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에 해당되는 글 11건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2 2019.12.30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5 2019.12.15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2 2019.08.24
  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3 2019.01.02
  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12 2018.09.30
  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4 2018.08.27
  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3 2018.08.23
  8. [경제성장이론 ⑪]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 5 2017.07.25
  9.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22 2015.05.20
  10.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19 2015.05.19
  11.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불균등. 그리고 무역의 영향(?) 5 2014.08.27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⑧] 글로벌 불균등 Ⅱ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Posted at 2019. 12. 30. 15:13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Within Inequality ↑)

-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와 국가내 불균등의 확대


①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 -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의 경제발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자유주의 무역시스템 WTO 출범[각주:1] 정보통신기술의 확산(ICT)[각주:2]이 만들어낸 세계화[각주:3]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각주:4]GVC 참여[각주:5]에 이은 경제발전 덕분에 '국가간 불균등은 크게 감소'[각주:6](Between Inequality ↓) 하였습니다. 


( 지난글[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


  • 1990년-2030년(예상) 동안 절대적 빈곤 수치 변화

  • 남아시아(연한 빨강), 동아시아 및 태평양(진한 빨강),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파랑)
  • 출처 : Our World in Data - Global Extreme Poverty


1990년 절대적 빈곤자 수는 19억명이었고 이는 전세계 인구의 36%에 달했습니다. 대부분이 중국 ·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거주했는데, 이들 국가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2015년 절대적 빈곤자수는 7억 3천명 · 전세계 인구의 9.9%로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 1988년과 2011년의 글로벌 소득분포 모양의 변화 :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으로 인해 글로벌 중산층이 두터워짐

  • 자세한 내용은 지난글[각주:7] 참고


글로벌 소득분포는 쌍봉 모양에서 중간이 두터워진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1988년에는 상위층과 하위층으로 양분된 쌍봉모양을 볼 수 있으며, 개발도상국 인구가 수십억명에 달했기 때문에 하위층이 더 두꺼운 모양입니다. 2011년에는 중국 · 인도 · 동남아시아 경제발전과 소득증가로 인해 글로벌 중산층이 두터워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 -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내 상위 10% 소득비중 증가


이처럼 자유무역과 정보통신기술은 '국가간 불균등'(Between Inequality)을 줄임으로써 '글로벌 차원의 불균등'(Global Inequality) 해소에 크게 기여했는데..... 


같은 시기 '국가내 불균등'(Within Inequality)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 1980년~2016년 사이, 미국-캐나다 · 유럽 · 러시아 · 중국 · 인도 내 상위 10% 소득 비중

  • 모든 국가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늘어났다

  • 출처 : World Inequality Report 2018


위의 그래프는 1980년~2016년 사이 미국-캐나다 · 유럽 · 러시아 · 중국 · 인도 내 상위 10% 소득 비중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가릴것 없이, 대부분 국가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늘어났습니다. 


  • 1963년~2005년, 미국 내 대졸/고졸 임금 격차 추이 (경력 0~6년차 및 20~29년차별 비교)

  • 출처 : Autor, Katz, Kearney (2008)


소득 상위 계층으로의 쏠림은 학력별 임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63년~2005년 미국의 대졸/고졸 임금 격차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 대졸 프리미엄(college premium)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그 추세는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1970~1980년대에 무슨 일이 발생했나? - 국제경쟁심화와 컴퓨터의 등장


국가내 불균등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1970~1980년대에 주목합니다. 국가간 불균등 감소의 시작이 1990년대[각주:8]라면 국가내 불균등은 1970년대부터 확대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던 걸까요?


① 미국의 무역적자 확대와 국제경쟁력 훼손


  • 왼쪽 : 1960~88년, 신발(Footwear) · 의류(Apparel) · 섬유(Textiles) 미국 내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오른쪽 : 1960~90년, 미국 차량등록대수 중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 변화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글[각주:9] 참고


첫번째는 '국제경쟁심화' 입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봐왔듯이, 1970~1980년대 속 미국인들은 '국가경쟁력 악화'를 크게 우려[각주:10]했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높아지는 실업률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확대 등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무역적자폭 확대를 '세계 상품시장에서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악화됨(deterioration of competitiveness)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인식했습니다.


미국인들의 신발 · 의류 · 섬유 품목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하였는데, 미국의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은 펜실베니아 · 남부 · 남캐롤라니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 지역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자동차 산업도 외국과의 경쟁증대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산업 입니다. 1975~80년 사이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2배 증가하였고, 자동차 산업이 몰려있던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실업률은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원인을 국제무역에서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제조업 위축은 또 다른 경제적 문제로 연결됩니다. 제조업은 저숙련 근로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제조업의 위축은 임금불균등 증대(rise of wage inequality)로 연결될 위험이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1970~8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은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제조업 고용 및 임금이 감소하고 그 결과 임금불균등이 확대되는 것 아닐까?"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② 업무에 도입되기 시작한 컴퓨터


  • 왼쪽 : 1984년 4월호 TIME지 표지를 장식한 빌 게이츠

  • 오른쪽 : 1984년 매킨토시를 출시한 스티브 잡스


두번째는 '컴퓨터 혁명' 입니다.


오늘날에 과거를 돌아보면 정보통신기술(ICT) 투자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시기는 1995년 입니다. 이 시기에 윈도우95가 출시됐고 개인용 PC가 각 가정에 대규모로 보급됐습니다. 그리고 전화모뎀을 이용한 PC통신으로 멀리 떨어진 개인간 의사소통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업무에 도입되어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입니다. 1984년 애플 매킨토시와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1.0이 출시되면서 기업들은 업무에 PC를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PC를 보유한 사업체는 1984년 10% 미만이었으나 1989년에는 35% 이상으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업무에 PC를 사용하는 근로자의 비중은 1984년 24.6%에서 1989년 37.4%로 50% 이상 증가했습니다.


컴퓨터는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근로자의 생산성을 개선시켰습니다. PC를 이용한 주요 업무는 문서 작성 · 엑셀 계산 · 이메일 · 설계 · 판매 정리 등이었고, 오랜 시간이 걸리던 단순반복 업무는 빠른 시간에 끝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컴퓨터가 가져다준 생산성 개선의 혜택이 '대학을 졸업한 사무직 화이트칼라'(college-white collar)에 집중되었다는 점입니다. 1989년 기준 대졸 이상 근로자의 58.2%가 컴퓨터를 업무에 사용했으나, 고졸은 29.3%, 고졸 미만은 7.8%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직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48.4%가 컴퓨터를 이용했으나, 생산직 블루칼라 근로자는 11.6%에 불과했습니다.


그 결과,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컴퓨터를 이용할 능력을 갖춘 대학 졸업 근로자와 갖추지 못한 고등학교 졸업 근로자 간 임금 격차가 확대되기 시작(college premium)합니다. 고졸 대비 대졸의 임금 비율은 1979년 1.34에서 1991년 1.56으로 증가합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숙련된 기술을 갖춘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기술변화가 미국의 임금구조를 변화시켰다"고 진단했습니다.


③ 국제무역 때문인가, 기술변화 때문인가 (Trade vs. Technology)


정치인과 대중들이 문제로 삼았던 건 국제무역,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불공정 무역'(Unfair Trade with Japan) 이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킬 수 있는 무역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각주:11]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덤핑(dumping)과 시장접근(market access) 등 일본의 불공적 무역을 정치적으로 이슈화하였고 '공정무역'(fair trade)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각주:12]를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일본을 타겟으로 한 무역정책이 보호무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 노동시장 내 불균등 확대의 원인은 국제무역이 아니라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당시의 국제무역이론으로는 불균등 확대를 설명할 수 없으며, 실제 데이터도 기존 무역모형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경제적 불균등 확대의 주요 원인이 기술변화에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런 생각은 200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왜 경제학자들은 국가내 불균등 심화의 원인을 '기술변화'에서 찾았을까요?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 이러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 연유가 무엇일까요? 이번글에서 이를 알아봅시다.




※ (이론적)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의 예측과 실패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무역은 임금구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이를 간략하게 복습해봅시다.


▶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의 예측 (Predictions of Hecksher-Ohlin Model)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Hecksher-Ohlin Model)[각주:13]은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국제무역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① 숙련풍부국은 값싼 숙련집약 상품을 수출, 비숙련풍부국은 값싼 비숙련집약 상품을 수출


국제무역이론을 설명하면서 누차 말했다시피, 국제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각주:14]은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different relative price) 입니다. 


수출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할 때보다 외국에 판매할 때 더 높은 상대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higher relative price) 이고, 수입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구입할 때보다 외국에서 구입할 때 더 낮은 상대가격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lower relative price) 입니다.


여기서 헥셔-올린 국제무역이론은 '국가간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게 된 이유는 부존자원에 따른 상대적 생산량의 차이(resource endowment)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어떤 국가는 숙련노동에 비해 비숙련노동이 풍부하고, 또 다른 국가는 비숙련노동에 비해 숙련노동이 풍부합니다. 숙련노동 풍부국은 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될테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비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됩니다. 따라서, 숙련노동 풍부국은 숙련노동 집약상품을 싸게 생산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비숙련노동 집약상품을 싸게 생산합니다. 


따라서, '숙련노동 풍부국은 값싸게 만든 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더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값싸게 만든 비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더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숙련노동 풍부국은 외국의 값싼 비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수입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외국의 값싼 숙련노동 집약적 상품을 수입합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 = 숙련노동 풍부, 개발도상국 = 비숙련노동 풍부'이기 때문에, '선진국 = 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출 & 비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입, 개발도상국 = 비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출 & 숙련노동 집약상품 수입' 입니다.


② 국제무역으로 상품가격이 달라지며 각자 비교우위를 가진 부문이 이익을 봄


국제무역은 개별 국가가 비교우위를 지닌 상품의 가격을 인상시키며 비교우위 부문이 이익을 보게 만들어 줍니다. 


선진국에서 혜택을 보는 부문은 비교우위인 '숙련집약 산업', 불이익을 보는 부문은 '비숙련집약 산업' 입니다. 선진국의 숙련집약 상품은 국제무역의 결과 더 비싼 가격을 받고 팔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동안 무역장벽 보호 아래 비싼 값을 받았던 비숙련집약 상품은 이제 개발도상국의 값싼 가격에 밀려나고 맙니다.


개발도상국에서 혜택을 보는 부문은 비교우위인 '비숙련집약 산업', 불이익을 보는 부문은 '숙련집약 산업' 입니다. 개발도상국의 비숙련집약 상품이 국제무역의 결과로 자급자족 상태에 비해 더 비싼 가격을 받고 선진국에 팔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개발도상국의 숙련집약 상품시장개방으로 선진국의 숙련집약 상품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게 되었으니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③ 선진국은 불균등 증가 & 개발도상국은 불균등 감소


헥셔올린 모형은 '비교우위 산업 이익 & 비교열위 산업 불이익'에서 더 나아가서,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임금변화도 예측합니다.


스톨퍼-새뮤얼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각주:15]는 '투입요소의 가격은 상품가격 움직임에 맞추어 변화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숙련노동 풍부국 → 숙련노동집약 상품가격 ↑ → 숙련근로자 실질임금 ↑', '비숙련노동 풍부국 → 비숙련노동상품가격 ↑ → 비숙련노동자 실질소득 ↑'라고 예측합니다.


보통 자급자족 상태에서 개별 국가의 '숙련노동 근로자 실질임금 > 비숙련노동 근로자 실질임금' 이기 때문에, 국제무역의 결과 '선진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확대 ↑', '개발도상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감소 ↓' 나타납니다.


따라서, 헥셔-올린 모형은 1970-80년대 미국 내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 확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 헥셔-올린 국제무역모형의 실패 (Failures of Hecksher-Ohlin Model)


경제학자들은 "헥셔올린 무역모형이 예측한 결과대로 미국 내 임금불균등은 확대되었으나, 작용경로는 무역모형이 예측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여겼습니다. 


① 미국 내 숙련집약 상품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다


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매뮤얼슨 정리는 '달라진 상품 상대가격이 생산요소의 실질가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무역개방과 소득분배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이론'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련근로자의 상품가격이 상승하지 않은채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만 증가했다면, 이는 무역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 입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에서 설명하였듯이,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와 매튜 J. 슬로터는 1980년대 미국 내 숙련근로집약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기는 커녕 하락했음을 지적합니다. 


  • 왼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입가격 변화율(Y축)

  • 오른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출가격 변화율(Y축)

  • 출처 : Lawrence and Slaughter(1993)


위의 그래프는 1980년대 숙련근로집약 정도에 따른 수출입 가격 변화를 보여줍니다. 숙련근로집약도가 높아지는 상품일수록 수입가격은 다소 하락하고 수출가격은 크게 하락하는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로런스와 슬로터는 "수출입 가격 데이터는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무역이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회귀분석을 할 필요조차 없다."[각주:16] 라고 말합니다.


② 동일한 산업 내에서도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이 확대되었다


또한, 비교우위에 기반한 핵셔올린 무역모형의 예측대로라면 미국 내에서 '숙련집약 산업 팽창 → 숙련근로자 이익. 비숙련집약 산업 위축 → 비숙련근로자 불이익'의 형태로 '산업간 숙련-비숙련 근로자 임금 격차 확대'(between industry)가 나타나야 합니다.


하지만 1970-80년대 미국에서는 동일한 산업 내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의 임금 불균등이 확대되었습니다(within industry).


  • 1963년~1987년, 동일한 산업-성별-교육 집단 내 임금 불균둥 추이

  • Katz and Murphy (1992)


위의 그래프는 1963년~1987년, 동일한 산업-성별-교육 집단 내 임금 불균등 추이를 보여줍니다. 1970년대부터 동일집단 내 임금 불균등이 심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교우위 및 비교열위 산업간 효과'(between effect)에만 주목하는 기존의 무역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③ 비숙련노동 풍부국인 개발도상국에서도 임금 불균등이 확대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터-새뮤얼슨 정리가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예측과는 달리 개발도상국 내에서도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이 확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역 모형은 '선진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 확대 ↑', '개발도상국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감소 ↓'를 예측하였으나, 실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 불균등 확대 ↑' 였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국제무역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을 심화시켰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습니다. 


국제무역이 원인이 아니라면 남아있는 요인은 하나 뿐이었습니다. 바로,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 입니다.




컴퓨터의 등장 → 숙련근로자에 우호적인 상대수요 변화


국제무역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 '상품가격 변화 → 생산요소 가격의 변화'에 주목했다면, 노동경제학자들은 '간단한 공급-수요 체계'(simple supply and demand framework)로 현상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노동경제학자들에게 대학 졸업자로 대표되는 숙련 근로자의 임금이 고졸 비숙련 근로자에 비해 오르게 된 연유는 간단합니다. '기술변화로 인해 숙련 근로자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상대수요가 증가'(SBTC,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했기 때문입니다. 


▶ Katz and Murphy(1992), "대졸자의 상대공급 변동과 숙련근로자 우호적인 상대수요의 결합"


노동경제학자 로런스 F. 카츠(Lawrence F. Katz)와 케빈 M. 머피(Kevin M. Murphy)는 1992년 논문 <상대임금의 변화, 1963-1987 : 공급과 수요 요인>(<Changes in Relative Wages, 1963-1987: Supply and Demand Factors>)를 통해, 1963년~1987년 미국 임금구조의 변화를 공급-수요 체계로 설명했습니다.


  • 1963년~2008년 대졸/고졸 상대임금 비율 추이

  • 출처 : Acemoglu, Autor (2011)[각주:17]


위의 이미지는 1963년~2008년 미국 대졸/고졸 상대임금 비율 추이를 보여줍니다. (사족 : 카츠와 머피의 1992년 논문 이미지 품질이 좋지 않아서... 다른 논문에 실린 이미지로 대체) 


이를 통해 미국의 대졸 프리미엄(college premium)의 추세 2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1970년대 대졸 프리미엄의 감소. 둘째, 1980년대 이후 대졸 프리미엄 급격히 증가 입니다. 


왜 1980년대부터 추세의 반전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추세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걸까요?


  • 1963년~2008년, 성별 대졸/고졸 상대공급 증가율 추이

  • 출처 : Acemoglu, Autor (2011)


로런스 F. 카츠와 케빈 M. 머피는 고졸 대비 대졸자의 상대공급 변화(College/High-school relative supply)에 우선 주목합니다. 1976년까지는 대졸자의 상대공급이 가파르게 증가했으나, 이후부터는 증가율이 둔화됩니다. 


이를 통해 카츠와 머피는 "대학생 졸업자 공급이 가장 크게 증가했던 1970년대에는 대졸 프리미엄이 감소하였으며, 가장 적게 증가한 1980년대에는 대졸 프리미엄이 증가하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졸 상대공급의 속도 변화만으로는 대졸 프리미엄 변동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980년대 이후 대졸 상대공급 증가율은 둔화되었으나 어찌됐든 꾸준히 대학 졸업자를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전체 근로시간 중 대졸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3년 13%에서 1987년 26.3%로 증가하였습니다. 


이처럼 대학 졸업생은 꾸준히 사회에 진입했음에도 대졸 프리미엄은 나날이 증가하였습니다.  따라서, 카츠와 머피는 "대학 졸업자의 상대공급이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에, 대졸 프리미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대수요 변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 Krueger(1993), "컴퓨터가 임금구조를 변화시켰다"


또 다른 노동경제학자 앨런 B. 크루거(Alan B. Krueger) 1993년 논문 <어떻게 컴퓨터는 임금구조를 변화시켰나>(<How Computers have Changes the Wage Structure: Evidence from Microdata 1984-1989>)를 통해, 상대수요 변화의 원인을 '컴퓨터'에서 찾았습니다.


  • 1984년과 1989년, 범주별 컴퓨터를 업무에 직접 사용하는 근로자의 비중

  • 출처 : Krueger(1993)


1984~1989년 사이 업무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근로자의 비중은 24.6%에서 37.4%로 50% 증가 했습니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은 근로자일수록 컴퓨터를 업무에 더 많이 적용하며(1989년 기준 고졸 29.3%, 대졸 58.2%), 사무직 화이트칼라 근로자가 생산직 블루칼라보다 컴퓨터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1989년 기준 사무직 화이트칼라 48.4%, 생산직 블루칼라 11.6%).


이어서 앨런 B. 크루거는 '컴퓨터를 업무에 사용하는 근로자가 그렇지 않은 근로자 보다 더 높은 소득을 얻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고숙련 → 컴퓨터 사용 → 더 높은 임금' 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대학생 졸업자가 꾸준히 늘어났음을 감안하면, 컴퓨터 사용이 가져다주는 높은 임금의 프리미엄은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해야 합니다.


그러나 크루거의 회귀분석 결과에 따르면, 컴퓨터 사용이 가져다주는 임금 프리미엄은 1984년 1.32배에서 1989년 1.38배로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따라서, 크루거는 "시간이 지나도 컴퓨터 사용 프리미엄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더 빠르게 늘어났음을 의미한다"고 판단합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별다른 고급기술이 아니지만, 1980년대 당시에는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하는 기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 당시 컴퓨터는 이를 다룰 수 있는 숙련도를 갖춘 대졸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기술변화 였습니다. 




※ 반복업무를 대체한 기술변화 → 일자리 · 임금 양극화


1980년대 업무에 도입된 컴퓨터가 대졸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임금 불균등을 초래했다는 논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로도 그 영향이 지속되었을까 라는 것은 의문이 듭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별다른 고급기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앨런 B. 크루거도 1993년 논문의 말미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근로자 수요가 과거 10년처럼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 이를 고려하면, 컴퓨터 사용 프리미엄은 미래에 줄어들 것이다" 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렇다면 2000년대 들어서도 임금 불균등이 지속된 건 무엇 때문일까요? 


▶ Autor, Levy, Murnane (2003), "컴퓨터화는 반복업무의 노동투입을 줄였다"


동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가 일자리 및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석의 틀을 발전시켰습니다. 


1990년대 나온 연구들은 '숙련vs비숙련, 대졸vs고졸, 화이트칼라vs블루칼라, 비생산직vs생산직' 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임금 격차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졸이 다 같은 대졸이 아니고,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다 같은 사무직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결정적으로 컴퓨터는 단순히 숙련 근로자와 대졸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보완하고 비숙련 근로자와 고졸 블루칼라 일자리를 대체하는 식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숙련도를 요하는 업무를 대체하는 경우도 있으며, 숙련도가 필요치 않은 업무를 대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직 업무 중에서도 컴퓨터가 대체하는 것이 있고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생산 업무도 마찬가지로 컴퓨터와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게 있고 대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프랭크 레비(Frank Levy) · 리차드 머네인(Richard Murnane) 이른바 ALM은 2003년 논문 <최근 기술변화의 숙련도 - 실증적 탐구>(<The Skill Content of Recent Technological Change: an Empirical Exploration>)을 통해, '업무'(task) 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업무(task)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근로활동을 의미합니다. 근로자는 자신이 보유한 숙련기술(skill)을 다양한 업무(task)에 적용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습니다.  


  • 업무(task)의 종류를 반복적이냐 비반복적(Routine vs. Nonroutine)이냐, 분석적이냐 수동적이냐(Analytics vs. Manual)로 구분한 것

  • ALM (2003)


ALM은 업무(task)의 종류를 '반복적이냐 비반복적이냐'(routine vs. non-routine), '분석 및 인지능력을 요구하냐 직접 손으로 해야하냐'(analytic & cognitive vs. manual)로 크게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계산 · 뱅크텔러와 같은 고객응대 · 기록 기입 등을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인지적 능력(cognitive skill)이 필요하지만 단순 반복적인 특성(routine tasks)을 지니고 있으므로 컴퓨터가 쉽게 대체가능 합니다. 또한 제품 나르기 · 조립은 근로자가 손(manual skill)으로 작업을 해왔으나 이또한 반복적인 업무(routine tasks)이기 때문에 기계 자동화로 대체 가능 합니다.


반면, 통계 가설 설정 · 의료진단 · 법적 문서 기입 · 관리 등의 업무는 근로자의 분석적 능력(analytic skill)을 요구하면서 반복할 수 없기 때문에(non-routine tasks)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트럭운전 및 청소는 사람이 손으로 해야하는 업무(manual tasks)이며 이또한 비반복적인 일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단순 제품 나르기 · 조립과 트럭운전 · 청소는 모두 비숙련작업(unskilled works)이지만 전자는 반복적이기 때문에 대체가능하며 후자는 비반복적이기 때문에 대체불가능 합니다. 또한, 계산 · 기록기입과 의료진단 · 법적 문서 기입은 모두 인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숙련작업(skilled works)이지만 전자는 반복적이기 때문에 대체할 수 있으며 후자는 비반족이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즉, ALM은 '컴퓨터 자동화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지 여부는 업무가 반복적이냐 비반복적이냐에 달려있다'(routine vs. non-routine)고 바라봅니다. 단순히 '숙련vs비숙련, 대졸vs고졸, 화이트칼라vs블루칼라, 비생산직vs생산직'로 구분했던 과거의 구도로는 실제로 컴퓨터 자동화가 대체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어서 ALM은 "컴퓨터 자본은 제한적으로 정의된 인지적 및 수동적 활동 즉 명시적인 규칙에 기반을 둔 반복적인 업무를 대체한다[각주:18]. 반면, 컴퓨터 자본은 문제해결과 복잡한 의사소통을 요구하는 비반복적인 업무를 보완한다[각주:19]"고 말합니다. 


따라서, ALM은 "컴퓨터화는 반복적인 인지 업무와 수동 업무의 노동투입을 줄였고(routine cognitive & manual tasks ↓), 비반복적인 인지 업무의 노동투입을 증가시켰다(non-routine cognitive tasks ↑)"고 결론 내립니다.


▶ 일자리 · 임금 양극화 (Job · Wage Polarization)


ALM이 도입한 '업무기반 분석체계'(task-based framework)는 2000년대 들어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새로운 일자리 · 임금 구조 변화를 설명해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바로, 일자리 · 임금 양극화 (Job · Wage Polarization) 입니다. 


일자리 · 임금 양극화 (Job · Wage Polarization)란 '고숙련 · 저숙련 일자리(임금)가 증가하고 중숙련 일자리(임금)가 감소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 왼쪽 : 1980년~2005년 숙련수준 분위별 고용 변화율

  • 오른쪽 : 1980년~2005년 숙련수준 분위별 임금 변화율 

  • X축 : 직업의 숙련수준 분위 - 왼쪽일수록 저숙련 오른쪽일수록 고숙련

  • 고숙련 일자리만 증가하고 저숙련 일자리는 감소했던 1980년대와 달리, 오늘날 시대에는 고숙련 일자리와 저숙련 일자리가 모두 증가하고 중숙련 일자리가 감소하는 '양극화'가 발생


위의 그래프는 고숙련 일자리만 증가하고 저숙련 일자리는 감소했던 1980년대와 달리, 오늘날 시대에는 고숙련 일자리(임금)와 저숙련 일자리(임금)가 모두 증가하고 중숙련 일자리(임금)가 감소하는 '양극화'가 발생했음을 보여줍니다.


'숙련vs비숙련, 대졸vs고졸, 화이트칼라vs블루칼라, 비생산직vs생산직'의 분석구도는 고숙련 일자리가 증가하는 현상은 쉽게 설명해낼 수 있습니다. 기술변화가 고숙련 대졸 화이트칼라 근로자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 가설은 중숙련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저숙련 일자리는 증가하는 현상은 설명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일자리 양극화는 미스테리 입니다.


하지만 '업무기반 분석'은 일자리 양극화를 훌륭히 설명해냅니다. 2000년대 노동경제학자들은 업무기반 분석을 이용하여 노동시장 양극화를 설명하는 논문을 쏟아냈습니다. 


마르텡 구스(Maarten Goos) · 앨런 매닝(Alan Manning)의 2007년 논문 <형편없는 그리고 사랑스런 일자리: 영국 내 일자리 양극화 증대>(<Lousy and Lovely Jobs: The Rising Polarization of Work in Britain>),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로런스 카츠(Lawrence Katz) · 멜리사 키어니(Melissa Kearney)의 2006년 논문 <미국 노동시장의 양극화>(<The Polarization of the U.S. Labor Market>) 등이 대표적인 논문입니다.


이들은 업무를 3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비반복적 인지 업무(non-routine cognitive task), 둘째는 반복적 인지 및 수동 업무(routine cognitive & manual tasks), 셋째는 비반복적 수동 업무(non-routine manual task) 입니다.


여기애서 중요한 점은 '반복적인 업무가 임금분포상에서 균일하게 분포되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중숙련을 요하는 반복적인 업무는 임금분포의 중간에 집중(routine cognitive & manual tasks → middling jobs)되어 있고, 고숙련인 비반복적 인지 업무는 임금분포 상단(non-routine cognitive task → well-paid skilled jobs)저숙련인 비반복적 수동 업무는 임금분포 하단(non-routine manual task → low-paid least-skilled jobs)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현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추상적 능력과 인지 능력이 필요한 업무는 연봉이 높으며, 트럭 운전과 청소 등 사람이 직접 그때그때 대응해야 하는 업무는 연봉이 낮습니다. 그리고 단순 사무지원 화이트칼라 업종과 제조업 블루칼라 업종은 중간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컴퓨터 자동화가 반복적인 업무를 대체한 결과 임금분포의 중간에 위치한 중숙련 일자리는 감소(middle-skilled jobs ↓)하게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뛰어난 근로자는 단순반복 업무를 자동화 한 뒤 생산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고숙련 일자리는 이익(high-skilled jobs ↑)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반복적 수동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저숙련 일자리는 왜 증가한 것일까요? 학자들은 기술변화와 소비자선호가 함께 작용한 결과물로 바라봅니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비반복적 수동업무는 주로 '서비스업 직업'(service occupation) 입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제조상품 보다는 서비스를 향유하며 효용을 누리기 때문에 서비스업에 대한 수요는 과거에 비해 증가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컴퓨터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게 된 중임금 근로자들이 숙련 수준이 낮은 서비스업으로 대거 재배치(low-skilled jobs ↑) 됩니다. 그 결과, 저숙련 일자리는 갯수와 임금이 모두 증가합니다.


이러한 일자리 양극화 현상은 숙련수준별 고용변화가 아니라 구체적인 직업별 고용변화를 살펴봐도 확인되며, 미국 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관찰됩니다.


  • 1979년-2012년, 직업종류별 고용 변화율

  • 왼쪽 3개 : 비반복 수동업무를 맡는 저숙련 서비스 직업 (개인의료, 음식 및 청소, 보안)

  • 가운데 4개 : 반복 업무를 맡는 중숙련 직업 (관리, 생산, 사무, 판매)

  • 오른쪽 3개 : 비반복 인지업무를 맡는 고숙련 직업 (매니저, 사업서비스, 기술)


위의 그래프는 1979-2012년 동안 직업종류별 고용 변화율을 시기별로 나누어서 보여줍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관리 · 생산 · 사무 · 판매 직업이 반복 업무를 맡는 중숙련 직업인데, 오늘날에 가까울수록 일자리가 많이 없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1993년-2010년, EU 16개 국가의 임금수준별 고용비중 변화

  • 저임금 일자리(연한색), 중임금 일자리(검은색), 고임금 일자리(회색)


또한, 위의 그래프는 1993년-2010년, EU 16개 국가의 임금수준별 고용 변화를 보여줍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고임금 · 저임금 일자리의 고용비중은 3%~10% 정도 증가한 반면 중임금 일자리 비중은 10% 감소하는 '일자리 양극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상위층-중위층 간 불균등은 확대, 중위층-하위층 간 불균등은 정체


일자리 · 임금 양극화는 소득수준별 임금 불균등의 모습도 변화시켰습니다. 


  • 1963년~2005년 미국

  • 왼쪽 : 소득 90분위/50분위 임금 불균등 추이 (소득 상위 10%와 50%의 임금 불균등)

  • 오른쪽 : 소득 50분위/10분위 임금 불균등 추이 (소득 상위 50%와 하위 10%의 임금 불균등)


기술변화는 고임금 일자리에게 이익, 중임금 일자리에게 손해로 작용했기 때문에, 소득 상위 10%와 50% 간 임금 불균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었습니다(왼쪽 그래프). 이건 그닥 놀라운 모습이 아닙니다. 


놀라운 건 소득 상위 50%와 하위 10% 간 임금 불균등이 안정화된 것입니다. 위의 오른쪽 그래프를 보면, 소득 50분위/10분위 임금 불균등 추이가 더 심화되지 않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일자리 · 임금 양극화 현상을 알고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복업무를 대체하는 기술변화로 인해 중숙련 & 중임금 일자리가 위축된 대신 저숙련 & 저임금 일자리가 팽창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노동경제학자들이 발전시킨 '업무기반 분석체계'(task-based framework)와 '반복편향적 기술변화'(RBTC, Routine-Based Technological Change)는 2000년대 미국 및 선진국 노동시장의 특징인 '일자리 양극화'와 '중하위층 간 불균등 정체' 현상을 완벽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프쇼어링 때문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이 확대된다


2000년대 미국 노동시장 분석에 '국제무역 요인'이 끼어들 틈은 없었습니다. 국제무역을 전공하는 경제학자들이 "외국으로의 오프쇼어링이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는 거 같은데?" 라고 의구심을 품고 연구를 내놓았으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기술변화'에 쏠려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학자들은 꿋꿋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의 오프쇼어링이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offshoring)을 탐구했습니다.


대표적인 국제경제학자가 바로 로버트 F. 핀스트라(Robert F. Feenstra) 입니다. 핀스트라의 연구는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을 다룬 지난글[각주:20]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하면서 세계시장 통합을 이끌고있다"고 분석하며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에 관한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핀스트라는 한발 더 나아가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글로벌 생산공유가 양국 임금 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합니다. 


그는 1996년 논문 <세계화, 아웃소싱 그리고 임금 불균등>(<Globalization, Outsourcing, and Wage Inequality>), 1997년 논문 <외국인 직접투자와 상대임금: 멕시코의 사례>(<Foreign Direct Investment and Relative Wages: Evidence from Mexico's Maquiladoras>), 2003년 논문 <글로벌 생산 공유와 불균등 증가 - 무역과 임금 서베이>(<Global Production Sharing and Rising Inequality - a Survey of Trade and Wage>) 등 여러 논문을 통해 연구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 오프쇼어링은 동일한 산업 내에서 숙련-비숙련 노동수요를 변화시킨다 (Within Industry)


이번글의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국제무역이 임금 불균등을 초래한 원인이 아니라고 여겨진 이유 중 하나는 '동일한 산업 내에서 근로자 간 불균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교우위에 기반한 무역모형의 예측대로라면 '숙련집약 산업 팽창 → 숙련근로자 이익. 비숙련집약 산업 위축 → 비숙련근로자 불이익'의 형태로 '산업간 숙련-비숙련 근로자 임금 격차 확대'(between industry)가 나타나야 합니다. 


로버트 F. 핀스트라는 상품 교환 무역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공유하는 오프쇼어링을 고려하면 무역이 산업 내 불균등 심화에 영향을 미친다(offshoring → within industry inequality)고 주장합니다.


핀스트라는 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3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비숙련노동 집약적 부품 생산(production of an unskilled-labor intensive input), 둘째는 숙련노동 집약적 부품 생산(production of an skilled-labor intensive input), 셋째는 두 부품을 결합하여 최종재 상품으로 만드는 것(bundling together of these two goods into finished product).


선진국 기업은 개발도상국 대비 자국의 비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높다고 판단하면, 비숙련노동 집약적 부품 생산 활동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시킵니다. 이러한 결정은 선진국에서 비숙련 근로자의 상대수요를 감소시키고 임금에 하방압력을 가합니다. 


즉, 오프쇼어링 혹은 아웃소싱은 기술변화가 비숙련 근로자를 대체하듯이 동일한 산업 내에서 비숙련 근로자의 상대수요를 감소시킵니다.


▶ 오프쇼어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을 초래한다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선진국 임금 불균등 증가 & 개발도상국 임금 불균등 감소'로 예측했으나 '현실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이 증가'하면서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핀스트라는 '숙련활동' '비숙련활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한 생산활동은 선진국의 관점에서는 비숙련노동 집약적인 활동 입니다. 그러나 자본축적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는 자국으로 들어온 것이 숙련노동 집약적인 활동 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한국 제조업과 동남아 공장을 예시로 생각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동남아로 이전한 공장은 본래 한국의 비숙련 근로자가 주로 근무했던 곳이지만, 동남아에서는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계층이 자국기업 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일을 합니다.


따라서, 비숙련 활동을 외국으로 보내버린 선진국은 평균 숙련집약도가 상승하며, 선진국의 생산과정을 받아들인 개발도상국에서도 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합니다. 그 결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임금 불균등이 심화됩니다.


▶ 기술변화를 무역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있나?


로버트 F. 핀스트라를 포함한 일부 경제학자들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기술변화를 무역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있나?"


기업의 아웃소싱 그 자체는 국제무역의 영향 이지만, 글로벌 밸류체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 덕분[각주:21]입니다. 역으로 기술변화는 국제무역 때문에 촉진될 수 있습니다. 시장개방으로 인해 치열해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아웃소싱으로 보다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기술 업그레이드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의를 거치면서 경제학자들은 '기술변화 및 국제무역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 경제학자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꾸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 중국의 부상과 충격 (China's Rise & Shock)


  • 1999년 11월 미국-중국 양자무역협정 체결 - "중국 문을 열다"
  • 2010년 11월 '세계를 사들이는 중국'

  • 2010년 2월, 중국과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미국 오바마 대통령

미국인들은 2008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중국의 부상'(China's Rise)을 인식하게 됩니다. 

중국은 1999년 미국과의 양자 무역협정 체결 · 2001년 12월 WTO 가입[각주:22] 이후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경제발전은 글로벌 소득분포의 모양을 바꾸어 놓을 정도였[각주:23], 중국이 국제무역에 참여하자 전세계 수출입이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중국과의 교역이 주는 충격(China Shock)이 멕시코 · 중남미 등 다른 개발도상국과의 교역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중국발 쇼크가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동안 '반복업무를 대체하는 기술변화가 노동시장에 주는 충격'을 연구했던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대중국 수입증대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논문을 2013년에 발표하면서 '중국발 쇼크'(the China Trade Shock)를 이슈로 만듭니다.

이제 다음글에서 '중국발 쇼크'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⑨] China Shock Ⅰ - 1990년-2007년 중국발 무역 충격이 미국 지역노동시장 제조업 고용 · 임금에 악영향을 미쳤다


  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7.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s://joohyeon.com/277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13.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1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15.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16. Thus, the data suggest that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did not have much influence on American relative wages in the 1980s. In fact, because the relative price of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fell slightly,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actually nudged relative wages toward greater equality. No regression analysis is needed to reach this conclusion. Determining that the relative international prices of U.S.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actually fell during the 1980s is sufficient. [본문으로]
  17. Acemoglu,Autor.2011.Skills, Tasks and Technologies- Implications for Employment and Earnings [본문으로]
  18. that computer capital substitutes for workers in carrying out a limited and well-defined set of cognitive and manual activities, those that can be accomplished by following explicit rules (what we term “routine tasks”); [본문으로]
  19. computer capital complements workers in carrying out problem-solving and complex communication activities (“nonroutine” tasks). [본문으로]
  2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https://joohyeon.com/284 [본문으로]
  2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ttps://joohyeon.com/28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https://joohyeon.com/28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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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⑥] 달라진 세계경제 Ⅲ - GVC와 Factory Asia,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Posted at 2019. 12. 15. 15:20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애플사(Apple Inc.)는 오늘날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상징하는 기업 입니다.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애플이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놓을때마다 전세계 소비자들은 열광하며, 부품을 공급하는 전세계 IT 기업들은 실적향상과 주가상승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 정치인 · 경제학자 · 정책담당자들은 애플에게 아쉬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애플이 미국 내에서 창출하는 일자리가 얼마 안되기 때문입니다. 2011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라는 말을 건넸으나, 잡스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그 일자리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아래의 기사를 살펴봅시다.


● 2012년 1월 21일, 뉴욕타임스 기사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2011년 2월, 오바마 대통령이 실리콘밸리 저녁만찬에 참석했을 때, 참석자들은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말하려 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물음을 던졌다.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what would it take to make iPhones in the United States?)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애플은 자사 제품을 주로 미국에서 생산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2011년에 판매된 아이폰 7천만대, 아이패드 3천만대, 기타 제품 6천만대 제품이 해외에서 제조되었다. 


왜 이것들을 미국 내에서 만들 수 없나? 오바마 대통령의 물음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대답은 명료했다. "그 일자리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Those jobs aren’t coming back”)


오바마 대통령의 물음은 애플이 갖고 있는 확신을 건드린 것이다. (애플이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생산하는 이유는) 단지 해외 근로자가 더 값싸기 때문만이 아니다. 애플 경영진은 해외 근로자의 유순함, 근면성, 산업기술 뿐 아니라 해외 공장의 광대한 규모가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Made in U.S.A.는 더 이상 선택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


애플은 글로벌경영을 통해 가장 유명한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2011년 애플의 근로자당 수익은 골드만삭스, 엑손모빌, 구글보다도 많았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뿐 아니라 경제학자와 정책담당자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애플이 -그리고 많은 하이테크 기업들이- 다른 유명한 기업들만큼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만드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애플은 미국 내에서 4만 3천명 해외에서 2만명을 고용 중인데, 이는 1950년대 GM이 고용한 미국 근로자 40만명과 1980년대 GE가 고용한 미국 근로자 수십만명에 한참 모자라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애플과 계약관계에 있는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70만명의 사람들이 아이폰 및 아이패드를 조립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미국 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그들은 아시아, 유럽 등에 위치한 해외 기업과 공장에서 일을 한다. 


2011년까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을 맡았던 자레드 번스타인은 "오늘날 미국에서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애플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Apple’s an example of why it’s so hard to create middle-class jobs in the U.S. now.


- 뉴욕타임스. 2012.01.21.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 기사에 나온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의 발언 "오늘날 미국에서 중산층 일자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애플이 보여주고 있다"는 애플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플 일자리 문제는 단순한 더 많은 일자리 숫자가 아니라 '중산층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국 중산층 근로자 대부분은 주로 공장과 사무실에서 '반복적인 업무'(routine-task)를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된 IT 기술진보와 오프쇼어링은 반복업무를 없애거나 해외로 이동시켰습니다. 그 결과 중산층 근로자의 일자리는 대폭 줄어들었고 임금상승률은 둔화되었습니다. 


한국 · 대만에서 전자부품을 조달한 뒤 중국에서 조립되는 아이폰은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로 인한 미국 중산층 일자리 위축' 현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위의 뉴욕타임스 기사 부제목이 '애플, 미국 그리고 위축된 중산층'(Apple, America, and a Squeezed Middle Class)인 이유입니다.


  • 2011년 2월, 테크기업 리더들과 만남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

  • 왼쪽 스티브 잡스, 오른쪽 마크 저커버그


미국 중산층 일자리 및 제조업 부활을 위해서, 과거 오바마 대통령과 현재 트럼프 대통령 모두 애플의 일자리를 미국으로 돌아오게끔 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2011년 잡스에게 직접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라고 물었던 오바마는 2013년 연두교서[각주:1]에서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미국을 새로운 일자리와 제조업을 위한 곳으로 만드는 겁니다. (...) 올해 애플은 맥을 다시 미국에서 생산할 겁니다."[각주:2] 라고 발언했습니다.


트럼프는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출마선언과 취임연설에서 부터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미국인들을 고용한다.(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각주:3]를 외쳐온 트럼프. 


트럼프행정부는 미국기업들의 자국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기 위하여, 해외유보 소득의 환류에 법인세율 보다 낮은 세율을 부과하고 최소 5년간 자본 투자에 대해서 전액 비용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긴 세제개편안을 내놓았고,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은 이를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지속적으로 "애플이 대중국 수입관세 부과를 피하려면 미국에서 상품을 만들어라!"[각주:4]는 의견을 표출해왔습니다. 이에 대한 회답으로 애플은 맥 프로 차세대 버전을 텍사스 오스틴에서 만든다고 발표[각주:5] 했습니다.



하지만 애플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여전히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 Assembled in China'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맥 프로는 2013년부터 이미 미국 내에서 만들어져왔기 때문에, 애플의 일자리가 미국으로 귀환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왜 애플은 각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해외생산을 고수하는 걸까요? 앞서 인용한 기사에 잠깐 나오듯이[각주:7], 해외의 값싼 인건비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사를 좀 더 읽으면서 미국이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는지 알아봅시다.


● 2012년 1월 21일, 뉴욕타임스 기사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2007년 아이폰이 출시가 한달이 채 남지 않았을 때, 스티브 잡스가 부하들을 사무실로 호출했다. 잡스는 지난 몇주동안 아이폰 시험버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화가 난 잡스는 플라스틱 스크린에 찍힌 수많은 스크래치를 문제삼았다. 그는 청바지에서 차량 열쇠를 꺼냈다. 사람들은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열쇠도 주머니에 있다. 잡스는 "이렇게 손상된 제품은 팔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유일한 해결책은 손상되지 않는 유리를 이용하는 거였다. "나는 유리 스크린을 원합니다. 그리고 6주 내에 완벽해지기를 원합니다"


미팅이 끝난 후 한 경영진은 중국 선전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만약 잡스가 완벽한 것을 원한다면, 중국 선전 말고는 가야할 곳이 없었다.


지난 2년간 애플은 동일한 물음을 던지며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어떻게 휴대폰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고품질로 상품을 만들어내면서 수백만대를 빠르게 제조하고 수익성도 유지할 수 있을까? 


해답은 거의 매번 미국 바깥에 있었다. 


모든 아이폰은 수백개의 부품을 담고 있는데, 이 중 90%가 해외에서 제조되었다. 차세대 반도체는 독일과 대만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과 일본에서, 디스플레이 패널과 회로는 한국과 대만에서, 칩셋은 유럽에서, 원자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조달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중국에서 조립되었다.[각주:8] (...)


중숙련 근로자를 값싸게 고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는 매혹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애플을 아시아로 끌어들인 건 아니다. 기술기업에게 부품 · 공급망관리 등에 비해 노동비용은 매우 적은 부분만을 차지한다. (...) 아시아 공장들은 규모를 빠르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 그 결과, 미국은 아시아 공장들과 경쟁할 수 없다. 


아시아 공장의 이러한 이점들은 2007년 잡스가 유리 스크린을 요구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과거 수년간,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가공의 어려움 때문에 유리 스크린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애플은 강화유리 제조를 위해 미국 코닝사와 접촉해왔다. 그러나 이를 테스트 하기 위해서는 조립공장과 중숙련의 엔지니어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준비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때 중국 공장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애플 직원이 방문했을 때, 중국 공장 오너는 이미 새로운 건물을 건설중 이었다. 그들은 "애플과 계약을 체결할 것을 대비해서 짓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수많은 산업의 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있었고, 이 회사의 유리가공 공장도 수혜를 받고 있었다. 중국 공장은 결국 기회를 얻었다. 


전 애플 고위층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전체 공급망은 중국에 있습니다. 수천개의 가죽 패킹이 필요하다고요? 바로 옆에 있는 공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수백만개의 나사가 필요하다고요?  그 공장은 한 블럭 옆에 있습니다. 모양이 조금 다른 나사가 필요하다고요? 3시간 내에 얻을 수 있습니다."[각주:9]


- 뉴욕타임스. 2012.01.21.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애플이 아이폰 생산을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공급망'(Supply Chain) 때문입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주요 전자부품은 중국에 인접한 한국 · 대만 · 일본 등에서 조달할 수 있으며, 중국 내에서는 수많은 부품을 빠른 시간에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 노동자의 값싼 임금 · 24시간 근로체계 등 기업에 유리한 노동기준과 미국 내 숙련 제조업 근로자의 부족 등도 애플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테지만, 핵심은 공급망에 있습니다. 


