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Posted at 2015. 7. 30. 20:26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범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



[유럽경제위기 시리즈]를 통해 누차 말했듯이,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Optimum Currency Area Criteria)[각주:1]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발하였다. "일단 유로존이 출범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립조건을 충족시켜 나갈 것이다"라고 믿었던 최적통화지역 내생성(Endogeneity of OCA)은 현실화 되지 않았다. 



유로존 출범 이후 누적되어온 독일 등 핵심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와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 즉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각주:2]은 최적통화지역 이론에 위배된채 출범한 '유로존의 근본적 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로존을 범위로 하였을때 유로화 그 자체는 변동환율이 적용되지만, 유로존에 속한 개별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에만 맞추어 유로화 통화가치를 조정할 수 없다. 이는 곧 별국가에서 대외불균형이 발생했을때 환율변동을 통한 균형조정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로존 소속 개별국가들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상실'하였다. 만약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보유했더라면, 외환시장 개입을 통하여 환율을 인위적으로나마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로존 전체를 관할하는 유럽중앙은행(ECB)만을 보유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한 환율개입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고정환율제 · 독자적인 중앙은행 상실이라는 결함을 유로존이 가지고 있더라도, 개별국가들이 경기변동 동조화를 보이거나 상품가격·임금 신축성 등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켰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유럽 핵심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흑자를 혹은 주변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 혹은 경상수지 적자를 공통적으로 기록했다고 가정해보자. 유로존 소속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상승하고, 모두가 경상수지 적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하락한다. 유로존은 유로화 환율 변동을 통해 대외균형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상품가격·임금 신축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경상수지 적자 발생시 상품가격·임금 하락을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하여 경상수지 균형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리를 하면, 유로존이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경기변동이 동조화' ·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상품가격 · 임금 신축성 보유' 등의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만족시켰어야 했다.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이 교정되지 않고 지속되어왔다는 사실은 '최적통화지역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는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드러내고 있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은 경제위기 진행와중에도 문제를 일으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전체를 관할하는 중앙은행이다. 만약 유로존 전체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면 적극적으로 확장적 통화정책을 구사했을테지만, 유로존 일부지역에서만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지 몰라서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확장적 통화정책은 위기 발생 지역에는 이점을 가져다주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는 인플레이션만 불러오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계속해서 논쟁이 펼쳐질 수 밖에 없었다[각주:3]. 독일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기보다, 주변부 국가들이 재정지출을 줄여서 부채를 상환하기를 원했다.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의 이러한 요구에 반발했고 그와중에 유럽경제위기는 더욱 더 심화되었다.



여기에더해, 나머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인 'region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 '재정통합'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 또한 유럽경제위기가 커지는데 일조를 했다. 


유럽경제위기는 '경상수지 불균'이 누적된 상황에서, 미국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유럽은행이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타격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자산손실을 입은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주변부 국가들은 구제금융을 금융부문에 투입하였다. 그 결과, 유럽 주변부 국가들에서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하였다. 유럽의 은행위기(Banking Crisis)가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가 된 것[각주:4]이다.


만약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인 'region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 '재정통합'을 유로존이 충족시켰더라면, 유럽은행위기는 재정위기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번글에서는 이러한 2가지 조건을 중심으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original flawed design of the euro)인 '재정동맹(fiscal union)  은행동맹(banking union) · 자유로운 노동이동(free labor mobility) 없이 출범한 유로존'을 살펴볼 것이다.



  

※ 자유로운 노동이동과 재정동맹 · 은행동맹의 중요성

- 미국과 유로존의 유사점과 차이점


'재정동맹'(fiscal union)이란 간단히 말해 '같은 통화를 공유하는 국가간에 재정이전(fiscal transfer)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상태는 다시 여러 층위로 구분할 수 있다. 한 국가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했을때 다른 국가들이 단순히 '채무공동보증'(joint guarantee)을 서주는 경우 · 여러 국가들이 안정화기금 등을 평소에 공동으로 적립하고 위기가 발생했을때 이를 사용하는 경우(stabilization fund) · 한 국가에서 세입이 부족한 다른 국가로 직접적인 재정이전을 해주는 경우(fiscal equalization) · 아예 연방정부를 만들어 연방재정을 운용하는 경우(fiscal federalism) 등이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니 쉽게 생각하자. '재정동맹'(fiscal union)은 현재 미국을 생각하면 된다. 여러 주들로 구성된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세금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한다. 하지만 유로존은 연방정부가 존재하지 않고 각 국가들이 재정을 관리한다. 



미국과 유로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더 알아보자. 


미국은 여러 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각 주들의 GDP는 중소국가의 GDP에 맞먹고 독자적인 주 헌법도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주들은 '달러화'를 같이 공유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을 '독립적인 각 주들이 통화동맹을 구성한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점에서 미국과 유로존은 유사하다. 유로존의 독일 ·  프랑스 · 그리스 · 스페인 등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 텍사스쿠 · 펜실베니아주 · 마이애미주로 대응해서 생각하면 된다.  


미국과 유로존 간에는 이러한 유사점과 함께 차이점도 존재한다. 


첫번째 차이점은 '미국은 각 주들간의 노동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유로존은 소속 국가들간의 노동이동이 비교적 힘들다'는 점이다. 미국인은 캘리포니아주를 떠나 뉴욕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세금을 거두고 이를 각 주에 배분한다. 하지만 유로존 소속 국민들은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가 비교적 어렵다. 정치구조, 문화 등이 완전히 다른나라로 이민을 가는 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미국은 연방재정이 존재하고 유로존은 개별국가들이 재정을 독자적으로 운용한다'라는 것이다. 미국은 각 주들이 독자적인 재정도 운용하지만, 연방정부가 각 주에서 세금을 거두고 배분한다. 미국의 주들은 같은 나라 국민들끼리 재정을 공유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이에반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통화를 공유하지만 재정만큼은 국가단위에서 운용하고 있다. 세금의 수입·지출 관리는 국가의 주권(sovereignty)과 관련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은행안정을 담당하지만, 유로존은 개별국가가 은행을 관리한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은행감독을 실시하고 있으며, 한 주에 위치한 은행이 파산위험에 처한다면 연방정부 차원에서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한다. 그러나 유로존은 개별국가에 위치한 은행감독 책임을 해당국가에 물리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에 위치한 은행 감독은 유로존 차원에서 담당하는게 아니라 그리스정부가 맡고있다. 또한, 개별국가 은행이 파산할 경우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 자금 투입은 금지되고 있다.(no bail-out clause)  


정리하면, 미국은 통화동맹을 이룸과 동시에 재정동맹 · 은행동맹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노동이동도 자유롭다. 하지만 유로존은 통화동맹은 이루었으나 재정동맹 · 은행동맹이 없고 노동이동이 비교적 어렵다.   


미국과 유로존의 이러한 차이점은 경제위기 발생 이후 대응에서 큰 차이를 초래한다. 


첫째, 미국은 한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노동이동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는 경기상황이 비교적 좋은 다른 주로 이동하여 실업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로존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유로존내 특정국가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때 해당국가 국민은 경제상황이 비교적 좋은 다른나라로 쉽사리 이동하지 못한다. 말그대로 다른나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침체가 발생한 국가의 실업문제는 심화된다.  


둘째, 미국의 한 주에서 은행위기가 발생한다면 연방정부 차원에서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하여 위기를 조기에 진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평소 연방정부 차원에서 미국내 은행들의 거래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위기 자체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내 한 국가에서 은행위기가 발생한다면 그건 그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여기에더해, 유로존 차원의 은행감독 부재는 은행위기를 예방하지도 못한다. 유로존 성립 이후 금융통합이 심화되어 유럽은행들은 유로존내 국경을 뛰어넘는 거래(cross-border transaction)를 많이 하고있지만, 유로존 차원의 은행감독은 부재하고 개별국가의 감독책임만 있다. 결국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자신들 나라에 위치한 은행이 다른나라 은행과 어떠한 거래를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은행위기를 예방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셋째, 미국은 한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때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만약 경기침체가 발생한 주의 재정상태가 좋지않더라도, 연방정부의 재정이 집행되기 때문에 안정화정책이 용이하게 실시될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은 특정국가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그 국가가 재정정책의 부담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해당국가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면, 경기침체에 대응한 재정지출 증가는 재정상태를 더욱 더 악화시킨다. 


더욱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각주:5]하자.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쓸 수 있는 안정화정책은 재정정책 뿐이다. 경제위기 발생 이전부터 재정정책이 모든 부담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재정상태가 좋지않더라도,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재정정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경기침체를 겪은 국가가 재정지출 증가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상황' + '안정화정책 수단으로서 재정정책만이 남은 상황'으로 인해 경제위기가 지나간 후 남은건 '재정적자 심화'와 '국가부채 증가'이다.           


미국은 '성공한 통화동맹' 이다. 특정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때 '노동이동'과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연방 차원의 은행감독'을 통해 은행위기를 예방할 수도 있다.


반면 유로존은 (현재로서는) '실패한 통화동맹'이다. 특정 국가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을때 '노동이동의 경직성'은 실업문제 해소를 어렵게 만든다. '개별국가가 재정정책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위기 이후 남은건 급증한 국가부채이다. 또한, '은행감독 책임이 개별국가에' 있기 때문에, 은행위기 예방도 불가능하다. 


유로존 결성 이전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예상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미국과 유럽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며,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예상했다. 



   

※ '노동이동 경직성'이 존재하고 '재정이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통화동맹을 구성한다?


유로존 결성 이전부터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지적해온 대표적인 경제학자는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 등이다. 이번글에서 Paul Krugman의 논문을 통해 '노동이동' · '재정이전'의 중요성을 알아보자.


Paul Krugman은 1993년 논문 <Lessons of Massachusetts for EMU>(<유럽통화동맹을 위한 매사추세츠 주의 교훈>)을 통해, "유로존이 통화동맹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노동이동과 연방재정(Federal Budget)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한다. Paul Krugman의 논리를 따라가보자.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유로존 결성 이전, 그리스에 상품을 판매하려는 기업은 그리스에 위치해야 했다. 상품의 운송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존 도입 이후 국가간 무역거래비용은 감소(reduction of transaction cost)되고, 이제 기업은 그리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상품을 생산한 뒤 운송을 해도 이윤이 남는다. 


이제 기업들의 입지결정이 달라졌다. 굳이 여러 국가에 생산공장을 둘 필요가 없다. 유로존 도입 이후 기업들은 '외부규모의 경제 효과'를 보기위해 특정국가 한 곳에 모여서 제품을 생산[각주:6]하기 시작했다. 어떤 국가에는 A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또 다른 국가에는 B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몰려든다. 그 결과, 유로존 도입 이후 국가별 특화(regional specialization)가 심화되고 유로존 소속 국가내 산업다양화는 줄어들것이다(being less diversified).     


국가별특화 심화와 산업다양화 감소는 경제위기 발생시 비대칭적 충격을 심화시킨다. 만약 A산업 공장이 여러 국가에 골고루 위치해 있을때 A산업 수요가 줄어든다면 여러 국가가 동시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A산업 공장이 한 국가에만 집중되어 있을때 수요가 감소한다면 그 한 국가에만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즉, 유로존 결성 이후에는 '특정국가에 집중된 위기가 발생할 위험'(a greater risk of severe region-specific recessions.)이 높아진다.


'경기변동에 대한 대칭적충격'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 중 하나[각주:7]임을 기억하자. 결국 유럽통화동맹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다른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인 '자유로운 노동이동'이 만족된다면 경제위기는 해결될 수도 있다. 경기침체가 발생한 국가의 국민이 다른 국가로 이동하면 실업은 해결된다. 


문제는 '자유로운 노동이동을 통한 실업감소가 상당히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과 '국민이 다른국가로 이동하면, 경제위기 이후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발생 이후 노동이동이 즉각적으로 발생하면 실업은 단시간에 해결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이동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기(not instantaneous)때문에, 경제위기 발생 이후 몇년간 실업은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이 경우 해당국가가 재정정책을 집행하여 실업문제를 빨리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는 재정정책을 집행할 유인이 없다. 왜일까? 


실업상황에 빠진 국민들은 느리게나마 다른 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나간 후 해당국가의 경제활동인구(labor force)는 크게 감소할 것이다.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생각하자. 경기침체가 해결된 이후 생산량의 침체갭(recessionary gap)은 없어질테지만 잠재성장(potential growth) 자체는 하락하고 만다. 어차피 잠재성장이 줄어들텐데 재정지출을 늘려서 실업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지출 증가는 단지 국가부채 증가만을 초래할텐데 말이다.


Paul Krugman은 '자유로운 노동이동은 생산량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쳐서 재정정책 사용을 방해한다."(in an environment of high factor mobility such shocks will tend to have permanent effects on output, which will tend to immobilize fiscal policy as well.) 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이처럼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는 재정정책을 쓸 유인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연방차원에서 재정정책을 구사해주어야 한다" 라고 말한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역할을 해주고 있고, 유로존에도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시스템'(a highly federalized fiscal system)가 필요할 것이다. 


(주 : 한 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전형적인 케인즈주의자(old-Keynesian) 라는 점이다. 그는 "실업과 경기침체는 빨리 해소되어야 한다."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노동이동을 통한 실업감소가 느리게 이루어질 동안 연방정부가 재정정책을 구사해야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재빠른 경기침체 감소'를 중요하게 생각치 않는 경제학자라면 이러한 주장을 펼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자 John Cochrane은 전형적인 케인즈주의자들이 펼치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각주:8].)


유로존이 결성되기 한참 이전인 1993년에 이러한 논문이 나왔으나, 모두 알다시피 2015년 현재에도 유로존은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시스템'이 부재하다. 


유럽재정위기로 시끄러웠던 2012년, Paul Krugman은 새로운 논문을 통해 '1993년에 했던 이야기'를 되짚는다. 2012년 논문 제목은 <Revenge of the Optimum Currency Area>(<최적통화지역의 역습>). 제목부터 심상치않다;



  • 플로리다 주와 연방정부 간의 관계

  • Revenue paid to DC : 플로리다 주가 워싱턴DC, 즉 연방정부에 낸 세금

  • Special unemployment benefits : 플로리다 주가 연방정부에게서 받은 실업보험 액수

  • Food stamps : 플로리다 주가 연방정부에게서 받은 일종의 사회안전망 액수


Paul Krugman은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사례를 통해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보여준다. 2008 금융위기의 여파로 플로리다 주 부동산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플로리다 주가 경기침체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로리다 주는 미국 연방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자동안정화장치가 작동하였고, 플로리다 주는 연방정부에 세금을 덜 바쳤다. 2007년 연방정부에 납부한 플로디다 주의 세금은 136 Billion(약 136조원)이었으나, 2010년 액수는 111 Billion(약 111조원)에 불과했다. 무려 25 Billion(약 25조원)이나 감소하였고, 감소분만큼 플로리다 주에 쓰일 수 있었다.


