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

Posted at 2015. 7. 26. 15:10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그리스 경제위기'(Greek Crisis)와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


지난 6월부터 한달간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그리스 경제위기' 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위기를 겪었던 그리스는 유럽위원회(EC) · 유럽중앙은행(ECB) · IMF가 제공한 두 차례의 구제금융자금으로 간신히 디폴트를 면해왔었다. 


그런데 그리스는 IMF에게서 빌린 돈을 갚아야하는 날짜(2015년 6월 30일)[각주:1]가 다가오자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추가 구제금융안 찬성·반대'를 두고 국민투표[각주:2]에 들어갔다. 국민투표 이후에도 그리스와 채권단(유럽과 IMF, 특히 독일)은 '그리스정부의 부채상환'을 두고 계속해서 협상을 진행하였고, 결국 '그리스정부는 추가적인 구제금융을 받고 구조개혁을 시행한다'는 조건으로 협상이 마무리[각주:3]되었다.             


그러면 도대체 왜 그리스는 추가 구제금융안을 두고 국민투표까지 시행하면서 채권단과 협상을 한 것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왜 그리스는 경제위기를 겪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전세계는 그리스의 국민투표에 주목한 것일까? 


한국언론들은 각자의 정치성향에 따라 '그리스가 망한 이유'를 설명하려 하였다. <조선일보>는 "지원금 300조원도 탕진… "공짜복지 좋아하다 이 지경까지""[각주:4] 라고 말하며 과잉복지를 원인으로 내세웠다. <한겨레>는 "(이전에) 그리스에 지원된 구제금융은 그리스 경제와 시민이 아닌 유럽의 민간 은행들의 몫이 된 것[각주:5]" · "그리스 정부와 월가의 ‘어두운 거래’ 비극의 씨앗이었다"[각주:6] 라고 말하며 계급의 관점에서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의 설명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리스 경제위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언론은 그리스 경제위기를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가 왜 경제위기에 빠졌는지", "유럽은 왜 몇년동안 계속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리스의 국민투표가 가졌던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알려주지 못했다.


그리스 경제위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럽재정위기를 알아야하고, 유럽재정위기를 알려면 유로존이 탄생한 이유를 알아야한다. 이제 본 블로그의 [유럽경제위기] 시리즈를 통해 이를 자세히 알아보자.




※ 유로존(Eurozone)의 탄생

- '하나의 유럽'을 꿈꾸는 유럽인들의 정치적 프로젝트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하나의 유럽'을 이루어서 물리적충돌을 방지하겠다는 구상을 하게된다.(제가 국제정치학 전공자가 아닌 관계로.. 더 자세한 내용은...유럽내 경제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생각에서 먼저 진행된 것은 '경제통합' 이었다.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 유럽경제공동체 등을 거쳐 통화가치를 일정수준 고정시키는 유럽통화연맹(EMU)이 1999년에 만들어졌고, 유로화가 2002년에 도입되어 유로존(Eurozone)이 탄생하였다.


유로존에 가입한 유럽국가들 사이에는 관세가 면제되었고 금융거래 장벽도 낮춰졌다. 각 국가들이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지 않고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사용함에 따라 환율리스크가 제거되어 상품거래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유로존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러개의 시장이 통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으니 당연히 좋을 것1이다. 


1990년 유럽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는 <One Market, One Money>(<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 보고서를 통해, 유럽경제통합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주장하며 통합논의를 이끌어나갔다.



그런데 서로 다른 나라가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공유해도 괜찮은 것일까?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 · 2002년 유로존 출범 이전부터, 경제학자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 등은 '최적통화지역 이론'(Optimum Currency Area)을 이용하여  "유럽은 최적통화지역을 이룰 수 없다." 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단 유럽통합이 진행되면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켜 나갈 수 있다." 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경제학자 Jeffrey Frankel과 Andrew Rose는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Endogeneity of the Optimum Currency Area)를 주장하였다.


기존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자유로운 노동이동 · 상품가격과 임금의 신축성 · 재정통합 · 경기변동시 region간 대칭적 충격이 외생적(exogeneous)으로 주어진 상태에서 단일통화를 써야만 최적상태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적통화지역 내생성'은 일단 단일통화를 쓴다면 무역거래가 증가하고 경기변동 동조성이 발생하기 때문에,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이 내생적(endogeneous)으로 충족된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2가지 사항을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 이것들은 '유럽경제위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첫째, 유로존은 '하나의 유럽'이라는 유럽인들의 정치적 꿈을 이루기 위해 기획되었다. 

