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Posted at 2019. 1. 10. 00:0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문제는 일본시장의 폐쇄성(closed market)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심화 등 거시경제 환경 악화[각주:1] 미국민들에게 국가경쟁력 상실의 우려를 안겨주었습니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마틴 펠드스타인 등 경제학자들 "무역적자는 경쟁력 상실이 아닌 자본흐름 변화 때문이다.[각주:2] 또한 절대적 생산성이 둔화되더라도 여전히 비교우위에 의한 교역은 가능하다" 라고 말하였으나, 미국 기업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시장 속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기업들은 "외국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각주:3]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은 대규모 고정투자가 필요하며, 생산량이 많은 기업만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결국 개별 국가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 형태로 기업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소수의 기업만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과거와 달라진 시장구조는 "외국정부의 자국기업 보호지원 정책이 미국기업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안겨다 줄 수 있다"[각주:4] 라는 새로운 통찰을 탄생시켰고, "외국의 불공정무역 관행을 시정케하거나 미국정부도 자국기업을 돕는 산업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보호주의 무역정책 요구가 미국 내에서 커졌습니다 



미국기업이 문제 삼았던 외국은 바로 '일본'(Japan) 이었고, 이들의 '닫혀있는 시장'(Closed Market)이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198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0.7% 였으나,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하였는데, 이 중에서 대일본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가까이에 달했습니다.  


특히 대일본 무역적자의 상당수를 제조업 상품(Manufactured Goods) 교역이 초래하였고, 미국기업들은 일본의 공식적 · 비공식적 무역장벽들로 인해 일본시장에서 낮은 점유율을 기록할 수 밖에 없다고 인식했습니다. 실제로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은 1967-1990년동안 전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intangible barriers) 입니다. 


분명 일본은 일찍부터 GATT에 가입한 상태였고 관세도 차츰차츰 인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재무성(MOF) 및 통상산업성(MITI)의 지도 아래 시행되는 여러 차별적 규제들(administrative guidance) · 여러 기업이 뭉쳐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계열체제(Keiretsu) 등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은 외국상품 판매를 가로막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80년대 미국 내에서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킬 수 있는 무역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단순히 관세인하 등 무역 규칙(rules)을 변경하는 것으로는 비공식적 장벽을 허물 수 없기 때문에,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른바,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 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 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하는 학자들은 이런 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근본적으로 일본 시장은 닫혀있지 않다는 인식도 존재했습니다. 다른 한편, 일본시장 폐쇄성이 문제이긴 하지만 전체 무역수지 등 총집계지표(aggregate)를 대상으로 하는 건 부적절 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성과(outcome)를 내는 무역정책을 찬성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정말 일본시장이 폐쇄적인지 · 일본시장 개방을 위해 필요한 무역정책을 두고 어떠한 논쟁이 펼쳐졌는지를 알아봅시다.




※ 일본시장은 정말 폐쇄적인가? 


  • Robert Z. Lawrence, 1987, <일본 내 수입: 닫혀있는 시장 혹은 닫혀있는 마음?>(<Imports in Japan: Closed Markets or Minds?>) 
  • 비슷한 무역흑자국인 독일과 비교해봤을 때, 일본의 제조업 상품 수입은 현저히 적다


일본시장의 폐쇄성을 논할 때 주로 이용되는 근거는 '극도로 낮은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 입니다. 


1986년 기준, 일본과 독일 모두 제조업 상품 수출로 GDP 대비 10% 가량의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독일은 수입비중이 14%를 기록하며 비교적 수입 또한 많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수출비중(10.4%)에 비해 수입비중(2.2%)이 현저히 낮았고, 독일의 수입비중과 비교해보아도 극도로 낮은 값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선진산업국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의 지리적 위치상 수입이 적을 수 밖에 없다 라거나 일본의 부존자원 특징상 1차상품 교역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조업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일본시장이 폐쇄적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경제학자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며, 일본시장이 실제로 외국기업에 배타적임을 보였습니다. 바로, 로버트 Z. 로런스 입니다.


  •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

  • 1987년 연구보고서 <일본 내 수입: 닫혀있는 시장 혹은 닫혀있는 마음?>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여러 기업이 모여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케이레츠 (Keiretsu) · 일본기업간 오랜 기간에 걸친 협력과 거래 (long-term relationships) · 종합상사회사가 중심이 된 유통시스템 (general trading companies) 등의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외국산 상품 판매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로런스가 말하는 논리를 하나하나 따라가 봅시다.


▶ 일본의 기업내 무역 패턴 (Intra-Firm Trade Patterns)


로버트 Z. 로런스가 주목하는 것은 '기업내 무역 패턴'(Intra-Firm Trade Patterns) 입니다. 


기업이 상품을 수출(수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수출대상국에 위치한 외국기업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것(수입대상국에 위치한 외국기업으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는 것), 둘째는 자국에 위치한 모회사가 수출대상국에 설립된 자회사에 물건을 넘긴 이후 판매하는 것(수입대상국에 설립된 자회사가 물건을 구매하여 자국에 위치한 모회사에 넘기는 것) 입니다.


기업이 외국에 자회사를 설립하여 다국적기업 형태를 갖추는 주된 이유는 해외에 판매망을 직접 설치하여 상품 정보를 직접 전달하고 소비자로부터 피드백을 즉각 받기 위함 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외국 딜러에게 물건을 건넬 수도 있지만, 미국 및 유럽 등에 직접 판매점을 설치함으로써 소비자와 직접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 다국적기업은 자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해외에는 판매 전문 자회사를 설치하는 downstream 구조를 보입니다. 


이러한 다국적기업 형태가 많아질 경우 독특한 무역패턴이 나타납니다. 당연히 동일한 기업내 교역 비중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기업의 국적은 대부분 수출을 행하는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을 한다고 했을 때, 한국의 모회사로부터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로 물건을 수출하는 교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을테지, 미국기업이 한국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부터 미국 모회사로 물건을 옮기는 비중은 비교적 적을겁니다. 완성품 수출은 한국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국적기업이 upstream 형태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upstream이란 해외에서 원자재 등을 가져와 자국에서 생산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기업들은 중동에 설립한 자회사로부터 석유 등을 수입해온 뒤, 한국에서 이를 정제한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이 경우 앞서와는 다른 무역패턴이 나타납니다. 동일한 기업내 교역비중이 증가하는 건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이때 기업이 국적은 대부분 수출을 행하는 나라가 아닌 수입을 행하는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이 한국으로 석유를 수출하는 것이지만, 이는 다르게 보면 한국이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해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모회사가 중동에 설립한 자회사로부터 석유를 들여오는 비중이 높을테지, 중동 모회사가 한국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 석유를 건네는 비중은 적을 겁니다. 원자재 수입은 한국 기업들이 하는 것입니다. 



  • 1986년 기업내 교역 비중 (%)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로버트 Z. 로런스는 "미국의 교역을 살펴보면, 일본과의 거래에서 유독 기업내 거래 비중이 높으며, 미국이 수출을 할 때(=일본이 수입을 할 때) 일본기업 내 거래가 더 많다"고 말합니다. 


이는 위의 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유럽 수출(=유럽의 대미국 수입)에서 기업내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48%, 미국의 대유럽 수입(=유럽의 대미국 수출)은 42% 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일본 수출(=일본의 대미국 수입)은 72%, 미국의 대일본 수입(=일본의 대미국 수출)은 75%에 달합니다.


또한,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할 때 다르게 말해 일본이 미국으로 수출을 할 때, 일본 모회사가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로 물건을 건네는 비중이 전체 기업내 교역 중 66.1%에 달합니다. 미국기업이 일본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부터 본국에 위치한 모회사로 물건을 건네받는 비중은 8.9%에 불과합니다. 이는 일본기업이 자국에서 상품을 생산한 뒤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 판매망에 넘기는 downstream 형태임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을 할 때에 있습니다.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을 만드는 미국 제조업체가 일본으로 상품을 판매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기업 내 거래가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수치를 살펴보면, 미국기업 내 거래는 13.6%에 불과하고, 일본기업 내 거래가 58.4%에 달합니다


혹자는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을 한다는 건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해온다는 것이고, 일본 기업이 미국으로부터 원자재 등을 많이 수입해오기 때문에(=upstream) 일본 국적 기업의 거래가 많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버트 Z. 로런스는 제조업 상품만을 놓고 봤을 때도 일본 기업내 거래가 많고 말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일본 특유의 유통시스템' 입니다.


일본의 수입 상당수는 종합상사회사(General Trading Company)가 수행합니다. 이들은 해외에서 원자재 뿐 아니라 다양한 제조업 상품을 구매한 뒤 일본에 위치한 모회사 혹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long-term relationship)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단순한 중개회사 역할을 맡는 게 아니라 서비스 ·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 · 금융 · 유통 등 다양한 행위를 합니다.


게다가 일본 종합상사회사들은 일본 내 유통시스템에 깊숙히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내 유통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상품을 효율적으로 배분케 합니다. 또한, 동일한 집단에 속해있는 기업들 즉 케이레츠(Keiretsu)들과 밀접한 거래관계를 맺으면서 상품을 유통시킵니다.


이러한 종합상사 및 케이레츠들의 행동은 일본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키웠습니다. 종합상사와 거래관계가 없거나 케이레츠에 끼어들지 못한 외국기업들은 일본에 물건을 판매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분명 일본은 관세를 점차 인하하여 눈에 보이는 무역장벽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미국 기업의 일본시장 진출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일본 수출에서 미국기업내 거래가 아닌 일본기업내 거래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 일본내 높은 수입 제조상품 가격


일본시장 폐쇄성은 '가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본시장이 미국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열려있다면, 일본 내 상품 가격과 미국 내 상품 가격은 거래비용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 할겁니다. 반대로 일본시장이 닫혀있다면, 일본 기업들은 보호 속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겁니다.


로버트 Z. 로런스는 "일본 내 상품가격이 다른 국가보다 매우 높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PPP를 이용한 상품가격 비교시, 일본의 소비재 · 생산재 가격은 미국보다 25% 유럽보다 42% 비싸다고 지적합니다. 


  • 일본과 다른 국가들의 제조업 이익률 및 자기자본이익률 비교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또한, 일본 제조업자들은 상당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익률은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더군다나 일본으로 수입된 상품에 대해서는 일본기업 상품보다 높은 가격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로런스는 "만약 일본 수입업자들이 시장지배력을 통해 초과이윤을 누리고 있다면, 일본의 유통시스템은 마치 '사적으로 설정된 관세'(privately administered set of tariff)처럼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라고 지적합니다.


    ▶ 관세 인하 요구로 일본시장을 개방할 수 없다


    이 시기 자유무역은 '관세장벽 철폐'(removing tariff barriers)를 의미했습니다. 당시 세계무역시스템 이었던 GATT는 말그대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펴본 일본의 무역장벽은 관세인하 요구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관세율은 매우 낮더라도,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사실상 수입상품 가격을 높이거나 아예 시장진입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단순히 "자유무역 규칙(rules)을 준수하라"는 식의 요구를 하기보다,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른바,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 입니다. 




    ※ 결과지향적 관리무역의 필요성


    • MIT 대학 경제학자 Rudiger Dornbusch (1942-2002)


    경제학자 루디 돈부쉬(Rudiger Dornbusch)는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 입니다. 그의 주장은 1990년 출판된 『미국의 무역 전략: 1990년대를 위한 옵션』(『An American Trade Strategy: Options for 1990s』) 중 한 챕터로 실렸습니다.


    돈부쉬는 "GATT 체제는 상당한 보호를 받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문을 여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각주:5] 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GATT 체제의 대표적인 실패는 여전한 일본시장의 페쇄성이다"[각주:6]라고 말합니다. 앞서 소개한 로런스의 주장처럼, "(관세를 줄여나갔음에도) 일본은 서로 다른 종류의 여러막의 보호막이 감싸고 있는 양파와 같다"[각주:7]는 것이었죠.


    그렇다면 돈부쉬는 일본시장의 개방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한다고 주장했을까요?


    돈부쉬는 미국정부가 일본을 향해 공세적인 요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을 타겟으로 맞춰야 한다"[각주:8]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증가율 수치를 제시하는데,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은 다음 10년간 연간 15%씩 증가해야 한다"[각주:9]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일본정부에게 이를 강제할 수단도 제시합니다. 만약 일본이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일본의 미국시장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돈부쉬의 주장은 '결과지향적 조치(results-oriented)를 추구하는 관리무역'(managed trade)'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관리무역이란 정부가 교역에 직·간접적으로 간섭하고 관리하는 무역체제를 의미하는데, 특히나 그의 주장은 단순한 규칙(rules) 준수를 일본에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확한 결과(results)를 내놓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었습니다.




    ※ 일본에게 구체적인 결과를 강제하는 무역정책이 타당한가


    일본에게 구체적인 성과를 강제하자는 주장에 대해 경제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기본적인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하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현재 일본과의 무역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 일본의 무역개방도를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일종의 수출보호주의 (export protectionism)


    •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 (Jagdish Bhagwati)

    •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하는 '일방주의'를 주장했다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더글라스 어윈과 공저한 1987년 논문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 상호주의자들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U.S Trade Policy Today>)를 통해, "일본의 무역개방도를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일종의 수출보호주의(export protectionism)이다" 라고 비판합니다. 


    바그와티가 보기엔 돈부쉬의 요구는 일본에게 '자발적 수입팽창'(VIE, Voluntary Import Expansion)을 요구하는 꼴이었으며, 진정 일본의 무역체제를 자유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제3국을 배제시켜 미국의 수출을 촉진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 바그와티는 '무역상대국이 장벽을 낮춰야만 우리도 자유무역을 하겠다는 상호주의적 발상(reciprocity)'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을 실시하는 게 옳다는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믿었으며, 상호주의가 언제든지 보호무역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바그와티의 믿음과 바람과는 달리,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은 다른 형태의 일방주의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제재 위협을 통해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 이었고,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301조가 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마지막 글을 통해, 일방주의 · 상호주의 · 공격적 일방주의를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 양자적 혹은 일방적 해결방식이 타당한가 → 다자주의 틀 안에서 해결해야


    로버트 Z. 로런스는 현재 GATT체제에 문제가 있으며, 일본시장이 닫혀있다는 문제인식은 돈부쉬와 공유하였으나, 구체적인 해결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로런스는, 일본이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증가율 20% 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상산업성(MITI)과 같은 일본 관료체계가 일본기업들에게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을 강제해야 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시장개방이 아니라 일본 관료가 이끄는 '일본 주식회사'(Japan, Inc)를 더 확대하는 꼴이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경우, 수입물량은 증가하겠지만, 일본경제의 폐쇄적인 시스템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미국이 일본에 강제하는 형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원치 않았습니다. 로런스는 GATT 체제가 문제점은 있으나, 미국-일본 쌍방 간이 아닌 다자주의 무역시스템(multilateral trade system) 틀 안에서 무역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GATT의 문제점을 인지하면서 여전히 다자주의 무역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여긴 사람들의 힘으로 GATT는 1995년 WTO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WTO는 GATT가 다루지 못한 비관세장벽 · 서비스부문 · 지적재산권 등도 포괄적으로 다루었고, 무역분쟁해결절차를 마련하여 공격적 일방주의가 발생하지 않게끔 주의를 했습니다. 


    이것 또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마지막 글을 통해 살펴볼 겁니다.


    ▶ 전반적인 제조업 상품을 타겟으로 삼는 게 타당한가 → 부문별 세심한 접근 필요


    • 1980년대,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로라 D. 타이슨 (Laura D. Tyson)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은 자유무역 체제의 한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1980년대 미국 내 무역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녀는 일본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e practices)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믿은 면에서 돈부쉬와 닮았으나, 전반적인 제조업 상품을 타겟으로 삼는 해결책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타이슨은 최첨단산업(High-Tech) 내 일본의 무역행태를 문제 삼았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 전자 · 의약품 등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산업별 접근(sectoral approach)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정부에 의한 개입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rules)을 수립하는 게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부쉬가 요구한 수량적 타겟은 지양해야 하며, 필요하더라도 후순위로 밀려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 단순한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논쟁이 아니다


    이처럼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순수한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했던 학자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들은 100% 자유무역을 믿은 게 아니라 자칫 시대 분위기에 휩쓸려 미국이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채택할 것을 염려한 노파심이 더 컸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이 처한 무역환경에 대해 문제로 인식하는 정도도 학자들마다 달랐으며, 동일한 문제인식을 공유했더라도 해결방법에 있어서는 또 서로 다른 의견을 보였습니다. 이번글에 나온 로런스와 돈부쉬가 이를 보여주며, 또 돈부쉬와 타이슨 간 서로 다른 해결책도 이를 보여줍니다. 


    1980년대 국제무역논쟁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사례는, 로라 D. 타이슨의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 주장에 대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각주:10]을 이론으로 창안해 낸 경제학자들이 극렬하게 반대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5. The GATT also does little to open up heavily protected developing countries. ... The liberal system has not only failed to check marginal protectionismand to open up LDCs, it has also failed in one of its chief assignments: avoidance of discrimination in international trade [본문으로]
    6. Perhaps the most striking failure of the GATT system is the continuing closedness of the Japanese market [본문으로]
    7. Japan seems to be somewhat of an onion with multiple layers of protection of one kind or another. [본문으로]
    8. A target should be set for growth rates of Japanese imports of U.S. manufactures [본문으로]
    9. Japanese manufactures imports from the United States should grow at an average (inflation-adjusted) rate of 15 percent a year during the next decade.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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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Posted at 2018. 12. 7. 17:28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유치산업보호의 타당성을 '역사적 발전단계'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을 통해,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및 자유무역 사상을 반박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사상'(liberalism)[각주:1]은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사고방식 입니다. 국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며, 이익을 쫓는 개인의 행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의 이익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각주:2]은 여러 국가가 서로의 상품을 자유롭게 교환하여 전세계적인 후생을 극대화하는 '자유무역'(free trade)을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론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리카도가 살았던 시대상황[각주:3] · 보호무역을 추구했던 1920-30년대 호주[각주:4] ·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한 1950-70년대 중남미[각주:5]에서 누차 짚었듯이...)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똑같은 물음을 던지며, "제조업 육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유치산업을 보호하자(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는 주장으로 애덤 스미스를 정면 공격했습니다. 


