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과 해결책에 관한 논점들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과 해결책에 관한 논점들

Posted at 2014.11.02 18:52 | Posted in 경제학/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김우중의 항변


지난 8월,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은 회고록을 출판하면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정부의 위기수습정책을 비판한다. 경제관료들에 의해 대우그룹이 억울하게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IMF가 자금지원 조건으로 내건 구조조정을 철저히 이행하려는 관료들의 생각과 수출을 늘려 외환위기에서 벗어나자는 본인의 주장이 충돌해 갈등이 깊어졌고, 그 결과 대우그룹이 김대중정부 경제팀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말한다.


김 전 회장은 이 책에서 대우그룹이 경제관료들에 의해 억울하게 해체됐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그 결과는 한국 경제에 막대한 피해로 돌아왔다고 진단했다. (...)


책에는 DJ가 김 전 회장의 의견을 듣고 보류하거나 기각하는 정책이 생겨나면서 관료들의 반감이 시작됐고, 특히 김 전 회장의 생각이 ‘IMF 식 구조조정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관료들의 생각과 달리 ‘수출을 늘려 IMF를 벗어나자’는 쪽이어서 갈등이 깊어졌다는 장면들이 묘사돼 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며 대우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고 김 전 회장은 말한다. 한 예로 김 전 회장은 대우자동차에 GM의 투자를 받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것을 관료들이 막았다고 했다. (...)


'김우중 15년만의 고백 "DJ 경제팀이 뒤통수쳤다"'. <조선비즈>. 2014.08.21 


그러나 김우중의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는건 무리가 있다.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에서 다루었다시피,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과도한 차입을 통해 외형을 불리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그 결과 1997년 당시 국내 30대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518%에 달했다. 게다가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에서 다루었듯이, 당시에는 융감독체계가 미흡했고 회계공시제도 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우그룹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대우그룹은 회계부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보이도록 조작하였고, 1997 외환위기 이후에도 부채규모는 줄어들지 않았다1998년 당시, 금융감독원장을 역임하면서 외환위기 수습을 담당했던 이헌재의 회고록 『위기를 쏘다』(2012)를 통해 그때 상황을 알 수가 있다. 


대우가 진 수십조 원의 빚 중 절반 이상은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이었다. (...) 김우중 회장의 출국(해외도피) 직후 삼일회계법인은 대우그룹 예비 실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우중 회장이 십수조 원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내용이다. (224-226) (...)


1998년 9월, 금융감독위원회가 파악한 대우의 채무는 47조 7,000억 원에 달했다. 1년 새 19조 원이나 늘었다. 그것도 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으로 끌어당긴 돈이었다. (...)


1998년 11월 29일, DJ와 김우중 회장의 면담을 앞두고 강봉균 경제수석실이 만든 보고서였다. 대우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이자를 갚느라 번 돈을 다 쏟아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


대우가 해체된 건 시간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1999년 7월까지 대우는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다. 자산 매각이든 외자 유치든 5대 그룹 중 꼴찌였다. 1998년 5월 제출한 그룹별 구조조정 계획, 삼성 · 현대는 목표치의 100퍼센트 넘게, SK · LG는 90퍼센트 넘게 자구 노력을 달성했지만 대우는 고작 18.5퍼센트였다. (244-251)


삼성과의 빅딜마저 깨진 1996년 6월 말, 김 회장은 사면초가에 빠진다. 그때쯤 시장에 들려온 루머가 김 회장 음독설이었다. "7월 19일 전 재산을 내놓은 구조조정 계획도 시장에서 외면당하자 김 회장은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 채권단과 정부는 김 회장에게 '그만 손 떼라'는 메시지를 줬다. 김 회장은 궁지에 몰린 채 영국으로 출국했다. 이를 종용한 건 이기호 경제수석 라인이었다." (...)


일각에선 이런 루머를 근거로 지금껏 "DJ 정부가 대우를 죽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 허튼소리일 뿐이다. 대우그룹은 죽지 않았다. 워크아웃을 거친 대우 계열사들은 더 튼튼히 살아남았다. (...) 다만 대우라는 브랜드의 결속이 느슨해졌을 뿐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김 회장과 소액주주의 지분이 날아간 정도랄까. (...)


