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Posted at 2015. 8. 5. 21:45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유로존의 근본적결함

- 그렇다면 왜 정치인들은 '유로존'을 만들었을까?

- '하나의 유럽'을 꿈꾸는 유럽인들


본 블로그의 [유럽경제위기] 시리즈를 통해, '그리스 경제위기의 구조적원인'과 '2008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로 2015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유럽경제위기'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개별국가들의 환율을 서로 고정시킨 1999년 유럽통화연맹(EMU) · 2002년 단일화폐인 유로화 도입을 거쳐 현재의 '유로존'(Eurozone)이 만들어졌으나, 결성 이전부터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Optimum Currency Area Criteria)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각주:1]였다. 


서로 다른 국가가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행위가 최적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노동이동 · 상품가격 신축성 · 재정통합 · 경기변동에 대한 대칭적충격 등등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서로 다른 국가가 단일통화를 공유하면 '어떤 국가는 경상수지 흑자, 또 어떤 국가는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불균형'을 교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 국가가 각자의 통화를 사용했다면 환율변동을 통해 경상수지 불균형을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국가가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것은 서로간에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환율변동을 통한 경상수지 조정을 이루어낼 수 없다.


이때 노동이동이 자유롭고, 상품가격이 신축적으로 움직이고, 서로 다른 국가간에 재정이전이 발생하며, 경기변동에 대한 대칭적 충격이 이루어지면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국가간에 경상수지 불균형을 교정할 수 있다. 즉,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킨 상태에서 서로 다른 국가가 단일통화를 공유하면 경상수지 불균형이 시정되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범하였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서로 다른 국가가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행위는 최적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유로존 출범 이후부터 독일 · 프랑스 등 핵심부(core) 국가와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주변부(periphery) 국가간의 경상수지 불균형은 누적[각주:2]되어 왔고, 이는 유럽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유럽경제위기 초기에 유럽중앙은행(ECB)의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소속 국가간의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각주:3]. 만약 서로 다른 국가가 각자의 통화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가지고 있었다면, 개별 국가의 이해관계에 맞추어 통화정책을 결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은 모든 국가들을 총괄하는 '유럽중앙은행'(ECB)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별 국가에 맞는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경제위기 발생 이후 공격적으로 대처한 미국 Fed와 달리, 유럽중앙은행은 미온적 대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사이 경제위기는 심화되었다.



유로존 소속 국가가 통화정책 활용에 제약이 걸린 상황에서 재정정책의 부담은 가중되었다. 개별 국가들은 거시경제 안정을 위한 정책도구로 재정정책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경기안정화를 위한 정부지출 증가는 고스란히 정부부채 증가로 이어졌다[각주:4]


만약 유로존 소속 국가간에 재정이전(fiscal transfer)이 가능했다면, 경제위기 발생국의 정부지출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로존은 '연방재정'(federalized budget) 혹은 '재정동맹'(fiscal union)이 부재한 상황에서 출범하였고, 경제위기가 남긴 것은 '경제위기 발생국의 정부부채 증가' 뿐이었다.  


결국 '그리스 경제위기'와 '유럽경제위기'의 원인은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에서 찾을 수 있다. 유로존은 애초부터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그리고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포기하고 단일통화를 공유한 행위는 경제위기를 키우는 책임을 제공하였다. 게다가 연방재정의 부재는 경제위기 발생국의 정부부채 증가를 초래하였다.


유로존 출범 이전부터 수 많은 경제학자들이 문제를 지적해왔다. 특히나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은 1990년대 초반부터 여러 논문을 통해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범할 유로존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왜 유럽은 이토록 문제가 많은 유로존을 만들었을까? 바로, 유로존은 '유럽인들이 꿈꾸는 하나의 유럽을 만들어내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 유럽인들은 정치적·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유럽통합'을 꿈꾸기 시작했다. 유로존은 '하나의 유럽'을 완성시키기 위한 첫 단계인 경제통합 이었다. 


'유로존은 정치적 프로젝트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2가지 상반되는 함의를 가져다준다.


경제통합의 산물 유로존은 정작 경제학적 이론은 무시한채 정치적이익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근본적결함을 가진 유로존은 지속될 수 없다.


'유로존은 정치적 프로젝트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나의 유럽'을 완성시키기 위해 유로존은 지속될 것이다. 게다가 유로존의 성공을 위해서는 '더 강한 통합'(more Europe)이 필요하다.


분명 경제학으로 따져봤을때 유로존은 말도 안되는 통화동맹이다. 근본적결함을 가진 유로존은 지속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유로존을 해체하여 각자의 통화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유로존은 정치적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유로존이 가져다주는 정치적이익이 경제위기로 인한 비용을 초과한다면 유로존은 지속될 것이다. 게다가 유럽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해체가 아닌 '더 강한 통합'이 필요하다. '재정동맹 부재'가 문제라면, '하나의 유럽'을 만들어내어 '연방재정'을 건설하면 될 것 아닌가? 


이번글에서는 '유럽통화동맹 결성의 정치적목적'을 일찌감치 강조한 Martin Feldstein의 1997년 논문과 '더 강한 통합'을 내세우며 유럽경제의 불안정성을 잠재운 Mario Draghi의 2012년 기념비적인 연설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유럽경제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닌 유럽통합이 이루어지느냐를 결정 지을 수 있는 정치적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럽경제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더 강한 통합'(more Europe)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 유로존 소속 국가들간의 충돌(conflict)이 지속된다면?



