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2005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1997년-2005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① - 2008 금융위기의 씨앗

Posted at 2016.01.22 14:36 | Posted in 경제학/오늘날 세계경제


※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2016년 1월 현재, 주요 거시경제 · 국제금융 이슈는 '미국 Fed의 기준금리 인상' · '미국 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위기 가능성' ·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 '유로존의 구조적 문제' · '중국의 경기둔화 가능성' 등등 입니다. 


2015년 초부터 1년 내내 가장 많이 보도되었던 경제뉴스는 '미국 Fed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었습니다. 2008년 12월 이래로 미국 Fed는 0.25%라는 극도로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해왔으나, 2015년내에 기준금리를 한차례 인상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2015년 12월, 미국 Fed는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여 7년만에 제로금리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세계 경제학자들과 언론들은 "7년동안 지속되어왔던 Fed의 저금리정책이 끝난 후, 신흥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까?"에 관심을 두고 있죠.


2015년 6월-7월 사이에 가장 핫했던 경제뉴스는 '그리스 국가부도와 유로존 탈퇴 가능성' 이었습니다. 


그리스는 IMF로부터 빌린 돈을 상환하지 못하였고, "독일 · 유럽위원회 등으로부터 빌린 나머지 채무 또한 갚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채무탕감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독일은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퇴출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강경하게 나섰고, 이에 따라 유로존 해체 가능성까지 제기됐었습니다. 


2015년 7월에 많이 나왔던 또 다른 경제뉴스는 '중국 주식시장 급락'입니다. 작년말부터 크게 상승했던 중국 주가지수는 올해 7월부터 급락하기 시작했고 최대 50% 하락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경제는 단순한 주가지수 하락을 넘어서서 '과잉투자에 따른 경기둔화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중국은 부채를 통해 투자를 증가시켜 고성장을 달성해왔는데, 비효율적 투자로 인해 부실이 생겨나고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죠.


게다가 중국경제는 2016년 1월이 되자마자 주식시장 급락을 또 경험하며, "중국에서 경제위기 발생하는거 아니냐?"는 우려를 키웠습니다.    


이렇게 2015년부터 지금까지 쏟아진 경제뉴스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경제현상들-미국 금리인상, 유로존위기, 중국 경기둔화-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앞으로 세계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경제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2008년 이래로 미국이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해온 이유를 알려면 '2008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2008년에 있었던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를 알려면 '2008년 이전의 시간'을 살펴봐야하죠. 


또한 경제학자들이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신흥국 경기침체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유를 알려면 '과거 미국이 금리를 인상했을때 신흥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와 독일의 갈등은 새로운게 아닙니다. 그리스는 2010년과 2012년, 이미 두 차례의 구제금융을 받은바 있고 그 과정에서 독일과 갈등을 일으켰었습니다. 그리스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 스페인 등 다른 남유럽국가들도 2010년 이래로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의 문제를 가지고 있죠. 


즉, 유로존은 2010년 이후부터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유로존내 갈등을 이해하려면 '2010년부터의 사건'을 살펴봐야 하고, 유로존 자체를 이해하려면 더 오래전의 시간을 봐야 합니다.  

  

중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잠재력만을 지니고 있던 공산국가 출신이었으나, 1999년 WTO에 가입한 이래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왔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이후로는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고 있죠. 그러다가 2015년 현재는 과잉투자에 따른 부실증가와 경제성장률 하락의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각각의 사건을 깊이있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경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는 파악하고 있어야 오늘날의 경제현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경제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주간지 <The Economist>의 표지그림을 보는 것입니다. <The Economist>는 그때그때 중요한 사건을 표지로 내세우는데, 1997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의 표지를 훑어보기만 하더라도 세계경제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The Economist> 표지를 통해 세계경제 흐름을 알아봅시다.  




※ 1997년

남아시아-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다


1997년은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로 퍼져나간 해 입니다. 이른바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죠. 