  • 2000년과 2017년, ICT 산업의 전통적인 교역 · 단순 GVC 교역 · 복잡 GVC 교역 네트워크

  • 17년 사이 중국 ·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비중이 커졌다

  • 출처 : WTO. 2019. Global Value Chain Development Report Ch.01 Recent patterns of global production and GVC participation


위의 이미지는 2007년과 2017년 사이 정보통신산업(ICT) 내 글로벌 밸류체인 네트워크(Global Value Chain) 혹은 글로벌 공급망 교역(Global Supply Chain)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국 내 소비를 목적으로 외국산 최종재 상품을 수입하는 경우를 전통적인 교역(Traditional Trade)[각주:10]이라 합니다.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최종재 상품 다르게 말해 완성품은 다른나라 국민들이 소비를 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전달됩니다. 


글로벌 생산공유를 목적으로 중간재 부품을 교환하는 경우를 글로벌 밸류체인 교역(GVC Trade)[각주:11]이라 하는데, 생산과정에서 부품이 국경을 한번 넘느냐 두번 넘느냐에 따라 단순 GVC 교역(Simple GVC)과 복잡 GVC 교역(Complex GVC)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산 중간재 수입품을 이용하여 만든 최종재를 자국 내에서 소비한다면 단순 GVC 교역이며, 외국산 중간재 수입품을 이용하여 만든 최종재를 제3국으로 수출한다면 복잡 GVC 교역입니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듯이, 지난 10여년 사이 글로벌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습니다. 특히 중국은 한국 · 일본 · 대만 등으로부터 중간재 부품을 조달한 후 아이폰과 같은 최종재를 만들고 이를 미국에 수출하는 GVC 구조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중 세번째 그림에서 중국이 제3국 수출을 목적으로 한국(KOR) · 일본(JPN) · 대만(TAP)으로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를 조달하는 복잡 GVC 교역 모습, 그리고 첫번째 그림에서 완성된 최종재인 아이폰을 미국(USA)으로 수출하는 전통적인 교역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국 간 다르게 말해 미국과 서유럽끼리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지 않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그 중에서도 선진국과 동아시아 간 글로벌 밸류체인이 발전한 것일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에서 살펴봤듯이,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떠한 힘이 작용하여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역할 분담을 이끌어냈고, 오늘날 세계경제 및 교역 구조를 이전과는 다르게 만들어낸 것일까요?




※ 상품운송비용 및 의사소통비용의 감소로 인해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


우선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에서 다루었던 '과거와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복습하겠습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포인트가 지난글의 그것과 다소 다르긴 하지만, 내용을 숙지하고 계신 분은 다음 파트로 넘어가셔도 됩니다.


▶ '상품 운송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선진국으로의 생산 집중



서로 멀리 떨어진 국가간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를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농식물을 재배 · 수확하면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자급자족 생활을 했습니다. 5일장 등 시장에서 다른 마을 사람들과 먹을거리를 교환하고 보따리상이 먼 지역의 농식물을 가져와 팔기도 하였으나, 상거래의 지역적 범위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즉, 국가간 교역이 활성화 되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에는 '생산과 소비가 한 공간'(bundling)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0세기 중반 컨테이너선 발명은 국가간 교역규모를 대폭 늘렸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이 만든 자동차 · 전자제품 등 제조업 상품과 중동이 채굴한 석유 및 중남미가 생산한 농산품 · 원자재 등 1차상품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소비되었습니다. 


이처럼 상품 운송비용이 하락함(goods trade costs↓)에 따라 국가간 교역은 활성화 되었고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가 이루어졌습니다(1st unbundling)


이제 개별 국가들은 자국이 생산한 상품을 전부 다 소비하지 않으며, 자국이 소비하는 상품 모두를 스스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제조업 상품은 북반부(North)에 위치한 미국 · 서유럽에서 집중 생산되며, 원자재는 남반구(South)에 위치한 중동 · 중남미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그리고 무역을 통해 서로 간 상품을 교환한 뒤 소비하는 'made-here-sold-there' 경제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족 : 여러번 강조[각주:12]했듯이, 국제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기 때문이며 이러한 서로 다른 가격이 국내에서 초과공급(=수출) 및 초과수요(=수입)을 만들어냅니다. 한 국가 내에서 초과공급 및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이를 무역을 통해 해결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협력


  • 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생산하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을 만들어 냄
  • 출처 : 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한국어 번역본 『그레이트 컨버전스』)

1990년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함에 따라 세계경제 구조와 교역방식이 또 다시 획기적으로 변했습니다. 


과거 철도 · 컨테이너선이 물적상품의 운송비용을 낮췄다(goods trade costs ↓), 정보통신기술은 서로 다른 국가에 위치한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비용을 절감시켰습니다(communication costs ↓). 이제 선진국 본사에 있는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서로 간 지식과 아이디어(knowledge & ideas)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한 선진국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역할을 배분합니다. 과거 선진국에 위치했던 제조공장은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했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창출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도 여러 국가가 참여합니다. 제품에 들어가는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여러 국가가 만든 뒤 조립을 담당하는 국가로 수출하고, 마지막 제조공정을 맡은 국가가 이를 이용해 완성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제조 과정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원활한 중간재 교역을 위해 지리적으로 밀집해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통신기술 발전은 의사소통비용을 낮춤으로써 여러 국가가 생산에 참여하는 '글로벌 생산공유'(global production sharing) ·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등과 각자 역할을 맡는 '생산과정의 분리'(2nd unbundling)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선진국(North)에 위치했던 제조업은 동아시아 등 후발산업국가(South, Factory Asia)로 이동했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간재 부품 교역을 통해 함께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글로벌 경제구조는 이렇게 여러 국가가 함께 만든 상품을 전세계가 소비하는 'made-everywhere-sold-there'로 진화했습니다.




※ 상품 운송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

※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이 만들어낸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


이와 같이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보고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왜 상품 운송비용 하락은 선진국으로 제조업 생산을 집중시켰고, 이와 정반대로 왜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은 개발도상국 특히 동아시아로 제조업 생산을 이동시켰을까?" 입니다.  


이는 앞서 던졌던 물음  "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국 다르게 말해 미국과 서유럽끼리 글로벌 밸류체인을 형성하지 않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그 중에서도 선진국과 동아시아 간 글로벌 밸류체인이 발전한 것일까?"과 동일한 겁니다.


그리고 과거 선진국으로의 제조업 생산 집중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경제력 격차 이른바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를 만들어냈고, 오늘날 개발도상국으로의 제조업 생산 이전은 격차를 축소시키는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왜 상품 운송비용 하락은 '대분기'를 초래하였고(goods trade cost ↓ → the Great Divergence), 왜 커뮤니케이션 비용 하락은 '대수렴'을 이끌어내고 있는가?(communication cost ↓ → the Great Convergence)" 라는 물음도 던질 수 있습니다.


  • 리차드 발드윈의 단행본 <The Great Convergence>(2016) / 한국어 출판명 <그레이트 컨버전스>(2019)


경제학자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은 2000년 논문 <핵심-주변부 모형과 내생적 성장>(<the Core-Periphery Model and Endogenous Growth>) · 2001년 논문 <글로벌 소득 대분기, 무역 그리고 산업화 - 성장 출발의 지리학>(<Global Income Divergence, Trade and Industrialization - the Geography of Growth Take-Offs>) · 2006년 논문 <세계화 - 대분리>(<Globalization - the Great Unbundlings>) 등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설명해왔습니다. 


그리고 리차드 발드윈은 2013년 단행본 <대수렴 - 정보기술과 신세계화>[각주:13](<The Great Convergence -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을 통해, 학문적 내용을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했습니다.


리처드 발드윈은 폴 크루그먼의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각주:14]과 폴 로머의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각주:15]에 기반을 두고 '대분기'와 '대수렴' 현상을 설명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앞선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살펴봅시다.


▶ 신경제지리학, "운송비용이 하락하면서 대분기 → 대수렴이 발생한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1995년 논문 <세계화와 국가간 불균등>(<Globalization and the Inequality of Nations>)을 통해,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에 있으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불균등이 유발되다가, 임계점을 넘는 수준까지 하락하면 두 지역을 수렴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크루그먼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만들어낸 신무역이론(1979)과 신경제지리학(1991)을 우선 알아야 합니다.


신무역이론[각주:16] - 국제무역을 통해 인구가 적은 소국도 인구대국 만큼 상품다양성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 기업이 서로 다른 차별화된 상품을 생산하는 경우, 존재하는 기업의 수가 많을수록 상품 다양성은 증가하고 소비자들의 후생도 커집니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하나의 시장에서 무한대의 기업이 존재하는 건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상품 생산에 고정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업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개별 기업의 생산량은 줄어들고 이에따라 부담하는 생산비용도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정된 시장크기 하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규모가 작은 국가에 사는 소비자들은 상품다양성 이익을 대국 소비자들에 비해 누리지 못합니다.


이때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것은 국제무역 입니다. 이제 국내 사람들은 외국 기업이 생산한 상품도 이용함으로써 상품다양성 이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즉, 국제무역은 국내 인구 증가와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게 되고, 시장크기가 작은 소국 국민도 대국만큼의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신경제지리학[각주:17] - 소국 국민들은 삶의 수준이 더 높은 대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 '핵심-주변부'(Core-Periphery) 형태가 만들어진다


: 국제무역은 소국 국민도 상품다양성 이익을 누리게 해주지만, 높은 수준의 운송비용이 존재한다면 소국 국민이 이용하는 상품의 종류는 대국에 비해 적을 겁니다. 


결국 소국 국민들은 삶의 수준이 더 높은 대국으로 이주할 유인을 가지게 되고, 초기에 인구가 더 많았던 대국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핵심-주변부'(Core-Periphery) 형태가 만들어 집니다. 


아래의 사고실험을 통해 이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1지역과 2지역은 모두 농업과 제조업을 가지고 있으며, 제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합니다. 그리고 제조업 상품이 두 지역을 오가려면 운송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말인즉슨 1지역 사람들은 2지역에 생산된 제조업 상품을 이용하는데 제약이 있고, 반대로 2지역 사람들은 1지역 제조업 상품을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이유에서건 초기에 1지역의 인구가 2지역 보다 더 많다고 가정해봅시다. 1지역의 시장크기가 더 크기 때문에 소비자 관점에서 1지역 사람들은 보다 다양한 제조업 상품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1지역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임금도 더 많이 받습니다. 


이를 알게 된 2지역 제조업 근로자는 높은 임금을 받고 더 다양한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 1지역으로 이동할 유인을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1지역 시장크기는 점점 더 커지게 되고, 선순환이 작용하여 사람들은 1지역으로 더더욱 몰려들게 됩니다. 


제조업 근로자(소비자) 뿐 아니라 제조업 기업들도 1지역으로 몰려듭니다. 제조업 기업은 상품을 판매할 때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전달하기 위해 운송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소비자가 많은 곳(시장크기가 큰 곳)에 기업이 위치해야 운송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제조업 기업들은 제조업 상품수요가 많은 곳에 위치하려 합니다(backward linkage). 근로자들은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제조업 상품이 다양하게 생산되는 곳에 모여듭니다(forward linkage). 결국 제조업 근로자들의 거주지 결정과 제조업 기업들의 입지결정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1지역으로의 집중은 심화 됩니다.



하지만 모든 제조기업이 1지역으로 쏠리지 않고 주변부인 2지역에도 여전히 제조기업은 존재하게 됩니다. 


핵심부에 모든 제조업 근로자 · 모든 제조업 기업이 모이게 되는 균형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제조업 기업이 1지역에 몰릴수록 내부경쟁은 심화되기 때문에 2지역으로 이탈할 유인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에 있다면 2지역에 위치한 제조업 기업은 1지역 상품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차라리 인구가 적은 2지역에 머무르며 조그마한 수요라도 독차지 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1지역은 '산업화된 핵심부'(industrialized core)가 되고, 주변부인 2지역은 농업'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도 어느정도 존재하는 '농업위주의 주변부'(agricultural periphery)가 됩니다.


● 세계화와 국가간 불균등 -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에 있다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불균등이 유발되다가 임계점을 넘는 수준까지 하락하면 두 지역을 수렴시킨다


폴 크루그먼은 신무역이론 · 신경제지리학을 북반구에 위치한 선진국과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North-South)에 적용하여 국가간 불균등을 설명합니다. 


산업화된 핵심부인 1지역은 선진국 · 농업위주의 주변부인 2지역은 개발도상국 이라 한다면, 국가간 핵심-주변부 패턴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운송비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제조업은 계속해서 핵심부인 선진국으로 집중되고 개발도상국은 농업 위주의 주변부에 머무르게 됩니다.  따라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수준은 벌어지게 됩니다(divergence).


  • 왼쪽 : G7 선진국의 제조업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오른쪽 : 중국의 제조업 비중 증가

  • 출처 : 리차드 발드윈 2019년 논문 <GVC journeys -Industrialization and Deindustrialization in the age of Second Unbundling>


이때 운송비용이 임계점을 넘는 수준까지 내려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시장크기가 작은 개발도상국 국민도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제조업 상품을 상당히 낮은 운송비용을 지불하며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품다양성을 이유로 이주할 유인은 없어집니다. 


그리고 상당히 낮은 운송비용은 제조업 기업들의 위치선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제 제조업 기업은 굳이 시장규모가 크고 제조업 수요가 많은 선진국에 위치하지 않아도 됩니다게다가 주변부인 개발도상국의 낮은 임금수준은 제조업 기업들에게 선진국 시장과 멀리 떨어지는 불리함을 상쇄시켜 줍니다. 


이제 운송비용이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는 제조업 기업은 핵심부인 선진국에서 주변부인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할 유인이 생기게 되고,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이 발전하여 선진국과 경제수준이 수렴하게 됩니다(convergence).


▶ 신성장이론, "선진국 지식이 개발도상국으로 전파되면서 대수렴이 일어난다"


임계점 밑으로 하락한 운송비용에 더하여 '아이디어(idea)와 지식(knowledge)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의 하락(communication cost ↓)'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수준 수렴을 가속화 시킵니다.


'지식' · '아이디어'가 경제성장에 얼마나 중요[각주:18]한지, 그리고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어떻게 추격성장을 할 수 있는지[각주:19]는 본 블로그의 지난글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는 1990년 논문 <내생적 기술변화>(<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는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를 만들어내 끝없는 경제성장을 이끈다"(variety-based growth)고 말하며 신성장이론을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이어서 폴 로머는 1993년 두 개의 논문 <경제발전에서 아이디어 격차와 물적 격차>(Idea Gaps and Object Gaps in Economic Development), <경제발전의 두 가지 전략: 아이디어 이용하기와 생산하기>(Two Strategies for Economic Development: Using Ideas and Producing Ideas)을 통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보유한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함의를 강조했습니다.


공장설비 및 기계 등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은 특정한 공간에 매여 있습니다. 한 공간에서 이미 사용중 이라면, 다른 곳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즉, 물적자본은 '경합적'(rival)이며 '배제가능성'(excludable)을 띈 사유재(private good) 입니다.


반면, 아이디어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롭고 다른 종류의 생산방식 등은 한 공장에서만 쓰여지는 게 아니라 기업이 소유한 여러 공장에서 동시에 사용됩니다. '비경합성'을 띈다는 점에서는 공공재와 유사합니다. 즉, 아이디어는 '비경합성'(non-rival)을 가진채 '공공재'(public goods) 특징을 일부 띄는 독특한 재화입니다.


따라서, 연구부문의 R&D를 통해 창출된 아이디어는 시대가 지나도 끝없이 축적되며,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전파된 지식과 아이디어는 두 그룹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왼쪽 : 미국 · 일본 · 독일 등 선진국의 지적재산권 수출 추이

  • 오른쪽 : 중국 · 한국 · 대만 · 멕시코 등 제조업 신흥국의 지적재산권 수입 추이

  • 출처 : 리차드 발드윈 2019년 논문 <GVC journeys -Industrialization and Deindustrialization in the age of Second Unbundling>


1990년대부터 진행된 '정보통신기술 혁명'(ICT Revolution)은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낮추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지식과 아이디어가 전파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firms)은 지식과 아아디어 전파 역할을 맡았습니다. 


다국적기업은 직접투자 · 합작기업 설립 · 마케팅 및 라이센스 협약 등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선진국 직원과 개발도상국 공장 근로자는 즉각적인 의사소통을 하며 제품을 제조해 나갔습니다.


지식을 전파하는 다국적기업의 중요성은 중국의 경제발전 과정[각주:20]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선진국 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상품을 제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992년 이후 중국 수출입에서 외자기업이 행하는 비중은 최대 60%까지 증가하였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만약 선진 외국기업들이 제품 설계 · 품질 기준 등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전파하지 않았다면, 중국 제조업 기업이 맨땅에서 현재 수준까지 발전하기에는 더욱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게 분명합니다. 


정리하자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하락한 덕분에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지식 및 아이디어가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이루어지며, 두 그룹 간 경제수준이 수렴하게 되었습니다(convergence).


▶ 왜 제조업은 동아시아에 집중되었나


아이디어와 지식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하락한 덕분에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게 되었으나, 모든 개발도상국이 혜택을 본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의 제조업 공장은 대부분 동아시아로 이동했고,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여전히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 리차드 발드윈(Richard Baldwin)은 2016년 출판한 단행본 <대수렴 - 정보기술과 신세계화>[각주:21](<The Great Convergence -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을 통해, 제조업 기적이 몇몇의 개발도상국에서만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발드윈은 "상품 운송비용 및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크게 하락했으나, 사람을 이동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여전히 비싸다(cost of moving people ↑)"는 점에 주목합니다. 


선진국 다국적기업은 본사 관리직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개발도상국에 진출합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발령을 내려면 이에 합당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겠죠. 연봉도 기존보다 더 많이 주어야하고, 체류비, 가족교육 지원비 등도 주어야 합니다. 만약 현지 영업판매망을 구축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수많은 본사 직원을 파견할 필요는 없겠지만,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고 수천~수만명의 제조 근로자들을 감독·관리 하려면 큰 규모의 인력이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선진국 다국적기업은 '이미 어느정도 제조업 기반이 갖추어진 개발도상국' · '직원 이동비용을 상쇄할만큼 편익을 제공해주는 개발도상국' 등을 특정하여 오프쇼어링을 단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신흥국은 '과거 수입대체산업화로 인해 제조업을 발전시키지 못한 중남미 등'[각주:22]이 아니라 '대외지향적 무역정책을 통해 제조업 기반을 조성한 한국 · 대만 등'[각주:23] 혹은 '특별경제구역을 조성하여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잠재력 있는 내수시장을 지닌 중국'[각주:24] 등 동아시아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결과, 동아시아 지역은 전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Factory Asia)이 되었습니다.




※ 신흥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 → 대수렴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


한국 · 중국 · 대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제조업 공장의 발전은 원자재 수요를 폭증시켜 브라질 · 호주 · 칠레 · 러시아 · 중동 등 자원 수출국의 경제도 성장시켰습니다. 20세기 경제성장과 산업화에서 소외되었던 국가들이 일어서기 시작한 겁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세계는 선진국-개발도상국 간 경제력 격차가 큰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 시대를 지나서 선진국-신흥국 간 경제력 격차가 줄어드는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세계경제 및 대수렴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는 '글로벌 밸류체인'(GVC) · '동아시아 제조업'(Factory Asia) · '글로벌 상품 호황'(Global Commodity Boom) · '신흥국'(Emerging Market) 그리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BRICS) 입니다.


이러한 대수렴 시대에 눈에 띄는 것은 '글로벌 불균등의 양상 변화'(Global Inequality) 입니다. 


전세계 70억 인구를 소득수준별로 줄을 세워봅시다. 


20세기에는 '국적'이 소득 상위층과 중하위층을 갈라놓는 주요 변수였습니다. 미국 · 서유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내부에서는 중하위층일지라도 전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상위층에 속했습니다. 국가별 소득수준 차이가 심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가 글로벌 소득순위에서 중요했습니다. 다르게 말해, 20세기 글로벌 불균등 분포를 결정지었던 것은 '국가간 불균등'(Between Inequality) 였습니다.


  • 1998년~2008년 사이 전세계 계층별 소득증가율

  • 전세계 소득분포 중 90분위~80분위에 위치한 미국 중하위 계층은 1%~6%의 소득증가율만 기록한 반면, 전세계 소득분포에서 70분위~40분위에 위치한 신흥국 중상위 계층은 60%가 넘는 소득증가율을 기록

  • 출처 : Two-Track Future Imperils Global Growth'. <WSJ>. 2014.01.21


반면, 21세기에는 '국적'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 서유럽의 중하위층 보다 신흥국 상위층의 소득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 · 서유럽의 중하위층은 전세계적 관점에서 여전히 중상위층에 속하긴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이들의 소득증가율은 정체되었고, 신흥국 상위층의 소득증가율은 높았습니다.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뿐 아니라 '국가 내 소득분포에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도 중요해졌습니다. 즉, 21세기 대수렴의 시대에 '국가간 불균등'은 줄어들었고(Between Inequality ↓), '국가내 불균등'의 중요성(Within Inequality ↑)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국가간 불균등이 얼마나 감소하였는지 그리고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다음글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 선진국 제조업의 몰락과 서비스화 → 선진국 국가내 불균등의 증가


미국은 아이폰을 제조하는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미국의 아이폰' 뿐 아니라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 자체가 크게 줄었습니다. 대신 선진국에서 증가한 일자리는 'R&D · 디자인 · 설계 · 마케팅' 등 서비스 관련 직무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은 디자인 · 설계 · 연구개발 · 마케팅 · 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맡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 ·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맡는 역할분담(task allocation)이 만들어낸 자연스런 변화 입니다.


  • 공정단계별 부가가치 창출 크기 - 일명, 스마일 커브(Smile Curve)

  • 1990년대 이후로는 R&D · 설계 · 디자인 등 제조 이전 서비스(Pre-fab services)와 마케팅 · 판매 등 제조 이후 서비스(Post-fab services)의 부가가치 창출액이 제조(Fabrication) 단계 부가가치 창출액 보다 크다


부가가치 창출 관점에서 선진국의 서비스화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러 부품을 단순 조립하여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제조업 직무보다는 제품을 초기부터 디자인 · 설계하고 완성품을 마케팅하여 판매하는 서비스 직무의 부가가치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아이폰 제조 일자리를 잃었지만 여전히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조업 일자리에 종사해왔던 선진국 근로자'에 있습니다. ICT 기술진보로 인해 세계경제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이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제조업 근로자를 재교육시켜 서비스 직무로 이동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힘듭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혁신의 패배자'가 된 이들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 2012년 1월 21일, 뉴욕타임스 기사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How the U.S. Lost Out on iPhone Work)" 


▶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지다


에릭 사라고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 제조공장에 처음 입사했을 때, 그는 엔지니어링 원더랜드에 입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1995년 그 공장은 1,5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했었다. 엔지니어인 사라고사는 빠르게 승진했고 그의 연봉은 5만 달러로 올랐다. (...)


하지만 전자산업은 변화하고 있었고, 애플은 변화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애플의 초점은 제조공정은 개선시키는 것이었다. 사라고사가 입사한 지 몇년 후, 그의 보스는 캘리포니아 공장이 해외 공장에 비해 얼마나 뒤쳐지는지 설명했다. 1,500 달러 컴퓨터를 만드는 데에 캘리포니아 공장에서는 22달러가 들었지만 싱가포르는 6달러 대만은 4.85 달러에 불과했다. 임금은 주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재고비용 및 근로자가 업무를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이 차이가 났다. (...)


지난 20년간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중임금 일자리는 사라지기 시작했다(Midwage jobs started disappearing).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오늘날 신규 일자리는 중산층에게 적은 기회만을 제공하는 서비스 직무에 쏠려있다.


대학 학위를 가진 사라고사 조차도 이러한 변화에 취약했다. 우선 캘리포니아 공장의 반복적인 업무가 해외로 이전되었다(routine tasks were sent overseas). 사라고사는 개의치 않았다. 그 후 로봇이 나왔고 경영진은 근로자를 기계로 대체하였다(replace workers with machines). 진단 엔지니어링 업무를 맡는 몇몇이 싱가포르로 보내졌다. 컴퓨터와 함께 소수의 사람만 필요해졌기 때문에, 공장의 재고를 감독하는 중간 관리자는 갑자기 해고되었다.


비숙련 업무를 하기에는 사라고사의 몸값은 너무 비쌌다. 또한 그는 상위 관리직을 맡기에는 아직 자격이 부족했다. 2002년 밤늦게 호출된 그는 해고되었고 공장을 떠났다. 그는 잠깐동안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술분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애플은 캘리포니아 공장을 콜센터로 바꾸어 놓았고,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는 시간당 12달러만 받는다.


구인활동을 시작한 지 몇개월 후, 사라고사는 절망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에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검수한 후 다시 소비자에게 보내는 임시직을 맡았다. 매일매일 사라고사는 한때 엔지니어로 일했던 건물로 출근하였는데, 이제는 시간당 10달러 임금과 함께 수천개의 유리 스크린을 닦고 오디오 포트를 테스트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 뉴욕타임스. 2012.01.21. '미국은 어떻게 아이폰 일자리를 잃게 되었나?'


미국내 공장의 반복직무는 해외로 이전하였고 중간관리자와 근로자는 기계로 대체되었습니다. 한때 엔지니어로 높은 몸값을 받았던 사라고사는 이제 임시직을 맡으며 시간당 10달러의 임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미국 내에서 반복직무를 맡는 중산층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졌고, '콜센터 · 장비검수 등 아직 사람의 손이 필요한 저숙련 직무'와 '설계 · 디자인 · 마케팅 등 고숙련 직무'로 양극화 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내 임금불균등의 증가(Within Wage Inequality ↑)가 경제적 문제로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신흥국으로의 오프쇼어링 및 기술진보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이들은 '화가 난 미국인'(Angry American)이 되었고,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미국의 중산층 제조업 일자리 감소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기에 이들의 분노가 커졌던 것일까요? 앞으로 다음글을 통해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감소'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 제조업 중산층 일자리를 없앤 건 '기술변화'일까? '무역'일까? 


이번글에서 살펴본 뉴욕타임스 기사는 미국이 애플 아이폰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주요 원인으로 '중국으로의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에서 확인했다시피,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무역이 아니라 기술변화가 중산층 일자리를 없앴다" 라고 생각합니다. 비숙련 근로자를 대체하고 숙련 근로자의 몸값을 높이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BTC)로 인해 임금 불균등이 커졌다는 논리 입니다.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를 문제로 지적하는 경제학자와 중국의 부상 및 오프쇼어링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대중들 간 감정적 격차는 계속해서 커져왔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대중국 무역전쟁을 요구하는 대중 · 정치인들의 요구에 대항하여, 경제학자들은 "비록 제조업 일자리는 줄었으나 서비스업 일자리가 증가하여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는 식으로 반박했습니다.


(제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누차 지적[각주:25]해왔듯이) 경제학자들의 이런식의 대응은 대중과 정치권의 외면만 불러왔습니다. 다행히도 몇몇 경제학자들은 대중과 정치권의 목소리를 이해하는 동시에 문제의 원인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중산층 일자리 상실을 깊이 연구한 경제학자들은 '기술 vs 무역'(technology vs. trade)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기술과 무역이 상호연관을 맺고 있다'(technology ↔ trade)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기업의 아웃소싱 그 자체는 국제무역의 영향 입니다. 그러나 글로벌 밸류체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ICT revolution)으로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하락(communication cost ↓)한 덕분입니다. 


즉, 오프쇼어링을 통한 무역의 영향과 ICT 발전으로 인한 기술의 영향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 입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기술 vs 무역'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기술과 무역이 어떻게 상호연관적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볼 겁니다.




※ 신흥국 경제성장으로 인한 '대수렴의 시대' → 글로벌 불균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앞으로도 살펴봐야 할 주제들이 많은 가운데, 우선 바로 다음글을 통해 "신흥국 경제성장으로 인한 '대수렴의 시대' → 글로벌 불균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⑦] 글로벌 불균등 Ⅰ - 국가간 불균등의 감소(Between Inequality ↓), 세계화 승자가 된 신흥국 중상위층과 패자가 된 선진국 중하위층


  1. Remarks by the President in the State of the Union Address. 2013.02.12 [본문으로]
  2. Our first priority is making America a magnet for new jobs and manufacturing. After shedding jobs for more than 10 years, our manufacturers have added about 500,000 jobs over the past three. Caterpillar is bringing jobs back from Japan. Ford is bringing jobs back from Mexico. And this year, Apple will start making Macs in America again. (Applause.)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 https://joohyeon.com/280 [본문으로]
  4. Apple will not be given Tariff waiver, or relief, for Mac Pro parts that are made in China. Make them in the USA, no Tariffs!. 2019.07.27 [본문으로]
  5. Apple’s new Mac Pro to be made in Texas. 2019.09.23 [본문으로]
  6. A Tiny Screw Shows Why iPhones Won’t Be ‘Assembled in U.S.A.’. 2019.01.28 [본문으로]
  7. "오바마 대통령의 물음은 애플이 갖고 있는 확신을 건드린 것이다. (애플이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생산하는 이유는) 단지 해외 근로자가 더 값싸기 때문이 아니다. 애플 경영진은 해외 근로자의 유순함, 근면성, 산업기술 뿐 아니라 해외 공장의 광대한 규모가 미국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Made in U.S.A.는 더 이상 선택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The president’s question touched upon a central conviction at Apple. It isn’t just that workers are cheaper abroad. Rather, Apple’s executives believe the vast scale of overseas factories as well as the flexibility, diligence and industrial skills of foreign workers have so outpaced their American counterparts that “Made in the U.S.A.” is no longer a viable option for most Apple products." [본문으로]
  8. The answers, almost every time, were found outside the United States. Though components differ between versions, all iPhones contain hundreds of parts, an estimated 90 percent of which are manufactured abroad. Advanced semiconductors have come from Germany and Taiwan, memory from Korea and Japan, display panels and circuitry from Korea and Taiwan, chipsets from Europe and rare metals from Africa and Asia. And all of it is put together in China. [본문으로]
  9. “The entire supply chain is in China now,” said another former high-ranking Apple executive. “You need a thousand rubber gaskets? That’s the factory next door. You need a million screws? That factory is a block away. You need that screw made a little bit different? It will take three hours.”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https://joohyeon.com/284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 https://joohyeon.com/284 [본문으로]
  1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13. 한국어 출판명은 '그레이트 컨버전스' [본문으로]
  14.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s://joohyeon.com/220 [본문으로]
  15.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s://joohyeon.com/258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https://joohyeon.com/219 [본문으로]
  17.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s://joohyeon.com/220 [본문으로]
  18.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s://joohyeon.com/258 [본문으로]
  19.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https://joohyeon.com/260 [본문으로]
  20.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1. 한국어 출판명은 '그레이트 컨버전스' [본문으로]
  2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https://joohyeon.com/283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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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Posted at 2019. 8. 24. 21:4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국제무역 보다 정확히 말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자국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고전적인 논쟁 주제[각주:1]입니다


▶ 개발도상국 -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


제조업은 산업화의 상징이며 저숙련 근로자에게 비교적 안정적인 임금을 제공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 특히 이제 막 경제발전을 시작하려는 개발도상국들은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 · 육성 · 발전 시키려 했습니다. 이때 가장 큰 걸림돌은 '성숙한 외국 제조업과의 경쟁' 입니다. "자국 제조업 수준이 걸음마 단계인 상황에서 시장을 개방하면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생각[각주:2]은 자연스런 우려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사상[각주:3]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4]이 나온 이래로,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자국의 비교열위 산업인 제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걱정했습니다. 특히나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토지의 수확체감성에서 벗어나 산업자본가의 이윤을 높이려는 19세기 영국의 경제상황[각주:5] 속에서 등장한 이론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고 인식했습니다. 


개발도상국들 중 일부[각주:6]는 수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여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려 하였고, 또 다른 일부[각주:7]는 아예 교역량을 줄이는 수입대체 산업화를 선택했습니다. 대외지향적 무역체제에 힘입어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한민국[각주:8] 조차도 기존의 비교우위에서 벗어나 제철소건설 등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했습니다. 


▶ 현대 경제학자 - "제조업 보호와 육성을 위한 정부지원이 정당화 되려면 특수한 조건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항하여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사상과 비교우위론을 정교화[각주:9] 하였습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개발도상국을 향해 던진 물음은 "당장의 경쟁에서는 밀리더라도 미래에는 승산이 있다는 걸 아는 사업가라면, 정부의 인위적인 보호조치가 없더라도 자연스레 제조업에 뛰어들지 않겠느냐" 입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래에는 외국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업가라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제조업 분야에 투자를 했을 겁니다. 


미래를 내다본 사업가에 의해 국가경제의 생산성 · 부존자원 등이 시간이 흐른 후 바뀐다면, 비교우위도 자연스레 변화하는 '동태적 비교우위'(dynamic comparative advantage) 양상을 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유치산업 보호는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 주류 경제학자들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정부지원이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특수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때 특수한 조건이란 '기술적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y)과 '금융시장 불완전성'(capital market imperfection) 입니다. 


더 나은 생산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가가 직면하는 문제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정보를 거리낌없이 쓸 가능성, 즉 기술적 외부성 이며, 이로인해 개별 사업가가 지식 획득을 위한 투자를 꺼리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업은 기술개발 및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 받아야 하는데, 금융시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자금조달이 어려워집니다[각주:10].


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이 특수한 조건이 존재한다면 정부의 제조업 지원이 정당화 될 수 있으며, 단 이때 지원의 형태는 무차별적인 보호 관세가 아니라 직접적인 보조금 이라고 강조합니다. 다르게 말해, 제조업 육성을 위한 보호무역정책을 구사할 생각보다는 '외부성 및 불완전성 등 구체적인 시장실패를 직접 해결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과거 개발도상국이 직면했던 문제는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

: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가 타당한가


이처럼 국제무역과 제조업에 관한 논쟁은 경제발전을 추구했던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벌어져왔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이 타당한가?"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경제학자들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유치산업보호론을 인정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며 주의[각주:11]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폐쇄경제로 돌아선 중남미[각주:12]와 대외지향을 꾸준히 추진한 대한민국[각주:13] 간 대비되는 성과는 자유무역을 향해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알려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국제무역논쟁은 자유무역사상과 비교우위론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화 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 1970~80년대 미국 - "외국과의 경쟁증대 때문에 미국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인 미국에서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졌습니다.


본 블로그의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14]를 통해 알 수 있었듯이, 1970~80년대 미국인들은 '미국의 지위 하락과 경쟁력 상실'을 두려워 했습니다. 전세계 GDP 중 미국의 비중은 1968년 26.2%에 달했으나 점점 줄어들어 1982년 23.0%를 기록합니다. 또한 무역적자가 심화되면서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이 1980년 0.7%,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거시경제적 문제와 함께 다수의 미국 근로자와 기업들이 걱정했던 것은 바로 '제조업의 비중 축소와 일자리 감소' 였습니다. 2차대전 이후 폐허가 됐던 서유럽과 일본이 경제부흥에 성공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미국 제조기업들은 1970~80년대 들어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신발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제조업 뿐 아니라 자동차 · 철강 등 중후장대 제조업도 외국기업에게 미국시장을 내주었습니다.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은 저숙련 근로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대표적인 제조업 중 하나이며, 경제발전 단계를 밟는 국가들이 크게 의존하는 업종입니다. 과거 미국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1970년대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에 종사하는 미국 근로자 수는 약 300만명에 달했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후발산업국가들이 생산 및 수출 물량을 늘려나가자 선진국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윗 그래프에 나오듯이, 1960년-1988년 사이 미국인들의 신발 · 의류 · 섬유 품목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결국 선진국과 개도국들은 1974년 다자간섬유협정(MFA)을 체결하였고, 물량쿼터제를 통해 수출물량을 통제하였습니다. 1981년 부임한 레이건대통령은 대선캠페인 과정에서 다자간섬유협정을 갱신하겠다고 약속하였고, 개발도상국이 만든 섬유와 의복의 연간 수입증가율을 기존 6%에서 2%로 낮추었습니다.


그럼에도 신발 · 의류 · 섬유의 수입침투(import penetration)는 계속되었습니다. 쿼터할당량을 다 채운 외국 생산자들은 몇몇 공정을 쿼터가 남아있는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회피하였고, 공정변화를 통해 품목을 변경하여 규제를 벗어났습니다. 


미국의 신발 · 의류 · 섬유 산업은 펜실베니아 · 남부 · 남캐롤라니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 지역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2000년 이들 산업의 근로자 수는 약 100만명으로 줄었고, 2019년 현재는 약 30만명에 불과합니다.


  • 1960~90년, 미국 차량등록대수 중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 변화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75쪽


자동차 산업도 1970년대부터 외국과의 경쟁증대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산업 입니다. 


1960년대 미국시장 내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7%대로 안정적이었으며 주로 독일차가 차지했습니다. GM · 포드 ·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빅3는 수익성이 높은 중대형 차량에 집중하였고, 외산차는 주로 소형차를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소비자들은 연비가 좋은 소형차를 찾기 시작했고 일본자동차 업계가 이 지점을 공략했습니다. 그 결과, 1975~80년 사이 외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2배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 2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미국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은 더욱 훼손되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부도위기에 몰렸고,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실업률은 상승했습니다. 


결국 미국 자동차 노조는 수입제한과 일본기업이 미국 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도록 요구했고, 레이건행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자발적 수출제한을 얻어냅니다.


  • 1950~90년, 철강 미국 내 소비 중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38쪽


철강 또한 수입경쟁에 노출된 업종 중 하나입니다. 미국 내 소비 중 수입철강의 비중은 1979년 15%에서 1984년 26%로 상승했습니다. 


미국 철강업계는 외국에 대항하여 반덤핑규제와 상계관세 부과를 요구했으며, 그 타겟은 주로 유럽(EEC) 이었습니다. 레이건행정부는 자동차 산업에서처럼 자발적제한 협약을 외국과 맺으려 하였고, 전체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15개국을 대상으로 물량쿼터제를 내용으로 하는 협약을 1985년 8월 체결하였습니다.


▶ 1990년대 미국 - "저숙련 · 저임금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미국 제조업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1970~80년대 미국 제조업이 직면한 경쟁상대가 주로 서유럽과 일본이었다면, 1990년대 미국 제조업 근로자들에게 위기감을 안겨다준 상대방은 멕시코 였습니다. 


위의 표에 나오듯이, 1994년 당시 멕시코 자동차산업 근로자의 시간당 실질 인건비는 미국의 1/8에 불과했고, 미국 기업들은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할 유인이 충분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숙련 · 저임금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으면 미국 제조업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라는 우려가 팽배했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1992년 미국 대선의 주요 의제로 부각되었습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지지자 그리고 노조는 NAFTA 체결을 격렬히 반대하였습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스 페로(Ross Perot)는 제조업 일자리가 남쪽 멕시코로 대거 이동할 것이라며 NAFTA를 '남쪽으로 일자리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굉음'(giant sucking sound going south)'으로 칭했습니다. 양당제인 미국 정치구도에서 무소속 후보가 무려 18.9%나 득표[각주:15]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시 미국인들이 NAFTA에 대해 가졌던 우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난 이후 당 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NAFTA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단, 여러 우려를 반영하여 노동부문 부속협약(labor side agreement) 및 원산지 규정(rule of origin)을 협정에 새로 집어넣었습니다. 여기에는 멕시코의 저임금을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근로자 권리 보호, 그리고 미국-멕시코-캐나다 역내에서 생산된 부품이 완성차 부가가치의 62.5%를 차지해야 한다는 역내가치비율(Regional Value Content) 조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시장개방'(Income Distribution)

: 제조업 및 저임금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자유무역의 충격을 어떻게 완화해야 하는가


  • 1966~2000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1980~9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의 그래프는 1966년~2000년 미국 내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프상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를 나타냅니다. 제조업 일자리는 경기변동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불황기에 일자리가 줄었다가 회복기에 다시 늘어나는 패턴을 보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경기회복기에 불황 이전 수준만큼 일자리가 늘어났으나, 1980년대 들어서는 제조업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적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9년 최대 1,950만명에 달했던 제조업 근로자는 1980-90년대 평균적으로 1,700만명대를 기록하며 10%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경기변동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많은 미국인들이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원인을 국제무역에서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미국 주요 산업지역

  • 자동차 산업의 러스트벨트(Rust Belt), 석탄 산업의 Coal Belt. 섬유 산업의 Textile Belt

  • 츨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96


이러한 제조업 위축은 사회 · 정치적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제조업은 저숙련 근로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제조업의 위축은 임금불균등 증대(rise of wage inequality)로 연결될 위험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석탄, 섬유 산업 등은 미국 내 특정 지역에 몰려있었기 때문에, 상하원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제조업 위축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따라서 1970~9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은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제조업 고용 및 임금이 감소하고 그 결과 임금불균등이 확대되는 것 아닐까?"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경제발전기 개발도상국들이 던진 물음에 대해 현대 경제학자들은 정교화된 자유무역사상과 비교우위론을 답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1970~9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던진 물음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요? 




※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① 미국 제조업 비중 감소는 생산성향상과 수요변화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답은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였습니다[각주:16]


앞서 내용을 통해, 신발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제조업 뿐 아니라 자동차 · 철강 등 중후장대 제조업도 외국기업에게 미국시장을 내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미국의 공장들은 당연히 저임금의 멕시코로 이전할텐데, 왜 경제학자들은 일반의 상식과는 다른 분석을 내놓은 것일까요? 


  •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

  • 1983년 발표 논문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일시적인 순환>


국제무역과 제조업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있는 학자 중 한 명이 바로 로버트 Z. 로런스(Robert Lawrence) 입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이를 연구해오며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임금불균등 심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83년 로버트 Z. 로런스는 잭슨홀미팅에서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일시적인 순환>(Changes in U.S. Industrial Structure: The Role of Global Forces, Secular Trends and Transitory Cycles> 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로런스는 논문을 통해, "1970년대 미국은 절대적인 탈산업화(absolute deindustrialization)를 경험하지 않았다. (...) 다시 성장이 재개되면 제조업의 일자리와 투자가 촉진될 것이고, 자동적으로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가 발생할 것이다. (...) 대외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 산업 및 무역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각주:17]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로런스의 주장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 미국 탈산업화 - 절대적 생산 감소와 상대적 비중 감소를 구분해야 한다


탈산업화(혹은 탈공업화, deindustrialization)란 광업 · 제조업 · 건설업 등 2차산업 활동이 위축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1970-8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은 신발 · 의류 · 섬유 · 자동차 · 철강 등의 위축을 보며 "미국의 경쟁력 감소로 인해 탈산업화가 발생했다"고 느꼈습니다.


이에 대해 로버트 Z. 로런스는 우선 탈산업화 현상이 무엇인지 정교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조업 생산량의 절대적 감소(absolute decline in the volume of output)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제조업 생산량 증가율의 상대적 감소(relative decline in the growth of outputs)를 의미하는가?[각주:18]" 


어떤 산업이든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감소한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큰 문제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은 생산의 증가[각주:19]를 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절대적인 생산량은 증가하고 있으나 다른 산업의 빠른 생산 증가율 때문에 '생산량의 상대적인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면, 이를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할 겁니다. 


  • 1966~97년, 미국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

  •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1966년 26.1%, 1997년 16.1%로 추세적 하락을 경험하였다

  • 서비스업 부가가치 비중은 1966년 50.0%, 1997년 64.2%로 추세적 상승 하였다.

  • 출처 : 미 경제분석국(BEA)


로버트 Z. 로런스는 "미국 제조업의 경제활동인구, 자본스톡, 생산량을 살펴보니 1980년까지 절대적(absolute) 탈산업화를 경험하지 않았다"[각주:20]고 주장합니다. 미국 제조업 부가가치의 절대액수는 1965년 2,370억 달러에서 1980년 3,510억 달러로 증가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옳습니다.


문제는 제조업 비중(share)의 감소에 있었습니다. 위의 그래프에 나오듯이, 전체 미국경제에서 제조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6년 26.1%, 1980년 20.5%, 1990년 17.3%, 1997년 16.1%로 추세적으로 하락(secular decline)하고 있습니다. 


▶ 미국 제조업 비중 감소를 초래하는 영속적인 추세변화 - 생산성향상과 수요변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감소이든 상대적 감소이든 상관없이, 외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미국 제조업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런스는 "국제교역은 산업구조 변화의 유일한 원인도 아니며 중요한 원인도 아니다. 무역은 수요와 기술변화의 영향을 단지 강화할 뿐이다.[각주:21] (...) 제조업 고용비중의 감소는 제조업의 급격한 노동생산성 향상과 느린 수요 증가로 인한 예측가능한 결과이다."[각주:22]라고 말합니다.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은 수요 요인과 결합하여 제조업 생산과 고용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생산비용을 낮추는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은 품질 개선과 가격 하락을 동반합니다. 이에따라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 중 제조업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집니다. 그리고 생활수준이 개선된 미국인들이 의료 · 여행 · 엔터테인먼트 등 서비스 지출을 늘림에 따라 상품지출 비중은 더 줄어듭니다.


이렇게 상품수요가 탄력적으로 늘어나지 않으면서, 생산성향상은 역설적으로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산업의 생산성향상은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지만,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을때 생산량을 크게 늘리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수요가 늘어나지 않고 생산성 향상만 이루어진다면 더 적은 수의 근로자로 똑같은 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은 제조업 일자리를 감소시킵니다.


로런스는 기술혁신의 결과물로 얻게되는 생산성 향상, 그리고 생활수준 향상 및 서비스 경제화가 야기하는 상품수요 감소 요인은 영속적인 추세(Secular Trends)라고 평가했습니다. 추세가 달라지면서 미국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역할이 변하였고 이로 인해 제조업 생산 및 고용 비중이 감소한 것이지 국제무역은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논리 입니다. 