    스미스는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각자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은데 반하여, 리스트는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제조업 육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농업 발전에 성공한 국가는 다음 단계인 제조업 발전을 위해 보호체제가 이로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리스트의 보호론은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에 따른 일시적인 조치(temporary)이며, 궁극적으로 제조업 발전 이후에는 자유무역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보호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하에서만 정당화(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대외 경쟁을 완전히 배제하면 나태와 무감각이 조장되어 민족에 해만 끼치게 됩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 ·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유치산업보호론의 정당성을 주장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들의 논쟁을 살펴보면 "자유무역이 옳다! vs. 보호무역이 옳다!"와 같은 1차원적 접근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물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그렇다면 '언제'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언제'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하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접근 방식은 무역정책을 집행할 '상황'(circumstances)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리스트는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를 상황의 구분으로 제시했으나, 거대한 단계의 구분보다는 좀 더 타당한 상황 구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제조업 발전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더라도 항상 올바른 결과를 달성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숙된 농업을 가진채 제조업 단계로 넘어가는 상황은 유치산업보호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리스트는 영국 · 프랑스 등의 역사적 사례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여러 국가들을 살펴보니, 성숙된 농업과 함께 "제조업 역량을 배양하고 이를 통해 최고도의 문명과 교양, 물질적 복지와 정치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특성과 수단을 보유"[각주:6]한 민족이 단지 "이미 더 선진화된 해외 제조업 역량의 경쟁에 의해 진보가 정체"[각주:7]되어 있을 때,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사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리스트의 접근방식은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있으며,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이 불가능 합니다. 


    쉽게 말해, 리스트는 제조업 육성에 성공한 국가들이 채택했던 정책을 되돌아 봤을 뿐이지, 비슷한 조건에 있는 다른 국가들이 유치산업 정책을 채택했을 때 똑같은 성공을 안겨다줄 수 있는지는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만약 영국 · 프랑스 등이 다른 정책을 채택했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지도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유치산업보호가 아닌 자유무역을 했더라도 제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면, "유치산업보호가 제조업 육성을 가져왔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현재를 희생하여 제조업을 육성하면 미래의 이익을 얻는다는 걸 아는 국가 · 민족 · 사업가라면, 보호조치가 없더라도 자연스레 이를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스트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미 앞선 외국 제조업과의 경쟁을 견딜 수 없고, 따라서 "'자연스런 사물의 흐름'(the natural course of things)에 따라 국내 제조업이 육성되는 건 전혀 불가능하며 어리석다"[각주:8]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말한 바와 같이 "각 개인은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각주:9]합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래에는 외국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업가라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제조업 분야에 투자를 했을 겁니다. 


    리스트는 비교우위론을 정태적(static)으로만 받아들여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는 평생토록 변화하지 않는다"라고 간주했고, 유치산업보호 없이는 평생토록 농업 생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본 사업가에 의해 국가경제의 생산성 · 부존자원 등이 시간이 흐른 후 바뀐다면, 비교우위도 자연스레 변화하는 '동태적 비교우위'(Dynamic Comparative Advantage) 양상을 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유치산업 보호는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리스트의 주장에 대응하는 자유주의의 반격으로 볼 수 있으며, 유치산업보호론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황 및 조건이 필요함을 알려줍니다.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나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대립은 이처럼 학자들 간의 논쟁을 통해 이전보다 정교화된 논점을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과거 만연해있던 중상주의 사상에 대항하기 위해 제시된 자유무역사상은, 시간이 흘러 유치산업보호론의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후 다시 자유주의 논리로 유치산업보호론의 허점을 찌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00% 자유무역이 옳다" 라거나 "100% 보호무역이 옳다" 라는 극단적인 생각은 배제되고, 어떤 상황에서 자유무역 혹은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해야 하며 평상시에는 어떠한 정책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느냐 라는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관점으로 유치산업보호론을 평가하면, 특수한 상황 및 조건(specific condition)을 필요로 하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평상시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는 때때로 정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럼 도대체 유치산업보호론이 타당할 수 있는 특수한 상황 및 조건이 무엇일까요?


    ▶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의 등장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이를 처음 제시해준 학자가 바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입니다. 『자유론』(『On Liberty』) · 『공리주의』(『Utilitarianism』)로 유명한 그 철학자 입니다. 밀은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뛰어난 통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


    ● 제10장 잘못된 이론에 근거한 정부개입

    (Of Interferences of Government grounded on Erroneous Theories)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각주:10]


    생산의 한 분야에서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습득된 기술과 경험이 현재 우월하다는 점 말고는 한쪽이 유리할 것도 다른 쪽이 불리할 것도 본원적으로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각주:11] 


    아울러 레이(Rae)가 적확하게 지적하였듯이 어떤 분야의 생산이든 새로운 여건 아래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그렇지만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하기 위해서 한 나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 가운데 불편을 가장 줄이는 방법이 때로는 될 수도 있다.[각주:12]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필수적이다. 또한 국내 생산자들에게는 자기들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정한 기회에 필요한 기간 이상으로까지 관세가 지속되리라고 기대할 여지를 남겨주면 안될 것이다.[각주:13]


    (...)


    생산비는 언제나 처음에 가장 크기 때문에 실지로는 국내생산이 가장 유리한 경우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금전적으로 손실을 겪는 후가 아니면 이익으로 나타나지 못할 수가 있다.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각주:14]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와 같은 일시적 보호는 일종의 특허와 본질이 같을 것이므로 비슷한 조건 아래서 시행되어야 한다.[각주:15] 


    - 존 스튜어트 밀, 박동천 옮김, 『정치경제학 원리 4』, 제5편 제10장, 339-341쪽

    - 영어 원문은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존 스튜어트 밀이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제시한 논리는 유치산업보호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새로 정립시켰습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유치산업보호를 주제로 한 경제학 논문들이 오늘날에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밀은 두 쪽 가량의 짧은 문단을 통해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The only case in which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을 논리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①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영국 민족이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기술 · 기질 · 지리적위치 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제조업 생산에 유리해서 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처럼 (부존자원이 아닌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는) 비교우위는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이 먼저 시작하게끔 만들어주어서 획득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럼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 비교우위 결정에 있어 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일까요?


    ②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공부를 많이 하기 이며 다른 왕도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생산기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경험 축적 입니다. 상품을 처음 제조할때는 미숙한 점이 많아 불량도 생기고 시간도 오래걸리지만, 점점 경험을 축적해나가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즉, 밀의 발언처럼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을 거치면서 생산 경험을 쌓아가면(cumulative learning experience) 더 낮은 비용으로 상품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국가·민족이 비교우위 결정에 유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고, 그 결과 낮은 비용으로 값싼 상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되어 비교우위를 획득하게 된겁니다.


    (주 : 무역을 만들어내는 것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16]이며, 비교우위란 높은 기술수준[각주:17] · 풍부한 부존자원[각주:18] 덕분에 '상대적으로 값싼 상품을 생산하는 능력'을 뜻한다는 것을 기억)


    존 스튜어트 밀은 '단지 먼저 시작하여 경험을 축적'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교우위가 형성될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하며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습니다. 


    ③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떠한 나라가 '역사적 우연성' 덕분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고 이후 '학습과 경험'을 통해 비교우위를 가지게 되는 원리는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가 먼저 생산을 시작했더라면, 현시점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보다 더 우월한 생산능력을 가진채 더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잠재적인 비교우위는 뒤늦게 생산한 국가 혹은 아직 생산을 시작하지 못한 국가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보여지고 있는 비교우위 및 무역패턴은 가장 효율적인 결과물이 아닐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잠재적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가 국내 산업 · 기업 등을 지원하여서 앞선 외국을 따라잡거나 혹은 생산을 시작하게끔 만들면, 보다 효율적인 무역패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뒤처진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다면, 미래의 이익 달성을 바라보고 현재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생산에 착수하지 않을까?" 입니다. 이번글 서두에서 말한바와 같이, 미래 이익을 쫓는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여 행위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보호조치는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또 다른 통찰이 후대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무엇인지 한번 살펴봅시다.


    ④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들이 장기 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을 포착했습니다. 자유시장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 판단하여 생산에 착수할 겁니다. 문제는 자유시장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을 때 벌어집니다.


    만약 장기이익을 바라본 사업가가 단기 손실을 감수해가며 생산경험을 축적하였는데, 이때 획득한 경험이 같은 나라의 다른 사업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럴 경우, 후발 사업가는 단기 손실을 보지 않고 바로 이익을 챙길 수 있으며, 단기 손실을 부담한 선발 사업가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줄어듭니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면,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으려 할테고, 결과적으로 그 국가 내에서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밀의 표현처럼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이를 현대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외부성의 존재'입니다. (외부성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하여 비효율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참고 : 외부성 및 생산의 학습효과가 만들어내는 비교우위 패턴, 그리고 그 결과 초래될지도 모르는 잠재적 비효율성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참고)


    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여 국내 기업 · 산업을 지원하는 유치산업보호론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정부가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개별 기업들은 경쟁에 대한 부담을 덜고 단기 손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겁니다. 또한 관세부과로 외국 상품가격이 오르게 되면 국내 생산자도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출 및 이윤의 증가를 불러와 단기 손실 크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하였고,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도 밝힙니다. 


    ⑥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 (...)

    일시적 보호관세는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런데 위의 논리를 다르게 보면, 장기 이익이 단기 손실을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성의 존재로 인해 개인이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 할때에만, 일시적인 보호조치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가 때때로 타당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이 마치 무조건적인 보호무역 · 영구적인 보호체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염려하여, 밀은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치산업에 대한 일시적 보호'(Temporary Protection) 라는 점을 재차 강조합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현재 비교열위에 있는 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지원하는 정책도 아닙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없으냐 정부가 일시적인 지원을 하면 향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산업'을 보호 · 육성하는 정책입니다. 


    결론 :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자, 이제 존 스튜어트 밀이 남긴 첫 문장이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완벽하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 보호주의 정책은 옳지 않으며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그 경우란 단지 외국 산업에 비해 늦게 시작한 까닭으로 현재 경쟁력이 없으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는' 산업이어서 시간이 흐르면 학습된 경험 축적 덕분에 비교우위를 찾을 수 있는 때 입니다. 오직 이때에만 '토착화되는 동안 일시적으로 보호관세를 부과'하는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은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수행했던 역사적 사례분석에 의존하지 않은채 유치산업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명확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유주의 이념을 가진 당시 경제학자들도 '특정한 경우에는 자유무역 원리에서 이탈하여 수입관세를 이용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무차별적 관세보호 보다는 직접적인 지원이 낫다"


    시간이 흘러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에 의문을 품는 다른 학자가 등장했습니다. 이 학자는 "외부성 존재는 효율적 생산을 위해 정부가 개입할 필요를 제기해주지만, 과연 관세 보호 의도했던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What I will question is the effectiveness of tariffs in accomplishing this result.)라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Robert E. Baldwin), 1924~2011

    • 1969년 논문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그 인물이 바로 로버트 발드윈(Robert Baldwin)이며, 해당 주장이 실린 논문은 1969년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the Case Against Infant-Industry Tariff Protection>) 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어깨 위에 올라선 로버트 발드윈은 외부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자원 이용이 불가능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정부개입의 수단(means of government intervention) 이었습니다. 


    발드윈이 보기에 산업 내 전체 기업들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보호관세는 외부성 제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성 문제를 겪고 있는 개별 기업만 선별적으로 직접적인 지원을 해야 할 필요(much more direct and selective policy measure than non-discriminatory import duties)가 있었습니.


    발드윈은 크게 2가지 경우를 제시하며 각각의 사례에서 보호관세의 무용성(ineffectiveness of protective duty) 및 직접적인 지원(direct subsidy)의 필요성을 설파합니다. 이번 파트를 통해 그의 주장과 논리를 알아봅시다.


    ●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첫번째는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은 "단순히 초기 생산비용이 외국보다 높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기업을 보호해서는 안되며, 유치산업보호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학습 프로세스와 연결된 기술적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ies frequently associated with the learning process)이 존재해야 한다." 라고 진단합니다.


    왜냐하면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미래에 외국기업보다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걸 국내 생산자가 알고 있더라도 기술적 외부성이 존재하면 아예 시장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생산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가가 직면하는 문제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정보를 거리낌없이 쓸 가능성", 즉 기술적 외부성 이며, 이로인해 "개별 사업가가 지식 획득을 위한 투자를 꺼리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아무도 기술진보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 결과 그 나라의 지식수준은 사회적 최적 수준에 미달하게 됩니다. 


    이는 앞서 소개한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밀은 보호 관세 부과로 외부성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만약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지식획득에 수반되는 초기 비용투자 부담이 덜어지게 되어 단기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입관세 부과 이후 올라간 상품가격으로 이윤증대를 누리면서 단기 손실을 메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발드윈이 보기엔 국내 전체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인 관세(non-discriminatory import duty)는 외부성으로부터 초래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내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나의 지식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가 수입관세 부과 이후로도 교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드윈은 기술을 무단으로 차용하는 국내 잠재적 경쟁자가 상품가격 인상 덕분에 더 높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하면, 선도적인 기업의 이윤은 국내 경쟁 증대로 인해 줄어들고 결국 지식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심한 경우 기술개발에 투자한 기업들은 모두 퇴출되고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기업만 생존할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발드윈이 진단한 사회적 비효율성이 초래되는 근본원인은 '지식투자로 인한 단기 손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기업이 전유할 수 없는 지식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과 사적 비용의 차이'(knowledge is not appropriable by individual firm) 였습니다. 


    단기 손실을 보전해주려는 보호관세는 지식에 투자한 기업의 단기 손실도 줄어주지만, 지식에 투자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의 이윤도 증가시켜 줍니다. 따라서, 발드윈은 든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 보호관세가 아니라 지식을 발견한 기업에게만 주어지는 보조금(a subsidy to the initial entrants into the industry for discovering better productive techniques)이 필요하다 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두번째는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입니다.


    국내에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으로 국내 기업 한 곳이 신규진입 하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이 기업은 기술개발 및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borrow funds from investors)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 산업에 대해 아는 투자자가 없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은 기업가치를 올바르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진입기업은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스스로 시장조사(market study)를 하여 투자자에게 상세한 정보(detailed market analysis)를 제공해줄 유인이 있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경우와 유사한 문제가 초래됩니다. 


    만약 시장조사를 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하는 데 반하여, 이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기업도 새로운 산업에 먼저 진입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먼저 진입하여 시장조사를 하기만을 바라겠죠. 그것을 못 견디고 먼저 진입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지불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아예 빌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유익한 산업이 수립되지 않는 경우가 초래되고 맙니다.(under these circumstances the firm will not finance the cost of the study, and a socially beneficial industry will not be established.)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무차별적인 보호 관세가 아니라 지식획득을 지원하는 직접적인 보조금(direct subsidies to pay for the costs of knowledge acquisition) 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 로버트 발드윈이 기여한 것


    번 파트에서 소개한 로버트 발드윈의 1969년 논문은 "유치산업보호를 위해 수입관세 부과 등으로 보호장벽을 높여야 한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대표적인 참고문헌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첫번째 공헌은 '현재에는 생산비용이 높지만 학습효과에 의해 잠재적 비교우위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항상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현대 경제학 프레임 내에서 논리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지식획득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성이 없다면, 기업은 단기 손실과 장기 이익을 스스로 비교 평가하여 시장에 진입할 겁니다. 또한 금융시장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면, 투자자들은 장기 이익을 내다보고 자금을 빌려줄 것이고, 기업은 단기 손실이 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지식획득이 초래하는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y)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capital market imperfection) 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두번째 공헌은 '비록 지식획득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산업을 보유하지 못하더라도, 수입장벽을 높이는 보호조치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입니다.


    수입관세 부과는 외부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채, 지식투자에 기여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들의 시장진입만 되려 부추길 수 있습니다. 또한 금융시장 정보 부재로 인한 문제는 무역보호 조치로 해소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보호를 위한 무역정책을 구사할 생각보다는 구체적인 시장실패를 직접 해결하려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를 기반으로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특정한 경우에 자유무역이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수입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초래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시정하는 구체적인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보호무역 정책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책(Second-Best)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을 통해 보다 정교화된 자유무역 사상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을 통해 세상에 나온 '자유무역 사상'은 이렇게 여러 학자들 간의 논쟁,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을 거치면서 보다 정교화 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와 이번글을 통해 알아본 '자유무역 사상의 진화과정'을 짧게나마 한번 정리해봅시다.