1999년 12월 실사 결과 대우의 총부채는 최대 89조 원, 자산은 59조 원으로 추산됐다. 당시 '인류 역사상 최대 파산'으로 기록됐다.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설마 지금도 김 회장이 그 돈을 다 빼돌렸다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중으로 사라진 건 아니다. 대우와 그 주변 많은 사람이 그 빚으로 산 꼴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와 그 후 수년간 이어진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은 이런 빚잔치의 대가였을지 모른다. (252-254)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224-254


당시 대우그룹이 저질렀던 회계조작과 과도한 차입은 기억하지 않고, 그저 '내 회사를 정부에게 뺐겼다." 라고만 인식하는 이 사업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 1997 외환위기 수습방법은 옳았는가?

- 일시적 유동성부족 vs 기초여건 부실

- 안정화정책 vs 청산주의


자신이 저질렀던 경제범죄를 부인하고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추징금도 내지 않고 있는 이 사업가는 잠시 머리에서 잊자. 우리는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과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원장의 주장을 통해 한 가지 생각할거리를 얻을 수 있다. 바로 '1997 외환위기 수습방법은 옳았는가?' 이다.


김우중과 회고록을 공동집필한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각주:1]는 당시 IMF가 자금지원조건으로 내건 혹독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비판한다. 그는 "김 전 회장은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한국경제가 오히려 나빠진다고 봤다. 당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국제금융기관이 한국경제를 관리 체제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김우중은 "IMF식 구조조정이 아닌 수출주도형으로 위기를 극복했으면 지금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4만달러 돼 있을 것. 한국 경제의 설비 투자는 2005년이 되어서야 1996년 투자 수준에 복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외환위기 수습을 담당했던 경제관료[각주:2]들은 "당시 다급했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조원동 당시 청와대 행정관(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미국의 경우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우면 통화를 찍어내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당시 돈을 풀었더라도 채권금융회사들이 돈을 빼가는 상황이어서 국가 디폴트(부도) 나는 상황으로 몰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강봉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구조조정을 철저히 한 덕분에 IMF를 극복[각주:3]할 수 있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했어도 우리 경제가 탄탄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이라 말하고,  김영재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은 "(김 회장은) 당시 시장 상황을 직시(直視)하는 게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김우중과 당시 경제관료들의 이러한 견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러한 차이는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일시적 유동성부족 문제'(illiquidity)로 보느냐, '당시 한국경제 기초여건의 부실과 지불능력부족 문제'(fundamental & insolvency)'로 보느냐의 차이이다.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일시적 유동성문제'를 강조하는 쪽은 "당시 부족했던 외화를 IMF 등으로부터 빌리기만 하면 됐을 뿐, 가혹한 구조조정은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경제의 기초여건은 탄탄했다." 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부실한 기초여건'을 강조하는 쪽은 "정경유착, 관치금융 등 그동안 한국의 낡은 경제적 모델이 문제를 일으킨 것[각주:4]이고, IMF가 내건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언젠가는 이행했어야 했다." 라고 반박한다.


어느 주장이 옳을까? 한국 · 전세계 경제학자들의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국경제 기초여건에 대한 구조조정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각주:5]" 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도 있고, "구조조정 자체는 필요했지만 경제위기 와중에 급박하게 이행될 필요는 없었다." 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한국의 낡은 경제적 모델이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재빨리 이행해야 했고, 덕분에 한국경제가 외환위기에서 빨리 회복될 수 있었다." 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1997 외환위기 원인에 대한 견해차이'에는 보다 근본적인 쟁점이 깔려있다. 바로, '균형에서 이탈한 시장이 얼마나 빨리 균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느냐' 여부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균형에서 이탈한 시장이 다시 균형으로 돌아가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경기침체로 인한 충격이 실업률 증가 등의 모습으로 경제주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정부나 중앙은행이 개입하여 경기충격을 완화시키는 '안정화정책'(stabilization policy)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또다른 경제학자들은 ① 시장이 자동적으로 균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② 균형으로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 ③ 인위적인 개입은 경기변동성을 키운다 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기적인 대책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경제위기를 계기로 구조적인 문제(structural problems)를 개선하여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청산주의'(liquidationism) 이라 한다.     