1990년대 초반부터 유로존 구상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내세운 경제학자 Martin Feldstein. 그는 1997년 논문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European Economic and Monetary Union: Political Sources of an Economic Liability>을 통해서, "정치적목적으로 도입된 유로존은 경제적관점에서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유럽인들은 통화동맹이 가져다주는 정치적이익이 경제적불이익을 초과하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의 논문을 통해 유럽경제위기를 '유럽통합의 과정'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제 그의 논문 요약본을 자세히 살펴보자.    


■ 서론

: 유럽통화동맹(EMU)의 도입은 20세기 유럽 정치적 이벤트에 있어 엄청난 사건입니다. 유럽통화동맹은 단순히 개별국가의 통화를 단일통화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정치와 세계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유럽의 정치통합(political union)을 만들어내는 사건입니다.


제게 있어 분명한 것은, 유럽통화동맹은 단일통화의 경제적 이익을 따져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유럽통화동맹은 미래의 유럽을 위한 정치적 관점이 반영된 산물입니다. 


저는 이러한 정치적동기(political motivations)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유럽통화동맹을 만드려는 유럽인들의 결정을 "단일통화동맹이 경제적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유럽 결정권자들이 판단했구나" 라고 해석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최적통화지역 이론을 이용한 경제적 관점에서 유럽통화동맹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 정책결정권자들이 경제학적 이론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political consideration)으로 유럽통화동맹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경제학자들은 인식해야 합니다. 


제 판단으로는 유럽통화동맹이 가져오는 순경제적이익은 음(-)의 값입니다.(net economic effect of a European Monetary Union would be negative.) 유럽인들의 삶의 질은 중장기적으로 더 낮아질 것입니다. 결국에 유럽인들은 유럽통화동맹의 정치적이익이 경제적불이익을 넘어서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it should be for the Europeans themselves to decide whether there are net political advantages of EMU that outweigh the net economic disadvantages.) 


불행히도 유럽인들은 논의과정에서 정치적이익, 경제적불이익의 상쇄관계를 생각치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럽통화동맹이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마케팅 되고 있기 때문이죠.(because EMU is being marketed as a source of improved economic performance.) 


▶ Martin Feldstein은 '유로존의 경제적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1999년 유럽통화동맹(EMU) 결성 이전 유럽인들은 단일통화 사용이 경제적이익을 가져다준다고 꿈꾸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통화동맹이 가져다주는 정치적이익이 경제적불이익을 초과해야만, 유로존은 정당화 될 것이다. 유로존은 유럽국가들에게 정치적이익을 안겨다 줄 수 있을까?


■ 유럽통화동맹의 정치학 (The Politics of European Monetary Union)

: 유럽통화동맹의 근원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 외교관 Jean Monnet 등은 미국과 같은 형식의 유럽연방을 구성함으로써 미래의 유럽내 전쟁을 막는 구상을 하게 됩니다. 독일의 Helmut Kohl 총리 또한 유럽통화동맹을 적극 지지합니다. 경제적통합 이후의 더 강한 정치적통합은 유럽내 전쟁을 방지할 것이라고 말이죠.


유럽통합 구상은 개별국가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프랑스는 경제통합과 정치통합을 통해 유럽내 공동관리자(co-manager)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보다 인구가 50%나 많은 독일에 주도권을 내주기 보다는 말이죠. 


유럽 국가들은 유럽통합을 구성하여 독일의 힘을 봉쇄하려 합니다(contain a potentially dangerous Germany within Europe). 독일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스스로를 '유럽연합내 타고난 지도자'라고 여깁니다. 유럽중앙은행은 프랑크푸르트에 건설될 것이고 기능은 독일중앙은행과 유사합니다. 독일은 '통화정책을 지배'(dominate monetary policy)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강력한 재정규율 정책'을 요구하여 관철[각주:5]시켰죠. 


다른 국가들은 유럽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탈리아는 유럽통화동맹에서 낙오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스페인은 통화동맹에 가입함으로써 유럽역사에서 고립되어왔던 과거를 극복하고자 합니다. 다른 유럽 소규모 국가들은 미래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의사결정과정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를(have a seat at the table) 원합니다. 유럽통합에 참여하려는 국가들은 이를 선호해서가 아니라, 유럽통합에 참여하지 않을때 발생할지도 모르는 차별을 두려워해서 입니다.


유럽통합은 경제적이익 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Martin Feldstein은 제2차 세계대전를 겪은 유럽이 미래의 전쟁을 막기위해 유럽통합을 꿈꾼다고 말한다. 이처럼 경제적이익 보다는 정치적고려에 의해 만들어지는 유럽통화동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 Martin Feldstein은 유럽통화동맹 결성 이전부터 '단일통화 사용이 가져다줄 폐해'를 지적해왔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경기적실업'(Cyclical Unemployment)이다. 단일통화를 구성하는 국가들끼리 비대칭적인 경기변동이 발생한다면, 어떤 국가는 완전고용 상태이나 또 다른 국가는 실업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경우, 실업이 발생한 국가는 금리와 환율 변동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1990년대부터 Martin Feldstein이 지적해온 문제는 결국 2000년대 후반 유럽경제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 결론

: 유럽통화동맹이 가져다줄 경제적 결과는 부정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은 이것을 무시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유럽통화동맹을 유럽의 정치적통합을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Political leaders in Europe seem prepared to ignore these adverse consequences because they see EMU as a way to further the political agenda of a federalist European political union.)


비록 유럽통합이 유럽내 충돌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하여지지만, 유럽통합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유로존내 독립적 통화정책의 부재와 고정환율제는 경기순환이 다른 국가들 간의 충돌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에 하나의 외교·군사 정책을 부과하는 것 또한 이러한 경제적 충돌을 키울 수 있죠.

(Uniform monetary policy and inflexible exchange rates will create conflicts whenever cyclical conditions differ among the number countries.)


