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④] 달라진 세계경제 Ⅰ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Posted at 2019. 9. 4. 22:4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포용, 잠자던 용이 깨어나다


● 1992년 1월 18일 - 2월 21일, 덩샤오핑 남순강화(南巡講話, Southern Tour)


- 사진 출처 : 동아일보


덩샤오핑 남순강화 발언 : 


"중국이 사회주의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고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어떤 길을 가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동요하지 말고 계속 발전하고 인민의 생활을 계속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민들이 믿고 지지할 것입니다."


- 덩샤오핑 발언 출처 : '미국의 소리'


→ 덩샤오핑은 1979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론'을 제시하며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중국은 선전 · 주하이 · 산터우 · 하문 · 하이난 등 5개 지역에 경제특구(SEZ, Special Economic Zones)를 설치하여 외국인직접투자를 유치하였고, 연해지역을 중심으로한 경제발전계획을 세웁니다. 또한, 1986년 당시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 이었던 GATT에 재가입 의사[각주:1]를 내비치며 세계경제로 진출할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1989년 6월 천안문항쟁이 벌어지며 GATT 가입 논의는 중단되었고 중국은 다시 폐쇄시장의 길로 돌아서려 했습니다. 미국 등 서구는 중국의 정치 및 인권탄압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가입 논의를 일시중단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 1989년-1991년 동안 소련 · 동독 등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중국 내에서도 개혁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당원으로 돌아가있던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 Southern Tour)를 통해 개혁개방의 불씨를 다시 키웁니다. 덩샤오핑은 두 달에 걸쳐 주하이 · 선전 · 상하이 등 남부지방을 시찰하며 "중국이 사회주의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고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어떤 길을 가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라고 발언했습니다.


중국 장쩌민 주석은 덩샤오핑의 뜻을 이어 받아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시하였습니다. 장쩌민 주석은 1992년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수립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임기동안 경제특구신설 · 외국인투자 유치 · 무역관리체제 개혁 · 환율제도 개혁 · 관세율 인하 등 광범위한 경제개혁을 해나갑니다. 40%가 넘던 중국의 평균 관세율은 1992년과 1993년 두 차례의 관세인하를 통해 35.9%가 되었습니다. 


특히 1992년부터 미국과 중국 간 GATT 가입 협상이 급진전됨으로써 중국의 GATT 가입 지위 · 가입조건 · 의정서 초안 내용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중국은 1994년 12월까지 GATT 가입을 마무리하여, 1995년 1월에 출범하는 WTO에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 지적재산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며 WTO 가입은 미루어졌습니다. 


● 1995년 11월 19일, APEC 오사카 회담 : 장쩌민 주석, 대규모 관세 인하 계획 발표


장쩌민 주석 연설 :


"세계 인구 대다수가 살고 있는 개발도상국은 엄청난 발전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점점 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세계경제의 국제화 트렌드와 국내개혁에 힘입어서 발전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공을 위한 유일한 방식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기는 이러한 트렌드가 더 강해질 겁니다."[각주:2] (...) 


"개발도상국이 빈곤에서 벗어난 수십억 인구와 함께 번영하게 될 때, 전세계에 교역과 투자의 어마어마한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새로운 기술 및 산업을 위한 더 많은 시장이 앞으로 있을 겁니다. 또한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발전단계에 올려놓을 겁니다."[각주:3] (...)


"(1994년 인도네시아 보르고에서 열린 APEC 회담에서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목표로 제시한) 보르고 선언의 장기과제를 현실화 하기 위해서는 21세기까지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거대 협력 프로젝트는 세계경제 트렌드와 부합합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 필요에 도움이 됩니다. 보고르 회담 이후 우리 중국은 개혁을 심화하는 중요한 조치들을 시행해왔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중국이 1996년부터 전반적인 관세율 수준을 30% 정도 급격히 인하할 것임을 발표합니다. 이는 지역협력과 무역 및 투자 자유화 달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겁니다."[각주:4] 


- 장쩌민 연설 출처 : 중국 외교부


→ 1995년 11월 오사카에 열린 APEC 회담에서 중국의 WTO 가입논의가 다시 불붙게 되었습니다. 장쩌민 주석은 "나는 여기에서 중국이 1996년부터 전반적인 관세율 수준을 30% 정도 급격히 인하할 것임을 발표합니다" 라고 발언하며, WTO 가입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중국은 1996년 4월 1일부로 4,900여개 품목에 대해 관세율을 30% 정도 인하하였고, 그 결과 전품목 평균 관세율은 기존 35.9%에서 23%로 낮춰졌습니다. 1997년 10월 1일에도 추가 관세인하를 단행하였고 평균 관세율은 17%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장쩌민 주석은 1997년 11월 APEC 벤쿠버 회담에서 "2005년까지 공산품 수입 관세율을 10% 수준으로 인하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합니다.


이러한 개혁 덕분에 중국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WTO 가입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WTO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국들과 양자 무역협정을 맺은 뒤, 회원국들 중 2/3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따라서, WTO 가입 이전부터 시장개방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어야 했고, 특히 자유시장체제와 거리가 멀었던 중국에게 이는 더더욱 필요했습니다.


중국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WTO에 가입하려고 했을까요?


중국은 GATT · WTO 등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가입함으로써 단순히 교역량을 늘리는 것 이상을 얻고자 했습니다. 바로, 국내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맹약의 수단(commitment device) 입니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와 장쩌민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채택 이후 중국은 국내 경제개혁을 지속해왔으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 내부의 반발에 의해 언제든지 반전될 수 있었습니다. 장쩌민 주석 · 주룽지 총리 등 개혁파들은 개혁개방 흐름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 1997년 10월 27일 - 11월 3일, 클린턴 대통령 - 장쩌민 주석, 워싱턴 정상회담


- 사진 출처 :  'China.org.cn'


클린턴 대통령 발언 :


"중국과 미국 모두에게 무역은 성장을 위한 중요한 촉매제 입니다.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 판매에 있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내일 미국 보잉사는 중국과 역사에 남을 계약을 체결할 겁니다. 30억 달러에 달하는 제트기 50대 입니다. 이 계약은 수만개의 일자리를 미국에 만들 것이고 최신 여객기를 중국에게 제공할 겁니다."[각주:5]


"많은 미국 상품과 서비스는 여전히 중국 시장 접근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도 중국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은 중국이 WTO 체제에 들어가는 것에 가능한 모든 것을 할 겁니다."[각주:6]


장쩌민 주석 발언 :


"나는 클린턴 대통령과 중미 관계에 대한 심도 깊은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건설적이었으며 성과가 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과 나는 21세기를 지향하는 중미 관계의 발전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양측은 목표를 현실화 시키기 위한 노력이 양국의 이익과 세계 평화와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각주:7]


- 정상회담 기자회견 출처 : 미국 국무부 아카이브


● 1998년 6월 11일, 클린턴 대통령, 중국 방문 2주 전 성명발표


클린턴 대통령 발언 : 


"모두가 알듯이, 저는 2주 후에 중국으로 향합니다. 이는 최근 10년 내 미국 대통령의 첫번째 국빈방문이 될 겁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미국을 위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중국으로 갑니다."[각주:8] (...)


"어떤 미국인들은 우리가 중국을 고립하고 봉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비민주적 체제와 인권위배 그리고 향후 미국의 적이 될 중국의 능력을 저해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미국인들은 중국과의 상업거래 증대로 인해 필연적으로 중국이 더 개방적이고 더 민주적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각주:9] (...)


"중국을 고립시키는 선택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세계 속 우리의 친구와 동맹 조차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 (...) 더 중요한 점은, 관여 대신 고립을 선택하는 건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는 더 위험하게 만들 겁니다. 이는 아시아의 안정을 육성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강화시키기보다 훼손할 겁니다."[각주:10] (...)


"미국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개방된 글로벌 무역시스템에서 분명히 혜택을 얻고 있습니다. (...) 전세계 인구 1/4이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은 과거 20년 간 평균 10%의 성장을 해왔습니다. 향후 20년 동안,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보다 3배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므로 경제번영의 혜택을 얻고 책임을 공유하기 위하여, 중국을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통합되도록 하는 것은 명백히 미국의 이익에 부합합니다."[각주:11] (...)


"우리 미국은 인권과 자유에 관해 중국 지도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미국인이 답해야 하는 물음은 미국이 중국 내 인권을 지지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중국을 국제 커뮤니티와 글로벌 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자유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각주:12] (...)


"시간이 흘러, 나는 중국 지도자들이 자유를 받아들일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이 자유를 얻어야지만, 중국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화 시대에 국부는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창조하고 소통하고 혁신을 할 수 있는 능력. 중국인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발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오직 그래야만 중국은 성장과 위대함의 잠재력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각주:13]


"중국은 그들의 운명을 선택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 미국은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함으로써 중국의 선택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지 않고 국제 커뮤니티에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양국의 이익과 양국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이 안정, 개방, 비위협의 길을 따르도록 독려하는 최선의 방안이며, 자유시장과 정치적 다극화 그리고 법치주의를 포용토록 최선의 방안이며, 자유로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안정된 국제질서를 건설하는 최선의 방안입니다."[각주:14]


"이러한 모습의 중국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합니다. 이러한 모습의 중국이 21세기를 더 평화롭고 번영되게 만들겁니다"[각주:15]


- 클린턴 대통령 성명문 출처 : 미국 국무부 아카이브


→ 미국 클린턴행정부는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 중국을 환영했습니다. WTO 가입 논의 과정에서 여러 사안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하였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세계무역 시스템에 통합시킴으로써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각주:16]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중국 장쩌민 주석은 1997년과 1998년 양국을 오가며 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21세기를 지향하는 미중관계'를 추구하기로 합의합니다. 미국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중국에 전파할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거대한 중국시장이 미국기업들에게 큰 기회가 되며, 언젠가 중국 지도부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고, 중국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미국이 도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의 발언을 다시 보시죠. "중국경제를 개방함으로써 이번 협정은 미국 농민들과 근로자 그리고 기업들에게 전례없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겁니다", "중국을 국제 커뮤니티와 글로벌 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자유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 미국은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함으로써 중국의 선택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국을 고립시키지 않고 국제 커뮤니티에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양국의 이익과 양국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 1999년 4월 8일, 주룽지 총리, 미국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과 만남




