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Posted at 2019. 7. 8. 16:3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80년대 미국 내 보호주의 압력,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으로 이어지다


  • 왼쪽 : 전세계 GDP에서 미국 GDP가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오른쪽 : 미국, GDP 대비 대일본 무역수지 비중의 변화


지금까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읽어왔으면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을 상징하는 단어는 '공정무역'(fair trade)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 였습니다. 


미국 경제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려왔으나, 1970-80년대 서유럽이 전후 재건을 완료하고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을 시작하면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습니다[왼쪽 그래프]. 


더욱이 1970년대 들어서 고도성장을 기록해나간 일본은 미국인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일본 GDP 대비 미국 GDP는 1968년 2.6배 였으나 1982년 2.0배로 축소되었고, 미국 GDP 대비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액은 1985년 1.15% 수준까지 심화되었습니다[오른쪽 그래프].  


미국 정치인과 대중들은 "외국 특히 일본의 불공정무역 관행으로 인해 미국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5년 연설[각주:1]을 통해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ing practices)으로 인해 우리의 기업인들이 실패하는 것을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공정무역(fair trade)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할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미국은 주요 타겟을 일본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여러 기업이 모여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케이레츠 · 일본기업간 오랜 기간에 걸친 협력과 거래 · 종합상사회사가 중심이 된 유통시스템 등의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외국산 상품 판매를 가로 막고 있었고, 이로 인해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각주:2]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을 체결하여, '향후 5년간 외국산 반도체 시장점유율 20% 달성'이라는 구체적인 성과를 강요하는 결과지향적 무역정책(Results rather than Rules)[각주:3]을 일본에게 관철시켰고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냈습니다.


이때 미국이 일본의 무역 규칙 · 정책 · 관행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자국의 법률 이었습니다.  그 법률은 1974년 무역법 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 였으며, 1988년 종합무역법(the Omnibus Foreign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의 슈퍼 301조(Super 301) 및 스폐셜 301조(Special 301)로 강화됩니다.


이렇게 자국법을 근거로 특정 국가에게 시장개방을 강요하는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세계무역 시스템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일명 GATT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100개 이상의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던 GATT는 최혜국대우 · 관세 · 비관세장벽 등의 규칙(rules)을 명시하고 협정 당사국은 이를 준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국제협정인 GATT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자국에서 제정한 국내법(domestic laws)과 국제정치적 힘(powers)을 이용하여 외국의 시장을 개방시킴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켰습니다.


이러한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은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로 불립니다. GATT 체제는 여러 국가들이 협상(bargaining)을 통해 상호양보(mutual, reciprocal concession)를 함으로써 무역자유화를 이루어 나갑니다. 반면,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는 특정 무역상대국을 위협(threat)하여 상대방의 일방적인 양보를 이끌어(unilateral concession by others)냅니다. 


여기서... 과거 80년대 미국의 모습이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오늘날 미국 트럼프행정부는 중국, 멕시코, EU, 일본, 한국 등 거의 모든 무역상대국을 위협하여 자국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무역협정을 개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이 외국의 무역행위를 판단하는 근거는 현재의 세계무역시스템인 WTO가 아니라 자국의 법률인 1974년 무역법 301조와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 301조, 스폐셜 301조 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80년대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이 만들어진 배경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왜 미국만' 공격적 일방주의를 사용하며 '언제' 이를 꺼내드는지, 그리고 'GATT 및 WTO 등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vs 국내법과 힘에 기반한 공격적 일방주의'의 대립구도를 알아야 합니다.


이번글과 앞으로 나올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에서 다루게 될 주요 논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 왜 유독 미국만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이용할까? 


왜 유독 미국만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단순한 대답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powers)을 가진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19세기 영국의 무역정책 형성과정과 20세기 초반 미국 무역정책의 방향이 형성된 시기를 비교봄으로써, 좀 더 근원적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은 1846년 곡물법을 폐지하며 보호무역체제에서 벗어나 자유무역체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본 블로그의 지난글을 통해, 곡물법 폐지를 주장한 데이비드 리카도의 논리[각주:4]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때, 영국은 다른 나라들이 보호무역을 유지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이에 상관없이 수입산 곡물에 부과된 관세를 철페하며 나홀로 자유무역체제로 나아갔습니다. 이를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Unilateral Liberalization of Trade / Going Alone / Unilateralism)로 부릅니다.


반면, 20세기 초반 미국은 다른나라와의 협상을 통해 서로서로 무역장벽을 낮춰가는 방식으로 무역자유화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서로의 이익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이를 '호혜주의'(Reciprocity)라 부릅니다. 


그런데 호혜주의에 기반한 무역자유화를 다르게보면, 상대방이 무역장벽을 낮추지 않을 경우 나의 무역장벽을 낮출 이유도 없습니다. 즉, 상대방이 형평에 어긋난 이익을 취하려 할 경우 나는 상대방에 이익이 되는 조치를 철회하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이를 '상호주의'(Reciprocity)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긴 용어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호주의에 기반한 무역자유화는 언제든지 보호주의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일방주의에 기반을 둔 영국과 상호주의에 기반을 두었던 미국은 서로 다른 역사적 과정을 거쳐 무역자유화를 이루었으며, 미국의 상호주의는 언제든지 보호주의 및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 언제 미국은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꺼내들까?


이제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언제 미국의 상호주의는 보호주의 및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하는가?" 입니다. 평상시 미국은 자유무역을 추구하며 전세계에 이를 전파하지만, 국제정치적 상황의 변화(foreign policy) · 비교우위 변화(shifts) · 경기침체(shocks)가 발생하면 보호주의 정책을 꺼내듭니다.


1947년 GATT 체제가 수립된 이유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전세계로 보후주의 무역정책이 확산되며 공황이 심화되고 세계대전을 치렀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이후, 미국과 영국은 자유무역의 가치를 지키고 퍼뜨리기 위하여 GATT 체제를 창안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서유럽 및 일본의 재건과 부흥이 필요하였고, 상대적으로 높았던 이들의 관세율을 종전 직후에는 그대로 묵인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서유럽과 일본 경제가 다시 성장하고 자동차 · 철강 · 섬유 등의 업종에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또한, 1970년대 말 오일쇼크와 긴축 통화정책으로 경기침체에 빠지고 실업률이 높아지자, 정치권을 향해 보호주의를 요구하는 기업인 · 근로자의 목소리도 커져갔습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서유럽과 일본의 높은 관세율을 용인할 수 없게 되었고, 선거 당선이 필요한 상원 · 하원 의원들은 미국 기업인과 근로자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각종 보호주의 법안을 입안했습니다. 특히 외국의 제조업 발전 때문에 심한 경쟁에 노출된 미국 러스트벨트(rust belt)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GATT, WTO) vs 공격적 일방주의(301조)


결국 미국은 국내법을 근거로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이는 규칙에 기반을 둔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GATT의 원리와 충돌하게 됩니다. 


