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금융위기 원인과 해결책에 관한 논점들2008 금융위기 원인과 해결책에 관한 논점들

Posted at 2014.11.03 09:07 | Posted in 경제학/2008 금융위기


※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을 방치했던건 옳은 선택이었을까?

- 대마불사(too big to fail)와 청산주의(liquiditionism)


2007년 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부터 시작된 경기침체는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각주:1]로 커졌다. 2008년 초, 미국 재무부와 Fed는 국영모기지업체 페니매이와 프레디맥, 투자은행 메릴린치 · 베어스턴스에 구제금융자금을 투입해 이들을 살려냈는데, 리먼브러더스에는 구제금융자금을 투입하지 않았다


따라서, 몇몇 학자들은 "당시 Fed가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방치한 결과,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당시 Fed 의장이었던 Ben Bernanke는 "은행을 구제해주는 것은 대마불사를 초래한다." "Fed는 지급불능(insolvent) 상태였던 리먼브러더스를 구제할 법적근거가 없었다." 라고 항변한다. 


그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열렸던 강연을 통해, "구제금융을 해준 은행과 파산을 내버려둔 은행과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각주:2]"의 학생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좋은 질문입니다. (구제금융을 해준 베어스턴스 등과 파산을 방치한 리먼브러더스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가 내렸던 판단에는 은행의 크기, 상황의 복잡성, 상호연관성 등이 고려되었죠. 다시 말하지만, 금융개혁의 주요목표는 금융시스템 전체에 해를 끼치는 대마불사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몇가지 선택사항 중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죠.


위기동안 우리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구제금융을 해준) AIG의 경우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의 행동(구제금융)이 필요한 사안이었죠. 그러나 리먼브러더스는 지급불능(insolvent)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도움이 소용 없었습니다.(But there we were helpless because it was essentially an insolvent firm.)


리먼브러더스는 Fed로부터 자금을 빌릴 담보가 부족 했었습니다. 우리는 지급불능 상태인 기업에 자본을 투입할 수가 없었죠. 그때는 부실자산경감법안(TARP)에 의해 재무부가 자금을 지원할 근거가 뒷받침되기 이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리먼브러더스를 구제해 줄 법적근거가 없었죠.(So we had no legal way to save Lehman Brothers.)


Ben Bernanke. 2014. 『The Federal Reserve and the Financial Crisis』 . 93


그렇지만 "리먼브러더스는 지급불능 상태가 아니다." 라는 2008년 당시 뉴욕 Fed의 검토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Fed 의장이었던 Ben Bernanke, 재무장관 Henry Paulson, 뉴욕 연방준비은행장 Timothy Geithner는 그동안 "Fed가 리먼브러더스를 구할 법적근거가 없었다." 라고 말해왔다[각주:3]. 그러나 당시 뉴욕 Fed에서 근무했던 내부인사들은 이와 정반대의 말을 한다. 리먼브러더스는 지급가능상태(solvent) 였고 구제금융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 보고서는 상부에 전달되지 않았었다[각주:4].  


리번브러더스를 구제할 것이냐의 문제에는 던져야할 질문이 있다. 리번브러더스는 Fed로부터 자금을 빌린 다음 상환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지고 있었는가?. 당시 뉴욕 Fed 내 전문가들은 리먼브러더스에게 그만한 자산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Timothy Geithner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알지 못했다. Bernanke와 Paulson 또한 이러한 결과를 몰랐다고 인터뷰했다[각주:5].


익명을 요구한 Fed 관계자는, "리번브러더스에게 생명줄을 던질 권한은 정부에게 있었다. Fed는 (리먼브러더스 이전에) 별다른 분석 없이 베어스턴스를 구제해 주었고 (리번브러더스 이후에) AIG도 구제했다. 정부는 아메리카은행,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을 구제해주었다. 결국, 리먼브러더스가 구제금융을 받았어야 했느냐의 여부는 엄격한 규칙보다는 즉흥적 판단이 필요했다." 라고 말한다. 


다른 관게자는 "(리먼브러더스를 구제하느냐 여부는) 법리적 문제가 아니에요. 그건 정책적 그리고 정치적 결정이었어요." 라고 말한다.     

