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Posted at 2019. 1. 2. 12:56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가경쟁력' 위기에 직면한 1980년대 초중반 미국

- 기업가와 경제학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 왼쪽 : 1968-1990년, 미국/일본 GDP 배율 추이
  • 오른쪽 : 1970-1990, 미국(노란선)과 일본(파란선)의 노동생산성 증가율 추이
  • 일본의 급속한 성장은 미국민들에게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시작[각주:1]에서 말했듯이,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은 '국가경쟁력 악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일본은 급속한 성장을 기록하는데 반해 미국은 노동생산성 둔화를 겪었고, 1968년 일본에 비해 2.8배나 컸던 미국 GDP 규모는 1982년 2.0배로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국인 입장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 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증가해온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1980년대 들어서 더 확대되었고, 1985년 GDP 대비 1.15% 수준으로까지 심화되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추월함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하락하여 세계시장에서 미국산 상품을 팔지 못한다는 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 절망과 공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포심은 미국 내에서 보호무역 정책을 구사하라는 압력을 키웠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일본'(Japan) ·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 '하이테크 산업'(High-Tech Industry) · '보호주의'(Protectionism) ·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등 이었습니다.


▶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비교우위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서, 1980년대 초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마틴 펠드스타인은 경쟁력 상실이 아닌 재정적자로 인한 총저축 감소가 무역적자를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각주:2] 


"최근 10년동안 무역수지 흑자에서 무역수지 적자로의 전환은 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잘못 해석 되곤 한다. 사실, 미국 국제수지 구조 변화는 느린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총저축과 총투자가 변화한 결과물이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의 두려움이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일본의 급속한 성장에 대비되는 미국 노동생산성 둔화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의 주장을 읽어봅시다.


장기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비록 최근의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긴 했으나,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각주:3] (...) 


생산성 향상 둔화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 상쇄되지 않을 때에만 국제적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다.[각주:4]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이 미국의 국가경쟁력(competitiveness)이 영구히 손상된 것은 아니다 · 생산성 둔화와 국제시장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없다 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비교우위 원리'(comparative advantage)를 믿기 때문입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각주:5]이 작동할 수 있게끔 하는 원천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6] 입니다. 수입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낮’기 때문이며, 수출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높' 때문입니다.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높아 기회비용이 낮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의미하고,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낮아 기회비용이 높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높은 품목'을 뜻합니다.


따라서 (생산성 변동과 상관없이)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상품 가격이 비싸지면 일시적으로 비교우위를 상실할 수도 있으나, 무역수지 적자가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자기조정기제에 의해서 시간이 흐르면 비교우위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절대생산성 수준이 뒤처지더라도 여전히 다른 국가와의 교역을 할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은 절대우위가 아닌 상대생산성에 따른 비교우위에 따라 이루어지며, 더군다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는 낮은 임금을 통해 상대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펠드스타인이 느린 생산성 향상 속도가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서 상쇄된다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거라고 판단한 이유 입니다.


(주 : 비교우위와 임금의 관계에 대해서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참고)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마틴 펠드스타인은 국가경제 · 거시경제 차원에서 국제무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 잃더라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며,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그에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임금으로 절대생산성 열위에 대응하면 여전히 비교우위는 성립하고 무역을 이루어질테니, 이것 또한 그에게 걱정 사항이 아닙니다.  


그럼 기업가와 근로자도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처럼 국제무역을 바라볼까요?


▶ 기업가 · 근로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75 · 595쪽

  • 왼쪽 :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

  • 오른쪽 : 무역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 수


위의 왼쪽 그래프는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연비가 좋은 일본산 자동차의 수요를 증대시켰고, 1970년대 후반부터 수입자동차 점유율이 대폭 늘어납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수입산 자동차의 미국시장 침투로 인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행정부에 수입제한 등 대책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오른쪽 표는 1990년 기준, 무역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와 비중을 나타냅니다. 수입에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수는 약 130만 명이며, 대부분 중서부(Mid-West)와 남부(South) 등에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러스트벨트 등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은 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습니다(do something).


미국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대책을 요구한 이유는 한번 경쟁에서 뒤처지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영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현장은 국가들의 대리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며 생존을 위해 경쟁력(competitiveness)이 필요한 곳 입니다.  


통화가치 하락 · 임금 하락 등 거시경제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비교우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경제학자의 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실제 현장에서는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번 1등으로 올라선 외국기업은 계속해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에,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책에서만 타당합니다. 


또한, 기업가와 근로자에게 "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나마 잃더라도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국제무역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논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경영하는 · 내가 종사해있는 산업이 비교우위에서 열위로 바뀌어서 피해를 보고 있는데, 다른 산업을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비교열위로 바뀌게 된 산업에 계속 종사하지 말고,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라"고 충고할 수 있지만, 무역의 충격을 받은 기업가와 근로자가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 입니다.