1947년 체결된 GATT는 규칙에 기반을 둔 다자주의 세계무역 시스템(Rule-Based Multilateral World Trade System) 입니다. 이에 참여한 국가들은 1947 GATT에 명시된 규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다른 나라들을 모두 평등하게 대한다는 무조건적 최혜국대우(Unconditional MFN)이며 비차별주의(Non-Discrimination)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은 GATT의 규칙이 아닌 자국의 국내법(domestic laws)을 근거로 외국의 행위를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GATT의 분쟁해결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일방적인 보복(Unilateral Retaliation)을 행사했습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 하는 보복과 보호무역 조치는 다른 나라와 차별을 초래하며, 이는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이 지키려하는 무조건적 최혜국대우와 비차별주의를 위반하고 맙니다.


이를 보다 못한 EU와 일본은 1995년 WTO라는 새로운 세계무역시스템을 만들어서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를 제어하려 했습니다. WTO에는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각국간 무역분쟁은 WTO가 다룰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미국은 기존 1947 GATT 규칙을 수정한 1994 GATT에 더하여,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서비스부문(GATs) · 지적재산권(TRIPs) 부문 개방을 얻어내는 대가로 WTO에 참여하게 됩니다. 


즉, 세계무역시스템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보호주의 확산' →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자유무역을 전파하는 1947 GATT 체제 성립' → '1980년대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 '이를 통제하기 위하여 새로운 다자주의 무역시스템인 1995년 WTO 기구 창설' 등의 역사적 변천을 거쳐왔습니다.


따라서, 80년대와 오늘날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은 단순히 "미국이 보호주의를 구사한다"는 평을 넘어서서, "무조건적 최혜국대우와 비차별주의를 기본 원리로 하는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미국이 훼손하고 있다"는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트럼프행정부가 공격적 일방주의를 다시 꺼내들면서 WTO 체제를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WTO를 대체할 새로운 다자주의 세게무역시스템이 만들어질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미국이 영국과 달리 상호주의(reciprocity)에 바탕을 둔 연유가 무엇인지,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를 대표하는 1974년 무역법 301조와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 301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vs 공격적 일방주의'의 대립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 무역자유화를 달성하는 4가지 방식


앞서 서문에서 '공격적 일방주의', '일방주의', '호혜주의(상호주의)'라는 개념어가 등장하면서 내용 이해에 혼란이 오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번글의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무역자유화를 달성하는 4가지 방식과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무역자유화(trade liberalization)란 말그대로 수입관세 인하, 무역장벽 철폐를 통하여 자유무역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무역자유화는 4가지 방식으로 실시할 수 있습니다.


▶ 첫째,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 

(unilateral liberalization of trade / going alone / unilateralism)


: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란 다른 나라의 무역정책에 상관없이 자국의 수입관세를 낮추거나 무역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나라가 여전히 보호무역 정책을 쓰고 있더라도 이에 개의치 않고 자유무역 정책을 실시한다면, 이는 말그대로 일방향적인 무역자유화의 형태를 띄게 됩니다. 1846년 곡물법 폐지를 통해 자유무역을 나홀로 실시한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 입니다.


▶ 둘째, GATT 등 다자주의 체제 속에서 호혜적 무역자유화

(reciprocal liberalization of trade-reciprocity-in a multilateral framework such as GATT)


다자주의 체제 속에서 호혜적 무역자유화란 GATT, WTO 등 다자주의 무역시스템 안에서 여러 국가들이 협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무역자유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초기 GATT 체제에서 각 국가들은 수입 공산품을 대상으로 관세율을 점점 인하하면서 무역장벽을 제거해나갔습니다. 이후 농업부문 개방과 보조금, 덤핑 등 비관세장벽 제거 여부도 협상의제로 삼았고, WTO 체제에 들어서는 서비스부문, 지적재산권 개방으로 범위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 셋째, 양자협상을 통한 호혜적 무역자유화

(reciprocal liberalization of trade under bilateral)


: 양자협상을 통한 호혜적 무역자유화란 두 국가가 협상을 통해 무역자유화를 실시함을 의미합니다. 무조건적 최혜국대우를 기본원리로 하는 GATT와 WTO 체제는 모든 무역상대방을 공평하게 대우해야함을 요구하지만, 특혜무역협정(PTAs) · 관세동맹(Custom Uniton) 등 일부 예외를 통해 특정 국가에만 더 낮은 관세율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들은 마음에 맞는 상대방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양자협상을 통해 한차원 높은 무역자유화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 넷째, 위협을 통해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기, 일명 공격적 일방주의

(unilateral reduction of others' trade barriers under the threat of sanction-aggressive unilateralism)


: 위협을 통해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기는 일명 공격적 일방주의 입니다. 앞서 언급한 일방주의가 자국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는 것을 의미했다면(unilateral concession by oneself), 공격적 일방주의란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인 위협을 통해 낮추는 것(unilateral concession by others)을 뜻합니다. 전자는 국제무역이론을 전공한 학자들이 선호하는 '순수한 자유무역'이며, 후자는 자유무역 시스템을 위협하는 '보호주의의 극단'이라는 점에서 극과 극을 이룹니다. 서문에서 언급한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과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이 공격적 일방주의의 대표 사례 입니다. 




※ 19세기 영국 - '일방적 무역자유화'를 통해 자유무역의 길로 나아가다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는 언뜻 생각하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가 무역장벽을 높이 세운 상황에서 왜 우리나라만 무역장벽을 낮춰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1846년 영국은 곡물법을 폐지하여 나홀로 자유무역의 길로 나아갔으며, 국제무역이론을 전공한 경제학자들 중 몇몇은 일방주의를 최선의 방식으로 여깁니다. 이번 파트를 통해 이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일방적 무역자유화를 통해 실제로 이득을 보고 있는 우리 영국의 사례를 믿자. 곧 멀지 않은 시기에 우리의 사례가 다른 나라들도 자유무역을 채택하도록 만들 것이다."[각주:5] 


- 1846년 곡물법 폐지를 만들어낸 영국 수상 로버트 필(Robert Peel)

- 바그와티 & 어윈. 1987.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서 상호주의자들의 귀환'에서 재인용[각주:6]


19세기 초반 영국은 곡물법(the Corn Laws)을 통해 수입산 곡물에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여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818년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각주:7]"작지만 비옥한 나라는, 특히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논리를 제시하며 곡물법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곡물법은 곡물 가격을 상승시키고 근로자 임금을 높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본가의 이윤을 훼손시킨다는 것이 주요 논거였습니다.


결국 1846년 영국 수상 로버트 필(Robert Peel)은 곡물법 폐지를 단행하며 일방적 무역자유화를 실시합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나홀로 실시한 무역자유화를 통해 자본축적 이라는 이득을 보고 있으며, 이를 목격한 다른나라들이 보호무역에서 벗어나 수입장벽을 낮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영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관세 인하도 적극적으로 유도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反곡물법 연맹'을 창안하며 적극적으로 곡물법 폐지 운동을 펼친 리차드 콥든(Richard Cobden)은 "외국에게 호혜적 관세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외국의 자유무역론자들을 더 힘들게 만들 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구는 마치 자유무역이 영국의 이익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국이 자유무역 원리를 채택하도록 촉구를 덜 하는 것이 더 낫다."[각주:8]라고 설명합니다. 수입관세 인하를 제시받은 외국은 '영국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할테고 이로 인해 오히려 보호무역 조치를 더 강화할 수 가능성을 염려했습니다.


