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Posted at 2018. 12. 7. 17:28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유치산업보호의 타당성을 '역사적 발전단계'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을 통해,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및 자유무역 사상을 반박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사상'(liberalism)[각주:1]은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사고방식 입니다. 국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며, 이익을 쫓는 개인의 행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의 이익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각주:2]은 여러 국가가 서로의 상품을 자유롭게 교환하여 전세계적인 후생을 극대화하는 '자유무역'(free trade)을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론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리카도가 살았던 시대상황[각주:3] · 보호무역을 추구했던 1920-30년대 호주[각주:4] ·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한 1950-70년대 중남미[각주:5]에서 누차 짚었듯이...)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똑같은 물음을 던지며, "제조업 육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유치산업을 보호하자(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는 주장으로 애덤 스미스를 정면 공격했습니다. 


스미스는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각자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은데 반하여, 리스트는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제조업 육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농업 발전에 성공한 국가는 다음 단계인 제조업 발전을 위해 보호체제가 이로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리스트의 보호론은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에 따른 일시적인 조치(temporary)이며, 궁극적으로 제조업 발전 이후에는 자유무역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보호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하에서만 정당화(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대외 경쟁을 완전히 배제하면 나태와 무감각이 조장되어 민족에 해만 끼치게 됩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 ·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유치산업보호론의 정당성을 주장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들의 논쟁을 살펴보면 "자유무역이 옳다! vs. 보호무역이 옳다!"와 같은 1차원적 접근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물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그렇다면 '언제'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언제'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하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접근 방식은 무역정책을 집행할 '상황'(circumstances)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리스트는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를 상황의 구분으로 제시했으나, 거대한 단계의 구분보다는 좀 더 타당한 상황 구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제조업 발전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더라도 항상 올바른 결과를 달성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숙된 농업을 가진채 제조업 단계로 넘어가는 상황은 유치산업보호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리스트는 영국 · 프랑스 등의 역사적 사례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여러 국가들을 살펴보니, 성숙된 농업과 함께 "제조업 역량을 배양하고 이를 통해 최고도의 문명과 교양, 물질적 복지와 정치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특성과 수단을 보유"[각주:6]한 민족이 단지 "이미 더 선진화된 해외 제조업 역량의 경쟁에 의해 진보가 정체"[각주:7]되어 있을 때,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사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리스트의 접근방식은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있으며,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이 불가능 합니다. 


쉽게 말해, 리스트는 제조업 육성에 성공한 국가들이 채택했던 정책을 되돌아 봤을 뿐이지, 비슷한 조건에 있는 다른 국가들이 유치산업 정책을 채택했을 때 똑같은 성공을 안겨다줄 수 있는지는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만약 영국 · 프랑스 등이 다른 정책을 채택했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지도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유치산업보호가 아닌 자유무역을 했더라도 제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면, "유치산업보호가 제조업 육성을 가져왔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현재를 희생하여 제조업을 육성하면 미래의 이익을 얻는다는 걸 아는 국가 · 민족 · 사업가라면, 보호조치가 없더라도 자연스레 이를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스트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미 앞선 외국 제조업과의 경쟁을 견딜 수 없고, 따라서 "'자연스런 사물의 흐름'(the natural course of things)에 따라 국내 제조업이 육성되는 건 전혀 불가능하며 어리석다"[각주:8]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말한 바와 같이 "각 개인은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각주:9]합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래에는 외국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업가라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제조업 분야에 투자를 했을 겁니다. 


리스트는 비교우위론을 정태적(static)으로만 받아들여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는 평생토록 변화하지 않는다"라고 간주했고, 유치산업보호 없이는 평생토록 농업 생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본 사업가에 의해 국가경제의 생산성 · 부존자원 등이 시간이 흐른 후 바뀐다면, 비교우위도 자연스레 변화하는 '동태적 비교우위'(Dynamic Comparative Advantage) 양상을 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유치산업 보호는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리스트의 주장에 대응하는 자유주의의 반격으로 볼 수 있으며, 유치산업보호론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황 및 조건이 필요함을 알려줍니다.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나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대립은 이처럼 학자들 간의 논쟁을 통해 이전보다 정교화된 논점을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과거 만연해있던 중상주의 사상에 대항하기 위해 제시된 자유무역사상은, 시간이 흘러 유치산업보호론의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후 다시 자유주의 논리로 유치산업보호론의 허점을 찌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00% 자유무역이 옳다" 라거나 "100% 보호무역이 옳다" 라는 극단적인 생각은 배제되고, 어떤 상황에서 자유무역 혹은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해야 하며 평상시에는 어떠한 정책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느냐 라는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관점으로 유치산업보호론을 평가하면, 특수한 상황 및 조건(specific condition)을 필요로 하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평상시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는 때때로 정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럼 도대체 유치산업보호론이 타당할 수 있는 특수한 상황 및 조건이 무엇일까요?


▶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의 등장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이를 처음 제시해준 학자가 바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입니다. 『자유론』(『On Liberty』) · 『공리주의』(『Utilitarianism』)로 유명한 그 철학자 입니다. 밀은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뛰어난 통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


● 제10장 잘못된 이론에 근거한 정부개입

(Of Interferences of Government grounded on Erroneous Theories)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각주:10]


생산의 한 분야에서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습득된 기술과 경험이 현재 우월하다는 점 말고는 한쪽이 유리할 것도 다른 쪽이 불리할 것도 본원적으로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각주:11] 


아울러 레이(Rae)가 적확하게 지적하였듯이 어떤 분야의 생산이든 새로운 여건 아래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그렇지만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하기 위해서 한 나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 가운데 불편을 가장 줄이는 방법이 때로는 될 수도 있다.[각주:12]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필수적이다. 또한 국내 생산자들에게는 자기들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정한 기회에 필요한 기간 이상으로까지 관세가 지속되리라고 기대할 여지를 남겨주면 안될 것이다.[각주:13]


(...)


생산비는 언제나 처음에 가장 크기 때문에 실지로는 국내생산이 가장 유리한 경우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금전적으로 손실을 겪는 후가 아니면 이익으로 나타나지 못할 수가 있다.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각주:14]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와 같은 일시적 보호는 일종의 특허와 본질이 같을 것이므로 비슷한 조건 아래서 시행되어야 한다.[각주:15] 


- 존 스튜어트 밀, 박동천 옮김, 『정치경제학 원리 4』, 제5편 제10장, 339-341쪽

- 영어 원문은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존 스튜어트 밀이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제시한 논리는 유치산업보호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새로 정립시켰습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유치산업보호를 주제로 한 경제학 논문들이 오늘날에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밀은 두 쪽 가량의 짧은 문단을 통해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The only case in which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을 논리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①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영국 민족이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기술 · 기질 · 지리적위치 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제조업 생산에 유리해서 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처럼 (부존자원이 아닌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는) 비교우위는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이 먼저 시작하게끔 만들어주어서 획득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럼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 비교우위 결정에 있어 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일까요?


②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공부를 많이 하기 이며 다른 왕도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생산기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경험 축적 입니다. 상품을 처음 제조할때는 미숙한 점이 많아 불량도 생기고 시간도 오래걸리지만, 점점 경험을 축적해나가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즉, 밀의 발언처럼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을 거치면서 생산 경험을 쌓아가면(cumulative learning experience) 더 낮은 비용으로 상품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국가·민족이 비교우위 결정에 유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고, 그 결과 낮은 비용으로 값싼 상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되어 비교우위를 획득하게 된겁니다.


(주 : 무역을 만들어내는 것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16]이며, 비교우위란 높은 기술수준[각주:17] · 풍부한 부존자원[각주:18] 덕분에 '상대적으로 값싼 상품을 생산하는 능력'을 뜻한다는 것을 기억)


존 스튜어트 밀은 '단지 먼저 시작하여 경험을 축적'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교우위가 형성될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하며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습니다. 


③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떠한 나라가 '역사적 우연성' 덕분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고 이후 '학습과 경험'을 통해 비교우위를 가지게 되는 원리는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가 먼저 생산을 시작했더라면, 현시점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보다 더 우월한 생산능력을 가진채 더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잠재적인 비교우위는 뒤늦게 생산한 국가 혹은 아직 생산을 시작하지 못한 국가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보여지고 있는 비교우위 및 무역패턴은 가장 효율적인 결과물이 아닐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잠재적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가 국내 산업 · 기업 등을 지원하여서 앞선 외국을 따라잡거나 혹은 생산을 시작하게끔 만들면, 보다 효율적인 무역패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뒤처진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다면, 미래의 이익 달성을 바라보고 현재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생산에 착수하지 않을까?" 입니다. 이번글 서두에서 말한바와 같이, 미래 이익을 쫓는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여 행위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보호조치는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또 다른 통찰이 후대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무엇인지 한번 살펴봅시다.


④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들이 장기 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을 포착했습니다. 자유시장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 판단하여 생산에 착수할 겁니다. 문제는 자유시장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을 때 벌어집니다.


만약 장기이익을 바라본 사업가가 단기 손실을 감수해가며 생산경험을 축적하였는데, 이때 획득한 경험이 같은 나라의 다른 사업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럴 경우, 후발 사업가는 단기 손실을 보지 않고 바로 이익을 챙길 수 있으며, 단기 손실을 부담한 선발 사업가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줄어듭니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면,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으려 할테고, 결과적으로 그 국가 내에서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밀의 표현처럼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이를 현대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외부성의 존재'입니다. (외부성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하여 비효율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참고 : 외부성 및 생산의 학습효과가 만들어내는 비교우위 패턴, 그리고 그 결과 초래될지도 모르는 잠재적 비효율성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참고)


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여 국내 기업 · 산업을 지원하는 유치산업보호론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정부가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개별 기업들은 경쟁에 대한 부담을 덜고 단기 손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겁니다. 또한 관세부과로 외국 상품가격이 오르게 되면 국내 생산자도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출 및 이윤의 증가를 불러와 단기 손실 크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하였고,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도 밝힙니다. 


⑥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 (...)

일시적 보호관세는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런데 위의 논리를 다르게 보면, 장기 이익이 단기 손실을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성의 존재로 인해 개인이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 할때에만, 일시적인 보호조치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가 때때로 타당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이 마치 무조건적인 보호무역 · 영구적인 보호체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염려하여, 밀은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치산업에 대한 일시적 보호'(Temporary Protection) 라는 점을 재차 강조합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현재 비교열위에 있는 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지원하는 정책도 아닙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없으냐 정부가 일시적인 지원을 하면 향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산업'을 보호 · 육성하는 정책입니다. 


결론 :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자, 이제 존 스튜어트 밀이 남긴 첫 문장이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완벽하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 보호주의 정책은 옳지 않으며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그 경우란 단지 외국 산업에 비해 늦게 시작한 까닭으로 현재 경쟁력이 없으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는' 산업이어서 시간이 흐르면 학습된 경험 축적 덕분에 비교우위를 찾을 수 있는 때 입니다. 오직 이때에만 '토착화되는 동안 일시적으로 보호관세를 부과'하는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은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수행했던 역사적 사례분석에 의존하지 않은채 유치산업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명확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유주의 이념을 가진 당시 경제학자들도 '특정한 경우에는 자유무역 원리에서 이탈하여 수입관세를 이용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무차별적 관세보호 보다는 직접적인 지원이 낫다"


시간이 흘러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에 의문을 품는 다른 학자가 등장했습니다. 이 학자는 "외부성 존재는 효율적 생산을 위해 정부가 개입할 필요를 제기해주지만, 과연 관세 보호 의도했던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What I will question is the effectiveness of tariffs in accomplishing this result.)라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Robert E. Baldwin), 1924~2011

  • 1969년 논문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그 인물이 바로 로버트 발드윈(Robert Baldwin)이며, 해당 주장이 실린 논문은 1969년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the Case Against Infant-Industry Tariff Protection>) 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어깨 위에 올라선 로버트 발드윈은 외부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자원 이용이 불가능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정부개입의 수단(means of government intervention) 이었습니다. 


발드윈이 보기에 산업 내 전체 기업들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보호관세는 외부성 제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성 문제를 겪고 있는 개별 기업만 선별적으로 직접적인 지원을 해야 할 필요(much more direct and selective policy measure than non-discriminatory import duties)가 있었습니.


발드윈은 크게 2가지 경우를 제시하며 각각의 사례에서 보호관세의 무용성(ineffectiveness of protective duty) 및 직접적인 지원(direct subsidy)의 필요성을 설파합니다. 이번 파트를 통해 그의 주장과 논리를 알아봅시다.


●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첫번째는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은 "단순히 초기 생산비용이 외국보다 높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기업을 보호해서는 안되며, 유치산업보호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학습 프로세스와 연결된 기술적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ies frequently associated with the learning process)이 존재해야 한다." 라고 진단합니다.


왜냐하면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미래에 외국기업보다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걸 국내 생산자가 알고 있더라도 기술적 외부성이 존재하면 아예 시장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생산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가가 직면하는 문제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정보를 거리낌없이 쓸 가능성", 즉 기술적 외부성 이며, 이로인해 "개별 사업가가 지식 획득을 위한 투자를 꺼리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아무도 기술진보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 결과 그 나라의 지식수준은 사회적 최적 수준에 미달하게 됩니다. 


이는 앞서 소개한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밀은 보호 관세 부과로 외부성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만약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지식획득에 수반되는 초기 비용투자 부담이 덜어지게 되어 단기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입관세 부과 이후 올라간 상품가격으로 이윤증대를 누리면서 단기 손실을 메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발드윈이 보기엔 국내 전체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인 관세(non-discriminatory import duty)는 외부성으로부터 초래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내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나의 지식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가 수입관세 부과 이후로도 교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드윈은 기술을 무단으로 차용하는 국내 잠재적 경쟁자가 상품가격 인상 덕분에 더 높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하면, 선도적인 기업의 이윤은 국내 경쟁 증대로 인해 줄어들고 결국 지식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심한 경우 기술개발에 투자한 기업들은 모두 퇴출되고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기업만 생존할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발드윈이 진단한 사회적 비효율성이 초래되는 근본원인은 '지식투자로 인한 단기 손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기업이 전유할 수 없는 지식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과 사적 비용의 차이'(knowledge is not appropriable by individual firm) 였습니다. 


단기 손실을 보전해주려는 보호관세는 지식에 투자한 기업의 단기 손실도 줄어주지만, 지식에 투자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의 이윤도 증가시켜 줍니다. 따라서, 발드윈은 든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 보호관세가 아니라 지식을 발견한 기업에게만 주어지는 보조금(a subsidy to the initial entrants into the industry for discovering better productive techniques)이 필요하다 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두번째는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입니다.


국내에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으로 국내 기업 한 곳이 신규진입 하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이 기업은 기술개발 및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borrow funds from investors)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 산업에 대해 아는 투자자가 없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은 기업가치를 올바르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진입기업은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스스로 시장조사(market study)를 하여 투자자에게 상세한 정보(detailed market analysis)를 제공해줄 유인이 있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경우와 유사한 문제가 초래됩니다. 


만약 시장조사를 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하는 데 반하여, 이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기업도 새로운 산업에 먼저 진입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먼저 진입하여 시장조사를 하기만을 바라겠죠. 그것을 못 견디고 먼저 진입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지불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아예 빌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유익한 산업이 수립되지 않는 경우가 초래되고 맙니다.(under these circumstances the firm will not finance the cost of the study, and a socially beneficial industry will not be established.)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무차별적인 보호 관세가 아니라 지식획득을 지원하는 직접적인 보조금(direct subsidies to pay for the costs of knowledge acquisition) 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 로버트 발드윈이 기여한 것


번 파트에서 소개한 로버트 발드윈의 1969년 논문은 "유치산업보호를 위해 수입관세 부과 등으로 보호장벽을 높여야 한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대표적인 참고문헌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첫번째 공헌은 '현재에는 생산비용이 높지만 학습효과에 의해 잠재적 비교우위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항상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현대 경제학 프레임 내에서 논리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지식획득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성이 없다면, 기업은 단기 손실과 장기 이익을 스스로 비교 평가하여 시장에 진입할 겁니다. 또한 금융시장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면, 투자자들은 장기 이익을 내다보고 자금을 빌려줄 것이고, 기업은 단기 손실이 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지식획득이 초래하는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y)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capital market imperfection) 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두번째 공헌은 '비록 지식획득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산업을 보유하지 못하더라도, 수입장벽을 높이는 보호조치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입니다.


수입관세 부과는 외부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채, 지식투자에 기여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들의 시장진입만 되려 부추길 수 있습니다. 또한 금융시장 정보 부재로 인한 문제는 무역보호 조치로 해소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보호를 위한 무역정책을 구사할 생각보다는 구체적인 시장실패를 직접 해결하려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를 기반으로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특정한 경우에 자유무역이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수입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초래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시정하는 구체적인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보호무역 정책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책(Second-Best)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을 통해 보다 정교화된 자유무역 사상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을 통해 세상에 나온 '자유무역 사상'은 이렇게 여러 학자들 간의 논쟁,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을 거치면서 보다 정교화 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와 이번글을 통해 알아본 '자유무역 사상의 진화과정'을 짧게나마 한번 정리해봅시다.


'무역수지 흑자'를 중요시 했던 중상주의 시대[각주:19]

- 토마스 먼,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 1664년


"우호적인 무역수지가 필요하다"


'값싼 외국 상품 수입' 높게 평가하는 자유무역 사상의 등장[각주:20]

- 애덤 스미스,  『국부론』, 1776년 


-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금은을 살 수단[예: 포도주]을 가진 나라는 결코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을 것이다.",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는 우리 상품을 유통시키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할 금은을 언제나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 "나는 이익이나 이득이라는 것은 금은량의 증가가 아니라 그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생산물의 교환가치 증가나 주민들의 연간소득 증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 나라가 이러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한, 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전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만들어낸다'는 비교우위론의 등장[각주:21]원리[각주:22]

- 데이비드 리카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1817년


-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 "한 나라에서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규칙이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 "포르투갈이 수입하는 상품이 잉글랜드에서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적은 노동으로 생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환은 일어날 것이다. (...) 왜냐하면 포르투갈은, 그 자본의 일부를 포도 재배에서 직물 제조로 전환시켜서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직물을, 잉글랜드에서 획득하게 해주는 포도주 생산에 그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 "직물이 포르투갈에 수입되려면, 그것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치르는 값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많은 금을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포도주가 [포르투갈에서] 잉글랜드로 수입되려면, 그것이 포르투갈에서 치르는 값보다 잉글랜드에서 더 많이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비교우위론은 수확체증에 특화하는 영국에게만 이롭다'반박이 등장[각주:23]

- 제임스 브릭던, <호주 관세와 생활수준>, 1925년 논문


- "경제이론은 합리적추론의 기반이지만 일반적인 지침의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엄밀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결과물은 항상 시간 및 공간의 상황에 달려있다. 고전 국제무역이론은 영국의 상황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개발도상국을 선진국에 종속시킨다'주장이 등장[각주:24]

- 라울 프레비쉬,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발전과 주요 문제들』, 1950년


- "종속은 특정한 국가집단이 다른 경제의 발전과 확산에 의해 제약받는 경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 "제조업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한 지배국가는 팽창하고 스스로의 발전에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반면, 1차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종속국가는 이러한 팽창의 반사로써밖에 발전할 수 없을 때 종속의 형태"


-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면, 기술진보의 혜택은 중심부-주변부 간에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대외지향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한국의 경제발전[각주:25]


- "정부는 증산과 더불어 수출을 대지표로 삼았읍니다. 공업원료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은 경제의 생명입니다. 2차대전직후, 영국의 「처어칠」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이란 호소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 "80년대에 가서 우리가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 공업의 육성 등등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 ... 정부는 지금부터 철강,조선,기계,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서 이 분야의 제품 수출을 목적으로 강화하려고 추진하고 있읍니다."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인위적인 제조업 육성이 필요하다'유치산업보호론 등장[각주:26]

-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1841년


- "필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애덤 스미스 이론의 근본 원리를 의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오늘도 이 글을 가지고 나설 용기를 준 것은 주로 독일의 이익이다."


- "투박한 농사에서는 정신적 활력 · 신체적 둔함, 옛 개념 ·관습, ·습관 · 행위 방식에 대한 고수, 교양 · 복지 · 그리고 자유의 부족이 지배한다. 반면에 정신적, 물질적 재화의 끊임없는 증식을 향한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은 제조업 국가 및 상업 국가의 특징이 된다."


- "상공업 패권을 쥔 (영국의) 공장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생 혹은 반밖에 장성하지 못한 공장들보다 앞서는 천 가지 장점을 가진다. (…) 그러한 세력에 맞서 자유경쟁을 하면서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 "부와 생산 역량의 최고도에 도달한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경쟁의 원리로 점진적으로 회귀하여, 농부들 제조업자들 상인들을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하고 이들이 달성한 우위를 유지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자유주의[각주:27]

-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 원리』, 1848년


-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필요하다'현대경제학의 반격[각주:28]

- 로버트 발드윈,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1969년 논문


- "생산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시장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관세부과를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수입관세 부과를 통한 일시적 보호조치는 효율적 생산을 달성케 할 수 없다.", "수입관세는 외부성의 문제를 교정할 수 없다."


