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외환위기 ⑤]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Posted at 2013. 11. 26. 15:35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1편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2편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2013.10.27

3편 -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2013.11.09

4편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2013.11.11


1997 외환위기에 대해 쓴 4편의 글을 통해, 당시 외환위기의 원인 · 발생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4편의 글은 주로 한국의 위기에 초점을 맞췄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뿐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등-이 외환위기를 겪게된 원인에 대해서 다룬다. 또한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이 경제학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 1997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자본계정의 위기' - 제3세대 모델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김대중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이규성의 주장이다. 이규성은 당시 아시아의 위기를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 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위기 당사국들은 자본자유화 확대 → 대규모 자본수지 흑자 → 환율의 고평가 속에 고성장 추구 →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과정을 거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과거 많은 나라들이 재정적자 확대 → 경상수지 적자 확대 → 자본수지 흑자 확대라는 경로를 걷다가 외환위기에 직면한 양상과는 현저히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시아의 위기는 경상수지의 중요성이 도외시된 채 진행된 자본자유화 과정에서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86-89


'자본유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자본계정의 위기' 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1997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위기 발생의 이론적모델[각주:1]은 두 가지였다. 바로,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문제가 있어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1세대 모델[각주:2]과 경제의 기초여건에 상관없이 경제주체들 사이의 자기실현적예언 Self-Fulfilling Effect 로 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2세대 모델[각주:3]이었다. 


1세대 모델은 1970-80년대 중남미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과도한 재정적자에 이은 높은 인플레이션율로 인해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이 손상된 상태였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를 부추겼다. 해당국가들 경제의 기초여건을 의심한 경제주체들은 통화가치 하락을 우려하여 자본을 급격히 회수하면서, 중남미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더더욱 하락했고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만다. 


2세대 모델은 1990년대 초반에 발생한 유럽 외환위기(EMS Crisis)를 설명하는 모델이다. 당시 유럽 몇몇 국가들은 유럽통화시스템(EMS, European Monetary System)[각주:4]을 만들어 유럽공동체 통화의 안정을 추구했다. 이런 와중에, 경제력이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통화가치 고평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경제사정 악화로 인해 기준금리를 내리는 확장적 통화정책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확장적 통화정책 시행가능성은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기대심리를 부추겼고, 투기세력들은 고평가된 유럽 각 통화들의 평가절하를 예상하고 투기적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에 상관없이, 통화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Effect 이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것이다.


그런데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1세대 · 2세대 모델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높았고 인플레이션 또한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한국 또한 199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8.8% · 8.9% · 7.2% 등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재정적자 또한 문제될 여지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고정환율제도 · 만기불일치 · 통화불일치'의 문제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발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자유화 Financial Liberalization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 1990년대 들어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자본유입이 급격히 증가 Surges of Capital Inflows 했다.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에서 살펴봤듯이, 한국 또한 금융자유화 시행 이후 막대한 양의 자본유입이 발생하면서 원화가치가 고평가되고 은행과 기업의 해외차입이 증가했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자유화 시행 이후에도 상당수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미국 달러화에 연계된 peg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한국 또한 환율변동폭이 상하 2.25%로 제한된 시장평균환율제도 crawling peg 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융자유화 이후 발생한 자본유입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손쉽게 해외차입을 늘릴 수 있었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해외차입금이 단기일 뿐더러 외국통화로 표기되었다는 점이다. 단기로 조달해온 자금을 장기로 운용하는 만기 불일치 Maturity Mismatch 와 자국통화 부채가 아닌 통화 불일치 Currency Mismatch 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자본유입이 갑자기 멈추고 Sudden Stops 자본흐름의 반전 Reversals of Capital Inflows 가 발생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급격한 자본유출 Disruptive Capital Outflows 이 일어나면서 통화가치는 하락하고 Currency Collapse, 외환보유고는 고갈되고 Reserve Depletion,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면서 Systemic Financial Crisis, 실물경제의 생산능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Output Losses.              


그렇다면 1997년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왜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왜 단기차입금을 들여왔으며, 왜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질 수 밖에 없었을까? 또한 자본유출이 발생하였을 때 그것을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1997 외환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한계-고정환율제도의 문제점, 만기 불일치 · 통화불일치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 동아시아 국가들의 태생적 한계 - ① 고정환율제도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보았듯이, 한국은 요소투입의 증가 increases in inputs 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국가가 금융자원을 통제하여 control over finance 특정산업에 자원을 몰아줌으로써 생산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뒤늦게 경제성장에 착수한 개발도상국들 또한 정책금융을 policy loans 통한 투입의 증가, 다르게 말해 투자 investment 를 통해 생산능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통화가 과도히 공급되어 만성적인 고인플레이션 high and variable inflation 이 발생하고 만다. 개발도상국들로서는 경제개발 단계에서 인플레이션 관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달성 그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관리에도 소홀히 하게 된다. 더군다나 중앙은행 등 통화기관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능력조차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손쉬운 해결책은 바로 고정환율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고정환율제도는 3가지 경로를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 


첫째로는 일종의 규율효과 discipline argument 이다. 인플레이션이 낮은 국가의 통화에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를 연동peg 한다면, 정부의 재정적자 · 민간의 임금과 가격결정이 유발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할 수 있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한 상황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쓴다면, 인하된 금리가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초래하여 고정환율제도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고정환율제도는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쓰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고정환율제도가 일종의 지켜야 할 규약 commitment 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The second major rationale for fixed rates is a belief that pegging to a low-inflation currency will help to restrain domestic inflation pressures, whether these originate in excessive government budget deficits or in the wage- and price-setting decisions of the private sector. This "discipline" argument comes in many forms, but the basic idea is simple: an announced policy of pegging the exchange rate may serve as a commitment technology allowing the government to resist and even forestall subsequent temptations to follow excessively expansionary macroeconomic policies.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4        

 

둘째로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하락이다. 고정환율제도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원래 인플레이션율이 낮았던) 기준국가 anchor country 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개발도상국에 이전됨으로써, 개발도상국 또한 낮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유지할 수 있다.


셋째로는 기준국가와의 통화정책 연동이다. 고정환율제도가 신뢰성 있게 유지되려면 기준국가와 개발도상국의 금리가 동등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개발도상국이 금리를 낮추기 위해 통화량을 증가시킨다면 (낮아진 금리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외환보유고는 감소한다. 이러한 과정은 국내통화공급의 연속적인 축소를 초래[각주:5]하고 금리와 통화공급량은 정상수준으로 돌아온다[각주:6].        


Fixing the value of an emerging-market's currency to that of a sounder currency, which is exactly what an exchange-rate peg involves, provides a nominal anchor for the economy that has several important benefits. 


First, the nominal anchor of an exchange-rate peg fixes the inflation rate for internationally traded goods, and thus directly contributes to keeping inflation under control. 


Second, if the exchange-rate peg is credible, it anchors inflation expectations in the emerging-market country to the inflation rate in the anchor country to whose currency it is pegged. The lower inflation expectations that then result bring the emerging-market country's inflation rate in line with that of the low-inflation, anchor country relatively quickly.


Another way to think of how the nominal anchor of an exchange- rate peg works to lower inflation expectations and actual inflation is to recognize that if there are no restrictions on capital movements, then a serious commitment to an exchange-rate peg means that the emerging-market country has in effect adopted the monetary policy of the anchor country. 


As long as the commitment to the peg is credible, the interest rate in the emerging-market country will be equal to that in the anchor country. Expansion of the money supply to obtain lower interest rates in the emerging-market country relative to that of the low-inflation country will only result in a capital outflow and loss of international reserves that will cause a subsequent contraction in the money supply, leaving both the money supply and interest rates at their original levels


Thus, another way of seeing why the nominal anchor of an exchange-rate peg lowers inflation expectations and thus keeps inflation under control in an emerging-market country is that the exchange-rate peg helps the emerging-market country inherit the credibility of the low-inflation, anchor country's monetary policy.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4


거기에 더하여, 고정환율제도는 개발도상국에게 또 다른 이점을 가져다준다. 바로 환율변동의 불확실성 제거이다. 고정환율제도로 인해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됨으로써 자본유입을 이끌게되고, 이는 생산적인 투자로 이어져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Another potential advantage of an exchange-rate peg is that by providing a more stable value of the currency, it might lower risk for foreign investors and thus encourage capital inflows which could stimulate growth.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5


(...)


The unpredictable volatility of a floating exchange rate, both from a short-term perspective and a long-term one, can inflict damage. Although the associated costs have not been quantified rigorously, many economists believe that exchange-rate uncertainty reduces international trade, discourages investment, and compounds the problems people face in insuring their human capital in incomplete asset markets. Furthermore, workers and firms hurt by protracted exchange-rate swings often demand import protection from their governments.


Much of the enthusiasm for monetary unification within the European Union (EU) stems from the belief that locked exchange rates maximize the gains from a unified market and that exchange-rate-induced shifts in competitiveness within the EU can undermine the political consensus for free intra-EU trade.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4        


고정환율제도가 가져다주는 이러한 이점들을 생각해봤을때, 상당수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었다.




※ 동아시아 국가들의 태생적 한계 - ②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단계에서 발생하는 만성적인 고인플레이션은 또다른 조건을 만들어낸다. 바로 개발도상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만기가 짧고 a debt structure of very short duration, 외국통화로 표기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각주:7] 된다는 점이다. 만성적인 고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개발도상국의 통화가치가 심한 변동을 겪는 상황에서, 장기채권과 개발도상국 통화로 표기된 채권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아무도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발도상국은 만기가 짧고, (통화가치가 안정된) 외국통화로 표기된 채권을 발행할 수 밖에 없었다.  


In contrast to the industrialized countries, many emerging-market countries have experienced very high and variable inflation rates, with the result that debt contracts are of very short duration. (12) (...)


There are two major institutional differences in the financial markets of industrialized countries versus emerging-market countries that imply different propagation mechanisms for financial instability. As mentioned earlier, in industrialized countries where inflation typically has been low and not very variable, many debt contracts are of long duration. Furthermore, because these industrialized countries typically retain a strong currency, most debt contracts are denominated in the domestic currency. 