현대 경제학자가 보기에도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타당합니다. 자유무역이 이로움을 주는 이유는 '외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을 값싸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각주:9]입니다. 외국의 보호무역에 대응하여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수입을 하는 미련한 행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즉, 다른 나라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서 우리도 관세를 높이는 행위는 "다른 나라가 암석 해안(rocky coasts)을 가졌으니 우리의 항구에 돌을 가져다 놓자(drop rocks into our harbors)"[각주:10]는 말과 같습니다. 


이처럼 19세기 영국은 '양국이 협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무역장벽을 낮추는 호혜주의 혹은 상호주의(reciprocity)'가 아니라 '일방적 무역자유화 혹은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채택하였고, 데이비드 리카도의 예측대로 제조업 발전과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게 됩니다.




※ 20세기 초반 미국 - '호혜통상법'을 통해 유치산업보호론에서 벗어나다


반면 20세기 초반 미국이 놓여있던 역사적 · 경제적 상황은 19세기 영국과는 달랐습니다. 


앞서 살펴본 리차드 콥든의 걱정과 유사하게, 영국인 데이비드 리카도가 내놓은 곡물법 폐지론과 비교우위론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의문 때문에 외국에서 한동안 배척받았습니다. 1920-30년대 호주[각주:11] · 1950~70년대 중남미[각주:12]는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던 19세기 영국과 달리, 우리는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보호무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18~19세기 미국 또한 제조업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미리 발전한 외국 특히 영국과의 자유경쟁이 벌어지는 상황 하에서는 제조업을 키우는 게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8세기 미국 초대 재무부장관 알렉산더 해밀턴과 19세기 초중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며 '제조업 육성을 위한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각주:13]했습니다. 


미국의 보호주의적 무역정책은 계속 되었고, 1929년 대공황 직후인 1930년에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그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미국 정치인들은 외국산 상품 가격을 높게 설정하여 미국산 상품 판매량을 늘리면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따라 미국은 2만여 수입품에 대해 평균 50%가 넘는 관세율을 부과하였습니다.


하지만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대공황의 여파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1932년 대선 이후 집권한 루즈벨트행정부는 무역정책 방향을 정반대로 돌리기로 합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국무부장관 코델 헐(Cordell Hull) 입니다. 


  • 코델 헐 (Cordell Hull)

  • 1931년 3월~1933년 3월, 테네시스 주 상원의원

  • 1933년 3월~1944년 11월, 루즈벨트행정부 국무부장관


본래 코델 헐은 테네시스 주 상원이었으며, 테네시스 주는 농산물 생산을 주로 하는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조업 중심인 북부는 보호주의를 농업 중심인 남부는 낮은 관세율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코델 헐은 남부 민주당의 전형적인 저관세 정책을 대표했습니다. 


그리고 코델 헐은 과도한 수입관세가 수출을 억제시키고, 생계비를 상승시켜 소비자와 근로자에 해를 끼치고, 독점을 촉진하고, 남부의 가난한 농부로부터 북부의 부유한 산업가로 부를 재분배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코델 헐은 그의 정치적 힘을 무역장벽 철폐에 집중하였고, 1934년 제정된 호혜통상법(RTAA, 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은 미국 무역정책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1934 호혜통상법의 주요 내용은 '무역협상의 권한을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이전하고, 대통령은 외국과의 양자 호혜협정을 통해 기존 관세율을 최대 50%까지 인하할 수 있다. 이때 새롭게 설정된 관세율은 무조건적 최혜국대우를 통해 다른 나라의 수입품에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지역구에 기반을 둔 의원들은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북부 의원은 보호무역을 남부 의원은 자유무역을 선호하는 게 당연했으며, 수입확대로 경쟁이 심화되면 피해를 입는 기업인 및 근로자들은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려 로비를 일삼았습니다. 


반면, 미국 전역에 기반을 둔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보호주의 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무역자유화로 특정 주 시민들의 피해가 늘어나더라도 다른 주 시민들의 이익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더하여,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출확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양자 협상을 통해 외국의 관세율을 인하시켜 미국 수출을 확대하려 했고, 미국의 관세율 인하를 외국의 수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협상의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루즈벨트 대통령은 호혜통상법안을 제안하면서 "이것은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긴급 프로그램의 일부이다. 국내 경제의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회복은 국제교역의 부활과 강화에 달려있다. 미국 수출업자들의 수출은 이에 상응하는 수입의 확대 없이는 증가할 수 없다."[각주:14]고 발언했습니다. 또한, 무역협상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전례없는 경제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미국 의원들은 호혜통상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우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외국과 무역협상을 개시하는 이유를 고지 / 협상 과정에서 미국 이해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할 것 / 대통령의 무역협상 권한은 3년 후 만료되며 이후 의회 승인 하에 갱신을 받아야 함'의 조건을 추가하여 1934년 6월에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이렇게 미국은 수입장벽을 낮추는 자유무역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34년 호혜통상법(RTAA) 제정 이후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드라마틱하게 하락했습니다. 윗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여파로 50%가 넘었던 평균 관세율은 1934년 이후 크게 하락해나갔고, 2차대전 이후 GATT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시스템이 건설되면서 오늘날까지 한 자릿수의 관세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1930년대 미국이 처한 상황은 19세기 영국이 선택한 일방적 무역자유화가 아닌 호혜주의에 입각한 무역자유화를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1934 호혜통상법(1934 RTAA)는 법안 제목처럼 '호혜주의'(reciprocity)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은 외국의 관세율을 인하시키기 위하여 자국의 관세율 인하를 협상의 대가로 제시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아직 보호주의자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대공황 이후 다른 나라들의 수입장벽이 높은 현실에서 나홀로 관세율을 인하한다면 수출은 증대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관료들 사이에서 존재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 상황상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정치적으로 불가능 했으며, 자국이 아닌 외국의 무역장벽을 낮출 필요가 더 컸습니다.


미국이 선택한 호혜주의를 통한 무역자유화 방식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방적 무역자유화 보다 더 큰 이득을 안겨다줄 수 있었습니다.


경제학자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호혜주의를 통한 양보(mutual, reciprocity concession)가 일방주의 무역자유화 보다 4가지 측면에서 이점을 불러온다고 설명합니다.


▶ 내가 무역자유화를 할 때 상대방도 자유화를 한다면, 나는 두 배의 이익을 얻는다[각주:15]


: 나의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수입상품을 더 싸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을 줍니다. 이때 상대방도 무역자유화를 통해 비교우위 상품을 특화생산 한다면, 내가 수입하는 상품 가격이 더 싸지기 때문에 일방적 무역자유화 보다 두 배의 이익을 얻게 됩니다.