- "필요한 것은 지식획득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유치산업이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보호관세가 아니라 보다 직접적이고 선별적인 정책이다."




※ 한국에서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이제 우리는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 육성하고 싶은 국내산업 중 아무거나 보호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② 현재 비교열위에 처한 이유는 단지 외국에 비해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며,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를 통해 향후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생산할 잠재적 비교우위가 있으며, 

 장기 이익을 내다보는 국내 생산자가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 때문에 생산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고, 

 시장실패를 직접적으로 교정하는 정책 대신 보호무역 조치가 더 확실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때, 

⑥ 유치산업보호 정책은 정당화되고 또 의도했던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위의 조건들이 충족됐던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소개했듯이, 한국정부는 기계 · 조선 · 철강 · 화학 · 전자 등의 중화학 업종 육성하기 위하여, 수입장벽을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보조금을 통한 직접 지원도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중화학 공업화로 가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당시 한국정부가 제철소 · 조선소 등을 건립하려고 했을 때, 외국 정부 및 학자들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산업을 왜 키우려고 하느냐. 현재의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 충실해라" 라는 충고를 했습니다.


(지난글에서도 소개했던) 아래의 기사가 당시 정부가 마주했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번 다시 읽어봅시다.


<AID가 본 한국공업건설 (上 제철소의 경우)>

(주 : AID란 원조를 지원해주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의미한다)


경제5개년계획을 특징지으고 있는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러기에 기자는 워싱턴에 닿자마자 AID가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타진해보기 위하여 AID의 문을 두드렸다. (...)


기자가 AID 당국자들과 만나서 얻은 결론은 제철소는 사무적으로는 절대로 무망한 것으로 느껴졌으나 정치적으로 배려를 한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비료공장은 AID가 주장하는 바 과인산질소 배합비료 공장을 세우는 데 한국측이 동의한다고 하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거부하교 요소 25만톤 용량을 만든다는 종래의 주장을 견지한다면 이 역시 AID에서 돈을 꾸지 못할 것이라 것이다.


AID는 대체로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① 한국은 철광석과 코크스 탄 6천 칼로리 이상나는 역청회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0% 이상의 철분을 가지고 있는 철광석의 매장량은 지난번 탐광에 의해서도 겨우 5백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이 나왔으니, 그처럼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해서 연간 25만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이다. (...)


② 그러니까 한국서 제철을 하자면 외국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사오지 않을 수 없는데 철광석을 100만톤, 석탄을 150만톤을 사오자면 적어도 3,500만불의 외화를 매년 지출하여야만 할 것이니 4,200만불의 수출실적 밖에는 못 가지 한국의 외화사정 아래서는 이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물론 철광석과 석탄도 연불 등 상업차관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기도 하나 AID 규정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차관을 받는다는지 원조를 받는다는 것은 허용하지 않기로 되어있으므로 상업차관에 의한 원료 공급도 안된다는 것이다. (...)


③ 설령 한국에 제철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철의 시장경쟁은 지금도 치열하지만 장차 더욱 더 백열전을 전개할 것이니 과연 한국이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경쟁에서나마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는데는 의문이 짙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록 철광석도 석탄도 사다가 쇠를 녹이고 있다고 하나 경영기술에 있어서나 작업기술에 있어서나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일본과 같은 생산비로서 제철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


⑤ 그러니까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제철소를 만들려면 적어도 1억 5천만불을 들여야 할터이니 그 돈을 다른 산업들 한국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을 세우는데 쓰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고 결론 짓고 있는 것 같다. 


- 이동욱, 1962년 10월 20일, 동아일보 칼럼/논단

- 네이버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서 발췌


현재의 포항 제철소는 1965년 한일협정의 산물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되어 1973년 가동을 시작 하였는데,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당시부터 종합제철소 건립을 꿈꾸었습니다. 


꿈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라는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이들의 주된 논거는 '한국의 제철소 건설 시도가 비교우위 원리에 벗어난다' 입니다. 


① 제철소는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등을 제련하여서 철판을 만드는 곳인데, 한국은 원자재를 풍부하게 가진 국가가 아닙니다. 헥셔-올린의 무역이론[각주:29]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relative abundant resource)을 가진 국가가 그 자원이 집약된 산업(resource-intensive)에 비교우위를 가지는데,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② 또한 어찌어지 철판을 생산한다고 해도 과연 일본에 비해 우위를 가질 수 있겠냐는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일본은 70년전부터 제철소를 운영하며 획득한 기술수준으로 낮은 생산비를 유지하는데, 이를 한국이 수년내에 따라잡기 힘들거라는 전망이죠.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날 한국은 세계 1위 제철소로 평가받는 POSCO(구 포항제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외국 기관 · 학자들이 충고했던 자유무역 논리를 그대로 따랐더라면 오늘날 한국에 제철소는 없었을 겁니다.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한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했던 미국제개발처의 발언에서 역설적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사를 통해 드러나듯이, 미국제개발처(USAID)는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보유한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에 의문을 품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철강산업 우위는 '역사적 우연성'에 의한 것일지도...


1960년대 당시 일본이 한국에 비해서 철강산업에 경쟁력을 가지게 된 연유는 선천적으로 제철기술이 뛰어나거나 철광석 등 부존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일본이 한국보다 70년 일찍 철강업을 시작한 역사적 배경 덕분(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반대로 한국이 일본보다 일찍 제철소를 건립했더라면 1960년대 당시의 비교우위는 한국이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철강산업을 보호하면서 육성하면서 70년이라는 시간을 따라잡으면, 장기적으로는 일본보다 경쟁력 있는 제철소를 보유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을 따라잡는 동안에 한국 제철소는 큰 손실을 보겠지만, 정부보조를 받아서 버틴다면 언젠가는 우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지금 제철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향후 제철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느냐"(Dynamic Comparative Advantage)라는 물음을 던져야 마땅합니다. 한국정부는 후자의 물음을 던진 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외부 규모의 경제


제철 · 조선 · 자동차 · 전자 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공장 하나를 짓고 기계설비만 도입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철광석 · 기계부품 등을 외국에서 조달해오기 위한 판로가 필요하고, 여러 하청 업체들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 산업에 맞는 기술을 가진 근로자 집단도 존재해야 합니다. 


이처럼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 · 근로자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scale of economy)라 부릅니다. 이들은 노하우공유, 부품 공동구매, 근로자 채용의 용이함 등 덕분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외부 규모의 경제 또한 외부성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만약 제철 산업을 하고 싶은 산업가 한 명이 혼자 공장을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산업에 진입하지 않는한 생산과정이 매끄럽게 돌아갈리가 없고, 그 결과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정부가 국영기업을 설립하여 직접 사업에 착수하거나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진입하도록 강제(?)하는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미발달된 금융시장


미발달된 금융시장 또한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줍니다. 만약 사업가가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 받을 수 있다면, 단기 손실에 대한 부담이 덜어집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금융시장이 미발달한 상태였고 형성된 자본 크기도 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국내자본과 차관 형태로 들여온 외국자본을 선별된 기업에 몰아주는 금융지원 정책[각주:30]을 구사했습니다. 


이처럼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제철 · 조선 산업의 특징, 부족했던 자본, 금융시장의 미발달 등은 일시적 무역보호체제와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 (보론) 장하준이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첫번째 : 장하준, 2004, 『사다리 걷어차기』
  • 두번째 : 장하준, 2007, 『나쁜 사마리아인들』
  • 세번째 : 서강대 교수진, 2012,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
  • 네번째 :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 2012 번역, 『공격받는 자유무역』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유치산업보호론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내세우는 성공 스토리 입니다.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는 단골 메뉴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정부주도 산업정책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한국인들은 유치산업보호 논리에 친숙하며, 특히 대중적으로 유명한 한 학자로 인해 '문제가 있는 자유무역과 이득을 불러오는 보호무역'을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학자는 바로 장하준 입니다.


장하준은 2004년 『사다리 걷어차기』 · 2007년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선진국의 경제발전은 보호무역 덕분이며,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다'는 식의 논지를 반복해서 주장해왔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수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비판해오고 있습니다. 국제무역 정책 및 역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은 서평을 통해 장하준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각주:31]하였고, 한국 학자들도 단행본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장하준을 비판하였습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된 비판 요지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 편향적 표본선택 및 반사실적 검정의 부재


이는 이번글 서두에서 이야기한, 리스트가 학자들에게 비판받은 지점과 동일합니다. 


장하준은 오늘날 선진국인 미국 · 독일 등의 역사적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과거에 이들이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했고 이것이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이들과 같은 조건에 있었던 국가들이 보호무역을 구사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미국 · 독일 등이 보호무역이 아닌 정책을 구사했더라면 오늘날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장하준은 이들이 과거에 보호무역을 실시하였다고 보는데) 만약 이들이 과거에 자유무역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더 높은 경제수준을 누릴 수 있었더라면, 되려 과거의 보호무역은 악영향만 끼친 꼴이 됩니다.


둘째,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 vs.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 구분의 부재

 

자유무역론을 믿는 주류 경제학자라고 해서 100% 자유무역 정책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글에서 누차 설명했듯이, 특정한 경우에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정당화 되고, 더 나아가 유치산업을 위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할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유무역 이며, 보호는 특정한 경우에 일시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뿐입니다.


하지만 장하준은 시대적 상황 · 국가의 경제수준에 상관없이 어느때든 보호주의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한국에서 유치산업 보호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해서, 오늘날 한국에도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 믿을 수는 없는데 말이죠


앞으로 쓰고 싶은 [실증분석을 위한 계량] 시리즈를 통해 장하준 주장이 가지는 문제를 좀 더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1980년대 미국,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봐왔듯이, 유치산업보호론 혹은 보호무역주의는 주로 개발도상국 내에서 자유무역론에 대항하여 제기된 사상 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미국 내에서, 외국과의 경쟁에서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외국은 주로 '일본'을 의미했으며, 보호하기 위한 국내산업은 주로 철강 · 자동차 등 '제조업'과 반도체 · 전자 등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을 뜻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트럼프행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제조업 및 IT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보호주의를 채택하려는 것과 똑같은 양상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는 것일까요?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과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을 통해, 미국 및 선진국 내의 무역논쟁을 알아봅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6.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7.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8.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412-413쪽 [본문으로]
  9.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4편 제2장, 548쪽 [본문으로]
  10.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본문으로]
  11. (The superiority of one country over another in a branch of production, often arises only from having begun it sooner. There may be no inherent advantage on one part, or disadvantage on the other, but only a present superiority of acquired skill and experience. A country which has this skill and experience yet to acquire, may in other respects be better adapted to the production than those which were earlier in the field:) [본문으로]
  12. (and besides, it is a just remark of Mr. Rae, that nothing has a greater tendency to promote improvements in any branch of production, than its trial under a new set of conditions. But it cannot be expected that individuals should, at their own risk, or rather to their certain loss, introduce a new manufacture, and bear the burthen of carrying it on until the producers have been educated up to the level of those with whom the processes are traditional. A protecting duty, continued for a reasonable time, might sometimes be the least inconvenient mode in which the nation can tax itself for the support of such an experiment.) [본문으로]
  13. (But it is essential that the protection should be confined to cases in which there is good ground of assurance that the industry which it fosters will after a time be able to dispense with it; nor should the domestic producers ever be allowed to expect that it will be continued to them beyond the time necessary for a fair trial of what they are capable of accomplishing.) [본문으로]
  14. (The expenses of production being always greatest at first, it may happen that the home production, though really the most advantageous, may not become so until after a certain duration of pecuniary loss, which it is not to be expected that private speculators should incur in order that their successors may be benefited by their ruin.) [본문으로]
  15. (I have therefore conceded that in a new country a temporary protecting duty may sometimes be economically defensible; on condition, however, that it be strictly limited in point of time, and provision be made that during the latter part of its existence it be on a gradually decreasing scale. Such temporary protection is of the same nature as a patent, and should be governed by similar conditions.)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17.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18.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19.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joohyeon.com/270 [본문으로]
  2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joohyeon.com/271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9.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30.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http://joohyeon.com/157 [본문으로]
  31. 세계경제사학회(Economic History Association), 2004.04. Book Review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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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Posted at 2018. 12. 5. 01:2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한국 경제발전은 자유무역 덕분? 보호무역 덕분?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outward-trade regime)를 선택한 덕분에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1961년 쿠데타 이후 대내지향적 자립경제를 추구했던 박정희정권은 1964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보완하여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965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영국 처칠 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 발언을 인용하였고, 각종 수출 지원 정책이라는 당근과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통한 수출책임제 점검 이라는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973년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1980년 수출액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한 중화학 공업화'를 목표로 내걸었고, 수출액 100억 달러를 3년이나 앞당긴 1977년에 이루었습니다.


만약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내포적 공업화 전략(수입대체 산업화)을 계속 고수했더라면, 중남미 국가들처럼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룰 뻔[각주:1] 했는데, 참으로 다행스런 방향전환 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발전을 통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지향해왔다'는 사실 뿐입니다.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한 한국 경제발전 성공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인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인지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논쟁사항 입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 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 해주는 근거가 바로 기계 · 조선 · 철강 · 화학 · 전자 등의 중화학 업종 육성 입니다. 이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수입장벽을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보조금을 통해 지원하였습니다.



즉, 한국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에 따라서 경제발전 경로를 밟아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이란 말그대로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인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여(temporary protection) 육성시키자'라는 논리 입니다.

만약 당시 한국이 비교우위론을 철저히 따라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 1차산업이나 단순 공산품 생산에만 집중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의 중화학 공업화 성공은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과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후자의 정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한국의 경제발전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떤 논리로 말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유치산업보호론이 100% 보호무역체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입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말그대로 어린아이 수준인 산업(infant industry)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자(temporary protection)는 논리 입니다. 평생토록 무역장벽을 높여서 살자는 이론이 아닙니다.


성숙한(mature) 산업을 보유한 오늘날 한국은 개방적인 무역체제를 지향하고 있으며, 경제발전 당시에도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부는 특정 기업을 선정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만약 보호와 동시에 국내에 안주하게끔 하였다면, 기업의 생산성 정도가 아닌 정권과의 결탁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했을겁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는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경쟁'과 '해외진출을 통한 시장크기 확대' 등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살려야 합니다. 


제가 전달하고 싶은 생각은 "애시당초 100% 보호무역체제나 100% 자유무역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고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이 둘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현실 속 논의과정에서 큰 차를 불러옵니다. 


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국가주도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우선적으로 주장합니다. 과거 개도국이었던 한국과 오늘날 선진국인 한국의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필요한 개도국과 경제강대국인 미국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산업 · 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경우를 우선 진단합니다. 과도한 국가개입은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나라가 국가주도 정책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도 똑같은 성공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남미와 한국의 사례에서 처럼 말이죠.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지느냐는 결국 사상과 철학의 문제입니다. 경제사상 변천은, 정치사상이 그러하듯이, 위대한 학자들의 논의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앞으로 2편의 글을 통해 위대한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며, 주류 경제학계 내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과 '유치산업보호론' 그리고 '보호무역론'을 둘러싼 대립과 논쟁이 어떻게 변화 · 발전 되어왔는지를 알아봅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보다 정교화 할 수 있을겁니다.




※ '자유주의 사상을 토대로 한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


  •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에서 살펴본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을 되돌아 봅시다. 그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시대적 배경을 우선 파악해야 합니다. 『국부론』이 출판된 1776년은 아직 중상주의(mercantilism)가 영향력을 가졌던 시대였고,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했습니다.  


국가가 무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금은보화 등 재화를 축적하려고 했던 중상주의 시기.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자연적자유(natural liberty)에 따라 행동한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한다고 생각했으며, 국가보다 개인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better knowledge)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무역을 규제하기 보다는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부론』의 상당부분에 이러한 주장을 할애하였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을 높은 관세나 절대적 금지에 의해 제한함으로써 이 재화를 생산하는 국내산업은 국내시장에서 다소간 독점권을 보장받는다. (...) 국내시장의 이와 같은 독점권은 그런 권리를 누리는 특정 산업을 종종 크게 장려할 뿐만 아니라, 독점이 없었을 경우 그것으로 향했을 것보다 더 큰 노동·자본을 그 산업으로 향하게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독점권이 사회의 총노동을 증가시키거나 그것을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가는 결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각 개인은 그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


자기의 자본을 국내산업의 어느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 그리고 어느 산업분야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8~553쪽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manufacturing)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비판적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자본과 노동을 자연적 흐름에 거슬러 인위적으로 특정 부문에 배치하는 것은 효율적 생산을 가로막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현재 제조업이 없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사실 이러한 규제에 의해 특정제조업이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 빨리 확립될 수도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외국과 같이 싸거나 더 싸게 국내에서 생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노동이, 비록 이처럼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욱 빨리 특정분야에 유리하게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노동이나 사회의 수입 총액이 이와 같은 규제에 의해 증대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사회의 노동은 자본이 증가하는 비율에 따라 증가할 수 있을 뿐인데, 자본은 수입 중에서 점차 절약되어 저축되는 것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제의 직접적인 효과는 그 사회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고, 그리고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빨리, 사회자본을 증가시킬 수는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없음으로써 사회가 문제의 제조업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는 그 때문에 어느 한 기간 내에 필연적으로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발전의 어느 한 시기에 사회의 모든 자본과 노동은, 비록 다른 대상에 대해서이긴 하지만, 당시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각 시기마다 그 사회의 수입은 그 사회의 자본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수입이며, 자본과 소득은 모두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이처럼 (절대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세상에 내놓았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사고방식은 개인의 이익추구가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며, 개인의 행위가 올바른 결과를 낳는다는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자혜로운 신의 설계와 간섭 덕분"(design and intervention of a benevolent God)이라고 믿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조화처럼 느껴지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하여 결국 자연은 조화를 이루어 작동하기 때문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간의 선입견과는 달리) 교조적인 자유방임주의(lassez-faire)를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사적이익과 공공이익 간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 경우 정부개입이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정부의 기능을 국방 · 사법 · 공공기구 등 3가지에만 국한하였는데, 그 이유는 정부가 민간부문에 개입하여 공공의 후생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더 나은 지식'(better knowledge)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미스가 살던 18세기 후반 영국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했었기 때문에 정부개입을 꺼려했습니다.


따라서, 자유주의 사상과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덤 스미스는 자유무역의 이점을 설파하였습니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뒤이어, 비교우위론을 소개한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의 『원리』가 출판되며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이론적 기반을 확고히 다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동시기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반박하는 주장들도 제기되었습니다. 


스미스와 리카도는 모두 영국인 입니다. 18세기 말~19세기 초반 영국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세상에 내놓은 배경은 '경제성장을 위해서 수확체감 성질을 가진 산업을 포기하고(=외국으로부터의 수입으로 대신하고) 제조업 같은 수확체증산업(increasing return)에 특화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을 주장한 이들과는 달리, 리카도는 오히려 제조업을 위해서 자유무역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 부문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참고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비판의 선봉자가 바로 미국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독일인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 입니다.


초대 워싱턴정부 재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1791년 <제조업에 관한 보고>(<Report on Manufactures>)을 통해 제조업 육성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미국시민권을 획득한) 독일인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1827년 <미국정치경제론>(<Outlines of American Political System>) 및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The National System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스미스와 리카도가 제시한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며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제조업 육성'(manufacturing)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미리 발전한 외국(특히 영국)과의 자유경쟁이 벌어지는 상황 하에서는 제조업을 키우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해밀턴과 리스트가 스미스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근원을 탐구하는 건, 자유무역론 · 유치산업보호론 · 보호무역론을 둘러싼 논쟁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번글에서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적 근원을 스미스의 것과 비교해 봅시다.




※ 애덤 스미스를 비판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번 파트에서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애덤 스미스를 비판한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국내의 특정 산업을 외국 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자'는 유치산업보호론의 논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타당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국내 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temporary protection)하는 것이니, 문을 닫고 폐쇄적으로 살자는 논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유무역론과 대비되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이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를 대표하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과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 사상이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구성되어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 vs 민족주의(nationalism)


▶ 애덤 스미스 : 세계시민주의 사상 (사해동포주의 사상)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특화한 뒤 서로 교환을 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효율적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설명 1[각주:2]2[각주:3])


이는 사실상 '국제적 차원의 노동분업론'(international divison of labor)과 마찬가지이며,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전인류(mankind)의 후생을 평가하는 세계시민주의(혹은 사해동포주의, cosmopolitanism)의 관점을 가지고 세계경제를 바라봅니다(doctrine of universal economy). 


