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Posted at 2013. 10. 23. 21:15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전 포스팅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를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생긴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 원인으로 이어졌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이전에, 외환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1997년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이 어떠했는지, 어떤 요인이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였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 외환위기란 무엇인가?


국제금융센터가 발간<Ⅱ. 외환위기의 개념 및 이론적 모델>에 따르면, 외환위기(Currency Crisis)란 "특정 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여 해당국 정부가 대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사용하거나 금리 인상 등을 통해 환율을 방어하는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가 전년도보다 10% 이상 하락하고 당해 연도에 25% 이상 급락한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외채위기(Debt Crisis)란 "특정국이 공공부문 혹은 민간부문의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채무불이행 상태"를 뜻한다.


또한, 은행위기(Banking Crisis)란 "실제적 혹은 잠재적 은행 파산으로 은행들이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해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대규모로 개입하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대규모 부실채권 · 뱅크런 등으로 인해 은행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다.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는 외환위기 · 은행위기보다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데 "금융시장이 심각한 붕괴에 있는 상태 · 위기의 확산으로 금융시장의 효율적인 중개기능이 손상되어 실물경제에 대규모 부정적 효과 파급"하는 상태를 뜻한다. 


외환위기(Currency Crisis)와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는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고 선후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당국의 금융시스템이 마비되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시에 자본을 회수할 경우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여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경우 · 은행부채의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로 되어있는 경우[각주:1], 해당국 통화가치 급락하면 은행 경영사태가 급속히 악화[각주:2] [각주:3]되는데 이에 따라 금융위기로 커지는 경우.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 · 외채위기 · 은행위기 · 체계적 금융위기 모든 것을 겪었다.

1997년 한국경제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1997년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 - 고평가된 통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시장 개방이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경제에서 금융은 자원배분을 위한 통제의 대상이었다.게다가 외국인에게는 증권시장 투자한도가 제한되어 있었고 외국은행의 국내지점 설립에도 규제가 있었다. 한국은 1990년 2월부터 열린 한·미 금융정책회의(FPT, Financial Policy Talking)을 통해 금융시장 개방에 나선다.



  • 출처 :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30
  • 이 표는 자본시장개방 협상대비를 위하여 재정경제원 국제금융국이 만든 계획표(Blue Print) 이다. 
  • 실제 3단계 장기계획은 1993년 6월에 확정되었고, 첨부된 계획표와는 조금의 차이가 존재한다.


1990년 2월부터 열린 ·미 금융정책회의(FPT, Financial Policy Talking)는 한국의 환율과 금융시장의 개방을 협상하는 회의였다. (...) 1990년 두 번 열린 ·미 금융정책회의는 환율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금융자율화, 증권시장 개방, 외국은행 국내지점 규제철폐 등이 주요의제였고 콜 시장의 개방, 금리의 완전 자율화, 정책금융의 폐지 등으로 확대되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25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1995년 이후 엔화의 절하이다. 일본의 엔화는 엔고가 절정에 달하였던 1995년 4월 83.6엔/$에서부터 1996년 말에는 113.7엔/$ 까지 절하되어 약 36% 절하되었다. 


  • 1995년 4월~1996년 12월 간의 엔/달러 환율변동 추이. 1995년 5월을 기점으로 일본 엔화는 달러화대비 약 36% 평가절하 된다. 


이러한 자본시장개방일본 엔화의 평가절하원화가치를 적정수준보다 고평가 시켰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두열은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1998)을 통해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원화가치 고평가 현상을 지적한다.


원화의 고평가 문제는 한국의 '거시경제 전체에 대한 긴장도를 높인 가장 근본적인 요인' 이라고 할 수 있다. 대외부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격변수가 고평가됨에 따라 임금이 상승되고 임금상승에 대처하기 위한 시설재 투자가 증가하였으며 비교역재 부문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등 많은 거시변수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1995년과 1996년에 기업의 현금흐름을 대폭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수출부진이었고 (...) 수출물량이 증가하지 못한 주된 단기적인 원인은 당시 원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원화의 고평가는 1990년대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하여 1994년 이후 자본유입이 많아지게 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


