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2009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② - 2008 금융위기 발생[2007년-2009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② - 2008 금융위기 발생

Posted at 2016. 1. 22. 15:26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 1997년-2005년 복습


지난글 '[1997년-2005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에서는 1997년-2005년의 세계경제를 알아봤습니다. 


세계경제를 '2008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면, 1997년-2005년은 '위기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입니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은 신흥국들은 달러화축적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2001년 경기후퇴를 맞게된 미국은 1%대의 초저금리 정책을 2004년까지 유지하였습니다. 그리고 2002년 유럽은 유로화 도입을 성대하게 기념하였습니다.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 1998년 미국 기준금리 인하 → 미국 주식시장 · IT산업 버블


: 1997년에 발생한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는 러시아 · 남미에까지 확산됐습니다. 세계경제 침체의 악영향이 미국경제에 미칠것을 우려한 Fed는 1998년 중반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하였죠. 그러나 1998년 중반의 확장적 통화정책은 주식시장 · IT산업 버블을 초래했습니다.


2001년 주식시장 · IT산업 버블 붕괴 → Fed 1년 사이에 기준금리 4.75%p 인하(6.50%에서 1.75%) → 이후 1% 초반의 초저금리 정책 2004년까지 3년간 유지  

 

: 2001년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IT산업내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미국은 경기후퇴를 맞게 됩니다. 당시 Fed 의장이었던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1년 사이에 기준금리를 4.75%p나 인하하는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집행하였고, 1% 초반의 초저금리 정책을 2004년까지 3년간 유지합니다.


2001년-2004년 Fed 초저금리 정책 · 신흥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 → 미국 부동산가격 크게 상승 


: 2000년대 들어서 미국 부동산가격은 크게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3년간 지속된 Fed의 초저금리 정책'과 '신흥국으로부터 유입된 자본'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2001년 경기후퇴 이후 Fed는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2004년까지 유지합니다.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신흥국들은 달러화자산(미국채권) 축적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축적한 자본은 미국으로 유입됩니다. 


느슨해진 대출환경과 풍부해진 유동성은 미국 부동산가격을 크게 상승시킵니다.



2002년 세계를 구한 부동산 → 2005년 부동산가격이 하락한 이후에는? → 2007년 부동산시장의 문제 


: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부양 효과를 낳는 미국 부동산가격 상승은 긍정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2004년부터 Fed가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해나가자 부동산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부동산가격의 폭락은 세계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역사에 남을 충격(the Great Recession)을 주었습니다. 


부동산가격의 큰 폭 하락은 저소득층의 주택담보대출 연체 문제(서브프라임 위기)를 일으켰고, 대출연체 증가는 은행도산으로 이어졌습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2년동안, 주택담보대출 전문업체인 Fannie Mae(패니매이)와 Freddie Mac(프레디 맥) 파산에 이어 Merrill Lynch(메릴린치) · Bear Stearns(베어스턴스) · AIG 등 세계적 금융보험회사들이 무너졌습니다.   


이번글에서는 2007년-2008년 사이에 세계경제에 어떤 일이 발생했었는지를 알아봅시다.




※ 2007년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발생


2007년 초부터 미국경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가 발생하면서 혼란에 빠졌습니다.



2001년 경기침체 이후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던 Fed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간 4.25%p나 인상했습니다. 기준금리의 가파른 인상은 부동산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죠. 



2006년 정점을 찍은 부동산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2000년 이래 부동산가격 상승기를 맞아 대출을 통해 집을 구매한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은 자기자본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집 구매액의 상당수를 주택담보대출로 충당했었습니다. 집값의 80%를 대출받은 사람들에게 집값 20%의 하락은 손실 100%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부동산가격이 하락하자 신용수준이 낮은 계층의 대출 연체율이 급증하고 소비는 위축되었습니다. 


(참고 : 하위계층의 높은 부채비율. 부동산가격 하락의 손실을 집중시키다 - 『House of Debt』)


이제 아래내용을 통해, 2007년에 미국경제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살펴봅시다.




2007년 3월 3일 · 3월 24일

'하락하는 월스트리트' (Walk Down Wall Street)

'부동산시장의 문제' (The trouble with the housing market)


2007년 2월, 대출상환금을 받지 못한 유럽계은행이 파산하면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각주:1]하지만 3월 3일자 <The Economist>가 나올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큰 문제로 인식되지는 않았습니다. 


<The Economist>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경제에 대해 얼마나 걱정해야 할까? 미국의 경기하강이 (세계경제에) 별다른 차이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건 어리석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들의 경제상황이 괜찮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각주:2]


미국의 경기하강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건 어리석지만, 그렇다고해서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봐서도 안된다는 말이죠. 2007년 3월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 유럽 · 신흥국 등의 경제는 괜찮았으니깐요.  


그러나 3월 24일자 <The Economist>는 기사의 논조가 조금 변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문제를 크게 다루었습니다. 3월 3일과 24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전문업체 중 하나인 New Century Financial이 파산선언을 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문제는 말그대로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저소득층'의 대출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2001년-2006년 부동산가격 상승시기에 금융기관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값싼 대출을 해주었고, 사람들은 차익실현을 노리고 무리하게 주택을 구입했습니다.


'주택가격-부채액수', 즉 주택가격 대비 순자본(Equity)의 비중이 30% 미만인 사람이 무려 40%에 달했습니다. 다르게말해, 미국전체 집주인 중 40%는 집값 대비 70%를 대출 받아서 주택을 구입한 것입니다. [왼쪽 그림] 


게다가 이들 중 대다수(86.2%)는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2004년부터 2006년간 미국 기준금리가 1.00%에서 5.25%로 상승했으니, 대출이자 부담이 커지는건 당연한 일이었죠. [오른쪽 그림]


대출 연체율은 급증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전문업체의 파산에 이어 일반은행들도 이제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 2007년 3월 3일판 기사

: 'A walk down Wall Street'  


▶ 2007년 3월 24일판 기사

: 'The trouble with the housing market'

: 'Cracks in the façade'

: 'When the tide goes out'




2007년 10월 20 · 11월 17일

'신용경색으로 부터 배우는 교훈 - 중앙은행과 세계경제에 관한 스폐셜 리포트' (Lessons from credit crunch)

'미국의 취약한 경제' (America's vulnerable economy)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 급증이 단순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전문업체의 파산'에 그치지 않고 일반 상업은행 · 투자은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이유는 '증권화 상품'(securitization)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한 사람에게서 대출금을 받을 권리'를 쪼깬 뒤 '다른 사람에게서 대출금을 받을 권리'와 합쳐서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만든 겁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전문업체는 이렇게 만든 금융상품을 일반 상업은행 · 투자은행에 팔았기 때문에, 대출금 연체는 일반 상업은행 · 투자은행의 손실로 연결됐습니다.     


그리고 일반은행의 파산은 금융시스템 마비를 초래하고, 금융시스템 마비는 신용경색(Credit Crunch)을 일으킵니다. 경제 전체에 돈이 돌지 않게 되면서 연쇄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금융기관은 채무자에게 빨리 돈을 상환하라고 요구하고, 당장 갚을 돈이 없는 채무자는 파산하고 맙니다. 만약 금융기관이 평소처럼 만기연장(roll-over)을 해주었다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말이죠.


이러한 신용경색을 막기위한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중앙은행', 즉 Fed 입니다.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로 일반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함으로써 신용경색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2007년 10월 20일자 <The Economist>는 Fed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Fed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계속되는 침체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주택가격 하락 → 건설투자 감소 → GDP 증가율 감소' · '주택가격 하락 → 민간소비 감소 → GDP 증가율 감소'의 경로로 인해, 미국의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전기에 비해 계속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2007년 12월부터 (NBER이 판단하는 공식적인) 경기침체(recession)가 시작됩니다.   


▶ 2007년 10월 20일자 기사

: 'Lessons from the credit crunch'    


▶ 2007년 11월 17일자 기사

: 'America's vulnerable economy'

: 'Getting worried downtown

: 'Letting light in'




※ 2008년 1월-8월

: 베어스턴스 · 페니매이 · 프레디맥 파산


2008년은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입니다. 연초 세계4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파산을 시작으로 페니매이 · 프레디맥이 무너지면서 미국경제는 혼란에 빠집니다.




2008년 3월 22일  · 4월 5일 · 4월 12일

'(무너지는) 월스트리트 - 10페이지 특집기사' (Wall Street - a ten-page special report on the crisis)

'금융부문 수리하기' (Fixing Finance) 

'미국의 대경기하강, 이것이 세계경제에 의미하는 바' (The great American slowdown and what it means for the world economy)



2007년 12월부터 (NBER이 판단하는 공식적인) 경기침체(recession)가 시작된 미국경제. 2008년 3월이 되지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되었습니다. 


세계 4위 투자은행이었던 Bear Stearns(베어스턴스)가 파산했기 때문이죠. 2007년까지만 하더라도 170달러였던 베어스턴스의 주가는 2달러가 되었습니다. 


Fed는 베어스턴스 파산의 충격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위해 기준금리를 0.75%p 인하하였고, 30조원 가량의 구제금융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Fed의 구제금융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었습니다.


2008년 4월 12일자 <The Economist>는 "지금 던질 수 있는 물음은 현재의 경기침체가 어떤 종류가 될 것이냐 이다. 작은 경기침체 아니면 깊은 경기침체? 단기간 아니면 장기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쇼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경제상황은 그래도 무난하다. 확실한건 지금의 경기하강은 단지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각주:3] 라고 말하며, 향후 미국경제에 대한 우려를 내비칩니다.