▶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이처럼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는 역할과 일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상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학자가 보기엔 기업가와 근로자는 이동을 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며, 기업가와 근로자가 보기엔 경제학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좋은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신무역이론 및 신경제지리학을 만든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 수상

  • 크루그먼의 1994년 기고문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A Dangerous Obsession>)


1980년대 미국 내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입니다. 그는 1979년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7] · 1991년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각주:8]을 창안한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크루그먼은 미국이 자유무역정책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리적인 주장을 제기하였고, 비경제학자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 그는 현실 속 경쟁에 직면해있는 기업가들이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부 수용하였고,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는 동태적 비교우위 패턴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가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에 의해 결정됐을 수 있으며, 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비교우위를 새로 창출(created)하고 국내기업에게 초과이윤을 안겨다줄 수 있다는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폴 크루그먼이 전통적인 관점에서 국제무역과 비교우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기업가의 관점을 수용하여 만든 새로운 무역이론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경쟁력 : 위험한 강박관념 (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


폴 크루그먼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와 1991년 사이언스지(Science)에 기고한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Myths and Realities of U.S. Competitiveness>)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의 주장과 논리를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사족 : '국제무역을 둘러싼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기 위해 그가 여러 곳에 기고한 글들은 『Pop Internationalism』 라는 제목으로 묶어서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이라는 제목으로 변역 되었습니다.)


잘못된 가설 (The Hypothesis is Wrong)


1993 년 6월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가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공동체 (EC) 회원국 지도지들 모임에서 점증하는 유럽의 실업문제를 주제로 특별 연설을 했다. 유럽 상황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EC위원회의 의장인 들로르가 무슨 말을 할지 상당히 궁금해 했다. (…)


어떻게 말했을까. 들로르는 복지국가나 EMS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유럽 실업의 근본 이유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쟁력 부족(a lack of competitiveness)이며, 그 해결책은 사회간접자본과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계획(investment in high technology)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들로르의 말은 실망스런 책임 회피였지만 놀라운 발언은 아니었다. 사실 경쟁력이라는 용어(the rhetoric of competitiveness)는 전세계 여론지도자들 사이에 유행어가 되었다. -클린턴에 따르면 “국가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들과 같다’ 라는 견해-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정통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 현대 국가라도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 누군가가 이 명제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대체로 들로르가 유럽의 문제에 대해 내린 것과 같은 식으로 미국의 경제 문제를 진단한 이런 사람들 중 대다수가 지금 미국의 경제 및 무역정책을 수립하는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들로르가 사용한 용어는 자신과 대서양 양안의 많은 청중들에게 편리할 뿐 아니라 편안한 것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진단은 유럽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매우 잘못된 것이었고 미국에서의 유사한 진단 역시 오진이었다.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의 경험적 문제로 보아도 이 가설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that hypothesis is flatly wrong).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크루그먼은 글의 시작부터 정치인 · 언론인 · 대중적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비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생각하였고 첨단기술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무역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크루그먼은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의 논리를 좀 더 들어보죠.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competitiveness)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생각 없이 그 말을 쓴다. 그들은 국가와 기업을 비슷하게 보는 것을 분명히 합리적 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 GM)사가 북미 미니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는지 묻는 것과 원칙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국가경제의 손익을 그 국가의 무역수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즉 경쟁력을, 해외에서 사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팔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무역흑자가 국가의 취약함을 나타내고 적자가 오히려 국가의 힘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


국가들은 기업처럼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코카콜라와 펩시는 거의 완벽한 경쟁자다. 코카콜라 매출의 극히 일부만이 펩시 노동자틀에게 판매되고, 코카콜라 노동자들이 구입하는 상품 중 극히 일부만이 펩시의 제품이다. 그 부분은 무시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펩시가 성공적이면 그것은 대체로 코카콜라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주요 산업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는 상품을 팔기도 하지만, 서로의 주요 수출시장이 되기도 하며 서로 유익한 수입품의 공급자이기도 하다. 만약 유럽 경제가 호황이라 해도 반드시 미국의 희생으로 그렇게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유럽 경제가 성공적이면 미국경제의 시장을 확대시켜 주고 우수한 제품을 낮은 값에 팔아줌으로써 미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그래서 국제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International trade, then, is not a zero-sum game)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 크루그먼은 '경상수지 흑자가 국가의 부를 나타내는 게 아니다'[각주:9]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상호이익(mutual gain)을 안겨다준다'[각주:10]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본 블로그를 통해 누차 말해왔듯이, 그리고 이전글에서 마틴 펠드스타인이 주장[각주:11]했듯이, 경상(무역)수지는 거시경제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지은 결과물일 뿐입니다. 총저축이 총투자보다 많으면 무역수지 흑자, 적으면 적자가 나타납니다. 여기에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중요한 요인이 아닙니다.


게다가, 무역수지 적자는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며 역설적으로 국가의 강함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는 금융·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과 동의어이며 이는 대외로부터 계속 돈을 빌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약한 국가라면 다른 국가에게 계속해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된다는 것(sustained)은 그 국가의 힘을 드러내줍니다.[각주:12]


(참고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또한, 비교우위는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상관없이 모든 국가에게 '값싼 수입품의 이용'이라는 상호이익을 안겨다줍니다. 또한, 교역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서로의 수출국이며 동시에 수입국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경제호황은 수출시장 확대를 가져다 줍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비교되는 상대국의 가파른 성장은 무언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끔 만듭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 경쟁력의 신화 (Myth of Competition)


먼저 전세계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과 외국이 모두 연간 1 %씩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생활수준과 실질임금 등이 어느 곳에서나 연간 약 1%씩 상승한다는 생각은 합리적인 듯하다.