명목환율 수준으로 계산하여 보면 원화가 가장 고평가된 시점인 1996년 5월 적정환율 수준은 982원/$ 이었으나 실제환율 수준은 780원/$ 수준으로 원화가 202원/$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원화의 고평가는 세계화 추진과 OECD 가입을 위하여 자본자유화를 조속히 추진해 나감에 따라 자본유입이 확대된 결과이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203-205


  • 1994년 1월~1997년 12월 간의 자본수지 계정. 1994년 이후 자본수지가 양(+)의 값을 갖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외환위기의 본격적인 발발시기인 1997년 10월 말 이전까지 원화가치의 고평가현상은 지속되었다. (1997년 10월 말부터 원화가치가 급락함에 따라 고평가현상이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달러화에 페그된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엔화가치가 절하됨에 따라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동반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최두열은 동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지적한다. 


"달러화에 대한 페그에 따른 문제점으로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게 되면 자국통화도 달러화와 함께 동반강세를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95년 5월 이후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절상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달러화의 엔화에 대한 강세에 따라 사실상 달러화에 페그된 동아시아 각국의 통화가 동반강세를 보이게 되어 엔화에 대해 고평가 되었으며, 이것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 하나의 요인"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60


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한국은 자유변동환율제도가 아닌 일일환율변동폭이 제한된 시장평균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 원화 또한 (완전히 달러화에 페그된 것은 아니었지만) 엔화 절하의 영향으로 1997년 이전까지 고평가된 통화가치를 유지하게 된다. 


  • 원/엔 환율추이. 일본 엔화의 절하에 따라, 한국 원화는 일본 엔화대비 고평가된다. 1994년 4월 100엔당 900원 수준이던 원화는 1996년 12월 100엔당 728원 수준까지 통화가치가 상승하였다. 


자본시장 개방과 일본 엔화의 절하로 인한 한국 원화가치의 고평가 현상. 그 결과는 1994년-1996년 3년간의 경상수지 적자, 특히나 1996년 -229억 달러 · GDP 대비 -4.75%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 원화가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가 초래하는 문제들


원화가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는 어떠한 문제를 초래할까? 먼저, 고평가된 통화가치의 문제, 특히나 정환율제도를 택한 상태에서 통화가치 고평가가 초래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앞서 살펴본것 처럼 한국 원화가치는 자본시장 개방과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로 인해 적정수준을 넘어서서 고평가 되어있다. 이것을 본 시장참가자들이 "적정수준을 넘어선 원화의 고평가는 지속불가능하다" 라고 생각을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다시 말해, 시장참가자들이 "곧 원화의 평가절하가 발생하게 될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시장참가자들간에 급격한 환율상승에 대한 예상이 우세하게 되는 그 순간, 자기실현적 투기공격(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각주:4]이 발생하게 되어 실제로 원화가치가 급락하게 된다. 


고평가된 통화가치가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1997년 당시 김만제 포항제철 회장은 강경식 경제부총리와의 만남에서 "환율이 고평가되고 있어, 환율상승을 예상한 투기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51)"[각주:5] 라는 우려를 전했다. 


최창규는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1998) 를 통해 기초적인 게임이론을 이용하여 '자기실현적 투기공격(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이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제2세대 투기적공격모형은 외환보유액의 부족 등으로 인해 기초경제여건이 ‘위기범위(crisis zone)’에 속하게 되는 경우 실제 외환위기의 발생여부는 앞으로의 환율에 대한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참가자들간에 급격한 환율상승에 대한 예상이 우세하면 실제로 환율급등이 초래되지만 환율이 계속 안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한 경우에는 환율상승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형에서는 외환위기가 자기실현적 투기공격의 양상을 띠게 되며9) 복수균형(multiple equilibria)이 가능하게 된다. 복수균형이라 함은 기초경제여건이 위기범위에 속하는 경우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에 따라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고 외환위기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두가지 가능성을 가리킨 것이다. (...)


