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Posted at 2018.10.15 00:5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한국은 어떻게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나



35년 일제강점기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은 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남았던 대한민국은 2018년 오늘날 경제 선진국으로 올라섰습니다. 한국은 경제성장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국과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GDP 추이를 그래프로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전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학부 경제성장론 교과서 표지가 한국이라는 점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견없이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어떻게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나?"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혹자는 북한과 비교하여 자유시장체제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국가가 수출 및 금융지원 제도를 통해 기업을 통제하면서 발전[각주:1] 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반문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지향하면서 무역개방도를 높여온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보호무역을 통해 특정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냉전 시기 미국의 외교정책 아래에서 일본과 국제분업체제를 구축한 덕분에 급속한 성장을 달성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에 반박하며 미국이 독재정권을 용인하고 한일수교를 독촉한 결과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고착화 되었고 민주화 달성이 지연되었다고 말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1961-79년까지 약 19년간 집권한 박정희정권의 공로를 치켜세우는 쪽도 있고, 반대로 박정희정권기에 수립된 경제정책이 오늘날까지 한국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각주:2]고 말하는 쪽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공통적으로 합의하는 사항은 "한국은 대외지향적 무역체제를 추구한 덕분에 경제발전에 성공하였다(outward-looking trade regime)" 입니다. 대내지향적 수입대체 산업화를 선택한 중남미[각주:3]와는 달리, 한국은 수출진흥 산업화를 추진한 덕분에 오늘날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 수출진흥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나타난 세부적인 행위가 시장주의적인지 국가주도적인지 · 자유무역인지 보호무역인지에 대해 이견들이 존재하고, 당시 미국과 박정희정권의 공과에 대해 의견이 갈리긴 하지만, 어찌됐든 무역교류 확대를 통해 수출과 수입을 증가시켜온 대외지향적 무역체제가 경제발전에 핵심이었다는 건 다수가 동의합니다.


이 글의 주제는 한국경제 성장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는게 아니라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속에서 한국경제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역'에 초점을 맞추어 다음과 같은 2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첫째, 중남미와 달리 당시 한국이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선택하였던 배경은 무엇일까? 


이전글[각주:4]에서 살펴봤듯, 중남미가 수입대체를 선택한 배경은 '산업화를 위한 제조업 육성' · '1차상품에 치중된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함' · '자립경제 수립을 위한 민족주의적 사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상황도 중남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35년간 일제강점기와 1950년 한국전쟁을 겪고 경제가 황폐화된 상황에서, 경제적 독립을 원하는 민족주의적 사상이 퍼져있었고 농업에 치중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한국은 자립경제와 산업화를 열망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수입대체가 아닌 수출진흥 정책을 산업화 전략으로 선택하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수입대체를 추구하다가 수출진흥에 더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부분적인 수입대체를 펼치는 동시에 항상 대외지향적 정책을 지향했습니다. 이때 부분적인 수입대체도 대내지향적 자립경제 수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출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입대체 였습니다. 자동차 · 조선소 등 중화학공업 부문을 육성한 뒤 수출액을 늘린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중남미와 한국의 모습을 대조해보면, 처음에 선택하였던 대내지향적 수입대체를 계속 추진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 아찔합니다. 따라서, 1950-60년대 한국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로 나아간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대외지향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한 한국 경제발전 성공은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으로 봐야하나,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으로 평가해야 하나? 


두번째 물음은 앞으로의 [국제무역논쟁]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질문입니다. 


분명 한국은 대외교역을 증가시켜온 수출진흥 정책 덕분에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외교역량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원에 힘입은 보호무역' 덕분에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 


1920-30년대 호주의 보호무역[각주:5]은 1차 상품 특화로 인한 수확체감 및 소득분배 악화를 탈피하는 걸 목적으로 하였고, 1950-70년대 중남미의 수입대체[각주:6]는 아예 대내지향적 무역체제를 의미했습니다. 이 둘의 경우에서 교역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구사하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1960~70년대 한국은 보호무역 정책을 하면서도 교역량 확대를 목표로 하였습니다. 박정희정권은 향후 수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특정 산업을 선택하여 집중 육성하고 수출보조금 등의 지원을 늘려나갔습니다. 한국 경제발전의 이러한 모습은 '유치산업보호의 성공사례'(Infant-Industry Protection)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성공요인을 온전히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라 하기에도 애매모호함이 있습니다. 1967년 7월 상공부는 수입허가 품목을 규정해온 포지티브 리스트에서 이제 수입금지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는 수입을 자동승인 하겠다는 네거티브 리스트로 전환하는 등 무역자유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수입관세율도 점차 낮춰가며 보호무역의 그늘에서 커 온 산업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도모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한국정부는 자유무역의 이점(gains from trade)을 살리는 방향을 꾸준히 추구했습니다. 


만약 온전히 국내산업 육성 및 보호에만 집중했다면 생산성 낮은 기업의 퇴출 등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아 비효율만 초래됐을 겁니다. 한국정부는 관료와의 결탁을 통해서 생존할 수 있는 국내시장이 아닌 가격과 품질로만 승부를 봐야하는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을 유도하고, 달성해야할 수출목표액을 완수해야 하는 수출책임제 등의 규율(discipline)도 강력히 부과함으로써 항상 경쟁체제를 지향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형식은 국가가 주도했더라도 내용은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의 이점을 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의 경제발전 성공요인을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으로 봐야하는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으로 평가해야 하는지는 [국제무역논쟁]의 중요한 논점 중 하나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결국 "유치산업보호론이 언제 유효한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둘러싼 논점입니다.


우선 이번글에서는 한국이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로 나아간 배경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이점을 모두 살릴 수 있었던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다음글에서 [유치산업보호론]의 등장배경과 논리, 문제점 그리고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을 살펴봅시다.




※ 내포적 공업화와 자립경제 달성을 목표로 했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통화개혁을 통해 내자를 동원하고 종합제철소 등을 건설하려 함


<1965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정부는 증산과 더불어 수출을 대지표로 삼았읍니다. 공업원료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은 경제의 생명입니다. 2차대전직후, 영국의 「처어칠」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이란 호소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


앞으로 수년간만 국내의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시책을 수출무역에 집중한다면 우리나라도 국제적인 수출입면에서 자립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경제시책의 방향이 무역진흥에 집결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무역에서 출발하여 무역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 출처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대통령 박정희, 1965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강조표시는 블로그 글쓴이 본인이 한 것)


1965년 1월 16일, 대통령 박정희는 연두교서를 통해 "수출 아니면 죽음" 이라고 말하며 "경제시책의 방향이 무역진흥에 집결"할 것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1965년은 박정희정권이 수출제일주의를 본격적으로 내세운 첫 해 입니다.


그렇다면 1961~64년에 박정희가 내세웠던 경제정책은 수출중심이 아니었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했고 1963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합법적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박정희정권이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통해 한국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수출제일주의는 이들이 처음부터 내걸었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 박정희와 5·16 쿠데타 세력이 처음에 원했던 건 자립경제 달성

- 자립경제와 자주적 공업화를 추구한 박희범의 '내포적 공업화 전략'


1961년 박정희와 5·16 주도 세력들이 처음 가졌던 생각은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벗어난 자립경제 달성' 이었습니다. 박정희는 1963년 출간한 『국가와 혁명과 나』를 통해 "미국의 원조 정책을 기저로 하는 한국 경제의 이러한 경향은 기간산업, 중소기업 등 국내 생산 공업을 답보 상태로 낙후시킨 반면, 앞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국민의 정신면에 회복할 수 없이 큰 멍을 드리게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1960년대의 한국은 확실히 외래상품이 한국 시장을 점령한 시기였다" 라고 말하며, 자립경제 달성에 못미치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 경제학자 박희범 (1922~1981)

  • 주요 저서 : 『한국경제성장론』 (1968)


집권세력의 생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자문 위원으로서 군사정부의 경제정책에 관여한 인물이 박희범 입니다. 그는 '내포적 공업화 전략'(intensive industrialization)[각주:7]을 내세웠는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자립경제를 지향하는 자주적 공업화 전략' 입니다. 


중남미의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은 기초적 소비재를 우선 대체하는 방식을 사용하였고 박희범의 내포적 공업화 전략은 제철 등 금속공업, 기초화학공업, 조선, 공작기계 등 기초적 생산재를 우선 대체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어찌됐든 대외의존을 줄이는 자립경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박희범이 이러한 이론을 주장했던 근간에는 냉전 이데올로기보다는 국익을 우선시해야 하며 따라서 대미 자주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서를 통해 "미국의 대한 정책은 한국에 대한 소비 시장화, 일본을 위한 예속화 작업이었다"[각주:8]라고 비판하며, 공업화를 가능케하는 자체적인 생산능력을 배양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또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을 발달시킨 선진 산업국가에만 유리하다고 생각하며, 신고전파 자유주의경제는 선진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적 비교 생산비의 원리처럼 국제분업의 원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 자립경제는 국제수지의 균형을 달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 공업화, 즉 내포적 경제성장을 노리는 것"[각주:9]라고 주장하며, 현재의 비교우위에 고착화되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62-166)

- 수입대체와 내자 동원의 강조 → 통화개혁과 산업개발공사 


  • 경제기획원, 1962,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56-59쪽

  • 당시 군사정부는 자립경제 달성을 위해 외자의존을 줄이고 내자동원을 강조했다


박희범과 군사정부가 공유했던 생각은 1962년 1월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에서 구현되었습니다. 


이 안에서 군사정부는 수출산업 육성 보다는 종합제철소 건립 등 기초적 생산재의 수입대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여기에 수출증대는 6대 계획의 중점 중 5번째에 언급될 뿐이었습니다. 수출에 있어서도 2차 산품인 공산품이 아니라 1차 산품인 농업 생산물이 강조되었습니다. 


또 다른 주목할 특징은 '내자 동원의 강조' 입니다. 위의 표에서 나와있듯이 계획된 내자 비중이 약 75%에 달하는데, 박희범과 군사정부는 외자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 달성을 위해 내자 동원에 힘을 쏟았습니다. 

 

계획 달성을 위해 군사정부가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통화개혁' 이었습니다. 1962년 6월 9일 밤 10시 긴급통화조치법이 기습적으로 발표되며 예금동결이 이루어졌고, 동결된 예금은 6개월 내에 산업개발공사 주식으로 대체될 계획이었습니다. 


산업개발공사는 내포적 공업화론을 주장했던 박희범의 생각이 응집된 기관이었습니다. "산업개발공사 운용 계획안은 투자 대상으로 약 40종류를 규정하고 있었는데 정유공장 · 비료공장 · 종합제철공장 · 시멘트공장 · 종합기계공장에 우선순위"[각주:10]를 두고 있었습니다. 


산업개발공사는 기초적 생산재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었고, 통화개혁과 예금동결 통해 획득한 국내 자본을 동원하여 산업화를 이루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내포적 공업화 전략과 통화개혁 그리고 산업개발공사를 통한 종합제철소 건립은 하나로 연결된 묶음이었습니다. 


"내포적 공업화 전략은 자원의 동원 방법에 관해 상대적으로 대규모의 내자 동원에 관한 획기적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삼았습니다. "경제적 안정을 희생해서라도 국가 주도의 위로부터의 강제적 자원 동원이 있어야 당초의 계획대로 기간산업을 건설할 수 있고 그래야 빠른 시일 안에 자립적 국민경제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내자 동원이 순조롭지 않은 가운데 통화개혁과 같은 혁명적 내자 동운 방법을 구상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모아진 자금을 산업개발공사라는 준 국유기업에 집중시키는 방법도 내포적 공업화론자들이 구상하는 국가 주도의 위로부터의 자원 동원과 일치"[각주:11] 했습니다. 




※ 외화 부족으로 인한 내포적 공업화 전략의 좌절 

- 통화개혁과 종합제철공장 건설을 둘러싼 미국의 반대

- "비교우위론에 어긋나는 제철소를 왜 건설하려 하느냐"


자립경제와 내포적 공업화를 위해 제시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은 시행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흔들리게 됩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입장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제1차 계획이 목표로 한 경제성장률 7.1%가 너무 높다는 문제를 제기하였고, 또한 통화개혁을 통한 예금동결이 경제를 국유화나 통제경제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시했습니다. 더 큰 쟁점은 종합제철공장 건설 계획이었습니다. 1962년 당시에 쓰여진 기사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AID가 본 한국공업건설 (上 제철소의 경우)>


경제5개년계획을 특징지으고 있는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러기에 기자는 워싱턴에 닿자마자 AID가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타진해보기 위하여 AID의 문을 두드렸다. (...)