  
'Revisiting the Lehman Brothers Bailout That Never Was'. <NYT>. 2014.09.30


경제학자 Alan Blinder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2008 금융위기 사건 속의 중대한 분기점 이었습니다. 그리고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도록 내버려둔 결정 또한 중대한 분기점 이었죠. Fed는 그 당시 결정을 법리적인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말로 그런가요? 그게 타당한가요? 이것은 중요한 질문입니다.[각주:6]" 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베어스턴스, AIG 등과는 달리 리먼브러더스에는 구제금융을 하지 않은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일관성이 없다(inconsistency)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리먼브러더스에게만 구제금융을 하지 않은 결정은 규칙을 집어던진 것입니다.[각주:7]"


Ben Bernanke의 항변처럼 위험에 빠진 은행을 무작정 구제해주는 것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문제를 초래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2008년 당시 리먼브러더스를 파산하도록 방치한 결정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불러왔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이 사안을 통해 우리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초래하는 문제'와 '청산주의(liquitionism)가 초래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경제를 살릴 것인가, 은행을 살릴 것인가


"리번브러더스를 구제해 주었어야 했나" 라는 문제를 넘어서,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학자들도 있다[각주:8]


경제학자 Atif MianAmir Sufi는 "2008 금융위기의 원인은 금융기관의 파산과 그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붕괴가 아니다. 금융위기 발생 이전, 저소득계층의 부채비율이 크게 증가하였고 이들에게 부동산가격 하락의 손실이 집중되었다. 한계소비성향이 큰 이들 부채가구의 지출은 크게 줄어들었고, 총수요감축으로 이어져 경제전체에 악영향을 끼쳤다. 즉, 2008 금융위기는 '부채로 인한 손실집중' 문제이다." 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 '하위계층의 높은 부채비율. 부동산가격 하락의 손실을 집중시키다 - 『House of Debt』'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 안정화정책과 청산주의 대립

- 과도한 정부부채가 문제인가

- 3차례 양적완화는 올바른 정책이었나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과 해결책에 관한 논점들'을 통해,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원인과 해결책에 관한 논점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가장 크게 대립하는 논점은 1997 외환위기 원인을 '일시적인 문제'로 보느냐, '구조적인 문제'로 보느냐 이다. 만약 일시적인 문제를 강조한다면 필요한 정책은 '안정화정책'(stabilization policy) 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강조한다면 '청산주의'(liquidationism)에 입각한 장기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논점들은 2008 금융위기[각주:9]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안정화정책과 청산주의가 대립한 첫번째 주제는 바로 '정부부채' 이다. 


"정부부채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불황에서 빨리 탈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각주:10]." 라고 생각한 경제학자들은 확장정책(expansionary)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과도한 정부부채는 향후 인플레이션율을 높이고 경제성장률을 낮추므로, 정부부채를 축소하는 긴축정책(austerity)이 필요하다." 라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성장 vs 긴축 논쟁'은 몇 차례의 글을 통해 자세히 다룬바 있다.

'문제는 과도한 부채가 아니라 긴축이야, 멍청아!',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케네스 로고프-카르멘 라인하트 논문의 오류', '정부부채와 경제성장의 관계 - a Magic Threshold는 존재하는가'.    

 

그리고 안정화정책과 청산주의가 대립한 두번째 주제는 '양적완화[각주:11] 등 공격적인 통화정책의 효과' 이다. 


안정화정책을 중시하는 쪽은 "양적완화 등의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산출량을 회복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한다. 반면, 청산주의를 강조하는 쪽은 "양적완화는 일시적인 대책이고 고통을 잠시 잊게하는 주사에 불과하다. 통화정책은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글을 통해 자세히 다룰 게획이다.