플로리다 주가 받은 더 큰 도움은 연방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재정이전(fiscal transfer)을 받은 것이다. 실업보험 · 푸드스탬프 등 사회안전망 프로그램 차원에서, 플로리다 주가 경기침체 발생 이후 연방정부로부터 받은 액수는 무려 7.9 Billion(약 8조원)에 달했다. 이는 경제위기 이전과 비교하여 6.6 Billion(약 6.6조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실증사례를 통해, Paul Krugman은 '통합재정'(fiscal integration)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통화동맹이 '최적통화지역'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통합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처음부터 '재정동맹'을 성립조건 중 하나로 요구해왔고, 이를 무시한채 출범한 유로존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최적통화지역에 관해 말해왔던 모든 것을 무시한채 유로존이 만들어졌습니다. 단일통화 사용 그 자체가 초래하는 문제를 약하게 말한 것만 빼면, 불행하게도 최적통화지역은 절대적으로 옳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최적통화지역 이론이 반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The creation of the euro involved, in effect, a decision to ignore everything economists had said about optimum currency areas. Unfortunately, it turned out that optimum currency area theory was essentially right, erring only in understating the problems with a shared currency. And now that theory is taking its revenge.)


Paul Krugman. 2012. <Revenge of Optimum Currency Area>. 447  



  

※ 위험감소냐, 위험분담이냐

-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 · 구제금융 방지 조항


그렇다면 유로존 출범 당시, 왜 유럽 정치인과 관료들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말해온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던 것일까? 유럽 관계자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채 유로존을 출범시킨 것은 아니다. 그들은 멍청하지 않다. 다만, 경제학자들과 다른 접근법을 취했을 뿐이다.


Paul Krugman을 포함하여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가 발생할때'를 상정해놓고 '재정통합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는 경제위기가 발생할시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럽 관계자, 특히 독일은 위험분담 보다는 애초에 위험을 감소(risk reduction)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유로존 소속 국가가 평상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한다면 위기발생 가능성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유로존은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소속 국가들에게 일정한 기준(convergence criteria)을 유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나 강조되는 기준은 안정성장협약(the Stability and Growth Pact)으로 체결된, '재정적자 3% 이내' ·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60% 미만' 등의 '엄격한 재정규율준수'(fiscal discipline) '경기침체 발생 국가에 대한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 금지'(no bail-out clause)이다.


이러한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fiscal discipline)와 '구제금융 금지'(no bail-out clause)는 '위험을 감소'(risk reduction)시키는 것 외에 또 다른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유럽중앙은행(ECB)의 인플레이션 발생 욕구 억제이다. 만약 유로존 소속 한 국가가 재정적자를 운용한 결과 경제위기에 처할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은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위기발생 국가 채권을 매입해줄 압력을 받게된다(inflationary debt bail-out). 이럴 경우 유로존 전체의 인플레이션 안정이 깨지게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재정건전성 유지가 중요하다.  


둘째, 유로존 국가간 채권금리 인상 파급효과(cross-border interest rate spillover) 방지이다. 만약 한 국가가 재정을 방탕하게 운용하여 채권금리가 상승할 경우, 그 국가의 채권금리 인상은 여러 파급경로를 통해 다른 국가의 채권금리도 상승시키게 된다. 그 결과, 유로존 전체의 채권금리가 상승하게 되고 이는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개별 국가들이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여 다른 국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유로존 국가간 정책 공동화(policy coordination) 추구이다. 누차 말했다시피,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 모든 국가가 단일한 통화정책을 영향을 받는 가운데, 재정정책은 각기 다른방향으로 유지될 경우 통화정책과의 공조가 깨지게된다. 또한, 유로존 소속 국가들간의 공조도 흐트러진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위해 개별국가에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를 요구하였다. 


넷째, 정을 방탕하게 운영하는 국가의 무임승차(free-ride)와 도덕적해이(moral hazard) 방지이다. 만약 재정적자를 기록해서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를 유로존이 도와줄 경우, 재정을 건실하게 유지해온 국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 또한, 구제금융을 상설화할 경우 굳이 재정규칙을 엄격하게 지킬 유인이 사라진다. 무임승차와 도덕적해이를 막기위해서는 구제금융 금지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위험감소 정책은 평상시 유로존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유로존은 경제위기 대응책 보다는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역사적경험으로 인해 '재정적자' · '정부부채' ·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싫어하는 독일[각주:9]은 이러한 조건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문제는 경제위기가 발생할 시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가 오히려 위기를 키운다는 점이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말했다시피, (애초부터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문제였던 그리스를 제외하고) 유럽경제위기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로부터 시작되었다. '구제금융 금지'로 인해 유로존 주변 국가들은 자국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모두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증가하였는데 '재정규율'을 지키기 위해서 긴축정책(austerity)을 시행하라는 요구[각주:10]가 들어왔다. 경기침체시 재정정책의 승수는 매우 크기 때문에[각주:11], 재정규율을 준수하기 위한 긴축정책은 위기를 심화시켰다.


분명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fiscal discipline)와 '구제금융 방지'(no bail-out clause)는 경제위기 발생 위험을 줄이기(risk reduction) 위해 꼭 필요한 조항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유로존 차원에서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것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였다. 


만약 미국처럼 유로존 차원의 '연방재정'(federalized fiscal system)이 존재했더라면 위기에 대응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유로존차원에서 각국 은행들의 대외거래(cross-border transactions)를 감독할 수 있었더라면 은행위기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이동이 자유로웠더라면 주변부 국가들의 실업문제는 비교적 빨리 해결됐을 수도 있다. 



  

※ 유로존 - 서로 다른 나라들끼리 뭉쳐진 통화동맹


유로존은 경제위기를 겪은 이후 '유로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는다. 


비교적 손쉽게 이루어지는 개혁은 '은행동맹 결성'(banking union) 이었다. 은행들에 대한 감독과 감시를 개별국가에 맡기는게 아니라, 유로존 차원의 감독을 통해 금융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개혁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재정동맹'(fiscal union)과 '자유로운 노동이동'(free labor mobility)이다. 이제 경제위기를 겪고 난 뒤의 교훈으로 유로존 차원의 연방재정을 만들어야 할까? 그리고 경기침체를 겪은 국가를 다른 국가들이 도와줘야 할까? 마지막으로,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다른 나라 국민들이 이주해온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까?


최적통화지역 이론상으로는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미국과는 달리 유로존은 '서로 다른 나라들끼리' 뭉쳐진 통화동맹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유럽'을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진행된 유로존은 역설적으로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통합' 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국가에 바친 세금을 다른나라 국민을 위해서 쓴다?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나라의 예를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바친 세금을 일본이나 중국을 위해 쓴다? 이것을 받아들일 한국인은 얼마 없을 것이다. 재정은 나라의 주권(sovereignty)과 관련된 사항이다. 노동이동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정치 · 문화 · 생활방식을 가진 다른나라 국민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이민(immigration)은 언제나 민감한 주제 중 하나였다. 


이러한 갈등은 2015년 현재 '그리스 경제위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독일인들은 빌린 돈을 갚지 않는 그리스인을 비난[각주:12]한다. 반대로 그리스인들은 구제금융 조건으로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독일인들을 비난[각주:13]한다.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 등 유럽 중심부 국가가 옳으냐, 부채탕감과 재정이전을 요구하는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유럽 주변부 국가가 옳으냐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는 위기를 심화시키지만, 그것이 없다면 무임승차와 도덕적해이 문제가 발생한다. 경기침체기의 긴축정책은 경제성장을 훼손시키지만,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부채를 감축해야 한다. 


단지 "유럽인들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서로 다른 나라끼리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보여준다."라는 해석만 할 수 있을 뿐이다.



  1.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2.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3.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28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4.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2015.07.27 http://joohyeon.com/226 [본문으로]
  5.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28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2015.07.30 http://joohyeon.com/218 [본문으로]
  7.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30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8. 'Mankiw and Conventional Wisdom on Europe'. 2015.07.28 http://johnhcochrane.blogspot.kr/2015/07/mankiw-and-conventional-wisdom-on-europe.html [본문으로]
  9. 'Germany's hyperinflation-phobia'. 2015.11.15 The Economist [본문으로]
  10. '[긴축vs성장 ③]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2013.04.19 http://joohyeon.com/145 [본문으로]
  11. '[긴축vs성장 ①]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2012.10.20 http://joohyeon.com/114 [본문으로]
  12. 'Germany’s Destructive Anger'. NYT. 2015.07.15 [본문으로]
  13. 'Greece’s Alexis Tsipras faces Syriza rebellion over ‘humiliation’. FT. 2015.07.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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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Posted at 2015. 7. 30. 20:25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유로존의 근본적 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


지난 [유럽경제위기 시리즈]를 통해, '유로존 결성 이전' · '유로존 결성 이후부터 2008 금융위기 이전까지' · '2008 금융위기 이후 유럽재정위기 발생까지'를 살펴보았다. 


유럽은 '하나의 유럽' 이라는 정치적목적을 달성하기에 앞서 경제통합을 우선 진행하였다.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이 "유럽은 단일통화를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라고 지적하였으나, 유럽통합은 경제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정치적 프로젝트 였다. 경제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은 결성되었다.



본래 여러 국가가 단일통화를 공유하려면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Optimum Currency Area Criteria)를 만족시켰어야 했다[각주:1].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은 ① 통화를 공유하는 국가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② 상품가격과 임금의 신축적인 조정 가능 ③ 통화를 공유하는 국가간 재정이전 가능 ③ 경기변동 충격이 통화지역 소속 국가간에 대칭적으로 발생 등이 있다.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하지 못한채 출범이 되었고 결국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은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에서 자라고 있었다[각주:2]. 유로존 출범 이후, 독일 · 프랑스 등 유로존 핵심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온 반면에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유로존 내 불균형'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도입된 '유로존의 근본적 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3가지 지점을 통해 보여주었다.


첫째,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로존을 범위로 하였을때 유로화 그 자체는 변동환율이 적용되지만, 유로존에 속한 개별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에만 맞추어 유로화 통화가치를 조정할 수 없다. 이는 곧 개별국가에서 대외불균형이 발생했을때 환율변동을 통한 균형조정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변동환율을 채택한 국가는 경상수지 흑자 발생시 통화가치 상승, 경상수지 적자 발생시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대외균형을 맞춰나간다. 하지만 유로존에 속한 개별국가들은 자동조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 혹은 경상수지 적자는 계속해서 누적된다.       


둘째, 유로존 소속 개별국가들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상실'하였다. 만약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보유했더라면, 외환시장 개입을 통하여 환율을 인위적으로나마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로존 전체를 관할하는 유럽중앙은행(ECB)만을 보유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한 환율개입은 발생하지 않았다.


독자적인 중앙은행의 부재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했다. 바로, 최종대부자의 부재이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 등에서 많은 자본을 끌어왔다. 주변부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일 또한 유로화를 쓴다. 즉, 이는 주변부 국가들이 자국통화인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변부 국가들은 화폐발행을 통하여 부채를 상환하는 방법(monetization)을 쓸 수 없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들만의 중앙은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주변부 국가들이 지고 있던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는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나 마찬가지였다.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각주:3]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보증해 줄 수 있는 기관은 없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의 대외불균형은 더욱 더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셋째, 유로존에서는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에 위배되는 '경기변동에 대한 비대칭적 충격'이 발생하고 있었다. 변동환율 ·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획득한 여러 국가들이 최적통화지역을 운용해나가기 위해서는 경제위기 발생시 대칭적충격이 발생해야 한다. 


만약 유럽 핵심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흑자를 혹은 주변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 혹은 경상수지 적자를 공통적으로 기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럴경우, 단일통화 사용이 가져온 '고정환율제', '독자적인 중앙은행의 상실'의 단점을 느끼지 못한다. 


유로존 소속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상승하고, 모두가 경상수지 적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전체를 위하여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고,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해 최종대부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아무리 고정환율제 · 독자적인 중앙은행 상실이라는 근본적 결함을 유로존이 가지고 있더라도, 개별국가들이 경기변동 동조화를 보여서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켰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유로존내에서 경상수지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최적통화지역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는 유로존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리하면, 유로존은 설립 이전부터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고,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을 주장한 일부 학자들의 바람[각주:4]과는 달리, 유로존 설립 이후에도 최적통화지역을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도입한 행위는 (당연하다는듯이) 문제를 가져왔다. 경제위기의 씨앗인 경상수지 불균형이 자라나게 했으며, 경제위기 진행과정에서도 위기를 키워나갔다. 


이번글에서는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도입한 행위', 즉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이 유럽경제위기 진행과정에서 유로존 개별국가들에 끼친 악영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본 글은 2013년 11월 30일에 작성하였던 '유럽경제위기는 재정위기? 국제수지위기?'에서 다수 재인용 하였습니다.)




※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가격 Mispricing과 Overestimated-Risk



지난글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와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많이 봤던 그림이다.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 도입 이후, 독일 · 프랑스 등 유럽 중심부 국가들과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정부채권금리가 수렴(yield convergence)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투자자들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을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하나의 시장(One Market, One Money)'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로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Crisis)가 발생하자, 유럽 핵심부 국가들과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 격차는 유로존 결서 이전처럼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럽재정위기의 충격은 경상수지 적자 · 과도한 신용증가를 기록하고 있던 주변부 국가들에게 집중되었고, 이들 국가의 디폴트 위험이 증가한 결과 채권금리 또한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건 '채권금리'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의 상관관계이다. 


2008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채권금리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뚜렷한 관계를 띄지 않았다(Figure4). 그러나 2008 금융위기 이후, 채권금리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간의 뚜렷한 양(+)의 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Figure5).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의 채권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윗 그래프는 2008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클 때, 높은 채권금리가 발생한 시기는 2010년-2011년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Crisis)가 심화되던 시기[각주:5]이다.


경제학자 Paul De Grauwe, Yuemei Ji는 2012년 논문 <Mispricing of Sovereign Risk and Multiple Equilibria in the Eurozone>을 통해, "2008 금융위기 이후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과 채권금리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채권금리가 시간에 의존(time-dependency)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



더욱 흥미로운건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 소속 국가와 자국통화를 쓰는 국가(stand-alone countries)를 비교했을때 발견되는 사실이다.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발행한 국가(파란점)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하여도 채권금리가 상승하지 않는다. 특히나 일본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150%를 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채권금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게 유지되고 있다. 반면,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 소속 국가(빨간점)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채권금리가 크게 상승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채권금리가 ① 경제위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에 의존(time-dependency)한다는 것과 ②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발행하는 국가와는 차이를 보인다는 2가지 사실로부터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논문을 쓴 Paul De Grauwe, Yuemei Ji는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금융위기 이전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는 mispricing된 상태였다. 둘째, 그렇다면 금융위기 이후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는 정부부채 크기에 맞추어 정상수준(?)으로 돌아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는 국가와 비교한다면, 금융위기 이후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 위험도는 과대평가(overestimated risks) 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유럽 주변부 국가들 채권금리의 위험이 과대평가되는 이유를 '자기실현적 유동성위기'(self-fulfilling liquidity crises)에서 찾는다. 은행위기 발생 → 은행 구제금융을 위해 정부 재정지출 증가 → 정부 디폴트 위험 증가 → 채권금리 상승 → 높아진 금리는 부채부담을 가중시킴 → 정부 디폴트 위험 증가 → 채권금리 상승… 으로 이어지는 자기실현적 위기이다.      


그렇다면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처한 '자기실현적 위기'를 끊어내고 채권금리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자국통화를 표기한 부채를 지고 있는 국가들과는 달리,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채권금리가 정부부채와 큰 상관관계를 띄는 원인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바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의 부재'이다.




※ 유럽경제위기는 '국제수지위기'(Balance of Payment Crisis)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2013년 11월 7일에 개최된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제목은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Paul Krugman은 이 논문을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와 유럽 주변부 국가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빌렸고 ·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그리스 경제위기 타입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Are Greek-type crises likely or even possible for countries that, unlike Greece and other European debtors, retain their own currencies, borrow in those currencies, and let their exchange rates float?") 