주룽지 총리 발언 :


"클린턴 대통령이 WTO에 관해 말한 것에 응답하기 위해 여기 미국에 왔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이 WTO에 가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미국인의 이익에 맞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비록 중국이 큰 양보를 할지라도, WTO에 가입하는 것이 중국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각주:17]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를 원하고 국제 커뮤니티에 통합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중국은 게임의 규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중국은 양보 없이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양보는 중국 국영기업과 중국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다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우리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달성해온 것들 덕분에 중국은 이러한 충격에 맞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WTO 가입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충격이 가져다주는 경쟁은 중국경제를 더 급속하고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촉진할 겁니다."[각주:18]


- 주룽지 총리 기자회견문 출처 : 미국 백악관 아카이브


● 1999년 11월 15일, 미국-중국 양자 무역협정 체결


- "중국이 개방하다"(China opens up)

- 사진 출처 : <The Economist> 1999년 11월 20일 표지


클린턴 대통령 발언 :


"우리 미국과 중국은 지난 밤과 오늘 아침 11시간에 걸친 협상을 했습니다. 중국의 WTO 가입을 위한 협상을 미국과 중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음을 말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번 협정은 중국을 WTO에 가입토록 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발걸음이며, 미국과 중국 간 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발걸음 입니다."[각주:19] (...)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에게 좋으며 중국에게도 좋고 세계경제에도 좋습니다. 오늘 중국은 자국경제 개혁과 규칙을 위한 경제개방, 혁신, 경쟁 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 총리는 중국의 시장개방 의지와 공정무역 규칙 준수 의지를 진실성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중국경제를 개방함으로써 이번 협정은 미국 농민들과 근로자 그리고 기업들에게 전례없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겁니다."[각주:20]


- 클린턴 대통령 기자회견 출처 : 미국 국무부 아카이브 


→ 1999년 4월 미국에 방문한 주룽지 총리는 "경쟁은 중국경제를 더 급속하고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촉진할 겁니다" 라고 발언함으로써 국내개혁을 위한 맹약 수단으로 WTO에 가입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국과 중국은 1999년 11월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중국의 WTO 가입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중국 보수파들은 WTO 가입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비판하였지만, 주룽지 총리는 "비록 중국이 큰 양보를 할지라도, WTO에 가입하는 것이 중국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WTO 가입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에게 좋으며 중국에게도 좋고 세계경제에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큰 환영을 표시했습니다.


● 2001년 11월 11일, WTO 각료회의 : 중국의 가입을 공식적으로 승인

● 2001년 12월 11일, WTO 정식 회원국이 된 중국



2001년 11월 11일, WTO 회의에서 기존 회원국들은 중국의 가입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고, 한달 뒤인 2001년 12월 11일부로 중국은 WTO 정식멤버가 되었습니다. 1986년 GATT 재가입을 신청한지 16년만에 다자주의 글로벌 무역시스템으로 들어온 겁니다.


중국은 WTO 가입 이후에 경제개혁과 시장개방을 계속해서 이어나갔습니다.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장쩌민 주석은 ‘대개방을 통해 대개혁을 촉진한다(以大开放促大改革)’는 기본 원칙을 소개하였고, WTO 가입 약속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철폐를 단행해 나갑니다.

1947년 GATT에서부터 2001년 12월 WTO 가입까지 중국의 여정을 표를 통해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글로벌 무역시스템과 통합된 중국경제,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일으키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고도성장을 기록해나갔고 더 이상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중국이 글로벌 무역시스템에 통합되자 전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이 발생했습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경제가 세계와 통합된 이후, 중국경제와 세계경제 모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띄게 되었습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중국의 놀라운 경제발전과 이것이 전세계에 미친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그래프를 통해 알아봅시다.


◆ 2000년대 이후 중국의 놀라운 경제발전


▶ 중국의 고도성장과 빈곤 감소



1992년-2001년간  평균 10.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중국은 2002년-2007년에도 11.2%을 기록하며 고도성장을 이어갑니다. 2008 금융위기 이후로도 평균 8.1%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덕분에 중국의 1인당 GDP는 1992년 1,845 달러에서 2018년 16,097달러로 8배 증가했고, 전체 인구 중 하루 1.90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인구 비율은 1993년 56.6%에서 2015년 0.7%로 급감했습니다.


▶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 ① -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FDI Inflows)


  • 1979년~2018년, 중국의 연간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 (FDI Inflows)

  •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개방정책을 시작한 1979년 8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1992년 110억 달러 · 2002년 527억 달러 ·  2018년 1,390억 달러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 출처 : UNCTAD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에는 적극적인 외국인 자금유치가 있습니다. 덩샤오핑은 1979년 선전 · 주하이 · 산터우 · 하문 · 하이난 등 5개 지역을 경제특구(SEZ)로 지정하였고, 이후 연안지역에 특수목적 경제지구를 추가로 선정하면서 외국인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이들 지역에 자리잡은 외국기업에게는 외자지분 100% 허용과 소득세 면제 등을 제공하였고, 일부 품목 수입관세를 면제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특히 1992년 남순강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 목표를 수립한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FDI Inflows)이 크게 증가하였고,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다시 한번 급증 하였습니다. 위의 그래프에 나오듯이,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덩샤오핑이 개방정책을 시작한 1979년 8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1992년 110억 달러 · 2002년 527억 달러 ·  2018년 1,39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 ②  - 투자를 통한 자본축적



중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 자금은 주로 경제발전을 위한 물적자본 축적에 쓰였습니다. 경제성장은 공장설비 · 기계 등 물적자본(physical capital) 축적을 의미[각주:21]하며, 자본축적을 위해서는 저축과 투자가 필요[각주:22]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국내저축을 통해 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하였고, GDP 대비 투자 비중은 2000년 34.9%에서 2011년 48.0%로 급증합니다. 특히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크게 늘어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족 :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과잉투자 였는데, 당시 한국의 GDP 대비 투자 비중은 약 38% 수준이었습니다. 미국은 약 15%~20% 수준입니다. 이를 비교하면 중국이 얼마나 많은 투자를 단행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중국의 고도성장 비결 ③ - 교역증대



이렇게 자본을 축적해나간 중국은 엄청난 양의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를 전세계에 공급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수출입 액수는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1992년 중국의 연간 수출액은 856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02년 3,258억 달러 · 2008년 1조 4,288억 달러 · 2017년 2조 2,80억 달러로 급증하였습니다. 


◆ 중국의 경제발전이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


▶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의 변화


  • 2001년과 2018년, 전세계 GDP에서 미국과 중국 등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왼쪽 : 2001년 미국(31%) · 중국(4%)

  • 오른쪽 : 2018년 미국(24%) · 중국(16%)

  • 출처 :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WTO에 가입한 이후 중국은 세계경제를 이끄는 축으로 올라섰습니다. 전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4%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16%로 크게 늘어나며, 세계경제에서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였던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우며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 세계를 위한 소비시장이 된 중국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자 거대한 시장이 되었습니다. 2018년 중국 전체 1인당 GDP는 16,097달러로써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지만, 베이징 · 상하이 · 광저우 · 선전 등 1선 도시는 30,000~40,000 달러에 달하며 이곳의 인구수는 약 7,000만명 입니다. 이들 도시의 광역권과 새로 1선 도시에 편입된 곳을 고려할 때, 중국의 시장규모는 단순히 전체 1인당 GDP로 추산할 수 없습니다.


중국 시장 확대를 보여주는 사례가 유럽의 자동차 수출 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유럽산 자동차의 수출액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유럽산 자동차의 대중국 수출액이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2010년대 들어서는 미국보다 중국에 수출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 세계 상품교역 규모의 증가



중국경제가 전세계 생산공장과 소비시장 역할을 맡게 된 결과, 2000년대 들어 세계 상품교역 규모는 크게 늘어났습니다. 전세계 수출액은 2001년 약 6조 달러에서 2017년 약 17조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글로벌 교역붐 속에서 한국의 조선 · 기계장비 등 중공업은 큰 수혜를 누렸습니다.


▶ 글로벌 원자재 호황과 신흥국의 성장



2000년대 중국은 전세계 원자재를 흡수하였습니다. 막대한 투자를 통해 물적자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원자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수요로 인해 석유 · 철강 · 금속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크게 올라갔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2000년대 글로벌 상품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 시기를 '글로벌 상품 호황'(Global Commodity Boom) 이라 부릅니다. 


상품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원자재를 주로 수출하는 개발도상국 경제도 호황을 누렸습니다. 브라질 · 러시아 · 호주 · 중동 경제는 좋은 시기를 보냈고, '신흥국의 부상'(Emerging Economies)은 2000년대의 화두였습니다.


◆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 그 자체 그리고 ...


지금까지 여러 그래프를 보면서 느끼셨다시피, 산업생산 · 투자 · 교역 · 상품가격 모두 2000년대 들어서 가파르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세계경제 호황 이유에는 연준의 저금리 정책과 부동산 호황에 힘입은 미국경제도 있지만, 중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제발전이 전세계 교역 증대와 상품가격 인상에 끼친 영향은 독보적 이었습니다. 


이렇게 중국의 경제발전과 WTO 가입 그 자체는 세계경제에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가져왔습니다. 




※ 가공무역을 통해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그렇다면 왜 유독 '중국'의 경제발전과 WTO 가입이 세계경제에 어마어마한 파급영향을 가져와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로까지 불리우게 된걸까요?


개발도상국이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달성하는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1960~70년대 한국[각주:23]과 대만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한국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향해가는 동시에 유치산업보호를 통해 제조업을 육성했습니다. 한국은 스스로 제조업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수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무역자유화를 통해 교역량을 늘려나가는 것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1950~70년대 중남미의 참담한 실패[각주:24]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무역자유화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전달해주었고, 많은 나라들은 자유무역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1990년대 멕시코는 NAFTA[각주:25]를 체결하며 시장을 개방하였고,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APEC · 동남아국가들은 ASEAN 등 지역 무역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때, 중국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다른 개발도상국들과는 달랐습니다.