▶ 프리드리히 리스트 : 민족주의 사상


유치산업보호론은, 이에 반하여, "모든 국가와 민족은 각자 처한 발전정도와 상황이 다르며, 진정한 무역자유가 이루어지려면 후진적인 민족과 앞선 민족이 대등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이를 믿는 사람들은 민족경제적 관점(national economy)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은 민족경제를 다루어야 하며, 어떤 국가가 각자의 특성한 상황에 맞추어 가장 강력하고 부유하고 완벽한 국가가 되기 위해 어떻게 권력과 부를 증대시켜야 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은 모든 민족이 '동등한 상태'에 있을 때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이지, '훨씬 뒤처진 민족'에게 자유경쟁은 경제발전에 해만 끼칩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주장을 직접 읽어봅시다.


● 서론


필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애덤 스미스 이론의 근본 원리를 의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가 이때 이후로 여러 익명의 기사에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실명으로 쓴 더 긴 논문으로 그 이론에 반대되는 견해들을 전개할 수 있게 한 것은 조국의 사정이었다. 오늘도 이 글을 가지고 나설 용기를 준 것은 주로 독일의 이익이다. (...) 


단 한 민족의 압도적인 정치력이나 압도적인 부에서 나오는, 그래서 다른 민족들의 예속과 종속에 기초를 둔 만국연맹은 모든 민족적 고유성과 민족들의 일체의 경쟁심이 몰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민족 정체성의 개념과 본성에 출발하여 어느 한 민족이 현재의 세계 정세와 특수한 민족 상황에서 자신의 경제적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정치경제학 및 민족경제학(national economy)과,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단 하나의 영원한 평화 위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이룬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혹은 세계 경제학(cosmopolitical economy)을 구분해야 한다. 


그 학파(prevailing school[각주:4])가 소망하듯이 모든 민족의 보편적 연맹 혹은 연합을 영원한 평화의 보장책으로 전제한다면, 국제적 무역 자유의 원칙은 완전히 정당화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목표의 추구에서 제한을 덜 받을수록, 그와 자유 교류 관계에 있는 자들의 수와 부가 클수록, 그의 개인적 활동이 뻗어 갈 수 있는 공간이 클수록, 그에게 본성상 주어진 특성들, 획득된 지식과 숙련 그리고 그에게 제공되는 행복을 증진할 자연적 역량을 활용하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


그 학파는 민족 정체성의 본성과 그 특수한 이익과 상태를 고려하여 이를 보편적 연맹과 영원한 평화의 관념과 조화시키기를 게을리했다. 그 학파는 이루어져야 할 상태를 현실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 학파는 보편적 연맹과 영원한 평화의 존재를 전제하고 이로부터 무역 자유의 큰 이익을 도출한다. 이런 식으로 그 학파는 효과와 원인을 혼동한다. (...)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줄 예들은 모두가 정치 통합이 선행하고 무역 통합이 뒤따른 예들이다. 역사는 무역 통합이 선행하고 정치 통합이 그로부터 자라난 예를 하나도 알지 못한다. (...)  


무역 자유가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려면 후진적인 민족들은 인위적 조치에 의해 영국 민족이 인위적으로 올려진 것과 같은 단계의 성숙에 올려져야 했을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머리말-192쪽


그렇다면 올바른 자유무역을 위한 선행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후진적인 민족을 동등한 수준으로 발전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경제발전 혹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요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관점 차이가 드러납니다.


둘째, 국부의 원천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노동 분업(division of labour) vs.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


▶ 애덤 스미스 : 노동 분업을 통한 생산성 증대의 중요성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한 나라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노동생산력(productive powers of labour)을 최대로 개선 · 증진시키는 것은 분업(division of labour)의 결과"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국부는 재화의 축적(accumulation)"으로 바라봤던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고 '분업을 통한 생산'(production)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물질적 상황 뿐 아니라 정신적 역량도 중요


프리드리히 리스트도 노동을 통한 생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리스트는 좀 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노동의 원인은 무엇인가?"


리스트는 "인간의 머리와 팔, 손이 생산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들에게 생기를 주는 정신, 그들의 활동에 결실을 맺어주는 사회질서, 그들에게 제공되는 자연력" 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애덤 스미스는 분업을 통해 물질적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리스트는 노동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주는 정신 · 사회질서 · 법률 등의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원문을 길더라도 읽어봅시다.


●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The Theory of the Powers of Production and the Theory of Values)


부의 원인은 부 자체와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한 개인은 부, 즉 교환가치를 소유할 수 있더라도 그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 힘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가난해진다. 한 개인은 가난할 수 있더라도 그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큰 액수의 가치 있는 물건들을 만들 힘을 소유한다면 부유하게 된다.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힘은 이에 따라 부 자체보다 무한히 더 중대하다. 그것은 획득물의 소유와 증대를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상실한 것의 보상도 보장해 준다. 이는 사인들보다 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민족 전체에게 훨씬 더 해당된다. (...)


명백히 스미스는 중농주의자들의 사해동포주의 관념인 '무역의 보편적 자유'(universal freedom of trade)의 관념에, 그리고 그 자신의 위대한 발견인 '노동 분업'(the division of labour)에 너무 많이 지배를 받아서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의 관념을 추구할 수가 없었다. (...)


노동이 부의 원인이고 무위도식이 빈곤의 원인이라는 판단에 대해 언제나 다음과 같이 더 많은 질문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의 원인은 무엇이며, 무위도식의 원인은 무엇인가? (...)


이 모든 관계에서 가장 많은 것이 그 개인이 성장하고 움직이는 사회의 상태에, 과학과 예술이 융성하느냐에, 공공 제도와 법률이 종교성 · 도덕성 · 지력 · 인신과 재산의 안전 · 자유와 권리를 낳느냐에, 민족 안에 물적 복지의 모든 요인들, 농업 ·제조업 · 상업이 고르고 조화롭게 성숙했느냐에, 민족의 세력이 개인들에게 복지 상태와 교양에서의 진보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 가며 보장해 주고 국내적 자연력을 그 전체 범위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해 줄 뿐 아니라 대외 무역과 식민지 보유를 통해 외국들의 자연력도 가져다 쓸 수 있게 할 만큼 충분히 크냐에 달려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런 힘들의 본성을 전체적으로 별로 인정하지 않아서, 권리와 질서를 관리하며 수업과 종교성, 과학과 예술 등을 돌보는 이들의 정신 노동의 생산성(productive character to the mental labours)을 한번도 시인하지 않았다. 그의 탐구는 물적 가치를 창출하는 인간 활동에 국한된다. (...)


곧바로 그의 학설은 물질주의, 분권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점 더 깊이 침몰한다. 그가 '가치', '교환가치'의 관념에 지배를 받는 일 없이 '생산 역량'(productive power) 관념을 추구했더라면,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가치 이론 옆에 독립적인 생산 역량 이론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통찰에 도달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 상황(material circumstances)을 가지고 정신적 역량(mental forces)을 설명하는 잘못된 길로 빠졌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01-209


그럼 리스트가 강조하는 정신 · 사회질서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바로 여기에서 스미스와 달리, 리스트가 '제조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는 제조업이 발달할수록 노력 · 경쟁심 · 자유의 정신이 고양된다고 믿었습니다.


셋째, 제조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다 vs. 제조업은 정신적 역량을 키워준다


▶ 애덤 스미스 :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애덤 스미스는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제조업은 정신적 역량을 키워준다


이에 반해, 리스트는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7장-제26장에 걸쳐 제조업의 이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농사에서는 신체적 둔함, 옛 관습, 교양과 자유의 부족이 지배"하나, 제조업 국가에서는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이 존재한다고 비교합니다.


제조업이 이러한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는 '제조업자들은 본질적으로 사회 안에서 활발히 교류를 하며 사업을 영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농업과는 달리 제조업은 다양한 능력과 숙련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제조업 국가에서 정신적 자질이 더 높게 평가됩니다.


리스트는 제조업의 중요성을 간과한 애덤 스미스를 향해 "미활용된 자연력이 오직 제조업에 의해서만 소생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라고 비판합니다.


아래의 원문을 읽어보도록 하죠.


● 제17장 제조업 역량과 인적 · 사회적 · 정치적 · 민족적 생산 역량


투박한 농사에서는 정신적 활력 · 신체적 둔함, 옛 개념 ·관습, ·습관 · 행위 방식에 대한 고수, 교양 · 복지 · 그리고 자유의 부족이 지배한다. 반면에 정신적, 물질적 재화의 끊임없는 증식을 향한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은 제조업 국가 및 상업 국가의 특징이 된다. (...)


농사를 영위하는 인구는 그 나라 전체에 흩어져 살며, 정신적 ∙ 물질적 교류에 관련해서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 그의 일이 그를 인간과의 교류에서 멀리 떼어 놓듯이, 그것은 또한 그 자체로 관습적인 운영에서도 조금의 정신 집중, 조금의 신체적 숙련만 요구한다. (..) 재산과 빈곤은 소박한 농업에서는 대대로 상속되며, 거의 모든 경쟁심에서 생겨나는 분발의 힘은 죽어 있다. (...)


제조업자의 본성은 농업인의 본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제조업자들은 사업 운영에 의해 서로에게 이끌려서 사회 안에서, 그리고 사회를 통해서만, 교류 안에서, 그리고 교류를 통해서만 살아간다. (...) 그의 생존과 번영은 촌사람에게처럼 자연의 호의와 관습적 활동이 보장해 주지 않으며, 이 둘은 완전히 그의 통찰력과 활동에 달려 있다. (...) 그는 언제나 사고팔고 교환하고 거래해야 한다. 어디서나 그는 인간들, 변동 가능한 상황, 법령과 제조들과 관계해야 한다.


제조업의 노동은 그 전체로 본다면, 첫눈에 밝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농업보다 비교도 안 되게 더 다채롭고 더 수준 높은 정신적 특성과 숙련을 성숙시키고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


명백히 농업에 의해서는 같은 종류의 인성들만이, 오직 투박한 수작업의 실행에 신체적 힘과 끈기를 약간의 질서를 위한 감각과 결합하는 그런 인성들만이 소용되는 반면에, 제조업은 천 가지의 다양한 정신적 능력, 숙련 그리고 연습을 요한다. (...) 제조업 국가에서 정신적 자질은 농업국에서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높이 평가되는데, 농업국에서는 보통 인간들의 능력을 단지 그의 신체적 힘에 따라서만 측정한다. (...)


사업 운영의 분업과 생산 역량의 연합 법칙은 반대로 저항할 수 없는힘을 가지고 다양한 제조업자들을 서로 모이게 한다. 마찰이 자연의 불꽃처럼 정신의 불꽃을 일으킨다. 그러나 정신적 마찰은 밀접한 공생이 있고, 빈번한 사업적, 과학적, 사회적, 시민적, 정치적 접촉이 있고 물자와 관념의 교류가 많은 곳에서만 있다. 


인간이 동일한 장소에 더 많이 모여 살수록, 이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사업에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협력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사업이 이 개인들 각 사람의 지식, 안목, 교양을 많이 요구할수록, 자의성, 무법성, 억압과 불법적 월권행위가 이 모든 개인의 활동 및 행복의 목적과 덜 조화될수록 시민적 제도들은 더욱 완전하고, 자유의 정도는 더욱 높고, 스스로 교양을 쌓거나 타인의 교양에 협력할 기회는 더욱 많다. 그래서 어디서나 어느 시대나 자유와 문명을 도시들에서 출발한다, (...)


그런 시대에는 제조업의 가치는 어느때보다도 더 정치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애덤 스미스는 민족 전체의, 그 민족의 물적 자본 총액을 늘리는 능력이 주로 미활용된 자연력들을 물적 자본으로, 가치 있는 도구이자 소득을 가져다주는 도구로 전환시킬 능력에 있다는 것, 그리고 농업 민족에게서 다량의 자연력이 놀면서 아니면 죽어서 누워 있어서, 오직 제조업에 의해서만 소생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는 제조업이 국내외 무역에, 그 민족의 문명과 세력에, 그리고 자주와 독립의 유지에, 그로부터 솟아나는 물적 재화를 취득할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82-320




※ 유치산업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그렇다면 이제 (애덤 스미스와 대비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생각하는 '제조업을 육성하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넷째, 무역보호로 제조업을 육성해야 하느냐(할 수 있느냐)를 둘러싼 관점의 차이 

- 자유주의(liberalism) vs 국가개입주의(government intervention)


▶ 애덤 스미스 : 자유주의 사상


앞서 말했듯이,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가난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며 당시 사회의 총자본이 효율적인 다른 곳에 쓰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스미스는 "외국상품의 수입 자유로 인해 국내 특정 제조업을 위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덜 심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나라로 수출되고 있는 국내 제조상품은 여전히 해외에서 팔릴 겁니다. 또한, 자유무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대다수 제조업은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각주:5].


이처럼 애덤 스미스는 철저한 자유주의자 · 자유무역론자 였습니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 국가개입주의 사상


프레드리히 리스트는, 애덤 스미스와는 달리, "정부는 개인 산업을 통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의 국부와 권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는 의무 또한 가지고 있다.[각주:6]"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유방임의 원칙은 개인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데, 현실 속에서 그럴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국가권력이 그 자체로 무해한 교역을 민족의 최선이 되게 제한하고 규제하는 것은 정당화될 뿐 아니라 그럴 의무를 진다.[각주:7]"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보호관세(protective duty)를 통해 외국산 제조상품의 수입을 막고 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필요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관세부과로 수입상품의 가격이 올라 소비자(민족)의 부담이 커질 수 있으나, "미래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원문을 읽어보도록 하죠.


●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민족은 정신적 혹은 사회적 역량을 취득하기 위해 물적재화를 희생하고 여의어야 하며, 미래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


보호관세가 초기에는 제조 상품을 등귀시킨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진실이고 아예 그 학파가 인정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온전한 제조업 역량의 향상을 이룰 능력을 부여받은 민족이 제조 상품을 외국에서 도입할 수 있는 것보다 국내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호관세에 의해 가치의 희생이 초래된다면, 이는 그 민족에게 비단 미래를 위해 무한히 더 큰 물적 재화의 총액만이 아니라 전쟁의 경우에 대비한 산업적 독립성도 확보해 주는 생산 역량의 취득에 의해 보상된다. 산업적 독립성 그리고 이로부터 자라나는 내부적 번영을 통해 민족은 대외 무역, 해운업의 확장 수단을 손에 넣으며, 문명을 증진하고, 국내의 제도들을 완성하고, 세력을 대외적으로 강화된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16쪽


이때 "자유무역을 추진하면서 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수는 없느냐?" 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리스트는 부정적 입니다. 그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데 대한 이유와 동일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외국에게 자유경쟁으로 맞서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말그대로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과거로부터 축적된 생산과 자본의 축적 등의) 뒷받침을 받는 이 민족들이 나머지 모든 나라의 제조업에 말살의 전쟁을 선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른 민족들에서는 농업 진보에 따라 애덤 스미스가 표현하는 바와 같은 "자연스런 사물의 경과에서"(the natural course of things) 거대한 제조업과 공장들이 생겨난다거나, 혹은 전쟁에 의해 유발된 무역 중단에 따라" 자연스런 사물의 경과에서"(the natural course of things) 생겨난 그런 것들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데 대한 이유와 동일한 것이다. 


상공업 패권을 쥔 (영국의) 공장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생 혹은 반밖에 장성하지 못한 공장들보다 앞서는 천 가지 장점을 가진다. (…)


그러한 세력에 맞서 자유경쟁을 하면서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the natural course of things)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한 민족들은, 영국의 제조업 패권 밑에 영원히 굴복하는 상태에 있기로 결심하고 영국이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거나 다른 어디에서 들여오지 못하는 것만을 영국에서 조달하는 데 만족하려고 해도 헛수고일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412-413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애덤 스미스 간 관점 · 사상 · 철학의 극명한 대비


  •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금까지 살펴본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생각을 다시 되짚어 봅시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전인류의 후생을 총체적으로 평가했던 애덤 스미스와 달리, 개별 민족 경제(national economy)의 번영을 우선시 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이 각자 처한 상황 하에서 어떻게 부와 권력을 증대시켜야 하는지를 고민했죠.


이때, 리스트가 보기에 국부의 원천은 단순한 분업을 통한 노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게 만드는 원인'인 정신적 역량 · 사회질서 등 이었습니다. 과학과 예술, 공공제도와 법률, 개인의 교양 등의 생산 역량(powers of production)이 부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 역량을 키우게끔 만드는 산업이 바로 '제조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스미스는 제조업은 특별한 산업이 아니며 사회의 총 자본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해만 불러온다고 여겼지만, 리스트는 제조업은 미활용된 자연력을 소생시키게 해주며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단호한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따라서 리스트는 보호관세를 통해 유치산업을 보호(infant industry protection)해야 하며, 외국과의 자유경쟁 속에서 국내 제조업이 발전할 수 없는 이유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애덤 스미스와의 관점과 사상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를 통해 스미스를 비판해온 리스트는 '그 학파의 세 가지 주된 결함'(the system of the school suffers from three main defects)라고 언급하며 다시 한번 차이를 부각시킵니다.


●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그 학파의 체계는 앞의 장들에서 보여 주었듯이 세 가지 주된 결함으로 시달린다.


첫째, 민족 정체성의 본성도 인정하지 않고 민족의 이익 충족도 고려하지 않는, 토대 없는 사해동포주의다.


둘째로는 어디서나 주로 물건들의 교환가치를 염두에 두고, 민족의 정신적 ∙ 정치적 이익, 현재 ∙ 미래의 이익과 생산 역량은 고려하지 않는 죽은 유물론이다.


셋째로는 조직 해체를 시키는 분파주의와 개인주의로서 이는 사회적 노동의 본성, 그리고 그 상위 결과들에서 역량들의 결합의 영향을 무시하여 근본적으로 오직 사적 산업만을, 그것이 특수한 민족 사회들로 분리되지 않았을 경우에 어떻게 사회와, 즉 전체 인류와 자유교역을 발달시키는지만을 묘사한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55쪽




※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자유무역론을 완전히 거부했을까?


, 이렇게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Free Trade)과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는 극과 극의 사상적 대립으로 보여집니다. 지금 이렇게 보면 꼭 둘 중 옳은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번글의 서두에서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냥 자유무역vs보호무역을 하면 될텐데 말이죠.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보호무역이 초래할 수 있는 폐해를 알고 있었습니다. 리스트는 "대외 경쟁을 완전히 배제하는 너무 높은 수입 관세는 이를 통해 제조업자들과 외국과의 경쟁이 배제되고, 무감각이 조장되므로 이를 부과하는 민족 자체에 해롭다."[각주:8]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게다가 리스트는 궁극적 목표로서 자유무역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모국인 독일이 영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나면 자유무역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과거 그 시점에 리스트가 자유무역을 비판했던 이유는 독일의 경제력이 자유무역을 시행할 '단계'(stages)가 아니었기 때문이며,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이 개별 민족국가들이 처한 산업발전 단계(stage of industrial development)를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유무역의 전제조건은 "후진적 민족들이 인위적 조치에 의해 영국 민족이 인위적으로 올려진 것과 같은 단계의 성숙에 올려"[각주:9]지는 것이며, 보호무역은 "다른 민족들보다 시간상으로 앞설 뿐인 민족과 대등하게 해 줄 유일한 수단인 한"[각주:10]에서만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보호체제는 여러 민족을 최대한 동일한 단계(equally well developed)에 올려놓은 뒤 궁극적으로 달성할 "진정한 무역 자유의 가장 중대한 촉진수단"[각주:11]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 간의 관점 · 사상 · 철학의 차이가 초래된 근본 원인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무역론과 유치산업보호론은 두 학자 간의 사상과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고, 사상과 철학의 차이는 '이미 발달된 제조업을 보유한채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인이 중요시한 것''영국에 뒤처진 후발산업국가로서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독일인이 중요시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독일인 리스트'에게는 개별 국가와 민족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는 민족경제학이 필요했으며, 경제발전을 위한 생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제조업을 육성해야 했고, 영국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당시로서는 자유경쟁이 아닌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타당했으며, 훗날 영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나면 다시 자유무역으로 돌아갈 구상을 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곳곳에 '산업발전 단계'(stage of industrial development)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경제적인 면에서 민족들이 5단계의 산업발전을 거친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원초적 야만시대. 둘째, 목축 시대. 셋째, 농업시대. 넷째, 농업·제조업 시대. 다섯째, 농업·제조업·상업 시대.


그리고 산업발전 단계마다 필요한 무역정책은 다릅니다


Ⅰ. 아직 농업이 발달하지 않아 제조업 육성에 신경쓸 필요가 없을 때에는 자유무역을 통해 농산물을 수출하고 제조 상품을 수입해야 합니다. 


Ⅱ. 이제 농업이 많이 발달하여 제조업 육성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자유무역을 통한 외국 제조 상품 수입의 이점은 줄어듭니다. 이 단계에서는 보호무역을 통해 국내 유치 제조업을 보호해야 합니다. 