▶ 너와 내가 모두 자유화를 한다면, 단기 무역수지 불균형의 문제를 피할 수 있다[각주:16]


: 나의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수입상품 가격을 낮춰서 이익을 줄 수 있으나, 만약 수출 증대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국제수지 불균형 문제가 단기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때 상대방이 수입장벽을 낮춘다면 나의 수출도 증가하여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 너와 나의 동시 양보는 국내정치적으로 무역자유화를 받아들이기 쉽게 만든다[각주:17]


: 나의 일방적 무역자유화는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다른 나라가 무역장벽을 높이 세운 상황에서 왜 우리나라만 무역장벽을 낮춰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방도 무역자유화를 실시한다면, 자국의 수입장벽을 낮추는 행위가 명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우리 수출업자를 위한 외국의 양보 덕분에, 무역자유화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만들어진다[각주:18]


: 무역자유화를 실시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보호주의 속에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완강히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상대방이 무역자유화를 실시하여 나의 수출이 증대된다면, 수출확대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 집단은 이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새로운 이해관계자가 됩니다.


이번 파트에서 보았듯이, 영국과는 다른 정치적 · 경제적 상황에 놓여있던 미국은 호혜주의에 입각한 무역자유화의 경로를 밟아나갔습니다. 호혜주의가 일방주의에 비해 열등한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호혜주의 방식의 이점을 말했던 자그디쉬 바그와티는 호혜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더 주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호혜주의가 언제든지 상호주의와 보호주의 그리고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 입니다. 




※ 호혜주의 → 상호주의 → 공격적 일방주의,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다


  •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 (Jagdish Bhagwati)

  •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하는 '일방주의'를 주장했다


국제무역이론의 대가인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호혜주의가 가져오는 이점 보다는 문제점에 더 주목했습니다. 그는 호혜주의가 언제든지 상호주의와 보호주의 그리고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할 수 있으며, 80년대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훼손하는 현실을 걱정했습니다.


바그와티는 1987년 논문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서 상호주의자들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U.S.Trade Policy Today>), 1988년 단행본 <보호주의>(<Protectionism>), 1989년 논문 <교차로에 놓여있는 미국 무역정책>(<United States Trade Policy at the Crossroads>), 1990년 단행본 <공격적 일방주의 - 미국의 301조 무역정책과 세계무역시스템>(<Aggressive Unilateralism - America's 301 Trade Policy and the World Trading System>)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했습니다. 


▶ 일방적 무역자유화가 아닌 상호주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둔 미국


Reciprocity는 '다른나라와의 협상을 통해 서로서로 무역장벽을 낮춰가면서 이익을 증대시킨다'(mutual, reciprocal concession)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호혜주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무역장벽을 낮추지 않을 경우 나의 무역장벽을 낮출 이유가 없어지며, '시장개방을 통한 상호 동등한 접근을 요구'(reciprocity of access / level playing field)한다는 의미에서 '상호주의'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각주:19] 


상호주의 하에서 상대방이 형평에 어긋난 이익을 취하려 할 경우 나는 상대방에 이익이 되는 조치를 철회하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더 나아가 받은대로 돌려주겠다(tit-for-tat)고 위협하면서 시장개방을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호주의에 기반한 무역자유화는 언제든지 보호주의와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그와티가 보기엔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는 "영국과는 달리 후발산업국가로서 미국은 한번도 일방적 무역자유화의 이데올로기를 품은 적이 없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 이래로 보호주의는 미국 무역정책의 핵심 이었다."[각주:20]는 점 입니다. 미국은 상호주의(reciprocity)를 무역자유화의 유일한 수단으로 간주했으며, 미국 내 지식인들은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 정치 ·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등장


1970-80년대 미국의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서유럽 · 일본의 재건을 도울 필요가 적어지자, 호혜주의는 상호주의로 그리고 공격적 일방주의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번글의 서문과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에서 살펴보았듯이, 70-80년대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의 하락'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심화' · '강달러' · '실업률 증가' 등 대내외적 경제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그와티는 당시 미국 경제상황을 '왜소해지는 거인'(Diminished Giant)으로 묘사했고, "왜소해지는 거인 신드롬과 강달러 현상이 상호주의 사상과 결합하게 되었고, 그 결과 '무역의 공정성'(fairness in trade)에 대한 요구가 미국 정치에서 강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각주:21]고 말합니다.


1981년에 집권한 레이건행정부는 처음에는 자유무역을 강조하다가, 1985년 2기 집권 이후부터는 점점 '상호 동등한 시장접근'과 '공정무역'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공화당 의원들 또한 외국의 시장을 개방시키는 상호주의의 공격적 측면(aggressive stance of reciprocity)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 1974년 무역법 301조와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 301조 및 스페셜 301조


1970-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법안이 1974년 무역법 301조 1988년 종합무역법의 슈퍼 301조 및 스폐셜 301조 입니다. 


◆ 1974년 무역법 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


1974년 무역법 301조는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의 원조 입니다. 


이 법안 조항에 따르면, 외국의 상거래가 GATT 및 양자협정의 권리에 반한다고 판단되면 미국 대통령은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GATT가 명시한 권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GATT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GATT가 특정 국가에게 보복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GATT에 위배되는 법안 입니다.


특히 1974년 무역법 301조의 '공격적 일방주의' 특징은 외국의 무역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GATT 가 규정한 범위 밖이라는 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법안은 미 무역대표부(USTR)의 조사에 의해, 외국의 무역 법률 · 정책 · 관행 등이 무역협정을 위반(violate) · 정당화할 수 없음(unjustifiable) · 비합리적(unreasonable) · 차별적(discriminatory) 이라는 점이 드러난다면, 대통령은 의무적 혹은 재량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외국이 무역협정을 '위반' 한다면 당연히 잘못 입니다. '정당화 할 수 없음'은 협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당연히 잘못 입니다. '차별적'은 GATT의 기본원리인 최혜국대우(MFN)를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잘못 입니다. 


그런데 '비합리적'(unreasonable)은 '협정에 명시된 사항을 위반하지 않았으나 불공정(unfair)하거나 불공평(inequitable)한 행위'를 의미하며, 이는 미국이 외국의 무역행위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국은 노동자 권리 보호 수준 혹은 반경쟁정책 등을 근거로 외국의 행위가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여 일방적인 보복을 가했습니다.


이처럼 1974년 무역법 301조는 (미국이 자의적으로 판단한)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제거하고 시장을 개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미국은 위협을 통해 외국의 일방적 양보(unrequited concession)를 이끌어 내었고, 이로써 301조를 제정한 목적을 이루어나갔습니다. 


 1988년 종합무역법(the Omnibus Foreign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

- 슈퍼 301조(Super 301) 및 스폐셜 301조(Special 301)


1988년 종합무역법은 기존의 301조를 더 강화시켰습니다. 


기존의 301조는 대통령에게 대폭적인 재량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보복조치가 반드시 실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80년대 일본과의 무역분쟁으로 한층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미국 의원들은 이를 고치고 싶어했습니다.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은 미 무역대표부(USTR)가 <무역장벽 연차보고서>를 매년 의회에 제출하며 '우선 협상국'(priority countries)과 '우선 협상항목'(priority practices)를 반드시 지정토록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미 무역대표부는 '우선 협상국'에 대해 반드시 301조 조사와 협상을 실시하도록 의무화 하였고, 제제 권한은 대통령에서 미 무역대표부로 이전 되었습니다. 


이렇게 강화된 301조 제제를 일명 '슈퍼 301조'(Super 301)로 부르며, 지적재산권에 관한 사항은 '스폐셜 301조'(Special 301)로 부릅니다.