'그리스 경제위기 타입의 위기'란 무엇일까? 바로, 투자자들의 신뢰상실(loss of confidence)이 불러오는 국제수지 위기(balance of payment crisis)이다.


국제수지위기란 '대외불균형(external imbalance)으로 인한 외국자본의 과다유입(capital inflows) → 갑작스런 유입중단(sudden stops) → 자본흐름의 반전(reversal of capital flows) → 급격한 자본유출(capital outflow)'이 불러오는 위기이다. 상당한 양의 자본유입은 부동산시장 등 자산시장 거품을 키우고, 갑작스런 자본유출은 자산시장 가격을 폭락시킨다. 


이 과정에서 해당국가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만약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its own currency)를 지고 있더라면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이용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자본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해당국가가 부채에 대한 보증(guarantee)를 서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일종의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를 초래한다.


고정환율제가 할 수 있는 역할 또한 없다. 변동환율제도 였다면 환율조정을 통해 대외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의 결과 자본유입이 발생한다면,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경상수지 균형이 회복될 것이다. 고정환율제도는 이러한 조정이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리스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통화와 중앙은행'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들만의 중앙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은 화폐발행을 통하여 부채를 상환하는 방법(monetization)을 쓸 수 없다. 


결국, 주변부 국가들이 지고 있던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는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나 마찬가지이고,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유럽재정위기는 국제수지위기이다.


(주 : 이러한 형태의 위기는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각주:6]에서도 보았으며, 유럽경제위기를 설명한 지난글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 Figure 2 : 통화체제에 따른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관계. X축은 GDP 대비 부채비율, Y축은 10년 만기 채권금리. (●, Noneuro)는 독립된 통화체제를 가진 국가, (◇, Euro)는 통화체제의 독립성을 상실한 유로존 소속 국가


Paul Krugman은 유럽 주변부 국가와는 달리, "독자적인 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빌렸고 ·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신뢰상실에 이은 국제수지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한다.


▶ 독자적인 통화

: 그림2는 유로존 소속 국가냐 아니냐, 즉 독립된 통화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를 분류했다. 그러자 어떤 통화체제(Currency Regimes)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부채와 채권금리 간의 상관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독립된 통화체제(●, Noneuro)를 가진 국가들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하더라도 채권금리가 상승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화체제의 독립성을 상실한 유로존 국가(◇, Euro)들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상승할수록 채권금리도 같이 상승한다. 통화체제(Currency Regime)가 큰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 독자적인 중앙은행

: 그렇다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의 존재가 국제수지위기 발발을 막는 역할을 수행한다" 라는 주장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럽재정위기 와중에 '최종대부자' 역할을 200% 이행한 적이 있었다. 2012년 7월 26일, Mario Draghi 총재[각주:7]는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Within our mandate, the ECB is ready to do whatever it takes to preserve the euro. And believe me, it will be enough.)" 라며 강력히 발언하였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 파트)

 


Mario Draghi 총재의 "do whatever it takes" 발언이 있은 직후, 스페인 · 이탈리아의 채권금리는 Figure 3에서 보듯이 가파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Mario Draghi 총재의 발언에는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 라는 의미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 Figure 4 : 덴마크 · 핀란드 채권의 독일채권 대비 금리격차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 나설 수 있느냐의 중요성은 덴마크와 핀란드 사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덴마크는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아 독립적인 통화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핀란드는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경제규모가 작은 덴마크의 경우, 환율리스크를 반영하여 약간은 높은 채권금리를 유지(a small premium reflecting residual currency risk)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럽경제위기가 특히나 극심했던 2011년 말, 핀란드 채권금리는 상승하는 와중에 덴마크 채권금리는 하락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더군다나 덴마크 채권금리는 때때로 독일보다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유로존에 가입한 유럽국가들과 달리, 덴마크는 필요한 경우 독자적으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사실을 통해 '최종대부자의 부재는 채권자들 사이에서 유동성위기에 대한 두려움을 확산' 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aul Krugman은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여 "국가가 부채로 인한 신뢰의 위기(crises of confidence)에 직면할 가능성을 결정할 때, 통화체제(the currency regime)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고 주장한다.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자.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처한 '자기실현적 위기'를 끊어내고 채권금리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De Grauwe, Yuemei Jin과 Paul Krugman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more active liquidity policies by the ECB that aim at preventing a liquidity crisis from leading to a self-fulfilling solvency crisis.) 유럽중앙은행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주변부 국가들의 유로화 표기 부채에 대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 높은 인플레이션율 - 내적평가절하을 용이하게 만든다


유럽중앙은행(ECB)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구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적평가절하의 용이함'이다. '내적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란 상품가격과 임금하락을 통해 무역시장에서의 경쟁력(competitiveness)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확장적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데, 내적평가절하는 상품가격과 임금을 하락시켜야 한다. 서로 모순되는 정책 아닐까? 그렇지 않다. 유로존 전체에서 인플레이션이 유발된다면, 주변부 국가들의 상품가격과 임금하락은 더욱 더 쉬워진다. 


우선, 주변부 국가들이 왜 상품가격과 임금을 하락시켜야 하는지부터 살펴보자. 유럽경제위기는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각주:8]에서 자라났다. 유로존 출범 이후 독일 등 중심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누적해왔고,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등은 경상수지 적자를 쌓아왔다. 따라서, 유럽경제위기를 해결하고 추후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경상수지 불균형을 교정해야 한다.


변동환율제도 하에서 경상수지 불균형은 자동적으로 조정된다. 또한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여 불균형을 시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차 말했다시피 유로존 소속 개별국가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변부 국가들은 환율조정이 아닌 상품가격·임금 하락을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하는 경쟁력회복 방법[각주:9]을 통해 경상수지 흑자를 늘려나가야 한다'[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유로존 결성 이후 주변부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상승과 단위노동비용을 기록해왔기 때문에, 내적평가절하는 더욱 더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내적평가절하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이고 실현가능성이 낮다임금에는 하방경직성(downward rigidity)이 존재한다. 한번 올라간 근로자의 임금을 다시 내리는 행위는 반발을 초래한다. 또한 근로자 임금하락은 생활수준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고통스럽다. 물가를 내리는 행위도 디플레이션을 유발하여 경기침체를 키울 수 있다. 


만약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의 상품가격과 임금이 신축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면 내적평가절하는 쉬울 수도 있지만, 유로존은 상품가격·임금 경직성을 가진채 출범한 상태였다.

(주 : 상품가격 · 임금 신축성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 중 하나였으나, 누차 말했다시피 유로존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범[각주:10]하였다.)  


  • 'Internal devaluations only'는 명목통화가치 하락없이 물가수준만 하락하는 방식으로 내적평가절하를 한 것을 뜻한다.
  • 'All devaluations'는 명목통화가치 하락과 함께 물가수준이 하락하여 내적평가절하를 달성할 경우를 뜻한다.
  • 이러한 2가지 경우를 비교해 봤을때, 명목통화가치 하락이 동반되지 않고 물가수준만 하락하는 방식으로 내적평가절하를 달성한 경우는 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위의 표는 임금·물가만 내리는 방식의 내적평가절하가 실현된 경우가 극히 적다는 것을 보여준다. 'Internal devaluations only'는 명목통화가치 하락없이 물가수준만 하락하는 방식으로 내적평가절하를 한 것을 뜻한다. 'All devaluations'는 명목통화가치 하락과 함께 물가수준이 하락하여 내적평가절하를 달성할 경우를 뜻한다. 


이러한 2가지 경우를 비교해 봤을때, 명목통화가치 하락이 동반되지 않고 물가수준만 하락하는 방식으로 내적평가절하를 달성한 경우는 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 내적평가절하가 필요하다. 그러나 환율조정도 하지 못하고 상품가격·임금 경직성도 가진 상황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내적평가절하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을까? 


한가지 방법은 유로존 전체의 물가수준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만약 유로존 전체의 물가수준이 10% 상승한다면, 주변부 국가들은 5%의 물가상승 만으로도 사실상 물가하락을 유도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위의 표를 다시보자. 1990년대 이후 'Internal devaluations only'가 성공한 경우는 극히 적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이후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율을 컨트롤 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세계 경제 전체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각주:11]했다. 이는 다르게 말해, '경제 전체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높다면 환율조정 동반 없는 내적평가절하가 비교적 용이하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前 Fed 의장 Ben Bernanke는 "유로존 경상수지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유럽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한 물가상승''독일의 임금상승'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본 블로그는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통해 그의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Ben Bernanke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의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와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유로존 내에서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는 불균형적 성장뿐 아니라 금융불균형(financial imbalances)도 초래하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내 주변부 국가들의 상대임금이 하락하여 생산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올려야 합니다.

(Persistent imbalances within the euro zone are also unhealthy, as they lead to financial imbalances as well as to unbalanced growth. Ideally, declines in wages in other euro-zone countries, relative to German wages, would reduce relative production costs and increase competitiveness.) (...)


(하지만 '인위적인 임금하락'은 유로존 내 많은 근로자들을 희생시킵니다.) 유럽 주변부 국가의 근로자들을 희생시키지 않음과 동시에 독일인들이 득을 보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Germany has little control over the value of the common currency, but it has several policy tools at its disposal to reduce its surplus—tools that, rather than involving sacrifice, would make most Germans better off. Here are three examples.)  (...)


바로, 독일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죠. 독일 근로자의 임금은 크게 상승할 여력이 합니다. 독일 근로자의 높은 임금은 생산비용을 증가시키고 국내소비를 늘릴 수 있습니다. 이것들 모두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줄일 수 있죠. 

(Raising the wages of Geman workers. German workers deserve a substantial raise, and the cooperation of the government, employers, and unions could give them one. Higher German wages would both speed the adjustment of relative production costs and increase domestic income and consumption. Both would tend to reduce the trade surplus.) 


국제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독일이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을 지지해야 합니다. 물론,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한 유로화 가치의 하락은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를 키울 수도 있죠. 그러나 확장적 통화정책은 2가지 경로를 통해 이를 상쇄시킵니다.


첫번째, 유로존 전체의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주변부 국가들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상대임금 조정을 더욱 더 용이하게 만듭니다. 두번째, 확장적 통화정책은 유로존 전체의 경제활동을 증가킵니다. 

(Seeking a better balance of trade should not prevent Germany from supporting the European Central Bank’s efforts to hit its inflation target, for example, through its recently begun quantitative easing program. It’s true that easier monetary policy will weaken the euro, which by itself would tend to increase rather than reduce Germany’s trade surplus. 

But more accommodative monetary policy has two offsetting advantages: First, higher inflation throughout the euro zone makes the adjustment in relative wages needed to restore competitiveness easier to achieve, since the adjustment can occur through slower growth rather than actual declines in nominal wages; and, second, supportive monetary policies should increase economic activity throughout the euro zone, including in Germany.)


Ben Bernanke. 'Germany's trade surplus is a problem'. 2015.04.03





※ 경기변동에 대한 비대칭적 충격 - 통화정책 운용의 폭을 좁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 하락 · 내적평가절하 달성을 위해서는 유럽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럽경제위기가 초기에 진행됐을 때, 유럽중앙은행은 소극적으로 대응[각주:12]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미국 Fed는 채권매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채권금리를 낮췄다. 이에따라 미국 Fed 대차대조표상 자산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에반해 유럽중앙은행은 한창 유럽경제위기가 진행중이던 2010년-2011년에도 소극적인 대응에 머물렀다.     


유럽중앙은행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유럽경제위기의 충격이 주변부 국가들에게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즉, '경기변동에 대한 충격이 핵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 사이에 비대칭적으로 발생'했다는 말이다. 


주변부 국가들을 위해서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하였으나, 이는 중심부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유로존에서 목소리가 제일 큰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물가안정을 유지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게 중요[각주:13]하다.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계속해서 논쟁이 펼쳐질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기보다, 주변부 국가들이 재정지출을 줄여서 부채를 상환하기를 원했다[각주:14].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의 이러한 요구에 반발했고 그와중에 유럽경제위기는 더욱 더 심화되었다.

(주 : 2013년 이후, 유럽중앙은행은 양적완화 정책을 구사하였고 이후 스페인 · 포르투갈 등의 채권금리는 진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 유로존의 근본적결함 (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



결국 유럽경제위기는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범한 유로존 그 자체가 문제'였다. 


최적통화지역은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과 '경기변동에 대한 대칭적 충격'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유로존은 출범 이전부터 경직적인 상품가격·임금을 가졌었고, 출범 이후에는 경상수지 불균형이 확대되어 경기변동에 대한 비대칭적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져나갔다. 


이러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은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폭을 제한시켜 유럽경제위기를 심화시켰다. 그리고 경상수지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 필요한 주변부 국가들의 내적평가절하 달성도 어렵게 만들었다.  


1990년대 당시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 등 미국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은 성립 불가능하다. 유로존은 나쁜 아이디어이다. 유로존은 지속 불가능하다."(the Euro-It can't happen, It's a bad idea, It won't last.) 라는 반응을 보였다. 


2009년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은 보고서를 통해 출범 이전부터 유로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던 미국 경제학자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현재 유럽경제위기는 그들이 옳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1.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2.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2015.07.27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3.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2013.11.26 http://joohyeon.com/176 [본문으로]
  4.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5.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2015.07.27 http://joohyeon.com/226 [본문으로]
  6.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2013.11.26 http://joohyeon.com/176 [본문으로]
  7. Speech by Mario Draghi, President of the European Central Bank at the Global Investment Conference in London 26 July 2012 [본문으로]
  8.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9.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2015.05.19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10.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11.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Olivier Blanchard 퇴임 - '경제위기와 맞선' 그의 공헌들'. 2015.05.16 http://joohyeon.com/222 [본문으로]
  12.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2015.07.27 http://joohyeon.com/226 [본문으로]
  13. 'Germany's hyperinflation-phobia'. 2013.11.15 The Economist [본문으로]
  14. '[긴축vs성장 ③]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2013.04.19 http://joohyeon.com/14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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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Posted at 2015. 7. 30. 20:25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유럽재정위기 


지난글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을 통해, 유로존 결성 이전의 유럽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당시 유럽은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하나의 유럽' 이라는 정치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통합을 진행하였다.


경제학이론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발한 유로존은 2008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듯 했다. 경제성장률은 견고했고 인플레이션은 낮았다. 그러나 유로존 내부에는 경제위기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바로,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current account imbalance within eurozone)이다.


지난글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에서 우리는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이 확대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유럽 주변부 국가(periphery)들은 유로존 바깥에서의 자본유입 · 낮아진 금리를 이용한 차입증가 · 물가상승과 단위노동비용 상승으로 인한 경쟁력상실 등으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자본유입)를 기록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는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위기 이전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와 함께 상당한 양의 자본유입을 받아들였었는데,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투자자들은 자본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자본이동이 반전(reversal of capital flow)된 것이다.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주변부 국가의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알아야한다. 유럽경제위기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남유럽 국가들의 과다한 정부부채'를 문제삼는다. 외신 또한 '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유럽재정위기) 라는 표현을 쓴다. 즉, 현재 유럽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과도한 국가부채'이다.    