▶ 미국 국제경쟁력의 열등함? - 일시적 경기순환과 영속적인 비교우위 변화


  • 란선 :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 지수 (1973=100)

  • 란선 : 미국 GDP 대비 무역수지 적자 비중 (축반전)

  • 1980년을 기점으로 달러가치가 상승하자, 시차를 두고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


그렇다고해서 로런스가 국제무역이 단 하나의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


제2차 오일쇼크와 볼커 연준의장의 통화긴축 정책으로 인해 1980년대 초반 미국 달러가치는 급상승했고 무역적자는 심화되었습니다. 1980~82년 사이 미국 제조업 상품 수출 물량은 -17.5%를 기록했으며, 수입 물량은 +8.3% 였습니다. 로런스는 수출 감소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약 50만개 줄어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로런스가 강조하는 것은 달러가치 상승이라는 일시적 순환요인(Transitory Cycles) 때문에 제조업 수출이 감소한 것이지 "미국의 국제경쟁력이 갑자기 훼손된 결과물이 아니다"[각주:23]는 점입니다. 따라서, 산업정책 및 무역정책으로 제조업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향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미국은 저숙련 제조업 분야의 비교우위를 상실한 대신 하이테크 분야의 비교우위를 발전시켰다고 로런스는 평가합니다. 향후 하이테크 산업이 더 발전하게 되면 제조업 일자리 상실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일시적인 순환


이처럼 로버트 Z. 로런스가 1983년 논문  <미국 산업구조의 변화 : 글로벌 요인,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일시적인 순환>(Changes in U.S. Industrial Structure: The Role of Global Forces, Secular Trends and Transitory Cycles> 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제목 그대로 입니다.


미국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의 상대적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이는 국제경쟁력 훼손 등 글로벌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 및 소비자 수요변화의 영속적인 추세 그리고 달러가치 상승의 일시적인 순환이 작용한 결과 입니다. 


따라서, 탈산업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비숙련) 제조업을 위한 보호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을 구사하면 미국경제의 잠재성장을 훼손시킨다고 로런스는 경고합니다.




※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② 미국 임금불균등 증가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 때문이다


1980년대 로버트 로런스 등 몇몇 경제학자들이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무역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1990년대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1980년대 사람들이 제조업 비중 축소 및 일자리 감소에 주목했다면, 1990년대 관심주제는 임금불균등(wage inequality) 이었고 그 배후에 국제무역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미국의 1973년 시간당 실질소득은 8.55 달러였으나 1992년 7.43 달러로 하락하였습니다. 특히 숙련근로자의 상대소득이 크게 증가하며 임금불균등이 확대되었죠. 


임금증가율 정체와 불균등이 확대되던 시기, 국제경제관계도 변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의 1인당 생산량은 유럽의 2배, 일본의 6배 였으나 1990년대 차이가 많이 줄어드는 수렴(convergence)이 이루어졌고 임금격차도 좁혀졌습니다. 또한, 1970~90년 사이 미국의 GNP 대비 수출입은 12.7%에서 24.9%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1990년대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임금불균등 증대 원인에 국제무역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자연스런 사고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부시행정부와 클린턴행정부는 저임금 국가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려 했으니, 국제무역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헥셔-올린 모형, 미국 내 임금불균등 현상을 예측한듯 하다 


국제무역이론도 미국인들의 우려가 논리적으로 타당함을 뒷받침 해주었습니다. 바로, 헥셔-올린 무역모형(Heckscher-Ohlin Trade Model)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각주:24] 입니다.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르면, '시장개방 이후 숙련노동 풍부국은 숙련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올라가서 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비숙련노동 풍부국은 비숙련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올라가서 비숙련노동자의 실질소득이 상승' 합니다. 


쉽게 말해, 국제무역은 국가의 풍부한 생산요소에게 이익을 주며 희소한 생산요소에게 불이익을 줍니다. 자급자족 상황에서 풍부한 생산요소는 과다공급으로 인한 낮은 가격 때문에 저평가받다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니 과다공급 해소로 가격이 올라 이익을 본다는 논리입니다. 반대로 자급자족 상황에서 희소한 생산요소는 과소공급 때문에 높게 평가받다가, 무역개방으로 외국의 생산요소가 들어오니 희소성의 이득을 박탈 당합니다.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를 미국과 개발도상국의 상황에 대입해봅시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숙련근로자가 풍부하며, 멕시코 등 개발도상국은 비숙련근로자가 풍부합니다. 따라서, 양국간 교역확대는 미국 숙련근로자 임금과 개발도상국 비숙련근로자 임금을 상대적으로 증가시킵니다. 다시 말해, 헥셔-올린 모형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이 나타나고 개발도상국에서는 임금수렴이 나타납니다



  • 1955~90년, 생산근로자 대비 비생산근로자의 임금 비율
  • 출처 : Lawrence & Slaughter. 1993.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임금>


헥셔-올린 무역이론의 예측은 실제 미국의 모습과 동일하였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55년~90년 생산근로자 대비 비생산근로자의 임금 비율(ratio of nonproduction to production wages)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생산근로자는 제조업 생산직, 비생산근로자는 관리·감독·사무직을 의미하며, 단순히 전자를 비숙련근로자 후자를 숙련근로자로 구분지을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 숙련-비숙련 근로자 간 임금불균등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확대되며 1990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은 비숙련 근로자 대비 1.65배를 기록합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요인을 가져올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국제무역 때문에 임금불균등이 확대된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 헥셔-올린 모형은 미국 내 임금불균등 심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 로버트 Z. 로런스와 매튜 J. 슬로터의 1993년 보고서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인 임금: 거대한 굉음 혹은 작은 딸꾹질?>


정작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이와 달랐습니다. 


앞서 봤던 로버트 Z. 로런스(Robert Z. Lawrence)는 매튜 J. 슬로터와 함께 1993년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제목은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인 임금: 거대한 굉음 혹은 작은 딸꾹질?>(International Trade and American Wages in the 1980s: Giant Sucking Sound or Small Hiccup?>[각주:25] 입니다.


우선 로런스와 슬로터는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미국 내 현실에 부합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 증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숙련근로집약적 상품가격이 상승해야' 합니다. 단순히 임금불균등이 확대된 결과만을 보고 무역이론이 현실을 설명하구나 라고 단정지으면 안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수행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기 때문'[각주:26] 입니다.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값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수출을 통해 더 높은 값을 받고 외국에 판매합니다. 반대로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비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통해 더 싸게 (간접)생산합니다. 


그리고 무역을 하게 되면 자급자족 가격이 아닌 세계시장 가격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품가격이 변합니다. 즉, 무역 개방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것은 ‘상품의 상대가격’ 입니다. 수입 상품은 자급자족에서 보다 무역 실시 이후 더 싸지고, 수출상품은 더 비싸집니다


따라서, “달라진 상품 상대가격이 생산요소의 실질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를 살펴봄으로써, 무역개방과 소득분배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무역이론이 헥셔-올린 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각주:27]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련근로자의 상품가격이 상승하지 않은채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만 증가했다면, 이는 무역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 입니다.


  • 왼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입가격 변화율(Y축)

  • 오른쪽 : 1980년대 숙련근로 집약도(X축)에 따른 수출가격 변화율(Y축)


위의 그래프는 1980년대 숙련근로집약 정도에 따른 수출입 가격 변화를 보여줍니다. 숙련근로집약도가 높아지는 상품일수록 수입가격은 다소 하락하고 수출가격은 크게 하락하는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로버트 Z. 로런스와 매튜 J. 슬로터는 1980년대 숙련근로집약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기는 커녕 하락했음을 지적합니다. 이들은 "데이터는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무역이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회귀분석을 할 필요조차 없다."[각주:28] 라고 말합니다.


▶ 미국 임금불균등 증가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로 인한 숙련노동 수요 증대 때문이다

 

  • 1955~90년, 생산근로자 대비 비생산근로자의 고용 비율

  • 출처 : Lawrence & Slaughter. 1993. <1980년대 국제무역과 미국임금>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요인 때문에 미국 숙련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올라간 것일까요? 로런스와 슬로터는 '노동 공급과 수요'라는 국내요인에서 찾았습니다. 


만약 비숙련근로자 노동공급이 숙련근로자 노동공급보다 많이 증가한다면, 비숙련근로자 임금은 하락하고 숙련근로자 임금은 상승합니다. 한 연구는 이민자 증가로 인해 비숙련근로자의 상대공급이 증가했음을 보였습니다.


로런스와 슬로터가 더 주목했던 것은 노동수요 측면(labor-demand story) 입니다. 


왜냐하면 숙련근로자들의 상대공급이 증가했음에도 숙련-비숙련 간 임금격차가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1980년대 들어서 비생산근로자가 급증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1983년 미국 내 화이트칼라 직업은 전체 고용 중 67.2% 였으나 1990년 90%로 늘어납니다. 또한, 관리직무는 1983년 24%에서 1990년 45.7%로 증가합니다. 


이렇게 숙련근로자가 늘어났음에도 임금이 올랐다면 이는 숙련근로자들을 향한 노동수요 증대가 더 큰 역할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로런스와 슬로터는 "1980년대 미국 제조업 내 비생산근로자의 상대임금과 상대고용이 모두 상승하였다. 이러한 조합은 노동수요가 비생산근로자로 이동했음을 알려준다"[각주:29]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왜 숙련근로자를 향한 노동수요가 증대되었나?" 입니다. 로런스와 슬로터는 "기술변화가 비생산 근로자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편향되게 이루어졌다."[각주:30]고 대답합니다. 


당시 로런스와 슬로터 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이 기술변화로 인한 노동수요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각주:31]. 버만, 바운드, 그릴리키스는 1993년 논문을 통해 "비생산근로자를 향한 수요변화는 기술변화 때문이다"고 주장하였고[각주:32], 앨런 크루거도 1993년 논문에서 "컴퓨터 사용이 확산됨에 따라 교육프리미엄이 증대되었다. 즉, 편향적인 기술변화가 발생했다"고 말하였습니다[각주:33]


경제학자들은 숙련근로자의 수요를 증대시키도록 일어난 기술변화를 '숙련편향적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SBTC)라고 명명하였고,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경제학계 논의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임금불균등 심화의 원인을 숙련편향적 기술진보에서 찾았으며,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컨센서스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폴 크루그먼, 국제무역과 임금 간 관계를 14년 만에 다시 생각하다



2000년대 들어서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임금불균등 현상의 원인을 국제무역이 아닌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로 꼽았습니다[각주:34]


1990년대 중반 이후 거시경제 상황 변화가 국제무역에서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미국경제는 다시 호황을 기록하면서 국제경쟁력 상실을 둘러싼 우려가 사라졌습니다. 이와중에 1995년 이후 컴퓨터 ·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통신산업(IT)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역시 임금불균등 원인은 기술변화에 있구나" 라는 확신은 더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2008년 폴 크루그먼은 보고서 하나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제목은 <무역과 임금, 다시 생각해보기>(<Trade and Wages, Reconsidered>) 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0년대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35]을 통해 국제무역이론의 흐름을 변화시킨 인물이었고, 당시 국제무역논쟁[각주:36]한복판[각주:37]에 있었습니다. 또한 폴 크루그먼은 앞서 살펴본 로버트 Z. 로런스와 함께 1994년 논문 <무역, 일자리, 그리고 임금>(<Trade, Jobs and Wages>)을 발간하면서 의견을 같이 했었습니다. 그는 1990년대 NAFTA를 둘러싼 사회적논쟁 속에서 "국제무역은 제조업 위축 및 저숙련 근로자 임금 둔화와 관계가 없다"를 주장했습니다.


그랬던 크루그먼이 국제무역과 임금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 보고서를 14년 이후인 2008년에 내놓은 겁니다. 그의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 저임금 개발도상국, 특히 대중국 수입비중이 큰 폭으로 늘었다


  • 위 : 1989~2006년, 미국 GDP 대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한 제조업 상품 비중
  • 아래 : 개발도상국들의 세부 국가로 다시 분리해서 살펴봄. 중국 · 멕시코 · 기타 · 동아시아 4마리 호랑이(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 개발도상국 수입상품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며 2004년 이후로는 선진국 수입상품을 넘어섰다
  •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하였다
  • 출처 : Krugman. 2008. <무역과 임금, 다시 생각해보기>

국제무역이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폴 크루그먼은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이 2배 가까이 늘어나자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1990년대 실증연구는 국제무역이 그다지 대단치 않은 영향만 주었음을 발견했었다. 극도로 낮은 임금을 가진 국가들로부터 수입이 급증했음을 고려할 때, 10년 동안 상황이 변했나?"[각주:38]

크루그먼은 단순히 '개발도상국'과의 교역이 확대된 것이 아니라 '극도로 낮은 임금을 가진 국가들'(very low wage countries)과의 교역량이 늘어왔음에 주목했습니다. 그 대상은 주로 '중국'(China) 이었습니다. 

1990년대 저임금 국가인 멕시코와의 NAFTA 체결도 큰 논란을 불러왔는데, 2000년대 초중반 중국의 임금수준은 멕시코 보다도 현저히 낮았습니다. 2005년 기준 중국 제조업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미국의 3%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의 15%에 불과한 멕시코도 저임금 국가 소리는 듣는 와중에 중국의 임금수준은 더 낮았던 겁니다. 게다가 중국은 수출량을 빠르게 늘려왔고, 미국과 중국 간 교역량은 크게 증가했습니다.

보통 저임금 개발도상국은 신발 ·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상품에 특화하여 수출합니다. 따라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게되면, 미국 저숙련 노동집약산업은 비교열위가 되어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저숙련 근로자들은 임금이 하락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2000년대 중국과의 교역확대는 이전 시대와 달리 미국 내 임금불균등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 그런데.. 대중국 수입상품이 저숙련 노동집약 상품이 아니라 정교한 상품?


  • 1989~2006년,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수입 중 제조업 상품 품목별 비중 증가율
  • 수입이 가장 많이 늘어난 품목은 의외로(?) 컴퓨터 및 전자상품
  • 출처 : Krugman. 2008. <무역과 임금, 다시 생각해보기>

그런데 막상 데이터를 보니 많은 이들의 직관과 달리 저숙련 노동집약상품 수입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1989~2006년, 미국의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수입 중 제조업 상품 품목별 비중 증가율을 보여줍니다. 수입이 가장 많이 늘어난 품목은 가죽 · 섬유 · 목재 등이 아니라 컴퓨터 및 전자상품(Computer and electronic products)과 자동차(Transportation equipment) 였으며, 이들 품목은 숙련노동집약 상품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근거로 "2000년대 개발도상국과의 교역 증대도 미국 내 임금불균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헥셔올린 무역모형과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라 임금불균등이 확대되려면 저숙련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하는 국가와 교역을 해야하는데, 2000년대 미국은 숙련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하는 개발도상국과 무역을 늘려왔습니다. 무역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이론을 적용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 달라진 국제무역 구조인 '수직적 특화'를 집계데이터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폴 크루그먼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요소부존에 기반을 둔 분석은 데이터의 분해 수준(disaggregation)에 제약을 받게 된다.[각주:39]


당시 학자들은 산업을 더 세부적으로 분류한 데이터를 쓸 수 없었습니다. 컴퓨터 및 전자상품 산업에 속해있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숙련노동집약적인 것일까요? 컴퓨터에 들어가는 CPU 등을 설계하는 것과 여러 부품들을 단순 조립하여 컴퓨터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숙련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달라진 국제무역 구조는 이러한 집계데이터의 문제를 심화시켰습니다. 1990년대 들어 세계화가 확산됨에 따라 국제무역 구조는 '수직적 특화'(Vertical Specialization)를 띄게 되었습니다. 수직적 특화란 상품생산 과정이 개별 단계로 쪼개져서 여러 국가에 분포하는 현상(the break up of the production process into geographically separate stages)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은 중국에서 조립되어 수출되기 때문에 집계데이터상 전자품목으로 잡힙니다. 그런데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는 주로 한국과 대만에서 만든 것이고 디자인 · 설계는 미국이 한 겁니다. 중국 내에서 수행한 활동은 단순한 조립일 뿐이며 부가가치 기여도는 적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숙련노동집약적인 전자상품을 수출했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요?


따라서 폴 크루그먼은 "집계데이터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잠정결론 내릴 수 있다. 왜 더 세분화된 데이터를 쓰지 않는가? 그 이유는 현재 데이터의 한계로 인해 할 수 있는 것이 적기 때문이다"[각주:40] 라고 지적합니다.


폴 크루그먼은 데이터의 한계를 재차 지적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데이터의 문제를 보여준다. 개발도상국의 급증하는 수출, 특히 중국의 수출은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각주:41]. (...) 개발도상국이 정교한 상품을 수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개 통계적 착시(statistical illusion)이다.[각주:42]"


▶ 2008년 폴 크루그먼

- "개발도상국은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비숙련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의 한계를 고려하면 실제 중국이 수출하는 것은 비숙련노동집약 상품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있는 일은 개발도상국이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비숙련노동집약 부분을 가져가는 밸류체인의 분해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스톨퍼-새뮤얼슨 효과와 유사한 결론을 가져다줄 것이다"[각주:43] 라고 주장합니다. 


크루그먼의 지적이 타당하다면, 집계데이터를 이용해 헥셔올린 모형을 적용한 기존 연구들은 전부 잘못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미국 저숙련 근로자에 미친 영향은 기존 추정치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과의 무역 확대가 미치는 진정한 영향이 얼마인지는 당시 크루그먼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무역이 임금에 미치는 실제 효과를 수량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현재 주어진 데이터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1990년대 초반 이래 급증한 무역이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뿐이다. 영향을 숫자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정교화 되어가는 국제적 특화와 무역을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라며 한계점을 드러냅니다.




※ 왜 당시 경제학자들은 국제무역의 영향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보았을까?


그런데 크루그먼은 데이터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것을 떠나서 당시 경제학자들의 사고를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당시 경제학자들은 국제무역의 영향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보았을까요? 정말 실증분석의 결과만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요? 혹시 '답정너'일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 비교우위에 입각한 산업간 무역이 초래하는 분배적 영향을 과소평가


발도상국과의 교역확대가 미국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은 비교우위 무역모형에 기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비교우위 무역모형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저숙련 제조업에 특화를 선진국은 고숙련 제조업에 특화를 합니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은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 즉 산업간 무역(inter-industry trade)을 실시하여 '상품의 값싼 이용'이라는 무역의 이익(gains from trade)을 얻게 됩니다. 


이때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이 우려했던 것은 '무역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는가'를 둘러싼 분배적 영향(distributional effects) 였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특화를 한 이후,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경제학자들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비교열위 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면 된다." 국제무역이론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정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현실에서도 이것이 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비교우위는 이익을 비교열위는 손해를 보겠지만, 경제 전체의 총이익은 양(+)의 값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됐든 국제무역은 전체적인 이익을 안겨다주기 때문에 교역을 제한해서는 안되며, 분배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개인적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다들 공유하고 있었으며, 고전 경제학 시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18세기 애덤 스미스[각주:44]는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19세기 데이비드 리카도[각주:45]는 자유무역이 계층별로 서로 다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지주와 근로자가 아닌 자본가의 이익을 높여야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46]헥셔-올린의 비교우위론[각주:47] 모두 "산업간 무역 때문에 비교열위 산업이 손해를 보게되지만, 생산요소는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할 것이며 경제 전체적으로는 양(+)의 이익을 준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특히 헥셔-올린 무역모형은 시장개방이 숙련근로자와 비숙련근로자에게 상이한 영향을 주는 분배적 측면에 주목하긴 했으나, 결국 근로자가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여서 완전고용을 유지한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산업간 무역이 초래하는 분배적 영향을 과소평가 하는 경향을 띄게 되었습니다.


▶ 경제학자들의 노파심,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무역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중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커질 가능성에 대한 노파심 입니다.


이번글에서 소개한 로버트 Z. 로런스의 논문은 잭슨홀미팅에서 발표되었는데, 1983년 당시 잭슨홀미팅의 주제는 <산업변화와 공공정책>(<Industrial Change and Public Policy>) 이었습니다. 


이 주제가 가지는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초반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48]를 통해 소개했듯이, 1980년대 미국은 일본과의 경쟁이 증대되면서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일본기업들이 이득[각주:49]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미국인들은 미국정부를 향해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을 요구하였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정책이 실제로 시행될 가능성을 우려스럽게 바라보았고, 1983년 잭슨홀미팅을 통해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의 폐단을 집중적으로 비판합니다. 


로버트 Z. 로런스가 "절대적인 탈산업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제조업의 상대적 비중감소는 국제무역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탈산업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비숙련) 제조업을 위한 보호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을 구사하면 미국경제의 잠재성장을 훼손시킨다"[각주:50] 라고 주장한 시대적 맥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 또한 다른 글에서 소개하였듯이 보호무역정책이 가지는 문제를 집중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각주:51]했으며, 이번글에서 소개한 2008년 보고서에서도 "이건 분명히 하자. 증가하는 교역이 실제로 분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수입보호를 정당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 분배에 악영향을 미칠 때 최선의 대응은 교역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각주:52] 라면서 노파심을 가득 드러냈습니다.


▶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


제학자들이 무역이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애써 외면하면서, 대중과 정치권은 경제학계와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국제무역 확대가 경제전체적으로 양(+)의 이득을 줄지라도 당장 나에게 피해가 돌아가는데 자유무역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보호무역정책이 실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애써 피해를 축소하려는 모습은 꼴불견 그 자체 였습니다.


이러한 경제학계의 전반적인 모습에 대해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로드릭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대중논쟁장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가로채질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학자들은 국제무역에 있어 한 가지 방향만 말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유무역이 종종 자국의 분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논쟁 장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 그들은 또한 무역의 옹호자로 나설 기회도 잃고 만다." 라며 경제학자들의 노파심이 외면을 불러왔다고 지적[각주:53]합니다. 




※ 국제무역이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상세히 분석하자


다행히도 경제학자들은 2010년대 들어 국제무역이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보다 상세한 분석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보다 상세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폴 크루그먼이 2008년 보고서에서 안타까워했던 '데이터의 한계' 및 '달라진 무역구조에 대한 이해' 등의 문제를 극복한 덕분입니다.


▶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 중국발 쇼크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었다


2010년대 경제학자들은 중국과의 교역확대가 다른 개발도상국과의 교역과는 완전히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자들은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 라고 명명하며, 대중국 수입증대가 미국 지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 나갔습니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근로자가 다른 산업 및 지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주면서, 국제무역이 분배 및 일자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침을 알려주었습니다.


경제학계 내에서 이러한 연구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MIT 대학의 데이비드 오토어(David Autor) 입니다. 앞으로 다른 글을 통해 그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 수직적 특화 · 오프쇼어링 · 글로벌 밸류체인 등 달라진 세계화


  • 21세기 세계경제 구조를 이해하려면 상품(product)의 생산단계(stage), 다양한 직무(occupation)을 세부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 출처 : Richard Baldwin. 2016. 『The Great Convergence』


개발도상국과의 교역확대가 미국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존의 분석은 비교우위 무역모형에 기반해서 이루어졌으나, 오늘날 세계경제 구조는 복잡해졌습니다. 


21세기 세계경제 구조는 '비교우위 상품을 수출 · 비교열위 상품을 수입하는 단순한 무역구조'에서 '상품생산 과정이 개별 단계로 쪼개져서 여러 국가에 분포하는 수직적 특화 · 오프쇼어링 · 글로벌 밸류체인의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숙련집약산업과 비숙련집약산업으로 양분하여 산업간 무역 효과를 분석하는 건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제 동일 산업 내에서 생산과정(production process)과 업무단계(task stage)를 세부적으로 분리하여 살펴야 합니다. 


이것 또한 앞으로 글을 통해 소개할 계획입니다.


▶ 기업 및 사업체 단위 등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



중국발쇼크와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기업(firm) 및 사업체(plant) 단위 등 마이크로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고, 경제학자들은 보다 상세한 실증분석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미국 제조업 고용변화를 기업(frim) 및 사업체(plant) 단위에서 살펴본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제조업을 뭉뚱그려 바라보지 않고, '기존 기업 내 신규 사업체의 진출과 퇴출', '기업 자체의 진출과 퇴출' 등을 세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 중국의 경제발전과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 

→ 200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200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 현상은 중국의 경제발전과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를 마이크로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할 필요성을 높였습니다. 

앞서 1980~90년대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하였는데, 2000년 이후 감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는 1979년 최대 1,950만명 · 1980~90년대 평균 1,700만명대를 기록하였으나, 2007년 1,400만명 · 2019년 현재 1,300만명을 기록하며 25%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중국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어왔으며 세계경제 구조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1.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s://joohyeon.com/271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s://joohyeon.com/266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s://joohyeon.com/268 [본문으로]
  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s://joohyeon.com/272 [본문으로]
  10.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신규산업에 진입하는 기업은 자금을 조달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국내에서 이 산업에 대해 아는 투자자가 없다는 겁니다. 신규 진입기업은 스스로 시장조사를 하여 투자자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줄 유인을 갖게 됩니다. 이때, 시장조사를 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하는 데 반하여 이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기업도 새로운 산업에 먼저 진입하지 않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유익한 산업이 수립되지 않는 경우가 초래되고 맙니다.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s://joohyeon.com/272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1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15. 선거인단 득표는 0 [본문으로]
  16. 모든 경제학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동일한 의견을 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의 컨센서스는 이러했습니다. [본문으로]
  17. Nonetheless, the U.S. did not experience absolute deindustrialization in the 1970s. (...) If growth is resumed, job creation and investment in manufacturing will be stimulated, and reindustrialization will occur automatically. (...) The evidence does not support the contention that major shifts in U.S. industrial and trade policies are required to maintain external equilibrium. [본문으로]
  18. And third, does "deindustrialization" refer to an absolute decline in the volume of output from (or inputs to) manufacturing, or simply a relative decline in the growth of manufacturing outputs or inputs as compared to outputs or inputs in the rest of the economy? [본문으로]
  19.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 https://joohyeon.com/233 [본문으로]
  20. Measured by the size of its manufacturing labor force, capital stock and output growth, the U. S. has not experienced absolute deindustrialization over either 1950-73 or 1973-80. [본문으로]
  21. international trade is neither the only nor the most important source of structural change. And, as I will demonstrate, in many cases trade has simply reinforced the effects of demand and technological change. [본문으로]
  22. Nonetheless, as these data make clear, there has not been an erosion in the U.S. industrial base. The decline in employment shares have been the predictable result of slow demand and relatively more rapid labor productivity growth in manufacturing because of an acceleration in capital formation. [본문으로]
  23. The decline in the manufactured goods trade balance over the past two years is not the result of a sudden erosion in U.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brought about by foreign industrial and trade policies. [본문으로]
  24.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25. 앞에서 이야기했던 'Giant Sucking Sound' [본문으로]
  2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s://joohyeon.com/267 [본문으로]
  27.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28. Thus, the data suggest that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did not have much influence on American relative wages in the 1980s. In fact, because the relative price of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fell slightly, the Stolper-Samuelson process actually nudged relative wages toward greater equality. No regression analysis is needed to reach this conclusion. Determining that the relative international prices of U.S. nonproduction-labor-intensive products actually fell during the 1980s is sufficient. [본문으로]
  29. Thus both the relative wages and the relative employment of nonproduction workers rose in American manufacturing in the 1980s. This combination indicates that the labor-demand mix must have shifted toward nonproduction labor. [본문으로]
  30. One possible explanation for this relative employment shift is that technological change was "biased" toward the use of nonproduction labor. [본문으로]
  31. (사족 : 숙련편향적 기술진보와 임금불균등에 관해서는 로런스&슬로터의 연구도 참고할만 하지만, 대표적인 논문은 따로 있습니다.) [본문으로]
  32. Berman, Bound, Griiches. 1993. Changes in the Demand for Skilled Labor within U.S. Manufacturing: Evidence from the Annual Survey of Manufacturers. QJE [본문으로]
  33. Alan Krueger. 1993. How Computers Have Changed the Wage Structure: Evidence from Microdata, 1984-1989. QJE [본문으로]
  34. 물론 '모든' 경제학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 일레로 1990년대 후반 로버트 핀스트라(Robert Feenstra)는 아웃소싱과 오프쇼어링의 출현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죠. 핀스트라의 논리는 추후 다른 글을 통해 살펴볼 계획입니다. [본문으로]
  35.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s://joohyeon.com/219 [본문으로]
  3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s://joohyeon.com/275 [본문으로]
  3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38. Standard economic analysis predicts that increased U.S. trade with unskilled labor–abundant countries should reduce the relative wages of U.S. unskilled labor, but empirical studies in the 1990s found only a modest effect. Has the situation changed in this decade, given the surge in imports from very low wage countries? [본문으로]
  39. (factor content analyses are limited by the level of disaggregation of the input-output table,) [본문으로]
  40. It seems a foregone conclusion that aggregation is a serious problem here; why not use more disaggregated data? The answer is that within the limits of current data, there is little that can be done. [본문으로]
  41. All these examples suggest a data problem: numbers showing a rapid rise in developing country exports, and Chinese exports in particular, within sectors that are skill intensive in the United States need to be taken with large doses of salt. [본문으로]
  42. The broad picture, then, is that the apparent sophistication of imports from developing countries is in large part a statistical illusion. [본문으로]
  43. Instead what seems to be happening is a breakup of the value chain that allows developing countries to take over unskilled labor–intensive portions of skilled labor–intensive industries. And this process can have consequences that closely resemble the Stolper-Samuelson effect. [본문으로]
  4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s://joohyeon.com/264 [본문으로]
  4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46.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s://joohyeon.com/216 [본문으로]
  47.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4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49.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s://joohyeon.com/275 [본문으로]
  50. if changes in such policies are adopted, they should be made on the grounds that they improve productivity and stimulate economic growth. They should not be undertaken on the basis of fears, based largely upon confusion about the sources of economic change, that policies which appear inadvisable on domestic grounds are required for the purposes of competing internationally. [본문으로]
  5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52. Just to be clear: even if growing trade has in fact had significant distributional effects, that is a long way from saying that calls for import protection are justified. First of all, although supporting the real wages of less educated U.S. workers should be a goal of policy, it is not the goal: for example, sustaining a world trading system that permits development by very poor countries is also an important policy consideration. Second, as generations of economists have argued, the first-best response to the adverse distributional effects of trade is to compensate the losers, rather than to restrict trade. Yet whether trade is, in fact, having significant distributional effects, rather than being an all-round good thing, clearly matters. [본문으로]
  53.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s://joohyeon.com/2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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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Posted at 2019. 1. 2. 12:56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가경쟁력' 위기에 직면한 1980년대 초중반 미국

- 기업가와 경제학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 왼쪽 : 1968-1990년, 미국/일본 GDP 배율 추이
  • 오른쪽 : 1970-1990, 미국(노란선)과 일본(파란선)의 노동생산성 증가율 추이
  • 일본의 급속한 성장은 미국민들에게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시작[각주:1]에서 말했듯이,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은 '국가경쟁력 악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일본은 급속한 성장을 기록하는데 반해 미국은 노동생산성 둔화를 겪었고, 1968년 일본에 비해 2.8배나 컸던 미국 GDP 규모는 1982년 2.0배로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국인 입장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 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증가해온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1980년대 들어서 더 확대되었고, 1985년 GDP 대비 1.15% 수준으로까지 심화되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추월함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하락하여 세계시장에서 미국산 상품을 팔지 못한다는 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 절망과 공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포심은 미국 내에서 보호무역 정책을 구사하라는 압력을 키웠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일본'(Japan) ·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 '하이테크 산업'(High-Tech Industry) · '보호주의'(Protectionism) ·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등 이었습니다.


▶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비교우위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서, 1980년대 초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마틴 펠드스타인은 경쟁력 상실이 아닌 재정적자로 인한 총저축 감소가 무역적자를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각주:2] 


"최근 10년동안 무역수지 흑자에서 무역수지 적자로의 전환은 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잘못 해석 되곤 한다. 사실, 미국 국제수지 구조 변화는 느린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총저축과 총투자가 변화한 결과물이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의 두려움이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일본의 급속한 성장에 대비되는 미국 노동생산성 둔화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의 주장을 읽어봅시다.


장기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비록 최근의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긴 했으나,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각주:3] (...) 


생산성 향상 둔화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 상쇄되지 않을 때에만 국제적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다.[각주:4]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이 미국의 국가경쟁력(competitiveness)이 영구히 손상된 것은 아니다 · 생산성 둔화와 국제시장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없다 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비교우위 원리'(comparative advantage)를 믿기 때문입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각주:5]이 작동할 수 있게끔 하는 원천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6] 입니다. 수입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낮’기 때문이며, 수출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높' 때문입니다.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높아 기회비용이 낮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의미하고,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낮아 기회비용이 높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높은 품목'을 뜻합니다.


따라서 (생산성 변동과 상관없이)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상품 가격이 비싸지면 일시적으로 비교우위를 상실할 수도 있으나, 무역수지 적자가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자기조정기제에 의해서 시간이 흐르면 비교우위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절대생산성 수준이 뒤처지더라도 여전히 다른 국가와의 교역을 할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은 절대우위가 아닌 상대생산성에 따른 비교우위에 따라 이루어지며, 더군다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는 낮은 임금을 통해 상대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펠드스타인이 느린 생산성 향상 속도가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서 상쇄된다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거라고 판단한 이유 입니다.


(주 : 비교우위와 임금의 관계에 대해서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참고)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마틴 펠드스타인은 국가경제 · 거시경제 차원에서 국제무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 잃더라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며,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그에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임금으로 절대생산성 열위에 대응하면 여전히 비교우위는 성립하고 무역을 이루어질테니, 이것 또한 그에게 걱정 사항이 아닙니다.  


그럼 기업가와 근로자도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처럼 국제무역을 바라볼까요?


▶ 기업가 · 근로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75 · 595쪽

  • 왼쪽 :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

  • 오른쪽 : 무역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 수


위의 왼쪽 그래프는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연비가 좋은 일본산 자동차의 수요를 증대시켰고, 1970년대 후반부터 수입자동차 점유율이 대폭 늘어납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수입산 자동차의 미국시장 침투로 인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행정부에 수입제한 등 대책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오른쪽 표는 1990년 기준, 무역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와 비중을 나타냅니다. 수입에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수는 약 130만 명이며, 대부분 중서부(Mid-West)와 남부(South) 등에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러스트벨트 등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은 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습니다(do something).


미국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대책을 요구한 이유는 한번 경쟁에서 뒤처지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영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현장은 국가들의 대리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며 생존을 위해 경쟁력(competitiveness)이 필요한 곳 입니다.  


통화가치 하락 · 임금 하락 등 거시경제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비교우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경제학자의 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실제 현장에서는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번 1등으로 올라선 외국기업은 계속해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에,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책에서만 타당합니다. 


또한, 기업가와 근로자에게 "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나마 잃더라도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국제무역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논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경영하는 · 내가 종사해있는 산업이 비교우위에서 열위로 바뀌어서 피해를 보고 있는데, 다른 산업을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비교열위로 바뀌게 된 산업에 계속 종사하지 말고,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라"고 충고할 수 있지만, 무역의 충격을 받은 기업가와 근로자가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 입니다.


▶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이처럼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는 역할과 일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상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학자가 보기엔 기업가와 근로자는 이동을 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며, 기업가와 근로자가 보기엔 경제학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좋은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신무역이론 및 신경제지리학을 만든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 수상

  • 크루그먼의 1994년 기고문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A Dangerous Obsession>)


1980년대 미국 내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입니다. 그는 1979년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7] · 1991년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각주:8]을 창안한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크루그먼은 미국이 자유무역정책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리적인 주장을 제기하였고, 비경제학자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 그는 현실 속 경쟁에 직면해있는 기업가들이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부 수용하였고,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는 동태적 비교우위 패턴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가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에 의해 결정됐을 수 있으며, 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비교우위를 새로 창출(created)하고 국내기업에게 초과이윤을 안겨다줄 수 있다는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폴 크루그먼이 전통적인 관점에서 국제무역과 비교우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기업가의 관점을 수용하여 만든 새로운 무역이론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경쟁력 : 위험한 강박관념 (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


폴 크루그먼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와 1991년 사이언스지(Science)에 기고한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Myths and Realities of U.S. Competitiveness>)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의 주장과 논리를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사족 : '국제무역을 둘러싼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기 위해 그가 여러 곳에 기고한 글들은 『Pop Internationalism』 라는 제목으로 묶어서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이라는 제목으로 변역 되었습니다.)


잘못된 가설 (The Hypothesis is Wrong)


1993 년 6월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가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공동체 (EC) 회원국 지도지들 모임에서 점증하는 유럽의 실업문제를 주제로 특별 연설을 했다. 유럽 상황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EC위원회의 의장인 들로르가 무슨 말을 할지 상당히 궁금해 했다. (…)


어떻게 말했을까. 들로르는 복지국가나 EMS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유럽 실업의 근본 이유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쟁력 부족(a lack of competitiveness)이며, 그 해결책은 사회간접자본과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계획(investment in high technology)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들로르의 말은 실망스런 책임 회피였지만 놀라운 발언은 아니었다. 사실 경쟁력이라는 용어(the rhetoric of competitiveness)는 전세계 여론지도자들 사이에 유행어가 되었다. -클린턴에 따르면 “국가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들과 같다’ 라는 견해-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정통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 현대 국가라도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 누군가가 이 명제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대체로 들로르가 유럽의 문제에 대해 내린 것과 같은 식으로 미국의 경제 문제를 진단한 이런 사람들 중 대다수가 지금 미국의 경제 및 무역정책을 수립하는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들로르가 사용한 용어는 자신과 대서양 양안의 많은 청중들에게 편리할 뿐 아니라 편안한 것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진단은 유럽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매우 잘못된 것이었고 미국에서의 유사한 진단 역시 오진이었다.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의 경험적 문제로 보아도 이 가설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that hypothesis is flatly wrong).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크루그먼은 글의 시작부터 정치인 · 언론인 · 대중적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비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생각하였고 첨단기술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무역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크루그먼은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의 논리를 좀 더 들어보죠.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competitiveness)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생각 없이 그 말을 쓴다. 그들은 국가와 기업을 비슷하게 보는 것을 분명히 합리적 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 GM)사가 북미 미니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는지 묻는 것과 원칙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국가경제의 손익을 그 국가의 무역수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즉 경쟁력을, 해외에서 사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팔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무역흑자가 국가의 취약함을 나타내고 적자가 오히려 국가의 힘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


국가들은 기업처럼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코카콜라와 펩시는 거의 완벽한 경쟁자다. 코카콜라 매출의 극히 일부만이 펩시 노동자틀에게 판매되고, 코카콜라 노동자들이 구입하는 상품 중 극히 일부만이 펩시의 제품이다. 그 부분은 무시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펩시가 성공적이면 그것은 대체로 코카콜라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주요 산업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는 상품을 팔기도 하지만, 서로의 주요 수출시장이 되기도 하며 서로 유익한 수입품의 공급자이기도 하다. 만약 유럽 경제가 호황이라 해도 반드시 미국의 희생으로 그렇게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유럽 경제가 성공적이면 미국경제의 시장을 확대시켜 주고 우수한 제품을 낮은 값에 팔아줌으로써 미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그래서 국제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International trade, then, is not a zero-sum game)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 크루그먼은 '경상수지 흑자가 국가의 부를 나타내는 게 아니다'[각주:9]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상호이익(mutual gain)을 안겨다준다'[각주:10]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본 블로그를 통해 누차 말해왔듯이, 그리고 이전글에서 마틴 펠드스타인이 주장[각주:11]했듯이, 경상(무역)수지는 거시경제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지은 결과물일 뿐입니다. 총저축이 총투자보다 많으면 무역수지 흑자, 적으면 적자가 나타납니다. 여기에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중요한 요인이 아닙니다.


게다가, 무역수지 적자는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며 역설적으로 국가의 강함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는 금융·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과 동의어이며 이는 대외로부터 계속 돈을 빌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약한 국가라면 다른 국가에게 계속해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된다는 것(sustained)은 그 국가의 힘을 드러내줍니다.[각주:12]


(참고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또한, 비교우위는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상관없이 모든 국가에게 '값싼 수입품의 이용'이라는 상호이익을 안겨다줍니다. 또한, 교역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서로의 수출국이며 동시에 수입국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경제호황은 수출시장 확대를 가져다 줍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비교되는 상대국의 가파른 성장은 무언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끔 만듭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 경쟁력의 신화 (Myth of Competition)


먼저 전세계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과 외국이 모두 연간 1 %씩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생활수준과 실질임금 등이 어느 곳에서나 연간 약 1%씩 상승한다는 생각은 합리적인 듯하다.


그러면 미국의 생산성은 계속 연간 1%씩 증가하는 데 반해 다른 나라들의 생산성 증가는 빨라져서 예컨대 연간 4%씩 높아졌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미국국민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미국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경쟁자보다 생산성이 뒤지는 회사는 시장을 잃고,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문을 닫을 것이다. 이와 똑같은 일이 국가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사업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에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작용한다. 이 힘은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라도-비록 그 생산성과 기술 · 제품의 질이 다른 나라에 뒤진다고 하더라도-일정 범위의 상품을 계속해서 세계시장에 팔 수 있게 하고, 또 장기적으로는 무역수지의 균형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역 상대국들보다 생산성이 현저히 뒤지는 나라일지라도 일반적으로 국제무역에 의해 형편이 더 나아지지, 나빠지지는 않는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6장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


→ 크루그먼은 '미국의 생산성이 연간 1%씩 증가하는데 반해 다른 나라가 연간 4%씩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교역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번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1980년대 초중반 미국민들의 큰 우려는 '미국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일본 그리고 대일무역수지 적자 심화' 였습니다. 그러나 크루그먼 주장은 생산성 둔화와 무역수지 적자가 인과관계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 이유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00여년 전 금본위제 시대에 살았던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나라는 금과 은화의 지속적인 유출로 인해 물가와 임금이 하락하고 그 결과 적자 국가에서는 상품과 노동력의 가격이 저렴해져서 무역적자가 바로잡힌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가격-정화 흐름 기제'(Price–specie flow mechanism) 입니다.


오늘날 조정과정은 임금과 물가의 직접적인 변화 대신 환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무역적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수출을 늘리고, 무역흑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수입이 늘어납니다. 따라서, 어느 나라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다 하더라도, 환율 조정(혹은 임금 조정)을 통해 상대생산성 우위와 비교우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도 여전히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원리에 따라 수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생산성이 연간 4%씩 성장할 때 자국인 미국도 4% 아니 그 이상 성장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이 다시 말합니다.


●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 상실) 문제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대부분의 저자들은 경쟁력을 긍정적인 무역실적과 다른 요인의 복합적인 것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특히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경쟁력의 정의는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로라 D. 타이슨의 저서 『누가 누구를 때려부수는가?』(『Who's Bashing Whom?』)에서 제시한 노선을 따른다.


경쟁력은 "우리 시민들이 향상되고 있으며, 또 지속 가능한 생활수준을 누리면서 국제경쟁의 시련에 견디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능력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생각하고 현실에 적용해 본다면 이 정의가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타이슨의 정의에 기초한 '경쟁력'이 거의 전적으로 국내 요인, 주로 생산성 증가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즉 다른 나라에 대한 상대적 생산성 증가가 아니라 국내 생산성 증가가 바로 문제인 것이다(That's domestic productivity growth, not productivity growth relative to other countries)


환언하면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경쟁력'으로 '생산성'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며 국제경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


물론 위상과 세력에 관한 경쟁은 언제나 존재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 상승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러나 일본의 성장이 미국의 위상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미국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린다고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경쟁력 이라는 용어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후자다.


물론 단어의 의미를 자신의 마음에 맞게 정하는 입장을 취할 수는 있다. 원한다면 ‘경쟁력’ 이라는 용어를 생산성을 의미하는 시적 표현방법으로 시용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국제경쟁이 경쟁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실제로 밝혀야 한다. 그러나 경쟁력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 치고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생활수준(standard of living)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성장이론이 솔로우모형[각주:13]부터 P.로머의 R&D모형[각주:14]으로 발전할때까지, 모든 경제학자들이 부정하지 않는 진리 입니다. 


그러나 크루그먼이 지적한 것처럼,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어 생활수준 향상이 더뎌지고 있다"와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타국보다 느려서 국가경쟁력이 훼손되고 세계시장 속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완전히 다릅니다. 


1980년대 미국의 생산성 둔화는 그 자체로 미국인의 생활수준 향상을 더디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지, 일본의 생산성 증가율에 비해 낮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미국이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이지,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걱정해야 할 건 '타국과의 경쟁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미국 생산성 자체의 둔화'(productivity slowdown) 입니다. 이 둘의 구별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미국이 당면한 문제가 전자라고 판단한다면 각종 보호무역 조치로 일본제품의 수입을 막거나 국내 생산자에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시행될 수 있지만, 후자라고 판단하면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국내생산성 향상을 위한 R&D 지원 및 창조적파괴를 위한 시장경쟁체제 조성이 나오게 됩니다.  


▶ 신성장이론이 말하는 '생산성 향상' 방법 두 가지


: 첫째,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 둘째,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보호주의 압력을 경계하는 경제학자들 그런데...


당시 마틴 펠드스타인 · 폴 크루그먼 같은 일류 경제학자들이 무역수지 결정과정 · 경쟁력에 대한 개념 · 생산성 향상의 방법 등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한 이유는, 미국의 경기침체와 일본의 경제성장이 보호주의 무역정책에 대한 요구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상황 인식으로 미 행정부가 보호무역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을 경제학자들은 크게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무역수지' · '국가경쟁력' 등을 주제로 한 경제학자들의 설명이 와닿으시나요?


머리로는 "그래 중요한 건 일본의 성장이 아니라 우리의 생산성 향상이지"라고 다짐해도, 상대적 위상이 하락하고 있는 걸 보는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무역수지 적자는 경쟁 패배의 산물이 아닌 총저축과 총투자의 결과물이지"라고 받아들여도, 수입경쟁부문(import-competing sector)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경영자에게는 하나마나한 소리 입니다.  


게다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R&D가 중요하다면 정부가 첨단산업(high-tech)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쓰면 안되냐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논리로 로라 D. 타이슨은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을 주장했고,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유발시킵니다. (주 :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살펴볼 계획 입니다.)


