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에 해당되는 글 21건

  1. [경제성장이론 ⑪]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 5 2017.07.25
  2.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2 2017.07.24
  3.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6 2017.07.20
  4.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10 2017.07.19
  5.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3 2017.07.17
  6. [경제성장이론 ⑥] 수렴논쟁 Ⅲ - 맨큐 · D.로머 · 웨일,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 9 2017.07.06
  7. [경제성장이론 ⑤] 수렴논쟁 Ⅱ -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3 2017.07.06
  8.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6 2017.07.06
  9.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4 2017.06.30
  10.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9 2017.06.29
  1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77 2017.06.28
  12. [경제성장이론 요약]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3 2017.06.27
  13. 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 2 2014.01.09
  14.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2013.10.25
  15.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 2013.10.18
  16. 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2013.10.13
  17. 박근혜정부 세제개편안-한국경제 구조개혁-저부담 저복지에서 고부담 고복지로 3 2013.08.27
  18. 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 2013.08.23
  19.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20.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5 2013.08.18

[경제성장이론 ⑪]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경제성장이론 ⑪]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

Posted at 2017. 7. 25. 20:09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 (Stylized Facts)


지금까지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통해, 성장이론을 알아봤습니다. 


여기서 '이론'(theory)이란 말그대로 경제현상을 일반론적인 접근으로 설명함을 의미합니다. 실제 개별국가가 어떻게 성장에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 현재 개별 선진국들은 어떠한 구체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등등은 이론을 넘어선 실증분석(empiric)으로 연구해야겠죠.


그럼 [경제성장이론]은 어떠한 경제현상을 일반론으로나마 설명해내고 있을까요? 

(사족 : 본 시리즈를 통해 계속 강조하고 있는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못 사는가?", "왜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고, 어떤 나라는 느리게 성장하는가?"도 경제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경제학자 니콜라스 칼도어(Nicholas Kaldor)1961년 <자본축적과 경제성장>(Capital Accumulation and Economic Growth) 논문을 통해, '(미국경제에서 관찰되는) 경제성장에 관한 6가지 정형화된 사실'을 말합니다. 일명, '칼도어의 정형화된 사실들'('Kaldor's Stylized Facts') 입니다. [경제성장이론] 중 가장 처음 살펴본 '솔로우 모형'은 칼도어의 사실들을 잘 설명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불만을 품은 분도 계실(길 바랍니다)겁니다. "솔로우 모형(1956)이나 칼도어의 사실들(1961)이나 예전에 나온 이론 아닌가. 최근의 경제현상을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데." 오래전 제기된 '칼도어의 사실들'은 현재에도 적용이 되지만, 일반인들의 최근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왼쪽 : 폴 로머 (Paul Romer)
  • 오른쪽 : 찰스 존스 (Charles Jones)


신성장이론을 만든 폴 로머(Paul Romer)와 학부 경제성장론 교과서 저자로 널리 알려진 찰스 존스(Charles Jones)는 2009년 미완성논문과 2010년 논문 <새로운 칼도어의 사실들: 아이디어, 제도, 인구 그리고 인적자본>(The New Kaldor Facts: Ideas, Institutions, Population, and Human Capital)을 통해, 최근에 목격되는 새로운 정형화된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시장크기의 확대 - 세계화와 도시화의 진전

(Increase in the extent of market)


성장의 가속화 - 인구규모와 1인당 GDP의 빠른 증가

(Accelerating growth)


성장률 격차 - 기술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들간에 성장률 차이가 크다

(Variation in modern growth rates)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 - 국가간 소득 격차의 대부분은 생산성 격차로 설명된다

(Large income and TFP differences)


근로자 1인당 인적자본의 증가 - 인적자본 규모의 급격한 증가

(Increases in human capital per worker)


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안정적 - 숙련 근로자 공급이 늘어났음에도, 임금은 하락하지 않았다

(Long-run stability of relative wages)


오늘날 발견되는 위의 경제현상은 '아이디어-인구규모-제도-인적자본'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물 입니다. '아이디어와 인구'의 작용이 ① · ②, '아이디어와 제도'가 ③ · ④, '아이디어와 인적자본'이 ⑤ · ⑥ 현상을 낳았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새로운 정형화된 사실들'을 알아봅시다.




※ 칼도어의 정형화된 사실들 (Kaldor's Stylized Facts)


먼저, 1961년 칼도어가 말했던 '정형화된 사실들'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칼도어의 사실들은 6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 글에서는 3가지만 설명하겠습니다.


① 총생산량과 1인당 생산량이 꾸준한 속도로 증가 -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the continued growth in the aggregate volume of production and in the productivity of labour at a steady trend rate: no recorded tendency for a falling rate of growth of productivity)


② 1인당 자본량이 계속해서 증가 - 1인당 자본량과 생산량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했다 

(a continued increase in the amount of capital per worker, whatever statistical measure of 'capital' is chosen in this connection)


③ 총생산량과 1인당 생산량의 증가율이 국가별로 다르다 -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난다

(there are appreciable differences in the rate of growth of labour productivity and of total output in different societies) 


칼도어의 사실들을 처음 접하면 "이게 무슨 이야기지?" 라고 하실 겁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알고나면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경제성장이론] 시리즈에서 살펴본 '솔로우 모형'을 알고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족 : 솔로우 모형은 '미국경제'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칼도어의 사실들'에 관한 설명에서도 미국을 예시로 들겠습니다.)



▶ ① 총생산량과 1인당 생산량이 꾸준한 속도로 증가 

- 하락하는 경향을 나타내지 않았다



: 윗 그림에서 볼 수 있다시피, 미국의 GDP(혹은 1인당 GDP도)는 꾸준한 속도로 증가했습니다.(steady trend rate) 


그래프의 기울기가 갑작스레 가팔라지거나(=성장률이 급격히 증가하거나), 추세가 반전되어 하락하는 경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1929년 대공황 시기나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큰 폭의 생산량 감소가 나타났으나, 이내 이전의 추세를 회복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이를 '정상상태에서의 외생적인 기술진보율'로 설명해 낼 수 있습니다. 자본축적량을 늘려가면서 정상상태(steady state)에 가까워지면 성장률이 점차 하락하지만, 정상상태에 도달하고 나면 외생적인 기술진보율로 성장을 이어나갑니다. 


(사족 : 이를 자본량, 생산량, 기술진보율 등이 모두 같은 크기만큼 증가하는 것을 '균형성장경로'(balanced growth path)라고 합니다. 조금 어려운 내용 같아서, 본 시리즈에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 ② 1인당 자본량이 계속해서 증가 

- 1인당 자본량과 생산량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했다 


  • 출처 : OECD National Accounts at a Glance


: 윗 그림에 나오듯이, 미국의 1인당 자본량 지속해서 증가해 왔습니다. 또한, 1인당 생산량도 비슷하게 늘어났죠. 


이는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을 강조하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축과 투자를 통해 쌓여지는 자본은 생산량 증가를 만들어 냅니다.



▶ ③ 총생산량과 1인당 생산량의 증가율이 국가별로 다르다 

-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난다


: 국가간 성장률 격차는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틍해 수차례 다루었던 주제입니다.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 정도에 따른 '전이경로'(transitional path)로 성장률 격차를 설명합니다. 자본을 많이 축적하여 정상상태에 다다른 선진국은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지만, 아직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후발산업국가들은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렇게 솔로우 모형은 '칼도어의 정형화된 사실들'을 올바로 설명해 내고 있습니다. 




※ 솔로우 모형이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정형화된 사실들'


① 시장크기의 확대 - 세계화와 도시화의 진전

(Increase in the extent of market)


② 성장의 가속화 - 인구규모와 1인당 GDP의 빠른 증가

(Accelerating growth)


③ 성장률 격차 - 기술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들간에 성장률 차이가 크다

(Variation in modern growth rates)


④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 - 국가간 소득 격차의 대부분은 생산성 격차로 설명된다

(Large income and TFP differences)


⑤ 근로자 1인당 인적자본의 증가 - 인적자본 규모의 급격한 증가

(Increases in human capital per worker)


⑥ 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안정적 - 숙련 근로자 공급이 늘어났음에도, 임금은 하락하지 않았다

(Long-run stability of relative wages)


하지만 솔로우 모형은 최근에 발견되는 '새로운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는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 솔로우 모형은 '시장크기'나 '무역을 통한 경제통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에측하지 못합니다. 이 모형에서는 '규모의 효과'(scale effect)를 다룬 적이 없습니다.


▶ 또한, 솔로우 모형에서 인구증가율은 낮을수록 좋습니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1인당'(per capita) 자본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인구증가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생활수준이 낮다고 예측합니다.


▶ 앞서 언급했다시피, 솔로우 모형이 말하는 국가간 성장률 격차는 '전이경로'가 만들어낸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국가들은 모두 자본축적량이 적기 때문에 서로 간에 비슷한 성장률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 비슷한 생활수준을 가졌음에도 빠르게 성장한 국가도 있으며 성장에 실패한 국가도 있습니다. 


▶ "가난한 국가들 간에 자본축적량은 같더라도 기술진보율이 달라서 그런거 아닐까?"라고 물으면 솔로우 모형은 더더욱 궁색해 집니다. 왜냐하면 모든 국가가 똑같은 기술수준을 누린다는 '외생적인 기술진보율'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는 국가간 소득격차의 원인으로 '총요소생산성 차이'가 지목되는 오늘날과는 맞지 않습니다.


▶ 솔로우 모형에서 '자본'은 그저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의미합니다. 비록 맨큐 등이 인적자본 개념을 추가한 모형을 내놓긴 하였으나, 전통적 모형에서 인적자본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인적자본의 증가 및 숙련 근로자의 임금 프리미엄(skill premium)을 분석해내지 못합니다.


결국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저 '물적자본-생산'에만 집중하고 있는 솔로우 모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신성장이론' 입니다.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통해 살펴봤듯이, 신성장이론은 '아이디어-지식-인적자본-제도' 등을 폭넓게 다루면서, '국제무역-다국적기업의 역할-기업간 경쟁의 힘-기업동학-자원 재배치' 등등으로 성장이론의 범위를 확장시켰습니다.


이제 아래의 내용을 통해, 최근의 경제현상이 어떤 연유로 나타난 것인지 자세히 알아봅시다.




※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들'(New Stylized Facts)

- '아이디어 ·인구규모 · 제도 · 인적자본'의 상호작용


최근의 경제현상을 설명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아이디어'(idea) 입니다. 


연구활동(research)과 기존 지식(knowledge)을 통해 창출되는 아이디어는 새로운 생산방법을 제시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연구부문 인적자본(human capital devoted to research)이 늘어나거나 아이디어 교류(flow of ideas)를 통해 다른 국가의 지식도 활용할 수 있다면 아이디어는 더욱 많아지고, 생산량도 더욱 늘어납니다.


(참고글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또한, 아이디어는 '비경합성'(non-rival)의 특징을 띄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후발산업국가가 선진국의 지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기존 아이디어가 훼손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idea gap)는 함의를 전달해 줍니다.


(참고글 :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아이디어의 이 같은 특징은 '시장크기 확대' · '성장의 가속화' · '성장률 격차' ·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 · '근로자 1인당 인적자본의 증가' · '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안정적'을 모두 만들어 냈습니다.



▶ ① 시장크기의 확대 

- 세계화와 도시화의 진전


  • 출처 : Jones, Romer (2009)


윗 그림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국제무역(world trade)과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경제는 서로 간의 '물적상품 교류' 및 '아이디어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 국가내로 한정해서 보면,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듦에 따라 시장크기가 확대되고 있죠. 


왜 이런 '시장 크기의 확대'(increases in the extent of the market)가 발생하는 걸까요? 


신성장이론은 '경제통합의 이점'(integration)을 설명해 왔습니다. 서로 간에 많은 접촉을 통해 아이디어를 많이 나눌수록 경제성장률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국제무역은 단순히 상품을 교환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교환(flow of ideas)하게 도와줍니다. 세계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그곳의 기업으로부터 여러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서로 간의 아이디어를 이용할 수 있다면 지식축적량이 2배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아이디어 증가율을 2배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또한,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외국인 직접투자는 '선진 아이디어를 이용'(using ideas)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모리셔스는 시장개방을 통해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이며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사족 : 신성장이론은 '아이디어의 교류' 측면에서 큰 시장의 이점을 설명하지만, 신무역이론[각주:1]신경제지리학[각주:2]은 '상품다양성 증가' 측면에서 시장크기 확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② 성장의 가속화 

- 인구규모와 1인당 GDP의 빠른 증가


  • 출처 : Jones, Romer (2009)


윗 그림은 인구규모 및 1인당 GDP의 증가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 인구규모가 급격히 늘어났으나 1인당 GDP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구가 많아질수록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적어질테인데, 어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기계 · 공장설비 등 물적자본은 경합성(rival)을 띄기 때문에 동시에 사용할 수 없지만, 아이디어는 비경합성(non-rival)을 띄기 때문에 희소성의 문제를 겪지 않습니다. 만약 아이디어가 전달해주는 혜택이 물적자본의 희소성이 초래하는 문제보다 크다면, 인구규모 증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때 결정적으로 아이디어는 인구규모가 커질수록 오히려 더 많이 만들어 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구부문에 종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간의 의견을 나눈다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아이디어가 창출될 겁니다. 그리고 아이디어의 증가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려 더 많은 사람을 부양할 수 있는 선순환이 만들어 집니다.

(more people lead to more ideas. more ideas made it possible for the world to support more people. this simple feedback loop generates growth rates that increases over time.)


이는 앞서 살펴봤던 '국제무역 및 도시화의 증대'와 현대경제성장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대경제성장은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인구는 더 이상 악영향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영향만 줍니다. 


만약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가 국제적 아이디어 교류에 지금보다 더 많이 참여하게 되면, 세계경제는 더 빠른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저자들은 예측합니다.


(사족 : 폴 로머는 '많은 인구'와 '많은 연구부문 인적자본'은 같지 않다고 보지만, 찰스 존스는 '많은 인구=많은 연구부문 인적자본'으로 보고 있습니다.)



▶ ③ 성장률 격차 

- 기술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들간에 성장률 차이가 크다


  • 출처 : Jones, Romer (2009)
  • X축은 1960년 당시, 여러 국가들의 미국(=1) 대비 1인당 GDP
  • Y축은 1960년~2000년 사이의 연간 경제성장률


윗 그림은 1960년 당시의 생활수준별, 이후 40년간의 성장률을 보여줍니다. X축은 1960년 당시, 여러 국가들의 미국(=1) 대비 1인당 GDP, Y축은 1960년~2000년 사이의 연간 경제성장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 눈에 드러나다시피, 윗 그림은 '삼각형 형태'를 보여줍니다. 최전선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성장률 격차가 심합니다.(growth variation and distance from the frontier) 


미국과 생활수준이 비슷한, 즉 기술의 최전선(frontier)에 가까운 국가들 간에는 성장률 격차가 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들 간에는 성장률의 차이가 심합니다. 한국처럼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국가도 있지만, 아예 음(-)의 성장을 기록한 국가도 있습니다.


1960년에 똑같이 가난했던 국가들 사이에서 이후 40년의 성장률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오늘날 따라잡기가 가져다주는 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매우 빠르기 때문'(rapid catch-up growth) 입니다. 


따라서, 따라잡기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에 따라, 성장률 격차가 매우 커졌습니다.


19세기 말에 선진국 따라잡기에 성공했던 아르헨티나는 연간 2.5%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때는 따라잡기에 실패했더라도 성장률 차이가 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1980년부터 따라잡기를 시작한 중국은 연간 8.2%의 성장률을 나타내기 때문에, 따라잡기에 실패한 국가와의 격차가 큽니다.


왜 오늘날에는 '더 빠른 따라잡기'가 나타났을까요? 그리고 과거 똑같이 가난했음에도 '따라잡기에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로 나뉘게 될 걸까요?



▶ ④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 

- 국가간 소득 격차의 대부분은 생산성 격차로 설명된다


  • 출처 : Jones, Romer (2009)
  • X축은 1인당 GDP, Y축은 총요소생산성 수준


왜 오늘날 '더 빠른 따라잡기'가 나타났는지는 윗 그림이 힌트를 제공해 줍니다. 


X축은 1인당 GDP, Y축은 총요소생산성 수준을 보여주는 윗 그림은 '1인당 GDP와 총요소생산성은 양(+)의 상관관계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즉,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은 총요소생산성 이라고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본축적을 강조하는 솔로우 모형과 대비되는 설명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을 강조하며, 성장률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자본축적 정도에 따른 전이경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는 학자는 동아시아 성장요인을 자본축적[각주:3]으로 보고 있죠.


하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생활수준 차이가 정말 자본축적에 따른 물적격차 때문인지에 의문[각주:4]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폴 로머와 찰스 존스는 윗 그림을 근거로 제시하며 "따라잡기는 아이디어 교류와 기술채택과 관련이 깊다"(catch-up growth could be associated with the dynamics of idea flows and technology adoption.)고 주장합니다. 선진국과 더 많은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더 나은 기술을 받아들인 국가가 빈곤에서 탈피하여 경제성장에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아이디어를 통한 경제성장은 자본축적을 통한 성장보다 더 빠른 시간에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따라잡기는 과거 따라잡기에 비해 높은 성장률이 나타나게 됐습니다.


그럼 왜 과거에 똑같이 가난했음에도, 따라잡기에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로 나뉘게 된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제도'(institution)의 차이 입니다. 만약 선진 아이디어를 거부하고 아이디어 창출 유인을 제공하지 않는 제도를 가진 국가는 여전히 빈곤에 머무릅니다. 반면, 아이디어 교류를 확대하며 연구에 대한 유인을 제공하는 제도를 갖추는데 성공한 국가는 따라잡기에 성공했습니다. 


폴 로머와 찰스 존스는 "만약 기본적인 사유재산권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제도가 갖춰져 있다면, 좋은 아이디어는 도입되지 못한다" 라고 말합니다.



▶ ⑤ 근로자 1인당 인적자본의 증가 

- 인적자본 규모의 급격한 증가


  • 출처 : Jones, Romer (2009)


윗 그림은 시대별 미국 출생인구의 교육년수를 보여줍니다. 1920년에 태어난 미국인은 평균 10년의 교육을 받았으나, 1980년에 태어난 미국인은 평균 14년의 교육을 받습니다.


그 결과, 교육년수 증가와 함께 미국 인적자본 수준도 함께 상승했습니다. 



▶ ⑥ 숙련 근로자의 상대임금이 안정적 

- 숙련 근로자 공급이 늘어났음에도, 임금은 하락하지 않았다


  • 출처 : Jones, Romer (2009)
  • 파란선은 고졸 대비 대졸의 상대임금, 녹색선은 고등학교 중퇴자 대비 고졸의 상대임금을 보여준다


윗 그림은 미국 고졸 대비 대졸의 상대임금(파란선), 그리고 고등학교 중퇴자 대비 고졸(녹색선)의 상대임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10년, 대학생이 매우 희귀했을 당시에는 대졸이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누렸으나, 대학 진학생이 많아지면서 프리미엄은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다 1980년 들어서 프리미엄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죠.


미국의 교육년수가 계속 증가하고 대학 진학생도 꾸준히 많아진 점에 비추어보면, 1980년 이후 대졸 임금 프리미엄의 발생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대학 졸업생, 즉 인적자본 공급자가 증가하면 임금도 떨어지는 게 합리적인 현상이니깐요.


그러나 공급 증가에 맞추어 인적자본 수요도 늘어나면 임금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때, 1980년 이후 대졸자 수요를 증가시킨 건 '숙련편향적 기술변화'(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라고 많은 학자들은 말합니다. 기술진보가 단순 근로자가 아닌 숙련자를 우대하는 방향으로 발생하면-일례로 회계사 · 프로그래머 등등- 숙련자들의 임금은 높게 유지됩니다.


그렇다면 왜 기술진보가 숙련자를 우대하는 형식으로 발생했을까요?


첫번째 가설은 '기술변화의 방향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좌우한다' 입니다. 교육향상과 함께 인적자본 수가 늘어났고, 이들이 기술변화의 방향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들었다는 논리입니다. 


두번째 가설은 앞서 살펴봤던 '시장크기의 확대'와 관련 깊습니다. 연구의 결과물인 아이디어가 선진국에서만 쓰였을 때와 비교해서, 개발도상국으로의 시장확대는 아이디어 창출의 이윤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인적자본의 임금도 증가하게 됐다는 논리입니다.


결국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아이디어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고, 이를 만들어내는 인적자본의 가치도 (공급증가를 상쇄할만큼) 올라갔습니다.




※ 아이디어 · 인구규모 · 제도 · 인적자본의 상호작용


  • 출처 : 내 발


▶ '시장크기의 확대'와 '성장의 가속화'를 설명하는건 '아이디어와 인구규모의 상호작용'


▶ '성장률 격차'와 '총요소생산성의 큰 차이'를 설명하는건 '아이디어와 제도의 상호작용' 


▶ '인적자본 증가'와 '숙련 근로자의 안정적인 상대임금'을 설명하는건 '아이디어와 인적자본의 상호작용'


이렇게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형화된 사실들'을 살펴보면, 핵심은 신성장이론이 강조하는 '아이디어'(idea)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적자본만 강조하던 시대를 지나 '아이디어'와 '연구'가 중요해진 시대가 오면서 이제 세계경제 모습은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1.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2015.05.26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2015.07.03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2017.06.29 http://joohyeon.com/252 [본문으로]
  4.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2017.07.24 http://joohyeon.com/26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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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Posted at 2017. 7. 24. 18:49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Why are we so rich and they so poor?)


지금까지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통해, 여러 성장이론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발전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1956년 솔로우 모형 등장 이후 "솔로우 모형이 현실을 올바로 설명할 수 있느냐?"를 두고 논쟁이 펼쳐지며 1980년대에 내생적성장 이론이 등장하였고, 이것조차 최근의 경제현상을 설명해내지 못하자 1990년대에 신성장이론이 나타났습니다.


각각의 성장이론은 시대별 · 이론발전단계별로 초점을 맞춘 부분이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크게 2가지 물음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왜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반해, 어떤 나라는 느리게 성장할까?


서로 다른 성장이론이 이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고 있는지는 '[경제성장이론 요약]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각주:1]'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공장 · 기계설비 등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자본축적량이 정상상태(steady state)에 미달하는 국가일수록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P.로머와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각주:2]'지식'(knowledge)과 '인적자본'(human capital)에 초점을 맞춥니다. 지식과 인적자본은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한 파급효과(spillover)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기업 혹은 후세대의 근로자도 이용 가능합니다. 따라서, 초기에 지식과 인적자본 수준이 높았던 국가는 계속해서 높은 생활수준과 빠른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더 나아가서, P.로머는 신성장이론[각주:3]을 통해 '아이디어'(idea)와 '연구'(research)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아이디어는 여러 원자재를 조합하는 방식을 개선하게 함으로써,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케하는 다양한 방식을 제시합니다. 연구부문에 많은 투자를 하는 국가일수록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때 아기온과 호위트[각주:4]'기업간 경쟁'(competition)이 더 많은 연구부문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업들은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를 합니다. 경쟁을 통한 창조적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일어나는 국가일수록 경제성장을 달성합니다.


이러한 성장이론을 종합해보면, 국가간 생활수준 및 성장률 격차를 초래하는 요인을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물적격차'(object gap) 입니다. 


공장 · 기계설비 등 물적자본이 풍부한 국가는 경제성장을 달성하는데 반해, 부족한 국가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는 수해복구사업시 포크레인 등 건설장비를 이용하는 한국과 여전히 소와 쟁기를 이용하는 북한을 대비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둘째는 (내생적성장 모형과) 신성장이론[각주:5]이 강조하는 '아이디어 격차'(idea gap) 입니다. 


물적자본이 부족한 국가에 기계설비 등을 가져다주면 저절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물적자본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입니다.


이렇게 솔로우 모형과 신성장이론은 서로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경제성장을 위해 서로 다른 처방이 내려집니다.


솔로우 모형 주창자들은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통한 자본축적'을 강조합니다. [경제원론]에서 살펴보았듯이[각주:6],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린다는 말은 경제내 한정된 자원을 소비재 생산이 아닌 자본재 생산에 투입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소비를 줄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입니다. 지금 당장의 효용을 포기하고 미래에 있을 희망을 기대하는 것인데, 현재의 소비감축이 미래의 소비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물적자본만 증가하면 경제가 성장할까요? 설비기계 등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이를 사용할 줄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물적자본 증가는 지식 및 인적자본 증가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신성장이론을 수립한 폴 로머(Paul Romer)'선진국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성장의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채용하거나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어 격차를 줄이는 것은 보다 손쉬운 해결책이기 때문이죠.


그는 1993년 두 가지 논문, <경제발전에서 아이디어 격차와 물적 격차>(Idea Gaps and Object Gaps in Economic Development), <경제발전의 두 가지 전략: 아이디어 이용하기와 생산하기>(Two Strategies for Economic Development: Using Ideas and Producing Ideas)을 통해,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폴 로머가 왜 '아이디어 격차'를 강조하는지 자세히 알아봅시다.




※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는 정말 '물적 격차'(object gap)를 의미할까?


솔로우 모형이 '물적 격차'(object gap)을 강조하는 이유는 '기술은 공공재(public good)이기 때문에 전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이용 가능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건 국가간 이전이 어려운 기계설비 등 '물적자본을 많이 축적하기' 입니다.

(주 : '기술은 공공재' 라는 주장이 가지는 맥락을 이해하고 싶다면,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물적자본을 축적하는 건 '현재의 소비감축'을 요구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미래에 더 나은 생활수준을 위해서 벨트를 조여매고 현재의 생활수준을 낮추며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만약 그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면 감내할 수도 있습니다만, 경제성장에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금보다는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미래의 소비증가폭이 현재의 감소폭보다 적을 수도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수리적기법을 이용하여 '최적 저축수준, 즉 황금률'(golden rule) 개념을 말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정확히 알기란 힘듭니다. 또한, 경제 전체(aggregate)의 황금률을 알더라도 세대별로 다르다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나이 많은 세대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감축하는 건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Fagerberg (1994)

  • 미국 대비 15개 산업국가의 근로시간당 GDP를 보여주고 있다

  • 1950년 이전에는 미국의 급격한 성장 때문에, 미국과 나머지 산업국가 간 격차가 커졌다

  • 하지만 1950년 이후 나머지 산업국가가 따라잡기(catch up)에 성공하면서 격차가 축소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선진국과 후발국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물적 격차'로 봐야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 파거버그(Jan Fagerberg)는 1994년 논문 <성장률의 기술적, 국제적 차이>(Technology and International Difference in Growth Rates)을 통해, 물적자본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주목합니다. 


(주 : 파거버그의 연구는 아브라모비츠(Abramovitz)의 선행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모비츠의 연구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적자본 안에는 더 나은 기술도 체화(embodied)되어 있습니다. 투자를 통해 더 좋은 기계를 들이면 단순히 물적 자본이 증가하는 게 아니라 기술수준도 증가합니다. 그런데 상호작용을 인지하지 못하면 "우리와 선진국의 차이는 (단순히) 물적자본 축적량에 있구나" 라고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게다가 기술진보의 영향이 편향적이라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진보의 영향을 더 받는 자본재를 더 빈번하게 쓰게 됩니다. 


따라서, 단순히 'GDP 대비 투자 비중', '1인당 자본량 수준' 등을 바라보며 "선진국과 후발국 간에는 물적 격차가 존재한다" 라고 진단내려서는 안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건 물적 격차 이지만, 실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건 기술 격차일 수 있습니다.


이는 위에 첨부한 그림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50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다른 산업국가 간에는 GDP 격차가 축소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1950년 이전에는 미국의 급격한 성장 때문에 미국과 나머지 산업국가 간 격차가 커졌다가, 1950년 이후 나머지 산업국가가 따라잡기(catch up)에 성공하면서 격차가 축소되고 있죠.


이러한 따라잡기를 가능케했던 힘은 투자를 통한 자본축적이 아니라  '교육수준 향상' · '세계화에 의한 시장확대' · '다국적기업의 역할 확대' 등등이 만들어낸 '기술전파'(technology flow) 입니다.


미국은 압도적인 기술수준을 가지며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만약 솔로우 모형이 가정하는 것처럼 '기술이 공공재' 라면,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1950년 이전 산업국가들은 이를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과 다른 산업국가들의 환경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술적 적합성의 부족'(lack of technological congruence) 이라 합니다. 


기술은 더 많은 자원, 더 넓은 시장, 더 많은 인적자본을 가진 곳일수록 더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미국은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죠. 그러나 개별 국가로 쪼개진 유럽은 미국에 비해 더 적은 자원, 더 좁은 시장, 더 적은 인적자본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산업국가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기술을 그대로 옮겨오더라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 이후 상황은 달라집니다. 후발 산업국가들이 교육제도를 정비하면서 수준을 향상시켰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시장크기는 확대되었습니다. 이제 나머지 국가들도 선진 기술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적합성'(congruence)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다국적기업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외국기업을 통한 '국제적 기술 전파'(international technology flow)가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물적 격차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기술 격차를 보였던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의 생활수준은 빠르게 좁혀질 수 있었습니다. 




※ 생활수준 차이를 비교적 빠르게 좁힐 수 있는 '아이디어 격차'(idea gap)

- 비경합성을 띄는 아이디어의 특성, 모든 국가가 아이디어를 이용할 수 있다


폴 로머는 '기술 격차'의 개념을 '아이디어 격차'(idea gap)로 확장시킵니다. 경제학에서 기술은 '서로 다른 원자재를 효율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을 의미하지만, 사람들은 단순한 제조업 공장을 연상하기 때문이죠.


아이디어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직관, 포장방식, 마케팅 기법, 재고관리법, 결제시스템, 정보시스템, 운송관리, 품질관리, 동기부여 등등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더 나은 아이디어가 생겨날수록 다양한 내구재가 만들어지거나 더 나은 품질의 내구재가 창출됩니다. 


이때, 아이디어가 가진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비경합성'(non-rival) 입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


기초 과학 및 공학법칙 · 경제 및 경영 지식 · 새로운 생산방법 등 아이디어는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월을 뛰어넘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선진국이 가진 아이디어는 후발산업국가 혹은 개발도상국도 함께 공유할 수 있습니다. 후발국이 사용한다고 해서 선진국의 아이디어가 훼손되거나 사용이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함의를 전달해 줍니다.


선진국은 이미 전세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식과 아이디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게 지식을 전달할 유인이 있다면, 후발국 사람들은 막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때 국가간 아이디어 확산에 역할을 하는 건 바로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firm) 입니다. 후발국이 다국적기업에 적정한 보상을 주는 환경을 조성하면, 다국적기업은 직접투자 · 합작기업 설립 · 마케팅 및 라이센스 협약 등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 경제성장을 위한 2가지 전략 

- 선진국의 아이디어 이용하기 (using ideas)

- 스스로 아이디어 창출해내기 (producing ideas)


그럼 실제로 아이디어를 통해 선진국과 생활수준 격차를 좁힌 국가들이 있을까요? 폴 로머는 아프리카의 '모리셔스'(Mauritius)와 동아시아의 '대만'(taiwan)을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 


이때 두 국가가 취한 전략은 다릅니다. 모리셔스는 시장개방을 통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대거 받아들이는 '아이디어 이용하기'(using ideas) 전략을 행하였고, 대만은 유치산업보호와 외국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궁극적으로 '아이디어 창출해내기'(producing ideas) 전략을 택하였습니다. 


서로 전략은 달랐으나,  두 국가는 결국 경제성장에 성공하였습니다.



▶ 아프리카 '모리셔스'

- 외국인 직접투자를 받아들여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이용


  • 표 출처 : P.Romer (1993)
  • 사진 : 모리셔스 수도 포트루이스, 위키피디아

일반인에게는 낯선 국가 모리셔스는 오래전부터 경제학자들의 관심대상 이었습니다. 약 150만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섬국가인 모리셔스는 1960년~1988년간 연평균 2.8%의 성장률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한국의 경험과 비교하면 적은 수치이지만, 동시기 인도(0.9%)와 스리랑카(1.3%)에 비하면 높은 값입니다. 


2016년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성장률은 3.6%, 1인당 GDP는 21,000 달러로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 보다 월등히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모리셔스의 GDP 대비 투자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1960년~1988년 연평균 투자비중은 12%로 인도(17%)와 스리랑카(21%)에 비해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제성장에 성공했다는 건 '자본축적' 이외의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시사합니다.


로머가 주목하는 성공요인은 바로 '외국인 직접투자'(FDI) 입니다. 모리셔스는 수출가공지역(EPZ)을 지정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때 소유권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고, 기계설비 수입에 관세도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세금감면, 노동쟁의 완화 등등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외국기업을 유혹했습니다.


그 결과, 1971년~1978년 사이, 모리셔스는 연평균 9%의 성장률을 기록하였고, 수출가공지역이 고용하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66%를 차지했습니다.


솔로우 모형 주창자들은 이를 보고 "결국 외국기업이 기계설비 등 자본재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 아니냐" 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로머는 이를 부인합니다. 투자는 그저 눈에 드러나는 요인(proximate)일 뿐 성장의 근본요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머는 외국인 사업가가 들고 온 아이디어가 경제성장의 핵심동력 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아무리 기계설비 등을 수입해와도 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 '아이디어 이용하기' 전략의 한계 

- 개발도상국 간의 저임금 경쟁 및 선진국의 수입제한


그런데 모리셔스와 같은 (선진국의) '아이디어 이용하기 전략'은 한계가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굳이 모리셔스와 같은 후발국에 투자를 하는 이유는 '낮은 노동비용'을 이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여러가지로 부족한 동남아시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과 같은 이유 입니다.


이때 노동비용이 낮은 국가가 모리셔스 뿐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대다수 후발국가들은 선진국에 비해 노동비용이 낮습니다. 이는 모리셔스 만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 이점이 아닙니다. 따라서, 모리셔스의 성공을 본 다른 후발국가들도 똑같은 전략을 택하면서, 모리셔스의 이점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후발국가로 생산을 이전한다는 것은 선진국 내 저숙련 근로자들의 고용이 줄어듦을 의미합니다. 이는 선진국 내에서 정치적 갈등을 낳았고, 일부 선진국은 후발국가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세계화가 진행되고 아이디어 교류가 활발해지자, 아이디어를 이용하는 능력을 갖춘 인적자본의 몸값을 올라갔습니다. 반면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의 이득이 일부 사람들에게 편향적으로 배분되었습니다.


특히나 모리셔스는 크기도 작고 인구도 적은 국가이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 아이디어를 창출해내지 못하고 그저 아이디어를 이용하는 것에 머물렀습니다.



▶ 동아시아 '대만'

- 외국기업과의 기술교류를 통해, 스스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능력을 갖춰나감


  • 출처 : 블룸버그
  • 대만 전자기업 훙하이(일명 폭스콘)


대만은 인구규모 등에서 모리셔스 보다 나은 위치에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생산해낸 것은 아닙니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외국기업을 받아들이는 비슷한 전략을 택했지만, 점점 성장을 이어가면서 연구분야 투자를 늘리고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대만은 섬유산업 → 합성섬유산업 → 전자산업 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 시켜왔습니다. 이때 각 단계별로 외국기업과의 합작법인 설립 등의 도움을 받았죠. 그리고 전자산업을 일으킬때는, 외국기업이 조립을 하되 국내기업들로부터 부품을 조달하도록 하여 노하우를 길러나갔습니다. 


결국에는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 (보충) 경제통합(integration)의 이점

- 물적 상품 교류(flow of goods)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교류(flow of ideas)도 가능


모리셔스와 대만, 두 가지 사례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다국적기업 입니다.


아이디어와 기업의 R&D 투자를 강조하는 신성장이론[각주:7] 그리고 시장개방 이후 높은 생산성이 가진 기업이 생존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3세대 무역이론[각주:8] 등의 등장으로 이제 경제학계에서 '다국적기업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습니다.


오늘날 다국적기업은 단순히 자본재나 소비재를 외국에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 교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P.로머는 1991년 논문 <경제통합과 내생적성장>(Economic Integration and Endogenous Growth)을 통해, "국가간 아이디어 교류가 R&D 투자를 증가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이번에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간략히 알아봅시다.



P.로머의 다양성기반 신성장모형에서 경제성장률을 결정짓는 건 아이디어 증가율이며, 아이디어 증가율을 결정짓는 건 '연구부문의 인적자본 종사자 수'(the amount of human capital devoted to research sector)와 기존에 축적된 지식(stock of existing knowledge) 입니다. 


한 국가의 인적자본은 제조업에 종사하여 최종 소비재를 생산해낼 수도 있고, 연구부문에 종사하여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이때 두 부문간 배치(allocation)를 좌우하는 건 어느 곳이 더 많은 돈을 주느냐 입니다. 



▶ 상품간 교류만 발생하는 경우


국가간에 아이디어 교류 없이 상품간 교류(flow of goods)만 발생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제조업 기업 입장에서는 외국과의 교역 확대로 시장이 넓어진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외국의 연구부문이 생산해 낸 내구재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판매량과 생산량은 모두 증가합니다. 그 결과, 제조업 인적자본 임금도 올라가죠.


그런데 연구부문 입장에서도 외국과의 교역은 내구재 판매시장 확대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연구원들이 개발한 새로운 내구재를 외국 기업에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분야 임금도 올라갑니다.


결국 아이디어 교류 없이 상품간 교류만 발생한다면, 국가 내 인적자본 배치는 달라지지 않게 되고, 아이디어 증가율도 이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합니다.



▶ 아이디어 교류도 발생하는 경우


이제 상품간 교류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교류(flow of ideas)도 발생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달라지는 건 '외국에 축적된 지식'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연구부문 종사자들은 국내에 축적된 지식 뿐만 아니라 외국에 축적된 지식도 사용하여 내구재 특허권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 첨부된 수식에서 볼 수 있는 기존지식(A)이 2배(2A)가 되는 효과를 불러옵니다. 결국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아이디어 증가율을 2배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연구부문의 생산성 개선은 연구원 임금증가를 초래하고, 국내 인적자본 중 더 많은 수가 연구부문에 배치되게 됩니다. 


즉, R&D를 강조하는 성장모형에서 아이디어 교류를 통한 경제통합은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규모의 효과(scale effect)를 낳습니다.




※ '아이디어'를 통한 경제성장이 알려주는 함의



● 거시경제 내에서 개방정책과 다국적기업의 중요성


신성장이론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개방정책''다국적기업' 입니다. 


P.로머의 모형[각주:9]은 '국제무역을 통한 아이디어 교류'를 강조하며, 아기온 · 호위트의 모형[각주:10]은 '개방정책을 통한 기업간 경쟁 증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번글을 통해서는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이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아이디어 창출로도 이어진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장이론' - '무역이론' - '기업의 역할'은 서로 연결된 경제학 주제 입니다. 


앞으로 본 블로그를 통해, 거대이론 뿐 아니라 '한국내 기업들의 세계시장 진출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 등의 구체적인 주제를 자주 다룰 예정입니다.



●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


솔로우 모형[각주:11]은 "정부의 저축률 증대 정책 등은 수준효과(level effect)만 가져올 뿐, 성장효과(growth effect)는 가져오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며, 정부정책의 효과를 일축했습니다. 


확장된 솔로우 모형[각주:12]을 만든 그레고리 맨큐 또한 "경제성장 동력를 위해 정책결정권자들이 해야할 일은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do no harm) 이다" 라고 말하며, 정부개입 효과에 강한 의구심을 내비쳤죠.


그러나 신성장이론 시대를 연 P.로머는 지속적으로 "정부의 개입이 성장으로 이어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R&D 투자 보조금 · 지적재산권 제도 확립 등은 아이디어 창출로 이어집니다. 



● 유치산업보호론의 효과는?


그리고 이번글에서 봤다시피,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하려는 국가들의 정부개입도 효과를 낳습니다. 모리셔스 정부는 수출가공지역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였으며, 각종 혜택을 통해 외국기업을 유인하였습니다. 대만은 외국기업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국내기업을 보호하는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Protectionism) 전략을 펼치며 경제성장에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좀 더 논의를 국제무역론쪽으로 옮겨봅시다. 


유치산업보호론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친숙할 겁니다. 과거 박정희정권은 국내자원을 일부 기업들에게 몰아주었고[각주:13], 헤택을 본 기업들이 수출에 집중하도록 통제[각주:14]하였습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장하준 씨의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책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유치산업보호론의 정당성이 한국 내에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경제학계내 논의는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이 전략을 택한 국가가 모두 성장에 성공했을까요? 그리고 언제까지 정부가 '승자를 골라내는'(pick a winner) 전략을 계속 수행해야 할까요? 이는 좀 더 복잡한 논의를 필요로 합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무역과 경제성장], 특히 유치산업보호론과 비교우위에 대한 글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2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2017.07.19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4.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2017.07.24 http://joohyeon.com/259 [본문으로]
  5. 사실 '신성장이론' 또한 내생적성장 모형의 한 종류 입니다. 기술진보가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1980년대 나온 모형과 1990년대에 나온 모형을 구분하기 위하여, 전자는 내생적성장 모형, 후자는 신성장이론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6.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 2015.09.21 http://joohyeon.com/236 [본문으로]
  7.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2017.07.19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⑥] 3세대 국제무역이론 -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는 국제무역. 2015.07.08 http://joohyeon.com/221 [본문으로]
  9.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2017.07.19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0.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2017.07.20 http://joohyeon.com/259 [본문으로]
  1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12. [경제성장이론 ⑥] 수렴논쟁 Ⅲ - 맨큐 · D.로머 · 웨일,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6 [본문으로]
  13.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14. 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 2013.08.23 http://joohyeon.com/15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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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Posted at 2017. 7. 20. 22:31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아기온 · 호위트의 신성장이론 (Quality-based model)

- 독점이윤을 차지하기 위한 기업간 경쟁,

창조적파괴와 혁신을 통해 투입요소 품질이 향상되다


지난글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을 통해, 기존의 성장이론과는 접근방법이 완전히 달랐던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을 알 수 있었습니다.


로머의 신성장이론은 경제성장 과정 속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성장이론의 패러다임(?)[각주:1]을 변화시켰습니다. 


기업들은 독점이윤을 누리기 위하여 R&D 투자를 의도적으로 단행합니다. 또한 지적재산권 제도는 R&D 초기 투자비용을 보전케하여, 기업의 투자 유인이 훼손되지 않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 모형에서 연구 결과물인 혁신은 '다양한 종류의 내구재'(variety)를 의미합니다. 연구(research)를 통해 새로운 내구재 생산방식(design)을 알아내면, 최종재 생산에 투입되는 내구재 종류가 다양해집니다. 연구원들이 새로운 생산방식을 알아내는 건 한계가 없기 때문에, 생산량은 끝없이 증가하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로머의 설명에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날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기업'을 부각시킨건 좋습니다만,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혁신에 성공하여 라이벌 기업을 누르거나 반대로 경쟁에서 뒤쳐져 시장지배력을 모두 잃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업간 경쟁'(competition)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요인 입니다. 과도한 경쟁이 불필요한 비용지출 · 시장파괴 등을 초래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제품'(quality)을 제공하여 후생수준을 끌어올립니다.


따라서, '기업간 경쟁을 통해 품질이 향상되는 모습'을 설명하는 성장이론(quality-based growth model)이 있다면, 오늘날 현대경제를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 왼쪽 : 필립 아기온(Philippe Aghion, 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 오른쪽 : 피터 호위트(Peter Howitt, 현 브라운대 경제학과 교수)


이때 등장하는 경제학자가 바로 필립 아기온(Philippe Aghion)피터 호위트(Peter Howitt) 입니다. 이들은 1992년 논문 <창조적 파괴를 통한 성장 모형>(A Model of Growth through Creative Destruction)을 발표하며, 기업간 경쟁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습니다. 


새로운 기업이 만든 혁신적인 상품(innovation)은 이전 상품을 낡은 것(obsolete)으로 만들어 버리고, 아예 전부터 존재해온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exit)시킬 수도 있습니다. 기업들은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혁신에 몰두하게 되고, 이 과정 속에서 소비자들은 더 나은 상품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는 조지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말했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작동하는 원리입니다. 따라서, 아기온 · 호위트의 신성장이론 모형은 '슘페터 모형'(Schumpeterian Growth Model)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엔진을 계속 작동하게 하는 근본적인 자극은 새로운 소비재, 새로운 생산방법, 새로운 운송방법, 새로운 시장 등이다. ...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행위는 경제구조를 끊임없이 진화시킨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 과정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근본적 사실이다.


- 조지프 슘페터. 1942.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이렇게 아기온 · 호위트의 신성장이론 모형은 '기업간 경쟁'과 '창조적 파괴'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너무나 당연시해왔던 '기업간 경쟁의 이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은 이전의 성장이론이 전해주지 못했던 '독특한 통찰'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경쟁과 성장'의 관계에 대해서 이전에는 생각치 못했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음이 드러났죠.


그럼 이제, 기업간 경쟁이 어떻게 창조적 파괴를 일으키고 혁신을 불러오는지 그리고 '독특한 통찰'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 기업간 경쟁, 창조적 파괴를 일으켜 생산성을 높이다


이전에 봤던 로머 모형[각주:2]과 마찬가지로, 아기온 · 호위트 모형도 경제구조를 크게 3가지 부문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연구부문 (research sector) 

▶ 연구부문 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구매하여, 더 나은 품질의 내구재를 만들어내는 중간재부문 (intermediate-goods sector) 

▶ 중간재부문 으로부터 더 나은 품질의 내구재를 구매하여,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최종재부문  (final-goods sector) 


최종재부문에서 이윤극대화를 위한 내구재 구매량을 정하면, 이에 맞쳐서 내구재 가격도 정해지고, 중간재부문 기업의 독점이윤(monopoly rent)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연구부문이 생산해낸 특허권의 가격(patent price)은 중간재부문 독점이윤과 동일하게 책정됩니다.


이러한 원리는 로머 모형과 아기온 · 호위트 모형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두 모형의 차이점은 혁신(innovation)을 바라보는 방법에 있습니다. 로머는 내구재 종류가 다양해지는 것(variety)을 혁신으로 보았으나, 아기온 · 호위트는 내구재 품질이 향상되는 것(quality)을 혁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D램 메모리 · 브라운관 디스플레이 등만 주로 생산해오던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 · OLED 디스플레이 등도 만드는 것은 내구재 다양성 증가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D램 메모리 안에서도 꾸준히 성능을 업그레이드 시켜 왔으며, 디스플레이 내구재를 브라운관 → OLED로 변화시킨 것은 '품질향상'(quality upgrade)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 '혁신'이라 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엄청난 변화를 생각할 수 있지만, 낡은 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세대의 상품'(new generation)도 혁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령, 피쳐폰 속에서 아이폰을 개발한 것도 혁신이지만, 아이폰 3GS · 4 · 5 · 6 등 조금씩 품질을 높인 것도 혁신입니다. 


그렇다면 중간재부문에 속한 기업들은 왜 '더 나은 품질의 내구재'를 개발하려는 것일까요?


이는 너무나 쉬운 질문입니다. 답은 당연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아기온 · 호위트 모형 하에서 더 정확한 정답은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입니다.


과거에 혁신을 이루어내서 시장을 차지한 기업은 현재 성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 발생하는 독점이윤을 모두 차지하면서 많은 돈을 벌고 있죠. 


