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에 해당되는 글 15건

  1.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4 2017.06.30
  2.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9 2017.06.29
  3.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77 2017.06.28
  4. [경제성장이론 요약]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3 2017.06.27
  5. [사라진 경제성장 ②] 자산시장 거품 없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 - 영속적인 장기침체 (Secular Stagnation) 15 2016.01.28
  6.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 11 2015.09.21
  7. [경제학원론 거시편 ④]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방법 - 높은 고용률과 노동생산성 향상 12 2015.09.21
  8. [경제학원론 거시편 ①] 거시경제학은 무엇인가 24 2015.09.21
  9. 분배정책은 성장을 가로막는가? 3 2014.02.28
  10. '성장이냐 분배냐'는 무의미한 논쟁 14 2014.01.28
  11. 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 2013.08.23
  12.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5 2013.08.18
  13. 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 9 2013.06.07
  14. 공부를 못하는 학생,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 2013.05.02
  15. The best we can say about economics is that we know what not to do 2012.07.23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Posted at 2017. 6. 30. 08:45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현실을 설명해내는 솔로우 모형

앞서 두 편의 글을 통해 솔로우 모형의 의미[각주:1]현실세계 적용 가능성[각주:2]을 살펴봤습니다. 이론은 그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이전 내용을 잠깐 다시 복습해 보도록 합시다.

솔로우 모형은 생활수준 향상을 꾀하려면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1인당 생산 수준(level)도 높아집니다. 

이때, 이제 막 자본축적을 시작한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이 한 단위 더 투입될 때마다, 생산량 증가분은 체감(diminishing)하기 때문이죠. 아직 정상상태(steady state)에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일수록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본을 축적해 나갈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줄어들고 따라서 성장률도 점점 하락합니다. 결국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에 도달하면 성장률은 0%에 머무르게 됩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을 위해서는 자본축적 혹은 요소투입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솔로우 모형은 '외생적인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동반되어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알려줍니다.

미국경제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솔로우 모형은 1980~1990년대 동아시아 경제성장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한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 등 동아시아 4개국은 1980년대부터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성장기적'(growth miracle)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이 성장기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은 (솔로우 모형이 강조했던) '요소축적'(factor accumulation) 덕분이었습니다. 경제활동 참가 증대를 통한 노동투입 증가, GDP 대비 투자비중을 늘린 자본투입 증가 등에 힘입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생산성 향상 없이 요소축적에만 의존한 경제구조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우려를 키웠습니다. 결국 동아시아 4개국은 성장률이 점점 저하되다가 1997 외환위기를 맞게 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기술진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줬습니다.

(주 :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학문적으로 잘못된 설명입니다. 
솔로우 모형은 단순한 성장률의 점진적 저하를 말할 뿐 입니다. 반면, '위기'(crisis) 라는 개념은 잠재성장률이 영구히 손상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1997 외환위기[각주:3]는 낮은 생산성 등이 초래한 기초여건(fundamental)의 문제가 아니라, 고정환율제도 · 무리한 금융시장개방 등의 단점이 결합된 유동성위기(liquidity crisis) 였을 뿐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소축적에만 의존하는 모습이 우려를 자아냈던 상황에서 동아시아가 결국 위기를 맞게 되자,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죠.)



※ 이번글에서 다룰 내용

-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


앞서 두 편의 글은 '자본축적의 역할'과 '외생적인 기술진보의 필요성'이 현실에서 나타난 모습을 다루었습니다. 이번글에서는 솔로우 모형이 현실을 설명해내는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볼 겁니다.


솔로우 모형에서 중요한 가정 2가지는 바로,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전세계에 동일하게 주어진 기술진보율'(=기술은 공공재, public good)입니다.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똑같은 이유는, 한 국가에서 개발된 뛰어난 기술이 다른 나라에 빠르게 확산(diffusion)되기 때문입니다. 즉, 기술은 '모든'(비배제성) 국가가 '동일'(비경합성)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 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통해 현실경제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바로, '수렴현상'(convergence)'성장률 격차의 패턴'(transitional dynamics)  입니다.

 


수렴현상 (convergence) 

- 1인당 GDP(level) 및 경제성장률(growth)의 수렴


: 수렴현상이란 말 그대로 동일한 지점으로 모여든다는 의미입니다. 솔로우 모형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수렴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는 수준이 같아지는 것(=level이 같아짐), 또 다른 하나는 성장률이 같아지는 것(=growth가 같아짐) 입니다. 쉽게 말해, 모든 국가의 1인당 생산량(per capita GDP)과 경제성장률(growth rate)이 동일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계속 반복하지만) 자본투입이 늘어날수록 생산량 증가분이 체감하여 결국 정상상태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을 시작해온 국가들은 이미 정상상태에 가까워졌을 겁니다. 이제 막 시작한 국가들은 정상상태를 향해 오고 있죠. 그럼 언젠가는 모든 국가가 '하나의 정상상태'에서 멈추어서 1인당 자본량 · 생산량이 모두 똑같아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겁니다.(=level이 같아짐)


게다가, 정상상태에서는 생산량이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 만큼 증가합니다. 솔로우 모형은 기술이 공공재 이기 때문에, 전세계 어디에서든 기술진보율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습니다. 따라서, 언젠가는 '하나의 정상상태' 위에서, 세계 모든 국가의 성장률이 같아지는 날도 올 수 있습니다.(=growth가 같아짐)



성장률 격차의 패턴 (transitional dynamics) 

-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높은 성장률


: 그럼 아직 정상상태에 도달하기 이전이라면 국가별로 성장률이 각기 다르지 않을까요? 네. 다릅니다. 하지만 일정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글의 맨앞서 언급했듯이, 이제 막 자본축적을 시작한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 합니다. 다르게 말해,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빠른 패턴'이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 또한 자본투입이 늘어날수록 생산량 증가분이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술이 공공재 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술이 공공재가 아니라면 즉 한 국가가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자본축적 정도와 상관없이 더 나은 기술을 가진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빠를 겁니다.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생산량을 더 빠르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든 국가의 기술수준이 동일하기 때문에 국가간 성장률 격차는 오직 '자본축적 정도' 및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가 결정 짓습니다.


이때, 아직 정상상태에 도달하지 못한채, 정상상태로 향해가는 모습을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ics) 라고 합니다. 따라서, 솔로우 모형은 성장률 격차에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는 이유로 '전이경로'를 지목합니다.


그럼 정말로 솔로우 모형이 예측하는 것과 같은 수렴현상 및 성장률 차이의 패턴이 나타날까요? 만약 나타나지 않는다면 모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이번글에서 이를 알아봅시다.




※ 윌리엄 보몰이 발견한 '수렴현상'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학계 내에서는 '경제성장이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비롯된 급격한 경기변동(fluctuation)의 시대가 끝나고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상태가 운영됐기 때문이죠. 또한, 경제학에 합리적기대 가설이 등장하면서, "경기변동을 애써 제어하는 것보다는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경제성장이론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지핀 논문이 1986년에 등장했습니다. 바로,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William Baumol)이 쓴 <생산성 성장, 수렴, 그리고 후생 : 장기통계가 보여주는 것>(<Productivity Growth, Convergence, and Welfare: What the Long-Run Data Show>) 입니다. 


윌리엄 보몰은 이 논문을 통해 '솔로우 모형이 예측하는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이 나타나는 지를 탐구했습니다. 결국 이 논문은 '수렴현상이 나타나며, 성장률 차이에는 일정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더 생각해봐야할 흥미로운 사실도 제시하였고, 경제학계에서는 이를 둘러싼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이제 이 논문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살펴봅시다.


  • Baumol(1986)
  • 1870~1980년 사이, 국가별 근로시간당 GDP 추세
  • 미국,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본, 호주


윗 그림은 1870~1980년 사이 국가별 근로시간당 GDP(per work-hour GDP)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 : 이전글[각주:5]에서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 output)은 '생산성 수준'(productivity)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는데요. 근로시간당 GDP 또한 생산성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1870년(X축 앞부분)에 큰 격차를 보였던 선들이 1980년(X축 뒷부분)에는 하나로 모여가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30년전 논문이라 그래프가 오늘날처럼 예쁘지 않죠; 


여기에 나오는 국가는 영국,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 입니다. 국가별로 구체적인 수치를 살펴보겠습니다. 1870년 대비 1980년까지, 국가별 생산성은 각각 영국(585%), 미국(1,080%), 이탈리아(1,225%), 일본(2,480%)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수렴현상'과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확인했습니다. 


▶ 1870년에 국가별로 큰 격차를 보이던 생산성은 1980년 동등한 수준(level)까지 수렴(convergence) 했습니다. 


▶ 또한, 1870년 당시 이미 강대국이었던 영국에 비해, 그때부터 발전을 시작한 일본의 생산성 증가율이 더 높습니다. 즉,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가 먼 일본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패턴이 나왔습니다. 


▶ 여기에더해, 이후 이들 국가는 비슷한 성장률을 기록하며 'growth의 수렴'도 보여줍니다.


  • Baumol(1986)
  • X축은 1870년의 근로시간당 GDP 수준, Y축은 1870~1979년의 연간 성장률


윗 그림을 보면,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좀 더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X축은 1870년의 생산성 수준, Y축은 성장률을 나타냅니다.


한 눈에 보면 알 수 있다시피, 1870년에 생산성 수준이 낮았던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높은 우하향 하는 상관관계가 보입니다. 


즉,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더 가파르게 성장합니다.




※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이 알려주는 바는?

- 솔로우 모형은 또다시 현실을 올바로 설명


윌리엄 보몰은 위에 나타난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이 두 가지 함의를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번째로 오직 하나의 변수(only one variable), 즉, '1870년 당시의 생산성 수준'이 성장률을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 국가가 시장경제를 가졌는지 · 투자율이 높은지 · 어떠한 정책을 썼는지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떠한 행위를 했는지와는 상관없이, 국가들은 그저 이미 운명처럼 정해진 위치로 향했습니다.(Whatever its behavior, that nation was apparently fated to land close to its predestined position in Figure 2.)


두번째로, 가장 경제성장 정도가 높았던 국가에서부터 다른 국가로 파급된 영향이 매우 컸다고 말합니다. 


주도국이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에 성공하고 투자를 단행하면, 이것이 다른 국가로 전달되어 생산성 성장을 공유(sharing of productivity growth) 했기 때문입니다. 뒤에 위치한 국가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모방하여 급격한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모방은 큰 성과를 냈으며, 주도국의 직접투자 및 다국적기업의 기술이전은 '수렴현상'(convergence)을 만들어 냈습니다. 


윌리엄 보몰의 이같은 분석은 솔로우 모형이 현실에 부합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에서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내는 건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 였습니다. 보몰의 연구는 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술은 공공재 이기 때문에, 혁신을 주도하는 국가라고 해서 더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기술이 전파되어 성장률 격차만 좁혀집니다. 성장률 차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변수'인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만 중요할 뿐입니다.


또한, 솔로우 모형이 예측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국가들은 결국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1870년에는 큰 격차를 보이던 영국과 일본은 1980년 들어 결국 동등한 수준의 생산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다시 한번 현실을 올바로 설명해 냈습니다.




※  정말.... 그럴까?


그런데... 정말로 솔로우 모형은 현실을 올바로 설명한 것일까요? 


윌리엄 보몰은 '수렴현상'의 예시로 영국 · 미국 · 일본 등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에도 여전히 미국의 1인당 GDP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저성장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저개발국도 많습니다.


윌리엄 보몰은 샘플이 된 국가를 좀 더 늘려서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살펴봤습니다. 앞서의 예시는 이미 산업화에 성공한 16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범위를 넓혀서 72개 국가를 대상으로 하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 Baumol(1986). 샘플을 72개 국가로 넓힘
  • X축은 1950년 당시 1인당 GDP 수준, Y축은 1950~1980년 연간 성장률


윗 그림은 72개 국가의 경제성장 수준과 성장률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X축은 1950년 1인당 GDP 수준, Y축은 1950~1980년 사이의 연간 성장률을 나타냅니다.


앞서의 그림은 '우하향하는 관계', 즉 과거 수준이 낮았을수록 성장률이 높았던 관계가 명확히 드러났지만, 윗 그림은 비교적 불명확 하다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윗 그림에서 넓은 5각형 모향으로 연결된 선은 미국 · 영국 · 일본 등이 들어간 기존 16개 국가입니다. 좁은 5각형 모양은 소련 · 중국 등 계획경제 국가들이죠. 그리고 나머지 국가들이 원점 근처에 몰려있습니다.         


자유시장 경제를 택하고 일찍 산업화에 성공한 16개 국가들 사이에서는 우하향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계획경제 국가들 내에서도 우하향이 드러나죠. 


하지만 나머지 국가들 내에서는 과거 GDP 수준과 성장률 간의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 국가들 내에서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본 윌리엄 보몰은 "수렴그룹(convergence club)이 따로 있는 것 아닐까?"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만약 일부 국가에서 기술을 모방할 능력이 없거나, 첨단 기술을 모방하더라도 이를 적용할 첨단 산업이 부재하거나, 교육 수준이 낮거나 등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수렴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일부 '수렴그룹 내부'에서만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죠.




※ 국가별로 정상상태가 다르다

- '조건부' 수렴의 개념


윌리엄 보몰은 1986년 논문에서 '수렴그룹이 따로 존재하는 이유' 혹은 '수렴현상이 전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좀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수렴현상'과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연구하였고, 여러가지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발전된 설명은 "국가별로 정상상태가 다를 수 있다"(different steady state) 였습니다. 


만약 가별로 저축률 · 인구증가율 · 감가상각률이 다르다면 당연히 정상상태도 서로 다를 겁니다. 이때, 여러 국가들은 서로 동일한 정상상태가 아닌 '자신만의 정상상태'(own steady state)를 가지게 됩니다.


한번 예를 들어보죠. A 국가가 1인당 자본 축적을 계속 진행한다면 자신만의 정상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의 정상상태는 다른 국가와는 다릅니다. A 국가는 1인당 자본량이 100일때가 정상상태이나, 저축율이 더 높은 B 국가는 1인당 자본량이 200일 때가 정상상태 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렴현상'과 '성장률 격차의 패턴'은 조금 다르게 나타날 겁니다.


앞서 배웠던 솔로우 모형[각주:6]과 이번글에서 전제로 했던 것은 '국가별로 동일한 정상상태' 였습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적은 저개발 국가일수록 당연히 성장률이 더 높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개발국의 1인당 자본량이 선진국의 정상상태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것이나, 저개발국의 정상상태에 이미 도달한 수치일 수도 있습니다. 앞선 예에서, A 국가는 B 국가에 비해 1인당 자본량이 적으나 이미 '자신만의 정상상태'에 도달한 것이기 때문에, 0%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적다고 해서 성장률이 높은 현상이 무조건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발전된 논의를 거쳐 '수렴현상'과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지칭하는 3가지 유형의 용어가 만들어 졌습니다.


시그마 수렴 (sigma-σ-convergence)


: 시그마 수렴이란 '국가간 1인당 생산량 격차가 점점 감소되는 현상'(a decline over time in the cross-sectional dispersion of per capita income or product.)을 지칭합니다. 우리가 사용했던 'level이 같아짐'을 의미하죠. 경제학을 배우셨던 분들에게는 '절대적 수렴'(absolute convergence)란 용어가 더 익숙할 겁니다.


베타 수렴 (beta-β-convergence)


 : 베타 수렴이란 '가난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poor economies growing faster than rich ones.)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계속 언급한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보여주죠. 그리고 가난한 국가가 경제성장에 성공해서 부유한 국가가 된다면, 결국 둘의 성장률은 같아지게 됩니다(growth가 같아짐).


조건부 베타 수렴 (conditional beta-β-convergence)


: 그런데 이때의 베타 수렴은 '조건부'(conditional) 입니다. 국가별로 서로 동일한 정상상태가 아닌 '자신만의 정상상태'(own steady state)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의 절대적인 값 보다는, '1인당 자본량이 각자 자신의 정상상태 보다 더 적은'(조건)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빠릅니다. 많은 분들에게는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란 용어가 더 익숙할 겁니다.




※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이 벌어지다


이번글을 통해 많은 개념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솔로우 모형의 중요한 두 가지 가정-체감하는 생산함수 · 기술은 공공재-는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는 동일한 지점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며,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낮다."


윌리엄 보몰의 연구에 따르면 솔로우 모형은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상 국가 범위를 넓혔을 때는 예측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수렴그룹'이 따로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죠. 


따라서, 이후 경제학자들은 '국가별로 서로 다른 정상상태' 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저개발 국가가 성장률이 낮은 요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인당 자본량이 절대적으로 적은 국가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정상상태에 이미 도달해 있다면 성장률이 낮다는 논리였죠. 


그런데 다른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것과 같은) 수렴현상의 부재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따라서, 크게 2가지 지점에서 솔로우 모형을 향한 반론이 제기되었죠. 바로 솔로우 모형의 핵심 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와 '공공재인 기술'에 대한 비판 이었습니다.



▶ 자본을 축적할수록 성장률이 하락할까? 

- '체감하는 생산함수'에 대한 비판


: 솔로우 모형은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 중 핵심 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요소축적에만 의존할 때의 문제점' · '지속성장을 위한 생산성 향상의 필요성' · '수렴현상' · '성장률 격차 패턴'을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 전제에 의문을 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부터 오늘날까지를 살펴보면, 당시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주도국의 경제성장률은 계속 상승"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 · 네덜란드가 세계를 지배했을때의 성장률보다 오늘날 미국의 성장률이 더 높습니다. 과거 주도국에 비해 미국의 자본축적량이 더 많을 텐데 말이죠. 또한, 이들이 세계의 주도국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최신 기술을 이전 받아 성장률을 끌어올렸을 가능성도 적습니다.


그렇다면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의 차이 때문일까요? 이 경우 솔로우 모형의 단점이 더 부각됩니다.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율이 '외생적'으로 주어졌다고 말할 뿐, 그것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폴 로머와 로버트 루카스는 "수렴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수렴현상 부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를 포기하고. '체증하는 생산함수'(increasing)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경우, 자본축적량을 늘려나가더라도 성장률은 하락하지 않기 때문에, 수렴현상 부재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왜 수렴속도가 느릴까? 

-  '기술은 공공재'에 대한 비판


: 솔로우 모형에서 기술은 공공재 입니다. '모든' 국가가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한 후발국이 자본을 축적해 나갈수록 선진국과의 경제수준 및 성장률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또한, 공공재인 기술은 선진국에서 후발국가로 '빠르게' 이전되며 모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수준과 성장률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는 힘도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렴속도'(speed of convergence)는 그다지 빠르지 않습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Robert Barro)하비에르 살라이마틴(Xavier Sala-I-Martin)은 "수렴속도가 연간 2%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그 이유로 '느린 기술확산 속도'(gradual spread of technological improvement)를 꼽습니다.


만약 어떤 국가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능력이 떨어지거나, 기술이 애시당초 공공재가 아니거나 등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성장률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 '수렴논쟁'이 촉발한 솔로우 모형에 대한 비판과 대안


수렴현상 존재와 정도를 둘러싸고 진행된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은 경제성장이론 발전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만약 '체증하는 생산함수' · '공공재가 아닌 기술' 라는 가정이 현실에 더 부합한다면, 솔로우 모형의 기반은 흔들리게 됩니다. 현실 설명력이 떨어지는 이론은 중요성이 낮으니깐요. 


이런 이유로 솔로우 모형을 옹호하기 위해,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는 "솔로우 모형을 조금 수정하면 수렴현상을 좀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솔로우 모형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지만, 다루고자 했던 질문들에 대해 옳은 답을 제공해준다"라고 말했죠.


앞으로 '수렴논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경제성장이론이 솔로우 모형을 넘어서(beyond Solow Model) 어떻게 더 발전되는지를 알아봅시다.



  1. 각주 [본문으로]
  2. 각주 [본문으로]
  3.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2015.12.29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4. 바로 얼마 전인 2017년 5월 4일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추모기사 - The Economist. William Baumol, a great economist, died on May 4th [본문으로]
  5. 각주 [본문으로]
  6. 각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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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Posted at 2017. 6. 29. 08:26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솔로우 모형 복습

'솔로우 모형'을 다룬 지난글[각주:1]을 통해, 국가별로 '생활수준 차이'(=level의 문제), '성장속도 차이'(=growth의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성장'(=engine of growth의 문제)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살펴보았죠. 

이번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솔로우 모형을 잠깐 복습해 봅시다.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것은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 이었습니다.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다른 나라는 못 사는 이유는 '자본축적 수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1인당 생산량이 커서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죠.   

국가별로 경제성장률이 다른 이유는 그 국가의 경제상태가 '전이경로에 있느냐, 정상상태에 있는가'(transitional dynamics)가 구분지었습니다. 자본이 많이 축적될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줄어드는 체감현상(diminishing)이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낸 근본원인 입니다.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을 해와서 이미 정상상태(steady state)에 다다른 국가는 성장률이 전보다 낮은 값을 기록하게 됐으며,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한 국가는 체감현상의 영향을 덜 받는 전이경로에 놓여있어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때, 체감현상은 "지속적인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을 달성하려면 자본축적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정상상태에 다다를수록 성장률이 하락하고 결국 0%가 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 '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의 성공과 좌절


솔로우 모형의 핵심을 복습했으니, 이제 이번글에서 다룰 내용에 대해 생각 해봅시다. 



'자본축적'을 강조하는 솔로우 모형은 현실을 설명하는가? 

-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 수학적으로 정교화된 이론[각주:2]일지라도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솔로우 모형은 '미국경제'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미국 이외의 나라에도 적용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글에서는 한국 · 싱가포르 ·대만 · 홍콩, 즉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의 경제성장 과정을 통해, '자본축적의 힘'을 알아볼 겁니다. 



자본축적과 기술진보, 무엇이 중요할까? 

- 기술진보 없는 자본축적, 결국...


:  생활수준(level)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growth)을 위해서는 '기술진보'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에 중요성을 더 부여하고 있습니다. 기술진보에 대해서는 그저 '외생적으로 전세계에 똑같은 값이 주어졌다'고 가정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술진보 없는 경제성장은 결국 멈추게 될 것 이라고 말하고도 있습니다.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로도 기술진보 없는 자본축적은 경제성장률 하락을 불러올까요? 

이번글에서는 1990년대 당시 경제학자들이 동아시아를 바라보면서 가졌던 불안함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장회계식을 통해 솔로우 모형 이해하기


이번글 논의를 소개하기에 앞서, 내용이해를 위한 기본개념을 먼저 알아봅시다. 상당히 지루할 수 있지만.... 알면 좋습니다.


솔로우 모형이 말하는 아래 두 가지 문장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나타날까요?


● "자본축적을 늘릴수록 경제가 성장한다"

●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이 지속적인 성장을 만들어낸다" 


일반적으로 수식 사용은 경제학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이해를 쉽게 도와줄 겁니다.

 

 

 

솔로우 모형이 전달하고 하는 바는 "1인당 생산량 증가(=경제성장)는 1인당 자본축적과 기술진보로 구성되어 있다"로 바꿔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때, 자본축적이란 '자본이라는 요소를 생산과정에 투입한 것'(capital input) 입니다. 그리고 기술진보란 '주어진 요소를 가지고 좀 더 많이 생산케 하는 것, 즉 생산성 증가'(productivity gain) 입니다. 


따라서, '생산량 변화율 = 자본투입 증가율 + 생산성 증가율' 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위에 나타난 수식이 이를 보여줍니다.


(주 1 : 솔로우 모형은 '1인당'(per capita)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여기서의 생산량 및 자본투입량은 1인당 기준입니다.)


(주 2 : 자본투입 증가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전체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capital share)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자본투입 증가분에다 자본비중(α)을 가중평균 하는 형식으로 생산량 변화를 산출할 수 있습니다.)

 

 

1인당 생산량이 아닌 경제 전체의 생산량을 살펴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솔로우 모형은 '1인당'이 기준이었기 때문에 인구증가율이 높을수록 1인당 자본량 · 1인당 생산량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경제 전체 '총'(gross) 자본량 및 생산량은 인구가 많을수록 증가합니다. 쉽게 말해, 더 많은 사람이 있을수록 일을 하는 양도 많아지고, 결과적으로 생산량도 늘어나기 때문이죠.


이때, 인구가 많아지는 것을 '노동이라는 요소를 생산과정에 투입한 것'(labor input) 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총 생산량 변화율 = 노동투입 증가율 + 자본투입 증가율 + 생산성 증가율'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위의 수식이 이를 보여줍니다. 


(주 : 앞서 자본투입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동투입 증가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전체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labor share)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노동투입 · 자본투입 증가분에 각각의 비중을 가중평균 하는 형식으로 생산량 변화를 산출합니다.) 

 

이때, 투입된 자본량 · 노동량은 비교적 쉽게 수치를 구할 수 있습니다. 자본량은 '투자'라는 형식으로 GDP 산출 과정에서 얻어지고, 노동량은 '인구증가율'을 보면 됩니다. 


그런데 기술진보율, 즉 생산성 증가율은 산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산량을 투입된 자본량(노동량)으로 나누면 단순한 자본생산성(노동생산성)만 도출될 뿐입니다. 


자본생산성은 자본을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노동생산성도 근로자가 얼마나 많은 자본을 가졌는지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확한 생산성 측정을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의 영향을 함께 고려한' 값을 구해야 합니다. 이를 '총요소 생산성'(TFP, Total Factor Productivity) 혹은 '다요소 생산성'(MFP, Multi Factor Productivity) 라고 합니다.   


총요소 생산성을 산출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는 1인당 생산량(per capita ouput)과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 output)을 비교하여 대략적인 생산성 정도를 살펴보는 법 입니다.


말이 헷갈리기 쉬운데요... 


1인당(per capita)은 국민 전체를 모수로 산출한 값입니다. 보통 우리가 '1인당 GDP', '1인당 국민소득' 라고 말할 때 사용합니다. 이는 '국민 전체의 생활수준'(standards of living)을 보여줍니다.


근로자 1인당(per worker)은 실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근로자만을 모수로 산출한 값입니다. 생산과정에 참여한 사람이 만들어낸 생산량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는 '생산성'(productivity) 정도를 보여줍니다.


이미 오래전 경제성장을 달성하여 근로자 투입 증가분이 적은 선진국은 다른 국가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높은 값을 보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요소투입 보다는 생산성 증가의 힘이 더 큰 상황이죠.


반면,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하여 근로자 투입이 늘어나고 있는 개발국가는 다른 국가에 비하여 (모수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낮은 값을 보입니다. 다르게 말해, 이들 국가는 현재 생산성 증가 보다는 요소투입에 의해 성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국가는


● '1인당 생산량'과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 간의 격차가 비교적 크다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이미 요소투입을 끝낸 국가에 비하여) 비교적 느리다


이렇게 대략적인 비교를 통해 (정확한 값은 아니지만) 생산성 정도를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총생산량 변화분에서 자본 · 노동 투입 증가분을 제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총요소 생산성을 도출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값을 얻어내는 방식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총생산량 변화분은 '노동투입 증가분 + 자본투입 증가분 + 생산성 증가분'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비교적 구하기 쉬운 '노동투입 증가분 + 자본투입 증가분'을 총생산량 변화분에서 차감하고 나면 '생산성 증가분'이 구해집니다.


총요소 생산성의 정확한 값을 도출할 때는 두번째 방법을 많이 씁니다. 




※ 현실을 설명해낸 솔로우 모형 

- 1980~1990년대, 동아시아 성장기적은 요소축적 덕분



자, 지루한 과정을 모두 거쳤으니 이제 본 내용을 알아봅시다.


1980~90년대 경제성장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대한민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 동아시아에 위치한 네 나라 였습니다. 


이들 국가는 1970~80년대를 기점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나가며 '신흥산업국'(NICs, Newly Industrializing Countries)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라고 불렀고, 경제성장 성공담은 '성장기적'(growth miracle)이 되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동아시아의 네 나라는 어떻게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 


학자들이 처음 주목한 것은 이들이 가진 공통점, '대외지향적 수출정책'(outward-oriented policies) 및 '제조업 중심 정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이건 우리 한국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 조선소 · 자동차 · 철강 등 제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였고,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왔습니다. 나머지 세 국가 역시 수출제조업을 키우면서 성장해 나갔죠.  


따라서, 기존 학자들은 "대외지향적 정책에 힘입은 생산성 개선, 특히 제조업 생산성 향상이 성장기적을 만들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시장을 외국에 개방하면서 경쟁력을 얻고 산업수준을 업그레이드 했다는 생각이었죠.


  • 알윈 영(Alwyn Young, 現 런던정경대, 前 MIT)


하지만 한 학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자  영(Alwyn Young)은 1994년 논문 <동아시아 NICs의 교훈: 통념에 반하는 시각>(<Lessons from the East Asian NICS: A contrarian view>), 1995년 논문 <숫자의 횡포: 동아시아 성장 경험의 현실을 통계로 직시하기>(The Tyranny of Numbers: Confronting the Statistical Realities of the East Asian Growth Experience) 을 통해 당시 학자들 사이에 퍼져있던 통념을 반박합니다. 


그는 "동아시아 성장기적은 대외지향적 정책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 증가 덕분이다"(factor accumulation)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네 나라의 제조업 성장 원인도 생산성 증가 보다는 '제조업으로의 자원 재배치'(sectoral reallocation of resources)에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1인당 생산량'(per capita output)과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 output)의 차이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자는 전체 국민의 생활수준을, 후자는 경제의 생산성을 보여줍니다.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가파르게 증가할수록(=요소투입이 급증할수록), '근로자 1인당 생산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값을 기록합니다.