    '무역수지 흑자'를 중요시 했던 중상주의 시대[각주:19]

    - 토마스 먼,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 1664년


    "우호적인 무역수지가 필요하다"


    '값싼 외국 상품 수입' 높게 평가하는 자유무역 사상의 등장[각주:20]

    - 애덤 스미스,  『국부론』, 1776년 


    -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금은을 살 수단[예: 포도주]을 가진 나라는 결코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을 것이다.",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는 우리 상품을 유통시키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할 금은을 언제나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 "나는 이익이나 이득이라는 것은 금은량의 증가가 아니라 그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생산물의 교환가치 증가나 주민들의 연간소득 증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 나라가 이러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한, 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전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만들어낸다'는 비교우위론의 등장[각주:21]원리[각주:22]

    - 데이비드 리카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1817년


    -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 "한 나라에서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규칙이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 "포르투갈이 수입하는 상품이 잉글랜드에서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적은 노동으로 생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환은 일어날 것이다. (...) 왜냐하면 포르투갈은, 그 자본의 일부를 포도 재배에서 직물 제조로 전환시켜서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직물을, 잉글랜드에서 획득하게 해주는 포도주 생산에 그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 "직물이 포르투갈에 수입되려면, 그것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치르는 값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많은 금을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포도주가 [포르투갈에서] 잉글랜드로 수입되려면, 그것이 포르투갈에서 치르는 값보다 잉글랜드에서 더 많이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비교우위론은 수확체증에 특화하는 영국에게만 이롭다'반박이 등장[각주:23]

    - 제임스 브릭던, <호주 관세와 생활수준>, 1925년 논문


    - "경제이론은 합리적추론의 기반이지만 일반적인 지침의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엄밀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결과물은 항상 시간 및 공간의 상황에 달려있다. 고전 국제무역이론은 영국의 상황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개발도상국을 선진국에 종속시킨다'주장이 등장[각주:24]

    - 라울 프레비쉬,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발전과 주요 문제들』, 1950년


    - "종속은 특정한 국가집단이 다른 경제의 발전과 확산에 의해 제약받는 경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 "제조업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한 지배국가는 팽창하고 스스로의 발전에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반면, 1차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종속국가는 이러한 팽창의 반사로써밖에 발전할 수 없을 때 종속의 형태"


    -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면, 기술진보의 혜택은 중심부-주변부 간에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대외지향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한국의 경제발전[각주:25]


    - "정부는 증산과 더불어 수출을 대지표로 삼았읍니다. 공업원료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은 경제의 생명입니다. 2차대전직후, 영국의 「처어칠」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이란 호소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 "80년대에 가서 우리가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 공업의 육성 등등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 ... 정부는 지금부터 철강,조선,기계,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서 이 분야의 제품 수출을 목적으로 강화하려고 추진하고 있읍니다."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인위적인 제조업 육성이 필요하다'유치산업보호론 등장[각주:26]

    -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1841년


    - "필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애덤 스미스 이론의 근본 원리를 의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오늘도 이 글을 가지고 나설 용기를 준 것은 주로 독일의 이익이다."


    - "투박한 농사에서는 정신적 활력 · 신체적 둔함, 옛 개념 ·관습, ·습관 · 행위 방식에 대한 고수, 교양 · 복지 · 그리고 자유의 부족이 지배한다. 반면에 정신적, 물질적 재화의 끊임없는 증식을 향한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은 제조업 국가 및 상업 국가의 특징이 된다."


    - "상공업 패권을 쥔 (영국의) 공장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생 혹은 반밖에 장성하지 못한 공장들보다 앞서는 천 가지 장점을 가진다. (…) 그러한 세력에 맞서 자유경쟁을 하면서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 "부와 생산 역량의 최고도에 도달한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경쟁의 원리로 점진적으로 회귀하여, 농부들 제조업자들 상인들을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하고 이들이 달성한 우위를 유지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자유주의[각주:27]

    -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 원리』, 1848년


    -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필요하다'현대경제학의 반격[각주:28]

    - 로버트 발드윈,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1969년 논문


    - "생산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시장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관세부과를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수입관세 부과를 통한 일시적 보호조치는 효율적 생산을 달성케 할 수 없다.", "수입관세는 외부성의 문제를 교정할 수 없다."


    - "필요한 것은 지식획득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유치산업이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보호관세가 아니라 보다 직접적이고 선별적인 정책이다."




    ※ 한국에서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이제 우리는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 육성하고 싶은 국내산업 중 아무거나 보호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② 현재 비교열위에 처한 이유는 단지 외국에 비해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며,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를 통해 향후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생산할 잠재적 비교우위가 있으며, 

     장기 이익을 내다보는 국내 생산자가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 때문에 생산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고, 

     시장실패를 직접적으로 교정하는 정책 대신 보호무역 조치가 더 확실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때, 

    ⑥ 유치산업보호 정책은 정당화되고 또 의도했던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위의 조건들이 충족됐던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소개했듯이, 한국정부는 기계 · 조선 · 철강 · 화학 · 전자 등의 중화학 업종 육성하기 위하여, 수입장벽을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보조금을 통한 직접 지원도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중화학 공업화로 가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당시 한국정부가 제철소 · 조선소 등을 건립하려고 했을 때, 외국 정부 및 학자들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산업을 왜 키우려고 하느냐. 현재의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 충실해라" 라는 충고를 했습니다.


    (지난글에서도 소개했던) 아래의 기사가 당시 정부가 마주했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번 다시 읽어봅시다.


    <AID가 본 한국공업건설 (上 제철소의 경우)>

    (주 : AID란 원조를 지원해주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의미한다)


    경제5개년계획을 특징지으고 있는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러기에 기자는 워싱턴에 닿자마자 AID가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타진해보기 위하여 AID의 문을 두드렸다. (...)


    기자가 AID 당국자들과 만나서 얻은 결론은 제철소는 사무적으로는 절대로 무망한 것으로 느껴졌으나 정치적으로 배려를 한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비료공장은 AID가 주장하는 바 과인산질소 배합비료 공장을 세우는 데 한국측이 동의한다고 하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거부하교 요소 25만톤 용량을 만든다는 종래의 주장을 견지한다면 이 역시 AID에서 돈을 꾸지 못할 것이라 것이다.


    AID는 대체로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① 한국은 철광석과 코크스 탄 6천 칼로리 이상나는 역청회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0% 이상의 철분을 가지고 있는 철광석의 매장량은 지난번 탐광에 의해서도 겨우 5백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이 나왔으니, 그처럼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해서 연간 25만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이다. (...)


    ② 그러니까 한국서 제철을 하자면 외국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사오지 않을 수 없는데 철광석을 100만톤, 석탄을 150만톤을 사오자면 적어도 3,500만불의 외화를 매년 지출하여야만 할 것이니 4,200만불의 수출실적 밖에는 못 가지 한국의 외화사정 아래서는 이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물론 철광석과 석탄도 연불 등 상업차관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기도 하나 AID 규정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차관을 받는다는지 원조를 받는다는 것은 허용하지 않기로 되어있으므로 상업차관에 의한 원료 공급도 안된다는 것이다. (...)


    ③ 설령 한국에 제철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철의 시장경쟁은 지금도 치열하지만 장차 더욱 더 백열전을 전개할 것이니 과연 한국이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경쟁에서나마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는데는 의문이 짙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록 철광석도 석탄도 사다가 쇠를 녹이고 있다고 하나 경영기술에 있어서나 작업기술에 있어서나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일본과 같은 생산비로서 제철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


    ⑤ 그러니까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제철소를 만들려면 적어도 1억 5천만불을 들여야 할터이니 그 돈을 다른 산업들 한국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을 세우는데 쓰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고 결론 짓고 있는 것 같다. 


    - 이동욱, 1962년 10월 20일, 동아일보 칼럼/논단

    - 네이버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서 발췌


    현재의 포항 제철소는 1965년 한일협정의 산물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되어 1973년 가동을 시작 하였는데,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당시부터 종합제철소 건립을 꿈꾸었습니다. 


    꿈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라는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이들의 주된 논거는 '한국의 제철소 건설 시도가 비교우위 원리에 벗어난다' 입니다. 


    ① 제철소는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등을 제련하여서 철판을 만드는 곳인데, 한국은 원자재를 풍부하게 가진 국가가 아닙니다. 헥셔-올린의 무역이론[각주:29]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relative abundant resource)을 가진 국가가 그 자원이 집약된 산업(resource-intensive)에 비교우위를 가지는데,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② 또한 어찌어지 철판을 생산한다고 해도 과연 일본에 비해 우위를 가질 수 있겠냐는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일본은 70년전부터 제철소를 운영하며 획득한 기술수준으로 낮은 생산비를 유지하는데, 이를 한국이 수년내에 따라잡기 힘들거라는 전망이죠.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날 한국은 세계 1위 제철소로 평가받는 POSCO(구 포항제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외국 기관 · 학자들이 충고했던 자유무역 논리를 그대로 따랐더라면 오늘날 한국에 제철소는 없었을 겁니다.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한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했던 미국제개발처의 발언에서 역설적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사를 통해 드러나듯이, 미국제개발처(USAID)는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보유한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에 의문을 품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철강산업 우위는 '역사적 우연성'에 의한 것일지도...


    1960년대 당시 일본이 한국에 비해서 철강산업에 경쟁력을 가지게 된 연유는 선천적으로 제철기술이 뛰어나거나 철광석 등 부존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일본이 한국보다 70년 일찍 철강업을 시작한 역사적 배경 덕분(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반대로 한국이 일본보다 일찍 제철소를 건립했더라면 1960년대 당시의 비교우위는 한국이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철강산업을 보호하면서 육성하면서 70년이라는 시간을 따라잡으면, 장기적으로는 일본보다 경쟁력 있는 제철소를 보유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을 따라잡는 동안에 한국 제철소는 큰 손실을 보겠지만, 정부보조를 받아서 버틴다면 언젠가는 우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지금 제철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향후 제철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느냐"(Dynamic Comparative Advantage)라는 물음을 던져야 마땅합니다. 한국정부는 후자의 물음을 던진 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외부 규모의 경제


    제철 · 조선 · 자동차 · 전자 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공장 하나를 짓고 기계설비만 도입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철광석 · 기계부품 등을 외국에서 조달해오기 위한 판로가 필요하고, 여러 하청 업체들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 산업에 맞는 기술을 가진 근로자 집단도 존재해야 합니다. 


    이처럼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 · 근로자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scale of economy)라 부릅니다. 이들은 노하우공유, 부품 공동구매, 근로자 채용의 용이함 등 덕분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외부 규모의 경제 또한 외부성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만약 제철 산업을 하고 싶은 산업가 한 명이 혼자 공장을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산업에 진입하지 않는한 생산과정이 매끄럽게 돌아갈리가 없고, 그 결과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정부가 국영기업을 설립하여 직접 사업에 착수하거나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진입하도록 강제(?)하는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미발달된 금융시장


    미발달된 금융시장 또한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줍니다. 만약 사업가가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 받을 수 있다면, 단기 손실에 대한 부담이 덜어집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금융시장이 미발달한 상태였고 형성된 자본 크기도 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국내자본과 차관 형태로 들여온 외국자본을 선별된 기업에 몰아주는 금융지원 정책[각주:30]을 구사했습니다. 


    이처럼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제철 · 조선 산업의 특징, 부족했던 자본, 금융시장의 미발달 등은 일시적 무역보호체제와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 (보론) 장하준이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첫번째 : 장하준, 2004, 『사다리 걷어차기』
    • 두번째 : 장하준, 2007, 『나쁜 사마리아인들』
    • 세번째 : 서강대 교수진, 2012,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
    • 네번째 :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 2012 번역, 『공격받는 자유무역』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유치산업보호론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내세우는 성공 스토리 입니다.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는 단골 메뉴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정부주도 산업정책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한국인들은 유치산업보호 논리에 친숙하며, 특히 대중적으로 유명한 한 학자로 인해 '문제가 있는 자유무역과 이득을 불러오는 보호무역'을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학자는 바로 장하준 입니다.


    장하준은 2004년 『사다리 걷어차기』 · 2007년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선진국의 경제발전은 보호무역 덕분이며,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다'는 식의 논지를 반복해서 주장해왔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수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비판해오고 있습니다. 국제무역 정책 및 역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은 서평을 통해 장하준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각주:31]하였고, 한국 학자들도 단행본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장하준을 비판하였습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된 비판 요지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 편향적 표본선택 및 반사실적 검정의 부재


    이는 이번글 서두에서 이야기한, 리스트가 학자들에게 비판받은 지점과 동일합니다. 


    장하준은 오늘날 선진국인 미국 · 독일 등의 역사적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과거에 이들이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했고 이것이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이들과 같은 조건에 있었던 국가들이 보호무역을 구사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미국 · 독일 등이 보호무역이 아닌 정책을 구사했더라면 오늘날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장하준은 이들이 과거에 보호무역을 실시하였다고 보는데) 만약 이들이 과거에 자유무역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더 높은 경제수준을 누릴 수 있었더라면, 되려 과거의 보호무역은 악영향만 끼친 꼴이 됩니다.


    둘째,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 vs.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 구분의 부재

     

    자유무역론을 믿는 주류 경제학자라고 해서 100% 자유무역 정책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글에서 누차 설명했듯이, 특정한 경우에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정당화 되고, 더 나아가 유치산업을 위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할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유무역 이며, 보호는 특정한 경우에 일시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뿐입니다.


    하지만 장하준은 시대적 상황 · 국가의 경제수준에 상관없이 어느때든 보호주의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한국에서 유치산업 보호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해서, 오늘날 한국에도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 믿을 수는 없는데 말이죠


    앞으로 쓰고 싶은 [실증분석을 위한 계량] 시리즈를 통해 장하준 주장이 가지는 문제를 좀 더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1980년대 미국,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봐왔듯이, 유치산업보호론 혹은 보호무역주의는 주로 개발도상국 내에서 자유무역론에 대항하여 제기된 사상 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미국 내에서, 외국과의 경쟁에서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외국은 주로 '일본'을 의미했으며, 보호하기 위한 국내산업은 주로 철강 · 자동차 등 '제조업'과 반도체 · 전자 등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을 뜻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트럼프행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제조업 및 IT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보호주의를 채택하려는 것과 똑같은 양상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는 것일까요?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과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을 통해, 미국 및 선진국 내의 무역논쟁을 알아봅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6.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7.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8.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412-413쪽 [본문으로]
    9.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4편 제2장, 548쪽 [본문으로]
    10.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본문으로]
    11. (The superiority of one country over another in a branch of production, often arises only from having begun it sooner. There may be no inherent advantage on one part, or disadvantage on the other, but only a present superiority of acquired skill and experience. A country which has this skill and experience yet to acquire, may in other respects be better adapted to the production than those which were earlier in the field:) [본문으로]
    12. (and besides, it is a just remark of Mr. Rae, that nothing has a greater tendency to promote improvements in any branch of production, than its trial under a new set of conditions. But it cannot be expected that individuals should, at their own risk, or rather to their certain loss, introduce a new manufacture, and bear the burthen of carrying it on until the producers have been educated up to the level of those with whom the processes are traditional. A protecting duty, continued for a reasonable time, might sometimes be the least inconvenient mode in which the nation can tax itself for the support of such an experiment.) [본문으로]
    13. (But it is essential that the protection should be confined to cases in which there is good ground of assurance that the industry which it fosters will after a time be able to dispense with it; nor should the domestic producers ever be allowed to expect that it will be continued to them beyond the time necessary for a fair trial of what they are capable of accomplishing.) [본문으로]
    14. (The expenses of production being always greatest at first, it may happen that the home production, though really the most advantageous, may not become so until after a certain duration of pecuniary loss, which it is not to be expected that private speculators should incur in order that their successors may be benefited by their ruin.) [본문으로]
    15. (I have therefore conceded that in a new country a temporary protecting duty may sometimes be economically defensible; on condition, however, that it be strictly limited in point of time, and provision be made that during the latter part of its existence it be on a gradually decreasing scale. Such temporary protection is of the same nature as a patent, and should be governed by similar conditions.)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17.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18.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19.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joohyeon.com/270 [본문으로]
    2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joohyeon.com/271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9.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30.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http://joohyeon.com/157 [본문으로]
    31. 세계경제사학회(Economic History Association), 2004.04. Book Review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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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Posted at 2018. 12. 5. 01:2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한국 경제발전은 자유무역 덕분? 보호무역 덕분?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outward-trade regime)를 선택한 덕분에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1961년 쿠데타 이후 대내지향적 자립경제를 추구했던 박정희정권은 1964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보완하여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965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영국 처칠 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 발언을 인용하였고, 각종 수출 지원 정책이라는 당근과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통한 수출책임제 점검 이라는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973년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1980년 수출액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한 중화학 공업화'를 목표로 내걸었고, 수출액 100억 달러를 3년이나 앞당긴 1977년에 이루었습니다.


    만약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내포적 공업화 전략(수입대체 산업화)을 계속 고수했더라면, 중남미 국가들처럼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룰 뻔[각주:1] 했는데, 참으로 다행스런 방향전환 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발전을 통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지향해왔다'는 사실 뿐입니다.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한 한국 경제발전 성공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인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인지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논쟁사항 입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 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 해주는 근거가 바로 기계 · 조선 · 철강 · 화학 · 전자 등의 중화학 업종 육성 입니다. 이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수입장벽을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보조금을 통해 지원하였습니다.



    즉, 한국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에 따라서 경제발전 경로를 밟아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이란 말그대로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인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여(temporary protection) 육성시키자'라는 논리 입니다.

    만약 당시 한국이 비교우위론을 철저히 따라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 1차산업이나 단순 공산품 생산에만 집중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의 중화학 공업화 성공은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과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후자의 정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한국의 경제발전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떤 논리로 말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유치산업보호론이 100% 보호무역체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입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말그대로 어린아이 수준인 산업(infant industry)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자(temporary protection)는 논리 입니다. 평생토록 무역장벽을 높여서 살자는 이론이 아닙니다.