※ Fed의 저금리정책은 버블을 초래하지 않을까


2014년 10월 29일(목), Fed의 3차 양적완화[각주:12]공식적으로 종료[각주:13]되었다. 금융위기 이후 Fed가 3차례의 양적완화를 시행하면서 가장 많이 제기되었던 우려는 '하이퍼 인플레이션 가능성' 이었다. 막대한 양의 유동성을 경제시스템에 주입하면 당연히 인플레이션율이 크게 올라갈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유동성함정에 빠졌는가? - 커지는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살펴봤듯이, 현재 세계경제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계속적인 확장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라고 누차 주장해왔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까지 확장적 통화정책을 써야하는 것일까? Fed는 2008년 12월 이후로 기준금리 0.25%를 설정하고 있는데, 이토록 오랫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해도 되는 것일까?


2000년대 초반의 Fed도 오랜기간 저금리기조를 유지해왔다. 이에 대해 "이러한 저금리정책이 부동산시장 거품을 만들었다." 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Ben Bernanke는 이런 비판에 대해  "2000년대 초반 미국부동산 가격이 급등한건 Fed의 저금리정책 때문이 아니다[각주:14]. 글로벌 과잉저축 때문[각주:15]이다." 라고 반박했다. 


그렇지만 최근 6년간의 저금리정책은 2000년대 초반의 실수(?)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또한, 국제결제은행(BIS)는 2014년 6월에 발간한 Annual Report를 통해  "Fed의 저금리정책이 금융불안정성을 키운다." 라며 우려를 표한다.


다음글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시리즈를 통해,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이 부동산시장 거품을 만들었다." 라는 주장과 "오늘날 Fed의 저금리정책이 금융불안정성을 키운다"라는 BIS 주장을 살펴볼 것이다.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①] 금융발전이 전세계적으로 리스크를 키우지 않았을까?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②] 2008년 이후의 통화정책, 리스크추구 행위를 유발하다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③] Fed의 초저금리 정책은 자산시장 거품(boom)을 만들고 있을까?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④] 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쟁 - Fed & Krugman vs BIS & Rajan 



  1.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2014.03.25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2. "You mentioned several large firms that came under pressure in 2008 and also the Fed’s doctrine, if you will, of “too big to fail.” Where do you draw the line between bailing out a bank and allowing it to fail? Is it arbitrary or is there some sort of methodology that the Fed goes by?". Ben Bernanke. 2014.『The Federal Reserve and the Financial Crisis』. 93. [본문으로]
  3. Ben S. Bernanke, the Fed chairman at the time, Henry M. Paulson Jr., the former Treasury Secretary, and Timothy F. Geithner, who was then president of the New York Fed, have all argued that Lehman Brothers was in such a deep hole from its risky real estate investments that Fed did not have the legal authority to rescue it. 'Revisiting the Lehman Brothers Bailout That Never Was'. NYT. 2014.09.30 [본문으로]
  4. "But now, interviews with current and former Fed officials show that a group inside New York Fed was leaning toward the opposite conclusion — that Lehman was narrowly solvent and therefore might qualify for a bailout. In the frenetic events of what has become known as the Lehman weekend, that preliminary analysis never reached senior officials before they decided to let Lehman fail.". 'Revisiting the Lehman Brothers Bailout That Never Was'. NYT. 2014.09.30 [본문으로]
  5. "Whether to save Lehman came down to a crucial question: Did Lehman have enough solid assets to back a loan from the Fed? Finding the answer fell to two teams of financial experts at the New York Fed. Those teams had provisionally concluded that Lehman might, in fact, be a candidate for rescue, but members of those teams said they never briefed Mr. Geithner, who said he did not know of the results.. (...) Mr. Bernanke and Mr. Paulson said in recent interviews with The Times that they did not know about the Fed analysis or its conclusions.". 'Revisiting the Lehman Brothers Bailout That Never Was'. NYT. 2014.09.30 [본문으로]
  6. “"There is close to universal agreement that the demise of Lehman Brothers was the watershed event of the entire financial crisis and that the decision to allow it to fail was the watershed decision,” Alan S. Blinder, an economics professor at Princeton and former vice chairman of the Fed, wrote in his history of the financial crisis, “After the Music Stopped.” “The Fed has explained the decision as a legal issue,” Mr. Blinder said in an interview. “But is that true or valid? Is it enough? Those are important questions.”". 'Revisiting the Lehman Brothers Bailout That Never Was'. . 2014.09.30 [본문으로]
  7. "Scholars are still struggling with the claim that the Fed could not rescue Lehman but was nonetheless able to save Bear Stearns and A.I.G. What is clear to Mr. Blinder, he says, is that the decision was a formula for panic. “The inconsistency was the biggest problem,” Mr. Blinder said. “The Lehman decision abruptly and surprisingly tore the perceived rule book into pieces and tossed it out the window.”" 'Revisiting the Lehman Brothers Bailout That Never Was'. . 2014.09.30 [본문으로]
  8. 리먼브러더스 구제 여부는 금융위기 이전의 문제-즉 파산을 내버려둔 결정때문에 위기가 커졌다 라는 문제. 그러나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이 정당한가 여부는 금융위기 이후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가의 문제이지만. [본문으로]
  9.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2014.03.25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10. 'GDP 대비 부채비율에서 중요한 건 GDP!. 2012.10.21 [본문으로]
  11. '양적완화(QE)는 어떻게 작동할까?. 2012.09.17 [본문으로]
  12. '美 FRB의 QE3 - 유동성함정 & 하이퍼인플레이션'. 2012.09.14 [본문으로]
  13. '3차 양적완화 종료'. 2014.10.30 https://www.facebook.com/joohyeon.economics/posts/953730444640543 [본문으로]
  14.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이 미국 부동산거품을 만들었는가?. 2014.03.27 [본문으로]
  15.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2014.07.11 [본문으로]
  1. 독자
    스페인의 경우 저축은행들이 건설 여신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면서 결국 이를 정부가 떠안았고 정부 부채가 급증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약간 다른 사례이려나요.
  2. reshrose
    으 이제 어렵네요ㅜㅜ 한계인가봐요. 다음시리즈는 나중에 읽어야겠네요ㅜㅜ 좋은글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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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대한민국 주식회사 -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와 기업의 리스크 분담