  • Young(1994)


분명, '1인당 생산량'(per capita) 증가율을 살펴보면 동아시아 네 나라는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높은 값을 기록했습니다. 1960~1985년 사이 연간증가율은 대만(6.2%) · 홍콩(5.9%) · 싱가포르(5.9%) · 한국(5.7%)로 전세계 주요국 가운데 2~5위를 차지했습니다. 


제일 낮은 값을 기록한 한국을 기준으로, ±2% 내에 드는 국가는 15개에 불과했습니다.


  • Young(1994)


하지만 생산성을 나타내는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을 보면 사뭇 다릅니다. 대만(5.5%, 4위) ·한국(5.0%, 7위) · 홍콩(4.7%, 8위) · 싱가포르(4.3%, 14위) 입니다. 분명 높은 순위이긴 하지만, 앞서의 순위보다는 하락했습니다. 


게다가, 제일 낮은 값을 기록한 싱가포르를 기준으로 ±2% 내에 드는 국가는 19개로 늘었고, 앞서와 달리 나머지 국가들과 두드러진 격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Young(1994), X축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율, Y축 1인당 생산량 증가율
  • 경제활동 참가율이 1% 증가할수록 1인당 생산량 0.85% 증가


알윈 영은 이를 근거로 "(생산성 향상이 아닌) 네 국가에서 발생한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 즉 노동투입 증가가 성장기적의 요인" 이라고 진단합니다. 통계분석을 통해, "1%의 경제활동 참가율 상승이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을 0.85% 올린다."는 결과도 제시했습니다. 


네 국가는 전후 베이비붐 등의 영향으로 인구가 크게 늘었으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덕분에 생산과정에 투입된 사람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홍콩의 경우, 1960년 경제활동 참가율은 39%에 불과했으나 1985년에는 53%를 기록했죠. 


  • Young(1994), 한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의 1960~1985년간 GDP 대비 투자 비중 변화


그런데 이것은 '노동투입'(labor input) 만을 고려한 것입니다. '자본투입'(capital input)도 살펴보면 요소투입의 영향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1960~1985년 사이, GDP 대비 투자 비중은 대만 2배 · 한국 3배 · 싱가포르 4배나 증가했습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수치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 Young(1994)


자, 이제 '노동투입' · '자본투입' 등 요소투입 영향력을 모두 제거한 생산성의 변화, 즉 총요소 생산성의 연간 증가율을 살펴봅시다. 


홍콩(2.5%, 6위) · 대만(1.5%, 21위) · 한국(1.4%, 24위) · 싱가포르(0.1%, 63위)로 크게 하락합니다. 대만과 한국을 기준으로 81개의 국가가 ±2% 내에 들어 있습니다. 


즉, 총요소 생산성은 1인당 생산량 증가에 비해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 Young(1994)


마지막으로 기존 학자들이 주목했던 '제조업'을 살펴봅시다. 1970~1990년 사이, 네 나라의 근로자 1인당 제조업 생산량 증가율은 한국(7.3%) · 대만(4.1%) · 싱가포르(2.8%)를 나타냈습니다. 나머지 국가들의 평균 증가율이 3.2% 인점을 감안하면, 한국을 제외한 세 나라는 제조업 생산성이 높은 수준도 아니었습니다


반면, 제조업 고용인구 증가율은 한국(5.5%) · 싱가포르(5.7%) · 대만(5.6%) 등 대략 6%의 연간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나머지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1% 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아시아 네 나라의 제조업 성장 원천은 '생산성 향상이 아닌 노동투입 증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알윈 영은 "자본 · 노동 등 요소투입의 급격한 증가가 동아시아 성장기적의 대부분을 설명한다"(rapid factor accumulation, of both capital and labour, explains the lion's share of the East Asian growth miracle.) 라고 결론 내립니다. 


즉, 동아시아 네 나라의 성장은 솔로우 모형이 말하는 "'자본축적'(혹은 '요소축적')이 경제성장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현실에서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 생산성 향상 없이 진행된 요소축적... 지속가능 할까?

- 아시아 기적의 근거없는 믿음


우리가 이전글을 통해 솔로우 모형을 공부[각주:3]했다는 사실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자본축적'(요소축적)이 미국이 아닌 동아시아 경제성장도 설명할 수 있었으니깐요. 이론은 현실을 설명해 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찝찝한 마음도 감출 수 없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축적 이외에 기술진보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생산성 혁신 없이 자본축적에 의존하는 성장은 결국 0%의 성장률로 귀결될 겁니다.


2017년인 지금은 과거의 동아시아를 단순한 호기심으로 바라볼 순 있지만, 1990년대 당시를 보냈던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알윈 영의 주장처럼 동아시아 성장기적이 요소축적에 의한 것이라면, 언젠가 이들의 성장세가 멈추지 않을까요? 



1994년 11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각주:5])은 의미심장한 글을 내놓았습니다. <Foreign Affairs>에 기고한 <아시아 기적의 근거없는 믿음>(The Myth of Asia's Miracle)을 통해 동아시아 경제를 향한 우려를 표현했습니다.


(주 : 이 글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라는 단행본 중 한 챕터로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아시아 붐에 대한 일반인들의 열기에는 찬물을 약간 끼얹어야 마땅하다. 아시아의 급성장은 많은 저술가들의 주장처럼 서구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성장의 미래 전망은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제한적이다." (...)


"성장회계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경제성장의 과정에 관해 아주 중요한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한 나라의 1인당 소득의 지속적인 성장은 투입단위당 생산이 증가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입 생산요소의 이용효율은 높이지 않고 단순히 투입량만을 늘리는 것은 결국 수익률 감소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즉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은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1950년대의 소련처럼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들이 급성장을 이룩한 것은 주로 놀랄만한 자원의 동원 덕분이었다. 이들 국가의 성장에서, 급증한 투입이 발휘한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더 이상 말할 거리가 별로 남지 않는다. 


높은 성장기에 보여준 소련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성장도 효율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이례적인 투입 증가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성장이 주로 투입증가에 의한 것이고, 그 곳의 축적된 자본이 벌써 수익체감의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완전히 이치에 부합되는 행동이다. (...) 최근 몇 년 간의 속도로 아시아의 성장이 지속될 수는 없다."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229-244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솔로우 모형을 배운 사람들에게, 그리고 알윈 영(Alwyn Young)의 논문을 본 사람들에게, 폴 크루그먼의 이 글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놀랄만한 사실이 없습니다.


하지만 1994년 당시 동아시아 성장기적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컸던 상황에서 이런 글이 나왔다는 점, 그리고 3년 후인 1997년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각주:6]했다는 사실이 이 글의 주목도를 키웠습니다.  


물론, 폴 크루그먼은 3년 후에 다가올 위기(crisis)[각주:7]를 예측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이나 사람들은 이 글을 "3년 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글" 이라고 말하는데, 크루그먼은 단지 솔로우 모형이 이야기하는 성장률 저하(=수렴현상)를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그는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1998년에 쓴 글[각주:8]에서 "우리는 단지 장기적으로 성장률 둔화가 점진적으로 발생할 것 이라고 예측했을 뿐이다."[각주:9] 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이 글은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것과 맞물려서 큰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은 '아시아의 기적'을 칭송하는 대신 "그럼 이제 아시아의 성장세는 멈추는 걸까?" 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죠. 


(사족 :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요소투입'의 역할을 보려면,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각주:10] 참고)




※ 생산성! 생산성! 생산성!


[경제성장이론 시리즈] 두번째 글도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번글을 통해서, "솔로우 모형이 실제 현실 설명에도 적용 가능" 하며, "1970~1990년대 동아시아 성장은 생산성 증가가 아닌 요소축적에 의해 달성된 것", 그리고 "생산성 증가 없는 성장을 기록해온 동아시아는 결국 솔로우 모형이 말한 바와 같이 성장률 저하를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분명 솔로우 모형이 강조한 '자본축적'은 경제성장 달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 동아시아 네 국가는 요소축적 힘만으로도 높은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죠. 그러나 결국 생산성 혁신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 하다는 한계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또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요소투입'에 의존하여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있을까? 

- 중국경제는 '중진국 함정'에 빠졌을까


: 만약 오늘날에도 생산성 증가 없는 요소투입에 의존하는 국가가 있다면, 이 나라는 향후 몇년 내에 점차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혹은 걱정) 할 수 있습니다. 


2017년 오늘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우려를 키우고 있는 국가 중 대표는 바로 '중국' 입니다. 


1990년 이래로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고도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은 성장방법도 유사합니다. 중국은 '많은 투자'를 통해 집중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있으며, 기존에 산업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생산에 투입되어 생산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중국이 '요소투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많은 걱정을 하게 만듭니다. 만약 중국이 생산성 혁신을 하지 못하여 성장률이 점차 하락한다면, 세계경제는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죠. 실제로 10% 넘었던 경제성장률은 최근 7%~8% 부근까지 하락했습니다. 


생산성 혁신을 하지 못하여 낮은 성장률에 빠지는 경우를 경제학자들은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 이라고 부릅니다. 더 이상 1인당 소득을 늘리지 못하여 중진국에 머무르게 된다는 말이죠.


과연 중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일까요? 혹은 빠지게 될까요?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이를 알아봅시다.



1997 외환위기 이후 생산성을 끌어올려온 한국


  •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 2012.06.20


: 1997 외환위기 이전 한국은 분명 요소투입에 의존하는 문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한국경제 자체가 과잉투자에 의존한 채 성장[각주:11]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1997년 이후 한국경제는 과거와 다릅니다. 한국의 총요소 생산성 기여율은 극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1981~1990년 사이 생산성이 성장에 기여하는 크기는 19.6%에 불과 했으나, 2006~2010년에는 47.3%까지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생산성 혁신'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 주제도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공부해봅시다.



생산성 둔화 현상


: 한국의 생산성은 많이 개선되었으나,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미국의 고민은 '생산성 둔화 현상'(Productivity Slowdown) 입니다. 


1990년대 IT붐의 힘으로 높은 생산성 증가율을 기록해온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증가율이 둔화 되었고, 2008 금융위기 이후에는 더 낮은 값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 세상은 이전보다 더 발전되고 진보한 것처럼 보입니다. 인터넷, 스마트폰, 각종 전자기기, AI 등등 그동안 IT 산업의 발전은 눈 부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생산성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이것도 다른글을 통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봅시다.

 


생산성은 어떻게 증가시킬 수 있는가?


: 이전글 솔로우 모형[각주:12]을 공부하고 난 뒤에 느꼈던 찝찝함이 이번글을 읽은 후에도 남아있습니다. 이전글 마지막 부분에 제가 제기한 물음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기술진보가 '외생적'으로 발생하나?"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가 외생적(exogenous)으로 발생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그럼 어떻게 하면 기술진보율, 즉 생산성을 끌어올리느냐?" 라는 물음에 답을 해주지 못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전글 마지막에도 밝혔듯이, 불만족을 느낀 다른 여러 경제학자들은 '기술진보가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모형'을 통해, 현실경제에 대한 설명력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내생적성장 모형'(endogenous growth model)을 살펴봅시다. 



국가간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내는 요인은 무엇일까? 

- 자본축적이냐 기술진보냐


: 이번글의 맨 첫부분, 솔로우 모형 복습에서도 살펴봤듯이, 국가간 성장률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ics)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막 자본축적을 시작한 국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죠. 


따라서, 1980~90년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자본축적량을 빠르게 늘리면서(=요소투입을 빠르게 늘리면서) 고도성장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자본축적(=요소투입)만이 국가간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내는 요인일까요? 


국가간 기술진보 정도, 즉 생산성이 달라도 성장률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높은 생산성을 가진 국가는 더 빠르게, 낮은 생산성을 가진 국가는 더 늦게 성장할 겁니다. 이때 기술진보가 불러오는 성장은 정상상태 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상태에 다다르기 이전에도 기술진보율이 높은 국가(=생산성이 높은 국가)는 더 빠르게 성장 가능합니다.


따라서 '기술혁신이 빠르게 발생하며 유출을 원천 차단한 선진국' / '시장개방 정도가 더 높고 기술흡수 잠재력이 높은 개발국' 등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율이 외생적으로 주어졌으며 전세계 동일하다고 가정합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은 전세계 어디로나 확산(diffusion) 되는 공공재(public good)이기 때문에, 국가간 생산성 차이가 성장률 격차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죠. 


이번글에서는 우선, "빠른 성장을 불러오는 요인은 자본축적 이다" 라고 주장하며 솔로우 모형을 옹호하는 학자만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추후 [경제성장이론 시리즈]의 다른글들을 통해,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기술 격차(technology gap) 혹은 아이디어 격차(idea gap)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경제학자를 알아볼 계획입니다. 


'자본축적 vs 기술진보' (요소투입 vs 생산성혁신) 라는 쟁점, 다르게 말해 '기술을 공공재로 바라보느냐 아니냐'가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계속 머릿속에 넣어둔채로 천천히 알아봅시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제 블로그에서 '수식'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많은 경제학이론이 그렇듯이 솔로우 모형 또한 수리적으로 엄밀하게 도출되었습니다.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4. [1997년-2005년]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 2016.01.22. http://joohyeon.com/243 [본문으로]
  5. 폴 크루그먼은 '국제무역이론을 수립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본 블로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6.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2015.12.29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7. 경제학용어인 '위기'(Crisis)는 단순한 성장률 저하를 뜻하지 않습니다. 경제위기란 현재 생산량이나 증가율에 오랜기간 타격을 주는 현상을 뜻합니다. '위기'의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는 http://joohyeon.com/248 참고 [본문으로]
  8. "아시아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What Happened to Asia?). 1998.01. http://web.mit.edu/krugman/www/DISINTER.html [본문으로]
  9. "we expected the longer-term slowdown in growth to emrge only gradually." [본문으로]
  10.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11.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12.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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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Posted at 2017. 6. 28. 07:00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어떤 나라는 못 사는 것일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은 무엇일까?


경제성장은 생활수준을 대폭 향상시켜 줍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명제는 대한민국이 이루어 낸 성장기적(growth miracle)이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1950~1970년대를 보낸 어르신들은 직접 몸으로 느낀 바를 말해줄 수 있죠. 


하지만 경제성장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모든 국가가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북한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는 동안,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저개발국들이 지구상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어떤 나라는 못 사는 것일까요?"(why are we so rich and they so poor?)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여러 가설을 제기했습니다. 자본축적을 제대로 했는지, 기술발전이 일어나고 있는지 등의 여부를 따졌죠.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족성, 법과 제도, 정치권력 부패, 민주주의 체제, 지리적조건 등 국가들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탐구했습니다.      


어떠한 요인이 경제성장 달성 여부를 갈라놓았는지 탐구한 이후에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은 무엇일까?"(engine of growth)를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은 단순한 일회성 사건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높아진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이 필요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2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경제성장 이론은 바로 '솔로우 모형'(Solow Growth Model) 혹은 '신고전파 모형'(Neoclassical Growth Model) 입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모형은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 198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가 제시했습니다. 


그는 1956년 논문 <경제성장 이론에 대한 기여>(<A Contribution to the Theory of Economic Growth>) 를 통해, 미국이 겪어온 경제성장 과정을 이론화 하였습니다. 


미국의 성공경험이 알려준 것은 '자본축적의 중요성'(Capital Accumulation) 이었습니다. 미국의 1인당 자본량은 꾸준하게 증가해왔으며, 이에 맞추어 1인당 생산량도 늘어났습니다. 


따라서, 솔로우는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자본축적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제부터 솔로우 모형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알아봅시다.




※ 어떻게하면 자본을 축적할 수 있을까?


한 국가가 경제성장을 이루었는지 여부는 '1인당 생산량'(per capita GDP)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각주:1]이기 때문이죠. 


  • 출처 : OECD National Accounts at a Glance


윗 그래프는 미국의 1인당 생산량 및 자본량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1인당 생산량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그 배경에는 1인당 자본량 증가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본이란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의미합니다. 공장설비 및 기계 등이 더 많이 도입될수록 생산량도 비례하여 증가하게 됩니다. 


이를 보면, 1인당 생산량 증가, 다시 말해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적)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 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 및 축적된 자본이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는 과정'을 아주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윗 수식은 저축과 투자가 1인당 자본량을 늘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솔로우 모형의 기본 방정식'(Fundamental Equation of the Solow Model) 입니다. 

 

경제원론을 소개한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각주:2] 에서 보았듯이, 자본축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투자'(investment)와 '저축'(saving) 입니다. 


투자란 '기계 · 생산설비 등 신규 자본재를 만들거나 구매하는 것'을 뜻하며, 저축은 '생필품 소비를 덜하여서, 자본재 생산에 더 많은 자원을 배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국가의 저축이 많을수록 투자도 비례적으로 증가하여 자본축적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1인당 생산량 중 일정부분을 소비하지 않고 저축하면 투자로 이어지고 이는 곧 1인당 자본량 증가로 나타납니다. 증가된 자본량은 1인당 생산량을 늘리게 되고, 늘어난 생산량 중 일정부분을 또다시 저축 · 투자로 연결시키면 자본량과 생산량이 더욱 늘어나는 선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1인당 자본량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건 아닙니다. 기계 · 생산설비 등 자본량은 감가상각의 영향을 받아 일정량 사라집니다. 또한, 인구가 많아질수록 '1인당'(per capita) 자본량도 줄어들기 때문에, 인구증가율에 비례하여 소모됩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은 '저축' 및 '투자'가 증가할수록 늘어나며, '감가상각률' 및 '인구증가율'이 높아질수록 줄어듭니다. 


(사족 : 경제 전체 '총'자본량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인구가 많아질수록 '총'자본량은 증가하고, '총'생산량 또한 늘어납니다. '1인당' 자본량 및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을 '자본심화'(Capital Deepening) 라하고, '총' 자본량 및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을 '자본확장'(Capital Widening) 이라 합니다.)    


이러한 논리로부터, 우리는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어떤 나라는 못 사는 것일까요?"(why are we so rich and they so poor?)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어떤 국가가 잘 사는 이유는 높은 저축율 · 낮은 인구증가율 등에 힘입어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 또 어떤 국가가 못 사는 이유는 낮은 저축율 · 높은 인구증가율 때문에 1인당 자본을 적게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가 생필품 소비를 많이 하여서 자본재 생산에 더 적은 힘이 배분된다면(=소비가 많아 저축과 투자가 적다면), 그 국가는 자본축적이 더뎌져서 생산량도 크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경제성장 초기 높은 인구증가율은 자원을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유아에게 배분케하여 (생산에 참여하는) 성인의 1인당 자본량을 훼손시킵니다.


경제성장을 도모하려는 국가가 초기에 '저축증대'와 '산아제한'을 실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한국도 마찬가지로 저축장려 및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했었죠.       




※ 자본축적 만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 자본량 증가에 대한 생산량 증가폭은 체감

- 영구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진보'

     

지금까지 논의한 것은 '1인당 생산량 수준'(per capita GDP Level)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축율이 높고 인구증가율이 낮을수록, 자본축적이 일어나 생활'수준'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생활'수준' 향상은 얼마나 빨리 달성가능하며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일까요? 


경제성장 달성에 중요한 것은 성공여부 뿐 아니라 성공에 걸리기까지의 시간 및 지속적인 성장 여부도 있습니다. 자본축적을 통해 생활수준이 향상되더라도, 그것이 엄청 오래 걸려서 내가 죽기 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한번 생활수준이 향상된 후 지속되지 않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구분해야 할 개념은 '수준'(level)과 '성장'(growth) 입니다. 


어떤 나라가 잘 사느냐 못 사느냐 따지는 것은 '수준'(level)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반면, 어떤 나라가 얼마나 빨리 생산량을 늘리느냐,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느냐는 '성장'(growth)을 의미합니다.


  • 출처 : 한국은행


윗 그래프는 1970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의 1인당 GDP(level) 및 경제성장률(growth)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1인당 GDP는 경제발전을 시작한 이래로 줄곧 증가해 왔습니다. 1998년과 2009년에 각각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각주:3] 와 2008 글로벌 금융위기[각주:4] 여파로 주춤하긴 했지만, 추세가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은 이와 다릅니다.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0% 부근의 고성장을 기록해왔지만, 점차 낮아져서 현재는 2%~3% 사이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즉, '수준'(level)은 줄곧 향상되어 왔으나, '성장'(growth)은 점차 더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양상이 아닙니다. 과거 미국도 높은 성장률은 기록했으나 오늘날에는 3% 부근에 머물러 있죠.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개방 이후 10%가 넘는 성장률은 기록해온 중국은 최근에는 7%~8%로 내려왔습니다.


  • 자본량 증가에 대해 생산량 증가폭이 체감하는 모양 (diminishing)


솔로우 모형은 ''수준'(level)은 줄곧 향상되어 왔으나 '성장'(growth)은 점차 더뎌지는 모습'이 왜 나타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1인당 자본량 증가 → 1인당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는 경로가, 축적된 자본이 많아질수록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해, 자본량 증가에 대한 생산량 증가폭이 체감(diminishing) 합니다.


초기 자본량이 적을 때는 자본량 한 단위가 늘어날수록 생산량도 크게 증가합니다. 삽으로 땅을 파다가 포크레인이 주어지면 작업량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겁니다. 


하지만 이미 가진 자본량이 많아질수록, 자본량 한 단위가 추가되어도 생산량에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포크레인 1대를 더 가진다면 번갈아가면서 사용하여 기계노후를 늦추고 생산량을 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몇대씩 더 늘어났을때 생산량 증가 효과는 초기에 삽→포크레인으로 변했을 때의 효과보다 적어질 겁니다.


윗 그래프의 모양은 직선(linear)으로 뻗어있지 않고 구부러진 모양을 띄고 있습니다. 이것이 솔로우 모형이 상정하는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 function)의 모습니다. X축 자본량이 점차 많아질수록 Y축 생산량의 증가폭은 점점 줄어듭니다.


이러한 논리로부터 '한 국가가 경제성장을 달성할수록(=level이 높아질수록) 성장률은 점점 하락한다(=growth 효과는 줄어든다)'는 사실을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경제성장률은 0%를 기록하게 될 겁니다. 왜 그럴까요? 


자, 1인당 자본량이 계속해서 축적되어 '어느 지점'을 넘어섰다고 생각해봅시다. 


저축과 투자를 통해 자본량을 더 늘리더라도 체감효과로 인해 생산량은 더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본량 증가 → 생산량 증가 → 자본량 증가'의 선순환 고리가 끊기게 되죠. 


반면, 감가상각 및 인구증가율 등의 영향으로 소모되는 자본량은 일정합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일정 지점을 넘어서면 되려 자본량이 다시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솔로우 모형은 이러한 일정 지점을 '정상상태' 혹은 '균제상태' (steady state)로 칭했습니다. 


즉, 한 국가의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의 자본량'(steady state)보다 많이 적을수록, 그 국가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성장률이 낮아지죠. 이어서 정상상태를 초과하면 자본량이 다시 감소하여 생산량도 줄어드는 음(-)의 성장률이 나타납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그 국가의 1인당 자본량은 '정상상태'(steady state)에 머무르게 되고, 자본량은 늘지도 줄지도 않아서 성장률은 0%에서 멈추게 되고 맙니다.       


이를 정리하면, '생활수준 향상은 얼마나 빨리 달성가능하며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이제 막 시작한 국가일수록 '생활수준 향상 속도가 빠르다가, 점점 늦어지며, 결국 멈추게 된다'"가 솔로우가 제시한 해답입니다.




※ 저축율 100%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 저축율 증가정책은 수준효과(level effect)만 가져와

- 성장효과(growth effect) 없어, 결국 성장률은 0%로 수렴


"솔로우 모형 상에서 자본축적이 진행될수록(=1인당 자본량이 많아질수록) 성장률이 하락하여 궁극적으로 0이 된다"는 사실은 생각할꺼리를 제공해 줍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경제성장을 위해 경제학 공부를 하다가 솔로우 모형을 조금 알게된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교과서 첫 부분만 공부하고 책을 덮은 지도자는 "저축과 투자를 늘리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구나. 이제 모든 국민들을 강제로 저축시켜서, 저축율 100%해야겠다" 라고 다짐합니다. (혹은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통해 인구증가율 0%를 추구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솔로우 모형 뒷부분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 생각이 가진 문제점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분명 저축율 증가 정책은 생활수준(level)의 향상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1인당 자본량이 점점 축적될수록 성장률은 하락하여 결국 0%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도자를 향해, "저축율 증가 정책 및 산아제한 정책은 수준효과(level effect)만 가질 뿐, 성장효과(growth effect)는 없습니다." 라고 충고 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충고에 대해 "어찌됐든 생활수준이 향상됐으면 된 거 아니냐" 라고 반발할 수도 있으나, 애시당초 경제성장의 목적은 사람들의 효용과 후생을 증가시키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효용을 느끼는데, 소비를 아예 없애고 경제성장을 달성한다는 건, 경제성장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동력은 무엇일까?

-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


솔로우 모형에서 "자본량이 증가할수록 생산량 증가가 체감(diminishing)하기 때문에, 궁극적인 성장률은 0이 된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소리로 들립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을 통해 계속해서 효용과 후생을 증대시키고 싶은데,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하지만 솔로우모형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합니다 . 바로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 입니다.


1인당 생산량을 늘리는 데 있어 자본축적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자본을 사람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도 중요합니다. 또한, 새로이 추가된 자본이 이전보다 좀 더 효율적인 형태를 띄느냐도 중요하죠. 즉, 자본축적 못지않게 '생산성'(productivity)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사람들의 능력이 향상 된다면 생산설비 등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전보다 성능이 더 좋은 설비로 교체된다면 생산량이 더 많이 증가할 겁니다.    


이렇게 기술수준이 점점 높아질수록 생산량을 늘려갈 수 있습니다. 생산량 증가에 있어 자본축적 이외의 또 다른 방법이 생긴 것이죠.


이때, 중요한 점은 기술진보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은 체감하지 않습니다. 자본은 한 단위 더 투입(input)해 나갈수록 생산량 증가폭이 줄어드는 체감 현상이 나타나지만, 기술진보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되면 될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더욱 더 커질 겁니다(increasing).


물론, 기술진보율 자체는 체감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한 단계 더 나은 기술을 만든다는 건 힘든 일이죠. 하지만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율을 딱 고정시키고 전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다고 가정했습니다. 그 값이 얼마이든간에, 일단 기술진보율은 '외생적으로 주어진다'고 가정했죠.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에 도달 했을지라도, 기술진보는 생산성 혁신을 불러와 1인당 생산량이 계속해서 증가하게 되고 0이 아닌 양(+)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솔로우모형 상에서 경제성장 동력(engine of growth)는 바로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를 통한 생산성 향상' 입니다.




※ 솔로우모형 내용 정리


자, 이번글에서 다루었던 솔로우 모형이 전달해주는 바를 한번 정리해봅시다.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어떤 나라는 못 사는 것일까요? 

- 자본축적의 중요성


: 솔로우 모형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을 제시합니다.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1인당 생산량이 많아서 부유한 국가가 됩니다.



자본축적 만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할까? 

- 불가능하다


: 자본축적 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불가능 합니다. 그 이유는 자본이 한 단위 늘어났을 때 생산량 증가폭은 체감(diminishing)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제발전 초기에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다가, 경제 수준(level)이 높아질수록 성장률은 점점 하락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0%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국가별로 성장률이 각기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가 각기 다르다


: 2017년 오늘날 중국은 8% 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반해, 한국은 2%~3%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별로 정상상태(steady state)에서 떨어진 정도가 다르기 때문' 입니다. 


경제성장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은 아직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죠. 반면, 경제성장 성숙기에 접어든 한국은 정상상태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성장률이 낮습니다.


이를 학문용어로 표현하자면, '전이경로' 혹은 '이행기동학' (transitional dynamics) 라고 합니다. 아직 정상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국가는 전이경로 속에 위치해 있습니다. 



저축율을 높이고 인구증가율을 낮추는 정부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 일시적 효과만 낼뿐, 성장효과는 없다


: 높은 저축율과 낮은 인구증가율은 1인당 자본량을 늘려서 생산량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으로 경제수준만 높이는 효과만 낼 뿐, 결국 성장률은 0%를 기록하게 될 겁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정책은 수준효과(level effect)만 나타나게 할 뿐이지, 영구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성장효과(growth effect)는 일으킬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동력은 무엇인가? 

- 기술진보를 통한 생산성 향상

 

: 솔로우 모형 상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인위적인 정부정책이 아니라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를 통한 생산성 향상' 입니다. 


즉, 경제성장의 동력(engine of growth)은 '기술진보'(technological progress) 입니다.




※ 생각 뻗어나가기



자본축적 중요성이 초래하는 문제 ① 

- 자본축적이 중요할까, 기술진보가 중요할까?


: 생활수준(level)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growth)을 위해서는 '기술진보'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둘 다 중요하지. 중요성을 왜 따지냐"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물음입니다. 만약 기술진보 없이 자본축적만 이룩한 국가는 성장률이 점점 하락하여 곧 성장이 멈추게 될 겁니다. 그러나 기술진보를 함께 진행해온 국가는 성장률을 계속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1970년대 소련 경제 · 1990년대 동아시아 경제 · 2010년대 중국 경제' 사례를 통해, '생산성 향상 없는 자본축적'이 초래하는 문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본축적 중요성이 초래하는 문제 ② 

- 미래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현재의 소비를 줄여야하나?