In contrast, many emerging-market countries have had high and variable inflation rates in the past and so, long-term debt contracts are too riskyThe result has been a debt structure of very short duration. Given poor inflation performance, these countries also have domestic currencies that undergo substantial fluctuations in value and are thus very risky. To avoid this risk, many debt contracts in these countries are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18)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12-18


경제학자 Barry Eichengreen은 이러한 현상을 "신흥국의 원죄 The Original Sin" 이라 칭했다.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에서도 보았듯이, 1993년-1998년 기간 사이에 개발도상국이 보유한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denominated by its own currency 의 비중은 2.03% 불과했다.  


1998년 이후에도 신흥국의 원죄는 계속된다. 1999년-2001년 사이 발행된 5.8조 달러 규모의 채권 중, 5.6조 달러가 미 달러·유로화·엔화·파운드·스위스 프랑화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미국·유럽·일본·영국·스위스는 4.5조 달러 규모의 부채만 짊어졌다. 즉, 나머지 1.1조 달러의 부채는 다른 국가들이 (자국통화가 아닌) 외환 형태로 보유하게 된 것이다.   


Of the nearly $5.8 trillion in outstanding securities placed in international markets in the period 1999-2001, $5.6 trillion was issued in 5 major currencies: the US dollar, the euro, the yen, the pound sterling and Swiss franc. To be sure, the residents of the countries issuing these currencies (in the case of Euroland, of the group of countries) constitute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world economy and hence form a significant part of global debt issuance. 


But while residents of these countries issued $4.5 trillion dollars of debt over this period, the remaining $1.1 trillion of debt denominated in their currencies was issued by residents of other countries and by international organizations. Since these other countries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issued a total of $1.3 trillion dollars of debt, it follows that they issued the vast majority of it in foreign currency. 


The measurement and consequences of this concentration of debt denomination in few currencies is the focus of this paper.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4


  • 출처 :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28
  • 1993년-1998년 사이,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ies이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보유한 비중은 전체부채 중 2.3%에 불과하다.
  • 반면, 같은 기간에 미국·일본·영국·스위스는 전체부채 중 52.6%를 자국의 통화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 유로화가 도입된 1999년 이후,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화 형태로 보유한 부채비율은 23.2%에서 56.8%로 증가하였다.


채권 발행국과 통화형태별 누적부채를 살펴보자.


  • 출처 :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29
  • 전세계 부채 중 미국이 부담하는 부채비율은 약 32%이지만, 미 달러 형태로 표기된 부채비율은 약 52%에 이른다.
  • 미국·유로존·일본은 전세계 부채 중 71%를 부담하지만, 미 달러·유로·엔화로 표기된 부채는 약 87%에 달한다.

Figure 1 plots the cumulative share of total debt instruments issued in the main currencies (the solid line) and the cumulative share of debt instruments issued by the largest issuers (the dotted line). The gap between the two lines is striking. While 87 percent of debt instruments are issued in the 3 main currencies (the US dollar, the euro and the yen), residents of these three countries issue only 71 percent of total debt instruments. The corresponding figures for the top five currencies, 97 and 83 percent, respectively, tell the same story.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6-7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 · 발생과정 


앞서 논의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하자면, 1990년대 금융자유화 정책 시행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만기가 짧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자본이 급격히 유입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1997년이 되자 자본흐름의 반전 Reversals of Capital Inflows 이 발생하면서 자본유입이 갑작스레 중단되고 Sudden Stops, 급격한 자본유출 Disruptive Capital Outflows 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하락압력을 받게 되고 이는 투기적공격 Speculative Attack 의 유인을 증가시켰다. 더군다나 동아시아 국가들이 차입했던 해외부채는 만기가 짧았기 때문에, 급작스런 자본유출은 유동성위기 Liquidity Crisis를 초래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도와 자국 통화가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 foreign exchange intervention 함으로써 자국 통화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락하는 자국 통화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국통화를 외환시장에 공급하고 자국통화를 사들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의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다른 방안으로는 금리를 올림 the policy rate 으로써 급격한 자본유출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금리인상 또한 문제를 초래한다. 금리인상은 투자와 소비를 저하시켜 경제를 불황에 빠뜨리고, 이를 통해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에 의심을 품은 외국투자자들은 자본유출을 가속화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하고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용인해야 할까?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수출이 증가하면 자본계정 Capital Account 의 손상을 경상계정 Current Account 으로 메꿀 수 있으니? 그러나 자국 통화가치 하락은 큰 문제를 야기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은행과 기업들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국 통화가치 하락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가치의 상승을 뜻했다. 다시 말해, 개발도상국 은행과 기업들의 채무부담이 증가한 것이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불황의 경제학』(2009) 을 통해,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발생과정을 쉽게 설명한다.     


외국으로부터의 차입이 둔화되자 중앙은행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엔화와 달러의 유입이 줄자 외환시장에서 바트화에 대한 수요도 줄어든 것이다. 반면 수입 대금 결제를 위한 외환 수요는 줄지 않았다. 바트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태국은행은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을때와 정반대의 조치를 취했다. 시장에 개입해 달러와 엔화를 주고 바트화를 사들여 자국의 통화를 지지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통화 가치를 낮추려는 것과 높이려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태국은행은 원하는 만큼 바트화를 공급할 수 있다. 그저 찍어내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달러는 찍을 수 없다. 따라서 바트화의 가치를 방어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외환보유고는 얼마 안 가 바닥을 드러냈다.


통화가치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바트화 유통량을 줄이고 이자율을 올림으로써 투자자들이 달러를 빌려 바트화에 재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칼이었다. 당시 투자 붐이 일단락되면서 태국의 경제 성장은 이미 둔화되고 있었고, 건설 경기 또한 좋지 못했다. 이것은 일자리 축소를 의미했고, 일자리 축소는 낮은 소득을, 낮은 소득은 경제 다른 부문에서의 해고를 의미했다. 완전한 의미의 경기후퇴는 아니었지만 태국 경제가 더 이상 과거 방식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은 확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율 상승은 투자를 막는 일일뿐더러 경제를 확실한 불황에 빠뜨리는 길이었다. 


대안은 정부의 통화 개입 포기였다. 바트화 매입을 중단하고 바트화 가치 하락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곤란한 일이었다. 평가절하가 정부 신인도에 흠집을 낼 것이라는 게 한 가지 이유였다. 또한 너무나 많은 은행과 금융회사, 기업들이 달러 채무를 갖고 있었다. 바트화 대비 달러의 가치가 오른다면 그들 다수가 파산할 것이 뻔했다.


진퇴양난의 답답한 상황이었다. 태국 정부는 바트화 하락을 용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외환보유고 손실을 막기 위해 혹독한 대내적 조치를 취할 생각도 없었다. 대신 관망하는 쪽을 택했다. 어떤 전환점이 생겨나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뻔한 결말로 흘러갔다. 통화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폴 크루그먼. 2009. 『불황의 경제학』. 112-113




※ 고정환율제도의 문제점 - 투기적공격에 취약


이러한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 · 발생과정을 경제학계에서는 경제학이론을 사용하여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중요한 것은 개발도상국 특성상 고정환율제도를 택할 수 밖에 없었고,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질 수 밖에 없었다 라는 점이다. 


개발도상국의 한계를 염두에 두고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고정환율제도가 초래하는 문제점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개발도상국들은 인플레이션 관리를 위해 고정환율제도를 도입한 상황이었다. 고정환율제도는 환율변동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자본유입을 증대시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일조를 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체계가 발달되지 못했던 개발도상국의 특성상[각주:8], 갑작스런 자본유입 증대는 과잉대출 excessive lending & lending boom 로 이어지고 대출의 상당수는 부실처리 substantial loan losses 된다. 그 결과 부실대출을 떠안게 된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크게 손상 a deterioration of bank balance sheets 되고 만다.   


Another potential danger from an exchange-rate peg is that by providing a more stable value of the currency, it might lower risk for foreign investors and thus encourage capital inflows.


Although these capital inflows might be channeled into productive investments and thus stimulate growth, they might promote excessive lending, manifested by a lending boom, because domestic financial intermediaries such as banks play a key role in intermediating these capital inflows.


Indeed, Folkerts-Landau, et. al (1995) found that emerging market countries in the Asian-Pacific region with the large net private capital inflows also experienced large increases in their banking sectors. Furthermore, if the bank supervisory process is weak, as it often 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so that the government safety net for banking institutions creates incentives for them to take on risk, the likelihood that a capital inflow will produce a lending boom is that much greater. 


With inadequate bank supervision, the likely outcome of a lending boom is substantial loan losses and a deterioration of bank balance sheets.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13-14


이러던 와중에, 자본유출이 발생하여 동아시아 통화가치에 대한 하락압력이 거세졌다. 그런데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이 금리를 인상하면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 높아진 금리로 인해 은행의 부채부담은 증가하게 되고,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더더욱 손상된다. 따라서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으로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한 경제주체들은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이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하지 못할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투기적공격은 더더욱 심해진다.   


the deterioration in bank balance sheets can promote a currency crisis because it becomes very difficult for the central bank to defend its currency against a speculative attack. Any rise in interest rates to keep the domestic currency from depreciating has the additional effect of weakening the banking system further because the rise in interest rates hurts banks’ balance sheets.


This negative effect of a rise in interest rates on banks’ balance sheets occurs because of their maturity mismatch and their exposure to increased credit risk when the economy deteriorates.


Thus, when a speculative attack on the currency occur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f the central bank raises interest rates sufficiently to defend the currency, the banking system may collapse. Once investors recognize that a country’s weak banking system makes it less likely that the central bank will take the steps to defend the domestic currency successfully,


they have even greater incentives to attack the currency because expected profits from selling the currency have now risen. Thus, with a weakened banking sector,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is likely to materialize and can be triggered by any of many factors, a large current account deficit being just one of them. In this view, the deterioration in the banking sector is the key fundamental that causes the currency crisis to occur.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4


더군다나 금융자유화 정책 시행 이후 자본유입의 양이 더욱 더 증가하면서 개발도상국 통화가치의 고평가 현상이 생겨났다. 변동환율제도를 택했더라면 자본유입으로 인한 통화가치 상승압력을 환율조정 Exchange-Rate Adjustment 을 통해 흡수할 수 있었지만, 고정환율제도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고평가된 통화가치를 지켜본 경제주체들은 "언젠가는 통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투기적공격 Speculative Attack 을 통해 환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고정환율제도가 투기적공격에 대한 유인을 증가시킨 것이다.