▶ 2008년 3월 22일자 기사

: 'Wall Street's crisis'

: 'The financial system - What went wrong'

: 'Investment banks - The $2 bail-out'

: 'The fallout at Bear Stearns - Sore heads'

: 'Central banks - A dangerous divergence'

: 'Apocalypse now?'

: 'Derivatives - Caveat counterparty'

: 'Economics focus - History lesson'


▶ 2008년 4월 5일자 기사

: 'Credit crisis - Fixing finance'

: 'Financial regulation - Will it fly?'


▶ 2008년 4월 12일자 기사

: 'The great American slowdown'

: 'The American economy - The long hangover'

: 'Housing market - The bubble bursts'

: 'Bankruptcies in America - Waiting for Armageddon'




2008년 7월 19일

'한 쌍의 문제들 - 패니매이, 프레디맥 그리고 시장혼돈' (Twin twisters - Fannie Mae, Freddie Mac, and the market chaos)


2008년 7월 큰 문제가 터졌습니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중 절반 가량(약 5,000조원!!!)의 채권을 가지고 있던 Fanni Mae(패니매이)와 Freddie Mac(프레디맥)이 파산 위험에 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 이었던 Hank Paulson과 Fed 의장 Ben Bernanke 등은 패니매이와 프레디맥의 파산을 막기위해 긴급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구제금융자금 규모는 무려 2,000조원에 달했습니다. 


2007년 12월부터 경기침체기에 접어들긴 하였으나, 잠잠했던 미국경제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패니매이 · 프레디맥 파산 위험사태는 금융위기가 끝나려면 멀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 2008년 7월 19일자 기사

: 'Banks and markets - Twin twisters'

: 'Fannie Mae and Freddie Mac - End of illusions'

: 'American banks - Fear of failure'

: 'Financial regulation - Grasping at shorts'

: 'America’s economy - Boxed-in Ben'

: 'Three amigos, only one conquistador'

: 'Turning panic into opportunity'

: 'Prediction markets - Fortune telling'

: 'A brief family history - Toxic fudge'

: 'Land of the rising price'




※ 2008년 9월 - 12월

: 리먼브러더스 파산

: '대침체'(the Great Recession)의 시작


2008년 9월 15일, 세계 2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게 됩니다.




2008년 9월 20일

'이 다음은?' (What next?)


2008년 9월 15일 '그 일'이 발생했습니다. 


7월에 일어났던 Fanni Mae(패니매이) · Freddie Mac(프레디맥) 사태보다 더 큰 사건입니다. 2015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계경제 자체를 변화시킨 대형사건 입니다. 


바로, 600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2위 투자은행 Lehman Brothers(리먼브라더스)의 파산입니다.


베어스턴스 · 패니매이 · 프레디맥 파산을 막기위해 긴급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했던 미국정부와 Fed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동성문제(il-liquidity)가 컸던 앞선 금융기관과는 달리 리먼브라더스가 사실상 '지급불능'(insolvent) 상태에 빠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하루 뒤인 9월 16일에는 세계적인 보험회사 AIG가 파산위기에 몰렸습니다. 미국정부와 Fed는 위기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해 85조원의 구제금융자금을 AIG에 투입하였죠.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상상치 못했던 악영향을 만들어냅니다. 세계 2위 투자은행이 파산하면 금융시스템과 실물경제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오늘날까지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죠.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금융시스템 경색(Credit Crunch)이 발생하자 실물경제도 얼어붙었습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크게 하락했고, 실업률은 10.0%까지 치솟았습니다. 


위기 이전의 실업률 수준으로 회복하는데 무려 6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는 그 당시 생각치 못했을 겁니다.





▶ 2008년 9월 20일자 기사

: 'The financial crisis - What next?'

: 'The financial crisis - Wall Street's bad dream' 

: 'Saving Wall Street - The last resort'

: 'Investment banking - Is there a future?'

: 'Looking for the bright side'

: 'AIG’s rescue - Size matters'

: 'Derivatives - A nuclear winter?'

: 'European banks - Cross-border contagion'

: 'Emerging markets - Beware falling BRICs'

: 'Accounting - All’s fair'

: 'Beyond crisis management'




2008년 9월 27일 · 10월 4일 · 10월 11일 · 10월 18일

'당신(미국정부)의 돈이 필요합니다' - (당시 미국 재무장관 이었던) 폴슨의 계획은 작동할까? (I WANT YOUR MONEY - Will Paulson's plan work?)

'벼랑 끝에 선 세계' (World on the edge)

'세계경제 시스템 구하기' (Saving the system)

'궁지에 몰린 자본주의' (CAPITALISM AT BAY)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은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 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의 파산은 금융시스템과 실물경제 전체의 경색(Crunch)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금융기관의 파산이 금융시스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위하여, 미국 재무부와 Fed는 700조원의 구제금융 자금(bail-out)을 금융기관에 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은행들을 살리기 위하여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나서게 된겁니다. 


(주 : "이럴거면 구제금융 자금을 파산 이전의 리먼브러더스에 투입했어야 하는거 아니냐?" 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는 좀 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와 Fed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 · 세계경제 · 세계금융시장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The Economist> 표지는 국제정치·외교·전쟁이 장식했지만, 2008년 9월 이후 오늘날까지 <The Economist> 표지는 '세계경제 침체'가 차지하게 되었죠.


▶ 2008년 9월 27일자 기사

: 'America's bail-out plan - I want your money'

: 'America’s bail-out plan - The doctors' bill'

: 'Pay and the financial crisis - Questions of equity'


▶ 2008년 10월 4일자 기사

: 'The credit crunch - World on the edge'

: 'Global banks - On life support'

: 'Money markets - Blocked pipes'

: 'Foreign exchange - The buck swaps here'

: 'America's car industry - A bail-out that passed'

: 'Mortgage malaise - Closer and closer to home'

: 'Europe and America - Lessons from a crisis'

: 'The politics of the bail-out - The candidates intervene'


▶ 2008년 10월 11일자 기사

: 'The credit crunch - Saving the system'

: 'Rescuing the banks - We have a plan'

: 'Managing the credit crunch - The European Union’s week from hell'

: 'The ascent of money - A financial history of the world'

: 'Global finance - Lifelines'

: 'When fortune frowned'


▶ 2008년 10월 18일자 기사

: 'The world economy - Capitalism at bay'

: 'Asia and the crisis - Here we go again"

: 'A short history of modern finance - Link by link'

: 'Europe and the financial crisis - The end of the beginning?'

: 'Industry and the financial crisis - Meanwhile, in the real economy...'




2008년 11월 1일 · 11월 8일

'(오바마의) 시간이 됐다.' (It's time)

'큰 기대' (Great expectations)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Great Recession)을 맞게된 미국. 미국인과 세계인의 시선은 11월 6일 개최될 미국 대통령선거에 쏠렸습니다. 


공화당 재임기간 중 발생한 경제위기를 '민주당의 스타 정치인'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죠. 버락 오바마는 '변화'(Change)와 '할 수 있다'(Yes, We Can)을 내세우며, 새롭게 변화할 미국을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 주간지 <The Economist>는 2008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그에게 큰 기대감을 드러냈죠.  


▶ 2008년 11월 1일자 기사

: 'The presidential election - It's time'


▶ 2008년 11월 8일자 기사

: 'America's election - Great expectations"




※ 2009년

: 2008 금융위기의 이후 

: 금융개혁 · 경제민족주의 · 위험한 유럽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는 위기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됐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자들과 관료들은 '금융시스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리스크를 분산시켜준다고 믿었던 증권화 상품이 문제를 일으킬 줄은 생각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을 받지 않기 위해, '자국중심 정책'을 펼 기미를 보였습니다. 이른바 '경제민족주의'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죠.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채권을 많이 보유했던 유럽은행들은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파산위험에 처하게 됐는데, 이들을 구제해 주어야 하느냐를 두고 유럽내 논쟁이 벌어졌죠.



2008년 11월 15일 · 2009년 1월 24일  

'국제금융 새롭게 설계하기' (Redesigning global finance)

'Inside the banks' - 금융의 미래에 관한 스폐셜 리포트


2008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외국에서 미국으로 유입된 자본'(Cross-Border Capital Flow) · '미국 금융기관이 만든 증권화 상품'(Securitization)[각주:4] 이었습니다. 


동아시아 · 유럽 등에서 미국으로 유입된 자본은 부동산가격을 상승시켰고, 미국 금융기관들은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상품을 만들어 거래를 하였죠. 그런데 부동산가격이 하락하자 금융상품은 부실화 되었고 이를 거래하던 금융기관들은 파산했습니다. 