결정적으로, 세계시장에서 상대기업 보다 더 많은 양의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기업가에게 '비교우위 · 열위에 따른 특화'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왜 기업가들은 전통적인 경제학이론과는 다르게 무역현장을 바라볼 수 밖에 없을까요? 역설적이게도 이에 대한 답을 폴 크루그먼이 제시해 줍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 - 한번 성립되고 나면 자체적으로 강화되는 비교우위


기업가들이 국제무역현장을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중요한 곳으로 인식한 이유는, 한번 외국기업에게 경쟁에 밀려 점유율을 내주면 다시 되찾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통화가치 하락 및 임금인하로 비교우위를 다시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 속 기업가들은 '잘못된 선택이나 불운이 영구적인 시장점유율 손실로 이어진다'(a wrong decision or a piece of bad luck may result in a permanent loss of market share)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한번 잃어버린 시장점유율 혹은 비교우위를 다시 획득하기가 힘든 것일까요? 


  • 폴 크루그먼의 1987년 논문. 

  •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학습효과에 의해 자체강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 <The Narrow Moving Band, The Dutch Disease, and The Competitive Consequences of Mrs.Thatcher - Notes on Trade in the Presence of Dynamic Scale Economies>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리카도헥셔-올린의 비교우위론은 '한 국가의 특화 패턴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대생산성 혹은 부존자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상대생산성 우위에 있는 자국 상품 및 풍부한 부존자원이 집약된 자국 상품은 외국에 비해 더 싸기 때문에 특화와 수출을 합니다. 만약 일시적으로 비교우위 패턴에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통화가치와 임금 하락이라는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폴 크루그먼은 일시적 충격 이후에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바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의 존재 때문입니다. 


생산의 학습효과란 말그대로 '생산을 통해 학습한다'는 의미 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현재의 생산성은 과거 생산을 통해 학습한 지식이 만든 결과물이며, 미래의 생산성은 현재 생산과정을 통해 획득하게 된 노하우가 만들어낼 결과가 됩니다.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최신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낼 수 있는 이유는 30년 전부터 축적한 경험이 있은 덕분이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이유는 현재 독보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계속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루그먼은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이 현재의 생산성을 결정하 동태적 규모의 경제' (dynamic economies of scale in which cumulative past output determines current productivity) 형태로 생산의 학습효과를 경제모형에 도입하였습니다. 


일반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규모'가 현재 생산량 크기를 의미했다면, 여기서 '규모'는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 크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생산량이 많은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부터 많은 양을 생산하여 지식을 많이 축적한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학습효과로 인하여 한번 고착된 특화 패턴은 자체적으로 강화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기존에 만들지도 않았던 상품을 뚝딱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노하우도 없기 때문입니다. 생산 가능한 상품은 예전부터 만들어와서 공정과정에 대한 학습이 되어있는 것들 입니다. 따라서 생산자는 예전부터 만들어오던 것을 생산하게 됩니다.  


즉, 폴 크루그먼은 학습효과로 인하여 "일단 한번 만들어진 특화는 그 패턴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상대적 생산성 변화를 유도한다"(a pattern of specialization, once established, will induce relative productivity changes which strengthen the forces preserving that pattern.) 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기업들이 외국 라이벌 기업에게 한번이라도 시장을 내주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외국 기업은 독보적 지위를 바탕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은 경험을 쌓을테니, 시장을 다시 되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 외국 기업은 기존에 1위였던 미국 기업의 시장을 어떻게 탈취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외국 정부의 보호정책 덕분입니다. 


만약 외국 기업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생산에 착수하고 관세라는 보호막에 힘입어 자국 내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보호 기간 중에 쌓은 지식과 노하우로 언젠가는 상대적 생산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폴 크루그먼은 일본기업의 성공 요인을 일본정부의 보호정책에서 찾습니다. "일본의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정부의 산업정책,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 사용이 꼽혀진다. (...) 나의 모형은 이를 설명해준다. 일시적인 보호가 비교우위를 영구히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It is possible in this model - within limits- for temporary protection to permanently shift comparative advantage.)


미국 기업이 직면해 있는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것이다"라거나 "미국은 자유무역 정책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 라는 학자들의 주장은 기업가가 보기엔 세상물정 모르는 태평한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비교우위가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이 끼친 영향들


'생산의 학습효과로 인해, 일단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은 또 다른 통찰을 낳았고, 보호무역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첫째, 현재의 특화패턴은 '역사적 우연성'에 의해 임의로 성립된 것일 수도 있다


리카도 및 헥셔-올린의 전통적인 비교우위론은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특성(underlying characteristics of countries)으로 인해 자연적인 특화패턴(natural pattern of specialization)이 성립되었다고 말합니다. 특정 상품 생산에 필요한 기술수준을 갖춘 국가는 이를 특화하고, 특정 상품에 생산에 투입되는 부존자원을 많이 보유한 국가는 이를 특화합니다.


그런데 생산의 학습효과가 비교우위 및 특화패턴을 자체 강화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국가들의 비교우위와 특화는 단지 과거부터 많이 생산해온 덕분에 가진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그럼 과거부터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 연유는 무엇이냐 따지면,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본질적으로 어떤 국가가 현재 그 상품에 우위를 가지고 있을 이유는 하나도 없고, 단지 과거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여 많이 만들어왔다는 이유 뿐입니다.


실 폴 크루그먼의 통찰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유치산업보호론을 소개한 글을 통해,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했다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통찰[각주:15]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를 통하여,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라고 말하며 '학습곡선'(learning curve) 개념을 추상적으로나마 도입하였고, '단지 먼저 시작한 덕분에 경험을 많이 축적'했다고 지적하며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으로 현재의 비교우위가 형성 됐을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아직 시작을 하지 않은 국가가 시도와 경험을 축적하면, 단지 먼저 시작했을 뿐인 국가보다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만약 잠재적 능력을 갖춘 생산자가 외부성으로 인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인 유치산업보호 정책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폴 크루그먼이 강조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도 유사한 함의와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의 정당성 입니다.


둘째, 미국정부는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을 통해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국제무역 패턴이 국가의 본질적 특성이 아닌 역사적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정부가 일시적으로 개입하여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정부가 영구히 개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단 환경만 조성해주고 빠져도 무방합니다. 환경이 한번 조성되고 나면, 기업이 생산을 통해 얻게 된 지식으로 계속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가경쟁력 쇠퇴'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매혹적인 논리였습니다.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할 때 항상 제기되었던 반박은 "인위적인 정부 개입은 시장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였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처음에만 조금 도움을 주면, 그 후에는 경쟁력을 회복한 미국기업이 알아서 할 것이다"라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생산을 통해 얻게 되는 '학습'(learning) · '지식'(knowledge)의 중요성은 전자 · 반도체 등 최첨단산업(high-tech industry)을 집중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할 필요를 정당화 해주었습니다. 


최첨단산업은 대규모 R&D 투자가 수반되고, 그 결과로 얻게 될 노하우는 다른 산업에까지 파급영향(spillover)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생산성 향상을 위한 R&D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에 더하여, 따라서 최첨단산업을 지원했을 때 돌아올 이익은 매우 크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로라 D. 타이슨은 미국 최첨단산업을 보호 · 지원하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주장했고,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한층 더 격화되었습니다.


셋쩨, 일본 첨단산업의 부상을 막기 위해서 '공세적인 무역정책'이 요구된다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이 "미국정부가 미국기업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이라면, "미국정부는 일본기업이 자국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는 논리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크루그먼이 짚어주었듯이, 일본정부는 자국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하여 비교우위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 비교우위를 창출(created) 했습니다. 통상산업성(MITI, 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으로 대표되는 일본 관료조직은 수입시장을 닫은 채 자국 자동차 · 철강 · 전자 ·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했습니다. 


이는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 것일뿐더러 일본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위였기 때문에, 미국기업들은 자국행정부를 대상으로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unfair trade practice)을 방관하지 마라"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목표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를 통해 '평평한 경기장'(level playing field)을 만들어서 국가 간에 '공정한 무역'(fair trade)을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 폴 크루그먼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과 기타 다른 연구를 통해 전략적 무역이론의 토대를 만들었으나, 전통적인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는 전략적 무역정책 · 산업정책 · 유치산업보호 정책 · 보호무역을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1987년 논문 말미에서 "약탈적 무역 및 산업정책이 가능할 수 있으나 (...) 바람직한 정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노파심을 표현했습니다. 정부의 일시적인 지원으로 비교우위가 창출되고 영구히 변화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이로운지 해로운지 여부는 소비자후생도 같이 고려하여 평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적 우연성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미래 기대(expectation) 영향이 더 클 경우 과거부터 걸어온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날 수도 있음을 짚어주었습니다. 


크루그먼은 단지 기업가가 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수용하여 '영원히 시장을 뺏기게 될 이론적 가능성'을 이야기 하였을 뿐인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전통적인 자유무역정책에 반하는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실행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개입주의 무역정책의 근거가 된 또 다른 논리는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이 글에서 몇번이나 언급했던, 전략적 무역정책은 "시장을 보호하면 국내 생산자가 학습을 할 것이다"는 소극적(?) 주장을 넘어서서 "관세나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의 초과이윤을 뺏어와 국내 기업에게 줄 수 있다"는 적극적인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전략적 무역정책'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This wider approach reveals that much of the concern about long-run competitiveness is based on misperceptions. Although the recent appreciation of the dollar has created a temporary loss of competitiveness, the United States has not experienced a persistent loss of ability to sell its products on international markets; [본문으로]
  4. there is no necessary relation between productivity and competition in international markets. Slow growth in productivity only hampers a country'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if it is not offset by correspondingly slow growth in real wages.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9.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1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12. 물론, 대부분 금융 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은 지속불가능 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본문으로]
  13.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14.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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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Posted at 2018. 9. 30. 14:34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무엇이 대한민국과 주요 중남미 국가들 간에 큰 격차를 초래했을까


  • 1953~2014년 한국 및 주요 중남미 국가들의 실질 GDP 변화 추이 
  • 측정단위 : 2011년 미국 달러 PPP 기준, 실질 GDP
  • 출처 : Penn World Table version 9.0


1950~60년대 한국은 주요 중남미 국가들보다 가난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멈춘 1953년 한국의 GDP(2011년 미국 달러 PPP 기준)는 21억 달러 였고, 아르헨티나 · 칠레 · 베네수엘라는 각각 49억 · 29억 · 39억 달러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오늘날 한국의 경제규모는 대부분 중남미 국가들보다 월등히 큽니다. 2014년 한국의 GDP는 1조 7500억 달러인 반면, 아르헨티나 · 칠레 · 베네수엘라는 각각 8,600억 · 3,800억 · 4,700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무엇이 대한민국과 주요 중남미 국가들 간에 큰 격차(divergence)를 초래한 것일까요? 


우선, 한국과 중남미 국가들이 어느 시점부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 왼쪽 : 1953~69년 한국 및 주요 중남미 국가들의 실질 GDP 변화 추이
  • 오른쪽 : 1970~90년 한국 및 주요 중남미 국가들의 실질 GDP 변화 추이 


왼쪽 그래프를 살펴보면, ▷한국과 중남미는 1960년대 초반까지는 비슷한 추세를 보이다가, 한국이 1963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오른쪽 그래프에 나오듯이, 한국은 1970년대에 독보적인 성장세를 이어갑니다. 1979년 이후 잠깐 주춤하다 1986년부터는 중남미 국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길을 걷게 되죠. 


한국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는 다들 알고 계십니다. 


1961년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정권이 기존 경제개발 계획을 수정한 이후, 한국은 수출진흥형 산업화 전략(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습니다. 박정희정권은 수출기업에 각종 특혜를 제공해주며 수출을 독려하였습니다. 또한 기업이 특혜를 악용하여 국내시장에서 독점자로서만 행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규율도 부과했습니다[각주:1]


1970년대부터는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하였고, 제조업 설비투자에서 중화학 공업 비중이 76%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수출액에서 제조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3년 15%에서 1995년 92%로 커졌죠. 


이러한 수출진흥형 산업화 및 중화학 공업화 전략이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1979년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중화학 공장들의 가동률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당시 한국은 시장의 자연발생이 아닌 정부의 인위적인 정책으로 중화학 공업을 육성했던지라, 비효율 및 중복투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1979년 미 연준 의장이 된 폴 볼커가 통화긴축 정책을 펼치면서 국제적 고금리 환경이 조성된 결과, 중화학 공업화를 위해 많은 외채를 끌어왔던 한국은 외채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지속적으로 수출증가 및 대외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해온 덕분에 위기에서 신속히 탈출할 수 있었고, 1986년 3저호황에 힘입어 또 다시 고도성장기를 경험한 결과, 중남미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제수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주요 중남미 국가들 내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했던 걸까요?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한국과는 정반대의 산업화 전략을 선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참담한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번글에서는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산업화 전략이 무엇이며 ·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떻게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이란 무엇인가

(Import-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식민지 해방 이후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산업화 전략은 '수입대체'(Import Substitution) 였습니다. 입대체란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던 재화 및 서비스, 특히 제조업 수입상품을 국내에서 만든 생산품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무역을 통해 외국에서 수입해오던 상품을 더 이상 수입하지 않고, 대신 국내에서 직접 만든다는 말입니다.


중남미가 선택한 수입대체 전략이 한국의 수출진흥 전략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수출은 해외에 판매하여 돈을 벌고, 수입대체는 해외로부터 물건을 구매하지 않으니 돈을 아낀다는 점이 다른 걸까요? 그런 식으로 무역과 성장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덤 스미스가 중상주의를 비판했던 논리[각주:2]를 소개할 때 말했듯이, 화폐와 금은 등의 재화를 축적하는 것은 현대자본주의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각주:3].


수출을 증가시킨다는 말은 비교우위를 가지는 부문에 더 집중한다는 뜻이며, 이를 통해 자원을 생산성이 높은 곳에 집중하여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습니다[allocation & efficiency]. 수출을 통해 산업화를 달성한다는 말은 해외시장에 물건을 팔아서 얻게 된 외화로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설비 · 기계 등 자본재를 수입해와 물적자본을 축적한다는 의미입니다[dynamic gain]. 


또한, 무역을 통해 시장크기가 확대됨으로써 규모의 경제도 달성할 수 있으며[scale effect], 해외기업과의 접촉 및 경쟁증대로 국내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습니다[technology diffusion & competition effect].       


이렇게 많은 사항들을 관통하는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의 핵심은 '비교우위에 특화하여 교역량을 늘려나갔다(수출+수입↑)'는 점에 있습니다. 


만약 비교우위에 집중하여 수출을 늘려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와 교환할 상품도 없으니 수입도 줄어들 뿐더러 아예 교역 자체가 어렵습니다. 다른나라와 무역을 하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질 뿐더러 생산자들도 외국 자본재를 싸게 들여와 사용할 수 있을텐데, 무역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정태적 이익(static gain)을 누리지 못합니다. 


즉, 한국은 앞선 글들[각주:4]을 통해 살펴보았던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점'[각주:5]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경제발전 전략을 선택했던 겁니다.


반면, 중남미가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비교우위 원리를 따르지 않고 자급자족 경제를 운용하는 것(수출+수입↓)'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을 직접 만들지 않고 외국으로부터 수입해 온다면 더 싼 가격에 상품을 이용하게 되고, 국내의 한정된 자원을 보다 효율적인 곳(비교우위를 가진 수출부문)에 쓸 수 있는데, 수입대체 전략은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입과 수출 모두 위축되고 맙니다.


왜 중남미 국가들은 이렇게 미련해 보이는 결정을 했을까요?


이전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호주가 보호무역으로 이득을 취한 경우를 보면, 비교우위론과 자유무역을 거부한 중남미 국가들의 선택을 무조건 미련하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겁니다.


1920~30년대 호주는 "영국과는 정반대 상황에 놓여있는 호주는 보호무역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자유무역을 거부했습니다. 호주는 영국과는 정반대로, 비교열위가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이고 비교우위가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인 국가였습니다. 


호주가 우려했던 것은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산업(primary sector)에 특화하여 성장할수록, 수확체감 산업만 발전하여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 교역조건이 하락하여 생활수준이 감소할 가능성' 이었습니다.  


이때, 수입상품에 관세(import tariff)를 부과하면,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라 '근로자 임금 증대를 통한 소득분배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교역조건 개선으로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보면,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정책이 '영국과는 다른 상황에 처한 국가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선택으로 느껴지죠.


그러나 '단순히 수입관세 부과를 통해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것(import tariff) 혹은 일시적으로 무역장벽을 높이는 것(temporary protection)'과 '아예 무역체제를 대내지향적으로 만드는 것(inward-looking trade regime)'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행한 수입대체 전략은 다른 국가들과의 교역을 중단하여 대외의존도를 줄이는 '전통적인 anti export bias of protectionism' 이었습니다. 이는 호주의 보호무역주의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대외교역에 보였던 태도가 얼마나 페쇄적이었는지는 한국과 비교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이 수출진흥형 전략을 택했다고는 하나, 100% 자유무역을 실시했던 것은 아닙니다. 무역개방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 보호했으며, 미래를 위해 발전시켜야겠다고 판단한 산업은 전략적으로 선별하여 키워나갔습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밀어부친 중화학 공업화가 그 예시입니다. 


이렇게 한국은 부분적인 수입대체를 시행했음에도, 중남미와는 달리 대외적으로 개방된 무역체제를 항상 추구하면서 교역량을 증가해 나갔습니다.


중남미 국가들은 왜 해방 이후 아예 문을 꽁꽁 잠그는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모든 선택에는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논리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 왜 중남미 국가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했나

- ① 산업화를 위해서 제조업을 육성해야 한다

- [유치산업보호론], 제조업 육성을 위한 국가개입을 정당화 하는데 이용되다


호주가 영국과는 다른 길을 간 배경이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남미 국가들이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한 데에는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경제구조를 살펴보고 향후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이후에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자유무역체제를 멀리한 논리와 이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비교우위에 따라 특화해야 하는 산업은 영원히 고정되는가

- 현재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이 아니라 다른 산업을 성장 시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개발도상국이 꿈꾸었던 발전된 경제의 모습은 허허벌판이었던 지역에 공장이 들어서고 공산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울산에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건설되고 선박과 자동차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이제 한국경제도 발전했다" 라고 우리 윗세대분들이 느꼈던 그 감정입니다.


중남미 국가들은 '산업화 = 제조업 발전'으로 인식했습니다.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중남미 국가들의 경제구조와 비교우위는 제조업이 아니라 농업 · 원자재 등과 같은 1차 상품 생산에 있습니다. 이들은 제조상품을 생산해낼 능력이 없었고, 더 나아가서 생활수준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원인으로 '1차 상품 생산에 치중된 경제구조'를 꼽았습니다. (developing economies' production structures were heavily oriented toward primary commodity production)


이런 상황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정책을 실시하면 "우리 중남미 국가들은 평생 1차 상품 생산에만 특화하는 것 아니냐"(developing countries would forever specialize in primary commodities)는 우려를 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화를 위해서는 독특한 경제구조에서 탈피하여 제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오히려 "1차 상품 생산에 더욱 특화해야 하며, 더욱이 공산품은 평생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게 이익이다" 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보이는 비교우위론. 당시 중남미 국가들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할 수 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 왼쪽 : 알렉산더 해밀턴 (Alexander Hamilton), 1755 or 1757~1804

  • 오른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 (Friedrich List), 1789~1846


▶ 유치산업보호론 (Infant-Industry Argument)

- 정부의 일시적인 개입으로 비교우위를 인위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


이때, [유치산업보호론]은 중남미 국가들의 불만을 정당화 시켜주는 이론으로 보였습니다. 


19세기 초,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 등은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 있는 국가에서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일시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유무역이론에 반하는 논리를 개발해 냅니다. 여기서 정부의 시장개입수단은 외국 제조업 상품 수입제한 · 국내 제조업 기업 보조금 지원 · 국영기업 육성 등입니다.


유치산업보호론(Infant-Industry Argument)은 말그대로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의 상태에 놓여있는 산업을 발전과정 초기에 외국과의 경쟁에서 보호함으로써 육성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되지만, 초기에는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경쟁에서 패배하고 말겁니다. 이때 정부가 외국 제조업 상품의 수입을 제한하고, 국내 제조업 기업에게 보조금을 제공하거나 국영기업을 육성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수입대체 전략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정부의 일시적인 개입(temporary intervention)'으로 '비교우위 산업을 인위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creation)는 것이 핵심이지, 수입대체 전략처럼 무역의존도를 줄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수입대체 전략을 옹호하는 측은 '제조업 육성을 위한 보호정책의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치산업보호론의 논리를 차용했습니다.(appeal for import substitution to yield a justification for protection of newly established manufacturing industries in developing countries.)


(주 : 유치산업보호론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더 깊이 다룰 계획입니다.)




※ 왜 중남미 국가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했나

- ② 1차 상품 특화는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

- [궁핍화성장]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은 교역조건 악화를 초래
  •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자국 RS 이동은 세계시장 RS도 이동시켜 세계시장 가격을 변화시킴


비교우위에 특화하여 생산을 늘려나갈 때, 교역조건이 갈수록 악화되면 어떻게 하나

- 석유 · 농산품 같은 1차 상품(raw material)을 생산하는 국가에게 비교우위론은 해롭다


중남미 국가들이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한 또 다른 이유는 '1차 상품 생산 확대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the terms of trade had inexorably deteriorated against primary commodities and would continue to do so)에 있습니다.


이것은 지난글에서 살펴본 호주가 우려했던 사항[각주:6]과 동일합니다. 


자국의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은 비교우위를 가졌던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을 증가시켜 교역조건을 악화시킵니다. 이때 자국이 세계시장에 조그마한 영향만 미친다면 자국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은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분의 1차 상품은 수출국가의 공급에 따라 세계시장의 공급이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교역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게다가 '1차 상품 수요에 대한 세계 소득 탄력성은 낮기 때문에 1차 상품에 특화하면 수출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지 않을 것'(the global income elasticities of demand for primary commodities were low. export earnings would not grow very rapidly)이라고 중남미 국가들은 판단하였고 이는 수출비관주의(export pessimism)로 이어졌습니다 


이말인즉슨, 다른 나라들이 경제성장을 달성하여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1차 상품 수요는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개인을 예시로 들면,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했을 때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전자제품 · 자동차 등 제조업 상품에 대한 지출이지, 식료품 등 원자재에 대한 지출은 먹는 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변동이 적을 겁니다. 따라서 공산품이 아니라 농산품을 판매하는 사람은 수출로 인해 얻게되는 이익이 느리게 증가하고 맙니다.


  • 왼쪽 : 해리 G. 존슨(Harry G. Johnson), 1923~1977

  • 오른쪽 :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1934~


▶ 궁핍화 성장 (Immiserizing Growth)

- 경제성장이 교역조건을 악화시켜 후생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가 교역조건을 악화시켜 오히려 후생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는 논리는 다시 생각해보면 매우 독특합니다. 특화로 인해 비교우위 산업이 더 발달하는 경제성장(biased-growth)이 이루어졌는데, 소득 및 후생수준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궁핍화 성장'(Immiserizing Growth) 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궁핍화 성장 논의의 발전에는 2명의 경제학자가 기여를 했습니다.


경제학자 해리 G. 존슨(Harry G. Johnson)은 1955년 논문 <경제확장과 국제무역>(<Economic Expansion and International Trade>)을 통해서, (우리가 지난글 교역조건 논의에서 살펴봤던[각주:7]특정부문 성장에 따른 교역조건 변화를 설명했습니다(the impact of the expansion on the terms of trade). 수출편향 성장은 교역조건이 감소하고, 수입편향 성장은 교역조건이 증가합니다. 


또 다른 경제학자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1958년에 두 개의 논문 <궁핍화성장: 기하적 관점>(<Immiserizing Growth: A Geometrical Note>)과 <국제무역과 경제확장>(<International Trade and Economic Expansion>)을 통해서, 교역조건 변화가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습니다(the resultant change in the welfare of the trading nations). 이때, 제성장이 교역조건 악화를 초래해 후생손을 불러오는 '궁핍화성장'(Immiserizing Growth) 가능성을 제기하여 경제학계에 이름을 남겼죠.


즉, 해리 G. 존슨의 1955년 논문은 어느 부문이 더 성장하느냐에 따라 교역조건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느냐(direction)를 설명했다면, 자그디쉬 바그와티의 1958년 논문은 이러한 교역조건 변화가 후생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는지(extent)를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기반으로, 중남미 국가들은 비교우위를 띄는 산업(=1차 산업)이 확장하여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교역조건이 악화되어 국민들의 후생은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차 상품 특화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고, 중남미 국가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대신할 무역체제를 선택하게 됩니다.




※ 왜 중남미 국가들은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했나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축적은 수입대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앞서 살펴본 '중남미 국가들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한 이유'는 그저 '왜 이들이 자유무역을 꺼리는지에 대한 합당한 논리(?)'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자유무역론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의 사례처럼) 적절한 보호무역정책을 구사하면서도 대외지향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차츰차츰 교역량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중남미 국가들은 아예 대외의존도를 확 줄여버리는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한 것일까요?


이제 '자유무역을 멀리할 수 밖에 없었던 소극적 이유'에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한 적극적 이유'를 알아봅시다.   


경제성장 달성에 있어 중요한 건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각주:8] 입니다.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product)을 늘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계 · 설비 등의 물적자본(physical capital) 축적이 생산 증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저개발국 모두가 그러하듯이) 당시 중남미는 이렇다할 물적자본이 없었습니다. 대신 수많은 잉여 근로자(surplus labor)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즉, 자본은 희귀한 요소(scarce factor)이고 근로자는 자유재(free good) 입니다. 그렇다면 기계 대신 수많은 근로자를 생산과정에 투입하여 생산량을 늘려가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투입량을 증가시켜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물적자본에 비해 근로자의 한계생산성은 낮기 때문에, 노동투입량을 늘린다고 해서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물적자본 없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기술 · 교육 수준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당시 중남미 여건에서는 오랜 시일이 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결국 "경제성장을 위해 물적자본을 어떻게 축적해야 할까"의 문제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저개발국이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 물적자본을 축적하는 좋은 방법은 '외국으로부터 자본재를 수입해 오는 것'(capital goods imports)[각주:9] 입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받은 차관 · 일본의 배상금 · 베트남 파병 ·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등의 방법으로 달러화를 들여왔습니다. 외국에게서 받은 달러화를 사용하여, 기계· 설비 등 외국에서 생산된 자본재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증가시켰죠.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은 자본축적을 대외의존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이들은 "1차 상품 생산국인 우리는 수출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본재를 수입해오기 위해 필요한 외환소득(foreign exchange earnings)이 언젠가는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따라서 자본재 생산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합니다.


결국 남은 선택은 '자본재를 국내에서 생산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growth could follow only if domestic production of import-competing goods could expand rapidly)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국내 제조업 기업을 육성하여 기계 · 설비 등의 물적자본을 직접 만드는 방법이 당시 중남미로에게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 중남미가 수입대체 산업화를 선택한 사상 및 정치경제학적 배

- 대공황과 2차대전 이후, 새롭게 부상한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

-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으로 얻으려고 했던 목표들

라울 프레비쉬, 국제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논하며 비교우위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다


앞서 이야기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한 이유 및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선택한 적극적인 이유는 경제학의 논리를 이용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중남미의 경제발전 과정을 돌아볼 때 더욱 중요한 것은 '사상 및 정치경제학적 배경' 입니다. 


● 대공황과 2차대전 이후, 새롭게 부상한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


중남미 국가들은 원래 1차상품을 수출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대외지향적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스페인 · 포르투갈 등 유럽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중남미에서 농장 및 광산의 경영주들은 식민 모국으로 상품을 수출하며 이득을 챙겨왔습니다. 19세기 독립 이후에도 경영주들은 여전히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유럽 및 미국으로 1차상품을 수출하는 발전전략이 이들의 이해관계에 맞았습니다.


그런데 1929년 대공황과 2차대전은 중남미 국가들에게 대외지향적 노선이 옳은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지면서 수출에 의존하고 있던 중남미 경제도 타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으로 인해 외국자본과 관련된 세력들이 크게 약화되어 있는 기간 동안에 형성된 중남미의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은 1940년대 이후 여러 지역들에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지배계급으로 등장하게 된 바, 이들은 자기이익보호를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관행으로 되어 온 국제분업의 조건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각주:10]이었습니다. 


1차 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농장 및 광산의 경영주에게만 이익이 되었지, 일반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과거부터 농장과 광산을 지배해온 경영주들은 식민 모국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고, 외국자본이 직접 소유한 곳도 많았습니다. 


따라서 새롭게 부상한 중남미의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은 이전과는 다른 경제발전 전략을 필요로 하였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중남미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을 설명하고 또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며, 내부지향적 발전노선을 강조하는 결집력 있는 이데올로기와 경제계획이 마련되기 시작"[각주:11] 했습니다.


그 경제계획이 바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Import-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이었습니다.


●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이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으로 얻으려고 했던 목표들


외국무역에의 종속으로부터 저발전국들을 구제해 주고 자율적으로 규제되는 경제를 탄생시키게 될 것이다.


외국무역을 위한 생산에 전념해 온 전통적인 과두지배자들(지주, 광산주, 수출업자 등)이 약화될 것이고, 권력의 재분배는 중간계급 및 하층계급의 참여를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 민주화과정이 기대될 수 있을 것이다.


③  민주화는 … 보다 균등한 소득분배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공업화는 농촌대중들을 생산자로서 뿐만 아니라 소비자로서 현대 자본주의적 생산체계에 통합시키게 될 것이다


④ 경제가 '내부지향적'으로 바뀜에 따라 국가적 정책규정의 중심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 과두지배자들의 몰락, 중간계급의 강화, 빈곤한 계층들의 대량소비사회로의 경제적 통합 등은 독립적인 국가사회 및 독립적인 정부기구의 형성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⑤ 마지막으로 의식수준에서 산업발전은 독립적인 사회의 기반을 만듦으로써 과학적 기술적 그리고 문화적 후진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할 것이다.


- Dos Santos. 1976. 『Contemporary Crisis of Capitalism』. 65쪽

- 염홍철. 1988. 『제3세계와 종속이론』 제2판. 37쪽에서 재인용


중남미의 새로운 지배계급이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으로 얻으려고 했던 목표는 간단히 말해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 '민족의 이익 극대화' 입니다. 


1차 상품 수출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은 외국의 수요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초래합니다. 민족을 우선하는 계급은 이를 '중심국에의 종속'(Dependence)[각주:12]으로 보았습니다. 중심부(core)인 외국에서 1차상품 수요가 늘면 주변부(periphery)에 위치한 중남미 국가 경제도 발전하지만, 반대로 중심부에서 수요가 줄면 주변부의 경제는 침체에 빠집니다. 


이처럼 "종속은 특정한 국가집단이 다른 경제의 발전과 확산에 의해 제약받는 경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각주:13]을 의미합니다. 제조업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한 "지배국가는 팽창하고 스스로의 발전에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반면, 1차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종속국가는 이러한 팽창의 반사로써밖에 발전할 수 없을 때 종속의 형태를 갖"게 됩니다[각주:14]


민족적 산업 부르주아 계급은 이를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으로 보았고,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대내적으로 완결성을 가진 자립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본질적으로 민족자본가 계층 이데올로기의 발로 입니다.


● 라울 프레비쉬, 국제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논하며 비교우위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다

  

  • 라울 프레비쉬(Raul Prebisch), 1901-86년

  • 1950-63년 기간동안 라틴 아메리카 경제위원회(ECLA) 사무총장 역임


중심부에로의 종속에서 벗어나 민족의 이익을 극대화 하겠다고 무작정 수입대체 전략을 구사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전의 대외지향적 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적 이론이 뒷받침 되어야 하죠. 그 이론을 제공해준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쉬(Raul Prebisch) 입니다.


라울 프레비쉬는 비판하는 것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15][각주:16] 입니다. 


지난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시리즈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비교우위론은 '각국이 비교우위 부문에 특화한 이후 상품을 교환하면 상호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이에 따르면 유럽 · 미국 등 선진 산업국은 제조업 상품 생산에 특화하고, 산업화를 달성하지 못한 중남미와 같은 저개발국은 제조업 이외의 다른 분야에 집중하는 게 모두에게 이익(=비교열위 상품의 소비가능량 증가)을 안겨다 줍니다.


그러나 프레비쉬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면, 기술진보의 혜택은 중심부-주변부 간에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① 1차상품 수요의 낮은 소득탄력성 ② 1차상품 가격 하락으로 인한 교역조건 악화 입니다. 이 요인은 앞서 '▶ 비교우위에 특화하여 생산을 늘려나갈 때, 교역조건이 갈수록 악화되면 어떻게 하나'에서 소개한 것과 동일하지만, 논리는 약간 다릅니다. 



위의 표는 시기별 중남미 국가의 교역조건 지수를 보여주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하락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76-80년에는 주어진 1차상품의 양으로 100개의 제조업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으나, 1946-47년에는 고작 68.7개 밖에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교역조건이 중남미에게 불리하게 변하는 것일까요? 앞에서는 "대부분의 1차 상품은 수출국가의 공급에 따라 세계시장의 공급이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교역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라고 설명했는데, 프레비쉬가 주목한 것은 '생산성과 임금 그리고 상품가격 간의 관계'(price relations) 입니다.


일반적으로 생산성 향상은 1차상품 부문 보다는 제조업 부문에서 이루어 집니다. 그럼 1차상품보다 제조업에 집중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다시 한번,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과 교역조건[각주:17]을 기억하십시오. 


기술진보는 똑같은 생산요소로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은 대개 상품가격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제조업 상품 가격 하락은 교역조건이 1차 상품 생산국에게 유리하게 변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전세계에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만들어줍니다[각주:18]. 중남미는 현재의 비교우위에서 탈피하여 굳이 제조업을 키우는 산업화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각주:19].


프레비쉬는 비교우위론의 이와 같은 설명이 현실과는 완전히 상반된다고 지적합니다. 위의 표를 통해서도 이론과는 다른 상황을 볼 수 있었죠.


그는 "기술진보가 발생하더라도 제조업 상품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산성 향상에 맞추어 제조업 근로자 임금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선진국 제조업 근로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잘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성 증가에 맞는 임금상승을 얻게 되고, 상품 가격도 올라가게 됩니다. 


반면 중남미와 같은 저개발국은 대량의 유휴 노동력의 존재로 인해 임금 상승 압력이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역을 통해 선진국 생산성 향상의 영향이 흘러오더라도, 1차 상품가격과 근로자의 임금은 상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조업 상품 가격은 계속 상승하는 반면 1차상품 가격은 오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교역조건은 중남미에게 불리해집니다. 그 결과, 제조업을 가진 선발 산업국가는 기술진보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얻게 되고, 중남미와 같은 후발 산업국가는 이를 공유하지 못합니다[각주:20].


프레비쉬는 이러한 현상을 가치중립적인 경제학논리로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미 제조업을 보유한 중심부(core)와 1차상품 특화에 의존하는 주변부(periphery)라는 국제경제체제의 구조적 특성이 문제를 야기했다고 지적합니다. 중심부-주변부 간 불평등을 시정하고 저개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구조적 특성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나 

-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 무역체제에 따른 수출소득 및 실질GDP 증가율

  • 출처 : Anne O. Krueger. 1983. The Effects of Trade Strategies on Growth 


이처럼 중남미의 독특한 경제구조 · 역사적 배경 · 정치사상적 뒷받침 · 국제경제구조 등을 고려하여 나름 합리적인 이유로 선택되었던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제조업 상품 및 자본재 수입을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여 대외의존을 줄이려고 했던 이 전략은 기대와는 달리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글의 서두에서 보았던 오늘날 동아시아와 중남미 간의 격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수입대체 정책을 펼치다 수출진흥으로 돌아선 국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브라질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수출진흥으로 돌아서면서 수출소득 및 실질GDP가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또한 1963~65년을 기점으로 수출진흥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경제발전에 성공했습니다.


도대체 수입대체 정책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길래 경제발전 실패로 이어졌을까요? 이번 파트에서 수입대체 전략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봅시다.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이 실패한 이유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는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둘째,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을 생각치 못한 것 입니다.


●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는 이익(explicit gain)

- 수출을 통해 획득한 외환소득으로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

- 수입대체는 외환소득도 얻지 못하고, 상품을 비싸게 구입하는 꼴이 된다


'수출'(export)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외화를 벌어들인다'(foreign earnings) 입니다. 중상주의자들은 여기에서 사고가 멈추지만, 국제무역이론을 공부한 사람들은 벌어들인 외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각주:21]리카도의 비교우위론[각주:22]이 공통적으로 말한 무역의 이익인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한다'(relative lower price)를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즉,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는 이익은 '수출을 통해 외환소득을 획득하고 +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한다' 입니다. 


그러나 중남미 민족 자본가 계급 및 수입대체 전략을 옹호한 사람들은 '외국으로부터의 수입 = 대외의존'으로 보았습니다. 선진 산업국가로부터 제조업 상품을 수입하는 것은 대외의존을 유발하고 종속에 이른다는 논리 입니다.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하는 건 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이라고 생각치 않았습니다.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외국에서 수입해오던 제조 상품을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수입을 감소시켜 대외의존성을 줄이고 종속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획기적인 정책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이 대외의존성을 줄여주었을까요?


기존에 수입해오던 상품을 국내에서 생산할 때에 '어떤 종류의 수입상품을 먼저 대체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방 · 주방도구 등 간단한 최종소비재(consumer goods)와 설비기계와 같은 중간재 및 자본재(intermediate or capital goods)를 수입해오던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이것들을 동시에 국내에서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수입대체 전략을 추구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간단한 최종소비재를 먼저 대체하기로 결정했는데... 간단해보이는 최종소비재를 만들기 위해서도 중간재, 자본재 및 원재료(raw material)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것들 전부를 한 국가가 보유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해와야 합니다.


수입의 필요성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소비재 의존을 줄이려는 정책이 자본재 의존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대외의존성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Dependence' upon imports for final consumption goods was replaced by 'dependence' upon imports for capital goods.) 더군다나 비교열위 상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면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아예 중간재 및 자본재 등에 대해 수입대체를 시행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막연히 설비기계나 제철소를 떠올리더라도 막대한 투자비용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투자비용을 회수하려면 그만큼 상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데, 중남미와 같은 저개발국은 시장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윤을 얻지 못합니다.   


자, 여기서 추가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보유한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가 인위적으로 비교열위 부문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수출은 감소하였는데 수입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필요한 상품을 수입해 올까요?


한 가지 방법은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하는 것(appreciation)입니다. 고정환율을 통해 통화가치를 높게 설정하면, 필요한 수입품은 더 싸게 들여올 수 있으며 수출 유인도 줄기 때문에, 비교열위에 집중하는 수입대체 전략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와 동시에 존재하는 '높은 통화가치'는 언제나 외환위기(currency crisis)를 초래[각주:23]합니다. 중남미가 외환위기를 겪은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 중남미와 동아시아 모두 경제발전 과정에서 자본재 수입을 위해 경상수지 적자를 누적해왔다.

  • 이들의 차이점은 '수출액 대비 부채비율' 이었다. 

  • 대내지향적 무역체제를 지향한 중남미는 수출소득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추구한 동아시아는 수출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었다.

  • 이러한 차이는 1980년대 초반 외채위기(Foreign Debt Crisis)에서 탈출하느냐 못하느냐 여부를 결정지었다.

  • 출처 : Jeffrey Sachs. 1985. External Debt and Macroeconomic Performance in Latin American and East Asia


대내지향적 무역체제로 인해 수출은 줄고 수입은 여전하니 경상수지 적자(current account deficit)가 발생합니다. 또한 개발도상국은 경제발전을 시작할 때 부족한 국내저축을 해외저축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도 경상수지 적자가 초래[각주:24]됩니다.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970-80년 시기 중남미와 동아시아 가릴 것 없이, 경제발전을 시작한 개발도상국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누적나갔습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는데 고정환율로 인해 통화가치는 계속 높게 유지된다? 인위적으로 고평가된 통화가치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통화가치 하락을 염려한 투자자들의 자본이탈(Capital Flight)이 발생하게 되고, 중남미 국가들은 외환위기를 맞게 됩니다.


글의 서두에서 짤막하게 언급한 폴 볼커 연준의장의 고금리 정책 또한 1980년대 초반 중남미 외채위기를 불러온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글의 서두에서 '한국은 지속적으로 수출증가 및 대외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해온 덕분에 위기에서 신속히 탈출'했다고 지나가듯이 언급했는데, 바로 이 점이 한국과 중남미 국가들의 차이를 낳았습니다.


똑같이 외채위기를 맞이한 한국과 중남미.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GDP 대비 부채비율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수출액 대비 부채 비율'(debt-export ratio) 였습니다. 수출지향적 전략을 채택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보통 75%~100% 수준을 기록하였는데, 수입대체 전략을 채택한 중남미 국가들은 보통 250%~340%에 달합니다. 


외채(foreign debt)는 말그대로 외화로 빌린 채무이기 때문에 상환할때도 자국통화가 아니라 외화가 필요합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을 통해 외환소득(foreign earnings)를 벌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채무를 갚아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은 대내지향적 무역체제 하에서 비교우위 부문이 위축되어 수출이 급감하였기 때문에 외환소득이 적었고, 채무상환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1980년대 초반의 외채위기에서 신속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중남미 국가들은 이후로도 몇번의 외채위기를 겪게 됩니다.    


●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implicit gain)

-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은 경쟁증대 및 효율성을 불러온다


무역은 '수출상품을 판매해서 돈을 번다' + '비교열위 상품을 싸게 구입한다'를 넘어서서 다른 많은 이익들도 가져다줍니다. 국제무역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이익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깨달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① 수출진흥이 초래하는 비용이 수입대체가 초래하는 비용보다 더 명확하게 보인다


현재 가지고 있는 비교우위 부문에 특화하여 수출을 하는 것은 별다른 비용이 발생하지 않지만, 인위적으로 특정 산업을 육성하여 수출을 촉진할 때에는 수출보조금 등의 비용이 유발됩니다. 한국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수출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해 각종 지원을 했던 걸 떠올리면 됩니다. 


반면 수입대체 정책은 눈에 보이는 비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수출을 촉진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비용'(visible costs)은 쉽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산으로 수출보조금을 남발한다면 그 비용은 즉각 파악되고, 비용을 축소하라는 각종 압력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은 계량방법론을 사용하여 경제학적인 비용분석을 하지 않는 이상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수입대체로 인해 유발되는 '상품을 비싸게 이용'이라는 단점도 자유무역을 했을 때에 비해 얼마나 비싼 것인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수출진흥 정책이 초래하는 비용이 수입대체가 초래하는 비용보다 더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통제하기가 쉽습니다.


② 수출진흥 책이 일반적으로 더 간접적인 개입이다


수출진흥 산업화 정책은 비교열위 부문 중 특정 산업을 선정하여 육성한 뒤 수출을 촉진하기 때문에, 당연히 산업 선정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이 발생합니다.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 또한 수입을 대체할 특정 산업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게 됩니다. 


수출진흥 정책은 부분적인 수입대체 정책도 포함하고 있으며, 차이점이라곤 '대외지향적인 무역체제로서 수출을 촉진하느냐'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차이처럼 보이는 이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수출진흥 정책 하에서 정부는 수출을 촉진한 이후에는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수출 기업이 경쟁하는 무대는 세계시장이고 이곳은 오로지 가격과 품질만이 중요합니다. 개발도상국이 세계시장을 상대로 경쟁의 규칙을 바꿀 수도 없으며, 다른 나라 상품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수입대체 정책 하에서 정부는 갖가지 사항을 두고 시장에 개입하게 됩니다. 관세를 부과한 이후에도 국내산보다 우수한 수입상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가격통제(price control) 등을 활용하여 국내시장을 통제합니다.


③ 수출기업은 해외시장에서 가격과 품질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한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느냐 국내시장에서 경쟁하느냐는 매우 다릅니다. 전자는 오직 가격과 품질만이 중요하지만, 후자에서는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출진흥 정책 하에서 정부가 특정 기업을 선정한 뒤 수출보조금을 지원하여 밖으로 내보내더라도, 결국 세계시장에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부패한 관료와 기업가가 결탁한 뒤 수출보조금에 힘입어 해외로 나가더라도, 근본적인 실력이 없다면 세계시장에서 정착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조금은 다시 회수될 겁니다. 


반면 수입대체 정책 하에서 정부와 결탁한 기업가는 국내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활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기업을 팽하지 않는 이상 지위는 고스란히 유지됩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소비자에게 전가될 뿐입니다. 


즉, 수출진흥 정책 하에서는 정부와 기업가 간의 결탁이 발생할 여지가 비교적 적지만(어디까지나 비교적), 수입대체 정책 하에서는 지대추구 행위(rent-seeking behavior)가 빈번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④ 수출진흥 정책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켜 분업화를 촉진한다


해외시장 진출에 성공하면 더 넓은 시장을 상대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앞서, 수입대체 정책 하에서 자본재 대체가 실패한 이유로 '좁은 국내시장'을 들었었는데, 수출진흥 정책은 시장확장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중남미는 자본재 대체, 중화학 공업화 등에 실패하였으나, 동아시아 특히 한국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입니다.




※ 중남미 실패의 교훈 : 개방적인 무역체제의 중요성

- 수출과 수입은 동전의 양면이다

- 수입대체 산업화 : 대내지향적 무역체제 (수출+수입↓)

- 수출진흥 산업화 : 대외지향적 무역체제 (수출+수입↑)


과거 중남미와 동아시아의 서로 다른 선택이 오늘날 큰 차이를 만들어 낸 모습을 보면 '개방적인 무역체제'(trade openness regime)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중남미가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와 동아시아가 선택한 수출진흥 산업화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역의 이점을 살리는 방향을 지향했느냐 아니냐' 입니다. 


중남미와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및 산업화 전략은 상당부분 유사합니다. 중남미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또한 ① 기존의 비교우위 산업(농업, 경공업)에서 탈피하여 제조업을 육성하고 싶어했고 ② 이를 위해 정부주도의 산업·무역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국제무역이 안겨다주는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무역체제냐 아니냐' 여부 입니다. 중남미가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는 전체 교역량(수출+수입)을 위축시켜 '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멀리하는 대내지향적 무역체제 였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아시아의 수출진흥 산업화는 전체 교역량(수출+수입)을 증가시켜 '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최대한 활용하는 대외지향적 무역체제 였습니다.


