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맥도날드 알바는 왜 저임금을 받는가?[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맥도날드 알바는 왜 저임금을 받는가?

Posted at 2015. 2. 11. 01:15 | Posted in 경제학/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지난 토요일(2월 7일), 한 단체가 맥도날드 신촌점을 점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단체는 '맥도날드가 알바만을 채용하는 관행'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직원을 뽑으라고 요구한다.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맥도날드 매장에는 왜 아르바이트(크루)들만 가득한가'에 대해서 말이다. 24시간 돌아가는 맥도날드. 빵을 만들고, 주문을 받고, 청소를 하고, 배달하는 일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데, 맥도날드에는 관리직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채용된다. 


왜 맥도날드는 알바를 채용하고, 최저임금만 지급하는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어도, 맥도날드가 직장이더라도 계약기간은 최대 1년을 넘을 수 없다. 물론 (결과적으로) 1년이 넘게 일하는 알바들도 있지만,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알바들은 관리자들의 눈칫밥 먹으며 일할 수밖에 없고, 부당한 일에 항의하기도 어렵다. 지난 1월 21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맥도날드와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직원을 무조건 알바로만 채용하는 관행에 대해선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보자. 맥도날드 알바는 왜 최저임금만 받을까? 크루의 시급은 올해 최저임금인 5580원이다. 최저임금은 '지키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최소한으로 지급해야 하는 임금을 뜻한다. 


대기업부터 개인사업자까지 알바들을 고용한 사업주의 지불능력은 천차만별이지만, 대기업인 맥도날드에서 딱 최저임금만 주는 상황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개인사업자들이 임금을 올릴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결국 알바들의 시급은 대기업이 앞장서 최저임금에 꽁꽁 묶어둔 상황이 되었다. 


출처 : '우리가 오늘 맥도날드를 점거하는 이유'. <오마이뉴스>. 2015.02.07


그러나 이런 주장은 문제가 있다. '맥도날드 알바 일자리의 임금수준이 왜 낮게 형성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높은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근로자의 임금이 사업주의 '이기심'과 '착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투쟁'을 통해 높은 임금을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듯 하다. 하지만 임금은 그렇게 결정되지 않는다.     



 

1. 임금수준을 결정하는건 그 나라의 생산성

: 한 국가 근로자의 임금수준을 결정하는건 그 나라의 생산성이다. 가령, 미국의 이발사들과 인도의 이발사들의 생산성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들의 임금은 몇백배 차이난다. 왜일까? 그 이유는 '미국의 생산성'이 인도보다 높기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의 높은 생산성은 제조업 근로자들의 임금을 높게 만든다. 이때, 서비스업 근로자들 또한 높은 임금을 바라고 제조업 근로자로 이동한다. 따라서, 서비스업 근로자의 노동공급이 감소하고 임금은 올라간다. 궁극적으로, 제조업으로의 이탈을 막는 선에서 서비스업의 임금이 결정된다.


그 결과, 미국 이발사의 임금은 인도 이발사에 비해 수백배 높아진다. 만약 이민이 자유롭다면 인도 이발사들이 미국으로 진출하여 양 국가의 임금은 수렴할테지만, 현실에서 이민은 자유롭지 않다. 미국 이발사들은 단지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임금을 받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임금수준을 결정하는건 그 나라의 생산성이다.



2. 특정산업의 임금수준 결정은 그 산업의 생산성

: 자, 그렇다면 산업별 임금수준은 어떻게 결정될까? 근로자가 어떤 산업이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모든 산업의 임금은 하나로 수렴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 산업별 진입장벽이 존재하고 필요한 기술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산업별 생산성이 다르다. 요구하는 기술수준이 높아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일수록 그리고 생산성이 높은 산업일수록 임금수준이 높다. 따라서, 고숙련 근로자들의 임금은 저숙련 근로자에 비해 높게 형성된다.



3. 중요한건 노동공급과 노동수요

: 그런데 고숙련, 고학력 근로자의 임금이 무조건 높을까? 아니다. 어떤 학문에서 박사학위를 따봤자, 그 학문에 대한 수요가 적고 박사학위자가 많다면 임금은 낮아진다. 학부생출신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을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건 그 일자리의 '노동공급'과 '노동수요' 다.



4. 맥도날드 알바는 왜 저임금을 받는가

: 이런 기초적인 경제학 지식을 안다면 맥도날드 알바가 왜 저임금을 받는지 알 수 있다. 맥도날드 알바 일자리는 ① 요구하는 기술수준이 높지 않고(저숙련) ② 진입장벽이 낮아 ③ 노동공급이 많다"알바니까 낮은 임금을 받아도 돼" 이런 말이 아니다. '맥도날드 알바라는 일자리의 특성'이 저임금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령, 택배상하차 알바는 다른 알바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다. 왜냐? 노동수요에 비해 항상 노동공급이 모자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필요한 체력수준도 높아 상하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비교적 제한적이다. 하지만 맥도날드 알바는 그렇지 않다. 노동공급이 넘쳐난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모든 알바 구직자가 담합해서 임금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다. "우리는 시급 1만원 아니면 일 안해!" 그러나 이런 담합은 오래가지 못한다.  누군가 1명이 갑자기 나서서 "사실.. 저는 9500원에도 만족합니다. 절 써주세요." 라고 말하면 담합은 깨진다. 그리고 노동공급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담합을 깨뜨릴 유인은 상당히 높다결국 임금수준은 노동공급과 노동수요가 일치하는 지점으로 돌아가고, 노동공급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임금은 낮게 형성된다.



5, 그 임금으로 어떻게 먹고사냐!

: 그렇다. 맥도날드 알바하면서 번 돈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 그것을 가엽게 여긴 사람들은 "임금을 올려라!"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사안을 '정태적'(static) 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들의 사고는 이 단계에서 멈춘다. 임금을 올리면 좋다.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다음기'(two-period)를 생각하면서 '동태적 사고'(dynamic)를 한다맥도날드 알바의 임금을 올리고 고용보호를 강화했다고 가정해보자. 1기에는 기존 알바의 효용이 높아진다. 문제는 2기이다. 높아진 임금을 본 구직자들이 맥도날드 알바 일자리로 몰린다. 이전의 낮은 임금수준에서는 맥도날드 알바 일자리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지원을 하게 된것이다.  


맥도날드 점주는 생각한다. "기존 알바생 쫓아내고 잘생기고 예쁜 알바생 쓰면 매출이 오르지 않을까?" 결국, 기존의 저숙련(?) 근로자는 퇴출당한다. 외모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능력 있는 알바생이 기존의 알바생을 대체 것이다[각주:1]. '이전의 낮은 임금수준에서는 맥도날드 알바 일자리에 관심도 없었다'는 사실은 '기존 알바생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알바 일자리의 임금을 아무리 올려봤자 결국 저숙련 근로자들은 퇴출 당하고 다른 저임금 일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6. 모든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리자!

: 그렇다면 모든 근로자, 모든 일자리의 임금을 올리면 안될까? 2가지 문제가 생긴다.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수준이 초래하는 문제 장기적 임금수준을 결정하는건 거시경제의 총공급부문


생산성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임금수준이 높다면 그 산업은 시장경쟁에서 퇴출된다. 이건 가치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이다. 국가전체적으로도 임금수준이 생산성에 비해 높다면 무역이 불가능하다. 현재 남유럽 문제가 생긴 근본원인이다.


또한, 장기적 임금수준을 결정하는건 거시경제의 총공급부문이다. 모든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어느나라가 가난하게 살겠는가. 그러나 '화폐축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돈을 뿌려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가난한 국가는 없다. 중요한건 '총공급부문의 생산성' 이다.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았는데 임금수준만 높다면 인플레이션만 발생다. '경제성장'과 '높은 임금'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화폐축적'이 아닌 '생산성 증가' 이다.