일단 유로존에 가입한 국가들은 탈퇴할 수가 없습니다. 통화동맹 구성과 단일통화 채택은 영구적으로 유지될 목적으로 만들어졌죠. 


그럼에도 통화동맹이 가져올 경제적 불이익과 정치적 충돌은 몇몇 국가들이 "유로존에 가입한건 실수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 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유럽통화동맹이 바람직한지 여부는 유로존이 실업과 인플레이션율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유럽내 평화와 충돌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판단될 것입니다. 


유로존 소속 개별국가들은 독자적인 통화정책이 부재하고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 전체의 통화정책을 관할[각주:6]하고 있다. 또한 유로화 자체는 달러화 등 다른 통화에 대해 변동환율제이지만, 유로존 소속 국가들끼리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구조속에서, 경제위기 발생 이후 그리스 등 주변부 국가들은 실업감소를 위해 확장적 통화정책과 유로화 가치의 하락을 원하지만, 독일 등 중심부 국가들은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원한다. 이는 주변부 국가와 중심부 국가 간의 경기순환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중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 사이에 통화정책 방향과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충돌(conflict)[각주:7]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Martin Feldstein은 애시당초 유로존이 가져다주는 경제적이익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유로존을 추구한 이유는 '유럽 국가들간의 충돌방지'였다. 그런데 유로존이 '유럽 국가들간의 충돌방지'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유로존을 유지해야할 이유도 없으며 유로존 자체가 지속불가능 할 것이다.  


  • <The Economist>의 7월 11일자 표지. 
  • 폭풍을 일으키는 그리스 치프라스 총리와 꿈쩍하지 않는 독일 메르켈 총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인지한채로 2015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그리스-독일 간의 충돌을 살펴보자. 


2015년 6월 30일, 그리스 치프라스 정권은 IMF에 상환해야할 채무를 갚지 않았고 독일 등 채권단이 요구하는 구조개혁을 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스는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구제금융안 반대'를 의제로 국민투표에 돌입하였고 61%의 그리스 국민들은 구제금융 반대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독일 등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그리스 치프라스 정권은 결국 채권단이 요구하는 구조개혁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독일인과 그리스인은 서로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독일인들은 "독일은 피해자다(victim).왜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에 자금을 지원해야 하느냐. 돈을 흥청망청 쓴 그리스놈들이 문제지." 라고 생각[각주:8]하고 있으며, 그리스인들은 "합의안은 굴욕적이다(humiliation). 왜 우리가 긴축, 구조개혁을 해야하느냐" 라고 생각[각주:9]하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구제금융안을 두고 대립하는 독일인과 그리스인의 갈등'은 단순한 채권자-채무가 간의 갈등이 아닌 '유럽분열'을 상징하는 현상이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중심부 국가들과 주변부 국가들은 경기변동에 대한 충격을 서로 다르게 받을 것이다. 그런데 경기침체 대응을 둘러싸고 이렇게 갈등만 벌어진다면, 앞으로 유로존이 지속가능할까? 유로존이 지속불가능하다면 '하나의 유럽'이라는 정치적 꿈 또한 깨지게 된다.    

  

게다가 독일 등 중심부 국가와 그리스 등 주변부 국가들의 충돌은 '재정동맹(fiscal union) 결성의 어려움'도 나타낸다.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에서 말했듯이, 유럽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심부 국가에서 주변부 국가로의 재정이전(fiscal transfer)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로존은 구성하는 국가들은 '서로 다른 국가들'이기 때문에 재정이전이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국가에 바친 세금을 다른나라 국민을 위해서 쓴다?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나라의 예를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바친 세금을 일본이나 중국을 위해 쓴다? 이것을 받아들일 한국인은 얼마 없을 것이다. 재정은 나라의 주권(sovereignty)과 관련된 사항이다. 안그래도 재정동맹을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렇게 국민들 간의 감정충돌이 발생한다면 재정동맹 결성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고 유럽경제위기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결국 유로존은 깨지게되고 '하나의 유럽'이라는 정치적 꿈 또한 깨지게 된다. 




※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

(do whatever it takes)



이런 갈등 속에서도 '하나의 유럽'을 완성시키기 위한 유럽인들의 꿈은 지속되고 있다. 유럽경제위기 해결을 위해서라도 '재정동맹 결성을 통한 더 강한 통합'이 필요한 상황[각주:10]이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꿈'(more Europe)이 잘 나타나 있는 텍스트는 바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Mario Draghi의 2012년 연설[각주:11]이다. 


2015년 현재와 마찬가지로 2012년에도 그리스 · 스페인 등 주변부 국가들의 급증하는 정부부채가 문제였다.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의 디폴트 가능성이 증가함에 따라 정부채권 금리도 치솟았는데, Mario Draghi는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do whatever it takes)"라는 기념비적인 연설을 남기며 시장의 불안을 잠재웠다. 이제 그의 기념비적인 연설을 살펴보자. (모든 내용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주요내용만 발췌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 중 첫번째는 오래전 사람들이 말했었고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로존은 bumblebee와 유사하다."(The euro is like a bumblebee.) bumblebee는 자연의 미스테리 입니다. 이것들은 신체구조상 날 수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제학이론상 유지될 수 없는) 유로존 또한 지난 몇년간 유지되어왔죠. 


제가 던지고자 하는 첫번째 메세지는 바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유로존은 더욱 더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10년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율, 고용률, 생산성은 미국 혹은 일본만큼 안정적입니다. 