: 경제성장(=level의 상승)을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필요합니다. 자본축적은 높은 저축율을 통해 달성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축율이 높다는 말은 '소비가 적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럼 "미래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현재의 소비를 줄여야 할까요?"


"당연히 현재 조금 고생하고 미래에 과실을 얻어야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현재의 소비 감축이 미래의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만약 현재 자본축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현재의 소비 감축(=저축 증가)은 생활수준 향상과 소득 증가를 불러와 미래의 소비를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자본축적이 많이 이루어진 상황이라면, 현재의 소비 감축(=저축 증가)은 미미한 소득 증가로 이어져서 오히려 현재+미래 소비량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소비 감축은 세대별로 수혜가 다릅니다. 청년 세대는 미래의 소비 증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장년 세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 소비가 줄어들어서 효용과 후생수준이 하락하는 악영향만 받습니다.


경제학자들은 현재+미래 소비량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최적 저축율'이 얼마인지를 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른바 '저축 수준의 황금률'(golden rule)을 찾기를 바랐죠.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고민을 하는 이유는 결국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자본축적' 이외의 다른 방법이 있다면, 현재 고통스러운 소비 감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앞으로 다른 글들을 통해 이를 살펴볼 계획입니다.



 체감현상이 초래하는 문제 ① 

- 모든 국가가 동일한 지점의 정상상태로 수렴할까? 


: 솔로우 모형 상에서 1인당 생산량은 자본량에 대해 체감(diminishing) 하기 때문에, 결국 1인당 자본량은 정상상태(steady state)에서 멈추게 된다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국가가 서로 동일한 지점의 정상상태에서 멈추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을 시작해온 국가들은 이미 정상상태에 가까워졌을 겁니다. 이제 막 시작한 국가들은 정상상태를 향해 오고 있죠. 


그럼 언젠가는 모든 국가가 '하나의 정상상태'에서 멈추어서 1인당 자본량 · 생산량이 모두 똑같아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겁니다.(=level이 같아짐


게다가, 정상상태에서는 생산량이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 만큼 증가하고, 솔로우 모형은 전세계 어디에서든 기술진보율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하나의 정상상태' 위에서, 세계 모든 국가의 성장률이 같아지는 날도 올 수 있습니다.(=growth가 같아짐)


이렇게 국가간 1인당 생산량 및 성장률이 같아지는 현상을 '수렴현상'(Convergence) 라고 부릅니다. 


솔로우 모형만 살펴본다면, 전세계의 1인당 GDP가 하나로 수렴하여 국가간 격차가 없어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증 데이터를 살펴보면, 솔로우 모형이 기대하는 수렴현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빈곤국은 여전히 빈곤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저개발 상태를 벗어난 국가들도 여전히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level)을 기록하고 있죠. 또한, 성장률 격차(growth)가 축소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솔로우 모형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실증 결과에 반하는 이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텐데 말이죠.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이를 살펴볼 계획입니다. 



 체감현상이 초래하는 문제 ② 

- 정부정책은 무용할까?


: 정부의 저축률 증가 및 인구증가율 억제 정책이 성장효과(growth effect) 없이 수준효과(level)만 내는 이유는 솔로우 모형이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 function)을 가정했기 때문입니다. 꾸준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술진보만 필요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정부정책 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일부 사람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당장 현실을 둘러봐도 정부의 법과 제도 정비, R&D 투자 지원, 교육 확대, 사회적 인프라 구축 등이 성장률을 끌어올린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럼 우리는 '정부정책이 성장효과도 낼 수 있는 또 다른 모형'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글을 통해, 이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외생적인 기술진보가 초래하는 문제 ① 

-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같을까? 경제성장률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 로버트 솔로우는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며 외생적으로 주어진다고 가정했습니다. 쉽게 말해, 기술진보율이 2%든 10%든 일정한 값으로 모든 국가에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런데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같을 수 있을까요?


당장 미국과 한국을 대비해봐도, 양국간의 기술진보율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고 실제 기업운영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기술진보를 이루어내고 있지만, 미국에 비해서 뒤쳐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다"는 가정이 성립하는 이유는 '기술은 공공재(public goods)'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공재란 비배제성(non-excludable) · 비경합성(non-rivalry) 을 띄는 재화로서,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재는 여러 사람에게 빠르게 확산(diffusion)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기술은 공공재 특성을 띄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기술은 '특허제도'(patent)를 통해 보호되고 있으며(=배제성을 띄고 있으며), 다른 국가에 유출될 가능성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즉, 기술은 공공재가 아니며, 기술진보율은 국가별로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만약 기술진보율이 국가별로 다르다면, 경제성장률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성장률 격차의 원인을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ics)로 보고 있습니다. 국가별로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죠. 


하지만 기술진보율이 다르다면, '기술격차'(technology gap)가 성장률 격차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빨리 전달받지 못하는 폐쇄형 국가일수록 혹은 기술을 이용할 잠재력이 떨어지는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기술격차가 존재하는가 · 기술은 공공재인가 · 기술 확산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경제성장론 발전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쟁점입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이러한 쟁점이 경제성장론 역사(?)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 겁니다.

 


외생적인 기술진보가 초래하는 문제 ② 

- 왜 기술진보가 '외생적'으로 발생하나?


: '외생적인 기술진보'를 둘러싸고 던질 수 있는 또 다른 물음은 "왜 기술진보가 '외생적'으로 주어지는가?" 입니다. 


기술진보는 하늘에서 떡하니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R&D에 얼마나 투자하느냐 / 과학자 및 공학자들이 얼마나 힘을 쓰느냐 / 국가의 R&D 지원 정책이 얼마인가 / 다른 국가로부터 진보된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냐 등등 여러 경제주체들의 행위가 결합된 결과물 입니다.


다르게 말해, 현실에서 기술진보는 '내생적'(endogenous)으로 결정됩니다. 그런데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를 '외생적'(exogenous)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는 현실을 설명하는데 있어 심히 불만족스러운 사항입니다.


불만족을 느낀 다른 여러 경제학자들은 '기술진보가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모형'을 통해, 현실경제에 대한 설명력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내생적성장 모형'(endogenous growth model)을 살펴봅시다. 




※ 하나씩 차근차근


이러한 6가지 논쟁 사항을 이번글 하나만 읽고 깊게 생각해보기는 힘듭니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오히려 혼란만 일으켰겠죠. 


하지만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계속해서 읽어나가다 보면, 6가지 논쟁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경제성장이론 발전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등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1.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 2015.09.21. http://joohyeon.com/233 [본문으로]
  2.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 2015.09.21 http://joohyeon.com/236 [본문으로]
  3.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2015.12.29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4.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2014.03.25.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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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요약]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경제성장이론 요약]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Posted at 2017. 6. 27. 21:12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국가간 1인당 소득수준 격차(per capita income level)는 매우 커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1980년대 미국의 소득은 10,000 달러이지만, 인도는 240달러, 아이티는 270달러에 불과하다. (...)


1인당 실질성장률(rates of growth) 또한 국가별로 차이가 난다. 1960~1980년 사이 평균 경제성장률은, 인도 1.4%, 이집트 3.4%, 한국 7.0%, 일본 7.1%, 미국 2.3%, 선진국 3.6% 이었다. 인도의 소득수준이 2배가 되려면 50년이 걸리는 반면, 한국은 10년이면 충분하다. (...)


인도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반대로 방법이 없다면, 낮은 성장률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인도의 특성(nature of india)은 무엇일까? 


(경제성장을 둘러싼) 이러한 물음들이 인간 후생에 미치는 결과는 매우 압도적이다. 누군가 이 문제(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The Consequences for human welfare involved in questions like these are simply staggering: Once one starts to think about them, it is hard to think about anything else.)  


-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1988. 'On the Mechanics of Economic Development'


윗 발언은 현대 거시경제학을 정립한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19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가 1988년에 쓴 본인의 논문에서 한 것입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국가별로 다른 ① 소득수준(level) ② 경제성장률(growth rate) 였습니다.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다른 나라는 가난합니다. 또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반해, 다른 나라는 성장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모든 나라가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로버트 루카스는 국가별로 다른 성장이 나타나게 된 이유와 경제발전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말그대로 경제발전의 메커니즘(Mechanics of Economic Development)을 탐구했죠.


만약 그의 희망대로 경제발전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게 된다면 대부분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저개발 국가의 빈곤(poverty)? 이것은 경제성장이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문제입니다. '높은 경제성장률 → 높은 소득수준'은 빈곤을 아예 없애줍니다. 


실업? 높은 경제성장률은 경기적요인으로 발생하는 실업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성장률이 2%~3%가 아니라 7%~10%라면, 오늘날 문제되는 청년실업 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통화·재정정책 논쟁? 현재 미 연준(Fed)이나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그리고 정부의 재정을 둘러싼 논의가 벌어지는 이유는 경제성장률이 낮기 때문입니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단기간내 경기변동으로 인해 경제가 조금 출렁이더라도 "기준금리를 몇 %로 해야 경제가 좋아질까?",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정부 재정을 얼마나 써야할까?" 등을 지금처럼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균등(inequality)? 이는 경제성장이 100%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불균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개인간 차이는 있더라도 모두의 소득수준이 꾸준히 증가하면 불만도 지금보다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죠. 


다시말해, 경제성장은 그 자체로 대부분의 경제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소득수준을 둘러싼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하강하는 경기사이클로 인해 초래되는 경기변동 문제도 완화시켜 줍니다. 높은 경제성장률이 유지된다면 경기변동(economic fluctuation)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로버트 루카스가 "(경제성장을 둘러싼) 이러한 물음들이 인간 후생에 미치는 결과는 매우 압도적이다. 누군가 이 문제(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경제발전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탐구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 경제성장을 둘러싼 여러 이론이 제시되었으나 "왜 어떤 나라는 그 방법이 먹히는데, 다른 나라는 먹히지 않는가?" 라는 근본적 물음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이를 꾸준히 지속하기 위해서 ① 자본축적 ② 기술진보 등 크게 2가지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서유럽 · 북미 등 북반구 국가들은 이 방법이 잘 적용되었는데, 아프리카 · 남미 등 남반구 국가들은 여전히 미흡합니다. 


그럼 혹시 민족성 · 지리적 조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동일한 민족 · 지리적조건을 가진 한국과 북한의 경제상황은 딴판입니다. 그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즉 정치체제나 제도(institution)가 영향을 미친 것일까요? 이렇게 물음을 계속 던지다보면 결국 그 국가가 가진 특성(nature)에 주목하는 연구가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을 둘러싼 물음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이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경제성장론은 모든 물음에 완벽한 해답을 제공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경제발전 메커니즘의 훌륭한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본 블로그의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통해, 경제학자들이 '경제성장을 둘러싼 물음을 어떻게 발전'시켜 왔으며, '어떠한 통찰을 제공해주는지'를 상세히 알아봅시다.  




※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 소득수준 및 생활수준의 격차(level gap)를 초래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 경제학자 찰스 존스(Charles Jones) 등이 집필한 학부 경제성장론 교과서
  • 한국과 북한의 생활수준 격차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경제성장이론이 다루고 있는 첫번째 주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제는 역시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Why are we so rich and they so poor?) 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의 1인당 GDP는 약 57,000 달러 입니다. OECD 국가는 41,000 달러이며, 한국은 35,000 달러입니다. 한국을 포함하여 북미 · 서유럽 · 일본 등은 높은 생활수준(level)을 향유하며 비교적 안락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서 남반구 혹은 중앙아시아 등을 보면 완전히 다른 모습일 나타납니다. 라이베리아 800달러, 아프가니스탄 1,800달러이며 북한은 1,700달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는 생활수준 격차(level gap)를 이해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어떠한 요인이 국가간 차이를 초래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 솔로우 성장모형 (Solow Growth Model)

- '자본축적'을 많이한 국가일수록 부유한 생활수준을 누린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가장 먼저 살펴볼 이론은 로버트 솔로우가 1956년에 내놓은 '솔로우 성장모형' 입니다. 


그는 이 모형을 통해 "국가간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 정도가 생활수준 격차를 초래한다" 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자본'이란 기계 · 공장설비 등의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의미합니다. 


어떤 국가가 잘 사는 이유는 높은 저축율 · 낮은 인구증가율 등에 힘입어 1인당 물적자본을 많이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국가가 못 사는 이유는 낮은 저축율 · 높은 인구증가율 때문에 1인당 물적자본을 적게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잘 살지 못하는 국가라도 자본축적을 늘려나가면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한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 등 동아시아 4마리 호랑이 입니다. 이들 국가는 1970~1980년대 높은 투자비중을 기록하며 경제성장에 성공하였습니다.


이처럼 솔로우 모형은 '저축율과 인구증가율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간단하게 설명하였고, 동아시아 성공 사례도 설명해냄으로써 경제성장이론의 대표격으로 자리잡았습니다.



▶ P.로머와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 (Endogenous Growth Model)

- '지식' 및 '인적자본'이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부유한 생활수준을 누린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솔로우 모형 이외의 새로운 모형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P.로머와 로버트 루카스가 내놓은 '내생적성장 모형' 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식(knowledge)와 인적자본(human capital)을 강조하며 "'지식' 및 '인적자본'이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부유한 생활수준을 누린다"고 주장합니다. 물적자본에 한정되어 있던 자본의 개념은 이제 인적자본으로 확장되었습니다(broad concept of capital). 


여기서 지식과 인적자본 축적을 이끄는 힘은 '외부성'(externality) 입니다. 한 기업이 연구과정에서 창출한 지식은 다른 곳으로 전파될 수 있습니다(knowledge spillover). 또한, 개인이 쌓은 인적자본은 교육 등을 통해 후세대로 전수될 수 있으며, 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얻은 노하우는 다른 제품 개발에도 적용됩니다(learning by doing). 


따라서,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인적자본 수준이 높았던 국가는 계속해서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모형은 개인 및 기업의 행위로 지식 · 인적자본이 축적되고 그 결과 기술수준이 진보한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내생적성장 모형'(endogenous growth model) 이라는 명칭을 얻게 됩니다.



▶ 맨큐 · D.로머 · 웨일의 확장된 솔로우 모형

- 솔로우 모형의 기본가정을 유지하면서 '인적자본' 개념을 추가

- 물적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교육환경이 좋아져 인적자본 축적도 이루어진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⑥] 수렴논쟁 Ⅲ - 맨큐 · D.로머 · 웨일,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


내생적 성장모형 등장으로 이제 솔로우 모형은 그 역할을 다한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992넌 맨큐 · D.로머 · 웨일은 솔로우 모형의 기본가정을 유지한 채 '인적자본' 개념을 추가한 확장된 솔로우 모형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을 따로 놀지 않습니다. 물적자본 축적으로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한 국가일수록, 교육환경도 좋아져서 중등·고등 교육을 이수한 사람도 증가합니다. 


따라서, 솔로우가 주장했던 '(물적)자본축적'은 여전히 경제성장의 핵심요인 입니다.



▶ P.로머의 '다양성 기반' 신성장이론 (variety-based new growth theory)

-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적극적인 R&D 투자가 다양한 투입요소를 창출하며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솔로우 모형 → 내생적성장 모형 → 확장된 솔로우 모형'으로 발전되어온 경제성장이론은 점점 현실 설명력을 높여왔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들 모형이 경제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핵심쟁점은 '기업의 역할'(firm) 입니다. 


1980년대 등장한 내생적성장 모형은 '외부성' 덕분에 인적자본이 축적되며 사회 전체의 기술수준이 올라간다고 봤습니다. 여기서 기술진보는 그저 외부성이 의도치않게 만들어낸 부산물(side effect)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술진보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의도적인 R&D 투자'(intentional)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들 기업은 R&D 투자를 통해 다양한 기술(variety)을 개발하고, 특허등록을 통해 지적재산권 보호를 받습니다. 그리고 특허권을 독점적으로 누리며 이윤을 극대화 합니다.


폴 로머는 1986년에 내놓았던 내생적성장 모형을 발전시켜 1990년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을 내놓으면서 성장이론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적극적인 R&D 투자가 다양한 투입요소를 창출하며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라고 말합니다. 


이 모형에서 연구부문의 R&D 투자는 '서로 다른 생산방식의 숫자'(number of design)을 증가시킵니다. 그리고 다양한 생산방식은 다양한 내구재(variable durable)를 만들어내고, 이는 최종재가 사용하는 자본의 종류가 많아지는 것과 같습니다(capital = distinct types of producer durable). 그 결과, 소비자가 사용하는 최종재의 종류도 많아집니다.


따라서, 기업의 R&D 투자규모와 연구부문에 종사하는 연구원 수(=연구 인적자본)가 많은 국가는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하게 되며, 반대로 R&D 투자와 연구원 수가 적은 국가는 낮은 생활수준을 기록하게 됩니다.



▶ 아기온 · 호위트의 '품질향상 기반' 신성장이론 (quality-based new growth theory)

-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업의 혁신 노력이 더 나은 품질을 만들어내며 경제성장을 이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P.로머 방식의 신성장이론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의 아쉬움도 함께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혁신에 성공하여 라이벌 기업을 누르거나 반대로 경쟁에서 뒤쳐져 시장지배력을 모두 잃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업간 경쟁'(competition)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요인입니다.


1992년 아기온과 호위트는 로머의 모형을 발전시켜 '기업간 경쟁을 통해 품질이 향상되는 모습'을 설명하는 성장이론(quality-based growth model)을 발표했습니다.


이 모형에서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기업의 R&D 투자와 혁신을 촉진시켜 경제성장을 달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족 :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를 성장이론 내에서 구현했기 때문에 '슘페터식 성장 모형'(Schumpeterian Growth Model)로도 불립니다.)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 생활수준 격차 원인으로 물적자본을 강조하느냐, 아이디어를 강조하느냐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이러한 성장이론을 종합해보면, 국가간 생활수준 및 성장률 격차를 초래하는 요인을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물적격차'(object gap) 입니다. 


공장 · 기계설비 등 물적자본이 풍부한 국가는 경제성장을 달성하는데 반해, 부족한 국가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는 수해복구사업시 포크레인 등 건설장비를 이용하는 한국과 여전히 소와 쟁기를 이용하는 북한을 대비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둘째는 (내생적성장 모형과) 신성장이론[각주:1]이 강조하는 '아이디어 격차'(idea gap) 입니다. 


물적자본이 부족한 국가에 기계설비 등을 가져다주면 저절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물적자본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입니다.


이렇게 솔로우 모형과 신성장이론은 서로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경제성장을 위해 서로 다른 처방이 내려집니다.


솔로우 모형 주창자들은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통한 자본축적'을 강조합니다. [경제원론]에서 살펴보았듯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린다는 말은 경제내 한정된 자원을 소비재 생산이 아닌 자본재 생산에 투입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소비를 줄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입니다. 지금 당장의 효용을 포기하고 미래에 있을 희망을 기대하는 것인데, 현재의 소비감축이 미래의 소비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성장이론을 수립한 폴 로머(Paul Romer)는 '선진국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성장의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채용하거나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어 격차를 줄이는 것은 보다 손쉬운 해결책이기 때문이죠.




※ 왜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반해, 어떤 나라는 느리게 성장할까?

- 국가간 성장률 격차(rate gap)를 초래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국가간 생활수준 차이에 이어서 '성장률 격차'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반해, 어떤 나라는 느리게 성장할까요?


이를 보면 '1인당 GDP가 낮은 국가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미국은 보통 연간 2%~3% 성장률을 기록하는데 반해 중국은 연간 7%~10%의 성장률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② 

한 국가를 대상으로 바라보면, 생활수준이 낮았을 때 더 높은 성장률을 나타냈습니다. 과거 경제개발을 막 시작하는 단계였을때 한국은 연간 10% 내외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지금은 이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러나 "잘 사는 나라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거 아닌가? 가난한 국가는 느리게 성장하고?"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연간 2%~3% 성장하는데 반해 북한 같은 절대빈곤 상태의 국가는 성장 자체가 희귀합니다. 또한 북미 · 서유럽 등 선진국들은 (경제성장에 실패한) 보통의 국가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성장률 격차의 원인을 두고, 경제성장이론은 저마다의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 솔로우 성장모형 (Solow Growth Model)

- 1인당 자본량이 적은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

- 궁극적으로 모든 국가의 성장률은 0% 혹은 외생적인 기술진보율로 수렴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솔로우 성장모형은 ①, ②의 성장률 패턴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모형은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를 가정하기 때문에, 1인당 자본량이 많아질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점점 줄어듭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많아질수록 성장률은 하락하며, 1인당 자본량이 적은 국가일수록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즉, 솔로우 모형은 국가간 성장률 격차의 원인을 '자본축적 정도'에서 찾고 있습니다. 자본축적량이 정상상태(steady state)에 가까운 국가는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자본축적량이 정상상태에 미달하여 전이경로(transitional path)에 있는 국가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중국이 미국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미국보다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과거 한국이 오늘날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건 1인당 자본량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가의 1인당 자본량이 동일해져 생활수준이 같아지고(=level의 수렴), 성장률도 0% 혹은 외생적인 기술진보율로 같아지는(=rate의 수렴)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수렴현상'(convergence)이라 합니다.



▶ P.로머와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 (Endogenous Growth Model)

- '지식' 및 '인적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주도국이 높은 성장률을 계속 유지해나간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P.로머와 루카스는 ③의 성장률 패턴에 주목합니다.


일부 국가들 사이에서는 솔로우가 예측했던 것처럼 1인당 자본량이 적은 국가가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범위를 전세계로 확장하면, 가난한 국가는 성장 자체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개발국의 성장률은 OECD 소속 국가들보다 낮습니다.


또한, 시대별 주도국'(leader)의 성장률이 시대가 지날수록 높아져만 갔습니다. 1700년대 네덜란드 -0.07% · 1800년대 초 영국 0.5% · 1800년대 후반 영국 1.4% · 1900년대 미국 2.3% 입니다. 또한, 1900년대 미국의 성장률을 연도별로 쪼개보면, 최근 년도에 가까울수록 성장률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P.로머와 루카스는 국가간 성장률 격차의 원인을 지식과 인적자본 등 기술수준 격차(technology gap)에서 찾고 있습니다. 초기 지식 및 인적자본 수준이 높았던 국가는 영원히 높은 성장률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솔로우가 예측했던 수렴현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①, ②의 현상과 ③의 모습은 서로 상충되어 보입니다. 하지만 세 가지 모습은 동일한 요인때문에 발생한 현상일 수 있습니다. 


'1인당 자본량이 적다'는 절대적인 양이 적다는 의미도 있지만 상대적인 양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기준은 '각자의 정상상태'(own steady state) 입니다. 


초기 솔로우 모형은 저축률 · 인구증가율 등이 외생적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동일한 정상상태'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국가별로 저축률 · 인구증가율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정상상태도 다릅니다. 어떤 국가의 정상상태는 1인당 GDP 3만 달러일 수 있지만, 어떤 국가는 2천 달러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각자의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까운 국가일수록 낮은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즉, 자본축적량이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initial deviation)가 성장률 패턴을 결정 짓습니다. 이를 '조건부 베타 수렴'(conditional betaβ convergence)이라 합니다.


미국에 비해 중국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정상상태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 자체가 없는 저개발국에 비해 주요 선진국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 역시 자신만의 정상상태에서 더 밀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개발국은 1인당 자본량이 적다고 하더라도, 그 수준이 이미 정상상태에 가까운 것일 수 있습니다.



▶ P.로머의 '다양성 기반' 신성장이론 (variety-based new growth theory)

- 연구부문에 더 많은 인적자본을 배치할수록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솔로우 성장 모형과 조건부 수렴 등은 모두 '자본축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P.로머와 루카스는 '지식'과 '인적자본'에 주목했죠. 그리고 P.로머는 1990년 또 다른 논문을 통해 '아이디어'(idea)와 '연구'(research)로 관심을 돌립니다.


사람들은 '기술'(technology)이라 하면, '공장에 있는 기계를 다루는 능력'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장이론에서 기술이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기술진보란 '여러 원자재를 조합하는 방식을 개선시키는 것'(improvement in the instructions for mixing together raw materials)을 뜻합니다.


이때 경제성장 동력인 기술진보를 이끄는 요인이 바로 '아이디어' 입니다. 


연구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발견(discovery)을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곤 합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아이디어는 보다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케하는 다양한 방식(design)을 제시하면서 경제 전체의 생산능력을 키웁니다.  


따라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사람, 즉 연구부문에 종사하는 인적자본이 많을수록 높은 성장률이 나타나게 됩니다. 


주요 선진국이 저개발국에 비해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바로 연구부문의 차이에 있습니다. 선진국 내 주요 기업들은 R&D 투자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내지만, 저개발국은 그저 모방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 아기온 · 호위트의 '품질향상 기반' 신성장이론 (quality-based new growth theory)

- 기업간 경쟁 증대는 R&D 투자 증가 압력으로 작용한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경제성장률 차이를 불러오는 이유가 R&D 투자에 있다면, R&D 투자를 증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기온과 호위트는 '기업간 경쟁'(competition)에 주목합니다. 


현실의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혁신에 성공하여 라이벌 기업을 누르거나 반대로 경쟁에서 뒤쳐져 시장지배력을 모두 잃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R&D 투자를 늘리게 됩니다.


이때, '경쟁과 혁신의 관계'는 산업구조에 따라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시장내 경쟁수준이 낮은 상황에서는 동등한(leveled) 수준의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증가할수록 (담합이 어려워져) 혁신이 증가하게 됩니다.


반대로, 시장내 경쟁수준이 높은 상황에서는 동등하지 않은(unleveled) 수준의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증가할수록 (혁신의 기대이익이 적어져) 혁신이 감소하게 됩니다. 


그 결과, 경쟁과 혁신은 '역U자형'(inverse-U relationship)으로, 초기에 경쟁 수준이 낮은 상황이라면 경쟁이 벌어질수록 혁신은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미 경쟁 수준이 높은 상황이라면 경쟁 증가는 혁신 발생을 감소시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간 성장률 격차를 바라볼 때, 국가별 산업구조 등 미시적인 요인을 살펴봐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줍니다.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 아이디어 격차는 더 빠르게 좁힐 수 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아이디어가 가진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비경합성'(non-rival) 입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


기초 과학 및 공학법칙 · 경제 및 경영 지식 · 새로운 생산방법 등 아이디어는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월을 뛰어넘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선진국이 가진 아이디어는 후발산업국가 혹은 개발도상국도 함께 공유할 수 있습니다. 후발국이 사용한다고 해서 선진국의 아이디어가 훼손되거나 사용이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함의를 전달해 줍니다.


이때 국가간 아이디어 확산에 역할을 하는 건 바로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firm) 입니다. 후발국이 다국적기업에 적정한 보상을 주는 환경을 조성하면, 다국적기업은 직접투자 · 합작기업 설립 · 마케팅 및 라이센스 협약 등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추후 추가

  1. 1990년 폴 로머가 발표한 신성장이론 역시 내생적성장 모형의 한 부류입니다면, 1986년 논문과 구분하기 위해 용어를 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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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경제성장 ②] 자산시장 거품 없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 - 영속적인 장기침체 (Secular Stagnation)[사라진 경제성장 ②] 자산시장 거품 없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 - 영속적인 장기침체 (Secular Stagnation)

Posted at 2016. 1. 28. 11:27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 사라진 경제성장


지난글 '[사라진 경제성장 ①] 여전히 '2008 금융위기'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세계경제는 또 다른 위기를 맞게될까? - 부채동학과 경제위기'을 통해, "도대체 2008 금융위기의 어떤 특징 때문에, 8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2008 금융위기[각주:1]가 발생한지 벌써 8년이나 지났으나, 세계 · 미국 · 유럽 · 중국 · 신흥국 등의 경제성장률은 위기 이전에 비해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연초에 여러 경제기관들이 낙관적인 전망치를 내놓았다가 이를 하향조정(downward revision) 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글에서 소개한 보고서-<Deleveraging, What Deleveraging? The 16th Geneva Report on the World Economy>-는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이유'로 '① 부채동학 (Debt Dynamics) ② 위기 (Crisis)' 를 꼽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게 있습니다. 지난글은 2008 금융위기 '발생 이후' 낮아진 경제성장률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08 금융위기 '발생 이전' 경제성장률은 어땠을까요?


  • [1994년-2001년], [2002년-2008년], [2009년-2014년]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
  • 미국 경제성장률이 계속 낮아져왔음을 알 수 있다 


윗 그래프는 2008 금융위기 '발생 이전'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4년-2001년 시기 미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7%, 2002년-2008년 시기는 2.3%, 2009년-2014년은 1.2% 입니다. 2008 금융위기 '발생 이전'에도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원래 경제가 성장할수록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기 마련이다."[각주:2]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성장 초기 아무것도 없었던 때에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경제가 성숙해진 뒤에는 낮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2년-2008년], 즉 금융위기 발생 이전 시기에 미국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게 된 이유를 수확체감의 법칙에서 찾는건 문제가 있습니다. 


[2002년-2008년]은 'Fed의 1% 대의 초저금리 정책' + '신흥국에서 미국으로의 자본유입' + '미국 부동산가격 상승' + '미국 가계 주택담보대출 급증' 이라는 막대한 신용공급이 발생했던 시기[각주:3]이기 때문입니다.


  • [2002년-2008년], 미국 Fed의 통화정책과 주택담보대출 추이
  • 당시 Fed는 1%대의 초저금리 정책을 오랜기간 유지하였고,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 급증 + 부동산가격 상승이 나타났다

위의 그래프는 [2002년-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전 미국 Fed의 통화정책과 주택담보대출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경제는 '공격적인 통화정책' + '신흥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 덕분에 신용이 크게 증가했었습니다. 증가한 신용은 주택담보대출의 형태로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고, 주택가격 급등은 '주거투자 증가' + '민간소비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 2002년-2008년,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 최고치는 고작 3.8%

그런데 [2002년-2008년] 동안 미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1994년-2001년]에 비해서 하락했습니다. 여기에더해, 당시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 최고치는 3.8%에 불과했습니다. 