하지만 성공의 달콤함에 취해있는 이 순간에 다른 기업들은 미래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다른 기업이 혁신에 성공한다면, 미래의 독점이윤은 이 기업이 모두 차지하게 됩니다. 


즉, 현재 누리고 있는 독점이윤은 오직 다음 혁신이 발생할 때까지만 지속됩니다(monopoly lasts only until the next innovation). 내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 등 기술은 새롭고 더 나은 기술이 등장하면 시장에서 낡은 것이 되고 사장됩니다. 


이는 극단적인 예시가 아닙니다. 실제 현실에서 혁신에 실패하여 시장에서 사라진 기업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진 노키아, 위태로운 LG전자 등이 생생한 예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단순한 이윤극대화 목적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구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립니다.



생존을 위한 기업들의 행위는 거시경제 전체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아기온 · 호위트 모형에서 현재의 생산성 수준은 '초기의 생산성 수준' * '혁신 크기'를 '혁신 횟수'로 거듭제곱한 모양 입니다. 


이를 쉽게 풀어서 말하면, 연구부문 투자가 증가하여 '혁신의 크기가 커질수록'(size), '혁신이 더 빈번하게 발생할수록'(arrival rate) 거시경제 생산성 수준이 향상됩니다.


결국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기업의 R&D 투자와 혁신을 촉진시켜 경제성장을 달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 혁신이 자주 발생할수록 좋은 것일까?

- 연구부문 생산성 증가가 항상 높은 성장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혁신 발생빈도'(arrival rate of innovation) 입니다. 혁신이 짧은 시간 내에 빈번하게 발생할수록 경제에 좋은 것일까요?


언뜻 생각해보면 당연히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생산성 함수에서도 나타나듯이, 거시경제 생산성 수준은 혁신이 더 자주 발생할수록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성공한 기업이 누리고 있는 독점이윤은 오직 다음 혁신이 발생할 때까지만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혁신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혁신에 성공했을 때 기쁨을 누리는 기간이 짧아짐을 의미합니다. 만약 나만 혁신에 성공한다면 발생빈도가 많아지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성공은 2가지 경로를 통해 현재의 혁신 노력에 악영향을 줍니다.


첫째, 창조적 파괴 경로 입니다. 


미래의 혁신빈도가 많아질수록 성공으로부터 누릴 수 있는 기대이윤이 적어집니다. 그렇다면 혁신을 위해 현재 연구부문에 투자해야할 유인도 꺽이게 됩니다. 얻을 게 없는데 노력을 할 필요 없죠.

(the expectation of more research next period will increase the arrival rate, and hence will discourage research this period.)


둘째, 연구부문에 종사하는 숙련 근로자 임금 경로 입니다. 


미래에 혁신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말은 그만큼 연구원 수요가 많아짐을 의미합니다. 연구원 수요증가는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죠. 이는 결국 연구부문 투자 비용을 늘리기 때문에 기대이윤을 하락하게 만듭니다.

(higher wages next period will reduce the monopoly rents that can be gained by exclusive knowledge of how to produce the best products.)   


따라서, 미래를 완벽히 예측한다면(Perfect Forsight Expectation), 미래의 혁신 발생은 현재의 연구 의욕을 훼손(discourage)시킵니다. 극단적으로는 '미래에 혁신이 자주 발생할 거라고 예측하기 때문에, 현재 연구부문 투자가 단행되지 않아, 경제성장이 발생하지 않는 함정'(no growth trap)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논리로 인해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은 경제성장에 관한 독특한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바로 "연구 생산성 증가가 항상 경제의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다" 입니다.(it is not always true that an unambiguous improvement in the productivity of the research technology will increase the economy's average growth rate.) 


(사족 : 아기온 · 호위트 모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혁신 발생빈도가 '확률적'(stochastic)으로 결정되며, 경제주체는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의 결정을 내리기(forward-looking) 때문입니다. 이는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 혁신과 경제성장률 간의 모호한 관계


결국 아기온 · 호위트 모형에서 혁신과 경제성장률의 관계는 대단히 모호해집니다. 이제 무작정 혁신을 독려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시장에 개입하여 기업의 연구행위를 점검할 근거가 만들어졌죠.


이렇게 시장경제 하에서 경제성장률(laissez-faire average growth rate)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사회적 최적 성장률'(optimal)보다 높아질 수도 있고 적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어떠한 요인이 시장경제 성장률과 사회적 최적 성장률을 다르게 만드는 지 살펴봅시다.   

  


▶ 기간간 파급 효과 (intertemporal spillover)

- 시장경제 성장률을 사회적 최적 성장률 보다 '낮게' 만든다


:  사회 전체적으로는 어쨌든 혁신이 많이 발생할수록 좋은 겁니다. 하지만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앞서 말한것처럼 그다지 좋지만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혁신의 이익을 누가 가져가느냐'를 고려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혁신의 이익을 누가 가져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혁신이 한번이라도 발생하면, 생산성 수준은 영원히 높아집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은 '내가 혁신의 이익을 가져가야' 좋습니다. 미래의 다른 누군가의 혁신은 오히려 나의 이익을 훼손시킬 뿐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적 최적 수준의 연구보다 더 적은 연구가 시장경제 하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장경제 성장률은 최적보다 낮은 값을 기록하게 됩니다. 



▶ 시장탈취 효과 (business-stealing effect)

- 시장경제 성장률을 사회적 최적 성장률 보다 '높게' 만든다


: 앞선 경우와는 반대로 시장경제 성장률이 최적 보다 더 높은 값을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기존 기업을 밀어내고 시장이윤을 독점할 수 있습니다. 이때 사회 전체적으로는 '기존 기업 퇴출'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분명 더 나은 품질을 제공하는 새로운 기업의 등장은 좋지만, 기존 기업이 제공해주던 상품과 서비스를 누리는 소비자는 갑자기 손해를 보는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즉, 사회 전체적으로는 새로운 혁신이 이전 혁신의 사회적이익을 깍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은 사회적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혁신 성공시 얻게 될 독점이윤'만 신경쓰기 때문에, 사회적 최적 수준보다 더 많은 연구부문 투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시장 경제 성장률은 최적보다 높은 값을 기록하게 됩니다.




※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이 전달해주는 함의

- 경쟁, 시장구조, 기업동학 등에 관한 미시적 주제로 연결


로머의 모형은 성장이론에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을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며,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은 좀 더 역동적인 '기업간 경쟁이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이때,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의 위대함은 단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성장이론은 기존의 성장이론이 다루지 못했던 여러 미시적 이슈들을 생각하는 틀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기존의 솔로우 모형 등은 거시적 이슈를 주로 다룹니다. 한 국가의 저축률을 어떻게 해야하며, 인구증가율은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굵직굵직한 주제를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로머나 아기온 · 호위트의 신성장이론은 실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 이슈를 다룰 수 있습니다. 


로머의 모형은 '지적재산권 제도가 기업의 R&D 투자에 미치는 영향', '인적자본을 제조업과 연구부문 중 어디에 배치하느냐의 allocation 문제' 등에 관한 생각꺼리를 제공해줍니다.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은 좀 더 구체적으로 '경쟁'과 '기업'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줍니다. 


우리가 막연히 좋다고만 생각했던 경쟁이 왜 성장으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으며, 또 경쟁 증가가 성장에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쟁으로 인한 '기업의 시장 진입과 퇴출'문제를 다룸으로써, 역동적인 기업의 모습을 경제학 분석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래 내용을 통해,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이 전달해주는 함의를 생각해 봅시다.


(참고 : 아기온 · 악시짓(?) · 호위트, Aghion ·  Akcigit · Howitt. 2014. <슘페터 성장이론으로 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What do we learn from Schumpeterian Growth Theory?>)



성장이론이 산업조직론을 만났을때

- 경쟁과 혁신의 관계, 시장구조 형태에 따라 다르다


  • 출처 : Aghion, Akcigit, Howitt (2014)
  • X축은 시장내 경쟁수준, Y축은 (중요성을 감안한) 특허권 숫자


: 앞서 우리는 '혁신 빈도 증가가 꼭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래의 혁신이 더 자주 일어날수록 독점이윤이 낮아지기 때문에 현재의 연구의욕이 훼손되었죠. 


경쟁과 혁신의 관계도 이와 유사합니다. 아기온 · 호위트 모형에서 혁신을 불러오는건 기업간 경쟁 이었으나, 경쟁이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혁신이 많아지지 않습니다. 


아기온 · 악시짓(?) · 호위트는 연구를 통해, "시장내 경쟁 수준과 혁신은 역U자형을 띈다"(inverted-U relationship) 고 주장합니다. 초기에 경쟁 수준이 낮은 상황이라면 경쟁이 벌어질수록 혁신은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미 경쟁 수준이 높은 상황이라면 경쟁 증가는 혁신 발생을 감소시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기업이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의 행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며(forward-looking), 산업구조(market structure)에 따라 다른 양상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산업구조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비슷한 수준의 기업들이 몰려있는 구조(neck and neck)로 동등한 상태(leveled)이며, 다른 하나는 기업간 수준 격차가 심한 구조(frontier-laggard)로 동등하지 않은 상태(unleveled) 입니다.


전자의 경우 다른 기업들보다 한발 더 앞서나가 이윤을 독점할 수도 있고, 반대로 담합(collusion)을 통해 이윤을 나눠가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시장경쟁 수준이 심하다면 담합이 힘들기 때문에 혁신을 택하고, 심하지 않다면 담합을 택할 겁니다.


후자의 경우 뒤쳐진 기업은 혁신을 통해 앞선 기업과 대등해질 수도 있으며, 반대로 그저 모방을 통해 선두기업 한발짝 뒤에 위치한 것에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시장경쟁이 심하면 선두 기업과 대등해졌을때 얻을 수 있는 이윤이 연구투자비용 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시장경쟁 수준이 심하다면 뒤쳐진 기업은 모방을 택하고, 심하지 않다면 혁신을 택할 겁니다.


만약 한 경제 내에서 전자의 구조를 띈 산업이 많다면 경쟁 증가는 혁신 증가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후자의 구조를 띈 산업이 많다면 경쟁 증가는 혁신 증가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 시장내 경쟁수준이 어떠한지에 따라 산업구조의 분포도 달라집니다.


현재 시장내 경쟁수준이 낮다면, 전자의 산업은 담합을 택하기 때문에 여전히 동등한 상태에 머무릅니다. 후자의 산업은 뒤쳐진 기업이 혁신을 택하게 되고 이제 동등한 상태가 됩니다. 따라서, 낮은 시장 경쟁수준에서는 동등한(leveled) 산업구조가 우위를 점합니다.


반대로, 현재 시장내 경쟁수준이 높다면, 전자의 산업은 혁신을 통해 한발짝 앞서나가려 하고 이는 동등하지 않은 상태를 만들어냅니다. 후자의 산업은 뒤쳐진 기업이 모방을 택하기 때문에 여전히 동등하지 않은 상태에 머무릅니다. 따라서, 높은 시장 경쟁수주에서는 동등하지 않은(unleveled) 산업구조가 우위를 점합니다.


따라서, 시장내 경쟁수준이 낮은 상황에서는 동등한(leveled) 수준의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증가할수록 (담합이 어려워져) 혁신이 증가하게 됩니다.


반대로, 시장내 경쟁수준이 높은 상황에서는 동등하지 않은(unleveled) 수준의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증가할수록 (혁신의 기대이익이 적어져) 혁신이 감소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시장내 경쟁 수준과 혁신의 역U자형 관계"(inverted-U relationship)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성장을 바라볼때 단순히 '경쟁'(competition)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구조'(market structure)도 챙겨야할 필요성을 제기해 줍니다. 이제 경제성장은 거시적 차원이 아니라 미시적 차원의 이슈도 같이 고려해야 하죠.



기업동학

- 기업들의 시장진입과 퇴출이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 아기온 · 호위트 모형에서 혁신에 실패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됩니다. 반대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낸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 과정 덕분에 경제 전체 생산성은 향상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업의 시장진입과 퇴출'(firm entry and exit), 즉 '기업동학'(firm dynamics)을 연구할 필요성을 제기해줍니다. 단순히 기업이 경제내에서 역할을 한다를 넘어서서, 기업의 동태적인 모습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생산성 낮은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여전히 머무르거나, 잠재적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여러 장벽들로 인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생산성 저하와 성장률 하락을 초래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진출 비용(entry cost)을 감소시키고, 자원을 생산성 높은 기업에 배치(reallocation)하는 문제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성장에 있어 정부정책의 역할

- '적절한 정책 및 제도'(appropriate policy and institution)의 개념


: 시장경제 하에서 성장률이 사회적 최적값보다 높거나 낮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제기해줍니다. 이는 지적재산권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한 로머와 궤를 같이합니다.


이때,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은 '정부의 역할' 논의를 확장시킵니다. 이들은 "현재 국가의 생활수준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적절한 정책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기술발전의 최전선(frontier of technology)에 가까운 국가는 혁신주도 정책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꾀해야 합니다. 이때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제도는 경쟁증가 · 기업의 자발적인 의사결정을 이끌어 성장친화적으로 작용합니다.


반면 기술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는 혁신주도 보다는 모방주도 정책이 더 유용합니다. 앞선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여 빨리 기술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죠. 



▶ 시장개방을 통한 시장경쟁 증대

- 생산성 향상을 불러오는 국제무역


  • 출처 : Aghion, Akcigit, Howitt (2014)

  • 시장개방 이후 기업수준별 생산성 변화

  • 기술수준이 높은 기업은 시장개방 이후 생산성이 더 증가하였다


: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은 '경쟁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산업구조가 어떠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이때 장내 경쟁을 증대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바로 '국제무역' 입니다. 


국제무역을 통해 시장을 개방(openness) 한다면, 생산성 높은 외국기업이 진입하여 생산성이 낮은 국내기업을 퇴출시킵니다. 반대로 생산성이 높은 국내기업은 외국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죠. 이를 통해, 시장개방을 한 국가는 '생산성 이익'(productivity gain)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국제무역이론 ⑥] 3세대 국제무역이론 -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는 국제무역'에서 다루었던 내용입니다.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을 이용한다면 3세대 국제무역이론과 경제성장이론을 연결시켜 바라볼 수 있습니다.




※ 경제성장을 다룰 때 '미시적 주제'를 더 생각해보자


이렇게 아기온 · 호위트 모형은 경제성장 논의를 확장시켰습니다. 


이제 거대하고 무거운 주제만 아니라 '시장경쟁' · '기업동학' · '산업구조' 등 미시적 주제를 경제성장과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여러 글들을 통해, 좀 더 미시적 주제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하는건..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적당한 표현을 모르겠네요;; [본문으로]
  2.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2017.07.19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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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Posted at 2017. 7. 19. 17:33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폴 로머의 신성장이론 (Variety-based model)

- 비경합적 · 부분적 배제성을 띄는 아이디어,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를 만들어내다 


이번글을 통해, 기존의 성장이론과는 접근법이 완전히 다른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이전글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을 통해서, 어떠한 연유로 신성장이론이 나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존의 성장이론이 오늘날 현대경제의 특징을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56년에 등장한 솔로우 모형[각주:1]은 '저축율 및 인구증가율이 자본축적에 미치는 영향'을 잘 설명한 이론입니다. 하지만 지속적 경제성장의 동력인 '기술진보'를 그저 외생적(exogenous)으로 취급함으로써, 기술진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1986 · 1988년에 나온 폴 로머 · 로버트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각주:2]은 기술진보가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함으로써 솔로우 모형의 단점을 보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형 하에서 기술진보는 그저 '외부성이 의도치않게 만들어낸 부산물'(side effect) 이었습니다. 개인 및 기업이 축적한 지식과 인적자본은 다른 곳으로 전파되었고, 이를 모두가 같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했습니다. 여기서는 이윤극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R&D 투자를 늘리는 오늘날 기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죠.        


따라서, 오늘날 현대경제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3가지 특징을 모두 포함한 새로운 성장이론이 필요합니다.


▶ 이윤극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R&D 투자를 늘리는 기업 

(intentional investment decisions made by profit-maximizing agents)


▶ 자신들의 연구 성과에 대해 부분적으로 배타적인 권리, 즉 저작권 및 특허권을 가지는 기업

(the distinguishing feature of the technology as an input is a non-rival, partially excludable good)


▶ 특허권을 이용해 R&D 투자성과에 대해 독점이윤을 누리는 기업

(monopoly rent)


  •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와 그의 1990년 논문 <내생적 기술변화>(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는 1990년 논문 <내생적 기술변화>(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을 통하여, '신성장이론' 시대를 열었습니다. 1986년 '기술진보의 내생성'을 도입했던 그는 위의 3가지 특징을 모두 담은 성장이론을 새로이 내놓았죠.


그는 '이윤극대화를 노리는 기업의 의도적인 연구부문 투자가, 다양한 투입요소를 창출해내며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라고 주장합니다. 일명, (투입요소의) 다양성에 기반을 둔 성장모형(variety-based growth model) 입니다. 


이제, 폴 로머의 새로운 성장이론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 지속적 경제성장 동력인 기술진보, 

이 기술진보를 이끄는 '아이디어'(idea)


폴 로머의 신성장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아이디어'(idea) 입니다. 


이전글 신성장이론 탄생배경[각주:3]에서 더 자세히 다루었던 '오늘날 현대경제의 특징'은 아이디어와 관련이 깊었고, 앞서 언급한 R&D 투자도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행위입니다.


그럼 신성장이론은 왜 '아이디어'(idea)와 R&D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기술'(technology)이라 하면, '공장에 있는 기계를 다루는 능력'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장이론에서 기술이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기술진보란 '여러 원자재를 조합하는 방식을 개선시키는 것'(improvement in the instructions for mixing together raw materials)을 뜻합니다.


이때 경제성장 동력인 기술진보를 이끄는 요인이 바로 '아이디어' 입니다. 


연구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발견(discovery)을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곤 합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아이디어는 보다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케하는 다양한 방식(design)을 제시하면서 경제 전체의 생산능력을 키웁니다.  


그렇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아이디어가 많아질수록 생산량을 늘려나갈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폴 로머는 신성장이론을 통해 "성장속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구분야에 종사하느냐에 달려있다." 라고 주장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여 아이디어 창출속도를 빠르게 할수록, 높은 성장률을 유지한다는 논리 입니다. 




※ 끝없는 성장(unbounded growth)을 가능케하는 아이디어. 

-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창출해 내기 위한 지적재산권 제도의 필요성


게다가 아이디어는 단순히 성장률만 (일시적으로) 높여주지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가진 특징은 경제성장을 한계가 없이 지속되게 만들어 줍니다. 새로운 종류의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속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다면, 그 국가는 끝없는 성장(unbounded growth)을 기록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아이디어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길래 '끝없는 성장'을 가능케 하는 걸까요? 그리고 끝없는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창출해 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 경합성 및 배제가능성에 따른 재화 분류
  • 출처 : 내 발과 파워포인트


아이디어는 일반적인 재화와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계설비 등의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이나 근로자(labor)는 특정한 공간에 매여 있습니다. 한 공간에서 이미 사용중 이라면, 다른 곳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특정 회사에 소속된 기계나 근로자는 다른 누군가가 임의로 쓸 수 없습니다. 즉, 보통의 생산 투입요소는 '경합적'(rival)이며 '배제가능성'(excludable)을 띈 사유재(private good) 입니다.


이와 정반대에 위치한 게 공공재(public good) 입니다. 국가나 지자체가 보유한 도로 · 다리 등 사회 인프라 시설은 누구나 동시에 쓸 수 있습니다. 즉, '비경합적'(non-rival)이며 '비배제성'(non-excludable)을 띄고 있습니다.


이때 아이디어는 사유재도 공공재도 아닙니다. 


한 기업이 연구과정에서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쓸 수 있습니다. 새롭고 다른 종류의 생산방식 등은 한 공장에서만 쓰여지는 게 아니라 기업이 소유한 여러 공장에서 동시에 사용됩니다. '비경합성'을 띈다는 점에서는 공공재와 유사합니다. 


그런데 기업이 소유한 아이디어를 누구나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기업은 특허권 등록을 통해 자신만의 비법을 독점적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물론, 다른 기업은 모방 등을 통해 이를 베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디어는 '부분적으로 배제가능한' 특징을 지녔다는 점에서 사유재의 특징을 조금 지니고 있습니다.


즉, 아이디어는 '비경합성'(non-rival)과 '부분적인 배제성'(partially excludable)을 띈 독특한 성질의 재화입니다.


여기서 아이디어의 '비경합성'은 끝없는 성장과 연결됩니다. 


기계 등 공장설비는 사용연한을 초과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 명의 인적자본 안에 들어있는 숙련도는 그 사람이 죽으면 사라집니다. 


반면 기초 과학 및 공학법칙 · 경제 및 경영 지식 · 새로운 생산방법 등 아이디어는 시대가 지나도 끝없이 축적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월을 뛰어넘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로머와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각주:4]과 크게 다른 게 없어 보입니다. 로머와 루카스 또한 지식 및 인적자본의 계속되는 축적을 이야기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이디어가 가진 '부분적인 배제성'은 끝없는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요인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바로, '지적재산권 보호 제도를 통해 기업의 R&D 투자 유인을 살려주는 것'(patent) 입니다. 


만약 기업의 연구성과를 모두가 공유하도록 강제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R&D 투자를 할 유인이 없습니다. 연구 결과물은 초기에 얼마만큼의 금액을 투자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성과를 독점할 수 없다면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죠. 남들이 모방하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연구 투자비용을 회수할 만큼의 독점이윤(monopoly rent)은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나 오늘날 R&D 투자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지적재산권 보호 제도는 더더욱 필요합니다.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R&D 투자를 늘려오고 있습니다(intentional). 삼성전자가 괜히 반도체에 투자를 계속하는 게 아니죠.




※ R&D 투자 → 다양한 종류의 내구재 →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최종재 생산과정

- 투입요소의 다양성에 기반을 둔 성장모형 (variety-based growth model)

     

이번에는, 한 경제구조 내에서 아이디어가 끝없는 성장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경제구조는 크게 3가지 부문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연구부문 

(research sector)


▶ 연구부문 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구매하여, 새로운 종류의 내구재를 만들어내는 중간재부문 

(intermediate-goods sector)


▶ 중간재부문 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내구재를 구매하여,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최종재부문 

(final-goods sector) 


여기서 특이한 점은 중간재부문이 독점기업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기업은 연구부문으로부터 구매한 특허권을 통해, 특정 종류의 내구재 생산에 독점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족 : 왜 중간재부문 기업들이 독점력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밑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 출처 : 내 발과 파워포인트


이런 경제구조에서 생산에 들어가는 투입요소(input)는 연구부문 → 중간재부문 → 최종재부문을 거칩니다. 


연구부문에서 새로운 방식(design)을 개발해서 특허로 등록하면, 중간재부문이 특허권을 구매하여 새로운 종류의 내구재를 만들고(new durable), 최종재부문이 새 내구재를 구입하여 완성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 얼마나 다양한 종류(variety)의 내구재가 만들어지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구부문에 종사하느냐(human capital devoted to research)를 결정짓는건 반대의 과정입니다. 최종재부문 → 중간재부문 → 연구부문을 거쳐서 결정되죠.


최종재부문에 속한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만들어주는 서로 다른 내구재 구매량(quantity)을 먼저 정합니다. 그럼 이에 맞쳐서 내구재 가격도 정해지고, 중간재부문 기업의 독점이윤(monopoly rent)도 결정됩니다. 


그리고 만약 중간재부문 기업이 특허권을 구매한 후 새로운 종류의 내구재를 판매했을 때 더 많은 독점이윤을 거둘거라고 판단한다면, 너도나도 특허권를 사려고 할겁니다. 따라서, 특허권 입찰 과정을 통해, 연구부문이 생산해낸 특허권의 가격(patent price)은 중간재부문 독점이윤과 동일하게 책정됩니다.


즉, 최종재부문의 내구재 구매량이 늘어나 중간재부문의 독점이윤이 많아질수록 특허권의 가격은 올라갑니다. 그리고 특허권 가격이 올라갈수록 연구가 활발해져서 다양한 방식의 생산법이 창출되며, 고숙련의 근로자가 더 많이 연구부문에 종사하게 됩니다.


역으로 고숙련의 근로자가 더 많이 연구부문에 종사할수록 새로운 종류의 생산방식이 더 많이 나오게 되고, 최종재부문과 중간재부문의 이윤과 생산량은 더욱 늘어납니다.


이러한 선순환이 올바르게 작동한다면, 이 경제는 연구분야 투자 증가와 함께 내구재 종류가 많아지며 생산량을 끝없이 늘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글의 서문에서 언급한, '이윤극대화를 노리는 기업의 의도적인 연구부문 투자가, 다양한 투입요소를 창출해내며 끝없는 성장을 이끄는' (투입요소의) 다양성에 기반을 둔 성장모형(variety-based growth model) 입니다.     


이 모형에서 연구부문의 R&D 투자는 '서로 다른 생산방식의 숫자'(number of design)을 증가시킵니다. 그리고 다양한 생산방식은 다양한 내구재(variable durable)를 만들어내고, 이는 최종재가 사용하는 자본의 종류가 많아지는 것과 같습니다(capital = distinct types of producer durable). 그 결과, 소비자가 사용하는 최종재의 종류도 많아집니다.


이는 현실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삼성전자와 애플을 예시로 생각해 봅시다. 


애플은 아이폰 · 맥북 등 소비자가 사용하는 완제품을 주로 판매함으로써 돈을 법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 디스플레이 등 내구재를 판매하면서 이익을 얻죠. 이때 삼성전자는 자체 연구 인력이 개발한 고유한 기술 및 타사로부터 사들인 특허권을 활용하여 새로운 종류의 내구재를 만드려 노력합니다. 


이때 애플은 삼성전자로부터 메모리 반도체 · 디스플레이 등의 내구재를 공급받습니다. 또한, 삼성전자는 향후 내구재 판매로 얼마만큼의 이윤을 벌 수 있느냐를 예측한 후, 반도체 설비투자를 단행합니다.  


즉, 애플은 최종재부문 · 삼성전자는 중간재부문을 주로 맡고 있으며, 아예 연구부문에 특화된 엔비디아 · 퀄컴 등도 있습니다. 


여기서 반도체 설비투자 금액 등 R&D 투자크기를 결정짓는 건 결국 반도체 판매로부터 얼마만큼의 이윤을 거두느냐 입니다. 또한, 역으로 R&D 투자크기가 증가할수록 다양한 종류의 반도체가 탄생하게 되고, 최종재부문의 생산량과 상품종류는 더욱 늘어나 소비자들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 아이디어 증가율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 지적재산권 제도를 통한 중간재부문의 독점이윤 보장

- 연구과정에 투입된 인적자본이 많을수록, 사회가 보유한 기존 지식이 많을수록

 

경제구조 내에서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본 후, 우리는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아이디어 증가율을 높게 유지하는 방법' 입니다. 그 방법은 '지적재산권 제도를 통한 독점이윤 보장'이며, 다른 방법은 '연구부문에 더 많은 인적자본을 배치'하는 것 입니다.



▶ 지적재산권 제도를 통한 중간재부문의 독점이윤 보장 (property right)


: 이번글의 앞에서도 '지적재산권 제도의 필요성'을 말한바 있습니다. 이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봅시다.


아이디어의 지속적인 창출을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제도를 확립하여 중간재부문에 속한 기업들의 독점이윤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독점이윤이란 '상품의 판매가격을 한계비용[각주:5]보다 더 높게 책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윤' 입니다. 


시장에 수많은 기업들이 완전경쟁을 펼치는 상황이라면, 상품 가격은 한계비용과 동일하게 됩니다(P=MC). 내가 높은 상품가격을 책정하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쟁자가 나타나 시장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상품 가격이 한계비용 보다 낮으면 생산을 안하니만 못하기 때문에, 결국 시장 내 모든 기업은 한계비용과 동일한 수준으로 상품 가격을 매깁니다.


하지만 한 기업이 시장지배력(market power)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독점력을 가진 기업은 단순한 가격경쟁만으로 경쟁자에게 시장을 뺏기지 않기 때문에, 상품가격을 한계비용보다 높게 책정할 수 있습니다(P>MC). 


연구부문으로부터 특허권을 구매하여 내구재를 생산하는 중간재부문에게 시장지배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중간재부문에 속한 기업이 독점이윤을 얻을 수 없다면, 특허권 구매에 들어간 초기 투자비용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간재부문 기업은 내구재 가격과 한계비용의 차액(P-MC)에 판매량(Q)을 곱한 금액만큼 독점이윤을 얻는데, 이를 통해 특허권을 사들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아이디어'나 '새로운 생산방식'은 이를 처음 발견할 때에만 비용이 들 뿐, 일단 발견한 후에는 어떠한 비용도 발생하지 않습니다(no marginal cost). 예를 들어, 에어컨을 만든 공학자 캐리어는 '에어컨 작동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일단 원리나 방식(design)이 알려진 뒤에는 어떠한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 가격을 한계비용과 동일하게 책정하면,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고생한 것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부여하는 것은, 단순히 중간재부문의 독점이윤을 만들어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R&D 투자 유인을 촉진시켜 연구 부문 활성화에 도움을 줍니다.



▶ 연구부문에 더 많은 인적자본을 배치 (human capital allocation)


: 아이디어 창출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아예 직접적으로 연구 부문을 활성화 시키는 것 입니다. 바로, 인적자본을 최종재부문보다 연구부문에 더 많이 배치하는 것입니다.


인적자본이란 일반 근로자와는 달리 교육 등을 통해 숙련도를 갖춘 근로자를 뜻합니다. 이때 한 국가 내의 인적자본은 최종재부문에 종사하여 완성품을 생산할 수도 있으며, 연구부문에서 아이디어 창출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 증가율은 '사회가 가진 기존 지식'(stock of knowledge)과 '연구 부문의 인적자본 종사자 수'(the amount of human capital devoted to research sector)에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인적자본을 최종재 부문 보다는 연구 부문에 더 많이 배치(allocation)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오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지식으로 축적되어서 미래의 아이디어 창출 숫자를 더더욱 늘려줍니다.




※ 신성장이론이 알려주는 함의 Ⅰ

- 기업의 R&D 투자와 이를 뒷받침 · 보완해주는 정부



다양한 투입요소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연구의 중요성


: 신성장이론은 다른 성장이론들과는 달리 '아이디어'(idea)와 '연구분야'(research)가 경제성장을 이끄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연구부문 투자를 늘릴수록 생산을 효율적이게 만드는 아이디어와 생산법(design)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종류의 내구재(distinct durable)로 이어지고, 끝없는 성장을 달성하게 됩니다.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와 의도적인 R&D 투자


: 그렇다면 지속적 성장을 위해 중요한 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R&D 투자 입니다. 신성장이론은 R&D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 기업의 투자유인(incentive)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이전의 내생적성장 모형에서 기술진보는 의도치 않게 발생한 결과물이지만, 현실 속 기술진보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이끌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진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기 위한 기업의 의도적인(intentional) R&D 투자를 지원해야 합니다.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 제도의 중요성


: 기업의 투자유인을 지켜주는 가장 좋은 제도는 바로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property rights) 입니다.


지적재산권 제도를 올바르게 확립하지 않은 국가는 기업의 R&D 투자 유인을 지켜줄 수 없기 때문에 저성장에 머무르게 될 겁니다. 실제로 현대의 경제성장은 특허권과 함께 커왔습니다.  



경제성장에 있어 정부가 역할을 할 수 있다


솔로우 모형[각주:6]은 "정부정책은 경제성장의 수준효과(level effect)만 일으킬 뿐, 성장효과(growth effect)는 없다" 라고 주장합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저축률을 높여 자본축적을 많이 하더라도, 체감성(diminish)으로 인해 결국 성장률은 0%를 기록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신성장이론은 이와 반대되는 함의를 전달해 줍니다. 


경제성장을 위해 지적재산권 제도가 필요하다는 말은 곧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또한, 정부는 '연구분야 인력 채용 및 R&D 투자 보조금 지원'을 통해 경제 전체의 연구분야 투자량을 최적수준으로 유지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특허제도를 강화하더라도, 기업들은 모방(imitation)을 통해 다른 기업의 기술을 베낄 수 있습니다. 모방을 하는 기업이 많아질수록 굳이 직접 R&D 투자를 해야 하냐는 의문이 들테고, 결국 경제 전체의 R&D 투자량은 최적수준보다 적어지게 됩니다. 


이 경우 정부가 나서서 지원정책을 편다면 사회적 최적 수준의 연구분야 투자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즉, 신성장이론이 전달해주는 첫번째 주요한 함의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의도적인 R&D 투자가 가지는 중요성'과  '이를 뒷받침 · 보완해주는 정부의 역할' 입니다.




※ 신성장이론이 알려주는 함의 Ⅱ

- 많은 인구가 아니라 연구분야에 종사하는 인적자본의 숫자가 중요하다

- 자원 재배치(allocation)와 국제무역이 경제성장을 이끈다



연구부문에 종사하는 인적자본의 크기, 경제성장률을 결정한다


: 신성장이론에서 경제성장률을 결정짓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연구부문에 종사하는 인적자본의 크기'(the amount of human capital devoted to research) 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연구부문에서 더 많이 일을 할수록 아이디어 증가율은 높아지게 되며, 이에 따라 끝없는 성장이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생각을 더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단순히 '많은 인구'는 경제성장에 도움되지 않는다


: 단순히 많은 인구는 경제성장에 도움되지 않습니다(having a large population is not sufficient to generate growth). 중요한 건 '연구분야에 종사하는 인적자본'이지 많은 인구가 아닙니다. 인구 수가 많더라도 낮은 교육수준 등의 영향으로 인적자본이 적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중국 · 인도 등 절대적인 인구수가 많은 국가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 · 인도는 합쳐서 약 25억 명의 인구를 가졌으나, 생활수준은 인구크기에 비하여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구가 많더라도 인적자본이 적다면 'no growth'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단순한 인구크기가 아니라 연구분야 종사자 수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인적자본 재배치의 중요성


: 연구분야 종사자 수를 늘리는 첫번째 방안은 '최종재부문과 연구부문 간의 인적자본을 재배치'(reallocation)하는 법 입니다. 정부는 연구종사자 채용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해, 아이디어 창출을 위한 연구부문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전체 인적자본 크기'는 증가시키지 않은채 단지 자원의 배치만 바꾸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국제무역을 통한 '아이디어 교류'


: 경제전체 인적자본 크기를 증가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교육입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때, 비교적 단기간 내에 인적자본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바로 '국제무역을 통한 경제통합'(integration) 입니다.


국제무역은 단순히 상품을 교환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교환(flow of ideas)하게 도와줍니다. 특히 이는 단순히 인구가 많은 국가가 아니라, 인적자본이 풍부한 국가와 무역을 강화했을 때 효과는 배가 됩니다.


세계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그곳의 기업으로부터 여러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곳 기업이 가진 특허권을 구매할 수도 있죠. 이런 과정을 거쳐 국제무역은 '아이디어의 교류'을 돕게 되고, 결국 성장률도 높여줍니다(integration into world markets will increase growth rates).


'국제무역을 통한 시장크기 확대가 가져다주는 이점'은 국제무역이론 시리즈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에서도 다룬바 있습니다. 신무역이론 하에서 시장크기 확대는 '상품다양성 증가'를 가져다줍니다. 


신성장이론은 이러한 신무역이론의 함의를 가져옴과 동시에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해 줍니다.  


신성장이론 하에서 국제무역, 특히 인적자본이 풍부한 국가와의 교역을 통한 시장확대는 '아이디어 다양성 증가'를 불러와 경제성장을 촉진시켜 줍니다. 


그리고 이는 국 · 인도 등 단순히 절대인구수가 많은 국가도 국제무역을 행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국제무역이 '시장크기 확대 → 상품다양성 증가'로만 이어진다면, 이미 큰 시장을 가진 중국 · 인도 등은 굳이 다른나라와 교역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인적자본이 많은 국가'와의 교역을 통해 아이디어를 가져올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국제무역에 참여하게 됩니다.

 



※ 다른 유형의 '신성장이론'

- 투입요소 품질 향상이 이끄는 경제성장 (quality-based growth model)


지금까지 살펴본 폴 로머(Paul Romer)의 신성장이론은 '투입요소의 다양성'에 기반한 모형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다양한 투입요소가 있다고 해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투입요소의 품질 또한 향상되어야 경제도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번글에서 예시로 든 삼성전자는 과거에는 D램 메모리 · 브라운관 디스플레이 등만 주로 생산해오다가, 낸드플래시 · OLED 디스플레이 등 내구재 종류를 다양화 시켜왔습니다. 하지만 D램 메모리 안에서도 꾸준히 성능을 업그레이드 시켜 왔으며, 디스플레이 내구재를 브라운관 → OLED로 변화시킨 것은 '품질향상'(quality upgrade)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투입요소의 다양성에 기반한 성장모형'(variety-based growth model) 뿐만 아니라, '투입요소의 품질향상에 기반한 성장모형'(quality-based growth model)도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필립 아기온(Philippe Aghion)과 피터 호위트(Peter Howitt), 그리고 진 그로스만(Gene Grossman)과 엘하난 헬프먼(Elhanan Helpman)이 주도한 새로운 형태의 신성장이론을 알아봅시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2017.07.17 http://joohyeon.com/257 [본문으로]
  4.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5. 한계비용이란 '상품 한 단위를 추가 생산할때 드는 비용'을 의미한다. 일명 marginal cost [본문으로]
  6.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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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Posted at 2017. 7. 17. 22:17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의 탄생


이번글은 1990년대에 등장한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의 탄생 배경'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경제학 전공자 분들은 '신성장이론'이란 말을 들으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첫째는 "新성장이론 이라는 명칭이 붙은 걸 보면, 이전의 성장이론과는 확연히 다르겠구나". 둘째는 "이거 왠지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하고 명칭이 비슷한데?". 


네 맞습니다. 신성장이론은 1950년대 및 1980년대에 만들어진 솔로우 모형[각주:1] · (로머와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이론[각주:2]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리고 국제무역이론 중 하나인 신무역이론[각주:3]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신성장이론은 '솔로우 모형이 현실에 적합한 모형이냐'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던 '수렴논쟁'(1편[각주:4] · 2편[각주:5] · 3편[각주:6] · 4편[각주:7]) 이후 만들어 졌습니다.


수렴논쟁은 '솔로우 모형의 문제점 인식 / 이를 대체하는 로머와 루카스의 내생적 성장이론 /  초기 결점을 보완한 확장형 솔로우 모형' 등을 낳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경제성장을 설명하는데 미흡함을 느꼈습니다


이때 완전히 새로운 성장이론을 만드는 데 영감을 준 것이 신무역이론 이었습니다. 


신무역이론은 '고정비용'(fixed cost)을 모형 내에 도입하여 '고정비용 이외의 추가적인 비용은 매우 적은 상황'(no additional cost)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발생하는 비용은 매우 적기 때문에 '고정비용을 회수할 수 있느냐' 여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죠. 만약 고정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면 상품생산은 멈추게 되고, 그 결과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variety)을 접할 수 없습니다.


아마 여기까지만 글을 읽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될 겁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신성장이론 탄생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한 뒤, 다른 글들을 통해서 '신성장이론'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수렴논쟁 (convergence controversy)

- 국가간 성장률 격차의 패턴은 자본축적 때문인가? 기술격차 때문인가?


지금까지 [경제성장 시리즈] 6편의 글들은 모두 '솔로우 모형'(Solow Growth Model)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됐습니다. "솔로우 모형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느냐"를 두고 학자들 간의 의견이 대립했는데, 이를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 이라고 칭했죠.


이때 수렴논쟁 속 핵심 쟁점은 '국가간 성장률 격차의 패턴'이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초기 1인당 자본 축적량과 성장률은 음(-)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과거에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해 놓았던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낮고, 적었던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국가가 더 빠르게 성장해 나가며(=베타β 수렴) 결국 생활수준이 같아진다(=시그마σ 수렴) 라고 예측했습니다. 


즉, 솔로우 모형 하에서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과 관련이 있습니다. 


초기 자본량이 적은 국가는 정상상태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ics) 속에 있어서 성장률이 높은 반면, 초기 자본량이 많았던 국가는 정상상태(steady state)에 가깝기 때문에 성장률이 낮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초기 자본량이 적은 국가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지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일부 선진국 내부에서는 이런 모습이 관찰 되었으나, 범위를 전세계로 확대할 경우 가난한 국가는 여전히 느리게 성장하며 낮은 생활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와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저개발국의 성장률은 여전히 낮으며, (정상상태에 도달했다고 추정되는) 주도국의 성장률이 시대별로 증가해왔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국가는 여전히 가난하며, 부유한 국가는 더욱 더 부유해지는 현실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주도국은 초기 높은 인적자본(human capital) 및 지식(knowledge)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률을 줄곧 높여올 수 있었습니다. 반면, 낮은 인적자본 및 지식을 가진 저개발국은 성장이 발생하지 않았죠.


이 경우, 로머와 루카스 모형에서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기술격차'(technology gap) 때문입니다.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가 외생적으로 주어져 있었지만, 로머와 루카스는 인적자본 및 지식의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해 국가간 기술격차가 내생적으로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른바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이 만들어졌죠.


그럼 솔로우 모형의 예측은 틀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 · 데이비드 로머(David Romer) · 데이비드 웨일(David Weil)은 "국가별로 정상상태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보정하면,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높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절대적 수렴 개념이 아닌 '조건부 베타β 수렴'(conditional betaβ convergence)를 말했죠.


'초기 자본량이 적은 국가가 빠르게 성장한다'라는 개념은 각국의 정상상태가 서로 동일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별로 저축률 · 인구증가율이 상이하기 때문에 정상상태도 다릅니다(own steady state). 


따라서, 수렴현상 판단 여부는 단순한 초기 자본량이 아닌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정도'(initial deviation)이 되어야 하죠.


또한, 맨큐 · 로머 · 웨일은 "기술은 공공재(public good)이기 때문에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다"고 말하며, 로머 · 루카스의 기술격차 주장을 비판합니다. 기술은 전세계 어디로나 자유롭게 전파되기 때문에 기술 수준이 다를 수 없다는 논리였죠.


그렇다면 확장된 솔로우 모형에서 각국의 성장률 격차 패턴은 (솔로우 모형이 예측했던 것처럼) 자본축적과 관련있게 됩니다. 자신의 정상상태에 비해 자본축적이 덜 된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 수렴논쟁이 가져다준 이득과 한계

- 솔로우 모형 완전히 틀리진 않았지만 불충분

- 로머 · 루카스 내생적성장 모형도 몇몇 지점에서 불만족


이러한 '수렴논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함의는 무엇일까요? 


첫번째로 얻을 수 있는 건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 입니다. 


맨큐 · 로머 · 웨일은 솔로우 모형의 기본가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성장률 격차에 관한 현실 설명력을 좀 더 높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솔로우 모형에 인적자본 개념도 도입하여, 그간 제기되어온 다른 비판들-저축률의 영향력 등-도 효과적으로 반박해냈죠.


두번째로 생각해 볼건 "그럼 솔로우 모형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일까?" 입니다.


분명 솔로우 모형은 경제성장을 이해하는데 있어 큰 도움을 주는 이론입니다. 저축률 · 인구증가율 등이 자본축적에 어떠한 영향을 주며, 자본축적이 어떻게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지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좋은 이론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성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몇몇 지점에서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맨큐 · 로머 · 웨일의 주장처럼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비교적 높은 건 사실이지만, 로머 · 루카스의 말처럼 정상상태에 가까운 국가의 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계속 증가해온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른바 '기술의 최전선'(frontier of technology)에 위치한 국가는 줄곧 성장률을 높여왔습니다


게다가 솔로우 모형이 줄곧 유지해온 가정-'기술은 공공재이며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다'-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국가별로 근로자의 임금이 다른 현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기술수준이 동일하면 필리핀의 고숙련 근로자나 미국의 고숙련 근로자의 임금이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둘의 임금은 다를 뿐더러, 현실에서 숙련도에도 차이가 존재합니다. 


"오 그럼 솔로우 모형과 로머 · 루카스의 내생적 성장 모형을 절충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이 설명하지 못하는 '주도국의 성장률 증가' · '서로 다른 기술 수준'을 내생적 모형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두 가지 모형을 보완 관계로 여긴다면 현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머 · 루카스의 내생적 성장 모형도 몇몇 지점에서 오늘날 경제성장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지점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죠.




※ 오늘날 현대경제의 특징


1. 발견의 결과물은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투입요소-노동, 자본 등-와는 다르다 (Discoveries differ from other inputs in the sense that many people can use them at the same time.)


: 트랜지스터에 담긴 아이디어, 내연기관의 원리, 기업의 조직구조, 복식부기 개념 등등 이러한 정보들은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상품은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경합성(rival)을 띄지만, 정보는 비경합적이다(nonrival).



2. 기술진보는 사람들의 행위에서 온다 (Technological advance comes from things that people do.)


: 나의 발견이 성공할 지 여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언뜻 보면 기술진보는 외생적인 사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발명 속도는 내생적으로 결정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금광을 찾거나 박테리아를 실험을 할수록, 더 가치 있는 발견이 나타나게 된다.



3. 많은 개인과 기업들은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으며, 발견으로부터 독점이윤을 누린다 (Many individuals and firms have market power and earn monopoly rents on discoveries.)  


: 발견으로부터 얻게 된 정보는 (1에서 말했던) 비경합성(nonrival)을 띄지만, 경제적으로 중요한 발견은 공공재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러한 발견은 부분적으로 배제가능(partially excludable) 하거나, 일정기간 동안은 배제성을 띄고 있다. 기업들은 발견으로부터 얻게 된 정보를 통제하에 두기 때문에, 완벽한 공공재로 취급할 수 없다. 


만약 기업이 그들의 발견을 다른 누군가가 쓰도록 허락한다면, 발생하는 비용보다 더 높은 금액을 청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들은 독점이윤을 누리게 된다.   


- 폴 로머(P.Romer). 1994. <내생적성장의 기원>(The Origins of Endogenous Growth). JEP.


위의 3가지 사항은 오늘날 경제를 관찰할 때 쉽게 볼 수 있는 특징들 입니다. 


▶ 아이디어의 '비경합성' (nonrival)

: 근로자와 설비기계 등 인적 · 물적자본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없으나, 인사관리 · 기계수리 · 마케팅지식 · 조직관리 · 물류관리 · 재고관리 · 기초과학 및 공학 지식 등등 '아이디어'(idea)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비경합성'을 띄고 있죠. 


▶ 아이디어의 '내생성' (endogenous)

: 그리고 이러한 '아이디어의 발견'(discovery)은 사람이 행한 결과물 입니다. 경영학 및 경제학 지식, 기초과학 및 공학 지식 등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두 연구(research)에 힘을 쓴 사람이 만들어 낸 내생적인 결과물이죠.


▶ 기업의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이윤추구 행위'로부터 만들어지는 아이디어 (intentioanl)

: 특히 오늘날 연구분야 투자 및 아이디어의 발견에 큰 기여를 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firm) 입니다. 기업은 R&D 투자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이를 생산에 활용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이윤창출을 하게 됩니다. 


▶ 아이디어의 '부분적인 배제성' (partial excludability)

: 이때 기업은 발견의 결과물을 '특허로 등록'(patent)하여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합니다. 아이디어는 본질적으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쓸 수 있는 특징을 지니지만, 오늘날에는 지적재산권 등의 영향으로 사용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물론, 다른 기업들은 모방(imitation)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을 베끼려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아이디어는 '부분적인 배제성'을 띄고 있습니다.  