두번째 메시지는 지난 6개월간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주: 이 연설이 2012년 7월에 행해졌음을 상기하자.) 오늘날의 유로존과 6개월 전의 유로존을 비교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으며 나아졌다는 것을 모두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진보는 다른 양상으로 벌어졌습니다. 우선 국가단위에서 이루어졌죠.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말이죠. 부채관리와 구조개혁에서 진보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더 큰 진보는 초국가단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지난번 회담이 크나큰 성공이었다고 항상 말하고 있습니다(I always say that the last summit was a real success.). 지난번 회담은 정말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영국을 포함한 유로존내 27개국 정상들이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약한 통합이 아닌 더 강한 통합"(the only way out of this present crisis is to have more Europe, not less Europe.) 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4가지 블록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재정동맹, 금융동맹, 경제동맹 그리고 정치동맹.(a fiscal union, a financial union, an economic union and a political union.) 이러한 블록들은 국가주권에서 행해지던 것들이 초국가 단위에서 행해짐을 뜻합니다. 


제가 세번째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인 요소입니다. 사람들이 유로존의 취약성과 유로존의 위기를 이야기 할때마다, 그들은 유로존에 투입된 정치적자본의 양을 과소평가 하고 있습니다.(underestimate the amount of political capital that is being invested in the euro.)


우리의 의무 한도내에서,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을 지키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Within our mandate, the ECB is ready to do whatever it takes to preserve the euro. And believe me, it will be enough.)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Mario Draghi는 이 연설을 통해 중요한 사항을 2가지 이야기하였다. 


첫번째는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약한 통합이 아닌 더 강한 통합"(the only way out of this present crisis is to have more Europe, not less Europe.) 이라는 것. 


두번째는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을 지키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다"(Within our mandate, the ECB is ready to do whatever it takes to preserve the euro.)는 것.


       


실제로 기념비적인 이 연설이 행해진 직후,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는 하락하며 안정세를 찾았다. 이 연설은 유럽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역할'을 선언함과 동시에 '유로존을 지키기 위한 유럽의 의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2015년 현재에도 그리스를 제외하고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 이탈리아 등의 경제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더 강한 통합'(more Europe)을 위한 논의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만약 유로존이 깨지게 된다면, 지금까지 벌어졌던 중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간의 갈등은 '경제이론을 무시한 유럽통합의 꿈이 무너지는 과정' 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몇년 뒤에 경제위기가 완전히 극복되고 진정한 유럽의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갈등은 그저 '유럽통합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으로 남을 수도 있다.    


<Financial Times> 기자인 John Thornhill는 2015년 8월 3일 기사를 통해 "European federalism is not dead yet" 라고 말한다. 2015년 그리스 사태는 유럽연방의 꿈을 깨뜨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유럽경제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재정동맹(fiscal union)을 통한 더 강한 통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1.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2.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3.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4.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8 [본문으로]
  5.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글에서 '위험감소냐, 위험분담이냐 -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 · 구제금융 방지 조항' 파트. http://joohyeon.com/228 [본문으로]
  6.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7. '[긴축vs성장 ③]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2013.04.19 http://joohyeon.com/145 [본문으로]
  8. 'Germany’s Destructive Anger'. NYT. 2015.07.15 [본문으로]
  9. 'Greece’s Alexis Tsipras faces Syriza rebellion over ‘humiliation’. FT. 2015.07.14 [본문으로]
  10.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8 [본문으로]
  11. Verbatim of the remarks made by Mario Draghi Speech by Mario Draghi, President of the European Central Bank at the Global Investment Conference in London 26 July 20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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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Posted at 2015. 7. 30. 20:26 | Posted in 경제학/2010 유럽경제위기


※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범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



[유럽경제위기 시리즈]를 통해 누차 말했듯이,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Optimum Currency Area Criteria)[각주:1] 충족시키지 못한채 출발하였다. "일단 유로존이 출범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립조건을 충족시켜 나갈 것이다"라고 믿었던 최적통화지역 내생성(Endogeneity of OCA)은 현실화 되지 않았다. 



유로존 출범 이후 누적되어온 독일 등 핵심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와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주변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 즉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imbalance)[각주:2]은 최적통화지역 이론에 위배된채 출범한 '유로존의 근본적 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로존을 범위로 하였을때 유로화 그 자체는 변동환율이 적용되지만, 유로존에 속한 개별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에만 맞추어 유로화 통화가치를 조정할 수 없다. 이는 곧 별국가에서 대외불균형이 발생했을때 환율변동을 통한 균형조정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로존 소속 개별국가들은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상실'하였다. 만약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독자적인 중앙은행을 보유했더라면, 외환시장 개입을 통하여 환율을 인위적으로나마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로존 전체를 관할하는 유럽중앙은행(ECB)만을 보유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한 환율개입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고정환율제 · 독자적인 중앙은행 상실이라는 결함을 유로존이 가지고 있더라도, 개별국가들이 경기변동 동조화를 보이거나 상품가격·임금 신축성 등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충족시켰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유럽 핵심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흑자를 혹은 주변부 국가들만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유로존에 속한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 혹은 경상수지 적자를 공통적으로 기록했다고 가정해보자. 유로존 소속 국가들 모두가 경상수지 흑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상승하고, 모두가 경상수지 적자라면 유로화 가치가 자동적으로 하락한다. 유로존은 유로화 환율 변동을 통해 대외균형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유럽 주변부 국가들이 상품가격·임금 신축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경상수지 적자 발생시 상품가격·임금 하락을 통해 교역조건을 개선하여 경상수지 균형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리를 하면, 유로존이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경기변동이 동조화' ·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상품가격 · 임금 신축성 보유' 등의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만족시켰어야 했다.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이 교정되지 않고 지속되어왔다는 사실은 '최적통화지역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는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드러내고 있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은 경제위기 진행와중에도 문제를 일으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전체를 관할하는 중앙은행이다. 만약 유로존 전체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면 적극적으로 확장적 통화정책을 구사했을테지만, 유로존 일부지역에서만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지 몰라서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확장적 통화정책은 위기 발생 지역에는 이점을 가져다주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는 인플레이션만 불러오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계속해서 논쟁이 펼쳐질 수 밖에 없었다[각주:3]. 독일은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기보다, 주변부 국가들이 재정지출을 줄여서 부채를 상환하기를 원했다. 주변부 국가들은 독일의 이러한 요구에 반발했고 그와중에 유럽경제위기는 더욱 더 심화되었다.