▶ 공격적 일방주의는 '수출 보호주의'(export protectionism)


자그디쉬 바그와티가 보기엔 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은 자유무역의 적(enemy of free trade) 이었습니다. 공정무역 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에서 외국의 시장개방을 강요하고, GATT와 같은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 채 국내의 법률로 외국의 무역행위를 판단하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공격적 일방주의 정책은 '시장개방' · '공정무역'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외국의 무역장벽을 낮추는 자유무역 정책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미국의 수출을 확대하고 수출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수출 보호주의'(export protectionism)나 마찬가지라고 바그와티는 평가했습니다.




※ 미국을 제어하기 위하여 WTO가 만들어지다


  • 1995년 1월 1일부로 공식적으로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 1986년~1994년 GATT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설립이 확정되었다

  • 기존 1947 GATT를 수정한 1994 GATT + 서비스부문(GATS) + 지적재산권(TRIPS) + 분쟁해결기구(DSB)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의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은 EU, 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들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안에서 각국은 규칙(rules)에 따라 행동하면 되지만, 미국은 이를 무시한채 힘(powers)을 앞세워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켰기 때문이죠. 견디다 못한 EU와 일본 등 세계 각국은 새로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미국의 행보를 통제하고 싶어했습니다


미국 또한 GATT를 대체할 새로운 무역시스템이 만들어지기를 바라왔습니다. 기존 GATT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고, 시장개방 논의도 상품시장에만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분쟁해결기구(DSB)를 통해 공식적으로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제제하기를 원하였고, 미국이 강점을 가진 서비스(GATS) 부문의 시장개방과 지적재산권(TRIPS) 보호를 얻어내고 싶어했습니다.


1986년~1994년 동안 개최된 GATT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세계 각국은 의견을 개진하였고, 1995년 1월 1일부로 새로운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인 WTO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들면서 경제력을 회복한 미국은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사용을 자제하였고,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WTO를 통해 자유무역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다시 '자유무역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 트럼프행정부 무역정책에서 1980년대 미국의 모습이 보이다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돌아간 줄 알았던 미국은 오늘날 다시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꺼내들었습니다. 2017년에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면서, 기존에 맺었던 무역협정을 비판하고 재협상에 나섰습니다.


① 80년대 타겟은 일본, 10년대 타겟은 중국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8월 14일 아래와 같은 메모를 남기며 미중 무역전쟁을 개시합니다.


"미국은 수년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산업정책은 미국의 기술을 중국기업에게 이전하도록 계속해서 강요해왔다. 우리는 전면적인 조사를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미래 미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이다"


'USTR Robert Lighthizer Statement on the Presidential Memo on China'


이후 8월 18일, 미국은 1974년 무역법 301조와 302조에 근거하여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조사하였고, 다음해인 2018년 3월 22일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관세부과, WTO 제소 등의 대응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미국과 중국은 관세부과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② 트럼프행정부는 중국하고만 무역전쟁을 벌이나? →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 비판


그런데... 더 생각해봐야 할게 있습니다. "트럼프행정부가 중국하고만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나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내린 첫 결정 중 하나는 바로 'TPP 탈퇴' 였습니다.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은 말그대로 일본,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싱가포르 등 태평양 인근의 11개 국가가 참여한 대규모 지역 무역협정이며, 부시행정부-오바마행정부를 이어가며 체결되었습니다. 특히 오바마행정부는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라는 외교목표 아래 TPP를 추진해 나갔고, 중국을 봉쇄하는 경제지구를 만드는 것이 암묵적인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하고 무역전쟁을 벌이는 트럼프는 정작 TPP 폐기를 가장 먼저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EU, 일본과도 자동차, 철강 등을 두고 재협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트럼프행정부는 WTO와 같은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Multilateral Global Trade System)이나 TPP 등의 다자주의 협정을 비판하며, 개별 국가와 하나하나 무역협상을 하는 양자주의(Bilateralism), 개별 국가를 위협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즉,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미중 패권경쟁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 vs 공격적 일방주의'의 관점으로 현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③ 1970-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 미국의 일방주의를 억누르기 위해 만들어진 WTO,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전파의 중심이 되다


동시대 냉전 종식은 미국이 적극적으로 WTO를 활용하게끔 만들었습니다. 클린턴행정부는 '관여와 확장'(engagement and enlargement) 라는 외교정책 하에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고 싶어했고, 그 중심역할을 WTO가 맡았습니다.


▶ 미국 우선주의의 귀환 (America First)


개도국 등은 WTO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향유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WTO 가입 이후 글로벌 시장경제 시스템에 편입됨으로써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애초 미국은 WTO 가입한 중국이 시장경제 국가로 전환할 것을 바라왔기 때문에, 중국의 경제발전은 어찌보면 흐뭇한 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시장경제 국가로 전환하지 않았습니다. 개도국은 (미국이 보기엔)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의 이익만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0년대 중국의 WTO 가입과 동시기에 벌어진 IT 혁명은 전세계 무역패턴도 이전과 다르게 변모시켰습니다. 이제 선진국-선진국 간 교역보다는 선진국-개도국 간 교역이 활발해졌고(North-South), 개도국으로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및 세계 각국에 위치한 공장끼리 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글로벌 밸류체인 무역형태(Global Value Chain)이 확산되며,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소득층 소득은 감소해왔습니다.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위해 미국인들의 삶이 망가지는 걸 지켜본다? 트럼프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IT 혁명 등으로 세계화의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고 진단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중요할 뿐입니다.


트럼프행정부는 집권 후 내놓은 국가안보전략보고서(Natiaonal Security Strategy Report)를 통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주요 목표로 내세웠고,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의존하기 보다 양자무역협정(Bilateral Agreement)을 통해 미국에 유리하게끔 무역협정을 다시 체결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힙니다.


즉, 트럼프행정부의 무역전쟁은 단순히(?) '미중 패권경쟁'이 아니라 아래와 같은 대립구도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 전세계 무역체제의 방향 : '다자주의 vs 공격적 일방주의'


◆ 외교 · 무역 정책의 방향 : '민주주의 · 시장경제 전파 vs 미국 우선주의'


이제 다음부터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시리즈를 통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왜 전세계와 무역분쟁을 벌이는지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①] AMERICA FIRST !!! MAKE AMERICA GREAT AGAIN !!!