앞서 서술한 내용을 반복하면, 수출진흥 산업화 정책은 비교열위 부문 중 특정 산업을 선정하여 육성한 뒤 수출을 촉진하기 때문에, 당연히 산업 선정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이 발생합니다.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 또한 수입을 대체할 특정 산업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게 됩니다. 


수출진흥 정책은 부분적인 수입대체 정책도 포함하고 있으며, 차이점이라곤 '대외지향적인 무역체제로서 수출을 촉진하느냐'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차이처럼 보이는 이것이 큰 격차를 만들어 냈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이 증가할수록 '비교열위 상품을 값싸게 사용' · '경쟁증대를 통한 생산성 향상' · '자원의 효율적 사용' · '시장크기 확대의 이점' · '상호이득'을 가져다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물론 어느 부문에 특화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이익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1920-30년대 호주의 사례[각주:25]처럼 수입관세 등을 이용한 보호무역 정책이 어떤 경우에는 옹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향한 문을 닫아서 외국과의 교역을 극단적으로 줄여버리는 정책이 옹호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또한, 수입장벽은 결국 수출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호무역을 통한 이익이 장기간 유지될 수 없습니다. 보호무역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건 일시적(temporary) 입니다.


  • 1967~2017년 한국의 수출입 증감율 (통관 기준)

  • 수출과 수입 증감이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시기이든 개별 국가들은 자국의 수입장벽을 높게 세우고 수출은 촉진하려는 유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산 상품 수입은 줄이고 자국기업이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돈을 벌면, 국가경제에 이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이유는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에 기반해서이기도 하지만, 애시당초 수출과 수입은 동떨어진 움직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수출이 늘면 수입도 늘고 수출이 줄면 수입도 줍니다. 반대로 수입이 늘면 수출도 늘고 수입이 줄면 수출도 줍니다.


위의 그래프는 1967~2017년 한국의 수출입 증감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출과 수입 증감이 동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물론 둘 중 하나가 더 크게 변동하여 무역수지 흑자나 적자가 발생하지만, 큰 움직임은 동일한 방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 수출과 수입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방향을 보이는 것일까요? 서로 다른 여러 국가가 교역을 하는 이유인 '비교우위 부문에 특화하여 수출을 하고 비교열위 상품을 수입해와서, 소비가능한 상품의 수량을 증가시킨다'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무역은 국가간에 교환(exchange) 입니다. 상품을 수출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수입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경제발전 단계에서 개발도상국은 수출을 통해 얻은 외화를 이용하여 자본재 등을 수입해왔고, 오늘날에도 자본재와 소비재 등을 외국으로부터 가지고 옵니다. 상품 수출로 얻게 된 돈은 수입품 구매에 사용하거나 해외자산 구매에 이용해야지[각주:26], 굳이 축적을 해놓을 이유가 없습니다[각주:27]. 따라서, 수출 증감에 따라 수입도 동일한 방향으로 변동하게 됩니다.


역으로 수입을 하는 이유는 수출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소비재 등의 수입은 상품을 이용함으로써 경제주체가 효용을 누리게끔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중간재 및 자본재의 수입은 국내 완성품 제조에 이용됨으로써 수출을 촉진하기도 합니다. 국내에는 없는 외국의 값싸고 품질 좋은 자본재를 들여와 완성품 제조에 사용하면, 국내 완성품은 무역을 통해 경쟁력을 얻게 되고 해외시장에 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입 증감에 따라 수출도 동일한 방향으로 변동하게 됩니다.


  • 왼쪽 : 한국 총수출 증감률과 중국 총수입 증감률

  • 오른쪽 : 중국 총수출 증감률과 미국 총수입 증감률

  • 한국은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이를 이용해 완성품을 제조한 뒤 미국에 수출한다

  • 한국-중국-미국 간에 서로 연결되는 경제구조를 수출입 증감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수출과 수입은 한 국가 내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예시로서, 한국-중국-미국 간 서로 연결되는 경제구조를 통해 수출과 수입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왼쪽 그래프는 한국 총수출 증감률과 중국 총수입 증감률, 오른쪽 그래프는 중국 총수출 증감률과 미국 총수입 증감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중국-미국 간의 큰 경제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은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수입해온 중간재를 이용하여 완성품을 제조합니다. 그리고 이를 미국에 수출하고 미국인들은 made in china 제품을 구매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한국 전자부품기업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내에 위치한 폭스콘 공장에서 이를 수입하여 iPhone을 만듭니다. 그리고 iPhone은 미국에 보내집니다.


그러므로 한국 총수출 증감률과 중국 총수입 증감률은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중국 총수출 증감률과 미국 총수입 증감률도 동조화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과 중국의 대한국 수입 그리고 중국의 대미국 수출과 미국의 대중국 수입이 동일한 방향을 가지는 건 당연할테지만, 각 국가 간에 총수출과 총수입마저 동조화 되는 모습을 보면서 '수출과 수입 간의 관계'를 현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수입은 줄인채 수출만 늘리고자 하는 보호무역 정책은 해로운 영향만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수입은 줄인채 수출만 증가시킬 수는 없습니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무역장벽을 높인다면 완성품 제조가 어려워져 대미국 수출에도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죠. 미국도 대중국 수입장벽을 쌓으면 중국에서 값싸게 제조된 소비재를 이용할 수 없어서 소비자들의 후생이 감소합니다.  


한국이 개방적인 무역체제를 추구하면서 경제발전에 성공한 것처럼, 오늘날 세계경제는 서로 간의 교역을 확대하면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미국 총수입과 중국 총수출 관계를 보면 2002년 이전에는 비동조화된 모습이 나타나는데, 중국이 2002년에야 WTO에 가입하면서 세계무역시장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해, 2002년 이후 세계화에 들어선 중국은 미국과 밀접한 교역관계를 맺으면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립경제를 꿈꾸는 대내지향적 무역체제 보다는 상호의존을 추구하는 대외지향적 무역체제가 일반적으로 경제발전과 성장을 가져다 줍니다.




※ 과거 중남미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비난했던 이유를 확인

-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자립경제를 꿈꾸다


이번글을 통해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남미 국가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원했던 건 '대외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를 통해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달성하는 것 이었습니다. 개발도상국 대부분은 식민지시기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경제적독립을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상품을 선진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직접 생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폐쇄적인 무역체제와 대내지향적인 경제체제로 이어졌죠.


"특화해야할 산업은 평생동안 1차산업에 고착되느냐", "1차상품 수출이 교역조건을 악화시키면 어떻게하나", "제조업을 육성하여 비교우위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면 안되나" 라고 말하며, 비교우위의 경제학적 논리를 비판하면서 수입대체 산업화 정책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긴 하였으나, 그 근간에는 민족주의 사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설파한 '자유무역사상'은 민족주의 · 국가주의와 거리가 먼 '자유주의'(liberalism)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밑에는 '사해동포주의 혹은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가 있습니다. 자유무역사상은 전인류(mankind)의 관점에서 세계경제를 바라보았습니다(doctrine of universal economy).


자유무역 사상가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실시하면 전세계 인류가 소비가능한 상품 수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좋다"고만 생각하였지, 개별 국가의 입장에서 '어떤 상품을 얼마나 소비할 것인가'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즉, 자유무역사상은 '무역의 이익이 전세계 국가간에 얼마나 공평하게 배분되는지'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비슷하게도, 오늘날 선진국에서 자유무역 사상에 대한 비판이 나오게 된 근간에도 자유주의 및 세계시민주의와 배치되는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을 소개한 글[각주:28]에서 다룬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 중 하나가 바로 '③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하는가' 였습니다. 자유무역을 비판하는 미국인들은 오늘날 미국기업의 이윤추구 행위가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중국정부는 치밀하게 세워진 경제전략 하에 기업의 이익이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이어지게끔 하고 있다고 부러워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국제무역논쟁]을 살펴볼 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유무역 옹호자와 반대자의 주장이 경제학이론에 부합하냐 아니냐' 뿐만 아니라 '어떤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나' 입니다.




한국이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을 선택하였던 배경은 무엇일까


중남미의 경제발전 실패 사례는 아찔함을 안겨줍니다. 수입대체 산업화를 선택했던 중남미와는 달리 한국은 수출진흥 산업화를 추구함으로써 경제발전에 성공하였는데, 1950-60년대 초반 한국도 중남미처럼 수입대체 정책 추구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시의 한국이 선택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한국인들은 어떤 삶을 살게되었을까요? 


그렇다면 던질 수 있는 물음은 "한국이 경제발전 전략을 바꾸어서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을 선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입니다. 당시에는 수입대체 정책이 초래할 참담한 결과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미래를 모르는 미지의 상태에서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한국은 무엇을 믿고 수출증대에 전력을 다했을까요.


다음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1. 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 http://joohyeon.com/158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3.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 http://joohyeon.com/233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8.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9.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10. 염홍철. 1988. 『제3세계와 종속이론』 제2판. 36쪽 [본문으로]
  11. 염홍철. 1988. 『제3세계와 종속이론』 제2판. 36쪽 [본문으로]
  12. 엄밀한 학술적 구분으로, Dependence를 의존, Dependncy를 종속으로 말하는 학자들도 많으나, 그냥 여기서는 Dependence로 사용 [본문으로]
  13. By dependence we mean a situation in which the economy of certain countries is conditioned by the development and expansion of another economy to which the former is subjected. - Dos Santos. 1970. 'The Structure of Dependence' - - 염홍철. 1988. 제3세계와 종속이론 제2판. 14-15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4. other countries -the dependent ones- can do this only as a reflection of that expansion. -Dos Santos. 1970. 'The Structure of Dependence' - - 염홍철. 1988. 제3세계와 종속이론 제2판. 14-15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1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18. The countries of the periphery would have benefited from the fall in price of finished industrial products to the same extent as the countries of the centre. The benefits of technical progress would thus have been distributed alike throughout the world. - Prebisch. 1950. 8쪽 [본문으로]
  19. in accordance with the implicit premise of the schema of the international division of labour, and Latin America would have had no economic advantage in industrializing. - Prebisch. 1950. 8쪽 [본문으로]
  20. while the centres kept the whole benefit of the technical development of their industries, the peripheral countries transferred to them a share of the fruits of their own technical progress. - Prebisch. 1950. 10쪽 [본문으로]
  2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23. [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http://joohyeon.com/170 [본문으로]
  24.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26. 경상수지 흑자 = 자본유출, 경상수지 적자 = 자본유입이 발생하는 이유. 참고 :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http://joohyeon.com/194 [본문으로]
  27. 좀 더 깊게 들어가면, 개발도상국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를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외환보유고 축적(foreign reserves)이 중요하긴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해서 과다한 외환보유가 좋은 것은 아니며, 일반적인 경제학 개념상 '축적' 그 자체는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참고 :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http://joohyeon.com/195 [본문으로]
  28.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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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Posted at 2018. 8. 27. 01:28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의 본격적 시작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의 첫번째 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이야기했듯이, 자유무역을 둘러싼 비판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달라진 것은 과거에는 개발도상국 내에서 오늘날에는 주로 선진국 내에서 불만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과거 개발도상국이 직면했던 문제는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 입니다. 따라서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가 타당한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경제발전은 고민거리가 아닌) 오늘날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시장개방이 계층별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Income Distribution) 입니다. 선진국이 비교우위를 가졌던 산업을 신흥국 특히 중국이 뒤쫓아오고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을 둘러싼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도국과 선진국이 직면한 문제와 불만을 가지게 된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어찌됐든 모두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이로운 것인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의 어떤 논리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요.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이 개도국의 경제발전은 가로막는 이론일까요?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이 선진국의 소득분배를 방치하는 이론일까요?


지금까지 4편의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글을 통해, ① '18세기 애덤 스미스로부터 자유무역 사상이 나오게 된 배경'[각주:1] · ② '19세기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세상에 내놓은 배경'[각주:2] ·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작동하는 원리'[각주:3] · ④ '무역의 이익을 결정하는 교역조건의 중요성'[각주:4]을 살펴보았고, 개별 글들의 마지막에서 [국제무역논쟁]의 논점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국제무역논쟁]의 논점을 다룰 겁니다. 앞서 보았던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시리즈는 과거와 오늘날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내에서 벌어져온 논쟁을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개발도상국이 잘못 이해했던(하고있는) 비교우위 논리


왜 과거 개발도상국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논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을까요? 앞서 경제발전이 시급했던 이들이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가 타당한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하였는데, 비교우위론이 무엇을 말하는 경제이론이기에 그런 것일까요?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론에 비판적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①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상호이득'(mutual gain)을 준다는 논리를 이해 못함

약소국인 우리가 강대국인 선진국가와의 무역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개발도상국에게도 이익을 안겨다주는가

-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작동 원리]


: "약소국인 우리가 강대국인 선진국가와의 무역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외국에 상품을 판매하려면 다른 국가들보다 더 싸거나 더 좋은 물건을 생산해야 하는데, 능력이 부족한 개도국 생산자들은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의문은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비교우위론은 '국가의 절대적 생산성이 아니라 상대적인 생산성이 우위를 결정한다'고 말하며, '생산의 절대비용이 아닌 상대적 비용, 즉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이입니다.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자본 · 노동 등 생산요소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약소국에 비해 생산의 기회비용이 큰 상품이 존재하게 됩니다. 따라서 선진국 국내에서 제품을 만드는 게 절대적인 생산비용이 낮다고 할지라도, 기회비용 관점에서는 개도국의 상품을 수입해 오는 것이 더 저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약소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절대적인 생산비용은 높더라도 기회비용이 작은 상품이 존재하게 되고, 따라서 개발도상국 상품도 선진국에 수출을 할 수 있습니다. 


▶ 기회비용 관점에서 바라본 비교우위론 :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상대가격 관점에서 바라본 비교우위론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또한, 지난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시리즈를 통해 계속해서 강조했듯이, 서로 다른 국가들 간에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다르기 때문'(different relative price) 입니다. 생산의 기회비용이 다르면 상대가격도 달라지고, 이로 인해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도 무역이 이루어 집니다. 여기에 국력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역의 이익(gains from trade)은 '자급자족시 국내 가격과 국제무역시 세계시장 가격이 얼마나 다른가'가 결정합니다. 세계시장에 수출했을 때 받는 가격이 국내에 판매할때의 가격 보다 높을수록, 세계시장으로부터 수입했을 때 지불하는 가격이 국내에서 구매할때의 가격보다 낮을수록, 무역의 이익은 커집니다. 여기에서도 국력의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몇몇 상품을 제외하고는 개발도상국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에, (여러 나라 상품 가격의 가중평균으로 결정되는) 세계시장 가격은 개발도상국 가격과 차이가 클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무역의 이익은 선진국 보다는 개발도상국이 더 많이 누리게 될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서로 다른 상품 가격이 무역을 하는 이유와 무역의 이익을 결정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그럼에도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의 무역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개도국이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저생산성의 열위를 보완해주는 낮은 임금'(low wage) 입니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임금은 그들의 생산성 수준에 따라서 결정되는데, 개도국은 낮은 임금을 유지함으로써 저생산성 열위를 상쇄할 수 있습니다.  


"그럼 선진국은 개도국의 저임금으로 인해 무역의 이익을 누리지 못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는데 그런 것도 아닙니다. 개도국의 저임금은 저생산성의 결과물입니다. 개도국의 낮은 임금은 비교우위를 유지하는 수준에서만 유지될 뿐입니다. 


제가 말하고픈 것은 '개발도상국은 낮은 생산성에 맞추어 저임금을 유지함으로써 강대국에 대해 가지는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고', '선진국은 고임금을 가지고 있으나 생산성 수준도 그에 맞게 높기 때문에 개도국에 대해 가지는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으로 '상호이득'(mutual gain)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임금을 고려한 비교우위론 :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개도국 저임금 & 선진국 고임금 이지만, 양쪽 모두 무역을 통해 상호이득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

- '19세기 영국'에 살던 리카도가 만든 비교우위론이 다른 상황에 놓인 국가에도 적용 가능한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과거 개발도상국들이 단순히 '국력이 강한 선진국과의 무역경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 이라고 생각한 것은 비교우위론을 잘못 이해한 결과물 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무역에 부정적이었던 그들의 태도는 모두 무지에서 나온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글부터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수확체감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무역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등장한 비교우위론. 다른 상황에 처한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나

-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

-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1817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를 통해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국제무역이론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비교우위론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제학계 내에서 '사실이면서 하찮지 않은 명제'(both true and non-trivial)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리카도가 살고 있던 상황과 비교우위론이 세상에 나온 배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 제6장 이윤에 대하여


한 나라가 아무리 넓어도 토질이 메마르고 식량 수입이 금지되어 있으면, 최소한의 자본의 축적이라도 이윤율의 커다란 하락과 지대의 급속한 상승을 가져올 것이다. 반면에, 작지만 비옥한 나라는, 특히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 데이비드 리카도, 권기철 역, 1817,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136~137쪽


① 19세기 영국 - 수확체감 산업인 농업이 비교열위 · 수확체증 산업인 제조업이 비교우위


② 자유무역의 이점 - 수확체감 산업을 포기하고 수확체증산업에 특화하여 경제성장 달성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각주:5]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듯이, 19세기 영국에 살았던 리카도가 우려했던 것은 '토지 경작 확대에 따른 이윤율 저하' 였습니다.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열등한 토지도 개간해야 했는데, 경작지가 확대될수록 토지의 수확체감(diminishing return)으로 인해 지주(landlord)의 이익만 증가하고 자본가(farmer & manufacturer)의 이윤(profit)은 감소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의 동기가 저하되어 경제성장이 멈추게 될 가능성을 리카도는 우려하였습니다.[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


이런 상황 속에서, 19세기 영국이 이윤율의 영구적 저하를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은 '곡물법 폐지를 통한 자유무역'[From Corn Law to Free Trade] 이었습니다.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자유롭게 수입해온다면 경작지를 확대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자본가의 이윤율도 하락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축적 동기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즉,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주장한 배경에는 19세기 영국의 비교열위가 수확체감산업인 농 · 비교우위가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 자유무역을 통해 수확체감산업인 농업부문을 포기하고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에 특화함으로써 경제성장 달성 가능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19세기 영국과는 다른 상황에 처한 국가도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으로 경제성장 및 생활수준 향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해, 만약 19세기 영국과는 정반대로, 비교열위가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이고 비교우위가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인 국가라면, 자유무역이 수확체감산업에 특화하게끔 만들어 경제성장을 방해하지 않을까요?


이런 이유로 인하여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1920~30년대 호주 사례를 살펴보며,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이 생활수준 향상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경우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 영국과는 정반대 상황에 놓여있는 호주는 보호무역이 필요하다




경제이론은 합리적추론의 기반이지만 일반적인 지침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엄밀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결과물은 항상 시간 및 공간의 상황에 달려있다. 고전 국제무역이론은 영국의 상황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각주:7] (...)

(the precise and comparative results are always dependent upon circumstances of time and place. The classic theory of international trade has been derived from English circumstances.)


계속 반복해서 말하자면, 규제를 하느냐 마느냐는 일반론에 의해서 결정되어서는 안되고 특정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보호무역을 하느냐 자유무역을 하느냐를 결정할 때는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인구증가 · 토지의 수확체감성 · 국제수요에 미치는 영향[각주:8]. (...)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From this point of view it appears that protection has been as beneficial to Australia as free trade has been to Great Britain.)


- James Bristock Brigden, 1925, 'The Australian Tariff and The Standard of Living'


호주 경제학자 James Bristock Brigden은 1925년 논문 <호주 관세와 생활수준>을 통해,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라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이후에 그는 호주 정부의 무역정책 입안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보호무역 기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1920~30년대 호주의 사례는 'The Australian Case for Protection' 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습니다.


Brigden은 왜 당시 호주에게 보호무역정책, 정확히 말하면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부문에 대한 특화를 줄이고 수입관세 부과를 통해 비교열위를 가진 제조업을 키우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았을까요?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영국과 호주의 상황(circumstance)이 달랐다는 점에 있습니다. 호주는 영국과는 정반대로, 비교열위가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이고 비교우위가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인 국가입니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영국과는 달리, 비교열위가 수확체증산업이고 비교우위가 수확체감산업 이라는 점이 무역정책 결정에 있어 왜 중요한가?" Brigden이 보호무역정책을 옹호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 수확체감산업에 특화하면 소득분배는 악화되고 생활수준은 감소하고 만다


수확체감(Diminishing Returns)이란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을 늘려나갈수록 새로 얻게되는 생산량의 크기가 줄어듦을 의미합니다. 일은 예전과 똑같이 하는데 돌아오는 건 갈수록 줄어드니, 무언가 좋지 않다는 걸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리카도도 '토지의 수확체감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무역을 주장했습니다. 투입되는 노동량은 동일한데 열등한 토지를 개간할수록 생산량은 줄어드니, 곡물 한 단위당 투하노동량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 결과, 곡물 가격은 비싸지고 노동자의 임금도 올라서 자본가의 이윤은 감소합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수확체감 → 투하노동 증가 → 곡물가격 상승 & 임금 증가' 논리는 19세기 가치 · 임금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리카도는 가치의 투하노동설 · 임금의 생계비설을 믿었습니다. 이는 현대 경제이론과는 다릅니다. (리카도 이론 참고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현대 경제이론에서는 새로 얻게되는 생산량의 크기가 감소하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몫도 당연히 줄어듭니다. 1인당 생산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임금도 하락합니다. 어찌됐든 수확체감성이 좋지 않다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호주 경제학자 Brigden이 우려한 것은 '호주가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산업(primary sector)에 특화하여 성장할수록 소득분배가 악화되고(deteriorated income distribution) · 생활수준이 감소(lower standard of living)'할 가능성 이었습니다.


생활수준 감소를 불러오는 첫번째 경로는 1차 산업의 수확체감성 그 자체입니다. 무역의 결과 높은 가격을 받게 되어 소수 지주들의 이익은 증가하지만(raise the return to a few landowners), 1인당 생산량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다수 근로자의 임금이 감소합니다(shrink the wages of laborers)


두번째 경로는 비교열위[제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 문제 입니다. 자유무역의 결과 시장이 개방되면 비교열위 부문은 경쟁력을 잃기 때문에 제조업 근로자들은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1차 산업은 갈수록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다른 근로자들을 흡수할 능력이 떨어집니다(difference in capacity to absorb labour). 결국 무역의 결과 제조업 근로자 상당수는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따라서 호주는 자유무역 이후 지주와 근로자 간 소득분배가 악화됩니다. 또한 동일한 생활수준(=1인당 소득)을 유지하려면 인구가 더 적어져야 하며, 만약 인구수준을 유지한다면 생활수준 하락은 불가피 합니다. (the evidence available does not support the contention that Australia could have maintained its present population at a higher standard of living under free trade.)




※ 1차산업 특화는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


  •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은 교역조건 악화를 초래

  •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자국 RS 이동은 세계시장 RS도 이동시켜 세계시장 가격을 변화시킴


Birdgen이 걱정했던 또 다른 사항은 '호주가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산업에 특화하여 공급을 늘려나갈수록 세계시장 가격이 하락하여 교역조건이 악화(additional output would further aggravate the situation by adversely affecting Australia's terms of trade) '될 가능성 입니다.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을 통해 배운 이론처럼. 자국의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는 비교우위를 가졌던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을 증가시켜 교역조건을 악화시킵니다.


이때 자국이 세계시장에 조그마한 영향만 미친다면 자국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은 변동이 없지만, 자국의 공급에 따라 세계시장 내의 공급이 좌우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자국 내 상품 공급 증가에 따라 세계시장 공급도 크게 증가하여 세계시장 가격은 하락합니다.


1920~21년 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상품 부문 세계공급물량에서 호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달했습니다. 따라서 호주가 비교우위에 입각하여 특화상품 생산을 늘려나갈수록 교역조건이 악화하여 국민소득이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맙니다(an increase in our supplies might have reduced the value received per unit of reduced volume per head, still further reducing income per head.) 




※ 영국의 자유무역과 호주의 보호무역은 수확체감 압력을 완화시켜줌

- 호주 보호무역 효과 ① : 근로자 임금 증대를 통한 소득분배 문제 해결

- 호주 보호무역 효과 ② : 교역조건 개선을 통해 국민 생활수준 향상


영국, 미국과 호주가 처한 상황은 꽤나 다르다[각주:9]


영국이 자유무역을 채택하였을 때 (...) 수확체증이윤을 가져다주는 제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확장시킬 능력이 됐었다. 영국이 실제로 포기한 보호는 수확체감산업인 농업부문 이었다. 농업은 소득을 감소시키고 제조업 자본가에게 해를 끼쳤었다. 자유무역은 수확체증산업 쪽으로 생산을 변화시켰다[각주:10]


제조업 성장을 고려하면, 호주에게 자유무역은 영국과는 정반대의 영향을 끼친다[각주:11].  


영국의 보호무역정책은 농업을 보호하고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의 확장을 방해하였다. 호주의 보호무역정책은 수확체감을 초래하는 농업 확장을 막아줄 것이다. 영국의 자유무역이 수확체감 압력을 완화시켜 높은 생활수준을 가능케 했다면, 호주의 보호무역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줄 것이다[각주:12]


보호무역정책이 영국과 호주에서 서로 다른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이 관세 및 무역정책 시행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각주:13].    


- James Bristock Brigden, 1925, 'The Australian Tariff and The Standard of Living'


이처럼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호주에게 '소득분배 악화 · 생활수준 저하 · 교역조건 하락'을 가져다줍니다. 호주 출신 경제학자 Brigden은 당연히 "호주에게 필요한 건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 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Brigden은 "영국의 자유무역이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의 확장을 막았다면, 호주의 보호무역이 같은 역할을 할 것" 이라고 믿으며 실제로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비교열위인 제조업 부문 보호를 위해 수입관세(tariff)를 부과하는 무역정책이 어떻게 호주에게 이득을 안겨다줄 수 있을까요?


▶ 호주 보호무역 효과 ① : 근로자 임금 증대를 통한 소득분배 문제 해결


보호무역의 첫번째 효과는 근로자 임금 증대를 통한 소득분배 문제 해결 입니다(the primary purpose of the tariff was to redistribute income)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수확체감산업은 갈수록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비교우위를 가진 1차산업에 특화를 해나갈수록 근로자 1인당 생산량 및 임금이 감소합니다. 이익을 얻는 것은 오직 소수의 지주들 뿐입니다. 


따라서 1차산업에 특화를 하지 않고 보호무역을 통해 비교열위인 제조업 생산을 늘린다면, 정반대로 근로자 1인당 생산량 및 임금이 감소하지 않을 뿐더러 소수 지주의 이익도 줄어들기 때문에 소득분배 문제가 해결됩니다.   


보호무역정책이 근로자, 특히 제조업 근로자 임금을 상승시키는 또 다른 경로는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본 블로그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경제학자 프강 스톨퍼(Wolfgang Stolper)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은 1941년 논문 <보호주의와 실질임금>(<Protection and Real Wages>)를 통해, 국제무역이 자본 · 노동 등 요소가격에 미치는 영향(the effects of international trade on absolute factor price)을 탐구했습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 '국가들마다 다른 기술수준(technology)으로 인해 상대적 생산성이 높은 상품은 수출하고[비교우위] 낮은 상품은 수입한다[비교열위]'고 말한다면, 헥셔-올린의 무역이론은 '국가들마다 다른 부존자원(endowment factor)으로 인해, 풍부한 요소가 집약된 상품은 수출하고[abundant factor intensity] 희귀한 요소가 집약된 상품은 수입한다[scarce factor intensity]'고 말합니다.


시장개방은 수출상품 가격을 더 비싸게 만들고 수입상품 가격을 더 싸게 만들기 때문에[각주:14], 제무역의 결과 풍부한 생산요소는 가격이 상승하고 희귀한 생산요소는 가격이 하락합니다. 반대로 자급자족은 수출상품 가격을 다시 하락시키고 수입상품 가격을 비싸게 만들기 때문에, 보호무역은 풍부한 생산요소는 가격이 하락하고 희귀한 생산요소는 가격이 상승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톨퍼-새뮤얼슨 정리' 입니다. 


호주의 경우 토지(land)가 풍부한 생산요소(abundant factor)이고 노동(labor)이 희귀한 생산요소(scarce factor)이기 때문에, 자유무역을 실시하면 토지의 가격(지대)이 상승하고 보호무역을 실시하면 노동의 가격(임금)이 상승합니다.


따라서, 호주가 보호무역정책을 채택하게 되면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라, 지대가 하락하고 근로자의 임금이 상승하게 되어 소득분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 호주 보호무역 효과 ② : 교역조건 개선을 통해 국민 생활수준 향상


앞서 살펴본 보호무역 효과가 '소득 재분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보호무역은 교역조건 개선을 통해서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the improved terms of trade induced by the tariff would increase aggregate income).


호주가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산업에 특화하여 공급을 늘려나갈수록 세계시장 가격이 하락하여 교역조건이 악화된다는 점은 이야기 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입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import tariff)이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통해 수입관세가 어떻게 교역조건 및 생활수준을 개선시키는지 살펴봅시다.


  • 호주와 외국의 '서로 다른 가격'이 무역을 만들어낸 모습

  • 녹색선 및 글자는 수입관세 부과 이후 달라진 무역 양상


외국은 제조상품을 더 싸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수출하며, 호주는 제조상품을 비싸게 만들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싼 가격에 수입을 해오고 있습니다. 세계시장 가격(=교역조건)은 두 국가 가격의 중간수준에서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때 호주가 수입관세를 t만큼 부과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상품을 수출하는 외국 생산자는 "호주에 판매할 때 받을 수 있는 가격이 우리나라에 파는 것보다 t만큼 비싸지 않는 한 수출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 결과, 호주 내에서 수입상품 판매 가격이 상승하고, 상품을 수출하는 외국 내에서는 호주와 t만큼 가격 차이가 나는 수준까지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서 초과 생산량(=수출 물량)을 조절할 겁니다.

(참고 : 무역이 이루어지는 원리인 '서로 다른 가격'과 '초과 생산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따라서 제조상품을 수출하는 외국이 초과 생산량을 줄이고 수출 가격을 하락시킨 결과, 호주는 더 싼 가격에 제조상품을 일단 수입(=교역조건 개선)해오고, 호주 소비자들은 관세를 더하여 더 비싸진 가격에 수입품을 구매하게 됩니다.  

 

  • 호주가 제조상품에 수입관세를 부과한 결과, 외국이 제조상품을 수출하는 가격은 하락하고, 호주 내 제조상품 가격은 상승

  • 그 결과, 소비자 · 생산자 · 정부의 후생 손실 및 이득이 서로 달라지게 된다

  • 이때 교역조건 개선 이득도 고려해야 함


그렇다면 수입관세 부과 이후, 호주 국민들의 후생은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호주 국민들을 소비자 · 생산자 · 정부로 구분해야 합니다.

수입관세로 인해 호주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므로 후생 손실 -(a+b+c+d)을 봅니다. 반면, 호주 제조업 생산자들은 국내에서 판매할 때 받게 되는 가격이 상승하였으므로 후생 이득(a) 얻습니다. 정부는 관세를 통해 세금 수입을 늘리므로 역시 이득(c+e)을 얻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소비자 · 생산자 · 정부를 모두 고려한 후생변화는 -(b+d)+e 이고, 이를 후생손실로 표현하면 b+d-e 입니다. 만약 관세로 인한 가격 왜곡 손실을 나타내는 b+d의 크기가 e 보다 더 클 경우, 보호무역 정책은 호주 국민들의 후생을 감소시킵니다.

그렇다면 e가 무엇일까요? e는 교역조건 개선을 통한 후생증가을 나타냅니다. 수입관세 부과 덕분에, 이전에 수입상품을 들여오던 금액(P무역)보다 더 싼 가격에 상품을 수입(P수출국가 관세 이후)해 올 수 있으므로, 가격하락분*수입량 즉 e만큼 후생을 증가합니다.

따라서, 호주가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교역조건을 개선시키는만큼, 다르게 말해 수입 관세가 가격을 왜곡시켜 손실을 안겨다주는 크기(b+d)보다 교역조건 개선의 이득(e)이 더 크다면, 보호무역 정책은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 수입 관세는 가격을 왜곡시키는 단점과 교역조건을 개선시키는 장점이 있다

  • 따라서,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최적 관세율'(optimal tariff) 개념이 등장


이처럼 수입 관세(import tariff)는 가격을 왜곡시켜 소비자 후생을 떨어뜨리는 단점과 교역조건을 개선하여 후생을 증가시키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최적 관세율'(optimal tariff)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윗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수입 관세율은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교역조건 개선의 이익이 더 커서 국민 후생을 증대시키고 최적 수준에서 국민 후생은 극대화 됩니다

그러나 최적 수준을 넘어서는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 왜곡의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에 국민 후생은 감소합니다. 게다가 '외국 내에서는 호주와 t만큼 가격 차이가 나는 수준까지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서 초과 생산량(=수출 물량)을 조절'한다는 말은 곧 '교역량이 감소'(decline of trade volume)함을 뜻하기 때문에, 관세율이 게속해서 높아지면 언젠가는 무역이 없어지고 맙니다.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최적관세율이 얼마인지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우나, 어찌됐든 '수입관세를 활용한 보호무역 정책이 국민 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 The Australian Case for Protection이 국제무역이론과 논의에 미친 영향


이번글에서 살펴본, 호주인 경제학자 J. B. Brigden의 주장은 'The Australian Case for Protection'라 불리우며 국제무역이론 발전과 논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과는 다른 호주의 상황에 주목한 그의 주장은 "비교우위론은 모든 국가에게 적용가능하며, 자유무역은 국민 전체의 후생을 증대시켜준다"라고 단순히 생각해왔던 사람들에게 생각할꺼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① 수확체감산업과 수확체증산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19세기 영국인 데이비드 리카도가 곡물법 폐지와 자유무역을 주장한 이유는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1920년대 호주인 J. B. Brigden이 보호무역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 역시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리카도와 Brigden 모두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을 육성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 낯설지가 않습니다.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첫번째 글인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소개했다시피, 과거 개발도상국과 오늘날 선진국 모두 '제조업'(manufacturing)을 육성하거나 지키기 위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각주:15]는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중상주의자들'을 비판하였으나, 오늘날까지 '제조업으로 대표되는 수확체증산업'은 모든 나라들이 포기할 수 없는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국제무역논쟁]에서 '자유무역 혹은 보호무역 등 어떠한 무역정책이 수확체증산업에 이롭거나 해로운가'는 중요한 논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서, 개발도상국이든 선진국이든 수확체증산업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주장들이 나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② 무역과 시장개방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


일부 사람들은 "자유무역주의자들은 소득분배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소득분배 문제에 무관심해 보이는 이유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보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라고 생각하며 '시장개방으로 발생한 이득으로 손실을 보상해주면 된다' 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번글에서 살펴본 호주의 경우를 예로 들면, 시장개방으로 이익을 누리게 될 지주(landowner)들이 손해를 볼 근로자(laborers)에게 보상을 해준다면 문제가 없다는 게 자유무역주의자들의 사고방식 입니다.


반면, Brigden은 소득분배 문제에 적극적으로 다가섰습니다. 보호무역 정책이 근로자 임금을 상승시켜 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를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사고방식 입니다. 


Brigden의 이러한 생각은 1925년에 나왔는데, 당시에는 "보호무역이 호주 근로자들의 임금을 상승케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무역이 요소소득(factor's absolute income)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경제학계 내에서 합의된 이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Birgden이 촉발시킨 'The Australian Case for Protection' 이후에야 시장개방이 요소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로 위에서 짤막하게 소개한 스톨퍼-새뮤얼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가 1941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수입관세 부과가 비교열위에 투입된 생산요소의 가격을 상승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보호무역이 소득분배를 개선시킬 수도 있음을 드러내주었습니다.

(사족 : 하지만 볼프강 스톨퍼와 폴 새뮤얼슨은 그럼에도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손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보호무역주의자들을 위한 정치적 무기로 쓰이는 것을 우려" 했습니다.)


이처럼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사례는 '무역과 시장개방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을 경제학계 내에서 다시금 고조시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선진국] 편을 통해, 특히 오늘날 선진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역과 소득분배'를 둘러싼 논쟁을 자세히 다룰 계획입니다. 


③ 국제무역협정의 필요성이 대두됨


앞서 살펴보았듯이, 호주는 수입관세 부과를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시킬 수도 있습니다. 호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적절한 관세를 부과하면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적절한 관세'가 얼마인지 찾는 건 매우 어렵지만, 어찌됐든 이론적으로나마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깨달은 모든 국가들이 너도나도 최적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서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수입관세는 '교역조건 개선을 통한 후생증가'도 가져다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역량 감소'(decline of trade volume)도 초래합니다.  "'외국 내에서는 호주와 t만큼 가격 차이가 나는 수준까지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서 초과 생산량(=수출 물량)을 조절'한다는 말은 곧 '교역량이 감소'(decline of trade volume)함을 뜻한다"는 문장을 앞서 제가 괜히 적은 것이 아닙니다.


개별 국가들 입장에서는 '다른 모든 나라들이 자유무역을 지켜주는 가운데 나 혼자서만 최적관세를 부과한다면 최고의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모든 개별 국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너도나도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세계교역량이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임이론에서 널리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를 떠올리면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쉬울 겁니다.


이러한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무역 기조를 개별 국가들만 믿고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이번글에서 '보호무역이 후생을 증가시켜줄 가능성'을 보긴 하였으나, 어찌됐든 일반론으로나마 자유무역은 '더 비싼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고 더 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게 함'으로써 후생을 극대화 시켜주는 정책[각주:16]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개별 국가들에게 무역정책을 믿고 맡기는 양자 무역협정(unilateral free trade) 보다는 GATT · WTO 등 범세계적인 무역협정(Multilateral Trade Agreement)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GATT · WTO의 등장배경과 역할, 그리고 오늘날 다시금 양자 무역협정인 FTA 등이 대두된 이유를 살펴보면 좋겠네요.




※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들


이번글을 통해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에 대해 오해했던 이유 한 가지와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 한 가지를 각각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타당하든 타당하지 않든)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을 멀리하게 만들었던 다른 이유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비교우위에 특화하여 생산을 늘려나갈 때, 교역조건이 갈수록 악화되면 어떻게 하나

-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정책이 오히려 교역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다

- 석유 · 농산품 같은 1차 상품(raw material)을 생산하는 국가에게 비교우위론은 해롭다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1960~70년대 중남미 수입대체산업화]


: 비교우위에 특화할수록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은 1920~30년대 호주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석유 · 농산품 같은 1차 상품(raw material)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들은 대부분 비교우위론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국가가 1960~70년대 중남미 국가들 입니다. 이들은 호주 보다도 더 무역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호주는 수입관세를 부과하긴 하였으나 여전히 대외지향적인 정책(outward-looking)을 유지하며 시장개방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은 아예 대내지향적인 정책(inward-looking)으로 돌아서며 무역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동시기 한국 · 대만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적절한 보호무역 정책을 쓰면서도 무역개방을 늘려나간 결과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으나, 중남미 국가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저개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글이 '자유무역 보다 좋은 결과를 안겨다줄 수 있는 보호무역'을 보여주었다면, 다음글은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 보호무역'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비교우위에 따라 특화해야 하는 산업은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가

- 현재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이 아니라 다른 산업을 성장 시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 비교우위는 창출해낼 수 없는가

- [유치산업보호론]


: 19세기 영국은 제조업 부문이 비교우위가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이 없었으나, 호주와 같이 제조업을 키우고 싶으나 비교우위가 다른 산업에 있는 국가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왜 우리는 비교우위 산업이 제조업이 아닌가"


이로 인해 현재의 비교우위에서 탈피하고 장기적으로 이득을 안겨줄 비교열위 산업을 인위적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세계 각국에서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 또한 예외가 아니었죠. 과거에 비교우위를 가졌던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탈피하기 위해 국가 주도의 정책 지원과 보호무역 정책이 시행됐었습니다. 이를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 라고 합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마치 "평생 현재의 비교우위 산업에만 특화하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에, 비교우위와 열위를 바꾸고 싶어하는 국가들은 유치산업보호론을 따르며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강력합니다.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이나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이라는 이름을 달고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서, 유치산업보호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 (참고문헌) 『Against the Tide : An Intellectual History of Free Trade』



본 블로그 포스트 작성에는 J. B. Brigden의 1925년 논문 <The Australian Tariff and The Standard of Living>과 Wolfgang Stolper & Paul Samuelson의 1941년 논문 <Protection and Real Wages>이 큰 도움을 주었으나, 역시나 가장 큰 도움을 준 참고문헌은 국제무역이론 경제학자 Douglas Irwin이 1998년에 집필한 단행본 『Against the Tide : An Intellectual History of Free Trade』 임을 밝힙니다(단행본 아마존 링크).



  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6. ANU, 2006, GIBLIN'S PLATOON - The Trials and Triumphs of the Economist in Australian Public Life [본문으로]
  7. (The fundamental propositions of economic theory are the foundation of reasoning, but they can be only a general guide, while the precise and comparative results are always dependent upon circumstances of time and place. The classic theory of international trade has been derived from English circumstances.) [본문으로]
  8. The economy of regulation or of no regulation, it must be repeated, is never determined by generalisations, but is relative to particular circumstances. The economy of protection or free trade is relative to three very important circumstance to the growth of population, to diminishing returns, especially from land, and to the effects upon the equation of international demand. [본문으로]
  9. These circumstances are probably quite different in Great Britain, in the U.S.A. and in Australia, and very brief comparisons may be made to demonstrate the fact that differences do actually exist. [본문으로]
  10. When Great Britain adopted free trade, after the Napoleonic wars had completely established the predominance of British commerce abroad, and the estraordinary developments in its technique had placed British industry in 3 position of absolute supremacy, there were three main reasons which made the change overwhelmingly economic. Great Britain abandoned a complexity of taxes which had grown through war exigencies without any coherent trade policy at all. In the condition of foreign competition there was a vast field for expansion in manufactures, giving increasing returns and increasing profit. The only real protection that was abandoned was that to agriculture, which was a protection given to diminishing returns, reducing income and hampering manufactures. Free trade transferred production to a form giving increasing returns.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international equation, the expansion of manufactures was met by the abnormal expansions of primary production in new countries. It is only recently that any check has been made to the rate of these expansions. [본문으로]
  11. Free trade in Australia would have had the contrary effect, so far as it checked the growth of manufactures. [본문으로]
  12. Protection to agriculture in England would have prevented the advantage of manufacturing expansion, with its increasing return Protection in Australia may have prevented the disadvantages of agriculture expansion under conditions leading to diminishing returns. Free trade in England made for a higher standard of living; it relieved the pressure on English land and found work elsewhere for a growing population at a steadily rising standard of living. Protection in Australia may have achieved a similar result. [본문으로]
  13. This difference in the effect of regulation in the two countries is of prime importance in any consideration of their respective tariff policies, and of the merits of regulation. [본문으로]
  14. 이 원리가 이해 안되시는 분들은 이전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ttp://joohyeon.com/266)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http://joohyeon.com/267)을 꼭 읽으셔야 합니다. [본문으로]
  1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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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Posted at 2018. 8. 23. 18:00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자국과 외국에서의 '가격이 다르기 때문'

- 수출 : 국내에서 판매할 때보다 외국에 판매할 때 더 높은 상대가격 받음

- 수입 : 국내에서 구입할 때보다 외국에서 구입할 때 더 낮은 상대가격 지불

- 교역조건(Terms of Trade)에 따라 후생 증가 혹은 손실 가능


▶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할 때의 상대가격과 외국에 판매할 때의 상대가격이 다르기 때문(different relative price)


▶ 수출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할 때보다 외국에 판매할 때 더 높은 상대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higher relative price) 이고, 수입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구입할 때보다 외국에서 구입할 때 더 낮은 상대가격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lower relative price) 입니다.


국제무역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 던지는 물음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왜 세계 각국은 서로 무역을 하는가(trade pattern). 둘째, 무역을 통해 얻는 이익은 얼마나 되나(gains from trade).


왜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들끼리 상품을 교환하는 것일까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외국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기술수준(technology)이 다르거나 가지고 있는 자원(resource)이 다른 외국은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2015년(학부 4학년)에 작성한 [국제무역이론] 시리즈에서는 이처럼 '서로 다른 국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 했습니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국가간 기술수준 차이'[각주:1]를 말했고, 헥셔와 올린은 '국가간 부존자원의 차이'[각주:2]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국제무역에 대한 이해도가 지금보다 깊지 않았기 때문에 핵심을 전달하지 못한 불완전한 설명을 했습니다. 


▶ 왜 세계 각국은 서로 무역을 하는가 (trade pattern)


서로 다른 국가들이 왜 교역을 하는가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논리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다'(different relative price)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말했던 국가간 기술수준 차이로 인해 국내와 외국에서 가격이 달라질 수 있으며, 헥셔와 올린이 주목한 부존자원의 차이로 인해서도 국내와 외국에서 가격이 달라집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를 가진 상품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값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수출을 통해 더 높은 값을 받고 외국에 판매할 수 있다. 반대로 비교열위(disadvantage)를 가진 상품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비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통해 더 싸게 (간접)생산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헥셔-올린의 이론은 "국내에서 풍부한 생산요소(abundant factor)로 만들어진 상품은 상대적으로 값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수출을 통해 더 높은 값을 받고 외국에 판매할 수 있다. 반대로 국내에서 희귀한 생산요소(scarce factor)로 만들어진 상품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비싸게 생산되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통해 더 싸게 (간접)생산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이렇게 국가간 기술수준 및 부존자원의 차이는 서로 다른 상품 가격을 만들어내고, 이에 따라 어떤 상품을 수출할지와 수입할지 즉 무역패턴을 결정짓습니다. 