그러면 미국의 생산성은 계속 연간 1%씩 증가하는 데 반해 다른 나라들의 생산성 증가는 빨라져서 예컨대 연간 4%씩 높아졌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미국국민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미국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경쟁자보다 생산성이 뒤지는 회사는 시장을 잃고,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문을 닫을 것이다. 이와 똑같은 일이 국가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사업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에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작용한다. 이 힘은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라도-비록 그 생산성과 기술 · 제품의 질이 다른 나라에 뒤진다고 하더라도-일정 범위의 상품을 계속해서 세계시장에 팔 수 있게 하고, 또 장기적으로는 무역수지의 균형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역 상대국들보다 생산성이 현저히 뒤지는 나라일지라도 일반적으로 국제무역에 의해 형편이 더 나아지지, 나빠지지는 않는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6장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


→ 크루그먼은 '미국의 생산성이 연간 1%씩 증가하는데 반해 다른 나라가 연간 4%씩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교역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번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1980년대 초중반 미국민들의 큰 우려는 '미국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일본 그리고 대일무역수지 적자 심화' 였습니다. 그러나 크루그먼 주장은 생산성 둔화와 무역수지 적자가 인과관계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 이유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00여년 전 금본위제 시대에 살았던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나라는 금과 은화의 지속적인 유출로 인해 물가와 임금이 하락하고 그 결과 적자 국가에서는 상품과 노동력의 가격이 저렴해져서 무역적자가 바로잡힌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가격-정화 흐름 기제'(Price–specie flow mechanism) 입니다.


오늘날 조정과정은 임금과 물가의 직접적인 변화 대신 환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무역적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수출을 늘리고, 무역흑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수입이 늘어납니다. 따라서, 어느 나라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다 하더라도, 환율 조정(혹은 임금 조정)을 통해 상대생산성 우위와 비교우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도 여전히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원리에 따라 수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생산성이 연간 4%씩 성장할 때 자국인 미국도 4% 아니 그 이상 성장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이 다시 말합니다.


●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 상실) 문제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대부분의 저자들은 경쟁력을 긍정적인 무역실적과 다른 요인의 복합적인 것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특히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경쟁력의 정의는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로라 D. 타이슨의 저서 『누가 누구를 때려부수는가?』(『Who's Bashing Whom?』)에서 제시한 노선을 따른다.


경쟁력은 "우리 시민들이 향상되고 있으며, 또 지속 가능한 생활수준을 누리면서 국제경쟁의 시련에 견디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능력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생각하고 현실에 적용해 본다면 이 정의가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타이슨의 정의에 기초한 '경쟁력'이 거의 전적으로 국내 요인, 주로 생산성 증가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즉 다른 나라에 대한 상대적 생산성 증가가 아니라 국내 생산성 증가가 바로 문제인 것이다(That's domestic productivity growth, not productivity growth relative to other countries)


환언하면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경쟁력'으로 '생산성'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며 국제경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


물론 위상과 세력에 관한 경쟁은 언제나 존재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 상승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러나 일본의 성장이 미국의 위상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미국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린다고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경쟁력 이라는 용어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후자다.


물론 단어의 의미를 자신의 마음에 맞게 정하는 입장을 취할 수는 있다. 원한다면 ‘경쟁력’ 이라는 용어를 생산성을 의미하는 시적 표현방법으로 시용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국제경쟁이 경쟁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실제로 밝혀야 한다. 그러나 경쟁력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 치고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생활수준(standard of living)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성장이론이 솔로우모형[각주:13]부터 P.로머의 R&D모형[각주:14]으로 발전할때까지, 모든 경제학자들이 부정하지 않는 진리 입니다. 


그러나 크루그먼이 지적한 것처럼,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어 생활수준 향상이 더뎌지고 있다"와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타국보다 느려서 국가경쟁력이 훼손되고 세계시장 속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완전히 다릅니다. 


1980년대 미국의 생산성 둔화는 그 자체로 미국인의 생활수준 향상을 더디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지, 일본의 생산성 증가율에 비해 낮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미국이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이지,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걱정해야 할 건 '타국과의 경쟁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미국 생산성 자체의 둔화'(productivity slowdown) 입니다. 이 둘의 구별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미국이 당면한 문제가 전자라고 판단한다면 각종 보호무역 조치로 일본제품의 수입을 막거나 국내 생산자에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시행될 수 있지만, 후자라고 판단하면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국내생산성 향상을 위한 R&D 지원 및 창조적파괴를 위한 시장경쟁체제 조성이 나오게 됩니다.  


▶ 신성장이론이 말하는 '생산성 향상' 방법 두 가지


: 첫째,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 둘째,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보호주의 압력을 경계하는 경제학자들 그런데...


당시 마틴 펠드스타인 · 폴 크루그먼 같은 일류 경제학자들이 무역수지 결정과정 · 경쟁력에 대한 개념 · 생산성 향상의 방법 등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한 이유는, 미국의 경기침체와 일본의 경제성장이 보호주의 무역정책에 대한 요구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상황 인식으로 미 행정부가 보호무역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을 경제학자들은 크게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무역수지' · '국가경쟁력' 등을 주제로 한 경제학자들의 설명이 와닿으시나요?