앞으로 몇차례의 글을 통해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 · 해결책에 관한 논점들을 자세히 다룰 것이다. (아마 내년 초에 글이 올라올 것 같습니다;;;)


  1. "김우중法, 한국이 낳은 세계적 기업가를 3번 죽여". <조선비즈>. 2014.08.26 [본문으로]
  2. 김우중 측 "DJ정부 구조조정 옳았나 따져보자". <조선비즈>. 2014.08.27 [본문으로]
  3. 개인적으로는 'IMF 극복' 이라는 용어사용을 싫어한다. 1997년 당시 한국이 겪었던 경제위기는 '동아시아 외환위기'이다. IMF는 부족한 외환을 빌려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물론, 외환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IMF가 내건 가혹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한국경제에 큰 악영향을 끼쳤고, 이런 맥락에서 'IMF 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본문으로]
  4. '캉드쉬 "외환위기 IMF 조치는 DJ 정책과 일치". 머니투데이. 2013.11.18 [본문으로]
  5. 좀 더 극단적으로 "IMF와 초국적자본이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라는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은 무시하자;;; [본문으로]
  1. 모르는것 많이 배워갑니다. 신장섭 교수가 낸 '아직도 세계는 넓다' 는 김우중씨 회고록이라기보단 인터뷰 모음인데, 읽어볼만 합니다. 위에 언급하신 이헌재씨 책의 주장에 대한 반론들도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외환위기때의 IMF 의 처방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잘못된 거였다고 IMF도 반복해서 인정했던 것 같습니다. 또 그때 해외자본에 국내 알짜 기업과 은행들을 덤핑으로 넘겨버리고 그걸 외자유치라고 칭찬하는 관료들은 국적을 바꿔야할 것 같습니다.
    • 2014.11.02 19:45 신고 [Edit/Del]
      '외환위기 수습방법'은 정말 민감한 주제인것 같습니다. 당시 IMF는 '후발국가를 대하는 태도'면에서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죠.

      가혹한 구조조정을 강제했다는 사실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과잉저축'을 초래했고, 이것이 '2008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다라는 주장도 많이 나왔습니다.
      →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금+특별인출권+IMF포지션+외환) 추이' http://joohyeon.com/163
      →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http://joohyeon.com/195

      그리고 당시 IMF는 '금융자유화와 개방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바라보는 측면이 강했으나, 요즈음 IMF는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은 불안정을 초래하니, 자본통제정책도 필요하다," 라고 입장을 바꾸었죠.
      → 'THE LIBERALIZATION AND MANAGEMENT OF CAPITAL
      FLOWS: AN INSTITUTIONAL VIEW'
      http://www.imf.org/external/np/pp/eng/2012/111412.pdf
      ---------

      그렇지만 1997년 당시에 "구조조정 정책이 아예 필요없었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경제학계 내에서는 어떤식으로 논의가 일어났는지를 차분하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2. indiz
    네 기대하겠습니다!
  3. 좋은 글 재밌게 읽고 많이 배워갑니다~
  4. 독자
    개인적으로 IMF의 역할을 긍정하는 건 외부 세력의 강압에 의한 구조조정이 아닌 이상에야 정치적으로 점진적인 구조조정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유럽에서 스페인,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트로이카 채권단의 감시 아래 구조조정을 수행했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지지부진 변명만 늘어놓을 뿐 변화가 없죠. 그리스는 워낙 막장 중의 막장이라 약간 예외의 경우이고...
    • 2014.11.02 23:07 신고 [Edit/Del]
      네. 저도 무작정 비판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단순히 '신자유주의', '초국적자본' 등의 수사를 써가면서 묘사하는건.... 상황이해를 방해하죠.
  5. 경제학 허접
    이번 수업 토론 주제인데 기대되네용 언제 올려주실지는 모르겠지만...ㅎㅎ
  6. 파라셀수스
    캉드쉬가 blessing in disguise라고 말했었지요. 엄청나게 짜증나는 말이지만, 일견 맞는 면도 있습니다. 그 축복 너의 나라가 당하면 어떨까?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 빼고는요.
    더 나아가, IMF 처방전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스스로 극약을 들이켰을까?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한은법 개정부터 시작해서 외환위기 전후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늘 실패에 부딪쳤지요. IMF 처방전이 필요없어도 됬다라는 주장은 마치 '자본주의 맹아론'같아서 신빙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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