물론 변동환율제도에서도 투기적공격이 발생하여 통화가치가 하락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정환율제도 하에서 투기적공격이 발생하면, 변동환율제도 하에 비해 더 가파른 폭의 통화가치 하락이 발생한다. 고정환율제도 자체가 불안정성을 키운 것이다. 


Under a pegged exchange-rate regime, when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occurs, the decline in the value of the domestic currency is usually much larger, more rapid and more unanticipated than when a depreciation occurs under a floating exchange-rate regime.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13


경제학자 Maurice Obstfeld와 Kenneth Rogoff는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한 금리인상 정책은 투자, 실업, 정부부채, 소득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을 감수하면서까지 통화가치 하락을 막아내겠다' 라는 정부의 공언은 믿을 수 없다. 즉, 정부가 통화가치를 방어할 것이라는 신빙성을 경제주체들에게 주지 못한다면 Lack of credibility, 고정환율제도는 투기적공격에 더욱 더 취약해진다." 라고 지적한다.   


If central banks virtually always have the resources to crush speculators, why do they suffer periodic humiliation by foreign exchange markets? The problem, of course, is that very few central banks will cling to an exchange-rate target without regard to what is happening in the rest of the economy. Domestic political realities simply will not allow it, even when agreements with foreign governments are at stake.


As we have seen, to fend off a major speculative attack, the monetary authorities typically must be prepared to allow sharp increase in domestic interest rates, especially short-term rates. Such sharp spikes in interest rates, if sustained for any length of time, can wreak havoc with the banking system, which typically borrows short and lends long. 


Over the longer term, these unanticipated interest rate rises can also have profound negative effects on investment, unemployment, the government budget deficit and the domestic distribution of income. A government pledge that it will ignore such side effects indefinitely to defend the exchange rate is not likely to be credible. Lack of credibility, in turn, makes a fixed exchange rate more vulnerable to speculative attack.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7-8    


그리고 Maurice Obstfeld와 Kenneth Rogoff는 "보통 정부는 투기적공격을 한번 방어하고 나면 고정환율제도가 가져다주는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이전에 투기적공격을 초래했던 요인은 다음번 투기적공격을 유발하는 씨앗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이 쓴 논문의 제목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처럼 고정환율제도는 망상 Mirage 에 불과한 것이다.


Government often feel that if they could pull off a sudden realignment "just once" and thereby put fundamentals right, they would thereafter enjoy the fruits of a credibly fixed rate, including exchange-rate certainty and domestic price discipline. They are wrong. 


The factors that led to the last realignment remain and contain the seeds of the next one. No one can say for sure when it will occur, but its likelihood reintroduces both exchange-rate uncertainty and inflationary pressures-the very evils a fixed rate was supposed to guard against.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9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의 문제점 - 대차대조표 위기 초래


고정환율제도가 초래하는 문제들을 정리하면, "고정환율제도 → 환율변동의 불확실성 제거 → 금융자유화 정책 → 동아시아 국가로의 자본유입 증가 → 과잉대출로 인한 은행권 대차대조표 손상 →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반전과 자본유출 →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 → 은행권 대차대조표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통화가치 방어를 위한 금리인상 정책 할 수 없음 → 통화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투기적공격 유인이 더더욱 증가" 라는 경로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은행권 대차대조표 손상을 막기 위하여,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용인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통화가치 하락 용인은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한다. 바로, 개발도상국 은행과 기업들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 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하자,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던 은행과 기업들의 부채부담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은행과 기업들의 대차대조표가 손상되기 시작한 것이다. 민간부문의 대차대조표 손상은 동아시아 경제의 신뢰성 상실 the loss of confidence 로 이어졌고 추가적인 통화가치 하락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통화가치 하락을 막아야할까?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위한 금리인상 정책은 경제의 산출물을 떨어뜨리기 a decline in output 때문에, 이것 또한 신뢰성 상실을 초래한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대차대조표 위기 Balance Sheets Crisis" 라고 칭한다.

 

Balance sheet problems: 


Finally, descriptive accounts both of the problems of the crisis countries and of the policy discussions that led the crisis to be handled in the way it was place extensive emphasis on the problems of firms’ balance sheets. On one side, the deterioration of these balance sheets played a key role in the crisis itself—notably, the explosion in the domestic currency value of dollar debt had a disastrous effect on Indonesian firms, and fear of corresponding balance sheet effects was a main reason why the IMF was concerned to avoid massive depreciation of its clients’ currencies. (...)


instead of creating losses via the premature liquidation of physical assets, a loss of confidence leads to a transfer problem. That is, in order to achieve the required reversal of its current account, the country must experience a large real depreciation; this depreciation, in turn, worsens the balance sheets of domestic firms, validating the loss of confidence. policy that attempts to limit the real depreciation implies a decline in output instead—and this, too, can validate the collapse of confidence.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6


경제학자 Frederic Mishkin 또한 "1997 외환위기가 금융위기로 커진 원인에는 짧은 만기구조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질 수 밖에 없는 신흥국의 한계에 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은 기업들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켰고, 기업들은 대차대조표를 복구하기 위해 위험성이 큰 사업을 벌였다. 즉, 통화가치 하락이 대차대조표에 준 충격이 동아시아 경제를 위축시켰다 " 라고 말하며, 대차대조표 손상 문제를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진단한다. 


A currency crisis and the subsequent devaluation then helps trigger a full-fledged financial cris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because of two key features of debt contract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debt contracts both have very short duration and are often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These features of debt contracts generate three mechanisms through which a currency crisi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ncreases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in credit markets, thereby causing a financial crisis to occur.


The first mechanism involves the direct effect of currency devaluation on the balance sheets of firms. With debt contracts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 when there is a devaluation of the domestic currency, the debt burden of domestic firms increases. On the other hand, since assets are typically denominated in domestic currency, there is no simultaneous increase in the value of firms’ assets.


The result is a that a devaluation leads to a substantial deterioration in firms’ balance sheets and a decline in net worth, which, in turn, worsens the adverse selection problem because effective collateral has shrunk, thereby providing less protection to lenders. Furthermore, the decline in net worth increases moral hazard incentives for firms to take on greater risk because they have less to lose if the loans go sour. Because lenders are now subject to much higher risks of losses, there is now a decline in lending and hence a decline in investment and economic activity.


The damage to balance sheets from devaluation in the aftermath of the foreign exchange crisis has been a major source of the contraction of the economies in East Asia, as it was in Mexico in 1995. This mechanism was particularly strong in Indonesia, which saw the value of its currency decline by over 75%, thus increasing the rupiah value of foreign-denominated debts by a factor of four. Even a healthy firm initially with a strong balance sheet is likely to be driven into insolvency by such a shock if it has a significant amount of foreign-denominated debt.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4-5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교훈 - 2013년 현재는?


경제개발 단계에서 고정환율제도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 발생한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게 된다.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가져다 준 교훈은 '① 고정환율제도의 포기 ② 만기불일치 Maturity Mismatch 해소 ③ 통화불일치 Currency Mismatch 해소 ④ 외환보유고 확충' 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경제학계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Capital Flows Volatility 초래하는 위험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남미 금융위기 이후에는 국가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1990년대 초반 유럽 금융위기 이후에는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Effect 방지에, 그리고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에는 자본흐름의 변동 Capital Flows Volatility 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에서 살펴봤듯이, 자본이동을 감독하는 거시건전성 감독정책 Macroprudential Supervision 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2013년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과 신흥국은 자본흐름의 변동에 대한 대비를 잘 하고 있을까? 미국 Fed의 양적완화 정책 축소 Tapering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급작스런 자본유출에 대한 위험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룰 것이다.




<참고자료>


1편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2편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2013.10.27


3편 -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2013.11.09


4편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2013.11.11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2013년 6월자 Fed의 FOMC - Tapering 실시?. 2013.06.26


자유로운 자본이동 통제하기 -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의 필요성. 2013.09.14


Barry Eichengreen, Ricardo Hausmann and Ugo Panizza. 2003. "The Pain of Original Sin"


Maurice Obstfeld, Kenneth Rogoff. 1995. 'The Mirage of Fixed Exchange Rates'.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Frederic Mishkin. 1998. 'The Dangers of Exchange-Rate Pegging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폴 크루그먼. 2009. 『불황의 경제학』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국제금융센터. 'Ⅲ. 외환위기 주요 사례 분석 -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2. 1세대 모델을 다룬 대표적인 논문은, Paul Krugman. 1979. 'A Model of Balance-Payment Crises'. Robert Flood & Peter Garber. 1984. 'Collapsing Exchange Rate Regime: Some Linear Examples'. [본문으로]
  3. 2세대 모델을 다룬 대표적인 논문은, Maurice Obsfeld. 1994. 'The Logic of Currency Crises'. [본문으로]
  4. EMS는 역내 통화의 변동폭에 한도를 정한 일종의 고정환율제도로서 환율변동폭은 기준환율 중심으로 상하 2.25%로 제한됐었다. [본문으로]
  5. 외환보유고가 감소했다는 사실은 외환시장에서 국내통화를 사들이고 외국통화를 공급했다는 것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자본유출과정에서 외국통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 가격이 상승했다면, 개발도상국은 시장에 개입하여 외국통화를 공급함으로써 외국통화가격을 다시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외국통화를 시장에 팔고 받은 국내통화는 중앙은행 계정에 흡수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통화공급량이 축소된 것이다. [본문으로]
  6. (뒤에서 고정환율정책의 문제점에서도 다룰 것이지만) 이것을 어떻게보면, 고정환율정책이 개발도상국의 통화정책을 제한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Frederic Mishkin은 "개발도상국은 통화정책을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정환율제도로 인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This criticism of exchange-rate pegging may be less relevant for emerging market countries than it is for developed countries. Because many emerging market countries have not developed the political or monetary institutions which result in the ability to use discretionary monetary policy successfully, they may have little to gain from an independent monetary policy but a lot to lose.) (7) 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Frederic Mishkin의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고정환율제도로 인해 제약된 신흥국의 통화정책은 1997 외환위기 확산의 원인이 되고 마는데... [본문으로]
  7. 한국의 단기외채 증가에 대해서는,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http://joohyeon.com/174 참고. [본문으로]
  8. 1997년 당시 한국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http://joohyeon.com/173 참고. [본문으로]
//

은행과 고객 간 '긴밀한 친밀관계'의 중요성 - 금융시스템 내 정보비대칭성은행과 고객 간 '긴밀한 친밀관계'의 중요성 - 금융시스템 내 정보비대칭성

Posted at 2013. 11. 17. 21:03 | Posted in 경제학/일반


※ 금융시스템 내 정보비대칭성

-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해이(Moral Hazard)


현대자본주의에서 금융시스템(Financial System)[각주:1]은 필요한 자원을 배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돈은 있으나 이를 생산적으로 사용할 기회를 찾지 못한 주체(저축자, lenders)에게서, 기회는 있으나 돈이 없는 주체(차입자, borrowers)에게로 사용권을 넘겨줌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동태적 효율성이 배가[각주:2]"되는 것이다. 금융의 도움을 받는 대표적인 경제주체인 기업은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뒤 투자를 함으로써 생산력을 증가시킨다. 