▶ 가격 > 한계비용, 독점이윤을 누리는 기업 (monopoly rent)

: 또한, 더 좋은 특허를 보유한 기업일수록 이를 활용하여 더 나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기업은 상품을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으며, 특허 사용권도 일정한 금액을 받고 대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아이디어 그 자체는 추가적인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R&D 투자는 초기 비용을 낳지만, 아이디어를 얻고 난 뒤 이를 사용할 때에는 아무런 비용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기업은 높은 금액을 받고 아이디어를 넘길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한계비용보다 높은) '독점이윤'을 누리게 됩니다. 




※ 로머 ·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의 문제점

- 아이디어는 외부성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라, 

이윤추구를 노리는 기업들의 의도적 행위의 결과물


오늘날 경제의 이러한 특징들을 기존의 성장이론이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솔로우 모형은 위의 모두를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술진보는 외생적으로 발생한다고 보며, 기술은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어 배제성을 띄지 않는 '공공재'(public good) 입니다.


그럼 로머 ·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은 이를 설명해낼 수 있을까요?  


'아이디어의 비경합성' 및 '아이디어의 내생성'은 로머 ·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사항들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로머 · 루카스의 내생적 성장 모형은 "인적자본 및 지식이 가진 외부성(externality) 덕분에 기술진보가 내생적으로 발생한다" 라고 봅니다(이전글 링크[각주:8]). 한 기업이 창출한 지식은 외부성 덕분에 다른 곳으로 전파(knowledge spillover)되어 다른 기업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사람이 축적한 인적자본은 후세대로 전달되어(inherited) 계속 사용됩니다.


이는 기술진보를 그저 외생적으로 취급했던 솔로우 모형에 비해 진일보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외부성을 강조하는 것은 "기술진보는 경제주체가 의도치않게 만들어낸 부수적 효과(side effect)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로머와 루카스 모형에서 기업들은 자신의 연구가 다른 기업으로 전파되어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외부성을 낳을 것이라고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연구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다른 기업으로 퍼졌을 뿐입니다.  


현실은 이와 다릅니다. 


기업은 미래 이윤극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연구분야 투자를 늘립니다(intentional actions taken by people who respond to market incentives). 또한, 기업은 자신들의 연구 성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 즉 저작권 및 특허권(patent)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기업의 지식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도 없습니다.


즉, 로머 ·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은 오늘날 기술진보의 주요한 특징, '이윤추구를 노리는 기업의 의도적인 R&D 투자'와 '특허제도로 인한 아이디어의 부분적인 배제성'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특허권 제도 덕분에 '독점이윤'을 누리면서 R&D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현실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신성장이론의 탄생 

- 아이디어(idea), 현대경제에서 특수한 재화


현대경제에서 아이디어는 공공재가 아닙니다. 


아이디어는 본질적으로 모두가 사용할 수 있으나(비경합성, nonrival), 특허제도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쉽게 사용할 수 없는(부분적인 배제성, partially excludable) 특수한 재화 입니다. 


만약 특허제도가 미비하여 아이디어가 공공재 역할을 한다면, 독점이윤을 누릴 수 없는 기업은 초기 R&D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없기 때문에 혁신은 멈출 겁니다. 


반대로 말해, 오늘날 선진국이 성장률을 계속 높일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디어의 특징'을 잘 살려나갔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지적재산권 제도 확립으로 기업들은 R&D 투자 유인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어 생산과정에 쓰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창출된 이윤은 추가적인 R&D 투자로 이어져, 아이디어는 한계가 없이 계속 증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디어는 한 기업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으며 모방 등을 통해 비법이 전파되기 때문에,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는 결국 사회 전체의 지식을 증가시키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현대 경제성장을 올바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부분적 배제성을 띄는 아이디어의 특징'을 잘 받아들이며, '이윤추구 목적으로 의도적인 R&D 투자' 이후 '독점이윤'을 누리는 기업을 반영해야 합니다. 


이전 모형과는 다른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이 필요한 이유 입니다.


(사족 : 여기서 초기 R&D 투자비용은 신무역이론에서 '고정비용' 역할을 하며, 기업의 독점이윤은 신무역이론이 이용한 '독점적 경쟁모형'에 기반하였습니다. 따라서, 신성장이론은 신무역이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위 가운데 : 폴 로머(Paul Romer)
  • 아래 왼쪽 : 필립 아기온(Philippe Aghion) & 피터 호위트(Peter Howitt)
  • 아래 오른쪽 : 진 그로스만(Gene Grossman) & 엘하난 헬프먼(Elhanan Helpman)


신성장이론 확립에 주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다섯 명입니다.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 · 필립 아기온(Philippe Aghion) · 피터 호위트(Peter Howitt) · 진 그로스만(Gene Grossman) · 엘하난 헬프먼(Elhanan Helpman) 입니다. 


폴 로머는 루카스와 함께 내생적성장 모형을 만들었던 그 로머가 맞습니다. 그는 기존 내생적이론의 문제점을 보완한 '신성장이론'을 1990년에 내놓으며 경제성장이론의 새로운 장을 엽니다.


필립 아기온과 피터 호위트는 '시장경쟁'이 혁신을 촉진하는 모형을 통해,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진 그로스만과 엘하난 헬프먼은 기업 간 경쟁과정에서 품질이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말하였고, 특히 '무역과 경제성장'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족 : 이 둘은 폴 크루그먼과 함께 '신무역이론'[각주:9] 발전에도 큰 공헌을 하였죠.)


이제 앞으로 '신성장이론'을 다룬 글을 통해, 새로운 경제성장이론 및 그 함의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2015.05.26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4.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2017.06.30 http://joohyeon.com/253 [본문으로]
  5.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6. [경제성장이론 ⑤] 수렴논쟁 Ⅱ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5 [본문으로]
  7. [경제성장이론 ⑥] 수렴논쟁 Ⅲ - 맨큐 · D.로머 · 웨일,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 2017.07.17 http://joohyeon.com/256 [본문으로]
  8.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9.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2015.05.26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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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⑥] 수렴논쟁 Ⅲ - 맨큐 · D.로머 · 웨일,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경제성장이론 ⑥] 수렴논쟁 Ⅲ - 맨큐 · D.로머 · 웨일,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

Posted at 2017. 7. 6. 21:51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수렴논쟁 3탄 (convergence controversy)

- 솔로우 모형은 잘못된 이론일까?


지난 여러편의 글을 통해 소개한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은 결국 "솔로우 모형이 현실을 설명하는데 적합한 모형이냐"가 쟁점이었습니다. 


솔로우 모형[각주:1]이 가정하는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와 '외생적인 기술진보'(exogenous)는 언젠가 모든 국가의 생활수준(level)과 성장률(growth)이 같아지는 수렴현상[각주:2]과 축적된 자본량이 적은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하는 성장률 패턴을 예측합니다.


하지만 솔로우 모형의 예측과 똑같은 수렴현상과 성장률 패턴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선진국 그룹 내부에서는 1인당 GDP의 수렴 및 초기 자본량이 적은 국가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 패턴이 나타났으나, 이외의 국가를 모두 포함할 경우에는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대해,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와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시대별 주도국(leader)의 성장률이 점차 증가해왔다"[각주:3]는 점을 지적하며, 솔로우 모형의 핵심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 · '외생적인 기술진보'의 기반을 흔들었습니다


그 시대 당시 생활수준이 제일 높았던 주도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정상상태(steady state)에 가까웠을 겁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률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생산량이 체감하지 않는 것 아닐까?" 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들죠. 


또한, 후진국의 성장률이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하는 것은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으나, 주도국은 그러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주도국은 첨단 기술을 만드는 최전선(frontier of technology)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로부터 좋은 기술을 이전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솔로우 모형은 '모든 국가의 기술진보율이 외생적으로 동일하게 주어졌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주도국 내부에서 어떠한 내생적인 요인(endogenous)이 기술진보를 이끄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로머와 루카스는 '체증하는 생산함수'(increasing marginal) 및 '내생적인 기술진보'(endogenous)를 도입한 새로운 성장모형[각주:4]을 만들어 냅니다. 


이들의 모형에 따르면, (솔로우 모형의 예측과는 달리) 수렴현상과 성장률 패턴은 영원히 발생하지 않습니다. 부유한 나라는 빠르게 성장해나가며 부유한 상태를 유지하며, 가난한 나라는 이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솔로우 모형은 대표적인 성장이론의 자리를 내준 것일까요?




※ 솔로우 모형이 회생할 수 있는 길

- 수렴속도를 느리게 만들어라


이때,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Robert Barro)와 하비에르 살라이마틴(Xavier Sala-I-Martin)은 솔로우 모형이 회생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로머와 루카스는 "수렴현상은 없다"라고 말했으나,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수렴현상 느리지만 존재한다"라고 반박[각주:5]했습니다. 


분명, 전세계를 대상으로 수렴여부를 조사하면 수렴현상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진국 그룹 내부에서 수렴현상이 발견된다는 것 또한 사실이며, 국가별로 정상상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교정하면 조건부 수렴현상(conditional beta convergence)이 관찰됩니다. 

(서로 다른 정상상태 및 조건부 수렴 개념 참고 :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 [경제성장이론 ⑤] 수렴논쟁 Ⅱ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다만, 수렴현상은 존재하는데 속도가 느리다는 게 문제일 뿐입니다.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수렴속도가 연간 2%에 불과하다" 라고 지적하며, 솔로우 모형과 로머-루카스 모형 모두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솔로우 모형은 '느린 수렴속도'를 설명할 수 있어야하며, 로머-루카스 모형은 '수렴현상 존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때 로머-루카스 모형의 수정은 비교적 쉽습니다.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기술전파(diffusion)가 일어난다면 기술격차가 축소되어 수렴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점진적인 기술확산'(the gradual spread of technological improvements)을 모형에 도입하면, '느리지만 존재하는 수렴현상'을 설명해 낼 수 있습니다.


반면 솔로우 모형은 앞이 막막해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수렴속도를 느리게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솔로우 모형에 쏟아지는 다른 여러 비판들은 어떻게 반박해 낼까요?




※ 솔로우 모형이 봉착한 3가지 문제점



수렴논쟁을 포함하여 솔로우 모형이 봉착한 문제점을 다시 점검해 봅시다. 비판지점은 크게 3가지 입니다. 


저축의 영향력을 과소평가 하여, 국가간 소득격차가 예측한 것보다 크게 나타난다 


분명 솔로우 모형은 '저축'(자본축적)을 강조하는 성장모형 입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저축의 영향력(magnitude)에 대해서는 과소평가 하고 있습니다. 


로머와 루카스는 지난글[각주:6]에서 "국가간 소득격차가 모형이 예측한 것보다 크다" 라고 비판했습니다. 예를 들어, 1960년 당시 필리핀은 미국에 비해 1인당 소득이 10%에 불과했습니다. 솔로우 모형의 수식에 따르면, 미국의 저축률이 30배는 높아야 이처럼 큰 소득수준 차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국의 저축률은 그저 2배 더 많았을 뿐이죠. 


즉, 저축률의 미미한 차이가 모형상에서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큰 소득격차를 초래합니다.



수렴속도가 모형이 예측한 것보다 느리다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수렴속도는 연간 2%" 라고 진단했습니다. 따라서 한 국가가 1인당 GDP가 제일 높은 국가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년 이상이 걸립니다. 이는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기술진보를 내생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솔로우 모형에서 영구적인 성장을 결정짓는 건 기술진보 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요인이 정작 외생적으로 주어졌다고 가정되어 있습니다.



  • 왼쪽 :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 현 하버드대 교수
  • 가운데 : 데이비드 로머(David Romer), 현 컬럼비아대 교수
  • 오른쪽 : 데이비드 웨일(David Weil), 현 브라운대 교수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3명의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 · 데이비드 로머(David Romer) · 데이비드 웨일(David Weil)'인적자본'(human capital) 개념을 솔로우 모형에 도입함으로써 현실 설명력을 대폭 키웠습니다.

(사족 : 경제학과 전공생들이 아는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쓴 그 맨큐 입니다. / "수렴현상은 없다"를 주장한 폴 로머와 이 글의 데이비드 로머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서로 다른 사람입니다.)


이들은 1992년 논문 <경제성장 실증연구에 대한 공헌>(A Contribution to the Empirics of Economic Growth)를 통해,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줍니다. 그리고 맨큐는 1995년 보고서 <국가의 성장>(The Growth of Nation)을 통해, 솔로우 모형의 한계 및 보완점을 추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과소평가 된 저축의 영향력 및 ▶느린 수렴속도' 문제는 솔로우 모형이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을 전제하기 때문에 발합니다. 자본량이 축적될수록(=저축을 할수록) 생산량 증가분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소득격차 설명에 있어 저축의 영향력이 크지 않게 되고 수렴도 빠르게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체감정도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모형을 수정하면 현실 설명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로머와 루카스는 아예 체감현상을 없애고 체증현상(increasing marginal)을 도입하였으나, 맨큐 · D.로머 · 웨일은 체감정도를 완화시킨 한 솔로우 모형을 소개합니다. 


바로, '인적자본'(human capital) 개념을 솔로우 모형에 추가하였습니다. 초기 솔로우 모형에서 자본이랑 단순한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의미하였지만, 이제 자본의 의미는 확장(broad concept of capital) 되었습니다.


이들이 인적자본 개념을 도입한 이유는 '자본비중 알파(α)를 확대하여 체감정도를 완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자본비중(α) 이야기는 로머-루카스[각주:7]배로-살라이마틴[각주:8]을 다룬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자본비중(α) 이란 일반적으로 경제 전체 총 소득 중 자본가가 가지는 '자본소득'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비되는 말로는 '노동소득'이 있죠.


만약 총생산량(혹은 총소득) 중 자본가가 더 많은 비중을 가질 수 있다면 추가적인 투자량을 더 늘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축적된 자본량은 더 증가하게 되고, 생산량 증가 → 자본가 소득 증가 → 투자 더욱 증가 → 자본량 더욱 증가 → 생산량 더욱 증가의 선순환이 발생합니다.


그 결과, 높은 자본비중은 생산량의 체감정도를 완화시켜 줍니다. 자본비중이 높을수록 자본량 한 단위의 증가가 비교적 더 많은 생산량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초기 솔로우 모형은 자본비중 약 33%, 노동비중 약 66% 라고 보았습니다. 이때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이 고숙련 근로자 대비 절반 수준임을 감안하면, 노동소득 중 절반은 인적자본 수준이 반영된 소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비중 66%의 절반인 33%를 인적자본 비중으로 간주했습니다.


이제 맨큐 · D.로머 · 웨일의 모형은 물적자본 33% · 인적자본 33% · 노동 33%로 비중이 나뉘게 되었고, 의미가 확장된 자본비중은 66%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따라, 확장형 솔로우 모형에서는 초기 모형에 비해 생산함수의 체감정도가 느리게 되었죠.



그리고 세번째 문제인 '▶기술진보 설명'에 대해서는 "솔로우 모형과 내생적 모형은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라고 말합니다. 기술진보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솔로우 모형이 잘못됐다거나 틀린 이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제 아래 설명을 통해, 맨큐 · D.로머 · 웨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확장형 솔로우 모형'을 만들었는지를 알아봅시다. 




※ 인적자본'을 추가한 확장형 솔로우 모형

- 경제학자 맨큐 · D.로머 · 웨일의 공로

- 과소평가된 저축의 영향력을 바로잡음


  • 출처 : Mankiw, Romer, Weil (1992) 
  • Table 1 : Estimation of the Textbook Solow Model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 여파로 솔로우 모형을 향한 비판이 거세지자, 맨큐 · D.로머 · 웨일은 실증결과를 제시합니다. 솔로우 모형[각주:9]은 "1인당 GDP는 저축 및 투자가 증가할수록 늘어나며, 감가상각률 및 인구증가율이 높아질수록 줄어든다" 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현실에 부합하는지를 회귀분석을 통해 검증하였죠.

위에 나오는 표는  'GDP 대비 투자비중' · '인구증가율, 감가상가율' 등이 1% 증가할때 1인당 GDP가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값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OECD · 중간국 · 비석유 국가 모두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것과 같은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투자비중이 증가할수록 1인당 GDP가 늘어나는 양(+)의 관계, 인구증가율이 높아질수록 1인당 GDP는 줄어드는 음(-)의 관계가 나타납니다. 회귀분석의 설명력을 보여주는 R^2(R스퀘어) 역시 38%~69%로 높은 수준이죠.


그러나 이것만 보고 솔로우 모형이 적합하다고 판정 내리기에는 무언가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전통적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것보다 '투자(저축)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중간국 및 비석유 국가들에서는 투자(=저축)비중이 1% 늘어날수록 1인당 GDP는 1.31%~1.42% 증가합니다. 저축이 이렇게 큰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생산함수의 체감정도가 완화되어야 합니다. 본래 솔로우 모형 상에서는 체감현상 때문에 저축 증가가 큰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죠.


회귀분석 결과를 다시 보시면 '내재된 자본비중 알파'(Implied α)가 있습니다. 중간국은 59%, 비석유국은 60%를 가리킵니다. 이 말은 "자본비중이 중간국 59% · 비석유국 60%가 되어야, 현재의 회귀분석 결과값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자본비중 33%를 가정하는 솔로우 모형과는 맞지 않습니다.  


맨큐 · D.로머 · 웨일이 솔로우 모형을 검증하기 위해 내놓은 결과값은 오히려 솔로우 모형 비판자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본비중 33%를 가정하는 솔로우 모형은 현실 설명력이 떨어지며, 따라서 자본비중을 100%로 확대한 로머-루카스 모형이 타당하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출처 : Mankiw, Romer, Weil (1992) 
  • Table 2 : Estimation of the Augmented Solow Model


이때, 맨큐 · D.로머 · 웨일은 (앞서도 말했다시피) '인적자본'(human capital) 개념을 도입하여 자본의 의미를 확장시킵니다. 이들은 인적자본의 변수로 '중등교육을 받은 비율'(secondary school)을 선정하였고, 이를 추가하여 회귀분석을 합니다.


그 결과, 투자(=저축) 1%가 증가할수록 1인당 GDP는 0.28%~0.70% 늘어납니다. 앞서와 비교하면, 저축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솔로우 모형이 예측하는 것과 비슷한 영향력 크기 입니다.


본래 교과서에 나오는 솔로우 모형으로 분석을 했더니 이론과 실증결과가 다르게 나오고, 교과서와 다른 모형으로 분석을 했더니 교과서 이론과 실증결과가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왜 (교과서와 달리) 인적자본 변수를 추가했을때 (교과서가 말하는 것처럼) 저축의 영향력이 작아진 것으로 나타났을까요?


그 이유는 전통적 솔로우 모형이 '저축을 통한 자본축적 → 인적자본 축적'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저축을 통한 물적자본 축적은 그저 물적자본만 증가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교육환경이 나아지며 사람들의 수준도 함께 향상됩니다. 따라서, 저축 증가는 인적자본 축적으로 이어지고, 인적자본 향상은 생산량 증가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솔로우 모형은 이와 같은 경로를 간과했기 때문에 '저축의 영향력을 과소평가' 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물적자본 축적과는 달리 인적자본 축적은 체감하지 않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함수가 체감하는 정도도 심했습니다.


맨큐 · D.로머 · 웨일은 전통적 모형에 인적자본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솔로우 모형을 부활시킵니다. 이제 확장된 솔로우 모형은 '저축의 직접적 영향 + 인적자본을 통한 간접적 영향'을 모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위의 두번째 표를 다시 보시면, 투자(=저축) 1% 증가는 1인당 GDP 0.28%~0.70% 증가 · 인적자본 1% 증가는 1인당 GDP 0.66%~0.76% 증가 입니다. 두 가지 효과를 합치면 1인당 GDP는 0.94%~1.56% 증가하게 됩니다. 이는 인적자본을 생략한 채로 회귀분석을 돌린 첫번째 결과값(1.31%~1.41%)과 유사합니다. 단지, 직접적 영향 + 간접적 영향으로 나뉘어졌을 뿐이죠.


'내재된 자본비중 알파 및 인적자본 비중 베타'(Implied α, β) 값 역시 맨큐 · D.로머 · 웨일의 모형을 지지해줍니다. 내재된 자본비중 값은 14%~31% · 인적자본 비중 값은 28%~37%를 나타내며, 물적자본 33% · 인적자본 33% · 노동 33%로 나뉜다는 모형의 가정을 뒷받침 합니다.




※ 솔로우 모형은 '조건부 수렴'을 예측한다


맨큐 · D.로머 · 웨일의 공로로 "솔로우 모형은 저축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 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수렴속도' 및 '수렴현상 논쟁'은 어떻게 반박할까요?


우선, 맨큐 · D.로머 · 웨일은 "솔로우 모형은 모든 국가가 동일한 지점으로 수렴하는 현상 혹은 가난한 국가일수록 무조건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을 예측하지 않았다."(이른바 절대적수렴인 시그마σ 컨버전스, 베타β 컨버전스) 라고 반박합니다. 


국가별로 저축률 · 인구증가율이 상이하기 때문에 정상상태(steady state)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솔로우 모형은 "국가별로 서로 다른 정상상태에 도달하며, 각자의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한다"는 조건부 수렴(조건부 베타β 컨버전스)을 예측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서로 다른 정상상태 및 조건부 수렴 개념 참고 :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 [경제성장이론 ⑤] 수렴논쟁 Ⅱ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게다가 인적자본을 추가한 솔로우 모형으로 회귀분석을 하면, 조건부 수렴의 모습을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출처 : Mankiw, Romer, Weil (1992) 
  • X축 : 1960년 당시 1인당 생산량 수준, Y축 : 1960~1985년 연간 성장률 
  • 첫번째 그림 : 정상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절대적 수렴의 양상
  • 두번째 그림 : 정상상태를 고려한 조건부 수렴의 양상
  • 세번째 그림 : 정상상태와 인적자본을 고려한 조건부 수렴의 양상


윗 그림 3개는 각각 절대적수렴 · 조건부수렴 · 인적자본을 추가한 조건부 수렴의 양상을 보여줍니다. X축은 1960년 당시의 1인당 생산량 수준, Y축은 1960~1985년 중 연간 성장률을 보여줍니다.


절대적 수렴은 많이들 비판했듯이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난한 국가라고 해서 빠르게 성장하지 않습니다. OECD 국가들 사이에서는 절대적 수렴이 보이지만, 전세계로 샘플을 넓힐 경우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정상상태라는 조건을 고려하여 분석을 해보면, '각자의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빠르게 성장하는 양상'이 나타납니다. 게다가 인적자본 변수를 추가하면 조건부 수렴의 양상이 더 명확해 보입니다.


따라서, 맨큐 · D.로머 · 웨일은 "(애시당초 조건부 수렴을 주장한) 전통적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으며, 인적자본을 추가한 솔로우 모형은 더더욱 현실을 잘 설명해낸다" 라고 말합니다.




※ 인적자본을 도입한 두 가지 경제성장이론의 차이점

- 맨큐 · D.로머 · 웨일은 솔로우 모형의 기본가정을 그대로 받아들임


맨큐 · D.로머 · 웨일은 '인적자본'(human capital) 개념을 솔로우 모형에 추가하였습니다. 초기 솔로우 모형에서 자본이랑 단순한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의미하였지만, 이제 자본의 의미는 확장(broad concept of capital)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로머-루카스의 인적자본 모형과는 무엇이 다르지?"


로머 · 루카스 모형과 맨큐 · D.로머 · 웨일 모형은 크게 2가지 점에서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로머-루카스는 외부성(externality)을 일으키는 인적자본 개념을 도입하여 자본비중을 100%로 확대[각주:10]했습니다. 그러나 맨큐 · D.로머 · 웨일은 '외부성' 개념이 없더라도 인적자본의 효과가 나타난다고 봅니다


만약 지식 · 인적자본이 외부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한 국가 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전파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도 선진국의 지식 · 인적자본을 활용하여 생활수준과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데, 이는 로머-루카스가 주장하는 '수렴현상 부재'와는 맞지 않습니다.


또한, 지식 · 인적자본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디어(idea)는 공공재(public good)이기 때문에 전세계 어디로나 빠르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배로-살라이마틴의 조언[각주:11]처럼 '점진적인 기술확산'을 가정하여 제한을 두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로머 · 루카스 모형은 체감현상을 버리고 체증하는 생산함수(increasing marginal)을 채택하였으나, 맨큐 · D.로머 · 웨일은 솔로우 모형의 기본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을 폐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모형에서 자본비중은 약 66% 이고, 로머-루카스는 100%라고 봅니다. 따라서, 맨큐 · D.로머 · 웨일 모형에서 생산함수는 여전히 체감(diminishing)하며 수렴현상도 발생합니다. 솔로우 모형의 기본가정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하지만 로머-루카스 모형에서 체감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수렴현상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솔로우 모형을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모형이죠.




※ 인적자본을 추가한 솔로우 모형의 함의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


: '수렴논쟁'이 발생하면서 솔로우 모형은 경제성장이론으로써 지위가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맨큐 · D.로머 · 웨일 등이 솔로우 모형의 기본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 및 외생적인 기술진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인적자본을 추가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모형의 설명력을 높였습니다.


그럼에도 맨큐 · D.로머 · 웨일은 '외생적인 기술진보'를 가정하는 솔로우 모형을 보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솔로우 모형이 잘못됐다는 말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이 기술진보 역할을 밝힐 수 있으며, 솔로우 모형과 내생적 모형은 서로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 라고 말합니다.



국가간 성장률 격차의 원인은?


: 그동안 '수렴논쟁'을 설명하면서 크게 대립했던 주제입니다. 국가간 성장률 차이가 나는 이유를 두고,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 정도에 따른 전이경로'(transitional path)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로머-루카스는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기술격차'(technology gap)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때, 솔로우 모형의 예측과는 달리 '조그마한 저축률 차이가 큰 소득격차로 나타난다는 점'은 큰 약점이 되었죠. 하지만 맨큐 · D.로머 · 웨일이 인적자본을 추가하여 이를 설명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솔로우 모형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initial deviation)가 다르기 때문이다"를 다시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술은 공공재인가?


: 맨큐 · D.로머 · 웨일은 여전히 기술을 공공재(public good)으로 바라봅니다. '누구나'(non-excludable) '함께'(non-rivalry) 이용할 수 있으며, 세계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기술격차에 의한 성장률 차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로머-루카스가 말하는 '인적자본의 외부성'도 부인하죠. 


"기술이 공공재냐 아니냐"의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특히 (인적자본 모형을 만든) 폴 로머는 1990년 기술을 공공재로 취급하지 않는 모형을 내놓으면서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시대를 열었죠.



정부정책은 효과를 볼 수 있을까?


: 로머-루카스는 경제발전 초기에 지식과 인적자본이 많이 축적된 국가일수록 계속해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개입을 통한 정책이 수준효과(level effect) 뿐만 아니라 성장효과(growth effect)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체감하는 생산함수'를 가정하는 맨큐 · D.로머 · 웨일은 여전히 정부정책에 부정적입니다. 정부정책은 일회적인 수준효과만 낳을 뿐, 성장효과는 없어지기 때문이죠.


특히 맨큐는 1995년 보고서 <국가의 성장>을 통해 "정책의 효과는 계량분석으로도 확실히 측정할 수 없다. 내 생각에 경제성장 동력를 위해 정책결정권자들이 해야할 일은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do no harm)이다." 라고 말하면서 강한 의구심을 내비쳤습니다.




※ 솔로우 모형은 완벽한 이론이 아니다. 다만, 옳은 답을 주고 있다.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이전에 제기됐던 비판들을 효과적으로 반박해 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우 모형은 완벽한 이론일까요?


모형을 만든 맨큐 · D.로머 · 웨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솔로우 모형과 내생적 모형은 서로 보완관계이며, 사람들이 찾고자했던 '저축 · 인구증가율과 경제성장과의 관계' 등의 질문에 대해 옳은 답을 해주고 있을 뿐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연구는 솔로우 모형을 무시하고 내생적 성장 모형을 선호했던 최근의 흐름에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국가간 소득 격차는 솔로우 모형의 체감하는 생산함수 가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도 설명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솔로우 모형은 완벽한 성장이론이다" 라거나, "내생적 이론은 중요하지 않다" 라고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솔로우 모형이 외생적으로 취급하는 저축, 인구증가율, 기술진보가 어떻게 내생적으로 결정되는지 이해하고 싶어할 것이다. 내생적 성장 모형은 기술진보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고 싶은 것은 "솔로우 모형은 그것이 다루고자 했던 질문들-저축 · 인구증가율과 경제성장과의 관계-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전달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Solow model gives the right answers to the questions it is designed to address.)


- 맨큐 · D.로머 · 웨일 (1992)-


맨큐 · D.로머 · 웨일의 말처럼, 솔로우 모형을 통해서 우리는 저축 및 인구증가율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잘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과제는 '기술진보' 입니다. 


앞으로 다음글을 통해, 기술진보를 내생적으로 설명하는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을 알아봅시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2017.06.30 http://joohyeon.com/253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4.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5. [경제성장이론 ⑤] 수렴논쟁 Ⅱ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5 [본문으로]
  6.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7.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8. [경제성장이론 ⑤] 수렴논쟁 Ⅱ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5 [본문으로]
  9.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10.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11. [경제성장이론 ⑤] 수렴논쟁 Ⅱ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2017.07.06 http://joohyeon.com/25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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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⑤] 수렴논쟁 Ⅱ -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경제성장이론 ⑤] 수렴논쟁 Ⅱ -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Posted at 2017. 7. 6. 21:01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수렴논쟁 2탄 (convergence controversy)

- 로머와 루카스의 주장처럼 '수렴현상'이 정말 존재하지 않는걸까?


지난글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에 이어서 이번글도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을 소개할 겁니다.


솔로우 모형의 핵심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와 '외생적인 기술진보'[각주:1]는 언젠가 모든 국가의 생활수준과 성장률이 같아지는 '수렴현상'[각주:2]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것과 같은 수렴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선진국 그룹 내부에서는 수렴현상이 나타났으나, 전세계로 범위를 넓힐 경우 가난한 국가는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전세계적 수렴현상 부재'에 주목한 폴 로머(Paul Romer)와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솔로우 모형을 대체하는 새로운 모형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지식'과 '인적자본'에 의해 생산량이 체증(increasing marginal)하는 이론입니다.


지식과 인적자본은 그 자체로 '외부성'(natural externality)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창출한 지식은 다른 곳으로 전파(spillover)되어 다른 사람도 쓸 수 있습니다. 또한, 교육 · 생산에 학습효과를 통해 축적한 나의 인적자본은 후대에 전승(inherited)되어 미래의 인적자본 수준을 더 높여줍니다.   


그 결과, 경제전체의 인적자본 수준은 체감하지 않고 계속 증가하게 되고, 생산량 또한 체증할 수 있습니다.


로머와 루카스의 새로운 모형에 따르면 이제 수렴현상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부유한 국가는 계속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며, 초기 인적자본 수준이 높았던 국가는 계속해서 부유한 생활수준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수렴현상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로머와 루카스는 '전세계적 수렴현상 부재'에 주목했으나, 어찌됐든 선진국 그룹 내부에서는 수렴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간 서로 다른 정상상태(own steady state) 개념을 도입한다면, '자신만의 정상상태'를 향해 수렴해가는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정상상태 및 조건부 수렴 개념 참고 : 이번글 아래에 설명 혹은 이전글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따라서 우리에게는 '수렴현상을 예측하는 솔로우모형'과 '수렴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로머 · 루카스 모형'을 절충한 이론이 필요합니다.


  • 왼쪽 : 로버트 배로(Robert Barro,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
  • 오른쪽 : 하비에르 살라이마틴(Xaiver Sala-I-Martin, 컬럼비아 경제학과 교수)


이번글에서 소개할 로버트 배로(Robert Barro)하비에르 살라이마틴(Xavier Sala-I-Martin)의 연구는 두 모형 간에 절충방안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 배로와 살라이마틴, "수렴현상, 느리지만 존재한다"


  • 배로와 살라이마틴이 저술한 <경제성장>(Economic Growth) 교과서
  • 주로 대학원 경제성장론 수업에서 쓰인다


로버트 배로와 하비에르 살라이마틴은 '경제성장' · '수렴현상'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이 공동 집필한 경제성장이론 교과서는 대학원 대표 교재로 이용되고 있죠.


많은 논문들 중 이번에 소개할 논문은 세 편입니다. 1990년 워킹페이퍼 <미국내 경제성장과 수렴현상>(Economic Growth and Convergence across The United States), 1991년 논문 <여러 국가 횡단면 속 경제성장>(Economic Growth in a Cross Section of Countries), 1992년 논문 <수렴현상>(Convergence) 입니다. 


세 편의 논문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공통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수렴현상, 느리지만 존재한다" 입니다.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미국내 주(州) 간의 수렴현상'을 실증결과로 보여줍니다. 1880년대 동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은 격차가 심했으나, 낙후되어 있던 남부 지역이 더 빠르게 성장하면서 결국 비슷한 생활수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유럽을 살펴봐도 수렴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 내 서로 다른 지역들도 낙후된 지역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하여, 결국 생활수준이 동등해졌습니다.


또한, 전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수렴현상이 나타납니다. 국가들 간 정상상태(steady state)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보정하면, 각자의 정상상태로 생산량 수준이 수렴하거나(level의 수렴), 자신만의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높은 조건부 수렴 현상(conditional beta convergence)이 발견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렴속도(speed of convergence)가 느리다는 것입니다. 배로와 살라이마틴이 산출해낸 수렴속도는 연간 2%에 불과합니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로머와 루카스가 했듯이) 수렴현상을 부정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솔로우 모형이 예측했던) 수렴현상이 존재한다고 하기에도 애매합니다. 


따라서,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느리지만 존재하는 수렴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절충안을 제시합니다.


솔로우 모형에서 자본비중을 높이고 체감 정도를 완화시켜 수렴속도를 느리게 하는 방안


내생적 모형에서 체증 현상을 폐기하고 국가별로 기술확산 속도가 느리게하여, 수렴현상이 느리지만 존재하게 하는 방안


이제 위의 절충안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봅시다.




※ 수렴(convergence)이란 무엇인가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수렴현상 논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에서 다루었던 '수렴의 개념'을 복습해 봅시다.


수렴(convergence)이란 말 그대로 무엇인가가 동등해짐을 의미합니다. 경제성장에 관해서는 크게 2가지가 같아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생활수준'(level, 1인당 GDP)이며 다른 하나는 '성장률'(growth) 입니다.


솔로우 모형은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와 '외생적인 기술진보'(exogenous)를 가정하기 때문에, 언젠가 모든 국가의 1인당 GDP(level)가 동일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아직 축적된 자본량이 적은 가난한 국가가 더 빠르게 성장(growth)할 수 있죠.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형태의 수렴현상은 전세계적으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국가는 여전히 가난했으며, 이들의 성장률 또한 낮았습니다. 


따라서, 이를 교정하기 위해 '서로 다른 정상상태'(different own steady state)라는 개념이 도입되었습니다. 


국가들마다 각자의 정상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동등한 GDP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본량이 적은 국가가 무조건 빨리 성장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만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된 논의를 거쳐 '수렴현상'을 이야기하는 3가지 용어가 만들어 집니다.


▶ 시그마 수렴 (sigma-σ-convergence)


: 시그마 수렴이란 '국가간 1인당 생산량 격차가 점점 감소되는 현상'(a decline over time in the cross-sectional dispersion of per capita income or product.)을 지칭합니다. 우리가 사용했던 'level이 같아짐'을 의미하죠. 경제학을 배우셨던 분들에게는 '절대적 수렴'(absolute convergence)란 용어가 더 익숙할 겁니다.


▶ 베타 수렴 (beta-β-convergence)


 : 베타 수렴이란 '가난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poor economies growing faster than rich ones.)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계속 언급한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보여주죠. 그리고 가난한 국가가 경제성장에 성공해서 부유한 국가가 된다면, 결국 둘의 성장률은 같아지게 됩니다(growth가 같아짐).


▶ 조건부 베타 수렴 (conditional beta-β-convergence)


: 그런데 이때의 베타 수렴은 '조건부'(conditional) 입니다. 국가별로 서로 동일한 정상상태가 아닌 '자신만의 정상상태'(own steady state)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의 절대적인 값 보다는, '1인당 자본량이 각자 자신의 정상상태 보다 더 적은'(조건)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빠릅니다. 많은 분들에게는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란 용어가 더 익숙할 겁니다.




※ 미국 주(州) · 유럽 7개국내 지역들 사이의 수렴현상


이전글에서 소개한 로머와 루카스[각주:3]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살펴봤을때 시그마 수렴과 베타 수렴이 발견되지 않는 현상에 더 주목했습니다. 따라서 "수렴현상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식과 인적자본에 의해 체증하는 생산함수를 도입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이번글의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수렴현상이 발견되는 건 분명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1880~1988년 사이 미국 주(州)의 소득과 연간 성장률을 대상으로 시그마 수렴과 베타 수렴의 존재를 보여줍니다.


  • Barro and Sala-I-Martin (1991)
  • 1880~1988년, 미국 동부 · 서부 · 중서부 · 남부 지역의 1인당 실질소득 추이
  • 1880년에는 발전된 동서부 지역과 낙후된 남부 지역 간의 격차가 컸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차이가 줄어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narrowing gap)


윗 그림은 1880~1988년, 미국 동부 · 서부 · 중서부 · 남부 지역의 1인당 실질소득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880년에는 발전된 동서부 지역과 낙후된 남부 지역 간의 격차가 컸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차이가 줄어들고 있음을 볼 수 있죠(narrowing gap). 


즉, 미국 지역 간에는 '시그마 수렴'(sigma-σ-convergence)이 나타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Barro and Sala-I-Martin (1991)
  • X축은 1880년 당시 1인당 소득수준, Y축은 1880~1988년 사이 연간 소득증가율
  • 초기에 1인당 소득수준이 낮았던 주(州)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해왔음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그림은 1880년 당시 1인당 소득수준(X축)과 1880~1988년 사이 연간 소득증가율(Y축)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변수 간에 음(-)의 상관관계를 띄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즉, 초기에 1인당 소득수준이 낮았던 주(州)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해왔습니다. 다시 말해, '베타 수렴'(beta-β-convergence) 현상이 관찰됩니다.


  • Barro and Sala-I-Martin (1991)
  • 1950~1985년 사이, 유럽 지역내 GDP 격차(dispersion) 추이
  • 시대가 지날수록 지역내 GDP 격차가 축소되고 있다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미국 주(州) 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내에서도 수렴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독일 · 영국 · 이탈리아 · 프랑스 · 네덜란드 · 벨기에 · 덴마크 내 74개 지역을 대상으로 수렴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윗 그림은 1950~1985년 사이, 유럽 지역내 GDP 격차(dispersion)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대가 지날수록 GDP 격차가 축소되는 '시그마 수렴'(sigma-σ-convergence)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Barro and Sala-I-Martin (1991)
  • X축은 1950년 당시 1인당 GDP 수준, Y축은 1950~1985년 사이 연간 성장률
  • 초기에 1인당 GDP가 낮았던 유럽 지역일수록, 성장률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은 1950년 당시 유럽 7개국내 지역의 1인당 GDP 수준(X축)과 1950~1985년 사이 연간 성장률(Y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기에 1인당 GDP가 낮았던 유럽 지역일수록, 성장률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럽 7개국내 지역들 간에도 '베타 수렴'(beta-β-convergence)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국가 및 지역의 정상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보정하면, 정상상태에 멀리 떨어진 국가 및 지역일수록 성장률이 더 빠른 '조건부 베타 수렴'(conditional beta-β-convergence)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느린 수렴속도


미국 및 유럽 내 지역에서 '수렴현상'이 관찰되기 때문에, "수렴현상은 없다"를 주장했던 로머와 루카스의 모형을 폐기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수렴속도(speed of convergence)가 얼마나 되는지도 산출해 냈습니다. 이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 공통적으로 '연간 2%'의 수렴속도가 나왔습니다. 수렴현상이 존재하긴 하지만 매우 느립니다(the convergence process will occur, but only at a slow pace).   


이는 매우매우 느린 속도 입니다. 미국 주(州) 사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지역간 격차가 수렴하는데 100년이나 걸렸습니다. 100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수렴현상을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특히, 논문이 나온 1990년대 초반의 관심사는 통일된 독일이 서독-동독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지 여부였습니다. 이렇게 느린 수렴속도를 두고 저자들은 "연구결과는 그닥 힘이 되지 않는다"(the results are not very encouraging) 라는 말을 했습니다.


'존재하지만 느린 수렴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솔로우 모형과 로머-루카스 모형 간의 절충안이 필요합니다.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2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솔로우 모형에서 자본비중을 높여서 체감 정도를 완화시키는 방안

(the neoclassical growth model with broadly-defined capital and a limited role for diminishing returns)


둘째는 내생적 모형에서 체증 현상을 폐기하고 기술확산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방안

(endogenous growth models with constant returns and gradual diffusion of technology across economies)




※ 솔로우 모형 수정

- 자본비중(α, capital share), 33%가 아니라 대략 80% 정도


  • 미국 내 자본비중 추이
  • 2008 금융위기 이후를 제외하면, 1950년부터 2008년까지 줄곧 30% 이내를 유지해오고 있다


갑자기 '자본비중'(α, capital share) 이야기가 나와서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난글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를 통해, 자본비중 알파(α)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자본비중(α) 이란 일반적으로 경제 전체 총 소득 중 자본가가 가지는 '자본소득'을 의미합니다. 이와 대립되는 말로 '노동소득'이 있죠. 


만약 총생산량(혹은 총소득) 중 자본가가 더 많은 비중을 가질 수 있다면 추가적인 투자량을 더 늘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축적된 자본량은 더 증가하게 되고, 생산량 증가 → 자본가 소득 증가 → 투자 더욱 증가 → 자본량 더욱 증가 → 생산량 더욱 증가의 선순환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높은 자본비중은 생산량의 체감정도도 완화시켜 줍니다. 자본비중이 높을수록 자본량 한 단위의 증가가 비교적 더 많은 생산량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솔로우 모형은 자본비중(α)을 약 33%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자본의 개념을 '물적자본'으로 한정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솔로우 모형은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를 가지게 되었죠.


반면, 로머-루카스의 내생적 모형은 자본비중(α)을 100%로 판단합니다. 물적자본 이외에 '지식 및 인적자본'도 광범위한 자본 개념에 포함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 모형 하에서 체감현상은 완전히 사라졌고, 수렴현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수렴속도가 느린 것을 보았을 때, 분명 솔로우 모형이 가정하는 것보다 자본비중이 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체감현상을 완화시켜 수렴속도를 늦츨 수 있으니깐요. 하지만 로머-루카스가 말하듯이 100%는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100%일 경우 수렴현상이 아예 나타나지 않지만, 현실에서 수렴을 볼 수 있으니깐요. 


따라서,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수렴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을 대상으로 계량분석을 하였고, 솔로우 모형에서 적절한 자본비중(α)은 약 80% 라고 주장합니다. 이 경우 '느리지만 존재하는 수렴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a value for α of 0.8 is very far from 1.0 in economic sense.)




※ 로머-루카스의 내생적 성장 모형 수정

- 국가간 점진적인 기술확산 

(the gradual spread of technological improvements)


기술진보를 그저 외생적(exogenous)으로 바라보았던 솔로우 모형과는 달리, 로머-루카스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제주체'에 의해 기술진보가 발생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내생적 성장 모형'(endogenous growth model) 이라는 명칭을 얻었죠.


로머-루카스의 내생적 모형에서 수렴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국가별로 '지식 및 인적자본 수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different level of technology). 


기술진보가 외생적으로 전세계에 주어졌다면 국가간 기술격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가 내 사람들의 적극적인 행위의 결과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진다면, 지식 및 인적자본 수준에 따라서 기술격차(technology gap)가 초래되고 소득수준 및 성장률도 벌어지게 됩니다(divergence).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기술전파(diffusion)가 일어난다면 기술격차가 축소되어 수렴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이 점을 주목했습니다. 수렴현상이 존재하는 점을 봤을 때,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기술이 확산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와 동시에 수렴속도가 매우 느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확산 속도 또한 느립니다. 


따라서, '점진적인 기술확산'(the gradual spread of technological improvements)이 '존재하지만 느린 수렴현상'을 설명한다고 평가했습니다.




※ 배로-살라이마틴 연구가 전달해주는 함의



솔로우 모형의 미래는?


: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은 결국 "솔로우 모형이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적합한 모형이냐"의 문제 입니다.  


만약 로머-루카스의 주장처럼 '국가간 기술격차에 의해 수렴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솔로우 모형은 핵심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 · 외생적인 기술진보'가 흔들리게 됩니다. 


하지만 배로와 살라이마틴은 "느리지만 수렴현상은 존재한다"고 실증분석 결과를 내놓음으로써, 솔로우 모형은 존재의의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솔로우 모형 상에서 자본비중을 좀 더 확대할 수 있다면 현실 설명력을 더 키울 여지가 생기게 되었죠,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가정을 그대로 살리면서 자본비중을 확장한 모형을 1992년 논문을 통해 내놓습니다.


이는 다음글 '[경제성장이론 ⑥] 수렴논쟁 Ⅲ - 맨큐 · D.로머 · 웨일,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을 통해 알아봅시다.



▶ 국가간 성장률 차이는 자본축적(transitional path) 때문일까? 기술격차(technology gap) 때문일까?


: [경제성장이론 시리즈] 처음부터 다루었던 논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국가간 성장률이 차이가 나는 이유를 '자본축적 정도에 따른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ics)로 설명합니다. 이제 막 자본축적을 시작한 국가는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그러나 로머-루카스는 국가간 지식 · 인적자본 수준 차이가 초래한 기술격차(technology gap)가 성장률 차이를 초래한다고 지적합니다. 배로와 살라이마틴 또한 '점진적인 기술확산 속도'를 언급하며, 국가간 기술수준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솔로우 모형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여전히 "기술은 공공재이며, 어느 곳에서나 똑같다" 라고 말하지만, 이제 많은 학자들은 '기술'(technology)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기술에 관해 좀 더 발전된 '내생적 성장이론'은 이제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의 지평을 열게 됩니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2017.06.30 http://joohyeon.com/253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 2017.07.05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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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Posted at 2017. 7. 6. 20:41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수렴논쟁 (convergence controversy)

- 현대 경제성장이론 발전과정 속 중요한 변곡점


이번글은 현대 경제성장이론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인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글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에서 살펴봤듯이, 솔로우 모형은 언젠가 모든 국가의 생활수준과 성장률이 같아지는 '수렴현상'(convergence)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형의 예측과는 달리, 현실에서 수렴은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유한 국가는 여전히 부유하며, 가난한 국가는 여전히 가난합니다. 몇몇의 국가만이 가난에서 탈출하여 경제성장에 성공했을 뿐이죠.


이러한 "국가간 생활수준 및 성장률의 격차를 솔로우 모형이 올바로 설명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형태의 모형이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하나"를 두고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수렴논쟁' 이라고 하며, 이 과정에서 솔로우 모형을 대체하는 여러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이번글을 포함하여 앞으로 3편의 글을 통해 '수렴논쟁'을 살펴보며 현대 경제성장이론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알아봅시다. 