첫째, 중국은 13억의 인구를 가진데다가 중국인의 임금수준은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았습니다13억의 인구를 보유한채 잠들어 있던 개발도상국이 깨어나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 건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 이들의 임금수준은 동시대 멕시코의 3%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의 15%에 불과한 멕시코도 저임금 국가 소리는 듣는 와중에 중국의 임금수준은 더 낮았던 겁니다.


둘째, 중국의 독특한 경제발전 · 상품교역 방식 입니다. 바로, 외국에서 중간재와 자본재 부품을 수입해온 뒤 이를 단순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들고 수출하는 '가공무역'(Processing Trade) 입니다. 


가공무역으로 인해 중국은 '세계의 공장'(World's Factory)이 되었고 선진국 제조업 일자리는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무역 및 경제 구조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1990년대 중국의 가공무역,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를 상징


'가공무역'(Processing Trade)의 뜻을 다시 반복하면, 중간재 · 자본재 부품을 수입해온 뒤 이를 단순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든 후 다시 수출하는 교역방식을 의미합니다. 


"어떻게보면 모든 무역은 가공무역 아니냐?"라고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한 국가가 모든 종류의 원자재와 부품을 소유할 수는 없기 때문에,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한 뒤 완성품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가공무역은 다시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습니다. 바로,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fragmentation of production)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 영국 등 선진국은 제조업 상품을 수출하고 원자재 상품을 수입했습니다. 반대로 중남미 · 중동 등 개발도상국은 원자재 상품을 수출하고 제조업 상품을 수입했습니다. 즉, 20세기 초중반 교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North-South)에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Inter-Industry Trade)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수출품목과 수입품목은 국가의 기술수준과 보유자원에 따라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러한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이론이 리카도[각주:26]와 헥셔올린[각주:27]의 비교우위론 입니다.


이후 1970년대 말 서유럽과 일본이 전후 재건에 성공하면서 무역의 양상은 달라졌습니다. 미국 · 영국과 서유럽 · 일본은 모두 자동차 · 전자 등 제조업 상품을 수출하고 수입했습니다. 즉, 1970-80년대 전세계 교역의 상당수를 선진국과 선진국 간(North-North) 거래가 차지하였고 또 이들은 서로 동일한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Intra-Industry Trade)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국제경제학계를 지배(?)했던 것은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 입니다. 비교우위론이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면, 신무역이론은 '서로 비슷한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신무역이론은 서로 비슷한 국가들이라 할지라도 '동종 산업 내 다양한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 무역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비교우위론의 특화 개념보다는 신무역이론의 '차별화된 상품' 개념이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신무역이론이 비교우위론을 대체한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중국의 경제발전은 비교우위론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중국의 경제발전과 이에 따른 원자재 수요 폭증으로 신흥국들의 경제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 간(North-South)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상품을 교환(Inter-Industry Trade)하는 무역비중이 증가하였습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인 중국 간 교역 입니다. 


개방 초기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여 신발 · 의류 · 섬유 등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해온 중국은 1990년대 중반 들어서 컴퓨터 · 전자 상품 수출을 증가시킵니다. 이를 보고 "선진국도 제조업 수출, 개발도상국인 중국도 제조업 수출이면 동종 산업내 교역 아니냐?" 라고 물을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은 제조업 내 다양한 상품을 생산한 반면에 중국은 좁은 범위의 노동집약 상품만을 주로 생산했으며, 컴퓨터 · 전자 상품 생산과정에서 수입해온 선진국의 중간재(intermediate goods)를 단순조립(assemble) 하여 다시 수출(re-export)하는 역할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선진국의 이러한 교역 형태는 전통적인 비교우위론 및 신무역이론이 말하는 바와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엔 선진국과 동종 산업 상품을 교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상품생산에 기여하는 부분은 단순조립 뿐입니다. 그리고 비교열위 부품을 수입해온 뒤 조립하여 다시 재수출 하는 건 매우 독특한 교역형태 입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인 특화 개념 및 차별화된 상품 개념 대신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fragmentation of production) 개념을 고안했습니다. 이제 한 가지 상품을 생산하면서 어떤 국가는 설계와 디자인을 하고, 또 어떤 국가는 부품을 만들고, 또 다른 국가는 부품을 단순조립 하는 식으로 생산과정이 분절화 되었습니다. 


사족 :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는 '글로벌 밸류체인 쪼개기'(Slicing Global Value Chain) · '오프쇼어링'(Offshoring) · '중간재 교역'(Intermediate-Trade)로 부를 수 있습니다.


▶ 중국 무역의 상당부분을 가공무역 그리고 외자기업의 역할


어느 나라나 가공무역과 생산과정의 분절화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가공무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중국의 가공무역이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준 이유는 규모에 있습니다. 애시당초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무역 규모는 거대할 수 밖에 없을텐데, 여기에 더하여 중국 무역의 상당부분을 가공무역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1981년-2005년, 중국 일반 수입(Ordinary Imports)과 가공무역용 수입(Processing Imports) 규모와 총수입에서 가공무역이 차지하는 비중(Ratio of Processing Imports)

  • 출처 : Yu(2014)


위의 그래프는 1981년-2005년 중국 일반 수입(Ordinary Imports)과 가공무역용 수입(Processing Imports) 규모와 총수입에서 가공무역이 차지하는 비중(Ratio of Processing Imports)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일반 수입보다 가공무역용 수입이 더 많은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었고, 총수입에서 가공무역용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60%에 달합니다. 


  • 1992년~2005년, 중국 총수출 중 가공무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 출처 : Amiti, Freund(2010)


가용무역 용도로 수입을 했으니 완제품을 조립하여 다시 수출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중국의 총수출 중 가공무역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위의 표는 1992년~2005년, 중국 총수출 중 가공무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 55%나 차지함을 알 수 있습니다. 


  • 1992년~2019년, 중국 수출입 중 외자기업의 비중 추이

  • 출처 : 중국 관세청


이렇게 중국 무역에서 가공무역 비중이 상당한 건 정부의 정책 덕분입니다. 앞서 봤듯이, 중국정부는 경제특구를 지정하고 외국인 자금을 유치했습니다. 경제특구에는 외자기업(Foreign-Invested Firms) 설립을 허용되었고 '가공무역용 중간재 · 자본 부품 수입'에 대해 수입관세를 면제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외국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상품을 단순조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992년 이후 중국 수출입에서 외자기업이 행하는 비중은 최대 60%까지 증가하였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World's Factory) 되었습니다.


▶ 가공무역을 통해 수출품목을 정교화 시켜온 중국


  • 1992년 · 2005년 · 2007년, 중국 수출품목의 변화

  • 출처 : 중국 관세청


위의 그래프는 1992년 · 2005년 · 2007년 중국 수출품목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1992년 중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만든 의류 · 섬유 등 저숙련 노동집약적 상품 이었습니다. 이후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확대하면서 통신장비 · 전자상품 등 고숙련노동집약 및 자본집약적 상품을 주로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즉, 중국 수출품목은 시간이 흘러 정교화(sophistication) 되었습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의 생산성과 기술수준이 수출품목 변화와 동일하게 향상된 것은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계속 반복하지만, 국은 단순반복 조립(assemble) 업무에 치중하였고, 좋은 품질의 상품이 만들어진 건 미국 · 일본 · 한국 등 선진국에서 수입해온 중간재 덕분입니다. 중국에서 수출된 상품 중 중국 내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는 36%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지난글에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통계 측정의 문제'를 제기한 이유[각주:28]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중국의 수출품목은 정교화 되어 갔으나, 실제 일어나고 있는 있는 일은 개발도상국이 숙련노동집약 산업 내에서 비숙련노동집약 부분을 가져가는 밸류체인의 분해 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중국의 경제발전 및 교역 방식이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중국으로 이동한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생산과정을 분절화 시켰다.




※ 세계화는 민주주의 · 시장경제의 승리??? The China Shock !!!


  • 왼쪽 :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더 이상 충돌 없이 사회의 평화와 자유와 안정이 계속 유지된다고 주장한 『역사의 종말』 (1992년作)

  • 오른쪽 : 성공하기 위해 렉서스를 만들고 있는 국가들과 올리브 나무를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고 있는 국가들을 비교하며 세계화로 나아갈 필요를 주장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1999년作)


1990년대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적이 바로 『역사의 종말』(1992년作)[각주:29]과 『렉서스와 올리브나무』(1999년) 입니다. 


『역사의 종말』은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더 이상 충돌 없이 사회의 평화와 자유와 안정이 계속 유지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성공하기 위해 렉서스를 만들고 있는 국가들과 올리브 나무를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고 있는 국가들을 비교하며 세계화로 나아갈 필요를 설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은 세계경제가 하나로 통합됨을 상징하였습니다. 특히 미국인이 설계하고 디자인한 상품을 중국인이 생산한 뒤 전세계인이 소비하는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 이런 모습의 세계화(Globalization)는 1990년대 사람들에게 다가올 21세기를 상징하는 꿈과 이상 이었습니다.


이번글에서 보았듯이, 중국 장쩌민 주석과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세계화의 꿈과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장쩌민 주석은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통해 개혁개방 기조를 이어가려 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주의 ·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중국이 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이상은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 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국가가 되었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국가가 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주도경제 시스템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시민 감시를 강화하고 영구집권 토대를 공고히 하고 있고, 미국산 등 외국이 만든 상품은 중국 시장 내에서 불공정하게 대우 받고 있습니다.


  • 왼쪽 : 1990년대 미국 클린턴 대통령 - 중국 장쩌민 주석

  • 오른쪽 : 2010년대 미국 트럼프 대통령 - 중국 시진핑 주석


그 결과, 미국이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중국이 언젠가 자유의 가치를 받아들이겠지" 라는 막연한 낙관은 사라졌습니다.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과 2010년대 트럼프행정부의 보고서 문구에는 이러한 변화가 드러나 있습니다.


● 1998년 6월 11일, 클린턴 대통령 중국 방문 2주 전 성명


"우리 미국은 인권과 자유에 관해 중국 지도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미국인이 답해야 하는 물음은 미국이 중국 내 인권을 지지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중국을 국제 커뮤니티와 글로벌 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자유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부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각주:30] (...)


