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Posted at 2018. 12. 7. 17:28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유치산업보호의 타당성을 '역사적 발전단계'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을 통해,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및 자유무역 사상을 반박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사상'(liberalism)[각주:1]은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사고방식 입니다. 국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며, 이익을 쫓는 개인의 행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의 이익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각주:2]은 여러 국가가 서로의 상품을 자유롭게 교환하여 전세계적인 후생을 극대화하는 '자유무역'(free trade)을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론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리카도가 살았던 시대상황[각주:3] · 보호무역을 추구했던 1920-30년대 호주[각주:4] ·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한 1950-70년대 중남미[각주:5]에서 누차 짚었듯이...)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똑같은 물음을 던지며, "제조업 육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유치산업을 보호하자(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는 주장으로 애덤 스미스를 정면 공격했습니다. 


스미스는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각자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은데 반하여, 리스트는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제조업 육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농업 발전에 성공한 국가는 다음 단계인 제조업 발전을 위해 보호체제가 이로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리스트의 보호론은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에 따른 일시적인 조치(temporary)이며, 궁극적으로 제조업 발전 이후에는 자유무역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보호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하에서만 정당화(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대외 경쟁을 완전히 배제하면 나태와 무감각이 조장되어 민족에 해만 끼치게 됩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 ·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유치산업보호론의 정당성을 주장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들의 논쟁을 살펴보면 "자유무역이 옳다! vs. 보호무역이 옳다!"와 같은 1차원적 접근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물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그렇다면 '언제'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언제'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하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접근 방식은 무역정책을 집행할 '상황'(circumstances)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리스트는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를 상황의 구분으로 제시했으나, 거대한 단계의 구분보다는 좀 더 타당한 상황 구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제조업 발전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더라도 항상 올바른 결과를 달성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숙된 농업을 가진채 제조업 단계로 넘어가는 상황은 유치산업보호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리스트는 영국 · 프랑스 등의 역사적 사례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여러 국가들을 살펴보니, 성숙된 농업과 함께 "제조업 역량을 배양하고 이를 통해 최고도의 문명과 교양, 물질적 복지와 정치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특성과 수단을 보유"[각주:6]한 민족이 단지 "이미 더 선진화된 해외 제조업 역량의 경쟁에 의해 진보가 정체"[각주:7]되어 있을 때,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사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리스트의 접근방식은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있으며,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이 불가능 합니다. 


쉽게 말해, 리스트는 제조업 육성에 성공한 국가들이 채택했던 정책을 되돌아 봤을 뿐이지, 비슷한 조건에 있는 다른 국가들이 유치산업 정책을 채택했을 때 똑같은 성공을 안겨다줄 수 있는지는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만약 영국 · 프랑스 등이 다른 정책을 채택했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지도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유치산업보호가 아닌 자유무역을 했더라도 제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면, "유치산업보호가 제조업 육성을 가져왔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현재를 희생하여 제조업을 육성하면 미래의 이익을 얻는다는 걸 아는 국가 · 민족 · 사업가라면, 보호조치가 없더라도 자연스레 이를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스트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미 앞선 외국 제조업과의 경쟁을 견딜 수 없고, 따라서 "'자연스런 사물의 흐름'(the natural course of things)에 따라 국내 제조업이 육성되는 건 전혀 불가능하며 어리석다"[각주:8]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말한 바와 같이 "각 개인은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각주:9]합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래에는 외국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업가라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제조업 분야에 투자를 했을 겁니다. 


리스트는 비교우위론을 정태적(static)으로만 받아들여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는 평생토록 변화하지 않는다"라고 간주했고, 유치산업보호 없이는 평생토록 농업 생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본 사업가에 의해 국가경제의 생산성 · 부존자원 등이 시간이 흐른 후 바뀐다면, 비교우위도 자연스레 변화하는 '동태적 비교우위'(Dynamic Comparative Advantage) 양상을 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유치산업 보호는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리스트의 주장에 대응하는 자유주의의 반격으로 볼 수 있으며, 유치산업보호론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황 및 조건이 필요함을 알려줍니다.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나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대립은 이처럼 학자들 간의 논쟁을 통해 이전보다 정교화된 논점을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과거 만연해있던 중상주의 사상에 대항하기 위해 제시된 자유무역사상은, 시간이 흘러 유치산업보호론의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후 다시 자유주의 논리로 유치산업보호론의 허점을 찌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00% 자유무역이 옳다" 라거나 "100% 보호무역이 옳다" 라는 극단적인 생각은 배제되고, 어떤 상황에서 자유무역 혹은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해야 하며 평상시에는 어떠한 정책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느냐 라는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관점으로 유치산업보호론을 평가하면, 특수한 상황 및 조건(specific condition)을 필요로 하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평상시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는 때때로 정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럼 도대체 유치산업보호론이 타당할 수 있는 특수한 상황 및 조건이 무엇일까요?


▶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의 등장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이를 처음 제시해준 학자가 바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입니다. 『자유론』(『On Liberty』) · 『공리주의』(『Utilitarianism』)로 유명한 그 철학자 입니다. 밀은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뛰어난 통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


● 제10장 잘못된 이론에 근거한 정부개입

(Of Interferences of Government grounded on Erroneous Theories)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각주:10]


생산의 한 분야에서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습득된 기술과 경험이 현재 우월하다는 점 말고는 한쪽이 유리할 것도 다른 쪽이 불리할 것도 본원적으로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각주:11] 


아울러 레이(Rae)가 적확하게 지적하였듯이 어떤 분야의 생산이든 새로운 여건 아래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그렇지만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하기 위해서 한 나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 가운데 불편을 가장 줄이는 방법이 때로는 될 수도 있다.[각주:12]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필수적이다. 또한 국내 생산자들에게는 자기들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정한 기회에 필요한 기간 이상으로까지 관세가 지속되리라고 기대할 여지를 남겨주면 안될 것이다.[각주:13]


(...)


생산비는 언제나 처음에 가장 크기 때문에 실지로는 국내생산이 가장 유리한 경우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금전적으로 손실을 겪는 후가 아니면 이익으로 나타나지 못할 수가 있다.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각주:14]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와 같은 일시적 보호는 일종의 특허와 본질이 같을 것이므로 비슷한 조건 아래서 시행되어야 한다.[각주:15] 


- 존 스튜어트 밀, 박동천 옮김, 『정치경제학 원리 4』, 제5편 제10장, 339-341쪽

- 영어 원문은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존 스튜어트 밀이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제시한 논리는 유치산업보호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새로 정립시켰습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유치산업보호를 주제로 한 경제학 논문들이 오늘날에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밀은 두 쪽 가량의 짧은 문단을 통해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The only case in which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을 논리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①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영국 민족이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기술 · 기질 · 지리적위치 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제조업 생산에 유리해서 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처럼 (부존자원이 아닌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는) 비교우위는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이 먼저 시작하게끔 만들어주어서 획득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럼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 비교우위 결정에 있어 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일까요?


②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공부를 많이 하기 이며 다른 왕도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생산기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경험 축적 입니다. 상품을 처음 제조할때는 미숙한 점이 많아 불량도 생기고 시간도 오래걸리지만, 점점 경험을 축적해나가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즉, 밀의 발언처럼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을 거치면서 생산 경험을 쌓아가면(cumulative learning experience) 더 낮은 비용으로 상품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국가·민족이 비교우위 결정에 유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고, 그 결과 낮은 비용으로 값싼 상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되어 비교우위를 획득하게 된겁니다.


(주 : 무역을 만들어내는 것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16]이며, 비교우위란 높은 기술수준[각주:17] · 풍부한 부존자원[각주:18] 덕분에 '상대적으로 값싼 상품을 생산하는 능력'을 뜻한다는 것을 기억)


존 스튜어트 밀은 '단지 먼저 시작하여 경험을 축적'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교우위가 형성될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하며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습니다. 


③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떠한 나라가 '역사적 우연성' 덕분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고 이후 '학습과 경험'을 통해 비교우위를 가지게 되는 원리는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가 먼저 생산을 시작했더라면, 현시점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보다 더 우월한 생산능력을 가진채 더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잠재적인 비교우위는 뒤늦게 생산한 국가 혹은 아직 생산을 시작하지 못한 국가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보여지고 있는 비교우위 및 무역패턴은 가장 효율적인 결과물이 아닐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잠재적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가 국내 산업 · 기업 등을 지원하여서 앞선 외국을 따라잡거나 혹은 생산을 시작하게끔 만들면, 보다 효율적인 무역패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뒤처진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다면, 미래의 이익 달성을 바라보고 현재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생산에 착수하지 않을까?" 입니다. 이번글 서두에서 말한바와 같이, 미래 이익을 쫓는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여 행위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보호조치는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또 다른 통찰이 후대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무엇인지 한번 살펴봅시다.


④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들이 장기 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을 포착했습니다. 자유시장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 판단하여 생산에 착수할 겁니다. 문제는 자유시장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을 때 벌어집니다.


만약 장기이익을 바라본 사업가가 단기 손실을 감수해가며 생산경험을 축적하였는데, 이때 획득한 경험이 같은 나라의 다른 사업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럴 경우, 후발 사업가는 단기 손실을 보지 않고 바로 이익을 챙길 수 있으며, 단기 손실을 부담한 선발 사업가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줄어듭니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면,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으려 할테고, 결과적으로 그 국가 내에서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밀의 표현처럼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이를 현대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외부성의 존재'입니다. (외부성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하여 비효율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참고 : 외부성 및 생산의 학습효과가 만들어내는 비교우위 패턴, 그리고 그 결과 초래될지도 모르는 잠재적 비효율성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참고)


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여 국내 기업 · 산업을 지원하는 유치산업보호론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정부가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개별 기업들은 경쟁에 대한 부담을 덜고 단기 손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겁니다. 또한 관세부과로 외국 상품가격이 오르게 되면 국내 생산자도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출 및 이윤의 증가를 불러와 단기 손실 크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하였고,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도 밝힙니다. 


⑥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 (...)

일시적 보호관세는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런데 위의 논리를 다르게 보면, 장기 이익이 단기 손실을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성의 존재로 인해 개인이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 할때에만, 일시적인 보호조치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가 때때로 타당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이 마치 무조건적인 보호무역 · 영구적인 보호체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염려하여, 밀은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치산업에 대한 일시적 보호'(Temporary Protection) 라는 점을 재차 강조합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현재 비교열위에 있는 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지원하는 정책도 아닙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없으냐 정부가 일시적인 지원을 하면 향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산업'을 보호 · 육성하는 정책입니다. 


결론 :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자, 이제 존 스튜어트 밀이 남긴 첫 문장이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완벽하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 보호주의 정책은 옳지 않으며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그 경우란 단지 외국 산업에 비해 늦게 시작한 까닭으로 현재 경쟁력이 없으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는' 산업이어서 시간이 흐르면 학습된 경험 축적 덕분에 비교우위를 찾을 수 있는 때 입니다. 오직 이때에만 '토착화되는 동안 일시적으로 보호관세를 부과'하는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은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수행했던 역사적 사례분석에 의존하지 않은채 유치산업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명확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유주의 이념을 가진 당시 경제학자들도 '특정한 경우에는 자유무역 원리에서 이탈하여 수입관세를 이용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무차별적 관세보호 보다는 직접적인 지원이 낫다"


시간이 흘러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에 의문을 품는 다른 학자가 등장했습니다. 이 학자는 "외부성 존재는 효율적 생산을 위해 정부가 개입할 필요를 제기해주지만, 과연 관세 보호 의도했던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What I will question is the effectiveness of tariffs in accomplishing this result.)라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Robert E. Baldwin), 1924~2011

  • 1969년 논문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그 인물이 바로 로버트 발드윈(Robert Baldwin)이며, 해당 주장이 실린 논문은 1969년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the Case Against Infant-Industry Tariff Protection>) 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어깨 위에 올라선 로버트 발드윈은 외부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자원 이용이 불가능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정부개입의 수단(means of government intervention) 이었습니다. 


발드윈이 보기에 산업 내 전체 기업들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보호관세는 외부성 제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성 문제를 겪고 있는 개별 기업만 선별적으로 직접적인 지원을 해야 할 필요(much more direct and selective policy measure than non-discriminatory import duties)가 있었습니.


발드윈은 크게 2가지 경우를 제시하며 각각의 사례에서 보호관세의 무용성(ineffectiveness of protective duty) 및 직접적인 지원(direct subsidy)의 필요성을 설파합니다. 이번 파트를 통해 그의 주장과 논리를 알아봅시다.


●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첫번째는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은 "단순히 초기 생산비용이 외국보다 높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기업을 보호해서는 안되며, 유치산업보호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학습 프로세스와 연결된 기술적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ies frequently associated with the learning process)이 존재해야 한다." 라고 진단합니다.


왜냐하면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미래에 외국기업보다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걸 국내 생산자가 알고 있더라도 기술적 외부성이 존재하면 아예 시장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생산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가가 직면하는 문제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정보를 거리낌없이 쓸 가능성", 즉 기술적 외부성 이며, 이로인해 "개별 사업가가 지식 획득을 위한 투자를 꺼리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아무도 기술진보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 결과 그 나라의 지식수준은 사회적 최적 수준에 미달하게 됩니다. 