1997년에 일어난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이후 1990년대 후반 미국 IT 버블 · 2001년 미국 경기침체 · 2008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2008 금융위기의 여파가 오늘날에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20년 전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7년 7월 19일

'South-East Asia loses its grip' (남아시아-동아시아, 기운을 상실하다)


1997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었던 한국 ·태국 · 인도네시아 · 홍콩 · 싱가포르. 그러나 1997년 7월, 태국에서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단기 대외부채를 많이 지고 있던 기업들(한보철강 · 기아자동차 등등)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좋지 않은 경제상황이었습니다. 이와중에 태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국에도 미친다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죠. 


하지만 당시 한국은 태국발 금융위기가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었습니다. 경제부총리였던 강경식은 회고록을 통해 태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때의 상황과 혼란스러운 생각을 전하고 있습니다.  


● 97년 7월 8일 : 태국, 금융위기에 몰리다


- 모든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던 7월 초, 난데없이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을 거듭하고 (...) 신문 지면은 우리나라도 당장 그 금융태풍에 휘말릴 것처럼 온통 우려의 목소리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나-강경식 경제부총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태국과 우리나라는 여러가지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97년 7월 27일 : 태국 위기 남의 일 아니다


-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대외신인도를 예의 주시하면서 대책 강구가 필요했다. 특히 신용도가 괜찮은 은행들이 해외로 나가 달러를 많이 빌려 외환보유고를 많이 쌓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 1997년 7월 19일판 기사

: 'South-East Asia loses its grip'

: 'South-East Asian currencies - Unpegged'

: 'The tigers’ fearful symmetry'

: 'South Korea’s firms - Kia keels over'




1997년 8월 23일

'The puzzling failure of economics' (경제학의 당혹스러운 실패)


경제위기가 발생할때마다 소환되는 것은 '경제학'입니다. 2008년에도 그랬고 1997년도 마찬가지였죠. 


7월에 시작된 태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는 8월에도 지속되었습니다. 태국 바트화 가치는 여전히 요동을 좋고, 한국 · 인도네시아 · 싱가포르 · 홍콩의 통화가치도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한국은 은행부실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한보철강 · 기아자동차 등 기업들이 파산하자, 돈을 상환받지 못한 은행의 재무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부실은 그저 기업 하나의 파산으로 끝날 수도 있으나, 은행의 부실은 금융시스템을 마비시켜 경제전체를 침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The Economist>는 '여전히 불안정한 남아시아-동아시아 통화가치'와 '한국의 기업부실과 은행부실'을 기사로 다루면서, 태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을 포함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를 크게 걱정했습니다.


▶ 1997년 8월 23일판 기사

: 'The puzzling failure of economics'

: 'Asian currencies - More turbulence ahead

: 'South Korean industry - Another day, another girder'

: 'South Korean banks - First and worst




1997년 11월 1일

'급격한 경기하강이 발생했던 한 주' (A week on the wild slide)


7월에 시작했던 태국발 금융위기가 이제 남아시아-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쳐 나갔습니다. 10월 중순, 태국 · 인도네시아에 이어 한국 · 싱가포르 · 홍콩 · 대만에서도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통화가치가 급락했습니다. 


강경식 부총리는 7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태국발 금융위기를 단순히 주시하는 정도였으나, 9월과 10월 들어서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을 실제로 느끼기 시작했죠.


● 97년 9월 20일 :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이 현지에서 빌려쓴 돈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앞의 대문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뒤에 있는 쪽문으로 나가서 저지른 일이 집안 전체를 뒤흔들게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 97년 10월 17일


- 동남아 통화위기가 10월 중순에 들면서 북상하기 시작했다. 