"간이 흘러, 나는 중국 지도자들이 자유를 받아들일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이 자유를 얻어야지만, 중국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화 시대에 국부는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창조하고 소통하고 혁신을 할 수 있는 능력. 중국인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발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오직 그래야만 중국은 성장과 위대함의 잠재력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각주:31]



● 2017년 12월, 트럼프행정부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지난 70년동안 미국의 상호주의, 자유시장,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세계경제시스템을 주도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라는 믿음을 가져왔습니다. (...) 미국은 자유주의 경제 무역시스템을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로까지 확장해왔습니다. 이들 국가들이 정치 · 경제적으로 자유화되고 미국에게 이득을 안겨줄 거라고 희망했기 때문입니다.[각주:32]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은 이들 국가들이 경제와 정치 개혁을 하지 않았고, 주요한 경제기관을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유무역을 말하지만, 오직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규칙과 협정만 지킬 뿐입니다.[각주:33]


우리는 공정(fairness), 상호(reciprocity) 그리고 규칙을 준수하는(faithful adherence to the rules) 모든 경제적 관계를 환영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위반, 속임수, 위협에 눈감지 않을 겁니다.[각주:34]



오늘날 트럼프행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Trade War)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근간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중국이 있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의 산업정책 보조금 · 국유기업 지원 · 외국기업 차별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오늘날 트럼프행정부의 대중 무역전쟁에 대해 더 깊게 알아볼겁니다.


▶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미친 영향


1990년대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을 바라보며 희망했던 미래는 2010년대 선진국에게 중국발쇼크(The China Shock)로 돌아왔습니다


'13억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노동집약 상품을 수출'해 온 중국경제 그리고 '중국으로 이동한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생산과정을 분절화' 시키는 중국경제로 인해 미국 등 선진국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 1966~2019년,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 추이 (단위 : 천 명)

  • 빨간선 이후 시기가 2000~10년대

  • 음영처리된 시기는 미국경제의 경기불황기(recession)

  • 출처 : 미국 노동통계국 고용보고서 및 세인트루이스 연은 FRED


위의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는 1979년 최대 1,950만명 · 1980~90년대 평균 1,700만명대를 기록하였으나, 2007년 1,400만명 · 2019년 현재 1,300만명을 기록하며 25% 이상 감소했습니다.


누차 말했다시피 중국의 임금수준은 미국 아니 멕시코 보다도 현저히 낮습니다. 2000년대 들어 신발 · 의류 · 섬유 등 비숙련 노동집약 상품 수출 비중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인 규모는 여전히 거대합니다. 중국산 상품의 수입침투는 미국 노동집약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직접적인 충격을 안겨다줄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제조업 상품을 단순조립 하는 업무는 선진국의 비숙련 근로자가 해오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동차 · 전자 공장에서 근무하며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업무가 중국으로 이동하였고 미국 내에서는 사라졌습니다. 다르게 말해, 글로벌 생산과정이 분절화 되고 오프쇼어링이 활발해지자 미국 제조업 및 저숙련 근로자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다른글을 통해 'The China Shock'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겁니다.


▶ 중국의 교역확대가 전세계에 미친 긍정적 영향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이 전세계에 부정적 영향만을 준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경제발전 덕분에 원자재를 수출하는 개발도상국들은 신흥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또한,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게 중간재 · 자본재를 수출하는 동아시아 국가들-특히 한국-은 큰 수혜를 얻었습니다. 


  • 왼쪽 : 1992년-2019년, 상품가격지수(2016년 100 기준)

  • 오른쪽 : 1992년-2019년, 한국 수출액 추이


왼쪽은 앞서 살펴본 상품가격지수, 오른쪽은 한국 수출액 추이 입니다. 두 자료는 모두 1992년-2019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이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 · GDP 대비 투자 비중 · 수출입액 그리고 전세게 수출입액 · 상품가격지수, 한국의 수출액 그래프는 모두 동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 중국 경제발전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 경제는 선진국의 저숙련 일자리를 없애어 '국가 내 불균등'(Within-Inequality)는 키웠으나, 신흥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국가 간 불균등'(Between-Inequality)은 줄였습니다그 결과, 과거 개발도상국이 반대했던 세계화는 이제 선진국 내에서 반발이 커졌습니다.




※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가 만들어낸 선진국과 신흥국의 엇갈린 상황


이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착취하기 위해 세계화를 진행한다!"는 식의 비판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습니다. 2019년 현재 세계화의 역풍(Globalization Backlash)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단순히 '중국의 WTO 가입과 경제발전' 으로만 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으로 이동한 외국기업이 가공무역을 통해 글로벌 생산과정을 분절화 시킨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는 왜 1990년대에 들어서야 나타났을까요?