그렇다면 왜 유럽, 특히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주변부 국가들은 '과도한 국가부채'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리스의 경우 2008년 이전부터 재정적자와 많은 국가부채를 기록하고 있긴 하였지만,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다른 유럽국가들은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원래부터 주변부 국가들이 방만하게 재정을 운용했기 때문에 재정위기를 맞았겠지" 라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윗 그래프를 살펴보아도, 그리스 ·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스페인 · 아일랜드 · 포르투갈 등은 2008년 이전까지만 하더다롣 국가부채 비율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이들의 국가부채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는 '유럽재정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8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경제에 미친 영향'을 먼저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2008 금융위기는 유럽은행에 큰 손실을 안겼고, 은행의 손실은 유럽 주변부 국가의 재정부담을 증가시켰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미국발 2008 금융위기가 불러온 유럽은행위기'와 '은행위기가 재정위기로 커지게 된 이유'를 알아보자.




※ 미국에서 시작된 2008 금융위기, 유럽은행에 악영향을 끼치다

 

미국발 2008 금융위기는 크게 2가지 경로를 통해 '유럽은행', 특히 주변부 국가의 은행에 악영향을 끼쳤다. Philip Lane2012년 논문 <The 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Jay Shambaugh2012년 보고서 <The Euro's Three Crises>를 통해 그 내용을 알아보자.    


첫째로, 세계 투자자들은 2008 금융위기 이후 자신들이 했던 투자를 재평가(reassessing)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동안 위험한 곳에 투자하지 않았는지를 염려했다. 투자자들은 위험도가 큰 곳에 했던 투자를 회수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피해는 계속해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던 유럽 주변부 국가에 집중되었다. 


단일통화를 쓰는 유로존의 특성상,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환율변동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이룰 수가 없었다[각주:1]. 또한,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달러화는 말할 것도 없고)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각주:2]이러한 '유로존의 구조적 특징'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생긴 대외부채(external debt)를 갚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투자자들이 하게되었다.


결국 오랫동안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던 주변부 국가들의 경제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기 시작했고,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하여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하였다. 자산가치 하락과 대출연체율 증가는 유럽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손상시켰다.



둘째로, 2008년 당시 유럽은행은 미국자산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다. 윗 그래프는 2007년 4분기-2008년 4분기 사이 미국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보유한 비중(파란색)과 손실규모(빨간선)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은행은 전체 증권자산 중 미국 ABS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약 35%에 달했다. 또한 금융위기 이후 가치가 하락하거나 지급불능에 빠진 미국 ABS로 인해 큰 손실을 보았다. 


우리는 지난글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에서 유로존 바깥의 자본은 주로 독일 · 프랑스 등 핵심부 국가로 이동하였다고, 독일 · 프랑스 등은 그리스 · 아일랜드 · 스페인 · 포르투갈 등 주변부 국가에 자본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손해를 본 독일 · 프랑스 은행은 주변부 국가에 빌려주었던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대출상환요구가 빗발치자 유럽전체 금융시장은 경색되었다. 



 

윗 그래프는 독일 · 프랑스 은행이 주변부 국가를 대상으로 한 상환요구를 보여준다. 특히나 아일랜드의 경우 독일 · 프랑스 은행 상환요구 액수는 GDP의 250%, 120%에 에 달했다.  ·     



이후, 유럽 전체적으로 금융시장이 경색된 모습이 나타났다. 윗 그래프는 2007년-2012년 사이, 유로존에 속한 은행이 비금융기관에 대출해준 자금을 보여준다. 2008년 9월부터 대출금액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이전의 대출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 금융시장은 이전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2008년 9월 이후 유위험 금리와 무위험 금리의 격차(스프레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유위험 금리가 치솟은 것이다. 



미국발 2008 금융위기 여파로 유럽 금융시장이 경색되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 Fed와 달리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윗 그래프는 미국 Fed와 유럽중앙은행(ECB)의 대차대조표상 자산규모 증가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국 Fed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하면서까지 미국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였다. 채권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한 결과 Fed의 자산은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은 소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였고, 자산규모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주 : 유럽중앙은행이 소극적인 행동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글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 은행위기 → 재정위기 → 은행위기 → ... 의 악순환


미국과는 달리 중앙은행이 소극적으로 개입한 유럽. 결국 금융시장 회복을 위한 정책부담은 각국 개별정부에 집중되었다. 여기에더해, 유로존 결성의 조건으로 만들어진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 금지조항'(no bail-out clause)은 개별정부의 부담을 더욱 더 키웠다[각주:3]


이는 유로존에 가입한 개별 국가의 도덕적해이와 무임승차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항인데, 유로존 회원국은 다른 회원국 채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유로존에 속한 개별국가들은 자국 소재 은행만을 구제할 수 있고, 자국 소재 은행이 위험에 처했을때 다른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결국 변부 국가들은 자신들만의 재정을 이용해서 자국은행을 구제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주변부 국가의 은행위기는 재정위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재정위기는 은행위기 심화를 가져오는 악순환이 발생하는데...


Patrick Honohan, Daniela Klingebiel의 2003년 논문 <The fiscal cost implications of an accommodating approach to banking crises>과 Ashoka Mody, Damiano Sandri의 2012년 논문 <The eurozone crisis: how banks and sovereigns came to be joined at the hip>, 그리고 Viral Acharya, Itamar Drechsler, Philipp Schnabl의 2011년 논문 <A Pyrrhic Victory? - Bank Bailouts and Sovereign Credit Risk>은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의 악순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 유럽 은행위기 → 재정위기



위의 표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클수록 정부의 재정부담(fiscal cost)이 커짐을 보여준다. 은행위기는 크게 2가지 경로를 통해 정부재정에 부담을 준다.


첫번째, 은행위기로 인한 경제성장 저하는 정부의 세입을 감소시킨다. 금융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은행기능이 마비되면 (앞서 보았다시피) 대출거래가 감소하여 경제 전체 신용에 악영향을 끼치고 경제성장이 저하된다. 


두번째 경로가 중요한데, 은행의 파산을 막기위해 정부는 공적자금 등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출이 증가한다. 이로인해 주변부 국가의 GDP는 감소하고 정부부채를 증가하는데, 2008년 이후 주변부 국가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정부의 구제금융 덕분에 은행은 위험에서 벗어났으나 이제 정부의 위험도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윗 그래프는 구제금융 이전 정부(짙은색)와 은행(연한색)의 신용부도스왑(CDS) 금리를 보여준다. 정부가 은행을 도와주기 전에는 은행의 금리가 상당히 높은 수준을 기록함을 보여준다.  



윗 그래프는 구제금융 기간 동안의 정부(짙은색)와 은행(연한색)의 신용부도스왑(CDS) 금리를 보여준다. 정부의 구제금융에 힘입어 은행의 금리는 상당히 감소하였다. 은행위기가 진정된 것이다. 그러나 구제금융 과정에서 지출이 증가한 정부의 금리는 상승하였다. 금리상승은 부채 부담을 증가시켜 재정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  



▶ 재정위기 → 은행위기


구제금융 이후 주변부 국가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증가와 정부금리 상승으로 정부는 이제 재정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이는 은행위기 심화로 이어진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하는 현상을 지켜본 투자자들은 이제 정부의 신용도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한 국가 · 부채를 많이 지고 있는 국가일수록 채권금리가 상승한다. 구제금융 이전 투자자들은 정부의 부채비율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으나, 제금융 이후 투자자들은 '정부의 디폴트 위험'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 :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후, 투자자들이 유로존 소속 개별국가들의 위험을 재평가하게 된 배경은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참고)  


정부의 디폴트 위험 증가는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던 '추가적인 구제금융'에 대한 기대를 없애버린다. 현재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국가가 향후 은행위기 발생시 구제금융을 해줄 수 있을까? 이러한 우려는 아직 파산은 하지 않았으나 경영상태가 불안정한 은행의 위험도를 키운다.  



윗 그림은 구제금융 이전과 이후, 정부부채와 정부CDS 금리 간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구제금융 이전에는 정부부채와 정부CDS 금리가 별다른 상관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정부부채가 많은 국가이든 적은 국가이든 투자자들은 이들을 똑같이 인식했다. 


그러나 구제금융 이후, 주변부 국가들은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하였고 투자자들은 이를 '정부 디폴트 위험'으로 인식하기 시작[각주:4]했다. 그 결과, 구제금융 이후에는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높은 금리를 부담했다. 



윗 그림은 구제금융 이후의 국가별 CDS 금리와 은행 금리가 동반상승 했음을 보여준다. 은행위기를 막기위해 구제금융을 시행하였으나, 구제금융 이후 정부 디폴트 위험이 증가하여 은행의 디폴트 위험도 커진 것이다. 결국 '은행위기 → 재정위기 → 은행위기의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그리스 · 포르투갈 · 스페인 · 아일랜드 등 유로존 주변부 국가에게 남은건 '증가한 정부부채'와 '높은 채권금리' 즉, '재정위기'(Sovereign Debt Crisis) 뿐이었다. 


이 2가지 그래프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주변부 국가의 정부부채는 2008 금융위기 여파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증가하였고, 구제금융 시행 이후 채권금리가 유로존 결성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왜 정부부채 증가를 막지 못했을까?



윗 그래프는 '정부부채 위기'(Sovereign debt crisis) ↔ '은행위기'(Bank crisis) ↔ '성장과 경쟁력 위기'(Growth and competitiveness crisis) 간의 연결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 정부부채 위기 → 은행위기

: 과도한 정부부채는 디폴트 위험을 증가시킨다. 은행들은 보통 자국 정부의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므로, 자국정부의 디폴트 가능성 증가는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손상시킨다. 


● 은행위기 → 정부부채 위기

: 은행의 파산은 2가지 경로를 통해 정부의 재정을 악화시킨다. 금융시스템 마비에 따른 경제성장 저하로 인한 세입감소와 은행 구제금융 과정에서의 정부지출 증가. 은행위기는 곧 재정위기로 이어진다.


● 정부부채 위기 → 성장위기

: 정부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긴축정책(austerity)을 구사해야 한다. 그러나 긴축정책은 경제성장을 저하시키는 악영향을 초래[각주:5]한다. 


● 성장위기 → 정부부채 위기

: 역으로 경제성장 저하는 정부의 상환능력을 훼손시킨다(insolvent)


● 은행위기 → 성장위기

: 은행위기로 인한 금융시스템 마비는 경제성장을 저하시킨다.


● 성장위기 → 은행위기

: 경기침체로 인한 저성장은 자산가치를 하락시킨다. 은행은 부동산 등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자산가치 하락은 대차대조표를 손상시킨다.


그렇다면 왜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정부부채 증가를 막지 못했을까? 만약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이 재정정책 보다 통화정책에 의존할 수 있었더라면, 재정지출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유로존 핵심부 국가들이 재정이전을 통하여 주변부 국가들을 도왔더라면, 주변부 국가들의 재정부담은 완화되었을 것이다. 


즉, 유로존은 개별국가들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안정화정책 수단으로서 재정정책의 부담이 크다. 이렇게 재정정책의 부담이 큰 상황에서 경기침체를 겪은 국가들은 오직 자신들의 힘으로만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구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이다.  


다음글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에서는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쓰지 못하는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또 다음글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에서는 오직 자신들의 힘으로만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1.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2.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3.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2015.07.28 http://joohyeon.com/228 [본문으로]
  4.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5. '[긴축vs성장 ①]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2012.10.20 http://joohyeon.com/1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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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Posted at 2015. 7. 30. 20:25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유로화 도입 이후,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지난글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를 통해 유로화 도입 이전의 경제학적 논의를 알아보았다. 유럽은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으나, '하나의 유럽' 이라는 정치적목적을 내세워 유로화를 도입하였다. 2002년 유로화 도입 이후, 유럽 경제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견고한 성장률을 이어나갔고 인플레이션율 하락과 재정적자 감소를 기록하였다


2008년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유럽통화연맹(EMU) 결성 10주년을 기념하며 <EMU@10-Successes and challenges after ten years of EMU>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들은 보고서를 통해 유로존의 성공과 문제점을 이야기 하였는데, 전체적으로 '견고한 성장률 · 낮은 인플레이션율 · 경기변동 동조화 증가'를 논하며 유로존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다.   


자, 이러한 보고서가 '2008년'[각주:1]에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자[각주:2]. 2008년 이후 2015년 현재까지 유로존은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이 유로화 도입 이전부터 지적했던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경제위기는 '독일' 등 유럽 중심부국가(core)와 '그리스 · 스페인 · 아일랜드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국가(periphery) 간의 '경상수지 격차 확대'(current account imbalance)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2002년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나날이 커져갔고, 반대로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해서 확대되었다.      



그렇다면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과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격차가 계속해서 확대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유로존 국가들 사이에서 나타난 '경상수지 불균형'(current account imbalance)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이번글에서 이에 대해 알아보자.




※ 경상수지 적자는 무조건 나쁜 것일까?

 

앞서 보았다시피, 2002년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 등 유럽 핵심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그리스 · 스페인 · 아일랜드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계속해서 기록해왔다. 이러한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이 왜 문제일까? 이번 파트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각주:3],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각주:4]에서 살펴보았다시피, '경상수지 흑자 =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경상수지 적자 = 무조건 나쁜 것' 또한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경상수지 흑자 통계를 가지고 대통령의 업적을 비교하거나, 다른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크기에 비해 한국의 그것이 더 크다고 우월해하곤 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Current Account Surplus)를 '국가의 부'(Wealth of Nation)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중상주의 시절에는 금과 같은 재화를 국가가 얼마나 보유하고 축적(Accumulation)하느냐가 중요했다. 즉, 국가가 보유한 재화의 양이 국가의 부와 동일시된 것이다. 과거 중상주의 시절, 제국주의 국가들이 해외식민지를 개척하는데 힘을 쏟았던 이유는 식민지 무역을 통해 재화를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제국은 인도 · 중국과의 식민지무역을 통해 금과 은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한 금과 은을 통해 국가의 경제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재화를 얼마만큼 보유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재화를 얼마만큼 '생산'(Product) 하느냐이다. 그렇게 생산된 재화를 '소비'(Consumption)함으로써 사람들이 '효용'(Utility)을 얼마만큼 느끼는지 따지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한 국가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은 다른 나라가 생산한 제품을 수입한 양에 비해 그들이 생산해 낸 제품을 다른 나라에 수출한 양이 더 많음을 의미한다. 중상주의 관점에서 보면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이다. 수입을 초과하는 수출로 인해 외화를 벌어들여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관점에서 경상수지 흑자는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생산해낸 제품을 다른나라에 보낸 국민들은, 재화를 사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상주의 관점과는 반대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상수지 적자(Current Account Deficit)가 좋은 것일수도 있다.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지 않더라도, 다른나라의 재화를 수입해와 사용함으로써 효용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상수지는 '국가들간의 무역전쟁'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계정상의 소득 · 소비 · 정부지출 · 투자 등에 의해 결정된다. 


위의 첫번째 식은 국민계정(National Account)을 나타낸 것이다. 경제 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소비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경제 내 총생산 크기는 소비 · 정부지출 · 투자 · 순수출5 형식의 총지출 크기와 똑같다. 그리고 이를 전개하면 '국민저축(S) - 투자(I) = 순수출(NX)'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즉, 한 경제에서 경상수지 흑자냐 적자냐를 결정짓는 건 수출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경제 내 국민저축과 투자의 크기이다. 국민저축이 투자보다 많다면 그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이고, 투자가 국민저축보다 많다면 그 경제는 경상수지 적자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국민저축이 투자보다 많다면 그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이고, 투자가 국민저축보다 많다면 그 경제는 경상수지 적자이다. 