유례가 없던 공격적인 통화정책과 자본유입이 발생하여 신용이 크게 증가했던 시기였음에도 경제성장률 최고치는 고작 3.8% 였다는 말입니다. 1994년-2001년 평균 경제성장률이 3.7% 였으니, 신용공급이 만들어낸 경제성장률 증가치는 최대 0.1%p 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각주:4].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도대체 2008 금융위기의 어떤 특징 때문에, 8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미국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진 것 아닐까?" 


前 재무장관이자 경제학자인 Larry Summers(래리 서머스)는 2008 금융위기 '발생 이전'부터 하락해온 미국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영속적인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Hypothesis)을 제기했습니다. 

Larry Summers는 "거시경제 자연이자율(r*)이 -2% 혹은 -3%를 지속한다면, 자산시장 거품 없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그는 금융위기 발생 이전 [2002년-2008년] 시기, 공격적인 통화정책과 부동산가격 급등 등 자산시장 거품(bubble)이 있은 덕분에, 미국경제가 그정도의 경제성장률 이나마 달성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다시말해,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불안정이 수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시장 거품 없이, 즉 금융안정 상태에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건 불가능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자산시장 거품은 좋지 않은 것인데...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려면 자산시장 거품이 필요하다고???"


이제 이번글을 통해 Larry Summers가 제기하는 '영속적인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Hypothesis)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아, 그 전에 경제학 기본지식을 우선 알아야 합니다. 


Larry Summers 주장의 전제는 '거시경제 자연이자율이 -2% 혹은 -3%를 지속한다면' 입니다. 여기서 '거시경제 자연이자율'은 도대체 무엇이고, 왜 이런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요?




※ '거시경제 자연이자율 (natural rate of interest)'과 '(중앙은행이 조정하는) 실질이자율 (real interest rate)'의 차이


● 거시경제 자연이자율 (natural rate of interest) 


[경제학원론] 배경지식 링크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


거시경제 자연이자율 r* (natural rate of interest)는 '균형 실질이자율'(equilibrium real rate) · '중립 이자율'(neural interest rate) · '완전고용 실질이자율'(FERIR, full employment real interest rate)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모든 명칭을 기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편의를 위해 '자연이자율 r*'(natural rate of interest)로 통일하겠습니다.



거시경제 자연이자율이란 '저축과 투자가 결정짓는 실질이자율'을 의미합니다. 시장에서 가격을 공급과 수요가 결정짓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저축이 공급의 역할, 투자가 수요의 역할을 하고 실질금리는 일종의 가격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자금시장에서 저축은 개인과 정부가 기업에게 '공급'해주는 자금이고, 기업은 자금을 '수요'하여 투자를 진행하게 되죠. 개인 · 정부와 기업이 거래할때 균형을 이루는 가격이 실질금리 입니다.



이때, 저축이 증가하게 되면 균형 실질금리는 하락합니다. 공급이 증가하여 가격이 떨어지는 원리이죠. 그리고 투자가 하락하게 되었을때도 균형 실질금리는 하락합니다. 수요가 감소하여 가격이 내려가는 원리입니다.


● (중앙은행이 조정하는) 실질이자율 (real interest rate)


[경제학원론] 배경지식 링크

[경제학원론 거시편 ⑦]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에서나 화폐적인 현상 - 화폐중립성 & 고전학파의 이분법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⑨] '부채증가'와 '인플레이션'을 통해 경기침체에서 벗어난다?


"거시경제 저축과 투자가 실질금리를 결정한다."는 말을 듣고 의문을 품는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뉴스에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한다고 나오는데... 그렇다면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무엇일까?"



중앙은행이 조정하는 기준금리는 명목이자율(nominal interest rate) 입니다. 단기에는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일정하기 때문에, 명목이자율 조정(즉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실질이자율을 변동시킬 수 있죠.


이때 중앙은행은 아무렇게나 기준금리를 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2%로 정했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겁니다. 4%, 10%, 1%도 아닌 2%로 정한 이유 말이죠.


중앙은행은 '거시경제 자연이자율 r*'(natural rate of interest)의 바탕 위에서 기준금리를 조정하여 '실질이자율 r'(real interest rate)을 인위적으로 변동시킵니다.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의 적정값은 '저축과 투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실질이자율(r*)'과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실질이자율(r)'이 같아지도록 하는 값입니다.(r* = r)


만약 저축과 투자에 의해서 결정된 실질이자율(자연이자율)보다 더 낮은 값의 실질이자율을 인위적으로 만든다면(r < r*), 기업은 투자를 늘리게되고 경제는 호황을 맞습니다. 


반대로 저축과 투자에 의해서 결정된 실질이자율(자연이자율)보다 더 높은 값의 실질이자율을 인위적으로 만든다면(r > r*), 기업은 투자를 줄이게 되고 경제는 침체에 빠집니다. 


중앙은행의 존재목적은 경제를 안정적인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축과 투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실질이자율(r*)과 화폐부문에서 결정되는 실질이자율(r)이 같아지도록 해야합니다.(r= r*)    


다시말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저축과 투자가 결정짓는) '거시경제 자연이자율 r*'(natural rate of interest)의 바탕 위에서 결정됩니다.




※ 2002년-2007년에 '초과수요'(excess demand)를 발견할 수 없었다


자, 기본적인 경제학지식을 습득했으니 이제 Larry Summers가 말하는 '영속적인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Hypothesis)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주 : 앞서 글의 서두에서 말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2013년 11월 8일 개최된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 <Crises: Yesterday and Today>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곳에서 경제학자 Larry Summers의 발표는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는 2가지 경제현상을 보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2008 금융위기 발생 이후 4~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잠재GDP를 미달하는 미국경제.(below potential GDP) 


둘째, 2008 금융위기 발생 이전 공격적인 통화정책과 부동산가격 급등이 있었음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초과수요. (not excess demand)


일반적인 경기침체(Recession)가 발생하면 GDP가 하락하지만, 이후 가파른 회복(Recovery)을 통해 잠재GDP 수준으로 복귀합니다. (주 : recession과 recovery에 대해서는 여기[각주:5] 참고) 그런데 미국경제는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4~5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잠재GDP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2008 금융위기 발생 이전에도 미국경제에서 '거대한 활황'(a great boom)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2008 금융위기 발생 이전 시행되었던 '중앙은행의 느슨한 통화정책'을 비판했습니다. Fed의 초저금리 정책이 부동산거품을 일으켰고 금융위기로 발전시켰다는 논리이죠. 


그런데 통화공급확대와 부동산거품(too easy money, too much borrowing, too much wealth)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경제의 생산능력이 과잉되지도 않았고 실업률이 엄청나게 낮은 것도 아니었고 인플레이션율이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즉, 2002년-2007년 시기 부동산거품 조차도 실물경제의 초과수요를 만들어내는데 충분하지 않았습니다.[각주:6]

(even a great bubble wasn’t enough to produce any excess in aggregate demand.)


이러한 2가지 현상을 이해하려면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Larry Summers는 '자연이자율'(혹은 '완전고용 실질이자율')에 주목합니다. 


"거시경제 자연이자율이 지난 시기동안 계속 하락하여 -2% 혹은 -3%로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일이 발생할까?


① 중앙은행의 통화공급 확대나 자산시장 거품 등 인위적인 수요촉진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초과수요(excess demand)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②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이 정상수준으로 돌아가더라도, 완전고용(full employment)을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각주:7]"


왜 거시경제 자연이자율이 -2% 혹은 -3% 라면 초과수요(excess demand)를 발견할 수 없거나 완전고용(full employment)을 회복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앞서 설명했듯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실질이자율을 변동시킵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변동시키는 실질이자율의 적정값은 (거시경제 저축과 투자가 결정하는) 자연이자율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 밑으로 내릴 수 없다'(Zero Lower Bound)는 것에 있습니다. 



만약 자연이자율(r*)이 -2% 혹은 -3%이고,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2%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로 설정하더라도, 인위적으로 조정한 실질이자율(r)은 -2% 밑으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이자율(r)과 중앙은행의 실질이자율(r*)이 -2%로 같아져서 (확장이 아닌) 정상적인 통화정책이 되거나, 자연이자율(r* = -3%)보다 중앙은행의 실질이자율(r = -2%)이 높아져서 긴축적 통화정책이 되어버립니다. 


확장적 통화정책 효과를 내기위해서는 기준금리를 0% 밑으로 내려야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 합니다(Zero Lower Bound). 그렇다고해서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존재목적인 물가안정이 훼손됩니다.    


따라서, 거시경제 자연이자율(r*)이 -2% 혹은 -3% 라면, 중앙은행이 0% 라는 기준금리를 설정하더라도 확장적 통화정책의 효과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2002년-2007년] 시기 미국 Fed의 초저금리 정책과 부동산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에서 초과수요가 없었던 이유'와 '[2008 금융위기 발생 이후] Fed의 제로금리 정책과 세 차례의 양적완화(QE)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성장률이 낮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거시경제 자연이자율(natural rate of interest)가 -2% 혹은 -3%로 매우 낮은 값을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연이자율이 계속해서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워 집니다. 거시경제가 '영속적인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


2013년 IMF 컨퍼런스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말했던 Larry Summers는 2014년 논문과 여러글을 통해 '영속적인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Hypothesis)을 좀 더 발전시켰습니다.


논문명은 <U.S. Economic Prospects: Secular Stagnation, Hysteresis, and the Zero Lower Bound>, <Reflections on the new 'Secular Stagnation hypothesis>.


그는 2014년 글을 통해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 미국경제 잠재GDP 하락추세


  • 미국의 실제GDP(actual)와 잠재GDP(potential)
  • 미국 잠재GDP 수치가 해가 갈수록 하락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경제의 실제GDP는 잠재GDP 보다 낮은 값을 기록하며 침체에 빠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제GDP와 잠재GDP의 격차(즉, GDP갭)는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GDP갭의 축소는 실제GDP의 증가 때문이기도 했지만, 잠재GDP 자체가 하락한 것의 영향이 더 컸습니다.     


거시경제의 잠재GDP는 '생산요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때 달성가능한 최적의 생산량'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인 수치의 산출은 계량적방법을 이용합니다. 계량기법으로 산출해낸 미국경제의 잠재GDP는 2008 금융위기 이후 줄곧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윗 그래프를 보시면, 선형(linear)으로 나타난 년도별 잠재GDP 산출값이 크게 하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맨위의 2007년 잠재GDP 값에 비해서 맨 아래 2014년 잠재GDP는 아주 적은 수치입니다.


미국경제 잠재GDP의 하락은 '미국경제의 최적의 생산량이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경제성장 여력을 잃어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 2002년-2007년, 공격적인 통화정책과 부동산버블에도 불구하고 경기과열이 없었다

→ 그렇다면 부동산버블이 없는 현재, 경기회복은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Larry Summers가 걱정하는 것은 '미국경제 잠재GDP 하락' 뿐만이 아닙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2002년-2007년] 미국경제는 공격적인 통화정책 · 부동산가격 급등 · 주거투자 증가 등에도 불구하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지 못했었습니다.


급증한 신용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단지 '만족스러운 성장률'(satisfactory rate)을 기록했을 뿐, 경기과열(overheating)은 없었습니다. 실업률이 아주 낮지도 않았으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부동산거품이 없는 현재, 경기회복은 성장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각주:8]


부동산거품이 있었음에도 경제성장률은 과열이 아니라 단지 만족스러운 값만을 주었을 뿐인데, 부동산거품이 없어서 주거투자 · 민간소비가 크게 늘어나지 않은 현재에 경제성장률은 높아봤자 얼마나 높을까요.


●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는 없다

→ 자산시장 거품이 있어야 (그나마 만족스러운 수준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

→ 1990년대 일본 · 2000년대 미국과 유로존


물론, [2002년-2007]년 당시의 부동산거품이 옳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Larry Summers는 당시의 부동산거품 등이 '지속불가능한 가격상승'(unsustainable upward movement)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Larry Summers는 질문을 던집니다. "금융적으로 지속가능한 상황에서 경제가 만족스럽게 성장했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나?"[각주:9]


1980년대 부동산버블과 함께 고도성장을 기록하던 일본은 부동산가격이 정상수준(?)으로 하락하자 경제성장마저 멈추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유로존은 '남유럽으로의 자본유입과 자산가격 상승'에 힘입어 경제성장을 달성해왔으나, 자산시장 버블이 제거되자 경제성장률이 하락했습니다[각주:10]. 미국은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게 민망하죠.


지난 시기동안 선진국에서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은 양립한 적이 없습니다. 자산시장 버블 등 금융불안정이 생겨났을때 경제는 성장했고, 버블이 꺼지고 금융이 원래 수준으로 돌아왔을때 경제성장은 멈췄습니다.   


●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이 양립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 거시경제 자연이자율의 하락 (decline of natural rate of interest)


이처럼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이 양립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Larry Summers는 '거시경제 자연이자율의 하락'(decline of natural rate of interest)을 또다시 이야기 합니다.


앞서도 살펴봤듯이 자연이자율의 하락은 ① [2002년-2007년] 시기, 부동산거품이 존재했음에도 초과수요(excess demand)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 ② 2008 금융위기 발생 이후, Fed가 제로금리 정책을 펴왔음에도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를 잘 설명해줍니다.


여기에더해, 자연이자율 하락은 [2002년-2007년] 시기, 부동산거품 등 금융불안정이 생겨나게된 이유도 설명해줍니다.


만약 자연이자율이 하락한다면, 중앙은행은 자연이자율 하락에 맞추어 기준금리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이자율이 하락하는데 기준금리를 높게 유지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긴축적 통화정책이 되기 때문이죠.


이때,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투자자들의 리스크추구 행위를 자극합니다. 전과 비교해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고 금융시장 내에 유동성도 풍부해졌으니, 쉽게 대출을 받아 투자에 나서죠. 그 결과, 부동산가격 급등 등의 자산시장 거품이 발생합니다.


자,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 반복해서 정리해봅시다.


자연이자율이 하락하여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을때 (경기과열은 아니지만) 그나마 만족스러운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합니다.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낮아진 자연이자율로 인해 긴축적 통화정책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준금리를 내리면 리스크추구 행위 증가 · 유동성증가 등으로 인해 자산시장 거품이 발생합니다.


자연이자율 하락하여 낮은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면 경제성장과 금융불안정이 동시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자산시장에서 거품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기준금리를 높게 유지한다면, 즉 금융안정을 선택한다면 경제성장은 달성할 수 없습니다.


Larry Summers는 "앞으로도 거시경제 자연이자율은 -2% 혹은 -3% 대를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그가 제기하는 '영속적인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Hypothesis)에서 중요한 것은 용어에 나오는 '장기침체'가 아닙니다. 단순히 세계경제 혹은 미국경제의 장기침체를 예견하는 가설이 아닙니다.

 

Larry Summers의 '영속적인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Hypothesis)에서 핵심은 "(자연이자율 하락으로 생긴) 장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통화정책은 금융불안정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11] 입니다. 




※ 낮은 자연이자율이 초래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 중앙은행 역할의 한계

→ 재정정책의 필요성


'자연이자율 하락'(decline of natural rate of interest)이 초래하는 '영속적인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서 벗어나거나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stay patience)


첫번째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입니다. 경제성장을 하자니 금융불안정이 초래되고 금융안정을 잡자니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니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속적인 장기침체'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수요부족이 발생하고, 수요부족은 결국 공급량감소를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공급량감소는 잠재GDP 감소를 의미하죠. 


영속적인 장기침체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잠재GDP가 하락하여 경제는 정말로 장기침체(sustained long-term decline)에 빠지고 말겁니다.


②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low real interest rate)


두번째 방법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여 실질이자율을 낮추는 방법입니다. 이럴 경우, 금융불안정이 초래되지만 경제성장은 달성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2008 금융위기 발생 이후 Fed가 택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 밑으로 더 이상 내릴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할까요? 또한 자산시장 거품 등 금융불안정이 초래하는 비용을 낮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통해 자연이자율 하락에 대처하는건 상당한 비용을 초래합니다. 영속적인 장기침체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제한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③ 투자증가를 통해 자연이자율 자체를 높이기

→ 재정정책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은 '자연이자율 자체를 상승시키기' 입니다. 


영속적인 장기침체 가설은 "자연이자율이 -2% 혹은 -3%를 계속 유지한다면,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 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이자율을 높이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자연이자율은 저축과 투자가 결정짓습니다. 따라서 자연이자율을 높이려면 투자를 증가시키면 됩니다. 


Larry Summers가 강조하는 것은 '재정정책의 중요성'(fiscal policy) 입니다. 


정부가 지출을 증가시켜 투자를 늘린다면 자연이자율이 상승하게 되고, 영속적인 장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도로건설 · 사회인프라 건설 등 공공투자(public investment)가 증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자연이자율은 왜 하락하는가? 자연이자율 하락이 초래하는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인가?


이번글에서 살펴본 Larry Summers의 '영속적인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Hypothesis)의 근간은 '자연이자율의 하락'(decline of natural rate of interest) 입니다.


자연이자율이 하락하기 때문에 0%대의 통화정책도 초과수요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not excess demand). 또 자연이자율이 하락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출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금융불안정(financial instability)이 초래됩니다. 그렇다고해서 금융안정을 중시한다면, 그나마 만족스러운 수준의 경제성장률도 달성하지 못하게 되죠.


● 자연이자율은 왜 하락하는가?



실제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자연실질이자율은 줄곧 하락해오고 있습니다. 2014년 이후에는 0 밑의 값을 기록하고 있죠.


그렇다면 지난 시기동안 자연이자율이 하락해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연이자율이 하락하기 위해서는 '투자감소' · '저축증가'의 요인이 작용하여야 합니다. 


Larry Summers는 '투자감소'에 주목하고 있으며, Ben Bernanke는 '저축증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른글에서 "왜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자연이자율이 하락하고 있는지"를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자연이자율 하락이 초래하는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인가?

: 낮은 인플레이션(low inflation)이 인플레이션 보다 위험하다



자연이자율(natural rate of interest)이 낮은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실질이자율(real interest)을 낮춰야 합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조정은 자연이자율의 바탕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인플레이션율이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면(low inflation),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실질이자율을 낮추기가 어려워집니다. 


만약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1% 라면, 기준금리를 0%로 설정하더라도 실질이자율은 -1%에 불과할 겁니다. 이때 자연이자율이 -2% 라면 0%의 기준금리도 긴축적이 되어버리죠. 


이처럼 '자연이자율이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low natural rate of interest)하는 영속적인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 발생보다 '낮은 인플레이션'(low inflation)이 더 큰 문제입니다.


다음글에서는 낮은 인플레이션율 혹은 디플레이션이 초래하는 문제 · 왜 오늘날 인플레이션율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Larry Summers의 '영속적인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글 모음>


① 2013년 11월 8일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 연설

<Larry Summers Remarks -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 November 8th 2013>


② 2014년 논문

<U.S. Economic Prospects: Secular Stagnation, Hysteresis, and the Zero Lower Bound>


③ 2014년 10월 VoxEU 기고문

<Reflections on the new 'Secular Stagnation hypothesis'>


④ 2015년 11월 칠레 중앙은행 세미나

<Low Real Rates, Secular Stagnation, and the Future of Stabilization Policy>


⑤ 2015년 12월 Fed 기준금리 인상 비판

<My views and the Fed’s views on secular stagnation>



  1.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2. [경제학원론 거시편 ④]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방법 - 높은 고용률과 노동생산성 향상 http://joohyeon.com/235 [본문으로]
  3. [2007년-2009년]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② - 2008 금융위기 발생 http://joohyeon.com/244 [본문으로]
  4. 물론... 엄밀히는 잘못된 비교입니다... [본문으로]
  5. [사라진 경제성장 ①] 여전히 '2008 금융위기'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세계경제는 또 다른 위기를 맞게될까? - 부채동학과 경제위기 http://joohyeon.com/248 [본문으로]
  6. Too easy money, too much borrowing, too much wealth. Was there a great boom? Capacity utilisation wasn’t under any great pressure; unemployment wasn’t under any remarkably low level; inflation was entirely quiescent, so somehow even a great bubble wasn’t enough to produce any excess in aggregate demand. [본문으로]
  7. So what’s an explanation that would fit both of these explanations? Suppose that the short-term real interest rate that was consistent with full employment had fallen to -2% or -3% sometime in the middle of the last decade. Then what would happen? That even with artificial stimulus to demand coming from all this financial imprudence you wouldn’t see any excess demand. And even with a relative resumption of normal credit conditions you’d have a lot of difficulty getting back to full employment. [본문으로]
  8. One is left to wonder how satisfactory would the recovery have been in terms of growth and in terms of achievement of the economy’s potential with a different policy environment, in the absence of a housing bubble, and with the maintenance of strong credit standards. [본문으로]
  9. can we identify any sustained stretch during which the economy grew satisfactorily with conditions that were financially sustainable? [본문으로]
  10.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11. In other words, it is not that secular stagnation means that the economy will always be stagnant. It is that the monetary policies that are necessary to counter secular stagnation will be able to achieve growth for a time, but at the price of considerable financial unsustainability.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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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

Posted at 2015. 9. 21. 19:23 | Posted in 경제학/경제학원론


※ 이번글에서 다룰 내용


경제성장은 생산의 증가이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생산성 향상 입니다. 그리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때, 기계 · 공장설비 등 물적자본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죠. 즉,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노동생산성 향상을 돕는 자본재를 많이 축적해야 합니다.


자본재를 축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저축과 투자'라고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나옵니다. 그런데 '저축'을 왜 해야할까요? 저축은 돈을 비축해둔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국가는 돈을 찍어낼 수 있는데 왜 굳이 저축을 해야할까요?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저축'을 강조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저축과 거시경제의 저축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거시경제에서 저축이란 돈을 축적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거시경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돈의 축적'을 중요시하는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이번글에 나오는 여러 예시를 통해, '돈과 화폐'를 중요시하는 사고를 버려봅시다.  




※ 경제성장에 있어 중요한건 '노동생산성 향상' 

- 더 많은 자본재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킨다


지난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경제학원론 거시편 ③] '물가'를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명목과 실질의 구분'이 알려준 것은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생산의 증가이지 돈의 축적이 아니다." 였습니다.


가계는 돈을 많이 벌면 부유해집니다. 그러나 국가경제 · 거시경제는 돈의 축적이 의미가 없습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단순히 돈의 양만 많아지는 것은 명목(nominal)변화일 뿐입니다. 모든 국민의 소득이 100만원 증가하더라도 물가수준이 그만큼 상승하면 실질(real)적인 생활수준은 그대로입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생산'(product)이 증가해야 합니다.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을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이라 부르고, 국가가 1년동안 생산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가 얼마인지를 측정할 때 GDP를 이용합니다. 한국의 GDP가 1,500조원 이라는 말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돈의 양이 1,500조원이다."가 아니라 "한국이 1년동안 생산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가 1,500조원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④] 경제성장은 어떻게하면 달성할 수 있을까? - 높은 고용률과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해, 어떻게 하면 생산을 늘릴 수 있는지, 다르게 말하면 어떻게 하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높은 고용률'과 '노동생산성의 향상' 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생산과정에 참여할수록 · 한 사람이 더 많은 양을 생산할수록 1인당 생산량(1인당 GDP)이 증가하는 원리입니다. 


둘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은 '노동생산성 향상' 입니다. 각 국가마다 인구의 크기는 사실상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는 마음대로 늘릴 수 없습니다. 한국의 인구가 5,000만명에서 10억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따라서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의 지속적인 향상'이 필요합니다. 첫째도 생산성, 둘째도 생산성, 셋째도 생산성!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성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근로자의 숙련수준 향상, 즉 인적자본(human capital)의 향상입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근로자는 업무능력이 낮을 겁니다. 두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물적자본(physical capital) 입니다. 노동생산성 향상에 있어 물적자본은 인적자본보다 더 중요합니다. 


인적자본은 교육을 받은 근로자의 능력향상으로 생산성 증가를 이끌어내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노동생산성의 향상이 항상 근로자의 고급숙련도 덕분에 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근로자도 단순히 더 좋은 기계 · 더 많은 기계를 가졌을때 생산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즉, 더 많은 물적자본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킵니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적자본의 축적', 즉 더 많은 기계 · 더 좋은 기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계를 경제학용어로 '자본재'(capital good)라고 하는데, 경제성장은 많은 자본재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 자본재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투자'

- 투자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저축'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자본재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투자(investment)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투자는 주식 · 부동산 등을 구입하는 재테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시경제학에서 투자란 '기계 · 생산설비 등 신규 자본재를 만들거나 구매하는 것'을 뜻합니다. 투자를 통해 자본재를 축적해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거시경제 투자량를 결정짓는 것은 국민저축(national saving)입니다. 국민저축이 많을수록 투자량도 증가합니다.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에서 보았던 국민계정식(Y=C+G+I)을 통해 '저축과 투자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통 ‘저축’이라고 하면 돈을 불리기 위해 ‘소득 중 현재 필요에 의한 소비를 하고 남은 것을 통장에 넣어두는 것‘을 뜻합니다. 거시경제의 저축도 ’총소득(=총산출량) 중 현재 필요에 의한 지출을 하고 남은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소비와 정부의 지출은 현재 필요에 의한 지출입니다. 개인은 소비를 통해 지금 당장의 효용을 충족하고, 정부는 지출을 통해 지금 당장 필요한 국책사업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기업은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를 합니다. 더 좋은 공장설비를 갖췄을 때 미래수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투자를 하는 것이죠. 


따라서, 거시경제 저축은 '총소득(Y)에서 개인의 소비(C)와 정부의 지출(G)을 제외한 부분'(Y-C-G)를 의미하고, 저축의 정의에서 투자는 고려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저축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개인저축과 정부저축 입니다. 개인이 벌어들인 소득(Y)에서 현재 필요에 의한 소비지출(C)과 세금(T)을 뺀 것이 개인저축(Y-C-T) 입니다. 정부의 소득은 세금수입(T)이고 이 중 현재 필요에 의한 지출(G)을 하고 남은 것이 정부저축(T-G) 입니다. 


이때, 두 종류의 저축을 합친 것을 국민저축(S=Y-C-G, National Saving) 이라고 말하며, 국민저축(S)의 크기가 투자(I)의 크기를 결정짓습니다(S=I).         




※ 국민저축과 투자를 증가시키는 방법


경제성장에 필요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현재 소비를 줄여서 저축의 크기를 늘려야 합니다. 저축이 증가하면 투자가 증가하고, 그 결과 자본재가 축적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제성장을 꿈꾸는 국가들은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 저축을 장려하는 동시에 기업 투자증가를 위한 정책을 폅니다.   


민간저축을 증가시키는 방법 : 민간저축이란 정부가 아닌 개인의 저축을 뜻합니다. 국민계정식에서 Y-C-T(총생산량-소비-세금)가 민간저축이었죠. 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민간저축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소비를 억제(C↓)해야 합니다. 


어르신들을 만나보면 “과소비는 나쁜 것이고 저축을 많이 하는 근검절약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라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과거 한국 정부는 “과소비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퍼뜨려 인위적으로나마 저축크기를 늘리려 했기 때문이죠.


정부저축을 증가시키는 방법 : 정부저축이란 세금수입 중 정부지출을 제외하고 남은 것을 뜻합니다. 국민계정식에서 T-G(세금수입-정부지출)가 정부저축 이었죠. 정부가 재정흑자를 기록하면 정부저축이 증가하고, 재정적자를 기록하면 정부저축이 감소합니다. 즉, 정부저축 증가를 위해서는 재정흑자(T-G>0)를 기록해야 합니다. 


정부가 재정흑자를 기록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 입니다. 세금수입을 증가시키거나 정부지출을 감소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때 세금을 늘려서(T↑) 정부저축을 증가(T-G↑)시키는 방법은 민간저축 감소(Y-C-T↓)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민저축 증가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습니다(Y-C-G?). 따라서 정부저축을 증가(T-G↑)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부지출 감소(G↓)입니다.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축적에 있어 정부지출 감소는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지출 증가는 국민저축 감소로 이어지고 기업은 투자자금을 구하기가 힘들어집니다(G↑ → Y-C-G↓ → S↓ → I↓). 정부지출 증가는 기업의 투자를 방해하는 효과(crowding out)를 초래하죠. 따라서 정부는 정부지출 감소를 통해 재정흑자를 유지하며 충분한 저축량을 금융시장에 공급해야 합니다(G↓ → Y-C-G↑ → S↑ → I↑).  


투자를 증가시키는 방법 : 기업이 투자를 늘렸을때 세금공제 혜택을 제공해준다면, 기업은 투자를 할 유인이 증가하게 됩니다. 한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기업에게 여러 혜택을 제공해줬었죠.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①-1 

- 왜 투자크기는 저축크기에 의해서 결정?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자본재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고, 투자 크기는 국민저축 크기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지금까지 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투자 크기는 국민저축 크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일까요? 


"국민계정식으로 저축과 투자 공식을 도출하면 S=I로 나오지 않느냐?" 라고 말하는건 경제학적이지 않은 설명입니다. 경제현상을 수식으로 표현하는건 이해를 돕기 위해서일 뿐, 수식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투자를 늘릴 때 왜 저축이 중요한지' 함의를 알아야 합니다.