(관련글 :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자연실업률 - 단기와 장기 · 기대의 변화 · 총수요와 총공급')



7. 다른 일자리 구하면 된다

: 다시 맥도날드 이야기로 돌아오자. 저임금이 못마땅한 맥도날드 알바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한 가지이다.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한다. 요구하는 기술수준이 낮고 노동공급도 많아서 임금이 낮게 형성될 수 밖에 없는 맥도날드 알바 일자리 대신에 필요 기술수준이 높고 비교적 노동공급이 적은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OO항공의 박 사무장 사례와 맥도날드 알바는 다르다. 항공산업은 독점산업이고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박 사무장이 경력을 살려 구할 수 있는 다른 일자리가 제한적이다. 그러나 맥도날드 알바생은 그렇지 않다. 맥도날드 알바하면서 익힌 숙련도를 다른 산업으로 가져갈 필요성이 적기 때문에 그냥 다른 일자리 구하면 된다.



8. 문제는 그런 일자리가 적다는 것

: 여기서 문제는 '필요 기술수준이 높아 비교적 노동공급이 적은 일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알바생 스스로 기술수준을 높여야 하는데 이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힘들 수 있다. 기술발전이 가속화되고 무역통합이 진행될수록 좋은 일자리 찾기는 더더욱 힘들다.

(관련글 :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불균등. 그리고 무역의 영향(?)')


그렇지만 본인 주장의 핵심은 '바로 여기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사항들을 모두 숙지하고 맥도날드 알바 일자리의 특성을 이해한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고민해야한다. 그걸 무시하고 "맥도날드는 왜 저임금 알바만 쓰냐! 정규직 써라" 라고 주장하는건 창피한 일이다. 일자리 특성상 저임금으로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왜 저임금을 주냐고 항의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임금은 '사업주의 선의'와 '투쟁'에 의해 높아지는 변수가 아니다. 노동공급과 수요 · 무역의 영향 · 기술발전 등등 여러 경제적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변수이다. 맥도날드 알바의 임금뿐 아니라 거시경제내 일자리의 임금이 왜 낮아지는지 혹은 왜 상위층의 임금만 올라가는지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인 경제학 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글에서 다룬 


  • 미국 이발사들은 단지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임금을 받게 된 것
  • 국가전체적으로도 임금수준이 생산성에 비해 높다면 무역이 불가능하다. 현재 남유럽 문제가 생긴 근본원인이다.

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국제무역이론을 알아야한다. 다음글에서는 국제무역이론을 통해 무역 · 이민 · 세계화 · 기술발전 등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임금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자.

  

  1. 물론, '맥도날드 알바 일자리'가 대단한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알바생과 신규 알바생의 능력차이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하고싶은 말은 '노동시장에서 임금은 능력을 드러내는 신호(signal)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호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공급과 수요에 대한 반응'을 건드리기 때문에 공급의 폭발적 증가를 불러올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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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대기업 총수를 사면해주면 경제가 살아날까?[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대기업 총수를 사면해주면 경제가 살아날까?

Posted at 2015. 2. 1. 22:20 | Posted in 경제학/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 대기업 총수를 사면해주면 경제가 살아날까?


2014년 2월 12일 기사


※ “기업 때리기 그만두고 경제살리기 전환점돼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이 나온 가운데 이번 판결이 한국사회의 대기업에 대한 편향을 바로잡고 경제살리기로 힘을 모으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는 경제계의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


"A사 관계자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 여파로 신흥국의 경제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보는 것보다 기업이 보는 경제전망은 훨씬 비관적이어서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는 더이상 기업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기업 총수에게 유독 엄정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온 것이 사실”이라면서 “경제민주화 분위기만으로 가혹한 처벌을 하기보다는 이번 판결로 대기업 총수의 사회적 노력 등을 인정하는 발판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31일 칼럼


※ 服役 2년 넘긴 최태원 회장


"최태원 SK 회장은 31일로 4년 형기의 절반인 만 2년을 채운다. 그는 대기업 총수 중 수감 신기록을 연일 경신 중이다. 그전까지는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사면될 때까지 약 10개월을 살았던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이 가장 긴 기록이었다. 신기록 행진을 할수록 SK 내부에서는 "미래가 안 보인다"며 초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당장 다른 나라들과 정·재계 상층부 간의 결정적인 만남을 놓친 것이 한두건이 아니다." (...)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할 골든타임을 놓치면 저(低)성장 체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작년 연말 옥중(獄中) 기업인에 대해 경제 살리기를 조건으로 경영에 조기 복귀시키자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왔다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시중 여론은 7대3으로 반대 의견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더 냉혹한 현실에서 오너의 장기 부재는 한국 경제를 곪게 한다. 국민 정서와 경제 현실을 동시에 타개할 묘안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몇몇 언론인과 경제학자들은 "'경제살리기'를 위해 형 집행중인 대기업 총수를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나는 몇가지 지점에서 의아함을 느낀다. 이러한 주장이 '親기업적'이거나 '편향적'이어서가 아니라 '경제학적'이지 않아서이다.    


경제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준칙'(rule)과 '신뢰'(credibility)가 매우 중요하다. 준칙을 깨뜨려 신뢰를 무너뜨리는 재량적인 정책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②대기업 총수를 석방하여 그 기업의 경영이 정상화되는 것을 '경제살리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업경영'과 '경제성장'(혹은 경기확장)은 아예 다른 개념인데,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하고 있다. ③더군다나 대기업 총수의 범죄행위로 인해 그 기업의 경영상태가 부실화 되는 것을 왜 걱정해야 하나? '시장(market)이 작동한다'는 것은 생산성 높은 기업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퇴출됨을 의미한다.     


이제 아래의 글을 통해 '경제살리기'를 내세워 대기업 총수 형집행정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왜 타당하지 않은지 자세히 살펴보자.  




※ '준칙'(rule)의 중요성


지난글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자연실업률 - 단기와 장기 · 기대의 변화 · 총수요와 총공급'을 통해,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알 수 있었다. '경제학적 사고방식'에 필요한 것은 '① - 단기와 장기의 구분 : 경제현상을 동태적으로 인식하라' '② - 기대(expectation)의 중요성 : 다른 경제주체와의 상호작용'이다. 이것을 염두에두고 아랫글을 읽어보자.   



● '준칙'을 정하다

: '준칙'(rule)의 중요성은 통화정책 시행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제주체들의 후생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이 낮을수록 커진다. 낮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을 동시에 달성하는것이 이상적인 목표이지만, 단기 필립스곡선에 의해 이 둘은 상충관계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어떻게 해야할까? 첫번째 방법은 '통화공급 증가율을 0으로 하여, 인플레이션율을 0으로' 만드는 '준칙'(rule)을 천명하는 것이다. "우리 중앙은행은 앞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통화정책을 쓰지 않겠다는 '준칙'을 만들고 이를 계속해서 따르겠다" 라고 알리는 것이다.


그 결과, 경제의 산출량은 어떠한 변동도 없이 계속해서 잠재성장(potential growth)을 달성하게 되고, 업률은 '자연실업률'과 똑같아진다[각주:1]. 또한, 통화공급공급 증가율이 0이기 때문에 어떠한 인플레이션도 발생하지 않는다

(주 : 통화공급 증가 · 감소의 영향으로 경제의 산출량이 커지거나 축소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 총공급 부문에서 결정된 산출량이 총수요 부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



● 준칙이 존재하는 가운데, '재량'을 구사하다

: 그런데 약간의 인플레이션율을 허용하면서 더 높은 경제성장과 (자연실업률 보다) 낮은 실업률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인플레이션율 증가가 가져오는 손해'에 비해 '경기확장으로 인한 실업률 축소의 이익'이 더 크다면, 경제주체들은 더 큰 후생을 누릴 수 있을것이다.


이것을 아는 중앙은행은 이미 수립되어 있는 '준칙'에서 벗어나, 약간의 인플레이션율을 허용하는 '재량'(discretion)을 구사한다. 그 결과, 약간의 인플레이션율을 발생하였으나, 잠재성장을 넘어선 경제성장률을 획득하게 되고 실업률은 자연실업률 밑으로 하락한다.

(주 : 총수요 증가로 인해, 총공급 부문에서 결정된 잠재성장률 보다 더 높은 성장률 달성)


더 높은 경제성장률 달성과 낮아진 실업률 덕분에 경제주체들의 후생은 더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중앙은행이 '준칙'(rule)을 따르는 것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재량'(discretion)을 구사하는 것이 더 우월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말로 '준칙'보다 '재량'이 우월할까?