이는 앞서 소개한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밀은 보호 관세 부과로 외부성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만약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지식획득에 수반되는 초기 비용투자 부담이 덜어지게 되어 단기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입관세 부과 이후 올라간 상품가격으로 이윤증대를 누리면서 단기 손실을 메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발드윈이 보기엔 국내 전체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인 관세(non-discriminatory import duty)는 외부성으로부터 초래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내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나의 지식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가 수입관세 부과 이후로도 교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드윈은 기술을 무단으로 차용하는 국내 잠재적 경쟁자가 상품가격 인상 덕분에 더 높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하면, 선도적인 기업의 이윤은 국내 경쟁 증대로 인해 줄어들고 결국 지식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심한 경우 기술개발에 투자한 기업들은 모두 퇴출되고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기업만 생존할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발드윈이 진단한 사회적 비효율성이 초래되는 근본원인은 '지식투자로 인한 단기 손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기업이 전유할 수 없는 지식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과 사적 비용의 차이'(knowledge is not appropriable by individual firm) 였습니다. 


단기 손실을 보전해주려는 보호관세는 지식에 투자한 기업의 단기 손실도 줄어주지만, 지식에 투자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의 이윤도 증가시켜 줍니다. 따라서, 발드윈은 든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 보호관세가 아니라 지식을 발견한 기업에게만 주어지는 보조금(a subsidy to the initial entrants into the industry for discovering better productive techniques)이 필요하다 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두번째는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입니다.


국내에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으로 국내 기업 한 곳이 신규진입 하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이 기업은 기술개발 및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borrow funds from investors)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 산업에 대해 아는 투자자가 없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은 기업가치를 올바르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진입기업은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스스로 시장조사(market study)를 하여 투자자에게 상세한 정보(detailed market analysis)를 제공해줄 유인이 있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경우와 유사한 문제가 초래됩니다. 


만약 시장조사를 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하는 데 반하여, 이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기업도 새로운 산업에 먼저 진입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먼저 진입하여 시장조사를 하기만을 바라겠죠. 그것을 못 견디고 먼저 진입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지불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아예 빌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유익한 산업이 수립되지 않는 경우가 초래되고 맙니다.(under these circumstances the firm will not finance the cost of the study, and a socially beneficial industry will not be established.)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무차별적인 보호 관세가 아니라 지식획득을 지원하는 직접적인 보조금(direct subsidies to pay for the costs of knowledge acquisition) 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 로버트 발드윈이 기여한 것


번 파트에서 소개한 로버트 발드윈의 1969년 논문은 "유치산업보호를 위해 수입관세 부과 등으로 보호장벽을 높여야 한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대표적인 참고문헌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첫번째 공헌은 '현재에는 생산비용이 높지만 학습효과에 의해 잠재적 비교우위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항상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현대 경제학 프레임 내에서 논리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지식획득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성이 없다면, 기업은 단기 손실과 장기 이익을 스스로 비교 평가하여 시장에 진입할 겁니다. 또한 금융시장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면, 투자자들은 장기 이익을 내다보고 자금을 빌려줄 것이고, 기업은 단기 손실이 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지식획득이 초래하는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y)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capital market imperfection) 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두번째 공헌은 '비록 지식획득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산업을 보유하지 못하더라도, 수입장벽을 높이는 보호조치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입니다.


수입관세 부과는 외부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채, 지식투자에 기여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들의 시장진입만 되려 부추길 수 있습니다. 또한 금융시장 정보 부재로 인한 문제는 무역보호 조치로 해소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보호를 위한 무역정책을 구사할 생각보다는 구체적인 시장실패를 직접 해결하려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를 기반으로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특정한 경우에 자유무역이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수입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초래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시정하는 구체적인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보호무역 정책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책(Second-Best)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을 통해 보다 정교화된 자유무역 사상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을 통해 세상에 나온 '자유무역 사상'은 이렇게 여러 학자들 간의 논쟁,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을 거치면서 보다 정교화 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와 이번글을 통해 알아본 '자유무역 사상의 진화과정'을 짧게나마 한번 정리해봅시다.


'무역수지 흑자'를 중요시 했던 중상주의 시대[각주:19]

- 토마스 먼,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 1664년


"우호적인 무역수지가 필요하다"


'값싼 외국 상품 수입' 높게 평가하는 자유무역 사상의 등장[각주:20]

- 애덤 스미스,  『국부론』, 1776년 


-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금은을 살 수단[예: 포도주]을 가진 나라는 결코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을 것이다.",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는 우리 상품을 유통시키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할 금은을 언제나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 "나는 이익이나 이득이라는 것은 금은량의 증가가 아니라 그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생산물의 교환가치 증가나 주민들의 연간소득 증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 나라가 이러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한, 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전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만들어낸다'는 비교우위론의 등장[각주:21]원리[각주:22]

- 데이비드 리카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1817년


-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 "한 나라에서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규칙이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 "포르투갈이 수입하는 상품이 잉글랜드에서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적은 노동으로 생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환은 일어날 것이다. (...) 왜냐하면 포르투갈은, 그 자본의 일부를 포도 재배에서 직물 제조로 전환시켜서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직물을, 잉글랜드에서 획득하게 해주는 포도주 생산에 그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 "직물이 포르투갈에 수입되려면, 그것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치르는 값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많은 금을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포도주가 [포르투갈에서] 잉글랜드로 수입되려면, 그것이 포르투갈에서 치르는 값보다 잉글랜드에서 더 많이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비교우위론은 수확체증에 특화하는 영국에게만 이롭다'반박이 등장[각주:23]

- 제임스 브릭던, <호주 관세와 생활수준>, 1925년 논문


- "경제이론은 합리적추론의 기반이지만 일반적인 지침의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엄밀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결과물은 항상 시간 및 공간의 상황에 달려있다. 고전 국제무역이론은 영국의 상황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개발도상국을 선진국에 종속시킨다'주장이 등장[각주:24]

- 라울 프레비쉬,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발전과 주요 문제들』, 1950년


- "종속은 특정한 국가집단이 다른 경제의 발전과 확산에 의해 제약받는 경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 "제조업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한 지배국가는 팽창하고 스스로의 발전에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반면, 1차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종속국가는 이러한 팽창의 반사로써밖에 발전할 수 없을 때 종속의 형태"


-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면, 기술진보의 혜택은 중심부-주변부 간에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대외지향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한국의 경제발전[각주:25]


- "정부는 증산과 더불어 수출을 대지표로 삼았읍니다. 공업원료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은 경제의 생명입니다. 2차대전직후, 영국의 「처어칠」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이란 호소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 "80년대에 가서 우리가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 공업의 육성 등등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 ... 정부는 지금부터 철강,조선,기계,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서 이 분야의 제품 수출을 목적으로 강화하려고 추진하고 있읍니다."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인위적인 제조업 육성이 필요하다'유치산업보호론 등장[각주:26]

-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1841년


- "필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애덤 스미스 이론의 근본 원리를 의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오늘도 이 글을 가지고 나설 용기를 준 것은 주로 독일의 이익이다."


- "투박한 농사에서는 정신적 활력 · 신체적 둔함, 옛 개념 ·관습, ·습관 · 행위 방식에 대한 고수, 교양 · 복지 · 그리고 자유의 부족이 지배한다. 반면에 정신적, 물질적 재화의 끊임없는 증식을 향한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은 제조업 국가 및 상업 국가의 특징이 된다."


- "상공업 패권을 쥔 (영국의) 공장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생 혹은 반밖에 장성하지 못한 공장들보다 앞서는 천 가지 장점을 가진다. (…) 그러한 세력에 맞서 자유경쟁을 하면서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 "부와 생산 역량의 최고도에 도달한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경쟁의 원리로 점진적으로 회귀하여, 농부들 제조업자들 상인들을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하고 이들이 달성한 우위를 유지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자유주의[각주:27]

-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 원리』, 1848년


-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필요하다'현대경제학의 반격[각주:28]

- 로버트 발드윈,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1969년 논문


- "생산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시장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관세부과를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수입관세 부과를 통한 일시적 보호조치는 효율적 생산을 달성케 할 수 없다.", "수입관세는 외부성의 문제를 교정할 수 없다."


- "필요한 것은 지식획득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유치산업이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보호관세가 아니라 보다 직접적이고 선별적인 정책이다."




※ 한국에서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이제 우리는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 육성하고 싶은 국내산업 중 아무거나 보호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② 현재 비교열위에 처한 이유는 단지 외국에 비해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며,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를 통해 향후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생산할 잠재적 비교우위가 있으며, 

 장기 이익을 내다보는 국내 생산자가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 때문에 생산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고, 

 시장실패를 직접적으로 교정하는 정책 대신 보호무역 조치가 더 확실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때, 

⑥ 유치산업보호 정책은 정당화되고 또 의도했던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위의 조건들이 충족됐던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소개했듯이, 한국정부는 기계 · 조선 · 철강 · 화학 · 전자 등의 중화학 업종 육성하기 위하여, 수입장벽을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보조금을 통한 직접 지원도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중화학 공업화로 가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당시 한국정부가 제철소 · 조선소 등을 건립하려고 했을 때, 외국 정부 및 학자들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산업을 왜 키우려고 하느냐. 현재의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 충실해라" 라는 충고를 했습니다.


(지난글에서도 소개했던) 아래의 기사가 당시 정부가 마주했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번 다시 읽어봅시다.


<AID가 본 한국공업건설 (上 제철소의 경우)>

(주 : AID란 원조를 지원해주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의미한다)


경제5개년계획을 특징지으고 있는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러기에 기자는 워싱턴에 닿자마자 AID가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타진해보기 위하여 AID의 문을 두드렸다. (...)


기자가 AID 당국자들과 만나서 얻은 결론은 제철소는 사무적으로는 절대로 무망한 것으로 느껴졌으나 정치적으로 배려를 한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비료공장은 AID가 주장하는 바 과인산질소 배합비료 공장을 세우는 데 한국측이 동의한다고 하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거부하교 요소 25만톤 용량을 만든다는 종래의 주장을 견지한다면 이 역시 AID에서 돈을 꾸지 못할 것이라 것이다.


AID는 대체로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① 한국은 철광석과 코크스 탄 6천 칼로리 이상나는 역청회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0% 이상의 철분을 가지고 있는 철광석의 매장량은 지난번 탐광에 의해서도 겨우 5백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이 나왔으니, 그처럼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해서 연간 25만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이다. (...)


② 그러니까 한국서 제철을 하자면 외국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사오지 않을 수 없는데 철광석을 100만톤, 석탄을 150만톤을 사오자면 적어도 3,500만불의 외화를 매년 지출하여야만 할 것이니 4,200만불의 수출실적 밖에는 못 가지 한국의 외화사정 아래서는 이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물론 철광석과 석탄도 연불 등 상업차관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기도 하나 AID 규정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차관을 받는다는지 원조를 받는다는 것은 허용하지 않기로 되어있으므로 상업차관에 의한 원료 공급도 안된다는 것이다. (...)


③ 설령 한국에 제철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철의 시장경쟁은 지금도 치열하지만 장차 더욱 더 백열전을 전개할 것이니 과연 한국이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경쟁에서나마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는데는 의문이 짙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록 철광석도 석탄도 사다가 쇠를 녹이고 있다고 하나 경영기술에 있어서나 작업기술에 있어서나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일본과 같은 생산비로서 제철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


⑤ 그러니까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제철소를 만들려면 적어도 1억 5천만불을 들여야 할터이니 그 돈을 다른 산업들 한국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을 세우는데 쓰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고 결론 짓고 있는 것 같다. 


- 이동욱, 1962년 10월 20일, 동아일보 칼럼/논단

- 네이버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서 발췌


현재의 포항 제철소는 1965년 한일협정의 산물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되어 1973년 가동을 시작 하였는데,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당시부터 종합제철소 건립을 꿈꾸었습니다. 


꿈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라는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이들의 주된 논거는 '한국의 제철소 건설 시도가 비교우위 원리에 벗어난다' 입니다. 


① 제철소는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등을 제련하여서 철판을 만드는 곳인데, 한국은 원자재를 풍부하게 가진 국가가 아닙니다. 헥셔-올린의 무역이론[각주:29]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relative abundant resource)을 가진 국가가 그 자원이 집약된 산업(resource-intensive)에 비교우위를 가지는데,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② 또한 어찌어지 철판을 생산한다고 해도 과연 일본에 비해 우위를 가질 수 있겠냐는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일본은 70년전부터 제철소를 운영하며 획득한 기술수준으로 낮은 생산비를 유지하는데, 이를 한국이 수년내에 따라잡기 힘들거라는 전망이죠.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날 한국은 세계 1위 제철소로 평가받는 POSCO(구 포항제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외국 기관 · 학자들이 충고했던 자유무역 논리를 그대로 따랐더라면 오늘날 한국에 제철소는 없었을 겁니다.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한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했던 미국제개발처의 발언에서 역설적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사를 통해 드러나듯이, 미국제개발처(USAID)는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보유한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에 의문을 품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철강산업 우위는 '역사적 우연성'에 의한 것일지도...