▶ 무역을 통해 얻는 이익은 얼마나 되나 (gains from trade)


국가 간에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무역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또 다른 함의를 전달해줍니다. 바로, '자급자족 일때의 가격과 국제무역시의 가격이 얼마나 다르냐가 무역의 이익을 결정한다(autarky price vs. world price)' 입니다.


국가간 상품 교환에 사용되는 가격, 즉 세계시장 가격이 국내가격과 똑같다면 우리나라가 얻게 될 무역의 이익은 없으며 무역을 할 이유도 없습니다. 무역의 이익은 외국이 다 가져가게 됩니다. 반대로 세계시장 가격이 외국가격과 똑같다면 무역의 이익은 오직 우리나라만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계시장 가격이 국내가격과 외국가격의 중간에서 결정될 때, 양 국가가 무역의 이익을 나누어 가지며 상호이득(mutual gain)을 얻게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교역조건의 중요성 (importance of terms of trade)



결국 중요한 건 세계시장에서 결정된 수출품(수입품) 가격이 자급자족 국내가격보다 얼마나 높으냐(낮으냐) 이며, 이를 보여주는 개념 및 지표가 '교역조건'(Terms of Trade) 입니다. 교역조건이란 수출상품 1단위로 얼마만큼의 수입상품을 가지고 오느냐를 알려주는 지표로서, 수입상품 가격 대비 수출상품 가격 비율로 나타내집니다. 


만약 교역조건이 자급자족일 때의 가격 비율보다 높다면 무역의 이익을 크게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교역조건 그 자체의 개선 및 악화는 무역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후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상품의 세계시장 가격이 높게 설정되거나 수입하는 상품의 세계시장 가격이 낮게 책정된다면, 교역조건이 개선되어 상품 1단위 수출로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수입해올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상품의 양이 많아짐을 의미하고, 그 결과 국제무역을 통해 후생증가(welfare gain)를 얻게 됩니다. 반대로 교역조건이 악화된다면 소비하는 상품의 약이 적어져서 후생손실(welfare loss)을 입습니다.


교역조건의 개선 및 악화가 후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교역조건을 인위적으로 개선시키면 후생증가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자국과 외국의 경제성장이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물음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지금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두 가지 물음을 머릿속에 계속해서 생각해두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글에서는 우선 '교역조건을 인위적으로 개선하는 방법'과 '경제성장이 교역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할 겁니다. 그리고 다음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교역조건을 둘러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논쟁'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과거 개도국과 오늘날 선진국이 자유무역을 탐탁치 않게 바라보는 이유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자국과 외국에서 서로 다른 가격이 어떻게 국제무역을 만들어내나


앞서 상품의 상대가격이 자국과 외국에서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무역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설명이 아직 와닿지 않는 분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래프를 이용하여 직관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 무역을 하지 않는 자급자족(Autarky) 상황에서 국내 및 외국의 상품가격 결정


윗 그래프는 무역을 하지 않는 자급자족(Autarky) 상황에서 국내 및 외국의 상품 가격 결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저 상품의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원리 입니다. 이때 주목할 점은 국내 가격이 외국 가격 보다 낮다는 점입니다. (사족 : 국내 가격과 외국 가격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뒤에서 설명할 겁니다.)


  • 자급자족 균형가격(P) 보다 높은 가격(P1, P2)이 설정되면 초과공급(S1-D1, S2-D2)이 발생 

  • 어떤 상품을 수출한다는 것은 나라 안에서 초과공급된 상품을 다른 나라에 판매함을 의미

  • 따라서 자급자족 균형가격 보다 높은 가격이 설정될수록 초과공급이 발생하여 수출이 이루어짐


자급자족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균형가격(P)이 결정된 가운데, 어떤 이유에서 더 높은 가격(P1, P2)이 설정된다고 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초과공급(S1-D1, S2-D2)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급자족에서 벗어나 국제무역에 참여하여 '상품을 수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상품을 수출한다는 것은 나라 안에서 초과공급된 상품을 다른 나라에 판매함을 의미합니다. 만약 자급자족 상황이라면 가격이 다시 조정되어 초과공급이 없어지지만, 국제무역에 참여하면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초과공급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급자족 균형가격 보다 더 높은 가격이 설정될수록 수출이 증가하여 세계시장에 더 많은 상품을 공급하게 됩니다. 그 모습이 윗 오른쪽 그래프 '국내 수출 공급곡선(XS)'에 나타나 있습니다.


  • 자급자족 균형가격(P) 보다 낮은 가격(P1, P2)이 설정되면 초과수요(D1-S1, D2-S2)가 발생

  • 어떤 상품을 수입한다는 것은 나라 안에서 초과수요인 상품을 다른 나라로부터의 공급으로 해결함을 의미 

  • 따라서 자급자족 균형가격 보다 낮은 가격이 설정될수록 초과수요가 발생하여 수입이 이루어짐


자급자족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균형가격(P)이 결정된 가운데, 어떤 이유에서 더 낮은 가격(P1, P2)이 설정된다고 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초과수요(D1-S1, D2-S2)가 발생합니다. 


앞서와 반대로, 자급자족에서 벗어나 국제무역에 참여하여 '상품을 수입'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상품을 수입한다는 것은 나라 안에서 초과수요인 상품을 다른 나라로부터의 공급으로 해결함을 의미합니다. 만약 자급자족 상황이라면 가격이 다시 조정되어 초과수요가 없어지지만, 국제무역에 참여하면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초과수요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급자족 균형가격 보다 더 낮은 가격이 설정될수록 수입이 증가하여 세계시장에서 더 많은 상품을 수요하게 됩니다. 그 모습이 윗 오른쪽 그래프 '외국 수입 수요곡선(MD)'에 나타나 있습니다.


  • 국제무역시 수출 공급곡선과 수입 수요곡선에 의해 세계시장에서 상품 가격(P무역) 결정

  • 세계시장 상품 가격은 국내 자급자족 가격보다는 높으며, 외국 자급자족 가격보다는 낮다


국내는 상품을 수출하고 외국은 상품을 수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급자족 상황에서 국내 가격이 외국 가격 보다 낮으며, ② 국제무역이 이루어졌을 때 세계시장에서 결정된 상품의 가격(P무역)이 국내 자급자족 가격 보다는 높고 외국 자급자족 가격 보다는 낮기 때문입니다.


세계시장 가격이 국내 자급자족 가격 보다 높기 때문에 초과공급이 발생하여 상품을 수출하게 되고, 세계시장 가격이 외국 자급자족 가격 보다 낮기 때문에 초과수요가 발생하여 상품을 수입하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만약 자급자족 상황에서 국내 가격이 외국 가격 보다 높다면 국내는 상품을 수입하게 되고 외국은 수출할 겁니다.


어느 경우든지, 수출과 수입, 즉 국제무역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① 자급자족 상황에서 국가들간의 상품가격이 서로 다르며, ② 세계시장 가격이 각국의 자급자족 가격과 차이가 있기 때문' 입니다. 만약 나라들마다 상품가격이 똑같다면 세계시장 가격도 자급자족 균형 가격과 같기 때문에, 초과공급 및 초과수요가 발생하지 않고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직관적인 그래프를 통해 '나라들마다 상품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무역이 발생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교역조건이 우호적일수록 무역의 이익이 증가한다


앞선 예시에서는 무역이 이루어졌을 때 세계시장 가격이 국내 및 외국의 자급자족 가격과 모두 달랐습니다. 그럼 세계시장 가격이 국내와 외국 둘 중 한 곳의 자급자족 가격과 동일하면 어떨까요?


이번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자급자족 일때의 가격과 국제무역시의 가격이 얼마나 다르냐가 무역의 이익을 결정(autarky price vs. world price)' 합니다. 국내와 외국의 자급자족 가격이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국제무역시 세계시장 가격이 자급자족 가격과 똑같다면 무역을 하지 않고 자급자족으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다시 말해, 수입상품 가격 대비 수출상품 가격으로 나타내지는 교역조건(Terms of Trade)이 우호적으로 설정될수록 무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소비가능선(CPC, Counsumption Possibility Curve)을 통해 '세계시장 가격 및 교역조건에 따른 무역의 이익 변화'(gains from trade)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설명에 앞서, 리카도가 비교우위를 설명할 때 예시로 들었던 경우를 다시 살펴봅시다. 위의 표와 수식은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설명했었습니다. 


맨 위의 표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 나온 '마법의 네 숫자'(four magic numbers) 이며, 아래 두 수식은 잉글랜드(옷)와 포르투갈(포도주)의 자급자족과 국제무역시 특화상품 가격을 보여줍니다. 


자급자족일 때 잉글랜드 옷의 상대가격은 100/120 인데 반하여, 외국과의 무역시 최대 90/80의 상대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급자족일 때 포르투갈 포도주의 상대가격은 80/90 인데 반하여, 외국과의 무역시 최대 120/100의 상대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내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외국에 판매하는 것이 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옷을 수출하고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수출합니다.


반대로 수입을 생각해보면, 자급자족일 때 잉글랜드 포도주의 상대가격은 120/100 인데 반하여, 외국과의 무역시 최소 80/90 가격으로 구입해 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급자족일 때 포르투갈 옷의 상대가격은 90/80 인데 반하여, 외국과의 무역시 최소 100/120 가격으로 구입해 올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것이 더 싸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포도주를 수입하고 포르투갈은 옷을 수입합니다.


(주 : 왜 잉글랜드가 무역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최대 상대가격이 90/80인지, 왜 포르투갈이 얻을 수 있는 최대 상대가격이 120/100인지,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은 지난글[각주:3]을 꼭 읽으셔야 합니다.)


이제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양국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국제무역을 시행하였을 때 나타나는 소비선택의 증가를 살펴봅시다.


① 국제무역 없이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이 자급자족 하는 상황

 


  •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소비자들이 자급자족 상황일 때 선택가능한 소비 조합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에서 옷(Cloth)과 포도주(Wine) 생산에 투입되는 각각의 노동량은 위의 표에 나와 있습니다. 양국의 총 노동량이 1,200명이라고 가정하면,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이 선택할 수 있는 소비 조합(consumption bundle)은 그래프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잉글랜드는 모든 노동자를 옷 생산에만 투입할 경우 최대 옷 12벌(포도주 0병)을 얻을 수 있으며, 포도주 생산에만 투입할 경우 최대 포도주 10병(옷 0벌)을 얻습니다. 노동자를 두 상품에 모두 투입할 경우 선택 가능한 조합은 직선 상의 지점이 됩니다.


포르투갈은 모든 노동자를 옷 생산에만 투입할 경우 최대 옷 13.3벌(포도주 0병)을 얻을 수 있으며, 포도주 생산에만 투입할 경우 최대 포도주 15병(옷 0벌)을 얻습니다. 노동자를 두 상품에 모두 투입할 경우 선택 가능한 조합은 직선 상의 지점이 됩니다.


양국이 기술수준이 변화하여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자급자족 상황을 유지한다면 소비가능선 이외의 조합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② 국제무역 시행 이후, 잉글랜드에게만 최대한 우호적인 교역조건

 




  • 잉글랜드에게만 우호적인 교역조건

  • 국제무역 시행 이후, 양국 소비자들의 선택가능한 소비 조합 변화 


이제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양국이 자급자족에서 벗어나 국제무역을 실시합니다. 그런데 이때 세계시장 가격은 잉글랜드에게만 우호적인 가격(포도주 대비 옷의 가격이 90/80 혹은 옷 대비 포도주 가격이 80/90)으로 설정될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러한 세계시장 가격(=교역조건)이 잉글랜드에게만 우호적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잉글랜드가 옷에 특화하여 판매할 때, 자급자족 상황이면 옷 1벌과 교환되는 포도주가 100/120병에 불과하지만, 무역을 통해 세계시장(포르투갈)에 판매하면 포도주 90/80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포르투갈은 포도주에 특화하여 판매할 때, 자급자족 상황에서 포도주 1병을 통해 옷 80/90벌을 얻게되고, 무역을 통해서도 똑같이 포도주 1병과 옷 80/90벌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잉글랜드는 자급자족 가격보다 더 높은 세계시장 가격을 얻을 수 있어서 무역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지만, 포르투갈은 자급자족 가격과 동일한 세계시장 가격을 받기 때문에 굳이 무역을 할 이유가 없으며 무역의 이익도 없습니다.


이러한 무역의 결과로, 잉글랜드는 특화하여 생산한 옷 전부를 포르투갈의 포도주와 교환하면 최대 13.5병(=옷 12벌 * 옷 1벌과 교환되는 포도주 병의 갯수인 90/80)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급자족 상황에서 노동자를 전부 포도주 생산에 투입하여 얻을 수 있는 최대 갯수인 10병 보다 큰 숫자입니다. 또한 잉글랜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소비 조합도 자급자족에 비해서 확장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무역에 참여하여 포도주에 특화한 이후 잉글랜드 옷과 교환하여도 자급자족 상황과 동일하게 최대 13.3벌(=포도주 15병 * 포도주 1병과 교환되는 옷의 갯수인 80/90)을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포르투갈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소비 조합은 무역 이전이나 이후나 변하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잉글랜드는 똑같은 총 노동자 숫자와 동일한 기술수준을 가지고도, 최대로 우호적인 교역조건에 기반한 무역에 힘입어서 자급자족에 비해 선택의 폭을 증가시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교역조건이 극도로 좋지 않기 때문에 무역의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③ 국제무역 시행 이후, 포르투갈에게만 최대한 우호적인 교역조건

  




  • 포르투갈에게만 우호적인 교역조건

  • 국제무역 시행 이후, 양국 소비자들의 선택가능한 소비 조합 변화


그럼 이제 반대로 세계시장 가격(=교역조건)이 포르투갈에게만 유리하게 결정된 경우를 알아봅시다. 포도주 대비 옷의 가격은 100/120 혹은 옷 대비 포도주 가격은 120/100 입니다.


이러한 교역조건이 포르투갈에게만 유리한 이유는, 포르투갈이 포도주에 특화하여 판매할 때, 자급자족 상황이면 포도주 1병과 교환되는 옷이 80/90벌에 불과하지만, 무역을 통해 세계시장(잉글랜드)에 판매하면 옷 120/100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잉글랜드는 옷에 특화하여 판매할 때, 자급자족 상황에서 옷 1벌을 통해 포도주 100/120 병을 얻게되고, 무역을 통해서도 똑같이 옷 1벌과 포도주 100/120병을 교환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포르투갈은 자급자족 가격보다 더 높은 세계시장 가격을 얻을 수 있어서 무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잉글랜드는 자급자족 가격과 동일한 세계시장 가격을 받기 때문에 굳이 무역을 할 이유가 없으며 무역의 이익도 없습니다.


이러한 무역의 결과로, 포르투갈은 특화하여 생산한 포도주 전부를 잉글랜드의 옷과 교환하면 최대 18벌(=포도주 15병 * 포도주 1병과 교환되는 옷의 갯수인 120/100)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급자족 상황에서 노동자를 전부 옷 생산에 투입하여 얻을 수 있는 최대 갯수인 13.3벌 보다 큰 숫자입니다. 또한 포르투갈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소비 조합도 자급자족에 비해서 확장되었습니다.


잉글랜드는 무역에 참여하여 옷에 특화한 이후 포르투갈 포도주와 교환하여도 자급자족 상황과 동일하게 최대 10병(=옷 12벌 * 옷 1벌과 교환되는 포도주 갯수인 100/120)을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잉글랜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소비 조합은 무역 이전이나 이후나 변하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포르투갈은 똑같은 총 노동자 숫자와 동일한 기술수준을 가지고도, 최대로 우호적인 교역조건에 기반한 무역에 힘입어서 자급자족에 비해 선택의 폭을 증가시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교역조건이 극도로 좋지 않기 때문에 무역의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④ 국제무역 시행 이후,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모두에게 상호이득을 주는 교역조건





  • 양국 모두에게 상호이득을 안겨다주는 교역조건

  • 국제무역 시행 이후, 양국 소비자들의 선택가능한 소비 조합 변화


그렇다면 잉글랜드에게만 혹은 포르투갈에게만 우호적인 경우를 벗어나서, 국제무역이 양국 모두에게 상호이득(mutual gain)을 주려면 세계시장 가격(=교역조건)이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까요? 세계시장 가격이 양국 특화 상품의 자급자족 가격보다 높아야 합니다.


만약 포도주 대비 옷 가격 혹은 옷 대비 포도주 가격이 1 이라면, 잉글랜드 특화 상품(=옷)의 자급자족 가격(=100/120)과 포르투갈 특화 상품(=포도주)의 자급자족 가격(=80/90) 보다 높기 때문에, 양국 모두 무역을 통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꼭 세계시장 가격이 1 이어야만 양국이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세계시장 가격이 양국 특화 상품의 자급자족 가격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계시장 가격이 어느 나라의 특화상품 자급자족 가격보다 더 높으냐에 따라서, 무역의 이익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가 달라질테지만, 어찌됐든 양국 모두 자급자족 보다는 소비 선택 폭을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잉글랜드는 옷에 특화하여 판매할 때, 자급자족 상황이면 옷 1벌과 교환되는 포도주가 100/120병에 불과하지만, 무역을 통해 세계시장(포르투갈)에 판매하면 포도주 1병을 얻을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포도주에 특화하여 판매할 때, 자급자족 상황이면 포도주 1병과 교환되는 옷이 80/90벌에 불과하지만, 무역을 통해 세계시장(잉글랜드)에 판매하면 옷 1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모두 자급자족 가격보다 더 높은 세계시장 가격을 얻을 수 있어서 무역의 이익을 공유하게 됩니다. 


이러한 무역의 결과로, 잉글랜드는 특화하여 생산한 옷 전부를 포르투갈의 포도주와 교환하면 최대 12병(=옷 12벌 * 옷 1벌과 교환되는 포도주 갯수 1)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급자족 상황에서 노동자 전부를 포도주 새산에 투입하여 얻을 수 있는 최대 갯수인 10병 보다 큰 숫자입니다. 또한 잉글랜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소비 조합도 자급자족에 비해서 확장되었습니다.


포르투갈도 특화하여 생산한 포도주 전부를 잉글랜드의 옷과 교환하면 최대 15벌(=포도주 15병 * 포도주 1병과 교환되는 옷 갯수 1)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급자족 상황에서 노동자 전부를 옷 생산에 투입하여 얻을 수 있는 최대 갯수인 13.3벌 보다 큰 숫자입니다. 또한 포르투갈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소비 조합도 자급자족에 비해서 확장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양국은 똑같은 총 노동자 숫자와 동일한 기술수준을 가지고도, 상호에게 우호적인 교역조건에 기반한 무역 덕분에 자급자족에 비해 선택의 폭을 증가시키게 되었습니다. 


⑤ 교역조건에 따라 무역의 이익 크기가 달라짐


이번 파트에서는 '교역조건에 따라 무역의 이익을 누가 가져가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교역조건이 잉글랜드 혹은 포르투갈 한쪽에게만 유리하게 결정될 경우 무역의 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국가가 나타날 수 있었고, 교역조건이 상호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결정될 수도 있었습니다.


교역조건(Terms of Trade)이 우호적으로 설정될수록 무역의 이익이 극대화 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으며, 교역조건이 우호적이다는 말은 특화상품의 국제무역시 세계시장 가격이 자급자족시 가격 보다 높다는 의미라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교역조건에 따라 무역의 이익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한 눈에 파악하기 위해서,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소비가능선 변화를 정리해봤습니다.


  • 교역조건이 잉글랜드에게 우호적으로 변화할수록 (그래프 오른쪽일수록), 잉글랜드 소비자들이 선택가능한 소비 조합 폭 확대


잉글랜드 소비자가 자급자족 상황에서 선택가능한 소비 조합은 맨 왼쪽에 나옵니다. 그리고 최대로 불리한 교역조건(=세계 시장 가격이 자급자족 가격과 똑같은 상황) 속에서 무역을 하게 된다면, 무역 이전이나 이후나 소비 조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잉글랜드는 무역의 이익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와는 달리 우호적인 교역조건 속에서 무역을 하게 되면, 옷 생산에 특화한 이후 포르투갈과의 교환을 통해 더 많은 포도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잉글랜드가 마주한 교역조건이 1 이라면 옷 12벌로 포도주를 최대 12병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역조건이 최대한 우호적인 90/80 이라면 옷 12벌로 포도주를 최대 13.5병까지 가지게 됩니다. 


교역조건이 잉글랜드에게 우호적일수록 잉글랜드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후생이 증가합니다.


  • 교역조건이 포르투갈에게 우호적으로 변화할수록 (그래프 오른쪽일수록), 포르투갈 소비자들이 선택가능한 소비 조합 폭 확대


마찬가지로, 포르투갈 소비자가 자급자족 상황에서 선택가능한 소비 조합은 맨 왼쪽에 나옵니다. 그리고 최대로 불리한 교역조건(=세계 시장 가격이 자급자족 가격과 똑같은 상황) 속에서 무역을 하게 된다면, 무역 이전이나 이후나 소비 조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포르투갈은 무역의 이익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와는 달리 우호적인 교역조건 속에서 무역을 하게 되면, 포도주 생산에 특화한 이후 잉글랜드와의 교환을 통해 더 많은 옷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포르투갈이 마주한 교역조건이 1 이라면 포도주 15병으로 옷을 최대 15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역조건이 최대한 우호적인 120/100 이라면 포도주 15병으로 옷을 최대 18벌 까지 가지게 됩니다. 


교역조건이 포르투갈에게 우호적일수록 포르투갈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후생이 증가합니다.




※ 교역조건을 변동시키는 요인 ① '수입관세'(import tariff)

- 수입관세를 통해 인위적으로 교역조건 개선하기


지금까지 이번글을 통해 두 가지 논리를 알 수 있었습니다.


첫째, 수출과 수입, 다르게 말해 국제무역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자급자족 상황에서 국가들간의 상품가격이 서로 다르며, 세계시장 가격이 각국의 자급자족 가격과 차이가 있기 때문' 이었습니다.


둘째, 특화상품의 국제무역시 세계시장 가격이 자급자족시 가격 보다 높을수록, 즉 교역조건이 우호적일수록 무역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던질 수 있는 물음은 "교역조건을 인위적으로 개선시키면 후생증가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입니다. 교역조건이 무역의 이익을 결정한다면, 이를 인위적으로 개선시켜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역조건을 인위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경제학자들이 주목하는 한 가지는 바로 '수입관세'(import tariff) 입니다. 수입국가가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그 부담이 수출국가에 일부 전가되기 때문에 상품의 수출 가격이 하락, 다르게 말해 수입국가 입장에서는 상품의 수입 가격이 하락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그 결과, 교역조건이 개선되게 됩니다. 


향후 다른글을 통해 구체적인 이론 및 사례를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논리는 '후생증가를 위한 보호무역 정책의 필요성'(terms of trade argument for protection)을 주장하는 핵심 근거가 됩니다.


일단 지금은 '교역조건 개선은 소비의 선택폭을 넓혀 후생 증가를 가져오며', '수입관세를 통해 인위적으로 교역조건을 개선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만 머릿속에 담아두면 됩니다.




※ 왜 나라들마다 상품 가격이 다른가

- 편향성장(biased-growth)에 따른 상대공급(RS) 차이


수입관세 이외에 교역조건을 변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경제성장'(growth) 입니다. 자국 및 외국의 경제성장은 상품의 공급을 변화시켜 세계시장 상품가격(=교역조건)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경제성장이 어떻게 교역조건을 변화시키는지를 살펴보기에 앞서, "왜 세계 각국은 서로 다른 상품 가격을 가지게 되었을까?"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 만약 세계 각국에서 상품 가격이 동일하다면 무역이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어떠한 요인이 무역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을까요.


이번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경제학자들은 나라들마다 상품 가격이 다른 이유로 크게 2가지를 꼽습니다. 첫째는 데이비드 리카도가 주목한 '국가간 기술수준 차이'(technology)이며, 둘째는 헥셔와 올린인 주목한 '부존자원의 차이'(factor endowment) 입니다.


▶ 참고자료

: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헥셔와 올린의 무역이론 -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이번에도 그래프를 이용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두 가지 상품을 얼마나 생산할지의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 생산가능곡선 기울기와 등가치선 기울기가 접하는 지점이 이윤극대화 생산 조합


앞서 '※ 자국과 외국에서 서로 다른 가격이 어떻게 국제무역을 만들어내나' 파트에서는 한 가지 상품을 대상으로 자급자족 가격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높은 국내는 수출만 · 자급자족 가격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낮은 외국은 수입만 하는 상황을 상정했습니다. [부분균형 분석]


하지만 잉글랜드는 옷을 수출하고 포도주를 수입 ·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수출하고 옷을 수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국제무역은 두 가지 이상의 상품을 대상으로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일반균형 분석 필요]


그럼 우선은 국가경제 내에서 두 가지 상품의 생산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 모습이 윗 그래프에 나타나 있습니다.


X축은 옷 생산량, Y축은 포도주 생산량을 나타냅니다. 파란색 곡선은 (소비가능선 개념과 유사한) 생산가능곡선(PPC, Production Possibility Curve)으로 생산자가 선택가능한 생산 조합을 보여줍니다. 이때 생산자는 아무 조합이나 선택하지 않습니다. 생산자의 목적은 이윤극대화 입니다. 따라서 최대한의 이윤을 가져다주는 생산 조합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등가치선(Isovalue Line) 입니다. 두 상품의 '가격 * 생산량'을 더한 것으로 생산자가 얻게 되는 이윤을 보여줍니다. 가격이 비싸거나 생산량이 많으면 이윤 총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등가치선이 바깥쪽에 놓여있을수록 생산자가 얻어가는 게 많습니다.


생산자는 A · B · C 중 어느 조합을 선택해야 할까요? 당연히 C점이 위치한 등가치선이 가장 바깥쪽에 있으므로 가장 많은 이윤을 가져다 줄겁니다. 


제가 말하고픈 것은 '생산가능곡선의 기울기'와 '등가치선의 기울기'가 '접하는 지점'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생산가능곡선과 등가치선의 기울기(slope)는 두 상품 간의 상대가격(relative price)을 나타내줍니다.


(주 : 왜 접점을 선택하느냐를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② 상품의 상대가격 변화에 따른 상대공급량 결정


  • 옷 상품의 상대가격 증가에 따라 옷의 상대공급량이 증가하는 모습


생산가능곡선의 기울기와 등가치선의 기울기가 접하는 지점을 선택해야 하며, 기울기가 두 상품의 상대가격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울기 즉 상대가격이 변화하면 생산자가 선택해야 하는 조합도 바뀝니다.


윗 그래프가 교역조건에 따른 최적 생산 조합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가격 1 일때에 비해 상대가격 2인 경우 포도주 대비 옷의 상대공급이 더 많아집니다. 


이는 직관적으로 당연한 사실입니다. 상대가격 1에 비해 상대가격 2가 더 가파른 모양인데, 이는 곧 포도주 대비 옷의 가격으로 나타내진 상대가격이 상승했음을 뜻하며, 옷의 상대가격이 더 비싸졌기 때문에 당연히 옷의 상대생산량도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 오른쪽 그래프 모양처럼, 상대가격에 따른 상대공급곡선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옷의 상대가격이 상승할수록 옷의 상대공급량도 증가하는 모양입니다.


(만약 상대가격을 옷 대비 포도주 가격으로 표현한다면, 포도주의 상대생산량이 더 많아지는 모양으로 그래프를 그릴 수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격 및 상대수량의 분자와 분모만 거꾸로 바꾸면 됩니다.)


③ 기술수준 및 부존자원이 다른 국가들, 상대공급곡선이 달라지다


  • 서로 다른 기술수준 및 보유자원을 가진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 옷 생산에 편향적인 잉글랜드, 포도주 생산에 편향적인 포르투갈

  • 옷의 상대가격이 동일할 때, 잉글랜드가 포도주 대비 옷을 더 많이 생산

  • 포르투갈은 옷 대비 포도주를 더 많이 생산


그럼 이제 두 나라의 상대공급곡선을 비교해 봅시다. 두 나라는 동일한 상대공급곡선을 가지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서 잉글랜드는 옷을 수출하고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수출합니다. 이는 곧 잉글랜드는 옷을 상대적으로 더 싸게 생산해내며,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상대적으로 더 싸게 생산함을 의미합니다. 나라들마다 비교우위를 가지게 된 상품이 서로 다른 이유는 (리카도가 강조한) '기술수준'(technology)와 (헥셔와 올린이 강조한) '부존자원'(endowment factor)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윗 그래프 왼쪽과 오른쪽처럼 서로 다른 모양의 생산가능곡선에서 나타납니다. 잉글랜드는 기술수준 및 부존자원 덕분에 옷에 편향적인 생산가능곡선(cloth-biased)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포도주에 편향적인 생산가능곡선(wine-biased) 이죠. 


이로 인하여, 똑같은 상대가격 일지라도 두 국가의 상대생산량이 다릅니다. 동일한 상대가격을 기준으로, 잉글랜드는 옷을 더 많이 생산하고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더 많이 생산합니다. 그 결과, 글랜드의 상대공급곡선이 포르투갈의 것에 비하여 더 오른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 : 만약 상대가격 및 상대수량을 옷 대비 포도주로 나타낼 경우, 포르투갈의 상대공급곡선이 잉글랜드의 것에 비하여 더 오른쪽에 위치) 


④ 국가들마다 서로 다른 상대공급곡선이 가격의 차이를 만들어내다


  •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상대공급곡선

  • 잉글랜드 옷의 상대가격이 포르투갈에 비해 더 싸다

  • 포르투갈 포도주의 상대가격이 잉글랜드에 비해 더 싸다


그럼 이제 왜 나라들마다 상품 가격이 다른지를 본격적으로 알아봅시다. 그 이유는 위에서 다 찾았습니다. 바로, 기술수준 및 부존자원 차이로 인해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상대공급곡선이 서로 다르게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국민의 선호(preference)가 동일하여 수요곡선이 똑같다면, 결국 가격은 공급곡선의 위치가 결정합니다. 


잉글랜드의 상대공급곡선이 더 오른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황에서 잉글랜드 옷의 상대가격이 포르투갈에 비해서 더 쌉니다. 반대로 포르투갈의 상대공급곡선이 더 왼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황에서 포르투갈 포도주의 상대가격이 잉글랜드에 비해서 더 쌉니다.


이제 자급자족에서 벗어나 국제무역이 이루어지면 세계시장 가격(=교역조건)이 만들어집니다. 잉글랜드 및 포르투갈의 상대공급곡선을 가중평균한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과 상대수요곡선이 만나서 교역조건이 결정됩니다. 


이때의 교역조건은 자급자족 상황에서 잉글랜드 옷의 상대가격보다 비싸고 포르투갈 옷의 상대가격 보다는 싸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옷을 수출하고 포르투갈은 더 싼 가격에 물건을 쓰기 위해 옷을 수입해 옵니다.


반대로 교역조건은 자급자족 상황에서 잉글랜드 포도주의 상대가격보다 싸고 포르투갈 포도주의 상대가격 보다는 비싸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더 싼 가격에 물건을 쓰기 위해 포도주를 수입하고 포르투갈은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포도주를 수출합니다.


이번글의 앞에서 살펴본 "수출과 수입, 즉 국제무역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① 자급자족 상황에서 국가들간의 상품가격이 서로 다르며, ② 세계시장 가격이 각국의 자급자족 가격과 차이가 있기 때문'"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교역조건을 변동시키는 요인 ② '편향성장(biased growth)'의 영향

- 자국의 수출편향성장 및 외국의 수입편향성장은 교역조건 악화

- 자국의 수입편향성장 및 외국의 수출편향성장은 교역조건 개선


국가들마다 상품 가격이 다르게 된 원인을 파악하였고 세계시장에서 교역조건이 결정되는 원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들마다 다른 기술수준 및 부존자원으로 인해 동일한 가격수준일 때 생산해내는 수량이 달랐기 때문(biased)입니다. 개별 국가들은 각자에게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공급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서로 다른 모양을 띈 생산가능곡선'과 '다른 위치에 놓인 상대공급곡선' 그래프를 통해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역조건은 여러 국가의 상대공급곡선을 가중평균한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이 결정하였고, 나라들마다 서로 다른 가격이 무역을 이끌어내는 원리도 그래프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또 다른 물음인 "자국과 외국의 경제성장이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면 어떻게 해야하나?"던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경제성장이란 생산가능곡선(PPC)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국가들이 가진 기술수준 및 부존자원이 달라자셔 생산가능곡선이 변화하고, 그 결과 상대공급곡선 위치가 달라지면 교역조건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교역조건을 악화시켜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후생 손실을 불러오는 것 아니냐'(immiserizing growth)는 주장의 핵심 논거가 됩니다. 


그럼 이제 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교역조건을 악화시켜 후생손실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국제무역 시행 이후 교역조건은 양 국가의 상대공급곡선을 가중평균한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이 결정하기 때문에, 양 국가의 상대공급곡선이 움직이면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도 변합니다. 


라서, '생산가능곡선이 변화하여 상대공급곡선 위치가 달라지는 경우'를 살펴봐야 합니다. 


생산가능곡선은 기술수준 및 부존자원이 변화하면 이전과 다르게 바뀔 수 있습니다. 이때 생산가능곡선은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더 편향적으로 바뀔 수 있으며,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의 생산이 늘어나는 방향으로도 바뀔 수 있습니다. 


전자는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으로써 '비교우위를 가졌던 수출상품의 생산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며, 후자는 수입편향성장(import-biased growth)이고 '비교열위를 가졌던 수입상품의 생산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내용 이해를 위해, 여기서는 잉글랜드가 자국(Home), 포르투갈이 외국(Foreign) 이라고 가정합시다.


▶ 잉글랜드의 교역조건이 개선되는 경우

: 자국의 수입편향성장 & 외국의 수출편향성장


  • 옷 수출, 포도주 수입하는 잉글랜드의 수입편향성장

  • 포도주 수출, 옷 수입하는 포르투갈의 수출편향성장

  • 옷의 상대공급을 감소시켜, 옷의 상대가격을 상승시키다


옷을 수출하는 잉글랜드 입장에서 교역조건이 개선되려면 세계시장에서 수출상품 옷의 상대가격이 상승해야 합니다. 


교역조건이 개선되는 경우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자국의 수입편향성장(import-biased growth). 둘째, 외국의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


잉글랜드가 수입상품인 포도주의 생산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기술수준이 향상된다면, 위의 왼쪽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잉글랜드 상대공급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도 왼쪽으로 움직입니다. 그 결과, 옷의 상대공급이 줄어들어 옷의 상대가격은 상승, 즉 교역조건은 개선됩니다. 


결국 중요한 건 잉글랜드가 비교우위를 가졌던 '수출상품 옷의 상대공급이 세계시장에서 줄어들어 상대가격(=교역조건)이 상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이 수출상품인 포도주의 생산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기술수준이 향상된다면, 마찬가지로 세계시장에서 옷의 상대공급이 줄어들게 됩니다. 위의 오른쪽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포르투갈 상대공급곡선은 왼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도 왼쪽으로 움직입니다. 그 결과, 옷의 상대가격은 상승하여 잉글랜드 입장에서 교역조건은 개선되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자국의 수입편향성장(import-biased growth) 및 외국의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은 자국이 비교우위를 가졌던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을 감소시켜 교역조건을 개선시킵니다.


▶ 잉글랜드의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경우

: 자국의 수출편향성장 & 외국의 수입편향성장


  • 옷 수출, 포도주 수입하는 잉글랜드의 수출편향성장

  • 포도주 수출, 옷 수입하는 포르투갈의 수입편향성장

  • 옷의 상대공급을 증가시켜, 옷의 상대가격을 하락시키다


앞서와 반대로, 옷을 수출하는 잉글랜드 입장에서 교역조건이 악화되려면 세계시장에서 수출상품 옷의 상대가격이 하락해야 합니다.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경우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자국의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 둘째, 외국의 수입편향성장(import-biased growth)


잉글랜드가 수출상품인 옷의 생산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기술수준이 향상된다면, 위의 왼쪽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잉글랜드 상대공급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도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 그 결과, 옷의 상대공급이 증가하여 옷의 상대가격은 하락, 즉 교역조건은 하락하고 맙니다. 


결국 중요한 건 잉글랜드가 비교우위를 가졌던 '수출상품 옷의 상대공급이 세계시장에서 늘어나 상대가격(=교역조건)이 하락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이 수입상품인 옷의 생산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기술수준이 향상된다면, 마찬가지로 세계시장에서 옷의 상대공급이 늘어나게 됩니다. 위의 오른쪽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포르투갈 상대공급곡선은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도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 그 결과, 옷의 상대가격은 하락하여 잉글랜드 입장에서 교역조건은 개선되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자국의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 및 외국의 수입편향성장(import-biased growth)은 자국이 비교우위를 가졌던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을 증가시켜 교역조건을 악화시킵니다.



▶ 자국의 수출편향성장이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는 것의 의미


분명, 데이비드 리카도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실시하면 후생증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는데, 비교우위 상품에 특화를 강화하여 생산을 늘려나갈수록 어찌된건지 교역조건은 악화되고 맙니다.


물론, 자국의 수출편향성장이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는 논리는 한 가지 전제를 필요로 합니다. 바로 '자국의 상대공급곡선 변화가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국이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면, 자국의 상대공급곡선 변화가 세계시장을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특정 국가의 생산 변화가 세계시장 공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품이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석유 · 철광석 · 농산품 같은 1차 상품(raw material) 입니다. 1차 상품은 특정 국가에서 생산량이 변동할 경우 세계시장에서 곧바로 가격변화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중동 특정 국가의 정치분쟁은 석유가격 인상으로 나타나고, 중남미 기후 변화는 세계 농산물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인해, 과거 중동 및 중남미 국가들 안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이 우리 수출품의 생산을 증가시켜 되려 교역조건을 악화시키고 후생손실을 초래한다"라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외국의 수입편향성장이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선진국은 교역조건 악화에 대한 불만이 없을까요? 


선진국이 두려워하는 점은 신흥국의 경제성장 입니다. 과거 선진국과 신흥국은 기술수준이 달랐기 때문에 비교우위 상품 또한 서로 달랐습니다. 그러나 신흥국 경제가 성장하고 선진국을 쫓아 기술개발을 하게 되자, 과거 선진국이 비교우위를 가졌던 상품을 스스로 생산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즉, 신흥국이 수입편향성장을 하게 된겁니다. 


이로 인하여 선진국 입장에서는 '외국의 수입편향성장'을 맞이하게 되었고, 비교우위를 가졌던 상품의 상대공급량이 늘어나서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사실이면서 하찮지 않은(both true and non-trivial) 명제'로 칭했던 폴 새뮤얼슨[각주:4] 조차 2004년 논문을 통해 자유무역 논리가 미국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걱정했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최근 선진국 내에서는 신흥국의 추격 특히나 중국의 경제성장을 매우 우려스럽게 바라보며, "자유무역이 선진국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거 아니냐"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 교역조건 개선을 근거로 한 보호무역 옹호와 자유무역 비판의 논쟁들 


이번글에서 알게된 지식을 정리해 봅시다.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국내와 외국에서 다르기'(different relative price) 때문이며. '자급자족 일때의 가격과 국제무역시의 가격이 얼마나 다르냐가 무역의 이익을 결정(autarky price vs. world price)'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세계시장에서 결정된 수출품(수입품) 가격이 자급자족 국내가격보다 얼마나 높으냐(낮으냐) 이며, 이를 보여주는 개념 및 지표가 '교역조건'(Terms of Trade) 입니다. 만약 교역조건이 자급자족일 때의 가격 비율보다 높다면 무역의 이익을 크게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교역조건 그 자체의 개선 및 악화는 무역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후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교역조건을 인위적으로 개선시키면 후생증가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고, '교역조건을 개선시켜 후생증가를 달성하기 위해,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terms of trade argument for protection) 라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물음인 "자국과 외국의 경제성장이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면 어떻게 해야하나?"를 던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려로 인해, 과거 중동 및 중남미 국가들 안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이 우리 수출품의 생산을 증가시켜 되려 교역조건을 악화시키고 후생손실을 초래한다"라는 비판이 나오게 되었고, 오늘날 선진국 내에서는 신흥국의 추격 특히나 중국의 경제성장을 매우 우려스럽게 바라보며, "자유무역이 선진국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거 아니냐"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 및 비판들은 과거 개도국 및 오늘날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국제무역논쟁]의 중요한 논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수입관세 정책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던 1920~30년대 호주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먼저 알아봅시다.



  1.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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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⑪]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경제성장이론 ⑪]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

Posted at 2017. 7. 25. 20:09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 (Stylized Facts)


지금까지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통해, 성장이론을 알아봤습니다. 


여기서 '이론'(theory)이란 말그대로 경제현상을 일반론적인 접근으로 설명함을 의미합니다. 실제 개별국가가 어떻게 성장에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 현재 개별 선진국들은 어떠한 구체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등등은 이론을 넘어선 실증분석(empiric)으로 연구해야겠죠.


그럼 [경제성장이론]은 어떠한 경제현상을 일반론으로나마 설명해내고 있을까요? 

(사족 : 본 시리즈를 통해 계속 강조하고 있는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못 사는가?", "왜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고, 어떤 나라는 느리게 성장하는가?"도 경제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경제학자 니콜라스 칼도어(Nicholas Kaldor)1961년 <자본축적과 경제성장>(Capital Accumulation and Economic Growth) 논문을 통해, '(미국경제에서 관찰되는) 경제성장에 관한 6가지 정형화된 사실'을 말합니다. 일명, '칼도어의 정형화된 사실들'('Kaldor's Stylized Facts') 입니다. [경제성장이론] 중 가장 처음 살펴본 '솔로우 모형'은 칼도어의 사실들을 잘 설명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불만을 품은 분도 계실(길 바랍니다)겁니다. "솔로우 모형(1956)이나 칼도어의 사실들(1961)이나 예전에 나온 이론 아닌가. 최근의 경제현상을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데." 오래전 제기된 '칼도어의 사실들'은 현재에도 적용이 되지만, 일반인들의 최근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왼쪽 : 폴 로머 (Paul Romer)
  • 오른쪽 : 찰스 존스 (Charles Jones)


신성장이론을 만든 폴 로머(Paul Romer)와 학부 경제성장론 교과서 저자로 널리 알려진 찰스 존스(Charles Jones)는 2009년 미완성논문과 2010년 논문 <새로운 칼도어의 사실들: 아이디어, 제도, 인구 그리고 인적자본>(The New Kaldor Facts: Ideas, Institutions, Population, and Human Capital)을 통해, 최근에 목격되는 새로운 정형화된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시장크기의 확대 - 세계화와 도시화의 진전

(Increase in the extent of market)


성장의 가속화 - 인구규모와 1인당 GDP의 빠른 증가

(Accelerating growth)


성장률 격차 - 기술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들간에 성장률 차이가 크다

(Variation in modern growth rates)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 - 국가간 소득 격차의 대부분은 생산성 격차로 설명된다

(Large income and TFP differences)


근로자 1인당 인적자본의 증가 - 인적자본 규모의 급격한 증가

(Increases in human capital per worker)


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안정적 - 숙련 근로자 공급이 늘어났음에도, 임금은 하락하지 않았다

(Long-run stability of relative wages)


오늘날 발견되는 위의 경제현상은 '아이디어-인구규모-제도-인적자본'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물 입니다. '아이디어와 인구'의 작용이 ① · ②, '아이디어와 제도'가 ③ · ④, '아이디어와 인적자본'이 ⑤ · ⑥ 현상을 낳았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새로운 정형화된 사실들'을 알아봅시다.




※ 칼도어의 정형화된 사실들 (Kaldor's Stylized Facts)


먼저, 1961년 칼도어가 말했던 '정형화된 사실들'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칼도어의 사실들은 6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 글에서는 3가지만 설명하겠습니다.


① 총생산량과 1인당 생산량이 꾸준한 속도로 증가 -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the continued growth in the aggregate volume of production and in the productivity of labour at a steady trend rate: no recorded tendency for a falling rate of growth of productivity)


② 1인당 자본량이 계속해서 증가 - 1인당 자본량과 생산량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했다 

(a continued increase in the amount of capital per worker, whatever statistical measure of 'capital' is chosen in this connection)


③ 총생산량과 1인당 생산량의 증가율이 국가별로 다르다 -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난다

(there are appreciable differences in the rate of growth of labour productivity and of total output in different societies) 


칼도어의 사실들을 처음 접하면 "이게 무슨 이야기지?" 라고 하실 겁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알고나면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경제성장이론] 시리즈에서 살펴본 '솔로우 모형'을 알고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족 : 솔로우 모형은 '미국경제'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칼도어의 사실들'에 관한 설명에서도 미국을 예시로 들겠습니다.)



▶ ① 총생산량과 1인당 생산량이 꾸준한 속도로 증가 

- 하락하는 경향을 나타내지 않았다



: 윗 그림에서 볼 수 있다시피, 미국의 GDP(혹은 1인당 GDP도)는 꾸준한 속도로 증가했습니다.(steady trend rate) 


그래프의 기울기가 갑작스레 가팔라지거나(=성장률이 급격히 증가하거나), 추세가 반전되어 하락하는 경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1929년 대공황 시기나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큰 폭의 생산량 감소가 나타났으나, 이내 이전의 추세를 회복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이를 '정상상태에서의 외생적인 기술진보율'로 설명해 낼 수 있습니다. 자본축적량을 늘려가면서 정상상태(steady state)에 가까워지면 성장률이 점차 하락하지만, 정상상태에 도달하고 나면 외생적인 기술진보율로 성장을 이어나갑니다. 


(사족 : 이를 자본량, 생산량, 기술진보율 등이 모두 같은 크기만큼 증가하는 것을 '균형성장경로'(balanced growth path)라고 합니다. 조금 어려운 내용 같아서, 본 시리즈에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 ② 1인당 자본량이 계속해서 증가 

- 1인당 자본량과 생산량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했다 


  • 출처 : OECD National Accounts at a Glance


: 윗 그림에 나오듯이, 미국의 1인당 자본량 지속해서 증가해 왔습니다. 또한, 1인당 생산량도 비슷하게 늘어났죠. 