기업은 크게 2가지 경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첫째는 증권 · 회사채 · 기업어음 형식의 직접금융시장(Direct Financial Market)을 통해서, 둘째는 은행대출 형식의 간접금융시장(Indirect Financial Market)을 통해서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주로 은행(Banking Institutions) 등의 금융중개기관(Financial Intermediaries)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한다.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기업은 은행 등의 금융중개기관을 통해 자금을 간접적으로 조달할까? 물론, 은행중심 금융제도(Bank-Based Financial System)를 가진 국가도 있고 시장중심 금융제도(Market-Based Financial System)이 발달한 국가[각주:3]도 있다. 그렇지만 은행중심 금융제도에서나 시장중심 금융제도에서나 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건 변함없다.       


금융시스템 내에서 은행 등의 금융중개기관이 큰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는 바로 정보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 때문이다. 금융시스템 내의 돈을 빌려주는 쪽(lenders)은 차입자(borrowers)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차입자의 신용 · 차입자가 투자하려는 사업의 기대수익 · 대출손실 가능성 등등, 차입자 본인은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으나 돈을 빌려주는 쪽은 그렇지 않다. 바로,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사이의 정보비대칭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금융시스템 내의 정보비대칭성은 2가지 문제를 초래한다. 바로 역선택(Adverse Selection) 도덕적해이(Moral Hazard) 이다.  그리고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해이(Moral Hazard)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Financial Instability)을 초래한다. 


한 명의 사업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사업가는 위험성이 큰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사업이 실패할 가능성도 높지만, 반대로 사업이 성공한다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이 사업가는 사업성공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사업실패시 채무불이행 부담액보다 크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돈을 빌려주는 쪽의 대출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따라서, 다른 차입자들보다 돈을 빌려주는 쪽의 대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돈을 빌려주는 쪽의 선택을 받을 확률도 높아진다.


그렇지만 위험성이 큰 사업은 대개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위험성이 큰 사업을 벌이려 했던 사업가들에게 돈을 빌려준 뒤 회수를 하지 못한 경험이 쌓인 돈을 빌려주는 쪽 이제 대출자체를 줄이기 시작한다. 건전한 차입자를 선택해 대출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대출자체를 하지 않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발생한 것이다. 어떤 차입자가 위험성이 큰 사업을 벌이려는지 위험성이 작은 사업을 벌이려는지, 돈을 빌려주는 쪽이 알지 못하는 이른바 정보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Adverse selection is an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 that occurs before the transaction occurs when potential bad credit risks are the ones who most actively seek out a loan. Thus, the parties who are the most likely to produce an undesirable (adverse) outcome are most likely to be selected. For example, those who want to take on big risks are likely to be the most eager to take out a loan because they know that they are unlikely to pay it back. 


Since adverse selection makes it more likely that loans might be made to bad credit risks, lenders may decide not to make any loans even though there are good credit risks in the marketplace. This outcome is a feature of the classic “lemons problem” analysis first described by Akerlof(1970). Clearly, minimizing the adverse selection problem requires that lenders must screen out good from bad credit risks.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2


그리고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간의 정보비대칭성은 도덕적해이(Moral Hazard)도 초래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돈을 빌려주는 쪽은 사업가가 벌이려는 사업이 어느정도 위험한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이 이루어지고 사업이 성공하면 차입자는 큰 수익을 거두게 되지만 사업이 실패하면 돈을 빌려주는 쪽은 돈을 회수하지 못한다. 사업성공의 혜택은 차입자가 사업실패의 부담은 돈을 빌려주는 쪽이 지게 되는 것이다. 


차입자는 이러한 정보비대칭 상황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차입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돈을 빌려주는 쪽에게서 대출을 받아 무리한 사업을 벌이거나 사적으로 유용하는 도덕적해이(Moral Hazard)가 일어나는 것이다.  도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간의 이러한 이해관계 충돌은 돈을 빌려주는 쪽이 아예 대출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끔 만든다.


Moral hazard occurs after the transaction takes place because the lender is subjected to the hazard that the borrower has incentives to engage in activities that are undesirable (immoral) from the lender’s point of view—that is, activities that make it less likely that the loan will be paid back. Moral hazard occurs because a borrower has incentives to invest in projects with high risk in which the borrower does well if the project succeeds but the lender bears most of the loss if the project fails.


Also the borrower has incentives to misallocate funds for her own personal use, to shirk and just not work very hard, or to undertake investment in unprofitable projects that increase her power or stature. The conflict of interest between the borrower and lender stemming from moral hazard (the agency problem) implies that many lenders will decide that they would rather not make loans, so that lending and investment will be at suboptimal levels. In order to minimize the moral hazard problem, lenders must impose restrictions (restrictive covenants) on borrowers so that borrowers do not engage in behavior that makes it less likely that they can pay back the loan; then lenders must monitor the borrowers’ activities and enforce the restrictive covenants if the borrower violates them.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2-3




※ 은행과 고객 간 '긴밀한 친밀관계' 

- 금융시스템 내 정보비대칭성을 해결


앞서 살펴봤듯이 금융시스템 내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간의 정보비대칭성은 금융불안정성을 키우게 된다. 그렇다면 돈을 빌려주는 쪽이 차입자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정보비대칭 상황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바로 여기서 은행(Banking Institutions)과 금융중개기관(Financial Intermediaries)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나 은행의 경우 지점을 통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long-term customer relationships)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차입자가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 돈을 제때에 갚을 수 있는지, 성품은 어떤지 등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고객의 잔고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출상환 가능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차입자가 대출금액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위험성이 큰 사업에 투자하려 한다면, "다음부터는 대출을 삭감하겠다" 라는 엄포를 함으로써 도덕적해이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쪽을 대신하여 차입자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금융시스템 내의 정보비대칭 상황을 제거하게 된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사이에 은행이 개입함으로써 정보비대칭 현상이 해결된 결과 금융시스템은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One important feature of financial systems is the prominent role played by banking institutions and other financial intermediaries that make private loans. These financial intermediaries play such an important role because they are so well-suited to reducing adverse selection and moral hazard problems in financial markets. (...)


Banks have particular advantages over other financial intermediaries in solving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For example, banks’ advantages in information collection activities are enhanced by their ability to engage in long-term customer relationships and issue loans using lines of credit arrangements. In addition their ability to scrutinize the checking account balances of their borrowers provides banks with an additional advantage in monitoring the borrowers’ behavior.


Banks also have advantages in reducing moral hazard because, as demonstrated by Diamond (1984), they can engage in lower-cost monitoring than individuals, and because, as pointed out by Stiglitz and Weiss (1983), they have advantages in preventing risk taking by borrowers since they can use the threat of cutting off lending in the future to improve a borrower’s behavior.


Banks’ natural advantages in collecting information and reducing moral hazard explain why banks have such an important role in financial markets throughout the world. Furthermore, the greater difficulty of acquiring information on private firm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makes banks even more important in the financial systems of these countries.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4-5




※ 일회성 비관계자간 거래 

- 오늘날 은행과 고객의 관계

- 대출의 질을 떨어뜨리고 금융시스템 내의 불안정성을 키우다


그런데 돈을 빌려주는 쪽과 차입자 사이에 은행이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비대칭 상황이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까? 정보비대칭 상황을 없애려면 은행이 '지점을 통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차입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획득해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은행지점에서 '긴밀한 친밀관계'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오늘날 은행과 고객의 관계는 최종 고객과 장기간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일회성 비관계자 간 거래관계'가 대부분이다. 대출심사는 은행직원이 고객을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대신한다. 연봉, 직장 등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대출자격을 판단한다. "당장의 신용은 괜찮아 보여도 앞으로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평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現 인도중앙은행 총재인 Raghuram Rajan은 2008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은행과 고객 간의 일회성 비관계자 간 거래관계'를 든다. 2008 금융위기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Sub-primers) 주택담보대출(Mortgage)이 급증한 결과 채무불이행이 발생(서브프라임 사태, Sub-prime Mortgage Crisis)하여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도산한 사건이었다. 이때, 택담보대출 업체들은 차입자들의 신용의 질에 대해서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


보통 은행 대출 담당자는 "대출 신청자의 태도에서 그 사람이 과연 믿을 만하고 직장 생활을 잘할 만한 사람인지 등 다양한 면을 함께 평가" 해왔다. 그러나 대출상품이 증권화를 거쳐 다른 금융기관에 팔리게 되자 "대출 신청자에 대한 판단 기준은 하락했고, 따라서 신용 평가의 중요성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금융기관들은 "컴퓨터에 나와 있는 숫자만으로 그리고 주택 가격 대비 대출액만으로 신용을 평가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용 평가 기준은 컴퓨터에 입력된 사항뿐이었다".     


게다가 만약 은행 등 금융중개기관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해 왔다면, 은행 직원들은 고객의 장래를 염려하여 과도한 대출을 장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비관계자 간 거래의 특성상 브로커는 고객의 입장을 생각할 필요도, 고객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대출 신청자 신용 평가 기준에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뉴센추리 파이낸셜을 승승장구 했다. (...) 그렇다면 그들은 법원에 파산 신청서를 제출하기 직전가지 왜 그토록 위험한 모기지 대출을 계속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뉴 센추리 파이낸셜이 자기가 판매한 모기지 대출 상품을 계속 보유하지 않고 그것을 투자은행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뉴 센추리 파이낸셜로부터 모기지 대출 상품을 구입한 투자은행들은 그것을 패키지로 묶어 증권화한 다음 페니와 프레디 그리고 전 세계의 펜션 펀드, 보험 회사, 그리고 은행에 팔았다.