Ⅲ. 그리고 제조업이 고도로 발달한다면 보호정책은 정당화 되지 않으며 자유무역으로 돌아가 무역의 이점을 살려야 합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유치산업보호 및 보호체제는 오직 두번째 단계에 있는 민족들에게만 정당화 된다는 의견을 명확히 밝힙니다. 


만약 제조업 발달 이후에도 보호체제를 지속한다면 "해외 경쟁을 완전히 그리고 일거에 배제하고 보호해야할 민족을 타 민족들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한다면, 사해동포주의 경제학의 원칙에 충동할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주의해야 할 이익에도 충돌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보호 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에서만 정당화 될 뿐입니다. 외국 경제학자들이 유치산업보호론을 소개할 때 영문명을 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 즉 '유치산업을 위한 일시적 보호'로 주로 작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머릿속을 직접 읽어봅시다.


●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경제적인 면에서 민족들은 다음의 발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원초적 야만 시대, 목축 시대, 농업시대, 농업 ∙ 제조업 시대, 농업 ∙ 제조업 ∙ 상업 시대. (...) 


농업이 덜 성숙했을수록, 그리고 대외 무역이 국내 농산물과 원재료를 타국의 제조 상품과 교환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거기서 그 민족이 아직 야만 상태에 빠져 있어 절대군주제 정부 형태와 입법을 더 많이 필요로 할수록, 자유무역은 즉 농산물 수출과 제조 상품 수입은 그 민족의 복지와 문명을 더욱더 촉진할 것이다. (...)


반대로 한 민족의 농업, 산업 및 사회적, 정치적, 시민적 상태가 전반적으로 많이 발달해 있을수록, 그 민족은 국내 농산물과 원재료를 외국의 제조 상품과 교환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사회적 상태 개선을 위해 이익을 그만큼 덜 볼 것이며, 그 민족보다 우월한 외국의 제조업 역량의 성공적 경쟁에 의해 더욱더 큰 손해를 감수하게 될 것이다. (...)


오직 후자의 민족들, 즉 제조업 역량을 배양하고 이를 통해 최고도의 문명과 교양, 물질적 복지와 정치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특성과 수단을 보유하는, 그러나 이미 더 선진화된 해외 제조업 역량의 경쟁에 의해 진보가 정체된 민족들에서만, 제조업 역량의 배양과 보호 목적을 위한 무역 규제는 정당화되며, 


또한 그런 민족들에서 제조업 역량이 해외 경쟁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강화될 때까지만 정당화되며 그때부터는 국내 제조업 역량의 뿌리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정당화된다. (...)


보호 체제는 해외 경쟁을 완전히 그리고 일거에 배제하고 보호해야할 민족을 타 민족들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한다면, 사해동포주의 경제학의 원칙에 충동할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주의해야 할 이익에도 충돌할 것이다. (...)


천연산물과 원재료에 대한 자유무역의 제한이 제한을 가하는 민족에게도 크나큰 폐해를 가져온다는 것, 그리고 보호 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에서만 정당화된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모든 민족, 온 인류의 복지와 진보에 펼쳐지는 거대한 유익을 일으킬 것이다.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259-271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리스트가 보기에 개별 국가들이 처한 단계(stages)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유무역의 이점만을 설파하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리스트는 "그 학파는 고도의 경제적 성숙에 도달한 민족들과 낮은 단계에 있는 민족들을 구별할 줄 모른다.[각주:12]"(The school recognises no distinction between nations which have attained a higher degree of economical development, and those which occupy a lower stage.) 라고 반복해서 비판을 가합니다. 


이번 파트에서 계속 강조하지만, 리스트에 중요한 것은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industrial development)입니다. 그는 교조적인 보호무역주의자 혹은 유치산업보호론자가 아니었습니다. 되려 궁극적으로 자유무역을 추구했던 자입니다[각주:13].


리스트는 역사로부터 배울 것(the Teachings of History)은 발전 단계에 따라 체제를 변경할 수 있고 또 변경해야 한다는 사실(may and must modify their systems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ir own progress) 이라고 재차 주장합니다. 


● 제 10장 역사의 가르침(the Teachings of History)

(주 : 한국어판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서, 영어 원문[각주:14]을 본 후 제 방식대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끝으로, 역사는 최고도의 부와 생산 역량 달성에 필요한 자연적 자원을 갖춘 국가들이 그들의 발전단계에 따라 체제를 변경할 수 있고 또 변경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첫번째 단계에서,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고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더 앞선 민족과 자유무역을 채택해야 한다. 


두번째 단계에서, 상업제한을 통해 제조업자, 어업, 해운업, 대외무역을 발전시켜야 한다. 


세번째 단계에서, 부와 생산 역량의 최고도에 도달한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경쟁의 원리로 점진적으로 회귀하여, 농부들 제조업자들 상인들을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하고 이들이 달성한 우위를 유지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각주:15]


-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승무 옮김, 1841년,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지만지, 179




※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논쟁, 깊이있는 이해를 위한 물음


이번글을 통해 살펴본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사상 · 철학 논쟁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자유무역이 옳다! vs. 보호무역이 옳다!"와 같은 1차원적 접근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지게끔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언제'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언제'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하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접근 방식은 무역정책을 집행할 '상황'(circumstances)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어떤 때에는 자유무역 정책이 옳으며, 또 다른 때에는 보호무역 정책이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리스트는 산업발전 단계를 상황의 구분으로 제시했고 이를 오늘날 개발도상국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거대한 단계의 구분보다는 좀 더 타당한 상황 구분이 필요합니다.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나


자유무역 및 보호무역 정책을 상황에 따라 달리 구사할 수 있다면, '평상시'(normal)에 어떠한 정책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냐는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리스트의 주장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보호무역 · 선진국은 자유무역을 중심으로 하면 될 것 같지만, 앞서 말했듯이 리스트의 구분은 너무 거대합니다. 그의 구분을 그대로 따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내에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일이 없었을 겁니다.


▶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의 등장 ...


새로운 물음에 논리적인 답을 말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생각을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좀 더 확장시켜주는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을 다음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4. 애덤 스미스를 주축으로 한 고전파 혹은 cosmopolitical economy를 의미 [본문으로]
  5.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4편 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제한, 570쪽, 비봉출판사 [본문으로]
  6. 프레드리히 리스트. 미국정치경제론, 경상대학교출판부, 33-34쪽, [본문으로]
  7.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4장 사경제학과 민족경제학(Private Economy and National Economy), 지만지, 245쪽 [본문으로]
  8.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서론, 21쪽 [본문으로]
  9.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9쪽 [본문으로]
  10.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3쪽 [본문으로]
  11.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1장 정치경제학과 사해동포주의 경제학, 193쪽 [본문으로]
  12.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4장 사경제학과 민족경제학, 251쪽 [본문으로]
  13. 이러한 평가는 Graham, 1923, Some Aspects of Protection Further Considered, QJE [본문으로]
  14. 진정한 원문은 독일어; [본문으로]
  15. Finally, history teaches us how nations which have been endowed by Nature with all resources which are requisite for the attainment of the highest grade of wealth and power, may and must—without on that account forfeiting the end in view—modify their systems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ir own progress: in the first stage, adopting free trade with more advanced nations as a means of raising themselves from a state of barbarism, and of making advances in agriculture; in the second stage, promoting the growth of manufactures, fisheries, navigation, and foreign trade by means of commercial restrictions; and in the last stage, after reaching the highest degree of wealth and power, by gradually reverting to the principle of free trade and of unrestricted competition in the home as well as in foreign markets, that so their agriculturists, manufacturers, and merchants may be preserved from indolence, and stimulated to retain the supremacy which they have acquire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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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Posted at 2018. 10. 15. 00:5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한국은 어떻게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나



35년 일제강점기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은 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남았던 대한민국은 2018년 오늘날 경제 선진국으로 올라섰습니다. 한국은 경제성장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국과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GDP 추이를 그래프로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전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학부 경제성장론 교과서 표지가 한국이라는 점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견없이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어떻게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나?"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혹자는 북한과 비교하여 자유시장체제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국가가 수출 및 금융지원 제도를 통해 기업을 통제하면서 발전[각주:1] 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반문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지향하면서 무역개방도를 높여온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보호무역을 통해 특정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냉전 시기 미국의 외교정책 아래에서 일본과 국제분업체제를 구축한 덕분에 급속한 성장을 달성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에 반박하며 미국이 독재정권을 용인하고 한일수교를 독촉한 결과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고착화 되었고 민주화 달성이 지연되었다고 말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1961-79년까지 약 19년간 집권한 박정희정권의 공로를 치켜세우는 쪽도 있고, 반대로 박정희정권기에 수립된 경제정책이 오늘날까지 한국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각주:2]고 말하는 쪽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공통적으로 합의하는 사항은 "한국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추구한 덕분에 경제발전에 성공하였다(outward-looking trade regime)" 입니다. 대내지향적 수입대체 산업화를 선택한 중남미[각주:3]와는 달리, 한국은 수출진흥 산업화를 추진한 덕분에 오늘날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 수출진흥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나타난 세부적인 행위가 시장주의적인지 국가주도적인지 · 자유무역인지 보호무역인지에 대해 이견들이 존재하고, 당시 미국과 박정희정권의 공과에 대해 의견이 갈리긴 하지만, 어찌됐든 무역교류 확대를 통해 수출과 수입을 증가시켜온 대외지향적 무역체제가 경제발전에 핵심이었다는 건 다수가 동의합니다.


이 글의 주제는 한국경제 성장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는게 아니라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속에서 한국경제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역'에 초점을 맞추어 다음과 같은 2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첫째, 중남미와 달리 당시 한국이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선택하였던 배경은 무엇일까? 


이전글[각주:4]에서 살펴봤듯, 중남미가 수입대체를 선택한 배경은 '산업화를 위한 제조업 육성' · '1차상품에 치중된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함' · '자립경제 수립을 위한 민족주의적 사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상황도 중남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35년간 일제강점기와 1950년 한국전쟁을 겪고 경제가 황폐화된 상황에서, 경제적 독립을 원하는 민족주의적 사상이 퍼져있었고 농업에 치중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한국은 자립경제와 산업화를 열망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수입대체가 아닌 수출진흥 정책을 산업화 전략으로 선택하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수입대체를 추구하다가 수출진흥에 더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부분적인 수입대체를 펼치는 동시에 항상 대외지향적 정책을 지향했습니다. 이때 부분적인 수입대체도 대내지향적 자립경제 수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출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입대체 였습니다. 자동차 · 조선소 등 중화학공업 부문을 육성한 뒤 수출액을 늘린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중남미와 한국의 모습을 대조해보면, 처음에 선택하였던 대내지향적 수입대체를 계속 추진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 아찔합니다. 따라서, 1950-60년대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로 나아간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대외지향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한 한국 경제발전 성공은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으로 봐야하나,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으로 평가해야 하나? 


두번째 물음은 앞으로의 [국제무역논쟁]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질문입니다. 


분명 한국은 대외교역을 증가시켜온 수출진흥 정책 덕분에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외교역량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원에 힘입은 보호무역' 덕분에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 


1920-30년대 호주의 보호무역[각주:5]은 1차 상품 특화로 인한 수확체감 및 소득분배 악화를 탈피하는 걸 목적으로 하였고, 1950-70년대 중남미의 수입대체[각주:6]는 아예 대내지향적 무역체제를 의미했습니다. 이 둘의 경우에서 교역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구사하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1960~70년대 한국은 보호무역 정책을 하면서도 교역량 확대를 목표로 하였습니다. 박정희정권은 향후 수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특정 산업을 선택하여 집중 육성하고 수출보조금 등의 지원을 늘려나갔습니다. 한국 경제발전의 이러한 모습은 '유치산업보호의 성공사례'(Infant-Industry Protection)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성공요인을 온전히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라 하기에도 애매모호함이 있습니다. 1967년 7월 상공부는 수입허가 품목을 규정해온 포지티브 리스트에서 이제 수입금지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는 수입을 자동승인 하겠다는 네거티브 리스트로 전환하는 등 무역자유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수입관세율도 점차 낮춰가며 보호무역의 그늘에서 커 온 산업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도모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한국정부는 자유무역의 이점(gains from trade)을 살리는 방향을 꾸준히 추구했습니다. 


만약 온전히 국내산업 육성 및 보호에만 집중했다면 생산성 낮은 기업의 퇴출 등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아 비효율만 초래됐을 겁니다. 한국정부는 관료와의 결탁을 통해서 생존할 수 있는 국내시장이 아닌 가격과 품질로만 승부를 봐야하는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을 유도하고, 달성해야할 수출목표액을 완수해야 하는 수출책임제 등의 규율(discipline)도 강력히 부과함으로써 항상 경쟁체제를 지향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형식은 국가가 주도했더라도 내용은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의 이점을 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의 경제발전 성공요인을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으로 봐야하는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으로 평가해야 하는지는 [국제무역논쟁]의 중요한 논점 중 하나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결국 "유치산업보호론이 언제 유효한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둘러싼 논점입니다.


우선 이번글에서는 한국이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로 나아간 배경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이점을 모두 살릴 수 있었던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다음글에서 [유치산업보호론]의 등장배경과 논리, 문제점 그리고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을 살펴봅시다.




※ 내포적 공업화와 자립경제 달성을 목표로 했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통화개혁을 통해 내자를 동원하고 종합제철소 등을 건설하려 함


<1965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정부는 증산과 더불어 수출을 대지표로 삼았읍니다. 공업원료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은 경제의 생명입니다. 2차대전직후, 영국의 「처어칠」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이란 호소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


앞으로 수년간만 국내의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시책을 수출무역에 집중한다면 우리나라도 국제적인 수출입면에서 자립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경제시책의 방향이 무역진흥에 집결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무역에서 출발하여 무역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 출처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대통령 박정희, 1965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강조표시는 블로그 글쓴이 본인이 한 것)


1965년 1월 16일, 대통령 박정희는 연두교서를 통해 "수출 아니면 죽음" 이라고 말하며 "경제시책의 방향이 무역진흥에 집결"할 것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1965년은 박정희정권이 수출제일주의를 본격적으로 내세운 첫 해 입니다.


그렇다면 1961~64년에 박정희가 내세웠던 경제정책은 수출중심이 아니었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했고 1963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합법적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박정희정권이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통해 한국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수출제일주의는 이들이 처음부터 내걸었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 박정희와 5·16 쿠데타 세력이 처음에 원했던 건 자립경제 달성

- 자립경제와 자주적 공업화를 추구한 박희범의 '내포적 공업화 전략'


1961년 박정희와 5·16 주도 세력들이 처음 가졌던 생각은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벗어난 자립경제 달성' 이었습니다. 박정희는 1963년 출간한 『국가와 혁명과 나』를 통해 "미국의 원조 정책을 기저로 하는 한국 경제의 이러한 경향은 기간산업, 중소기업 등 국내 생산 공업을 답보 상태로 낙후시킨 반면, 앞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국민의 정신면에 회복할 수 없이 큰 멍을 드리게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1960년대의 한국은 확실히 외래상품이 한국 시장을 점령한 시기였다" 라고 말하며, 자립경제 달성에 못미치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 경제학자 박희범 (1922~1981)

  • 주요 저서 : 『한국경제성장론』 (1968)


집권세력의 생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자문 위원으로서 군사정부의 경제정책에 관여한 인물이 박희범 입니다. 그는 '내포적 공업화 전략'(intensive industrialization)[각주:7]을 내세웠는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자립경제를 지향하는 자주적 공업화 전략' 입니다. 


중남미의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기초적 소비재를 우선 대체하는 방식을 사용하였고 박희범의 내포적 공업화 전략은 제철 등 금속공업, 기초화학공업, 조선, 공작기계 등 기초적 생산재를 우선 대체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어찌됐든 대외의존을 줄이는 자립경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박희범이 이러한 이론을 주장했던 근간에는 냉전 이데올로기보다는 국익을 우선시해야 하며 따라서 대미 자주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서를 통해 "미국의 대한 정책은 한국에 대한 소비 시장화, 일본을 위한 예속화 작업이었다"[각주:8]라고 비판하며, 공업화를 가능케하는 자체적인 생산능력을 배양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또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을 발달시킨 선진 산업국가에만 유리하다고 생각하며, 신고전파 자유주의경제는 선진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적 비교 생산비의 원리처럼 국제분업의 원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 자립경제는 국제수지의 균형을 달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 공업화, 즉 내포적 경제성장을 노리는 것"[각주:9]라고 주장하며, 현재의 비교우위에 고착화되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62-166)

- 수입대체와 내자 동원의 강조 → 통화개혁과 산업개발공사 


  • 경제기획원, 1962,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56-59쪽

  • 당시 군사정부는 자립경제 달성을 위해 외자의존을 줄이고 내자동원을 강조했다


박희범과 군사정부가 공유했던 생각은 1962년 1월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에서 구현되었습니다. 


이 안에서 군사정부는 수출산업 육성 보다는 종합제철소 건립 등 기초적 생산재의 수입대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여기에 수출증대는 6대 계획의 중점 중 5번째에 언급될 뿐이었습니다. 수출에 있어서도 2차 산품인 공산품이 아니라 1차 산품인 농업 생산물이 강조되었습니다. 


또 다른 주목할 특징은 '내자 동원의 강조' 입니다. 위의 표에서 나와있듯이 계획된 내자 비중이 약 75%에 달하는데, 박희범과 군사정부는 외자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 달성을 위해 내자 동원에 힘을 쏟았습니다. 

 

계획 달성을 위해 군사정부가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통화개혁' 이었습니다. 1962년 6월 9일 밤 10시 긴급통화조치법이 기습적으로 발표되며 예금동결이 이루어졌고, 동결된 예금은 6개월 내에 산업개발공사 주식으로 대체될 계획이었습니다. 


산업개발공사는 내포적 공업화론을 주장했던 박희범의 생각이 응집된 기관이었습니다. "산업개발공사 운용 계획안은 투자 대상으로 약 40종류를 규정하고 있었는데 정유공장 · 비료공장 · 종합제철공장 · 시멘트공장 · 종합기계공장에 우선순위"[각주:10]를 두고 있었습니다. 


산업개발공사는 기초적 생산재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었고, 통화개혁과 예금동결 통해 획득한 국내 자본을 동원하여 산업화를 이루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내포적 공업화 전략과 통화개혁 그리고 산업개발공사를 통한 종합제철소 건립은 하나로 연결된 묶음이었습니다. 


"내포적 공업화 전략은 자원의 동원 방법에 관해 상대적으로 대규모의 내자 동원에 관한 획기적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삼았습니다. "경제적 안정을 희생해서라도 국가 주도의 위로부터의 강제적 자원 동원이 있어야 당초의 계획대로 기간산업을 건설할 수 있고 그래야 빠른 시일 안에 자립적 국민경제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내자 동원이 순조롭지 않은 가운데 통화개혁과 같은 혁명적 내자 동운 방법을 구상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모아진 자금을 산업개발공사라는 준 국유기업에 집중시키는 방법도 내포적 공업화론자들이 구상하는 국가 주도의 위로부터의 자원 동원과 일치"[각주:11] 했습니다. 




※ 외화 부족으로 인한 내포적 공업화 전략의 좌절 

- 통화개혁과 종합제철공장 건설을 둘러싼 미국의 반대

- "비교우위론에 어긋나는 제철소를 왜 건설하려 하느냐"


자립경제와 내포적 공업화를 위해 제시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은 시행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흔들리게 됩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입장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제1차 계획이 목표로 한 경제성장률 7.1%가 너무 높다는 문제를 제기하였고, 또한 통화개혁을 통한 예금동결이 경제를 국유화나 통제경제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시했습니다. 더 큰 쟁점은 종합제철공장 건설 계획이었습니다. 1962년 당시에 쓰여진 기사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AID가 본 한국공업건설 (上 제철소의 경우)>


경제5개년계획을 특징지으고 있는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러기에 기자는 워싱턴에 닿자마자 AID가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타진해보기 위하여 AID의 문을 두드렸다. (...)


기자가 AID 당국자들과 만나서 얻은 결론은 제철소는 사무적으로는 절대로 무망한 것으로 느껴졌으나 정치적으로 배려를 한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비료공장은 AID가 주장하는 바 과인산질소 배합비료 공장을 세우는 데 한국측이 동의한다고 하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거부하교 요소 25만톤 용량을 만든다는 종래의 주장을 견지한다면 이 역시 AID에서 돈을 꾸지 못할 것이라 것이다.


AID는 대체로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① 한국은 철광석과 코크스 탄 6천 칼로리 이상나는 역청회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0% 이상의 철분을 가지고 있는 철광석의 매장량은 지난번 탐광에 의해서도 겨우 5백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이 나왔으니, 그처럼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해서 연간 25만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이다. (...)