이는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을 강조하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축과 투자를 통해 쌓여지는 자본은 생산량 증가를 만들어 냅니다.



▶ ③ 총생산량과 1인당 생산량의 증가율이 국가별로 다르다 

-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난다


: 국가간 성장률 격차는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틍해 수차례 다루었던 주제입니다.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 정도에 따른 '전이경로'(transitional path)로 성장률 격차를 설명합니다. 자본을 많이 축적하여 정상상태에 다다른 선진국은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지만, 아직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후발산업국가들은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렇게 솔로우 모형은 '칼도어의 정형화된 사실들'을 올바로 설명해 내고 있습니다. 




※ 솔로우 모형이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정형화된 사실들'


① 시장크기의 확대 - 세계화와 도시화의 진전

(Increase in the extent of market)


② 성장의 가속화 - 인구규모와 1인당 GDP의 빠른 증가

(Accelerating growth)


③ 성장률 격차 - 기술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들간에 성장률 차이가 크다

(Variation in modern growth rates)


④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 - 국가간 소득 격차의 대부분은 생산성 격차로 설명된다

(Large income and TFP differences)


⑤ 근로자 1인당 인적자본의 증가 - 인적자본 규모의 급격한 증가

(Increases in human capital per worker)


⑥ 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안정적 - 숙련 근로자 공급이 늘어났음에도, 임금은 하락하지 않았다

(Long-run stability of relative wages)


하지만 솔로우 모형은 최근에 발견되는 '새로운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는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 솔로우 모형은 '시장크기'나 '무역을 통한 경제통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에측하지 못합니다. 이 모형에서는 '규모의 효과'(scale effect)를 다룬 적이 없습니다.


▶ 또한, 솔로우 모형에서 인구증가율은 낮을수록 좋습니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1인당'(per capita) 자본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인구증가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생활수준이 낮다고 예측합니다.


▶ 앞서 언급했다시피, 솔로우 모형이 말하는 국가간 성장률 격차는 '전이경로'가 만들어낸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국가들은 모두 자본축적량이 적기 때문에 서로 간에 비슷한 성장률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 비슷한 생활수준을 가졌음에도 빠르게 성장한 국가도 있으며 성장에 실패한 국가도 있습니다. 


▶ "가난한 국가들 간에 자본축적량은 같더라도 기술진보율이 달라서 그런거 아닐까?"라고 물으면 솔로우 모형은 더더욱 궁색해 집니다. 왜냐하면 모든 국가가 똑같은 기술수준을 누린다는 '외생적인 기술진보율'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는 국가간 소득격차의 원인으로 '총요소생산성 차이'가 지목되는 오늘날과는 맞지 않습니다.


▶ 솔로우 모형에서 '자본'은 그저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의미합니다. 비록 맨큐 등이 인적자본 개념을 추가한 모형을 내놓긴 하였으나, 전통적 모형에서 인적자본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인적자본의 증가 및 숙련 근로자의 임금 프리미엄(skill premium)을 분석해내지 못합니다.


결국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저 '물적자본-생산'에만 집중하고 있는 솔로우 모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신성장이론' 입니다.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통해 살펴봤듯이, 신성장이론은 '아이디어-지식-인적자본-제도' 등을 폭넓게 다루면서, '국제무역-다국적기업의 역할-기업간 경쟁의 힘-기업동학-자원 재배치' 등등으로 성장이론의 범위를 확장시켰습니다.


이제 아래의 내용을 통해, 최근의 경제현상이 어떤 연유로 나타난 것인지 자세히 알아봅시다.




※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

- '아이디어 ·인구규모 · 제도 · 인적자본'의 상호작용


최근의 경제현상을 설명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아이디어'(idea) 입니다. 


연구활동(research)과 기존 지식(knowledge)을 통해 창출되는 아이디어는 새로운 생산방법을 제시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연구부문 인적자본(human capital devoted to research)이 늘어나거나 아이디어 교류(flow of ideas)를 통해 다른 국가의 지식도 활용할 수 있다면 아이디어는 더욱 많아지고, 생산량도 더욱 늘어납니다.


(참고글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또한, 아이디어는 '비경합성'(non-rival)의 특징을 띄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후발산업국가가 선진국의 지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기존 아이디어가 훼손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idea gap)는 함의를 전달해 줍니다.


(참고글 :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아이디어의 이 같은 특징은 '시장크기 확대' · '성장의 가속화' · '성장률 격차' ·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 · '근로자 1인당 인적자본의 증가' · '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안정적'을 모두 만들어 냈습니다.



▶ ① 시장크기의 확대 

- 세계화와 도시화의 진전


  • 출처 : Jones, Romer (2009)


윗 그림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국제무역(world trade)과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경제는 서로 간의 '물적상품 교류' 및 '아이디어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 국가내로 한정해서 보면,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듦에 따라 시장크기가 확대되고 있죠. 


왜 이런 '시장 크기의 확대'(increases in the extent of the market)가 발생하는 걸까요? 


신성장이론은 '경제통합의 이점'(integration)을 설명해 왔습니다. 서로 간에 많은 접촉을 통해 아이디어를 많이 나눌수록 경제성장률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국제무역은 단순히 상품을 교환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교환(flow of ideas)하게 도와줍니다. 세계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그곳의 기업으로부터 여러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서로 간의 아이디어를 이용할 수 있다면 지식축적량이 2배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아이디어 증가율을 2배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또한,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외국인 직접투자는 '선진 아이디어를 이용'(using ideas)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모리셔스는 시장개방을 통해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이며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사족 : 신성장이론은 '아이디어의 교류' 측면에서 큰 시장의 이점을 설명하지만, 신무역이론[각주:1]신경제지리학[각주:2]은 '상품다양성 증가' 측면에서 시장크기 확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② 성장의 가속화 

- 인구규모와 1인당 GDP의 빠른 증가


  • 출처 : Jones, Romer (2009)


윗 그림은 인구규모 및 1인당 GDP의 증가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 인구규모가 급격히 늘어났으나 1인당 GDP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구가 많아질수록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적어질테인데, 어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기계 · 공장설비 등 물적자본은 경합성(rival)을 띄기 때문에 동시에 사용할 수 없지만, 아이디어는 비경합성(non-rival)을 띄기 때문에 희소성의 문제를 겪지 않습니다. 만약 아이디어가 전달해주는 혜택이 물적자본의 희소성이 초래하는 문제보다 크다면, 인구규모 증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때 결정적으로 아이디어는 인구규모가 커질수록 오히려 더 많이 만들어 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구부문에 종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간의 의견을 나눈다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아이디어가 창출될 겁니다. 그리고 아이디어의 증가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려 더 많은 사람을 부양할 수 있는 선순환이 만들어 집니다.

(more people lead to more ideas. more ideas made it possible for the world to support more people. this simple feedback loop generates growth rates that increases over time.)


이는 앞서 살펴봤던 '국제무역 및 도시화의 증대'와 현대경제성장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대경제성장은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인구는 더 이상 악영향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영향만 줍니다. 


만약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가 국제적 아이디어 교류에 지금보다 더 많이 참여하게 되면, 세계경제는 더 빠른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저자들은 예측합니다.


(사족 : 폴 로머는 '많은 인구'와 '많은 연구부문 인적자본'은 같지 않다고 보지만, 찰스 존스는 '많은 인구=많은 연구부문 인적자본'으로 보고 있습니다.)



▶ ③ 성장률 격차 

- 기술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들간에 성장률 차이가 크다


  • 출처 : Jones, Romer (2009)
  • X축은 1960년 당시, 여러 국가들의 미국(=1) 대비 1인당 GDP
  • Y축은 1960년~2000년 사이의 연간 경제성장률


윗 그림은 1960년 당시의 생활수준별, 이후 40년간의 성장률을 보여줍니다. X축은 1960년 당시, 여러 국가들의 미국(=1) 대비 1인당 GDP, Y축은 1960년~2000년 사이의 연간 경제성장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 눈에 드러나다시피, 윗 그림은 '삼각형 형태'를 보여줍니다. 최전선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성장률 격차가 심합니다.(growth variation and distance from the frontier) 


미국과 생활수준이 비슷한, 즉 기술의 최전선(frontier)에 가까운 국가들 간에는 성장률 격차가 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들 간에는 성장률의 차이가 심합니다. 한국처럼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국가도 있지만, 아예 음(-)의 성장을 기록한 국가도 있습니다.


1960년에 똑같이 가난했던 국가들 사이에서 이후 40년의 성장률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오늘날 따라잡기가 가져다주는 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매우 빠르기 때문'(rapid catch-up growth) 입니다. 


따라서, 따라잡기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에 따라, 성장률 격차가 매우 커졌습니다.


19세기 말에 선진국 따라잡기에 성공했던 아르헨티나는 연간 2.5%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때는 따라잡기에 실패했더라도 성장률 차이가 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1980년부터 따라잡기를 시작한 중국은 연간 8.2%의 성장률을 나타내기 때문에, 따라잡기에 실패한 국가와의 격차가 큽니다.


왜 오늘날에는 '더 빠른 따라잡기'가 나타났을까요? 그리고 과거 똑같이 가난했음에도 '따라잡기에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로 나뉘게 될 걸까요?



▶ ④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 

- 국가간 소득 격차의 대부분은 생산성 격차로 설명된다


  • 출처 : Jones, Romer (2009)
  • X축은 1인당 GDP, Y축은 총요소생산성 수준


왜 오늘날 '더 빠른 따라잡기'가 나타났는지는 윗 그림이 힌트를 제공해 줍니다. 


X축은 1인당 GDP, Y축은 총요소생산성 수준을 보여주는 윗 그림은 '1인당 GDP와 총요소생산성은 양(+)의 상관관계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즉,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은 총요소생산성 이라고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본축적을 강조하는 솔로우 모형과 대비되는 설명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을 강조하며, 성장률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자본축적 정도에 따른 전이경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는 학자는 동아시아 성장요인을 자본축적[각주:3]으로 보고 있죠.


하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생활수준 차이가 정말 자본축적에 따른 물적격차 때문인지에 의문[각주:4]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폴 로머와 찰스 존스는 윗 그림을 근거로 제시하며 "따라잡기는 아이디어 교류와 기술채택과 관련이 깊다"(catch-up growth could be associated with the dynamics of idea flows and technology adoption.)고 주장합니다. 선진국과 더 많은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더 나은 기술을 받아들인 국가가 빈곤에서 탈피하여 경제성장에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아이디어를 통한 경제성장은 자본축적을 통한 성장보다 더 빠른 시간에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따라잡기는 과거 따라잡기에 비해 높은 성장률이 나타나게 됐습니다.


그럼 왜 과거에 똑같이 가난했음에도, 따라잡기에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로 나뉘게 된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제도'(institution)의 차이 입니다. 만약 선진 아이디어를 거부하고 아이디어 창출 유인을 제공하지 않는 제도를 가진 국가는 여전히 빈곤에 머무릅니다. 반면, 아이디어 교류를 확대하며 연구에 대한 유인을 제공하는 제도를 갖추는데 성공한 국가는 따라잡기에 성공했습니다. 


폴 로머와 찰스 존스는 "만약 기본적인 사유재산권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제도가 갖춰져 있다면, 좋은 아이디어는 도입되지 못한다" 라고 말합니다.



▶ ⑤ 근로자 1인당 인적자본의 증가 

- 인적자본 규모의 급격한 증가


  • 출처 : Jones, Romer (2009)


윗 그림은 시대별 미국 출생인구의 교육년수를 보여줍니다. 1920년에 태어난 미국인은 평균 10년의 교육을 받았으나, 1980년에 태어난 미국인은 평균 14년의 교육을 받습니다.


그 결과, 교육년수 증가와 함께 미국 인적자본 수준도 함께 상승했습니다. 



▶ ⑥ 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안정적 

- 숙련 근로자 공급이 늘어났음에도, 임금은 하락하지 않았다


  • 출처 : Jones, Romer (2009)
  • 파란선은 고졸 대비 대졸의 상대임금, 녹색선은 고등학교 중퇴자 대비 고졸의 상대임금을 보여준다


윗 그림은 미국 고졸 대비 대졸의 상대임금(파란선), 그리고 고등학교 중퇴자 대비 고졸(녹색선)의 상대임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10년, 대학생이 매우 희귀했을 당시에는 대졸이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누렸으나, 대학 진학생이 많아지면서 프리미엄은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다 1980년 들어서 프리미엄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죠.


미국의 교육년수가 계속 증가하고 대학 진학생도 꾸준히 많아진 점에 비추어보면, 1980년 이후 대졸 임금 프리미엄의 발생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학 졸업생, 즉 인적자본 공급자가 증가하면 임금도 떨어지는 게 합리적인 현상이니깐요.


그러나 공급 증가에 맞추어 인적자본 수요도 늘어나면 임금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때, 1980년 이후 대졸자 수요를 증가시킨 건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라고 많은 학자들은 말합니다. 기술진보가 단순 근로자가 아닌 숙련자를 우대하는 방향으로 발생하면-일례로 회계사 · 프로그래머 등등- 숙련자들의 임금은 높게 유지됩니다.


그렇다면 왜 기술진보가 숙련자를 우대하는 형식으로 발생했을까요?


첫번째 가설은 '기술변화의 방향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좌우한다' 입니다. 교육향상과 함께 인적자본 수가 늘어났고, 이들이 기술변화의 방향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들었다는 논리입니다. 


두번째 가설은 앞서 살펴봤던 '시장크기의 확대'와 관련 깊습니다. 연구의 결과물인 아이디어가 선진국에서만 쓰였을 때와 비교해서, 개발도상국으로의 시장확대는 아이디어 창출의 이윤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인적자본의 임금도 증가하게 됐다는 논리입니다.


결국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아이디어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고, 이를 만들어내는 인적자본의 가치도 (공급증가를 상쇄할만큼) 올라갔습니다.




※ 아이디어 · 인구규모 · 제도 · 인적자본의 상호작용


  • 출처 : 내 발


▶ '시장크기의 확대'와 '성장의 가속화'를 설명하는건 '아이디어와 인구규모의 상호작용'


▶ '성장률 격차'와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를 설명하는건 '아이디어와 제도의 상호작용' 


▶ '인적자본 증가'와 '숙련 근로자의 안정적인 상대임금'을 설명하는건 '아이디어와 인적자본의 상호작용'


이렇게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형화된 사실들'을 살펴보면, 핵심은 신성장이론이 강조하는 '아이디어'(idea)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적자본만 강조하던 시대를 지나 '아이디어'와 '연구'가 중요해진 시대가 오면서 이제 세계경제 모습은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1.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2015.05.26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2015.07.03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2017.06.29 http://joohyeon.com/252 [본문으로]
  4.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2017.07.24 http://joohyeon.com/26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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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Posted at 2015. 5. 20. 01:25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이 글은 2015년 5월 20일에 작성되었던 것을 2019년 7월 21일에 부분 개정한 것입니다. 2015년 당시에는 무역이론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여 부족한 설명을 했었고,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 작성하였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글의 서문만 부분 개정했으며, 향후 추가 개정할 계획에 있습니다.


※ 데이비드 리카도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해주는 헥셔 · 올린 · 새뮤얼슨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통해, 국제무역이 이루어지게 하는 원천이 무엇이며, 데이비드 리카도는 무엇에 주목했는지를 알아보았다.


▶ 국제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 

-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

-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의 차이


왜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 무역을 하는 것일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무역을 한다”는 절반만 맞는 답이다.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면, 무역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수입을 하는 이유는 ‘국내시장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상품을 상대적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수출을 하는 이유는 ‘국내시장에서보다 상품을 상대적으로 비싸게 판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① 자급자족 상태인 국가들끼리 상품가격이 서로 다르며, 이로 인해 ② 무역 이후 세계시장 가격과 개별 국가들의 자급자족 가격 간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different relative price) 및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의 차이"(autarky vs. world relative price)는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


그리고 세계시장 상대가격(world price)이 얼마냐에 따라 국가별 무역패턴(trade pattern)이 결정된다. 자급자족 상대가격보다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더 높은 상품은 특화하여 수출하고 더 낮은 상품은 수입한다. 자급자족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동일하다면 국내와 해외 판매가 무차별하고, 국내에서 조달하나 해외에서 조달하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황과 달라지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① 국가간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② 자연스레 세계시장 상대가격과 각국 자급자족 상대가격 간에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③ 무역을 할 이유가 생기게 된다.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 및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의 차이'는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기술수준에 따른 노동생산성 차이'(technology)가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을 만들어낸다


이때, 데이비드 리카도는 자국과 외국의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게 된 이유로 '기술수준에 따른 노동생산성 차이'(technology)를 꼽았다. 


양국의 기술수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투입량이 다르고 기회비용 차이가 발생한다. 그 결과 각국의 자급자족시 상대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각자 비교우위 혹은 비교열위를 가지는 상품이 생겨난다. 


여기서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높아 기회비용이 낮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의미하고,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낮아 기회비용이 높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높은 품목'을 뜻한다.


그렇지만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만 가지고 국제무역을 설명하기에는 현실은 복잡하다. 리카도는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로만 무역을 설명했다. 하지만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 이외의 또 다른 생산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자본'이다


여기서 자본을 철광석·석유 같은 천연자원으로 생각해도 좋고, 기계 등의 설비장치로 생각해도 좋다. 노동 뿐 아니라 자본을 고려한다면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 헥셔 · 올린 · 새뮤얼슨의 비교우위론 

- '부존자원의 차이'(resource endowment)가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을 만들어낸다


  • 왼쪽 : 엘 헥셔(Eli Heckscher). (1879-1952)
  • 가운데 : 베르틸 올린(Bertil Ohlin) (1899-1979)
  • 오른쪽 :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1915-2009)


스웨덴 출신의 두 경제학자 헥셔(Eli Heckscher)와 (197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각주:1]올린(Bertil Ohlin)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자본'이라는 생산요소를 추가하여 국제무역 현상을 설명한다. 그리고 리카도는 (이전글에서 예시로 든 쌀 · 자동차와 같이) 임의의 두 산업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으나, 헥셔와 올린은 한 국가안에 '노동집약적 산업'과 '자본집약적 산업'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간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게 된 이유는 '부존자원에 따른 상대적 생산량의 차이'(resource endowment) 때문이다. 


어떤 국가는 자본에 비해 노동이 풍부하고, 또 다른 국가는 노동에 비해 자본이 풍부하다.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될테고,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이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된다. 자급자족 상황에서 상대공급이 많은 상품은 상대가격이 낮아지기 때문에, 동풍부국은 노동집약상품을 싸게 생산하고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상품을 싸게 생산한다


리카도 및 헥셔-올린 모형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다만, 리카도는 '각 국가들이 노동생산성(혹은 기술)이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나, 헥셔-올린은 '각 국가들의 보유자원이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리카도는 국가간 기술수준 차이가 비교우위를 결정짓는다고 보고 있으며, 헥셔와 올린은 국가간 부존자원 차이가 비교우위를 결정짓는다고 본다. 


따라서, 헥셔-올린 모형이 알려주는 사실은 간단하다. 


'자본풍부국은 값싸게 만든 자본집약적 상품을 더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하고, 노동풍부국은 값싸게 만든 노동집약적 상품을 더 높은 가격을 받으며 수출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자본풍부국은 외국의 값싼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입하고, 노동풍부국은 외국의 값싼 자본집약적 상품을 수입한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너무나도 당연해보이는 이 논리가 어떻게 도출되는지 알아볼 것이다.


▶ 무역 개방 이후 달라진 상품가격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


'자본'이라는 생산요소를 추가한 헥셔-올린 모형은 리카도가 알려주지 못하는 또 다른 정보를 알려준다. 바로 '무역이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 이다. 


리카도는 '노동'만을 생산요소로 봤기 때문에 무역이 소득분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주지 못한다. 소득'분배'를 논하려면 당연히 노동 이외의 다른 무언가도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 이외의 자본도 고려하는 헥셔-올린 모형은 소득'분배'를 논할 수 있다. 무역이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자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소득분배는 달라진다.


렇다면 어떻게해야 무역 개방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을까? 기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① 자급자족 상황에서 개별 국가들은 상품의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다. ② 무역 실시 이후, 세계시장 상대가격(=교역조건)이 개별 국가들의 상대가격 사이에서 결정된다. ③ 각 국가들은 자급자족 상대가격 보다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더 싼 상품은 수입해오며, 더 비싼 상품은 수출한다. 


즉, 무역 개방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것은 ‘상품의 상대가격’ 이다. 수입 상품은 자급자족에서 보다 무역 실시 이후 더 싸졌으며, 수출상품은 더 비싸졌다. 따라서, “달라진 상품 상대가격이 생산요소의 실질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를 살펴봄으로써, 무역개방과 소득분배 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다.


이때, '무역이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을 알 수 있게끔 기반을 제공해준 경제학자가 197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이다. 


폴 새뮤얼슨은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올라(내려)갈수록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상승(하락)하고, 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이 올라(내려)갈수록 자본가의 실질소득이 상승(하락)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전세계에서 무역이 이루어진다면 세계상품가격은 동일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역을 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각국의 노동자 실질임금은 서로 같아진다각국의 자본가 실질소득 또한 서로 같아진다


이 사실을 지금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헥셔-올린 모형과 폴 새뮤얼슨의 논리를 자세히 이해해보자.          




※ 상품가격 ↔ 생산요소 가격  집약도의 차이


헥셔-올린 모형에서 생산자는 '노동'과 '자본' 두 생산요소를 사용할 수 있다. 이때 생산자는 노동비용(임금)과 자본비용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노동과 자본의 비중을 조절할 수 있다.


노동비용이 비싸다면 노동보다는 자본을 많이 사용하고, 자본비용이 비싸다면 자본보다는 노동을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생산요소 가격의 변화가 노동 · 자본 집약도의 변화를 가져온다. 노동비용이 비싸지면 노동집약도가 하락하고, 자본비용이 비싸지면 자본집약도가 하락한다


이때 주의할점은 노동(자본)비용이 비싸다고해서 노동(자본)집약적 산업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노동집약적 산업은 자본집약적 산업에 비해 언제나 노동을 더 많이 쓰고, 자본집약적 산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에 비해 언제나 자본을 많이 쓴다. 노동(자본)비용이 증가하면 두 산업 모두에서 노동(자본)의 비중이 감소하지만, 노동(자본)집약적 산업은 자본(노동)집약적 산업에 비해 언제나 노동(자본)을 더 많이 쓴다. 즉, 노동(자본)비용이 증가하면 노동(자본)집약도가 하락할 뿐이지, 노동(자본)집약적 산업이 사라지는건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비용과 자본비용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노동집약적 상품의 가격과 자본집약적 상품의 가격이다. 노동집약적 상품가격 · 노동비용, 자본집약적 상품가격 · 자본비용은 일대일 관계에 있다. 


쉽게 생각하자. 노동비용이 증가하면 생산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에 노동집약적 상품가격도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자본비용이 증가하면 생산비용 상승으로 인해 자본집약적 상품가격도 올라간다. 따라서, '노동비용'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고, '자본비용'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집약적 상품가격' 이라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이것은 '무역이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하는 논리이다!!!)


  • 출처 : Paul Krugman, Maurice Obsfeld, Marc Melitz. 『International Economics』.
  • 왼쪽 그래프의 X축은 노동집약적 상품의 가격 변화, Y축은 생산요소 가격의 변화이다.
  • 즉, 왼쪽 그래프는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상승할때마다 임금이 올라감을 보여준다.
  • 오른쪽 그래프의 X축은 노동집약도의 변화, Y축은 생산요소 가격의 변화이다.
  • 즉, 오른쪽 그래프는 임금이 상승할때마다 노동집약도가 감소함을 보여준다.
  • 이때, 빨간선(CC)은 노동집약적 산업, 파란선(FF)는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따라서, 빨간선(CC)은 파란선(FF)에 비해 항상 오른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상품가격 ↔ 생산요소 가격 ↔ 각 산업의 집약도'는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친다.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상승(하락)하면 노동비용이 증가(감소)하고 노동집약도는 하락(상승)한다. 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이 상승(하락)하면 자본비용이 상승(감소)하고 자본집약도는 하락(상승)한다. '상품가격'이 변하지 않는다면 '생산요소 비용'은 변하지 않고 '각 산업의 집약도' 또한 변하지 않는다. 위에 첨부한 그래프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 풍부한 보유자원의 증가 → 편향적 발전을 초래하다

 

그럼 이제 노동풍부국과 자본풍부국의 차이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직관적으로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산업이 발달하고,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산업이 발달하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경제학자 립진스키(Tadeusz Rybczynski)는 이러한 직관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설명을 제공한다.   


노동 · 자본 자원 보유비율이 동일한 두 국가 A,B를 떠올려보자. 이때 A국가에서 노동이라는 자원이 증가했다. A국이 노동풍부국이 된 것이다. 

(● 이때 주의할 점은 '노동풍부국'과 '자본풍부국'을 결정하는 건, 절대량이 아니라 비율이라는 점이다. 가령 미국의 인구는 한국보다 절대적으로 많다. 그렇지만 노동/자본 비율은 한국이 더 높기 때문에, 한국은 노동풍부국이 되고 미국은 자본풍부국이 된다.)


이렇게 증가한 노동 자원은 각 산업에 배분된다. 직관적으로 '증가한 노동 자원이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더 많이 가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증가한 노동자원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더 많이 배분된다. 


그런데 우리는 앞서 ''상품가격'이 변하지 않는다면 '생산요소 비용'은 변하지 않고 '각 산업의 집약'도 또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A국의 노동 자원이 증가하였으나 상품가격은 변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각 산업의 집약도 또한 변하지 않아야 한다.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노동이 더 많이 배분된 가운데 집약도는 이전과 같아야한다. 노동집약적 산업이 쓰는 자본량은 이전과 같은데 노동량만 증가한다면 노동집약도는 상승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집약도 유지를 위해) 노동집약적 산업의 노동뿐 아니라 자본 또한 이전에 비해 더 많아진다


결과적으로, A국에서 노동이라는 자원이 많아졌기 때문에, 노동집약도 산업이 쓰는 노동 · 자본의 양도 증가했다. 생산요소량 증가에 따라 노동집약도 산업이 만들어내는 노동집약적 상품양도 많아진다


즉, 노동풍부국에서 노동집약적 산업이 편향적으로 발전되게 된다. (disproportionate, biased and unbalanced growth.) 노동풍부국인 A국은 B국에 비해 노동집약적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노동을 자본으로 바꾼다면, 자본풍부국에서 자본집약적 산업이 편향적으로 발전한다는 것과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립진스키 정리'(Rybczynski Theorem) 이라 한다.     




※ 헥셔-올린 정리 (Heckscher–Ohlin theorem)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하고,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수요에 따라 생산량 균형이 이루어진다. 


무역개방 이전,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의 공급이 많기 때문에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낮게 형성'된다. 반대로 무역개방 이전,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의 공급이 많기 때문에 '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이 낮게 형성'된다. 이때 무역이 이루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무역은 각 나라별로 다른 상품의 가격을 하나로 수렴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무역이 없다면 국내수요와 국내공급에 따라 상품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서로 다른 상품가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역을 한다는 것은 '각 나라가 똑같은 가격에 상품을 거래 · 교환한다'는걸 의미한다. 


따라서, 무역 이후 세계 각국의 상품가격은 똑같아진다. 이때 무역 이후 하나로 결정된 국제가격은 무역 이전 두 국가 상품가격의 가중평균이다. 이제 노동풍부국의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은 상승하고, 자본풍부국의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은 하락한다. 그리고 자본풍부국의 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은 상승하고, 노동풍부국의 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은 하락한다.  

(이러한 논리는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에서도 살펴보았다.)


무역이후 상품가격이 하나로 동일해진 결과, 각국에서 초과공급이 만들어진다. 쉽게 생각하자. 본래 노동(자본)풍부국 국민들은 낮은 가격에 노동(자본)집약적 상품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역개방 이후 새로운 국제가격이 결정되면서, 노동(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이 상승했다. 가격상승은 수요감소를 불러오고, 노동(자본)풍부국에서 노동(자본)집약적 상품은 초과공급 상태에 놓이게 된다.


만약 무역이 없다면 초과공급 상태에 놓인 상품은 가격이 다시 하락하면서 시장균형을 찾는다. 하지만 무역개방 이후 상품가격은 국내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국제가격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국내시장에 존재하는 초과공급이 '국제가격'을 변동시킬 수 없다.    


즉, 무역개방 이후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 국내수요보다 더 많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무역개방 이후 자본풍부국(RS*)은 자본집약적 상품 국내수요보다 더 많은 자본집약적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초과공급을 해결하기 위해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을 해외로 수출한다. 이것이 바로 헥셔-올린 모형의 결론이다. 


[헥셔-올린 정리(Heckscher–Ohlin theorem)]       


'초과공급'의 관점이 아니라 '상품가격'의 관점에서 무역현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 무역 개방 이전,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낮게 형성되어 있다. 반대로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이 낮게 형성되어 있다. 


이때 무역을 하게 된다면 상품가격은 세계시장에서 결정되는데, 노동풍부국의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은 상승하고, 자본풍부국의 자본집약적 상품가격 또한 상승한다. 따라서, 각 국가들은 무역을 통하여 자신들의 주요상품을 비싼 가격에 판매할 유인을 가지게된다.



이를 보다 쉽게 살펴보기 위해 위의 그래프를 살펴보자. 윗 그래프의 RS*는 자본풍부국의 공급곡선, RS는 노동풍부국의 공급곡선을 나타낸다. X축 좌표는 노동집약적 상품의 생산량을 의미[각주:2]하기 때문에, 노동풍부국의 공급곡선 RS가 더 오른쪽에 위치해있다.   

  

노동풍부국과 자본풍부국의 소비자취향은 같기[각주:3] 때문에 각국은 같은 수요곡선을 가진다. 점 1과 점 3는 무역이 발생하기 이전 노동풍부국과 자본풍부국의 국내균형을 나타낸다. 


앞서 말한것처럼,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노동집약적 상품의 가격(Y축)이 낮다(점 1). 자본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덜 생산하기 때문에, 노동집약적 상품의 가격이 높다(점 3). 


이제 무역이 발생하면 각국의 상품가격은 하나로 수렴한다. 그 가격이 바로 점 2이고, 점 2에서 국내수요 또한 결정된다. 각국의 국내수요가 점 1과 점 3에서 점 2로 변한 것이다. 점 2의 가격에서 선을 그어 RS 곡선에 연결시키자. 공급량이 수요량에 비해 많음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생긴 초과공급은 해외수출을 통해 해결된다.




※ 무역이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

-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는 사람의 소득이 증가한다

- 무역은 생산요소 이동과 같은 효과


그럼 이제 '무역이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자. 


앞서 간단히 말하고 넘어갔지만, '무역개방 이전,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의 공급이 많기 때문에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낮게 형성된다. 반대로 무역개방 이전,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의 공급이 많기 때문에 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이 낮게 형성된다.' 


그리고 이보다 더 앞서 ''노동비용'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고, '자본비용'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집약적 상품가격'' 라는 말을 했다. 이를 연결시켜 생각해보자.


무역개방 이전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낮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 또한 낮게 형성된다. 반대로 무역개방 이전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이 낮기 때문에 자본가의 소득 또한 낮게 형성된다.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한국은 사람이 많으니 인건비가 싸다. 호주는 사람이 없으니 인건비가 비싸다."라는 말이 바로 이 논리이다.        


'보유자원 상대비율 → 자원집약 산업의 생산량 → 자원집약 상품가격 → 노동자와 자본가의 소득'의 경로를 요약하면, 결국 '무역개방 이전, 노동풍부국은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낮고 자본풍부국은 자본가의 실질소득이 낮다.' 반대로 '역개방 이전, 노동풍부국은 자본가의 실질소득이 높고 자본풍부국은 노동자의 실질소득이 높다.


그렇다면 '무역개방 이후 각국에서 상품가격이 하나로 같아진다'는 사실에서 '무역이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무역개방 이후 상품가격은 각국 상품가격의 중간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역개방 이후, 노동풍부국에서는 노동집약적 상품가격이 상승하고 자본풍부국에서는 자본집약적 상품가격이 상승한다. 


그 결과, 무역개방 이후 노동풍부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자본풍부국 자본가의 실질소득도 상승한다. 반대로 무역개방 이후 노동풍부국 자본가의 실질소득은 하락하고, 자본풍부국 노동자의 실질임금도 하락한다. 


즉, 무역으로 인해 풍부한 요소를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의 실질소득이 증가하고, 부족한 요소를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의 실질소득은 하락하게 된 것이다. 


[상품가격 변화에 따라 노동자 · 자본가의 실질소득이 달라지는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스톨퍼-새뮤얼슨 정리'(Stolper-Samuelson Thoram)이다.]    


이것은 '무역이 국내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해준다. 그렇다면 '무역이 세계적 차원의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무역개방 이후 각국에서 상품가격이 하나로 같아'지기 때문에, 무역에 참여한 국가의 노동자 · 자본가의 실질소득이 각국에서 모두 똑같아진다. 


즉, 무역을 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각국의 노동자 실질임금은 서로 같아지고, 각국의 자본가 실질소득 또한 서로 같아진다


[이를 '요소가격 균등화 정리'(Factor Price Equalization Theorem)라 한다.]


'요소가격 균등화 정리'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생산요소 가격이 변하려면 생산요소량이 증가하거나 감소해야 한다. 가령, 임금이 변하려면 노동자들의 수가 변동해야 한다. 노동자의 수가 많아지면 임금이 하락하고, 노동자 수가 적어지면 임금이 상승하는 원리이다. 그런데 무역은 단지 상품만 이동시킬 뿐, 생산요소가 직접 이동하지 않았다. 무역 이후 달라진 건 상품가격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역을 통한 상품의 이동은 생산요소가 직접 이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도출해낼 수 있다. 노동풍부국이 수출하는 노동집약적 상품에는 '노동'이라는 생산요소가 들어가있고(embodied), 자본풍부국이 수출하는 자본집약적 상품에는 '자본'이라는 생산요소가 들어가있는 것이다. 


결국 노동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을 수입하기 때문에 자본을 수입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맞게 되고, 자본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입하기 때문에 노동을 수입한 것과 같은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이를 '헥셔-올린-바넥 정리'(Heckscher-Ohlin-Vanek Theorem) 이라 한다.]




※ 헥셔-올린 모형은 현실에 부합하는가?


이 글에서 살펴봤듯이, 헥셔-올린 모형은 "노동풍부국은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하고, 자본풍부국은 자본집약적 상품을 수출한다." 라고 말한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헥셔-올린 모형의 결론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직관과는 달리, 노동풍부국이 자본집약적 상품을 수출하거나 자본풍부국이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하는 실증결과가 발견되었다. 경제학자 레온티에프(Wassily Leontief)는 1953년 논문 <Domestic Production and Foreign Trade: The American Capital Position Re-Examined>을 통해, "자본풍부국인 미국이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를 '레온티에프 역설'-Leontief's Paradox-라 한다.) 


레온티에프의 연구는 미국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또 다른 경제학자 해리 보웬(Harry Bowen), 에드워드 리머(Edward Leamer), 스베이코스카스(Leo Sveikauskas) 등은 미국 뿐 아니라 세계 27개국 나라를 조사한다. 이들은 '풍부한 자원이 수출로 이어지는지'를 조사하였고, 1987년에 논문 <Multicountry, Multifactor Tests of the Factor Abundance Theroy>을 발표했다. 이들은 실증분석을 통해 "헥셔-올린 모형이 예측하는대로 풍부자원이 수출로 이어지는 경우는 70% 미만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헥셔-올린 모형은 국제무역 패턴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연구는 다니엘 트레플러(Daniel Trefler)1995년 논문 <The Case of the Missing Trade and Other Mysteries> 이다. 그는 '효율노동'(effective labor) 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자본풍부국인 미국이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자, 모두가 알고 있듯이 미국은 자본풍부국이고 중국은 노동풍부국이다. 하지만 미국 근로자들의 숙련도와 생산성은 중국 근로자들을 훨씬 능가[각주:4]한다. 따라서, '노동자원'에 '숙련 근로자'(skilled-labor) 개념을 도입한다면, 미국은 중국에 비해 노동풍부국이 될 수도 있다. 자본풍부국으로 보이는 미국에서 노동집약적 상품이 수출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 '숙련 근로자'(skilled labor)와 '비숙련 근로자'(unskilled labor)

- 국제무역과 세계화가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

- 헥셔-올린 모형을 통하여 이해하기


노동자원을 '숙련 근로자'(skilled labor)와 '비숙련 근로자'(unskilled labor)로 구분하는 아이디어는 상당히 중요하다. 헥셔-올린 모형은 생산요소를 '노동과 자본'으로 분리하고 있지만, 이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생산요소를 '숙련 근로자와 비숙련 근로자'로 구분해보자. 


선진국은 '숙련근로자 풍부국'이고 개발도상국은 '비숙련 근로자 풍부국'이다. 이때 국제무역이 이루어지면 각 국가내에서 소득분배는 어떻게 변화할까?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를 다시 떠올려보자. 무역으로 인해 풍부한 요소를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의 실질소득이 증가하고, 부족한 요소를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의 실질소득은 하락한다.


따라서, 국제무역은 선진국내에서 '숙련근로자 임금을 상승'시키고 '비숙련 근로자 임금을 하락'하게 만든다. 또한, '개발도상국의 비숙련 근로자 임금은 상승'하고 '숙련근로자 임금은 하락'할 것이다. 이때 개발도상국내 '숙련근로자 임금 하락' 여부는 불확실하다. 국제무역의 힘으로 개발도상국 경제가 성장할 경우, 경제성장의 힘으로 소득 자체가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목해야하는 건 '선진국 내 소득분포의 변화' 이다. 

   


윗 그래프를 보면, 주요 선진국(Mainly Developed World)내에서 '중간계층(80th~90th)의 소득증가가 더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선진국내 상위계층의 소득증가 정도는 매우 높고, 최하위계층(75th) 또한 소득이 크게 증가했다. 1990년대 이래, 선진국의 골칫거리는 '중간층 일자리 감소 현상'이다. 


이때, 중간층 일자리 감소의 원인으로 주로 지목되는 것은 '기술발전'과 '국제무역'이다. "기술발전은 상하층 일자리와 보완관계에 있지만, 중간층 일자리와는 대체관계에 있다"[각주:5]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헥셔-올린 이론은 국제무역이 선진국내 중간층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원인을 설명해낼 수 있다. 선진국내 상층 일자리를 '숙련 일자리'로 보고 중간층 일자리를 '비숙련 일자리'로 본다면, 개발도상국과의 무역이 증가하고 있는 선진국 내에서 중간층 일자리와 임금이 줄어드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글에서 헥셔-올린 모형을 응용하여, '국제무역'과 '세계화'가 선진국내 소득양극화 ·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세히 알아보자.


 

  1. 헥셔는 1955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에 만들어졌다. [본문으로]
  2.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생산량'이지만... [본문으로]
  3. '소비자취향이 같다'고 보는 것이 1세대 국제무역이론의 특징이다. 2세대 국제무역이론은 '소비자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조건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자. [본문으로]
  4. 이 논문이 1995년에 나왔음을 주목하면 양국 근로자 간의 '숙련도 차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본문으로]
  5.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불균등. 그리고 무역의 영향(?)'. 2014.08.27 http://joohyeon.com/19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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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Posted at 2015. 5. 19. 00:0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이 글은 2015년 5월 19일에 작성되었던 것을 2018년 11월 29일에 전면 개정한 것입니다. 2015년 당시에는 무역이론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여 부족한 설명을 했었고,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 작성하였습니다.


※ 국제무역이 이루어지게 하는 원천은 무엇인가

- 서로 다른 상대가격 (different relative price)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서로 다른 국가들간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신라는 아라이바 상인들과 물건을 교환하였고,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남미 · 인도 등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금은보화와 향신료를 얻어내었다. 현대 국가들도 자신들이 만든 상품을 수출하고 다른 상품을 수입하는 교역행위를 수행한다. 


과거와 현대의 국제무역 행위를 살펴보면 크게 3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예전과 지금의 무역에서 다른 점은 무엇일까? 둘째,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셋째, 왜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 무역을 하는가?


첫째,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사상의 변화 : 중상주의 사상 → 자유무역 사상

 

  •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 1776년 작품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개척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을 지배했던 사상은 '중상주의'(mercantilism)였다. 중상주의는 “무역을 통해 금과 은 등 재화를 축적(accumulation)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와의 교역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과거 사람들이 바라본 무역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1776년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이 출판된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외국이 우리가 제조하는 것보다 값싸게 공급하는 상품을 수입”(import for low price of commodity)하는 것이 무역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보았다. 재화의 단순한 축적은 의미가 없으며, ‘값싸게 수입해온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의미있는 행위라고 평가했다. 

이에따라, 무역장벽을 높여 수입을 막고 식민지를 개척하여 수출만을 증대시키는 정책 대신, 무역장벽을 낮춰 서로간에 값싼 상품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자유무역'(free trade) 정책과 사상이 발현되었다.

 

둘째, 국제무역의 이익 : 상대적으로 값이 싼 상품을 수입 

 

  •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
  • 1817년 작품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애덤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면,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gains from trade)은 가격이 싼 수입품의 이용 그 자체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애덤 스미스의 이론 하에서 무역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수입품의 절대가격(absolute price)이 국내 제조품보다 낮아야 한다[절대우위론(Absolute Advantage)]. 만약 모든 상품을 가장 값싸게 스스로 제조하는 국가는 무역을 통해 얻는 이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한 단계 더 높여준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이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상대가격(relative price)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절대적으로 값이 싼 상품이 아닌 “스스로 제조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싼 상품을 수입해오는 것이 무역의 이익”이라고 말하였고[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 이에 따르면 모든 국가가 무역으로 상호이익(mutual gain)을 얻을 수 있다.

(주 :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서 '스스로 제조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라는 말은 '자급자족 대신 무역을 함으로써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번글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셋째, 국제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 :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

왜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 무역을 하는 것일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무역을 한다”는 절반만 맞는 답이다.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면, 무역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보다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다. 

수입을 하는 이유는 ‘국내시장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상품을 상대적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수출을 하는 이유는 ‘국내시장에서보다 상품을 상대적으로 비싸게 판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① 자급자족 상태인 국가들끼리 상품가격이 서로 다르며, 이로 인해 ② 무역 이후 세계시장 가격과 개별 국가들의 자급자족 가격 간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different relative price) 및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의 차이"(autarky vs. world relative price)는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

이제 이번글에서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국제무역이 이루어지는 이유와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알아보도록 하자.



단순히 기회비용이 낮다는 이유로 특화를 해도 될까?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 라는 말이 아직 와닿지 않을테다. 우선 두 가지 개념을 익히고 가자.

 



위의 표는 자국과 외국에서 자동차 · 의류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투입량(necessary labor input)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전체 총 노동량은 100명으로 동일하다. 


자국은 자동차 1대 · 의류 1벌 생산에 동일하게 노동자 1명씩 필요하며, 외국은 자동차 1대 생산에 노동자 4명, 의류 1벌 생산에 노동자 2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위의 표를 통해 '노동생산성'과 '생산의 기회비용'을 파악할 수 있다.


● 노동생산성


 



외국에서 자동차 1대 생산에 노동자 4명이 필요하다는 말은 '노동자 1명이 자동차 1/4대를 생산'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의류 1벌 생산에 노동자 2명이 필요하다는 말은 '노동자 1명이 의류 1/2벌을 생산'한다는 말과 같다. 자국의 경우 자동차와 의류 생산에 노동자 1명이 동일하게 필요하므로, '노동자 1명이 자동차 1/1대, 의류 1/1벌을 생산'한다.


이는 곧 노동생산성(labor productivity)을 뜻하며, 자동차와 의류 부문의 노동생산성은 '1/각 부문 필요노동량'을 통해 알 수 있다. 


● 기회비용

 

 

 

그리고 외국에서 자동차 1대 생산을 위해 4명을 투입하면 (4명이 만들 수 있는) 의류 2벌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 반대로 의류 1벌을 생산하기 위해 2명을 투입하면 (2명이 만들 수 있는) 자동차 1/2대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자국의 경우 자동차 1대 생산을 위해 1명을 투입하면 (1명이 만들 수 있는) 의류 1벌을 포기하는 셈이고, 의류 1벌 생산하기 위해 1명을 투입하면 (1명이 만들 수 있는) 자동차 1대를 포기하게 된다.


이는 개별 상품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s)을 뜻하며, 만들고자 하는 상품 대신 다른 상품이 생산되는 갯수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 의류로 표시되는 자동차의 기회비용은 '자동차 1대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량 / 의류 1벌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량'(=의류 4/2벌), 자동차로 표시되는 의류의 기회비용은 '의류 1벌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량 / 자동차 1대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량'(=자동차 2/4대)으로 구할 수 있다. 자국의 경우 의류로 표시되는 자동차의 기회비용은 1벌, 자동차로 표시되는 의류의 기회비용은 1대가 된다.


● 특화

 

 

이제 자국과 외국 간 기회비용을 비교해보면, 서로 간에 낮은 상품을 확인할 수 있다. 


자국은 자동차 생산의 기회비용(=1/1)이 외국의 것(=4/2)보다 낮으며, 외국은 의류 생산의 기회비용(=2/4)이 자국의 것(=1/1)보다 낮다. 비용이 낮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자국은 자동차에 특화하고 외국은 의류에 특화하여 상품을 교환하면 상호이득을 얻을 수 있다.


'기회비용이 낮은 품목에 특화한다'(specialization)는 논리가 데이비드 리카도가 말한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이라고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데 !!! 비교우위론은 단순히 기회비용이 낮은 품목에 특화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회비용이 낮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조건이 성립되어 있지 않으면 특화의 유인이 없으며 무역의 이익도 없다. 


특화를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란 바로 '자급자족 상대가격 보다 높은 세계시장 상대가격(higher relative world price), 이른바 우호적인 교역조건'(favorable Terms of Trade) 이다. 