그렇다면 대출, 즉 신용의 질에 대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단 말인가? 투자 은행은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 구입한 모기지 대출 상품을 증권화해서 판매하려면 사실 그 상품의 질이 건전한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에 주택 담보 대출을 제공할 때, 은행은 훗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출 신청자에 대한 신용조사를 엄격하게 진행했다. 은행 담당자는 대출 신청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으며, 직업과 수입 관련 서류도 까다롭게 심사하고, 그 신청자에게 대출금을 상환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도 확인했다.


대출 심사는 서류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은행 담당자는 대출 신청자의 태도에서 그 사람이 과연 믿을 만하고 직장 생활을 잘할 만한 사람인지 등 다양한 면을 함께 평가했다. 심지어는 대출 신청자가 악수를 할 때 손을 꽉 잡는지, 질문에 대답할 때 담당자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지 등까지도 고려했다. 물론 신청자의 인종도 대출 평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엄격한 심사를 했기 때문에 은행 대출 담당자가 신청자로 하여금 무리한 대출을 받도록 해 나중에 두고두고 양심에 걸리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투자 은행이 모기지 대출 상품을 대거 사들인 후 증권화해서 판매하기 시작하자 대출 신청자에 대한 판단 기준은 하락했고, 따라서 신용 평가의 중요성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신용 평가는 주로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컴퓨터는 대출 신청자가 과연 직장 생활을 오래한 사람인지 아닌지 같은 것을 읽어낼 수 없었다. 만약 모기지 대출 회사가 구체적인 사실이 아니라 개인적인 평가에 따라 심사를 하고, 그래서 대출을 거부했다면 아마도 차별을 한 것이라며 바로 고소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투자 은행과 신용 평가 기관은 컴퓨터에 나와 있는 숫자만으로 그리고 주택 가격 대비 대출액만으로 신용을 평가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용 평가 기준은 컴퓨터에 입력된 사항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대출을 주선한 브로커의 행동에 제동을 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모기지 시장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에는 아예 대출자의 직장이나 수입과 관련한 정보의 사실 여부는 더 이상 확인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파트타임 정원사로 일하는 사람의 직업이 수목 외과 수술 전문가로 둔갑하고 연봉도 수십만 달러라는 식으로 허위 작성되었다.


대출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출 담당자의 개인적 평가가 전반적인 신용 평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적 평가가 사라지자 모기지 대출 심사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물론 대출자의 서류만 보면 모든 것이 양호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과거처럼 담당자가 대출 신청자를 직접 만났다면 그 사람의 무례한 태도, 머리를 굴리는 모습, 단정하지 못한 복장 등 모든 것이 다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태도를 통해 당장의 신용은 괜찮아 보여도 앞으로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쉽게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기지 브로커나 뉴 센추리 파이낸셜이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오직 어떻게 하면 대출 상품을 많이 팔아 돈을 더 벌까뿐이었다. 그들은 이제 어떤 숫자를 강조하면 모기지 상품을 더 쉽게 판매할 수 있는지 요령까지 터득했다. 그리하여 브로커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대출 신청자의 서류에서 신용 평가상 문제가 될 만한 과거 사실을 조작해주고, 주택 각격 상승에 맞추어 무리하게 대출 상품을 변경하도록 권해도 아무 저항 없이 따르는 대출자를 주로 겨냥하기 시작했다. 브로커도 뉴 센추리 파이낸셜 관계자도 더 많은 계약을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이랄도 할 수 있는 인간들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뉴 센추리 파이낸셜의 대출 담당 부서는 '더 많은 계약 성사 대학(Close More University)' 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


브로커는 과도한 부채 부담에 시달리는 고객에게 소비를 줄이고 신용카드 빚을 먼저 갚고, 당장이라도 능력에 맞는 더 작은 집으로 옮기라는 조언을 했어야 옳은 것 아닌가? 그 고객을 다시 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브로커 중 일부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주선해 판매한 모기지 대출 상품은 이미 패키지로 묶여 투자 은행에 모두 팔렸고, 중개 수수료를 받은 브로커는 더 이상 그 대출 상품과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그 보상으로 수수료를 챙긴 것이다. 자기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비관계자 간 거래의 특성상 브로커는 고객의 입장을 생각할 필요도, 고객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라구람 라잔. 2011.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될 때'. 『폴트라인』. 258-263




※ 스웨덴 은행 '한델스방켄(Handelsbanken)' 

- 지점을 통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하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점을 통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하는 은행이 있다. 바로 스웨덴의 '한델스방켄(Handelsbanken)' 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122호 기사에 나온바에 따르면, 한델스방켄은 오늘날에도 '지점이 곧 은행이다(The Branch Is the Bank)'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곳곳의 지점을 통해 고객과 유대감을 형성 · 유지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지점 즉원들의 사진 · 전화번호를 공개함으로써 객과 직원의 관계를 돈과 돈의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 이웃 대 이웃으로 설정하였다.


스웨덴 2위 은행이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으로 꼽히는 한델스방켄(Handelsbanken)은 경쟁 은행들로부터 ‘탈레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대의 시골마을들에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게릴라 군사조직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다른 은행들이 수익성 때문에 가지 않는 작은 마을에까지 지점을 낸다는 의미다. 또한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처럼 한델스방켄 역시 은행업의 ‘근본’인 직원과 고객과의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있다. (...)


(한델스방켄은) 지점 위주, 고객 위주의 경영을 표방한다. 객 가까이에 가기 위해 어느 정도 수익성의 하락은 감내한다. 스웨덴 내 400여 개 지점 중에 다른 은행은 수익성이 떨어져 들어오지 않은 작은 마을에 있는 지점이 50여 개나 된다. 또, 전 세계 모든 지점 직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어 고객들이 언제든지 담당직원과 통화할 수 있다. 상당수 지점은 토요일에도 문을 연다. (...)


한델스방켄도 1871년에 창립하고 나서 처음 100년간은 다른 은행들처럼 평범했다. 그런데 1970년 얀 발란더(Jan Wallander)라는 사람이 CEO로 부임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발란더는 젊은 시절 스웨덴 상공회의소에서 거시경제 애널리스트로 일했는데 그때 그는 은행의 단기 수익성은 중앙은행의 금리정책 같은 외부환경에 따라 크게 좌우되며 따라서 단기수익과 장기성장은 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스웨덴 북부 지방의 작은 은행 CEO로 일하기도 했다. 이 경험에서은행의 핵심업무는 본사가 아니라 고객과의 접점인 지점(branch office)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


한델스방켄의 모든 지점들은 각자의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은행들이라면 고객이 어제 만났던 은행원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그 사람과 통화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델스방켄에서는 가능하다. 해당 지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 지점의 직원들 연락처를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한델스방켄에 처음 방문하는 영국 고객들은 “옛날식 은행으로 돌아왔구나(back to the old banking)”라며 좋아한다. 예전에는 영국 은행에서도 지점 직원들과 고객들은 서로 친구처럼,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가까운 관계였다. 오늘 뭔가가 잘못됐으면 내일 다시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한델스방켄은 이런 친밀한 관계를 고객들에게 다시 찾아줬다. 



조진서. '은행계의 '탈레반' 한델스방켄: 분권화된 점조직으로 40년 신뢰를 잇다'. <동아비즈니스리뷰> 122호. 2013.02.01. 91-93


이 기사를 쓴 <동아비즈니스리뷰>의 조진서 기자는 개인블로그를 통해 '은행업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조진서 기자에 따르면, 은행업의 본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이 남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은행업의 역할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람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또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신용은 달라진다" 라는 것이다. 조진서 기자가 예를 든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나와 친한사람'의 돈을 더 빨리 갚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컴퓨터는 그저 연봉 등등 단순한 수치를 이용하여 기계적으로 신용을 판단할 것이다.   


한델스방켄의 '지점 중시, 인간적 관계 맺기' 모델이 성공한 이유가 또 있다. 이것은 은행업의 본질에 관련된 것이다.

 

은행업이란 무엇인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대출), 돈이 남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예금저축)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이 남는 사람을 연결해준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사람 중개업' 혹은 '정보 중개업'이라 볼 수 있다. (...)


신용이 좋은 사람은 싼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고 신용이 나쁜 사람은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반대로, 신용이 좋은 우량 은행은 이자를 조금만 줘도 사람들이 저축을 하고, 신용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제2, 제3 금융권은 높은 이자를 줘야지만 사람들이 돈을 맡긴다. 현대 은행업에서는 이 신용을 거의 기계적으로 평가한다. 기업이나 국가의 경우, 3대 신용평가사라고 불리는 무디스, 피치, S&P에서 매기는 신용등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과연 어떤 기업의, 어떤 국가의, 어떤 사람의 신용등급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의문이 생긴다. 사람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또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신용은 달라지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내가 친구 최장우에게 10만 원을 빌렸을 때와 친구 빌 게이츠에게 10만 원을 빌렸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두 친구에 대해서 나는 그 돈을 갚으려는 의지에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나는 최장우에게 10만 원이 빌 게이츠에게 10만 원보다 훨씬 중요한 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나는 최장우를 빌 게이츠보다 훨씬 자주 본다. 


마지막으로, 나는 절친인 최장우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가끔 보는 친구인 빌 게이츠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보다 맘이 훨씬 더 불편하다. 이상의 세 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기왕이면 빌 게이츠보다는 최장우에게 돈을 빨리 갚을 것이다.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최장우에게 돈을 갚아야 할 인센티브가 더 크다. (...)


헌데 현실의 은행업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내가 특별하게 오래 거래해온 주거래 은행이 아니라면, A은행에 가든 B은행에 가든 내 신용등급은 동일하게 평가될 것이고 나에게 매겨지는 이자율도 거의 비슷할 거다.  


조진서. '한델스방켄 - 금융업의 본질은 '관계''. 2013.02.17


물론, 스웨덴의 한델스방켄의 사례가 모든 은행에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은행 지점 직원들이 고객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할 뿐더러, 오늘날 사회에서 '직원과 고객이 정말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이번글을 통해 '금융불안정성을 유발하는 정보비대칭 상황을 해소'하려면 '은행 등 금융중개기관의 역할이 중요'할 뿐더러, 기계적으로 고객의 신용을 평가하는 '일회성 비관계자간 거래'가 아니라 '은행과 고객 간 긴밀한 친밀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Frederic Mishkin. 1997. 'The Causes and Propagation of Financial Instability'.