※ 솔로우 모형의 성과

- 자본축적을 통한 동아시아 경제성장, 

그리고 선진국 내에서 관찰된 수렴현상


지난 3편의 글은 '솔로우 모형의 의미[각주:1]' · '현실을 설명하는 솔로우 모형'[각주:2] · '미흡한 점이 드러난 솔로우 모형'[각주:3] 등의 주제로 솔로우 모형의 성과와 한계를 다루었습니다. 다시 한번 내용을 복습해 봅시다.


솔로우 모형이 강조했던 것은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 이었습니다. 여기서 자본은 기계 · 공장설비 등의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의미했죠. 물적자본을 많이 가진 국가일수록 당연히 생산량도 많게 됩니다. 


하지만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이 영원히 지속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자본을 축적해 나갈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체감(diminishing)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솔로우 모형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외생적인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970~1980년대 동아시아 네 나라, 한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은 솔로우 모형이 현실 속 경제성장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 네 나라는 자본 · 노동 등 요소투입을 급격히 증가시키면서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진보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동반되지 않은채, 요소축적에만 의존했던 성장은 결국 한계를 맞게 됩니다. 


즉, 동아시아의 사례는 '생활수준(level) 향상을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중요,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growth)을 위해서는 기술진보가 필요' 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드러내주었습니다.


  • Baumol(1986)
  • X축은 1950년 당시 1인당 GDP 수준, Y축은 1950~1980년 연간 성장률
  • 1인당 GDP가 낮은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하는지 여부를 관찰하려고 하였다
  • 큰 5각형 모형은 선진국 내부에서 수렴현상이 관찰됨을 보여주고 있다
  • 그러나 전세계를 대상으로 할 경우 수렴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처럼 솔로우 모형이 현실을 잘 설명해줄 수 있었던 이유는 '체감하는 생산함수''외생적인 기술진보' 라는 가정 덕분이었습니다. 


두 가지 가정은 또 다른 현실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바로 '수렴현상'(convergence) 입니다.


만약 자본을 축적해 갈수록 성장률이 점점 하락한다면, 만약 기술수준이 외생적으로 주어진 값으로 어디서나 똑같다면, 언젠가 전세계 생활수준과 성장률은 동일해질 수 있습니다. 가난한 국가는 더 빠르게 성장하고, 부유한 국가는 더 느리게 성장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똑같은 기술진보율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William Baumol)의 연구[각주:4]는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이 일부 그룹 내에서 존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선진국 중 후발산업국가인 일본은 미국 · 영국에 비해 더 빠르게 성장했고, 결국 동등한 수준의 GDP를 가지게 되었죠. 


하지만 그의 연구는 다른 그룹 내에서는 수렴현상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도 보여주었습니다. 저개발국으로 이루어진 집단 내에서는 생활수준이 수렴하지도 않았으며, 생활수준과 성장률 간 음(-)의 상관관계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보몰은 "수렴그룹(convergence club)이 따로 있는 것 아닐까?" 라는 의문을 던졌고, 후에 경제학자들은 '서로 다른 자신만의 정상상태'(own steady state) 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국가별로 저축율 · 인구증가율이 다르기 때문에 정상상태도 상이하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국가의 생활수준이 동일해지거나, 가난한 국가가 무조건 더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다만, '개별 국가들은 각자의 정상상태에 맞는 생활수준으로 수렴하며', '각자의 정상상태에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 한다는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이 나타날 뿐이었죠.




※ 솔로우 모형의 한계

- 수렴현상의 부재,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이렇게 솔로우 모형은 현실에 적합한 것처럼 보입니다. 자본축적의 힘도 보여주었으며, 선진국 내의 수렴현상도 설명해 냈으며, 일부 국가 내에서 발견되지 않는 수렴현상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추가설명을 해주었죠.


하지만 다른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솔로우 모형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정말로 솔로우 모형이 수렴현상의 부재를 올바로 설명하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은 대표적인 학자들이 바로 폴 로머(Paul Romer)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였습니다. 이들은 크게 3가지 점에서 솔로우 모형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저개발국의 성장률이 OECD 소속 국가들 보다 낮다


: 이는 수렴현상을 소개한 이전글[각주:5]과 앞서도 다루었던 내용입니다. 윌리엄 보몰은 '수렴현상' 연구에서 선진국 내에서는 수렴현상이 나타나지만, 저개발국까지 샘플을 넓힐 경우 수렴현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때, 폴 로머와 로버트 루카스는 '선진국내 수렴현상 존재'보다는 '전체적인 수렴현상 부재'에 더 주목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자신만의 정상상태' 라는 개념으로 수렴현상 부재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로머와 루카스는 "처음에 부유했던 국가가 계속해서 빠르게 성장해 나가는 거 아닐까?" 라는 물음을 던졌죠.  



 시대별 주도국(leader)의 성장률이 점차 증가했다


  • 출처 : Romer(1986)


: 이러한 물음을 던진 이유는 시대별 주도국(leader)의 성장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에 따르면,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높으며, 정상상태에 가까울수록 성장률이 점점 하락합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시대별 주도국'(leader)의 성장률이 시대가 지날수록 높아져만 갔습니다. 1700년대 네덜란드 -0.07% · 1800년대 초 영국 0.5% · 1800년대 후반 영국 1.4% · 1900년대 미국 2.3% 입니다. 또한, 1900년대 미국의 성장률을 연도별로 쪼개보면, 최근 년도에 가까울수록 성장률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도국의 성장률이 시대가 지날수록 증가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후발국가의 성장률이 증가하는 것은 '선진국으로부터 좋은 기술을 이전받아서' 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 상에서 모든 국가의 기술수준이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주도국은 첨단 기술을 만드는 최전선(frontier of technology)이지, 다른 국가로부터 이전받는 곳이 아닙니다. 


"주도국 내에서 스스로 기술혁신이 일어나서 성장률이 높아졌을수도 있지 않느냐?" 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솔로우 모형은 더 궁색합니다. 왜냐하면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를 그저 '외생적으로 주어졌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어떻게 기술진보가 이루어지느냐'의 물음에 답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국가간 소득격차가 모형이 예측한 것보다 크다


솔로우 모형에 따르면[각주:6], 어떤 국가가 잘 사는 이유는 높은 저축율 · 낮은 인구증가율 등에 힘입어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국가가 못 사는 이유는 낮은 저축율 · 높은 인구증가율 때문에 1인당 자본을 적게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본 블로그에서는 그저 말로써 설명했지만, 실제 솔로우 모형은 콥-더글러스 생산함수를 이용하여 정교하게 수식화 하였습니다. 여기에 저축율과 인구증가율을 대입하면 (수식상 마땅히 그래야 할) 생활수준 및 성장률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이때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면, 저축과 인구증가율이 소득격차에 끼치는 영향력이 솔로우 모형의 예측보다 큽니다


예를 들어, 당시 필리핀은 미국에 비해 1인당 소득이 10%에 불과했습니다. 솔로우 모형의 수식에 따르면, 미국의 저축률이 30배는 높아야 이처럼 큰 소득수준 차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미국의 저축률은 그저 2배 더 많았을 뿐이죠. 즉, 조금의 저축률 차이도 큰 소득격차를 초래합니다.

 


솔로우 모형이 '저축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이유는 '생산함수가 체감'(diminishing)하기 때문입니다. 자본량이 축적될수록(=저축을 할수록) 생산량 증가분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소득격차 설명에 있어 저축의 영향력이 크지 않습니다. 


만약 생산함수가 체감하지 않았다면, 자본량이 증가할수록 생산량 증가분도 계속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로인해, 굳이 저축율 차이가 크지 않더라도, 현재 축적된 자본량에 따라서 국가간 생산량이 크게 차이 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과 필리핀 간의 조그마한 저축률 차이가 큰 소득격차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산함수가 체감한다는 솔로우 모형의 가정을 수정해야 합니다.




※ 솔로우 모형, 무엇이 문제였을까?

- '체감하는 생산함수' 및 '외생적인 기술진보' 가정에서 벗어나자

- '체증하는 생산함수'와 '내생적인 기술진보'의 도입


폴 로머와 로버트 루카스가 지적한 3가지 사항-수렴현상의 부재-을 올바르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 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 및 '외생적인 기술진보'를 폐기해야 합니다.


만약 자본량이 증가할수록 생산량 증가분도 계속 늘어난다면, 다르게 말해 생산함수가 체증(increasing marginal)한다면 수렴현상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부유한 국가는 계속 부유하고 가난한 국가는 계속 가난한 현실에 부합합니다. 또한,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의 저축율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기술진보율이 국가별로 차이가 난다면, 주도국의 성장률이 시대가 흐를수록 증가하는 현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주도국 내의 어떠한 요인이 내생적(endogenous)으로 기술진보를 이끌어서 국가간 성장률 격차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폴 로머와 로버트 루카스가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지식'(knowledge)'인적자본'(human capital) 입니다. 


이들은 개별 경제주체의 활동에 의해 지식과 인적자본이 내생적으로 축적되며(endogenous), 그 결과 생산량이 (체감하지 않고) 선형적으로 증가(linearity)하거나 체증(increasing marginal)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이 둘의 주장을 알아보며, 솔로우 모형을 대체하는 이론을 생각해 봅시다.




※ 폴 로머, 지식이 증가할수록 생산량은 체증한다

- 개별기업의 연구분야 투자로 창출되는 지식(knowledge)

- 지식의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식전파'(knowledge spillover) 



  • 폴 로머의 1986년 논문 표지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는 1986년 논문 <체증현상과 장기성장>(Increasing Returns and Long-run Growth)을 통해 현대 경제성장이론의 방향을 돌려놓았습니다. 

(사족 : 그는 이후에도 1990년 논문[각주:7]을 통해, 新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을 내놓습니다. 앞으로 이를 살펴볼 계획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수렴현상 부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솔로우 모형 속 핵심가정을 폐기해야 합니다.


로머는 논문에서 "체감하는 생산함수라는 일반적인 가정에서의 탈피"(departure from the usual assumption of diminishing returns) · "미래를 내다보고 이윤극대화를 노리는 경제주체에 의한 지식축적"(accumulation of knowledge by forward-looking, profit maximizing agents) 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면서, 과감히 솔로우 모형에서 탈피합니다.



그는 체감하는 생산함수 대신 체증하는 함수(increasing marginal productivity)를 도입합니다. 단순한 증가함수(increasing)는 자본량이 늘어날수록 생산량도 증가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체증하는 함수는 자본량이 늘어날수록 생산량 증가'폭'이 증가합니다(increasing marginal). 


윗 그림에서 볼 수 있다시피 단순한 우상향하는 선형함수가 아닌 아래로 볼록한(convex) 모양입니다. 이 경우 자본량이 늘어날수록 생산량은 한계가 없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without bound).


그렇다면 로머는 왜 이런 모양의 함수를 생각했을까요? 


그는 로버트 솔로우가 말한 '자본'이 단순한 '물적자본'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지식'(knowledge) 또한 자본의 또다른 형태이며, 이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지식이란 생산요소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 입니다. 단순한 '요소투입 증가'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죠.


이때 지식이 지닌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폴 로머는 개별기업이 연구활동(research)을 통해 창출해 낸 '지식'은 비밀로 감출 수 없으며 특허로 완전히 보호될 수도 없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외부성(natural externality)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한 기업의 지식은 다른 곳으로도 전파되고(knowledge spillover), 개별기업은 (자신들이 만들어내지 않은) 전체 지식에 의해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됩니다.


지식이 외부성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곳으로 전파된다는 사실은 로머의 모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기업이 자신들이 창출해낸 지식에만 의존한다면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연구활동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활동 초기에는 새로운 결과물을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연구가 진행될수록 이전과 다른 것을 내놓기 힘듭니다. 즉, 연구활동과 지식은 체감하는 관계 입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창출된 지식을 기업이 이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더 이상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데 한계에 봉착한 기업일지라도, 다른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을 이용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생산량은 한계가 없이 계속 증가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지식이 지닌 외부성'과 '지식전파' 덕분에 연구분야 투자에 대한 이익을 공통적으로 누리게 됩니다(benefit from collusive agreement).




※ 로버트 루카스, 인적자본은 어떻게 축적되나

- 교육(schooling)을 통한 인적자본 축적

- 생산에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을 통한 인적자본 축적



  • 로버트 루카스 1988년 논문 표지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또한 국가별 성장률 차이를 솔로우 모형이 올바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수렴현상은 없다고 분석했죠. 따라서, 그는 수렴현상 부재를 설명하기 위해 '인적자본'(human capital)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폴 로머와 마찬가지로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더욱 주목했던 건 '인적자본 축적 방식'(human capital accumulation) 입니다. 인적자본 축적은 체감하지 않으며, 인적자본 수준은 선형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합니다. 이로인해 생산량도 꾸준히 늘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솔로우 모형이 기술진보를 그저 '외생적'으로 바라보는 점에 대해서도 심한 불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론과 모형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개개인의 결정과 그 결정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individual decision to acquire knowledge, and about the consequences of these decisions for productivity)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따라서, 로버트 루카스는 1988년 논문 <경제발전의 메커니즘>(On the mechanics of economic development)을 통해, 인적자본 축적 방식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 교육(schooling)을 통한 인적자본 축적


: 루카스가 제시하는 첫번째 방식은 바로 '교육(schooling)을 통한 인적자본 축적' 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개개인이 현재 시점에 시간을 할당하는 방식이 생산성과 미래 인적자본 축적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the way an individual allocates his time over various activities in the current period affect his productivity, or his human capital level, in future periods.) 


한 개인은 u 시간만큼을 현재의 생산에 쓰고, 나머지인 1-u 시간을 인적자본 축적에 씁니다. 이 1-u 시간이 미래의 인적자본 증가율과 연관이 있죠. 


이때 루카스는 현재 인적자본 수준이 어떠하든지, 개인이 인적자본 축적에 쓰는 시간만큼 선형적(linearity)으로 미래의 인적자본 수준이 증가한다고 주장합니다. 솔로우 모형과는 달리, 현재 많은 인적자본을 축적해 놓았다고 해서 추가적인 인적자본 수준 증가가 힘들지 않습니다.


이는 어찌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인적자본 축적은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10대때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것과 나이가 들어 공부하는 것은 다릅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인적자본 수준을 끌어올리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인적자본 축적은 사회적 활동이다(human capital accumulation is a social activity)"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개인의 인적자본 축적은 그 사람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내부효과(internal effect)도 가지지만,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외부효과(external effect)도 갖습니다. 게다가 인적자본 축적을 처음 시도하는 아이는 맨땅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가족구성원의 인적자본 수준에 비례한 양을 가진채로 시작하게 되죠. 

(initial level each new member begins with is proportional to (not equal to!) the level already attained by older members of the family.)


즉, 개인의 인적자본 축적은 사회 전체의 수준을 높이게 되며, 이는 후대에 전승됩니다. 따라서, 인적자본은 체감하지 않으며 계속 증가하게 됩니다.



▶ 직무과정(on-the-job-training) 및 생산에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를 통한 인적자본 축적


  • 왼쪽 : 1938년 삼성상회, 오른쪽 : 2017년 삼성전자 평택공장


: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또 다른 방식은 직무과정(on-the-job-training)생산에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 입니다. 개인은 교육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일을 해나가면서 인적자본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들 실제 직장생활 경험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회사에 들어가면 뭐가 뭔지 잘 모릅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긴 했는데 글자로만 이해했던 일을 현실에 적용시키려니 힘이 들죠. 그리고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많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많이 해메던 신입사원도 이제 연차가 쌓일수록 일이 능숙해집니다. 수십년의 경력을 가진 분의 숙련도는 두말할 필요가 없죠.


개인 뿐 아니라 기업이나 산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음 신규사업에 진출한 기업은 우왕좌왕 헤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사업이 익숙해지고, 거기서 얻은 생산경험을 통해 또 다른 사업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발전 시기 현대 · 삼성 등이 그 예시입니다. 이들 기업은 처음에는 쌀 · 음식료를 판매한 조그마한 소매상부터 시작하여 자동차 정비 · 건설업 · 가전제품 판매를 거쳐 조선 · 자동차 · 반도체 제조까지 산업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이때, 직무과정 및 생산에 학습효과를 통한 인적자본 수준도 후대에 전승됩니다. 오래된 상품에 특화된 인적자본은 새로운 상품을 만들때 물려지게(inherited) 됩니다. 


따라서, 경제전체의 인적자본 수준은 체감하지 않고 선형적으로 계속 증가하게 됩니다.    




※ 로머와 루카스 연구 정리

- 내생적 성장이론의 탄생


▶ 지식과 인적자본의 외부성

▶ 선형적 혹은 체증적으로 증가하는 생산함수

▶ 내생적으로 결정되는 기술진보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로머와 루카스의 연구는 '솔로우 모형을 넘어선 성장이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 핵심 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와 '외생적인 기술진보'에서 벗어남으로써 성장이론의 새 틀을 만들었죠.


특히, 개인 및 기업의 행위로 지식 · 인적자본이 축적되고 기술수준이 진보한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 이라는 명칭을 얻게 됩니다.


(사족 : 폴 로머는 1990년 또 다른 논문을 통해 '내생적 성장이론'을 또 한번 발전시킵니다. 추후 다른글을 통해 이를 알아볼 겁니다.)




※ 로머와 루카스 연구가 전달해주는 함의


자, 이제 로머와 루카스의 연구에서 어떠한 함의(implication)를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봅시다. 



내생적 성장이론의 등장

- '기술'을 둘러싼 여러 연구주제들


: 이들의 연구는 '내생적 성장이론'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충분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경제성장을 둘러싼 학자들의 연구주제는 더 넓어졌습니다. 


이전에는 외생적으로 주어졌던 기술이 무엇이며(technology), 국가간 기술이 어떻게 전파되며(diffusion), 서로 다른 기술수준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level of technology), 지식과 인적자본이 무엇인지, R&D와 기술발전의 관계 등등 기술진보와 관련한 조금 더 세세한 주제를 살피게 되었죠.



수렴현상은 없다


: 로머와 루카스는 수렴현상 가능성을 전면 부인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현실에서 수렴현상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수렴현상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모형에서 생산량은 자본량에 따라 선형적으로 증가하거나 체증하기 때문에, 한 국가는 계속 빠르게 성장하며 가난한 국가는 비교적 늦게 성장합니다.  



국가간 기술격차(technology gap)이 성장률 격차를 초래한다


: 국가별로 성장률 격차가 초래하는 이유를 두고 솔로우 모형과 로머-루카스 모형은 서로 다른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성장률 격차의 원인을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cis)에서 찾고 있습니다. 즉, 자본을 많이 축적하지 않은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그 이유는 이제 막 자본축적을 시작한 국가일수록 생산량 체감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양의 자본을 축적한 국가는 체감현상으로 인해 느리게 성장합니다.


반면, 로머-루카스 모형은 '기술격차'(technology)에 주목합니다. 많은 인적자본 및 지식을 보유한 국가가 기술을 내생적으로 진보시켜 빠른 성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인적자본 및 지식이 적은 가난한 국가는 계속 느리게 성장하게 됩니다.   


정부개입은 성장효과(growth effect)를 낳을 수 있다


: 로머와 루카스가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지식'과 '인적자본' 이었습니다. 경제발전 초기에 지식과 인적자본이 많이 축적된 국가일수록 계속해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식과 인적자본이 이런 효과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 생산량이 체감하지 않아 수렴현상이 없다. 둘째, 지식과 인적자본이 외부성을 초래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둘째 요인으로 인해 첫번째 현상이 나타나고, 그 결과 국가간 영구적인 성장률 격차가 나올 수 있습니다. 지식과 인적자본의 외부성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지식전파'(knowledge spillover)가 발생하며 후세대로 전승(inherited) 되면서, 생산량 체증효과가 나타납니다. 이제 수렴은 없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솔로우 모형과는 달리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증대시킵니다. 

기존 솔로우 모형[각주:8]에서 '정부정책 무용론'이 제기됐던 이유는 정부의 저축률 증가 및 인구증가율 억제 정책이 성장효과(growth effect) 없이 수준효과(level)만 냈기 때문입니다. 체감하는 생산함수 하에서는 어떠한 정책을 쓰든간에 결국 성장률은 0%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로머와 루카스 모형에서는 다릅니다. 

지식과 인적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계속 빠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개입으로 지식과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건 '성장효과'(growth effect)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R&D 투자 세제지원, 교육 서비스 증가 등등의 정부정책이 유용합니다.

게다가 지식 및 인적자본이 초래하는 '외부성' 또한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지지합니다. 다른 기업이 만들어낸 지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업들에게 '무임승차'(free-ride)의 유인을 만들어 냅니다. 굳이 내가 연구분야에 투자 하지 않더라도, 다른 기업이 투자한 공로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무임승차 하려는 기업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구분야 투자량은 사회적 최적상태에 비해 적어집니다. 정부가 시장개입을 통해 외부성이 초래하는 비효율성을 제거한다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자본, 지식 및 인적자본
- 자본비중 알파(α)에 대하여
- 로머와 루카스는 자본비중이 100% 라고 보고 있음


  • 미국 내 자본비중 추이
  • 2008 금융위기 이후를 제외하면, 1950년부터 2008년까지 줄곧 30% 이내를 유지해오고 있다

: 로머와 루카스는 '물적자본'에 한정되어 있던 자본의 개념을 '지식' 및 '인적자본'에까지 확장 시켰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수렴논쟁을 둘러싼 논문을 직접 읽으시는 분들은 '자본비중 알파(α)'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렴현상에 대한 이론적인 논쟁은 바로 "자본비중 알파(α) 값의 크기가 어느정도 되느냐?" 입니다.

자본비중(capital share) 이란 일반적으로 경제 전체 총 소득 중 자본가가 가지는 '자본소득'을 의미합니다. 이와 대립되는 말로 '노동소득'이 있죠. 

만약 총생산량(혹은 총소득) 중 자본가가 더 많은 비중을 가질 수 있다면 추가적인 투자량을 더 늘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축적된 자본량은 더 증가하게 되고, 생산량 증가 → 자본가 소득 증가 → 투자 더욱 증가 → 자본량 더욱 증가 → 생산량 더욱 증가의 선순환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자본비중 확대는 생산량의 체감정도도 완화시켜 줍니다. 자본비중이 높을수록 자본량 한 단위의 증가가 비교적 더 많은 생산량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솔로우 모형은 자본비중이 33%, 노동비중이 66%로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 국가의 자본소득 분배율(노동소득 분배율) 통계를 살펴보면 이 정도 값이 나오죠.

하지만 로머와 루카스는 자본의 개념을 물적자본 뿐 아니라 지식 및 인적자본에 까지 확장하여, 자본비중을 100%로 대폭 높였습니다. 지식 및 인적자본은 사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소득으로 잡히지만, 이를 자본소득으로 분류하면 자본비중은 기존 값에 비해 커집니다.

그 결과, 자본비중이 100%인 로머와 루카스 모형 하에서는 체감현상이 사라지게 되었고 수렴현상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 정말로 수렴현상은 아예 없는 것일까?

이번글에서 소개한 로머와 루카스는 "수렴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수렴현상이 아예 없는 것일까요?

분명 윌리엄 보몰은 선진국 그룹 내부에서는 수렴현상이 존재한다고 확인했습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는 수렴현상을 발견할 수 없지만, 어쨌든 선진국끼리는 수렴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자본비중 100%와 체증현상을 가정하는 로머-루카스 모형에도 무언가 결점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에 대하여,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Robert Barro)와 하비에르 살라이마틴(Xavier Sala-I-Martin)은 "수렴현상 느리지만 존재한다." 라고 말하며, 로머-루카스 모형의 결점을 지적합니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7.02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2017.06.29 http://joohyeon.com/252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2017.06.30 http://joohyeon.com/253 [본문으로]
  4.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2017.06.30 http://joohyeon.com/253 [본문으로]
  5.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2017.06.30 http://joohyeon.com/253 [본문으로]
  6.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7. P.Romer. 1990. 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본문으로]
  8.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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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Posted at 2017. 6. 30. 08:45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현실을 설명해내는 솔로우 모형

앞서 두 편의 글을 통해 솔로우 모형의 의미[각주:1]현실세계 적용 가능성[각주:2]을 살펴봤습니다. 이론은 그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이전 내용을 잠깐 다시 복습해 보도록 합시다.

솔로우 모형은 생활수준 향상을 꾀하려면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1인당 생산 수준(level)도 높아집니다. 

이때, 이제 막 자본축적을 시작한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이 한 단위 더 투입될 때마다, 생산량 증가분은 체감(diminishing)하기 때문이죠. 아직 정상상태(steady state)에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일수록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본을 축적해 나갈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줄어들고 따라서 성장률도 점점 하락합니다. 결국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에 도달하면 성장률은 0%에 머무르게 됩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을 위해서는 자본축적 혹은 요소투입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솔로우 모형은 '외생적인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동반되어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알려줍니다.

미국경제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솔로우 모형은 1980~1990년대 동아시아 경제성장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한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 등 동아시아 4개국은 1980년대부터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성장기적'(growth miracle)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이 성장기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은 (솔로우 모형이 강조했던) '요소축적'(factor accumulation) 덕분이었습니다. 경제활동 참가 증대를 통한 노동투입 증가, GDP 대비 투자비중을 늘린 자본투입 증가 등에 힘입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생산성 향상 없이 요소축적에만 의존한 경제구조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우려를 키웠습니다. 결국 동아시아 4개국은 성장률이 점점 저하되다가 1997 외환위기를 맞게 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기술진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줬습니다.

(주 :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학문적으로 잘못된 설명입니다. 
솔로우 모형은 단순한 성장률의 점진적 저하를 말할 뿐 입니다. 반면, '위기'(crisis) 라는 개념은 잠재성장률이 영구히 손상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1997 외환위기[각주:3]는 낮은 생산성 등이 초래한 기초여건(fundamental)의 문제가 아니라, 고정환율제도 · 무리한 금융시장개방 등의 단점이 결합된 유동성위기(liquidity crisis) 였을 뿐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소축적에만 의존하는 모습이 우려를 자아냈던 상황에서 동아시아가 결국 위기를 맞게 되자,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죠.)



※ 이번글에서 다룰 내용

-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


앞서 두 편의 글은 '자본축적의 역할'과 '외생적인 기술진보의 필요성'이 현실에서 나타난 모습을 다루었습니다. 이번글에서는 솔로우 모형이 현실을 설명해내는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볼 겁니다.


솔로우 모형에서 중요한 가정 2가지는 바로,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전세계에 동일하게 주어진 기술진보율'(=기술은 공공재, public good)입니다.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똑같은 이유는, 한 국가에서 개발된 뛰어난 기술이 다른 나라에 빠르게 확산(diffusion)되기 때문입니다. 즉, 기술은 '모든'(비배제성) 국가가 '동일'(비경합성)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 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통해 현실경제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바로, '수렴현상'(convergence)'성장률 격차의 패턴'(transitional dynamics)  입니다.

 


수렴현상 (convergence) 

- 1인당 GDP(level) 및 경제성장률(growth)의 수렴


: 수렴현상이란 말 그대로 동일한 지점으로 모여든다는 의미입니다. 솔로우 모형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수렴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는 수준이 같아지는 것(=level이 같아짐), 또 다른 하나는 성장률이 같아지는 것(=growth가 같아짐) 입니다. 쉽게 말해, 모든 국가의 1인당 생산량(per capita GDP)과 경제성장률(growth rate)이 동일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계속 반복하지만) 자본투입이 늘어날수록 생산량 증가분이 체감하여 결국 정상상태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을 시작해온 국가들은 이미 정상상태에 가까워졌을 겁니다. 이제 막 시작한 국가들은 정상상태를 향해 오고 있죠. 그럼 언젠가는 모든 국가가 '하나의 정상상태'에서 멈추어서 1인당 자본량 · 생산량이 모두 똑같아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겁니다.(=level이 같아짐)


게다가, 정상상태에서는 생산량이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 만큼 증가합니다. 솔로우 모형은 기술이 공공재 이기 때문에, 전세계 어디에서든 기술진보율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습니다. 따라서, 언젠가는 '하나의 정상상태' 위에서, 세계 모든 국가의 성장률이 같아지는 날도 올 수 있습니다.(=growth가 같아짐)



성장률 격차의 패턴 (transitional dynamics) 

-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높은 성장률


: 그럼 아직 정상상태에 도달하기 이전이라면 국가별로 성장률이 각기 다르지 않을까요? 네. 다릅니다. 하지만 일정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글의 맨앞서 언급했듯이, 이제 막 자본축적을 시작한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 합니다. 다르게 말해,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빠른 패턴'이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 또한 자본투입이 늘어날수록 생산량 증가분이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술이 공공재 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술이 공공재가 아니라면 즉 한 국가가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자본축적 정도와 상관없이 더 나은 기술을 가진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빠를 겁니다.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생산량을 더 빠르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든 국가의 기술수준이 동일하기 때문에 국가간 성장률 격차는 오직 '자본축적 정도' 및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가 결정 짓습니다.


이때, 아직 정상상태에 도달하지 못한채, 정상상태로 향해가는 모습을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ics) 라고 합니다. 따라서, 솔로우 모형은 성장률 격차에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는 이유로 '전이경로'를 지목합니다.


그럼 정말로 솔로우 모형이 예측하는 것과 같은 수렴현상 및 성장률 차이의 패턴이 나타날까요? 만약 나타나지 않는다면 모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이번글에서 이를 알아봅시다.




※ 윌리엄 보몰이 발견한 '수렴현상'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학계 내에서는 '경제성장이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비롯된 급격한 경기변동(fluctuation)의 시대가 끝나고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상태가 운영됐기 때문이죠. 또한, 경제학에 합리적기대 가설이 등장하면서, "경기변동을 애써 제어하는 것보다는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경제성장이론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지핀 논문이 1986년에 등장했습니다. 바로,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William Baumol)이 쓴 <생산성 성장, 수렴, 그리고 후생 : 장기통계가 보여주는 것>(<Productivity Growth, Convergence, and Welfare: What the Long-Run Data Show>) 입니다. 


윌리엄 보몰은 이 논문을 통해 '솔로우 모형이 예측하는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이 나타나는 지를 탐구했습니다. 결국 이 논문은 '수렴현상이 나타나며, 성장률 차이에는 일정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더 생각해봐야할 흥미로운 사실도 제시하였고, 경제학계에서는 이를 둘러싼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이제 이 논문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살펴봅시다.


  • Baumol(1986)
  • 1870~1980년 사이, 국가별 근로시간당 GDP 추세
  • 미국,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일본, 호주


윗 그림은 1870~1980년 사이 국가별 근로시간당 GDP(per work-hour GDP)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 : 이전글[각주:5]에서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 output)은 '생산성 수준'(productivity)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는데요. 근로시간당 GDP 또한 생산성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1870년(X축 앞부분)에 큰 격차를 보였던 선들이 1980년(X축 뒷부분)에는 하나로 모여가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30년전 논문이라 그래프가 오늘날처럼 예쁘지 않죠; 


여기에 나오는 국가는 영국,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 입니다. 국가별로 구체적인 수치를 살펴보겠습니다. 1870년 대비 1980년까지, 국가별 생산성은 각각 영국(585%), 미국(1,080%), 이탈리아(1,225%), 일본(2,480%)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수렴현상'과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확인했습니다. 


▶ 1870년에 국가별로 큰 격차를 보이던 생산성은 1980년 동등한 수준(level)까지 수렴(convergence) 했습니다. 


▶ 또한, 1870년 당시 이미 강대국이었던 영국에 비해, 그때부터 발전을 시작한 일본의 생산성 증가율이 더 높습니다. 즉,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가 먼 일본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패턴이 나왔습니다. 


▶ 여기에더해, 이후 이들 국가는 비슷한 성장률을 기록하며 'growth의 수렴'도 보여줍니다.


  • Baumol(1986)
  • X축은 1870년의 근로시간당 GDP 수준, Y축은 1870~1979년의 연간 성장률


윗 그림을 보면,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좀 더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X축은 1870년의 생산성 수준, Y축은 성장률을 나타냅니다.


한 눈에 보면 알 수 있다시피, 1870년에 생산성 수준이 낮았던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높은 우하향 하는 상관관계가 보입니다. 


즉,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더 가파르게 성장합니다.




※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이 알려주는 바는?

- 솔로우 모형은 또다시 현실을 올바로 설명


윌리엄 보몰은 위에 나타난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이 두 가지 함의를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번째로 오직 하나의 변수(only one variable), 즉, '1870년 당시의 생산성 수준'이 성장률을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 국가가 시장경제를 가졌는지 · 투자율이 높은지 · 어떠한 정책을 썼는지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떠한 행위를 했는지와는 상관없이, 국가들은 그저 이미 운명처럼 정해진 위치로 향했습니다.(Whatever its behavior, that nation was apparently fated to land close to its predestined position in Figure 2.)


두번째로, 가장 경제성장 정도가 높았던 국가에서부터 다른 국가로 파급된 영향이 매우 컸다고 말합니다. 


주도국이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에 성공하고 투자를 단행하면, 이것이 다른 국가로 전달되어 생산성 성장을 공유(sharing of productivity growth) 했기 때문입니다. 뒤에 위치한 국가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모방하여 급격한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모방은 큰 성과를 냈으며, 주도국의 직접투자 및 다국적기업의 기술이전은 '수렴현상'(convergence)을 만들어 냈습니다. 


윌리엄 보몰의 이같은 분석은 솔로우 모형이 현실에 부합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에서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내는 건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 였습니다. 보몰의 연구는 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술은 공공재 이기 때문에, 혁신을 주도하는 국가라고 해서 더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기술이 전파되어 성장률 격차만 좁혀집니다. 성장률 차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변수'인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만 중요할 뿐입니다.


또한, 솔로우 모형이 예측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국가들은 결국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1870년에는 큰 격차를 보이던 영국과 일본은 1980년 들어 결국 동등한 수준의 생산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다시 한번 현실을 올바로 설명해 냈습니다.




※  정말.... 그럴까?


그런데... 정말로 솔로우 모형은 현실을 올바로 설명한 것일까요? 


윌리엄 보몰은 '수렴현상'의 예시로 영국 · 미국 · 일본 등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에도 여전히 미국의 1인당 GDP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저성장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저개발국도 많습니다.


윌리엄 보몰은 샘플이 된 국가를 좀 더 늘려서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살펴봤습니다. 앞서의 예시는 이미 산업화에 성공한 16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범위를 넓혀서 72개 국가를 대상으로 하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 Baumol(1986). 샘플을 72개 국가로 넓힘
  • X축은 1950년 당시 1인당 GDP 수준, Y축은 1950~1980년 연간 성장률


윗 그림은 72개 국가의 경제성장 수준과 성장률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X축은 1950년 1인당 GDP 수준, Y축은 1950~1980년 사이의 연간 성장률을 나타냅니다.


앞서의 그림은 '우하향하는 관계', 즉 과거 수준이 낮았을수록 성장률이 높았던 관계가 명확히 드러났지만, 윗 그림은 비교적 불명확 하다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윗 그림에서 넓은 5각형 모향으로 연결된 선은 미국 · 영국 · 일본 등이 들어간 기존 16개 국가입니다. 좁은 5각형 모양은 소련 · 중국 등 계획경제 국가들이죠. 그리고 나머지 국가들이 원점 근처에 몰려있습니다.         


자유시장 경제를 택하고 일찍 산업화에 성공한 16개 국가들 사이에서는 우하향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계획경제 국가들 내에서도 우하향이 드러나죠. 


하지만 나머지 국가들 내에서는 과거 GDP 수준과 성장률 간의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 국가들 내에서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본 윌리엄 보몰은 "수렴그룹(convergence club)이 따로 있는 것 아닐까?"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만약 일부 국가에서 기술을 모방할 능력이 없거나, 첨단 기술을 모방하더라도 이를 적용할 첨단 산업이 부재하거나, 교육 수준이 낮거나 등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수렴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일부 '수렴그룹 내부'에서만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죠.




※ 국가별로 정상상태가 다르다

- '조건부' 수렴의 개념


윌리엄 보몰은 1986년 논문에서 '수렴그룹이 따로 존재하는 이유' 혹은 '수렴현상이 전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좀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수렴현상'과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연구하였고, 여러가지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발전된 설명은 "국가별로 정상상태가 다를 수 있다"(different steady state) 였습니다. 


만약 가별로 저축률 · 인구증가율 · 감가상각률이 다르다면 당연히 정상상태도 서로 다를 겁니다. 이때, 여러 국가들은 서로 동일한 정상상태가 아닌 '자신만의 정상상태'(own steady state)를 가지게 됩니다.


한번 예를 들어보죠. A 국가가 1인당 자본 축적을 계속 진행한다면 자신만의 정상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의 정상상태는 다른 국가와는 다릅니다. A 국가는 1인당 자본량이 100일때가 정상상태이나, 저축율이 더 높은 B 국가는 1인당 자본량이 200일 때가 정상상태 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렴현상'과 '성장률 격차의 패턴'은 조금 다르게 나타날 겁니다.


앞서 배웠던 솔로우 모형[각주:6]과 이번글에서 전제로 했던 것은 '국가별로 동일한 정상상태' 였습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적은 저개발 국가일수록 당연히 성장률이 더 높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개발국의 1인당 자본량이 선진국의 정상상태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것이나, 저개발국의 정상상태에 이미 도달한 수치일 수도 있습니다. 앞선 예에서, A 국가는 B 국가에 비해 1인당 자본량이 적으나 이미 '자신만의 정상상태'에 도달한 것이기 때문에, 0%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적다고 해서 성장률이 높은 현상이 무조건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발전된 논의를 거쳐 '수렴현상'과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지칭하는 3가지 유형의 용어가 만들어 졌습니다.


시그마 수렴 (sigma-σ-convergence)


: 시그마 수렴이란 '국가간 1인당 생산량 격차가 점점 감소되는 현상'(a decline over time in the cross-sectional dispersion of per capita income or product.)을 지칭합니다. 우리가 사용했던 'level이 같아짐'을 의미하죠. 경제학을 배우셨던 분들에게는 '절대적 수렴'(absolute convergence)란 용어가 더 익숙할 겁니다.


베타 수렴 (beta-β-convergence)


 : 베타 수렴이란 '가난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poor economies growing faster than rich ones.)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계속 언급한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보여주죠. 그리고 가난한 국가가 경제성장에 성공해서 부유한 국가가 된다면, 결국 둘의 성장률은 같아지게 됩니다(growth가 같아짐).


조건부 베타 수렴 (conditional beta-β-convergence)


: 그런데 이때의 베타 수렴은 '조건부'(conditional) 입니다. 국가별로 서로 동일한 정상상태가 아닌 '자신만의 정상상태'(own steady state)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의 절대적인 값 보다는, '1인당 자본량이 각자 자신의 정상상태 보다 더 적은'(조건)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빠릅니다. 많은 분들에게는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란 용어가 더 익숙할 겁니다.




※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이 벌어지다


이번글을 통해 많은 개념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솔로우 모형의 중요한 두 가지 가정-체감하는 생산함수 · 기술은 공공재-는 수렴현상 및 성장률 격차의 패턴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는 동일한 지점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며,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낮다."


윌리엄 보몰의 연구에 따르면 솔로우 모형은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상 국가 범위를 넓혔을 때는 예측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수렴그룹'이 따로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죠. 


따라서, 이후 경제학자들은 '국가별로 서로 다른 정상상태' 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저개발 국가가 성장률이 낮은 요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인당 자본량이 절대적으로 적은 국가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정상상태에 이미 도달해 있다면 성장률이 낮다는 논리였죠. 


그런데 다른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것과 같은) 수렴현상의 부재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따라서, 크게 2가지 지점에서 솔로우 모형을 향한 반론이 제기되었죠. 바로 솔로우 모형의 핵심 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와 '공공재인 기술'에 대한 비판 이었습니다.



▶ 자본을 축적할수록 성장률이 하락할까? 

- '체감하는 생산함수'에 대한 비판


: 솔로우 모형은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 중 핵심 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요소축적에만 의존할 때의 문제점' · '지속성장을 위한 생산성 향상의 필요성' · '수렴현상' · '성장률 격차 패턴'을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제학자 폴 로머(Paul Romer)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 전제에 의문을 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부터 오늘날까지를 살펴보면, 당시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주도국의 경제성장률은 계속 상승"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 · 네덜란드가 세계를 지배했을때의 성장률보다 오늘날 미국의 성장률이 더 높습니다. 과거 주도국에 비해 미국의 자본축적량이 더 많을 텐데 말이죠. 또한, 이들이 세계의 주도국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최신 기술을 이전 받아 성장률을 끌어올렸을 가능성도 적습니다.


그렇다면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의 차이 때문일까요? 이 경우 솔로우 모형의 단점이 더 부각됩니다.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율이 '외생적'으로 주어졌다고 말할 뿐, 그것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폴 로머와 로버트 루카스는 "수렴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수렴현상 부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솔로우 모형의 핵심가정인 '체감하는 생산함수'를 포기하고. '체증하는 생산함수'(increasing)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경우, 자본축적량을 늘려나가더라도 성장률은 하락하지 않기 때문에, 수렴현상 부재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왜 수렴속도가 느릴까? 

-  '기술은 공공재'에 대한 비판


: 솔로우 모형에서 기술은 공공재 입니다. '모든' 국가가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한 후발국이 자본을 축적해 나갈수록 선진국과의 경제수준 및 성장률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또한, 공공재인 기술은 선진국에서 후발국가로 '빠르게' 이전되며 모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수준과 성장률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는 힘도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렴속도'(speed of convergence)는 그다지 빠르지 않습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Robert Barro)하비에르 살라이마틴(Xavier Sala-I-Martin)은 "수렴속도가 연간 2%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그 이유로 '느린 기술확산 속도'(gradual spread of technological improvement)를 꼽습니다.


만약 어떤 국가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능력이 떨어지거나, 기술이 애시당초 공공재가 아니거나 등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성장률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 '수렴논쟁'이 촉발한 솔로우 모형에 대한 비판과 대안


수렴현상 존재와 정도를 둘러싸고 진행된 '수렴논쟁'(convergence controversy)은 경제성장이론 발전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만약 '체증하는 생산함수' · '공공재가 아닌 기술' 라는 가정이 현실에 더 부합한다면, 솔로우 모형의 기반은 흔들리게 됩니다. 현실 설명력이 떨어지는 이론은 중요성이 낮으니깐요. 


이런 이유로 솔로우 모형을 옹호하기 위해,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는 "솔로우 모형을 조금 수정하면 수렴현상을 좀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솔로우 모형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지만, 다루고자 했던 질문들에 대해 옳은 답을 제공해준다"라고 말했죠.


앞으로 '수렴논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경제성장이론이 솔로우 모형을 넘어서(beyond Solow Model) 어떻게 더 발전되는지를 알아봅시다.



  1. 각주 [본문으로]
  2. 각주 [본문으로]
  3.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2015.12.29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4. 바로 얼마 전인 2017년 5월 4일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추모기사 - The Economist. William Baumol, a great economist, died on May 4th [본문으로]
  5. 각주 [본문으로]
  6. 각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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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Posted at 2017. 6. 29. 08:26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솔로우 모형 복습

'솔로우 모형'을 다룬 지난글[각주:1]을 통해, 국가별로 '생활수준 차이'(=level의 문제), '성장속도 차이'(=growth의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성장'(=engine of growth의 문제)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살펴보았죠. 

이번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솔로우 모형을 잠깐 복습해 봅시다.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것은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 이었습니다.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다른 나라는 못 사는 이유는 '자본축적 수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1인당 생산량이 커서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죠.   

국가별로 경제성장률이 다른 이유는 그 국가의 경제상태가 '전이경로에 있느냐, 정상상태에 있는가'(transitional dynamics)가 구분지었습니다. 자본이 많이 축적될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줄어드는 체감현상(diminishing)이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낸 근본원인 입니다.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을 해와서 이미 정상상태(steady state)에 다다른 국가는 성장률이 전보다 낮은 값을 기록하게 됐으며,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한 국가는 체감현상의 영향을 덜 받는 전이경로에 놓여있어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때, 체감현상은 "지속적인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을 달성하려면 자본축적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정상상태에 다다를수록 성장률이 하락하고 결국 0%가 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 '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의 성공과 좌절


솔로우 모형의 핵심을 복습했으니, 이제 이번글에서 다룰 내용에 대해 생각 해봅시다. 



'자본축적'을 강조하는 솔로우 모형은 현실을 설명하는가? 

-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 수학적으로 정교화된 이론[각주:2]일지라도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솔로우 모형은 '미국경제'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미국 이외의 나라에도 적용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글에서는 한국 · 싱가포르 ·대만 · 홍콩, 즉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의 경제성장 과정을 통해, '자본축적의 힘'을 알아볼 겁니다. 



자본축적과 기술진보, 무엇이 중요할까? 

- 기술진보 없는 자본축적, 결국...


:  생활수준(level)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growth)을 위해서는 '기술진보'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솔로우 모형은 자본축적에 중요성을 더 부여하고 있습니다. 기술진보에 대해서는 그저 '외생적으로 전세계에 똑같은 값이 주어졌다'고 가정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술진보 없는 경제성장은 결국 멈추게 될 것 이라고 말하고도 있습니다.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로도 기술진보 없는 자본축적은 경제성장률 하락을 불러올까요? 

이번글에서는 1990년대 당시 경제학자들이 동아시아를 바라보면서 가졌던 불안함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장회계식을 통해 솔로우 모형 이해하기


이번글 논의를 소개하기에 앞서, 내용이해를 위한 기본개념을 먼저 알아봅시다. 상당히 지루할 수 있지만.... 알면 좋습니다.


솔로우 모형이 말하는 아래 두 가지 문장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나타날까요?


● "자본축적을 늘릴수록 경제가 성장한다"

●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이 지속적인 성장을 만들어낸다" 


일반적으로 수식 사용은 경제학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이해를 쉽게 도와줄 겁니다.

 

 

 

솔로우 모형이 전달하고 하는 바는 "1인당 생산량 증가(=경제성장)는 1인당 자본축적과 기술진보로 구성되어 있다"로 바꿔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때, 자본축적이란 '자본이라는 요소를 생산과정에 투입한 것'(capital input) 입니다. 그리고 기술진보란 '주어진 요소를 가지고 좀 더 많이 생산케 하는 것, 즉 생산성 증가'(productivity gain) 입니다. 


따라서, '생산량 변화율 = 자본투입 증가율 + 생산성 증가율' 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위에 나타난 수식이 이를 보여줍니다.


(주 1 : 솔로우 모형은 '1인당'(per capita)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여기서의 생산량 및 자본투입량은 1인당 기준입니다.)


(주 2 : 자본투입 증가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전체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capital share)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자본투입 증가분에다 자본비중(α)을 가중평균 하는 형식으로 생산량 변화를 산출할 수 있습니다.)

 

 

1인당 생산량이 아닌 경제 전체의 생산량을 살펴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솔로우 모형은 '1인당'이 기준이었기 때문에 인구증가율이 높을수록 1인당 자본량 · 1인당 생산량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경제 전체 '총'(gross) 자본량 및 생산량은 인구가 많을수록 증가합니다. 쉽게 말해, 더 많은 사람이 있을수록 일을 하는 양도 많아지고, 결과적으로 생산량도 늘어나기 때문이죠.


이때, 인구가 많아지는 것을 '노동이라는 요소를 생산과정에 투입한 것'(labor input) 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총 생산량 변화율 = 노동투입 증가율 + 자본투입 증가율 + 생산성 증가율'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위의 수식이 이를 보여줍니다. 