둘째,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이전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단일시장과 단일통화는 경제적이익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유로존의 본래 목적은 '유럽통합'이라는 정치적목적 이었다. 그리고 Jeffrey Frankel과 Andrew Rose는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을 주장하긴 했으나, 어쨌든 유로화 도입 이전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2009년까지만 하더라도 의기양양하던 유럽. 그러나 이후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정치적 프로젝트로 기획된 유로존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 유로존 출범 이후, 핵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간의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 누적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는 '독일' 등 유럽 중심부국가(core)와 '그리스 · 스페인 · 아일랜드 · 포르투갈' 등 유럽 주변부국가(periphery) 간의 '경상수지 격차 확대'(current account imbalance)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2002년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나날이 커져갔고, 반대로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해서 확대되었다.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과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격차가 계속해서 확대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선 '유로존 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  유로존 결성 이후 '유로존 외부에서 독일·프랑스로의 자본유입'이 발생했다. 로화 통화가치 상승으로 인하여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대외차입(external financing)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맞춰나갔다.


렇다면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어디서 자본을 들여와서 국제수지 균형을 맞췄을까? 바로, 유럽 중심부 국가이다.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은 핵심부 국가에서 자본을 끌여들여와 균형을 맞춰나갔다.  



그리고 유로존 결성이 가져다준 현상은 '유로존내 국가별 채권금리 수렴'(yield convergence)이다. 


유로존 결성 이전에는 국가별 디폴트 위험에 따라 채권금리가 매겨졌었기 때문에, 경제력이 좋지 않은 주변부 국가들은 높은 채권금리를, 경제력이 좋은 핵심부 국가들은 낮은 채권금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유로존 도입 이후, 시장참가자들은 개별 국가의 리스크를 채권금리에 반영하지 않고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유로존에 소속된 국가들은 비슷한 채권금리를 보유하게 되었다.



주변부 국가들은 유로존 결성 이후 낮아진 채권금리를 이용하여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cheap money). 앞서 말했다시피, 주변부 국가들은 주로 핵심부 국가로부터 자본을 차입하였다.  


자본유입 증가는 신용증가와 양(+)의 관계를 띄기 때문에, 아일랜드 · 스페인 등에서는 국내신용이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이렇게 증가된 신용은 주로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스페인 · 아일랜드 등은 유입된 자본으로 건설부문에 투자하여 부동산시장 활황을 만들었다.  




주변부 국가로의 자본유입은 그 자체로 물가를 상승시킨다. 그리고 건설부문 등에 자본유입이 집중된 결과 비교역부문의 임금이 크게 상승하였다. 비교역부문의 임금상승은 교역부문 임금인상으로 이어졌고6, 주변부 국가의 교역부문은 생산성 향상없이 임금만 크게 증가하였다. 생산량당 임금을 나타내는 단위노동비용(Unit Labor Costs)이 상승한 것이다. 물가상승과 단위노동비용 상승은 실질실효환율을 상승시킨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직면하는 통화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윗 그래프는 독일과 비교하여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실질실효환율이 크게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실질실효환율 상승은 국제무역시장에서 상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loss of competitiveness).  국제무역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된 주변부 국가들은 당연히(?)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 미국발 2008 금융위기 → 유럽 은행위기 → 유럽 재정위기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는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위기 이전 주변부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와 함께 상당한 양의 자본유입을 받아들였었는데,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투자자들은 자본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자본이동이 반전(reversal of capital flow)된 것이다. 


단일통화를 쓰는 유로존의 특성상,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환율변동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이룰 수가 없었다. 또한,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달러화는 말할 것도 없고)유로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이러한 '유로존의 구조적 특징'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생긴 대외부채(external debt)를 갚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투자자들이 하게되었다.


결국 오랫동안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던 주변부 국가들의 경제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기 시작했고,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하여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하였다. 자산가치 하락과 대출연체율 증가는 유럽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손상시켰다.



이후, 유럽 전체적으로 금융시장이 경색된 모습이 나타났다. 윗 그래프는 2007년-2012년 사이, 유로존에 속한 은행이 비금융기관에 대출해준 자금을 보여준다. 2008년 9월부터 대출금액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이전의 대출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 금융시장은 이전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2008년 9월 이후 유위험 금리와 무위험 금리의 격차(스프레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유위험 금리가 치솟은 것이다. 