기자가 AID 당국자들과 만나서 얻은 결론은 제철소는 사무적으로는 절대로 무망한 것으로 느껴졌으나 정치적으로 배려를 한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비료공장은 AID가 주장하는 바 과인산질소 배합비료 공장을 세우는 데 한국측이 동의한다고 하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거부하교 요소 25만톤 용량을 만든다는 종래의 주장을 견지한다면 이 역시 AID에서 돈을 꾸지 못할 것이라 것이다.


AID는 대체로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① 한국은 철광석과 코크스 탄 6천 칼로리 이상나는 역청회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0% 이상의 철분을 가지고 있는 철광석의 매장량은 지난번 탐광에 의해서도 겨우 5백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이 나왔으니, 그처럼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해서 연간 25만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이다. (...)


② 그러니까 한국서 제철을 하자면 외국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사오지 않을 수 없는데 철광석을 100만톤, 석탄을 150만톤을 사오자면 적어도 3,500만불의 외화를 매년 지출하여야만 할 것이니 4,200만불의 수출실적 밖에는 못 가지 한국의 외화사정 아래서는 이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물론 철광석과 석탄도 연불 등 상업차관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기도 하나 AID 규정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차관을 받는다는지 원조를 받는다는 것은 허용하지 않기로 되어있으므로 상업차관에 의한 원료 공급도 안된다는 것이다. (...)


③ 설령 한국에 제철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철의 시장경쟁은 지금도 치열하지만 장차 더욱 더 백열전을 전개할 것이니 과연 한국이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경쟁에서나마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는데는 의문이 짙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록 철광석도 석탄도 사다가 쇠를 녹이고 있다고 하나 경영기술에 있어서나 작업기술에 있어서나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일본과 같은 생산비로서 제철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


⑤ 그러니까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제철소를 만들려면 적어도 1억 5천만불을 들여야 할터이니 그 돈을 다른 산업들 한국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을 세우는데 쓰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고 결론 짓고 있는 것 같다. 


- 이동욱, 1962년 10월 20일, 동아일보 칼럼/논단

- 네이버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서 발췌


지금 시점이 아닌 당시로 돌아가서 감정을 대입해서 보자면 상당히 비참한 상황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제1차 계획이 담고 있던 내포적 공업화론 달성의 핵심인 종합제철소 건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격하게 표현하면 "주제 넘으려 하지 말고 수입해서 써라"나 다를 바 없습니다.


미국이 종합제철소 건설을 반대했던 이유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 한국의 제철소 건설 시도가 비교우위 원리에 벗어난다 입니다. 


제철소는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등을 제련하여서 철판을 만드는 곳인데, 한국은 원자재를 풍부하게 가진 국가가 아닙니다. 헥셔-올린의 무역이론[각주:12]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relative abundant resource)을 가진 국가가 그 자원이 집약된 산업(resource-intensive)에 비교우위를 가지는데,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찌어지 철판을 생산한다고 해도 과연 일본에 비해 우위를 가질 수 있겠냐는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일본은 70년전부터 제철소를 운영하며 획득한 기술수준으로 낮은 생산비를 유지하는데, 이를 한국이 수년내에 따라잡기 힘들거라는 전망이죠.


둘째, 제철소를 건설하고 철광석 등 자원을 수입하기 위한 외화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건 그때 당시 직면했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제1차 경제개발 계획은 국내자본 동원을 강조하였는데, 종합제철소와 같은 큰 규모의 기반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국내자본만으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당시 군사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2차산업 공업화를 위해 필요한 외자비중을 43.4%로 전산업 평균 25%에 비해 높게 잡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수출주도체제가 아닌 상황에서) 수출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기 어려웠으며, 미국마저 차관지원을 거부한 상황에서 필요한 외자를 마련하기가 불가능 했습니다. 어찌어찌 제철소를 건설한다고 해도 차후에 철광석 등 원자재를 수입할 외화도 없었습니다.


결국 종합제철공장 건설 계획의 좌절은 내포적 공업화 전략이 실패하고마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으며, 군사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 · 보완 하게끔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의 전환

- 1964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보완 → 공산품 수출 계획을 늘리다

- 1963년 면방직산업 수출증대가 경제관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산업정책 · 경제발전 관점에서 수출진흥 정책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


결국 박정희정권은 1962년 1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정작업에 착수합니다. 


집권세력은 자립경제 수립을 위한 내포적 공업화 보다는 수출증대를 통해 외화를 획득할 필요성을 이전에 비해 절실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에서 자립경제를 주장했던 박희범 등이 물러나고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주장한 경제관료들이 대거 등용되었습니다. 


그리고 1964년 2월 이른바 '보완 계획'을 확정발표합니다.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원계확과 보완계획에 담긴 수출 계획 비교

  • 원료별 제품, 이른바 공산품 수출계획이 대폭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출처 :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 정부의 선택

 

원계획과 보완계획의 차이는 '수출 계획'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원계획에서는 식량으로 대표되는 1차 산품이 수출 계획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였지만, 보완계획에서는 원료별 제품, 이른바 공산품의 수출 계획이 대폭 상향되었습니다. 


원계획에서는 1966년 공산품 수출액수 계획이 1천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보완계획에서는 4천3백만으로 수정되었죠. 해당년도의 수출비중을 살펴보아도, 공산품의 수출비중은 1964년 30%, 1966년 38%로 원계획보다 10-20% 포인트 상향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실제 공산품 수출 실적은 계획을 초과달성 하였고, 1970년에는 84%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경제관료들이 자신만만하게 공산품 수출 계획을 상향조정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63년에 공산품 수출 실적이 예상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는 것에 있습니다. 



경영·경제학자 서문석[각주:13] · 최상오[각주:14] · 김두얼[각주:15] 등은 1963년 공산품 수출 증가의 요인으로 면방직산업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서문석의 2009년 논문 <해방 이후 한국 면방직산업의 수출체제 형성>에 따르면, 당시 면방업계가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국내 면제품시장 수요감소로 과잉공급 상황이 초래되자 상품판로 확보를 위해 해외시장을 개척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둘째, 외국산 원면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로 면제품을 수출한 이후 그 대금으로 수입을 해오기 위해서 입니다.


면방업계가 수출증대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 결과, 1962년까지 전체 면포생산량 중 수출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에 불과했으나, 1963년에 20.6%로 대폭 증대되었고 1964년부터는 전체 면포생산량의 약 50% 가량이 수출용으로 생산될 정도로 수출이 본격화 되었습니다.


  • 한국의 GDP 대비 수출비중 추이. 1953~2017넌

  • 수출비중은 1953년 1.7%, 1964년 5.0%에 불과했으나, 이후 급속히 증가하였다

  • 출처 : 국가통계포털 KOSIS

 

이렇게 1963년 면방직 산업의 수출증대를 목격한 경제관료들은 영감을 얻게 되었고, 1964년에 내놓은 '보완계획'에서 공산품 수출 계획을 대폭 상향하였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단순히 수출계획만 높게 설정한 것이 아니라, 재정 · 금융지원 및 낙후된 생산시설 교체 · 사회기반시설 건설 등 산업정책적 관점에서 포괄적인 수출지원체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수출지향 정책은 단순한 무역정책이 아닌 산업정책 및 경제발전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0-50%를 오가며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하는 제1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 파트에서는 1964년 중반에 제시된 수출진흥 종합시책과 1965년 확대 개편된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살펴보면서, 1960-70년대 박정희정권의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을 세세하게 알아봅시다.  




※ 각종 수출 지원 정책과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통한 규율 부과


1964년 6월 24일, 상공부는 간접적인 지원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수출진흥을 촉진하기 위하여 수출진흥 종합시책을 만들어 발표하였습니다. 종합시책에는 ① 1964년도 수출 목표를 종전 1억 500만 달러에서 1억 2천만 달러로 상향 ② 수출진흥위원회 및 해외 주재 공관에 수출 책임 영업부과 ③ 수출 진흥 세제 우대조치 및 2억원 규모의 수출보조금 부활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수출진흥을 위해 재정·금융 지원이라는 당근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수출진흥위원회를 통해 수출 책임 영업이라는 규율(discipline)과 채찍도 구사한 점입니다. 


만약 정부지원 이라는 당근만 제시했다면 이것만 쏙 받아놓고 경영은 게을리하는 비효율적 기업이 양산될 수 있었을텐데, 정부는 수출 목표액 달성에 미달하는 기업은 차후 지원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엄격한 규율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러한 규율 정책은 정부주도 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단점을 해소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번 파트에서 산업화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당근과 채찍을 살펴봅시다.



1960년대 초기의 수출지원 정책은 1950년대 후반보다 양적으로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위의 첨부된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50년대부터 시행되어온 정책에 더하여 수출용 자본재 수입에 대한 관세 감면제도(1964년) 및 수출용 원자재 수입금융(1963년), 수출산업 육성자금(1964년) 등 재정 · 금융지원 정책이 추가되었습니다.



수출활동을 직접적으로 독려하는 수출보조금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1950년대 중반 수출불 당 보조금은 1원을 넘지 못했지만, 1961년과 1965년을 기점으로 큰 폭의 상승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지원 정책에 그치지 않고 규율을 부과하는 역할을 한 것이 수출진흥확대회의 입니다. 수출 진흥 정책 심의기구로서 1962년 12월에 설치된 수출진흥위원회는 1965년 1월 대통령 직접 참석하고 결정하는 수출진흥확대회의로 확대개편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5-1979년 동안 개최된 회의 총 152회 중 147회나 참석하면서 수출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할 때 설정한 수출계획 이외에 매년 수출목표를 새롭게 책정함으로써 수출을 독려하였습니다. 매년 수출목표 성장률은 시기마다 24.1%~45.2%를 가졌고, 1975년과 1979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과달성 하였습니다. 


수출진흥확대회의 기능에서 중요한 것은 '수출책임제' 입니다. 1964년 해외공관별로 수출목표를 할당하면서 시작된 수출책임제도는 1965년 품목별 · 해외무역관별 · 단체별(수출좝, 협동조합별) · 도별, 1966년 부처별, 1967년 수출공단별 · 은행별, 1970년 수출산업 시설재 수입업체 · 차관도입업체 · 외화다액 소비업체 등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연초에 제시된 수출할당액을 채워야 할 의무가 부과되었습니다.


그리고 부과된 책임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매월 개최된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점검하였습니다. 상공부는 총량별 · 상품구조별 · 품목별 · 지역별 · 국가별 실적이 수출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 보고하였습니다. 


이행에 소홀하거나 미달하는 기업에게는 재정 · 금융지원을 중단하고 심한 경우 경영권을 박탈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주어진 성과책임 부여는 정부주도 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방만과 나태를 방지하고 수출진흥 정책의 효과를 최대한 극대화 하였습니다. 




※ 산업정책적 관점에서 실시된 무역자유화


한국이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수출진흥 정책을 펼쳤다고 해서, 외화가 반출되는 수입은 장벽을 쌓고 꽁꽁 잠가둔 것은 아닙니다. 1967년 7월 상공부는 수입허가 품목을 규정해온 포지티브 리스트에서 이제 수입금지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는 수입을 자동승인 하겠다는 네거티브 리스트로 전환하는 등 무역자유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따라서 독과점 품목 관세율이 높은 품목, 그리고 국내산업에 심대한 타격을 주지 않는 품목을 제외하고 64개를 금지 품목으로, 321개를 제한 품목으로 하는 네거티브 리스트를 책정했습니다[각주:16]. 전반적인 수입관세율도 점차 낮춰가며 보호무역의 그늘에서 커 온 산업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도모했습니다.  


상공부는 이후 발간한 『상공정책 10년사』(1969)를 통해 무역자유화 필요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첫째 개방경제 체제를 지향함으로써 그동안 보호무역의 그늘에서 비정상적으로 성장해 온 국내산업의 체질 개선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도모해 수출 증진에 기여케 하는 것, 둘째 수입자유화 확대로 물가가 등귀하는 상품의 수입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국내 물가 안정을 기해 국내 소비자를 보호, 셋째 IMF 및 GATT 가맹국으로서 국제 교역 확대에 기여하려는 것[각주:17] 입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가 정말 개방경제 체제로의 이행을 바라고 무역자유화에 찬성한 것만은 아닙니다. 정부가 의도한 것은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의 결합' 입니다. 


1967년 11월 한국정부는 수입자유화 조치에 이어 탄력관세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탄력관세란 국내외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라 관세율을 탄력적으로 운용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입 증대로 국내산업이 어렵거나 국제수지가 악화될 때 임시적으로 관세율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보호하기 위한 산업과 관련된 품목은 높은 관세를 유지하거나 더 높이고, 수출품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 수입은 관세를 인하하였습니다. 또한, 국제경쟁력이 있는 국내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해, 경쟁력을 갖춘 제품에 한해서 관세율을 인하하면서 체질 개선을 이끌었습니다. 