오늘날 '세계화를 둘러싼 갈등'을 파악하려면 달라진 세계경제 구조, 즉 '글로벌 생산과정의 분절화' 및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제 다음글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⑤] 달라진 세계경제 Ⅱ - 글로벌 밸류체인 형성, 통합된 무역과 분해된 생산'에서 이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1. 1947년 GATT 설립 당시 중국 국민당정권이 설립멤버로 참여. 이후 공산당이 권력을 잡으면서 국민당정권(대만)은 1950년 GATT 탈퇴. 중국은 이를 승계할 기회가 있었으나 당시 국내정치 상황상 이를 살펴보기 어려웠음. [본문으로]
  2. The developing countries, where the majority of world's population call home, hold out tremendous potential for development. Their current backwardness and poverty are caused mainly by the past colonial rule and the present unfair and irrational international economic system. More and more developing countries, going along with the trend of internationalization of the world economy and proceeding from their own national conditions, have embarked or are beginning to embark on a road of development with their own characteristics. Facts have proved that this is the only way to success. The coming century will see this trend grow even stronger. In my view, if the political resurgence of the developing countries is viewed as a major feature of the international evolution in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then their economic revitalization will be a key hallmark of the new world pattern in the 21st century. [본문으로]
  3. hen developing countries become prosperous with billions of people lifted from poverty, it will provide enormous opportunities for trade and investment for all countries. There will be more markets for new technologies and industries. It also helps to instill vitality into the global economy, propelling it onto a new development stage. Meanwhile, the revitalization of the developing countries will bring about a sound underpinning for the world pattern of multipolarization, provide conditions favorable to the establishment of a fair and rational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and offer stronger safeguards to lasting world peace. In short, the growing economic prosperity of the developing countries will contribute significantly to the advancement of the human society. [본문으로]
  4. The realization of the long-term goals as set forth in the Bogor Declaration requires our persistent efforts into the 21st century. This gigantic project of cooperation tallies with the trend of the world economy. It also serves the need of our reform, opening-up and economic development. After the meeting in Bogor, we have adopted a series of important measures aimed at deepening the reform. I wish to announce here that China will, effective from 1996, drastically reduce its overall tariff level by a margin of no less than 30%. This certainly will have a positive impact on regional cooperation and the achievement of trade and investment liberalization. [본문으로]
  5. In both China and the United States, trade has been a critical catalyst for growth. China is the fastest-growing market in the world for our goods and services. Tomorrow, Boeing will sign a contract for the largest sale of airplanes to China in history: 50 jets valued at $3 billion. This contract will support tens of thousands of American jobs and provide China with a modern fleet of passenger planes. [본문으로]
  6. Still, access to China's market remains restricted for many American goods and services. Just as China can compete freely and fairly in America, so our goods and services should be able to compete freely and fairly in China. The United States will do everything possible to bring China into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as soon as possible, provided China improves access to its market. . . . [본문으로]
  7. MR. JIANG: Ladies and gentlemen, a while ago I had an in-depth exchange of views with President Clinton on China-U.S. relations and of international and regional issues of mutual interest. The meeting was constructive and fruitful. President Clinton and I have agreed on identifying the goals for the development of a China-U.S. relationship oriented toward the 21st century. The two sides believe that efforts to realize this goal will promote the fundamental interests of the two peoples and the noble cause of world peace and development. We both agree that our two countries share extensive common interests in important matters bearing on the survival and development of mankind, such as peace and development, economic cooperation and trade, the prevention of the proliferation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and environment protection. Both sides are of the view that it is imperative to handle China-U.S. relations and properly address our differences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s of mutual respect, noninterference in each other's internal affairs, equality and mutual benefit; and seeking common ground, while putting aside differences. . . . [본문으로]
  8. As all of you know, I will go to China in two weeks time. It will be the first state visit by an American President this decade. I'm going because I think it's the right thing to do for our country. Today I want to talk with you about our relationship with China and how it fits into our broader concerns for the world of the 21st century and our concerns, in particular, for developments in Asia. That relationship will in large measure help to determine whether the new century is one of security, peace, and prosperity for the American people. [본문으로]
  9. Some Americans believe we should try to isolate and contain China because of its undemocratic system and human rights violation, and in order to retard its capacity to become America's next great enemy. Some believe increased commercial dealings alone will inevitably lead to a more open, more democratic China. [본문으로]
  10. We have chosen a different course that I believe to be both principled and pragmatic: expanding our areas of cooperation with China while dealing forthrightly with our differences. This policy is supported by our key democratic allies in Asia, Japan, South Korea, Australia, Thailand, the Philippines. It has recently been publicly endorsed by a number of distinguished religious leaders, including Reverend Billy Graham and the Dalai Lama. My trip has been recently supported by political opponents of the current Chinese government, including most recently, Wang Dan. There is a reason for this. Seeking to isolate China is clearly unworkable. Even our friends and allies around the world do not support us -- or would not support us in that. We would succeed instead in isolating ourselves and our own policy. Most important, choosing isolation over engagement would not make the world safer. It would make it more dangerous. It would undermine rather than strengthen our efforts to foster stability in Asia. It would eliminate, not facilitate cooperation on issues relating to mass destruction. It would hinder, not help the cause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China. It would set back, not step up worldwide efforts to protect the environment. It would cut off, not open up one of the world's most important markets. It would encourage the Chinese to turn inward and to act in opposition to our interests and values. [본문으로]
  11. Fifth, America clearly benefits from an increasingly free, fair and open global trading system. Over the past six years, trade has generated more than one-third of the remarkable economic growth we have enjoyed. If we are to continue generating 20 percent of the world's wealth with just four percent of its population, we must continue to trade with the other 96 percent of the people with whom we share this small planet. One in every four people is Chinese. And China boasts a growth rate that has averaged 10 percent for the past 20 years. Over the next 20 years, it is projected that the developing economies will grow at three times the rate of the already developed economies. It is manifestly, therefore, in our interest to bring the Chinese people more and more fully into the global trading system to get the benefits and share the responsibilities of emerging economic prosperity. Already China is one of the fastest-growing markets for our goods and services. As we look into the next century, it will clearly support hundreds of thousands of jobs all across our country. But access to China's markets also remains restricted for many of our companies and products. What is the best way to level the playing field? We could erect trade barriers. We could deny China the normal trading status we give to so many other countries with whom we have significant disagreements. But that would only penalize our consumers, invite retaliation from China on $13 billion in United States exports, and create a self-defeating cycle of protectionism that the world has seen before. Or we can continue to press China to open its markets -- its goods markets, its services markets, its agricultural markets -- as it engages in sweeping economic reform. We can work toward China's admission to the WTO on commercially meaningful terms, where it will be subject to international rules of free and fair trade. And we can renew normal trade treatment for China, as every President has done since 1980, strengthening instead of undermining our economic relationship. In each of these crucial areas, working with China is the best way to advance our interests. But we also know that how China evolves inside its borders will influence how it acts beyond them. We, therefore, have a profound interest in encouraging China to embrace the ideals upon which our nation was founded and which have now been universally embraced -- the right to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to debate, dissent, associate and worship without state interference. These ideas are now the birthright of people everywhere, a part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They are part of the fabric of all truly free societies. [본문으로]
  12. We have a fundamental difference with China's leadership over this. The question we Americans must answer is not whether we support human rights in China -- surely, all of us do -- but, rather, what is the best way to advance them. By integrating China into the community of nations and the global economy, helping its leadership understand that greater freedom profoundly serves China's interests, and standing up for our principles, we can most effectively serve the cause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within China. [본문으로]
  13. Over time, the more we bring China into the world the more the world will bring freedom to China. China's remarkable economic growth is making China more and more dependent on other nations for investment, for markets, for energy, for ideas. These ties increase the need for the stronger rule of law, openness, and accountability. And they carry with them powerful agents of change -- fax machines and photocopiers, computers and the Internet. Over the past decade the number of mobile phones has jumped from 50,000 to more than 13 million in China, and China is heading from about 400,000 Internet accounts last year to more than 20 million early in the next century. Already, one in five residents in Beijing has access to satellite transmissions. Some of the American satellites China sends into space beam CNN and other independent sources of news and ideas into China. The licensing of American commercial satellite launches on Chinese rockets was approved by President Reagan, begun by President Bush, continued under my administration, for the simple reason that the demand for American satellites far outstrips America's launch capacity, and because others, including Russian and European nations, can do this job at much less cost. It is important for every American to understand that there are strict safeguards, including a Department of Defense plan for each launch, to prevent any assistance to China's missile programs. Licensing these launches allows us to meet the demand for American satellites and helps people on every continent share ideas, information, and images, through television, cell phones, and pagers. In the case of China, the policy also furthers our efforts to stop the spread of missile technology by providing China incentives to observe nonproliferation agreements. This policy clearly has served our national interests. Over time, I believe China's leaders must accept freedom's progress because China can only reach its full potential if its people are free to reach theirs. In the Information Age, the wealth of any nation, including China, lies in its people -- in their capacity to create, to communicate, to innovate. The Chinese people must have the freedom to speak, to publish, to associate, to worship without fear of reprisal. Only then will China reach its full potential for growth and greatness. [본문으로]
  14. China will choose its own destiny, but we can influence that choice by making the right choice ourselves -- working with China where we can, dealing directly with our differences where we must. Bringing China into the community of nations rather than trying to shut it out is plainly the best way to advance both our interests and our values. It is the best way to encourage China to follow the path of stability, openness, nonaggression; to embrace free markets, political pluralism, the rule of law; to join us in building a stable international order where free people can make the most of their lives and give vent to their children's dreams. [본문으로]
  15. That kind of China, rather than one turned inward and confrontational, is profoundly in our interests. That kind of China can help to shape a 21st century that is the most peaceful and prosperous era the world has ever known. [본문으로]
  16.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 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17. I'd like here to respond to what President Clinton said on WTO. He said that to allow China in the WTO will be in the best interest of the American people. And I want to say that although China has made the biggest concessions, that will also be in the interest of the Chinese people. [본문으로]
  18. Because if China wants to join the WTO, wants to be integrated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n China must play by the rules of the game. China cannot do that without making concessions. Of course, such concessions might bring about a very huge impact on China's national impact on some state-owned enterprises, and also on China's market. But I have every assurance to say here, thanks to the achievements made in our reform and opening up process, we will be able to stand such impact. And the competition arising from such impact will also promote a more rapid and more healthy development of China's national economy. [본문으로]
  19. THE PRESIDENT: Thank you very much. Good morning. Ambassador Parris, it's hard for me to say -- you may know, Mark worked for us in the White House for a long time and, you know, it's difficult for me to be sufficiently respectful of him now that he's here with this vast array of support. (Laughter.) I do want to thank you, Mark, and all of you for the wonderful job you've done under particularly adverse circumstances. And I thank Ambassador Albright for her representation of the United States here in Turkey, after the terrible first earthquake. I think I should give you an explanation for why we're running a little late this morning. We have been up late last night and early this morning, following the 11th hour negoti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And I am pleased to say that the United States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have now successfully concluded a strong accession agreement for China to enter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Applause.) This agreement is a major step forward in bringing China into the WTO, and a profoundly important step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 somebody apparently doesn't like it very much. (Laughter.) Have we put too much strain on the lights? (Laughter.) Yea. (Applause.) What do you say? Can you guys pick this up with this light, if I go on? Okay. [본문으로]
  20. The China-WTO agreement is good for the United States, it's good for China, it's good for the world economy. Today, China embraces principles of economic openness, innovation and competition that will bolster China's economic reforms and advance the rule of law. President Jiang Zemin and Premiere Zhu Rongji have shown genuine leadership in committing China to open its markets and abide by global rules of fair trade. In opening the economy of China, the agreement will create unprecedented opportunities for American farmers, workers and companies to compete successfully in China's market, while bringing increased prosperity to the people of China. [본문으로]
  21.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https://joohyeon.com/251 [본문으로]
  22.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 https://joohyeon.com/236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s://joohyeon.com/270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s://joohyeon.com/269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②] 클린턴·부시·오바마 때와는 180도 다른 트럼프의 무역정책 -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 추구https://joohyeon.com/281 [본문으로]
  26.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s://joohyeon.com/216 [본문으로]
  27. [국제무역이론 ②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s://joohyeon.com/217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트럼프 ③] 국제무역은 제조업 일자리와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2010년대 이전의 생각... https://joohyeon.com/282 [본문으로]
  29. 논문은 1989년 [본문으로]
  30. We have a fundamental difference with China's leadership over this. The question we Americans must answer is not whether we support human rights in China -- surely, all of us do -- but, rather, what is the best way to advance them. By integrating China into the community of nations and the global economy, helping its leadership understand that greater freedom profoundly serves China's interests, and standing up for our principles, we can most effectively serve the cause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within China. [본문으로]
  31. Over time, the more we bring China into the world the more the world will bring freedom to China. China's remarkable economic growth is making China more and more dependent on other nations for investment, for markets, for energy, for ideas. These ties increase the need for the stronger rule of law, openness, and accountability. And they carry with them powerful agents of change -- fax machines and photocopiers, computers and the Internet. Over the past decade the number of mobile phones has jumped from 50,000 to more than 13 million in China, and China is heading from about 400,000 Internet accounts last year to more than 20 million early in the next century. Already, one in five residents in Beijing has access to satellite transmissions. Some of the American satellites China sends into space beam CNN and other independent sources of news and ideas into China. The licensing of American commercial satellite launches on Chinese rockets was approved by President Reagan, begun by President Bush, continued under my administration, for the simple reason that the demand for American satellites far outstrips America's launch capacity, and because others, including Russian and European nations, can do this job at much less cost. It is important for every American to understand that there are strict safeguards, including a Department of Defense plan for each launch, to prevent any assistance to China's missile programs. Licensing these launches allows us to meet the demand for American satellites and helps people on every continent share ideas, information, and images, through television, cell phones, and pagers. In the case of China, the policy also furthers our efforts to stop the spread of missile technology by providing China incentives to observe nonproliferation agreements. This policy clearly has served our national interests. Over time, I believe China's leaders must accept freedom's progress because China can only reach its full potential if its people are free to reach theirs. In the Information Age, the wealth of any nation, including China, lies in its people -- in their capacity to create, to communicate, to innovate. The Chinese people must have the freedom to speak, to publish, to associate, to worship without fear of reprisal. Only then will China reach its full potential for growth and greatness. [본문으로]
  32. For 70 years, the United States has embraced a strategy premised on the belief that leadership of a stable international economic system rooted in American principles of reciprocity, free markets, and free trade served our economic and security interests. (...) The United States helped expand the liberal economic trading system to countries that did not share our values, in the hopes that these states would liberalize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practices and provide commensurate benefits to the United States. [본문으로]
  33. Experience shows that these countries distorted and undermined key economic institutions without undertaking significant reform of their economies or politics. They espouse free trade rhetoric and exploit its benefits, but only adhere selectively to the rules and agreements. [본문으로]
  34. We welcome all economic relationships rooted in fairness, reciprocity, and faithful adherence to the rules. Those who join this pursuit will be our closest economic partners. But the United States will no longer turn a blind eye to violations, cheating, or economic aggression.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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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2012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③ - 유럽재정위기[2010년-2012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③ - 유럽재정위기

Posted at 2016. 1. 22. 16:14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 1997년-2005년 · 2007년-2009년 복습


지난글들을 통해 1997년-2005년 · 2007년-2009년 동안 벌어졌던 세계경제 사건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벌어졌던 경제적 사건들 중 2016년 현재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미국 Fed의 통화정책' · '2008 금융위기' 이었습니다.