※ 참고자료


백창재. 2015. 미국 무역정책 연구


Bhagwati J. 1988. Protectionism


Bhagwati, J. 1989. United States Trade Policy at the Crossroads


Bhagwati, J. 1990. Aggressive Unilateralism


Bhagwati, J. 2002. Going Alone: The Case for Relaxed Reciprocity in Freeing Trade


Bhagwati, J and Irwin, D. 1987. 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U.S.Trade Policy Today


Irwin, D. 1989. Political Economy and Peel's Repeal of the Corn Laws


Irwin, D. 2017. Clashing over Commerce: A History of US Trade Policy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s://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s://joohyeon.com/277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https://joohyeon.com/278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5. Let us trust to the influence of public opinion in other countries - let us trust that our example, with the proof of practical benefits we derive from it, will at no remote period insure the adoption of the principles on which we have acted. [본문으로]
  6. Jagdish Bhagwati, Douglas Irwin. 1987. 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 US Trade Policy Today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s://joohyeon.com/265 [본문으로]
  8. insisting on reciprocal tariff reductions abroad would only serve to make the task of free trades abroad more difficult by implying that free trade was really in British interest rather than their own. .. the less we attempted to persuade foreigners to adopt our trade principles, the better. [본문으로]
  9.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s://joohyeon.com/216 [본문으로]
  10. Joan Robinson, 1947, Essays in the Theory of Employment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s://joohyeon.com/268 [본문으로]
  12.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s://joohyeon.com/271 [본문으로]
  14. it is part of an emergency program necessitated by the economic crisis through which we are passing. a full and permanent domestic recovery depends in part upon a revived and strengthened international trade, and ... American exports cannot be permanently increased without a corresponding increase in import. 더글라스 어윈. 2017. Clashing over Commerce 425쪽 재인용 [본문으로]
  15. (If I can get you to also liberalize while I liberalize myself, I gain twice over) [본문으로]
  16. (If there are second-best macroeconomic consideration such as short-run balance of payments difficulties from trade liberalization, the mutuality of liberalization should generally diminish them) [본문으로]
  17. (mutuality of concessions suggests fairness and makes adjustment to trade liberalization politically more acceptable by the domestic losers from the change) [본문으로]
  18. (foreign concessions to one's exporters creates new interests that can counterbalance the interests that oppose one's own trade liberalization) [본문으로]
  19. 이처럼 자그디쉬 바그와티는 Reciprocity의 종류를 first-difference reciprocity와 full reciprocity로 구분 지었습니다. 전자는 호혜주의를 의미하며, 후자는 상호주의 즉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를 뜻합니다. [본문으로]
  20. By contrast, the United States, a latecomer to industrialization, had never embraced the ideology of unilateral free trade. Protection had, without shame, long been part of American trade policy and commmanded intellectual respectability ever since Alexander Hamilton's Report on Manufactures of 1791.출처 : - 바그와티 & 어윈. 1987.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서 상호주의자들의 귀환' [본문으로]
  21. The 'diminished giant' syndrome and the 'over-valued' dollar, combined with the historical appeal of reciprocitarian ideas, have made fairness in trade a politically potent force on the American scene.출처 : - 바그와티 & 어윈. 1987.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서 상호주의자들의 귀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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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뵙는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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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반년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항상 좋은글 재밌게보고있습니다.
  3.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용어 정리도 영어랑 매칭해서 너무 잘 해주셔서, 그간 영어 기사 따로 한국어 기사 따로 머리에 맴돌던 상태였는데.. 드디어! 연결이 된 기분입니다!
    • 2019.07.14 09:25 신고 [Edit/Del]
      오 영어원문을 읽을때 함의를 포착하는걸 돕기 위해, 일부러 영어원문을 같이 기재하는건데.. ㅎㅎ 도움이 되어서 정말 좋네요
  4. ㅎㅎ
    안녕하세요, 조교님! 다른 사람한테 글 추천 받아서 들어와보니까 조교님 홈페이지네요 ㅋㅋㅋ 깜짝 놀랬어요 ㅋㅋㅋ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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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Posted at 2019. 1. 10. 00:0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문제는 일본시장의 폐쇄성(closed market)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심화 등 거시경제 환경 악화[각주:1] 미국민들에게 국가경쟁력 상실의 우려를 안겨주었습니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마틴 펠드스타인 등 경제학자들 "무역적자는 경쟁력 상실이 아닌 자본흐름 변화 때문이다.[각주:2] 또한 절대적 생산성이 둔화되더라도 여전히 비교우위에 의한 교역은 가능하다" 라고 말하였으나, 미국 기업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시장 속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기업들은 "외국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각주:3]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은 대규모 고정투자가 필요하며, 생산량이 많은 기업만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결국 개별 국가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 형태로 기업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소수의 기업만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과거와 달라진 시장구조는 "외국정부의 자국기업 보호지원 정책이 미국기업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안겨다 줄 수 있다"[각주:4] 라는 새로운 통찰을 탄생시켰고, "외국의 불공정무역 관행을 시정케하거나 미국정부도 자국기업을 돕는 산업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보호주의 무역정책 요구가 미국 내에서 커졌습니다 



미국기업이 문제 삼았던 외국은 바로 '일본'(Japan) 이었고, 이들의 '닫혀있는 시장'(Closed Market)이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198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0.7% 였으나,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하였는데, 이 중에서 대일본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가까이에 달했습니다.  


특히 대일본 무역적자의 상당수를 제조업 상품(Manufactured Goods) 교역이 초래하였고, 미국기업들은 일본의 공식적 · 비공식적 무역장벽들로 인해 일본시장에서 낮은 점유율을 기록할 수 밖에 없다고 인식했습니다. 실제로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은 1967-1990년동안 전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intangible barriers) 입니다. 


분명 일본은 일찍부터 GATT에 가입한 상태였고 관세도 차츰차츰 인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재무성(MOF) 및 통상산업성(MITI)의 지도 아래 시행되는 여러 차별적 규제들(administrative guidance) · 여러 기업이 뭉쳐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계열체제(Keiretsu) 등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은 외국상품 판매를 가로막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80년대 미국 내에서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킬 수 있는 무역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단순히 관세인하 등 무역 규칙(rules)을 변경하는 것으로는 비공식적 장벽을 허물 수 없기 때문에,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른바,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 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 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하는 학자들은 이런 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근본적으로 일본 시장은 닫혀있지 않다는 인식도 존재했습니다. 다른 한편, 일본시장 폐쇄성이 문제이긴 하지만 전체 무역수지 등 총집계지표(aggregate)를 대상으로 하는 건 부적절 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성과(outcome)를 내는 무역정책을 찬성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정말 일본시장이 폐쇄적인지 · 일본시장 개방을 위해 필요한 무역정책을 두고 어떠한 논쟁이 펼쳐졌는지를 알아봅시다.




※ 일본시장은 정말 폐쇄적인가? 


  • Robert Z. Lawrence, 1987, <일본 내 수입: 닫혀있는 시장 혹은 닫혀있는 마음?>(<Imports in Japan: Closed Markets or Minds?>) 
  • 비슷한 무역흑자국인 독일과 비교해봤을 때, 일본의 제조업 상품 수입은 현저히 적다


일본시장의 폐쇄성을 논할 때 주로 이용되는 근거는 '극도로 낮은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 입니다. 


1986년 기준, 일본과 독일 모두 제조업 상품 수출로 GDP 대비 10% 가량의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독일은 수입비중이 14%를 기록하며 비교적 수입 또한 많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수출비중(10.4%)에 비해 수입비중(2.2%)이 현저히 낮았고, 독일의 수입비중과 비교해보아도 극도로 낮은 값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선진산업국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의 지리적 위치상 수입이 적을 수 밖에 없다 라거나 일본의 부존자원 특징상 1차상품 교역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조업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일본시장이 폐쇄적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경제학자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며, 일본시장이 실제로 외국기업에 배타적임을 보였습니다. 바로, 로버트 Z. 로런스 입니다.