여기에더해, 나머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인 'region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 '재정통합'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 또한 유럽경제위기가 커지는데 일조를 했다. 


유럽경제위기는 '경상수지 불균'이 누적된 상황에서, 미국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유럽은행이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타격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자산손실을 입은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주변부 국가들은 구제금융을 금융부문에 투입하였다. 그 결과, 유럽 주변부 국가들에서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하였다. 유럽의 은행위기(Banking Crisis)가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가 된 것[각주:4]이다.


만약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인 'region간 자유로운 노동이동' · '재정통합'을 유로존이 충족시켰더라면, 유럽은행위기는 재정위기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번글에서는 이러한 2가지 조건을 중심으로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original flawed design of the euro)인 '재정동맹(fiscal union)  은행동맹(banking union) · 자유로운 노동이동(free labor mobility) 없이 출범한 유로존'을 살펴볼 것이다.



  

※ 자유로운 노동이동과 재정동맹 · 은행동맹의 중요성

- 미국과 유로존의 유사점과 차이점


'재정동맹'(fiscal union)이란 간단히 말해 '같은 통화를 공유하는 국가간에 재정이전(fiscal transfer)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이러한 상태는 다시 여러 층위로 구분할 수 있다. 한 국가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했을때 다른 국가들이 단순히 '채무공동보증'(joint guarantee)을 서주는 경우 · 여러 국가들이 안정화기금 등을 평소에 공동으로 적립하고 위기가 발생했을때 이를 사용하는 경우(stabilization fund) · 한 국가에서 세입이 부족한 다른 국가로 직접적인 재정이전을 해주는 경우(fiscal equalization) · 아예 연방정부를 만들어 연방재정을 운용하는 경우(fiscal federalism) 등이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니 쉽게 생각하자. '재정동맹'(fiscal union)은 현재 미국을 생각하면 된다. 여러 주들로 구성된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세금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한다. 하지만 유로존은 연방정부가 존재하지 않고 각 국가들이 재정을 관리한다. 



미국과 유로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더 알아보자. 


미국은 여러 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각 주들의 GDP는 중소국가의 GDP에 맞먹고 독자적인 주 헌법도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주들은 '달러화'를 같이 공유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을 '독립적인 각 주들이 통화동맹을 구성한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점에서 미국과 유로존은 유사하다. 유로존의 독일 ·  프랑스 · 그리스 · 스페인 등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 텍사스쿠 · 펜실베니아주 · 마이애미주로 대응해서 생각하면 된다.  


미국과 유로존 간에는 이러한 유사점과 함께 차이점도 존재한다. 


첫번째 차이점은 '미국은 각 주들간의 노동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유로존은 소속 국가들간의 노동이동이 비교적 힘들다'는 점이다. 미국인은 캘리포니아주를 떠나 뉴욕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세금을 거두고 이를 각 주에 배분한다. 하지만 유로존 소속 국민들은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가 비교적 어렵다. 정치구조, 문화 등이 완전히 다른나라로 이민을 가는 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미국은 연방재정이 존재하고 유로존은 개별국가들이 재정을 독자적으로 운용한다'라는 것이다. 미국은 각 주들이 독자적인 재정도 운용하지만, 연방정부가 각 주에서 세금을 거두고 배분한다. 미국의 주들은 같은 나라 국민들끼리 재정을 공유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이에반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통화를 공유하지만 재정만큼은 국가단위에서 운용하고 있다. 세금의 수입·지출 관리는 국가의 주권(sovereignty)과 관련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은행안정을 담당하지만, 유로존은 개별국가가 은행을 관리한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은행감독을 실시하고 있으며, 한 주에 위치한 은행이 파산위험에 처한다면 연방정부 차원에서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한다. 그러나 유로존은 개별국가에 위치한 은행감독 책임을 해당국가에 물리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에 위치한 은행 감독은 유로존 차원에서 담당하는게 아니라 그리스정부가 맡고있다. 또한, 개별국가 은행이 파산할 경우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 자금 투입은 금지되고 있다.(no bail-out clause)  


정리하면, 미국은 통화동맹을 이룸과 동시에 재정동맹 · 은행동맹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노동이동도 자유롭다. 하지만 유로존은 통화동맹은 이루었으나 재정동맹 · 은행동맹이 없고 노동이동이 비교적 어렵다.   


미국과 유로존의 이러한 차이점은 경제위기 발생 이후 대응에서 큰 차이를 초래한다. 


첫째, 미국은 한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노동이동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는 경기상황이 비교적 좋은 다른 주로 이동하여 실업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로존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유로존내 특정국가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때 해당국가 국민은 경제상황이 비교적 좋은 다른나라로 쉽사리 이동하지 못한다. 말그대로 다른나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침체가 발생한 국가의 실업문제는 심화된다.  


