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Posted at 2017. 7. 24. 18:49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Why are we so rich and they so poor?)


지금까지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통해, 여러 성장이론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발전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1956년 솔로우 모형 등장 이후 "솔로우 모형이 현실을 올바로 설명할 수 있느냐?"를 두고 논쟁이 펼쳐지며 1980년대에 내생적성장 이론이 등장하였고, 이것조차 최근의 경제현상을 설명해내지 못하자 1990년대에 신성장이론이 나타났습니다.


각각의 성장이론은 시대별 · 이론발전단계별로 초점을 맞춘 부분이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크게 2가지 물음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왜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반해, 어떤 나라는 느리게 성장할까?


서로 다른 성장이론이 이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고 있는지는 '[경제성장이론 요약]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각주:1]'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공장 · 기계설비 등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자본축적량이 정상상태(steady state)에 미달하는 국가일수록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P.로머와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각주:2]'지식'(knowledge)과 '인적자본'(human capital)에 초점을 맞춥니다. 지식과 인적자본은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한 파급효과(spillover)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기업 혹은 후세대의 근로자도 이용 가능합니다. 따라서, 초기에 지식과 인적자본 수준이 높았던 국가는 계속해서 높은 생활수준과 빠른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더 나아가서, P.로머는 신성장이론[각주:3]을 통해 '아이디어'(idea)와 '연구'(research)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아이디어는 여러 원자재를 조합하는 방식을 개선하게 함으로써,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케하는 다양한 방식을 제시합니다. 연구부문에 많은 투자를 하는 국가일수록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때 아기온과 호위트[각주:4]'기업간 경쟁'(competition)이 더 많은 연구부문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업들은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를 합니다. 경쟁을 통한 창조적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일어나는 국가일수록 경제성장을 달성합니다.


이러한 성장이론을 종합해보면, 국가간 생활수준 및 성장률 격차를 초래하는 요인을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물적격차'(object gap) 입니다. 


공장 · 기계설비 등 물적자본이 풍부한 국가는 경제성장을 달성하는데 반해, 부족한 국가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는 수해복구사업시 포크레인 등 건설장비를 이용하는 한국과 여전히 소와 쟁기를 이용하는 북한을 대비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둘째는 (내생적성장 모형과) 신성장이론[각주:5]이 강조하는 '아이디어 격차'(idea gap) 입니다. 


물적자본이 부족한 국가에 기계설비 등을 가져다주면 저절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물적자본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입니다.


이렇게 솔로우 모형과 신성장이론은 서로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경제성장을 위해 서로 다른 처방이 내려집니다.


솔로우 모형 주창자들은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통한 자본축적'을 강조합니다. [경제원론]에서 살펴보았듯이[각주:6],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린다는 말은 경제내 한정된 자원을 소비재 생산이 아닌 자본재 생산에 투입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소비를 줄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입니다. 지금 당장의 효용을 포기하고 미래에 있을 희망을 기대하는 것인데, 현재의 소비감축이 미래의 소비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물적자본만 증가하면 경제가 성장할까요? 설비기계 등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이를 사용할 줄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물적자본 증가는 지식 및 인적자본 증가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신성장이론을 수립한 폴 로머(Paul Romer)'선진국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성장의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채용하거나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어 격차를 줄이는 것은 보다 손쉬운 해결책이기 때문이죠.


그는 1993년 두 가지 논문, <경제발전에서 아이디어 격차와 물적 격차>(Idea Gaps and Object Gaps in Economic Development), <경제발전의 두 가지 전략: 아이디어 이용하기와 생산하기>(Two Strategies for Economic Development: Using Ideas and Producing Ideas)을 통해,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폴 로머가 왜 '아이디어 격차'를 강조하는지 자세히 알아봅시다.




※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는 정말 '물적 격차'(object gap)를 의미할까?


솔로우 모형이 '물적 격차'(object gap)을 강조하는 이유는 '기술은 공공재(public good)이기 때문에 전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이용 가능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건 국가간 이전이 어려운 기계설비 등 '물적자본을 많이 축적하기' 입니다.