1960년대 당시 일본이 한국에 비해서 철강산업에 경쟁력을 가지게 된 연유는 선천적으로 제철기술이 뛰어나거나 철광석 등 부존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일본이 한국보다 70년 일찍 철강업을 시작한 역사적 배경 덕분(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반대로 한국이 일본보다 일찍 제철소를 건립했더라면 1960년대 당시의 비교우위는 한국이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철강산업을 보호하면서 육성하면서 70년이라는 시간을 따라잡으면, 장기적으로는 일본보다 경쟁력 있는 제철소를 보유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을 따라잡는 동안에 한국 제철소는 큰 손실을 보겠지만, 정부보조를 받아서 버틴다면 언젠가는 우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지금 제철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향후 제철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느냐"(Dynamic Comparative Advantage)라는 물음을 던져야 마땅합니다. 한국정부는 후자의 물음을 던진 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외부 규모의 경제


제철 · 조선 · 자동차 · 전자 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공장 하나를 짓고 기계설비만 도입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철광석 · 기계부품 등을 외국에서 조달해오기 위한 판로가 필요하고, 여러 하청 업체들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 산업에 맞는 기술을 가진 근로자 집단도 존재해야 합니다. 


이처럼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 · 근로자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scale of economy)라 부릅니다. 이들은 노하우공유, 부품 공동구매, 근로자 채용의 용이함 등 덕분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외부 규모의 경제 또한 외부성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만약 제철 산업을 하고 싶은 산업가 한 명이 혼자 공장을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산업에 진입하지 않는한 생산과정이 매끄럽게 돌아갈리가 없고, 그 결과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정부가 국영기업을 설립하여 직접 사업에 착수하거나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진입하도록 강제(?)하는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미발달된 금융시장


미발달된 금융시장 또한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줍니다. 만약 사업가가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 받을 수 있다면, 단기 손실에 대한 부담이 덜어집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금융시장이 미발달한 상태였고 형성된 자본 크기도 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국내자본과 차관 형태로 들여온 외국자본을 선별된 기업에 몰아주는 금융지원 정책[각주:30]을 구사했습니다. 


이처럼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제철 · 조선 산업의 특징, 부족했던 자본, 금융시장의 미발달 등은 일시적 무역보호체제와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 (보론) 장하준이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첫번째 : 장하준, 2004, 『사다리 걷어차기』
  • 두번째 : 장하준, 2007, 『나쁜 사마리아인들』
  • 세번째 : 서강대 교수진, 2012,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
  • 네번째 :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 2012 번역, 『공격받는 자유무역』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유치산업보호론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내세우는 성공 스토리 입니다.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는 단골 메뉴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정부주도 산업정책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한국인들은 유치산업보호 논리에 친숙하며, 특히 대중적으로 유명한 한 학자로 인해 '문제가 있는 자유무역과 이득을 불러오는 보호무역'을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학자는 바로 장하준 입니다.


장하준은 2004년 『사다리 걷어차기』 · 2007년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선진국의 경제발전은 보호무역 덕분이며,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다'는 식의 논지를 반복해서 주장해왔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수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비판해오고 있습니다. 국제무역 정책 및 역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은 서평을 통해 장하준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각주:31]하였고, 한국 학자들도 단행본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장하준을 비판하였습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된 비판 요지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 편향적 표본선택 및 반사실적 검정의 부재


이는 이번글 서두에서 이야기한, 리스트가 학자들에게 비판받은 지점과 동일합니다. 


장하준은 오늘날 선진국인 미국 · 독일 등의 역사적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과거에 이들이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했고 이것이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이들과 같은 조건에 있었던 국가들이 보호무역을 구사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미국 · 독일 등이 보호무역이 아닌 정책을 구사했더라면 오늘날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장하준은 이들이 과거에 보호무역을 실시하였다고 보는데) 만약 이들이 과거에 자유무역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더 높은 경제수준을 누릴 수 있었더라면, 되려 과거의 보호무역은 악영향만 끼친 꼴이 됩니다.


둘째,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 vs.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 구분의 부재

 

자유무역론을 믿는 주류 경제학자라고 해서 100% 자유무역 정책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글에서 누차 설명했듯이, 특정한 경우에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정당화 되고, 더 나아가 유치산업을 위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할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유무역 이며, 보호는 특정한 경우에 일시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뿐입니다.


하지만 장하준은 시대적 상황 · 국가의 경제수준에 상관없이 어느때든 보호주의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한국에서 유치산업 보호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해서, 오늘날 한국에도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 믿을 수는 없는데 말이죠


앞으로 쓰고 싶은 [실증분석을 위한 계량] 시리즈를 통해 장하준 주장이 가지는 문제를 좀 더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1980년대 미국,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봐왔듯이, 유치산업보호론 혹은 보호무역주의는 주로 개발도상국 내에서 자유무역론에 대항하여 제기된 사상 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미국 내에서, 외국과의 경쟁에서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외국은 주로 '일본'을 의미했으며, 보호하기 위한 국내산업은 주로 철강 · 자동차 등 '제조업'과 반도체 · 전자 등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을 뜻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트럼프행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제조업 및 IT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보호주의를 채택하려는 것과 똑같은 양상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는 것일까요?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과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을 통해, 미국 및 선진국 내의 무역논쟁을 알아봅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6.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7.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8.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412-413쪽 [본문으로]
  9.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4편 제2장, 548쪽 [본문으로]
  10.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본문으로]
  11. (The superiority of one country over another in a branch of production, often arises only from having begun it sooner. There may be no inherent advantage on one part, or disadvantage on the other, but only a present superiority of acquired skill and experience. A country which has this skill and experience yet to acquire, may in other respects be better adapted to the production than those which were earlier in the field:) [본문으로]
  12. (and besides, it is a just remark of Mr. Rae, that nothing has a greater tendency to promote improvements in any branch of production, than its trial under a new set of conditions. But it cannot be expected that individuals should, at their own risk, or rather to their certain loss, introduce a new manufacture, and bear the burthen of carrying it on until the producers have been educated up to the level of those with whom the processes are traditional. A protecting duty, continued for a reasonable time, might sometimes be the least inconvenient mode in which the nation can tax itself for the support of such an experiment.) [본문으로]
  13. (But it is essential that the protection should be confined to cases in which there is good ground of assurance that the industry which it fosters will after a time be able to dispense with it; nor should the domestic producers ever be allowed to expect that it will be continued to them beyond the time necessary for a fair trial of what they are capable of accomplishing.) [본문으로]
  14. (The expenses of production being always greatest at first, it may happen that the home production, though really the most advantageous, may not become so until after a certain duration of pecuniary loss, which it is not to be expected that private speculators should incur in order that their successors may be benefited by their ruin.) [본문으로]
  15. (I have therefore conceded that in a new country a temporary protecting duty may sometimes be economically defensible; on condition, however, that it be strictly limited in point of time, and provision be made that during the latter part of its existence it be on a gradually decreasing scale. Such temporary protection is of the same nature as a patent, and should be governed by similar conditions.)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17.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18.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19.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joohyeon.com/270 [본문으로]
  2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joohyeon.com/271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9.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30.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http://joohyeon.com/157 [본문으로]
  31. 세계경제사학회(Economic History Association), 2004.04. Book Review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Posted at 2018. 12. 5. 01:2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한국 경제발전은 자유무역 덕분? 보호무역 덕분?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outward-trade regime)를 선택한 덕분에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1961년 쿠데타 이후 대내지향적 자립경제를 추구했던 박정희정권은 1964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보완하여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965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영국 처칠 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 발언을 인용하였고, 각종 수출 지원 정책이라는 당근과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통한 수출책임제 점검 이라는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973년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1980년 수출액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한 중화학 공업화'를 목표로 내걸었고, 수출액 100억 달러를 3년이나 앞당긴 1977년에 이루었습니다.


만약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내포적 공업화 전략(수입대체 산업화)을 계속 고수했더라면, 중남미 국가들처럼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룰 뻔[각주:1] 했는데, 참으로 다행스런 방향전환 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발전을 통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지향해왔다'는 사실 뿐입니다.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한 한국 경제발전 성공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인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인지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논쟁사항 입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 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 해주는 근거가 바로 기계 · 조선 · 철강 · 화학 · 전자 등의 중화학 업종 육성 입니다. 이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수입장벽을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보조금을 통해 지원하였습니다.



즉, 한국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에 따라서 경제발전 경로를 밟아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이란 말그대로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인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여(temporary protection) 육성시키자'라는 논리 입니다.

만약 당시 한국이 비교우위론을 철저히 따라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 1차산업이나 단순 공산품 생산에만 집중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의 중화학 공업화 성공은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과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후자의 정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한국의 경제발전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떤 논리로 말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유치산업보호론이 100% 보호무역체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입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말그대로 어린아이 수준인 산업(infant industry)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자(temporary protection)는 논리 입니다. 평생토록 무역장벽을 높여서 살자는 이론이 아닙니다.


성숙한(mature) 산업을 보유한 오늘날 한국은 개방적인 무역체제를 지향하고 있으며, 경제발전 당시에도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부는 특정 기업을 선정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만약 보호와 동시에 국내에 안주하게끔 하였다면, 기업의 생산성 정도가 아닌 정권과의 결탁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했을겁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는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경쟁'과 '해외진출을 통한 시장크기 확대' 등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살려야 합니다. 


제가 전달하고 싶은 생각은 "애시당초 100% 보호무역체제나 100% 자유무역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고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이 둘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현실 속 논의과정에서 큰 차를 불러옵니다. 


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국가주도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우선적으로 주장합니다. 과거 개도국이었던 한국과 오늘날 선진국인 한국의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필요한 개도국과 경제강대국인 미국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산업 · 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경우를 우선 진단합니다. 과도한 국가개입은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나라가 국가주도 정책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도 똑같은 성공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남미와 한국의 사례에서 처럼 말이죠.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지느냐는 결국 사상과 철학의 문제입니다. 경제사상 변천은, 정치사상이 그러하듯이, 위대한 학자들의 논의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앞으로 2편의 글을 통해 위대한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며, 주류 경제학계 내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과 '유치산업보호론' 그리고 '보호무역론'을 둘러싼 대립과 논쟁이 어떻게 변화 · 발전 되어왔는지를 알아봅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보다 정교화 할 수 있을겁니다.




※ '자유주의 사상을 토대로 한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


  •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에서 살펴본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을 되돌아 봅시다. 그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시대적 배경을 우선 파악해야 합니다. 『국부론』이 출판된 1776년은 아직 중상주의(mercantilism)가 영향력을 가졌던 시대였고,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했습니다.  


국가가 무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금은보화 등 재화를 축적하려고 했던 중상주의 시기.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자연적자유(natural liberty)에 따라 행동한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한다고 생각했으며, 국가보다 개인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better knowledge)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무역을 규제하기 보다는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부론』의 상당부분에 이러한 주장을 할애하였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을 높은 관세나 절대적 금지에 의해 제한함으로써 이 재화를 생산하는 국내산업은 국내시장에서 다소간 독점권을 보장받는다. (...) 국내시장의 이와 같은 독점권은 그런 권리를 누리는 특정 산업을 종종 크게 장려할 뿐만 아니라, 독점이 없었을 경우 그것으로 향했을 것보다 더 큰 노동·자본을 그 산업으로 향하게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독점권이 사회의 총노동을 증가시키거나 그것을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가는 결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각 개인은 그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


자기의 자본을 국내산업의 어느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 그리고 어느 산업분야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8~553쪽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manufacturing)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비판적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자본과 노동을 자연적 흐름에 거슬러 인위적으로 특정 부문에 배치하는 것은 효율적 생산을 가로막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현재 제조업이 없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사실 이러한 규제에 의해 특정제조업이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 빨리 확립될 수도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외국과 같이 싸거나 더 싸게 국내에서 생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노동이, 비록 이처럼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욱 빨리 특정분야에 유리하게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노동이나 사회의 수입 총액이 이와 같은 규제에 의해 증대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사회의 노동은 자본이 증가하는 비율에 따라 증가할 수 있을 뿐인데, 자본은 수입 중에서 점차 절약되어 저축되는 것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제의 직접적인 효과는 그 사회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고, 그리고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빨리, 사회자본을 증가시킬 수는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없음으로써 사회가 문제의 제조업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는 그 때문에 어느 한 기간 내에 필연적으로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발전의 어느 한 시기에 사회의 모든 자본과 노동은, 비록 다른 대상에 대해서이긴 하지만, 당시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각 시기마다 그 사회의 수입은 그 사회의 자본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수입이며, 자본과 소득은 모두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이처럼 (절대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세상에 내놓았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사고방식은 개인의 이익추구가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며, 개인의 행위가 올바른 결과를 낳는다는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자혜로운 신의 설계와 간섭 덕분"(design and intervention of a benevolent God)이라고 믿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조화처럼 느껴지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하여 결국 자연은 조화를 이루어 작동하기 때문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간의 선입견과는 달리) 교조적인 자유방임주의(lassez-faire)를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사적이익과 공공이익 간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 경우 정부개입이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정부의 기능을 국방 · 사법 · 공공기구 등 3가지에만 국한하였는데, 그 이유는 정부가 민간부문에 개입하여 공공의 후생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더 나은 지식'(better knowledge)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미스가 살던 18세기 후반 영국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했었기 때문에 정부개입을 꺼려했습니다.