② 그러니까 한국서 제철을 하자면 외국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사오지 않을 수 없는데 철광석을 100만톤, 석탄을 150만톤을 사오자면 적어도 3,500만불의 외화를 매년 지출하여야만 할 것이니 4,200만불의 수출실적 밖에는 못 가지 한국의 외화사정 아래서는 이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물론 철광석과 석탄도 연불 등 상업차관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기도 하나 AID 규정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차관을 받는다는지 원조를 받는다는 것은 허용하지 않기로 되어있으므로 상업차관에 의한 원료 공급도 안된다는 것이다. (...)


③ 설령 한국에 제철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철의 시장경쟁은 지금도 치열하지만 장차 더욱 더 백열전을 전개할 것이니 과연 한국이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경쟁에서나마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는데는 의문이 짙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록 철광석도 석탄도 사다가 쇠를 녹이고 있다고 하나 경영기술에 있어서나 작업기술에 있어서나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일본과 같은 생산비로서 제철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


⑤ 그러니까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제철소를 만들려면 적어도 1억 5천만불을 들여야 할터이니 그 돈을 다른 산업들 한국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을 세우는데 쓰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고 결론 짓고 있는 것 같다. 


- 이동욱, 1962년 10월 20일, 동아일보 칼럼/논단

- 네이버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서 발췌


지금 시점이 아닌 당시로 돌아가서 감정을 대입해서 보자면 상당히 비참한 상황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제1차 계획이 담고 있던 내포적 공업화론 달성의 핵심인 종합제철소 건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격하게 표현하면 "주제 넘으려 하지 말고 수입해서 써라"나 다를 바 없습니다.


미국이 종합제철소 건설을 반대했던 이유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 한국의 제철소 건설 시도가 비교우위 원리에 벗어난다 입니다. 


제철소는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등을 제련하여서 철판을 만드는 곳인데, 한국은 원자재를 풍부하게 가진 국가가 아닙니다. 헥셔-올린의 무역이론[각주:12]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relative abundant resource)을 가진 국가가 그 자원이 집약된 산업(resource-intensive)에 비교우위를 가지는데,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찌어지 철판을 생산한다고 해도 과연 일본에 비해 우위를 가질 수 있겠냐는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일본은 70년전부터 제철소를 운영하며 획득한 기술수준으로 낮은 생산비를 유지하는데, 이를 한국이 수년내에 따라잡기 힘들거라는 전망이죠.


둘째, 제철소를 건설하고 철광석 등 자원을 수입하기 위한 외화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건 그때 당시 직면했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제1차 경제개발 계획은 국내자본 동원을 강조하였는데, 종합제철소와 같은 큰 규모의 기반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국내자본만으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당시 군사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2차산업 공업화를 위해 필요한 외자비중을 43.4%로 전산업 평균 25%에 비해 높게 잡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수출주도체제가 아닌 상황에서) 수출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기 어려웠으며, 미국마저 차관지원을 거부한 상황에서 필요한 외자를 마련하기가 불가능 했습니다. 어찌어찌 제철소를 건설한다고 해도 차후에 철광석 등 원자재를 수입할 외화도 없었습니다.


결국 종합제철공장 건설 계획의 좌절은 내포적 공업화 전략이 실패하고마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으며, 군사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 · 보완 하게끔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의 전환

- 1964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보완 → 공산품 수출 계획을 늘리다

- 1963년 면방직산업 수출증대가 경제관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산업정책 · 경제발전 관점에서 수출진흥 정책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


결국 박정희정권은 1962년 1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정작업에 착수합니다. 


집권세력은 자립경제 수립을 위한 내포적 공업화 보다는 수출증대를 통해 외화를 획득할 필요성을 이전에 비해 절실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에서 자립경제를 주장했던 박희범 등이 물러나고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주장한 경제관료들이 대거 등용되었습니다. 


그리고 1964년 2월 이른바 '보완 계획'을 확정발표합니다.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원계확과 보완계획에 담긴 수출 계획 비교

  • 원료별 제품, 이른바 공산품 수출계획이 대폭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출처 :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 정부의 선택

 

원계획과 보완계획의 차이는 '수출 계획'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원계획에서는 식량으로 대표되는 1차 산품이 수출 계획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였지만, 보완계획에서는 원료별 제품, 이른바 공산품의 수출 계획이 대폭 상향되었습니다. 


원계획에서는 1966년 공산품 수출액수 계획이 1천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보완계획에서는 4천3백만으로 수정되었죠. 해당년도의 수출비중을 살펴보아도, 공산품의 수출비중은 1964년 30%, 1966년 38%로 원계획보다 10-20% 포인트 상향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실제 공산품 수출 실적은 계획을 초과달성 하였고, 1970년에는 84%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경제관료들이 자신만만하게 공산품 수출 계획을 상향조정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63년에 공산품 수출 실적이 예상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는 것에 있습니다. 



경영·경제학자 서문석[각주:13] · 최상오[각주:14] · 김두얼[각주:15] 등은 1963년 공산품 수출 증가의 요인으로 면방직산업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서문석의 2009년 논문 <해방 이후 한국 면방직산업의 수출체제 형성>에 따르면, 당시 면방업계가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국내 면제품시장 수요감소로 과잉공급 상황이 초래되자 상품판로 확보를 위해 해외시장을 개척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둘째, 외국산 원면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로 면제품을 수출한 이후 그 대금으로 수입을 해오기 위해서 입니다.


면방업계가 수출증대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 결과, 1962년까지 전체 면포생산량 중 수출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에 불과했으나, 1963년에 20.6%로 대폭 증대되었고 1964년부터는 전체 면포생산량의 약 50% 가량이 수출용으로 생산될 정도로 수출이 본격화 되었습니다.


  • 한국의 GDP 대비 수출비중 추이. 1953~2017넌

  • 수출비중은 1953년 1.7%, 1964년 5.0%에 불과했으나, 이후 급속히 증가하였다

  • 출처 : 국가통계포털 KOSIS

 

이렇게 1963년 면방직 산업의 수출증대를 목격한 경제관료들은 영감을 얻게 되었고, 1964년에 내놓은 '보완계획'에서 공산품 수출 계획을 대폭 상향하였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단순히 수출계획만 높게 설정한 것이 아니라, 재정 · 금융지원 및 낙후된 생산시설 교체 · 사회기반시설 건설 등 산업정책적 관점에서 포괄적인 수출지원체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수출지향 정책은 단순한 무역정책이 아닌 산업정책 및 경제발전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0-50%를 오가며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하는 제1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 파트에서는 1964년 중반에 제시된 수출진흥 종합시책과 1965년 확대 개편된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살펴보면서, 1960-70년대 박정희정권의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을 세세하게 알아봅시다.  




※ 각종 수출 지원 정책과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통한 규율 부과


1964년 6월 24일, 상공부는 간접적인 지원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수출진흥을 촉진하기 위하여 수출진흥 종합시책을 만들어 발표하였습니다. 종합시책에는 ① 1964년도 수출 목표를 종전 1억 500만 달러에서 1억 2천만 달러로 상향 ② 수출진흥위원회 및 해외 주재 공관에 수출 책임 영업부과 ③ 수출 진흥 세제 우대조치 및 2억원 규모의 수출보조금 부활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수출진흥을 위해 재정·금융 지원이라는 당근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수출진흥위원회를 통해 수출 책임 영업이라는 규율(discipline)과 채찍도 구사한 점입니다. 


만약 정부지원 이라는 당근만 제시했다면 이것만 쏙 받아놓고 경영은 게을리하는 비효율적 기업이 양산될 수 있었을텐데, 정부는 수출 목표액 달성에 미달하는 기업은 차후 지원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엄격한 규율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러한 규율 정책은 정부주도 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단점을 해소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번 파트에서 산업화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당근과 채찍을 살펴봅시다.



1960년대 초기의 수출지원 정책은 1950년대 후반보다 양적으로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위의 첨부된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50년대부터 시행되어온 정책에 더하여 수출용 자본재 수입에 대한 관세 감면제도(1964년) 및 수출용 원자재 수입금융(1963년), 수출산업 육성자금(1964년) 등 재정 · 금융지원 정책이 추가되었습니다.



수출활동을 직접적으로 독려하는 수출보조금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1950년대 중반 수출불 당 보조금은 1원을 넘지 못했지만, 1961년과 1965년을 기점으로 큰 폭의 상승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지원 정책에 그치지 않고 규율을 부과하는 역할을 한 것이 수출진흥확대회의 입니다. 수출 진흥 정책 심의기구로서 1962년 12월에 설치된 수출진흥위원회는 1965년 1월 대통령 직접 참석하고 결정하는 수출진흥확대회의로 확대개편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5-1979년 동안 개최된 회의 총 152회 중 147회나 참석하면서 수출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할 때 설정한 수출계획 이외에 매년 수출목표를 새롭게 책정함으로써 수출을 독려하였습니다. 매년 수출목표 성장률은 시기마다 24.1%~45.2%를 가졌고, 1975년과 1979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과달성 하였습니다. 


수출진흥확대회의 기능에서 중요한 것은 '수출책임제' 입니다. 1964년 해외공관별로 수출목표를 할당하면서 시작된 수출책임제도는 1965년 품목별 · 해외무역관별 · 단체별(수출좝, 협동조합별) · 도별, 1966년 부처별, 1967년 수출공단별 · 은행별, 1970년 수출산업 시설재 수입업체 · 차관도입업체 · 외화다액 소비업체 등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연초에 제시된 수출할당액을 채워야 할 의무가 부과되었습니다.


그리고 부과된 책임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매월 개최된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점검하였습니다. 상공부는 총량별 · 상품구조별 · 품목별 · 지역별 · 국가별 실적이 수출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 보고하였습니다. 


이행에 소홀하거나 미달하는 기업에게는 재정 · 금융지원을 중단하고 심한 경우 경영권을 박탈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주어진 성과책임 부여는 정부주도 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방만과 나태를 방지하고 수출진흥 정책의 효과를 최대한 극대화 하였습니다. 




※ 산업정책적 관점에서 실시된 무역자유화


한국이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수출진흥 정책을 펼쳤다고 해서, 외화가 반출되는 수입은 장벽을 쌓고 꽁꽁 잠가둔 것은 아닙니다. 1967년 7월 상공부는 수입허가 품목을 규정해온 포지티브 리스트에서 이제 수입금지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는 수입을 자동승인 하겠다는 네거티브 리스트로 전환하는 등 무역자유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따라서 독과점 품목 관세율이 높은 품목, 그리고 국내산업에 심대한 타격을 주지 않는 품목을 제외하고 64개를 금지 품목으로, 321개를 제한 품목으로 하는 네거티브 리스트를 책정했습니다[각주:16]. 전반적인 수입관세율도 점차 낮춰가며 보호무역의 그늘에서 커 온 산업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도모했습니다.  


상공부는 이후 발간한 『상공정책 10년사』(1969)를 통해 무역자유화 필요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첫째 개방경제 체제를 지향함으로써 그동안 보호무역의 그늘에서 비정상적으로 성장해 온 국내산업의 체질 개선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도모해 수출 증진에 기여케 하는 것, 둘째 수입자유화 확대로 물가가 등귀하는 상품의 수입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국내 물가 안정을 기해 국내 소비자를 보호, 셋째 IMF 및 GATT 가맹국으로서 국제 교역 확대에 기여하려는 것[각주:17] 입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가 정말 개방경제 체제로의 이행을 바라고 무역자유화에 찬성한 것만은 아닙니다. 정부가 의도한 것은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의 결합' 입니다. 


1967년 11월 한국정부는 수입자유화 조치에 이어 탄력관세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탄력관세란 국내외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라 관세율을 탄력적으로 운용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입 증대로 국내산업이 어렵거나 국제수지가 악화될 때 임시적으로 관세율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보호하기 위한 산업과 관련된 품목은 높은 관세를 유지하거나 더 높이고, 수출품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 수입은 관세를 인하하였습니다. 또한, 국제경쟁력이 있는 국내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해, 경쟁력을 갖춘 제품에 한해서 관세율을 인하하면서 체질 개선을 이끌었습니다. 


이렇게 정부는 발전단계에 있는 산업은 보호하기 위해 외국상품을 수입금지 리스트에 올리거나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산업은 외국상품 수입을 허가하고 관세율을 인하시켜 경쟁에 더욱 노출시키는 산업정책적 관점에서의 무역정책을 구사했습니다.




※ 산업정책의 정점 -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1973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 여러분들에게 경제에 관한 하나의 중요한 선언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공업은 이제 바야흐로 중화학 공업 시대에 들어갔읍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부터 중화학 공업 육성의 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 공업 정책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또 하나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들에세 내가 제창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개발을 해야 되겠읍니다. 그래야 우리 국력이 급속히 늘어날 수 있읍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없이는 우리가 절대로 선진 국가가 될 수 없읍니다.


80년대에 가서 우리가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 공업의 육성 등등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 범국민적인 과학 기술의 개발에 총력을 집중해야 되겠읍니다. 이것은 국민 학교 아동에서부터 대학생,사회 성인까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우리가 전부 기술을 배워야 되겠읍니다.


그래야만 국력이 빨리 신장하는 것입니다. 80년대 초에 추이가 100억 달러의 수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체 수출 상품 중에서 중화학 제품이 50%를 훨씬 더 넘게 차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지금부터 철강,조선,기계,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서 이 분야의 제품 수출을 목적으로 강화하려고 추진하고 있읍니다.


- 출처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대통령 박정희, 1973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강조표시는 블로그 글쓴이 본인이 한 것)


한국정부 산업정책의 정점은 1973년부터 중점적으로 시행된 중화학공업화 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중화학 공업 육성의 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 공업 정책을 선언"하고 이를 통해 "80년대 100억 달러 수출"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1972년 수출달성액이 18억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꿈 같은 목표를 제시한 겁니다.


1973년 이전 중화학공업 육성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부터 추구했던 종합제철소 건설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재차 시도하였고(오늘날 포스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 기간 중 석유화학단지를 울산에 조성하였습니다. 1960년대의 철강공업 · 석유화학공업 육성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밑거름이 됩니다.


박정희정권이 1970년대 들어 중화학공업화를 더욱 중점적으로 추진한 이유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경제발전 도약을 위한 경제적이유. 둘째, 북한 무력도발 대응을 위한 군사안보적 이유 입니다.


1972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은 장기 수출계획으로 1981년 53억 달러를 제시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1972년 수출달성액 18억 달러와 그동안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나름 합리적인 목표입니다. 그러나 대통령 박정희는 1980년에 100억 달러 수출과 GNP 1,000 달러를 달성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공업 위주인 현재의 공업구조를 중화학공업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여기에 더하여,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방중으로 미중 데탕트가 형성되자,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했습니다. 이에 한국정부는 자립 · 자주 국력 배양을 위해 방위산업을 포함한 중화학 공업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1971년 말 대통령 경제2비서실은 <공업구조개편론> 마스터플랜 수립에 착수하였고 1973년 1월 30일 <중화학공업화정책선언에 따른 공업구조 개편론>을 최종적으로 내놓았습니다. 


공업구조개편론 (마스터플랜)

(...)

제1장 계획작성

1. 수출 100억불 1인당 GNP 1,000불을 목표로 한 국가 산업 기본 모델을 작성한다. (...)


제2장 이념의 도출


1. 주도업종의 선점


. 본 계획 기간에는 중화학공업을 주도 육성 업종으로 한다. 특히 기계공업을 집중 육성한다.

1)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으로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구조를 구축했다. 중공업 유성을 위한 기초가 만들어졌다.

2) 종합제철 건설은 철강 관련 산업과 비철금속 등의 육성이 필요하다.


나. 일본에서는 57년부터 중화학공업 정책을 명백히 한 신장기 경제계획을 수립하여 오늘의 경제 대국으로 유도했다.

1) 일본의 중화학공업 정책의 배경은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수요의 탄력성이 높고 기술 진보가 빠른 산업이라는 데 있었다.

2) 중화학공업화 정책선언 후 10년 만에 수출 100억불의 고지를 점령했다.


다. 중화학공업 정책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시기를 놓친다.

라. 주도업종으로서의 중화학공업과 병행하여 수출 특화산업은 계속 강화 육성한다,


2. 중화학공업

가. 중화학공업의 확대는 세계경제 및 무역확대의 기본 방향이다.

나. 중화학공업 중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할 업종은 ① 기계류 ② 조선 및 수송기계 ③ 철강 ④ 화학 ⑤ 전자공업이다. 이것은 화학 플랜트, 발전소, 조선 및 자동차 공업과의 유기적 결합이 필요하다.


(...)


- 김광모, 2015, 『중화학공업에 박정희의 혼이 살아 있다』에서 재인용


<공업구조개편론>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당시 박정희정권은 1950-60년대 일본의 중화학공업화 성공에 자극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1956년 수출액은 24억 달러에 불과하였지만 신 일본연도 개조론이란 정책하에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여 1967년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정부는 집중육성 업종으로 선정한 ① 기계류 ② 조선 및 수송기계 ③ 철강 ④ 화학 ⑤ 전자공업 등을 실제로 키우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이미 건설해놓은 포항 제철소는 확장하여 북한보다 4.2배의 압연능력을 갖추고, 조선소는 울산 이외에 거제에도 추가 건설하여 세계 5위권내 조선강국으로 발돋움 하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여천(여수)에는 제3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여 세계 10위권의 생산능력을 1980년대 상반기까지 갖추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창원에 대단위 종합기게공장을 건설하여 기계류 및 대형플랜트의 완전 국산화와 원자력 발전설비 및 건설 중장비의 국산화를 추구했습니다. 구미에는 대규모 집적회로 등 최첨단기술의 전자부품 국산화와 가정용 정밀전자 기기 생산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대성공으로 돌아왔습니다. 1980년 목표 수출액은 100억 달러였는데 이를 3년이나 앞당겨서 달성하였고, 목표 1인당 GNP 1,000달러는 1979년에 성취하였습니다. 


1979년 수출상품 중 90% 이상이 공산품이었으며, 공산품 중 42.6%는 중공업 제품이었습니다. 중화학공업화 정책 시행 이전, 한국경제에서 중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38.9%에 불과하였으나 1979년에는 54.7%로 급등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중화학공업은 한국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포항 제철소, 울산 조선 · 자동차 · 화학, 광양 및 여수 제철소와 화학단지, 구미 전자단지 등 중화학산업은 지역경제를 떠받들고 있습니다. 요근래 조선 · 자동차 업황부진으로 인한 영남지역 고용쇼크는 이들 업종이 지역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한민국


이렇게 대한민국은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추진하였던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1980년대 초반 발생했던 외채위기 속으로 중남미[각주:18]와 함께 빨려 들어갔을텐데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한국경제 발전과정을 간단하게나마 알게 되었으니, 글의 서두에서 제기했던 2가지 물음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첫째, 중남미와 달리 당시 한국이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선택하였던 배경은 무엇일까? 


한국이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선회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외화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종합제철소 건설 등 공업 ·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기계·생산설비 등 자본재(capital goods)를 수입해와야 했는데 국내자본으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1962년, 내포적 공업화론자들이 시도했던 '통화개혁을 통한 내자 동원'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런 상황에서 1963년 면방직산업의 획기적인 수출량 달성은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제 경제관료들은 '공산품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 가능성에 자신감을 품게 되었고, 수출진흥 산업화로 방향을 선회한 보완 계획이 1964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자, 그런데... "외화 부족에 직면한 한국이 대내지향 정책 대신 대외지향적 수출진흥형 산업화를 선택했다"는 논리는 무언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경제발전 초기 중남미 또한 외화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남미는 오히려 '외화가 부족했기 때문에 수입대체 전략을 선택'[각주:19] 했습니다. 


이들은 "1차 상품 생산국인 우리는 수출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고, 외환 소득이 언젠가는 부족해질 것이기 때문에 자본재를 다른 나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중남미의 선택은 '자본재를 국내에서 생산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요인이 충분조건으로서 수출진흥형 산업화를 유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의 정책 선회는 단순한 외화 부족 이외에 여러 요인과 상황들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학자 기미야 다다시[각주:20]는 "내포적 공업화 전략이 좌절된 상황에서 남아있는 것을 고른 '잔여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반면, 박태균[각주:21]은 "미국의 압력에 의해 수출진흥체제가 시작"되었다고 바라봅니다. 


이완범[각주:22]은 "미국은 수출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회복한다는 축소 균형적 생각을 했을 뿐, 수출지상주의는 수출을 통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확대균형적 발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출드라이브는 박정희가 가지고 있던 독창적 현실인식이 부분적으로나마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하며, 박정희의 공로를 강조합니다. 