Posted at 2013.10.25 00:05 | Posted in 경제학/경제성장


※ 대한민국 주식회사 Korea, Inc. - 경제발전을 위해 나아가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살펴봤듯이, 한국경제는 국가가 금융자원을 동원 control over finance 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 


경제개발 단계에서 한국정부가 금융자원을 동원한 이유[각주:1] 중 하나기업가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한국경제는 수출지향 산업화전략 export-oriented strategy 을 통해 경제발전을 꾀했었다. '수출지향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 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정부는 수출기업들에게 더 많은 금융자원을 배분함으로써 수출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였다. 당연히 기업가들은 이에 반응하여 수출규모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즉, 은행국유화를 통해 금융자원을 장악한 정부는 정책금융 policy loans 을 이용하여 기업가들이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 national interests 을 위해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 한국경제 개발시기, 수출기업들은 내수기업 보다 좀 더 쉽게 금융자원이용에 접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정부는 기업가 뿐만 아니라 은행에 대한 통제도 시행하였다. 수출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은행장을 호출하거나, 기업부문에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경우에는 수출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도록 지시한다. 금융의 본래 목적인 자원재분배 re-distributional 보다는 경제발전 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온 힘을 쓰게 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경제개발단계의 한국은 '대한민국 주식회사 Korea, Inc.' 나 마찬가지였다. 은행은 재무부서, 산업부문은 생산·마케팅부서, 정부는 총괄기획부서 였던 것이다. 


As they shaped their initial concept of industrialization, their immediate thought was how the government could be used to mobilize funds and support industrial investment. They wanted to control the behavior of industrialists in an effort to make their economic activities conform to national interests. Consequently, they needed governance control tools; "control over finance" became the major policy instrument for effecting the decision-makers' concept of industrialization. (...) (14)


Credit policy is formulated as part of development strategy; as such, its effectiveness is determined within the overall structure of industrial and macroeconomic policy. Korea's credit policies were well coordinated with its industrial policies. Korea wanted to pursue industrialization, and it realized that, given its small domestic market but relatively well-trained human resources, it could do so only by adopting an export-oriented strategy.


