly the picture looks quite different. There is indeed a strong relationship between debt and borrowing costs – but only for countries on the euro, with little sign of any such relationship for advanced nations that have retained their own currencies.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6 (pdf 파일 기준)




※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느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통화체제가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a lender of last resort)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느냐 이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에서도 살펴봤듯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니고 있다면 자본유출에 대해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으로 대응할 수 없다. 자본유출을 막기위해 금리를 상승시키면 경제활동에 타격을 주고 이는 경제의 기초여건(Fundamental)에 대한 신뢰상실(a loss of confidence)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자본유출을 방치하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의 가치가 커져서 은행과 기업의 대차대조표를 손상시키고 이 또한 신뢰상실(a loss of confidence)로 이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나라의 중앙은행은 다른나라의 화폐를 찍어낼 수 없다. 금융시스템 마비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a lender of last resort) 임무수행 그 자체가 원천봉쇄된 것이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지급보증을 설 수 없다 라는 사실은 유동성위기 발생시 신뢰상실(a loss of confidence)을 채권자들 사이에서 불러오고 만다. 


이러한 최종대부자 역할의 중요성은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Mario Draghi의 2012년 선언[각주:8]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7월 26일, Mario Draghi 총재는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Within our mandate, the ECB is ready to do whatever it takes to preserve the euro. And believe me, it will be enough.)" 라고 선언하였다. 



<통계 3 : 스페인 · 이탈리아 채권의 독일채권 대비 금리격차(Spreads)>


Mario Draghi 총재의 "do whatever it takes" 발언이 있은 직후, 스페인 · 이탈리아의 채권금리는 <통계3>에서 보듯이 가파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Mario Draghi 총재의 발언에는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 라는 의미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First, evidence of the importance of the lender of last resort issue comes from the dramatic effect on spreads every time the ECB has signaled increased willingness to take on at least some of that role.


Figure 3 shows Italian and Spanish spreads against German 10-year bonds – useful indicators of the overall state of the euro crisis – since 2010. You can clearly see the two episodes of widespread speculation against peripheral nations, indeed near panic, in late 2011 and again in the summer of 2012. You can also see the dramatic reduction in spreads following ECB action. (...)


The second near-meltdown was contained when Mario Draghi declared that the ECB was willing to do “whatever it takes” to save the eurofollowed by an official declaration that the central bank would be willing, if necessary, to engage in Outright Monetary Transactions, i.e., direct purchases of sovereign debt.


The point here is that neither of these ECB interventions should have had a large impact if the

problem of peripheral European debtors was one of solvency pure and simple. The fact that they did

have so much impact is prima facie evidence that a substantial part of the interest premium in debtor

nations reflected fear of self-fulfilling liquidity crises.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8 (pdf 파일 기준)


<통계 4 : 덴마크 · 핀란드 채권의 독일채권 대비 금리격차>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 나설 수 있느냐의 중요성은 덴마크와 핀란드 사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덴마크는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아 독립적인 통화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핀란드는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경제규모가 작은 덴마크의 경우, 환율리스크를 반영하여 약간은 높은 채권금리를 유지(a small premium reflecting residual currency risk)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럽경제위기가 특히나 극심했던 2011년 말, 핀란드 채권금리는 상승하는 와중에 덴마크 채권금리는 하락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더군다나 덴마크 채권금리는 때때로 독일보다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유로존에 가입한 유럽국가들과 달리, 덴마크는 필요한 경우 독자적으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사실을 통해 "최종대부자의 부재는 채권자들 사이에서 유동성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확산" 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aul Krugman은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여 "국가들이 부채로 인한 신뢰의 위기(crises of confidence)에 직면할 가능성을 결정할 때, 통화체제(the currency regime)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고 주장한다.  


What might cause this divergence? A natural answer, again, is to suggest that times of stress were times when investors feared liquidity crises due to the absence of euro lenders of last resort, and that Denmark benefited even though it was pegged to the euro because, unlike euro nations, it retained a central bank able to print money if necessary.


To sum up, then, evidence on interest rates – both from cross-section comparisons and from behavior over time – strongly suggests that the currency regime matters a great deal in determining the likelihood that nations will face crises of confidence over their debt.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8-9 (pdf 파일 기준)




※ 유럽경제위기는 국제수지위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와 자유변동환율제를 택한 국가에서 그리스 경제위기 같은 정부의 지급불능이 발생할 수 있을까?"


"Are Greek-type crises likely or even possible for countries that, unlike Greece and other European debtors, retain their own currencies, borrow in those currencies, and let their exchange rates float?"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4 (pdf 파일 기준)


Paul Krugman은 "아니다" 라고 말한다. 발표자료의 제목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처럼 어떠한 통화체제(Currency Regimes)를 가지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Paul Krugman은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빌린(borrows in its own currency) 국가의 경우, 자본유입이 급작스레 중단되더라도 정부의 지급불능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 라고 재차 강조한다.  


The question we need to ask here is why, exactly, we should believe that a sudden stop leads to a banking crisis.


The argument seems to be that banks would take large losses on their holdings of government bonds. But why, exactly? A country that borrows in its own currency can’t be forced into default, and we’ve just seen that it can’t even be forced to raise interest rates. So there is no reason the domestic-currency value of the country’s bonds should plunge.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25 (pdf 파일 기준)

     

현재의 유럽경제위기가 '재정위기'가 아니라 '국제수지위기'(a balance of payment crisis) 라면 정책의 대응방향은 달라진다. 과도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축소하는 긴축정책이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이 최종대부자(a 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수행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즉, 유럽중앙은행(ECB)가 유로존 내에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채권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Paul Krugman이 누차 주장[각주:9]해왔던 '확장적 재정 · 통화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1. 유럽에서 시행된 긴축정책을 뒷받침한 대표적인 논문이 바로 Kenneth Rogoff, Carmen Reinhart의 'Growth In a Time of Debt' 이다. 그런데 2013년 4월 15일, 유럽긴축정책의 논거를 제공한 이 논문이 오류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계 경제학계가 술렁거렸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http://joohyeon.com/145 참고 [본문으로]
  2. 그동안 Paul Krugman은 "현재 유럽경제위기 타개를 위해서는 확장정책이 필요하다" 라고 누차 주장해왔다. 이에대해서는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http://joohyeon.com/115 참고 [본문으로]
  3. '유사하다' 라는 번역은 의역이다;; 실제 원문을 보시면 의미파악을 더 자세히 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이에 대해서는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http://joohyeon.com/170 ②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http://joohyeon.com/172 ③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http://joohyeon.com/173 ④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http://joohyeon.com/174 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5.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5-6 (pdf 파일 기준) [본문으로]
  6. <통계1>을 살펴보면, GDP 대비 부채비율이 200%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채권금리가 낮은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일본이다. Paul Krugman은 일본을 일종의 아웃라이어(an outlier)로 본다. [본문으로]
  7. Paul Krugman. 2013.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6-7 (pdf 파일 기준) [본문으로]
  8. Mario Draghi - "More Europe". http://joohyeon.com/85 2012.07.31. [본문으로]
  9.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http://joohyeon.com/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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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외환위기 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Posted at 2013. 11. 26. 15:35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1편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2편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2013.10.27

3편 -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2013.11.09

4편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2013.11.11


1997 외환위기에 대해 쓴 4편의 글을 통해, 당시 외환위기의 원인 · 발생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4편의 글은 주로 한국의 위기에 초점을 맞췄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뿐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등-이 외환위기를 겪게된 원인에 대해서 다룬다. 또한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이 경제학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 1997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자본계정의 위기' - 제3세대 모델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김대중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이규성의 주장이다. 이규성은 당시 아시아의 위기를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 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위기 당사국들은 자본자유화 확대 → 대규모 자본수지 흑자 → 환율의 고평가 속에 고성장 추구 →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과정을 거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과거 많은 나라들이 재정적자 확대 → 경상수지 적자 확대 → 자본수지 흑자 확대라는 경로를 걷다가 외환위기에 직면한 양상과는 현저히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시아의 위기는 경상수지의 중요성이 도외시된 채 진행된 자본자유화 과정에서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86-89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 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1997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위기 발생의 이론적모델[각주:1]은 두 가지였다. 바로,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문제가 있어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1세대 모델[각주:2]과 경제의 기초여건에 상관없이 경제주체들 사이의 자기실현적예언 Self-Fulfilling Effect 로 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2세대 모델[각주:3]이었다. 


1세대 모델은 1970-80년대 중남미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과도한 재정적자에 이은 높은 인플레이션율로 인해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이 손상된 상태였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를 부추겼다. 해당국가들 경제의 기초여건을 의심한 경제주체들은 통화가치 하락을 우려하여 자본을 급격히 회수하면서, 중남미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더더욱 하락했고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만다. 


2세대 모델은 1990년대 초반에 발생한 유럽 외환위기(EMS Crisis)를 설명하는 모델이다. 당시 유럽 몇몇 국가들은 유럽통화시스템(EMS, European Monetary System)[각주:4]을 만들어 유럽공동체 통화의 안정을 추구했다. 이런 와중에, 경제력이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통화가치 고평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경제사정 악화로 인해 기준금리를 내리는 확장적 통화정책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확장적 통화정책 시행가능성은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기대심리를 부추겼고, 투기세력들은 고평가된 유럽 각 통화들의 평가절하를 예상하고 투기적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에 상관없이, 통화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Effect 이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것이다.


그런데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1세대 · 2세대 모델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높았고 인플레이션 또한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한국 또한 199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8.8% · 8.9% · 7.2% 등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재정적자 또한 문제될 여지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고정환율제도 · 만기불일치 · 통화불일치'의 문제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발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자유화 Financial Liberalization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 1990년대 들어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자본유입이 급격히 증가 Surges of Capital Inflows 했다.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에서 살펴봤듯이, 한국 또한 금융자유화 시행 이후 막대한 양의 자본유입이 발생하면서 원화가치가 고평가되고 은행과 기업의 해외차입이 증가했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자유화 시행 이후에도 상당수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미국 달러화에 연계된 peg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한국 또한 환율변동폭이 상하 2.25%로 제한된 시장평균환율제도 crawling peg 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융자유화 이후 발생한 자본유입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손쉽게 해외차입을 늘릴 수 있었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해외차입금이 단기일 뿐더러 외국통화로 표기되었다는 점이다. 단기로 조달해온 자금을 장기로 운용하는 만기 불일치 Maturity Mismatch 와 자국통화 부채가 아닌 통화 불일치 Currency Mismatch 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자본유입이 갑자기 멈추고 Sudden Stops 자본흐름의 반전 Reversals of Capital Inflows 가 발생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급격한 자본유출 Disruptive Capital Outflows 이 일어나면서 통화가치는 하락하고 Currency Collapse, 외환보유고는 고갈되고 Reserve Depletion,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면서 Systemic Financial Crisis, 실물경제의 생산능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Output Losses.              


그렇다면 1997년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왜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왜 단기차입금을 들여왔으며, 왜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질 수 밖에 없었을까? 또한 자본유출이 발생하였을 때 그것을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1997 외환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한계-고정환율제도의 문제점, 만기 불일치 · 통화불일치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 동아시아 국가들의 태생적 한계 - ① 고정환율제도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보았듯이, 한국은 요소투입의 증가 increases in inputs 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국가가 금융자원을 통제하여 control over finance 특정산업에 자원을 몰아줌으로써 생산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뒤늦게 경제성장에 착수한 개발도상국들 또한 정책금융을 policy loans 통한 투입의 증가, 다르게 말해 투자 investment 를 통해 생산능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통화가 과도히 공급되어 만성적인 고인플레이션 high and variable inflation 이 발생하고 만다. 개발도상국들로서는 경제개발 단계에서 인플레이션 관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달성 그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관리에도 소홀히 하게 된다. 더군다나 중앙은행 등 통화기관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능력조차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손쉬운 해결책은 바로 고정환율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고정환율제도는 3가지 경로를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 


첫째로는 일종의 규율효과 discipline argument 이다. 인플레이션이 낮은 국가의 통화에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를 연동peg 한다면, 정부의 재정적자 · 민간의 임금과 가격결정이 유발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할 수 있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한 상황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쓴다면, 인하된 금리가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초래하여 고정환율제도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고정환율제도는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쓰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고정환율제도가 일종의 지켜야 할 규약 commitment 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The second major rationale for fixed rates is a belief that pegging to a low-inflation currency will help to restrain domestic inflation pressures, whether these originate in excessive government budget deficits or in the wage- and price-setting decisions of the private sector. This "discipline" argument comes in many forms, but the basic idea is simple: an announced policy of pegging the exchange rate may serve as a commitment technology allowing the government to resist and even forestall subsequent temptations to follow excessively expansionary macroeconomic policies.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4        

 

둘째로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하락이다. 고정환율제도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원래 인플레이션율이 낮았던) 기준국가 anchor country 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개발도상국에 이전됨으로써, 개발도상국 또한 낮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유지할 수 있다.


셋째로는 기준국가와의 통화정책 연동이다. 고정환율제도가 신뢰성 있게 유지되려면 기준국가와 개발도상국의 금리가 동등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개발도상국이 금리를 낮추기 위해 통화량을 증가시킨다면 (낮아진 금리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외환보유고는 감소한다. 이러한 과정은 국내통화공급의 연속적인 축소를 초래[각주:5]하고 금리와 통화공급량은 정상수준으로 돌아온다[각주:6].        


Fixing the value of an emerging-market's currency to that of a sounder currency, which is exactly what an exchange-rate peg involves, provides a nominal anchor for the economy that has several important benefits. 


First, the nominal anchor of an exchange-rate peg fixes the inflation rate for internationally traded goods, and thus directly contributes to keeping inflation under control. 


Second, if the exchange-rate peg is credible, it anchors inflation expectations in the emerging-market country to the inflation rate in the anchor country to whose currency it is pegged. The lower inflation expectations that then result bring the emerging-market country's inflation rate in line with that of the low-inflation, anchor country relatively quickly.


Another way to think of how the nominal anchor of an exchange- rate peg works to lower inflation expectations and actual inflation is to recognize that if there are no restrictions on capital movements, then a serious commitment to an exchange-rate peg means that the emerging-market country has in effect adopted the monetary policy of the anchor country. 


As long as the commitment to the peg is credible, the interest rate in the emerging-market country will be equal to that in the anchor country. Expansion of the money supply to obtain lower interest rates in the emerging-market country relative to that of the low-inflation country will only result in a capital outflow and loss of international reserves that will cause a subsequent contraction in the money supply, leaving both the money supply and interest rates at their original levels


Thus, another way of seeing why the nominal anchor of an exchange-rate peg lowers inflation expectations and thus keeps inflation under control in an emerging-market country is that the exchange-rate peg helps the emerging-market country inherit the credibility of the low-inflation, anchor country's monetary policy.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4


거기에 더하여, 고정환율제도는 개발도상국에게 또 다른 이점을 가져다준다. 바로 환율변동의 불확실성 제거이다. 고정환율제도로 인해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됨으로써 자본유입을 이끌게되고, 이는 생산적인 투자로 이어져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Another potential advantage of an exchange-rate peg is that by providing a more stable value of the currency, it might lower risk for foreign investors and thus encourage capital inflows which could stimulate growth.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5


(...)


The unpredictable volatility of a floating exchange rate, both from a short-term perspective and a long-term one, can inflict damage. Although the associated costs have not been quantified rigorously, many economists believe that exchange-rate uncertainty reduces international trade, discourages investment, and compounds the problems people face in insuring their human capital in incomplete asset markets. Furthermore, workers and firms hurt by protracted exchange-rate swings often demand import protection from their governments.


Much of the enthusiasm for monetary unification within the European Union (EU) stems from the belief that locked exchange rates maximize the gains from a unified market and that exchange-rate-induced shifts in competitiveness within the EU can undermine the political consensus for free intra-EU trade.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4        


고정환율제도가 가져다주는 이러한 이점들을 생각해봤을때, 상당수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었다.