● 중앙은행의 준칙 위반, 경제주체들의 '기대'를 변화시키다

: 경제학은 '동태적'(dynamic)인 학문이다. 어떠한 경제상황을 1기(one-period)에서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다음기(two-period)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생각한다. 중앙은행은 '준칙'을 위반하고 '재량'껏 정책을 시행하여 경제주체들의 후생을 증가시켰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의 준칙위반을 본 경제주체들의 '기대'(expectation)가 다음기에 변했다" 라는 것이다.


이제 경제주체들은 "통화증가율 0이라는 준칙을 중앙은행이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라고 모두 알고 있다. 이렇게 경제주체들의 기대가 변한 가운데, 중앙은행이 다시 준칙을 따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경제주체들은 양(+)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대하는데, 준칙을 따른 중앙은행은 0의 인플레이션율을 만들어낸다. 마치 '디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 결과, 경제주체들의 후생은 크게 감소한다.


만약 준칙에서 한번 이탈한 중앙은행이 계속해서 '재량'-양의 인플레이션율을 일으키는 것-을 시행하면 어떨까? 경제주체들은 양의 인플레이션율을 이미 기대하기 때문에, 재량을 따르는 중앙은행이 양의 인플레이션율을 만든다고해서 잠재성장을 뛰어넘는 경제성장을 달성하는건 아니다. 따라서,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 수준 · 실업률은 자연실업률 수준인데 인플레이션은 양의 값을 기록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는 애초에 '준칙을 계속해서 따르는 것'(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 수준 · 실업률은 자연실업률 수준, 인플레이션율은 0)에 비해 열등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 '준칙'(rule)은 '재량'(discretion)보다 우월하다

: 이러한 결과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준칙'(rule)은 '재량'(discretion)보다 우월하다" 이다. 준칙은 지키기 어렵고 귀찮다. 준칙에서 잠깐 벗어나 상황에 맞는 '재량'을 구사하면 더 좋은 결과를 달성할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칙을 이탈하는 '재량'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재량의 효과는 감소한다. 더 큰 문제는, 준칙에서 벗어난 재량이 '준칙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제 '준칙'이 가져다주는 후생수준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은 '준칙'(rule)을 매우매우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흑백이나... 이 분들은 아직 살아계십니다;;;)


● 형집행 중인 대기업총수를 사면해야 할까?

: 200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Finn Kydland와 Edward Prescott은 1977년 논문 <Rules Rather than Discretion: The Inconsistency of Optimal Plans>을 통해, 이러한 논리를 소개하며 '준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통화정책 시행과정'에만 적용되지 않고 일반적인 문제에도 적용가능하다.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재량'을 구사하여 대기업 총수를 사면해주고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음기(two-period)를 생각하면 그렇지않다. 대기업총수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결국 사면될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이제 법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 '기업경영'과 '경제성장'(혹은 '경기확장')의 차이


장기적인 경제성장 혹은 단기적인 경기확장 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한 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경제가 살아'날까? 많은 사람들은 기업경영과 경제성장을 혼동하고 있다. 분명 기업은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 이윤획득의 기회를 포착하여 새로운 상품 · 서비스를 내놓는 기업가(entrepreneur)의 행동은 사회전체 후생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기업의 행동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한 부분일 뿐이다.   


거시경제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총합'(aggregate)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상품가격을 올렸을 때, 거시경제학은 이를 두고 '물가가 상승하였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개별상품가격의 상승(individual price)과 물가수준의 상승(price level)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고, 거시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물가수준이다. 개별상품가격은 그 상품의 공급-수요 혹은 한 기업의 결정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물가수준은 여러 경제주체들의 행동총합과 통화량에 의해 결정된다. 한 기업이 상품가격을 올린다고 해서 물가수준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혹은 경기확장)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은 기업뿐 아니라 여러 경제주체들의 행동총합에 의해 결정된다. 이때, 여러 경제주체들의 행동총합을 이끄는 것이 '금리'(interest rate)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단기적인 경기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전체의 '생산성'(productivity)이다. 생산성 증가는 자본의 축적 · 생산에 학습효과 등의 영향을 받을 뿐, 기업하나의 투자증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오너의 부재로 인해 기업의 경영상태가 악화된 것은 그냥 '그 기업의 경영상태'가 나빠졌을 뿐이다. 경제전체가 나빠진 게 아니다. 설령 경제상황이 나빠졌다 하더라도 이는 '대기업총수의 부재' 때문이 아니다. 여러 행위의 총합(aggregate)인 경제상황은 한 기업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것을 알지못하고 '기업경영'과 '경제성장'(혹은 '경기확장')을 혼동한다면, "OO기업 총수가 복귀하여 투자가 늘어난다면 경제가 살아날것이다.", "우리나라 수출기업이 다른나라 수출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 경상수지가 나빠졌다.[각주:2]", "한국 OO기업이 일본 OO기업보다 더 많은 이윤을 거둔 것은 한국경제의 승리이다." 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게된다.      




※ 시장의 작동 - 부실기업 퇴출


위에서 언급한 칼럼 하나를 다시 살펴보자.


2015년 1월 31일 칼럼


※ 服役 2년 넘긴 최태원 회장


"최태원 SK 회장은 31일로 4년 형기의 절반인 만 2년을 채운다. 그는 대기업 총수 중 수감 신기록을 연일 경신 중이다. 그전까지는 2007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사면될 때까지 약 10개월을 살았던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이 가장 긴 기록이었다. 신기록 행진을 할수록 SK 내부에서는 "미래가 안 보인다"며 초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당장 다른 나라들과 정·재계 상층부 간의 결정적인 만남을 놓친 것이 한두건이 아니다." (...)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할 골든타임을 놓치면 저(低)성장 체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작년 연말 옥중(獄中) 기업인에 대해 경제 살리기를 조건으로 경영에 조기 복귀시키자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왔다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시중 여론은 7대3으로 반대 의견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더 냉혹한 현실에서 오너의 장기 부재는 한국 경제를 곪게 한다. 국민 정서와 경제 현실을 동시에 타개할 묘안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이 칼럼은 '대기업총수 부재로 인한 OO기업의 경영상태 악화'를 우려하며 '옥중 기업인의 경영 조기복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본인은 "왜 기업의 경영상태를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건가?" 라는 의문이 든다. 한 기업의 경영상태가 악화되어 파산에 이른다면 주주 · 근로자 등은 피해를 입게된다. 그렇지만 경제전체도 피해를 입을까?


거시경제의 총공급부문에서 결정되는 자연실업률은 기업의 파산으로 인해 변동하지 않는다. 또한 경제시스템내 '시장(market)이 작동한다'는 말은 생산성 높은 기업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퇴출됨을 의미한다. 그 결과, 경제주체들은 '생산성이익'(productivity gain)을 얻을 수 있다. 기업총수가 자금 사적유용 · 배임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고 기업경영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더욱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진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게끔 경쟁적인 환경만 조성해주면 된다.




※ 경제성장과 시장기능


본인의 짧은글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특히나 ''기업경영'과 '경제성장'(혹은 '경기확장')의 차이' · '시장의 작동 - 부실기업 퇴출'은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기업경영과 경제성장의 차이를 구분하고, 부실기업 퇴출을 통해 생산성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는 매우매우 중요하다. 


다음글에서는

① 어떻게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지

② 시장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경제성장'과 '시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1. '자연실업률' 개념에 대해서는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자연실업률 - 단기와 장기 · 기대의 변화 · 총수요와 총공급' 참고 http://joohyeon.com/210 [본문으로]
  2.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2014.07.10 http://joohyeon.com/19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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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자연실업률 - 단기와 장기 · 기대의 변화 · 총수요와 총공급[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자연실업률 - 단기와 장기 · 기대의 변화 · 총수요와 총공급

Posted at 2015. 1. 26. 10:29 | Posted in 경제학/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제학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일부 사람들은 (주류)경제학을 "돈만 우선시하는 꼴보수 학문" 이라고 여긴다. 분배보다 성장만을 우선시하고, 평등보다 효율성만을 앞세우고, 협력보다 경쟁만을 강조하고, 시장기능의 원활한 작동만을 맹신하는 학문이라는 편견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사람들은 '경제학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말을 '사회적강자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오해와는 달리 '경제학적 사고방식'은 체계적이고 타당한 논리적근거에 기반을 두고있다. (주류)경제학은 분배보다 성장만을 우선시하지 않고, 평등보다 효율성만을 앞세우지 않고, 협력보다 경쟁만을 강조하지 않고, 시장기능을 맹신하지 않는다. 게다가 애시당초 성장 · 효율성 · 경쟁 · 시장 등의 개념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성장 · 효율성 · 경쟁 · 시장은 오히려 사회적강자의 힘을 제약할 수 있고, 사회구성원 전체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

      

앞으로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시리즈를 통해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이를 통해,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논리적체계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성장 · 효율성 · 경쟁 · 시장이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확히 이해할 것이다.    