그런데 저축과 투자는 금융시장과 관련있는 것 아닌가? 한 경제에서 저축이 투자보다 많다는건 여유자금이 있다는 뜻이다. 여유자금을 가지고 있는 개인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금을 빌려주어 이자소득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의 행위를 하지 않을까?


투자에 비해 국민저축이 많은 국가, 즉 여유자금이 있는 국가(경상수지 흑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려주는 역할(net lender on international financial market)을 한다. 그리고 국민저축에 비해 투자가 많은 국가, 즉 자금이 필요한 국가(경상수지 적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리는 역할(net borrower on international financial market)을 한다. 


이런 원리로 경상수지(Current Account)와 자본수지(Capital Account)는 연결된다. 경상수지 흑자 국가는 자본수지가 적자이고, 경상수지가 적자인 국가는 자본수지가 흑자이다.(주: 정확히 말하면 '자본수지'라는 표현보다는 '금융수지'라는 표현을 써야하지만....)


자, 이러한 지식을 안다면 '그리스 · 스페인 · 아일랜드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 국가의 경상수지 적자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유럽 핵심부 국가에 비해 경제성장이 뒤쳐졌던 주변부 국가들이 유로존 결성 이후 투자를 늘려나간 것 아닐까?"


'자본수지 흑자 = 경상수지 적자 = 저축보다 투자가 많은 상태' 이다. 유로존 결성 이전부터 주변부 국가들은 핵심부 국가에 비해 경제성장이 뒤쳐졌었다. 이런 와중에 유로존 결성으로 금융거래 장벽이 없어지는 금융통합(financial integration)이 진행되었다면, 금융자본은 핵심부 국가에서 주변부 국가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부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뒤쳐져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경제성장 여력이 있다는 뜻이고 이는 '자본의 한계수익률'(marginal return of capital)이 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즉, 심부 국가의 자본은 비교적 높은 수익을 안겨다주는 주변부 국가로 이동(자본수지 흑자)하고, 유입된 자본을 바탕으로 주변부 국가들은 투자를 늘려(경상수지 적자)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 


그 결과, 유럽 핵심부 국가들과 주변부 국가들은 경제규모 · 소득을 수렴(convergence)해 나갈 수 있다. 


이런 논리를 생각하면 '그리스 · 스페인 · 아일랜드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 국가의 경상수지 적자를 나쁘게 바라볼 이유는 없다. 경제학자 Olivier BlanchardFrancesco Giavazzi2002년 논문 <Current Account Deficits in the Euro Area: The End of the Feldstein-Horioka Puzzle?>을 통해, "유럽 핵심부 국가의 자본은 높은 수익률을 쫓아 주변부 국가로 이동하였고, 주변부 국가들은 투자를 늘려나가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유입된 자본이 생산적인 투자(productive investment)에 쓰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만약 유입된 자본이 생산적인 곳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건설부문 · 서비스업 등 생산적이지 않은 비교역부문(non-tradable sector)에 쓰인다면 경제성장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거품(bubble)만 발생할 것이다. 


유럽경제위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다.



     

※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Current Account Imbalance)

- ① 유로존 외부에서 유입된 자본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과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격차가 계속해서 확대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선 '유로존 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 CEPR과 IMF 소속의 Ruo Chen, Milesi-Feretti, Thierry Tressel2013년 논문 <External imbalances in the eurozone>를 통해,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의 시작을 '유로존 외부에서 독일·프랑스로의 자본유입'에서 찾는다. 


유로존은 이제 하나의 통화를 쓰는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세계 투자자들은 '유로존'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이 관심 가진 것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중심부 국가였다. 유로존 도입 이전부터 세계 강대국이었던 이들이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만나서 더더욱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윗 그래프는 유로존 바깥의 국가가 보유한 각종 채권잔액을 유로존내 국가별로 보여주고 있다. 독일 · 프랑스 · 네덜란드 등 핵심부 국가의 채권잔액 중 약 30% 가량을 유로존 외부국가에서 보유하고 있다. 반면, 그리스 · 스페인 · 아일랜드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잔액은 유로존 외부국가가 보유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유로존 외부국가들이 유로존 주변부 국가가 아닌 핵심부 국가의 채권을 비교적 많이 매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로존 외부에서 독일 · 프랑스 등 유로존 핵심국가로 자본유입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유로존 외부에서 상당량의 자본이 유로존으로 흘러들어오자, 유로화의 명목 통화가치가 상승(nominal appreciation)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실질실효환율(REER) 상승[각주:5]으로 이어졌다. 


위의 그래프는 유로화 실질실효환율의 변화를 명목실효환율 효과와 단위노동비용상승 효과로 구분한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질실효환율 상승의 상당부분을 명목실효환율 상승이 이끌었다.   


그 결과, 로화 통화가치 상승으로 인하여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각주:6]했고, 대외차입(external financing)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맞춰나갔다.



그렇다면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어디서 자본을 들여와서 국제수지 균형을 맞췄을까? 바로, 유럽 중심부 국가이다.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핵심부 국가에서 자본을 끌여들여와 균형을 맞춰나갔다.  


Figure6은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의 '순외화자산 포지션'을 보여준다. 이들의 순외화자산은 음(-)의 값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주변부 국가들이 자본유입으로 인한 부채를 지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이들 부채의 상당부분을 'Rest of eurozone'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유로존 핵심부 국가를 뜻한다. 핵심부 국가의 자본이 주변부 국가로 이동하여 그들의 채권을 구매했으니, 주변부 국가들은 일종의 부채를 핵심부 국가에 지고 있다.  


Figure7은 유로존 핵심부 국가들의 '순외화자산 포지션'을 보여준다. Figure6과는 정반대로 핵심부 국가들의 순외화자산은 양(+)의 값을 지고 있다. 그리고 자산 중 상당부분을 'Rest of eurozone', 즉 유로존 핵심부 국가들은 주변부 국가들의 자산을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 유로존 핵심부 국가들은 '순자산'을,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순부채'를 기록하게 되었다. 위의 Figure1은 1999년-2010년 사이 유로존 국가별 순외화자산 포지션을 보여주는데,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 도입 이후부터 최근까지 그리스 · 스페인 · 아일랜드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순부채 크기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현상을 알려준다. 


쉽게 말해, 이는 유로존 핵심부 국가에서 주변부 국가로 자본이 이동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본수지는 역으로 경상수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음도 알려준다.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이 나타난 것이다.


이번 파트는 '유로존 바깥'에서 그 원인을 주로 찾았다. '유로존 외부에서 독일 · 프랑스 등 유로존 핵심부 국가로 자본이 유입' → '유로화 통화가치 상승' →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 → '주변부 국가들은 핵심부 국가들의 자본을 차입하여 국제수지 균형 달성하려함(그러나 과다차입으로 균형달성 못함)'의 경로이다.


그렇다면 유로존 결성 이후 주변부 국가들이 외부자본을 많이 차입할 수 있게 된 또 다른 요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이 과다한 자본차입을 하게 된 원인'을 '유로존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Current Account Imbalance)

- ② 유로존 결성 이후 발생한 채권금리 수렴현상, 주변부 국가들의 차입을 증가시키다



유로존 결성이 가져다준 현상은 '유로존내 국가별 채권금리 수렴'(yield convergence)이다. 


경제학자 Philip Lane2006년 논문 <The Real Effects of EMU>, 2012년 논문 <Current Account Imbalances in Europe>, 2012년 논문 <The 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 2014년 논문 <Domestic credit growth and international capital flows> 등을 통해, '채권금리 수렴이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을 초래한 현상'을 설명하였다.


경제학자 Jay Shambaugh 또한 2012년 보고서 <The Euro's Three Crises>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똑같은 주장을 펼쳤다. 


유로존 결성 이전에는 국가별 디폴트 위험에 따라 채권금리가 매겨졌었기 때문에, 경제력이 좋지 않은 주변부 국가들은 높은 채권금리를, 경제력이 좋은 핵심부 국가들은 낮은 채권금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유로존 도입 이후, 시장참가자들은 개별 국가의 리스크를 채권금리에 반영하지 않고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유로존에 소속된 국가들은 비슷한 채권금리를 보유하게 되었다.

(주: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에서 더 자세히)


윗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이 결성되기 이전에는 국가별로 채권금리 차이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 이후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비슷한 채권금리를 기록했고, 채권금리 수렴 현상은 유럽경제위기가 시작된 2008년-2009년까지 지속되었다.   



주변부 국가들은 유로존 결성 이후 낮아진 채권금리를 이용하여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cheap money). 앞서 말했다시피, 주변부 국가들은 주로 핵심부 국가로부터 자본을 차입하였다. 자본유입 증가는 신용증가와 양(+)의 관계를 띄기 때문에, 아일랜드 · 스페인 등에서는 국내신용이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이렇게 증가된 신용은 주로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스페인 · 아일랜드 등은 유입된 자본으로 건설부문에 투자하여 부동산시장 활황을 만들었다.  




'자본유입'에 이은 '건설부문 투자 증가'는 2가지 경로를 통해 가계의 재무상태를 악화시켰다. 


첫째, 낮아진 채권금리 덕택에 자본유입을 겪은 주변부 국가의 국민들은 "유입된 자본을 활용하여 투자가 증가할테니 경제가 크게 성장하겠지? 그러면 나의 미래 소득도 오를테고!"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변부 국가의 가계는 미래기대소득 상승을 생각하여 현재의 소비를 늘려나갔다.

(주 : 앞선 파트에서 '주변부 국가들은 유입된 자본을 활용하여 핵심부 국가와 경제규모 · 소득을 수렴(convergence)해 나갈 수 있다.' 라는 내용을 다루었음을 기억하자.) 


둘째, 부동산가격 상승을 본 주변부 국가 국민들은 부동산담보대출을 통해 집 구매에 나섰다. 이들 가계가 부채를 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의 도표는 그리스 · 아일랜드 · 이탈리아 · 포르투갈 · 스페인 등 주변부 국가의 가계 재무상태 변화를 보여준다. 2001년과 비교하여 2009년 주변부 국가 가계의 순자산이 대폭 감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변부 국가 '건설부문 투자증가'와 '가계의 소비증가'는 국민계정식에 의해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current account deficit)을 초래하였다.


간단히 정리하면, '유로존 결성 이후 채권금리 수렴' → '주변부 국가들은 낮아진 금리를 이용하여 자본차입 증가' → '유입된 자본은 건설부문에 주로 투자됨' & '자본유입 증가로 미래 기대소득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가계의 소비 증가' → '소비와 투자증가로 경상수지 적자 발생'의 논리이다.




※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Current Account Imbalance)

- ③ 주변부 국가내 물가상승과 단위노동비용 상승 →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다


여기에더해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해서 누적되는 악순환에 직면했다. 


주변부 국가로의 자본유입은 그 자체로 물가를 상승시킨다. 그리고 건설부문 등에 자본유입이 집중된 결과 비교역부문의 임금이 크게 상승하였다. 비교역부문의 임금상승은 교역부문 임금인상으로 이어졌고[각주:7], 주변부 국가의 교역부문은 생산성 향상없이 임금만 크게 증가하였다. 생산량당 임금을 나타내는 단위노동비용(Unit Labor Costs)이 상승한 것이다. 



 

위의 두 그래프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물가상승 추이와 단위노동비용 추이를 보여준다. 


첫번째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 이탈리아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 · 독일을 제외한 유로존 평균에 비해 훨씬 큰 폭의 물가상승을 겪었다. 또한, 두번째 그래프를 통해,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단위노동비용이 독일과 비교해 크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물가상승과 단위노동비용 상승은 실질실효환율을 상승시킨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직면하는 통화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우리는 이전파트에서 '유로존 외부에서 자본이 유로존으로 흘러들어오자, 유로화의 명목 통화가치가 상승(nominal appreciation)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실질실효환율(REER)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명목실효환율 상승은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물가상승과 단위노동비용 상승은 개별 국가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은 단위노동비용 하락(ULC change ↓)으로 명목실효환율 상승을 상쇄하였다. 그러나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명목실효환율 상승에 더해 물가수준과 단위노동비용마저 올라갔고, 실질실효환율은 더더욱 상승하였다.  



윗 그래프는 독일과 비교하여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실질실효환율이 크게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실질실효환율 상승은 국제무역시장에서 상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loss of competitiveness).  


본 블로그의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서는,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이 무역에 초래하는 문제점'을 다룬바 있다. '임금을 고려한 비교우위론'에서는 임금이 움직이면서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을 경쟁우위로 만드는데, 임금이 적정수준(노동생산성을 반영한 수준)을 초과한다면 각국의 비교우위 산업은 경쟁우위를 잃게되어 국제무역시장에서 퇴출된다. 


국제무역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된 주변부 국가들은 당연히(?)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이렇게 유로존 결성 이후에 누적되어온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은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까? 

첫번째, 경상수지 불균형은 그 자체로 '국내의 왜곡된 경제구조'(domestic distortion)를 반영하고 있다. 
: 독일 등 핵심부 국가들이 경상수지 흑자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임금상승 억제'와 '소비감소'이다. 유로존 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가진 독일이 소비를 해주지 않고있다. 이와는 반대로, 스페인 · 아일랜드 등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이유는 부동산시장 거품에 힘입은 '과잉투자', 포르투갈은 '미래소득증가 기대에 따른 과잉소비', 그리스는 '과도한 재정지출' 이었다. 이처럼 경상수지 불균형은 각 국가들의 왜곡된 경제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제다.    

두번째, 자본유입의 결과로 만들어진 경상수지 적자는 자본이동이 급격히 반전될 경우(reversal) 경제위기를 불러온다.
: 스페인 · 아일랜드 등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 · 프랑스 등 핵심부 국가에서 이동해온 자본유입으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자본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유입으로 인해 부동산시장 등 자산시장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있는 상태이다. 이때, 자본유입이 갑자기 멈추고(sudden stop) 자본이동 흐름이 갑작스레 반전되어 자본유출이 발생한다면, 자산시장 가격이 급락하여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초래된다. 

(주 :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서 발생한 '2008 금융위기'[각주:8] 당시에도 나타났다. 중국에서 유입된 자본으로 인해 미국 부동산시장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한 상태[각주:9]였는데, 부동산 가격 하락이 시작되자 금융시장이 붕괴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글로벌 과잉저축'(Global Saving Glut)으로 인한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각주:10]라 부른다. 유로존 내부의 경상수지 불균형은 글로벌 불균형의 축소판이다.)

세번째, 변동환율을 통한 대외균형 조정을 수행할 수 없고, 개별 국가들이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가지지 못한 유로존에서 경상수지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쓰는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은 고정환율제 영향 아래 놓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환율변동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이룰 수가 없다. 또한,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달러화는 말할 것도 없고)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각주:11]

이러한 '유로존의 구조적 특징'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생긴 대외부채(external debt)를 갚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투자자들이 하게되었다. 결국 오랫동안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던 주변부 국가들의 경제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기 시작했고,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하여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하였다. 

(주 : 사실상 고정환율제에 놓여있으며 독자적인 중앙은행이 없는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이 '달러화와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해 대응할 수 없는 현상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각주:12]와 유사하다. 1997년 당시 한국은 고정환율제와 함께, 1994년-1996년간 누적되어온 자본유입의 영향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후 갑작스레 자본유출이 발생하자 한국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바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원화에 대한 발권력만 가졌고, '(달러화)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각주:13]이다. 유로존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더 자세히)



이 도표는 위기 이전 경상수지 크기(CA/GDP) · 신용증가 크기(Change in priv.credit/GDP) 등이 2008 금융위기 이후 생산량 감소에 끼친 영향을 보여준다. 