※ 동아시아 국가들의 태생적 한계 - ②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단계에서 발생하는 만성적인 고인플레이션은 또다른 조건을 만들어낸다. 바로 개발도상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만기가 짧고 a debt structure of very short duration, 외국통화로 표기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각주:7] 된다는 점이다. 만성적인 고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가 심한 변동을 겪는 상황에서, 장기채권과 개발도상국 통화로 표기된 채권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아무도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발도상국은 만기가 짧고, (통화가치가 안정된) 외국통화로 표기된 채권을 발행할 수 밖에 없었다.  


In contrast to the industrialized countries, many emerging-market countries have experienced very high and variable inflation rates, with the result that debt contracts are of very short duration. (12) (...)


There are two major institutional differences in the financial markets of industrialized countries versus emerging-market countries that imply different propagation mechanisms for financial instability. As mentioned earlier, in industrialized countries where inflation typically has been low and not very variable, many debt contracts are of long duration. Furthermore, because these industrialized countries typically retain a strong currency, most debt contracts are denominated in the domestic currency. 


In contrast, many emerging-market countries have had high and variable inflation rates in the past and so, long-term debt contracts are too riskyThe result has been a debt structure of very short duration. Given poor inflation performance, these countries also have domestic currencies that undergo substantial fluctuations in value and are thus very risky. To avoid this risk, many debt contracts in these countries are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18)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12-18


경제학자 Barry Eichengreen은 이러한 현상을 "신흥국의 원죄 The Original Sin" 이라 칭했다.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에서도 보았듯이, 1993년-1998년 기간 사이에 개발도상국이 보유한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denominated by its own currency 의 비중은 2.03% 불과했다.  


1998년 이후에도 신흥국의 원죄는 계속된다. 1999년-2001년 사이 발행된 5.8조 달러 규모의 채권 중, 5.6조 달러가 미 달러·유로화·엔화·파운드·스위스 프랑화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미국·유럽·일본·영국·스위스는 4.5조 달러 규모의 부채만 짊어졌다. 즉, 나머지 1.1조 달러의 부채는 다른 국가들이 (자국통화가 아닌) 외환 형태로 보유하게 된 것이다.   


Of the nearly $5.8 trillion in outstanding securities placed in international markets in the period 1999-2001, $5.6 trillion was issued in 5 major currencies: the US dollar, the euro, the yen, the pound sterling and Swiss franc. To be sure, the residents of the countries issuing these currencies (in the case of Euroland, of the group of countries) constitute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world economy and hence form a significant part of global debt issuance. 


But while residents of these countries issued $4.5 trillion dollars of debt over this period, the remaining $1.1 trillion of debt denominated in their currencies was issued by residents of other countries and by international organizations. Since these other countries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issued a total of $1.3 trillion dollars of debt, it follows that they issued the vast majority of it in foreign currency. 


The measurement and consequences of this concentration of debt denomination in few currencies is the focus of this paper.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4


  • 출처 :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28
  • 1993년-1998년 사이,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ies이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보유한 비중은 전체부채 중 2.3%에 불과하다.
  • 반면, 같은 기간에 미국·일본·영국·스위스는 전체부채 중 52.6%를 자국의 통화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 유로화가 도입된 1999년 이후,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화 형태로 보유한 부채비율은 23.2%에서 56.8%로 증가하였다.


채권 발행국과 통화형태별 누적부채를 살펴보자.


  • 출처 :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29
  • 전세계 부채 중 미국이 부담하는 부채비율은 약 32%이지만, 미 달러 형태로 표기된 부채비율은 약 52%에 이른다.
  • 미국·유로존·일본은 전세계 부채 중 71%를 부담하지만, 미 달러·유로·엔화로 표기된 부채는 약 87%에 달한다.

Figure 1 plots the cumulative share of total debt instruments issued in the main currencies (the solid line) and the cumulative share of debt instruments issued by the largest issuers (the dotted line). The gap between the two lines is striking. While 87 percent of debt instruments are issued in the 3 main currencies (the US dollar, the euro and the yen), residents of these three countries issue only 71 percent of total debt instruments. The corresponding figures for the top five currencies, 97 and 83 percent, respectively, tell the same story.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6-7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 · 발생과정 


앞서 논의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하자면, 1990년대 금융자유화 정책 시행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만기가 짧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자본이 급격히 유입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1997년이 되자 자본흐름의 반전 Reversals of Capital Inflows 이 발생하면서 자본유입이 갑작스레 중단되고 Sudden Stops, 급격한 자본유출 Disruptive Capital Outflows 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하락압력을 받게 되고 이는 투기적공격 Speculative Attack 의 유인을 증가시켰다. 더군다나 동아시아 국가들이 차입했던 해외부채는 만기가 짧았기 때문에, 급작스런 자본유출은 유동성위기 Liquidity Crisis를 초래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도와 자국 통화가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 foreign exchange intervention 함으로써 자국 통화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락하는 자국 통화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국통화를 외환시장에 공급하고 자국통화를 사들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의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다른 방안으로는 금리를 올림 the policy rate 으로써 급격한 자본유출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금리인상 또한 문제를 초래한다. 금리인상은 투자와 소비를 저하시켜 경제를 불황에 빠뜨리고, 이를 통해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에 의심을 품은 외국투자자들은 자본유출을 가속화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하고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용인해야 할까?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수출이 증가하면 자본계정 Capital Account 의 손상을 경상계정 Current Account 으로 메꿀 수 있으니? 그러나 자국 통화가치 하락은 큰 문제를 야기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은행과 기업들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국 통화가치 하락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가치의 상승을 뜻했다. 다시 말해, 개발도상국 은행과 기업들의 채무부담이 증가한 것이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불황의 경제학』(2009) 을 통해,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발생과정을 쉽게 설명한다.     


외국으로부터의 차입이 둔화되자 중앙은행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엔화와 달러의 유입이 줄자 외환시장에서 바트화에 대한 수요도 줄어든 것이다. 반면 수입 대금 결제를 위한 외환 수요는 줄지 않았다. 바트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태국은행은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을때와 정반대의 조치를 취했다. 시장에 개입해 달러와 엔화를 주고 바트화를 사들여 자국의 통화를 지지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통화 가치를 낮추려는 것과 높이려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태국은행은 원하는 만큼 바트화를 공급할 수 있다. 그저 찍어내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달러는 찍을 수 없다. 따라서 바트화의 가치를 방어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외환보유고는 얼마 안 가 바닥을 드러냈다.


통화가치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바트화 유통량을 줄이고 이자율을 올림으로써 투자자들이 달러를 빌려 바트화에 재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칼이었다. 당시 투자 붐이 일단락되면서 태국의 경제 성장은 이미 둔화되고 있었고, 건설 경기 또한 좋지 못했다. 이것은 일자리 축소를 의미했고, 일자리 축소는 낮은 소득을, 낮은 소득은 경제 다른 부문에서의 해고를 의미했다. 완전한 의미의 경기후퇴는 아니었지만 태국 경제가 더 이상 과거 방식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은 확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율 상승은 투자를 막는 일일뿐더러 경제를 확실한 불황에 빠뜨리는 길이었다. 


대안은 정부의 통화 개입 포기였다. 바트화 매입을 중단하고 바트화 가치 하락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곤란한 일이었다. 평가절하가 정부 신인도에 흠집을 낼 것이라는 게 한 가지 이유였다. 또한 너무나 많은 은행과 금융회사, 기업들이 달러 채무를 갖고 있었다. 바트화 대비 달러의 가치가 오른다면 그들 다수가 파산할 것이 뻔했다.


진퇴양난의 답답한 상황이었다. 태국 정부는 바트화 하락을 용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외환보유고 손실을 막기 위해 혹독한 대내적 조치를 취할 생각도 없었다. 대신 관망하는 쪽을 택했다. 어떤 전환점이 생겨나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뻔한 결말로 흘러갔다. 통화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폴 크루그먼. 2009. 『불황의 경제학』. 112-113




※ 고정환율제도의 문제점 - 투기적공격에 취약


이러한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 · 발생과정을 경제학계에서는 경제학이론을 사용하여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중요한 것은 개발도상국 특성상 고정환율제도를 택할 수 밖에 없었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질 수 밖에 없었다 라는 점이다. 


개발도상국의 한계를 염두에 두고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고정환율제도가 초래하는 문제점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개발도상국들은 인플레이션 관리를 위해 고정환율제도를 도입한 상황이었다. 고정환율제도는 환율변동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자본유입을 증대시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일조를 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체계가 발달되지 못했던 개발도상국의 특성상[각주:8], 갑작스런 자본유입 증대는 과잉대출 excessive lending & lending boom 로 이어지고 대출의 상당수는 부실처리 substantial loan losses 된다. 그 결과 부실대출을 떠안게 된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크게 손상 a deterioration of bank balance sheets 되고 만다.   


Another potential danger from an exchange-rate peg is that by providing a more stable value of the currency, it might lower risk for foreign investors and thus encourage capital inflows.


Although these capital inflows might be channeled into productive investments and thus stimulate growth, they might promote excessive lending, manifested by a lending boom, because domestic financial intermediaries such as banks play a key role in intermediating these capital inflows.


Indeed, Folkerts-Landau, et. al (1995) found that emerging market countries in the Asian-Pacific region with the large net private capital inflows also experienced large increases in their banking sectors. Furthermore, if the bank supervisory process is weak, as it often 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so that the government safety net for banking institutions creates incentives for them to take on risk, the likelihood that a capital inflow will produce a lending boom is that much greater. 


With inadequate bank supervision, the likely outcome of a lending boom is substantial loan losses and a deterioration of bank balance sheets.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13-14


이러던 와중에, 자본유출이 발생하여 동아시아 통화가치에 대한 하락압력이 거세졌다. 그런데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이 금리를 인상하면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 높아진 금리로 인해 은행의 부채부담은 증가하게 되고,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더더욱 손상된다. 따라서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으로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한 경제주체들은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이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하지 못할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투기적공격은 더더욱 심해진다.   


the deterioration in bank balance sheets can promote a currency crisis because it becomes very difficult for the central bank to defend its currency against a speculative attack. Any rise in interest rates to keep the domestic currency from depreciating has the additional effect of weakening the banking system further because the rise in interest rates hurts banks’ balance sheets.


This negative effect of a rise in interest rates on banks’ balance sheets occurs because of their maturity mismatch and their exposure to increased credit risk when the economy deteriorates.


Thus, when a speculative attack on the currency occur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f the central bank raises interest rates sufficiently to defend the currency, the banking system may collapse. Once investors recognize that a country’s weak banking system makes it less likely that the central bank will take the steps to defend the domestic currency successfully,


they have even greater incentives to attack the currency because expected profits from selling the currency have now risen. Thus, with a weakened banking sector,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is likely to materialize and can be triggered by any of many factors, a large current account deficit being just one of them. In this view, the deterioration in the banking sector is the key fundamental that causes the currency crisis to occur.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4


더군다나 금융자유화 정책 시행 이후 자본유입의 양이 더욱 더 증가하면서 개발도상국 통화가치의 고평가 현상이 생겨났다. 변동환율제도를 택했더라면 자본유입으로 인한 통화가치 상승압력을 환율조정 Exchange-Rate Adjustment 을 통해 흡수할 수 있었지만, 고정환율제도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고평가된 통화가치를 지켜본 경제주체들은 "언젠가는 통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투기적공격 Speculative Attack 을 통해 환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고정환율제도가 투기적공격에 대한 유인을 증가시킨 것이다.


물론 변동환율제도에서도 투기적공격이 발생하여 통화가치가 하락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정환율제도 하에서 투기적공격이 발생하면, 변동환율제도 하에 비해 더 가파른 폭의 통화가치 하락이 발생한다. 고정환율제도 자체가 불안정성을 키운 것이다. 


Under a pegged exchange-rate regime, when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occurs, the decline in the value of the domestic currency is usually much larger, more rapid and more unanticipated than when a depreciation occurs under a floating exchange-rate regime.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13


경제학자 Maurice Obstfeld와 Kenneth Rogoff는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한 금리인상 정책은 투자, 실업, 정부부채, 소득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을 감수하면서까지 통화가치 하락을 막아내겠다' 라는 정부의 공언은 믿을 수 없다. 즉, 정부가 통화가치를 방어할 것이라는 신빙성을 경제주체들에게 주지 못한다면 Lack of credibility, 고정환율제도는 투기적공격에 더욱 더 취약해진다." 라고 지적한다.   


If central banks virtually always have the resources to crush speculators, why do they suffer periodic humiliation by foreign exchange markets? The problem, of course, is that very few central banks will cling to an exchange-rate target without regard to what is happening in the rest of the economy. Domestic political realities simply will not allow it, even when agreements with foreign governments are at stake.


As we have seen, to fend off a major speculative attack, the monetary authorities typically must be prepared to allow sharp increase in domestic interest rates, especially short-term rates. Such sharp spikes in interest rates, if sustained for any length of time, can wreak havoc with the banking system, which typically borrows short and lends long. 


Over the longer term, these unanticipated interest rate rises can also have profound negative effects on investment, unemployment, the government budget deficit and the domestic distribution of income. A government pledge that it will ignore such side effects indefinitely to defend the exchange rate is not likely to be credible. Lack of credibility, in turn, makes a fixed exchange rate more vulnerable to speculative attack.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7-8    


그리고 Maurice Obstfeld와 Kenneth Rogoff는 "보통 정부는 투기적공격을 한번 방어하고 나면 고정환율제도가 가져다주는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이전에 투기적공격을 초래했던 요인은 다음번 투기적공격을 유발하는 씨앗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이 쓴 논문의 제목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처럼 고정환율제도는 망상 Mirage 에 불과한 것이다.


Government often feel that if they could pull off a sudden realignment "just once" and thereby put fundamentals right, they would thereafter enjoy the fruits of a credibly fixed rate, including exchange-rate certainty and domestic price discipline. They are wrong. 


The factors that led to the last realignment remain and contain the seeds of the next one. No one can say for sure when it will occur, but its likelihood reintroduces both exchange-rate uncertainty and inflationary pressures-the very evils a fixed rate was supposed to guard against.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9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의 문제점 - 대차대조표 위기 초래


고정환율제도가 초래하는 문제들을 정리하면, "고정환율제도 → 환율변동의 불확실성 제거 → 금융자유화 정책 → 동아시아 국가로의 자본유입 증가 → 과잉대출로 인한 은행권 대차대조표 손상 →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반전과 자본유출 →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 → 은행권 대차대조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통화가치 방어를 위한 금리인상 정책 할 수 없음 → 통화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투기적공격 유인이 더더욱 증가" 라는 경로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은행권 대차대조표 손상을 막기 위하여,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용인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통화가치 하락 용인은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한다. 바로, 개발도상국 은행과 기업들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 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하자,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던 은행과 기업들의 부채부담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은행과 기업들의 대차대조표가 손상되기 시작한 것이다. 민간부문의 대차대조표 손상은 동아시아 경제의 신뢰성 상실 the loss of confidence 로 이어졌고 추가적인 통화가치 하락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통화가치 하락을 막아야할까?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한 금리인상 정책은 경제의 산출물을 떨어뜨리기 a decline in output 때문에, 이것 또한 신뢰성 상실을 초래한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대차대조표 위기 Balance Sheets Crisis" 라고 칭한다.

 

Balance sheet problems: 


Finally, descriptive accounts both of the problems of the crisis countries and of the policy discussions that led the crisis to be handled in the way it was place extensive emphasis on the problems of firms’ balance sheets. On one side, the deterioration of these balance sheets played a key role in the crisis itself—notably, the explosion in the domestic currency value of dollar debt had a disastrous effect on Indonesian firms, and fear of corresponding balance sheet effects was a main reason why the IMF was concerned to avoid massive depreciation of its clients’ currencies. (...)


instead of creating losses via the premature liquidation of physical assets, a loss of confidence leads to a transfer problem. That is, in order to achieve the required reversal of its current account, the country must experience a large real depreciation; this depreciation, in turn, worsens the balance sheets of domestic firms, validating the loss of confidence. policy that attempts to limit the real depreciation implies a decline in output instead—and this, too, can validate the collapse of confidence.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6


경제학자 Frederic Mishkin 또한 "1997 외환위기가 금융위기로 커진 원인에는 짧은 만기구조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질 수 밖에 없는 신흥국의 한계에 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은 기업들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켰고, 기업들은 대차대조표를 복구하기 위해 위험성이 큰 사업을 벌였다. 즉, 통화가치 하락이 대차대조표에 준 충격이 동아시아 경제를 위축시켰다 " 라고 말하며, 대차대조표 손상 문제를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진단한다. 