● 97년 10월 23일


- 홍콩 증시 폭락 사태로 또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세계 증시가 모두 출렁이는 것이어서 우리도 그런 충격파 속에 함께 놓여진 것으로 생각했지,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로 치닫는 길에 들어섰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997년 10월 23일을 기점으로 한국 원화가치는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10월 22일 1달러당 915.10원이었던 통화가치는 23일 921.00원 · 24일 929.50원 · 27일 939.90원 · 28일 957.60원 · 29일 964.00원 · 11월 6일 975.00원 · 11월 10일 999.00원 · 11월 17일 1,008.60원 · 11월 25일 1,122.00원 · 12월 23일 1,962원까지 크게 하락했죠.


한국의 기업들은 달러화로 표기된 부채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부채부담을 키웠습니다.



한국은행은 원화가치 급락을 막기위해서, 가지고 있던 달러화자산을 팔아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1997년 1월 외환보유액은 300억 달러였으나 12월은 200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에더해 외국투자자들은 실제 외환보유액은 150억 달러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였고, 이는 당시 한국이 지고 있던 단기외채의 1/5에 불과한 금액이었습니다.


결국 11월 21일, 인도네시아 등에 이어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에 대해서

: '금융위기의 이론적 모델 -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 & 2013 동아시아 외환위기???'

: '1997년 한국 거시경제의 긴장도를 높인 요인 - 고평가된 원화가치와 경상수지 적자'

: '1997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기업들의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

: '금융감독체계가 미흡한 가운데 실시된 금융자유화 - 1997년 국내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다'

: '단기외채 조달 증가 - 국내은행위기를 외채위기·외환위기·체계적 금융위기로 키우다'

: '자본흐름의 갑작스런 변동 - 고정환율제도 · 외국통화로 표기된 부채 · 대차대조표 위기'


▶ 1997년 11월 1일판 기사

: 'A week on the wild side'

: 'Indonesia - No thanks, IMF'

: 'The downpour in Asia'

: 'The world economy - Asia’s spreading shadow'




1998년 1월 3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South Korea's new start)


외환위기 발생과 여당 후보의 분열 덕분에 한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김대중은 대선 직후부터 사실상 대통령직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외국 투자자들과 IMF는 현재의 대통령인 김영삼보다는 미래의 대통령인 김대중과 협상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죠.


IMF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금융감독 강화 · 기업들의 부채비율 감축 ·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구조개혁을 요구하였습니다. 김대중정부는 임기동안 이를 수행하였죠. 


▶ 1998년 1월 3일판 기사

: 'South Korea’s new start'

: 'The flexible tiger'

: 'Asia picks up the pieces'  




※ 1998년 - 1999년

미국 주가지수 상승과 아시아의 경기회복


1997년에 일어난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충격은 이후 러시아 · 브라질 · 아르헨티나로까지 퍼져나갔습니다[각주:1].


이제 미국도 외환위기의 여파가 자국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까를 우려하기 시작했죠. 미국 Fed는 미국경제가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인하로 선제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1998년 10월의 기준금리 인하'가 향후 또 다른 위기의 불씨가 되고 맙니다.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인플레이션율도 낮았지만 기준금리를 인하했습니다. 국내거시경제가 안정적인 상황에서의 기준금리 인하는 당연히 과열을 부르게 됩니다.


1998년-1999년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미국 IT산업 버블로 이어졌던 때 입니다. 



1998년 11월 14일

'전세계가 잊고있는 위험'(The world's forgotten danger)


표지 속 인물은 미국국기 모양을 한 모자를 쓴채로, 크게 증가하고 있는 그래프가 그려진 풍선을 매달고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그리고 표지에 적혀진 문장은 '전세계가 잊고 있는 위험'(The world's forgotten danger) 입니다. 


<The Economist>의 1998년 11월 14일자 표지는 '주식시장 거품의 위험성을 잊고있는 미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995년 1월, 400대 후반이었던 S&P 500 지수는 1998년 11월에는 1100선을 넘었습니다. 4년동안 약 3배만큼 증가한 것이죠. 


당시 주가지수 상승을 이끈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획기적으로 성장한 IT산업 이었습니다. PC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인터넷망이 깔리면서 IT산업은 크게 성장하였고, Microsoft 등은 높은 이익을 거두었죠. 