    성숙한(mature) 산업을 보유한 오늘날 한국은 개방적인 무역체제를 지향하고 있으며, 경제발전 당시에도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부는 특정 기업을 선정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만약 보호와 동시에 국내에 안주하게끔 하였다면, 기업의 생산성 정도가 아닌 정권과의 결탁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했을겁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는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경쟁'과 '해외진출을 통한 시장크기 확대' 등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살려야 합니다. 


    제가 전달하고 싶은 생각은 "애시당초 100% 보호무역체제나 100% 자유무역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고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이 둘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현실 속 논의과정에서 큰 차를 불러옵니다. 


    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국가주도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우선적으로 주장합니다. 과거 개도국이었던 한국과 오늘날 선진국인 한국의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필요한 개도국과 경제강대국인 미국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산업 · 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경우를 우선 진단합니다. 과도한 국가개입은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나라가 국가주도 정책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도 똑같은 성공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남미와 한국의 사례에서 처럼 말이죠.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지느냐는 결국 사상과 철학의 문제입니다. 경제사상 변천은, 정치사상이 그러하듯이, 위대한 학자들의 논의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앞으로 2편의 글을 통해 위대한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며, 주류 경제학계 내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과 '유치산업보호론' 그리고 '보호무역론'을 둘러싼 대립과 논쟁이 어떻게 변화 · 발전 되어왔는지를 알아봅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보다 정교화 할 수 있을겁니다.




    ※ '자유주의 사상을 토대로 한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


    •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에서 살펴본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을 되돌아 봅시다. 그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시대적 배경을 우선 파악해야 합니다. 『국부론』이 출판된 1776년은 아직 중상주의(mercantilism)가 영향력을 가졌던 시대였고,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했습니다.  


    국가가 무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금은보화 등 재화를 축적하려고 했던 중상주의 시기.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자연적자유(natural liberty)에 따라 행동한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한다고 생각했으며, 국가보다 개인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better knowledge)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무역을 규제하기 보다는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부론』의 상당부분에 이러한 주장을 할애하였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을 높은 관세나 절대적 금지에 의해 제한함으로써 이 재화를 생산하는 국내산업은 국내시장에서 다소간 독점권을 보장받는다. (...) 국내시장의 이와 같은 독점권은 그런 권리를 누리는 특정 산업을 종종 크게 장려할 뿐만 아니라, 독점이 없었을 경우 그것으로 향했을 것보다 더 큰 노동·자본을 그 산업으로 향하게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독점권이 사회의 총노동을 증가시키거나 그것을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가는 결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각 개인은 그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


    자기의 자본을 국내산업의 어느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 그리고 어느 산업분야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8~553쪽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manufacturing)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비판적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자본과 노동을 자연적 흐름에 거슬러 인위적으로 특정 부문에 배치하는 것은 효율적 생산을 가로막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현재 제조업이 없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사실 이러한 규제에 의해 특정제조업이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 빨리 확립될 수도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외국과 같이 싸거나 더 싸게 국내에서 생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노동이, 비록 이처럼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욱 빨리 특정분야에 유리하게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노동이나 사회의 수입 총액이 이와 같은 규제에 의해 증대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사회의 노동은 자본이 증가하는 비율에 따라 증가할 수 있을 뿐인데, 자본은 수입 중에서 점차 절약되어 저축되는 것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제의 직접적인 효과는 그 사회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고, 그리고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빨리, 사회자본을 증가시킬 수는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없음으로써 사회가 문제의 제조업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는 그 때문에 어느 한 기간 내에 필연적으로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발전의 어느 한 시기에 사회의 모든 자본과 노동은, 비록 다른 대상에 대해서이긴 하지만, 당시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각 시기마다 그 사회의 수입은 그 사회의 자본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수입이며, 자본과 소득은 모두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이처럼 (절대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세상에 내놓았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사고방식은 개인의 이익추구가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며, 개인의 행위가 올바른 결과를 낳는다는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자혜로운 신의 설계와 간섭 덕분"(design and intervention of a benevolent God)이라고 믿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조화처럼 느껴지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하여 결국 자연은 조화를 이루어 작동하기 때문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간의 선입견과는 달리) 교조적인 자유방임주의(lassez-faire)를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사적이익과 공공이익 간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 경우 정부개입이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정부의 기능을 국방 · 사법 · 공공기구 등 3가지에만 국한하였는데, 그 이유는 정부가 민간부문에 개입하여 공공의 후생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더 나은 지식'(better knowledge)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미스가 살던 18세기 후반 영국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했었기 때문에 정부개입을 꺼려했습니다.


    따라서, 자유주의 사상과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덤 스미스는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하였습니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뒤이어, 비교우위론을 소개한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의 『원리』가 출판되며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이론적 기반을 확고히 다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동시기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반박하는 주장들도 제기되었습니다. 


    스미스와 리카도는 모두 영국인 입니다. 18세기 말~19세기 초반 영국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세상에 내놓은 배경은 '경제성장을 위해서 수확체감 성질을 가진 산업을 포기하고(=외국으로부터의 수입으로 대신하고) 제조업 같은 수확체증산업(increasing return)에 특화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을 주장한 이들과는 달리, 리카도는 오히려 제조업을 위해서 자유무역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 부문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참고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비판의 선봉자가 바로 미국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독일인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 입니다.


    초대 워싱턴정부 재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1791년 <제조업에 관한 보고>(<Report on Manufactures>)을 통해 제조업 육성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미국시민권을 획득한) 독일인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1827년 <미국정치경제론>(<Outlines of American Political System>) 및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The National System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스미스와 리카도가 제시한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며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제조업 육성'(manufacturing)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미리 발전한 외국(특히 영국)과의 자유경쟁이 벌어지는 상황 하에서는 제조업을 키우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해밀턴과 리스트가 스미스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근원을 탐구하는 건, 자유무역론 · 유치산업보호론 · 보호무역론을 둘러싼 논쟁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번글에서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적 근원을 스미스의 것과 비교해 봅시다.




    ※ 애덤 스미스를 비판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번 파트에서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애덤 스미스를 비판한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국내의 특정 산업을 외국 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자'는 유치산업보호론의 논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타당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국내 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temporary protection)하는 것이니, 문을 닫고 폐쇄적으로 살자는 논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유무역론과 대비되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이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를 대표하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과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 사상이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구성되어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 vs 민족주의(nationalism)


    ▶ 애덤 스미스 : 세계시민주의 사상 (사해동포주의 사상)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특화한 뒤 서로 교환을 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효율적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설명 1[각주:2]2[각주:3])


    이는 사실상 '국제적 차원의 노동분업론'(international divison of labor)과 마찬가지이며,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전인류(mankind)의 후생을 평가하는 세계시민주의(혹은 사해동포주의, cosmopolitanism)의 관점을 가지고 세계경제를 바라봅니다(doctrine of universal economy). 


    ▶ 프리드리히 리스트 : 민족주의 사상


    유치산업보호론은, 이에 반하여, "모든 국가와 민족은 각자 처한 발전정도와 상황이 다르며, 진정한 무역자유가 이루어지려면 후진적인 민족과 앞선 민족이 대등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이를 믿는 사람들은 민족경제적 관점(national economy)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은 민족경제를 다루어야 하며, 어떤 국가가 각자의 특성한 상황에 맞추어 가장 강력하고 부유하고 완벽한 국가가 되기 위해 어떻게 권력과 부를 증대시켜야 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모든 민족이 '동등한 상태'에 있을 때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이지, '훨씬 뒤처진 민족'에게 자유경쟁은 경제발전에 해만 끼칩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주장을 직접 읽어봅시다.


    ● 서론


    필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애덤 스미스 이론의 근본 원리를 의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가 이때 이후로 여러 익명의 기사에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실명으로 쓴 더 긴 논문으로 그 이론에 반대되는 견해들을 전개할 수 있게 한 것은 조국의 사정이었다. 오늘도 이 글을 가지고 나설 용기를 준 것은 주로 독일의 이익이다. (...) 


    단 한 민족의 압도적인 정치력이나 압도적인 부에서 나오는, 그래서 다른 민족들의 예속과 종속에 기초를 둔 만국연맹은 모든 민족적 고유성과 민족들의 일체의 경쟁심이 몰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민족 정체성의 개념과 본성에 출발하여 어느 한 민족이 현재의 세계 정세와 특수한 민족 상황에서 자신의 경제적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정치경제학 및 민족경제학(national economy)과,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단 하나의 영원한 평화 위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이룬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혹은 세계 경제학(cosmopolitical economy)을 구분해야 한다. 


    그 학파(prevailing school[각주:4])가 소망하듯이 모든 민족의 보편적 연맹 혹은 연합을 영원한 평화의 보장책으로 전제한다면, 국제적 무역 자유의 원칙은 완전히 정당화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목표의 추구에서 제한을 덜 받을수록, 그와 자유 교류 관계에 있는 자들의 수와 부가 클수록, 그의 개인적 활동이 뻗어 갈 수 있는 공간이 클수록, 그에게 본성상 주어진 특성들, 획득된 지식과 숙련 그리고 그에게 제공되는 행복을 증진할 자연적 역량을 활용하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


    그 학파는 민족 정체성의 본성과 그 특수한 이익과 상태를 고려하여 이를 보편적 연맹과 영원한 평화의 관념과 조화시키기를 게을리했다. 그 학파는 이루어져야 할 상태를 현실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 학파는 보편적 연맹과 영원한 평화의 존재를 전제하고 이로부터 무역 자유의 큰 이익을 도출한다. 이런 식으로 그 학파는 효과와 원인을 혼동한다. (...)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줄 예들은 모두가 정치 통합이 선행하고 무역 통합이 뒤따른 예들이다. 역사는 무역 통합이 선행하고 정치 통합이 그로부터 자라난 예를 하나도 알지 못한다. (...)  


    무역 자유가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려면 후진적인 민족들은 인위적 조치에 의해 영국 민족이 인위적으로 올려진 것과 같은 단계의 성숙에 올려져야 했을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머리말-192쪽


    그렇다면 올바른 자유무역을 위한 선행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후진적인 민족을 동등한 수준으로 발전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경제발전 혹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요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관점 차이가 드러납니다.


    둘째, 국부의 원천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노동 분업(division of labour) vs.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


    ▶ 애덤 스미스 : 노동 분업을 통한 생산성 증대의 중요성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한 나라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노동생산력(productive powers of labour)을 최대로 개선 · 증진시키는 것은 분업(division of labour)의 결과"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국부는 재화의 축적(accumulation)"으로 바라봤던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고 '분업을 통한 생산'(production)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물질적 상황 뿐 아니라 정신적 역량도 중요


    프리드리히 리스트도 노동을 통한 생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리스트는 좀 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노동의 원인은 무엇인가?"


    리스트는 "인간의 머리와 팔, 손이 생산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들에게 생기를 주는 정신, 그들의 활동에 결실을 맺어주는 사회질서, 그들에게 제공되는 자연력" 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애덤 스미스는 분업을 통해 물질적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리스트는 노동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주는 정신 · 사회질서 · 법률 등의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원문을 길더라도 읽어봅시다.


    ●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The Theory of the Powers of Production and the Theory of Values)


    부의 원인은 부 자체와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한 개인은 부, 즉 교환가치를 소유할 수 있더라도 그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 힘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가난해진다. 한 개인은 가난할 수 있더라도 그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큰 액수의 가치 있는 물건들을 만들 힘을 소유한다면 부유하게 된다.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힘은 이에 따라 부 자체보다 무한히 더 중대하다. 그것은 획득물의 소유와 증대를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상실한 것의 보상도 보장해 준다. 이는 사인들보다 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민족 전체에게 훨씬 더 해당된다. (...)


    명백히 스미스는 중농주의자들의 사해동포주의 관념인 '무역의 보편적 자유'(universal freedom of trade)의 관념에, 그리고 그 자신의 위대한 발견인 '노동 분업'(the division of labour)에 너무 많이 지배를 받아서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의 관념을 추구할 수가 없었다. (...)


    노동이 부의 원인이고 무위도식이 빈곤의 원인이라는 판단에 대해 언제나 다음과 같이 더 많은 질문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의 원인은 무엇이며, 무위도식의 원인은 무엇인가? (...)


    이 모든 관계에서 가장 많은 것이 그 개인이 성장하고 움직이는 사회의 상태에, 과학과 예술이 융성하느냐에, 공공 제도와 법률이 종교성 · 도덕성 · 지력 · 인신과 재산의 안전 · 자유와 권리를 낳느냐에, 민족 안에 물적 복지의 모든 요인들, 농업 ·제조업 · 상업이 고르고 조화롭게 성숙했느냐에, 민족의 세력이 개인들에게 복지 상태와 교양에서의 진보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 가며 보장해 주고 국내적 자연력을 그 전체 범위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해 줄 뿐 아니라 대외 무역과 식민지 보유를 통해 외국들의 자연력도 가져다 쓸 수 있게 할 만큼 충분히 크냐에 달려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런 힘들의 본성을 전체적으로 별로 인정하지 않아서, 권리와 질서를 관리하며 수업과 종교성, 과학과 예술 등을 돌보는 이들의 정신 노동의 생산성(productive character to the mental labours)을 한번도 시인하지 않았다. 그의 탐구는 물적 가치를 창출하는 인간 활동에 국한된다. (...)


    곧바로 그의 학설은 물질주의, 분권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점 더 깊이 침몰한다. 그가 '가치', '교환가치'의 관념에 지배를 받는 일 없이 '생산 역량'(productive power) 관념을 추구했더라면,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가치 이론 옆에 독립적인 생산 역량 이론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통찰에 도달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 상황(material circumstances)을 가지고 정신적 역량(mental forces)을 설명하는 잘못된 길로 빠졌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01-209


    그럼 리스트가 강조하는 정신 · 사회질서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로 여기에서 스미스와 달리, 리스트가 '제조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는 제조업이 발달할수록 노력 · 경쟁심 · 자유의 정신이 고양된다고 믿었습니다.


    셋째, 제조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다 vs. 제조업은 정신적 역량을 키워준다


    ▶ 애덤 스미스 :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애덤 스미스는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제조업은 정신적 역량을 키워준다


    이에 반해, 리스트는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7장-제26장에 걸쳐 제조업의 이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농사에서는 신체적 둔함, 옛 관습, 교양과 자유의 부족이 지배"하나, 제조업 국가에서는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이 존재한다고 비교합니다.


    제조업이 이러한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는 '제조업자들은 본질적으로 사회 안에서 활발히 교류를 하며 사업을 영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농업과는 달리 제조업은 다양한 능력과 숙련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제조업 국가에서 정신적 자질이 더 높게 평가됩니다.


    리스트는 제조업의 중요성을 간과한 애덤 스미스를 향해 "미활용된 자연력이 오직 제조업에 의해서만 소생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라고 비판합니다.


    아래의 원문을 읽어보도록 하죠.


    ● 제17장 제조업 역량과 인적 · 사회적 · 정치적 · 민족적 생산 역량


    투박한 농사에서는 정신적 활력 · 신체적 둔함, 옛 개념 ·관습, ·습관 · 행위 방식에 대한 고수, 교양 · 복지 · 그리고 자유의 부족이 지배한다. 반면에 정신적, 물질적 재화의 끊임없는 증식을 향한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은 제조업 국가 및 상업 국가의 특징이 된다. (...)


    농사를 영위하는 인구는 그 나라 전체에 흩어져 살며, 정신적 ∙ 물질적 교류에 관련해서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 그의 일이 그를 인간과의 교류에서 멀리 떼어 놓듯이, 그것은 또한 그 자체로 관습적인 운영에서도 조금의 정신 집중, 조금의 신체적 숙련만 요구한다. (..) 재산과 빈곤은 소박한 농업에서는 대대로 상속되며, 거의 모든 경쟁심에서 생겨나는 분발의 힘은 죽어 있다. (...)


    제조업자의 본성은 농업인의 본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제조업자들은 사업 운영에 의해 서로에게 이끌려서 사회 안에서, 그리고 사회를 통해서만, 교류 안에서, 그리고 교류를 통해서만 살아간다. (...) 그의 생존과 번영은 촌사람에게처럼 자연의 호의와 관습적 활동이 보장해 주지 않으며, 이 둘은 완전히 그의 통찰력과 활동에 달려 있다. (...) 그는 언제나 사고팔고 교환하고 거래해야 한다. 어디서나 그는 인간들, 변동 가능한 상황, 법령과 제조들과 관계해야 한다.


    제조업의 노동은 그 전체로 본다면, 첫눈에 밝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농업보다 비교도 안 되게 더 다채롭고 더 수준 높은 정신적 특성과 숙련을 성숙시키고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


    명백히 농업에 의해서는 같은 종류의 인성들만이, 오직 투박한 수작업의 실행에 신체적 힘과 끈기를 약간의 질서를 위한 감각과 결합하는 그런 인성들만이 소용되는 반면에, 제조업은 천 가지의 다양한 정신적 능력, 숙련 그리고 연습을 요한다. (...) 제조업 국가에서 정신적 자질은 농업국에서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높이 평가되는데, 농업국에서는 보통 인간들의 능력을 단지 그의 신체적 힘에 따라서만 측정한다. (...)


    사업 운영의 분업과 생산 역량의 연합 법칙은 반대로 저항할 수 없는힘을 가지고 다양한 제조업자들을 서로 모이게 한다. 마찰이 자연의 불꽃처럼 정신의 불꽃을 일으킨다. 그러나 정신적 마찰은 밀접한 공생이 있고, 빈번한 사업적, 과학적, 사회적, 시민적, 정치적 접촉이 있고 물자와 관념의 교류가 많은 곳에서만 있다. 