이렇게 정부는 발전단계에 있는 산업은 보호하기 위해 외국상품을 수입금지 리스트에 올리거나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산업은 외국상품 수입을 허가하고 관세율을 인하시켜 경쟁에 더욱 노출시키는 산업정책적 관점에서의 무역정책을 구사했습니다.




※ 산업정책의 정점 -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1973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 여러분들에게 경제에 관한 하나의 중요한 선언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공업은 이제 바야흐로 중화학 공업 시대에 들어갔읍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부터 중화학 공업 육성의 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 공업 정책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또 하나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들에세 내가 제창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개발을 해야 되겠읍니다. 그래야 우리 국력이 급속히 늘어날 수 있읍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없이는 우리가 절대로 선진 국가가 될 수 없읍니다.


80년대에 가서 우리가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 공업의 육성 등등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 범국민적인 과학 기술의 개발에 총력을 집중해야 되겠읍니다. 이것은 국민 학교 아동에서부터 대학생,사회 성인까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우리가 전부 기술을 배워야 되겠읍니다.


그래야만 국력이 빨리 신장하는 것입니다. 80년대 초에 추이가 100억 달러의 수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체 수출 상품 중에서 중화학 제품이 50%를 훨씬 더 넘게 차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지금부터 철강,조선,기계,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서 이 분야의 제품 수출을 목적으로 강화하려고 추진하고 있읍니다.


- 출처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대통령 박정희, 1973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강조표시는 블로그 글쓴이 본인이 한 것)


한국정부 산업정책의 정점은 1973년부터 중점적으로 시행된 중화학공업화 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중화학 공업 육성의 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 공업 정책을 선언"하고 이를 통해 "80년대 100억 달러 수출"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1972년 수출달성액이 18억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꿈 같은 목표를 제시한 겁니다.


1973년 이전 중화학공업 육성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부터 추구했던 종합제철소 건설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재차 시도하였고(오늘날 포스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 기간 중 석유화학단지를 울산에 조성하였습니다. 1960년대의 철강공업 · 석유화학공업 육성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밑거름이 됩니다.


박정희정권이 1970년대 들어 중화학공업화를 더욱 중점적으로 추진한 이유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경제발전 도약을 위한 경제적이유. 둘째, 북한 무력도발 대응을 위한 군사안보적 이유 입니다.


1972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은 장기 수출계획으로 1981년 53억 달러를 제시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1972년 수출달성액 18억 달러와 그동안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나름 합리적인 목표입니다. 그러나 대통령 박정희는 1980년에 100억 달러 수출과 GNP 1,000 달러를 달성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공업 위주인 현재의 공업구조를 중화학공업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여기에 더하여,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방중으로 미중 데탕트가 형성되자,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했습니다. 이에 한국정부는 자립 · 자주 국력 배양을 위해 방위산업을 포함한 중화학 공업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1971년 말 대통령 경제2비서실은 <공업구조개편론> 마스터플랜 수립에 착수하였고 1973년 1월 30일 <중화학공업화정책선언에 따른 공업구조 개편론>을 최종적으로 내놓았습니다. 


공업구조개편론 (마스터플랜)

(...)

제1장 계획작성

1. 수출 100억불 1인당 GNP 1,000불을 목표로 한 국가 산업 기본 모델을 작성한다. (...)


제2장 이념의 도출


1. 주도업종의 선점


. 본 계획 기간에는 중화학공업을 주도 육성 업종으로 한다. 특히 기계공업을 집중 육성한다.

1)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으로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구조를 구축했다. 중공업 유성을 위한 기초가 만들어졌다.

2) 종합제철 건설은 철강 관련 산업과 비철금속 등의 육성이 필요하다.


나. 일본에서는 57년부터 중화학공업 정책을 명백히 한 신장기 경제계획을 수립하여 오늘의 경제 대국으로 유도했다.

1) 일본의 중화학공업 정책의 배경은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수요의 탄력성이 높고 기술 진보가 빠른 산업이라는 데 있었다.

2) 중화학공업화 정책선언 후 10년 만에 수출 100억불의 고지를 점령했다.


다. 중화학공업 정책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시기를 놓친다.

라. 주도업종으로서의 중화학공업과 병행하여 수출 특화산업은 계속 강화 육성한다,


2. 중화학공업

가. 중화학공업의 확대는 세계경제 및 무역확대의 기본 방향이다.

나. 중화학공업 중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할 업종은 ① 기계류 ② 조선 및 수송기계 ③ 철강 ④ 화학 ⑤ 전자공업이다. 이것은 화학 플랜트, 발전소, 조선 및 자동차 공업과의 유기적 결합이 필요하다.


(...)


- 김광모, 2015, 『중화학공업에 박정희의 혼이 살아 있다』에서 재인용


<공업구조개편론>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당시 박정희정권은 1950-60년대 일본의 중화학공업화 성공에 자극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1956년 수출액은 24억 달러에 불과하였지만 신 일본연도 개조론이란 정책하에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여 1967년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정부는 집중육성 업종으로 선정한 ① 기계류 ② 조선 및 수송기계 ③ 철강 ④ 화학 ⑤ 전자공업 등을 실제로 키우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이미 건설해놓은 포항 제철소는 확장하여 북한보다 4.2배의 압연능력을 갖추고, 조선소는 울산 이외에 거제에도 추가 건설하여 세계 5위권내 조선강국으로 발돋움 하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여천(여수)에는 제3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여 세계 10위권의 생산능력을 1980년대 상반기까지 갖추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창원에 대단위 종합기게공장을 건설하여 기계류 및 대형플랜트의 완전 국산화와 원자력 발전설비 및 건설 중장비의 국산화를 추구했습니다. 구미에는 대규모 집적회로 등 최첨단기술의 전자부품 국산화와 가정용 정밀전자 기기 생산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대성공으로 돌아왔습니다. 1980년 목표 수출액은 100억 달러였는데 이를 3년이나 앞당겨서 달성하였고, 목표 1인당 GNP 1,000달러는 1979년에 성취하였습니다. 


1979년 수출상품 중 90% 이상이 공산품이었으며, 공산품 중 42.6%는 중공업 제품이었습니다. 중화학공업화 정책 시행 이전, 한국경제에서 중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38.9%에 불과하였으나 1979년에는 54.7%로 급등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중화학공업은 한국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포항 제철소, 울산 조선 · 자동차 · 화학, 광양 및 여수 제철소와 화학단지, 구미 전자단지 등 중화학산업은 지역경제를 떠받들고 있습니다. 요근래 조선 · 자동차 업황부진으로 인한 영남지역 고용쇼크는 이들 업종이 지역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한민국


이렇게 대한민국은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추진하였던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1980년대 초반 발생했던 외채위기 속으로 중남미[각주:18]와 함께 빨려 들어갔을텐데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한국경제 발전과정을 간단하게나마 알게 되었으니, 글의 서두에서 제기했던 2가지 물음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첫째, 중남미와 달리 당시 한국이 대외지향적 수출진흥 산업화를 선택하였던 배경은 무엇일까? 


한국이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선회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외화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종합제철소 건설 등 공업 ·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기계·생산설비 등 자본재(capital goods)를 수입해와야 했는데 국내자본으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1962년, 내포적 공업화론자들이 시도했던 '통화개혁을 통한 내자 동원'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런 상황에서 1963년 면방직산업의 획기적인 수출량 달성은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제 경제관료들은 '공산품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 가능성에 자신감을 품게 되었고, 수출진흥 산업화로 방향을 선회한 보완 계획이 1964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자, 그런데... "외화 부족에 직면한 한국이 대내지향 정책 대신 대외지향적 수출진흥형 산업화를 선택했다"는 논리는 무언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경제발전 초기 중남미 또한 외화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남미는 오히려 '외화가 부족했기 때문에 수입대체 전략을 선택'[각주:19] 했습니다. 


이들은 "1차 상품 생산국인 우리는 수출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고, 외환 소득이 언젠가는 부족해질 것이기 때문에 자본재를 다른 나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중남미의 선택은 '자본재를 국내에서 생산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요인이 충분조건으로서 수출진흥형 산업화를 유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의 정책 선회는 단순한 외화 부족 이외에 여러 요인과 상황들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학자 기미야 다다시[각주:20]는 "내포적 공업화 전략이 좌절된 상황에서 남아있는 것을 고른 '잔여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반면, 박태균[각주:21]은 "미국의 압력에 의해 수출진흥체제가 시작"되었다고 바라봅니다. 


이완범[각주:22]은 "미국은 수출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회복한다는 축소 균형적 생각을 했을 뿐, 수출지상주의는 수출을 통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확대균형적 발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출드라이브는 박정희가 가지고 있던 독창적 현실인식이 부분적으로나마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하며, 박정희의 공로를 강조합니다. 


반면, 최상오[각주:23] · 김두얼[각주:24] 등은 "(박정희정권 수립 이후 수출이 촉진되었다는 설명은) 1960년대 군사정변을 통해 집권한 세력이 제시한 역사관"이며 "민간과 정부는 이미 1950년대부터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라고 주장합니다.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고, 정확히 어떤 요인이 충분조건으로서 기능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충분조건으로 작용하는 요인은 애시당초 없을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수록 "한 국가에게 성공으로 작용한 요인이 다른 국가에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 대외지향 수출진흥 산업화를 통한 한국 경제발전 성공은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 덕분으로 봐야하나,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으로 평가해야 하나?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국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정부는 4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81)을 수립하면서 목표달성을 위해 민간부문을 독려하였고, 대통령은 매월마다 수출진흥확대회의에 직접 참석하며 수출현황을 파악했습니다. 


수입금지와 높은 관세를 이용한 보호무역도 중점 산업을 육성하는데 성공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정부는 아직 경쟁력이 부족하여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산업은 수입장벽조치를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수출보조금을 통해 지원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한국 경제발전 성공은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 덕분임이 분명한데, 왜 위와 같은 물음을 던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100% 보호무역체제나 100% 자유무역체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성공에는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불러오는 이점들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부는 특정 기업을 선정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만약 보호와 동시에 국내에 안주하게끔 하였다면, 기업의 생산성 정도가 아닌 정권과의 결탁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했을겁니다. 


또한, 자동차 · 조선 · 제철 · 전자 등 대형 산업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육성하였지만, 대외지향적인 정책이 아니었다면 좁은 국내시장 안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지 못했을 겁니다. 이들 산업은 초기 육성에 많은 고정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생산을 계속 증가시켜야만 비용이 감소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업이 경쟁을 뚫고 해외에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느냐가 성공더욱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는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경쟁'과 '해외진출을 통한 시장크기 확대' 등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살려야 합니다

(주 : '무역이 가져다주는 보이지 않는 이익'을 수입대체와 수출진흥이 대하는 방식에 대하여는 지난글 '● 무역이 가져다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implicit gain)' 참고


따라서 우리는 사고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야 합니다.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vs.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서는 국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이 둘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현실 속 논의과정에서 큰 차이를 불러옵니다. 


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국가주도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주장합니다. 과거 개도국이었던 한국과 오늘날 선진국인 한국의 차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필요한 개도국과 경제강대국인 미국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후자를 말하는 사람들은 산업 · 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경우를 우선 진단합니다. 과도한 국가개입은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나라가 국가주도 정책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도 똑같은 성공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남미와 한국의 사례에서 처럼 말이죠. 


두 관점의 차이는 이후에 살펴볼 [유치산업보호론]과 [1980년대 미국의 보호무역]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 내 무역논쟁]을 통해 더 극명하게 드러날 겁니다.




※ 한국경제 발전과정을 살펴보며 생각 넓히기 

- ① 수출로 외화를 많이 획득하는 것이 경제발전인가?


노파심에 한번 더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을 바로 잡겠습니다. 


이번글을 읽어나가면 "한국은 수출로 외화를 많이 획득해서 경제발전에 성공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을 아직 버리지 못한 사람은 '외화 획득 = 돈의 축적 = 경제발전 성공'이라고 생각할테고, 탈피한 사람은 '외화 획득 = 외국으로부터 자본재 수입 가능 = 경제발전 성공'으로 이해하실 겁니다.


한국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해 자동차 · 조선 · 제철 · 전자 등의 산업을 육성하고 싶어했습니다. 처음에 시도했던 건 국내자본(=내자)을 동원한 자본축적 이었는데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리하여 선택한 방식은 외국으로부터 기계 · 생산설비 등 자본재(capital goods)를 수입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외화가 필요[각주:25]했습니다.    


즉, 한국이 수출진흥형 산업화 전략을 선택하고, 수출액 100억 달러 달성을 위해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한 이유는 '수출로 획득한 외화를 이용하여 자본재를 수입해오기 위해서' 입니다. 단순 수출 증가를 통한 외화 축적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GDP 대비 수출액 - 수입액의 비중 변화 (1957~2017)

  • 한국은 수출진흥 산업화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년 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하였다

  • 출처 : 한국은행 ECOS


만약 중상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박정희정권기 수출진흥 산업화 정책을 바라본다면, 과거 정권의 경제정책은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수출을 촉진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년 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했기 때문입니다.