사람들은 IT산업 발달에 따른 경제성장을 '신경제'(New Economy)라 불렀고, 투자자들은 IT와 관련된 기업이라면 수익성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채 막대한 투자를 하였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The Economist>는 우려섞인 시각을 보입니다. "현재 주식시장은 거품(bubble)일 가능성이 크고, 거품이 꺼질 경우 거시경제에 상당한 충격이 발생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죠. 


그리고 상품가격 인플레이션(goods price inflation)에만 신경을 쓰고, 자산가격 인플레이션(asset price inflation)은 방치하는 미국 Fed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3년 뒤인 2001년, <The Economist>의 우려는 현실이 됩니다.


▶ 1998년 11월 14일판 기사

: 'The world’s forgotten danger'   

: 'Rallying cries'   

: 'The central banker as god'




1999년 8월 21일

'아시아의 놀라운 경기회복' (Asia's astonishing bounce-back)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아시아는 1999년 들어서 놀라운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1998년 1분기, 전분기 대비 -7.0%라는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은 1999년 2분기에는 전분기 대비 4.5%라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 태국 · 싱가포르 · 홍콩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1997년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The Economist>는 1999년 아시아가 놀라운 경기회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로 '미국의 경기활황'과 '세계화'를 꼽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당시 미국은 IT산업 발달에 따라 높은 경제성장률 · 주가지수 급등의 활황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수요증가에 따라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이 증대되었고 그 결과 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의 악몽에서 벗어나서 놀라운 반등을 보여줄 수 있었죠. 


▶ 1999년 8월 21일판 기사

: 'Asia's bounce-back'

: 'On their feet again?'




1999년 11월 20일 · 11월 27일

'중국, 행동을 개시하다'(China opens up) · '세계화의 폭풍'(Storm over globalisation)


1999년 11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자유무역의 세계로 들어옵니다. 


그동안 공산주의 · 무역장벽 속에 갇혀있던 중국이 시장을 개방(open) 함으로써 차기 강대국으로써 행동을 시작(open up)한 것이죠.


2015년 현재 중국의 GDP는 세계2위이고, 경제성장의 힘으로 소득이 크게 증가한 중국인들이 전세계 관광산업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9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그저 '잠재력만 큰 가난한 국가' 였습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다니, 앞으로 중국의 힘이 많이 세지겠구나." 라는 추상적인 생각만 들 뿐이었죠.  


▶ 1999년 11월 20일판 기사

: 'China opens up'  

: 'The real leap forward'

: 'The remaining hurdles'


▶ 1999년 11월 25일판 기사

: 'Storm over globalisation'




※ 2001년 

IT버블 붕괴 · 9.11 테러, 미국 경기침체를 맞다


앞서, '1998년의 <The Economist>'는 미국 주식시장의 과열을 우려했습니다. IT산업 발전이 '신경제'(New Economy)로 불리우며 각광받았지만, 과열이 꺼진 이후에는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The Economist>의 우려는 2001년에 현실화 됩니다.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미국은 경기침체에 들어서게 됩니다. 여기에더해,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미국경제는 더욱 더 위축됩니다.


당시 Fed 의장이었던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IT버블 붕괴 · 9.11 테러의 충격을 상쇄하기 위해, 불과 1년 사이에 기준금리를 6.50%에서 1.75%로 가파르게 인하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2000년대 초반 당시 Fed의 초저금리 정책이 7년 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2001년 1월 6일 

'그린스펀의 놀라운 행동'(Greenspan's big surprise)


표지 속 인물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약 20년간 Fed 의장을 맡았던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 입니다.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이 어떤 행동을 했길래 <The Economist>는 'big surprise'라는 말을 써가면서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일까요?


앞서, 1998년-1999년 동안 IT산업 발달의 힘으로 활황기를 맞은 미국경제를 살펴보았습니다. 1995년 미국 S&P 500 지수는 약 400대 후반에 불과했으나 1999년에는 약 1372대로 3배 이상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약 4.8%를 기록했죠.