(주 : 앞서 자본투입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동투입 증가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전체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labor share)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노동투입 · 자본투입 증가분에 각각의 비중을 가중평균 하는 형식으로 생산량 변화를 산출합니다.) 

 

이때, 투입된 자본량 · 노동량은 비교적 쉽게 수치를 구할 수 있습니다. 자본량은 '투자'라는 형식으로 GDP 산출 과정에서 얻어지고, 노동량은 '인구증가율'을 보면 됩니다. 


그런데 기술진보율, 즉 생산성 증가율은 산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산량을 투입된 자본량(노동량)으로 나누면 단순한 자본생산성(노동생산성)만 도출될 뿐입니다. 


자본생산성은 자본을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노동생산성도 근로자가 얼마나 많은 자본을 가졌는지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확한 생산성 측정을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의 영향을 함께 고려한' 값을 구해야 합니다. 이를 '총요소 생산성'(TFP, Total Factor Productivity) 혹은 '다요소 생산성'(MFP, Multi Factor Productivity) 라고 합니다.   


총요소 생산성을 산출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는 1인당 생산량(per capita ouput)과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 output)을 비교하여 대략적인 생산성 정도를 살펴보는 법 입니다.


말이 헷갈리기 쉬운데요... 


1인당(per capita)은 국민 전체를 모수로 산출한 값입니다. 보통 우리가 '1인당 GDP', '1인당 국민소득' 라고 말할 때 사용합니다. 이는 '국민 전체의 생활수준'(standards of living)을 보여줍니다.


근로자 1인당(per worker)은 실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근로자만을 모수로 산출한 값입니다. 생산과정에 참여한 사람이 만들어낸 생산량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는 '생산성'(productivity) 정도를 보여줍니다.


이미 오래전 경제성장을 달성하여 근로자 투입 증가분이 적은 선진국은 다른 국가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높은 값을 보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요소투입 보다는 생산성 증가의 힘이 더 큰 상황이죠.


반면, 이제 막 경제성장을 시작하여 근로자 투입이 늘어나고 있는 개발국가는 다른 국가에 비하여 (모수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낮은 값을 보입니다. 다르게 말해, 이들 국가는 현재 생산성 증가 보다는 요소투입에 의해 성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국가는


● '1인당 생산량'과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 간의 격차가 비교적 크다


'근로자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이미 요소투입을 끝낸 국가에 비하여) 비교적 느리다


이렇게 대략적인 비교를 통해 (정확한 값은 아니지만) 생산성 정도를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총생산량 변화분에서 자본 · 노동 투입 증가분을 제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총요소 생산성을 도출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값을 얻어내는 방식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총생산량 변화분은 '노동투입 증가분 + 자본투입 증가분 + 생산성 증가분'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비교적 구하기 쉬운 '노동투입 증가분 + 자본투입 증가분'을 총생산량 변화분에서 차감하고 나면 '생산성 증가분'이 구해집니다.


총요소 생산성의 정확한 값을 도출할 때는 두번째 방법을 많이 씁니다. 




※ 현실을 설명해낸 솔로우 모형 

- 1980~1990년대, 동아시아 성장기적은 요소축적 덕분



자, 지루한 과정을 모두 거쳤으니 이제 본 내용을 알아봅시다.


1980~90년대 경제성장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대한민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 동아시아에 위치한 네 나라 였습니다. 


이들 국가는 1970~80년대를 기점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나가며 '신흥산업국'(NICs, Newly Industrializing Countries)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라고 불렀고, 경제성장 성공담은 '성장기적'(growth miracle)이 되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동아시아의 네 나라는 어떻게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 


학자들이 처음 주목한 것은 이들이 가진 공통점, '대외지향적 수출정책'(outward-oriented policies) 및 '제조업 중심 정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이건 우리 한국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은 조선소 · 자동차 · 철강 등 제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였고,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왔습니다. 나머지 세 국가 역시 수출제조업을 키우면서 성장해 나갔죠.  


따라서, 기존 학자들은 "대외지향적 정책에 힘입은 생산성 개선, 특히 제조업 생산성 향상이 성장기적을 만들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시장을 외국에 개방하면서 경쟁력을 얻고 산업수준을 업그레이드 했다는 생각이었죠.


  • 알윈 영(Alwyn Young, 現 런던정경대, 前 MIT)


하지만 한 학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자  영(Alwyn Young)은 1994년 논문 <동아시아 NICs의 교훈: 통념에 반하는 시각>(<Lessons from the East Asian NICS: A contrarian view>), 1995년 논문 <숫자의 횡포: 동아시아 성장 경험의 현실을 통계로 직시하기>(The Tyranny of Numbers: Confronting the Statistical Realities of the East Asian Growth Experience) 을 통해 당시 학자들 사이에 퍼져있던 통념을 반박합니다. 


그는 "동아시아 성장기적은 대외지향적 정책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 증가 덕분이다"(factor accumulation)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네 나라의 제조업 성장 원인도 생산성 증가 보다는 '제조업으로의 자원 재배치'(sectoral reallocation of resources)에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1인당 생산량'(per capita output)과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 output)의 차이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자는 전체 국민의 생활수준을, 후자는 경제의 생산성을 보여줍니다.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가파르게 증가할수록(=요소투입이 급증할수록), '근로자 1인당 생산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값을 기록합니다.


  • Young(1994)


분명, '1인당 생산량'(per capita) 증가율을 살펴보면 동아시아 네 나라는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높은 값을 기록했습니다. 1960~1985년 사이 연간증가율은 대만(6.2%) · 홍콩(5.9%) · 싱가포르(5.9%) · 한국(5.7%)로 전세계 주요국 가운데 2~5위를 차지했습니다. 


제일 낮은 값을 기록한 한국을 기준으로, ±2% 내에 드는 국가는 15개에 불과했습니다.


  • Young(1994)


하지만 생산성을 나타내는 '근로자 1인당 생산량'(per worker)을 보면 사뭇 다릅니다. 대만(5.5%, 4위) ·한국(5.0%, 7위) · 홍콩(4.7%, 8위) · 싱가포르(4.3%, 14위) 입니다. 분명 높은 순위이긴 하지만, 앞서의 순위보다는 하락했습니다. 


게다가, 제일 낮은 값을 기록한 싱가포르를 기준으로 ±2% 내에 드는 국가는 19개로 늘었고, 앞서와 달리 나머지 국가들과 두드러진 격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Young(1994), X축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율, Y축 1인당 생산량 증가율
  • 경제활동 참가율이 1% 증가할수록 1인당 생산량 0.85% 증가


알윈 영은 이를 근거로 "(생산성 향상이 아닌) 네 국가에서 발생한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 즉 노동투입 증가가 성장기적의 요인" 이라고 진단합니다. 통계분석을 통해, "1%의 경제활동 참가율 상승이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을 0.85% 올린다."는 결과도 제시했습니다. 


네 국가는 전후 베이비붐 등의 영향으로 인구가 크게 늘었으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덕분에 생산과정에 투입된 사람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홍콩의 경우, 1960년 경제활동 참가율은 39%에 불과했으나 1985년에는 53%를 기록했죠. 


  • Young(1994), 한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의 1960~1985년간 GDP 대비 투자 비중 변화


그런데 이것은 '노동투입'(labor input) 만을 고려한 것입니다. '자본투입'(capital input)도 살펴보면 요소투입의 영향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1960~1985년 사이, GDP 대비 투자 비중은 대만 2배 · 한국 3배 · 싱가포르 4배나 증가했습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수치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 Young(1994)


자, 이제 '노동투입' · '자본투입' 등 요소투입 영향력을 모두 제거한 생산성의 변화, 즉 총요소 생산성의 연간 증가율을 살펴봅시다. 


홍콩(2.5%, 6위) · 대만(1.5%, 21위) · 한국(1.4%, 24위) · 싱가포르(0.1%, 63위)로 크게 하락합니다. 대만과 한국을 기준으로 81개의 국가가 ±2% 내에 들어 있습니다. 


즉, 총요소 생산성은 1인당 생산량 증가에 비해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 Young(1994)


마지막으로 기존 학자들이 주목했던 '제조업'을 살펴봅시다. 1970~1990년 사이, 네 나라의 근로자 1인당 제조업 생산량 증가율은 한국(7.3%) · 대만(4.1%) · 싱가포르(2.8%)를 나타냈습니다. 나머지 국가들의 평균 증가율이 3.2% 인점을 감안하면, 한국을 제외한 세 나라는 제조업 생산성이 높은 수준도 아니었습니다


반면, 제조업 고용인구 증가율은 한국(5.5%) · 싱가포르(5.7%) · 대만(5.6%) 등 대략 6%의 연간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나머지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1% 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아시아 네 나라의 제조업 성장 원천은 '생산성 향상이 아닌 노동투입 증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알윈 영은 "자본 · 노동 등 요소투입의 급격한 증가가 동아시아 성장기적의 대부분을 설명한다"(rapid factor accumulation, of both capital and labour, explains the lion's share of the East Asian growth miracle.) 라고 결론 내립니다. 


즉, 동아시아 네 나라의 성장은 솔로우 모형이 말하는 "'자본축적'(혹은 '요소축적')이 경제성장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현실에서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 생산성 향상 없이 진행된 요소축적... 지속가능 할까?

- 아시아 기적의 근거없는 믿음


우리가 이전글을 통해 솔로우 모형을 공부[각주:3]했다는 사실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자본축적'(요소축적)이 미국이 아닌 동아시아 경제성장도 설명할 수 있었으니깐요. 이론은 현실을 설명해 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찝찝한 마음도 감출 수 없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축적 이외에 기술진보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생산성 혁신 없이 자본축적에 의존하는 성장은 결국 0%의 성장률로 귀결될 겁니다.


2017년인 지금은 과거의 동아시아를 단순한 호기심으로 바라볼 순 있지만, 1990년대 당시를 보냈던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알윈 영의 주장처럼 동아시아 성장기적이 요소축적에 의한 것이라면, 언젠가 이들의 성장세가 멈추지 않을까요? 



1994년 11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각주:5])은 의미심장한 글을 내놓았습니다. <Foreign Affairs>에 기고한 <아시아 기적의 근거없는 믿음>(The Myth of Asia's Miracle)을 통해 동아시아 경제를 향한 우려를 표현했습니다.


(주 : 이 글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라는 단행본 중 한 챕터로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아시아 붐에 대한 일반인들의 열기에는 찬물을 약간 끼얹어야 마땅하다. 아시아의 급성장은 많은 저술가들의 주장처럼 서구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성장의 미래 전망은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제한적이다." (...)


"성장회계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경제성장의 과정에 관해 아주 중요한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한 나라의 1인당 소득의 지속적인 성장은 투입단위당 생산이 증가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입 생산요소의 이용효율은 높이지 않고 단순히 투입량만을 늘리는 것은 결국 수익률 감소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즉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은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1950년대의 소련처럼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들이 급성장을 이룩한 것은 주로 놀랄만한 자원의 동원 덕분이었다. 이들 국가의 성장에서, 급증한 투입이 발휘한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더 이상 말할 거리가 별로 남지 않는다. 


높은 성장기에 보여준 소련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성장도 효율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이례적인 투입 증가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성장이 주로 투입증가에 의한 것이고, 그 곳의 축적된 자본이 벌써 수익체감의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완전히 이치에 부합되는 행동이다. (...) 최근 몇 년 간의 속도로 아시아의 성장이 지속될 수는 없다."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229-244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솔로우 모형을 배운 사람들에게, 그리고 알윈 영(Alwyn Young)의 논문을 본 사람들에게, 폴 크루그먼의 이 글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놀랄만한 사실이 없습니다.


하지만 1994년 당시 동아시아 성장기적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컸던 상황에서 이런 글이 나왔다는 점, 그리고 3년 후인 1997년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각주:6]했다는 사실이 이 글의 주목도를 키웠습니다.  


물론, 폴 크루그먼은 3년 후에 다가올 위기(crisis)[각주:7]를 예측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이나 사람들은 이 글을 "3년 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글" 이라고 말하는데, 크루그먼은 단지 솔로우 모형이 이야기하는 성장률 저하(=수렴현상)를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그는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1998년에 쓴 글[각주:8]에서 "우리는 단지 장기적으로 성장률 둔화가 점진적으로 발생할 것 이라고 예측했을 뿐이다."[각주:9] 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이 글은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것과 맞물려서 큰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은 '아시아의 기적'을 칭송하는 대신 "그럼 이제 아시아의 성장세는 멈추는 걸까?" 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죠. 


(사족 :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요소투입'의 역할을 보려면,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각주:10] 참고)




※ 생산성! 생산성! 생산성!


[경제성장이론 시리즈] 두번째 글도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번글을 통해서, "솔로우 모형이 실제 현실 설명에도 적용 가능" 하며, "1970~1990년대 동아시아 성장은 생산성 증가가 아닌 요소축적에 의해 달성된 것", 그리고 "생산성 증가 없는 성장을 기록해온 동아시아는 결국 솔로우 모형이 말한 바와 같이 성장률 저하를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분명 솔로우 모형이 강조한 '자본축적'은 경제성장 달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 동아시아 네 국가는 요소축적 힘만으로도 높은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죠. 그러나 결국 생산성 혁신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 하다는 한계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또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요소투입'에 의존하여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있을까? 

- 중국경제는 '중진국 함정'에 빠졌을까


: 만약 오늘날에도 생산성 증가 없는 요소투입에 의존하는 국가가 있다면, 이 나라는 향후 몇년 내에 점차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혹은 걱정) 할 수 있습니다. 


2017년 오늘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우려를 키우고 있는 국가 중 대표는 바로 '중국' 입니다. 


1990년 이래로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고도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은 성장방법도 유사합니다. 중국은 '많은 투자'를 통해 집중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있으며, 기존에 산업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생산에 투입되어 생산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중국이 '요소투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많은 걱정을 하게 만듭니다. 만약 중국이 생산성 혁신을 하지 못하여 성장률이 점차 하락한다면, 세계경제는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죠. 실제로 10% 넘었던 경제성장률은 최근 7%~8% 부근까지 하락했습니다. 


생산성 혁신을 하지 못하여 낮은 성장률에 빠지는 경우를 경제학자들은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 이라고 부릅니다. 더 이상 1인당 소득을 늘리지 못하여 중진국에 머무르게 된다는 말이죠.


과연 중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것일까요? 혹은 빠지게 될까요?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이를 알아봅시다.



1997 외환위기 이후 생산성을 끌어올려온 한국


  •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 2012.06.20


: 1997 외환위기 이전 한국은 분명 요소투입에 의존하는 문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한국경제 자체가 과잉투자에 의존한 채 성장[각주:11]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1997년 이후 한국경제는 과거와 다릅니다. 한국의 총요소 생산성 기여율은 극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1981~1990년 사이 생산성이 성장에 기여하는 크기는 19.6%에 불과 했으나, 2006~2010년에는 47.3%까지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생산성 혁신'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 주제도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공부해봅시다.



생산성 둔화 현상


: 한국의 생산성은 많이 개선되었으나,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미국의 고민은 '생산성 둔화 현상'(Productivity Slowdown) 입니다. 


1990년대 IT붐의 힘으로 높은 생산성 증가율을 기록해온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증가율이 둔화 되었고, 2008 금융위기 이후에는 더 낮은 값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 세상은 이전보다 더 발전되고 진보한 것처럼 보입니다. 인터넷, 스마트폰, 각종 전자기기, AI 등등 그동안 IT 산업의 발전은 눈 부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생산성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이것도 다른글을 통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봅시다.

 


생산성은 어떻게 증가시킬 수 있는가?


: 이전글 솔로우 모형[각주:12]을 공부하고 난 뒤에 느꼈던 찝찝함이 이번글을 읽은 후에도 남아있습니다. 이전글 마지막 부분에 제가 제기한 물음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기술진보가 '외생적'으로 발생하나?"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가 외생적(exogenous)으로 발생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그럼 어떻게 하면 기술진보율, 즉 생산성을 끌어올리느냐?" 라는 물음에 답을 해주지 못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전글 마지막에도 밝혔듯이, 불만족을 느낀 다른 여러 경제학자들은 '기술진보가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모형'을 통해, 현실경제에 대한 설명력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내생적성장 모형'(endogenous growth model)을 살펴봅시다. 



국가간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내는 요인은 무엇일까? 

- 자본축적이냐 기술진보냐


: 이번글의 맨 첫부분, 솔로우 모형 복습에서도 살펴봤듯이, 국가간 성장률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ics)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막 자본축적을 시작한 국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죠. 


따라서, 1980~90년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자본축적량을 빠르게 늘리면서(=요소투입을 빠르게 늘리면서) 고도성장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자본축적(=요소투입)만이 국가간 성장률 격차를 만들어내는 요인일까요? 


국가간 기술진보 정도, 즉 생산성이 달라도 성장률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높은 생산성을 가진 국가는 더 빠르게, 낮은 생산성을 가진 국가는 더 늦게 성장할 겁니다. 이때 기술진보가 불러오는 성장은 정상상태 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상태에 다다르기 이전에도 기술진보율이 높은 국가(=생산성이 높은 국가)는 더 빠르게 성장 가능합니다.


따라서 '기술혁신이 빠르게 발생하며 유출을 원천 차단한 선진국' / '시장개방 정도가 더 높고 기술흡수 잠재력이 높은 개발국' 등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율이 외생적으로 주어졌으며 전세계 동일하다고 가정합니다.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은 전세계 어디로나 확산(diffusion) 되는 공공재(public good)이기 때문에, 국가간 생산성 차이가 성장률 격차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죠. 


이번글에서는 우선, "빠른 성장을 불러오는 요인은 자본축적 이다" 라고 주장하며 솔로우 모형을 옹호하는 학자만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추후 [경제성장이론 시리즈]의 다른글들을 통해, "국가간 성장률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기술 격차(technology gap) 혹은 아이디어 격차(idea gap)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경제학자를 알아볼 계획입니다. 


'자본축적 vs 기술진보' (요소투입 vs 생산성혁신) 라는 쟁점, 다르게 말해 '기술을 공공재로 바라보느냐 아니냐'가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계속 머릿속에 넣어둔채로 천천히 알아봅시다. 



  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2. 제 블로그에서 '수식'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많은 경제학이론이 그렇듯이 솔로우 모형 또한 수리적으로 엄밀하게 도출되었습니다. [본문으로]
  3.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4. [1997년-2005년]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 2016.01.22. http://joohyeon.com/243 [본문으로]
  5. 폴 크루그먼은 '국제무역이론을 수립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본 블로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6.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2015.12.29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7. 경제학용어인 '위기'(Crisis)는 단순한 성장률 저하를 뜻하지 않습니다. 경제위기란 현재 생산량이나 증가율에 오랜기간 타격을 주는 현상을 뜻합니다. '위기'의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는 http://joohyeon.com/248 참고 [본문으로]
  8. "아시아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What Happened to Asia?). 1998.01. http://web.mit.edu/krugman/www/DISINTER.html [본문으로]
  9. "we expected the longer-term slowdown in growth to emrge only gradually." [본문으로]
  10.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11.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12.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2017.06.28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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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Posted at 2017. 6. 28. 07:00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어떤 나라는 못 사는 것일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은 무엇일까?


경제성장은 생활수준을 대폭 향상시켜 줍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명제는 대한민국이 이루어 낸 성장기적(growth miracle)이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1950~1970년대를 보낸 어르신들은 직접 몸으로 느낀 바를 말해줄 수 있죠. 


하지만 경제성장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모든 국가가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북한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는 동안,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저개발국들이 지구상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어떤 나라는 못 사는 것일까요?"(why are we so rich and they so poor?)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여러 가설을 제기했습니다. 자본축적을 제대로 했는지, 기술발전이 일어나고 있는지 등의 여부를 따졌죠.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족성, 법과 제도, 정치권력 부패, 민주주의 체제, 지리적조건 등 국가들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탐구했습니다.      


어떠한 요인이 경제성장 달성 여부를 갈라놓았는지 탐구한 이후에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은 무엇일까?"(engine of growth)를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은 단순한 일회성 사건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높아진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이 필요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2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경제성장 이론은 바로 '솔로우 모형'(Solow Growth Model) 혹은 '신고전파 모형'(Neoclassical Growth Model) 입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모형은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 198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가 제시했습니다. 


그는 1956년 논문 <경제성장 이론에 대한 기여>(<A Contribution to the Theory of Economic Growth>) 를 통해, 미국이 겪어온 경제성장 과정을 이론화 하였습니다. 


미국의 성공경험이 알려준 것은 '자본축적의 중요성'(Capital Accumulation) 이었습니다. 미국의 1인당 자본량은 꾸준하게 증가해왔으며, 이에 맞추어 1인당 생산량도 늘어났습니다. 


따라서, 솔로우는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자본축적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제부터 솔로우 모형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알아봅시다.




※ 어떻게하면 자본을 축적할 수 있을까?


한 국가가 경제성장을 이루었는지 여부는 '1인당 생산량'(per capita GDP)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각주:1]이기 때문이죠. 


  • 출처 : OECD National Accounts at a Glance


윗 그래프는 미국의 1인당 생산량 및 자본량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1인당 생산량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그 배경에는 1인당 자본량 증가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본이란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의미합니다. 공장설비 및 기계 등이 더 많이 도입될수록 생산량도 비례하여 증가하게 됩니다. 


이를 보면, 1인당 생산량 증가, 다시 말해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적)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 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 및 축적된 자본이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는 과정'을 아주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윗 수식은 저축과 투자가 1인당 자본량을 늘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솔로우 모형의 기본 방정식'(Fundamental Equation of the Solow Model) 입니다. 

 

경제원론을 소개한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각주:2] 에서 보았듯이, 자본축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투자'(investment)와 '저축'(saving) 입니다. 


투자란 '기계 · 생산설비 등 신규 자본재를 만들거나 구매하는 것'을 뜻하며, 저축은 '생필품 소비를 덜하여서, 자본재 생산에 더 많은 자원을 배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국가의 저축이 많을수록 투자도 비례적으로 증가하여 자본축적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1인당 생산량 중 일정부분을 소비하지 않고 저축하면 투자로 이어지고 이는 곧 1인당 자본량 증가로 나타납니다. 증가된 자본량은 1인당 생산량을 늘리게 되고, 늘어난 생산량 중 일정부분을 또다시 저축 · 투자로 연결시키면 자본량과 생산량이 더욱 늘어나는 선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1인당 자본량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건 아닙니다. 기계 · 생산설비 등 자본량은 감가상각의 영향을 받아 일정량 사라집니다. 또한, 인구가 많아질수록 '1인당'(per capita) 자본량도 줄어들기 때문에, 인구증가율에 비례하여 소모됩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은 '저축' 및 '투자'가 증가할수록 늘어나며, '감가상각률' 및 '인구증가율'이 높아질수록 줄어듭니다. 


(사족 : 경제 전체 '총'자본량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인구가 많아질수록 '총'자본량은 증가하고, '총'생산량 또한 늘어납니다. '1인당' 자본량 및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을 '자본심화'(Capital Deepening) 라하고, '총' 자본량 및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을 '자본확장'(Capital Widening) 이라 합니다.)    


이러한 논리로부터, 우리는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어떤 나라는 못 사는 것일까요?"(why are we so rich and they so poor?)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어떤 국가가 잘 사는 이유는 높은 저축율 · 낮은 인구증가율 등에 힘입어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 또 어떤 국가가 못 사는 이유는 낮은 저축율 · 높은 인구증가율 때문에 1인당 자본을 적게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가 생필품 소비를 많이 하여서 자본재 생산에 더 적은 힘이 배분된다면(=소비가 많아 저축과 투자가 적다면), 그 국가는 자본축적이 더뎌져서 생산량도 크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경제성장 초기 높은 인구증가율은 자원을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유아에게 배분케하여 (생산에 참여하는) 성인의 1인당 자본량을 훼손시킵니다.


경제성장을 도모하려는 국가가 초기에 '저축증대'와 '산아제한'을 실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한국도 마찬가지로 저축장려 및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했었죠.       




※ 자본축적 만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 자본량 증가에 대한 생산량 증가폭은 체감

- 영구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진보'

     

지금까지 논의한 것은 '1인당 생산량 수준'(per capita GDP Level)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축율이 높고 인구증가율이 낮을수록, 자본축적이 일어나 생활'수준'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생활'수준' 향상은 얼마나 빨리 달성가능하며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일까요? 


경제성장 달성에 중요한 것은 성공여부 뿐 아니라 성공에 걸리기까지의 시간 및 지속적인 성장 여부도 있습니다. 자본축적을 통해 생활수준이 향상되더라도, 그것이 엄청 오래 걸려서 내가 죽기 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한번 생활수준이 향상된 후 지속되지 않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구분해야 할 개념은 '수준'(level)과 '성장'(growth) 입니다. 


어떤 나라가 잘 사느냐 못 사느냐 따지는 것은 '수준'(level)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반면, 어떤 나라가 얼마나 빨리 생산량을 늘리느냐,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느냐는 '성장'(growth)을 의미합니다.


  • 출처 : 한국은행


윗 그래프는 1970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의 1인당 GDP(level) 및 경제성장률(growth)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1인당 GDP는 경제발전을 시작한 이래로 줄곧 증가해 왔습니다. 1998년과 2009년에 각각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각주:3] 와 2008 글로벌 금융위기[각주:4] 여파로 주춤하긴 했지만, 추세가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은 이와 다릅니다.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0% 부근의 고성장을 기록해왔지만, 점차 낮아져서 현재는 2%~3% 사이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즉, '수준'(level)은 줄곧 향상되어 왔으나, '성장'(growth)은 점차 더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양상이 아닙니다. 과거 미국도 높은 성장률은 기록했으나 오늘날에는 3% 부근에 머물러 있죠.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개방 이후 10%가 넘는 성장률은 기록해온 중국은 최근에는 7%~8%로 내려왔습니다.


  • 자본량 증가에 대해 생산량 증가폭이 체감하는 모양 (diminishing)


솔로우 모형은 ''수준'(level)은 줄곧 향상되어 왔으나 '성장'(growth)은 점차 더뎌지는 모습'이 왜 나타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1인당 자본량 증가 → 1인당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는 경로가, 축적된 자본이 많아질수록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해, 자본량 증가에 대한 생산량 증가폭이 체감(diminishing) 합니다.


초기 자본량이 적을 때는 자본량 한 단위가 늘어날수록 생산량도 크게 증가합니다. 삽으로 땅을 파다가 포크레인이 주어지면 작업량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겁니다. 


하지만 이미 가진 자본량이 많아질수록, 자본량 한 단위가 추가되어도 생산량에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포크레인 1대를 더 가진다면 번갈아가면서 사용하여 기계노후를 늦추고 생산량을 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몇대씩 더 늘어났을때 생산량 증가 효과는 초기에 삽→포크레인으로 변했을 때의 효과보다 적어질 겁니다.


윗 그래프의 모양은 직선(linear)으로 뻗어있지 않고 구부러진 모양을 띄고 있습니다. 이것이 솔로우 모형이 상정하는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 function)의 모습니다. X축 자본량이 점차 많아질수록 Y축 생산량의 증가폭은 점점 줄어듭니다.


이러한 논리로부터 '한 국가가 경제성장을 달성할수록(=level이 높아질수록) 성장률은 점점 하락한다(=growth 효과는 줄어든다)'는 사실을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경제성장률은 0%를 기록하게 될 겁니다. 왜 그럴까요? 


자, 1인당 자본량이 계속해서 축적되어 '어느 지점'을 넘어섰다고 생각해봅시다. 


저축과 투자를 통해 자본량을 더 늘리더라도 체감효과로 인해 생산량은 더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본량 증가 → 생산량 증가 → 자본량 증가'의 선순환 고리가 끊기게 되죠. 


반면, 감가상각 및 인구증가율 등의 영향으로 소모되는 자본량은 일정합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일정 지점을 넘어서면 되려 자본량이 다시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솔로우 모형은 이러한 일정 지점을 '정상상태' 혹은 '균제상태' (steady state)로 칭했습니다. 


즉, 한 국가의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의 자본량'(steady state)보다 많이 적을수록, 그 국가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성장률이 낮아지죠. 이어서 정상상태를 초과하면 자본량이 다시 감소하여 생산량도 줄어드는 음(-)의 성장률이 나타납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그 국가의 1인당 자본량은 '정상상태'(steady state)에 머무르게 되고, 자본량은 늘지도 줄지도 않아서 성장률은 0%에서 멈추게 되고 맙니다.       


이를 정리하면, '생활수준 향상은 얼마나 빨리 달성가능하며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이제 막 시작한 국가일수록 '생활수준 향상 속도가 빠르다가, 점점 늦어지며, 결국 멈추게 된다'"가 솔로우가 제시한 해답입니다.




※ 저축율 100%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 저축율 증가정책은 수준효과(level effect)만 가져와

- 성장효과(growth effect) 없어, 결국 성장률은 0%로 수렴


"솔로우 모형 상에서 자본축적이 진행될수록(=1인당 자본량이 많아질수록) 성장률이 하락하여 궁극적으로 0이 된다"는 사실은 생각할꺼리를 제공해 줍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경제성장을 위해 경제학 공부를 하다가 솔로우 모형을 조금 알게된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교과서 첫 부분만 공부하고 책을 덮은 지도자는 "저축과 투자를 늘리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구나. 이제 모든 국민들을 강제로 저축시켜서, 저축율 100%해야겠다" 라고 다짐합니다. (혹은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통해 인구증가율 0%를 추구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솔로우 모형 뒷부분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 생각이 가진 문제점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분명 저축율 증가 정책은 생활수준(level)의 향상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1인당 자본량이 점점 축적될수록 성장률은 하락하여 결국 0%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도자를 향해, "저축율 증가 정책 및 산아제한 정책은 수준효과(level effect)만 가질 뿐, 성장효과(growth effect)는 없습니다." 라고 충고 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충고에 대해 "어찌됐든 생활수준이 향상됐으면 된 거 아니냐" 라고 반발할 수도 있으나, 애시당초 경제성장의 목적은 사람들의 효용과 후생을 증가시키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효용을 느끼는데, 소비를 아예 없애고 경제성장을 달성한다는 건, 경제성장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동력은 무엇일까?

-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


솔로우 모형에서 "자본량이 증가할수록 생산량 증가가 체감(diminishing)하기 때문에, 궁극적인 성장률은 0이 된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소리로 들립니다. 우리는 지속적인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을 통해 계속해서 효용과 후생을 증대시키고 싶은데,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하지만 솔로우모형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합니다 . 바로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 입니다.


1인당 생산량을 늘리는 데 있어 자본축적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자본을 사람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도 중요합니다. 또한, 새로이 추가된 자본이 이전보다 좀 더 효율적인 형태를 띄느냐도 중요하죠. 즉, 자본축적 못지않게 '생산성'(productivity)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사람들의 능력이 향상 된다면 생산설비 등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전보다 성능이 더 좋은 설비로 교체된다면 생산량이 더 많이 증가할 겁니다.    


이렇게 기술수준이 점점 높아질수록 생산량을 늘려갈 수 있습니다. 생산량 증가에 있어 자본축적 이외의 또 다른 방법이 생긴 것이죠.


이때, 중요한 점은 기술진보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은 체감하지 않습니다. 자본은 한 단위 더 투입(input)해 나갈수록 생산량 증가폭이 줄어드는 체감 현상이 나타나지만, 기술진보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되면 될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더욱 더 커질 겁니다(increasing).


물론, 기술진보율 자체는 체감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한 단계 더 나은 기술을 만든다는 건 힘든 일이죠. 하지만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율을 딱 고정시키고 전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다고 가정했습니다. 그 값이 얼마이든간에, 일단 기술진보율은 '외생적으로 주어진다'고 가정했죠.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에 도달 했을지라도, 기술진보는 생산성 혁신을 불러와 1인당 생산량이 계속해서 증가하게 되고 0이 아닌 양(+)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솔로우모형 상에서 경제성장 동력(engine of growth)는 바로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를 통한 생산성 향상' 입니다.




※ 솔로우모형 내용 정리


자, 이번글에서 다루었던 솔로우 모형이 전달해주는 바를 한번 정리해봅시다.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또 어떤 나라는 못 사는 것일까요? 

- 자본축적의 중요성


: 솔로우 모형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을 제시합니다. 1인당 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1인당 생산량이 많아서 부유한 국가가 됩니다.



자본축적 만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할까? 

- 불가능하다


: 자본축적 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불가능 합니다. 그 이유는 자본이 한 단위 늘어났을 때 생산량 증가폭은 체감(diminishing)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제발전 초기에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다가, 경제 수준(level)이 높아질수록 성장률은 점점 하락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0%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국가별로 성장률이 각기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가 각기 다르다


: 2017년 오늘날 중국은 8% 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반해, 한국은 2%~3%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별로 정상상태(steady state)에서 떨어진 정도가 다르기 때문' 입니다. 


경제성장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은 아직 1인당 자본량이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죠. 반면, 경제성장 성숙기에 접어든 한국은 정상상태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성장률이 낮습니다.


이를 학문용어로 표현하자면, '전이경로' 혹은 '이행기동학' (transitional dynamics) 라고 합니다. 아직 정상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국가는 전이경로 속에 위치해 있습니다. 



저축율을 높이고 인구증가율을 낮추는 정부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 일시적 효과만 낼뿐, 성장효과는 없다


: 높은 저축율과 낮은 인구증가율은 1인당 자본량을 늘려서 생산량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으로 경제수준만 높이는 효과만 낼 뿐, 결국 성장률은 0%를 기록하게 될 겁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정책은 수준효과(level effect)만 나타나게 할 뿐이지, 영구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성장효과(growth effect)는 일으킬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동력은 무엇인가? 

- 기술진보를 통한 생산성 향상

 

: 솔로우 모형 상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인위적인 정부정책이 아니라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를 통한 생산성 향상' 입니다. 


즉, 경제성장의 동력(engine of growth)은 '기술진보'(technological progress) 입니다.




※ 생각 뻗어나가기



자본축적 중요성이 초래하는 문제 ① 

- 자본축적이 중요할까, 기술진보가 중요할까?


: 생활수준(level)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growth)을 위해서는 '기술진보'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둘 다 중요하지. 중요성을 왜 따지냐"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물음입니다. 만약 기술진보 없이 자본축적만 이룩한 국가는 성장률이 점점 하락하여 곧 성장이 멈추게 될 겁니다. 그러나 기술진보를 함께 진행해온 국가는 성장률을 계속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1970년대 소련 경제 · 1990년대 동아시아 경제 · 2010년대 중국 경제' 사례를 통해, '생산성 향상 없는 자본축적'이 초래하는 문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본축적 중요성이 초래하는 문제 ② 

- 미래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현재의 소비를 줄여야하나?


: 경제성장(=level의 상승)을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필요합니다. 자본축적은 높은 저축율을 통해 달성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축율이 높다는 말은 '소비가 적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럼 "미래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현재의 소비를 줄여야 할까요?"


"당연히 현재 조금 고생하고 미래에 과실을 얻어야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현재의 소비 감축이 미래의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만약 현재 자본축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현재의 소비 감축(=저축 증가)은 생활수준 향상과 소득 증가를 불러와 미래의 소비를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자본축적이 많이 이루어진 상황이라면, 현재의 소비 감축(=저축 증가)은 미미한 소득 증가로 이어져서 오히려 현재+미래 소비량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소비 감축은 세대별로 수혜가 다릅니다. 청년 세대는 미래의 소비 증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장년 세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 소비가 줄어들어서 효용과 후생수준이 하락하는 악영향만 받습니다.


경제학자들은 현재+미래 소비량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최적 저축율'이 얼마인지를 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른바 '저축 수준의 황금률'(golden rule)을 찾기를 바랐죠.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고민을 하는 이유는 결국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자본축적' 이외의 다른 방법이 있다면, 현재 고통스러운 소비 감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앞으로 다른 글들을 통해 이를 살펴볼 계획입니다.



 체감현상이 초래하는 문제 ① 

- 모든 국가가 동일한 지점의 정상상태로 수렴할까? 


: 솔로우 모형 상에서 1인당 생산량은 자본량에 대해 체감(diminishing) 하기 때문에, 결국 1인당 자본량은 정상상태(steady state)에서 멈추게 된다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국가가 서로 동일한 지점의 정상상태에서 멈추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오래전부터 경제성장을 시작해온 국가들은 이미 정상상태에 가까워졌을 겁니다. 이제 막 시작한 국가들은 정상상태를 향해 오고 있죠. 


그럼 언젠가는 모든 국가가 '하나의 정상상태'에서 멈추어서 1인당 자본량 · 생산량이 모두 똑같아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겁니다.(=level이 같아짐


게다가, 정상상태에서는 생산량이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진보율 만큼 증가하고, 솔로우 모형은 전세계 어디에서든 기술진보율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하나의 정상상태' 위에서, 세계 모든 국가의 성장률이 같아지는 날도 올 수 있습니다.(=growth가 같아짐)


이렇게 국가간 1인당 생산량 및 성장률이 같아지는 현상을 '수렴현상'(Convergence) 라고 부릅니다. 


솔로우 모형만 살펴본다면, 전세계의 1인당 GDP가 하나로 수렴하여 국가간 격차가 없어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증 데이터를 살펴보면, 솔로우 모형이 기대하는 수렴현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빈곤국은 여전히 빈곤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저개발 상태를 벗어난 국가들도 여전히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level)을 기록하고 있죠. 또한, 성장률 격차(growth)가 축소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솔로우 모형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실증 결과에 반하는 이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텐데 말이죠.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이를 살펴볼 계획입니다. 



 체감현상이 초래하는 문제 ② 

- 정부정책은 무용할까?


: 정부의 저축률 증가 및 인구증가율 억제 정책이 성장효과(growth effect) 없이 수준효과(level)만 내는 이유는 솔로우 모형이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 function)을 가정했기 때문입니다. 꾸준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술진보만 필요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정부정책 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일부 사람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당장 현실을 둘러봐도 정부의 법과 제도 정비, R&D 투자 지원, 교육 확대, 사회적 인프라 구축 등이 성장률을 끌어올린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럼 우리는 '정부정책이 성장효과도 낼 수 있는 또 다른 모형'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글을 통해, 이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외생적인 기술진보가 초래하는 문제 ① 

-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같을까? 경제성장률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 로버트 솔로우는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며 외생적으로 주어진다고 가정했습니다. 쉽게 말해, 기술진보율이 2%든 10%든 일정한 값으로 모든 국가에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런데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같을 수 있을까요?


당장 미국과 한국을 대비해봐도, 양국간의 기술진보율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고 실제 기업운영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기술진보를 이루어내고 있지만, 미국에 비해서 뒤쳐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술진보율이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다"는 가정이 성립하는 이유는 '기술은 공공재(public goods)'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공재란 비배제성(non-excludable) · 비경합성(non-rivalry) 을 띄는 재화로서,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재는 여러 사람에게 빠르게 확산(diffusion)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기술은 공공재 특성을 띄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기술은 '특허제도'(patent)를 통해 보호되고 있으며(=배제성을 띄고 있으며), 다른 국가에 유출될 가능성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즉, 기술은 공공재가 아니며, 기술진보율은 국가별로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만약 기술진보율이 국가별로 다르다면, 경제성장률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솔로우 모형은 성장률 격차의 원인을 '전이경로'(transitional dynamics)로 보고 있습니다. 국가별로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죠. 


하지만 기술진보율이 다르다면, '기술격차'(technology gap)가 성장률 격차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빨리 전달받지 못하는 폐쇄형 국가일수록 혹은 기술을 이용할 잠재력이 떨어지는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기술격차가 존재하는가 · 기술은 공공재인가 · 기술 확산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경제성장론 발전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쟁점입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이러한 쟁점이 경제성장론 역사(?)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 겁니다.

 


외생적인 기술진보가 초래하는 문제 ② 

- 왜 기술진보가 '외생적'으로 발생하나?


: '외생적인 기술진보'를 둘러싸고 던질 수 있는 또 다른 물음은 "왜 기술진보가 '외생적'으로 주어지는가?" 입니다. 


기술진보는 하늘에서 떡하니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R&D에 얼마나 투자하느냐 / 과학자 및 공학자들이 얼마나 힘을 쓰느냐 / 국가의 R&D 지원 정책이 얼마인가 / 다른 국가로부터 진보된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냐 등등 여러 경제주체들의 행위가 결합된 결과물 입니다.


다르게 말해, 현실에서 기술진보는 '내생적'(endogenous)으로 결정됩니다. 그런데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를 '외생적'(exogenous)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는 현실을 설명하는데 있어 심히 불만족스러운 사항입니다.


불만족을 느낀 다른 여러 경제학자들은 '기술진보가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모형'을 통해, 현실경제에 대한 설명력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내생적성장 모형'(endogenous growth model)을 살펴봅시다. 




※ 하나씩 차근차근


이러한 6가지 논쟁 사항을 이번글 하나만 읽고 깊게 생각해보기는 힘듭니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오히려 혼란만 일으켰겠죠. 


하지만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계속해서 읽어나가다 보면, 6가지 논쟁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경제성장이론 발전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등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1.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 2015.09.21. http://joohyeon.com/233 [본문으로]
  2.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 2015.09.21 http://joohyeon.com/236 [본문으로]
  3.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2015.12.29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4.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2014.03.25.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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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론 요약]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경제성장이론 요약]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Posted at 2017. 6. 27. 21:12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국가간 1인당 소득수준 격차(per capita income level)는 매우 커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1980년대 미국의 소득은 10,000 달러이지만, 인도는 240달러, 아이티는 270달러에 불과하다. (...)


1인당 실질성장률(rates of growth) 또한 국가별로 차이가 난다. 1960~1980년 사이 평균 경제성장률은, 인도 1.4%, 이집트 3.4%, 한국 7.0%, 일본 7.1%, 미국 2.3%, 선진국 3.6% 이었다. 인도의 소득수준이 2배가 되려면 50년이 걸리는 반면, 한국은 10년이면 충분하다. (...)


인도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반대로 방법이 없다면, 낮은 성장률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인도의 특성(nature of india)은 무엇일까? 


(경제성장을 둘러싼) 이러한 물음들이 인간 후생에 미치는 결과는 매우 압도적이다. 누군가 이 문제(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The Consequences for human welfare involved in questions like these are simply staggering: Once one starts to think about them, it is hard to think about anything else.)  


- 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1988. 'On the Mechanics of Economic Development'


윗 발언은 현대 거시경제학을 정립한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19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가 1988년에 쓴 본인의 논문에서 한 것입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국가별로 다른 ① 소득수준(level) ② 경제성장률(growth rate) 였습니다.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다른 나라는 가난합니다. 또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반해, 다른 나라는 성장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모든 나라가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로버트 루카스는 국가별로 다른 성장이 나타나게 된 이유와 경제발전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말그대로 경제발전의 메커니즘(Mechanics of Economic Development)을 탐구했죠.


만약 그의 희망대로 경제발전의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게 된다면 대부분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저개발 국가의 빈곤(poverty)? 이것은 경제성장이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문제입니다. '높은 경제성장률 → 높은 소득수준'은 빈곤을 아예 없애줍니다. 


실업? 높은 경제성장률은 경기적요인으로 발생하는 실업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성장률이 2%~3%가 아니라 7%~10%라면, 오늘날 문제되는 청년실업 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통화·재정정책 논쟁? 현재 미 연준(Fed)이나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그리고 정부의 재정을 둘러싼 논의가 벌어지는 이유는 경제성장률이 낮기 때문입니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단기간내 경기변동으로 인해 경제가 조금 출렁이더라도 "기준금리를 몇 %로 해야 경제가 좋아질까?",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정부 재정을 얼마나 써야할까?" 등을 지금처럼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균등(inequality)? 이는 경제성장이 100%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불균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개인간 차이는 있더라도 모두의 소득수준이 꾸준히 증가하면 불만도 지금보다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죠. 


다시말해, 경제성장은 그 자체로 대부분의 경제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소득수준을 둘러싼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하강하는 경기사이클로 인해 초래되는 경기변동 문제도 완화시켜 줍니다. 높은 경제성장률이 유지된다면 경기변동(economic fluctuation)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로버트 루카스가 "(경제성장을 둘러싼) 이러한 물음들이 인간 후생에 미치는 결과는 매우 압도적이다. 누군가 이 문제(경제성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경제발전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탐구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 경제성장을 둘러싼 여러 이론이 제시되었으나 "왜 어떤 나라는 그 방법이 먹히는데, 다른 나라는 먹히지 않는가?" 라는 근본적 물음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이를 꾸준히 지속하기 위해서 ① 자본축적 ② 기술진보 등 크게 2가지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서유럽 · 북미 등 북반구 국가들은 이 방법이 잘 적용되었는데, 아프리카 · 남미 등 남반구 국가들은 여전히 미흡합니다. 


그럼 혹시 민족성 · 지리적 조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동일한 민족 · 지리적조건을 가진 한국과 북한의 경제상황은 딴판입니다. 그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즉 정치체제나 제도(institution)가 영향을 미친 것일까요? 이렇게 물음을 계속 던지다보면 결국 그 국가가 가진 특성(nature)에 주목하는 연구가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을 둘러싼 물음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이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경제성장론은 모든 물음에 완벽한 해답을 제공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경제발전 메커니즘의 훌륭한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본 블로그의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통해, 경제학자들이 '경제성장을 둘러싼 물음을 어떻게 발전'시켜 왔으며, '어떠한 통찰을 제공해주는지'를 상세히 알아봅시다.  




※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 소득수준 및 생활수준의 격차(level gap)를 초래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 경제학자 찰스 존스(Charles Jones) 등이 집필한 학부 경제성장론 교과서
  • 한국과 북한의 생활수준 격차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경제성장이론이 다루고 있는 첫번째 주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제는 역시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Why are we so rich and they so poor?) 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의 1인당 GDP는 약 57,000 달러 입니다. OECD 국가는 41,000 달러이며, 한국은 35,000 달러입니다. 한국을 포함하여 북미 · 서유럽 · 일본 등은 높은 생활수준(level)을 향유하며 비교적 안락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서 남반구 혹은 중앙아시아 등을 보면 완전히 다른 모습일 나타납니다. 라이베리아 800달러, 아프가니스탄 1,800달러이며 북한은 1,700달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나는 생활수준 격차(level gap)를 이해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어떠한 요인이 국가간 차이를 초래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 솔로우 성장모형 (Solow Growth Model)

- '자본축적'을 많이한 국가일수록 부유한 생활수준을 누린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가장 먼저 살펴볼 이론은 로버트 솔로우가 1956년에 내놓은 '솔로우 성장모형' 입니다. 


그는 이 모형을 통해 "국가간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 정도가 생활수준 격차를 초래한다" 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자본'이란 기계 · 공장설비 등의 '물적자본'(physical capital)을 의미합니다. 


어떤 국가가 잘 사는 이유는 높은 저축율 · 낮은 인구증가율 등에 힘입어 1인당 물적자본을 많이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국가가 못 사는 이유는 낮은 저축율 · 높은 인구증가율 때문에 1인당 물적자본을 적게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잘 살지 못하는 국가라도 자본축적을 늘려나가면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한국 · 싱가포르 · 대만 · 홍콩 등 동아시아 4마리 호랑이 입니다. 이들 국가는 1970~1980년대 높은 투자비중을 기록하며 경제성장에 성공하였습니다.