머리로는 "그래 중요한 건 일본의 성장이 아니라 우리의 생산성 향상이지"라고 다짐해도, 상대적 위상이 하락하고 있는 걸 보는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무역수지 적자는 경쟁 패배의 산물이 아닌 총저축과 총투자의 결과물이지"라고 받아들여도, 수입경쟁부문(import-competing sector)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경영자에게는 하나마나한 소리 입니다.  


게다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R&D가 중요하다면 정부가 첨단산업(high-tech)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쓰면 안되냐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논리로 로라 D. 타이슨은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을 주장했고,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유발시킵니다. (주 :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살펴볼 계획 입니다.)


결정적으로, 세계시장에서 상대기업 보다 더 많은 양의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기업가에게 '비교우위 · 열위에 따른 특화'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왜 기업가들은 전통적인 경제학이론과는 다르게 무역현장을 바라볼 수 밖에 없을까요? 역설적이게도 이에 대한 답을 폴 크루그먼이 제시해 줍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 - 한번 성립되고 나면 자체적으로 강화되는 비교우위


기업가들이 국제무역현장을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중요한 곳으로 인식한 이유는, 한번 외국기업에게 경쟁에 밀려 점유율을 내주면 다시 되찾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통화가치 하락 및 임금인하로 비교우위를 다시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 속 기업가들은 '잘못된 선택이나 불운이 영구적인 시장점유율 손실로 이어진다'(a wrong decision or a piece of bad luck may result in a permanent loss of market share)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한번 잃어버린 시장점유율 혹은 비교우위를 다시 획득하기가 힘든 것일까요? 


  • 폴 크루그먼의 1987년 논문. 

  •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학습효과에 의해 자체강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 <The Narrow Moving Band, The Dutch Disease, and The Competitive Consequences of Mrs.Thatcher - Notes on Trade in the Presence of Dynamic Scale Economies>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리카도헥셔-올린의 비교우위론은 '한 국가의 특화 패턴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대생산성 혹은 부존자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상대생산성 우위에 있는 자국 상품 및 풍부한 부존자원이 집약된 자국 상품은 외국에 비해 더 싸기 때문에 특화와 수출을 합니다. 만약 일시적으로 비교우위 패턴에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통화가치와 임금 하락이라는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폴 크루그먼은 일시적 충격 이후에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바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의 존재 때문입니다. 


생산의 학습효과란 말그대로 '생산을 통해 학습한다'는 의미 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현재의 생산성은 과거 생산을 통해 학습한 지식이 만든 결과물이며, 미래의 생산성은 현재 생산과정을 통해 획득하게 된 노하우가 만들어낼 결과가 됩니다.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최신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낼 수 있는 이유는 30년 전부터 축적한 경험이 있은 덕분이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이유는 현재 독보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계속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루그먼은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이 현재의 생산성을 결정하 동태적 규모의 경제' (dynamic economies of scale in which cumulative past output determines current productivity) 형태로 생산의 학습효과를 경제모형에 도입하였습니다. 


일반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규모'가 현재 생산량 크기를 의미했다면, 여기서 '규모'는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 크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생산량이 많은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부터 많은 양을 생산하여 지식을 많이 축적한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학습효과로 인하여 한번 고착된 특화 패턴은 자체적으로 강화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기존에 만들지도 않았던 상품을 뚝딱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노하우도 없기 때문입니다. 생산 가능한 상품은 예전부터 만들어와서 공정과정에 대한 학습이 되어있는 것들 입니다. 따라서 생산자는 예전부터 만들어오던 것을 생산하게 됩니다.  


즉, 폴 크루그먼은 학습효과로 인하여 "일단 한번 만들어진 특화는 그 패턴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상대적 생산성 변화를 유도한다"(a pattern of specialization, once established, will induce relative productivity changes which strengthen the forces preserving that pattern.) 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기업들이 외국 라이벌 기업에게 한번이라도 시장을 내주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외국 기업은 독보적 지위를 바탕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은 경험을 쌓을테니, 시장을 다시 되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 외국 기업은 기존에 1위였던 미국 기업의 시장을 어떻게 탈취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외국 정부의 보호정책 덕분입니다. 


만약 외국 기업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생산에 착수하고 관세라는 보호막에 힘입어 자국 내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보호 기간 중에 쌓은 지식과 노하우로 언젠가는 상대적 생산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폴 크루그먼은 일본기업의 성공 요인을 일본정부의 보호정책에서 찾습니다. "일본의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정부의 산업정책,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 사용이 꼽혀진다. (...) 나의 모형은 이를 설명해준다. 일시적인 보호가 비교우위를 영구히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It is possible in this model - within limits- for temporary protection to permanently shift comparative advantage.)