가계경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하면 돈이 모이지 않느냐. 비축해둔 돈으로 비싼 물건을 살 수 있다. 거시경제 저축도 이와 유사하다. 경제주체들이 소비를 하지 않고 돈을 저축한 다음에, 비축해둔 돈으로 자본재를 구입할 수 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계는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야 돈이 생기지만, 국가는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거시경제에서 저축이 가지는 의미가 '경제주체들이 소비를 하지 않고 돈을 저축한 다음, 비축해둔 돈으로 자본재를 구입하는 것' 이라면 굳이 저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앙은행이 찍어낸 돈으로 자본재를 구입하면 될텐데 왜 굳이 소비를 줄여서 저축을 해야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거시경제에서 저축이 가지는 의미와 가계경제에서 저축이 가지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거시경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계경제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①-2 

- 화폐거래는 자원배분을 변화시킨다


우선 ‘화폐를 이용해 물건을 구매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경제학원론 거시편 ③] '물가'를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명목과 실질의 구분'에서 ‘화폐의 기능’을 이야기 했었습니다.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할때 화폐의 축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나, 우리가 화폐를 사용하는 이유는 ‘거래의 용이함’과 ‘구매력이 화폐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살 때 1만원 화폐를 건네는 것은 종이 그 자체에 어떠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구매자가 1만원 상품을 살 수 있는 능력’ 즉 나의 구매력이 화폐에 들어있으며 판매자에게 이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폐를 이용한 거래는 편리함을 가져다 줍니다.


이때 화폐를 이용한 거래는 ‘자원배분을 변화'시킵니다. 경제주체의 구매력을 특정 상품 구입에 사용하면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특정 상품 생산량도 많아집니다. 그렇다면 그 상품 생산량 증가를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게 되죠. 예를 들어, 스마트폰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애플과 삼성의 노동력 · 기술 · 천연자원 등은 피쳐폰 생산이 아닌 스마트폰 생산을 위해 쓰이게 되었습니다. 


즉, 경제주체가 화폐거래를 통해 구매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거시경제 내 자원배분을 변화시킴'을 의미합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①-3 

- 거시경제에서 저축이 가지는 의미


구매력이 화폐에 들어있다’와 ‘화폐를 이용한 거래는 자원배분을 변화시킨다’는 사실로부터 ‘거시경제에서 저축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개인과 정부의 구매력(화폐), 금융시장을 통해 기업에게 전달 

: 타인의 구매력(화폐)을 이용하여 투자를 늘리는 기업


저축이란 내가 가진 구매력을 지금 전부 사용하지 않고 다음번에 사용할 수 있도록 비축해 놓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비축된 구매력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도 있습니다. 바로 금융시장의 일종인 대부자금시장(Loanable Fund Market)을 통해서죠. 


현재 소비가 급하게 필요하지 않은 경제주체는 자신의 구매력을 대부자금시장에 내놓습니다. 현재 지출이 급하게 필요한 다른 경제주체는 대부자금시장을 통해 타인의 구매력을 얻을 수 있죠. 그 결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매력에 더하여 대부자금시장을 통해 공급된 타인의 구매력으로 현재 필요한 곳에 지출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다시 쓰면, 현재 소비가 필요하지 않아 개인과 정부가 저축해놓은 화폐는 대부자금시장을 통해 기업에 전달됩니다. 기업은 차입한 돈을 이용하여 투자를 하게 되죠. 


● 개인과 정부의 구매력을 빌려서 대신 이용하는 기업

: 국가의 자원(노동력 · 천연자원)이 생필품 생산이 아니라 자본재 생산에 쓰이게 됨  


개인은 지금 당장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상품을 주로 소비합니다. 음식 · 옷 등의 생필품 구입이 많습니다. 이에반해 기업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계 · 공장설비 등 자본재에 투자를 합니다. 생필품은 지금 당장의 만족은 가져다 주겠지만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필품 생산보다는 자본재 생산에 더 많은 자원을 써야 합니다.     


개인과 정부의 구매력이 대부자금시장을 통해 기업으로 이전되면, 노동력 · 천연자원 등 국가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경제성장을 위해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저축으로 인해 개인과 정부가 구매력을 행사하지 않아 소비지출이 감소하면, 생필품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필품을 생산 할 필요가 적어집니다. 기업은 대부자금시장을 통해 넘겨받은 구매력을 자본재 투자에 사용합니다. 


이제 한 국가의 근로자들은 생필품 생산이 아니라 자본재 생산을 위해 일을 하게 됩니다. 석유 · 철광석 등 천연자원도 자본재 생산에 더 많이 쓰이게 되죠.


그 결과, 개인과 정부가 지출을 줄여 기업의 투자를 늘린 국가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본재 축적에 더 많은 자원'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시경제에서 저축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한 ‘돈의 축적’이 아니라 ‘한 국가가 가진 노동력 · 기술력 등의 자원을 경제성장을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시경제내 국민저축 크기가 클수록 투자의 크기도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하게 됩니다. 


『맨큐의 경제학』 628쪽을 보면 “자원은 희소하기 때문에 자본재를 더 많이 생산하려면 당장 소비할 재화의 생산에 대한 자원 투입량을 줄여야 한다. 즉 어떤 사회가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면 현재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 축적에서 비롯되는 경제성장은 공짜가 아니다. 미래에 높은 소비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소비를 희생해야 한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따라왔다면 이 문장이 품고 있는 함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②

- 돈이 부족하다? 한정된 자원이 부족하다!


앞선 글들과 이번글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돈의 축적을 중요시하는 가계·기업경제의 관점을 거시경제를 바라볼때는 버려라!" 입니다. 


경제성장을 위한 저축의 중요성을 "그래 과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을 하면 돈이 많아지니까,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저축을 해야지." 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거시경제를 바라볼때 지녀야할 중요한 생각은 "경제성장은 생산의 증가이고, 국가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자본재 생산을 위해 효율적으로 써야한다." 입니다.


만약 자원이 무한대로 있다면 굳이 저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인의 생필품 소비 증가로 인해 노동력이 생필품 생산에 쓰이더라도, 자본재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이 무한대로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 국가가 보유한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어디에 더 많이 배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대다수 거시경제적 이슈들은 '돈을 둘러싼 갈등'으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입니다. 여러 사례를 통해 이를 알아보도록 하죠.  


● 과거 우리나라는 가난해서 돈이 없었다?


: 요근래 새로 지어지는 초·중·고등학교는 엘리베이터도 있고 바닥은 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화장실은 당연히(?) 양변기이고 심지어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지어진 학교는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없으며 바닥은 나무목재여서 한달에 한번씩 왁스 청소를 해야했습니다. 화장실은 당연히(?) 좌변기였고 비데 같은건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과거(1990년대 후반 이전)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요즈음 학교를 보며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가난해서 돈이 없었지." 라고 말하며 회상에 잠깁니다. 그런데 이 발언은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 돈이 없었을까요? 돈은 한국은행을 통해 찍어내면 됩니다. 가계 · 기업과는 달리 국가는 돈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 부족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자본재와 자원 입니다. 당장 경제성장이 급한 상황에서 필요했던 것은 생산을 늘려주는 기계와 공장설비 였습니다. 한정된 노동력 · 기술력을 학교시설에까지 써야할 유인이 없었죠. 


그러다가 비축된 자본재를 이용하여 경제가 성장하고 자원의 양도 풍부해짐에 따라, 노동력 · 기술력을 학교시설 보강에 사용할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과거를 회상할때 뱉었어야 할 말은 "옛날 우리나라는 한정된 자원을 자본재 생산에 써야했지. 오늘날에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자본재와 자원이 풍부해져서, 한정된 자원을 학교시설 개선에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 입니다. 경제학을 공부하면 이렇게 논리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주변사람들이 떠나가죠...)   


● 이윤추구만을 앞세우는 탐욕스런 선진국 제약회사들? 


: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하여 전세계를 긴장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이 없었는데,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서구 선진국들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질병에 관심이 없었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개발 비용 대비 수익성이 낮다며 외면"[각주:1]했다 라는 주장을 소개하며 선진국 제약회사들을 비판했습니다. 이같은 비판은 타당한 것일까요?


선진국 제약회사들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따라서 돈이 되는 약만을 개발할 유인을 가지고 있죠. 


그렇지만 "돈이 되지 않으니까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지 않은 것" 라는 식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본래 서아프리카 특정 지역에만 한정된 풍토병 이었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소수'라는 점입니다. 


제약회사가 신약개발에 쓸 수 있는 연구인력과 자금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환자수가 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효율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효율을 무시하고 환자수가 적은 질병에 자원을 쓰게 되면 그 사이 많은 환자들은 목숨을 잃습니다. 


즉, 선진국 제약회사들이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을 이전에 개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정된 자원하에서 많은 환자수를 살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 NASA의 우주개발은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 미국 NASA는 인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기관입니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 · 화성탐사 · 보이저호 · 명왕성 탐사 등등 우주탐사에 앞장서고 있죠. 이런 NASA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됩니다. NASA의 2014년 예산은 약 20조원으로 미국 연방재정의 0.5%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 경쟁을 벌이던 1966년, NASA의 예산은 지금의 9배인 연방재정의 4.41%에 달했었습니다. 우주경쟁이 끝난 오늘날, 미국정부는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NASA 프로그램에 부담을 느꼈고 50년 사이 NASA의 예산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죠.  


지금까지 글을 읽어온 독자분들은 "정부는 돈을 찍어낼 수 있다며? 그런데 왜 천문학적 예산에 부담을 느낀다는거지? 돈을 찍어내서 예산을 충당하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쌓아놓은 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화폐는 중앙은행이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돈의 축적은 의미가 없습니다.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내서 NASA의 예산규모를 키우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우주개발 프로그램이 부담된다는 말은 '한정된 자원을 NASA에 대규모로 투입하는건 비효율적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과거 소련과 군비경쟁을 하던 시절에는 우주개발이 큰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오늘날 우주개발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연과학 · 공학분야의 천재들이 NASA의 프로젝트에 종사하기보다는 민간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사회전체에 더 큰 효용을 안겨다 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천재들은 구글 · 애플 · 삼성과 같은 민간회사에서 연구를 하며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여러 신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구에 있는 모든 천재들이 NASA에서 일하면 인류가 화성에 직접 가는 날이 앞당겨 질수도 있을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당장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따라서 모든 천재들이 NASA에서 일하지 않고, 누구는 NASA 누구는 민간회사에 종사하며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죠.     


● 영화 <2012>, 방주를 만들기위해 부자들에게 돈을 거둔다?


: 영화 <2012>는 인류의 종말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한 과학자는 연구를 통해 3년후 기상이변이 발생하여 인류가 종말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미국정부는 소수의 인간이나마 보호하기 위해 큰 배를 건설하기 시작하죠. 


규모가 큰 배를 건설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고, 미국정부는 세계의 부자들에게 돈을 거둡니다. 그리고 돈을 댄 부자들에게만 배를 탈 수있는 권리를 부여하죠. 


영화 속 미국 대통령은 인류종말이 시작되자 "배를 탈 수 있는 기회를 부자들에게만 준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추첨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기회를 제공했어야 하는데." 라며 자책을 합니다.


그런데 영화 <2012>는 시나리오에 큰 결점이 있습니다. 배를 건설하는데 왜 부자에게서 돈을 거두어야 하나요? 그냥 미국정부가 돈을 찍어낸 다음에 배 건설에 필요한 원자재를 구입하면 됩니다. 또는 근로자 · 원자재업체에게 돈을 주지 않고 강제로 일을 시키거나 부품을 구입할 수도 있구요. 3년 후 지구가 망하는데 인플레이션을 신경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는 아마 경제학을 배우지 않았을 겁니다. "배를 건설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니, 돈 많은 부자들에게서 돈을 거두는 이야기를 써야겠군."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배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노동력 · 기술력 · 철광석 등의 자원입니다. 돈은 그저 자원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하는 수단일 뿐이죠. 게다가 돈은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찍어낼 수 있구요.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면 나중에 영화계에서 일했을때 좀 더 논리적인 시나리오를 쓸 수 있습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③

- 투자는 계속 증가할 수 있는가? 


이번글에서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본재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정부의 저축을 통해 기업이 투자를 해야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은 재화의 생산증가 이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높은 국가일수록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여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때 노동생산성은 근로자의 인적자본 수준뿐만 아니라 기계 · 공장설비 등 물적자본에 따라 결정됩니다. 물적자본이 많을수록 근로자 한 명이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기계 · 공장설비 등 물적자본, 이른바 자본재를 많이 비축해야 합니다. 자본재를 생산하거나 구입하는 행위를 '투자'(investment)라 하는데, 경제성장은 투자의 크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투자의 크기를 계속해서 늘려나가면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을까요? 지난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④]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방법 - 높은 고용률과 노동생산성 향상'을 읽으신 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축적된 자본재의 양이 많아질수록 '수확체감의 법칙'(diminishing returns)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수확체감의 법칙이란 자본량이 증가함에 따라 자본 한 단위를 추가로 투입할 때 증가하는 생산량은 점점 줄어드는 원리입니다. 정 수준을 넘는 과잉투자(over-investment)는 비효율을 초래할 뿐입니다. 


<출처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 국민계정(2010년 기준) - 주요지표 - 연간지표 - 지출구조 - 총고정자본형성>

 

이런 이유로 인해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한 국가는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경제성장을 달성한 국가는 투자의 비중이 작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경제성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63년 이후로 투자의 비중(총고정자본형성의 크기)은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어느정도 달성한 1990년대 후반 이후로 투자의 비중는 이전에 비해 감소하였죠.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④

- 이전에 높았던 예금금리가 오늘날에는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 거시경제내 실질금리를 결정짓는 저축과 투자


<출처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 금리 - 예금은행 가중평균금리 - 수신금리 - 신규취급액 기준 - 저축성수신>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에 돈을 맡기면 10%가 넘는 이자가 붙었습니다. 100만원을 저금하면 10만원이 이자로 붙었었죠. 하지만 2015년 현재 은행 예금금리는 2%를 넘지 않습니다. 100만원을 은행에 맡기면 고작 2만원이 더 생길 뿐이죠. 이는 한국은행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96년 당시 예금은행의 예금금리는 10%를 넘었으나 2015년 현재는 1.57%에 불과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오늘날 예금금리를 보며 "예전에는 은행에 저축만 해도 돈이 많이 들어왔는데 요즘은 안 그렇다. 예금 들어봤자 남는 것도 없다." 라는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금금리는 왜 이렇게 낮은 것일까요? 


첫번째 가설은 '은행의 탐욕' 입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예금이자가 높을수록 고객에게 돈을 많이 줘야하니 손해입니다. 따라서 은행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예금금리를 낮게 설정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측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200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객들에게 많은 이자를 지불했던 착한 은행들이 2000년대 이후 갑자기 탐욕이 생긴 것일까요? 


예금금리는 은행이 마음대로 설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두번째 가설로 '중앙은행의 낮은 금리'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2015년 현재 한국은행이 정한 기준금리는 1.50% 입니다. 기준금리와 예금금리가 상당히 비슷합니다. 정말 중앙은행의 낮은 기준금리 때문에 은행 예금금리가 낮은 것일까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은행 금리에 큰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설정하는 기준금리는 명목금리(nominal rate)일 뿐입니다. 기준금리는 아무렇게나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시경제내 실질금리(real rate)를 중심으로 정해집니다. 그렇다면 실질금리가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 거시경제 실질금리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실질금리는 거시경제내 저축과 투자가 결정짓습니다. 시장에서 가격을 공급과 수요가 결정짓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저축이 공급의 역할, 투자가 수요의 역할을 하고 실질금리는 일종의 가격입니다. 


실질금리가 높을수록 저축이자를 바라는 사람들은 더 많은 저축을 합니다. 따라서 저축량은 실질금리와 비례합니다. 반대로 투자량은 실질금리와 반비례 합니다. 실질금리가 높을수록 차입비용이 크기 때문에, 기업은 차입을 통한 투자를 줄입니다. 


Y축을 실질금리, X축을 저축량 · 투자량으로 둔다면, 저축은 우상향하는 공급곡선 모양을 띄고 투자는 우하향하는 수요곡선 모양을 띕니다. 그리고 저축과 투자가 만나는 지점에서 균형 실질금리가 결정되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자금시장에서 저축은 개인과 정부가 기업에게 '공급'해주는 자금이고, 기업은 자금을 '수요'하여 투자를 진행하게 되죠. 개인 · 정부와 기업이 거래할때 균형을 이루는 가격이 실질금리 입니다.



이때, 저축이 증가하게 되면 균형 실질금리는 하락합니다. 공급이 증가하여 가격이 떨어지는 원리이죠. 그리고 투자가 하락하게 되었을때도 균형 실질금리는 하락합니다. 수요가 감소하여 가격이 내려가는 원리입니다.


● 과거 은행 예금금리가 높았던 이유와 오늘날 은행 예금금리가 낮은 이유

-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 많았던 투자와 경제가 성장하고 나서 적어진 투자

- 투자수요가 많았을때 높았던 실질금리, 투자수요가 감소하자 크게 하락한 실질금리


<출처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 국민계정(2010년 기준) - 주요지표 - 연간지표 - 지출구조 - 총고정자본형성 1996년 이후>


이제 과거 은행 예금금리가 높았던 이유와 오늘날 은행 예금금리가 낮은 원인을 이해할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은행 예금금리가 높은(낮은) 이유는 거시경제 실질금리가 높기(낮기) 때문이고, 거시경제 실질금리가 높은(낮은) 이유는 저축이 적거나(많거나) 투자가 많아서(적어서) 입니다. 저축과 투자 중 실질금리 변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투자입니다.


바로 앞서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③'을 통해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한 국가는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경제성장을 달성한 국가는 투자의 비중이 작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한국은 경제가 고도성장하던 19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투자크기가 컸지만, 2000년대 이후 경제가 성숙단계로 진입하자 투자크기가 감소하였죠.


이런 이유로 인해 투자가 많았던 1990년대 말까지 한국경제내 실질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투자가 감소한 2000년대 이후 실질금리는 계속해서 하락하였습니다. 실질금리 변화에 맞추어 은행 예금금리 또한 과거 10%대에서 오늘날 1.5%대로 하락하였죠.    


윗 그림은 한국경제 GDP에서 투자(총고정자본형성)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투자비중의 변화가 보여주는 그래프와 앞서 첨부한 은행 예금금리 변화 그래프가 거의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2015년 현재 은행 예금금리가 과거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은행의 탐욕과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 때문이 아니라, 경제가 성숙단계에 진입하고 투자수요가 감소하여 실질금리가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⑤-1

- 정부주도의 경제성장?  


‘정부지출 증가가 기업의 투자를 방해한다’는 말을 듣고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정부지출 증가가 기업의 투자를 방해한다는 말은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물적자본 축적을 정부가 방해한다는 말 아닌가? 그런데 한국은 경제성장을 정부가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죠. 


하지만 ‘정부가 경제성장을 주도했다’는 말과 ‘정부지출 증가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말은 같지 않습니다. 한국은 정부주도 하에 자본을 축적하였으나, 정부지출 증가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개인과 정부의 구매력이 금융시장을 통해 기업으로 이전된다. 그 결과 현재의 소비를 늘리는 게 아니라 자본재에 대한 투자를 늘림으로써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금융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금융시장의 작동을 통제하여 인위적으로 자원을 배분하였습니다. ‘금융시장 통제’(control over finance)를 한 것이죠.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자금공급(국민저축)과 자금수요(투자)가 만나는 균형실질이자율에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됩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국민저축을 통해 공급된 자금을 특정 기업들에게만 선별적으로 배분하였습니다. 정부로부터 선택받은 기업들은 배분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자본재 투자를 늘렸죠.     


즉, ‘한국정부가 경제성장을 주도했다’는 말은 ‘한국정부가 금융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을 통제하여 선택받은 기업들에게 자금을 몰아주었다. 국가로부터 선택받은 기업들은 제공받은 자금을 이용하여 자본재 투자를 늘려나갔다.’는 뜻입니다. 


‘정부지출 증가’로는 자본을 확충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세금수입 증가와 국가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필요합니다. 정부지출 증가를 위해 세금을 올린다면 기업의 투자활동을 저해시킵니다. 또한 국채발행은 금융시장 실질이자율을 상승시켜 민간투자를 방해합니다(crowding out). 실제로 195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GDP 대비 정부지출 비중은 20%를 넘은 적이 없습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⑤-2

- 금융시장을 통제하여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방식은 지속가능 할까?


한국은 정부가 금융시장을 통제(control over finance)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했습니다. 이를 보고 "역시 금융시장을 통제해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금융시장을 통제하여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지속불가능 하기 때문입니다.


금융시장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기업이 무엇을 개발하는지, 어떤 기업의 신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지, 이 기업은 얼마의 자금이 필요한지 등등을 전부 알아야 효율적인 배분이 이루어질 겁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해감에 따라 산업구조가 복잡해지고, 사업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오늘날에는 정부가 이러한 정보를 전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에게 자원이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친한 기업 혹은 정부에 뇌물을 준 기업'이 국가의 선택을 받아서 자원을 배분받게 되죠. 이는 비효율과 부정부패를 유발하여 경제성장을 방해합니다.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 먹혔던 전략은 '초기'라서 성공했을 뿐, 경제가 성장하고 경제구조가 복잡화된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⑥

- 경제성장을 위한 금융의 중요성


'금융시장을 통제하여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지속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경제성장에 있어 금융부문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재 생산의 효과가 큰 기업에게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합니다. 투자를 해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게 자원이 배분되거나, 경제성장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기업에게 과다한 자원이 배분되는건 비효율적이죠. 


따라서, 정부는 금융시장을 통제하여 자원을 인위적으로 배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금융시장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도와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 필요한 투자량에 비해 국내의 저축이 부족하다면?


이번글에서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본재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저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저축을 통해 소비를 줄인다면 생필품생산이 감소하기 때문에, 자본재 생산을 위해 많은 자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투자량에 비해 국내의 저축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필요한 투자량이 100일때 국내의 저축이 50에 불과하다면, 투자는 50만 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이때 국내의 저축뿐 아니라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면 투자량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에서는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투자를 늘리는 방법을 알아볼 겁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지식으로 '경상수지 흑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가지는 의미도 살펴볼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게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1. '세계 무관심 에볼라, 재앙이 되다'. 2014.10.19 한겨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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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원론 거시편 ④]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방법 - 높은 고용률과 노동생산성 향상[경제학원론 거시편 ④]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방법 - 높은 고용률과 노동생산성 향상

Posted at 2015. 9. 21. 18:51 | Posted in 경제학/경제학원론


※ 이번글에서 다룰 내용


현대 자본주의는 돈의 축적이 아니라 '생산'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많은 사람이 생산활동에 참여해야하고, 한 사람이 생산해내는 양이 많아야겠죠. 너무나 당연한 원리입니다. 


이번글에서는 '어떻게하면 생산량을 늘려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알아볼 겁니다. 이 글을 읽고나면 "왜 선진국은 후진국을 도와줘서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지 못할까?"라는 의문도 풀리게 될겁니다.




※ 경제성장은 돈의 축적이 아니라 재화의 생산


지난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③] '물가'를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명목과 실질의 구분'이 알려준 것은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생산의 증가이지 돈의 축적이 아니다." 였습니다. 


가계는 돈을 많이 벌면 부유해집니다. 그러나 국가경제 · 거시경제는 돈의 축적이 의미가 없습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단순히 돈의 양만 많아지는 것은 명목(nominal)변화일 뿐입니다. 모든 국민의 소득이 100만원 증가하더라도 물가수준이 그만큼 상승하면 실질(real)적인 생활수준은 그대로입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생산'(product)이 증가해야 합니다.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을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이라 부르고, 국가가 1년동안 생산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가 얼마인지를 측정할 때 GDP를 이용합니다. 


한국의 GDP가 1,500조원 이라는 말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돈의 양이 1,500조원이다."가 아니라 "한국이 1년동안 생산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가 1,500조원이다."라는 뜻입니다.   




※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높은 고용률

- 높은 노동생산성


1953년 한국전쟁 휴전 당시 한국의 명목GDP는 약 480억원에 불과했으나 2015년 현재는 약 1,500조원에 달합니다. 그리고 1953년 1인당 실질GDP는 약 66달러 였으나 2015년 1인당 실질GDP는 약 28,000달러에 달합니다. 


60년전과 비교해 오늘날 한국 내에서 1년 동안 생산되는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가 3만배 이상 커졌고, 국내거주인 1명이 생산해내는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는 424배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요? 보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제성장은 ‘생산량의 증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윗 식은 1인당 실질GDP가 결정되는 원리를 보여줍니다. 1인당 실질GDP는 평균 노동생산성과 총인구 충 취업자 비율에 의해 결정됩니다. 평균 노동생산성이 증가할수록 그리고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취업자가 많을수록 1인당 실질GDP가 커집니다. 


어려운 원리가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더 많은 사람이 생산과정에 참여할수록 · 한 사람이 더 많은 양을 생산할수록 1인당 생산량이 증가하는 원리입니다.   


많은 사람이 생산과정에 참여할수록 경제전체 생산량이 증가하게 되고 1인당 실질GDP도 커집니다. 그렇다면 인구가 많은 국가일수록 실질GDP가 클까요? 단순히 인구만 많아서는 안되고 사람들이 생산과정에 참여를 해야 합니다. 


경제학 용어로 엄밀히 표현하면 총인구 중 '고용률'(employment rate)이 높아야 합니다. 전체인구 중 취업자가 많은 국가일수록 실질GDP가 높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용률 이외에 또 하나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만약 고용률만이 실질GDP 크기를 결정한다면 세계에서 경제력이 가장 센 국가는 중국과 인도일 겁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실질GDP가 가장 큰 국가는 미국입니다. 미국의 인구(3억명)는 중국 · 인도(10억명 이상)의 1/3~1/4에 불과하지만 실질GDP는 더 큽니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의 실질GDP가 더 큰 이유는 한 사람이 더 많이 생산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미국은 '노동생산성'(labor productivity)이 높습니다.


각 국가마다 인구의 크기는 사실상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는 마음대로 늘릴 수 없습니다. 한국의 인구가 5,000만명에서 10억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따라서 많은 취업자 · 노동생산성 중에서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생산성 입니다. 


즉,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의 지속적인 향상'이 필요합니다. 첫째도 생산성, 둘째도 생산성, 셋째도 생산성!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성입니다.           




※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

- 인적자본의 향상

- 물적자본의 증가


경제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생산성 향상입니다.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근로자의 숙련수준 향상, 즉 인적자본(human capital)의 향상입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근로자는 업무능력이 낮을 겁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하지 않고 손으로 글을 써야합니다.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회계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기업의 재무를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도 몰라 주먹구구식으로 기업을 경영할 겁니다. 즉, 교육을 통해 관련지식(technological knowledge)을 습득해야 생산성을 올릴 수 있습니다한국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교육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죠.  



두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물적자본(physical capital) 입니다. 노동생산성 향상에 있어 물적자본은 인적자본보다 더 중요합니다. 


인적자본은 교육을 받은 근로자의 능력향상으로 생산성 증가를 이끌어내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노동생산성의 향상이 항상 근로자의 고급숙련도 덕분에 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근로자도 단순히 더 좋은 기계 · 더 많은 기계를 가졌을때 생산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즉, 더 많은 물적자본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킵니다. 


인적자본의 예에서는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인적자본)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다 하더라도 일단 '컴퓨터'(물적자본)가 있어야 합니다. 컴퓨터라는 물적자본이 등장하자 더 빨리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수정도 쉬워졌습니다. 또한 손으로 물건을 생산할 때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생산기계가 등장하자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적자본의 축적', 더 많은 기계 · 더 좋은 기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계를 경제학용어로 '자본재'(capital good)라고 하는데, 경제성장은 얼마나 많은 자본재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①

- 경제성장은 돈의 축적이 아니라 재화의 생산

-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좌우하는건 총공급


보통 물적자본을 줄여서 그냥 '자본'이라고 표현합니다. 경제학을 공부해나가면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필수적이다." 라는 문장을 자주 발견하게 될겁니다. 이때 자본축적은 '많은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 생산설비 등 자본재를 많이 보유'하는 것을 뜻합니다. 


계속 반복하지만 경제성장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화를 많이 생산하는 것입니다. 재화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재가 필요합니다. 


<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백화점'(현대백화점 판교점)과 '대형마트'(이케아) >


‘경제성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해야 하는 것은 ‘금고’가 아니라 ‘백화점, 대형마트’입니다. “가계의 재산이 증가했다”, “기업이 이익을 거두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돈을 벌었다는 의미입니다. 통장 계좌잔액이 증가하거나 금고에 현금이 쌓이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은 더욱 더 많고 품질이 좋은 상품을 생산해낸다는 의미입니다. 백화점, 대형마트에 각종 새로운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건물도 계속해서 새로운 점포가 등장하고 리모델링이 이루어지죠.  


이렇게 거시경제내 자본재 축적으로 생산이 증가하는 것을 "거시경제 총공급(aggregate supply)이 성장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의 증가, 다시말해 총공급 측면의 발전이 필요합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②

- 돈이 많은 선진국이 가난한 국가를 도와주면 안될까?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신 분이 있으실 겁니다. "돈이 많은 선진국이 가난한 국가를 도와주면, 전세계 모두가 같이 잘 살지 않을까?" 우리는 이번글을 통해 이러한 생각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계속 반복하지만 경제성장은 '돈이 많다'의 개념이 아니라 '생산량이 많다'의 개념입니다. 만약 돈이 중요하다면 선진국의 원조도 필요없습니다. 북한 · 아프리카 일부 국가 등 가난한 국가들은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내서 스스로 가난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세상에 가난한 국가는 없을겁니다. 