라구람 라잔. 2011.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될 때'. 『폴트라인』. 


조진서. '은행계의 '탈레반' 한델스방켄: 분권화된 점조직으로 40년 신뢰를 잇다'. <동아비즈니스리뷰> 122호. 2013.02.01.


조진서. '한델스방켄 - 금융업의 본질은 '관계''. 2013.02.17



  1. 여기서 말하는 '금융시스템 혹은 금융제도란 Financial System'이란, ①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 금융시장Financial Market, ② 금융거래를 중개하는 금융기관Financial Institutions, ③ 금융거래를 지원하고 감시하는 금융하부구조 Financial Infrastructure 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본문으로]
  2. 이 문구는 김상조. 2005. 『종횡무진 한국경제』. 271 에서 그대로 인용하였다. [본문으로]
  3. 은행중심 금융제도와 시장중심 금융제도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을 통해 구체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본문으로]
//

[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외환위기 ①]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Posted at 2013. 10. 23. 21:15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전 포스팅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를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생긴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 원인으로 이어졌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이전에, 외환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1997년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이 어떠했는지, 어떤 요인이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였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 외환위기란 무엇인가?


국제금융센터가 발간<Ⅱ. 외환위기의 개념 및 이론적 모델>에 따르면, 외환위기(Currency Crisis)란 "특정 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여 해당국 정부가 대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사용하거나 금리 인상 등을 통해 환율을 방어하는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가 전년도보다 10% 이상 하락하고 당해 연도에 25% 이상 급락한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외채위기(Debt Crisis)란 "특정국이 공공부문 혹은 민간부문의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채무불이행 상태"를 뜻한다.


또한, 은행위기(Banking Crisis)란 "실제적 혹은 잠재적 은행 파산으로 은행들이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해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대규모로 개입하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대규모 부실채권 · 뱅크런 등으로 인해 은행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다.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는 외환위기 · 은행위기보다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인데 "금융시장이 심각한 붕괴에 있는 상태 · 위기의 확산으로 금융시장의 효율적인 중개기능이 손상되어 실물경제에 대규모 부정적 효과 파급"하는 상태를 뜻한다. 


외환위기(Currency Crisis)와 체계적 금융위기(Systemic Financial Crisis)는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고 선후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당국의 금융시스템이 마비되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시에 자본을 회수할 경우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여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경우 · 은행부채의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로 되어있는 경우[각주:1], 해당국 통화가치 급락하면 은행 경영사태가 급속히 악화[각주:2] [각주:3]되는데 이에 따라 금융위기로 커지는 경우.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 · 외채위기 · 은행위기 · 체계적 금융위기 모든 것을 겪었다.

1997년 한국경제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1997년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 - 고평가된 통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시장 개방이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경제에서 금융은 자원배분을 위한 통제의 대상이었다.게다가 외국인에게는 증권시장 투자한도가 제한되어 있었고 외국은행의 국내지점 설립에도 규제가 있었다. 한국은 1990년 2월부터 열린 한·미 금융정책회의(FPT, Financial Policy Talking)을 통해 금융시장 개방에 나선다.



  • 출처 :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30
  • 이 표는 자본시장개방 협상대비를 위하여 재정경제원 국제금융국이 만든 계획표(Blue Print) 이다. 
  • 실제 3단계 장기계획은 1993년 6월에 확정되었고, 첨부된 계획표와는 조금의 차이가 존재한다.


1990년 2월부터 열린 ·미 금융정책회의(FPT, Financial Policy Talking)는 한국의 환율과 금융시장의 개방을 협상하는 회의였다. (...) 1990년 두 번 열린 ·미 금융정책회의는 환율문제로부터 시작하여 금융자율화, 증권시장 개방, 외국은행 국내지점 규제철폐 등이 주요의제였고 콜 시장의 개방, 금리의 완전 자율화, 정책금융의 폐지 등으로 확대되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25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1995년 이후 엔화의 절하이다. 일본의 엔화는 엔고가 절정에 달하였던 1995년 4월 83.6엔/$에서부터 1996년 말에는 113.7엔/$ 까지 절하되어 약 36% 절하되었다. 


  • 1995년 4월~1996년 12월 간의 엔/달러 환율변동 추이. 1995년 5월을 기점으로 일본 엔화는 달러화대비 약 36% 평가절하 된다. 


이러한 자본시장개방일본 엔화의 평가절하원화가치를 적정수준보다 고평가 시켰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두열은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1998)을 통해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원화가치 고평가 현상을 지적한다.


원화의 고평가 문제는 한국의 '거시경제 전체에 대한 긴장도를 높인 가장 근본적인 요인' 이라고 할 수 있다. 대외부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격변수가 고평가됨에 따라 임금이 상승되고 임금상승에 대처하기 위한 시설재 투자가 증가하였으며 비교역재 부문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등 많은 거시변수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1995년과 1996년에 기업의 현금흐름을 대폭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수출부진이었고 (...) 수출물량이 증가하지 못한 주된 단기적인 원인은 당시 원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원화의 고평가는 1990년대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하여 1994년 이후 자본유입이 많아지게 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


명목환율 수준으로 계산하여 보면 원화가 가장 고평가된 시점인 1996년 5월 적정환율 수준은 982원/$ 이었으나 실제환율 수준은 780원/$ 수준으로 원화가 202원/$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원화의 고평가는 세계화 추진과 OECD 가입을 위하여 자본자유화를 조속히 추진해 나감에 따라 자본유입이 확대된 결과이다.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203-205


  • 1994년 1월~1997년 12월 간의 자본수지 계정. 1994년 이후 자본수지가 양(+)의 값을 갖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외환위기의 본격적인 발발시기인 1997년 10월 말 이전까지 원화가치의 고평가현상은 지속되었다. (1997년 10월 말부터 원화가치가 급락함에 따라 고평가현상이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은 달러화에 페그된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엔화가치가 절하됨에 따라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동반강세를 보이게 되었다.  최두열은 동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지적한다. 


"달러화에 대한 페그에 따른 문제점으로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게 되면 자국통화도 달러화와 함께 동반강세를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95년 5월 이후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절상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달러화의 엔화에 대한 강세에 따라 사실상 달러화에 페그된 동아시아 각국의 통화가 동반강세를 보이게 되어 엔화에 대해 고평가 되었으며, 이것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 하나의 요인"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160


이라고 지적한다. 당시 한국은 자유변동환율제도가 아닌 일일환율변동폭이 제한된 시장평균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 원화 또한 (완전히 달러화에 페그된 것은 아니었지만) 엔화 절하의 영향으로 1997년 이전까지 고평가된 통화가치를 유지하게 된다. 


  • 원/엔 환율추이. 일본 엔화의 절하에 따라, 한국 원화는 일본 엔화대비 고평가된다. 1994년 4월 100엔당 900원 수준이던 원화는 1996년 12월 100엔당 728원 수준까지 통화가치가 상승하였다. 


자본시장 개방과 일본 엔화의 절하로 인한 한국 원화가치의 고평가 현상. 그 결과는 1994년-1996년 3년간의 경상수지 적자, 특히나 1996년 -229억 달러 · GDP 대비 -4.75%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 원화가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가 초래하는 문제들


원화가치 고평가와 경상수지 적자는 어떠한 문제를 초래할까? 먼저, 고평가된 통화가치의 문제, 특히나 정환율제도를 택한 상태에서 통화가치 고평가가 초래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앞서 살펴본것 처럼 한국 원화가치는 자본시장 개방과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로 인해 적정수준을 넘어서서 고평가 되어있다. 이것을 본 시장참가자들이 "적정수준을 넘어선 원화의 고평가는 지속불가능하다" 라고 생각을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다시 말해, 시장참가자들이 "곧 원화의 평가절하가 발생하게 될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시장참가자들간에 급격한 환율상승에 대한 예상이 우세하게 되는 그 순간, 자기실현적 투기공격(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각주:4]이 발생하게 되어 실제로 원화가치가 급락하게 된다. 


고평가된 통화가치가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1997년 당시 김만제 포항제철 회장은 강경식 경제부총리와의 만남에서 "환율이 고평가되고 있어, 환율상승을 예상한 투기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51)"[각주:5] 라는 우려를 전했다. 


최창규는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1998) 를 통해 기초적인 게임이론을 이용하여 '자기실현적 투기공격(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이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제2세대 투기적공격모형은 외환보유액의 부족 등으로 인해 기초경제여건이 ‘위기범위(crisis zone)’에 속하게 되는 경우 실제 외환위기의 발생여부는 앞으로의 환율에 대한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참가자들간에 급격한 환율상승에 대한 예상이 우세하면 실제로 환율급등이 초래되지만 환율이 계속 안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한 경우에는 환율상승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형에서는 외환위기가 자기실현적 투기공격의 양상을 띠게 되며9) 복수균형(multiple equilibria)이 가능하게 된다. 복수균형이라 함은 기초경제여건이 위기범위에 속하는 경우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에 따라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고 외환위기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두가지 가능성을 가리킨 것이다. (...)


이 모형에서는 외환당국과 거래자 A, B 등 세 경제주체가 있다고 가정한다.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에 쓸 수 있도록 일정한 외환(R)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두명의 거래자 A, B는 1회의 비협조적 게임(non-cooperative game)을 한다고 가정한다. 두명의 거래자는 각각 6만큼의 국내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외환당국의 보유외환을 사기 위하여 국내통화를 ‘매도’하거나 계속 ‘보유’하는 두가지의 전략을 펼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외환을 사거나 파는 데 따르는 거래비용은 1이라고 하자.


첫번째 게임에서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수준인 20이라고 가정되고 있다 (R=20). 이 경우에는 거래자 A와 B가 모두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보유외환을 사더라도 외환당국은 여전히 8만큼의 외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거래자 중 1인이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다른 1인은 매도하지 않을 경우 매도를 한 거래자는 1만큼의 비용이 들고 매도를 하지 않은 거래자는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 나쉬균형(Nash Equilibrium)은 거래자가 모두 매도를 하지 않는이다.