    인간이 동일한 장소에 더 많이 모여 살수록, 이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사업에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협력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사업이 이 개인들 각 사람의 지식, 안목, 교양을 많이 요구할수록, 자의성, 무법성, 억압과 불법적 월권행위가 이 모든 개인의 활동 및 행복의 목적과 덜 조화될수록 시민적 제도들은 더욱 완전하고, 자유의 정도는 더욱 높고, 스스로 교양을 쌓거나 타인의 교양에 협력할 기회는 더욱 많다. 그래서 어디서나 어느 시대나 자유와 문명을 도시들에서 출발한다, (...)


    그런 시대에는 제조업의 가치는 어느때보다도 더 정치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애덤 스미스는 민족 전체의, 그 민족의 물적 자본 총액을 늘리는 능력이 주로 미활용된 자연력들을 물적 자본으로, 가치 있는 도구이자 소득을 가져다주는 도구로 전환시킬 능력에 있다는 것, 그리고 농업 민족에게서 다량의 자연력이 놀면서 아니면 죽어서 누워 있어서, 오직 제조업에 의해서만 소생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는 제조업이 국내외 무역에, 그 민족의 문명과 세력에, 그리고 자주와 독립의 유지에, 그로부터 솟아나는 물적 재화를 취득할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82-320




    ※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그렇다면 이제 (애덤 스미스와 대비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생각하는 '제조업을 육성하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넷째, 무역보호로 제조업을 육성해야 하느냐(할 수 있느냐)를 둘러싼 관점의 차이 

    - 자유주의(liberalism) vs 국가개입주의(government intervention)


    ▶ 애덤 스미스 : 자유주의 사상


    앞서 말했듯이,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가난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며 당시 사회의 총자본이 효율적인 다른 곳에 쓰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스미스는 "외국상품의 수입 자유로 인해 국내 특정 제조업을 위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덜 심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나라로 수출되고 있는 국내 제조상품은 여전히 해외에서 팔릴 겁니다. 또한, 자유무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대다수 제조업은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각주:5].


    이처럼 애덤 스미스는 철저한 자유주의자 · 자유무역론자 였습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국가개입주의 사상


    프레드리히 리스트는, 애덤 스미스와는 달리, "정부는 개인 산업을 통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의 국부와 권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의무 또한 가지고 있다.[각주:6]"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유방임의 원칙은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데, 현실 속에서 그럴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국가권력이 그 자체로 무해한 교역을 민족의 최선이 되게 제한하고 규제하는 것은 정당화될 뿐 아니라 그럴 의무를 진다.[각주:7]"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보호관세(protective duty)를 통해 외국산 제조상품의 수입을 막고 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필요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관세부과로 수입상품의 가격이 올라 소비자(민족)의 부담이 커질 수 있으나, "미래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원문을 읽어보도록 하죠.


    ●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민족은 정신적 혹은 사회적 역량을 취득하기 위해 물적재화를 희생하고 여의어야 하며, 미래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


    보호관세가 초기에는 제조 상품을 등귀시킨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진실이고 아예 그 학파가 인정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온전한 제조업 역량의 향상을 이룰 능력을 부여받은 민족이 제조 상품을 외국에서 도입할 수 있는 것보다 국내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호관세에 의해 가치의 희생이 초래된다면, 이는 그 민족에게 비단 미래를 위해 무한히 더 큰 물적 재화의 총액만이 아니라 전쟁의 경우에 대비한 산업적 독립성도 확보해 주는 생산 역량의 취득에 의해 보상된다. 산업적 독립성 그리고 이로부터 자라나는 내부적 번영을 통해 민족은 대외 무역, 해운업의 확장 수단을 손에 넣으며, 문명을 증진하고, 국내의 제도들을 완성하고, 세력을 대외적으로 강화된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16쪽


    이때 "자유무역을 추진하면서 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수는 없느냐?" 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리스트는 부정적 입니다. 그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데 대한 이유와 동일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외국에게 자유경쟁으로 맞서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말그대로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과거로부터 축적된 생산과 자본의 축적 등의) 뒷받침을 받는 이 민족들이 나머지 모든 나라의 제조업에 말살의 전쟁을 선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른 민족들에서는 농업 진보에 따라 애덤 스미스가 표현하는 바와 같은 "자연스런 사물의 경과에서"(the natural course of things) 거대한 제조업과 공장들이 생겨난다거나, 혹은 전쟁에 의해 유발된 무역 중단에 따라" 자연스런 사물의 경과에서"(the natural course of things) 생겨난 그런 것들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데 대한 이유와 동일한 것이다. 


    상공업 패권을 쥔 (영국의) 공장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생 혹은 반밖에 장성하지 못한 공장들보다 앞서는 천 가지 장점을 가진다. (…)


    그러한 세력에 맞서 자유경쟁을 하면서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the natural course of things)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한 민족들은, 영국의 제조업 패권 밑에 영원히 굴복하는 상태에 있기로 결심하고 영국이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거나 다른 어디에서 들여오지 못하는 것만을 영국에서 조달하는 데 만족하려고 해도 헛수고일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412-413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애덤 스미스 간 관점 · 사상 · 철학의 극명한 대비


    •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금까지 살펴본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생각을 다시 되짚어 봅시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전인류의 후생을 총체적으로 평가했던 애덤 스미스와 달리, 개별 민족 경제(national economy)의 번영을 우선시 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이 각자 처한 상황 하에서 어떻게 부와 권력을 증대시켜야 하는지를 고민했죠.


    이때, 리스트가 보기에 국부의 원천은 단순한 분업을 통한 노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게 만드는 원인'인 정신적 역량 · 사회질서 등 이었습니다. 과학과 예술, 공공제도와 법률, 개인의 교양 등의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이 부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 역량을 키우게끔 만드는 산업이 바로 '제조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스미스는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며 사회의 총 자본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해만 불러온다고 여겼지만, 리스트는 제조업은 미활용된 자연력을 소생시키게 해주며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단호한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따라서 리스트는 보호관세를 통해 유치산업을 보호(infant industry protection)해야 하며, 외국과의 자유경쟁 속에서 국내 제조업이 발전할 수 없는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애덤 스미스와의 관점과 사상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를 통해 스미스를 비판해온 리스트는 '그 학파의 세 가지 주된 결함'(the system of the school suffers from three main defects)라고 언급하며 다시 한번 차이를 부각시킵니다.


    ●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그 학파의 체계는 앞의 장들에서 보여 주었듯이 세 가지 주된 결함으로 시달린다.


    첫째, 민족 정체성의 본성도 인정하지 않고 민족의 이익 충족도 고려하지 않는, 토대 없는 사해동포주의다.


    둘째로는 어디서나 주로 물건들의 교환가치를 염두에 두고, 민족의 정신적 ∙ 정치적 이익, 현재 ∙ 미래의 이익과 생산 역량은 고려하지 않는 죽은 유물론이다.


    셋째로는 조직 해체를 시키는 분파주의와 개인주의로서 이는 사회적 노동의 본성, 그리고 그 상위 결과들에서 역량들의 결합의 영향을 무시하여 근본적으로 오직 사적 산업만을, 그것이 특수한 민족 사회들로 분리되지 않았을 경우에 어떻게 사회와, 즉 전체 인류와 자유교역을 발달시키는지만을 묘사한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55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자유무역론을 완전히 거부했을까?


    , 이렇게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Free Trade)과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는 극과 극의 사상적 대립으로 보여집니다. 지금 이렇게 보면 꼭 둘 중 옳은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번글의 서두에서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냥 자유무역vs보호무역을 하면 될텐데 말이죠.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보호무역이 초래할 수 있는 폐해를 알고 있었습니다. 리스트는 "대외 경쟁을 완전히 배제하는 너무 높은 수입 관세는 이를 통해 제조업자들과 외국과의 경쟁이 배제되고, 무감각이 조장되므로 이를 부과하는 민족 자체에 해롭다."[각주:8]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게다가 리스트는 궁극적 목표로서 자유무역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모국인 독일이 영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나면 자유무역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과거 그 시점에 리스트가 자유무역을 비판했던 이유는 독일의 경제력이 자유무역을 시행할 '단계'(stages)가 아니었기 때문이며,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이 개별 민족국가들이 처한 산업발전 단계(stage of industrial development)를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유무역의 전제조건은 "후진적 민족들이 인위적 조치에 의해 영국 민족이 인위적으로 올려진 것과 같은 단계의 성숙에 올려"[각주:9]지는 것이며, 보호무역은 "다른 민족들보다 시간상으로 앞설 뿐인 민족과 대등하게 해 줄 유일한 수단인 한"[각주:10]에서만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보호체제는 여러 민족을 최대한 동일한 단계(equally well developed)에 올려놓은 뒤 궁극적으로 달성할 "진정한 무역 자유의 가장 중대한 촉진수단"[각주:11]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 간의 관점 · 사상 · 철학의 차이가 초래된 근본 원인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무역론과 유치산업보호론은 두 학자 간의 사상과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고, 사상과 철학의 차이는 '이미 발달된 제조업을 보유한채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인이 중요시한 것''영국에 뒤처진 후발산업국가로서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독일인이 중요시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독일인 리스트'에게는 개별 국가와 민족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는 민족경제학이 필요했으며, 경제발전을 위한 생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제조업을 육성해야 했고, 영국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당시로서는 자유경쟁이 아닌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타당했으며, 훗날 영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나면 다시 자유무역으로 돌아갈 구상을 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곳곳에 '산업발전 단계'(stage of industrial development)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경제적인 면에서 민족들이 5단계의 산업발전을 거친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원초적 야만시대. 둘째, 목축 시대. 셋째, 농업시대. 넷째, 농업·제조업 시대. 다섯째, 농업·제조업·상업 시대.


    그리고 산업발전 단계마다 필요한 무역정책은 다릅니다


    Ⅰ. 아직 농업이 발달하지 않아 제조업 육성에 신경쓸 필요가 없을 때에는 자유무역을 통해 농산물을 수출하고 제조 상품을 수입해야 합니다. 


    Ⅱ. 이제 농업이 많이 발달하여 제조업 육성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자유무역을 통한 외국 제조 상품 수입의 이점은 줄어듭니다. 이 단계에서는 보호무역을 통해 국내 유치 제조업을 보호해야 합니다. 


    Ⅲ. 그리고 제조업이 고도로 발달한다면 보호정책은 정당화 되지 않으며 자유무역으로 돌아가 무역의 이점을 살려야 합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유치산업보호 및 보호체제는 오직 두번째 단계에 있는 민족들에게만 정당화 된다는 의견을 명확히 밝힙니다. 


    만약 제조업 발달 이후에도 보호체제를 지속한다면 "해외 경쟁을 완전히 그리고 일거에 배제하고 보호해야할 민족을 타 민족들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한다면, 사해동포주의 경제학의 원칙에 충동할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주의해야 할 이익에도 충돌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보호 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에서만 정당화 될 뿐입니다. 외국 경제학자들이 유치산업보호론을 소개할 때 영문명을 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 즉 '유치산업을 위한 일시적 보호'로 주로 작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머릿속을 직접 읽어봅시다.


    ●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경제적인 면에서 민족들은 다음의 발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원초적 야만 시대, 목축 시대, 농업시대, 농업 ∙ 제조업 시대, 농업 ∙ 제조업 ∙ 상업 시대. (...) 


    농업이 덜 성숙했을수록, 그리고 대외 무역이 국내 농산물과 원재료를 타국의 제조 상품과 교환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거기서 그 민족이 아직 야만 상태에 빠져 있어 절대군주제 정부 형태와 입법을 더 많이 필요로 할수록, 자유무역은 즉 농산물 수출과 제조 상품 수입은 그 민족의 복지와 문명을 더욱더 촉진할 것이다. (...)


    반대로 한 민족의 농업, 산업 및 사회적, 정치적, 시민적 상태가 전반적으로 많이 발달해 있을수록, 그 민족은 국내 농산물과 원재료를 외국의 제조 상품과 교환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사회적 상태 개선을 위해 이익을 그만큼 덜 볼 것이며, 그 민족보다 우월한 외국의 제조업 역량의 성공적 경쟁에 의해 더욱더 큰 손해를 감수하게 될 것이다. (...)


    오직 후자의 민족들, 즉 제조업 역량을 배양하고 이를 통해 최고도의 문명과 교양, 물질적 복지와 정치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특성과 수단을 보유하는, 그러나 이미 더 선진화된 해외 제조업 역량의 경쟁에 의해 진보가 정체된 민족들에서만, 제조업 역량의 배양과 보호 목적을 위한 무역 규제는 정당화되며, 


    또한 그런 민족들에서 제조업 역량이 해외 경쟁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강화될 때까지만 정당화되며 그때부터는 국내 제조업 역량의 뿌리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정당화된다. (...)


    보호 체제는 해외 경쟁을 완전히 그리고 일거에 배제하고 보호해야할 민족을 타 민족들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한다면, 사해동포주의 경제학의 원칙에 충동할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주의해야 할 이익에도 충돌할 것이다. (...)


    천연산물과 원재료에 대한 자유무역의 제한이 제한을 가하는 민족에게도 크나큰 폐해를 가져온다는 것, 그리고 보호 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에서만 정당화된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모든 민족, 온 인류의 복지와 진보에 펼쳐지는 거대한 유익을 일으킬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59-271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리스트가 보기에 개별 국가들이 처한 단계(stages)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유무역의 이점만을 설파하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리스트는 "그 학파는 고도의 경제적 성숙에 도달한 민족들과 낮은 단계에 있는 민족들을 구별할 줄 모른다.[각주:12]"(The school recognises no distinction between nations which have attained a higher degree of economical development, and those which occupy a lower stage.) 라고 반복해서 비판을 가합니다. 


    이번 파트에서 계속 강조하지만, 리스트에 중요한 것은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industrial development)입니다. 그는 교조적인 보호무역주의자 혹은 유치산업보호론자가 아니었습니다. 되려 궁극적으로 자유무역을 추구했던 자입니다[각주:13].


    리스트는 역사로부터 배울 것(the Teachings of History)은 발전 단계에 따라 체제를 변경할 수 있고 또 변경해야 한다는 사실(may and must modify their systems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ir own progress) 이라고 재차 주장합니다. 


    ● 제 10장 역사의 가르침(the Teachings of History)

    (주 : 한국어판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서, 영어 원문[각주:14]을 본 후 제 방식대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끝으로, 역사는 최고도의 부와 생산 역량 달성에 필요한 자연적 자원을 갖춘 국가들이 그들의 발전단계에 따라 체제를 변경할 수 있고 또 변경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첫번째 단계에서,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고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더 앞선 민족과 자유무역을 채택해야 한다. 


    두번째 단계에서, 상업제한을 통해 제조업자, 어업, 해운업, 대외무역을 발전시켜야 한다. 


    세번째 단계에서, 부와 생산 역량의 최고도에 도달한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경쟁의 원리로 점진적으로 회귀하여, 농부들 제조업자들 상인들을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하고 이들이 달성한 우위를 유지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각주:15]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179




    ※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논쟁, 깊이있는 이해를 위한 물음


    이번글을 통해 살펴본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사상 · 철학 논쟁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자유무역이 옳다! vs. 보호무역이 옳다!"와 같은 1차원적 접근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지게끔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언제'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언제'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하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접근 방식은 무역정책을 집행할 '상황'(circumstances)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어떤 때에는 자유무역 정책이 옳으며, 또 다른 때에는 보호무역 정책이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리스트는 산업발전 단계를 상황의 구분으로 제시했고 이를 오늘날 개발도상국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거대한 단계의 구분보다는 좀 더 타당한 상황 구분이 필요합니다.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나


    자유무역 및 보호무역 정책을 상황에 따라 달리 구사할 수 있다면, '평상시'(normal)에 어떠한 정책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냐는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리스트의 주장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보호무역 · 선진국은 자유무역을 중심으로 하면 될 것 같지만, 앞서 말했듯이 리스트의 구분은 너무 거대합니다. 그의 구분을 그대로 따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내에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일이 없었을 겁니다.


    ▶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의 등장 ...


    새로운 물음에 논리적인 답을 말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생각을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좀 더 확장시켜주는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을 다음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4. 애덤 스미스를 주축으로 한 고전파 혹은 cosmopolitical economy를 의미 [본문으로]
    5.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4편 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제한, 570쪽, 비봉출판사 [본문으로]
    6. 프레드리히 리스트. 미국정치경제론, 경상대학교출판부, 33-34쪽, [본문으로]
    7.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4장 사경제학과 민족경제학(Private Economy and National Economy), 지만지, 245쪽 [본문으로]
    8.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서론, 21쪽 [본문으로]
    9.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9쪽 [본문으로]
    10.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3쪽 [본문으로]
    11.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3쪽 [본문으로]
    12.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4장 사경제학과 민족경제학, 251쪽 [본문으로]
    13. 이러한 평가는 Graham, 1923, Some Aspects of Protection Further Considered, QJE [본문으로]
    14. 진정한 원문은 독일어; [본문으로]
    15. Finally, history teaches us how nations which have been endowed by Nature with all resources which are requisite for the attainment of the highest grade of wealth and power, may and must—without on that account forfeiting the end in view—modify their systems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ir own progress: in the first stage, adopting free trade with more advanced nations as a means of raising themselves from a state of barbarism, and of making advances in agriculture; in the second stage, promoting the growth of manufactures, fisheries, navigation, and foreign trade by means of commercial restrictions; and in the last stage, after reaching the highest degree of wealth and power, by gradually reverting to the principle of free trade and of unrestricted competition in the home as well as in foreign markets, that so their agriculturists, manufacturers, and merchants may be preserved from indolence, and stimulated to retain the supremacy which they have acquired.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Posted at 2018. 8. 27. 01:28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의 본격적 시작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의 첫번째 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이야기했듯이, 자유무역을 둘러싼 비판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달라진 것은 과거에는 개발도상국 내에서 오늘날에는 주로 선진국 내에서 불만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과거 개발도상국이 직면했던 문제는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 입니다. 따라서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가 타당한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경제발전은 고민거리가 아닌) 오늘날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시장개방이 계층별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Income Distribution) 입니다. 선진국이 비교우위를 가졌던 산업을 신흥국 특히 중국이 뒤쫓아오고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을 둘러싼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도국과 선진국이 직면한 문제와 불만을 가지게 된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어찌됐든 모두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이로운 것인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의 어떤 논리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요.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이 개도국의 경제발전은 가로막는 이론일까요?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이 선진국의 소득분배를 방치하는 이론일까요?