이러한 금융위기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간 자본이동이 경제에 해를 끼치는 걸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국제금융 개혁) ·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 "파산한 금융기관을 국유화 해야하느냐?"(금융의 미래)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2008년 11월 15일자 기사

: 'Redesigning global finance'

: 'The global economic summit - After the fall'

: 'A short history of modern finance Link by link'

: 'Debt and deflation - Depressing times'

: 'Germany's economy - A little stimulus'


▶ 2009년 1월 24일자 기사

: 'The future of finance - Inside the banks'

: 'Economics focus - The spectre of nationalisation'

: 'Rescuing banks - Shorn bank shares, shaven poll ratings, shredded nerves'

: 'Greed—and fear'

: 'Global economic imbalances - When a flow becomes a flood'





2009년 1월 31일 · 2월 7일

'아시아의 충격 - 위기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은 곳' (Asia's shock - Where the crisis is hitting hardest)

'경제 민족주의의 귀환' (THE RETURN OF ECONOMIC NATIONALISM)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은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전달되었습니다. 2008년 4분기 기준,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굉장히 미미했고 일본 · 싱가포르 ·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음(-)의 값을 기록했죠. 미국의 경제위기로 인해 국제교역량도 크게 감소하여 수출과 수입 모두 20%나 하락했습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자 각국은 '자국산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부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경제 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이죠. 미국내에서는 'Buying American'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죠. 


하지만 (다른글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다룰 계획인데) 경제민족주의나 보호무역주의는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입니다. <The Economist>는 '경제 민족주의의 귀환'을 매우 우려스럽게 바라보며, 오바마 행정부가 이것을 멀리하여야 세계경제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2009년 1월 31일자 기사

: 'Asia's sinking economies - Asia's suffering'

: 'Asian economies - Troubled tigers'

: 'China's economy - A great migration into the unknown'


▶ 2009년 2월 7일자 기사

: 'The return of economic nationalism'

: 'Trade policy - Buying American'

: 'Globalisation under strain - Homeward bound'

: 'The euro - High tensions'





2009년 2월 14일 · 2월 28일

'(미국은행) 구조하기 - 오바마 계획에 관한 논란' (To the rescue - The trouble with Obama's plan)

'유럽을 깨뜨릴 수 있는 청구서' (The bill that could break up Europe) 


2009년 2월 집권한 오바마 행정부는 약 700조원에 달하는 재정지출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정부재정의 힘으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었죠. 


그러나 이러한 경기부양책에 대해 여러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주된 비판은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수조원에 달하는 정부돈을 써야하느냐?" 였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1기 재무장관 이었던 Timothy Geithner(티모시 가이트너)는 실물경제 정상화를 위해서는 은행기능이 먼저 정상화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리번 브러더스 등의 파산 이후 금융시스템이 마비되고 실물경제마저 위축된 만큼, 은행기능이 정상화되어서 신용경색이 해결되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이죠.


그러나 경제학자 Atif Mian(아티프 미안) · Amir Sufi(아미르 수피) 등은 "은행에 자금을 투입하기보다, 부채를 많이 보유한 가계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각주:5]했습니다. 2008 금융위기의 출발은 '부동산을 구매하기 위해 과도한 부채를 진 가계'에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으로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논리이죠.      


경제위기 해결방법을 둘러싼 논쟁은 미국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럽 내에서도 논란이 벌어졌죠. "서유럽 국가들이 동유럽에 대한 지원을 해주어야 하느냐"의 논쟁이었습니다. 


2008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라트비아 · 헝가리 ·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의 은행들이 큰 손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 스웨덴 등 서유럽 국가들은 동유럽 은행에 많은 돈을 빌려준 상황이었기 때문에, 동유럽 은행들이 파산하면 서유럽도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만약 서유럽 국가들이 동유럽에 대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EU 가입을 바라왔던 터키 · 발칸반도 국가들이 향후 가입을 하지 않을수도 있다. 이는 '유럽통합의 꿈'에 먹구름이다." 라는 주장까지 제기되며, 서유럽의 동유럽지원 요청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하지만 돈을 지원해주어야 하는 서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 국민들로서는 다른나라의 위기에 세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서유럽 앞으로 전달된 청구서'(bill)를 받아들이면 유럽통합의 꿈은 계속 되지만 서유럽 국민들의 재정부담이 늘어나고, 반대로 '청구서'(bill)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유럽통합의 꿈이 깨지는 상황(break up Europe).


두 가지 상황간의 충돌은 2016년 오늘날까지 계속[각주:6]되고 있습니다.


▶ 2009년 2월 14일자 기사

: 'Saving the banks - The Obama rescue'

: 'America's banking crisis - Worse than Japan?'

: 'Bank bonuses - Sound and fury'

: 'South Carolina - You can keep your money'

: 'The politics of the recession - Gloom offensive'

: 'The stimulus plan - A qualified victory'


▶ 2009년 2월 28일자 기사

: 'Eastern Europe's woes - The bill that could break up Europe'

: 'Germany - Europe's reluctant paymaster'

: 'Ex-communist economies - The whiff of contagion'

: 'Eastern Europe - Argentina on the Danube?'





2009년 3월 14일 · 6월 6일

'일자리 위기 - 어떻게 해야 하나' (The jobs crisis - And what to do about it)

'디트로이토사우르스 멸망 - GM 이후의 자동차 산업' (Detroitosaurus wrecks - The car industry after GM)



금융위기 발생 이후 제일 큰 문제는 '실업'(unemployment) 입니다. 미국 뿐 아니라 일본 · 유럽 등에서 1년전과 비교해 실업률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jobs crisis) 


위에 첨부된 그래프는 2009년 3월 기준일 뿐이고, 이후로도 실업률은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미국은 최고 10%의 실업률을 기록했고, 스페인 ·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실업률은 20%를 넘었습니다. 


위기 이후 올라간 미국의 실업률이 정상수준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무려 7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는 2009년 3월 그 당시에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특히 미국내 도시 중에서도 자동차산업이 위치한 디트로이트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세계 3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였던 GM이 도산하면서 디트로이트 도시 자체가 불황에 빠져버렸죠. 


▶ 2009년 3월 14일자 기사

: 'World economy - The jobs crisis'

: 'Unemployment - When jobs disappear'

: 'The global crisis and the poor - The toxins trickle downward'


▶ 2009년 6월 6일자 기사

: 'The decline and fall of General Motors - Detroitosaurus wrecks'

: 'Saving GM Europe - Hope for Opel'

: 'The bankruptcy of General Motors - A giant falls'

: 'Detroit's new mayor - Baptism by five-alarm fire'

: 'America's carmakers cull dealers - Open season'




※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 중국의 부상




2009년 6월 13일

'부채 - 역사상 가장 많은' (Debt - The biggest bill in history)


앞서 살펴봤듯이,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위기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 700조원의 재정지출 법안을 통과시켰었습니다. 유럽 또한 은행 구제금융을 위해 정부지출을 증가시켰죠.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정부의 지출증가는 곧 '정부부채 증가'(public debt)로 이어집니다. 


<The Economist>는 "IMF 추정에 따르면 2007년 GDP 대비 78% 였던 세계 각국의 정부부채 비율은 2014년 114%로 증가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정부부채 증가를 우려스럽게 바라봅니다. 특히나 "그리스 · 아일랜드 · 이탈리아 · 포르투갈 · 스페인 등 유로존내 취약국가들의 채무불이행(디폴트)가 우려된다." 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0년.. 남유럽 국가들의 정부부채로 인해 발생한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각주:7]가 현실화 됩니다.


▶ 2009년 6월 13일자 기사

: 'Public debt - The biggest bill in history'

: 'Holding together'

: 'A tortuous path'

: 'Government debt - The big sweat'

: 'The politics of debt - Seeing red'





2009년 10월 3일 (북미판 표지)

'폭풍 이후 - 경기회복을 달성하는 방법' (After the storm - How to make the best of the recovery)


미국의 경기확장(expansion) · 경기수축(contraction) 여부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이라는 기관이 판단합니다. NBER에 따르면 미국의 공식적인 경기침체 기간은 2007년 12월 ~ 2009년 6월[각주:8] 입니다. 2009년 6월을 기점으로 미국의 전기대비 경제성장률은 양(+)의 값을 기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2016년 현재까지도 "미국이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제성장률은 양(+)의 값이지만 위기 이전에 비해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실업률이 정상수준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경기침체기가 아닌 정상기(normal)이긴 합니다만, 위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정상기'(new normal) 이죠.



일반적인 경기침체(recession)가 발생하고 나면, 가파른 경기회복(recovery)을 통해 본래의 경제성장 경로로 돌아갑니다. 윗 그래프의 Scenario 1이 이를 보여주고 있죠.


그러나 2008 금융위기(2008 financial crisis)는 가파른 경기회복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위기 이전의 경제성장 경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scenario 2 · 3 의 모습입니다. 


▶ 2009년 10월 3일자 기사

: 'A “new normal” for the world economy - After the storm'

: 'The long climb'

: 'The end is nigh (again)'

: 'Corporate finance - Thawing out'




2009년 10월 3일 (아시아판 표지) · 10월 24일

'세계에서 중국의 위치 -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년' (China's place in the world - The People's Republic at 60)

'어색한 커플 - 중국과 미국에 관한 스폐셜 리포트' (The odd couple)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떠오른 국가는 바로 '중국' 입니다. 


지난글 '[1997년-2005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에서는 이제 막 세계를 상대로 문호를 개방한 1999년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9년, 중국은 미국의 뒤를 잇는 강대국으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다음글 '[2010년-2012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③ - 유럽재정위기' 에서는 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한 중국의 모습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 2009년 10월 3일자 기사

: 'The People's Republic at 60 - China's place in the world'

: 'China's other face - The red and the black'

: 'China's National Day - Party like it's '49'


▶ 2009년 10월 24일자 기사

: 'China and America - The odd couple'

: 'A wary respect'

: 'The diminishing dollar'




※ 2010년 유럽재정위기 발생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미국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던 유럽은행들은 금융위기로 인해 큰 손실을 보게 되었죠. 유럽 각국 정부는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구제금융 자금을 투입하였는데, 이로인해 정부부채가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 결과, 2010년 유럽재정위기 (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가 발생하고 맙니다.