Credit, industrial, and macroeconomic policies were all geared toward this goal. Compared with many other developing countries whose credit policies are oriented primarily toward re-distributional purposes (or which lack a clear focus, so that almost all sectors are targeted, which is tantamount to targeting none), Korean credit policies were sharply focused on promoting exports and provided the support necessary to enable industry to pursue this goal. (...) (15-16)


In the early 1960s, the government adopted several measures to strengthen state control over financing. In particular, it nationalized commercial banks. (...) Chaired by the president, monthly export promotion meetings and monthly briefings on economic trends constituted a forum for ministries and the private sector to monitor the progress of economic policy and to build consensus on ways to address emerging problems. (17)


This style of economic management resembled the operational mode of a corporation - in this case, Korea, Inc. Within this management partnership, banks served as the treasury unit, the industrial sector as the production and marketing units, and the government as the central planning and control unit. (18)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14-18 (PDF 파일 기준)


It is not easy to define policy-based loans in Korea. Because all major banks were owned by the government, which also set the interest rates for bank loans substantially lower than the market rate, all bank loans could be considered policy loans. (...) (76)


These loans were usually made according to the government's assessment of the progress of specific key projects and the constraints facing specific firms or industries. The decisions were usually made in consultation between the government and business sectors, and after close monitoring of progress by the government. 


For example, when the government assessed the progress of plant constructions for the chemical industry complex and found that they were well behind schedule because the lending banks were providing insufficient support, it summoned the bank presidents and asked them for greater cooperation in supporting the project. 


Moreover, when exporters reported in the monthly export promotion meetings that the international market was slow and that they had begun accumulating inventory, the government urged bankers to extend greater working capital credit to exports. In many cases, the establishment of new credit programs was also the product of this close consultation between government and business. (77) (...)


Control over finance confers some explicit governance rights to the government over the borrowers for the entire period of loans. Credit policies allow the government to allocate subsidies flexibly, according to the performance of supported firms or industries. In turn, such control extends to refinancing decisions - whether or not existing debt should be rolled over or new debt extended, and, if so, at what conditions. 


Well-measured refinancing decisions provide incentives? : good performance can be rewarded with continued or expanded support ; or a inappropriate use of funds is punished with a reduction in or even termination of support a threat that may make the survival of firms untenable. This carrot and stick policy underlying credit programs makes them an effective tool of government industrial policy - more effective than fiscal incentives, which stem from legislative initiation and are subject to rigidity of the implementation process. (106)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76-106  (PDF 파일 기준)




※ 정부의 지급보증 덕분에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이 고양된 기업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국가의 금융자원 동원 control over finance' 이 가지고 온 또다른 효과이다.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자본투입 증가에 따른 경제성장은 부채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당시 한국기업들도 경제성장과정에서 과도한 부채를 지니게 되었었다. 일반적인 경제라면 과도한 부채를 지닌 기업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파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는 금융자원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의 대출상환촉구에 따른 기업부도는 일어나지 않았었다. 오히려 정부의 지급보증 덕분에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를 지더라도 정부가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파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위험성이 risk 큰 사업에 과감하게 뛰어들게 된다.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이 고양된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더이상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장기적인 관점 a long-term business perspective 에서 사업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지금 당장의 수익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산규모 극대화와 (장기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일종의 리스크 파트너 a risk partner of industrialists 역할을 맡으면서 실패에 대한 위험성 risk of failure 를 줄이는 정부-기업-은행의 공동보험체제 a government-industry-bank co-insurance scheme 가 성립된 것이다.  


The impact of credit policies on economic growth is not limited to their impact on the cost of and access to credit. In an economy such as Korea's, in which the expansion of investment was financed by bank credit and foreign loans, the financial structure of firms was highly leveraged. By controlling finance, the government could become an effective risk partner of industrialists and could motivate their risk venture and entrepreneurship. 


It could induce the industrialists to take a long-term business perspective, while a competitive financial market may have prompted firms to take a shorter-term view. In other words, by controlling financing, the government established a government-industry-bank co-insurance scheme to protect industrial firms from shocks. This indirect impact of government credit policy may also have been an important determinant of the rapid industrialization of Korea. (105) (...)