따라서, 자유주의 사상과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덤 스미스는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하였습니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뒤이어, 비교우위론을 소개한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의 『원리』가 출판되며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이론적 기반을 확고히 다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동시기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반박하는 주장들도 제기되었습니다. 


스미스와 리카도는 모두 영국인 입니다. 18세기 말~19세기 초반 영국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세상에 내놓은 배경은 '경제성장을 위해서 수확체감 성질을 가진 산업을 포기하고(=외국으로부터의 수입으로 대신하고) 제조업 같은 수확체증산업(increasing return)에 특화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을 주장한 이들과는 달리, 리카도는 오히려 제조업을 위해서 자유무역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 부문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참고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비판의 선봉자가 바로 미국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독일인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 입니다.


초대 워싱턴정부 재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1791년 <제조업에 관한 보고>(<Report on Manufactures>)을 통해 제조업 육성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미국시민권을 획득한) 독일인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1827년 <미국정치경제론>(<Outlines of American Political System>) 및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The National System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스미스와 리카도가 제시한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며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제조업 육성'(manufacturing)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미리 발전한 외국(특히 영국)과의 자유경쟁이 벌어지는 상황 하에서는 제조업을 키우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해밀턴과 리스트가 스미스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근원을 탐구하는 건, 자유무역론 · 유치산업보호론 · 보호무역론을 둘러싼 논쟁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번글에서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적 근원을 스미스의 것과 비교해 봅시다.




※ 애덤 스미스를 비판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번 파트에서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애덤 스미스를 비판한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국내의 특정 산업을 외국 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자'는 유치산업보호론의 논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타당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국내 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temporary protection)하는 것이니, 문을 닫고 폐쇄적으로 살자는 논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유무역론과 대비되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이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를 대표하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과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 사상이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구성되어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 vs 민족주의(nationalism)


▶ 애덤 스미스 : 세계시민주의 사상 (사해동포주의 사상)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특화한 뒤 서로 교환을 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효율적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설명 1[각주:2]2[각주:3])


이는 사실상 '국제적 차원의 노동분업론'(international divison of labor)과 마찬가지이며,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전인류(mankind)의 후생을 평가하는 세계시민주의(혹은 사해동포주의, cosmopolitanism)의 관점을 가지고 세계경제를 바라봅니다(doctrine of universal economy). 


▶ 프리드리히 리스트 : 민족주의 사상


유치산업보호론은, 이에 반하여, "모든 국가와 민족은 각자 처한 발전정도와 상황이 다르며, 진정한 무역자유가 이루어지려면 후진적인 민족과 앞선 민족이 대등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이를 믿는 사람들은 민족경제적 관점(national economy)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은 민족경제를 다루어야 하며, 어떤 국가가 각자의 특성한 상황에 맞추어 가장 강력하고 부유하고 완벽한 국가가 되기 위해 어떻게 권력과 부를 증대시켜야 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모든 민족이 '동등한 상태'에 있을 때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이지, '훨씬 뒤처진 민족'에게 자유경쟁은 경제발전에 해만 끼칩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주장을 직접 읽어봅시다.


● 서론


필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애덤 스미스 이론의 근본 원리를 의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가 이때 이후로 여러 익명의 기사에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실명으로 쓴 더 긴 논문으로 그 이론에 반대되는 견해들을 전개할 수 있게 한 것은 조국의 사정이었다. 오늘도 이 글을 가지고 나설 용기를 준 것은 주로 독일의 이익이다. (...) 


단 한 민족의 압도적인 정치력이나 압도적인 부에서 나오는, 그래서 다른 민족들의 예속과 종속에 기초를 둔 만국연맹은 모든 민족적 고유성과 민족들의 일체의 경쟁심이 몰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민족 정체성의 개념과 본성에 출발하여 어느 한 민족이 현재의 세계 정세와 특수한 민족 상황에서 자신의 경제적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정치경제학 및 민족경제학(national economy)과,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단 하나의 영원한 평화 위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이룬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혹은 세계 경제학(cosmopolitical economy)을 구분해야 한다. 


그 학파(prevailing school[각주:4])가 소망하듯이 모든 민족의 보편적 연맹 혹은 연합을 영원한 평화의 보장책으로 전제한다면, 국제적 무역 자유의 원칙은 완전히 정당화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목표의 추구에서 제한을 덜 받을수록, 그와 자유 교류 관계에 있는 자들의 수와 부가 클수록, 그의 개인적 활동이 뻗어 갈 수 있는 공간이 클수록, 그에게 본성상 주어진 특성들, 획득된 지식과 숙련 그리고 그에게 제공되는 행복을 증진할 자연적 역량을 활용하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


그 학파는 민족 정체성의 본성과 그 특수한 이익과 상태를 고려하여 이를 보편적 연맹과 영원한 평화의 관념과 조화시키기를 게을리했다. 그 학파는 이루어져야 할 상태를 현실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 학파는 보편적 연맹과 영원한 평화의 존재를 전제하고 이로부터 무역 자유의 큰 이익을 도출한다. 이런 식으로 그 학파는 효과와 원인을 혼동한다. (...)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줄 예들은 모두가 정치 통합이 선행하고 무역 통합이 뒤따른 예들이다. 역사는 무역 통합이 선행하고 정치 통합이 그로부터 자라난 예를 하나도 알지 못한다. (...)  


무역 자유가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려면 후진적인 민족들은 인위적 조치에 의해 영국 민족이 인위적으로 올려진 것과 같은 단계의 성숙에 올려져야 했을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머리말-192쪽


그렇다면 올바른 자유무역을 위한 선행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후진적인 민족을 동등한 수준으로 발전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경제발전 혹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요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관점 차이가 드러납니다.


둘째, 국부의 원천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노동 분업(division of labour) vs.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


▶ 애덤 스미스 : 노동 분업을 통한 생산성 증대의 중요성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한 나라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노동생산력(productive powers of labour)을 최대로 개선 · 증진시키는 것은 분업(division of labour)의 결과"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국부는 재화의 축적(accumulation)"으로 바라봤던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고 '분업을 통한 생산'(production)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물질적 상황 뿐 아니라 정신적 역량도 중요


프리드리히 리스트도 노동을 통한 생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리스트는 좀 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노동의 원인은 무엇인가?"


리스트는 "인간의 머리와 팔, 손이 생산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들에게 생기를 주는 정신, 그들의 활동에 결실을 맺어주는 사회질서, 그들에게 제공되는 자연력" 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애덤 스미스는 분업을 통해 물질적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리스트는 노동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주는 정신 · 사회질서 · 법률 등의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원문을 길더라도 읽어봅시다.


●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The Theory of the Powers of Production and the Theory of Values)


부의 원인은 부 자체와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한 개인은 부, 즉 교환가치를 소유할 수 있더라도 그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 힘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가난해진다. 한 개인은 가난할 수 있더라도 그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큰 액수의 가치 있는 물건들을 만들 힘을 소유한다면 부유하게 된다.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힘은 이에 따라 부 자체보다 무한히 더 중대하다. 그것은 획득물의 소유와 증대를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상실한 것의 보상도 보장해 준다. 이는 사인들보다 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민족 전체에게 훨씬 더 해당된다. (...)


명백히 스미스는 중농주의자들의 사해동포주의 관념인 '무역의 보편적 자유'(universal freedom of trade)의 관념에, 그리고 그 자신의 위대한 발견인 '노동 분업'(the division of labour)에 너무 많이 지배를 받아서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의 관념을 추구할 수가 없었다. (...)


노동이 부의 원인이고 무위도식이 빈곤의 원인이라는 판단에 대해 언제나 다음과 같이 더 많은 질문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의 원인은 무엇이며, 무위도식의 원인은 무엇인가? (...)


이 모든 관계에서 가장 많은 것이 그 개인이 성장하고 움직이는 사회의 상태에, 과학과 예술이 융성하느냐에, 공공 제도와 법률이 종교성 · 도덕성 · 지력 · 인신과 재산의 안전 · 자유와 권리를 낳느냐에, 민족 안에 물적 복지의 모든 요인들, 농업 ·제조업 · 상업이 고르고 조화롭게 성숙했느냐에, 민족의 세력이 개인들에게 복지 상태와 교양에서의 진보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 가며 보장해 주고 국내적 자연력을 그 전체 범위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해 줄 뿐 아니라 대외 무역과 식민지 보유를 통해 외국들의 자연력도 가져다 쓸 수 있게 할 만큼 충분히 크냐에 달려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런 힘들의 본성을 전체적으로 별로 인정하지 않아서, 권리와 질서를 관리하며 수업과 종교성, 과학과 예술 등을 돌보는 이들의 정신 노동의 생산성(productive character to the mental labours)을 한번도 시인하지 않았다. 그의 탐구는 물적 가치를 창출하는 인간 활동에 국한된다. (...)


곧바로 그의 학설은 물질주의, 분권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점 더 깊이 침몰한다. 그가 '가치', '교환가치'의 관념에 지배를 받는 일 없이 '생산 역량'(productive power) 관념을 추구했더라면,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가치 이론 옆에 독립적인 생산 역량 이론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통찰에 도달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 상황(material circumstances)을 가지고 정신적 역량(mental forces)을 설명하는 잘못된 길로 빠졌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01-209


그럼 리스트가 강조하는 정신 · 사회질서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로 여기에서 스미스와 달리, 리스트가 '제조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는 제조업이 발달할수록 노력 · 경쟁심 · 자유의 정신이 고양된다고 믿었습니다.


셋째, 제조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다 vs. 제조업은 정신적 역량을 키워준다


▶ 애덤 스미스 :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애덤 스미스는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제조업은 정신적 역량을 키워준다


이에 반해, 리스트는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7장-제26장에 걸쳐 제조업의 이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농사에서는 신체적 둔함, 옛 관습, 교양과 자유의 부족이 지배"하나, 제조업 국가에서는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이 존재한다고 비교합니다.


제조업이 이러한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는 '제조업자들은 본질적으로 사회 안에서 활발히 교류를 하며 사업을 영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농업과는 달리 제조업은 다양한 능력과 숙련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제조업 국가에서 정신적 자질이 더 높게 평가됩니다.


리스트는 제조업의 중요성을 간과한 애덤 스미스를 향해 "미활용된 자연력이 오직 제조업에 의해서만 소생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라고 비판합니다.


아래의 원문을 읽어보도록 하죠.


● 제17장 제조업 역량과 인적 · 사회적 · 정치적 · 민족적 생산 역량


투박한 농사에서는 정신적 활력 · 신체적 둔함, 옛 개념 ·관습, ·습관 · 행위 방식에 대한 고수, 교양 · 복지 · 그리고 자유의 부족이 지배한다. 반면에 정신적, 물질적 재화의 끊임없는 증식을 향한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은 제조업 국가 및 상업 국가의 특징이 된다. (...)


농사를 영위하는 인구는 그 나라 전체에 흩어져 살며, 정신적 ∙ 물질적 교류에 관련해서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 그의 일이 그를 인간과의 교류에서 멀리 떼어 놓듯이, 그것은 또한 그 자체로 관습적인 운영에서도 조금의 정신 집중, 조금의 신체적 숙련만 요구한다. (..) 재산과 빈곤은 소박한 농업에서는 대대로 상속되며, 거의 모든 경쟁심에서 생겨나는 분발의 힘은 죽어 있다. (...)


제조업자의 본성은 농업인의 본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제조업자들은 사업 운영에 의해 서로에게 이끌려서 사회 안에서, 그리고 사회를 통해서만, 교류 안에서, 그리고 교류를 통해서만 살아간다. (...) 그의 생존과 번영은 촌사람에게처럼 자연의 호의와 관습적 활동이 보장해 주지 않으며, 이 둘은 완전히 그의 통찰력과 활동에 달려 있다. (...) 그는 언제나 사고팔고 교환하고 거래해야 한다. 어디서나 그는 인간들, 변동 가능한 상황, 법령과 제조들과 관계해야 한다.


제조업의 노동은 그 전체로 본다면, 첫눈에 밝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농업보다 비교도 안 되게 더 다채롭고 더 수준 높은 정신적 특성과 숙련을 성숙시키고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


명백히 농업에 의해서는 같은 종류의 인성들만이, 오직 투박한 수작업의 실행에 신체적 힘과 끈기를 약간의 질서를 위한 감각과 결합하는 그런 인성들만이 소용되는 반면에, 제조업은 천 가지의 다양한 정신적 능력, 숙련 그리고 연습을 요한다. (...) 제조업 국가에서 정신적 자질은 농업국에서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높이 평가되는데, 농업국에서는 보통 인간들의 능력을 단지 그의 신체적 힘에 따라서만 측정한다. (...)