다음글 '[2010년-2012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③ - 유럽재정위기


  1. "왜 유럽계은행이 먼저 피해를 입었나?"에 대해서는 다른글에서 다루겠습니다. [본문으로]
  2. (How much should the rest of the world worry about America? It would be silly to claim that a slowing American economy would make no difference at all. But it is far from silly to observe that, on the evidence so far, the rest of the world is doing quite nicely.) [본문으로]
  3. The question now is: what kind of recession will this be? Shallow or deep; short or long? So far, it seems remarkably gentle, given that many think America is suffering its worst financial shock since the Great Depression. Since December the economy has shed an average of almost 80,000 jobs a month. In most recessions a rate of 150,000-200,000 is normal. To be sure, this downturn has only just started. [본문으로]
  4.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5. 하위계층의 높은 부채비율. 부동산가격 하락의 손실을 집중시키다 - 『House of Debt』 http://joohyeon.com/202 [본문으로]
  6. [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223 [본문으로]
  7. [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223 [본문으로]
  8. US Business Cycle Expansions and Contractions http://nber.org/cycles/cyclesmain.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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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2005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1997년-2005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

Posted at 2016. 1. 22. 14:36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2016년 1월 현재, 주요 거시경제 · 국제금융 이슈는 '미국 Fed의 기준금리 인상' · '미국 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위기 가능성' ·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 '유로존의 구조적 문제' · '중국의 경기둔화 가능성' 등등 입니다. 


2015년 초부터 1년 내내 가장 많이 보도되었던 경제뉴스는 '미국 Fed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었습니다. 2008년 12월 이래로 미국 Fed는 0.25%라는 극도로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해왔으나, 2015년내에 기준금리를 한차례 인상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2015년 12월, 미국 Fed는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여 7년만에 제로금리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세계 경제학자들과 언론들은 "7년동안 지속되어왔던 Fed의 저금리정책이 끝난 후, 신흥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까?"에 관심을 두고 있죠.


2015년 6월-7월 사이에 가장 핫했던 경제뉴스는 '그리스 국가부도와 유로존 탈퇴 가능성' 이었습니다. 


그리스는 IMF로부터 빌린 돈을 상환하지 못하였고, "독일 · 유럽위원회 등으로부터 빌린 나머지 채무 또한 갚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채무탕감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독일은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퇴출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강경하게 나섰고, 이에 따라 유로존 해체 가능성까지 제기됐었습니다. 


2015년 7월에 많이 나왔던 또 다른 경제뉴스는 '중국 주식시장 급락'입니다. 작년말부터 크게 상승했던 중국 주가지수는 올해 7월부터 급락하기 시작했고 최대 50% 하락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경제는 단순한 주가지수 하락을 넘어서서 '과잉투자에 따른 경기둔화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중국은 부채를 통해 투자를 증가시켜 고성장을 달성해왔는데, 비효율적 투자로 인해 부실이 생겨나고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죠.


게다가 중국경제는 2016년 1월이 되자마자 주식시장 급락을 또 경험하며, "중국에서 경제위기 발생하는거 아니냐?"는 우려를 키웠습니다.    


이렇게 2015년부터 지금까지 쏟아진 경제뉴스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경제현상들-미국 금리인상, 유로존위기, 중국 경기둔화-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앞으로 세계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경제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2008년 이래로 미국이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해온 이유를 알려면 '2008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2008년에 있었던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를 알려면 '2008년 이전의 시간'을 살펴봐야하죠. 


또한 경제학자들이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신흥국 경기침체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유를 알려면 '과거 미국이 금리를 인상했을때 신흥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와 독일의 갈등은 새로운게 아닙니다. 그리스는 2010년과 2012년, 이미 두 차례의 구제금융을 받은바 있고 그 과정에서 독일과 갈등을 일으켰었습니다. 그리스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 스페인 등 다른 남유럽국가들도 2010년 이래로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의 문제를 가지고 있죠. 


즉, 유로존은 2010년 이후부터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유로존내 갈등을 이해하려면 '2010년부터의 사건'을 살펴봐야 하고, 유로존 자체를 이해하려면 더 오래전의 시간을 봐야 합니다.  

  

중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잠재력만을 지니고 있던 공산국가 출신이었으나, 1999년 WTO에 가입한 이래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왔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이후로는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고 있죠. 그러다가 2015년 현재는 과잉투자에 따른 부실증가와 경제성장률 하락의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각각의 사건을 깊이있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경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는 파악하고 있어야 오늘날의 경제현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경제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주간지 <The Economist>의 표지그림을 보는 것입니다. <The Economist>는 그때그때 중요한 사건을 표지로 내세우는데, 1997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의 표지를 훑어보기만 하더라도 세계경제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The Economist> 표지를 통해 세계경제 흐름을 알아봅시다.  




※ 1997년

남아시아-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다


1997년은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로 퍼져나간 해 입니다. 이른바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죠. 


1997년에 일어난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이후 1990년대 후반 미국 IT 버블 · 2001년 미국 경기침체 · 2008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2008 금융위기의 여파가 오늘날에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20년 전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7년 7월 19일

'South-East Asia loses its grip' (남아시아-동아시아, 기운을 상실하다)


1997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었던 한국 ·태국 · 인도네시아 · 홍콩 · 싱가포르. 그러나 1997년 7월, 태국에서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단기 대외부채를 많이 지고 있던 기업들(한보철강 · 기아자동차 등등)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좋지 않은 경제상황이었습니다. 이와중에 태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국에도 미친다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죠. 


하지만 당시 한국은 태국발 금융위기가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었습니다.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은 회고록을 통해 태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때의 상황과 혼란스러운 생각을 전하고 있습니다.  


● 97년 7월 8일 : 태국, 금융위기에 몰리다


- 모든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던 7월 초, 난데없이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을 거듭하고 (...) 신문 지면은 우리나라도 당장 그 금융태풍에 휘말릴 것처럼 온통 우려의 목소리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나-강경식 경제부총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태국과 우리나라는 여러가지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97년 7월 27일 : 태국 위기 남의 일 아니다


-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대외신인도를 예의 주시하면서 대책 강구가 필요했다. 특히 신용도가 괜찮은 은행들이 해외로 나가 달러를 많이 빌려 외환보유고를 많이 쌓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 1997년 7월 19일판 기사

: 'South-East Asia loses its grip'

: 'South-East Asian currencies - Unpegged'

: 'The tigers’ fearful symmetry'

: 'South Korea’s firms - Kia keels over'




1997년 8월 23일

'The puzzling failure of economics' (경제학의 당혹스러운 실패)


경제위기가 발생할때마다 소환되는 것은 '경제학'입니다. 2008년에도 그랬고 1997년도 마찬가지였죠. 


7월에 시작된 태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는 8월에도 지속되었습니다. 태국 바트화 가치는 여전히 요동을 좋고, 한국 · 인도네시아 · 싱가포르 · 홍콩의 통화가치도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한국은 은행부실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한보철강 · 기아자동차 등 기업들이 파산하자, 돈을 상환받지 못한 은행의 재무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부실은 그저 기업 하나의 파산으로 끝날 수도 있으나, 은행의 부실은 금융시스템을 마비시켜 경제전체를 침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The Economist>는 '여전히 불안정한 남아시아-동아시아 통화가치'와 '한국의 기업부실과 은행부실'을 기사로 다루면서, 태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을 포함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를 크게 걱정했습니다.


▶ 1997년 8월 23일판 기사

: 'The puzzling failure of economics'

: 'Asian currencies - More turbulence ahead

: 'South Korean industry - Another day, another girder'

: 'South Korean banks - First and worst




1997년 11월 1일

'급격한 경기하강이 발생했던 한 주' (A week on the wild slide)


7월에 시작했던 태국발 금융위기가 이제 남아시아-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쳐 나갔습니다. 10월 중순, 태국 · 인도네시아에 이어 한국 · 싱가포르 · 홍콩 · 대만에서도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통화가치가 급락했습니다. 


강경식 부총리는 7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태국발 금융위기를 단순히 주시하는 정도였으나, 9월과 10월 들어서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을 실제로 느끼기 시작했죠.


● 97년 9월 20일 :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이 현지에서 빌려쓴 돈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앞의 대문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뒤에 있는 쪽문으로 나가서 저지른 일이 집안 전체를 뒤흔들게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 97년 10월 17일


- 동남아 통화위기가 10월 중순에 들면서 북상하기 시작했다. 


● 97년 10월 23일


- 홍콩 증시 폭락 사태로 또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세계 증시가 모두 출렁이는 것이어서 우리도 그런 충격파 속에 함께 놓여진 것으로 생각했지,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로 치닫는 길에 들어섰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997년 10월 23일을 기점으로 한국 원화가치는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10월 22일 1달러당 915.10원이었던 통화가치는 23일 921.00원 · 24일 929.50원 · 27일 939.90원 · 28일 957.60원 · 29일 964.00원 · 11월 6일 975.00원 · 11월 10일 999.00원 · 11월 17일 1,008.60원 · 11월 25일 1,122.00원 · 12월 23일 1,962원까지 크게 하락했죠.