두번째 게임에서는 외환보유액이 매우 낮은 수준인 6이라고 가정되고 있다(R=6). 여기서는 거래자 2인중 어느 한 사람이 외환을 사기 위해 국내통화를 매도하는 경우에도 외환보유액은 모두 소진된다. 따라서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거나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외환당국이 보유외환으로 고정환율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50% 평가절하를 하게 된다고 가정하자. 거래자 2인중 어느 한사람만이라도 보유 국내통화를 모두 매각하여 외환을 사는 경우 중앙은행은 고정환율을 포기하고 50% 평가절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거래자는 국내통화기준으로 3만큼의 자본이득을 보고 거래비용 1을 지급하게 되므로 2만큼의 순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한편 거래자 2인이 동시에 각각 3만큼의 국내통화를 매도하여 외환을 매입하는 경우 두사람은 모두 각각 3/2만큼의 자본이득을 보게 되고 거래비용으로 1을 지급하게 되므로 1/2[=(3/2)-1]만큼의 순이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유일한 나쉬균형은 양거래자가 국내통화를 매도하고 외환을 매입함으로써 고정환율이 붕괴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세번째 경우가 가장 흥미로운 경우이다. 여기서는 외환보유액이 중간정도 수준인 10이라고 가정되고 있다(R=10). 이 경우에는 어느 거래자 일방이 외환당국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전부 살 수는 없지만 거래자 2인이 모두 국내통화를 매도하는 경우에는 외환당국이 평가절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수익(pay-off)을 계산해보면 아래와 같다. 


어느 거래자 일방이 공격을 하고 상대방이 공격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외환당국이 보유외환으로 충분히 공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평가절하가 일어나지 않는다.격을 감행한 거래자는 1만큼의 비용만 지급하게 된다. 두 거래자가 동시에 공격을 하게 되면 전체 보유외환 10을 각각 5만큼씩 나눠서 사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50%만큼의 평가절하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두 사람은 국내통화기준으로 각각 5/2만큼씩 얻게 되는 반면 거래비용은 1이 되어 각각 3/2[=(5/2)-1]만큼의 이득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 게임에서는 2개의 나쉬균형이 생기게 된다. 하나의 균형은 양거래자가 모두 공격을 하는 경우에 생긴다. 이때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의 균형은 어느 거래자도 상대방이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경우에 생긴다. 이 때 외환당국은 평가절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투기적공격이 일어나면 고정환율이 붕괴되고 그렇지 않으면 고정환율이 유지된다는 의미에서 이들 균형에는 자기실현적 요소가 있게 된다.




최창규. 1998.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한국은행 조사부 「경제분석」 제4권 제2호 (1998. Ⅱ). 7-10 


그리고 금융경제학계의 권위자 Frederic Mishkin은 "고정환율제도가 문제를 심화시킨다" 라고 지적한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한 국가의 통화가치는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통화가치 고평가가 지속될수록 평가절하 압력을 계속해서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기적 공격으로 인해 통화가치가 한번 하락하기 시작하면 변동폭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Under a pegged exchange-rate regime, when a successful speculative attack occurs, the decline in the value of the domestic currency is usually much larger, more rapid and more unanticipated than when a depreciation occurs under a floating exchange-rate regime.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또한, 원화가치 고평가에 이은 경상수지 적자도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한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될수록 외국 투자자들은 국가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각주:6] 에 의심을 품게 된다. 김인준·이영섭은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1998)에서 '경상수지 적자 →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된 외국 투자자 → 자본유출 → 통화가치 급락' 현상을 이야기한다.  


국가간 금리 격차가 존재할 경우 자본자유화는 양국간 금리격차를 줄이는 데 공헌할 것이다. 그렇지만 양국간 발전단계가 다르다면 자본이동에 따라 금리격차가 줄어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편의상 자본자유화는 이루어졌지만 금리는 원래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자유화가 이루어지면 자본은 이자율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 결과 이자율이 높은 국가의 경우 자본시장개방에 따라 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하락하고 경제가 활성화된다. (...)


이자율이 높은 나라로의 자본유입은 이 나라의 환율을 하락시키고 그 결과 가격경쟁력이 악화되어 경상수지가 적자로 될 것이다. 또한 자본유입에 따른 경기활성화도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한 요인이 될 것이다. 물론 어느 기간까지는 경상수지 적자가 자본유입으로 보전되기 때문에 이 나라 통화의 고평가 현상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환율의 고평가로 경상수지 적자가 상당기간 누적되면 외국 투자가들이 이 나라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 되고 자본을 회수해 나가려 할 것이다. 이때부터 고금리는 더 이상 자본유입의 유인이 되지 못하고 따라서 환율에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가 환율에 주로 영향을 끼치게 되고 경상수지 악화로 인해 환율은 상승할 것이다. 한편 환율상승에 따른 투자수익률 하락을 우려하여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려 함에 따라 환율은 더욱 더 상승할 뿐만 아니라 경기침체도 가속화될 것이다.


김인준·이영섭. 1998.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 . 『金融學會誌 Vol.3 No.2』 7-9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소속인 왕윤종 또한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2001)에서 '경상수지 적자 → 경제의 기본 건전성에 회의를 갖게된 외국 투자자 → 자본유출 → 통화가치 급락' 현상을 말한다.


Over the period 1995-97, however, there was a series of adverse external shocks – particularly a trade-weighted appreciation of the region's currencies vis-à-vis the U.S. dollar, to which they were de facto pegged, rose against the Japanese yen, and a fall in the terms of trade for electronic-goods exporters. 


These shocks brought into question the sustainability of the currency pegs to the U.S. dollar, undermining the confidence of international investors in the region's prospects, and leading to a sudden withdrawal of their funds. 


As the currency pegs collapsed, the large stock of unhedged foreign currency denominated borrowings, undoubtedly fueled investors' new-found pessimism and the sense of market panic, making the crisis much more severe than it would otherwise have been.


왕윤종.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7


게다가 1996년에 기록한 '-229억 달러 · GDP 대비 -4.75%' 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외환유동성 자체를 크게 악화시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신인석은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를 통해 "환율절하 지연에 이은 96년에 기록된 대폭의 경상수지 적자가 잠재적인 외환유동성을 악화시켰다" 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외환유동성 악화는 1997년 12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인출사태(banking panic)'을 촉발시켜 외환보유고를 고갈시켰다.   




<표 8>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야기되기까지는 거시충격과 이에 대한 정책대응상의 오류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표가 보이듯이 단기외채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로의 자본유입이 증가한 것은 94년부터였으며 같은 시기 외환유동성은 점차 악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급격한 악화가 진행된 것은 지표 A에 의거할 때 명백히 96년이었고, 이는 물론 96년에 기록된 대폭의 경상수지적자에 기인한 변화였다. 그리고 96년의 경상수지적자는 교역조건 충격으로 요구되었던 환율절하를 정책당국이 지연시킨 결과였다고 평가되므로, 그만큼의 외환유동성 악화는 거시정책대응 미숙에 원인이 있었다고 하겠다.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31-32




※ 원화가치 고평가와 1994-1996년의 경상수지 적자를 막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신인석의 주장 중 눈여겨볼 대목은 "외환유동성 악화는 거시정책대응 미숙에 원인" 이다. 왜 당시 정책당국자들은 금융시장개방의 위험성을 간과했고, 원화가치의 절하를 지연시켰을까? 한국경제연구원의 허찬국은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2009) 보고서를 통해 "1990년대 당시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이 가져오는 파급효과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라고 비판한다. 


당시의 환율제도가 정책당국의 높은 결정력을 보장하는 약한 형태의 페그제(adjustable peg regime)였다고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외균형의 3년 연속 악화를 방치한 것은 의아한 일이라 하겠다. 지속되는 경상수지 적자 악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원화가치 절하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없었다.


한 가지 설명은 자본시장 개방 이후 해외자금의 유입이 가속화되는 그때까지 익숙하지 않았던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고도 성장기부터 대외교역 경험을 통해 환율이 수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자본시장 개방과 그에 따른 큰 규모의 국제적 자금이동에 따른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식이 낮았다고 보인다.


허찬국. 2009.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 『한국경제연구원』


1997년 당시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 국장을 맡았던 정덕구도 회고록 『외환위기 징비록』을 통해 "시장개방의 후유증을 간과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아쉬운 점은 시장 개방의 후유증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란 가치를 내걸고 적극적인 시장 개방에 나섰다. 그러나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비용이 뒤따른다. 시장 개방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은 구조조정 외에는 없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금융이나 기업 구조조정[각주:7]에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말았다. 재경원에서 끊임없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정책으로 추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성공하지 못했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96


정덕구는 연이어 원화가치 고평가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정부 정책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게 되면 정부는 또 다른 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정책이 남발되는 것이다. 환율정책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정부는 1996년 말 경상수지적자가 자꾸 늘어가자 한승수 부총리와 박영철 금융연구원장 등이 모여 원화가치 하락(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 상승)을 용인할 것인지를 깊이 논의했다.


그러나 원화가치를 하락시키는 일은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물가상승 우려와 함께 국내 금융기관의 외채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눌려온 것은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다.


원화가치가 고평가된 상태로 계속 가게 되면 시장참여자들은 "언젠가는 원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며 불안해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계기가 생길 경우 환율은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게 되는 것이다. 방안에 가스가 꽉 차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성냥불을 켜대면 폭발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111


김영삼정부 시절 관세청장 · 통상산업부 차관 · 재정경제원 차관을 역임한 강만수는 "원화가치 절하를 하지 못한 것이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라며 원화가치 고평가의 책임을 한국은행과 정치권에 돌린다[각주:8] [각주:9].


8% 단일관세율과 고평가된 환율이라는 최악의 정책조합(the worst policy mix)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수출을 포기해야 할 환율 수준에서 추진된 '뼈를 깎는' 노력은 경상수지 적자를 예상보다 4배나 많은 사상 최대인 237억 달러에 달하게 하여 우리경제의 뼈를 실제로 깎았다. 이러한 방향착오를 한 다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


1996년의 성장률은 내수증가가 기여했고 물가는 환율의 고평가와 수입증가가 기여한 것이었다. 1994년부터 3년간 경상수지는 물가와 성장률에 희생된 것이다. 대내균형을 위해 대외균형이 파괴된 것이다. 1996년은 물가를 희생해서라도 환율을 크게 올려 수출을 늘이고 수입을 억제했어야 했다. 


10%가 넘는 임금상승에서 가격경쟁력 상실을 보전할 수 있는 수단도 사실상 환율 뿐이었다. 매년 5% 정도의 절하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고임금으로 가격경쟁력이 상실되어가고 있는데 환율까지 평가절상 되었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


상반기에 경상수지가 연간목표를 넘어섰는데도 "원화가치의 가파른 하락으로 인해 외환시장이 출렁거리지는 않도록 하겠다"는 한국은행의 헛소리는 끊임없이 평가절상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중앙은행의 속성상 이해가 된다. 평가절상을 하는 만큼 다른 부분에서 통화를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이 중앙은행에는 있다. (...)