그러나 2000년 들어서 미국경제는 후퇴기에 들어섭니다. '신경제'(New Economy) 인 줄 알았던 IT기업들 상당수가 그저 거품(bubble)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죠. 신기술을 앞세워서 막대한 투자를 받은 다수의 IT 기업들은 이렇다할 수익을 거두지 못하였고 파산하고 맙니다. 


2000년 1월, 1517 포인트로 정점을 찍었던 S&P 500 지수는 2001년 1월 1040 포인트로 30% 이상 급락합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전분기 대비 경제성장률 또한 1% 미만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1999년의 미국경제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2000년부터 시작된 경기후퇴를 단순한 조정기로 바라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2001년 1월, 기준금리를 6.5%에서 5.5%로 1%p 인하함으로써 경기후퇴 가능성에 공격적으로 대응하였습니다.


▶ 2001년 1월 6일판 기사

: 'Greenspan’s big surprise'        




2001년 3월 24일 · 4월 21일 · 8월 25일

'세계경제는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Can the world escape recession?)

'그린스펀이 구하러 온다' (Greenspan to the rescue)

'경기후퇴기에 해야할 2001가지' (2001 things to do in a recession)


2001년 1월, Fed 의장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현재의 경기후퇴를 심각하게 생각하였고 기준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공격적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이는 현재의 경기후퇴를 단순한 조정기로 바라봤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죠.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2001년 4분기 동안 미국의 전년동기대비 경제성장률은 급락하여 1% 미만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2001년 이전,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4% 이상이었으나 2001년 연간 경제성장률은 0.97%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1월에 한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던 Alan Greenspan은 2001년에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내립니다. 2000년 12월 6.5% 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2001년 8월 3.0%로 8개월 동안 무려 3.5%p나 하락했습니다.  


▶ 2001년 3월 24일 · 4월 21일 · 8월 25일판 기사

: 'Can the world escape recession?'

: 'Greenspan to the rescue'




2001년 9월 15일

'세계가 바뀐 그 날' (The day the world changed)


2001년 9·11 테러는 말그대로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 ·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죠. 그런데 9·11 테러가 국제정치·외교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던 미국이었는데, 9·11 테러 이후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더욱 더 침체에 빠져듭니다. 


Fed 의장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9·11 테러 이후 기준금리를 3차례나 더 인하하였고, 2001년 12월 미국 기준금리는 1.75%를 기록합니다. 2000년 12월 6.5% 였던 미국 기준금리가 1년 사이에 1.75%가 된 것이죠.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2002년 11월에는 기준금리를 1.25%로 더 인하하였고, 2003년 6월 기준금리는 1.00%까지 내려갑니다. 미국 Fed의 이러한 초저금리 정책은 2004년 6월까지 지속되었죠.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의 단호한 대응은 미국경제를 회복시켰습니다. 2001년 4분기에 0.2% 성장률로 저점을 찍은 미국경제는 Fed의 확장적 통화정책에 힘입어 회복하기 시작했고, 2004년 이후부터는 경기침체 이전과 비슷한 4.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죠. 


자, Fed 의장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은 'IT 산업 거품 붕괴'와 '9·11 테러'가 초래한 경기후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크게 내렸고, 1%대의 초저금리 정책을 2004년까지 유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단호한 대응은 미국경제를 침체에서 살린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초저금리 정책이 '7년 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당연히 알 수 없었습니다. 역사교과서에서나 봤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버금갈만한 '대침체'(Great Recession)가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죠. 


▶ 2001년 9월 15일판 기사

: 'America attacked - The day the world changed 





※ 2002년-2005년

: 2008 금융위기의 씨앗이 뿌려지다

: 미국 부동산가격 상승 · 유로화 도입


2002년-2005년은 '2008 금융위기[각주:2]' '2010 유럽재정위기'[각주:3]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입니다. 