이번글에서는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 혹은 '인플레이션이 비가속적일때의 실업률'(NAIRU,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개념을 이해하면서, ①단기와 장기의 구분기대(expectation)의 변화총공급과 총수요의 구분 등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알아볼 것이다.




※ 단기 · 장기 필립스곡선 - 기대(expectation)의 중요성


  • 출처 : 조장옥 『거시경제학』 1판.
  •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 이라는 용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필립스곡선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 간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며, 위에 첨부한 그림과 같이 우하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은 음(-)의 관계를 띄며, 실업률이 증가할수록 인플레이션율이 감소하고, 인플레이션율이 증가할수록 실업률이 감소한다. 


그렇다면 한 국가의 지도자는 정치적승리를 위해 경제를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현재 높은 실업이 문제라고 하자. 지도자는 인플레이션율을 조금 높이는 정책을 통해 실업을 해소할 수 있다. 이제 그 지도자는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적인기를 누릴 것이다. 반대로 높은 인플레이션율이 문제라면 실업률을 조금 증가시킴으로써 인플레이션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필립스곡선에 따라 정책을 수행하면 경제는 원활히 잘 돌아갈 것이고, 한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들에게 추앙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높은 실업률은 어느 국가에서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으며, 경제상황을 잘 조정한다는 이유로 국민들에게 추앙받는 정치지도자는 없다. 왜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필립스곡선은 '단기'(short-term)에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 출처 : 조장옥 『거시경제학』 1판.
  • X축 u는 '실업률', Y축 π는 '인플레이션율'을 나타낸다.
  • 경제주체들의 '기대 인플레이션'(expected inflation)이 변함에 따라 필립스곡선(PC)이 이동한다.
  • 그 결과, 장기 필립스곡선은 '수직'이 된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허용하면서 낮은 실업을 달성하려는 정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정부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실업을 해결하려고 하니, 다음기(next-period)에도 인플레이션율이 높겠구나." 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즉,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expected inflation)이 증가'하였다. 그 결과, 필립스곡선 자체가 상향이동 한다. 


위에 첨부한 그림은 '필립스곡선 자체의 이동'을 보여준다.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 변화'에 따라, 처음의 필립스곡선(PC1)은 상향이동하여 PC2, PC3가 된다. 따라서, 초기 A점 상황에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허용(B점)'하였으나, 결국 '인플레이션율만 증가한채로 실업률은 초기 상태(C점)'로 돌아가게 된다. (A → B → C)  


아무리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계속 발생시키더라도 필립스곡선 자체가 상향이동하여 (A → B → C │ C  D → E → ...) 경로가 나타난다. 다시말해, '경제주체의 기대인플레이션 변화로 인해 실업률은 계속해서 초기 상태를 유지(A → C → E)'하게되고, 장기적으로 필립스곡선은 수직 모양을 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필립스곡선과는 달리, '장기 필립스곡선(long-term Phillips Curve)은 수직'이다.


쉽게 생각하자.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실업률을 낮추고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주 : 오쿤의 법칙에 의해,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은 음(-)의 관계에 있다. 경제성장률이 증가할수록 실업률은 감소한다.) 그러나 이는 단기에만 달성가능하다.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가난한 국가는 없을 것이다. 각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증가시키기만 하면 경제성장을 달성하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단기'적인 경제성장률 증가와 '장기'적인 경제성장은 다르기 때문에, 북한 중앙은행이 화폐 1,000조원 가량을 찍어낸다 하더라도 북한은 여전히 가난할 것이다. 남는건 높은 인플레이션율 뿐이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① - 단기와 장기의 구분 : 경제현상을 동태적으로 인식하라


이와 같이 대부분의 경제현상은 '단기'와 '장기'에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필립스곡선은 단기적으로는 우하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직이다. 통화정책은 단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만들지는 못한다. 즉, 어떠한 외생적 힘을 가해서 단기균형을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변화된 단기균형이 장기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단기'(short-term)와 '장기'(long-term)를 구분하여 사고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관련글 : 가령,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④] 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쟁 - Fed & Krugman vs BIS & Rajan' 에서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현재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기적인 정책의 중요성'을 주장하는데 반해, BIS 소속 신현송과 Claudio Borio는 '단기적인 정책이 장기적으로 초래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단기'와 '장기' 중 어느 것에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오게 된다.)


이는 '동태적인 변화'(dynamic)를 염두에둬야 할 필요성도 가져다준다. 경제현상은 '정태적'(static)이지 않고 '동태적'(dynamic)이다. 한 기(one-period)내에 일어났던 현상은 다음기(two-period)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관련글 :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하여'. 이 글에서 본인은 "기업의 의사결정 행위를 동태적으로 파악" 해야할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② - 기대(expectation)의 중요성


한 기(one-period)와 다음기(two-period)에서 경제현상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경제주체의 '기대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을 본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변한 결과, 통화정책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 정부지출 증가를 본 경제주체들은 다음기의 세금이 인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래의 세금납부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늘리지 않는다. 정부지출 증가를 통해 총수요를 끌어올리려는 목적은 달성불가능 하다.      


따라서, 경제주체들의 '기대'(expectation)가 '다음기'(two-period)에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 : 1980년대 경제학자 Robert Lucas 등이 주도한 '합리적기대 혁명'(Rational Expectations Revolution) 이래로 현대거시경제학의 핵심은 '경제주체들의 기대가 다음기에 어떻게 변하느냐' 였다.)   

 



※ 총공급부문에서 결정되는 자연실업률


다시 필립스곡선 이야기로 돌아오자. '장기 필립스곡선은 수직'이라는 사실이 알려주는 건 무엇일까?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단기)필립스곡선에서는 인플레이션율을 조정하여서 실업률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장기 필립스곡선에서 그것이 불가능 하다면, 실업률은 어떻게 결정된다는 것일까. 다시 말해, '초기 A점에서의 실업률이 어떤 값을 가지는지를 어떻게 결정하냐'는 것이다.


초기 A점상의 실업률은 경제의 '총공급부문'(Aggregate Supply), 즉 노동시장에서 결정된다. 이때 노동시장에서 결정된 실업률을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 혹은 '인플레이션이 비가속적일때의 실업률'(NAIRU,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이라 부른다. 


이전글 '고용보조지표 - 한국 고용시장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다'에서 자연실업률 개념을 설명한 바 있다. 이를 다시 가져와보자.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실업률 3%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 왜일까? 보통 '실업률 3%'는 완전고용 수준에서 달성가능한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완전고용'(full employment) 상황인데 실업이 존재하는 게 말이 되는가? '자연실업률'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완전고용'의 정의와 '잠재성장률'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한다. 


국가경제의 총생산량은 노동 ·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과 생산성이 결합되어 결정된다. 생산요소를 많이 투입할수록 그리고 생산성이 높을수록 총생산량이 증가하는 원리이다. 그렇다면 생산요소 투입을 무한대 늘려서 총생산량을 증가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않다. 노동 등 생산요소를 투입하기 위해서는 임금 등의 유인(incentive)을 제공하여야 한다. 이러한 유인을 무한대로 제공하는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균형 노동투입량은 '노동공급자(근로자)와 노동수요자(사용자)의 이해가 일치하는 시장임금 수준'에서 결정된다.