But credit policies carry their own risk - the "risk of government failure." In Korea, the government's continuous communication with business leaders and close monitoring of firms through various channels (such as monthly export promotion meetings) helped reduce its risk of failure. Moreover, by controlling the banks, the government created incentives for firms to maximize their assets and growthrather than to strive for immediate profitability. (106)-(107)


As far as they satisfied the government by expanding exports and successfully completing plants, firms ensured their continual credit support and survival. As such, the government mitigated its risk of failure by adopting a sounder, more stable investment environment. (107)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105-107  (PDF 파일 기준)




※ 경제성장으로 이어진 경제주체들의 리스크분담 risk-sharing


그러나 정부가 금융자원을 통제하여 기업들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만다. 과도한 부채를 보유하게 된 기업들은 내부 · 외부충격에 취약한 상태 vulnerable to internal and external shocks 였는데, 자본투입 성장 정책의 부작용[각주:2]세계경기 둔화를 맞아 기업들이 무더기로 부실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장규는 저서 『대통령의 경제학』에서 당시 한국경제 상황을 전하고 있다.


 해방 이후 막대한 원조를 통해 '대한민국 만들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국은 한국이 원조시대를 끝내고 차관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오히려 인색한 나라가 됐다. (...) 이런 마당에 박정희가 1962년 기업들의 상업차관 도입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는 정책을 결정한 것은 합리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사업은 기업이 벌여라. 책임은 정부가 진다'는 식이었다. (...)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무리한 정책추진의 부작용이 왜 없었겠는가. 외국자본이 들어와도 공장이 지어지고 수출이 늘면서 경제가 눈에 띄게 달라져 갔다. 그러나 세계경기가 불황이 되면서 차관기업들은 무더기로 부실사태를 빚었다. 환율과 금리 부담 속에 기업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기업의 부실은 이들한테 물린 은행들까지 연쇄도산 위기로 몰고 갔고, 결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상황으로 번져나갔다.


1969년 재무부는 83개 차관업체 중에서 45%가 부실기업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결국 청와대에 부실기업정리반이 조직돼 30개 기업을 도산시켜야 했다. 한국 수출 산업의 선구자로 존경받던 전택보의 천우사도 이때 문을 닫았다. 


이장규. 2012. 대통령의 경제학』. 144-147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결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상황" 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1997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정부는 4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1969년~1970년 · 1972년 · 1979년~1981년 · 1984년~1988년)을 시행하였다.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정부는 이장규가 쓴 문구처럼 "정부가 구제금융 · 사채동결 등의 방식으로 직접 금융시장에 개입함으로써 the government made these bailouts by intervening in credit markets" 기업부실문제를 해결해왔다.


이러한 기업 구조조정에서의 직접적인 정부개입은 경제주체들이 경제전체의 리스크를 분담 risk-sharing 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직접 기업의 부채를 탕감해준 8·3 사채동결조치는 기업의 부담을 채권자인 은행에게 전가시킨 정책이다. 은행의 부담은 고스란히 예금자인 국민에게 이어진다. 그렇지만 부채탕감의 혜택을 입은 기업들이 수익을 다시 내기 시작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민들은 경제성장 · 일자리 · 임금인상 이라는 혜택을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해, 경제주체들의 리스크분담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Industrial investment in Korea was financed largely by debt, especially during the period of rapid economic growth. Fiscal incentives and low interest rates allowed some firms to accumulate retained earnings, but, in the absence of well-functioning domestic equity market, huge investment requirements for rapid industrial expansion had to be financed largely with bank loans and foreign debt. During 1963~71, the debt ratio of the Korean manufacturing sector increased by more than four times, from 92 percent to 394 percent (Box 2, Table C). (107)


Even in the 1990s, Korean firms remain highly leveraged, although their debt ratio in the second half of 1980s declined somewhat with the expansion of the stock market. Consequently, Korean firms became more vulnerable to internal and external shocks. In fact, Korea could have undergone several financial crises had the government not actively become involved in risk management through credit intervention.