미국 기업이 직면해 있는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것이다"라거나 "미국은 자유무역 정책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 라는 학자들의 주장은 기업가가 보기엔 세상물정 모르는 태평한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비교우위가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이 끼친 영향들


'생산의 학습효과로 인해, 일단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은 또 다른 통찰을 낳았고, 보호무역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첫째, 현재의 특화패턴은 '역사적 우연성'에 의해 임의로 성립된 것일 수도 있다


리카도 및 헥셔-올린의 전통적인 비교우위론은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특성(underlying characteristics of countries)으로 인해 자연적인 특화패턴(natural pattern of specialization)이 성립되었다고 말합니다. 특정 상품 생산에 필요한 기술수준을 갖춘 국가는 이를 특화하고, 특정 상품에 생산에 투입되는 부존자원을 많이 보유한 국가는 이를 특화합니다.


그런데 생산의 학습효과가 비교우위 및 특화패턴을 자체 강화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국가들의 비교우위와 특화는 단지 과거부터 많이 생산해온 덕분에 가진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그럼 과거부터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 연유는 무엇이냐 따지면,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본질적으로 어떤 국가가 현재 그 상품에 우위를 가지고 있을 이유는 하나도 없고, 단지 과거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여 많이 만들어왔다는 이유 뿐입니다.


실 폴 크루그먼의 통찰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유치산업보호론을 소개한 글을 통해,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했다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통찰[각주:15]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를 통하여,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라고 말하며 '학습곡선'(learning curve) 개념을 추상적으로나마 도입하였고, '단지 먼저 시작한 덕분에 경험을 많이 축적'했다고 지적하며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으로 현재의 비교우위가 형성 됐을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아직 시작을 하지 않은 국가가 시도와 경험을 축적하면, 단지 먼저 시작했을 뿐인 국가보다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만약 잠재적 능력을 갖춘 생산자가 외부성으로 인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인 유치산업보호 정책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폴 크루그먼이 강조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도 유사한 함의와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의 정당성 입니다.


둘째, 미국정부는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을 통해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국제무역 패턴이 국가의 본질적 특성이 아닌 역사적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정부가 일시적으로 개입하여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정부가 영구히 개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단 환경만 조성해주고 빠져도 무방합니다. 환경이 한번 조성되고 나면, 기업이 생산을 통해 얻게 된 지식으로 계속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가경쟁력 쇠퇴'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매혹적인 논리였습니다.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할 때 항상 제기되었던 반박은 "인위적인 정부 개입은 시장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였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처음에만 조금 도움을 주면, 그 후에는 경쟁력을 회복한 미국기업이 알아서 할 것이다"라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생산을 통해 얻게 되는 '학습'(learning) · '지식'(knowledge)의 중요성은 전자 · 반도체 등 최첨단산업(high-tech industry)을 집중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할 필요를 정당화 해주었습니다. 


최첨단산업은 대규모 R&D 투자가 수반되고, 그 결과로 얻게 될 노하우는 다른 산업에까지 파급영향(spillover)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생산성 향상을 위한 R&D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에 더하여, 따라서 최첨단산업을 지원했을 때 돌아올 이익은 매우 크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로라 D. 타이슨은 미국 최첨단산업을 보호 · 지원하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주장했고,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한층 더 격화되었습니다.


셋쩨, 일본 첨단산업의 부상을 막기 위해서 '공세적인 무역정책'이 요구된다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이 "미국정부가 미국기업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이라면, "미국정부는 일본기업이 자국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는 논리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크루그먼이 짚어주었듯이, 일본정부는 자국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하여 비교우위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 비교우위를 창출(created) 했습니다. 통상산업성(MITI, 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으로 대표되는 일본 관료조직은 수입시장을 닫은 채 자국 자동차 · 철강 · 전자 ·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했습니다. 


이는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 것일뿐더러 일본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위였기 때문에, 미국기업들은 자국행정부를 대상으로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unfair trade practice)을 방관하지 마라"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목표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를 통해 '평평한 경기장'(level playing field)을 만들어서 국가 간에 '공정한 무역'(fair trade)을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 폴 크루그먼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과 기타 다른 연구를 통해 전략적 무역이론의 토대를 만들었으나, 전통적인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는 전략적 무역정책 · 산업정책 · 유치산업보호 정책 · 보호무역을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1987년 논문 말미에서 "약탈적 무역 및 산업정책이 가능할 수 있으나 (...) 바람직한 정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노파심을 표현했습니다. 정부의 일시적인 지원으로 비교우위가 창출되고 영구히 변화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이로운지 해로운지 여부는 소비자후생도 같이 고려하여 평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적 우연성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미래 기대(expectation) 영향이 더 클 경우 과거부터 걸어온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날 수도 있음을 짚어주었습니다. 