반면, 최상오[각주:23] · 김두얼[각주:24] 등은 "(박정희정권 수립 이후 수출이 촉진되었다는 설명은) 1960년대 군사정변을 통해 집권한 세력이 제시한 역사관"이며 "민간과 정부는 이미 1950년대부터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라고 주장합니다.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고, 정확히 어떤 요인이 충분조건으로서 기능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충분조건으로 작용하는 요인은 애시당초 없을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수록 "한 국가에게 성공으로 작용한 요인이 다른 국가에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 대외지향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한 한국 경제발전 성공은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으로 봐야하나,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으로 평가해야 하나?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국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정부는 4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81)을 수립하면서 목표달성을 위해 민간부문을 독려하였고, 대통령은 매월마다 수출진흥확대회의에 직접 참석하며 수출현황을 파악했습니다. 


수입금지와 높은 관세를 이용한 보호무역도 중점 산업을 육성하는데 성공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정부는 아직 경쟁력이 부족하여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산업은 수입장벽조치를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수출보조금을 통해 지원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한국 경제발전 성공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임이 분명한데, 왜 위와 같은 물음을 던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100% 보호무역체제나 100% 자유무역체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성공에는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불러오는 이점들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부는 특정 기업을 선정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만약 보호와 동시에 국내에 안주하게끔 하였다면, 기업의 생산성 정도가 아닌 정권과의 결탁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했을겁니다. 


또한, 자동차 · 조선 · 제철 · 전자 등 대형 산업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육성하였지만, 대외지향적인 정책이 아니었다면 좁은 국내시장 안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지 못했을 겁니다. 이들 산업은 초기 육성에 많은 고정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생산을 계속 증가시켜야만 비용이 감소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업이 경쟁을 뚫고 해외에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느냐가 성공더욱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는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경쟁'과 '해외진출을 통한 시장크기 확대' 등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살려야 합니다

(주 : '무역이 가져다주는 보이지 않는 이익'을 수입대체와 수출진흥이 대하는 방식에 대하여는 지난글 '●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implicit gain)' 참고


따라서 우리는 사고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야 합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이 둘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현실 속 논의과정에서 큰 차이를 불러옵니다. 


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국가주도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주장합니다. 과거 개도국이었던 한국과 오늘날 선진국인 한국의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필요한 개도국과 경제강대국인 미국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산업 · 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경우를 우선 진단합니다. 과도한 국가개입은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나라가 국가주도 정책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도 똑같은 성공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남미와 한국의 사례에서 처럼 말이죠. 


두 관점의 차이는 이후에 살펴볼 [유치산업보호론]과 [1980년대 미국의 보호무역]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 내 무역논쟁]을 통해 더 극명하게 드러날 겁니다.




※ 한국경제 발전과정을 살펴보며 생각 넓히기 

- ① 수출로 외화를 많이 획득하는 것이 경제발전인가?


노파심에 한번 더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을 바로 잡겠습니다. 


이번글을 읽어나가면 "한국은 수출로 외화를 많이 획득해서 경제발전에 성공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을 아직 버리지 못한 사람은 '외화 획득 = 돈의 축적 = 경제발전 성공'이라고 생각할테고, 탈피한 사람은 '외화 획득 = 외국으로부터 자본재 수입 가능 = 경제발전 성공'으로 이해하실 겁니다.


한국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해 자동차 · 조선 · 제철 · 전자 등의 산업을 육성하고 싶어했습니다. 처음에 시도했던 건 국내자본(=내자)을 동원한 자본축적 이었는데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리하여 선택한 방식은 외국으로부터 기계 · 생산설비 등 자본재(capital goods)를 수입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외화가 필요[각주:25]했습니다.    


즉, 한국이 수출진흥형 산업화 전략을 선택하고, 수출액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해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한 이유는 '수출로 획득한 외화를 이용하여 자본재를 수입해오기 위해서' 입니다. 단순 수출 증가를 통한 외화 축적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GDP 대비 수출액 - 수입액의 비중 변화 (1957~2017)

  • 한국은 수출진흥 산업화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년 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하였다

  • 출처 : 한국은행 ECOS


만약 중상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박정희정권기 수출진흥 산업화 정책을 바라본다면, 과거 정권의 경제정책은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수출을 촉진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년 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했기 때문입니다.


  • 총자본형성, 이른바 투자 증가율 (1957~2017)

  • 경제발전 초기, 한국은 막대한 투자를 함으로써 자본축적에 매진하였다

  • 출처 : 한국은행 ECOS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해 중요한 건 경상수지 흑자 달성이 아니라 투자를 통한 자본축적 입니다. 한국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와 해외로부터의 차입(=대외부채)을 활용하여 외국의 자본재를 수입하였고, 이는 곧 막대한 투자로 이어졌습니다. 1960-70년대 경제발전기 한국의 연간 투자 증가율은 20%를 넘는 경우가 빈번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으로부터 자본유입 = 경상수지 적자'[각주:26]라는 경제학 공식을 이해한다면, 경제개발기에 '막대한 투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동시에 일어난 연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한국경제 발전과정을 살펴보며 생각 넓히기  

- ② 비교우위론을 따랐으면 한국에 제철소는 없었다?


자, 이제 이번글을 통해 도달하려고 했던 최종목적지에 왔습니다. 지금부터 다루는 이야기는 앞으로 소개할 [유치산업보호론] · [1980년대 미국 보호무역] · [전략적 무역정책 논쟁] 등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내용입니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1817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을 통해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이점'을 주장한 이래로 오늘날까지 비교우위론은 국제무역논쟁의 주요 쟁점이 되어왔습니다. 


특히나 비교우위론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 이유는 "현재의 비교우위 부문에 영원히 특화해야 하느냐?"와 "그렇다면 현재 비교열위인 제조업을 육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에 있습니다.  


1817년 당시 영국인 리카도가 "비교우위에 입각하여 제조업에 특화하고 곡물을 수입해야한다" 주장[각주:27]한 이유는 '토지의 수확체감에서 벗어나서 높은 이윤율로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영국은 수확체감 특성을 지닌 농업이 아니라 수확체증 특성인 제조업에 이미 비교우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주장입니다. 

  

따라서 "영국과는 달리 제조업이 아닌 농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는 무역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가 자연스레 나오게 되었고, 이는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논쟁[각주:28] 1950-70년대 수입대체 전략을 선택한 중남미[각주:29]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면, 농업 · 원자재 등 1차산업이나 단순한 공산품 생산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는 영원히 이것에만 특화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제조업 발달을 통한 산업화는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1950-60년대 한국 또한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부 초기 경제정책을 고안했던 박희범이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추진한 배경에도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을 발달시킨 선진 산업국가에만 유리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1964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정 이후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선회한 이후에도, 한국은 비교우위론을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1970년대 시행된 중화학 공업화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오늘날 전자 · 자동차 · 조선 · 제철 등등 모든 산업은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육성되었습니다. 즉, 한국은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을 따라서 경제발전 경로를 밟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시 한국이 비교우위론을 철저히 따라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 1차산업이나 단순 공산품 생산에만 집중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봅시다. 


1962년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포기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종합제철공장 건설 좌절' 이었습니다. 군사정부는 1962년에 내놓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을 통해 제철소 건립을 내놓았는데,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이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 상황을 보도했던 당시 동아일보 기자 문구를 다시 살펴봅시다.


<AID가 본 한국공업건설 (上 제철소의 경우)>


▶ AID는 대체로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


▶ 한국은 철광석과 코크스 탄 6천 칼로리 이상나는 역청회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 (...)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해서 연간 25만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


▶ 철광석을 100만톤, 석탄을 150만톤을 사오자면 적어도 3,500만불의 외화를 매년 지출하여야만 할 것이니 4,200만불의 수출실적 밖에는 못 가지 한국의 외화사정 아래서는 이 역시 불가능


▶ 설령 한국에 제철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철의 시장경쟁은 지금도 치열하지만 장차 더욱 더 백열전을 전개할 것이니 과연 한국이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경쟁에서나마 견딜 수 있겠느냐


▶ 일본 (...) 경영기술에 있어서나 작업기술에 있어서나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 그러니까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


- 이동욱, 1962년 10월 20일, 동아일보 칼럼/논단

- 네이버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서 발췌


미국이 종합제철소 건설을 반대했던 이유에는 "한국의 제철소 건설 시도가 비교우위 원리에 벗어난다" 라는 논리가 뒷받침 되어 있었습니다. 비교우위가 아닌 산업에 특화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당시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에 특화한 뒤 비교열위인 철을 수입하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날 한국은 세계 1위 제철소로 평가받는 POSCO(구 포항제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정희정권은 60년대 초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종합제철소 건립을 시도하였고, 한일수교 이후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활용하여 포항제철을 설립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즉, 한국의 제철소 건립 과정은 '비교우위론'과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후자의 정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이 나타난 이유에는 '비교우위론이 정태적 우위(static advantage)만 고려하여 특화를 결정'케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이 제철소를 건립한다면 향후 철강업종에 비교우위를 띄며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데(dynamic advantage), 비교우위론은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치 않고 현재의 상황만 따지고 있습니다.


1960년대 당시 일본이 한국에 비해서 철강산업에 경쟁력을 가지게 된 연유는 선천적으로 제철기술이 뛰어나거나 철광석 등 부존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일본이 한국보다 70년 일찍 철강업을 시작한 역사적 배경 덕분(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반대로 한국이 일본보다 일찍 제철소를 건립했더라면 1960년대 당시의 비교우위는 한국이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철강산업을 보호하면서 육성하면서 70년이라는 시간을 따라잡으면, 장기적으로는 일본보다 경쟁력 있는 제철소를 보유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을 따라잡는 동안에 한국 제철소는 큰 손실을 보겠지만, 정부보조를 받아서 버틴다면 언젠가는 우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지금 제철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향후 제철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느냐"라는 물음을 던져야 마땅합니다. 한국정부는 후자의 물음을 던진 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모든 국가가 어느 경우에나 비교우위론을 탈피한 이후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경제발전 달성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 비교우위론을 따르라는 미국의 조언을 무시하고, 결국 세계 제1위 제철소를 보유하는데 성공한 한국의 특수한 사례를 기억하십시오. 


앞으로 다음글 [유치산업보호론]을 통해, 어떤 경우에 유치산업보호론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국정부의 시도가 다행히도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를 살펴볼 겁니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1.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http://joohyeon.com/171 [본문으로]
  2.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7. 수출확대를 통해 대외로 뻗어나가는 '외연적 산업화 전략'(extensive)과 대비되는 의미 [본문으로]
  8. 박희범, 1968, 한국경제성장론 71쪽.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정부의 선택 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9. 박희범, 1968, 한국경제성장론 81쪽.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정부의 선택 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0.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 정부의 선택, 4장 내포적 공업화 전략의 좌절 - 1. 통화개혁을 둘러싼 정치과정 [본문으로]
  11.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 정부의 선택, 4장 내포적 공업화 전략의 좌절 - 1. 통화개혁을 둘러싼 정치과정 [본문으로]
  12.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13. 서문석, 2009, 해방 이후 한국 면방직산업의 수출체제 형성 [본문으로]
  14. 최상오, 2010, 한국에서 수출지향공업화정책의 형성과정 - 1960년대 초 이후 급속한 수출 성장 원인에 대한 일 고찰 [본문으로]
  15. 김두얼, 2016,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경제성장의 기원, 1953-1965 [본문으로]
  16. 기미야 다다시, 2008, 한국정부의 선택에서 인용 [본문으로]
  17. 기미야 다다시, 2008, 한국정부의 선택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1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0.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 정부의 선택 [본문으로]
  21. 박태균, 2013, 원형과 변용 [본문으로]
  22. 이완범, 2006,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 [본문으로]
  23. 최상오, 2010, 한국에서 수출지향공업화정책의 형성과정 -1960년대 초 이후 급속한 수출 성장 원인에 대한 일 고찰- [본문으로]
  24. 김두얼, 2016,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경제성장의 기원, 1953-1965 [본문으로]
  25.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26.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2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2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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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Posted at 2018. 7. 25. 17:33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다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2~553쪽


경제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가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과 '이기심'(Self-Interest)을 말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어떠한 맥락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국부론』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으며, 왜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국부론』을 경제학의 시초로 평가하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도 얼마되지 않습니다. (경제학 전공자 중 『국부론』을 읽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쉬울 거 같네요.)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켰습니다. '국가의 부(Wealth of Nations)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국부를 늘릴 수 있는지' 그리고 '외국과의 무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등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 영향으로 바뀌어버린 사고방식은 오늘날까지 경제학자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에이 주류 경제학자들은 맨날 '보이지 않는 손' 운운하면서 교조적인 자유방임주의만 내세우지 않냐"라고 비아냥 거리기에는, 경제학의 논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즉,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Free Trade)를 옹호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았는데, 그들이 왜 자유무역을 찬성하고 왜 보호무역을 반대하는지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얼마 없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1776년에 쓰여진 책 속에 담긴 논리를 2018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 이론을 암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개도국과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국제무역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내놓은 사상과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국부론』의 원문 내용을 읽어나가며,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발현된 배경과 내용을 알아보고, 이것이 자유무역에 관해서 오늘날까지 어떤 함의를 전달하여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배워봅시다. 




※ 애덤 스미스가 비판하려고 한 것은 '중상주의' (Mercantilism)

- 국부란 화폐의 축적이 아닌 재화의 생산


● 제1편 노동생산력을 향상시키는 원인들과 노동생산물이 상이한 계급들 사이에 자연법칙에 따라 분배되는 질서 - 제1장 분업 (1쪽)

 

한 나라의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이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 연간 노동의 직접 생산물로 구성되어 있거나 이 생산물과의 교환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해온 생산물로 구성되고 있다.


따라서, 한 나라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이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는 이 직접 생산물 또는 그것과의 교환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해온 생산물과 그것으 소비하는 사람의 수 사이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



● 제2편 자본의 성질 · 축적 · 사용 - 제2장 사회의 총재고의 특수한 부문으로 간주되는 화폐, 또는 국민자본의 유지비 (355쪽) 


한 나라의 모든 주민들의 주간 또는 연간 수입이 화폐로 지불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진정한 부(富), 그들 모두의 실질적인 주간 또는 연간 수입은 그들이 이 화폐로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재의 양에 비례하여 크거나 작다. 그들 모두의 수입 전체는 화폐와 소비재를 합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이 둘 중 하나이고, 전자보다는 오히려 후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의 수입을 매년 그에게 지불되는 금속 조각에 의해 표현하지만, 이것은 그 금속 조각의 금액이 그의 구매력의 크기, 즉 그가 매년 소비할 수 있는 재화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수입이 구매력 또는 소비능력에 있는 것이지 그 구매력을 표시하는 금속 조각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1쪽, 355쪽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비판하려고 한 것은 '중상주의'(Mercantilism)였습니다. 


중상주의란 ▶'부(富, Wealth)가 화폐 또는 금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고방식'과 ▶'이러한 국부를 무역수지 흑자와 제조업 육성을 통해 증진시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그리고 국부 증진을 위한 과정에서 ▶'국가가 무역을 통제해야 한다'(State Regulation of Trade)는 주장을 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국부는 화폐의 축적이 아닌 생산의 증가'이며▶ '무역차액에 집착하는 건 잘못된 논리, 제조업과 농업은 둘 다 중요'하며 ▶'무역 독점권을 폐지하여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부여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우선 이해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부'가 무엇인지 입니다. 중상주의자에게 국부란 금은의 축적이지만, 애덤 스미스는 '연간 노동의 직접 생산물 또는 교환으로 얻은 생산물'을 국부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화폐는 축적의 대상이 아닌 소비재를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보았죠.


(주 : 이에 대해서는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GDP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야기 한 적 있습니다.)


이제 국제무역과 관련한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을 좀 더 알아봅시다.




※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①

- 무역수지 흑자에 관하여

- 토마스 먼 : "우호적인 무역수지(favorable balance of trade)가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 16~17세기 중상주의자 토마스 먼(Thomas Mun)
  • 그가 1664년에 내놓은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England's Treasure by Forraign Trade』)


우리의 재산과 재보를 늘리는 정상적인 수단은 무역이다. 여기서 지켜야 할 준칙은 우리가 이방인에게서 사서 쓰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그들에게 파는 것이다. (...)


지금 2,000 파운드를 자신의 금고에 갖고 있고 매년 1,000 파운드를 수입으로 갖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매년 1,500 파운드를 지출한다면 그의 돈은 4년 만에 모두 없어질 것이다. 반면 검약의 길을 택해 매년 500 파운드를 지출한다면 그의 돈은 같은 기간에 두 배가 될 것이다. 이 준칙은 우리 공화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


- 토마스 먼, 1664,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England's Treasure by Forraign Trade』)

- 홍훈, 2009, 『경제의 교양을 읽는다 - 고전편』,  60-61쪽에서 재인용 


대표적인 중상주의자는 바로 토마스 먼(Thomas Mun) 입니다. 그는 1664년 출판한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을 통해 "무역수지가 우리 재보의 준칙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재보(Treasure)는 금은의 축적을 뜻하며, 수출과 수입의 차액인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금은을 축적해야 국부가 증가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는 무역 차액만큼 국부가 늘어난다는 논리를 자연스럽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고방식은 오늘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소개하였듯이, 트럼프는 대중 무역적자를 패배의 결과물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상수지 흑자에 집착하는 잘못된 관념'에 대해서는 두 차례 글을 통해 비판한 바도 있죠. ((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국부=무역수지 흑자' 라는 관념을 비판할 수 있었던 기반은 애덤 스미스가 제공해주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제 『국부론』의 원문 일부를 읽으면서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알아보도록 하죠.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1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정부의 관심은 금은의 수출을 경계하는 것으로부터 금은의 증감을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인 무역수지의 감시 쪽으로 전환되었다. 정부의 관심은 하나의 쓸모없는 걱정으로부터,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당혹스럽지만 마찬가지로 쓸모없는, 다른 하나의 걱정으로 옮겨졌다. 먼(Mun)의 『잉글랜드가 외국무역에서 얻는 부(England's Treasure in Foreign Trade)』(1664년)라는 저서는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상업국의 경제정책의 근본 격언이 되었다. (...)


광산이 전혀 없는 나라는, 포도밭이 없는 나라가 포도주를 들여오는 것과 같이, 금은을 외국에서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어느 한 가지보다 다른 한 가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포도주를 살 돈을 가진 나라는 필요로 하는 포도주를 언제든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금은을 살 수단[예: 포도주]을 가진 나라는 결코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을 것이다


금은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가격으로 구입되며, 금은이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이듯이, 다른 모든 상품은 금은의 가격이다. 


우리는 정부의 개입 없이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포도주를 언제든지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또한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는 우리 상품을 유통시키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할 금은을 언제나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


불필요한 금은을 국내에 도입하거나 붙들어 놓음으로써 그 나라의 부를 증가시키려고 하는 시도는 가정에 불필요한 주방도구를 보유케 함으로써 가정의 기쁨을 증가시키려는 시도만큼이나 어리석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주방도구를 구입하는 비용은 가정의 식료품의 양·질을 증가시키기는커녕 감소시킬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금은을 구매하는 비용은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국민을 고용하는 데 사용될 부를 필연적으로 감소시킬 수 밖에 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26쪽, 533쪽


애덤 스미스가 보기에 금은의 축적을 위해 무역차액에 집착하는 것은 '쓸모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이를 이용하여 금은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상품 생산에 주력하는게 옳은 선택이지,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금은의 부족을 걱정하며 매달리는 것은 되려 국부를 줄이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경제에서도 외환보유고 축적에 집착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각주:1]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중상주의자와 달리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재보의 준칙'이 무엇인지 아래의 내용을 통해 확인합시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3장 무역수지가 불리한 나라로부터의 거의 모든 종류의 상품수입에 대한 특별한 제한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이 학설은, 서로 교역하는 두 지역의 수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이익을 보거나 손실을 보지 않는 반면, 그것이 한쪽으로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다면, 정확한 균형에서 기울어지는 정도에 비례하여, 한 쪽은 손실을 보고 다른 한 쪽은 이득을 얻는다고 가정한다. 이 두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 어떤 강요 · 제한 없이 양국간에 자연스럽고 규칙적으로 수행되는 무역은 양자 모두에게 유리하다. (...)