한국의 기업들은 달러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부채부담을 키웠습니다.



한국은행은 원화가치 급락을 막기위해서, 가지고 있던 달러화자산을 팔아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1997년 1월 외환보유액은 300억 달러였으나 12월은 200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에더해 외국투자자들은 실제 외환보유액은 150억 달러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였고, 이는 당시 한국이 지고 있던 단기외채의 1/5에 불과한 금액이었습니다.


결국 11월 21일, 인도네시아 등에 이어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에 대해서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 1997년 11월 1일판 기사

: 'A week on the wild side'

: 'Indonesia - No thanks, IMF'

: 'The downpour in Asia'

: 'The world economy - Asia’s spreading shadow'




1998년 1월 3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South Korea's new start)


외환위기 발생과 여당 후보의 분열 덕분에 한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김대중은 대선 직후부터 사실상 대통령직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외국 투자자들과 IMF는 현재의 대통령인 김영삼보다는 미래의 대통령인 김대중과 협상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죠.


IMF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금융감독 강화 · 기업들의 부채비율 감축 ·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구조개혁을 요구하였습니다. 김대중정부는 임기동안 이를 수행하였죠. 


▶ 1998년 1월 3일판 기사

: 'South Korea’s new start'

: 'The flexible tiger'

: 'Asia picks up the pieces'  




※ 1998년 - 1999년

미국 주가지수 상승과 아시아의 경기회복


1997년에 일어난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충격은 이후 러시아 · 브라질 · 아르헨티나로까지 퍼져나갔습니다[각주:1].


이제 미국도 외환위기의 여파가 자국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까를 우려하기 시작했죠. 미국 Fed는 미국경제가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인하로 선제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1998년 10월의 기준금리 인하'가 향후 또 다른 위기의 불씨가 되고 맙니다.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인플레이션율도 낮았지만 기준금리를 인하했습니다. 국내거시경제가 안정적인 상황에서의 기준금리 인하는 당연히 과열을 부르게 됩니다.


1998년-1999년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미국 IT산업 버블로 이어졌던 때 입니다. 



1998년 11월 14일

'전세계가 잊고있는 위험'(The world's forgotten danger)


표지 속 인물은 미국국기 모양을 한 모자를 쓴채로, 크게 증가하고 있는 그래프가 그려진 풍선을 매달고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그리고 표지에 적혀진 문장은 '전세계가 잊고 있는 위험'(The world's forgotten danger) 입니다. 


<The Economist>의 1998년 11월 14일자 표지는 '주식시장 거품의 위험성을 잊고있는 미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995년 1월, 400대 후반이었던 S&P 500 지수는 1998년 11월에는 1100선을 넘었습니다. 4년동안 약 3배만큼 증가한 것이죠. 


당시 주가지수 상승을 이끈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획기적으로 성장한 IT산업 이었습니다. PC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인터넷망이 깔리면서 IT산업은 크게 성장하였고, Microsoft 등은 높은 이익을 거두었죠. 


사람들은 IT산업 발달에 따른 경제성장을 '신경제'(New Economy)라 불렀고, 투자자들은 IT와 관련된 기업이라면 수익성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채 막대한 투자를 하였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The Economist>는 우려섞인 시각을 보입니다. "현재 주식시장은 거품(bubble)일 가능성이 크고, 거품이 꺼질 경우 거시경제에 상당한 충격이 발생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죠. 


그리고 상품가격 인플레이션(goods price inflation)에만 신경을 쓰고, 자산가격 인플레이션(asset price inflation)은 방치하는 미국 Fed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3년 뒤인 2001년, <The Economist>의 우려는 현실이 됩니다.


▶ 1998년 11월 14일판 기사

: 'The world’s forgotten danger'   

: 'Rallying cries'   

: 'The central banker as god'




1999년 8월 21일

'아시아의 놀라운 경기회복' (Asia's astonishing bounce-back)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아시아는 1999년 들어서 놀라운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1998년 1분기, 전분기 대비 -7.0%라는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은 1999년 2분기에는 전분기 대비 4.5%라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 태국 · 싱가포르 · 홍콩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1997년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The Economist>는 1999년 아시아가 놀라운 경기회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로 '미국의 경기활황'과 '세계화'를 꼽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당시 미국은 IT산업 발달에 따라 높은 경제성장률 · 주가지수 급등의 활황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수요증가에 따라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이 증대되었고 그 결과 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의 악몽에서 벗어나서 놀라운 반등을 보여줄 수 있었죠. 


▶ 1999년 8월 21일판 기사

: 'Asia's bounce-back'

: 'On their feet again?'




1999년 11월 20일 · 11월 27일

'중국, 행동을 개시하다'(China opens up) · '세계화의 폭풍'(Storm over globalisation)


1999년 11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자유무역의 세계로 들어옵니다. 


그동안 공산주의 · 무역장벽 속에 갇혀있던 중국이 시장을 개방(open) 함으로써 차기 강대국으로써 행동을 시작(open up)한 것이죠.


2015년 현재 중국의 GDP는 세계2위이고, 경제성장의 힘으로 소득이 크게 증가한 중국인들이 전세계 관광산업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9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그저 '잠재력만 큰 가난한 국가' 였습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다니, 앞으로 중국의 힘이 많이 세지겠구나." 라는 추상적인 생각만 들 뿐이었죠.  


▶ 1999년 11월 20일판 기사

: 'China opens up'  

: 'The real leap forward'

: 'The remaining hurdles'


▶ 1999년 11월 25일판 기사

: 'Storm over globalisation'




※ 2001년 

IT버블 붕괴 · 9.11 테러, 미국 경기침체를 맞다


앞서, '1998년의 <The Economist>'는 미국 주식시장의 과열을 우려했습니다. IT산업 발전이 '신경제'(New Economy)로 불리우며 각광받았지만, 과열이 꺼진 이후에는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The Economist>의 우려는 2001년에 현실화 됩니다.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미국은 경기침체에 들어서게 됩니다. 여기에더해,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미국경제는 더욱 더 위축됩니다.


당시 Fed 의장이었던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IT버블 붕괴 · 9.11 테러의 충격을 상쇄하기 위해, 불과 1년 사이에 기준금리를 6.50%에서 1.75%로 가파르게 인하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2000년대 초반 당시 Fed의 초저금리 정책이 7년 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2001년 1월 6일 

'그린스펀의 놀라운 행동'(Greenspan's big surprise)


표지 속 인물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약 20년간 Fed 의장을 맡았던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 입니다.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이 어떤 행동을 했길래 <The Economist>는 'big surprise'라는 말을 써가면서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일까요?


앞서, 1998년-1999년 동안 IT산업 발달의 힘으로 활황기를 맞은 미국경제를 살펴보았습니다. 1995년 미국 S&P 500 지수는 약 400대 후반에 불과했으나 1999년에는 약 1372대로 3배 이상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약 4.8%를 기록했죠.




그러나 2000년 들어서 미국경제는 후퇴기에 들어섭니다. '신경제'(New Economy) 인 줄 알았던 IT기업들 상당수가 그저 거품(bubble)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죠. 신기술을 앞세워서 막대한 투자를 받은 다수의 IT 기업들은 이렇다할 수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파산하고 맙니다. 


2000년 1월, 1517 포인트로 정점을 찍었던 S&P 500 지수는 2001년 1월 1040 포인트로 30% 이상 급락합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전분기 대비 경제성장률 또한 1% 미만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1999년의 미국경제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2000년부터 시작된 경기후퇴를 단순한 조정기로 바라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2001년 1월, 기준금리를 6.5%에서 5.5%로 1%p 인하함으로써 경기후퇴 가능성에 공격적으로 대응하였습니다.


▶ 2001년 1월 6일판 기사

: 'Greenspan’s big surprise'        




2001년 3월 24일 · 4월 21일 · 8월 25일

'세계경제는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Can the world escape recession?)

'그린스펀이 구하러 온다' (Greenspan to the rescue)

'경기후퇴기에 해야할 2001가지' (2001 things to do in a recession)


2001년 1월, Fed 의장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현재의 경기후퇴를 심각하게 생각하였고 기준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공격적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이는 현재의 경기후퇴를 단순한 조정기로 바라봤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죠.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2001년 4분기 동안 미국의 전년동기대비 경제성장률은 급락하여 1% 미만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2001년 이전,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4% 이상이었으나 2001년 연간 경제성장률은 0.97%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1월에 한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던 Alan Greenspan은 2001년에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내립니다. 2000년 12월 6.5% 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2001년 8월 3.0%로 8개월 동안 무려 3.5%p나 하락했습니다.  


▶ 2001년 3월 24일 · 4월 21일 · 8월 25일판 기사

: 'Can the world escape recession?'

: 'Greenspan to the rescue'




2001년 9월 15일

'세계가 바뀐 그 날' (The day the world changed)


2001년 9·11 테러는 말그대로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 ·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죠. 그런데 9·11 테러가 국제정치·외교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던 미국이었는데, 9·11 테러 이후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더욱 더 침체에 빠져듭니다. 