둘째, 미국의 한 주에서 은행위기가 발생한다면 연방정부 차원에서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하여 위기를 조기에 진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평소 연방정부 차원에서 미국내 은행들의 거래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위기 자체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내 한 국가에서 은행위기가 발생한다면 그건 그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여기에더해, 유로존 차원의 은행감독 부재는 은행위기를 예방하지도 못한다. 유로존 성립 이후 금융통합이 심화되어 유럽은행들은 유로존내 국경을 뛰어넘는 거래(cross-border transaction)를 많이 하고있지만, 유로존 차원의 은행감독은 부재하고 개별국가의 감독책임만 있다. 결국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자신들 나라에 위치한 은행이 다른나라 은행과 어떠한 거래를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은행위기를 예방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셋째, 미국은 한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때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만약 경기침체가 발생한 주의 재정상태가 좋지않더라도, 연방정부의 재정이 집행되기 때문에 안정화정책이 용이하게 실시될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은 특정국가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그 국가가 재정정책의 부담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해당국가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면, 경기침체에 대응한 재정지출 증가는 재정상태를 더욱 더 악화시킨다. 


더욱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각주:5]하자.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쓸 수 있는 안정화정책은 재정정책 뿐이다. 경제위기 발생 이전부터 재정정책이 모든 부담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재정상태가 좋지않더라도,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재정정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경기침체를 겪은 국가가 재정지출 증가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상황' + '안정화정책 수단으로서 재정정책만이 남은 상황'으로 인해 경제위기가 지나간 후 남은건 '재정적자 심화'와 '국가부채 증가'이다.           


미국은 '성공한 통화동맹' 이다. 특정 주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때 '노동이동'과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연방 차원의 은행감독'을 통해 은행위기를 예방할 수도 있다.


반면 유로존은 (현재로서는) '실패한 통화동맹'이다. 특정 국가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했을때 '노동이동의 경직성'은 실업문제 해소를 어렵게 만든다. '개별국가가 재정정책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경제위기 이후 남은건 급증한 국가부채이다. 또한, '은행감독 책임이 개별국가에' 있기 때문에, 은행위기 예방도 불가능하다. 


유로존 결성 이전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예상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미국과 유럽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며, '유로존의 근본적결함'(the flawed original design of the euro)을 예상했다. 



   

※ '노동이동 경직성'이 존재하고 '재정이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통화동맹을 구성한다?


유로존 결성 이전부터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지적해온 대표적인 경제학자는 Martin Feldstein · Barry Eichengreen · Paul Krugman 등이다. 이번글에서 Paul Krugman의 논문을 통해 '노동이동' · '재정이전'의 중요성을 알아보자.


Paul Krugman은 1993년 논문 <Lessons of Massachusetts for EMU>(<유럽통화동맹을 위한 매사추세츠 주의 교훈>)을 통해, "유로존이 통화동맹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노동이동과 연방재정(Federal Budget)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한다. Paul Krugman의 논리를 따라가보자.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유로존 결성 이전, 그리스에 상품을 판매하려는 기업은 그리스에 위치해야 했다. 상품의 운송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존 도입 이후 국가간 무역거래비용은 감소(reduction of transaction cost)되고, 이제 기업은 그리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상품을 생산한 뒤 운송을 해도 이윤이 남는다. 


이제 기업들의 입지결정이 달라졌다. 굳이 여러 국가에 생산공장을 둘 필요가 없다. 유로존 도입 이후 기업들은 '외부규모의 경제 효과'를 보기위해 특정국가 한 곳에 모여서 제품을 생산[각주:6]하기 시작했다. 어떤 국가에는 A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또 다른 국가에는 B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몰려든다. 그 결과, 유로존 도입 이후 국가별 특화(regional specialization)가 심화되고 유로존 소속 국가내 산업다양화는 줄어들것이다(being less diversified).     


국가별특화 심화와 산업다양화 감소는 경제위기 발생시 비대칭적 충격을 심화시킨다. 만약 A산업 공장이 여러 국가에 골고루 위치해 있을때 A산업 수요가 줄어든다면 여러 국가가 동시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A산업 공장이 한 국가에만 집중되어 있을때 수요가 감소한다면 그 한 국가에만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즉, 유로존 결성 이후에는 '특정국가에 집중된 위기가 발생할 위험'(a greater risk of severe region-specific recessions.)이 높아진다.


'경기변동에 대한 대칭적충격'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 중 하나[각주:7]임을 기억하자. 결국 유럽통화동맹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다른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인 '자유로운 노동이동'이 만족된다면 경제위기는 해결될 수도 있다. 경기침체가 발생한 국가의 국민이 다른 국가로 이동하면 실업은 해결된다. 


문제는 '자유로운 노동이동을 통한 실업감소가 상당히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과 '국민이 다른국가로 이동하면, 경제위기 이후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발생 이후 노동이동이 즉각적으로 발생하면 실업은 단시간에 해결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이동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기(not instantaneous)때문에, 경제위기 발생 이후 몇년간 실업은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이 경우 해당국가가 재정정책을 집행하여 실업문제를 빨리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는 재정정책을 집행할 유인이 없다. 왜일까? 


실업상황에 빠진 국민들은 느리게나마 다른 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나간 후 해당국가의 경제활동인구(labor force)는 크게 감소할 것이다.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생각하자. 경기침체가 해결된 이후 생산량의 침체갭(recessionary gap)은 없어질테지만 잠재성장(potential growth) 자체는 하락하고 만다. 어차피 잠재성장이 줄어들텐데 재정지출을 늘려서 실업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지출 증가는 단지 국가부채 증가만을 초래할텐데 말이다.