A currency crisis and the subsequent devaluation then helps trigger a full-fledged financial cris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because of two key features of debt contract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debt contracts both have very short duration and are often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These features of debt contracts generate three mechanisms through which a currency crisi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ncreases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in credit markets, thereby causing a financial crisis to occur.


The first mechanism involves the direct effect of currency devaluation on the balance sheets of firms. With debt contracts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 when there is a devaluation of the domestic currency, the debt burden of domestic firms increases. On the other hand, since assets are typically denominated in domestic currency, there is no simultaneous increase in the value of firms’ assets.


The result is a that a devaluation leads to a substantial deterioration in firms’ balance sheets and a decline in net worth, which, in turn, worsens the adverse selection problem because effective collateral has shrunk, thereby providing less protection to lenders. Furthermore, the decline in net worth increases moral hazard incentives for firms to take on greater risk because they have less to lose if the loans go sour. Because lenders are now subject to much higher risks of losses, there is now a decline in lending and hence a decline in investment and economic activity.


The damage to balance sheets from devaluation in the aftermath of the foreign exchange crisis has been a major source of the contraction of the economies in East Asia, as it was in Mexico in 1995. This mechanism was particularly strong in Indonesia, which saw the value of its currency decline by over 75%, thus increasing the rupiah value of foreign-denominated debts by a factor of four. Even a healthy firm initially with a strong balance sheet is likely to be driven into insolvency by such a shock if it has a significant amount of foreign-denominated debt.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4-5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교훈 - 2013년 현재는?


경제개발 단계에서 고정환율제도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 발생한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게 된다.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가져다 준 교훈은 '① 고정환율제도의 포기 ② 만기불일치 Maturity Mismatch 해소 ③ 통화불일치 Currency Mismatch 해소 ④ 외환보유고 확충' 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경제학계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Capital Flows Volatility 초래하는 위험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남미 금융위기 이후에는 국가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1990년대 초반 유럽 금융위기 이후에는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Effect 방지에, 그리고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에는 자본흐름의 변동 Capital Flows Volatility 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에서 살펴봤듯이, 자본이동을 감독하는 거시건전성 감독정책 Macroprudential Supervision 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2013년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과 신흥국은 자본흐름의 변동에 대한 대비를 잘 하고 있을까? 미국 Fed의 양적완화 정책 축소 Tapering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급작스런 자본유출에 대한 위험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룰 것이다.




<참고자료>


1편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2편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2013.10.27


3편 -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2013.11.09


4편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2013.11.11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2013년 6월자 Fed의 FOMC - Tapering 실시?. 2013.06.26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2013.09.14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폴 크루그먼. 2009. 『불황의 경제학』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국제금융센터. 'Ⅲ. 외환위기 주요 사례 분석 -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2. 1세대 모델을 다룬 대표적인 논문은, Paul Krugman. 1979. 'A Model of Balance-Payment Crises'. Robert Flood & Peter Garber. 1984. 'Collapsing Exchange Rate Regime: Some Linear Examples'. [본문으로]
  3. 2세대 모델을 다룬 대표적인 논문은, Maurice Obsfeld. 1994. 'The Logic of Currency Crises'. [본문으로]
  4. EMS는 역내 통화의 변동폭에 한도를 정한 일종의 고정환율제도로서 환율변동폭은 기준환율 중심으로 상하 2.25%로 제한됐었다. [본문으로]
  5. 외환보유고가 감소했다는 사실은 외환시장에서 국내통화를 사들이고 외국통화를 공급했다는 것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자본유출과정에서 외국통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 가격이 상승했다면, 개발도상국은 시장에 개입하여 외국통화를 공급함으로써 외국통화가격을 다시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외국통화를 시장에 팔고 받은 국내통화는 중앙은행 계정에 흡수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통화공급량이 축소된 것이다. [본문으로]
  6. (뒤에서 고정환율정책의 문제점에서도 다룰 것이지만) 이것을 어떻게보면, 고정환율정책이 개발도상국의 통화정책을 제한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Frederic Mishkin은 "개발도상국은 통화정책을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정환율제도로 인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This criticism of exchange-rate pegging may be less relevant for emerging market countries than it is for developed countries. Because many emerging market countries have not developed the political or monetary institutions which result in the ability to use discretionary monetary policy successfully, they may have little to gain from an independent monetary policy but a lot to lose.) (7) 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Frederic Mishkin의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고정환율제도로 인해 제약된 신흥국의 통화정책은 1997 외환위기 확산의 원인이 되고 마는데... [본문으로]
  7. 한국의 단기외채 증가에 대해서는,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http://joohyeon.com/174 참고. [본문으로]
  8. 1997년 당시 한국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http://joohyeon.com/173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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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Posted at 2013. 10. 23. 21:15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전 포스팅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를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생긴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 원인으로 이어졌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이전에, 외환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1997년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이 어떠했는지, 어떤 요인이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였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 외환위기란 무엇인가?


국제금융센터가 발간<Ⅱ. 외환위기의 개념 및 이론적 모델>에 따르면, 외환위기(Currency Crisis)란 "특정 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여 해당국 정부가 대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사용하거나 금리 인상 등을 통해 환율을 방어하는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가 전년도보다 10% 이상 하락하고 당해 연도에 25% 이상 급락한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외채위기(Debt Crisis)란 "특정국이 공공부문 혹은 민간부문의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채무불이행 상태"를 뜻한다.


또한, 은행위기(Banking Crisis)란 "실제적 혹은 잠재적 은행 파산으로 은행들이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해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대규모로 개입하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대규모 부실채권 · 뱅크런 등으로 인해 은행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다.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는 외환위기 · 은행위기보다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데 "금융시장이 심각한 붕괴에 있는 상태 · 위기의 확산으로 금융시장의 효율적인 중개기능이 손상되어 실물경제에 대규모 부정적 효과 파급"하는 상태를 뜻한다. 


외환위기(Currency Crisis)와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는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고 선후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당국의 금융시스템이 마비되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시에 자본을 회수할 경우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여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경우 · 은행부채의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로 되어있는 경우[각주:1], 해당국 통화가치 급락하면 은행 경영사태가 급속히 악화[각주:2] [각주:3]되는데 이에 따라 금융위기로 커지는 경우.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 · 외채위기 · 은행위기 · 체계적 금융위기 모든 것을 겪었다.

1997년 한국경제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1997년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 - 고평가된 통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시장 개방이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경제에서 금융은 자원배분을 위한 통제의 대상이었다.게다가 외국인에게는 증권시장 투자한도가 제한되어 있었고 외국은행의 국내지점 설립에도 규제가 있었다. 한국은 1990년 2월부터 열린 한·미 금융정책회의(FPT, Financial Policy Talking)을 통해 금융시장 개방에 나선다.



  • 출처 :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30
  • 이 표는 자본시장개방 협상대비를 위하여 재정경제원 국제금융국이 만든 계획표(Blue Print) 이다. 
  • 실제 3단계 장기계획은 1993년 6월에 확정되었고, 첨부된 계획표와는 조금의 차이가 존재한다.


1990년 2월부터 열린 ·미 금융정책회의(FPT, Financial Policy Talking)는 한국의 환율과 금융시장의 개방을 협상하는 회의였다. (...) 1990년 두 번 열린 ·미 금융정책회의는 환율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금융자율화, 증권시장 개방, 외국은행 국내지점 규제철폐 등이 주요의제였고 콜 시장의 개방, 금리의 완전 자율화, 정책금융의 폐지 등으로 확대되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25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1995년 이후 엔화의 절하이다. 일본의 엔화는 엔고가 절정에 달하였던 1995년 4월 83.6엔/$에서부터 1996년 말에는 113.7엔/$ 까지 절하되어 약 36% 절하되었다. 


  • 1995년 4월~1996년 12월 간의 엔/달러 환율변동 추이. 1995년 5월을 기점으로 일본 엔화는 달러화대비 약 36% 평가절하 된다. 


이러한 자본시장개방일본 엔화의 평가절하원화가치를 적정수준보다 고평가 시켰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두열은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1998)을 통해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원화가치 고평가 현상을 지적한다.


원화의 고평가 문제는 한국의 '거시경제 전체에 대한 긴장도를 높인 가장 근본적인 요인' 이라고 할 수 있다. 대외부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격변수가 고평가됨에 따라 임금이 상승되고 임금상승에 대처하기 위한 시설재 투자가 증가하였으며 비교역재 부문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등 많은 거시변수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1995년과 1996년에 기업의 현금흐름을 대폭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수출부진이었고 (...) 수출물량이 증가하지 못한 주된 단기적인 원인은 당시 원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원화의 고평가는 1990년대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하여 1994년 이후 자본유입이 많아지게 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


명목환율 수준으로 계산하여 보면 원화가 가장 고평가된 시점인 1996년 5월 적정환율 수준은 982원/$ 이었으나 실제환율 수준은 780원/$ 수준으로 원화가 202원/$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원화의 고평가는 세계화 추진과 OECD 가입을 위하여 자본자유화를 조속히 추진해 나감에 따라 자본유입이 확대된 결과이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203-205


  • 1994년 1월~1997년 12월 간의 자본수지 계정. 1994년 이후 자본수지가 양(+)의 값을 갖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외환위기의 본격적인 발발시기인 1997년 10월 말 이전까지 원화가치의 고평가현상은 지속되었다. (1997년 10월 말부터 원화가치가 급락함에 따라 고평가현상이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달러화에 페그된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엔화가치가 절하됨에 따라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동반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최두열은 동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지적한다. 


"달러화에 대한 페그에 따른 문제점으로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게 되면 자국통화도 달러화와 함께 동반강세를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95년 5월 이후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절상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달러화의 엔화에 대한 강세에 따라 사실상 달러화에 페그된 동아시아 각국의 통화가 동반강세를 보이게 되어 엔화에 대해 고평가 되었으며, 이것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 하나의 요인"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60


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한국은 자유변동환율제도가 아닌 일일환율변동폭이 제한된 시장평균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 원화 또한 (완전히 달러화에 페그된 것은 아니었지만) 엔화 절하의 영향으로 1997년 이전까지 고평가된 통화가치를 유지하게 된다. 


  • 원/엔 환율추이. 일본 엔화의 절하에 따라, 한국 원화는 일본 엔화대비 고평가된다. 1994년 4월 100엔당 900원 수준이던 원화는 1996년 12월 100엔당 728원 수준까지 통화가치가 상승하였다. 


자본시장 개방과 일본 엔화의 절하로 인한 한국 원화가치의 고평가 현상. 그 결과는 1994년-1996년 3년간의 경상수지 적자, 특히나 1996년 -229억 달러 · GDP 대비 -4.75%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 원화가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가 초래하는 문제들


원화가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는 어떠한 문제를 초래할까? 먼저, 고평가된 통화가치의 문제, 특히나 정환율제도를 택한 상태에서 통화가치 고평가가 초래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앞서 살펴본것 처럼 한국 원화가치는 자본시장 개방과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로 인해 적정수준을 넘어서서 고평가 되어있다. 이것을 본 시장참가자들이 "적정수준을 넘어선 원화의 고평가는 지속불가능하다" 라고 생각을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다시 말해, 시장참가자들이 "곧 원화의 평가절하가 발생하게 될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시장참가자들간에 급격한 환율상승에 대한 예상이 우세하게 되는 그 순간, 자기실현적 투기공격(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각주:4]이 발생하게 되어 실제로 원화가치가 급락하게 된다. 


고평가된 통화가치가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1997년 당시 김만제 포항제철 회장은 강경식 경제부총리와의 만남에서 "환율이 고평가되고 있어, 환율상승을 예상한 투기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51)"[각주:5] 라는 우려를 전했다. 


최창규는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1998) 를 통해 기초적인 게임이론을 이용하여 '자기실현적 투기공격(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이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제2세대 투기적공격모형은 외환보유액의 부족 등으로 인해 기초경제여건이 ‘위기범위(crisis zone)’에 속하게 되는 경우 실제 외환위기의 발생여부는 앞으로의 환율에 대한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참가자들간에 급격한 환율상승에 대한 예상이 우세하면 실제로 환율급등이 초래되지만 환율이 계속 안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한 경우에는 환율상승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형에서는 외환위기가 자기실현적 투기공격의 양상을 띠게 되며9) 복수균형(multiple equilibria)이 가능하게 된다. 복수균형이라 함은 기초경제여건이 위기범위에 속하는 경우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에 따라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고 외환위기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두가지 가능성을 가리킨 것이다. (...)


이 모형에서는 외환당국과 거래자 A, B 등 세 경제주체가 있다고 가정한다.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에 쓸 수 있도록 일정한 외환(R)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두명의 거래자 A, B는 1회의 비협조적 게임(non-cooperative game)을 한다고 가정한다. 두명의 거래자는 각각 6만큼의 국내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외환당국의 보유외환을 사기 위하여 국내통화를 ‘매도’하거나 계속 ‘보유’하는 두가지의 전략을 펼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외환을 사거나 파는 데 따르는 거래비용은 1이라고 하자.


첫번째 게임에서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수준인 20이라고 가정되고 있다 (R=20). 이 경우에는 거래자 A와 B가 모두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보유외환을 사더라도 외환당국은 여전히 8만큼의 외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거래자 중 1인이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다른 1인은 매도하지 않을 경우 매도를 한 거래자는 1만큼의 비용이 들고 매도를 하지 않은 거래자는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 나쉬균형(Nash Equilibrium)은 거래자가 모두 매도를 하지 않는이다.


두번째 게임에서는 외환보유액이 매우 낮은 수준인 6이라고 가정되고 있다(R=6). 여기서는 거래자 2인중 어느 한 사람이 외환을 사기 위해 국내통화를 매도하는 경우에도 외환보유액은 모두 소진된다. 따라서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거나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외환당국이 보유외환으로 고정환율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50% 평가절하를 하게 된다고 가정하자. 거래자 2인중 어느 한사람만이라도 보유 국내통화를 모두 매각하여 외환을 사는 경우 중앙은행은 고정환율을 포기하고 50% 평가절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거래자는 국내통화기준으로 3만큼의 자본이득을 보고 거래비용 1을 지급하게 되므로 2만큼의 순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한편 거래자 2인이 동시에 각각 3만큼의 국내통화를 매도하여 외환을 매입하는 경우 두사람은 모두 각각 3/2만큼의 자본이득을 보게 되고 거래비용으로 1을 지급하게 되므로 1/2[=(3/2)-1]만큼의 순이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유일한 나쉬균형은 양거래자가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외환을 매입함으로써 고정환율이 붕괴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세번째 경우가 가장 흥미로운 경우이다. 여기서는 외환보유액이 중간정도 수준인 10이라고 가정되고 있다(R=10). 이 경우에는 어느 거래자 일방이 외환당국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전부 살 수는 없지만 거래자 2인이 모두 국내통화를 매도하는 경우에는 외환당국이 평가절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수익(pay-off)을 계산해보면 아래와 같다. 


어느 거래자 일방이 공격을 하고 상대방이 공격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외환당국이 보유외환으로 충분히 공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평가절하가 일어나지 않는다.격을 감행한 거래자는 1만큼의 비용만 지급하게 된다. 두 거래자가 동시에 공격을 하게 되면 전체 보유외환 10을 각각 5만큼씩 나눠서 사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50%만큼의 평가절하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두 사람은 국내통화기준으로 각각 5/2만큼씩 얻게 되는 반면 거래비용은 1이 되어 각각 3/2[=(5/2)-1]만큼의 이득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 게임에서는 2개의 나쉬균형이 생기게 된다. 하나의 균형은 양거래자가 모두 공격을 하는 경우에 생긴다. 이때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의 균형은 어느 거래자도 상대방이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경우에 생긴다. 이 때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투기적공격이 일어나면 고정환율이 붕괴되고 그렇지 않으면 고정환율이 유지된다는 의미에서 이들 균형에는 자기실현적 요소가 있게 된다.