※ 자급자족과 시장개방 상황을 비교

-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특화 및 무역패턴 결정


우호적인 교역조건의 중요성을 깨닫기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자급자족과 시장개방 상황을 비교해보자. 이를 통해,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는 자동차 혹은 의류를 생산하면서 '노동임금'을 받게되고, 개별 상품 생산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상품 판매가격 - 노동투입량*임금'을 '이윤'으로 가지게 된다.


● 자급자족 (Autarky)


 

만약 (외국이든 한국이든) 자동차 부문이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한다면 모든 노동자들은 자동차 생산에 종사하고 싶어할 것이다. 반대로 의류 부문이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모든 노동자들은 의류를 생산하고 싶어할테다. 어느 한 부문이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구직을 희망하는 노동공급이 증가하고 그 결과 균형임금은 하락한다. 더 낮은 임금을 제시하면 노동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균형임금은 상승한다.

 

따라서 시장원리에 의해 자급자족 상황에서 각 국가 내 산업간 임금은 동일해진다.   



 

생산자시장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된다. 만약 자동차(의류) 생산이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면 모든 생산자들은 자동차(의류)을 생산할테고 자동차(의류) 노동자 수요가 증가한다. 노동수요 증가는 임금상승을 유발하여 생산비용이 올라가게 되고, 각 부문의 이윤은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시장원리에 의해 자급자족 상황에서 각 부문의 이윤은 0이 되고, 이윤이 0이 되는 수준에서 상품가격이 결정된다.



생산자 입장에서 자동차와 의류 무엇을 생산하든 동일한 이윤을 획득하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황에서는 한 국가내에서 두 상품이 모두 생산된다. 그리고 두 상품의 상대가격은 기회비용과 동일해진다.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상대가격은 '자국 = 1', '외국 = 2'가 된다. 역으로 자동차로 표시한 의류의 상대가격은 '자국 = 1', '외국 = 1/2'이 된다. 

 

이처럼 자급자족 상황(Autarky)에서 자국(Home)과 외국(Foreign) 간에 상대가격은 다른 값을 가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양국간 노동생산성의 차이로 인해 기회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자국과 외국의 필요 노동투입량이 동일하고 이에따라 노동생산성도 똑같다면, 기회비용이 같아지게 되어 상대가격의 차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국은 기회비용이 낮은 자동차의 상대가격이 외국보다 낮으며, 기회비용이 높은 의류의 상대가격이 외국보다 높다. 외국은 기회비용이 낮은 의류의 상대가격이 자국보다 낮으며, 기회비용이 높은 자동차의 상대가격이 자국보다 높다. 


● 시장개방 (Opening)


이제 한국과 외국 두 나라가 시장개방을 통해 상품교역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왜 (멀리 떨어져있는)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 상품을 교환하는가?"


이 물음은 아주 중요하다. 만약 자국 내에서 특정한 상품을 생산할 수 없고 외국에서 조달해야만 하면,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 상품을 교환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상품은 모든 나라에서 생산될 수 있다. 한국과 외국은 쌀과 자동차를 자국 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데, 왜 서로 무역을 해야하는가.


그 이유는 자국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무역 상대국가에 더 비싼 가격을 받고 물건을 판매 할수 있기 때문이며, 자국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무역 상대국으로부터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자급자족 상황에서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상대가격은 자국에서는 1(=1/1) 외국에서는 2(=4/2) 라고 말하였다(autarky price). 국제무역이 시작되면 자동차(A)의 세계시장 상대가격은 1과 2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고(world relative price)[각주:1]. 3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1)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5인 경우 (1과 2 사이)

 


 

[수출] : 자급자족시 자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1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1.5이기 때문에, 자국(H)은 자동차(A)를 세계시장에 팔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자급자족시 외국 의류 상대가격은 1/2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2/3이기 때문에, 외국(F)은 의류(T)를 세계시장에 팔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 자국 비교우위 자동차 특화 수출, 외국 비교우위 의류 특화 수출)

 

 

[수입] : 자급자족시 자국 의류 상대가격은 1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2/3이기 때문에, 자국(H)은 의류(T)를 수입하면 더 싼 가격에 이용하는 꼴이 된다. 자급자족시 외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2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1.5이기 때문에, 외국(F)은 자동차(A)를 수입해오면 더 싼 가격에 이용하는 꼴이 된다. (→ 자국 비교열위 의류 수입, 외국 비교열위 자동차 수입)


2)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인 경우

 


[수출] : 자급자족시 자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1이고 세계시장 가격도 1이기 때문에, 자국(H)은 자동차(A)를 수출하더라도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하고 내수판매와 무차별하다. 그러나 자급자족시 외국 의류 상대가격은 1/2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1이기 때문에, 외국(F)은 의류(T)를 세계시장에 팔면 더 비싼 값을 받으며 1)의 케이스에 비해서도 더욱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 자국 자동차 특화하나 안하나 무차별, 외국 비교우위 의류 특화하여 더 비싼 값에 수출)

 


[수입] : 자급자족시 자국 의류 상대가격은 1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도 1이기 때문에, 자국(H)은 의류(T)를 수입하는 것과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이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자급자족시 외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2인 반면 세계시장은 1이기 때문에, 외국(F)은 자동차(A)를 수입하면 더 싼 가격을 지불하며 1)의 케이스에 비해서도 더욱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 자국 의류 자체생산과 수입 무차별, 외국 비교열위 자동차 더 싼 가격에 수입)


3)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세계시장 가격이 2인 경우

 


[수출] : 자급자족시 자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1이고 세계시장 가격은 2이기 때문에, 자국(H)은 자동차(A)를 세계시장에 팔면 비싼 값을 받게 되며, 1)의 경우에 비해서도 더욱 비싼 가격을 받는다. 그러나 자급자족시 외국 의류 상대가격은 1/2이고 세계시장 가격도 1/2이기 때문에, 외국(F)은 의류(T)를 수출하는 것과 국내에 판매하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다. (→ 자국 비교우위 자동차 특화하여 수출하면 더 큰 이익, 외국 의류 자체생산과 수출 무차별)

 



[수입] : 자급자족시 자국 의류 상대가격은 1이고 세계시장 가격은 1/2이기 때문에, 자국(H)은 의류(T)를 수입해오면 싼 가격을 지불해도 되며, 1)의 경우에 비해서도 더욱 싼 가격만 지불하면 된다. 그러나 자급자족시 외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2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도 2이기 때문에, 외국(F)은 자동차(A)를 수입하는 것과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이 무차별하다. (→ 자국 비교열위 의류 수입하면 더 큰 이익, 외국 자동차 자체생산과 수입 무차별)


이러한 결과를 다시 정리하면, 세계시장 상대가격과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양국에서 모두 다르다면, 각 국가들은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특화하여 수출하고 높은 품목은 수입한다. 개별 국가 내에서 '완전특화'(perfect specialization)가 이루어진다. 


만약 세계시장 상대가격과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한 국가에서는 다르고 한 국가에서는 동일하다면, 가격이 다른 국가는 완전특화를 하고 가격이 동일한 국가는 (무역개방 이전 자급자족 상황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상품을 모두 생산한다. 전자의 국가는 무역을 이익을 누리고 후자의 국가는 무역의 이익이 없다. 


이처럼 세계시장 상대가격(world price)이 얼마냐에 따라 국가별 무역패턴(trade pattern)이 결정된다. 자급자족 상대가격보다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더 높은 상품은 특화하여 수출하고 더 낮은 상품은 수입한다. 자급자족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동일하다면 국내와 해외 판매가 무차별하고, 국내에서 조달하나 해외에서 조달하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황과 달라지지 않는다. 


즉, ① 국가간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② 자연스레 세계시장 상대가격과 각국 자급자족 상대가격 간에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③ 무역을 할 이유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 및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의 차이'는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자국과 외국의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게 된 이유로 '기술수준에 따른 노동생산성 차이'(technology)를 꼽았다. 


양국의 기술수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투입량이 다르고 기회비용 차이가 발생한다. 그 결과 각국의 자급자족시 상대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각자 비교우위 혹은 비교열위를 가지는 상품이 생겨난다. 


여기서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높아 기회비용이 낮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의미하고,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낮아 기회비용이 높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높은 품목'을 뜻한다.


(주 : 다음글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에서는, '국가간 요소 부존자원(factor endowment) 차이'로 인해 상대가격이 달라진다는 헥셔와 올린의 이론을 살펴볼 것이다.)




※ 국제무역을 통한 '이익'이란 무엇인가? (gains from trade)

- 무역을 통해 자급자족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

- 더 적은 노동을 투입하여 동일한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  

 

국내에 판매하는 것보다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을 수출하고,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수입한다는 논리는 매우 직관적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러한 무역으로부터 얻는 이익을 “비싸게 팔아서 돈을 벌고, 싸게 구매해서 돈을 아꼈다” 라는 중상주의적 관점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욱 비싼 값을 받고 판매한 수출상품 덕분에 더 많은 양의 수입상품을 값싸게 들여올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소비가능한 상품조합이 자급자족에 비해 확대'되는 것이 바로 올바른 무역의 ‘이익’이다. 


이번 파트를 통해 국제무역을 통해 양국이 소비가능한 상품조합이 어떻게 확대시키는지, 그리고 무역의 이익을 보다 더 증대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자.


앞서의 예시를 다시 생각해보자. 


자국은 자동차에 비교우위를, 외국은 의류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 자급자족일 때, 자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1이고 의류 상대가격 또한 1이다. 외국은 의류 상대가격은 1/2이고, 자동차 상대가격은 2였다. 


자국의 경우, 자동차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이면 국내판매나 수출판매가 무차별하며,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2로 커질수록 수출로 얻는 무역의 이익이 증가한다. 또한, 의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이면 국내조달과 수입이 무차별하며,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2로 내려갈수록 수입으로 얻는 무역의 이익이 증가한다.


외국의 경우, 의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2이면 국내판매나 수출판매가 무차별하며, 세계시장 가격이 1로 커질수록 수출로 얻는 무역의 이익이 증가한다. 또한, 자동차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2이면 국내조달과 수입이 무차별하며,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로 내려갈수록 수입으로 얻는 무역의 이익이 증가한다.



'무역의 이익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 간의 차이'이고, 자급자족 상대가격은 국내 상황에 의해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얼마냐'가 중요해진다.


여기서 세계시장 상대가격은 '교역조건'(Terms of Trade)를 의미한다. 세계시장 상대가격을 겉으로만 살펴보면 단순한 '수출상품 가격 / 수입상품 가격' 이지만, 사실 교역조건은 '수출상품 1단위와 교환할 수 있는 수입상품 단위 수'를 의미한다.

▶ 무역을 통해 자급자족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

이러한 교역조건이 국제무역을 통해 소비가능한 상품을 어떻게 늘리는지 알아보자.

예를 들어, 자동차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이면 자국은 자동차 1대를 수출하여 의류 1벌을 수입해오지만, 1.5면 의류 1.5벌 수입, 2이면 의류 2벌을 수입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의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2이면 의류 1벌을 수출하여 자동차 1/2대를 수입해오지만, 2/3이면 자동차 2/3대, 1이면 자동차 1대를 수입할 수 있다.  

따라서, 교역조건이 우호적으로 설정될수록, 비교우위 상품 한 단위를 수출하여 더 많은 양의 비교열위 상품을 수입할 수 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무역을 통해 자급자족 상태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소비할 수 있다. 


▶ 더 적은 노동을 투입하여 동일한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


다르게 생각하면, 무역은 더 적은 노동을 투입하여 동일한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자급자족 상황에서 자국은 비교열위 의류 1벌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1명을 투입해야 한다. 이제 무역을 한다. 교역조건이 1.5(=3/2)이면 노동자 2/3명을 자동차 2/3대 생산에 투입한 뒤 의류 1벌을 수입해올 수 있다. 교역조건이 2라면 노동자 1/2명으로 자동차 1/2대를 생산하고 의류 1벌을 수입해온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급자족 상황에서 외국은 비교열위 자동차 1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4명을 투입해야 한다. 무역을 하게 되고, 교역조건이 2/3이면 노동자 3명으로 의류 3/2벌을 생산하여 자동차 1대를 수입해올 수 있다. 교역조건이 1이면 노동자 2명으로 의류 1벌을 생산한 뒤 자동차 1대를 수입해온다.


따라서, 국제무역을 통한 비교열위 상품 수입은 더 적은 노동으로 '상품을 간접생산'(indirect production) 하는 효과를 가져다주고, 교역조건이 우호적일수록 간접생산 효과는 증폭된다.


▶ 국제무역이 만들어주는 효율성 이익


만약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각 국의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일치하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면(=이 글에서는 자동차 상대가격 3/2 혹은 의류 상대가격 2/3), 각 국은 완전특화(perfect specialization)를 통해 비교우위 상품만 생산하게 되고, 더 많은 양의 비교열위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결국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특화와 교환을 통해, 같은 노동으로 더 많은 양을 소비케하거나 더 적은 노동으로 동일한 양을 소비할 수 있게끔 만들어, '효율성의 이익'(efficiency gain)을 안겨다준다.


▶ 국제무역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들이 상호이득


양국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할 경우 상호이득(mutual gain)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자급자족시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다’는 것 덕분이다. 


여기에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노동생산성이 절대우위냐 열위냐는 중요치 않다. 그저 자급자족 상태에 비해서 국제무역에 참여할 경우 더 비싼 값을 받고 상품을 판매하거나 더 싼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득을 보는 것일 뿐이다.




※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정말 상호이득을 가져다주느냐

- 후진국의 저임금을 불평하는 선진국

- 선진국의 높은 생산성을 두려워하는 후진국


이처럼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여러 이익을 가져다 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논쟁은 1817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제일 큰 논쟁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정말 상호이득을 가져다주느냐?' 이다.


선진국이나 후진국 내부에서 비교우위론에 대한 불평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선진국의 불평은 “후진국의 낮은 임금 때문에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이고, 후진국의 불평은 “선진국의 높은 생산성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이들은 '비교우위론과 생산성&임금 간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 예시로 든 자국과 외국의 경우를 이용하여 임금수준을 알아보자.


 

‘자동차(A)와 의류(T)의 세계시장 가격‘ 범위는 ‘자국(H)과 외국(F)의 자급자족 상대가격’에 의해 결정됐다. 이때, 자동차의 세계시장 가격은 자국의 자급자족 가격보다 최소한 같거나 비싸기 때문에 자국은 자동차(A)에 비교우위가 있고, 의류의 세계시장 가격은 외국의 자급자족 가격보다 최소한 같거나 비싸기 때문에 외국은 의류(T)에 비교우위가 있다. 


 

따라서, 자동차의 세계시장 가격은 자국에 의해서 결정되고, 의류의 세계시장 가격은 외국에 의해서 결정된다. (2) 수식을 (1)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두 국가의 임금수준은 양국의 생산성 범위에 따라 결정된다. 생산성이 높은 국가는 그에 맞추어 임금수준도 높고, 생산성이 낮은 국가는 임금수준이 낮다. 생산성이 높은 국가의 우위는 고임금 때문에 어느정도 상쇄되고, 저임금 국가의 우위는 저생산성 때문에 상쇄된다. 따라서, 선진국은 높은 생산성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후진국은 낮은 임금을 통해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다. 


두 국가가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고 있는 상황은 ‘두 국가의 임금 수준이 생산성 범위 내에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선진국이 후진국의 낮은 임금을 걱정하거나, 후진국이 선진국의 높은 생산성을 걱정하는 건 비교우위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 자유무역 균형을 이탈하는 저임금을 인위적으로 유지한다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에서 이탈할 한 가지 가능성은 '두 국가의 임금 수준이 생산성 범위 에 있을 경우'이다.


자국(H)의 임금이 1일 때, 외국(F)의 임금수준이 1/5인 상황을 가정해보자. 본래라면 외국의 임금수준은 최소 1/4, 최대 1/2이어야 하는데, 무역경쟁력을 더 획득하기 위해 이보다 낮은 임금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언뜻 보면, 자동차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2.5(=5/2)로 설정되어, 자동차 생산에 비교우위를 가진 자국에 더 우호적인 교역조건(이전 최대한 우호적인 교역조건은 2)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동차 세계시장 상대가격 2.5는 외국 자동차 부문에도 우호적인 교역조건이다. 왜냐하면 자급자족일 때 외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2인데, 시장개방을 하면 상대국가에 2.5를 받고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은 본래 비교우위를 가졌던 의류 뿐만 아니라 자동차도 수출을 한다.


더군다나 노동투입량*임금 으로 표현되는 생산비용이 외국(4/5)이 자국(1)보다 더 낮기 때문에, 외국과 자국의 자동차 생산자가 똑같은 가격을 받고 상품을 판매하면 외국 생산자는 더 많은 이윤(profit)을 얻게 될것이고, 자국 생산자는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자국(H)은 본래 비교열위 였던 의류 뿐만 아니라 비교우위를 가졌던 자동차도 생산을 멈추게 되고, 오직 외국(F)만이 상품을 생산하며 양국의 시장을 전부 차지한다.


여기에서 "아니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절대우위 · 절대열위에 상관없이, 각 국가가 최소 하나 이상의 상품은 특화하여 생산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맞다. 비교우위론은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다르면 비교우위 상품에 완전특화가 이루어지고, 세계시장 상대가격과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같다면 자급자족 상황과 별반 달라진 것 없이 두 상품을 모두 생산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 위의 예시는 외국(F)의 임금수준이 '비교우위론을 따르는 생산성 수준 범위 밖'에서 인위적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우위론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시장원리가 올바로 작동한다면. 초과이윤을 목격한 외국(F) 의류 생산자들이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고, 노동수요 증가에 따라 자동차 노동자 임금이 상승하여 임금수준이 본래 생산성 수준 범위 안으로 들어올 것이지만, 인위적인 힘으로 임금을 계속 통제할 경우 세계시장을 모두 차지할 수 있다.




※ '인위적인 저임금'으로 알아보는 유럽경제위기의 근본원인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저임금이 국제무역에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유럽경제위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 


前 Fed 의장 Ben Bernanke(벤 버냉키)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비판[각주:2]하였다.(이에 대한 해설글은 페이스북 페이지 참고.


본 블로그는 여러 글[각주:3]을 통해, "특정국가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가 국제금융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그의 주장을 다루었다. 최근의 주장도 평소 그의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까? 물론 그렇긴 하지만, 본인은 다른 부분을 강조하려 한다.


왜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이렇게나 클까요? 물론, 독일은 외국인들이 사고 싶어할만큼의 좋은 상품을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경제적성공 으로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다른 국가들이 전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Why is Germany’s trade surplus so large? Undoubtedly, Germany makes good products that foreigners want to buy. For that reason, many point to the trade surplus as a sign of economic success. But other countries make good products without running such large surpluses. There are two more important reasons for Germany’s trade surplus.)


첫째는 '유로화' 입니다. (유로화 도입 이전 유럽국가들이 가졌던 통화가치의 가중평균으로 결정된) 유로화의 통화가치는 적정한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독일의 입장에서 유로화의 통화가치는 너무 낮기 때문에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룰 수 없습니다. 2014년 7월, IMF는 독일의 통화가치가 5%~15% 정도 과소평가 되어있다고 추산했습니다. 그 이후로 유로화의 통화가치는 달러에 비해 20%나 더 하락했죠.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유로화는 독일에게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안겨줍니다. 만약 독일이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의 마르크화를 썼다면, 아마 독일의 통화가치는 현재 유로화의 가치보다 훨씬 높을 것입니다. 이는 현재 독일이 누리고 있는 무역의 이점을 줄이겠죠.  

(First, although the euro—the currency that Germany shares with 18 other countries—may (or may not) be at the right level for all 19 euro-zone countries as a group, it is too weak (given German wages and production costs) to be consistent with balanced German trade. In July 2014, the IMF estimated that Germany’s inflation-adjusted exchange rate was undervalued by 5-15 percent (see IMF, p. 20). Since then, the euro has fallen by an additional 20 percent relative to the dollar. The comparatively weak euro is an underappreciated benefit to Germany of its participation in the currency union. If Germany were still using the deutschemark, presumably the DM would be much stronger than the euro is today, reducing the cost advantage of German exports substantially.) (...) 


(독일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와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유로존 내에서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는 불균형적 성장뿐 아니라 금융불균형(financial imbalances)도 초래하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내 다른 국가들의 상대임금이 하락하여 생산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올려야 합니다.

(Persistent imbalances within the euro zone are also unhealthy, as they lead to financial imbalances as well as to unbalanced growth. Ideally, declines in wages in other euro-zone countries, relative to German wages, would reduce relative production costs and increase competitiveness.(...)


(주 : 하지만 '인위적인 임금하락'은 유로존 내 많은 근로자들을 희생시킨다.) 독일은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독일인들이 득을 보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Germany has little control over the value of the common currency, but it has several policy tools at its disposal to reduce its surplus—tools that, rather than involving sacrifice, would make most Germans better off. Here are three examples.)  (...)


바로, 독일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죠. 독일 근로자의 임금은 크게 상승할만 합니다. 일 근로자의 높은 임금은 생산비용을 증가시키고 국내소비를 늘릴 수 있습니다. 이것들 모두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줄일 수 있죠. 

(Raising the wages of Geman workers. German workers deserve a substantial raise, and the cooperation of the government, employers, and unions could give them one. Higher German wages would both speed the adjustment of relative production costs and increase domestic income and consumption. Both would tend to reduce the trade surplus.)


Ben Bernanke. 'Germany's trade surplus is a problem'. 2015.04.03

 

Ben Bernanke는 '독일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유로존 내 불균형'을[각주:4] 염려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독일이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거나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Ben Bernanke는 '독일 근로자의 임금상승' 혹은 '다른 유로존 근로자들의 임금하락' 을 방법으로 제시한다. '임금을 고려한 비교우위론'에서 살펴봤듯이, 생산성 수준을 뛰어넘는 높은 임금은 시장퇴출을 불러와 무역을 불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연유로 독일은 낮은 통화가치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가지게 되었을까? 또, 다른 유로존 국가들은 어쩌다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갖게 되었을까? 이를 알면 '유럽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글을 통해 '유럽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알아보도록 하자.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세상에 소개한 배경은 무엇일까


"자유무역을 통해 모든 국가가 상호이득(mutual gain)을 얻을 수 있다"는 함의를 전해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이제 절대생산성이 높은 국가도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절대생산성이 낮은 국가도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을 수출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리카도는 어떻게 '비교우위론'을 고안하여 세상에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1817년 당시 리카도가 살았던 영국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곡물법'(Corn Law)을 둘러싼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곡물법이란 국내산 곡물가격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도달할 때까지 곡물수입을 금지하거나, 수입 곡물에 상당한 관세를 부과하는 법률이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곡물 가격을 높게 유지하기 위하여 곡물법을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곡물법 유지를 옹호한 건 지주계급(Landlord)이었다. 곡물 가격이 비싸면 곡물 재배를 위한 경작 면적이 확대되어 지주의 이익, 즉 지대(rent)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와 같은 학자들은 '지주들의 소득 증가가 경제의 총수요를 증가시킨다'는 논리로 곡물법 유지를 찬성했다. 


그러나 리카도가 보기엔 곡물법은 해악만 가득한 법안이었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축적되어야 하고, 자본축적을 위해서는 영농자본가(farmer) 및 산업자본가(manufacturer)의 이윤(profit)이 증가해야 한다. 이때 곡물법으로 인해 초래된 높은 곡물가격은 생계비 부담을 키워 노동자 임금(wage)을 상승시킬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임금과 역의 관계인 자본가의 이윤은 감소하게 된다. 


즉, 리카도에게 있어 곡물법은 자본가의 이윤율을 저하시켜 자본축적 동기를 멈추게하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곡물법을 폐지하고 외국에서 곡물을 싸게 수입해와 자본가의 이윤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외국과의 자유무역'은 '곡물법 폐지'를 의미했으며, 지주와 노동자의 분배몫을 낮추고 자본가의 이윤을 증가시켜 자본축적을 촉진하는 수단이었다. 


이번글에서 소개한 '비교우위론이 가져다주는 무역의 이익'은 ① 소비가능한 상품조합 확대 ② 더 적은 노동으로 동일한 양의 상품 소비 가능 ③ 효율성 증대 등 정태적이익(static gain)을 이야기 했지만,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의 목적은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경제성장 달성' 이라는 동태적이익(dynamic gain)을 소개하는 것이다.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 저서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와 비교우위론이 등장한 배경을 좀 더 알고 싶은 분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비교우위론을 비판하는 장하준의 주장은 타당한가?


한국내 많은 독자들은 '비교우위론'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장하준의 주장 때문이다. 장하준은 그동안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무역은 크나큰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전개해왔다.


장하준이 지적하는 비교우위론의 문제점은 이것이다. 만약 선진국이 자동차산업에 비교우위가 있고, 개발도상국은 가발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하자. 비교우위론은 "선진국은 자동차, 개발도상국은 가발을 생산해야 이익을 가져다준다." 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렇다면 개발도상국은 평생토록 가발만 생산해야 하나? 경제성장을 원하는 개발도상국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보다는 높은 산업을 육성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비교우위론에 입각하여 무역정책을 짠다면, 개발도상국은 평생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만 운영해야 한다. 따라서, 장하준은 '보호무역'(protectionism)과 '유치산업보호'(Infant Industry Argument)를 통해, 개발도상국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육성토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리카도가 개발한 '비교우위론'은 장하준이 이해한 것처럼 "현재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을 평생토록 운영해야 한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현재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 대신 미래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산업을 키우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을 안다면, 시장참가자들은 이미 행동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비교우위론은 이것을 막지 않는다.


이처럼 비교우위론은 국제무역을 둘러싼 논쟁 속 쟁점사항 이었다. 제조업 육성을 통한 경제발전을 바라는 개발도상국은 비교우위론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핵심논점 이다. 이러한 논쟁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 '비교우위론'을 보완해줄 이론의 필요성


이번글을 통해 '비교우위론'이 무엇인지 그리고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무역이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주는지를 알아보았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각 나라의 노동생산성(labor productivity)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개념을 도입하며, "무역을 탄생시킨건 각 국가별로 서로 다른 노동생산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비교우위를 설명하면서 '노동'만을 생산요소로 사용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 뿐만 아니라 '자본'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세계 여러 국가들의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서로 다른 이유를 '노동생산성의 차이'만 가지고 설명할 수는 없다. 중동 · 호주 · 브라질 등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풍부한 국가들의 무역행태를 '비교우위론'이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보완하는 이론이 필요하다. 바로 다음글에서 '국가들이 보유한 자원(resource)의 차이'를 이용하여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헥셔-올린 이론'(Heckscher-Ohlin)을 알아보자.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1.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시장 상대공급과 상대수요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세계시장 가격이 결정된다. [본문으로]
  2. 'Germany's trade surplus is a problem'. 2015.04.03 http://www.brookings.edu/blogs/ben-bernanke/posts/2015/04/03-germany-trade-surplus-problem [본문으로]
  3.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2014.07.11 http://joohyeon.com/195 [본문으로]
  4. JooHyeon's Economics 페이스북 페이지 - 2014.09.2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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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불균등. 그리고 무역의 영향(?)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불균등. 그리고 무역의 영향(?)

Posted at 2014. 8. 27. 15:49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해마다 8월이 되면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주최로 Jackson Hole Meeting이 열린다. 경제학자 ·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이곳에 모여 경제정책에 관한 논의를 하게된다. 올해 Jackson Hole Meeting의 주제는 <Re-Evaluating Labour Market Dynamics>


주제에 맞추어 현재 노동시장 상황에 관한 여러 논문들이 발표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MIT 대학소속 David Autor<Polanyi's Paradox and the Shape of Employment Growth> 이다. 도대체 어떤 주장이 담겨져있길래 많은 학자들이 이 논문에 주목을 했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기술발전과 경제적 불균등'에 관한 기존 논의를 이해하여야 한다.




※ 기술발전이 초래하는 중간층 일자리 감소와 일자리 양극화(Job Polarization)


산업혁명 이래로 "기술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 라는 우려는 항상 있어왔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때문에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것 이라는 논리. 그러나 모두들 알다시피 이러한 우려는 실현되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고, 증가된 생산성에 맞추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들이 생겨왔다. 기계가 대체한 일자리보다는 새로이 창출한 일자리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획기적으로 발전한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은 "기술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라는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왜일까? 


이 분야 논의에 기여한 것이 앞서 이야기한 David Autor와 Frank Levy, Richard Murnane의 2003년 논문 <The Skill Content of Recent Technological Change: An Empirical Exploration> 이다. David Autor 등은 이 논문을 통해 "컴퓨터의 발전은 반복적인 업무(routine tasks)를 주로 하는 중간층 일자리(middle-skilled jobs)를 감소시킨다." 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Polanyi's Paradox' 때문이다. 이것은 철학자 Michael Polanyi의 말에서 따온 것인데,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We can know more than we can tell."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시말해, "인간은 자신의 행위방식을 말로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계란을 깨뜨리는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 할 때, 대다수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계란을 깨뜨리는 방법을 은연중에 알고 있는 것일뿐, 어떤 각도에서 얼마만큼의 힘을 줘야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컴퓨터를 이용할 때에도 인간의 이러한 특성은 한계로 작용한다. 컴퓨터는 프로그래머가 입력한 지시사항만을 따를 뿐, 프로그래머가 '말할 수 없는' 작업은 수행하지 못한다


따라서, 조직관리 · 의사소통 능력 · 오랫동안 체화된 한 분야의 전문성 등이 필요한 '추상적인 업무'(abstract tasks)와 세심한 환자관리가 필요한 분야 · 서빙 등 인간의 손이 필요한 '수공 업무'(manual tasks) 등은 컴퓨터가 수행할 수 없다. 다르게 말해, '비반복적 업무'(non-routine tasks)는 컴퓨터 기술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발전이 대체할 수 있는건 정해진 규칙(explicit rules)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반복적 업무'(routine tasks) 이다. 이러한 반복적 업무는 대개 숙련도와 임금이 중간정도인 일자리(middle-skilled, paid jobs) 이다.


1990년대 들어 중간층 일자리가 감소하고 상하층 일자리가 증가하는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David AutorLawrence Katz2006년 논문 <The Polarization of the U.S. Labor Market>를 통해 '일자리 양극화 현상'(Job Polarization)을 이야기 한다. 


  • David Autor, Lawrence Katz. 2006. <The Polarization of the U.S. Labor Market>. 20
  • 임금별 일자리 비중변화 추이. X축 좌표는 임금정도에 따른 직업분위(오른쪽일수록 고임금 일자리)를 나타내고, Y축 좌표는 고용률 변화를 나타낸다.
  • 1990년대(빨간선) 들어서 고임금 일자리(high-paid jobs)와 저임금 일자리(low-paid jobs)의 비중은 증가하고, 중간임금 일자리(middle-paid jobs) 비중은 감소함을 확인할 수 있다. 

중간층 일자리가 감소하는 현상은 미국 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관찰되었다. (오늘 소개할) David Autor의 2014년 Jackson Hole Meeting 발표자료에서 다른 선진국의 그래프를 찾을 수 있다.

  • Davud Autor. 2014. <Polanyi's Paradox and the Shape of Employment Growth>. 40
  • 미국 뿐 아니라 EU소속 16개 국가에서도, 1990년대 이래 중간층 일자리가 감소하고 상하층 일자리가 증가하는 '일자리 양극화'(Job Polarization)가 나타나고 있다.

David Autor와 Lawrence Katz는 "(논문 발행년도인 2006년 기준) 지난 15년동안, 중간소득 근로자에 비해 저임금 · 고임금 근로자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노동수요가 이동해왔다.[각주:1]" 라고 말한다.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비반복적 추상적인 업무(non-routine abstract tasks)와 비반복적 수동 업무(non-routine manual tasks) 일자리가 증가하고, 반복적 업무(routine tasks)는 컴퓨터에 의해 대체된 것이다.




※ 숙련편향적 기술발전(SBTC,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s)과 경제적 불균등


그렇다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으로 인해 중간층 일자리가 감소하는 현상은 경제적 불균등(Economic Inequality)과 어떻게 연결될까? 중간층 일자리가 감소함에 따라 경제적 불균등은 더욱 더 커지지 않았을까? 경제적 불균등이 증가하긴 하였으나,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컴퓨터화(Computerization) · 자동화(Automoation)로 나타내지는 정보통신기술 발전은 '숙련편향적 기술발전'(SBTC,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s) 이다. 말그대로 숙련도가 높은 근로자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주는 방식으로 기술발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왜 숙련도가 높은 근로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갈까? 


컴퓨터기술은 추상적인 업무(abstract tasks)와 보완관계(complement)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기술의 발전은 고숙련 근로자가 추상적인 업무에 특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령, 엑셀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등장은 회계업무 담당자가 손쉽게 자료를 수집 · 정리하고 통계를 내도록 도와준다. 이제는 자료정리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거기다가 고숙련 근로자의 노동공급은 제한적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대학교 이상의 지식과 업무에 대한 경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오랜기간 동안 교육에 투자하여야 한다. 단기간에 고숙련 근로자의 노동공급이 증가하여 임금이 하락할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실제로 통계를 살펴보면,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한 1990년대 이후 고학력 근로자의 고용률이 큰 폭으로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David Autor, Lawrence Katz. 2006. <The Polarization of the U.S. Labor Market>. 21
  • 교육정도별 일자리 비중변화 추이. X축 좌표는 교육정도에 따른 직업분위(오른쪽일수록 고학력 직업)를 나타내고, Y축 좌표는 고용률 변화를 나타낸다.
  • 1990년대 들어서 고학력 일자리의 고용률이 큰 폭으로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경제적 불균등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상층과 하층 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숙련 근로자(high-skilled workers)와 중숙련 근로자(middle-skilled workers) 사이의 불균등이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중숙련 근로자의 일자리는 감소하고 저숙련 근로자(low-skilled workers)의 일자리는 유지된 결과, 중하층 근로자 간의 불균등은 감소하였다. 


  • David Autor, Lawrence Katz. 2006. <The Polarization of the U.S. Labor Market>. 18
  • 파란색 선은 상위 90%와 50% 계층 사이의 임금격차를 나타낸다. 빨간색 선은 상위 50%와 10% 계층 사이의 임금격차를 나타낸다.
  • 1991년 이후, 파란색 선은 증가하는데 반해 빨간색 선은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즉, 상위 90%와 50% 계층 사이의 불균등은 증가하고, 상위 50%와 10% 계층 사이의 불균등은 감소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관념적으로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전은 상하층 간의 불균등을 확대시켰다" 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기술발전으로 인해 "상위 90%와 50% 계층 사이의 불균등이 증가하고, 상위 50%와 10% 계층 사이의 불균등은 감소"한 것이다[각주:2]

David Autor와 Lawrence Katz는 "(논문 발행년도인 2006년 기준) 지난 25년간 상층 내 불균등(upper-tatil inequality)은 증가하였고, 하층 내 불균등(lower-tail inequality)는 감소하였다[각주:3]. (...) (숙련편향적 기술발전으로 인한) 노동수요의 변화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각주:4]" 라고 말한다.



※ 기술발전과 경제적 불균등은 크게 상관이 없다?


그런데 2014년 8월 22일, David AutorJackson Hole Meeting을 통해 기존의 주장을 뒤집는다. 그는 <Polanyi's Paradox and the Shape of Employment Growth>를 통해, "지난 10년간 노동시장 악화의 원인을 컴퓨터 기술의 발전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1999년 이후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노동수요를 줄였다는 근거를 찾기는 힘들다.[각주:5]" 라고 말한다. 도대체 David Autor는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앞서 살펴봤듯이, 분명히 1990년대 이후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중간층 일자리를 감소시켰다. 그리고 숙련편향적 기술발전은 고숙련 근로자에게 더 많은 보상을 주었고, 상위계층과 중간계층 사이의 임금격차는 벌어졌다. 


또한 컴퓨터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수동 업무를 하는 저숙련 근로자들의 임금 또한 증가하여, 중간계층과 하위계층 사이의 임금격차는 감소하였다. 그런데 1999년 이후, 즉 2000년대 들어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길래 David Autor가 기존의 주장을 뒤집는 것일까?


David Autor는 2006년 논문에서 "기술발전에 따라 수동업무를 하는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이 증가하였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후 통계를 살펴보니 2000년대 이래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이 증가하지 않았다. 기술발전이 저숙련 근로자의 수동업무를 대체하지는 않았으나, 중숙련 근로자가 저숙련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노동공급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저숙련 노동시장의 낮은 진입장벽(low entry requirements)은 기술발전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중숙련 근로자들이 쉽게 진입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은 상승하지 않았다. 기술발전에 따른 '일자리 양극화'(Job Polarization)가 '임금 양극화'(Wage Polarization)[각주:6] 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각주:7]. 다르게 말해, 기술발전이 임금에 끼친 영향보다는 노동공급 증가가 임금에 끼친 영향이 더 크다



  • Davud Autor. 2014. <Polanyi's Paradox and the Shape of Employment Growth>. 42
  • X축 좌표는 숙련도에 따른 직업 분위. Y축 좌표는 중위소득 변화를 나타낸다.
  • 2000년대(노란색 선, 초록색 선) 들어 숙련도가 낮은 직업(X축의 왼쪽부분)의 중위소득 변화가 음(-)의 값을 기록하거나 아주 작은 수준의 양(+)의 값을 기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Figure 6 그래프에서 더욱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2000년대 이후 전체적인 임금성장이 둔화되었다는 사실[각주:8]이다. 고숙련 근로자가 담당하는 추상적인 업무에서도 2000년대 이후 임금정체 현상이 발견된다. 게다가 2000년대 이후, 고숙련 근로자의 일자리는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 Davud Autor. 2014. <Polanyi's Paradox and the Shape of Employment Growth>. 43
  • X축 좌표는 숙련도에 따른 직업 분위. Y축 좌표는 고용률 변화를 나타낸다.
  • 2000년대 이후에도(노란색 선, 초록색 선) 저숙련 근로자(X축의 왼쪽부분)의 고용률은 계속해서 높은 값을 기록하였다.
  • 그러나 2000년대 이후(노란색 선, 초록색 선), 고숙련 근로자(X축의 오른쪽부분)의 고용률은 낮은 값을 기록하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혹시 중숙련 일자리를 대체한 기술발전의 영향이 고숙련 일자리에도 미치기 시작한 것 아닐까?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컴퓨터 ·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투자비중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를 확인한 David Autor는 "2000년대 초반 IT버블 붕괴 때문이 아닐까? 이후 고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다.[각주:9]" 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2006년 논문에서 '기술의 발전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던 David Autor는 2014년 논문에서 "지난 10년간 노동시장 악화의 원인을 컴퓨터 기술의 발전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1999년 이후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노동수요를 줄였다는 근거를 찾기는 힘들다.[각주:10]" 라고 말하고 있다.


David Autor는 기술발전 대신 '두 가지 거시경제 사건이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닷컴버블 붕괴', 또 다른 하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 이다. 바로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닷컴버블 붕괴는 IT 투자수요를 감소시켜 고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를 줄였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2000년대 들어 발생한 세계경제의 부흥'과' 국가간 불균등 감소' 이다. 그는 "기술발전이 세계경제를 부유하게 만듦과 동시에 세계에서 기술이 가장 발전한 국가를 궁핍화 시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각주:11]" 라고 말하며, 기술발전이 미국 노동시장에 끼친 영향을 축소한다. David Autor는 특히나 중국의 경제성장에 주목한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증가가 미국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각주:12]는 것이다. 




※ (사족) 인적자본 투자의 중요성 & 기술발전이 중간층 일자리를 완전히 없앨까?


David Autor는 <Polanyi's Paradox and the Shape of Employment Growth> 를 통해 '인적자본 투자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기술발전이 중간층 일자리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 것' 이라고 말한다. 


David Autor는 "숙련 근로자의 수요를 증대시키는 기술발전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만약 19세기 근로자가 20세기에 환생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근로자는 교육부족으로 인하여 실업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 기술발전은 수동 업무(manual tasks)를 증가시킬 수 있으나 낮은 진입장벽으로 인하여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은 낮다. 따라서, 인적자본에 투자하여 숙련도를 쌓는 것이야 말로 장기적인 전략의 핵심이다.[각주:13]" 라고 주장한다.


또한, "(기술발전으로 인하여 중간층 일자리가 감소하는) 고용 양극화(employment polarization)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중숙련 업무(middle-skilled tasks)들이 자동화에 의해 대체 되었으나, 또 다른 많은 중숙련 업무는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것들 이루어져 있다. 반복 업무(routine tasks)와 비반복 업무(non-routine tasks)는 서로 보완을 주는 선에서 공존할 것이다.[각주:14]" 라고 말한다.




국제무역이 경제적 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경제적 불균등 현상에 대해 기술발전의 역할을 강조했던 David Autor는 이제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특히나 중국)과 '국제무역'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제무역은 어떤 경로를 통해 노동시장과 소득격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다음글에서는 '국제무역이론 - 1세대 · 2세대 · 3세대'를 살펴보고, 이것이 전세계적 소득분배 · 선진국 내 계층별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참고자료>


David Autor, Frank Levy, Richard Murnane. 2003. <The Skill Content of Recent Technological Change: An Empirical Exploration>


David Autor, Lawrence Katz, Melissa Kearney. 2006. <The Polarization of the U.S. Labor Market>


David Autor. 2014. <Polanyi's Paradox and the Shape of Employment Growth>



  1. labor demand shifts have favored low- and high- wage workers relative to middle-wage workers over the last fifteen years. (7) [본문으로]
  2. 물론, super-rich, 상위 0.1% 계층의 부(富)가 큰 폭으로 증가하긴 하였으나, 이건 또다른 문제이다. [본문으로]
  3. secular rise in upper-tail inequality over the last twenty five years coupled with an expansion and then compression of lower-tail inequality. (12) [본문으로]
  4. demand shifts are likely to be a key component of any cogent explanation. (13) [본문으로]
  5. A final observation is that while much contemporary economic pessimism attributes the labor market woes of the past decade to the adverse impacts of computerization, I remain skeptical of this inference. Clearly, computerization has shaped the structure of occupational change and the evolution of skill demands. But it is harder to see the channel through which computerization could have dramatically reduced labor demand after 1999. (32) [본문으로]
  6. 보통 '양극화'란 단어를 상하층 격차 증가일 때 사용하기 때문에, "일자리 양극화가 임금 양극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라는 말이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양극화'(polarization)는 중간부분이 감소하고 상하부분이 증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2000년대 이래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은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 양극화'(wage polarization) 으로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본문으로]
  7. In short, while abstract task-­‐‑intensive activities benefit from strong complementarities with computerization, relatively elastic final demand, and a low elasticity of labor supply, manual task-­‐‑intensive activities are at best weakly complemented by computerization, do not benefit from elastic final demand, and face elastic labor supply that tempers demand-­‐‑induced wage increases. Thus, while computerization has strongly contributed to employment polarization, we would not generally expect these employment changes to culminate in wage polarization except in tight labor markets. (16-17) [본문으로]
  8. A final set of facts starkly illustrated by Figure 6 is that overall wage growth was extraordinarily anemic throughout the 2000s, even prior to the Great Recession. (18) [본문으로]
  9. What this pattern suggests to me is a temporary dislocation of demand for IT capital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1990s followed by a sharp correction after 2000—in other words, the bursting of a bubble. The end of the “tech bubble” in the year 2000 is of course widely recognized, as the NASDAQ stock index erased three-­‐‑quarters of its value between 2000 and 2003. Less appreciated, I believe, are the economic consequences beyond the technology sector: a huge falloff in IT investment, which may plausibly have dampened innovative activity and demand for high skilled workers more broadly. (23) [본문으로]
  10. A final observation is that while much contemporary economic pessimism attributes the labor market woes of the past decade to the adverse impacts of computerization, I remain skeptical of this inference. Clearly, computerization has shaped the structure of occupational change and the evolution of skill demands. But it is harder to see the channel through which computerization could have dramatically reduced labor demand after 1999. (32) [본문으로]
  11. the onset of the weak U.S. labor market of the 2000s coincided with a sharp deceleration in computer investment—a fact that appears first-­‐‑order inconsistent with the onset of a new era of capital-­‐‑labor substitution. Moreover, the U.S. labor market woes of the last decade occurred alongside extremely rapid economic growth in much of the developing world. Indeed, frequently overlooked in U.S.-­‐‑centric discussions of world economic trends is that the 2000s was a decade of rising world prosperity and falling world inequality. It seems implausible to me that technological change could be enriching most of the world while simultaneously immiserating the world’s technologically leading nation. (33) [본문으로]
  12. employment dislocations in the U.S. labor market brought about by rapid globalization, particularly the sharp rise of import penetration from China following its accession to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in 2001. (33) [본문으로]
  13. A first is that the technological advances that have secularly pushed outward the demand for skilled labor over many decades will continue to do so. (...) Though computerization may increase the fraction of jobs found in manual task-­‐‑intensive work, it is generally unlikely to rapidly boost earnings in these occupations for the reasons discussed above: an absence of strong complementarities and an abundance of potential labor supply. Thus, human capital investment must be at the heart of any long-­‐‑term strategy for producing skills that are complemented rather than substituted by technology. (30-31) [본문으로]
  14. A second observation is that employment polarization will not continue indefinitely. While many middle skill tasks are susceptible to automation, many middle skill jobs demand a mixture of tasks from across the skill spectrum. (.,.) Why are these middle skill jobs likely to persist and, potentially, to grow? (...) routine and non-­‑routine tasks will generally coexist within an occupation to the degree that they are complements-­that is, the quality of the service improves when the worker combines technical expertise and human flexibility. This reasoning suggests that many of the middle skill jobs that persist in the future will combine routine technical tasks with the set of non-­routine tasks in which workers hold comparative advantage-­interpersonal interaction, flexibility, adaptability and problem-­solving. (...) I expect that a significant stratum of middle skill, non-­‐‑college jobs combining specific vocational skills with foundational middle skills—literacy, numeracy, adaptability, problem-solving and common sense—will persist in coming decades. (31-3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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