이 모형에서는 외환당국과 거래자 A, B 등 세 경제주체가 있다고 가정한다.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에 쓸 수 있도록 일정한 외환(R)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두명의 거래자 A, B는 1회의 비협조적 게임(non-cooperative game)을 한다고 가정한다. 두명의 거래자는 각각 6만큼의 국내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외환당국의 보유외환을 사기 위하여 국내통화를 ‘매도’하거나 계속 ‘보유’하는 두가지의 전략을 펼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외환을 사거나 파는 데 따르는 거래비용은 1이라고 하자.


첫번째 게임에서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수준인 20이라고 가정되고 있다 (R=20). 이 경우에는 거래자 A와 B가 모두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보유외환을 사더라도 외환당국은 여전히 8만큼의 외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거래자 중 1인이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다른 1인은 매도하지 않을 경우 매도를 한 거래자는 1만큼의 비용이 들고 매도를 하지 않은 거래자는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 나쉬균형(Nash Equilibrium)은 거래자가 모두 매도를 하지 않는이다.


두번째 게임에서는 외환보유액이 매우 낮은 수준인 6이라고 가정되고 있다(R=6). 여기서는 거래자 2인중 어느 한 사람이 외환을 사기 위해 국내통화를 매도하는 경우에도 외환보유액은 모두 소진된다. 따라서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거나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외환당국이 보유외환으로 고정환율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50% 평가절하를 하게 된다고 가정하자. 거래자 2인중 어느 한사람만이라도 보유 국내통화를 모두 매각하여 외환을 사는 경우 중앙은행은 고정환율을 포기하고 50% 평가절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거래자는 국내통화기준으로 3만큼의 자본이득을 보고 거래비용 1을 지급하게 되므로 2만큼의 순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한편 거래자 2인이 동시에 각각 3만큼의 국내통화를 매도하여 외환을 매입하는 경우 두사람은 모두 각각 3/2만큼의 자본이득을 보게 되고 거래비용으로 1을 지급하게 되므로 1/2[=(3/2)-1]만큼의 순이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유일한 나쉬균형은 양거래자가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외환을 매입함으로써 고정환율이 붕괴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세번째 경우가 가장 흥미로운 경우이다. 여기서는 외환보유액이 중간정도 수준인 10이라고 가정되고 있다(R=10). 이 경우에는 어느 거래자 일방이 외환당국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전부 살 수는 없지만 거래자 2인이 모두 국내통화를 매도하는 경우에는 외환당국이 평가절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수익(pay-off)을 계산해보면 아래와 같다. 


어느 거래자 일방이 공격을 하고 상대방이 공격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외환당국이 보유외환으로 충분히 공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평가절하가 일어나지 않는다.격을 감행한 거래자는 1만큼의 비용만 지급하게 된다. 두 거래자가 동시에 공격을 하게 되면 전체 보유외환 10을 각각 5만큼씩 나눠서 사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50%만큼의 평가절하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두 사람은 국내통화기준으로 각각 5/2만큼씩 얻게 되는 반면 거래비용은 1이 되어 각각 3/2[=(5/2)-1]만큼의 이득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 게임에서는 2개의 나쉬균형이 생기게 된다. 하나의 균형은 양거래자가 모두 공격을 하는 경우에 생긴다. 이때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의 균형은 어느 거래자도 상대방이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경우에 생긴다. 이 때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투기적공격이 일어나면 고정환율이 붕괴되고 그렇지 않으면 고정환율이 유지된다는 의미에서 이들 균형에는 자기실현적 요소가 있게 된다.




최창규. 1998.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한국은행 조사부 「경제분석」 제4권 제2호 (1998. Ⅱ). 7-10 


그리고 금융경제학계의 권위자 Frederic Mishkin은 "고정환율제도가 문제를 심화시킨다" 라고 지적한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한 국가의 통화가치는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통화가치 고평가가 지속될수록 평가절하 압력을 계속해서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기적 공격으로 인해 통화가치가 한번 하락하기 시작하면 변동폭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Under a pegged exchange-rate regime, when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occurs, the decline in the value of the domestic currency is usually much larger, more rapid and more unanticipated than when a depreciation occurs under a floating exchange-rate regime.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또한, 원화가치 고평가에 이은 경상수지 적자도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한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될수록 외국 투자자들은 국가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각주:6] 에 의심을 품게 된다. 김인준·이영섭은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1998)에서 '경상수지 적자 →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된 외국 투자자 → 자본유출 → 통화가치 급락' 현상을 이야기한다.  