사업 운영의 분업과 생산 역량의 연합 법칙은 반대로 저항할 수 없는힘을 가지고 다양한 제조업자들을 서로 모이게 한다. 마찰이 자연의 불꽃처럼 정신의 불꽃을 일으킨다. 그러나 정신적 마찰은 밀접한 공생이 있고, 빈번한 사업적, 과학적, 사회적, 시민적, 정치적 접촉이 있고 물자와 관념의 교류가 많은 곳에서만 있다. 


인간이 동일한 장소에 더 많이 모여 살수록, 이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사업에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협력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사업이 이 개인들 각 사람의 지식, 안목, 교양을 많이 요구할수록, 자의성, 무법성, 억압과 불법적 월권행위가 이 모든 개인의 활동 및 행복의 목적과 덜 조화될수록 시민적 제도들은 더욱 완전하고, 자유의 정도는 더욱 높고, 스스로 교양을 쌓거나 타인의 교양에 협력할 기회는 더욱 많다. 그래서 어디서나 어느 시대나 자유와 문명을 도시들에서 출발한다, (...)


그런 시대에는 제조업의 가치는 어느때보다도 더 정치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애덤 스미스는 민족 전체의, 그 민족의 물적 자본 총액을 늘리는 능력이 주로 미활용된 자연력들을 물적 자본으로, 가치 있는 도구이자 소득을 가져다주는 도구로 전환시킬 능력에 있다는 것, 그리고 농업 민족에게서 다량의 자연력이 놀면서 아니면 죽어서 누워 있어서, 오직 제조업에 의해서만 소생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는 제조업이 국내외 무역에, 그 민족의 문명과 세력에, 그리고 자주와 독립의 유지에, 그로부터 솟아나는 물적 재화를 취득할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82-320




※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그렇다면 이제 (애덤 스미스와 대비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생각하는 '제조업을 육성하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넷째, 무역보호로 제조업을 육성해야 하느냐(할 수 있느냐)를 둘러싼 관점의 차이 

- 자유주의(liberalism) vs 국가개입주의(government intervention)


▶ 애덤 스미스 : 자유주의 사상


앞서 말했듯이,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가난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며 당시 사회의 총자본이 효율적인 다른 곳에 쓰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스미스는 "외국상품의 수입 자유로 인해 국내 특정 제조업을 위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덜 심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나라로 수출되고 있는 국내 제조상품은 여전히 해외에서 팔릴 겁니다. 또한, 자유무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대다수 제조업은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각주:5].


이처럼 애덤 스미스는 철저한 자유주의자 · 자유무역론자 였습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국가개입주의 사상


프레드리히 리스트는, 애덤 스미스와는 달리, "정부는 개인 산업을 통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의 국부와 권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의무 또한 가지고 있다.[각주:6]"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유방임의 원칙은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데, 현실 속에서 그럴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국가권력이 그 자체로 무해한 교역을 민족의 최선이 되게 제한하고 규제하는 것은 정당화될 뿐 아니라 그럴 의무를 진다.[각주:7]"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보호관세(protective duty)를 통해 외국산 제조상품의 수입을 막고 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필요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관세부과로 수입상품의 가격이 올라 소비자(민족)의 부담이 커질 수 있으나, "미래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원문을 읽어보도록 하죠.


●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민족은 정신적 혹은 사회적 역량을 취득하기 위해 물적재화를 희생하고 여의어야 하며, 미래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


보호관세가 초기에는 제조 상품을 등귀시킨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진실이고 아예 그 학파가 인정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온전한 제조업 역량의 향상을 이룰 능력을 부여받은 민족이 제조 상품을 외국에서 도입할 수 있는 것보다 국내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호관세에 의해 가치의 희생이 초래된다면, 이는 그 민족에게 비단 미래를 위해 무한히 더 큰 물적 재화의 총액만이 아니라 전쟁의 경우에 대비한 산업적 독립성도 확보해 주는 생산 역량의 취득에 의해 보상된다. 산업적 독립성 그리고 이로부터 자라나는 내부적 번영을 통해 민족은 대외 무역, 해운업의 확장 수단을 손에 넣으며, 문명을 증진하고, 국내의 제도들을 완성하고, 세력을 대외적으로 강화된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16쪽


이때 "자유무역을 추진하면서 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수는 없느냐?" 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리스트는 부정적 입니다. 그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데 대한 이유와 동일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외국에게 자유경쟁으로 맞서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말그대로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과거로부터 축적된 생산과 자본의 축적 등의) 뒷받침을 받는 이 민족들이 나머지 모든 나라의 제조업에 말살의 전쟁을 선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른 민족들에서는 농업 진보에 따라 애덤 스미스가 표현하는 바와 같은 "자연스런 사물의 경과에서"(the natural course of things) 거대한 제조업과 공장들이 생겨난다거나, 혹은 전쟁에 의해 유발된 무역 중단에 따라" 자연스런 사물의 경과에서"(the natural course of things) 생겨난 그런 것들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데 대한 이유와 동일한 것이다. 


상공업 패권을 쥔 (영국의) 공장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생 혹은 반밖에 장성하지 못한 공장들보다 앞서는 천 가지 장점을 가진다. (…)


그러한 세력에 맞서 자유경쟁을 하면서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the natural course of things)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한 민족들은, 영국의 제조업 패권 밑에 영원히 굴복하는 상태에 있기로 결심하고 영국이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거나 다른 어디에서 들여오지 못하는 것만을 영국에서 조달하는 데 만족하려고 해도 헛수고일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412-413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애덤 스미스 간 관점 · 사상 · 철학의 극명한 대비


  •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금까지 살펴본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생각을 다시 되짚어 봅시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전인류의 후생을 총체적으로 평가했던 애덤 스미스와 달리, 개별 민족 경제(national economy)의 번영을 우선시 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이 각자 처한 상황 하에서 어떻게 부와 권력을 증대시켜야 하는지를 고민했죠.


이때, 리스트가 보기에 국부의 원천은 단순한 분업을 통한 노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게 만드는 원인'인 정신적 역량 · 사회질서 등 이었습니다. 과학과 예술, 공공제도와 법률, 개인의 교양 등의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이 부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 역량을 키우게끔 만드는 산업이 바로 '제조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스미스는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며 사회의 총 자본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해만 불러온다고 여겼지만, 리스트는 제조업은 미활용된 자연력을 소생시키게 해주며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단호한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따라서 리스트는 보호관세를 통해 유치산업을 보호(infant industry protection)해야 하며, 외국과의 자유경쟁 속에서 국내 제조업이 발전할 수 없는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애덤 스미스와의 관점과 사상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를 통해 스미스를 비판해온 리스트는 '그 학파의 세 가지 주된 결함'(the system of the school suffers from three main defects)라고 언급하며 다시 한번 차이를 부각시킵니다.


●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그 학파의 체계는 앞의 장들에서 보여 주었듯이 세 가지 주된 결함으로 시달린다.


첫째, 민족 정체성의 본성도 인정하지 않고 민족의 이익 충족도 고려하지 않는, 토대 없는 사해동포주의다.


둘째로는 어디서나 주로 물건들의 교환가치를 염두에 두고, 민족의 정신적 ∙ 정치적 이익, 현재 ∙ 미래의 이익과 생산 역량은 고려하지 않는 죽은 유물론이다.


셋째로는 조직 해체를 시키는 분파주의와 개인주의로서 이는 사회적 노동의 본성, 그리고 그 상위 결과들에서 역량들의 결합의 영향을 무시하여 근본적으로 오직 사적 산업만을, 그것이 특수한 민족 사회들로 분리되지 않았을 경우에 어떻게 사회와, 즉 전체 인류와 자유교역을 발달시키는지만을 묘사한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55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자유무역론을 완전히 거부했을까?


, 이렇게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Free Trade)과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는 극과 극의 사상적 대립으로 보여집니다. 지금 이렇게 보면 꼭 둘 중 옳은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번글의 서두에서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냥 자유무역vs보호무역을 하면 될텐데 말이죠.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보호무역이 초래할 수 있는 폐해를 알고 있었습니다. 리스트는 "대외 경쟁을 완전히 배제하는 너무 높은 수입 관세는 이를 통해 제조업자들과 외국과의 경쟁이 배제되고, 무감각이 조장되므로 이를 부과하는 민족 자체에 해롭다."[각주:8]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게다가 리스트는 궁극적 목표로서 자유무역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모국인 독일이 영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나면 자유무역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과거 그 시점에 리스트가 자유무역을 비판했던 이유는 독일의 경제력이 자유무역을 시행할 '단계'(stages)가 아니었기 때문이며,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이 개별 민족국가들이 처한 산업발전 단계(stage of industrial development)를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유무역의 전제조건은 "후진적 민족들이 인위적 조치에 의해 영국 민족이 인위적으로 올려진 것과 같은 단계의 성숙에 올려"[각주:9]지는 것이며, 보호무역은 "다른 민족들보다 시간상으로 앞설 뿐인 민족과 대등하게 해 줄 유일한 수단인 한"[각주:10]에서만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보호체제는 여러 민족을 최대한 동일한 단계(equally well developed)에 올려놓은 뒤 궁극적으로 달성할 "진정한 무역 자유의 가장 중대한 촉진수단"[각주:11]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 간의 관점 · 사상 · 철학의 차이가 초래된 근본 원인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무역론과 유치산업보호론은 두 학자 간의 사상과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고, 사상과 철학의 차이는 '이미 발달된 제조업을 보유한채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인이 중요시한 것''영국에 뒤처진 후발산업국가로서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독일인이 중요시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독일인 리스트'에게는 개별 국가와 민족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는 민족경제학이 필요했으며, 경제발전을 위한 생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제조업을 육성해야 했고, 영국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당시로서는 자유경쟁이 아닌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타당했으며, 훗날 영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나면 다시 자유무역으로 돌아갈 구상을 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곳곳에 '산업발전 단계'(stage of industrial development)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경제적인 면에서 민족들이 5단계의 산업발전을 거친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원초적 야만시대. 둘째, 목축 시대. 셋째, 농업시대. 넷째, 농업·제조업 시대. 다섯째, 농업·제조업·상업 시대.


그리고 산업발전 단계마다 필요한 무역정책은 다릅니다


Ⅰ. 아직 농업이 발달하지 않아 제조업 육성에 신경쓸 필요가 없을 때에는 자유무역을 통해 농산물을 수출하고 제조 상품을 수입해야 합니다. 


Ⅱ. 이제 농업이 많이 발달하여 제조업 육성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자유무역을 통한 외국 제조 상품 수입의 이점은 줄어듭니다. 이 단계에서는 보호무역을 통해 국내 유치 제조업을 보호해야 합니다. 


Ⅲ. 그리고 제조업이 고도로 발달한다면 보호정책은 정당화 되지 않으며 자유무역으로 돌아가 무역의 이점을 살려야 합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유치산업보호 및 보호체제는 오직 두번째 단계에 있는 민족들에게만 정당화 된다는 의견을 명확히 밝힙니다. 


만약 제조업 발달 이후에도 보호체제를 지속한다면 "해외 경쟁을 완전히 그리고 일거에 배제하고 보호해야할 민족을 타 민족들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한다면, 사해동포주의 경제학의 원칙에 충동할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주의해야 할 이익에도 충돌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보호 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에서만 정당화 될 뿐입니다. 외국 경제학자들이 유치산업보호론을 소개할 때 영문명을 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 즉 '유치산업을 위한 일시적 보호'로 주로 작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머릿속을 직접 읽어봅시다.


●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경제적인 면에서 민족들은 다음의 발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원초적 야만 시대, 목축 시대, 농업시대, 농업 ∙ 제조업 시대, 농업 ∙ 제조업 ∙ 상업 시대. (...) 


농업이 덜 성숙했을수록, 그리고 대외 무역이 국내 농산물과 원재료를 타국의 제조 상품과 교환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거기서 그 민족이 아직 야만 상태에 빠져 있어 절대군주제 정부 형태와 입법을 더 많이 필요로 할수록, 자유무역은 즉 농산물 수출과 제조 상품 수입은 그 민족의 복지와 문명을 더욱더 촉진할 것이다. (...)


반대로 한 민족의 농업, 산업 및 사회적, 정치적, 시민적 상태가 전반적으로 많이 발달해 있을수록, 그 민족은 국내 농산물과 원재료를 외국의 제조 상품과 교환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사회적 상태 개선을 위해 이익을 그만큼 덜 볼 것이며, 그 민족보다 우월한 외국의 제조업 역량의 성공적 경쟁에 의해 더욱더 큰 손해를 감수하게 될 것이다. (...)


오직 후자의 민족들, 즉 제조업 역량을 배양하고 이를 통해 최고도의 문명과 교양, 물질적 복지와 정치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특성과 수단을 보유하는, 그러나 이미 더 선진화된 해외 제조업 역량의 경쟁에 의해 진보가 정체된 민족들에서만, 제조업 역량의 배양과 보호 목적을 위한 무역 규제는 정당화되며, 


또한 그런 민족들에서 제조업 역량이 해외 경쟁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강화될 때까지만 정당화되며 그때부터는 국내 제조업 역량의 뿌리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정당화된다. (...)