(주 : '기술은 공공재' 라는 주장이 가지는 맥락을 이해하고 싶다면,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물적자본을 축적하는 건 '현재의 소비감축'을 요구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미래에 더 나은 생활수준을 위해서 벨트를 조여매고 현재의 생활수준을 낮추며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만약 그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면 감내할 수도 있습니다만, 경제성장에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금보다는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미래의 소비증가폭이 현재의 감소폭보다 적을 수도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수리적기법을 이용하여 '최적 저축수준, 즉 황금률'(golden rule) 개념을 말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정확히 알기란 힘듭니다. 또한, 경제 전체(aggregate)의 황금률을 알더라도 세대별로 다르다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나이 많은 세대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감축하는 건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Fagerberg (1994)

  • 미국 대비 15개 산업국가의 근로시간당 GDP를 보여주고 있다

  • 1950년 이전에는 미국의 급격한 성장 때문에, 미국과 나머지 산업국가 간 격차가 커졌다

  • 하지만 1950년 이후 나머지 산업국가가 따라잡기(catch up)에 성공하면서 격차가 축소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선진국과 후발국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물적 격차'로 봐야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 파거버그(Jan Fagerberg)는 1994년 논문 <성장률의 기술적, 국제적 차이>(Technology and International Difference in Growth Rates)을 통해, 물적자본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주목합니다. 


(주 : 파거버그의 연구는 아브라모비츠(Abramovitz)의 선행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모비츠의 연구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적자본 안에는 더 나은 기술도 체화(embodied)되어 있습니다. 투자를 통해 더 좋은 기계를 들이면 단순히 물적 자본이 증가하는 게 아니라 기술수준도 증가합니다. 그런데 상호작용을 인지하지 못하면 "우리와 선진국의 차이는 (단순히) 물적자본 축적량에 있구나" 라고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게다가 기술진보의 영향이 편향적이라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진보의 영향을 더 받는 자본재를 더 빈번하게 쓰게 됩니다. 


따라서, 단순히 'GDP 대비 투자 비중', '1인당 자본량 수준' 등을 바라보며 "선진국과 후발국 간에는 물적 격차가 존재한다" 라고 진단내려서는 안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건 물적 격차 이지만, 실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건 기술 격차일 수 있습니다.


이는 위에 첨부한 그림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50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다른 산업국가 간에는 GDP 격차가 축소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1950년 이전에는 미국의 급격한 성장 때문에 미국과 나머지 산업국가 간 격차가 커졌다가, 1950년 이후 나머지 산업국가가 따라잡기(catch up)에 성공하면서 격차가 축소되고 있죠.


이러한 따라잡기를 가능케했던 힘은 투자를 통한 자본축적이 아니라  '교육수준 향상' · '세계화에 의한 시장확대' · '다국적기업의 역할 확대' 등등이 만들어낸 '기술전파'(technology flow) 입니다.


미국은 압도적인 기술수준을 가지며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만약 솔로우 모형이 가정하는 것처럼 '기술이 공공재' 라면,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1950년 이전 산업국가들은 이를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과 다른 산업국가들의 환경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술적 적합성의 부족'(lack of technological congruence) 이라 합니다. 


기술은 더 많은 자원, 더 넓은 시장, 더 많은 인적자본을 가진 곳일수록 더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미국은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죠. 그러나 개별 국가로 쪼개진 유럽은 미국에 비해 더 적은 자원, 더 좁은 시장, 더 적은 인적자본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산업국가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기술을 그대로 옮겨오더라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 이후 상황은 달라집니다. 후발 산업국가들이 교육제도를 정비하면서 수준을 향상시켰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시장크기는 확대되었습니다. 이제 나머지 국가들도 선진 기술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적합성'(congruence)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다국적기업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외국기업을 통한 '국제적 기술 전파'(international technology flow)가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물적 격차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기술 격차를 보였던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의 생활수준은 빠르게 좁혀질 수 있었습니다. 




※ 생활수준 차이를 비교적 빠르게 좁힐 수 있는 '아이디어 격차'(idea gap)

- 비경합성을 띄는 아이디어의 특성, 모든 국가가 아이디어를 이용할 수 있다


폴 로머는 '기술 격차'의 개념을 '아이디어 격차'(idea gap)로 확장시킵니다. 경제학에서 기술은 '서로 다른 원자재를 효율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을 의미하지만, 사람들은 단순한 제조업 공장을 연상하기 때문이죠.