돈이 아니라 생산이 중요하기 때문에, 총공급측면을 발전시키지 못해 생산량이 적은 국가는 여전히 가난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선진국의 화폐원조는 가난한 국가의 빈곤상태를 일시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후진국의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는데 선진국으로부터 화폐원조만 계속해서 받는다면, 장기적으로 후진국 내에서 인플레이션만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난한 국가들이 저개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계 · 생산설비 등 자본재의 양을 늘려서 생산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써야합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③

- 잠재GDP란 무엇인가?

- 거시경제학의 목적 : 잠재GDP 높이기 + 올해의 GDP를 잠재GDP 수준으로 되돌리기


경제성장이 '돈의 축적'이라면 각국 정부는 화폐를 찍어내서 부유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재화의 생산 증가'이기 때문에, 자본재 부족으로 인해 생산량이 적은 국가는 저개발 상황을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기계 · 공장설비 등 자본재가 풍부한 국가만이 높은 노동생산성을 활용하여 많은 재화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자본재를 많이 갖춘 국가는 생산량을 무한대로 증가시킬 수 있을까요? 미국은 오래전부터 많은 자본을 축적해왔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밤낮 가리지않고 재화를 생산하여 GDP를 팽창시킬 수 있을겁니다. 또한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강제로 일하게 만들어서 생산량을 늘릴 수도 있을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그런 방법으로 GDP를 늘리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경제학에는 '잠재GDP' 혹은 '잠재총산출량'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잠재GDP 혹은 잠재총산출량은 '한 국가가 가진 생산요소-노동과 자본-를 효율적으로 사용했을때 달성가능한 GDP와 총산출량'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현재 생산과정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사람을 강제로 참여시켜 밤낮 가리지않고 일하게 만드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은 일 보다는 다른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우선순위가 높은 일을 놔두고 억지로 일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또한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시킨다면 당장의 생산량은 증가하겠지만 이는 지속불가능 합니다. 사람은 휴식을 취해야 힘을 비축하고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현재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만이 적절한 휴식을 취하면서 생산과정에 참여'하도록 해야하는데, 이를 '완전고용 상태'라고 합니다. 즉, 잠재GDP와 잠재총산출량은 '완전고용 상태에서 얻어지는 가장 효율적인 산출량'을 뜻합니다. 


잠재GDP와 잠재총산출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은 자발적인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일하게 만들어서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비효율적이고 지속불가능 합니다. 미달하는 생산량은 일을 하고파하는 사람들이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비효율적 결과물이고 경기침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잠재GDP 개념을 이해하면 거시경제학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본 시리즈의 첫번째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①] 거시경제학은 무엇인가'을 통해 거시경제학의 연구대상을 이야기 했었습니다.. 거시경제학은 ‘장기적인 경제성장’(long-run economic growth)과 ‘단기적인 경기변동’(short-run business cycle)을 연구하는 학문이죠. 


여기서 '장기적인 경제성장'이란 '한 국가의 잠재GDP 수준을 계속해서 높이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단기적인 경기변동'이란 '올해의 GDP 수치가 잠재GDP를 초과하거나 미달했을때 이를 잠재GDP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을 뜻합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④

- 1960년대~90년대 고도성장을 경험했던 한국

- 2000년대 중반 이래 저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 예전에 높았던 경제성장률은 왜 하락하고 있는가?



<출처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 국민계정(2010년 기준) - 주요지표 - 연간지표 - 경제활동별 성장률(실질) - 국내총생산(실질성장률) >


1953년 한국전쟁 종전 당시 한국에 위치한 생산시설은 대부분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생산시설을 만들어나가야 했죠.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을 시작한 한국은 1990년까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10%에 달했습니다. 30년동안 매년 10%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었죠.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부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약 4%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경제개발 초기에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경제성장률이 오늘날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부 사람들은 경제성장률 하락의 책임을 정부에게 묻습니다. "과거 대통령은 통치를 잘해서 경제성장률이 높았고, 2000년대 이후 대통령은 무능해서 경제성장률이 낮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만약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성장률을 조정할 수 있다면, 도대체 어느 정부가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려 할까요? 오늘날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원인을 이해하려면 '경제개발 초기에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경제성장을 어느정도 달성한 현재에는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앞서 경제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계 · 생산설비 등 자본재 축적을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작업으로만 제품을 생산하다가 기계 하나가 처음 도입되면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그런데 기계의 대수가 증가할수록 생산량 증가는 더뎌집니다. 자본재가 처음 등장했을때 크게 증가했던 생산량에 비해, 자본재의 양이 많아질수록 생산량의 증가크기는 감소하게 되죠.


예를 들어, iPad와 같은 태블릿이 있다면 수업자료를 일일이 인쇄할 필요 없이 태블릿에 넣고 다닐 수 있습니다. 공부 중에 모르는 내용을 구글에서 검색하여 바로 찾아볼 수도 있죠. 이처럼 태블릿이라는 자본재는 공부의 효율을 크게 높여줍니다. 그런데 태블릿을 2대, 3대, 4대 가질수록 공부의 효율이 계속해서 높아질까요? 오히려 태블릿을 들고다니기도 벅차서 공부의 효율이 감소할 겁니다.       


이처럼 축적된 자본재의 양이 많아질수록 '수확체감의 법칙'(diminishing returns)이 작용합니다. 자본량이 증가함에 따라 자본 한 단위를 추가로 투입할 때 증가하는 생산량은 점점 줄어드는 원리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자본재를 처음 갖추기 시작한 경제개발 초기에는 잠재GDP가 빨리 증가하여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자본이 많이 축적되어 있다면 잠재GDP의 증가율은 둔화되어 경제성장률은 낮은 값을 기록하게 되죠. 


즉, 2000년대 들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이전에 비해 낮은 값을 기록하는 이유는 '한국이 경제성장을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기르기 ⑤ 

-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있을까?


산업혁명 이래로 인류는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삶의 질 개선을 경험했습니다. 20세기 이후의 세계는 그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자본재가 많이 축적될수록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하여 경제성장률이 하락한다는 사실로부터 "그렇다면 전세계 경제성장률은 해가 갈수록 낮아질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수확체감의 법칙을 모르더라도 사진 한 장을 통해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윗 사진은 1910년대 뉴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천조국의 위엄'이라는 제목으로 떠도는 사진이죠. 미국은 1910년대에 이미 초고층 빌딩을 지었고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은 '1910년대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1910년대와는 크게 다를 거 없는 2015년의 미국'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분명 1930년대 미국과 2015년의 미국은 다릅니다. 초고층 빌딩의 높이는 더욱 높아졌고 첨단 건축기술이 새롭게 적용되었습니다. 이전 시대에는 없던 각종 전자기기도 존재하며 자동차의 성능도 좋아졌습니다. 문제는 1930년대 미국의 외관과 오늘날 미국의 외관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1930년대에 시멘트를 이용한 빌딩이 존재했으며 자동차도 있었습니다. 늘날의 빌딩과 자동차는 그저 성능개량을 한 것일뿐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PC, 스마트폰, 태블릿과 같은 전자제품이 있다. 인터넷 발전 덕분에 전세계 사람들이 소통을 할 수도 있다. 1930년대와 2015년은 크게 다르다." 라는 반박이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기 · 전화 · 사진기 · 영상 등등은 1885년과 1990년 사이에 발명된 것들 입니다. 게다가 인류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상승시킨건 전자제품 보다는 상수도시설 입니다. 상수도시설이 설치되면서 깨끗한 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실내화장실이 만들어졌습니다. 위생이 좋아지면서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대폭 늘어났죠.      


한 경제학자는 "당신은 지난 10년간 발명된 모든 것, 페이스북·트위터·아이패드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상수도시설과 실내 화장실을 포기해야 한다. 당신은 차를 이용하여 물을 집으로 운반해야 한다. 비가 내리는 새벽 3시에도 당신은 진흙길을 걸어서 바깥에 있는 화장실로 가야한다.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라고 묻습니다. 

 

이 경제학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바는 "경제성장은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다. 산업혁명이 가지고 온 위대한 발명과 그 파급효과의 일회성 혜택이 발생했었고, 그러한 일이 이제는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고 있다. 1970년 이후의 IT 산업 발전 등은 단지 성능이 개량된 부수적인 발전일 뿐이다. 이제 고성장 시대는 지나갔다." 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시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닙니다. Excel 이라는 사무용 프로그램은 어떻게보면 하나의 소프트에어일 뿐이지만, 업무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발명입니다. 이처럼 전자제품과 IT산업이 삶의 양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예가 많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의 세계경제 성장에 관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겠구나'라는 것입니다. 




※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그래프



이번글에서는 '경제성장은 돈의 축적이 아니라 재화의 생산 증가'라는 사실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많은 돈은 그저 명목적인 생활수준만을 높일 뿐이고, 실질적인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은 생산의 증가입니다.  


위에 첨부한 그래프는 경제성장에 관한 이러한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Y축 화폐량이 아무리 증가해봤자 돌아오는건 물가수준의 상승, 즉 인플레이션 뿐입니다. 


거시경제의 생산량은 화폐량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산과정에 참여하여(총인구 중 취업자비율) 얼마나 많은 재화를 생산해내는지(노동생산성)에 따라 거시경제 생산량이 결정됩니다.


이때, 모든 사람을 강제로 생산과정에 참여토록 하는 것은 지속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만이 적절한 휴식을 취하면서 생산과정에 참여'(완전고용)하게 됩니다. 그 결과, 장기적인 거시경제 생산량은 '완전고용 상태에서 얻어지는 생산량인 잠재GDP' 수준에서 결정되죠.    




※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본재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이번글에서 "경제성장은 생산의 증가이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생산성이다."라는 내용을 알아봤습니다.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때, 기계 · 공장설비 등 물적자본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적자본의 양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다음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에서는 노동생산성을 좌우하는 자본재를 축적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추가


[경제성장이론]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본 블로그의 시리즈를 읽으시면 됩니다.


[경제성장이론 요약]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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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원론 거시편 ①] 거시경제학은 무엇인가[경제학원론 거시편 ①] 거시경제학은 무엇인가

Posted at 2015. 9. 21. 17:21 | Posted in 경제학/경제학원론



※ 경제학 공부하기


'경제활동'은 인간의 활동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을 하고 급여를 받습니다. 기존 시장에 없던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서 소비자들의 효용을 증대시켜주는 사람들도 있죠. 새로운 상품을 직접 개발하고 싶으나 자금이 부족한 사업가에게 돈을 빌려주어서 사업기회를 제공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경제활동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회전체 효용을 증가시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이 경제활동을 수행할 수 없을때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사회전체 효용도 감소합니다.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새로운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사업가가 없다면 소비자들의 효용은 제자리에 머무르게 될테죠. 금융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사업구상은 있으나 자금이 없는 사람은 시장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발생한 '경제성장'은 활발한 경제홛동이 인류에게 크나큰 혜택을 안겨주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계의 도입 이후 생산성이 증가하자 사람들은 많은 상품을 이용하면서 효용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산성 증가는 사람들이 다른 활동에도 여력을 쓸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전 시대에는 하루종일 농사에만 매달려야 했다면, 생산성 증가는 상업 · 의료 · 과학 등에 힘을 쏟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주었죠. 그 결과,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이 달성된 후 인류의 삶의 수준은 획기적으로 높아졌습니다.   


경제성장과는 반대되지만,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08 금융위기 '경기침체'(Recession) 또한 경제활동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활동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경기침체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실업이 증가하자 많은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하락했습니다. 1997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의 실업률은 2.0%에서 7.0%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4.6%에서 10.0%로 올라갔죠.    


끔찍한 경제위기를 겪었던 사람들은 '거시경제'(Macro Economy)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하면 경제가 성장하여 나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을지 혹은 나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경제적 사건들이 나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죠.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거시경제학 지식'과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거시경제학 지식이 없다면 거시경제를 한눈에 이해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경제학 비전공자의 직관적 사고와 경제학자들의 사고방식은 다르기 때문에,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갖추기 위한 훈련을 계속해서 해야합니다. 

 


기본적인 거시경제학 지식을 쌓고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기르기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제 블로그를 구독 『맨큐의 경제학』 · 『버냉키·프랭크 경제학 등 대학교 경제학원론 수업에 쓰이는 교과서를 읽는 것입니다(두 책 다 서강대학교 교수님들께서 번역을..). 보통 대학교에서는 <경제학원론2>라는 강의명으로 거시경제학의 기본원리를 가르치고, 『맨큐의 경제학』 · 『버냉키·프랭크 경제학』의 중간 뒷부분이 거시경제 파트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경제학을 공부하려는 분들에게 이 교과서들은 조금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개념설명은 아주 친절히 잘 되어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거시경제학 지식을 쌓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갖추기 위한 훈련을 하기에는 다소 힘들기 때문입니다. 


가령, 경제학원론 교과서들은 GDP의 개념과 정의 그리고 측정방법에 대해 아주 친절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경제학자들이 GDP를 사용하는지 혹은 GDP의 개념이 거시경제학에서 가지는 함의가 무엇인지는 명시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GDP 뿐만 아니라 경상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상수지 개념과 계산방식은 설명이 잘 되어있으나, 경상수지 흑자와 적자가 거시경제학에서 가지는 함의가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이로인하여 경제학과 신입생이나 경제학을 공부하려는 분들이 경제원론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연습문제를 풀더라도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갖추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현재 경제학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도 1학년 재학 당시에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익히지 못했었습니다(지금도 완전히 익힌건 아니지만..). 


제가 1학년일때 느꼈던 어려움과 답답함을 다른 분들은 느끼지 않기 위하여, [경제학원론 거시편] 시리즈를 통해 '거시경제학 기본개'념과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조금이나마 설명하고자 합니다. 블로그에 개제될 시리즈 글들은 『맨큐의 경제학』 · 『버냉키·프랭크 경제학』 교과서와 같이 읽어나가면 좋을 거 같습니다.



    

※ 거시경제학은 무엇인가?


<경제학원론2>는 ‘거시경제학의 기본’을 배우는 과목입니다. 그렇다면 거시경제학은 무엇일까요? 


『맨큐의 경제학』 7판 570쪽 날개를 살펴보면 ‘거시경제학 : 인플레이션, 실업, 경제성장 등 경제 전반에 관한 현상을 연구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라고 나옵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은 다수는 이러한 설명이 별로 와닿지 않을 겁니다. “인플레이션? 실업? 경제성장? 경제전반에 관한 현상? 거시경제학이니 무언가 큰 것을 연구하는 것 같은데 인플레이션, 실업, 경제성장 등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라는 의구심만 들죠. 우리는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보다 더 쉬운 설명이 필요합니다.


거시경제학은 ‘장기적인 경제성장’(long-run economic growth)과 ‘단기적인 경기변동’(short-run business cycle)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경제원론 교과서의 거시파트와 거시경제학 교과서는 ‘장기적인 경제성장과 단기적인 경기변동의 원리’를 배우게끔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기적인 경제성장 (Long-Run Economic Growth)


<출처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 국민계정(2010년 기준) - 주요지표 - 연간지표 - 경제규모 및 국민소득(명목) - 국내총생산(명목, 원화표시) >


1945년 해방 당시 세계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2015년 현재 풍요로운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달성한 것이죠. 그런데 한국의 경제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한국의 1인당 GDP는 약 66달러에 불과했습니다. 1977년이 되어서야 1인당 GDP가 겨우 1,000달러를 넘어섰고, 1994년에 드디어 1인당 GDP가 10,000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2014년 1인당 GDP는 약 28,000 달러로 휴전 당시와 비교하면 424배 성장했죠.         


즉, 한국은 해방 이후 7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long-run)동안 발생하는 사건입니다. 거시경제학은 ‘한 국가가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합니다.   


(주 : 엄밀히 말하면 이는 잘못된 설명입니다. 경제학에서 '단기, 장기'란 시간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가격이 신축적으로 변동될 때를 장기, 가격이 경직적일 때를 단기라 부릅니다. 하지만 경제학 공부를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단순한 시간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단기적인 경기변동 (Short-Run Business Cycle)



한국은 70년을 거쳐 경제성장을 달성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그 사이에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5년 한국은 9.6%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 발생의 여파로 1998년 경제성장률은 –5.5%로 크게 하락했습니다. 또한 2007년 당시 경제성장률은 5.5%였으나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09년 경제성장률은 0.7%에 그쳤습니다. 


이처럼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해나가는 와중에 짧은 기간 동안 경기호황(boom)과 경기침체(recession)가 번갈아가면서 발생합니다. 이를 ‘단기적인 경기변동’(short-run business cycle)이라 부릅니다. 70년 동안 한국의 1인당 GDP가 424배 성장한 것은 장기적인 경제성장이고, 1995년-1998년 그리고 2007년-2009년 사이 호황과 침체가 발생한 것은 단기적인 경기변동이죠.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trend를 벗어난 단기 경기변동은 문제를 초래합니다. 경기침체는 실업문제를 일으킵니다. 1996년 2.0%였던 한국의 실업률은 1997 외환위기 충격으로 인해 1998년 7.0%까지 증가했습니다. 따라서 단기적인 경기변동을 조절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거시경제학은 ‘이러한 단기적인 경기변동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지’를 연구합니다. 과도한 호황과 침체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정상수준으로 돌려놓는 방법을 고민하죠. 『맨큐의 경제학』  <제12부 단기 경기변동>이 이를 다룹니다.




아래 파트는 [경제학원론 거시편] 시리즈를 모두 이해한 뒤에 다시 읽어보면 더 좋습니다.

다음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을 먼저 읽는 것을 권합니다.




※ 거시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익히게 될 경제학적 사고방식 ①

- 각 부분별


[경제학원론 거시편] 시리즈를 통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와 "단기적인 경기변동을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워나가면서 익히게될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 장기적인 경제성장 (Long-Run Economic Growth) 파트

경제성장은 '돈의 축적'이 아니라 '재화의 생산'


: 한 국가의 경제력을 평가할때 GDP를 많이 이용합니다. 2015년 한국의 GDP는 1,500조원(1조 달러)이고 미국의 GDP는 한국의 15배 입니다. 이때 '2015년 한국의 GDP가 1,500조원이다'라는 문장이 무슨 말일까요? 일부 사람들은 "2015년 한국이 가지고 있는 돈이 1,500조원 이라는 말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가계는 돈이 많을수록 부유하니 국가 또한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상합니다. 가계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지만, 국가는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GDP가 축적해놓은 돈의 양을 측정하는 지표이고 GDP가 높은 국가가 경제력이 강한국가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경제력이 약한 국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전세계 모든 국가가 돈을 찍어내서 GDP를 불릴 수 있을텐데 말이죠.     


축적해놓은 돈의 양으로 국가의 경제력을 평가하는 것을 중상주의(mercantilism)라고 합니다. 과거 중상주의 시대에는 금 · 쌀 등을 많이 축적해놓은 국가가 부유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서 '돈의 축적'(accumulation)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돈이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찍어내면 그만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재화의 생산'(product)입니다. 여러 상품을 얼마나 많이 · 얼마나 좋은 품질로 생산하고 이를 사용하면서 효용을 누리는가가 중요합니다. GDP는 한 국가내에서 1년동안 생산되는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측정합니다. 즉, 국가의 생산력을 측정하는 지표이죠. GDP가 커진다 혹은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많은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이 많아진다'를 뜻합니다. 


거시경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돈의 축적'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를 벗어나지 못하면 '경상수지 흑자와 적자', '재정흑자와 적자'가 품고있는 의미를 잘못 파악하게 되고, 거시경제 작동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본 시리즈를 통해 '중요한 것은 돈의 축적이 아니라 재화의 생산'이라는 사실을 여러 사례를 통해 머리에 각인할 수 있을 겁니다.  


● 단기적인 경기변동 (Short-Run Business Cycle) 퍄트

무능한 국가만 경제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다

경기침체에 맞서는 도구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부채증가를 통해 경기침체를 벗어날 수 있다 


: 세계경제는 언제나 경제위기와 함께 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 1980년대 중남미 경제위기 · 1990년대 초반 유럽 경제위기 ·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08년 미국 금융위기 · 2010년 유로존 재정위기 등등 굵직한 경제위기가 세계 각 지역에서 발생했습니다. 


큰 경제위기 이외에도 모든 국가들은 소소한 경기변동을 경험합니다. 어떤 해에는 경제성장률이 높고, 또 다른 해에는 경제성장률이 낮죠.


이러한 경제위기와 경기변동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일부 사람들은 "근검절약 하지 않고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은 많은 빚으로 인해 결국 파산하지 않느냐. 국가도 이와 마찬가지다. 과소비 · 과도한 정부부채 등 국가운영에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경제위기를 겪은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한국이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은 원인은 국민들의 과소비 때문이다." 라고 말할 것이고, "2015년 오늘날 그리스가 경제위기를 겪는 것은 방탕한 국가운영 때문이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과소비 · 과도한 정부부채 등 경제의 기초여건(fundamental)에 문제가 있는 국가가 경제위기를 겪는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제의 기초여건에 문제가 없는 국가라도 경제위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비와 부채 규모가 줄어들어서(deleveraging)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고, 단순한 유동성문제(illiquidity)로 인해 금융시장이 붕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부채'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거시경제에서 발생한 경기침체를 '잘못에 대한 대가'로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거시경제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경기침체에 관한 올바르지 않은 관점은 잘못된 정책을 초래하여 많은 사람들의 후생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본 시리즈를 통해 '왜 경기침체가 발생하는지'와 '어떻게하면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 실업과 인플레이션 파트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거시경제는 사람들의 삶과 연관성이 큽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나빠집니다. 특히나 '실업'과 '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생계가 곤란해지고 자존감마저 상실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생활비를 상승시켜 후생을 떨어뜨리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각 국의 국민들은 실업문제와 물가상승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정부에 요구합니다. 정치인은 일자리 창출과 물가억제 공약을 내세워 인기를 얻으려 하죠. 그렇지만 과연 정부가 실업과 인플레이션 문제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실업과 인플레이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업과 인플레이션은 상충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실업률이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면 실업률이 높아집니다.  


더군다나 실업과 인플레이션 문제에 정부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적입니다. 거시경제에는 자연실업률 개념이 존재합니다. 자연실업률이란 거시경제내 생산요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때 달성가능한 실업률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업률을 자연실업률 밑으로 인위적으로 낮추는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 통화량에 의해 결정되는데, 통화량을 좌우하는건 중앙은행이지 정부가 아닙니다. 게다가 정부가 기업에 압력을 넣어서 개별상품 가격 상승을 막는 것은 물가상승을 방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가(price level)는 상품가격의 총합(aggregate) 개념이지 개별 상품가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시경제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거시경제는 누군가가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거시경제 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다."라는 사고를 갖출 수 있습니다.




 거시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익히게 될 경제학적 사고방식 ②

- 거시경제학을 관통하는 사고방식


'장기적인 경제성장 (Long-Run Economic Growth) 파트' · '단기적인 경기변동 (Short-Run Business Cycle) 퍄트' · '실업과 인플레이션 파트', 3가지 파트를 통해서 각 파트에 맞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3가지 파트를 관통하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은 무엇일까요?


거시경제와 가계경제는 다르다

→ 돈의 축적 · 적자 · 부채


: 거시경제학을 공부하고 난 뒤 갖추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고방식 입니다. 가계경제를 생각하는 관점에서 거시경제를 바라보면 안됩니다. 


가계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는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 가계와 기업은 항상 재무상태를 건전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가계는 소득을 넘는 지출을 하지 말아야하고, 기업은 흑자를 기록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시경제에서 돈의 축적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흑자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쌓아둘 필요가 없는 돈을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죠. / 빚을 많이지고 있는 가계는 지출을 줄여서 하루빨리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시경제에서 나의 부채는 다른 사람의 자산이기 때문에, 부채가 꼭 나쁜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거시경제와 가계경제가 무엇이 다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시리즈를 읽어나가면 거시경제를 바라볼 때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총공급 개선이냐, 단기적인 경기변동 관리를 위한 총수요 개선이냐


: 많은 사람들은 거시경제학 논쟁을 '시장 대 정부의 싸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시장주의자인 경제학자와 反시장주의자인 경제학자들간의 논쟁이 펼쳐진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거시경제학 논쟁의 대부분은 '시장 대 정부'가 아니라 '총공급 대 총수요' 입니다.


총공급(aggregate supply)이란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생산부문을 뜻합니다. 경제성장은 생산력의 증가이고 돈의 축적은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화폐와 지출증가가 아니라 생산증가만이 경제성장을 가져다주죠. 


따라서 총공급을 우선시하는 경제학자들은 "생산량 증가를 위해서는 기업의 자본재 투자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합니다.


총수요(aggregate demand)는 단기적인 경기변동을 관리하게 해주는 지출부문을 뜻합니다. 앞서 말한것처럼 경제성장은 생산력의 증가이기 때문에 돈의 축적과 화폐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돈과 화폐는 경기침체를 벗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단지 화폐유통량이 많아졌을 뿐인데, 경제주체의 소비가 증가하여 경제상태가 회복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총수요를 우선시하는 경제학자들은 "지금 당장의 경기침체를 해결하기 위해서 경제주체의 소비증진 정책이 필요하다." 라고 말합니다.


총공급 대 총수요 논쟁은 '장기를 우선시하느냐, 단기를 우선시하느냐'의 관점 차이이고, '생산의 증가와 돈의 축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본 시리즈를 통해, 경제학자들이 왜 상반된 주장을 하는지와 총공급 · 총수요가 정확히 어떠한 의미인지를 알아볼 겁니다.   




※ 국가의 경제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GDP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제 다음글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을 통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할 'GDP의 개념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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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정책은 성장을 가로막는가?분배정책은 성장을 가로막는가?

Posted at 2014. 2. 28. 23:42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지난 포스팅 ''성장이냐 분배냐'는 무의미한 논쟁'을 통해서,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 라는 말을 했다. 그 글에서는 "경제성장은 거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준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성장하느냐 이다." 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성장을 터부시하는 일부 정치세력을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성장과 분배에 대한 초점을 반대로하여, "분배정책은 경제성장을 가로막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적 불균등이 증가할수록 경제성장은 지속불가능하다." 라는 주장을 다룰 것이다. 다시말해, 분배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으로 나누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각주:1]




※ 분배정책은 경제성장을 가로막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분배정책은 효율성을 훼손시켜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 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 어느정도의 경제적 불균등(Economic Inequality)은 "OO처럼 나도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 라는 유인(incentives)을 경제주체에게 제공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을 이끈다. 인류는 "모두가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 라는 이상이 실제로는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이미 경험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분배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경제적 불균등을 그냥 방치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IMF 소속의 Jonathan Ostry, Andrew Berg, Charalambos Tsangarides는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2014.02) 보고서를 통해, "'경제적 불균등 그 자체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분배정책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라는 결론을 성급히 내려서는 안된다. 균등을 추구하는 정부개입도 경제성장을 도울 수 있다.[각주:2]" 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재분배정책이 親성장적인지 反성장적인지는 실증적 연구대상(an empirical question)이다.[각주:3]" 라고 말한다.


Ostry 등은 보고서에서 경제적 불균등을 ① Market Inequality 와 ② Net Inequality 로 구분한다. 


  • Market Inequality - 정부의 분배정책 이전에 측정된 지니계수  
  • Net Inequality - 정부의 분배정책(세금징수, 이전지출 등등) 이후에 측정된 지니계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분배정책 이후에 측정된 Net Inequality 이다. Ostry 등은 세계 여러국가의 데이터를 이용한 실증분석 결과를 통해, "Net Inequality가 낮은 국가일수록 더욱 더 빠르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분배정책은 경제성장을 가로막지 않는다.[각주:4]" 라고 주장한다.




※ 경제적 불균등과 경제성장의 관계


그렇다면 경제적 불균등 그 자체는 어떤 경로를 통해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아래에 첨부된 그래픽을 통해 경제적 불균등, 분배정책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 출처 : Ostry, Berg, Tsangarides. 2014.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 9 >


  • A 경로 : Market Inequality가 큰 국가일수록 더욱 더 많은 분배정책을 시행하는 경향이 있다.[각주:5]
  • C 경로 : 재분배정책은 Net Inequality를 감소시킴으로써, 경제성장에 간접적인 영향(indirect effect)을 미친다.
  • D 경로 : 게다가 재분배정책은 경제주체의 유인(incentives)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direct effect)을 미친다.
  • E 경로 :  Net Inequality 증가는 인적자본 축적과 정치적 불안정성 경로를 통해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재분배정책은 유인왜곡을 통해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수도 있고, Net Inequality의 경로를 통해 경제성장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칠수도 있다. 그리고 Net Inequality 그 자체는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Net Inequality가 경제성장에 끼치는 영향' 이다. '경제적 불균등 증가는 경제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에서도 다루었듯이, 경제적 불균등 증가는 여러경로를 통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경제적 불균등 증가는 정치에 대한 접근 기회에 있어 계층별 차이를 가지고 온다

- 2001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Joseph Stiglitz는 저서 『The Price of Inequality』(2012)를 통해 "경제적 불균등은 정치에 대한 접근 기회에서도 차이를 가져오는데, 고소득층은 로비를 통해 정부가 커지는 것을 막는다. 경제적 불균등이 정치적 불균등·경제의 불안정성을 가져오고, 이것이 경제적 불균등을 더 확대시킨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각주:6].  