이때 거시경제 내에 '정해진 시장임금 수준에서 고용되기를 희망하는 고용량이 모두 고용된 상태'를 '완전고용'(full employment)라 한다. 다시 말해, '완전고용'은 100% 고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 시장임금에서 노동공급과 노동수요가 일치하는 균형 노동량'을 뜻한다.      


이렇게 거시경제의 '완전고용량'이 결정되고 나면 거시경제의 균형 총생산량 또한 결정된다. 이때의 총생산량을 '완전고용 산출량'이라 부르고, '잠재성장'(potential growth)을 달성했다 라고 말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완전고용 산출량과 잠재성장은 '한 경제가 주어진 자원을 균형수준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때의 산출량과 경제성장'이다.

     

바로 앞서 이야기 했듯이, 완전고용이란 '정해진 시장임금 수준에서 고용되기를 희망하는 고용량이 모두 고용된 상태'이다. 따라서, 거시경제가 완전고용 산출량을 달성하더라도 실업은 존재하게 된다. 정해진 시장임금 수준보다 더 높은 시장임금을 원하는 사람들이 고용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업을 '자발적 실업'(voluntary unemployment) 이라 부르고, 이때의 실업률을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라 부른다. 



(사족) 자연실업률을 '인플레이션이 비가속적일때의 실업률'(NAIRU,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로 표현하면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이해하면 쉽다. 장기 필립스곡선 모양을 다시 가져와보자.


    

  • 출처 : 조장옥 『거시경제학』 1판.
  • X축 u는 '실업률', Y축 π는 '인플레이션율'을 나타낸다.
  • 경제주체들의 '기대 인플레이션'(expected inflation)이 변함에 따라 필립스곡선(PC)이 이동한다.
  • 그 결과, 장기 필립스곡선은 '수직'이 된다.


'인플레이션이 비가속적'이라는 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반댓말인' 인플레이션이 가속적'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는 말그대로 인플레이션율이 계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우를 뜻한다. 초기 균형점이 A일때 인플레이션율이 증가한다면, 균형점은 필립스곡선을 따라 B점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경제주체의 기대인플레이션이 증가하여 필립스곡선 자체가 위로 이동하게 되고, 균형점은 C점이 된다. 이때, 또다시 인플레이션율이 증가한다면 균형점은 D점으로 이동한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을 계속해서 발생시킨다면 자연실업률 이하의 실업률을 달성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해, 자연실업률 이하의 실업률은 인플레이션을 가속적(accelerating)으로 일으켜야만 달성가능하다. 따라서, 자연실업률이란 인플레이션이 계속해서 발생하지 않을때(즉, 인플레이션이 비가속적일때) 달성가능한 실업률(NAIRU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이다. (사족 끝)



중요한건, 자연실업률은 '총공급부문'에서 결정된다는 것과 '총공급부문인 노동시장이 균형상태에 있어 완전고용에 이르렀을때'에 달성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나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총수요를 증가시키더라도, 총공급부문에서 결정되는 자연실업률은 변하지 않는다. 즉, 총수요 변화는 총공급부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총수요는 단기적인 경제정책에 좌우되고 총공급은 장기적인 경제성장과 연결되기 때문에, 총수요가 총공급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변화된 단기균형이 장기균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과 연결된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 ③ - 총공급과 총수요의 구분 


이처럼 총공급부문에서 결정되는 것과 총수요부문에서 결정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총공급과 총수요를 구분해서 사고해야한다. 


장기적인 경제성장과 자연실업률은 총공급부문에서 결정된다. 공급은 '생산'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현대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이란 '가치가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얼마만큼 많이 생산하느냐'를 의미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경제성장이 총공급부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반면 인플레이션율은 총수요에 의해서 나타난다. 중앙은행과 정부가 통화정책 · 재정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증가시켜 싱럽률을 낮추더라도 결국에는 자연실업률로 복귀한다. 남는 것은 높아진 인플레이션율 뿐이다. (A점에 비해 E점의 인플레이션 수준이 높다.) 경제학자 Milton Friedman이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 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족) 총공급-총수요를 통해 거시경제를 분석하는 것과는 달리, 경제주체 개인(representative)의 선택에서 출발해 거시경제를 분석하는 모델도 있다. 이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룰 계획이다. (사족 끝)

 



※ 자연실업률 개념의 응용


이번글을 통해 이야기한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 혹은 '인플레이션이 비가속적일때의 실업률'(NAIRU,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에 대해서는 2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① 단기적으로 실업률을 낮추는 노력을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실업률 수준은 자연실업률로 복귀한다.

단기균형은 장기균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자연실업률은 총공급부문(노동시장)에 의해 결정된다.



'자연실업률' 개념을 이용하여 지식을 확장해 나갈 수는 없을까? 


다음글에서는 '무역개방이 자연실업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볼 계획이다. "무역개방은 경쟁압력을 증대시켜 일자리를 감소시킨다." 라는 통념이 널리 알려져있다. WTO · FTA 등등 무역개방정책을 실시할 때마다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가 발생하는데, 과연 정말로 무역개방이 일자리를 감소시키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글에서는 '경제위기로 인한 단기적인 실업률 증가가 자연실업률을 영구히 변화시킨 경우'인 '이력현상'(hysteresis)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력현상 관련글

[이력현상 ①-1] 경기침체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1980년대 유럽, 실업률이 영구히 높아지다


이번글에서 "단기균형이 장기균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라고 말을 했지만, 1980년대 유럽에서 단기균형이 장기균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이력현상 ①-1] 경기침체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1980년대 유럽, 실업률이 영구히 높아지다'에서 소개할 계획이다.




※ 경제학적 사고방식의 응용 

①단기와 장기의 구분 ②기대(expectation)의 변화 ③총공급과 총수요의 구분   


이번글을 통해 알게된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이용하여 경제현상을 바라본다면, 특정 사안을 두고 경제학자들이 왜 저런 주장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저 경제학자는 전혀 경제학적이지 않은 주장을 하네" 라고 판단하는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음글에서는 "형집행중인 대기업총수를 석방하면 정말로 경제가 살아나는지"를 살펴보고, '경제살리기를 위한 대기업총수 가석방'이라는 주장이 경제학적 사고에 기반한 것인지를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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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하여[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하여

Posted at 2014. 8. 11. 18:59 | Posted in 경제학/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2014년 7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명량>은 12일만에 1,000만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돌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대상은 관심 못지 않게 비판도 있기 마련. 영화 <명량>에 대한 비판은 주로 '스크린 독점'에 맞춰져있다. "<명량>의 배급사인 CJ가 흥행을 위하여 자사극장 CJ CGV 스크린을 독점했다" 라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고 있고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량>을 봐야하는 상황이다. 대기업은 영화산업내 문화다양성을 해치고 있다." 라는 식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에 대한 이와 같은 지적은 타당한 것일까? 이번글에서는 이와 같은 비판이 지닌 문제점과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경제학적 시각을 이용하여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합의사항이 필요하다. 과연 대기업의 영화산업투자가 영화시장을 교란시켰을까?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발생할때마다 "대기업으로 인해 문화다양성이 훼손됐다" 라는 손쉬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명량>의 경우에도 "제작-배급-상영을 담당하는 CJ로 인해 다른 영화들이 설 자리가 없다." 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애시당초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투자하기 이전, 그리고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이전에 문화다양성 이란건 존재하지 않았다. 한 극장에서 하나의 영화만 상영하던 시절, 게다가 극장 자체도 적었던 시절에 문화다양성 이란 게 있었을까? 아예 영화산업 · 영화시장 이란게 존재하지 않았다. 우선 이러한 점을 인지해야 뒤이은 논의를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시장 · 산업의 형성]     

자 이제, '하나의 영화가 멀티플렉스 내 스크린을 독점하는 행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살펴자.



※ 이윤추구행위를 하는 기업의 동태적 의사결정


Q : 상영관을 <명량>이 독점하면서 억지로 <명량>을 봐야한다. <명량>의 1,000만 관객수 돌파는 스크린 독점 때문이다.