최창규. 1998.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한국은행 조사부 「경제분석」 제4권 제2호 (1998. Ⅱ). 7-10 


그리고 금융경제학계의 권위자 Frederic Mishkin은 "고정환율제도가 문제를 심화시킨다" 라고 지적한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한 국가의 통화가치는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통화가치 고평가가 지속될수록 평가절하 압력을 계속해서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기적 공격으로 인해 통화가치가 한번 하락하기 시작하면 변동폭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Under a pegged exchange-rate regime, when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occurs, the decline in the value of the domestic currency is usually much larger, more rapid and more unanticipated than when a depreciation occurs under a floating exchange-rate regime.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또한, 원화가치 고평가에 이은 경상수지 적자도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한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될수록 외국 투자자들은 국가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각주:6] 에 의심을 품게 된다. 김인준·이영섭은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1998)에서 '경상수지 적자 →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된 외국 투자자 → 자본유출 → 통화가치 급락' 현상을 이야기한다.  


국가간 금리 격차가 존재할 경우 자본자유화는 양국간 금리격차를 줄이는 데 공헌할 것이다. 그렇지만 양국간 발전단계가 다르다면 자본이동에 따라 금리격차가 줄어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편의상 자본자유화는 이루어졌지만 금리는 원래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자유화가 이루어지면 자본은 이자율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 결과 이자율이 높은 국가의 경우 자본시장개방에 따라 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하락하고 경제가 활성화된다. (...)


이자율이 높은 나라로의 자본유입은 이 나라의 환율을 하락시키고 그 결과 가격경쟁력이 악화되어 경상수지가 적자로 될 것이다. 또한 자본유입에 따른 경기활성화도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한 요인이 될 것이다. 물론 어느 기간까지는 경상수지 적자가 자본유입으로 보전되기 때문에 이 나라 통화의 고평가 현상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환율의 고평가로 경상수지 적자가 상당기간 누적되면 외국 투자가들이 이 나라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 되고 자본을 회수해 나가려 할 것이다. 이때부터 고금리는 더 이상 자본유입의 유인이 되지 못하고 따라서 환율에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가 환율에 주로 영향을 끼치게 되고 경상수지 악화로 인해 환율은 상승할 것이다. 한편 환율상승에 따른 투자수익률 하락을 우려하여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려 함에 따라 환율은 더욱 더 상승할 뿐만 아니라 경기침체도 가속화될 것이다.


김인준·이영섭. 1998.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 . 『金融學會誌 Vol.3 No.2』 7-9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소속인 왕윤종 또한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2001)에서 '경상수지 적자 →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된 외국 투자자 → 자본유출 → 통화가치 급락' 현상을 말한다.


Over the period 1995-97, however, there was a series of adverse external shocks – particularly a trade-weighted appreciation of the region's currencies vis-à-vis the U.S. dollar, to which they were de facto pegged, rose against the Japanese yen, and a fall in the terms of trade for electronic-goods exporters. 


These shocks brought into question the sustainability of the currency pegs to the U.S. dollar, undermining the confidence of international investors in the region's prospects, and leading to a sudden withdrawal of their funds. 


As the currency pegs collapsed, the large stock of unhedged foreign currency denominated borrowings, undoubtedly fueled investors' new-found pessimism and the sense of market panic, making the crisis much more severe than it would otherwise have been.


왕윤종.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7


게다가 1996년에 기록한 '-229억 달러 · GDP 대비 -4.75%' 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외환유동성 자체를 크게 악화시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신인석은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를 통해 "환율절하 지연에 이은 96년에 기록된 대폭의 경상수지 적자가 잠재적인 외환유동성을 악화시켰다" 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외환유동성 악화는 1997년 12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인출사태(banking panic)'을 촉발시켜 외환보유고를 고갈시켰다.   




<표 8>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야기되기까지는 거시충격과 이에 대한 정책대응상의 오류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표가 보이듯이 단기외채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로의 자본유입이 증가한 것은 94년부터였으며 같은 시기 외환유동성은 점차 악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급격한 악화가 진행된 것은 지표 A에 의거할 때 명백히 96년이었고, 이는 물론 96년에 기록된 대폭의 경상수지적자에 기인한 변화였다. 그리고 96년의 경상수지적자는 교역조건 충격으로 요구되었던 환율절하를 정책당국이 지연시킨 결과였다고 평가되므로, 그만큼의 외환유동성 악화는 거시정책대응 미숙에 원인이 있었다고 하겠다.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31-32




※ 원화가치 고평가와 1994-1996년의 경상수지 적자를 막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신인석의 주장 중 눈여겨볼 대목은 "외환유동성 악화는 거시정책대응 미숙에 원인" 이다. 왜 당시 정책당국자들은 금융시장개방의 위험성을 간과했고, 원화가치의 절하를 지연시켰을까? 한국경제연구원의 허찬국은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2009) 보고서를 통해 "1990년대 당시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이 가져오는 파급효과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라고 비판한다. 


당시의 환율제도가 정책당국의 높은 결정력을 보장하는 약한 형태의 페그제(adjustable peg regime)였다고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외균형의 3년 연속 악화를 방치한 것은 의아한 일이라 하겠다. 지속되는 경상수지 적자 악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원화가치 절하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없었다.


한 가지 설명은 자본시장 개방 이후 해외자금의 유입이 가속화되는 그때까지 익숙하지 않았던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고도 성장기부터 대외교역 경험을 통해 환율이 수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자본시장 개방과 그에 따른 큰 규모의 국제적 자금이동에 따른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식이 낮았다고 보인다.


허찬국. 2009.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 『한국경제연구원』


1997년 당시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 국장을 맡았던 정덕구도 회고록 『외환위기 징비록』을 통해 "시장개방의 후유증을 간과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아쉬운 점은 시장 개방의 후유증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란 가치를 내걸고 적극적인 시장 개방에 나섰다. 그러나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비용이 뒤따른다. 시장 개방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은 구조조정 외에는 없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금융이나 기업 구조조정[각주:7]에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말았다. 재경원에서 끊임없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정책으로 추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성공하지 못했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96


정덕구는 연이어 원화가치 고평가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정부 정책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게 되면 정부는 또 다른 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정책이 남발되는 것이다. 환율정책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정부는 1996년 말 경상수지적자가 자꾸 늘어가자 한승수 부총리와 박영철 금융연구원장 등이 모여 원화가치 하락(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 상승)을 용인할 것인지를 깊이 논의했다.


그러나 원화가치를 하락시키는 일은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물가상승 우려와 함께 국내 금융기관의 외채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눌려온 것은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다.


원화가치가 고평가된 상태로 계속 가게 되면 시장참여자들은 "언젠가는 원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며 불안해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계기가 생길 경우 환율은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게 되는 것이다. 방안에 가스가 꽉 차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성냥불을 켜대면 폭발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111


김영삼정부 시절 관세청장 · 통상산업부 차관 · 재정경제원 차관을 역임한 강만수는 "원화가치 절하를 하지 못한 것이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라며 원화가치 고평가의 책임을 한국은행과 정치권에 돌린다[각주:8] [각주:9].


8% 단일관세율과 고평가된 환율이라는 최악의 정책조합(the worst policy mix)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수출을 포기해야 할 환율 수준에서 추진된 '뼈를 깎는' 노력은 경상수지 적자를 예상보다 4배나 많은 사상 최대인 237억 달러에 달하게 하여 우리경제의 뼈를 실제로 깎았다. 이러한 방향착오를 한 다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


1996년의 성장률은 내수증가가 기여했고 물가는 환율의 고평가와 수입증가가 기여한 것이었다. 1994년부터 3년간 경상수지는 물가와 성장률에 희생된 것이다. 대내균형을 위해 대외균형이 파괴된 것이다. 1996년은 물가를 희생해서라도 환율을 크게 올려 수출을 늘이고 수입을 억제했어야 했다. 


10%가 넘는 임금상승에서 가격경쟁력 상실을 보전할 수 있는 수단도 사실상 환율 뿐이었다. 매년 5% 정도의 절하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고임금으로 가격경쟁력이 상실되어가고 있는데 환율까지 평가절상 되었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


상반기에 경상수지가 연간목표를 넘어섰는데도 "원화가치의 가파른 하락으로 인해 외환시장이 출렁거리지는 않도록 하겠다"는 한국은행의 헛소리는 끊임없이 평가절상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중앙은행의 속성상 이해가 된다. 평가절상을 하는 만큼 다른 부분에서 통화를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이 중앙은행에는 있다. (...)


대내균형을 나타내는 물가안정은 중앙은행의 임무이고 표를 의식하는 것은 정치권의 속성이다. 정부는 대외균형을 유지할 의무가 있고 대내와 대외 균형이 상충할 때는 비난을 무릅쓰고 대외균형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경상수지가 감내하기 힘든 수준으로 악화될 때는 그렇다. (...)


최악의 두 정책이 동시에 조합됨으로써 1994년부터 국제수지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1996년 상반기에 벌써 연간 전망 적자를 넘어선 위기상황 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 경제가 위기로 치달아가는데 환율은 버려두고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호기를 부린 사람들은 우리를 슬프게 했고, 환율을 안정시킨다고 노력한 사람들의 빗나간 정책들은 우리를 절망케 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72-379




※ 원화가치 하락을 노린 헤지펀드 · 핫머니의 투기적공격이 1997 외환위기의 원인일까?


앞서 논의했던 것을 종합해보자. 금융시장개방과 일본 엔화의 절하는 원화가치의 고평가를 초래했고 이는 1994년-1996년, 특히나 1996년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만들어냈다. 적정수준을 넘어서 고평가된 원화가치를 본 시장참가자들은 "원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이는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을 유도했다. 경상수지 적자 또한 시장참가자들에게 "한국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의심을 품게해서 자본유출을 초래했다. 게다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한국경제의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야기되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이다.


여기서 구별해야 하는 건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투기적공격'이란 말을 들으면 통화가치 하락 그 자체에 대해 베팅한 뒤 환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을 떠올리기 쉽상이다[각주:10] [각주:11]. 그러나 1997년 당시,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 ·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외환보유고가 감소하긴 했지만,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이 원화가치 하락에 베팅한 뒤 환차익을 챙기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1997년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은 9월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 이라며 한국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에 대해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97년 7월 8일 태국, 금융위기에 몰리다


나-강경식-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태국과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외국인이 우리 원화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주식시장이 고작인데, 그나마 한도액이 정해져 있어서 원화의 대량 매매는 있을 수 없고 그 외에 외국인이 원화를 사용할 일은 전혀 없다. 심지어 채권조차 살 수 없다. 


세계적으로 하루에 거래되는 달러의 양은 1조 6천억 달러로 무역 등 실물거래 규모는 500억 달러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투기성 자금인 것이다. 세계 중앙은행 보유고 총액이 1조 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만큼은 이런 투기자금이 전혀 들락거리지 못한다. 전부 실제 거래되는 달러뿐이다. 금융 또한 해외에 개방이 안 되어 있어서 외국의 동향에 휘말릴 걱정이 없다. (...)


97년 9월 8일 태국과 한국은 다르다


무엇보다 태국은 역외 금융시장을 육성한다는 명분 하에 금융시장이 완전개방되어 있어 헤지 펀드(hedge fund) 등 단기 투기성 자금의 유입이 용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증권시장 일부만 개방되었을 뿐,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견해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식이었다. 이날 토론에서도 한국과 태국이 다르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279-281     


강경식의 판단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신인석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발발한 "1997년 11월달 외환보유고 감소의 주된 요인은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이 아니라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 이었다.




<표 7>에서 환율요인에 따른 외환수요의 증가분을 가장 넓은 기준의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의 지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에는 경상수지적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과 포함된 것의 두 가지 투기적 공격지표를 계산하여 놓았다. 두 지표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11월중 투기적 공격은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의 14~20%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상수지적자까지 감안한 광의의 투기적 공격 지표에 의거하면 9~11월중의 환율에 따른 외환수요요인은 1~3월에도 미달하는 규모였다. 


두 기간의  차이와 11월 외환위기를 낳은 것은 환위험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고 따라서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볼 수 없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의 존재여부[각주:12] 였음은 <표 7>에서 명백하다.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26-27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지만, 고평가된 원화가치 그 자체에 대한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의 투기적 공격은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 그렇다면 과연 어떤 요인이 한국경제에 외환위기를 가져온 것일까? 신인석이 주장하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이야기했던 것을 다시 가져와보자. 


이전 포스팅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를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생긴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 원인으로 이어졌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이야기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란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 저해 · 제2금융권 팽창 · 은행과 기업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 잠재적 부실채권 증가 · 재벌에 경제력 집중 · 재벌의 과다차입' 를 뜻한다.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요인이 어떻게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를 촉발시켰는지, 다음 포스팅에서 그 경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1편 참고자료 >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국제금융센터 <Ⅱ. 외환위기의 개념 및 이론적 모델>.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2012.10.19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최창규. 1998.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한국은행 조사부 「경제분석」 제4권 제2호 (1998. Ⅱ).


김인준·이영섭. 1998.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 . 『金融學會誌 Vol.3 No.2』


Wang Yunjong.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허찬국. 2009.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 『한국경제연구원』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1. 신흥국은 특성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경제학자 Barry Eichengreen은 이를 '신흥국의 원죄 Original Sin'로 표현했다.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http://joohyeon.com/113 [본문으로]
  2.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은행부채의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로 되어있을 때,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여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키는 것'을 '신흥국 대차대조표 위기 Balance Sheet Crisis'라 불렀다. │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 이에 대해서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3. 이러한 현상은 신흥국의 외환위기를 체계적 금융위기로 심화시킨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보통 금리를 올림으로써 통화가치를 상승케 하는데, 금리를 인상할 경우 은행의 부채부담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 그러나 신흥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가치는 더욱 커지게 되고 기업과 은행의 부채부담을 증가시킨다. 그 결과, 은행은 고객들의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하게 되고 금융시스템 자체가 마비된다. 금융경제학 권위자인 Frederic Mishkin은 논문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1999)를 통해 "A currency crisis and the subsequent devaluation then helps trigger a full-fledged financial cris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because of two key features of debt contract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debt contracts both have very short duration and are often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These features of debt contracts generate three mechanisms through which a currency crisi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ncreases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in credit markets, thereby causing a financial crisis to occur." 라고 말한다. │ 이에 대해서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4. 경제학에서는 금융위기 원인의 2세대 모델로서 '자기실현적 투기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을 다루고 있다.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5.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51 [본문으로]
  6. 경제학계에서는 금융위기 원인의 1세대 모델로서,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악화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통화가치가 급락' 을 다루고 있다.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7. 여기서 말하는 금융, 기업구조조정은 단순히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감독기능 강화, 대출시 엄격한 신용평가, 기업의 과다차입 방지 등등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태어난 구조적인 문제를 고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룬다. [본문으로]
  8. 김영상정부 시절 경제부처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그가 이러한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강만수, 강경식 등 경제고위관료들은 회고록 등을 통해 1997 외환위기의 책임을 "한국은행"에 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은 "금융개혁법안"과 "환율관리"를 놓고 치열한 갈등관계 였기 때문인데, 그렇다고해서 고위경제관료들이 외환위기의 책임을 한국은행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본문으로]
  9.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인해 일본의 엔화가치가 강제로 절상된 것을 지켜봤던 강만수는 "환율관리는 주권행사"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환율 정책만이 경제를 유지시킨다고 생각했는데, 이명박정부 집권 이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고환율 정책을 밀어부친다. 당시 강만수의 고환율정책은 물가인상 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
  10.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 파운드화 가치하락에 베팅한 George Soros를 들 수 있다. [본문으로]
  11. 물론, 금융위기 2세대 모델인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은 단순히 '헤지펀드, 핫머니 등이 통화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투기적 공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세대 모델이 강조하는건 '시장참가자들의 자기실현적 예측으로 인해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현상' 이다. 다만, 경제학 비전공자가 '투기적공격' 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헤지펀드, 핫머니 등만을 연상할 것 같은 노파심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본문으로]
  12.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이 보고서의 논평을 맡은 이영섭은 "<표7>의 해석에 대해서 논평자도 기본적으로 저자의 입장을 같이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이 반대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제시한 1997년 11월중의 대규모의 인출은 외환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투기적 공격 때문에 발생된 위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제채권단의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표7>을 보면 투기적 공격은 그 이전부터 발생하지만 채권인출은 11월에만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는 10월말 및 11월 초에 발생하기 시작한 위기에 대한 대응처럼 보일 수도 있다. <표7>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외환위기의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만일 외환위기의 시작을 11월 중하순(예를 들어, IMF 구제금융 신청일인 11월 21일)으로 잡으면 저자의 해석에 대해 반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작을 10월 하순(예를 들어, 기아사태처리 발표 및 홍콩증시 폭락이 발생한 10월 22~23일)으로 잡으면 이상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저자와 대립되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라고 지적한다. 본인도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점을 10월 하순으로 잡더라도, 이는 헤지펀드 등의 투기적공격이 아니라 1997년 동안 높았던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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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Posted at 2013. 10. 18. 15:51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금융자원 동원 control over finance 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한 한국경제


이전 포스팅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을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을 다루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를 찾을 수 있다. 바로  "한국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금융자원 동원 control over finance 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이다.