2001년 경기침체를 경험한 미국은 1%대의 초저금리 정책을 2004년까지 유지합니다. Fed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기준금리 정상화를 시도하였으나, 이미 미국 부동산가격은 오를만큼 오른 상태였죠. 이후 미국 부동산은 2006년을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하였는데.....


2002년의 또 다른 사건은 바로 '유로화의 도입' 이었습니다. '하나의 유럽'을 위해 노력해온 유럽인들은 유로화를 도입하며 여러 국가들이 '단일통화'(single currency)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죠. 그런데 단일통화 사용이 훗날 경제위기를 심화시킬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2002년 1월 5일

'유럽의 원대한 구상' (Europe's big idea)

 

2002년은 '유로화'(€, euro)가 도입되어서 사용되기 시작한 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유럽국가들은 경제통합을 통해 무력충돌을 방지하려는 생각을 하게되고, 1999년 유럽통화동맹(EMU) 결성 · 2002년 유로화(€, euro) 도입으로 유럽통합의 결실을 맺습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이제 '유로존'(eurozone)으로 불리게 되었죠.


이때 당시에, 서로 다른 유럽국가들이 '단일통화'(one currency)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경제학자들간의 논란이 많았습니다. Martin Feldstein(마틴 펠트스타인)과 Paul Krugman(폴 크루그먼) 등은 상이한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들끼리 단일통화를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쪽 경제학자들과 유럽위원회(EC)는 유로화 도입을 그대로 밀어붙였고, 어찌됐든 2002년부터 독일 · 프랑스 · 그리스 · 스페인 등에서 유로화는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로화 도입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8년 뒤에 현실화 될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한채 말이죠.  


(참고 : '[유럽경제위기 ①] 유럽은 '최적통화지역' 이었을까?' ) 


▶ 2002년 1월 5일판 기사

: 'The euro - Europe's big idea'    




2002년 3월 30일

'세계를 구하는 부동산' (The houses that saved the world)



앞서, 2000년~2001년 IT산업 거품 붕괴와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이 경기침체를 겪었다는 사실과 Fed의 초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2002년부터 미국경기가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Fed는 2001년 한해동안 기준금리를 6.50%에서 1.75%로 무려 4.75%p나 인하시켰고, 2001년 4분기에 0.2%로 저점을 찍은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점차 증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Fed의 확장적 통화정책은 어떤 경로를 통해 미국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었을까요? 미국경제를 회복시킨 것은 바로 '부동산'(housing market) 이었습니다. 


<The Economist> 2002년 3월 30일판 기사는 "부동산이 깊은 침체로부터 세계경제를 구해냈다." 라고 말합니다. (They have helped to shelter the whole world economy from deep recession.) 



● 2001년 Fed의 초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부동산가격 상승


2000년 1월 미국 부동산가격을 100이라고 했을때, 2002년 3월 123.32로 23%나 상승했습니다. 이후에도 부동산가격은 계속 상승하여서 2005년 12월 202.17로 5년 사이에 부동산가격이 2배나 올랐습니다. 

 

Fed의 초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손쉽게 대출을 받게된 미국인들은 부동산구매에 나서게 되고 부동산가격은 크게 상승합니다. IT산업 거품 붕괴를 경험한 미국인들은 주식보다는 부동산구매에 힘을 쏟았죠. 


부동산가격 상승을 맞은 미국인들은 경제상황을 좋게 판단하였고 소비를 늘렸습니다. 증가된 소비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 동아시아 국가들의 과잉저축,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Fed의 확장적 통화정책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유입된 자본 또한 부동산가격을 상승시켰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위기재발을 막기 위하여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보유고 축적'에 힘을 쏟습니다. 이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획득한 달러화를 이용하여 미국 채권을 구매하였고, 그 결과 미국내로 상당한 양의 자본이 유입됩니다.(capital inflow)


1998년 1분기 미국 자본·금융계정 흑자 규모는 약 1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00년 이후부터 자본·금융계정 흑자 규모가 약 1,000억 달러를 넘는 모습을 그래프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으로 유입된 자본은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고, 바로 앞에서 봤듯이 미국 부동산가격은 크게 상승합니다.