  • 총자본형성, 이른바 투자 증가율 (1957~2017)

  • 경제발전 초기, 한국은 막대한 투자를 함으로써 자본축적에 매진하였다

  • 출처 : 한국은행 ECOS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해 중요한 건 경상수지 흑자 달성이 아니라 투자를 통한 자본축적 입니다. 한국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와 해외로부터의 차입(=대외부채)을 활용하여 외국의 자본재를 수입하였고, 이는 곧 막대한 투자로 이어졌습니다. 1960-70년대 경제발전기 한국의 연간 투자 증가율은 20%를 넘는 경우가 빈번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으로부터 자본유입 = 경상수지 적자'[각주:26]라는 경제학 공식을 이해한다면, 경제개발기에 '막대한 투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동시에 일어난 연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한국경제 발전과정을 살펴보며 생각 넓히기  

- ② 비교우위론을 따랐으면 한국에 제철소는 없었다?


자, 이제 이번글을 통해 도달하려고 했던 최종목적지에 왔습니다. 지금부터 다루는 이야기는 앞으로 소개할 [유치산업보호론] · [1980년대 미국 보호무역] · [전략적 무역정책 논쟁] 등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내용입니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1817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을 통해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이점'을 주장한 이래로 오늘날까지 비교우위론은 국제무역논쟁의 주요 쟁점이 되어왔습니다. 


특히나 비교우위론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 이유는 "현재의 비교우위 부문에 영원히 특화해야 하느냐?"와 "그렇다면 현재 비교열위인 제조업을 육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에 있습니다.  


1817년 당시 영국인 리카도가 "비교우위에 입각하여 제조업에 특화하고 곡물을 수입해야한다" 주장[각주:27]한 이유는 '토지의 수확체감에서 벗어나서 높은 이윤율로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영국은 수확체감 특성을 지닌 농업이 아니라 수확체증 특성인 제조업에 이미 비교우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주장입니다. 

  

따라서 "영국과는 달리 제조업이 아닌 농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는 무역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가 자연스레 나오게 되었고, 이는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논쟁[각주:28] 1950-70년대 수입대체 전략을 선택한 중남미[각주:29]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면, 농업 · 원자재 등 1차산업이나 단순한 공산품 생산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는 영원히 이것에만 특화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제조업 발달을 통한 산업화는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1950-60년대 한국 또한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부 초기 경제정책을 고안했던 박희범이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추진한 배경에도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을 발달시킨 선진 산업국가에만 유리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1964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정 이후 수출진흥 산업화 전략으로 선회한 이후에도, 한국은 비교우위론을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1970년대 시행된 중화학 공업화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오늘날 전자 · 자동차 · 조선 · 제철 등등 모든 산업은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육성되었습니다. 즉, 한국은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을 따라서 경제발전 경로를 밟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시 한국이 비교우위론을 철저히 따라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 1차산업이나 단순 공산품 생산에만 집중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봅시다. 


1962년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포기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종합제철공장 건설 좌절' 이었습니다. 군사정부는 1962년에 내놓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을 통해 제철소 건립을 내놓았는데,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이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 상황을 보도했던 당시 동아일보 기자 문구를 다시 살펴봅시다.


<AID가 본 한국공업건설 (上 제철소의 경우)>


▶ AID는 대체로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


▶ 한국은 철광석과 코크스 탄 6천 칼로리 이상나는 역청회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 (...)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해서 연간 25만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


▶ 철광석을 100만톤, 석탄을 150만톤을 사오자면 적어도 3,500만불의 외화를 매년 지출하여야만 할 것이니 4,200만불의 수출실적 밖에는 못 가지 한국의 외화사정 아래서는 이 역시 불가능


▶ 설령 한국에 제철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철의 시장경쟁은 지금도 치열하지만 장차 더욱 더 백열전을 전개할 것이니 과연 한국이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경쟁에서나마 견딜 수 있겠느냐


▶ 일본 (...) 경영기술에 있어서나 작업기술에 있어서나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 그러니까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


- 이동욱, 1962년 10월 20일, 동아일보 칼럼/논단

- 네이버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서 발췌


미국이 종합제철소 건설을 반대했던 이유에는 "한국의 제철소 건설 시도가 비교우위 원리에 벗어난다" 라는 논리가 뒷받침 되어 있었습니다. 비교우위가 아닌 산업에 특화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당시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에 특화한 뒤 비교열위인 철을 수입하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날 한국은 세계 1위 제철소로 평가받는 POSCO(구 포항제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정희정권은 60년대 초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종합제철소 건립을 시도하였고, 한일수교 이후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활용하여 포항제철을 설립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즉, 한국의 제철소 건립 과정은 '비교우위론'과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후자의 정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이 나타난 이유에는 '비교우위론이 정태적 우위(static advantage)만 고려하여 특화를 결정'케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이 제철소를 건립한다면 향후 철강업종에 비교우위를 띄며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데(dynamic advantage), 비교우위론은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치 않고 현재의 상황만 따지고 있습니다.


1960년대 당시 일본이 한국에 비해서 철강산업에 경쟁력을 가지게 된 연유는 선천적으로 제철기술이 뛰어나거나 철광석 등 부존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일본이 한국보다 70년 일찍 철강업을 시작한 역사적 배경 덕분(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반대로 한국이 일본보다 일찍 제철소를 건립했더라면 1960년대 당시의 비교우위는 한국이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철강산업을 보호하면서 육성하면서 70년이라는 시간을 따라잡으면, 장기적으로는 일본보다 경쟁력 있는 제철소를 보유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을 따라잡는 동안에 한국 제철소는 큰 손실을 보겠지만, 정부보조를 받아서 버틴다면 언젠가는 우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지금 제철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향후 제철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느냐"라는 물음을 던져야 마땅합니다. 한국정부는 후자의 물음을 던진 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모든 국가가 어느 경우에나 비교우위론을 탈피한 이후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경제발전 달성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 비교우위론을 따르라는 미국의 조언을 무시하고, 결국 세계 제1위 제철소를 보유하는데 성공한 한국의 특수한 사례를 기억하십시오. 


앞으로 다음글 [유치산업보호론]을 통해, 어떤 경우에 유치산업보호론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국정부의 시도가 다행히도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를 살펴볼 겁니다.


 

  1. 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http://joohyeon.com/171 [본문으로]
  2.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7. 수출확대를 통해 대외로 뻗어나가는 '외연적 산업화 전략'(extensive)과 대비되는 의미 [본문으로]
  8. 박희범, 1968, 한국경제성장론 71쪽.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정부의 선택 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9. 박희범, 1968, 한국경제성장론 81쪽.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정부의 선택 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0.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 정부의 선택, 4장 내포적 공업화 전략의 좌절 - 1. 통화개혁을 둘러싼 정치과정 [본문으로]
  11.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 정부의 선택, 4장 내포적 공업화 전략의 좌절 - 1. 통화개혁을 둘러싼 정치과정 [본문으로]
  12.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13. 서문석, 2009, 해방 이후 한국 면방직산업의 수출체제 형성 [본문으로]
  14. 최상오, 2010, 한국에서 수출지향공업화정책의 형성과정 - 1960년대 초 이후 급속한 수출 성장 원인에 대한 일 고찰 [본문으로]
  15. 김두얼, 2016,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경제성장의 기원, 1953-1965 [본문으로]
  16. 기미야 다다시, 2008, 한국정부의 선택에서 인용 [본문으로]
  17. 기미야 다다시, 2008, 한국정부의 선택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1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0. 기미야 다다시, 2008, 박정희 정부의 선택 [본문으로]
  21. 박태균, 2013, 원형과 변용 [본문으로]
  22. 이완범, 2006,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 [본문으로]
  23. 최상오, 2010, 한국에서 수출지향공업화정책의 형성과정 -1960년대 초 이후 급속한 수출 성장 원인에 대한 일 고찰- [본문으로]
  24. 김두얼, 2016,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경제성장의 기원, 1953-1965 [본문으로]
  25.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26.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2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2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1. ㅇㅇ
    재밌게 잘 보고있습니다. 정리도 잘 되어있고 왠만한 책보다 훨씬 좋아요 ㅎㅎ
  2. 대조군이라고 할만한 공업화를 아예 시도하지 않고 비교우위를 가진 농업(그리고 그 연계산업)에 집중한 국가가 있을까요?
  3. ㅇㅇ
    궁금한것이 어째서 60년대 70년대는 물가상승률이 높았을까요?
    동시대 대만은 저물가를 달성했는데 이와 비교해서 열등함을 드러내는 결과인가요?
    자세한 답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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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Posted at 2018.07.25 17:33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다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2~553쪽


경제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가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과 '이기심'(Self-Interest)을 말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어떠한 맥락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국부론』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으며, 왜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국부론』을 경제학의 시초로 평가하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도 얼마되지 않습니다. (경제학 전공자 중 『국부론』을 읽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쉬울 거 같네요.)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켰습니다. '국가의 부(Wealth of Nations)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국부를 늘릴 수 있는지' 그리고 '외국과의 무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등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 영향으로 바뀌어버린 사고방식은 오늘날까지 경제학자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에이 주류 경제학자들은 맨날 '보이지 않는 손' 운운하면서 교조적인 자유방임주의만 내세우지 않냐"라고 비아냥 거리기에는, 경제학의 논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즉,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Free Trade)를 옹호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았는데, 그들이 왜 자유무역을 찬성하고 왜 보호무역을 반대하는지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얼마 없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1776년에 쓰여진 책 속에 담긴 논리를 2018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 이론을 암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개도국과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국제무역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내놓은 사상과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국부론』의 원문 내용을 읽어나가며,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발현된 배경과 내용을 알아보고, 이것이 자유무역에 관해서 오늘날까지 어떤 함의를 전달하여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배워봅시다. 




※ 애덤 스미스가 비판하려고 한 것은 '중상주의' (Mercantilism)

- 국부란 화폐의 축적이 아닌 재화의 생산


● 제1편 노동생산력을 향상시키는 원인들과 노동생산물이 상이한 계급들 사이에 자연법칙에 따라 분배되는 질서 - 제1장 분업 (1쪽)

 

한 나라의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이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 연간 노동의 직접 생산물로 구성되어 있거나 이 생산물과의 교환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해온 생산물로 구성되고 있다.


따라서, 한 나라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이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는 이 직접 생산물 또는 그것과의 교환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해온 생산물과 그것으 소비하는 사람의 수 사이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



● 제2편 자본의 성질 · 축적 · 사용 - 제2장 사회의 총재고의 특수한 부문으로 간주되는 화폐, 또는 국민자본의 유지비 (355쪽) 


한 나라의 모든 주민들의 주간 또는 연간 수입이 화폐로 지불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진정한 부(富), 그들 모두의 실질적인 주간 또는 연간 수입은 그들이 이 화폐로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재의 양에 비례하여 크거나 작다. 그들 모두의 수입 전체는 화폐와 소비재를 합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이 둘 중 하나이고, 전자보다는 오히려 후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의 수입을 매년 그에게 지불되는 금속 조각에 의해 표현하지만, 이것은 그 금속 조각의 금액이 그의 구매력의 크기, 즉 그가 매년 소비할 수 있는 재화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수입이 구매력 또는 소비능력에 있는 것이지 그 구매력을 표시하는 금속 조각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1쪽, 355쪽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비판하려고 한 것은 '중상주의'(Mercantilism)였습니다. 


중상주의란 ▶'부(富, Wealth)가 화폐 또는 금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고방식'과 ▶'이러한 국부를 무역수지 흑자와 제조업 육성을 통해 증진시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그리고 국부 증진을 위한 과정에서 ▶'국가가 무역을 통제해야 한다'(State Regulation of Trade)는 주장을 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국부는 화폐의 축적이 아닌 생산의 증가'이며▶ '무역차액에 집착하는 건 잘못된 논리, 제조업과 농업은 둘 다 중요'하며 ▶'무역 독점권을 폐지하여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부여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우선 이해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부'가 무엇인지 입니다. 중상주의자에게 국부란 금은의 축적이지만, 애덤 스미스는 '연간 노동의 직접 생산물 또는 교환으로 얻은 생산물'을 국부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화폐는 축적의 대상이 아닌 소비재를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보았죠.


(주 : 이에 대해서는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GDP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야기 한 적 있습니다.)


이제 국제무역과 관련한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을 좀 더 알아봅시다.