아이디어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직관, 포장방식, 마케팅 기법, 재고관리법, 결제시스템, 정보시스템, 운송관리, 품질관리, 동기부여 등등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더 나은 아이디어가 생겨날수록 다양한 내구재가 만들어지거나 더 나은 품질의 내구재가 창출됩니다. 


이때, 아이디어가 가진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비경합성'(non-rival) 입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


기초 과학 및 공학법칙 · 경제 및 경영 지식 · 새로운 생산방법 등 아이디어는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월을 뛰어넘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선진국이 가진 아이디어는 후발산업국가 혹은 개발도상국도 함께 공유할 수 있습니다. 후발국이 사용한다고 해서 선진국의 아이디어가 훼손되거나 사용이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함의를 전달해 줍니다.


선진국은 이미 전세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식과 아이디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게 지식을 전달할 유인이 있다면, 후발국 사람들은 막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때 국가간 아이디어 확산에 역할을 하는 건 바로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firm) 입니다. 후발국이 다국적기업에 적정한 보상을 주는 환경을 조성하면, 다국적기업은 직접투자 · 합작기업 설립 · 마케팅 및 라이센스 협약 등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 경제성장을 위한 2가지 전략 

- 선진국의 아이디어 이용하기 (using ideas)

- 스스로 아이디어 창출해내기 (producing ideas)


그럼 실제로 아이디어를 통해 선진국과 생활수준 격차를 좁힌 국가들이 있을까요? 폴 로머는 아프리카의 '모리셔스'(Mauritius)와 동아시아의 '대만'(taiwan)을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 


이때 두 국가가 취한 전략은 다릅니다. 모리셔스는 시장개방을 통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대거 받아들이는 '아이디어 이용하기'(using ideas) 전략을 행하였고, 대만은 유치산업보호와 외국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궁극적으로 '아이디어 창출해내기'(producing ideas) 전략을 택하였습니다. 


서로 전략은 달랐으나,  두 국가는 결국 경제성장에 성공하였습니다.



▶ 아프리카 '모리셔스'

- 외국인 직접투자를 받아들여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이용


  • 표 출처 : P.Romer (1993)
  • 사진 : 모리셔스 수도 포트루이스, 위키피디아

일반인에게는 낯선 국가 모리셔스는 오래전부터 경제학자들의 관심대상 이었습니다. 약 150만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섬국가인 모리셔스는 1960년~1988년간 연평균 2.8%의 성장률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한국의 경험과 비교하면 적은 수치이지만, 동시기 인도(0.9%)와 스리랑카(1.3%)에 비하면 높은 값입니다. 


2016년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성장률은 3.6%, 1인당 GDP는 21,000 달러로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 보다 월등히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모리셔스의 GDP 대비 투자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1960년~1988년 연평균 투자비중은 12%로 인도(17%)와 스리랑카(21%)에 비해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제성장에 성공했다는 건 '자본축적' 이외의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시사합니다.


로머가 주목하는 성공요인은 바로 '외국인 직접투자'(FDI) 입니다. 모리셔스는 수출가공지역(EPZ)을 지정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때 소유권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고, 기계설비 수입에 관세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세금감면, 노동쟁의 완화 등등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외국기업을 유혹했습니다.


그 결과, 1971년~1978년 사이, 모리셔스는 연평균 9%의 성장률을 기록하였고, 수출가공지역이 고용하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66%를 차지했습니다.


솔로우 모형 주창자들은 이를 보고 "결국 외국기업이 기계설비 등 자본재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 아니냐" 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로머는 이를 부인합니다. 투자는 그저 눈에 드러나는 요인(proximate)일 뿐 성장의 근본요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머는 외국인 사업가가 들고 온 아이디어가 경제성장의 핵심동력 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아무리 기계설비 등을 수입해와도 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 '아이디어 이용하기' 전략의 한계 

- 개발도상국 간의 저임금 경쟁 및 선진국의 수입제한


그런데 모리셔스와 같은 (선진국의) '아이디어 이용하기 전략'은 한계가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굳이 모리셔스와 같은 후발국에 투자를 하는 이유는 '낮은 노동비용'을 이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여러가지로 부족한 동남아시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과 같은 이유 입니다.