대내균형을 나타내는 물가안정은 중앙은행의 임무이고 표를 의식하는 것은 정치권의 속성이다. 정부는 대외균형을 유지할 의무가 있고 대내와 대외 균형이 상충할 때는 비난을 무릅쓰고 대외균형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경상수지가 감내하기 힘든 수준으로 악화될 때는 그렇다. (...)


최악의 두 정책이 동시에 조합됨으로써 1994년부터 국제수지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1996년 상반기에 벌써 연간 전망 적자를 넘어선 위기상황 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 경제가 위기로 치달아가는데 환율은 버려두고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호기를 부린 사람들은 우리를 슬프게 했고, 환율을 안정시킨다고 노력한 사람들의 빗나간 정책들은 우리를 절망케 했다.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72-379




※ 원화가치 하락을 노린 헤지펀드 · 핫머니의 투기적공격이 1997 외환위기의 원인일까?


앞서 논의했던 것을 종합해보자. 금융시장개방과 일본 엔화의 절하는 원화가치의 고평가를 초래했고 이는 1994년-1996년, 특히나 1996년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만들어냈다. 적정수준을 넘어서 고평가된 원화가치를 본 시장참가자들은 "원화가치가 하락할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이는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을 유도했다. 경상수지 적자 또한 시장참가자들에게 "한국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에 의심을 품게해서 자본유출을 초래했다. 게다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한국경제의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야기되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이다.


여기서 구별해야 하는 건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투기적공격'이란 말을 들으면 통화가치 하락 그 자체에 대해 베팅한 뒤 환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을 떠올리기 쉽상이다[각주:10] [각주:11]. 그러나 1997년 당시,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 · 잠재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외환보유고가 감소하긴 했지만,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이 원화가치 하락에 베팅한 뒤 환차익을 챙기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1997년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은 9월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 이라며 한국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에 대해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97년 7월 8일 태국, 금융위기에 몰리다


나-강경식-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태국과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외국인이 우리 원화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주식시장이 고작인데, 그나마 한도액이 정해져 있어서 원화의 대량 매매는 있을 수 없고 그 외에 외국인이 원화를 사용할 일은 전혀 없다. 심지어 채권조차 살 수 없다. 


세계적으로 하루에 거래되는 달러의 양은 1조 6천억 달러로 무역 등 실물거래 규모는 500억 달러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투기성 자금인 것이다. 세계 중앙은행 보유고 총액이 1조 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만큼은 이런 투기자금이 전혀 들락거리지 못한다. 전부 실제 거래되는 달러뿐이다. 금융 또한 해외에 개방이 안 되어 있어서 외국의 동향에 휘말릴 걱정이 없다. (...)


97년 9월 8일 태국과 한국은 다르다


무엇보다 태국은 역외 금융시장을 육성한다는 명분 하에 금융시장이 완전개방되어 있어 헤지 펀드(hedge fund) 등 단기 투기성 자금의 유입이 용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증권시장 일부만 개방되었을 뿐,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투기성 자금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견해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식이었다. 이날 토론에서도 한국과 태국이 다르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279-281     


강경식의 판단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신인석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발발한 "1997년 11월달 외환보유고 감소의 주된 요인은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이 아니라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 이었다.




<표 7>에서 환율요인에 따른 외환수요의 증가분을 가장 넓은 기준의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의 지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에는 경상수지적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과 포함된 것의 두 가지 투기적 공격지표를 계산하여 놓았다. 두 지표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11월중 투기적 공격은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의 14~20%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상수지적자까지 감안한 광의의 투기적 공격 지표에 의거하면 9~11월중의 환율에 따른 외환수요요인은 1~3월에도 미달하는 규모였다. 


두 기간의  차이와 11월 외환위기를 낳은 것은 환위험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고 따라서 원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볼 수 없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의 존재여부[각주:12] 였음은 <표 7>에서 명백하다.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26-27


고평가된 원화가치 ·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지만, 고평가된 원화가치 그 자체에 대한 헤지펀드 · 핫머니 등의 투기적 공격은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 그렇다면 과연 어떤 요인이 한국경제에 외환위기를 가져온 것일까? 신인석이 주장하는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이야기했던 것을 다시 가져와보자. 


이전 포스팅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를 통해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생긴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 원인으로 이어졌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해서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1997 외환위기로 이어졌을까?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이야기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란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 저해 · 제2금융권 팽창 · 은행과 기업의 도덕적해이 Moral Hazard · 잠재적 부실채권 증가 · 재벌에 경제력 집중 · 재벌의 과다차입' 를 뜻한다. 이러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요인이 어떻게 '국제채권은행의 채권인출사태'를 촉발시켰는지, 다음 포스팅에서 그 경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1편 참고자료 >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2013.10.18


국제금융센터 <Ⅱ. 외환위기의 개념 및 이론적 모델>.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2013.08.23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2012.10.19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Frederic Mishkin. 1999.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최두열. 1998.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 『한국경제연구원』. 


최창규. 1998. '<투기적공격 이론과 한국의 외환위기>'한국은행 조사부 「경제분석」 제4권 제2호 (1998. Ⅱ).


김인준·이영섭. 1998. "외환·금융위기와 IMF 경제정책 평가" . 『金融學會誌 Vol.3 No.2』


Wang Yunjong. 2001. 'Does the Sequencing Really Matter?: The Korean Experience in the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THE JOURNAL OF THE KOREAN ECONOMY, Vol. 2, No. 1 (Spring 2001)>.


신인석. 1998.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일고'. 『한국개발연구원』.


허찬국. 2009. '1997년과 2008년 두 경제위기의 비교'. 『한국경제연구원』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강만수. 2005.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정덕구. 2008. 『외환위기 징비록』

    

  1. 신흥국은 특성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경제학자 Barry Eichengreen은 이를 '신흥국의 원죄 Original Sin'로 표현했다.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http://joohyeon.com/113 [본문으로]
  2.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은행부채의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로 되어있을 때,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여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키는 것'을 '신흥국 대차대조표 위기 Balance Sheet Crisis'라 불렀다. │ Paul Krugman. 1999.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 이에 대해서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3. 이러한 현상은 신흥국의 외환위기를 체계적 금융위기로 심화시킨다.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보통 금리를 올림으로써 통화가치를 상승케 하는데, 금리를 인상할 경우 은행의 부채부담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 그러나 신흥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고 통화가치 하락을 방치한다면,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가치는 더욱 커지게 되고 기업과 은행의 부채부담을 증가시킨다. 그 결과, 은행은 고객들의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하게 되고 금융시스템 자체가 마비된다. 금융경제학 권위자인 Frederic Mishkin은 논문 "Lessons from the Asian Crisis "(1999)를 통해 "A currency crisis and the subsequent devaluation then helps trigger a full-fledged financial crisi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because of two key features of debt contracts. In emerging market countries, debt contracts both have very short duration and are often 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ies. These features of debt contracts generate three mechanisms through which a currency crisis in an emerging market country increases asymmetric information problems in credit markets, thereby causing a financial crisis to occur." 라고 말한다. │ 이에 대해서는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참고 [본문으로]
  4. 경제학에서는 금융위기 원인의 2세대 모델로서 '자기실현적 투기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 을 다루고 있다.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5. 강경식. 1999. 『강경식의 환란일기』. 51 [본문으로]
  6. 경제학계에서는 금융위기 원인의 1세대 모델로서, '해당국 경제의 기초여건 fundamental 악화로 인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통화가치가 급락' 을 다루고 있다.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http://joohyeon.com/162 [본문으로]
  7. 여기서 말하는 금융, 기업구조조정은 단순히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감독기능 강화, 대출시 엄격한 신용평가, 기업의 과다차입 방지 등등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태어난 구조적인 문제를 고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룬다. [본문으로]
  8. 김영상정부 시절 경제부처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그가 이러한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강만수, 강경식 등 경제고위관료들은 회고록 등을 통해 1997 외환위기의 책임을 "한국은행"에 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은 "금융개혁법안"과 "환율관리"를 놓고 치열한 갈등관계 였기 때문인데, 그렇다고해서 고위경제관료들이 외환위기의 책임을 한국은행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본문으로]
  9.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인해 일본의 엔화가치가 강제로 절상된 것을 지켜봤던 강만수는 "환율관리는 주권행사"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환율 정책만이 경제를 유지시킨다고 생각했는데, 이명박정부 집권 이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고환율 정책을 밀어부친다. 당시 강만수의 고환율정책은 물가인상 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
  10.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 파운드화 가치하락에 베팅한 George Soros를 들 수 있다. [본문으로]
  11. 물론, 금융위기 2세대 모델인 '자기실현적 투기적공격 self-fulfilling speculative attack'은 단순히 '헤지펀드, 핫머니 등이 통화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투기적 공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세대 모델이 강조하는건 '시장참가자들의 자기실현적 예측으로 인해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현상' 이다. 다만, 경제학 비전공자가 '투기적공격' 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헤지펀드, 핫머니 등만을 연상할 것 같은 노파심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본문으로]
  12.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이 보고서의 논평을 맡은 이영섭은 "<표7>의 해석에 대해서 논평자도 기본적으로 저자의 입장을 같이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이 반대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제시한 1997년 11월중의 대규모의 인출은 외환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투기적 공격 때문에 발생된 위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국제채권단의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표7>을 보면 투기적 공격은 그 이전부터 발생하지만 채권인출은 11월에만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는 10월말 및 11월 초에 발생하기 시작한 위기에 대한 대응처럼 보일 수도 있다. <표7>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외환위기의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만일 외환위기의 시작을 11월 중하순(예를 들어, IMF 구제금융 신청일인 11월 21일)으로 잡으면 저자의 해석에 대해 반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작을 10월 하순(예를 들어, 기아사태처리 발표 및 홍콩증시 폭락이 발생한 10월 22~23일)으로 잡으면 이상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저자와 대립되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라고 지적한다. 본인도 이러한 지적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시점을 10월 하순으로 잡더라도, 이는 헤지펀드 등의 투기적공격이 아니라 1997년 동안 높았던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본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