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

Posted at 2014. 1. 9. 13:03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한국경제 성장과정에 대해 공부하면서 남는 궁극적인 의문은 "후발산업국가 중에 왜 유독 한국만이 독보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라틴아메리카나 대다수 후발산업국가의 경우, 특정 지배세력이 국가의 자원을 독점함으로써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게해서 '특정 지배세력의 자원 독점'을 막을 수 있었을까? 


경제학적 접근을 통해서는 경제성장 '방식'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왜 유독 한국만이" 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학, 정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여러 논문, 단행본 등을 읽으면서 주목하는 것은 "토지개혁, 한국전쟁 그리고 박정희정권". 




※ 박정희정권의 역할


류상영은 '군사쿠데타라는 위로부터의 정치권력 변동'이 '국가재정으로 부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려는 수입대체 선호적인 자본가 및 지배연합'을 해체시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박정희정권의 '위로부터의 강한 정치권력과 리더십'이 '수입대체적 지배연합을 해체하고 새로운 발전지향적 지배연합을 탄생' 시킴으로써, 국가가 '국내 자본에 의해 포획당할 가능성'을 줄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입대체적 지배연합'이 무엇인지는 모호하지만,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지주계급 세력'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험에서 보여지듯이, 한국에서도 이승만정권 이래로 수입대체전략을 지속시킴으로써 국가재정으로 부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려는 수입대체 선호적인 자본가 및 지배연합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와는 달리 한국내 수입대체 선호의 분배형 지배연합이 군사쿠데타라는 위로부터의 정치권력 변동에 의해 확실히 단절되어 버림으로써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잃게 되었고, 정부의 재정적자를 담보로 한 이들의 지대추구활동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박정희정권의 제도형성이 갖는 중요한 정치경제적 의미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수입대체적 지배연합을 해체하고 새로운 발전지향적 지배연합을 탄생시키는 법적, 제도적, 물질적 기초를 구축하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박정희는 위로부터의 강한 정치권력과 리더십에 의해 이 과업을 단시일에 효과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나 이승만정권에서 처럼 정희정권의 정치권력이 국내 자본에 의해 포획당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류상영. 1996. 박정희정권의 산업화 전략선택과 국제정치경제적 맥락. 8




※ 토지개혁과 한국전쟁 - 지주계급의 몰락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이전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토지개혁'과 '한국전쟁' 이다. 김일영은 "농지(토지)개혁과 한국전쟁이 한국 사회의 전통적 지배계급인 지주의 몰락을 가져왔다" 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발전국가의 등장요건의 일부, 특히 국가가 사회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초적 조건은 1950년대에 마련되었다. 농지개혁의 단행과 그에 뒤이어 벌어진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의 전통적 지배계급인 지주의 몰락을 가져왔다. 새로운 자본가 계급이 생겨났지만, 아직 그 규모가 작았고 자기재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했었다."


- 김일영. 1999. 1960년대 한국 발전국가의 형성과정 - 수출지향형 지배연합과 발전국가의 물적 기초의 형성을 중심으로. 3




토지개혁의 성공 → 국가의 자율성확보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토지개혁과 한국전쟁이 어떻게해서 지주계급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교 국제대학원 유종성 교수는 "토지개혁 성공으로 인해, 경제개발 초기에 지주계급에 의한 포획이나 Clientalism이 발생할 여지를 최소화시키고 국가 자율성(State Autonomy)이 발휘될 가능성을 열어줬다"  라고 말한다. 

첨부한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토지개혁(Land Reform)이 실패한다면, 기존 지배계급에 국가가 포획(State capture by the landed elite) 되어, 지배계급의 지대추구 행위를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경로를 밟게 된다. (필리핀의 경우) 그러나 토지개혁이 성공한다면, 국가는 기존 지배계급으로부터 자율성(State Autonomy)를 획득하게 된다. 이때, 자율성을 획득한 국가는 특정 지배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경제성장 달성 이후에는 한국의 경우처럼 '재벌중심(Chaebol-centered)' 경로를 밟음으로써 새로운 지배세력인 '재벌에 국가가 포획(Capture by chaebol)' 되는 경우,'중소기업 중심(Small and Medium Enterprises-Centered)'의 경로를 밟음으로써 국가가 계속해서 자율성을 유지하게 되는 경우로 나뉘게 된다.)



※ 
한국전쟁, 점령 → 피난 → 학살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기존 지배계급의 붕괴에 있어 '한국전쟁'의 역할을 강조한다. 박태균은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전쟁 뒤) 폐허 위에서 새로운 경제 체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전쟁 기간을 통해서 남북한에 지주계급이 사라졌다. 이미 남북한에서는 1946년과 1950년에 토지개혁과 농지개혁으로 지주의 토지를 빈농 및 소작인들에게 분배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그러나 개혁이 단시간에 이루어지기란 불가능했다. 특히 남한에서는 농지개혁이 유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땅값을 분할 상환하는 과정에서 지주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농지개혁법으로 농지소유의 상한을 설정하여 지주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였지만, 6장 2절에서 말했듯이 현물세와 지가 납부로 절량농가가 된 농민들은 싼값에 땅을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지주들은 한국전쟁 기간을 통해 몰락했다. 대부분의 지주들은 농지 몰수의 대가로 받은 지가증권의 가치가 하락해 재기하기 어려웠다. 인민재판에서 학살된 지주들도 적지 않았으며, 학살을 피하기 위해 피난을 떠나는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한반도에서 수백 년동안 지배신분으로서 특권을 누렸던 지주계급은 한국전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조건 위에서 남북한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한의 경우 미국간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자본주의적 질서를 만들기 위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북한에서는 노동력의 고갈로 자연스럽게 집단농장이 형성되었고, 이것은 사회주의 체제로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박태균. 2005. 『한국전쟁』. 359-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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