[1997년-2005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

: 1997년-2005년에 발생했던 경제적 사건들 중 기억해야 하는 것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미국의 통화정책'[각주:1]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위기 이후 '외환보유고 축적'을 우선순위로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비축한 달러화로 미국 채권을 구매하였고, 신흥국의 자본이 미국으로 유입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부동산가격은 크게 상승[각주:2]하였죠. 


또한, 1997년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는 러시아 · 브라질 · 아르헨티나로 퍼져나갔고, 미국은 1998년 10월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향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대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내 경제가 안정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기준금리 인하는 IT버블을 만들어냈고, 2001년에 IT 버블이 꺼지면서 미국은 경기침체를 겪게 됩니다. 


미국 Fed는 2001년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1%대의 초저금리 정책을 2004년 중반까지 유지하였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신흥국 자본의 미국 유입'과 맞물려 부동산가격을 크게 상승시켰습니다. 


그 뒤, 2006년을 정점으로 부동산가격이 하락하자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급증하였고,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많은 금융기관들이 파산하게 됩니다. '2008 금융위기'가 발생[각주:3]한 것이죠.        

 

▶ [2007년-2009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② - 2008 금융위기 발생

: 2007년-2009년은 '2008 금융위기의 발생 이전 · 발생 · 발생 이후'에 초점을 맞춰야하는 시기입니다.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인해 채무자들이 대출상환을 하지 못하게 되자, 주택담보대출 전문업체와 금융기관은 파산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2년동안, 주택담보대출 전문업체인 Fannie Mae(패니매이)와 Freddie Mac(프레디 맥) 파산에 이어 Merrill Lynch(메릴린치) · Bear Stearns(베어스턴스) · AIG 등 세계적 금융보험회사들이 무너졌습니다. 


당시 미국은행 뿐만 아니라 유럽은행 또한 상당한 양의 자금을 미국 주택구입자에게 빌려주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발생한 위기는 유럽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미국은행 못지않게 유럽은행들도 파산하였죠. 은행의 파산은 금융시스템을 마비시켰고, 돈이 돌지 않게 되자 실물경제마저 악화되었습니다.


미국정부와 유럽 각국 정부는 금융시스템 마비를 해소하고 실물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은행에 구제금융자금을 투입하였죠. 그런데 정부가 은행에 투입한 구제금융자금으로 인하여 정부부채가 크게 증가하게 되었는데......[각주:4]

 


2002년 유럽통합의 원대한 꿈 '유로화 도입' → 2009년 유럽 정부부채 증가 → 2011년 벼랑 끝에 선 유로화

: 2010년-2012년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과 중국'으로 인해 떠들썩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 유럽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 "파산한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해 유럽정부는 막대한 양의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하였다."를 기억해야 합니다. 


은행에 투입한 구제금융 자금으로 인하여 미국정부와 유럽 각국 정부의 부채크기는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과는 달리 유럽 소속 일부국가들은 '재정위기'(Sovereign Debt Crisis)를 겪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재정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동일하게 사용하는 '유로화'(€, EURO) 때문입니다.


2002년 '유럽통합의 원대한 꿈'을 실현해줄 것이라 믿었던 유로화 도입. 하지만 유로화 도입 8년 뒤인 2010년, 바로 그 유로화로 인하여 유럽은 지금까지도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재정위기에 관해서는 아래 모음집>

[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1999년 중국 WTO 가입, '세계를 상대로 빗장을 열다' → 2010년 세계를 사들이는 중국

: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미국과 유럽이 주춤대는 사이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높아진 국가는 바로 '중국' 입니다. 


2010년 이후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우며 세계를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WTO 가입 당시 "앞으로 중국이 과거의 위용을 뽐내지 않을까?"라는 추측이 10년만에 현실화 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2010년 이래로 <The Economist> 표지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번글에서는 2010년-2012년 사이에 유럽과 중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었는지를 살펴봅시다.




※ 2010년

: 유럽재정위기 발생

: 중국의 부상


2010년은 유럽재정위기가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떠오른 시기입니다.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 등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의 정부부채가 급증하면서 경제상황이 악화되었죠. 


미국과 유럽이 경제위기로 주춤대는 사이,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2010년-2012년 동안 중국과 관련된 표지가 <The Economist>를 많이 장식했죠.



2010년 2월 6일

'중국과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미국' (Facing up to China)


2010년 2월 초 <The Economist> 표지를 장식한건 '중국과 미국' 이었습니다. 대만 · 티베트를 두고 미국과 중국 간의 충돌을 다루고 있죠. 


<The Economist>는 중국을 '거대한 용'으로 묘사하면서, '이제 미국은 거대한 용이 된 중국을 상대해야 한다.' 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0년-2012년 <The Economist> 표지에는 'G2로 부상한 중국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 2010년 2월 6일자 기사

: 'Geopolitics - Facing up to China'

: 'America and China - By fits and starts'

: 'Tibet - Pilgrims and progress'




2010년 2월 13일

'세계경제의 새로운 위험' (New dangers for the world economy)


지난글 '[2007년-2009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② - 2008 금융위기 발생'에서 살펴봤듯이, 2007년-2009년 세계경제의 문제는 '은행위기'(banking crisis) 였습니다. 리번브러더스 파산 등 은행부실로 인해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는 '금융위기'가 발생했었죠. 


2010년부터는 새로운 형태의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정부부채 위기'(Sovereign Debt Crisis)[각주:5] 입니다. 


미국정부와 유럽정부는 파산한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였는데, 그 결과 재정적자 발생 및 정부부채 증가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2009년 각국 정부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 · 아일랜드 · 스페인 ·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 비율이 상당히 큼을 알 수 있습니다.

(주 : 유로존 소속 국가들 중 유독 남유럽 국가들의 피해가 큰 이유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의 [유럽경제위기] 시리즈 참고)


2010년 초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유럽재정위기'는 2010년-2012년을 지배(?)하는 경제적 사건이 되고 맙니다.


▶ 2010년 2월 13일자 기사

: 'New dangers for the world economy'

: 'Europe's financial crisis - The spectre that haunts Europe'

: 'Tightening economic policy - Withdrawing the drugs'

: 'Debt sustainability - Not so risk-free"

: 'Spain's economic stagnation - The zapping of Zapatero'




2010년 3월 13일 · 5월 1일

'유럽의 엔진 - 더 강해진 독일과 함께 살아가기' (Europe's engine - Living with a stronger Germany)

'(그리스)아크로폴리스는 지금 - 유럽재정위기가 통제에서 벗어나다' (Acropolis now - Europe's debt crisis spins out of control)


1990년 서독과 동독이 통일하여 현재의 독일이 만들어졌으나, 통일 후유증으로 인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리었습니다. 그랬던 독일은 유로화 도입 · 노동시장 개혁 덕분에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는 국가가 됐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008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이 유럽으로 전달된 후 스페인 · 프랑스의 실업률은 크게 상승했지만 독일은 이전과 크게 달리지지 않았습니다. 말그대로 '더 강해진 독일'(stronger Germany) 입니다.


그런데 <The Economist>는 "역설적이게도, 독일의 성공은 주변국가의 문제를 초래했다."(Germany's success is paradoxically also causing problems for its neighbours) 라고 지적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2000년대 중반 이래 독일이 유로존 내에서 잘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유로화의 도입' 덕분이었습니다. 유로화 도입 이후 통화가치 하락의 효과를 누리게 된 독일은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통해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유로존내 경상수지 불균형'(current account imbalance within Eurozone)이 유럽재정위기의 씨앗이 되고 맙니다.

  

2015년 3월자 <The Economist>는 "(유로존이 잘못된다면) 독일도 결국 패자가 될 것이다."(When that goes missing, both the currency and the club tend to suffer—and Germany is foremost among the losers.) 라고 말하며, 독일의 변화(소비 · 투자 증가를 통한 경상수지 흑자 규모 축소)를 촉구합니다.


(참고 :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이러한 우려는 결국 현실화 되고 맙니다.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등에서 '과도한 정부부채로 인한 재정위기'가 발생한 것이죠. 


2010년 5월자 <The Economist> 표지는 "(그리스)아크로폴리스는 지금 - 유럽재정위기가 통제에서 벗어나다(Acropolis now - Europe's debt crisis spins out of control)" 라고 말하며 유럽경제를 걱정스럽게 바라봅니다.


왼쪽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리스 · 포르투갈 정부의 채무상환능력이 의심받게 되자 그리스 · 포르투갈의 국채금리는 크게 상승했습니다. 


오른쪽 그래프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자본유출 규모' 및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보여주고 있는데, 독일을 제외한 모든 유로존 소속 국가에서 자본유출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그리스 정부부채 크기는 GDP 대비 115%까지 상승했죠.


(주 : '국채금리 상승' 및 '자본유출'이 의미하는 바와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 & 남유럽 국가들의 정부부채 비율 상승 간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참고)


▶ 2010년 3월 13일자 기사

: 'Germany - Europe's engine'

: 'Older and wiser'

: 'Sovereign debt and the euro - All for one'


▶ 2010년 5월 1일자 기사

: 'Europe's sovereign-debt crisis - Acropolis now'

: 'The euro zone's debt crisis - The cracks spread and widen'

: 'Charlemagne - Going for markets'





2010년 10월 16일 · 10월 23일(아시아판) · 11월 13일

'통화전쟁' (Currency wars)

'차기 황제 - 시진핑은 중국을 변화시킬 것인가?' (The next emperor - Will Xi Jinping change China?)

'세계를 사들이는 중국 - 중국의 기업매수 물결이 다가오다' (Buying up the world - The coming wave of Chinese takeovers)


<The Economist>가 '통화전쟁'(currency wars)을 표지로 내세운 2010년 10월은 한국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 때입니다. 당시 'G20 정상회의'의 주제는 바로 환율, 그것도 '중국 위안화 환율' 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위안화의 가치가 인위적으로 저평가 되어있다고 비판했고 중국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대응했죠. 그렇다면 양 국가는 왜 환율문제로 이렇게 공방을 폈던 것일까요?