    지금까지 4편의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글을 통해, ① '18세기 애덤 스미스로부터 자유무역 사상이 나오게 된 배경'[각주:1] · ② '19세기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세상에 내놓은 배경'[각주:2] ·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작동하는 원리'[각주:3] · ④ '무역의 이익을 결정하는 교역조건의 중요성'[각주:4]을 살펴보았고, 개별 글들의 마지막에서 [국제무역논쟁]의 논점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국제무역논쟁]의 논점을 다룰 겁니다. 앞서 보았던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시리즈는 과거와 오늘날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내에서 벌어져온 논쟁을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개발도상국이 잘못 이해했던(하고있는) 비교우위 논리


    왜 과거 개발도상국들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논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을까요? 앞서 경제발전이 시급했던 이들이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가 타당한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하였는데, 비교우위론이 무엇을 말하는 경제이론이기에 그런 것일까요?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론에 비판적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①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상호이득'(mutual gain)을 준다는 논리를 이해 못함

    약소국인 우리가 강대국인 선진국가와의 무역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개발도상국에게도 이익을 안겨다주는가

    -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작동 원리]


    : "약소국인 우리가 강대국인 선진국가와의 무역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외국에 상품을 판매하려면 다른 국가들보다 더 싸거나 더 좋은 물건을 생산해야 하는데, 능력이 부족한 개도국 생산자들은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의문은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비교우위론은 '국가의 절대적 생산성이 아니라 상대적인 생산성이 우위를 결정한다'고 말하며, '생산의 절대비용이 아닌 상대적 비용, 즉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이입니다.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자본 · 노동 등 생산요소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약소국에 비해 생산의 기회비용이 큰 상품이 존재하게 됩니다. 따라서 선진국 국내에서 제품을 만드는 게 절대적인 생산비용이 낮다고 할지라도, 기회비용 관점에서는 개도국의 상품을 수입해 오는 것이 더 저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약소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절대적인 생산비용은 높더라도 기회비용이 작은 상품이 존재하게 되고, 따라서 개발도상국 상품도 선진국에 수출을 할 수 있습니다. 


    ▶ 기회비용 관점에서 바라본 비교우위론 :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상대가격 관점에서 바라본 비교우위론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또한, 지난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시리즈를 통해 계속해서 강조했듯이, 서로 다른 국가들 간에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상품의 상대가격이 다르기 때문'(different relative price) 입니다. 생산의 기회비용이 다르면 상대가격도 달라지고, 이로 인해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도 무역이 이루어 집니다. 여기에 국력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역의 이익(gains from trade)은 '자급자족시 국내 가격과 국제무역시 세계시장 가격이 얼마나 다른가'가 결정합니다. 세계시장에 수출했을 때 받는 가격이 국내에 판매할때의 가격 보다 높을수록, 세계시장으로부터 수입했을 때 지불하는 가격이 국내에서 구매할때의 가격보다 낮을수록, 무역의 이익은 커집니다. 여기에서도 국력의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몇몇 상품을 제외하고는 개발도상국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에, (여러 나라 상품 가격의 가중평균으로 결정되는) 세계시장 가격은 개발도상국 가격과 차이가 클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무역의 이익은 선진국 보다는 개발도상국이 더 많이 누리게 될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서로 다른 상품 가격이 무역을 하는 이유와 무역의 이익을 결정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그럼에도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의 무역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개도국이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저생산성의 열위를 보완해주는 낮은 임금'(low wage) 입니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임금은 그들의 생산성 수준에 따라서 결정되는데, 개도국은 낮은 임금을 유지함으로써 저생산성 열위를 상쇄할 수 있습니다.  


    "그럼 선진국은 개도국의 저임금으로 인해 무역의 이익을 누리지 못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는데 그런 것도 아닙니다. 개도국의 저임금은 저생산성의 결과물입니다. 개도국의 낮은 임금은 비교우위를 유지하는 수준에서만 유지될 뿐입니다. 


    제가 말하고픈 것은 '개발도상국은 낮은 생산성에 맞추어 저임금을 유지함으로써 강대국에 대해 가지는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고', '선진국은 고임금을 가지고 있으나 생산성 수준도 그에 맞게 높기 때문에 개도국에 대해 가지는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으로 '상호이득'(mutual gain)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임금을 고려한 비교우위론 :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개도국 저임금 & 선진국 고임금 이지만, 양쪽 모두 무역을 통해 상호이득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

    - '19세기 영국'에 살던 리카도가 만든 비교우위론이 다른 상황에 놓인 국가에도 적용 가능한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과거 개발도상국들이 단순히 '국력이 강한 선진국과의 무역경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 이라고 생각한 것은 비교우위론을 잘못 이해한 결과물 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무역에 부정적이었던 그들의 태도는 모두 무지에서 나온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글부터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수확체감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무역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등장한 비교우위론. 다른 상황에 처한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나

    -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

    -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1817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를 통해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국제무역이론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비교우위론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제학계 내에서 '사실이면서 하찮지 않은 명제'(both true and non-trivial)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리카도가 살고 있던 상황과 비교우위론이 세상에 나온 배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 제6장 이윤에 대하여


    한 나라가 아무리 넓어도 토질이 메마르고 식량 수입이 금지되어 있으면, 최소한의 자본의 축적이라도 이윤율의 커다란 하락과 지대의 급속한 상승을 가져올 것이다. 반면에, 작지만 비옥한 나라는, 특히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 데이비드 리카도, 권기철 역, 1817,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136~137쪽


    ① 19세기 영국 - 수확체감 산업인 농업이 비교열위 · 수확체증 산업인 제조업이 비교우위


    ② 자유무역의 이점 - 수확체감 산업을 포기하고 수확체증산업에 특화하여 경제성장 달성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각주:5]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듯이, 19세기 영국에 살았던 리카도가 우려했던 것은 '토지 경작 확대에 따른 이윤율 저하' 였습니다.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열등한 토지도 개간해야 했는데, 경작지가 확대될수록 토지의 수확체감(diminishing return)으로 인해 지주(landlord)의 이익만 증가하고 자본가(farmer & manufacturer)의 이윤(profit)은 감소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자본축적(capital accumulation)의 동기가 저하되어 경제성장이 멈추게 될 가능성을 리카도는 우려하였습니다.[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


    이런 상황 속에서, 19세기 영국이 이윤율의 영구적 저하를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은 '곡물법 폐지를 통한 자유무역'[From Corn Law to Free Trade] 이었습니다.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자유롭게 수입해온다면 경작지를 확대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자본가의 이윤율도 하락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축적 동기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즉,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주장한 배경에는 19세기 영국의 비교열위가 수확체감산업인 농 · 비교우위가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 자유무역을 통해 수확체감산업인 농업부문을 포기하고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에 특화함으로써 경제성장 달성 가능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19세기 영국과는 다른 상황에 처한 국가도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으로 경제성장 및 생활수준 향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해, 만약 19세기 영국과는 정반대로, 비교열위가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이고 비교우위가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인 국가라면, 자유무역이 수확체감산업에 특화하게끔 만들어 경제성장을 방해하지 않을까요?


    이런 이유로 인하여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1920~30년대 호주 사례를 살펴보며,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이 생활수준 향상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경우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 영국과는 정반대 상황에 놓여있는 호주는 보호무역이 필요하다




    경제이론은 합리적추론의 기반이지만 일반적인 지침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엄밀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결과물은 항상 시간 및 공간의 상황에 달려있다. 고전 국제무역이론은 영국의 상황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각주:7] (...)

    (the precise and comparative results are always dependent upon circumstances of time and place. The classic theory of international trade has been derived from English circumstances.)


    계속 반복해서 말하자면, 규제를 하느냐 마느냐는 일반론에 의해서 결정되어서는 안되고 특정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보호무역을 하느냐 자유무역을 하느냐를 결정할 때는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인구증가 · 토지의 수확체감성 · 국제수요에 미치는 영향[각주:8]. (...)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From this point of view it appears that protection has been as beneficial to Australia as free trade has been to Great Britain.)


    - James Bristock Brigden, 1925, 'The Australian Tariff and The Standard of Living'


    호주 경제학자 James Bristock Brigden은 1925년 논문 <호주 관세와 생활수준>을 통해,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라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이후에 그는 호주 정부의 무역정책 입안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보호무역 기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1920~30년대 호주의 사례는 'The Australian Case for Protection' 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습니다.


    Brigden은 왜 당시 호주에게 보호무역정책, 정확히 말하면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부문에 대한 특화를 줄이고 수입관세 부과를 통해 비교열위를 가진 제조업을 키우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았을까요?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영국과 호주의 상황(circumstance)이 달랐다는 점에 있습니다. 호주는 영국과는 정반대로, 비교열위가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이고 비교우위가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인 국가입니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영국과는 달리, 비교열위가 수확체증산업이고 비교우위가 수확체감산업 이라는 점이 무역정책 결정에 있어 왜 중요한가?" Brigden이 보호무역정책을 옹호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 수확체감산업에 특화하면 소득분배는 악화되고 생활수준은 감소하고 만다


    수확체감(Diminishing Returns)이란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을 늘려나갈수록 새로 얻게되는 생산량의 크기가 줄어듦을 의미합니다. 일은 예전과 똑같이 하는데 돌아오는 건 갈수록 줄어드니, 무언가 좋지 않다는 걸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리카도도 '토지의 수확체감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무역을 주장했습니다. 투입되는 노동량은 동일한데 열등한 토지를 개간할수록 생산량은 줄어드니, 곡물 한 단위당 투하노동량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 결과, 곡물 가격은 비싸지고 노동자의 임금도 올라서 자본가의 이윤은 감소합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수확체감 → 투하노동 증가 → 곡물가격 상승 & 임금 증가' 논리는 19세기 가치 · 임금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리카도는 가치의 투하노동설 · 임금의 생계비설을 믿었습니다. 이는 현대 경제이론과는 다릅니다. (리카도 이론 참고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현대 경제이론에서는 새로 얻게되는 생산량의 크기가 감소하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몫도 당연히 줄어듭니다. 1인당 생산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임금도 하락합니다. 어찌됐든 수확체감성이 좋지 않다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호주 경제학자 Brigden이 우려한 것은 '호주가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산업(primary sector)에 특화하여 성장할수록 소득분배가 악화되고(deteriorated income distribution) · 생활수준이 감소(lower standard of living)'할 가능성 이었습니다.


    생활수준 감소를 불러오는 첫번째 경로는 1차 산업의 수확체감성 그 자체입니다. 무역의 결과 높은 가격을 받게 되어 소수 지주들의 이익은 증가하지만(raise the return to a few landowners), 1인당 생산량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다수 근로자의 임금이 감소합니다(shrink the wages of laborers)


    두번째 경로는 비교열위[제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 문제 입니다. 자유무역의 결과 시장이 개방되면 비교열위 부문은 경쟁력을 잃기 때문에 제조업 근로자들은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1차 산업은 갈수록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다른 근로자들을 흡수할 능력이 떨어집니다(difference in capacity to absorb labour). 결국 무역의 결과 제조업 근로자 상당수는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따라서 호주는 자유무역 이후 지주와 근로자 간 소득분배가 악화됩니다. 또한 동일한 생활수준(=1인당 소득)을 유지하려면 인구가 더 적어져야 하며, 만약 인구수준을 유지한다면 생활수준 하락은 불가피 합니다. (the evidence available does not support the contention that Australia could have maintained its present population at a higher standard of living under free trade.)




    ※ 1차산업 특화는 교역조건을 악화시킨다


    •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은 교역조건 악화를 초래

    •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자국 RS 이동은 세계시장 RS도 이동시켜 세계시장 가격을 변화시킴


    Birdgen이 걱정했던 또 다른 사항은 '호주가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산업에 특화하여 공급을 늘려나갈수록 세계시장 가격이 하락하여 교역조건이 악화(additional output would further aggravate the situation by adversely affecting Australia's terms of trade) '될 가능성 입니다.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을 통해 배운 이론처럼. 자국의 수출편향성장(export-biased growth)는 비교우위를 가졌던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을 증가시켜 교역조건을 악화시킵니다.


    이때 자국이 세계시장에 조그마한 영향만 미친다면 자국 수출상품의 상대공급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시장 상대공급곡선은 변동이 없지만, 자국의 공급에 따라 세계시장 내의 공급이 좌우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자국 내 상품 공급 증가에 따라 세계시장 공급도 크게 증가하여 세계시장 가격은 하락합니다.


    1920~21년 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상품 부문 세계공급물량에서 호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달했습니다. 따라서 호주가 비교우위에 입각하여 특화상품 생산을 늘려나갈수록 교역조건이 악화하여 국민소득이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맙니다(an increase in our supplies might have reduced the value received per unit of reduced volume per head, still further reducing income per head.) 




    ※ 영국의 자유무역과 호주의 보호무역은 수확체감 압력을 완화시켜줌

    - 호주 보호무역 효과 ① : 근로자 임금 증대를 통한 소득분배 문제 해결

    - 호주 보호무역 효과 ② : 교역조건 개선을 통해 국민 생활수준 향상


    영국, 미국과 호주가 처한 상황은 꽤나 다르다[각주:9]


    영국이 자유무역을 채택하였을 때 (...) 수확체증이윤을 가져다주는 제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확장시킬 능력이 됐었다. 영국이 실제로 포기한 보호는 수확체감산업인 농업부문 이었다. 농업은 소득을 감소시키고 제조업 자본가에게 해를 끼쳤었다. 자유무역은 수확체증산업 쪽으로 생산을 변화시켰다[각주:10]


    제조업 성장을 고려하면, 호주에게 자유무역은 영국과는 정반대의 영향을 끼친다[각주:11].  


    영국의 보호무역정책은 농업을 보호하고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의 확장을 방해하였다. 호주의 보호무역정책은 수확체감을 초래하는 농업 확장을 막아줄 것이다. 영국의 자유무역이 수확체감 압력을 완화시켜 높은 생활수준을 가능케 했다면, 호주의 보호무역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줄 것이다[각주:12]


    보호무역정책이 영국과 호주에서 서로 다른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이 관세 및 무역정책 시행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각주:13].    


    - James Bristock Brigden, 1925, 'The Australian Tariff and The Standard of Living'


    이처럼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호주에게 '소득분배 악화 · 생활수준 저하 · 교역조건 하락'을 가져다줍니다. 호주 출신 경제학자 Brigden은 당연히 "호주에게 필요한 건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 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Brigden은 "영국의 자유무역이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의 확장을 막았다면, 호주의 보호무역이 같은 역할을 할 것" 이라고 믿으며 실제로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비교열위인 제조업 부문 보호를 위해 수입관세(tariff)를 부과하는 무역정책이 어떻게 호주에게 이득을 안겨다줄 수 있을까요?


    ▶ 호주 보호무역 효과 ① : 근로자 임금 증대를 통한 소득분배 문제 해결


    보호무역의 첫번째 효과는 근로자 임금 증대를 통한 소득분배 문제 해결 입니다(the primary purpose of the tariff was to redistribute income)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수확체감산업은 갈수록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비교우위를 가진 1차산업에 특화를 해나갈수록 근로자 1인당 생산량 및 임금이 감소합니다. 이익을 얻는 것은 오직 소수의 지주들 뿐입니다. 


    따라서 1차산업에 특화를 하지 않고 보호무역을 통해 비교열위인 제조업 생산을 늘린다면, 정반대로 근로자 1인당 생산량 및 임금이 감소하지 않을 뿐더러 소수 지주의 이익도 줄어들기 때문에 소득분배 문제가 해결됩니다.   


    보호무역정책이 근로자, 특히 제조업 근로자 임금을 상승시키는 또 다른 경로는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본 블로그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경제학자 프강 스톨퍼(Wolfgang Stolper)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은 1941년 논문 <보호주의와 실질임금>(<Protection and Real Wages>)를 통해, 국제무역이 자본 · 노동 등 요소가격에 미치는 영향(the effects of international trade on absolute factor price)을 탐구했습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 '국가들마다 다른 기술수준(technology)으로 인해 상대적 생산성이 높은 상품은 수출하고[비교우위] 낮은 상품은 수입한다[비교열위]'고 말한다면, 헥셔-올린의 무역이론은 '국가들마다 다른 부존자원(endowment factor)으로 인해, 풍부한 요소가 집약된 상품은 수출하고[abundant factor intensity] 희귀한 요소가 집약된 상품은 수입한다[scarce factor intensity]'고 말합니다.


    시장개방은 수출상품 가격을 더 비싸게 만들고 수입상품 가격을 더 싸게 만들기 때문에[각주:14], 제무역의 결과 풍부한 생산요소는 가격이 상승하고 희귀한 생산요소는 가격이 하락합니다. 반대로 자급자족은 수출상품 가격을 다시 하락시키고 수입상품 가격을 비싸게 만들기 때문에, 보호무역은 풍부한 생산요소는 가격이 하락하고 희귀한 생산요소는 가격이 상승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톨퍼-새뮤얼슨 정리' 입니다. 