보호 체제는 해외 경쟁을 완전히 그리고 일거에 배제하고 보호해야할 민족을 타 민족들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한다면, 사해동포주의 경제학의 원칙에 충동할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주의해야 할 이익에도 충돌할 것이다. (...)


천연산물과 원재료에 대한 자유무역의 제한이 제한을 가하는 민족에게도 크나큰 폐해를 가져온다는 것, 그리고 보호 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에서만 정당화된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모든 민족, 온 인류의 복지와 진보에 펼쳐지는 거대한 유익을 일으킬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59-271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리스트가 보기에 개별 국가들이 처한 단계(stages)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유무역의 이점만을 설파하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리스트는 "그 학파는 고도의 경제적 성숙에 도달한 민족들과 낮은 단계에 있는 민족들을 구별할 줄 모른다.[각주:12]"(The school recognises no distinction between nations which have attained a higher degree of economical development, and those which occupy a lower stage.) 라고 반복해서 비판을 가합니다. 


이번 파트에서 계속 강조하지만, 리스트에 중요한 것은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industrial development)입니다. 그는 교조적인 보호무역주의자 혹은 유치산업보호론자가 아니었습니다. 되려 궁극적으로 자유무역을 추구했던 자입니다[각주:13].


리스트는 역사로부터 배울 것(the Teachings of History)은 발전 단계에 따라 체제를 변경할 수 있고 또 변경해야 한다는 사실(may and must modify their systems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ir own progress) 이라고 재차 주장합니다. 


● 제 10장 역사의 가르침(the Teachings of History)

(주 : 한국어판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서, 영어 원문[각주:14]을 본 후 제 방식대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끝으로, 역사는 최고도의 부와 생산 역량 달성에 필요한 자연적 자원을 갖춘 국가들이 그들의 발전단계에 따라 체제를 변경할 수 있고 또 변경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첫번째 단계에서,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고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더 앞선 민족과 자유무역을 채택해야 한다. 


두번째 단계에서, 상업제한을 통해 제조업자, 어업, 해운업, 대외무역을 발전시켜야 한다. 


세번째 단계에서, 부와 생산 역량의 최고도에 도달한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경쟁의 원리로 점진적으로 회귀하여, 농부들 제조업자들 상인들을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하고 이들이 달성한 우위를 유지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각주:15]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179




※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논쟁, 깊이있는 이해를 위한 물음


이번글을 통해 살펴본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사상 · 철학 논쟁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자유무역이 옳다! vs. 보호무역이 옳다!"와 같은 1차원적 접근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지게끔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언제'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언제'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하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접근 방식은 무역정책을 집행할 '상황'(circumstances)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어떤 때에는 자유무역 정책이 옳으며, 또 다른 때에는 보호무역 정책이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리스트는 산업발전 단계를 상황의 구분으로 제시했고 이를 오늘날 개발도상국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거대한 단계의 구분보다는 좀 더 타당한 상황 구분이 필요합니다.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나


자유무역 및 보호무역 정책을 상황에 따라 달리 구사할 수 있다면, '평상시'(normal)에 어떠한 정책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냐는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리스트의 주장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보호무역 · 선진국은 자유무역을 중심으로 하면 될 것 같지만, 앞서 말했듯이 리스트의 구분은 너무 거대합니다. 그의 구분을 그대로 따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내에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일이 없었을 겁니다.


▶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의 등장 ...


새로운 물음에 논리적인 답을 말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생각을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좀 더 확장시켜주는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을 다음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4. 애덤 스미스를 주축으로 한 고전파 혹은 cosmopolitical economy를 의미 [본문으로]
  5.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4편 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제한, 570쪽, 비봉출판사 [본문으로]
  6. 프레드리히 리스트. 미국정치경제론, 경상대학교출판부, 33-34쪽, [본문으로]
  7.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4장 사경제학과 민족경제학(Private Economy and National Economy), 지만지, 245쪽 [본문으로]
  8.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서론, 21쪽 [본문으로]
  9.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9쪽 [본문으로]
  10.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3쪽 [본문으로]
  11.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3쪽 [본문으로]
  12.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4장 사경제학과 민족경제학, 251쪽 [본문으로]
  13. 이러한 평가는 Graham, 1923, Some Aspects of Protection Further Considered, QJE [본문으로]
  14. 진정한 원문은 독일어; [본문으로]
  15. Finally, history teaches us how nations which have been endowed by Nature with all resources which are requisite for the attainment of the highest grade of wealth and power, may and must—without on that account forfeiting the end in view—modify their systems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ir own progress: in the first stage, adopting free trade with more advanced nations as a means of raising themselves from a state of barbarism, and of making advances in agriculture; in the second stage, promoting the growth of manufactures, fisheries, navigation, and foreign trade by means of commercial restrictions; and in the last stage, after reaching the highest degree of wealth and power, by gradually reverting to the principle of free trade and of unrestricted competition in the home as well as in foreign markets, that so their agriculturists, manufacturers, and merchants may be preserved from indolence, and stimulated to retain the supremacy which they have acquired. [본문으로]
//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Posted at 2015. 5. 19. 00:0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이 글은 2015년 5월 19일에 작성되었던 것을 2018년 11월 29일에 전면 개정한 것입니다. 2015년 당시에는 무역이론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여 부족한 설명을 했었고,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 작성하였습니다.


※ 국제무역이 이루어지게 하는 원천은 무엇인가

- 서로 다른 상대가격 (different relative price)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서로 다른 국가들간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신라는 아라이바 상인들과 물건을 교환하였고,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남미 · 인도 등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금은보화와 향신료를 얻어내었다. 현대 국가들도 자신들이 만든 상품을 수출하고 다른 상품을 수입하는 교역행위를 수행한다. 


과거와 현대의 국제무역 행위를 살펴보면 크게 3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예전과 지금의 무역에서 다른 점은 무엇일까? 둘째,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셋째, 왜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 무역을 하는가?


첫째,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사상의 변화 : 중상주의 사상 → 자유무역 사상

 

  •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 1776년 작품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개척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을 지배했던 사상은 '중상주의'(mercantilism)였다. 중상주의는 “무역을 통해 금과 은 등 재화를 축적(accumulation)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와의 교역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과거 사람들이 바라본 무역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1776년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이 출판된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외국이 우리가 제조하는 것보다 값싸게 공급하는 상품을 수입”(import for low price of commodity)하는 것이 무역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보았다. 재화의 단순한 축적은 의미가 없으며, ‘값싸게 수입해온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의미있는 행위라고 평가했다. 

이에따라, 무역장벽을 높여 수입을 막고 식민지를 개척하여 수출만을 증대시키는 정책 대신, 무역장벽을 낮춰 서로간에 값싼 상품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자유무역'(free trade) 정책과 사상이 발현되었다.

 

둘째, 국제무역의 이익 : 상대적으로 값이 싼 상품을 수입 

 

  •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
  • 1817년 작품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애덤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면,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gains from trade)은 가격이 싼 수입품의 이용 그 자체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애덤 스미스의 이론 하에서 무역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수입품의 절대가격(absolute price)이 국내 제조품보다 낮아야 한다[절대우위론(Absolute Advantage)]. 만약 모든 상품을 가장 값싸게 스스로 제조하는 국가는 무역을 통해 얻는 이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한 단계 더 높여준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이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상대가격(relative price)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절대적으로 값이 싼 상품이 아닌 “스스로 제조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싼 상품을 수입해오는 것이 무역의 이익”이라고 말하였고[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 이에 따르면 모든 국가가 무역으로 상호이익(mutual gain)을 얻을 수 있다.

(주 :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서 '스스로 제조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라는 말은 '자급자족 대신 무역을 함으로써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번글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셋째, 국제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 :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

왜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 무역을 하는 것일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무역을 한다”는 절반만 맞는 답이다.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면, 무역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보다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다. 

수입을 하는 이유는 ‘국내시장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상품을 상대적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수출을 하는 이유는 ‘국내시장에서보다 상품을 상대적으로 비싸게 판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① 자급자족 상태인 국가들끼리 상품가격이 서로 다르며, 이로 인해 ② 무역 이후 세계시장 가격과 개별 국가들의 자급자족 가격 간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different relative price) 및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의 차이"(autarky vs. world relative price)는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

이제 이번글에서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국제무역이 이루어지는 이유와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알아보도록 하자.



단순히 기회비용이 낮다는 이유로 특화를 해도 될까?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 라는 말이 아직 와닿지 않을테다. 우선 두 가지 개념을 익히고 가자.

 



위의 표는 자국과 외국에서 자동차 · 의류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투입량(necessary labor input)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전체 총 노동량은 100명으로 동일하다. 


자국은 자동차 1대 · 의류 1벌 생산에 동일하게 노동자 1명씩 필요하며, 외국은 자동차 1대 생산에 노동자 4명, 의류 1벌 생산에 노동자 2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위의 표를 통해 '노동생산성'과 '생산의 기회비용'을 파악할 수 있다.


● 노동생산성


 



외국에서 자동차 1대 생산에 노동자 4명이 필요하다는 말은 '노동자 1명이 자동차 1/4대를 생산'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의류 1벌 생산에 노동자 2명이 필요하다는 말은 '노동자 1명이 의류 1/2벌을 생산'한다는 말과 같다. 자국의 경우 자동차와 의류 생산에 노동자 1명이 동일하게 필요하므로, '노동자 1명이 자동차 1/1대, 의류 1/1벌을 생산'한다.


이는 곧 노동생산성(labor productivity)을 뜻하며, 자동차와 의류 부문의 노동생산성은 '1/각 부문 필요노동량'을 통해 알 수 있다. 


● 기회비용

 

 

 

그리고 외국에서 자동차 1대 생산을 위해 4명을 투입하면 (4명이 만들 수 있는) 의류 2벌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 반대로 의류 1벌을 생산하기 위해 2명을 투입하면 (2명이 만들 수 있는) 자동차 1/2대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자국의 경우 자동차 1대 생산을 위해 1명을 투입하면 (1명이 만들 수 있는) 의류 1벌을 포기하는 셈이고, 의류 1벌 생산하기 위해 1명을 투입하면 (1명이 만들 수 있는) 자동차 1대를 포기하게 된다.


이는 개별 상품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s)을 뜻하며, 만들고자 하는 상품 대신 다른 상품이 생산되는 갯수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 의류로 표시되는 자동차의 기회비용은 '자동차 1대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량 / 의류 1벌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량'(=의류 4/2벌), 자동차로 표시되는 의류의 기회비용은 '의류 1벌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량 / 자동차 1대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량'(=자동차 2/4대)으로 구할 수 있다. 자국의 경우 의류로 표시되는 자동차의 기회비용은 1벌, 자동차로 표시되는 의류의 기회비용은 1대가 된다.


● 특화

 

 

이제 자국과 외국 간 기회비용을 비교해보면, 서로 간에 낮은 상품을 확인할 수 있다. 


자국은 자동차 생산의 기회비용(=1/1)이 외국의 것(=4/2)보다 낮으며, 외국은 의류 생산의 기회비용(=2/4)이 자국의 것(=1/1)보다 낮다. 비용이 낮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자국은 자동차에 특화하고 외국은 의류에 특화하여 상품을 교환하면 상호이득을 얻을 수 있다.


'기회비용이 낮은 품목에 특화한다'(specialization)는 논리가 데이비드 리카도가 말한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이라고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데 !!! 비교우위론은 단순히 기회비용이 낮은 품목에 특화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회비용이 낮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조건이 성립되어 있지 않으면 특화의 유인이 없으며 무역의 이익도 없다. 


특화를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란 바로 '자급자족 상대가격 보다 높은 세계시장 상대가격(higher relative world price), 이른바 우호적인 교역조건'(favorable Terms of Trade) 이다. 




※ 자급자족과 시장개방 상황을 비교

-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특화 및 무역패턴 결정


우호적인 교역조건의 중요성을 깨닫기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자급자족과 시장개방 상황을 비교해보자. 이를 통해,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는 자동차 혹은 의류를 생산하면서 '노동임금'을 받게되고, 개별 상품 생산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상품 판매가격 - 노동투입량*임금'을 '이윤'으로 가지게 된다.


● 자급자족 (Autarky)


 

만약 (외국이든 한국이든) 자동차 부문이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한다면 모든 노동자들은 자동차 생산에 종사하고 싶어할 것이다. 반대로 의류 부문이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모든 노동자들은 의류를 생산하고 싶어할테다. 어느 한 부문이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구직을 희망하는 노동공급이 증가하고 그 결과 균형임금은 하락한다. 더 낮은 임금을 제시하면 노동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균형임금은 상승한다.

 

따라서 시장원리에 의해 자급자족 상황에서 각 국가 내 산업간 임금은 동일해진다.   



 

생산자시장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된다. 만약 자동차(의류) 생산이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면 모든 생산자들은 자동차(의류)을 생산할테고 자동차(의류) 노동자 수요가 증가한다. 노동수요 증가는 임금상승을 유발하여 생산비용이 올라가게 되고, 각 부문의 이윤은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시장원리에 의해 자급자족 상황에서 각 부문의 이윤은 0이 되고, 이윤이 0이 되는 수준에서 상품가격이 결정된다.