'1997년-2008년' 동안 세계경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1997년은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때입니다. 외환보유고 부족 때문에 경제위기를 겪게된 동아시아. 당시 중국은 위기를 겪지 않았으나 주변국가를 보고 난 후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보유고 축적'을 우선순위로 두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000년대 이래로 개발도상국 · 중국의 외환보유고 크기는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보유고 축적'은 미국에서 2008 금융위기 발생하는 원인이 되고 맙니다.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는 미국 채권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외환보유고를 쌓아나갔습니다. 이로인해 미국으로 막대한 양의 자본유입이 발생하여 부동산가격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죠.

(참고 : 

[1997년-2005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 

[2007년-2009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② - 2008 금융위기 발생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이 미국 부동산거품을 만들었는가?


중국과 동아시아가 '경상수지 흑자'라면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것을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라 하는데, 미국에서 또 다른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균형을 해소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 정부는 "중국은 인위적으로 통화가치를 낮추어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지 마라."고 요구하게 된겁니다.


당시 언론은 "G2의 충돌" 이라는 내용으로 미국-중국의 충돌을 크게 보도했었죠. 이후 한달동안 <The Economist>는 중국과 관련된 내용을 연달아 표지로 내세우며, '중국의 부상'을 반영했었습니다.  


▶ 2010년 10월 16일자 기사

: 'How to stop a currency war'

: 'Currency wars - Fumbling towards a truce'

: 'China's reserves - In need of a bigger boat'


▶ 2010년 10월 23일자 기사

: 'China's succession - The next emperor'

: 'China's next leader - Xi who must be obeyed'

: 'China's economy - A new epic'


▶ 2010년 11월 13일자 기사

: 'Chinese acquisitions - China buys up the world'

: 'Chinese takeovers - Being eaten by the dragon'





2010년 11월 20일(유럽판) · 12월 4일(유럽판) · 12월 11일

'유로존 구하기' (Saving the euro)

'(유로존 탈퇴) 하지마 - 유로존 붕괴가 의미하는 것' (Don't do it - What breaking up the euro would mean)

'(미국 · 유로존 · 신흥국) 세 방식의 분할 - 세계경제내에서 커지는 분할' (Three-way split - The world economy's growing divisions)


다시 유럽 문제로 돌아와봅시다. 2010년 말 <The Economist> 표지를 장식한건 '유럽재정위기' 입니다. 


2010년 11월 20일(유럽판) 표지는 '난파선에 있는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과 이들을 구하러가는 '독일 메르켈 총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 큰 문제였던건 '아일랜드 경제' 였습니다. 


2008 금융위기 이전 아일랜드는 미국의 낮은 금리를 이용해 돈을 차입해와서 부동산투자 등을 증가시켜 왔습니다. 그 후 2008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부동산가격이 급락하면서 경제위기를 맞게 됩니다.


왼쪽 그래프는 아일랜드의 GDP · GNP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8년 이후 아일랜드는 최대 -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죠. 오른쪽 그래프는 아일랜드의 재정적자 추이입니다. 부동산버블이 꺼진 이후 파산상태에 놓인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자금을 투입한 결과, 아일랜드의 재정적자 규모는 크게 증가했죠.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 등의 경제상황이 계속해서 악화되기만 하자 '유로존 탈퇴'(exit) 혹은 '유로존 붕괴'(break up)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애시당초 서로 다른 나라끼리 '단일통화'(single currency)를 쓰는 건 경제학이론 위배되는 것이었고, 또 단일통화로 인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정정책 · 통화정책을 쓰지는 못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유로화 도입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죠.


그러나 유럽국가들이 '유로화'를 도입한 이유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 '하나의 유럽'(One Europe) 이라는 정치적이상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로존 탈퇴 혹은 붕괴는 50년동안 쌓아왔던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이상이 깨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정치적이상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았으며 <The Economist> 또한 'Don't do it' 이라는 말로 표지를 장식했죠. (주 : 그러나 <The Economist> 본사가 위치한 영국은 정작 유로화를 쓰지 않는... 


(참고 :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



2008 금융위기 충격으로 '미국'은 여전히 비틀대고 '유럽'은 재정위기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세계경제를 견인한건 '신흥국' 이었습니다. 중국 · 인도를 위시로한 신흥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불과 10년-20년 전만하더라도 세계경제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죠.


그런데 미국 · 유럽은 비틀대고 신흥국만 잘나가는게 좋은 것도 아닙니다. 미국 · 유럽 중앙은행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선진국의 낮은 금리를 이용해 차입한 자금이 신흥국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언젠가 미국 등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서 자본이 급격하게 빠져나가서 '1997 외환위기'를 재현하지 않을까요? 1997년 세계경제는 '급격한 자본유출의 페해' 경험했었기 때문에, 2010년말의 현상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 2010년 11월 20일자 기사

: 'The euro-zone crisis - Saving the euro' 

: 'Ireland's economy - Threadbare'

: 'Gang that can't shoot straight'


▶ 2010년 12월 4일자 기사

: 'The future of the euro - Don't do it'

: 'The crisis in the euro area - No easy exit'

: 'Breaking up the euro area - How to resign from the club'

: 'Germany and the euro - We don't want no transfer union'


▶ 2010년 12월 11일자 기사

: 'The world economy - Three-way split"

: 'European banks - The last idealists'

: 'Economics focus - All pain, no gain?'

: 'Asian economies - Importing pessimism'




※ 2011년

: 긴축정책을 강요하는 독일


재정적자 발생과 정부부채 증가로 인해 경제위기를 맞게된 포르투갈 · 아이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 채권국가인 독일은 이들에게 '재정지출 축소와 정부부채 감축'을 통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합니다. 바로, '긴축정책'(austerity) 입니다.


하지만 포르투갈 · 아이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은 독일이 요구한 긴축정책을 극렬히 반대합니다. 재정지출 감는 사회서비스 축소를 의미하고 이에따라 생활수준이 하락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경제학자들 또한 '정부부채 증가는 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각주:6]라고 말하며, 긴축정책을 비판합니다.    


2011년은 '긴축정책'(austerity)을 둘러싸고 채권국인 독일과 채무국인 포르투갈 · 아이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유로존의 경제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던 시기입니다. 




2011년 1월 15일 · 3월 12일

'유럽경제위기 : Plan B를 위한 때' (The euro crisis : time for Plan B)

'메르켈은 유럽을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 (Can she hold Europe together?)


2011년 새해가 들어섰음에도 유럽경제는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국채금리는 계속해서 상승하여 부채부담을 증가시켰습니다. 또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Plan A-유럽 주변부 국가들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는 정부부채 크기를 키워서 위기를 심화시켰을 뿐입니다. 


따라서 <The Economist>는 Plan B-주변부 국가들의 채무재조정(debt restructuring)-가 필요한 때라고 주장합니다. 독일 등 중심부국가들이 주변부국가들에게 부채를 탕감해주든 직접적인 재정지원을 해주든 채무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는 독일 등 중심부국가들에게는 정치적 부담입니다. 빚을 갚지 않는 다른 국가에게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을 받아들일 독일인은 없기 때문이죠. 


결국 유럽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일 정치인, 특히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결단이 필요합니다.


<The Economist>는 독일 메르켈 총리가 '하나의 유럽'이라는 유럽인들의 이상이 계속 진행될 수 있게끔 역할을 해주기를 주문합니다.

(참고 : [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


▶ 2011년 1월 15일자 기사

: 'The euro area - Time for Plan B'

: 'The euro area's debt crisis - Bite the bullet'

: 'Portugal's economy - Still scary'

: 'The state of Spanish banks - Under siege'


▶ 2011년 3월 12일자 기사

: 'The euro and the European Union - Can Angela Merkel hold Europe together?'

: 'The divisiveness pact'

: 'Europe: it's back'

: 'The European Union and the euro zone - Outs and ins'




2011년 6월 25일 · 7월 16일 · 9월 17일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나가버린다면...' (If Greece goes...)

'벼랑 끝에선 유로 - 왜 유럽경제위기는 점점 더 악화되나' (On the edge - Why the euro crisis has just got a lot worse)

'유로존을 구하는 방법' (How to save the euro)


독일 등 유로존 중심부 국가들은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긴축정책'(austerity)을 택했습니다.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 등 주변부 국가들이 정부지출을 줄이면(긴축), 그 대가로 구제금융 자금을 주겠다는 것이죠.



주변부 국가들 중에서도 제일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건 '그리스' 였습니다.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 이전부터 재정적자 · 정부부채가 문제였는데, 2008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시면, 다른 유로존 국가에 비해서 그리스의 정부부채 비율이 높고 경제성장률은 낮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긴축정책'(austerity)을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정부지출 삭감은 사회서비스 제공 축소를 뜻하므로, 생활수준이 나빠지는 걸 받아들일 그리스인들은 없었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긴축정책'을 두고 상반되는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부채위기를 벗어나려면 일단 부채를줄여야 한다."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었던 반면에, "정부지출 축소는 총수요를 감소시켜 경제상황을 더더욱 악화시킨다." 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었죠.

(주 : '긴축정책'을 둘러싼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은 2012년에 정점(?)을 찍습니다. 밑에 글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겁니다.)


<The Economist>는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주장에 섰습니다. '긴축정책은 위기를 심화시키고, 그리스인들의 격렬한 저항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이어진다. 이는 유럽 전체에 악몽이다.' 라는 게 주요 논지였죠.


이렇게 '유럽경제위기 해결방법'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 2011년 6월 25일자 기사

: 'The euro crisis - If Greece goes…'

: 'Germany and the euro - Merkel's hazardous course'

: 'Greece and the euro - The brewing storm'

: 'Financial contagion - Fear of fear itself'


▶ 2011년 7월 16일자 기사

: 'Italy and the euro - On the edge'

: 'Europe's policy options - Huge mess, untidy solutions'

: 'The euro zone on the edge - The road to Rome'

: 'Dicing with debt and the future'


▶ 2011년 9월 17일자 기사

: 'Europe's currency crisis - How to save the euro' 

: 'The euro-zone crisis - Fighting for its life'

: 'Profligacy is not the problem'

: 'The costs of break-up - After the fall'




2011년 10월 29일 · 11월 5일 · 11월 26일

'유럽의 구조계획' (Europe's rescue plan)

'그리....스.....' (Gr€€c€)

'(유로존은) 정말로 끝인가?' (Is this really the end?)