▶ 유럽 은행위기 → 재정위기


위의 표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클수록 정부의 재정부담(fiscal cost)이 커짐을 보여준다. 은행위기는 크게 2가지 경로를 통해 정부재정에 부담을 준다.


첫번째, 은행위기로 인한 경제성장 저하는 정부의 세입을 감소시킨다. 금융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은행기능이 마비되면 (앞서 보았다시피) 대출거래가 감소하여 경제 전체 신용에 악영향을 끼치고 경제성장이 저하된다. 


두번째 경로가 중요한데, 은행의 파산을 막기위해 정부는 공적자금 등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출이 증가한다. 이로인해 주변부 국가의 GDP는 감소하고 정부부채를 증가하는데, 2008년 이후 주변부 국가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증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정부의 구제금융 덕분에 은행은 위험에서 벗어났으나 이제 정부의 위험도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스 · 포르투갈 · 스페인 · 아일랜드 등 유로존 주변부 국가에게 남은건 '증가한 정부부채'와 '높은 채권금리' 즉, '재정위기'(Sovereign Debt Crisis) 뿐이었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유로존은 설립 이전부터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고, '최적통화지역의 내생성'을 주장한 일부 학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유로존 설립 이후에도 최적통화지역을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도입한 행위는 (당연하다는듯이) 문제를 가져왔다. 경제위기의 씨앗인 경상수지 불균형이 자라나게 했으며, 경제위기 진행과정에서도 위기를 키워나갔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2013년 11월 7일에 개최된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제목은 <Currency Regimes, Capital Flows, and Crises>.  


Paul Krugman은 이 논문을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와 유럽 주변부 국가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를 빌렸고 ·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그리스 경제위기 타입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Are Greek-type crises likely or even possible for countries that, unlike Greece and other European debtors, retain their own currencies, borrow in those currencies, and let their exchange rates float?") 


'그리스 경제위기 타입의 위기'란 무엇일까? 바로, 투자자들의 신뢰상실(loss of confidence)이 불러오는 국제수지 위기(balance of payment crisis)이다.


국제수지위기란 '대외불균형(external imbalance)으로 인한 외국자본의 과다유입(capital inflows) → 갑작스런 유입중단(sudden stops) → 자본흐름의 반전(reversal of capital flows) → 급격한 자본유출(capital outflow)'이 불러오는 위기이다. 상당한 양의 자본유입은 부동산시장 등 자산시장 거품을 키우고, 갑작스런 자본유출은 자산시장 가격을 폭락시킨다. 


이 과정에서 해당국가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만약 '자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its own currency)를 지고 있더라면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이용해 최종대부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자본은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해당국가가 부채에 대한 보증(guarantee)를 서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일종의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를 초래한다.


고정환율제가 할 수 있는 역할 또한 없다. 변동환율제도 였다면 환율조정을 통해 대외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의 결과 자본유입이 발생한다면,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경상수지 균형이 회복될 것이다. 고정환율제도는 이러한 조정이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리스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통화와 중앙은행'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들만의 중앙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은 화폐발행을 통하여 부채를 상환하는 방법(monetization)을 쓸 수 없다. 


결국, 주변부 국가들이 지고 있던 유로화로 표기된 부채는 사실상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나 마찬가지이고,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유럽재정위기는 국제수지위기이다.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처한 '자기실현적 위기'를 끊어내고 채권금리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De Grauwe, Yuemei Jin과 Paul Krugman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more active liquidity policies by the ECB that aim at preventing a liquidity crisis from leading to a self-fulfilling solvency crisis.) 유럽중앙은행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주변부 국가들의 유로화 표기 부채에 대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유럽경제위기가 초기에 진행됐을 때, 유럽중앙은행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미국 Fed는 채권매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채권금리를 낮췄다. 이에따라 미국 Fed 대차대조표상 자산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에반해 유럽중앙은행은 한창 유럽경제위기가 진행중이던 2010년-2011년에도 소극적인 대응에 머물렀다.     


유럽중앙은행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유럽경제위기의 충격이 주변부 국가들에게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즉, '경기변동에 대한 충격이 핵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 사이에 비대칭적으로 발생'했다는 말이다. 