- 보기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다.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인 원리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현재 <명량>의 좌석점유율은 60%~80%를 기록중이다. 이러한 수치는 평소에 영화관에 자주 오지 않던 사람들까지 영화관에 불러모을때 달성가능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명량>의 흥행을 스크린 독점으로 인해 관객의 선택권이 제약된 상황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물론, 작품성 떨어지는 영화가 순전히 스크린을 독점하는 배급사의 힘으로 일정수준 이상의 관객수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 <명량>의 관객수를 단순히 스크린 독점 덕분이라고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소비자가 선택한 것] 



Q : 보기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라니, 이런 무책임한 발언이 어디있나


이 말이 함축하는 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상품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라는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시장 안에서 기업은 이윤획득을 위하여 소비자에게 팔릴만한 상품을 내놓는 노력을 한다. 만일 소비자가 그 상품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기업은 알아서 그 상품을 퇴출시킨다.


마찬가지로 많은 관객이 <명량> 관람을 선택하니까 영화관에서 스크린수를 늘리는 것이다. 관객에게 선택받지 못한 영화는 자동적으로 스크린수가 줄어들게 되어 있다가령, 영화 <군도>의 경우 관객이 늘지 않자 개봉 일주일만에 스크린수가 급속히 축소되었다. [기업의 이윤추구와 시장퇴출] 



Q :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영화는 자동적으로 상영관수가 줄어든다' 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 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상품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일까? 로운 경쟁시장에서 기은 '이윤획득'을 위해 '장기적'이고 '동태적(dynamic)'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아주 중요한 원리이기 때문에 기업행위를 고려할때 이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아무리 배급사에서 영화를 밀어준다 하더라도, 많은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을 것 같고 돈을 벌지 못할 것 같으면 극장은 영화를 걸지 않을 것이다반대로 말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의 영화-가령 <26년>, <변호인>-라 하더라도, 많은 관객이 찾아오고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으면 극장측은 스크린을 확대해서 개봉한다. [자유로운 경쟁시장에서의 차별철폐] [기업의 이윤추구와 동태적 의사결정]


Q : '제작-배급-상영'의 독점체계가 강화된다면 소비자들은 그저그런 영화만 보게 되지 않을까?

-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아무리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상품만 시장에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약되어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유로운 경쟁시장에서 기업은 '장기적'이고 '동태적(dynamic)'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계속해서 그저그런 영화만 상영된다면 영화산업 관객수는 줄어들 것이고, 그렇다면 CJ 등의 영화산업 내 기업들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쪽으로 행위를 바꿔나갈 것이 분명하다. 또는 좋은 영화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고 인지한 신생 투자자와 감독이 영화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고? 돈을 벌어야 하니깐. [기업의 이윤추구와 동태적 의사결정 그리고 시장진입]


Q : '제작-배급-상영'의 독점체계에서 기업의 동태적인 행위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떡하냐?

- 예를 들어, 한 기업이 독점체계에 안주해서 계속해서 그저그런 영화만 내놓는다면? 그리고 소비자들은 그저그런 영화가 가장 좋은 것인줄 알고, 수준낮은 영화를 계속해서 받아들인다면? 그 결과, 기업의 동태적 의사결정이 발생하지 않게 되어 산업 전체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산업이 바로 언론산업이다. 한국 언론사의 홈페이지는 클릭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게다가 지금이 2014년임에도 불구하고 하이퍼링크 기능을 통한 관련기사 링크 대신 '~~면 참조' 라는 종이신문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언론산업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외부의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WSJ> <The Economist> 같은 수준높은 외국언론사들은 한국시장에 맞추어 수많은 기사를 재빨리 번역해서 내놓기 힘들다. (물론, <WSJ> 한국어판이 있긴 하지만 기사의 수 자체가 적다.) 따라서 한국 내 소비자들은 한국언론사를 선택할 수 밖에 없고, 외부와의 경쟁에서 보호받고 있는 한국언론사들은 발전을 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산업은 이와는 다르다. 언론사 기사는 하루에도 수백개씩 쏟아지고, 시간에 맞추어 재빨리 번역해서 내놓아야 하지만, 영화산업은 이와는 달리 시간을 두고 자막을 붙여 상영할 수 있다. 다시말해, '외부의 진입장벽'이 낮은 것이다. 따라서 미국 영화산업에서 좋은영화가 계속해서 수입해 들어오는한, 한국 영화기업들은 관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동태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외부 진입장벽과 시장경쟁]


Q : 넷플릭스 등의 온라인 스트리밍 산업의 영향은?

- 게다가 한국에 위치한 소비자는 세계각국에서 제작된 퀄리티 높은 영상 콘텐츠를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다(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서비스 하지 않지만) 대다수 한국 소비자들은 합법적인 혹은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미국영화, 미국드라마, 다른 외국드라마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그런 영화만 한국 극장에서 상영된다? 그럼 소비자들은 그냥 집에서 퀄리티 높은 영상콘텐츠를 관람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다. 이처럼 영상 콘텐츠에 대한 '외부의 진입장벽'이 낮은 상황에서 한국 영화산업 기업들이 독점에 안주하는 행위를 보일까? [대체재 존재와 시장경쟁]


Q : 헐리우드 영화, 미국 드라마가 퀄리티 높은 영상 콘텐츠냐! 독립영화는? 대작영화의 상영관 독점으로 인해 독립영화는 멀티플렉스에 걸리지도 못한다!

- 대기업의 영화산업 투자와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이전에도 독립영화는 대중극장에 많이 걸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독립/예술 영화를 많이 찾지를 않는다.

대중상업영화랑 독립/예술영화는 목표로 하는 시장 자체가 다르다CJ CGV, 롯데시네마 등이 대중상업영화 시장을 담당한다면 KT&G 상상마당, 이대 아트하우스모모, 씨네코드 선재 등이 독립/예술영화를 담당한다. 

그리고 독립/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지역적으로 소규모로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에 위치한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상영하더라도 이윤을 거두지 못한다. 따라서, 홍대, 이대, 광화문 등에 위치한 몇몇 극장에서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가 이들 지역에 모이는 것이 집적의 이익이다. [분리된 시장] [집적의 이익]



※ 규모의 경제와 시장크기 그리고 상품다양성

위의 논의에서 살펴봤다시피, 영화 <명량>의 스크린수는 소비자선택의 결과이다. 그런데 영화 <명량> 스크린 수를 비판하는 사람은 대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상영관 축소와 비교를 한다. "개봉 9일 밖에 안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상영시간이 조조 아니면 심야 뿐이다! 이게 말이 되느냐!"

<명량>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같은 날 개봉을 하였는데, 일단 개봉 당시 스크린 수부터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그런데 <명량>이 인기가 없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흥행하였더라면, 이윤을 추구하는 극장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크린 수를 늘리는 동태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까?

영화진흥위원회 좌석점유율 추이를 살펴보면, 영화 <명량>의 좌석점유율은 60% 이상을 줄곧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좌석점유율은 대개 40% 수준이다기본적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흥행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봉 당시부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상영관 수가 너무나도 적었다는 점과 (<명량>에 비해 낮다고 하더라도) 40% 라는 좌석점유율을 기록중이었는데 현재 상영관수가 너무나도 줄었다는 점을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명량>의 스크린 독점 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위에서 논의했다시피 이것을 단순히 "배급-상영 독점체계를 가진 CJ가 문제다. 영화 <명량> 배급을 담당한 CJ가 이익을 위하여 자사가 가지고 있는 CJ CGV의 스크린을 독점했다." 라고 비판하는건 몇가지 허점이 있다.

  1. <명량>의 좌석점유율이 높다. 즉, 소비자들이 <명량>을 선택했다.
  2. <명량>이 흥행하지 않았더라면, CJ는 당연히 <명량>의 스크린 수를 축소하고 다른 영화의 스크린 수를 늘렸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흥행하는 모든 영화가 상영관을 독점하지는 않는다. 영화 <변호인> 흥행 당시, 비록 상영관수가 많기는 하였지만 <명량>만큼 많은건 아니었다. "영화가 흥행한다 → 이윤추구를 위해 극장이 상영관수를 대폭 늘린다 → 상영관 독점이 발생한다" 라는 논리구조가 항상 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CJ의 배급-상영 독점체계가 문제인 것일까?