2010년-2011년 동안 유럽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이 자주 열렸으나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유로존 소속 각국 정상들의 회담과 유럽위원회 개최일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년동안 20번 넘는 회담이 열렸으나, 그리스의 채권금리는 계속 상승하기만 했죠.


독일은 계속해서 긴축정책을 고집하였고, 그리스는 긴축정책 반대를 핑계로 어떠한 자구노력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위기는 이탈리아에까지 퍼져나갔죠.


그냥 이렇게 2011년이 지나고 맙니다.  

  

▶ 2011년 10월 29일자 기사

: 'Europe’s rescue plan'

: 'The euro deal - No big bazooka'

: 'German politics - The country of “no”'

: 'A tale of two Italians'


▶ 2011년 11월 5일자 기사

: 'A euro referendum - Greece’s woes'

: 'Financial markets - Greece lightning'

: 'Greece and the euro - Papandreou’s people'


▶ 2011년 11월 26일자 기사

: 'The euro zone - Is this really the end?'

: 'Beware of falling masonry'

: 'Angela Merkel and the euro - The new iron chancellor'

: 'The sinking euro'




※ 2012년

: 프랑스 대선, 긴축vs성장 논쟁의 충돌

: 유럽중앙은행 총재 Martio Draghi의 "Do Whatever It Takes"


2012년은 '긴축vs성장 논쟁'이 정점에 달했던 때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채권국인 독일은 '재정지출 축소 · 정부부채 감축' 등 긴축정책(austerity)을 주문했으나, 포르투갈 · 아이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은 독일이 요구한 긴축정책을 극렬히 반대해왔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사회당 후보 올랑드는 긴축정책을 비판하며 '성장'(growth)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는 프랑스-독일 간의 충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 총재 Mario Draghi(마리오 드라기)는 "유로존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Do Whatever It Takes)[각주:7] 라고 말하며, 유로존 경제를 진정시키려 애썼습니다.



2012년 3월 31일 · 4월 28일

'부정에 빠진 프랑스' (France in denial)

'다소 위험한 올랑드 대통령 - 프랑스 대통령선거 및 긴축정책에 대항하는 유럽의 저항' (The rather dangerous Monsieur Hollande - The French election and Europe's revolt against austerity)


2012년 4월 22일 시행될 프랑스 대통령선거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 살펴봤듯이, 독일은 유럽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긴축정책'(austerity)을 내세웠습니다.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의 과도한 정부부채가 만들어낸 '재정위기'(sovereign debt crisis)는 정부지출 삭감 · 부채규모 축소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긴축정책에 대해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 국민들은 반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부지출 삭감은 사회서비스 축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하락하기 때문이었죠.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였던 올랑드는 '긴축정책 반대'를 주요정책으로 내세웠습니다. 긴축(austerity)이 아니라 성장(growth)을 통해 경제위기를 해결한다는 논리입니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부채를 줄이는 방법 대신 GDP를 증가시키는 방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선거결과 올랑드 후보가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The Economist>는 '긴축정책에 대항하는 유럽의 저항' (Europe's revolt against austerity) 라고 말하며, 올랑드 승리에 의미를 부여했죠.


(주 : 그러나 긴축정책을 줄곧 반대해왔던 <The Economist>는 정작 올랑드의 당선을 우려스럽게 바라봤습니다. 포르투갈 · 아일랜드 · 그리스 · 스페인 (PIGS) 등이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긴축정책 철페가 필요했지만, 프랑스는 미래의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출 삭감'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이것은 여기에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복잡한거 같네요.)


▶ 2012년 3월 31일자 기사 

: 'France's future - A country in denial'

: 'The French election - An inconvenient truth'

: 'Spain’s government - Starting to worry'


▶ 2012년 4월 28일자 기사

: 'France's election - The rather dangerous Monsieur Hollande'

: 'Kicking against austerity'

: 'The Dutch government - Waving but then drowning'




2012년 5월 12일 · 5월 19일

'유럽의 아킬레스건'(그리스를 상징) (Europe's Achilles heel)

'그릭런' (뱅크런을 비유) (The Greek run)


불과 몇주전, 프랑스 대통령으로 올랑드가 새롭게 선출됐었습니다. 올랑드 대통령은 '긴축정책'을 비판하며 독일과 대립각을 세웠죠. 


이런 가운데 유럽경제는 또 다시 불확실성에 빠졌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 총선' 때문이었습니다. 다가올 그리스 총선에서 '긴축정책 반대'를 내세운 Alexis Tsipras가 이끄는 Syriza가 다수당이 된다면, 지금까지 논의되어온 '그리스 구제금융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가 겪었던 긴축정책이 옳든 그르든, 그리스경제가 또 다른 불확실성에 빠지는건 아무도 원치 않았죠.  


2010년-2012년 내내 문제였던 그리스경제는 2015년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 2012년 5월 12일자 기사

: 'The euro crisis - Europe’s Achilles heel'

: 'The euro crisis - There are all too many alternatives'


▶ 2012년 5월 19일자 기사

: 'The euro crisis - The Greek run'

: 'Greece’s political crisis - Fiddling while Athens burns'




2012년 5월 26일

'어느 방향이 유럽에게 더 나은 길 일까? - 유로존 붕괴 or 완벽한 통합' (Is there a better way for Europe - Break-up or Superstate)


이 표지는 '유럽경제위기의 근본원인과 해법'을 모두 담고 있는 상징입니다.  


1999년 유럽통화동맹(EMU) · 2002년 유로화 도입으로 결성된 유로존(eurozone)은 사실 경제학이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가 단일통화(single currency)를 문제없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노동이동' · '경기변동의 대칭성' · '임금과 상품가격의 신축성' · '재정통합' 등의 선결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유로존은 선결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은채 출발하였죠. 즉, 유로존은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이 아닙니다.

(참고 :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


최적통화지역 성립조건에 위배된채 출발한 유로존은 결국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각 국가들은 독립적인 통화정책 · 재정정책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고, 경제위기는 점점 심화되었습니다.

(참고 :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유럽경제위기 ⑤]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② - 재정동맹 없이 출범한 유로존, 은행위기를 재정위기로 만들다 )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2가지 방법을 쓸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유로존 결성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유로존이 깨지는 것(break-up)이죠. 두번째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더 큰 통합을 진행하여 하나의 국가(superstate)가 되는 겁니다.



유로존이 깨지고 국가들이 개별 통화를 쓴다면 자국의 경제상황에 맞는 독립적인 통화 · 재정정책을 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유럽'을 위해 50년동안 달려온 유럽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혹은 유로존 붕괴는 각국 경제에 몇년동안 엄청난 충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그리스의 질서있는 유로존 탈퇴' · '유로존의 완전한 붕괴'에 따른 각국 GDP 변화 추이를 예측한 겁니다. 그리스만 유로존을 탈퇴하든 유로존 자체가 붕괴하든, 대부분 유럽국가들은 -10%의 경제성장률 감소가 예측되고 있죠.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유로존 소속 국가들이 더 강한 통합을 진행하여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 · 국민으로 살아왔던 이들이 갑자기 같은 국가 · 국민으로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국이 EU의 회원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의 비중도 줄고 있습니다. EU 자체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낮아지는데, 유럽 국가들이 뭉쳐서 하나의 국가가 되는건 불가능한 일이죠. 

( 참고 : [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

    

모두가 해법을 알지만 모두가 실행할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지금의 유럽경제 입니다.


하지만 2012년 7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Mario Draghi의 기념비적인 연설[각주:8]이 행해집니다.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약한 통합이 아닌 더 강한 통합"

(the only way out of this present crisis is to have more Europe, not less Europe.)


"우리의 의무 한도내에서,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을 지키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Within our mandate, the ECB is ready to do whatever it takes to preserve the euro. And believe me, it will be enough.)


실제로 기념비적인 이 연설이 행해진 직후,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채권금리는 하락하며 안정세를 찾았습니다. 이 연설은 유럽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역할'을 선언함과 동시에 '유로존을 지키기 위한 유럽의 의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죠


2015년 현재에도 그리스를 제외하고 스페인 · 포르투갈 · 아일랜드 · 이탈리아 등의 경제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더 강한 통합'(more Europe)을 위한 논의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 2012년 5월 26일자 기사

: 'The future of the European Union - The choice' 

: 'Europe in limbo - Home and dry'

: 'The costs of a Greek exit - Cutting up rough'

: 'The euro crisis - An ever-deeper democratic deficit'




2012년 10월 27일 · 11월 10일

'중국을 바꿔야만 하는 시진핑' (The man who must change China)

'4년 더 !'


2010년-2012년 3년동안 유럽경제가 말썽인 가운데, 미국 · 중국의 최고권력자와 관련된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의 후임으로 이미 내정되어 있던 시진핑이 주석으로 집권하였고,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4년의 임기를 더 보내게 됐습니다.


2008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G2'로 부각한 중국과 최강대국의 지위를 의심받았던 미국. 2010년-2012년 동안의 <The Economist> 표지를 보면, '중국의 부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2012년 10월 27일자 기사

: 'Xi Jinping - The man who must change China'

: 'China’s new leadership - Vaunting the best, fearing the worst'

: 'Capital outflows - The flight of the renminbi'

: 'China - Millennial madness'

: 'Embarrassed meritocrats'


▶ 2012년 11월 10일자 기사

: 'Barack Obama's second term - Now, hug a Republican'





※ 2013년-2015년

: 중국 경제위기 ???



'중국의 부상'이 느껴지던 2010년-2012년과 달리, 2013년-2015년에는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미국은 2008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며 최강대국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중국은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죠.


이제 다음글 '[2013년-2015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④ - 또 다른 위기?'을 통해, 2013년-2015년 동안 세계경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봅시다.  



  1.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2.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http://joohyeon.com/195 [본문으로]
  3.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4. [유럽경제위기 ③] 유럽 '은행위기'와 '재정위기' - 미국발 2008 금융위기의 여파 http://joohyeon.com/226 [본문으로]
  5. [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223 [본문으로]
  6. [긴축vs성장 ①]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http://joohyeon.com/114 [본문으로]
  7. [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http://joohyeon.com/231 [본문으로]
  8. [유럽경제위기 ⑥] 유럽인들의 꿈인 '하나의 유럽'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http://joohyeon.com/23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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