국가간 금리 격차가 존재할 경우 자본자유화는 양국간 금리격차를 줄이는 데 공헌할 것이다. 그렇지만 양국간 발전단계가 다르다면 자본이동에 따라 금리격차가 줄어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편의상 자본자유화는 이루어졌지만 금리는 원래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자유화가 이루어지면 자본은 이자율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 결과 이자율이 높은 국가의 경우 자본시장개방에 따라 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하락하고 경제가 활성화된다. (...)


이자율이 높은 나라로의 자본유입은 이 나라의 환율을 하락시키고 그 결과 가격경쟁력이 악화되어 경상수지가 적자로 될 것이다. 또한 자본유입에 따른 경기활성화도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한 요인이 될 것이다. 물론 어느 기간까지는 경상수지 적자가 자본유입으로 보전되기 때문에 이 나라 통화의 고평가 현상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환율의 고평가로 경상수지 적자가 상당기간 누적되면 외국 투자가들이 이 나라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 되고 자본을 회수해 나가려 할 것이다. 이때부터 고금리는 더 이상 자본유입의 유인이 되지 못하고 따라서 환율에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가 환율에 주로 영향을 끼치게 되고 경상수지 악화로 인해 환율은 상승할 것이다. 한편 환율상승에 따른 투자수익률 하락을 우려하여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려 함에 따라 환율은 더욱 더 상승할 뿐만 아니라 경기침체도 가속화될 것이다.


김인준·이영섭. 1998.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 . 『金融學會誌 Vol.3 No.2』 7-9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소속인 왕윤종 또한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2001)에서 '경상수지 적자 →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된 외국 투자자 → 자본유출 → 통화가치 급락' 현상을 말한다.


Over the period 1995-97, however, there was a series of adverse external shocks – particularly a trade-weighted appreciation of the region's currencies vis-à-vis the U.S. dollar, to which they were de facto pegged, rose against the Japanese yen, and a fall in the terms of trade for electronic-goods exporters. 


These shocks brought into question the sustainability of the currency pegs to the U.S. dollar, undermining the confidence of international investors in the region's prospects, and leading to a sudden withdrawal of their funds. 


As the currency pegs collapsed, the large stock of unhedged foreign currency denominated borrowings, undoubtedly fueled investors' new-found pessimism and the sense of market panic, making the crisis much more severe than it would otherwise have been.


왕윤종.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7


게다가 1996년에 기록한 '-229억 달러 · GDP 대비 -4.75%' 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외환유동성 자체를 크게 악화시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신인석은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를 통해 "환율절하 지연에 이은 96년에 기록된 대폭의 경상수지 적자가 잠재적인 외환유동성을 악화시켰다" 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외환유동성 악화는 1997년 12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인출사태(banking panic)'을 촉발시켜 외환보유고를 고갈시켰다.   




<표 8>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야기되기까지는 거시충격과 이에 대한 정책대응상의 오류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표가 보이듯이 단기외채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로의 자본유입이 증가한 것은 94년부터였으며 같은 시기 외환유동성은 점차 악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급격한 악화가 진행된 것은 지표 A에 의거할 때 명백히 96년이었고, 이는 물론 96년에 기록된 대폭의 경상수지적자에 기인한 변화였다. 그리고 96년의 경상수지적자는 교역조건 충격으로 요구되었던 환율절하를 정책당국이 지연시킨 결과였다고 평가되므로, 그만큼의 외환유동성 악화는 거시정책대응 미숙에 원인이 있었다고 하겠다.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31-32




※ 원화가치 고평가와 1994-1996년의 경상수지 적자를 막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신인석의 주장 중 눈여겨볼 대목은 "외환유동성 악화는 거시정책대응 미숙에 원인" 이다. 왜 당시 정책당국자들은 금융시장개방의 위험성을 간과했고, 원화가치의 절하를 지연시켰을까? 한국경제연구원의 허찬국은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2009) 보고서를 통해 "1990년대 당시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이 가져오는 파급효과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라고 비판한다. 