나는 이익이나 이득이라는 것은 금은량의 증가가 아니라 그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생산물의 교환가치 증가나 주민들의 연간소득 증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양자는 서로 상대방의 잉여생산물의 일부에 대한 시장을 제공할 것이며, 사용된 자본, 즉 상대방의 잉여생산물의 일부의 생산 및 시장 출하를 위해 사용되어 그곳 주민들 사이에 분배되어 그들의 소득 · 생계를 제공한 자본을, 서로 보충해준다. 따라서 각국 주민 중의 일부는 그들의 소득 · 생계를 간접적으로 다른 쪽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94~595쪽


네. 애덤 스미스는 역시 '생산'을 강조합니다. 무역수지 흑자라고 부유하고 적자라고 빈곤한 것이 아닙니다. 무역은 서로 시장을 제공하는 행위이며, 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소득 · 생계를 간접적으로 얻으며 양자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②

- 제조업에 관하여

- 중상주의자 : "우호적인 상품구성(favorable commodity composition of trade)이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 "농촌과 도시의 이득은 상호적이며 호혜적"


1664년 토마스 먼은 '우호적인 무역수지'를 주장했으나, 애덤 스미스가 반박하기 이전에도, 중상주의자들 사이에서 '무역수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유용한 지표인지'에 관한 의문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역수지가 양적인 측면에서 가이드를 제공해줄 수 있을지라도, 질적인 측면(quality)은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중상주의자들은 '어떠한 상품을 교환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중상주의자가 관심을 기울인 상품 종류는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어떤 국가가 제품을 위한 원료를 가지고 있다면, 원자재(raw material) 그 자체로 수출하는 것보다는 제품(manufacture)을 만들어서 수출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왜냐하면 제품은 훨씬 더 가치가 있으며, 원자재보다 5배, 10배, 20배의 이득을 국가의 재보에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 Petyt, 1680, Britannia Languens, or a Discourse of Trade, 24쪽

- Douglas Irwin, 1998, Against the Tide: An Intellectual History of Free Trade』

38쪽에서 번역 재인용


중상주의자가 바라보기에, 경제발전과 고용의 확장을 이끌어낼 수 있고 교역에서 더 많은 가치를 불러오는 것은 '제조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원자재를 그대로 수출하는 것보다 제품으로 만들어서 수출을 하면 더 많은 금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조업은 다른 부문에 비해 더 많은 고용도 창출(greater employment)하며, 임금은 외국의 소득에 의해 지불된다(foreign paid income)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중상주의자들은 '제조상품 수출은 이득을 주며 외국 제조업자들을 위한 원자재 수출은 해를 끼친다. 원자재 수입은 이로우며 제조상품 수입은 충격을 준다.'는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제조 생산이 일어나게끔 하는 것(manufacturing should be produced in the home market)이 주요 목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중상주의자들은 다른 산업에 비해 '제조업'을 우위에 둔 반면에, 애덤 스미스는 '농업과 제조업의 균형성장'을 이야기 했습니다. 더 나아가 스미스는 제조업 부흥의 기원을 농업개량(the improvement of domestic agriculture and food production)에서 찾았습니다. 그의 논리를 살펴봅시다.


● 제1편 노동생산력을 향상시키는 원인들과 노동생산물이 상이한 계급들 사이에 자연법칙에 따라 분배되는 질서 - 제11장 토지의 지대


토지의 개량·경작으로 한 가족의 노동이 두 가족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 때, 그 사회의 절반의 노동은 사회 전체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데 충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 반, 또는 적어도 그들 중의 대부분은 다른 물건을 마련하는 일, 다시 말하면 인간의 다른 욕망·기호를 만족시키는 일에 종사할 수 있다. 의복·주거·가구·마차는 이러한 욕망·기호의 주요 대상이라 하겠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214쪽


농업은 인간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식량을 제공합니다. 만약 먹고살만한 식량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 이상의 기쁨은 생각도 못하게 됩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만약 토지의 개량 덕분에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고 농업에 적은 노동력만 필요하게 되면, 식품 이외의 것들을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애덤 스미스가 제조업의 기원을 농업개량에서 찾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어서 애덤 스미스는 농업개량과 제조업의 관계를 좀 더 명확히 설명하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농촌과 제조업에 종사하는 도시는 서로 상호적이며 호혜적이라고 강조합니다. 그의 설명을 살펴보죠.


● 제3편 각국의 상이한 국부증진 과정 - 제1장 국부증진의 자연적인 진행과정


모든 문명사회의 대상업은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업이다. (...) 농촌은 도시에 생활자료와 제조업 원료를 공급한다. 도시는 농촌 주민에게 제조품의 일부를 되돌려줌으로써 이 공급에 보답한다. (...) 양자의 이득은 상호적이고 호혜적이며,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분업은 세분된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상이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된다. (...) 


사물의 본성상 생필품은 편의품·사치품에 우선하는 것과 같이, 전자를 생산하는 산업은 후자를 생산하는 산업에 반드시 우선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농촌의 경작·개량은 편의와 사치의 수단을 제공할 뿐인 도시의 성장에 반드시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의 생필품을 구성하는 것은 시골의 잉여생산물, 즉 경작자의 생필품을 넘는 부분뿐이며, 따라서 이 잉여생산물의 증가에 의해서만 도시는 발달할 수 있다.  (...)


도시와 시골의 주민들은 서로서로에게 봉사한다. 도시는 상설시장이며, 시골 주민들은 이곳에 들러 그들의 천연생산물을 제조품과 교환한다. 도시 주민들에게 작업원료와 생활자료를 공급하는 것은 이 상업이다. 


도시 주민이 시골 주민들에게 판매하는 완성품의 양은 필연적으로 도시 주민이 구입하는 원료와 식료품의 양을 규제한다. 그러므로 도시 주민의 일거리와 생활자료는 완성품에 대한 시골의 수요증가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수요는 토지개량·경작확대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제도가 사물의 자연적 경로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도시의 부의 증가와 도시의 성장은 국토·농촌의 개량·경작의 결과이며 그것에 비례한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463~466쪽


이처럼 애덤 스미스는 농업개량의 결과, 완성품에 대한 시골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도시 제조업의 일거리가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농업개량은 제조업과 경제발전에 선행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자본이 농업→제조업→외국무역 순서로 투입되는 건 '사물의 자연적 순서'(natural order of things) 라고까지 주장합니다. 




※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③

- 국가의 역할에 관하여

- 중상주의자 : 국가의 무역규제가 필요

- 애덤 스미스 : '무역을 할 자유'를 개인들에게 부여해야


앞서 살펴본 중상주의자의 주장을 잠깐 다시 정리해봅시다. 이들은 금은의 축적 정도를 알려주는 '우호적인 무역수지'를 선호한데 이어서, 제조업 위주의 수출 등 '우호적인 상품구성'이 이루어져야 국부가 증진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럼 이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소비자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소비증가로 인해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제조업 자본가 보다는 대지주가 되기를 희망한다면 제조업 발달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즉, 경제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disharmony between private and public interest)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중상주의자들은 무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자와 무역이 금지된 자를 구분하고, 제조업을 인위적으로 육성하게끔 도와주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1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부(富)는 금은으로 구성된다는 원칙과, 그런 금속은 광산이 없는 나라에서는 오직 무역차액에 의해, 또는 수입하는 것보다 큰 가치를 수출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원칙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국내소비를 위한 외국재화의 수입을 가능한 한 줄이고 국내산업의 생산물의 수출을 가능한 한 증가시키는 것이 필연적이고 경제정책의 주된 목적으로 된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5~546쪽


중상주의자들은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불일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역정책'(trade policy) 혹은 '상업정책(commercial policy)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른바 '국가의 무역규제'(state regulation of trade) 입니다. 


중상주의자들의 사상으로 상업정책은 방향이 명료해졌습니다. 원자재 수입에 낮은 관세를 매기고, 제조업 수입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합니다. 반대로 원자재 수출은 돕지 않고 제조업 수출은 보조금과 장려금을 지급합니다. 국가는 철저히 제조업을 지키는 방향으로 상업정책을 집행하고, 제조업 육성을 위해 국내시장에서 독점권도 허가해줍니다.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는 무역차액 학설은 불합리하다고 평가했으며, 제조업을 우위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개인이 자연적자유(natural liberty)에 따라 행동한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무역을 규제하기 보다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국부론』의 상당부분에 이러한 주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548~549쪽)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을 높은 관세나 절대적 금지에 의해 제한함으로써 이 재화를 생산하는 국내산업은 국내시장에서 다소간 독점권을 보장받는다. (...) 국내시장의 이와 같은 독점권은 그런 권리를 누리는 특정 산업을 종종 크게 장려할 뿐만 아니라, 독점이 없었을 경우 그것으로 향했을 것보다 더 큰 노동·자본을 그 산업으로 향하게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독점권이 사회의 총노동을 증가시키거나 그것을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가는 결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각 개인은 그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


(552쪽)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


(553쪽)

자기의 자본을 국내산업의 어느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 그리고 어느 산업분야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8~553쪽


결국 무역차액과 제조업을 강조하는 중상주의 사상의 기본뿌리는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불일치' 한다는 사상이었고, 애덤 스미스가 무역의 자유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하는 기본뿌리는 '완전히 자유롭고 공정한 자연적인 체계'(natural system of perfect liberty and justice) 안에서 개인과 공공의 이익을 일치'한다는 자유주의 사상입니다.




※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의 논리 ①

-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는 자유무역

-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가능케하는 자유무역


지금까지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당시 지배적인 사상이었던 중상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무역의 독점권을 없애고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과하고, 수입관세와 수출보조금 등을 없애는 '자유무역'(Free Trade)을 실시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gain)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gains from trade)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동태적이익(Dynamic Gain), 둘째, 정태적(Static Gain) 입니다. 


● 무역의 동태적이익 (Dynamic Gain) 

-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는 분업의 고도화와 생산력 발전을 이끈다 


: 동태적이익은 말그대로 '시간이 흘러가도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뜻하며, 경제학에서는 주로 '경제성장'(growth) 혹은 '경제발전'(development)을 의미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는 분업의 고도화와 생산력 발전을 이끈다고 믿었습니다. 『국부론』의 본 제목은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이며,  '분업을 통한 생산'을 통해 국부가 증진된다고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애덤 스미스는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가 '분업을 최고도로 진행' 시켜 '생산력과 부를 증가시킨다'고 분석했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1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금은의 수입은 한 나라가 외국무역으로부터 끌어내는 주된 이득도 아니며, 유일한 이득은 더더욱 아니다. 외국무역이 행해지는 지역 사이에서는 어디에서건 국민들은 외국무역으로부터 두 가지 이득을 끌어낸다.


외국무역은 그들의 토지·노동의 생산물 중 그들 사이에서 수요가 없는 잉여분을 반출하고 그대신 수요가 있는 다른 것을 가져온다. 외국무역은 그들에게 남는 것을,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그들의 향락을 증가시키는 데 사용될 다른 것과 교환함으로써, 그 잉여분에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국내시장의 협소함도 어떤 기예(技藝:art)나 제조업의 각 분야에서 분업이 최고도로 진행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생산물 중 국내소비를 초과하는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도 넓은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외국무역은 그들로 하여금 생산력을 발전시키게 하고, 연간생산물을 최고도로 증가시키게 하며, 그리하여 사회의 실질수입과 부를 증가시키게 한다. (...)


아메리카의 발견이 유럽을 부유하게 한 것은 금은의 수입에 의한 것이 아니다. (...) 아메리카의 발견은 확실히 가장 본질적인 변화를 야기했다. 그것은 유럽의 모든 상품에 새롭고 무궁무진한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옛날 상업의 좁은 영역에서는 생산물의 큰 부분을 흡수할 시장의 부족 때문에 일어날 수 없었던 새로운 분업·기술개량을 야기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1쪽


외국과의 교역이 없이 좁은 국내시장만 가졌다면, 수요가 없는 상품을 생산할 필요가 없게되고 이에따라 분업도 세분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무역을 통해 넓은 시장을 확보하면,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 결과 분업이 고도화 된다는 논리 입니다.



● 무역의 정태적이익 (Static Gain) 

- 무역은 효율적인 자원사용을 이끌어낸다


: 정태적이익은 '그 시점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뜻하며, 경제학에서는 주로 '자원의 효율적 사용'(efficiency gain)을 의미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왜 무역은 효율적인 자원사용을 이끌어낸다고 믿었던 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외국산 제품이 국내산 제품보다 값싸기 때문입니다(lower price).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 · 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만약 국산품이 외래품만큼 싸게 공급될 수 있다면 이러한 규제는 명백히 쓸모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렇나 규정은 일반적으로 유해하다. 현명한 가장(家長)의 좌우명은, 구입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욱 비싸다면 집안에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


모든 개별 가구에 대해서 현명한 행동이 대국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외국이 우리가 스스로 제조할 때보다 더욱 값싸게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면,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진 국산품의 일부로 그것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 


이렇게 하더라도, 한 나라의 총 노동은 그것을 고용하는 자본과 일정한 비례관계에 있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각종 수공업자들의 노동이 감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총노동도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가장 유리하게 이동될 수 있는 방도를 찾게 될 것이다.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한 나라의 총노동이 향한다면, 총노동이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3~554쪽


위와 같이 애덤 스미스에게 무역의 정태적이익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습니다.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 힘을 쏟는 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죠. 만약 그 힘이 우위를 가진 국산품 생산에 사용된다면 생산량이 더욱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재차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특정 상품의 생산에서 다른 나라가 누리고 있는 자연적 이점이 한 나라에 비해 너무나도 크다면, 그 상품과 경쟁하는 것이 헛수고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누리는 우위(advantage)가 천부적인 것이건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이건, 그것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한 나라가 이러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한, 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전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애덤 스미스는 왜 어떤 제품은 국내에서 싸게 만들고, 다른 제품은 외국에서 싸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원인이 어디있든지간에 '싼 곳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죠. 그는 무역이 가져다주는 정태적이익을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 애덤 스미스 자유무역 사상의 논리 ②

-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을 믿어라


이제는 단순히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넘어서서, 무역 및 상업정책과 관련하여 자유주의자로서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드러나는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 자유로운 무역이 국내에 가져올 수 있는 충격은? (Trade Effects on Income Distribution)

- 노동자는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개개인의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에 따른 행위가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가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할겁니다. 마찬가지로 '무역을 할 자유'와 '자유무역'이 공공의 이익을 안겨주려면, 무역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아래 원문을 살펴보죠.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자유무역을 회복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통상의 일터와 통상의 생계수단을 일시에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그들이 고용 또는 생계를 박탈당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우리가 병사의 습관과 제조공의 습관을 비교해 볼 때, 병사가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보다 제조공이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조공은 언제나 자기 노동에 의해 생계를 얻는 데 익숙 (...)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68쪽


위와 같이 애덤 스미스는 '노동자는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자유무역으로 인한 실업문제가 초래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 인위적으로 제조업을 육성하는 유치산업보호론 비판

-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사회자본이 더 빨리 증가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자본과 노동을 인위적으로 특정 산업(제조업)에 배치하여 육성하는 정책 또한 반대했습니다. 중상주의자들에게 제조업은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외국 제조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규제정책으로 수입경쟁에서 보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보기에 이는 자본과 노동의 자연적인 용도를 훼치는 정책에 불과했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사실 이러한 규제에 의해 특정제조업이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 빨리 확립될 수도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외국과 같이 싸거나 더 싸게 국내에서 생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노동이, 비록 이처럼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욱 빨리 특정분야에 유리하게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노동이나 사회의 수입 총액이 이와 같은 규제에 의해 증대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사회의 노동은 자본이 증가하는 비율에 따라 증가할 수 있을 뿐인데, 자본은 수입 중에서 점차 절약되어 저축되는 것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제의 직접적인 효과는 그 사회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고, 그리고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빨리, 사회자본을 증가시킬 수는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없음으로써 사회가 문제의 제조업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는 그 때문에 어느 한 기간 내에 필연적으로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발전의 어느 한 시기에 사회의 모든 자본과 노동은, 비록 다른 대상에 대해서이긴 하지만, 당시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각 시기마다 그 사회의 수입은 그 사회의 자본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수입이며, 자본과 소득은 모두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애덤 스미스가 생각하기에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현재 제조업이 없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규제 정책이 없다면 자본과 노동은 알아서 자연적인 용도를 찾아가게 되어 있고,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각주:2]하기 때문에, 현재 경제는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최대 생산량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애덤 스미스 자유무역 사상의 논리 ③

- 중상주의는 소비자를 희생시키고 제조업 생산자의 독점이익만 고려



애덤 스미스가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 사상은 『국부론』 <제4편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을 통해 정점을 찍습니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외국상품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국내 제조업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정책', 즉 중상주의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그는 앞서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전개했던 논리를 반복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794) 우리나라의 중상주의에 의해 주로 장려되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뿐이다.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의 이익을 위한 산업은 너무나 자주 무시되거나 억압을 받고 있다. (...)


(813)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제조되는 상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모든 외국상품의 수입이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소비자의 이익은 명백히 생산자의 이익에 희생되고 있다. 이런 독점이 거의 언제나 야기하는 가격상승을 소비자가 감수해야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생산자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하)』, 비봉출판사, 764~813쪽


: 외국산 제품이 국내산보다 값이 싸다면 이를 수입해와 사용하는 게 마땅한데, 무역장벽으로 인해 국내 소비자가 값비싼 제품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소비자의 이익은 피해를 보고 국내 제조업자만 이익을 봅니다. "중상주의에 의해 장려되는 것은 부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 뿐" 입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이런 규제가 국민의 자랑스러운 자유를 얼마나 위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척하지만, 이 경우 그 유는 우리나라의 상인·제조업자의 하찮은 이익을 위해 분명히 희생당하고 있다


이런 모든 규제들의 특기할 만한 동기는 우리나라 제조업 그 자체의 개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웃 나라의 제조업을 억압함으로써,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상대와의 귀찮은 경쟁을 가능한 한 끝냄으로써 우리나라의 제조업을 확장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자들은 그들 자신이 국민 전체의 재능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하)』, 비봉출판사, 814쪽


: 자유무역이 실시되었더라면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하는 개인'은 자본과 노동을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에 투자[각주:3]할 겁니다. 또한 규제가 없다면 '자본과 노동은 알아서 자연적인 용도를 찾아가게 되어'서 최대의 생산량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역장벽 때문에 국내 제조업자들은 독점권을 누리면서 '국민 전체의 재능을 독점'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훨씬 더 잘 판단하는 개인의 자유'는 침해됩니다. 즉, 중상주의의 무역장벽은 '국민의 자랑스러운 자유를 위반'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이러 중상주의 전체를 고안해낸 것이 과연 누구인가를 파악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고안해낸 사람이 소비자들이 아니라 생산자들이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이익은 저적으로 무시되어 왔음에 반해 생산자의 이익은 매우 신중한 주의가 기울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생산자들 중 우리나라의 상인·제조업자들이야말로 중상주의의 특히 중요한 설계자들이다. 이 장에서 주의깊게 살펴본 중상주의의 여러 규제들에서는 우리나라 제조업자들의 이익이 특별히 우대되었고, 그리고 소비자의 이익이 희생되었을 뿐 아니라 기타 생산자들[예컨대 원료생산자]의 이익이 더 크게 희생되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하)』, 비봉출판사, 816쪽


: 그렇기 때문에, 중상주의는 제조업자의 이익만을 위하는 정책이지, 소비자와 원료생산자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만약 관세와 수입제한을 없애는 자유무역이 모두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를 종합해볼 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자유무역'과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한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유방임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외국상품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국내 제조업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국부론』을 집필한 것입니다.




※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 오늘날까지 이어지다


지금까지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의 원문 일부를 읽어나가면서, 중상주의와 자유무역에 관한 그의 주장과 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국제무역논쟁에 관심 많으신 분들은 '보호무역주의자 vs 자유무역주의자'의 대립 구도와 논리가 18세기에도 똑같았다는 점을 느꼈을 겁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소개했던 몇몇 논점들이 『국부론』 내에서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① 무역수지 흑자는 정말로 의미가 없나


: 애덤 스미스는 "교환을 할 수 있는 상품이 있는 한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수출과 수입은 동전의 양면이다. 수출은 한 국가가 수입품을 획득하기 위해서 포기하는 재화이다. 즉, 수출은 수입대금을 지불하기 위한 소득을 벌어들이는 데 불과하다."[각주:4] 라는 논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역수지 흑자 결정요인에 관한 경제학자들의 생각 참고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역수지 흑자를 국제경쟁에서 승리한 결과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정말로 무역수지 흑자는 의미가 없는 지표일까요?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생각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봅시다.



② 제조업은 독특한 특성을 가진 업종이 아닌가


: 과거 중상주의나 오늘날 보호무역 모두, 결국 핵심은 '제조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습니다. 


중상주의자들에게 제조업은 더 많은 수출가치와 고용을 만들어내는 업종입니다. 과거 개발도상국 정책결정권자와 1980년대 미국 그리고 오늘날 선진국에서 보호무역 흐름이 부상한 것도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해서였습니다. 반면 애덤 스미스에게 제조업은 그다지 특별한 산업이 아닙니다. 따라서, 중상주의적 정책은 그저 소비자와 기타 생산자를 희생시키고 제조업 생산자만을 위한 것이 됩니다.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둘러싼 논쟁은 18세기에 종식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또한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계획입니다. 



③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하는가


: 중상주의나 보호무역주의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여 무역을 규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반면, 애덤 스미스와 자유무역주의자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가 공공의 이익도 불러온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상의 대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가 쓴 아래의 글을 읽어보죠.


● 스푸트니크의 순간이라는 표현이 아쉬운 이유(Why our Sputnik moment will fall short)


미국의 기업들은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우월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의 상당 부분은 미국밖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제너럴일렉트릭은 미국인보다 외국의 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는 미국 내보다 중국에서 더 많은 자동차를 팔고 있다. (...)