박정희정권은 "1961년 재벌소유 시중은행 주식이 정부로 귀속되고, 민간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함으로써 "일반상업은행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각주:1] 그리고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을 통해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소수의 기업들에 금융자원을 몰아주었다. 이러한 정책금융 policy loans 의 혜택을 받은 기업들은 세계시장에 진출했고, 그 결과 한국경제는 수출주도형 성장 export-led growth 을 달성[각주:2]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국가가 금융자원을 동원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바로, "자본투입의 증가 growth in the supply of capital" 이다. 국가경제의 장기총생산 the long-run aggregate production 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한 건, "노동투입의 증가 · 자본투입의 증가 · 노동생산성 향상 · 자본생산성 향상" 이다. 



< 출처 :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조장옥 교수, 거시경제학 수업자료 >  


위에 첨부한 그래프는 경제 내의 장기총생산이 결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 에서도 다루었다.)


1번 그래프는 노동시장 Labor Market 에서 노동공급자 (P*MRS=물가수준*한계대체율)와 노동수요자 (P*MPL=물가수준*한계노동생산)가 만나 균형노동량를 달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기업의 인력수요와 노동자의 구직의사가 만나 일정한 수의 노동자가 취직에 성공하는 모습을 뜻한다.


2번 그래프는 경제체제 내의 생산성 Productivity 정도를 나타내는 생산함수 Production Function 이다. 노동 · 자본 생산성이 증가할수록 생산함수이 상향이동 하고, 1번 그래프의 노동시장에서 결정된 균형노동량가 장기 총생산량를 이끌어낸다. 이러한를 45도 직선 그래프에 대응하면, 4번 그래프 모양인 장기 총생산량를 가진 장기 총공급곡선 Long-run Aggregate Supply Curve 이 도출된다. 


(1번 그래프 노동시장을 자본시장 Capital Market 으로 바꾸고, 2번 그래프 생산함수를 자본를 변수로 하게 바꾸어도 된다.)  


즉, 이 그래프는 1번에서의 노동투입의 증가 혹은 자본투입의 증가 · 2번에서의 노동생산성 향상 혹은 자본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도시화를 통해 노동투입을 증가시켰고, 금융자원을 동원함으로써 자본투입 증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은 이러한 경제학적 원리를 글로 쉽게 풀어냈다. 


성장의 두 가지 원인이 합쳐져서 경제확대가 이룩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투입의 증가 increases in inputs 다. 고용의 증가, 노동자들의 교육수준 향상, 그리고 물리적인 자본축적의 증가(기계·건물·도로 등)가 그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원인은 투입단위당 생산의 증가 increases in the output per unit of input 다. 관리 개선이나 경제정책의 개선으로 이런 증가가 이룩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주로 지식의 향상으로 이루어진다.


성장회계의 기본 개념은 이 두가지의 크기를 명백하게 계산함으로써 이 공식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 회계는 그래서 각 투입요소별(예컨대 노동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자본의) 성장 기여도를 산정하고, 또 효율증가에 따른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


노동 생산성을 이야기할 경우 우리는 사실 그 때마다 원시적인 형태의 성장회계를 셈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은연중에 우리는 전반적인 국가 성장 가운데 노동공급의 증가에 기인한 부분 the growth in the supply of labor 과 일반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의 가치 증가에 기인한 부분 an increase in the value of goods produced by the average worker 을 구분한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의 증가가 항상 노동자의 효율향상 때문에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관리 개선이 있었거나 더 많은 기술지식을 지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더 좋은 기계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산이 증가할 수 있다. 더 빨리 도랑을 팔 수 있지만, 효율성이 더 높은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더 많은 자본을 갖고 일할 따름 more capital to work with 이다. 성장회계의 목적은 측정 가능한 모든 투입요소를 종합하는 지표를 산출하고, 그 지표의 비율로 국민소득 성장률을 측정하는 것이다. 즉 '총요소 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을 추산하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227-229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 요소투입량 증대를 통해 성장한 한국경제


그렇다면 노동투입의 증가 · 자본투입의 증가 뿐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 · 자본생산성 향상은 한국경제 성장에 얼마만큼 기여했을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Paul Krugman 은 이에 대해 비관적이다. 그는 "한국 등 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생산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이레적인 투입 증가 덕분" 이라고 주장[각주:3]한다.


성장회계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경제성장의 과정에 관해 아주 중요한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한 나라의 1인당 소득의 지속적인 성장은 투입단위당 생산이 증가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입 생산요소의 이용효율은 높이지 않고 단순히 투입량만을 늘리는 것(기계와 사회간접자본의 증가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수익률 감소에 부딪히게 되었다. 즉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은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최근 몇 년 간의 (joohyeon: 이 글이 1994년에 쓰였다는 것을 주의하자) 아시아 국가 성공사레와 30년 전의 소련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사실 싱가포르를 방문한 여행객이 그 도시의 화려한 호텔에 투숙해서 바퀴벌레가 들끓는 모스크바의 호텔과 어떤 유사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멋진 활기가 넘치는 아시아의 호경기와 소련의 무시무시한 산업화 운동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 1950년대의 소련처럼 아시아의 신흥 산업국들이 급성장을 이룩한 것은 주로 놀랄만한 자원의 동원 덕분이었다. 이들 국가의 성장에서, 급증한 투입이 발휘한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더 이상 말할 거리가 별로 남지 않는다. 높은 성장기에 보여준 소련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성장도 효율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이례적인 투입 증가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


동아시아 성장이 주로 투입증가에 의한 것이고, 그 곳의 축적된 자본이 벌써 수익체감의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완전히 이치에 부합되는 행동이다. (...) 최근 몇 년 간의 속도로 아시아의 성장이 지속될 수는 없다. 2010년의 시각에서 보면, 최근의 추세를 그대로 연장해서 아시아가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지금의 전망은 브레즈네프 시대의 시각에서 소련의 산업지배를 내다본 1950년대 식 전망만큼이나 어리석게 보일 것이 틀림없다. (joohyeon: 2013년의 시각에서 돌아봤을때, 폴 크루그먼의 주장은 옳았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성장의 실체는 우리에게 통속적인 교훈 중 몇 가지는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우리 경제정책의 전통적인 자유방임 방법이 잘못됐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들 경제권의 성공은 복잡한 산업정책과 선별적인 보호주의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일반화되어 있다.(joohyeon: 가령, 장하준 등등) (...)


그러나 어쨌든 만일 아시아의 성공이 전략적인 무역 및 산업정책의 결과 때문이라면, 그 결과는 이례적이고 감동적인 경제 효율성의 증가로 확실하게 입증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례적인 효율성의 증가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환태평양권의 신흥 산업국들은 그들의 이례적인 자원동원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은 것이며, 이런 대가는 아주 진부한 통속적 경제이론에 기초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아시아 성장에 어떤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행복을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이득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229-244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실제로 한국은행 보고서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우리나라의 실질소득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 했다. 이 보고서는 1980년 이후를 다루고 있지만, 1960년~1980년 사이의 경제개발 시기에도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실질총소득은 연평균 6.2% 증가하였는데 이는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높은 것이며 우리경제가 급속히 성장 하였다는 점과 일치하는 결과이다. 요소투입의 변화는 실질총소득을 5.2%p 증가시켰으며 소득증가의 83.0%를 설명하였다. 요소투입 중에서 자본투입의 기여도는 3.3%p로 전체 총소득증가의 52.3%를, 노동투입은 1.9%p로 30.6%를 설명 하였다. 생산성 증가는 실질총소득을 1.4%p를 증가시켰으며 22.9%의 기여율을 기록하였다.  (...)


실증분석 결과, 지난 30년 동안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우리나라의 실질소득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생산성 증가가 중요한 요소였다.[각주:4]


조태형, 김정훈, Paul Schrever.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 <한국은행 이슈노트>. 2012.06.30. 4-7




※ 요소투입증가, 즉 과잉투자가 초래하는 경제적 문제들


그런데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의 주장 중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단순히 투입량만을 늘리는 것은 결국 수익률 감소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라는 부분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한 국가 내의 인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투입의 증가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투입증가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본투입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융자원을 동원하여 기계설비 · 인프라 등의 자본량을 늘리는 투자 investment 를 뜻한다. 이른바 투자중심 성장 investment-driven growth 이다. 


이러한 투자중심 성장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① 입량의 과도한 증가에 따른 비효율성이 유발된다 라는 점과 ② 기업이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금융자원은 부채 는 점이다. 경제학자 마이클 페티스 Michael Pettis는 저서 The Great Rebalancing』을 통해 투자중심 성장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변변찮은 도로가 없었던 경제개발 초기에는 도로를 하나 건설하는 것만으로 큰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 근로자의 이동이 수월해지고, 물류를 운반하는 시간도 단축된다. 그러나 도로가 이미 많이 깔려진 뒤에 점점 더 많은 도로가 생겨날수록, 신규 도로건설에 따른 부가가치는 줄어든다. 거기다가 (국가의 금융지원을 통해 손쉽게 돈을 빌린) 기업들은 투자비용 대비 창출해낸 경제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저 투자를 위한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가가 기업들에 지원해준 금융자원은 고스란히 부채로 남게된다. 


as the history of every investment-driven growth miracle, including that of Brazil, shows, high levels of state-directed subsidized investment run an increasing risk of being misallocated, and the longer this goes on the more wealth is likely to be destroyed even as the economy posts high GDP growth rates. The difference between posted GDP growth rates and real increases in wealth shows up as excess debt. Eventually the imbalances this misallocation creates have to be resolved, and the wealth destruction has to be recognized as debt levels are paid down. 


With such heavy distortions imposed and maintained by the central government, there was no easy way for the economy to adjust on its own. Growth was not capable of being sustained except by rising debt. (...)


every other case of an investment-driven growth miracle, suggests that the model cannot be sustained because there are at least two constraints. The first has to do with the constraint on debt-financed investment and the second with the constraint on the external account, and one or both constraints have always eventually derailed the growth model.


To address the first constraint, in the early stages for most countries that have followed the investment-driven growth model, when investment is low, the diversion of household wealth into investment in capacity and infrastructure is likely to be economically productive. After all, when capital stock per person is almost nonexistent, almost any increase in capital stock is likely to drive worker productivity higher. When you have no roads, even a simple dirt road will sharply increase the value of local labor.


The longer heavily subsidized investment continues, however, the more likely that cheap capital and socialized credit risk will fund economically wasteful projects. Dirt roads quickly become paved roads. Paved roads become highways. And highways become superhighways with eight lanes in either direction. The decision to upgrade is politically easy to make because each new venture generates local employment, rapid economic growth in the short term, and opportunities for fraud and what economists politely call rent-seeking behavior, while the costs are spread through the entire country through the banking system and over the many years during which the debt is repaid (and most debt is rolled over continuously). (...)


Of course because risk is socialized— that is, all borrowing is implicitly or explicitly guaranteed by the state— no one needs to ask whether or not the locals can use the highway and whether the economic wealth created is enough to repay the cost. The system creates an acute form of what is sometimes called the “commonwealth” problem. The benefits of investment accrue over the immediate future and within the jurisdiction of the local leader who makes the investment decision. (...)


The problem of over-investment is not just an infrastructure problem. It occurs just as easily in manufacturing. When manufacturers can borrow money at such a low rate that they effectively force most of the borrowing cost onto household depositors, they don’t need to create economic value equal to or greater than the cost of the investment. Even factories that systematically destroy value can show high profits, and there is substantial evidence to suggest that the state-owned sector in the aggregate has probably been a massive value destroyer for most if not all the past decade, but is nonetheless profitable thanks to household subsidies.


Michael Pettis. 2013. 『The Great Rebalancing』.  80-91

 

한국도 경제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부작용을 경험했을까? 『대통령의 경제학』의 저자인 이장규는 박정희정권의 경제정책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라고 말한다. 이전 포스팅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에서도, "국가의 금융억압 정책이 기업의 규모늘리기를 유도했고, 자산대비 높은 부채비율을 초래했다" 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책금융, 관치금융의 대표선수가 수출금융이었다. 수출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대출도 자동적으로 얻어 쓸 수 있고, 시중 금리가 30%인데 수출 금리는 3분의 1 수준으로 해줬다. 은행들은 수출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운영됐고, 그 이면에서는 금융제도의 심각한 왜곡 현상을 빚어냈었다. 한국의 은행들은 수출 지원을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폐단도 많았다. 출금융의 싼 금리를 악용해서 실제 수출은 뒷전이고, 그 돈을 빼돌려서 돈놀이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수출은 한국경제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돌파구였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집값 폭등 등 심각한 부작용들의 생산 공장이기도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1960년대의 기업지원은 결국 탈이 나게 돼 있었다. 차관은 많을수록 좋다는 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였고, 수출을 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정부가 지원해줬으며 기업들은 저마다 확장투자에 경쟁적이었다. 앞서의 언급처럼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부실 차관업체를 무더기로 정리했음에도 기업들은 연리 40~50%의 고리사채에 목이 졸려가고 있었다.


이장규. 2012. "수출 지상주의, 8·3 사채동결조치". 『대통령의 경제학』. 162-164




※ 과잉투자 문제해결 위해,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에서 내수주도형 성장모델로 전환?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투입의 증가는 비효율성 · 과도한 부채 · 수익률 감소 ·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부터 알아야한다. 한국정부가 금융자원을 소수의 기업들에 몰아준 것은, 투자를 통해 생산기반을 닦은 뒤 세계시장에 나가 수출을 하라는 의도[각주:5]였다. 그렇다면 왜 한국경제는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채택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요소가 필요하다. 거기에 한 가지 또 다른 요소가 더 필요하다. 바로 조직자본 Organizational Capital 이다. 조직자본이란 노동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대규모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후발 산업국가들은 특정 소수의 기업에 자원을 몰아줌으로써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규모를 키운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미숙한 국가는 내수시장이 발전되어 있지 않고 기업간 경쟁이 없는 상태이다. 국가의 전략적 지원을 받는 기업을 이런 상태에 놔둔다면, 경쟁을 통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효율성 제거를 위해 국내 대기업에게 수출을 장려하고,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추가적인 조직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각주:6]은 저서 『폴트라인』을 통해 조직자본 개념과 후발 산업국가가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채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도국의 경우, 성장 초기에 투입되는 대규모 물적 자본을 효율적으로 분배 · 활용하는데 필요한 조직적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고속 최첨단 기계를 구입한 후, 똑똑한 직원을 뽑아 그것을 작동하도록 하면 그것으로 다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 기계를 정말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계 작동 전문 근로자 등을 위시해 그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만들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기계를 구입했다면, 그 기계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의 원료를 대줄 확실한 공급처를 확보해야 하고, 그 기계로 생산된 제품의 판매처도 확보해야 하며, 그 기계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제품 종류도 결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계 관리와 수리에 필요한 하자 보수팀, 공급 업체를 관리하는 구매팀, 바이어를 상대하는 마케팅팀, 야간에 시설을 감시할 경비팀 등 기계를 구입해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도요타 자동차와 소규모 정비 업체와의 조직적 차이 또는 변두리에 위치한 개인 병원과 대규모 메이요 클리닉과의 조직적 차이는 말 그대로 엄청나다. 그런데 바로 그 조직적 차이가 대규모 첨단 기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결정한다. (...)