크루그먼은 단지 기업가가 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수용하여 '영원히 시장을 뺏기게 될 이론적 가능성'을 이야기 하였을 뿐인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전통적인 자유무역정책에 반하는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실행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개입주의 무역정책의 근거가 된 또 다른 논리는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이 글에서 몇번이나 언급했던, 전략적 무역정책은 "시장을 보호하면 국내 생산자가 학습을 할 것이다"는 소극적(?) 주장을 넘어서서 "관세나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의 초과이윤을 뺏어와 국내 기업에게 줄 수 있다"는 적극적인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전략적 무역정책'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This wider approach reveals that much of the concern about long-run competitiveness is based on misperceptions. Although the recent appreciation of the dollar has created a temporary loss of competitiveness, the United States has not experienced a persistent loss of ability to sell its products on international markets; [본문으로]
  4. there is no necessary relation between productivity and competition in international markets. Slow growth in productivity only hampers a country'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if it is not offset by correspondingly slow growth in real wages.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9.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1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12. 물론, 대부분 금융 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은 지속불가능 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본문으로]
  13.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14.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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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은 경제학이 아니다 (Business Is Not Economics)경영학은 경제학이 아니다 (Business Is Not Economics)

Posted at 2012. 7. 15. 00:13 | Posted in 경제학/일반

"기업경영"과 "국가경제"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고, 
따라서 "국가경쟁력"을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말을 몇번 했었는데

오늘도 그 이야기.

왜 계속 이런 말을 하냐면, 이건 정말 아주아주아주 중요한 생각이기 때문에.
"국가경제"를 생각할 때, 그리고 "경제학"을 공부할 때 '기업경영'과 '경제'를 혼동하면 잘못된 사고를 하기 쉽상이다.


Paul Krugman이 이틀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포스트 하나를 소개.

*경영학은 경제학이 아니다 (Business Is Not Economics)

Obama 대통령이 이 사실을 정확히 집어주었다.

"Romney가 Bain Capital에 재직하던 당시의 행태에 대해 왜 계속 문제제기를 하느냐고 사람들이 나-Obama-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 점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만약 당신이 대기업 또는 헤지펀드의 대표라면, 당신의 임무는 돈을 버는 것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성공적인 경영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의 임무는 투자자에게 돌아갈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그것은 타당해 보인다. 이것인 미국식 행동이고 기업이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로서의 경제를 생각하는 자격을 당신에게 반드시 부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대통령으로서 나의 임무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임무는 일자리가 외국으로 이전된 지역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이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특히 국가는 주식회사가 아니다. 


국가경제를 운영하는 대통령직에 기업 경영가가 부적합한 이유는 '윤리적 차원'때문이 아니다. '기업가는 돈만 밝히기' 때문에 부적합하다는 말이 아니다.

"경영학과 경제학은 완전히 다른 학문이고, 
기업경영과 국가경제는 완전히 다른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의 목표는 '이윤창출'이다.
경제의 목표는 '경제적 번영prosperity'이다.

돈을 버는 게 경제적 번영 아니냐고?

국가경제의 핵심은 '생산'과 '소비'의 매커니즘이다.
'돈을 벌어서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국가경제를 논할 때 '돈을 쌓아두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은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은

① 한 국가 또는 개인의 부wealth는 금은보화 등을 모아서 쌓는 것이다.
② 따라서, 전세계에 부는 한정되어 있다.
③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부를 가지고 와야 한다.
④ 즉, 다른나라와 무역을 하면서 '무역흑자'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⑤ 무역흑자를 위해서, 국가가 '소수의 기업을 후원'하여 다른 나라와의 '무역전쟁'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⑥ 국내에는 '보호무역 장벽'을 만들어서 '수입을 줄여야'한다.
⑦ 그리고 영원히 무역흑자를 얻을 수 있는 '식민지'를 개척해야 한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는 중상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효용'이다. 
이 말은 몇번씩이나 해서 왜 또 하냐고 그러겠지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모두들 GDP 이야기를 하는 데, GDP는 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이다. 우리가 무심코 이야기하는 GDP의 핵심은 '생산'이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금은보화를 그저 '쌓아두는 것'이 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를 함으로써 '효용'을 얻는 것이 진정한 부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자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다.

부는 더 이상 한정적이지 않다.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에서는 '부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지만, 현대자본주의 사고방식에서 '부는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
생산과 소비를 함으로써, 그리고 거기서 효용을 얻음으로써.

이제 '무역전쟁'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제 '더 많은 금은보화를 차지하기 위해서' 무역을 하는 것이 아니다.

'비교우위'에 바탕을 둔 교역을 함으로써, '모든 국가'가 최적의 효용을 얻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일본을 이기기 위해' 무역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살기 위해' 무역을 하는 것이다.
국제무역을 '전쟁터'로 생각하는 건 완전히 착각이다.


"근데 일본전자기업이 주춤해야 삼성의 매출이 증가하는 것이고 국가경제가 늘어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건 '산업경제'다. 
'국가경제'가 아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NAFTA 체결 이후) 멕시코가 수입하는 옥수수에는 노란 옥수수와 흰 옥수수가 있는데, 노란 옥수수 수입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미국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에 적용되던 고관세가 철폐되자 멕시코산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대미 수출이 급증하여 사료로 쓰는 노란 옥수수를 미국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현종.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120쪽


여기서 눈여겨봐야할 구절은 

"노란 옥수수 수입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 멕시코산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대미 수출이 급증하여 사료로 쓰는 노란 옥수수를 미국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

국가경제차원에서 바라볼 때, '산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한 산업의 흑자 또는 승리만을 생각할 경우 '전체로서의 경제'를 간과하기 쉽다.