  •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

  • 1987년 연구보고서 <일본 내 수입: 닫혀있는 시장 혹은 닫혀있는 마음?>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여러 기업이 모여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케이레츠 (Keiretsu) · 일본기업간 오랜 기간에 걸친 협력과 거래 (long-term relationships) · 종합상사회사가 중심이 된 유통시스템 (general trading companies) 등의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외국산 상품 판매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로런스가 말하는 논리를 하나하나 따라가 봅시다.


▶ 일본의 기업내 무역 패턴 (Intra-Firm Trade Patterns)


로버트 Z. 로런스가 주목하는 것은 '기업내 무역 패턴'(Intra-Firm Trade Patterns) 입니다. 


기업이 상품을 수출(수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수출대상국에 위치한 외국기업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것(수입대상국에 위치한 외국기업으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는 것), 둘째는 자국에 위치한 모회사가 수출대상국에 설립된 자회사에 물건을 넘긴 이후 판매하는 것(수입대상국에 설립된 자회사가 물건을 구매하여 자국에 위치한 모회사에 넘기는 것) 입니다.


기업이 외국에 자회사를 설립하여 다국적기업 형태를 갖추는 주된 이유는 해외에 판매망을 직접 설치하여 상품 정보를 직접 전달하고 소비자로부터 피드백을 즉각 받기 위함 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외국 딜러에게 물건을 건넬 수도 있지만, 미국 및 유럽 등에 직접 판매점을 설치함으로써 소비자와 직접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 다국적기업은 자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해외에는 판매 전문 자회사를 설치하는 downstream 구조를 보입니다. 


이러한 다국적기업 형태가 많아질 경우 독특한 무역패턴이 나타납니다. 당연히 동일한 기업내 교역 비중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기업의 국적은 대부분 수출을 행하는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을 한다고 했을 때, 한국의 모회사로부터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로 물건을 수출하는 교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을테지, 미국기업이 한국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부터 미국 모회사로 물건을 옮기는 비중은 비교적 적을겁니다. 완성품 수출은 한국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국적기업이 upstream 형태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upstream이란 해외에서 원자재 등을 가져와 자국에서 생산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기업들은 중동에 설립한 자회사로부터 석유 등을 수입해온 뒤, 한국에서 이를 정제한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이 경우 앞서와는 다른 무역패턴이 나타납니다. 동일한 기업내 교역비중이 증가하는 건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이때 기업이 국적은 대부분 수출을 행하는 나라가 아닌 수입을 행하는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이 한국으로 석유를 수출하는 것이지만, 이는 다르게 보면 한국이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해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모회사가 중동에 설립한 자회사로부터 석유를 들여오는 비중이 높을테지, 중동 모회사가 한국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 석유를 건네는 비중은 적을 겁니다. 원자재 수입은 한국 기업들이 하는 것입니다. 



  • 1986년 기업내 교역 비중 (%)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로버트 Z. 로런스는 "미국의 교역을 살펴보면, 일본과의 거래에서 유독 기업내 거래 비중이 높으며, 미국이 수출을 할 때(=일본이 수입을 할 때) 일본기업 내 거래가 더 많다"고 말합니다. 


이는 위의 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유럽 수출(=유럽의 대미국 수입)에서 기업내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48%, 미국의 대유럽 수입(=유럽의 대미국 수출)은 42% 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일본 수출(=일본의 대미국 수입)은 72%, 미국의 대일본 수입(=일본의 대미국 수출)은 75%에 달합니다.


또한,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할 때 다르게 말해 일본이 미국으로 수출을 할 때, 일본 모회사가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로 물건을 건네는 비중이 전체 기업내 교역 중 66.1%에 달합니다. 미국기업이 일본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부터 본국에 위치한 모회사로 물건을 건네받는 비중은 8.9%에 불과합니다. 이는 일본기업이 자국에서 상품을 생산한 뒤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 판매망에 넘기는 downstream 형태임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을 할 때에 있습니다.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을 만드는 미국 제조업체가 일본으로 상품을 판매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기업 내 거래가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수치를 살펴보면, 미국기업 내 거래는 13.6%에 불과하고, 일본기업 내 거래가 58.4%에 달합니다


혹자는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을 한다는 건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해온다는 것이고, 일본 기업이 미국으로부터 원자재 등을 많이 수입해오기 때문에(=upstream) 일본 국적 기업의 거래가 많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버트 Z. 로런스는 제조업 상품만을 놓고 봤을 때도 일본 기업내 거래가 많고 말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일본 특유의 유통시스템' 입니다.


일본의 수입 상당수는 종합상사회사(General Trading Company)가 수행합니다. 이들은 해외에서 원자재 뿐 아니라 다양한 제조업 상품을 구매한 뒤 일본에 위치한 모회사 혹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long-term relationship)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단순한 중개회사 역할을 맡는 게 아니라 서비스 ·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 · 금융 · 유통 등 다양한 행위를 합니다.


게다가 일본 종합상사회사들은 일본 내 유통시스템에 깊숙히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내 유통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상품을 효율적으로 배분케 합니다. 또한, 동일한 집단에 속해있는 기업들 즉 케이레츠(Keiretsu)들과 밀접한 거래관계를 맺으면서 상품을 유통시킵니다.


이러한 종합상사 및 케이레츠들의 행동은 일본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키웠습니다. 종합상사와 거래관계가 없거나 케이레츠에 끼어들지 못한 외국기업들은 일본에 물건을 판매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분명 일본은 관세를 점차 인하하여 눈에 보이는 무역장벽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미국 기업의 일본시장 진출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일본 수출에서 미국기업내 거래가 아닌 일본기업내 거래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 일본내 높은 수입 제조상품 가격


일본시장 폐쇄성은 '가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본시장이 미국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열려있다면, 일본 내 상품 가격과 미국 내 상품 가격은 거래비용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 할겁니다. 반대로 일본시장이 닫혀있다면, 일본 기업들은 보호 속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겁니다.


로버트 Z. 로런스는 "일본 내 상품가격이 다른 국가보다 매우 높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PPP를 이용한 상품가격 비교시, 일본의 소비재 · 생산재 가격은 미국보다 25% 유럽보다 42% 비싸다고 지적합니다. 


  • 일본과 다른 국가들의 제조업 이익률 및 자기자본이익률 비교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또한, 일본 제조업자들은 상당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익률은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더군다나 일본으로 수입된 상품에 대해서는 일본기업 상품보다 높은 가격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로런스는 "만약 일본 수입업자들이 시장지배력을 통해 초과이윤을 누리고 있다면, 일본의 유통시스템은 마치 '사적으로 설정된 관세'(privately administered set of tariff)처럼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라고 지적합니다.


    ▶ 관세 인하 요구로 일본시장을 개방할 수 없다


    이 시기 자유무역은 '관세장벽 철폐'(removing tariff barriers)를 의미했습니다. 당시 세계무역시스템 이었던 GATT는 말그대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펴본 일본의 무역장벽은 관세인하 요구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관세율은 매우 낮더라도,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사실상 수입상품 가격을 높이거나 아예 시장진입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단순히 "자유무역 규칙(rules)을 준수하라"는 식의 요구를 하기보다,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른바,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 입니다. 