본인은 그것보다는 <명량>의 제작비에 관심이 간다. <명량>의 제작비는 180억원인데 한국영화시장에서 '제작비 180억'은 엄청난 금액이다. 그리고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한 손익분기점 관객수는 550만이나 된다. 다르게 말해, <명량>은 엄청난 '고정비용'이 투자된 상품이고, 관객수가 늘면 늘수록 평균비용이 떨어지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시장의 크기' 이다. 시장의 크기가 클수록 생산량이 증가하여 평균비용을 하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시장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고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 나온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원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 나오고 판매량이 분산된다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은 생산비용이 급증하게 된다. 즉, 시장의 크기가 제약되어 판매량이 분산되는 곳이라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은 심각한 적자를 보게 된다. 그 결과, 시장의 크기가 작은 곳에서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상품에 대한 욕구'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 간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충돌을 완화시켜주는 것은 '국제무역' 이다. 각 나라와 산업들은 국제무역을 통해 시장크기를 넓힘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원활히 작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획득할 수 있다. [경제학자 Paul Krugman은 '독점적 경쟁시장'과 '시장크기'에 관한 국제무역이론을 수립하고 지리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명량>은 국제무역을 통해 시장을 확대할 수 없다. 이순신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일본에 수출할 수 있나? 한국의 영웅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미국 사람이 볼까? 제작비 500억이 투입된 <설국열차>의 경우 세계각지에 수출함으로써 '한국 시장크기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명량>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투자비용 회수를 위해 한국영화시장 안에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스크린 수를 대폭 늘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한국 대작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물론, 그 영화가 흥행하지 않는다면 독과점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자연스럽게 상영관수가 줄어들겠지만...) 이것을 고려한다면 단순하게 배급사와 상영사의 독점을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의 원인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규모의 경제'와 '시장크기'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 영화 <명량>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학의 논점들


이번글에서는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하여 경제학의 시각으로 살펴보았다. 얼핏보면 그저 경제학 용어를 사용한 단순한 글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경제학의 논점들이 담겨져 있다. 


[시장 · 산업의 형성] ·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은 소비자가 선택한 것] ·  [기업의 이윤추구와 시장퇴출] · [자유로운 경쟁시장에서의 차별철폐] · [기업의 이윤추구와 동태적 의사결정] · [기업의 이윤추구와 동태적 의사결정 그리고 시장진입] ·  [외부 진입장벽과 시장경쟁] · [대체재 존재와 시장경쟁] · [분리된 시장] · [집적의 이익] · [규모의 경제와 시장크기 그리고 상품다양성. 이를 해결해주는 국제무역]


이것들 중에서 이 글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경제학 논점은 3가지이다.


  •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행위가 가져오는 동태적 최적화 (Dynamic Optimization)
  •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불러오는 차별의 감소와 소비자후생 증가
  • 시장크기가 제약된 곳에서 규모의 경제와 상품다양성 간의 충돌발생. 이를 해결해주는 국제무역

① 
만약 경제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따르지 않는다면 경제시스템 내 균형은 일시적(one-period)이고 정태적(stable)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혹은 편익을 추구하는 경제주체는 동태적으로 행위한다. 따라서 어떠한 경제현상을 바라볼때는 다기간 모형(multi-period model)과 동태적 최적화(dynamic optimization)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또한,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펼쳐지는 곳에서 경제주체의 1차 목표는 시장에서의 생존이다. 따라서 영화시장 내에서 기업들은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관객이 많이 들 것 같은 영화'를 상영하려고 한다. 여기서 정치적 성향 · 인종 · 성별 등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관객이 많이 들 것 같은'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위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화-<26년>, <변호인>-라도 극장은 상영관 수를 확대했다는 예시를 들었다. 

일반적인 상품시장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발생한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곳에서 기업이 생존을 하려면 정치적 성향 · 인종 · 성별 등을 차별하기보다 능력 위주로 직원을 선발해야 한다. 경제학자 Gary Becker는 "차별을 감소시키는건 ('선한 의지'가 아니라) 자유로운 경쟁이다." 라고 말했다.    

게다가 자유로운 시장경쟁은 차별을 감소시킬 뿐더러 소비자후생도 증대시킨다.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하여 시장경쟁이 성립하지 않는 곳에서는 기업의 동태적 행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도 있었을 소비자들의 후생이 감소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규모의 경제를 가진 산업과 상품 다양성을 바라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시장크기 제약으로 인해 충돌하는 현상은 국제무역이 일어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각 국가들은 국제무역을 통해 시장크기를 확대하였다. 그 결과 규모의 경제를 가진 산업이 원활히 활동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다음글들에서는 '동태적 최적화· '자유로운 경쟁의 이점들· '국제무역이론 - 1세대, 2세대, 3세대' 등에 대하여 자세하고 깊게 살펴볼 것이다. (올해가 다 가기전에 글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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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Posted at 2014. 7. 10. 08:45 | Posted in 경제학/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이전글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이 미국 부동산거품을 만들었는가?'를 통해,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을 옹호하는 前 Fed 의장 Ben Bernanke의 주장을 알 수 있었다. Ben Bernanke는 당시 기준금리가 적정수준에 비해 낮지 않았음을 테일러준칙(Taylor Rule)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2000년대 초반 미국 부동산시장 가격급등은 Fed의 낮은 금리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과잉저축(the Global Saving Glut)'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글로벌 과잉저축이 무엇이길래 미국 부동산가격, 아니 당시 전세계 부동산가격을 크게 상승시켰던 것일까? 다른나라의 저축이 한 나라 혹은 전세계 부동산가격을 올린다는 것이 이치에 맞는 주장일까? 만약 Ben Bernanke의 주장이 옳다면, 도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다른 나라의 저축이 한 나라의 부동산가격을 상승시켰을까? 다음글에서는 "신흥국의 과잉저축이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켰다." 라는 Ben Bernanke의 주장을 알아볼 것이다. 


이에 앞서, Ben Bernanke의 '글로벌 과잉저축(the Global Saving Glut)' 주장을 이해하기 위한 선행지식으로, 이번글에서는 경제원론 지식을 활용하여 ① 경상수지의 의미 ② 저축 · 투자와 경상수지의 관계 ③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 경상수지 흑자는 마냥 좋은 것일까?

 

경제학 비전공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경상수지(Current Account)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경상수지 흑자 통계를 가지고 대통령의 업적을 비교[각주:1]하거나, 다른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크기에 비해 한국의 그것이 더 크다고 우월해하는 모습[각주:2]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Current Account Surplus)를 '국가의 부'(Wealth of Nation)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중상주의 시절에는 금과 같은 재화를 국가가 얼마나 보유하고 축적(Accumulation)하느냐가 중요했다. 즉, 국가가 보유한 재화의 양이 국가의 부와 동일시된 것이다. 과거 중상주의 시절, 제국주의 국가들이 해외식민지를 개척하는데 힘을 쏟았던 이유는 식민지 무역을 통해 재화를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제국은 인도 · 중국과의 식민지무역을 통해 금과 은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한 금과 은을 통해 국가의 경제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재화를 얼마만큼 보유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재화를 얼마만큼 '생산'(Product) 하느냐이다. 그렇게 생산된 재화를 '소비'(Consumption)함으로써 사람들이 '효용'(Utility)을 얼마만큼 느끼는지 따지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사족) <<< 경제학 전공자들이 경제원론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이다. 여기서 공급은 '생산', 수요는 '소비'를 뜻한다. 즉, 현대 자본주의 핵심이 '생산'과 '소비'이기 때문에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을 경제원론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다. 


또한, 미시경제 파트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효용'이고, 거시경제 파트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GDP'이다. GDP는 말그대로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을 뜻한다. GDP의 정의는 '일정기간 동안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 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국가의 부는 얼마만큼 생산하느냐 이기 때문에, 국가의 경제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GDP를 이용한다. (따라서 "GDP는 국민들의 행복을 측정할 수 없다." 라는 식의 주장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통해 경제주체가 얼마만큼 '효용'을 누리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미시경제 · 거시경제 파트에서 효용과 GDP를 가장 먼저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사족 끝)    


한 국가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은 다른 나라가 생산한 제품을 수입한 양에 비해 그들이 생산해 낸 제품을 다른 나라에 수출한 양이 더 많음을 의미한다. 중상주의 관점에서 보면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이다. 수입을 초과하는 수출로 인해 외화를 벌어들여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관점에서 경상수지 흑자는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생산해낸 제품을 다른나라에 보낸 국민들은, 재화를 사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상주의 관점과는 반대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상수지 적자(Current Account Deficit)가 좋은 것일수도 있다.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지 않더라도, 다른나라의 재화를 수입해와 사용함으로써 효용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각주:3].         