중상주의에서 벗어난 현대자본주의는 대단히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우리가 경제적 번영을 이루려면 '다른 나라를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생산성'을 높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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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제와 기업&가계경제는 완전히 다르다!국가경제와 기업&가계경제는 완전히 다르다!

Posted at 2012. 6. 18. 20:42 | Posted in 경제학/일반


기업&가계경제의 목표와 국가경제의 목표를 동일시하면 큰 오류에 빠지고 만다.

무슨 말이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경제란 이윤을 창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기업이 이윤을 내는 것이 경제이고 따라서 국가(또는 국민)경제도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자보다는 흑자가 낫고, 순이익을 내지 못하면 경제가 큰 위기에 빠진 것이고, 많은 부채는 해가 되니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 지출을 줄여야 하고.. 등등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기업경제의 목표-이윤창출-와 국가(또는 국민)경제의 목표는 완전히 다르다.

이해하기 쉽도록 흥미로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모두들 프로스포츠-축구라든지 야구라든지-를 좋아할텐데, 어느순간 언론에서 "흑자구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프로스포츠 구단도 흑자를 내야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자. 
프로스포츠 구단이 왜 흑자를 내야하는가? 구단의 존립목표가 이윤창출인가?
프로스포츠 구단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윤창출이 아니라 "좋은 성적"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적은 돈을 가지고 흑자를 내는 구단으로 오클랜드가 유명한데, 성적은 좀 그렇지만 '이윤을 창출'하는 오클랜드의 팬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많은 부채'를 지니고 있지만 좋은 성적을 내는 뉴욕 양키스의 팬이 되고 싶은가? 

국내의 예를 들어보자. 스스로를 흑자 구단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천Utd의 팬이 되고 싶은가? 우승을 밥먹듯이 하는 울산의 팬이 되고 싶은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프로야구의 예를 들자면, '많은 돈을 쏟아붇고' 우승을 자주하는 삼성이나 SK의 팬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돈은 돈대로 아끼고 승리하지 못하는 몇몇 구단의 팬이 되고 싶은가?

프로스포츠 구단의 목표는 '흑자와 이윤창출'이 아니다.
구단의 스폰서수입은 재무제표에서 '매출액'으로 잡힌다. '흑자달성을 위해' 비용을 아끼고자 '선수단 운영 원가'를 줄이는 건 프로스포츠 구단이 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스폰서수입은 내년에도 들어오기 때문에, 매출액을 초과하는 비용을 쓰더라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프로스포츠 구단이 할 일이다. 

쉽게 말하면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선수단에 재투자"해서 "전력을 향상시키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프로스포츠 구단이 할 일이다. 

스폰서수입 그거 아껴서 뭐할건데? 구단이 흑자내서 뭐할건데? 그걸로 배당금 나눠주나? 

거기다가 한국 프로스포츠 구단의 스폰서 수입은 대부분 모기업의 지원이다. 모기업의 지원금 남겨서 흑자 달성하면 좋은건가? 왜 그래야하지? 

기업이 돌아가는 방식-이윤창출-으로 모든 경제현상을 바라보면 이러한 오류에 빠지고 만다.


자 이제 국가(또는 국민)경제 이야기를 해보자.

국가경제의 목표는 흑자 달성이 아니다. 정부예산 남겨서 흑자 기록하면 좋은가? 부채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을 수 있으나, 국가경제의 목표가 이러한 재정흑자 달성일까?

국가경제의 목표는 이윤창출이 아니라 국민들의 경제적번영 prosperity 이다. 
국가경제와 기업경제는 완전히 다르다.


어제 Paul Krugman이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의 핵심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었는데. Paul Krugman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http://www.nytimes.com/2012/06/01/opinion/krugman-the-austerity-agenda.html
Paul Krugman. "The Austerity Agenda". <NYT>. 2012.06.01


"국가경제의 부채문제를 가계의 부채문제와 동일시하는 건 잘못된 비유이다. 큰 빚을 지고 있는 가정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 이러한 비교가 무엇이 잘못됐을까?

경제는 빚을 지고 있는 가계와 다르기 때문에 이 비유는 잘못됐다. 우리의 빚은 우리가 서로에게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우리의 소득은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팔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당신의 지출은 나의 소득이고, 나의 지출은 당신의 소득이다. (Your spending is my income, and my spending is your income.)

부채를 줄이기 위해 모두가 동시에 지출을 줄인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모두의 소득이 하락하게 된다. 당신이 지출을 줄였기 때문에 나의 소득이 줄어들었고, 내가 지출을 줄였기 때문에 당신의 소득이 줄어들었다. 우리의 소득이 하락함에 따라, 우리의 부채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졌다."

(The bad metaphor — which you’ve surely heard many times — equates the debt problems of a national economy with the debt problems of an individual family. A family that has run up too much debt, the story goes, must tighten its belt. So if Britain, as a whole, has run up too much debt — which it has, although it’s mostly private rather than public debt — shouldn’t it do the same? What’s wrong with this comparison?

The answer is that an economy is not like an indebted family. Our debt is mostly money we owe to each other; even more important, our income mostly comes from selling things to each other. Your spending is my income, and my spending is your income.