Fed의 초저금리 정책 때문이든 동아시아 국가로부터 유입된 자본때문이든, 미국 부동산가격 상승은 2001년의 경기침체로부터 미국경제를 구해냈습니다.


그런데 5년 사이에 2배나 상승한 미국 부동산가격이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을까요? 갑자기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2002년 3월의 <The Economist>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미국 부동산가격이 갑작스레 반전하면 경기회복에 해를 끼칠 것이다. 그러나 미국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지 않는한 갑작스런 반전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a sudden reversal is unlikely unless interest rates were to rise sharply.) 


현재 미국경제의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기준금리는 천천히 상승할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가격은 폭락하지 않은채 그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라고 말이죠.[각주:4]


그런데... 미국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이... 2년 뒤인 2004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 Fed의 통화정책과 부동산가격 상승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 경제학자 John Taylor "Fed의 통화정책이 부동산가격 거품을 초래했다"

- '2000년대 미국 부동산시장 거품은 Fed의 저금리 정책 때문이다?'

: 2006년-2014년 Fed 의장 Ben Bernanke "Fed의 통화정책과 부동산가격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

- '2000년대 초반 Fed의 저금리정책이 미국 부동산거품을 만들었는가?'


▶ 동아시아의 경상수지 흑자와 미국 부동산시장의 관계에 관하여

: 경상수지 흑자와 자본·금융수지의 관계

-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 글로벌 과잉저축(Global Saving Glut)과 미국 부동산시장

-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 2002년 3월 30일판 기사

: 'International house prices - The houses that saved the world'

: 'House prices - Going through the roof'




2005년 6월 18일

'부동산가격이 하락한 이후' (After the fall)


2002년 3월 30일 세계를 구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부동산. 하지만 2005년 6월 18일에는 "부동산가격이 하락하고 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라는 걱정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 부동산가격의 큰 폭 상승 - 부동산시장의 거품 우려


앞서 봤듯이, 미국 부동산가격은 2002년 이후로도 계속해서 상승했습니다. 2002년 중반 134.10 이었던 부동산가격지수는 2005년 6월에는 189.53, 10월에는 202.17을 기록하였죠. 


부동산가격이 끝도없이 치솟자 <The Economist>는 "이러한 붐(boom)은 전례가 없었다. 지난 5년간 전세계 부동산가격 상승은 역사상 가장 큰 거품이다. 상승폭(boom)이 클수록 하락폭(bust)도 클 것이다." 라고 우려를 표시합니다[각주:5].



● 주택담보대출 부채규모 대폭 증가 - 부동산가격 폭락시 거시경제 문제 초래


이어서 <The Economist>는 2000년-2001년 IT 산업 발전에 따른 주식시장 거품과 붕괴를 겪었던 미국이지만, 부동산시장 거품은 주식시장 거품과 비교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주식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돈으로 투자를 합니다. 은행대출을 받아서까지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그러나 부동산을 구매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은행대출을 이용합니다. 주택담보대출(mortgage)을 통해 부동산가격의 일정부분을 충당하죠. 


따라서, 주식가격이 폭락하면 투자자 한명만 손실을 보는 반면에, 부동산가격이 폭락하면 투자자 뿐만 아니라 은행도 손실을 보게되고 금융시스템이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각주:6]. 


2001년 이후 미국 부동산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미국인들의 주택담보대출 부채규모도 크게 증가하였는데, 2001년 1분기 약 5조 달러였던 부채규모는 2005년 4분기 약 9조 달러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 Fed는 왜 부동산시장 가격상승을 방치했는가



부동산가격 거품 가능성과 주택담보대출 부채의 큰 폭 상승을 지켜본 <The Economist>는 화살을 Fed의 통화정책으로 돌립니다. 