Fed 의장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9·11 테러 이후 기준금리를 3차례나 더 인하하였고, 2001년 12월 미국 기준금리는 1.75%를 기록합니다. 2000년 12월 6.5% 였던 미국 기준금리가 1년 사이에 1.75%가 된 것이죠.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2002년 11월에는 기준금리를 1.25%로 더 인하하였고, 2003년 6월 기준금리는 1.00%까지 내려갑니다. 미국 Fed의 이러한 초저금리 정책은 2004년 6월까지 지속되었죠.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의 단호한 대응은 미국경제를 회복시켰습니다. 2001년 4분기에 0.2% 성장률로 저점을 찍은 미국경제는 Fed의 확장적 통화정책에 힘입어 회복하기 시작했고, 2004년 이후부터는 경기침체 이전과 비슷한 4.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죠. 


자, Fed 의장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IT 산업 거품 붕괴'와 '9·11 테러'가 초래한 경기후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크게 내렸고, 1%대의 초저금리 정책을 2004년까지 유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단호한 대응은 미국경제를 침체에서 살린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초저금리 정책이 '7년 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당연히 알 수 없었습니다. 역사교과서에서나 봤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버금갈만한 '대침체'(Great Recession)가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죠. 


▶ 2001년 9월 15일판 기사

: 'America attacked - The day the world changed 





※ 2002년-2005년

: 2008 금융위기의 씨앗이 뿌려지다

: 미국 부동산가격 상승 · 유로화 도입


2002년-2005년은 '2008 금융위기[각주:2]' '2010 유럽재정위기'[각주:3]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입니다. 


2001년 경기침체를 경험한 미국은 1%대의 초저금리 정책을 2004년까지 유지합니다. Fed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기준금리 정상화를 시도하였으나, 이미 미국 부동산가격은 오를만큼 오른 상태였죠. 이후 미국 부동산은 2006년을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하였는데.....


2002년의 또 다른 사건은 바로 '유로화의 도입' 이었습니다. '하나의 유럽'을 위해 노력해온 유럽인들은 유로화를 도입하며 여러 국가들이 '단일통화'(single currency)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죠. 그런데 단일통화 사용이 훗날 경제위기를 심화시킬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2002년 1월 5일

'유럽의 원대한 구상' (Europe's big idea)

 

2002년은 '유로화'(€, euro)가 도입되어서 사용되기 시작한 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유럽국가들은 경제통합을 통해 무력충돌을 방지하려는 생각을 하게되고, 1999년 유럽통화동맹(EMU) 결성 · 2002년 유로화(€, euro) 도입으로 유럽통합의 결실을 맺습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이제 '유로존'(eurozone)으로 불리게 되었죠.


이때 당시에, 서로 다른 유럽국가들이 '단일통화'(one currency)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경제학자들간의 논란이 많았습니다. Martin Feldstein(마틴 펠트스타인)과 Paul Krugman(폴 크루그먼) 등은 상이한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들끼리 단일통화를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쪽 경제학자들과 유럽위원회(EC)는 유로화 도입을 그대로 밀어붙였고, 어찌됐든 2002년부터 독일 · 프랑스 · 그리스 · 스페인 등에서 유로화는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로화 도입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8년 뒤에 현실화 될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한채 말이죠.  


(참고 :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 


▶ 2002년 1월 5일판 기사

: 'The euro - Europe's big idea'    




2002년 3월 30일

'세계를 구하는 부동산' (The houses that saved the world)



앞서, 2000년~2001년 IT산업 거품 붕괴와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이 경기침체를 겪었다는 사실과 Fed의 초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2002년부터 미국경기가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Fed는 2001년 한해동안 기준금리를 6.50%에서 1.75%로 무려 4.75%p나 인하시켰고, 2001년 4분기에 0.2%로 저점을 찍은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점차 증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Fed의 확장적 통화정책은 어떤 경로를 통해 미국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었을까요? 미국경제를 회복시킨 것은 바로 '부동산'(housing market) 이었습니다. 


<The Economist> 2002년 3월 30일판 기사는 "부동산이 깊은 침체로부터 세계경제를 구해냈다." 라고 말합니다. (They have helped to shelter the whole world economy from deep recession.) 



● 2001년 Fed의 초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부동산가격 상승


2000년 1월 미국 부동산가격을 100이라고 했을때, 2002년 3월 123.32로 23%나 상승했습니다. 이후에도 부동산가격은 계속 상승하여서 2005년 12월 202.17로 5년 사이에 부동산가격이 2배나 올랐습니다. 

 

Fed의 초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손쉽게 대출을 받게된 미국인들은 부동산구매에 나서게 되고 부동산가격은 크게 상승합니다. IT산업 거품 붕괴를 경험한 미국인들은 주식보다는 부동산구매에 힘을 쏟았죠. 


부동산가격 상승을 맞은 미국인들은 경제상황을 좋게 판단하였고 소비를 늘렸습니다. 증가된 소비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 동아시아 국가들의 과잉저축,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Fed의 확장적 통화정책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유입된 자본 또한 부동산가격을 상승시켰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위기재발을 막기 위하여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보유고 축적'에 힘을 쏟습니다. 이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획득한 달러화를 이용하여 미국 채권을 구매하였고, 그 결과 미국내로 상당한 양의 자본이 유입됩니다.(capital inflow)


1998년 1분기 미국 자본·금융계정 흑자 규모는 약 1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00년 이후부터 자본·금융계정 흑자 규모가 약 1,000억 달러를 넘는 모습을 그래프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으로 유입된 자본은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고, 바로 앞에서 봤듯이 미국 부동산가격은 크게 상승합니다.


Fed의 초저금리 정책 때문이든 동아시아 국가로부터 유입된 자본때문이든, 미국 부동산가격 상승은 2001년의 경기침체로부터 미국경제를 구해냈습니다.


그런데 5년 사이에 2배나 상승한 미국 부동산가격이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을까요? 갑자기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2002년 3월의 <The Economist>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미국 부동산가격이 갑작스레 반전하면 경기회복에 해를 끼칠 것이다. 그러나 미국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지 않는한 갑작스런 반전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a sudden reversal is unlikely unless interest rates were to rise sharply.) 


현재 미국경제의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기준금리는 천천히 상승할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가격은 폭락하지 않은채 그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라고 말이죠.[각주:4]


그런데... 미국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이... 2년 뒤인 2004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 Fed의 통화정책과 부동산가격 상승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 경제학자 John Taylor "Fed의 통화정책이 부동산가격 거품을 초래했다"

- '2000년대 미국 부동산시장 거품은 Fed의 저금리 정책 때문이다?'

: 2006년-2014년 Fed 의장 Ben Bernanke "Fed의 통화정책과 부동산가격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

-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이 미국 부동산거품을 만들었는가?'


▶ 동아시아의 경상수지 흑자와 미국 부동산시장의 관계에 관하여

: 경상수지 흑자와 자본·금융수지의 관계

-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 글로벌 과잉저축(Global Saving Glut)과 미국 부동산시장

-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 2002년 3월 30일판 기사

: 'International house prices - The houses that saved the world'

: 'House prices - Going through the roof'




2005년 6월 18일

'부동산가격이 하락한 이후' (After the fall)


2002년 3월 30일 세계를 구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부동산. 하지만 2005년 6월 18일에는 "부동산가격이 하락하고 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라는 걱정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 부동산가격의 큰 폭 상승 - 부동산시장의 거품 우려


앞서 봤듯이, 미국 부동산가격은 2002년 이후로도 계속해서 상승했습니다. 2002년 중반 134.10 이었던 부동산가격지수는 2005년 6월에는 189.53, 10월에는 202.17을 기록하였죠. 


부동산가격이 끝도없이 치솟자 <The Economist>는 "이러한 붐(boom)은 전례가 없었다. 지난 5년간 전세계 부동산가격 상승은 역사상 가장 큰 거품이다. 상승폭(boom)이 클수록 하락폭(bust)도 클 것이다." 라고 우려를 표시합니다[각주:5].



● 주택담보대출 부채규모 대폭 증가 - 부동산가격 폭락시 거시경제 문제 초래


이어서 <The Economist>는 2000년-2001년 IT 산업 발전에 따른 주식시장 거품과 붕괴를 겪었던 미국이지만, 부동산시장 거품은 주식시장 거품과 비교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주식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돈으로 투자를 합니다. 은행대출을 받아서까지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그러나 부동산을 구매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은행대출을 이용합니다. 주택담보대출(mortgage)을 통해 부동산가격의 일정부분을 충당하죠. 


따라서, 주식가격이 폭락하면 투자자 한명만 손실을 보는 반면에, 부동산가격이 폭락하면 투자자 뿐만 아니라 은행도 손실을 보게되고 금융시스템이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각주:6]. 


2001년 이후 미국 부동산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미국인들의 주택담보대출 부채규모도 크게 증가하였는데, 2001년 1분기 약 5조 달러였던 부채규모는 2005년 4분기 약 9조 달러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 Fed는 왜 부동산시장 가격상승을 방치했는가



부동산가격 거품 가능성과 주택담보대출 부채의 큰 폭 상승을 지켜본 <The Economist>는 화살을 Fed의 통화정책으로 돌립니다. 


2001년의 경기후퇴를 막기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했던 Fed는 2001년부터 2004년 중반까지 약 3년간 1%대의 초저금리를 유지했습니다. 이후 경기상황이 호전되고 부동산가격 거품이 우려되자 Fed는 2004년 중반부터 2005년 6월까지 1년동안 기준금리를 2.25%p 상승시켜 기준금리 3.25%를 만들었습니다.  


<The Economist>는 당시 Fed 의장이었던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의 이러한 통화정책이 늦은 것 아니냐는 시각을 보입니다. 좀 더 빨리 기준금리를 올려서 부동산시장의 열을 식혀야 했다는 것이죠.