The government undertook major corporate bail-out exercises in 1969~70, 1972, 1979~81, and 1984~88 to ride out recessions and avoid major financial crises. In a credit-based economy, the government made these bailouts by intervening in credit markets. The government's involvement in restructuring firms and industries, and in redistributing losses make risk-sharing among the members of the economy possible. Depositors usually took the lion's share of this cost, but they were rewarded subsequently with steady economic growth, increased job opportunities and as wage earners. (...) (108)


In a credit-based economy, creditors and borrowers should share some risk, otherwise, financial crises recur with economic downturns. In Korea, the government was directly involved in risk sharing by intervening in credit markets, as such, bank credit constitutes the primary source of risk capital through government involvement. (114)


조윤제, 김준경. 1997. "Credit Policies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KDI. 107-114  (PDF 파일 기준)




※ 재벌들의 대마불사를 초래한 정부의 지급보증과 리스크 분담


앞서 살펴본것을 정리하자면, 금융자원을 통제하고 기업운영의 보증을 선 정부는 기업의 리스크를 줄임으로써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 을 고양시켰고 기업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도록 도왔다. 또한 기업구조조정에 적극개입한 정부는 기업부실로 인해 생긴 리스크를 경제주체들이 분담케 함으로써 경제성장의 동력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금융자원을 통제하고 기업운영의 보증을 선 정부'가 한국경제의 좋은 영향만 끼쳤을까?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에서 언급했다시피, 정부의 지급보증은 은행과 기업들의 도덕적해이와 대마불사(大馬不死, too big to fail) 문제를 초래한다.


경제개발단계에서 단순히 국가의 금고 역할을 담당하고,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국가의 지시에 의해 부담만 떠안았던 한국의 은행들[각주:3]은 기업의 경영상태를 평가하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 기업의 경영상태를 평가하지 못하는 은행은 무차별적인 대출을 할 수 밖에 없다. 1997 외환위기 이후, 은행을 통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회고록 『위기를 쏘다』 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1998년 2월 9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실에 들어서자 좌중의 눈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 내가 이날 전한 메시지는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번 주말까지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해 주십시오. 그 계획대로 구조조정을 실천해 주십시오. 결과는 시장이 평가할 것입니다."


바로, '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다. DJ 정권의 재벌 다루기가 첫 단추를 끼우는 자리였다. 구조조정 계획을 받기만 하면 된다. 내용은 상관없다. 기업 스스로 구조조정을 만들게 하는 것, 그래서 주거래 은행이 그 계획을 점검하게 하는 것, 이게 핵심이었다. 그 순간 기업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은행에 맡기게 된다. 은행을 우습게 알던 때였다. 웬만한 은행장이 대기업의 자금 담당 이사를 만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63-64) (...)


이미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시절부터 '은행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을 약속한 터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각 은행에 "각자의 판단에 따라 퇴출 기업을 골라내라"고 주문했다. 국내 은행들은 그때까지 기업의 금고나 다름 없었다. 기업 신용을 평가하는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참에 그걸 배우라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부실기업 판정. 은행들은 버거워했다. 우선 부실기업 퇴출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퇴출된 기업에 빌려준 돈은 모두 부실 채권이 된다. 고스란히 은행 부담이 되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는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계열사라도 뒤에는 대마불사의 본사가 버티고 있다. 괜히 건드렸다가 거래가 끊길까, 본사가 부실해질까 겁을 냈다. (267)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63-64, 267     


더욱 더 심각한 것은 기업들, 특히나 재벌들의 대마불사이다. 경영상태가 부실해졌을때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준 것을 기억하는 재벌들은 계속해서 차입경영을 하였고 그 결과 취약한 재무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재벌들의 대마불사는 1997 외환위기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1997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규성은 저서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를 통해, 재벌들의 차입경영과 취약한 재무구조가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국내외적으로 지혜를 동원하여 개발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우선순위 사업을 정하고 이들 사업을 시행할 사업자를 직접 선정하여 이들에게 장기 저리융자와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고 외자도입도 주선해 주는 등 자원도 우선적으로 배분해 주었다. 


정부와 민간이 합심하여 한국주식회사를 만들어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은 단순한 캐치업 단계에서는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한국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개도국 경제개발의 모델이 되었다. (...) 이와 같이 한국 경제의 큰 얼개는 선진국에 근접하고 있지만 내실면에서는 여러 가지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내실면에서 취약성의 하나는 기업 · 금융의 재무구조가 건실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


우리 기업의 재무구조가 취약한 것은 그 동안 정부주도형 개발전략의 추진과정에서 기업의 차입경영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 기업의 성장은 곧 부채의 누적이었다. (...)