생산자 입장에서 자동차와 의류 무엇을 생산하든 동일한 이윤을 획득하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황에서는 한 국가내에서 두 상품이 모두 생산된다. 그리고 두 상품의 상대가격은 기회비용과 동일해진다.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상대가격은 '자국 = 1', '외국 = 2'가 된다. 역으로 자동차로 표시한 의류의 상대가격은 '자국 = 1', '외국 = 1/2'이 된다. 

 

이처럼 자급자족 상황(Autarky)에서 자국(Home)과 외국(Foreign) 간에 상대가격은 다른 값을 가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양국간 노동생산성의 차이로 인해 기회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자국과 외국의 필요 노동투입량이 동일하고 이에따라 노동생산성도 똑같다면, 기회비용이 같아지게 되어 상대가격의 차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국은 기회비용이 낮은 자동차의 상대가격이 외국보다 낮으며, 기회비용이 높은 의류의 상대가격이 외국보다 높다. 외국은 기회비용이 낮은 의류의 상대가격이 자국보다 낮으며, 기회비용이 높은 자동차의 상대가격이 자국보다 높다. 


● 시장개방 (Opening)


이제 한국과 외국 두 나라가 시장개방을 통해 상품교역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왜 (멀리 떨어져있는)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 상품을 교환하는가?"


이 물음은 아주 중요하다. 만약 자국 내에서 특정한 상품을 생산할 수 없고 외국에서 조달해야만 하면, 서로 다른 국가들끼리 상품을 교환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상품은 모든 나라에서 생산될 수 있다. 한국과 외국은 쌀과 자동차를 자국 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데, 왜 서로 무역을 해야하는가.


그 이유는 자국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무역 상대국가에 더 비싼 가격을 받고 물건을 판매 할수 있기 때문이며, 자국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무역 상대국으로부터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자급자족 상황에서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상대가격은 자국에서는 1(=1/1) 외국에서는 2(=4/2) 라고 말하였다(autarky price). 국제무역이 시작되면 자동차(A)의 세계시장 상대가격은 1과 2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고(world relative price)[각주:1]. 3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1)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5인 경우 (1과 2 사이)

 


 

[수출] : 자급자족시 자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1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1.5이기 때문에, 자국(H)은 자동차(A)를 세계시장에 팔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자급자족시 외국 의류 상대가격은 1/2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2/3이기 때문에, 외국(F)은 의류(T)를 세계시장에 팔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 자국 비교우위 자동차 특화 수출, 외국 비교우위 의류 특화 수출)

 

 

[수입] : 자급자족시 자국 의류 상대가격은 1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2/3이기 때문에, 자국(H)은 의류(T)를 수입하면 더 싼 가격에 이용하는 꼴이 된다. 자급자족시 외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2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1.5이기 때문에, 외국(F)은 자동차(A)를 수입해오면 더 싼 가격에 이용하는 꼴이 된다. (→ 자국 비교열위 의류 수입, 외국 비교열위 자동차 수입)


2)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인 경우

 


[수출] : 자급자족시 자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1이고 세계시장 가격도 1이기 때문에, 자국(H)은 자동차(A)를 수출하더라도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하고 내수판매와 무차별하다. 그러나 자급자족시 외국 의류 상대가격은 1/2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은 1이기 때문에, 외국(F)은 의류(T)를 세계시장에 팔면 더 비싼 값을 받으며 1)의 케이스에 비해서도 더욱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 자국 자동차 특화하나 안하나 무차별, 외국 비교우위 의류 특화하여 더 비싼 값에 수출)

 


[수입] : 자급자족시 자국 의류 상대가격은 1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도 1이기 때문에, 자국(H)은 의류(T)를 수입하는 것과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이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자급자족시 외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2인 반면 세계시장은 1이기 때문에, 외국(F)은 자동차(A)를 수입하면 더 싼 가격을 지불하며 1)의 케이스에 비해서도 더욱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 자국 의류 자체생산과 수입 무차별, 외국 비교열위 자동차 더 싼 가격에 수입)


3) 의류로 표시한 자동차의 세계시장 가격이 2인 경우

 


[수출] : 자급자족시 자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1이고 세계시장 가격은 2이기 때문에, 자국(H)은 자동차(A)를 세계시장에 팔면 비싼 값을 받게 되며, 1)의 경우에 비해서도 더욱 비싼 가격을 받는다. 그러나 자급자족시 외국 의류 상대가격은 1/2이고 세계시장 가격도 1/2이기 때문에, 외국(F)은 의류(T)를 수출하는 것과 국내에 판매하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다. (→ 자국 비교우위 자동차 특화하여 수출하면 더 큰 이익, 외국 의류 자체생산과 수출 무차별)

 



[수입] : 자급자족시 자국 의류 상대가격은 1이고 세계시장 가격은 1/2이기 때문에, 자국(H)은 의류(T)를 수입해오면 싼 가격을 지불해도 되며, 1)의 경우에 비해서도 더욱 싼 가격만 지불하면 된다. 그러나 자급자족시 외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2인 반면 세계시장 가격도 2이기 때문에, 외국(F)은 자동차(A)를 수입하는 것과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이 무차별하다. (→ 자국 비교열위 의류 수입하면 더 큰 이익, 외국 자동차 자체생산과 수입 무차별)


이러한 결과를 다시 정리하면, 세계시장 상대가격과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양국에서 모두 다르다면, 각 국가들은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특화하여 수출하고 높은 품목은 수입한다. 개별 국가 내에서 '완전특화'(perfect specialization)가 이루어진다. 


만약 세계시장 상대가격과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한 국가에서는 다르고 한 국가에서는 동일하다면, 가격이 다른 국가는 완전특화를 하고 가격이 동일한 국가는 (무역개방 이전 자급자족 상황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상품을 모두 생산한다. 전자의 국가는 무역을 이익을 누리고 후자의 국가는 무역의 이익이 없다. 


이처럼 세계시장 상대가격(world price)이 얼마냐에 따라 국가별 무역패턴(trade pattern)이 결정된다. 자급자족 상대가격보다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더 높은 상품은 특화하여 수출하고 더 낮은 상품은 수입한다. 자급자족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동일하다면 국내와 해외 판매가 무차별하고, 국내에서 조달하나 해외에서 조달하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황과 달라지지 않는다. 


즉, ① 국가간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② 자연스레 세계시장 상대가격과 각국 자급자족 상대가격 간에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③ 무역을 할 이유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국가간 서로 다른 상대가격' 및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의 차이'는 무역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자국과 외국의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게 된 이유로 '기술수준에 따른 노동생산성 차이'(technology)를 꼽았다. 


양국의 기술수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투입량이 다르고 기회비용 차이가 발생한다. 그 결과 각국의 자급자족시 상대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각자 비교우위 혹은 비교열위를 가지는 상품이 생겨난다. 


여기서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높아 기회비용이 낮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의미하고,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낮아 기회비용이 높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높은 품목'을 뜻한다.


(주 : 다음글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에서는, '국가간 요소 부존자원(factor endowment) 차이'로 인해 상대가격이 달라진다는 헥셔와 올린의 이론을 살펴볼 것이다.)




※ 국제무역을 통한 '이익'이란 무엇인가? (gains from trade)

- 무역을 통해 자급자족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

- 더 적은 노동을 투입하여 동일한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  

 

국내에 판매하는 것보다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을 수출하고,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수입한다는 논리는 매우 직관적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러한 무역으로부터 얻는 이익을 “비싸게 팔아서 돈을 벌고, 싸게 구매해서 돈을 아꼈다” 라는 중상주의적 관점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욱 비싼 값을 받고 판매한 수출상품 덕분에 더 많은 양의 수입상품을 값싸게 들여올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소비가능한 상품조합이 자급자족에 비해 확대'되는 것이 바로 올바른 무역의 ‘이익’이다. 


이번 파트를 통해 국제무역을 통해 양국이 소비가능한 상품조합이 어떻게 확대시키는지, 그리고 무역의 이익을 보다 더 증대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자.


앞서의 예시를 다시 생각해보자. 


자국은 자동차에 비교우위를, 외국은 의류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 자급자족일 때, 자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1이고 의류 상대가격 또한 1이다. 외국은 의류 상대가격은 1/2이고, 자동차 상대가격은 2였다. 


자국의 경우, 자동차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이면 국내판매나 수출판매가 무차별하며,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2로 커질수록 수출로 얻는 무역의 이익이 증가한다. 또한, 의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이면 국내조달과 수입이 무차별하며,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2로 내려갈수록 수입으로 얻는 무역의 이익이 증가한다.


외국의 경우, 의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2이면 국내판매나 수출판매가 무차별하며, 세계시장 가격이 1로 커질수록 수출로 얻는 무역의 이익이 증가한다. 또한, 자동차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2이면 국내조달과 수입이 무차별하며,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로 내려갈수록 수입으로 얻는 무역의 이익이 증가한다.



'무역의 이익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세계시장 상대가격 간의 차이'이고, 자급자족 상대가격은 국내 상황에 의해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얼마냐'가 중요해진다.


여기서 세계시장 상대가격은 '교역조건'(Terms of Trade)를 의미한다. 세계시장 상대가격을 겉으로만 살펴보면 단순한 '수출상품 가격 / 수입상품 가격' 이지만, 사실 교역조건은 '수출상품 1단위와 교환할 수 있는 수입상품 단위 수'를 의미한다.

▶ 무역을 통해 자급자족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

이러한 교역조건이 국제무역을 통해 소비가능한 상품을 어떻게 늘리는지 알아보자.

예를 들어, 자동차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이면 자국은 자동차 1대를 수출하여 의류 1벌을 수입해오지만, 1.5면 의류 1.5벌 수입, 2이면 의류 2벌을 수입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의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1/2이면 의류 1벌을 수출하여 자동차 1/2대를 수입해오지만, 2/3이면 자동차 2/3대, 1이면 자동차 1대를 수입할 수 있다.  

따라서, 교역조건이 우호적으로 설정될수록, 비교우위 상품 한 단위를 수출하여 더 많은 양의 비교열위 상품을 수입할 수 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무역을 통해 자급자족 상태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소비할 수 있다. 


▶ 더 적은 노동을 투입하여 동일한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


다르게 생각하면, 무역은 더 적은 노동을 투입하여 동일한 양의 상품을 소비가능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자급자족 상황에서 자국은 비교열위 의류 1벌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1명을 투입해야 한다. 이제 무역을 한다. 교역조건이 1.5(=3/2)이면 노동자 2/3명을 자동차 2/3대 생산에 투입한 뒤 의류 1벌을 수입해올 수 있다. 교역조건이 2라면 노동자 1/2명으로 자동차 1/2대를 생산하고 의류 1벌을 수입해온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급자족 상황에서 외국은 비교열위 자동차 1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4명을 투입해야 한다. 무역을 하게 되고, 교역조건이 2/3이면 노동자 3명으로 의류 3/2벌을 생산하여 자동차 1대를 수입해올 수 있다. 교역조건이 1이면 노동자 2명으로 의류 1벌을 생산한 뒤 자동차 1대를 수입해온다.


따라서, 국제무역을 통한 비교열위 상품 수입은 더 적은 노동으로 '상품을 간접생산'(indirect production) 하는 효과를 가져다주고, 교역조건이 우호적일수록 간접생산 효과는 증폭된다.


▶ 국제무역이 만들어주는 효율성 이익


만약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각 국의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일치하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면(=이 글에서는 자동차 상대가격 3/2 혹은 의류 상대가격 2/3), 각 국은 완전특화(perfect specialization)를 통해 비교우위 상품만 생산하게 되고, 더 많은 양의 비교열위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결국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특화와 교환을 통해, 같은 노동으로 더 많은 양을 소비케하거나 더 적은 노동으로 동일한 양을 소비할 수 있게끔 만들어, '효율성의 이익'(efficiency gain)을 안겨다준다.


▶ 국제무역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들이 상호이득


양국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할 경우 상호이득(mutual gain)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자급자족시 상대가격이 서로 다르다’는 것 덕분이다. 


여기에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노동생산성이 절대우위냐 열위냐는 중요치 않다. 그저 자급자족 상태에 비해서 국제무역에 참여할 경우 더 비싼 값을 받고 상품을 판매하거나 더 싼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득을 보는 것일 뿐이다.




※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정말 상호이득을 가져다주느냐

- 후진국의 저임금을 불평하는 선진국

- 선진국의 높은 생산성을 두려워하는 후진국


이처럼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여러 이익을 가져다 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논쟁은 1817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제일 큰 논쟁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이 정말 상호이득을 가져다주느냐?' 이다.


선진국이나 후진국 내부에서 비교우위론에 대한 불평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선진국의 불평은 “후진국의 낮은 임금 때문에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이고, 후진국의 불평은 “선진국의 높은 생산성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이들은 '비교우위론과 생산성&임금 간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 예시로 든 자국과 외국의 경우를 이용하여 임금수준을 알아보자.