이처럼 솔로우 모형은 '저축율과 인구증가율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간단하게 설명하였고, 동아시아 성공 사례도 설명해냄으로써 경제성장이론의 대표격으로 자리잡았습니다.



▶ P.로머와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 (Endogenous Growth Model)

- '지식' 및 '인적자본'이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부유한 생활수준을 누린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솔로우 모형 이외의 새로운 모형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P.로머와 로버트 루카스가 내놓은 '내생적성장 모형' 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식(knowledge)와 인적자본(human capital)을 강조하며 "'지식' 및 '인적자본'이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부유한 생활수준을 누린다"고 주장합니다. 물적자본에 한정되어 있던 자본의 개념은 이제 인적자본으로 확장되었습니다(broad concept of capital). 


여기서 지식과 인적자본 축적을 이끄는 힘은 '외부성'(externality) 입니다. 한 기업이 연구과정에서 창출한 지식은 다른 곳으로 전파될 수 있습니다(knowledge spillover). 또한, 개인이 쌓은 인적자본은 교육 등을 통해 후세대로 전수될 수 있으며, 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얻은 노하우는 다른 제품 개발에도 적용됩니다(learning by doing). 


따라서,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 인적자본 수준이 높았던 국가는 계속해서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모형은 개인 및 기업의 행위로 지식 · 인적자본이 축적되고 그 결과 기술수준이 진보한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내생적성장 모형'(endogenous growth model) 이라는 명칭을 얻게 됩니다.



▶ 맨큐 · D.로머 · 웨일의 확장된 솔로우 모형

- 솔로우 모형의 기본가정을 유지하면서 '인적자본' 개념을 추가

- 물적자본을 많이 축적한 국가일수록 교육환경이 좋아져 인적자본 축적도 이루어진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⑥] 수렴논쟁 Ⅲ - 맨큐 · D.로머 · 웨일, (인적자본이 추가된) 솔로우 모형은 틀리지 않았다


내생적 성장모형 등장으로 이제 솔로우 모형은 그 역할을 다한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992넌 맨큐 · D.로머 · 웨일은 솔로우 모형의 기본가정을 유지한 채 '인적자본' 개념을 추가한 확장된 솔로우 모형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을 따로 놀지 않습니다. 물적자본 축적으로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한 국가일수록, 교육환경도 좋아져서 중등·고등 교육을 이수한 사람도 증가합니다. 


따라서, 솔로우가 주장했던 '(물적)자본축적'은 여전히 경제성장의 핵심요인 입니다.



▶ P.로머의 '다양성 기반' 신성장이론 (variety-based new growth theory)

-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적극적인 R&D 투자가 다양한 투입요소를 창출하며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솔로우 모형 → 내생적성장 모형 → 확장된 솔로우 모형'으로 발전되어온 경제성장이론은 점점 현실 설명력을 높여왔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들 모형이 경제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핵심쟁점은 '기업의 역할'(firm) 입니다. 


1980년대 등장한 내생적성장 모형은 '외부성' 덕분에 인적자본이 축적되며 사회 전체의 기술수준이 올라간다고 봤습니다. 여기서 기술진보는 그저 외부성이 의도치않게 만들어낸 부산물(side effect)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술진보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의도적인 R&D 투자'(intentional)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들 기업은 R&D 투자를 통해 다양한 기술(variety)을 개발하고, 특허등록을 통해 지적재산권 보호를 받습니다. 그리고 특허권을 독점적으로 누리며 이윤을 극대화 합니다.


폴 로머는 1986년에 내놓았던 내생적성장 모형을 발전시켜 1990년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을 내놓으면서 성장이론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적극적인 R&D 투자가 다양한 투입요소를 창출하며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라고 말합니다. 


이 모형에서 연구부문의 R&D 투자는 '서로 다른 생산방식의 숫자'(number of design)을 증가시킵니다. 그리고 다양한 생산방식은 다양한 내구재(variable durable)를 만들어내고, 이는 최종재가 사용하는 자본의 종류가 많아지는 것과 같습니다(capital = distinct types of producer durable). 그 결과, 소비자가 사용하는 최종재의 종류도 많아집니다.


따라서, 기업의 R&D 투자규모와 연구부문에 종사하는 연구원 수(=연구 인적자본)가 많은 국가는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하게 되며, 반대로 R&D 투자와 연구원 수가 적은 국가는 낮은 생활수준을 기록하게 됩니다.



▶ 아기온 · 호위트의 '품질향상 기반' 신성장이론 (quality-based new growth theory)

-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업의 혁신 노력이 더 나은 품질을 만들어내며 경제성장을 이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P.로머 방식의 신성장이론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의 아쉬움도 함께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혁신에 성공하여 라이벌 기업을 누르거나 반대로 경쟁에서 뒤쳐져 시장지배력을 모두 잃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업간 경쟁'(competition)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요인입니다.


1992년 아기온과 호위트는 로머의 모형을 발전시켜 '기업간 경쟁을 통해 품질이 향상되는 모습'을 설명하는 성장이론(quality-based growth model)을 발표했습니다.


이 모형에서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기업의 R&D 투자와 혁신을 촉진시켜 경제성장을 달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족 :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를 성장이론 내에서 구현했기 때문에 '슘페터식 성장 모형'(Schumpeterian Growth Model)로도 불립니다.)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 생활수준 격차 원인으로 물적자본을 강조하느냐, 아이디어를 강조하느냐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이러한 성장이론을 종합해보면, 국가간 생활수준 및 성장률 격차를 초래하는 요인을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솔로우 모형이 강조하는 '물적격차'(object gap) 입니다. 


공장 · 기계설비 등 물적자본이 풍부한 국가는 경제성장을 달성하는데 반해, 부족한 국가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는 수해복구사업시 포크레인 등 건설장비를 이용하는 한국과 여전히 소와 쟁기를 이용하는 북한을 대비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둘째는 (내생적성장 모형과) 신성장이론[각주:1]이 강조하는 '아이디어 격차'(idea gap) 입니다. 


물적자본이 부족한 국가에 기계설비 등을 가져다주면 저절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물적자본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입니다.


이렇게 솔로우 모형과 신성장이론은 서로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경제성장을 위해 서로 다른 처방이 내려집니다.


솔로우 모형 주창자들은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통한 자본축적'을 강조합니다. [경제원론]에서 살펴보았듯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린다는 말은 경제내 한정된 자원을 소비재 생산이 아닌 자본재 생산에 투입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소비를 줄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입니다. 지금 당장의 효용을 포기하고 미래에 있을 희망을 기대하는 것인데, 현재의 소비감축이 미래의 소비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성장이론을 수립한 폴 로머(Paul Romer)는 '선진국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성장의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선진국의 아이디어를 채용하거나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어 격차를 줄이는 것은 보다 손쉬운 해결책이기 때문이죠.




※ 왜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반해, 어떤 나라는 느리게 성장할까?

- 국가간 성장률 격차(rate gap)를 초래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국가간 생활수준 차이에 이어서 '성장률 격차'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어떤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반해, 어떤 나라는 느리게 성장할까요?


이를 보면 '1인당 GDP가 낮은 국가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미국은 보통 연간 2%~3% 성장률을 기록하는데 반해 중국은 연간 7%~10%의 성장률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② 

한 국가를 대상으로 바라보면, 생활수준이 낮았을 때 더 높은 성장률을 나타냈습니다. 과거 경제개발을 막 시작하는 단계였을때 한국은 연간 10% 내외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지금은 이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러나 "잘 사는 나라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거 아닌가? 가난한 국가는 느리게 성장하고?"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연간 2%~3% 성장하는데 반해 북한 같은 절대빈곤 상태의 국가는 성장 자체가 희귀합니다. 또한 북미 · 서유럽 등 선진국들은 (경제성장에 실패한) 보통의 국가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성장률 격차의 원인을 두고, 경제성장이론은 저마다의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 솔로우 성장모형 (Solow Growth Model)

- 1인당 자본량이 적은 국가일수록 더 빠르게 성장

- 궁극적으로 모든 국가의 성장률은 0% 혹은 외생적인 기술진보율로 수렴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 [경제성장이론 ②] '자본축적'이 만들어낸 동아시아 성장기적 · [경제성장이론 ③] 솔로우 모형이 예측한 수렴현상 - 전세계 GDP와 성장률이 같아질까?


솔로우 성장모형은 ①, ②의 성장률 패턴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모형은 '체감하는 생산함수'(diminishing)를 가정하기 때문에, 1인당 자본량이 많아질수록 생산량 증가폭은 점점 줄어듭니다. 따라서, 1인당 자본량이 많아질수록 성장률은 하락하며, 1인당 자본량이 적은 국가일수록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즉, 솔로우 모형은 국가간 성장률 격차의 원인을 '자본축적 정도'에서 찾고 있습니다. 자본축적량이 정상상태(steady state)에 가까운 국가는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자본축적량이 정상상태에 미달하여 전이경로(transitional path)에 있는 국가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중국이 미국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미국보다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과거 한국이 오늘날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건 1인당 자본량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가의 1인당 자본량이 동일해져 생활수준이 같아지고(=level의 수렴), 성장률도 0% 혹은 외생적인 기술진보율로 같아지는(=rate의 수렴)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수렴현상'(convergence)이라 합니다.



▶ P.로머와 루카스의 내생적성장 모형 (Endogenous Growth Model)

- '지식' 및 '인적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주도국이 높은 성장률을 계속 유지해나간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P.로머와 루카스는 ③의 성장률 패턴에 주목합니다.


일부 국가들 사이에서는 솔로우가 예측했던 것처럼 1인당 자본량이 적은 국가가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범위를 전세계로 확장하면, 가난한 국가는 성장 자체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개발국의 성장률은 OECD 소속 국가들보다 낮습니다.


또한, 시대별 주도국'(leader)의 성장률이 시대가 지날수록 높아져만 갔습니다. 1700년대 네덜란드 -0.07% · 1800년대 초 영국 0.5% · 1800년대 후반 영국 1.4% · 1900년대 미국 2.3% 입니다. 또한, 1900년대 미국의 성장률을 연도별로 쪼개보면, 최근 년도에 가까울수록 성장률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P.로머와 루카스는 국가간 성장률 격차의 원인을 지식과 인적자본 등 기술수준 격차(technology gap)에서 찾고 있습니다. 초기 지식 및 인적자본 수준이 높았던 국가는 영원히 높은 성장률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솔로우가 예측했던 수렴현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①, ②의 현상과 ③의 모습은 서로 상충되어 보입니다. 하지만 세 가지 모습은 동일한 요인때문에 발생한 현상일 수 있습니다. 


'1인당 자본량이 적다'는 절대적인 양이 적다는 의미도 있지만 상대적인 양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기준은 '각자의 정상상태'(own steady state) 입니다. 


초기 솔로우 모형은 저축률 · 인구증가율 등이 외생적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동일한 정상상태'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국가별로 저축률 · 인구증가율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정상상태도 다릅니다. 어떤 국가의 정상상태는 1인당 GDP 3만 달러일 수 있지만, 어떤 국가는 2천 달러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각자의 정상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일수록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까운 국가일수록 낮은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즉, 자본축적량이 정상상태에서 떨어진 정도(initial deviation)가 성장률 패턴을 결정 짓습니다. 이를 '조건부 베타 수렴'(conditional betaβ convergence)이라 합니다.


미국에 비해 중국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정상상태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 자체가 없는 저개발국에 비해 주요 선진국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 역시 자신만의 정상상태에서 더 밀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개발국은 1인당 자본량이 적다고 하더라도, 그 수준이 이미 정상상태에 가까운 것일 수 있습니다.



▶ P.로머의 '다양성 기반' 신성장이론 (variety-based new growth theory)

- 연구부문에 더 많은 인적자본을 배치할수록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솔로우 성장 모형과 조건부 수렴 등은 모두 '자본축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P.로머와 루카스는 '지식'과 '인적자본'에 주목했죠. 그리고 P.로머는 1990년 또 다른 논문을 통해 '아이디어'(idea)와 '연구'(research)로 관심을 돌립니다.


사람들은 '기술'(technology)이라 하면, '공장에 있는 기계를 다루는 능력'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장이론에서 기술이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기술진보란 '여러 원자재를 조합하는 방식을 개선시키는 것'(improvement in the instructions for mixing together raw materials)을 뜻합니다.


이때 경제성장 동력인 기술진보를 이끄는 요인이 바로 '아이디어' 입니다. 


연구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발견(discovery)을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곤 합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아이디어는 보다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케하는 다양한 방식(design)을 제시하면서 경제 전체의 생산능력을 키웁니다.  


따라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사람, 즉 연구부문에 종사하는 인적자본이 많을수록 높은 성장률이 나타나게 됩니다. 


주요 선진국이 저개발국에 비해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바로 연구부문의 차이에 있습니다. 선진국 내 주요 기업들은 R&D 투자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내지만, 저개발국은 그저 모방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 아기온 · 호위트의 '품질향상 기반' 신성장이론 (quality-based new growth theory)

- 기업간 경쟁 증대는 R&D 투자 증가 압력으로 작용한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경제성장률 차이를 불러오는 이유가 R&D 투자에 있다면, R&D 투자를 증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기온과 호위트는 '기업간 경쟁'(competition)에 주목합니다. 


현실의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혁신에 성공하여 라이벌 기업을 누르거나 반대로 경쟁에서 뒤쳐져 시장지배력을 모두 잃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R&D 투자를 늘리게 됩니다.


이때, '경쟁과 혁신의 관계'는 산업구조에 따라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시장내 경쟁수준이 낮은 상황에서는 동등한(leveled) 수준의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증가할수록 (담합이 어려워져) 혁신이 증가하게 됩니다.


반대로, 시장내 경쟁수준이 높은 상황에서는 동등하지 않은(unleveled) 수준의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증가할수록 (혁신의 기대이익이 적어져) 혁신이 감소하게 됩니다. 


그 결과, 경쟁과 혁신은 '역U자형'(inverse-U relationship)으로, 초기에 경쟁 수준이 낮은 상황이라면 경쟁이 벌어질수록 혁신은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미 경쟁 수준이 높은 상황이라면 경쟁 증가는 혁신 발생을 감소시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간 성장률 격차를 바라볼 때, 국가별 산업구조 등 미시적인 요인을 살펴봐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줍니다.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 아이디어 격차는 더 빠르게 좁힐 수 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⑩] 솔로우모형 vs 신성장이론 - 물적 격차(object gap)와 아이디어 격차(idea gap)의 대립


아이디어가 가진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비경합성'(non-rival) 입니다. 

(관련글 :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


기초 과학 및 공학법칙 · 경제 및 경영 지식 · 새로운 생산방법 등 아이디어는 모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월을 뛰어넘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선진국이 가진 아이디어는 후발산업국가 혹은 개발도상국도 함께 공유할 수 있습니다. 후발국이 사용한다고 해서 선진국의 아이디어가 훼손되거나 사용이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간 생활수준 격차를 보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함의를 전달해 줍니다.


이때 국가간 아이디어 확산에 역할을 하는 건 바로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firm) 입니다. 후발국이 다국적기업에 적정한 보상을 주는 환경을 조성하면, 다국적기업은 직접투자 · 합작기업 설립 · 마케팅 및 라이센스 협약 등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 [경제성장이론] 시리즈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추후 추가

  1. 1990년 폴 로머가 발표한 신성장이론 역시 내생적성장 모형의 한 부류입니다면, 1986년 논문과 구분하기 위해 용어를 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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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

Posted at 2014. 1. 9. 13:03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한국경제 성장과정에 대해 공부하면서 남는 궁극적인 의문은 "후발산업국가 중에 왜 유독 한국만이 독보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라틴아메리카나 대다수 후발산업국가의 경우, 특정 지배세력이 국가의 자원을 독점함으로써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게해서 '특정 지배세력의 자원 독점'을 막을 수 있었을까? 


경제학적 접근을 통해서는 경제성장 '방식'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왜 유독 한국만이" 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학, 정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여러 논문, 단행본 등을 읽으면서 주목하는 것은 "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 




※ 박정희정권의 역할


류상영은 '군사쿠데타라는 위로부터의 정치권력 변동'이 '국가재정으로 부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려는 수입대체 선호적인 자본가 및 지배연합'을 해체시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박정희정권의 '위로부터의 강한 정치권력과 리더십'이 '수입대체적 지배연합을 해체하고 새로운 발전지향적 지배연합을 탄생' 시킴으로써, 국가가 '국내 자본에 의해 포획당할 가능성'을 줄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입대체적 지배연합'이 무엇인지는 모호하지만,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지주계급 세력'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험에서 보여지듯이, 한국에서도 이승만정권 이래로 수입대체전략을 지속시킴으로써 국가재정으로 부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려는 수입대체 선호적인 자본가 및 지배연합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와는 달리 한국내 수입대체 선호의 분배형 지배연합이 군사쿠데타라는 위로부터의 정치권력 변동에 의해 확실히 단절되어 버림으로써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잃게 되었고, 정부의 재정적자를 담보로 한 이들의 지대추구활동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박정희정권의 제도형성이 갖는 중요한 정치경제적 의미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수입대체적 지배연합을 해체하고 새로운 발전지향적 지배연합을 탄생시키는 법적, 제도적, 물질적 기초를 구축하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박정희는 위로부터의 강한 정치권력과 리더십에 의해 이 과업을 단시일에 효과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나 이승만정권에서 처럼 정희정권의 정치권력이 국내 자본에 의해 포획당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류상영. 1996. 박정희정권의 산업화 전략선택과 국제정치경제적 맥락. 8




※ 토지개혁과 한국전쟁 - 지주계급의 몰락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전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토지개혁'과 '한국전쟁' 이다. 김일영은 "농지(토지)개혁과 한국전쟁이 한국 사회의 전통적 지배계급인 지주의 몰락을 가져왔다" 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발전국가의 등장요건의 일부, 특히 국가가 사회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초적 조건은 1950년대에 마련되었다. 농지개혁의 단행과 그에 뒤이어 벌어진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의 전통적 지배계급인 지주의 몰락을 가져왔다. 새로운 자본가 계급이 생겨났지만, 아직 그 규모가 작았고 자기재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했었다."


- 김일영. 1999. 1960년대 한국 발전국가의 형성과정 - 수출지향형 지배연합과 발전국가의 물적 기초의 형성을 중심으로. 3




토지개혁의 성공 → 국가의 자율성확보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토지개혁과 한국전쟁이 어떻게해서 지주계급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교 국제대학원 유종성 교수는 "토지개혁 성공으로 인해, 경제개발 초기에 지주계급에 의한 포획이나 Clientalism이 발생할 여지를 최소화시키고 국가 자율성(State Autonomy)이 발휘될 가능성을 열어줬다"  라고 말한다. 

첨부한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토지개혁(Land Reform)이 실패한다면, 기존 지배계급에 국가가 포획(State capture by the landed elite) 되어, 지배계급의 지대추구 행위를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경로를 밟게 된다. (필리핀의 경우) 그러나 토지개혁이 성공한다면, 국가는 기존 지배계급으로부터 자율성(State Autonomy)를 획득하게 된다. 이때, 자율성을 획득한 국가는 특정 지배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경제성장 달성 이후에는 한국의 경우처럼 '재벌중심(Chaebol-centered)' 경로를 밟음으로써 새로운 지배세력인 '재벌에 국가가 포획(Capture by chaebol)' 되는 경우,'중소기업 중심(Small and Medium Enterprises-Centered)'의 경로를 밟음으로써 국가가 계속해서 자율성을 유지하게 되는 경우로 나뉘게 된다.)



※ 
한국전쟁, 점령 → 피난 → 학살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기존 지배계급의 붕괴에 있어 '한국전쟁'의 역할을 강조한다. 박태균은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전쟁 뒤) 폐허 위에서 새로운 경제 체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전쟁 기간을 통해서 남북한에 지주계급이 사라졌다. 이미 남북한에서는 1946년과 1950년에 토지개혁과 농지개혁으로 지주의 토지를 빈농 및 소작인들에게 분배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그러나 개혁이 단시간에 이루어지기란 불가능했다. 특히 남한에서는 농지개혁이 유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땅값을 분할 상환하는 과정에서 지주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농지개혁법으로 농지소유의 상한을 설정하여 지주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였지만, 6장 2절에서 말했듯이 현물세와 지가 납부로 절량농가가 된 농민들은 싼값에 땅을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지주들은 한국전쟁 기간을 통해 몰락했다. 대부분의 지주들은 농지 몰수의 대가로 받은 지가증권의 가치가 하락해 재기하기 어려웠다. 인민재판에서 학살된 지주들도 적지 않았으며, 학살을 피하기 위해 피난을 떠나는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한반도에서 수백 년동안 지배신분으로서 특권을 누렸던 지주계급은 한국전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조건 위에서 남북한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한의 경우 미국간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자본주의적 질서를 만들기 위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북한에서는 노동력의 고갈로 자연스럽게 집단농장이 형성되었고, 이것은 사회주의 체제로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박태균. 2005. 『한국전쟁』. 359-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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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Posted at 2013. 10. 25. 00:05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대한민국 주식회사 Korea, Inc. - 경제발전을 위해 나아가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살펴봤듯이, 한국경제는 국가가 금융자원을 동원 control over finance 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 


경제개발 단계에서 한국정부가 금융자원을 동원한 이유[각주:1] 중 하나기업가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한국경제는 수출지향 산업화전략 export-oriented strategy 을 통해 경제발전을 꾀했었다. '수출지향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 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정부는 수출기업들에게 더 많은 금융자원을 배분함으로써 수출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였다. 당연히 기업가들은 이에 반응하여 수출규모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즉, 은행국유화를 통해 금융자원을 장악한 정부는 정책금융 policy loans 을 이용하여 기업가들이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 national interests 을 위해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 한국경제 개발시기, 수출기업들은 내수기업 보다 좀 더 쉽게 금융자원이용에 접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정부는 기업가 뿐만 아니라 은행에 대한 통제도 시행하였다. 수출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은행장을 호출하거나, 기업부문에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경우에는 수출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도록 지시한다. 금융의 본래 목적인 자원재분배 re-distributional 보다는 경제발전 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온 힘을 쓰게 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경제개발단계의 한국은 '대한민국 주식회사 Korea, Inc.' 나 마찬가지였다. 은행은 재무부서, 산업부문은 생산·마케팅부서, 정부는 총괄기획부서 였던 것이다. 


As they shaped their initial concept of industrialization, their immediate thought was how the government could be used to mobilize funds and support industrial investment. They wanted to control the behavior of industrialists in an effort to make their economic activities conform to national interests. Consequently, they needed governance control tools; "control over finance" became the major policy instrument for effecting the decision-makers' concept of industrialization. (...) (14)


Credit policy is formulated as part of development strategy; as such, its effectiveness is determined within the overall structure of industrial and macroeconomic policy. Korea's credit policies were well coordinated with its industrial policies. Korea wanted to pursue industrialization, and it realized that, given its small domestic market but relatively well-trained human resources, it could do so only by adopting an export-oriented strategy.


Credit, industrial, and macroeconomic policies were all geared toward this goal. Compared with many other developing countries whose credit policies are oriented primarily toward re-distributional purposes (or which lack a clear focus, so that almost all sectors are targeted, which is tantamount to targeting none), Korean credit policies were sharply focused on promoting exports and provided the support necessary to enable industry to pursue this goal. (...) (15-16)


In the early 1960s, the government adopted several measures to strengthen state control over financing. In particular, it nationalized commercial banks. (...) Chaired by the president, monthly export promotion meetings and monthly briefings on economic trends constituted a forum for ministries and the private sector to monitor the progress of economic policy and to build consensus on ways to address emerging problems. (17)


This style of economic management resembled the operational mode of a corporation - in this case, Korea, Inc. Within this management partnership, banks served as the treasury unit, the industrial sector as the production and marketing units, and the government as the central planning and control unit. (18)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14-18 (PDF 파일 기준)


It is not easy to define policy-based loans in Korea. Because all major banks were owned by the government, which also set the interest rates for bank loans substantially lower than the market rate, all bank loans could be considered policy loans. (...) (76)


These loans were usually made according to the government's assessment of the progress of specific key projects and the constraints facing specific firms or industries. The decisions were usually made in consultation between the government and business sectors, and after close monitoring of progress by the government. 


For example, when the government assessed the progress of plant constructions for the chemical industry complex and found that they were well behind schedule because the lending banks were providing insufficient support, it summoned the bank presidents and asked them for greater cooperation in supporting the project. 


Moreover, when exporters reported in the monthly export promotion meetings that the international market was slow and that they had begun accumulating inventory, the government urged bankers to extend greater working capital credit to exports. In many cases, the establishment of new credit programs was also the product of this close consultation between government and business. (77) (...)


Control over finance confers some explicit governance rights to the government over the borrowers for the entire period of loans. Credit policies allow the government to allocate subsidies flexibly, according to the performance of supported firms or industries. In turn, such control extends to refinancing decisions - whether or not existing debt should be rolled over or new debt extended, and, if so, at what conditions. 


Well-measured refinancing decisions provide incentives? : good performance can be rewarded with continued or expanded support ; or a inappropriate use of funds is punished with a reduction in or even termination of support a threat that may make the survival of firms untenable. This carrot and stick policy underlying credit programs makes them an effective tool of government industrial policy - more effective than fiscal incentives, which stem from legislative initiation and are subject to rigidity of the implementation process. (106)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76-106  (PDF 파일 기준)




※ 정부의 지급보증 덕분에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이 고양된 기업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control over finance' 이 가지고 온 또다른 효과이다.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자본투입 증가에 따른 경제성장은 부채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당시 한국기업들도 경제성장과정에서 과도한 부채를 지니게 되었었다. 일반적인 경제라면 과도한 부채를 지닌 기업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파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는 금융자원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의 대출상환촉구에 따른 기업부도는 일어나지 않았었다. 오히려 정부의 지급보증 덕분에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를 지더라도 정부가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파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위험성이 risk 큰 사업에 과감하게 뛰어들게 된다.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이 고양된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더이상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장기적인 관점 a long-term business perspective 에서 사업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지금 당장의 수익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산규모 극대화와 (장기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일종의 리스크 파트너 a risk partner of industrialists 역할을 맡으면서 실패에 대한 위험성 risk of failure 를 줄이는 정부-기업-은행의 공동보험체제 a government-industry-bank co-insurance scheme 가 성립된 것이다.  


The impact of credit policies on economic growth is not limited to their impact on the cost of and access to credit. In an economy such as Korea's, in which the expansion of investment was financed by bank credit and foreign loans, the financial structure of firms was highly leveraged. By controlling finance, the government could become an effective risk partner of industrialists and could motivate their risk venture and entrepreneurship. 


It could induce the industrialists to take a long-term business perspective, while a competitive financial market may have prompted firms to take a shorter-term view. In other words, by controlling financing, the government established a government-industry-bank co-insurance scheme to protect industrial firms from shocks. This indirect impact of government credit policy may also have been an important determinant of the rapid industrialization of Korea. (105) (...)


But credit policies carry their own risk - the "risk of government failure." In Korea, the government's continuous communication with business leaders and close monitoring of firms through various channels (such as monthly export promotion meetings) helped reduce its risk of failure. Moreover, by controlling the banks, the government created incentives for firms to maximize their assets and growthrather than to strive for immediate profitability. (106)-(107)


As far as they satisfied the government by expanding exports and successfully completing plants, firms ensured their continual credit support and survival. As such, the government mitigated its risk of failure by adopting a sounder, more stable investment environment. (107)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105-107  (PDF 파일 기준)




※ 경제성장으로 이어진 경제주체들의 리스크분담 risk-sharing


그러나 정부가 금융자원을 통제하여 기업들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만다. 과도한 부채를 보유하게 된 기업들은 내부 · 외부충격에 취약한 상태 vulnerable to internal and external shocks 였는데, 자본투입 성장 정책의 부작용[각주:2]세계경기 둔화를 맞아 기업들이 무더기로 부실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장규는 저서 『대통령의 경제학』에서 당시 한국경제 상황을 전하고 있다.


 해방 이후 막대한 원조를 통해 '대한민국 만들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국은 한국이 원조시대를 끝내고 차관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오히려 인색한 나라가 됐다. (...) 이런 마당에 박정희가 1962년 기업들의 상업차관 도입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는 정책을 결정한 것은 합리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사업은 기업이 벌여라. 책임은 정부가 진다'는 식이었다. (...)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무리한 정책추진의 부작용이 왜 없었겠는가. 외국자본이 들어와도 공장이 지어지고 수출이 늘면서 경제가 눈에 띄게 달라져 갔다. 그러나 세계경기가 불황이 되면서 차관기업들은 무더기로 부실사태를 빚었다. 환율과 금리 부담 속에 기업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기업의 부실은 이들한테 물린 은행들까지 연쇄도산 위기로 몰고 갔고, 결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상황으로 번져나갔다.


1969년 재무부는 83개 차관업체 중에서 45%가 부실기업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결국 청와대에 부실기업정리반이 조직돼 30개 기업을 도산시켜야 했다. 한국 수출 산업의 선구자로 존경받던 전택보의 천우사도 이때 문을 닫았다. 


이장규. 2012. 대통령의 경제학』. 144-147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결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상황" 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1997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정부는 4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1969년~1970년 · 1972년 · 1979년~1981년 · 1984년~1988년)을 시행하였다.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정부는 이장규가 쓴 문구처럼 "정부가 구제금융 · 사채동결 등의 방식으로 직접 금융시장에 개입함으로써 the government made these bailouts by intervening in credit markets" 기업부실문제를 해결해왔다.


이러한 기업 구조조정에서의 직접적인 정부개입은 경제주체들이 경제전체의 리스크를 분담 risk-sharing 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직접 기업의 부채를 탕감해준 8·3 사채동결조치는 기업의 부담을 채권자인 은행에게 전가시킨 정책이다. 은행의 부담은 고스란히 예금자인 국민에게 이어진다. 그렇지만 부채탕감의 혜택을 입은 기업들이 수익을 다시 내기 시작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민들은 경제성장 · 일자리 · 임금인상 이라는 혜택을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해, 경제주체들의 리스크분담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Industrial investment in Korea was financed largely by debt, especially during the period of rapid economic growth. Fiscal incentives and low interest rates allowed some firms to accumulate retained earnings, but, in the absence of well-functioning domestic equity market, huge investment requirements for rapid industrial expansion had to be financed largely with bank loans and foreign debt. During 1963~71, the debt ratio of the Korean manufacturing sector increased by more than four times, from 92 percent to 394 percent (Box 2, Table C). (107)


Even in the 1990s, Korean firms remain highly leveraged, although their debt ratio in the second half of 1980s declined somewhat with the expansion of the stock market. Consequently, Korean firms became more vulnerable to internal and external shocks. In fact, Korea could have undergone several financial crises had the government not actively become involved in risk management through credit intervention.


The government undertook major corporate bail-out exercises in 1969~70, 1972, 1979~81, and 1984~88 to ride out recessions and avoid major financial crises. In a credit-based economy, the government made these bailouts by intervening in credit markets. The government's involvement in restructuring firms and industries, and in redistributing losses make risk-sharing among the members of the economy possible. Depositors usually took the lion's share of this cost, but they were rewarded subsequently with steady economic growth, increased job opportunities and as wage earners. (...) (108)


In a credit-based economy, creditors and borrowers should share some risk, otherwise, financial crises recur with economic downturns. In Korea, the government was directly involved in risk sharing by intervening in credit markets, as such, bank credit constitutes the primary source of risk capital through government involvement. (114)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107-114  (PDF 파일 기준)




※ 재벌들의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의 지급보증과 리스크 분담


앞서 살펴본것을 정리하자면, 금융자원을 통제하고 기업운영의 보증을 선 정부는 기업의 리스크를 줄임으로써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을 고양시켰고 기업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도록 도왔다. 또한 기업구조조정에 적극개입한 정부는 기업부실로 인해 생긴 리스크를 경제주체들이 분담케 함으로써 경제성장의 동력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금융자원을 통제하고 기업운영의 보증을 선 정부'가 한국경제의 좋은 영향만 끼쳤을까?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언급했다시피, 정부의 지급보증은 은행과 기업들의 도덕적해이와 대마불사(大馬不死, too big to fail) 문제를 초래한다.


경제개발단계에서 단순히 국가의 금고 역할을 담당하고,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국가의 지시에 의해 부담만 떠안았던 한국의 은행들[각주:3]은 기업의 경영상태를 평가하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 기업의 경영상태를 평가하지 못하는 은행은 무차별적인 대출을 할 수 밖에 없다. 1997 외환위기 이후, 은행을 통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회고록 『위기를 쏘다』 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1998년 2월 9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실에 들어서자 좌중의 눈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 내가 이날 전한 메시지는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번 주말까지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해 주십시오. 그 계획대로 구조조정을 실천해 주십시오. 결과는 시장이 평가할 것입니다."


바로, '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다. DJ 정권의 재벌 다루기가 첫 단추를 끼우는 자리였다. 구조조정 계획을 받기만 하면 된다. 내용은 상관없다. 기업 스스로 구조조정을 만들게 하는 것, 그래서 주거래 은행이 그 계획을 점검하게 하는 것, 이게 핵심이었다. 그 순간 기업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은행에 맡기게 된다. 은행을 우습게 알던 때였다. 웬만한 은행장이 대기업의 자금 담당 이사를 만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63-64) (...)


이미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시절부터 '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을 약속한 터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각 은행에 "각자의 판단에 따라 퇴출 기업을 골라내라"고 주문했다. 국내 은행들은 그때까지 기업의 금고나 다름 없었다. 기업 신용을 평가하는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참에 그걸 배우라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부실기업 판정. 은행들은 버거워했다. 우선 부실기업 퇴출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퇴출된 기업에 빌려준 돈은 모두 부실 채권이 된다. 고스란히 은행 부담이 되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는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계열사라도 뒤에는 대마불사의 본사가 버티고 있다. 괜히 건드렸다가 거래가 끊길까, 본사가 부실해질까 겁을 냈다. (267)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63-64, 267     


더욱 더 심각한 것은 기업들, 특히나 재벌들의 대마불사이다. 경영상태가 부실해졌을때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준 것을 기억하는 재벌들은 계속해서 차입경영을 하였고 그 결과 취약한 재무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재벌들의 대마불사는 1997 외환위기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1997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규성은 저서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를 통해, 재벌들의 차입경영과 취약한 재무구조가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국내외적으로 지혜를 동원하여 개발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우선순위 사업을 정하고 이들 사업을 시행할 사업자를 직접 선정하여 이들에게 장기 저리융자와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고 외자도입도 주선해 주는 등 자원도 우선적으로 배분해 주었다. 


정부와 민간이 합심하여 한국주식회사를 만들어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은 단순한 캐치업 단계에서는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한국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개도국 경제개발의 모델이 되었다. (...) 이와 같이 한국 경제의 큰 얼개는 선진국에 근접하고 있지만 내실면에서는 여러 가지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내실면에서 취약성의 하나는 기업 · 금융의 재무구조가 건실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


우리 기업의 재무구조가 취약한 것은 그 동안 정부주도형 개발전략의 추진과정에서 기업의 차입경영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 기업의 성장은 곧 부채의 누적이었다. (...)

차입경영에 따른 재무구조의 취약성은 경기가 좋을 때에는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매출이 부진해지는 등 경영여건이 악화될 때에는 차입경영은 한계에 직면하고 부실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업들의 부실이 크게 늘어나면 이는 곧 금융부실을 초래하여 자칫 경제시스템 전체의 불안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며, 특히 거액의 부채를 지고 있는 대기업들의 다수가 부실화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과정에서도 대규모의 기업부실이 간단없이 발생하였다. 이 때 정부는 기업의 퇴출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직접 정리해 나갔다. (...) 정부주도의 부실기업 정리는 대체로 구제금융을 제공해 주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시키는 방식이었다. (...)


한편 금융운용의 실상을 보면 경제개발 과정에서 금융은 정부의 개발계획상의 사업을 차질 없이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금융기관은 금융의 본래기능인 사업성 심사를 통한 효율적인 자원배분기능을 수행하여 수익을 올리는 영리 기관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에 따라 자금을 공급하는 신용배급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


기업의 차입경영에 따라 자금수요는 항상 넘치게 되었으며 이는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공급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금융기관은 채권확보에 중점을 두고 신용배분을 하게 되었으며, 그 기준은 담보와 대기업 여부였다. 대기업들은 부동산 담보 외에도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각주:4]에 의하여 차입능력이 강화되었다. 


금융기관들이 파산할 경우 경제 전체의 불안정을 초래하기 때문에 금융감독 당국은 부실이 크게 발생한 경우에도 퇴출시키지 않고 한국은행 특별융자를 제공하여 살아남을 수 있게 하였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에 은행이 파산한 사례는 전혀 없었다.


이와 같이 정부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실패위험을 전적으로 안아주는 보험자 역할이 지속되자 대기업 불사(too big to fail) 및 은행불패(不敗)라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이 우리 사회에 보편화되었다. 이제 금융기관들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정부가 구제해 줄 것이라는 은행불패의 믿음 아래 대기업에 대한 대출에 대해서는 위험성이 높은 경우에도 주저 없이 자금을 공급해 주었다. 


대기업들은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대기업 불사의 기대 아래 잘 되면 크게 벌고 안 되면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면서 고수익 · 고위험 사업을 거침 없이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이는 바로 정경유착의 심화로 연결되었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64-67  

      

은행의 은행불패 믿음과 기업의 대마불사 믿음이 어떻게 1997 외환위기를 유발시켰는지는 다음 포스팅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참고자료>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2013.08.18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이장규. 2012. 대통령의 경제학』.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1. 당시 한국정부가 금융자원을 동원한 궁극적인 목적은 '자본투입의 증가'를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서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2. 이에 대해서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의 '※ 요소투입증가, 즉 과잉투자가 초래하는 경제적 문제들' 참고.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3. 이종화, 이영수는 <한국기업의 부채구조-재벌과 비재벌 기업의 비교>(1999) 에서 "한국에서 금융과 기업 간의 관계는 일본, 독일과 마찬가지로 매우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의 메인뱅크제도(main banking system)가 기업지배(corporate governance)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반면, 한국의 금융기관은 이러한 기능이 상실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한국기업의 높은 부채비율은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의 관치금융, 비통화금융기관의 재벌소유, 느슨한 금융감독에 따른 '사금고화' 등의 문제에 더욱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라고 지적한다. 은행과 기업의 관계에 대해서는 추후 포스팅할 계획이다. [본문으로]
  4.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외환위기의 수습을 맡은 이헌재는 '기업구조조정 원칙'으로 '①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② 상호지급보증 해소 ③ 재무구조의 회기적 개선 ④ 핵심역량 강화' 를 내세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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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Posted at 2013. 10. 18. 15:51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금융자원 동원 control over finance 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한 한국경제


이전 포스팅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을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을 다루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를 찾을 수 있다. 바로  "한국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금융자원 동원 control over finance 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이다.


박정희정권은 "1961년 재벌소유 시중은행 주식이 정부로 귀속되고, 민간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함으로써 "일반상업은행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각주:1] 그리고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을 통해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소수의 기업들에 금융자원을 몰아주었다. 이러한 정책금융 policy loans 의 혜택을 받은 기업들은 세계시장에 진출했고, 그 결과 한국경제는 수출주도형 성장 export-led growth 을 달성[각주:2]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국가가 금융자원을 동원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바로, "자본투입의 증가 growth in the supply of capital" 이다. 국가경제의 장기총생산 the long-run aggregate production 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한 건, "노동투입의 증가 · 자본투입의 증가 · 노동생산성 향상 · 자본생산성 향상" 이다. 



< 출처 :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조장옥 교수, 거시경제학 수업자료 >  


위에 첨부한 그래프는 경제 내의 장기총생산이 결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 에서도 다루었다.)


1번 그래프는 노동시장 Labor Market 에서 노동공급자 (P*MRS=물가수준*한계대체율)와 노동수요자 (P*MPL=물가수준*한계노동생산)가 만나 균형노동량를 달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기업의 인력수요와 노동자의 구직의사가 만나 일정한 수의 노동자가 취직에 성공하는 모습을 뜻한다.


2번 그래프는 경제체제 내의 생산성 Productivity 정도를 나타내는 생산함수 Production Function 이다. 노동 · 자본 생산성이 증가할수록 생산함수이 상향이동 하고, 1번 그래프의 노동시장에서 결정된 균형노동량가 장기 총생산량를 이끌어낸다. 이러한를 45도 직선 그래프에 대응하면, 4번 그래프 모양인 장기 총생산량를 가진 장기 총공급곡선 Long-run Aggregate Supply Curve 이 도출된다. 


(1번 그래프 노동시장을 자본시장 Capital Market 으로 바꾸고, 2번 그래프 생산함수를 자본를 변수로 하게 바꾸어도 된다.)  


즉, 이 그래프는 1번에서의 노동투입의 증가 혹은 자본투입의 증가 · 2번에서의 노동생산성 향상 혹은 자본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도시화를 통해 노동투입을 증가시켰고, 금융자원을 동원함으로써 자본투입 증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은 이러한 경제학적 원리를 글로 쉽게 풀어냈다. 


성장의 두 가지 원인이 합쳐져서 경제확대가 이룩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투입의 증가 increases in inputs 다. 고용의 증가, 노동자들의 교육수준 향상, 그리고 물리적인 자본축적의 증가(기계·건물·도로 등)가 그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원인은 투입단위당 생산의 증가 increases in the output per unit of input 다. 관리 개선이나 경제정책의 개선으로 이런 증가가 이룩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주로 지식의 향상으로 이루어진다.


성장회계의 기본 개념은 이 두가지의 크기를 명백하게 계산함으로써 이 공식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 회계는 그래서 각 투입요소별(예컨대 노동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자본의) 성장 기여도를 산정하고, 또 효율증가에 따른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


노동 생산성을 이야기할 경우 우리는 사실 그 때마다 원시적인 형태의 성장회계를 셈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은연중에 우리는 전반적인 국가 성장 가운데 노동공급의 증가에 기인한 부분 the growth in the supply of labor 과 일반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의 가치 증가에 기인한 부분 an increase in the value of goods produced by the average worker 을 구분한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의 증가가 항상 노동자의 효율향상 때문에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관리 개선이 있었거나 더 많은 기술지식을 지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더 좋은 기계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산이 증가할 수 있다. 더 빨리 도랑을 팔 수 있지만, 효율성이 더 높은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더 많은 자본을 갖고 일할 따름 more capital to work with 이다. 성장회계의 목적은 측정 가능한 모든 투입요소를 종합하는 지표를 산출하고, 그 지표의 비율로 국민소득 성장률을 측정하는 것이다. 즉 '총요소 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을 추산하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227-229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 요소투입량 증대를 통해 성장한 한국경제


그렇다면 노동투입의 증가 · 자본투입의 증가 뿐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 · 자본생산성 향상은 한국경제 성장에 얼마만큼 기여했을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Paul Krugman 은 이에 대해 비관적이다. 그는 "한국 등 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생산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이레적인 투입 증가 덕분" 이라고 주장[각주:3]한다.


성장회계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경제성장의 과정에 관해 아주 중요한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한 나라의 1인당 소득의 지속적인 성장은 투입단위당 생산이 증가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입 생산요소의 이용효율은 높이지 않고 단순히 투입량만을 늘리는 것(기계와 사회간접자본의 증가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수익률 감소에 부딪히게 되었다. 즉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은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최근 몇 년 간의 (joohyeon: 이 글이 1994년에 쓰였다는 것을 주의하자) 아시아 국가 성공사레와 30년 전의 소련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사실 싱가포르를 방문한 여행객이 그 도시의 화려한 호텔에 투숙해서 바퀴벌레가 들끓는 모스크바의 호텔과 어떤 유사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멋진 활기가 넘치는 아시아의 호경기와 소련의 무시무시한 산업화 운동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 1950년대의 소련처럼 아시아의 신흥 산업국들이 급성장을 이룩한 것은 주로 놀랄만한 자원의 동원 덕분이었다. 이들 국가의 성장에서, 급증한 투입이 발휘한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더 이상 말할 거리가 별로 남지 않는다. 높은 성장기에 보여준 소련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성장도 효율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이례적인 투입 증가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


동아시아 성장이 주로 투입증가에 의한 것이고, 그 곳의 축적된 자본이 벌써 수익체감의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완전히 이치에 부합되는 행동이다. (...) 최근 몇 년 간의 속도로 아시아의 성장이 지속될 수는 없다. 2010년의 시각에서 보면, 최근의 추세를 그대로 연장해서 아시아가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지금의 전망은 브레즈네프 시대의 시각에서 소련의 산업지배를 내다본 1950년대 식 전망만큼이나 어리석게 보일 것이 틀림없다. (joohyeon: 2013년의 시각에서 돌아봤을때, 폴 크루그먼의 주장은 옳았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성장의 실체는 우리에게 통속적인 교훈 중 몇 가지는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우리 경제정책의 전통적인 자유방임 방법이 잘못됐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들 경제권의 성공은 복잡한 산업정책과 선별적인 보호주의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일반화되어 있다.(joohyeon: 가령, 장하준 등등) (...)


그러나 어쨌든 만일 아시아의 성공이 전략적인 무역 및 산업정책의 결과 때문이라면, 그 결과는 이례적이고 감동적인 경제 효율성의 증가로 확실하게 입증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례적인 효율성의 증가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환태평양권의 신흥 산업국들은 그들의 이례적인 자원동원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은 것이며, 이런 대가는 아주 진부한 통속적 경제이론에 기초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아시아 성장에 어떤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행복을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이득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229-244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실제로 한국은행 보고서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우리나라의 실질소득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 했다. 이 보고서는 1980년 이후를 다루고 있지만, 1960년~1980년 사이의 경제개발 시기에도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실질총소득은 연평균 6.2% 증가하였는데 이는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높은 것이며 우리경제가 급속히 성장 하였다는 점과 일치하는 결과이다. 요소투입의 변화는 실질총소득을 5.2%p 증가시켰으며 소득증가의 83.0%를 설명하였다. 요소투입 중에서 자본투입의 기여도는 3.3%p로 전체 총소득증가의 52.3%를, 노동투입은 1.9%p로 30.6%를 설명 하였다. 생산성 증가는 실질총소득을 1.4%p를 증가시켰으며 22.9%의 기여율을 기록하였다.  (...)


실증분석 결과, 지난 30년 동안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우리나라의 실질소득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생산성 증가가 중요한 요소였다.[각주:4]


조태형, 김정훈, Paul Schrever.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 <한국은행 이슈노트>. 2012.06.30. 4-7




※ 요소투입증가, 즉 과잉투자가 초래하는 경제적 문제들


그런데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의 주장 중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단순히 투입량만을 늘리는 것은 결국 수익률 감소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라는 부분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한 국가 내의 인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투입의 증가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투입증가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본투입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융자원을 동원하여 기계설비 · 인프라 등의 자본량을 늘리는 투자 investment 를 뜻한다. 이른바 투자중심 성장 investment-driven growth 이다. 