So what happens if everyone simultaneously slashes spending in an attempt to pay down debt? The answer is that everyone’s income falls — my income falls because you’re spending less, and your income falls because I’m spending less. And, as our incomes plunge, our debt problem gets worse, not better.)


즉, 기업&가계경제가 돌아가는 방식으로 "거시경제"를 바라보면 안된다 라는 것이다.

기업이나 가계로서는 빚을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기업&가계경제가 돌아가는 방식으로 국가경제를 이해하는 건 그 자체로 잘못이다.


Paul Krugman의 또 다른 주장을 소개하자면,

http://www.nytimes.com/2011/01/24/opinion/24krugman.html?_r=4&partner=rssnyt&emc=rss
Paul Krugman. "The Competition Myth". <NYT>. 2012.01.23


국가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미국주식회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소간 유용하지 않을까?
절대 아니다.
생각해보자. 노동자를 해고해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 기업가를 두고 성공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 국가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해보자. 고용은 줄어들고, 이윤은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누가 이런 것을 경제적 성공이라고 부를까?

(But isn’t it at least somewhat useful to think of our nation as if it were America Inc., competing in the global marketplace? No.

Consider: A corporate leader who increases profits by slashing his work force is thought to be successful. Well, that’s more or less what has happened in America recently: employment is way down, but profits are hitting new records. Who, exactly, considers this economic success?)


이것을 일종의 "진보주의자의 인본주의적 시각"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 사람을 해고해서 이윤 창출하는 건 나쁜 것 이라는 시각에서..

그러나 Paul Krugman의 이 주장이 뜻하고 있는 바는 "기업경영과 국민경제는 다르다" 라는 것이다.


자, 이제 무역적자와 국가경쟁력 이야기를 해보겠다.
"기업&가계경제와 국가경제는 다르다"라는 것을 상기하자.
그리고 국가경제의 목표는 이윤창출이 아니라 "국민들의 경제적 번영 prosperity" 라는 점을 상기하자.

무역적자란 나쁜 것인가? 우리나라는 수출의존형 산업구조이기 때문에, 무역흑자란 좋은 것이고 무역적자란 나쁜 것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무역적자란 것이 꼭 나쁜 게 아니다

무역적자를 기록했다는 말은 "외국의 (좋은) 상품을 수입해서 국민들이 사용한다" 라는 의미다.

경제적 번영이라는 것은 돈의 축적 개념이 아니라, "품질 좋은 재화를 사용함으로써 효용을 얻는다"의 개념이다. 
(무역흑자 대신 무역적자를 달성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무역적자란 것이 '절대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은 돈의 축적이 아니다.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효용을 얻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국민이 경제적 번영을 이룬다는 것이다.

무역적자를 기록하면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외환보유고가 줄어들고 등등 여러 문제가 파생되지만, 
그걸 떠나서 무역적자라는 것에 대해 절대적인 거부감을 나타낼 필요는 없다.


국가경쟁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경쟁력 개념에 대한 비판은 Paul Krugman이 누차 해왔다.
http://www.pkarchive.org/global/pop.html
Paul Krugman. "COMPETITIVENESS- A DANGEROUS OBSESSION". <Foreign Affairs>. 1994)


언론을 보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이 몇위이고,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뒤쳐지기 때문에 FTA를 해야하고 등등 별 헛소리를 다해대는데 국가경쟁력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국제무역은 국가들이 "경쟁을 해서" 우위를 점하고 순위를 다투는 게임이 아니다. 비교우위의 개념을 상기하자. 비교우위에 따른 무역을 통해 모든 국가가 번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국가끼리 무역을 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한미FTA를 두고, 한국은 손해를 보고 미국은 이익을 본다라고 말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중요한 건, 한국과 미국 내에서 '누가' 손해를 보느냐이다.)

중국이 10%의 성장을 기록하고, 우리나라가 5%의 성장을 기록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하락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대로 5%의 성장을 한 것이다.

그 나라의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건 국가간의 싸움에서 다른 나라에게 승리를 거두느냐가 아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일본경제가 침체에 빠진다고해서 또는 유럽경제가 침체에 빠진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했고 따라서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가 경제침체에 빠지면 다른 나라도 피해를 본다. 세계경제는 연결되어 있으니깐. 당연한 거다.
이걸 간과한채, "대한민국이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라고 말하거나 "일본경제가 침체이니 한국경제가 승리한 것"이라고 말하는 건........................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느냐가 아니라 국민들의 "생산성"이 어느정도냐에 따라 그 나라의 생활수준이 결정된다.

경제원론을 떠올려보자. 경제성장=1인당 노동생산성 x 인구 중 취업자비율 로 배웠을 것이다.
거시경제학을 떠올려보자. 장기총공급곡선에 따라 총생산량을 결정하는 건 "생산성"이다.
'실질임금=노동의 한계생산성' 에 따라 노동수요곡선이 만들어지고, 노동공급곡선과 만나는 '균형노동량'이 결정된다. 이 균형노동량이' 생산함수'와 만나면서 '총생산량'이 결정된다.

즉, 총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건, "노동의 한계생산성 향상에 따른 노동수요의 증가"과 "생산성 증가에 따른 생산함수의 이동" 이다.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처럼, 국가경제를 바라본다면 정말이지.. 세계경제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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