경상수지 크기와 생산량은 양(+)의 관계를 가진다. 우려했던 것처럼 경상수지 적자 크기가 클수록 생산량 감소폭이 증가하여 경기침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용증가 크기와 생산량도 양(+)의 관계를 가지는데, 이는 위기 이전 자본이 많이 유입된 국가에서 생산량 감소폭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번째, 유로존 국가들간의 경상수지 불균형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 최적통화지역 성립 조건 중 하나는 '경기변동에 대한 대칭적충격'(symmetric shocks)이다[각주:14].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똑같은 경기변동을 겪는다면,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운용폭은 넓어진다. 개별국가를 고려하지 않고 유로존 전체를 위해 단일한 정책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유럽 핵심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흑자를 혹은 주변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 혹은 경상수지 적자를 공통적으로 기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럴경우, 단일통화 사용이 가져온 '고정환율제', '독자적인 중앙은행의 상실'의 단점을 느끼지 못한다. 


유로존 소속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상승하고, 모두가 경상수지 적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전체를 위하여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고,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해 최종대부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아무리 고정환율제 · 독자적인 중앙은행 상실이라는 근본적 결함을 유로존이 가지고 있더라도, 개별국가들이 경기변동 동조화를 보여서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켰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유로존내에서 경상수지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최적통화지역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는 유로존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유럽 주변부 국가에 집중된 경상수지 적자는 아일랜드 · 스페인 · 포르투갈 · 그리스 등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살펴볼 것이다.      




※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왜 경상수지 적자를 조정할 수 없었을까?

- 유로존의 근본적 결함 (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


이 글을 읽고난 뒤 한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경상수지 불균형이 문제였다면 환율조정을 통해 대외균형을 달성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 보통 경상수지 불균형에 처한 국가는 환율조정 메커니즘을 통해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경상수지 흑자국은 통화가치 상승을 통해, 경상수지 적자국은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균형을 달성한다.  


그러나 문제는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쓰는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은 사실상 고정환율제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환율조정 메커니즘을 쓸 수 없었다


주변부 국가들의 대외균형에 맞추어 유로화 환율이 자동적으로 조정될 수 있을까? 유로존은 여러 국가들로 구성된 통화지역이고, 유로화는 여러 국가들의 경제수준이 반영된 통화이다. 주변부 국가들은 경제규모가 작기 때문에, 유로화 미치는 영향도 작다. 주변부 국가들의 대외균형이 유로화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것이다.    


그리고 유럽중앙은행(ECB)이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유로화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까? 반복하지만 유로존은 여러개의 국가들로 구성된 통화지역이고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 전체를 신경쓴다. 특정국가만을 위하여 통화가치를 조정한다면, 다른 국가에서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나 (유로존에서 제일 목소리가 큰) 독일은 인위적인 통화가치 하락으로 자국에서 물가상승이 발생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보통의 국가들은 대외균형에 맞추어 환율이 자동적으로 조정되거나,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을 조정하지만.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은 이러한 것들을 사용할 수 없다.


'변동환율'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통해 대외균형을 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로존 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독일이 주변부 국가의 상품을 소비해주어야 한다. 독일이 소비증가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줄여주어야, 주변부 국가들은 수출증대를 통해 경상수지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 : 前 Fed 의장 Ben Bernanke는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문제"[각주:15] 라고 지적하면서, 독일의 임금인상을 요구[각주:16]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도 한계가 있다. 유로존내 주변부 국가들의 상품을 독일이 전부 소비해 줄 수는 없다[각주:17]. 독일이 소비를 일정정도 늘려야 하는 것은 맞지만, 다른 국가들의 상품을 모두 받아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부 국가들은 유로존 이외의 국가로의 수출을 늘려야 하는데, 이 또한 힘들다.


또 다른 방법은 주변부 국가에서 '물가하락'과 '임금하락'이 발생하여 실질실효환율을 낮추고 무역시장에서 경쟁력을 얻는 것이다. '내적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을 통해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는 방안[각주:18]이다. 


그러나 이는 다음글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에서 알 수 있다시피, 국민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례를 살펴봐도 실현된 경우가 극히 적다. 


결국 '유로존 내 불균형'(imbalance)이 시정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로존이 최적통화지역이 아니기 때문'[각주:19]이다. 유로존 자체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다(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 유로존 국가들이 독자적인 통화를 사용했더라면 환율조정을 통해 대외균형을 달성했을 것인데, 독자적인 통화를 포기하고 '하나의 통화'를 쓰기 때문에 불균형이 시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정치적목적으로 기획된 유럽통합 프로젝트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국통화를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도입한 대가이다(Revenge of Optimum Currency Area).



  1.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2014.03.25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2. 물론, 유럽위원회가 '유로존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만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2008년 이전부터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과 '남유럽 국가들의 경쟁력 상실'(loss of competitiveness)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냈습니다. [본문으로]
  3.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2014.07.10 http://joohyeon.com/194 [본문으로]
  4.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2015.09.21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5. 실질실효환율 상승 = 통화가치 상승 [본문으로]
  6. 이에 반해, 독일은 명목실효환율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위노동비용 하락'과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바탕으로 실질실효환율 하락을 만들어냈다. 이는 다음 파트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본문으로]
  7. 경제내 한 부문의 임금인상은 노동이동을 통하여 다른 부문의 임금인상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서는 https://www.facebook.com/joohyeon.economics/posts/1102552429758343 참고 [본문으로]
  8.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2014.03.25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9.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이 미국 부동산거품을 만들었는가?'. 2014.03.27 http://joohyeon.com/190 [본문으로]
  10.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2014.07.11 http://joohyeon.com/195 [본문으로]
  11.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12.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카테고리 [본문으로]
  13.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2013.11.26 http://joohyeon.com/176 [본문으로]
  14.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15. '독일 경상수지 흑자가 초래하는 문제점'. 2015.04.03 https://www.facebook.com/joohyeon.economics/posts/1049631691717084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2015.05.19 [본문으로]
  17. 'The euro crisis - Not everyone can be Germany'. The Economist. 2013.01.15 [본문으로]
  18.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19.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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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Posted at 2015. 7. 27. 15:22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하나의 유럽'을 이루어서 물리적충돌을 방지하겠다는 구상을 하게된다.(제가 국제정치학 전공자가 아닌 관계로.. 더 자세한 내용은...유럽내 경제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생각에서 먼저 진행된 것은 '경제통합' 이었다.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 유럽경제공동체 등을 거쳐 통화가치를 일정수준 고정시키는 유럽통화연맹(EMU)이 1999년에 만들어졌고, 유로화가 2002년에 도입되어 유로존(Eurozone)이 탄생하였다.




유로존에 가입한 유럽국가들 사이에는 관세가 면제되었고 금융거래 장벽도 낮춰졌다. 각 국가들이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지 않고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사용함에 따라 환율리스크가 제거되어 상품거래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유로존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러개의 시장이 통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으니 당연히 좋을 것[각주:1]이다. 


1990년 유럽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는 <One Market, One Money>(<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 보고서를 통해, 유럽경제통합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주장하며 통합논의를 이끌어나갔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래. 여러 국가의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 거대한 시장이 탄생하니 좋을수도 있지. 그런데 여러 국가가 하나의 통화(common currency)를 사용해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단일통화가 환율리스크를 제거해준다면, 왜 전세계는 단일통화를 사용하지 않고 각자의 통화를 쓰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처럼, 단일통화가 이점을 가져다준다면 왜 전세계 국가들은 서로 다른 통화를 쓰는 것일까? 단일통화의 이점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서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여 단일통화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전세계가 하나의 통화를 만들어서 사용한다면 '세계 경제공동체'가 탄생할텐데 말이다. 전세계가 하나의 통화를 사용하지 않고 각자의 통화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일통화 사용시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①'단일통화 사용이 초래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②'어떠한 경우에 이러한 문제를 피할 수 있는지'

③'과연 유럽이 단일통화를 사용해도 괜찮을 것인지'를 살펴보자.




※ 최적통화지역 이론 (Optimum Currency Area Theory)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각자의 통화'를 쓰면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 원화, 일본은 엔화, 미국은 달러화를 사용하면서 변동환율제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대다수 국가들은 '서로 똑같은 통화'(단일통화)를 쓰거나 '각자의 통화 + 고정환율제'를 쓰지 않고, 왜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쓰는 것일까?    


그리고 국가단위의 생각에서 벗어나보자. 통화사용 area를 national이 아니라 region[각주:2]으로 생각한다면 획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등 서로 다른 국가들은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내 경기도와 충청도는 서로 다른 region임에도 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무언가 이상하다. 국가단위에서 생각했을때는 당연했던 것이 region 단위로 생각하니 찜찜함이 나타났다. 이처럼 경상도와 충청도는 서로 다른 region임에도 같은 통화를 사용하지만,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region인 한국과 일본은 같은 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자 Robert Mundell은 1961년 논문 <Theory of Optimum Currency Areas>(<최적통화지역 이론>)을 통해, 왜 세계 다수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쓰는지, 그리고 '어떠한 지역들이 통화를 같이 써도 좋은지' 등을 잘 설명해주었다. 그 유명한 '최적통화지역 이론'이다. 



▶ 우선 왜 세계 다수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쓰는지부터 알아보자.  


▷ 세계 여러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

먼저,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제 한국, 미국, 일본, 유럽은 모두 똑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세계 소비자들의 선호가 변하여서 한국상품보다 일본상품의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한국은 상품판매 적자(deficit)를 일본은 상품판매 흑자(surplus)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실업이 일본에서는 물가상승이 발생한다.  


만약 일본이 물가상승을 받아들인다면 일본 상품가격이 상승하여 교역조건(terms of trade)이 악화되고 증가했던 판매량은 다시 감소한다. 따라서 상품판매 흑자를 기록하던 일본은 다시 균형(balance)지점으로 돌아가게 되고, 한국은 적자에서 탈피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일본이 물가상승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물가상승을 막기위해 일본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한다면, 일본의 교역조건은 악화되지 않고 판매량 또한 증가된 수준에서 유지된다. 이 경우, 한국은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하기 때문에 실업은 해소되지 않는다. 


일본이 물가상승을 받아들이지 않을때, 한국이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상품가격 하락과 임금감소이다. 한국 상품가격이 하락한다면 이는 일본 상품가격이 상승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내게되고, 한국 상품 판매량이 증가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한국 근로자들이 임금감소를 받아들인다면 기업의 채용여력이 증가하여 실업자들을 다시 뽑을 수 있다. 


자, 우리는 이제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를 알게 되었다. 바로, 특정국가의 상품수요가 증가하여 어떤 국가는 흑자를 또 어떤 국가는 적자를 기록했을 때, 균형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흑자국이든 적자국이든 한 국가는 무조건 피해를 보게된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한국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물가상승을 용인해주어야 한다. 반대로 일본이 물가상승을 막기위해서는 한국이 실업을 감수해주어야 한다. 


또한, 일본이 물가상승을 용인해주지 않을때 한국이 쓸 수 있는 방법은 상품가격과 임금의 하락이다. 이는 디플레이션을 낳고 근로자들의 후생수준을 하락시킨다. 반대로 한국이 실업을 감수해주지 않을때 일본이 쓸 수 있는 방법은 인위적인 가격통제이다. 인위적인 가격통제는 시장을 교란시켜 부작용을 초래한다. 


한국과 일본 양 국가가 균형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한 국가가 무조건 피해를 봐야하는데, 이 상황은 '최적상태'(optimum)가 아니다.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를 쓰지만 고정환율제를 사용하는 경우

: 이제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를 쓰지만 고정환율제를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런데 모든 국가들의 통화 사이에서 가치의 변동이 발생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통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를 수 없다. 즉, 든 국가의 통화가 고정환율로 묶여 있다면, 이는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정리를 하면, '전세계가 하나의 통화를 사용'해도 그리고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를 쓰지만 고정환율제를 사용'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반복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문제란 '균형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한 국가는 무조건 피해를 봐야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최적상황(optimum)이 아니다.  


▷ 균형조정 과정에서 '변동환율제'의 역할

: 그 결과, 세계 여러 국가들에게 남은 선택권은 '전세계가 각자의 통화를 사용'하지만 '서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는 경우이다. 여기서 변동환율제(flexible exchange rate)는 균형조정 과정에서 '최적상황'(optimum)을 만들어준다.     


자, 앞선 예시처럼 일본의 상품수요가 증가하여 일본은 흑자를 한국은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일본에서는 물가상승 압력이, 한국에서는 실업이 발생한다. 이때, '환율이 조정'된다면 최적상태(optimum)에서 균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일본은 통화가치를 상승시켜서 일본내 상품가격은 올리지 않으면서 국제시장에는 비싸게 팔 수 있다. 예를 들어, 1엔=1원 이라고 가정하자. 일본은 100엔짜리 상품을 한국시장에 100원에 팔고 있다. 이때 통화가치가 1엔=2원으로 상승한다면, 100엔짜리 상품을 한국시장에서는 200원에 팔게된다. 통화가치 상승으로 인한 일본 상품가격 상승은 교역조건 악화를 가져오고 증가했던 판매량은 감소한다. 일본은 흑자에서 균형으로 돌아간다. 


중요한 것은 일본내 상품가격은 상승하지 않았고, 통화가치 상승을 통해 다른나라 시장에서의 가격만 올라갔다는 점이다. 이제 일본은 물가를 인위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한국이 실업을 감수해주지 않아도 자체적인 힘만으로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한국은 상품판매 감소로 인해 적자와 실업이 발생하였다. 이 경우 한국은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국내 상품가격과 임금이 감소하지 않아도 된다.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시켜 상품판매량을 증가시키고 균형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이 물가상승을 용인해주느냐에 상관없이 자체적인 힘만으로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쓰고 있을때 만들어지는 균형은 최적상태(optimum)이다. 양 국가 모두 어떠한 피해도 없이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 어떠한 지역들이 서로 같은 통화를 써도 괜찮을까


자, 그러면 '세계 여러 국가들이 각자의 통화 +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최적상태(optimum)를 달성할 수 있을까? 간단치 않은 문제가 남아있다. 바로, '국가내 region'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과 일본 등 서로 다른 국가들은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내 경기도와 충청도는 서로 다른 region임에도 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와 충청도를 국가단위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마치 '서로 다른 국가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하는 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국가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했을때 발생하는 문제가 똑같이 나타난다.


만약 경기도 상품의 수요가 증가한다면, 경기도는 흑자와 물가상승 압력이 충청도는 적자와 실업이 나타난다. 경기도의 물가상승 압력을 제거하기 위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쓴다면 충청도의 실업문제는 심화된다. 충청도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확장적 통화정책을 쓴다면 경기도의 물가상승 압력은 더욱 더 심해진다.


이처럼 충청도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기도가 물가상승을 용인해주어야 한다. 반대로 경기도가 물가상승을 막기위해서는 충청도가 실업을 감수해주어야 한다. 특정 region은 피해를 봐야 하기 때문에 최적상태(optimum) 도달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내 여러 도(道)들은 서로 같은 통화를 쓰면 안된다.  