※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①

- 무역수지 흑자에 관하여

- 토마스 먼 : "우호적인 무역수지(favorable balance of trade)가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 16~17세기 중상주의자 토마스 먼(Thomas Mun)
  • 그가 1664년에 내놓은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England's Treasure by Forraign Trade』)


우리의 재산과 재보를 늘리는 정상적인 수단은 무역이다. 여기서 지켜야 할 준칙은 우리가 이방인에게서 사서 쓰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그들에게 파는 것이다. (...)


지금 2,000 파운드를 자신의 금고에 갖고 있고 매년 1,000 파운드를 수입으로 갖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매년 1,500 파운드를 지출한다면 그의 돈은 4년 만에 모두 없어질 것이다. 반면 검약의 길을 택해 매년 500 파운드를 지출한다면 그의 돈은 같은 기간에 두 배가 될 것이다. 이 준칙은 우리 공화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


- 토마스 먼, 1664,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England's Treasure by Forraign Trade』)

- 홍훈, 2009, 『경제의 교양을 읽는다 - 고전편』,  60-61쪽에서 재인용 


대표적인 중상주의자는 바로 토마스 먼(Thomas Mun) 입니다. 그는 1664년 출판한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을 통해 "무역수지가 우리 재보의 준칙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재보(Treasure)는 금은의 축적을 뜻하며, 수출과 수입의 차액인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금은을 축적해야 국부가 증가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는 무역 차액만큼 국부가 늘어난다는 논리를 자연스럽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고방식은 오늘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소개하였듯이, 트럼프는 대중 무역적자를 패배의 결과물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상수지 흑자에 집착하는 잘못된 관념'에 대해서는 두 차례 글을 통해 비판한 바도 있죠. ((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국부=무역수지 흑자' 라는 관념을 비판할 수 있었던 기반은 애덤 스미스가 제공해주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제 『국부론』의 원문 일부를 읽으면서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알아보도록 하죠.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1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정부의 관심은 금은의 수출을 경계하는 것으로부터 금은의 증감을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인 무역수지의 감시 쪽으로 전환되었다. 정부의 관심은 하나의 쓸모없는 걱정으로부터,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당혹스럽지만 마찬가지로 쓸모없는, 다른 하나의 걱정으로 옮겨졌다. 먼(Mun)의 『잉글랜드가 외국무역에서 얻는 부(England's Treasure in Foreign Trade)』(1664년)라는 저서는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상업국의 경제정책의 근본 격언이 되었다. (...)


광산이 전혀 없는 나라는, 포도밭이 없는 나라가 포도주를 들여오는 것과 같이, 금은을 외국에서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어느 한 가지보다 다른 한 가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포도주를 살 돈을 가진 나라는 필요로 하는 포도주를 언제든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금은을 살 수단[예: 포도주]을 가진 나라는 결코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을 것이다


금은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가격으로 구입되며, 금은이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이듯이, 다른 모든 상품은 금은의 가격이다. 


우리는 정부의 개입 없이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포도주를 언제든지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또한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는 우리 상품을 유통시키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할 금은을 언제나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


불필요한 금은을 국내에 도입하거나 붙들어 놓음으로써 그 나라의 부를 증가시키려고 하는 시도는 가정에 불필요한 주방도구를 보유케 함으로써 가정의 기쁨을 증가시키려는 시도만큼이나 어리석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주방도구를 구입하는 비용은 가정의 식료품의 양·질을 증가시키기는커녕 감소시킬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금은을 구매하는 비용은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국민을 고용하는 데 사용될 부를 필연적으로 감소시킬 수 밖에 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26쪽, 533쪽


애덤 스미스가 보기에 금은의 축적을 위해 무역차액에 집착하는 것은 '쓸모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이를 이용하여 금은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상품 생산에 주력하는게 옳은 선택이지,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금은의 부족을 걱정하며 매달리는 것은 되려 국부를 줄이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경제에서도 외환보유고 축적에 집착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각주:1]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중상주의자와 달리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재보의 준칙'이 무엇인지 아래의 내용을 통해 확인합시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3장 무역수지가 불리한 나라로부터의 거의 모든 종류의 상품수입에 대한 특별한 제한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이 학설은, 서로 교역하는 두 지역의 수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이익을 보거나 손실을 보지 않는 반면, 그것이 한쪽으로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다면, 정확한 균형에서 기울어지는 정도에 비례하여, 한 쪽은 손실을 보고 다른 한 쪽은 이득을 얻는다고 가정한다. 이 두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 어떤 강요 · 제한 없이 양국간에 자연스럽고 규칙적으로 수행되는 무역은 양자 모두에게 유리하다. (...)


나는 이익이나 이득이라는 것은 금은량의 증가가 아니라 그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생산물의 교환가치 증가나 주민들의 연간소득 증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양자는 서로 상대방의 잉여생산물의 일부에 대한 시장을 제공할 것이며, 사용된 자본, 즉 상대방의 잉여생산물의 일부의 생산 및 시장 출하를 위해 사용되어 그곳 주민들 사이에 분배되어 그들의 소득 · 생계를 제공한 자본을, 서로 보충해준다. 따라서 각국 주민 중의 일부는 그들의 소득 · 생계를 간접적으로 다른 쪽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94~595쪽


네. 애덤 스미스는 역시 '생산'을 강조합니다. 무역수지 흑자라고 부유하고 적자라고 빈곤한 것이 아닙니다. 무역은 서로 시장을 제공하는 행위이며, 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소득 · 생계를 간접적으로 얻으며 양자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②

- 제조업에 관하여

- 중상주의자 : "우호적인 상품구성(favorable commodity composition of trade)이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 "농촌과 도시의 이득은 상호적이며 호혜적"


1664년 토마스 먼은 '우호적인 무역수지'를 주장했으나, 애덤 스미스가 반박하기 이전에도, 중상주의자들 사이에서 '무역수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유용한 지표인지'에 관한 의문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역수지가 양적인 측면에서 가이드를 제공해줄 수 있을지라도, 질적인 측면(quality)은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중상주의자들은 '어떠한 상품을 교환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중상주의자가 관심을 기울인 상품 종류는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어떤 국가가 제품을 위한 원료를 가지고 있다면, 원자재(raw material) 그 자체로 수출하는 것보다는 제품(manufacture)을 만들어서 수출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왜냐하면 제품은 훨씬 더 가치가 있으며, 원자재보다 5배, 10배, 20배의 이득을 국가의 재보에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 Petyt, 1680, Britannia Languens, or a Discourse of Trade, 24쪽

- Douglas Irwin, 1998, Against the Tide: An Intellectual History of Free Trade』

38쪽에서 번역 재인용


중상주의자가 바라보기에, 경제발전과 고용의 확장을 이끌어낼 수 있고 교역에서 더 많은 가치를 불러오는 것은 '제조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원자재를 그대로 수출하는 것보다 제품으로 만들어서 수출을 하면 더 많은 금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조업은 다른 부문에 비해 더 많은 고용도 창출(greater employment)하며, 임금은 외국의 소득에 의해 지불된다(foreign paid income)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중상주의자들은 '제조상품 수출은 이득을 주며 외국 제조업자들을 위한 원자재 수출은 해를 끼친다. 원자재 수입은 이로우며 제조상품 수입은 충격을 준다.'는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제조 생산이 일어나게끔 하는 것(manufacturing should be produced in the home market)이 주요 목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중상주의자들은 다른 산업에 비해 '제조업'을 우위에 둔 반면에, 애덤 스미스는 '농업과 제조업의 균형성장'을 이야기 했습니다. 더 나아가 스미스는 제조업 부흥의 기원을 농업개량(the improvement of domestic agriculture and food production)에서 찾았습니다. 그의 논리를 살펴봅시다.


● 제1편 노동생산력을 향상시키는 원인들과 노동생산물이 상이한 계급들 사이에 자연법칙에 따라 분배되는 질서 - 제11장 토지의 지대


토지의 개량·경작으로 한 가족의 노동이 두 가족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 때, 그 사회의 절반의 노동은 사회 전체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데 충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 반, 또는 적어도 그들 중의 대부분은 다른 물건을 마련하는 일, 다시 말하면 인간의 다른 욕망·기호를 만족시키는 일에 종사할 수 있다. 의복·주거·가구·마차는 이러한 욕망·기호의 주요 대상이라 하겠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214쪽


농업은 인간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식량을 제공합니다. 만약 먹고살만한 식량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 이상의 기쁨은 생각도 못하게 됩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만약 토지의 개량 덕분에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고 농업에 적은 노동력만 필요하게 되면, 식품 이외의 것들을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애덤 스미스가 제조업의 기원을 농업개량에서 찾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어서 애덤 스미스는 농업개량과 제조업의 관계를 좀 더 명확히 설명하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농촌과 제조업에 종사하는 도시는 서로 상호적이며 호혜적이라고 강조합니다. 그의 설명을 살펴보죠.


● 제3편 각국의 상이한 국부증진 과정 - 제1장 국부증진의 자연적인 진행과정


모든 문명사회의 대상업은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업이다. (...) 농촌은 도시에 생활자료와 제조업 원료를 공급한다. 도시는 농촌 주민에게 제조품의 일부를 되돌려줌으로써 이 공급에 보답한다. (...) 양자의 이득은 상호적이고 호혜적이며,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분업은 세분된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상이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된다. (...) 


사물의 본성상 생필품은 편의품·사치품에 우선하는 것과 같이, 전자를 생산하는 산업은 후자를 생산하는 산업에 반드시 우선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농촌의 경작·개량은 편의와 사치의 수단을 제공할 뿐인 도시의 성장에 반드시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의 생필품을 구성하는 것은 시골의 잉여생산물, 즉 경작자의 생필품을 넘는 부분뿐이며, 따라서 이 잉여생산물의 증가에 의해서만 도시는 발달할 수 있다.  (...)


도시와 시골의 주민들은 서로서로에게 봉사한다. 도시는 상설시장이며, 시골 주민들은 이곳에 들러 그들의 천연생산물을 제조품과 교환한다. 도시 주민들에게 작업원료와 생활자료를 공급하는 것은 이 상업이다. 


도시 주민이 시골 주민들에게 판매하는 완성품의 양은 필연적으로 도시 주민이 구입하는 원료와 식료품의 양을 규제한다. 그러므로 도시 주민의 일거리와 생활자료는 완성품에 대한 시골의 수요증가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수요는 토지개량·경작확대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제도가 사물의 자연적 경로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도시의 부의 증가와 도시의 성장은 국토·농촌의 개량·경작의 결과이며 그것에 비례한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463~466쪽


이처럼 애덤 스미스는 농업개량의 결과, 완성품에 대한 시골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도시 제조업의 일거리가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농업개량은 제조업과 경제발전에 선행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자본이 농업→제조업→외국무역 순서로 투입되는 건 '사물의 자연적 순서'(natural order of things) 라고까지 주장합니다. 




※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③

- 국가의 역할에 관하여

- 중상주의자 : 국가의 무역규제가 필요

- 애덤 스미스 : '무역을 할 자유'를 개인들에게 부여해야


앞서 살펴본 중상주의자의 주장을 잠깐 다시 정리해봅시다. 이들은 금은의 축적 정도를 알려주는 '우호적인 무역수지'를 선호한데 이어서, 제조업 위주의 수출 등 '우호적인 상품구성'이 이루어져야 국부가 증진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럼 이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소비자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소비증가로 인해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제조업 자본가 보다는 대지주가 되기를 희망한다면 제조업 발달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즉, 경제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disharmony between private and public interest)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중상주의자들은 무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자와 무역이 금지된 자를 구분하고, 제조업을 인위적으로 육성하게끔 도와주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1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부(富)는 금은으로 구성된다는 원칙과, 그런 금속은 광산이 없는 나라에서는 오직 무역차액에 의해, 또는 수입하는 것보다 큰 가치를 수출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원칙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국내소비를 위한 외국재화의 수입을 가능한 한 줄이고 국내산업의 생산물의 수출을 가능한 한 증가시키는 것이 필연적이고 경제정책의 주된 목적으로 된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5~546쪽


중상주의자들은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불일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역정책'(trade policy) 혹은 '상업정책(commercial policy)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른바 '국가의 무역규제'(state regulation of trade) 입니다. 