경제학자 Daron Acemoglu 또한 "민주주의 정치제도 하에서 경제적 불균등 현상이 심화된다면 국민들은 재분배정책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에게 투표를 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정부는 재분배정책을 실시함으로써 경제적 불균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 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재분배정책, 경제적 불균등 간의 관계는 복잡할 뿐더러, 경제적 불균등에 민주주의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상위계층은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고, 중산층 또한 하위계층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지지한다." 라고 지적[각주:7]한다.    


신용대출 확대로 경제적 불균등 현상을 해결하려는 정치권

- 경제적 불균등이 계층별 정치적 접근에 있어 차이를 가지고 오는 가운데, 정부는 세금징수 등의 재분배 정책을 제대로 실시할 수 있을까? 불가능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신용대출 확대 였다.

現 인도중앙은행 총재 Raghuram Rajan『폴트라인』(2011)을 통해, "국민의 소득 불평등이 점점 격화됨에도 의회 내부 의견이 점점 더 양극화되고, 그 결과 조세 제도 개혁 및 소득 재분배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을 도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에게 1980년대 초 이래로 가장 매력적으로 보인 대안은 대출 규정 완화였다." 라고 말한다.  

실제로 IMF 소속인 Michael KumhofRomain Rancière의 연구 <Inequality, Leverage and Crises>(2010)을 살펴보면, '정부의 신용대출 확대정책이 하위계층의 부채비율을 증가시켜 2008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각주:8]


교육기회의 차이를 가져오는 경제적 불균등. 인적자본 축적을 방해하다

- (이 글을 통해 소개하는 보고서를 쓴) Jonathan OstryAndrew Berg는 2011년에 쓴 <Inequality and Unsustainable Growth: Two Sides of the Same Coin?>을 통해서, "가난한 계층은 교육을 받기위해 필요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소득이 더욱 더 균등하게 배분된다면 (하위계층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게 되고, 그 결과 경제가 성장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경제적 불균등 증가는 이러한 경로들을 통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 경제적 불균등, 분배정책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 연구결과


Ostry, Berg, Tsangarides는 2011년 보고서에서 나아가서,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2014.02)에서 경제적 불균등과 분배정책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세계 각국의 데이터를 참고한 실증적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 출처 : Ostry, Berg, Tsangarides. 2014.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 16 >


  • 좌측 Figure 4 - 윗쪽 그래프는 Net Inequality와 향후 10년간 경제성장률의 상관관계 · 아래쪽 그래프는 분배정책과 향후 10년간 경제성장률의 상관관계
  • 우측 Figure 5 - 윗쪽 그래프는 Net Inequality와 경제성장 지속성의 상관관계 · 아래쪽 그래프는 분배정책과 경제성장 지속성의 상관관계  


좌측 Figure 4를 살펴보면 Net Inequality가 증가할수록 향후 10년간 경제성장률은 하락하는 모습, 다시말해 Net Inequality와 향후 10년간 경제성장률은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배정책과 향후 10년간 경제성장률은 약한 상관관계가 보일 뿐더러, 약간의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각주:9]


보고서의 저자인 Ostry 등은 "이러한 연구결과는 '분배정책을 통한 경제적 불균등 감소는 (효율성과 경제주체의 유인에 영향을 미쳐) 경제성장을 하락시키는 상쇄효과(trade-off)를 불러온다' 라는 일반의 관념과 일치하지 않는다[각주:10]." 라고 말한다. 게다가 분배정책이 경제적 불균등을 감소시켜 경제성장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전체적으로 분배정책은 親성장적(pro-growth)이다[각주:11]



< 출처 : Ostry, Berg, Tsangarides. 2014.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 18 >


이번에는 그래프 대신 Ostry 등이 세계 각국의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한 통계표를 살펴보자. 좌측열에 제시된 Net Inequality, Redistribution 등이 독립변수이고 1인당 GDP 성장률(growth rate of per capita GDP)이 종속변수이다. 


첨부한 통계표를 보면 Net Inequality 라는 변수가 1인당 GDP 성장률에 대해 음(-)의 값을 가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Net Inequality라는 변수가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99% 신뢰수준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다(*** 표시)


반면 분배정책 변수가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90%, 95%, 99% 신뢰수준에서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고 나온다(*, **, *** 표시 없음)[각주:12]. 이러한 결과는 "분배정책은 효율성을 훼손시켜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 라고 사람들 사이에 널리퍼진 관념을 반박하는 것이다. 분배정책은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direct effect)[각주:13]을 끼치는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위에서 다루었던 '분배정책이 유인왜곡을 통해 경제성장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로(D경로)'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을 뿐더러, Net Inequality 증가는 경제성장률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분배정책은 Net Inequality 감소를 통해서 경제성장에 대해 간접적인 영향(indirect effect)을 끼치고, 그 결과를 종합하면 분배정책과 경제성장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Jonathan OstryAndrew Berg, Charalambos Tsangarides의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2014.02) 보고서의 결론은


  • 분배정책은 경제성장에 해롭지 않다.
  • 경제적 불균등 증가는 경제성장에 해롭다.
  • 분배정책이 경제적 불균등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분배정책은 親성장적(pro-growth) 이다[각주:14].    



※ '성장이냐 분배냐'는 무의미한 질문

다시 반복하지만 성장과 분배는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경제성장은 사회후생의 대폭적인 증가를 가져오고, 분배정책은 경제성장을 이끈다.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시작하면, 어떤 정치세력은 성장을 터부시하고 다른 정치세력은 분배정책을 폄하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보고서 저자인 Jonathan Ostry, Andrew Berg, Charalambos Tsangarides도 필자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에만 초점을 맞추고 경제적 불균등 현상을 방치하는 것은 실수이다. 경제적 불균등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경제적 불균등 현상을 방치한다면) 경제성장이 낮을 뿐더러 지속불가능 하기때문이다.[각주:15]" 라고 말한다. 



<참고자료>


경제적 불균등 증가는 경제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2012.10.28


'성장이냐 분배냐'는 무의미한 논쟁. 2014.01.28


Jonathan Ostry, Andrew Berg, Charalambos Tsangarides. 2014. 
<Redistribution, Inequality, and Growth>. IMF Staff Discussion Note

Jonathan Ostry, Andrew Berg. 2011. <Inequality and Unsustainable Growth: Two Sides of the Same Coin?>. IMF Staff Discussion Note

Daron Acemoglu, Suresh Naidu, Pascual Restrepo, James A Robinson. 2014. <Can democracy help with inequality?>. VOX

Joseph Stiglitz. 2012. 『The Price of Inequality』

M. Kumhof, R. Ranciere. 2010. <Inequality, Leverage and Crises>. IMF working paper. 

라구람 라잔. 2011. 『폴트라인』



  1. 저번 포스팅 댓글을 통해 어떤 분이 "학계에서 충분한 검증과 동의를 얻지 않은 이상 이걸 패러다임으로 섣불리 취급하면 무리가 옵니다." 라고 지적해주셨는데 이에 공감한다. 따라서 이번 포스팅의 주제 "분배정책은 성장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경제학계의 패러다임 이라기 보다는 "이런 연구결과도 있다." 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본문으로]
  2. "we should not jump to the conclusion that the treatment for inequality may be worse for growth than the disease itself. Equality-enhancing interventions could actually help growth." (4) PDF 파일기준 [본문으로]
  3. "it would appear to be an empirical question whether redistribution in practice is pro- or anti-growth." (5) [본문으로]
  4. "lower net inequality seems to drive faster and more durable growth for a given level of redistribution. (...) redistribution appears generally benign in its impact on growth; only in extreme cases is there some evidence that it may have direct negative effects on growth." (6-7) [본문으로]
  5. "more unequal societies tend to redistribute more." (6) 이것은 Market Inequality와 Net Inequality를 구분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정보이다. [본문으로]
  6. 자세한 내용은 '경제적 불균등 증가는 경제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http://joohyeon.com/116 참고. [본문으로]
  7. Daron Acemoglu 등. 2014. 'Can democracy help with inequality?' http://www.voxeu.org/article/can-democracy-help-inequality [본문으로]
  8. 자세한 내용은 '경제적 불균등 증가는 경제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http://joohyeon.com/116 참고. [본문으로]
  9. "We can observe in Figure 4 that there is a strong negative relation between the level of net inequality and growth in income per capita over the subsequent period (top panel), and there is a weak (if anything, positive) relationship between redistribution and subsequent growth (bottom panel)." (16) [본문으로]
  10. "These results are inconsistent with the notion that there is on average a major trade-off between a reduction of inequality through redistribution and growth." (17) [본문으로]
  11. "This implies that, rather than a trade-off, the average result across the sample is a win-win situation, in which redistribution has an overall pro-growth effect, counting both potential negative direct effects and positive effects of the resulting lower inequality." (17) [본문으로]
  12. "Our basic specification is a stripped-down standard model in which growth depends on initial income, net inequality, and redistribution (column 1 of Table 3). We find that higher inequality seems to lower growth. Redistribution, in contrast, has a tiny and statistically insignificant (slightly negative) effect." (17) [본문으로]
  13. 앞서 다루었던 D경로가 의미가 없다 라는 것이다. 분배정책은 D경로를 통해 경제성장을 훼손시킨다 라는 것이 일반의 관념이었다. [본문으로]
  14. "In sum, then, inequality remains harmful for growth, even when controlling for redistribution. And we find no evidence that redistribution is harmful. The data tend to reject the Okun assumption that there is in general a trade-off between redistribution and growth. On the contrary, on average—because with these regressions we are looking only at what happens on average in the sample—redistribution is overall pro-growth, taking into account its effects on inequality." (21) [본문으로]
  15. "It would still be a mistake to focus on growth and let inequality take care of itself, not only because inequality may be ethically undesirable but also because the resulting growth may be low and unsustainable." (2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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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냐 분배냐'는 무의미한 논쟁'성장이냐 분배냐'는 무의미한 논쟁

Posted at 2014. 1. 28. 10:09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경제와 관련된 첨예한 논쟁 중 하나가 바로 "성장이냐 분배냐" 이다. 보수성향 사람들은 성장을 중시하고, 진보성향 사람들은 분배를 중시한다. 이러한 의견이 극단적으로 대립한다면, "분배주의자는 북한이나 가라 /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은 착취이다. 탈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라는 과격한 발언이 나오게된다. 


성장과 분배를 둘러싸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사이에서만 갈등이 발생할까?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이를 둘러싼 대립이 많다. 특히나 노무현정부 시절,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Liberal 성향의 인사들과 Progressive 성향의 인사들 간의 충돌이 빈번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던 강봉균은


강 전 장관은 22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 중간쯤부터 선거에서 계속 졌다”며 “민주당 일부 강경 세력들이 이념논쟁, 진영논리에 빠져 당내에서 변화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경파들의 입지 확보를 위한 장외투쟁 같은 것에 반대를 했지만, 민주당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며 “민주당을 변화시키는 데 결국 실패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강 전 장관은 민주당의 실패 원인으로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임에도 이를 정치의 핵심으로 만들지 못한 것을 꼽았다. 


강 전 장관은 “경제전문가로서,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부터 풀어나가고 상대 당과도 해결이 가능한 것은 해결하려고 했다”면서 “하지만 (강경파들은) 상대 당이면 무조건 안된다는 식이었고, 경제와 타협을 강조하면 ‘왜 여기 있느냐. 차라리 한나라당으로 가라’고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을 해도 민주당이 스스로 변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민주당이 뭐 그렇게 달라지겠느냐는 생각들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봉균 “민주, 강경파 진영논리로 망가져”. <문화일보>. 2014.01.22


라고 말하면서 강경파(대개 시민단체/활동가 출신들로 유추된다)들이 경제정책에서 보여줬던 이념논쟁, 진영논리를 비판한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변양균 또한 성장을 폄하하는 목소리를 비판한다.


"그분(문재인 국회의원)만큼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작년 대선 때 문제가 있었어요. 저는 당시 건강이 안 좋아 사이드에서 조언만 했는데, 이정우 교수(문재인 캠프 좌장)와 다툰 적이 있어요. 제가 내놓은 정책을 전해들었는지 '후보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며 발끈하더군요. 선거가 뭡니까. 51대49 아닌가요? 문재인이 학잡니까? 정체성 운운하게?" (...)


"1998년부터 우리나라는 성장만 가지곤 살아갈 수 없는 수준의 국가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장에 반대하는 것은 바보들이죠. 1000년, 2000년 된 나무도 성장을 해야 살 수 있습니다. 사람도 성장을 멈추면 죽음을 향해 가잖아요. 성장은 국가에 필요조건입니다. 충분조건은 아니지만요."


변양균. '불륜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변양균 前 청와대 정책실장'. <조선일보>. 2014.01.11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경제성장은 거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준다" 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임금도 상승한다. 근로자들의 후생이 증가하게 된다. 또한 경제가 성장하면 정부의 세입기반도 확충되고 정부지출의 여력도 증가한다. 이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갖출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은 거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준다" 라는 명제 자체에 납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조선시대, 1950년대의 한국 그리고 2014년 현재의 한국을 비교해보자. 2014년 한국인들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고 있다. 절대적인 생활수준 자체가 크게 개선되었다. 장기적인 경제성장은 경제주체가 누리는 후생 그 자체를 대폭 상승시켜준다. 


경제학자 David Romer는 


"장기 성장이 후생에 끼치는 영향은 거시경제학이 전통적으로 초점을 맞추어 온 단기적 경기변동의 모든 가능한 효과를 삼켜 버린다" 


Howard R. Vane, Brian Snowdon. 2009. 『현대거시경제학-기원, 전개 그리고 현재』. 51쪽에서 재인용  


라고 말한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Robert Lucas 또한 


"이런 문제(장기적인 경제성장)가 인간의 후생에 갖는 결과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기만 하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에서 멀어져 버린다" 


"더 나은 장기 공급우선 정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잠재적 후생의 이득은 단기적 수요관리의 개선에서 얻어질 잠재적 이득을 훨씬 상회한다" 


Howard R. Vane, Brian Snowdon. 2009. 『현대거시경제학-기원, 전개 그리고 현재』. 51쪽에서 재인용  


라고 말한다.




그런데 두 경제학자의 발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장기(↔단기)'와 '공급우선(↔수요관리)' 이라는 용어이다. "경제성장은 거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준다" 이것은 절대명제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이 내가 살아가는 동안 달성되지 않는다면 어떻게될까? 조선시대 사람에게 (경제성장을 달성한) 2014년 한국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John Maynard Keynes의 유명한 발언이 여기서 등장할 수 있다.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따라서, 지금 이 시점을 살아가는 경제주체들에게 중요한 건 '경기변동의 관리'와 '단기적인 경제성장' 이다. 기변동의 진폭을 축소하고 경제를 안정화 시킴으로써 단기적인 경제성장을 달하는 것, 그리고 경제의 단기균형을 장기균형 수준으로 수렴케 하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총수요관리 정책' 이다. 총수요관리 정책이란 소비 증가, 정부지출 증가 등을 통해 경제의 단기균형을 장기균형으로 수렴케하여 경기불황에서 벗어나는 정책을 뜻한다.





장기총공급곡선(LRAS)이 만들어내는 Y bar는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달성가능한 산출량을 의미한다. 현재 이 그래프는 단기총공급곡선(SRAS1)와 총수요곡선(AD1)이 만들어내는 '단기균형 A점, 산출량 Y1'이 '장기균형 Y bar'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즉, 경기불황(Recession) 상태이다.


이때, 경기불황 수준에 있는 단기균형이 장기균형으로 수렴하는 법은 2가지.


1.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의 힘으로 단기총공급곡선(SRAS1)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경기가 불황이면 경제주체들의 기대물가수준이 하락하는데, 이것의 영향으로 단기총공급곡선(SRAS1)이 오른쪽으로 하향이동(SRAS2)한다. 그 결과 단기균형 A점은 C점으로 옮겨지고, 단기균형과 장기균형이 일치하게 된다.


2. 

정부의 '총수요관리 정책'에 의하여 총수요곡선(AD1)을 상향이동 시키는 방안도 있다 .경기불황 상태를 타개하고자 정부는 재정정책 · 통화정책을 통하여 총수요를 증가시키는데, 그 결과 AD1 곡선이 상향이동(AD2)다. 따라서 단기균형 A점은 B점으로 옮겨지고, 단기균형과 장기균형이 일치하게 된다.




장기적인 경제성장은 '생산의 증가'를 뜻한다. 노동, 자본의 투입량을 늘리고 생산성을 개선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장기적인 경제성장. 이는 '공급중심 성장(Supply-Side Growth)'을 의미[각주:1]하기도 한다.


'공급중심 성장(Supply-Side Growth)'은 시장의 '자동조절 기능'을 믿는다. 경기불황 상태인 단기균형(A점)이 빠른 시간내에 장기균형(C점)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총수요관리 정책은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단기균형에 신경쓰기보다 장기적인 경제성장, 즉 장기총공급 곡선(LRAS)를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Y bar를 우측이동 시키는 것을 중점에 둔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산요소(자본, 노동) 투입 증가와 생산성 향상이다. 즉, 공급측면의 성장을 달성하려면, '기업의 자본투입'이 증가해야 한다. 기업이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력을 늘리는 행위가 발생해야 한다.


단기적인 경제성장(단기균형의 장기균형으로의 수렴)은 '유효수요의 증가'를 뜻한다. 소비를 늘리고, 정부지출을 늘림으로써 수요를 증가케 하는 것. 그 결과 경기불황에서 벗어나 경기변동의 진폭을 축소케 하는 것. 이는 '수요중심 성장(Demand-Side Growth)'을 의미[각주:2]한다. 


'수요중심 성장(Demand-Side Growth)'은 소비증가, 정부지출 증가 등 '총수요증가'를 통해 경기불황 상태인 경제를 성장시킨다. (정부지출 증가는 이자율과 환율에 미치는 구축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렇지만 경제가 불황상태, 즉 단기균형이 장기균형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지출의 승수는 1보다 크다[각주:3].) 구체적으로, 경제주체의 소비를 늘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실업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높여야 한다. 정부지출 또한 증가해야 한다.




여기에서 "성장이냐 분배냐" 라는 논의가 의미가 있을까? 실제 경제학계의 논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다. 바로 "공급중심 성장(Supply-Side Growth)이냐, 수요중심 성장(Demand-Side Growth)이냐"[각주:4] 이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의는 마치 성장과 분배는 별개라는 것처럼 여기게한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주장 속에는 "성장은 기업에 좋고, 분배는 근로자에게 좋다" 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과연 그런가? 수요중심 성장(Demand-Side Growth)의 방법(경제주체의 가처분소득 증가)에서 알 수 있듯이, 분배는 성장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의는 경제성장을 터부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부 진보진영에서 가지고 있는 이러한 목가적인 인식은 정치적으로도 불리하다. 먹고 살기 힘든 이때에 "돈은 중요한 게 아니다. 성장은 중요치 않다. 마음이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게 정치적으로 호소력 있는 행위일까? 


문재인 국회의원 또한 성장을 터부시하는 진보진영의 이러한 근본주의가 대선패배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왜 선거에서 지는 것일까요? 왜 국민들이 더 많이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요? (...) 저-문재인-는 제 자신도 포함해서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일종의 근본주의에서 해답을 찾고 싶습니다. (...)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던 민주화운동 시절 우리가 지켰던 원칙이나 순결주의 같은 것이 우리 내부에서 우리를 유연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


국민들에게 무엇보다 큰 관심사가 경제성장입니다. 분배도 복지도 일자리도 경제성장에서 비롯되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성장에 대한 담론도 부족했습니다. 경제성장 방안이나 국가경쟁력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성장은 보수 쪽의 영역이고,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분배와 복지라고 생각하는 듯한 경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포용적 성장, 창조적 성장, 생태적 성장, 협력적 성장이란 4대 성장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진보적 매체는 "또 성장 타령이냐?" 고 힐날하는 칼럼을 싣기도 했습니다. 성장을 바라보는 진보 진영의 근본주의 같은 것을 보여 주는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장과 안보에 관한 담론 부족은 확실히 우리의 큰 약점이었습니다. (...) 보수 진영의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 성장론을 따라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전략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우리의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확장을 가로막았던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더 유연한 진보, 더 유능한 진보,더 실력 있는 진보가 돼야 합니다. (...)


지속 가능하면서 더 정의롭고 더 따뜻한 성장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저는 지난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그 방안으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경제성장에 기여한 많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경제성장의 혜택을 일부가 독점하는 배제적 성장은 더 이상 성장을 지속시킬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체에 골고루 분배되고 경제성장에 기여한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혜택을 누리도록 하자는 성장 전략이 포용적 성장입니다. 그래야만 사회 전체의 소비능력이 늘고 내수가 진작돼,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가능해집니다. (...)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하는 '소득주도 성장(Wage-led growth)'이 대안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일자리를 확충하고 고용의 질을 개선해서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능력을 높이는 것을 주된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입니다. 


문재인. 2013. 『1219 끝이 시작이다』. 285-309 


누차 말하지만 "경제성장은 거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준다." 중요한 건 어떻게 성장 하느냐이다.


장기적인 경제성장 달성에 중점을 두고 공급측면을 강화할 것이냐 (기업의 자본투입 증가)

단기적인 경기변동 관리에 중점을 두고 수요측면을 강화할 것이냐 (경제주체의 구매력 증가)




  1. 2008 금융위기 이후, Fed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단순한 유동성 증가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 개발, 제3차 산업혁명, 정보기술의 발전 등을 통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내는 정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라는 주장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본문으로]
  2. 2008 금융위기 이후, Fed의 양적완화 정책은 유동성 증가를 통해 실질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소비를 늘리케 하려는 '총수요관리 정책' 이다. [본문으로]
  3. '정부지출, 재정적자와 관련하여 고려해야할 요인들'. 2014.01.01 http://joohyeon.com/183 [본문으로]
  4. 여기에는 경제가 빠른 시간 내에 자동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느냐가 주요 논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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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

Posted at 2013. 8. 23. 22:06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이라는 포스팅을 통해, "개발시대 관료와 기업의 유착관계가 경제성장 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라는 주장을 소개했다. 이런 주장은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 줄 수는 있지만, 한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한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전세계에 관료-기업인 사이의 부패가 심한 나라는 많지만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는 드물다. 특히나 한국처럼 짧은시간에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한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


외부요인을 찾자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미국의 존재" 이다. 류상영은 <박정희정권의 산업화전략 선택과 국제 정치경제적 맥락>(1996) 이라는 논문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통합전략과 박정희정권의 국가전략과의 이익수렴, 한일국교 정상화이후 형성된 한일 간 정책이념 공유와 경제협력이 박정희정권에게는 기회조건으로 작용"했다 라고 말한다.


냉전시대 미국은 "아시아 지역통합전략(10)" 이라는 맥락 속에 한국을 위치시킨다. 미국은 "더 장기적인 정치경제적 문제로서 경제성장과 정치안정을 추구하는 국가의 민족건설 지원(11)"을 목표로 동아시아 원조정책을 실시한다. 이에 대해 박정희정권은 "냉전구조 속에 위치해 있는 한국의 군사적 현실(14)"을 무기로 미국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낸다. 


그리고 베트남전 파병을 "(미국의)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확대시키는 하나의 계기(14)"로 인식했던 한국은 "미국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였고, 미국에게는 그간의 전반적인 대한원조 및 차관삭감 방향을 일시적으로 유보시키는 효과(14)"를 가져왔다. 박정희정권은 미국에게 "더 많은 원조를 제공해줄 것과, 한국의 외채상황을 감안하여 미국의 군사원조를 경제부분에 전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 그리고 미국이 한국의 계속적인 무역시장으로 역할해 줄 것(14)" 등을 요구하였다.    


또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통합구상의 최종적인 외교적 완결(17)"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추진하였다. 한일국교정상화는 "한국의 산업화와 함께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통합구상이 실질적 내용면에서 구체화되는 정치경제적 출발점(17)" 으로서의 의미도 가졌는데, 미국은 일찍부터, "한국정부는 회담타결과 함게, 아마도 일본이 한국에 제공하게 될 경제적 원조를, 한국의 경제발전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17)" 이라는 기본입장을 밝혀왔다. 따라서, 한일 국교정상화에 따른 식민지배 배상금은 "보상이나 청구권 등의 개념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발전을 위하는 의미에서 한국에 회담 타결 댓가를 지불(17-18)" 하는 것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구상에 따라 "박정희정권은 일본을 중심으로한 동아시아의 국제분업구조에 적극적으로 편입(21)" 될 수 있었다. 미국이 추진한 아시아지역통합전략 + 한일국교정상화는 "박정희정권으로 하여금 내포적 공업화전략을 포기하고 수출지향형 산업화전략으로 전환하도록 하였고, 중범위의 산업정책적 차원에서는 개발국가론에 입각한 일본의 경제협력이 정부개입에 의한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대외적 맥락으로 작용(21)" 하게 되었다. 




"관료-정치인의 유착관계가 만들어낸 의도하지 않은 결과", "아시아 지역통합전략 이라는 미국의 구상과 지원"을 살펴봤지만, 한국이 어떻게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의도하지 않았던 변수+한국이 통제할 수 없었던 대외변수 등을 제외하고,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내적요인은 없을까? 


김일영은 <1960년대 한국 발전국가의 형성과정: 수출지향형 지배연합과 발전국가의 물적 기초의 형성을 중심으로>(1999) 라는 논문에서 "발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장악한 자원을 자신이 설정한 개발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동원배분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지와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상대적 자율성이 큰 국가는 발전국가라기 보다는 약탈국가(the predatory state)의 성격을 띠기 쉬웠다(13)" 라고 지적한다. 


즉, 일반적인 정경유착과 박정희정권 하에서 벌어졌던 정경유착의 차이는 "유착이 발생하는 경제적 영역과 특혜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으며, 그 결과도 소비적인 것과 생산적인 것으로 상반되게 나타났다.(15)" 라는 말이다. 박정희정권은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을 통해 낮은 금리로 대기업에게 대출지원을 했는데, "박정희 정부 하에서 저리의 융자와 외자는 주로 수출을 통해 성과를 내는 기업에게 주어지거나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회기반시설이나 기간산업 분야에 투입되었다. 따라서 똑같이 융자를 둘러싼 특혜의 추구라 할지라도 1950년대의 그것은 소비적이었다면, 1960년대의 것은 성과에 따른 보상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보다 생산적(15)" 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박정희정권은 어떤 정책을 취하였기에, 정경유착이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일까? 양재진은 <산업화 시기 박정희 정부의 수출 진흥 전략: 수출 진흥과 규율의 정치경제학>(2012)을 통해, 수출지향산업화 과정속에서 발생한 박정희정권의 "규율행사 discipline"에 주목한다. "수출 진흥은 그 자체가 항상 모럴해저드와 자원배분의 왜곡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 기본적으로 수출진흥정책 그 자체가 제대로 입안되고 효과적으로 집행되어야 하겠지만, 진흥(promotion)의 이면에는 국가의 규율(discipline) 행사가 필요조건으로 부가되어야 한다(2)" 라는 것이다.  "성공적인 산업화 배경에는, 기업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이에 상응하는 성과목표 부과와 업적에 따른 보상과 처벌(2)"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박정희정권은 1964년 수출지향 산업화(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EOI) 전략으로 돌아선 이후,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을 통해 기업에 자금을 지원 · 원화가치를 1달러당 130원에서 255으로 평가절하 · 저축을 증가시키기 위해 이자율을 16.8%에서 30%로 상승 등등 수출진흥지원을 펼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지원이 생산적인 결과물로 도출되도록 하기 위해 구사한 규율정책 discipline 이다. 박정희정권의 수출진흥지원에는 "강력한 책임과 의무가 강하게 부과되었으며, 수출기업이 향유하는 초과이윤은 사유물로 인정되기 보다는 공적 자산으로 이해되어 산업화에 재투자(12)" 되어야 했다. 


박정희정권은 "정책금융의 배분과 상업차관의 도입 승인 과정에서 해당 제품의 공급이 국내수요를 얼마나 충족시켜 줄 수 있으며,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액이 얼마일 것인가 그리고 국내산업과의 연관성, 기술이전 가능성, 그리고 고용창출 등이 얼마나 이루어질 것인가(12)"를 주요하게 살펴봤다. 그리고 기업별로 수출목표액을 부과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행정지도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규율행사 discipline 은 "기업들로 하여금 출혈수출과 이윤압박 등을 감내하면서까지 생산과 수출을 늘리게 만들(13)"었다. 또한, 부실기업들에 대하여는 "기업주에게 책임을 물어 경영권을 박탈하는 등 과감한 조치(14)"를 하였다. 그 결과, "박정희 시기는 수출기업들이 시장진입과 기업활동 전 과정에서 국가의 규율을 받아들여야 했고, 극단적으로 국가에 의한 구조조정이 신속하게 강제되었다.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가해진 성과책임의 부여는, 수출진흥정책의 효과성을 최대한 극대화 시킨(14)" 것이었다.


또한, 물가가 치솟자 박정희정권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주요 공산품과 유류 가격을 조정하는 가격사전승인제를 시행하는 등 행정력을 동원해 독과점기업의 초과이윤을 억제(16)" 했다. 물론, 수출지향 산업화를 과정에서 소수 기업들에게 자원을 몰아주고 수입을 제한해 경쟁을 막은 결과, 국내시장에서 독과점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각주:1] 그렇지만 "수출지향산업화의 맥락에서 수출단가를 낮추기 위해, 국내 독과점 구조에서 초과이윤을 수취하는 것이 허용(16)" 되었을 뿐이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준에서 머물러야(16)" 했다. 그리고 "급증하는 신흥 자본가들의 해외재산도피도 엄격히 규제(17)"하여 "남미나 동남아시아의 경우에 비할 때 한국의 외화도피는 매우 성공적으로 제어(17)" 되었다. 