문제는 조직 자본이었다. 후발 경제 개발국들은 중소기업 수준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신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들 후발 경제 개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이들 국가에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졌다. 국영 기업체를 설립해 경제 활동을 이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든가, 아니면 시장 경제를 조성하되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소수 대기업에만 특혜를 주는 방법으로 산업 경쟁력을 살리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후발 경제 개발국이 어떠한 선택을 했던 간에 국가 전체의 저축은 정부의 입김대로 움직이는 대형 금융기관을 통해 소수 대기업으로 들어갔다.  (...)


국영 기업체를 통한 경제 성장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상당수 국가의 정부는 조직 자본을 민간 분야에서 형성하되 국내 최고 기업을 선정해 이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부 특혜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국가는 신규 업체의 시장 진출 억제, 기업체에 대한 세제 햬택 등 다양한 특혜를 제공해 소수 민간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도록 돕고, 그렇게 창출한 수익을 산업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금융권과 소수 특혜 기업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 은행 자금이 집중적으로 (그리고 저렴하게) 이 특혜 기업으로 가도록 만든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국가는 일부 부담을 정부가 지면서까지 민간 업체에 저가로 원료를 공급하고, 외국 기업들로부터 국내 업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고관세를 부과한다. 이처럼 정부로부터 물질적 보조와 법적 보호를 받은 극소수 특혜 대기업은 급속한 성장을 하며 수익을 증대시키고 기술, 부, 조직 자본 그리고 안정성 모두를 확보하게 된다. (...)


그러나 정부가 소수 기업에게만 특혜를 부여하는 성장 전략은 상당한 문제를 유발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부패한 정부 하에서는 기업의 능력에 따라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정부 관계자의 친척이나 친구의 회사에 특혜를 부여하기 쉽다는 것이다. (...) 두번째 문제는 가계 소비를 정부가 별로 중시하지 않고, 그 결과 내수 소비 수준이 극도로 낮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비효율적인 국내 기업을 길들이면서 동시에 상품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국내 대기업에게 수출을 장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국내 기업은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어서 좋고, 동시에 더 넓은 세계 시장에서 활동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서 좋다. (...) 이러한 직간접적인 각종 혜택을 통해 개도국 기업의 효율성은 마침내 향상된다.


라구람 라잔. 2011. "경제성장을 위한 수출". 『폴트라인』. 106-123    


조직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이 부작용을 초래하니, 단순히 내수주도형 성장모델로 전환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위에서 살펴봤듯이, 투자중심 성장을 비판한 마이클 페티스 Michael Pettis 교수의 저서 제목은 『The Great Rebalancing』 이다. 말그대로 "(수출지향적인) 투자중심 성장에서 (내수지향적인) 소비중심 성장 Consumption-driven Growth로 균형을 재조정 Rebalancing 해야한다"는 것이다.[각주:7] [각주:8] [각주:9]  


그렇지만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은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을 채택했던 국가가 내수주도형 경제모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라고 말한다.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수출 지향적 성장 전략을 통해 부국이 된 국가들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국내 시장 성장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갔지만 결국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수출에 매달리는 동안 국내 최종 소비 증진에 필요한 물길이 모두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은행은 국내 시장을 외국 경쟁 업체로부터 보호하고, 소수 특혜 수출 업체들만 지원하는 관행에 익숙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정부가 은행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대출 과정을 자유화하는 조처를 취해도 은행은 현실에 적응을 제대로 못했고, 정부 기대에도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


소비자도 변화에 익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본 소비자들은 오랫동안 지출에 신중을 기해왔다. 그런 만큼 소매 금융이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미국의 가계와 달리 일본 가계는 무엇인가를 구입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다. 특히 노인 세대는 전쟁 후 굶주리고 불안했던 기억과 저축이야말로 애국의 길이라고 배웠던 과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라구람 라잔. 2011. "경제성장을 위한 수출". 『폴트라인』. 132-134




※ 8·3 사채동결조치를 통해 과잉투자의 문제를 해결한 한국경제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 의 주장처럼,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에서 내수주도형 경제모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자본투입의 증가-다르게 말해 과도한 투자 over-investment-가 초래하는 부작용을 어떻게 개선했을까? 1972년 한국정부는 '기업들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 이다. 8·3 사채동결조치는 '부채상환 동결 또는 탕감 · 대출 이자율 인하 · 만기구조 재조정' 을 담은 정책이었다. 


명색이 시장경제를 하겠다는 나라에서 기업 부채를 동결 또는 탕감 해준다는 것은 생각조차 어려운 극약처방이었다. 전경련 김용완 회장은 여러 차례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기업들의 빚더미 현실을 토로하고 특단의 구제조치를 요청했다. 자금 지원이나 부채상환 연기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빚더미에 깔려 있는 기업들의 사채를 아예 동결시켜달라는 것이었다. (...)


대통령은 고심 끝에 사채동결로 결심했다. 재계 총수 김용완의 요청으로 비롯된 것이었고, 여러 의견을 청취한 끝에 내린 박정희의 최종 결정이었다. 1971년 9월 김용환(외자관리비서관)을 팀장으로 하는 실무반이 편성됐고, 이듬해 8월 3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사채동결조치를 발표하게 된다. 통화개혁 못지않은 철통 보안 속에 꼬박 1년 동안 사전준비 작업을 거쳤다. 


1주일 동안 신고받은 사채규모는 3천5백억 원 수준이었다. 이것을 금리 월 1.35%에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하는 것이 8·3조치의 기본골간이다.


이장규. 2012. "8·3 사채동결조치". 『대통령의 경제학』. 164-165


당시 경제상황을 드러내주는 구체적인 자료는 조윤제, 김준경의 보고서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에서 찾을 수 있다. (Table B)의 대출이자율 Nominal interest rates on general loan 을 살펴보면, 1960년대 동안 20%가 넘는 높은 이자율이 지속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당시 기업들은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과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으로 인해) 자산대비 부채비율 Debt/equity ratio 이 높았던 상황이다. (Table C)를 통해서 1960년대 동안 기업의 부채비율이 증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도한 부채를 지니고 있는데 이자율마저 높다? 당연히 기업의 비용부담이 커지게 된다. (Table C)를 살펴보면 이 기간동안 기업들의 매출대비 이익비율 Net profit/net sales ratio 이 하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업들은 부채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수익성마저 악화되는 상황이다. 은행이 (국가의 지시를 받아) 기업에게 해준 대출은 고스란히 부실채권 NPL, Non-Performing Loans 이 된다. 1972년, 보다못한 정부가 8·3 사채동결조치를 통해 대출이자율을 낮추고 기업들의 부채를 탕감해준다. 


위에 첨부된 (Table B)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1972년을 기점으로 대출이자율이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Table C)에 나오듯이, 1972년을 기점으로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하락하고, 수익성도 개선되었다. 그 결과, 부실채권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Table D)를 보면, 1972년을 기점으로 전체 대출 중 부실채권의 비율 Share of NPLs 이 급속도로 줄어들어든 모습이 보인다.    



high interest rates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1960s squeezed corporate profitability and retained earnings. (...) Continuing high domestic interest rates, devaluation, and tight credit control hit domestic firms hard, especially those that borrowed from abroad. The world economic recession made things worse. The net profit ratio of the manufacturing sector as a whole fell sharply (Table C). Nonperforming loans in the bank started to pile up. (...)


By 1971, the number of bankrupt enterprises that had received foreign loans climbed to 200; Korea faced the first debt crisis. (...) After consultation with leading businessmen, the government concluded that some extraordinary measures were necessary to cushion the financial burden of the debt-ridden firms, and started to prepare the measure in complete secrecy.


The government issued its Economic Emergency Decree in August 1972 to bail out the debt-ridden corporate sector. It included an immediate moratorium on the payment of all corporate debt to the curb lenders and extensive rescheduling of bank loans at a reduced interest rate.  (...)


These measures had considerable repercussions throughout the economy, shifting the crushing burden of the corporate sector's foreign debt service payment to domestic curb lenders and bank depositors. The interest burden on business firms was lightened significantly. The ratio of interest expenses to sales volume for manufacturing firms dropped sharply from 9.9 percent in 1971 to 7.1 percent in 1972, and then to 4.6 percent in 1973 (Table C).


As the financial situation of the corporate sector improved, so did the nonperforming loan problem of the banks. The share of nonperforming loans in commercial banks fell from 2.5 percent in 1971 to 0.92 percent in 1973, and to 0.6 percent in 1974 (Table D).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108-113 (PDF 파일 기준)




※ 8·3 사채동결조치가 낳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 1997 외환위기의 원인


8·3 사채동결조치는 기업들의 부담을 대출자와 예금자에게 떠넘긴 정책이었다. 게다가 기업들과 금융기관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를 유발하는 정책이다. 정부의 사채동결조치를 경험한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를 지더라도 정부가 빚을 탕감해줄 것" 이라고 생각해 또다시 과잉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은행들도 "아무에게나 대출을 해서 부실채권이 되더라도 정부가 해결해 줄 것" 이라고 생각해, 대출과정에서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하지 않을 것이다.  


These measures had considerable repercussions throughout the economy, shifting the crushing burden of the corporate sector's foreign debt service payment to domestic curb lenders and bank depositors. (...)


this drastic measure aggravated the moral hazard issue for corporate firms and banks. The government's risk partnership with highly leveraged firms that motivated the 1972 measure encouraged firms to depend on the government for support, without paying sufficient attention to their project selection. The efficiency of the banking system was also hampered, because once rescued by the government, it had little incentive for serious credit evaluation and monitoring.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113 (PDF 파일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8·3 사채동결조치를 통해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했다.  이장규는 "경제원칙은 크게 훼손시켰으나 비싼 대가로 경제위기를 넘긴 셈" 이라고 말한다.


1주일 동안 신고받은 사채규모는 3천5백억 원 수준이었다. 이것을 금리 월 1.35%에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하는 것이 8·3조치의 기본골간이다. 해당기업에는 엄청난 혜택이요, 반면에 사채를 빌려준 쪽에서는 청천벽력이었다. 그 결과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1971년 394%에서 1972년 288.8%로 크게 떨어졌다. 성장률은 1972년의 6.5%에서 1973년은 14.8%로 껑충 뛰었다. 경제원칙은 크게 훼손시켰으나 비싼 대가로 경제는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이장규. 2012. "8·3 사채동결조치". 『대통령의 경제학』. 165


그러나 8·3 사채동결조치는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했을 뿐이었다.  8·3 사채동결조치가 낳은 은행과 기업들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로 인해 한국경제는 1997년에 큰 문제를 겪게 된다.


안그래도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과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으로 인해 은행들은 단지 한국주식회사의 재무파트일 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나서서 기업들의 부실채권마저 없애줬다. 이제 은행들은 "은행 자산과 부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보다 정부의 지시를 따르는 게 경영평가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행 본연의 임무인 신용평가 · 리스크 관리는 중요치 않다. 은행의 느슨한 대출로 인해 부실채권은 또다시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하는 은행들은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용금고·단자회사 등 비은행금융권이 커지고 만다. 비은행금융권은 만기구조가 짧고 금리가 높기 때문에 경제전체의 불안정성을 키우게 된다.   


Korea relied on credit interventions too heavily and for too long as an industrial policy instrument. The banking system bore the brunt of this strategy. The government used the banking system as a treasury unit to finance development projects and to manage risk sharing in the economy.


Bankers were treated as civil servants. Their performance was evaluated according to whether they complied with government guidance, rather than whether they managed their assets and liabilities efficiently. Commercial banks in Korea were involved so heavily in directed credit progrmas that they almost functioned as development banks. In the process, they incurred large nonperforming loans (NPLs) (Table 19), which again had to be covered with government support. 


Consequently, banks lagged behind the development of the real sector and could not effectively meet its demand for financial servies; the banks thus lost market share to other financial institutions, such as Non-Banking Financial Instutions(NBFIs), which could operate more feely and thus prolifereatd. (Box 3).  (...)


But their expansion also ecreated problems. Because they are relatively small institutions and provide mostly short-term financing, their growth shortened the average maturities of loans, and the thwarted banks from assuming a "corporate governance" role - which many recognize is the strength of relationship banking, such as the Japanese "main banking systme."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115-119 (PDF 파일 기준)


  • 1971~75년 동안 부실채권 비중은 1.3%에 불과했지만, 그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한국경제에서 은행부문은 신용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비은행부문이 한국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한국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를 한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 ·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 8·3 사채동결조치는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 저해 · 제2금융권 팽창 · 은행과 기업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조장 · 잠재적 부실채권 증가 · 재벌에 경제력 집중 · 재벌의 과다차입 이라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낳았다. 이 문제는 1997 외환위기의 원인과도 이어진다. 1997년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과 재정경제원 차관 강만수는 "8·3 사채동결조치는 도덕적 해이를 낳았고, 이는 1997 외환위기의 원인" 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빚을 겁내지 않게 만든 정책이 72년의 이른바 '8·3조치'로 불린 대통령 긴급명령이었다.


60년대 후반에 경쟁적으로 무분별하게 도입한 차관 자금으로 건설한 공장들이 70년대 초의 세계적인 불경기로 일시에 부실기업 덩어리로 변하게 되어, 당시 경제가 좌초 위기에 몰려 있었다. 당시 기업들은 사채를 많이 얻어쓰고 있었다. 이를 구제하기 위해 72년 8월 3일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서 기업에 대한 사채 금리를 낮추고 원리금 상환 기간을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국가가 개인간의 대차 관계를 획일적으로 조정해서 기업의 부담을 경감해준 것이다.