이때 노동비용이 낮은 국가가 모리셔스 뿐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대다수 후발국가들은 선진국에 비해 노동비용이 낮습니다. 이는 모리셔스 만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 이점이 아닙니다. 따라서, 모리셔스의 성공을 본 다른 후발국가들도 똑같은 전략을 택하면서, 모리셔스의 이점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후발국가로 생산을 이전한다는 것은 선진국 내 저숙련 근로자들의 고용이 줄어듦을 의미합니다. 이는 선진국 내에서 정치적 갈등을 낳았고, 일부 선진국은 후발국가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세계화가 진행되고 아이디어 교류가 활발해지자, 아이디어를 이용하는 능력을 갖춘 인적자본의 몸값을 올라갔습니다. 반면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의 이득이 일부 사람들에게 편향적으로 배분되었습니다.


특히나 모리셔스는 크기도 작고 인구도 적은 국가이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 아이디어를 창출해내지 못하고 그저 아이디어를 이용하는 것에 머물렀습니다.



▶ 동아시아 '대만'

- 외국기업과의 기술교류를 통해, 스스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능력을 갖춰나감


  • 출처 : 블룸버그
  • 대만 전자기업 훙하이(일명 폭스콘)


대만은 인구규모 등에서 모리셔스 보다 나은 위치에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생산해낸 것은 아닙니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외국기업을 받아들이는 비슷한 전략을 택했지만, 점점 성장을 이어가면서 연구분야 투자를 늘리고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대만은 섬유산업 → 합성섬유산업 → 전자산업 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 시켜왔습니다. 이때 각 단계별로 외국기업과의 합작법인 설립 등의 도움을 받았죠. 그리고 전자산업을 일으킬때는, 외국기업이 조립을 하되 국내기업들로부터 부품을 조달하도록 하여 노하우를 길러나갔습니다. 


결국에는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 (보충) 경제통합(integration)의 이점

- 물적 상품 교류(flow of goods)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교류(flow of ideas)도 가능


모리셔스와 대만, 두 가지 사례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다국적기업 입니다.


아이디어와 기업의 R&D 투자를 강조하는 신성장이론[각주:7] 그리고 시장개방 이후 높은 생산성이 가진 기업이 생존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3세대 무역이론[각주:8] 등의 등장으로 이제 경제학계에서 '다국적기업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습니다.


오늘날 다국적기업은 단순히 자본재나 소비재를 외국에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 교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P.로머는 1991년 논문 <경제통합과 내생적성장>(Economic Integration and Endogenous Growth)을 통해, "국가간 아이디어 교류가 R&D 투자를 증가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이번에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간략히 알아봅시다.



P.로머의 다양성기반 신성장모형에서 경제성장률을 결정짓는 건 아이디어 증가율이며, 아이디어 증가율을 결정짓는 건 '연구부문의 인적자본 종사자 수'(the amount of human capital devoted to research sector)와 기존에 축적된 지식(stock of existing knowledge) 입니다. 


한 국가의 인적자본은 제조업에 종사하여 최종 소비재를 생산해낼 수도 있고, 연구부문에 종사하여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이때 두 부문간 배치(allocation)를 좌우하는 건 어느 곳이 더 많은 돈을 주느냐 입니다. 



▶ 상품간 교류만 발생하는 경우


국가간에 아이디어 교류 없이 상품간 교류(flow of goods)만 발생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제조업 기업 입장에서는 외국과의 교역 확대로 시장이 넓어진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외국의 연구부문이 생산해 낸 내구재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판매량과 생산량은 모두 증가합니다. 그 결과, 제조업 인적자본 임금도 올라가죠.


그런데 연구부문 입장에서도 외국과의 교역은 내구재 판매시장 확대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연구원들이 개발한 새로운 내구재를 외국 기업에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분야 임금도 올라갑니다.


결국 아이디어 교류 없이 상품간 교류만 발생한다면, 국가 내 인적자본 배치는 달라지지 않게 되고, 아이디어 증가율도 이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합니다.