(Ideally, the Fed should have tried to cool the housing boom by raising interest rates sooner and by giving clear verbal warnings to buyers, as Britain's and Australia's central banks have done.)


●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동안 4.25%p나 상승한 기준금리


어찌됐든 미국 Fed는 3년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하다가 2004년이 되어서야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후 2년간 4.25%p나 인상했습니다. '초저금리의 장기간 유지' +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의 조합이죠.


2002년 3월 30일판 <The Economist>가 "미국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지 않는한 부동산가격의 갑작스런 반전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한 사실을 기억합시다.


2002년의 기대와는 달리 2005년의 부동산가격은 더욱 더 올랐고 기준금리는 가파르게 인상되고 있었습니다.


● 세계경제 위험성이 높아지다


이로인해 세계경제의 위험성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2005년 6월, 경제위기가 현실화된 것은 아니었으나 <The Economist>는 위기의 가능성을 매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각주:7].


2년 뒤인 2007년, <The Economist>의 걱정은 현실화 됩니다.


▶ 2005년 6월 18일판 기사

: 'House prices - After the fall'

: 'The global housing boom - In come the waves'




※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안타깝게도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 큰일나지 않을까?" 라는 <The Economist>의 걱정은 현실화 됩니다.


2006년을 정점으로 미국 부동산가격이 하락하자,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2008 금융위기가 발생하였죠. 다음글을 통해 '2007년-2009년 세계경제'를 알아봅시다.


다음글 '[2007년-2009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② - 2008 금융위기 발생'


  1.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2.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3. [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223 [본문으로]
  4. (House prices cannot continue rising at their current pace. A sudden reversal in prices would harm the recovery, but the news on that is good: a sudden reversal is unlikely unless interest rates were to rise sharply. With little evidence of increasing inflationary pressures, rates are likely to be raised slowly. If so, prices are more likely to flatten off rather than collapse.) [본문으로]
  5. (This boom is unprecedented in terms of both the number of countries involved and the record size of house-price gains. Measured by the increase in asset values over the past five years, the global housing boom is the biggest financial bubble in history (see article). The bigger the boom, the bigger the eventual bust.) [본문으로]
  6. (One other big difference between houses and shares is more cause for concern than comfort: people are much more likely to borrow to buy a house than to buy shares. In most countries, the recent surge in house prices has gone hand-in-hand with a much larger jump in household debt than in previous booms. Not only are new buyers taking out bigger mortgages, but existing owners have increased their mortgages to turn capital gains into cash which they can spend. As a result of such borrowing, housing booms tend to be more dangerous than stock market bubbles, and are often followed by periods of prolonged economic weakness.) [본문으로]
  7. (The whole world economy is at risk. The IMF has warned that, just as the upswing in house prices has been a global phenomenon, so any downturn is likely to be synchronised, and thus the effects of it will be shared widely. The housing boom was fun while it lasted, but the biggest increase in wealth in history was largely an illusion.)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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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된 기술의 혁신 - 저성장의 길을 걷게 될 세계경제정체된 기술의 혁신 - 저성장의 길을 걷게 될 세계경제

Posted at 2012. 9. 1. 00:27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생산성, 혁신


인터넷 상에서 "천조국의 위엄"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퍼진 1900년대 초반의 뉴욕.
사람들은 1900년대 초반의 이 사진을 보고, "역시 미국은 대단해 ㄷㄷ"를 외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 사진을 보고 "이제 고성장 시대는 지나갔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왜 그럴까?





경제성장은 실질GDP의 증가를 의미하는데, 실질GDP의 증가를 위해서는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경제활동인구"의 증가가 필요하다.

일인당 실질 GDP = 평균 노동생산성 x 총인구 중 취업자 비율
Y/POP = Y/N x N/POP

이때,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기술의 발달"

"아니, 기술은 21세기 들어 더더욱 발전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 라는 물음이 나올 수 있지만, 노동생산성과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킨 기술은 2차 산업혁명 이후 등장하지 않고 있다.

Robert Gordon 교수 쓴 흥미로운 논문을 소개.



1차 산업혁명 (증기기관, 철도) : 1750~1830

2차 산업혁명 (전기, 연소엔진, 상수도시설, 실내화장실, 통신시설, 오락, 화학, 석유) : 1870~1900

3차 산업혁명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폰) : 1960~현재


2차 산업혁명은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다. 2차 산업혁명은 지난 80년-1890~1972-동안의 급격한 생산성 성장을 이끄는데 최고의 공을 세웠다. 


(IR #1 (steam, railroads) from 1750 to 1830; 

IR #2 (electricity, internal combustion engine,

running water, indoor toilets, communications, entertainment, chemicals, petroleum) from 1870 to

1900; and 

IR #3 (computers, the web, mobile phones) from 1960 to present. It provides evidence

that IR #2 was more important than the others and was largely responsible for 80 years of relatively

rapid productivity growth between 1890 and 1972.)


(PDF파일 기준 - 2 페이지)


Robert Solow 교수의 연구 이후, 경제성장은 영원히 지속되는 연속적인 과정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1750년도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제는 성장하지 않았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250년 동안 급속히 이루어졌던 경제성장은 인류 역사에 있어 독특한 사건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미래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는 보장 못한다.

(Since Solow’s seminal work in the 1950s, economic growth has been regarded as a continuous process that will persist forever. But there was virtually no economic growth before 1750, suggesting that the rapid progress made over the past 250 years could well be a unique episode in human history rather than a guarantee of endless future advance at the same rate.)

3 페이지

1870-1900년도 사이에 발생한 2차 산업혁명은 삶의 질의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1879년 말, 석달 사이에 전구와 내부연소기관이 발명되었다. 집 안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시설의 숫자는 30년 사이에 10배로 증가했다. 1880년대에 전화, 축음기, 활동영상이 발명되었다. 2차 산업혁명의 혜택은 엘리베이터·전자기기·소비재부터 자동차·트럭·비행기, 고속도로·교외도시·슈퍼마켓, 하수구 같은 부수적인 발명까지 포함한다. 이 모든 것들이 1929년도 안에 만들어졌다. 

텔레비전, 에어컨, 주간 고속도로 같은 추가적인 발명과 그것의 영향은 1970년도까지 계속되었다. 2차산업혁명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고, 그것의 영향은 100년에 걸쳐있다.

(The second industrial revolution (IR #2) within the years 1870-1900 created within just a few years the inventions that made the biggest difference to date in the standard of living. 

Electric light and a workable internal combustion engine were invented in a three-month period in late 1879. The number of municipal waterworks providing fresh running water to urban homes multiplied tenfold between 1870 and 1900. The telephone, phonograph, and motion pictures were all invented in the 1880s. The benefits of IR #2 included subsidiary and complementary inventions, from elevators, electric machinery and consumer appliances; to the motorcar, truck, and airplane; to highways, suburbs, and supermarkets; to sewers to carry the wastewater away. All this had been accomplished by 1929, at least in urban America, although it took longer to bring the modern household conveniences to small towns and farms. 

Additoinal “follow-up” inventions continued and had their main effects by 1970, including television, air conditioning, and the interstate highway system. The inventions of IR #2 were so important and far-reaching that they took a full 100 years to have their main effect.)

5-6 페이지

  • 제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175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에게 경제성장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 제2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1870년 이후, 그 파급효과 지속된 1970년대까지 인류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2차 산업혁명 때 벌어진 "위대한 발명"들은 사람들의 삶과 노동환경을 아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1870년 이후 100년동안 그 영향은 계속되었다. 2차 산업혁명 때 발명된 것들은 크게 5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1) 전기와 그 파급효과
(2) 내부연소기관, 그리고 고속도로의 발전
(3) 상수도시설, 중앙난방
(4) 석유, 화학, 플라스틱, 약품 등과 관련된 분자구조 재배열
(5) 1885년과 1900년 사이에 발명된 통신·오락수단 - 전화, 축음기, 사진기, 라디오, 활동영상

(The “Great Inventions” of the Second Industrial Revolution (IR #2) utterly changed living and working conditions, particularly in urban America, within half a century and their full impact was largely complete during the century following 1870. The inventions can be grouped into five categories: 

(1) electricity and all its spin-offs; 
(2) the internal combustion engine and all its subsidiary improvements right up to the interstate highway system; 
(3)running water, indoor plumbing, and central heating; 
(4) rearranging molecules, including everything to do with petroleum, chemicals, plastics, and pharmaceuticals; 
and finally 
(5) the set of communication and entertainment devices invented within the remarkably short period between 1885 and 1900, including the telephone, the phonograph, popular photography, radio, and motion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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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평범한 이야기다. 2차 산업혁명이 인류의 삶을 바꿔놓았다는 이야기.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핵심은 이제부터.


교통수단의 속도변화는, 경제성장은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대담한 주장을 잘 설명해준다. 1830년 까지만 하더라도, 승객과 화물의 이동속도는 말과 배의 속도에 의해 제한되었었는데, 1958년 보잉707기가 도입될때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그 이후로, 이동속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사실 오늘날 비행기는 연료보존을 위해 1958년보다 느리게 비행한다.

(The audacious idea that economic growth was a one-time-only event has no better illustration than transport speed. Until 1830 the speed of passenger and freight traffic was limited by that of “the hoof and the sail” and increased steadily until the introduction of the Boeing 707 in 1958. Since then there has been no change in speed at all and in fact airplanes fly slower now than in 1958 because of the need to conserve fuel.)