일본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도쿄와 오사카는 서로 다른 region임에도 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도쿄 상품 수요가 증가한다면, 도쿄내 물가상승을 막기위해서는 오사카가 실업을 감수해주어야한다. 오사카가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쿄가 물가상승을 용인해주어야 한다. 일본의 서로 다른 도시들은 같은 통화를 쓰면 안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의 경기도와 충청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가 서로 다른 상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 region이 같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소비자 선호 변화에 따른 수요충격도 똑같이 겪을 수 있다.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상품만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충청도 상품도 수요증가를 경험한다. 두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발생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시행하여도 실업문제가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양 region의 수요가 같이 하락한다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시행하여도 물가상승 문제는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일본의 도쿄, 오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한국의 경기도와 충청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는 서로 다른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경기도와 일본의 도쿄, 한국의 충청도와 일본의 오사카가 서로 같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앞선 논리에 따르면 경기도·충청도, 도쿄·오사카가 같은 통화를 사용하기보다 경기도·도쿄, 충청도·오사카가 같은 통화를 사용해야 최적상태(optimum) 달성이 가능하다. 


즉,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은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져서 경제위기 충격이 대칭적(symmetric shock)으로 발생하는 region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할때 달성가능하다. 바로 아랫그림처럼.






   

※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형태로 통화지역을 구성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쨌든 같은 통화를 쓰는 통화지역을 국가단위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단위의 통화지역이 최적상태(optimum)가 되게끔' 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서로 다른 국가끼리는 각자의 통화를 사용하면서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균형조정 과정에서 최적(optimum)상태 달성하다. 변동환율이 조정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국가내 region끼리는 환율조정을 통한 최적(optimum) 상태 도달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변동환율' 이외의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 지역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Robert Mundell이 제시하는 대안은 '지역간 자유로운 노동이동'(free labor mobility) 이다. 


자, 경기도 상품수요가 증가하여 경기도는 흑자 충청도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자. 경기도는 상품가격 상승 압력을 받고 있고 충청도는 실업이 발생하고 있다. 이때, 충청도에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경기도로 이동한다면 어떨까? 충청도는 실업문제가 해결되었다. 경기도는 노동공급 증가로 인해 임금하락이 발생하여 상품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된다. 


즉, 여러 region이 뭉쳐서 단일통화를 사용하고 있을때 region간 노동이동이 자유롭다면, 어느 한 region이 피해를 보지 않고도 균형달성이 가능하다. 그 결과,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여러 region들은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이 된다. 


▶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


또 다른 대안은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price·wage flexibility)이다. 우리는 앞선 예를 통해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봤었다.  


"먼저,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를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제 한국, 미국, 일본, 유럽은 모두 똑같은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세계 소비자들의 선호가 변하여서 한국상품보다 일본상품의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한국은 상품판매 적자(deficit)를 일본은 상품판매 흑자(surplus)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실업이 일본에서는 물가상승이 발생한다. (...)  


일본이 물가상승을 받아들이지 않을때, 한국이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상품가격 하락과 임금감소이다. 한국 상품가격이 하락한다면 이는 일본 상품가격이 상승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내게되고, 한국 상품 판매량이 증가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한국 근로자들이 임금감소를 받아들인다면 기업의 채용여력이 증가하여 실업자들을 다시 뽑을 수 있다."


적자와 실업이 발생했을때 상품가격 · 임금 하락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내적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이라 부른다. 물론, 이 방법은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도 있고 근로자들의 후생수준을 낮출 수 있다. 상품가격 · 임금의 신축성은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이지만, 어쨌든 적자지역의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상품가격과 임금이 신축적으로 변하는 region들끼리 뭉친다면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달성이 가능하다. 


▶ 통합재정의 존재


경기도 상품수요가 증가하여 경기도는 흑자, 충청도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충청도는 지자체의 재정정책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gion-specific fiscal policy). 그렇지만 지자체 재정지출의 증가는 미래 세금인상을 기대케하여 오히려 소비수준을 낮출 수도 있다(리카도의 동등성정리, Ricardian Equivalence). 


실업이 발생한 region이 재정지출을 모두 부담하는 것은 되려 악영향을 초래한다. 따라서, 같은 통화를 쓰는 또 다른 region이 재정이전을 통해 충격이 발생한 region을 도울 수 있다. 이럴경우, 미래 세금인상 부담을 두 region이 나누어 가지기 때문에, 현시점 소비에 미치는 악영향이 줄어든다.


이처럼 같은 통화를 쓰는 region끼리는 통합재정(fiscal union)을 운영하여 세입·지출을 공유해야,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달성이 가능하다.  


▶ 대칭적충격 


경기도 상품 수요가 증가하여 경기도는 흑자, 충청도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도쿄 상품 수요가 증가하여 도쿄는 흑자, 오사카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의 경기도와 충청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가 서로 다른 상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 region이 같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소비자 선호 변화에 따른 수요충격도 똑같이 겪을 수 있다.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상품만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충청도 상품도 수요증가를 경험한다. 두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발생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시행하여도 실업문제가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양 region의 수요가 같이 하락한다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시행하여도 물가상승 문제는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일본의 도쿄, 오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 선호 변화에 따른 수요충격을 똑같은 겪는다'는 사실이다. 


만약 같은 통화를 쓰는 region들 간에 경기변동 충격이 비대칭적으로 발생한다면, region들간에 똑같은 통화정책 · 재정정책을 적용할 수 없다. 확장정책은 적자와 실업이 발생한 지역을 도울 수 있지만, 흑자가 발생한 지역의 물가상승 압력을 심화시킨다. 긴축정책은 흑자가 발생한 지역의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지만, 실업이 발생한 지역을 더더욱 나락으로 빠뜨린다. 


이와달리 만약 같은 통화를 쓰는 region들 간에 경기변동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한다면, region들에 똑같은 통화정책 · 재정정책을 적용할 수 있다. 같은 통화를 쓰는 모든 region들에서 실업이 발생했기 때문에 확장정책은 모든 region의 실업을 감소시킨다. 같은 통화를 쓰는 모든 region들에서 물가상승이 발생했기 때문에 긴축정책은 모든 region의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시킨다. 


이처럼 은 통화를 쓰는 region들 사이에서 경기변동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symmetric shocks)해야,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 달성이 가능하다.





※ 유럽은 최적통화지역인가?


앞선 글을 통해, ①'단일통화 사용이 초래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②'어떠한 경우에 이러한 문제를 피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① 단일통화 사용이 초래하는 문제

: 서로 다른 region들이 단일통화를 사용한다면, 어느 한 region이 피해를 봐야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 비슷한 특징을 가진 region들끼리 뭉쳐서 통화지역을 구성한다면 문제를 피할 수 있으나, 현실에서 이러한 방법은 불가능하다.


②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

: 단일통화 사용이 초래하는 문제를 피하려면, 노동이동이 자유로운 region · 상품가격과 임금이 신축적인 region · 재정을 공유하는 region · 경기변동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하는 region들기리 통화지역을 구성해야 한다. 이럴경우 '최적상태'(Optimum) 달성이 가능하다.


경기도와 충청도가 같은 통화를 공유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이동이 자유롭고 재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도쿄와 오사카가 같은 통화를 쓸 수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이 같은 통화를 쓰지 않는 이유는 노동이동이 제한적이고 재정을 공유하지 않는데다가 서로 다른 경제수준으로 인해 경기변동의 충격이 비대칭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같은 통화를 공유한다면 최적통화지역 달성이 불가능하다. 


  • 왼쪽 : Martin Fedlstein
  • 가운데 : Barry Eichengreen
  • 오른쪽 : Paul Krugman


그렇다면 유로존내 독일  프랑스 · 그리스 · 포르투갈 · 스페인 · 아일랜드 등은 같은 통화를 공유해도 괜찮은 것일까? 이들 국가들은 노동이동이 자유롭고, 상품가격과 임금이 신축적이고, 통합재정을 운용하고, 경기변동의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할까? 


그렇지 않다. 유로존을 구성하는 국가들은 노동이동이 제한적이고, 경직적인 상품가격과 임금을 가졌다. 또한 개별 국가들은 각자의 재정을 운용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경제수준으로 인해 경기변동 충격이 비대칭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을 달성할 수 없다.


"유럽은 최적통화지역을 이룰 수 없다."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 · 2002년 유로화 도입 이전부터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지적해왔다. 경제학자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 등이 논의를 이끌었고, 이들은 주로 '유럽내 노동이동 장벽 · 재정통합의 부재'를 지적해왔다.


Martin Feldstein은 1997년 논문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European Economic and Monetary Union: Political Sources of an Economic Liability>을 통해, "유럽통합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없지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라고 말한다. 


Barry Eichengreen은 1991년 논문 <Is Europe an Optimum Currency Area?>을 통해,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판단하는 지수(index)를 제시한다. 그는 이를 통해 "유럽은 이상적인 최적통화지역과는 거리가 멀다." 라고 말한다.  


Paul Krugman은 1993년 논문 <Lessons of Maassachuesttes for EMU>을 통해, "유럽은 노동이동이 제한적이고 재정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고 말한다. 




※ 최적통화지역 내생성


  • 왼쪽 : Jeffrey Frankel
  • 오른쪽 : Andrew Rose


그러나 "일단 유럽통합이 진행되면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켜 나갈 수 있다." 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경제학자 Jeffrey FrankelAndrew Rose'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Endogeneity of the Optimum Currency Area)를 주장하였다.


기존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자유로운 노동이동 · 상품가격과 임금의 신축성 · 재정통합 · 경기변동시 region간 대칭적 충격이 외생적(exogeneous)으로 주어진 상태에서 단일통화를 써야만 최적상태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적통화지역 내생성'은 일단 단일통화를 쓴다면 무역거래가 증가하고 경기변동 동조성이 발생하기 때문에,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이 내생적(endogeneous)으로 충족된다 라고 말한다.


Andrew Rose는 1999년 논문 <One Money, One Market- Estimating the Effect of Common Currencies on Trade>을 통해, 유로존 도입 이후 유로존내 무역거래량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Jeffery Frankel은 Andrew Rose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유로존 결성 이후 무역거래량 증가는 경기변동 동조화를 낳는다." 라고 말한다. 무역거래로 여러 국가가 연결된다면 경기변동 충격이 서로에게 전이되기 때문에, 유로존 국가들끼리 비슷한 경기변동을 겪는다는 논리이다. 이럴 경우, 경기변동 충격이 대칭적으로 발생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이들의 공동연구, 1997년 논문 <Is EMU more justifiable ex post than ex ante?>, 1999년 논문 <The Endogeneity of the Optimum Currency Area Criteria>은 '1990년대 당시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유럽 국가들이 단일통화를 써도 괜찮다'는 이론적근거를 제공해주었다. 논문제목처럼 유럽통화동맹(EMU)은 사후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다.(That is, a country is more likely to satisfy the criteria for entry into a currency union ex post than ex ante.) 




※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정치적 프로젝트로한 기획된 유로존


우리는 이번글을 통해 2가지 사항을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 이것들은 '유럽경제위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첫째, 유로존은 '하나의 유럽'이라는 유럽인들의 정치적 꿈을 이루기 위해 기획되었다. 

둘째,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이전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단일시장과 단일통화는 경제적이익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유로존의 본래 목적은 '유럽통합'이라는 정치적목적 이었다. 그리고 Jeffrey Frankel과 Andrew Rose는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을 주장하긴 했으나, 어쨌든 유로화 도입 이전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20세기 최고 경제학자 중 한명인 Milton Friedman은 유로존이 본격 출범하기 전인 2000년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긴다.


"학문적 관점에서 유로화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은 기적입니다. 매우 놀라운 기적이죠. 저는 유로화가 계속해서 성공해 나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렇지만 유로화가 어떻게 작동해나갈지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되겠죠."


(“From the scientific point of view, the euro is the most interesting thing. I think it will be a miracle -well a miracle is a little strong. I think it's highly unlikely that it's going to be a great success. … But it's going to be very interesting to see how it works”.)

: Milton Friedman in an interview in May 2000.


"An interview with Milton Friedman. Interviewed by John B. Taylor, May 2000", chapter 6 in P. Samuelson and W. Barnett, eds., Inside the Economist's Mind. Conversations with Eminent Economists, Blackwell, Oxford.


유럽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 1999년 유럽통화동맹(EMU) · 2002년 유로화 도입 이후 유로존은 일부 우려와는 달리 잘 작동해 나가고 있었다. 


유럽위원회는 2009년 보고서 <the Euro-It can't happen, It's a bad idea, It won't last.-US economists on EMU,1989-2002>를 통해, 유로존 결성 이전부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미국 경제학자들을 비판한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이 (경제적이익이 아닌) 정치적목적으로 기획되었다는 점과 최적통화지역 이론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유럽통화동맹은 최적통화지역을 발판으로 설립된 것이 아닙니다. 최적통화지역을 내세우는 학자들은 유럽통합의 정치적, 역사적 요소를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The OCA paradigm gave a negative bias to the evaluations of the single currency by stressing a number of costs of unification, while ignoring dynamic, political and institutional aspects of monetary integration.)


"최적통화지역을 내세워서 유로존을 비판하는 시각은 통화동맹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을 편향적 시각으로 바라보죠. 일단 유로존이 설립되면, 유로존은 궁극적으로 정상상태로 갈텐데 말이죠."

(The OCA paradigm inspired a static view, overlooking the time-consuming nature of the process of monetary unification. ,,, In short, by adopting the OCA-theory as their main engine of analysis, US academic economists became biased against the euro. ... Perhaps we should take this as a positive sign for the future of the euro: once established, it eventually will turn into the normal state of monetary affairs?)


European Commission.2009.<the Euro-It can't happen, It's a bad idea, It won't last.-US economists on EMU,1989-2002>


2009년까지만 하더라도 의기양양하던 유럽. 그러나 이후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정치적 프로젝트로 기획된 유로존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1.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2015.05.26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2. region을 '지역'으로 표기시 최적통화'지역'(area)와 혼동될 여지가 있어서, 영어표현 region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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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

Posted at 2015. 7. 26. 15:10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그리스 경제위기'(Greek Crisis)와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


지난 6월부터 한달간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그리스 경제위기' 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위기를 겪었던 그리스는 유럽위원회(EC) · 유럽중앙은행(ECB) · IMF가 제공한 두 차례의 구제금융자금으로 간신히 디폴트를 면해왔었다. 


그런데 그리스는 IMF에게서 빌린 돈을 갚아야하는 날짜(2015년 6월 30일)[각주:1]가 다가오자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추가 구제금융안 찬성·반대'를 두고 국민투표[각주:2]에 들어갔다. 국민투표 이후에도 그리스와 채권단(유럽과 IMF, 특히 독일)은 '그리스정부의 부채상환'을 두고 계속해서 협상을 진행하였고, 결국 '그리스정부는 추가적인 구제금융을 받고 구조개혁을 시행한다'는 조건으로 협상이 마무리[각주:3]되었다.             


그러면 도대체 왜 그리스는 추가 구제금융안을 두고 국민투표까지 시행하면서 채권단과 협상을 한 것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왜 그리스는 경제위기를 겪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전세계는 그리스의 국민투표에 주목한 것일까? 


한국언론들은 각자의 정치성향에 따라 '그리스가 망한 이유'를 설명하려 하였다. <조선일보>는 "지원금 300조원도 탕진… "공짜복지 좋아하다 이 지경까지""[각주:4] 라고 말하며 과잉복지를 원인으로 내세웠다. <한겨레>는 "(이전에) 그리스에 지원된 구제금융은 그리스 경제와 시민이 아닌 유럽의 민간 은행들의 몫이 된 것[각주:5]" · "그리스 정부와 월가의 ‘어두운 거래’ 비극의 씨앗이었다"[각주:6] 라고 말하며 계급의 관점에서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의 설명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리스 경제위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언론은 그리스 경제위기를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가 왜 경제위기에 빠졌는지", "유럽은 왜 몇년동안 계속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리스의 국민투표가 가졌던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알려주지 못했다.