이러한 투자중심 성장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① 입량의 과도한 증가에 따른 비효율성이 유발된다 라는 점과 ② 기업이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금융자원은 부채 는 점이다. 경제학자 마이클 페티스 Michael Pettis는 저서 The Great Rebalancing』을 통해 투자중심 성장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변변찮은 도로가 없었던 경제개발 초기에는 도로를 하나 건설하는 것만으로 큰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 근로자의 이동이 수월해지고, 물류를 운반하는 시간도 단축된다. 그러나 도로가 이미 많이 깔려진 뒤에 점점 더 많은 도로가 생겨날수록, 신규 도로건설에 따른 부가가치는 줄어든다. 거기다가 (국가의 금융지원을 통해 손쉽게 돈을 빌린) 기업들은 투자비용 대비 창출해낸 경제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저 투자를 위한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가가 기업들에 지원해준 금융자원은 고스란히 부채로 남게된다. 


as the history of every investment-driven growth miracle, including that of Brazil, shows, high levels of state-directed subsidized investment run an increasing risk of being misallocated, and the longer this goes on the more wealth is likely to be destroyed even as the economy posts high GDP growth rates. The difference between posted GDP growth rates and real increases in wealth shows up as excess debt. Eventually the imbalances this misallocation creates have to be resolved, and the wealth destruction has to be recognized as debt levels are paid down. 


With such heavy distortions imposed and maintained by the central government, there was no easy way for the economy to adjust on its own. Growth was not capable of being sustained except by rising debt. (...)


every other case of an investment-driven growth miracle, suggests that the model cannot be sustained because there are at least two constraints. The first has to do with the constraint on debt-financed investment and the second with the constraint on the external account, and one or both constraints have always eventually derailed the growth model.


To address the first constraint, in the early stages for most countries that have followed the investment-driven growth model, when investment is low, the diversion of household wealth into investment in capacity and infrastructure is likely to be economically productive. After all, when capital stock per person is almost nonexistent, almost any increase in capital stock is likely to drive worker productivity higher. When you have no roads, even a simple dirt road will sharply increase the value of local labor.


The longer heavily subsidized investment continues, however, the more likely that cheap capital and socialized credit risk will fund economically wasteful projects. Dirt roads quickly become paved roads. Paved roads become highways. And highways become superhighways with eight lanes in either direction. The decision to upgrade is politically easy to make because each new venture generates local employment, rapid economic growth in the short term, and opportunities for fraud and what economists politely call rent-seeking behavior, while the costs are spread through the entire country through the banking system and over the many years during which the debt is repaid (and most debt is rolled over continuously). (...)


Of course because risk is socialized— that is, all borrowing is implicitly or explicitly guaranteed by the state— no one needs to ask whether or not the locals can use the highway and whether the economic wealth created is enough to repay the cost. The system creates an acute form of what is sometimes called the “commonwealth” problem. The benefits of investment accrue over the immediate future and within the jurisdiction of the local leader who makes the investment decision. (...)


The problem of over-investment is not just an infrastructure problem. It occurs just as easily in manufacturing. When manufacturers can borrow money at such a low rate that they effectively force most of the borrowing cost onto household depositors, they don’t need to create economic value equal to or greater than the cost of the investment. Even factories that systematically destroy value can show high profits, and there is substantial evidence to suggest that the state-owned sector in the aggregate has probably been a massive value destroyer for most if not all the past decade, but is nonetheless profitable thanks to household subsidies.


Michael Pettis. 2013. 『The Great Rebalancing』.  80-91

 

한국도 경제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부작용을 경험했을까? 『대통령의 경제학』의 저자인 이장규는 박정희정권의 경제정책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라고 말한다. 이전 포스팅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에서도, "국가의 금융억압 정책이 기업의 규모늘리기를 유도했고, 자산대비 높은 부채비율을 초래했다" 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책금융, 관치금융의 대표선수가 수출금융이었다. 수출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대출도 자동적으로 얻어 쓸 수 있고, 시중 금리가 30%인데 수출 금리는 3분의 1 수준으로 해줬다. 은행들은 수출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운영됐고, 그 이면에서는 금융제도의 심각한 왜곡 현상을 빚어냈었다. 한국의 은행들은 수출 지원을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폐단도 많았다. 출금융의 싼 금리를 악용해서 실제 수출은 뒷전이고, 그 돈을 빼돌려서 돈놀이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수출은 한국경제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돌파구였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집값 폭등 등 심각한 부작용들의 생산 공장이기도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1960년대의 기업지원은 결국 탈이 나게 돼 있었다. 차관은 많을수록 좋다는 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였고, 수출을 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정부가 지원해줬으며 기업들은 저마다 확장투자에 경쟁적이었다. 앞서의 언급처럼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부실 차관업체를 무더기로 정리했음에도 기업들은 연리 40~50%의 고리사채에 목이 졸려가고 있었다.


이장규. 2012. "수출 지상주의, 8·3 사채동결조치". 『대통령의 경제학』. 162-164




※ 과잉투자 문제해결 위해,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에서 내수주도형 성장모델로 전환?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투입의 증가는 비효율성 · 과도한 부채 · 수익률 감소 ·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부터 알아야한다. 한국정부가 금융자원을 소수의 기업들에 몰아준 것은, 투자를 통해 생산기반을 닦은 뒤 세계시장에 나가 수출을 하라는 의도[각주:5]였다. 그렇다면 왜 한국경제는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채택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요소가 필요하다. 거기에 한 가지 또 다른 요소가 더 필요하다. 바로 조직자본 Organizational Capital 이다. 조직자본이란 노동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대규모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후발 산업국가들은 특정 소수의 기업에 자원을 몰아줌으로써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규모를 키운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미숙한 국가는 내수시장이 발전되어 있지 않고 기업간 경쟁이 없는 상태이다. 국가의 전략적 지원을 받는 기업을 이런 상태에 놔둔다면, 경쟁을 통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효율성 제거를 위해 국내 대기업에게 수출을 장려하고,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추가적인 조직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각주:6]은 저서 『폴트라인』을 통해 조직자본 개념과 후발 산업국가가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채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도국의 경우, 성장 초기에 투입되는 대규모 물적 자본을 효율적으로 분배 · 활용하는데 필요한 조직적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고속 최첨단 기계를 구입한 후, 똑똑한 직원을 뽑아 그것을 작동하도록 하면 그것으로 다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 기계를 정말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계 작동 전문 근로자 등을 위시해 그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만들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기계를 구입했다면, 그 기계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의 원료를 대줄 확실한 공급처를 확보해야 하고, 그 기계로 생산된 제품의 판매처도 확보해야 하며, 그 기계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제품 종류도 결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계 관리와 수리에 필요한 하자 보수팀, 공급 업체를 관리하는 구매팀, 바이어를 상대하는 마케팅팀, 야간에 시설을 감시할 경비팀 등 기계를 구입해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도요타 자동차와 소규모 정비 업체와의 조직적 차이 또는 변두리에 위치한 개인 병원과 대규모 메이요 클리닉과의 조직적 차이는 말 그대로 엄청나다. 그런데 바로 그 조직적 차이가 대규모 첨단 기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결정한다. (...)


문제는 조직 자본이었다. 후발 경제 개발국들은 중소기업 수준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신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들 후발 경제 개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이들 국가에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졌다. 국영 기업체를 설립해 경제 활동을 이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든가, 아니면 시장 경제를 조성하되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소수 대기업에만 특혜를 주는 방법으로 산업 경쟁력을 살리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후발 경제 개발국이 어떠한 선택을 했던 간에 국가 전체의 저축은 정부의 입김대로 움직이는 대형 금융기관을 통해 소수 대기업으로 들어갔다.  (...)


국영 기업체를 통한 경제 성장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상당수 국가의 정부는 조직 자본을 민간 분야에서 형성하되 국내 최고 기업을 선정해 이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부 특혜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국가는 신규 업체의 시장 진출 억제, 기업체에 대한 세제 햬택 등 다양한 특혜를 제공해 소수 민간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도록 돕고, 그렇게 창출한 수익을 산업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금융권과 소수 특혜 기업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 은행 자금이 집중적으로 (그리고 저렴하게) 이 특혜 기업으로 가도록 만든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국가는 일부 부담을 정부가 지면서까지 민간 업체에 저가로 원료를 공급하고, 외국 기업들로부터 국내 업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고관세를 부과한다. 이처럼 정부로부터 물질적 보조와 법적 보호를 받은 극소수 특혜 대기업은 급속한 성장을 하며 수익을 증대시키고 기술, 부, 조직 자본 그리고 안정성 모두를 확보하게 된다. (...)


그러나 정부가 소수 기업에게만 특혜를 부여하는 성장 전략은 상당한 문제를 유발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부패한 정부 하에서는 기업의 능력에 따라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정부 관계자의 친척이나 친구의 회사에 특혜를 부여하기 쉽다는 것이다. (...) 두번째 문제는 가계 소비를 정부가 별로 중시하지 않고, 그 결과 내수 소비 수준이 극도로 낮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비효율적인 국내 기업을 길들이면서 동시에 상품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국내 대기업에게 수출을 장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국내 기업은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어서 좋고, 동시에 더 넓은 세계 시장에서 활동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서 좋다. (...) 이러한 직간접적인 각종 혜택을 통해 개도국 기업의 효율성은 마침내 향상된다.


라구람 라잔. 2011. "경제성장을 위한 수출". 『폴트라인』. 106-123    


조직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이 부작용을 초래하니, 단순히 내수주도형 성장모델로 전환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위에서 살펴봤듯이, 투자중심 성장을 비판한 마이클 페티스 Michael Pettis 교수의 저서 제목은 『The Great Rebalancing』 이다. 말그대로 "(수출지향적인) 투자중심 성장에서 (내수지향적인) 소비중심 성장 Consumption-driven Growth로 균형을 재조정 Rebalancing 해야한다"는 것이다.[각주:7] [각주:8] [각주:9]  


그렇지만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은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을 채택했던 국가가 내수주도형 경제모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라고 말한다.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수출 지향적 성장 전략을 통해 부국이 된 국가들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국내 시장 성장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갔지만 결국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수출에 매달리는 동안 국내 최종 소비 증진에 필요한 물길이 모두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은행은 국내 시장을 외국 경쟁 업체로부터 보호하고, 소수 특혜 수출 업체들만 지원하는 관행에 익숙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정부가 은행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대출 과정을 자유화하는 조처를 취해도 은행은 현실에 적응을 제대로 못했고, 정부 기대에도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


소비자도 변화에 익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본 소비자들은 오랫동안 지출에 신중을 기해왔다. 그런 만큼 소매 금융이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미국의 가계와 달리 일본 가계는 무엇인가를 구입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다. 특히 노인 세대는 전쟁 후 굶주리고 불안했던 기억과 저축이야말로 애국의 길이라고 배웠던 과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라구람 라잔. 2011. "경제성장을 위한 수출". 『폴트라인』. 132-134




※ 8·3 사채동결조치를 통해 과잉투자의 문제를 해결한 한국경제


라구람 라잔 Raghuram Rajan 의 주장처럼,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에서 내수주도형 경제모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자본투입의 증가-다르게 말해 과도한 투자 over-investment-가 초래하는 부작용을 어떻게 개선했을까? 1972년 한국정부는 '기업들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 이다. 8·3 사채동결조치는 '부채상환 동결 또는 탕감 · 대출 이자율 인하 · 만기구조 재조정' 을 담은 정책이었다. 


명색이 시장경제를 하겠다는 나라에서 기업 부채를 동결 또는 탕감 해준다는 것은 생각조차 어려운 극약처방이었다. 전경련 김용완 회장은 여러 차례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기업들의 빚더미 현실을 토로하고 특단의 구제조치를 요청했다. 자금 지원이나 부채상환 연기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빚더미에 깔려 있는 기업들의 사채를 아예 동결시켜달라는 것이었다. (...)


대통령은 고심 끝에 사채동결로 결심했다. 재계 총수 김용완의 요청으로 비롯된 것이었고, 여러 의견을 청취한 끝에 내린 박정희의 최종 결정이었다. 1971년 9월 김용환(외자관리비서관)을 팀장으로 하는 실무반이 편성됐고, 이듬해 8월 3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사채동결조치를 발표하게 된다. 통화개혁 못지않은 철통 보안 속에 꼬박 1년 동안 사전준비 작업을 거쳤다. 


1주일 동안 신고받은 사채규모는 3천5백억 원 수준이었다. 이것을 금리 월 1.35%에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하는 것이 8·3조치의 기본골간이다.


이장규. 2012. "8·3 사채동결조치". 『대통령의 경제학』. 164-165


당시 경제상황을 드러내주는 구체적인 자료는 조윤제, 김준경의 보고서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에서 찾을 수 있다. (Table B)의 대출이자율 Nominal interest rates on general loan 을 살펴보면, 1960년대 동안 20%가 넘는 높은 이자율이 지속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당시 기업들은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과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으로 인해) 자산대비 부채비율 Debt/equity ratio 이 높았던 상황이다. (Table C)를 통해서 1960년대 동안 기업의 부채비율이 증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도한 부채를 지니고 있는데 이자율마저 높다? 당연히 기업의 비용부담이 커지게 된다. (Table C)를 살펴보면 이 기간동안 기업들의 매출대비 이익비율 Net profit/net sales ratio 이 하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업들은 부채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수익성마저 악화되는 상황이다. 은행이 (국가의 지시를 받아) 기업에게 해준 대출은 고스란히 부실채권 NPL, Non-Performing Loans 이 된다. 1972년, 보다못한 정부가 8·3 사채동결조치를 통해 대출이자율을 낮추고 기업들의 부채를 탕감해준다. 


위에 첨부된 (Table B)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1972년을 기점으로 대출이자율이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Table C)에 나오듯이, 1972년을 기점으로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하락하고, 수익성도 개선되었다. 그 결과, 부실채권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Table D)를 보면, 1972년을 기점으로 전체 대출 중 부실채권의 비율 Share of NPLs 이 급속도로 줄어들어든 모습이 보인다.    



high interest rates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1960s squeezed corporate profitability and retained earnings. (...) Continuing high domestic interest rates, devaluation, and tight credit control hit domestic firms hard, especially those that borrowed from abroad. The world economic recession made things worse. The net profit ratio of the manufacturing sector as a whole fell sharply (Table C). Nonperforming loans in the bank started to pile up. (...)


By 1971, the number of bankrupt enterprises that had received foreign loans climbed to 200; Korea faced the first debt crisis. (...) After consultation with leading businessmen, the government concluded that some extraordinary measures were necessary to cushion the financial burden of the debt-ridden firms, and started to prepare the measure in complete secrecy.


The government issued its Economic Emergency Decree in August 1972 to bail out the debt-ridden corporate sector. It included an immediate moratorium on the payment of all corporate debt to the curb lenders and extensive rescheduling of bank loans at a reduced interest rate.  (...)


These measures had considerable repercussions throughout the economy, shifting the crushing burden of the corporate sector's foreign debt service payment to domestic curb lenders and bank depositors. The interest burden on business firms was lightened significantly. The ratio of interest expenses to sales volume for manufacturing firms dropped sharply from 9.9 percent in 1971 to 7.1 percent in 1972, and then to 4.6 percent in 1973 (Table C).


As the financial situation of the corporate sector improved, so did the nonperforming loan problem of the banks. The share of nonperforming loans in commercial banks fell from 2.5 percent in 1971 to 0.92 percent in 1973, and to 0.6 percent in 1974 (Table D).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108-113 (PDF 파일 기준)




※ 8·3 사채동결조치가 낳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 1997 외환위기의 원인


8·3 사채동결조치는 기업들의 부담을 대출자와 예금자에게 떠넘긴 정책이었다. 게다가 기업들과 금융기관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를 유발하는 정책이다. 정부의 사채동결조치를 경험한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를 지더라도 정부가 빚을 탕감해줄 것" 이라고 생각해 또다시 과잉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은행들도 "아무에게나 대출을 해서 부실채권이 되더라도 정부가 해결해 줄 것" 이라고 생각해, 대출과정에서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하지 않을 것이다.  


These measures had considerable repercussions throughout the economy, shifting the crushing burden of the corporate sector's foreign debt service payment to domestic curb lenders and bank depositors. (...)


this drastic measure aggravated the moral hazard issue for corporate firms and banks. The government's risk partnership with highly leveraged firms that motivated the 1972 measure encouraged firms to depend on the government for support, without paying sufficient attention to their project selection. The efficiency of the banking system was also hampered, because once rescued by the government, it had little incentive for serious credit evaluation and monitoring.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113 (PDF 파일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8·3 사채동결조치를 통해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했다.  이장규는 "경제원칙은 크게 훼손시켰으나 비싼 대가로 경제위기를 넘긴 셈" 이라고 말한다.


1주일 동안 신고받은 사채규모는 3천5백억 원 수준이었다. 이것을 금리 월 1.35%에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하는 것이 8·3조치의 기본골간이다. 해당기업에는 엄청난 혜택이요, 반면에 사채를 빌려준 쪽에서는 청천벽력이었다. 그 결과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1971년 394%에서 1972년 288.8%로 크게 떨어졌다. 성장률은 1972년의 6.5%에서 1973년은 14.8%로 껑충 뛰었다. 경제원칙은 크게 훼손시켰으나 비싼 대가로 경제는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이장규. 2012. "8·3 사채동결조치". 『대통령의 경제학』. 165


그러나 8·3 사채동결조치는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했을 뿐이었다.  8·3 사채동결조치가 낳은 은행과 기업들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로 인해 한국경제는 1997년에 큰 문제를 겪게 된다.


안그래도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과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으로 인해 은행들은 단지 한국주식회사의 재무파트일 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나서서 기업들의 부실채권마저 없애줬다. 이제 은행들은 "은행 자산과 부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보다 정부의 지시를 따르는 게 경영평가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행 본연의 임무인 신용평가 · 리스크 관리는 중요치 않다. 은행의 느슨한 대출로 인해 부실채권은 또다시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하는 은행들은 금융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용금고·단자회사 등 비은행금융권이 커지고 만다. 비은행금융권은 만기구조가 짧고 금리가 높기 때문에 경제전체의 불안정성을 키우게 된다.   


Korea relied on credit interventions too heavily and for too long as an industrial policy instrument. The banking system bore the brunt of this strategy. The government used the banking system as a treasury unit to finance development projects and to manage risk sharing in the economy.


Bankers were treated as civil servants. Their performance was evaluated according to whether they complied with government guidance, rather than whether they managed their assets and liabilities efficiently. Commercial banks in Korea were involved so heavily in directed credit progrmas that they almost functioned as development banks. In the process, they incurred large nonperforming loans (NPLs) (Table 19), which again had to be covered with government support. 


Consequently, banks lagged behind the development of the real sector and could not effectively meet its demand for financial servies; the banks thus lost market share to other financial institutions, such as Non-Banking Financial Instutions(NBFIs), which could operate more feely and thus prolifereatd. (Box 3).  (...)


But their expansion also ecreated problems. Because they are relatively small institutions and provide mostly short-term financing, their growth shortened the average maturities of loans, and the thwarted banks from assuming a "corporate governance" role - which many recognize is the strength of relationship banking, such as the Japanese "main banking systme."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115-119 (PDF 파일 기준)


  • 1971~75년 동안 부실채권 비중은 1.3%에 불과했지만, 그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한국경제에서 은행부문은 신용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비은행부문이 한국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한국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를 한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 ·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 8·3 사채동결조치는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 저해 · 제2금융권 팽창 · 은행과 기업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조장 · 잠재적 부실채권 증가 · 재벌에 경제력 집중 · 재벌의 과다차입 이라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낳았다. 이 문제는 1997 외환위기의 원인과도 이어진다. 1997년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과 재정경제원 차관 강만수는 "8·3 사채동결조치는 도덕적 해이를 낳았고, 이는 1997 외환위기의 원인" 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빚을 겁내지 않게 만든 정책이 72년의 이른바 '8·3조치'로 불린 대통령 긴급명령이었다.


60년대 후반에 경쟁적으로 무분별하게 도입한 차관 자금으로 건설한 공장들이 70년대 초의 세계적인 불경기로 일시에 부실기업 덩어리로 변하게 되어, 당시 경제가 좌초 위기에 몰려 있었다. 당시 기업들은 사채를 많이 얻어쓰고 있었다. 이를 구제하기 위해 72년 8월 3일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서 기업에 대한 사채 금리를 낮추고 원리금 상환 기간을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국가가 개인간의 대차 관계를 획일적으로 조정해서 기업의 부담을 경감해준 것이다.


빚에 짓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기업들로서는 절망의 나락에서 일거에 벗어날 수 있었다. 더욱이 8·3조치 직후 1차 석유파동으로 석유값을 비롯해서 모든 물가가 뛰어 전세계적인 인플레로 엄청난 이익을 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앉은자리에서 빚 부담은 가벼워지고 설비 가치는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다. 빚이 많을수록 혜택 또한 컸기 때문에, 빚을 겁내지 않는 풍조가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8·3조치는 '대마불사의 신화'라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게 한 결정적인 정책이 되었던 것이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180-181


1972년 '8·3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기업의 이자부담이 대폭 줄어듦으로써 경쟁력은 급속히 회복되어 경상수지 적자는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8·3사채동결조치'에 의하여 우리기업은 부채를 겁낼 줄 모르고 몸집을 불리는 '차입경영'과 '그룹경영'으로 치달았고 자본을 충실히 하고 자기 사업에만 집중하던 우량기업들이 오히려 시장경쟁에서 밀려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경제는 구조조정에 의하여 대외경쟁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사채동결이라는 편법에 의존함으로써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87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




<참고자료>


박병영. 2003. 1980년대 한국의 개발국가의 변화와 지속 - 산업정책 전략과 조직을 중심으로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2013.08.18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조장옥 교수, 거시경제학 수업자료


정책의 목표를 각각 경제성장률 / 실업률 / 고용률 로 지향하는 것의 차이. 2013.06.07


폴 크루그먼. 1996·. "아시아 기적의 신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원문 : Paul Krugman.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


조태형, 김정훈, Paul Schrever. "우리나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생산성주도형 경제로 이행". <한국은행 이슈노트>. 2012.06.30


Michael Pettis. 2013. 『The Great Rebalancing』


Paul Krugman. "Hitting China's Wall". <New York Times> . 2013.07.18 


이종화. "Asia's Rebalancing Act". <Project Syndicate>. 2013.09.23


이장규. 2012. 『대통령의 경제학』


라구람 라잔. 2011.『폴트라인』.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1. 박병영.2003."1980년대 한국의 개발국가의 변화와 지속 - 산업정책 전략과 조직을 중심으로" [본문으로]
  2. '특정 기업에 금융자원을 몰아주고, 그 기업은 세계시장에 진출해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는 것은 마치 '국가 간 경쟁'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신흥국이 '수출주도형 성장'을 경제발전전략으로 채택하는 이유는 경제운용에 필요한 조직자본Oraganizational Capital을 획득하기 위해서이지, '다른나라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본문으로]
  3. 폴 크루그먼은 1994년 에 기고한 "The Myth of Asia's Miracle" 을 통해 동아시아 경제성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혹자는 이에 대해 "크루그먼이 3년 뒤에 있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 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크루그먼은 단지 '경제성장의 방법적 측면'에서 동아시아의 성장방식을 비판하는 것일뿐,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은 아니다. 크루그먼 본인 또한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것은 아니다" 라고 밝히고 있다. 크루그먼은 1998년에 쓴 "What Happened to Asia"에서 "we expected the longer-term slowdown in growth to emrge only gradually" 라고 말했다. [본문으로]
  4. 보고서는 최근 5년 동안에는 생산성 향상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다고 덧붙인다. "요소투입과 생산성 간의 상대적 중요성의 역전이 발생하여 최근 5년-2006년~2010년-동안에는 생산성 증가가 소득성장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최근 들어 우리나라 경제가 요소투입형 성장에서 생산성주도형 성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7쪽-10쪽) [본문으로]
  5. '저축-투자=순수출' 이라는 개념을 아는 분들은 "수출을 해야하는데 왜 투자를 장려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가는 수출주도형 성장을 위해 금융자원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은행저축 이외의 다른 금융서비스 이용도 규제한다. 게다가 무역수지 흑자달성이 아니더라도, 무역규모가 증가하는 것 자체가 경제성장을 드러내준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무역은 다른나라와의 경쟁이 아니다. 따라서 '무역수지 흑자' 자체를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 라고 생각해 무역수지 흑자 그 자체에 연연하면 안된다. [본문으로]
  6. 前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現 인도중앙은행 총재. [본문으로]
  7. 마이클 페티스 Michael Pettis 교수는 "현재 중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소비중심 성장으로의 재조정 Rebalancing" 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자 Paul Krugman과 이종화 또한 중국경제의 Rebalncing을 주장하고 있다. [본문으로]
  8. Paul Krugman. "Hitting China's Wall". . 2013.07.18 http://www.nytimes.com/2013/07/19/opinion/krugman-hitting-chinas-wall.html [본문으로]
  9. 이종화. "Asia's Rebalancing Act". . 2013.09.23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the-risks-for-asian-growth-from-china-s-slowdown-by-lee-jong-wh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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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동양사태로 바라보는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Posted at 2013. 10. 13. 02:11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비대칭적 규제 - 규제가 작은 부문으로 자원배분이 집중


보통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금융자유화가 진전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 이다. 금융시장이 발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시장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급격한 자본유출입 등이 발생해 시장전체의 불안정성을 키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이 개방될수록 이에 걸맞는 "건전성 감독" 정책이 따라줘야 하는데, 1990년대 한국은 금융시장은 개방했지만 제대로 된 건전성 감독정책은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경제연구원> 최두열은 "비대칭적인 규제 Unbalanced Regulation"을 1997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한다. 금융시장의 규제정도가 균등하지 않고 특정부문에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상황에서, 규제가 작은 부문으로 자원배분이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금융산업 부문간의 비대칭적인 규제라 함은 금융산업의 자금조달, 운용 및 건전성에 대한 감독에 있어서 금융산업 부문간에 규제의 정도가 균등하지 않고 일부 금융산업 부문의 특정활동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규제의 정도가 약하거나 방치되어 있는 상태" (174)


"비대칭적인 규제가 생겨나 시행되면 가격과 규제에 대한 조정속도가 빠른 금융자산의 속성상 단기간 내에 상대적으로 규제가 작은 부문으로 자원배분이 집중되어 이 부문이 비대화" (175)


"아시아 국가들은 경쟁제한적인 규제를 완화Deregulate하는 과정에서 은행과 비은행권Non Bank의 금융산업 부문간에 자금의 조달과 운용에 있어서 규제의 불균형이 존재하여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비은행권 부문이 외환위기 발생 이전에 비정상적으로 비대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비은행권의 비정상적인 비대화에 대해서 건전성 감독을 위한 재규제Prudential Regulation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에 따라 비은행권의 부실화를 방지하지 못하였다. 비정상적으로 비대화된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부실화함에 따라 금융시스템 전체가 불안정하게 되고 이것이 외환위기 발생의 촉매를 형성하였다" (175)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74-175


그리고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이 작동하던 시절[각주:1] 국가의 금융자원배분에 따라 (상대적으로 편하게) 영업하던 금융기관이, "금리자유화와 영업자유화"를 맞게 된다면 고위험 고수익 영업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 또한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아시아 각국의 금융자유화의 내용은 주로 경쟁제한적인 규제의 완화로서 크게 금리의 자유화와 업무의 자유화로 요약된다. 금리의 자유화는 금융기관들간의 금리경쟁을 격화시켜 예대마진을 축소시켰다. 한편 업무의 자유화는 금융기관의 업무별 영역을 제거함에 따라 그 동안 진입제한에 따라 독점적 지대Rent를 보장해 주었던 금융기관의 영업기반을 취약하게 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에 따라 금융기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성이 악화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경쟁제한적 규제완화를 통한 금융자유화와 동반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이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불안현상이다. 이는 그 동안 경쟁제한으로 인하여 독점적인 지대를 보장받던 기존 금융기관들이 과당경쟁으로 인하여 수익성이 악화되고, 신규 업무영역에 진입한 금융기관들이 시장점유율 제고를 위한 위험부담적인 영업High Risk and High Return과 경험축적 부족에 따라 부실화되고, 이에 따라 전체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해지기때문이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72-173




※ 1997년의 한국 -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비대화된 기업어음(CP) 시장


1997년 당시, 비대칭적 규제가 적용되고 금융기관들의 고위험 고수익 영업이 이루어졌던 금융부문이 기업어음(CP, Commercial Paper)이다. 서강대 국제대학원 조윤제는 1990년대 한국의 잘못된 금융자유화 순서가 기업어음 시장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은행수신의 경우. 장기수신금리가 먼저 자유화되고 신탁계정의 금리자유화 폭이 컸었다. 그 결과 자금조달비용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발행이 까다롭고 장기금융인 회사채시장에 대한 규제는 지속되고 기업이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는 단기금융인 기업어음 시장에 대한 규제는 철폐되었다. 따라서, 은행은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고수익자산 중심으로 운용을 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회사채, 국채 등 비교적 안전한 자산보다는 기업어음 등 위험자산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즉,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위험도가 큰 기업어음(CP)시장으로 자원배분이 집중된 것이다.  


은행의 경우 장기수신금리가 자유화됨에 따라 장기수신비중이 늘었으며, 상대적으로 금리자유화 폭이 큰 CD 및 신탁계정으로 자금조달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같은 시중금리수준에 비해 평균자금조달비용이 상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자산운영도 금리가 규제된 대출보다는 금리가 자유화된 고수익자산 중심으로 운용하려 하게 되었다. 


  • 1990년 이후, 상대적으로 금리자유화 폭이 컸던 CD·금전신탁 계정으로 은행수신이 크게 증가하였다.
  • 이에 따라, 은행의 자금조달비용은 증가하게 되었다.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7-8


회사채금리의 경우도 비록 자유화되어 있었기는 했으나, 당국의 물량규제로 실질적으로 금리를 규제해왔다. 반면, 기업어음(CP)의 경우 1993년 만기 및 최저금액제한이 완화되었고, 이와 더불어 금리에 대한 행정지도도 완전철폐하였으며, 물량규제도 전혀 없어 실질적으로 거의 완전히 자유화된 금리가 되었다.


따라서 단기여신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어음이 거의 완전자유화된 반면 장기금융인 은행의 대출과 회사채금리에 대해서는 행정규제가 지속됨에 따라 개인과 금융기관의 자금운용이 CP 등 고수익단기금융자산에 크게 몰리고 대출과 회사채보유 등은 상응한 증가를 보이지 않았다. (<표2> 참조).


기업의 자금조달원도 이러한 단기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실제로 이들 기업부문의 자금조달의 flow측면에서 보았을때의 변화는 <표3>과 같다. 


(...)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은행의 신탁자산운용에 대한 규제완화는 (1993년 10월) 신탁자산의 유가증권 보유를 크게 늘어나게 하였다. 은행의 경우 전반적으로 실질적인 금리자유화폭이 큰 신탁계정이 은행계정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였으며, 신탁계정의 자산운용측면에서도 신탁대출보다 유가증권 보유비중이 더 크게 늘어났다. 유가증권 보유에 있어서도 국채와 같은 무위험자산이 줄고, 주식이나 회사채 같은 장기금융보다 기업어음 등 단기채권 보유가 크게 늘어났다.



  • 1991년 이후, 은행들의 고위험 고수익 추구에 따라, 기업들도 회사채·은행대출·기업신용 보다는 기업어음(CP)에 의존해 많은 자금을 조달했다.
  • 기업어음(CP)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을 <표2>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1990년, 기업들의 자금조달 중 기업어음(CP)가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불과했다.
  • 그러나 1996년, 기업어음(CP)이 차지하는 비중은 17.5%로 증가하였다.
  • 기업어음(CP)에 비해 안전자산인 회사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1.5%에서 17.9%로 감소했다.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4-8

 



※ 취약한 금융감독 기능 - 기업들의 단기차입증대로 인한 채무불이행을 막지 못하다


은행들은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기업어음(CP)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고, 기업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기업어음(CP)을 이용해 (편리하게) 자금을 조달하였다. 그러나 1997년 이후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기업어음(CP)은 금리가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부담하는 평균차입비용이 높았다. 게다가 기업어음(CP)은 회사채에 비해 만기기간이 짧기 때문에,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빠른기간에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을 결제하지 못하고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키운 또 다른 요인은 취약한 금융감독 기능이다. 조윤제는 "직접금융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기능의 신뢰성과 이를 위해 필요한 시장하부구조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기금융시장을 급속히 자유화하여 자금흐름의 왜곡을 증가시켰다(21)" 라고 지적한다.




감독 및 신용평가기능 등 시장의 하부구조(financial market infrastructure)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았던 단기금융시장이 먼저 자유화되었다. 단기금융시장, 특히 기업어음시장은 때마침 많은 설립인가가 이루어진 종합금융회사들 간의 경쟁격화로 무분별한 할인이 확대되었으며, 이들의 이면보증에 의한 은행신탁계정 인수가 늘어남으로써 결과적으로 은행의 장기예금(엄격하게는 은행의 금전신탁)이 단기기업 어음할인에 쓰이게 되었으며, 은행의 직접적인 신용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험이 보다 일천한 종합금융회사의 신용평가와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 나라는 은행의 기능이 충분히 성숙되기도 전에 제2금융권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이에 따른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기업감독기능의 취약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


직접금융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기능의 신뢰성과 이를 위해 필요한 시장하부구조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기금융시장을 급속히 자유화하여 자금흐름의 왜곡을 증가시켰다. 자금시장의 하부구조인 재벌기업들의 결합재무제표작성, 회계의 투명성, 공시제도 등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단기금융시장이 급속히 자유화 되었고, 반면 장기금융은 직간접적으로 규제되어 있어 많은 재벌기업들이 이시기에 확대한 중화학공업투자 등 장기투자를 결과적으로 2~3개월짜리 기업어음 등, 단기부채로 조달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부도위험성을 높이게 되었다. 


또한 기업에 대한 금융자금 공급채널에 있어서 제1금융권으로부터 종합금융회사 등 제2금융권으로의 비중과 역할이 커지게 됨으로써 전반적인 금융감독기능이 크게 악화되었고, 또한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와 기업감독기능이 전반적으로 악화되어 재벌기업들의 투자에 대한 사전심사기능과 사후감독기능이 취약해지고 그 결과 금융시장이 이들의 단기차입증대에 의한 경쟁적 투자확대를 적절히 감시하고 제어하는 기능이 약해졌다. 


조윤제, 1999. "1990년대 한국의 금융자유화방식과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한국경제연구학회>. 19-22

 



※ 비대칭적 규제와 금융감독 기능 부재 - 금융회사의 사금고화 & 불완전판매 


금융자유화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시장의 비대칭적 규제와 금융감독기능 부재는 기업어음(CP)시장 확대에 따른 기업들의 부채구조 단기화와 채무불이행 · 부도위험성 증가를 낳았다. 이것들 이외에 또 다른 문제는 없었을까? 바로, 금융회사의 사금고화불완전판매 문제이다. (이것은 2013년 현재 동양사태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포스팅에서도 살펴봤듯이, 한국경제는 경제관료와 재벌의 유착으로 성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금융산업은 단순히 자원배분기능을 하는 도구역할을 맡게되면서, 재벌로 대표되는 실물경제에 종속되는 모습을 띄었다. 1990년 이후,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금융자유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금융산업은 여전히 재벌에 종속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나 1997년 당시, 신동아그룹 계열사였던 대한생명은 "7개 계열사와 국내외 위장 계열사에 빌려준 돈이 2조 1,000억 원, 최순영 회장이 빼돌린 돈이 1,800억 원"에 이르렀다. 보험회사인 대한생명이 한 재벌총수-최순영 회장-의 사금고 역할을 한 것이다. 1997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원 부위원장보를 맡았던 김기홍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Q. 1999년 3월 발표된 금융감독위원회의 대한생명 특별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자산보다 부채가 2조 9,000억 원 많았습니다. 신동아 그룹 7개 계열사와 국내외 위장 계열사에게 빌려준 돈이 2조 1,000억 원, 최순영 회장이 빼돌린 돈도 1,800 억원이 넘었지요. 당시를 돌아보며 "썩었다는 말 외엔 표현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하셨는데요. 처음 부실을 눈치 챈 건 언제였나요.


A. "내가 금감위 합류하기 전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자 유치를 하러 다닌다기에 '외자를 도입하면 계열사 지원 절차가 번거로워질 텐데, 그래도 유치할 정도로 어려운가 싶었죠. 1999년 1월 부원장보가 되고 얼마 안 돼 메트라이프 측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순자산이 3조 4,000억 원이 모자란다'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Q. 왜 그렇게 자산을 까먹은 건가요?


A. "보험 영업으로 까먹은 돈은 없었어요. 부실 계열사에 빌려준 돈이 2조 원이 넘었지요.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빼돌린 돈도 상당 수준이었고, 대한생명은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화된 대표적인 케이스에요."


Q. 정부가 시간을 벌어줬다면 대한생명이 살아났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A. 자산이 15조 원도 안 되는 회사에 3조 가까이 구멍났는데 어떻게 살 수 있나. 결국 그 부실을 메꾸느라 3조 원 넘게 국민 세금이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부실 금융기관이 어디 있겠어요.


이헌재. 2012. "잠깐 인터뷰". 『위기를 쏘다』. 200쪽


그리고 증권사와 투신사들은 개인고객에게 금융상품에 대한 기본구조와 원금 손실가능성 등의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상품을 판매했다. 이른바 불완전판매 이다. 1997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던 이헌재는 금융사들의 불완전판매 행태를 문제삼고, 개인고객에게 원금을 보장하라는 책임을 부담시켰다.


부담을 고스란히 금융회사에 지우기로 한 것은 맞다. 대우 채권이 섞인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가 80 퍼센트, 이를 굴린 투신사가 20퍼센트를 떠안케 했다. 


"개인투자자에게도 책임을 지워야지요." 강봉균 당시 재경부 장관도 서별관 회의에서 들고 나온 논리다. 원칙대로 하자. 말은 쉽다.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으랴. 그러나 당시 상황은 달랐다. 증권사 창구에선 "예금과 마찬가지"라며 수익증권을 팔았다. 금융당국도 그렇게 하도록 방치했다.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은 은행 예금 들듯 수익증권을 샀다. 그런 개인에 책임을 묻는다?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그뿐인가. 시장이 나빠지자 투신사들은 수익증권을 제멋대로 주물럭거렸다. 큰 기관이 가입한 펀드에서 불량 회사채를 빼서 일반인들이 많이 투자한 펀드에 집어넣었다. "대우 회사채는 없다고 해서 투자했는데 왜 대우채가 들어 있느냐"라고 항의하는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불법 편·출입, 이건 일종의 사기요 범죄다. 증권·투신사에 '원금보장'의 책임을 지운 건 그래서다.


이헌재. "투신시장의 안정(3)". 위기를 쏘다』. 217-218쪽

 



※ 2013년의 한국 - 1997년의 교훈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한국경제는 1997년의 교훈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최근의 동양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비대칭적 금융규제로 인해 자원배분이 특정부문에 집중되는 문제 

 금융감독 기능의 부실 

 금융기관의 사금고화 

 불완전판매 


문제는 여전하다. 


<조선일보>는 "CP의 최장 만기 제한이 폐지되면서, 기업들이 (규제가 있는) 회사채 대신 사실상 규제가 없는 CP로 몰리기 시작했다" 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비대칭적 금융규제의 문제로 인해 2013년 현재에도 위험도가 큰 기업어음(CP) 시장이 커져다는 것이다.


"우선 부실 금융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른 CP에 대한 통합 데이터베이스(DB)가 없다는 것이다. CP는 기본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금융이다. 이사회를 거쳐 공시해야 하는 회사채보다 느슨해서, 기업 입장에서는 대표가 결정해 공시할 필요도 없이 발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CP들이 얼마나 발행돼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는지 어떤 금융 당국도 확인할 DB가 없다는 것이다.


(...)


CP가 널리 확산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CP의 최장 만기 제한(1년)을 폐지하면서부터다. 기업들은 공시 의무, 이사회 의결 같은 규제가 있는 회사채 대신 사실상 규제 없이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CP로 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2010년 말 73조원에 불과했던 CP 발행액이 지난 5월엔 150조원으로 급증한 데는 이런 요인이 있다."


"동양 부실 CP, 中 경제 흔들었던 '그림자 금융(엄격한 감독·규제 안 받는 금융 행위)' 판박이". <조선일보>. 201310.08


실제로 동양그룹은 지난 2년 9개월간 1조 5,000억원 정도의 계열사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돌려막기' 해왔다.


지난달 30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사의 CP와 회사채가 동양증권 창구를 통해 판매된 금액은 2011년 말(잔액 기준) 1조5500억원, 2012년 말 1조7100억원, 2013년 9월 29일 현재 1조3300억원이다. 지난 2년 9개월간 1조5000억원 정도의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돌려 막기'했다는 뜻이다.




"東洋 부실채권 年 1조 넘게 팔았는데… 금감원, 검사하고도 "문제없다"". <조선일보>. 2013.10.02


거기다가 금융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원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기업어음(CP) 시장이 커지는 것을 막지 못했을 뿐더러, 금융회사가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의 시행을 뒤로 미루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금감원은 지난 3년간 동양증권을 4차례 검사하면서 매번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양증권이라는 회사의 건전성만 점검하고, 이 회사가 팔고 있는 막대한 물량의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가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이라는 것은 감지하지 못한 셈이다.


늑장 대응도 문제다. 금융 당국은 동양그룹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던 지난 4월 금융회사가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마련했다. 하지만 6개월의 유예 기간을 주면서 오는 26일부터 시행되도록 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동양증권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규제라 '동양증권법'이라고 불렸지만, 시행되기도 전에 동양그룹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투자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


금융 당국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문제다. 위험도가 높은 동양그룹 CP와 회사채를 산 개인 투자자들의 책임도 있지만, 애당초 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금감원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회사채는 증권신고서를 사전에 내고 공시해야 하는 등의 규제 절차가 있지만, CP는 기업이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어 당국이 어쩔 수 없다"면서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자본잠식 상태인 것은 전부 공시가 돼 있는데도 투자를 한 개인 투자자들이 이제 와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금융회사 등 기관투자자들에게는 "투기 등급의 CP를 아예 보유할 수 없다"는 내용의 내규를 만들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하지 못하게 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위험하다'는 신호조차 제대로 보내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금감원이 동양증권 관련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양증권은 지난 2001년 동양현대종금과 합병해서 만들어졌고, 지난 2011년 11월 종금사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이후 원금이 보장되는 '종금형 CMA(자산관리계좌)'를 판매할 수 없게 됐다. 동양증권은 "종금사 영업이 끝났으니 투자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고지를 기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금감원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東洋 부실채권 年 1조 넘게 팔았는데… 금감원, 검사하고도 "문제없다"". <조선일보>. 2013.10.02


신용평가사들 또한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 계열사에도 채무 상환 능력이 인정되는 B등급을 주고 있었는가 하면, 줄곧 우량 등급을 주다가 법정관리 한 달 전부터 무려 5단계를 초스피드로 떨어뜨렸다."


1999년 대우그룹의 회사채 파동 이후 최대 규모인 4만여명의 기업어음(CP) 피해자를 쏟아낸 '동양 부실 CP 쇼크'의 배후엔 부실한 신용평가 기능이 한몫을 하고 있다. 신용평가만 제대로 했더라도 부실 CP 발행이 불가능했고, 그랬다면 피해자도 그만큼 줄었을 것이란 얘기다.


이번 '동양그룹 사태'에서 신용평가사들은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 계열사에도 채무 상환 능력이 인정되는 B등급을 주고 있었는가 하면, 줄곧 우량 등급을 주다가 법정관리 한 달 전부터 무려 5단계를 초스피드로 떨어뜨렸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뒷북도 이런 뒷북이 있나' 하는 탄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A3(상환능력 양호 등급·2012년 1월)→A3-(2013년 1~8월)→B+(상환능력 인정 등급·2013년 8월 29일)→B-(2013년 9월 27일)→D(채무불이행 등급·2013년 10월 1일)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2개 신용평가기관이 지난 1일 법정관리 신청을 한 동양시멘트에 대해 최근 2년간 내려온 신용등급의 변화 추이다.


'믿고 투자해도 좋다'는 등급(A)이 법정관리 신청 불과 한 달 전인 8월 29일부터 무려 5등급이나 초스피드로 급락해 D(채무불이행)등급으로 떨어졌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신평사인 한국신용평가는 동양 계열사에 대해 평가를 중단했거나 하지 않아왔다.


현재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동양시멘트 CP 발행 금액만도 358억원. 대부분 '휴지 조각'이 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법정관리 돌입 석 달여 전부터 (주)동양이 집중적으로 1500억원대 이상 발행한 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는 동양시멘트의 '건전성'을 담보로 발행된 것이다. 에프엔 자산평가의 최원석 대표는 "'엉터리 뒷북 신용평가'만 없었더라도 동양 계열사들이 부실 CP를 마음대로 발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社들, 동양시멘트 우량등급 주다 법정관리 신청 직전 5단계 내려". <조선일보>. 2013.10.07

     

비대칭적 규제로 인해 위험도가 큰 기업어음(CP) 시장이 팽창하고 금융감독 당국과 신용평가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동양그룹의 금융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와 동양자산운용은 사금고로 악용되었다. ""㈜동양이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레저 등에 직접 돈을 빌려주면 곧바로 '배임'에 해당할 수 있어, 중간에 동양파이낸셜대부를 집어넣어 계열사 간 돈을 돌린 것" 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CP 외에도 대여금, 일반대출 등의 형식으로 동양파워,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티와이머니대부, 동양생명 등 계열사로부터 1조4999억원의 자금이 동양파이낸셜대부로 들어갔다가 1조5443억원이 계열사들로 다시 빠져나갔다." 


그리고 "동양자산운용은 지난 2010년 1~3월 계열사인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발행한 회사채와 CP를 법정 한도(자기자본 대비 계열사 투자 비율)보다 31억원이나 초과해서 사들였다." "다른 자산운용사들이 기피하는 투기등급의 동양 계열사에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도의 투자를 한 것이다." 



'동양그룹 부실 기업어음(CP) 쇼크' 사태는 금융 계열사를 사(私)금고화해 계열 부실기업 자금줄로 이용하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너 일가가 그룹을 살리기 위해 고객이 금융사에 맡긴 돈을 맘대로 이용하는 바람에 막대한 개인 피해자를 양산했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동양그룹은 동양증권뿐만 아니라 계열 대부 회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도 부실 계열사 지원에 동원했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지난 9월 ㈜동양과 동양시멘트에 CP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각각 350억, 100억원을 빌렸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이 돈을 포함해 각각 420억원, 290억원을 같은 달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에 빌려줬다. 당시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다. 시중에서는 도저히 돈을 빌리기 어려운 부실 회사들이 계열 금융회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를 통해 재무 상태를 고려했을 때 상상하기 어려운 연 6.5~9.3%대의 저리로 대출을 받아낸 것이다.


(...)


◇부실 계열사 지원에 금융 계열사 총동원


동양자산운용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동양자산운용은 지난 2010년 1~3월 계열사인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발행한 회사채와 CP를 법정 한도(자기자본 대비 계열사 투자 비율)보다 31억원이나 초과해서 사들였다가 금감원으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그 뒤로 동양자산운용의 40여개 펀드는 법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법에서 허용하는 한도인 462억원어치까지 꽉 채워서 지난 3월까지 보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자산운용사들이 기피하는 투기등급의 동양 계열사에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도의 투자를 한 것이다.


"동양, 대부업체(동양파이낸셜대부) 동원해 부실 계열사 지원… 私금고 된 대기업 금융사". <조선일보>. 2013.10.09




동양그룹 계열 대부업체인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사흘에 한 번꼴로 CP를 발행해 계열사 자금 지원 통로를 하면서 정작 서민대출은 모두 합쳐 수십억원에 불과해 본말이 전도된 영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업체가 진입 요건도 느슨하고 관리감독도 소홀하다는 점을 이용해 '대부업' 간판만 걸어둔 채 대기업의 'CP 공장' 역할을 한 것이다.