빚에 짓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기업들로서는 절망의 나락에서 일거에 벗어날 수 있었다. 더욱이 8·3조치 직후 1차 석유파동으로 석유값을 비롯해서 모든 물가가 뛰어 전세계적인 인플레로 엄청난 이익을 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앉은자리에서 빚 부담은 가벼워지고 설비 가치는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다. 빚이 많을수록 혜택 또한 컸기 때문에, 빚을 겁내지 않는 풍조가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8·3조치는 '대마불사의 신화'라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게 한 결정적인 정책이 되었던 것이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180-181


1972년 '8·3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기업의 이자부담이 대폭 줄어듦으로써 경쟁력은 급속히 회복되어 경상수지 적자는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8·3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우리기업은 부채를 겁낼 줄 모르고 몸집을 불리는 '차입경영'과 '그룹경영'으로 치달았고 자본을 충실히 하고 자기 사업에만 집중하던 우량기업들이 오히려 시장경쟁에서 밀려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경제는 구조조정에 의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사채동결이라는 편법에 의존함으로써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87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




<참고자료>


박병영. 2003. 1980년대 한국의 개발국가의 변화와 지속 - 산업정책 전략과 조직을 중심으로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2013.08.18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조장옥 교수, 거시경제학 수업자료


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 2013.06.07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조태형, 김정훈, Paul Schrever.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 <한국은행 이슈노트>. 2012.06.30


Michael Pettis. 2013. 『The Great Rebalancing』


Paul Krugman. "Hitting China's Wall". <New York Times> . 2013.07.18 


이종화. "Asia's Rebalancing Act". <Project Syndicate>. 2013.09.23


이장규. 2012. 『대통령의 경제학』


라구람 라잔. 2011.『폴트라인』.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1. 박병영.2003."1980년대 한국의 개발국가의 변화와 지속 - 산업정책 전략과 조직을 중심으로" [본문으로]
  2. '특정 기업에 금융자원을 몰아주고, 그 기업은 세계시장에 진출해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는 것은 마치 '국가 간 경쟁'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신흥국이 '수출주도형 성장'을 경제발전전략으로 채택하는 이유는 경제운용에 필요한 조직자본Oraganizational Capital을 획득하기 위해서이지, '다른나라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본문으로]
  3. 폴 크루그먼은 1994년 에 기고한 "The Myth of Asia's Miracle" 을 통해 동아시아 경제성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혹자는 이에 대해 "크루그먼이 3년 뒤에 있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 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크루그먼은 단지 '경제성장의 방법적 측면'에서 동아시아의 성장방식을 비판하는 것일뿐,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은 아니다. 크루그먼 본인 또한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은 아니다" 라고 밝히고 있다. 크루그먼은 1998년에 쓴 "What Happened to Asia"에서 "we expected the longer-term slowdown in growth to emrge only gradually" 라고 말했다. [본문으로]
  4. 보고서는 최근 5년 동안에는 생산성 향상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다고 덧붙인다. "요소투입과 생산성 간의 상대적 중요성의 역전이 발생하여 최근 5년-2006년~2010년-동안에는 생산성 증가가 소득성장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최근 들어 우리나라 경제가 요소투입형 성장에서 생산성주도형 성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7쪽-10쪽) [본문으로]
  5. '저축-투자=순수출' 이라는 개념을 아는 분들은 "수출을 해야하는데 왜 투자를 장려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가는 수출주도형 성장을 위해 금융자원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은행저축 이외의 다른 금융서비스 이용도 규제한다. 게다가 무역수지 흑자달성이 아니더라도, 무역규모가 증가하는 것 자체가 경제성장을 드러내준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무역은 다른나라와의 경쟁이 아니다. 따라서 '무역수지 흑자' 자체를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 라고 생각해 무역수지 흑자 그 자체에 연연하면 안된다. [본문으로]
  6. 前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現 인도중앙은행 총재. [본문으로]
  7. 마이클 페티스 Michael Pettis 교수는 "현재 중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소비중심 성장으로의 재조정 Rebalancing" 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자 Paul Krugman과 이종화 또한 중국경제의 Rebalncing을 주장하고 있다. [본문으로]
  8. Paul Krugman. "Hitting China's Wall". . 2013.07.18 http://www.nytimes.com/2013/07/19/opinion/krugman-hitting-chinas-wall.html [본문으로]
  9. 이종화. "Asia's Rebalancing Act". . 2013.09.23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the-risks-for-asian-growth-from-china-s-slowdown-by-lee-jong-wh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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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vs성장 ③]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긴축vs성장 ③]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Posted at 2013. 4. 19. 23:44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4월 15일, 논문 한편이 발표되자 경제학계가 술렁거렸다. Thomas Herndon, Michael Ash, Robert Pollin이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과다한 정부부채가 항상 경제성장을 가로막을까? -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트에 대한 비판 Does High Public Debt Consistently Stifle Economic Growth? A Critique of Reinhart and Rogoff"


이 논문에 무슨 내용이 담겨져 있길래 경제학계가 술렁거렸을까? 그리고 논문의 제목에 나오는 Reinhart와 Rogoff는 또 누구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유럽 재정위기


2008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그리스 · 포르투갈 ·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의 채권금리가 급상승하고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급증하면서 유럽재정위기가 발생한다.


  • 그리스 · 아일랜드 · 포르투갈 · 스페인 · 이탈리아의 채권금리가 2010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상승


  • 그리스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008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상승하는 모습




  • 스페인 · 아일랜드 · 시프러스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또한 2008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 데이터 출처 : Eurostat 
  • 그래픽 출처 : Wikipedia - "European sovereign-debt crisis

과도한 정부부채가 경제침체를 초래하는 경로는 크게 세가지이다. 

  1.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한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
  2. 국가경제의 신용이 훼손되어 발생하는 채권금리 상승. 그리고 이로 인한 부채이자 부담 증가
  3. 과도한 정부부채를 본 경제주체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그 결과 경제주체들의 기대심리confidence 훼손   

과도한 정부부채 → 인플레이션, 채권금리 상승으로 인한 이자부담 증가, 기대심리confidence 훼손 → 경제침체, 저성장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즉각적으로 생각나는 해답은 정부부채 축소다. 

이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와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가 2010년에 발표한 논문 "부채시대의 성장 Growth In a Time of Debt" 이다.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와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이하 R-R)는 이 논문을 통해 


"과거의 사례를 살펴본 결과,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90% 이상인 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90% 미만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90%는 일종의 Tipping Point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따르면,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일정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거시경제의 주요목표가 된다.  



< Carmen Reinhart, Kenneth Rogoff. 2010. "Growth In a Time of Debt". 25p >


R-R의 논문에 나온 이 표를 보면,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Debt/GDP-이 90% 이상인 Advanced economies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0.1%를 기록한 것을 알 수 있다. 




 재정긴축Austerity 정책을 시행하는 유럽


유럽의 경제정책 결정권자들은 R-R의 주장에 따라 재정긴축 정책을 시행한다. 모든 경제정책 결정권자들이 R-R의 주장에 따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재정긴축 정책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논거가 바로 R-R의 논문이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부위원장인 Olli Rehn은 "중요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부부채가 90% 수준에 달하면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되고 수년간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된다" 라고 말했다. Olli Rehn 뿐 아니라 미국 공화당 부통령 지명자인 Paul Ryan 등 재정긴축 정책 옹호론자들은 R-R의 논문을 인용하여 "현재의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부채 축소가 필요하다" 라고 주장해왔다.


It is widely acknowledged, based on serious research, that when public debt levels rise about 90% they tend to have a negative economic dynamism, which translates into low growth for many years. 

Olli Rehn


Tim Fernholz. "How influential was the Rogoff-Reinhart study warning that high debt kills growth?". 2013.04.16 에서 재인용



< 그래픽 출처 : 강유덕. "최근 유로존 내 경상수지 격차 축소의 배경과 전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3.01.10. 11쪽>


위 그래프를 보면 2009년-2010년을 기점으로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등의 정부지출 액수가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정부지출 삭감 등의 재정긴축을 시행했으니 정부부채가 줄어들고, 채권금리가 하락하고, 기대심리confidence가 상승했을까? 아니다. 




※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긴축정책




< 원 데이터 출처 : Eurostat. 데이터 가공 출처 : Google Public Data   >


재정긴축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의 실질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 데이터 출처인 Eurostat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그리스는 -6.4%, 스페인은 -1.4%, 포르투갈은 -3.2%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 원 데이터 출처 : Eurostat, 데이터 가공 출처 : Google Public Data >


반면, 실업률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2012년 10월 기준, 그리스의 실업률은 26.8%, 스페인은 26.6%, 포르투갈은 16.3%의 실업률을 기록한다. 


긴축정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긴축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행동에 나서게 된다.


<출처 : Anti-Austerity Strike in Greece 2011.10.19 >


<출처 : Strikes Against Austerity in Europe 2012.11.14>



무엇이 문제일까? 과도한 정부부채가 문제라서 재정긴축을 시행했는데, 왜 경제가 살아나지 않을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과도한 정부부채는 인플레이션 · 채권금리 상승 · 기대심리confidence 훼손을 불러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거꾸로 생각하면, 긴축정책은 인플레이션 · 채권금리 상승 · 기대심리confidence 훼손을 막기 위해 시행되는 정책일 뿐이다. 긴축정책의 효과에 실업문제 해소는 없다. 아니, 오히려 실업률을 증가시킨다. 경제침체 상황에서 정부지출은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는데, 정부지출을 축소시켰으니 말이다


케인즈주의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문제가 아니라 높은 실업률이 문제! 부채에 신경쓰기보다 실업률을 낮추는 데 신경써야 한다." 라고 줄곧 주장해왔다. 이를 위해서는 긴축정책Austerity이 아니라 정부지출 증가, 통화량 공급 확대 등의 확장정책Expansionary Policy을 써야한다.


much of the discussion in Washington had shifted from a focus on unemployment to a focus on debt and deficits.


The strange thing is that there was and is no evidence to support the shift in focus away from jobs and toward deficits. Where the harm done by lack of jobs is real and terrible, the harm done by deficits to a nation like America in its current situation is, for the most part, hypothetical. The quantifiable burden of debt is much smaller than you would imagine from the rhetoric, and warnings about some kind of debt crisis are based on nothing much at all. In fact, the predictions of deficit hawks have been repeatedly falsified by events, while those who argued that deficits are not a problem in a depressed economy have been consistently right.


Paul Krugman. 2012. "But What about the Budget Deficit?". 『End This Depression Now!』. 130-131


경제학자들은 유럽경제위기의 처방으로 긴축정책이 옳으냐, 확장정책이 옳으냐. 

즉, 과도한 정부부채, 채권금리 상승,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vs 높은 실업률과 디레버리징에 의한 수요부족이 문제다 로 나뉘어서 논쟁을 벌여왔다. 




※ 긴축정책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논문이 데이터 조작이라면?


그런데 이게 웬걸. 2013년 4월 15일, 한 논문이 발표되자 경제학계가 술렁거렸다. 맨 처음에 언급했던 Thomas Herndon, Michael Ash, Robert Pollin(이하 HAP)의 "과다한 정부부채가 항상 경제성장을 가로막을까? -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트에 대한 비판 Does High Public Debt Consistently Stifle Economic Growth? A Critique of Reinhart and Rogoff" 이라는 논문 때문이다.


HAP는 논문을 통해 "R-R의 2010년 논문의 데이터가 조작됐다" 라고 주장했다. 

R-R의 논문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크게 3가지.


연도별 데이터 일부 누락

- GDP 대비 부채비율이 90%가 넘으면서 양(+)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던 네 국가들의 연도별 데이터 일부가 제외되어 있다.

- 네 국가의 누락된 연도별 데이터를 포함하면, (GDP 대비 부채비율이 90% 이상이던 시절) 네 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7.6% 에서 2.58%로 상승


잘못된 가중치 반영

- 영국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90%를 기록하면서 19년을 보냈고, 이 시기 평균 경제성장률은 2.4%

- 뉴질랜드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90% 1년을 보내면서 기록한 경제성장률은 -7.6%

- 그렇다면 {(19*2.4)+(1*-7.6)}/20 으로 연도를 가중평균하여 평균 경제성장률을 구하는 게 정상.

- 그런데 R-R은 그냥 {2.4+(-7.6)}/2 으로 계산함


엑셀 계산 오류

- 엑셀의 30열~49열에 위치한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을 합쳐 평균을 내야하는데, 45열~49열에 위치한 국가들을 엑셀 계산에서 누락

- 그런데 하필이면, 45~49열에 위치한 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2.6% 이다.


<출처 : Mike Konczal. "Researchers Finally Replicated Reinhart-Rogoff, and There Are Serious Problems". 2013.04.16 >


Thomas Herndon, Michael Ash, Robert Pollin이 이러한 오류들을 시정하여 계산해본 결과,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90% 이상을 기록했던 국가들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0.1%가 아니라 2.2%"로 드러났다.



<출처 : Jared Bernstein. "Not to Pile On, But…Correcting Reinhart and Rogoff". 2013.04.16 >




※ R-R의 반론과 HAP의 재반박


세계 경제학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재정긴축 정책을 뒷받침하던 강력한 논거가 데이터 조작이라고? 

HAP의 주장에 대해 R-R은 다음날(4월 16일)에 즉각 반박글을 올렸다. R-R은 이렇게 반박한다.


  • (어쨌든)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지 않느냐? 불과 1%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도한 부채를 기록했던 국가들은 평균 20년 동안 그 상황을 지속했다. 20년 동안의 연도별 경제성장률 1% 차이는 매우 크다.
  • 우리는 2010년 논문을 통해 과도한 정부부채와 경제성장률 간의 관계association만 이야기 했지 인과관계causality를 이야기한 적은 없다.
  • 과도한 정부부채가 낮은 경제성장률을 초래한다는 사실은 다른 논문들에서도 입증되었다.
Note that because the historical public debt overhang episodes last an average of over 20 years, the cumulative effects of small growth differences are potentially quite large. It is utterly misleading to speak of a 1% growth differential that lasts 10-25 years as small.

(...)

By the way, we are very careful in all our papers to speak of “association” and not “causality” since of course our 2009 book THIS TIME IS DIFFERENT showed that debt explodes in the immediate aftermath of financial crises.

(...)

Lastly, our 2012 JEP paper cites papers from the BIS, IMF and OECD (among others) which virtually all find very similar conclusions to original findings, albeit with slight differences in threshold, and many nuances of alternative interpretation.. 

Carmen Reinhart, Kenneth Rogoff. "Reinhart-Rogoff Initial Response". <Financial Times>. 2013.04.16

  


4월 17일, HAP는 R-R의 주장을 다시 반박하는 글을 기고했다. HAP는 이렇게 말한다


  • 우리의 논문은 낮은 경제성장률이 과도한 정부부채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물음을 던져야 할 필요성을 드러내준다.
  • 사람들은 그때그때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그게 핵심이다! 미국과 유럽이 금융위기의 여파로 개인자산가격이 급락하고 소비가 줄어든 때에, 정부의 적자재정 정책은 경제를 수렁에서 건져내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과도한 정부부채는 금융위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 정부의 적자지출은 대규모 실업과 싸울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Our evidence shows that one needs to ask these and similar questions, including whether slow growth was the cause or consequence of higher public debt, before we can draw meaningful conclusions.


(...)


Of course, one could say that these were special circumstances due to the 2007-9 financial collapse and Great Recession. Yet that is exactly the point. When the US and Europe were hit by the financial crisis and subsequent collapse of private wealth and spending, deficit-financed government spending was the most effective tool for injecting demand back into the economy. The increases in government deficits and debt were indeed historically large in these years. But this was a consequence of the crisis and a policy tool for moving economies out of the deep recession. The high levels of public debt were certainly not the cause of the growth collapse. 


(...) 


We are not suggesting that governments should be free to borrow and spend profligately. But government deficit spending, pursued judiciously, remains the single most effective tool we have to fight against mass unemployment caused by severe recessions.


Robert Pollin, Michael Ash. "Austerity after Reinhart and Rogoff". <Financial Times>. 2013.04.17




※ 과도한 정부부채는 경제위기의 원인일까 결과일까?


그 사이, Arindrajit Dube는 R-R의 논문 오류에 쐐기를 박는 자료를 내놓는다. 


<출처 : Arindrajit Dube. "Reinhart/Rogoff and Growth in a Time Before Debt". 2013.04.17 > 



위에서 언급했듯이, R-R은 반박문을 통해 "우리는 2010년 논문을 통해 과도한 정부부채와 경제성장률 간의 관계association만 이야기 했지 인과관계causality를 이야기한 적은 없다" 라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관계association가 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GDP 대비 부채비율이 높아서 경제성장률이 낮은 것일까?"

"경제성장률이 낮기 때문에 GDP 대비 부채비율이 높은 것일까?"


Arindrajit Dube는 로고프-라인하트의 논문 데이터를 이용하여 분석을 했다. 그 결과가 위에 나온 그래프이다. 


GDP 대비 부채비율과 다음Next 3년간의 경제성장률 

GDP 대비 부채비율과 지난Last 3년간의 경제성장률


그래프에서 볼 수 있다시피 GDP 대비 부채비율과 지난Last 3년 간의 경제성장률이 더 유의미한 관계association을 띄었는데, 이는 낮은 경제성장률 → GDP 대비 부채비율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Arindrajit Dube는 "GDP가 하락하면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한다. 게다가 실업보험 등 자동안정화 기능을 하는 정부지출은 경제위기시 증가한다." 라고 지적한다.


RR state that they were careful to distinguish between association and causality in their original research. Of course, we would only really care about this association if it likely reflects causality flowing from debt to growth (i.e. higher debt leading to lower growth, the lesson many take from RR's paper).