▶ 아이디어 교류도 발생하는 경우


이제 상품간 교류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교류(flow of ideas)도 발생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달라지는 건 '외국에 축적된 지식'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연구부문 종사자들은 국내에 축적된 지식 뿐만 아니라 외국에 축적된 지식도 사용하여 내구재 특허권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 첨부된 수식에서 볼 수 있는 기존지식(A)이 2배(2A)가 되는 효과를 불러옵니다. 결국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아이디어 증가율을 2배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연구부문의 생산성 개선은 연구원 임금증가를 초래하고, 국내 인적자본 중 더 많은 수가 연구부문에 배치되게 됩니다. 


즉, R&D를 강조하는 성장모형에서 아이디어 교류를 통한 경제통합은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규모의 효과(scale effect)를 낳습니다.




※ '아이디어'를 통한 경제성장이 알려주는 함의



● 거시경제 내에서 개방정책과 다국적기업의 중요성


신성장이론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개방정책''다국적기업' 입니다. 


P.로머의 모형[각주:9]은 '국제무역을 통한 아이디어 교류'를 강조하며, 아기온 · 호위트의 모형[각주:10]은 '개방정책을 통한 기업간 경쟁 증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번글을 통해서는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이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아이디어 창출로도 이어진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장이론' - '무역이론' - '기업의 역할'은 서로 연결된 경제학 주제 입니다. 


앞으로 본 블로그를 통해, 거대이론 뿐 아니라 '한국내 기업들의 세계시장 진출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 등의 구체적인 주제를 자주 다룰 예정입니다.



●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


솔로우 모형[각주:11]은 "정부의 저축률 증대 정책 등은 수준효과(level effect)만 가져올 뿐, 성장효과(growth effect)는 가져오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며, 정부정책의 효과를 일축했습니다. 


확장된 솔로우 모형[각주:12]을 만든 그레고리 맨큐 또한 "경제성장 동력를 위해 정책결정권자들이 해야할 일은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do no harm) 이다" 라고 말하며, 정부개입 효과에 강한 의구심을 내비쳤죠.


그러나 신성장이론 시대를 연 P.로머는 지속적으로 "정부의 개입이 성장으로 이어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R&D 투자 보조금 · 지적재산권 제도 확립 등은 아이디어 창출로 이어집니다. 



● 유치산업보호론의 효과는?


그리고 이번글에서 봤다시피,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하려는 국가들의 정부개입도 효과를 낳습니다. 모리셔스 정부는 수출가공지역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였으며, 각종 혜택을 통해 외국기업을 유인하였습니다. 대만은 외국기업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국내기업을 보호하는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Protectionism) 전략을 펼치며 경제성장에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좀 더 논의를 국제무역론쪽으로 옮겨봅시다. 


유치산업보호론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친숙할 겁니다. 과거 박정희정권은 국내자원을 일부 기업들에게 몰아주었고[각주:13], 헤택을 본 기업들이 수출에 집중하도록 통제[각주:14]하였습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장하준 씨의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책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유치산업보호론의 정당성이 한국 내에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경제학계내 논의는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이 전략을 택한 국가가 모두 성장에 성공했을까요? 그리고 언제까지 정부가 '승자를 골라내는'(pick a winner) 전략을 계속 수행해야 할까요? 이는 좀 더 복잡한 논의를 필요로 합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무역과 경제성장], 특히 유치산업보호론과 비교우위에 대한 글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2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2017.07.19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4.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2017.07.24 http://joohyeon.com/259 [본문으로]
  5. 사실 '신성장이론' 또한 내생적성장 모형의 한 종류 입니다. 기술진보가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1980년대 나온 모형과 1990년대에 나온 모형을 구분하기 위하여, 전자는 내생적성장 모형, 후자는 신성장이론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6.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 2015.09.21 http://joohyeon.com/236 [본문으로]
  7.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2017.07.19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⑥] 3세대 국제무역이론 -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는 국제무역. 2015.07.08 http://joohyeon.com/221 [본문으로]
  9.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2017.07.19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0.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2017.07.20 http://joohyeon.com/259 [본문으로]
  1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12. [경제성장이론 ⑥] 수렴논쟁 Ⅲ - 맨큐 · D.로머 · 웨일,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6 [본문으로]
  13.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14. 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 2013.08.23 http://joohyeon.com/158 [본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