 

‘자동차(A)와 의류(T)의 세계시장 가격‘ 범위는 ‘자국(H)과 외국(F)의 자급자족 상대가격’에 의해 결정됐다. 이때, 자동차의 세계시장 가격은 자국의 자급자족 가격보다 최소한 같거나 비싸기 때문에 자국은 자동차(A)에 비교우위가 있고, 의류의 세계시장 가격은 외국의 자급자족 가격보다 최소한 같거나 비싸기 때문에 외국은 의류(T)에 비교우위가 있다. 


 

따라서, 자동차의 세계시장 가격은 자국에 의해서 결정되고, 의류의 세계시장 가격은 외국에 의해서 결정된다. (2) 수식을 (1)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두 국가의 임금수준은 양국의 생산성 범위에 따라 결정된다. 생산성이 높은 국가는 그에 맞추어 임금수준도 높고, 생산성이 낮은 국가는 임금수준이 낮다. 생산성이 높은 국가의 우위는 고임금 때문에 어느정도 상쇄되고, 저임금 국가의 우위는 저생산성 때문에 상쇄된다. 따라서, 선진국은 높은 생산성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후진국은 낮은 임금을 통해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다. 


두 국가가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고 있는 상황은 ‘두 국가의 임금 수준이 생산성 범위 내에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선진국이 후진국의 낮은 임금을 걱정하거나, 후진국이 선진국의 높은 생산성을 걱정하는 건 비교우위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 자유무역 균형을 이탈하는 저임금을 인위적으로 유지한다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에서 이탈할 한 가지 가능성은 '두 국가의 임금 수준이 생산성 범위 에 있을 경우'이다.


자국(H)의 임금이 1일 때, 외국(F)의 임금수준이 1/5인 상황을 가정해보자. 본래라면 외국의 임금수준은 최소 1/4, 최대 1/2이어야 하는데, 무역경쟁력을 더 획득하기 위해 이보다 낮은 임금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언뜻 보면, 자동차의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2.5(=5/2)로 설정되어, 자동차 생산에 비교우위를 가진 자국에 더 우호적인 교역조건(이전 최대한 우호적인 교역조건은 2)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동차 세계시장 상대가격 2.5는 외국 자동차 부문에도 우호적인 교역조건이다. 왜냐하면 자급자족일 때 외국 자동차 상대가격은 2인데, 시장개방을 하면 상대국가에 2.5를 받고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은 본래 비교우위를 가졌던 의류 뿐만 아니라 자동차도 수출을 한다.


더군다나 노동투입량*임금 으로 표현되는 생산비용이 외국(4/5)이 자국(1)보다 더 낮기 때문에, 외국과 자국의 자동차 생산자가 똑같은 가격을 받고 상품을 판매하면 외국 생산자는 더 많은 이윤(profit)을 얻게 될것이고, 자국 생산자는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자국(H)은 본래 비교열위 였던 의류 뿐만 아니라 비교우위를 가졌던 자동차도 생산을 멈추게 되고, 오직 외국(F)만이 상품을 생산하며 양국의 시장을 전부 차지한다.


여기에서 "아니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절대우위 · 절대열위에 상관없이, 각 국가가 최소 하나 이상의 상품은 특화하여 생산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맞다. 비교우위론은 세계시장 상대가격이 자급자족 상대가격과 다르면 비교우위 상품에 완전특화가 이루어지고, 세계시장 상대가격과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같다면 자급자족 상황과 별반 달라진 것 없이 두 상품을 모두 생산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 위의 예시는 외국(F)의 임금수준이 '비교우위론을 따르는 생산성 수준 범위 밖'에서 인위적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우위론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시장원리가 올바로 작동한다면. 초과이윤을 목격한 외국(F) 의류 생산자들이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고, 노동수요 증가에 따라 자동차 노동자 임금이 상승하여 임금수준이 본래 생산성 수준 범위 안으로 들어올 것이지만, 인위적인 힘으로 임금을 계속 통제할 경우 세계시장을 모두 차지할 수 있다.




※ '인위적인 저임금'으로 알아보는 유럽경제위기의 근본원인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저임금이 국제무역에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유럽경제위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 


前 Fed 의장 Ben Bernanke(벤 버냉키)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비판[각주:2]하였다.(이에 대한 해설글은 페이스북 페이지 참고.


본 블로그는 여러 글[각주:3]을 통해, "특정국가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가 국제금융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그의 주장을 다루었다. 최근의 주장도 평소 그의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까? 물론 그렇긴 하지만, 본인은 다른 부분을 강조하려 한다.


왜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이렇게나 클까요? 물론, 독일은 외국인들이 사고 싶어할만큼의 좋은 상품을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경제적성공 으로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다른 국가들이 전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Why is Germany’s trade surplus so large? Undoubtedly, Germany makes good products that foreigners want to buy. For that reason, many point to the trade surplus as a sign of economic success. But other countries make good products without running such large surpluses. There are two more important reasons for Germany’s trade surplus.)


첫째는 '유로화' 입니다. (유로화 도입 이전 유럽국가들이 가졌던 통화가치의 가중평균으로 결정된) 유로화의 통화가치는 적정한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독일의 입장에서 유로화의 통화가치는 너무 낮기 때문에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룰 수 없습니다. 2014년 7월, IMF는 독일의 통화가치가 5%~15% 정도 과소평가 되어있다고 추산했습니다. 그 이후로 유로화의 통화가치는 달러에 비해 20%나 더 하락했죠.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유로화는 독일에게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안겨줍니다. 만약 독일이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의 마르크화를 썼다면, 아마 독일의 통화가치는 현재 유로화의 가치보다 훨씬 높을 것입니다. 이는 현재 독일이 누리고 있는 무역의 이점을 줄이겠죠.  

(First, although the euro—the currency that Germany shares with 18 other countries—may (or may not) be at the right level for all 19 euro-zone countries as a group, it is too weak (given German wages and production costs) to be consistent with balanced German trade. In July 2014, the IMF estimated that Germany’s inflation-adjusted exchange rate was undervalued by 5-15 percent (see IMF, p. 20). Since then, the euro has fallen by an additional 20 percent relative to the dollar. The comparatively weak euro is an underappreciated benefit to Germany of its participation in the currency union. If Germany were still using the deutschemark, presumably the DM would be much stronger than the euro is today, reducing the cost advantage of German exports substantially.) (...) 


(독일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와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유로존 내에서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는 불균형적 성장뿐 아니라 금융불균형(financial imbalances)도 초래하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내 다른 국가들의 상대임금이 하락하여 생산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올려야 합니다.

(Persistent imbalances within the euro zone are also unhealthy, as they lead to financial imbalances as well as to unbalanced growth. Ideally, declines in wages in other euro-zone countries, relative to German wages, would reduce relative production costs and increase competitiveness.(...)


(주 : 하지만 '인위적인 임금하락'은 유로존 내 많은 근로자들을 희생시킨다.) 독일은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독일인들이 득을 보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Germany has little control over the value of the common currency, but it has several policy tools at its disposal to reduce its surplus—tools that, rather than involving sacrifice, would make most Germans better off. Here are three examples.)  (...)


바로, 독일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죠. 독일 근로자의 임금은 크게 상승할만 합니다. 일 근로자의 높은 임금은 생산비용을 증가시키고 국내소비를 늘릴 수 있습니다. 이것들 모두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줄일 수 있죠. 

(Raising the wages of Geman workers. German workers deserve a substantial raise, and the cooperation of the government, employers, and unions could give them one. Higher German wages would both speed the adjustment of relative production costs and increase domestic income and consumption. Both would tend to reduce the trade surplus.)


Ben Bernanke. 'Germany's trade surplus is a problem'. 2015.04.03

 

Ben Bernanke는 '독일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유로존 내 불균형'을[각주:4] 염려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독일이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거나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Ben Bernanke는 '독일 근로자의 임금상승' 혹은 '다른 유로존 근로자들의 임금하락' 을 방법으로 제시한다. '임금을 고려한 비교우위론'에서 살펴봤듯이, 생산성 수준을 뛰어넘는 높은 임금은 시장퇴출을 불러와 무역을 불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연유로 독일은 낮은 통화가치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가지게 되었을까? 또, 다른 유로존 국가들은 어쩌다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갖게 되었을까? 이를 알면 '유럽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글을 통해 '유럽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알아보도록 하자.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세상에 소개한 배경은 무엇일까


"자유무역을 통해 모든 국가가 상호이득(mutual gain)을 얻을 수 있다"는 함의를 전해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이제 절대생산성이 높은 국가도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절대생산성이 낮은 국가도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을 수출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리카도는 어떻게 '비교우위론'을 고안하여 세상에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1817년 당시 리카도가 살았던 영국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곡물법'(Corn Law)을 둘러싼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곡물법이란 국내산 곡물가격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도달할 때까지 곡물수입을 금지하거나, 수입 곡물에 상당한 관세를 부과하는 법률이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곡물 가격을 높게 유지하기 위하여 곡물법을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곡물법 유지를 옹호한 건 지주계급(Landlord)이었다. 곡물 가격이 비싸면 곡물 재배를 위한 경작 면적이 확대되어 지주의 이익, 즉 지대(rent)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와 같은 학자들은 '지주들의 소득 증가가 경제의 총수요를 증가시킨다'는 논리로 곡물법 유지를 찬성했다. 


그러나 리카도가 보기엔 곡물법은 해악만 가득한 법안이었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축적되어야 하고, 자본축적을 위해서는 영농자본가(farmer) 및 산업자본가(manufacturer)의 이윤(profit)이 증가해야 한다. 이때 곡물법으로 인해 초래된 높은 곡물가격은 생계비 부담을 키워 노동자 임금(wage)을 상승시킬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임금과 역의 관계인 자본가의 이윤은 감소하게 된다. 


즉, 리카도에게 있어 곡물법은 자본가의 이윤율을 저하시켜 자본축적 동기를 멈추게하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곡물법을 폐지하고 외국에서 곡물을 싸게 수입해와 자본가의 이윤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외국과의 자유무역'은 '곡물법 폐지'를 의미했으며, 지주와 노동자의 분배몫을 낮추고 자본가의 이윤을 증가시켜 자본축적을 촉진하는 수단이었다. 


이번글에서 소개한 '비교우위론이 가져다주는 무역의 이익'은 ① 소비가능한 상품조합 확대 ② 더 적은 노동으로 동일한 양의 상품 소비 가능 ③ 효율성 증대 등 정태적이익(static gain)을 이야기 했지만,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의 목적은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경제성장 달성' 이라는 동태적이익(dynamic gain)을 소개하는 것이다.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 저서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와 비교우위론이 등장한 배경을 좀 더 알고 싶은 분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비교우위론을 비판하는 장하준의 주장은 타당한가?


한국내 많은 독자들은 '비교우위론'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장하준의 주장 때문이다. 장하준은 그동안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무역은 크나큰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전개해왔다.


장하준이 지적하는 비교우위론의 문제점은 이것이다. 만약 선진국이 자동차산업에 비교우위가 있고, 개발도상국은 가발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하자. 비교우위론은 "선진국은 자동차, 개발도상국은 가발을 생산해야 이익을 가져다준다." 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렇다면 개발도상국은 평생토록 가발만 생산해야 하나? 경제성장을 원하는 개발도상국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보다는 높은 산업을 육성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비교우위론에 입각하여 무역정책을 짠다면, 개발도상국은 평생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만 운영해야 한다. 따라서, 장하준은 '보호무역'(protectionism)과 '유치산업보호'(Infant Industry Argument)를 통해, 개발도상국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육성토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리카도가 개발한 '비교우위론'은 장하준이 이해한 것처럼 "현재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을 평생토록 운영해야 한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현재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 대신 미래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산업을 키우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을 안다면, 시장참가자들은 이미 행동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비교우위론은 이것을 막지 않는다.


이처럼 비교우위론은 국제무역을 둘러싼 논쟁 속 쟁점사항 이었다. 제조업 육성을 통한 경제발전을 바라는 개발도상국은 비교우위론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핵심논점 이다. 이러한 논쟁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 '비교우위론'을 보완해줄 이론의 필요성


이번글을 통해 '비교우위론'이 무엇인지 그리고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무역이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주는지를 알아보았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각 나라의 노동생산성(labor productivity)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개념을 도입하며, "무역을 탄생시킨건 각 국가별로 서로 다른 노동생산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비교우위를 설명하면서 '노동'만을 생산요소로 사용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 뿐만 아니라 '자본'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세계 여러 국가들의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서로 다른 이유를 '노동생산성의 차이'만 가지고 설명할 수는 없다. 중동 · 호주 · 브라질 등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풍부한 국가들의 무역행태를 '비교우위론'이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보완하는 이론이 필요하다. 바로 다음글에서 '국가들이 보유한 자원(resource)의 차이'를 이용하여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헥셔-올린 이론'(Heckscher-Ohlin)을 알아보자.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1.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시장 상대공급과 상대수요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세계시장 가격이 결정된다. [본문으로]
  2. 'Germany's trade surplus is a problem'. 2015.04.03 http://www.brookings.edu/blogs/ben-bernanke/posts/2015/04/03-germany-trade-surplus-problem [본문으로]
  3.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2014.07.11 http://joohyeon.com/195 [본문으로]
  4. JooHyeon's Economics 페이스북 페이지 - 2014.09.28 [본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