차입경영에 따른 재무구조의 취약성은 경기가 좋을 때에는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매출이 부진해지는 등 경영여건이 악화될 때에는 차입경영은 한계에 직면하고 부실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업들의 부실이 크게 늘어나면 이는 곧 금융부실을 초래하여 자칫 경제시스템 전체의 불안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며, 특히 거액의 부채를 지고 있는 대기업들의 다수가 부실화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과정에서도 대규모의 기업부실이 간단없이 발생하였다. 이 때 정부는 기업의 퇴출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직접 정리해 나갔다. (...) 정부주도의 부실기업 정리는 대체로 구제금융을 제공해 주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시키는 방식이었다. (...)


한편 금융운용의 실상을 보면 경제개발 과정에서 금융은 정부의 개발계획상의 사업을 차질 없이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금융기관은 금융의 본래기능인 사업성 심사를 통한 효율적인 자원배분기능을 수행하여 수익을 올리는 영리 기관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에 따라 자금을 공급하는 신용배급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


기업의 차입경영에 따라 자금수요는 항상 넘치게 되었으며 이는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공급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금융기관은 채권확보에 중점을 두고 신용배분을 하게 되었으며, 그 기준은 담보와 대기업 여부였다. 대기업들은 부동산 담보 외에도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각주:4]에 의하여 차입능력이 강화되었다. 


금융기관들이 파산할 경우 경제 전체의 불안정을 초래하기 때문에 금융감독 당국은 부실이 크게 발생한 경우에도 퇴출시키지 않고 한국은행 특별융자를 제공하여 살아남을 수 있게 하였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에 은행이 파산한 사례는 전혀 없었다.


이와 같이 정부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실패위험을 전적으로 안아주는 보험자 역할이 지속되자 대기업 불사(too big to fail) 및 은행불패(不敗)라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이 우리 사회에 보편화되었다. 이제 금융기관들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정부가 구제해 줄 것이라는 은행불패의 믿음 아래 대기업에 대한 대출에 대해서는 위험성이 높은 경우에도 주저 없이 자금을 공급해 주었다. 


대기업들은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대기업 불사의 기대 아래 잘 되면 크게 벌고 안 되면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면서 고수익 · 고위험 사업을 거침 없이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이는 바로 정경유착의 심화로 연결되었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64-67  

      

은행의 은행불패 믿음과 기업의 대마불사 믿음이 어떻게 1997 외환위기를 유발시켰는지는 다음 포스팅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참고자료>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2013.08.18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2013.08.20


이장규. 2012. 대통령의 경제학』.


이헌재. 2012. 『위기를 쏘다』.


이규성. 2006. 『한국의 외환위기 - 발생··극복·그 이후



  1. 당시 한국정부가 금융자원을 동원한 궁극적인 목적은 '자본투입의 증가'를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서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2. 이에 대해서는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의 '※ 요소투입증가, 즉 과잉투자가 초래하는 경제적 문제들' 참고. http://joohyeon.com/169 [본문으로]
  3. 이종화, 이영수는 <한국기업의 부채구조-재벌과 비재벌 기업의 비교>(1999) 에서 "한국에서 금융과 기업 간의 관계는 일본, 독일과 마찬가지로 매우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의 메인뱅크제도(main banking system)가 기업지배(corporate governance)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반면, 한국의 금융기관은 이러한 기능이 상실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한국기업의 높은 부채비율은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의 관치금융, 비통화금융기관의 재벌소유, 느슨한 금융감독에 따른 '사금고화' 등의 문제에 더욱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라고 지적한다. 은행과 기업의 관계에 대해서는 추후 포스팅할 계획이다. [본문으로]
  4.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외환위기의 수습을 맡은 이헌재는 '기업구조조정 원칙'으로 '①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② 상호지급보증 해소 ③ 재무구조의 회기적 개선 ④ 핵심역량 강화' 를 내세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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