즉, 박정희정권은 "법과 제도를 통하기 보다는 정치적 수단을 통해 한국의 신흥 자본가들에 대한 규율(17)"에 나섰고, 그 결과 정경유착이 경제성장이라는 생산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었다.




  1. 박병영은 <1980년대 한국 개발국가의 변화와 지속: 산업정책 전략과 조직을 중심으로>(2003) 논문을 통해 "정부는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설비투자 등에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동시에 내수시장의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이들 산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지원해온 것이다. (...) 1970년대 들어서는 전략산업에 참여한 기업들을 보호 육성하는 경쟁제한적인 행정규제가 주된 정책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경쟁제한 뿐만 아니라, 정부는 수입규제 및 정부구매 등을 통해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히였다(11)" 라고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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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Posted at 2013. 8. 18. 23:00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흥미로운 논문을 한편 소개. 한국경제 성장과정에 대해 리서치 하다가 발견한 논문.


제목은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 David C. Kang (2002)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많이 언급되는 세력은 "경제관료" Bureaucrats 들이다. 엘리트 집단인 경제관료들이 수출주도 성장을 이끌었다는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Development Economics 에서는 한국을 많이 다루는데, "(관료들에 의해 수립된) 국가의 경제정책"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실증적 논거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를 다룰 때 등장하는 경제관료들은 부패의 온상이다. "한국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 정실자본주의로 인해 외환위기를 맞았다" 라는 이야기.


두 이야기를 종합하면, "한국관료들은 유능한 것일까 아니면 무능력한 것일까?"


Development Economics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는 "국가는 전도유망한 산업을 선택해 육성할 수 있고 picks winners,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공재 public goods 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라는 전제를 따른 것이다.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 의 일종.


그러나 논문의 필자는 "(그 당시 한국지배세력 등의 부패정도를 안다면) 우리는 (한국경제의 성장이) 국가의 자애심 benevolence 덕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러나 한국은 (국가의 경제정책 덕분에) 경제성장에 성공한 것도 사실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필자는 "국가와 기업 간의 파워게임에 따른 금전정치money politics 와 부패 corruption" 개념을 들고 오면서 "한국의 경제성장은 (경제관료들에 의해) 의도된 결과가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For decades the literature on Asian development largely treated the prevalence of money politics as inconsequential or as peripheral to the “real story” of Korea: economic growth led by a developmental state composed of technocrats and austere military generals who emphasized 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Growth was so spectacular that the reality of corruption was concealed or was dismissed out of hand. 


And until late November 1997 and the stunning fall of the Korean won, observers argued that better government in Asia was a prime reason for that region’s spectacular growth.


Has corruption historically been prevalent in Korea? If so, why? How can we reconcile the view of an efficient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before 1997 with reports of massive corruption and inefficiency in that same country in 1998 and 1999?


(...)


The Korean experience suggests broader implications for the study of government–business relations in developing countries. Most important, a model of politics is central to understanding the developmental state. We cannot assume benevolence on the part of the developmental state. 


A “hard” view of the developmental state—that the state is neutral, picks winners, and provides public goods because the civil service is insulated from social influences—is difficult to sustain empirically. However, even the “soft” view—that governments can have a beneficial effect however government action is attained—needs a political explanation. The Korean state was developmental—it provided public goods, fostered investment, and created infrastructure. 


But this study shows that this was not necessarily intentional. Corruption was rampant, and the Korean state intervened in the way it did because doing so was in the interests of a small group of business and political elites. Producing public goods was often the fortunate by-product of actors competing to gain the private benefits of state resources.


David C. Kang. 2002.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3-4 





필자가 제시하는 types of corruption 은 4가지.


1. 강한 국가 + 강한 기업 = 상호인질관계 Mutual hostages


2. 약한 국가 + 강한 기업 = bottom-up type. 국가에 비해 기업이 우위에 선 구조. 업이 지대추구 rent-seeking 를 위해서 관료 등을 상대로 로비를 한다. 


3. 강한 국가 + 약한 기업 = top-down type. 국가가 강한 권력을 가진 구조. 강한 권력을 가진 관료 등이 정치자금 마련 등을 위해 기업을 약탈 predatory 한다.


4. 약한 국가 + 약한 기업 = 시장원리 Laissez-faire 대로 경제가 돌아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2. 약한 국가 + 강한 기업" 과 "3. 강한 국가 + 약한 기업"


개발시대 한국은 독재정권이 강력한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국가가 금융자본을 통제하는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구사하면서 은행의 기업대출에 직접 관여하였다. 투자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국가의 "대출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였다. 


따라서, 기업은 독재정권에 정치자금을 대주고, 독재정권은 대출을 통해 기업을 밀어주는 양상이 나타났다. 정치자금을 많이 건네준 기업이 독재정권의 선택을 받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부패 Corruption 정도가 기업의 성장을 결정하는 상황. 실제로 선택받은 상위 10개 기업들은 Financial Repression 정책에 힘입어, 당시 한국의 은행대출 38%, 시중통화량의 43%를 지원받고 "급속히 성장"해 나갔다.


- 현대 · 삼성 등의 재벌들이 새마을운동 지원금 · 일해재단 기부금의 명목으로 정치권에 건넨 정치자금 액수


- 정치자금을 건넨 대가로 국가로부터 금융혜택을 얻은 소수의 기업들. 1964년 8월 기준, 은행대출에서 (정치권으로부터 선택받은)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8%에 달한다.


Business and political elites exchanged bribes for political favors. Politicians used these political funds to buy votes and to serve basic greed. Businessmen used the rents from cheap capital to expand as rapidly as possible, thus ensuring their continued political and economic importance. Development and money politics proceeded hand in hand.


(...)


Businessmen often called “voluntary” donations jun joseh, or “quasi-taxes." (...)The fact remained that if businessmen did not provide politicians with sufficient funds when asked, the Bank of Korea called in their loans, or they suffered a tax audit, or their subsidy application was denied.


(...)


Given the Korean state’s total control over the financial sector in the 1960s and 1970s, businesses were naturally interested in gaining access to the enormous rents that accrued to a chaebol if it received a low-interest-rate loan. The state’s inability to control firms and their growth led to endemic overcapacity. Firms rushed willy-nilly to expand at all costs, whether or not it was economically feasible. The result was that in most major sectors of the economy there was excess capacity and overlapping and duplication of efforts as each chaebol tried to be the biggest. 


Rents in the form of U.S. aid, allocation of foreign and domestic bank loans, import licenses, and other policy decisions were based on a political funds system that required donations from the capitalists. During the 1960s, the expected kickback became normalized at between 10 and 20 percent of the loan.43 Park Byung-yoon points out that as early in Park’s rule as 1964, 38 percent of total bank loans—43 percent of M1 money supply—was given to only nine chaebol, all of which had family members in powerful positions in the ruling party or in the bureaucracy (see Table 2).


David C. Kang. 2002.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10-14




그러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상황이 바뀐다. 국가의 힘이 약해져 버린 것이다. 독재시대와 달리 국가가 모든 상황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 물론, Financial Repression은 계속 됐지만, 그 사이 기업들도 크게 성장해 "재벌"이 되었다. 정치권력이 재벌들을 함부로 컨트롤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들이 필요한 "선거자금"은 늘어나기만 했다. 과거 독재시대에는 선거가 필요 없었는데, 이제는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회는 "취약한 법 제도 weak legal environment"를 가지고 있었고 "인맥 personal ties" 이 많은 걸 결정했다.


이제 힘이 세진 기업들이 정치권력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정치자금을 대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관철시키는 양상이 나타났다. 시장 바깥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지대추구행위 Rent-seeking behavior 가 나타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재벌들의 성장세는 계속 됐다. 자동차, 전자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출했다.


- 1987년-1997년 사이의 대통령선거 동안 지출된 정치자금


- 1987년 민주화 이후, 재벌들이 부담한 정치자금 (일종의 준조세, quasi-taxes) 이 매우 커졌음을 알 수 있다.


-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재벌들은 정치자금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관철 rent-seeking 시켜 나갔다. 한국의 GNP에서 현대 · 삼성 · LG· 대우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높아져만 갔다. 

- 그리고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의 혜택으로, 재벌들은 손쉽게 은행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1996년 재벌들의 자산대비 부채 비중 Debt/equity ratio 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the most significant change was the 1987 democratic transition. A country’s shift from authoritarian institutions to democratic ones will have different results depend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tate and business (Figure 2). In Korea, where both the state and business were strong, a shift to democratic institutions benefited business more than the state—the state was weakened by the imposition of democratic processes.


(...)


Although many assumed that globalization and liberalization would reduce rent seeking and the power of the chaebol, the opposite might very well be the caseTable 9 shows that although in 1986 the four largest chaebol added 5.7 percent to Korea’s GNP, by 1995 their share had grown to 9.3 percent of value added to GNP. Unless liberalization is matched by stringent regulatory oversight that limits collusive practices and the exercise of market power, it can provide new opportunities for large firms to buy favorable policy. While measures to rein in the chaebol are popular politically, because of government–business ties such policies were unsustainable even after 1997.


(...)


the importance of personal relationships (inmaek) in legal and corporate institutions also increased. A historically weak legal environment— and the corresponding importance of personal ties— creates an environment where the founder/chairman can control a vast array of subsidiaries while having little or no formal title to them and can evade or influence government policy.


In this fluid institutional environment, personal ties between chaebol and politicians— always important—have become even more critical to business success. The transition to democracy did not change this need. Rather, the 1990s saw expanded opportunities for personal connections, influence peddling, and a “bigger is better” mentality. Business concentration continued to increase, while cross-holding ownership remained a standard Korean business practice.


David C. Kang. 2002.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18-25




국가가 기업을 컨트롤하든, 기업이 국가를 컨트롤하든, 그 중심에는 뇌물bribery 등의 부패corruption 와 금전정치 money politics 가 있었다. 국가와 기업은 '뇌물'을 연결고리로 서로를 지원하고 이끌어 나간 것이다. 필자가 "한국의 경제성장은 (경제관료들에 의해) 의도된 결과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부패한 모든 국가가 경제성장에 성공하는건 아니지 않나? 개발시대 한국의 부패 정도가 심했음에도 경제성장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1. 부패corruption는 국가경제정책과 자원배분에 관한 투쟁 이었다.

(Corruption may indeed consist of struggles over the distribution of state policy and goods rather than struggles over the absolute level.) (26)


- 개발시대, 금융자본을 움켜쥐고 있던 Financial Repression 국가권력이 "한국의 자원배분"을 결정했다. 국가와 기업간에 나타난 부패corruption은 이러한 "자원배분 distribution of state policy and goods"을 쟁취하기 위한 "기업들의 투쟁" 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사욕챙기기"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2. (뇌물을 통해) 국가의 자원을 쟁취하고 기업들이 사적인 이익을 향유했던 것은 공공재의 생산을 조건으로 한 것이다.

(Access to the private benefits of state resources was often contingent upon production of public goods.) (26)


한국의 재벌들은 뇌물을 통해 국가자원을 배분받거나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사회인프라 건설, 고용창출 등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공재public goods 를 생산해 냈다" 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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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

Posted at 2013. 6. 7. 15:45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앞선 포스팅에서 "고용률 70% 로드맵 정책의 핵심은 "정책의 목표를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고용률로 삼은 것" 이라고 말했다. 경제성장률은 성장우선 이고 고용률은 분배우선 이기 때문에 고용률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일까? 그런 의미가 아니다. 


또한, 정부는 "예전과 같은 고성장이 불가능하고 수출주도형 대기업으로부터의 낙수효과가 미발생" 했다는 점을 들어 "고용률 중심 정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경제성장률 중심 정책은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떠난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애초에 작은 개방경제 Small Open Economy를 가진 일국의 정부가 "인위적으로 높게 책정한 경제성장률"을 정책의 타겟으로 삼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이다.




● 경제성장률을 정책의 목표로 삼는 경우


① 경제성장률은 이미 정해져있다


지난 이명박정부의 대표적인 공약은 바로 "747 정책" 이었다. 경제성장률 7% 달성 · 소득 4만 달러 · 세계 경제 7대 강국 진입. 바로 여기서 "경제성장률 7%"를 목표로 삼은 것이 많은 화제가 됐었는데,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소리인지 잘 알 것이다.


한 국가가 1년동안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 범위는 애초에 정해져있다. 바로 "잠재성장률 Potential Growth Rate"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국가가 주어진 물적자본 physical capital · 인적자본 human capital · 조직자본 organizational capital 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했을 경우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쉽게 말해, 일종의 "제한된 능력 limited capacity" 이다. 


잠재성장률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노동자수"와 "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생산성이 증가할수록 잠재성장률이 올라가는 구조이다.


< 출처 :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조장옥 교수, 거시경제학 수업자료 >


위에 첨부한 그래프는 경제 내의 장기 총생산 Long-run Aggregate Production 이 결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번 그래프는 노동시장 Labor Market 에서 노동공급자 (P*MRS=물가수준*한계대체율)와 노동수요자 (P*MPL=물가수준*한계노동생산)가 만나 균형노동량 를 달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기업의 인력수요와 노동자의 구직의사가 만나 일정한 수의 노동자가 취직에 성공하는 모습을 뜻한다.


2번 그래프는 경제체제 내의 생산성 Productivity 정도를 나타내는 생산함수 Production Function 이다. 노동 · 자본 생산성이 증가할수록 생산함수  상향이동 하고, 1번 그래프의 노동시장에서 결정된 균형노동량 가 장기 총생산량 를 이끌어낸다. 이러한를 45도 직선 그래프에 대응하면, 4번 그래프 모양인 장기 총생산량 를 가진 장기 총공급 곡선 Long-run Aggregate Supply Curve 이 도출된다. 


이때, 장기 총생산량  완전고용 산출량 혹은 잠재성장률 상황에서 달성할 수 있는 장기적인 산출량을 의미한다. 다르게 말해, 잠재성장률이란 장기 총생산량 를 증가시킬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잠재성장률은 "단기적인 기간내에 변하지 않는다"한 국가의 인구규모는 제한되어 있고 생산함수를 상향이동 시키기 위해서는 인적자본 · 물적자본 · 조직자본에 대한 투자investment가 필요한데, 이는 단기간에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각주:1]


교육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교육의 영향을 받은 세대가 노동시장에 참여해야 하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술개발에 따른 자본생산성 향상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기술이 탄생해 실제 현장에 적용되고 산업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장기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더군다나, 경제개발 초기와는 달리 노동투입증가에 한계가 있고 획기적인 생산성 증가가 어려운 경제개발 성숙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점차 하락하고 있다. 국내 주요 민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90년대 6% 중반에 달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최근 3%대 중후반까지 하락했다. 그런데 임기 내에 7%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겠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럼 연초에 각국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성장률 목표는 무엇일까? 이것은 "이만큼의 잠재성장률을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 라는 의미이다. 


물론, 단기적인 기간 내에 잠재성장률을 뛰어넘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초과해 확장갭 Expansionary Gap 이 달성되는 경우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인위적으로 높은 수치의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하고 이를 달성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만약 이명박정부가 "우리는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임기 내에 묵묵히 노력하겠다" 라고 발표하고 정책을 수행했으면 납득 가능하다. "묵묵히 노력한다" 라는 의미는 "장기적인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 · 자본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육제도의 변화 · 기술투자 · 제도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그저 수치상 높은 경제성장률 달성을 위해 4대강 사업 등 무리한 일만 벌리고 물러났다.


② 작은 개방경제인 한국, 대외여건 변화에 취약


게다가 작은 개방경제 Small Open Economy를 가진 한국의 단기 경제성장률은 대외여건의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GDP 대비 110%에 육박하는 반면, 내수시장 크기를 결정하는 민간소비는 GDP의 53%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높은 경제성장률을 한해의 목표로 정하더라도 미국 · 중국 · 유럽 등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면 목표달성이 어렵다. 핵심은 작은 개방경제 국가가 처한 대외여건을 대통령 혹은 정부가 크게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를 단순히 인위적으로 높게 설정한 경제성장률로 정할 경우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고, 대통령과 정부는 5년 임기 내에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노력 등을 등한시하게 된다.   




● 실업률을 정책의 목표로 삼는 경우

- 비경제활동 인구는 어떻게?

실업률의 문제는 "실업률의 측정 방식" 때문에 생긴다. 실업률은로 측정한다.


여기서 용어의 정의가 필요한데,


생산가능 인구 = 15세 이상인 자

경제활동 참가자 = 생산가능 인구 중 구직활동에 참여한 자

실업자 = 최근 4주간 구직활동에 참여했고, 일자리가 생기면 일을 할 수 있고, 현재 일자리가 없는 자


를 의미한다. 여기서 "경제활동 참가자"를 측정하는 것이 상당히 애매한데, 최근 4주간 구직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공무원시험 준비생 · 전업주부" 등은 비경제활동인구로 실업률 측정에서 빠지게 된다. 공무원시험 준비생 등을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업자에서 제외할 수 있을까? 


즉, 애초에 경제활동참가율 자체가 낮다면 실업률을 유의미한 지표로 보기 어렵다현재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3% 대로 OECD 최상위 수준이지만, 고용률은 60% 초반대로 OECD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를 실업률로 잡아버리면 어찌됐든 낮은 실업률을 달성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삶의 질 증가를 달성하기 어렵다. 


  • OECD의 실업률 데이터. OECD 주요국 가운데 밑에서 두번째에 위치한 Korea
  • 데이터 가공출처 : Google Public Data


  • OECD의 고용률 데이터. OECD 주요국 가운데 밑에서 일곱번째에 위치한 Korea
  • 데이터 가공출처 : Google Public Data



 고용률을 정책의 목표로 삼는 경우

- 적극적인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


이러한 문제를 가진 실업률을 대신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 "고용률" 이다. 고용률은이기 때문에, 실업률과는 분모가 다르다. 경제활동 참가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순전히 "취업자수"에 영향을 받는 지표이다. 


따라서 정책의 방향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정책의 목표를 실업률로 삼는 경우, 단지 "실업자수"를 줄이는 "소극적인 정책"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고용률을 목표로 삼는 경우, "비경제활동 인구의 노동시장 참여를 독려하는 적극적인 고용정책"이 나오게된다즉,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전업주부 등의 여성들이나 20대 청년 등의 고용촉진을 위해 노력한다.


고용노동부의 "고용률 70% 로드맵" 정책이 "여성 일자리" 문제나 "높은 대학진학률로 인한 20대 청년층의 늦은 노동시장 참여"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출처 : 6.3 고용률70% 로드맵1 PDF 자료 4페이지 > 


그리고 비경제활동인구의 노동시장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제도 및 문화 개선이 필수적이다.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법조항을 새로 만들거나 노동법 적용을 엄격히 해야 할 것이다. 또, 여성에게 불리한 가부장적인 기업문화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거나 여성채용을 늘리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다. "고용률 70% 로드맵"에 나온 것처럼 국가가 공공 보육 · 육아시설을 늘릴 수도 있다. 아니면 국가가 재정을 투입하여 복지서비스를 늘리고 이를 통해 일자리와 시장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제도 및 문화 개선은 5년 임기의 대통령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균형노동량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도움되는 일이다. 그리고 내수소비시장을 키워 대외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정책의 목표로 경제성장률을 지향하는 것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잠재성장률의 획기적인 증가는 5년 임기의 대통령과 정부가 달성할 수 없는 것이고 경제성장률 그 자체는 대외여건의 변화를 크게 받는데 반하여, 여성 · 청년 · 중장년층의 고용률을 늘리기 위한 제도 및 문화 개선과 재정투입은 5년 임기의 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묵묵히 노력"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용률 중심의 경제정책을 펴면 GDP 증가는 따라오게 되어있다고용률 증가를 위해서는 여성의 일자리 참여나 내수서비스업 발전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소득이 증가"해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소득 중심 성장 Wage-Led Growth", "수요 중시 Demand-Side 경제정책" 이다.




정책의 목표가 경제성장률이냐 고용률이냐가 던져주는 물음은 이것이다. 바로 "무엇을 위해 경제성장을 하는가" 이다. 


고용률 정책도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다.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지 않는다면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소득이 줄어들어 사람들의 삶의 질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경제성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경제성장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경제성장률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경제성장일 뿐이다. 수치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해도 사람들의 삶의 질 증가가 없다면 무의미할 뿐이다. 반면 고용률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실질적인 삶의 질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단이 본래 목적을 압도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같이 읽을거리>


고용률 70% 로드맵. 2013.06.06


정체된 기술의 혁신 - 저성장의 길을 걷게 될 세계경제. 2012.09.01


잠재성장률 하락 너무 빠르다…韓 성장동력 '비상'. <연합뉴스>. 2013.02.21


"무역 의존도 높은 한국, 0%대 성장시대 올수도". <한국경제>. 2012.11.14


경제활동 참가율 50%대로 추락 전망. <연합뉴스>. 2013.03.11


언론사가 '주가지수 상승을 경제성장의 지표'로 나타내는 게 타당할까?. 2013.03.18


복지서비스를 국가주도로 해야하는 이유. 2012.11.28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바로 세우면 경제가 살아날까?. 2012.12.11


  1. 경제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한 개발도상국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개발 초기에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급속도로 많아지기 때문에, 성장률이 높게 나온다. 그러다가 경제가 성숙해질수록, 노동자수 증가에 한계limit가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둔화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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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못하는 학생,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공부를 못하는 학생,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

Posted at 2013. 5. 2. 00:33 | Posted in 경제학/일반


공부를 못하는 학생과 경제성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왜 이 학생을 공부를 못하고, 왜 이 국가는 경제성장에 실패하는지", 다르게 말하면 "이 학생은 어떻게 했길래 공부를 잘하고, 이 국가는 어떻게 했길래 경제성장에 성공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비교하고 난 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공부를 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있을까?


학생들을 살펴보면 애초에 학습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어떻게하면 공부를 잘하니?" 라고 물어보면, 그 학생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냥 수업 듣고, 따로 공부하고 그러는데요." 이런식의 대답이 다수일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공부방법을 다른 학생에게 적용하더라도, 똑같은 시험성적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타고난 지능의 차이 때문일까? 그런데 형제(자매, 남매) 간에도 성적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첫째는 공부를 잘하는데, 둘째는 공부를 못한다는 식으로. 땨라서, 대부분의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주로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긴다.




국가의 경제성장도 마찬가지다. 왜 어떤 나라는 경제성장에 성공하였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못하는지 명확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서유럽, 미국 등은 일찍이 산업화에 진입하였고, 한국 등은 산업화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경제성장에 성공한 한국의 방식을 다른 나라에 적용한다면, 그 나라는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보다 한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명확한 이유부터 찾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하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는지, 이 나라는 어떻게해서 경제성장에 성공했는지 명학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장에 실패한 국가 혹은 경제위기를 겪는 국가를 향해 "그 나라의 게으른 국민성"을 문제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나라의 국민은 근면한데, 저 나라의 국민은 게으르다" 식으로 낙인을 찍음으로서 쉬운 해법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과 "게으른 국민성"으로 원인을 진단하면 제시될 수 있는 해법도 정해져있다.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에게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것"과 게으른 국민들에게 "부지런히 일을 하게끔 강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법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① 구조적 원인을 무시


-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차이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지능과 노력여부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보다 가정환경, 주위환경, 부모의 직업, 부모의 관심사 등등 주변환경 혹은 사회경제적 계층의 문제에서 찾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일례로, 집에서 TV만 보는 부모가 있는 가정과 집에서 책을 읽는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학생은 서로 다를 것이다.


- 국가의 경제성장도 마찬가지다. 크게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냐 공산주의 경제체제냐에따라 국가 간 경제성장이 달라질 것이고, 그 국가의 지정학적 환경, 지나온 역사 등등 여러요인이 작용할 것이다. 쉽게 생각해, 미국의 원조 없이 한국 홀로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② 강요된 개혁이 가져오는 폐해


- 어느날 갑자기, 공부습관이 잡혀있지 않은 학생에게 "오늘부터 너는 하루 10시간 공부를 해야해" 라면서 일정한 공부시간을 강요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당연히 10시간 이라는 공부시간을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10시간 동안 억지로 책상에 앉아 있느라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집생각만 계속 나고, 오히려 집중력만 더 흐트러질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공부방법을 억지로 적용"해도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공부방법이 있는데, 아무런 부작용 없이 하루아침에 공부방법을 바꿀 수 있을까? 


- 이같은 현상은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경제성장을 해야한다는 명분으로 "오늘부터 노동시간을 늘려야해" 라면서 일정한 노동시간을 강요하면 부작용만 생길 것이다.


또한, 저성장 국가의 낙후된 제도를 "경제성장에 성공한 국가의 제도"로 하루아침에 바꾸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이같은 일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벌어졌다. 당시 서구사회는 동아시아의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유를 "아시아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 라는 식으로 접근하였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좀 더 구체화 하자면,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들-산업별 중복투자, 부정확한 회계처리, 투명하지 않은 경영정보, 오너일가의 횡포, 연공서열, 경직된 노동시장- 등등. 이 같은 문제점을 고쳐준다는 명분으로 하루아침에 "유연한 노동시장을 위한 구조조정", "자본시장 개방" "연공서열 철폐" 등의 개혁이 단행됐다.


그런데 당시 한국이 이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건, 한국만의 역사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의 전통적인 윗사람 우대 문화와 변변찮은 노후복지 시스템이 결합하여, 근무년수가 오래될수록 더 많은 연봉을 주는 것이 합리적인 '문화'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공서열 문화로 인해, 늦은 나이에 다른 회사로 재취업 하기가 힘든 '문화'가 존재하는 게 한국이었다.


그런데 한 국가만의 특정한 맥락을 무시하고 다른 나라의 제도를 급격히 이식한 결과,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였는지 우리는 지금 잘 알고 있다.




이 이야기를 왜하냐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 강요됐던 긴축정책과 현재 남유럽에게 강요되고 있는 긴축정책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를 향해 긴축정책을 강요하는 이유는 과도한 부채가 가져오는 경제적인 문제-인플레이션 발생, 채권금리 상승, 기대심리confidence 훼손-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위기에 빠진 "그 나라 자체가 근본문제" 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경제위기를 다룰 때,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내용은 "그리스 국민의 게으름" 이었다. 독일 국민은 부지런히 일하는데, 그리스 국민은 게으르다는 식의 보도. 그런데 그리스인의 노동시간은 유럽 내에서도 상위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리스인의 잘못된 국민성으로 인해 낮은 노동생산성이 생겨났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주장의 맹점은 유럽경제위기가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단일통화가 가져다주는 폐해-"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 통일 이후, 독일은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독일병'이라는 말도 생겨났는데,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게 된다. 


2000년대 단행된 독일의 개혁-유연한 노동시장, 임금상승 억제-을 근거로 남유럽의 경직된 노동시장을 탓하고, 독일과 같은 경제구조를 남유럽에 이식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다시피, 국가간의 특정한 상황을 무시하고 어떤 제도만이 옳다는 식으로 급격한 개혁을 강요하면 문제만 생긴다. 경제위기로 인해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유연한 노동시장과 부채축소를 강요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이 "지금 당장은" 확장정책을 통한 실업문제 해소에 주력하고, "장기적으로" 남유럽의 경제구조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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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st we can say about economics is that we know what not to doThe best we can say about economics is that we know what not to do

Posted at 2012. 7. 23. 00:46 | Posted in 경제학/일반


http://www.economist.com/blogs/buttonwood/2012/07/economic-history?fsrc=scn%2Ftw%2Fte%2Fbl%2Fmuddledmodels
"Economic history-Muddled models". <The Economist>. 2012.07.20


"The best we can say about economics is that we know what not to do

we have plenty of modern examples from African kleptocrats to totalitarian North Korea. 
A functioning modern economy needs respect for property rights; 
a government that is able to collect taxes and offer a social safety net; 
banks that allow the payment system to function; 
markets that allow businesses to raise capital and so on. 

Once those essentials are in place, whether the right top tax rate is 40% or 50%, the right interest rate is 1% or 5% is largely a matter of trial and error, and of political acceptability."



‎"어떻게해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는 경제학계의 난제 중 하나. 

취업자가 많고 노동생산성이 높으면 되지만, 그걸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가 문제.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경제발전모델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것일수도.


경제위기를 맞아 주목받고 있는 경제모델은 4가지.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고부가가치 제조업&서비스업+노동 유연성을 가진 끝판왕 미국

평생고용체제를 안고 가는 일본

고부가가치 제조업+장인 기술+노사정 합의체제(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가진 독일

적극적 복지국가 체제를 이룩한 북유럽.


특히나 일본 모델이 주목받고 있음. 서구 경제학자들이 그동안 무시했었다며 반성문을 쓸 정도. 

일본은 앞으로 있을 저성장 시대에 살아가는 법을 잘 보여주고 있고, 그동안 경제침체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평생고용체제'가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했었다는 평가. 

미국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여러가지를 알려줌.



PS


"The best we can say about economics is that we know what not to do."

와 관련하여 읽으면 좋은 블로그 포스트.


http://blog.gorekun.com/1525

"내가 실패담을 더 좋아하는 이유". 2011.09.18


어느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이것을 위해서는 이렇게 하면 된다"라는 '선형적 사고'는 경계해야 될 거 같다.


누차 말하지만, "어떻게 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라는 건 아무도 모른다.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들을 대상으로 사후적 해석만 가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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