오바마의 연설은 기업의 수익과 일자리의 연계가 끊어졌다는 점을 외면한 것이고, 일자리 창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설명하지도 못했다. (...) 정부는 일반 노동자 가정의 복리를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존재한다. 제대로 된 정부가 없다면 미국인들은 점점 글로벌화되는 기업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업들은 어디서 수익이 나든 오직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다.


- Robert Reich, 'Why our Sputnik moment will fall short', <FT>, 2011.01.26

- "오바마가 말한 '스푸트니크의 순간', 핵심을 벗어났다". <프레시안>. 2011.01.27 에서 재인용



● '450억 달러 딜', 미국이 중국에게 배워야 할 것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의 여러 기업들이 중국과 에너지와 항공 관련 제조 계약을 맺게 되지만, 상당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될 것이다. GE와 중국이 합작한 업체가 상하이에 설립될 예정인데, 여기서 만드는 새로운 항법시스템 장치들이 보잉 항공기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에게는 국가경제전략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만 있다. 바로 이런 측면을 봐야 한다. 중국의 국가 경제전략은 중국을 미래의 경제 동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국은 가능한 한 미국으로도 많은 것을 배워 미국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태양전지와 전기배터리 기술에서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은 기초 연구와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중국은 하나하나가 MIT에 맞먹는 20개의 대학을 건립했다. 중국의 목표는 힘과 위상, 고임금 일자리에서 중국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국가 경제전략이 없다. 미국에는 그저 어쩌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들이 있을 뿐이다.


- Robert Reich, 'The Real Economic Lesson China Could Teach Us', 2011.01.19

- '450억 달러 딜', 미국이 중국에게 배워야 할 것', <프레시안>, 2011.01.20에서 재인용


로버트 라이히는 오늘날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가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중국정부는 치밀하게 세워진 경제전략 하에 기업의 이익이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이어지게끔 하고 있다고 부러워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중상주의, 보호무역주의를 넘어서서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을 요구하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또한 국가가 주도하여 경제주체들의 행위를 조정해야한다는 생각은 '제조업 육성 및 보호의 필요성'과 결합하여, 강력한 무역정책(trade policy) 및 상업정책(commercial policy)으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논리가 타당한지에 대하여도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살펴봅시다.



④ 자유무역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 애덤 스미스는 국제무역의 발생원인을 '서로 다른 가격'에서 찾았습니다. 만약 외국이 더 값싸게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이를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왜냐구요? 거창한 논리는 필요없습니다. 그저 외국산제품 가격이 국산품보다 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문에서 우위에 놓인 국가'는 무역을 통해서 이득을 얻지 못한다는 말일까요? 애덤 스미스가 말한 우위는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각주:5] 입니다. 그럼 선진국이 모든 부문에 대해 절대우위에 놓여있으면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자유무역의 이익'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은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따라서, '자유무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게 상호이득(mutual gain)을 준다'는 논리는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통해 증명됩니다. 


앞으로 [국제무역이론 Revisited]를 통해,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⑤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은 작동하는가


: 애덤 스미스는 자유무역과 무역개방이 피해를 불러올수도 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피해를 불러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중상주의가 소비자와 제조업 이외 생산자를 희생시키는 구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믿은 이유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무역개방으로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근로자는 손쉽게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하는 자본가'는 최대의 이윤을 주는 새로운 곳으로 자본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에서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은 불완전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는 쉽게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외국과의 경쟁으로 몰락한 산업을 다른 산업이 빠르게 대체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무역개방이 소득분배 및 산업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서도 앞으로 깊게 알아봅시다. 




※ 다음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이제 다음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에서 '자유무역 사상의 발전'에 영향을 끼친 애덤 스미스 이외의 또 다른 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주장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 생산자만을 우대하는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이론을 말했으나, 데이비드 리카도는 "제조업 자본가의 이윤 증대를 위해 자유무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리카도는 애덤 스미스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무역개방이 계층별 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면서 자유무역이론의 폭을 넓혔습니다.


다음글을 읽어나가면, 자유무역 사상의 발전 배경 및 오늘날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1.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2014.07.11 http://joohyeon.com/195 [본문으로]
  2.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③ 에서 소개한 국부론 553쪽 내용 다시 인용 [본문으로]
  3.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③ 에서 소개한 국부론 553쪽 내용 다시 인용 [본문으로]
  4. 참고 : Douglas Irwin. 2015. 'Free Trade Under Fire' 4th Edition [본문으로]
  5. 국부론에서 '비교우위'란 표현을 썼지만, 오늘날 알려진 비교우위와는 다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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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Posted at 2015. 5. 21. 00:35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을때 특정 산업을 한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하면, 전세계가 모두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과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을 통해, 1세대 국제무역이론을 알아보았다. 1세대 국제무역이론은 세계 각국이 무역을 하는 이유를 2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국가들 사이에서 무역이 발생하는 첫째 이유는 각국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리카도가 주목하는 것은 '노동생산성 차이'(달리 말해 기술수준의 차이)이다. 헥셔와 올린이 주목하는 것은 '보유자원의 차이'이다. 


둘째 이유는 무역이전 각국의 상품가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무역 이전 어떤 국가는 A상품 가격이 낮고 B상품 가격이 높은 상태이고, 또 어떤 국가는 A상품 가격이 높고 B상품 가격이 낮은 상태이다. 이때 무역이 발생하게 되면 국가들 사이에서 상품가격은 하나로 수렴(무역이전 A국과 B국 상품가격의 가중평균 수준)되고, 무역이전 가격이 낮았던 상품은 가격상승을 맞게된다. 따라서 각 국가들은 무역이전 가격이 낮았던 상품을 세계시장에 비싸게 팔 수 있다. 만약 무역이전 각국의 상품가격이 서로 같다면 굳이 무역을 할 필요가 없다.          


이번글에서도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국가'와 '무역이전 서로 다른 상품가격'이 어떻게 무역을 탄생시키는지 알아볼 것인데, 이번에 소개하는 이론은 1세대 무역이론-리카도, 헥셔올린-과는 조금 다르다. 1세대 무역이론은 생산량이 증가할때 생산에 소요되는 평균비용이 일정했다. 많은 양을 생산한다고 해서 평균비용이 감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경제에서 우리는 '생산량이 증가할때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이를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라고 말한다. 


만약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면, 특정 산업을 한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다른 산업은 또 다른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한 뒤, 무역을 통해 상품을 교환하면 좋지 않을까?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A국과 B국 모두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양국은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을 절반씩 책임지게 된다. 이때 B국은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고 A국만 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면, A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배로 증가하게 될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을때, 생산량이 2배로 증가하면 평균 생산비용도 감소한다.따라서 자동차 가격도 낮아질 것이고, A국과 B국의 국민들은 더 낮은 가격에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다.  


이처럼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을때 특정 산업을 한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하면 양 국가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다. 이번글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무역이 발생한다.'고 설명하는 이론을 살펴볼 것이다.




※ '외부 규모의 경제'란 무엇인가? 


  • 첫번째 열 - 생산량(Output), 두번째 열 - 총 노동투입량(Total Labor Input), 세번째 열 - 평균 노동투입량(AVerage Labor Input)
  • 생산량이 5단위 증가할때마다 총 노동투입량도 똑같이 5단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평균 노동투입량은 감소하고 있다.
  • 즉,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은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이 감소하는 현상을 뜻한다. 쉽게 말해, 더 많이 생산할수록 생산비용이 감소한다는 말이다. 


위에 첨부한 도표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을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 열은 생산량(Output), 두번째 열은 총 노동투입량(Total Labor Input), 세번째 열은 평균 노동투입량(Average Labor Input)을 나타낸다. 이때 생산량이 5단위 증가할때마다 총 노동투입량도 똑같이 5단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평균 노동투입량은 감소하고 있다. 즉,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은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외부 규모의 경제'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규모의 경제'는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와 '내부 규모의 경제'(Internal economies of scale)로 나눌 수 있다. 


하나의 기업이 있다고 생각하자. 이 기업은 생산량을 증가시키더라도 평균비용이 감소하지 않는다. 즉,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기업이다. 이때, 이 기업이 위치한 곳에 같은 산업에 속해있는 기업들이 이주해왔다. 일종의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 것이다. 


같은 산업에 속해있는 이들 기업들은 서로의 노하우도 공유하고(knowledge spillover), 특정 하청업체로부터 공동으로 부품을 구매한다(specialized suppliers).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 것을 보고, 이 산업에 종사하고 싶은 구직자도 몰려온다.(labor market pooling). 같은 산업에 속해 있는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 여러가지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


이처럼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외부 규모의 경제'라 부른다. 이들은 노하우공유, 부품 공동구매, 근로자 채용의 용이함 등 덕분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하나의 기업 자체가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면 이를 '내부 규모의 경제' 작동한다' 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살펴볼 것이다.)         


  •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 덕분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이 감소하고 상품가격 또한 감소한다.
  • 따라서, 이 산업의 공급곡선(AC)은 우하향하게 된다.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였기 때문에 '외부 규모의 경제'가 생겨났다. 따라서 이 산업은 생산량을 증가시킬때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 결과, 상품 공급량이 증가할때마다 상품 가격이 하락하게 되고, 공급곡선(AC)은 우하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국가에 생산을 집중

→ 세계 소비자들은 낮아진 상품가격의 혜택을 누림


특정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다면, 생산량을 증가시킬때마다 평균 생산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고 상품 또한 낮은 가격에 팔 수 있다. 이를 국가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글의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특정 산업을 한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다른 산업은 또 다른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한 뒤, 무역을 통해 상품을 교환하면 좋지 않을까?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A국과 B국 모두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양국은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을 절반씩 책임지게 된다. 이때 B국은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고 A국만 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면, A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배로 증가하게 될것이다.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을때, 생산량이 2배로 증가하면 평균 생산비용도 감소한다.따라서 자동차 가격도 낮아질 것이고, A국과 B국의 국민들은 더 낮은 가격에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다.  


이때 문제는 '자동차 산업을 어떤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해야 할까?' 이다. 예시에서는 인위적으로 A국이 자동차를 집중적으로 생산한다고 하였으나, 현실에서는 인위적으로 생산을 배분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시장이 자동적으로 해결해준다. 만약 상품의 질이 동일하고 가격만 다르다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낮은 가격의 상품을 구매할 것이다. 따라서 자동차를 더 낮은 가격에서 생산할 수 있는 국가만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이 국가에서만 자동차 산업이 생산될 것이다. 이를 그래프를 통해 쉽게 알아보자.


  • 무역 이전, 중국과 미국의 국내공급(AC China or US)-수요 곡선(D China or US).
  • 양 국가 모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비용이 하락하고 가격 또한 하락하는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 이때, 중국의 공급곡선은(왼쪽 그래프, AC China) 미국의 공급곡선(오른쪽 그래프, AC US)에 비해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같은 양을 생산할때 중국 상품의 가격이 더 낮음을 의미한다.

위 그래프는 무역 이전 중국과 미국의 국내공급-수요 곡선을 보여준다. 양 국가 모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비용이 하락하고 가격 또한 하락하는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이때, 중국의 공급곡선은(왼쪽 그래프, AC China) 미국의 공급곡선(오른쪽 그래프, AC US)에 비해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같은 양을 생산할때 중국 상품의 가격이 더 낮음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것처럼, 상품의 품질이 동일한 상황에서 중국의 상품가격이 더 낮기 때문에, 세계의 소비자들은 모두 중국 상품을 구입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 시장에서 미국 상품은 퇴출되고, 이 상품은 오직 중국만이 생산하게 된다.


  • 무역 이후, 중국의 상품 공급곡선(AC China)과 세계 수요곡선(D World).
  • 세계시장에서 이 상품을 중국만이 생산함에 따라, 중국의 생산량은 증가했다.(Q1에서 Q2로)
  •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생산량 증가에 따라 상품가격은 더 낮아졌고, 세계 소비자들은 더욱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윗 그래프는 무역 이후, 중국의 상품 공급곡선(AC China)과 세계 수요곡선(D World)을 나타낸다. 세계시장에서 이 상품을 중국만이 생산함에 따라, 중국의 생산량은 증가했다(Q1에서 Q2로).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생산량 증가에 따라 상품가격은 더 낮아졌고, 세계 소비자들은 더욱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 생산에 학습효과 (Learning by Doing)

→ 특정 산업에 대해 현재까지 많은 경험을 쌓은 국가가 그 산업에 속한 상품을 생산


바로 앞서는 '특정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 덕분에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을 살펴봤다.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면 생산량 증가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이 하락하기 때문에 상품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원인으로 인해 '생산량 증가에 따라 평균생산비용이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일은 없을까? 바로, '생산에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가 존재할 때에도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다.  


'생산에 학습효과'란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이게되고, 이런 노하우 덕분에 효율성이 개선되어 평균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생산에 학습효과'는 한 기업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다. 한 기업이 얻은 노하우가 전파되어(knowledge spillover) 다른 기업 또한 생산의 효율성이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 하나'에서는 생산에 학습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기업이 속한 '산업 전체'에 생산에 학습효과가 있다면 그 기업 또한 이익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특정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수록' 생산에 학습효과는 더욱 더 커지게된다


  • '생산에 학습효과'는 '누적 생산량'(Cumulative output)에 의해 결정된다. 
  • 윗 그래프는 '누적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비용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임으로, '생산에 학습효과'는 '누적 생산량'(Cumulative output)에 의해 결정된다. 윗 그래프는 '누적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비용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살펴봤던,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 ·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러한 '생산에 학습효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이 이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간단하다. 특정 산업에 대해 현재까지 많은 경험을 쌓은 국가가 그 산업에 속한 상품을 생산하면 된다. 그렇게되면 세계 소비자들은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


이번글에서 설명하는 '무역을 하는 이유'는 앞서의 글과 유사하다. 1세대 국제무역이론 리카도 '비교우위론'헥셔-올린 이론이 말하는 무역을 하는 이유는 '각 국가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리카도는 각국의 '노동생산성'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하고, 헥셔-올린은 '보유자원'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한다. '외부 규모의 경제'로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이론 또한 각국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무역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러 산업 중 어떤 산업을 생산했을때 생산비용이 제일 낮아지는지는 국가마다 서로 다르다.


(사족 : 하지만 '외부 규모의 경제'로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이론과 리카도 · 헥셔올린 이론의 차이점도 존재한다. 1세대 국제무역이론 리카도 · 헥셔-올린에서는 무역 이후 세계 상품가격이 하나로 수렴한다. 이때의 세계 상품가격은 무역 이전 각국 상품가격의 중간수준이다. 하지만 '외부 규모의 경제'와 '생산에 학습효과'가 존재할때, 무역 이후 세계 상품가격은 반드시 하락한다. 특정 산업을 한 국가만 몰아서 생산하기 때문에, 생산량 증가에 따라 상품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역을 할때의 이익은 무엇일까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와 '생산에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이 존재하는 상황일 때, 정 산업을 한 국가만 몰아서 생산한다면 세계 소비자들은 '상품가격 하락'으로 인한 무역의 이익을 볼 수 있다. 




※ '외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할 때, 국제무역은 소비자 후생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 우리는 앞서 '특정 산업을 어느 국가가 생산하느냐는 시장이 자동적으로 해결해준다.' 라고 알았다. 상품가격이 높은 국가는 시장에서 자동퇴출되고, 상품가격이 낮은 국가만이 그 상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똑같은 양을 생산할때 특정 국가에서의 상품가격이 더 낮은것일까?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떠올려서, 그 국가의 노동생산성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 그 국가의 노동생산성이 더 높은 것일까? 그 답은 찾기 어렵다. 결국 '역사적 경로'(historical path)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냥 어떤 국가에서 예전부터 특정 상품을 생산해왔고, 그것이 지금까지 누적된 결과 생산성이 높다는 식이다. '어떤 국가에서 예전부터 특정 상품을 생산해왔다'는 것도 그저 '우연적 사건'(accidental event) 이다.  


이것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양을 생산할때 중국에 비해 베트남은 더 낮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베트남만이 그 상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게 세계 전체적으로 이익일 것이다. 하지만 그 상품을 베트남이 아니라 중국이 몰아서 생산하는 상황도 만들어질 수 있다. 바로 '이전부터 중국이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갸우뚱 할 것이다. "이전부터 중국이 생산해왔더라도, 베트남이 생산량을 늘리면 가격이 더 낮은데 무슨 상관이지?" 그런데 베트남은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 자,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자. 외부 규모의 경제란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하나의 기업 그 자체에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지만,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이 모이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따라서, '하나의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평균 생산비용과 상품가격이 하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하나의 기업'만이 생산을 시작한다면 중국에 비해 상품가격이 높을 것이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하나의 기업'은 생산을 시작하지 않는다베트남 기업 모두가 같이 시장에 진입하면 '외부 규모의 경제'를 향유할 수 있지만, 다른 기업이 진입할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내가 먼저 진입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 똑같은 양을 생산할때(Q1 생산), 베트남은 중국에 비해 낮은 상품가격을 만들어 낼 수 있다(중국 상품 가격은 점1, 베트남 상품가격은 점2)
  •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 기업 하나'의 생산비용은 중국의 상품가격보다 높다.(C0는 P1보다 높은 점에 위치) 


이 모습이 위에 첨부한 그래프에 나온다. 똑같은 양을 생산할때(Q1 생산), 베트남은 중국에 비해 낮은 상품가격을 만들어 낼 수 있다(중국 상품 가격은 점1, 베트남 상품가격은 점2). 하지만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 기업 하나'의 생산비용은 중국의 상품가격보다 높다(C0는 P1보다 높은 점에 위치). 결국 베트남 기업들은 시장에 진입하지 않게 되고, 중국 기업들만이 상품을 생산하게 된다.(점1에서 세계시장 균형이 결정)  


이러한 결과는 세계 각국 모두에게 손해를 안겨준다. 잠재적으로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 소비자들은 결국 더 높은 가격을 주고 상품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국제무역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베트남 기업은 시장에 진입했을 것이다. 세계간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싼 비용에 상품을 생산하는 중국'을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무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베트남 기업은 중국을 의식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시장진입을 포기한다. 이처럼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이라면 국제무역은 세계 소비자 전체의 후생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외부 규모의 경제'는 시장에 먼저 진입한 국가에게 이익(initial advantage)을 안겨주는데, 초기진입여부는 역사적경로와 우연적 사건이 결정짓는다. 결국, 올바르지 않은 국가가 먼저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세계 소비자들의 후생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 유치산업보호론의 필요성???


'외부 규모의 경제' 뿐만 아니라 '생산에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의 존재도 세계 소비자들의 후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앞서 설명했던 '생산에 학습효과'의 정의를 다시 가져와보자. 


'생산에 학습효과'란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이게되고, 이런 노하우 덕분에 효율성이 개선되어 평균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생산에 학습효과'는 한 기업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다. 한 기업이 얻은 노하우가 전파되어(knowledge spillover) 다른 기업 또한 생산의 효율성이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 하나'에서는 생산에 학습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기업이 속한 '산업 전체'에 생산에 학습효과가 있다면 그 기업 또한 이익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특정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수록' 생산에 학습효과는 더욱 더 커지게된다. 



만약 '생산에 학습효과'가 하나의 기업에서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 혼자서라도 시장에 진입하여 생산량을 늘려가면 평균 생산비용 · 상품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에 학습효과'의 영향이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여러 기업이 시장에 존재할 때에만' 커진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같은 산업의 기업 모두가 동시에 시장에 진입하면 '생산의 학습효과'를 향유할 수 있지만, 다른 기업이 진입할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내가 먼저 진입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진입은 발생하지 않고 잠재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이익은 실현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산업혁명을 먼저 시작한 선진국이 그동안 쌓아둔 경험이 많을 것이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쌓아둔 경험이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면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생산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진입하지 않아 잠재이익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게된다.


세계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이 더 낮아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발주자들이 시장에 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소비자들은 더 많은 돈을 주고 상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의 이러한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여러 기업들이 동시에 시장에 진입'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 경제지리학 (Economic Geography)

- 국가내 지역간 거래 (inter-regional trade within countries)


올바른 국가가 시장에 먼저 진입했느냐 혹은 잠재적으로 상품가격을 더 낮출 수 있는 국가가 시장에 진입했느냐에 따라 세계소비자들의 후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같은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한 곳에 위치'해 있을 때 외부 규모의 경제로 인한 이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리학이 강조하는 '집적의 이익'(agglomeration)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경제분야에 지리의 중요성을 도입한 것을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라 한다.


만약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가 존재한다면, 같은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서로 모임으로써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려 할 것이다. 대한민국 울산 · 포항 · 여수 등에 중화학 산업의 기업들이 모여있는 것도 '외부 규모의 경제'를 이용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한 국가내 지역에 따라 특정산업끼리 모이게되고, 지역간 거래(Inter-regional trade)를 통해 국민 전체가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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