당시의 환율제도가 정책당국의 높은 결정력을 보장하는 약한 형태의 페그제(adjustable peg regime)였다고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외균형의 3년 연속 악화를 방치한 것은 의아한 일이라 하겠다. 지속되는 경상수지 적자 악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원화가치 절하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없었다.


한 가지 설명은 자본시장 개방 이후 해외자금의 유입이 가속화되는 그때까지 익숙하지 않았던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고도 성장기부터 대외교역 경험을 통해 환율이 수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자본시장 개방과 그에 따른 큰 규모의 국제적 자금이동에 따른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식이 낮았다고 보인다.


허찬국. 2009.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 『한국경제연구원』


1997년 당시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 국장을 맡았던 정덕구도 회고록 『외환위기 징비록』을 통해 "시장개방의 후유증을 간과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아쉬운 점은 시장 개방의 후유증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란 가치를 내걸고 적극적인 시장 개방에 나섰다. 그러나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비용이 뒤따른다. 시장 개방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은 구조조정 외에는 없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금융이나 기업 구조조정[각주:7]에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말았다. 재경원에서 끊임없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정책으로 추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성공하지 못했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96


정덕구는 연이어 원화가치 고평가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정부 정책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게 되면 정부는 또 다른 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정책이 남발되는 것이다. 환율정책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정부는 1996년 말 경상수지적자가 자꾸 늘어가자 한승수 부총리와 박영철 금융연구원장 등이 모여 원화가치 하락(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 상승)을 용인할 것인지를 깊이 논의했다.


그러나 원화가치를 하락시키는 일은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물가상승 우려와 함께 국내 금융기관의 외채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눌려온 것은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다.


원화가치가 고평가된 상태로 계속 가게 되면 시장참여자들은 "언젠가는 원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며 불안해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계기가 생길 경우 환율은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게 되는 것이다. 방안에 가스가 꽉 차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성냥불을 켜대면 폭발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111


김영삼정부 시절 관세청장 · 통상산업부 차관 · 재정경제원 차관을 역임한 강만수는 "원화가치 절하를 하지 못한 것이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라며 원화가치 고평가의 책임을 한국은행과 정치권에 돌린다[각주:8] [각주:9].


8% 단일관세율과 고평가된 환율이라는 최악의 정책조합(the worst policy mix)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수출을 포기해야 할 환율 수준에서 추진된 '뼈를 깎는' 노력은 경상수지 적자를 예상보다 4배나 많은 사상 최대인 237억 달러에 달하게 하여 우리경제의 뼈를 실제로 깎았다. 이러한 방향착오를 한 다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


1996년의 성장률은 내수증가가 기여했고 물가는 환율의 고평가와 수입증가가 기여한 것이었다. 1994년부터 3년간 경상수지는 물가와 성장률에 희생된 것이다. 대내균형을 위해 대외균형이 파괴된 것이다. 1996년은 물가를 희생해서라도 환율을 크게 올려 수출을 늘이고 수입을 억제했어야 했다. 


10%가 넘는 임금상승에서 가격경쟁력 상실을 보전할 수 있는 수단도 사실상 환율 뿐이었다. 매년 5% 정도의 절하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고임금으로 가격경쟁력이 상실되어가고 있는데 환율까지 평가절상 되었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


상반기에 경상수지가 연간목표를 넘어섰는데도 "원화가치의 가파른 하락으로 인해 외환시장이 출렁거리지는 않도록 하겠다"는 한국은행의 헛소리는 끊임없이 평가절상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중앙은행의 속성상 이해가 된다. 평가절상을 하는 만큼 다른 부분에서 통화를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이 중앙은행에는 있다. (...)


대내균형을 나타내는 물가안정은 중앙은행의 임무이고 표를 의식하는 것은 정치권의 속성이다. 정부는 대외균형을 유지할 의무가 있고 대내와 대외 균형이 상충할 때는 비난을 무릅쓰고 대외균형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경상수지가 감내하기 힘든 수준으로 악화될 때는 그렇다. (...)