그리스 경제위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럽재정위기를 알아야하고, 유럽재정위기를 알려면 유로존이 탄생한 이유를 알아야한다. 이제 본 블로그의 [유럽경제위기] 시리즈를 통해 이를 자세히 알아보자.




※ 유로존(Eurozone)의 탄생

- '하나의 유럽'을 꿈꾸는 유럽인들의 정치적 프로젝트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하나의 유럽'을 이루어서 물리적충돌을 방지하겠다는 구상을 하게된다.(제가 국제정치학 전공자가 아닌 관계로.. 더 자세한 내용은...유럽내 경제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생각에서 먼저 진행된 것은 '경제통합' 이었다.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 유럽경제공동체 등을 거쳐 통화가치를 일정수준 고정시키는 유럽통화연맹(EMU)이 1999년에 만들어졌고, 유로화가 2002년에 도입되어 유로존(Eurozone)이 탄생하였다.


유로존에 가입한 유럽국가들 사이에는 관세가 면제되었고 금융거래 장벽도 낮춰졌다. 각 국가들이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지 않고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사용함에 따라 환율리스크가 제거되어 상품거래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유로존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러개의 시장이 통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으니 당연히 좋을 것1이다. 


1990년 유럽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는 <One Market, One Money>(<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 보고서를 통해, 유럽경제통합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주장하며 통합논의를 이끌어나갔다.



그런데 서로 다른 나라가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공유해도 괜찮은 것일까?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 · 2002년 유로존 출범 이전부터, 경제학자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 등은 '최적통화지역 이론'(Optimum Currency Area)을 이용하여  "유럽은 최적통화지역을 이룰 수 없다." 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단 유럽통합이 진행되면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켜 나갈 수 있다." 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경제학자 Jeffrey Frankel과 Andrew Rose는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Endogeneity of the Optimum Currency Area)를 주장하였다.


기존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자유로운 노동이동 · 상품가격과 임금의 신축성 · 재정통합 · 경기변동시 region간 대칭적 충격이 외생적(exogeneous)으로 주어진 상태에서 단일통화를 써야만 최적상태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적통화지역 내생성'은 일단 단일통화를 쓴다면 무역거래가 증가하고 경기변동 동조성이 발생하기 때문에,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이 내생적(endogeneous)으로 충족된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2가지 사항을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 이것들은 '유럽경제위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첫째, 유로존은 '하나의 유럽'이라는 유럽인들의 정치적 꿈을 이루기 위해 기획되었다. 

둘째,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이전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단일시장과 단일통화는 경제적이익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유로존의 본래 목적은 '유럽통합'이라는 정치적목적 이었다. 그리고 Jeffrey Frankel과 Andrew Rose는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을 주장하긴 했으나, 어쨌든 유로화 도입 이전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2009년까지만 하더라도 의기양양하던 유럽. 그러나 이후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정치적 프로젝트로 기획된 유로존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 유로존 출범 이후, 핵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간의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 누적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는 '독일' 등 유럽 중심부국가(core)와 '그리스 · 스페인 · 아일랜드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국가(periphery) 간의 '경상수지 격차 확대'(current account imbalance)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2002년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나날이 커져갔고, 반대로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해서 확대되었다.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과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격차가 계속해서 확대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선 '유로존 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  유로존 결성 이후 '유로존 외부에서 독일·프랑스로의 자본유입'이 발생했다. 로화 통화가치 상승으로 인하여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대외차입(external financing)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맞춰나갔다.


렇다면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어디서 자본을 들여와서 국제수지 균형을 맞췄을까? 바로, 유럽 중심부 국가이다.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핵심부 국가에서 자본을 끌여들여와 균형을 맞춰나갔다.  



그리고 유로존 결성이 가져다준 현상은 '유로존내 국가별 채권금리 수렴'(yield convergence)이다. 


유로존 결성 이전에는 국가별 디폴트 위험에 따라 채권금리가 매겨졌었기 때문에, 경제력이 좋지 않은 주변부 국가들은 높은 채권금리를, 경제력이 좋은 핵심부 국가들은 낮은 채권금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유로존 도입 이후, 시장참가자들은 개별 국가의 리스크를 채권금리에 반영하지 않고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유로존에 소속된 국가들은 비슷한 채권금리를 보유하게 되었다.



주변부 국가들은 유로존 결성 이후 낮아진 채권금리를 이용하여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cheap money). 앞서 말했다시피, 주변부 국가들은 주로 핵심부 국가로부터 자본을 차입하였다.  


자본유입 증가는 신용증가와 양(+)의 관계를 띄기 때문에, 아일랜드 · 스페인 등에서는 국내신용이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이렇게 증가된 신용은 주로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스페인 · 아일랜드 등은 유입된 자본으로 건설부문에 투자하여 부동산시장 활황을 만들었다.  




주변부 국가로의 자본유입은 그 자체로 물가를 상승시킨다. 그리고 건설부문 등에 자본유입이 집중된 결과 비교역부문의 임금이 크게 상승하였다. 비교역부문의 임금상승은 교역부문 임금인상으로 이어졌고6, 주변부 국가의 교역부문은 생산성 향상없이 임금만 크게 증가하였다. 생산량당 임금을 나타내는 단위노동비용(Unit Labor Costs)이 상승한 것이다. 물가상승과 단위노동비용 상승은 실질실효환율을 상승시킨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직면하는 통화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윗 그래프는 독일과 비교하여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실질실효환율이 크게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실질실효환율 상승은 국제무역시장에서 상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loss of competitiveness).  국제무역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된 주변부 국가들은 당연히(?)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 미국발 2008 금융위기 → 유럽 은행위기 → 유럽 재정위기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는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위기 이전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와 함께 상당한 양의 자본유입을 받아들였었는데,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투자자들은 자본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자본이동이 반전(reversal of capital flow)된 것이다. 


단일통화를 쓰는 유로존의 특성상,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환율변동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이룰 수가 없었다. 또한,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달러화는 말할 것도 없고)유로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이러한 '유로존의 구조적 특징'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생긴 대외부채(external debt)를 갚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투자자들이 하게되었다.


결국 오랫동안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던 주변부 국가들의 경제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기 시작했고,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하여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하였다. 자산가치 하락과 대출연체율 증가는 유럽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손상시켰다.



이후, 유럽 전체적으로 금융시장이 경색된 모습이 나타났다. 윗 그래프는 2007년-2012년 사이, 유로존에 속한 은행이 비금융기관에 대출해준 자금을 보여준다. 2008년 9월부터 대출금액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이전의 대출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 금융시장은 이전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2008년 9월 이후 유위험 금리와 무위험 금리의 격차(스프레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유위험 금리가 치솟은 것이다. 


▶ 유럽 은행위기 → 재정위기


위의 표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클수록 정부의 재정부담(fiscal cost)이 커짐을 보여준다. 은행위기는 크게 2가지 경로를 통해 정부재정에 부담을 준다.


첫번째, 은행위기로 인한 경제성장 저하는 정부의 세입을 감소시킨다. 금융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은행기능이 마비되면 (앞서 보았다시피) 대출거래가 감소하여 경제 전체 신용에 악영향을 끼치고 경제성장이 저하된다. 


두번째 경로가 중요한데, 은행의 파산을 막기위해 정부는 공적자금 등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출이 증가한다. 이로인해 주변부 국가의 GDP는 감소하고 정부부채를 증가하는데, 2008년 이후 주변부 국가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정부의 구제금융 덕분에 은행은 위험에서 벗어났으나 이제 정부의 위험도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스 · 포르투갈 · 스페인 · 아일랜드 등 유로존 주변부 국가에게 남은건 '증가한 정부부채'와 '높은 채권금리' 즉, '재정위기'(Sovereign Debt Crisis) 뿐이었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유로존은 설립 이전부터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고,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을 주장한 일부 학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유로존 설립 이후에도 최적통화지역을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도입한 행위는 (당연하다는듯이) 문제를 가져왔다. 경제위기의 씨앗인 경상수지 불균형이 자라나게 했으며, 경제위기 진행과정에서도 위기를 키워나갔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2013년 11월 7일에 개최된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제목은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Paul Krugman은 이 논문을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와 유럽 주변부 국가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빌렸고 ·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그리스 경제위기 타입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Are Greek-type crises likely or even possible for countries that, unlike Greece and other European debtors, retain their own currencies, borrow in those currencies, and let their exchange rates float?") 


'그리스 경제위기 타입의 위기'란 무엇일까? 바로, 투자자들의 신뢰상실(loss of confidence)이 불러오는 국제수지 위기(balance of payment crisis)이다.


국제수지위기란 '대외불균형(external imbalance)으로 인한 외국자본의 과다유입(capital inflows) → 갑작스런 유입중단(sudden stops) → 자본흐름의 반전(reversal of capital flows) → 급격한 자본유출(capital outflow)'이 불러오는 위기이다. 상당한 양의 자본유입은 부동산시장 등 자산시장 거품을 키우고, 갑작스런 자본유출은 자산시장 가격을 폭락시킨다. 


이 과정에서 해당국가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만약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its own currency)를 지고 있더라면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이용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자본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해당국가가 부채에 대한 보증(guarantee)를 서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일종의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를 초래한다.


고정환율제가 할 수 있는 역할 또한 없다. 변동환율제도 였다면 환율조정을 통해 대외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의 결과 자본유입이 발생한다면,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경상수지 균형이 회복될 것이다. 고정환율제도는 이러한 조정이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리스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통화와 중앙은행'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들만의 중앙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은 화폐발행을 통하여 부채를 상환하는 방법(monetization)을 쓸 수 없다. 


결국, 주변부 국가들이 지고 있던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는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나 마찬가지이고,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유럽재정위기는 국제수지위기이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처한 '자기실현적 위기'를 끊어내고 채권금리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De Grauwe, Yuemei Jin과 Paul Krugman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more active liquidity policies by the ECB that aim at preventing a liquidity crisis from leading to a self-fulfilling solvency crisis.) 유럽중앙은행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주변부 국가들의 유로화 표기 부채에 대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유럽경제위기가 초기에 진행됐을 때, 유럽중앙은행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미국 Fed는 채권매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채권금리를 낮췄다. 이에따라 미국 Fed 대차대조표상 자산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에반해 유럽중앙은행은 한창 유럽경제위기가 진행중이던 2010년-2011년에도 소극적인 대응에 머물렀다.     


유럽중앙은행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유럽경제위기의 충격이 주변부 국가들에게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즉, '경기변동에 대한 충격이 핵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 사이에 비대칭적으로 발생'했다는 말이다. 


주변부 국가들을 위해서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하였으나, 이는 중심부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유로존에서 목소리가 제일 큰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물가안정을 유지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계속해서 논쟁이 펼쳐질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기보다, 주변부 국가들이 재정지출을 줄여서 부채를 상환하기를 원했다.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의 이러한 요구에 반발했고 그와중에 유럽경제위기는 더욱 더 심화되었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미국은 '성공한 통화동맹' 이다. 특정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때 '노동이동'과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연방 차원의 은행감독'을 통해 은행위기를 예방할 수도 있다.


반면 유로존은 (현재로서는) '실패한 통화동맹'이다. 특정 국가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을때 '노동이동의 경직성'은 실업문제 해소를 어렵게 만든다. '개별국가가 재정정책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위기 이후 남은건 급증한 국가부채이다. 또한, '은행감독 책임이 개별국가에' 있기 때문에, 은행위기 예방도 불가능하다. 


유로존 결성 이전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예상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미국과 유럽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며,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예상했다. 


그렇다면 유로존 출범 당시, 왜 유럽 정치인과 관료들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말해온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던 것일까? 유럽 관계자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채 유로존을 출범시킨 것은 아니다. 그들은 멍청하지 않다. 다만, 경제학자들과 다른 접근법을 취했을 뿐이다.


Paul Krugman을 포함하여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가 발생할때'를 상정해놓고 '재정통합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는 경제위기가 발생할시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럽 관계자, 특히 독일은 위험분담 보다는 애초에 위험을 감소(risk reduction)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유로존 소속 국가가 평상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한다면 위기발생 가능성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유로존은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소속 국가들에게 일정한 기준(convergence criteria)을 유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나 강조되는 기준은 안정성장협약(the Stability and Growth Pact)으로 체결된, '재정적자 3% 이내' ·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60% 미만' 등의 '엄격한 재정규율준수'(fiscal discipline) '경기침체 발생 국가에 대한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 금지'(no bail-out clause)이다.


이러한 위험감소 정책은 평상시 유로존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유로존은 경제위기 대응책 보다는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역사적경험으로 인해 '재정적자' · '정부부채' ·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싫어하는 독일은 이러한 조건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문제는 경제위기가 발생할 시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가 오히려 위기를 키운다는 점이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말했다시피, (애초부터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문제였던 그리스를 제외하고) 유럽경제위기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로부터 시작되었다. '구제금융 금지'로 인해 유로존 주변 국가들은 자국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모두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증가하였는데 '재정규율'을 지키기 위해서 긴축정책(austerity)을 시행하라는 요구가 들어왔다. 경기침체시 재정정책의 승수는 매우 크기 때문에11재정규율을 준수하기 위한 긴축정책은 위기를 심화시켰다.


분명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fiscal discipline)와 '구제금융 방지'(no bail-out clause)는 경제위기 발생 위험을 줄이기(risk reduction) 위해 꼭 필요한 조항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유로존 차원에서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것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였다. 


만약 미국처럼 유로존 차원의 '연방재정'(federalized fiscal system)이 존재했더라면 위기에 대응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유로존차원에서 각국 은행들의 대외거래(cross-border transactions)를 감독할 수 있었더라면 은행위기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이동이 자유로웠더라면 주변부 국가들의 실업문제는 비교적 빨리 해결됐을 수도 있다.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 등 유럽 중심부 국가가 옳으냐, 부채탕감과 재정이전을 요구하는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유럽 주변부 국가가 옳으냐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는 위기를 심화시키지만, 그것이 없다면 무임승차와 도덕적해이 문제가 발생한다. 경기침체기의 긴축정책은 경제성장을 훼손시키지만,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부채를 감축해야 한다. 


단지 "유럽인들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서로 다른 나라끼리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보여준다."라는 해석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1. 'Greek Debt Tracker'. FT. http://www.ft.com/ig/sites/2015/greek-debt-monitor/ [본문으로]
  2. 그리스 국민투표 - 국민 61%가 '구제금융안 반대' 선택 - '유럽통합의 꿈'은 어디로???. 2015.07.05 JooHyeon's Economis Facebook [본문으로]
  3.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타결 ?'. 2015.07.14 JooHyeon's Economics Facebook [본문으로]
  4. 지원금 300조원도 탕진… "공짜복지 좋아하다 이 지경까지". 2015.07.01. 조선일보 [본문으로]
  5. 그리스에 수혈됐던 ‘수천억유로’, 그 많은 돈은 누구 주머니로?. 2015.07.01 한겨레 [본문으로]
  6. 그리스 정부와 월가의 ‘어두운 거래’ 비극의 씨앗이었다. 2015.07.07 한겨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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