Paul Krugman은 '자유로운 노동이동은 생산량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쳐서 재정정책 사용을 방해한다."(in an environment of high factor mobility such shocks will tend to have permanent effects on output, which will tend to immobilize fiscal policy as well.) 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이처럼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는 재정정책을 쓸 유인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연방차원에서 재정정책을 구사해주어야 한다" 라고 말한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역할을 해주고 있고, 유로존에도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시스템'(a highly federalized fiscal system)가 필요할 것이다. 


(주 : 한 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전형적인 케인즈주의자(old-Keynesian) 라는 점이다. 그는 "실업과 경기침체는 빨리 해소되어야 한다."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노동이동을 통한 실업감소가 느리게 이루어질 동안 연방정부가 재정정책을 구사해야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재빠른 경기침체 감소'를 중요하게 생각치 않는 경제학자라면 이러한 주장을 펼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자 John Cochrane은 전형적인 케인즈주의자들이 펼치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각주:8].)


유로존이 결성되기 한참 이전인 1993년에 이러한 논문이 나왔으나, 모두 알다시피 2015년 현재에도 유로존은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시스템'이 부재하다. 


유럽재정위기로 시끄러웠던 2012년, Paul Krugman은 새로운 논문을 통해 '1993년에 했던 이야기'를 되짚는다. 2012년 논문 제목은 <Revenge of the Optimum Currency Area>(<최적통화지역의 역습>). 제목부터 심상치않다;



  • 플로리다 주와 연방정부 간의 관계

  • Revenue paid to DC : 플로리다 주가 워싱턴DC, 즉 연방정부에 낸 세금

  • Special unemployment benefits : 플로리다 주가 연방정부에게서 받은 실업보험 액수

  • Food stamps : 플로리다 주가 연방정부에게서 받은 일종의 사회안전망 액수


Paul Krugman은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사례를 통해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보여준다. 2008 금융위기의 여파로 플로리다 주 부동산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플로리다 주가 경기침체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플로리다 주는 미국 연방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자동안정화장치가 작동하였고, 플로리다 주는 연방정부에 세금을 덜 바쳤다. 2007년 연방정부에 납부한 플로디다 주의 세금은 136 Billion(약 136조원)이었으나, 2010년 액수는 111 Billion(약 111조원)에 불과했다. 무려 25 Billion(약 25조원)이나 감소하였고, 감소분만큼 플로리다 주에 쓰일 수 있었다.


플로리다 주가 받은 더 큰 도움은 연방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재정이전(fiscal transfer)을 받은 것이다. 실업보험 · 푸드스탬프 등 사회안전망 프로그램 차원에서, 플로리다 주가 경기침체 발생 이후 연방정부로부터 받은 액수는 무려 7.9 Billion(약 8조원)에 달했다. 이는 경제위기 이전과 비교하여 6.6 Billion(약 6.6조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실증사례를 통해, Paul Krugman은 '통합재정'(fiscal integration)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통화동맹이 '최적통화지역'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통합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처음부터 '재정동맹'을 성립조건 중 하나로 요구해왔고, 이를 무시한채 출범한 유로존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최적통화지역에 관해 말해왔던 모든 것을 무시한채 유로존이 만들어졌습니다. 단일통화 사용 그 자체가 초래하는 문제를 약하게 말한 것만 빼면, 불행하게도 최적통화지역은 절대적으로 옳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최적통화지역 이론이 반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The creation of the euro involved, in effect, a decision to ignore everything economists had said about optimum currency areas. Unfortunately, it turned out that optimum currency area theory was essentially right, erring only in understating the problems with a shared currency. And now that theory is taking its revenge.)


Paul Krugman. 2012. <Revenge of Optimum Currency Area>. 447  



  

※ 위험감소냐, 위험분담이냐

-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 · 구제금융 방지 조항


그렇다면 유로존 출범 당시, 왜 유럽 정치인과 관료들은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을 말해온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던 것일까? 유럽 관계자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채 유로존을 출범시킨 것은 아니다. 그들은 멍청하지 않다. 다만, 경제학자들과 다른 접근법을 취했을 뿐이다.


Paul Krugman을 포함하여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가 발생할때'를 상정해놓고 '재정통합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는 경제위기가 발생할시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럽 관계자, 특히 독일은 위험분담 보다는 애초에 위험을 감소(risk reduction)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유로존 소속 국가가 평상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한다면 위기발생 가능성 자체가 감소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유로존은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소속 국가들에게 일정한 기준(convergence criteria)을 유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나 강조되는 기준은 안정성장협약(the Stability and Growth Pact)으로 체결된, '재정적자 3% 이내' ·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60% 미만' 등의 '엄격한 재정규율준수'(fiscal discipline) '경기침체 발생 국가에 대한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 금지'(no bail-out clause)이다.


이러한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fiscal discipline)와 '구제금융 금지'(no bail-out clause)는 '위험을 감소'(risk reduction)시키는 것 외에 또 다른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유럽중앙은행(ECB)의 인플레이션 발생 욕구 억제이다. 만약 유로존 소속 한 국가가 재정적자를 운용한 결과 경제위기에 처할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은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위기발생 국가 채권을 매입해줄 압력을 받게된다(inflationary debt bail-out). 이럴 경우 유로존 전체의 인플레이션 안정이 깨지게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재정건전성 유지가 중요하다.  


둘째, 유로존 국가간 채권금리 인상 파급효과(cross-border interest rate spillover) 방지이다. 만약 한 국가가 재정을 방탕하게 운용하여 채권금리가 상승할 경우, 그 국가의 채권금리 인상은 여러 파급경로를 통해 다른 국가의 채권금리도 상승시키게 된다. 그 결과, 유로존 전체의 채권금리가 상승하게 되고 이는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개별 국가들이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여 다른 국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유로존 국가간 정책 공동화(policy coordination) 추구이다. 누차 말했다시피, 유로존 소속 국가들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 모든 국가가 단일한 통화정책을 영향을 받는 가운데, 재정정책은 각기 다른방향으로 유지될 경우 통화정책과의 공조가 깨지게된다. 또한, 유로존 소속 국가들간의 공조도 흐트러진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위해 개별국가에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를 요구하였다. 