최악의 두 정책이 동시에 조합됨으로써 1994년부터 국제수지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1996년 상반기에 벌써 연간 전망 적자를 넘어선 위기상황 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 경제가 위기로 치달아가는데 환율은 버려두고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호기를 부린 사람들은 우리를 슬프게 했고, 환율을 안정시킨다고 노력한 사람들의 빗나간 정책들은 우리를 절망케 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72-379




※ 원화가치 하락을 노린 헤지펀드 · 핫머니의 투기적공격이 1997 외환위기의 원인일까?


앞서 논의했던 것을 종합해보자. 금융시장개방과 일본 엔화의 절하는 원화가치의 고평가를 초래했고 이는 1994년-1996년, 특히나 1996년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만들어냈다. 적정수준을 넘어서 고평가된 원화가치를 본 시장참가자들은 "원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이는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을 유도했다. 경상수지 적자 또한 시장참가자들에게 "한국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의심을 품게해서 자본유출을 초래했다. 게다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한국경제의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야기되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이다.


여기서 구별해야 하는 건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투기적공격'이란 말을 들으면 통화가치 하락 그 자체에 대해 베팅한 뒤 환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을 떠올리기 쉽상이다[각주:10] [각주:11]. 그러나 1997년 당시,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 ·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외환보유고가 감소하긴 했지만,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이 원화가치 하락에 베팅한 뒤 환차익을 챙기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1997년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은 9월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 이라며 한국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에 대해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97년 7월 8일 태국, 금융위기에 몰리다


나-강경식-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태국과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외국인이 우리 원화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주식시장이 고작인데, 그나마 한도액이 정해져 있어서 원화의 대량 매매는 있을 수 없고 그 외에 외국인이 원화를 사용할 일은 전혀 없다. 심지어 채권조차 살 수 없다. 


세계적으로 하루에 거래되는 달러의 양은 1조 6천억 달러로 무역 등 실물거래 규모는 500억 달러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투기성 자금인 것이다. 세계 중앙은행 보유고 총액이 1조 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만큼은 이런 투기자금이 전혀 들락거리지 못한다. 전부 실제 거래되는 달러뿐이다. 금융 또한 해외에 개방이 안 되어 있어서 외국의 동향에 휘말릴 걱정이 없다. (...)


97년 9월 8일 태국과 한국은 다르다


무엇보다 태국은 역외 금융시장을 육성한다는 명분 하에 금융시장이 완전개방되어 있어 헤지 펀드(hedge fund) 등 단기 투기성 자금의 유입이 용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증권시장 일부만 개방되었을 뿐,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견해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식이었다. 이날 토론에서도 한국과 태국이 다르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279-281     


강경식의 판단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신인석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발발한 "1997년 11월달 외환보유고 감소의 주된 요인은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이 아니라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 이었다.




<표 7>에서 환율요인에 따른 외환수요의 증가분을 가장 넓은 기준의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의 지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에는 경상수지적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과 포함된 것의 두 가지 투기적 공격지표를 계산하여 놓았다. 두 지표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11월중 투기적 공격은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의 14~20%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상수지적자까지 감안한 광의의 투기적 공격 지표에 의거하면 9~11월중의 환율에 따른 외환수요요인은 1~3월에도 미달하는 규모였다. 


두 기간의  차이와 11월 외환위기를 낳은 것은 환위험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고 따라서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볼 수 없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의 존재여부[각주:12] 였음은 <표 7>에서 명백하다.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26-27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지만, 고평가된 원화가치 그 자체에 대한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의 투기적 공격은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 그렇다면 과연 어떤 요인이 한국경제에 외환위기를 가져온 것일까? 신인석이 주장하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이야기했던 것을 다시 가져와보자. 


이전 포스팅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를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생긴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 원인으로 이어졌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이야기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란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 저해 · 제2금융권 팽창 · 은행과 기업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 잠재적 부실채권 증가 · 재벌에 경제력 집중 · 재벌의 과다차입' 를 뜻한다.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요인이 어떻게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를 촉발시켰는지, 다음 포스팅에서 그 경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1편 참고자료 >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국제금융센터 <Ⅱ. 외환위기의 개념 및 이론적 모델>.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2012.10.19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최창규. 1998.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한국은행 조사부 「경제분석」 제4권 제2호 (1998. Ⅱ).