2001년의 경기후퇴를 막기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했던 Fed는 2001년부터 2004년 중반까지 약 3년간 1%대의 초저금리를 유지했습니다. 이후 경기상황이 호전되고 부동산가격 거품이 우려되자 Fed는 2004년 중반부터 2005년 6월까지 1년동안 기준금리를 2.25%p 상승시켜 기준금리 3.25%를 만들었습니다.  


<The Economist>는 당시 Fed 의장이었던 Alan Greenspan(앨런 그린스펀)의 이러한 통화정책이 늦은 것 아니냐는 시각을 보입니다. 좀 더 빨리 기준금리를 올려서 부동산시장의 열을 식혀야 했다는 것이죠.

(Ideally, the Fed should have tried to cool the housing boom by raising interest rates sooner and by giving clear verbal warnings to buyers, as Britain's and Australia's central banks have done.)


●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동안 4.25%p나 상승한 기준금리


어찌됐든 미국 Fed는 3년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하다가 2004년이 되어서야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후 2년간 4.25%p나 인상했습니다. '초저금리의 장기간 유지' +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의 조합이죠.


2002년 3월 30일판 <The Economist>가 "미국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지 않는한 부동산가격의 갑작스런 반전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한 사실을 기억합시다.


2002년의 기대와는 달리 2005년의 부동산가격은 더욱 더 올랐고 기준금리는 가파르게 인상되고 있었습니다.


● 세계경제 위험성이 높아지다


이로인해 세계경제의 위험성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2005년 6월, 경제위기가 현실화된 것은 아니었으나 <The Economist>는 위기의 가능성을 매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각주:7].


2년 뒤인 2007년, <The Economist>의 걱정은 현실화 됩니다.


▶ 2005년 6월 18일판 기사

: 'House prices - After the fall'

: 'The global housing boom - In come the waves'




※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안타깝게도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 큰일나지 않을까?" 라는 <The Economist>의 걱정은 현실화 됩니다.


2006년을 정점으로 미국 부동산가격이 하락하자,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2008 금융위기가 발생하였죠. 다음글을 통해 '2007년-2009년 세계경제'를 알아봅시다.


다음글 '[2007년-2009년] <The Economist> 표지로 알아보는 세계경제 흐름 ② - 2008 금융위기 발생'


  1. [외환위기 정리]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전개과정과 함의 http://joohyeon.com/247 [본문으로]
  2. 2008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189 [본문으로]
  3. [유럽경제위기 요약] 유럽재정위기(European Sovereign Debt Crisis)란 무엇인가 http://joohyeon.com/223 [본문으로]
  4. (House prices cannot continue rising at their current pace. A sudden reversal in prices would harm the recovery, but the news on that is good: a sudden reversal is unlikely unless interest rates were to rise sharply. With little evidence of increasing inflationary pressures, rates are likely to be raised slowly. If so, prices are more likely to flatten off rather than collapse.) [본문으로]
  5. (This boom is unprecedented in terms of both the number of countries involved and the record size of house-price gains. Measured by the increase in asset values over the past five years, the global housing boom is the biggest financial bubble in history (see article). The bigger the boom, the bigger the eventual bust.) [본문으로]
  6. (One other big difference between houses and shares is more cause for concern than comfort: people are much more likely to borrow to buy a house than to buy shares. In most countries, the recent surge in house prices has gone hand-in-hand with a much larger jump in household debt than in previous booms. Not only are new buyers taking out bigger mortgages, but existing owners have increased their mortgages to turn capital gains into cash which they can spend. As a result of such borrowing, housing booms tend to be more dangerous than stock market bubbles, and are often followed by periods of prolonged economic weakness.) [본문으로]
  7. (The whole world economy is at risk. The IMF has warned that, just as the upswing in house prices has been a global phenomenon, so any downturn is likely to be synchronised, and thus the effects of it will be shared widely. The housing boom was fun while it lasted, but the biggest increase in wealth in history was largely an illusion.)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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