4 페이지

2차 산업혁명의 일반적인 특징은 획기적인 발전이 단 한번 일어났다는 것이다. 1세기 동안 이동속도는 말에서 제트 비행기로 증가했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1870년에, 겨울에는 몹시 춥고 여름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던 실내온도는 지금은 22도 근처에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인구 75%가 시골에서 살던 미국이 인구의 80%가 도시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러한 발전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1970년 이후, 생산성의 증가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2차 산업혁명이 가지고 온 위대한 발명과 그 파급효과의 일회성 혜택이 발생했었고, 그러한 일이 이제는 두 번 다시 발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차 산업혁명의 위대한 발명을 따르는 부수적인 발전이 발생하긴 했었다. (그러나) 1970년 이후의 이러한 발전들은 (단지) 2차 발전이다. 근거리 비행기, 교외지역까지의 고속도로 확장, 중앙 냉방으로의 변환 같은...

(A common feature of this innovative revolution was that many of the improvements could only happen once. Speed of travel was increased from that of the horse to the jet plane in a century but could not happen again. The interior temperature that in 1870 alternated between freezing cold in the winter and stifling heat in the summer reached a year-round 72 degrees Fahrenheit (22C), and that could not happen again. The U.S. was transformed from 75 percent rural to 80 percent urban, and that could not happen again.

The growth of productivity (output per hour) slowed markedly after 1970. While puzzling at the time, it seems increasingly clear that the one-time-only benefits of the Great Inventions and their spin-offs had occurred and could not happen again. Diminishing returns set in, and eventually all of the subsidiary and complementary developments following from the Great Inventions of IR #2 had happened. All that remained after 1970 were second-round improvements, such as developing short-haul regional jets, extending the original interstate highway network with suburban ring roads, and converting residential America from window-unit air conditioners to central air conditioning.)

12-13 페이지

지난 10년간 (인류는) 노동력을 절감하는 혁신에 집중하지 않아다. 인류가 이전에 해왔던 똑같은 것들, 오락과 통신 기기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었다. 단지 지금은 더 작고 더 편리할 뿐이다. 아이팟은 CD 워크맨을 대체했고, 스마트폰은 피쳐폰을 대체했고, 아이패드는 전통적인 PC와 경쟁한다. 이러한 혁신들은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은 인간 노동을 기계로 바꾼 것과 같은 역사적 변환의 연속이 아니라 그저 놀이를 위한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다.

(Attention in the past decade has focused not on labor-saving innovation, but rather on a succession of entertainment and communication devices that do the same things as we could do before, but now in smaller and more convenient packages. The iPod replaced the CD Walkman; the smartphone replaced the garden-variety “dumb” cellphone with functions that in part replaced desktop and laptop computers; and the iPad provided further competition with traditional personal computers. These innovations were enthusiastically adopted, but they provided new opportunities for consumption on the job and in leisure hours rather than a continuation of the historical tradition of replacing human labor with machines.)

15~17 페이지



  • 1996년-2004년 사이에 발생한 IT 혁명은 "신경제 New Economy"로 불렸지만, 그것은 단지 버블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제2차 산업혁명의 파급효과가 미친 1891년-1972년 동안, 인류는 높은 노동생산성 향상을 달성했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기술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제 나온다.



너는 A와 B 둘 중에 선택을 해야한다. 

A : 당신은 아마존에 접속할 수 있는 윈도우 98 노트북을 포함하여, 2002년산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상수도시설과 실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2002년 이후로 발명된 어떤 것도 사용할 수 없다.

B : 당신은 지난 10년간 발명된 모든 것, 페이스북·트위터·아이패드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상수도시설과 실내 화장실을 포기해야 한다. 당신은 차를 이용하여 물을 집으로 운반해야 한다. 비가 내리는 새벽 3시에도 당신은 진흙길을 걸어서 바깥에 있는 화장실로 가야한다.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You are required to make a choice between option A and option B. With option A you are allowed to keep 2002 electronic technology, including your Windows 98 laptop accessing Amazon, and you can keep running water and indoor toilets; but you can’t use anything invented since 2002.

Option B is that you get everything invented in the past decade right up to Facebook, Twitter, and the iPad, but you have to give up running water and indoor toilets. You have to haul the water into your dwelling and carry out the waste. Even at 3am on a rainy night, your only toilet option is a wet and perhaps muddy walk to the outhouse. Which option do you choose?)

16 페이지


이 글을 읽고도,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데?" 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경제성장과 생산성 향상을 돕는, 기술의 획기적인 혁신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있다." 라는 것이다.

1900년대 초반의 뉴욕과 지금의 뉴욕은 물론 다르다. 
그런데 큰 틀에서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삶의 양식이 비슷하다.

콘크리트 건물, 실내 화장실, 상수도시설, 자동차, 비행기, 전구, 실내난방.

Charley James 라는 한 네티즌은 이 논문을 보고

3차 산업혁명은 일부 사람들의 삶을 좀 더 즐겁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2차 산업혁명은 모두의 삶을 발전시켰다. 나는 할머님이 하시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는데, 아파트로 이사하고 상수도시설이 설치된 것은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다고 하셨다.나는 스마트폰이나 스크린이 더 커진 TV로 인해, 자신의 삶이 마법 같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IR3 possibly made life more fun for some people but IR2 improved life for everyone it touched. I can recall one of my grandmothers talking about how magical it was to move into an apartment with indoor plumbing; I've never heard anyone say how their life was made "magical" because of a new smartphone or a TV with a bigger screen.)

라는 댓글을 남겼다.


좀 더 논리적인 글을 원한다면,

기술은 넓은 의미에서 생산성 성장에 결정적인 요소이다. 사실상 1950년대에 MIT의 로버트 솔로(Robert Solow)가 이 방면의 초창기 연구를 내놓은 이래, 장기 성장 문제의 분석가들은, 기술이 끊임없이 진보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은 서서히 멈출 것이며 기술의 끊임없는 진보야말로 생산성 증가의 주요 원천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었다.

생산성 둔화에 관한 기술적 측면의 설명은, 성장이라는 사활적인 엔진에서 증기가 다 빠진 것은 미국 경제의 기본 구조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전후 호경기의 토대였던 기술들이 거의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

그러나 "잠깐,"하고 여기서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싶은 독자가 있을지 모른다. "지난 20년간은 급격한 기술 진보의 시대가 아니었는가? 개인용 컴퓨터, 팩시밀리, 이동 전화, VCR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어떻게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좋은 지적이지만, 답변할 말은 있다. 경제사학자들은 새로운 기술이 생산성과 생활 수준에 중대 영향을 미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라고 본다. 예컨대, 산업 혁명을 일으켰던 결정적인 기술 혁신은, 재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1764년 하그리브스가 발명한 체니 방적기였다. 그렇지만 영국의 전반적인 산업화는 1810년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고, 실질 임금은 1840년대에 와서야 두드러지게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

이와 같이 시간의 지체가 발생하는 원인은 기술이 고립되어 사용될 때에는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기술은 널리 응용되고 또 다른 기술들과 상호 작용을 할 때라야만 그 잠재적 진가가 발휘 될 수 있다. 자동차는 희귀품일때는 부자의 노리개이지만, 포장 도로가 거미줄처럼 깔리고 주유소와 수리점이 곳곳에 들어서면, 그리고 거대한 백화점이 시내 번화가가 아니라 근교의 한적한 곳에 들어서면 훨씬 일반화된다. 이렇게 순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의 기술이 생산에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그 기술을 사용해 보고 또 보강해 주는 조직적인 과정이야말로 그 기술이 널리 사용되게 하는 원인이자 결과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술은 그것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수십 년 동안은 피상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며, 최소 한도의 일반화에 도달해야 비로소 꽃필 수 있는 것이다.

(...)

요점은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이와 같은 기술이 대부분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여전히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 상당 부분이 도입된 지 벌써 20년도 넘는다. 예컨대, 아직까지도 여객기의 대명사인 보잉 747기가 도입된 것이 1969년이라면 놀랍지 않은가. 오늘날 기종이 개량형이기는 해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

이 점을 러셀 베이커는 더욱 인상적인 말로 지적하고 있다. "1940년으로 돌아가 보면, 1940년은 그저 어제 같을 뿐인데, 1890년만 해도 중세 암흑 시대 같은 것은 왜 일까?"

폴 크루그먼. 1997. 『경제학의 향연』. 82-84 쪽


"경제가 어떻게 하면 성장을 하는지", "왜 어떤 나라는 경제성장에 성공하고 어떤 나라는 실패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세계경제가 1890년-1972년에 보여줬던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왜 저성장의 길을 걷는지"에 대한 하나의 가설일 수 있지만, 이와 비슷한 관점을 여러 경제학자들이 내비쳐 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으로 세계경제는 저성장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사실.

현재의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컨설팅 기업 모니터그룹 스티븐 제닝스 CEO가 말하는 '저성장 시대의 생존 비법'". <조선일보>. 2012.07.06


<추가>

Tyler Cowen의 주장

"Stagnation or inequality-Has the American economy exhausted the easy sources of growth?". 2011.03.03. <The Economist>

Robert Gordon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

"Productivity and growth-Was that it?". 2012.09.08. <The Economist>

"Growth-Everything's amazing and nobody's happy". 2012.09.11. <The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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