중상주의자들의 사상으로 상업정책은 방향이 명료해졌습니다. 원자재 수입에 낮은 관세를 매기고, 제조업 수입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합니다. 반대로 원자재 수출은 돕지 않고 제조업 수출은 보조금과 장려금을 지급합니다. 국가는 철저히 제조업을 지키는 방향으로 상업정책을 집행하고, 제조업 육성을 위해 국내시장에서 독점권도 허가해줍니다.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는 무역차액 학설은 불합리하다고 평가했으며, 제조업을 우위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개인이 자연적자유(natural liberty)에 따라 행동한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무역을 규제하기 보다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국부론』의 상당부분에 이러한 주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548~549쪽)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을 높은 관세나 절대적 금지에 의해 제한함으로써 이 재화를 생산하는 국내산업은 국내시장에서 다소간 독점권을 보장받는다. (...) 국내시장의 이와 같은 독점권은 그런 권리를 누리는 특정 산업을 종종 크게 장려할 뿐만 아니라, 독점이 없었을 경우 그것으로 향했을 것보다 더 큰 노동·자본을 그 산업으로 향하게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독점권이 사회의 총노동을 증가시키거나 그것을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가는 결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각 개인은 그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


(552쪽)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


(553쪽)

자기의 자본을 국내산업의 어느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 그리고 어느 산업분야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8~553쪽


결국 무역차액과 제조업을 강조하는 중상주의 사상의 기본뿌리는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불일치' 한다는 사상이었고, 애덤 스미스가 무역의 자유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하는 기본뿌리는 '완전히 자유롭고 공정한 자연적인 체계'(natural system of perfect liberty and justice) 안에서 개인과 공공의 이익을 일치'한다는 자유주의 사상입니다.




※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의 논리 ①

-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는 자유무역

-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가능케하는 자유무역


지금까지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당시 지배적인 사상이었던 중상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무역의 독점권을 없애고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과하고, 수입관세와 수출보조금 등을 없애는 '자유무역'(Free Trade)을 실시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gain)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gains from trade)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동태적이익(Dynamic Gain), 둘째, 정태적(Static Gain) 입니다. 


● 무역의 동태적이익 (Dynamic Gain) 

-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는 분업의 고도화와 생산력 발전을 이끈다 


: 동태적이익은 말그대로 '시간이 흘러가도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뜻하며, 경제학에서는 주로 '경제성장'(growth) 혹은 '경제발전'(development)을 의미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는 분업의 고도화와 생산력 발전을 이끈다고 믿었습니다. 『국부론』의 본 제목은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이며,  '분업을 통한 생산'을 통해 국부가 증진된다고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애덤 스미스는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가 '분업을 최고도로 진행' 시켜 '생산력과 부를 증가시킨다'고 분석했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1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금은의 수입은 한 나라가 외국무역으로부터 끌어내는 주된 이득도 아니며, 유일한 이득은 더더욱 아니다. 외국무역이 행해지는 지역 사이에서는 어디에서건 국민들은 외국무역으로부터 두 가지 이득을 끌어낸다.


외국무역은 그들의 토지·노동의 생산물 중 그들 사이에서 수요가 없는 잉여분을 반출하고 그대신 수요가 있는 다른 것을 가져온다. 외국무역은 그들에게 남는 것을,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그들의 향락을 증가시키는 데 사용될 다른 것과 교환함으로써, 그 잉여분에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국내시장의 협소함도 어떤 기예(技藝:art)나 제조업의 각 분야에서 분업이 최고도로 진행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생산물 중 국내소비를 초과하는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도 넓은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외국무역은 그들로 하여금 생산력을 발전시키게 하고, 연간생산물을 최고도로 증가시키게 하며, 그리하여 사회의 실질수입과 부를 증가시키게 한다. (...)


아메리카의 발견이 유럽을 부유하게 한 것은 금은의 수입에 의한 것이 아니다. (...) 아메리카의 발견은 확실히 가장 본질적인 변화를 야기했다. 그것은 유럽의 모든 상품에 새롭고 무궁무진한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옛날 상업의 좁은 영역에서는 생산물의 큰 부분을 흡수할 시장의 부족 때문에 일어날 수 없었던 새로운 분업·기술개량을 야기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1쪽


외국과의 교역이 없이 좁은 국내시장만 가졌다면, 수요가 없는 상품을 생산할 필요가 없게되고 이에따라 분업도 세분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무역을 통해 넓은 시장을 확보하면,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 결과 분업이 고도화 된다는 논리 입니다.



● 무역의 정태적이익 (Static Gain) 

- 무역은 효율적인 자원사용을 이끌어낸다


: 정태적이익은 '그 시점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뜻하며, 경제학에서는 주로 '자원의 효율적 사용'(efficiency gain)을 의미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왜 무역은 효율적인 자원사용을 이끌어낸다고 믿었던 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외국산 제품이 국내산 제품보다 값싸기 때문입니다(lower price).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 · 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만약 국산품이 외래품만큼 싸게 공급될 수 있다면 이러한 규제는 명백히 쓸모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렇나 규정은 일반적으로 유해하다. 현명한 가장(家長)의 좌우명은, 구입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욱 비싸다면 집안에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


모든 개별 가구에 대해서 현명한 행동이 대국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외국이 우리가 스스로 제조할 때보다 더욱 값싸게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면,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진 국산품의 일부로 그것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 


이렇게 하더라도, 한 나라의 총 노동은 그것을 고용하는 자본과 일정한 비례관계에 있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각종 수공업자들의 노동이 감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총노동도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가장 유리하게 이동될 수 있는 방도를 찾게 될 것이다.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한 나라의 총노동이 향한다면, 총노동이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3~554쪽


위와 같이 애덤 스미스에게 무역의 정태적이익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습니다.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 힘을 쏟는 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죠. 만약 그 힘이 우위를 가진 국산품 생산에 사용된다면 생산량이 더욱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재차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특정 상품의 생산에서 다른 나라가 누리고 있는 자연적 이점이 한 나라에 비해 너무나도 크다면, 그 상품과 경쟁하는 것이 헛수고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누리는 우위(advantage)가 천부적인 것이건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이건, 그것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한 나라가 이러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한, 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전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애덤 스미스는 왜 어떤 제품은 국내에서 싸게 만들고, 다른 제품은 외국에서 싸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원인이 어디있든지간에 '싼 곳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죠. 그는 무역이 가져다주는 정태적이익을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 애덤 스미스 자유무역 사상의 논리 ②

-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을 믿어라


이제는 단순히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넘어서서, 무역 및 상업정책과 관련하여 자유주의자로서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드러나는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 자유로운 무역이 국내에 가져올 수 있는 충격은? (Trade Effects on Income Distribution)

- 노동자는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개개인의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에 따른 행위가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가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할겁니다. 마찬가지로 '무역을 할 자유'와 '자유무역'이 공공의 이익을 안겨주려면, 무역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아래 원문을 살펴보죠.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자유무역을 회복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통상의 일터와 통상의 생계수단을 일시에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그들이 고용 또는 생계를 박탈당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우리가 병사의 습관과 제조공의 습관을 비교해 볼 때, 병사가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보다 제조공이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조공은 언제나 자기 노동에 의해 생계를 얻는 데 익숙 (...)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68쪽


위와 같이 애덤 스미스는 '노동자는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자유무역으로 인한 실업문제가 초래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 인위적으로 제조업을 육성하는 유치산업보호론 비판

-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사회자본이 더 빨리 증가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자본과 노동을 인위적으로 특정 산업(제조업)에 배치하여 육성하는 정책 또한 반대했습니다. 중상주의자들에게 제조업은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외국 제조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규제정책으로 수입경쟁에서 보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보기에 이는 자본과 노동의 자연적인 용도를 훼치는 정책에 불과했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사실 이러한 규제에 의해 특정제조업이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 빨리 확립될 수도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외국과 같이 싸거나 더 싸게 국내에서 생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노동이, 비록 이처럼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욱 빨리 특정분야에 유리하게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노동이나 사회의 수입 총액이 이와 같은 규제에 의해 증대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사회의 노동은 자본이 증가하는 비율에 따라 증가할 수 있을 뿐인데, 자본은 수입 중에서 점차 절약되어 저축되는 것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제의 직접적인 효과는 그 사회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고, 그리고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빨리, 사회자본을 증가시킬 수는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없음으로써 사회가 문제의 제조업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는 그 때문에 어느 한 기간 내에 필연적으로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발전의 어느 한 시기에 사회의 모든 자본과 노동은, 비록 다른 대상에 대해서이긴 하지만, 당시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각 시기마다 그 사회의 수입은 그 사회의 자본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수입이며, 자본과 소득은 모두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애덤 스미스가 생각하기에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현재 제조업이 없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규제 정책이 없다면 자본과 노동은 알아서 자연적인 용도를 찾아가게 되어 있고,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각주:2]하기 때문에, 현재 경제는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최대 생산량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애덤 스미스 자유무역 사상의 논리 ③

- 중상주의는 소비자를 희생시키고 제조업 생산자의 독점이익만 고려



애덤 스미스가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 사상은 『국부론』 <제4편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을 통해 정점을 찍습니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외국상품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국내 제조업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정책', 즉 중상주의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그는 앞서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전개했던 논리를 반복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794) 우리나라의 중상주의에 의해 주로 장려되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뿐이다.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의 이익을 위한 산업은 너무나 자주 무시되거나 억압을 받고 있다. (...)


(813)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제조되는 상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모든 외국상품의 수입이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소비자의 이익은 명백히 생산자의 이익에 희생되고 있다. 이런 독점이 거의 언제나 야기하는 가격상승을 소비자가 감수해야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생산자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하)』, 비봉출판사, 764~813쪽


: 외국산 제품이 국내산보다 값이 싸다면 이를 수입해와 사용하는 게 마땅한데, 무역장벽으로 인해 국내 소비자가 값비싼 제품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소비자의 이익은 피해를 보고 국내 제조업자만 이익을 봅니다. "중상주의에 의해 장려되는 것은 부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 뿐" 입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이런 규제가 국민의 자랑스러운 자유를 얼마나 위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척하지만, 이 경우 그 유는 우리나라의 상인·제조업자의 하찮은 이익을 위해 분명히 희생당하고 있다


이런 모든 규제들의 특기할 만한 동기는 우리나라 제조업 그 자체의 개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웃 나라의 제조업을 억압함으로써,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상대와의 귀찮은 경쟁을 가능한 한 끝냄으로써 우리나라의 제조업을 확장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자들은 그들 자신이 국민 전체의 재능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하)』, 비봉출판사, 814쪽


: 자유무역이 실시되었더라면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하는 개인'은 자본과 노동을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에 투자[각주:3]할 겁니다. 또한 규제가 없다면 '자본과 노동은 알아서 자연적인 용도를 찾아가게 되어'서 최대의 생산량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역장벽 때문에 국내 제조업자들은 독점권을 누리면서 '국민 전체의 재능을 독점'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훨씬 더 잘 판단하는 개인의 자유'는 침해됩니다. 즉, 중상주의의 무역장벽은 '국민의 자랑스러운 자유를 위반'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이러 중상주의 전체를 고안해낸 것이 과연 누구인가를 파악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고안해낸 사람이 소비자들이 아니라 생산자들이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이익은 저적으로 무시되어 왔음에 반해 생산자의 이익은 매우 신중한 주의가 기울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생산자들 중 우리나라의 상인·제조업자들이야말로 중상주의의 특히 중요한 설계자들이다. 이 장에서 주의깊게 살펴본 중상주의의 여러 규제들에서는 우리나라 제조업자들의 이익이 특별히 우대되었고, 그리고 소비자의 이익이 희생되었을 뿐 아니라 기타 생산자들[예컨대 원료생산자]의 이익이 더 크게 희생되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하)』, 비봉출판사, 816쪽


: 그렇기 때문에, 중상주의는 제조업자의 이익만을 위하는 정책이지, 소비자와 원료생산자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만약 관세와 수입제한을 없애는 자유무역이 모두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를 종합해볼 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자유무역'과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한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유방임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외국상품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국내 제조업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국부론』을 집필한 것입니다.




※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 오늘날까지 이어지다


지금까지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의 원문 일부를 읽어나가면서, 중상주의와 자유무역에 관한 그의 주장과 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국제무역논쟁에 관심 많으신 분들은 '보호무역주의자 vs 자유무역주의자'의 대립 구도와 논리가 18세기에도 똑같았다는 점을 느꼈을 겁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소개했던 몇몇 논점들이 『국부론』 내에서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① 무역수지 흑자는 정말로 의미가 없나


: 애덤 스미스는 "교환을 할 수 있는 상품이 있는 한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수출과 수입은 동전의 양면이다. 수출은 한 국가가 수입품을 획득하기 위해서 포기하는 재화이다. 즉, 수출은 수입대금을 지불하기 위한 소득을 벌어들이는 데 불과하다."[각주:4] 라는 논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역수지 흑자 결정요인에 관한 경제학자들의 생각 참고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역수지 흑자를 국제경쟁에서 승리한 결과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정말로 무역수지 흑자는 의미가 없는 지표일까요?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생각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봅시다.



② 제조업은 독특한 특성을 가진 업종이 아닌가


: 과거 중상주의나 오늘날 보호무역 모두, 결국 핵심은 '제조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습니다. 