While it is difficult to ascertain causality from plots like this, we can leverage the time pattern of changes to gain some insight. Here is a simple question: does a high debt-to-GDP ratio better predict future growth rates, or past ones?  If the former is true, it would be consistent with the argument that higher debt levels cause growth to fall. On the other hand, if higher debt "predicts" past growth, that is a signature of reverse causality.


(...)


As is evident, current period debt-to-GDP is a pretty poor predictor of future GDP growth at debt-to-GDP ratios of 30 or greater—the range where one might expect to find a tipping point dynamic. But it does a great job predicting past growth.

 

This pattern is a telltale sign of reverse causality.  Why would this happen? Why would a fall in growth increase the debt-to-GDP ratio? One reason is just algebraic. The ratio has a numerator (debt) and denominator (GDP): any fall in GDP will mechanically boost the ratio.  Even if GDP growth doesn’t become negative, continuous growth in debt coupled with a GDP growth slowdown will also lead to a rise in the debt-to-GDP ratio.


Besides, there is also a less mechanical story. A recession leads to increased spending through automatic stabilizers such as unemployment insurance. And governments usually finance these using greater borrowing, as undergraduate macro-economics textbooks tell us governments should do. This is what happened in the U.S. during the past recession. For all of these reasons, we should expect reverse causality to be a problem here, and these bivariate plots are consistent with such a story.


Arindrajit Dube. "Reinhart/Rogoff and Growth in a Time Before Debt". 2013.04.17


이러한 사실은 최근 유럽경제위기에서도 드러나는데, 2008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유럽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안정적이었다. 앞에서 봤던 그리스 · 스페인 · 아일랜드 · 시프러스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앞에서는 "2008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그리스 · 포르투갈 ·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의 채권금리가 급상승하고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급증하면서 유럽재정위기가 발생한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강조를 해야하는 건 "2008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그리스 · 포르투갈 ·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의 채권금리가 급상승하고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급증하면서 유럽재정위기가 발생한다." 였다.


2008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부동산시장이 붕괴하고 유로존의 근본적 결함[각주:1] 문제가 대두되면서 남유럽의 GDP 대비 부채비율이 급증한다.


Arindrajit Dube가 언급했듯, 낮은 경제성장률이 GDP 대비 부채비율을 높이는 경로는 크게 두가지.


  1. "GDP 대비" 부채비율이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낮으면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한다.
  2. 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는 정부지출이 급증한다.

여기에 더해, 유럽경제의 경우 무너질 위기에 처한 금융기업을 구제하느라 공적자금을 끌어다 쓴 것도 포함하면, 2008년을 기점으로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급증한 것은 당연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부채에 대한 관점 자체가 문제다. 케인즈주의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과도한 부채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라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리고 "재정긴축 정책을 옹호해왔던 정책결정권자, 정치인, 학자들은 사회보장지출을 삭감하기 위해 경제위기와 긴축이론을 이용한 것 아니냐" 라고 비판한다. 




※ 경제학자의 역할


경제학은 학문의 특성상 실제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어느 학자의 경제이론에 의해 정책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실제로 집행된다. 아서 래퍼Arthur Laffer의 래퍼 곡선Laffer Curve 이론[각주:2]에 의해 소득 상위계층에 대한 세금 인하가 실시된 것이 대표적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때, 우리나라에 많은 변화가 생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경제의 근본이 문제여서 경제위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우리나라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발생한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과 서구 국가들은 "아시아 자체가 문제" 라는 논리로 문제에 접근했고, 경제위기 와중에 고금리 · 재정긴축 · 구조조정 등의 강도높은 긴축정책이 시행되었다. 


물론, 그 당시 한국 금융권은 제대로 된 신용평가 없이 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기업은 회계조작이 만연하는 등의 문제가 있긴 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단순한 유동성 문제였기 때문에, 일단 유동성 문제를 해결한 뒤 개혁에 나설 수도 있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경기변동의 진폭을 줄이고, 대량해고를 막을 수도 있었다.    


현재의 유럽경제가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문제 때문에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자유롭게 구사하기 어렵긴 하지만, 긴축정책이 아니라 확장정책을 씀으로써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피해가 돌아가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학자의 잘못된 논문에 기반해서 재정긴축을 쓴 결과 경제위기 해소는 커녕 실업률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백번 양보해서 R-R의 주장처럼 그들이 과도한 정부부채와 낮은 경제성장률 간의 인과관계causality가 아니라 단순한 관계association을 제시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2011년 미국의 부채천장Debt Ceiling 논쟁 당시, 과도한 정부부채는 경제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니 부채감축에 나서야한다 라고 의원들에게 주문했었다;;) 


다시 말하지만, 경제학은 학문의 특성상 경제이론이 실제 정책으로 만들어지고 집행되면서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에게 보다 엄격한 기준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참고자료>


Carmen M. Reinhart, Kenneth S. Rogoff. 2010. "GROWTH IN A TIME OF DEBT"

- 케네스 로고프와 카메론 라인하트의 2010년 논문


Thomas Herndon, Michael Ash, Robert Pollin. 2013.04.15 "Does High Public Debt Consistently Stifle Economic Growth? A Critique of Reinhart and Rogoff"

- 윗 논문을 비판하는 Herndon, Ash, Pollin의 논문


Carmen M. Reinhart, Kenneth S. Rogoff. 2013.04.16. "Reinhart-Rogoff Initial Response". <Financial Times>

- HAP의 비판을 반박하는 R-R


Michael Ash, Robert Pollin. 2013.04.17. "Austerity after Reinhart and Rogoff". <Financial Times>

- R-R의 반박을 재반박하는 Ash와 Pollin


Mike Konczal. "Researchers Finally Replicated Reinhart-Rogoff, and There Are Serious Problems". 2013.04.16

- HAP의 논문을 요약해놓은 글. 


Arindrajit Dube. "Reinhart/Rogoff and Growth in a Time Before Debt". 2013.04.17

- 과도한 정부부채와 낮은 경제성장률의 뒤바뀐 선후관계를 지적하는 글. R-R의 논문제목을 비꼬아서 "부채 이전 시대의 성장" 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Reinhart and Rogoff: your essential reading list". <Financial Times>. 2013.04.17

- R-R 논쟁과 관련 읽을만한 글들을 모아놓은 <Financial Times>


Tim Fernholz. "How influential was the Rogoff-Reinhart study warning that high debt kills growth?". 2013.04.16

- 정치인들에게 긴축을 주문했던 R-R, R-R의 논문을 인용하여 긴축정책을 옹호했던 정치인들


Dean Baker. "How Much Unemployment Was Caused by Reinhart and Rogoff's Arithmetic Mistake?". 2013.04.16

- R-R의 논문에 근거한 긴축정책이 끼친 악영향을 비판하는 Dean Baker


Jared Bernstein. "Not to Pile On, But…Correcting Reinhart and Rogoff". 2013.04.16


"The 90% question". <The Economist>. 2013.04.17

- 경제학자들에게 보다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The Economist>


Paul Krugman. "The Excel Depression". 2013.04.18

- 칼럼을 통해 R-R의 논문을 비판하는 Paul Krugman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2012.10.20

- 2012년 10월, IMF는 세계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재정정책의 승수가 1 이상" 이라고 말하며 긴축정책을 비판했다. 이를 요약해 놓은 블로그 포스트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2012.10.21

- 부채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드러내주는 글. Paul Krugman의 주장을 요약했다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2012.10.19

- 1997년 외환위기가 단순한 유동성 위기였다고 지적하고, 그 당시 IMF의 조치가 글로벌 불균형을 가속화 시켰다는 글


Martin Feldstein. 1998. "Refocusing the IMF". <Foreign Affairs>

-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IMF가 했던 강도높은 긴축정책을 비판하는 글


고환율? 저환율? 금융시장 불안정성! 경기변동의 진폭!. 2012.11.03

-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한국에서도 급격한 자본 유출입이 일어났다는 점을 지적하는 글



  1. 단일통화의 도입으로 남유럽 국가의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한 것을 뜻한다. 이로 인해 남유럽 국가들은 수출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독일은 유로화 도입 이후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는데, 독일의 자본은 남유럽 국가로 유입되면서 남유럽 국가의 부동산가격은 급격히 상승한다. 또한, 단일통화 도입으로 남유럽 국가의 채권금리가 독일 등과 같은 수준에서 형성되면서, 남유럽국가들은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 금융위기의 여파로 부동산시장이 붕괴하자, 단일통화로 생긴 이러한 문제가 드러나게 됐다. [본문으로]
  2. 가장 어이없는 경제이론. 경제학자들은 래퍼 곡선을 개소리로 취급한다. http:/joohyeon.com/7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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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가 '주가지수 상승을 경제성장의 지표'로 나타내는 게 타당할까?언론사가 '주가지수 상승을 경제성장의 지표'로 나타내는 게 타당할까?

Posted at 2013. 3. 18. 20:51 | Posted in 경제학/일반


요근래 몇주동안 하고 있는 고민은 "주가지수를 경기호전 혹은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용하는 게 바람직할까?간단히 말해, "왜 언론사는 종합주가지수의 등락을 경기호전 혹은 침체의 지표로 사용할까?", "GDP와 주가지수는 어떠한 상관관계를 보일까?".


신문 경제면이나 방송의 경제부문 보도를 보면 주가지수 이야기를 맨 처음 꺼낸다. "오늘 종합주가지수가 2,000 포인트를 돌파하여 한국경제의 청신호를~~"  "미국 다우지수가 14,000 포인트를 돌파하여 2007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미국경제 호전을 반영하는 것으로~" 등등.


그런데 '주가지수 상승 = 경제회복 or 경제성장'으로 바라보는 게, 정확히 말해서는 '주가지수 상승 = 개개인의 번영prosperity 향상' 으로 등치시키는 게 옳을까?




● 유동성 완화 정책과 주가지수 상승


주가지수 상승이 개개인의 번영에 영향을 끼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주식가격 상승으로 인한 양도차익 실현과 배당소득 증가. 둘째는 상승하는 주가지수를 바라보는 시장참여자들의 기대심리confidence 향상각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의도하는 바에 주가지수 상승으로 인한 '자산가치 증가'와 '시장참여자들의 confidence 향상'이 들어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상승하는 주가지수는 전적으로 양적완화 정책으로 대변되는 유동성 공급 덕분이 아닐까? 


한국의 종합주가지수를 산출하는 방법은 '(현재의 시가총액 / 기준일자-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 X 100'. 기준일자의 시가총액이 대략 55조원 이었는데, 그 날 시가총액이 55조원 가량 증가하면 주가지수는 100포인트 상승하는 구조.


중앙은행의 유동성 완화정책에 힘입어 자본이 주식시장으로 쏠리게 된다면 주가지수는 상승한다. 개별 기업의 주식가격의 상대적인 수준은 그 기업의 순이익이나 미래전망이 결정해주는 것일테지만, 절대적인 수준의 결정에서 중요한 건 역시 주식시장으로의 유동성 공급.


미국 다우산업평균지수의 산출방법은 '30개 기업의 주당가격 / 일정한 제수'.


게다가 미국 다우지수는 독특한(?) 산출방식으로 인해, 30개 기업의 시가총액이 아니라 '주당 가격'이 상승하면 다우지수가 요동치는 구조. 따라서, 시가총액이 낮더라도 주당 가격이 높은 기업이 다우지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다우지수 14,000 포인트 돌파가 미국경제회복의 유의미한 지표인지" 많은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 주가지수 상승을 개개인의 삶의 번영과 등치시키는 건 잘못됐다


분명, 기업의 경영상황이나 국가,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주가지수는 하락한다. 주가지수는 현재의 경제상황 뿐 아니라 미래 경제상황을 제시해주는 지표로 쓰일 수 있다. 또한, 주가지수에는 그 국가의 금융시장 안정성이나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 등등 여러가지 변수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상황을 드러내주는 지표로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가지수 상승 = 개개인의 번영 달성" 혹은 "주가지수 상승 = 한 국가의 경제성장"으로 '등치' 시키는 건 다른 이야기. 위에서 지적했듯이,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정책이 주가지수의 절대적인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결정적인 문제는 결국 주식을 보유한 사람만이 주가지수 상승의 혜택을 본다는 사실. 


물론, 주식가격 상승으로 인해 기업이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하여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여러 경로를 거치면서 그 효과가 얼마나 보전될까? 다국적기업의 이윤 증가 → 그 기업의 주식가격 상승의 경로가 '주가지수 상승 = 한 국가의 GDP 증가 + 국민 개개인의 삶의 번영 달성'을 왜곡시키지는 않을까?




● 주가지수 대신에 실업률을 사용한다면?


주가지수 상승과 경제성장 or 삶의 번영 달성은 어느정도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것도 맞고 인과관계를 가지는 것도 맞다. 그러나 그것을 등치시켜서 보도를 하고, 주가지수 상승만이 경제성장을 드러내주는 지표라고 인식하는 건 문제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의 느끼는 체감경기를 반영하는 지표로 무엇이 있을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실업률".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약 3%. 완전고용 수준에서 달성할 수 있는 실업률이다. 2011년 기준 OECD 국가 중에서 두번째로 좋은 실업률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우리나라 실업률이 이렇게 낮은데 왜 우리의 삶은 시궁창일까? 실업률은 '(실업자수 / 경제활동참가인구수) X 100' 이기 때문에 애초에 경제활동참가율이 낮다면 의미가 없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활동 참가율 예상치는 59.3%대.)




● 실업률 측정에 문제가 있다면 고용률을 사용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고용률을 이용하면 어떨까? 2011년 기준 한국의 고용률은 63.8%. OECD 32개 국가 중 21위이다. 실업률이 두번째로 좋았던 국가가 고용률을 기준으로 하자 수직하강 하고 말았다.;;;


그런데 고용률 측정 방식도 문제가 있다. 바로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고용률은 하락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젊은 인구의 고용률은 높은 수준인데 반해 노령층의 고용률은 낮기 때문에, 고령화가 진행되어 노인인구가 많아진다면 고용률은 당연히 하락한다.


그렇다면 "가중평균 고용률"을 사용할 수 있다. 연령구조를 기준년도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즉, 현재년도의 연령별 고용률을 가지고 기준년도의 연령구조에 대입한다면, "고용률 변화의 일정한 추세"는 확인할 수 있다.




● 일자리의 질은 측정하지 못하는 고용률. 그렇다면 노동소득 분배율?


그럼에도 고용률의 근본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데, 바로 일자리의 질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소득분배를 드러내주는 "노동소득 분배율"을 사용할 수 있다.


노동소득 분배율은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 / (노동소득 + 자본소득)} X 100'로 측정가능하다. 한국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1996년 62.6%로 정점을 찍은 뒤 2011년 59%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표 또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자영업자의 소득'이다. 한국은행의 측정방식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소득은 자본소득으로 간주된다. 쉽게 말해, 자영업자의 소득이 하락하면 노동소득의 상대비중이 증가하여, 노동소득 분배율이 증가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을 노동소득으로 간주한다면 노동소득 분배율의 절대수치는 상승한다. 그러나 연도별 비교에 따른 추세를 보면, 기존측정방식의 그것에 비해 노동소득 분배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는 모습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경제학의 학문적 논의에서 금융시장이 실물경제를 얼마만큼 반영하고 있는지 여러 논의가 있다. 이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치열하다. 그런데 아직 금융경제학에 무지하여서 학문적 논의는 자세히 모르겠다. 고작 논문 몇편 읽어본 게 고작.


그러나 개인적으로 "언론사가 경제관련 보도를 할때 주가지수 상승 혹은 하락을 인용하는 것이 국민 개개인의 경제상황을 알려주는 올바른 방법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같이 읽을꺼리>


"Dow should be consigned to history". <FT>. 2013.03.06


"경제활동 참가율 50%대로 추락 전망". 2013.03.11 


황수경. 2010. "실업률 측정의 문제점과 보완적 실업지표 연구". 「한국노동경제학회」


Paul Krugman. "Constant-demography Employment". 2012.10.06 


"'사상 최악' 노동소득 분배율, 한국은행 자료엔 없는 이유". 2010.09.14



2013년 3월 18일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을 블로그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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