김인준·이영섭. 1998.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 . 『金融學會誌 Vol.3 No.2』


Wang Yunjong.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허찬국. 2009.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 『한국경제연구원』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1. 신흥국은 특성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경제학자 Barry Eichengreen은 이를 '신흥국의 원죄 Original Sin'로 표현했다.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http://joohyeon.com/113 [본문으로]
  2.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은행부채의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로 되어있을 때,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여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키는 것'을 '신흥국 대차대조표 위기 Balance Sheet Crisis'라 불렀다. │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 이에 대해서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3. 이러한 현상은 신흥국의 외환위기를 체계적 금융위기로 심화시킨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보통 금리를 올림으로써 통화가치를 상승케 하는데, 금리를 인상할 경우 은행의 부채부담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 그러나 신흥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가치는 더욱 커지게 되고 기업과 은행의 부채부담을 증가시킨다. 그 결과, 은행은 고객들의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하게 되고 금융시스템 자체가 마비된다. 금융경제학 권위자인 Frederic Mishkin은 논문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1999)를 통해 "A currency crisis and the subsequent devaluation then helps trigger a full-fledged financial cris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because of two key features of debt contract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debt contracts both have very short duration and are often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These features of debt contracts generate three mechanisms through which a currency crisi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ncreases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in credit markets, thereby causing a financial crisis to occur." 라고 말한다. │ 이에 대해서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4. 경제학에서는 금융위기 원인의 2세대 모델로서 '자기실현적 투기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을 다루고 있다.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5.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51 [본문으로]
  6. 경제학계에서는 금융위기 원인의 1세대 모델로서,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악화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통화가치가 급락' 을 다루고 있다.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7. 여기서 말하는 금융, 기업구조조정은 단순히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감독기능 강화, 대출시 엄격한 신용평가, 기업의 과다차입 방지 등등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태어난 구조적인 문제를 고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룬다. [본문으로]
  8. 김영상정부 시절 경제부처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그가 이러한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강만수, 강경식 등 경제고위관료들은 회고록 등을 통해 1997 외환위기의 책임을 "한국은행"에 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은 "금융개혁법안"과 "환율관리"를 놓고 치열한 갈등관계 였기 때문인데, 그렇다고해서 고위경제관료들이 외환위기의 책임을 한국은행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본문으로]
  9.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인해 일본의 엔화가치가 강제로 절상된 것을 지켜봤던 강만수는 "환율관리는 주권행사"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환율 정책만이 경제를 유지시킨다고 생각했는데, 이명박정부 집권 이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고환율 정책을 밀어부친다. 당시 강만수의 고환율정책은 물가인상 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
  10.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 파운드화 가치하락에 베팅한 George Soros를 들 수 있다. [본문으로]
  11. 물론, 금융위기 2세대 모델인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은 단순히 '헤지펀드, 핫머니 등이 통화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투기적 공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세대 모델이 강조하는건 '시장참가자들의 자기실현적 예측으로 인해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현상' 이다. 다만, 경제학 비전공자가 '투기적공격' 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헤지펀드, 핫머니 등만을 연상할 것 같은 노파심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본문으로]
  12.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이 보고서의 논평을 맡은 이영섭은 "<표7>의 해석에 대해서 논평자도 기본적으로 저자의 입장을 같이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이 반대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제시한 1997년 11월중의 대규모의 인출은 외환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투기적 공격 때문에 발생된 위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제채권단의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표7>을 보면 투기적 공격은 그 이전부터 발생하지만 채권인출은 11월에만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는 10월말 및 11월 초에 발생하기 시작한 위기에 대한 대응처럼 보일 수도 있다. <표7>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외환위기의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만일 외환위기의 시작을 11월 중하순(예를 들어, IMF 구제금융 신청일인 11월 21일)으로 잡으면 저자의 해석에 대해 반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작을 10월 하순(예를 들어, 기아사태처리 발표 및 홍콩증시 폭락이 발생한 10월 22~23일)으로 잡으면 이상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저자와 대립되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라고 지적한다. 본인도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점을 10월 하순으로 잡더라도, 이는 헤지펀드 등의 투기적공격이 아니라 1997년 동안 높았던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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