중상주의자들에게 제조업은 더 많은 수출가치와 고용을 만들어내는 업종입니다. 과거 개발도상국 정책결정권자와 1980년대 미국 그리고 오늘날 선진국에서 보호무역 흐름이 부상한 것도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해서였습니다. 반면 애덤 스미스에게 제조업은 그다지 특별한 산업이 아닙니다. 따라서, 중상주의적 정책은 그저 소비자와 기타 생산자를 희생시키고 제조업 생산자만을 위한 것이 됩니다.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둘러싼 논쟁은 18세기에 종식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또한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계획입니다. 



③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하는가


: 중상주의나 보호무역주의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여 무역을 규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반면, 애덤 스미스와 자유무역주의자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가 공공의 이익도 불러온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상의 대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가 쓴 아래의 글을 읽어보죠.


● 스푸트니크의 순간이라는 표현이 아쉬운 이유(Why our Sputnik moment will fall short)


미국의 기업들은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우월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의 상당 부분은 미국밖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제너럴일렉트릭은 미국인보다 외국의 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는 미국 내보다 중국에서 더 많은 자동차를 팔고 있다. (...)


오바마의 연설은 기업의 수익과 일자리의 연계가 끊어졌다는 점을 외면한 것이고, 일자리 창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설명하지도 못했다. (...) 정부는 일반 노동자 가정의 복리를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존재한다. 제대로 된 정부가 없다면 미국인들은 점점 글로벌화되는 기업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업들은 어디서 수익이 나든 오직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다.


- Robert Reich, 'Why our Sputnik moment will fall short', <FT>, 2011.01.26

- "오바마가 말한 '스푸트니크의 순간', 핵심을 벗어났다". <프레시안>. 2011.01.27 에서 재인용



● '450억 달러 딜', 미국이 중국에게 배워야 할 것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의 여러 기업들이 중국과 에너지와 항공 관련 제조 계약을 맺게 되지만, 상당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될 것이다. GE와 중국이 합작한 업체가 상하이에 설립될 예정인데, 여기서 만드는 새로운 항법시스템 장치들이 보잉 항공기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에게는 국가경제전략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만 있다. 바로 이런 측면을 봐야 한다. 중국의 국가 경제전략은 중국을 미래의 경제 동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국은 가능한 한 미국으로도 많은 것을 배워 미국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태양전지와 전기배터리 기술에서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은 기초 연구와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중국은 하나하나가 MIT에 맞먹는 20개의 대학을 건립했다. 중국의 목표는 힘과 위상, 고임금 일자리에서 중국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국가 경제전략이 없다. 미국에는 그저 어쩌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들이 있을 뿐이다.


- Robert Reich, 'The Real Economic Lesson China Could Teach Us', 2011.01.19

- '450억 달러 딜', 미국이 중국에게 배워야 할 것', <프레시안>, 2011.01.20에서 재인용


로버트 라이히는 오늘날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가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중국정부는 치밀하게 세워진 경제전략 하에 기업의 이익이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이어지게끔 하고 있다고 부러워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중상주의, 보호무역주의를 넘어서서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을 요구하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또한 국가가 주도하여 경제주체들의 행위를 조정해야한다는 생각은 '제조업 육성 및 보호의 필요성'과 결합하여, 강력한 무역정책(trade policy) 및 상업정책(commercial policy)으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논리가 타당한지에 대하여도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살펴봅시다.



④ 자유무역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 애덤 스미스는 국제무역의 발생원인을 '서로 다른 가격'에서 찾았습니다. 만약 외국이 더 값싸게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이를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왜냐구요? 거창한 논리는 필요없습니다. 그저 외국산제품 가격이 국산품보다 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문에서 우위에 놓인 국가'는 무역을 통해서 이득을 얻지 못한다는 말일까요? 애덤 스미스가 말한 우위는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각주:5] 입니다. 그럼 선진국이 모든 부문에 대해 절대우위에 놓여있으면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자유무역의 이익'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은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따라서, '자유무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게 상호이득(mutual gain)을 준다'는 논리는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통해 증명됩니다. 


앞으로 [국제무역이론 Revisited]를 통해,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⑤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은 작동하는가


: 애덤 스미스는 자유무역과 무역개방이 피해를 불러올수도 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피해를 불러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중상주의가 소비자와 제조업 이외 생산자를 희생시키는 구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믿은 이유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무역개방으로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근로자는 손쉽게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하는 자본가'는 최대의 이윤을 주는 새로운 곳으로 자본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에서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은 불완전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는 쉽게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외국과의 경쟁으로 몰락한 산업을 다른 산업이 빠르게 대체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무역개방이 소득분배 및 산업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서도 앞으로 깊게 알아봅시다. 




※ 다음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이제 다음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에서 '자유무역 사상의 발전'에 영향을 끼친 애덤 스미스 이외의 또 다른 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주장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 생산자만을 우대하는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이론을 말했으나, 데이비드 리카도는 "제조업 자본가의 이윤 증대를 위해 자유무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리카도는 애덤 스미스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무역개방이 계층별 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면서 자유무역이론의 폭을 넓혔습니다.


다음글을 읽어나가면, 자유무역 사상의 발전 배경 및 오늘날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1.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2014.07.11 http://joohyeon.com/195 [본문으로]
  2.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③ 에서 소개한 국부론 553쪽 내용 다시 인용 [본문으로]
  3.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③ 에서 소개한 국부론 553쪽 내용 다시 인용 [본문으로]
  4. 참고 : Douglas Irwin. 2015. 'Free Trade Under Fire' 4th Edition [본문으로]
  5. 국부론에서 '비교우위'란 표현을 썼지만, 오늘날 알려진 비교우위와는 다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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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Posted at 2015.05.21 00:35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을때 특정 산업을 한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하면, 전세계가 모두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과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을 통해, 1세대 국제무역이론을 알아보았다. 1세대 국제무역이론은 세계 각국이 무역을 하는 이유를 2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국가들 사이에서 무역이 발생하는 첫째 이유는 각국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리카도가 주목하는 것은 '노동생산성 차이'(달리 말해 기술수준의 차이)이다. 헥셔와 올린이 주목하는 것은 '보유자원의 차이'이다. 


둘째 이유는 무역이전 각국의 상품가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무역 이전 어떤 국가는 A상품 가격이 낮고 B상품 가격이 높은 상태이고, 또 어떤 국가는 A상품 가격이 높고 B상품 가격이 낮은 상태이다. 이때 무역이 발생하게 되면 국가들 사이에서 상품가격은 하나로 수렴(무역이전 A국과 B국 상품가격의 가중평균 수준)되고, 무역이전 가격이 낮았던 상품은 가격상승을 맞게된다. 따라서 각 국가들은 무역이전 가격이 낮았던 상품을 세계시장에 비싸게 팔 수 있다. 만약 무역이전 각국의 상품가격이 서로 같다면 굳이 무역을 할 필요가 없다.          


이번글에서도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국가'와 '무역이전 서로 다른 상품가격'이 어떻게 무역을 탄생시키는지 알아볼 것인데, 이번에 소개하는 이론은 1세대 무역이론-리카도, 헥셔올린-과는 조금 다르다. 1세대 무역이론은 생산량이 증가할때 생산에 소요되는 평균비용이 일정했다. 많은 양을 생산한다고 해서 평균비용이 감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경제에서 우리는 '생산량이 증가할때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이를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라고 말한다. 


만약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면, 특정 산업을 한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다른 산업은 또 다른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한 뒤, 무역을 통해 상품을 교환하면 좋지 않을까?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A국과 B국 모두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양국은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을 절반씩 책임지게 된다. 이때 B국은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고 A국만 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면, A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배로 증가하게 될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을때, 생산량이 2배로 증가하면 평균 생산비용도 감소한다.따라서 자동차 가격도 낮아질 것이고, A국과 B국의 국민들은 더 낮은 가격에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다.  


이처럼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을때 특정 산업을 한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하면 양 국가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다. 이번글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무역이 발생한다.'고 설명하는 이론을 살펴볼 것이다.




※ '외부 규모의 경제'란 무엇인가? 


  • 첫번째 열 - 생산량(Output), 두번째 열 - 총 노동투입량(Total Labor Input), 세번째 열 - 평균 노동투입량(AVerage Labor Input)
  • 생산량이 5단위 증가할때마다 총 노동투입량도 똑같이 5단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평균 노동투입량은 감소하고 있다.
  • 즉,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은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이 감소하는 현상을 뜻한다. 쉽게 말해, 더 많이 생산할수록 생산비용이 감소한다는 말이다. 


위에 첨부한 도표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을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 열은 생산량(Output), 두번째 열은 총 노동투입량(Total Labor Input), 세번째 열은 평균 노동투입량(Average Labor Input)을 나타낸다. 이때 생산량이 5단위 증가할때마다 총 노동투입량도 똑같이 5단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평균 노동투입량은 감소하고 있다. 즉,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은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외부 규모의 경제'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규모의 경제'는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와 '내부 규모의 경제'(Internal economies of scale)로 나눌 수 있다. 


하나의 기업이 있다고 생각하자. 이 기업은 생산량을 증가시키더라도 평균비용이 감소하지 않는다. 즉,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기업이다. 이때, 이 기업이 위치한 곳에 같은 산업에 속해있는 기업들이 이주해왔다. 일종의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 것이다. 


같은 산업에 속해있는 이들 기업들은 서로의 노하우도 공유하고(knowledge spillover), 특정 하청업체로부터 공동으로 부품을 구매한다(specialized suppliers).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 것을 보고, 이 산업에 종사하고 싶은 구직자도 몰려온다.(labor market pooling). 같은 산업에 속해 있는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 여러가지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


이처럼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외부 규모의 경제'라 부른다. 이들은 노하우공유, 부품 공동구매, 근로자 채용의 용이함 등 덕분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하나의 기업 자체가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면 이를 '내부 규모의 경제' 작동한다' 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살펴볼 것이다.)         


  •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 덕분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이 감소하고 상품가격 또한 감소한다.
  • 따라서, 이 산업의 공급곡선(AC)은 우하향하게 된다.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였기 때문에 '외부 규모의 경제'가 생겨났다. 따라서 이 산업은 생산량을 증가시킬때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 결과, 상품 공급량이 증가할때마다 상품 가격이 하락하게 되고, 공급곡선(AC)은 우하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국가에 생산을 집중

→ 세계 소비자들은 낮아진 상품가격의 혜택을 누림


특정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다면, 생산량을 증가시킬때마다 평균 생산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고 상품 또한 낮은 가격에 팔 수 있다. 이를 국가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글의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특정 산업을 한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다른 산업은 또 다른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한 뒤, 무역을 통해 상품을 교환하면 좋지 않을까?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A국과 B국 모두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양국은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을 절반씩 책임지게 된다. 이때 B국은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고 A국만 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면, A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배로 증가하게 될것이다.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을때, 생산량이 2배로 증가하면 평균 생산비용도 감소한다.따라서 자동차 가격도 낮아질 것이고, A국과 B국의 국민들은 더 낮은 가격에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다.  


이때 문제는 '자동차 산업을 어떤 국가가 집중적으로 생산해야 할까?' 이다. 예시에서는 인위적으로 A국이 자동차를 집중적으로 생산한다고 하였으나, 현실에서는 인위적으로 생산을 배분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시장이 자동적으로 해결해준다. 만약 상품의 질이 동일하고 가격만 다르다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낮은 가격의 상품을 구매할 것이다. 따라서 자동차를 더 낮은 가격에서 생산할 수 있는 국가만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이 국가에서만 자동차 산업이 생산될 것이다. 이를 그래프를 통해 쉽게 알아보자.


  • 무역 이전, 중국과 미국의 국내공급(AC China or US)-수요 곡선(D China or US).
  • 양 국가 모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비용이 하락하고 가격 또한 하락하는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 이때, 중국의 공급곡선은(왼쪽 그래프, AC China) 미국의 공급곡선(오른쪽 그래프, AC US)에 비해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같은 양을 생산할때 중국 상품의 가격이 더 낮음을 의미한다.

위 그래프는 무역 이전 중국과 미국의 국내공급-수요 곡선을 보여준다. 양 국가 모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비용이 하락하고 가격 또한 하락하는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이때, 중국의 공급곡선은(왼쪽 그래프, AC China) 미국의 공급곡선(오른쪽 그래프, AC US)에 비해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같은 양을 생산할때 중국 상품의 가격이 더 낮음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것처럼, 상품의 품질이 동일한 상황에서 중국의 상품가격이 더 낮기 때문에, 세계의 소비자들은 모두 중국 상품을 구입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 시장에서 미국 상품은 퇴출되고, 이 상품은 오직 중국만이 생산하게 된다.