넷째, 정을 방탕하게 운영하는 국가의 무임승차(free-ride)와 도덕적해이(moral hazard) 방지이다. 만약 재정적자를 기록해서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를 유로존이 도와줄 경우, 재정을 건실하게 유지해온 국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 또한, 구제금융을 상설화할 경우 굳이 재정규칙을 엄격하게 지킬 유인이 사라진다. 무임승차와 도덕적해이를 막기위해서는 구제금융 금지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위험감소 정책은 평상시 유로존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유로존은 경제위기 대응책 보다는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역사적경험으로 인해 '재정적자' · '정부부채' ·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싫어하는 독일[각주:9]은 이러한 조건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문제는 경제위기가 발생할 시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가 오히려 위기를 키운다는 점이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말했다시피, (애초부터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문제였던 그리스를 제외하고) 유럽경제위기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로부터 시작되었다. '구제금융 금지'로 인해 유로존 주변 국가들은 자국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모두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증가하였는데 '재정규율'을 지키기 위해서 긴축정책(austerity)을 시행하라는 요구[각주:10]가 들어왔다. 경기침체시 재정정책의 승수는 매우 크기 때문에[각주:11], 재정규율을 준수하기 위한 긴축정책은 위기를 심화시켰다.


분명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fiscal discipline)와 '구제금융 방지'(no bail-out clause)는 경제위기 발생 위험을 줄이기(risk reduction) 위해 꼭 필요한 조항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유로존 차원에서 위험을 분담(risk sharing)하는것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였다. 


만약 미국처럼 유로존 차원의 '연방재정'(federalized fiscal system)이 존재했더라면 위기에 대응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유로존차원에서 각국 은행들의 대외거래(cross-border transactions)를 감독할 수 있었더라면 은행위기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이동이 자유로웠더라면 주변부 국가들의 실업문제는 비교적 빨리 해결됐을 수도 있다. 



  

※ 유로존 - 서로 다른 나라들끼리 뭉쳐진 통화동맹


유로존은 경제위기를 겪은 이후 '유로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는다. 


비교적 손쉽게 이루어지는 개혁은 '은행동맹 결성'(banking union) 이었다. 은행들에 대한 감독과 감시를 개별국가에 맡기는게 아니라, 유로존 차원의 감독을 통해 금융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개혁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재정동맹'(fiscal union)과 '자유로운 노동이동'(free labor mobility)이다. 이제 경제위기를 겪고 난 뒤의 교훈으로 유로존 차원의 연방재정을 만들어야 할까? 그리고 경기침체를 겪은 국가를 다른 국가들이 도와줘야 할까? 마지막으로,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다른 나라 국민들이 이주해온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까?


최적통화지역 이론상으로는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미국과는 달리 유로존은 '서로 다른 나라들끼리' 뭉쳐진 통화동맹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유럽'을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진행된 유로존은 역설적으로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통합' 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국가에 바친 세금을 다른나라 국민을 위해서 쓴다?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나라의 예를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바친 세금을 일본이나 중국을 위해 쓴다? 이것을 받아들일 한국인은 얼마 없을 것이다. 재정은 나라의 주권(sovereignty)과 관련된 사항이다. 노동이동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정치 · 문화 · 생활방식을 가진 다른나라 국민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이민(immigration)은 언제나 민감한 주제 중 하나였다. 


이러한 갈등은 2015년 현재 '그리스 경제위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독일인들은 빌린 돈을 갚지 않는 그리스인을 비난[각주:12]한다. 반대로 그리스인들은 구제금융 조건으로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독일인들을 비난[각주:13]한다.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 등 유럽 중심부 국가가 옳으냐, 부채탕감과 재정이전을 요구하는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 유럽 주변부 국가가 옳으냐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엄격한 재정규율 준수와 구제금융 금지는 위기를 심화시키지만, 그것이 없다면 무임승차와 도덕적해이 문제가 발생한다. 경기침체기의 긴축정책은 경제성장을 훼손시키지만,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부채를 감축해야 한다. 


단지 "유럽인들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서로 다른 나라끼리 단일통화를 공유하는 유로존의 근본적결함을 보여준다."라는 해석만 할 수 있을 뿐이다.



  1.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27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2.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2015.07.30 http://joohyeon.com/225 [본문으로]
  3.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28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4.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2015.07.27 http://joohyeon.com/226 [본문으로]
  5.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2015.07.28 http://joohyeon.com/227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2015.07.30 http://joohyeon.com/218 [본문으로]
  7.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2015.07.30 http://joohyeon.com/224 [본문으로]
  8. 'Mankiw and Conventional Wisdom on Europe'. 2015.07.28 http://johnhcochrane.blogspot.kr/2015/07/mankiw-and-conventional-wisdom-on-europe.html [본문으로]
  9. 'Germany's hyperinflation-phobia'. 2015.11.15 The Economist [본문으로]
  10. '[긴축vs성장 ③]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2013.04.19 http://joohyeon.com/145 [본문으로]
  11. '[긴축vs성장 ①]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2012.10.20 http://joohyeon.com/114 [본문으로]
  12. 'Germany’s Destructive Anger'. NYT. 2015.07.15 [본문으로]
  13. 'Greece’s Alexis Tsipras faces Syriza rebellion over ‘humiliation’. FT. 2015.07.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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