주변부 국가들을 위해서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하였으나, 이는 중심부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유로존에서 목소리가 제일 큰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물가안정을 유지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계속해서 논쟁이 펼쳐질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기보다, 주변부 국가들이 재정지출을 줄여서 부채를 상환하기를 원했다.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의 이러한 요구에 반발했고 그와중에 유럽경제위기는 더욱 더 심화되었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미국은 '성공한 통화동맹' 이다. 특정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때 '노동이동'과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연방 차원의 은행감독'을 통해 은행위기를 예방할 수도 있다.


반면 유로존은 (현재로서는) '실패한 통화동맹'이다. 특정 국가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을때 '노동이동의 경직성'은 실업문제 해소를 어렵게 만든다. '개별국가가 재정정책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위기 이후 남은건 급증한 국가부채이다. 또한, '은행감독 책임이 개별국가에' 있기 때문에, 은행위기 예방도 불가능하다. 


유로존 결성 이전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예상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미국과 유럽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며,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예상했다. 


그렇다면 유로존 출범 당시, 왜 유럽 정치인과 관료들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말해온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던 것일까? 유럽 관계자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채 유로존을 출범시킨 것은 아니다. 그들은 멍청하지 않다. 다만, 경제학자들과 다른 접근법을 취했을 뿐이다.


Paul Krugman을 포함하여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가 발생할때'를 상정해놓고 '재정통합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는 경제위기가 발생할시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럽 관계자, 특히 독일은 위험분담 보다는 애초에 위험을 감소(risk reduction)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유로존 소속 국가가 평상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한다면 위기발생 가능성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유로존은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소속 국가들에게 일정한 기준(convergence criteria)을 유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나 강조되는 기준은 안정성장협약(the Stability and Growth Pact)으로 체결된, '재정적자 3% 이내' ·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60% 미만' 등의 '엄격한 재정규율준수'(fiscal discipline) '경기침체 발생 국가에 대한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 금지'(no bail-out clause)이다.


이러한 위험감소 정책은 평상시 유로존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유로존은 경제위기 대응책 보다는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역사적경험으로 인해 '재정적자' · '정부부채' ·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싫어하는 독일은 이러한 조건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문제는 경제위기가 발생할 시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가 오히려 위기를 키운다는 점이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말했다시피, (애초부터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문제였던 그리스를 제외하고) 유럽경제위기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로부터 시작되었다. '구제금융 금지'로 인해 유로존 주변 국가들은 자국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모두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증가하였는데 '재정규율'을 지키기 위해서 긴축정책(austerity)을 시행하라는 요구가 들어왔다. 경기침체시 재정정책의 승수는 매우 크기 때문에11재정규율을 준수하기 위한 긴축정책은 위기를 심화시켰다.


분명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fiscal discipline)와 '구제금융 방지'(no bail-out clause)는 경제위기 발생 위험을 줄이기(risk reduction) 위해 꼭 필요한 조항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유로존 차원에서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것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였다. 


만약 미국처럼 유로존 차원의 '연방재정'(federalized fiscal system)이 존재했더라면 위기에 대응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유로존차원에서 각국 은행들의 대외거래(cross-border transactions)를 감독할 수 있었더라면 은행위기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이동이 자유로웠더라면 주변부 국가들의 실업문제는 비교적 빨리 해결됐을 수도 있다.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 등 유럽 중심부 국가가 옳으냐, 부채탕감과 재정이전을 요구하는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유럽 주변부 국가가 옳으냐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는 위기를 심화시키지만, 그것이 없다면 무임승차와 도덕적해이 문제가 발생한다. 경기침체기의 긴축정책은 경제성장을 훼손시키지만,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부채를 감축해야 한다. 


단지 "유럽인들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서로 다른 나라끼리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보여준다."라는 해석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관련글 :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1. 'Greek Debt Tracker'. FT. http://www.ft.com/ig/sites/2015/greek-debt-monitor/ [본문으로]
  2. 그리스 국민투표 - 국민 61%가 '구제금융안 반대' 선택 - '유럽통합의 꿈'은 어디로???. 2015.07.05 JooHyeon's Economis Facebook [본문으로]
  3.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타결 ?'. 2015.07.14 JooHyeon's Economics Facebook [본문으로]
  4. 지원금 300조원도 탕진… "공짜복지 좋아하다 이 지경까지". 2015.07.01. 조선일보 [본문으로]
  5. 그리스에 수혈됐던 ‘수천억유로’, 그 많은 돈은 누구 주머니로?. 2015.07.01 한겨레 [본문으로]
  6. 그리스 정부와 월가의 ‘어두운 거래’ 비극의 씨앗이었다. 2015.07.07 한겨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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