  • 무역 이후, 중국의 상품 공급곡선(AC China)과 세계 수요곡선(D World).
  • 세계시장에서 이 상품을 중국만이 생산함에 따라, 중국의 생산량은 증가했다.(Q1에서 Q2로)
  •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생산량 증가에 따라 상품가격은 더 낮아졌고, 세계 소비자들은 더욱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윗 그래프는 무역 이후, 중국의 상품 공급곡선(AC China)과 세계 수요곡선(D World)을 나타낸다. 세계시장에서 이 상품을 중국만이 생산함에 따라, 중국의 생산량은 증가했다(Q1에서 Q2로).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생산량 증가에 따라 상품가격은 더 낮아졌고, 세계 소비자들은 더욱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 생산에 학습효과 (Learning by Doing)

→ 특정 산업에 대해 현재까지 많은 경험을 쌓은 국가가 그 산업에 속한 상품을 생산


바로 앞서는 '특정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 덕분에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을 살펴봤다.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면 생산량 증가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이 하락하기 때문에 상품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원인으로 인해 '생산량 증가에 따라 평균생산비용이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일은 없을까? 바로, '생산에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가 존재할 때에도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다.  


'생산에 학습효과'란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이게되고, 이런 노하우 덕분에 효율성이 개선되어 평균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생산에 학습효과'는 한 기업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다. 한 기업이 얻은 노하우가 전파되어(knowledge spillover) 다른 기업 또한 생산의 효율성이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 하나'에서는 생산에 학습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기업이 속한 '산업 전체'에 생산에 학습효과가 있다면 그 기업 또한 이익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특정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수록' 생산에 학습효과는 더욱 더 커지게된다


  • '생산에 학습효과'는 '누적 생산량'(Cumulative output)에 의해 결정된다. 
  • 윗 그래프는 '누적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비용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임으로, '생산에 학습효과'는 '누적 생산량'(Cumulative output)에 의해 결정된다. 윗 그래프는 '누적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생산비용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살펴봤던,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용 ·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러한 '생산에 학습효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이 이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간단하다. 특정 산업에 대해 현재까지 많은 경험을 쌓은 국가가 그 산업에 속한 상품을 생산하면 된다. 그렇게되면 세계 소비자들은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


이번글에서 설명하는 '무역을 하는 이유'는 앞서의 글과 유사하다. 1세대 국제무역이론 리카도 '비교우위론'헥셔-올린 이론이 말하는 무역을 하는 이유는 '각 국가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리카도는 각국의 '노동생산성'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하고, 헥셔-올린은 '보유자원'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한다. '외부 규모의 경제'로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이론 또한 각국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무역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러 산업 중 어떤 산업을 생산했을때 생산비용이 제일 낮아지는지는 국가마다 서로 다르다.


(사족 : 하지만 '외부 규모의 경제'로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이론과 리카도 · 헥셔올린 이론의 차이점도 존재한다. 1세대 국제무역이론 리카도 · 헥셔-올린에서는 무역 이후 세계 상품가격이 하나로 수렴한다. 이때의 세계 상품가격은 무역 이전 각국 상품가격의 중간수준이다. 하지만 '외부 규모의 경제'와 '생산에 학습효과'가 존재할때, 무역 이후 세계 상품가격은 반드시 하락한다. 특정 산업을 한 국가만 몰아서 생산하기 때문에, 생산량 증가에 따라 상품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역을 할때의 이익은 무엇일까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와 '생산에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이 존재하는 상황일 때, 정 산업을 한 국가만 몰아서 생산한다면 세계 소비자들은 '상품가격 하락'으로 인한 무역의 이익을 볼 수 있다. 




※ '외부 규모의 경제'가 존재할 때, 국제무역은 소비자 후생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 우리는 앞서 '특정 산업을 어느 국가가 생산하느냐는 시장이 자동적으로 해결해준다.' 라고 알았다. 상품가격이 높은 국가는 시장에서 자동퇴출되고, 상품가격이 낮은 국가만이 그 상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똑같은 양을 생산할때 특정 국가에서의 상품가격이 더 낮은것일까?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떠올려서, 그 국가의 노동생산성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 그 국가의 노동생산성이 더 높은 것일까? 그 답은 찾기 어렵다. 결국 '역사적 경로'(historical path)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냥 어떤 국가에서 예전부터 특정 상품을 생산해왔고, 그것이 지금까지 누적된 결과 생산성이 높다는 식이다. '어떤 국가에서 예전부터 특정 상품을 생산해왔다'는 것도 그저 '우연적 사건'(accidental event) 이다.  


이것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양을 생산할때 중국에 비해 베트남은 더 낮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베트남만이 그 상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게 세계 전체적으로 이익일 것이다. 하지만 그 상품을 베트남이 아니라 중국이 몰아서 생산하는 상황도 만들어질 수 있다. 바로 '이전부터 중국이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갸우뚱 할 것이다. "이전부터 중국이 생산해왔더라도, 베트남이 생산량을 늘리면 가격이 더 낮은데 무슨 상관이지?" 그런데 베트남은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 자,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자. 외부 규모의 경제란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하나의 기업 그 자체에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지만,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이 모이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따라서, '하나의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평균 생산비용과 상품가격이 하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하나의 기업'만이 생산을 시작한다면 중국에 비해 상품가격이 높을 것이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하나의 기업'은 생산을 시작하지 않는다베트남 기업 모두가 같이 시장에 진입하면 '외부 규모의 경제'를 향유할 수 있지만, 다른 기업이 진입할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내가 먼저 진입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 똑같은 양을 생산할때(Q1 생산), 베트남은 중국에 비해 낮은 상품가격을 만들어 낼 수 있다(중국 상품 가격은 점1, 베트남 상품가격은 점2)
  •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 기업 하나'의 생산비용은 중국의 상품가격보다 높다.(C0는 P1보다 높은 점에 위치) 


이 모습이 위에 첨부한 그래프에 나온다. 똑같은 양을 생산할때(Q1 생산), 베트남은 중국에 비해 낮은 상품가격을 만들어 낼 수 있다(중국 상품 가격은 점1, 베트남 상품가격은 점2). 하지만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 기업 하나'의 생산비용은 중국의 상품가격보다 높다(C0는 P1보다 높은 점에 위치). 결국 베트남 기업들은 시장에 진입하지 않게 되고, 중국 기업들만이 상품을 생산하게 된다.(점1에서 세계시장 균형이 결정)  


이러한 결과는 세계 각국 모두에게 손해를 안겨준다. 잠재적으로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 소비자들은 결국 더 높은 가격을 주고 상품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국제무역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베트남 기업은 시장에 진입했을 것이다. 세계간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싼 비용에 상품을 생산하는 중국'을 의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무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베트남 기업은 중국을 의식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시장진입을 포기한다. 이처럼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상황이라면 국제무역은 세계 소비자 전체의 후생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외부 규모의 경제'는 시장에 먼저 진입한 국가에게 이익(initial advantage)을 안겨주는데, 초기진입여부는 역사적경로와 우연적 사건이 결정짓는다. 결국, 올바르지 않은 국가가 먼저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세계 소비자들의 후생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 유치산업보호론의 필요성???


'외부 규모의 경제' 뿐만 아니라 '생산에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의 존재도 세계 소비자들의 후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앞서 설명했던 '생산에 학습효과'의 정의를 다시 가져와보자. 


'생산에 학습효과'란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이게되고, 이런 노하우 덕분에 효율성이 개선되어 평균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이때 '생산에 학습효과'는 한 기업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다. 한 기업이 얻은 노하우가 전파되어(knowledge spillover) 다른 기업 또한 생산의 효율성이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 하나'에서는 생산에 학습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기업이 속한 '산업 전체'에 생산에 학습효과가 있다면 그 기업 또한 이익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특정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수록' 생산에 학습효과는 더욱 더 커지게된다. 



만약 '생산에 학습효과'가 하나의 기업에서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 혼자서라도 시장에 진입하여 생산량을 늘려가면 평균 생산비용 · 상품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에 학습효과'의 영향이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여러 기업이 시장에 존재할 때에만' 커진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같은 산업의 기업 모두가 동시에 시장에 진입하면 '생산의 학습효과'를 향유할 수 있지만, 다른 기업이 진입할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내가 먼저 진입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진입은 발생하지 않고 잠재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이익은 실현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산업혁명을 먼저 시작한 선진국이 그동안 쌓아둔 경험이 많을 것이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쌓아둔 경험이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면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생산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진입하지 않아 잠재이익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게된다.


세계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이 더 낮아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발주자들이 시장에 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소비자들은 더 많은 돈을 주고 상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의 이러한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여러 기업들이 동시에 시장에 진입'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 경제지리학 (Economic Geography)

- 국가내 지역간 거래 (inter-regional trade within countries)


올바른 국가가 시장에 먼저 진입했느냐 혹은 잠재적으로 상품가격을 더 낮출 수 있는 국가가 시장에 진입했느냐에 따라 세계소비자들의 후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같은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한 곳에 위치'해 있을 때 외부 규모의 경제로 인한 이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리학이 강조하는 '집적의 이익'(agglomeration)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경제분야에 지리의 중요성을 도입한 것을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라 한다.


만약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economies of scale)가 존재한다면, 같은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서로 모임으로써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려 할 것이다. 대한민국 울산 · 포항 · 여수 등에 중화학 산업의 기업들이 모여있는 것도 '외부 규모의 경제'를 이용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한 국가내 지역에 따라 특정산업끼리 모이게되고, 지역간 거래(Inter-regional trade)를 통해 국민 전체가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1. Ahn
    재밌게 읽었습니다.
    비교우위나 부존자원에 의한 무역 결과랑
    외부경제에 의한 무역 결과가 다르다는게 상당히 흥미롭네요ㅎㅎ
  2. yoon
    정성이 가득 담긴 글이네요^^ 잘보고갑니다
  3. lili
    와 정말 감사드려요! 관련 강의를 수강 중인데, 저의 기초 지식도 부실한데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라 와닿지 않아서 뜬구름 잡는 것 처럼 듣고 있었거든요. 제대로 알고 싶어서 개념 검색하다가 포스팅을 발견했습니다. 알기 쉽게 설명 되어 있어서 내용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D
  4. 감사합니다 :) 덕분에 이해가 잘 되었어요 !
  5. Jenny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해하기쉽고 꼼꼼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
  6.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유익해요 자주 들러서 읽고갈게요^^
  7. thanksalot
    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 원서로 읽다보니 이해가지않는 점이 많아 공부하기가 힘들었는데,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주신 덕분에 이해가 쏙 쏙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구세주였어요:) 정말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8. 제임스딘
    안녕하세요,, 주현님.
    앞으로도 포스팅 계획 있으신가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p.s. 좋은 글 일고 갑니다.
    • 2016.11.04 07:50 신고 [Edit/Del]
      네~ 당연히 포스팅은 계속 할겁니다.

      다만, 올 초 취직하고 난 후 여유가 없네요.
      신입이 블로깅 열심히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구요 ㅠ

      12월이나 내년초부터 재개할 계획입니다~ ㅋ
  9. 제임스딘
    미시경제학도 많이 올려주세요..
    미시가 절실해요.,,ㅎ
    • 2016.11.11 09:44 신고 [Edit/Del]
      미시는.... 제가 깊게 고민해보지를 않아서요 ㅠ
    • 제임스딘
      2016.11.12 00:32 신고 [Edit/Del]
      혹시 유명한 미시경제학자 or 그와 관련 블로그 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 2016.11.14 07:44 신고 [Edit/Del]
      미시경제학도 세부전공이 다양하니 딱 누구를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제임스딘님께서 '인간행위를 경제학적으로 설명'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우선 Gary Becker의 글을 찾아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19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Gary Becker는 사회학의 관심영역을 경제학으로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대가입니다.

  10. 기쁘네요
    다시 연재한다고 하니 너무 기쁘네요ㅠㅠ 경제학에 대해 정말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알고 있어서 매일매일 하나씩 읽어보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11. 비밀댓글입니다
  12. 안녕하세요
    국제무역 공부하고있는데요ㅠㅠ공급곡선이 왜 MC가 아니라 AC인건가요..?
  13. 감사합니다
    이렇게 질 높게 정리해놓은 블로그를 방문해서 정말 영광입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4. 감사합니다!
    그냥 교수님이 하시는 수업이랑 똑같네요..... 예시까지 똑같아요 미국 중국 베트남..... 많이 배우고 갑니다!!
  15. 비밀댓글입니다
  16. 훈스
    안녕하세요~ 중국에서 유학하며 국제무역 수업듣고있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질문이 하나 있는데 베트남과 중국의 예시에서 중국의 평균 단가가 낮은 이유는 생산에 학습효과때문이라 이해해도 될까요? 어떻게 생각하면 외부규모의 경제와 생산에 학습효과가 상당히 비슷해 보이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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