※ 경상수지 흑자 · 적자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경상수지 흑자 · 적자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여기서 또 많은 사람들은 '기업 간 경쟁'에 의해 경상수지가 결정된다고 잘못 생각한다. 가령, 한국기업인 삼성이 수출을 통해 많은 이익을 거두면 한국의 경상수지는 흑자이고, 일본기업인 도요타가 수출을 통해 많은 이익을 거두면 일본의 경상수지는 흑자라는 식이다. 따라서 한국기업이 일본기업에 비해 많은 수출을 한다면, 한국의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할 것이고, 한국의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건 한국기업이 일본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중상주의식 사고방식이다. 이런 사고를 하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를 국가의 부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한 국가의 경상수지는 기업 간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각주:4]. 경상수지는 국민계정상의 소득 · 소비 · 정부지출 · 투자 등에 의해 결정된다.





위의 첫번째 식은 국민계정(National Account)을 나타낸 것이다. 경제 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소비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경제 내 총생산 크기는 소비 · 정부지출 · 투자 · 순수출[각주:5] 형식의 총지출 크기와 똑같다. 그리고 이를 전개하면 '국민저축(S) - 투자(I) = 순수출(NX)'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즉, 한 경제에서 경상수지 흑자냐 적자냐를 결정짓는 건 수출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경제 내 국민저축과 투자의 크기이다. 국민저축이 투자보다 많다면 그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이고, 투자가 국민저축보다 많다면 그 경제는 경상수지 적자이다[각주:6]



< 출처 : [심층분석] 과도한 경상흑자 구조 '달갑지 않은' 일본과 닮은 꼴인가. 조선일보. 2013.11.12 >



(사족) <<< 이 블로그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관련 포스트를 통해,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원인이 대기업들의 과잉투자[각주:7] 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대기업들의 과잉투자로 인해 한국경제는 투자가 저축을 초과하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이는 1994년-1996년간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각주:8]로 이어지게 되었다. >>> (사족 끝)    




※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관계


다시 반복하지만, 국민저축이 투자보다 많다면 그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이고, 투자가 국민저축보다 많다면 그 경제는 경상수지 적자이다. 그런데 저축과 투자는 금융시장[각주:9]과 관련있는 것 아닌가? 한 경제에서 저축이 투자보다 많다는건 여유자금이 있다는 뜻이다. 여유자금을 가지고 있는 개인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금을 빌려주어 이자소득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의 행위를 하지 않을까?


투자에 비해 국민저축이 많은 국가, 즉 여유자금이 있는 국가(경상수지 흑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려주는 역할(net lender on international financial market)을 한다. 그리고 국민저축에 비해 투자가 많은 국가, 즉 자금이 필요한 국가(경상수지 적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리는 역할(net borrower on international financial market)을 한다. 이런 원리로 경상수지(Current Account)와 자본수지(Capital Account)는 연결된다. 경상수지 흑자 국가는 자본수지가 적자이고, 경상수지가 적자인 국가는 자본수지가 흑자이다.





아직은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직접적인 관계가 직관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방식으로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직접적인 관계를 설명하자면, 한 경제내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수출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오직 이 한 사람만이 1달러 어치의 수출을 발생시킨다. 그 경제는 원화를 쓰지만 수출결제는 기축통화인 달러를 이용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1달러를 어떻게 써야할까? 


1달러를 소비자금으로 쓸 수 있을까? 주의해야 할 점은 그 경제는 원화를 쓴다는 것이다. 달러를 가지고 그 경제 내에서 물품을 구매할 수는 없다. 따라서 수출을 통해 1달러를 벌어들인 사람은 국제금융시장에서 1달러를 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경상수지 흑자가 자본수지 적자, 즉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려주는 역할로 이어지는 것이다.  

    

위에 나오는 간단한 식대로 실제 경제에서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상반된 관계를 보일까? 1993년-2002년 사이, 한국경제의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그래프를 보면 데칼코마니 같은 모양를 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족) <<< 1994년-1996년 당시 한국이 경상수지 적자[각주:10]를 기록했다는 의미는 다시말해 자본수지 흑자 국가, 즉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리는 역할[각주:11]을 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앞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상수지 적자(Current Account Deficit)가 좋은 것일수도 있다" 라고 말했다. 다시 반복하자면,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지 않더라도, 다른나라의 재화를 수입해와 사용함으로써 효용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의 이런 이점이 지속가능할까? 


한 경제가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계속해서 빌리고 있음(자본수지 흑자)을 의미한다. 어느날 갑자기, 빌리고 있는 자금에 대해 상환요구가 들어온다면 그 자금을 갚아야 한다. 그것을 갚지 못하면? 외환위기에 빠지게된다[각주:12] [각주:13]즉, 현대 자본주의 관점에서 경상수지 적자는 좋은 것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오랫동안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라는 말은 아니다. >>> (사족 끝)



     

※ 글로벌 과잉저축(the Global Saving Glut)?


이번글을 통해, Ben Bernanke의 '글로벌 과잉저축(the Global Saving Glut)' 주장을 이해하기 위한 선행지식으로, 이번글에서는 경제원론 지식을 활용하여 ① 경상수지의 의미 ② 저축 · 투자와 경상수지의 관계 ③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다음글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에서는 Ben Bernanke의 주장과 2008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본격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1. 모 블로그 포스팅에서, 대통령임기별 경상수지 흑자액수를 가지고 "박정희정권이 한국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건 틀렸다." 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굳이 링크는 걸지 않겠다. [본문으로]
  2. [사설] 최초로 일본 앞지른 경상수지 흑자의 명암. 중앙일보. 2013.11.05 [본문으로]
  3. 물론, 그렇다고해서 '경상수지 적자'가 마냥 좋다는 것은 아니다. 경상수지 적자의 문제는 이것이 '지속불가능' 하다는데에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느냐는 글을 계속해서 읽어나가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될 것이다. [본문으로]
  4. '경상수지' 뿐 아니라 '국가의 경제력' 또한 단순히 기업간 경쟁, 국가간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경제력은 '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Paul Krugman의 '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 참조. http://www.pkarchive.org/global/pop.html [본문으로]
  5. GDP는 '한 국가내'에서 생산된 최종재화와 서비스이다. 따라서 총생산 Y 크기를 계산할 때는 수입품을 이용한 소비 · 투자 · 정부지출은 제외되어야 한다. 따라서 총수출이 아니라 순수출(=총수출-총수입)을 이용한다 [본문으로]
  6. 조선일보의 이 기사가 이러한 원리를 잘 설명하고 있다. '[심층분석] 과도한 경상흑자 구조 '달갑지 않은' 일본과 닮은 꼴인가' 2013.11.12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12/2013111202692.html [본문으로]
  7.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2013.10.27 http://joohyeon.com/172 [본문으로]
  8.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http://joohyeon.com/170 [본문으로]
  9. 정확히 말하면 '대부자금시장'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금융시장' 이라하자. [본문으로]
  10.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2013.10.23 http://joohyeon.com/170 [본문으로]
  11.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2013.11.11 http://joohyeon.com/174 [본문으로]
  12. 특히나 한국과 같이 '외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를 질 수 밖에 없는 신흥국가들은, 이런 이유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에게 경상수지 흑자가 중요한 이유는 경상수지 흑자가 '절대선'이어서가 아니라, 외화로 표기된 부채에 대한 상환요구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본문으로]
  13. '외화로 표기된 부채'(denominated in foreign currency)에 대해서는, '왜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 단일통화를 쓰면 안될까?' http://joohyeon.com/113 의 '개발도상국이 지고 있는 원죄Original Sin' 파트와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http://joohyeon.com/176 의 '※ 동아시아 국가들의 태생적 한계 - ②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파트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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