    ※ 결과지향적 관리무역의 필요성


    • MIT 대학 경제학자 Rudiger Dornbusch (1942-2002)


    경제학자 루디 돈부쉬(Rudiger Dornbusch)는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 입니다. 그의 주장은 1990년 출판된 『미국의 무역 전략: 1990년대를 위한 옵션』(『An American Trade Strategy: Options for 1990s』) 중 한 챕터로 실렸습니다.


    돈부쉬는 "GATT 체제는 상당한 보호를 받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문을 여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각주:5] 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GATT 체제의 대표적인 실패는 여전한 일본시장의 페쇄성이다"[각주:6]라고 말합니다. 앞서 소개한 로런스의 주장처럼, "(관세를 줄여나갔음에도) 일본은 서로 다른 종류의 여러막의 보호막이 감싸고 있는 양파와 같다"[각주:7]는 것이었죠.


    그렇다면 돈부쉬는 일본시장의 개방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한다고 주장했을까요?


    돈부쉬는 미국정부가 일본을 향해 공세적인 요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을 타겟으로 맞춰야 한다"[각주:8]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증가율 수치를 제시하는데,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은 다음 10년간 연간 15%씩 증가해야 한다"[각주:9]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일본정부에게 이를 강제할 수단도 제시합니다. 만약 일본이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일본의 미국시장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돈부쉬의 주장은 '결과지향적 조치(results-oriented)를 추구하는 관리무역'(managed trade)'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관리무역이란 정부가 교역에 직·간접적으로 간섭하고 관리하는 무역체제를 의미하는데, 특히나 그의 주장은 단순한 규칙(rules) 준수를 일본에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확한 결과(results)를 내놓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었습니다.




    ※ 일본에게 구체적인 결과를 강제하는 무역정책이 타당한가


    일본에게 구체적인 성과를 강제하자는 주장에 대해 경제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기본적인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하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현재 일본과의 무역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 일본의 무역개방도를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일종의 수출보호주의 (export protectionism)


    •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 (Jagdish Bhagwati)

    •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하는 '일방주의'를 주장했다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더글라스 어윈과 공저한 1987년 논문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 상호주의자들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U.S Trade Policy Today>)를 통해, "일본의 무역개방도를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일종의 수출보호주의(export protectionism)이다" 라고 비판합니다. 


    바그와티가 보기엔 돈부쉬의 요구는 일본에게 '자발적 수입팽창'(VIE, Voluntary Import Expansion)을 요구하는 꼴이었으며, 진정 일본의 무역체제를 자유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제3국을 배제시켜 미국의 수출을 촉진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 바그와티는 '무역상대국이 장벽을 낮춰야만 우리도 자유무역을 하겠다는 상호주의적 발상(reciprocity)'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을 실시하는 게 옳다는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믿었으며, 상호주의가 언제든지 보호무역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바그와티의 믿음과 바람과는 달리,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은 다른 형태의 일방주의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제재 위협을 통해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 이었고,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301조가 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마지막 글을 통해, 일방주의 · 상호주의 · 공격적 일방주의를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 양자적 혹은 일방적 해결방식이 타당한가 → 다자주의 틀 안에서 해결해야


    로버트 Z. 로런스는 현재 GATT체제에 문제가 있으며, 일본시장이 닫혀있다는 문제인식은 돈부쉬와 공유하였으나, 구체적인 해결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로런스는, 일본이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증가율 20% 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상산업성(MITI)과 같은 일본 관료체계가 일본기업들에게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을 강제해야 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시장개방이 아니라 일본 관료가 이끄는 '일본 주식회사'(Japan, Inc)를 더 확대하는 꼴이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경우, 수입물량은 증가하겠지만, 일본경제의 폐쇄적인 시스템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미국이 일본에 강제하는 형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원치 않았습니다. 로런스는 GATT 체제가 문제점은 있으나, 미국-일본 쌍방 간이 아닌 다자주의 무역시스템(multilateral trade system) 틀 안에서 무역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GATT의 문제점을 인지하면서 여전히 다자주의 무역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여긴 사람들의 힘으로 GATT는 1995년 WTO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WTO는 GATT가 다루지 못한 비관세장벽 · 서비스부문 · 지적재산권 등도 포괄적으로 다루었고, 무역분쟁해결절차를 마련하여 공격적 일방주의가 발생하지 않게끔 주의를 했습니다. 


    이것 또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마지막 글을 통해 살펴볼 겁니다.


    ▶ 전반적인 제조업 상품을 타겟으로 삼는 게 타당한가 → 부문별 세심한 접근 필요


    • 1980년대,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로라 D. 타이슨 (Laura D. Tyson)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은 자유무역 체제의 한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1980년대 미국 내 무역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녀는 일본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e practices)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믿은 면에서 돈부쉬와 닮았으나, 전반적인 제조업 상품을 타겟으로 삼는 해결책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타이슨은 최첨단산업(High-Tech) 내 일본의 무역행태를 문제 삼았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 전자 · 의약품 등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산업별 접근(sectoral approach)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정부에 의한 개입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rules)을 수립하는 게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부쉬가 요구한 수량적 타겟은 지양해야 하며, 필요하더라도 후순위로 밀려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 단순한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논쟁이 아니다


    이처럼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순수한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했던 학자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들은 100% 자유무역을 믿은 게 아니라 자칫 시대 분위기에 휩쓸려 미국이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채택할 것을 염려한 노파심이 더 컸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이 처한 무역환경에 대해 문제로 인식하는 정도도 학자들마다 달랐으며, 동일한 문제인식을 공유했더라도 해결방법에 있어서는 또 서로 다른 의견을 보였습니다. 이번글에 나온 로런스와 돈부쉬가 이를 보여주며, 또 돈부쉬와 타이슨 간 서로 다른 해결책도 이를 보여줍니다. 


    1980년대 국제무역논쟁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사례는, 로라 D. 타이슨의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 주장에 대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각주:10]을 이론으로 창안해 낸 경제학자들이 극렬하게 반대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5. The GATT also does little to open up heavily protected developing countries. ... The liberal system has not only failed to check marginal protectionismand to open up LDCs, it has also failed in one of its chief assignments: avoidance of discrimination in international trade [본문으로]
    6. Perhaps the most striking failure of the GATT system is the continuing closedness of the Japanese market [본문으로]
    7. Japan seems to be somewhat of an onion with multiple layers of protection of one kind or another. [본문으로]
    8. A target should be set for growth rates of Japanese imports of U.S. manufactures [본문으로]
    9. Japanese manufactures imports from the United States should grow at an average (inflation-adjusted) rate of 15 percent a year during the next decade.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1. 신공공관리론
      자유 시장, 자율 경쟁을 택하는 나라는 번영한다는거 거의 예외가 없죠
      일본이 80년대까지 그렇게 잘나가다 고꾸라진 대표적인 원인을
      많은 이들이 세계화 속에서 그 독특한 관료적 규제문화, 폐쇄성을 꼽죠
      아놀드 하버거 교수는 월마트와 같은 '창조적 파괴'가 내수시장에서 안 일어났다는군요
      일본이 90년대 개방이 아닌 폐쇄의 길을 택한게 뼈 아팠다고 봅니다 (다큐 커맨딩 하이츠 참조)
    2. 좋은 내용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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