    호주의 경우 토지(land)가 풍부한 생산요소(abundant factor)이고 노동(labor)이 희귀한 생산요소(scarce factor)이기 때문에, 자유무역을 실시하면 토지의 가격(지대)이 상승하고 보호무역을 실시하면 노동의 가격(임금)이 상승합니다.


    따라서, 호주가 보호무역정책을 채택하게 되면 스톨퍼-새뮤얼슨 정리에 따라, 지대가 하락하고 근로자의 임금이 상승하게 되어 소득분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 호주 보호무역 효과 ② : 교역조건 개선을 통해 국민 생활수준 향상


    앞서 살펴본 보호무역 효과가 '소득 재분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보호무역은 교역조건 개선을 통해서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the improved terms of trade induced by the tariff would increase aggregate income).


    호주가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 · 철광석 등 1차 산업에 특화하여 공급을 늘려나갈수록 세계시장 가격이 하락하여 교역조건이 악화된다는 점은 이야기 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입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import tariff)이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통해 수입관세가 어떻게 교역조건 및 생활수준을 개선시키는지 살펴봅시다.


    • 호주와 외국의 '서로 다른 가격'이 무역을 만들어낸 모습

    • 녹색선 및 글자는 수입관세 부과 이후 달라진 무역 양상


    외국은 제조상품을 더 싸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수출하며, 호주는 제조상품을 비싸게 만들기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싼 가격에 수입을 해오고 있습니다. 세계시장 가격(=교역조건)은 두 국가 가격의 중간수준에서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때 호주가 수입관세를 t만큼 부과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상품을 수출하는 외국 생산자는 "호주에 판매할 때 받을 수 있는 가격이 우리나라에 파는 것보다 t만큼 비싸지 않는 한 수출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 결과, 호주 내에서 수입상품 판매 가격이 상승하고, 상품을 수출하는 외국 내에서는 호주와 t만큼 가격 차이가 나는 수준까지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서 초과 생산량(=수출 물량)을 조절할 겁니다.

    (참고 : 무역이 이루어지는 원리인 '서로 다른 가격'과 '초과 생산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따라서 제조상품을 수출하는 외국이 초과 생산량을 줄이고 수출 가격을 하락시킨 결과, 호주는 더 싼 가격에 제조상품을 일단 수입(=교역조건 개선)해오고, 호주 소비자들은 관세를 더하여 더 비싸진 가격에 수입품을 구매하게 됩니다.  

     

    • 호주가 제조상품에 수입관세를 부과한 결과, 외국이 제조상품을 수출하는 가격은 하락하고, 호주 내 제조상품 가격은 상승

    • 그 결과, 소비자 · 생산자 · 정부의 후생 손실 및 이득이 서로 달라지게 된다

    • 이때 교역조건 개선 이득도 고려해야 함


    그렇다면 수입관세 부과 이후, 호주 국민들의 후생은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호주 국민들을 소비자 · 생산자 · 정부로 구분해야 합니다.

    수입관세로 인해 호주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므로 후생 손실 -(a+b+c+d)을 봅니다. 반면, 호주 제조업 생산자들은 국내에서 판매할 때 받게 되는 가격이 상승하였으므로 후생 이득(a) 얻습니다. 정부는 관세를 통해 세금 수입을 늘리므로 역시 이득(c+e)을 얻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소비자 · 생산자 · 정부를 모두 고려한 후생변화는 -(b+d)+e 이고, 이를 후생손실로 표현하면 b+d-e 입니다. 만약 관세로 인한 가격 왜곡 손실을 나타내는 b+d의 크기가 e 보다 더 클 경우, 보호무역 정책은 호주 국민들의 후생을 감소시킵니다.

    그렇다면 e가 무엇일까요? e는 교역조건 개선을 통한 후생증가을 나타냅니다. 수입관세 부과 덕분에, 이전에 수입상품을 들여오던 금액(P무역)보다 더 싼 가격에 상품을 수입(P수출국가 관세 이후)해 올 수 있으므로, 가격하락분*수입량 즉 e만큼 후생을 증가합니다.

    따라서, 호주가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교역조건을 개선시키는만큼, 다르게 말해 수입 관세가 가격을 왜곡시켜 손실을 안겨다주는 크기(b+d)보다 교역조건 개선의 이득(e)이 더 크다면, 보호무역 정책은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 수입 관세는 가격을 왜곡시키는 단점과 교역조건을 개선시키는 장점이 있다

    • 따라서,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최적 관세율'(optimal tariff) 개념이 등장


    이처럼 수입 관세(import tariff)는 가격을 왜곡시켜 소비자 후생을 떨어뜨리는 단점과 교역조건을 개선하여 후생을 증가시키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최적 관세율'(optimal tariff)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윗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수입 관세율은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교역조건 개선의 이익이 더 커서 국민 후생을 증대시키고 최적 수준에서 국민 후생은 극대화 됩니다

    그러나 최적 수준을 넘어서는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 왜곡의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에 국민 후생은 감소합니다. 게다가 '외국 내에서는 호주와 t만큼 가격 차이가 나는 수준까지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서 초과 생산량(=수출 물량)을 조절'한다는 말은 곧 '교역량이 감소'(decline of trade volume)함을 뜻하기 때문에, 관세율이 게속해서 높아지면 언젠가는 무역이 없어지고 맙니다.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최적관세율이 얼마인지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우나, 어찌됐든 '수입관세를 활용한 보호무역 정책이 국민 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 The Australian Case for Protection이 국제무역이론과 논의에 미친 영향


    이번글에서 살펴본, 호주인 경제학자 J. B. Brigden의 주장은 'The Australian Case for Protection'라 불리우며 국제무역이론 발전과 논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과는 다른 호주의 상황에 주목한 그의 주장은 "비교우위론은 모든 국가에게 적용가능하며, 자유무역은 국민 전체의 후생을 증대시켜준다"라고 단순히 생각해왔던 사람들에게 생각할꺼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① 수확체감산업과 수확체증산업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19세기 영국인 데이비드 리카도가 곡물법 폐지와 자유무역을 주장한 이유는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1920년대 호주인 J. B. Brigden이 보호무역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 역시 수확체감산업인 농업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리카도와 Brigden 모두 수확체증산업인 제조업을 육성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 낯설지가 않습니다.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첫번째 글인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소개했다시피, 과거 개발도상국과 오늘날 선진국 모두 '제조업'(manufacturing)을 육성하거나 지키기 위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각주:15]는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중상주의자들'을 비판하였으나, 오늘날까지 '제조업으로 대표되는 수확체증산업'은 모든 나라들이 포기할 수 없는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국제무역논쟁]에서 '자유무역 혹은 보호무역 등 어떠한 무역정책이 수확체증산업에 이롭거나 해로운가'는 중요한 논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서, 개발도상국이든 선진국이든 수확체증산업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주장들이 나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② 무역과 시장개방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


    일부 사람들은 "자유무역주의자들은 소득분배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소득분배 문제에 무관심해 보이는 이유는, '자유무역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보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라고 생각하며 '시장개방으로 발생한 이득으로 손실을 보상해주면 된다' 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번글에서 살펴본 호주의 경우를 예로 들면, 시장개방으로 이익을 누리게 될 지주(landowner)들이 손해를 볼 근로자(laborers)에게 보상을 해준다면 문제가 없다는 게 자유무역주의자들의 사고방식 입니다.


    반면, Brigden은 소득분배 문제에 적극적으로 다가섰습니다. 보호무역 정책이 근로자 임금을 상승시켜 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를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사고방식 입니다. 


    Brigden의 이러한 생각은 1925년에 나왔는데, 당시에는 "보호무역이 호주 근로자들의 임금을 상승케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무역이 요소소득(factor's absolute income)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경제학계 내에서 합의된 이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Birgden이 촉발시킨 'The Australian Case for Protection' 이후에야 시장개방이 요소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로 위에서 짤막하게 소개한 스톨퍼-새뮤얼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가 1941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수입관세 부과가 비교열위에 투입된 생산요소의 가격을 상승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보호무역이 소득분배를 개선시킬 수도 있음을 드러내주었습니다.

    (사족 : 하지만 볼프강 스톨퍼와 폴 새뮤얼슨은 그럼에도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손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스톨퍼-새뮤얼슨 정리가 보호무역주의자들을 위한 정치적 무기로 쓰이는 것을 우려" 했습니다.)


    이처럼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사례는 '무역과 시장개방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을 경제학계 내에서 다시금 고조시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선진국] 편을 통해, 특히 오늘날 선진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역과 소득분배'를 둘러싼 논쟁을 자세히 다룰 계획입니다. 


    ③ 국제무역협정의 필요성이 대두됨


    앞서 살펴보았듯이, 호주는 수입관세 부과를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시킬 수도 있습니다. 호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적절한 관세를 부과하면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적절한 관세'가 얼마인지 찾는 건 매우 어렵지만, 어찌됐든 이론적으로나마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깨달은 모든 국가들이 너도나도 최적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서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수입관세는 '교역조건 개선을 통한 후생증가'도 가져다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역량 감소'(decline of trade volume)도 초래합니다.  "'외국 내에서는 호주와 t만큼 가격 차이가 나는 수준까지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서 초과 생산량(=수출 물량)을 조절'한다는 말은 곧 '교역량이 감소'(decline of trade volume)함을 뜻한다"는 문장을 앞서 제가 괜히 적은 것이 아닙니다.


    개별 국가들 입장에서는 '다른 모든 나라들이 자유무역을 지켜주는 가운데 나 혼자서만 최적관세를 부과한다면 최고의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모든 개별 국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너도나도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세계교역량이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임이론에서 널리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를 떠올리면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쉬울 겁니다.


    이러한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무역 기조를 개별 국가들만 믿고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이번글에서 '보호무역이 후생을 증가시켜줄 가능성'을 보긴 하였으나, 어찌됐든 일반론으로나마 자유무역은 '더 비싼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고 더 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게 함'으로써 후생을 극대화 시켜주는 정책[각주:16]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개별 국가들에게 무역정책을 믿고 맡기는 양자 무역협정(unilateral free trade) 보다는 GATT · WTO 등 범세계적인 무역협정(Multilateral Trade Agreement)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GATT · WTO의 등장배경과 역할, 그리고 오늘날 다시금 양자 무역협정인 FTA 등이 대두된 이유를 살펴보면 좋겠네요.




    ※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들


    이번글을 통해 개발도상국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에 대해 오해했던 이유 한 가지와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 한 가지를 각각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타당하든 타당하지 않든)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을 멀리하게 만들었던 다른 이유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비교우위에 특화하여 생산을 늘려나갈 때, 교역조건이 갈수록 악화되면 어떻게 하나

    -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정책이 오히려 교역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다

    - 석유 · 농산품 같은 1차 상품(raw material)을 생산하는 국가에게 비교우위론은 해롭다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1960~70년대 중남미 수입대체산업화]


    : 비교우위에 특화할수록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은 1920~30년대 호주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석유 · 농산품 같은 1차 상품(raw material)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들은 대부분 비교우위론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국가가 1960~70년대 중남미 국가들 입니다. 이들은 호주 보다도 더 무역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호주는 수입관세를 부과하긴 하였으나 여전히 대외지향적인 정책(outward-looking)을 유지하며 시장개방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은 아예 대내지향적인 정책(inward-looking)으로 돌아서며 무역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동시기 한국 · 대만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적절한 보호무역 정책을 쓰면서도 무역개방을 늘려나간 결과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으나, 중남미 국가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저개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글이 '자유무역 보다 좋은 결과를 안겨다줄 수 있는 보호무역'을 보여주었다면, 다음글은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 보호무역'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비교우위에 따라 특화해야 하는 산업은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가

    - 현재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이 아니라 다른 산업을 성장 시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 비교우위는 창출해낼 수 없는가

    - [유치산업보호론]


    : 19세기 영국은 제조업 부문이 비교우위가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이 없었으나, 호주와 같이 제조업을 키우고 싶으나 비교우위가 다른 산업에 있는 국가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왜 우리는 비교우위 산업이 제조업이 아닌가"


    이로 인해 현재의 비교우위에서 탈피하고 장기적으로 이득을 안겨줄 비교열위 산업을 인위적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세계 각국에서 벌어졌습니다. 대한민국 또한 예외가 아니었죠. 과거에 비교우위를 가졌던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탈피하기 위해 국가 주도의 정책 지원과 보호무역 정책이 시행됐었습니다. 이를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 라고 합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마치 "평생 현재의 비교우위 산업에만 특화하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에, 비교우위와 열위를 바꾸고 싶어하는 국가들은 유치산업보호론을 따르며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멀리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강력합니다.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이나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이라는 이름을 달고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서, 유치산업보호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 (참고문헌) 『Against the Tide : An Intellectual History of Free Trade』



    본 블로그 포스트 작성에는 J. B. Brigden의 1925년 논문 <The Australian Tariff and The Standard of Living>과 Wolfgang Stolper & Paul Samuelson의 1941년 논문 <Protection and Real Wages>이 큰 도움을 주었으나, 역시나 가장 큰 도움을 준 참고문헌은 국제무역이론 경제학자 Douglas Irwin이 1998년에 집필한 단행본 『Against the Tide : An Intellectual History of Free Trade』 임을 밝힙니다(단행본 아마존 링크).



    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6. ANU, 2006, GIBLIN'S PLATOON - The Trials and Triumphs of the Economist in Australian Public Life [본문으로]
    7. (The fundamental propositions of economic theory are the foundation of reasoning, but they can be only a general guide, while the precise and comparative results are always dependent upon circumstances of time and place. The classic theory of international trade has been derived from English circumstances.) [본문으로]
    8. The economy of regulation or of no regulation, it must be repeated, is never determined by generalisations, but is relative to particular circumstances. The economy of protection or free trade is relative to three very important circumstance to the growth of population, to diminishing returns, especially from land, and to the effects upon the equation of international demand. [본문으로]
    9. These circumstances are probably quite different in Great Britain, in the U.S.A. and in Australia, and very brief comparisons may be made to demonstrate the fact that differences do actually exist. [본문으로]
    10. When Great Britain adopted free trade, after the Napoleonic wars had completely established the predominance of British commerce abroad, and the estraordinary developments in its technique had placed British industry in 3 position of absolute supremacy, there were three main reasons which made the change overwhelmingly economic. Great Britain abandoned a complexity of taxes which had grown through war exigencies without any coherent trade policy at all. In the condition of foreign competition there was a vast field for expansion in manufactures, giving increasing returns and increasing profit. The only real protection that was abandoned was that to agriculture, which was a protection given to diminishing returns, reducing income and hampering manufactures. Free trade transferred production to a form giving increasing returns.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international equation, the expansion of manufactures was met by the abnormal expansions of primary production in new countries. It is only recently that any check has been made to the rate of these expansions. [본문으로]
    11. Free trade in Australia would have had the contrary effect, so far as it checked the growth of manufactures. [본문으로]
    12. Protection to agriculture in England would have prevented the advantage of manufacturing expansion, with its increasing return Protection in Australia may have prevented the disadvantages of agriculture expansion under conditions leading to diminishing returns. Free trade in England made for a higher standard of living; it relieved the pressure on English land and found work elsewhere for a growing population at a steadily rising standard of living. Protection in Australia may have achieved a similar result. [본문으로]
    13. This difference in the effect of regulation in the two countries is of prime importance in any consideration of their respective tariff policies, and of the merits of regulation. [본문으로]
    14. 이 원리가 이해 안되시는 분들은 이전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ttp://joohyeon.com/266)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http://joohyeon.com/267)을 꼭 읽으셔야 합니다. [본문으로]
    1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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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Posted at 2018. 7. 18. 23:29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자유무역을 비판해 온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머리말>

    표지에 왜 그렇게 화나고 사나운 표정의 사진을 썼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 이 책에서 우리는 절름거리는 미국을 이야기한다. 안타깝게도 좋은 말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은 표정, 기쁨보다 분노와 불만을 담은 표정을 찍은 사진을 쓰기로 했다. 지금 우리는 즐거운 상황에 처해 있지 않다.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모두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8장 여전히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이제 제조기업들이 바로 여기 미국에서 최선의 조건을 누릴 수 있도록 사업 환경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 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더 많은 제조공정을 미국으로 돌릴 수 있도록, 세제 혜택과 재정 지원을 제공하는 법이 필요하다. 특정 국가들이 툭하면 자국 화폐를 절하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우리는 홈팀이며, 우리 자신을 앞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른 나라에 빼앗긴 우리의 일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우호적인' 교역 파트너들과 더 나은 무역협정을 맺는 것에 있다. 우리는 중국, 일본, 멕시코 같은 나라들로부터 일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미국 소비자들이 만든 세계 최고의 시장을 너무 많은 방식으로 그냥 내주고 있다. (...)


    이제 나는 미국을 위해 싸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다시 위대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이기겠다는 의지와 과거처럼 '미국산' 배지를 명예롭게 만들겠다는 헌신뿐이다.