탁결제원에 따르면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지난해 4월부터 올 9월까지 1년 6개월간 사흘에 한 번꼴로 총 5058억원어치의 CP를 발행했다. CP를 하루에 7번 발행한 날도 있었고, 만기 5~7일짜리 초단기 CP도 상당수 있었다.


금액도 최소 1억원에서 최대 80억원까지 다양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파이낸셜대부가 발행한 CP는 시중으로는 유통되지 않고 전량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계열사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 등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CP 외에도 대여금, 일반대출 등의 형식으로 동양파워,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티와이머니대부, 동양생명 등 계열사로부터 1조4999억원의 자금이 동양파이낸셜대부로 들어갔다가 1조5443억원이 계열사들로 다시 빠져나갔다. 올 들어서도 2분기까지 동양파이낸셜대부는 동양인터내셔널과 동양레저에 각각 1300억원, 1800억원을 빌려줬다.

"東洋대부(동양파이낸셜대부), 부실 계열사엔 1兆(2012년 4월부터) 서민엔 수십억 대출". <조선일보>. 2013.10.10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사는 동양증권을 통해 1조 3,311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판매했는데, 이 중 99% 이상인 1조 2,294억원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판매되었다. 문제는 동양증권이 이렇게 발행된 동양그룹의 기업어음(CP)을 개인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도 알리지 않고 판매하였다는 것이다.[각주:2] 



이날 법정관리 신청을 한 3개사가 발행한 회사채와 CP는 총 1조9334억원어치(예탁결제원 기준)이다. 대략 4만여명 이상의 개인에게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3개사가 회생하지 못하면 모두 손실처리될 수 있다. 재계서열 47위(공기업 포함)인 동양그룹 법정 관리가 큰 파장을 낳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금융권 차입금보다 회사채와 CP 발행을 통해 시장에서 조달한 금액이 더 큰 만큼, 피해의 상당 부분이 개인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대우 회사채 파동 이후 가장 대규모의 회사채 파동이란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실제 이날 금감원 발표에서도 이런 우려는 확인되고 있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3개 계열사의 회사채와 CP 중 동양증권이 판매한 규모만도 4만1231명에게, 1조 3311억원어치다. 이 중 개인에게 팔린 것은 4만937명에게, 1조2294억원어치다. 99% 이상이 개미 투자자들에게 팔린 것이다. 이처럼 개인에게 집중된 이유가 있다. 회사채와 CP를 발행할 당시 동양그룹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 등급인 'BB'급이었다. 기관투자가는 동양그룹의 채권을 사실상 살 수 없었다. 또 동양증권은 부실 징후가 보이는 계열사가 발행한 CP와 회사채를 7~8% 후반대의 고금리를 내세워 상대적으로 정보에 어둡고 고수익을 노리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동양 채권(동양증권이 판매한 회사채·기업어음)에 개인투자자 4만명 물려… 大宇사태(1999년) 후 최대". <조선일보>. 2013.10.01


㈜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CP·회사채 불완전 판매 문제가 또 불거지고 있다. 불완전 판매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비롯해 LIG그룹과 웅진그룹, STX그룹 등 각종 부실 금융 사태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다. 불완전 판매란 금융회사가 상품의 기본 구조와 원금 손실 가능성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이다.


지난 7월 동양그룹 CP에 6000만원을 투자한 김모(48)씨는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권유 전화를 받고 '창구에 갈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가입 신청서를 우편으로 보내왔다"며 "신청서에 사인할 5곳이 형광펜으로 표시돼 있었다"고 했다.


본인과 부인·아들 명의로 2억3000만원어치 CP·회사채에 가입한 윤모(66)씨는 "8월 만기 연장 때 불안해서 물어봤더니 직원이 '그룹이 동양매직 매각을 추진 중인데 사려는 기업이 많다. 동양시멘트의 발전소 부지를 팔면 그룹이 정상화된다'고 해서 그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3만8661건이었던 금융권 민원은 올 상반기 4만2582건으로 10.1% 늘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 및 부당 권유 관련 민원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권회사 중에서는 동양증권이 지난해와 올 상반기 모두 민원 건수 1위를 차지했다. 금감원 소비자보호처는 "동양증권은 회사채와 신탁 상품 판매 시 위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민원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CP위험 제대로 설명 않고 "사도 된다"… 동양증권, 금융 민원 1위(지난해~올 상반기)". <조선일보>. 2013.10.13


1997년 한국과 2013년 한국 무엇이 다를까? 1997 외환위기 이후 은행·증권·보험 시장을 종합적으로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이 설립되고 기업의 회계공시 제도도 자리잡았지만, 최근의 동양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1997년의 교훈은 잊은 듯하다.  





  1.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http://joohyeon.com/157 [본문으로]
  2. 물론, 아무런 금융지식이 없는 개인투자자가 위험도가 큰 기업어음(CP)에 거액의 돈을 투자한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개인투자자 90%가 자신이 가입한 펀드의 이름도 모른다고 한다.;;; "개미 투자자 10명 중 9명, 가입한 펀드 이름도 모른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0/07/2013100704011.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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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세제개편안-한국경제 구조개혁-저부담 저복지에서 고부담 고복지로박근혜정부 세제개편안-한국경제 구조개혁-저부담 저복지에서 고부담 고복지로

Posted at 2013. 8. 27. 01:13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 박정희정권의 노동자 임금인상 억제 정책


'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 라는 글에서 박정희정권의 규율행사discipline에 대해 다루었다. 박정희정권은 수출지향산업화 과정에서 대기업에 엄격한 규율을 부과하였고, 그 결과 정치와 경제의 유착관계가 경제성장이라는 생산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정권은 기업에게만 엄격한 규율을 부과했을까? 아니다. 박정희정권은 대기업노동에 대해서도 규율을 부과했다. 바로, 공급측면 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억제한 것이다.


양재진의 <산업화 시기 박정희 정부의 수출 진흥 전략: 수출 진흥과 규율의 정치경제학>(2012) 에 따르면. "박정희정권은 통치기간 내내 임금상승 억제를 위해 강도 높은 노동통제(22)[각주:1]"를 실시했다. 기업의 "초과이윤이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인상으로 이어져 투자재원이 소모되고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을 우려(22)" 한 것이다. 실제로 '회사규모별 관리직과 생산직 노동자들의 소득 추이'를 살펴보면, "재벌이 크게 성장한 1970년대 내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오히려 줄어드는 모습(22)"을 확인할 수 있다. 


    



※ 수출지향산업화 달성을 위해 형성된 저부담 조세체제 


흥미로운건 박정희정권의 '노동자의 임금인상 억제'가 2013년 현재까지도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박정희정권의 노동통제로 인해 2013년 현재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다는 말일까? 그것이 아니다.


  <출처 : 안종석. 2013.7.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10-11


첨부한 윗 그래프를 보면, 2011년 한국의 조세부담률[각주:2]이 1972년도에 비해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OECD 평균에 비해 한국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 자체가 낮다. 즉, 박정희정권은 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 억제의 반대급부로 "낮은 세금부담"을 제공한 것이다. 


양재진은 <한국 복지국가의 저부담 조세체제의 기원과 복지 증세에 관한 연구>(2013) 논문을 통해 "한국은 산업화 시기 수출지향 산업화 과정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비용을 통제했고, 이를 위해 소득세는 낮추고 사회보험료 부담은 최소화하는 정책을 구사했다.(4)" 라고 말한다. 그리고 "산업화 초기, 가난했지만 평등했기에 직접 세제를 통한 소득 재분배의 필요성은 정치적으로도 약했고, 이 때문에 낮은 소득세와 낮은 조세 부담 구조는 큰 도전 없이 관행화 되었다(4)." 고 지적한다. 실제로 1970년대 경제개발 시기, 한국의 소득세 실효세율은 평균적으로 약 2.5%~4%에 불과했다.



 


그리고 낮은 세금부담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11년 기준, 소득세 실효세율을 보면 OECD 평균에 비해 한국이 상당히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소득세가 GDP 대비 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당연히 낮다. 아래 도표에 보이듯이, 한국은 소득세가 GDP 대비 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은 8.7% 이다. 


    <출처 : 안종석. 2013.7.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15




※ 박근혜정부의 세제개편안 - 저성장 고령화 시기의 한국경제 구조개혁


위에서 확인했듯이, 한국은 경제개발 시기 공급측면의 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반대급부로 '저부담 조세체계'를 설계했다. 조세부담률이 낮았기 때문에 당연히 재정규모도 작았고 복지서비스는 미미했다. 이른바 '저부담 저복지' 시대였다. 고성장 베이비붐 시기에는 조세부담률을 낮게 유지하고 복지서비스가 미미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13년의 한국경제는 “저성장 고령화” 시기이다. 1970년대처럼 대기업의 수출이 이끄는 고도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경제성장을 통한 세금수입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고, 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수요는 늘어만간다. 어떻게 해야할까? 세금을 더 걷는 수 밖에 없다. 1970년대에 설계된 '저부담 조세체계'를 바꿔야 한다. '저부담 저복지'에서 '고부담 고복지'로 가야한다. 박근혜정부의 세제개편안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출처 : [朴정부 稅制개편안] 바뀐 세법…‘유리지갑’ 월급쟁이 세금 늘어난다. <조선일보>. 2013.08.09


지난 8월 8일, 박근혜정부는 연소득 3,450 만원이 넘는 근로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첨부한 인포그래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 세제개편안은 누진적 성격이 강하다. 연소득 3,450 만원 미만인 근로자의 세부담을 줄어들고, 연소득 8,000 만원 이상인 근로자의 세부담은 급격히 늘어난다. 고소득 근로자에게 세금을 더 거두어서 복지지출에 쓰겠다는 것이 세제개편안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세제개편안을 두고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비판의 초점은 "왜 법인세 등을 놔두고 소득세를 건드리느냐".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한국은 소득세가 GDP 대비 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에 비해 작다


그리고 각종 공제제도로 인해 소득세 실효세율 자체도 낮은 상황이다. 양재진은 <한국 복지국가의 저부담 조세체제의 기원과 복지 증세에 관한 연구>(2013) 에서 "2009년 근로소득자가 받은 급여총계는 369조 원이다. 그런데 정부는 근로소득공제를 통해 이 중 121조를 소득으로 간주하지 않고, 이후 다양한 소득공제를 통해 총 118조를 추가로 소득에서 제외시켰다. 여기에 세액 공제와 세액 감면으로 2.4조 원 등을 또 추가적으로 감면시켜, 결국 과세 대상 소득(즉, 과세표준액)은 121.3조 원에 불과했다. 이에 과세구간별 세율을 적용한 결과, 총 소득과세액(즉, 결정세액)은 12조 8,500억 원으로 급여총계 대비 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0)" 라고 지적한다.


"단순히 외국에 비해 소득세의 비중이 작다고 해서, 외국수준 만큼 올린다는 논리가 타당하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법인세 인상은 여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 자본이동이 활발한 세계화 시대. 법인세 인상은 힘들다 ???


오늘날 다국적 기업들은 법인세율이 낮은 곳에 페이퍼 컴퍼니를 차려놓고 수익을 이전하여 세금을 과소납부 한다. 특히나 무형의 제품을 생산하는 IT 기업들이 이런 방법을 많이 쓰는데, 애플은 조세회피처에 1,020 억 달러의 이익을 이전하고 "아일랜드 자회사에 잠겨 있는 1천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환수하는 문제에 대해서 35%인 현행 법인세율하에서는 아일랜드에 누적된 이익을 미국으로 가져올 의사가 없다" 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됐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소속의 안종석은 <다국적 IT 기업의 조세회피 행태와 시사점: 애플·구글의 사례를 중심으로>(2013.07) 보고서를 통해, "거대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사례가 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세계 각국이 세법의 차별화를 통해 과세베이스 경쟁을 한다(10)" 라고 말한다. 그리고 "1980년대 경제활동의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세계각국은 기업에 대한 과세에서 세율인하 경쟁을 벌였다. 약 20년에 걸친 세율인하 경쟁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법인세율은 주요 선진국의 30% 내외, 20~25% 수준, 20% 미만의 세 그룹으로 수렴하는 결과가 나타났다(10)" 라고 말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소속 안종석의 또 다른 보고서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2013.07)을 보면, 2008 금융위기 이후에 세계 각국은 재정부담을 덜기 위해 소득세 · 부가가치세 인상을 단행했다. 그럼에도 법인세율은 오히려 내려가는 모습(19)을 보였다. 


     


물론, "기업들의 자본이동과 세계각국의 세율인하 경쟁 때문에 법인세 인하는 어렵다" 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있다. 윤홍식은 <복지국가의 조세체계와 함의-보편적 복지국가 친화적인 조세구조는 있는 것일까>(2011) 논문을 통해, "지난 반세기 동안 유동성이 큰 법인세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증가했다. (...) 이론적 논의와 달리 세율을 끊임없이 낮추는 조세경쟁은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나고 있지 않다.(13)" 라고 비판한다. 


그는 이어서 "만약 법인세가 자본의 위치선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친다면 유효한계법인세율이 3%에 불과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자본이 몰려야 하지 않나? 이러한 일이 현실화되지 않는 이유는 외국자본의 직접투자(FDI)가 법인세율에 민감하기는 하지만 세율보단 해당 국가의 임금수준과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다국적기업의 위치선정에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 중요한 건 세금의 "경제적 부담" - 조세귀착의 문제


윤홍식의 주장이 옳더라도 법인세 인상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조세귀착"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과세당국이 물품판매자에게 더 많은 세금부담을 지우기위해, 물건을 팔때마다 판매자가 100원의 세금을 내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가정하자. 이때 물품판매자 혼자 100원의 추가세금부담을 지게될까? 아니다. 판매자는 물건값을 100원 올려서 세금부담을 피할 것이다. 즉, 세금의 법적부담자와 경제적부담자가 다른 현상이 자연스레 나타날 수 밖에 없다. 


1994년 재무부 세제실장으로 법인세 인하를 주도했던 강만수[각주:3]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2005) 를 통해 "법인세 폐지가 처음으로 논의된 것은 1974년 부가가치세 도입을 검토할 때 제기되었던 '3세론(三稅論)'이었다. 돈을 벌 때 소득세를 내고, 돈을 쓸 때 소비세를 매기며, 쓰고 남은 돈에는 재산세를 물리는 세 가지 세금만 두자는 것이다. 법인세와 관세는 기업에 대한 과세로서 사실상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소비세인 부가가치세에 통합하고, 상속세도 재산세에 통합하자는 것(92)"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석을 통해 "이론적인 측면에서 법인세는 '경제적 이중과세'이고 또한 실증적으로 법인세도 소비자에게 전가된다(105)" 라고 말한다.


법인세의 조세귀착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자료는 없을까? 하버드 경제학과의 Mihir A. Desai 등은 <Labor and Capital Shares of the Corporate Tax Burden: International Evidence>(2007) 라는 논문을 통해 법인세의 조세귀착 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1989년-2004년 사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단순히 나누어) '노동Labor과 자본Capital' 중 법인세 부담을 많이 지는 쪽은 어디인가?"를 연구했다. 연구의 결론은 "노동Labor 쪽이 법인세부담의 57%를 지게된다." 이다. 법률상 법인세는 기업에게 부과하는 것이지만, 증가한 세부담은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자본가의 자본소득 모두를 압박하게 되고, 그 결과 노동쪽이 57%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The results consistently indicate that corporate taxes depress both real wages and returns to capital, with most of the burden of corporate taxes borne by labor. The baseline estimate for the share of the burden borne by labor is 57 percent, and estimates vary between 45 and 75 percent, depending on the sample period and specification.)(4)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소속의 안종석이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2013.07) 에서 "효율성의 관점에서 법인세가 가장 열등한 위치에 있으며, 법인세는 형평성 제고에 전혀 기여하지 못함(31)" 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역진적 성격을 가진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면 소득재분배가 악화될까?


위에 첨부한 그림-3 세수입 구성의 발전방향-에서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부분은 "소득세와 사회보장기여금, 부가가치세 수입을 증대시키고 법인세 부담은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 이라는 것이다. 부가가치세 수입을 증대시키자고? 누진적 성격의 소득세와는 달리, 역진적 성격을 가진 부가가치세를? 복지서비스 확충을 위해 (사실상) 증세를 하는 것인데 역진적 성격을 가진 세금을 올리자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고보니 김종인 또한 "물가 인상의 부담은 있지만 현실적 대안은 부가가치세 인상이다. 간접세가 복지 재원을 조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대통령이 정치적인 부담을 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라고 말한바 있다. 부가가치세율 인상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를 알아보자.



 

다시 한번 '집단별 세목별 세수입의 대 GDP 비율(2010년)' 도표를 보면, (앞서 언급한 소득세 뿐 아니라) 일반소비세(부가가치세)의 비중이 OECD 다른 국가에 비해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국가에 비해 낮다는 이유로 부가가치세 세율을 올리자고? 이해가 안가는데?


윤홍식은 <복지국가의 조세체계와 함의-보편적 복지국가 친화적인 조세구조는 있는 것일까>(2011) 에서 "세금의 역진성이 곧 현실에서 불평등을 확대하는 것은 아니다비록 역진적 세금을 통해 재원을 확대해도, 정부지출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쓰인다면, 역진적 세원은 크게 우려할 바가 되지 못한다.(7)" 라고 지적한다. 



위에 첨부한 '누진세와 역진세의 구성 변화: 1965-2008' 도표를 보자.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알고 있는 스웨덴은 그동안 역진적 성격을 가진 세금비중을 늘려왔다. 그리고 OECD 전체적으로도 "역진세의 증가율이 누진세의 증가율 보다 높았다. (...) 주목할 변화는 GDP대비 누진세의 비중은 1975년 이후 거의 변화가 없는데 반해 역진세의 비율은 2005년까지 꾸준히 증가(6)" 했다. 


윤홍식은 영국과 스웨덴을 비교한다. "영국과 미국 등 자유주의 복지국가에서 역진적 조세의 도입(확대)은 보편적 복지급여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정적자를 메우거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 · 인상 · 검토되었다. (...) 영국은 누진세 비중의 증가율보다 역진세 비중의 증가율이 훨씬 컸지만 영국을 보편주의 복지국가라고는 하지는 않는다.(8)"  


즉, 윤홍식의 핵심주장은 "결국 누진세와 역진세 논란에서 중요한 사실은 보편주의 복지국가에 조응하는 조세가 역진적이어야 하느냐, 누진적이어야 하느냐와 같은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어떻게 한 나라의 세금의 크기를 늘릴 것인가그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 이다.


그렇다면 스웨덴이라는 단지 한 국가의 사례 뿐 아니라, 부가가치세 인상이 복지에 도움이 된다는 좀 더 실증적인 자료는 없을까? 한국조세연구원 소속 성명재의 <부가가치세율 조정의 소득재분배 효과: 복지지출 확대와의 연계 가능성>(2012.10) 보고서가 있다. 윤홍식의 주장과 비슷하게, 성명재 또한 "서구 선진국에서는 부가가치세 부담이 역진적임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화 또는 복지재원 마련 등을 목적으로 부가가치세의 세율을 인상하는 경향이 짙다. 그 배경에는 부가가치세 증세를 통한 재정지출 효과까지 함께 고려할 경우 부가가치 증세의 결과가 결코 역진적이지는 않다(2)" 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윗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2010년 현재 부가가치세의 소비지출 대비 실효세부담률은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상승하는 모습(8)"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성명재는 "비록 최고소득층인 10분위의 경우 총소득 대비 실효세부담률이 3.1%여서 다른 분위보다 상당히 낮기 때문에 이 부분만을 보면 부분적으로 세부담의 역진성이 관찰되지만,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소득에 대해 비례적인 모습을 보인다(8)" 라고 덧붙이고 있다. 즉, "부가가치세 부담이 막연히 역진적일 것이라는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12)" 된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부가가치세의 세율인상 문제를 복지지출과 결합했을 때 나오는 결과이다. 성명재는 부가가치세를 1조원 증액하는 경우와, 지출 측면에서 교육 또는 보육, 주택 급여를 1조원 확대하는 경우의 수혜분포를 추정한 값을 내놓았다. 그 결과는 "부가가치세 증세 및 복지지출 확대 시 순부담이 음(-)의 값을 가지는 범위는 주로 중 ·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고, 고소득분위는 순부담을 지는 것(12)" 으로 나왔다.


성명재는 "'부가가치세 부담이 역진적이기 때문에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하면 형평성 차원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클 것' 이라는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 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성명재는 "장차 부가가치세 부담의 역진도가 커지더라도 세원이 매우 넓기 때문에 추가재원을 복지지출에 충당할 경우 정책조합의 순효과는 정(+)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부가가치세 세율인상 방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라고 결론내린다. 




(사족) ※ 과세왜곡이 적은 부가가치세 


부가가치세 세율인상을 통한 세입확보 방안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다른 세금에 비해 자원배분의 왜곡이 적고 세원분포가 넓다는 점 때문이다. 성명재는 "지나치게 높은 법인세 등의 과중한 부담이 근로의욕(work incentive)을 저해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왜곡현상을 완화하여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고자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한편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하기도 한다. 아울러 인구고령화 진전에 따라 소득세의 세원분포가 협소해지므로 누진과세에 따른 자원배분 왜곡 현상을 완화하고 보다 넓은 세원을 확보하여 복지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크게 작용(10)"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가가치세 세율을 상향조정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소득과세 · 재산과세 강화만으로는 세원확충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구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소득과세의 세원분포가 협소해지면서 재정세입 기반 역시 위축된다. 반면에 소비과세의 경우에는 세원분포가 넓고 조세왜곡이 작으므로 자원배분의 왜곡으로 인해 초래되는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소기의 세원확보 빛 지속가능성을 보장 할 수 있다.(10)" 라고 덧붙인다.


윤홍식 또한 "소비에 대한 세금은 현재 근로계층에게만 세금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비근로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에게도 세 부담을 지움으로써 복지에 대한 왜곡이 가장 낮은 세원", "높은 소비세는 사회적 이전급여-실업급여 등-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와 비자발적 실업을 낮춘다.(10)" 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2013.08.18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 2013.08.23


양재진. <산업화 시기 박정희 정부의 수출 진흥 전략: 수출 진흥과 규율의 정치경제학>(2012)

양재진. <한국 복지국가의 저부담 조세체제의 기원과 복지 증세에 관한 연구>(2013)


안종석. 2013.7.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박근혜정부의 세제개편안

[朴정부 稅制개편안] 바뀐 세법…‘유리지갑’ 월급쟁이 세금 늘어난다. <조선일보>. 2013.08.09

“대기업 법인세는 놔두고…” 직장인들 분노. <한겨레>. 2013.08.09


애플은 어떻게 세금을 회피하나?. 2012.04.29

안종석. <다국적 IT 기업의 조세회피 행태와 시사점: 애플·구글의 사례를 중심으로>(2013.07)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Disarming Senators, Apple Chief Eases Tax Tensions. <New York Times>. 2013.05.21


강만수.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2005)

Desai, Foley, Hines Jr. <Labor and Capital Shares of the Corporate Tax Burden: International Evidence>(2007)


김종인. "혁명도 유발하는 세금, 정치적 센스 필요… 법인세 인상은 추세 역행… 부가세가 해답". <조선일보>. 2013.08.13

윤홍식. <복지국가의 조세체계와 함의-보편적 복지국가 친화적인 조세구조는 있는 것일까>(2011)

성명재.  <부가가치세율 조정의 소득재분배 효과: 복지지출 확대와의 연계 가능성>(2012.10)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1. 괄호안 쪽수는 pdf 파일 기준입니다. 강만수의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만 실제 쪽수 기준입니다. [본문으로]
  2. 국내총생산(GDP)에서 조세수입(국세+지방세)이 차지하는 비중. 국민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조세수입+사회보장기여금이 차지하는 비중 [본문으로]
  3. 이명박정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고환율 정책을 주도한 그 강만수 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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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한국의 경제성장 - 미국의 지원 + 박정희정권의 규율정책

Posted at 2013. 8. 23. 22:06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이라는 포스팅을 통해, "개발시대 관료와 기업의 유착관계가 경제성장 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라는 주장을 소개했다. 이런 주장은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 줄 수는 있지만, 한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한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전세계에 관료-기업인 사이의 부패가 심한 나라는 많지만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는 드물다. 특히나 한국처럼 짧은시간에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한국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


외부요인을 찾자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미국의 존재" 이다. 류상영은 <박정희정권의 산업화전략 선택과 국제 정치경제적 맥락>(1996) 이라는 논문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통합전략과 박정희정권의 국가전략과의 이익수렴, 한일국교 정상화이후 형성된 한일 간 정책이념 공유와 경제협력이 박정희정권에게는 기회조건으로 작용"했다 라고 말한다.


냉전시대 미국은 "아시아 지역통합전략(10)" 이라는 맥락 속에 한국을 위치시킨다. 미국은 "더 장기적인 정치경제적 문제로서 경제성장과 정치안정을 추구하는 국가의 민족건설 지원(11)"을 목표로 동아시아 원조정책을 실시한다. 이에 대해 박정희정권은 "냉전구조 속에 위치해 있는 한국의 군사적 현실(14)"을 무기로 미국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낸다. 


그리고 베트남전 파병을 "(미국의)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확대시키는 하나의 계기(14)"로 인식했던 한국은 "미국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였고, 미국에게는 그간의 전반적인 대한원조 및 차관삭감 방향을 일시적으로 유보시키는 효과(14)"를 가져왔다. 박정희정권은 미국에게 "더 많은 원조를 제공해줄 것과, 한국의 외채상황을 감안하여 미국의 군사원조를 경제부분에 전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 그리고 미국이 한국의 계속적인 무역시장으로 역할해 줄 것(14)" 등을 요구하였다.    


또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통합구상의 최종적인 외교적 완결(17)"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추진하였다. 한일국교정상화는 "한국의 산업화와 함께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통합구상이 실질적 내용면에서 구체화되는 정치경제적 출발점(17)" 으로서의 의미도 가졌는데, 미국은 일찍부터, "한국정부는 회담타결과 함게, 아마도 일본이 한국에 제공하게 될 경제적 원조를, 한국의 경제발전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17)" 이라는 기본입장을 밝혀왔다. 따라서, 한일 국교정상화에 따른 식민지배 배상금은 "보상이나 청구권 등의 개념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발전을 위하는 의미에서 한국에 회담 타결 댓가를 지불(17-18)" 하는 것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구상에 따라 "박정희정권은 일본을 중심으로한 동아시아의 국제분업구조에 적극적으로 편입(21)" 될 수 있었다. 미국이 추진한 아시아지역통합전략 + 한일국교정상화는 "박정희정권으로 하여금 내포적 공업화전략을 포기하고 수출지향형 산업화전략으로 전환하도록 하였고, 중범위의 산업정책적 차원에서는 개발국가론에 입각한 일본의 경제협력이 정부개입에 의한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대외적 맥락으로 작용(21)" 하게 되었다. 




"관료-정치인의 유착관계가 만들어낸 의도하지 않은 결과", "아시아 지역통합전략 이라는 미국의 구상과 지원"을 살펴봤지만, 한국이 어떻게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의도하지 않았던 변수+한국이 통제할 수 없었던 대외변수 등을 제외하고,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내적요인은 없을까? 


김일영은 <1960년대 한국 발전국가의 형성과정: 수출지향형 지배연합과 발전국가의 물적 기초의 형성을 중심으로>(1999) 라는 논문에서 "발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장악한 자원을 자신이 설정한 개발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동원배분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지와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상대적 자율성이 큰 국가는 발전국가라기 보다는 약탈국가(the predatory state)의 성격을 띠기 쉬웠다(13)" 라고 지적한다. 


즉, 일반적인 정경유착과 박정희정권 하에서 벌어졌던 정경유착의 차이는 "유착이 발생하는 경제적 영역과 특혜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으며, 그 결과도 소비적인 것과 생산적인 것으로 상반되게 나타났다.(15)" 라는 말이다. 박정희정권은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을 통해 낮은 금리로 대기업에게 대출지원을 했는데, "박정희 정부 하에서 저리의 융자와 외자는 주로 수출을 통해 성과를 내는 기업에게 주어지거나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회기반시설이나 기간산업 분야에 투입되었다. 따라서 똑같이 융자를 둘러싼 특혜의 추구라 할지라도 1950년대의 그것은 소비적이었다면, 1960년대의 것은 성과에 따른 보상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보다 생산적(15)" 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박정희정권은 어떤 정책을 취하였기에, 정경유착이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일까? 양재진은 <산업화 시기 박정희 정부의 수출 진흥 전략: 수출 진흥과 규율의 정치경제학>(2012)을 통해, 수출지향산업화 과정속에서 발생한 박정희정권의 "규율행사 discipline"에 주목한다. "수출 진흥은 그 자체가 항상 모럴해저드와 자원배분의 왜곡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 기본적으로 수출진흥정책 그 자체가 제대로 입안되고 효과적으로 집행되어야 하겠지만, 진흥(promotion)의 이면에는 국가의 규율(discipline) 행사가 필요조건으로 부가되어야 한다(2)" 라는 것이다.  "성공적인 산업화 배경에는, 기업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이에 상응하는 성과목표 부과와 업적에 따른 보상과 처벌(2)"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박정희정권은 1964년 수출지향 산업화(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EOI) 전략으로 돌아선 이후,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을 통해 기업에 자금을 지원 · 원화가치를 1달러당 130원에서 255으로 평가절하 · 저축을 증가시키기 위해 이자율을 16.8%에서 30%로 상승 등등 수출진흥지원을 펼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지원이 생산적인 결과물로 도출되도록 하기 위해 구사한 규율정책 discipline 이다. 박정희정권의 수출진흥지원에는 "강력한 책임과 의무가 강하게 부과되었으며, 수출기업이 향유하는 초과이윤은 사유물로 인정되기 보다는 공적 자산으로 이해되어 산업화에 재투자(12)" 되어야 했다. 


박정희정권은 "정책금융의 배분과 상업차관의 도입 승인 과정에서 해당 제품의 공급이 국내수요를 얼마나 충족시켜 줄 수 있으며,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액이 얼마일 것인가 그리고 국내산업과의 연관성, 기술이전 가능성, 그리고 고용창출 등이 얼마나 이루어질 것인가(12)"를 주요하게 살펴봤다. 그리고 기업별로 수출목표액을 부과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행정지도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규율행사 discipline 은 "기업들로 하여금 출혈수출과 이윤압박 등을 감내하면서까지 생산과 수출을 늘리게 만들(13)"었다. 또한, 부실기업들에 대하여는 "기업주에게 책임을 물어 경영권을 박탈하는 등 과감한 조치(14)"를 하였다. 그 결과, "박정희 시기는 수출기업들이 시장진입과 기업활동 전 과정에서 국가의 규율을 받아들여야 했고, 극단적으로 국가에 의한 구조조정이 신속하게 강제되었다.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가해진 성과책임의 부여는, 수출진흥정책의 효과성을 최대한 극대화 시킨(14)" 것이었다.


또한, 물가가 치솟자 박정희정권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주요 공산품과 유류 가격을 조정하는 가격사전승인제를 시행하는 등 행정력을 동원해 독과점기업의 초과이윤을 억제(16)" 했다. 물론, 수출지향 산업화를 과정에서 소수 기업들에게 자원을 몰아주고 수입을 제한해 경쟁을 막은 결과, 국내시장에서 독과점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각주:1] 그렇지만 "수출지향산업화의 맥락에서 수출단가를 낮추기 위해, 국내 독과점 구조에서 초과이윤을 수취하는 것이 허용(16)" 되었을 뿐이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준에서 머물러야(16)" 했다. 그리고 "급증하는 신흥 자본가들의 해외재산도피도 엄격히 규제(17)"하여 "남미나 동남아시아의 경우에 비할 때 한국의 외화도피는 매우 성공적으로 제어(17)" 되었다. 


즉, 박정희정권은 "법과 제도를 통하기 보다는 정치적 수단을 통해 한국의 신흥 자본가들에 대한 규율(17)"에 나섰고, 그 결과 정경유착이 경제성장이라는 생산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었다.




  1. 박병영은 <1980년대 한국 개발국가의 변화와 지속: 산업정책 전략과 조직을 중심으로>(2003) 논문을 통해 "정부는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설비투자 등에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동시에 내수시장의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이들 산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지원해온 것이다. (...) 1970년대 들어서는 전략산업에 참여한 기업들을 보호 육성하는 경쟁제한적인 행정규제가 주된 정책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경쟁제한 뿐만 아니라, 정부는 수입규제 및 정부구매 등을 통해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히였다(11)" 라고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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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Posted at 2013. 8. 20. 21:00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개발시대 Financial Repression 정책과 이로 인한 재벌의 성장을 다룬 흥미로운 논문 한편을 소개. 

이상학, 정기웅. 2010. The Political Economy of Financial Structure of Korean Firms.




첫번째 그림은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만든 금융시장의 불균형과 그 결과 생겨난 지대Rent[각주:1] 이다.


개발시대 한국은 국가가 금융자본을 통제하여 기업대출에 직접 관여하는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구사했다. 경제관료 bureaucrats 들은 특정집단에 자원을 몰아주기 위하여, 금융시장의 균형보다 상당히 낮은 금리 r* 를 인위적으로 설정하였다.


그 결과, 금융의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초과수요" 상황이 만들어지고, 대다수 기업들은 장외시장 curb market 에서 균형금리보다 높은 r**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두번째 그림에서 나오듯이, 공식금융시장의 대출금리 Bank Loans-General-B 보다 장외시장 Curb Market-A 금리가 높았다



이때, 공식금융시장과 장외시장 간의 금리 차이 (r**-r*) x 대출금액 Total outsanding loans 을 합친 것이 지대 Rent 이다. 그 당시 발생했던 지대 Rent의 정확한 시장가치를 세번째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가는 금융시장을 통제하고 금리를 낮게 설정함으로써 지대 Rent 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겨난 잉여 Surplus인 지대 Rent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국가는 "정치자금을 받는 대가"로 특정기업들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 그 기업들은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의 혜택을 받고 성장해 나간다. 게다가 정치권에 계속 접촉하기 위해서는 "기업규모 Firm Size"가 커야한다. 기업들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라도, "규모 늘리기"에 열중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순환작용이 발생한다. 국가는 규모가 큰 기업들에게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준다. 그 기업들은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의 혜택을 받으면서 규모를 키워나간다. 이 과정에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 small- and medium-sized firms"은 금융시장에서 소외된다. 중소기업들을 위한 금융시장도 발전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의 재벌들은 "높은 자산대비 부채비율 the high debt/equity ratio" 을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전까지 유지했었다.




It is well documented that the Korean government tightly controlled the financial sectors during its economic development era. Access to precious funds was limited. Firms tried to gain access to the enormous rents that would accrue to them if they received loans with low interest rates. Through repression in the financial markets, rents have been created and shared by politicians, bureaucrats and business.


Firms, bureaucrats and politicians shared these rents. The larger the firms, the more political influence they could generate. Politicians took a lot of “voluntary” donations known as “quasi-taxes” from large firms in return for cheap loans and other favors. That is, the politicians and large firms created the pie, “rent,” and shared it together.


In this case, firm size was an important advantage for rent seeking, because firm size was an important criterion for political connections with business. Large firms were preferred in allocation of funds since, given the size of funds to be allocated, the number of transactions and transaction costs in rent sharing could be reduced. 


As a result, large firms with licenses to invest in projects had a great advantage in acquiring credit allocation from financial institutions. Also, financial market for small- and medium-sized firms has been underdeveloped in Korea, as noted by Lee (1995).


Korean firms tried to expand, both to obtain cheap loan and to make them so large that the Korean government would have no choice but to keep on supplying them with funds. These in sum resulted in high debt/equity ratios of Korean firms. That is, the high debt/equity ratios of Korean firms were the consequence of the tie between the politicians and business


While this has been recognized by many scholars, (e.g. Kang(2002)), little empirical work regarding firm size and financial structure has been offered. Also, the possibility that the financial markets might be intentionally suppressed to create rents is not fully recognized. Following Kang (2002) we argue that firms with access to financial resources have benefited from the suppression in financial markets, at the expense of the firms with little access to financial resources, mostly small- and mediumsized firms. 


Our argument is consistent with Lim (2004) who finds that profitable small firms are gaining access to the credit from financial institutions after the 1997 financial crisis. In sum, the Korean financial markets were in favor of large firms at the expense of small and medium-sized firms.


이상학, 정기웅. 2010. The Political Economy of Financial Structure of Korean Firms. 4-5




①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한국의 금융시장

②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의 혜택을 받은 결과, 높은 자산대비 부채비율 the high debt/equity ratio 를 가지게 된 재벌


이 두가지 요인이 결합하여,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논문의 주제는 이것이다.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으로 인해 "한국 금융시장의 미발전"과 "높은 부채를 가지게 된 재벌".



  1. 지대Rent 란 공급이 제한되어 있을때, 공급자가 얻는 추가적인 생산자 잉여 producer surplus 를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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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Posted at 2013. 8. 18. 23:00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흥미로운 논문을 한편 소개. 한국경제 성장과정에 대해 리서치 하다가 발견한 논문.


제목은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 David C. Kang (2002)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많이 언급되는 세력은 "경제관료" Bureaucrats 들이다. 엘리트 집단인 경제관료들이 수출주도 성장을 이끌었다는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Development Economics 에서는 한국을 많이 다루는데, "(관료들에 의해 수립된) 국가의 경제정책"이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실증적 논거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를 다룰 때 등장하는 경제관료들은 부패의 온상이다. "한국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 정실자본주의로 인해 외환위기를 맞았다" 라는 이야기.


두 이야기를 종합하면, "한국관료들은 유능한 것일까 아니면 무능력한 것일까?"


Development Economics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는 "국가는 전도유망한 산업을 선택해 육성할 수 있고 picks winners,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공재 public goods 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라는 전제를 따른 것이다.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 의 일종.


그러나 논문의 필자는 "(그 당시 한국지배세력 등의 부패정도를 안다면) 우리는 (한국경제의 성장이) 국가의 자애심 benevolence 덕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러나 한국은 (국가의 경제정책 덕분에) 경제성장에 성공한 것도 사실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서 필자는 "국가와 기업 간의 파워게임에 따른 금전정치money politics 와 부패 corruption" 개념을 들고 오면서 "한국의 경제성장은 (경제관료들에 의해) 의도된 결과가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For decades the literature on Asian development largely treated the prevalence of money politics as inconsequential or as peripheral to the “real story” of Korea: economic growth led by a developmental state composed of technocrats and austere military generals who emphasized 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Growth was so spectacular that the reality of corruption was concealed or was dismissed out of hand. 


And until late November 1997 and the stunning fall of the Korean won, observers argued that better government in Asia was a prime reason for that region’s spectacular growth.


Has corruption historically been prevalent in Korea? If so, why? How can we reconcile the view of an efficient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before 1997 with reports of massive corruption and inefficiency in that same country in 1998 and 1999?


(...)


The Korean experience suggests broader implications for the study of government–business relations in developing countries. Most important, a model of politics is central to understanding the developmental state. We cannot assume benevolence on the part of the developmental state. 


A “hard” view of the developmental state—that the state is neutral, picks winners, and provides public goods because the civil service is insulated from social influences—is difficult to sustain empirically. However, even the “soft” view—that governments can have a beneficial effect however government action is attained—needs a political explanation. The Korean state was developmental—it provided public goods, fostered investment, and created infrastructure. 


But this study shows that this was not necessarily intentional. Corruption was rampant, and the Korean state intervened in the way it did because doing so was in the interests of a small group of business and political elites. Producing public goods was often the fortunate by-product of actors competing to gain the private benefits of state resources.


David C. Kang. 2002.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3-4 





필자가 제시하는 types of corruption 은 4가지.


1. 강한 국가 + 강한 기업 = 상호인질관계 Mutual hostages


2. 약한 국가 + 강한 기업 = bottom-up type. 국가에 비해 기업이 우위에 선 구조. 업이 지대추구 rent-seeking 를 위해서 관료 등을 상대로 로비를 한다. 


3. 강한 국가 + 약한 기업 = top-down type. 국가가 강한 권력을 가진 구조. 강한 권력을 가진 관료 등이 정치자금 마련 등을 위해 기업을 약탈 predatory 한다.


4. 약한 국가 + 약한 기업 = 시장원리 Laissez-faire 대로 경제가 돌아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2. 약한 국가 + 강한 기업" 과 "3. 강한 국가 + 약한 기업"


개발시대 한국은 독재정권이 강력한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국가가 금융자본을 통제하는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구사하면서 은행의 기업대출에 직접 관여하였다. 투자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국가의 "대출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였다. 


따라서, 기업은 독재정권에 정치자금을 대주고, 독재정권은 대출을 통해 기업을 밀어주는 양상이 나타났다. 정치자금을 많이 건네준 기업이 독재정권의 선택을 받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부패 Corruption 정도가 기업의 성장을 결정하는 상황. 실제로 선택받은 상위 10개 기업들은 Financial Repression 정책에 힘입어, 당시 한국의 은행대출 38%, 시중통화량의 43%를 지원받고 "급속히 성장"해 나갔다.


- 현대 · 삼성 등의 재벌들이 새마을운동 지원금 · 일해재단 기부금의 명목으로 정치권에 건넨 정치자금 액수


- 정치자금을 건넨 대가로 국가로부터 금융혜택을 얻은 소수의 기업들. 1964년 8월 기준, 은행대출에서 (정치권으로부터 선택받은)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8%에 달한다.


Business and political elites exchanged bribes for political favors. Politicians used these political funds to buy votes and to serve basic greed. Businessmen used the rents from cheap capital to expand as rapidly as possible, thus ensuring their continued political and economic importance. Development and money politics proceeded hand in hand.


(...)


Businessmen often called “voluntary” donations jun joseh, or “quasi-taxes." (...)The fact remained that if businessmen did not provide politicians with sufficient funds when asked, the Bank of Korea called in their loans, or they suffered a tax audit, or their subsidy application was denied.


(...)


Given the Korean state’s total control over the financial sector in the 1960s and 1970s, businesses were naturally interested in gaining access to the enormous rents that accrued to a chaebol if it received a low-interest-rate loan. The state’s inability to control firms and their growth led to endemic overcapacity. Firms rushed willy-nilly to expand at all costs, whether or not it was economically feasible. The result was that in most major sectors of the economy there was excess capacity and overlapping and duplication of efforts as each chaebol tried to be the biggest. 


Rents in the form of U.S. aid, allocation of foreign and domestic bank loans, import licenses, and other policy decisions were based on a political funds system that required donations from the capitalists. During the 1960s, the expected kickback became normalized at between 10 and 20 percent of the loan.43 Park Byung-yoon points out that as early in Park’s rule as 1964, 38 percent of total bank loans—43 percent of M1 money supply—was given to only nine chaebol, all of which had family members in powerful positions in the ruling party or in the bureaucracy (see Table 2).


David C. Kang. 2002.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10-14




그러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상황이 바뀐다. 국가의 힘이 약해져 버린 것이다. 독재시대와 달리 국가가 모든 상황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 물론, Financial Repression은 계속 됐지만, 그 사이 기업들도 크게 성장해 "재벌"이 되었다. 정치권력이 재벌들을 함부로 컨트롤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들이 필요한 "선거자금"은 늘어나기만 했다. 과거 독재시대에는 선거가 필요 없었는데, 이제는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회는 "취약한 법 제도 weak legal environment"를 가지고 있었고 "인맥 personal ties" 이 많은 걸 결정했다.


이제 힘이 세진 기업들이 정치권력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정치자금을 대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관철시키는 양상이 나타났다. 시장 바깥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지대추구행위 Rent-seeking behavior 가 나타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재벌들의 성장세는 계속 됐다. 자동차, 전자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출했다.


- 1987년-1997년 사이의 대통령선거 동안 지출된 정치자금


- 1987년 민주화 이후, 재벌들이 부담한 정치자금 (일종의 준조세, quasi-taxes) 이 매우 커졌음을 알 수 있다.


-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재벌들은 정치자금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관철 rent-seeking 시켜 나갔다. 한국의 GNP에서 현대 · 삼성 · LG· 대우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높아져만 갔다. 

- 그리고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의 혜택으로, 재벌들은 손쉽게 은행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1996년 재벌들의 자산대비 부채 비중 Debt/equity ratio 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the most significant change was the 1987 democratic transition. A country’s shift from authoritarian institutions to democratic ones will have different results depend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tate and business (Figure 2). In Korea, where both the state and business were strong, a shift to democratic institutions benefited business more than the state—the state was weakened by the imposition of democratic processes.


(...)


Although many assumed that globalization and liberalization would reduce rent seeking and the power of the chaebol, the opposite might very well be the caseTable 9 shows that although in 1986 the four largest chaebol added 5.7 percent to Korea’s GNP, by 1995 their share had grown to 9.3 percent of value added to GNP. Unless liberalization is matched by stringent regulatory oversight that limits collusive practices and the exercise of market power, it can provide new opportunities for large firms to buy favorable policy. While measures to rein in the chaebol are popular politically, because of government–business ties such policies were unsustainable even after 1997.


(...)


the importance of personal relationships (inmaek) in legal and corporate institutions also increased. A historically weak legal environment— and the corresponding importance of personal ties— creates an environment where the founder/chairman can control a vast array of subsidiaries while having little or no formal title to them and can evade or influence government policy.


In this fluid institutional environment, personal ties between chaebol and politicians— always important—have become even more critical to business success. The transition to democracy did not change this need. Rather, the 1990s saw expanded opportunities for personal connections, influence peddling, and a “bigger is better” mentality. Business concentration continued to increase, while cross-holding ownership remained a standard Korean business practice.


David C. Kang. 2002. "Bad Loans to Good Friends: Money Politics and the Developmental State in Korea". 18-25




국가가 기업을 컨트롤하든, 기업이 국가를 컨트롤하든, 그 중심에는 뇌물bribery 등의 부패corruption 와 금전정치 money politics 가 있었다. 국가와 기업은 '뇌물'을 연결고리로 서로를 지원하고 이끌어 나간 것이다. 필자가 "한국의 경제성장은 (경제관료들에 의해) 의도된 결과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부패한 모든 국가가 경제성장에 성공하는건 아니지 않나? 개발시대 한국의 부패 정도가 심했음에도 경제성장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1. 부패corruption는 국가경제정책과 자원배분에 관한 투쟁 이었다.

(Corruption may indeed consist of struggles over the distribution of state policy and goods rather than struggles over the absolute level.) (26)


- 개발시대, 금융자본을 움켜쥐고 있던 Financial Repression 국가권력이 "한국의 자원배분"을 결정했다. 국가와 기업간에 나타난 부패corruption은 이러한 "자원배분 distribution of state policy and goods"을 쟁취하기 위한 "기업들의 투쟁" 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사욕챙기기"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2. (뇌물을 통해) 국가의 자원을 쟁취하고 기업들이 사적인 이익을 향유했던 것은 공공재의 생산을 조건으로 한 것이다.

(Access to the private benefits of state resources was often contingent upon production of public goods.) (26)


한국의 재벌들은 뇌물을 통해 국가자원을 배분받거나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사회인프라 건설, 고용창출 등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공재public goods 를 생산해 냈다" 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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