    - 도널드 트럼프, 2015, 『불구가 된 미국』(원제 : 『Crippled America』)




    ※ 자유무역을 둘러싼 트럼프와 경제학자들 간의 대립


    트럼프가 2016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민주당 8년 집권에 따른 피로감 · 힐러리에 대한 비토 · 백인들의 지지 등 여러가지를 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던 요인은 '자유무역 정책과 세계화에 대한 반감' 이었습니다. 트럼프는 대선 이전부터 현재의 무역체제, 특히 중국과의 무역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해 벌어졌던 Brexit에 이어 트럼프 당선이 현실화되자 경제학자들은 "전세계적으로 자유무역과 세계화 기조가 후퇴하고 보호무역 흐름이 도래하는거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말해온 공약을 하나둘 시행해 나갔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문제 삼았으며, 한국과의 FTA도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결정적으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문제삼으며, 대중국 수입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당황해하며 또한 분개했습니다. Gregory Mankiw[각주:1]부터 Paul Krugman[각주:2]까지 정치적이념과 전공에 상관없이[각주:3]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대외정책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 "자유무역이 생산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을 부여하며, 무역의 장기적인 이익이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보다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라는 물음에 대해, 약 95%의 설문 응답자(경제학자)가 동의(Agree)를 표했다.

    • IGM Economic Experts Panel - Free trade, 2016.03.22


    경제학자들에게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는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경제학자들의 주요 논지는 "무역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득이다. 무역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손해를 보상해주면 된다." 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태도가 문제(?)를 키웠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 (...) 


    경제학자들이 트럼프 승리를 초래하지 않았을 지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경제학자들이 세계화의 치어리더(globalization's cheerleaders)가 되지 않고 학계에서 훈련받은 태도를 견지했다면, 대중논쟁에 훨씬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20여년 전, 나는 『Has Globalization Gone Too Far?』를 출간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세계화에 대응하는 정부의 결연한 대응이 없다면, 너무 심한 세계화(too much globalization)는 사회분열을 심화시키고, 분배 문제를 초래하며, 국내 사회적합의를 악화시킬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주장은 이후 평범한 이야기가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지 않았고, 나의 책이 '야만인들의 탄약'(ammunition for the barbarians)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보호무역주의자들은 내 책의 주장을 세계화를 깍아내리고 자신들의 논지를 강화하는데 이용하였다. 


    경제학자 동료 중 한명은 나에게 이런 물음을 던졌다. "당신의 주장이 선동정치가 등에게 남용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나요?"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대중논쟁장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가로채질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학자들은 국제무역에 있어 한 가지 방향만 말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위험을 우려하는 주장에) 내포된 전제는 무역논쟁에 있어 야만인들이 한쪽편에 있다는 것이다. WTO체제나 무역협상에 불평하는 자는 보호무역주의자들이고, 지지하는 쪽은 항상 천사의 편이라는 말이다. (...)


    학자들이 공공논쟁에 참여할 때에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어왔다. 학자들은 무역의 이점을 말해야하며 세세한 사항은 깊이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흥미로운 상황을 초래한다. 학자들이 작업하는 무역의 정통모형은 분배효과를 말한다. 무역의 이점 반대편에는 특정 생산자나 근로자의 손실도 존재한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시장실패가 무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오랜기간 알아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경이로운 비교우위나 자유무역'(wonders of comparative advantage and free trade)을 앵무새처럼 말해왔다. NAFTA나 중국의 WTO 가입 등이 분배 문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분명해 졌음에도, 경제학자들은 분배 문제 우려를 축소(minimized distributional concerns)하고 총 무역 이익만을 강조했다(overstated the magnitude of aggregate gains from trade deals). (...) 국제무역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를 언급하기 꺼려하면서 경제학자들은 대중들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이에 따라 국제무역 반대자의 목소리만 더 강화되었다. (서문) (...)


    경제학자들이 좁은 이념에 빠진 이유는 경제학이론을 현실에 적용할 때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로 인해 초래된 노파심으로 인해 대중들에게는) 학계 내에서 이야기되는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하기 보다, 특정 이념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을 표하게 된다.


    나는 한 가지 실험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자가 경제학과 교수에게 전화해서 "X국가와 Y국가의 자유무역이 좋은 생각일까요?" 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응답을 할거다. 그런데 대학원 국제무역 수업에서 학생이 "자유무역은 좋은가요?" 라는 물음을 던지면 어떨까. 아마 앞선 사례와는 달리 자유무역이 좋다는 응답이 빨리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 교수들은 이런 물음을 학생에게 다시 던질거다. "학생이 말하는 '좋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리고 누구를 위해 좋은건가요?" "만약 여러 조건이 만족되고 있으며, 무역의 혜택을 받는 자에게 세금을 징수해서 손해를 보는 자에게 전달된다면 자유무역은 모두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거다. 그리고 수업이 더 진행되면 경제학 교수는 자유무역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지 않으며 다른 조건들에 달려있다는 말을 덧붙일 거다. (...)


    자유무역이 종종 자국의 분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논쟁 장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 그들은 또한 무역의 옹호자로 나설 기회도 잃고 만다. (118-123)


    - Dani Rodrik, 2018, 『Straight Talk On Trade』


    하버드대학교 소속 경제학자 Dani Rodrik은 2018년에 출간된 저서 『Straight Talk On Trade』를 통해, 대중논쟁에서 경제학자들이 보인 태도가 되려 자유무역 체제에 독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을 지지하지만 무역개방이 가져다주는 피해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학계 내에서는 '무역이 근로자 임금에 미치는 영향', '무역과 불균등의 관계' 등을 심도 깊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유무역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며, 앞으로 어떤 무역체제를 가져야할지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정작 대중논쟁장에서는 이러한 논지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자유무역이나 FTA협상 등이 경제와 일자리에 악영향을 가져다주는 것 아니냐고 문의하면, 학자들은 "자유무역은 전체적으로는 이득이다"라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사람들은 무역이 초래하는 실제적인 피해 때문에 고민하는데, 학자들은 앵무새처럼 원론적으로 좋은 말만 반복할 뿐이죠.


    왜 학자들은 학계와 대중논쟁장에서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Rodrik이 지적하듯이 '자유무역의 문제를 지적하는 논리가 보호무역주의자들에게 남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 입니다. 


    자유무역은 분명 특정계층에게 피해를 안겨다 줍니다. 그리고 경제학원론에서 배우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 피해를 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자유무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보호무역주의자들은 학자들의 논리를 비약시켜 "자유무역의 폐해는 주류 경제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무역장벽을 쌓아야한다."는 식의 주장을 합니다. 이건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비약입니다.


    •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책.....


    "대중논쟁장에서 자유무역을 비판한다고 해서, 보호무역주의자들이 이를 남용한다는 우려는 기우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서점에 가 보면 자유무역 논리를 설명하는 서적보다는 비난하는 책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류의 책들은 부제로 '경제학 교과서에서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나 '자유무역의 신화와 자본주의의 숨겨진 역사' 등을 달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던질 수 있는 물음은 "나는 자유무역 비판론자들의 주장이 타당해 보이는데, 왜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를 싫어하나?" 일겁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분명 자유무역의 한계와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보호무역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맥락과 초점이 다릅니다. 


    따라서,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의 흐름과 역사 그리고 오늘날 국제무역의 모습'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국제무역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기에 앞서, 한 가지 생각을 해봅시다. 오늘날 자유무역을 둘러싼 비판은 주로 선진국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이 불평하는 것은 같은 선진국과의 교역이 아니라 개발도상국과의 무역 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모습은 상당히 기묘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유무역을 비난해온 국가들은 주로 개발도상국 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개발도상국들은 "자유무역은 선진국이 개도국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 논리이다", "자유무역 혹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정책은 경제발전에 해가 된다"는 주장을 펴왔습니다. 1960~70년대 중남미국가는 종속이론을 말하며 선진국을 비난했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WTO나 G7 같은 세계적 회담이 열리는 장소에서는 세계화를 반대하는 진보 및 개도국 시민단체가 대규모로 모여서 반대집회를 가지곤 했습니다. 


    도대체 최근 자유무역 혹은 세계화 진행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을까요? 


    ▶ 과거 개발도상국이 직면했던 문제는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

    : 제조업과 산업화를 위한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가 타당한가


    개발도상국에게 중요한 건 경제발전 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무역정책을 선택해야 경제가 발전하는가"가 중요한 기준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는 문제가 많은 정책으로 보였습니다. 왜일까요?


    ① 비교우위에 대한 오해와 내재된 문제점

    → 비교우위 : 이제 막 경제발전을 시작한 국가가 선진국과 교역을 하면 경쟁에서 패배하여 시장을 내주지 않을까? 

    → 교역조건 : 개도국은 주로 원유 · 철광석 · 농산품 등 1차상품을 수출하는데, 수출을 증가시킬수록 국제시장에서 상품가격이 하락하니 교역증대는 오히려 손해 아닌가?  

    → 특화 : 비교우위 논리는 특화를 이야기 하는데, 그럼 개도국은 평생 부가가치가 낮은 상품만 생산해야 하나? 


    ② 산업화를 위한 제조업 육성의 필요성

    → 유치산업보호론 : 개도국은 산업화를 위한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보호무역 정책이 필요한 것 아닐까?


    남반구(South)에 주로 위치한 개발도상국은 원유 · 철광석 · 농산품 등 1차상품을 생산합니다. 이들은 산업화를 위해 제조업(Manufacturing)을 키우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비교우위론은 "제조업 육성을 하지말고 (현재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1차상품에 특화해라"고 지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원자재 수출 국가가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개방정책을 실시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몇몇 개발도상국은 아예 비교우위론을 배척하였고 개방정책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몇몇 국가는 비교우위와 자유무역 논리를 따르되 처한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받아들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두 부류의 개발도상국 간 경제발전 정도가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었고,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은 일단락 되는 듯 보였습니다.   


    ▶ 오늘날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시장개방'(Income Distribution)

    : 제조업 및 저임금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자유무역의 충격을 어떻게 완화해야 하는가


    그런데 2000년대 중후반이 되자 선진국 내에서 자유무역에 대한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주된 이유는 바로 '개방정책을 통해 경제발전에 성공한 개발도상국의 등장' 입니다. 특히 '중국의 부상'(China Shock)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과거 선진국의 주된 무역패턴은 '선진국 간 교역'(North-North) 이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야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게 중요할테지만, 선진국 입장에서 개도국과의 교역량은 미미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신흥국이 부상하면서 '선진국과 신흥국 간 교역'(North-South)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선진국이 비교우위를 가졌던 산업을 신흥국이 뒤쫓아오자, 선진국 내에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을 둘러싼 의구심이 증폭되었습니다. 


    ① 중상주의적 사고방식

    → 무역수지 적자 :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나날히 커져가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하나? 


    ② 비교우위에 대한 오해와 내재된 문제점

    → 비교우위 : 저임금 국가와 교역을 하면 값싼 상품에 밀려 시장경쟁에서 패배하지 않을까?

    → 교역조건 :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이 수출해오던 상품을 생산·수출하기 시작하면 무역의 이익이 사라지지 않을까?

    → 무역의 이익 배분 : (개도국의 경제성장으로) 비교열위에 처하게 된 산업 및 근로자에게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나?

    →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 : 신생 기업과 산업이 퇴출 기업과 산업을 재빨리 대체할 수 있나?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가 다른 일자리를 재빨리 구할 수 있나?


    ③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조업 보호의 필요성 & 고부가가치 첨단산업 보호의 필요성

    → 보호무역 정책의 필요성 : 신흥국 제조업 부상으로 인해 미국 제조업이 보유한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는데 이를 방치해야 하나?

    → 지적재산권 준수 요구 : 중국이 지적재산권 협약 및 국제무역협정을 위반한 채 불공정무역을 하게끔 내버려두어도 괜찮은가?



    과거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을 고민했다면, 이미 경제수준이 높은 선진국의 고민은 '무역의 충격이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는 현실'(Income Distribution) 입니다. 신흥국의 부상으로 비교열위 상황이 된 산업과 근로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신흥국 신생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쳐질 우려가 생긴 기업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을 복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주된 고민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중국과의 경쟁때문에 제조업이 몰락한 러스트 벨트에서의 득표'를 꼽는 이유와 '2018년 현재 중국과 무역마찰을 벌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과거 개발도상국과 오늘날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국제무역논쟁의 주요 논점들 정리


    다시 한번 말하자면, 과거 개발도상국은 경제발전(Economic Development)을 오늘날 선진국은 무역의 이익 분배(Income Distribution)를, 즉 서로 다른 초점을 가진채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무역논쟁]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논점을 머릿속에 정리해봅시다.


    중상주의적 사고방식 -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것이 옳다

    →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자유무역'을 세상에 내놓은 배경을 이해해야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 4월 4일자 트윗
    • "우리는 지금 중국과 무역 전쟁을 펼치고 있지 않다. 그 전쟁은 멍청하고 무능력한 전임 대통령 때문에 수년전에 패배했다. 우리는 지금 매년 5천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가지게 되었으며, 3천억 달러의 지적재산권을 도둑질 당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계속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트럼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타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결과물이 무역수지 적자'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를 통해 두 차례 지적한 바 있습니다. (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무역수지 혹은 경상수지에 관해 논란이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776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중상주의 사상을 비판한지 250년 가까이 되었으나 중상주의의 망령은 여전히 떠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부론』에 나타난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을 겁니다. 


    비교우위에 대한 오해 및 내재된 문제점

    → 데이비드 리카도가 『원리』를 통해 '비교우위'를 세상에 내놓은 배경을 이해해야

    → 비교우위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올바로 깨달아야

    → 비교우위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을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는 아마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켜온 경제이론 일겁니다. 경제학자들은 비교우위론을 가장 위대한 경제이론으로 꼽고 있으나, 수많은 비전공자들에게 비교우위는 문제가 많아 보이는 주장일 뿐입니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벌어진 [국제무역논쟁]의 상당수가 '비교우위'를 중심으로 벌어져왔다는 점이 이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리카도의 『원리』를 통해, 비교우위론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과 함의를 알아보고, 비교우위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국제무역논쟁]을 살펴볼 겁니다.


    제조업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 산업화와 제조업 육성을 동일시한 개발도상국의 관점

    → 제조업 일자리를 바라보는 선진국의 관점

    → 오늘날 세계경제에서 제조업이 보여주는 패턴과 선진국 제조업 감소의 원인을 이해해야


    • 왼쪽 : 1993~2016년, 전세계 제조업 수출액 중 중국 제조업 수출액 비중. 1993년 3%에 불과했으나 2016년 18%에 달한다. (출처 : World Bank, World Development Indicator)

    • 오른쪽 : 1993~2016년,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수와 고용비중. (출처 : BLS Employment Situation)


    : 과거와 오늘날의 국제무역논쟁을 살펴보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은 결국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목적으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를 배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제조업을 '산업화'와 동일시하고 있으며, 선진국은 제조업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경제발전 전략으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을 채택하면 (비교우위 산업에만 특화해야 하기 때문에) 제조업을 육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오늘날 선진국 제조업 감소 요인 중에서 국제무역이 차지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요? 더 나아가서, 거시경제와 일자리에서 제조업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바라보는 제조업을 알아본 뒤, [further issue]로 '제조업' 그 자체에 대해 깊게 공부해봅시다.   




    ※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소개


    자,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3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읽어나갈 겁니다. 시리즈의 큰 틀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무역이론 Revisited]를 통해,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주장한 '자유무역'과 '비교우위' 사상적 배경과 이론의 발달과정 알아보기


    [국제무역논쟁 - 개발도상국]을 통해, 과거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과 비교우위에 대해 가졌던 오해와 생각 그리고 비교우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알아보기 


    [국제무역논쟁 - 선진국]을 통해, 달라진 세계화 모습과 신흥국의 부상이 선진국 산업 · 일자리 · 임금에 미친 영향 알아보기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 과거 [국제무역이론] 시리즈를 보완

    - 자유무역 사상 및 비교우위 이론의 등장배경과 발전과정


    2015년에 6편의 글을 통해 [국제무역이론]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국제무역이론 ⑥] 3세대 국제무역이론 -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는 국제무역)


    : 새로 작성될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시리즈는 ①'『국부론』에 나타나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 ②③'『원리』에 등장한 리카도의 곡물법 논쟁과 비교우위론', ④'호주 보호무역 사례가 촉발시킨 비교우위 문제점 및 무역의 이익 배분 문제'를 다룰 겁니다. 


    여기서는 2015년 시리즈처럼 단순히 무역이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유무역 사상과 비교우위 이론이 나왔는지", "스미스와 리카도는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것이 오늘날 자유무역 및 보호무역 사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는 게 목적입니다. 즉, 중요한 것은 단순한 과거의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 [국제무역논쟁 - 개발도상국]  

    - 교역조건의 중요성

    - 유치산업보호론 / 비교우위에 입각한 특화는 영원히 고착화되나

    - 서로 다른 전략을 채택했던 개도국의 상반된 결과물


    : [개도국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에서는 이번글에서 짧게 소개했던 '과거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과 비교우위에 가졌던 오해'를 다룰 겁니다. 이 과정에서 왜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를 옹호하는지, 주류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비교우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왜 비교우위를 비판하며 무작정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일부 집필가들의 서적이 잘못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 [국제무역논쟁 - 선진국]

    - China Shock

    - 무역으로 피해를 본 산업, 기업, 근로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나


    : [선진국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는 본격적으로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이슈를 다룹니다. '중국의 부상이 선진국에 미친 영향',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원인과 영향' 등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을 좀 더 깊게 알 수 있습니다.



    1. 'Why Economists Are Worried About International Trade'. NYT. 2018.02.16 [본문으로]
    2. 'Oh, What a Stupid Trade War (Very Slightly Wonkish)'. NYT. 2018.05.31 [본문으로]
    3. Mankiw는 공화당 지지자, Krugman은 민주당 지지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또한 Mankiw는 거시경제, Krugman은 국제무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합니다. (맨큐의 경제학의 그 맨큐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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